그림]클로버유캔파잇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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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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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그림]클로버유캔파잇 2권 킨나이프

소개글 클로버유캔파잇=클로버.Y.C.F.(=You can fight!). 영혼. 천사. 악마. 신. 정령. 진화. 전생. 운명. 트라우마. 일상. 망상. 동화.치유. 글쟁이. 만남. 등을 키워드로 한 라이트노벨-일상패닉현대판타 지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유쾌한(?) 스토리. 자작표지-클로버(왕,세계,행운),날개(흑백,천사와악마),열쇠구멍(숨겨진비밀) 주인공 단독 설침 no, 트라우마와 함께하는 여러 캐릭들이 짬뽕되는, 여럿 '우리들의 이야기'로 치유계가 되려 노력하는중이나~/ A.B.C.D.별 개의 단편처럼 보이나 완결로 갈수록 하나로 쭉 이어지는 방향으로 설정/ [*]표시는 그림있음./ [완]은 작은완성,쉬어가기,동시에 이어짐을 뜻 함./ 전체 큰 흐름 A~D 순서로.../ 2014.10.7~ 시작된 나의 글...^^/ 감사합니다. 1권: A0-1 ~ B4-3. / 2권: B4-4 ~ B6-4, ~ C2-9, ~ D2-5. 3권: B7-1 ~ B9-4. / 3.5권: B9-5 ~ B10-2.(약 8만자. 그외 약 15만자.)

목차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5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15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5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3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4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4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4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3 그림소설/C0-1. 숲속의 공주네집에 누구냐! *(N,16.5.11.) 82 그림소설/C0-2. 잃어버린 적 없다고! [완] *(N,16.5.11.) 90 그림소설/C1-1. 뭐지? 이 맹물 맛은!? *(N,16.5.11.) 100 그림소설/C1-2. 까맣고 반듯하고 우아한 그 날개! *(N,16.5.11.) 107 그림소설/C1-3. 내 마지막 질문에 답해다오. [완] *(N,16.5.11.) 114 그림소설/C2-1. 코스모스는 꽃이 아니래잖아. *(N,16.5.11.) 125 그림소설/C2-2. 새하얀 백합향기. *(N,16.5.11.) 133 그림소설/C2-3. 티라노와 취미생활. *(N,16.5.11.) 141 그림소설/C2-4. 오묘하고 싸가지 없는 퀭한 그 눈빛. *(N,16.5.11.) 149

그림소설/C2-5. 도시락과 볼따구에 닿은 따끈화끈! *(N,16.5.11.) 158 그림소설/C2-6. 신모양을 부탁해. *(N,16.5.12.) 167 그림소설/C2-7. 고양이군, 사장한테 찔러도 좋아? *(N,16.5.12.) 177 그림소설/C2-8. 그 표정 너하고 안 어울리거덩? *(N,16.5.12.) 185 그림소설/C2-9. 검고 키 큰 너는, 날 바라봐! [완] *(N,16.5.12.) 195 그림소설/D0-1. 언밸런스(unbalance)! 앰뷸런스(ambulance)! *(N,16.5.12.) 209 그림소설/D1-1. 붉고 새하얗게 질려버린 악귀 *(N,16.5.13.) 218 그림소설/D1-2. 이상한 가면을 쓴 채 웃지 마! *(N,16.5.13.) 229 그림소설/D1-3. 통제 불능과 또 다른 나. [완] *(N,16.5.13.) 238 그림소설/D2-1. 상자와 마인드컨트롤. *(N,16.5.13.) 247 그림소설/D2-2. 능력이 없는 낙오자들은? *(N,16.5.13.) 255 그림소설/D2-3. 정리정돈과 혜안과 편지. *(N,16.5.13.) 264 그림소설/D2-4. 편지와, 오랜만이야! *(N,16.5.13.) 275 그림소설/D2-5. 아름다웠다. 그 불꽃은. [완] *(N,16.5.13.) 286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2016.04.13 22:18 당신의 생각 이 그러하다면 그런 거겠지요.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신의 생각이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해보자면, 그녀의 상상력이 발휘하던 그 수많은 능력들을 보자면 그 럴 거라 생각하던 슈크, 밀리언이었다. 화륵. 화르륵.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5

[그림: 모닥~불꽃, 옆에... 뭔가는 무시하시고. 흠흠.] 잠시 불꽃을 바라보며 어떤 추억에 빨려드는 듯 뭔가를 회상하던 그, 그녀의 대답이 오기 전에 말을 이 어나간다. 저도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6

에? 그때 뭔가 찌릿 하고 왔어? 이 여자는 내 여자다? 그게-. 응?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내게 닥칠 줄은 정말 몰랐던 거죠. 정말로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것인지, 좋았다고 나빴다고? 살짝 갸웃거리며 생각하던 신은 그 여자는 갑작스레 볼을 부풀리며 뾰로통해진다. 엥. 뭐야 그게. 말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밀리언? 나 속상해. 날 운명의 여자 라고 해달라고. 그럼, 그렇다면, 당신 에게 있어 저는 어떤 남자인가요? 그 운명의 남자 인가요? 왠지 진지하지 않아도 되건만, 신은 골똘히 생각해봤다. 하지만 잠시 그리해본들 뭔가가 딱히 떠오르진 않는다. 난처한 일임에도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해버리기로 한다. 흐음. 그렇군. 대답할 수 없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거라. 그런 게 있긴 있는 건가? 그렇네. 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말을 막 갖다 붙이려 했던 걸까? 보통 별 의미 없이 하는 거 많지 않아?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지? 밀리언도 그렇지? 무심코 말해버린다거나 하는 거. 그렇죠? 저도 그렇습니다. 인생 이란 그런 거죠. 운명이라 여기면 운명의 사슬에 묶여 수레바퀴를 돌리는 거겠죠. 그 수레바퀴의 방향은 그들 자신이 바라는 무게중심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을 하다보니까 어찌어찌 이런 모양새로 떠올려버리고 말았건만, 그게 나름 좋았고, 밀리언도 속으로 나는 과연 이런 남자였던가! 하며 새삼 감탄하며 만족하고 있었다. 와아. 너 뭔가 좋은 대사를 치는데? 나도 그런 대사 갖고 싶어! 그렇게, 신도 만족했고, 밀리언도 조금 우쭐해졌다. 아니 거만해져버리고 만다.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7

[그림: 밀리언. 30대.] 원래 전 인텔리겐치아 입니다. 바이크나 타는 폭주족이나 진배없는 그런 한가한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저는. 아시겠습니까? 설명: 인텔리겐치아(=인텔리, 지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 층으로 지식 계급) 근데 밀리언, 너 왜 죄 없는 바이크 를 걸고 넘어져? 글쎄요.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뭐 하긴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갑작스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온 사방을 환히 밝힐 듯한 기세로 그녀는 말한다.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8

[그림: 그녀. 소녀.] 밀리언. 넌 역시 바이크를 탈거야. 아주 멋지고 휘황찬란한 바이크를. 미래에. 네? 어째서! 바이크라니!! 그딴 놈들. 난 전혀 이해 못해요. 그런 놈들은 정말 싫습니다. 가련한 짐승들의 가죽을 벗겨서 얼씨구나 좋다고 입고 다니는 그런, 그런 괘씸한 자들과 저를 같은 족속으로 몰아붙인다니! 그런 말은 그쯤 해두시죠.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9

진심으로 화를 내는 그를 보면서도 아직 신은 그를 가만둘 생각을 하지 못 한다. 늘상 자신은 마이페이스의 연속이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와아. 이런 너의 민감한 반응이라니! 바이크는 이미 널 선택해버렸는지도. 천사와 악마 녀석들이 심장을 쿵쾅거리며 두려워할, 그런 차가운 눈빛을 열어버린 밀리언 앞에서도 그 저 작게 웃고 넘기고 있던 담 큰 여자였다. 그런 여자일수밖에 없는 게 이 세계의 처절한 룰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녀는 신이니까. 나는 그녀의 부하정도로, 하지만 너무 배려 없이 던지는 저 모습이 상황에 따 라 기분이 제각각 다르긴 하지만, 오늘은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 라면 그만두죠. 일 이야기 나 하죠? 잘 돼 가고 있습니까? 그 건은. 나. 맥주가 먹고 싶어. 흑맥주. 차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요. 가지고 오죠. * 부스스. 내 눈앞엔 활활 타는 듯한 불빛이 일렁거리고 있었고, 왠지 모를 따뜻함과 찝찝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하고 뜸들이던 사이, 몸 위에 덮여있던 담요를 발견해버리고 만다. 담요를 보자마자 뭔가 포근한 감각이 와락 녹아내려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아아. 그래서 조금 따뜻했던 건가. 그렇다면, 난 지금 혼자가 아닌 건가.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10

[그림: 나, 28세 남.] 기절 후 잠(또는 긴 기절)에서 깨어나니, 뭔가 조금은 멍한 기분이었던 터라 조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는 그 생각만으로도 꽤나 감동해버리고 마는 28세의 남자, 강림 이었다. 강림은 얼핏 그 사고의 기억이 났다. 상어에게 쫓기던 그 험악한 기억이 말이다. 그땐 정말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멀 쩡하게 살아있는 자신이라니. 그 비키니 여자가 내 뺨을 그렇게 때렸다-고 해도 온갖 운을 껴안고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니까! 그리 발끈해 할 것도 없었는데. 그땐 왜 그리도 난리법석을 쳤던 것인지,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싶었다. 조금은 후회하는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 가만 보니, 역시나! 상어에게 쫓기며 수영했던 터라 옷이 다 젖었기에 찝찝한 거였다.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11

이렇게 캠프파이어 장작 옆에 있어도, 담요가 덮여 있더라도, 정말로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어딘가 씻을 데는 없는 걸까-하던 참에, 누군가와 두 눈이 딱 마주쳤다. 어이. 살아있네. 물론 그녀의 말이다. 지금은 노란 원피스에 담요를 덮은 차림이었다. 이런 모습이라면 긴장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아까는 별 쓸데없이 예민하게 굴었던 자신이 라며 괜스레 후회했던 것은 금세 잊어버렸다. 저 여자 얼굴을 보니까 또 경계의 레이더가 파바밧 맹렬히 작동하는 듯 했다. 그럼 안 됩니까? 그 상어. 엄청 배가 고팠다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걸. 너. 봤습니까? 그런데도 왜! 왠지 욱했다. 맞다. 그러고도 남을 여자였다. 하지만 저 여자 혼자 대체 그 상황에 뭘 할 줄 알겠냐 싶기도 했지만 역시나 화가 커다란 분노만이 일어 난다. 왜냐면 저 여자 옆엔 아가씨! 하며 붙어있던 30대의 구세주 밀리언이 있으니까. 그녀에게 꼬박꼬박 아가씨. 라고 친절히 대했던 그였다. 만약에 그녀가 그에게 부탁만 해줬더라면 기꺼이 나를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나의 행 복한 과거를 상상으로 만들어 내다보니 원통해 죽을 지경인 것이다. 밀리언은, 필요시에 그 여자의 험한 입도 언제든 막을 수 있었고 그 여자를 뒤에서 꼭 붙잡아 움직임을 통제시킬 수도 있는 비상한 능력에다, 군대에서 태권도를 배운 나를 단번에 기절시켜버릴 정도로 굉장한 사람이니까. 나는 그 상어로 인해 죽음의 직전까지 갔었고, 깨어나 보니 웬 여자가 나를 짜증나게 했고, 왠지 이런 저런 게 맘에 안 들어서 다 삐뚤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면서 기세등등해 있는 나 라니 우스웠다. 아까 밀리언의 그 조치가 없었다면, 난 아마 아무데나 갔다가 상어보다 더한 짐승들을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내게 칼은 있냐고 묻던 밀리언을 이야기를 듣다보면, 밀리언은 역시 더욱 더 강한 남자일지도 모른 다는 예감이 든다. 분명히 상어 따위야 밀리언이라면 거대한 삼지창을 들고 한 큐에 보내버릴지도 모를 거라는 그런 망상 이 자꾸자꾸 돋아나는 걸 보니, 난 정말 저 구세주 에게 반한 모양일까? 아주 살짝 반 했나? 내 주변엔 저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은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그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전 혀 없었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니까, 이렇게나 금세 감탄하고 저리 되고 싶다고 바라고 있는 거였다. 나도 저렇게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주~ 아주~ 긴 멍을 때린 탓에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침묵만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12

을 지켰다. 그러는 사이, 눈치껏 그의 앞에 있던 여자는 이런저런 변명을 둘러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넘겨버릴 마땅한 뭔가를 찾다가 돌연 떠올라 이리 말해보는 거였다. 아. 넌 몰라서 그래. 우린 진짜~ 굉장히~ 너무~ 멀리 있었다고. 그때도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다고. 그리고 널 구할 틈도 없었어. 게다가 네가 너무 일찍 살아남는 바람에~ 뭐 그런 거라고. 이제 알겠지? 지금 저 여자가 뭐 라고? 내가 너무 일찍 살아 남아? 뭔가 굉장히 큰 뼈다귀가 있는 말을 하고 있는 저 여자를 한번 째려봐줬다가, 누군가의 발걸음소리에 그 쪽으로 확 눈길이 갔다. 저 사람도 양반되긴 글렀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라는 작은 미소를 달고, 조금 생기 있어진 나는 그때 나의 우상 밀리언을 보았다. 그가 한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그 넓은 쟁반에 정갈하게 담겨있는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여기! 나 흑맥주 줘! 밀리언! 뭔가 신나서 양손을 위로 한 채 힘껏 흔들어대던 여자 하나가 거기 있었다. 그쪽으로 가던 밀리언이 그녀에게 그녀가 원하던 음료를 순순히 내어준 후, 몸을 돌려 내 쪽으로 뚜벅뚜 벅 걸어왔다. 내게로 시선을 보내며, 일어났냐? 네. 죄송했습니다. 수선을 떨어서. 그러니까 그게. 할 말을 찾아 내가 이리저리 뭔가 좋은 말이 없나~ 잠시 뒤적이는 사이, 그가 답해왔다. 넌 뭐 먹을래? 이것저것 있는데. 그럼, 저는 커피 로 할게요. 아니지. 조난엔 코코아 지. 자- 여기. 그렇게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새까만 코코아가 담긴 머그컵 하나를 건네주던 그, 역시 이상한 동네였 다. 여긴! 대체! 그럴 거면 왜 먼저 물어보는 건데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상향에게는 역시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지 싶었다. 이렇게 공짜 음료를 몸소 건네주신다니 아~주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참고로 지갑도 없는 빈털터리인 제게 자비를 베푸셔서 정말 감사하나이다.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13

역시 그 양복 윗도리에 핸드폰과 지갑이 다 들어있었다. 단지 내 10만 원대 손목시계정도가 지금의 내 전 재산인지도. 이 정도는 뱃삯정도는 나올지도. 맘먹고 산 메이커인데. 뭐 어쩔 수 없나. 고맙습니다. 나의 감사인사에 그저 한 템포 침묵하다가 이내 아무것도 못 들은 척으로 무시해버리던 밀리언은 이제 쟁반을 적당히 바닥에 내려놓고는, 머그잔을 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겁고도 향기로운 커피를 코끝으 로 음미하고 있었다. 아. 좋네. 역시 커피는 믹스커피인가. 근데 너. 그러니까, 밀리언은 내 앞쪽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여자는 내 앞쪽 왼편에 자릴 잡고 있었다. 셋은 삼각형을 이루듯 앉아 있었다. 네? 나는 밀리언이다. 이름은? 저는 제갈강림입니다. 흐음. 정말? 찾아봐. 밀리언. 그녀는 그때 아주 잠깐 이지만, 그 제갈강림 이란 자에게서 미묘하게 시치미를 뚝 때는 듯한 어떤 양 상을 눈여겨보았다. 거기엔 분명 진실이 있었지만 거짓도 얼핏 보였으니까. 그럴까요? 그 대답을 끝으로, 밀리언은 한쪽에 놓아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은 이미 켜져 있는 상태였고 아마 그 검색 은 순식간일 터다. 그런 광경에 난 조금 황당했다. 그림소설/B4-4. 흑맥주와 코코아와 커피. *(N,16.5.4.) 14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2016.04.13 22:32 그럴까요? 그 대답을 끝으로, 밀리언은 한쪽에 놓아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은 이미 켜져 있는 상태였고 아마 그 검색 은 순식간일 터다. 그런 광경에 난 조금 황당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자기 사진을 찍어 올리는 부류가 난 전혀 아니란 말씀, 밀리언에겐 미안하지만 저런 것 은 헛수고로 끝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은근히 달지도 않고 적당히 맛있는 코코아의 따뜻한 향을 즐기고 한 모금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따스함에 녹다보니 용기도 와락 생겨난다.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15

[그림: 나, 28세 남.] 코코아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근데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밀리언씨도 저도 어떤 당사자에게 반말을 못 하고 있는 걸까요? 전 28씩이나 됐는데, 밀리언씨도 적어도 30쯤은 되어 보입니다만, 그 당사자는 많이 쳐줘도 10대 후반처럼 보이는데, 밀리언씨가 그 당사자에게 아가씨 라고 하는 걸로 봐서 뭔가 집안 문제 같아서 그런가보다 합니다만, 그렇다면 왜 저는 이런 걸까요? 저는 그 당사자와 그 어떤 집안문제도 얽혀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 당사자에게 반말도 가능하다고 나름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않으세요? 당사자씨. 오. 그거 나 보고 하는 소리구나?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16

제갈강림 이 아닐지도 모를 녀석. 제갈강림입니다. 저는! 뭐, 그렇네요. 지금 와서 편해지고 싶긴 한데, 밀리언씨가 굳이 아가씨 라고 해주는 걸 보니 좀 살아도 많~이 사는 집 딸인 건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도리에 어긋나지요. 그렇게 어른을 함부로 하다니요. 내가 말하는 그 어른 에 밀리언과 나는 함께 슬며시 들어가 있었던 거다. 그렇게 슬슬 저 어린 여자 애에게 순순히 오빠 라고 불리어지고 싶다고나 할까. 뭐 굳이 오빠 가 아니라 오라버니 도 괜찮다. 하지만 야 와 너 등등의 이런 태도는 아니라 고 본다. 얼마나 내가 이곳에 머무를지 모를 이 순간에 저 여자애에게 더는 휘둘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이구별 을 확실히 해서, 위아래를 제대로 정리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거다. 나는! 그때였다. 밀리언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그 말을 해 버린 것도! 찾았습니다.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17

[그림: 밀리언.] 네-에? 그럴 리가 요. 화들짝 놀라고 마는 나. 뭔가 슬슬 걱정이 꾸물대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찾았다는데? 제갈강림 을 사칭한 녀석일지도 모르는 누구? 역시 네 이름 따로 있는 거지? 괜히 센 척 해보고 싶었던 거야? 아무리 제갈공명을 갖고 싶었기로서니. 하여간. 다들 그 놈의 제갈~ 제갈에 사족을 못 쓴다니까. 그런 녀석들 그냥 확 다 입에 재갈을 물려줄까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수백만이 당신을 찾아서 엄하게 혼내줄 겁니다. 어떻게 그런! 제갈공명님에게 그런 무례를!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18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예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말은! 수억이라도 상관없어. 다 내가 이긴다. [그림: 소녀. 신.] 무슨 소릴! 대체! 왠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어버린 나에게, 그녀는 얄미운 말을 하고 만다.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19

그럼. 보고해줘. 밀리언. 하면 안 되요! 인터넷은 믿을 수 없는 공간이라고나 할까. 쓸데없는 유언비어가 많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러니까 안 됩니다. 밀리언씨. 제발요. 난 무력이 안 되는 걸 알기에 이리 말로서 눈빛으로서 동정을 갈구했지만, 역시 안 통한다. 그래서 이번 엔 굽실거리며 머리를 조아려본다. 급기야는 넙죽 앞으로 넘어져 큰절도 해본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역시 밀리언씨는 어마어마한 빚을 진 모양이다. 저 재수 없는 부잣집 딸내미의 부모한테. 그 대신으로 하고 싶지도 않은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지 싶었다. 그 빚이란 게 무엇인지, 저런 철없는 여자애를 떠맡아 보디가드를 한다거나 잡무를 처리 하는 등등의 일 을 힘겹게 해왔던 것이라는 스토리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쫙 펼쳐진다. 그럼 보고 들어갑니다. 나이는 28살, 이름은 강림 이고 성은 금성 나 씨라는 군요. 와- 정말? 진짜? 그런 이름 있는 거야? 장난 아냐~ 너! 나강림? 풋. 강하다 강해! 어떻게 그런 이름을! 대단하다 대~단해! 그 여자가 그러는 사이, 밀리언도 내 이름을 다시금 입모양만으로 나강림! 나강림? 하고 몇 번씩 읊 어보면서 숨긴다고 숨겼지만 역시 은근 놀라워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말았다. 이어 조금은 유쾌한 듯 꽤나 작은 미소까지도 지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매번 이름으로 놀림을 당하는데, 그냥 다 속일 수는 없어서 그랬던 건데, 역시 이런 것에 대해선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 일의 원흉인 그 여자를 노려봐주었다. 왜 사람이 말하면 곧이곧대로 믿지 않느냐고 역시 말할 수조차 없다. 그럼 당신은 뭡니까. 그 이름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들어나 보자구요. 나? 흐음. 그렇군. 내 이름은 말이지. 아주~ 아주 굉장하고 단아한데다 뷰티풀(beautiful)한 이름이야. 게다가 성스럽고도 우아한데다 스펙터클(spectacle)한 이름이지.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20

[그림: 물병 하나. 뭔가... 물 먹고 있는 듯한!? 분위기에 투척.] 그러니까 뭐냐고요. 당사자씨? 맞다! 또 검색해주세요. 그거면 바로 찾을 수 있지요? 밀리언씨? 라는 내 말에 밀리언은 잠시 그녀를 힐끗 쳐다본다. 그러니 아마 그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메 시지를 눈짓으로 보내왔고, 그건. 그냥 기다리기로 하지. 나강림. 지금은 아가씨도 자기 이름이 잘 떠오르질 않는 모양이니까. 이번 주는 무리할 정도로 일도 많이 해왔고, 우선적으로 급히 마무리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있어서 그걸 이것저것 처리하다보니까 뭔가 사람이 정신적으로 몰려있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그것에 대해선 네가 이해해줬으면 한다. 하지만! 그때 비키니를 입고 놀고 있었을 때는 너무도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21

멀쩡했던 거 아니었나요? 충분히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거든요. 밀리언씨. 저 여자애 이름 하나 알아내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서 차갑게 말하기 시작한 내 모습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대응해가던 밀리언이었고, 물론 휴가를 보내려고 잠깐 수영복을 입고 잠깐 해변을 즐겼던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아까까지 중요한 용무의 전화를 정신없이 받아서 신경이 꽤 날카로워져 있었다는 게 문제란 거다. 나야 늘 옆에 있으니까 그걸 알지만, 너와는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일종의 낯선 경험 속에서 아가씨는 당황도 했고 그랬으니까, 뭔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벌이고 말았던 거였지. 그건 다 일종에 현대인의 스트레스라는 게 그런 방식으로밖에 표출시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는 거라고. 그것에 난 늘 동참해왔기 때문에. 나는 그때 그런 말도 안 되는 연극대사를 읊었던 거라고. 나도 평소라면 절대로 그런 득도 되지 않는 일을 할 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어쨌든 그러고 나면 왠지 아가씨는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거든. 그런 거에 기분이 좋아진다니, 정말 변태지 않습니까? 전 저런 여자는 처음 봤다구요. 정말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시냐구요. 하마터면 감옥에 갈 뻔했다니까요. 밀리언씨. 감옥? 어쨌든 그러니까 내 말이 그렇다는 거야. 나강림. 갑자기 자기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거라고. 아가씨는. 그러니 기다리다보면 곧 떠오를 테니 일단 기다려봐. 부탁한다. 이렇게나 말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 변명을 대신해주고 있는 밀리언, 그가 그렇게 애를 쓰건만 그래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거였다. 저런 말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그렇기에 지금 나 는 이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름 이잖아요? 그런 걸 까먹을 리가 없지요. 왜 모르는 거죠?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모를까. 그런 것인가? 설마? 또 나는 누군가의 약점을 건드리고 만 것일까?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나는 입을 그대로 느릿하게 닫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모금 코코아를 들 이켰다. 그러며 다소 수상한 눈길로 그 여자애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급히 선회했다.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22

밀리언이 열심히 애를 써서 번 그 시간 동안 신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마땅한 이름이 없을까하고. 어떤 이름이 제일 나을까하고. 이런저런 이름들이 수없이 자신을 스쳐지나가고 있음에도 뭔가 괜찮다 싶은 게 없었다. 예초에 신이 자 기 이름을 짓는다니, 그런 건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신이 그냥 신이지 뭐겠어? 지금까지 불편한 거 하나도 없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아무거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나만 걸려라. 한동안 묵묵히 코코아를 먹다가 주변의 별을 보다가 바닥의 모래알갱이의 반짝거림을 보다가 하고 있던 나강림, 코코아의 마지막 한 방울을 입속으로 던져 넣었을 쯤 해서, 그녀도 이제는 됐다! 는 무언의 신 호를 밀리언에게 던지고는 입술을 열었다. 내 이름은, 그라탕 이야. 오늘 시켜먹은 피자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받아둔 배달전단지 에 있었던 단어를 읊조려보았다. 원래 외국이름이란 그런 것이겠거니~ 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지어봤던 그녀였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해서 뭔가 약간의 혼란이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간 단한 일이었다. 내가 좋다는 데 누군가가 뭐라고 하건 뭔 상관인가 싶었다. 그 모습에 왜 어째서 저런 걸. 다른 이름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게 있을 텐데. 라고 속으로 생각 하던 밀리언, 어딘가 멀리 꼭꼭 몸을 숨기고 싶을 지경이었다. 쓴 커피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원샷으로 먹어버리며, 자신의 얼굴 어딘가에 애석함 이 실렸을 표정을 지우려 애썼다. 그라탕이라니, 그거 음식이름이잖아요? 그게 뭐? 외국사람 이름은 다 그런 거야. 베이커. 다이아몬드. 스톤해머. 루비. 가드너. 울트라맨. 스모그. 파르페. 동동구루무 등등 이래도 모르겠어? 오히려 뻔뻔하고 당당한 듯이 말하는 저 여자에게 뭔가 진 기분이었다. 정말 저런 외국이름도 있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터뜨리나, 외국인 친구가 내겐 없다. 영화에서 본 외국인들 이름 중에 해당사항이 있는 게 몇 개 있긴 하지만, 과연 스톤해머와 울트라맨이나 스모그 그런 것도 사람이름일까? 음. 어려운 난관이다. 굳이 알아서 뭐하랴. 근데 동동구루무 는? 정체모를 이건 대체 뭐지? 묵 이름 인가? 도토리묵처럼? 나무 열매 이름? 외국어가 정말 맞긴 해?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23

해외파-라면야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굳이 따질 사항도 아니었다. 그라탕, 그런 음식 이름이 자기 이름이라고 말해 오다니, 그녀도 나만큼이나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 았던 거였다. 부자집 딸 아닌가? 왜 저런 이름을 자식에게 지어놓은 건지 참으로 부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대체 얼마나 괴짜인 것인지! 가만히 그녀가 앞서 자신의 이름을 대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빗대어 말했던 이런저런 형용사들을 떠올 려보았다. - 나? 흐음. 그렇군. 내 이름은 말이지. 아주~ 아주 굉장하고 단아한데다 뷰티풀(beautiful)한 이름이야. 게다가 성스럽고도 우아한데다 스펙터클(spectacle)한 이름이지. 그러고 보니 우린 어떤 면에서 동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만큼이나 놀림을 당했을 테지. 괜히 애잔한 기분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이제야 밀리언이 그렇게나 열심히 변명했던 일들이 왠지 쫘라라 이해가 되고 있었다. 돈을 쫓는 부자들의 스트레스가 그 딸에게도 전승되고, 그 딸은 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일부 러 변태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니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림소설/B4-5. 현대인의 스트레스 표출 방식. [완] *(N,16.5.4.) 24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016.05.04 14:20 스으윽. 그런데 왜 이렇게 가까이-! 부, 부담스럽거든요. 밀리언씨? 만지작만지작. 조물조물. 꾹꾹. 순간, 밀리언의 손길이 파바박 움직이더니 나의 어느 부근에 닿아 있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돌변해버린 그를 보고 있자니 참으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 멋지구리 나의 이상향 구세주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그는 혹시 일란성 쌍둥이란 말인가? 내가 아는 진짜 구세주씨는 홀로 이민서류 수속을 밟고 있는 건가!? 아. 몰라. 모른다고! 한껏 집중했는지 밀리언의 눈빛은 견고함과 차분함으로 일통한 채로, 그의 음성은 단호하게 나를 압박 해나갔다. 그냥 가만히 있어. 나강림. 넌! 내가 하란대로 얌전히. 그래. 좋아. 그렇지. 지금처럼 그렇게만 하고 있으라고. 잘~ 하고 있어.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5

[그림: 30대, 밀리언] 물론 지금 밀리언이 하는 그 행태는, 언젠가 보았던 그 해변에서의 유치한 여동생 느낌을 풍기는 그 삐삐머리 를 만든다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불편했다. 이런 것은! 상당히 민폐란 점이지만! 나름 항의도 했건만! 물론 여기서의 내 목소리는 콩알만 했다. 뭐, 뭡니까. 진짜. 이런 거 싫습니다. 밀리언씨. 이제 떨어져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이제 떨어져주세요!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이보세요!! 이쯤하면 됐을 거잖아요! 이제 그만두라구요. 부디.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6

[그림: 28세남. 나.] 초밀도의 집중상태를 보이며, 지금 이 순간 내 옆 근거리에 있는, 아니 거의 코앞에 자리한 자는 바로 그라탕이 아니라 밀리언! 그는 아주 열심히 내게 새하얀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새하얀 비키니를 입은 그라탕이 휙 지나가면서 그 상큼한 척 하는 미소가 무섭 다. 그러니까. 여기는 찜질방 이다.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7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양머리 수건(모자)를 아까 최선을 다해 만들던 그는, 지금 최선을 다해서 내 머리 에 그 모자를 씌운 뒤 그 각도를 조정하고 있었던 거다. 춘향전에서 나온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했다는 말은 거짓일 것이다. 여봐라~ 하면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이방들이 쫓아올 것이고, 거기 누구 없느냐~ 하면 거느린 그의 부 하들도 여럿 우르르 모여들 것이 분명했다. 거기서 춘향이 제대로 개길 수 있다고 보는 건가!? 혹시 춘향 이는 전투머신? 뭐,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밀리언은 일당백 이란 거다. 포크로 상어를 낚을지도 모를 그런 굉장한 인간에게서 내가 감히 반항을? 그게 가능한가? 하지만 나는 과연 어디까지 그 한계점을 정할 것인가. 이대로 당하고 마는 건가? 에? 엑? 흠흠. 본론으로, 그 앞에서 약자인 내가 기껏 이런 양머리 수건을 못 쓰겠다고 그를 밀쳐낼 수 있을까? 취미생활에 집중중인 그에게 그의 즐거움을 부숴버리고 난 목청껏 소리를 지를 수 있기나 할까? 피해자는 웁니다. 그런 심정으로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얌전한 새색시마냥. 흐음. 다 됐나? 아니, 좀 더 해볼까? 으음. 쓸데없어 보이는 데 시간을 꽤나 낭비하는 밀리언에게 나는 관두라고 친절함을 담은 눈빛만을 고이 담 아 보낸다. 허나 양머리 수건의 예술적인 각도를 탐구하는 밀리언에겐 보이지 않을 터다. 앞서, 내 콩알만 한 음성의 투덜거림도 그렇게 씹히고 씹혀 더 이상 들은 적도 없을 것일지도. 아. 서럽 구나! 그 후로도 밀리언은 몇 번씩이나 고쳐 씌운다. 자신이 마음에 들 때까지 말이다. 아. 밀리언씨. 당신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아~ 친해져서는 안 될 사람. 아~ 존경해서는 안 될 사람, 맘 속에서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나는 바란다. 닮고 싶지 않다고 이런 면따위 꺼져! 아. 다 됐다. 으음. 이 각도로 여길 봐. 나강림. 그럼 치즈! 이제 자신이 당면한 과제를 모조리 해치운 밀리언은, 핸드폰을 척 꺼내들고는 이제 본격적으로 내 옆에 쫙 붙어서는 양머리와 우리 머리를 화면 안에 살짝 밀어 넣고는 살포시 그의 손가락에 닿은 버튼을 누른 다. 꾸욱! 찰칵. 환한 플래시가 단숨에 우리를 향해 덮쳐오며 나는 이 날의 굴욕을 영원히 그의 핸드폰 사진폴더에 남 겨두고 만다. 그렇게 그 순간 내 혼백은 어디선가 바이바이 를 슬쩍 외치며 아 나 잠시 천국을 보았소! 라고 속삭이다가 다시 내 몸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난 역시 살고 싶었으니까.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8

먼 훗날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만약에 내가 밀리언 당신을 제압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찍힌 이 사진 을 내 손으로 지우겠어. 반드시! 아~ 나 이거 엄청 하고 싶었거든! 음. 음. 이것 봐! 우리 사진이 꽤 잘 나왔는데 그래? 응? 나강림? 매우 설레는 눈빛의 밀리언 버전은 처음 봐서인지 신기하다고나 할까. 뭔가 조금은 강력한 남자로 내가 닮아가야 할 미래의 이상향인 나과는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터라 실망이었다. 그것에 조금 허우적대며, 이 제 난 더는 이런 짓을 할 생각 따윈 없다. 전혀! 그러므로 내 대답 (점수)은요~! 네. 뭐, 괜찮게 나왔네요. 이 한 장으로 충분할 정도로 사진이 완벽하네요! 밀리언씨. 그의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이 순간만은 절대적으로 행복해져서는, 나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허나 절대 행복은 거짓이다. 이건 다음에도 이런 일은 없길 바라는 일찌감치 깔고 들어가는 나의 포석인 것이다. 칭찬은 코끼리를 댄스머신으로 만들고, 칭찬은 글쟁이를 무리하게 만든다. 뭐래나 지금 나는. 그 말에 밀리언은 조금은 할 말을 잃은 듯, 다소 쑥스러워하는 기색으로 약간이나마 상기되어 행복의 꿈 나라로 간다던 어느 호박마차를 탑승하고 있는 듯했다. 거긴 신데렐라가 타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궁전에서 왕자님도 보고 싶지만 덤으로 댄스와 맛난 음 식을 노리는 신데렐라처럼 설레어 보였다. 밀리언은 더는 듬직하고 건실한 30대의 포스가 없다. 거긴 단지 초등학생의 순박한 미소가 나타나서는, 정말. 그런 가? 그렇구나! 아- 이 비율이 멋진 거였어. 역시. 그러든지 말든지 난 더는 모르겠다. 당신의 취미생활은 이쯤 해두기로 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황토빛 찜질복으로 세팅되어있다. 난 지금 완전히 개운하고 상쾌한 상태이다. 왜냐? 그것은 이런 시답잖은 짓 이전에 난 목욕탕에서 뜨끈한 욕조에 있었고, 그 전엔 향긋한 바디클 렌저를 잔뜩 일으킨 거품과 샤워를 하고 있었고, 동시에 룰루랄라 머리도 감고 있었다. 목욕탕은 이렇게나 좋은 곳이야~ 하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그렇게 한때 난 그 차디찬 바다 속에서 미친 듯이 다가오는 그 상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모든(비키니 소녀도 있었고~) 기억들이 스며들어있던 그 눅눅하고 찝찝함 가득한 몸의 기운을 이제야 다 덜어내 버릴 수가 있었던 거였다. 물론 그 전엔 여기가 무인도라는데 목욕탕 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 이곳에 입장하게 되어서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고, 그 전엔 그라탕과 밀리언과 불꽃을 피워놓은 캠프장에서 담요를 덮고 코코아를 마 시고 있었다.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29

현재, 난 밀리언의 그 못쓸 행동에 다소 투덜거렸지만, 솔직히 지금 나의 상태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옛 선비들이 말했듯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고강산이다. 지금은 정말로 행복하다. 물론 현재 개털이지만. 빈털터리라는 게 오점이긴 했지만. 과거의 그 어느 시점보다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 시점엔 상어 가 없다. 허나 상어만큼이나 버거운 상대 와 만났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림: 상어군.] 그건 더욱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나의 시점으로, 난 그때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심한 복통을 일으킨 적 이 있었다. 그 원인은 편의점에서 산 삼각 김밥이 원인이었을지 뷔페에서 먹은 매운 음식이 원인이었을지 잘은 모르겠다. 하여간 그 순간, 내가 내려야할 다음 역에 기차가 도착할 시각까진 겨우 10분정도가 남았을 뿐이었다. 난 화장실을 갈 것인가 참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단 3초 만에 내린 결정으로 비틀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간 신히 기차 한 칸을 건너가 기차 내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30

다행히도 거긴 사람이 없었고 화장지도 충분했고 복통을 잘 해소할 수 있었다. 그 후로 평온한 뱃속을 고이 부여잡고 무사히 다음 역에 도착한 기차에서 당당히 내릴 수 있었다. 가혹 한 고통에서 벗어난 나는 시간 경과로 이미 어둑해져 새까맣게 그늘진 하늘을 향해서도 무한한 감사와 행 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모든 신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 듯한 찬란한 영광스러움이 이곳에 존재했다. 그 순간엔 내 이름이 나강림 이란 것에도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던가~ 하며 유쾌해 할 수도 있었 다. 깊이 안도하고나자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 불상사의 기운을 감지하며 앞의 일을 가상하여 제멋대로 재생 해볼 수가 있었다. 그것에 난 더욱 더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보내었다. 신에게. 만약에 내가 탄 기차 칸이 화장실과 꽤 멀었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몇 개의 기차 칸을 그 길기만한 통 로를 한없이 비틀대며 걸으며 지독한 복통과 난 싸울 수 있기나 할까? 똥꼬야 조금만 참아. 라고 울먹여도 소용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기차 내 화장실에 도착했는데 거기에도 내 수중에도 휴지가 없다면 난 어쩔 것인가? 기차표 담당 직원이 올 때까지 거기서 엉덩이를 깐 채 기다릴 것인가? 그 직원의 나와 달라는 요청에 휴지를 주신다면 생각해볼게요. 라고 하며 버틸 것인가? 그 뒤에도 다른 승객들이 화장실 문을 두들기며, 여기가 네 소유야? 네 거야? 너만 싸냐? 나도 쌀 거 야! 얼른 나오라고!! 라는 고함소리에도 여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응수할 것인가? 만약에 그 직원이 무전기로 다른 직원들까지 부르면 어쩔 것인가? 지지직. 지직. 여기는 코드넘버 H, 여기에 휴지를 달라는 참신한 테러리스트가 나타났습니다. 모두 권총을 소지한 채 이곳으로 신속히 와주세요. 여기는 만약에 내가 그때 화장실까지 무사히 갔고 복통을 해소하기까지 했는데 내려야할 역에 내리지 못한 채 기차는 계속 가고 말았고, 우연히도 그 기차는 다음 역이 30분 후 도착 이 아니라 3시간 후 도착 이 되고 만다면 직원의 물음에 난 대체 뭐라고 할 것인가? 자네. 직장업무로 지쳐 자다 일어난 걸로는 안 보이는데, 왜 안 내린 건가? 이건 고의적인 무임승찬가? 말을 하라고! 실은 그게 문답무용! 그러며 주먹을 꽉 쥔 채 살수를 펼치는 은둔자 무공고수이고 싶으나 전혀 그럴 수 없었던 나, 결국 경찰 서까지 가서도 비슷한 질문을 듣고서, 자네. 왜 정차 역에서 내리지 못한 거지? 정말 수상쩍어? 그 행동!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31

실은 그게 묵비권! 전개! 그렇게 난 묵비권이라는 무공을 그들에게 펼치자 그들은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개의 새까맣고 단단한 묵이 출렁대는 몸짓으로 허공을 가르고 있는 것을 보고야 만다. 결국 그 흑묵들은 그들의 입안에 쏙쏙 들어가서는 맛있게 얌얌 과 쩝쩝 이라는 결과를. 그림소설/B5-1.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해. 치즈 빼줘. *(N,16.5.4.) 32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2016.05.04 14:23 자네. 왜 정차 역에서 내리지 못한 거지? 정말 수상쩍어? 그 행동! 실은 그게 묵비권! 전개! 그렇게 난 묵비권이라는 무공을 그들에게 펼치자 그들은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개의 새까맣고 단단한 묵이 출렁대는 몸짓으로 허공을 가르고 있는 것을 보고야 만다. 결국 그 흑묵들은 그들의 입안에 쏙쏙 들어가서는 맛있게 얌얌 과 쩝쩝 이라는 결과를. 흑묵은 맛있군. 진한 도토리묵인가? 이거? 그런데 그 이유 가 뭐지? 정말 알고 싶군. 벌써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도 이미 안달이 나있다고. 말해봐. 어서. 실은! 이제 실은- 이란 말은 그만둬! 말은 제대로 해야지? 나강림? 허걱. 어떻게 제, 제 이름을?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3

[그림: 강림, 28세남, 나.] 심장이 바닥을 향해 철푸덕~하고 곤두박질친 이후, 속으로 엄청 떨고 있을 나를 바로 무시하고는, 그 형 사는 무시무시한 그 이름을 대고야 마는데. 내 뒤에는 그라탕님 이 계시네. 내 추측이 잘 들어맞는다면, 그 CCTV 영상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면! 역시 자네는! 으악! 더는 말하지 마세요! 당신을 내 진심을 담아 명예훼손으로 확 고소하겠습니다. 제 당돌한 고소장 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처음엔 두려워서 손사래 쳤지만 나름 애를 써보던 나를 향해, 그 형사는 단지 입가에 비웃음만을 담아 일어선 채 아래쪽에 앉아있던 나를 위에서 재수 없게 내려다보며,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4

넌 역시 그 설상가상 대참사 를 겨우 모면했던 거겠지. 그, 그걸 어떻게. 이번 건은 우리들만의 소중한 비밀 로 해주세요. 형사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난 순간 굽히고 들어가기로 결심하는데, 그들은 협조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으로, 에? 언제부터 너와 내가 우리들 이란 다정한 뭔가가 된 거지? 그런 것보다 난 지금 돈이 필요해. 너보다 내가 훨씬 빈털터리야. 너는 그 세일 기간에 산 고장 난 10만 원대 브랜드 시계라도 있지. 난 그런 거 하나 없어. 불쌍하지 않아? 내가 생긴 거야 너보다야 훨씬 순딩이 레벨에 나이는 40줄에 직업이 형사라는 것으로, 위험천만한 상황들의 연속이라 내 곁에 붙어있을 여자란 게 없단 말이야. 하지만 이 얼굴에 이 몸매에 명품이라도 화끈하게 둘러주면 내 인생 이야기에 나타날 꽃 같은 여자들은 차고 넘칠지도 모르지. 그렇게 내 인생 이야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마는 것이지! 그때야말로 어떤 여자가 좋을지 어느 것을 고를 까요? 알아맞혀보세요? 딩-동-댕-동? ~ 뭐 그런 노래도 실컷 부르겠지. 아하하하! 이른 바! 나의 인생 제 2막의 전성기가 열리는 거얏! 순간 난 관상가가 된 듯, 상대방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갑자기 왜 본인이야길 하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여자가 있고 없고~에 대한 그런 문제를 논할 자리는 전혀 아닌 거 같은데요? 굳이 말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순딩이의 범주에 당연히 들어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 당신 얼굴은 그야말로 뱅갈호랑이랑 일본원숭이가 전력으로 합체한 양상입니다만? 그래서 어쩐지 난폭하면서도 살짝 야비한 인상입니다. 당신은.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5

[그림: 형사2번, 도조 사루토] 난데없이 그 형사는 탁- 하고 책상을 힘껏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야. 시끄러! 어쨌거나 네 놈의 그 구린 동영상을 우리가 몸소 모자이크 하는 데만 해도 꽤 큰돈이 든단 말이야. 다해서 으음. 한 1억 정도면 괜찮겠는데. 아니면 화려하게 동영상 유포 라는 색다른 방법도 있지. 어때 그 액수가 맘에 들어? 적은가? 왠지 모르게 양손에 수갑까지 차고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흥분해서는, 그 앞에 있던 책상을 몇 번이고 두들기며 그 덕에 내 단조로운 은팔찌가 신나게 조명 빛에 반사되어 출렁였다. 에? 1억이라니요? 그 커다란 덩치를 화려하게 감싸려면 엄청나게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6

부족할 액수가 아닙니까? 아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저보고 그 돈을 달라는 말입니까? 언제 형사가 사기꾼이 된 거죠? 게다가 왜 기차 화장실에 CCTV가 있는 겁니까? 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건 실로 완벽한 함정 같네요. 맞아. 함정. 후훗. 비밀인데 난 가짜 형사야. 그리고 여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경찰서가 아니야. 여긴 그니까 완벽한 세트장이지. 감히 형사 의 이름을 걸고 이런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대체 뭐가 이곳이 세트장이란 건지. 설마 그 편의점도 당신이 포섭한 겁니까? 설사약을 넣은 삼각 김밥이라니 어떻게 먹는 걸로 장난을 칠 수가! 당신이 그걸 유포한다면 제게로 동정여론이 몰릴 겁니다. 그럼 당신은 이 세상에서 더는 발붙일 곳 없게 되는 겁니다. 바로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꺼져. 괴물.) 가 되어서 갱생의 기회는 영원토록 없을 겁니다. 한 번 잘못하면 평생 암매장이라는 데가 바로 이 살기 좋은 한국이란 데니까요. 당신은 아마 거무죽죽한 음지로 갈 테고, 거기서도 다들 수군거릴 테지요. 남자화장실이나 훔쳐보는 더러운 놈이라고. 선량한 시민을 괴롭힌 때려죽일 변태라고 말입니다. 어때요. 제 협박은 맘에 드십니까? 멍청한 녀석. 너야말로 멍청한 녀석이야! 나강림! 아하하핫. 그것보다 만천하에 쪽팔리는 게 먼저 라고! 나강림! 우하하핫. 왜 그럼 그 자한테 이 동영상을 팔까? 벌써 그 유명 해커 밀리언이란 자가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이메일을 보내오고 있다고. 아~ 이걸 어떡하지? 어이? 나강림? 내가 어떡해줄까?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7

[그림: 밀리언.]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주셔야죠. 네? 친절하신 형사님! 순간, 바지춤의 진동을 느끼던 형사는 눈앞의 나강림을 바라보며, 흐음. 있지. 지금 나 전화 오는데 그냥 받아도 될까? 왜 초롱초롱 눈망울을 띄우며 호랑이와 원숭이의 믹스된 눈앞의 얼굴이 다소 어수룩하게 굴고 있는지, 난 그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내 말은 그냥 저냥 펼쳐진다. 에 뭐. 받으시죠? 굳이 번거롭게 왜 저한테 묻고 그러시는지? 알아서 하면 되잖아요? 유치원생도 아니고. 뭘 묻는지. 원. 그럼 그러지 머. 아~예! 저도 꽤 안녕하지요. 그럼 그라탕님께선 안녕하신가요? 아. 네. 나강림이요? 예. 예. 그 동영상은 지금 바로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8

보내달라고요? 오옷. 1억 3천까지 주실 수 있다고요. 세상에! 예에! 그럼요. 좋~습니다! 계약 성립입니다! 하하하핫. 내가 아까 했던 말을 모조리 다시금 내 입속에 밀어 넣고 싶은 후회가 생겨나면서, 그 가짜 형사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항의하던 나다. 왜 맘대로 남의 동영상을 파는 건데! 난 N군 동영상 으로 탄생하고 싶은 마음이 없단 말이닷!! 서서히 지옥문을 향해 떨어져 가는 나, 이대로 지옥문이 열려 수많은 한 맺힌 손길에 유혹 당하듯 안내 되기 직전에, 그라탕은 그 N군 동영상 을 다 본 뒤에 나에게 말하기를, 너 생각보다 운 이 좋네? 와아. 그 설사약 용량으로는 조금 부족했나? 기차표 조작을 할 수 있었다면 좀 더 화장실과 거리를 띄울 수도 있었을 텐데. 역시 실험해보지 않으면 사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거구나? 흐음. 안타까워. 화장실을 고장 내 놓았다면 그 결과는 완전히 처참했을 텐데. 설상가상 대참사! 아하하핫. 그만 좀 해둬. 그라탕. 어금니를 깨물며 굴욕을 견디고 있던 내 앞에서, 그녀는 도도함을 내뿜으며, 나강림? 그라탕님 이라고 불러야지? 잊었어?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39

[그림: 그녀. 그라~...] 그, 그라탕님. 그쯤하시지요? 놀려먹는데 저만큼 재미없는 녀석도 없습니다. 너무 질려서 모래사장에 파묻고 도망가고 싶어지진 않으신가요? 네에? 절 좀 놔주세요. 싫어. 아. 그때 상어도 좀 더 큰 걸 준비할 걸! 몹시 배고파하던 녀석으로 해둘 걸 그랬어! 네가 너무 일찍 살아남는 바람에 우리가 구해줄 수가 없잖아! 진짜. 너무해! 좀 더 당황해줬으면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40

좋았을걸! 넌 트라우마가 있다며? 얼마나 심하게 당해야 잠들어 버리고 마는 거야? 나 그거 진짜 보고 싶었는데! 아. 담엔 좀 더 강력한 걸로 밀어붙여 볼까? 그럼 되겠다-아! 밀리언? 내 말 좀 들어봐. 나강림이 말이야, 응! 응! 정말 과거 도 나강림답지 않아? 응! 맞아. 그랬다니까. 하하. 하하하. [그림: 상어군.] 그렇게 그라탕의 고약한 웃음으로 끝이 나가는 나의 상상. 허나 아직 내 트라우마를 그녀는 알지 못한 다. 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 실로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비참한 상상이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난 아는 거다. 순간 모든 것이 잘 풀리며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으나, 점점 희망이 없는 미래는 나를 향해 차곡차곡 다가오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난 안락한 생활을 만끽 중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밀리언씨의 옆에서 계란도 까먹고 식혜도 들이키면서 말이다.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41

그렇게 원하던 샤워도 했고, 따뜻한 공간에 있으며, 한때 굶주렸던 배도 가득 채워가고 있는데도. 결국 나의 앞날은 그라탕 에게 달려있었다. 그때 그 캠프파이어 무대에 있던 나 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을,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데도. 나는 역시 슬펐다. 빈털터리인 내가. 집에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는 내가. 여기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 시간은 되돌려지고, 다시 그 캠프파이어의 무대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때 그라탕은 흑맥주를, 밀리언은 쓴 커피를, 나는 코코아를 다 마셔버리고, 나는 음식이름 이 본인 이름이라던 그 10대 후반의 소녀를 아주 잠시 동정해주었다. 그런 동정은 내 가슴속에서 역시 아주 찰나 눈 깜빡하고 지나쳐버릴 크나큰 위력 을 가지고 있었 다. 이유인 즉슨, 그 부잣집 소녀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다소 정상인답지 못한 방식 으로 표출시키며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했다. 그로 인해 희생양들 중에 1인이 된 밀리언은 하는 수 없이 그 이득도 없는 낯 뜨거운 연극대사를 내 앞 에서도 당당히 읊어대는, 그런 가혹한 한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슬픈 30대 남자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 이젠 더는 쪽팔리지 않아.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야. 나강림. 무감각해져버렸다고. 모든 것이. 이라며 밀리언이 내게 텔레파시로 전해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까 마셨던 그 쓴 커피가 지금도 그의 입안에서 굉장한 여운으로 남아 몹시 써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얼 굴이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 내 이름은, 그라탕 이야. 라고 그 소녀가 말하고 난 후에 더욱 더 그런 모양새가 되어버린 풀 죽은 밀리언은, 아마 자신이 처음 이 부잣집 소녀를 만났을 무렵을 떠올리고 있었던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던 나였다. 원래 사람들은 서로를 알기 위해 서로에게 자신의 이름 이란 걸 밝히곤 하니까. 첫인상 을 알고, 서서히 현재를 벗어나 미래로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할 때마다 밀리언은 스스로의 기품이 무너져가고 있음에 남몰래 슬펐으리라. 응.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로 몰랐어.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42

처음에 부모님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 왔을 때의 아가씨의 첫인상은 이미 까먹어버렸지. 현재의 충격이 크다보니 왠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군. 하. 하하. 그 나머지 희생인 1인인 나, 나강림도 이미 아직도 그 끔찍한 자전거 노래 가 들려오고 있는 듯해 침 통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 오직 그것만이 너무도 선명히 펼쳐지는 내 기억력을 저주하고 싶 어졌다. - 나도 그 노래 알아. 그거 모두 비켜주세요~! 였나? 아닌가? 아! 맞다! 모두 비켜나세요~! 내 부릉부릉 자전거가 당신네 거시기를 짓밟습니다. 따르르르르릉. 그거 맞지? 하하핫. 일진에 변태뿐만이 아니라, 미친 여자다. 걸려들어선 안 돼. 대피해! 소방차의 사이렌과도 같은 붉은 경고음은 내 온몸 구석구석에서 발생하며 쓰나미(tsunami)처럼 내 머릿 속을 괴롭혀댔다. 그림소설/B5-2. 겟 아웃 몬스터!(get out monster!) [완] *(N,16.5.4.) 43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2016.05.04 14:25 캠프퐈이어! 하여간 여긴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붉고 노란 거대한 불꽃이 공기를 한 조각 한 조각 얌얌대며 맛 나게도 찢어 먹고 있었다. 그 불빛에 용기를 얻은 나는 주섬주섬 내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용을 썼다.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를 해보 려고 노력했는데 좀처럼 할 말이 없어져버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곤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눈앞엔 동그란 쟁반이 있었고 그 위엔 초조한 나와는 달리, 당당하게 서 있는 두 개의 머그잔(커피 잔과 코코아 잔)과 맥주 컵이 모두 가지런히 모여 나를 향해 쑥덕이고 있었다. -맥주 컵 군, 28세 나강림. 저 녀석 완전히 빈털터리래. 상어한테 신발까지 몽땅 뺏겼대. 그래도 순결은 어찌어찌 지금껏 지킨 모양이야. 그 말에 난 모래가 부시럭하고 씹힐 듯한 모래투성이 내 맨발을 담요로 슬쩍 가려버렸다. -커피 잔 양, 정말 가여워. 핸드폰도 지갑도 모두 잃어버린 양복 윗도리에 있단 말이지? 농담 아냐? 집엔 어떻게 가려고? 근데 그 보트엔 누가 태웠는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바보 아냐? 보트를 고정시키려 묶어놓은 그 밧줄을 푼 건 대체 누구지? 혹시 쟤 심각한 따돌림 당하고 있는 거야? 술친구는 모두 적? 그 말엔 난 왠지 추워서 담요를 더욱 꼭 껴안듯 올려 덮었다. -코코아 잔 군, 무슨 소리야. 술친구들은 배신 같은 더러운 짓 안 해. 장난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강림에겐 유명 메이커 손목시계가 있잖아? 아. 그런데 그거 방수 안 되지? 그럼 바닷물 다 들어갔겠네? 고장 난 시계가 예전엔 얼마였던지는 상관없이, 지금은 그냥 쓰레기 네? 대체 돈은 어떻게 구해서 집에 가려고 그러는 거지?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4

역시 내가 들이켰던 그 코코아 녀석 은 나를 향해 보복하듯이 내게 강펀치를 먹이고 있었다. -맥주 잔 군, 그야. 집에 안 가면 돼. 이 무인도에서 밀리언처럼 그라탕 옆에 있으라고 해. 걔 돈 많은 집 딸이라며? 성격은 뭐~ 그 모양이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 이잖아. 역시 사람은 좋은 인맥이 있어야해. 근데 거기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강림 녀석. [그림: 28세남. 강림.]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5

그 말을 끝으로, 어느 샌가 생겨난 식은땀이 내 등을 타고 서늘한 감각을 분주히 이곳저곳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하지만 눈앞의 캠프파이어의 퐈이어(fire) 그 불꽃을 바라보고 있자면, 아무리 삭막한 인간 세상에서 라도 이 온기를 품은 따스한 분위기를 활용해 뭔가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저-어. 내 말에 좌중은 나에게 집중해 들어온다. 연보라색 머리칼을 가슴께까지 땋아 내리고 노란 원피스를 입고서 담요를 덮고 있던 그라탕이 고개를 돌려, 하늘색 반팔 티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담요를 꼭 부여잡은 나강림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서 목을 덮는 생머리의 검은 단발의 밀리언도 캐주얼 스포츠웨어 차림에 두툼한 숄을 어깨 에 걸친 차림으로 그를 주목했다. 언젠가부터 밀리언은 내 앞쪽 오른편, 그라탕은 내 앞쪽 왼편에 있었고, 우리 셋은 삼각형을 이루듯 앉 아있었다. 순간, 날 바라보고 있는 그라탕은 별 표정을 짓고 있진 않았지만 마치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생글대고 있는 듯 보였고, 밀리언조차도 그저 그런 무표정이었음에도 왠지 나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듯한 묘한 환상이 펼쳐졌다. 나강림? 하고 되묻는 밀리언, 그리고 그라탕도, 이 자식 낚시질이냐? 감히? 네가? 그렇다. 난 괜히 긴장했던 거였다. 순간 깊은 심호흡을 일으킨 후, 눈에 힘을 줬다.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왜케 심각해? 저거? 밀리언. 웃긴다~ 그지? 웃길 일까진 아닙니다만. 들어보죠. 아가씨. 그 말에 그라탕은 양팔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6

들었지? 나강림? 너도 폼 재지 말고 말해봐. 얼른. 조금 있다 우리도 슬슬 들어갈까 하니까. 깊숙이 고개를 끄덕인 나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물론 가볍지 않을 터다. 이런 이야기는. 아니, 나만 어려울지도 모른다. 부잣집 그녀는 내 이런 심정 따 위 잘 알 수도 없을 테니까. 저는, 그러니까, 지금 돈이 없습니다. 그딴 것쯤 나도 알아. 딱 봐도 그래 보여! 가난뱅이상! 뭐 대단한 소릴 하려는 줄 알았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라탕, 살짝 속으론 욱했으면서도 인내하며 슬쩍 이어지는 나의 말, 저는 바다에서 상어를 만났고, 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림: 상어군.] 음. 그랬군. ~하고 넘어갈 줄 알았냐? 너. 상어 가 강도냐?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7

왜 상어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이 나쁜 놈. 밀리언. 저 녀석이 네가 좋아하는 동물 괴롭히고 있어! 들려? 아가씨. 지금 논점이 어긋나 있습니다. 더 듣자구요. 네? 피이. 밀리언. 내 편 아니야? 늘 내 편이라며? 이젠 내 편은 너뿐인데. 저 녀석으로 갈아탄 거야? 여자도 그렇게 자주 랜덤식으로 갈아타더니 그 못쓸 습관은 어쩔 수 없구나!? 여자들에게 상처 입히는 바람둥이들은 역시 패배자야. 한 여자에게 만족 못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줏대 없는 바보라고. [그림: 밀리언]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8

그럴 리가 없지요. 당신 편은 아주 많이 있단 거 다 압니다. 그 이하의 발언은 답할 가치가 없으니 패스하지요. 그러며 밀리언은 내게 눈짓으로 더 내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했고, 동물을 좋아한다는 밀리언씨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상어만은 아주 지독한 녀석이었습니다. 전 그 상어에게 쫓기느라 신발을 잃어서 맨발인데다 옷도 이렇게 눅눅해졌고 찝찝해서 편치 않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핸드폰과 지갑도 어느 샌가 잃어버려서 돈이 한 푼도 없는데다 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자코 내 말을 들으려 애쓰던 쪽은 밀리언이었고, 툴툴대는 건 역시 그라탕, 그래서 그게 뭐? 어쩌라고? 그 말에 더는 참지 못해 끼어든 쪽이 밀리언, 아가씨. 모르겠어요? 지금 나강림이 도와달라고 하고 있잖아요? 도와주시죠. 그냥. 쉽잖아요? 당신이라면. 와아! 세상에! 밀리언! 그냥 이란 게 있단 말이야? 맙소사! 밀리언도 참 세상물정 모르는 낭만파네. 난 그런 얼어 죽을 낭만 잊어버린 지 오랜데.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왜 나강림 이 이곳에 굳이 머물러야 한다는 거죠? 보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까? 응. 의미 가 있을지도 몰라. 난 그럴 거라고 생각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희망인 것인가. 또 다른 무엇인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의미란 게 뭡니까? 그라탕씨? 아. 그거? 정말 알고 싶어? 왠지 그녀의 갑작스레 침착해진데다 생기 없는 그 눈동자에서 불길함을 느꼈으나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나 뜸을 들이는 것일까. 너. 이미 죽었잖아. 상어한테 쫓기다가 살아남는 기적 이라니. 그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그런 확률에 네가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49

당연히 포함된다고?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나강림. 그 말에 나강림보다 더 얼떨떨한 것은 밀리언이었다. 그는 속으로나마 이거 무슨 상황? 하며 신을 그 라탕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바로 나강림이 이의를 제기한다. 에? 지금 뭐라고요? 엄청나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라탕을 보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가 일순 화가 났다. 그러며 내 볼을 내 손으로 꼬집어보았다. 이렇게 꼬집어도 아픈데. 왜 죽었다는 거지요? 감각은 다 살아있는데. 뭐가 내가 죽었다 는 겁니까? 정말 거지같은 상황이네요. 왜 그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라탕씨는? 역시 아무도 당신 이름 따위 불러준 적이 없어서 그렇게밖에는 말 못하는 겁니까? 우와. 성격 살아있네? 원래가 그런 성격인 거야?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하는 거. 전혀 안 신선하네. 그거. 재미없어. 원래 감각이란 건 죽어도 똑같아. 아 그런 건 몰랐을 테지.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내일 아침 무인도 주변을 둘러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야.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죽은 자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아 놨는데. 그걸 해가 떠서 환해졌을 때 잘 봐두라고. 나강림. 왜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답변을 다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그라탕이란 여자는. 처음부터 내게 반말을 할 때부터 이런 걸 노렸다는 것일까. 서서히 그 말을 믿을까말까 망설이는 내가 여기 등장해서는 우물주물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내 몸엔 물린 자국도. 상처 하나 없는데. 그러니까 상어한테 물리기 전에 죽은 거겠지. 죽는 법이야 많이 있잖아. 익사라든가 심장마비라던가. 이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가르쳐줘야해? 라는 식의 평이한 기운이 그라탕에게서 줄줄 쏟아져 나오고 있 었다. 그럼 당신들은 뭡니까? 다 죽었다는 겁니까? 나 처럼? 아니. 너와는 달라. 우린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자들. 참고로 우린 그 투명한 벽이 있든 말든 아무 곳에나 있을 수 있지. 이렇게 휴양차 왔는데도 죽은 자를 보다니 참 기분 별로라고.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50

무인도 주변에 있는 투명한 벽? 너무 이상하고 애매한 말이었다. 그런 건. 내가 봤다-라고도 못 봤다-라 고도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만약에 내일 아침 내가 그걸 찾아 나선다고 해도 예초에 투명한 벽 이라는데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건 가? 일단은 벽 이니까 힘껏 달리고 또 달리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달리다가 부딪히면 벽 일 테니 까? 그렇담, 그걸 찾으면 난 인정할 것인가? 내가 죽었다고? 이미? 그 상어 에게 쫓기고 있었을 때? 죽었 어? 죽었는데 감각도 살아있고? 이렇게? 대체 그게 뭐냐고!! 내가 죽었다고? 거짓말. 그 후로 할 말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내 앞에서, 밀리언이 나를 한번 휙 바라보다가 재빨리 그라탕의 팔 을 이끌고는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서는 그들끼리 뭔가를 쑥덕였다. 이보세요. 신이시여?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왜. 난 하고 싶은 말 다 했는데. 왠지 후련하다~란 식으로 말하고 있는 쾌활한 인상 그대로의 그라탕.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51

[그림: 그녀. 그라~.] 그럼 저 녀석이 죽을 운명 이었는데, 당신이 살렸다는 생색을 내고 있는 겁니까? 당신이 일으킨 생각만으로 저 녀석을 살렸다는 말을 하는 거냐구요. 여름엔 상어에 미녀에 비키니네 할 때부터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방심했군요. 그것에 그지? 하며 박수친다거나 웃어댄다거나 하는 그라탕은 없고, 그녀는 단지 맹한 얼굴로 길을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52

잃은 눈동자로 밀리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덤으로 나 과로했나봐. 라고 덧붙이듯이 퀭해져서는, 근데. 나.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겠어. 저 녀석을 끌어들인 게. 해변인지 노란보트인지 상어인지 조류인지 하여간 모르겠다고. 설마 그 흰수염고래 꿈이 그 시작이었나? 흐음. 잘 모르겠네. 난 그냥. 인어공주 가 부러웠을 뿐이었는데. 그림소설/B6-1. 그렇게 쉽게 인생사는 거 아니지. *(N,16.5.4.) 53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2016.05.07 16:52 근데. 나.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겠어. 저 녀석을 끌어들인 게. 해변인지 노란보트인지 상어인지 조류인지 하여간 모르겠다고. 설마 그 흰수염고래 꿈이 그 시작이었나? 흐음. 잘 모르겠네. 난 그냥. 인어공주 가 부러웠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왜 인어공주지요? 의미를 모르겠거든요? 그럼 저 녀석이 왕자님 입니까? 당신의? 이제야 진지함을 타파하고 가볍게 미소 짓던 그라탕, 아니. 그건 아니지. 그냥 바다에 떠다니는 난파선의 나무판자 조각 정도? 대수롭지 않다면 대수롭지 않는데. 일단 주웠는데 버리자니 뭔가 신경 쓰인다고나 할까? 그 판자 조각을 주워서 분석 팀에 보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게 더 의미 를 모르겠습니다만? 어쩔 겁니까? 어쩌긴. 지금은 그러니까. 죽어서도 인간은 돈 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렇게 다시금 그라탕의 미소가 한층 잔혹함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은, 단지 밀리언의 생각이었을 뿐이 었던가?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4

[그림: 그녀. 그라~] 네?? 뭔가 못들을 것을 들었나 싶었던 밀리언, 당황스러웠다. 뭘 하자는 것인지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민간인 을 끌어들여서 무슨 짓을 하자는 의미일 터. 그 무슨 짓이라 하면. 이제 휴가 를 즐겁게 보내자. 밀리언!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5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힘차게 내 이름 부르지 마세요. 진 짜! * 아. 저 멀리서. 저 둘은. 앞서 홀로 패닉해 버린 나를 냅두고 뭐라 뭐라 무엇을 쑥덕이는지 잘 모르 겠다. 내일이면 잘 알 수 있겠지만, 저 여자의 말을 믿을까 보냐. 말도 안 되는 소릴 잘도 하고 있다. 한숨이 막 꼬여왔다. 후아아아. 왜 난 이곳에서 저 여자와 밀리언과 함께 있는 것인지, 이 무인도를 벗어나서 뭔가 평범한 인간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정말. 그러니까 저 여자는, 이제 죽은 자를 볼 수 있다 는 망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죽은 자 역할을 왜 해야 하는 건데? 이름이 음식이름일 때부터 어딘가로 도망쳤어야했다고. 난 왜 동정했던 거지? 정말 엮이면 엮일수록 왠지 손해닷. 뚜벅뚜벅. 그때, 밀리언이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지금 내 옆에 와서 앉더니 뭐라 뭐라 말하기 시작한 다. 평소보다 훨씬 누그러진 모양새로 뭔가 잔잔한 미소를 깔고서 말이다.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6

[그림: 밀리언.] 아까 아가씨가 했던 말은 잊어버려. 가끔씩 사람 놀려먹는 걸 너무 즐겨서 그러는 거니까. 그럼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네. 그러니까 그게. 왜 인지 모르겠지만, 마음 깊이 안심하고 말아선지 이제 다시 살아있는 존재 로 돌아오게 되어서 다 행스런 기분이었다. 자칫 방심했다면 울고 말았을 테지만. 정말 사람 죽였다 살렸다 하는 여자 때문에. 내가 한 시도 편히 살아가고 있을 리가 없게 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불쾌해졌다. 이럴 때 눈앞의 밀리언이라는 이상향 이라도 없었다면 정말 살기 더욱 힘들었을지도. 그런데 밀리언씨. 여기 는 정확히 어딘가요? 그 무인도 라는 거 말고 또 다른 이름은 없습니까?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7

아. 여기? 한국에 있는 어떤 섬이라던데. 나도 주로 아가씨를 따라서 그냥 유람선을 탄 것뿐이라서 정확히는 잘 몰라. 우린 세계 여러 곳을 다니는데. 보통 늘 이런 식이었거든. 자세히 알면 알수록 더 위험하다랄까 뭐 그런 거지. 미안해. 이것밖에 도움이 못 되어서 말이야. 양손 손사래까지 치며, 밀리언에게 눈빛으로 감사함을 전하며, 아닙니다. 한국의 어떤 섬 이란 걸 알았는걸요.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밀리언씨. 그 후 나는 본격적으로 여럿 의문 을 띄웠다. 밀리언에게 당신이 탔다던 그 유람선 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어제 떠났다면서 아 마 그라탕이 연락을 해야 이곳에 다시 와줄 거라고 답해줬다. 그러면 유람선 에 잠입해서 알바생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고! 다음 후보로는 밀리언의 핸드폰을 빌려서 몇 통화만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의 핸드폰 기록은 전부 그녀가 다 훑어본다면서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단번에 거절당했다. 이제 마지막 후보로 남은 그것은, 내 실명을 알아냈던 그 노트북 에 대한 것이었다. 당연히 인터넷이 연결되었을 그 노트북 을 언급하며 그걸로 이곳의 장소 검색 및 이메일 몇 통 좀 보 내자고 했더니, 밀리언은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그것도 안 된단다-고 말해왔다. 그 이유는 앞의 내용과 동일하다면서. 뭐가 이리도 안 되는 게 많아!? 게다가 아까 밀리언 자신이 말했다시피 아가씨와 다니면서 하는 일은 극비이므로, 자세히 알면 알수록 더 위험하다랄까 뭐 그런 거라고 말해왔다. 이래저래 그라탕의 마크가 굉장했다. 그라탕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거대 기업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뚜벅뚜벅. 이제 이쪽으로 그라탕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일어선 채로 있던 그녀가 위쪽에서 아래로 시선을 단숨에 꺾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뻔뻔하게 보면서 말하기를, 난 너한테 전혀 안 미안해. 그래도 너 혼자 그 운 을 독차지 했다고 생각하면 분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왜 내가 요즘 하는 일마다 꼬이는 지 알아?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8

그건 너 같은 녀석이 내 운 을 빼내가서야. 완전체인 내 운 이란 게 밸런스가 망가졌다고. 알고 있어? 그 말을 듣다보니 밀리언도 이제야 그 판자조각 운운 하던 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저 말을 하고 있는 신의 눈빛은 전혀 거짓을 논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건 오랜 시간 그녀를 봐왔던 자신이 잘 알 수 있었으니까. 대체 나강림 은 그녀의 어떤 판자조각이란 것일까? 모릅니다. 운이니 뭐니. 그런 건 순 억지거든요? 그라탕씨? [그림: 강림.]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59

기분 나쁘다는 듯이 미간엔 약간의 주름이 입가엔 불만어린 비틀림을 담고 있던 나강림의 말에, 왠지 안 달이 난다는 듯 화딱질~나 하고 있던 그라탕이, 뭐라고? 어떻게 빼앗아간 녀석이 전혀 자각이란 게 없는 거지? 너 정말! 야. 나강림. 너 뭐하는 녀석이야? 근데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는데? 순간 그라탕의 두 눈동자는 기이하게 맑은 빛을 내면서 얄팍하게 금칠이 되어있었다. 그런 변화조차 모 르는 듯 아까와 다름없이 그저 똑바로 그녀를 바라볼 뿐인 나강림이었다. 어느 샌가 그런 그 앞에 바짝 다가와 있던 그라탕은 그의 턱을 한손으로 슬쩍 잡아들어 올리며 두 눈동 자를 지긋이 맞춰 들어갔다. 꿈이라니~. 그냥 망상 이라면 좀 많아진 것도 같지만~. 그런 게 뭐 대수라고~. 그런 게 궁금해요~? 그라탕씨~? 왠지 지금 그의 말투가 느슨하게 늘어져 있다고 느낀 것은 밀리언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밀리언 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그라탕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에겐 그 판자조각이 다소 중요해진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건 언제 부터? 묘하게 심각성을 띤 채 말하고 있던 그라탕의 모습과 오랜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듯 편안하고 방심 을 부르는 느슨한 말투가 나강림에게서 계속 이어져가고 있었다. 그건 모르죠~. 그냥 언~젠가부터. 그게~ 꽤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혹시 큰 고래가 나오는 꿈같은 거 꾼 적 있어? 강림의 머릿속이 빠르게 고래 를 검색해내고, 순간 떠올린 뭔가를 술술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쩌다 이런 모양새로 술술 다 이러고 있게 된 것인 진 몰라도 왠지 그렇게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허나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왜 언제부터 그라탕의 말에 나는 이리도 잘 협조하여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그리 심각해하지 않으면서 다 답해줬다.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아! 그~ 커다란 고래라면 꿔본 적 있는데~. 순간 강림의 눈빛이 변하려는 어떤 약간의 동요(또는 흔들림)가 보였다. 그걸 바로 눈치 챈 그라탕은 그 즉시 슬그머니 강림의 턱을 받치고 있던 자신의 손을 신속하게 흘려내듯 이 슬그머니 티 안 나게 빼냈다. 동시에 그라탕의 두 눈도 맑음과 금칠을 포기하고 다시 본래의 빛으로 돌아갔다. 이어서 가까웠던 둘 사 이의 그 거리도 반발자국 뒤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녀, 역시 마무리 동작까지도 지나치게 깔끔했다.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60

바로 그 후였을 것이다. 정상의 눈빛으로 돌아와 버린 나강림 이 성난 강아지처럼 발발거렸던 것이. 자, 잠깐! 뭐-뭔가 지금 맞추기 놀이하는 거 아니죠? 어떻게 아는 겁니까? 내 사소한 꿈까지! 그라탕씨가 어떻게 아는 거냐구요? 네? 심각한 경계발동의 기색을 발하던 나강림을 밀리언도 두 눈에 이채를 띤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라탕은 별일 있었냐는 듯이 단지 편하게 헤실거리며 인상을 풀며 농담조로 말을 가볍게 던지는데, 에? 그냥 해본 소리지. 뭐긴. 넌 참 속이기 쉽다니까? 하하. 그냥 바다 하면 고래 지. 요즘 내 꿈에도 고래가 자주 나왔거든! 돌고래 다섯 마리가 우르르 나와서는 공중 3회전을 돌다가 손뼉 박수를 치고 물을 내뿜고 끝나는 그런 시시한 꿈. 하하. 하하하. 재주 피우는 돌고래라니 참 재밌었어.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니까 하는 수 없이 본인도 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는 듯이 흐름을 자연스 럽게 나강림으로 하여금 뭔가를 털어놓게 만들고 있었다. 그게 약간 꺼림칙하다고 느끼면서도 왠지 이런 것쯤 괜찮지 않아? 하는 쉬운 기분으로 이야기를 해 방하던 강림이었고, 아 그럼 나완 전혀 다른 꿈이네요. 내 꿈은 그냥. 죽음을 앞둔 커다란 고래 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으니까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꿈이었어요. 그건. -꿈의 시작(바다와 안개와 밤의 실루엣).- 두리번두리번. 어-? 여긴 어디지? 바닷가였다. 밤인지 새벽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시간, 슬며시 피어오르는 안개 낀 어둠속에서 나는 그저 길을 걷고 있 었다. 올림푸스 신전에서나 볼 법한, 그리스 신들의 옷차림과 비슷한 옷이 내 온몸에 감싸여져 있었고, 불러오 는 바람에 그 원피스(one-piece dress)에서 흘러나온 천 자락과 치맛자락이 새하얗게 나부꼈다. 짧게 자른 새까만 머리카락도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때 아무런 신발도 없이 단지 난 맨발로 걸어갔다. 뭔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그 길로.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61

약간 차가운 감촉을 지닌 모래사장을-. 눈앞 1미터 남짓만을 겨우 비추던 그 길에서 갑작스레 거대한 벽 을 만난다. 그 단단해 보이는 회색빛 벽이 묘한 주름을 만들며 입을 스스스 벌린다. 아니, 허나 그것은 입이 아니라 아름다운 눈동자 였지만, 너무도 커서 그렇게 느꼈던 것이리라. 고래다. 으음. 왠지 모를 침음성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정보가 순식간에 조합되더니, 난 갑작스레 그것이 무엇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거다. 고래가 왜- 여기? 엄청나게 컸다. 차마 가늠할 수 없을 만치, 근데 묘한 것은 나는 직감적으로 그 크기를 상공에서 날아다니는 헬리캠을 통해 보는 듯 선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허허벌판처럼 퀭한 해변에 고래와 나 둘뿐인 것조차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느껴졌던 거다. 우우우-. 왠지 고래는 구슬피 울고 있는 듯 했다. 그 눈동자도 무척 슬퍼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말이 통하는 상대는 아니지만, 저 거대한 고래는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텔레파시라도 하고 있는 걸까? 나의 괜찮니? 라는 무언의 물음에 고래는 내게 응. 이라고 대답하는 듯 말이 없다. 나는 그저 멍한 듯 진지한 듯 눈앞의 고래 를 바라보고 있어줄 수밖에 없었다. 텅 빈 해변에 바닷물에 밀려온 고래는 혼자였고, 바라보고 있는 나 역시 혼자였다.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고래 곁에 묵묵히 있어주었다. 모든 생( 生 )이 멸( 滅 )할 때까지 말이다. 인간의 감정으론 슬픔이었지만, 왠지 그저 숙연하기만 했다.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62

난 손을 내밀어 그 녀석(고래)을 만져 보았을 때 마치 내가 그 녀석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녀석의 삶 이 추억이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깊고 푸르고 먼 그리고 거칠고도 아름다운 바다를 누비고 다녔으리라. 그렇게 많은 존재와 만남을 나누고 이런저런 것들을 풍부하게 느꼈으리라. 결국, 나는 차마 숨길 수 없이 솟아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 녀석의 마지막을 나직이 간직했다. -꿈의 끝.- - 아 그럼 나완 전혀 다른 꿈이네요. 내 꿈은 그냥. 죽음을 앞둔 커다란 고래 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으니까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꿈이었어요. 그건. 그 말을 한 직후 강림은 점차 씁쓸한 표정을 품은 얼굴에 차가운 그늘마저 슬쩍 드리운 듯, 일순 수척함 으로 포장되어 버렸다. 이내 강림의 시선은 아래로 뚝 떨어져 모래 바닥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머릿속은 이미 일방적으로 그 꿈으로 가득 차버렸다. 고래를 만나러 가는 그 꿈, 그것은 어찌 보면 자신에겐 꽤나 무서운 꿈이었다. 그것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본다거나 하는 일은, 역시나 한편으론 꽤나 마음이 아프니까 말이다. 허나 회피할 수 없다. 그런 꿈이다. 꿈 이란 존재는 제멋대로 생겨나서 제멋대로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던가. 사실 이 꿈이 먼저인지 내 트라우마가 먼저인지는 잘 알 수는 없다. 어느 샌가 나는 그저 눈만을 감고 반듯이 누워 잠을 청한다. 그럴 때면 항상 청각과 두뇌만은 살려둔 채 로. 그러다 겨우 잠든 2~3시간 사이에 그런 꿈을 꾸곤 했던 거였다. 너무도 선명한 컬러 꿈, 아무나 못 꾼다는 컬러 꿈, 그건 뇌리에 새겨질 정도로 또렷하게 내게로 다가왔 다. 그 꿈은 마치 나 자신에게 경고를 주는 듯했다. 네겐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다-라는 재수 없는 메시지라거나, 오히려 죽음이 곁에 있으니 그리 두려워 할 것은 없다-라는 슬픈 안도감을 갖게끔 세뇌시켜 주고 있는 메시지로도 보였다. 그림소설/B6-2. 넌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어? *(N,16.5.7.) 63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2016.05.07 17:02 그 꿈은 마치 나 자신에게 경고를 주는 듯했다. 네겐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다-라는 재수 없는 메시지라거나, 오히려 죽음이 곁에 있으니 그리 두려워 할 것은 없다-라는 슬픈 안도감을 갖게끔 세뇌시켜 주고 있는 메시지로도 보였다. 요즘은 그 꿈이란 것도 자주 꾸면 꿀수록 더욱 더 그 고래의 삶을 더 잘 알게 된다. 행복했구나. 즐거웠겠구나. 슬펐겠구나.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이 요동치면서 나도 더욱 그 누군가의 생( 生 ) 이 생명력 이 조금씩 더 선명해짐을 느낀다. 물론 그 멸( 滅 ) 이란 것도 죽음 이란 것도 더욱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죽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죽음을 더 잘 알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라니, 어딘가가 망가져버린 게 아닐까. 나는. 그 꿈속에서? 아니면, 이런 트라우마를 간직할 수밖에 없는 내 어이없는 삶속에서?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4

[그림: 나, 28세 남, 강림.] *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강림을 한쪽에 두고서, 밀리언은 오른손으로 그라탕의 한쪽 손을 붙잡았고 그 감 각을 바로 느낀 그라탕이 밀리언을 슬쩍 바라보자 그는 이내 왼손 검지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 직후 바닥엔 전에 없던 은빛을 뿜어내는 화려하고 복잡한 태양의 문양이 잔잔하게 일렁거리고 있었 고, 동시에 무색투명한 수증기가 우아한 손짓을 일으키듯 그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모라악. 모락.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5

[그림: 마법진.] 이제 그들은 어떤 근사한 마법진 안에 있는 모양새로 변해 있었다. 금방 밀리언이 바닥에 만든 것은 방어력과 방음을 우선으로 한 문양진 으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 해 만든 거였다. 이젠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린 그와 그녀, 그라탕이 밀리언을 올려다보며, 이런 것까진 너무 오버 아닌가? 밀리언? 하긴, 이 문양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강림이 이걸 보며 놀란 척 할 테지만, 아직 그런 기색은 없이 왠지 침울함 그대로 멈춰 어떤 고뇌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 근데. 나.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겠어. 저 녀석을 끌어들인 게. 해변인지 노란보트인지 상어인지 조류인지 하여간 모르겠다고.(중략) 라고 신이 했던 얘기를 되짚어보던 밀리언, 나강림은 단지 꿈 이야기를 떠올린 것만으로 당신의 눈빛을 거부해냈으니 이럴 가치 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까는 그를 끌어들인 것처럼 말해서, 당신이 그를 살려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6

그때 기적 이라고 말했던 걸 생각해보자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그럼, 정말 그가 당신의 운 을 빼내갔다고 믿는 겁니까? 하지만 그런 기적 얘기야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잖습니까? 단순한 착각 아닐까요? 당신의 그 운 이야기와 당신의 눈빛 거부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림: 밀리언.] 이봐. 밀리언. 난 나쁜 사람 같은 게 아니야. 그런데 왜 내가 저 녀석이 여기에 나타난 시점부터 저 녀석을 괴롭혀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 건지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해?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주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러니까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7

저 녀석을 본 순간부터 뭔가가 삐리릿 나를 자극하고 있단 말이야. 지금은 겨우 조그맣지만 이 기분이란 게 언제 커다랗게 팽창해버릴지 난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고. 이런 걸 넌 뭐라고 생각하지? 왠지 지나치게 흥분성을 내보이고 있는 그라탕의 모습은 처음 이다-라는 기분으로 보고 있던 밀리 언, 허나 그것에 휘말릴 생각은 없는 듯 어조에 흔들림 없이, 흐음. 인연 인가요? 그 중에서도 악연 에 속하는 무언가? 뭔 진 모르겠지만 자극 하고 있는 모양이죠? 당신을? 응. 잘 생각해봐. 밀리언. 아마 지금껏 저 녀석이 했던 모든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 지도 몰라. 우리가 그냥 스쳐버린 건 없는지 생각해보자고. 단순히 속편하게 그 를 죽일 수도 없어. 왜인줄 알아? 죽인다니요? 그러려면 그의 전부를 이해해야만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지금의 당신으로서는 그를 배척하기 급급하잖아요. 이게 대답이 되었습니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의 전부를 이해한다는 룰을 정해놓았기에 섣불리 누군가의 죽음을 줄 수 없다는 것으로 신을 걸고넘어진 밀리언의 말에, 아. 그런 룰 은 누가 정해놓은 거야? 내가 신 인데도 뭔가 일처리의 속행이 어렵다니! 뭐야. 대체. 당신이 그랬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들에겐 모두 그들 나름의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그들을 아주 사랑했을 때의 당신이었을 때 무심코 정해버린 룰 이었지요. 밀리언. 지금 난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를 단지 죽이기만 하려면 이해 를 원해야 하지만, 난 그건 원하지 않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운 에 대해 집중해보라고. 그렇다면야. 그가 당신의 운 을 갖고 있기 때문에-란 그 추측 에 대한 문제인가요? 응. 기껏 찾아낸 내 것인 그 운 이 그 자가 죽게 되면 바로 내게로 곧장 오지 않고, 또 다른 녀석에게로 흘러들어간다는 어떤 가능성 그 자체를 방지하기 위해서지. 지금 찾아낸 저 녀석에게서 내 운 이 그나마 머물러 있어야 내가 다시 빼앗을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이런저런 강림과의 시간들을 생각해보자면, 대체로 자연스러운 흐름뿐이었다. 게다가 그다지 심각하게 떠올릴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더 파고들다보니 뭔가 작은 것이 나오긴 했고, 그걸 밀리언이 막 끄집어 내기 시작한다.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8

아, 나강림이 당신에게 이름 이 뭐냐고 물었지요. 그래서 당신은 이름 을 지었지요. 근데 이런 사소한 게 어떤 의미 란 게 있을까요? 어두운 항해 속에서 등불을 발견한 듯한 심정으로, 순간 그라탕은 심장이 쿵떡거리고 있음을 깨닫고 만 다. 허나 찾아낸 그 무엇이 자신으로 하여금 불길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는 것에선 기분이 상당히 나빠지 고 있었다. [그림: 그녀. 그라~]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69

그래. 그랬어! 그 녀석은 나로 하여금 단순히 그 사소한 이름 이란 걸 정하게끔 만들었지. 그래서 어느 샌가 그 녀석과 나는 똑같은 선 위에 대등하게 놓여져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야. 그게 그렇잖아. 난 일단 신 이라고? 넌 내 부하니까 알 테지만. 왜 판타지소설 속 이야기도 그렇잖아? 용의 기세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인간. 그런 게 보통 있어야 하잖아? 근데 왜 그 녀석은 내 앞에서 너무 버릇없어 보이지 않아?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모든 인간 을 겪어보진 않아서 어디에 신의 결함이 발생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거 아닐까요? 그냥 뭔가 쉽게 쉽게 넘어가줄 생각을 해주지 않던 밀리언을 뚱하니 바라보던 그라탕은, 속으로 툴툴거 려보다가 또 겉으로는 뭔가 또 다른 이론 확립에 열성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복잡해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둘 수도 있지. 그렇지만 말이야. 단지 내 이름 하나 정한 것으로,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 듯이 보이겠지만, 그건 그렇게 겉으로만 그리 보일 뿐이란 것으로, 어쩌면 소리 소문 없이 뭔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미처 인식해내지 못하고 있는 시점일지도 모르지 않아?. 뭔가 쉽사리 말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게 지금 밀리언의 심정이었고,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뭐~든지 가 능하다는 건데, 그게 어떤 결론을 낸다는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태산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사이, 입술을 슬쩍 깨물면서 왠지 초조해 보이는 그라탕, 낮고 진중함을 가진 음색으로 말문을 여는데, 아까 녀석 이 말했던 그 커다란 고래 꿈 말이야. - (중략)내 꿈은 그냥. 죽음을 앞둔 커다란 고래 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으니까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꿈(중략) 라던 강림이 말하던 것을 되새겨보던 밀리언, 왜 지금 저 말을 그라탕이 꺼내고 있는 것인가 의아해하며 묻기를, 그게 왜요? 내 꿈하고 완전히 똑같다고! 너도 지금 이 말 듣고 꽤 두근거렸지? 응? 밀리언?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70

하며 밀리언이 어떤 굉장한 반응을 보일 것을 기대하고 있던 그라탕이었고, 그럼 아까 그 돌고래 다섯 마리 꿈 은 일부러 꾸며낸 거고, 아. 네. 그렇군요. 자신이 똑같은 꿈을 꿨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왜 밀리언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닐까? 그런 궁금증에 시 달리던 그라탕이었고, 손짓 발짓까지 곁들이고 있었다. 그런 평온한 표정으로 그렇군요. 가 아니라고! 밀리언. 언젠가부터 내 꿈이 누군가로부터 염탐당하고 있다고! 이거 굉장히 큰 일이야! 이봐! 내 말이 잘 안 들려? 밀리언! 하지만 강림에게 상세하게 그 꿈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죽음을 앞둔 큰 고래를 만나러 가는 꿈 에 대한 해석은 풍부하잖아요? 어떤 상황의 죽음인지도 확실히 맞춰볼 필요가 있다고요. 그런 것만으로 염탐 당했다고 말하긴 그렇지 않나요? 게다가 그의 꿈이 염탐당하는 쪽 일 수도 있고. 가능성은 많죠. 라고 밀리언이 생각한 이유는, 아까 신이 했던 어떤 말 때문이었다. - 근데. 나.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겠어. 저 녀석을 끌어들인 게. (중략)설마 그 흰수염고래 꿈이 그 시작이었나? 흐음. 잘 모르겠네. 난 그냥. 인어공주 가 부러웠을 뿐이었는데. 그 말을 할 때 그녀는 맹한 얼굴로 길을 잃은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나 과로했나 봐. 라는 듯한 퀭함까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보기엔 혼란 그 자체로만 보였다. 그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던 어떤 미해결의 문 제에 대해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주 가끔씩 이런 상황에 빠진 그녀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이런 것의 결말이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기에 자신이 이리 담담해하고 있을 수 있었던 거였다. 보통은 이렇게 말하고 만 것은 그녀는 한번은 내뱉었으나 그것에 대해 또 기억해내라면 그러지 못한다 는 걸 알고 있었다. 뭐야? 왜 그런 의문의 눈길로 날 보는 거야? 내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쯤 충분히 잘 알거 아니야? 밀리언? 하지만, 당신은 지금 평소보다 너무 흥분해있어요. 그러니까 그 어떤 것도 진실로 포장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구요. 그러니 침착하세요. 당신이 이 세상의 신 이라는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71

그건 안다고. 나도. 그 말을 하며 그라탕은 스스로를 다시금 추스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어둠속에 깔린 저 넓은 바다나 하늘 위의 아름다운 별들을 바라본다던가 하면서.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흠흠. 당신 이 누설했을 가능성 쪽도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까까지 침착하게 끌어내린 자신이 기운이 밀리언의 그 말로 인해 단박에 확 무너져버린 것을 깨닫고 는 놀라버린다. 갑작스레 처절한 배신을 당한 기분 비슷한 게 가슴을 치고 가고 있는 듯 하다랄까. 지금 밀리언은 너무 냉정했다. 애써 당당한 표정이 일그러져간다. 뭐-어? 내가 왜? 그거야. 본인 이 잘 알겠지요. 지금으로서는 나강림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림소설/B6-3.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알려줘. *(N,16.5.7.) 72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2016.05.07 17:20 [글 제작일: 15.01.01.]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흠흠. 당신 이 누설했을 가능성 쪽도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중략) 뭐-어? 내가 왜? 그거야. 본인 이 잘 알겠지요. 지금으로서는 나강림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쳇. 내 운 이 나강림에게 넘어간 거야. 역시! 라고 말은 띄웠지만, 그라탕은 자신이 했던 말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처럼 꽤나 가볍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서 밀리언도 자그마한 미소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 뭔가 고뇌를 끝내기로 했는지, 강림이 또 둘끼리 뭔가 쑥덕대고 있는 모양새를 보다가 살짝 못 본 척 고 개를 돌리고 있자, 밀리언이 그라탕에게 문양진을 볼 능력은 없는 거 같네요. 라고 작게 속삭이며, 다 시 강림쪽으로 자연스런 동작으로 느긋하니 걸어가던 둘이었다. 나강림. 일어서. 라고 말한 쪽은 바로 그라탕이었다. 왜 요? 그저 무난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대로 일어서서 그녀에게 묻고 있던 나에게, 웬일로 환하게 웃음부터 드 러내기 시작하는, 왠지 그 모습이 더욱 수상쩍어 보일 수밖에 없던 그라탕이 입을 열었다. 왜라니? 집 에 가야지. 너.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3

문득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게 된다고, 이 거짓말 같은 상황 속에서도 화색이 돌고 말던 나강림의 얼굴, 이어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그 말은 다름 아닌, 그 유람선! 지금 불러주게요? 허나 그라탕에겐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 아니, 유람선은 무슨. 너 하나를 태우기 위해서 유람선이 지금 당장 와야 된다-라는 그 낙천적인 말이라니 그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핫. 어처구니없어. 그건 아니라고~ 나강림! 뭐, 그것보다 너 지금 돈 필요하지? 앞쪽엔 뭔가 괘씸한 말들을 해왔지만 뒤로 갈수록 뭔가 우호적으로 다가오는 그라탕, 이런저런 자잘한 다툼도 있었지만 역시 기댈 것은 가까이에 있는 아는 사람 에 특히 아는 부자 인맥 이란 것일까. 아니다. 단지 집에 가야지. 너. 라는 그 말이 내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고 만 거다. 아아. 그 자가 비록 변태나 미친 여자긴 해도 왠지 저 말을 믿고 싶다고나 할까? 그저 빈털터리인 나는, 한때 그라탕으로 인해 죽은 자 역할을 억지로 떠맡은 탓에 맘속 깊이 꽤 상 처를 입었기도 했었지만, 그런 일은 이미 지나간 일로 이젠 열심히 기운을 짜내어 억지로 당당한 미소를 그리려 애써야만 했다. 난 긍정적 사람, 우호적인 인간, 지금 이 순간만은 너의 편인 척 해보마. 그라탕. 허나 잘 되려하지 않는지 내 입가는 슬쩍 썩은 미소를 재수 없게 희번득 그리고서 갑작스레 자동적으로 게임 오버가 실현되며, 이내 무표정으로 단정히 바꿔 단 후에 공손함을 잊지 않기로 한 걸로 마지막 합의 를 이끌어낸다. 네. 필요합니다. 그라탕씨. 돈 조금만 빌려주세요. 집에 가는 비용정도면 됩니다. 꼭 갚아드릴겁니다. 그 사이 돌연 밀리언이 나강림의 왼쪽 편에 나타났고, 밀리언은 그의 전신을 스캔해 내듯 두루 살펴보더 니 한 손을 들어 어느 방향을 가리키며, 나강림? 우리 숙소는 저쪽에 있어. 거기엔 목욕탕도 있지. 이곳은 비록 무인도 라는 삭막한 단어로 명명되어 있었지만, 부잣집 딸로 추정되는 그라탕과 그녀의 보디가드 겸 잡무 담당으로 보이는 밀리언 두 사람의 외관 및 옷차림을 살펴보면, 여기 어딘가 씻을 곳이 있다는 것과 숙소가 있다는 것쯤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 정보를 정확한 실존 인물인 밀리언에게 듣게 되니 더욱 기뻤던 강림이었다. 네에? 정말요? 와아. 좋네요. 이제 씻을 수 있겠네요. 그럼!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4

응. 물론이지. 우중충했던 나강림이 단순하게 웃고 있자, 그 방방 들떠 있는 모습이 꼴사나웠던 그라탕이 그의 오른쪽 옆으로 다가와서 걸음을 옮기며 말하길, 밀리언. 지금 내가 먼저 이야기 하고 있었잖아? 나강림에겐 아주 필요하고 혹할 돈 얘기. 네. 아가씨. 계속 하시죠. 그럼. [그림: 밀리언.] 살짝 구겨지듯 미소를 흩뿌리며 한쪽에 대기하며 서 있던 밀리언, 그 이후 주도권을 확실히 거머쥔 그라 탕이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듯 그렇게 강림을 보며,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5

나강림? 에? 나는 지금 주눅 들어 있나? 아니다. 이건 주눅이 아닌 움츠림 과 비슷한 거다. 그렇지. 단지 기분탓(!?)일 거다. 그냥 추워서겠지. 역시 밤바다는 차갑다니까. 담요를 이렇게나 꼭 끌어 안고 있어도 마찬가지. 추워. 원래 옷이 반쯤 바닷물에 젖어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 버린 지도 모를 일이 야. 이건 그러니까 절대 주눅은 아닐 거다.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는 때론 넓은 잎사귀 아래 아주 잠시만 살포시 몸을 움츠리는 것도 지금 이 순 간엔 굉장히 필요하니 그저 할뿐인 거다. 에-? 라니. 이제 우리의 관계를 올바르게 바로잡아야지? 이제 나를 뭐라고 불러야할지 몰라? 아~ 이런 거 처음 이라 잘 몰라? 끊임없이 그녀는 나 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한 표정을 한결같이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그걸 믿지 않으려 하는 쪽은 바로 나일 것이다. 포기해버리면 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게 썩 개운하진 않을 테니까. 굳이 지금 이 순간은 버티고 선 게 내 쪽이다. 그라탕씨잖아요?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6

[그림: 강림. 나.] 쯧쯧. 아니지. 이젠 네 채권자가 될 '그라탕님'이라고. 알겠어? 그것에 당연한 듯이 그리 말하려고 하니 왠지 바보스러워서 고개만 맥없이 끄덕댔다. 왜냐면 그녀는 많이 쳐줘도 10대 후반이기만 한 소녀니까. 물론 밀리언씨는 30대이나 그녀에게 아가씨라 고 해주긴 했지만. 나 28세, 내게도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던 거다. 어느 어린 노무시키가 부자 부모를 만나 돈이 많았고 나는 땡전 한 푼이 없었고 그리하여 나는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그런 날이 오고야 만 거다!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7

대체 얼마나 기다렸다고, 기다리다 지쳐버린 그라탕은 아아. 돈 필요 없구나? 집에 가기 싫어? 그럼 목욕탕도 포기? 라고 말해왔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굴욕의 한계선에 발을 꾸욱 디뎠다. 아닙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당연히 집에 가야합니다. 목욕탕도 그렇겠죠. 그, 그라탕님. 뭐, 라, 고? 못 들었어. 다시 해봐. 강림의 눈앞에서 그라탕은 그리 말해오며 자신의 귓구멍을 새끼손가락으로 파는 시늉을 했고, 남몰래 불끈 양쪽 주먹을 쥐고 있던 강림은, 그, 그라탕님. 이렇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던 사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나의 굴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드디어 쾌거를 이뤘다는 듯이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라탕과 결국 그 말 을 하고 만 거냐. 바보 녀석. 그 다음이 아가씨라고. 알고 있는 거냐? 라며 텔레파시로서 말해오던 밀 리언씨의 왠지 모를 그런 안쓰러운 표정도 나는 다 보고야 만다. 물론 지금 밀리언씨는 그라탕을 속이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무표정의 가면으로 진짜 표정을 가 리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는 역시 지금 날 향해 텔레파시로 결국 우린 한 배를 탔어. 라고 전해오고 있었다. 그 후에, 그라탕은 내게 담보 에 대해 논해왔다. 그것에 난 당당히 끄집어낼 순 없었지만, 고작 이것뿐이라 건네고 만 내가 아끼는 손목시계 를 풀어 서 그녀에게 보여줬다.? 이게 담보라고?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8

[그림: 그녀.] 그 손목시계를 밋밋한 기분으로 적당히 손에 쥔 그녀는 그 시계를 힐끗 본 것만으로 그것을 죄다 파악한 듯했고 그것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본 듯 나를 한껏 심하게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 뒤에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뭔가 말없이 눈빛으로만 내게 뭔가 심한 욕을 하고서는 내가 아끼던 그 손목시계를 단지 자신의 손에 꼭 거머쥘 뿐이었다.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79

그게 끝이 아니라, 그것과 동시에 그녀의 손이 갑작스레 위로 번쩍 올라가더니, 야구 선수로 돌변한 그 녀의 한쪽 팔이 손목스냅이 곧장 휘둘러졌던 것은 한 순간이었다! 퐈아아앗! 그 짧은 시간동안 나의 시계 는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저의 본질은 야구공이었던 걸까요? 라며 홈런이 되어 저 먼 곳을 향해 힘껏 한 마리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어라? 지금 저 여자가 힘껏 내던진 무엇은 마치 내 것과 정말 똑같이 생겨먹었네요?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내 거네요. -헤에~. 내 겁니다. 역시! -읍. 진짜 내 건데. (울먹울먹) -그라탕.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뭐냐고 진짜! 난 그렇게 1인극을 벌이며 바보 같은 소리를 겉으로 내색할 수 없었고 그저 속으로만 해댔다. 우아~ 멀리도 던졌다! 보기보다 은근히 팔 힘이 장난 아닌 여자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나의 채권자임에 는 변함이 없으므로 난 꾹 참아야했다. 난 내 손목시계와 제대로 된 이별인사도 못 나눴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난 그 녀석에게 쓸쓸히 이 별을 고한다. 잘 가렴. 시계야. 내가 나중에 찾으러 갈게. 밥 잘 먹고 잘 지내야해. 이 추위를 잘 견디자. 나도 그럴 테니까. 부디 잘 있으렴. 난 문득 그걸 주우러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가지 못했다. 어디로 던졌는지 그 지점을 열심히 잘 기억해둘 뿐이었다. 왠지 기운이 쭉 빠져버린 듯이 지쳐간다. 저. 런. 걸. 담. 보. 라. 고. 는. 하. 지. 않. 아. 나강림. 진짜 담보 는 어디 있지? 그걸 내놔! 라고 왠지 문장에 무진장 힘이 들어간 채 말해오던 그녀, 그것에 난 그저 덧없이 고개만을 절레절레 좌 우로 약하게 흔들었을 뿐이었다. 꽤나 딱해보였을 텐데도 내 모습이, 그녀는 역시 지금이 기회 라는 듯이 왠지 무시무시한 광채로 포장된 두 눈이 휘황찬란하게 새하얗게 번쩍대며 나를 압박하고 나를 노려보며 나를 맹비난해오기 시작한 다. 아~놔. 이것 보라고! 나강림? 너 지금 돈 없는 거잖아? 그럼 이 채권자에게 어떻게 하면 네가 집에도 갈 수 있는 이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자세히 알아내야하는 거 아닐까? 이건 뭐 적극적으로 돈 빌릴 자세조차 영 안 되어 있잖아?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80

밀리언. 이거 어떻게 생각해? 저 녀석은 돈 필요 없는 건가? 라고 밀리언에게 대답을 구하고 있긴 했으나 꼭 대답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밀리언도 말없이 넘어가고 있었고, 다시 자기 말에 집중하던 그라탕이었다. 이젠 집도 가기 싫은데다 목욕탕도 상관없어진 것 같은데? 저거 아까는 지가 제갈강림 이라고 공갈치더니 이제 나한테 돈을 날로 먹을 기세라고. 빈털터리면 빈털터리답게 굴란 말이야. 지금 뭐하자는 거야? 고장 난 시계나 담보로 내 걸다니, 저거 완전히 인생 자체가 고장나버린 거 아냐? 그런 거 말고 담보할 게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지? 정말! 나강림! 근데 너 있잖아. 그 담보 라는 거. 에? 어떤 담보요? 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래. 꾹꾹 모른 척 해보자. 절대 내 입으론 말 못하지. 그런 담보는!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안 그래도 빈 털터리인데 몸이라도 튼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발 그 안건은 보류해줘. 아니 그 안건은 해당사항 없는 걸 로 해달라고. 그림소설/B6-4. 아주 필요하고 혹할 그 얘기! 내가 먼저거든? [완] *(N,16.5.7.)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