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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충칭시개황및역사 1 Ⅱ. 충칭시경제및무역현황 3 Ⅲ. 현지출장참고자료 5 ( 항공편, 생활정보, 관광명소, 충칭진출한국기업 ) Ⅳ. 비즈니스시유의사항 14 Ⅴ. 유용한중국어표현 17 Ⅵ. 충칭무역관주소및연락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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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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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04 선옥이네 살림집

황 인 용 김 희 순 부 부 의 살 림 살 이 4 장 선옥이네 살림집 1) 살림집의 변화과정 (1) 1946년 이전 상황 선옥이네는 증조부인 고 황규대(1883년~1962년)가 처음 은산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당시 살던 집 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그의 생몰년으로 미루어 1900년대 초에 은산으로 온 것으로 짐작되는데, 차 남이었던 증조부가 공주에서 은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새 집을 지을만한 재력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 다. 아마도 기존에 있던 집을 구입하면서 정착한 것으로 짐작된다. 안채를 신축하기 시작한 1946년 이전의 살림집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큰아 버지 황인화(1938년생)의 어렴풋한 기억에 따르면, 기단이 낮고 처마가 낮은 초가집의 안채와 역시 초 가로 된 사랑채가 二 자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안채는 지금과 같이 부엌-안방-웃방의 3칸으로 이루어 진 평면이었고 안방 앞에는 좁은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1943년의 증조부 회갑연 기념사진 은 병풍과 그 뒤 초가집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는데, 이 초가집이 당시의 안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 진에 찍힌 병풍 뒤 안채의 모습은 어른 키가 닿을 정도의 낮은 초가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 위에는 회갑 연 잔치에 사용된 천막이 사진을 찍기 위해 지붕 위로 걷어져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판문은 주로 부엌 이나 곳간의 문으로 사용되는 형식인데, 큰아버지의 기억과는 달리 현재 부엌의 반대편에 부엌이 위치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안채와 마주하여 지금 안마당의 화단이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평면 구성은 대문-방-방 의 3칸이었다. 그 외 헛간, 외양간, 뒤지, 뒷간, 잿간 등의 부속건물들도 대지 양쪽 경계선과 나란히 있었 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편 선옥이네 살림집이 위치한 대지는 최근까지 국가 소유의 땅이었다. 해방 직후 작성된 歸 屬 財 産 賃 貸 借 契 約 書 를 보면 133평의 대지를 점유하는 조건으로 연 480원의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계약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내내 점유한 대지가 해방 직후 귀속재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선옥 이네가 살던 대지는 오래 전부터 국가 소유의 땅이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이곳에 있던 은산역과 연계하 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歸 屬 財 産 賃 貸 借 契 約 書 증조할아버지 회갑연 기념사진(1943년) 082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83

(2) 1946년~1948년 안채 신축 시기 사랑채 철거 전 배치 상황(황인화 작성) 금전출납부 중 가옥신축비용기 큰아버지 황인화의 증언에 따르면 안채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2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 2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채의 규모에 비해 공사기간 이 길었던 것은 분명하다. 안채를 신축하던 시기는 증조부가 64~66세, 조부가 30~32세였고 10살 미만의 손주 2명이 한창 재 롱을 부릴만한 시기였다. 증조부는 바로 옆집에 사는 6살 연하의 대목 고 변용주에게 안채 공사를 의뢰했 다. 규모를 늘려 4.5 2칸의 안채가 계획되는데, 전에 없던 마루방과 툇마루가 추가되고 부엌 전면 칸수 도 반 칸을 더 늘렸다. 칸수를 늘리면서 평면은 부엌-안방-웃방-마루방으로 변화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부엌의 위치가 반대편에 가게 된 것인데, 위치를 바꾼 이유는 알 수 없다. 새 안채는 전에 있던 자리에 그 대로 지어졌지만 기단 높이를 전보다 높였다. 신축 당시 기단 앞쪽에 2~3단의 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기 억할 만큼 높은 편에 속했다. 기단과 함께 기둥의 높이도 높아져 이전에 비해 완전히 다른 모습의 안채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지붕은 예전 그대로 초가지붕을 이었다. 한편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현재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 전출납부에는 2페이지에 걸쳐 자재 구입과 인건비 지불에 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장부의 제목 은 家 屋 新 築 費 用 記 이고, 2월15일부터 4월14일까지의 지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지출 내역을 살펴볼 때 이 기록은 신축 마지막 해인 1948년도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공사비로 총 106,413원이 지출되었는데, 이 중에서 장부에 기록된 것은 56,413원의 분량이다. 나머지는 재목 30,000원과 백미 20,000원( 白 米 5 分 ) 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안채는 규모와 평면이 바뀌었지만 기존에 있던 사랑채와 각종 부속건물들 예전 모습 그대로였을 것 으로 추정된다. 큰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신축 이후에도 안채와 사랑채가 二 자 형태의 배치를 유지하였 고, 그 좌우에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 있는 화장실은 원래 나락을 보관하는 뒤지( 볏광 )였는데, 뒤지의 전면 쪽 창고가 있는 자리에는 소 한마리가 들어갈 정도의 외양간이 있었고, 후면 쪽 수도가 자리에는 소여물을 보관하는 헛간이 있었다. 아래채가 있 는 자리에는 닭장과 헛간, 안채 화장실이 연달아 배치되었다. 사랑채 앞 쪽에는 도로에 면하여 작은 앞마 당이 있었는데 지금 담장에 면한 창고 자리가 이곳에 해당한다. 앞마당과 도로 사이에는 담장이 설치되지 않고 트여 있었다. 앞마당 동쪽에는 돼지우리와 재간, 바깥 화장실이 붙어 있었는데, 이중에서 바깥 화장 실은 지금의 위치와 같다. 심지어 당시 묻어놓은 독까지 현재와 동일하다. 뒷마당의 담장은 원래 섭타리 였다. 까죽나무 를 지지대 삼아 땅에 고정시킨 후 가지 많은 부분을 잘라 엮어서 담장으로 만들었다. 현재 보이는 조립식 콘크리트 담장은 1970년대 초에 설치되었다. 지금의 수도가를 만들기 전에는 아래채 뒤쪽에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이웃과 함께 이용하던 우 물이었다. 우물 근처에는 동쪽 이웃집을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있었다. 지금은 서쪽 이웃집과 드나들 수 있는 문만 남아있지만 당시에는 선옥이네을 중심으로 이웃한 3가구가 대문을 나서지 않고 서로 드나 들 수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일이지만 과거 어머니 친정에서도 이웃과 왕래할 수 있는 문을 두었다고 한다. 동쪽의 출입문은 주인이 새로 바뀌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084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85

(3) 1970년대 이후 고 변용주( 故 卞 龍 珠, 1889~1959) 청양 칠갑산 부근에서 태어나 현재의 거주지로 이거( 移 居 )하였다. 언제부터 목수 일을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은퇴할 때까지 전업 목수로 활동 하였다. 수하 목수를 여럿 두었던 대목( 大 木 )이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변대목 으로 불리었다. 활동 범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선옥이네를 비롯하여 은 산교회, 화산광산의 건물들, 띠울(인근 마을 중 하나)에 있던 주거가 그의 작 품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은산을 중심으로 한 부여 일대가 주 활동 범 위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당시 은산성결교회 건물의 상량문이 현재 교회에 보관 중에 있고, 몇 년 전 띠울에 있던 옛 집을 철거할 당시 상량문에 변대목 이 명기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지은 건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몇 장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진 상태이며, 긴 자구(자귀) 를 비롯해 많은 연장도 있었지만 은퇴하면서 연장 통 째 다른 목수에게 팔아버렸다. 지금은 연장을 담아두던 연장통과 대팻날 등을 갈던 숫돌이 남아있을 뿐이다. 전업 목수였지만 과거에는 5마지기 정도의 토지(현재 소방서 자리와 농협 창고 자리 등)가 있어 틈틈이 농사일도 병행하였다. 고 변용주 그가 살던 집도 직접 지은 것으로 1947년 선옥이네보다 일 년 먼저 완 공되었다. 오두막 이라고 할 만큼 허름한 집에 이사와 살고 있다가 드디어 손 수 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이 집은 선옥이네에 비 해서 기둥이 가늘고 서까래도 짧으며 기단도 낮게 하는 등 당시 많은 경제적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툇마루에 깐 우물마루는 다른 곳에 사용하 던 것을 재활용한 듯 일반적인 법식에 맞지 않는데, 자신의 눈썰미 와 손재주 로 수완을 발휘하여 마무리였 다. 게다가 대청방 대신 사랑방 을 두었는데, 그 위치를 반대편 부엌에 연결시킨 것도 이 집이 갖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대목 이 자신의 집을 지을 때 나타나 는 실험적이면서 실용적인 태 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이 집은 둘째 아 들인 변일성(1939년 생, 대 동계장)씨 가족이 살고 있으 며, 은산국민학교 이사 이전부 터 운영해 오던 조그마한 가게 가 있다. 은산성결교회 옛 상량묵서명(1936년) 연장통 연장통 숫돌 할아버지 회갑연 기념사진(1977년) 안채 신축 이후 사랑채를 철거하면서 선옥이네는 배치상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사랑채는 증조부가 돌아가시 고 얼마 안 있어 화재가 나 일부 소실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사랑채를 허물고 현재의 아래채를 짓게 되었다. 사랑채가 철거되던 시기는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서울와 안양에서 객지생활을 하고 있던 기간이기 때문에 정 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70년대 초로 추정된다. 이즈음 안채는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바뀌게 되었다. 서울 의 공장을 다니던 고모(황인선)가 월급을 모아 부친 돈으로 지붕을 개량할 수 있었다. 아래채는 아버지 군입대 바로 전인 1977년에 건립되었다. 아래채는 선옥이네 첫 시멘트 블록조인데, 인 부 1명과 함께 아버지가 직접 시공하였다. 아래채는 주로 세를 내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곡식창고가 있는 곳이 부엌, 허드렛방이 방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궁이를 설치하고 불을 때는 난방 방식이었지만 후에 연 탄 1개짜리 보일러로 개조되었다. 1982년 어머니가 선옥이네로 시집오면서 더 이상 세를 주지 않았다. 서울 생활을 하던 아버지도 집에 없는데 새색시가 다른 식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못 미더웠기 때문이다. 아래채를 짓고 몇 년 후 뒤지 앞 쪽에 있는 창고를 건립했는데, 지붕은 10년 전 쯤 다시 손을 보았다. 1980년대에는 안채 공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오면서 마루였던 끝방을 신방으로 꾸미 면서 연탄보일러로 난방되는 방으로 바뀌었다. 몇 년 후에는 아래채 뒤쪽에 있던 우물을 메우고 지금의 수도 가를 만들었는데, 지하수를 뚫고 전기 모터로 퍼 올리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수도가 부엌과 가까워 져 작업동선이 훨씬 가까워졌다. 1980년대 말에는 안채 앞의 뜰팡 공간이 확장되었다. 뜰팡 이란 처마 아 래 비를 맞지 않는 반외부 공간을 말하는데, 지금처럼 양철 슬레이트 지붕과 각목으로 처마를 연장하여 깊 086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87

게 하고 쇠파이프와 비닐을 이용하여 가림막을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뜰팡 확장은 툇마루까지 들이치는 비 와 겨울철 추위를 막고 겨울철 작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툇마루를 유리문으로 막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당시의 뜰팡 공간의 확장은 선옥 이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거에서 보이는 추세였다. 1990년대에는 설비의 현대화가 주로 이루어졌다. 1990년대 초 건조기가 들어오면서 뒷마당에 건 조장이 들어섰고, 1992년에는 부엌을 입식으로 현대화하면서 아궁이 대신 기름보일러를 설치했다. 1993 년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뒤지를 화장실로 개조하였다. 바깥 창고가 지어진 것도 이와 비 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1990년대 말에는 뒷담의 일부를 조립식 콘크리트 담장에서 함석 판넬 담장으로 바꾸었다. 뒷담에 면한 도로는 차를 돌리는 곳이어서 운전이 서툰 초보자들이 담장을 들이받아 무너지는 일이 자주 생겼기 때문이다. 장독대 뒷마당 처마 부엌 안방 가운데방 끝방 툇마루 수돗가 뜰팡 곡식창고 화장실 뜰팡 공간 확장 전 앞마당 비닐하우스 허드렛방 창고 창고 안마당 전경 선옥이네 현황 배치도 088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89

(4) 미래의 신축 계획 선옥이네는 오래 전부터 집을 새로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원래 중학교 앞 창고 부지도 새 집을 지을 목적으로 땅까지 돋 았는데, 도중에 계획이 변경되어 창고를 짓게 된 것이다. 집을 신축하려는 계획이 연기된 것은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고 령의 할머니가 가장 큰 이유였었다. 그러나 올 초 할머니가 돌 아가시면서 신축을 더 이상 연기할 이유가 없어졌다. 선옥이네가 새 집을 지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대지가 낮 아서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이다. 여름철 소나기가 내리면 선 옥이네 마당은 물이 빠지지 않아 물난리가 난 것처럼 고여 있 다. 대지는 그대로 인데 주변의 도로 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 다. 모기가 많은 것도 저지대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 닌가 여겨진다. 그 외는 한옥이 가지는 생활의 불편함 때문이 다. 화장실이 안채와 떨어져 있어져 있는 점, 내부 공간이 넓 선옥이네 신축 계획도(황인용 작성) 지 못한 점, 현관이 없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정리 못한 채 꾸려 온 살림을 신 축과 함께 깨끗하게 정리할 기회로 삼고 싶은 바램도 있다. 아버지는 이미 새로 지을 집의 평면을 결정하였다. 지금의 한옥을 리모델링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 지을 집도 대부분 아버지가 직접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머니 는 슬라브 지붕이 아닌 경사지붕 형태로 짓기를 희망한다. 어쨌든 막 환갑을 넘긴 선옥이네 살림집은 다 른 한옥들처럼 이 땅에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선옥네는 2010년 4월부터 있던 집을 없애고 계획했던 집을 신축했다. 조사자가 4월에 다시 은 산을 찾았을 때 원래 있던 집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2) 공간의 구성 (1) 공간의 구성 선옥이네는 전면과 후면에 도로를 접한 남북으로 긴 대지를 갖고 있다. 주출입은 남쪽 전면의 도로를 통 하여 이루어지고 있고, 후면 도로에 난 출입구는 주로 작업을 위한 목적에서 사용된다. 대지는 크게 안마 당과 뒷마당으로 양분되는데, 안마당과 뒷마당 사이에는 생활의 주된 공간인 안채가 남향하여 있다. 안마당 주변에는 안채를 비롯하여 아래채, 뒤지, 창고가 사방에 배치되어 튼ㅁ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고 뒷마당은 장독대를 중심으로 동쪽 한 켠에 건조기를 위한 가건물이 마련되어 있다. 안채는 서쪽부터 부엌, 안방, 가운데방, 끝방의 一 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처마와 같은 반외부 공간이 밀 집되어 있다. 안채 전면에는 뜰팡 이라 불리는 작업공간이 현대식 주거의 현관이나 거실의 기능을 수용 하고 있고, 뒤지와 안채 사이에는 수도가가 자리 잡고 있어 다용도실의 기능을 수용한다. 서쪽 처마는 자 연스럽게 담장과 이어져 비를 피할 수 있는 수장공간 및 통과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를 놓기 위한 용도로 건립된 아래채는 부엌과 널찍한 방으로 구성된 평면인데 지금은 곡식과 살 림살이를 보관하는 창고의 기능만으로 이용되고 있다. 뒤지를 개조한 화장실은 세탁실의 기능을 겸하고 있고 그 옆은 전면이 트여 반외부 공간처럼 사용되는 창고가 있는데, 탈곡기와 저울 등 농업과 관련된 물 건들을 주로 보관한다. 또 그 옆에는 개를 키우던 공간이 있고 이 공간과 대문 사이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썩히고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전면 담장을 한쪽 벽으로 삼아 만든 창고에는 아버지의 각종 연장과 부품, 농기계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는데, 한쪽에는 오래 전부터 사용된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안마당은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와 관상용 식물이 자라는 화단이 배치되어 있다. 빈 안 마당에서는 수확한 곡식을 말리고 다듬는 다목적의 공간으로 이용된다. 뒷마당에는 장독대가 있어 각종 발효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었지만 현재는 냉장고 에 밀려 활용도가 낮아졌다. 장독대 서쪽에는 건조기가 있어 고추를 말릴 때 사용되며 후면 도로에서 출 입할 수 있는 출입구는 건조기에 들어갈 고추와 같은 농산물이 반입, 반출되는 통로이다. 건조기 앞에는 빈병을 모아두는 곳으로 이용되며 안채와 건조기 사이에는 담장에 면하여 헛부엌이 설치되어 있다. 장독 대 동쪽에는 화단이 있는데 현재는 연탄재와 폐기물을 버리는 곳으로 활용된다. 선옥이네의 일상적인 생활은 주로 안채와 주변의 반외부 공간, 그리고 화장실에서 이루어진다. 그 외의 공간들은 각종 먹을거리와 살림살이, 도구들을 보관하는 창고 공간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농촌의 주거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안채의 평면 형식 선옥이네 살림집 중 전통적인 형식을 갖고 있는 건물은 안채이다. 안채는 4.5 2칸의 크기로 부엌-안방-가 운데방-끝방의 평면 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전후 툇칸을 가지고 있다. 전면의 툇칸에는 툇마루를 두고 후 면의 툇칸에는 골방과 같은 수장공간을 두었다. 후면의 수장공간은 방과 통칸으로 확장되어 한 방처럼 사 신축중인 선옥이네 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미서기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또 끝방은 원래 마루가 설치된 마루방이었지만 현 090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91

재는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엌은 개조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안방쪽에는 아궁이가 있어 난 방과 취사가 이루어 지고 아궁이의 왼쪽인 안방 후면 골방쪽에는 작은 밥상을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작 은 문이 나 있었다. 또 북서쪽 반칸의 모서리에는 문이 없는 찬광이 있었는데 지금도 당시에 시렁을 걸었 던 벽에 흔적이 남아있다. 부엌의 전면과 후면에는 판문으로 된 쌍여닫이문이었는데, 후면의 판문 중 한 짝이 배수구를 덮는 용도로 바뀐 채 남아 있다. 선옥이네 살림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끝에 위치한 마루방이다. 방으로 개조되기 이전 이 마 루방은 주로 곡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던 방이었다. 마루가 깔린 곳은 보통 수장공간으로 사용되거 나 다목적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된다. 선옥이네 마루방은 수장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생활공간으로 사용 되는 마루방에서는 생활과 제사 등의 행위가 이루어지는데 반해 수장공간의 마루방은 창고의 기능이 중 심이 된다. 그러나 마루방이 수장공간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의 생신상이 마루방에 차려지 고 인사 온 손님들을 마루방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선옥이네는 마루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큰 집 이라 불리는 은산의 한 집은 옛 날 마루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예가 있다. 그 집은 부엌-방-방-방-마루의 평면으로서 선옥이네보다 방이 한 칸 더 있는 확장된 평면 형식이다. 이 집의 마루방도 생활공간의 성격보다 수장공간의 성격이 강 하게 나타난다. 두 집의 사례만을 가지고 지역적 특성을 운운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선옥이네의 살 림집처럼 마루방을 끝으로 배치하는 것은 이 지역의 평면 특성으로 보인다. 안방과 가운데방의 전후면에는 띠살로 된 창호가 있는데, 전면에는 쌍여닫이를 후면에는 외여닫이 를 달았다. 끝방의 전면 창호는 하부에 유리창이 달린 미서기문을 달았는데 살문양은 전통 문양의 양식 에서 벗어난 띠살을 하고 있다. 나머지는 현대에 변경된 형식의 창과 문이 설치되어 있다. 툇마루는 우물 마루가 아닌 장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규격화된 판재를 사용하는 것이 용이했던 시대적 특성이 반 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이 1940년대의 시대 특성이 반영된 것은 기둥 간격, 즉 스팬(span)이다. 전통 목구조에서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한 자인 약 30cm를 기준으로 설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기둥 간격 은 7자인 210cm나 8자인 240cm 내외로 잡게 된다. 그러나 선옥이네는 오차가 거의 없이 250cm라는 길 이를 기둥 간격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당시 제재소에서 나오는 목재 규격이나 운송방법에 따라 결정되었 을 가능성이 있다. 일제강점기 또는 해방 직후에 지어진 한옥의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면 시대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안방과 화장실을 제외한 아래채와 창고는 시멘트블록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래채와 화장실 옆 창고는 4인치 시멘트블록이고 대문 쪽 창고는 5인치 시멘트블록을 사용했다. 아래채와 대문 쪽 창고는 아 버지가 직접 시공에 참여하여 건립한 것들이다. 창고의 시멘트블록은 공장에서 제작된 기성제품이 아닌 직접 제작한 블록을 사용하였다. 창고 건물은 담장과 시멘트블록을 벽으로 삼고 그 위에 쇠파이프나 각목 을 가로질러 지붕 가구를 엮은 구조로 되어있고, 지붕은 슬레이트이다. 3) 구조와 설비 (1) 구조 전통 한식 목구조로 된 건물은 안채와 화장실이고 이를 제외한 건물들은 시멘트 블록조로 되어 있다. 안채는 2고주 5량가의 구조로 전후 툇칸을 두었으며 팔작의 지붕형태를 하고 있다. 기둥은 원형과 방형의 기둥을 모두 사용하였는데, 동쪽의 3칸 전면 기둥 4주와 툇마루 가운데 고주 1주, 동쪽 측면 가운 데 기둥 1주 등이 방형 기둥이고 나머지는 원형의 기둥을 사용하였다. 사용된 위치로 보면 원형기둥보다 방형기둥의 위계가 더 높다. 보통 잘 보이는 전면에 더 높은 위계의 형식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방형기둥은 약 13 13cm의 크기로 초가집 치고는 상당히 굵은 목재를 사용하였다. 원 형기둥은 직경이 13cm 내외이기 때문에 방형기둥보다는 단면적이 적다. 기둥을 받치는 초석은 대부분 매 몰되어 형태를 알 수 없지만 막돌 초석과 함께 콘크리트로 된 초석도 있다.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는 장여로 보강하지 않고 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부재를 사용했다. 구조재인 기둥과 도리, 툇보는 아무런 보조재가 없이 직접 결구되었다. 서까래는 장연과 단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초가에 적당한 굵기의 부재가 사용되었다. 확장된 뜰팡 지붕은 서까래 끝에 각목을 못으로 고정하여 서까 래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데, 각목의 반대 단부에는 3단으로 둥글게 조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조각 은 아버지의 고안에 따라 제작된 것이다. (2) 전기설비 은산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60 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국 민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초롱불 밑 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가정용과 농업 용 전기 두 종류가 들어오고 있다. 가 정용은 비싸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소 모하는 전열기 등의 전자제품은 농업 용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어머니는 조 전기요금영수증(1990년) 리할 때 전기레인지를 많이 사용한다. 오히려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보다 적은 비용이 들고 타이머가 부 착되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 외 건조기나 탈곡기 등의 농기구들은 농업용 전기를 사용한다. 선옥이네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식구가 단촐하기 때문에 전기사용료는 얼마 되지 않는다. (3) 난방설비 전통적인 난방방식인 아궁이와 구들이 사용되다가 1982년 끝방을 신방으로 꾸미면서 처음 연탄보일러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아래채에도 연탄보일러로 개조하였고, 1992년 경에는 부엌을 입식으로 개조하면 서 기름보일러로 모든 온돌방을 난방하게 되었다. 지금은 기름보일러와 연탄보일러를 함께 사용하고 있 092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93

다. 연탄보일러는 주로 난방용으로 겨울철에 이용하고 기름보일러는 온수용으로 사용한다. 두 방식을 병 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기복이 심한 유류 가격 때문이다. 기름은 농업용 면세유를 사용하는데 일반 유류 가격의 1/2 수준이다. 보일러는 가운데방 뒤쪽 처마밑에 설치되어 있다. (4) 상하수도 아래채 뒤쪽에 있던 우물은 1980년대 후반까지 사용되었다. 지금은 지하수를 파고 전기모터로 물을 퍼 올 리는 방식으로 현대화되었다. 과거 은산은 행주형의 풍수라서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은 부여읍 내도 마찬가지여서 우물과 샘마다 물을 길으려는 인파로 항상 붐볐다고 한다. 선옥이네는 아직 정화조가 설치되지 않았다. 생활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하수는 개천으로 빠져나 간다. 전면 도로 밑에는 하수도로 사용되는 관이 묻어 있어 생활하수는 이곳으로 흘러가고 빗물은 북동쪽 담장 밑을 지나 이웃집 하수구로 모여 개천으로 빠진다. (2) 행례 공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차례와 기제사를 선옥이네에서 지냈다. 행례는 안방에서 이루어졌 는데, 제상은 동쪽인 가운데방을 향해 놓고 제수가 진설되었다. 신주나 영정은 안방 벽장에 보관되어 있 었다. (3) 의생활 결혼 후 몇 년간은 집안에 있던 우물가나 마을 냇가에서 빨래를 하였다. 결혼 3년 뒤에 구입한 짤순이 가 있어 좀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빨래는 어머니 몫이었다. 화장실을 개조하면서 구입한 세탁기가 들어 오면서 빨래에 대한 부담이 줄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머니는 간단한 세탁물은 손빨래로 한다. 세탁 물은 샤워 후 바로 세탁기에 넣어 둔다. 빨래 수거와 세탁이 화장실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안방에 있는 재봉틀은 주로 할머니가 사용하던 것이다. 원래 발로 돌리는 재봉틀이었는데 손재봉틀 로 바뀌었다. 지금도 아버지가 가끔 사용하기도 한다. 4) 생활 (1) 공간사용 안채의 신축 이후 온돌방은 안채에 두 개, 사랑채에 두 개 해서 모두 4개의 방이 있었다. 증조부 이하 많 은 식구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다. 선옥이네 직계 가족 외에도 아버지의 고모와 육촌 형님들이 함께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사랑채에는 1950년 말까지만 해도 집에서 부리 는 일꾼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결국 3개의 방에서 3대가 나뉘어 생활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결혼해서 시집 왔을 1982년 당시에는 시부모님 외에 다른 식구들은 없었다. 아버지의 동 기 중 막내 고모를 제외한 큰아버지와 고모들은 모두 결혼해서 출가를 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에도 동기간 터울이 많아 한 식구가 한 집에서 방 때문에 다툰 기억은 별로 없었다. 마루방을 신방으로 꾸 몄기 때문에 온돌방의 수는 2개에서 3개로 오히려 증가하였다. 가운데방은 주로 비어 있었고 대전에서 대 학교를 다니던 막내 고모가 잠시 집에 들를 때면 가운데방에서 잤다. 큰딸과 작은딸이 태어났고 어느 정도 자라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에서 함께 잤다. 큰 딸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가운데방에서 혼자 잤고, 당시 4살인 작은 딸도 언니와 덩달아 가운데방에서 잤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두 딸은 가운데방을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다. 두 딸이 사용하는 책상은 하나 로 충분했는데, 작은 딸이 책상이 필요하게 되는 중학교 시기에 큰 딸은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로 집을 떠 나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작은 딸이 좌식용 책상에서 공부했다. 가끔 들리는 큰아버지와 고모들은 혼자 되신 어머니와 함께 안방에 머물렀다. (4) 식생활 먹을거리를 다듬는 일은 주로 뜰팡에서 이루어진다. 뜰팡은 여름철 그늘을 제공하고 겨울철에는 추운 바 람을 막아준다. 먹을거리는 주로 생산된 농산물인데, 이를 뜰팡에 풀어놓고 다듬는다. 마늘은 화장실 옆 창고에 매달려 있고 필요할 때마다 뜰팡으로 가져와 깐다. 또 감자나 양파와 같은 것은 안채 서쪽 처마 밑에 보관되어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물로 씻는 작업이 필요하면 먹을거리를 가지고 수도가로 간 다. 다듬는 데 필요한 칼이나 그릇, 채 등의 살림살이들도 거의 수도가 근처에 보관되어 있다. 먹을거리 는 뜰팡, 수도가, 부엌의 순서로 이동하는 동선을 갖고 있는데, 선옥이네는 가장 가까운 곳에 인접하여 동 선이 최소화되었다. 김칫거리를 다듬는 일과 절이는 과정은 주로 수돗가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김장에 필요한 굵은 소 금은 안채 서쪽 처마밑에 보관되어 있고, 멸치액젓은 수돗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외 고춧가루와 마늘 빻 은 것, 설탕은 부엌에 보관되어 있는데, 버무리기는 양에 따라 수돗가나 부엌 중에 선택된다. 김치를 담은 후 설거지는 주로 수돗가에서 하는데, 대개는 그 크기가 큰 것들이다. 불판과 같이 기름기가 많은 경우에 도 주로 수돗가에서 설거지한다. 건조는 건조할 양에 따라 다양한 장소에서 이뤄진다. 무말랭이나 감, 대추와 같이 양이 많지 않을 경우에는 채에 담아 창고나 마당의 평상에서 건조시키고, 마늘은 화장실 옆 창고 지붕에 매달아 건조시 킨다. 채에 담을 수 없는 양이면 비닐 천막을 깔고 안마당에서 건조시킨다. 그보다 양이 많을 때는 집 앞 골목길 담장 한 켠에 비닐 천막을 깔고 건조시킨다. 가장 많은 양을 건조시킬 때에는 은산별신제 보존회 관 주변 공터나 은산천을 따라 나있는 길 한쪽에 망이나 천을 깔고 건조시킨다. 건조된 먹을거리는 종류 에 따라 나뉘어 보관되는데, 벼와 고추와 같이 부피가 큰 것은 아래채 곡식창고에, 나머지는 부엌의 냉장 고나 김치냉장고에 보관된다. 094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95

(5) 작업 공간 아버지가 오토바이나 예초기를 수리하는 경우에는 대문 쪽 창고와 입구 부분이 작업 공간이 된다. 대부분 의 연장과 부품들이 그쪽 창고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밤을 나르기 위해 제작된 운반대도 역시 이 공 간에서 작업하였다. 중학교 앞 창고 앞에서도 때때로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트럭 머플러는 이곳에서 교체 되었다. 트랙터를 사용해서 트럭을 들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트럭 세차도 이곳에 보관된 컴 프레셔를 이용해 이뤄진다. 아버지의 작업 공간은 필요한 도구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6) 쓰레기의 재활용과 처리 생활하면서 나오는 쓰레기들은 자체적으로 해결되서 밖으로 배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먼저 음식쓰레 기 중 일부는 개 먹이로 사용되고 먹을거리를 다듬으면서 생기는 쓰레기와 조리 후 생기는 쓰레기는 대 문 안쪽 한켠에 마련된 곳에 버려져 썩힌다. 악취방지와 미관상 쌀겨와 혼합되는데, 쌀겨는 화장실 옆 창 고에 있는 탈곡기에서 나온 것을 사용한다. 쌀겨는 탈곡하면서 플라스틱 관을 통해 자동적으로 음식물 쓰 레기를 모아두는 곳 옆에 버려진다. 잘 썩히게 되면 텃밭이나 화분의 비료가 된다. 재활용 쓰레기는 캔과 같은 각종 철물과 술병 두 가지로 분리수거한다. 철물은 재래식 화장실 입구 부분에 있는 포대에 담겨지고, 술병은 건조기 앞 플라스틱 바구니에 모아둔다. 철은 고물상에 팔고, 병은 슈퍼에 팔거나 필수품으로 바꾼다. 그 외 부피가 크거나 타지 않는 물건들은 뒷마당 연탄재 근처 한 곳에 모아두고 태울 수 있는 것들 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 옆에 마련된 소각장에서 2~3일에 한번씩 소각한다. 소각장 근처에는 소각과 정리에 필요한 부삽과 같은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096 황인용 김희순 부부의 살림살이 선옥이네, 살림집 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