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문현판 글사 및 글씨체 여론수렴 공청회 (화) * Ai뚫 總 is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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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화문현판 글사 l 및 글씨체 여론수럼 공청회 (화) 0911 등등 工 I ~ 薦 좋 薦, 慧

2 괄호}문현판 글사 및 글씨체 여론수렴 공청회 (화) * Ai뚫 總 is겼

3 공청회일정 시 간 내 용 13:30 14:00 30분 0 둥 록 14:00 14:05 5분 0 개회 및 일정소개 0 발표 (2명) 진 안 행 내 이재은(충북대 교수) 14:05 14:55 : 50분 - : 진태하(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 - - : 이대로(한말글문화협회 대표) * 표기된 숫자는 발표순서가 아니며 발표순서는 현E때 서 제비뽑기로 결정함 14:55 15:00 5분 0 휴 식 0 종합토론 (토론자) 박재묵t충남대 교쉬 좌장 박재묵 (충남대 교수/문화재 청 갈등관리 심 의 위 원장)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김종택 (한글학회장) 선주선 (원광대교수/문화재전문위원) 전봉희 (서울대교수/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 토론 15:00 16:40 ' 100분 (9명)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황동열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이 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정필준 (서울시립대 학생/청년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16:40 17:30 17:30 갈주성 0 방청객 질의 웅답 0 폐 회 (세종대 학생) 박재묵(충남대 교수) 이재은(충북대 교수)

4 목 차 I.주제발표 발표 1. 光 化 門 은 新 建 이 아니라 復 元 이다 - 마땅히 그 扁 觸 도 本 來 대 로 漢 字 로 써 야 함 발표 2. 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가 - i 門 化 光 은 죽은 현판이고 i광화문i은 살아있는 현판이기 때문이다 24 II. 토 론 토론 1. 광화문 현판에 붙은 공명 심 토론 2. 光 化 門 은 복원( 復 元 )이 아니라 중건( 重 建 )이다 - 한자를 고집할 명분도 대안도 없다 토론 3.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의 왜 광화문 현판글씨를 한글로 바꾸어야하는가 에 대한 논평문 - 80 토론 4. 광화문 현 판 글씨 선 정 에 대 한 의 견 토론 5. 광화문 현판r 경복궁 복원의 큰 틀에서 접근해야 98 토론 6. 광화문 현판은 l지금 여기 의 I우리 l 한글로 써야한다 101 토론 7. 광화문 현판 글씨 선정에 대한 토론의견 토론 8. 광화문 편액은 i 光 化 門 I 이 옳다 토론 9.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 광화문 현판 한자 표기론(진태하)에 대한 토론문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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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I.주제발표 발표 1. 光 化 門 은 新 建 이 아니라 復 元 이다 陳 泰 夏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 한자 주장 발표 2 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가 이대로(한말글문화협회 대표) 한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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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光 化 門 은 新 建 이 아니라 復 元 이다 - 마땅히 그 扁 願 도 本 來 대로 漢 字 로 써야 함 - 陳 泰 夏 仁 濟 大 學 校 碩 座 敎 授 ( 社 ) 全 國 漢 字 敎 育 推 進 總 聯 合 會 理 事 長 1. 序 言 光 化 門 의 復 元 은 完 工 과 더불어 埈 I 式 行 事 까지 끝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새삼 戀 板 을 漢 字 로 할 것이냐 한글로 할 것이냐를 再 論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우선 光 化 門 의 營 造 가 新 建 이 아니 라 復 元 이 라는 것을 文 化 財 廳 에서 분명히 밝힌 바 있다. 復 元 이라는 것은 完 全 히 本 來 의 형태대로 짓는 것임은 르R 童 子 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더구나 縣 板 에 龜 짧이 생긴 것을 問 題 삼았으면 戀 板 자체의 問 題 點 만 을 學 論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龜 짧과는 관계없는 問 題 로 據 大 하여 書 體 를 떠들다가, 더 週 及 하여 한글로 할 것이냐 漢 字 로 할 것이냐 까지 비화 하여 떠든다는 것은 國 力 을 소모하는 부질없는 論 爭 이 아닐 수 없다. 이 問 題 의 根 源 을 파헤쳐 보면, 극히 一 部 지만 한글 專 用 論 者 들의 억지 主 張 을 寫 政 當 局 에서 한마디로 光 化 門 은 新 建 이 아니라 復 元 이라고 확 고한 所 信 으로 며 答 하여 단호히 처리하였다면 이렇게 國 庫 를 낭비하는 論 爭 으로 據 大 되지 않았을 것이다. 不 當 한 主 張 임을 알면서도 執 觸 하게 물고 늘어진다고 受 容 한다면 國 政 을 어떻게 途 行 할 것인가? 아무리 옳은 일도 공연히 是 非 를 거는 자는 언제 어디에서나 있는 법이다. c ι

9 2. 한글 戀 板 主 張 의 不 當 性 한글 戀 板 을 主 張 하는 內 容 을 우선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 前 略 )더욱이 140 년(?) 전 그 현판을 단 뒤 나라가 망했다. 그러니 하 늘이 쩍 금을 가게 한 것이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한겨레신문 ) (2) ( 前 略 )하느님도 한글을 사랑하시어 한자 현판에 금을 그으신 것이 아 닌가 싶다. (한글새소식 460호 월호) (3) ( 前 略 )1867년 광화문 중건 당시 공사 감독관이자 훈련대장이었던 임 태영이 쓴 한자 글씨를 디지털 복원한 것이다. 중건 당시 일반 관리에 불과 했던 사람이 쓴 현판을 원본도 아닌 디지털 작업을 통해서까지 복원을 해 야 하는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 시대의 명필 명사 반열에도 끼지 않은 사 람 아니던가. 문패 격인 현판을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는 자존심과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 金 炯 昨 전 국회의장) (4) ( 前 略 ) 光 化 門 현판을 보면 중국에 온 느낌 이 들까? 한국에 온 느낌 이 들까? / 외국 사람들이 光 化 門 현판을 보고 당신네 나라에는 고유 글자가 없습니까? 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등 뒤에 한문자 현판을 단다는 것은 세종대왕을 능멸하는 것일까? 세종대왕을 높이 받드는 일일까? /한자 현판을 달 경우 한글 관련 단체와 애국 청년들 이 광화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현판을 떼려고 시도하면 어떤 벌을 내려야 할까? 아니면 애국행위라고 표창을 해야 할까? ( 브레이 크뉴스. 송현 한글문화원장) (b

10 (5) ( 前 略 )지금 새로 지은 광화문은 21 세기 대한민국 시대의 문화재이지 19세기 문화재로 조작된 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 현판은 21 세기 대한민국의 긍지를 담아 떳떳하게 한글로 써 달아야 한 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인 것처럼 억지로 한자 현판을 걸려는 것은 역사를 조작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 간2 더구나 광화문은 세종로 세종대왕 등 뒤에 서있는 수도 서울의 얼굴입 니다.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이 몰려와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얼굴을 보 는 자리입니다. 거기에 門 化 光 이라는 얼빠진 간판을 달자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오랜 세월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입니까?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이 문화재청장에게 드리는 글) 3. 不 當 性 에 대 한 分 析 과 批 判 이상의 主 張 을 상세히 분석해 보면 常 識 이하의 부당한 偏 見 에 불과하다. (1) 戀 板 의 龜 製 을 하느님이 뽑한 것으로 떠드는 이들의 意 見 을 受 容 할 가치가 있는가? (2) 任 泰 英 에 대하여 詳 考 도 하지 않고 名 筆, 名 士 반열에도 끼지 않은 사람이라고 대충 떠드는 이의 偏 見 도 再 論 의 가치가 있을까? (3) 漢 字 현판을 달 경우 애국청년들이 光 化 門 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서 떼려고 시도하면 별해야 할까? 표창해야 할까? 라고 춤 年 들에게 공공연 하게 不 法 을 助 長 하는 이의 홍 言 에 대하여 이렇게 時 間 을 보내야 할 가치 가 있을까? - 7 -

11 (4) 지금 새로 지은 광화문은 21 세기 대한민국 시대의 문화재이지, 19세 기 문화재로 조작된 건물이 아니다. (중략) 마치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인 것처럼 억지로 한자 현판을 걸려는 것은 역사를 조작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라고 復 元 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否 定 하는 이와 더 이상 떠들 다가는 틀림없이 뚫 禮 門 이 復 元 되면, 21 세기 文 化 財 이니 한글로 현판을 고치자고 고집할 것이 뻔하다. 뿔 禮 門 은 世 宗 大 王 鋼 像 과 멀리 있으니 漢 字 로 써도 괜찮다고 한다면, 스스로 予 眉 에 빠지지 )- 까- 1동걷~ 기- 없다. 더구나 光 化 門 내의 처리하자고 動 政 嚴 을 一 貴 된 論 理 를 비롯하여 펼 끼 - p)- 1효 τr 그 宮 關 내외의 漢 字 戀 板 을 어떻게 주 요 있을까? 知 性 人 들의 主 張 에서 가장 한 것은 客 觀 的 인 論 理 의 一 實 性 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오 발표하시는 자는 것도 아니고 李 大 路 선생은 漢 字 버리자는 모 경복궁 안의 것도 아니다. 라고 현판을 대단히 한글로 바꾸 아리송한 言 及 을 하고 있는가 하면, 또한 광화문에 한자 현판을 달면 외국인들이 한글 중 국 ] 이란 빼어난 글자를 가진 문화민족으로 보기보다 식민지였고 중국문화 곁가지 나라로 볼 국 한글 도 제 있으니, 論 理 의 光 化 門 만 / 수미조이 -'-I\...:/ 커; l몹 때문에 한글로 써,,_? l - - ~ 것이 - 뻔하다.중국인들은 제 그 主 張 의 나라 놓으면 外 國 人 들이 글자로 보고 本 틈를 알 수가 없다. 韓 國 에 더욱 그렇다(중략) 중 있다. 고 _Q_ '- 것처럼 言 及 하고 의 고 中 國 文 化 의 곁가지로 보지도 )-_Q_ 1'02 것이라니, 光 化 門 안으로 들 어가자마자 動 政 門 을 보았을 때, 아 τ 하는 감고 語 不 成 說 이 =묘 I 二 아닐 中 國 에 } - _Q_ '- 없다. 것으로 그 느낄 外 國 人 이 또 터이니, 그야말로 '- τr 횟 禮 門 이나 興 仁 之 門 을 보았을 때 무엇이라고 느꼈을까. 漢 字 로 쓴 縣 板 만 보면 中 - 8 -

12 國 으로 느낄 테니 도무지 햇갈려서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李 선생은 같은 글에서 한자 숭배자들은 한자도 우리 글자이니 즐겨 쓰 자고 하는데 나는 한자를 우리 친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해도 한글을 쓰고 빛내야 한다고 본다. 한자는 박물관에 들어갈 옛 글자요, 한글은 우리 삶을 빛낼 새 글자이기 때문이다. 라고 言 及 한 것을 보면서 驚 뽑을 금할 수 없었 다. 한자를 우리 친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해도 싫다 니 그 옹고집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우리 祖 上 들의 위대한 業 績 을 무조건 拍 否 하겠다니 뚱 協 의 여지가 없음을 鳳 漢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몸에 좋은 飯 食 도 무조건 先 天 的 으로 싫다는 데는 治 爆 方 法 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光 化 門 현판의 문제는 個 人 的 인 食 性 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을 충고하면서, 경복궁 안의 모든 현판을 한글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한 자를 버리자는 것도 아니다. 라는 順 直 한 마음을 기리는 바이다 여기서 附 言 할 것은 사진과 같이 이대로 는 한글로 된 이름이라고 주장 하더니, 중국에 가서는 李 大 路 라고 名 牌 를 세워 놓은 것을 무엇이라고 변 명하실까? 한글 專 用 論 者 들은 대부분 表 훌 不 同 한 文 字 生 活 을 하고 있는 것 을 잘 알고 있지만 良 心 上 괴롭지 않을까 걱정이다. < 李 大 路 > - 9 -

13 년 重 建 한 光 化 門 에 대하여 光 化 門 의 한글 戀 板 을 주장하는 한글 專 用 論 者 들 이 강조하는 내용을 보면, 40 여 년간 걸려 있던 한글로 쓴 광화문 을 다시 걸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朴 正 熙 대통령의 글씨가 싫으면 世 宗 때 한글체로 써서 달자는 것이다. 李 大 路 선생은 끝까지 한자현판을 고집한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 다. 라고 暴 言 을 할 정도로 漢 字 로 쓰는 것을 절대로 反 對 한다는 것이다. < 철 거된 朝 蘇 總 督 府 건물> 문제는 1968년에 세운 光 化 門 이 朴 正 熙 대통령 獨 載 治 下 의 建 物 이기 때 문에 敵 去 한 것도 아니고, 콘크리트 建 物 이기 때문에 철 거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막대한 國 庫 를 들여 景 福 宮 全 部 를 復 元 하면서 그 正 門 인 光 化 門 이 본래 의 位 置 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動 政 願 과 방향을 바로 맞추기 위해 서는 不 得 已 澈 去 하면서 1864 년( 高 宗 1 년)의 모습으로 復 元 한 것이다. n U

14 본래의 位 置 에 세우지 못한 것은 이미 철거한 소위 朝 蘇 總 督 府 건물 이 南 山 에 있던 日 本 神 社 와 -- 直 線 으로 방향을 정하였기 때문이다. 總 督 府 건물이 철거되기 이전이었으므로 그 건물에 맞추어 光 化 門 을 세우면서 本 來 의 位 置 와 어긋나게 된 것이다 ~'11! 빼굉l에. ll.lallllunl 헤 %--- "'"""' 光 化 P'J 은 韓 國 戰 爭 후 復 元 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북쪽으 로 11.2m, 동쪽으로 13.5m 옮 겨 景 福 힘 중심축에서 3.75 틀 어지게 되었다. 한글 專 用 論 者 들이 主 張 하는 대로 光 化 門 의 현판을 한글로 끝까지 固 守 하 려면, 더 소급해서 景 福 宮 전체의 復 元 을 파 止 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光 化 門 만의 復 元 事 業 이 아니라는 것을 分 明 히 알아야 한다. 함부로 文 化 財 委 員 들을 罵 倒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原 則 대로 實 行 했을 뿐이다 5. 漢 字 도 한글과 더불어 嚴 然 한 國 字 이상의 內 容 을 종합하여 볼 때, 한글전용파들이 漢 字 로 쓴 光 化 門

15 感 板 을 극력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聲 明 書 에 남의 글자나 섬 기는 못난 民 族 임을 보여주는 꼴이 된다. 고 말한 바와 같이 漢 字 는 남의 나라 文 字 라는 것이다. 漢 字 도 우리의 조상이 만들었는지 모르고 남의 문자라고 주장하는 그들 이야말로 못난 후손들로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漢 字 의 초기문자 곧 股 代 의 甲 骨 文 이 東 몇 族 이 만들었음은 이미 中 國 에 서는 公 認 된 학설이다. 더욱이 山 東 大 學 의 劉 鳳 君 교수는 최근 國 學 院 에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2007년 山 東 昌 樂 에서 발견한 100 여 片 의 骨 刻 文 이 모두 東 奏 族 이 만든 書 事 文 字 라고 연구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中 國 會 題 文 化 船 究 會 孫 願 會 長 은 漢 字 는 東 훗 族 이 만든 글자이며, 용 題 (창힐) 뿐 아니라 孔 子 도 東 東 族 이라고 인터넷에 長 文 의 論 文 을 발표한 바 있다. 한글 專 用 論 者 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 祖 上 들의 위대하 고 영광스러운 業 績 을 부인하고 지워버리려 하는지 그 底 意 를 알 수가 없 다. 한글 전용자들의 주장대로 새로 복원한 景 福 宮 正 門 의 현판을 광화 문 이라고 한글로 썼을 때, 외국인은 고사하고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그 深 짧한 뜻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때 광화문 은 문 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은 엉뚱하게도 門 化 光 이라는 얼빠진 남의 말 간 판을 걸고 말았습니다. 라고 심지어 光 化 門 을 거꾸로 써놓고 남의 말이라 고 하니, 자신의 姓 名 을 金 宗 澤 과 같이 漢 字 로 쓰면 남의 말이 되고, 김종 택 이라고 쓰면 우리말이 된다는 말인가? 그 父 母 가 남의 말로 이름을 지었 다고 하는 격이니, 그 予 眉 과 不 孝 스러움을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12

16 6. 光 化 門 의 深 典 한 뭇은 漢 字 로 써 야 알 수 있다. 光 化 門 의 來 源 에 대하여 或 者 는 중국 문헌에 太 平 聖 代 의 뜻으로 쓰인 光 天 化 日 에서 취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 문구는 明 淸 代 의 西 遊 記 紅 樓 夢 f 需 林 外 史 등에 쓰인 문구이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蘇 初 의 光 化 門 命 名 에는 관계가 없음이 분명하다. 혹자는 書 經 의 光 被 四 表 化 及 萬 方 에서 취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書 經 에 이런 구절은 없고 光 被 四 表 ( 中 略 ) 協 和 萬 웹 (뚫 典 ) 이란 말은 있으나 여기서 光 化 門 을 취했다고 한다면 억지가 아닐 수 없다. 太 祖 가 漢 陽 에 궁궐을 새로 짓고 鄭 道 傳 에게 전각과 대문의 이름을 짓 게 하였는데, 실록을 보면 鄭 道 傳 이 명명할 때, 주로 詩 經 書 經 春 秋 등 古 典 의 문구에서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光 化 門 은 그 출전을 확실히 알 수 없다. 弘 化 門 惠 化 門 敎 化 門 興 化 門 등으로 보아 임금의 德 이 햇빛처럼 온 세상에 미치게 한다. 는 뜻으로 명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北 京 緊 禁 城 의 정문인 天 安 門 의 의미 보다도 光 化 門 이 더 고차원의 弘 益 人 間 정신이 깃든 철학과 사상이 내 재된 명칭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광화문 을 한글로 써 놓고는 그 뜻 을 말할 수 없다. 만일 설명하는 이가 있다면, 머릿속에 있는 漢 字 지식으 로 말할 수뿐이 없을 것이다. 7. 光 化 門 扁 觸 과 任 泰 英 書 藝 家 들 대부분이 光 化 門 의 書 體 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새로 써서 걸 - q u

17 자고 주장하고 있다. 光 化 門 은 몇몇 서예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高 宗 時 光 化 門 을 복원할 때 당시에도 名 書 家 가 있었지만, 그들의 글씨를 택하지 않은 이 유를 알아야 한다, 中 國 쌓 禁 城 의 거대한 午 門 의 현판 글씨를 보면 運 筆 도 약하고 印 빼 體 같이 보이지만, 글씨가 마음에 안 드니 고쳐 걸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德 壽 宮 大 漢 門 의 漢 자와 景 福 宮 動 政 門 의 動 자의 筆 劃 이 분명히 빠져 있지만, 지금까지 그 글씨가 틀렸으니 고치자 는 주장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또한 大 漢 門 의 縣 板 은 여 러 조각으 로 균열이 나 있는데도 指 觸 하지 않으면서 光 化 門 현판의 균열만 문제 삼는 것도 問 題 이다. 나무는 시간이 가면 龜 製 이 가게 되어 있다. 宮 關 기 퉁에 균열가지 않은 것이 있는가. 쫓 기 강ι평 챙 짧 題 빼 v r않 썩 / ιe - r 쩔 빼 j 펀 원 풀 률 빼 를촬 ṟ < 漢 漢 > - 텐 이 - 찌 < 動 動 > - A -1 흩 - 햄 響 - 灣 념- 醫 鐘 轉 ι - 첼 편 까 짧 짧 획 -? -, L 칸, 4

18 光 化 門 처럼 우리나라를 代 表 할 만한 현판은 글씨만 잘 쓴다고 택할 수 없다. 글씨도 좋아야 하지만 德 望 이나 나라에 功 이 있는 人 物 로서 뭇사람 의 推 때을 받을 만해야 붓을 들 자격이 있는 것이다. 光 化 門 의 현판을 쓴 任 泰 英 은 訓 練 大 將 짧 營 大 將 쩌 團 判 書 I 費 判 書 를 역임했으며, 光 化 門 복원에 功 이 컸을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도 訓 練 大 將 을 역임했으며, 더구나 洪 景 來 의 亂 에 잡혀서도 끝내 굴하지 않아 당시 크게 推 때을 받았고 그 祖 父 도 統 制 使 를 지 낸 누대로 나라에 功 을 세운 집 안이다. 더구나 任 泰 英 은 死 後 高 宗 이 靖 敎 (정의) 라는 論 號 를 내렸다. 任 泰 英 은 金 炯 昨 씨가 言 及 한 바와 같이 결코 名 筆 名 士 반열에도 끼지 못한 일반 官 更 가 아니었다. 任 泰 英 의 글씨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명료한 사진판을 보고 복 원하는 과정에서 運 筆 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좀더 치밀하게 본래의 運 筆 을 살려서 復 元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몇몇 名 人 들의 글씨를 集 字 한 것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확대하여 걸었을 때 지금의 글씨보다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小 字 를 戀 板 글씨로 據 大 했을 때 절대로 生 動 하는 運 筆 을 살릴 수 없다. 또한 당대 書 藝 家 들 의 글씨로는 筆 力 은 물론 人 品 이 任 泰 英 을 따를 만한 人 物 이 全 無 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짧 口 難 防 의 어지러운 판국 에 만약 어떤 生 存 筆 家 의 글씨를 택했을 때, 지난번 國 靈 를 再 造 하였을 때 이상으로 온통 書 藝 界 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19 8. 한 글로 썼을 때 招 來 되는 予 眉 光 化 門 을 한글로 쓰자는 이들이 과연 구체적인 題 案 이라도 세워 놓 고 主 張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歷 史 的 인 정확한 考 證 도 없이 무조건 광 화문 이라고 쓰자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2010년 7월 5 일 한글학회 회장 金 宗 澤 등 9개 단체대표가 발표 한 <성명전문>의 세종대왕 등 뒤에 한자 현판을 다는 것은 세종대왕과 한 글을 모독하는 짓이고 우리 국민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다. 라고 言 及 하여 놓았다. < 光 化 門 廣 場 의 世 宗 大 王 鋼 像 > < φ, 의 字 母 형태는 正 音 창제 초기에 사용됨> - [0

20 光 化 門 廣 場 의 世 宗 大 王 꽤 像 밑에 이라고 새겨 놓았는 데, o 이 아닌 의 表 記 가 무엇에 根 據 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月 印 千 江 之 曲 의 書 體 라면 생종 뱅왕 이라고 표기했어야 한다. 김종택 회장이 주장하는 대로 21 세기 문화재라면 마땅히 세종대왕 으 로 표기 했어 야 마땅하다. 光 化 門 을 한글로 광화문 이라고 표기했을 때 <성명전문> 에 세 종대왕이 오늘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의 동상 등 뒤에 한자 현판을 다는 것 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필경 어리석고 못난 후손들이라고 크게 꾸짖을 것이다. 라 했지만, 世 宗 大 王 께서 쫓페 像 밑의 과 광화 문 의 다른 表 記 를 보고 무엇이라고 생각하실까? 그야말로 어리석고 못난 한글 專 用 論 者 들이라고 크게 꾸짖을 것이다. <성명전문>에서 言 及 한 어리석고 못난 짓의 꾸짖음을 듣지 않으려고 訓 民 正 音 글씨체로 쓴다면 月 印 千 江 之 曲 에서 광화문 을 集 字 해야 하 는데, 門 의 당시 發 音 이 문 이 아니라 몬 이므로 광 화몬 이라고 써야 한다. 이렇게 썼을 때 國 內 外 人 들의 反 應 이 어떨 것인가?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갚은 생각없이 한글로 쓰자고 主 張 했던 사람들조차 괜히 平 地 風 波 를 일으켰다고 後 悔 하게 될 것이다. 한글은 表 音 文 字 이기 때 문에 時 代 가 오래되면, 그 發 音 이 변하게 되어 있고, 또한 그 表 記 도 달라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1 9. 세종이야기 의 오류투성이와 한글학회 야기 여기 附 言 하지 建 設 에 l ~ 1극5 E즈 까 - 없는 한글학회 에 일이 있다. 認 問 하면서 지난번 광화문 저지른 誤 듭킹 中 광장의 크게 트 E 세종이 린 것만 며 7' 가지 들어본다. (1) 訓 民 正 音 ttt 宗 倒 製 序 文 을 世 祖 H한 請 解 本 을 돌에 새겨 놓고 解 例 木 이라고 하였음. 셔 i o a 시 - 비 니 까 니 니 니 μ. 쁘 떼뼈 핀 치 승 물훨훌훌훌많룹홉룰활훨 -. - 니 새 이 며 셔 덴 -니 운 - 긴 = 디 도 흔 - 라 ι이 디- 씨 니 동 셔 - u - 흙 이 안로 시 석 융 l 증. 런 서 알 I 녁 ι 드 - 미 내 이 져 ] - L 셰 니 쳐 내 허 이 하 노 느 흉 g - 나 바 긴 니. 배 대 r 써 라 - 센 디 히 틀 이 내 펀 퉁 - 교 쩌 시 어 아 픽 - - 러 린 에. 셰 총 어 셰 τ m 져 -옴 례 제후 口 l '--.:A:I 0 [, c::::j - 비 < 解 例 木 너 이 아니라 띔 解 木 달이다> 빈 껴 아 (2) 모두 108 字 뿐 이 안 되는 請 解 本 에 잘못 새긴 곳이 8{1젠 處 나 됨. 셰종 어 제 훈민 정 흠 륭 권 에 문 장 -박 성 :묻흙 노 미 내 이 를 위 여 옮 장 를 * 뻔한 콰 --- 世 따 十 τ 타 포τ 내 - Q u 께여 멘 셰 다문 뀐비 - 릎 J 드 h 러뺨 μ 건- 앓 &. 姓 노 μ 字 한 짧 뼈 o 성 꾀 줬. 때 [ 므 므 쩌 製 위 쟁 되 태 - 歸 민 正 청 音

22 (3) 訓 民 正 音 을 領 布 했 다는 記 錄 이 實 錄 에 전혀 없는데, 세종 28년 10월 9 일 領 布 한 屬 式 을 가진 것처럼 그야말로 상상으로 조작하여 돌에 새겨 놓 았으 < 광화문광장의 세 종 이야기 에 새겨진 훈민정음 반포도 > (4) 世 宗 大 王 의 이름을 李 觸 라고 잘못 써 놓았음. < 쭈 橋 (옷소 매 끝 도) > Q 니

23 =수 < 李 視 (복 도) > 이처럼 큰 오류를 범해 놓고도 反 省 하지 못하고, 또 광화문 을 한글 로 쓰자고 억지 主 張 을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鐵 面 皮 라 아 니할 수 없다. 筆 者 가 일일이 誤 쩔를 指 觸 하였더니, 관람객이 모르게 밤에 數 次 에 걸쳐 돌을 램질하여 고쳐 놓았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다. 李 總 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옳다고 끝까지 고집하더니, 근래에 筆 者 가 밝힌 대로 李 福 라고 슬며시 고쳐 놓고는 지금까지 通 報 도 해 주지 않고 있다. 이 얼마나 良 心 없는 行 寫 인가? 그야말로 世 宗 大 王 이 震 忽 할 일 이다. 그래도 多 幸 인 것은 世 宗 大 王 의 韓 字 를 筆 者 의 考 證 으로 인하여 600 여년 만에 처음으로 李 福 로 바로 잡은 것이다. 한글 專 用 論 者 들이여 이제부터 世 宗 聖 王 의 譯 字 라도 올바로 알아두기 바란다. 訓 民 正 音 創 制 年 代 는 엄연히 世 宗 25 年 (1443) 인데, 28 年 (1446) 으로 紀 念 하고 있으며, 한글날 10 月 9 日 은 한글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날을 해마다

24 紀 念 하고 있다. 그야말로 國 民 을 歡 爛 하고 世 宗 大 王 을 I 婆 農 하는 것은 文 化 財 委 員 들 이 아니라, 바로 한글 專 用 을 主 張 하는 한글학회 라는 것을 면하 기 어려울 것이다. < 獨 立 紀 念 館 > 한글학회 를 비롯하여 한글 專 用 을 주장하는 이 들은 공연히 漢 字 敎 育 반대에만 온통 정력을 소모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大 뺨 覺 醒 하고 한글 자 체에 대하여 진력 昭 究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올바른 國 語 生 活 을 할 수 있 도록 寄 與 하기 바란다. 例 를 들면 獨 立 紀 念 館 의 명칭이 잘못되었음을 필자가 指 補 하였더니, 중앙 상징 건물의 명칭을 겨레의 집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常 識 으로 생 각해도 겨레의 집 內 에 獨 立 紀 念 館 이 있어야 옳지 않겠는가? 獨 / -

25 立 紀 念 館 內 에 겨레의 집 이 있다는 것은 마치 종지 속에 사발이 있다 는 것과 같다. 이밖에도 한글단체에 諾 問 하여 그르친 일이 많다. 또 한 例 를 들면 한글 단체가 建 議 하여 國 會 가 외국 손님을 맞이할 한옥을 짓고 명칭을 允 中 鷹 라고 한 것을 사랑재 로 고치게 했다는 것이다. 사랑재 가 도대 체 무슨 뜻인가? 名 稱 에는 반드시 意 味 가 있어야 한다. 사랑( 愛 ) 이란 뜻인 지, 사랑( 舍 厭 ) 이란 뜻인지 國 內 人 도 알 사람이 없는데, 외국인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은 사랑채 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 라고 했다는 것이다. 안채 의 밖에 있는 집채가 사랑채 인데, 옛날에 웬만한 집에는 다 있는 사랑채 란 普 通 名 詞 를 집의 현판으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또 한 例 는 서울시에서 光 化 門 일대를 한글문화관광지로 만들면서 한글 단체의 諾 問 을 받아 한글마루지 라고 名 稱 을 정했다는 것이다. 마루지 가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청마루 의 마루인지, 용마루 의 마루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마루지 란 말은 國 語 解 典 에도 없 는 新 造 語 인데, 지 는 地 의 音 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확실치 않다. 그야말 로 한국의 얼굴인 光 化 門 에 문화관광지를 만들면서 우리 나라 사람 자체가 잘 모르는 名 稱 을 지어주고 固 有 한 우리말로 지었다고 자랑한다면 그야말 로 國 民 을 愚 弄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처럼 괴팍한 이름 짓는 일을 삼가 는 것도 우리말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길일 것이다. 10. 結 論 結 論 的 으로 말해서 재삼 강조하지만 光 化 門 은 新 建 이 아니라 復 元 이

26 라는 분명 한 事 實 을 認 定 하게 되 면, 한글로 扁 願 을 고쳐 달자고 주장함은 일시 왜곡된 愛 國 心 의 발동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계속 固 執 한 다면 그것은 愛 國 心 이 아니라, 害 國 行 寫 라는 것을 滿 天 下 에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 한글 專 用 論 者 들은 漢 字 도 한글과 더불어 엄연히 國 字 라는 사실을 認 定 하고, 한글과 漢 字 의 調 和 로운 使 用 이 한글 專 用 보다 현실적으로 더욱 國 益 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世 界 에서 文 字 生 活 韓 國 이라는 것을 깨닫고, 世 宗 大 王 을 그야말로 더 與 件 이 最 高 의 나라가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위대한 祖 上 의 업적을 짓밟지 말기를 바란다. ω

27 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가 門 化 光 은 죽은 현판이고 광화문 은 살아있는 현판이기 때문이다 - 1. 머리말 가. 광화문과 그 현판의 역사 < 차 려 > 나. 2005년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이유부터 잘못되었다 다.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결정 과정과 절차도 잘못되었다. 라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다. 마침내 국민에게 굴복했다. 마. 1968년부터 걸렸던 한글현판을 땐 일은 역사 파괴다. 2.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의 한자현판 주장을 비판한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가. 시멘트로 지은 민속박물관과 영문 간판을 단 잣집은 경복궁 성격에 어울리나? 나. 한글현판은 민주정치에 맞는 상징이고 표본이다. 다 시벤트로 지은 광화문도 한 역사요 문화재다. 라. 문화재 복원은 처음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마. 120년 전 門 恩 迎 을 부수고 독립문 을 세운 것은 새 문화 창조였다 바. 한국문화체험관인 海 憐 館 (해린관) 을 한국의 집 으로 바꾸다. 사. 국회는 외국손님 맞이할 한옥 문패를 允 中 짧 로 지었다가 사랑재 로 바꿨다 아. 기와집에 한자문패만 달면 문화재복원인가? 3. 왜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은가 가. 오늘날 지은 광화문은 새로운 문화재 창조물이다. 나. 한글현판이 한자현판보다 천 배나 더 가치 있다. 다. 門 化 光 은 죽은 현판이고 광화문 은 살아 있는 현판이다. 라. 문화재를 민족 자존심과 국가 이익에 활용하는 중국을 보자 마. 서울시가 광화문 일 대 를 한글문화 관광지로 만들고 있다. 바. 광화문은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이고 이 나라 얼굴이다. 사 한자현판이 갈라진 것은 한글로 바꾸라는 하늘의 가르침이다. 아. 사대주의를 씻어 내 고 자주문화를 꽃피울 때이다 4. 마무리

28 1. 머리말 정부는 2010년 8월 15 일 광복절에 광화문 현판을 원형으로 복원한다면서 1968년부터 40 여 년 동안 걸려 있던 한글현판을 떼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 태영이 門 化 光 이라 쓴 흐릿한 한자현판 사진을 일본에서 구해 와 디지털 복제한 뒤 쌍구모본 방식으로 먹칠해서 달았다. 쌍구모본 방식이란, 큰 글 씨의 획과 윤곽을 가는 선으로 본을 뜬 뒤 그 공간을 색칠하는 방식이다. 불타다 남은 원형 현판 조각이나 설계도, 뚜렷한 사진이라도 보고 이 방식 으로 만들었다면 몰라도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사진을 보고 만든 이 현판은 제대로 원형을 복원한 것이 아닌 일종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더 욱이 고종 때엔 門 化 光 이란 그 현판을 달고 얼마 안 되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재수 없는 현판이다. 이렇듯 슬프고 불행한 역사가 있는 현판을 본떠서 만든 모조품을 걸었으 나 석 달도 안 되어 그 현판이 금이 갔다. 우리 겨레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말할 것이 없고, 모처럼 피어오르는 자주문화 꽃이 찢긴 꼴이다. 민중의 꿈 과 목소리를 외면하고 잘못된 생각에서 무리하게 한글현판을 떼려고 서두 르니 하늘에 계신 조상들이 노한 걸로 보인다. 이제 새 문화재청장이 민주주의 시대에 나라임자들의 의견을 듣고 다시 만들겠다니 고맙다. 발표자는 광화문 역사와 지금 한자현판을 걸기까지 발 자취를 살펴보고 어째서 한자현판을 단 것이 잘못된 것인지, 왜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걸어야 좋은지 밝히고자 한다. 야ι

29 가. 광화문과 그 현판의 역사 광화문 은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 鄭 道 傳 )에 의해 사정문( 四 正 門 )으로 이름을 붙였고 오문( 午 門 )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 년) 집현전 학사들 이 광화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광화문 앞으로는 궐외각사인 이조( 更 暫 ) 호조( 戶 團 ) 예조( 禮 暫 ) 병조( 兵 團 ) 형조(쩌 暫 ) 공조( 工 費 ) 육조의 관아들이 늘어서 있었고 이 를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270여 년 동안 중건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할 때 광화문도 다시 지었다. 이러한 광화문을 한일병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해체하여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建 春 門 ) 북쪽에 이전시켰고,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불타 없어졌다. 1968년에 복원되었으나 시멘트로 지었다고 2007년에 문화재청이 때려 부수고 2010 년에 다시 지었다 1 ) 세종대왕은 남쪽 정문인 오문에 튼튼하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과 꿈을 담아 광화문 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는 국방, 경제, 문 화, 과학을 발전시키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 었다. 그 많은 업적 가운데 세계 에서 으뜸가는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든 것은 가장 잘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과 꿈이 담긴 이름이다. 그 뜻과 꿈이 식으면 나라도 흔들 리고 광화문이 무너지거나 불탔다. 그 세종의 뜻이 뜨거울 때마다 다시 짓고 새 현판을 단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종 때 도, 고종 때도, 박정희 정권 때도 그렇다. 또 광화문은 우리 겨레에게 지난 600 해 동안에 있었던 희망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고 그 현판은 세종 1) 이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을 참고하였음 캔

30 대왕 정신과 업적이 서린 갚은 뜻이 담겨 있다. 세종 뒤에도 한글을 잘 이용하고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잘 되살렸다면 튼튼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외적이 침략해도 막아냈을 터인데 그러지 못 해서 두 번이나 왜놈들에게 광화문이 부서지고 불탔으며, 6.25 전쟁과 최근 정치 다툼이란 내란에 두 번이나 현판이 수난을 당했다. 남북이 갈려서 이 념과 사상 전쟁을 한 것도, 최근에 정치 다툼에 한글현판이 수난을 당한 것 도 세종 정신과 업적을 이어가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들 강대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사상과 그 찌꺼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픈 일이다. 광화문 수난; 2011 년 덕수궁 서울시청 별관 앞길에 전시된 서울 역사 사진 일제는 이 땅을 빼앗고 광화문을 위 사진처럼 더럽혔다. 경복궁 안에 식 민통치 총독부 건물을 짓고 광화문까지 없애려고 했으나 반대가 많아 건춘 문 쪽으로 옮겼다 전쟁 때 광화문과 그 현판도 불타서 없어졌다

31 년 대통령 박정희는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되살리고 한글을 빛내어 다시 튼튼한 나라,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기 싫은 일제 총독부 건 물 앞에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달았다. 그리고 홍롱에 있는 세종 대왕기념관, 과학기술원, 국방연구소, 임업시험장들을 세우고 한글 살리기 정책을 폈으며 민둥산에 나무도 심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모두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2005년 1 월 23 일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광화문 한글 현판을 떼고 한자로 바꿔단다고 했다. 그것도 화성으로 천도하려고 했던 정 조대왕의 한자 글씨체로 말이다. 그때부터 한글단체와 많은 시민이 반대했 다.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동기와 이유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행위 불만과 한글을 우습게 여기고 한자를 더 우러러보는 의식에서 나왔기 때문 이다. 한글현판이 걸리게 된 역사는 말할 것이 없고, 그 의미와 가치를 모 르거나 무시하고 문화재 복원 원칙이라는 명분만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나 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이 비 문화재 전문가다운 결정 이 었다. 그 결정은 겨레와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 일이기 때문에 한글단체 는 끈질기고 강력하게 반대 투쟁을 했다. 1968년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 현판을 단 것이 세종의 정신과 업적을 되살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뒤 한글 세상이 되어 온 나라임자들 이 글을 읽고 쓰게 되어 똑똑해졌다.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불꽃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그 걸 모르고 한글현판을 멘다니 기가 막혔다. 100% 원형 복원은 아니고, 다시 짓는 것이니 중건이라고 해야 옳은데 쌍구모본식 원형 복원 이란 어려운 말 로 국민을 속였다. a

32 6.25 때 폭격으로 불타 석축만 남은 광화문. 한국어정보학회 학술지 24호 자료 1968 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새로 지은 광화문과 거기 걸린 한글현판 m j

33 저 광화문을 다시 지을 때도 한글현판을 달 때도 어느 누구하나 반대하 거나 잘못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일이 없다. 무엇 때문에 복원을 했으며 왜 시벤트로 지었으며 어째서 한글현판을 달았느냐고 따진 것도 본 일이 없다. 모두 좋아했다. 저 광화문을 세우고 한글현판을 단 뒤에 우리 자주문화가 싹트고 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저 아름답고 튼튼 한 광화문을 때려 부수고 한자현판을 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저 광화 문과 한글현판이 위대한 새 문화재임을 모르는 정치꾼들과 사이비 문화재 전문가들이다. 광화문 한글현판은 그 상징과 의미가 남다른데 문화재위원 몇 사람 생 각으로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아 모처럼 피어오르는 자주문화 꽃 을 짓밟았다. 어떤 이는 한글 단체가 한글현판을 떼기로 하기 전에는 가만 히 있다가 이제 반대하느냐고 말한다. 한글 단체는 2005년 초부터 지난 7년 동안 정부에 건의하고 언론을 통해서 그 잘못을 알렸다. 기자회견과 시위를 수백 번이나 했다. 왜 한자현판을 반대하는지 그동안 일을 하나하나 밝힌다. 나. 2005년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이유부터 잘못되었다. 2005년 1 월 23 일 문화재청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현판을 떼고 정조 글씨체로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유 청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 혁군주 정조를 닮았다고 말한 일이 있으며, 한글현판을 볼 때마다 박 대통 령의 군사독재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떠오른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충사 한글현판도 떼겠다고 말했다. 한글현판을 펜다는 이유가 개인감 정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정조는 화성으로 천도하려 한 m ω

34 2007 년 문화재정이 부순 1968 년에 세운 광화문 잔해 서울역사박물관 뜰에 있음, 임금이다, 그래서 한글 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잘못임을 밝히고 반대 했다. 문화재정이 2C05년 1 월 23일에 내놓은 정조 글씨체 언할뉴스 가 보도 그 보도가 나온 다음 날인 1 월 25 일 한 신문은 많은 시 민들과 전문가의 반대 목소리를 보도했다. 그 때(데일리안 보도) 이태진 서울대 교수(조선시대근대사)는 박 전 대통령의 글씨도 그것으로 역사 라며 반대 31

35 했다. 으 E 01 교 수 l 일제가 광화문을 헐려다 반대에 부딪히니까 1926년 광화 경복궁 동북쪽(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옮겼다 면서 그것을 철 근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은 것이 l:ll- 전 대통령이고 1968년 비록 콘크리 ' 트로 했다. 복원했지만 그것도 역사 라고 말했다. 역사학자로서 바른 견해를 제시 1 월 26 일 Tf 청장의 친구인 김형오 의원이 Tf 청장에게 오히려 역사 훼 손이고 파손이라며 잘못임을 알리는 우정 어린 공개편지를 보냈으며, 오야 '--- [] 현충사가 Ol 느 二 λλ '- 지역구 출신 복기왕 의원도 Tf 청장에게 항의 편지를 썼다.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충고하고 반대했다. 하 글 그리고 단체는 1 월 26 일에 전국에서 모인 학자들이 반대 궐기대회 E프 E프 열고 성명서를 낸 뒤 한글현판 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 를 꾸리고 1 월 29 일에는 국민과 문화재청에 광화문 한글현판은 군사독재 유산이 아니다.한 글단체가 끈질기게 한글을 살리고 빛내자는 주장에서 나옹 한글 역사의 Tf 적이다. 또한 광화문은 대한민국 얼굴이고 그곳에 한자현판을 다는 것은 안 되며 박 대통령 글씨가 싫다면 세종 때 한글체로 달자 는 공개편지도 발표 했다,2l 다.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결정 과정과 절차도 잘못되었다. = E코 한 문화재청은 단체는 노 그런 이 밸 1 발표를 것도 한 없고 하기 전에 시민 그 공청회도 누구에게도 n T 적이 없었다. 누가 언제 하고 스 L 의견을 벼 녀 즈E 二 ] 프르 '- -1 E크 물 했다고 일이 하나 한 없다. 했는지 내용도 또 밝 2) 한글단체 공개편지 ( ) 참조 q 끼 니 ζ

36 히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 단체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 겨레의 운명이 걸 린 중대한 일이니 2005년 2월 21 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개토론을 초청장을 보냈으나 응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문화재청장 없이 하자는 토 론 그 회를 열고 문화재청에 토론 결과와 반대 의견을 알려주었다.. 박 전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 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체 님} C그 찬성 반대 판단유보 뒀?형 명) 현커중( 5634 명) 2.0% 명) [ 간 :29:02 3월 9 일 현재 / 총 7703 명 참여] 여론 조사 출처 파란뉴스. (151 그 해 2월 23 일 <국민일보 > 가 여론조사를 한걸 보면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다는 걸 반대하는 국민의 수가 훨씬 많다. 광화문 현판 교체 깨 치적 의도 60% 로 문화재청의 광화문 현판 교체 방침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과 바 수 를 차지했다. 조사 결과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므로 반대 한다 느 ul- 느 二 응답자가 59.9% 였고, 광복 60주년을 7' '- 의미에서 복원이 필요하 다 는 대로 응답자는 33.7% 였다. 반대가 많았다. 다른 여론조사도 한글현판을 그 두 자 는 의견이 많았다. 나라의 자존과 존염이 걸린 중대한 일을 국민 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문화재청장과 위원 [검 7' 사람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국민을 무시한 폭력이고 또 다른 반민주 독재정치나 다름이 없다. % ω

37 라.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다. 마침내 국민에게 무릎을 꿇다. 래 매 2005년 2월 6 일 <한국일보>에 미국 뉴욕에 사는 삼봉 정도전 선생 손인 정권수님은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친필 19 한 글현판을 걸었다. 역사를 따져 봐도 굳이 정조의 글씨가 돼야 할 이유는 없 다.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은 그대로 보존돼야 한다. 이는 옛것은 옛것으로 둔다 는 원칙에서 효!. E코 때도 그렇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잘못을 님J 1511 p λa 다고 해서 그의 글씨 마저 떼어 훼손해버리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소아병적 행동으로 비판 받아야 한다. 역사를 J 자체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미덕이야말로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라고 썼다. 2005년 2월 23 일 <연합뉴스> 보도에서 심재철 의원은 현판 글씨체가 고 조 정조글자집자방식에서 당시 현판 사진의 디지털 복원방식으로 바뀌었 보 원 - 다는데 디지럴 해도 역시 모조품인데 왜 서두르느냐? 면서 그 교체 E 시기가 광복 60주년 기념행사에 복절 기념이 되느냐 고 꼬집었다. 맞춰져 있는데 광화문 현판을 바꿔야 광 마침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광화문 현판 교 체시기에 대해 올 광복절이 아니 라 복원 공사가 끝나는 2009 년에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 이라고 밝혔다. 시민이 벌떼처럼 일어난 반대 여 론에 무릎을 꿇었다. 박정희 지우기, 중국 홍위병식 밤 역사 지우기 등의 판이 일어나니 한글현판 떼기 가 아니고 경복궁 복원 차원에서 시멘트로 지 은 고 문 제 느 노 광화문도 때려 다시 목재로 짓겠다면서 현판 다음에 며 -< 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2010년에도 문화재위원 사람이 소위 엄

38 2005 년 1 월 26 일 한글단체 대표들은 한글현판 지키기 궐기대회 열다 연합뉴스 원회를 꾸리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 철저하게 국민은 무시당했다. 마. 1968년부터 걸렸던 한글현판을 펜 일은 역사 파괴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경복궁 원형 복원 원칙이라면서 40 여 년 아무 탈 없 이 서 있던 광화문을 때려 부수고 한글현판을 떼고 만다. 이 꼴을 보면서 한 시민은 문화재청 누리집에 민족사의 여러 가지 수난으로 흔적도 없는 광화문을 박 대통령은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달았다. 잘한 일이기에 그 누 구도 탓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역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실존 인물이 썼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의 광화문 현판은 나름대로의 역사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현판을 떼 어내고 모조품으로 바꿔 달아야겠다는 문화재청장은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 한 무지의 소치인가, 아니면 박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열등의식의 표 X ω

39 출인가? 그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문화재청장의 직을 내놔야 마땅하고 후자 의 경우라면 박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섬과 박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급급한 현 정권에 대한 아첨으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문화재청장의 이런 몰지각한 행태에서 21 세기 최대의 문화재 파괴 사건 (Vandalism)~ 아프가 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의 바미안 석불 폭파 만행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오버일까? 문화재청장은 대오각성하고 광화문 현판 교체에 대한 옹고집을 버려라. 그렇게 원형을 좋아하면 태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당시 현 판을 구해서 똑같이 해라 라고 썼다.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고 충고였다 년 2월 한글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 왼쪽부터 김영환, 이참, 이대로, 이몽 원, 조영환. 문화재정장과 위원장을 초청했으나 참석치 않았다, $

40 1968년부터 한글현판이 달렸던 광화문. 이 광화문과 현판을 탓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뒤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복원한다면서 국론을 분 열시키고 500년 만에 살아나려는 한글문화 꽃을 짓밟았다. 더욱이 한글현판 고 군사독재 유물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한 민 주정치 결과물로서 한글현판 자체가 매우 뜻 깊은 문화재인데 멀쩡하게 걸 린 한글현판을 떼어내고 광화문을 때려 부숨으로써 중국 홍위병들이 역사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광화문 위치가 비똘어졌고 시멘트이기에 원형 복원차원에서 다시 짓 댄 판으 겠다는 것은 한글현판을 떼어내고 E 달려는 핑계였다. 아니면 나 Z 한빼 볼 Z 모 르 }{Z T ~l- o_ Z 라 관리를 할 모르고 ll 1 二 r 지식과 안목에서 l-l k_q_ = E프 E프 나온 일이었다. 2005년에 많은 이들이 원형이 없는데 단순히 모조품에 지 나지 않은 가짜를 가지고 현판을 바꿔치기 하여 원형을 복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세손손 사기극으로 이어질 뿐이다 라고 예언했다. 이후 진짜로 모 조품을 만들어 걸었으나 바로 갈라진 것이다. 새로운 반민주 독재로서 한심 하고 불쌍한 짓이었다. 2.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의 한자 현판 주장을 비판한다. 2005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정광모 문화재위원장은 고 한글현판을 떼야할 이유로 1. 시벤트로 지었기에 경복궁의 공간 성격에 맞지 않는다1 랩 님 } 수 l 2. 한글현판은 박정희 군사독재정치 유물이다. 3. 문화재 복원은 원래 모습으로 해야 하고 한자였으니 한자로 써야 한다. 인

41 를 들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한글을 우습게 여기고 한자를 더 떠받드는 얼빠 진 정신과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감정에서 나온 억지소리요 군색 한 핑계임이 분명하다. 가. 시벤트로 지은 민속박물관과 영문 간판을 단 잣집은 경복궁 성격에 어울리나? 위 사진은 경복궁 안에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시멘트 건물이다. 고궁박물 관도 시벤트로 지었다. 둘 다 모두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부순 광화문보다도 더 큰 시멘트 건물이다. 더욱이 민속박물관 건물은 보다시피 일본 건축물로 보일 정도로 조선시대 다른 건축물과 겉모습부터 아주 다르다. 만약에 시벤 트 건물이라 조선시대 성격에 맞지 않는다면 저 신라시대 건물로 보이는 민속박물관과 오늘날 건물인 고궁박물관부터 헐었어야 했다. 더욱이 1990년 대 경복궁 제모습찾기가 나올 때에 광화문을 부수고 한글현판을 떼겠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시벤트집을 모두 부수라는 말이 아니다. 잉ω

42 더욱이 옛 집현전이었던 (오른쪽 어울리는 사진)까지 창제한 만들어 A 처 7'-1 - 니 있다. 바로 건축물인가? 문화재 전문가들은 곳이라는 표시는 놓 고 하나도 앞에는 참으로 없다. 영어 웃긴다! 간판을 이것은 단 저런 잣집 경복궁 대답하라! 경복궁 안 어디에도 여기서 광화문을 H T 수 L 것이 안에 <5l- '- 한 글현판을 떼려는 핑계였다는 7_]?;걱~ 알수 있다. 나. 한글현판은 민주정치에 맞는 상징이고 표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을 세웠고 정치를 잘해서 힘센 나라를 만들어 역사에 남는 정치인이 되고자 했다. 박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의 나라와 겨레를 사랑한 정신과, 세종대왕의 홍익인 간 자주정선을 이어받아 자신도 P_l- _Q_ 1.-0 '--- 엽적을 남기고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 다. 오L 이것은 그래서 동상 늘 그는 민주시대에 애국 시민의 세웠다. 또한 한글 미 주 O 건의와 살리기 사랑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여 충무공과 세종대 정책을 발표하며 한글현판을 달았다. 민중의 소리를 귀담아들은 민주정치 표본이다. 박 대통령이 처음부터 한글을 빛낼 정책을 편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부 ' '- 생들이 1963년에 일본처럼 교과서에 한자를 1967년에 국어운동대학생회를 혼용하겠다고 만들고 =z. ;져 ~ll _Q_. 2 발표하자 반대했고 _7..:j 프L 'i!p '- 한글 대학 단 체가 t 二 ~ 2 上 일어났다 _3) 난세에 민중이 일어났으며 정부가 i 민중의 소리를 프드 ιl E프 '- 표시가 광화문과 여주 영릉, 현충사 한글현판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3) 박 대통령이 편 한글전용 정책; 이봉원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 초대 회장 증언이 있는 곳 이m

43 한글현판은 자주의식 표시였고, 민중의 뜻을 받아들인 상징이었다 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 대표들아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정부 에 보내는 한글 전용 촉구 건의문과 성명서를 빌표하고 찍은 사진 1967년부터 박 대통령의 일본식 한자혼용 정책에 반기를 들고 젊은 대 학생들이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어 정부에 한글을 살리고 빛낼 정책을 펴라고 외쳤다. 그 소리를 이은상, 한갑수 선생이 박 대통령에게 알려서 한 글사랑 정책으로 바꾸게 하였다. 그 결과로 광화문 한글현판이 나오게 되었 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옛날에 광화문 현판 글씨가 한자였던 것을 모르거 나 한자를 쓸 줄 몰라서 한글현판을 단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한글을 사 랑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고 민주주의가 이긴 것이다. 그 주인으로부터 천대받던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이 비로써 제 500년 동안 대접을 받 게 되었다

44 다. 시벤트로 지은 광화문도 한 역사요 문화재다. 그리고 광화문을 나무가 아닌 시벤트로 지은 것도 한 역사다. 그 때 산 에는 나무가 없어 벌거숭이 산이기에 나무 심기에 바쨌으며 나라엔 돈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을 가리고 우리 자주정신을 드높이려 고 급하게 구하기 쉬운 시멘트로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단 것이 었다. 이 광화문은 원형복원이 불가능하니 다시 지은 것이고, 나무처럼 불 타지도 않고 더 튼튼한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운 문화재를 창조한 것이다.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전용 정책을 펴면서 한글현판을 단 것은 밥 세끼 도 먹고 살기 힘든 때에 남다른 용기와 결단에서 나온 정치 행위로서 문 화혁명에 가까운 개혁이고 새로운 역사 창조였다. 이렇게 광화문을 짓고 한글현판을 단 뒤에 한글문화가 꽃피고 나라가 발전했다. 오늘날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꽃피고 한 류문화가 세계를 휩쓰는 밑바탕에 한글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처음부터 있던 한자현판을 떼고 한글로 써 달았 다면 그 현판이 독재정치 찌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글현판은 독재정치 잔재가 아니다. 이 사실과 역사를 모른 거 같다. 일본도 본래 나무로 지었었던 고궁을 근래에 복원하면서 시멘트로 지은 집이 있다고 한다. 처음 논란이 있었으나 모두 좋다고 한단다. 오늘날 나라 곳곳에 이런 건물과 한글현판이 많다. 시멘트 건물과 한글현판은 산업화시 대 상징물이고 오늘날 문화재 원형이다. 띠

45 라. 문화재 복원은 처음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경복궁은 조선 태조가 처음 만들었고 태종과 세종, 그리고 고종 때부터 오늘날까지 보수하고 다시 지은 역사 유적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진시황 때부터 시작해서 명나라 때까지 수백 년 동안 만들었다. 문화재는 죽은 것 만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것도 있다. 또 끊임없이 개선 발전한다. 문화재 복원은 처음 원형이어야 한다면 태조 때 건축물 그대로 짓고, 이름과 글씨 도 그대로 해야 할 것이다. 굳이 원형을 고집한다면 최초 원형은 아니더라 도 광화문을 새로 짓고 40 여 년 동안 걸린 한글현판을 걸어야 할 것이다. 처음 현판 원형은 타다 남은 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재위원 몇 사 람이 제멋대로 고종 때 것이 원형이라고 기준을 정했다. 엿장수 마음대로 하듯이 나무로 지은 기와집에 한자현판만 달면 원형이라 본 것이다. 문경시에 있는 영화촬영용 서울역 모조 건물. %

46 또 문화재청은 광화문에 처음부터 경복궁 간판이 모두 한문이라 한자로 통일해야 하며, 본래 현판은 門 化 光 (문화광)으로 글씨 방향이 되었는데 한 글현판은 광화문 으로 거꾸로 돼있기에 한글현판을 떼야 한다고 했으나 그 7.-l / 또한 어처구니없고 군색한 변명이다. 오히려 외국인과 후손에게 한글로 쓰게 된 것을 설명하고 한글을 자랑하면 더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위 사진은 일제 때 지은 京 城 羅 (경성역)을 효 '- 따서 영화를 찍으려고 문 경시에 지은 모조 건물 사진이다. 그러나 광복 뒤에 저 한자 이름표를 떼고 서울역 이란 문패가 달려 있었다. 대한민국 시대가 되었기에 대한민국의 말과 글자로 단 것이다. 서울역 이라고 한글로 바꿨다고 탓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2010년에 완공하고 門 化 光 이란 문패를 단 광화문도 영화촬 영하려고 지은 저 집과 같은 모형이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근대 문화유물 사적 284호로 지정된 옛 서울역. 그런데 근래에 문화재청은 이 서울역 -,_] _;;%.. u 0 11 t =; 걷i 돋i τ~ 냐1 문화유물(사적 284) 로 지정했는데 그 건물에 처음에 있던 京 城 魔 이 란 한자 이름패를 달지 L 1 5 %

47 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오히려 이름 공모를 했고 문화 스테이션 284 를 뽑 았다는데 그 문패도 달지 않았다. 차라리 문패가 없는 것이 더 좋다. 왜 그 랬는가? 京 城 繹 이란 간판이 일제 식민지 흔적이라 부끄러워 그렇게 했는 가? 아니면 한자를 쓸 줄 몰라서 그렇게 했나? 광화문 현판이 처음에 한자 로 써 있으니 한자로 써서 달아야 한다는 말과 모순이 아닌가? 문화재 전 문가들은 대 답해 보시 라! 마. 120년 전 門 恩 迎 을 부수고 독립문 을 세운 것은 새 문화 창조였다.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는 조선을 자신들 속국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 사신이 한양에 올 때 恩 迎 )을 대한제국 때 영접을 하라고 門 恩 迎 을 세우게 했다. 그 영은문( 門 때려 부수고 나무가 아닌 돌로 독립문을 세운 뒤 우리 글자인 한글로 독립문 이란 이름패를 달았다. 문화재 위원들은 이를 어찌 생각하는가? 처음과 이름이 다르고 또 처음에 한자로 쓴 것이 원형인데, 그 걸 부수고 처음 모습과 다른 것을 만든 일은 잘못이라고 보는가? 이것은 새로운 문화 창조요 자주독립의 의지를 나타낸 표시라고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1968년에 옛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처음 영은문처럼 나무가 아닌 시벤트로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단 일은 자주독립 의지를 나타낸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한 행위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게 독재정치 행위인가? 영은문 건축물은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저 한자현 판과 나무 지붕은 버리고 돌기둥은 남겨 두었다. 문화재위원들은 원형을 부 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저 치욕스런 중국 지 μ 얘

48 배를 받던 상징물을 부수고 그 보다 더 크고 튼튼하게 독립문을 세우고 우 리 글자인 한글로 독립문 이라고 쓴 정신을 본받을 일이다. 그런데 일부 역사의식이 모자라 건물과 한자만 복원하면 문화재 복원으 로 아는 사이비 문화재전문가란 이들은 오히려 한자로 문패를 단 영은문만 까 %

49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할지 모른다. 처음 독립협회를 만들 때는 주시 경, 안창호 같은 정신이 똑바른 분들이 많이 참여했었으나 뒤에 이완용 같 은 친일파들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부끄럽게 여길 이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 글자를 살려 쓴 정신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잘못인 줄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한글이 태어나고 450 여 년 만에 튼튼한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자 는 뜻으로 튼튼한 돌로 독립문을 세우고 그 문패를 우리 글자인 한글로 썼 다는 것은 더 뜻있는 일이고 매우 큰 역사 유적이다. 나라 이름을 중국의 허락을 받지 않은 대한제국 이라는 이름아래 우리 글자를 나라글자로 삼고 공문서에 국문을 쓰고 국문연구소 를 만들고 독립신문을 만든 시대 모습과 흐름이 담긴 뜻 갚은 역사 흔적이다 _4) 바. 한국문화체험관인 海 憐 館 (해린관) 을 한국의 집 으로 바꾸다. 지난해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한국문화체험관인 海 憐 館 (해린관) 이 그 간판을 떼 내고 한국의 집 이란 한글 문패를 달았다. 한자현판을 달고 30여 년 동안 나라 안팎의 관광객이 한 해에 17만 명이나 찾았는데 외국인들이 중국과 혼돈해서 지난 해 이 건물 관리자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홍렬)은 l 한국의집 f 이란 한글현 판으로 바꾸어 달았다. 대한민국은 한글나라이고 한글은 세계 으뜸글자인데 그 글자를 쓰지 않 고 중국 한자로 문패를 달았으니 우리 국민은 그 뜻도 잘 몰라서 답답해했 을 것이며 외국인은 중국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려고 왔 는데 중국문화 체험관으로 보였다. 나라 체면이 서지 않았다. 광화문에 걸 4) 위 영은문 사진과 이 사진들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따온 것임 46 -

50 30 여 년 동안 걸렸던 ; 每 戰 館 (해린관) 이란 한자현판을 떼 고 한글현판으로 바꾼 기념사진 린 門 化 光 이란 한자현판을 보고 외국인이 어떤 생각을 할까? 처음부터 우리 대한민국 글자인 한글로 문패를 달아야 했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바꾸었다. 잘한 일이다.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보호재단이 처음 걸었던 한자현판을 떼고 한국의 집 이란 한글현판으로 바꿔 단 것을 어찌 생각하는가? 처음에 한자였으니 그 원형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데 전 문가가 아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한숨을 쉬겠는가? η인

51 사. 국회는 외국손님 맞이할 한옥 문패 를 允 中 薦 로 지었다가 사랑재 로 바꿨다. 지난해 국회는 외국 손님을 맞이할 한옥을 지었다. 박계동 전 국회 사무 총장은 처음에 允 中 蘭 라고 한자로 이름을 정했으나 한글 단체가 우리 말 글로 바꾸라고 건의하니까 그 다음 권오을 사무총장이 한글로 사랑재 라고 써 달았다.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한자숭배자가 저지를 잘못을 한글 가치를 아는 이가 바로잡은 것이다. ~ : : - ~ 홍$ II ',했 1 1.휴 t뀔. \행--... _.j,l<l<ti ~~--i: ;,, i -- - 중국 절강성 소흥시 대우릉 사당에 모신 允 執 廠 中 이란 한문 글구. 처음에 이 글귀 앞뒤에서 允 中 두 글자를 따옴 외국 손님들이 이곳에 걸린 한자문패를 보고 아직도 한국은 중국 문화 속에 살고 있구나하거나 여기가 중국인가하고 착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 화재위원들은 국회가 允 執 歐 中 이란 중국 문헌을 보고 允 中 顆 란 한자 이름 패를 걸지 않고 한글로 단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이라고 보는가 아

52 니면 잘한 일이라고 보는가? 한국 대표 국가기관 집에 중국 한자로 문패를 달려는 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보는데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한글 단체와 시민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한글로 한 것은 민주 주의 한글시대에 잘한 일이라 생각되지 않나? 한자 숭배자들은 억지로 한 자도 우리 조상이 만든 글자라 우기며 우리 글자인데 한글로 쓴 것은 잘못 이라고 할 것이다.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은 국회 사랑재 란 한글현판을 보며 참 잘한 일이고 고마운데 재 자에 점을 하나 더 찍어서 사랑채 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라며 아쉬워했다.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을 살려서 쓰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꼭 해야 할 시대 사명이다. 지금 서 있는 광화문은 오늘날 사람이 지은 오늘날 건축이 다. 그 건축물에 오늘날 시대정신과 흐름을 담아 오늘날의 글자로 문패를 다는 것이 더 좋고 옳다. 한자로 달아도 한국의 집 처럼 또 한글로 바꿔야 한다. 그러니 광화문도 처음부터 한글현판을 달아야 한다

53 아. 기와집에 한자문패만 달면 문화재 복원인가? 일부 문화재 전문가란 이들과 한자 숭배자들은 나무로 지은 기와집에 한자문패만 달면 옛 것이 되고 모두 문화재 복원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옛 모습 흉내이고, 한자복원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무로 지 은 기와집에 한자 문패를 달아야만 우리다운 것으로 잘못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문화 체험관에 한자문패를 달았었고 국회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새집 에도 한자 문패를 달려고 했었다. 1968년에 새로 지은 광화문에 달린 한글 현판을 펜 것도 그런 얼빠진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년 광화문에 한자현판을 달 때 한자단체가 광화문에서 뿌린 광고문 한글은 태어날 때부터 중국 문화와 사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짓밟히고 시달림을 당했다. 한글 반포를 반대한 최만리 무리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m ω

54 l 그리고 조선시대는 중국 한문 숭배주의,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식 한자혼 만들 고 용 때문에 그랬는데 아직도 二 l 무리들이 한글을 어렵게 있다.광화 시 민 지 도 문에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자는 보면 일제 자 양성소인 경성제대 출신 이드으 E즈 E프 역사학자와,경성제대 조선어학과를 현 꽤 일본 λ 1 한자혼용 주장자의 영향을 받은 식민사관 역사학자와 국어학자들이 그 무리들로 보인다. 위 광고문에 보면 한글현판을 달자는 것은 한자배격이 목적이라고 했다. 노 으 그러나 아니다. 세종 정신과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자는 표 t:t: / 실 건 말 이라는 천이었다. 일시 한글로 광화문이라고 써서 가설된 콘크리트 아 도 록 튼튼 하게 말이 있는데, 천만 년 더 먼 앞날을 내다보고 불에 타지도 녕 Tl t:: 지은 산업화 시대 상징 건축물이었다. 경복궁 내의 Lτ= 현판이 한자로 되 보 원 - 어 있어 전체의 균형을 파괴한 일이다 라는 말도 문화재 겉모습인 E 건물과 한자 흉내로 착각한 말이다. 겉모습보다 i 역사와 정신 복원이 의 미가 크고 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한자 사용을 전제로 길 1 二 그 'i'.c. E 걷흐 만들었다고 했는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한글로 쓰면 세종대왕의 깊은 뜻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 느냐고 했는데 한자로 써도 설명을 하지 않으면 모르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읽지도 못하는 이가 많고 중국으로 오해한다. 세종은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에서 광화문이란 이름도 짓고 한글도 ul-.e도 L'.. E크 었다.한글현판을 다는 것은 그 뜻과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일이다. 죠 二 으 조;!.. 하나만 알고 i크,_ 모르며 겉만 보고 ',_ / 봐서 것 - E 집단 이기주의로 보고 있다. 우리 겨레뿐만 아니라 三 0 한글을 살리고 쓰자는 것이다. 7-"L 二 그 E 근-브 _Q_,_ 빛내자는 인류 를 η 위해서.λ 그1-51 -

55 3. 왜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은가 한글단체는 지난 2005년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단다고 할 때부터 반대했다. 지난 7년 동안 끈질기게 그 잘못을 정부에 건의하고 반대 기자회 견과 시위도 했다. 그 일들을 모아 광화문 한자현판 반대 투쟁 백서 도 냈 다. 역사 자료로 남기려고 한 일이다. 이제 한글단체가 왜 한자현판 다는 것을 반대하고 한글현판을 달자고 하는 지 말하겠다. 를 홈 g 훨 빼 懶 빼 뼈 달 깨 바 랜 빼 한글학회가 낸 광화문 한자현판 반대 투쟁백서 m 4

56 가. 오늘날 지은 광화문은 새로운 문화재 창조물이다. 한글현판을 반대하는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 보 원 은 원형 복원 이 원칙 이기에 한자현판을 다는 것이 원형 복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한자현판을 달려는 핑계요 말장난이다. 이것은 한자복원은 될지는 모르지만 원형복원이 아니다. 한자로 쓴다고 해도 처음 글자를 본 사람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어 차피 처음 원형은 흔적도 없으니 완전한 원형 복원도 안 된다. 그리고 글자 인 한자를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 지은 광화문이 옛 건축 모습이지만 오늘날 사람이 지은 오늘날 거 l- 축물로서 옛 문화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재 창조물이다. 복원이 창이다. 거기에 한글현판을 달면 오늘날 시대정신과 소망과 상황을 아니라 중 다 D 으 E 수 있어 더 고, 5000년 좋다.세종대왕은 우리 역사뿐만 ;ζ 서 여년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역사에서도 가장 훌륭한 찾아보기 히 D 임금이었 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이다.더욱이 한글은 세계 으뜸글자로서 세종대왕의 업적 가운데 가장 三.,_ 크L 자랑거리다. 또 세종대왕이 광화문 이란 이름을 짓고 재 난 한글현판을 7<:-1- 二 그 'C.2 료 다는 창조다. 한마디로 곳 으 E 알리는 아무 만들었다. 것은 새로운 표시도 그런 매탠 역사와 정신을 역사와 없는 데 담고 창조하는 후손과 외국인에 되살리는 새로운 것이다. 한글이 광화문 안에서 얘댄 태어 한글 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자랑할 수 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가슴 으로 보면 한글현판 가치와 의미가 보인다. 띠ω

57 나. 한글현판이 한자현판보다 천 배나 더 가치 있다. 먼저 문화재란 무엇이고, 문화재 복원은 왜 하는지 따져보자. 국어사전 에 문화재 란 낱말의 뜻풀이를 보면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된 가치가 뛰 어난 사물 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한자현판이 창조된 가치가 뛰어난 문화재일 수 없다. 오히려 한글의 훌륭함을 모르고 많은 돈과 힘을 바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역사조작물이다. 문화재는 나라나 겨레의 자랑거리여야지 부끄러운 것은 보존할 가치가 적다. 자랑스럽기보다 우리 글자가 없는 나라로 볼 수 있고 중국 문화재로 오 해 할 수 없다. 서울 중국 필동에 있는 한국문화체험관을 찾은 외국인들이 海 憐 館 이 란 한자현판을 보고 중국인지 한국인지 햇갈린다고 해서 한글현판 으로 바꾼 일도 있다. 오히려 지난 40 여 년 동안 걸렸던 한글현판은 자랑스 럽지만 지금의 맴질한 저 한자현판은 부끄러운 것이다. 한글현판에 세종대왕과 한글 정신을 담아 걸고 후손과 외국인에게 알려 주고 자랑하면 그 가치와 의미는 한자현판보다 천 배, 아니 그보다 더 크 다. 더욱 이 처음에 한자현판이었지만 시대정신과 소망과 흐름을 살리려고 시민 이 정부에 건의하고 애써서 한글로 달았다면 더 감동스럽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관광자원이 된다. 다. 門 化 光 은 죽은 현판이고 광화문 은 살아 있는 현판이다. 오늘날 새로 지은 광화문에 門 化 光 이란 한자현판만 단다고 조선시대 문 화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겉모습만 비슷한 복제품이고 모조품이다. %

58 그런 걸 원형복원을 한다고 억지를 부리지 말고, 오늘날 어떻게 광화문을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門 化 光 이란 한자현판이 걸렸던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문이었다. 일반 백성들에겐 그림 속의 문이었고, 죽어있는 문이었 다. 그러나 오늘날 광화문은 근정전처럼 아무나 들어가 생활을 못하는 곳이 아니라 오늘날 사람이 이용하는 살아있는 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 라 남의 나라 사람들도 마음대로 바라보고 드나들 수 있다. 조선시대 모습 건물과 한자는 그 문안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광화문은 밖에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다. 차를 타고 지 나가면서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생활공간의 건물이다. 방송 사진도 찍고 그 사진을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오늘날 건물에 오늘날 우리 글씨로 문패를 달면 자연스럽게 한글 도 알리고 자랑할 수 있는 광고효과도 있다.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 정신을 되새기며 누구나 자긍심을 갖게 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얼마 나좋은가! 라. 문화재를 민족 자존심과 국가 이익에 활용하는 중국을 보자. 중국 북경의 천안문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중국 북경의 얼굴이 다. 세계가 중국 소식을 전할 때는 천안문 사진을 배경으로 보도를 한다. 아래 사진은 우리 방송이 천안문 이야기가 아니고 중국 정치 상황을 보도 할 때 천안문을 배경으로 말하는 사진이다. 북경을 가면 모두 천안문안 자 금성과 만리장성을 꼭 가본다. 천안문은 중국의 상징이다. 15년 전 나는 한 야써

59 자를 잘 안다는 학자와 님 rl =; a 자금성을 같이 갔는데 천안문에 萬 歲 (만세)를 간체자로 쓴 것을 읽지 못해서 간체자를 빨리 배워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이 사진은 우리 방송국 특파원이 중국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 사진이다, 천안문이 중국 얼굴이듯이 광화문은 우리 얼굴이다. 자금성 안의 현판엔 모두 만주글자와 한자가 같이 세로로 쓰여 있다. 만 주족이 청나라를 자금성 동 사진, 안에 이 그리고 느 세우고 처.. 중국을 지배할 때 흔적이다. 그러나 천안문에는 현 ci Q_ 현판을 'i!lj-;: 二 옛 현판은 없고 중국 국가 휘장과 모택 현 중국 국가 구호를 써 놓았다. 구 - 그 호 도 처음엔 옛 한 자로 썼다가 요즘 쓰는 간체자로 바꾸었다. 왜 짧 은 요함을 몰라서 그랬을까? 생각이 이는 강 야 그랬을까?저들이 그1λ l- ct L!. 독재정치 문화재 즈 유물로 서 지 소름이 끼친다고 동L E프 않다고 탓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문화재를 것이다. 우리 활용할 줄 문화재위원들은 알고 랩 채 기 자금성 안 현판과 같 를 재창조할 줄 아는 나 %

60 라다. 제 민족 자존심을 지키고 나라 이익을 위해서 그랬다. 무엇이 문화재 천안문 안 자금성의 모든 건물 현판은 이렇게 만주글자와 한자가 함께 쓰여 있지만 천안문엔 이 런 현판이 없다. 왜일까? 가치 를 높 이는 것이고 국민과 세계인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지 아는 사람 들이다. 말글로 자국민을 뭉치게 하고 나라 밖에 자신들의 의지도 알리며 간체자란 새 글자까지 보여줌으로서 광고 효과도 노리는 아주 높은 상술이 고 정치 행위이며 기술이다. 지금 중국은 다시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 지배국으로 내닫고 있다. 우리도 한글현판을 달고 자신감과 자긍심을 키우 고 더 빨리 발전하자. 마. 서울시가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 관광지로 만들고 있다. 서울시는 한글문화를 더 꽃피우고, 한글을 세계에 자랑하고 후손들에게 인

61 알리겠다는 뜻으로 세종대왕과 한글이 태어난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관광 지로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이름을 처음에 한글테마파크 사업 이라 고 지었다고 한글단체의 자문을 받고 한글마루지 사업 이라고 우리말로 지 었다. 오랫동안 한글단체와 국민의 바람을 서울시가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한글을 짓밟고 있지만 서울시는 한글을 살리고 있다. 지난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공원에 시민 명이 쓴 한글 글자 마당 세종대왕과 한글은 세계 어디에 누구에게 내놔도 떳떳한 자랑거리인데 세종대왕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한글을 어디서 만들었고 만든 원리와 정신 을 알지 못하고 알려줄 곳도 없다. 외국에서는 한글이 훌륭한 것을 알고 싶 어 하는데 제대로 보여줄 곳도 마땅치 않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표지석만 길가에 초라하게 있으며 한글을 만든 경복궁 안에는 그런 표지석도 없고 영문 간판을 단 잣집만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입으로는 한 글을 사랑하고 자랑스럽다면서 말이다. 못나서 그런지 머리가 나쁜 것인지 %

62 L 즈 二 E코 없다. 종로구 통인동 길가에 있는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조그만 표지석. 한글현판을 반대하는 문화재위원들은 서울시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공원에 한글문자마당을 만든 것은 어찌 보는가?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워서 또 다시 강대국에 짓밟히지 않으려는 노력으로서 잘하는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바. 광화문은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이고 이 나라 얼굴이다 경복궁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민족 자주문화를 부흥시킨 자랑스 러운 곳이며, 광화문은 그 경복궁의 앞문이고 그 세종정신이 담긴 곳이다. 또 광화문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얼굴로서 수많은 외국 관광객이 찾고 우리 후손들이 찾을 곳이다. 1995년 서울시는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를 대 한민국 국가상징 거리로 만들기로 하고 한국다운 모습을 꾸며 외국인과 국 민에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또 서울시는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관광중 객m

63 세종대왕 동상 옆 미국 대사관에 스티븐스 전 대사가 건 한글날 축 하 펼침막 심지로 만드는 한글마루지 사업을 하고 있다. 문 패 르 다 E 심인 광화문에 우리 글자인 한글로 보 는 7 q/ 한자현판을 다는 것이 어울린다고 두 사업의 것이 * l:ll- ;천이 = D I ~ π) 어울리는가 아니면 더욱이 나라밖에서는 증 1 二 :i E 근걱흐 배우려는 외국인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고 대한민국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도 한글과 세종대왕은 우리의 최고 자랑 이고 상징이라면서 _Q_ '- 세계에 내세우고 알리고 있다. 정부는 2006년부터 한 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 경축하고 있다. 현판을 그런데 달아서 문화재위원들은 :i 노력에 이 나라 얼굴인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떼고 찬 물 - 끼얹고 있다. 도대체 제 정신인지 E 없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참된 한국인이라면 두 고 새 로 이다. 문화재 보존과 복원이라는 낱말에 무게를 이 仁 1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 1--- '- 댐 얽 1 / λλ 등i 가- τ } 한자 L ζ드 E표 없는 일 재를 만드 일어난 것

64 으로 보인다. 세종대왕이 한자가 아닌 새로운 글자를 만든 일이 얼마나 중대하고 훌 륭한 일인지 깨닫고 그 세종정신과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중심이고 서울 의 얼굴인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달아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스 전 미국 대사는 한글날마다 미국 대사관 건물에 한글날을 경 축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세종대왕과 한글을 우러러보며 고마워했다. 나는 한 국회 모임에서 스티븐스 대사에게 왜 그랬는지 물으니 세계 으뜸가는 한글을 만든 세종을 존경한다. 그리고 한글을 사랑한다. 한글날에 세종대왕 동상 옆에 있는 미국 대사관 건물에 축하 펼침막을 거는 것은 당연하지 않 은가. 라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봤다. 그런데 우리 문화재청은 그 세종대왕 등 뒤에 있는 한글현판을 떼고 한 자현판을 달았다. 어리석어서 그런지 바보스러워 그런 건지 알 수 없다. 사. 한자현판이 갈라진 것은 한글로 바꾸라는 하늘의 가르침이다. 한글단체는 그 잘못을 알려주려고 대전 문화재청까지 찾아가고 무더운 여름, 추운 겨울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외치고 글로 하소연했다. 그러나 정부는 듣지 않고 2010년 한자현판을 걸었다. 민주국가에서 그렇게 철저하 게 시민의 소리에 귀를 막는 이들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독재요 망국 행위다, 그런데 그 현판을 걸고 석 달도 안 되어 금이 가버렸 다. 500년 만에 피어나는 한글문화 꽃을 짓밟는 문화재청의 잘못을 외치는 민주시민들의 원성이 하늘까지 들려서 선열들이 다시 한글로 바꿔달라고 금이 가게 한 것으로 보인다. (O

65 광화문 광장에서 한자현판을 떼고 한글현판으로 바 꿔달라고 외치는 한글단체 대표들 더욱이 140년 전 그 한자현판을 단 뒤 나라가 망했는데 그런 식으로 그 현판을 본떠서 모조품을 만들어 걸었으니 하늘이 금 가게 한 것이다. 한자 를 너무 숭배한 나머지 복원이란 말만 내세워 한글현판을 떼어내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그 꼴이 되었다. 나라 망신이다. 겨레의 자긍심과 자존심이 금이 간 부끄러운 일이다 년 광복절에 단 한자현판이 석 달도 안 되어 금이 갔다. 하늘의 계시다

66 이렇게 금이 간 짝퉁을 만드는 것이 문화재 복원인가? 문경 영화촬영장 에 있는 광화문 모형건물과 무엇이 다른가? 저 금이 간 한자현판을 만든 책임자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한글현판으로 바꿔달아야 할 것인데 아직도 그런 기색이 없다. 끝까지 한자현판을 고집한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아. 사대주의를 씻어내고 자주문화를 꽃피울 때이다. 보통 국민들은 광화문 현판 문제를 문화재 복원 차원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5천 년 만에 피어난 자주문화 싹을 지키려는 세력과 폐습에 젖은 사대주의 세력과 충돌이다. 한글현판 달기 주장자들은 세종과 주시경 의 자주문화 정신을 살리고 이어가려는 사람들이다. 한글현판을 반대하는 이들을 보면 일제 식민통치지도자 양성소인 경제제대 출신 역사학자와 국 어학자의 제자나 추종 세력이다. 이 두 세력이 자주문화 상징인 한글현판을 짓밟은 것이다. 문화재 복원은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라고 하는 문화재위원들 말도 일리가 있다. 한자를 쓴 것도 우리 역사라는 말도 이해한다. 우리 글자가 없을 때 중국 한문을 쓰는 말달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역사이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자도 우리 조상이 만든 우리 글자요 자랑스러운 역사로 생각하면서 한자현판을 걸자는 것은 반대한다. 광화문에 한자현판을 달면 외국인들이 한글이란 빼어난 글자를 가진 우 수한 문화민족으로 보기보다 중국 식민지였고 중국 문화 곁가지 나라로 볼 것이 뻔하다. 중국인들은 더욱 그렇다. 그게 아니란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 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이 동북공정이이란 역사 조작정책을 펴고 있다. 중 띠ω

67 국은 한글도 제 소수민족이 쓰는 제 나라 글자로 보고 있다. 한자현판은 그 들 음모를 돕는 꼴이 될 수 있다. 중국은 한글을 제 나라 글자로 보고 하남성 중국문자박물 관에 전시된 조선문(한글)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2008년에 돌아가신 전택부 선생님은 광개토대 왕비가 우리 글자인 한글로 되어 있다면 중국이나 일본이 고구려를 제 역 사였다고 우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렇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운 씨앗은 심지 말자. 우리 얼굴에 한자 문패를 다는 것은 아 직도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꼴이다. 그게 아니라면 세 계 으뜸 글자인 한글로 세계 으뜸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오늘날 시대정신을 담아 당장 한글로 바꾸자! 문화재위원들도 우리가 중국의 속국과 다름없던 한자나라였으며 제 글자를 가지고도 천대한 못난 국민이라고 알리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2005년 여론조사에서도 한글현판이 좋다는 시민이 많았는데 지난해 조 사에서도 한글현판이 좋다는 사람이 많았다. 광화문 위치와 상징이 남다르

68 기에 한글현판을 달자는 것이다. 경복궁 안의 모든 현판을 한글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한자를 버리자는 것도 아니다. 4. 마무리 한자는 지는 해지만 한글은 뜨는 해다. 한자는 어두운 지난날에 우리를 묶어두지만 한글은 밝은 앞날을 열어준다. 한자는 배우고 쓰기 힘들어 백성 들을 무식하게 만들어 나라를 망하게 했지만 한글은 배우고 쓰기 쉬워 국 민을 똑똑하게 만들어 나라를 일으켰다. 1968년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건 뒤에 한글문화가 꽃피고 나라가 일어났 다. 그러나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복원이란 미명 아래 시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들 멋대로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았다. 1968년에 지은 광화문을 2007년에 때려 부수고 한글현판을 떼어 낸 것은 왜놈들이 광화문을 짓밟고 더럽힌 것 못지않게 겨레의 자존심과 자긍심과 한글문화 꽃을 짓밟은 또 다른 독재요 폭력이었다. 아마 그 한글현판에 어 린 역사와 뜻을 모르고 한자현판만 달면 옛 것이 되는 줄 알고 저지른 잘 못이다. 중국 동포 학자 김 광 선생은 광화문 한글현판을 펜다는 말을 듣고 중국 인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에 서 나온 실수다. 기와집에 한자현판을 단다고 옛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어 차피 복제품이다. 한글현판을 달면 더 많은 이익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복 떨고 있으니 안타깝다. 고 말하며 한자현판 단 것을 비판했다. 우리는 한자현판을 다는 것보다 한글현판이 주는 이익이 더 많기 때 야

69 문에 한글현판 달기를 바란다. 있는 죽은 현판이다 광화문 은 門 化 光 은 조선시대 밝은 앞날을 열어줄 효 L 오 벤 E 이 고 궁 一 살 역 아 사 앞 속에 현 판이고 우리의 상징이고 자랑이다. 그림 작가 김석님의 그림. 한글현판이 걸린 광화문이 참으로 아름답다, 중국인이나 외국 관광객이 서울에 오면 광화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한자현판이 나 온다. 중국 사람은 한자현판을 보고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며 대국의 흐뭇함 모 르 E크 만끽할 것이며 한국을 잘 외국인은 우리나라엔 글자가 없어 한 자 챈 고 생각할 수도 있다.앞으로 광화문 앞에 중국 관광객은 더 많이 몰려올 것이다. 그들이 한자현판을 보고 느끼는 감동과 한글현판을 보고 L- 끼는 감동을 생각해보라, 그럼 왜 한글현판을 달아야 하는지 알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 궁궐 안에서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으며 광화문이 란 이

70 름도 세종대왕이 지었다. 그래서 광화문 앞길이 세종로인 것이며 바로 앞에 세종대왕의 동상도 있다. 또한 i 옆에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한글마루지사 업과 어울린다. 경복궁과 광화문 역사,바로 한글과 세종 정신을 복원하고 알리고 자랑하자는 것이다. 원형이라면 1968년부터 40 여 년 동안 걸렸던 한 글현판이 원형이다. 그러나 한글 단체는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글씨체로 달 아서 세종정신과 업적을 되살리고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우길 바라고 있다. 탤 를 "r,;< :.i;~~-:1~'-i.찮~ ~낀;~~-;펠섣꾀;않i~:/~_Ci~.:~~ -'.; ι ;승;~sε션순파 서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딴 허경무 서예가가 훈민정음체로 만 = 한글현판 문화재위원들은 새 문화 창조는 생각하지 않고, 복원만 생각하다보니 한 二 그 E즈 자도 현판이 우리 최 연 얼마나 가치와 의미가 큰 지를 못보고 있다. 한자 숭배자들은 글자이니 쓰자고 하는데 나는 한자를 우리 친할아버지가 한 만들었다고 해도 한글을 쓰고 빛내야 한다고 본다. 한자는 박물관에 들어갈 옛 글자요 한글은 우리 삶을 빛낼 새 글자이기 때문이다. 경복궁도 ;ζ 서 ~ l 태조 때부터 지금 대한민국 때까지 계속 보수하고 R 선 하며 발전한 건축물이다. 중국의 대표 문화재인 만리장성도 진시황 때부터 명나라 때까지 ul-e- \...:.. '-- 것이다. 만리장성이 지난날엔 군사용이었지만 오늘날엔 선ω

71 관광용 건축물로 활용한다. 광화문도 지난날엔 한 궁궐의 문이었지만 오늘 날엔 또 앞으로는 관광용이고 자주문화 창조물이다. 한글날에 한글현판을 달고 온 국민 이 큰 잔치를 하자. 브라질의 삼바 잔치보다 더 큰 문화잔치를 벌 이 자. 물 좋고 땅이 기름진 이 나라는 더 아름답고 살기가 좋은 곳이 될 것 이 다. 외국인들이 부러워하고 구경하려고 올 것이다. 한글로 밝은 겨레의 앞날을 열자 년 국경일이 된 첫 한글날 경축 큰잔치 때 광화문 앞 세종 대왕 어가행렬

72 II. 토 로 -- 토론 1. 광화문 현판에 붙은 공명 심 손수호(국민일보 논설위원) 한자 주장 토론 Z 光 化 門 은 복원( 復 元 )이 아니라 중건( 重 簡 이다 김종택(한글학회장) 한글 주장 토론 3.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의 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어야하는가 에 대한 논평문 선주선(원광대 교수) 한자 주장 토론 4. 광화문 현판 글씨 선정에 대한 의견 전봉희(서울대 교수) 한글 주장 토론 5. 광화문 현판I 경복궁 복원의 큰 틀에서 접근해야 홍찬식(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한자 주장 토론 6. 광회문 현판은 l지금 여기I의 i우리 I 한글로 써야한다 황동열(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한글 주장 토론 7. 광화문 현판 글씨 이 선정에 대한 토론의견 훈(한양대 교수) 중 립 토론 8. 광화문 편액은 i 光 化 門 I 이 옳다 정필준(서울시립대 학생) 한자 주장 토론 9.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갈주성(세종대 학생) 한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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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광화문 현판에 붙은 공명 심 손수호(국민일보 논설위원) 광화문 현판의 논점은 한글로 바꾸자는 안과 한자로 쓰되 새롭게 쓰자는 안이 있다. 나는 세 번째 안을 내놓는다. 처음 세울 당시와 가장 근접한 글 씨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갈라진 광화문 현판을 다시 제작해야 하되 글씨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원의 룰이다, 광화문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 광화문 축조 초기의 터가 발견됐지만 무시 하고 중건 때의 조영원리에 맞춘 것은 복원된 다른 건조물과 균형을 맞추 기 위해서다. 이런 배경을 따르면 광화문은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경복궁의 부속물임 을 알 수 있다. 경복궁을 구성하는 200 여개 문 가운데 하나다. 다만 정문으 로서 특별한 대접을 받을 뿐이다. 이게 광화문이 지닌 역사성이다. 광화문이 새로 지어진 건물이므로 새 글씨를 달자는 주장은 광화문을 밖 에서만 바라볼 때 생기는 판단미스다. 특히 현판을 한글로 달자는 주장 역 시 갓 쓰고 구두 신자 는 격이다. 지금의 글씨가 조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도 오류가 많다. 나 역시 지금의 글씨를 명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인 글씨를 디 자인 마인드로 접근해 바꾼다는 것은 몰( 沒 )역사적이다. 지금 光 化 門 글씨는 경복궁 건설을 책임진 훈련대장 임태영의 것이다. 경복궁 영건일기 에 그렇게 나와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글씨의 주인 을 알지 못하는 데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75 당시의 전통도 존중해야 한다. 기록을 보면 내궐의 휘호는 모두 문신이 썼다. 근정전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이흥민, 사정전은 이조판서 조석우가 썼다. 이에 비해 대문은 무관의 몫이었다. 동쪽 건춘문은 훈련대장을 지낸 이경 하, 서쪽 영추문은 판의금부사 허계, 북쪽 신무문은 어영대장을 지낸 이현 직의 글씨다. 굳이 무관들의 작품을 건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궁궐 혹은 임금에 대 한 방호( 防 護 )의 의미로 판단된다. 남에게 보여주고 즐기는 장식물이 아니 라는 것이다. 그런 궁궐 건축의 철학을 무시하고 경복궁에서 광화문만 떼어내자고? 글 씨의 역사성이 조형성보다 엄중하다. 임태영 글씨가 유리원판에 새겨진 것을 복원했기에 정통성이 약하다는 주장도 딱하다 디지털 시대에 원본과 복제본 구분 자체가 부질없다. 그토 록 중시하는 원본의 아우라가 추사나 석봉의 글씨를 집자하면 생긴다는 것 인지. 교태전 글씨도 1994년에 이전 사진을 보고 되살린 전력이 있고, 창덕궁 주 합루가 영조 글씨라고 해서 특별하지도 않다. 궁궐 현판은 서예백일장과 다 르다. 우리시대의 글씨가 아니어서 서운하다면 경복궁을 한 바퀴 돌기 바란다. 현대 서예가의 작품이 즐비하다. 정도준, 김응현, 양진니, 김훈곤, 조용민, 임 창순, 조수호. 기록에 없는 현판은 모두 요즘 서예가의 손을 빌렸다. 우리 궁궐 에 한자를 쓰는 것이 창피하다고? 궁궐 깊숙이 자리 잡은 건청 궁 권역의 초양문은 청나라 옹방강, 집옥재는 미불, 협길당은 동기창의 글 씨를 따왔다. 검

76 사정이 이런데도 광화문 현판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의 중심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박정희는 시멘트로 복원한 광화문에 본인 글씨를 걸었으며, 노무현 시대의 문화재청장은 박정희 글씨를 내렸다. 지금 다시 광화문에서 권력투쟁이 별어지고 있다. 문화권력, 언론권력, 시 민권력도 가세했다. 여기서 가슴에 와닿는 것이 한 서예가의 자술이다. 어른 키 (175cm) 보다 큰 글씨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임태영은 명필이 아니어도 경복궁 중건의 책임자로 혼신을 다해 붓을 잡 았을 것이다. 숙연하지 않은가. 이게 스토리텔링으로 약한가. 나무가 갈라지지 않았으면 가만히 있었을 광화문 현판. 거기에 한글이니, 새로운 한자니 해서 초점을 흐려서는 안된다. 애국심을 내세워 공명을 챙기려는 것도 금물 이다. 이제 광화문과 권력이 결별할 때다. 지금 글씨로 그냥 놔두라. 그게 역사에 대한 예의다. 검

77 r 광화문 은 복원( 復 元 )이 아니라 중건( 重 建 )이다 - 한자 를 고집할 명분도 대안도 없다 - 김종택(한글학회 회장) 첫째, 언제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개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정답 이 보 이 지 않는다. 광화문은 1 4세기말 이태조가 창건한 이래 임진란에 소실되어 없어진 것을 19세기 후반에 와서 대원군이 중건하였는데 일제에 의하여 이건( 移 建 ) 되 었다가 6. 25전란에 불타 없어진 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벤트로 중건 한 것을 2 1 세기에 와서 경복궁을 중창( 重 柳 ) 보수하면서 다시 중건한 것이 다. 몇 차례에 걸쳐 중건이 거듭되었을 뿐 복원된 적이 없다 무엇을 원형 으로 삼아 복원했단 말인가. 19세기 대원군이 지은 것도 20세기 박대통령 이 지은 것도 모두 중건으로 재창조된 것이며 원형으로 복원된 적이 없다. 어떤 형태로든 원형이 남아 있어야 복원이 가능한데 광화문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다. 창건 ---- 중건 ---- 중건 ---- 복원 (X) (14 세기) (19 세기 ) ( 20세기 ) ( 21 세기 ) 그런데 굳 이 19세기 후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창하면서 세운 광화문에 붙었던 임태영의 글씨 를 억지로 모사하여 마치 원형 복원이라도 한 듯 매 달리니 참으로 역사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임태영의 글씨 는 그 시대 1 9세기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다. 굳이 여러 차례 중건된 광화문 현판에서 조금이라도 역사성 있는 원형을 찾는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η 어

78 현판이 있을 뿐이다. 개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경복궁의 내력에 대한 역사의 기록을 보자. 0 경복궁 ;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찰걷된먼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말기 고종 때 (1867) 줄 겉된먼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0 대원군이 온 국력을 기울여 경복궁을 중건할 때 그는 천장에다 힘차게 꿈틀 대는 용을 그리려고 했다. - (유주현, 대한제국 ) 역사학자는 물론 소설가도 중건과 복원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는데, 그것 을 모르고 역사를 운위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 복원( 復 元 ), 중건( 重 建 ), 중창( 重 柳 )에 대한 사전의 설명을 살펴보자. 0 복원( 復 元 ) ; 본디대로 되게 함. =수 복구 0 중건( 重 建 ) ; 건축물, 특히 사찰 왕궁 따위 를 고쳐 세움. =추 중창( 重 柳 ) 0 중창( 重 柳 ) ; 낡은 건 물을 헐 것은 헐고 고칠 것은 고쳐서 다시 새 롭 게 의효활; ( 우리말큰사전 ) 이와 같 이 개념을 분명히 하고 보면 우리는 지금 광화문을 새롭게 중건하 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판을 2 1 세기 대한민국의 긍지를 담아 훈민정음체 로 새롭게 만들어 달아야 할 당위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 이다 π 니

79 한 光 化 門 l 은 新 建 이 아니라 復 元 이라고 확고한 所 信 으로 回 쏠한연 當 한 리하였다면 이렇게 國 庫 를 낭비하는 論 爭 으로 據 大 되지 않았을 으l단. 물 고 張 임을 알면서도 執 빼하게 늘 어진다고 受 容 한 다면 國 政 을 어떻게 途 行 할 것 단 호 - - 不 껴 - 主 인가? 아무리 옳은 일도 공연히 是 非 를 거는 자 는 언제 어디에서나 있는 법이다. 21 세기에 와서 지금 짓고 있는 광화문은 분명히 신건(중건)이고 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위의 주장은 그대로 발표자에게 되돌려 줄 수밖에 없다. 둘째, 21 세기는 한글의 시대이다. 광복 이후 한글로 교육을 하고 한글로 문화를 창조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기적처럼 선진산업국가가 되었다. 요-, 세계에 넘쳐흐르고 있는 한류열풍의 원천은 바로 한글의 힘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한국 문화에 동참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아무리 국한혼용( 國 漢 混 用 )을 부르짖어도 이제는 모두 한갓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 지 오래다. 이 세상에 문자생활을 하면서 두 가지 이상의 글자를 섞어 λλ 고 이느 二 λa 나 라가 같은 글자(한자)를 음독, 훈독, 관습독( 海 老 ;에비)을 하는 기구한 일본 을 제외하고 어디에 있는가. 왜 불구의 문자생활을 억지로 이제 우리는 긍지 높은 21 세기 대한민국의 문화를 한글로 흉내 내려 창조해야 하는가 한다. 지난 3월 8일에는 국보 1호 숭례문 상량식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 하고 놀라운 사실은 그 상량문을 한글로 쓴 것이다. 10미터 한지에 2,500자 빼곡히 훈민정음 반포 당시 서체인 판본체로 쓴 것이다. 상량문이 어떤 二 그 E프 인가. 국보 1호 숭례문의 존재 이유요, 가치요, 족보 아닌가. 그런데 전통문화 부르짖는 사람들은 귀중한 국보의 상량문을 한글로 썼는데 국보 훼손이라 고 왜 한마디 항변도 하지 못했는가. m ω

80 광화문 바로 앞에는 세종대왕상이 높이 앉아 있다. 국내는 물론 온 세계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듣고 우러러 모시는 자리다. 잘 알다시피 세종대왕은 육백년 전 사람이다. 고루한 역사관에 매몰된 사람이 라면 당연히 그 시대의 공용문자인 한자로 世 宗 大 王 이라 정중히 써야 한다 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긍지를 담아서 21 세기 문화재인 동상 앞에 훈민정음체로 세종대왕 이라 새겨 놓았다. 서체에 대한 논란은 있어도 한글로 새긴 데 대하여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시에서는 나라 안팎에서 몰려오는 수많은 관광객에게 한글나라인 대 한민국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를 한글문화의 거 리로 조성하는 한글마루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종대왕상이 있고, 세종 문화회관이 있고, 한글자모공원이 있는 그 중심에 광화문이 우뚝 서 있다. 여기에 門 化 光 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자 현판을 걸 것인가.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다. 迎 恩 門 을 헐고 독립문 을 지은 지 백 수십 년, 아직도 광화문 현판을 한자로 써 달아야 문화재로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시바삐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셋째, 발표자는 r지금 새로 지은 광화문은 21 세기 대한민국 시대의 문화재이지, 19세기 문화재로 조작된 건물이 아니다. (중략) 마치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인 것처 럼 억지로 한자 현판을 걸려는 것은 역사 를 조작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라고 復 元 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否 定 하는 이와 더 이상 떠 들 다가는 틀림없이 몇 禮 門 이 復 元 되면, 21 세기 文 化 財 이니 한글로 현판을 고치자고 고집할 것이 뻔하다. 복원과 중건을 구분하지 못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억지주장이다. 경복궁 근정전이 대원군에 의하여 중창된 19세기 문화재이듯이 지금 우리 앞에 선

81 광화문은 21 세기 문화재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숭례문은 원형이 실물로, 사진으로 남아 있고 현판도 부서졌지만 복원이 가능하다. 최대한 원형을 살려 복원되기를 바랄 뿐이다. 복원은 원형을 살 리는 것이지만 중건은 초가집을 헐어 기와집을 짓는 것과 같이 시대의 흐 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r 한글 專 用 論 者 들 이 i 張 하는대로 光 化 門 의 현판을 한글로 끝까지 떠 守 하려 면, 더 소급해서 景 福 펌 전체의 復 元 을 펌 止 했어야 한다. 함부로 文 化 財 委 員 들 을 罵 倒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화재위원들을 매도한 적도 없거니와 지금의 경복궁은 단순히 복원된 것 이 아니라 21 세기에 와서 전각을 더 짓고 회랑을 더하여 크게 중창( 重 柳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광화문은 21 세기문화재로서의 당당한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러기 위하여 자랑스러운 훈민정음체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r 漢 字 도 한 글과 더불어 擬 然 한 國 字 t앓 字 도 우리의 조상이 만든지 모르고 남의 문자라고 주장하는 그 들 이야말로 못난 후손들로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해괴한 주장이다. 이것은 마치 서해 바다에 한강 물이 흘러들었으 니 서해 바닷물은 모두 우리 물이라 하는 것과 같다. 한자는 그림 글자로 그 가운데는 중국 한족이 만든 것이 많고 은( 銀 )나라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 라고 하니 우리 조상들이 만든 글자도 있고 몽골족, 만주족, 월남족, 심지어 왜족이 만든 글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한자는 중국 사람뿐 아니라 온 세계인이 공인하고 있는 중국 글자이다. 세종대왕도 일찍이 나 닷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와로 서르 사뭇디 아니하다 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m ω

82 또, 광화문 이라고 한글로 썼을 때, 외국인은 고사하고 우리나라 사람 중 에 도 그 深 典 한 뜻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때 광화문 은 x 문 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으로 말과 글을 분별하지 못하는 답답한 소리다. 글자 없이 광화문, 경복궁, 숭례문 이라고 귀에 대고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모두 X문 으로 들리는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r 한 글 학회 김종택 회장은 엉뚱하게도 門 化 光 이라 는 얼빠진 남의 말 간판을 걸고 말았습니다. 라고 심지어 光 化 門 을 거꾸로 써놓고 남의 말이라고 하니, 자신 의 姓 名 을 金 宗 澤 과 같 이 漢 字 로 쓰면 남의 말 이 되고, 김종 택 이라고 쓰면 우리 말이 된다는 말인가? 그 父 母 가 남의 말로 이 름을 지었다고 하 는 격이니, 그 牙 居 과 不 孝 스 러움을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더 할 말이 없다. 門 化 光 은 우리글의 어순과 어울리지 않음을 말한 것이 고 내 이름은 한글로 쓰나 한자로 쓰나 로마자로 쓰나 내 이름으로 생각하 니 걱정 마시기 바란다. 광화문은 21 세기에 경복궁 중창 보수와 함께 중건된 21 세기 문화재이다. 거기에 자랑스러운 훈민정음체 현판을 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 위의 문제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

83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의 E 씨를 한글로 바꾸어 야 하는가 왜 광화문 현판 에 대한 논평문 선주선(원광대학교 서예과 교수) 필자는 이대로 선생의 문장을 읽으면서 적이 거칠면서 과격한 문투로 남 도 처 으 구 하는 E 억지로 설복시키려하고 또 의도가 너무 심하게 7;J z1-_q /; ε '--- 깔려 1 즈 二,J,λ '---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따라서 억지스 러운 주장이 니다. 물론 Lt:...l- 여러 다른 억지의 주장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논지 가지의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연속을 직면하였습 세워 가시고자하는 그 의지와 투지, 그리고 노력에 대해서는 매우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되Lλ} l 부제인 < 門 化 光 은 죽은 현판이고 광화문 은 살아있는 현판이기 때 문이다.> 라는 것으로부터 門 化 光 은 무엇이며 죽은 것은 무엇이 죽은 것이 며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 살아있다는 것인가의 의문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또한 머리말에서 쌍구모본 방식 으로 먹칠해서 달았다. 같은 것에서 하 필 먹칠해서 라는 표현이라고 써 야 했을지. 쌍구모본이 란 01- E즈'--- 아셨지만 雙 錫 鄭 環 이란 말의 뜻도 아셨다면 먹칠해서 를 그 윤곽 안을 메워서 라고 점잖게 쓰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먹칠하다 라는 말이 명예를 더럽히다 라는 뜻이 있는데 그런 의미로 쓰신 건지 묻고 싶습니다. 다시 고종 때엔 光 化 門 이란 그 현판을 달고 얼마 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재수 없는 현 판이다. 라고 쓰셨는데 말씀이 보편성을 띄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시

84 는지요. 그뿐이겠습니까? 석 한글현판을 떼려고 서두르니 달도 안 되어 하늘에 계신 二 l 현판이 2;λ L 프드 o l 2. I 묘 금이 갔다 무리하게 노 하 것 보인다, 라고 한 말씀에서도 이 시대를 사는 지성인으로서의 표현으로 여겨지지 L l;δ 습니다. 1 밖에도 1968년 광화문을 다시 짓고 한글현판을 단 것이 세종의 정신 과 업적을 되살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二 l 뒤 한글세상이 되어..Q_ 나라임자들이 우리국민이 한글세상이 1 된 이래 1 '2-1- ;져 ul E 쓰게 되어 똑똑해졌다. 라고 쓰셨는데 해 표[ 졌다고 보시는지요? 오히려 영악해졌다고 봐야할 부분이 있다고 여기시지는 않는지요? 그렇다 치고 J 러면 i 이전의 우리 선조와 l:lllλj 흔득드L I i::::!, I그 토드 _., 멍청하기만 했다는 뜻과 통한 다고 보아도 좋다는 말씀이신지요? 하나 더 예 를 들면 저 광화문을 세우고 한글현판을 단 뒤 우리 자주문화 가싹트고 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라고 하셨는데 설득할만한 말씀 여겨지지 이라고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원하는 것마다 한글현판으로 바꾸어 다 면 자주문획 가 E 싹튼 것이 번성하고 하루가아니라 l:ll- 일분일초가 다르게 2. 전하리라는 가설이 성립 할까요!! 자주문화가 그리도 싹터서 정치인들은 01 름을 DJ 니 JP 니 YS 니 MB 니 하는 시대가 되었으며 금융기간 중에서도 히 농협 같은 것은 NH로 바뀌는 시대가 되었고 온갖 거리의 간판마다 영 어로포장을 으 E 이상의 안다는 나열할수 선생님께서 했답니까!! ul- 스쓰 E드 _Q_ 2.02.'- 말대로 포 머리말 안에 이후의 없을 정도이니 로 강조한 1 느 二 λλ -,J E드L ~ x E프 E프 장마다 계속되는 - = '- 것입니다. 하나를 궤변(?)같은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ul- 스쓰 드; 보면 이루 으뜸글자 자랑스러운 우리한글에 자부심을 열 다

85 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역시 우리한글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여기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한글도 한글 나름대로 약점과 하자가 없지 않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즉, 表 音 文 字 의 특성상 발음이나 맞춤법 같은 것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든다면 월인천강지곡 의 고대한글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 조선 중 후기의 소설 한글필사본 왕후나 선비들의 편지글을 들 수 있는데 어느 것을 막론하고 한글전용을 했습니다만 지금사 람들이 절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글이라고 해서 해독 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앞으로 또 백년 이백년이 흘러가면 지금 쓰고 있는 우리의 글을 다음 세대에서 읽지 못한다는 가설이 가능하다는 말씀입 니다. 더구나 요즈음 젊은이들이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것이라든지 컴퓨터나 핸드폰에 쓰는 기괴한 은어나 신조어들을 대해보면 그 속도는 좀 더 빨라 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문과 한자는 어떻습니까? 배우기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글자도 많고 어려워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르면 2500년 전의 문 장을 그때에 쓴 사람과 똑같은 마음으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예들은 한 글이나 한문이나 똑같이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일례라고 하겠습 니다. 그렇다면 그 각각의 단점을 보안해나갈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 이라고 하겠으며 그럴 수 있는 백성은 온 세계에서 우리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문장 속에서 한자는 배격해야할 사대주의의 잔재로 여기고 있 음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 시대가 그랬을 뿐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는 절 대로 중국의 속국 같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저 고구려의 기상이 수나라를 멸망케 했던 그 영광을 기억한다면 어찌 한자와 한문을 사대주의의 잔재뿐 Q n u ζ

86 으로 치부할 수 있겠습니까? 광개토대왕릉비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 습니까? 물론 혹자의 말대로 그것을 한글로 쓸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 지만 그런 말씀이 학술적 의미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찌되었던 우리나라는 한자문화권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면면히 국 가의 위상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국가로서 그 언어체계에 있어서도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중국어와 한자를 깊이 배운 후에 깨닫게 됩니다. 우리 선비들이 영위하여 왔던 말의 고저장단이 다 거기에서 나왔는데 지 금은 모두 사라지고 저속하리만큼의 언어생활로 전락되었습니다. 한글전용 을 해야 한다면 해야 할수록 한글을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인데도 불구 하고 더 퇴보시키는데 한글전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일조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장 단음입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 로서 장음처리가 되어있습니다. 한자는 平 聲 上 聲 去 聲 入 聲 등 平 κ 의 체계 를 글자마다 갖추고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평성은 중국어의 1 2성이고 상 거성 즉 측성은 3 4성이며, 종성이 님 근인 것은 성조에 관계없는 측성입 니다. 여기서 평성을 제외한 모든 글자는 장음으로 읽게 되어있으며 평성은 낮다하고 측성은 높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京 離 의 경 과 慶 : 尙 道 의 경 자, 光 州 와 廣 : ) 의 광 자, 없 : 다 와 엎다 등등입니다. 저명인사중에 이계진씨나 이순재씨 같은 분들은 장단음을 잘 쓰고 있는데 이러한 원리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고 쓰고 있다면 공부를 통해서이고 모 르고도 쓰고 있다면 전통적 선비가문에서 母 語 로 배운 결과라고 하겠습니 다.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데는 accent나 umlaut같은 것에 온 신경을 다 쓰면서도 천년의 선비들이 써온 고저장단이 다 없어지고 비속한 언어를 쓰 m ω

87 게 되었음에도 아무도 이에 대해서 주 장하 없습니다, 이는 한글전용을 문 소 예 서의 배격하는 분위기 Ē 부 인 하 수 E 없을 것입니다. Ē r.r. - 一 이라고 01 선생님이 할 느 - 고 L 오 한글학회 말씀하신 京 城 繹 을 서울역 으로 등에서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경성역이란 말이 뷰 언급하는 것 - E 본적이 분들의 잘못된 국어사랑 즉 한자와 한 되 국어사 라 이 O i 장본이 되었다는 점 바꾼 것은 이미 뉘 1r 잘하 일 바 사라졌기 때 문 아닐까요? 그러나 광화문 이란 이름이 지금 사라진 이름입니까? 또한 고 도 리 문 - 迎 恩 門 을 때려 닙 세운 뒤 독립문 이란 이름패를 달았다 고 E 하셨는데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영은문 도 헐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산물이 R다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살려두고 독립문 도 치욕의 역사도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i 세웠다면 더욱 성숙한 국민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ul- o 2.' 二 사료됩니다. 그리고 海 鍵 館 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海 憐 이라는 四 海 의 물 론 D 프 三 _,_ '- 동포가 이웃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四 海 는 지구촌의 인류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해린관 은 세계가 이웃되는 집 정도의 뜨 < 뾰 보면 { = 걷 도프 것입니다. 한국의집 이라고 한글현판은 달았으되 二 l 뜻이 한옥양식으로 서의 한국식의 집이란 뜻인지 한국이 소유하고 1 느 二 λλ '- 집이라는 뜻인지 도무 지 격조에 조E 드L -, E크 의심하지 맞지도 } ;? l건 2. 않습니다. /λ- - 이것을 잘 했다고 없습니다. 允 中 짧 의 보시는 사랑재 도 것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뜨 < i 이 안 교 체입니다. 사랑의 집도 아니고 사랑의 고개도 아닌 사랑재 가 너무나 _Q_/ - 광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윤중로 를 사랑로 로 바꾸어도 된다는 디L 스쓰 2. 0 일까요? 어느 사랑채 로 했으면 더 좋겠다고 했다는데 더욱 그러합니 피 자 는 다. 르 윤중이란 말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允 執 歐 中 에서 나왔는지 윤중이란 호를 쓰 어느 선대의 인물인지를요.선생님 ul

88 씀대로 윤집궐중 에서 나온 말이 확실하다면 진실로 그 중용의 도를 잡는 다. 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을 터인데 왜 누가 사랑재 로 바꾸었는지 정말 모 를 일입니다. 이 자리를 벌어서 한글현판과 연관 지어 우리나라의 한글전용에 대해서 조금 집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작금에 벌어진 한글현판의 교체운운은 괜한 호사자들의 일이라고 일축했습 니다만 일이 이쯤에 와보니 이것이 우리국민의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에 식 자층의 한사람으로서 처연한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한글전용론을 주장하 는 이들은 반대여론은 차치하고라도 한글세대에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가 지고 우왕좌왕하는 당국의 처사가 우스광스럽기 때문입니다. 光 化 門 의 이 름은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대왕과 교감을 통하여 지었을 텐데 그때 한글로 지었답니까? 光 化 는 해석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필자가 고전을 공 부한 수준으로 가늠할 때 해 달 별의 츠 光 의 빛과 같은 임금의 덕으로 백성들을 敎 化 育 成 한다 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여겁니다. 한글로 쓴 광 화문 은 아무런 인식도 얼도 깃들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부르는 교 육명사라고 주장한다면 어불성설이 될 것이 뻔하고 아예 경복궁 정문 이라 고 알아 볼 수 있도록 고치는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한글전용에 대해서도 아주 잘 된 처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또한 아주 나쁘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다만 필요에 따라 꼭 한자로 써야 될 것은 한자로 썼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꼭 한 글전용을 할 요량이면 철저하게 초 중등교육에서 한자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 바 어떠한 한자어 단어에 대하여 한자가 연상될 수 있다면 그나마도 차선 %

89 은 된다고 봅니다. 근 20년간 필자는 우리 과는 물론이려니와 한국학중앙연구원,성균관대학 교,동방대학원 대학교 등에서 서예와 유관한 논문지도와 심사를 맡아왔습니 다. 매학기 15편 내외가 되는데 날이 갈수록 논문지도를 하는데 있어서 내 용은 고사하고 문장교열에 너무 힘이든 실정입니다. 본인스스로 문장교열 기 를 자처하는 웃지 못 할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힐 뿐입 니다. 이것이 반세기동안 한자교육을 등한시한 결과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생들의 대부분이 미술사학자 高 給 燮 선생이 쓴 韓 國 美 術 史 及 美 學 論 政 나 서예가 金 基 昇 선생이 쓴 韓 國 書 藝 史 같은 책 자를 입어 내지 못합니다 년 전의 논문을 읽어볼 수 없다면 이는 시 대의 단절이요 소통의 부재요 지적수준의 퇴보요 학문문화의 전락입니다. 우리언어의 성격상 어문교육의 파행이 理 智 와 슬기로 빛났던 우리 先 代 의 얼을 고등교육을 받은 문맹 아닌 문맹 으로까지 몰고 갔다는 점을 발견할 때마다 한자와 한문을 배격하는 한글전용은 위험천만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 한글을 사랑하신 선지자들 즉 주시경, 최현배 선생 등등의 한문과 한자의 인지가 깊이 내재된 상태에서 한글전용 정책을 펴고자 했던 그 숭 고한 시대상황과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글전용과는 하늘과 땅차이 라는 점을 직시하고 한글전용만을 극구 주장하는 분들의 깊은 통찰을 바라 고 또 바라는 바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대로 선생님의 한글사랑은 집착의 소산이라고 사료됩니다. 마치 어느 종교를 맹신하듯 한글사랑에 무조건적인 맹신이 내심에 작용하 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추어집니다. %

90 또한 선생님이 표현하신대로 한자를 숭배하는 사람이 실로 있을까요? 한 자를 사랑한다거나 애호한다거나 좋아할 뿐이겠지요. 한자와 한문은 옛 우 리 조상들이 천수백년 동안을 써온 소통수단으로서 우리가 꼭 지켜내야 할 문화유산 중에 하나로서 말입 니 다, 아무튼 그 漢 字 속에 국어사랑의 핵이 들어있습니다. 40 여 년 전 광릉 봉 선사의 운허 스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불경의 한글번역의 장을 여신 분입니 다. 법당을 중창하면서 大 雄 散 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 이라고 하셨고 柱 聯 도 모두 한글로 쓰도록 하셨습니다. 重 創 牌 의 비문도 모두 한글로 하셨습니 다. 주변의 정원에도 보고 가는 꽃밭 이라고 이름붙이셨습니다. 그분의 획기 적인 한글사랑은 불교의 현대화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시 스님 중에 經 學 의 제 1 인자로서 한자와 한문 또한 끔찍이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진실한 국어사랑의 화신이라고 믿습니다. 光 化 門 은 물론 紀 念 牌 願 등 광화문 주위에 산재해있는 한자들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천수백 년 숨결인 한자가 한글 전용이 곧 한글사랑이며 한글사랑만이 곧 애국이라 는 미명하에 매도당하는 일이 절대로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광화문 현판은 반드시 한자로 남아야 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몇 가지 질 문으로 마칠까 합니다 1. <머리말>에서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과 꿈이 담 긴 이름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 근거를 어디에 두셨는지요? 2. <마. 1968년부터 걸렸던 한글현판을 멘 일은 역사파괴요 자주문화 짓밟 기다.>에서 광화문 위치가 삐풀어졌고 시멘트이기에 원형복원 차원에서 다 P ω

91 시 짓겠다는 것은 한글현판을 떼어내고 한자현판을 달려는 핑계였다. 고 하셨는데 진태하 교수님이 경복궁 전체 를 복원하는 일환으로 이루어진 일 이 라고 근거를 밝힌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3. < 사. 현판이 갈라진 것은 한글로 바꾸라는 하늘 의 명령이다. > 에서 끝까 지 한자현판을 고집한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 떠 한 천벌을 받을지 예상되는 것이 있다면 피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4. <4. 마무리 > 에서 한자는 지는 해지만 한글은 뜨는 해다 라고 하셨는데 한자를 國 字 로 하고 있는 중국 대만 홍콩 등등은 지는 나라라는 뜻과 통한 다는 뜻입 니 까? 5. <4. 마무리 > 에서 훈민정음체로 만든 가상의 한글 현판을 도판으로 제시하 셨는데 만의하나 이러한 방식이 최후에 채택되었다고 가정할 때 예술적 또 는 문화사적인 견지에서 지금의 광화문 현판보다 더욱 논란이 분분할 것이 라는 개연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신적이 있으신지요?

92 광화문 현판의 글씨 선정에 대한 의견 전봉희 (서울대 교수, 건축학) 나는 한글 전용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한자를 통하여 우리말과 우리 문화 의 의미를 더욱 잘 살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으며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t:: --'-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주제발표문에서 보듯 광화문 현판의 글씨에 대한 논의를 우리나라의 어문 정책에 대한 일반론으로만 접 근해서는 두 진영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릴 뿐 그 접점을 찾아내기 힘들 것 으로 보인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건축사를 공부하고 건축유산의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광화문이 Z}-~ 二 A,_ 장소적,시대적 의미에 국한하여 간략히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에 새로 지은 광화문은 엄밀한 의미에서 복원이라고 보기엔 어 렵 다.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련의 행위는 원형과 변형의 정도에 따라서 여 며 넉 A 가지의 등급으로 구분할 - 있는데, 현재의 광화문처럼 엄밀한 역사적 고 끓 모?] 거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口 - 최대한 현재는 - 재현하는 'X E코 E 보 원 은 슨 재건 호으 중건 reconstruction 이 라고 '.._ 한다 원형의 일부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고쳐짓는 경우로서, 예를 들면 최근 숭례문에서 진행되고 있듯 화 재로 손상된 부분을 고쳐짓는 행위는 복원 restoration 이라고 볼 수 있다 용어의 정확한 사용은 의사소통의 기본으로서 여론의 형성에 매우 중요하 이 는 기 때문에 다소 길지만 미국 내무부에서 사용하고 샤 규정을 그대로 인

93 용하면 다음과 같다.5) * preservation 역사적 자산의 기존형태, 통합성, 재료를 유지 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6) * rehabilitation 역사적, 문화적, 건축적 가치가 있는 님 T 부 ) 은 유지한 채로, 수선, 변경, 부가를 통하여 자산의 새로운 용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련의 행위,7 ) * restoration 특정시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른 시기 의 것을 제거하거나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특정시기의 형태, 외관, 성격을 재현하는 일련의 행위.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기계, 전기, 배관 등의 부분을 개선하는 일이 가능 하다. * reconstruction - 역사적 장소 내에 특정한 시기의 현상을 모 사하기 위하여, 신축을 통하여,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지구, 경관, 건물, 구조물, 물체 등의 형태, 외관, 세부를 재현하는 일련의 행위.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 광화문을 새로 지은 행위는 분명 restoration 보다는 reconstruction 에 해당한다. 다만 소위 황룡사 복원 의 예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유산의 보호와 관련하여 행위의 정당성을 5) Kay D Weeks and Anne E Gr.rnmer The Secretary of the Interior s Standards for the Treatment of Historic Properties with Guidelines for Preserving. Rehabilitating, Restoring & Reconstructing Historic Buildings,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National Park Service, Cultural Resource Stewardship and Partnership, Heritage Preservation Services, 1995 참조 6) 가장 광범위한 의미를 포괄하는 용어로서, 보존 흑은 보전으로 번역할 수 있다. 7) 최근 서울역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재생으로 번역할 수 있다

94 확보하고 대중적 지지 를 얻기 위하여 reconstruction을 재건( 再 建 ) 8) 혹은 중 건( 重 建 ) 보다는 복원( 復 原 ) 9) 이라는 용어 로 사용하는 경향이 존 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새로 지은 광화문이 복원된 것이냐 재건된 것이냐가 광화문 에 달릴 현판의 글씨까지 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광화문이 과거와 현재에 가지고 있는 의미 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현판에 쓰일 글 씨 를 결정하는데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지만, 단지 하나의 궁궐 정문 이상 의 의미 를 가지고 있다. 조선이 개국하여 한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궁궐을 새로 조영하는데, 경복궁은 여러 궁궐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정궁이 자 법궁의 지위 를 가지고 제일 먼저 지어졌고, 그 건축적 격식에 있어서도 다른 궁궐의 문들 과 등급이 높 은 규모와 형식을 가지고 건설되었다. 즉, 광화문은 3개의 아치(홍예)출 입구를 가진 높은 육축 위에 중층의 t:j E프 -;r - 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다른 모든 궁 궐의 정문은 육축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육축을 가지고 있 는 문은 도성의 대문들 과 지방 읍성과 산성의 대 문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울 도성을 포함하여 어떠한 도성과 읍 성, 산성의 문도 육축에 3개의 아치 출 입구를 갖는 경우는 없다. 서울의 사 대문 가운데 가장 위계가 높은 숭례문과 홍인지문도 아치는 단지 하나뿐이다 8) 이상해 는 이 를 보다 분명하게 나누어, 파 建 reconstruction 은 관련사진이나 문헌 등에 기초해서 잃어버 린 오리 지널 을 다시 세 우는 것 ( r e - es t a bli s hme n t)을 의 미 하며, 사고, 전쟁, 천 재 지 변으로 파괴 된 구조물을 다 시 짓는 재축 ( r e buildin g) 과 구분하고 있다 (이 상해, 고대 건축 복원의 의 미와 방법, [황룡사복원국제학술 대회 논문집 ], p.229 참조) 9) 복원의 한자어 표기 에 대해 선 復 元 과 復 原 을 혼용하지만, 대 개 復 元 을 일본인 전문가가 사용하는데 반하여, 復 原 을 중국인 전문가가 사용하는 경향이 보인다. m ψ

95 조선시대처럼 예의와 염치를 중시하고 건축적 격식에 있어서도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였던 사회에서 이처럼 광화문을 규모 있게 만든 것은 광화문 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광화문을 높은 격식으로 지은 것 은 단지 광화문이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 이상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C그# ~ 外 朝 ; 台 朝 뭘 朝 *자금성 天 安 門 端 門 午 門 태화문 태화궁, 중화궁, 보화궁 건정문 건청전, 교태전, 곤령전?그j.s - 프극 그l 光 化 門 興 禮 門 勳 政 門 근정전 思 政 門 사정전 / 擺 五 門 康 寧 願 兩 f 義 門 交 泰 願 (육축 우, 만춘전, / 延 生 전, 5 칸중문) 천추전 慶 成 전 득 창 덕 궁 敎 h 門 進 善 門 仁 政 門 인정전 宣 政 門 선정전 / 宣 平 門 大 造 願 / 集 神 願, 壽 靜 願 (5 칸중문) ( 熙 政 堂 ) 창경궁 弘 1t 門 明 政 門 디ζ그j ~A: L 세 文 政 門 문정전 / 賣 陽 門? 通 明 앓 / 慶 春 願, ** 慶 願 (3 칸중문) (몇 文 堂 ) 경희궁 興 化 門 뽕 政 門 숭정전 資 政 門 자정전/ 日 永 門 會 神 嚴 /( 光 明 歐, 集 慶 堂 ) (3 칸단문) ( 興 政 堂 ) / 隆 福 願 ( 長 樂 嚴 ) 경운궁 仁 化 門 中 和 門 중화전 德 弘 願 /? 1 成 寧 願 / ( 音 細 堂 ) 大 安 門 ( 浚 明 堂, ( 大 漢 門 ) 명n 祚 堂 ) (3 칸단문) 표 11 각 궁궐 문의 위 계 적 분포 조선시대 서울의 공간구조를 당시 북경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특징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전체의 둘레성이 산 능션을 따라 부정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나, 법궁인 경복궁(북궐) 외에 이궁인 창덕궁(동궐)이 서로 대칭적으로 놓이고 그 가운데 중심점에는 종루가 놓이는 등 여러 가지 면 에서 서울 도성은 북경성처럼 기하학적인 엄정함보다는 자연 지세에 순응 하는 유기적 구성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견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서울 도성의 내부도 찬찬히 살펴보면,

96 종 로 화문 기준으로 앞의 대로로는 규칙을 가지고 이 이와 같은 즈r::. Q_ :n:. '- 뾰 있다. 북쪽에 궁궐과 종묘,사직 드 이 주 요 - 육조와 한성부가 자리한 관청가를 과 시설이 자리하고 드 조성하는 ( 일정한 규칙성을 다시 생각해보면 광화문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격식 만 든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북경성은 궁성과 황성, 그리 고 내성과(불완전한)외성이 둘러싼 3중성(부분 4중성)의 동심원적 구성을 갖는데, 서울 도성은 없다; 서 화 족 O τ - 와 - 크 주지 와 서 을 완 사직의 이 냐 의 처 지 껴 왕실 관련 빽 d 시설의 위치 궁성과 도성 사이에 황성이라고 할 만한 성벽이 따로 ; 꺼 씨 면서 해 주요한 관청이 들어서고 일반 서민들의 거 주 는 여동닌L I E프 E프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종묘와 육 조 등 주 요, 관서의 위치, 종친부와 내수시, 내섬시 드 으 E 고려한다면, 서울 도성에서 황성에 해당하 ' - '- 기능을 가진 지역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그 좌우로 펼쳐진 남사면을 함 께 어우르는 지역 일대에 해당함을 알수 있다. g국징대.경성 힌잉의내국J 그림 36 북경성과 서울도성의 구조 (서울 도성에서 빗금 친 지역 정도를 대체로 황 성의 역역에 비견할 수 있다) m

97 이렇게 본다면, 광화문은 궁성의 정문이면서 동시에 북경의 천안문과 마 찬가지고 황성의 정문으로서의 의미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광화문이 아치 를 3개나 가진 큰 육축 위에 가장 규모 가 큰 5칸 중층의 문루를 가졌다는 점과 함께, 그 양 옆으로 이어진 높은 담장과 모서리의 동서 십자각, 그리고 다른 세 면에 있는 건축문, 영추문, 신북문의 세 대문이 모두 육축을 가지고 있 는 성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는 사실에서도 확인이 되며, 경복궁의 위상이 단지 하나의 궁성이 아니라 황성의 격식에 맞추어 건설되었다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해준다. 한편,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는 조선시대엔 육조거리 로써,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청와대와 종합행정청사가 그 끝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울의 여타 도로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져왔다. 최근 진행 된 광화문 광장 역시 그 디자인에 대해선 많은 비판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는 광화문앞 도로가 갖는 상징적 의미 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1900년대 초 몇 차례의 공사를 통하여 황토현에서 숭례문으로 이 르는 도로가 개설되어 광화문 사거리가 형성된 이후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 숭례문으로 이르는 도로는 각종의 국가 행사에 가장 중심 이 되는 국가 도로 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박정희,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등 전 대통령의 국장 행렬 역시 모두 이 길을 이용하였으며,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전 세계에 동시 중계된 새해맞이 행사 때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행사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진행되었다. 이처럼 광화문을 배경으로 그 앞으로 곧게 뻗은 광로는 단지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나 궁궐 앞도로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서울을 상징하며 나아가 우

98 리나라를 상징하는 상징도로로서의 의미를 아울러 갖는다. 그 리 디 거 미 닉 년 대 의 광화문 사 일대 그림 38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 운구행렬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그렇다면 광화문의 현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까지 확인한 사실은 광화문은 복원이 아니라 재건이며, 광화문은 단지 경복 궁의 정문이 아니라 서울 도성의 황성의 대문으로서의 의미도 아울러 가지 고 있으며, 나아가 광화문 앞의 도로는 비단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까지 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상징도로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 다. 답을 바로 내놓기 전에 하나의 유사한 사례를 들어볼 수 있다. 다시 감 섬 의 북경성의 사례인데,과거의 천안문 앞으로는 천보랑이라고 하여 관아지 구를 구획하는 T자 모양의 긴 회랑이 있었고 그 끝에 국문( 國 門 )이라고 할 만한 대문이 있었다. 이 문은 황성의 남문인 천안문이나 내성의 남문인 정 양문과 다. 그 달리 방어적 시설이라기보다는 n - ~,_ 민국시대에는 명나라 때에는 대명문( 大 明 門 ), 중화문( 中 華 門 )이라고 의례용의 각각 편액 상징적 청나라 때에는 하였으나,신 의미가 강한 감 션 문이 대청문( 大 淸 門 ), 성립 %

99 후 천안문 앞에 혁명기념관과 인민대회당을 좌우로 건설하고 천안문 광장 을 새로 조성하면서 철거되었고, 1958년에 그 안쪽에 인민영웅기념비, 그리 고 1977년에는 바로 그 자리에 모주석 기념당( 毛 主 席 紀 念 堂 )이 건설되었다. 중화문의 사례에서 보듯 편액을 다는 행위는 그것을 다는 사람들의 대상 건물과 장소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인식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특히 한 곳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어 누대에 걸친 역사적 평가를 견디어 내야 하는 건축 문화유산의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광화문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림 39 中 華 門 의 옛 모습, 과거엔 大 明 門, 大 淸 門 이었다가, 현재는 이 자리에 毛 主 席 紀 念 堂 이 있다 광화문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겠지만, 광화문 현판 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역사적 가치보다 현재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숭례문이었거나 종묘의 대문이었으면 다르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숭례문이나 종묘의 대문은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현재적 가치보다 월등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미 광화문은 국가 상징로의 초 점이 되어있고, 앞으로도 수도를 옮기지 않는 한 그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 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광화문이 갖는 장소적 의미는 비단 현대에 새롭게 부가된 것이 아니고 이미 조선시대에도 여타의 궐문과는 다 m

100 E프 '- 의미를 가졌었다. 중간에 파괴되지 l- --. l효 L 그대로 있었어도 현판은 새로 달아야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주 자 은 지금 광화문의 현판을 과거 중건 때의 것으로 되돌리자는 광화문 보 이 다 군 이의 제 보 L L - 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너무 가볍게 보기 때문으로 E 고 로 Pl- O 보면 그가 역대에 걸쳐 수행하였던 1-0τ= 기념하는 훈장이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려있다. 그러나 그의 현재 신분을 굵 알려주는 계급장과 소속 관은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광화문은 수도 서울과 우리나라의 현재를 알려 주 극드동l 김7 흔록 - 정식의 표지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운.~c. 나왔더라도 표 수 때 사용하였던 그대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달고 다닐 Z 하 경- - - 없는 것이 아닌가. 광화문의 이마에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기 이름이 걸려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나는 새롭게 만든 한글의 현판을 중앙의 정 위치에 ci '2. 고, 과거의 광화문 현판은 그 아래층 혹은 후면의 경복궁을 향한 면에 달자 수 정 아 을 제시 자 1- 하고 l -1- 한다.하나의 건물에 여러 현판이 달리는 일은 문 화 유 산 써 표- 까 A 리 니 -二 l 예를 쉽게 찾을 - 있다. 이도저도 버릴 - 없는 상 무 엇- 조 다툴 이 느 황이고,단지 n 이 더 중요한가를 때 사용할수 샤 방안이라고 - 생각된다. 지금 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논의가 딱 그렇다. 그림 40 윗층부터, 각각 爛 動 願, 龍 華 之 會, 大 慧 寶 嚴 의 펀액을 가지고 있는 금산 사 미록전의 경우 인

101 광화문 현판, 경복궁 복원의 큰 틀에서 접근해야 홍찬식(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경복궁 복원 사업은 1990년 시작되어 1 차로 2010년까지 20년 동안 진행 됐다. 2차 복원 사업은 2011 년부터 2030년까지 계속될 예정이고, 완전 복원 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우리 생애에 복원 사업이 마무리된 경복궁을 보지 못할지 모른다. 광화문 복원과 현판 문제는 크게 보변 경복 궁 사업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논의는 전체적인 경복궁 복원이라 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문화부 기자로 일하던 시절 서울의 궁궐 복원에 대해 여러 번 기사를 썼다. 1980년대 초 서울의 5 대 궁궐인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한다는 계획이 나오자 여론은 긍정적인 분위기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먼저 복원 대상이 된 것이 창경궁이었다. 궁 내 놀이시설들을 철거하고 벚꽃나무도 다른 수종으로 바꿔 심었다. 창경 하지 만 일부에서 반대 의견도 없지 않았다. 당시 창경궁은 5 대 궁궐 가운데 가 장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추억의 장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종 교체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 다. 그러나 창경궁 복원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 두고 완료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창경궁 안에 유원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보다는 복원하는 쪽이 훨씬 타당한 결정이었다. 완전한 복원이었냐는 점에서 일부 아쉬운 점은 있지만 복원 이후 인근 종묘, 창덕궁과 함께 서울이 600년 역

102 사의 고도( 古 都 )라는 사실을 시민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널리 인식시켜주고 있다. 현대식 고층 빌딩이 가득차버린 서울 도심에서 5대궁을 빼놓으면 여 기 사성을 느낄만한 장소는 찾기 어렵다. 보 원 창경궁 다음으로 사업이 진행된 궁궐 궁으로서 복원 사업 가운데 가장 궁궐이 pj-~ι 1.Q 1 二 예산과 경복궁이다. 노력이 조선시대의 투입되고 ;져 있다. 이 사업 역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궁궐 내에 있는 일제 시대 조선총 도 부 z 아 처 문제 - 를 녹 고 는 } O 철거하는 건물인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렸다 E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이므로 후세를 위한 교훈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지 적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인 경복궁 안의 일재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결국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철거가 결정됐다. 1995년 광복절을 기해 중앙청 건물은 철거됐다. 어느 쪽이 현명한 방향이었는지 사람에 따라 모 의견이 다르고 후대 역사가들이 평가할 끼 있겠지만 경복궁 복원이라는 드조 '- 원칙에서 본다면 철거는 불가피했다. 찬반 논란 속에서 국가지도자가 어 느 한쪽을 결정했던 것도 역사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정희 대 토 려 구 로 O 시절이었던 1968년 콘크리트 세워진 광화문을 철거해 새로 만 드 는 문제에 대해서도 상딩-한 논란이 벌어졌다. 박정희 시대의 광화문도 끓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정치적 이슈로 확산되기도 했다, 결 국 당시 노무현 정부는 철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찬반을 떠나 이 역 시 광화문 복원이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보 원 광화문 사업은 40년 이상의 긴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을 도 없지 지닌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l-..q_ tδ E프 것으로 생각된다. 광화문 될 현판 이외에 것이다. 정권에 따른 또 다른 논란이 아 고 영향 뾰 m j

103 도 벌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이 어느 시기의 형태로 경복궁을 되살리는가 하는 원칙이다. 이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본다, 1888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한 이후 1907년 궁궐로서 의미를 상실 한 이전까지의 상태로 경복궁을 복원한다는 것이다. 당초 복원 사업의 취지 가 일제 강점기 때 변형 훼손된 경복궁을 그 이전 모습으로 되살린다는 것 이었기 때 문이다 광화문 현판의 글씨를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의 논란도 이 원칙에 따라 풀어갔으면 한다. 2010년 광화문을 복원할 때 현판 글씨를 놓고도 의 견이 엇갈렸다. 원래의 광화문 현판이 있었다면 이견이 없었을 터이지만 현 판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디지털 분석 등에 의거해 새로 제작해 걸었다. 광화문 현판을 한자로 하느냐 한글로 하느냐에 대한 의사 결정은 이 때 이미 이뤄진 것으로 보고 싶다. 이후 현판에 균열이 발생해 새로 제작해야 하는 상황 이 발생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현판 제작을 잘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다. 현판을 잘못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 만 현판과 관련해서는 좀 더 심혈을 기울여 균열 없는 현판을 제작하면 될 일이다. 물론 오늘의 논의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왕에 새로 현판을 제작 하게 됐으니 한글이냐 한자냐를 놓고 다시 논의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광 화문 현판도 경복궁 복원의 일부라는 점에서 이미 결정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1888년 시절의 경복궁과 광화문을 복원한다는 전체 사업 의 취지에 맞춰 한자 현판 쪽으로 가야 한다

104 광화문 현판은 지금 여기 의 우리 한글로 써 야한다 황동열(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재청 이 지난해 11 월 16 일부터 1 2월 25 일까지 만 1 9 세 이상 4대궁 및 종묘 방문객 2000 명(면접)과 성인남녀 3000 명(전화)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5000 명 중 f 한글로 써야 한다 f 는 답변이 58.7%, l 한자가 옳다 l 4 1.3% 라는 결과를 얻었다. 특히 여성 (56.9%) 과 20 대 (55. 3%), 30 대 (54.9%) 의 젊은 층에서 한글 l 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았다. 반면, 문화재 전문가를 대상으로 자문한 결과는 한자가 월등하게 높았다 고 한다, 오늘 이 토론회는 바로 문화재 전문가를 중심으로 어떤 글씨체를 어떻게 쓸지에 관해 의견을 듣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신 중하게 검토해야할 사안이 있다. 첫째, 광화문 현판문제는 문화재분야의 전문가만의 과제는 아니라는 점 이다. 광화문은 문화재이면서 여러 차원의 국가적 역사적 현대적 할을 갖고 있다. 유형과 무형, 보전과 활용, 문화산업과 관광, 국가이미지 01 포함될 수 있다. 여 I 등 문화재 차원만의 역사적 고리로 본다면, 광화문을 중심으로 다시 조선시

105 대로 돌아가면 최적의 답이 될 수 있다는 관념적 연구자 중심으로 논의를 하기에는 우리의 국민역량과 시대적 소명은 높아져 있다. 바로 복원( 復 元 ) 이냐 신건( 新 建 )이냐, 또는 본래( 本 來 )대로 가자는 논리에 대한 반론과 재 해석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바로 이 자리에는 문화재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학적 체계, 민심과 미래의 한국을 그려 볼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전문가는 국가와 국민 역량 을 분석하고 광화문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의 의견 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는 광화문은 분명 유형문화재이며,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중 요한 것이다. 바로 원형보존주의에 입각한 원형보존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 나 가능하겠는가? 발제자가 제시한 완전히 본래의 형태 가 어떻게 가능하 겠는가? 건립 당시로 돌아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며, 당대의 원형을 유 지하기 위해 현재 상태에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너무 원 론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화재는 굳이 원형 본래대로 돌아가야 하는 가 에 대한 문제이다. 문화재 복원에서 세계 선도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다른 사례 를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건축과 예술의 도시이다. 복원과 보존은 과거 인류문화유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의 원동력이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시간으로부터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핵심이 보존과 복원이다. 로마와 피 렌체에 국립문화재보존연구원, 보존전문학교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미술대학에서 보존전문과정을 통해 약 여명이 넘는 전문 인력과 복원 - 102

106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피사의 사탑 이 붕괴 위험으로 약 2년간 개방 금지되었으나 복원연구를 통해 기울어진 상태로 유지 가능한 과학적 방법을 개발하여 현재는 관람객 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의 문화유산 복원은 단순히 보존의 개념을 넘어서 관광객이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명소를 만드는 것 이다. 문화재가 보존되는 공간의 복원을 통해 문화를 체험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부여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오르비에또 (Orvietto) 지역은 약 3천년 전에 세워진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오르비에또 두오모(대성당)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88년부터 보존을 위해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있으며, 도심을 오가는 운 송수단은 전기버스가 유일하다. 지역의 목공예 조각품이 가장 큰 특산물이 지만 연간 200 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탈리아 고덕양식의 대성당은 1290년부터 300년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로마 건축물 중에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당의 전면에는 성서의 전 내용을 묘사하는 정교한 대리석 조각과 다양한 미술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세부적으로는 33 개의 건축물, 52 개의 조각품, 90 개 모자이크가 있으며, 당시 68명의 최고의 화가가 작업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성당 안에 있는 르 네상스시대의 프레스코 벽화로 그려진 최후의 심판 은 로마 바티칸 궁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동명의 작품보다 먼저 그려진 것으로 유명하다. 성서의 핵심테마인 종말과 부활, 지옥과 천상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107 오르비에또 두오모의 대문인 청동문은 중세시대의 청동문이 아닌 1960년 대에 다시 제작되었는데, 현대예술가인 에밀리오 그레꼬의 작품이다. 중세 의 고귀한 유적을 현대 예술가에게 의뢰하여 현대인의 감각으로 재창조한 걸작이다. 바로 과거의 도시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창조하여 현대인에게 제공하려는 문화복원의 다른 차원이며, 고대의 도시공간을 현대 의 문화장소로 탈바꿈한 좋은 사례이다. 다행히 이 성당의 건축시기와 기 간, 청동문의 현대적 복원시기와 개념변환은 오늘 논의되고 있는 광화문과 현판의 현상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르비에또 두오모 COrvieto duomo), 정면 청동문 에밀리오 그레꼬 ( ) 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가이며, 1967년에 성베드로바티칸 대성당의 청동문을 제작하였다. 파블 로 피카소는 에밀리오 그레꼬는 유럽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으로 격찬하였다

108 서l 번째는 광화문 현판은 광화문이라는 유형문화재 속에 있으면서도 오 히려 무형문화재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와 달리 가변성이 생명이고 순수한 원형의 확인과 보존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 다. 한 연구에서는 문화재보호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러한 원형보존주의의..λR 폐해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무형문화재의 독자적인 이 는 까 을 살릴 - 샤 별도의 법률제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즉 무형문화재 예 셔 는 시 버 이 - ] 케 흐름에 따라 기술과 기법이 변화하면서 시대의 환경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무형문화재는 원형의 판단 자체가 쉽지 l- --, 1동_]_!_ 보유자의 창작에 맡겨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유형문화재보다는 4 τ2 칙의 탄력적 적용이 필요하다. 바로 광화문 현판은 무형문화재 각자장( 刻 字 [lc) 의 고유 기능이다. 넷째는 현판에 들어가는 글씨와 글씨체의 문제이다. 바로 한글과 한문에 대한 선택이고, 또한 한글인 경우 훈민정음 글씨체 또는 현재 글 의 다양한 타이포그래피에서 선택하는 문제이다..λ 고 있는 한 도LλA.._ι 문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변화한다. 알파뱃은 기원전 15 세기에 페니시아인은 22 개 알파뱃문자를 사용하였으나 기원전 1 세기에 와 서 로마인은 24 개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중세에 와서 영국인은 현재와 같이 267] 문자를 사용하였다, 우리 한글도 1443 년 세종 25년에 창제 되었을 때 에는 28글자를 썼으나, 현재에는 24글자를 쓰고 있다. 알파뱃은 사용하면서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모자란 글씨를 추가 하였으며, 우리 한글은 4글 자가 남아서 오히려 줄여서 쓰면서도 의사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

109 므로 문자는 항시 변화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채택 하면 가장 지능적이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사용하게 된다 발제문에 제시하고 있는 생종 팽왕 이나 광 화몬 등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곳의 현실을 바로 경복궁 건립 당시 또는 세종대왕의 한 글 창제시대로 돌아간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발상이다 또한 현재 한글에 사용하고 있는 글씨체는 이미 그 기능이나 아름다움을 통해 이미 전 세계에서 호응을 받았고 이미 국제어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글교육기관은 2,177곳에 달하고 있다. 문화관광체육 부는 세종학당 이라는 명칭으로 1501R 기관을 신설하고 기존 기관 350개를 심의, 인증해 총 soo1r 세종학당을 2015년까지 운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한국어의 언어 영향력은 세계 9위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어능력시험 에 응시하는 사람의 숫자도 1999년 3926 명에 비해 10년이 지난 2009년에는 약 50 배인 18만 932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우리나라 디자이너와

110 예술가들은 이미 한글을 이용한 문화상품과 K-style을 세계 속에 알려 왔으며, 그 중심에는 한글이 있다. 한글로 노래를 부르고, 한글로 디자인된 옷을 입으며, 한글로 표현된 춤을 추고 있다. 한글을 휴대폰에서 천지인 기 법으로 다루는 한국인의 손놀림은 이미 전설이 되면서 IT강국으로 부상하 는데 큰 역할도 있었다,.를.- 그러므로 광화문 현판은 한문이나 한글의 차원보다는 이미 세계어로 각광 받고 있는 한민족 역량의 크기만큼이나, 또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국 가이미지라는 차원에서 지금과 여기 그리고 우리 의 한글을 써야한다. 또 한 글자체도 국민의 의견을 물어 현재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디 자인을 선택하여야 한다. 국민의 의견은 관념이 아닌 바로 소통이기 때문이다. 광화문과 현판은 과거에 만들어 졌지만 과거는 그 시대의 현재였다. 우 리가 걷고 있는 현재는 미래의 과거가 될 것이다

111 광화문 현판 글씨 선정에 대한 토론의견 이 훈(한양대 교수) 광화문 현판글씨를 한글로 할 것이냐, 한자로 할 것 이냐에 대한 매우 흥 미 있고 깊이 있는 논쟁에 참여하게 되어 큰 영광이지만 한 편으로는 매우 큰 부담입니다. 두 분의 주제문을 보면서는 더욱더 논쟁의 심각성과 첨예함 때문에 토론의 부담이 배가되었습니다. 저는 레저관광학이 전공이라 관광매력과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자 합니다. 우선 이런 논쟁자체가 관광의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한자든 한글이든 논쟁 없이 선정되었다면 그것에는 이 야기 소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호주의 오페라하우스는 아름다운 모습만으로 매력을 끌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오페라하우스가 지어지는 과정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이외른 우촌이라는 멘마크 출신 건축가는 1957 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현상설계에 선정됩니다. 1959년에 구조적인 문제로 재설계를 하였고, 1966년 주 의회에서 건축비용과 정치적인 문제로 논쟁이 되어 프로젝트를 사임하고 이후 호주를 다시 방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 지만 프로젝트 책임자와 심사위원들에 의해 완공되어 1973년에는 영국여왕 이 참석하여 개관식을 합니다. 2007년에는 창조성과 아름다움으로 세계문화

112 유산으로 등제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외른 우촌은 마지막까지 오페라 하우스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는 오페라하우스의 경관 뿐 만아 니라 가이드에 의해 항상 소개되는 이야기가 되었고 건립에 관한 서적으로 만들어져 읽혀지고 있습니다. 0 느 二.J_ E프 우리의 논쟁도 광화문 현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쁘 ι 만 아니라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현판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정립하자는 의미 에서 타당하다고 원래의 객관적 가깝게 또 하 한 뾰 째 생각합니다. -r /셔으L ~IT 2 즘 씌 으 이것은 관광의 관점에서 보자면 관광객에게 } 체험할 - 있도록 도와줍니다.처음의 현판모습과 모 - 끼 원래의 광화문 습 이해할 - 있도록 도와줍니다. 미 E 를 통해 광화문이라는 글자의 스토리를 확장시킬 까 - 1 느 二 λa '-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않는 글자로서의 한계와 세종대왕에 대한 존경이 마련으로 남습니다. = - 번째로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국내 관광객에게 쉽게 읽혀지고 친근하 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합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한자가 영어보 다더 어려운 글자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한글이 58.7% 와 한자가 41.3% 를 보이고 있어 한글 에 대한 선호도가 약간 뇨 二 _Q._ 3I '- 것으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방문객에게 읽혀지는 글자가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판의 정통성과 고유성의 님 T 살아있는 으 L 생동감을 여전히 한계로 남 중 - 습니다

113 오늘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한글과 한자라는 글자 가 단지 문자를 선택하 는 것이 아니라 한국역사와 정치 및 민족의 정서를 표현하는 상징임을 알 게 해 줍니다, 또한 이번 선택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사 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전통이 과거가 아닌 정통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역할인 중간자적인 측면에서 양쪽의 의미와 한계를 지적하 는 선에서 그치지만, 오늘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의 열띤 논쟁으로 바람직 한 방향을 찾길 기대합니다

114 광화문 편액은 光 化 門 이 옳다 정필준(서울시 립대 학생) 1. 들어가며 2. 광화문 편액 논쟁 가. 파괴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 이다. 나. 문화재 복원은 전문가에 게 3. 나가며 1. 들어가며 나는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국사를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물관이나 궁궐에 수없이 답사를 가고, 그 건물들 이 가지는 의미와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 정통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나는 이 글 에 들어가기에 앞서 밝혀둔다. 나도 취업 스펙에 목매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공청회에 초대받기 전까지 나는 광화 문 편액 글씨가 이슈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서 토론하기 위해 몇 편의 논문과 신문기사를 참고하였다. 이 자료들을 통해 광화문 편액에 관한 논쟁은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두 가지 문제 에서 기원한 것이라 파악하였다. 이는 바로 이념의 과잉 과 문법 의 오류 문제이다, 이념의 과잉 이란 이념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좌우 대결논리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문법의 오

115 류 는 우리 시대의 문법으로 과거의 일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이해하 는 행위를 통칭한다. 이 글 에서 는 광화문 편액을 한글로 하자는 주장이 범하고 l ~ 二 0 프르 l λλ ""I 문화재 복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다루어보기로 하겠다. 2. 광화문 편액 논쟁 가. 파괴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 이다. 광화문이 현재의 이 름을 갖게 된 시점은 세종 8년 ( 1426 ) 10월 26 일부터이 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이다. 집현전 수찬( 修 擺 )에게 명하여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나, 근정전 (월! 政 嚴 ) 앞 둘째 문을 홍례( 弘 體 ;), 세째 문을 광화( 光 化 )라 하고, 근정전(훨l 政 歐 ) 동랑( 東 郞 ) 협문(혔 門 )을 일화( 華 ), 서쪽 문을 월화 ()]따)라 하고, 궁성( 宮 城 ) 동 쪽을 건춘( 建 츄), 서쪽을 영추( 迎 秋 )라 하고, 근정문(펴IJJ, 攻 門 ) 앞 석교( 石 橋 )를 영제 ( 永 濟 ) 라 하였다JO) 광화문은 1426년부 터 光 化 門 이라는 편액을 내걸고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의 정문 노릇을 해왔다. 즉 光 化 門 은 세종 때부터 사용한 고유의 이름이 다. 조선의 수도로 계획된 신도시 한성 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도로가 계획 되었다. 따라서 그 정문인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광화문에서 흥인지문까 10) 서1종실록 34 권, 세종 8년 10월 26 일 세 번째 기사(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命!,K1'엇 歐 修 擺, 定,}}(삐1힘 휴 r'1 及 橋 t'1!jij11없 職 前 第 - l"j 口 弘 禮, 第 三 1"]1 l 光 化, 動 政 빠씨때씻 껴니 H 판,!)니 日 J1 따?끽싸써 日 建 1~. 11~ 디 迎 秋 ~] 政 l"jrniη폐 H1k 濟

116 지 등의 주요 도로가 생겨났다. 오늘날에도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광화문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한성 - 경성 -서울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울 도로 체계의 기본골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광화문이 서 울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 서 수도 서울, 현대 대한민국의 광화문을 보기 전에 왕조의 법궁 경복궁의 일부인 광화문을 먼저 보아야만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보면 문화재청의 광화문 복원은 일제강점기 훼손된 경북궁 복원의 한 부분이다, 침전권역 의 복원으로 시작된 경북궁 복원사업 은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고 제 모습을 찾음으로써 상징적으로 완성된다.(물 론 아직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지 않았다.) 혹자는 콘크리트로 세워지고 한글 현판이 쓰인 광화문 역시 우리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 라고 하는 것이 과거 어느 시점에서 단절 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타당한 주장이 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문화재 복원 원칙을 먼저 보아야 한다.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중건할 때는 원형을 최대한 기준 시점에 유지한다 는 원칙이 있 다. 경복궁 복원 사업의 기준점은 조선후기인 고종 연간이다. 따라서 콘크 리트 광화문은 적합하지 않았으며, 한글 편액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콘크리트 건축물과 한글 편액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상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는 이제 완전히 해체되어 그 첨탑의 일부만이 독립기념관에 남아 있을 뿐 이다. 문화재청의 광화문 복원과 현판의 교체는 역사의 파괴가 아니라 역사 바 로 세우기 라고 보아야 한다

117 나. 문화재 복원은 전문가에 게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라는 말이 있다. 몇 해 전 실시된 의약분 업의 홍보 문구였고, 요즘에도 의약품의 광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 구이다. 이 말은 각각의 분야를 전문성 있는 이에게 맡기자는 뜻일 것이다. 공청회가 이루어지기에 앞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광화문 한글 편액 의견이 반을 넘는다. 이는 아마도 한글 사용 단체에서 제기한 민족 자 존심 문제와 박정희 테제가 일반인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왜 한자와 한글 사용에 민족 자존심 문제가 등장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일보다 도, 박정희 대통령이 이 논란에 등장하는 이유를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하 지만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은 왜 문화재 복원에 여론조사 결과가 등 장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문화재 복원사업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아니 다. 관련 학계와 전문 기술 보유자들의 정확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일이지, 대중의 감성이나 옛 정치인에 대한 향수가 필요한 사안은 아니다 이미 문화재청의 전문가 집단은 광화문 편액을 고종 시절 경복궁 중건 책임자 임태영의 글씨체로 복원하였다. 하지만 이 편액에 금이 가면서 편액 교체가 결정되었고, 한자 한글 논쟁이 시작되었다. 한글단체에서는 편액에 금이 간 것이 한글을 사용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당히 감성적인 주장이다. 광화문 편액에 금이 간 이유는 완전히 마르지 않은 송 판을 급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한글로 바꾸라는 하늘의 가 르침 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급하게 하지 말라는 하늘의 가르침으로 보아야 한다

118 3. 나가면서 지난 2000년간 우리는 한자 문화권 안에서 살았다. 중국, 일본, 한국, 베트 남 등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은 한자 를 매개로 하여 많은 것 을 공유했다. 이 문화권 사람들의 이름은 한자로 표기할 수 있다. 이러한 공통된 경험은 오늘날에 이 르러 하나의 자원이다 광화문 이라고 적힌 편액 보다 光 化 門 이라고 적힌 편액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광 화문 이라고 적고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 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光 化 門 이라고 적고 弘 禮 門 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문화를 쉽게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자를 사용한 수많은 기록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한자 역시 우 리 문화의 일부분인 것이다. 만약 이 를 부정하고 한자가 중국만의 글자라 주장하고 배척한다면, 우리 문화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참고문헌 유홍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통일한국 제 254호, 2005 하상복, 광화문의 정치학 ; 예술과 권력의 재현,한국정치학회보 제 43, 집, 2009 황평우, 광화문 편액은 본래의 모습이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119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 광화문 현판 한자 표기론 ( 진태하)에 대한 토론문 갈주성(세종대 학생) 정부는 지난 2010년 5월 6 일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 입법예고를 공고 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법률의 표기를 원칙적으로 한글화 하고, 실체적인 내용을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표현, 지나치게 줄여 쓴 말, 어문규범에 어긋나는 법령 문장 등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한 표현이나 문장은 한눈에 이해가 쉽도록 하여 모든 국민이 법령을 쉽게 읽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국민 중심 의 법률문화를 만든다는 배경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번 중심의 주소기준에서 한글 중심의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바꾸는 등 법률 - 행정적으 로도 좀 더 국민에게 다가서고,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적 취지를 드러내왔 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 는 겉으로는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문화 후진국의 면모 를 보여주고 있음에 씁쓸할 따름이다. 가치와 의미를 논할 수 없는 것이 문 화재이지만, 한글이 창제된 경복궁을 대표하는 건물인 광화문은 존재 그 자 체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자체가 관광객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징건물이 되는 광화문은 단순히 사적 제 117호로 지 정된 경복궁에 속한 건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 광화문의 현

120 판이 왜 본토 중국에서조차 더 이상 쓰지 않는 한자체로 표기 되어야 하는 지, 그리고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야만 문화재로서의 가치 를 인정받을 수 있 다는 건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진태하님의 광화문 한자주의는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 한자 자체에 대한 과욕에서 나 온 것이라 받아들 이기 어렵다. 한글 표기 이름(이대로)조차 한자로 표기하 는( 李 大 路 ) 한자 맹신주의의 문화재 한자 표기론을 어찌 받아들 일 수 있겠 는가? 역사적으로도 비주류 문자였던 한글 은 19세기에 와서 고종의 갑오개혁으 로 인해 공식적인 주류 문자가 되었고 이는 엄연히 조선시대의 산물인 광 화문이 한글로 표기되어야 할 마땅한 역사적인 사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광화문이 한자로 표기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판 한자 사대주의로 여 겨도 무방하며, 이는 소통 중심의 현대사회와 맞지 않다. 진태하님의 한자 투성인 발표문조차 자유로운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光 化 門 을 통한 소통이 아닌 광화문 을 통한 소통을 원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광화문이 光 化 門 으로 표기되었던 시대는 지배층들 이 자신 들 의 우월함을 쁨내기 위해 한자를 쓰고, 그 대가로 중국의 속국 아닌 속국으로 살아야 했 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대였다. 21 세기에 더 이상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 다. 조선의 최대의 보물 한글을 물려받은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현대에 와서도 빛나는 5천년 역사에 빛나는 한반도의 찬란한 유산과 유물은 자랑 스럽게 보존하고 물려주는 것이지, 역사의 권위주의와 패배주의 를 답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진태하님은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는 우리의 조상들 중의 하나인, 동이족 이 쓰던 갑골문에 유래되었으니, 한자 또한 우리나라의 엽적이라고 하고 이

121 E프 E즈 면 그 모 광화문 한자 표기의 주된 근거로 삼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 논 미 를 코걸이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나는 동이족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넉 대로 리 나 이 T 모 골 이어서 라 역사적 사실 관계를 말해보고자 한다. 여 전쟁 뾰 7c 빡 를?]} 강제 고려에 몽골은 육식문화들 본격적으로 /{!_ - ull _Q_ 7' '--- E프 E크 했고, 이후 고려에서는 ~거 1 조리법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전까지 삼국시대 통일신라를 비롯해 고려시대에 육식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 이 λ 프르 <] 비롯해 돼지, 양 --'-- 2 육식문화가 본격적으로 한식 것은 } 의 문화권에 들어오게 된 바로 1 시기였다고 할 - 있다. 그러니 진 고 려의 님 l-_q_ 조2- 고1 태하님의 논리대로 라면 식문화를 이어 t 二 '--- 조선의 불고기는 2 아 으 가 우리 빼 4냉 _Q_ 까 1 I므L 의 것이 되어야하지 식문화에 있어서 전반적인 -, I l.!.._ i 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불고기는 몽골의 음식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면 어떻게 반론 할 것인가. 따라서 갑골문이 한자의 원형이었다는 주장의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한자 z 자 은 T 의 형성에 관여했으니 한자 또한 우리의 문자라는 애초에 논지에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현판이 달린 광화문은 분명히 유효하며 타당했다. 앞서 언급했던 :;z... --'- 선시대,조선의 '- - '- 고, ' l - '--- 말이다. 현재의 그러나 임금 고종이 갑오개혁을 실시하기 전 한자가 국문이었을 흐르고, 시대가 변하듯 문화재 또한 이에 순 역사가 공간과 시간에 동이족, 한자를 쓰는 맞춰서 한족이 존재해야 한다. 없다.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에는 국민은 때 하 - ;?}프관듀L 걷~ CJ c. 1 '='- 세종대왕이 창 제한 글자, 한글을 쓰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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