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박물관 운영은 서비스업! 관람객을 주인처럼!! 풍( 豊 ) 화( 和 ) 격( 格 ) 국제관광기업도시 제 1호 (1)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생 신문 Museum NewsPaper 박물관 테마기행(1) 바다 내음이 가득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아서. (동영상제작 - 유현비(고2)) 군산시의 새 프로젝트인 근대문화도시조성사업. 그 프로젝트의 중심인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아가봤 다. 민방위 훈련소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군산근대역사거리가 나온다.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비롯한 일제치 하시대 건물들이 즐비해 있고 조금 더 가다보면 군산시의 첫 박물관인 청동으로 제작된 멋스러운 디자인 의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하 박 물관)이 나온다. 디자인 컨셉은 군산의 보석이 되어라 라는 뜻 으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고 한 다. 군산의 역사를 함께 해온 내항에 위치한 박물관에는 군 산의 아픈 역사는 물론 일제치 하시대 번창하던 군산항의 모습 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2011년 9월에 개관한 풋풋한 박물관이다. 군산시에서는 첫 번째로 건립된 박물 관인 만큼 군산시민들의 많은 염려를 받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총규모 3층 건물로 1층에는 해양물류역사관과 어린이 체험관이 있는데 해양물류역사관에는 옛 선인들의 숨결을 간직한 유물들이 반기고 있다. 2층에는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전시실이 있는데 농민들에 의한 조 직적인 대표적 항일독립운동이자 3.1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옥구농민항쟁이 그 당시 생생함을 안고 전시 되고 있어 그 곳에 잠시 멈춰 나라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그 분들의 넋을 잠시나마 기리기도 한 다. 또한 옥구농민항쟁 전시실 바로 옆엔 군산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기증자 전시실도 함께하고 있다. 이 곳에는 조선시대 물품들과 근대시대 사람들이 쓰던 물품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어 그 당시 서민들의 생 활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3층에는 기획전시실과 근대생활관이 자리잡아있다. 그 중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가장 많은 건 3층에 있는 근대생활관이다. 근대생활관은 1930년대 당시 일제로부터 핍박받던 우리 민족 의 아픔과 발전하던 군산의 문화와 상업 등 실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근대 옷 입어보기, 고무신과 짚신 신어보기, 지게지기 등 여러 가지 체험도 해볼 수 있다. 또한 기획전시실에선 6월 30일까지 보물 제1718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복장유물 특별전 을 하고 있으니 한번 쯤 둘러봐도 괜찮을 듯하다. 많은 군산시민들이 주말마다 박물관과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다녀간다.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고 바람 쐬기에도 좋은 곳이다. 매주 가는 박물관이 식상할수도 있는데 근대역사박물관은 항상 방문객에게 새로 운 모습을 보여준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라는 이 말이 딱 들어맞는 듯 하다.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위로해주고 즐겁게 해주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내항에 위치해 금강과 조 화를 이루며 성장해가고 있는 우리 박물관이 군산시의 명물이 되어 군산시민들과 함께 커가는 박물관이 되길 바란다.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생 기자 박혜영(고2)
2012년 4월 박물관 운영은 서비스업! 관람객을 주인처럼!! 풍( 豊 ) 화( 和 ) 격( 格 ) 국제관광기업도시 제 1호 (2) 이달의 전시유물 오식도 철제 화포 에서 민족의 절규를 듣다 며칠 전 3.1절이었다. 해마다 3월 1일이 되면 태극기를 게양하고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투사들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군산에서도 독립을 간절히 소망하는 만세 운동이 있었다. 군산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 기의 흔적들을 접하거나 소설 탁류 를 읽어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지독하게 빼앗기고 각박한 삶을 살았 는지 짐작하게 된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의 거점지역이었기 때문에 더 많이 빼앗겼고, 또 빼앗아 누리는 일본인들의 거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배운 역사 속에서는 한 줄 남짓 표기되어 흔히 무기력하게 주권을 넘겨준 것처럼 보인다. 기록을 통해 역사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군산은 조선시대부터 전라북도의 세금을 보관, 운반하는 조운창이 있는 중요 거점지역이었고 오식도는 군산항의 입구에 자리하여 세금을 운송하는 선박이 쉬었다가는 중간 기 착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고종 8년(1871년) 군산지역에 포군이 배치되고 화포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록만이 있을 뿐 화포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 지난 1991년 오식도 파출소 뒷산에서 고물장수에 의해 철제화포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화포는 1800년대에 잦은 이양선의 출몰과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개발되어 군산에 배치된 화포 중 하나인 것으로 밝혀져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군산에서 발견된 유물이지만 처음 발견된 유물들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의 소유가 된다. 그래서 이 오식도 화포 는 안타깝게도 우리 지역의 박물관에서 소장하지 못하고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물이 많은 진주 박물관에 전시 되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군산에 박물관이 개관 되며 오식도 화포를 대여하여 원래의 고향 군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오식도 화포는 튼튼한 철의 색을 띠고 있으며 굉장히 무거워 대포를 옮길 때 성인 6명이서 힘겹게 옮겼다고 한다. 현재 해양물류역사관에 전시된 이 대포는 우리 나라의 전통 화포와 다른 독특한 모양으로보는 이의 눈길을 끌고 있다. 3월을 맞이하여 이 달의 유물로 오식도 철제 화포 를 소개한다.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포성이 울렸을까? 오식도 철제 화포 의 포성은 곧 우리 민족의 절규였으리라. 오식도 철제 화포 를 바라보노라면 3월의 하늘을 향해 울리던 군산을 지켜내려는 그 날의 절규가 지금도 들려온다. 3월이 다 가기 전에 오식도 철제 화포 앞에 서서 그날의 절규를 들어보라, 청하 고 싶다. 시대: 1800년대 재질 및 규격: 철제화포(127cm 포구내경6.5cm 무게120kg) 발사방법: 약선구멍에 약선을 넣는다 포구를 통하여 흙을 넣어 다진 후 탄환을 넣는다 약선에 불을 붙여 발사한다. 화포발사거리: 조선시대 화포의 사거리는 화포의 크기에 따라 다름(탄환의 크기로 보아 약 1500보까지 발사된 것으로 추정)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생 기자 이재하(고2)
2012년 4월 박물관 운영은 서비스업! 관람객을 주인처럼!! 풍( 豊 ) 화( 和 ) 격( 格 ) 국제관광기업도시 제 1호 (3) 군산의 3.1운동 풍자와 해학의 명수 채만식 군 산 역 사 그 리 고 문 화 살 피 기 군 산 의 3 1 운 동 풍 자 와 해 학 의 명 수 채 만 식 3월 1일 하면 93년 전인 1919년 3월 1일, 거리에서 일제의 총칼에 맞서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외치던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뇌리에 스 친다. 3.1만세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유관순열사는 아우내장터에서 목 놓아 외쳤으며, 이후 한강이 남에서 최초로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곳은 우리 고장 군산이었다. 군산은 구암교회 성도들과 영명학교( 現 제일고), 멜본딘여학교( 現 영광중, 여 고), 구암예수병원 학생. 교사 및 일반인들이 앞장섰다. 군산의 독립운동인 3.5만세운동의 발단은 영명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의전에 다니던 김병수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이 갑성과 접촉하여 건네받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를 전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첫 번째 서래장날인 3월 6일을 목표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하였다. 만세운동의 낌새를 알 아챈 일본 경찰에 의해 박연세 장로, 이두열 교사 등이 주모자로 검거된 것이었다. 그러나 교사, 학생들과 남은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일정을 앞당겨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린 튼의 지도하에 3월 5일에 만세운동을 시작하였 다. 이후 시위는 3월에서 5월까지 총 28차례(옥구 까지 포함)동안 계속 되어, 총 3만여명이 참가 하는 시위가 되었다. 일제의 폭력진압으로 53 명이 사망, 72명이 실종, 195명이 부상당하였 지만, 전라북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독립운동이 었으며, 타 지역까지 독립운동을 널리 확산시키 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7월 윌리엄 린튼은 미 국의 우리 교민신문에 영명학교의 독립운동소식 을 전하기도 하였다. 독립운동이 끝난 뒤에도 졸업시험을 앞둔 영명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졸업보다 독립이 먼저 라며 분개하여 독립 만 세운동을 점조직 형태로 전개하였다. 일제의 총칼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맞섰던 선조들이 목을 놓아 대한 독립만세 을 외치던 그날을 생각하며 우리국민이 우리국토을 잘 보 전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어느 소설의 구절이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 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 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 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 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 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풍자 작가의 대명사 채만식의 탁류 는 이렇게 시 작한다. 채만식, 그는 호는 백릉, 채옹이며 1902 년 6월 17일 옥구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보( 現 서 울 중앙고)를 졸업하여 와세다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사물을 정확히 판단하고 평소 말수가 적으며 고집이 세고 직선적이며 남의 집에서 식사를 하면 수저, 젓가락을 닦아 먹을 정도로 결벽증이 있었 다. 또한 운동을 좋아하여 학창시절에는 축구선수 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그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한적이 있었고, 그가 문인으로써 활동 하기 시작한 계기는 1924년에 단편 세길로 가 조선문단 에 추천되어 등단하고 부터였다. 그는 주 로 희곡과 소설을 썼는데, 그의 작품의 내용은 주 로 세태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풍자적, 해학적으 로 나타내어 비판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탁류, 치 숙, 레디메이드 인생, 태평천하 등이 있다. 그런 뛰어난 작가인 그에게도 인생의 큰 오점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친일 관련 작품을 써내는 등 친일 행위를 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민족의 죄인 이란 책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각을 회고했으나, 자신의 친일행각을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다. 그가 비록 친일에 동조 했던 인물이라 해 도 친일파 채만식 이라는 색안경이 아닌 작가 채만식 을 관점으로 그가 우리 문학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도 생각한다. 금강처럼 탁하고 혼란스러웠던 일제강점기 시대에 살았던 채만식. 나중에는 친일행위까지 한 그였지만 빈곤에 허덕였 다. 그럼에도 당시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하던 그 가 금강의 탁류를 바탕으로 작품을 쓴 것에 조금 은 이해가 된다.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생 기자 민경원(고3)
2012년 4월 박물관 운영은 서비스업! 관람객을 주인처럼!! 풍( 豊 ) 화( 和 ) 격( 格 ) 국제관광기업도시 제 1호 (4) 어머나 세상에나 푸른 눈의 조선인 서양인 최초로 이 땅에서 조선인으로 살다 간 박연 길을 걷다가 다양한 민족의 사람을 마주치는 것은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 다. 다양한 이유로 한국과 인연을 맺고, 나아가 한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인이 되 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사실, 한국은 역사의 오래전부터 이미 여러 국가들과 교류하고, 많은 귀화인들을 받아들여 오던 다민족 국가였다. 다만, 그것이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일부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던 서구사회로부터의 최초의 귀화는 언제였 을까. 바로 조선 인조시대였다. 조선시대 조선에 표류했었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남긴 하멜 표류기를 보면 바로 그 가 등장한다. 그곳에 가보니 긴 붉은 수염을 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제주목사가 그가 어떤 사람 인지를 물어 와서 우린 우 리와 같은 네덜란드 사람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주목사는 웃으며 우리에게 그는 조선 사람 이라고 손짓 발 짓으로 설명해 주었다. 하멜의 하멜표류기 中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원산 박씨의 시조이기도한 박연 이다. 본래 네덜란드 이름은 얀 얀스 벨테브레 (Jan. Janse. Weltevree). 네덜란드 드 레이프 출신으로 1626년 홀란디아 호를 타고 고국을 떠났었다. 다음해 1627년 오버호크 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식수를 구하러 조선해안에 상륙했다가 관헌에게 붙잡혀 서울로 호송되었다. 당시 조선은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은 다시 국외로 내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박연은 동료 두 명과 함 께 조선에 귀화하였다. 귀화 후, 세 사람은 훈련도감에 배치되었는데, 박연의 경우, 임진왜란 때 투항한 일본인과 조선에 표류한 중국인으로 구성된 부대의 장수가 되었 다고 한다. 병자호란(1636년)때 세 사람은 조선군으로 참전하였는데, 여기서 박연만 이 살아남았다. 이후 박연은 조선으로 유입된 외국인들을 관리하는 한편 명나라에서 들여온 홍이포( 紅 夷 砲 )의 제조 조작법을 조선군에게 지도하는 등 조선의 무관으로 역사 한 켠에 이름을 남겼다. 처음 그가 귀화한 것은 조선의 법에 의한 것이었다. 하멜 일행과 마찬가지로 그 역 시 처음에는 조선을 벗어나고자 왕에게 청을 하였으나 거부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연은 조선에서의 13년 동안 우여곡절한 탈출시도 끝에 탈출한 하멜 일행과는 달 랐다. 그는 조선에서 조선여인과 결혼하여 1남1녀를 둔 조선의 한 가정의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다간 것은 물론, 조선관직에 까지 올랐다. 이로 보아 박연은 하멜일행과 는 달리 조선으로의 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거나, 적어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조선에 잘 정착한 것으로 비추어진다. 또한, 하멜 표류기에서 하멜과 제주목사가 그 에 관해 나누었던 말을 보면 박연은 당시 조선인들로부터 한명의 조선인으로 인정받 았음을 알 수 있다. 큰 몸집에 흰 피부, 푸른 눈과 긴 붉은 수염을 가졌었던 박연은 당시 조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 를 기꺼이 조선인으로 받아들였고, 그 역시 조선에서 조선인으로 성실히 살다갔다.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생 기자 백승희(대2)(vanillabsh@naver.com)
2012년 4월 박물관 운영은 서비스업! 관람객을 주인처럼!! 풍( 豊 ) 화( 和 ) 격( 格 ) 국제관광기업도시 제 1호 (5) 박물관 월간 행사 4월 주요 일정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는 3월과 4월. 4월은 주말에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는 일이 많은데 나들이 일정으로 군 산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3월에 총 2개의 전시와 6개의 교육프 로그램이 운영된다. 전시는 2월 23일부터 6월 30일까지 500년만의 외출 - 세상과 의 소통 이라는 주제로 보물 제1718호 동국사 소장 소조 석가 여래삼존불상 복장유물 기획특별전 이 개최된다. 본 특별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시주질, 후령통, 다라니 등 불상의 내부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중기 경전 및 공예품 등 373점이 최초로 전시될 예정이 며, 아울러 근대화 격동기 슬픈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군산 동국사의 변천사에 대한 영상물이 상영될 계획이다. 또 2월 16일부터 7월 31일 동안 1층 해양물류역사관에서 조 선시대 말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고자 군산의 오식도에 설치되 었던 철제화포를 국립진주박물관으로부터 대여 받아 전시하고 전시 교육 일시 내용 장소 비고 동국사 소장 소조 석가여래삼존불상 복장유물 기획특별전 군산의 수문장 - 오식도 화포의 귀환 어린이 박물관 학교 한국사 연대표 특강 박물관 재미있는 세계사 박물관 공예체험교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세계 문화유산 특강 동국사의 변천사 조선시대 말 철제화포 3층 기획전시실 1층 해양물류 역사관 1,2,3층 세미나실 있다. 오식도 화포는 개항을 거쳐 일제강점기 일제의 중요 거점지역이었던 군산을 우리 조상들이 무기력하게 빼앗긴 것이 아니고 당시로서는 최신형 화포를 배치하며 방어하였다 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교육프로그램으로 는 어린이 박물관 학교, 한국사 연대표 특강, 박물관 재미있는 세계사, 박물관 공예체험교실, 청소년을 위한 한 국사, 세계 문화유산 특강이 있다. 주말에 박물관에 방문하여 자녀와 함께 2개의 전시를 보고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전 신청 자에 한함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생 기자 장혜원(고3) 이달의 기증유물 규장각실 소식 기타 박 물 관 소 식 통 명 칭 : 전북의 문화재 사진자료 수 량 : 51점 기증자 : 군산 사우회 군산지역 사진작가들의 모임인 군산 사 우회(회장 김기홍)에서는 2011년 회원들이 촬영한 전라북도의 문화재 51점을 기증하 였다. 군산 사우회는 최혁동(76세)선생님의 지도아래 다양한 주제의 사진작업을 꾸준 히 해온 사진 동아리로서 금번에 기증한 전북의 문화재사진 51점은 회원들이 임피 향교, 동국사 등의 지역문화재와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경기전 태조어진 등 전북지 역 유물들을 직접 찾아가 촬영함으로서 현 장감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 다. * 근대자료규장각실 에 약 1,000여 점의 도서가 마련되 어있습니다. -도서목록은 박물관홈페이지 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용을 원하시면 문의주시기 바랍니다.(063-443-8283)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첫 번째 학술자료집 고문헌 속의 군산 책자 발간 (군산 스토리텔링 기초자료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