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고기를 잡아가고 하였는데 울릉도 섬사람들은 가까운 바 다에서만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 걸려서 가면 만날 수 있는 독도까지 나가 고기를 잡곤 하였다. 이 독도는 특이 한 물고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독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바위섬으로 아주 맑은 날에는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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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내지완완

Transcription:

4 일러스트레이터 김도연 어른도 함께 보는 동화 김 정 현 동화작가 독도와 어린 인어 (kimskorean@naver.com)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울릉도를 알면 독도를 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 기록에서 보는 내용이라 하셨습 니다. 이 말씀은 옛날부터 울릉도에 살던 사람이 독도를 발견하 고 그곳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고 하는 일로 독도도 생활의 터 전으로 삼았다고 하여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울릉도가 우리 땅인 이상 독도는 분명 우리 땅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울릉도는 넓기도 한 섬인데 산에는 나무가 많고 온갖 나물 과 그리고 대나무가 많이 자라나 있어서 육지 사람들이 자주 와서 뜯고 베어가고 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섬 으로 들어와 사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은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 우리 한반도 섬의 대나무는 곧고 단단하여 화살로 많이 이용되었다. 그 의 동쪽 바다에 있는 유일한 큰 섬 울릉도에 관한 이야기를 리고 섬 주위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많아 섬사람들은 주로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고기잡이로 생활을 하였다. 물론 육지 사람들도 이 섬까지 와

서 고기를 잡아가고 하였는데 울릉도 섬사람들은 가까운 바 다에서만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 걸려서 가면 만날 수 있는 독도까지 나가 고기를 잡곤 하였다. 이 독도는 특이 한 물고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독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바위섬으로 아주 맑은 날에는 울릉도의 산에서 볼 수 있는 섬이었다. 특히 울릉도 한 가 운데 솟아 있는 성인봉 이란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더욱 잘 보였다. 울릉도의 처음 이름은 우진도 였다. 그 이름이 생겨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600년전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라 했다. 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잘 아는 유명한 왕이었고 지금 의 만주땅을 다 차지하다시피 하여 고구려 영토를 엄청나게 넓힌 실로 위대한 대왕이었다. 광개토대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지금의 한반도 땅도 절 반을 차지하듯 했고 동해안 지역은 지금의 경북 울진이라 하 는 곳까지 영토로 만들었고 그때 지금의 울진을 고구려에서 는 우진 이라 불렀다. 이 우진 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 를 하였는데 여기서 어느 지역보다 가까운 울릉도로 나가 고 기를 많이 잡아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섬 이름도 그들의 고을 이름과 같은 우진 섬 즉 우진도 라 하였다. 지금의 울진과 울릉도는 130km쯤 되는 거리로 당시 고깃배 로는 반나절 걸려 섬에 닿았다고 하였다. 우진도 가 신라에서는 우산국 이라 불렀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돌아가신 후 신라도 뒤늦게 나라 땅을 넓히기 시작하여 동해안 쪽으로는 지금의 강릉시까지 차지하였다. 강릉시는 그때 신라가 하슬라 라고 말했다. 이 무렵에 신 라의 장군 이사부가 우진도 즉 우산국 을 신라 땅으 로 만드는 데 공을 세웠던 것이다. 신라가 우진도 를 우산국 이라 한 것은 그때 우진 도 에 고구려 사람만이 아니라 예맥 사람들도 많이 건너 와 마치 하나의 작은 나라처럼 큰 마을을 이루어 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었다. 우진도 가 신라 땅이 된 것은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 수왕이 오랫동안 왕위에 있다가 돌아간 후 장수왕의 손자 문 자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였다. 신라는 지증왕 때인 것으로 이 왕 때 와서 신라 라는 나라 이름으로 정해지기도 하였는데 지금의 울릉도는 바로 지증 왕 때 신라 땅이 되었던 것이다. 신라는 <신라>라는 나라 이름이 되기 전에는 사라 또는 사로 라고 불려지는 나라 이름이었다. 울릉도가 신라 땅이 된 후 신라 사람들도 그 섬으로 건너가 고기를 잡아 오거나 더러 살기도 하였고 신라가 망한 후 고려 때 와서는 우리나라 동북방 지역에 침입해 와 약탈을 일삼던 여진족 때문에 그곳 주민들이 피난을 하여 울릉도로 건너가 산 사람들이 있었다. 비단 그들 주민만이 아니라 여진족도 섬 을 발견하고 건너가 살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동북방 지역은 오늘날 함경남북도인 것이다. 이러한 울릉도가 더러는 온갖 범죄자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그 섬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나라의 관리들 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육지의 바닷가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들을 보내 섬의 사정을 살펴보고 죄인을 잡아오는 일이 있었으나 그럴 때는 죄인들은 산 속으로 숨어 버리고 또는 배를 타고 독도 같은 외딴 섬으로 피해 가 버리고 하여 육지의 죄수처럼 다 스리지 못 하였다. 울릉도는 옛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부터 유일하 게 한반도 동해 바다의 큰 섬이었음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직접 관리들이 건너가 주민들을 다스리고 감독하지는 아니 하였다. 관청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마치 주인 없는 땅처럼 내버려져 있은 곳이어서 멀리 대마도 섬의 왜인들도 찾아와 고기를 잡아가고 또 섬의 큰 대나무를 베가 는 나쁜 짓을 하는 일이 있었다. 대마도는 그때 왜국의 땅이었는데 왜국은 삼국시대부터 자주 한반도의 동쪽, 남쪽, 서쪽 바닷가 고을에 침입하여 노 략질을 일삼는 일이 많았다. 하천과 문화 Vol.10 68 69 No.1 겨울

왜국이란 오늘날 일본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 나라 사람들 을 우리의 옛 조상들은 왜인이라 불렀고 그들 왜인은 신라와 백제, 고구려 땅에 곧잘 쳐들어 와서 백성들의 물건을 빼앗 아 간 일이 많았던 것이다. 울릉도 주민들도 또한 그들 왜인들로부터 노략질을 당하 는 일이 있었다. 우리 역사의 기록에 보면 울릉도의 나무를 왜인들이 많이 벌목해 갔다고 하였다. 그것은 집과 배를 만드는 나무로 사용 하기 위해서라 하였다. 이런 가운데 굵은 대나무도 많이 베 간 것이라 하였다. 대나무는 생활용품인 젓가락, 돗자리, 소쿠리, 바구니 등 등을 만드는 데 쓰였고 또 군에서는 성벽을 타고 오르는 운 반용 사다리를 만드는 데 쓰이고 한 것이었다. 대나무는 군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의 하나인 화살 재료로 도 쓰였다. 이러한 대나무가 그때 울릉도에 많다는 데서 섬 이름이 대나무 섬 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대나무 섬을 한문 글자로 말하면 죽도 라 부르는 것으로 지금 일본이 독도 를 두고 죽도 즉 그들 말로 다께시 마 라 하는 것이다. 대나무 섬인 죽도가 그들 일본인은 다께시마 라 부르는데 다께시마 가 그들이 한문 글자로 표현할 때는 우리의 한문 글자와 같았다. 그런 그들이 울릉도가 아닌 독도를 두고 다 께시마 라 하는 데 독도는 그들이 부르는 이름과는 달리 대 나무 한 그루 없는 오로지 바위 덩어리의 섬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별도의 이름으로 죽도 즉 일본말로는 다께시마 라 불렀는데 이상하게도 일 본은 대나무 한 그루도 없는 바위 덩어리의 독도를 두고 대나 무 섬의 뜻을 가진 이름으로 죽도라 부르는 것이었다. 일본도 옛날부터 한문 글자를 사용하는 나라였다. 이 한문 글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땅 이름을 지어도 그 땅 에 어울리는 의미를 갖고 지었다. 그들 나라의 수도 즉 서울이 동경 인데, 이 서울 이름이 생 겨난 것도 그들의 땅 동쪽 켠에 자리를 잡은 수도라는 뜻을 둔 데서 동경 이라 하였던 것이다. 동경은 그들 말로는 도오쿄 라 부르는 지명이었다. 지명은 땅 이름을 말한 것이다. 일본의 여러 지명도 우리처럼 뜻을 둔 데서 땅 이름이 지 어진 것이 많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문 글자는 소리를 표현하는 글자가 아 니라 뜻으로 표현되는 글자였다. 뜻을 가진 글자가 바로 한 문 글자인 것이었다. 이러한데 일본이 어찌 외딴 섬 모습이고 바위 덩어리의 섬 인 독도를 두고 죽도[다께시마]라 부르며 또 자기네 땅이라 말하는지 이상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 기록에 보면 울릉도는 한편으로 무릉 혹은 우릉 이란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역이 넓고 땅이 비옥하여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대나무를 많이 생산하는 데 서 한편 죽도 로 불렸다고 하였다. 무릉, 우릉이라고 불려졌던 것은 울릉이란 이름의 발음이 잘못 전달되고 하여 그런 이름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울릉도를 한편으로 죽도 라 불렀던 것은 사실 울릉도에 대나무 생산이 있어서 주민들이나 육지 사람들이 그렇게 불 렀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울릉도란 이름에는 섬과 가 까운 육지의 고을인 울진의 섬이라 하여 <울>이란 한문 글자 한 개를 따 섬의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라 하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이 <울>이란 한문 글자가 울진의 <울>과는 다른 한 문 글자인 울릉도의 <울>이었다. 여기에는 잘못 적어서 지금 의 울진에서 보는 <울>이 아닌 다른 한문 글자의 <울>인 게 울 릉도의 한문 글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울릉도의 역사가 있고 보면 육지 사람들이 이미 오 래전부터 울릉도에 건너 가 살았거나 울릉도에 드나들며 산 에 올라 약초를 캐거나 나물을 뜯고 한 것으로 보게 되는데 그러한 그들에 의해 맑은 날 멀리 외딴 섬 독도를 발견하였고 또 고기 잡는 어부들에 의해 홀로 외로이 떨어져 있는 외딴 섬 독도 를 만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섬을 발견한 후에는 그들의 입에 독도 이야기가 오르 내리고 하여 이 섬이 육지의 어부들에게도 자연히 알려져 고 기 잡는 곳이 되고 결국 독도 는 울릉도에 속한 한 개의 바

위섬으로 전해져 왔던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약 80여 인 것이다. 하여 섬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한 동안 빈 섬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 거리는 부산에서 대마도에 이르는 거리와 비슷한 것으 이런 가운데 울릉도는 조선 백성들이 안 산다는 소문이 왜 로 맑은 날에 부산지역의 높은 곳에서 대마도를 볼 수 있는 인들의 귀에 들어가기도 하여 대마도의 왜인들이 몰려와 점 위치와 같았다. 거해 있기도 한 것이었다. 울릉도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높은 산봉우리가 있다. 높이 는 해발 900m가 넘는 성인봉 이란 이름이 붙은 산봉우 리이다. 그들이 점거해서는 대나무를 많이 베가고 하여 울릉도의 대나무는 한동안 구경하기가 힘들었다는 말도 있었다. 조선시대 어느 학자의 기록에 울릉도는 땅이 비옥하고 대 이 꼭대기에 올라서면 독도는 잘 보인다. 독도는 두 개의 나무가 기둥만하게 크고 쥐가 고양이만큼 크며 복숭아가 되 바위섬으로 갈라져 있는 것으로 울릉도의 산봉우리에서 바 보다 크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 가 본 사람이 있는데 라보면 마치 뾰족한 산봉우리 세 개가 솟아 있는 형상이다. 그 섬도 또한 왜놈이 분탕질하여 우리나라 사람들 중 사는 그래서 독도 를 일명 삼봉도 라 부른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없었다. 근래에 와서 들리는 소문으로 왜놈들이 의 고려 말기에 우왕 임금 때는 왜인의 침입이 동해안 쪽에 죽도 를 점령하여 산다고 하였다. 하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 참 많았다. 이 왜인들이 울릉도로 들어가 반달이나 점령해 는데 이 내용에서 울릉도의 이름이 의죽도 란 말도 있은 것 있은 일도 있었다. 을 알게 된다. 울릉도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떠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죄 인들에게 피난처로 많이 이용되자 나라에서는 그들을 단속 <의죽>은 한문 글자로 표기했을 때는 바위 틈새에서 자란 대나무 라는 뜻을 가진 것이다. 하천과 문화 Vol.10 70 71 No.1 겨울

울릉도에 관해 이러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분명 울릉도가 죽도 또는 의죽도 이고 한 것으로 독도 는 이름 그대로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인 외 딴 섬 으로 한문 글자로 적는 데서 독도 였던 것이다. 독도 는 일명 가지도 라고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 이름에는 어부들이 그곳에 나가 고기를 잡다가 물개의 일종인 가제 를 자주 독도에서 봤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하였다. 옛 글에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본다. 바다 가운데 큰 짐승이 있는데 모양은 소와 같고 눈동자 가 붉으며 뿔이 없었다. 떼를 지어 바닷가에 누웠다가 사람이 혼자 가면 해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물속으로 들 어가 버렸다. 이것을 사람들은 가지어 또는 가제 라 말했 는데 한문 글자 표현으로 가지( 可 之 )인 것이다. 독도에는 바다물개가 있었다. 또 바다표범도 보았다고 하 였다. 어부들은 독도에서 바다 물개를 자주 보았는데 그때 그 물 개를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의 한 종류로 보고 가지어 라 불 렀던 것이다. 여기서 독도를 가지어 가 사는 섬으로 섬 이름 을 가지섬 또는 가지도 라고 말하기도 한 것이었다. 독도는 <조선>이란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이란 나라 이 름으로 바뀌고 난 후 고종 임금 때 공식적인 섬 이름으로 정 한데서 나타난 섬 이름이었다. 그 때가 1900년대 초였다. 선생님은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전설 이야기는 독도에 인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어라 하면 허리 위는 사람의 몸과 비슷하고 허리 아래쪽 은 물고기의 모양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인어 이야기가 서양 나라에서는 여자 모습의 인어를 말했 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독도에서 전해지는 전설 속 인어는 반대로 남자 모습의 인어였습니다. 그것도 어린 남자아이의 인어였습니다. 선생님의 전설 이야기는 이러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혼자서 울릉도 섬에 사는 젊은 어부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어부가 울릉도 섬에 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젊은 아내도 있었습니다. 그러했던 젊은 어부가 섬에 온지 1년 후 부터 혼자가 되어 울릉도 섬에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어부가 아내와 함께 울릉도 섬에 올 때는 울릉도는 아 무도 살지 않은 빈 섬이었습니다. 왜 빈 섬이었는가 하는 것에 는 이러하였습니다. 섬에는 여러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멀 리 일본땅 대마도 섬에서 오는 왜인들한테 자주 노략질을 당 했습니다. 더러는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왜인들이 무더기로 몰려와서 집에 불 지 르고 여태껏 본 행패보다 더한 잔인한 행패를 보여 결국 섬사 람들은 견딜 수 없어 모두 육지로 가버렸습니다. 나라에서는 왜인들이 자주 와 섬사람들을 위협하고, 고기 를 잡아가고, 땅 위로 올라와 대나무를 마구잡이 베가고 하 여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섬 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어부는 반대로 설사 위험이 있다 해도 육지에 서 논밭 한마지기도 없이 가난하게 살기보다 내 땅 내 논밭을 그것도 넓게 넓게 차지해서 고기잡이하며 농사도 지어 설사 한순간이 된다 하여도 한 번 임자 없는 넓은 땅을 내 것으로 차지해 부자처럼 살아보자 하는 생각에서 섬에 온 것입니다. 섬에는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 어느 땅이든 내 땅이 될 수 있고, 바닷가 고기도 내 맘대로 잡을 수 있고, 또한 섬에 있 는 산의 나무도 내 맘대로 베어내여 큰 집도 지을 수 있어 부 자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젊은 어부가 살았던 마을은 울진과 가까운 죽변이라는 작 은 마을이었습니다. 작은 마을인데 바다가 가까워 그곳 마을 사람들은 대개 고 기잡이로 생활하였습니다. 그 마을을 어촌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어촌은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었습니 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습니

다. 고기잡이로 주로 살아가다 보니 그러하였습니다. 니다. 울릉도에서 반나절 걸려서 도착하는 섬이었습니다. 이 옛날에는 농사를 많이 지어야만 넉넉하게 살 수 있고 부 섬을 알게 된 것은 울릉도 섬에 오기 전 큰 배를 가지고 먼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면 가진 논과 밭이 많아야 했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오는 어부들한테 들은 적이 있었 습니다. 던 것입니다. 젊은 어부는 농사지을 논과 밭이라고는 한 마지기도 없었 기 때문에 늘 바다로 나가 고기 잡는 일로 생활하여 왔습 니다. 젊은 어부는 결국 결심하고 울릉도로 건너간 것인데 섬에 와서는 빈 집을 하나 택해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외딴 섬은 먼 데서 보면 마치 큰 바위 덩어리 두 개가 바다 에 박혀 있는 것 같은 모습의 섬이었습니다. 그 두 개의 섬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독도 섬인 것 입니다. 이날 멀리 외딴 섬에 갔던 젊은 어부가 해질 무렵에 울릉도 젊은 어부가 울릉도에 온지 반년 쯤 지난 후였습니다. 젊은 섬으로 돌아 왔는데 집에 가 보니 아내가 없는 것을 알았습 어부의 아내는 배가 많이 불러 곧 아기를 낳을 지경에 이르렀 니다. 어데 갔을까 하고 밤늦게까지 주변을 찾아 돌아 다녔는 습니다. 그러한 아내를 두고 하루는 좀 먼 곳으로 고기잡이 데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갔습니다. 그곳은 연어, 광어, 방어 등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다음날도 젊은 어부는 아내를 찾아 다녔습니다. 혹시나 하 특히 아내에게 몸보신으로 먹일 전복이 적잖게 있었습니다. 고 인근 바닷가를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 바다에 빠졌는 게 전복은 바다 조개류에 속하는 것인데 죽을 만들어 먹으면 환자에게 참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어부가 좀 멀리 간 곳은 더러 간 적이 있는 외딴 섬입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산자락을 찾아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여 기서 대나무숲이 많이 잘려나간 것을 보고 혹시 왜놈들이 온 하천과 문화 Vol.10 72 73 No.1 겨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젊은 어부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전에 섬에 살던 사람들로 부터 왜놈들이 자주 와서 대나무를 많이 베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왔나? 젊은 어부는 왜놈들이 아내를 납치해 간 게 아닌가하는 의 심을 하였습니다. 설마... 한편 배속에 아기를 가진 여자를 납치해 갔을 리가 있으랴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괜히 죽여서 어데다 시신을 내버린 게 아닌가 하 는 의심도 해 보았습니다. 설마 그럴리야... 젊은 어부는 아내를 괜히 죽였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혹시 산속에 들어갔다가 무 슨 변을 당했는 게 아닌가? 젊은 어부는 혹시 산에 나물 뜯으러 갔다가 넘어져 다쳐서 못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젊은 어부는 온갖 생각으로 아내의 행방을 추측하면서 다 음날도 또 다음날도 깊은 산속까지 아내의 행방을 찾아다 녔습니다. 그러기를 몇날 며칠이 계속되었는데 젊은 어부는 결국 아 내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채 한 달, 두 달, 혼자서 슬픈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부가 넋 나간 사람 같은 모습에서 바닷 가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섬에 다가오는 큰 배 한척이 있었 습니다. 그 배는 바다를 지키는 우리 수군들의 배였습니다. 배는 섬에 닿자 여러 명의 군인이 섬으로 올라와 빈집들이 있는 쪽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젊은 어부를 발견하고 그 어부에게로 몰려갔습니다. 그들 가운데 대장인 듯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섬에 있는 사람이요? 젊은 어부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저 집에 사람들이 있소? 젊은 어부는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당신 혼자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째 이곳에 남아 있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육지에서 반 년 전에 건너 왔습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 섬에 아무도 없는 뒤로 왔군요. 혼자 와서 사는 거요? 아닙니다. 아내와 같이 왔는데 며칠 전에 행방불명이 되 었어요. 행방불명이 되었다구? 왜요?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왜놈한테 잡혀 간 게 아니요? 글쎄요. 왜놈이 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고기잡이 갔다가 돌아와 보니 안 보였어요. 그런데 저 산자락에 보니 대나무 가 많이 베어져 나간 것이 보였어요. 그 외는 어떤 흔적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 그들이 왔던 게 틀림없군요. 우리가 얼마 전에 그 들 배가 영해 앞바다를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그들을 잡으 려 했으나 달아나는 바람에 못 잡았소. 그 배에는 대나무가 잔뜩 실려 있는 것을 보았소. 그놈들이 아내를 잡아 간 게 아 닐까? 아내는 곧 해산할 몸이었소. 그런 아내를 잡아 갈 턱이 있 겠습니까? 안 잡아가도 죽일 수가 있어요. 놈들은 인정사정도 없소.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들인데 혹시 죽였을지도 모릅니 다. 시신은 못 보았는가? 여태 찾아도 시신 같은 건 볼 수 없었습니다. 안 죽였으면 필시 납치라도 해 갔을거요. 지금 놈들은 이 섬을 자기네 섬으로 삼으려 한다는 말도 있는거요. 그 때문 에 우리가 놈들이 오는 길목을 예전 같지 않게 지키고 있소. 그런데 당신만이라도 이 섬에 있어 다행인 것 같소. 그 이유

는 섬에 우리 사람이 살고 있어야 우리 섬인 줄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놈들의 행패 때문에 육지로 온 사 람들더러 다시 섬으로 돌아가 살 것을 나라에서 당부도 하고 했는데 그들은 안 돌아가려했소. 이 섬을 비워둬서는 안 되 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살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참 시끄러 워지는 겁니다. 우리 군사가 와서 계속 섬을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데 누가 남아서 빈 섬이 아닌 흔적을 보여야만 하 는 것으로 마침 당신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젊은 당신이 섬에 계속 남아 줘요. 우리가 이따금 와 보고 할 것이요. 그런데 만약에 그들이 대거 몰려 왔다하면 또 그들 이 여기에 정착해 살 기미라도 보이면 산 위에 올라가 봉화 를 올리시오. 그러면 우리 수군들이 알아차리고 올 것이요. 수군은 바다를 지키는 군사를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해군 과 같은 군인이지요. 젊은 어부는 대장이 말한 대로 혼자서라도 계속 섬에 남아 있기로 하였습니다. 왜놈들 때문에 아내가 죽었거나 행방불 명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도 하고 계속 울릉도 섬에 남아 왜놈 들을 감시하리라 결심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젊은 어부는 혼자 섬에서 3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섬에 돌아오는 섬사람들은 계속 없었습니다. 이따금 육지에 서 섬 가에 고기 잡으러 오는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그동안 왜인들 배도 나타나지 아니 하였습니다. 그 이유 는 나라에서 왜인들의 배가 오는 바닷길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어부는 모처럼 외딴 섬으로 고기잡이 나갔습니다. 3년만에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젊은 어부는 뜻밖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발가 벗은 어린 아이 하나가 섬 가 낮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생선 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음호 계속) 본 동화의 취지 울릉도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여러 이름으로 전해졌다. 그중에 죽도( 竹 島 )라는 이름으로 전해진 바도 있었다. 이 죽도가 일본인들의 말로는 <다께시마>였다. 지금 그들 일본인은 독도를 두고 <다께시마>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과거 울릉도의 목재, 특히 대 나무를 도벌하려 자주 왔었다. 그때 그들에게도 울릉도가 곧 <다께시마>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울릉도가 한때 범죄자의 소굴이 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사람이 사는 것을 금했다. 이럴 때 왜인 들(일본)이 몰려와서 마구잡이 나무를 베가고 반달이나 머물다가 갔다는 우리 선대의 기록도 있었다. 독도는 일찍부터 울릉도 섬사람들의 한 어장( 漁 場 )이었다. 이러한 데는 독도가 어느 지역보다 울릉도와 가까운데 있었다. 일본과 는 울릉도보다 거리가 배 가까이 먼 것이다. 이런 역사와 지리적 문제를 가지고 독도는 분명 우리의 섬인 것을 주지시키는 내용과 함께 보다 더 독도에 관심을 갖게 판타지를 가미한 동화를 집필한 것이다. 역사적 내용을 함께 담은 것은 어른들도 동화 내용에서 우리의 독도를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저자) 하천과 문화 Vol.10 74 75 No.1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