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C. o. t. e. n. t. s. 진정한인간다움을실현하는교육 옛날 한토( 漢 土 )의 기자( 基 子 )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 孔 子 )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 仁 )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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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범회보 제 41호 겨울호

2 Prologue C. o. t. e. n. t. s. 진정한인간다움을실현하는교육 옛날 한토( 漢 土 )의 기자( 基 子 )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 孔 子 )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 仁 )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송년사 역사의진실 보여주는백범정신 Special Column 카이로선언과백범김구 Special FOCUS I 카이로선언에한국독립약속조항은어떻게들어갔는가? Special FOCUS II 국제법적관점에서본카이로선언의영토주권회복의문제 OUTSIDE FOCUS 대한민국임시정부고난의긴여정,전장( 鎭 江 ) 창사( 長 沙 ) 시선집중 I 인천감리서터를독립운동의역사교육장소로활용해야 시선집중 II 한국광복군과미국OSS의공동작전에관한역사연구 인연( 因 緣 ) 여성의독립운동참여와대한민국임시정부지원에앞장선김순애선생 역사의 현장 충남예산의윤봉길의사기념관 Close-up 김준보( 金 俊 輔 )의토지개혁론요강 다시 읽는 백범일지 I 2013년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다시 읽는 백범일지 II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수상작 다시 읽는 백범일지 III 조국을위하여나를위하여 다시 읽는 백범일지 스페셜 인터뷰 부산양정고등학교강문도교장 줌인, 현장 속으로 I 백범의아들김신회고록 조국의하늘을날다 출판기념식 줌인, 현장 속으로 II 백범김구기념관제3회작은음악회 줌인, 현장 속으로 III 백범김구기념관이동전시 백범의길,통일의길 백범김구기념관 News 참여 마당 QuizQuiz통!통!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의 중요성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분이다. 나만 일등이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성적지상주의가 아니라 인의예지 ( 仁 義 禮 智 )를 바탕으로 진정한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교육을 추구하셨다. 수능이 끝난 겨울,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곱 씹어 보자. 발행일 2013년 12월 31일 통권 41호 발행인 김 신 발행처 백범김구기념관 사단법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기획 편집 인쇄 (주)성우애드컴 백범회보 에 실린 글 중에는 우리 협회와 의견이 다른 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겨울 03

3 송년사 그래서 독립운동 선열은 당대사를 중요시 하였습니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 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가 그랬 고, 백범 선생 역시 후세에 남기는 글로서 백범일지 를 서술하였습니다. 백범일지 를 통해서 역사의 진실 은 절대 속일 수 없다는 진리 불변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백범 선생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백범일지 에 고스란히 나타났 기 때문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 선열은 불의를 자행하고 비인간적 행태를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당대사 서술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역사의진실 보여주는백범정신 김 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2013년은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였지만 국내외의 상황은 점점 어두워져 작금까지도 밝은 빛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며, 대일( 對 日 )문제 또한 갈수록 첩첩산중입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헌법정신 까지 어겨가면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통해 유사시 한반도 출동을 가시화( 可 視 化 )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999년 제 정된 주변사태법 에 이은 것이어서 우리의 각별한 대책과 관심을 모으게 합니다. 지금 일본은 역사 왜곡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국적( 國 賊 )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를 범죄 자 라고 일컫고 있으니 이러한 망언시리즈는 용납할 수 없으며 우리는 단호하게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 애국지사를 욕보이는 행위는 비단 일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인만을 영웅시하 고 다수의 독립운동가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와 활동을 폄하하는 국사교과서 서술 역시 용납할 수 없는 문 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교과서가 편향된 역사관으로 적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 히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사를 왜곡하는 것은 역사 왜곡을 넘어서 우리나라 헌법정신에 대한 도전이고 모 욕이라 할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사마천은 역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나중 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 前 事 之 不 忘, 後 事 之 師 也 ) 고 했습니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자들은 자신의 약점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장점으로 승화 시키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이 포장의 기억 이 사라지면 역사로 굳어져 버립니다. 이러한 격변의 상황 속에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국민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2013년 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민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특히 올해는 서울시의 협조로 오랜 숙원이었던 경교장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지난 3월에 개관하였습니다. 백범 선 생의 환국 후 처소이자, 국무회의를 개최한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였던 곳인 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적지로 해방 64 년만에 본모습을 되찾은 것입니다. 만사지탄( 晩 事 之 歎 )의 감이 없지 않지만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원 후 많은 국민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교육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백범김구기념관은 김구 선생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들에 의해 날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2년 개관이래 올해까지 100만 명에 육박하는 시민, 학생들이 찾아와 백범 선생의 나라사랑 겨레사랑정신을 배 우고 실천하였습니다. 경향( 京 鄕 ) 각지의 학생들이 단체로 역사체험을 하였으며 외국인들의 방문도 많았습니다. 학 생들과 국군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는 해가 갈수록 참여도가 늘어나고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알차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국내의 의미 있는 각종 학술회의와 시민단체의 행사가 진행됨으로서 명실공히 국민에 게 사랑받는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저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돌아오는 2014년에도 백범 선생의 거룩한 생애와 애국애족정신을 국민과 함께 선양하는데 더욱 힘써 이를 평화통일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성원과 지원을 계속 하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백범 선생은 생전에 학생들에게 역수어( 逆 水 漁 )라는 말의 뜻을 학생들에게 일러주셨습니다. 산 물고기는 아무리 어려워도 자기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해서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반대로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내려갑니다. 죽은 물고기는 목적이 없으나 산 물고기는 목적이 있습니다. 산 고기는 깊은 물도, 얕은 물도, 순한 물도, 억센 물결이나 여울진 종잇장 같은 물도 모로 누워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러분들은 목적 없는 죽은 물고기 가 되시렵니까? 목적이 있는 산 물고기가 되시렵니까?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산 물고기로서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2014년 새해에도 더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 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2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김 신 04 백범회보 2013.겨울 05

4 Special Column 카이로선언과백범김구 조동걸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카이로선언은 1943년 11월 27일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올랐을 때 연합국의 대 표국가였던 미국 영국 중국의 원수인 루즈벨트(Roosevelt) 처칠(Churchill) 장 제스( 蔣 介 石 )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대일전( 對 日 戰 )에서 연합국간의 상 호 협력 문제와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 일본이 침략하고 점령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모든 나라와 섬들에서 물러갈 것을 촉구한 선언이다. 그리고 연합국 대표들 은 한국에 대한 특별조항을 넣어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할 것을 결의한다(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 고 명시하였다. 카이로선언이 있기까지 1939년부터 전개된 제2차 세계대전의 추이( 推 移 )를 먼저 살펴보자. 1941년 대서양헌장과 태평양전쟁으로 연합국의 승리가 전망되었는데 1942년 8월 8일부터 3차에 걸친 태평양 소로몽(Solomon) 해전에서 미국이 승리 해, 한때 일본이 유리하게 보였던 전세를 완전히 뒤엎었다. 이때 일본의 명장 야마 모토 이소로쿠( 山 本 五 十 六 ) 연합함대사령관이 전사하였고 이어 아쓰츠수비대가 전멸하였다. 마킹다라와 수비대의 전멸, 비르마 전선에서 일본군의 연전연패에 이 어 사이판 경비대마저 전멸하자 1944년 7월 18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도조 히 데키( 東 條 英 機 ) 내각이 총사퇴하였다. 그 후 일본은 연일 B29의 공습을 받았고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었다. 3일 후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자 이튿날인 8월 10일 항복을 결정했다. 이날 일본은 소련에 항복 절차를 밟아줄 것을 전문으로 부탁했다. 그 전문을 연합군이 듣고 중국에서는 8월 10일 에 일본이 항복한 것으로 이해했다.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다만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전방 시찰차 서안에 갔다가 이를 알고 광복군 의 본토 진격 전에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임시정부의 발언권이 약화될 것을 염려 했다는 내용이 백범일지 에 실려 있다. 그런데 카이로회담에 모인 미국 영국 중국 원수들이 아시아 태평양문제를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을까? 이는 중국의 이해와 직결된 것으로 장제스가 일일이 문제를 제기하여 거론한 것이었다. 한국의 독립 을 독립문단으로 명시한 것도 장제스의 주장을 따른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제스은 원래 대한민국임시정부 에 대하여 냉담했었다. 1930년 중국 국민당대회에서 동 삼성 한교( 韓 僑 )문제 를 논의해 달라고 부탁하자 거절할 정도였다. 이런 그가 1932년 이봉창 윤봉길의 의열투쟁 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특히 중국 의 백만 군대도 이기지 못한 일본군을 격멸시킨 김구가 중심이 된 한인애국단에 탄복을 했다. 그리하여 김구- 장제스회담 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후 장제스는 중국 군 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했으며 국민당을 통해 김구 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국군관학교를 다니 면 특수 기능을 함양할 뿐만 아니라 중국군과 같은 연 봉을 받으므로 실질 소득이 적지 않았다. 이런 특별한 관계가 있었으므로 1943년 카이로회담이 열릴 때 김구가 장제스에게 한국의 독립을 명시해 줄 것 을 당부하자 장제스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카 이로선언에서 다른 문제와 함께 언급하지 않고 의도성 이 강하게 나타난 독립문단으로 한국의 독립을 명시했 던 것이다. 카이로선언은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명시된 최초 의 문서로서도 의미가 크다. 한국문제가 국제적으로 논 의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전후 열국이 대한제국과 통 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는 1902년 영일동맹 이후로 1905년에는 미국과 테프트-가츠라( 桂 ) 협정을 맺으면서 논의되었다. 3 1운동 당시 미국 상원에서 한국독립문제가 제기되어 한국이 독립하면 소련의 우산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했 을 때, 이승만이 미국의 위임통치를 받으면 될 것 아니 냐 고 했다가 신채호 김동삼 등의 독립운동자로부터 신 랄한 비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처럼 한국문제가 국 제적으로 논의되어도 제대로 알지 못해 불리한 형국이 었는데 카이로선언에서 비로소 한국의 독립을 명시하 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 라는 전제다. 이때 미국 일각에서는 잠정적으로 국제 관리를 하다가 독립을 할 것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 었다. 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1944년 5월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에서 동포들이 자유한인대회( 自 由 韓 人 大 會 ) 를 개최했다. 해방 후 어떠한 국제 관리도 허용하지 않는 다는 민족의지를 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 는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 으로 나타났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신탁통치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국자( 國 字 )1호와 국자( 國 字 )2호를 발표, 한국인은 한국에 주둔 한 미군의 군정을 따르지 말고 임시정부의 행정을 들으 라고 공표하였다.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정세가 앞을 막았 다. 1946년 1월 1일 반도호텔에서 김구-하지회담 이 열 렸다. 회담이 결렬되면 하지미군사령관은 임시정부 요인 을 포로수용소에 감금했다가 중국으로 추방할 예정이었 다. 숨 막히는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회담을 결렬시킬 수 는 없었다. 그리하여 임시정부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자유롭게 전개한다는 조건에서 국자( 國 字 )1 2호를 철회 하였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김구는 신탁통치안을 묵살 하고 1948년에 남북협상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카이로선언은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천명한 최초의 문서로서 김구가 발의하여 마련한 것이 다. 그런데 한국의 독립을 챙겨야 할 단계에 이르러서는 국제연합의 신탁통치안으로 둔갑, 카이로선언의 본뜻을 역행하여 김구는 임시정부의 국자( 國 字 )1호와 2호의 공 표로 본래의 의도를 소생시켜 남북협상으로 한국의 통 일 독립의 길을 개척하였다. 06 백범회보 2013.겨울 07

5 Special FOCUS I 가 카이로선언에 비중 있게 다뤄진 것은 다소 의외였다. 한국과 같은 아 시아 국가인 중국 국민당 정부가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독립조항이 들어 가게 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2 자국의 식민지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 던 처칠은 식민지 독립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는데 이를 무력화시킨 것 은 장제스였고 루스벨트는 장제스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 동조했다. 한국 카이로선언에한국독립약속조항은 어떻게들어갔는가?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카이로선언의 의미 1943년 11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모인 미국의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와 중국의 장제스( 蔣 介 石 ), 영국의 처칠(Winston Churchill) 3거두는 한국의 독립이 인 듀 코스 (in due course)로 달성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 듀 코 스 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독립을 유보하며 과정적으로는 모종의 절차를 거친 뒤에야 독립이 달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종의 절차란 루스벨트의 탁치안( 託 治 案 )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립 유보조항에 대해 김 구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세력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렇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대한(조선; 일본은 대한제국의 대한을 부정 하고 조선이라 부름)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약속된 것은 1943년 카이로회담이 처 음이었다. 이러한 독립약속은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국내외에서 간단없이 투쟁했던 우리 독립운동 세력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특별히 카이로선언의 독립조 항은 김구가 중국의 장제스를 움직여 얻어낸 측면이 없지 않다. 카이로선언의 공로자: 김구와 장제스 1943년 11월 말 이집트 카이로에 모인 미-영-중 연합국 회담의 중심의제는 유 럽전쟁이 아닌 아시아 태평양전쟁이었다. 연합국 수뇌 회담에 새롭게 참가한 중 국은 유럽전쟁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회담의 중심의제는 군 사전략적인 것이었다. 즉 일본에 대한 3개국 공동의 군사행동과 일본의 항복 촉 구, 그리고 일본 점령지역에 대한 전후 처리 문제가 주요의제였던 것이다. 1 그 결 과 12월 1일 발표된 카이로선언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노예상태에 주목해 적절한 유예기간과 과정을 거친 후에(in due course) 한국 독립이 약속되었다. 한국문제 독립 약속은 1945년 7월 포츠담회담에서도 재확인되었으며 마침내 1945 년 8월 광복이 찾아왔다. 따라서 한국 독립의 단초를 열었던 카이로선언 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독립을 향한 의지를 국내외에서 투쟁을 통해 표명함으로써 이 러한 독립 약속이 얻어진 것이었다. 국내에서의 끈질긴 독립운동,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의 줄기찬 항일 무장 투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한국광복군 의 대일항전, 그리고 민족의 잇단 의거 활동 등이 없었다면 연합국이 우리에게 독 립을 계속 약속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것들이 있었기에 연합국 지도자들은 카이 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약속했다. 따라서 위에서 열거한 모 든 국내외 항쟁이 복합적-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광복으로 귀결된 것이다. 우리 민 족의 간단없는 독립 운동과 강렬한 독립 의지가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카이로선언은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이다. 열강의 한국 국제 공동 신탁통치 합의 대신 한국 독립이 보장 된 것은 백범과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이 쟁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물론 신탁통 치는 추후에 합의되지만 만약 신탁통치부터 합의되었다면 카이로선언과 같은 한 국에 대한 독립 약속이 추후에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독립보장공 약이 먼저 나온 것은 한민족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므로 임시정부 외교 활 동을 칭찬해 주어야 마땅하다). 카이로 선언의 한국 독립보장은 임시정부의 지속적인 투쟁과 외교활동의 결과이 다. 또한 이를 수용해 국제회의에 반영시켜 주었던 장제스 총통의 공로가 반영되 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국민의 항전기간 중 피와 땀[ 血 肉 ]으로 얻은 국제적 발 언권이 역시 부차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3 장제스는 한국독립이 일본의 對 中 침략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4 지지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루 백범 김구 선생과 장제스의 회담 장면 (기록화, 백범김구기념관 소장) 01 장세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과의 관계, 한국근현대사학회-국가보훈처 (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80주년 기념논문집 (서울: 한국근현대사학회- 국가보훈처, 1999), 262쪽 02 余 季 彦, 카이로(Cairo) 會 談 硏 究 : 中 國 國 民 黨 政 府 와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의 역할을 中 心 으로( ), 韓 國 學 中 央 硏 究 院 韓 國 學 大 學 院 政 治 學 專 攻 碩 士 學 位 論 文, 2010, 70쪽 03 胡 春 惠, 韓 國 獨 立 運 動 在 中 國 ( 臺 北 : 中 華 民 國 史 料 硏 究 中 心, 1976), 315쪽 04 신용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카이로선언, 한국근현대사학회-국가보훈처 (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80주년 기념논문집 (서울: 한국근현대사학회- 국가보훈처, 1999); 신용하, 백범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카이로선언, 백범 김구의 사상과 독립운동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 228쪽 장제스 08 백범회보 2013.겨울 09

6 스벨트를 비롯한 미국인들이 비록 토를 달기는 했지만 종국적으로는 한국독립 에 찬성한 것도 이 조항이 가능했던 요인이었다. 루스벨트는 대서양헌장과 카사 블랑카성명 등을 통해 약소국의 독립을 전쟁의 목적으로 선언했었으므로 5 카이 로에서 한국독립을 선언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당시 연합국의 입장에서 일본패 망 이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순리라고 생각했을 가능성 이 있었다. 라고 반문했다. 이런 정 은 오직 현판을 박구어다는데 지나지 안는 것이다 라고 평가했다. 9 이 당시 중국에서는 전후 한국은 중국의 위임통치하에 있게 되리라 는 루머가 나돌기도 하여 망명인들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10 한편 한반도 내에서는 일제가 엄격히 보도를 통제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언급한 카이로선언을 유언비 어로 매도해 11 한국민의 귀와 눈을 왜곡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파방송이나 망명정객과 접촉했던 소수 인사들은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머지않아 해방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인 듀 코스 라는 구절을 직접 접하지 못하고 중국어로 된 번역에 의존하여서 빠른 시일 안으로 (in a few days), 조속히 (very soon; 루즈벨트 김구의 카이로선언에 대한 반응: 독립약속은 찬성, 독립유보는 반대 백범은 한국에 대한 독립보장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기쁨과 동시에 적 당한 시기 라는 문구가 신탁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했다. 이에 대한민 국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1943년 12월 5일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 고 적당한 시기 가 어떻게 해석되든지 간에 이 표현을 반대하며, 일본이 붕괴되는 그 즉시 독립 을 얻지 못하면 상대가 누구든지 역사적 전쟁 을 계속할 것이라고까 지 반응했다. 김구는 자유중국에 있는 일천여 자유 한인은 당연한 순서(in due course의 번역; 인용자) 라는 발표에 격분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던 것이다. 만 一 련합국이 제 二 전쟁 세 한국의 무조건 자유독립을 부여하기를 실 할 에는, 우리는 엇던 침략자나 는 침략하는 단체가 그 누구임을 물로 하고 우리 의 력사적 젼 을 계속할 것을 결심하엿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스스로 통치 하 며 우리 조국을 지 할 지력과 능력을 동등으로 가 으, 우리는 다른 족속 우 리를 다스리며 혹은 노예로 사믄것을 원치 아니하, 우리는 엇던 종류의 국 제지 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당연한 순서 라는 말을 엇더케 석하던지 그 표 시를 조아하지 안는다. 우리는 반드시 일본이 붕괴되는 그 에 독립되어야 하것 이다. 그러치 안으면 우리의 ㅅ사홈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변할 수 업 shortly) 등의 의미로 오역하였기 때문에 해방이 되면 즉시 독립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12 맺음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카이로 선언 중 즉시독립 유보 조항 에 대해 위와 같이 즉 각적으로 반대했다. 김구의 위와 같은 반대는 1945년 12월 말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한반도 신탁통치 실시 발표에 따른 반탁운동 주도와 연결되었다. 그는 중 경시대부터 신탁통치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으므로 1946년의 시점에서도 이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구는 제2의 독립운동을 한다는 자세로 반탁운동을 주도했으며 1947년 가을 미국이 신탁통치안을 파기함으로써 결국 신 탁통치 없는 즉시독립을 얻어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침략으로 빼앗겼던 失 地 를 회복할 수 있었으므로 중국 외교사상 공전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카이로선언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등 일본의 침략으로 유린되 었던 동아시아의 정의는 바로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독립은 잠시 유보되어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독립을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처칠 는 목 이다. 6 임정요인들은 인 듀 코스 라는 표현에서 국제공영안을 연상해, 이의 공식적 해명 을 요구하고 7 그것이 즉시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한다고 역설했다. 8 신한민보 사설에서는 당연한 순서 라고 번역하면서 이는 적당한 순서 라는 말 인데 三 대련합국은 한국인이 반드시 독립되어야 할 것을 늑기고 결의한 것이라 각는다. 그럼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하야는 세계의 평화를 속히 회복키 위하야 엇던 순서를 밟을 필요가 업는줄 믿는다 면서 만일 한국을 일본의 수중에서 탈취 하야 잠시일망졍 다른 엇던 견제하에 둔다 하면 한인이 이에 만족 할 듯 한가 05 정일화, 카이로선언 (대한민국 독립의 문), 한미안보연구회 총서 2 (서울: 선한약속, 2010), 72 쪽, 쪽 06 <카이로회의 발표에 대한 김구씨의 성명> 신한민보 1943년 12월 9일, 1면. 광복 전의 반탁운동은 역사적 전쟁으로 규정되었지만 광복 후에는 임정세력의 정권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미군정에 의해 좌절되었다. 주도권 쟁탈을 위한 반소-반공운동이며 좌익에 대한 세력 열세 만회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탁운동은 반제-반외세 독립운동이 아니라 한국인 내부의 세력 다툼의 일환이 되었다고 정용욱 교수는 평가했다. 정용욱,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역사비평 통권 62호 (2003년 봄), 315쪽. 07 FRUS, 1943, vol. III, p 김성숙, <오호! 임정 30년 만에 해산하다>, 월간중앙 (1968년 8월), pp <카이로선언과 한국문제>, 신한민보, 1943년 12월 9일, 3면; 월간신동아편집실 (편), 1979 한국현대명논설집,동아일보사: 서울, 쪽 10 FRUS, 1943, vol. III, p 매일신보, 1945년 8월 3일; 近 藤 一 ( 編 ), 1961 太 平 洋 戰 下 終 末 期 朝 鮮 の 治 政 ( 朝 鮮 史 料 編 纂 會, 東 京 ), 53-54쪽 12 United States Armed Forces in Korea, History of United States Armed Forces in Korea, Manuscript in Office of the Chief of Military History, Washington, D.C. (Seoul and Tokyo, , part I, chapter III, p. 5; part I, chapter IV, p. 21; FRUS, 1945, vol. VI, p. 1049; Hoag, op. cit., pp ; Bruce Cu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 vol. I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 486쪽 박헌영은 이를 최초의 과오로 지적했는데 그런 오해가 모스크바결정이 카이로선언 위반이라는 추론을 불러일으켜 반탁운동을 부채질 했다. (박헌영, <자주독립완성을 위하야 ( 一 )>, 조선인민보, 1946년 6월 14일) 10 백범회보 2013.겨울 11

7 Special FOCUS II 국제법적관점에서본 카이로선언의영토주권회복의문제 유롭게 독립하는 부분이다. 카이로 선언 중에 조선의 영토주권 회복에 관련된 부분 은 일본은 자신이 탐욕과 힘에 의해 탈취한 모든 다른 영토로부터 일본의 통치권은 축출될 것이다. 라는 구절 과 세지도자들은 조선 인민들의 노예화에 유의하여 적 당한 과정(in due course) 을 통해 자유 독립하게 될 것을 결의 한다 는 구절이다. 이 문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독도는 상기 카이로선언에서 탐욕과 폭력 에 의해 모든 약취된 영토에 속한다고 본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중국의 장제스,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조선 영토주권회복의 최초의 국제적 약속 2013년 12월 1일은 카이로선언이 발표된지 70주년이되는 날이다. 카이로선언은 일제 식민지 36년의 쇠사슬을 끊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약속한 최초의 국제문서 이다. 조선의 자주 독립뿐만 아니라 일본의 폭력과 강압에 의해 탈취한 영토로부 터 일본은 물러나야 한다는 조선 영토주권회복의 최초의 국제적 약속이다. 이 카 이로선언 영토주권회복 약속은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선언에 의해 재확인되었 다. 일본은 식민지 모든 영토로부터 무조건 철수하여야 한다는 영토주권 회복 약 속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이어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 문서의 공식 서명으로 국제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어 이것은 1945년 9월 6일 미국의 초기 對 일본 방침 으로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연합국 극동사령관인 맥아 더 사령관은 카이로선언 및 포츠담협정 합의사항인 영토주권회복조치의 이행조 치로서 1946년 1월 29일 SCAPIN 677호를 발했다. 본고는 독도영유권의 국제법적 논거로서 카이로선언의 영토주권회복 과정을 구체 적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일본의 부당한 논거인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와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제2조 1항의 문제점도 논박한다. 카이로선언의 영토주권회복 과정 먼저 카이로선언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카이로선언 중에서 영토주권 회복문제는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이후 태평양에서 중국이 일본에 의해 점령당한 섬 및 탈 취당한 영토들의 주권회복 그리고 폭력과 탐욕으로 약취한 모든 영토로부터 일본 의 철수 그리고 조선인민의 노예상태에 유념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처 조선을 자 카이로선언을 재확인한 포츠담선언 둘째로 카이로선언을 재확인한 포츠담선언을 살펴보자. 포츠담선언의 제8항은 다 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일본국의 주권 은 본주( 本 州 ) 북해도( 北 海 島 ) 구주( 九 州 ) 사국( 四 國 )과 우리들이 결정하는 제 소도에 국한될 것이다. 이 포츠담선언에 의하여 전후 일본의 영토는 본주 북해 도 구주 사국과 우리들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 로 한정되었다. 독도가 일본영토가 되려면 그 후 연합국이 일본영토라고 결정하는 제소도에 독도가 포함되어야 하는 조건 이 여기서 명확히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독도는 1905년 2월 일본이 대한제국 으로부터 탐욕에 의해 약취한 섬이며, 이 포츠담 선언이 있은 후에 연합국 최고사 령부가 독도를 다시 일본영토로 결정한 일이 없었다. 물론 이 포츠담선언도 그 자 체로는 4대 연합국간의 공동선언에 불과하여 그 당시 일본에 대해서 구속력을 가 진 것은 아니었다. 셋째로, 항복 후 미국의 초기 對 일본 방침 에서도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포함시키 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 주요한 문제는 독도가 포츠담선언 제8항에서 말하는, 후 에 일본영토로 규정할 우리들(연합국)이 규정하는 작은 섬들 에 포함되었는가의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연합국의 하나인 미국정부는 일본 항복 직후 1945년 9월 6일 미국의 초기 對 일본정책 에서 연합국의 합의를 충실히 승계하여 다음과 같 이 일본의 영토를 규정하였다. 일본의 주권은 본주 북해도 구주 사국과 카이로선언 및 미국이 이미 참가하였 고 또 장래에 참가하는 기타 협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주변의 제소도(minor outlying islands)에 국한된다.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하고 같은 해 9월 2일 항복문서에 조인한 후, 동경에 연합국 최고사령부(GHQ)가 설치되어 일본의 통치를 담당하자, 연합 12 백범회보 2013.겨울 13

8 탐욕(greed)과 국 최고사령부는 포츠담선언의 제 규정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연합국 가운데 일 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에 의한 독도 선점조치가 힘(force)에 의해 탈취한 영토에 해당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일본은 이 시마네현 제40호 고시를 통해 무주지인 독도 섬을 선점하고 이를 근대행정체제로 본 통치에 대하여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던 미국정부는 연합국 최고사령부에 대한 훈령으로서 1945년 9월 22일 항복 후 미국의 초기 對 일본 방침 을 전달하였 다. 이것은 미국정부의 입장에서,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일본의 점령 관리에서 포 츠담선언과 항복문서의 제 조항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기본 방침을 설명하여 알려준 것이다. 이 항복 후 미국의 초기 對 일본 방침 에서는 일 본의 주권은 본주 북해도 구주 사국과 카이로 선언 및 미국이 이미 참가하였고 또 장래에 참가하는 기타 협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주변의 제소도에 국한 된다 고 규정했다. 이것은 아직 포츠담선언의 실행 측면에서는 진전이 없는 것이었다. 포 츠담선언에서는 일본의 영토를 본주 북해도 구주 사국과 우리들이 결정하는 제 소도 라고 했는데, 이 항복 후 미국의 초기 對 일본 방침 에서는 우리들이 결정하 는 제소도 대신에 카이로 선언 및 미국이 이미 참가하였고 또 장래에 참가하는 탐욕(greed)과 힘(force) 에 의해 탈취한 영토에 해당하느냐의 문제 가 제기된다. 일본은 이 시마네현 제40호 고시를 통해 무주지인 독 도 섬을 선점하고 이를 근대행정체제로 편입했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조선의 고종황제는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칙령41호 에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은 현대 국제법상 권원으로 대체하였 다. 그러나 대체된 새로운 권원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조약 에 의 하여 36년 식민지 기간 중에 사실상 중단되게 되었다. 다행이 연 합국의 일연의 조치로 독도를 포함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분리되 게 되었다. 일본은 1951년부터 독도영유권주장의 논거의 하나로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1항을 제시한다. 일본 관료들은 1946년 1월 29일의 SCAPIN 제 포스담 회담에 참석한 영국의 처칠, 미국의 트루먼, 소련의 스탈린 편입했다고 강변한다 기타 협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주변의 제소도 로 대체된 것뿐이다. 여기서는 소련 이 참가하지 않았던 카이로선언이 강조되고, 동시에 미국이 참가하는 협정에 의 677호에서는 일본의 정치적 행정적 지배구역으로 제외하여 한국에 귀속시키는 섬들로써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명기되어 있었는데, 1951년 9월 8일의 샌 해서 주변의 제소도들 가운데서 어떠한 섬들을 일본영토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 프란시스코 조약에서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있고 독도를 제외시킨 것은 독 정하겠다고 하여 미국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역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아직 일본 도가 일본영토임을 연합국이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한국 의 영토로부터 분리해야 할 제소도들 또는 부속시켜야 할 제소도의 명칭이 언급 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영향력을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방침에서는 카이로선언의 규정이 포츠담선언의 이 받지 아니한다. 비엔나 조약법상 조약은 조약 체약국만 구속하고, 체약국이 아닌 행이라는 간접적 규정력으로 설정되지 않고, 직접 카이로선언을 언급함으로써 독 제3국에 대해서는 제3국의 동의 없이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둘째로 샌프란시스 도를 일본영토로부터 분리해 한국에 반환하는 데 대해서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 코 조약 초안 1-9차 중에서 단지 6차 초안에서 단 1차례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규정했다. 그러나 영국,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의 반대로 무산되어, 7,8,9차에 거 쳐 현재까지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독도는 한일 누구 것도 명시하지 않았다. 제 영토주권 회복의 구체적인 조치가 된 SCAPIN 677호 6차에서 일본의 것으로 명문화 된 것도 일본의 집요한 로비가 있었다는 것은 명 넷째, 위의 카이로선언, 포츠담협정 제8항, 항복 후 미국의 초기 對 일본 방침 백히 드러났다. 에 의거하여 영토주권 회복의 구체적인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조치가 SCAPIN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3년 12월 1일 카이로선언의 영토주권회복 선언을 시 677호이다.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연합국의 위와 같은 원칙과 방침에 의거하 발로 1948년 8월 15일 재독립하여 대한민국정부가 이미 독도를 미군정으로부터 여 1945년 9월부터 1946년 1월까지 약 5개월 간 연구 검토 끝에 SCAPIN 제 인계받아서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의하여야 한다. 연합국최고사령 677호를 결정 발표하여 일본으로부터 분리해서 원소속으로 반환해야 할 영토 부는 SCAPIN 제677호로서 1946년 1월 29일 독도를 한국영토로 판정하여 일 를 규정하였다. 독도는 이 SCAPIN 제677호에 의해 한국영토로 판정되어 일 본으로부터 제외하여 주한미군정에게 이관시켰고,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본의 정치적 행정적 지배지역으로부터 분리되어 한국(당시는 주한미군정)으 수립되자 한국 영토인 독도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대한민국에 인계, 인 로 반환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 수하였다. 이처럼 카이로선언은 대한민국이 자주독립 국가의 영토주권회복을 하 호 의한 선점조치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1항을 근거로 독 는 과정에서 어려운 고비마다 장애물을 제거하는 국제법적 근거로서 결정적 역 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여기서 그 문제점을 논박한다. 우선 일본이 1905 할을 하였다. 14 백범회보 2013.겨울 15

9 OUTSIDE FOCUS 중 국 대한민국임시정부고난의긴여정, 전장( 鎭 江 ) 창사( 長 沙 ) 중국에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과 백범 김구의 발자취 IV 박걸순 충북대 교수 한국근현대사 ( ~ ) 충칭 치장 ( ~ ) 류저우 ( ~ ) ( ~ ) 창사 ( ~ ) 전장 상하이 항저우 ( ~ ) ( ~ ) 광저우 ( ~ ) 남중국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동경로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상해를 떠나야만 하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항저우 ( 杭 州 ) 전장( 鎭 江 ) 창사( 長 沙 ) 광저우( 廣 州 ) 류저우( 柳 州 ) 치장( 綦 江 )을 거치는 8년간의 장정 끝에 1940년 충칭( 重 慶 )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의 우리 국민들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잘 알아도 임시정부가 고난의 긴 여정 길에 잠시 거쳐 간 도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 여정은 고난의 길이었으나, 한편 조 국의 독립 쟁취를 위한 희망봉을 찾는 길이기도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전장과 창 사지역에서 전개한 임시정부의 활동과 유적지 현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황 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전장 임시정부 청사 1935년 11월 항저우를 떠난 임시정부는 난징( 南 京 )으로 향하였으나, 약 60km를 남겨 두고 전장에서 발걸음을 멈 추는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일본의 강력한 견제를 받은 중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난징 진입을 막았기 때문 이다. 이후 임시정부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11 월까지 약 2년 동안 전장에 청사를 두었다. 현재 전장지역 내의 임시정부 유적은 흔적조차 남아있 지 않다. 임시정부가 항주를 떠난 이유는 상하이와 항 저우에 있던 일제 특무조직의 대대적 색출 작전인 이른 바 호항연선대행동( 滬 杭 沿 線 大 行 動 ) 을 피하기 위한 것 이었다. 따라서 임시정부의 이동과 정착은 철저한 비밀 에 붙여졌다. 현지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동해 온 사실조차 몰랐다. 전장지역 내 임시정부의 유적지를 수년간 조사한 바 있 는 현지 중국인 향토사학자 이식중( 李 植 中, 鎭 江 市 誌 辦 公 室 연구원)의 조사 보고는 전장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 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게 한다. 1937년 당시 초등학 교 5년생이던 이식중은 중국식 실크 옷을 입은 성이 김 씨인 한국인 한 분이 이사장( 楊 公 崖 )의 초청으로 학교에 와서 조선 망국의 참상 이라는 연설을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당시 교사들의 구술을 통해 이 한국인이 김구인지 단정할 수는 없으나, 임시정부의 책임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성보안처( 省 保 安 處 ) 관리 출신 노인들을 찾아가 임시정부가 수륙사항( 水 陸 寺 巷 ) 공익리( 公 益 里 ) 에 있었으며, 성보안처 항치장( 項 致 莊 ) 처장이 비밀리에 권총으로 무장한 6명의 보안요원을 파견하여 임시정부 와 요인들의 거주지를 지켜주었다는 귀중한 증언도 받아 냈다. 이식중은 여러 차례 수륙사항을 답사하며 70세 이 상 노인들을 면담한 결과, 임시정부가 전장에 있을 무렵 정부 기관에서 불과 1백 미터 거리에 있던 공익리에 유 씨 성을 가진 중국인 집의 방이 11채가 되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즉, 이 집이 임시정부 청사로서 정부 기관과 김구와 임시정부 활동지로 조성된 창사 남목청 가까워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며, 방이 여러 채이고 공간 도 넓어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이 거주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아 구전조차 확인할 길이 없는 실정이다. 전장시기 임정 요인들의 활동지였던 난징 이 시기 임시정부 청사는 전장에 있었으나, 요인들의 활 동 무대는 국민당 수도였던 난징이었다. 난징은 장쑤성 ( 江 蘇 省 )의 성도로서 중국 7대 고대도시의 하나로 손꼽 히는 곳이다. 난징은 1851년 태평천국의 난 이후 태평천 국군의 수도,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의 임시 수 도, 1927년 이후에는 중국 국민당의 수도가 자리한 정 치적 요지이다. 한편 난징은 중국근현대사에서 파란만장하고 아픈 역사 의 현장이기도 하다. 1842년, 난징은 역사상 가장 부도 덕한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아편전쟁의 결과 청( 淸 )이 유 럽에 굴종한 불평등한 난징조약의 현장이었다. 또한 난 징은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까지 30여만 명의 중국인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이른바 난징대학살 이 자행된 곳으로서, 20세기 제노사이드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먼저 난징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임 16 백범회보 2013.겨울 17

10 만 60세가 된 백범이 은전 이라 표현한 것은 모친께서 백범에게 앞으로는 너 라고 하지 않고 자네 라고 부르고,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회초리를 쓰지 않고 말로써 꾸짖겠다고 한 것이었다 난징 주화대표단( 南 京 駐 華 代 表 團 ) 건물과 요인 시정부 이전의 김원봉 계열이었다. 즉 년간 김원봉의 조선혁명군사정 치간부학교와 조선민족혁명당이 이곳에 자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의열단 간부학교로도 불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훈련 장소가 천녕사( 天 寧 寺 )에, 김원봉 계열 한인특별반 졸업생 거주지가 교부영( 敎 敷 營 ) 16호 일원에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그나마도 찾을 수 없다. 조선민족혁명당 거 점이었던 호가화원( 胡 家 花 園 )도 빈민촌으로 변하였다가, 급격한 도시 개발로 그 마저도 완전히 모습을 잃었다. 청사는 진장에 두었으나, 요인들의 주요 활동지가 난징이었기 때문에 난징에도 김 구와 임시정부 관련 유적지가 있다. 1935년 김구가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 교시킬 한인 청년을 모집하여 사전 교육을 실시하였던 학생훈련소 사무소가 동 관두( 東 關 頭 ) 32호에 있었다. 이 가옥은 ㅁ자 형으로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 는데, 연이은 증개축으로 원형을 거의 잃었다. 또한 이동녕 엄항섭 등 요인과 학 생 대원들이 일시 거처하였던 거주지가 남기가( 藍 旗 街 ) 8호에 있었다. 이 또한 본 래의 건물은 헐리고 현대식 건물이 세워져 있다. 현재 난징에 임시정부 관련 유적지로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해방 후 위치했던 주화대표단 건물이다. 임시정부는 해방과 더불 어 교민의 보호와 귀국 업무를 담당할 일종의 대사관 역할을 위해 주화대표단을 충칭에 설치 하였다. 그러나 1946년 5월경 효율적 업무 처리 를 위해 당시 중국 수도였던 난징의 백하구( 白 下 區 ) 복성신촌( 復 成 新 村 ) 8호로 옮겼다. 이 건물 은 2층 양옥으로서 현재 원형을 잘 유지한 채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이 건물 을 매입하여 전시관 조성 등 사적지로 활용하고 자 시도하였으나, 건물주와 중국 정부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난징에는 이밖에도 한국혁명 당(대대사로 문안리 16호), 한국독립당(도서가 70호), 민족혁명당(선파항 17호) 등 독립운동 정 당 관련 유적 등 유적지가 있었으나, 원래 모습 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음은 물론 당시 의 위치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자싱( 嘉 興 )에 피신해 있던 시기, 백범은 9년 만 에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다시피 나오신 모친을 상봉하여 난징으로 모셨다. 이 때, 백범은 모친으로부터 커다란 은전 을 받았다. 만 60세가 된 백범이 은전 이라 표현한 것은 모친께서 백범에게 앞으로는 너 라고 하지 않고 자네 라고 부르고,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회초리 를 쓰지 않고 말로써 꾸짖겠다고 한 것이었다. 백범의 모 친은 그 까닭으로 백범이 군관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청 년들을 거느리는 남의 사표가 되었으니 체면을 봐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가히 곽낙원 여사의 백 범에 대한 엄격함과 자애로움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백범이 총격을 당해 사경을 헤맸던 창사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였고, 12월 13일 수도 인 난징이 일제에 함락당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시 정부는 난징을 떠나야만 하였는데, 함락 직전인 11월 말 난징을 출발하여 후난성( 湖 南 省 ) 성도인 창사에 도착하 였다. 창사는 당초 목적지는 아니었으나, 음식 값이 싸고 홍콩을 통해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가 용이하였 기 때문에 일시 기착지로 선택한 것이었다. 창사시기 백범과 임시정부는 재정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었고, 활동도 보호 받을 수 있었다. 난징시기부터 시작 된 중국 국민당 정부의 경제적 지원과, 미주 동포사회의 지원금도 있는 데다 물가가 싸서 고등 난민 의 여유를 갖 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백범과 요인들이 활동하는데 편 리하였던 것은 백범과 친교가 있던 장치중( 張 治 中 ) 장군 이 후난성 주석으로 전임해 와서 편의를 제공하고 보호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범은 지금까지는 변성명 을 하며 본인을 감춰야만 했던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 거 리낌 없이 본명인 김구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중일전쟁을 독립의 호기로 여긴 백범과 독립운동 세력 들은 한국광복운동연합회 소속 우파 정당인 한국국민 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3당 통합에 나섰다 년 5월 6일, 조선혁명당 본부인 남목청( 楠 木 廳 ) 9호(현 재는 4호)에 조선혁명당에서 이청천 유동열 현익철 등 김구가 총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던 상아의원 이, 한국독립당에서 조소앙 홍진 조시원 등이, 한국국 민당에서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이 참석하여 통합 논 의를 벌일 때였다. 갑자기 조선혁명당 간부 이운한이 회 의장에 뛰어 들어 권총을 발사하였다. 한인 독립운동 세 력간 갈등의 결과 이른바 남목청사건 이 발생한 것이다. 현익철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김구 유동열 이청천이 총 상을 당하였다. 중상을 입은 김구는 즉시 상아의원으로 후송되었다. 김구의 상태를 진찰한 중국 의사는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응급처치도 하지 않은 채 문간 방에 방치해 두었다. 김구의 장남 인과 안공근에게 사망 통지를 하였고, 그들은 백범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창사 로 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김구가 기적적으로 소생하였 다. 응급 치료가 진행되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백범이 총격을 당한 남목청은 2007년 창사시 인민 정부가 김구와 대한민국임시정부활동구지로 지정하여 건물을 복원하고 내부에 임시정부 관련 전시관을 조성 하였다. 김구가 총상 후 치료를 받았던 상아의원은 옛 모습을 잘 유지한 채 중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 로 사용되고 있다. 창사 시기 임시정부 청사는 서원북리 ( 西 園 北 里 ) 6호에 있었는데, 지금은 대형 아파트가 들어 서 원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청사시기 임시정부 는 일본기의 공습으로 전황이 급박해지던 7월 19일 광 저우로 이동할 때까지 7개월 여를 창사에 머물렀다. 18 백범회보 2013.겨울 19

11 시선집중 I 인천감리서터를독립운동의 역사교육장소로활용해야 인천감리서는 조선의 자주적 개방 노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유산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수감 중에 감옥학교를 열어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스스로 근대적인 각성을 한 곳인 이곳을 독립운동 유적지로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소개한다. 인천감리서는 1883년 제물포 개항이후 조선 정부가 국제 통상( 通 商 ) 사무와 외 교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천항에 설치한 근대 행정기관기관이었다 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고 국제 관계가 확대되면서 외교사 절의 교환, 주재외국인의 거류지 설정, 개항장과 개시장의 설정, 외국 선박과 상 인의 출입, 무역량 증가와 같은 새로운 국가적 업무가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 같 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할 기구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외교통상부에 해당하는 통리교섭사무아문을 설치하고 개항장의 행정기관으로 인천항감리아문 ( 仁 川 港 監 理 衙 門 )을 세우고 그 책임자로 감리( 監 理 )를 파견한 것이다. 당시의 감 리서는 통상사무뿐 아니라 지방행정 업무인 치안과 사법, 군사 업무까지 담당하 고 있어서 감리서 내에 재판소와 감옥 등도 함께 있었다. 정부가 서구열강의 각 축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개항도시에 특별행정기구를 즉각 설치한 것은 문호개방 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인천감리서가 폐지되고 그 주요 기능은 일 본의 인천이사청( 理 事 廳 )으로 이관되었다. 인천감리서의 국제통상업무가 일본에 이관되었다는 것은 조선이 스스로 외교 기능을 행사할 수 없는 종속국가로 바뀌 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의 국가적 명운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인천감리서는 뒷날 임시정부의 수반 이 되는 김구(1876~1949) 선생이 두 차례나 투옥되어 옥살이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처음 인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나이 20세 때인 1896 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듣고 분노하여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처단한 이른바 치 하포사건 으로 체포되어 인천감리서의 감옥에 2년간 수감되면서이다. 김구 선생 이 인천감옥으로 이감된 이유는 당시 외국인 관계 사건을 재판하는 특별재판소 였다. 김구 선생이 인천 감옥을 탈출하여 삼남지방으로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은 김구 선생의 인격에 감화를 입은 감리서의 순검 김정근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 어서 가능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당시 인천감옥에서 수 형생활을 하는 동안, 인천 개항장을 통해 유입된 신문물 을 익히며 항일운동가로서의 사상을 정립했다 고 기록하 였다. 인천감옥은 그를 불굴의 민족지도자로 단련시킨 용광로이자 다른 수형자와 간수들, 심지어 옥문 밖의 인 천 사람들에게도 감화를 준 옥중학교였던 것이다. 김구 선생이 훗날 인천을 가리켜 내 일생에 뜻 깊은 곳 이었다 고 술회하면서 당시 인천 감옥 시절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도 그런 인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은 1911년 안악사건으로 체포 투옥되어 15년 형을 언도 받고 서대문 감옥 등에서 옥살이를 하게 되 는데, 1914년에 인천감옥으로 이감하여 이듬해 가출옥 할 때까지 힘든 수형생활을 하였다. 당시 일제는 인천항 에 갑문식 도크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인천감옥의 죄수들을 동원하였다. 김구 선생도 다 른 죄수들과 함께 붉은 죄수복을 입고 철사로 허리에 묶 인 채 공사장에서 일해야 했다. 공사장 노역은 흙지게를 지고 수십 미터의 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에 반 나절이면 어깨가 붓고 발이 부어서 몸을 가누기 힘들 지 경이었다고 한다. 이 노역이 너무 고통스러워 몇 번이나 떨어져 죽을 결심을 했으나 철사로 묶여 있어 함께 떨어 져 죽어야 하는 동료 죄수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고쳐먹 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이 다시 인천을 찾은 것은 해방 후 임시정부요 인으로 환국한 이듬해인 1946년 봄 전국 순회를 시작하 면서였다. 첫 방문지로 인천을 택한 것은 인천감리서 내 의 인천감옥과의 인연 때문이다. 인천에 온 김구 선생은 반세기전 감옥살이를 했던 인천감리서 터를 둘러보았으 상을 떠나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1 그가 인 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 라고 한 것은 한국근대사에 차지하는 인천의 위상에 대한 언급 뿐 아니라 인천감옥 에서 사형언도와 수형생활, 모진 노역을 견디며 민족의 지도자로 성장했던 자신의 단련장이었다는 의미도 포함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천대공원에는 1997년 인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건 립한 백범 김구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 곁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인천에서 모진 감옥살이를 할 때 옥바라지 를 했던 모친 곽낙원( 郭 樂 園 ) 여사의 동상도 세워졌다. 그러나 이곳은 백범 김구 선생과 큰 연고가 없는 곳인 데다 접근성도 떨어져 백범 김구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장소로는 적합지 않다. 오히려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은 그가 옥살이를 했던 인천 감리서가 있었던 내동 언덕이 나 인근의 그가 흙짐을 지고 까마득한 사다리를 오르내 리던 축항공사장이 더 적절해 보인다. 현재의 인천감리서 터에 옛 흔적은 가뭇없다. 인천감리 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김구 선생이 두 차 례나 투옥되었던 곳이며 옥살이를 하면서 옥중학교 를 열어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한편 스스로 근대적 각 성을 한 곳이며, 인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에 성 공했던 곳이다. 진작에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적지로 보 전되어야 했다. 한편 인천감리서의 지척에 있는 자유공 원도 3 1운동 직후 전국 13도 대표가 모여 한성정부 수 립을 결의한 곳으로 역시 중요한 유적지이다. 그동안의 무관심 때문에 인천감리서가 위치했던 인천 중구 내동 83번지 일대는 아파트와 개인주택지로 바뀌고 말았다. 인천감리서 터는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에서 2008년 조사하여 사적지로 등록되었고 지금 그 활용방안을 논 의중이다. 가 인천감리서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897년 인천감옥에서 사형선고 나 이미 옛모습을 찾을 길 없었고, 자신의 탈옥을 도와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를 받았으나 극적으로 무기수로 감형되었고 이듬해인 1898년 봄에 탈옥 도주하 주었던 감리서 순검을 수소문하였는데 방문 보름 전 세 1 大 衆 日 報 1946년 4월 17일 20 백범회보 2013.겨울 21

12 시선집중 II 한국광복군과미국OSS의공동작전에 관한역사연구 본지(백범회보 34호)에서는 테마 스페셜로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 중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연구사가 쓴 미국 OSS와의 공동작전을 전개한 한국광복군 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한국광복군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을 역임한 김우전 씨가 반박원고를 보내왔다. 머리말 백범회보 제40호에 실린 미국 OSS와의 공동작전을 전개한 한국광복군 이라는 제하의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편사연구사가 쓴 역사 기술은 당시의 과정을 생생 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국광복군의 한사람으로서 수긍하기 어려웠다. 후세들의 역 사 인식의 부족과 오류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바르고 진실 된 역사를 후세 에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또 다시 구십의 노필( 老 筆 )을 들게 되었다. 전자의 역사 기술 서두에 광복군과 OSS의 교섭은 1945년 4월 1일 합의가 이루 어졌고, 광복군 측에서 지청천, 이범석 등 OSS측에서 써젠트(Sargent)가 참석하 여 군사합작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였다 라고 쓰고 여타 관련 인사에 대한 기술은 끝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는 그 보다 앞서 이루어졌다는 사 실을 밝혀둔다. 1945년 2월 15일~17일 중국 최전선 안휘성 부양( 安 徽 省 阜 陽 )에서 광복군 제3지 대 김학규 지대장과 OSS 통신대장 버치(Birch) 대위의 합의 하에 광복군 5명이 OSS 무전훈련을 하려다 중국군의 반대로 중지되어 후방 고위층에 건의하여 중 국군사위원회의 동의를 얻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2월 18일 출발, 1만리 장정 끝에 3월 13일 운남성 곤명에 도착하여 미국 제 14항공대 사령관 센놀트 장군과 면담하고 OSS 중국본부 주요 참모들과 협의 끝 에 한미군사합작이 성립되었다. 3월 16일 김학규 지대장이 중경에 도착하여 김구 주석과 지청천 총사령관에 보고 건의하여 3월 30일 한미공동작전에 대한 중국군 최초 공식 발행본 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 전투사(하)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와의 공동작전에 대한 공식적 기록은 1975년 8월 23일 발행한 독립운동사 제6권 독 립군 전투사(하) 가 처음이다. 이 역사의 자료제공과 기술은 한미 OSS공동작전을 전 개한 광복군 제3지대와 제2지대에서 각각 작성 제공하 게 되어 두 가지 역사 기술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역사 기술을 살펴보면 하나는 육하원칙에 확 실한 거증자료 일기와 실증논문을 근거로 기술된 반면, 반대로 또 하나는 같은 한 사람의 자술 기록과 증언이 불일치하고 육하원칙이 분명하지 않고 일시가 소급 날조 되는 등 잘못된 역사 기록을 볼 수 있다. 두 가지 역사 기술 내용과 거증자료 제1 기술 내용 473쪽에 기술되어 있는 한 미군사 합작 의 내용은 다 음과 같다. 1945년 1월 임천( 臨 泉 )에 파견된 OSS책임자 버치 (John M.Birch)대위와 광복군 연락장교 김우전( 金 祐 銓 )과의 사이에 광복군에도 특수 훈련 실시를 논의한 바 있다. 그 후 김학규 제3지대장은 한 미 군사 합작에 관한 계 획을 구상하고, 곤명( 昆 明 )으로 비행하여 세놀트(C.L Chennault)장군과의 회담을 개시, 한 미 공동작전 계 획이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이어 임시정부 및 총사령부의 승인과 중국군사위원회의 동의를 얻게 되 자 중략 4월에 제2지대장 이범석 장군의 중경 회담 등을 거처 마침내 제2지대 및 제3지대에 OSS훈련반 설 치가 실현하게 된 것이었다. --중략-- 미군 OSS와 합작하여 제2지대와 제3지대에서 무전 기 술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곤명 OSS본부로 파견된 김우 전은 OSS 당국의 윔스(Clarence N. Weems)대위와 정 운수( 鄭 雲 樹 ) 소위의 요청에 따라 훈련에 필요한 교재와 한글 무전암호표 편조에 협조하였다. --중략-- 1 한글 암호표(W.K KOREAN CODE) 전문 56쪽은 1988년 말에 방선주 박사가 처음 발견하여 1989년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독립운동사 제3집 에 김우전이 쓴 광복군 일기 와 함께 실려 있다. 제2 기술 내용 491쪽에 기술 되어 있는 한 미 합동훈련 의 내용은 다 음과 같다. 중경( 重 慶 )에서는 임시정부 외무부 요직에 있던 안원생 ( 安 原 生 )이 미국 대사관과 긴밀한 활동을 하는 중, 1943 년 2월에 중국 주재 미국 공군사령부의 정보장교인 윔 스를 중경 연화지( 蓮 花 池 -주:1945년 1월에 이사한 곳, 그전에는 오사야항( 吳 師 爺 巷 )에 있었음.)에 있는 임시정 부 청사로 맞이하여 김구( 金 九 )주석과의 회담으로 한 미 군사합작에 대한 토의를 하게 되니 여기서 광복군과 주중 미군측과의 군사 합작 문제는 점차 활발하게 토의 를 보게 되었다. 따라서 1943, 44년에 걸쳐 우선 미국 전략 정보처 즉 OSS와의 제후로 한 미 합동의 정보활동이 시작되었으 며, --중략-- 그리고 한 미 합작의 제1차 계획으로 특수훈련 계획이 추진되었다. 즉 제2지대장 이범석은 일찍부터 중국 곤 명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 제14항공대의 간부 쉬노우드 김우전 광복회 전회장 사위원회의 동의를 받았고 3월 30일 버치 대위와 윔스 대위(이후 OSS한국과장) 가 중경 임시정부를 방문하면서 제2지대의 한미공동작전 참여가 결정되었다. 01 집 필 자: 제3지대 장호강과 정운수 관여, 거증자료: 1) 부터 5.2까지 김우전 일기장, 2) 김우전, 1972, 한국광복군과 미군과의 공동작전, 광복군 동지회보 제4호. 22 백범회보 2013.겨울 23

13 (Chennalt)와 긴밀한 접촉을 가져온 바 있지만, 1944년 가을에는 다시 중경에서 주중 미군 사령관 웨드마이어 미 육군준장을 만나 광복군의 작전 계획과 한 미 합작 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이 범석 지대장의 전략 건의가 연합군 한 미 합작의 특수 훈련 작전계획은 순차적으로 합의를 보고 실천 단계로 옮겨지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3) 따라서 그 해(1944 년) 12월경, 미군 측에서는 곤명 주재 제 14항공대에서 크라이드 비. 써젠트(Clyde B. Sargent)와 정운수를 파 견하여 중경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원들과 면담하 고, 또 제1 제2지대 본부를 방문하여 광복군의 실정을 파악하며, 일을 점점 구체화하게 되었다. 1944년 5월경부터 제14항공대의 장교로 정보활동을 하 던 정운수와 일찍이 우리나라에 와있던 선교사의 아들 미공군 정보장교 윔스 및 OSS연락장교 칼든 크라이더 (써젠트) 등의 협조 노력도 적지 않았다--중략-- 또 정운수는 훈련 개시에 앞서 그 통신 교재를 작성하였 다. 특히 한글 자모음을 다섯 숫자 패드(5 digit ped)를 연구 발명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한글암호표 W.C KO- REAN CODE이다. W.는 윔스의 첫 자이고 C.는 내 이 름의 첫 자 예요. 여기에는 우리말에 능통한 윔스 및 당 시 특수훈련 관계로 공명에 가 있던 제3지대장 김학규 동 대원 김우전 등의 협조를 얻은 바도 많았다고 한다. 2 제2 기술 은 산만하고 논리가 석연치 않고, 육하원칙을 무시한 기술로 보인다. 즉 서두에 1943년 2월에 윔스를 중경 임시정부 청사로 맞이하여 김구 주석과의 회담으로 한미군사합작에 대 한 토의가 이루어졌다고 한 것과, 뒤이어 이범석 제2지 대장은 쉬노우드 장군과 웨드마이어 장군과 협의 끝에 1944년 12월경 제14항공대에서 써젠트와 정운수를 중 경 임시정부에 파견하였다 라고도 했고, 다음에는 1944 년 5월경부터 정운수와 윔스 및 써젠트 등이 협조하였 다 라고 했는데, 주인공과 시기와 장소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조작된 기술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말 미에 정운수는 통신 교재를 작성하였는데 특히 한글 자 모음을 다섯 숫자패드(5 digit ped)를 연구 발명하였는 데 W.C KOREAN CODE의 W는 윔스이고, C는 정운 수 내 이름 예요 라고 한 것은 오류 투성의 잘못된 기술 이다. 정본을 보면 5패드가 아니고 4패드이며 W.C가 아 니고 W.K. KOREAN CODE이며, K는 김우전을 뜻 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정운수는 자기 과시의 탐욕으로 제1기술과 제2 기술 말미에 한국광복군이 한글무전암호표 편찬에 협 조하였다고 한국독립운동사에 써 넣었다. 한글 무전 암호표는 엄연히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마치 미군의 활동에 한국이 협조한 것으로 주객을 전도하였을 뿐 아니라, 역 사적 사실조차도 날조된 내용을 보니 통탄을 금치 않을 수 없는 바이다. 제3 기술 내용 503쪽의 제2 3 지대의 한 미 군사합작경위 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5년 1월, 중국군 제10전구 사령장관부 전방지휘소가 있는 안휘성 임천에 파견되어 있었던 제3지대 연락장교 김우전은 임천에서 약3키로 떨어진 사만( 謝 灣 )에 주둔 하고 있는 미군 OSS파견 대장 버치대위를 만나 상호간 부대의 임무를 소개하는 동시 적군에 관한 정보를 교환 하게 되었다. 버치가 지휘하는 OSS 파견대는 적군의 무 전을 받아 이를 분석 평가하는 무전 통신 첩보 공작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김우전과 버치는 여러 차례의 면담 끝에 5명 이내의 광복군에게 무전통신 기술을 가 르쳐주고, 적진(한국 또는 중국)에 잠입하여 군사 정보 를 무전으로 송신하는 첩보 공작에 대한 의견이 논의되 었는데, 김우전은 이를 즉각 김학규 지대장에게 보고하 였으며, 지대장의 승인을 얻어 박상기( 朴 相 基 ), 문웅명 ( 文 雄 明 ), 선우석( 鮮 于 碩 ), 김경윤( 金 景 潤 ), 등 4명을 선 발하고 김우전이 반장이 되어 사만 OSS 파견대에 도착 하니 이것이 2월 15일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 계획은 뜻하지 않게 중국군측이 반대로 중 지되었다. 김학규 지대장은 쌍방 고위층의 인가를 먼저 받은 다음 중국 군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대규모의 무전훈련 및 광범위한 한 미 공동작전을 새로이 전개하기로 하고, 먼 저 곤명에 있는 OSS본부로 갈 것을 결정하였다. 김학규 지대장은 김우전 부관을 대동, 버치 대위와 함께 2월 18일 임천을 출발하여 입황( 立 煌 )을 경유 곤명에 도 착한 것은 3월 12일 밤이었다. 다음날 13일 9시에 김학규 지대장 일행은 미 제14항공 대 사령관 세놀트장군과 면담하여 한 미 공동작전에 관 한 계획을 소상히 설명한 결과 그는 전적으로 찬동하면 서, 즉각 OSS 본부에 지시하여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세우게 하였다. 일행은 다시 OSS 본부로 직행하여, 스미스 중령과 구체 적인 회담을 시작하였으며, 14일에는 각 부문 책임 참모 들과 각 분야별로 하루종일 진지한 회담을 하였다. 그리 하여 15일 전체 회의에서는 합동작전 전반에 관한 한 미군사 합작 원칙(6개 항목 성략)이 아래와 같이 합의 를 보게 되었다. 다음날 3월 16일, 김학규 지대장과 김우전 부관은 세놀 트장군 전용기로 중경에 가서 임시정부와 광복군 총사 령부 고위층에 이 교섭 경위를 보고하고 정식으로 재가 를 받게 되었다. 총사령부는 중국 군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서안 제2지 대와 부양 제3지대에 OSS 훈련소를 설치하게 되었다. 3월 30일에 윔스 대위는 버치 대위와 함께 우리 임시정 부와 광복군 총사령부를 방문하여 중국 군사위원회의 동의를 재확인 하였다. --중략-- 이때 임시정부와 광복군 총사령부에서는 OSS무전훈련 은 제3지대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제2지대에서도 같이 실시하는 것이 좋으며, 그 훈련대원 부족은 토교대( 土 橋 隊 ) 한광반 동지를 충원하기로 하여 4월 5일 이범석 제2 지대장이 중경에 비례하여 확정지었다. 3 역사 기술 내용 거증자료의 검토 제1 기술 거증 자료 검토 거증자료1 김우전 일기 는 1945년 2월 15일 김학규 지 대장이 OSS무전훈련대원 5명을 대동하고 최전방 안휘 성 임천에서 미군 OSS통신대장 버치대위와 OSS무전훈 련 합미합동작전을 시도하였으나 현지 중국부대장의 반 대로 좌절되어 후방 고위기관의 승인을 받기로 합의되 어 2월 18일 임천을 출발 23일간 파란만장의 1만리 장 정을 거쳐 3월 13일 운남성 곤명 미군 제14항공대 세놀 트장군과의 면담으로 시작하여 16일까지 OSS본부와 한 미공동작전에 관한 협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중경 임시정부까지 동행하면서 40일간 중경에 머물고 4월 25 일 곤명으로 가서 연락장교로 일하면서 5월 2일까지 기 록한 김우전의 일기장을 참고 했기 때문에 시일과 사건 기술이 비교적 명확하다. 거증자료 광복군동지회보 제4호에 실린 한국광복군과 미군과의 공동작전 은 1. 한미양군 합작 의 배경 2. 공동작전의 계기, 3. 한미 양국 수뇌회담 집 필 자: 김용국, 김유철, 정운수 관여, 거증자료: 1) 정운수가 걸어온 항일독립 투쟁의 경위, 보훈처 제출한 정운수 자술서, 2) 이범석, 1969, 광복군 신동아 4월호. 03 집필자와 거증자료 제1기술과 동일. 정은수와 제2지대 훈련반원 노능서 증언 24 백범회보 2013.겨울 25

14 공동작전상황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당시 제작한 한글 곤명으로 가보니 제3지대장 김학규씨와 그 사람 밑에 있 군이 4월 5일 중경에 비래하여 토교대 한광반 동지 무전암호까지 명시한 약 5천5백자의 상세한 기술이다. 던 김우전이 있더군요 그때가 1945년 초예요. 곤명에서 19명을 4월 29일 인솔하여 서안에 도착한 그 후가 확 거증자료3은 제2지대 훈련반원으로 갔던 한광반 동지 공군 소속 윔스대위를 만났습니다. 그는 OSS책임을 맡 실하다. 3월 16일 김학규 지대장 중경 도착 후 4월 5 노능서( 魯 能 瑞 ))의 증언으로 기술되어있기 때문에 거증 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하더군요. 일 이범석 지대장 중경 비래까지 20일 동안 중경에서 자료 1, 2, 3 은 비교적 정확 명료하다고 볼 수 있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는 제2지대 OSS 무전훈련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 정운수의 증언을 보면, 시간의 선후 관계 및 정황의 근 었고, 또한 토교대 한광반 동지들 모두가 이 사실을 제2 기술 거증 자료 검토 거가 모순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잘 알고 있다. 거증자료1은 정운수가 걸어온 항일 독립 투쟁의 경위 우선 정운수의 증언을 보면 1945년 3월까지는 미국에 4. 곤명 OSS 본부에서 워싱턴에 보낸 한미공동작전에 이며 이에 의거하여 기술되었는데 자술서의 내용과 그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정운수가 곤명에 도착 관한 보고서를 전부 방선주 박사가 미국 국가문서보 후 이현희 교수의 한국독립운동 증언 자료집 4 에 정운 한 것은 1945년 초가 아니라 4월 이후라 할 수 있다. 관소에서 입수하여 한국국사편찬위원회에 보내 수장 수가 증언한 것과 시일에 관하여 상치되는 점이 있다. 이를 확증하는 것은 김학규 지대장이 3월에 곤명에 갔 된 문서는 4월 20일을 시작으로 5월 4일, 11일, 14일, 즉, 정운수 자술서에는 시일을 소급하여 기술된 점을 을 때나 3월 30일에 중경에서 버치 대위와 윔스 대위를 15일, 18일, 6월 20일, 9월 13일 뿐인 것을 보더라도 볼 수 있다. 만날 때도 정운수와 써젠트는 없었다. 그리고 4월 5일 한 미 OSS공동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4월 예를 들어 정운수의 증언을 살펴보면 미국 O.C.S. 간부 후보생 학교에서 4개월간 훈련을 받 았습니다. --중략-- 그렇게 해서 1945년 정월에 졸업 이범석 지대장이 중경에 왔을 때에도 정운수와 써젠트 에 대해 어떠한 말도 들은 바가 없다. 그리고 정운수가 중경에 간 것은 서안 훈련반 파견 이후 이후가 분명하며 곤명 OSS 한국담당부서가 설치 된 것이 4월이 확실하다. 서안( 西 安 )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국내진입작전을 합의한 미국 OSS 책임자 도노반과 백범 김구 선생 ( ) 을 하고 워싱톤으로 휴가를 보내주어 거기서 이박사(이 6월경에 간 것이 틀림없다. 맺음말 승만)을 찾아뵈었습니다. 그 후 저는 펜실베니아의 미국 자신의 공적을 앞세우기 위한 날조된 시간과 객관적 사 전투비행기 정보국에서 2개월간 실지 훈련을 받고 워 곤명 OSS KOREAN DESK(한국과)설치 시기 료에 근거하지 않고, 개인의 권위에 의존한 작금의 잘 싱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1. 윔스 대위가 버치 대위와 함께 1945년 3월 30일 중경 못된 역사 기술에 통절한 비애를 느끼면서 또 다시 붓 일본 군부 통신의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에 임시정부를 방문하고 그 후 4월에 곤명으로 돌아 을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C.B.I.(중국.버마.인도)작전 지역의 미공군 가서 OSS 한국과를 설치하고 윔스 대위가 과장이 되 지난 3월 나의 회고록 제4문집을 펴내면서 마지막으로 부대 제18분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한 어 한 미 공동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5 쓴 글 역사는 진실 되어야 한다. 바른 역사를 남기자 의 40~50리 동북쪽으로 가면 차부아라는 곳이 있는데 거 년 3월 13일부터 16일까지 김학규 지대장이 미국 뜻을 되새기며 다시 마지막으로 이글을 썼다. 기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정보를 우리가 다 제공했어 제14항공대 세놀트 장군과 OSS 본부와 한 미군사합 거증자료2 가운데 정운수가 걸어온 항일 독립투쟁의 경 요. 그 후 나는 중국 곤명 미국 중폭격기 부대에 배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원하던 중경으로 가서 임시정 작 협의를 할 때 곤명 OSS에는 한국인이나 한국말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6 위 자술서가 그 후 한국독립운동 증언 자료집 에 실린 정운수의 증언 으로, 전자의 기술이 왜곡 날조된 것이 명 한글암호표 K.W. KOREAN CODE 원본사진 한글과 한문은 김우전 친필이고, 숫자와 영문은 자판을 이용하여 그린 것이다. 부 김구 선생 조소앙 신익회 이시영 정한범씨 등을 만 3. 미군 써젠트 대위와 정운수 소위가 서안 제2지대 백해 졌고, 김유철이 쓴 한미군사합작역사 와 신동아 나 뵙고 --중략-- OSS 훈련반에 파견된 일시는 제2지대장 이범석 장 1969년 4월호에 기고한 이범석 장군의 광복군 을 살펴 보았으나, 육하원칙이나 시기에 관한 명확한 기술이 없 어서 토론할 여지가 없고, 여기에 다 말하지 못함이 유 04 이현희,1986, 한국독립운동증언자료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05 김우전 일기와 정운수의 증언 06 당시에 김우전이 대화가 불편하여 한국말을 아는 사람을 찾은바 있다. 감이다. 다만 후세 학자들의 심도 깊은 학문 연구를 기 대하면서 올바른 역사를 간절히 구하는 바이다. 26 백범회보 2013.겨울 27

15 인연( 因 緣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38호)-안중근 의사를 낳은 독립운동계의 대모, 조마리아 여사(39호)-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살림꾼 정정화(40호) 대한민국의진정한영웅들Ⅳ 여성의독립운동참여와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에앞장선김순애선생 김순애 선생은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며 성실함과 흔들리지 않은 자세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에 앞장섰다. 일찍이 신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써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교육운동에 앞장섰던 그녀는 8 15 광복 후에는 귀국해 평생을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김순애와 동지들(1940, 중경) 김순애( 金 淳 愛 ; 1889~1976)는 1889년 5월 12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서 출생하였다. 고향에서 송천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새문안교회를 다니면서 정신여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수학하였다.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김순애는 민족계몽을 위해 교육 현장에 투신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 당시에는 부산 초량 소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때 김순애는 일제의 한국역사 교육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하숙집에서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우리 역사를 가르쳤는데, 이 것이 일인( 日 人 ) 교사에게 발각되어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세브란스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던 친오빠 김필순( 金 弼 淳 )도 일경의 감시를 받고 있었으므로 1912년 같이 만주로 망명하였다. 망명지 남경에서 부부가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 김순애는 1915년 중국 난징 중화명덕여자학원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김규식 ( 金 奎 植 )과 결혼하였다. 결혼 후 상하이로 이주하였고 1918년 여운형( 呂 運 亨 ) 서병호( 徐 丙 浩 ) 김철( 金 澈 ) 조소앙( 趙 素 昻 ) 조동호( 趙 東 祜 ) 등이 조직한 신한청 년당( 新 韓 靑 年 黨 )에 가입하여 남편 김규식과 더불어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 다. 1919년 1월 김규식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민족대표로 파견되자 김순애는 선 우혁( 鮮 于 爀 ) 김철 서병호 백남규( 白 南 圭 ) 등과 국내에 밀파되어 독립운동 봉기 를 종용하고 민족대표의 활동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신한청 여 일제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폭로 선전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한청 년당에서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로녹대학(Roanoke College)을 졸업하고 영어에 능통한 김규식을 1919년 1 월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선생을 비롯한 밀사를 국 내와 만주 지역에 밀파하기로 결정하였다. 국내로 밀파된 김순애는 1919년 2월 선편으로 부산에 도착한 후 부산에서 백신영( 白 信 永 ), 대구에서 김마리아, 서울에서 함태영( 咸 台 永 )을 만나 한국대표의 파리강화 회의 파견 소식을 전달하고, 국내의 독립운동 봉기를 촉 구하였다. 그런데 당시 선생은 3 1운동을 추진하는데 깊 숙이 관여하고 있던 함태영으로부터 이미 국내에서 천도 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거족적인 독립선 언대회가 추진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김 순애는 국내의 3 1운동에 동참하려 하였으나, 함태영이 그러다 잘못되면 파리에 가 있는 김규식의 사기에 영향 을 미칠 것이고, 그러면 민족의 대업 완수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라는 주장에 밀려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일을 눈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 여성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주도 3 1운동을 앞두고 상하이로 다시 망명한 김순애는 1919 년 7월 이화숙( 李 華 淑 ) 이선실( 李 善 實 ) 강천복( 姜 千 福 ) 박인선( 朴 仁 善 ) 오의순( 吳 義 順 ) 등과 함께 여성의 독 립운동 참여와 지원 을 목적으로 대한애국부인회( 大 韓 愛 國 婦 人 會 )를 조직하였다. 김순애가 회장으로 주도한 대한애국부인회는 김마리아 등 정신여학교 출신 인사들 이 비밀리에 서울에서 결성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大 韓 民 國 愛 國 婦 人 會 ), 평양에서 김경희( 金 敬 喜 ) 등이 조직한 대한애국부인회( 大 韓 愛 國 婦 人 會 ) 등 국내외의 애국부인 회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순 애는 이들 단체들과 연락 협력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했고,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 족들을 뒷바라지했으며 해외 각지에 한국지도와 태극기 등을 제작하여 보급하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파하였다. 한편 1919년 7월 13일 이희경( 李 喜 儆 ) 안창호( 安 昌 浩 ) 김순애 여사 년당은 1919년 1월 18일부터 개최되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민족대표를 파견하 앞에 두고 재차 중국 만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근( 安 定 根 ) 등의 발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28 백범회보 2013.겨울 29

16 의 인가를 받아 독립전쟁으로 인한 전상병( 戰 傷 兵 ) 구호 를 목적으로 하는 대한 적십자회( 大 韓 赤 十 字 會 )가 상하이에서 복구되자 이에 참여하여 이사 등으로 활 동하였다. 다음해 1월에는 적십자회 부설기관으로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여 다 수의 간호원을 양성하여 배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독립전쟁에 대비 하기도 하였다. 김규식과결혼기념사진( , 상하이) 민족교육기금 조성운동을 전개 민족계몽을 위해 교육 현장에 투신한 김순애는 교육은 우리 민족의 생명이다. 교 육이 없으면 죽는다 라는 취지로 1920년 9월부터 상하이의 대한인거류민단( 大 韓 人 居 留 民 團 )을 중심으로 해외 한인교육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한 민족교육기금 조 성운동이 전개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순애는 당시 여운홍( 呂 運 弘 )이 교 장으로 있던 상하이 한인동포 자제의 민족교육기관인 인성학교( 仁 成 學 校 )의 유지 비 지원과 교사신축비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9월 30일 상하이 대한인 거류민단 총회에서 김순애가 18인 의원 중 한명으로 선출된 것도 거류민 아동의 민족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 기초를 확립한 공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 다. 이로써 김순애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지 후원활동과 함께 교민 보호와 아 동교육의 일까지 맡게 되었다. 또한 손정도( 孫 貞 道 ) 김철 김립( 金 立 ) 윤현진( 尹 顯 振 ) 김구( 金 九 ) 등과 함께 한국인들에게 독립신문 을 배부하였고 독립군자금 모 금과 일본정부대신과 친일 한국인 척결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의용단( 大 義 勇 團 ) 을 조직하였다. 같은 해 11월 상하이 대한인 거류민단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3 년에는 부인회의 대표로 국민대표대회에 참석하였다. 독립운동 지원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 김순애는 1926년 안창호 염온동( 廉 溫 東 ) 엄항섭( 嚴 恒 燮 ) 송병조( 宋 秉 祚 ) 등과 임시정부경제후원회( 臨 時 政 府 經 濟 後 援 會 )를 발족하여 쇠퇴해가는 임시정부의 재정지원 활동을 했다. 또 1930년 한국독립당( 韓 國 獨 立 黨 ) 산하에 한인여자청년 동맹( 韓 人 女 子 靑 年 同 盟 )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였다. 1943년 충칭 에 있던 각계 각파 독립운동세력의 부인들 50여 명과 함께 한국애국부인회재건 대회 를 개최하여 국내외 부녀는 총 단결하여 전민족해방운동과 남녀평등이 실 현되는 민주주의 신공화국 건설에 적극 참가하여 분투하자 는 행동강령을 선포 한 뒤 각종 매체를 통해 국내외 동포 여성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며 독립운 동 참여를 호소하고, 의연금품을 모아 무력항쟁을 준비하는 광복군을 위문하는 등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갔다. 아울러 연합군으로부터 인계받은 김순애의 편지( ) 동포여성들을 교육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하고 해외 각지의 한인여성단체들 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광복 후에는 여성교육에 이바지 1943년 연합국측이 한국을 국제감시 아래 두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5월 10 일 한국독립당, 조선민족혁명당( 朝 鮮 民 族 革 命 黨 ), 조선민족해방동맹( 朝 鮮 民 族 解 放 同 盟 ), 무정부주의연맹( 無 政 府 主 義 聯 盟 ), 한국청년회( 韓 國 靑 年 會 ) 등과 공동으 로 재중국 자유한국인대회( 在 中 國 自 由 韓 國 人 大 會 )를 열었다. 김순애는 한국애국 부인회 대표로 주석단에 참여하여 자유한국인대회 선언문, 각 동맹국 영수들 에게 보내는 전문, 각 지방 동지와 동포들에게 보내는 공개장 등을 발표하며 한 민족의 완전독립과 철저한 해방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광복 이후 선생은 드디어 1945년 11월 23일 임정요인 1차 환국 때, 김구 김 규식 이시영( 李 始 榮 ) 김상덕( 金 尙 德 ) 엄항섭 유동열( 柳 東 說 ) 등과 함께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이후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정신여자중 고등학교 재 단 이사장과 이사 등으로 활약하면서 여성교육에 공헌하였다. 선생은 1976년 5 월 17일 87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 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친오빠 김필순과 김순애 (1910~12 무렵, 만주 삼원보) 이동언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 30 백범회보 2013.겨울 31

17 역사의 현장 예산윤봉길의사기념관 태극의깃발을 높이흩날리고 나의빈무덤을찾아라 1946년 국민장으로 효창원 애국선열묘역에 안장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은 좋은 온천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수암산 끝자 락이 평지로 뻗어 내려오고, 삽교천 상류지류인 옥계천이 흐르다 갈라지고 다 시 물줄기가 합쳐져 흐르는 형국의 이곳은 예부터 풍수가들이 큰 인물이 날 명당이라 입을 모았던 곳이라 한다. 이 곳 덕산면 도중도( 島 中 島 )가 바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가이자 그가 자란 고향이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겸 전승기념 축 하식장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가와를 폭사시키는 거 사에 성공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25세. 그 자리에서 체포돼 사형을 선 고 받고 일본 오사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같은 해 12월 19일 총살형에 처해져 순국했다. 광복 후 그 유해를 발굴해 비로소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1946년 국민장으로 효창원 애국선열묘역에 안장됐다. 나란히 위치한 충의사와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 의사의 탄생부터 순국까지 그의 짧지만 묵직한 25년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덕산면에 위치 한 윤봉길의사기념관이다. 윤봉길의사기념관과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의사( 忠 義 祠 )는 바로 옆 에 이웃해 있고, 길 건너에는 그의 생가가 위치한 도중 도( 島 中 島 )가 있다. 국가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65년에 기념탑을 세우고 1968년에는 충의사를 세웠 다. 윤의사의 생가, 성장가 등이 복원되고 유물전시관과 농촌 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이 세워져 지금의 도중 도( 島 中 島 )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70년 이후이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발자취와 유 물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 들어선 관람객들에게 홀로그램을 통해 당신의 심장은 무엇을 향해 뛰고 있는 가? 라는 짧고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어진 전시관에는 1908년 6월 21일에 덕산 시랑리에서 태어난 그의 탄생과 어린 시절의 자료가 전시돼있다. 어린이 관람객을 배려 해 인형과 홀로그램을 적극 활용한 것도 눈에 띈다. 윤봉길 의사의 어릴 때 이름은 우의( 寓 儀 )였고 봉길은 별명이며 호는 매헌( 梅 軒 )으로, 그는 덕산공립보통학교 에 입학했으나 일제 치하의 식민 교육과는 맞지 않았다. 입학 후 이듬해 3 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교육은 받을 수 없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오치서숙( 烏 峙 書 塾 )에 서 성주록의 가르침으로 한학을 공부했다. 농촌부흥운동에 몸 바쳐 직접 저술까지 이후 서당의 스승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는 소위 공 동묘지 묘표사건 으로 크게 느낀바가 있어 야학당을 개 설하고 농민독본( 農 民 讀 本 ) 3권을 저술하여 농촌 문맹 퇴치에 힘썼다. 공동묘지 묘표사건 은 한 마을 청년이 공 동묘지의 묘표를 모조리 뽑아와 자신이 글을 몰라 조상 의 묘표를 찾을 수 없으니 찾아 달라 고 윤 의사에게 부 탁한 일이다. 묘표를 다 뽑아왔으니 묘표를 찾아도 이제 조상이 묻힌 묘지를 찾을 수가 없고, 그 조상의 묘지 뿐 아니라 묘표가 뽑힌 모든 묘지의 주인들도 찾을 수 없어 졸지에 수많은 묘소들이 이름 모를 무덤이 된 사연이다. 윤봉길 의사는 이에 충격을 받고 농민들의 문맹을 퇴치 하고 자주독립의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야학회와 농촌 부흥운동을 시작했다. 기념관에서 당시 그가 야학방에서 가르치기 위해 손수 엮은 농민독본 을 볼 수 있다. 농민독본 에는 우리 전 통놀이의 소개 등 민족문화를 전수하는 내용과 농민이 세상의 근본이니 이는 세상이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다 는 내용의 자긍심 고취를 위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이 밖에도 그가 직접 지은 300여 편의 한시를 묶은 옥타, 임추, 명추, 염락 과 같은 7권의 책이 전시돼 있는데, 오디오 자료를 통해 그가 지은 한시를 감상할 수 있다. 미인 단장하고 방긋 웃는 듯, 왕손의 기개도 당당하게 푸르렀다. 가을에 서리 내리면 시들 것이지만 내년이 되면 썩은 속에서 반딧불이 피어나 밤마다 빛나리 향기로운 풀의 모습을 통해 힘든 일제치하의 조국의 현 실과 이에 굴하지 않는 민족혼의 기개를 노래한 이 시 에서 윤 의사의 높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이 안 팎으로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던 윤 의사는 자 활농촌진흥단체인 월진회( 月 進 會 ) 를 조직하여 농촌계 몽운동을 펼쳤다.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그러나 이런 농촌계몽운동이 당시 일제의 눈길에 들어 그 탄압이 극심해지자, 윤봉길 의사는 23세인 1930년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이 때 그는 장부출가 32 백범회보 2013.겨울 33

18 생불환( 丈 夫 出 家 生 不 還 ) 이란 말을 남긴다. 장부가 집을 나서는데 뜻을 이르지 못 었다, 존경스럽다 는 소감부터 자유를 위한 투사를 방 하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는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는 말이었다. 문하는 일은 멋지다, 그는 전 생애를 이 아름다운 나라 당시 그가 갓 태어나 강보에 싸여있던 두 아들에게 남긴 친필 유서 역시 기념관 를 위해 바쳤다 는 한 외국인의 영문 글귀도 눈에 띈다. 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윤 의사를 향한 추모 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 는 국적을 따지지 않는 듯 했다. 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고 아들들에게 당부했다. 또한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충의사와 기념관을 나와서 육교를 건너면 윤 의사의 생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가 동서양에 있으니 바 가와 그가 자란 집, 농촌 부흥활동을 펼쳤던 부흥원, 월 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라며 아버 진회 사무실이 있는 도중도( 島 中 島 ) 를 방문할 수 있다. 지의 빈자리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자식들에게 마음을 썼다. 1922년 윤 의사 와 결혼해 그 사이에 2남 1녀를 낳은 배용순 여사는 1988년에 작고하셨는데, 배 도중도( 島 中 島 ) 는 사방으로 냇물이 흐르는 지형으로 한 반도 안에 섬이 있다는 뜻으로 이 곳은 일제가 침범할 충의사 사당 윤봉길 의사 어록탑 용순 여사의 묘소는 충의사 사당 바로 옆에 안장됐다. 소나무가 병풍 치듯 지키 수 없다 라며 윤 의사가 직접 이름 붙인 곳이다. 윤 의사 졌다. 이 때 누리꾼들이 나서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고 두른 배용순 여사의 묘소에서 바로 충의사가 보여 사후에도 함께 하는 두 부 가 태어난 집은 의( 義 )로운 기운이 드러나는 집 이란 뜻 전달했고 폐관 위기를 막았다. 아직도 윤 의사를 기억하 부의 넋을 기리는 듯 했다. 으로 광현당( 光 顯 堂 ), 성장한 집은 한국을 건진 사람의 는 우리의 민족정기와 양심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과거 윤봉길 의사가 23세로 망명길에 오른 후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 집 이란 뜻으로 저한당( 狙 韓 堂 )이라고 당호( 堂 號 )를 붙 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는 말처럼 우리가 윤봉길 입하고 때를 기다리며 머물다 2년 만에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성사시키기까지의 이고 초가집으로 복원돼 있으며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 의사의 25년 생애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유지를 이어가 과정들도 정리돼 있다. 특히 거사 당시의 공원 모습과 거사에 쓰인 도시락 폭탄과 다. 또한 도중도( 島 中 島 ) 일원에 800m 길이로 한반도 둘 기 위해서 그를 찾는 발길을 아낄 이유가 무엇이랴? 물통 폭탄이 기념관 내부에 모형으로 전시돼 있어 역사의 현장에 선 듯한 착각을 레길 이라는 산책로와 무궁화 공원이 조성돼 있어 역사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 준다. 흔히 윤봉길 의사 하면 도시락 폭탄을 생각하는데, 당시 일제 사령관에게 와 함께 철마다 바뀌는 자연의 풍취를 누릴 수 있다. 이 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는 윤의사의 생전 유시처럼 던져 그를 폭사시킨 것은 물통 모양의 폭탄이고, 도시락 모양의 폭탄은 윤 의사가 곳은 매년 4월마다 윤봉길 문화축제를 열어 윤 의사의 젊은 날 스러져간 그의 영전을 찾고 그를 추모하는 이들 거사 후 자결용으로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도시락 폭탄을 쓸 새도 없이 바로 체 뜻을 기리는 곳이기도 하다. 의 발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포됐던 그는 이후 상해와 오사카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했다. 얼마 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예 광복이후, 애국선열의 유해 봉환 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주 산 부족으로 4개월간 전기세가 밀려 암흑 천지에 주요 도로 그의 시신은 광복 후 일본 가네자와에서 결성된 조선인연맹 청년들이 발굴 사료들도 곰팡이가 슬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 했다. 3일간 발굴해도 진척이 없던 중 인근 쓰레기장에 묻혔다는 제보를 받아 겨 우 찾을 수 있었다고. 윤 의사의 유골은 육군 묘지와 공동묘지 사이 쓰레기장 밑 에 채 1m가 되지 않는 깊이에 묻혀 있었고 관 뚜껑을 열자 윤 의사의 양복, 구두, 머리카락이 유골과 함께 나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신은 선박을 통해 부산 으로 모셔져 서울로 올라와 효창공원에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기념관에 있는 그의 국민장 사진에는 거리 가득 시민들이 나와 그를 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제는 침입할 수 없다는 도중도( 島 中 島 ) 기념관 옆의 충의사에는 그의 초상과 향로가 놓여 있어 누구든 향을 피워 그의 영 전에 넋을 기릴 수 있다. 방명록에는 이런 분이 있으셔서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 34 백범회보 2013.겨울 35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광현당

19 Close-up 토지개혁론요강 토지개혁의당위성과방향을제시 1948년에 김준보가 저술한 토지개혁론요강 은 출판된 지 65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른 분배를 통한 행복추구 에 대한 백범 김구 선생의 혜안( 慧 眼 )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당시 토지개혁의 당위성과 방향을 설정한 유일한 지침서, 토지개혁론요강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보자. 1948년 출간된 토지개혁론요강 의 표지 책속에 실린 백범김구선생의 휘호 (불환과이환불균) 한국미술사학계의 중요한 연구자료 될 논문 발간 기념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한 권의 책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짧은 휘호가 적혀 있다. 불환과이환불균( 不 患 寡 而 患 不 均 ) 즉, 위정자는 백성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불평등한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휘호가 적혀 있는 책은 바로 김준보( 金 俊 輔 )가 1948년에 쓴 토지개혁 론요강( 土 地 改 革 論 要 綱 ) 이다. 토지개혁론요강 은 백범 김구 선생의 뜻에 따라 한 국독립당 선전부장 엄항섭이 주선하여 저술된 책으로 당시 토지개혁의 당위성과 방향을 설정한 유일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에는 엄항섭의 서문 ( 序 文 )이 들어 있으며, 내지에는 不 患 寡 而 患 不 均 이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휘호 와 서명, 낙관이 찍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준보는 토지개혁론요강 을 저술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당시 김준보는 신당동의 조그만 옛날 일본식 가옥에서 살고 있었다. 1948년 1월 어느날, 김준보는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았다. 중요한 일로 김준보 교수님을 뵈러 왔는데요. 김준보 교수님이신가요? 내가 김준보요, 어디서 무슨 일로 왔나요? 네, 경교장 에서 왔는데요, 김구 주석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그날 찾아 온 사람은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인 엄항섭 씨였고, 김구 선생이 우리 나라 토지정책에 관해 김준보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전 갈이었다. 이 일로 김준보는 경교장에 가서 김구 선생과 대면을 했 고,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토지정책 문제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후 약 3개월이 지나 김준보는 우리나라 토지정책에 대한 소고 라는 약 70여 페이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경교장에 가서 김구 선 생에게 직접 전달했다. 그리고 김구 선생에게 제출한 우 리나라 토지정책에 대한 소고 를 기반으로 1948년 그 해 에 토지정책론요강 을 발간했다 1. 백범 김구 선생이 이 책에 휘호하신 불환과이환불균 ( 不 患 寡 而 患 不 均 ) 은 <논어( 論 語 )> 계씨편( 季 氏 篇 ) 에 나 오는 공자( 公 子 )가 한 말이다. 공자는 聞 有 國 有 家 者 不 患 寡 而 患 不 均 하며 不 患 貧 而 患 不 安 이라 하니, 蓋 均 이면, 無 貧 이오 和 면 無 寡 오 安 이면 無 傾 이니라. 고 하였다. 이는 듣자 하니, 나라와 집을 다스리는 사람은 부족한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을까를 근심하며, 가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1총강 6. 임시정부는 13년 4월에대외선언( 對 外 宣 言 )을발표하고삼균제도( 三 均 制 度 )의건국원칙 을 천명( 闡 明 )하였으니 이른바 보통선거제도( 普 通 選 擧 制 度 )를 실시하여 정권( 政 權 )을 균 ( 均 )하고 국유제도( 國 有 制 度 )를 채용( 採 用 )하여 이권( 利 權 )을 균( 均 )하고 공비교육( 公 費 敎 育 )으로써 학권( 學 權 )을 균( 均 )하며 국내외( 國 內 外 )에 대하여 민족자결( 民 族 自 決 )의 권리( 權 利 )를 보장( 堡 障 )하여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와의 불평등( 不 平 等 )을 삼제( 芟 除 )할지니 이로써 국내에 실현하면 특권계급( 特 權 階 級 )이 곧 소망( 消 亡 )하고 소수민족 ( 少 數 民 族 )의 침몰( 侵 沒 )을 면( 免 )하고 정치와 경제와 교육권의 권리를 고루게 하여 경 중( 輕 重 )이 없게 하고 동민족( 同 民 族 )이 이족( 異 族 )에 대하여 또한 이러하게 한다 하였 다. 이는 삼균제도의 제1차 선언이니 이 제도를 발양확대( 發 揚 擴 大 )할 것임.(중략) 대한민국23년(1941년) 11월 28일 대한민국건국강령을 제정하여 이에 공포함. 난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편안하지 않을까를 근심한다 고 했다. 물자 분배가 고르면 가난이 없고, 화목하면 백 성이 적지 않으며, 편안하면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을 것 이니라. 는 말로 물자 부족을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고르게 분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또 물자를 고르 게 분배하면 빈곤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귀는 광복 이후 백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임시 정부가 독립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떠한 고민을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심사상인 삼균( 三 均 )주의 는 정치적 균등(보통선거제), 경제적 평 등(토지국유와 大 생산기관 국유제). 교육적 평등(국비 의 무교육제)을 기반으로 하여 이를 통해 개인과 개인 간의 고르고 행복한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토지개혁론요강 은 출판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현재에 도 고른 분배를 통한 행복추구 에 대한 백범 김구 선생 의 혜안( 慧 眼 )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01 한국농업경제학회 편저, 2009, 한국농업경제학의 泰 斗, 김준보 선생의 삶과 학문세계- 碧 齊 金 俊 輔 敎 授 回 顧 論 文 集 -, 농민신문사 김준보( 金 俊 輔, 1915~2007) 1915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이리농림학교, 수 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규수제국 대학 재학 중 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하였고, 졸 업 후 1942년 경기 연천군수, 44~45년까지 행 정공무원으로 재직하였다. 1946년 10월 수원 농과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농업경제학과를 창 설하였고, 1946~62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1965~80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1982~87년 한신대학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1957~1970년까지 한국농업경제학회 초대회장, 1971~73년 한국통계학회 초대회장, 1978~80 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농업경제, 토지개혁론요강 등이 있다. 36 백범회보 2013.겨울 37

20 다시 읽는 백범일지 I 2013년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백범김구기념관과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가 지난 2005년부터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백범 김구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알리기 위하여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를 실시한 이래, 제300회째 대회를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총 참가자가 500,069명을 넘어섰다. 제300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시상식 열려 지난 11월 22일 서울 중산고(교장 류만열)에서 2013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시상식이 개최 됐다. 특히, 이번 시상식에는 제300회 대회를 기념하여 (사)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김신 회장, 이상운 부회장 외 관계자들과 교사, 학부모 대표, 학생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학교 측은 백 범 김구 선생의 탄생 137주년과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300회를 맞아 1, 2학년 전원을 대 상으로 민족의 큰 스승인 백범 김구 선생의 위대한 삶의 여정과 사상, 민족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새 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백범사상 토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희생정신 과 투지를 배우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날 2학년 신현준 학생을 비롯해 총 11명의 학생이 상패와 시상금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작 선정 은 중산고와 백범김구기념관의 공동 심사로 이뤄졌다. 1등인 백범상을 수상한 신현준 학생은 평 소에 존경하고 따르던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글이 좋은 평가를 받아 기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김구 선생처럼 훌륭하고 완벽한 리더가 부재하며, 민주주의 문화도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빛나는 리더십과 추진력을 꼭 닮은 리더로 성장해 민주한국, 문화한국에 보탬이 되 고 싶다 고 소감을 밝혔다. 중산고등학교(11월 22일) 38 백범회보 2013.겨울 39

21 재단법인김구재단,CIS지역 제1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시상 중산고등학교(11월 22일) 지난 2013년 10월 19일 모스크바 국립경영대학교 학술대회장에서 제1회 CIS지역 백범일지 독후감대회 시상식이 개최됐다. 재단법인 김구재단(이사장 김호연)과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가 주최하고, CIS한글학교협 의회(회장 고영철)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CIS지역의 한국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 겨레사랑의 애국정신을 고취시 킬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장훈고등학교(9월 7일) 동일여자고등학교(10월23일) 이날 행사에는 김구재단의 천진환 부이사장, CIS한글학교협의 고영철회장과 서영성 사무국장이 참석하였고, 러시 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원, 모스크바한국학교 교장 및 교사, 학생, 모스크바 1086한민족학교 교감 및 교사, 학 생, 수상자를 비롯해 가족, 축하객 200여 명이 참석한 가 운데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특히 천진환 부이사장은 축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겨 레사랑의 얼을 이어받고,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 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새로운 높고 근원이 되 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위한다는 문화국민 지 향의 기치를 계승하자 라는 김구 선생의 문화국가론 을 전주신흥고등학교(9월 27일) 분당영덕여자고등학교(10월 14일) 역설하였다. 40 백범회보 2013.겨울 41

22 동남아시아지역에서도 제1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시상식 열려 김구재단(이사장 김호연)과 동남아시아한글학교협의회(esaksc 회장 박정희)에서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 6개국 산하 한글학교에 재학 중인 240명을 대상으로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를 개최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지정 도서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읽는 백범일지 를 무상으로 증정, 지난 6월 응모작을 심사한 결과 총12명이 최종 수상자로 선발되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백범상수상삭 국가와민족을위해 우리가해야할일 다시 읽는 백범일지 II 신현준 중산고 2학년 김 구가 백범일지 를 저술하게 된 동기는 두 아들에게 자신의 경력을 전해 주 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백범일지 는 김구 자신의 행적을 진솔하게 기록한 책이다. 전반부에는 어린 시절부터 1927년 임시정부의 국무령이 될 때까지의 행적 이 기술되어 있다. 동학, 의병,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한 행적과 세 차례에 걸친 투옥 및 탈옥, 그리고 상해의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과정과 활동 내용 등이 상 세히 기술되어 있다. 후반부는 상해를 떠나 중경에 정착하기까지 임시정부의 이동 및 활동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특히 이봉창, 윤봉길 의거의 전말과 중국 국민당 정 부와의 관계, 김원봉과의 좌우합작 추진과정, 그리고 임시정부의 중경정착 및 광복 군 창설에 관한 내용 등이 서술되어 있다. 시상식은 10월 10일(목)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팰리스 호텔에서 내외 귀빈을 비롯해 한글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이 모인 자리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백범상에는 베트남 호치민 토요한글학교 이수형군이 대한민국 문지기의 삶 으 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래 내용들은 백범이라는 인물을 내가 생각해 본 것이다. 1) 백범은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의 소유자다. 그의 추진력은 어릴 때부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백범일지 의 소년기 회상록 속 에 보인다. 백범은 나라를 위하는 일이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남들이 엄두도 내지 못 하는 일들을 대담하고 용감히 실행해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다. 백범이 19세 의 어린 나이로 동학의 팔봉 접주가 되고 선봉장이 된 일, 김이언 의병 부대에 투신 한 일, 일본군 특무장교 쓰치다를 처단한 일, 한인애국단 조직과 이봉창 의사, 윤 봉길 의사의 의거, 어려운 조건에서의 광복군 창설 등은 그의 이러한 추진력과 강 한 리더십과 관련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백범은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실리를 추구했다. 백범일지 를 읽다보면 백범이 실질적 논의와 실천을 중시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 다. 백범이 동학, 유교, 불교, 기독교의 여러 가지 종교를 모두 섭렵한 이유도, 사람 을 도덕적으로 교화시켜주고 독립을 지원해주기 위함이었다. 백범은 종교의 이론에 도 집착한 일도 없었고 종교적 배타성 같은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42 백범회보 2013.겨울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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