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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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INU 통일대계연구 통일대계연구 남북합의통일 마스터플랜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향후 5년( )간의 정세를 중심으로 박형중, 김규륜, 임강택, 정영태, 조한범 황병덕, 이기동, 장용석, 차문석, 최봉대, 최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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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향후 5년(2012~2016)간의 정세를 중심으로 인쇄 2011년 12월 1일 발행 2011년 12월 1일 발행처 통일연구원 발행인 통일연구원장 편집인 남북협력연구센터 기획 디자인 인쇄처 두일디자인( ) 등록 제 호( ) 주소 ( ) 서울특별시 강북구 한천로 1307(수유동) 통일연구원 전화 (대표) (직통) 팩시밀리 홈페이지 ISBN 가격 17,000원 c통일연구원, 2011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간행물은 전국 대형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문의) 정부간행물판매센타: 매장: 사무실: 본 서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당 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향후 5년(2012~2016)간의 정세를 중심으로 박형중 외

5 통일대계연구: 남북 합의통일 마스터플랜 수립 본 연구는 통일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수행하 는 통일대계연구: 남북 합의통일 마스터플랜 수립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통일대계연구 는 남북 합의통일을 기본 전제로 포괄 적인 통일대계를 수립하고 단계별 통일의 과제를 확인한 후 구 체적인 실행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남북한 통일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1차년도인 2010년에는 합의통일 환경 조성 이라는 대주 제 하에 통일의 비전과 가치, 통일의 대내외 환경 평가, 독일통 일과 사회주의체제 전환 이후 발전상 등을 연구하였다. 또한 국 내포럼과 국제포럼, 통일 UCC/포스터/메시지 공모전을 통해 통 일비전을 확산하고자 하였다. 연구 2차년도인 2011년에는 합의통일 추진전략 이라는 대주제 하에 북한변화 전략, 남북 친화력 확대 방안, 통일대비를 위한 국내외 과제 등을 연구하였다. 북한변화 전략은 현 시점부터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북한을 변화시키는 전략에 대한 연구이며, 남 북 친화력 확대 방안은 그 이후, 즉 대내외 환경 변화로 인해 북 한의 개혁개방이 본격화 된 시점부터 통일을 추진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5년 5년 현재 북한변화 단계 통일추진 단계 통일이후 통합단계

6 1차년도 사업 (2010) 01 통일환경 평가 (박종철 외) 02 통일비전 개발 (조민 외) 03 독일의 평화통일과 통일독일 20년 발전상 (황병덕 외) 04 사회주의 체제전환이후 발전상과 한반도 통일 (황병덕 외) 05 전환기의 북한과 통일담론 (배정호 외) 06 한반도 통일과 주변 4국 (최진욱 편저) 07 Korean Unification and the Neighboring Powers (최진욱 편저) 01, 02, 03, 04는 연구과제이다. 05는 국내포럼 결과이며 06과 07은 통일외교포럼 결과이다. 이 밖에 통일비전의 확산을 위한 통일 UCC/포스트/메시지 공모전이 있었다. 2차년도 사업 (2011) 01-1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박형중 외) 01-2 북한변화를 위한 한 중 협력방안 (임강택 외) 02 남북 친화력 확대 방안 (조민 외) 03 통일대비를 위한 국내과제 (박종철 외) 04 통일외교 과제와 전략 (최진욱 외) 05 US-China Relations and Korean Unification (최진욱 편저) 06 통통통일 (통일연구원) 01, 02, 03, 04는 연구과제이다. 05는 통일외교포럼 결과이다. 06은 통일의 비전과 가치를 국민들에게 보다 쉽게 알리기 위해 발간한 책자이다. 이 밖에 통일비전 확산을 목적으로 통일광장 이라는 이름의 강연 프로그램과 포럼이 실행되었다. 통일비전 확산을 위한 포럼은 한반도 통일의 비전과 가치 라는 소책자로 발간되었다.

7 목차 요약 ix Ⅰ. 서론 1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9 1. 독재정권 정치변동론 년대 북한의 내부정치 상황의 전개 년 이후 후계 및 대내정치 동향 북한 정권변동 관련 주요변수 47 Ⅲ. 북한의 경제변동 독재정권과 경제 년 이후 경제정책과 경제변화 ~2011년 경제상황 북한 경제변동의 동력과 방향 141 Ⅳ. 북한의 사회변동 정권 대 사회관계의 변화 사회 자체의 변화 접경지역의 정세와 의미 - 북한변화와 갈등의 선도 지역 년 이후 접경지역에 대한 비사검열의 양상 북한 사회 변화의 동력과 방향 212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년 말까지 정세 종합과 2012년 정세 전망 년 이후 정세 변화 주요변수 북한 내부 변화의 네 가지 시나리오 264

8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통일 대북정책의 중장기 전략방향 향후 5년 대북정책 목표와 환경 향후 5년 대북정책 추진 원칙 향후 5년 대북정책의 기본방향 향후 5년 대북지원 전략의 원칙과 방향 시나리오별 대북정책 고려사항 356 Ⅶ. 요약 및 결론 359 참고문헌 373 최근 발간자료 안내 381

9 표목차 <표 Ⅱ-1> 개인 독재정권의 이행 16 <표 Ⅲ-1> 2009년 말~2011년 초 평양의 쌀값 동향 86 <표 Ⅴ-1> 비핵화 정책의 3변수와 8가지 조합 255 <표 Ⅴ-2> 2012년 이후 북한 내부 변화 향배 규정 주요 요소와 시나리오 264

10 요 약 북한은 1990년대 위기를 거쳐, 2000년대 대체로 안정되었다. 그러 다가 2009년 이후 대내외 생존여건 악화에 직면하고 있다. 세 가지가 문제이다. 첫째, 권력 세습의 위기이다. 둘째, 2차 핵실험 이후 대외관 계의 위기이다. 셋째, 내부 통치의 위기 또는 정권 대 사회 간에 긴장 의 강화이다. 이 글은 향후 5년( )간 북한변화를 어떻게 하면 촉진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분석한다. 그 첫 번째는 정치, 경제, 사회의 세 분야에 걸쳐 현재까지 북한이 도달한 변화상을 검토하고, 그에 내재해 있는 변화 추동인자와 동력을 찾아 낸다. 두 번째, 앞으로 5년간 북한의 체제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앞으로 북한문제 진화 양상은 핵문제에 대한 전략 적 재타결의 여부 및 북한정권이 내부적으로 반개혁 또는 개혁 노선 을 견지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5년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은 북한이 협조하는 가운데 조속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시 키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내부 개혁을 통해 경제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점진적으로 자유화를 실현해 가는 것이다. 한국 의 정책목표는 단기적으로 북한이 자신의 정책목표에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공세에 대해 방어와 역공을 하는 것이며, 중기적으로는 북한이 정책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장기적 으로 한국의 최대 정책목표를 관철하는 것이다. 이 같은 최대 목표를 지향하면서,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정책목표를 구체적 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저지하고, 북한 요약 ix

11 이 진정으로 비핵화 협상괘도에 복귀하도록 한다. 둘째, 북한이 비핵 화 궤도에 진입하여 단계적으로 미국 및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이루 도록 하며, 비핵화 협상 시작과 함께 한국 및 주변국과 평화체제 협상 을 시작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평화체제 수립 및 미 북 국교정상화를 비롯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도록 한다. 셋째,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대 북지원은 북한을 비핵화와 내부 개혁을 촉진하고 남북한 사이 당국과 민간의 접촉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한다. 넷 째, 북한은 내부 개혁을 추진하여 생산성을 높여 경제 자생력을 기르 며, 대외원조 및 경제협력은 북한의 개혁을 촉진하고 뒷받침하는 방 향에서 주어져야 한다. 다섯째, 북한은 점진적으로 정치적 해빙 또는 자유화 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인권을 개선하고, 마약, 인신매매, 불 법 거래를 근절한다.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위와 같은 북한을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첫째, 전략적 선제와 적극적 대응이다. 둘째, 북한의 도발에 철저 대비해야 한다. 셋째, 북한정권에 대해서 이익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한 상호주의를 추진해야 한다. 넷째, 국제수 준의 모니터링을 전제로 한국은 북한주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 다. 다섯째, 대북정책은 정권과 주민을 구별하며, 주민의 역량강화를 촉진한다는 화두를 모든 정책 사안을 숙고할 때마다 고려해야 한다. 여섯째, 앞으로 정권 대 주민 간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질 것을 내다보 면서 이를 고려한 정책 방향을 추진한다. 일곱째, 앞의 넷째부터 여섯 째까지의 항목을 실현하자면 적극적 관여정책이 필요하며, 이에 따른 손익 계산을 전략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x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2 Ⅰ 서론 Ⅰ. 서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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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했다. 또한 1994년 에는 김일성 사망을 맞이했다. 일반적으로 독재정권을 붕괴 위험에 봉착하게 하는 두 가지 요인에 동시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1 그러나 북한정권은 1998년을 지나면서 재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00년 대에 북한정권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다. 이 러한 사이 북한에서는 여러 변화가 발생했다. 계획경제와 당조직이라 는 구체제의 근간이 약화되는 대신, 시장이 확대했고 주민의 대외정 보 접촉이 증가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북한정권에게 도전이자 기회였다. 한편에서 북한정권은 각종 정권기관을 앞세워 시장확대에 적응하면서 시장확대를 정권 생존에 필요한 경제잉여 추출의 기제로 활용했다. 다른 편에서 전통적 통제가 약화된 것을 보완하기 위해, 그 리고 시장확대가 정권에 제기하는 여러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강압 정책을 강화하면서 각종 공안체계를 확장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상대적 안정을 누렸던 북한정권은 2000년대 후반에 들어가면서 또 다시 위기적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위기 는 세 가지 문제의 복합체로 이루어졌다. 첫째, 권력세습의 위기이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북한은 본격적으로 후계 준비시기에 진입했다. 이후 2009년 1월부터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립시키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 행되었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상층 권력 재편이 있었다. 그 일환으 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가 개최되었다. 일반적으로 권력이양의 시 기는 독재정권에서 위기의 시기이다. 2 권력이양에 대한 정해진 규칙 1 Eva Bellin, Coercive Institutions and Coercive Leaders, Marnom Pripstein Posusney and Michele Penner Angrist (eds.), Authoritarianism in the Middle East: Regimes and Resistance (London: Lynne Rienner Publishers, 2005), p Gordon Tullock, Autocracy (Norwell: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87), pp Ⅰ. 서론 3

15 이 정해져있기 않기 때문에 잠재 후계자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어 치 명적 정권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대 후반으로 써 나이가 매우 어리고, 후계자로서의 명망과 권력기반을 확충해나갈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세습후계자로 등장했다. 김정은은 새로운 권력 기반을 건설하기 위해 상층 권력기관들 사이에 이권 배 정을 조정할 것이며 상-중-하층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승진시키 고자 시도해왔다. 이는 상층 권력기관과 관련 인물들 사이에 또한 구 래 기득권 집단과 신진 상승세력 간에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또한 북한의 대내외 상황은 권력세습 문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지도 자가 안정적으로 끌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둘째, 대외관계의 위기이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2007년 한국과 미국을 단계적 핵 협상으로 견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협상은 2008년 12월경에 검증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이르러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북한의 기대와는 달리 2007년 2차 정상회담 공동선 언은 이행되지 못했고, 2008년부터는 남북관계도 악화되었다. 북한은 대남관계에서 2008년부터 군부를 내세워 남북관계를 군사화 했다. 이어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2010년에는 한국에 대해 군 사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과 관계악화 그리고 국 제적으로 강화된 제재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해외 경제 지원도 대폭 삭감되었다. 이 때문에 내부 경제에 긴장이 발생했 으며, 아울러 북한은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셋째, 내부 통치의 위기 또는 정권 대 사회 간에 긴장의 강화이다. 2004년까지 추진했던 개혁적 정책을 2005년부터 점진적으로 폐기했 다. 2007년 5월부터 그간의 개혁적 현상에 대한 전국적 비사검열이 현저히 강화되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2008년을 넘어 2009년 11월 화 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6 폐교환조치에서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반개혁적 정책 기 조는 내부 경제를 불모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시장 참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생계형 중소 상인층과의 갈등을 강화시키고 있다. 특히 2009년 11월의 화폐교환조치는 대부분의 자금을 내화로 소지하 고 있던 중소상인층과 일반주민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화폐개혁 으로 시장을 유지 시켜주던 하부구조가 붕괴하고 다수 주민의 구매력 을 현저히 약화시켜 2010년부터 북한경제는 사실상 불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화폐개혁은 또한 일반주민에게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근원지 가 중앙의 정책이라는 점도 각인시켜주었다. 이로 인해 정권에 대한 주민 불만이 증가했고 낙서 행위와 같은 초보적 저항 시도도 증가하 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당국은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부와 같은 내부 공안체계를 현저히 강화했다. 아울러 2010년 9월 당대표자 회 이후 김정은이 책임자가 되어 주로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각종 비 사검열이 현저히 강화되었다. 그 주요 대상은 탈북, 마약, 외래문화 침투였다. 2011년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 명목으로 또한 보위사령부 와 호위총국과 같은 군부기관까지 동원되어 검열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갔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검열의 효과가 낮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글은 향후 5년(2012~2016)간 북한변화를 어떻게 하면 촉진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분석한다. 그 첫째 는 정치, 경제, 사회의 세 분야에 걸쳐 현재까지 북한이 도달한 변화 상을 검토하고, 그에 내재해 있는 변화 추동인자와 동력을 찾아내고 자 한다. 이를 위해 이러한 작업에 도움을 주는 학문적 개념과 이론을 활용한다. 단, 본 연구의 중점이 북한 체제변화 이기 때문에, 그 주요 변화의 구조적 트렌드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또 한 다른 프로젝트와의 분업관계를 고려하여 김정일 건강 변수, 급변 Ⅰ. 서론 5

17 사태 가능성 등은 의도적으로 고려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를 바탕으 로 둘째, 앞으로 5년간 북한의 체제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 대안 을 제시한다. 여기서의 정책 대안은 이른바 전략 기획(strategic planning) 에 해당한다. 전략 기획이란, 미래를 지향하되, 너무 먼 미 래가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전투의 연막과 위기에 매몰되어 있는 작 전 장교의 시야를 넘어서는 미래이다. 이러한 시야는 대두하고 있는 물체의 개략적 형상을 볼 수 있을 만큼 멀리보아야 하고, 이를 대응하 고 예측하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을 개략적으로 알려주 어야 한다. 3 이러한 정책 기획을 하자면, 현존 정책을 끊임없이 재 평가 해야 하며, 새로운 분석 렌즈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행위를 재해 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제Ⅱ장은 북한정치의 현상과 그에 내재된 변화 추동인자와 동력 을 규명한다. 이를 위해 독재정권의 정치변동에 관한 이론을 소개하 며, 그간의 북한 정치변화 역사, 현존하는 주요 정치현안, 그에 내재 되어 있는 미래 형성적 요인을 찾아내어 제시한다. 제Ⅲ장은 경제에 관하여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북한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써 독재의 경제논리, 정치적 자본주의, 그리고 외래지대 의존국가 라는 세 개념을 도입한다. 그리고 2010~2011년의 경제상황을 여러 주제를 설정하여 분석한다. 또한 시장확대의 주도세력 현황과 그것이 북한정치에 함축하는 의미를 알아본다. 특히 특권적 기관의 상업적 활동에 대해 서술한다. 제Ⅳ장은 북한사회에 관한 것이다. 북한정권 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 왔는데, 이는 사회에 대한 통치방법을 정치 3 Dean Acheson, Present at the Creation (New York: W. W. Norton, 1969), p. 214; Daniel W. Drezner (eds.), Avoiding Trivia: The Role of Strategic Planning in American Foreign Policy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9), p. 4에서 재인용. 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8 공안에서 사회공안으로 바꾼 것에서 잘 나타난다. 사회공안에서 핵심 적 역할을 하는 것이 국경지역에 대한 비사검열의 강화이다. 내륙지 역과 비교할 때, 접경지역은 북한변화의 첨단지역이며, 정권 대 사회 간의 갈등이 선진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다. 여기서는 접경지역의 지 역적 특색을 분석하고 2010년 하반기부터 격화되고 있는 접경지역 비사검열 현황을 서술한다. 제Ⅴ장은 향후 5년 북한변화 시나리오이 다. 여기서는 향후 북한내부 변화의 향배를 결정한 핵심 불확실 변수 로 두 가지를 설정한다. 첫째, 핵문제에서 북한과 한국 및 미국과의 타협인가 대결인가, 둘째, 북한내부 정책이 개혁지향적일 것인가 반 개혁지향적일 것인가이다. 이 두 가지 변수를 조합하면, 네 가지 시나 리오가 나오는데, 이를 자세히 서술한다. 제Ⅵ장은 향후 5년 동안 북 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서술한다. 향후 5년 동안 의 정책은 통일대북정책의 전반적 전략 방향 속에서 위치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서술한다. 그 다음으로 향후 5년 동안의 정책목표 와 환경을 검토하고, 이에 기반을 두고 향후 5년 정책 방향에 대해 서술한다. 여기서는 향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 방향, 대내 상황의 진화 시나리오 등을 고려하면서, 내부 변화를 촉진하는 한편, 한국이 중장 기 전략적 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숙고한다. 이 글은 북한내부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다양한 공개 자료를 사 용했다. 탈북자 증언, 각종 언론매체의 북한 관련 보도, 각 국가의 공 식 보도 자료, 각종 민간단체의 북한 정보 자료 등이다. 이러한 자료 들이 특히 2010년도와 2011년도의 북한내부 상황 전개를 구체적으 로 파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여기서의 서술은 많은 부분에서 언급 된 공개 자료의 내용을 인용하고 재조합한 것이다. 물론 그 내용 중 에는 부정확한 것이 섞여있을 수 있음에 유의했다. 이러한 부정확성 을 감수하는 것은 일련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자료의 취합 Ⅰ. 서론 7

19 과 상호 검토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북한내부 변 화의 대강과 큰 흐름을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 은 2011년 10월 31일까지의 자료를 사용했다. 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0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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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향후 5년간 북한정치 정세 변동에서 핵심적 사항은 권력승계의 진행이다. 여기서는 세 단계로 논의를 진행한다. 먼저,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독재정권 정치변동론을 논한다. 이러한 논의는 현재까지 진 행되었고 앞으로 진행될 권력승계 과정과 관련된 정치변동을 분석하 고 예측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두 번째 단계는 북한정치의 역사를 간략히 회고하고 특히 2010년과 2011년 현재까지의 여러 정 치적 조치와 사건을 서술한다. 그 목적은 현재와 미래의 권력세습 및 북한정치 진행과정이 어떠한 맥락에 위치해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북한 정권변동의 동 력과 방향과 관련한 주요변수를 6개를 설정해 본다. 이는 첫째, 최고 통치자와 후계자의 관계, 둘째, 권력 엘리트 내 갈등구조, 셋째, 최고 통치자와 군부와의 관계, 넷째, 혁명적 반대세력의 유무와 형세, 다섯 째, 외부세력과 북한 내부의 연계 관계, 여섯째, 정권 대 주민 간의 관계이다. 1. 독재정권 정치변동론 여기서 서술하고자 하는 것은 독재정권의 정치변동에 관한 비교 정치학적 이론과 통찰이다. 독재정권 4 은 크게 보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당독재, 둘째, 군부독재, 셋째, 개인독재가 그것 이다. 5 북한은 이와 같은 유형 중에서도 개인독재 유형 6 이라 할 수 있다. 4 이 글의 성격상 현학적 개념 논의는 가급적 배제했다. 여기서 독재정권이라 할 때, 비-민 주정권 또는 권위주의와 같은 개념을 포함한다. 5 Paul Brooker, Non-Democratic Regimes (London: Palgrave, 2009); Barbara Geddes, Paradigms and Sand Castles: Theory Building and Research Design in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11

23 북한에서 핵심적 정책은 조선노동당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같은 최고통치자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다시 말해 조선노 동당이 최고지도자를 실질적으로 선출하며, 노동당 내의 의사결정에 의해 당과 국가의 정책 노선이 결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최고 지도자가 조선노동당을 자신의 통치도구로써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여러 독재 유형 중에서도 특히 개인지배의 성격이 강한 독재정권에서의 정권변동이다. 일반적으로 독재정권 정치변동에서 주요한 관찰 항목은 통치자와 군부, 통치자와 국내 엘리트, 내부세력과 외부세력 간의 관계, 정권 대 주민의 관계 등이다. 독재의 경우에도 네 가지 항목의 배합양상은 경우마다 다르 며, 그에 따라 현존 독재정권이 위기에 빠지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정치변동의 양상과 결과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이론적 통 찰을 북한의 현재 상황에 적용하여 분석해보면, 앞으로 북한에서 발 생할 정치변동이 어떠한 양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 개략적 방향을 추 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정권의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정권이란 핵심적인 정치권력 의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조직화, 그러한 정치권력과 사회 간의 관계 이다. 이에 따라 누가 정치권력에 접근하며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 하는가 가 결정된다. 7 정권의 기본 적 특징은 정치권력이 조직되는 이와 같은 원칙과 규범에 의해 결정 Comparative Politics (Michiga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3). 6 현학적 논의를 배제하는 차원에서 여기서 개인독재라는 개념은 개인통치(personal rule) 또는 신가산제(neopatrimonialism)라는 개념을 포괄하여 지칭한다. 7 Robert M. Fishman, Rethinking State and Regime: Southern Europe s Transition to Democracy, World Politics, Vol. 42, No. 3 (April 1990), 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4 된다. 특정 정권 내에는 이러한 원칙 및 규범에 조응하는 규칙과 의사 결정 절차가 존재한다. 원칙과 규범은 정권의 특성을 규정하고, 원칙 과 규범에 의해 규칙과 의사결정 절차가 결정된다. 따라서 하위 변수 인 규칙과 의사결정의 변화는 정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원칙과 규범을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8 다음으로 독재정권의 정치변동은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 서술 한다. 독재정권의 변동은 위로부터의 변화(top-down)와 아래로부터 의 변화(bottom-up)가 상호 교차하는 가운데 지배연합의 구성과 성 격이 변화하면서 발생한다. 먼저 독재정권의 변동에서 하향식 변화의 주요 원인은 최고지도자와 함께 기능적으로, 위계적으로 조직된 특권 적 집단들 간의 세력균형 변화이다. 9 다시 말해 지배엘리트 내에서 분열이 발생하고 그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강화될 때 정권변동이 발생한다 10 는 것이다. 다음으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보자. 독재정권 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시기 대중적 압력이나 사회적 요구가 지배연 합(ruling circle)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일반 대중이 정치에 참여하 거나 그들의 욕구가 반영되는 중재 채널과 절차가 존재하지 않더라 도 정권은 이와 같은 대중적 압력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11 실제 동유 럽 공산정권의 이행과정에서 대중적 저항과 욕구분출 현상들이 나 타났다. 8 Stephanie Lawson, Conceptual Issues in Comparative Study of Regime Change and Democratization, Comparative Politics, Vol. 25, No. 2 (January 1993), p Philippe C. Schmitter, Liberalization by golpe: retrospective thoughts on the demise of authoritarian rule of Portugal, Armed Forces and Society, Vol. 2 (1974), p Geoffrey Pridham, The Dynamics of Democratization: A Comparative Approach (London and New York: Continuum, 2000), p Ibid., p. 77.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13

25 북한과 같은 개인 독재정권의 정치변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행 위자 요소와 구조 요소를 구별해 볼 수 있다. 행위자 요소는 정권 내 강경파와 온건파, 온건 야당과 과격 야당으로 설정된다. 12 정권 강경 파는 독재자 통치를 무조건적으로 영구화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정권 온건파는 정권 내에서 일종의 비주류 세력으로서, 이들은 자신의 생 존과 독재자의 생존을 분리해서 인식한다. 과격야당은 독재자 제거를 넘어서서 현존 정권을 타도하고 국가를 장악하고자 한다. 온건 야당 은 독재자와 그 일당을 추방한다는 제한적 목표를 추구한다. 이들은 정권 내 온건파와 연합하는 경향이 있다. 구조적 요소는 세 가지이다. 통치자와 군부의 관계, 통치자와 사 회 엘리트와의 관계, 외부국가와 국내행위자의 관계이다. 13 통치자와 군부관계의 핵심은 통치자가 군부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까지 침식 시켰는가 이다. 예를 들어 통치자가 군부의 자율적 위계질서를 파괴 하고 충성분자에 기반을 둔 위계질서를 구축하거나 장교집단을 분열 시킴으로써, 군부를 보다 완전하게 자신의 개인적 통치도구로 변화시 켰을 수 있다. 이러한 군부는 국가를 외적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 아 니라, 통치자를 내란으로부터 수호하는 임무를 갖는다. (통치자로부 터) 군부의 자율성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물자공급에 대한 군부 의 통제, 경력(career path)에 대한 장교들의 예측능력, 불만에 대한 상호 소통, 인종적 지역적 계선에 따른 장교들의 균열, 충성이 의문스 런 군 인사에 대한 통치자의 숙청능력 등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통치자가 정규군 이외에 자신의 개인적 안전 수호를 임무로 하는 준 12 Richard Snyder, Paths out of Sultanistic Regimes: Combining Structural and Voluntarist Perspectives, H. E. Chehabi and Juan J. Linz (eds.), Sultanistic Regime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8), p Richard Snyder, Explaining Transitions from Neopatrimonial Dictatorships, Comparative Politics, Vol. 24, No. 4 (1992),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6 군사조직(paramilitary forces)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군부가 독자적인 제도적 자율성을 상실하고 통치자의 사적인 도구가 되어 있을수록, 정치변동은 발생하지 않거나 또는 발생한다면 혁명적 변화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통치자와 군부가 일체화되어 있을수록, 내부 반대 세력을 오랜 동안 진압할 수 있으며 또는 만약 위기에 빠 지는 경우 온건 군부나 야당이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취약하기 때문 에 혁명적 세력에 의해서만 타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와 엘리트의 관계는 엘리트에 대한 정치적 배제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현존 통치자가 사회 내의 엘리트들에 대해 포섭 적인 관계를 갖는다면 정권은 보다 안정적 경향을 보여 준다. 독재정 권이 후원네트워크(patronage networks)를 이용하여 엘리트들을 효 과적으로 포섭하고 있기 때문에 온건한 또는 혁명적인 반대세력의 성 장이 억제된다. 반대로 현존 통치자가 사회 내의 엘리트들에 대해 배 제적 입장을 갖는다면, 야당 세력은 정권 바깥에서 정권에 대항하여 형성된다. 정권으로부터 엘리트들의 소외가 광범할수록, 다층적인 반 정권 동맹의 형성이 촉진된다. 엘리트 배제적인 정권의 정치변동과 관련해서는 혁명적 세력과 통치자에 의해 배제된 온건한 세력들의 조 직적 능력과 전략적 선택, 자율적 군부 분파의 존재 등 온건파가 활용 할 수 있는 동맹의 존재여부, 도전을 막을 수 있는 통치자의 능력 등 이 검토되어야 한다. 일부 독재정권은 정치적 물질적으로 외부 초강대국의 지원에 의 존한다. 또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야당 세력이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만약 외세 의존도가 높은 독재정권이 위기에 빠지 는 경우, 초강대국은 내부 정치변동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외부 초강대국은 하수인 독재정권이 군대를 동원하여 내부 반란을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는 것에 반대할 수 있다.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15

27 이 경우 독재자는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 독재자가 유혈진압으로 정 권을 보존하는 경우, 이를 지원하는 외부 초강대국도 해당 국가 주민 으로부터 배척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독재정권이 이러한 궁 지에 도달하기 이전에 초강대국은 여러 영향 수단을 통하여, 정권이 야당과 타협하도록 종용할 수 있다. 또는 내부 반란으로 독재정권의 존속이 위기에 빠지는 경우, 외부 강대국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반대 세력의 집권을 도움으로써, 혁명이 발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개인독재정권의 정치변동에서 핵심적 세 가지 인자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군부가 통치자로부터 자율적인가 아닌 가이다. 둘째, 강력한 온건 야당이 존재하는가이다. 일반적으로 정권 내의 온건파는 정권 바깥 사회 내의 온건 야당과 연합하는 경향이 있 으며, 이 두 세력이 협력할 경우, 강력한 온건 야당 진영이 형성된다. 그러나 셋째, 역사적 구조적 이유로 온건 야당 진영이 취약하고, 강력 한 과격 야당 즉 정권을 혁명적으로 붕괴시키고자하는 강력한 혁명적 야당만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핵심 인자를 배합하 면 아래와 같은 8가지의 경우의 수를 얻을 수 있다. <표 Ⅱ-1> 개인 독재정권의 이행 구분 자율적 군부 강력한 온건 야당 강력한 과격 야당 후계정권 1 존재 존재 존재 이중 권력하의 민주주의 (필리핀) 2 존재 존재 부재 민주주의 3 존재 부재 존재 이중 권력하의 군사 통치 4 존재 부재 부재 군사 통치(아이티, 파라과이) 1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8 5 부재 존재 존재 온건파와 과격파 간의 내부 갈등의 만연 6 부재 존재 부재 독재자와 온건파 간의 내부 갈등 만연 7 부재 부재 존재 혁명(쿠바, 이란) 8 부재 부재 부재 안정(자이레) 출처: Richard Snyder, Explaining Transitions from Neopatrimonial Dictatorships, Comparative Politics, Vol. 24, No. 4 (1992), p 이 8가지 경우를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경 로는 자율적인 군부 분파와 온건한 엘리트 집단이 외부세력의 후원 하에 독재자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경우로써 민주주의로 이행 한다. 자율적인 군부가 독재자의 축출과 온건한 민간세력의 집권에 협조함으로써 혁명 발생을 방지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경로는 자율 적인 군부가 존재하지만 이들과 연합하여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온 건한 반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군부가 독재자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경우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군부가 독재자 에게 포섭되어 조직적 자율성을 상실한 반면 온건한 반대세력이 존재 하는 경우로서 혁명적인 반대세력이 있을 경우이다. 이 경우 온건한 반대세력과 혁명적 반대세력 간의 갈등이, 혁명적 반대세력이 존재하 지 않을 경우 독재자와 온건한 반대세력 간의 갈등이 일상화되는 경 로이다. 일곱 번째는 군부가 독재자에 포섭된 상황에서 혁명적 반대 세력이 강력하게 조직화된 경우로써 독재자와 혁명적 반대세력 간의 갈등이 혁명으로 발전하는 경로이다. 여덟 번째는 군부가 독재자에게 포섭된 상황에서 온건한 반대세력뿐 아니라 혁명적 반대세력도 존재 하지 않음으로써 현 독재자가 권력을 안정적으로 장악한 경우이다.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17

29 년대 북한의 내부정치 상황의 전개 앞으로 북한의 정치변동이 위의 8가지 경로 중에서 어느 경로를 밟을 것인가를 알아내자면, 현재 북한 내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 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현재(2011년)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1990년대 이래 북한의 정치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3절에서 김정은 이 공식 무대에 등장하여 후계체제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전후의 상황에 대해 서술한다. 이를 바탕으로 4절에서 는 현재 북한의 정치 상황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내부 균열에 대해 서술한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정치사에서 1995년, 2005년, 2010년은 중 요한 전환점이었다. 1995년에는 선군정치가 시작되었으며, 2005년부 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1995년 이래 선군정치를 이끌어온 권력연합 이 점차 해체되고 그 대신에 새로운 권력연합이 점차 진용을 갖추어 갔다. 2010년 9월의 당대표자회는 김정은 후계자와 함께 새로운 권력 연합이 등장하는 것을 선포하고 축하하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군부를 주도세력으로 하는 선군정치는 1995년에 개시되어, 1998년에 체제를 완비하였다 년 전후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 에 취임하고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했다. 동시 에 1990년대 말 심화조사건 등을 빌미로 중앙당의 주요 인사들이 제 거되었다. 이 체제를 기반으로 2000년경부터 개혁적 경제정책이 시 작되었다. 2001년 7월에는 이제강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 되었다. 이어 2002년경 북한군 내부에서 고영희가 위대한 어머님 으 14 이하의 서술은 다음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박형중, 김정일 5월 방중과 2005년형 생 존전략의 위기, (Online Series CO 11-18, ); 박형중, 당대표자회의 재 평가: 새로운 권력 연합 출범의 자축 기념식, (Online Series CO 11-25, ). 1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0 로 내세워진다. 이는 당시의 군부 중심 권력연합이 후계문제를 세습 으로 해결할 것임을 미리 의도하여 선제조치를 취하며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 7월 개혁조치의 진행으로 노동당 의 위상은 더욱 위축되었다. 한편 선군정치가 시작된 1995년경 북한에서는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는 한편, 군부의 북한경제에 대한 개입이 현저히 증가했다. 김 정일은 국가경제의 운영권을 사실상 군부에게 맡기는 한편, 군부에 막대한 무역특권을 부여했다. 15 군부는 주요 각종 사회간접 국책 사 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일부 협동농장, 공장, 기업소를 내각으로 부터 이전받아 운영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군부의 자체 예산 충당을 명분으로 군부의 외화벌이 규모가 현저히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 북한당국의 경제정책은 이와 같은 시장팽창에 적응하고 이를 활 용하고자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북한당국은 2002년 7월 조치 를 취했다. 이에 따라 2004년까지 북한시장은 다시 한 번 팽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장팽창 속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군 부의 생존이 유지되었으며, 2002년 9월에는 전통적 중공업우선론 대신에 국방공업우선론 이 공표되어, 군수생산에 대한 자원 집중이 적극 추진되었다. 그런데 2005년 북한에서는 경제정책 방향과 그 주도그룹이 바뀌 는 중대 변화가 있었다. 2000~2004년간 내각 중심으로 추진되던 경 제개혁 노선은 중앙당의 공격을 받으면서, 점차 무력화되었다. 2005년 이후 점차 확실하게 윤곽을 나타낸 새로운 경제 노선을 요약해 보면, <시장 억제+군부단위 경제활동 억제+ 국가계획 부문 강화+외화 벌이 사업 확대 및 대외 원조 유입 확대>였다. 한 마디로 이는 <반개 15 박형중, 북한에서 1990년대 정권 기관의 상업적 활동과 시장확대, 통일정책연구, 제 20권 1호 (통일연구원, 2011), p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19

31 혁적 외화벌이 확대 노선>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이 노선의 성패는 한국이 얼마나 협조하는가에 달 려있었다. 실제로 이 노선의 황금 시기는 2007년 10월이었다. 이 시 기 북한에게 전략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를 기초로 정권 생존과 관련한 중장기 핵심 전략이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결과로 폐쇄형 특구 증설을 핵심으로 한 지원성 협력 이 확대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이는 북한에게 외 화벌이와 원조수취가 중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임을 예견해주었다. 동 시에 내부적으로 반시장 조치 및 공안강화가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었다. 당 행정부가 신설되고 장성택은 행정부장이 되었고, 반 시장 정책은 급격히 강화되었다. 또한 이 시기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정은이 2007년 이미 후계자로 내정되었다고 하며, 16 12월경 부터 북한당국이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할 것이라 천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를 보면, 반시장 조치와 공안강화는 폐쇄형 특 구 증설 및 원조 유입 증가와 쌍을 이루며, 이러한 맞물림이 중장기 적으로 안정성 있게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후계체제를 구축하고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정책을 결정하게 했을 것이라 추 론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노선은 2008년부터 세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먼저 2008년에 등장한 한국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노선에 대해 협조 를 거부했다. 2007년의 2차 정상회담의 선언은 사실상 무효화되었다. 이로써 북한의 2005년 경제노선의 생존가능성이 위태롭게 되었다. 한국(또는 그 어느 외부국가)이 대규모 지원과 폐쇄형 특구를 기조로 한 외화벌이 사업에 협조하여 (개혁 없는) 경제를 인위적으로 지탱시 16 엄한아, 김정은 날치기 후계자 아냐, 2007년 후계 내정, 열린북한방송, 2010년 10월 4일. 2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2 켜 주지 않고서는 내부경제를 불모로 만드는 반시장 정책은 반드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2005년 경제노 선이 성공할 것을 전제로 기획된 후계체제 구축 및 2012년까지 강성 대국 건설에 관한 중장기 전략에 위험신호가 켜졌다. 둘째, 2008년 12월경에 이르러 6자회담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비핵화 협상이 검증 문제에 관한 이견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이는 북한이 한국과의 긴장 을 한층 높였고, 셋째, 2008년 8월부터 10월까지 김정일이 뇌경색으 로 정치 일선에서 잠시 퇴장했다. 북한당국의 이에 대한 본격적 대응은 김정일이 정치 일선에 복귀 한 2009년 초에 이루어졌다. 특히 2009년 초부터 권력 재편의 속도가 빨라졌다. 2009년 1월경부터 김정은을 후계자로 전면에 내세우는 작 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직후 2009년 2월부터 4월까지 약 2개월 에 걸쳐 신구 군부 사이의 세력 판도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는 조치 가 취해졌다. 신군부 주요 인물들이 이 시기에 약진하게 된다. 2003년 9월부터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내던 이영호는 2009년 2월 인민군 총참 모장으로 임명되며 상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 2월 노동당 의 35호실과 작전부를 인민무력부 정찰국에 합병하여 인민무력부 산 하에 정찰총국이 설치되었고, 이후 미상의 시기에 상장 김영철이 총 국장에 임명되었다. 반면 (구)군부의 핵심인사들이 사실상 퇴진했다. 오극렬을 제외한다면 주요 퇴진인사들 모두 선군정치가 시작된 1995년 경부터 중용되었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1989년 7월부터 작전부장 으로 재직 중이던 오극렬은 2009년 2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 진했다. 1995년 10월부터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던 김영춘은 같은 달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 이 두 사람은 명목상 더 높은 자리로 승 진했지만, 실질적 권한 행사는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명 예롭게 실각했다. 그러나 김일철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2000년 9월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21

33 부터 인민무력부장으로 재임해 왔는데, 2009년 2월 인민무력부 제1 부부장으로 강등되었다. 이상의 권력재편과정을 통해 북한 군부의 실 권이 이영호 총참모장과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게로 이동되었다. 김정각은 2007년 3월에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 임명된 바 있다. 그런 데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이 2006년부터 건강 악화로 2007년부터 실질 적으로 중단해 왔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조명록은 1995년 10월 총정 치국장, 1998년 9월에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임명된 바 있다), 김정 각은 이미 2007년부터 총정치국을 실질적으로 지휘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2009년 초의 이러한 변동에 이어, 우연치 않게 2010년 전반기에 구 군부 세력연합에 속하는 나머지 주요 인물이 무력화되었다. 이후 6월 이례적으로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었고, 여기서 장성택이 국방 위 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이용철은 4월 26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다. 그는 1994년 조직지도부 제1부 부장에 임명되었고, 이후 16년 동안 군사문제를 담당했다. 인민무력 부 제1부부장이자 국방위 위원인 김일철은 동지 칭호도 생략된 채 5월 13일 해임되었다. 2001년 7월부터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던 이 제강은 6월 2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다. 건강악화로 이미 2007년부터 무력화되어 있던 총정치국장이자 국방위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은 11월 6일 심장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선군시대 상징하는 군부의 대표적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2010년 6월 29일 중앙당 정치국 명의로 당대표자회가 9월 상순 개최될 것이 공표되었다. 그 발표 시점을 보면 특징적이다. 우선 구 군부 세력 연합의 완전 퇴출이 완료되었다. 다음, 신진 세력의 핵심축 의 하나인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것도 김정 일이 참석하고 이례적으로 일 년에 두 번째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2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4 였다. 이를 바탕으로 신진 주도 세력은 새로운 권력진용의 출범을 알 리고 그 진용을 정비확충하기 위한 일종의 기념 및 단합대회로써 당 대표자회를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9월 상순으로 예정되었던 당 대표자회는 연기되어 9월 28일에 개최되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김정 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차지했다. 또한 그동안 방치 상태 로 있던 중앙당의 여러 기구가 정비 복원되었다. 내각의 여러 직책은 원로 당료로 충원되었다. 당대표자회 직후 10월 10일 열린 당 창건 65주년 군사퍼레이드는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 께 이를 관람했다. 아울러 북한은 한국이 정부교체와 함께 정책을 변경한 것에 대해 세 가지로 대응했다. 모두 대내외 정책이 훨씬 강경해진 것을 의미했 다. 첫째, 2009~2010년 일련의 강경 도발로 보복했다. 이미 2008년 초부터 군부가 이례적으로 대남관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을 거행했고, 2010년 3월에는 천안함을 공격하고, 11월에는 연평도를 포격했다. 아울러 요인 암살지령, 해킹 공격, GPS 무력화 시도와 같은 남측에 대한 공세를 다양화했다. 둘째, 2007년부 터 시장 억제 및 군부 단위 경제활동 억제 정책을 한 차원 높이고 지 속적으로 강화하는 가운데 2009년 11월에는 화폐교환이라는 극단 정 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셋째, 2009년 10월 원자바오( 溫 家 寶 ) 평양방문을 계기로 중국정부가 한국정부를 대신하여 대량 원조를 제 공해주는 파트너 그리고 폐쇄 특구형 외화벌이 사업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기 위한 본격적 사업에 들어갔다. 2009년 11월 화폐 교환 조치가 취해진 직후 2010년 초 조선대풍투자그룹과 국가개발은 행이, 7월에는 합영투자위원회가 발족했다. 아울러 김정일은 2010년 5월과 8월, 그리고 2011년 5월 일 년 새에 세 번이나 중국을 방문했다. 그 핵심 목적은 중국이 한국을 대신하여, 대량원조와 폐쇄형 특구사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23

35 업 투자를 통해, 반개혁적 북한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 를 관철하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5월과 8월 중국을 방문 한 후, 2010년 말과 2011년 초, 북한과 중국 간에 나선특구 개발, 황 금평 개발, 지하자원 공동개발에 관한 여러 양해각서와 협정이 체결 되었다. 2011년 5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 핵심 목적은 이와 같이 추진되어오던 협력사업과 관련하여 제기된 여러 문제를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담판하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년 이후 후계 및 대내정치 동향 북한 정세의 핵심은 후계체제 구축 동향이다. 2010년에 북한에서 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다양한 형태 로 진행되었던 김정은 위상 및 충성 고양사업을 제외하고 김정은과 관련되어 전해진 주요 소식과 정권 대 주민 간의 관계와 관련한 북한 의 내부 정치동향을 서술한다. 가. 후계 관련 동향 가장 중요한 것은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김정은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2011년 말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되었다. 17 화폐개혁이 초래한 경제혼란과 주민 피해는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특히 2010년 들어서 공개총살이 증가했다. 18 특히 화폐개혁 이후 17 안용현, 정보부 먼저 움켜쥔 北 후계자 김정은, 조선일보, 2011년 4월 13일. 18 엄한아, 북한, 최근 2년 새 공개처형 늘어,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13일; 공개총살 회수는 1990년대 후반에 연간 200여 회가 넘는 등 절정에 이르렀다가, 2000년대 들어서 2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6 2010년 12월부터 2011년 7월까지 8개월간 52명이 공개 처형되었다 고 한다 년도 1월부터 11월까지의 숫자는 16명이었다. 아울러 화폐개혁 이후 김정은은 지방기관과 무역회사들이 벌어들인 수입을 전면 상납하도록 했다(과거에는 60%). 20 아울러 12월 김정은은 국가 보위부 사업을 인수받았다고 한다. 보위부는 권한을 높여 사회와 군 대를 함께 볼 수 있게 하였다. 21 한편 화폐개혁이 초래한 경제 혼란의 과정 속에서 김정은은 1월 서해 포사격을 통해 긴장을 조성했고, 3월 에는 천안함 공격에도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4월에는 인민보안성 이 인민보안부로 격상되었으며, 국방위원회에 직속되었다. 22 화폐개혁에 의한 내부 혼란을 극복하는 데 중국의 도움을 빌기 위 해 김정일이 5월에 중국을 방문했다. 여기서 김정일은 쌀 50만 톤 지 원을 요청했고, 후진타오( 胡 錦 濤 )는 옥수수 50만 톤을 제안했다. 23 경제호조가 없는 상태에서 후계자를 공식화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러 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내부 긴장조성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김정 은 주도로 7.4그루빠 가 조직되었다. 국가보위부가 책임지고 마약, 매음, 도박 및 불순 록화물(특히 섹스 비디오)를 뿌리 뽑으라 했다. 24 이 그루빠의 활동은 무자비했고 아울러 강한 반발을 초래하여 7월 23일 상당히 감소한 상태를 유지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2010 북한인권백서 (서울: 통일연 구원, 2010) 참조. 19 이충원, 북 화폐개혁 후 8개월간 52명 공개처형, 연합뉴스, 2011년 2월 15일; 국제사 면위원회가 입수한 소식들에 따르면 2010년 동안 적어도 60명이 북한에서 사형에 처해졌 다. Death sentences and executions in 2010, Amnesty International (March 2011), p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임진강, 제10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 위의 글, p 김소열, 북, 인민보안성 부 개편... 통제강화, 데일리NK, 2010년 4월 6일. 23 아사히신문, 2010년 12월 12일. 24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pp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25

37 해산되었다. 이후 국가보위부 사업은 김정일에게 회수되었다. 김정일 은 8월 중국을 다시 방문하여, 27일 창춘에서 후진타오( 胡 錦 濤 )와 다 시 만났다. 김정일은 쌀 50만 톤을 2011년 1월까지 지원해 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25 9월 28일에 당대표자회가 개최될 때까지도 고위층 내부에서는 김 정은 후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가 형성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6 이제강, 조명록, 김일철 등 노장파는 후계수업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 을 주장했다(수업파). 이들은 대체로 1995년 이후 선군시대 에 집권 세력에 해당되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성택 중심의 소장파는 김정일의 건강 부담을 빨리 덜어줄 것을 주장했다(건강파). 27 이들은 대체로 선군시대 의 시작과 함께 혁명화 되었던 인물을 중심으로 하 고 있다. 이러한 대립이 당대표자회가 늦어진 이유 중의 하나로 보인 다. 타협책으로써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머물렀다. 그 대 신 당대표자회 이후 김정은은 재차 강력히 내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장파(수업파)와 소장파(건강파)에 속하는 인 물들에 주요 변동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다. 우선 소장파(건 강파)에 속하는 주요 인물들의 승진이 있었다. 장성택은 2010년 6월 이례적으로 소집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당대표자회 하루 전 최용해는 김정은과 함께 대장칭호를 받았고 아사히신문, 2010년 12월 12일. 26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임진강, 제10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p ; 최오남, 김정은 후계등극에 대다수 고위층들 침묵으로 일관, 열린북한방 송, 2010년 11월 2일. 27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임진강, 제10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p 총 6명이 대장칭호를 받았다. 여기에는 김경희(당 경공업부장), 김경옥(당조직지도부 부 부장), 현영철(인민군 중장), 최부일(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다. 2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8 이영호 총참모장은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했다. 이영호, 김영철 등 소 장파 군인을 득세시키고 김정은, 최용해, 김경희, 김경옥 등 민간인에 게 대장칭호를 수여한 것은 군부 노장인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0년 6월의 내각 개편에서 당 측의 노장인사가 대거 등용되었고, 9월의 당대표자회에서도 중앙당의 주요 기구에 대한 인 물 충원이 대거 이루어졌다.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과 김창섭 보위 부 정치국장은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보위부 정치국장이 북한 역사상 최초로 후보위원에 올랐다. 김정은과 장성택은 북한의 주요 엘리트에 대한 뒷조사를 통해 숙 청하는 명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29 이를 보면 다음과 같았다. 두 사람 은 화폐개혁 직후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김정일의 최측 근들이며 북한 사회의 엘리트세력들에 대한 비리에 대한 뒷조사를 실 시했다. 이 조사는 국가안전보위부와 김정은의 TF팀이 주도했고, 중 국의 공안기관과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이 조사는 북한 파워엘리트들 2,000여 명 중 600여 명을 대상으로 경제 생활 수입 대 지출 규모를 검토했다. 이 조사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 위원장이며 당시 군부 총정치국 국장인 조명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도 당 집행위원급인 동시에 중앙당 비서국 비준 간부대상들인 도당책임 비서, 조직비서, 도인민위원장, 도보안국장, 도안전보위부장이 포함되 었다. 이 조사는 국내 비리 뿐만 아니라 해외 중국 비자금거래 계좌자 금거래상황을 포함했다. 이들이 중국에 가지고 있는 비자금 은행계좌 의 조회를 위해 중국의 공안기관의 협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는 국가 보위부 우동측 부부장의 방중과 김정은 최측근 그룹인 TF팀의 노력 에 의하여 일정하게 타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김정은이 등장 29 한성관 이준운, 이영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급부상 이유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 터, 2011년 7월 20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27

39 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 개최를 전후로 수차례 중국의 공안기관 수장들과의 잦은 교류가 있었다. 이 조사의 결과 김일철, 오극렬, 김 영춘, 이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들 순으로 비자금내역이 상세하게 밝혀졌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이들의 정치적 지위가 약화되고 이영호를 부상시키게 한 가장 주요한 근거로 김정일 에게 보고되었다고 한다. 9월 28일 당대표자회와 10월 10일 당창건 65주년을 거치면서 대 주민 유화조치가 시행되었다. 10월 30일 중앙당은 군량미 사업을 올 해부터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군대 원호 고기 부담까지 폐지 되었다. 30 직후 11월 초 시장에서 식량 가격이 떨어졌다. 또한 중국으 로부터 쌀 수입이 증가했다. 10월 이후 전력 사정도 좋아졌다. 31 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9월 중순부터 대사령이 내려졌다. 단순 폭행, 무 단결근, 도둑질, 국가소유재산 절취 및 파손과 같은 생계형 우발형 범 죄자가 약 15만 명 정도 사면되었다. 32 아울러 주민국경통행증 발급 도 빨라졌다 월 3일부터는 인민보안부가 국경지역의 마약 사용 자 및 밀수업자를 색출하기 위한 마약단속반 을 조직해 활동을 개시 했다. 34 마약단속 강화는 김정은 등장 이후 불안한 민심과 국가기강 을 바로 잡기위한데 목적이 있었다. 10월 10일 당창건 65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관람하는 가운데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했다. 이 30 좋은벗들, 중앙당, 군량미 사업 중단 지시 내려, 오늘의 북한소식, 제374호 ( ). 31 좋은벗들, 군량미 중단 소식에 쌀 가격 떨어져, 오늘의 북한소식, 제375호 ( ). 32 좋은벗들, 당창건 65돐 기념 전국 대사령, 오늘의 북한소식, 제376호 ( ). 33 좋은벗들, 중국 방문 통행증 발급 빨라져, 오늘의 북한소식, 제377호 ( ). 34 김현경 김혜림, 김정은 등장 이후 민심잡기 위해 국경지역에 마약단속반 출동, 열린 북한방송, 2010년 10월 19일. 2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40 퍼레이드에서는 노농적위대가 노농적위군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 확 인되었다. 35 김정은이 당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면서, 전민을 군에 소속시켜 지휘 통솔할 수 있는 명령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목적 이 나타난 것이라 했다. 이에 따라 노농적위대는 노동당 민방위부에 서 분리되어 각 도에 있는 북한군 군단들에 배속되었다. 노농적위대 가 군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적위대장들은 자 기가 거느리는 적위대원 숫자에 따라 중대급은 상위, 대대급은 소좌, 연대급은 대좌의 군사칭호를 받았다. 도로공사를 전문하는 조선인민 경비대 도 조선인민내무군 으로 명칭을 바꿨다. 7월 말경 보위부를 김정일에게 회수 당했던 김정은이 10월경부터 보위부를 재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동향이 나타났다. 10월 9일 보위부 본 청사에서 김정은 장군님에게 보내는 편지 가 채택되었다. 36 김정 은은 10월 24일 김정일과 함께 국가보위부를 시찰하며 기강해이를 훈시했다고 한다. 37 아울러 보위부 산하기관에 외화벌이기관을 증설 할 제의서를 올릴 것을 지시했다. 이를 보면, 김정은이 다시 국가보위 부를 관장하는 것을 허용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위부장은 1987년 이 진수 전 부장 사망 이후 김정일이 겸임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보위 부원은 5만 명이다. 이후 각종 강력한 검열과 주민통제 활동이 11월 경부터 갑자기 증대된다. 38 또한 이러한 활동이 김정은의 이름과 함 35 최민석, 노농적위군 은 김정은 체제 강화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12일. 36 이준운, 북한, 김정일의 보위부 에서 김정은의 보위부 로, 열린북한방송, 2010년 10월 27일. 37 이준운, 김정은, 김정일 앞에서 국가안전보위부 기강 잡아, 열린북한방송, 2010년 11월 16일. 38 이처럼 정권의 사회에 대한 단속이 대대적으로 증가했던 시기는 2007년 중반부터 2008년 말까지가 있었다. 이 시기는 년 동안 시장확대에 따른 여러 비사회주의 현상 에 대한 통제가 목표였다. 2009년은 대체로 소강상태였다. 박형중, 북한 변화 의 재평가 와 대북정책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p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29

41 께 거론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김정은의 활동이 11월 1일 국 가배급 정상화 약속의 무실화,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 그리고 11월 물가급등 및 내부 경제상황 악화 시기와 겹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보위부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2011년 1월 보위부 부부장 이던 류경이 처형당했다. 39 류경은 공식적으로는 2010년 9월 당대표 자대회를 통해 처음 북한매체에 이름이 거명됐다. 김정일은 제3차 노 동당대표자회를 앞두고 6명에게 인민군 대장의 군사칭호를 부여하는 등 장성급 승진인사를 단행했고, 이때 류경은 중장( 二 星 )에서 상장 ( 三 星 )으로 진급하면서 진급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류경은 두뇌회 전이 빠르고 통솔력이 있어 국가안전보위부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웠 으며, 따르는 인물도 많았다고 한다. 외무성과 노동당 국제부를 제치 고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2004.5)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2009.8)의 방북을 성사시키는데 수완을 발휘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공로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류경은 적극 적으로 자기 업무영역을 넓히고, 주변에 튼튼한 인맥을 쌓았던 것으 로 전해진다. 실례로, 북한이 2009년 2월 기존의 대남공작 부서를 재 편해 정찰총국을 창설했는데 이 과정에 류경이 깊숙이 관여했다고 한다. 정찰총국은 노동당 내 4개 대남공작 부서 가운데 공작원 침투경로를 열고 테러를 담당하는 작전부와, 대외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35호실이 인민군 정찰국과 통합해 출범했다. 통일전선부는 당에 잔류하고, 대 외연락부는 내각 산하로 격하됐다. 이 때 류경은 보위부의 대외첩보 활동 강화를 명분으로 대외연락부의 노련한 요원들을 보위부 반탐국 에 흡수하겠다는 제의서를 올려 김정일의 승인을 받았다. 35호실과 39 안용현 이용수, 北 정보 무력 쥔 실세 혼자 와라 불러 제거, 조선일보, 2011년 5월 20일; 강철환, 류경 처형은 김씨 왕조의 몰락 신호, < >. 3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42 작전부의 정찰총국 편입으로 민간형태의 첩보조직이 사실상 군부에 들어간 공백을 보위부가 발빠르게 차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보위부 반탐국은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갖춘 조직으로 거듭나게 됐고, 보위 부의 대외공작에 상당한 힘이 실리게 됐다. 류경은 반탐국장의 핵심 요직에 측근인 김용식을 앉혔다. 류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반탐국 을 앞세워 중국에 무역대표부와 위장 무역회사를 설립해 활동하는 등 해외공작의 폭을 크게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의 지시 라며 인 사권과 재정권까지 마음껏 휘둘렀다고 한다. 류경은 또한 2010년 12월 서울을 방문했다. 김숙 국정원 1차장은 2011년 1월 평양을 방문했다. 이 러한 상호 방문에서 남북은 과거 사건들에 대한 유감표명과 1차 정상 회담은 판문점에서, 2차 회담은 평양에서 갖기로 했다고 한다. 류경 은 남쪽에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자신의 위치에서 축출되었다고 한다. 류경의 처형과 함께 반탐( 反 探 )국장 김용식을 비롯해 평소 류경과 가 깝게 지냈던 국가안전보위부 핵심간부 10명이 총살당하고 20명이 교 통사고 처리되었다고 한다. 40 당대표회 개최 1주년이 되는 2011년 9월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진행과정을 북한문제에 정통한 소식통 을 인용하여 종합 정리하는 대체로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한국 언론 매체에 실렸다. 이를 요약하 면 이렇다. 41 김정은은 당보다는 군과 보안기관을 중심으로 권력기반 40 윤완준, 북, 대남 대화파 30명 숙청했다, 동아일보, 2011년 7월 15일. 41 이현호, 김정은, 軍 에 실질적 지휘권 행사, 서울경제, 2011년 9월 22일; 조수영, 北 김정은 1년 軍 지휘권 행사 중, 한국경제, 2011년 9월 22일; 김보은, 김정은 軍 지휘 권 장악... 우상화작업 속도, 세계일보, 2011년 9월 22일; 박석원, 김정은, 군 보안기 관에 지휘권 행사, 한국일보, 2011년 9월 22일; 이용수, 김정은 후계자 지명 1년 北 공개처형 3배로 늘어, 조선일보, 2011년 9월 22일; 이흥우, 김정은, 후계지명 1년 만에 軍 보안기관 장악, 국민일보, 2011년 9월 22일; 이귀원, 김정은, 군 보안기관에 지휘 행사, 연합뉴스, 2011년 9월 21일; 김은지, 김정은, 군 보안기관 지휘권 행사 김정은 교과서 발간 추진, 미국의 소리, 2011년 9월 21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31

43 을 형성해 가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비호 아래 이영호 총참모장 과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등을 통해 군 부대 개편과 작전지시 등 실질적인 군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일선 군 부대 지휘관을 자신에게 충성심이 강한 30~40대로 교체해 군내 지지기반을 구축하 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또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 보안 기관의 조직과 인사에도 깊숙이 개입하여 지휘권을 구축하고 있다. 김정은은 정찰총국을 통해 대남무력공격을 자행했다. 김정은은 당 조 직지도부를 통해 감사권을 행사하면서 비리 간부를 숙청하고 청년층 의 대거 입당(100만여 명 목표)을 추진하는 등 당 업무에도 본격적으 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경제와 외교부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어 왔다. 이 과정에서 간부들의 숙청작업도 본격화되었다. 류경, 주 상성, 리태남 등이 부패 혐의로 해임되었다. 김정은은 또한 2009년부 터 보위부를 통해 김정남의 북한 내 측근들을 탄압했다. 김정은에 대 한 우상화 작업도 한층 가속화되었다. 현재 김일성 부자와 김정숙에 이어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의 교과서 발간을 추진되었다. 또한 북 한은 수령복, 장군복에 이어 김정은을 의미하는 대장복이라는 기념 물이나 벽보를 붙이고 있으며, 현지방문 기념간판 등을 붙이거나, 김 정은이 단독으로 간부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이나 당 비서인 최태복 과 김기남이 김정은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들도 매체를 통해 보 도했다. 이밖에도 김정은의 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보다 공개적으로 진행 되고 있으며, 그를 상징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작업도 진행되었다. 4월 1일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각 도당위원회에 군사행동에 대한 기밀 보장사업과 민방위무력의 강화를 위한 점검사업을 강화하고 4.15태 양절 및 4.25건군절 을 통하여 군대에 대한 원군사업을 책임지고 잘 해나갈 데 대한 지시를 하달했다. 42 이에 따라 4월 3일 평북도와 양강 3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44 도 당위원회 책임비서실에서는 각각 도당 군사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여기에는 도 군사위원회 위원들이 도 주둔 군단정치위원과 사령관과 도당 책임비서, 조직비서, 행정안전부장, 군수동원 및 군수산업부장, 민방위부장이 참석하였고 도보위부 부장과 정치부부장, 도 보안국 국 장과 정치부국장, 주둔 군 보위총국 7처 처장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첫째, 우선 정세의 긴장성으로부터 도 내에 있는 군단 사령부의 군사 행동에 대한 기밀보장사업을 철저히 보장할 것과 이 사업을 도 보위 부와 보안부 및 군 보위총국 관련기관에 위임, 둘째, 도내에 있는 민 방위 무력의 장비점검과 대피소, 방공호를 비롯한 시설을 재보수 하 며 이 사업을 도당 조직비서가 책임지고 각 관련 기관들에 위임, 셋 째, 각 도 주둔 군단사령부 확장공사에 대한 도적인 지원을 부탁하면 서 4.15태양절과 4.25건군절을 맞으며 도적인 원군사업을 진행할 것 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지시는 과거에는 중앙당 지시였지만, 이제 당중앙군사위원회 지시로 내려오고 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지 시는 2월경부터 북한 군부에만이 아니라 국가 전반적인 차원에서 내 려오는 측면이 강해졌다고 한다. 4월 7일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18돌 기념일을 명절분위기로 맞이하여 보내도록 하는 지시를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검찰부문, 재판부문을 비롯해 당 행정부 산 하 보안기관들에 내렸다. 43 그리하여 평양시와 각 도의 여러 기관들 은 자체로 명절물자라는 명목 하에 술과 고기, 과일을 비롯한 여러 종류로 형식을 갖춰 공급했다. 42 이준운, 김정은, 각도 당위원회에 4.15 및 4.25 명절을 맞으며 당중앙군사위원회 지시 하 달,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4월 15일. 43 이준운, 김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기념일 4월 9일 성대히 명절분위기로 맞이하도 록 긴급지시,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4월 9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33

45 10월 당 창건 기념일 특별공급으로 평양시민 1인당 월 배급량의 13일분이 공급됐다. 44 기업소와 인민반에서는 이번 명절공급을 청년 대장(김정은)의 배려 로 설명했다. 북한이 주민 식량배급을 두고 김 정은의 배려 를 거론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특별공급은 2호 창 고 의 쌀을 일부 푼 것이었고, 각종 건설사업에 동원되고 있는 평양시 민들을 위로하는 한편, 인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청년대장이 다 알고 있다는 점을 교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0월 10일 당창건 66주년 기념 강연도 김정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45 이번 강연회에서는 당의 역사와 창건된 이후로부터 거둔 성과들을 확대하였고 모두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으로 선전하였다. 특히 강연회에서는 3대장군의 위대 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김정은의 위대성에 대해 강조하여 선전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등장 이후 조선의 군사력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CNC공 작기계를 비롯한 정보산업부문에서도 커다란 비약이 있었다고 소개 선전하였다고 한다. 특히 지난 6월에 있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거론하면서 미사일 발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김정은의 조직지도하에 이루어졌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정은의 컴퓨 터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관심으로 정보화 기술이 한 단계 비약한데 대해 언급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실용화 되고 있다고 강조 하였다. 10월 중순 북한당국은 2010년도 11월 연평도 포격에 대해 유선 라디오 방송인 제 3방송 을 통해 김정은 대장 동지가 칠십 명의 미 군 사가(군사전략가)들과 단신으로 싸워 이긴 최대 승리 라고 교양했다 이석영, 北 당창건기념일 특별공급 김정은 배려 강조, 데일리NK, 2011년 10월 14일. 45 NK지식인연대, 김정은 선전으로 일관된 당 창건 66돌 기념 강연, NK지식인연대, 2011년 10월 27일. 46 강미진, 北 3방송 김정은, 美 군사가 70명 상대 승리, 데일리NK, 2011년 10월 20일. 3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46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를 우상화한 평양의 어머니 가 최근 군부대에 서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 아울러 고영희(2004년 사망)에 대한 우상 화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0월경 김정은의 핵심 세력은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 47 첫째는 북 한의 태자당으로 불리는 세력이다. 이는 항일무장투쟁 세력 2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 최현의 아들 최용해, 오백룡의 두 아들 오금철과 오철산 등이 있다. 10월경 국가보 위부 반탐 제1부부장 류경의 친동생이 정치범수용소에서 복귀해 사 회안전국 1국 정치국장에서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승진했고, 조명록 의 아들인 조 모씨와 조카 조 모씨 등도 김정은 최측근의 핵심을 이 루고 있다고 했다. 둘째는 아미산 줄기이다. 군 보위사령부, 호위사령 부,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보안계통 인사들과 김일성군사종합대 학, 김정일 보위대학, 강건 종합군관학교 출신의 현 군부장성들이 여 기의 핵심을 이룬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 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공식 등장한 직후 인민군 보 위사령부(보위총국)를 내세워 군대를 흡수하는 절차를 밟았다. 셋째 는 당 군부 계통 무역기관의 전문가들이다. 한 예로 김정은은 이전에 무역기관 전문가였던 임 모씨를 평양시 보위부장으로 임명했다. 나. 간부 대열 개편 및 인물 변동 <상층 엘리트 변동> 2011년 3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인사가 있었다. 그 하나는 3월 초 김양건 통전부장이 대남비서로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48 대남 47 이준운, 김정은의 3대 핵심세력은 누구?,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10월 2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35

47 비서 직책은 김용순 전 비서가 교통사고로 2003년 10월 사망한 후 7년여 동안 공석이었다. 그의 사망은 2002년 김정일-고이즈미( 小 泉 純 一 郞 ) 정상회담 실패 등 대일정책 실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김양건은 2005년 7월 국방위 참사로, 2007년 3월부터는 통전부장 으로 활동했다. 그의 대남비서 임명은 대남사업의 주도권이 군부에 서 다시 노동당으로 옮겨갈 것을 예고하는 것 49 이라고 해석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3월 16일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의 해임이다. 그는 2004년 7월 전임 최용수를 대신하여 보안상에 임명되었다. 그가 재임 하는 동안 인민보안성(부)의 위상은 현격히 강화되었다. 그 첫째 계 기는 2008년 5월이었다 년 5월 7일 노동당중앙위원회 명의의 지시에 따라, 보안원들이 당간부 뿐 아니라, 군, 보위부, 검찰, 법원 간부들의 경제범죄, 형사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를 벌일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반국가 반체제 범죄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일선 보안원 이 군, 당, 보위부, 검찰 간부들을 검열하고 가택수색을 진행할 수 있 도록 되었다. 2009년 4월에는 인민보안성이 인민보안부로 개칭하고, 승격하고 국방위 직속으로 편입했다. 51 5월 24일에는 전국 도별로 보 안부 산하에 300명 규모의 특별기동대를 창설해 외국 정보유입 차단 과 반국가사범 색출에 나섰다. 이는 국경지역 휴대폰 사용, 외국 녹 화물 시청, 삐라 수거 행위, 당국에 대한 비방행위를 반국가 범죄 차 원에서 다루려고 한다. 는 것, 그리고 인민보안부가 과거 국가보위부 가 담당했던 반( 反 )체제 및 반국가사범을 단속한다는 것을 뜻했다. 48 이현진 김영식, 북 7년간 공석 당 대남비서 김양건 통전부장 임명, 동아일보, 2011년 3월 2일. 49 위의 글. 50 문성휘, 북, 인민보안성 수사권 대폭 강화해, 데일리NK, 2008년 6월 11일. 51 정권호, 보안부 산하 反 국가사범 색출 기동대 창설, 데일리NK, 2010년 5월 25일. 3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48 아울러 인민보안부는 2009년부터 법기관을 전담하는 특별보안대 를 3년간 기한으로 시범 운영하도록 예정되었다. 52 특별보안대는 사법기 관, 검찰기관 등의 비리나 각종 범죄를 파헤치고 처벌하는 임무를 띠 었다. 그동안 법기관들은 부여받은 권력에 기대어 수사 대상을 보호 하거나 고의방해를 하는 등 일종의 성역을 만들어왔고, 교란된 법 질 서를 바로잡기 위한 일환으로 특별보안대 라는 별정기구가 탄생했다 고 한다. 2011년 2월 초에는 폭동진압을 위한 특수기동대가 조직되기 도 했다. 53 그런데 앞으로 서술하게 되듯이 2010년 말부터 인민보안 부가 주민사상동향 조사나 마약 단속에서 국가보위부와 보위사령부 에 밀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국방위원회는 2011년 3월 16일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을 해임했다. 한편 김정은이 주상성의 해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54 장성택의 파 워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그리했다고 한다. 주상성은 인민군 3군단장 대장출신으로 그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출신 이제강(본부당담당) 과 이용철(군부담당)에 의하여 추천된 소위 이제강파였다고 한다. 그 러나 김정일 뇌졸중 사건 이후부터 장성택의 파워가 커지는 것을 보 고 장성택 권력라인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이후 주상성은 장성택의 도움으로 국방위원회에 입성했고, 장성택의 최측근으로서 막강한 권 한을 행사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2010년 8월경부터 비밀리에 주상성 을 뒷조사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군 보위총국 성원들이 동원되어, 군-보안기관 간 비리문제, 비자금 축적 등을 조사했다. 조사결과는 52 좋은벗들, 인민보안부, 법 기관 전담 수사팀 특별보안대 시범 운영, 오늘의 북한소식, 제376호 ( ). 53 임정진, 北, 김정일 지시로 폭동진압 기구 발족, 데일리NK, 2011년 2월 23일. 54 한성관 룻 김, 주상성 전 인민보안부장 해임, 김정은이 직접 관여해, 북한전략정보센터, 2011년 7월 11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37

49 김정은의 지시로 군 보위총국을 통해 1월초 김정일에게 보고되었다. 결국 주상성은 북 중 국경문제 책임을 빌미로 2011년 2월 김정일에 게 보고된 해임관련 간부(인사)문건에 이름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2011년 4월 7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주요 인사 교체가 있었다. 55 먼저 해임된 주상성을 대신하여 이명수 국방위 행정국장이 임명되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최측근이자 실 세로 통했다. 인민군 대장이던 그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 한 달 뒤인 4월 김 위원장의 군부대 현지지도에 상장 계급장을 달고 나 타났으나 6월 대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2010년 5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수행단에 포함됐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송별 오찬에 참석하기도 했다. 국방위원회 인사는 김정은 후계체제를 위한 세대교체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비록 김정 은이 국방위에 진출하진 않았지만 국방위원 전병호(85)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박도춘 노동당 군수담당 비서 겸 정치국 후보위원이 올랐 다. 박도춘은 자강도 당 책임비서에서 지난해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당 비서로 중앙정치에 진출했다. 당 대표자회 이후 촬영된 단체 사진에서 김 위원장의 바로 왼쪽에 자리한 바 있다. 내각에서는 지난 해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이태남 부총리가 1년도 채 안 돼 신병 관계 를 이유로 해임됐다. 주상성이 겸하고 있던 최고인민회 의 법제위원장에는 장병규 최고검찰소장이 임명됐다. 북한은 4월에 군장성 3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56 북한 조선 중앙통신에 따르면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오일정 노동당 군사부장과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상장으로 승진했다. 오일 55 윤완준, 北 인민보안부장에 이명수 선출, 동아일보, 2011년 4월 8일. 56 북한 군부 내부 갈등중?, 미국의 소리, 2011년 8월 14일. 3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50 정은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상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북한군에서 대좌에서 장군이 되려면 평균 10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오일정의 승진은 상당히 빠른 것이다. 북한 김정일 체제의 핵심 권력 기반인 군부에는 오극렬 등 25명의 대장을 포함해 1천 3백 명의 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월 초 홍석형 계획재정부장이 해임되었다. 6월 6일 정치국 확대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결과에 대한 설명 을 듣고 북 중관계를 대를 이어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2000년부터 김 위원장의 7차례 방중 후 노동당이 회의를 열어 방중 결과를 논의한 것은 처음이다. 이 회의에서 홍석형 당 비서가 직무 조정을 이유로 해임됐다. 홍석형은 함경북도당 책임비서(2001.7)를 거쳐 2001년 9월 당중앙위원회 비서,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으로 승진했었다. 그의 해임 이유는 북 중경협 부진이라 추측되었다. 57 홍석형은 이 회 의에서 중국식 모델을 일부 수용하자고 발언했다가 중국의 첩자로 몰 려 숙청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58 또 다른 추측도 있다. 북한당국이 8월 초에 홍석형과 박남기의 간첩활동에 대한 통보자료 를 만들어 각 도 보위부 부부장 이상급 간부들에게 돌렸다 한다. 59 이 통보자료에 따 르면 홍석형이 북한 내부 비밀들을 아들에게 넘겨주었고 나진 선봉 에서 무역부분 사업을 하던 그의 아들이 중국을 오가며 중국 국가안 전국 요원들에게 비밀을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57 김미경, 北 홍석형 노동당비서 전격 해임 北 中 경협 미흡 책임 물은 듯, 서울신문, 2011년 6월 7일. 58 이용수, 北, 1990년대부터 경제 책임자 5명 행방불명 1명 자살 2명 처형, 조선일보, 2011년 10월 6일. 59 박성우 문성휘, 홍석형 계획재정 부장이 중국 스파이?,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10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39

51 <중하층 간부 교체 동향> 북한은 간부 및 세대 교체를 추진하는 동향도 관찰된다. 우선 북 한은 2009년 10월에 시작하여 2010년 5월까지 출신토대 조사사업 을 완료했다. 60 이는 일종의 성분조사사업으로 탈북자 관련 여부와 해외 여행 행적을 집중 조사했다. 이는 당대표자회의 선행 사업으로 진행 되었으며, 김정은의 사람들을 뽑기 위한 기초 작업의 성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11년 북한이 공민증 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것 으로 알려졌다. 61 북한당국은 2011년 초부터 새 공민증 발급을 이유 로 현( 現 )공민증을 주민들로부터 수거 해왔다. 양강도 등 일부 지역 에서는 이미 수거가 완료됐다. 새롭게 발급될 공민증에는 직업란 이 추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북한이 공장기업소 등 직장을 통 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관리해 왔다는 점에서 직업란 이 포함된 새 공민증 발급은 통제시스템 정비 차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과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를 앞두고 탈북자 등 행방불명자들을 정리한 새로운 주민등록을 추진함과 동시에 직장 주 소 이탈자 문제를 정비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혀진다. 북한 공민증은 만 17세에 발급된다. 1946년 9월 1일 첫 발급된 공민증은 1953년, 1958년, 1964년, 1974년, 1984년, 1999년, 2004년 등 여러 차례에 걸 쳐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11년 5월 18일에는 각급 당 조직에 젊은 간부들을 천거하 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62 도, 시군 지방 당 조직부 인사지시로 20, 30대 60 이준운 현건, 북한, 김정은 시대 대비한 출신토대 조사사업 완료, 열린북한방송, 2010년 7월 7일. 61 이석영, 北 공민증 교체 준비 직업 추가 기재 소문, ; 소식통, 올 초부터 공민증 수 거 통제시스템 정비 차원인 듯, 데일리NK, 2011년 8월 3일. 62 이준운, 북한 2,30대 간부들 대거 등장, 김정은 시대 준비, 열린북한방송, 2010년 7월 8일. 4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52 간부들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 간부는 군관출신으로 등용하라는 구체적 지시도 있었다. 7월 24에 진행되었던 도, 시, 군 대의원선거와 관련된 지시에서는 63 각 지역 공장, 기업소 지배인들 중 생산 계획과 노동자들의 물질문화생활개선에서 위훈을 세운 사람들을 기본으로 이전에 비하여 대의원추천을 10%정도 많이 하라고 했다. 반대로 상 대적으로 당기관 책임일꾼들을 축소하라고 했다. 11월 말에 열린 도 당책임비서회의는 60세 이상 노세대 당원들과 장애인 당원들을 명예 당원 으로 이전시킬 것을 결정했다. 이는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부 터 시작되어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계속 진행될 것으로 알 려졌다. 이는 두 가지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북한정권이 제대로 기능하던 70년대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고 난의 행군 이후 당중앙위원회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나선 노 당원들의 정치적 개입(불평불만)을 차단하는 것이다. 64 그 다른 하나 는 김정은 후계구축과 맞물린 충성세력 구축을 위한 당원 세대교체이 다 세 이상 당원 100만 명을 명예 당원으로 전환하고 그 자리를 20~30대 청년들로 채운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시작되어, 2011년 6월경까지 북한 내 시 군 안전보위 부와 인민보안서에 젊은층 간부들이 대거 배치되었다. 66 평안도의 경 우 보위부와 보안서 간부들이 젊은이들로 빠르게 교체돼 중추적 역할 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보위부의 경우 한 부서에 20대 후반~30대 초 반이 2~3명 정도, 보안서에서는 10명 중 5~6명이 30대라고 한다. 63 최호연, 7월에 도, 시, 군 지방선거회의 진행 본지소식 확인(제2보), 북한전략정보서비 스센터, 2011년 7월 4일. 64 문성휘, 북 노동당, 60세 이상 당원 퇴출 시작,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3월 22일. 65 정용수, 김정은, 당원 100만명 젊은 피 교체, 중앙일보, 2011년 3월 11일. 66 이석영, 北 보위기관 30대 간부로 교체 김정은 체제 준비, 데일리NK, 2011년 6월 20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41

53 양강도의 경우 보위부와 검찰소, 보안서에는 30대 초반 아니면 중반 사람들로 거의 배치되고 있으며, 30대 초 중반이 시 군 보위부 부부 장까지 하고 있는 곳도 늘고 있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 더라도 북한에서 보위부나 보안부에 배치되려면 군사복무경력 10년 에 사회노동경력 2년, 보위부 보안부 정치학교(보위부=만경대구역, 보안부=순안구역) 3년을 졸업해야 가능했다. 17세에 입대하면 빨라 도 34세에 배치가 가능했다. 여기에다 지도원으로 배치돼 책임지도 원 부과장 과장 부부장 부장 순으로 단계마다 3~5년의 기간 이 걸리기 때문에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위부 부부장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토대와 성분을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이마저도 소 수의 사람만이 차지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위부 보안부 로 가는 속성 코스가 떠올랐다. 군사복무 중(5~6년차) 보위부나 보 안부에 의탁, 공부 명목으로 발탁돼 사회대학(농 임 광업대학 등 기 술학교 5~6년) 과정을 거친 다음 해당기관에 배치하는 조치가 실 행되었다. 이들은 일단 지도원으로 배치를 받고 2~3년 정도 근무 한 뒤 정치대학 6개월 재교육반 에 등록하게 되었다. 졸업 당시 나이 가 20대 후반~30대 초반 정도 되는데 최근 이들 젊은 세대들로 시 군 보위부와 보안서 간부들이 교체되었다고 한다. 김정일의 배려 라는 명분으로, 규정상 토대와 성분이 좋은 모든 군인들이 이 같은 혜택의 대상이 되지만 실상은 대다수 고위급 간부들의 자녀들만이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존 시 군 보위원과 보안원의 불 평 불만도 늘었다고 한다. 보위부와 보안부의 양 기관 최하위 조직 에 젊은층이 대거 인사 조치된 것을 보면 김정은 체제를 겨냥한 세 대교체가 단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월 5일 북한 중앙텔레비전에 단천 광산기계공장에 파견된 3대 혁명소조원들의 활동이 방영됐다 년대 중반 중단됐던 북한의 4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54 3대혁명소조가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활동 재개 목 적은 김정은 후계구축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조직부 일보선, 국가안전보위부 통보선, 인민보안부 안전소조선에 이어 3대혁명소조 부 통보선까지 4중 감시체계가 갖추어졌다. 9월 초 평안북도 도당 및 신의주 시당 주요 간부들에 대한 집단 숙청 및 평안북도에 대한 검열이 있었다. 68 도당에서는 선전비서와 조직부장 등 평북 지역의 권력 서열 10위 내 인사가 3명이 포함되었 다. 조직부장은 조직비서 밑에서 대부분의 현안과 실무를 담당하는 중책이다. 신의주시에서는 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보안서장 과 수사과장을 포함해 30여 명이 같은 비리 혐의로 해임 또는 강등됐 다. 이 사건은 2010년 9월 당대표자회 이후 취임한 신임 이만건 도당 비서가 김정은의 지원을 받아 전임 김평해 비서의 세력을 공격한 것 으로 해석되었다. 김평해는 10년 동안 도당(조직)비서(1989.9~ )를 거쳐 1997년 9월부터 도당 책임비서가 되었다. 김평해는 2010년 9월 당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위 위원, 중앙당 간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이어서 10월 초 신의주 세관에 대한 대대적 검열이 있었 다. 69 신의주 세관은 9월 초 자체검열을 진행했다. 자체검열 진행 도 중 중앙당 검열 성원들이 내려와 대대적인 검열이 다시 시작됐다. 그 결과 세관장을 비롯한 세관원들 대부분이 교체됐다. 또한 평안북도 일대에 대한 추가 검열이 10월 중순까지 있었다. 이 검열은 60여 명 의 함경북도 검열 성원에 의해 실시되었고 10월 28일 도내 간부와 무 역기관 일꾼을 대상으로 총화되었다. 그 결과로 평안북도 선천군 조 67 최민석, 북, 3대혁명소조 활동 재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28일. 68 박준형, 평북 간부 30명 숙청 이만건-김정은 공동작품, 데일리NK, 2011년 10월 4일; 박준형, 김정은, 지역감정까지 이용? 평북서 5명 총살, 데일리 NK, 2011년 11월 2일. 69 김준호, 북, 신의주 세관 대대적 물갈이,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4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43

55 개잡이 수산사업소 기지장, 부기지장, 조개잡이 선장, 양정사업소 비 서, 운종리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의 5명이 총살당했다. 검찰소장은 자 살했고, 보위부장 등 선천군 핵심간부 10여 명과 함께 평북도당 이만 건 책임비서 서기도 동반 해임되었다. 한편 지방 보위부에 대한 숙청도 이루어지고 있다. 평안북도 선천 군에서도 보위 계통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일 부 비리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영내 총살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월 하순 양강도에서는 보위부 고위 간부가 숙청되었다. 도보위부 반탐 (방첩)부부장이 폭풍군단 검열 이후 청산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반 탐부부장은 도 보위부장 한 단계 아래 직위로 보위부 반탐처를 지휘 하는 직책이다. 중국 친척방문을 하기 위해서는 시도 출입국사무소 허가를 받은 뒤 도 보위부 반탐부부장이 최종 사인을 한다. 따라서 최종 승인권은 사실상 도보위부 반탐처가 갖는다. 이 때문에 사사여 행자의 미귀환에 대한 책임을 반탐 부부장이 졌다고 한다. 한편 양강도당 책임비서 김히택은 심한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71 노동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이던 김히택은 2009년 3월, 양강도당 책 임비서에 임명되었다. 전임자이던 김경호는 청년동맹 비서 설정식의 탈북에 대한 연대적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김히택은 김정일의 여 동생인 김경희가 키운 사람이라고 했다. 김히택은 4월 22일 양강도 도당책임비서 김히택이 휴양치료의 명목 하에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 다. 72 5월 25일 최용해 당중앙 군사위원회 위원이 양강도당위원회를 다녀갔다. 73 최용해의 현지시찰 행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백암군 70 강미진, 양강도 보위부 반탐(방첩)부부장 구속 수사, 데일리NK, 2011년 10월 31일. 71 문성휘, 양강도 당 책임비서 치매로 간부들 곤혹,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26일. 72 NK지식인연대, 김경희의 심복 양강도당 책임비서 김히택의 방중 배경은?, NK지식인 연대, 2011년 4월 27일. 4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56 에 건설 중인 선군청년발전소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건설 정형을 체 크, 건설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 수립(발전소 건설자 들과의 담화). 둘째, 양강도 주둔 군단사령부 시찰, 군단사령부 확장 공사 진행정형, 체크. 셋째, 혜산광산개발과 중국과의 합영 문제 진단 과 그에 따른 대책안 마련. 넷째, 양강도 안의 감자농사정형을 체크하 고, 대홍단군 감자공장 방문. 다섯째, 삼지연사적지 방문, 삼지연학생 소년궁전과 체육촌 방문. 여섯째, 양강도 체육단과 양강도 태권도 학 교 방문이었다. 9월 초중순 무역성을 대상으로 한 내각 정치국 호위사령부와 국 방위원회 연합검열조의 검열이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74 내용을 보 면, 해외대표부 일꾼들의 경우, 과거 무역 내역을 모두 찾아내 건당 수입과 지출을 세세하게 뒤지고 따져보면서, 누수항목을 찾아내었다 고 한다. 그 목적은 개인이 얼마나 빼돌렸는지, 혹은 상급당이나 상층 간부에게 얼마나 바쳤는지 등을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국장급 7명이 해직되었고, 산하 각 기구마다 구속된 사람들이 많았다. 해외대표부 일꾼들 중에는 자진 귀국한 사람도 있지만, 지난 1~2년 동안 과제 완수를 제대로 못한 사람들은 국가에 다른 공헌이 없는 충성심이 모자란 사람 이라며 소환장을 발부받았다. 식량문제를 해결하러 중 국으로 나갔던 무역성 부상과 참사도 전격 구속됐다. 75 거의 2개월 동안 식량 수급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접촉했던 중국 측 어느 곳에서 도 후불 계약을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별 성과를 내지 못하자, 중앙 당에서는 이들을 불러들여 직무 태만과 과제 미완성 등의 명목으로 73 NK지식인연대, 최용해 노동당군사위 위원이 양강도를 시찰, NK지식인연대, 2011년 6월 27일. 74 좋은벗들, 무역성 간부들, 사실상 전원교체, 오늘의 북한소식, 제420호 ( ). 75 좋은벗들, 무역성 부상과 참사, 전격 구속, 오늘의 북한소식, 제420호 ( ).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45

57 구속 수감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무역성 간부 약 90%가 바뀌었다고 한다. 2011년 10월경 무역성 검열로 인해 대중국 무역이 타격을 받았 고, 76 그리하여 북한 전역에서 생필품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무역성 검열을 세게 하면서 일꾼들이 대거 교체되었고, 새로 교체된 일꾼을 상대로 중국 대방들이 현금 거래가 아니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검열 때문에 수입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외국인들이 직접 운 영하거나 물품을 공급하는 국경연선지역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식량과 더불어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77 평성, 원산, 함흥 등 지방의 큰 도시도 편의봉사망에서는 진열할 물건조차 구하기 어렵고, 사실상 운영을 하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평양의 외화 상점에서도 가끔 공급량이 딸릴 때가 있었다. 중앙당은 물론이고 지방당 간부들과 법기관 일꾼들이 대거 바뀌 었으며, 이들에 대한 광폭정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78 식량과 생 필품은 기본이고, 여타 모든 면에서 보장을 잘 해주고 있는데, 일례로 최근에는 간부용 승용차들을 새로 공급했다. 중앙당에서는 군 단위의 경우 군당 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 인민부위원장, 검찰소장과 보안국 장, 그리고 보위부장에게 1대씩 6대의 승용차를 제공해주었다. 검찰 이나 보안국, 보위부 등 법 기관에는 기동차량으로 지프차량과 오토 바이들을 대량 공급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전국적으로 간부 차량 공급에만 1,6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한편 10월경 북한지도부의 지나친 실적 강요를 견디지 못한 말단 76 좋은벗들, 무역성 검열이 생필품 대란 불렀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24호 ( ). 77 좋은벗들, 전국 생필품 부족 사태, 오늘의 북한소식, 제424호 ( ). 78 좋은벗들, 새 간부들에게는 새 자동차, 주민들은 풀죽 연명, 오늘의 북한소식, 제424호 ( ). 4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58 기업소 간부들과 노동당 지역 세포 책임자들이 앞 다퉈 사직서 를 내 고 있다고 했다 년 3월 김정은이 젊고 능력 있는 일꾼들로 간부 대열을 강화해 사회를 활력 있게 운영해야 한다 는 지시를 내렸 다고 한다. 이 지시에 따라 북한당국은 생산을 맡은 행정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 하고, 그 대신 젊은 제대군인 출신 대학졸업생들 로 그 자리를 메우려했다. 양강도 당국은 지난 3월 말, 기관장, 초급 일꾼회의 를 열고 지난 150일 전투기간 동안 아무런 생산실적도 없 는 기관장, 초급당 비서들은 스스로 자리를 내 놓으라 고 선포했다고 한다. 회의가 있은 후 열흘도 못 되는 사이에 혜산시 대부분의 공장기 업소 책임자들이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시 당 간부부에 사직서를 내 는 사태가 벌어졌다한다. 그러나 제대군인 출신들은 공장 운영미숙으 로 공장이 더 엉망이 되었다. 4. 북한 정권변동 관련 주요변수 앞서 서술한 바 있는 독재정권의 정치변동에 관한 이론적 고찰 및 2000년대 이후 북한정치 정세의 전개 과정에 대한 서술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정권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요소들을 개략적으로 살펴 본다. 앞서의 이론적 고찰을 현재의 북한의 실정에 맞게 응용해 본다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요변수는 6개이다. 즉 첫째, 최고통치 자와 후계자와의 관계, 둘째, 권력 엘리트 내 갈등 구조, 셋째, 최고통 치자와 군부의 관계, 넷째, 혁명적 반대세력, 다섯째, 외부세력, 여섯 째, 정권과 주민관계이다. 79 문성휘, 더 이상 못해먹겠다, 북 말단 간부 줄사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19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47

59 가. 최고통치자와 후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 이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을 행 사하고 있지만 3남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의 권력세 습이 추진됨으로써 사실상 두 명의 최고통치자가 존재하는 이중권력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하반기에 발생한 뇌혈관계 질환에서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하였으나 겉으로 드러난 모 습은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 장의 공개 활동이 2009년 이후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 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공개 활동 중 상당 부분이 음악회 관람 등 치료를 겸한 휴식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 의 건강은 통치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총 161회(군 38, 경제 63, 대외 12, 기타 48)로 2009년 159회(군44, 경제 65, 대외 13, 기타 36)와 비슷한 수준이며 1998년 공식 집권 이후 가장 활발한 공개 활동 전개 80 하였 고 이러한 경향은 2011년에도 이어져 2011년 상반기 김정일 위원장 의 공개 활동은 총 64회(군 15, 경제 28, 대외 7, 기타 14)로 2010년 동기( 同 期 ) 78회(군 22, 경제 33, 대외 6, 기타 17) 대비 0.8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뇌혈관계 질환에서 회복된 이후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 장의 2009년 이후 공개 활동 중 경제부문의 비중이 2009년 약 41%, 2010년 39%, 2011년 상반기의 경우 42%를 차지한다. 김정일 위원장 은 2010년 5월과 8월, 2011년 5월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지도 부와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한편 요녕 경제벨트와 창지투 개방개발선 80 통일부, 월간 북한동향, 12월호 (통일부, ), 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60 도구 등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중국의 경제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중국 과의 경제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 심화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당과 국가기구를 정비하면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의 권 력승계도 급히 서두르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하반기 김정일 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이후 북한은 2009년 4월 국방위원회를 국 정전반을 관장하는 최고지도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2010년 9월에는 3차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당을 정비하는 등 당 국가체제를 재정비 하고 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은 1974년 2월 제2기 8차 당중앙위원 회 전원회의에서 당 정치위원으로 선임되어 후계자로 결정된 뒤 1980년 6차 당대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등장하기까지 6년이 걸렸던데 비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 회의에서 부위원장으로 선임되면서 공개적인 행보를 시작하여 권력 승계가 가속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2011년 8월 현재까지 김정 은 부위원장은 추가적인 당직이나 국가직위를 갖지 않고 있으며 무엇 보다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이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연소한데다 경력마저 일천한 상 황에서 권력승계를 가속하기 어려운 점 등이 작용했을 수 있으나, 이 중권력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단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 행 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중권력의 한 축으로 등장한 김정은 부위원장은 중앙군사 위원회를 기반으로 군부와 공안기관 엘리트 장악에 박차를 가하면서 내부통제 확립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군과 공안기관 의 실세들이 포진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체제수호와 직접 관련된 권력엘리트 장악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국가안전보위부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49

61 와 정찰총국을 통해 대내외 정보를 장악하고 내부통제 확립에도 박차 를 가하는 형국이다. 이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 로 알려진 2009년 1월 이후 북한 사회에서 일어난 주요한 사건들이 2009년 11월 말 화폐개혁을 통한 시장질서 재편, 탈북자 가족 소개 등을 통한 사회정화,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각종 비사회주의 검열 의 강화를 통한 국경지역 통제와 무역질서 확립, 주민 소요발생에 대 비한 특수기동대 창설 등에서 확인된다. 한편 김정은 부위원장이 후 계자로 내정된 2009년 이후 북한은 내부통제 강화와 질서확립에 더 하여 대외적으로도 강경한 행보를 시현하고 있다. 북한은 대미 차원 에서 2009년 4월 장거리 탄도미사일인 은하 2호 발사와 5월 2차 핵 실험, 그리고 2010년 대남 차원에서도 도발을 강화했다. 전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부위원장 간에 권력을 일정 하게 분점한 상황에서 향후 점진적으로 김정은 부위원장의 활동반경 이 넓어질 것으로 보이나 현재까지 정권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의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 로 보인다. 다만 가능하면 권력이양을 늦추고자 하는 김정일 위원장 과 권력승계를 가속화하고자 하는 김정은 부위원장 간의 긴장관계를 간과할 수는 없으며, 이는 권력엘리트 교체나 대내외 정책과 맞물려 갈등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권력 정치 차원에서 보면, 김정은의 독자 권력확립 과정에서 여러 명목으로 구 간부를 숙청하고 대신 젊은 신 간부를 충원하는 상-중-하층의 전반적 인물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 내부 갈등 요소가 잠복해 있을 것이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이 북 중협력을 기반으로 경제위기 극복과 이를 위한 우호적 대외환경 창출에 기울어져 있는 양상이라면 김정은 부위원장은 상대 적으로 내부 통제 강화 및 질서 확립, 강경한 대외정책에 경사됨으로 써 상호 충돌하는 지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김정은 부위 5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62 원장과 일정한 긴장관계에 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조중 공동위원회 북한 측 공동위원장으로 북 중경협을 주도하고, 국가개발 은행 설립과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나 합영투자위원회 등을 통해 외자유치에 주력하는 반면, 김정은 부위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영 철 정찰국장이 강경한 대남도발을 주도하는 양상 등에서 확인된다. 나. 권력엘리트 내 갈등구조 (1) 기본적 균열구조 자원배분이 중앙의 계획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희소한 자원의 분배를 둘러싸고 기관과 지역차원의 본위주의 현상이 발생하 고, 여기에 명령-지시와 그 이행을 둘러싼 상층과 중하층 간의 갈등 이 중첩되는 양상이다. 개인독재 형태의 독재정권에서는 독재자에 대 한 충성경쟁 또는 독재자와의 후견관계 확보를 위한 경쟁이나 독재자 자신이 통치방법의 일환으로 분할과 세력교체를 활용하는데 따른 기 관 또는 세력 간 균열이 발생한다. 개인독재정권에서 권력은 복잡한 후견-피후견 네트워크를 통해 행사된다. 개인과 조직의 최고위층에 위치한 사람은 자원과 처벌을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배 하고 하위 후견자(subpatron)의 전체 체계는 후견자의 감독하에 하 위 영역들을 통제한다. 81 세대교체도 중요한 균열요소로 작용하는바, 출신 성분 등에 따른 정치적이고 폐쇄적인 엘리트 충원과정은 집단 간 구획을 공고화시키 면서 세대를 이어 이를 재생산하고 있다. 81 Henry E. Hale, Eurasian Politics as Hybrid Regimes: The Case of Putin s Russia, Journal of Eurasian Studies, Vol. 1, No. 1 (January 2010), p. 34.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51

63 <기관 지역 본위주의> 최근 기관본위주의의 특징적인 양상은 재정위기로 인한 기관별 자력갱생이 강조되는 가운데 이권 갈등, 특히 대외무역이나 투자와 외화획득을 둘러싼 이익갈등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국경지역에 대한 비사회주의 검열의 강화 이면에는 군부와 당기관들 간의 무역권 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대외무역권한이자 규모 인 와크 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나 와크-승인된 무역권한-에 따른 무역을 실행하기 위한 국내 수출자원 확보 등을 둘러싼 기관들 간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기관본위주의는 중앙당 각 부서들, 호위국, 인민무력부, 대남기구,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청년동맹 등 특 권기관으로부터 리당이나 분조 등 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 게 발생하고 있으며 리 협동농장이나 연합기업소 등도 사실상 하나의 소왕국 으로서 기관본위주의를 표출되고 있다. 82 지역본위주의의 경우 지시이행과 보상의 기본단위가 지역인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지역 내 다양한 기관들이 상호경쟁하면서도 지역적 인 차원에서 협력하는 구조들로써 경제위기에 따라 심화되는 양상인 데다, 최근 들어 중앙차원의 비사회주의 검열이 강화되면서 지역차원 에서 비사주의투쟁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양상도 시현 83 되고 있다. 한 편 사회 전 부문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대외무역에 유 리한 국경지역, 수산물 채취와 같이 수출자원 확보가 용이한 해안지 역들이 대외무역이나 시장경제활동을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 준을 보이는 반면 내륙의 농촌지역은 군량미 공출 등 국가의 자원징 82 리규이, 변화하고 있는 조직생활의 나라, 임진강, 제9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 위의 글, pp. 127~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64 발과 통제 강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으로 전락하는 등 지 역적인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과거 평성이나 최근 순천 등과 같이 도매상들이 밀집된 지역이나 생산거점으로 자리 잡은 지역의 경 우 높은 소득수준을 향유 84 하고 있다. <상층과 중하층> 관료적 조정 하에서 상층과 중하층 간 지시와 지시이행을 둘러싼 갈등과 거래가 일상적인 행위 양태로 자리 잡은 데다 특히 경제위기 와 재정 위기에 따른 자력갱생 강조는 하부의 자율성과 각종 불법 또 는 비법 행위의 증가를 유발하면서 상층과 중하층 간 갈등을 심화하 고 있다. 특히 중하층의 경우 상층의 지시와 현실적인 상황 간의 격차 를 체감하면서 항상 지시이행과 생존 차원에서 현실적인 방안들을 모 색해야 하는데다 주민들의 요구와 불만 등을 접하면서 상대적으로 여 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개혁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85 상층의 불법 또는 비법행위 단속에 따른 숙청의 위험에 도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에 따른 좌절감도 다대하다. 북한의 경우 주민들을 출신성분에 따라 분류하고 그 출신성분에 의거하여 엘리트들을 충원해 왔다는 점에서 앞선 세대의 균열 또는 분파구조가 세대를 이어 유지되는 경향이 노정된다. 1960년대 후반 소위 유일체제 확립과정에서 갑산파가 숙청되기 전까지 소위 소련파, 연안파, 만주파와 같이 해방 이전 활동지역에 따른 분파구조들이 존 재하였다면 1960년대 후반 갑산파가 숙청되면서 지역적 배경에 따른 84 손혜민, 박기원, 그 순천사람, 임진강, 제5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09), pp. 45~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임진강, 제10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p. 39~41.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53

65 분파들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대신 김일성 가계와 항일혁명투사 후손 이라는 혈연적 균열구조에 더하여 세대교체 과정에서 6.25 전사자 피 살자 후손들이 핵심계층으로서 관료집단의 중하층에 편입되면서 이 들 3대 세력 간의 균열구조들이 만들어 졌다. 86 항일혁명투사 후손은 1970~1980년대부터 북한의 대외무역 사업에 종사했고, 또한 중국 연고들을 활용하여 무역부문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구축하였다. 숫자 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한국전쟁 전사자 피살자 유자녀 계열이다. 이 들은 1990년대 시장 팽창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배경을 활용하 여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들이 시장확대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부자들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항일혁명투사 후손이나 6.25 전사 자 피살자 유자녀 등과 같은 새로운 세대 들은 시장을 통해 자기실현 을 도모하면서 개혁 개방의 필요성도 인식함으로써 김일성 가계와 일정한 대립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2) 권력승계와 엘리트 교체 2009년 후계 내정 및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를 통한 후계 공 식화에 따라 김정은 부위원장의 독자적인 권력기반 구축이 추진되면 서 이중권력에 따른 엘리트 균열구조가 발생하고 있다. 후계구축과 관련된 엘리트 균열구조는 크게 권력엘리트 상층에서 김정일 위원장 의 측근이자 후계후견세력과 김정은 부위원장의 측근세력으로 양분 되고, 여기에 정치적, 사회경제적 세대교체로 인해 신진세력이 부상 하면서 세대 간 갈등도 추가되는 양상이다. 현재 북한에는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부위원장의 이중권력 하 86 리규이, 변화하고 있는 조직생활의 나라, pp. 12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66 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으로서 김정은 부위원장과 일정한 긴장관 계에 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세력과 김정은 부위원장의 권 력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중심의 군부와 공안세 력 등이 권력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장성택 부위원장의 경우 당행정 부장으로서 공안기관을 관장하면서 청년동맹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 로 권력기반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김정은 후계구축이 본격화되면서 국가안전보위부를 필두로 공안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 가 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택 부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후견과 김경희 당경공업 부장과의 관계 등을 바탕으로 여전히 강력한 권력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개발은행 설립 등 국가적 개발전략 추진,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과 합영투자위원회(이철 위원 장)를 통한 외자유치 및 대외경제협력 추진, 위화도 황금평과 나선 개발을 위한 북 중공동위원회 북한 측 공동위원장으로서 중국과의 경제협력 주도 등 대외협력을 통한 경제재건에 주력하고 있다. 장성 택 부위원장의 이러한 행보가 북한의 국가엘리트들과 주민들 사이에 서 일정한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권력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는 군부와 공안세력 의 경우 군령권을 행사하는 리영호 총참모장, 대외정보와 공작을 총 괄하는 김영철 정찰총국장, 방첩과 국경경비 등을 담당하는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등이 대내외적으로 일정한 긴장관계를 창출 하면서 대내적으로 사회에 대한 통제와 질서 확립을 적극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150일, 90일 전투와 화폐개혁, 2010년 각종 대 남 강경 도발, 그리고 수시로 이루어지는 국경지역 비사회주의 검열 (7.4그루빠나 폭풍군단), 주민소개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 김정은 후계구축과 당과 국가기구 정비과정에서 세대교체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70~80대 혁명 1~2세대들이 전반적으로 퇴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55

67 진하면서 50~60대가 핵심적인 권력엘리트로 부상하고, 당정군의 중 하층 특히 지방을 필두로 신진세력으로의 세대교체가 가속되는 양상 이 나타나고 있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기존의 원로급 권 력엘리트들이 당정치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포진하게 되었으나 당정 치국 후보위원을 중심으로 50~60대의 중견엘리트들의 부상이 주목 된다. 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드러난 세대변동을 보면 리영호 총참모 장(1942년생)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자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정치국 후보위원회를 중심으로 김평해 간부부 장(1941년생),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1942년생),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1941년생), 김창섭 국가안전보위부 정치국장 (1946년생),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1957년생), 김양건 통일전선 부장(1942년생), 김영일 국제부장(1947년생), 박도춘 당비서(1944년 생), 최용해 당비서(1950년생), 장성택 당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 위원장(1946년생) 등 50~60대 권력엘리트들이 전면 배치되었다. 개 정된 당규약에 따른 명예당원제가 시행되고, 김정은 후계구축과 관련 된 군 인사가 이루어지는 등 당과 군을 비롯해 전반적인 세대교체를 적극 추진 87 하고 있다. 지난 7월 24일 김정은 후계공식화 이후 최초 로 실시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2만 8,116명의 대의원을 선출하면서 세대교체를 도모했을 가능성도 있다. 87 정용수, 김정은, 당원 100만 명 젊은 피 교체, 중앙일보, 2011년 3월 11일; 임정진, 북한 젊고 생신한 당으로 당간부 물갈이, 데일리NK, 2011년 3월 11일; 김용훈, 김정은 선군정치 이끌어 갈 新 군부는 누구?, 데일리NK, 2011년 5월 10일; 최민석, 김정은, 군 젊은 피 로 대폭 물갈이, 자유아시아방송, 2011월 3월 21일; 이귀원, 北 숙청 세대교체..김정은 인적기반 구축, 연합뉴스, 2011년 6월 21일. 5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68 (3) 강경파와 온건파 개인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주민들의 불만 누적이나 표출을 무 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독재자나 권력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강 화하려는 시도와 함께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노 정 88 한다. 경제위기나 재정위기 상황에서 정권의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정권유지 재원이 감소 또는 고갈되게 되면 특권 강화 경 향이나 정당성 확보 경향 간의 간극이 커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존 체제에 집착하는 보수-강경파와 변화를 모색하는 개혁-온건파 간의 갈등이 심화된다.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대립과 갈등은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바,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 후 대남정책의 진폭이나 대남라인 교체 등으로 표출되었다. 지배연합 내부의 보수-강경파: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일 건강이상 과 김정은 후계구축, 지속되고 있는 경제위기 등을 통제와 동원이라 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타개하면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공고화하고 각종 특권들을 유지하려는 강경파가 대내외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50일 및 90일 전투와 화폐개혁, 최근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 위한 각종 건설사업에 대한 자원과 노동력 징 발 및 동원, 89 비사회주의 현상 척결을 위한 각종 사회통제와 시장경 제활동 억제를 추진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대외협력을 통한 외자유치와 경제회생이 모색되고 있으나 당과 국방위원회 등 기 존의 보수적 집단이 이를 주도하면서 특권적인 권력기반 확대가 도모 되고 있다. 90 대외적으로도 공안부문의 대중국협력이 심화되고 91 과 88 장용석, 국가사회주의와 국가계급 지배의 동태성: 북한지배체제 연구에 대한 함의, 통 일문제연구, 통권 51호 (평화문제연구소, 2009), pp. 400~ 대표적으로 평양 10만 세대 주택건설과 관련된 동원을 들 수 있다. 최민석, 북 주민, 10 만 세대 징수금 일사금 비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1일.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57

69 거 대남대화에 나섰던 인사들을 대거 숙청하는 한편 92 국방위원회 등 이 대남정책을 주도하는 형국 93 이다. 지배연합 내부의 개혁-온건파: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할 만한 반대세력은 존재하지 않지만 2000년대 초중반 경제개혁 조치를 추진하였던 상층과 중하층 관료, 94 특히 항일투사 후손이나 중하층을 형성하고 있는 새 세대 등이 국가에 의한 통제보다 시장경 제 활성화에 이해관계를 지닌 개혁세력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며 내부동원과 대중경제협 력을 바탕으로 경제회생을 모색하고 있으나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 지 않을 경우 지배집단 내에서 특권확대 경향보다는 정당성 확보 필 요성이 증대하면서 과거 개혁 개방을 추진했던 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 2003년 이후 북한의 시장확 대 등 각종 개혁을 추진하다가 2007년 숙청되었으나 최근 김경희가 부장으로 있는 당경공업부의 부부장으로 복귀한 박봉주 전 총리 등의 행보 주목할 수 있다. 90 최근 북한의 대외경제협력과 관련 내부개혁 없는 반시장적 개방에 대해서는 최봉대, 북 한의 지역경제협력 접근방식의 특징: 신가산제 사인독재정권의 혁명자금관리제도와 대외 경제협력의 제약, 현대북한연구, 제14권 1호 (북한대학원대학교, 2011), pp. 189~238 참조. 91 조선 인민보안부와 중국공안부 협조에 관한 합의서 조인, 조선중앙통신, 2011년 2월 13일; 차대운, 北, 시위진압 장비 中 서 대량 구입, 연합뉴스, 2011년 6월 21일. 92 윤완준, 북, 대남 대화파 30명 숙청했다, 동아일보, 2011년 7월 15일. 93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 대표, 리명박정권이 떠드는 베이징비밀접촉과 관련한 날조극의 황당무계함을 폭로, 조선중앙통신, 2011년 6월 9일. 94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임진강, 제10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 39; 이시마루 지로, 조선의 경제관료 극비 인터뷰: 우리나라의 경제형편(중), 임진강, 제2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08년), pp. 57~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70 다. 최고통치자와 군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에 대한 인사권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으 며, 군내 당 조직인 총정치국을 통해 군에 대한 당적 통제도 유지되고 있기에 군이 최고통치자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변동이 촉발될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다. 다만 북한군이 현대화된 군대를 지향하고 있는 점, 물자에 대한 공급과 관련하여 자율적인 경제활동이 매우 활 발한 점, 군부 내 상층과 하층-간부군과 서민군-정치지휘관-군사지 휘관, 세대간 균열 등이 존재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군은 1960년대부터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군의 전문성을 제고 해 왔다는 점에서, 총정치국을 매개로 당에 의한 통제가 유지되고 있 으나, 독재자의 사병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일정하게 전문성을 보유한 현대화된 군으로 발전해왔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사회경제적, 정 치적으로 관철시킬 조직기반과 노하우를 확보했다. 선군정치는 이러 한 군의 위상과 기능, 역할을 사회경제적, 정치적으로 강화하는 이념 적 기반이자 정책적 기조로 작용했다. 한편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를 주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 량미 공급조차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들이 지속되면서 95 간부군과 서민군 간의 격차와 위화감, 갈등 가능성들이 커지면서 주 민소요나 폭동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군이 통일되고 단결된 모습 으로 김정일 또는 김정은의 정권수호 명령을 이행할지 불확실하다. 호위사령부나 평양방어사령부 등 특수한 부대를 제외하면 지방과 전 선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상당수 부대들이 유사시 정권입장에서는 취 약한 고리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95 좋은벗들, 북한 군인도 먹고 살자, 오늘의 북한소식, 제414호 ( ).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59

71 또한 군부 내 부문 간에 경쟁과 대립구조가 상존하고 있으며 권력 승계 과정에서 군부의 균열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김일성 사 후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호위사령부 대신 보위사령부 가 득세한 경우나 최근 호위사령부가 득세하는 양상이나 군부 내 세 대교체 등에 따른 주요인사 변동 등이 이를 시사한다. 96 라. 정권과 주민 개인독재로부터의 정치적 이행(political transition)은 사회적 저 항에서 비롯되는바, 개인독재 행태들은 재정적 위기와 경제성장에서 의 문제를 야기하고, 이는 후견관계를 기초로 정당성보다는 억압적 수단에 의존한 정권이 이를 유지할 자원의 결핍으로 이어짐으로써 엘 리트 균열보다는 사회적 저항으로부터 정치적 이행이 발생할 가능성 을 높이고, 관료적 권위보다는 개인적 충성에 의존한 정권을 제도 붕 괴에 취약하게 만들며, 이 경우 반드시 조직화된 반대세력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년대 이후 북한은 심각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 으며 재정규모도 고난의 행군 이후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생존차원에서 시장을 활용한 사적경 제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자율적인 경제활동 공간을 확보 하였고 이것이 국가의 계획경제 및 통제와 공존하면서도 일정한 긴장 관계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96 최민석, 김정은, 호위사령부 돌격대 로 활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6일; 신지 홍, 北 인민무력부장 무력화 김정은 세력 득세, 연합뉴스, 2011년 8월 11일. 97 Michael Bratton and Nicolas Van De Walle, Neopatrimonial Regimes and Political Transitions in Africa, World Politics, Vol. 46, No. 4 (July 1994), pp. 46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72 사적 경제활동 활성화와 관련하여 시장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전 후 베이비붐 세대가 주목되는바, 이들은 1980년대에 8.3인민소비품증 산운동을 통해 개인적 경제활동을 체험하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으며 2000년대 개혁시기 시장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견인하면서 현재 북한 내 핵심적인 경제활 동 주체로서 시장경제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시위진압 기동대 창설 및 관련 장비 수입 98 은 중동에서의 민주화 움직임에 대 한 정권 차원의 대응이라는 측면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주민들과의 긴장관계를 반영한다. 특히 북한사회에서 시장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외부정 보 유입과 내부 정보 소통이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99 주민들의 움직임과 관련 지역적 인 편차가 발생하면서 중국과의 교류협력(북 중 접경지역 도시, 청진, 원산, 남포 등 대외교역 도시)이나 남한과의 협력(개성공단)이 활발 한 지역이나 상업유통의 중심지역(평성, 순천 등)을 중심으로 개혁과 개방에 대한 이해관계들이 확대될 수 있는 취약한 고리들 이 만들어 지고 있을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사적인 경제활동들이 활발해지면서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동원 수단인 조직생활이 이완되면서 100 조직사상적 통제에 기반한 정치공 98 차대운, 北, 시위진압 장비 中 서 대량 구입, 연합뉴스, 2011년 6월 21일; 온라인 편집 국, 이집트에 화들짝, 북한 폭동진압기동대 창설, 중앙일보, 2011년 2월 24일; 이용수, 北, 주민 소요 대비 道 市 郡 에 특별기동대 신설, 조선일보, 2011년 6월 3일. 99 이와 관련 이동통신의 활성화가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정보라, 북 휴대전화 가입자수 66만 명 돌파,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1일; 양희정, 중 국산 불법 휴대폰이 북 체제에 더 위협,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9일; 김흥광, 북 한에도 3G 핸드폰과 인터넷 도입 열풍, 통일한국, 12월호 (평화문제연구소, 2010); 강 동완 박정란, 한류 북한을 흔들다: 남한 영상매체의 북한 유통경로와 주민 의식 변화 (서울: 늘품플러스, 2011). 100 리규이, 변화하고 있는 조직생활의 나라, pp. 112~131.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61

73 안 대신 검찰이나 인민보안부 등 법적 처벌 위주의 사회공안이 사회 질서 유지의 주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101 각종 비사회주의 검열 로 대표되는 사회공안은 정치공안을 위한 물적 토대가 붕괴한 상태에 서 권력교체기와 중동 민주화 바람 등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공안은 주민들 사이에서 공포를 확산시키면서 단기적으 로는 사회질서 확립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주민들 의 불만 누적 등으로 인해 정권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가능 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불만 등이 생계형 항의 수준을 벗어 나 정치적인 저항으로 발전하지는 않고 있는 상태이다. 기존의 전체 주의적 억압기제들이 일정부분 작동하고 사회공안이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야기하지 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공식적인 제도들은 공식적인 제도들 이 비효율적인 경우 이들과 충돌하거나 이를 대체하기도 하지만 공식 적인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이를 보완하거나 이와 조정과 정을 거쳐 공존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102 주민들의 자율적인 경제활동 증가 및 이와 연관된 관료들의 비공식적 경제활동이나 부패 등이 공 식적인 제도의 침식과 함께 공식적인 제도를 보완하면서 정권과 체제 안정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 주목해야 한다. 101 류경원, 조선의 정치형세와 화페개혁 고난 및 천안함 사태, 임진강, 제8호 (서울: 임 진강출판사, 2010), pp. 23~ Gretchen Helke and Steven Levisky, Informal Institutions and Comparative Politics: A Research Agenda, Perspectives on Politics, Vol. 2, No. 4 (2004),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74 마. 외부 세력의 내부 영향력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북한 내부 에 대한 영향력이다. 둘째, 대부분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종 민 간단체의 대북 내부 영향력 증대 노력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와 김정은 후계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후원세력으로 중국이 존재하며 최근 몇 년간 양국 간 협력관 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면서 대남 대미관계의 경색이 풀리지 않 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북한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커진 영향력을 활 용하지는 않겠지만, 지역정세 안정을 위해 북한정권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북한이 전통적으로 중국의 대국주의를 경계해 왔고 특히 1990년대 탈냉전기에 대미, 대일, 대남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의 영향 력 확대에 대응해 왔고 러시아도 대중국 견제를 위한 적절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의 영향력이 북한정권의 운명을 좌 우할 만큼 확대될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과거 1956년 8월 종파사건이나 1960년대 중소분쟁 및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중국과의 갈등을 겪었던 역사적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앞에 있는 적- 남한이나 미국-보다 뒤에 있는 우방-중국-이 정권교체를 시도할 가 능성에 대한 우려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심화되는 것은 결과 적으로 중국의 대북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특히 양국간 전략적 소통이 강화되는 가운데 올해 북 중동맹 50주년을 맞아 양국 간 군사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양국 군부 간 교역 등이 주요한 협력분야로 발전하고 있는바, 이러한 관계들이 북 Ⅱ.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63

75 한 군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으로 작용할 가능성 상존한다. 한편 남 한과 미국, 일본의 대북정책 방향도 북한 내부의 기관본위주의, 만경 대줄기 항일혁명열사줄기 6.25전사자 및 피살자 유가족 등 다양한 균 열구조와 이들 간의 세력분포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유의 해야 한다. 다른 편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북한주민의 일부가 외부 후견 자와 다양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선교단체는 종교적 목적에서, 인권단체는 내부 인권 증진에 기 여하기 위해, 이밖에도 다양한 목적의 해외조직이 다양한 목적으로 북한 내부 주민들과 개별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북한주민 다 수는 한국 문화와 방송에 노출되어 있고, 한국의 민간단체가 송출하 는 대북방송과 살포하는 삐라, 그리고 (만약 본격화된다면) 한국정부 가 주관하는 대북심리전에 노출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확언할 수 있 는 것은 적어도 민간단체의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도 증가하고 조직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서 이글이 구별해 본 정치행위자 유형에서 볼 때, 이들은 북한 영역 바깥에서 활동하는 과격야당으로 간주할 수 있다. 6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76 Ⅲ 북한의 경제변동 Ⅲ. 북한의 경제변동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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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북한경제 변동과 관련하여 주로 등장하는 주제는 첫째, 주요 시점 에서 북한 내부 경제상황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해마다 식량 수급의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둘째, 북한당국의 경제정책이다. 특히 경제 정책이 친개혁적인지 아니면 반시장적인지가 관심을 끌어 왔다. 셋 째, 주제는 시장확산이다. 이와 관련해서 계획과 시장의 상호 비중과 관계의 문제, 시장거래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시장확산에 따른 경제변화 등이 주요 관심사였다. 넷째, 북한의 대외경제관계이 다. 전통적으로 남북 경제관계와 북 중 경제관계가 핵심 관심사였다. 2008년 이후 남북 경제관계가 축소 경향을 보여주는 한편, 북 중 경 제관계가 확대되는 양상이 전개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북한에게 그리 고 앞으로 남-북-중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가 주요한 관 심사로 등장했다. 북한경제와 관련하여 여기서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경제의 여러 구조적 특징과 여건이 1990년대 이후 그리고 앞으로 북한의 체 제 변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 해 먼저 이론적 개념적 고찰을 전개하고, 다음으로 최근 북한경제의 주요 구조, 정책과 상황의 전개과정에 대해 서술한다. 이론적 개념적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가 서술된다. 먼저 독재의 경제적 논리 (the economic logic of autocracy) 에 대해 서술한다. 다시 말해 독 재자는 어떤 원칙에서 경제를 관찰하고 관리해 나가는가이다. 둘째, 북한에서 정치적 자본주의에 토대한 시장확대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성이 아니라 정치자본(political capital)이 상업 적 수익 기회 획득을 결정한다. 따라서 북한 시장확대에서 각종 정권 기관의 상업적 활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셋째, 북한경제는 생 산증대보다는 대내외 지대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로써의 특징을 가지 고 있다. 다음으로 20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특히 시장확대와 관련 Ⅲ. 북한의 경제변동 67

79 하여 북한경제의 변모 과정, 그리고 현 시점(2011년 10월)에서 북한 경제의 구조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한다. 1. 독재정권과 경제 가. 독재의 경제논리 독재정권에 있어서 경제 운영의 목적은 국가의 경제 실적을, 또는 다수 주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치가들은 자신의 지지기반이 되는 집단이 원하는 것을 정책으로 실천하고 또한 자기 지지집단에 대해 다른 집단보다 우선적 도움을 주어야 정치적 지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이는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지지집단의 규모 가 크기 때문에, 경제 운영은 이러한 대규모 지지집단에게 도움을 주 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공공재의 공급을 증가시켜 경제 생산성을 향 상하는 방식으로 지향된다. 103 그러나 독재국가의 경우 지지집단의 규모는 소규모이다.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자면, 자신을 지 지하는 소수 핵심 집단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104 그 런데 이 소규모의 집단은 국민 다수와는 구별되는 이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독재자를 지지하는 핵심 소수집단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정치 논리에 따르는 경제정책은 경제적 합리성과 충돌한다. 다시 말해 독 103 Mancur Olson, Power and Prosperity: Outgrowing Communist and Capitalist Dictatorships (New York: Basic Books, 2000). 104 Bruce Bueno de Mesquita and Hilton L. Root, The political roots of poverty: The economic logic of autocracy, The National Interest (2002), 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80 재의 경우에는 정치적 합리성과 경제적 합리성이 충돌한다. 이와 같 은 정책이 추진되면, 주민 다수는 빈곤을 벗어나게 될 수 없게 된다. 독재국가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주민생활을 개선하는) 좋은 정책을 취하지 않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독재의 경제논리 때문이다. 독재자는 비교적 소수의 지지집단의 충성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 권력을 유지할 뿐 아니라 이 핵심집단의 규모를 되도록 작은 규모로 유지하고자 한다. 소수의 지지집단에는 보통 군대, 대민행정(관료체), 통신과 정보 하부구조 그리고 핵심 경제수단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포 함되어 있다. 빈곤국가의 독재자는 정권 생존에 중요한 소수에 혜택 을 몰아주면 정치적으로 안정을 누릴 수 있지만, 정권 생존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 집단으로 자원을 분산시키는 정책을 취한다면, 정치적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재산권, 법치, 주민의 교육 수준 향상, 낮은 조 세 수준, 자유무역을 보호하고 촉진하는 투명한 경제정책을 추진하면 경제는 성장하지만, 현존 권력자에게는 도전이 제기된다. 따라서 이 는 정치적으로 비합리적이다. 독재자가 통제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사 람들이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 독재자의 이익에 부합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5 소수집단을 부유하게 만들자면, 어디로서부터인가 경제잉여를 이 전해야 한다. 106 독재자의 우선적 관심은 (다수 주민의 복지 증진이 아니라 다수 주민으로부터) 지대 추출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이익 재 분배를 통해 핵심 지지집단을 유지시키고, 결과적으로 집권기간을 최 105 Bruce Bueno de Mesquita and Hilton L. Root, The political roots of poverty: The economic logic of autocracy, p Mwangi S. Kimenyi, Ethnic Rent-Seeking Stability and Institutional Reform in Sub-Saharan Africa, Silvio Borner and Martin Paldam (eds.), Political Dimensions of Economic Growth (London: Macmillan Press, 1998), p Ⅲ. 북한의 경제변동 69

81 장 연장하는 것이다. 이는 독재의 경우, 정치적으로 무력화되어 있어 저항하지 못하는 주민 다수가 생산해낸 경제 잉여가 독재자 주위의 소수그룹에게 이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전소득은 정치 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창출되어 사실상 공짜로 소수 집권집단에 분 배되는 소득으로써,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대는 독재자 주위의 소수 지지집단에게 재분배된다. 독재자와 소수집단은 잘 조직 화되어 있다. 그런데 지대의 추출과 분배의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먼저 일정한 시점에 한편에서 다수 주민으로부터 지대 추출과 다른 편에서 소수집단으로 이전에 일정한 균형이 성립하고, 또한 이전된 잉여가 소수집단 내에서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대해서도 일정한 균형 이 성립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중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독재국가의 정치안정이 유지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균형 중에서 하나라도 깨지 는 경우, 다시 말해 정권과 주민 사이에 지대 배분을 놓고 분쟁이 발 생하거나, 또는 소수집단 내부에서 지대 재분배를 놓고 분쟁이 발생 하면,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한다. 그런데 다음으로, 앞서 서술한 대로 독재자가 경제를 운영하는 목표는 경제성장이나 주민생활 증진이 아 니라 소수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장기 경제 침체가 일상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 분배해야할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 상태에서 한 집 단이 차지하는 경제잉여의 양이 증가하면 이는 불가피 다른 집단에게 할당되는 잉여량이 축소되는 영합 게임 상황이라는 것이다. 나. 시장확대와 정치적 자본주의 일반적으로 북한 시장확대는 계획경제의 붕괴와 식량난에 대응하 7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82 는 주민들의 자생적인 생계활동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발생한 것 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시장확대의 수혜자는 일반주민이 고, 피해자는 정권이라는 논리를 암묵적으로는 내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의 경제논리 는 북한에서 시장확대의 과정에도 관철 되어 있다. 그 핵심은 북한에서 상업적 활동을 통해 이윤을 내고 자본 을 축적하자면, 정권 또는 국가기구와 결탁하면서 그것이 제공하는 특혜와 보호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07 이와 같이 이윤을 창출하 는 특권적 기회가 국가(독재정권)에 의해 분배되는 상업적 활동을 정 치적 자본주의라고 한다. 108 그런데 국가(독재정권)가 상업적 활동을 배분하는 데서 가장 크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독재의 경제논리 에 따라 수혜자가 정권 생존에 얼마나 이바지하는가 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 자본주의에서 사업가는 정권기관(관료) 그 자 신이거나, 또는 정권 관료와 결탁한 사업가들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 본주의에서는 부패가 만연하며 109 계약준수, 소유권, 조세수준, 정부 규제 등등에 관한 불확실성이 의도적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불확실성 이 구조적으로 정치권력을 향유한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 기 때문이다. 110 법치가 존재하지 않고 제도가 기능하지 않는 불확실 한 상황에서만, 분쟁이 생기는 경우 힘 있는 자, 다시 말해 정권, 정권 107 정치적 자본주의에 관한 서술은 박형중, 북한에서 1990년대 정권 기관의 상업적 활동과 시장확대, 통일정책연구, 제20권 1호 (통일연구원, 2011), pp 을 일부 활용 했다. 108 James C. Scott, Comparative Political Corruption (New Jersey: Prentice Hall, 1972), p 부패 유형과 정치권력의 남용, 그리고 재부 축적에 관하여 그리고 특히 북한과 같은 사 례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서술은 Michael Johnston, Syndromes of Corruption: Wealth, Power, and Democrac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pp Konstanin Sonin, Why the Rich May Favor Poor Protection of Property Rights, William Davidson Working Paper, No. 544 (December 2002). Ⅲ. 북한의 경제변동 71

83 기관과 요원이 완력을 사용하여 유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용이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에서 이윤 창출의 기회는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 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연줄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치 적 자본주의에서의 시장은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해 있으며 지대추구 가 존재하지 않는 또는 최소화 된) 자유시장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결합하고 지대추구가 충만한) 정치적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력 과 결탁된 시장은 경제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대추출을 극대화하여 정권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최대 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북한정권은 시장확대, 그 구조 와 내용, 그리고 그 성숙수준을 상당 정도 조작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 으며, 비록 북한경제는 탈-공업화되었지만 이를 통해 정권의 내구성 을 개선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자본주의 개념, 다시 말해 이윤을 창출하는 특 권적 기회를 국가가 수여하는 시장 활동 의 개념과 위에 서술된 정치 적 자본주의의 여러 특성은 1990년 북한에서의 시장확대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긴요하다. 이미 1977년 중앙당 외화벌이가 시작된 이래 로 각종 정권기관은 외화벌이용 상업적 활동에 개입해왔다. 이러한 각종 정권기관의 활동은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보장되고 보호되는 특권적 상업적 기회이자 독점권이라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북한정 권이 재정난이 극도로 악화되자, 대부분의 당-군-정 기관에게 자체 로 예산을 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 활동이 허용되고 장려되었다. 이 들 각종 정권기관들은 기관 차원의 자산, 인원과 공권력, 그리고 국가 로 부여된 특혜적 영업권과 무역특권을 토대로 시장활동에 개입했다. 일반주민이 시작한 생계형 상업활동과 비교할 때, 이들 정권기관은 절대적 비교우위를 누리고 있었으며, 사실상 후자가 대부분의 전자를 7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84 자기 영역 내에 포섭하고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 외래지대 의존국가 독재의 경제논리 에 따르면, 독재정권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 이 아니라, 핵심 소수 권력집단에 특권 보장을 통한 지지 확보라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성장을 희생한다. 소수 권력집단의 지 지를 확보하는데 소요되는 경제잉여는 두 가지 방식으로 확보된다. 내부지대와 외부지대가 그것이다. 내부지대는 앞서 정치적 자본주의 에서 설명한데로, 권력기관과 권력 지지층에게 상업 활동의 독점권 (특권적 기회)을 배분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독점권을 배분받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거의 확실하게 이윤을 창출해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으로 외부지대는 아래에 설명하게 되듯이 자연자원 수출, 외부 원조 유입 등을 통해 확보되는 경제 잉여이다. 내부지대가 정치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되었다면, 외 래지대는 외래지대 의존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외래 지대 의존국가라는 개념은 원래 중동의 석유 수출 독재국가의 정치와 경제를 분석하는데 기원을 두고 있다. 111 이 개념은 특히 아랍 산유국 들이 석유수출을 통한 외환수입을 바탕으로 내부적으로 독재국가를 어떻게 장기간 안정시키고 있는가에 관한 정치적 경제적 구조와 운영 을 분석했다. 이후 이 개념의 적용범위가 확대되어 자연자원 수출로 111 Hazem Beblawi and Giacomo Luciani (eds.), The Rentier State, Vol. 2 (London: Croom Helm, 1987); Douglas A. Yates, The Rentier State in Africa: Oil Rent Dependency and Neocolonialism in the Republic of Gabon (Trenton: Africa World Press, 1996). Ⅲ. 북한의 경제변동 73

85 인한 외래소득에 의존하여 지탱하고 있는 세계 여러 지역의 독재정권 들의 내구성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활용되었다. 우선 지대(rent)와 외래지대 의존국가(rentier state)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자. 112 외래지대 의존국가 개념의 주창자들에 따르면, 지대란 자연의 선물로부터 벌어들인 수출 또는 획득된 소 득 113 이다. 아래에 보다 자세히 설명할 것이지만, 이와 같은 지대로 써 대표적인 것인 자원, 특히 석유 수출로부터 획득된 소득이다. 또는 보다 일반적으로 생산원가와 국제가격의 격차가 매우 큰 상품의 수출 로부터 발생하는 소득 또는 대외원조 수취와 같은 대체로 공짜 수입 들도 포함한다. 또는 지대를 보다 일반적으로 정의하면, 비생산적 경 제행위를 통해 재부를 획득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기 회 114 라고 할 수 있다. 외래지대 의존국가는 대부분 또는 상당부분의 소득을 위에서 지 대라고 정의한 수입의 형태로 외부세계로부터 획득한다. 외래지대 의 존국가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상이한 형태로 외래지대를 조달 받을 수 있다 여기서의 외래지대 의존국가론은 Hyeong Jung Park, Post-Stalinist Neopatrimonial Rentier State: Current Status of North Korean Transformation and its Implications for North Korea s Future and Korean Unification, Journal of Peace and Unification, Vol. 1, No. 1 (Spring 2011), pp 참조. 113 Hazem Beblawi and Giacomo Luciani (eds.), The Rentier State, p Christian von Soest, Persistence and Change of Neopatrimonialism in Africa, Latin America, Southeast Asia, Paper presented at the workshop Neopatrimonialism in Various World Regions, GIGA German Institute of Global and Area Studies, Hamburg (April 2010). 115 Martin Beck, Rente und Rentierstaat im Nahen Osten, Martin Beck, et al. (eds.), Der Nahen Osten im Umbruch: Zwischen Transformation und Autoritarismus (Wiesbaden: VS Verlag, 2009),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86 1) 원자재 지대 - 자연자원 그리고/또는 원료를 국제시장에 판 매함으로써 생기는 소득. 2) 위치 지대 - 석유수송파이프 또는 수에즈 운하처럼 필수적 이거나 중요한 교통로 또는 하부구조 시설을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득. 3) 전략적 지대 - 국제적 강국 또는 지역 강국과의 (비)동맹 또는 다른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특정 입장을 지지함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전략적 또는 정치적 입장과 행 위로부터 발생하는 소득. 4) 정치적 지대 - 개발원조 또는 도덕적 원조의 형태로 (아랍 국가의 경우) OECD나 다른 아랍 산유국이 제공하는 외부 원조의 획득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 5) 이민자 지대 - 자국의 노동력이 (아랍 국가의 경우) OECD 와 아랍 산유국의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획득한 수입을 본국 에 부침으로써 발생하는 소득.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외래지대 의존국가론이 북한과 전혀 관계 없는 맥락에서 탄생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정권 생존이라는 최상위 목표 하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내외 경제전략을 압축해서 표현 해 준다는 것이다. 적어도 2005년 북한이 대내 경제개혁 추진을 포기 한 이후로 그러하다. 개혁을 포기하면 국내경제는 불모경제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경제와 정치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려 면, 위에서 언급한 외래지대로부터의 소득이 증가해야 한다. 2005년 이후 북한의 대내외 경제전략은 대내적으로 반개혁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지대수입을 다변화 하고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2009년 10월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되어 온 북 중경제관계의 확대도 이러한 외래지대 다변화 전략의 일환이 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중국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은 그 이전과는 달리 한국으로부터의 이러한 지대 수취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른 외래지대 의존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기존의 외래지대 원천이 고 Ⅲ. 북한의 경제변동 75

87 갈되자 외래지대 원천을 새로이 개척하여 다변화하고 증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이유를 보자. 개혁을 통해 국내경제 생산성을 증대 하자면 정권은 기득권 침해조치를 취해야 하며, 생산성 증대로 발생 하는 수익을 상당부분 주민과 나누어 가져야 하고, 조세징수를 늘리 자면 주민에게 정치적으로 양보해야 한다. 그러나 외래지대 수입 증 대는 기득권 침해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고 또한 그 소득을 국가가 독 점할 수 있어서 정권생존에 유리하다. 한마디로 외래지대 원천의 다 변화는 내부 경제 개혁 없이도 정권 생존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 하는 방책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와 같은 외래지대 극대화 경제전략은 앞으로 북한의 경제발전과 정권유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이 와 관련하여 북한의 경우도 외래지대 의존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 나는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116 첫째, 국가가 외부발생 소득을 대부분 독점한다. 이 외부발생 소 득의 상당 부분은 지대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국가는 국내경제로 부터 소득이 발생하지 않아도, 그리고 해당 사회의 반향에 관심을 가 지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존속하고 확장하며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외래지대 수입의 증가는 국내경제 생산성 증대와 조세수취 증대를 도모하자면 불가피하게 취해야 하는 정치적 경제적 개혁과 변화를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획득된 지대는 생산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지 않는다. 그 이 116 외래지대는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한다. 어떤 국가의 정책과 제도가 좋으면 복이 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된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경우 뜻밖에 북해 석유가 발견되어 공짜 수입이 생겼지만, 이를 내부적으로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제도와 정 책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원수출 의존 경제는 경제성장률이 저조하고 부패가 심하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다음을 참조. Michael L. Ross, The Political Economy of Resource Curse, World Politics, Vol. 51 (January 1999),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88 유는 이들 정권의 주 소득원이 되는 외래지대는 생산을 복잡한 형태 로 현명하게 조직했고 그리하여 그 결과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일종 의 공짜 소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정권은 지대 소득을 마음대 로 헤프게 사용하는 것이 일반 경향이었다. 정권이 독점 수취한 외래 지대는 순전히 정치적 기준에 따라 분배되고 장기적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려 없이 대부분 사용되었다. 장기적으로 관찰해보면, 외래지대 의존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생산적 투자를 통해 자본축적을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생존이다. 셋째, 지대의 존재는 독재정권의 존속과 생존을 뒷받침한다. 오직 소수의 인물만이 지대의 개발과 관리에 관여하며, 이들이 독재권력 유지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헤프고 불투명하고, 두목-부하(patronclient) 네트워크에 따라 지대를 정치적 기준에서 편파적으로 분배한다. 외래지대 공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정권 유지에 필요한 내부 지 지층과 권력 장치를 포상 회유할 수 있는 원천이 늘어나고, 그만큼 현존 정권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 년 이후 경제정책과 경제변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북한당국은 시장확대에 대해 방임과 장려 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이에 힘입어 북한에서 시장은 년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했다. 시장확대에 대한 중앙당 보수파의 반격 때 문에 북한당국은 2005년부터 정책 방향을 시장에 대한 통제와 억제 로 바꾸었다. 북한의 경제정책은 2000~2004년간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박봉주 총리의 주도하에 2004년도 들어 북한의 개혁은 상당히 Ⅲ. 북한의 경제변동 77

89 대담한 양상을 보여준다. 117 포전담당제(=농가생산책임제)의 시범 실 시, 기업의 경영 자율성 제고, 계획체계의 분권화, 기업 실적 평가에 서 현물 지표 대신에 화폐지표 도입, 기업의 임금결정 자율성 확대 등이었다. 그런데 박봉주의 개혁 시도에 대해 당과 군의 세력은 긴장하고 있 었다. 박봉주가 보다 2004년 후반 보다 대담한 개혁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년 초부터 중앙당이 본격적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 보 수파의 반격이 성공하여, 그 결과의 하나로, 2005년 9월 중앙당에 계 획재정부가 신설되고 박남기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중앙당에 경제 정책 담당 부서가 또 다시 신설된 것이다. 내각의 경제정책 권한과 인사권은 당으로 복귀되었다. 그 후 박남기는 2010년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지고 공개총살될 때까지 북한의 대내경제정책 추진에서 실무 적으로 핵심역할을 했다. 2005년 이후 보수파는 시장에 대한 적대감을 확실하게 들어내었다. 119 시장은 무질서와 비사회주의 현상의 온상이라는 것이었다. 2007년 5월 부터 각종 비사회주의 검열 이 현저하게 강화되었다. 4월 박봉주 총 리가 교체된 직후였다. 특히 장성택이 행정부장으로 임명된 2007년 10월부터 2008년 내내 강력한 비사검열 이 상시화되는 경향이 나타 117 통일연구원, 북한 경제개혁동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5). 118 총리 박봉주와 내각은 2004년 중반 이후 보다 대담한 경제개혁을 위한 정책 시안을 준비 하기 시작했다. 그 개혁의 기본 개념은 중국이 1984년부터 실시했던 사회주의 상품경제 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핵심은 국가가 국영기업에 대한 지령성 계획 하달 을 포기하고, 국영기업의 독자적인 상업적 경영을 허용하는 데 필요한 여러 경제적 제도 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국영기업으로 구성된 시장경제 도입으로도 인식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기범, 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행태와 관료정치: 경제개혁 확대 및 후퇴를 중심으로 2000~09),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9), pp 참조. 119 이에 관하여, 박형중, 북한 변화 의 재평가와 대북정책 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p 참조. 7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90 났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시기, 장성택이 공안 및 사법을 책임지는 중앙당 행정부장으로 복귀하고 시장통제가 한층 강 화되었다. 시장통제 조치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장사 행위 제한(예를 들어 40세 이상 여성만 장사, 골목장 금지 등), 거래금지 품목의 설정, 국영상업망 및 양정사업소의 강화를 통해 시장의 번성 저지 등이 있 었다. 이 시기 시장통제의 주요 대상 중의 하나는 군부의 무역활동이 었다. 2008년 1~2월 장성택 행정부장 지도하에 북 중무역의 국가통 제가 강화되었다. 특히 군부 무역회사가 통제 대상이었다. 2005년 이후 북한당국의 보수적인 대내정책의 기본 목적은 경제 진흥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사회에 대한 통제력 강화였다. 2009년 11월 30일 시행되었던 화폐교환조치 가 그 절정에 서있는 정책이었다. 화폐 교환조치의 대내 정치적 경제적 의미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20 첫째, 정치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광범한 주민들을 위한 배려금과 배 려미 배급 및 10여 년 만에 이루어진 임금인상 조치를 통한 김정은의 인지도 제고이다. 둘째, 경제적으로 (내화와 외화를 합하여) 화폐 총 량 중 은행예금의 일시적 집중을 기대 한 것이다. 이처럼 화폐개혁은 김정은 권력 승계 작업의 일부로 추진되었으며, 이와 결부된 당과 군 의 권력 투쟁에 연루되어 있었다. 화폐개혁의 과정을 보면 공급 증대 를 위한 군량미 민간 배급 문제와 군부 무역회사의 구조조정을 둘러 싸고 당과 군이 갈등하는 가운데, 군이 비토권을 행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결과 화폐개혁은 쌀 가격 기준으로 볼 때 1년여 만에 100배 가량의 가격 등귀를 초래했다. 즉, 2009년 11월 화폐개혁 당시 신 화 폐로 22원선이던 것이 2011년 3월에 오면 한 때 3,000원선에 도달했 다. 이 과정에서 세 가지가 초래되었다. 첫째, 외화보유량이 충분치 120 류경원, 화폐소요 곡선을 읽다, 임진강, 제7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 60. Ⅲ. 북한의 경제변동 79

91 않았던 많은 중소 상인이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둘째, 북한경제 내부에서 위안화와 달러와 같은 외환 사용을 일상화시키는 효과를 내 었다. 셋째, 2010년 말~2011년 초 북한이 새로운 식량난의 문턱에 서게 만들었다 ~2011년 경제상황 2009년 화폐개혁의 충격은 매우 컸다. 2010년과 2011년의 북한의 경제동향은 화폐개혁의 후과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경제정책의 측면이다. 그동안 시장과 무역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하던 북한당국은 2010년 5 26 지시를 통해 시장과 무역을 재허용하는 방침을 선택했다. 그리 고 2010년 말부터 대중 무역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다음으 로 후계과정의 진행과 이러한 정책 변화는 개별기관 또는 개인들의 돈벌이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 경제 이권의 분배 변동은 경제적 차원 뿐 아니라 정치 권력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관찰 요소이다. 최근 관찰 의 핵심은 김정은 후계 구축과 관련하여, 기존 권력층의 돈줄 체계가 어떻게 재조정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가. 대내 경제정책 중심 방향 가장 먼저 공식 경제정책에 주목할 수 있다. 여기서 공식 경제정 책이란 북한의 공식문헌과 매체들을 통해 선전되는 경제정책 방향이다. 2011년 신년공동사설은 경제문제에 유달리 큰 비중을 두었다. 특히 2010년에는 경공업과 농업을 강조한 데 이어, 2011년에는 경공업만 8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92 을 앞에 내세워 유달리 강조했다. 신년공동사설은 보통 200자 원고지 75~80매 분량이다. 그 중에서 해당 연도 경제정책에 대한 서술은 보 통 10매 내외였다. 그런데 금년에는 경제정책 관련 서술이 총 20매에 달하며, 그 중에서 경공업에 대한 서술이 대략 8매이다. 아울러 이번 신년사설은 석탄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2010년 도 11월까지 석탄 410만 톤을 수출하여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인민생활 개선을 위해 군사비의 일부분을 경공업에 돌리도록 결 정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월 3일 신년공동사설 관철을 위한 함경 북도 청진시의 한 주요 회의에서는 당에서 경공업 발전을 위해 군수 공업에 들어가던 비용을 인민경제에 돌리기로 결정했다는 발언이 있 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조선(북한)이 군사 강국이 되기 위해 허리띠 를 졸라맸는데, 핵 보유국이 되면서 드디어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젠 당의 총적 목표가 됐다고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2011년 경공업 진흥의 전면에 김정일이 직접 나섰다. 실제로 2010년 김정일의 공개 활동은 161회로 역대 최다였는데, 그 중에서 경제 분야가 63회로 군 38회, 대외 12회, 기타(공연관람 등)가 48회였다. 122 이와 같은 추세는 2011년에도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행적을 보면, 김 정일이 내각이 관장하는 주요 대내 경제사업에 대해 매우 중대한 영 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일의 과거 경제관련 현지지 도는 반드시 생산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김정일의 방문지에 특 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연초에 합리적으로 세워놓았던 자원배분 체계가 헝클어지며,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또는 대내외 선전을 목적으로 방문 공장의 가동이 마치 순조롭게 되고 있는 것처럼 조작 121 최민석, 북, 군사비 일부 경공업 전용 제안,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5일. 122 조수영, 김정일 공개활동 활발 2010년 161회 역대 최다, 세계일보, 2010년 1월 4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81

93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김정일은 인민생활 관련 경제에 매우 깊 은 관심을 쏟는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해 내었다. 나. 대외 경제사업 동향 이와 같은 주요 대내 경제사업 방향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주요 인물 또는 권력기관의 대외 경제사업 동향, 그 중에서도 특히 대중 경제사업 동향이다. 대외경제 사업은 2009년 말에서 2010년 초에 활발한 동향을 보 였지만, 말만 무성하고 실제 진행되는 것이 많지 않았다. 대중국 사 업은 속도는 느리지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각 개별 기관의 대중국 투자유치활동과 경제협력 활동이 2010년보다 더욱 활발해졌다. 여기에서의 성과 여부에 따라 기관별 세력 부침이 영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11년도 대외 투자유치활동은 3파전으 로 벌어졌다. 2010년 초 북한은 통전부장인 김양건을 이사장으로 하여 조선대 풍투자그룹을 통해 외자유치를 추진했으며, 국가개발은행도 설립했다. 대풍과 국가개발은행의 설립 근거는 국방위원회 결정과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명령이었다. 국가개발은행은 국가정책에 따르는 중요 대상 들에 대한 투자업무를 수행 하게 되어 있었다. 123 이 연장선 상에서 북한은 2011년 1월 15일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에 관한 내각 결정을 채택하고 국가경제개발총국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따 라 하부구조 건설과 농업, 전력, 석탄, 연유, 금속 등 기초공업, 지역개 발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경제개발의 전략목표를 확정했다고 한다. 이 123 박인호, 북, 국방위 결정 따라 국가개발은행 설립, 데일리NK, 2010년 1월 21일. 8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94 와 같은 주요 대상은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전적으로 위임받아 실 행한다. 대풍그룹의 구조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이사장을 맡고 박철수 총재가 부이사장을 겸임하고 있고 여기에 국가개발은행 의 이사장인 전일춘 노동당 39호실장이 이사로 등록돼 있다. 이사회 에는 국방위, 내각, 재정성, 유관부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대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풍그룹은 2010년 투자 실적이 전무했다. 따라서 외자유치 주요 책임자인 박철수의 징 계설이 등장했다. 2011년에도 북한은 2010년 초와 유사하게 외자유치를 위한 적극 적 동향을 보였다. 가장 활발한 동향을 보여주었던 것이 장성택이 주 도하는 합영투자위원회였다. 이 기관은 2010년 7월 최고인민위원회 상무위원회 정령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정령은 합영투자국을 합영투 자위원회로 확대하였다. 124 합영투자위원회는 외자유치와 합영, 합작 등 외국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북한의 국가적 중앙지도기관으로 설정되어 있다. 125 이 기구의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외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 진 리철 전 스위스 대사이다. 126 합영투자위원회는 2010년 10월 조선 노동당 창건 65주년에 맞춰 이례적으로 체류비 전액을 부담하며 중 국 내 조선족 기업인 30여 명을 초청, 투자 설명회를 개최했다. 아울 러 12월에는 김일영 부위원장이 이끄는 합영투자위원회 대표단이 베 이징에서 중국 상무부와 나선특구와 압록강의 섬인 황금평 개발을 위 124 장용훈, 북 합영투자지도국 합영투자위원회 확대개편, 연합뉴스, 2010년 7월 8일. 125 박종국, 북, 합영투자위원회가 외자유치 전권 장악, 연합뉴스, 2011년 1월 21일; 북 합영투자위 조직 어떻게 구성됐나, 연합뉴스, 2011년 1월 21일. 126 장용훈, 북 합영투자위원회장에 리철 전 스위스 대사 확인, 연합뉴스, 2011년 1월 24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83

95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27 합영투자위원회는 중국 상무부와 5년간 35억 달러를 들여 나선지구 부두와 도로, 정유시설을 합작 개 발하고 북한 최대 철광석 생산지인 무산 광산 시설 현대화를 위한 양 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또한 신압록강 대교 착공식이 12 월 31일 치러진 것도 합영투자위원회의 노력으로 알려졌다. 또한 합 영투자위원회는 2011년 2월 15일 베이징에서 중국과 북한의 지하자 원 공동개발과 관련한 협정을 체결했다. 128 이 협정에는 주로 금광과 무연탄이 다량으로 매장된 무산광산, 희토류와 관련된 광산 목록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2010년에는 대북관광 인원 제한이 풀려 중국인의 북한관 광이 크게 확대되었다. 북한 노동력의 중국 파견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김정일 방중 이후인 6월 8일에는 황금평 위화도 경제지 대 조중공동개발 공동관리대상 착공식이, 9일에는 나선 경제무역지 대 조중공동개발 공동관리대상 착공식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북 중 경제관계는 2006년 원자바오에 이어, 2010년 8월 후진타오가 제시한 대로 정부주도, 기업위주, 시장중심 원칙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것 으로 보인다. 오극렬 국방위부위원장도 조선자원투자개발공사를 담당하고 있 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9 오극렬 국방위부위원장은 군부의 지원 속에서 조선자원투자개발공사를 통해 투자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장성택 당 행정부장 측보다는 못하지만 김양건 부장의 대풍그 127 황금평 개발에 관한 징후는 2011년 3월 말 현재 특별한 것이 없다. 박종국, 중 단둥 주 민들 황금평 개발 시기상조, 연합뉴스, 2011년 3월 30일; 조선아, 황금평 사업 누가 투자 좀 안 해주나 북한 발만 동동,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10월 23일. 128 장용훈, 북-중, 이달 중순 지하자원 개발 협정 체결, 연합뉴스, 2011년 2월 6일. 129 홍제성, 북 경쟁적 투자유치전 속 박철수 도태설, 연합뉴스, 2011년 1월 19일. 8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96 룹보다는 실적이 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대풍그룹과 국가개발은행은 북한 대 내 경제개발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합영투자위원회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관련한 외자유치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오극렬은 위세가 많 이 약해졌지만, 아직도 군부를 배경으로 외화유치사업을 진행하는 것 으로 보인다. 다. 물가 동향 북한의 물가 및 환율 동향도 시기적으로 부침이 심했다. 130 물가 와 환율은 2010년 2월까지 화폐개혁의 여파로 급등했다가, 3~6월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환율과 물가는 7~8월 폭등하고 그 수준에서 9~11월 말까지 안정세를 보였다. 7~8월 폭등세는 한 국의 5.24조치 등 대북제재 가시화에 따른 내부 동향 변동으로 추측 되고 있다. 이 시기 이후 북한은 광물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후 11월 말경부터 급등하기 시작하여, 2011년 2월 중하순경에 최고점 에 이르렀다. 북한의 시장 물가는 2011년 말과 비교할 때 2011년 2월 중순경 2배로 폭등했다. 131 쌀값은 2009년 11월 화폐개혁 당시 신화 폐로 22원이었던 것이, 2011년 2월 초중순에 2000원 선으로 증가하 여, 1년 여 사이에 거의 100배로 뛰었다. 이러한 쌀값 동향은 통상적인 동향과는 다른 양상이다. 북한의 쌀 값은 일반적으로 추수 직전인 9월 말과 10월 초 사이에 최고치에 도 달했다가, 추수 후에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다시 식량이 고갈 130 고일동 외, 2010년 북한 대내외 경제 및 남북경협 동향, KDI 북한경제리뷰, 2010년 11/12월호 (KDI, 2010), pp 박준형, 북한 시장 물가 지난해 말 비해 2배 상승, 데일리NK, 2011년 2월 11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85

97 되어 가면서 다음 해 3~4월경에 연중 최고치를 보여주었다. 132 그런 데 년에는 추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이미 11월 말 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1월 중순~2월 중순에 최고치에 도달한 다 음,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11월 말의 폭등세는 연평도 포격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 11월 이후 강화되어 전개되고 있는 각종 무역회사 검 열에 따른 무역 위축이 지적되었다. 그리고 10월 취소되었던 군량미 징발이 12월에 재개된 것, 중국과의 무역 활성화 조치가 내려지면서 북한 무역회사의 외환매입, 2.16 김정일 생일 즈음한 선물 수입을 위 한 외화 수요 증가 등이 환율 인상과 물가상승에 영향을 주었다. 이외 에도 1월 3일부터 2월 15일까지 시행된 새해 첫 전투 가 물가상승의 원인이기도 했다. 133 전투기간 중에는 장마당을 제한하고 공장, 기업 소 노동자들과 인민반 주민들은 물론 고등중학교 3학년(만 13살) 이 상 학생들까지 모두 거름생산에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에는 만 17세 이상 어른들에 한해 매일 거름 50kg, 고등중학교 5~6학년 학생들은 30kg, 3~4학년 학생들의 경우 20kg씩 주변 농장들에 가져 다 바치고 확인증을 받아와야 했다. <표 Ⅲ-1> 2009년 말~2011년 초 평양의 쌀값 동향 시기 11 초중 12 초 2 중 3 초 3 하 쌀값 2, , 초~6 중 400~ 초중 10 중하 1, ~ 하순 출처: 데일리 NK, 북 장마당 동향"에 의거 작성(검색일: ) 초순 2 초순 (단위: 원) 2 하순 750 1,250 2,200 1, 김보근, 북한의 차등적 식량분배 모형 과 2008년 식량위기, 통일정책연구, 제17권 1호 (통일연구원, 2008), p 문성휘, 북, 주민 생산전투 동원 물가폭등,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5일. 134 좋은벗들에 의하면, 평양의 1월 중순 쌀값은 3,000원까지 올랐다. 좋은벗들, 평양 쌀값 3,000원 돌파, 오늘의 북한소식, 제387호 ( ). 8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98 쌀값은 4월 중순까지 1,500원대로 하락했다가, 5월 초중순부터 6월 중순 2,000원대에 도달하고, 7월 하순까지 안정되다가, 8월 하순에 2,500원대에 도달했다. 9월 초순부터 하락하여 9월 말경 2,300원대에 머물렀다. 이는 2009년 11월 초중순, 즉 화폐개혁 이전 쌀값 수준인 2,200원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월 29일을 기점으로 볼 때 평양시 환율과 쌀값이 열흘 사이 각각 1.2배와 1.5배씩 급등했다 월 29일 평양시 환율은 2,700~2,800원 선을 맴돌던 것이 10월 10일 당 창건기념일을 맞으면서 12일 현재 3,200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식량가격 역시 1,800원 하던 것이 평 양 내 송신시장과 서평양 역전시장에서는 12일 현재 2,600~2,700원 으로 올랐다. 이와 같은 급등의 원인은 북한 재정담당 관권 기구에서 현금을 시장에 급히 푼 것 때문이라 추측되었다. 새 돈(현금)이 갑자 기 시장에 많이 나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10월 중순경 북한 쌀값은 3,000원으로 1월보다 50% 급증했다 월 24일경에는 혜산 쌀값이 3,500원까지 올랐다. 4월 1천 8백 1천 9백 원 수준이었던 쌀값은 계속 상승해, 8월 말부터 2천 5백 전후로 크게 뛰었다. 쌀 가격 상승의 원인은 북한당국의 잇따른 검열로 밀수 등을 통해 중국에서 들여오던 쌀 유입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 었다. 9월부터 진행됐던 비사회주의 요소에 대한 국가검열 이 계속되 는 바람에 중국 쌀의 유입이 축소됐고 이것이 북한 쌀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중국 위안화에 대한 환율 상승, 그리고 135 데일리NK, 북 장마당 동향 에 의거 작성 (검색일: ). 136 룻 김, 평양 환율 쌀값 열흘 새 약 1.2~1.5배 뛰어,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10월 28일. 137 김은지, 북한 쌀값 3천원 올 1월보다 50% 급증,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17일; 강미진, 北 쌀값 화폐개혁 이후 최고치 3천원(kg), 데일리NK, 2011년 10월 14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87

99 북한당국이 내년도 강성대국 진입을 앞두고 농민들로부터 군량미를 대폭 거둬들인 것도 쌀값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추정도 있었다. 위 안화 가격도 1위안 당 500~510원 수준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쌀값 상승의 원인으로 북한화폐의 가치하락도 지적되었다. 138 평양 건설 사업에 필요한 원료를 외국에서 사오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외화 사용이 늘린 탓에 외화 수요가 높아진 탓도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 부문이나 외화벌이 기관들이나 너도나도 달러나 위안화만 찾으니 외 화가격이 자꾸 비싸지는 것이라고 했다. 라. 위안화 사용 증가 및 대중국 무역확대 동향 2010년 진행된 급속한 인플레 여파로, 북한지역에서 위안화 사용 이 현격히 늘어났다. 중국의 단둥시가 2010년 8월 대북한 무역상에게 위안화 결제를 허용한 후, 139 북한은 10월부터 무역결제대금을 중국 위안화와 달러로 하는 것을 허용했다. 140 신의주시 당국은 10월 10일 조치 이후 조선중앙은행 평안북도 지점에 개인들의 외화저축을 허용 함에 대한 조선중앙은행 외화 취급법 을 게시했다. 아울러 중국 화교 들과 연중 2회 이상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들을 모아놓고 외화저금 설명회 를 가졌다. 설명회에서 은행 측은 개인의 외화저금을 자유롭 게 허용하며 돈의 출처와 수량에 대해 절대로 따지지 않는다는 조건 을 내걸면서 임의의 시각에 저축할 수 있고 임의의 시각에 찾을 수 있도록 국가가 신용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간 저축 이자율 138 이석영, 北 쌀값 연일 최고치 경신 1kg당 3,500원, 데일리NK, 2011년 10월 24일. 139 임기창, 중, 단둥, 대북무역에 위안화 사용 허가, 연합뉴스, 2010년 8월 19일; 한 중 국 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2008년 2월 21일부터 단둥의 대북교역이 위안화로 결제되기 시작하였다. 임강택 외, 북한변화를 위한 한 중 협력방안 (서울: 통일연구원, 2011). 140 문성휘, 북, 지방 은행들에 외화 결재 허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1일. 8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00 5%를 보장하며 임의의 시각에 저금을 찾는다고 하여도 해당한 기일 만큼 이자를 적용해 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조치와 함께 연말로 가 면서 위안화 사용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장세를 위안화로 바치는 것도 허용되었으며, 12월 20일부터 국경지역 도시에서 개통된 휴대 폰은 달러나 중국 위안화로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1월 하순, 대도 시의 국영상점에서조차 외화로만 판매하는 물건이 대부분 대도시 웬 만한 식당에서도 외화로만 식사가 가능, 중국 수입 공산품은 위안화 로만 구입 가능했다. 141 청진 수남시장, 함흥 추평시장, 신의주 채하시 장, 혜산 신흥시장 등 전국 주요 시장에서는 웬만한 상품들을 이제 중국 위안화나 외화로 거래하고 있다. 조선돈 10만 원이 넘어가면 달 러나 위안화로 받는다. 시군마다 운영하는 국영 상점망이나 수매상점 등에서도 이제 조선돈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뇌물에도 위안화가 적용 되고 있다. 142 위안화 만연 실태는 2011년 8월 실시된 폭풍군단 검열 에서도 나타났다. 143 이에 김정은이 북한주민들이 북한 원화를 쓰지 않고 위안화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위안화 사용을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규모가 큰 국영 식당들에 서 중국산 맥주나 소주가 위안화로 자연스럽게 판매되는 것은 물론 국경지역의 시장들에서도 껌이나 초코파이까지도 위안화로 거래된다 고 한다. 외화 거래량이 늘면서 위조화폐 유통도 같이 늘어났다. 위조화폐 유통은 달러와 북한화폐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위조달러 유통을 141 김준호 북, 환율 급등...장마당 직격탄,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6일. 142 좋은벗들, 인민페(중국위안), 달라가 조선 돈 대체, 오늘의 북한소식, 제382호 ( ). 143 현건, 김정은 폭풍군단 검열에서 드러난 위안화 지배현상에 놀라, 열린북한방송, 2011년 9월 22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89

101 보면 이렇다 년 단행된 화폐개혁 후 소극적으로 환전 장사를 하던 개인상인들이 이제는 거리 중심가와 시장 골목에 모여 노골적 으로 위조 달러 거래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큰 돈주(북한에 서 돈이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자본력을 바탕으로 환전 뿐 아니 라 사채업, 상거래까지 진출함) 한 명을 중심으로 8~10명이 한조가 되어 장마당 등에서 말뚝(호객행위)을 서고 있다고 했다. 북한 내에 서는 등사기로 인쇄한 위조달러와 컴퓨터로 인쇄한 위조달러 등이 유 통되는데 질에 따라 해당 달러의 30~70%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뇌물이 오고가면서 당국 차원의 단속도 신통치 않다고 했다. 보통 7만~8만 달러를 가지고 있는 큰 장사꾼들은 보안원은 물 론 단속하는 법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 에 단속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큰 돈주 대신 중간에 심부름을 다니는 사람들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북한 위조화폐 유통을 보자 월 20일 당중앙군사위원회 내부 지시에 따라 평양 시와 양강도 및 함경북도에 위조 북한화폐 지원지를 찾기 위한 전문 상무팀이 조직되었다. 5,000원 권 북한 위조화폐는 대형 종이박스에 20 30억 원씩 포장되어 각 지역으로 배송되었다고 한다. 위조화폐 유통라인과 손잡기 위해 각 지역의 밀매조직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 했으며, 위조화폐의 30%는 달러나 위안화와 같은 다른 화폐로 전 환되어 1차 세탁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한편 2010년도 후반기부터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 양한 시도가 있었다. 북한의 대중 수출은 3/4분기 들어 급증하기 시 144 이석영, 환전꾼들 고개들며 가짜 달러 유통 증가, 데일리NK, 2011년 10월 10일. 145 조선아, 위조화폐로 인한 북한돈에 대한 불신, 북한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나?,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5월 6일. 9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02 작했다. 7월 이후 특히 무연탄과 의류 수출이 증가했다. 이는 대북제 재와 한국의 5.24조치에 따른 외화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 인다. 146 북한은 같은 시기 석탄과 은 같은 광물자원 수출 제한을 대 폭 완화했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쌀과 옥수수 수입을 증대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2007년 광물자원의 수출제한을 도입하고, 석탄, 금, 은, 아연 등의 수출을 억제해 왔던 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2007년 수출제한에 따라 2008년 관련 광물의 대중 수출이 급감했다 (무연탄 32% 감소, 은 84%감소, 아연 85% 감소). 이러한 정책은 북 한에서 가공도를 높여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정책과 연계되어 있 었다. 석탄과 광물의 대중수출은 군의 이권으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 서 광물수출을 재허용한 정책 변경에서 군의 입김이 강화되는 정치변 동을 추측하는 견해도 있었다 월에는 시도 책임비서, 청년동맹, 11월 초에는 총리 최영림이 11월 초 중국 동북지방을 방문했다. 11월에는 조선족 투자 설명회가 있었다. 10월과 11월에는 북한이 단둥과 투먼 등에 근로자 파견을 했 다는 보도도 있었다 월부터 당, 군 산하 기관별로 무역회사를 다시 조직할 수 있게 되었고 독립적으로 중국과의 무역이 허용되었다. 같은 시기 2달간 금지되었던 북한주민의 중국 친지 방문이 재허용 되 었다. 무역기관 조직 및 일반주민의 대중국 무역 허가 문제는 시기에 따라 정책입장에 번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2011년 중국과의 다양한 경제협력사업이 진행되었다. 9월 19일 북한 텔레비전은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혜산청년광산이 중국과 146 고일동 외, 2010년 북한 대내외 경제 및 남북경협 동향, pp 西 村 大 輔, 北 朝 鮮, 石 炭 賣 って 食 料 調 達 鑛 物 輸 出 制 限 を 大 幅 緩 和, 朝 日 新 聞, 2011년 2월 9일. 148 온기홍, 북 접경 중국 도시들, 북한 근로자 고용 늘려, 미국의 소리, 2010년 11월 11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91

103 의 합작으로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149 혜산동광을 중 국과 51대 49의 지분으로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50% 이상을 차지한 대주주였다. 앞으로 중국 완샹( 萬 向 )그룹이 혜산동광을 25년간 독점 운영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이 추정하는 혜산동광 의 매장량은 42만 톤이며, 채굴이 본격화 되면 생산되는 동광을 중국 이 먼저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고열탄 고장으로 소문 난 평안북도 구장군 용등탄광도 중국 최대의 광물자원 수입회사인 우 쾅( 五 鑛 )집단에 50년간 채굴권이 넘어갔다. 중국의 통화철강그룹이 함경북도 무산광산에 위안화 약 70억 위안을 투자하기로 하고, 50년 동안 채굴권을 넘겨받았다. 8월 초부터 시작된 북한과 중국의 단천항 개발과 이용권 협상이 9월 초 마무리되었다. 150 이 협상은 조선 대풍투자그룹이 중재했고, 중국 측이 조만간 항만 보수와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함경남 도 단천 지역은 북한의 대표적인 광물 산지로, 북한은 2010년부터 이 곳에 새로운 무역항 건설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중국은 나진, 청 진항에 이어 단천항까지 북한 동해안 지역의 주요 항만을 대부분 확 보하게 돼 동북3성 지역의 안정적인 수출항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나선특구에 대한 공사도 지속되었다. 151 나진항 개발사업을 담당 하는 북한과 중국의 관리들이 베이징에서 만나 나진항 투자 계약서를 채택했다. 양측이 서명한 계약서에는 나진을 자유무역지대로 육성하 기 위한 나진항 투자 계획을 중심으로 5가지 합의사항이 포함된 것으 로 알려졌다. 양측은 나진항 4호, 5호, 6호 부두 건설에 합의하고 50년 149 최민석, 북, 동 광산 중국에 팔고 인민생활 향상 선전,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12일. 150 위의 글. 151 이연철, 북한 라선특구 사회기반시설 개발 활발,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2일. 9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04 간 중국이 사용권을 취득한다는데 합의했다. 또, 중국 취안허에서 나 진항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투자 계획도 계약서 에 포함됐다. 중국의 투자로 53km에 달하는 도로의 확장과 포장 공 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사가 끝나면 화물차 운행시간이 30분에서 40분으로 크게 단축될 것이라 했다. 나선특구의 관문인 나진항도 중 국과 러시아의 투자로 개발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두 나라는 낡은 부두를 현대화 하는 보수공사를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각각 나진항 부 두 개발권과 이용권을 따냈다. 중국은 이미 나진항 1호 부두 보수공 사와 물류창고 공사를 완료했고, 러시아는 현재 3호 부두 보수공사를 진행 중이며, 곧 화물터미널 공사도 시작할 계획이었다. 중국과 러시 아는 국제화물을 처리하기 위해 13개 부두를 새로 건설하는 계획도 추진했다. 북한은 이 밖에 나선특구 개발을 위해 태국 기업들과 합영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력공급을 위해 수력발전소를 확보했고, 내년에는 화력발전소 건설에도 착공할 계획이었다. 마. 군량미 징수 문제 2010년 10월 30일 중앙당은 군량미 사업을 올해부터 중단하겠다 고 밝혔다. 동시에 군대 원호 고기 부담까지 폐지되었다. 152 이 조치 는 농민들의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김정은의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군량미 수집 책임 부서인 노동당 행정부 산하 2호 사업부는 수해 피 해지역 농장들의 군량미 징수 계획을 대폭 낮추었다. 피해 면적에 따 라 함경남도의 어떤 농장은 20% 가량, 강원도의 어떤 농장은 40%나 군량미 면제를 받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2006년 이후 152 좋은벗들, 중앙당, 군량미 사업 중단 지시 내려, 오늘의 북한소식, 제374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93

105 악화하여 오던 군량미 사정이 현저히 악화하였다. 군대들 속에서 영 양 실조자가 급증하고 군대들의 부패, 대민피해가 심각해졌다 년 황해북도와 강원도 주둔 군관들에 따르면, 군대 식량상황 이 전반적으로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어려워졌다고 했다. 또한, 한국 과의 긴장이 높아가는 가운데, 실제 국방에 관여하는 부대와 그렇지 않은 부대 사이에 군량미 수급 불균형이 상당하다고 했다 년 초 군대 식량사정 악화 때문에, 영양실조, 무장 탈영, 민가 습격이 늘 어나고 있고, 일부 부대들에서 식량을 구해오라고 병사들을 집으로 보냈다. 155 김정은의 지시로 2010년 11월 말부터 각 군단사령부를 상 대로 보위사령부 검열이 시작되었다. 김정은은 불법적인 도로세와 (해상)조업세를 받아내는 군인들을 모조리 잡아내라는 지시가 내렸다. 156 식량문제 때문에 인민군 2011년도 초모사업이 늦추어졌다. 157 지난해 입대 초모생들이 병 치료를 목적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양실조 신입 병사들은 3달간의 장기휴가를 주어 집에 보내고 있다. 북한군 최전방부대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집단적 명령거부 등의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한다 월 하순경부터 군량미를 다수 거두기 시작했다. 원래 군량미를 걷는 대신 중국과 무역을 하거나 당자금을 들여 군량미를 확보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중앙당에서 해외무 153 최민석, 북, 민심잡기 실패로 주민 불신 증폭,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6일. 154 좋은벗들, 일반 사병들의 하루 정량, 어떻게 변해왔나?, 오늘의 북한소식, 제391호 ( ). 155 최민석, 북, 식량 구해오라 병사들 휴가 보내,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4일; NK리포트, NK Vision, 제19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11), p 문성휘, 북 군인들, 도로 뱃길 막고 돈 갈취 심각,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2월 23일. 157 문성휘, 북, 비축 군량미 부족 징병도 연기,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2월 22일. 158 NK지식인연대, 굶주린 북한군 작업명령 거부 집단 태만, 대대장 자살까지, NK 지식 인연대, 2011년 2월 7일. 9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06 역대표부에 식량구입에 대대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성과 가 크지 않았다 월 중순부터 2월 15일까지 군량미 헌납기간 으 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10만 톤을 거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함경남 도, 황해남도, 강원도에서 강제적 군량미 징수가 있었다. 양강도에서 도 1월 12일부터 열흘간 군량미 자발적 헌납 호소가 있었다. 함경남도 는 매 가정세대들에 의무적으로 50kg의 군량미 헌납을 강요했다 월 중하순경, 중앙당은 전국 각 지역에 군량미 확보 과제를 내렸다. 전국적으로 각 지역 기관, 기업소, 동사무소 인민반들에서 군량미 원 호사업에 앞장서겠다고 결의가 있었지만, 불만이 컸다. 법기관 말단 일꾼들은 옥수수 5kg 이상 바쳐야 했다. 국가 간부들은 1 2톤 정도 면 충분했다. 해외대표부 일꾼이나 무역 일꾼은 최소 5톤 이상에서 10톤 정도를 내야 했다. 161 군량미를 강제로 거두기 시작하면서 식량 값 상승에 영향을 끼쳤다. 162 군량미 재징수에 따라 민심이 악화되었다. 군량미 수집은 원래 노 동당 행정부 산하 2호 사업소에서 하게 되어 있는데 후방의 군부대에 서는 군관들이 직접 농장에 찾아가 쌀을 내놓으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쌀을 거둬들이려는 군관들과 내놓을 쌀이 없 다고 버티는 농장간부들 사이의 다툼이 빈번히 벌어졌다. 163 강령군 의 경우 군량미 수거 명목으로 대부분의 농가가 가택수색을 당했고 농가 은폐 식량이 징발 당했다. 그런데 이처럼 헌납된 군량미의 일부 159 좋은벗들, 군량미 다시 거두는 지역 많아, 오늘의 북한소식, 제383호 ( ). 160 문성휘, 북, 한 달 내 군량미 10만 톤 징수하라,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5일. 161 좋은벗들, 군량미 원호 사업, 당 간부들도 예외 없어, 오늘의 북한소식, 제387호 ( ). 162 좋은벗들, 평양 쌀값 3,000원 돌파, 오늘의 북한소식, 제387호 ( ). 163 김준호, 북, 강제징수 군량미 장마당서 팔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8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95

107 는 주로 후방 군부대의 힘 있는 군관들에 의해 장마당으로 유출되었다. 이들은 입을 막기 위해 보위부나 보위 사령부에도 빼돌린 군량미 일 부를 나눠주었다. 164 군대 식량난은 2011년 하반기가 되어도 개선되지 않았다. 8월경 북 한 군부대의 식량난이 심각해 상당수의 군인들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 으며, 일부 부대에서는 아사자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65 북한의 각 부대에서는 이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밤에 몰래 일 반 주민들의 가축이나 식량을 훔치는 경우가 일반화 되었다. 병사들 이 각 가정을 돌며 구걸하기도 한다고 했다. 식량사정이 악화되자, 2010년 10월부터 강냉이 100kg을 군대에 바치면 보름(15일) 휴가를 주는 제도가 일선 부대에서 실시되었다. 166 북한 군대에서는 매 군인 당 마른 산나물 10kg에 마른 고사리 10kg씩 과제가 떨어졌다. 산나물 은 겨울철 부식물용이고 마른 고사리는 외화벌이 과제였다. 이는 군 대의 겨울철 부식 문제를 해결하는 김정일 지시에 따른 것이다. 167 식 량난 때문에 탈영한 군인들이 떼를 지어 강도로 돌변하고 있어 주민 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168 훈련소에서도 탈영병이 증가했으며, 이들 이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일삼아 군민관계를 훼손했다. 169 최전방을 지키는 북한 군인들도 쌀 대신 고구마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 세대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도 먹을 것을 얻으러 민가에 나타났다. 이 들은 밤이면 지나가는 행인들의 짐을 빼앗고, 빈집털이를 했다. 164 김준호, 북, 강제징수 군량미 장마당서 팔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8일. 165 김용훈, 北 군인, 옥수수 300g과 소금으로 하루 버텨, 데일리NK, 2011년 8월 11일. 166 이석영, 북한군 병사, 강냉이 100kg 내면 보름휴가, 데일리NK, 2011년 4월 15일. 167 문성휘, 북, 군인들 산나물 캐기 총동원 지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9일. 168 문성휘, 북, 떼강도 돌변 탈영군인들로 민심흉흉,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23일. 169 좋은벗들, 신병훈련소, 배고픈 탈영병 속출, 오늘의 북한소식, 제411호 ( ). 170 최민석, 북한 최전방 군대, 고구마로 끼니 해결,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8일. 9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08 10월경에도 군대 식량난은 개선되지 않았다. 171 군인들이 가기 싫 어하는 강원도 주둔 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군인들이 가장 배치되고 싶어 하는 국경연선 지역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9월 25일, 군부 대 검열이 끝나자 군인들은 당장 민가를 덮쳤다. 예전에는 군인 한두 명이 털었다면 요즘에는 5~6명씩 무리지어 집집마다 돌면서 콩, 감 자, 옥수수는 물론이고 닭, 오리 등 곡물과 가축까지 싹쓸이했다. 군 민관계 훼손이라며 시끄러워질 것을 예상해 군인들은 군복을 뒤집 어 입거나 아예 벗어버리고 도둑질을 했다. 북한의 조선인민군 하전 사들이 처음 입대하여 영양실조(영실)에 걸리지 않으려면 최소 1년에 300달러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172 한 달에 평균 10~30만 원이 없으면 영양실조 걸려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군인들에 대한 군수품공 급이 어려워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한국 정부의 5.24조치가 시작한 2008년부터 심해졌다. 2009년 12월 화폐개혁 이후에는 더욱 악화되었다. 2011년 북한에서 가을걷이가 시작되면서 군인들의 농장습격 이 빈번해졌다. 173 군인들의 하루 식량 공급량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 었고,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에서 각 부대별 자체로 식량을 해결하라 는 지시를 내려 군인들이 기승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닥쳐 올 겨울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부대별로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 었다. 한 개 분대마다 동기훈련 전(12월 1일)까지 옥수수 200kg 씩을 확보하라는 지휘관의 명령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이 9군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군인들의 식생활을 부대자 171 좋은벗들, 배곯는 군대도둑 극성, 오늘의 북한소식, 제423호 ( ). 172 주명철, 조선인민군 하전사 군복무하려면 최소 1년에 평균 300달러 필요!!, 북한전략정 보서비스센터, 2011년 10월 16일. 173 이석영, 옥수수를 지켜라 北 군인들 농장습격 비상 소식통 1개 분대당 옥수수 200kg 확보하라 지시 떨어져, 데일리NK, 2011년 9월 15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97

109 체로 개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174 또한 영양실조에 걸린 군대가 많은 지휘관들을 처벌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요즘 군관 들 속에서 중대장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군인들에게 떡과 고기를 자체로 해결해 먹이라는 군부 의 지시가 내려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군관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당국은 군인들의 식생활 문제를 개선 할데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 관철 정형을 요해하기 위해 10월 말부터 각 군부대를 상대로 인민무력부 산하 후방총국 검열을 집중적 으로 벌인다고 했다 년 가을 인민군부대를 시찰한 김정일 국 방위원장이 부대 후방창고를 돌아보고 말린 산나물과 콩 농사를 많이 지을 데 대한 지시를 내렸고 올해 인민군 창건일에도 또다시 같은 내용의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러자 군관들이 군인 1인당 메주콩 13kg, 말린 산나물 10kg씩을 무조건 구해오라고 사병들을 내 쫓았으 며, 결국 병사들이 인근 주민의 경작 콩을 무차별 강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이하 FAO)는 북한의 2011년 수확량을 440만 톤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해 보다 4.8% 늘어난 것이다. 176 그러나 북한 내 부에서는 2011년 수확량이 충분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177 평양 시의 경우 10월경 근래 식량수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인근 농촌 지역에서의 유입량은 예년에 비해 줄었다. 평양 시당의 한 간부는 수확량이 크게 없는데다 군부대들에 식량을 먼저 줘야 해서 평양시에 174 정영, 북한군, 영양실조 병사 늘자 해결책으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14일. 175 문성휘, 북 군인들, 주민 경작 콩 무차별 강탈,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5일. 176 조은정, FAO, 북 올해 수확량 440만t 전망,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6일. 177 좋은벗들, 올 가을 수확량 적어 평양시 타격, 오늘의 북한소식, 제423호 ( ). 9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10 들어오는 식량이 적다. 외부에서 수입되는 식량이 주민들에게까지 돌아 가지 않고 있어서 앞으로 식량 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고 했다. 군량미 최우선 확보 정책은 2011년에도 반복되어 북한당국이 가 을걷이도 채 마무리 되지 않은 협동농장들에 터무니 없이 많은 군량 미를 독촉했다 월 7일 최고사령관 명령과 9일의 당중앙위원회 명령으로 수확한 식량을 군량미로 보내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라는 지 시를 각 행정기관 및 농장관리위원회, 양정사업소 등에 하달했다. 내 각과 수매양정성, 철도성, 전력공업성을 비롯한 중앙기관들이 최고사 령관과 중앙위원회 명령을 틀어쥐고 도들에 직접 내려가 사상동원 사 업을 벌이며 대대적인 군량미 확보 투쟁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년에는 김정은의 지시로 군량미의 대부분을 황해북도와, 알곡 10만 톤을 생산군들에 배당했고 일반 협동농장들은 군량미를 얼마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적지 않은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2011년 북한은 실제 수확량에는 관계없이 무조건 국가계획량 의 40%를 군량미로 바칠 것을 모든 협동농장들에 지시했다. 예를 들 어 양강도는 국가계획량으로 정보당 감자 40톤을 생산해야 하므로 매 정보당 16톤의 감자를 군량미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수확량이 정보당 평균 22톤이어서 정보당 16톤의 감자를 군량 미로 바치고 나면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공급해야 할 배급량은 정보 당 6톤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농사형편도 시원치 않은데 군 량미 수매계획이 너무 높아 내년도 주민들의 식량난이 더 심화될 것 이라는 원성이 높다고 했다. 이처럼 터무니 없는 군량미 수매를 협동 농장들에 강요하는 것은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 원 분배감시노력으로 북한당국이 해외의 지원식량을 군량미로 전용하 178 문성휘, 북, 군량미 모집 총력...식량난 악화 우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28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99

111 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 것 때문이라는 분석도 존재했다. 그리하여 군대 들이 군량미를 걷어가느라 농장에 버티고 서서 탈곡하는 족족 실어간 다고 했다. 179 또한, 군대나 보안서(경찰) 등 권력기관들은 누가 먼저 1년 먹을 식량을 장만하는지 경쟁이 붙었다고 했다. 바. 중국과의 전면적 무역확대 정책 시동 북한은 2010년 12월 초부터 대중국 무역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그 계기는 12월 8일 김정일의 초청으로 방문한 후진타오( 胡 錦 濤 ) 특 사 다이빙궈( 戴 秉 国 ) 외교담당 국무위원 방문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중국의 경제지원과 투자가 소극적인 것이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이 회담 직후 열린 중앙당 조직부 긴급회의는 북한 측에서 적극적으로 모든 분야 모든 물건들을 중국에 개방하고 수출하면서 중국과의 경 제협력을 추진할 것 180 을 결정했다. 이후 <좋은벗들>이 지속적으로 전하는 동향은 북한이 모든 것을 개방하고 중국과 전면적으로 합작 을 추진하여 중국 측의 대량 투자를 끌어들이고자 노력한다 는 것과 북한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무역 및 투자 거래에서 신용을 얻기 위해 확실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당은 12월 초 중국과 무역할 수 있는 원천은 모두 팔아 식량 을 구입하라 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광산자원을 모두 중국에 수출 해서라도 2011년 1월까지 100만 톤의 식량을 구입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동안 자원보호 명분으로 수출에 제약을 두었으나, 중국과 러시아 투 자를 끌어들이자면 수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정영, 태국 대홍수 북한 쌀값 폭등 우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31일; 박준형, 北 최고사령관 군량미 1순위 로 보장 지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1월 3일. 180 좋은벗들, 최근 북한 실태( ~2011.2) (좋은벗들, 2011), 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12 아울러 김정일은 12월 해외공관을 통해 쌀 80만 톤을 입수하라고 지시했다. 182 한성렬 주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1월 14일 미국 인권 특사와 면담하면서,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이 만족할 만 한 모니터링 수용의사도 밝혔다. 183 아울러 북한은 아프리카를 제외 하고 미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유럽, 동남아국가, 국제기구 거의 모두 에 식량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184 아울러 북한 국경지역의 외화 벌이 회사들이 쌀 수입에 총동원됐다 년 초부터 식량을 수입 하라는 중앙의 지시가 모든 외화벌이 회사들에 내려졌으며, 매 회사 별로 미화 20만 달러 상당의 식량을 수입할 데 대한 과제가 떨어졌다 고 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무역회사의 연간 외화벌이 계획(충성의 당자금)이 20만 달러 정도 되는데, 현금이 아니라 식량으로 수입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고 했다. 한편 북한은 식량조달을 위해 중국에 무역 상인을 대거 파견했 다. 186 그 결과로 2011년 3월 중순경 북한 각 부서에서 평균 30%정도 의 해외상주 인원이 갑자기 늘었다. 187 그 배경을 보면 이렇다. 2010년 말부터 중국과 무역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조 중 우호협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보다 많은 무역회사들이 중국 181 좋은벗들, 중앙당 간부, 중국과 경제협력 진행 중이나 시간 걸려, 오늘의 북한소식, 제383호 ( ). 182 현건, 김정일, 해외공관통해 식량 80만 톤 입수 지시 내려,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27일. 183 김정욱, 감시 받겠다. 식량 도와달라, 한성렬 로버트 킹에게 요청, 중앙일보, 2011년 2월 8일. 184 강찬호, 북한, 전 세계 상대 식량 구걸, 중앙일보, 2011년 2월 10일. 185 최민석, 북, 충성자금 까지 식량수입에 사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8일. 186 김종현, 북 무역상 베이징서만 1천명 외화벌이, 연합뉴스, 2011년 2월 9일. 187 조선아, 김정일, 해외무역허가 명목으로만 한해에 3~4만불 뜯어내, 북한전략정보센터, 2011년 3월 16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01

113 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별 무역회사의 중국 무역이 가능해졌다. 2011년 1월에는 중국 동북3성 지역에 도시마다 4~5개 이상의 무역회사들이 새로 들어갔다. 경제뿐 아니라 전 기관들에 조 중 우호협력 강화를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는 2월 14일까지 취합되어, 2월 16일 간부들에게 공개되었다. 188 그 후 북한군부와 노동당 기관들이 저마다 외화벌이 기지들을 새로이 설치 했다. 총참모부 산하 강성무역회사는 북한 제련소에서 나오는 금정광 과 동정광 등을 주요 수출 품목으로 했다. 북한군 정찰총국과 병기총 국 등 군부 산하 무역회사들은 석탄, 철광석 등 품목을 주요 항목으로 잡고 있다 년 1월에는 호위사령부 산하 청우산 무역회사와 총 참모부 산하 강성총회가가 강철 판매에 나섰다. 이들 회사는 그 대가 로 쌀과 밀가루, 라면 등과 건설자재를 요구했다. 190 전체적으로 보면 2010년 5월 26일 당 지시 이후 191 후반기부터 점 차, 그리고 연말부터 급격히 대중 무역사업이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한 평가에 따르면, 2011년 초 무렵 북한은 정부 각 부처와 군 산하에 300개 정도의 무역회사를 두고 있다. 192 중국에 파견한 무역상은 베 이징에 약 1천 명, 상하이에 약 600명, 지방 거점 도시별로 명 씩으로 알려졌다. 이들 무역상은 1인당 연간 5천~6만 달러 정도를 188 좋은벗들, 동북 3성 지역에 무역회사 진출 늘어날 것, 오늘의 북한 소식, 제389호 ( ). 189 최민석, 북, 충성자금 까지 식량수입에 사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8일. 190 임정진, 北 무역회사, 식량 수급위해 강철 판매 나서,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3일 당지시의 핵심은 시장 (재) 허용과 무역(재)장려이다. 좋은벗들, 누구나 장사할 수 있게 하라, 오늘의 북한소식, 제340호 ( ). 192 김종현, 북 무역상 베이징서만 1000명 외화벌이, 연합뉴스, 2011년 2월 9일; 한국 정부 소식통 은 북한 잡지 Foreign Trade를 분석한 결과 북한의 외화벌이 무역회사가 2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았다. 이귀원, 북 외화벌이 무역회사 기관 200여개, 연합 뉴스, 2011년 8월 17일. 10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14 본국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거래비용이나 생활비에 충당하고 있다. 다 른 평가에 따르면, 2010년경 단둥에만 군부 140명, 내각 160명, 일반 기능근로자가 100명으로 총합 500명의 인원이 상주했는데, 2011년 3월 경에는 150명이 증가한 650명이 상주한다고 한다. 193 이들 중 군부 무역일꾼은 연 50,000달러, 내각 무역일꾼은 30,000달러, 일반기능근 로자는 10,000달러를 벌어서 상납해야 한다. 2011년에 들어서도 식량조달과 대중무역 강화가 여전히 강조되었 다. 1월 중하순 다시 한 번 대중협력 강화가 강조되었다. 중앙당은 모 든 기관, 기업소 단위들에 대중협력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과 거래를 위해 위안화 확보 경쟁이 벌어졌고, 이에 따라 환율이 상승 했다. 아울러 모든 무역회사들이 2.16명절 공급을 앞두고, 식량조를 구성해 식량구입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면서 추가적 환율 상승 요인 이 되었다 월 초에도 중국과의 무역을 강조하는 지시문이 쏟아 졌다. 나라의 무진장한 철광산, 제철소를 더 활성화하여 중국과의 무 역을 공고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고 했다. 또한 무역 원천이 될만 한 물질적 자원을 모두 중국에 팔아서라도 빨리 식량을 구입해 현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향상시켜야 한다. 중 국 대방에 경영권을 주면서라도 외화를 끌어들여 광산업과 기타 산업 들을 가동해 하루 빨리 우리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고 했다. 195 해 외공관도 군량미 모집운동에 동원되었다. 2월 중국 주재 해외대표부 193 조선아, 김정일, 해외무역허가 명목으로만 한해에 3~4억 달러 뜯어내, 북한전략정보 센터, 2011년 3월 16일; 단둥의 한 중국학자는 단둥에는 120여개의 북한무역회사 사무 소와 5,000여명의 상인이 상주한다고 본다. 임강택 외, 북한변화를 위한 한 중 협력방안 (통일연구원, 2011). 194 좋은벗들, 중앙당, 모든 부처에 대중 정책 대담하고 통 크게 나서라, 오늘의 북한 소식, 제387호 ( ). 195 좋은벗들, 중앙당, 연일 대중 무역 잘 해야 식량 풀린다 강조, 오늘의 북한 소식, 제389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03

115 간부들에게는 군량미 식량구입량이 강제로 할당되었다. 해외공관 군 량미 모집은 3월 1일 내각 지시로 중단되었다. 그 이유는 1년 사이 세외부담 징수가 13차에 달해 도저히 못 살겠다 는 등 공관원의 호소 때문이었다 명절을 맞아 해외 무역 대표들이 1년 총화를 위해 평양에 모였을 때도 식량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197 회의에서 는 전국 철광산과 금속광산 등에 외자를 유치해서라도 팔 수 있는 것 들은 모두 팔아 현 위기를 일단 넘겨야 한다고 했다. 희토류와 같은 희귀 금속도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도 거래를 성사시키고, 그 수입으 로 식량을 우선 구입하라고 했다. 2월 16일 이후 광물 수출이 활발해지고 식량 수입도 원활해졌다. 198 약 300척 되는 북한의 화물 선박 가운데 200여 척이 중국과 북한 사 이를 오가며 국내 식량 수입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북한의 각종 광물들을 중국에 실어 나르고, 돌아올 때는 옥수수, 밀가 루 등 곡물과 라면, 각종 식품류를 실어 왔다. 이렇게 식량이 들어오 면서 일꾼들과 간부들의 배급은 일부 해결되었으나 일반 노동자들의 식량 배급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측과 협상이 잘 안돼 광물 수출을 대가로 식량이나 식품을 받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 다. 다만 수입된 식량의 일부가 시장에 풀리면서 쌀 가격 하락에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월 하순경 북한당국이 중국에 친척이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쌀 구매를 목적으로 방중( 訪 中 )할 의향이 있으면 여행증명서를 발급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199 국가 차원의 식량외교가 신통치 않 196 좋은벗들, 해외공관 하소연에 군량미 모집 중단 지시, 오늘의 북한소식, 제395호 ( ). 197 좋은벗들, 지금은 고난의 초강행군 시기, 오늘의 북한소식, 제392호 ( ). 198 좋은벗들, 광물자원 팔아 식량 수입, 오늘의 북한소식, 제398호 ( ). 10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16 자 민간을 동원해 식량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행보라고 했다. 북한은 5월 중순경부터 하순까지 중국 사사( 私 事 ) 여행자들의 출입을 철저 히 차단했었다. 11월 초경, 김정일은 연말까지 22만 톤의 식량을 해외로부터 들여 와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00 이에 따라 해외에 파견한 외화벌이 주재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본국으로 들여보낼 식량이 강제 할당되었다. 만약 연말까지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소환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당국이 식량구매자금을 무역 주재원들에게 보내주 지 않고 대신 북한의 광물자원을 최대한 지원해준다는 말은 하고 있 지만, 실효성이 없어 사실상 각자 수단껏 알아서 식량을 구해 보내라 는 강제 지시와 다름이 없었다. 2011년 들어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선양과 평양을 오가는 고려항공편도 하루 1편에서 2편으로 늘었다. 201 북한은 중국을 상대 로 한 금강산 관광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월 당시 금강산 관광 객은 2 3천 명 선에 달했다. 203 이는 1년 만에 10배 이상 늘어난 숫 자였다. 북한은 코카콜라 수입, KFC가 북한에 지점을 개설하는 것으 로 알려졌다. 204 김정은 등장 1년을 맞아 경제정책회의가 열렸다. 205 이 회의에서 는 그동안 북한이 경제난과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피치 못할 사정 199 이석영, 장군님도 인민생활 위해 외국 나갔으니 北 당국 中 친척방문 해 쌀 구해 오라 주민 독려, 데일리NK, 2011년 5월 26일. 200 김준호, 북, 해외 무역일꾼에 식량 구입해 보내라,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1월 4일. 201 김은지, 북한 외국 관광객 크게 늘어, 미국의 소리, 2011년 9월 27일. 202 온기홍, 북한, 나선, 금강산 일반인 관광시작,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3일. 203 대북소식통 금강산 관광객 월 2~3천 명으로 늘어,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6일. 204 정주운, 북한, 코카콜라 수입 원해 미 경제잡지 보도, 미국의 소리, 2011년 9월 30일. 205 좋은벗들, 탄은 팔되, 탄광경영권 제한 하겠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26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05

117 으로 자원을 팔아왔지만, 앞으로 더 팔 것이 없어질 때까지 방치해서 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그동안 그렇게 많은 광석과 석탄을 팔았어도 국내경제 어려움이 해결된 것이 없지 않느냐는 주장 도 있었다. 국내 각 기관들에서 발전소들을 가동하지 못하면서까지 식량 자금을 마련하려고 중국에 모두 팔았는데, 식량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돈을 받고 광물을 팔기는 하되, 직접 채굴해가지는 못하게 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북한은 10월경 외화벌이를 위한 주요 수출품인 석탄을 당분간 수 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6 겨울철 연료난 해소를 위한 조치였다. 북 한당국은 추위가 풀리면서 내부적으로 연료 사용이 감소하는 내년 봄 쯤 석탄 수출을 재개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북한은 과거에도 석탄 수 출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전력난이 심각했던 지난 2009년 8월 석탄 수출이 전면 중단되었다. 8개월 뒤인 그 다음해 4월 쯤 수출이 재개 되었다. 2009년 당시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품질이 좋은 석탄을 대 량 수출했지만, 심각한 전력난에 직면하면서 공장을 비롯한 산업시설 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2009년 7월 경제운용 점검을 위한 내각회의에서 당시 김영일 총리는 발전소가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이러한 노력으로 대중 광물 수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2008년 중국이 북한에서 수입한 광물은 248만 톤(1억 9천 600만 달러)에 불 과했지만 2009년 373만 3천 톤(2억 6천 100만 달러), 2010년 479만 9천 톤(4억 300만 달러)으로 증가했다. 북한은 2007년 광물자원의 수 출제한을 도입했지만 2010년 5 6월 이후 이를 해제했었다. 2011년 광물 수출은 1 9월에만 842만 톤(8억 5천 200만 톤)에 달했다. 이는 206 온기홍, 북한, 석탄 수출 잠정 중단, 미국의 소리, 20011년 10월 27일. 10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18 2010년 같은 기간의 304만 8천 톤(2억 4천 500만 달러)에 비해 물량 기준으로 2.7배, 금액 기준으로는 3.5배 급증한 것이었다. 중국이 수 입한 광물은 대부분 석탄(무연탄)으로 올해 1 9월 수입량은 819만 톤(8억 3천 500만 달러)이었다. 이 역시 2010년 같은 기간의 총수입 량 290만 톤(2억 3천 900만 달러)에 비해 수량, 금액 모두 3배 안팎 급증한 것이어서 무연탄 수입 증가가 결국 전체 광물 수입 증가를 이 끈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2011년의 교역에서 북한산 무연탄의 평 균가격은 1톤당 101달러였다. 동일한 고품질 무연탄의 국제시세가 톤당 2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가격의 수출이었다. 사. 식량사정 및 주민생활 통일부는 2011년 9월 19일 국회에 제출한 북한 쌀 비축 현황 자료 에서 올해 북한의 식량 수요분은 4백 60만 톤인데 전년도 생산량이 4 백 11만 톤에 불과하다며 50만 톤 가량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207 그러나 통일부는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7월 말까지 북한이 외부로부 터 23만 7천 톤의 식량을 도입한 것으로 보여, 7월 말 현재 식량 부족 량은 20만 톤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북한 군인 수(119만 명)에 군인 1인당 하루 배급량인 624g을 적용했을 때, 북한군의 연간 식량 소비량은 약 27만 톤에 달했다. 북한당국은 2011년 4월경 평양에서는 올해 9월까지 식량을 자체 로 해결하라 는 지시를 내렸다 ~3월경까지 공식 쿼터를 받아 207 김은지, 한국 통일부, 북한 7월 말 현재 식량 부족 20만여 톤, 미국의 소리, 2011년 9월 19일. 208 좋은벗들, 평양, 올 9월까지 식량 자체 해결하라, 오늘의 북한소식, 제398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07

119 옥수수 수입이 늘었다. 209 각 시, 군당 혹은 기업소, 단위별로 식량을 자체 해결하라는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일반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지는 못했다. 일부는 황해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 남부 지역 군부대로 가고, 또 일부는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장과 평양 10만 세대 건설장 등 주요 건설현장에 공급되었다. 5월 초 중앙당은 전국적으로 군량미는 조직적으로 하되, 인민들 에게 강요는 하지 말라 는 지시를 내렸다. 210 도당에서는 이런 내용을 기초로 강연문을 작성해 각 시, 군당에 내려 보냈다. 그러나 정작 주 민들 대상 강연회에서는 없는 사람은 내지 않도록 하라 는 지시보다 공민적 자각성을 가지고 군량미를 내라 는 내용이 집중 부각되었다. 북한 지도부는 7월경 해외대표부마다 5천 톤 이상의 식량을 마련 하라는 과제를 내렸다. 211 한편으로는 군량미 과제를 60% 수준 밖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검열을 걸었다. 최대한 9월 전까지 수행하라고 했다. 식량 5천 톤을 달성하려면 약 200만 달러가, 위안화로는 1,300만 위 안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용남 무역상부터 북경을 오가며 식량 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회의를 거듭했다. 지난 7월 8일, 주미 중 경대사관을 방문한 리룡남 무역상은 무역참사와 무역대표부 주요 일 꾼들을 긴급히 불러 모으고, 자신이 직접 식량과제 해결을 주문했다. 아 울러 각국 일선에서 일하는 해외무역대표부 일꾼들에게도 식량과제 달성을 거듭 독려했다. 8월 2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에서 돌아온 뒤 성과가 별 209 좋은벗들, 옥수수 수입량은 증가하는데 주민 배급은 없어, 오늘의 북한소식, 제401호 ( ). 210 좋은벗들, 군량미, 인민들에게 강요 말라면서 지원 재개, 오늘의 북한소식, 제401호 ( ). 211 좋은벗들, 무역성, 식량해결에 사활 걸었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14호 ( ). 10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20 로 없다는 소문이 돌면서 쌀값 불안정을 부추겼다. 212 군부 무역회사 인 강성무역회사 54부에서 지금까지 옥수수를 5만 톤 이상 수입한 것 이 수도권 군부대와 평양주민 배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다른 지방들은 식량난의 마땅한 출로가 없었다. 각 지역마다 옥수수 농사 와 감자 농사에 기대고 있었는데, 올해 수해가 워낙 극심해서 식량문 제 해결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소토지 농사에도 수해 타격이 심해 식량난을 부채질하는 형국이었다. 당장 먹는 문제도 걱 정이지만 수확을 하고 나서도, 겨울에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을까 봐 걱정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9월 첫째 주 전국 주요도시에서 쌀 은 kg당 2,700 2,800원 선에서 거래되었다. 9월경 무역성 소속 해외대표부 일꾼들은 할당된 돈을 바치도록 총력을 기울이도록 강요되었다. 213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짐 을 싸서 조국으로 돌아오라는 통지 를 받았다. 잘 사는 나라에 사는 일꾼들일수록 성과가 높았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일꾼들일수록 미미 했다. 독일과 영국, 중국 등에서 보낸 액수와 동유럽에서 보낸 액수의 차이가 작게는 2 3배, 크게는 4 5배까지 났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컸다. 중국의 경우 북경, 상하이, 광주 등에서 보낸 금액과 동북3성 지역에서 보낸 금액의 차이가 크다. 동북3성이라도 심양과 다롄은 사정이 더 낫고, 연변 쪽은 더 열악했다. 가난한 일꾼들은 자발적으로 짐을 싸서 하나둘 귀국했다. 9월 말까지 해외대표부에 떨어진 식량과제가 10월 말까지 연장되 었다. 214 이번에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면, 지난 2년 동안 과제를 달성 212 좋은벗들, 러시아 방문 큰 성과 없단 소문에 평양 쌀값 요동, 오늘의 북한소식, 제 420호 ( ). 213 좋은벗들, 해외대표부 식량과제도 빈익빈 부익부, 오늘의 북한소식, 제420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09

121 하지 못한 사람들부터 무조건 귀환 조치가 내려진다고 했다. 한쪽에 서는 이미 귀국행렬이 시작됐다. 무역성을 대상으로 한 검열 폭풍 때 문에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식량 과제 달성에 나섰지만 처음부터 너 무 무리한 액수였다고 했다. 2011년 1월부터 8월까지 중국으로부터의 식량수입이 21만 톤으 로 전년 동기 18만 톤 대비 20% 증가했다. 215 밀가루가 35%, 옥수수 28%, 쌀 24%, 콩 13%가 수입 증가했다. 식량수입은 특히 8월에 5만 톤 이었다. 화학비료 수입량도 35만 톤으로 전년 동기 28만 톤 대비 27% 증가했다. 그러나 비료는 농민들에게 제 때 공급되지 못했다. 216 북한에서는 지역별 식량배급에 차별이 심했다. 217 자강도와 량강도, 함경남북도, 강원도 주민 약 680만 명 중 절반에 육박하는 약 300만 명이 굶주릴 위기에 몰렸다고 했다. 수도인 평양과 가까운 평안남북 도와 황해남북도의 주민을 비교하면 동북지역 주민의 굶주리는 비율 이 두 배 이상 높다고 했다. 수해를 입은 황해도 지역의 식량난도 특 히 심했다. 218 식량사정 악화에 여러 불안 현상이 증가했다. 2011년 들어 전력난 이 심화되었다. 219 한동안 뜸했던 국가전력시설들과 전기선들에 대한 214 좋은벗들, 무역성 검열폭풍, 식량 과제 못하면 귀환 조치, 오늘의 북한소식, 제420호 ( ). 215 정보라, 북, 올해 곡물수입 전년비 20% 증가,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28일. 216 문성휘, 북, 때늦은 비료공급으로 농사 망쳐,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14일. 217 김진국, 북, 지역별 식량배급 차별 심각,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21일. 218 좋은벗들, 황해도 수재민들, 식량 지원 간절해, 오늘의 북한소식, 제422호 ( ); 2011년도 북한의 식량사정은 다음도 참조. ACAPS, Secondary Data Review: Democratic People s Republic of Korea (October 19, 2011); 이시마루 지로, 식량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세종연구소 제7차 정책토론회 자료 ( ) 219 남설희 엄한아, 북한, 새해가 시작된 20일 지나도록 계속 정전,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20일; NK리포트, NK Vision, 제19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11), 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22 도난사건이 증가했다. 220 보위부의 불법 활동이 증가했다. 특히 탈북 자를 상대로 한 돈벌이 갈취가 증가했다. 221 군량미 수거는 농촌 식량 사정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222 청진시의 경우 2011년 초부터 국가 배급을 거의 주지 못하게 되자, 직장에 나가던 사람들도 새로이 장사에 뛰어드는 경우가 증가했다. 요즘(2011년 1 2월) 청진 수남시장에 나 오는 사람들의 수가 한 달 전보다 어림잡아 세 배나 늘었다 고 한다. 223 한편 북한은 장마당 확대를 눈감아주는 대신 주민들로부터 각종 세금 을 받아내었다. 청진시의 경우 한 가구당 3천 원씩 세금이 할당되었다. 이 돈 중 2천 원은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 지원금 이고, 나머지 1천 원은 노병, 노약자, 장애인 등 노인 복지에 쓰일 돈이라고 했다. 학교 출석률도 고난의 행군 시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224 북한 보건 당 국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간염, 결핵, 위장 질환자들이 급증했다. 그 원인은 식량난 악화에 따라 영양실조가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년 9월경 도토리 철이 되자, 사리원의 각 학교에서 학교 운영비 명목으로 학생들이 도토리 따기에 동원되었다. 학생당 10kg의 도토 리를 바쳐야 했다. 226 북한주민들이 10월 김장철 소금부족으로 고충을 겪었다. 227 잦은 220 문성휘, 생활고 북 주민들, 고압선까지 잘라 팔아,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6일. 221 최민석, 북 보위부, 탈북자 가족 협박 갈취 급증,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2월 7일. 222 NK리포트, NK Vision, 제20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11), p 최민석, 북, 배급체계 마비 장마당 찾는 주민 급증,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2월 11일. 224 현건 남설희, 북한 학교 출석률 고난의 행군 시기 수준으로 떨어져,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4일; 김혜림, 화폐개혁 후도 북한 교육상황 안 좋아 출석률 70%도 못 미 쳐, 열린북한방송, 2010년 11월 25일. 225 좋은벗들, 식량난 질병에 의사들, 손 놓았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19호 ( ). 226 남설희, 학교 운영비 구실 도토리 10kg씩 제출하는 학생들, 열린북한방송, 2011년 9월 14일. 227 문성휘, 북, 김장철 앞두고 소금 값 폭등,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4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11

123 태풍과 장마로 인해 황해도일대 염전들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김장철에 남새(채소) 값을 비롯한 김장 재료값이 너무 올라 하루 벌 이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김치 담글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228 (함경북)도무역국은 소금을 수입하려고 했다. 229 그러나 식량 위기 때문에 식량 외에는 일체 다른 물품을 수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서, 소금 수입도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10월 중순까지 겨우 200톤 정도 수입했다고 했다. 2011년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을 맞은 북한주민들과 농작물 단속 에 나선 사법당국과의 충돌이 빈번히 발생했다. 230 농작물 단속반이 개인 밭 농작물 수확을 두고 노골적으로 술이나 담배를 요구하거나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었다. 북한당국이 협동농장의 농작물 도난을 막 는다는 구실로 곳곳에 단속초소를 만들었는데, 이 초소들이 이 오히 려 농민들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혜산의 경우 개인농작물을 가을하는 주민들의 경우, 올해부터 소토지(뙈기밭)가 있다는 인민반장의 확인증과 동사무소 확인증, 화재위험 방지원칙에 동의한다는 국토관리 감독대의 동의서를 단속초소들에 제출해야 수 확물을 운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확인증들의 유효기간을 5일간 으로 짧게 정해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확인증을 떼도록 매우 까다로 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확인증에는 개인소유 뙈기밭 의 위치와 면적, 가을에 해야 할 곡종과 양까지 세심하게 기재해야 하는데 기재된 이외의 농작물이 조금만 발견돼도 단속초소들에 몇 시 간씩 붙잡혀 있어야 한다고 했다. 228 문성휘, 북 서민들, 재료값 올라 김장 포기 속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20일. 229 좋은벗들, 소금 없어 반년식량 김장 비상, 오늘의 북한소식, 제425호 ( ). 230 문성휘, 북 당국, 농민들 뙈기밭 수확물까지 갈취,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21일. 11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24 북한은 몽고에도 근로자를 파견하고 있는데, 임금은 제대로 지급 하지 않았다. 231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어멜 의류공장에는 80명 의 북한 여성근로자들이 수출용 고급 의류를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이 관리하는 계획에 따라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 하며 한 달에 최고 3백 15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이 돈이 북한 근로자 들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았다. 북한 근로자들의 월급은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 계좌로 이체되었다. 세계 식량기구는 9월 중 북한당국이 9월에 성인 주민 한 명당 하 루 200g의 식량을 분배했다고 밝혔다. 232 주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이 3개월째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주민들은 주로 밀, 보리, 감자 등을 배급받았다. 아. 강성대국 건설 동향 북한은 2012년 김정은의 전면 등장에 맞추어 전민 식량공급 정상 화를 성취하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233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로만 정상화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김정은이 전면에 등장한 그해 1년 동안만은 이를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1년 동안 식량을 정상 공급하려면 총 360만 톤 정도의 식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량이 국방에 투 입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2011년부터 대내 외적으로 대대적인 식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의 식 231 이연철, 영국 신문 북한, 몽골 파견 근로자 착취,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17일. 232 조은정, WFP, 9월 북한 주민 일일 배급량 200g,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11일. 233 이명호, 최근 북한 식량문제, 2012년 전민식량배급정상화 목표가 주원인, 북한전략정 보서비스센터, 2011년 4월 28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13

125 량사정은 쉽지는 않지만, 대체로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은 해외 식량 유입을 위해 중국과의 교역을 대폭 장려하는 한편, 해외 원조단체와의 접촉을 강화했다. 특히 해외 단체와의 접촉면을 늘리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대체로 수용하는 양태가 나타났다. 2011년 10월 말 북한당국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양시간에 내년부터 식 량배급을 정상적으로 실시한다고 선전했다. 234 북한에게 2012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는 평양시 10만호 건설이다. 4월 북한당국은 평양 10만 세대 건설사업 목표를 2만~2만 5천 세대로 대폭 줄였다. 235 만경대 지구 3만 세대는 완전히 포기하고 용성 서포 역포 지구 가운데 2만~2만 5천 세대만 건설하기로 했다. 2010년 12월까지 건설 실적은 평양시 중구역 예술인 아파트 23층 2개동 200세대, 해방산 구역 간부아파트 9~14층 7개동 300세대 등 총 500여 세대에 불과하다. 북한은 당초 200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0년 용성 서포 역포지구 3만 3천 세대, 2011년 만경대지구 3만 세대, 2012년 4월 말 만경대지구 3만 5천 세대의 건설을 완료해 총 10만 세대를 완공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건설 독려를 위해 2011년 4월 1일 국방위원회는 2012년 4월 15일(태양절)까지 10만 세대 건설을 완료하고 무조건 주민들을 입주시켜야 한다는 결정을 발표한 바 있었다. 북한은 역포 구역과 용성구역 등 평양시 외곽 일대에 건설하던 아파트 공사를 뒤로 하고, 만수대 살림집 공사에 총 집중했다. 236 그 이유는 이 지구에 사는 핵심계층을 잡기 위한 일환이었다. 2011년 초 10만 세대 건설 계획이 만수대 지구로 변경되면서 군대와 주민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이 지구에는 전쟁공로자, 피살자 가족 등 북한에서 출신 234 김준호, 북 내년부터 전면 식량배급 재개 선전,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31일. 235 김용훈, 北 평양 10만호 건설 1/4 수준으로 축소, 데일리NK, 2011년 6월 20일. 236 최민석, 북 만수대 아파트 건설 핵심층에 선심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14일. 11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26 성분이 좋고 주민들 대부분이 내각,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곳은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광장이 가까이에 있어 1호 행사가 자주 진행되는 곳이다. 북한은 학생들을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과 105층 류경호텔 주변 정리에 동원하기 위해 휴교 조치를 취했다. 237 평양소재 대학과 지방 의 큰 대학은 2011년 6월 27일부터 김일성 전 국가주석 생일 100주 년을 맞는 내년 4월까지 휴교되었다. 238 학생들은 아침 6시에 학교에 모여 6시 30분까지 작업장으로 걸어서 출발하고 통상 5~6시까지 작 업한다고 했다. 239 김정일 일가( 一 家 )와 관련한 우상화물이 있는 지 역에는 군인 등의 인력이 우선 투입되고 있다. 군인 등이 투입된 지역 은 다른 지역에 비해 건설 속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 났다. 다만 특정 자재들이 필요한 내부 공사는 진척이 더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달리 기업소 등에서 파견된 근로자들이 동원된 지역 의 건설 작업은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재부족 에다 그나마 있는 자재들도 식량난 여파로 빼돌려지면서 작업에 진척 이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김일성 동상이 서있는 창전거리의 건설 사 업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40 창전거리는 만수대의사당, 김 일성 동상, 만수대 예술극장이 자리한 평양의 중심거리이다. 5월 중 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일이 창전거리를 두고 평양시 중심 거 리가 한심하니 좀 잘 건설합시다 라고 말한 이후부터 각 지역 10만호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과 군인, 대학생 등 인력을 비롯해 자재들까 237 최민석, 북, 대학휴교...10만세대 건설 동원,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30일. 238 양희정, 대학휴교는 강성대국 건설에 역행,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5일. 239 전영란,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 휴교 중 노력 동원 사진 입수, 미국의 소리, 2011년 9월 2일. 240 이범기, 평양 중심거리 한심하다 김정일 이 한마디에 창전거리 건설에 자재 인력 집중 내년까지 대학생 총 동원, 데일리NK, 2011년 8월 24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15

127 지도 창전거리로 집중됐다. 현재 창전거리 건설 사업에는 김일성종합 대학, 김형직사범대학, 평양철도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거의 모 든 대학이 동원된 상황이다. 10월 초 현재 창전거리 건설은 총 3만 세대인데 뼈대는 다 올라간 상태 라고 했다. 241 북한은 10만 세대 공사에 필요한 시멘트와 자갈, 모래 등을 미처 공급할 수 없게 되자, 각 공장, 기업소, 대학들에 아파트 한 동씩 맡겨 주었다. 242 현재 무역성, 인민보안성, 상업성, 전기석탄공업성 등 내각 과 국가안전보위부, 검찰소, 대학, 병원 등을 총망라한 각 기관, 기업 소, 단위들마다 살림집을 할당받아 건설 재원을 마련하도록 한 상태다. 자체적으로 건설인력도 동원하고, 그들이 먹을 식량이나 시멘트, 건 설 장비 등 모두 해당 기관, 기업소, 단위에서 알아서 조달하도록 한 것이다. 243 이른바, 자력갱생으로 아파트를 한 동씩 지어 바치라는 것 이었다. 이렇게 되자 일부 힘이 있는 공장이 맡은 아파트 층수는 올라 가지만, 힘이 없는 단위가 맡은 아파트 공사는 진척이 없었다. 또한 북한당국은 일반주민들에게 10만 세대 건설을 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인민반별로, 직장별로, 또 학교별로 각종 지원금을 요구해 일반 가정이 내는 돈은 하루 평균 1만 원을 훨씬 넘었다. 세 부담이 너무 많아 대학생들 속에서는 월사금이 아니라, 일사금 이라는 말도 나왔다. 창전거리 건설의 경우, 자재부족으로 건설에 차질을 빚자 간부들은 한 달간 동원에서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1인당 100달러를 받아, 이 돈으로 자재 등을 구입했다고 한다. 241 강미진, 평양 10만호 당창건일까지 껍데기 올리라, 데일리NK, 2011년 10월 3일. 242 최민석, 북 주민, 10만 세대 징수금 일사금 비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1일; 최민석, 자금난 북, 10만세대 지원금 징수,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11일. 243 좋은벗들, 기획연재 , 강성대국의 조건(3), 오늘의 북한소식, 제413호 ( ). 11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28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위해 2011년 10월 10일까지 완공해야 할 중요 건설사업들이 줄줄이 차질을 빚었다. 244 이 때문에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물론 후계자 김정은도 분노했다고 했다. 평양 10만 세대 건 설의 일부인 만수대지구 살림집 건설이 부실공사 논란에 휩싸였고, 건물 일부가 허물어져 적지 않은 인명 피해까지 났다고 했다. 희천발 전소와 백두선군청년발전소 건설도 차질을 빚었다. 희천발전소는 작년 10월 10일까지 기본 공사를 마무리한다고 했는데 올해 4월 말에야 겨우 완성했다고 했다. 공사가 19년째인 5만 kw 백두선군청년발전소 도 2011년 10월 10일까지 완공하겠다고 했는데 끝내 준공식을 하지 못했다. 식량 확보, 10만 세대 건설과 함께 전력 문제가 중요한 것으로 간 주되었다. 245 전력문제를 풀자면, 2011년 안에 희천발전소 건설을 완 료하고, 앞으로 희천발전소 크기만 한 수력발전소를 몇 개 더 건설해 야 한다고 했다. 희천발전소 1단계 공사는 끝이 났지만, 2단계 공사는 시작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자금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각 단위별로 분공을 내렸지만, 1단계 공사하는 데만도 수많은 부담을 지웠기 때문 에 추가로 부담을 지고자 하는 데가 없었다. 자금 마련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외장 건설만 대충 끝내고 2단계 공사에 필요한 설비를 기다 리고 있다고 했다. 설비를 들여와 공사를 재개하는데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고 했다. 2011년 1월 김일성의 탄생 100돌을 충성심의 열도로 맞이하기 위 한 100돌 상무 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돌 상무 는 각 244 박성 문성휘, 김정일, 노동당 창건일 준비에 화를 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17일. 245 좋은벗들, 기획연재 , 강성대국의 조건(2) 전력공급에 전력을 다하라, 오늘의 북한소식, 제412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17

129 시, 군의 근로단체 책임비서들이 책임자가 되는데 시나 군단위 당, 국 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위원회, 행정위원회,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여맹, 직업동맹, 농업근로자동맹의 비서 등 총 10여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상무가 조직된 목적은 주민들 중 사회주의와 이 탈되어 자본주의적인 생활방식으로 생활하려는 자들을 조사한 후 그 들을 교양하여 사회생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2011년 6월 초 북한당국은 조직적으로 국내 외화를 사들였다. 247 외화의 사용 목적은 2012년 김일성 탄생 100돌 기념행사와 이를 계 기로 김정은 추대 행사를 성대히 거행하는데 필요한 외화 자금을 조 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당국은 평양에 있는 고려은행 본점과 무 역은행 일꾼들을 통해 각 지역의 기차역이나 외화상점 부근에 있는 개인환전상을 대상으로 달러나 위안화를 북한 원화와 바꾸었다. 그런 데 5월경 신의주와 나선의 큰 세관을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 은 국경지역 세관들이 한 달 남짓 봉쇄되어 무역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사회주의 검열이 봉쇄의 구실이었다. 세관 봉쇄의 목적은 주민들의 외화 수요를 낮추어 싼 값으로 북한당국이 외화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외화 수요가 줄어들어 환율이 내려가야 하지만, 북한당국이 외화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환율이 올라갔다. 4월 말만 해도 중국 위안화 1위안에 북한 원화 380원의 비율이었지만, 지금은 410원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세관들이 봉쇄되었지만 쌀의 국가 밀수 는 진행되었다. 이는 2012년 김정은을 추대할 때 일시적이라도 쌀 배 급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246 남설희, 내년 김일성 탄생 100돌 상무 벌써부터 조직, 열린북한방송, 2011년 4월 12일. 247 최오남, 김일성 생일 100돌 준비로 북한 내 외화 싹쓸이, 열린북한방송, 2011년 6월 13일. 11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30 북한당국이 2012년 강성대국을 더 큰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자 는 구호를 내걸고 주민들에게 충성의 선물운동을 강요하고 나섰다. 248 함경북도의 경우 충성의 선물 로 회령시 오봉리에 1만 마리 규모의 돼지목장을 짓는 것으로 결정하고 공장 기업소는 물론 가두 인민반 여성들, 지어는 청진시 주둔 9군단 군인들까지 투입했다고 한다. 또 돼지목장 기초공사를 위해 장마당을 일시로 폐쇄했고 매 가정세대들 에 모래와 자갈 1립방 씩 바치도록 했는가 하면 공사에 동원된 군인 들의 부식물을 해결하느라 가정세대들마다 무조건 (북한 돈) 500원 씩 바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한편 양강도의 소식통도 2012년을 맞 이하는 충성의 선물로 혜산시에 강구발전소를 새로 짓는다 면서 새 로 짓는 발전소는 3,000kW의 중소형 발전소 라고 말했다. 양강도 소 식통은 혜산시뿐만 아니라 양강도의 각 군에서도 2012년을 목표로 충성의 선물 마련에 나섰는데 백암군은 감자 전분공장, 운흥군은 유 리공장, 보천군은 담수양어장을 건설하고 있다고 했다. 2011년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앞두고 도시미화 사업이 벌어졌다. 249 이에 따라 양강도에서는 울바 자 낮추기 용마루 세우기 외벽 회칠 등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서는 장미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북경) 거리에 심은 장미꽃을 보고 장미꽃이 보기 좋다. 평양에도 심게 하라 고 지시를 내린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248 문성휘, 북, 주민들에 충성의 선물운동 강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13일. 249 이석영, 도둑 들끓는데 울바자 없애라 지시 허걱 양강도, 용마루 세우기 등 도시미화 진행 현실성 결여 주민불만, 데일리NK, 2011년 7월 26일. 250 최민석, 먹을 것도 없는데... 평양 장미심기 운동,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19

131 자. 권력기관 경제동향 <권력세습과 김정은 외화벌이> 김정은의 후계 정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경 제동향이 있다. 앞서 지적했던 대로, 김정은이 등장한 이후로 무역과 외화벌이에서 이윤을 전면 상납하도록 했다. 과거에는 운영자금으로 40%를 인정했었다. 251 아울러 북한은 2010년 중반 이후 38호실을 39호 실로부터 분리하여 재설치 했다. 252 이 기관은 2008/9년 39호실에 통 합되었었다. 38호실은 무역과 호텔 운영을 통해 김정일의 가족자금을 벌어들이는 것이 주임무였다. 아울러 2010년 3월 귀국한 이철 전 주 제네바 대사를 고리로, 김정일의 해외비자금이 김정은에게 이관되고 있다고 한다. 253 한편 2009년 초부터 중국 주재원들에게 김정은의 상 납할 충성자금 을 벌어들이라는 추가 임무가 떨어졌다고 했다. 254 김 정은에 상납되는 충성자금 은 평양의 외화벌이 단위 수장들이 각자 알아서 김정은 쪽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2011년 1월 8일 김정은 생일에 즈음하여 무역기관들의 김정은에 대한 대대적 상납이 진행되 었다. 이에 대한 준비는 이미 2010년 10월경부터 시작되었다. 청년 대장 동지의 생일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당 각 부서는 물론이고 도 당위원회,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1급 연합기업소 등이 외화 벌이 단위를 총동원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 했다 양기석, 3대세습 후계체제와 2010년, 임진강, 제10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p 이정은, 김정일 금고 38호실 부활 후계자 홍보 영화부 신설, 동아일보, 2011년 2월 15일. 253 이준운, 김정일 해외비자금 김정은에게 이관 중, 열린북한방송, 2010년 7월 28일. 254 박준형, 北 외화일꾼 자중지란 동료까지 팔아먹을 판, 데일리NK, 2011년 8월 31일. 255 임정진, 北 간부, 김정은 생일선물 준비 돌입, 데일리NK, 2010년 10월 26일. 12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32 2009년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나진선봉 개발도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을 위한 자금동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9년 김정일은 18년 만에 처음으로 나선시를 방문했다. 이후 최고인민회 의 상임위원회는 2010년 1월 4일 나선시를 특별시로 한다 는 정령 을 발표했다. 1월 27일에는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을 다섯 번째로 개 정했다 년 4월 나진 조선소를 방문한 김정일은 이 지역 간 부를 모아놓고, 특구를 더 과감히 열라 는 지시를 했다 257 고 한다. 북한은 중국 동북3성과 연계하여 중국의 자본과 인프라 투자를 유치 하여 나선시를 대외무역의 전진기지로 개발하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258 그런데 북한지도부는 나선시에 연간 6천만 유로(약 930억원)를 상납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259 이 액수는 나 선시가 과거 무역, 관광 등으로 연간 6천만 유로 정도의 수입이 있었 던 것을 감안한 것이며, 이 돈은 평양에 10만 가구 아파트를 건설하 기 위해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3월 중국은 나진항 1호 부두 사용권을 10년간 연장했다. 260 나선개발 문제는 2010년 5월과 8월 김정일 중국 방문 등 2009, 2010, 2011년 북한과 중국의 고위급 교 류에서 주요 의제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3월에는 임경만 전무 역상( )이 나선 시당 책임비서로 임명되었다. 2010년 11월 초 나선특별시 당위원회가 도급으로 승격되어, 중앙당과 내각 의 직접 지시를 받는 도급 행정단위로 승격했다고 알려졌다. 261 아울 256 조준형, 북, 투자촉진위해 라선지대법 개정, 연합뉴스, 2010년 3월 14일. 257 최정호, 김정일, 나선 특구 과감하게 열라 지시했다, 데일리NK, 2011년 6월 16일. 258 최성근, 북한 나선특별시 개발전망과 시사점, 경제주평, 제386호 (현대경제연구원, 2010). 259 마이니치 신문 3월 16일자 인용보도. 김종현, 북, 라선에 연 6천만 유로 중앙 상납지시, 연합뉴스, 2010년 3월 16일. 260 장세성, 북, 나진항 러에 50년 사용권 중국에 10년 연장, 중앙일보, 2010년 3월 9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21

133 러 2010년 말 나선특별시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대거 교체되었다. 그 가운데 1999년부터 나선시 인민위원장을 맡아오던 김수열도 해임되 었다. 262 이유는 외자유치 실적 저조 로 알려졌다. 그 후임으로는 조정호 무역성 부상이 임명되었다. 263 그는 김정은 지지 그룹의 일원 으로 북한 신경제정책이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나선 개발에는 장성택도 개입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월에는 훈춘 석탄 2만 톤 이 나진항을 통해 상하이로 시범 운송되었다 월 25일 북한과 중국 길림성은 나선개발과 관련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르면 중 국은 나진항의 4 6호 부두를 개발하고 50년간 사용하며, 지린성 취 안허(권하)와 나진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한다. 266 이와 같은 건설 에 투입될 노동자 모집 활동이 1월 초에는 함경북도 내 기업소 공장 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년 6월 초중순 경 황금평 및 나선 특구 개발 관련 사업이 진 행되었다. 북한과 중국이 6월 8일 압록강 하구 황금평 섬에 이어 9일 은 북한 나선특구 합작개발과 관련해 훈춘-나진 간 도로 보수공사 착 공식을 가졌다. 268 북한과 중국은 나선 경제무역구와 황금평 경제구 를 공동 관리하는 개발합작연합지도위원회 회의도 개최했다. 중국 연 261 이준운, 나선 특별시 도급 행정 단위로 승격, 북한전략정보센터, 2011년 1월 27일. 262 조수영, 북, 나선시 간부 대폭 물갈이, 세계일보, 2010년 12월 12일. 263 김영식, 김정은 측근... 3대 세습 기틀 다지기, 동아일보, 2011년 2월 14일. 264 이준운, 위의 글; 김소열, 북 라진항 추가 개방 대외경제 숨통 트나?, 데일리NK, 2010년 3월 8일. 265 박종국, 중, 북라진항 운송 석탄 상하이 도착, 연합뉴스, 2011년 1월 6일. 266 조민정, 북 중 나진항 개발협약 중국, 4-6호 부두 50년 사용, 연합뉴스, 2010년 12월 26일; 백나리, 나진항 개발, 북 중경제협력 촉매될까, 연합뉴스, 2010년 12월 26일. 267 임정진, 북, 중은 자본주의 환상 갖지 말라 경고, 데일리NK, 2011년 1월 5일. 268 온기홍, 북한 장성택 라선 특구 착공식 참석, 미국의 소리, 2011년 6월 9일. 12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34 변조선족자치주 훈춘과 나진항을 잇는 도로 보수공사 착공식이 9일 열렸다. 이번 착공식에는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로 북 중경제협력을 총괄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과 리수영 합영투자위원장이 참석했다. 중국 쪽에서는 천더 밍 상무부장이 참석했다. 훈춘-나진 간 구간은 53.5km 길이에 불과하 지만 비포장인데다 굴곡이 심해 물자 대량 운송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따라서 도로 보수공사는 노반과 교량, 배수로 등을 개 보수하 고 시멘트 도로로 만들게 된다. 북한과 중국은 2011년 말까지 비포장 도로 보수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중국의 천더밍( 陳 德 銘 ) 무부장 과 장성택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의 주재로 랴오닝성과 지린성에서 나 선경제 무역구와 황금평 경제구 개발합작연합지도위원회 제2차 회의 를 개최했다. 6월 10일부터 황금평 거주 농민들이 용천군의 협동농장 으로 1차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269 주민의 절반 정도는 2011년 농사 수확을 위해 11월 말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북한은 황금평 내 협동농 장이 평안북도 당위원회 간부들과 인근 지역 국경경비대의 식량 공급 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2011년 가을 수확까지는 농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벌어들인 외화를 치적 쌓기에 사용해 왔다. 270 핵심 사 업은 세 가지로 알려지고 있다. 그 하나는 평양시 10만 세대 건설 사 업이다. 이 사업은 최근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기 름(오일)과 불도저, 굴착기 등 대형 중기계들의 잦은 고장과 부실이다. 이에 따라 기초축성과 상하수도 건설과 같은 기반사업이 계획대로 진 척되지 못하고 있다. 평양 10만 세대 주택건설 사업은 부진을 면치 269 박준형, 北 황금평 주민 이주 시작 책임자는 장성택, 데일리NK, 2011년 6월 13일. 270 이준운, 최근 대남 유화책은 심각하게 부족한 외화 때문, 열린북한방송, 2010년 11월 1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23

135 못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건설자재 공급 비리에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271 이 공사에서 주택건설의 기술적 설계와 시공은 노동당 행정 및 수도건설부가 담당하고, 주택내부 마감공사는 중앙당재정경리부 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재정경리부 자재공급 담당 지도원들이 내부 인테리어에 필요한 전기선, 벽지, 타일, 세면대, 수도꼭지, 변기 등을 빼돌리고 그 대신에 지방공장의 값싼 자재를 형식적으로 설치하 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수도건설부가 2011년 3월 14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5만 5천 세대는 신축, 나머지 4만 5천 세대는 재건축하는 방 향으로 계획이 대폭 축소되었다. 272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형 중장비 와 각종 재료와 연료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 부족이었다. 수도건설과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북한은 2010년 중 내각 소속이던 수도건설위원회를 수도건설사령부로 개편 했다. 273 그 주요 직책도 현역군인들로 교체했다. 건설자재와 인력동 원은 장성택 행정부장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북한은 1970년 에 창설되었고, 이후 변화를 거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지휘 하 에 군대식으로 조직 운영되어 오던 청년돌격대를 2010년 9월 인민군 여단에 편입시켜 정규군화 하였다. 김정은 외화의 두 번째 사용처는 김정은이 맡고 있는 공안기관 현 대화 사업이다. 여기에는 국가보위부,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 인민 보안부가 포함되며, 이를 위한 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금조달을 위해 9월 28일 당대표자회를 전후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공작요원 271 민조희, 평양의 청년돌격대, 이제는 완전 비호감, 데일리NK, 2010년 5월 17일. 272 이영배, 평양10만 세대건설 위기, 5만 5천 세대만 신축하는 식으로 계획 대폭 수정, 북한전략정보센터, 2011년 3월 22일. 273 정용수, 김정일-정은 왕조 세습 이벤트 평양은 리노베이션 중, 중앙일보, 2011년 2월 9일. 12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36 들이 계획 외로 1만 달러 이상의 액수를 상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북한의 일반 해외무역업자들(내각 산하기관들에서 나온 무역기 관봉사자)은 1년에 3만 달러를, 군복을 입은 특수무역업자(인민무력 부,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군부기관들에서 나온 무역봉사자들) 들은 5만 달러를 상납해야 한다고 한다. 셋째, 김정은의 외화는 체제 지지세력에 대한 하사품 지급을 위한 사치품 구입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의 사치품 수입은 급증했다. 274 북한은 지난 2008년 2억 7,214만 달 러의 사치품을 수입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이보다 18.5% 증가한 3억 2,253만 달러의 물량을 수입했으며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무려 38.3%가 급증한 4억 4,617만 달러(4,811억 원) 어치의 사치품을 수입 했다. 북한의 년간 사치품 수입액은 무려 10억 4,084만 달 러(1조 1,225억)에 달하는데, 이 금액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우 리 정부가 북한에 제공한 식량지원 총액(7억 2천 2만 달러)보다 44.5% 많은 액수였다. 북한이 수입하는 사치품 품목에서 전자제품, 자동차, 영화용 기기, 화장품 수입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가죽제품이 나 귀금속, 악기의 수입은 줄었다. 수입 사치품은 고위층 전용 물품 으로 공급되거나 평양 내 백화점과 외화상점에서 부유층을 위한 판 매용 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총정치국과 경제개입> 북한경제에서 총정치국의 영향이 강화되는 징후가 있었다. 북한 총정치국은 2010년 1월 중순 김정일에게 화폐개혁 실패의 원인은 외화 사용 금지 조치가 너무 일찍 발표된 데 있다 고 보고하면서 그 274 조종익, 김정은 등장 이후 北 사치품 수입 급증했다, 데일리NK, 2011년 9월 19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25

137 책임을 노동당에서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박남기에게 물어야 한다고 김정일에 건의했다. 김정일은 이 보고를 수용했으며, 1월 중순 박남 기 세력은 중앙당에서 전격 제거되었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화폐 개 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속죄양이 필요했다. 275 군부의 입장에서 도 이유가 있었다. 박남기는 화폐개혁을 핑계 삼아 군부 산하의 외화 벌이 회사들을 노동당 산하로 복속시키는 건의를 김정일에게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총정치국이 중심이 되어 이에 강력 반발했다. 276 총정치국은 한편 2010년 11월 중순부터 원래 노동당 관할이었던 평양 소재 5.1경기장을 직접 장악 및 감독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5.1경 기장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모두 총정치국이 장악하게 되었다. 277 이는 김정각 제1부국장의 건의를 김정은이 받아들여 성사되었다. 이 경기장에 대한 관리는 원래 중앙당 직속기관인 체육위원회에서 담당 하고, 그 수입은 중앙당 재정경리부에서 관리해왔다. 이제 이 경기장 은 총정치국 산하 24부 무역기관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북한은 5.1경 기장에서 년까지 아리랑 공연을 개최하고 해외 관광객 을 6만여 명을 유치했으며, 이로부터 약 1,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 들였다. <권력기관 검열 및 상호 갈등> 한편 2010년 11월에는 보위사령부와 국가안전부 주도로 각 세관 과 무역회사에 대한 강력한 검열이 시행되었고, 12월에는 보위사령부 가 각 군부 내에 분포되어 있는 돈주(부자)들을 대상으로 검열을 시 275 현건, 화폐개혁 조치 1년을 돌아보다, 열린북한방송, 2010년 11월 25일. 276 최오남, 5.1경기장 노동당에서 군 정치국 소속으로 이관, 김정각 파워 증대, 열린북 한방송, 2010년 12월 30일. 277 위의 글. 12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38 행했다고 한다. 278 그런데 북한 돈주들의 70%가 군부에 속해 있다고 할만큼 군부에 돈이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대체로 총정치국, 총참모 부 등 군부 수뇌들, 후방 및 정치 지휘성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 들은 북한 돈보다는 달러를 가지고 있으며 적게는 10만 달러부터 많 게는 수백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 는 것은 예를 들어 오극렬, 김영춘, 김일철 등 군부 상층의 경우 권력 을 방패로 하여 자식, 손자, 손녀 등 온 가족을 외화벌이 사업에 참여 시키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279 이는 다른 권력기관과 권력자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바탕으로 권력자의 측근들은 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다. 2011년 4월 13일을 시작으로, 인민군 보위총국 나선담당부가 당 39호실 산하 묘향무역회사 (김정일 및 그 측근들의 사치품과 고급건 축자재 등을 수입하는 회사, 지난 마카오 BDA사건 관련회사이기도 함)의 나선지사장과 당 비서를 포함한 전 직원 등 2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280 이들의 죄목은 회사 경영상의 부정부패로 특히 한 국 정보기관들로부터 몰래 소위 검은 돈 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이들 전원은 4월 하순 평양의 보위총국 본사로 이송되어 구류장에 감금되 었다. 또한 보위총국은 당 조직지도부와 함께 김정일 직속 비자금 관 리기관인 73총국(전 금수산의사당경리부)까지도 조사했다. 201년 2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 73총국 산하의 릉라 888무역회사(수십 여 개 국에 주재원을 파견하고 있는 외화벌이 회사) 평양본사가 집중 검열 278 최오남, 보위사령부, 대대적 검열 실시해 김정은을 위한 군대 숙청에 나서, 열린북한 방송, 2011년 1월 24일. 279 주성하, 김정은과 악연, 오극렬의 몰락, 동아일보, 2010년 9월 30일. 280 한성관, 북한군 보위총국, 당 최고 외화관련기관인 39호실 이나 김정일의직속 릉라 888 까지 감찰해,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5월 11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27

139 을 받았다. 릉라 888무역회사의 일부 국장, 부국장들은 중국과 리비 아 주재 대표들과의 현금 밀거래 및 한국산 물건반입 등에 대한 조사 를 받았다. 이처럼 보위총국이 당 외화 관련 기관인 39호실 산하 무 역회사들이나 김정일 직속 릉라 888무역회사까지 직접 감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군부의 위상이 노동당을 능가하는 것을 시사 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8월경 새로 조직된 검열기관인 폭풍군단 과 지난해 말 조직된 검 열기관인 1118상무 가 충돌했다. 281 권력기관들끼리 다툼은 흔히 나 타나고 있다. 양강도의 경우 여맹에서 한창 건설 중이던 강구발전소 를 내각 소속 전력공업성 산하 중소형 발전소건설사업소 가 가로채 는 일이 벌어졌다. 여맹중앙위원회가 빼앗긴 발전소를 다시 찾기 위 해 김정은에게 신소편지 까지 써 올렸다. 강구발전소는 허천강을 가 로 막아 건설하는 중소형 발전소로 여성동맹 이 강성대국 진입의 해 인 2012년까지 완공할 것을 결의하고 수많은 여맹원들을 동원해 올 해 4월 초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내각 산하 전력공업성 이 노 동당 군사위원회에 제의서 를 올려 후계자 김정은의 승인을 얻어내 어 여맹을 밀어내었다고 한다. <군부기관의 무역활동 장려> 2010년 11월부터 군과 중앙당 산하에 무역회사를 조직하라는 중 앙의 지시가 내려왔다. 이는 화폐개혁 직후 2010년 초 군부 무역회사 의 해산 또는 통폐합 조치를 번복하는 것이었다. 화폐개혁 이후 무역 회사들은 국방위원회 산하로 통합되어 있었다. 282 또는 2010년 1월 5일, 281 문성휘, 북, 일관성 없는 검열 지시로 간부도 반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2일. 282 최민석, 외화난 북, 소규모 국경무역 강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4일. 12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40 군부 산하 무역회사들은 모두 해산시키라는 방침을 내려졌다. 화폐교 환 조치 이후 북한당국은 2010년 1월, 시장폐쇄 조치와 무역회사 구 조조정을 시도했다. 당경제, 내각경제, 지방경제, 군부경제 등 각 단위 별로 흩어져있던 무역회사들을 무역성에서 통합 관리하겠다는 의도 였다. 283 그러나 2010년 5 26 당 지시에 따라 사실상 무역회사 제재 조치를 철회했다. 2010년 말 권력기관 무역회사 재장려 조치는 같은 시기부터 강력 히 추진된 식량수입의 대대적 확대 노력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 인다. 이미 해체된 무역회사와 군부 계통 무역회사들도 투자를 받기 만 하면 다시 무역거래를 허용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군과 중앙당 산 하에 무역회사를 조직하라는 방침에 따라 군부와 노동당 기관들이 저 마다 무역회사와 외화벌이 기지들을 설립했다. 북한군 병기총국(제 509군부대)과 정찰총국, 교도지도국 등 인민무력부 산하 총국들에도 무역회사를 차리라는 비준이 떨어졌다고 한다. 강성무역회사 등 막강 한 권력을 등에 업은 무역회사들은 북한 제련소에서 나오는 금정광과 동정광 등을 주요 수출 품목으로 거머쥐었고, 북한군 정찰총국과 병 기총국 등 군부 산하 무역회사들은 석탄, 철광석 등 품목을 주요 항목 으로 잡고 대대적인 교역을 준비했다. 284 또한 함경북도 지방에 만도 10여개의 무역회사들이 새로 생겨났다. 그중에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산하 사적지 관리국도 변강무역 지표를 받았다고 했다. 아울러 대중국 전면 합작 지시에 따라 2011년 초부터 모든 국내 기관, 기업소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했다. 285 무역일꾼들 뿐만 아니라 283 좋은벗들, 중국 진출 무역회사, 군부 계통이 가장 활발, 오늘의 북한소식, 제419호 ( ). 284 최민석, 북, 충성자금 까지 식량수입에 사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28일. 285 좋은벗들, 기획연재 , 강성대국의 조건(3), 오늘의 북한소식, 제413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29

141 일반 식당, 상점 직원들도 중국에 출장 가겠다고 하면 일단 허용해주 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중국으로 나가는 사람의 신분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일 인당 월 1,000유로를 바쳐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이었다. 1,000유로를 내지 못하면 나가지 못하지만, 역으로 돈을 내면 누구나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루에만 단둥세관으로 나가는 대표단이 100여 명을 넘었다. 거래 실적이 있건 없건 일단 나가고 보자는 분위기로 심양, 단둥 등지에 북한 사람들이 대폭 증가했다. 중국에 진출한 군부 무역회사들이 증가했지만, 화폐교환 조치와 시장폐쇄 조치, 무역회사 해산 조치 등 연이은 정책이 남긴 상처는 너무 컸다. 투자를 새로 받으려고 해도 크게 신용을 잃어 중국 대방들 이 쉽게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 무역회사들이 요구하는 조건은 외상 거래방식이었다. 즉 중국에서 보낸 물건을 북한의 대방이 다 판 매한 후에 대금을 중국의 상인들에게 인편으로 보내주는 방식인데 물 건값을 받기까지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걸리는 경 우가 많았다. 286 이 같은 거래방식은 대부분의 북한 대방(거래상대) 이 자본금이 없는 영세 사업자인데다가 북한의 대방을 서로 확보하려 는 중국변경 상인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연 평도 포격처럼 북한정세가 불안해지거나 화폐개혁처럼 북한경제가 요동을 치면 이러한 거래가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 한 거래는 오랫동안의 상호 신용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인데, 북한 측 에 갑자기 새로운 회사가 등장하면 거래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다가 변강무역에 새로이 동원된 북한회사들은 다 수중에 현금이 없고 와크(무역허가)만 장부상에 이름만 있는 회사였다. 따라서 이러 한 회사들이 쌀과 건축 자재들을 먼저 외상으로 받고 그것을 팔아 해 286 김준호, 연평도 포격 후폭풍 맞은 북 중 국경무역,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5일. 13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42 당 수출재료를 갚아주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한다고 했을 때 287 믿 음이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회사들 중에서도 북한의 힘센 기 관이나 고위층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들이 뒤에서 봐주고 있다고 주 장하는 회사가 많다고 하며, 이들과의 거래는 무역 사기로 귀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88 즉 결제대금 대신 무연탄 2,360톤을 받기로 하고 쌀 477톤을 먼저 북측에 보내주었는데 약속한 무연탄은 보내지 않고 보내준 쌀이 남조선 쌀이어서 전부 호위총국에 압수당했다 는 팩스 한 장만 받았다 식의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는 것이다. 한 중국 학자는 북 중변경무역의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즉, 과거에는 북한이 선불금을 지불하고 중국 측이 교역물품을 발송하면 남은 물건값을 연기하거나 지불하지 않고 정부의 명 의로 담보를 하거나 소규모의 교역에서는 신용을 지키고 큰 교 역에서 물건 값을 지불하지 않는 등의 방법이 사용되었다. 최 근(2011년 경)에는 새로운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북 한이 대외무역정책을 빈번히 바꾼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기업 들이 많은 물건을 보내도록 하고 중국기업들이 물건을 보낸 후 에는 중국이 수입하려는 품목에 대한 통제정책을 내온다. 결국 중국기업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둘째, 북한은 하나의 기업이 한 물품을 가지고 여러 개의 중국기업과 거래하면서 중국기업 들이 앞 다투어 북한에 물건을 보내게 한다. 중국기업이 물건 을 보낸 후에는 수출허가를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계약을 이 행하지 않는다. 셋째, 부당한 방법으로 화물을 주지 않는다. 교 역 시 북한은 전화로 중국기업에게 화물이 통관소에 도착하였 으니 속히 차량을 보내어 실어갈 것을 통보한다. 중국기업의 차량이 화물을 실으러 가면 북한회사는 휘발유, 식량 등 물건 을 강요한다. 중국기업이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화물을 주지 않 는다. 그리하여 중국 측의 차량들이 빈차로 돌아 올 때도 있다. 287 최민석, 외화난 북, 소규모 국경무역 강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월 4일. 288 장학만, 북한 무역상 먹튀 에 북 중경협 흔들, 한국일보, 2011년 9월 20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31

143 넷째, 북한에 입국하는 중국인들의 휴대물품과 수량을 마음대 로 규정한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는 중국인들이 북한 이 필요한 물품을 대량 휴대하도록 장려하고 사정이 풀리면 기 존의 물품은 통제하고 새롭게 필요한 물품으로 바꾼다 년 중국에 진출하는 무역회사들 중에 군부계통의 무역회사들 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290 북한당국은 군부 식량 대책의 일 환으로 군부 계통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독려했다. 2011년 4월, 국방위 원회에서는 인민군 부대들에게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 렸다. 농민과 일반주민들에게 군량미 과제를 거두는 것에 한계가 있 었으며, 또한 해외무역대표부 일꾼들도 군량미 과제를 더 못하겠다고 신소해서 군량미 과제가 사실상 중단됐다. 따라서 군량미를 자체 확 보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그래서 (군부에서) 무역회사들을 더 내오 도록 추동했으며, 식량뿐 만 아니라, 인민군 피복류, 신발 등 생필품 보장도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그런데 군부 무역회사들 사 이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해서, 군량미와 생활물자를 조달하는 회 사들은 아무래도 특수부대처럼 힘 있는 부대들이다. 일부 회사들은 운영 자금조차 조달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떤 회사의 경우 무역 사업을 승인해주고 파견해준 인민군 간부들에게 (차량) 기름 값 이나 대주는 정도의 역할만 했다. 간부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중국에 계속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 진출한 무역회사들 중 약 80%가 군부 계통 회사들이지만, 실제 소기의 성과를 내는 회사는 많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91 군부 289 임강택 외, 북한변화를 위한 한 중 협력방안 (서울: 통일연구원, 2011). 290 좋은벗들, 중국 진출 무역회사, 군부 계통이 가장 활발, 오늘의 북한소식, 제419호 ( ). 291 좋은벗들, 강성무역회사 54부, 식량 수입 앞장서, 오늘의 북한소식, 제419호 ( ). 13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44 회사 중에서 인민무력부의 대표 무역회사인 강성무역회사 54부가 현 금 거래를 할 수 있는 대표적 회사로 꼽히고 있다. 54부 회사는 기본 군량미를 책임지면서 동시에 평양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물자도 확 보하는 등 비단 군부대뿐만 아니라 국가 주요 건설물자 확보에도 주 력했다. 54부가 현금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 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4분기 북한의 석탄 수출량은 2010년 같은 시기에 비해 15배 가량 증가했는데, 대중 수출 증가에는 군부 무역회사들이 주역 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92 강성무역총회사를 비롯한 인민군 산하 무역기관들이 석탄과 광석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고 하며, 중국 에 나온 군부 무역일꾼들은 민간인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모두 군 인들이라고 했다. 북한 군부 무역회사들은 김정일의 허가를 받은 방 침 을 가지고 석탄, 광석 등 북한 내 외화 원천을 싹쓸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 무역지도원들은 평안남도 개천탄광, 덕천 탄광에 파 견되어, 탄광간부들을 몰아세우면서 증산을 하고, 생산된 석탄은 전 량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이 때문에 일반 지방산업 공장에서는 석탄 을 받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심지어 탄광 주민들의 난방조차 어 려웠다. 북한 군부 외화벌이는 크게 총참모부, 총정치국, 정찰총국으 로 분류되는데, 이 가운데 2009년 후 북한군 정찰총국이 새롭게 떠올 랐다. 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이 김정일로부터 정찰총국이 당자금도 벌고, 전투력 강화를 위해 자체 외화벌이를 하겠다 고 제의서를 올려 비준 받아 무역사업권을 따냈다고 했다. 정찰총국은 중국 단둥과 심 양 등지에 출장소를 차려놓고, 사실상 무역독점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좌급(영관급) 군관으로 알려진 3~4명의 북한 군부 무역관 292 최민석, 북 외화벌이 권한 군부가 싹쓸이,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5월 19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33

145 계자들은 몽골에서 금광을 채굴하려고 하는데, 자금과 기술을 대달 라 며 일본 측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찰총국이 사업 에 적극 진출함에 따라 기존에 중국에 진출하고 있던 무역성, 국가안 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무력부 소속의 무역회사들과 제로섬 경쟁 이 발생했다. 293 정찰총국 소속 무역일꾼들이 정찰총국의 위세를 배 경으로 다른 단위에서 계약중인 사업에 뛰어들어 대방을 가로채거나, 다른 단위 간부들의 뒷조사를 해서 평양에 보고서를 올림으로써 다른 단위의 대방을 가로채거나 약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편 현철해 북 한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도 자체 무역회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 려졌다. 현철해는 2007년경에 김정일의 특별 허가를 받아 자기가 사 장으로 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 만경대구역에 소 재한 이 무역회사는 직원 30명 규모로, 현철해 대장이 회사 명예사장 으로 돼있고, 주로 해산물과 금광 분말 등을 팔아 굉장히 부흥하는 회사로 거듭났다고 했다. <기타 외화벌이 실태> 2011년 북한에 존재하는 무역회사는 대략 수백 개로 파악되고 있 지만, 대부분 자금력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94 한 관측자에 따르 면, 북한의 공식 무역회사는 약 160여 개로 파악되는데, 그 가운데 노 동당 외화벌이를 빼면 대부분 자금력과 수출원천이 부족한 깡통회 사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 무역회사 명단에 따르면 조선릉라무 역총회사 조선광명무역총회사 등 총회사만 해도 20여 개가 넘는다. 무역총회사는 산하에 최소 몇 개 또는 수십 개의 무역회사들을 거느 293 박준형, 北 외화일꾼 자중지란 동료까지 팔아먹을 판, 데일리NK, 2011년 8월 31일. 294 최민석, 북한군 산하 무역회사도 자금난, 데일리NK, 2011년 6월 27일. 13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46 린 대규모 무역집단들로, 산하의 자회사까지 합치면 수백 개로 파악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총회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을 마련하는 노동당 산하 몇몇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금력이 열악하다고 했다. 노동당 39호실 산하의 조선대성무역총회사 는 산 하에 석탄, 광물, 섬유, 도자기, 약재 등을 수출하는 9개의 무역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수출입 물류를 직접 나를 수 있는 대성운수회사 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핵개발 부품 수입 관련 남천강무역회사와 미사 일 수출 관련 조선단군무역회사를 비롯한 북한 군부 산하 외화벌이 회사들은 대북제재 등의 영향으로 신뢰를 잃거나, 간판을 상당수 바 꾼 것으로 알려졌다. 총참모부와 정찰총국 산하에 새로 무역회사가 조직되는 것으로 관찰되는데, 이 무역회사들도 역시 자금이 부족해 중국에서 먼저 외상으로 내보내면 다음부터는 대금을 지불하겠다는 식의 외상거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당국이 대규모 외자유치를 위해 설립한 대풍투자그룹이 설립 1년 반이 지나도록 단 한 건의 투자유치 실적도 올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95 북한당국이 외자유치를 호언장담하는 박철수를 믿고 대 풍그룹을 설립한 것이며 설립 이후에는 그의 투자유치 활동을 위해 약 50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박 총재는 실적이 전혀 없는데다 미국의 제재를 들어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김정일 위원장이 그동안 지원한 활동비를 도로 받아내라는 지시까 지 내렸다고 했다. 북한의 취약한 무역회사는 재중 대표부 사람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96 북한에서 투자처를 찾아 무작정 몰려오는 사람들 295 김준호, 대풍그룹 총재, 투자유치 전무 입지 흔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12일. 296 좋은벗들, 재중대표부 일군들, 제발 아무나 오지 마라, 오늘의 북한소식, 제413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35

147 을 상대하는 일 때문이다. 재중 대표부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먹 여주고 재워주고, 중국 대방도 접촉하도록 해주고, 아무 성과 없이 돌 아갈 때도 선물까지 바리바리 싸주어야 한다. 북한에서 투자목적으로 한 번 출국하자면 한 사람당 1,000유로 씩 바쳐야 하는데 그 돈도 다 해외대표부 사람들이 마련해주어야 한다. 2011년 6월경 나선일대에 무역회사들이 새로 입주했는데, 이들은 외형상 민간회사이지만, 사실은 군대 산하 무역회사로 알려졌다. 297 북한군 산하 무역회사들이 동해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수산물들을 가 공해 팔기 위한 중계무역장소로 나선을 이용한다고 했다. 군부 무역 회사들은 수산물뿐 아니라, 송이버섯, 농토산물도 1차 생산품이 아닌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북한 간부들도 개발 붐이 이는 나선 지역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으로 알려 졌다. 나선에 파견된 30~40대 간부 중에는 과거 중앙당과 인민무력 부, 인민보안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특히 김정은의 신임을 받고 있는 북한군 정찰총국 산하에 외화벌이 회사가 여러개 생기면서 충성분자 들이 회사 사장, 이사장 형식으로 차출되었다고 한다. 함경북도에서 2011년 10월경 중국 료녕성 안산시에 첫 외화벌이 식당을 개점했다. 298 다만, 국가에 바쳐야 하는 상납금인 국가과제금 이 10만 달러를 납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함경북도가 무리해 서 해외 사업장을 낸 것은 지방당에서도 직접 수익을 내겠다는 의지 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국가 과제금을 낮추어서 지방 기업소들 과 무역회사, 개인들이 더 외화를 벌어들여 지방 재정 마련과 투자를 297 최민석, 북 군부 무역회사, 나선지역 대거 진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1일. 298 좋은벗들, 함북 식당 해외 진출, 일대 혁신이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24호 ( ). 13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48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존재했다. 평양에서 는 해외 사업장 진출과 별도로 평양 시내에서 외화상점과 식당, 오락 시설 등을 활발하게 개업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 투자자가 있으면 동업을 하거나, 해외 친척들이 평양의 공장, 기업소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공동운영하는 체제였다. 다른 지방에서 생필품난이 벌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평양 고위간부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들은 날로 번창하는 중이었다. 차. 화폐개혁 이후 시장의 변모 화폐개혁은 북한의 시장활동에 심각히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장마당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거래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또 한 화폐개혁 때 입은 타격으로 많은 중소 상인 또는 개인 가정의 생 계가 몰락했다. 299 전체적으로 장마당에 장사하려는 소규모 장사꾼은 늘었지만 사람들이 돈이 없어 물건이 팔리지 않았다. 소규모 장사꾼 중 상당 부분은 화폐개혁의 타격으로 몰락한 사람들이다. 300 장사 밑천을 보유한 중산층들이 줄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북한 전역의 장마당에 일명 메뚜기 (골목 장사, 판매대가 없는 장사꾼)라 불리는 장사꾼들이 대거 늘어났다. 301 원래 주민들은 장마당 관리소에 (판)매대 이용대금(권리금) 외에 매일 세 299 좋은벗들, 가족 단위 꽃제비도 늘어, 오늘의 북한소식, 제400호 ( ); 좋은벗 들, 당신이 유일한 생계부양자라면?, 오늘의 북한소식, 제406호 ( ). 300 최정호, 시장 장사꾼 넘치지만 정작 사는 사람 없다, 소식통, 물가 오르며 구매력 떨 어져 꽃제비 늘어나, 데일리NK, 2011년 5월 16일. 301 최정호, 北 장마당 메뚜기 급증 몰수 안 하고 주의만 경제난 여파에 주민들 시장 몰려 주민 반발 고려한 듯, 데일리NK, 2011년 7월 4일; 박준형, 북한 전역 메뚜 기 골머리 단속 소용없어 평양 소식통 매대 장사보다 더 많아 보안원도 쫓는 척만, 데일리NK, 2011년 10월 7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37

149 금 명목의 장세를 지불하면서 장사를 한다. 장세는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평양의 경우 500원 선이다. 매대 개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장사에 나서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골목마다 메뚜 기 장사꾼들이 진을 치게 되었다. 물론 단속은 심하다. 특별관리 지역 인 평양 역시도 메뚜기 장사는 확산일로다. 평양 형제산 구역 내 하당 시장의 경우 시장을 들어가기 1,000m 전부터 장사꾼들이 골목골목 앉아 있다. 평상시 메뚜기 장사꾼이 100~200명 규모였다면 2011년 7월경 300~400명, 10월경에는 500명 이상이라고 했다. 하당장마당 의 지정된 운영시간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이지만 메뚜기 장사꾼들 은 오전 5시부터 거리에 나와 저녁 9시까지 판매를 하고 있다. 장마 당에 메뚜기 장사꾼이 대거 늘면서 이를 단속하는 장마당 규찰대도 늘어났다. 하지만 과거 단속에 걸릴 경우 장사물품 등을 몰수 조치했 던 것과 달리 2011년 7월경에는 질서를 유지하는 정도의 주의 조치 만 내렸다고 한다. 2011년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일 이후 장마당 2 부제가 실시되었다 월 초에 내려온 내각 지시문은 10월 10일 이후부터 장마당에 고정 매대를 가지고 있는 장사꾼들과 길거리 메 뚜기 장사꾼들이 하루씩 교대로 장마당을 이용하도록 장마당 2부제 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 의도는 메뚜기 장사를 없애는 것이었다. 또한, 화폐개혁 이후 북한 돈의 값어치가 현저히 떨어졌다. 북한 돈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장사꾼들은 달러와 위안화를 통한 거래를 선호했고, 내화( 內 貨, 북한 돈)로 거래 되더라도 달러를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졌다. 특히 큰 규모의 장사를 하는 도매상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돈 만을 취급했다. 도매상들은 중국인들과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중국돈이 필요하고 조선돈은 위험하다는 인식까지 302 문성휘, 북 장마당 2부제 실시 거센 반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27일. 13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50 가지고 있었다. 303 화폐개혁 이후 북한 장마당, 지역 간의 편차가 심 화 되었다. 304 국경 지역의 무역일꾼들은 중국 대방의 도움 받아 빠르 게 원상 복귀되었지만, 내륙 지역의 장사꾼들은 소규모 장사로 전락 했다. 이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화폐개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다 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돈을 지원받거나 빌려야 하는데, 돈을 빌릴 수 있느냐의 차이 때문이었다. 내륙의 경우 화폐개혁 이후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큰 돈을 빌려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돈 을 지원받기도 빌리기도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북한주민들 사이에 고리대( 高 利 貸 )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졌다. 305 화폐개혁 후유증에 따라 보유 현금이 바닥나기 시작한 주민 들 사이에 장사대금 마련과 식량 확보를 위한 목적의 고리대가 다시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혜산의 경우, 장사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는 사 람들은 이자를 주기로 하고 돈을 꾸고 있는데, 잘 아는 사람은 5%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빌리고, 모르는 사람은 10%의 이자를 약속한다고 했다. 밀수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룻밤 돈을 빌려주는 데도 15~20%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고리대는 도시보다 농촌에서 더 성행했 다. 국가의 배급이 끊긴 이후 시장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고 있는 북한 에서는 비교적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도시는 하루 벌이라도 가능하지 만, 농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농촌의 경우에는 고리대로 식 량을 빌려 먹었다. 농촌의 고리대는 보통 3월부터 5월 사이에 당겨 먹고 가을에 물어주어야 하는데 옥수수 1kg이면 가을에 2kg을 주어 야 했다. 거의 모든 곡물이 2배의 이자를 물어야 했다. 양강도의 경우 303 소현민, 장마당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열린북한방송, 2011년 6월 24일. 304 소현민, 화폐개혁 이후 북한 장마당, 지역 간의 편차 심화 돼, 열린북한방송, 2011년 6월 24일. 305 강미진, 北 쩐의 전쟁 다시 시작 고리대 성행 중, 데일리NK, 2011년 5월 13일. Ⅲ. 북한의 경제변동 139

151 에는 밭농사를 주로 하기 때문에 밀가루와 쌀의 경우에는 감자녹말 등으로 물어주었다. 보통 1kg을 기준으로 2.5kg, 3kg을 주어야 했다. 한편 대규모 사금융 이자 돈 활성화되었다. 이자 돈 의 중심에는 거간꾼이 존재했다. 306 거간꾼은 돈은 있지만 마음대로 장사를 할 수 없는 일명 돈주 로 불리며 국가 간부들로부터 돈을 받아 금속이나 마 약 등 순간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비법 장사꾼들에게 큰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에 이자가 10 20%에 달한다고 한다. 화폐개혁 이후 빈부격차가 심해진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절 명절(노동절)에 소비하는 돈을 기준으로 북한주민 상중하 계층의 생활 수준을 나누어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308 상위 1%는 달 러이상의 외화식당을 이용하는데 부담이 없다. 중산층의 20%는 모란 봉, 대성산 방문해 50달러 이상의 식사 즐긴다. 시장 활동으로 돈 번 중하위층, 20달러 상당의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인구 60% 이상인 하위층은 한 끼 명절식사로 5달러도 쓸 능력이 없다. 또한 야 외 소풍에도 부담을 느낀다. 나아가 일부 돈 많은 주민들은 장마당에 서는 포장샘물(생수)을 사서 마시고 있다. 309 양강도의 경우, 장마당 에서 장백산 광천수 한 병에 500원씩 팔리고 있다 며 먹는 물 한 병 값이 강냉이 1kg 값과 같다 고 했다. 또한 중국산 정수기와 에어 컨의 수요가 부자와 간부를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다. 310 한편 탈북자 306 남설희, 北, 대규모 사금융 이자돈 활성화, 열린북한방송, 2011년 6월 24일. 307 최원기, 미 전문가 북한에 신흥 부유-특권층 형성, 미국의 소리, 2011년 8월 8일; 김용훈, 新 부유층 돈주 軍 간판걸고 운수회사 운영, 데일리NK, 2011년 8월 16일. 308 최호연, 5.1절 명절 식비용, 최상위층-서민 간 40배 이상 차이나, 북한전략정보서비스 센터, 2011년 5월 9일. 309 문성휘, 북 상류층, 값비싼 중국산 생수 인기,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5월 17일. 310 문성휘, 북 중 국경 검열로 식량난 악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22일. 14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52 들이 많은 국경지역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다고 했다. 311 그 이유는 중국이나 한국의 가족들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4. 북한 경제변동의 동력과 방향 가. 시장확대와 정권 유지 일반적으로 북한에서의 시장확대는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론 에 의 해 이해되고 있다. 즉 정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또는 그에 거슬러, 1990년대 경제난 속에서 일반주민들의 생계활동을 중심으로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권은 시장확 대에서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시장확대를 방해하거나 적응해 나가 고 있는 존재로 부각된다. 그런데 시장확대는 불가역적인 것이기 때 문에, 정권의 부정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더욱 확대될 수 없으 며, 이 과정에서 정권에 부정적인 여러 현상들이 확대되면서 정권은 정치적으로 더욱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독재의 경제논리 또는 정치자본주의론 은 북한의 시장확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독재에서 경제운영 의 목적은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소수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 는 것과, 독재의 경우 상업적으로 이윤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분배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북한정권이 과거와 비교할 때 약체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무력화 311 남설희, 북한주민, 잘 살려면 가족 한 명을 한국으로 보내면 돼, 열린북한방송, 2011년 5월 19일; 좋은벗들, 남조선에 간 안해여, 도와주오, 오늘의 북한소식, 제308호 ( ). Ⅲ. 북한의 경제변동 141

153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권이 능동적인 의지로 시장확대를 환영하 고 추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장확대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 시장 확대가 소수 지배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러 가지 개입과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의 시장확대를 아래로부터의 시장화 의 시 각에서만 보는 것은 다른 중요한 사항을 놓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확대에 있어서 정치권력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북한시장의 전개를 보면, 정권의 역할은 첫째, 시장확대하는 가운데 어떤 기관이 또는 누가 돈을 벌수 있는가의 기 회에 상당한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아래에 설명하듯이, 무역과 상업의 특권이 주로 권력 유지에 긴요한 정권기관에 배분되었 다는 데서 나타난다. 둘째, 정권 유지상의 필요에 시장확대의 속도와 폭을 조절할 수 있다. 북한정권은 2002년에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 해 시장확대를 허용했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시장억제 정책을 펴 기 시작했다. 2009년 11월 말에는 화폐교환 이라는 매우 급진적인 반 시장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312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시장은 완전히 제거할 수도 또한 자가동력 으로 팽창하게 둘 수도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정권은 시장확대의 속 도와 폭을 조절하는 한편, 친정권 세력이 시장관여를 통해 강화되는 방식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이다. 정권은 시장확대를 정권유 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시장확 대는 정권 유지에 많은 경제적 정치적 도전을 제기한다. 이 과정에서 312 화폐개혁은 시장 활성화에 따른 잠재화된 유사 계급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 로 인해 정권의 핵심적 지지기반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지배엘리트 상층의 위기의식과 후계자의 선심정치 에 의한 인위적인 정당성 창출이라는 정치적 계기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14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54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시장팽창이 적절하지 못한 속도와 방향으로 갈 때, 또한 친정권 세력보다는 비친정권 세력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린 다고 판단할 때, 다시 한 번 폭력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면서 사회 내에 경제적 계층분화가 급 속하게 진행되고, 경제적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가구 수입에 따라 상 중 하층으로 도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개별가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313 그렇지만 이들이 시장을 필요로 하고, 또 이들에 의해 시장이 확대된다는 점만 을 가지고 이들을 시장세력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장의 확대나 국가의 시장 통제력의 약화 그 자체보다 시장의 확대과정에서 북한의 자본주의 체제전환에 필요한 재산권의 다변화나 계급관계의 형성 가능성을 이들의 시장 활동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 북한의 시장 세력의 형성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시장 주도세력으로서의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 이런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서 북한의 시장 활성화를 특징짓는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시장화를 추동 하는 주된 힘은 중앙당 39 38호실과 주요 부서들, 제2경제, 그리고 중 앙당의 특수부서들, 호위사령부, 무력부의 국 단위 조직들, 보위부, 보 안부 등 특수단위 들에 의한 외화벌이 사업의 전방위적 전개에서 나 온다는 점이다. 독재자의 혁명자금 상납 재원과 자체 조직운영비 조 313 예컨대 하층 가구의 경우 하루벌이를 위해 시장에 참가한다면, 중간층 가구는 생계유지 와 더불어 세간살이 구입자금을 벌기 위해 시장에 참가할 수 있다. 또 상층가구는 개인 재산 증식을 위해 수천, 수만 달러를 개인 사업이나 외화벌이에 투자하는 식으로 시장에 참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Ⅲ. 북한의 경제변동 143

155 달을 위해 특수단위 들을 비롯한 일부 특권적 국가기관들은 외화벌 이 수출원천 장악과정에서 적지 않게 시장적 관계에 의존한다. 마찬 가지로 이 기관들은 외화벌이 대치물자로 수입하는 중국산 식량이나 생필물자의 일부를 시장에 불법적으로 유통시킨다. 이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 관련부서들이 시장의 상품 유통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 치해 있고, 그 밑에는 본인이 사업자금을 투자해서 이 부서들의 외화 벌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부서들의 보호막 아래 불법적으로 자기 개인 외화벌이 사업을 병행하여 개인재산을 증식하는 큰 돈주 (외화 [동원능력] 보유자)들이 있다. 이 돈주들은 몇 단계를 거쳐 상품 유통 의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 놓여 있는 시장의 공업품이나 식량 소매장 사, 또는 기업소의 부업선 선장 같은 외화벌이 원천 생산자까지 연결 되어 있다.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를 정점으로 한 이런 시장의 물자 및 화폐 유통체계 내에서 기업소 8.3제품의 시장 판매나 가내 개인사 업자(자영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종사자)의 시장 참가는 주변적인 부 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 가지는 이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는 독재자에 의 한 지대 할당과 재분배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시장은 수출입을 통한 이런 지대 실현을 매개해 주는 경제적 공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칭 와크 라고 하는, 이 국가기관들에게 독재자가 각 기 특정적으로 비준 해 준 일종의 수출입 취급물자 면허제도를 이용 해서 이들이 일부 취급물자에 대해 일종의 수출입 대행 수수료 장사 를 하는 데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예컨대 아연괴 수출 와크가 없 는 기업소에서 생산된 아연 정광이 아연괴로 만들어져서 와크를 가지 고 있는 제2경제의 국 단위 부서를 통해 수출되거나, 중고 컴퓨터 수 입 와크를 독점하고 있는 보위부가 중고 컴퓨터의 국내 수입총판 역 할을 하면서 외화 수입을 얻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국가기관들에게 14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56 지대 수취의 형태로 특혜적 외화벌이 사업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이 기관들의 외화벌이 관련 간부들이나 상급 간부층의 부패가 시장 활성 화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시장 활성화와 관련된 이 두 가지 특징에 비춰볼 때 좀 더 유의미한 시장 활성화의 주체는 생계유지를 위해 시장에 참가하는 대 다수 중 하층 가구들보다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에 연루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화 과정에서 극빈층과 하층 일부 가구 들을 제외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특히 내구성 소비재의 보유를 놓 고 볼 때 화폐개혁 이전까지는 전반적으로 나아진 면이 있고, 따라서 시장이 제공해 주는 기회를 중 하층 가구들도 차등적으로 공유했다. 이 점에서 이 가구들도 시장 활성화의 주체에 포함된다. 그렇지만 비사검열그루빠 활동이나 시장 단속을 통한 시장 참가 자들에 대한 억압적 통제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국가가 외화벌이 액상과제나 장세 부과 이외에도 각종 세외 부담이나 보호세 명목으로 시장 참가자들을 지속적으로 수탈해 가는 구조 속에서 중 하층 가구 의 물적 기반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했다. 따라서 특권적 국가기관들 의 외화벌이 일꾼들과 이들의 비공식적 후견인에 해당하는 상급 간부 층을 좀 더 유의미한 시장세력으로 일단 간주할 수 있다. 개별가구들 이 보유한 개인재산을 강제적인 방식으로 국가로 이전하려고 한 화폐 개혁이 내화 경제권에 속해 있는 중 하층 가구의 급속한 하강이동과 경제적 몰락을 가져온 데 반해, 외화 경제권에 속해 있는 경제적 상층 가구나 상급 간부층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던 데에서 이 를 알 수 있다. Ⅲ. 북한의 경제변동 145

157 다.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지대 수취 시장 활성화를 주도하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에 연루된 돈주 등 화폐자산 보유자들이 화폐개혁에 의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는 국가의 외화 강제환수조치가 경제적 상층가구를 압박하는 데 유 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 국가기관들의 외 화벌이 일꾼들과 이들의 외화벌이 운영자금은 이들의 후견자에 해당 하는 상층간부들에 의해 보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기관 들의 후견간부들과 외화벌이 일꾼의 이런 관계에서 시장세력 형성의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간부의 입장에서는 자 기 기관의 외화벌이 사업을 원활하게 보장하고, 자기 개인재산 증식 에 긴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대리인을 보호하는 것일 뿐이다. 또 일정 투자액 이상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는 외화벌이 일꾼도 그렇 지만 특히 후견 간부는 자기에게 들어오는 외화를 대체로 축장할 뿐 이지 시장을 통한 자본축적을 위해 투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 에도 유의해야 한다. 314 이런 점들에 비춰보면 북한의 시장 활성화를 주도하는 특권적 국 가기관들의 외화벌이가 자본주의 이행을 추동할 수 있는 체제 내적 시장세력 형성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광 물과 석탄 같은 채굴자원과 약재나 수산물 같은 채취자원의 수출과, 식량이나 경공업 제품 등의 대치물자 수입이라는 단선적인 수출입 경 로에 다단계로 의존하면서 진행되는 시장 활성화는 국내의 다른 산업 314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유효했던 2000년대 중반에 지배인의 기업관리의 자율적 권한이 어 느 정도 보장되었던 조건에서 국가로부터 전기와 자재를 공급받는 소규모 경공업 공장 에, 이 공장을 지도 감독하는 행정간부가 유령 중국회사 명의로 소규모 설비투자를 한 사례는 시중에 축장되어 있는 외화의 생산적 투자에로의 전환이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에 관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14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58 부문들과의 전후방 연계효과가 거의 없다. 이는 외화벌이에 의해 주 도되는 시장 활성화의 핵심이 정권안보와 결합된 체제안보를 위해 복 무하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지대 실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 하다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대다수 가구가 일상생활의 재생산을 위 해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과 그에 따른 시장의 공간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반시장적인 국가에 대립하여 사경제에 기반한 시장 활성화 를 시장경제부문 의 공식적 도입이나 자본주의 체제전환으로 연결시 키는 데 실질적으로 힘이 되줄 만한 사회집단이나 엘리트 분파의 형 성이 지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15 최근에 시작된 황금평과 나선 경제특구의 북 중 공동개발도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기존 외화벌이사업의 지 대 할당 및 재배분 관계의 조정을 통한 새로운 판짜기로 진행될 여지 가 적지 않다. 특히 화폐개혁을 통해 이루지 못한 후계체제 안정화 명분을 내세운 외화자금 조성을 위해 후계 주도세력들이 개별 분파적 이해관계 실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두 지역은 북한의 다른 지역과는 지리적으로 차단된 폐쇄형 경제특구( 飛 地, enclave)경제로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사경제와 연 결된 국내시장의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촉진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보 기는 어렵다. 315 아마도 시중 외화 집중밀도가 가장 높은 평양의 가입자 수가 단연 가장 많겠지만, 외화 로 공기계를 구입하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손전화 가입자 수가 올해 초에 55만 명을 상회했다는 보도는 외화벌이 지대추구와 간부 부패의 연계문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북한판 시장 활성화의 실체를 희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Ⅲ. 북한의 경제변동 147

159 라. 대외 환경과 시장 활성화의 관련성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외부적(국제적) 요인도 북한 내부의 시장 활성화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 그 중에서 핵심은 외부국가로부 터 북한에 얼마나 여러 형태의 대외원조가 조달되는가이다. 북한경제 는 내부 생산력이 고갈되어 있기 때문에, 주요 외화 수입원이 광산물 과 같은 원자재성 상품의 수출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익과 함께 인도지 원 그리고 핵 외교 및 주변국 외교를 통해 조달하는 각종 대외원조이 다. 북한과 주변국과의 관계가 대체로 양호하면, 이러한 대외원조 유 입은 증가하고, 그렇지 못하면 줄어든다. 대외원조 유입의 증가는 주 로 정치적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는 내부 자원 분배 투쟁을 완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원조 감소 또는 중단 및 각종 대북 제재 강화 때문 에 원조 유입과 외화벌이가 줄어들며, 이 경우 정권 대 주민, 그리고 정권내부기관 간에 내부 자원 분배 투쟁이 격화될 수 있다. 우선 2000년 이후 남한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 경제적 관여정책을 실시하면서 식량, 비료, 의약품 등 많은 소비재 물 자가 북한에 공급되었다. 이 지원물자들은 대체로 군대를 포함한 특 권적 권력기관들을 거쳐 시장에서 상품으로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도시들의 시장은 인민경제 부문의 정상화 를 목표로 한 2002년 의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들에 힘입어 일부 중소 규모 공장 기업소 생 산물의 시장 판매가 이루어지고, 주민들의 장사가 대체로 묵인됨에 따라 부분적으로 활성화된 면이 있다. 그렇지만 남한의 지원물자의 시장 유통도 시장의 부분적 활성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남한의 경제적 관여정책이 적극적으로 실시되는 동안 미국의 대 북 경제제재도 북한경제를 강하게 압박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단행되고, 14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60 2000년대 후반에는 남한의 이명박 정부도 이 제재조치에 참여함에 따라 대북 경제적 지원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과 2차 핵실험을 한 뒤에는 서구가 대북경제 금융제 재를 강화함에 따라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도 급감했다. 따라서 소비 재 물자들의 유통이 크게 줄어듦에 따라 북한 시장도 위축되었다. 물 론 시장의 활성화 면에서 볼 때 위축된 것과, 생계유지를 위해 더 많 은 주민들이 시장에 참가함에 따라 시장이 공간적으로 확산되고 주민 밀집도가 증가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 두 시기를 비교해 보면 남한의 경제적 관여가 북한의 시장 활 성화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친 전자 시기에는 내각의 경제관료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적 지배엘리트 분파들이 인민경제 부문을 관리했다. 반면에 대북 제재가 강화되기 시작한 후자 시기에는 시장 참가에 대 한 폭력적 통제가 일상화되었고, 중앙의 비사회주의검열그루빠 가 비 주기적으로 수출입 물류거점인 국경연선도시들에 대한 검열을 진행 하여 전국적으로 시장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통제방식이 지금까지 지 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핵 문제의 타결 여부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경제적 관여의 실시 와 북한의 개혁적 지배엘리트 분 파들의 경제정책과 시장 활성화의 용인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래의 시나리오 작업에서 보겠는데, 이 두 국내외 요인들 간의 관계는 더 복잡하게 전개될 수도 있지만, 이 외부 적 요인은 여전히 북한의 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정권의 핵무기 보유에 대 한 집착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지원 때문에 북한 핵 폐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 와 관련해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봉쇄형태로 북한의 핵계획을 관 Ⅲ. 북한의 경제변동 149

161 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북핵 비확산 정책이 검토되고 있는 것 으로 보인다. 316 그렇지만 미국이 비핵화 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 을 것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비핵화 를 달성하고 비확산 에 더 많 은 관심을 두는 방향으로 정책이 사실상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북한 역시 내부문제 완화 및 국제 고립 탈피를 위해 한국 과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를 일정 수준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타협이 성사되는 경우, 대북 경제정책도 경제제재 일변도에서 단계적 또는 조건부 경제적 관여 쪽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최근의 동향을 염두에 둘 경우, 북한의 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규정적 요인으로써 북핵 협상의 타결 여부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변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핵 협상 타결 여부는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련된 지배엘리트 내부의 분파적 지향과 마찬가 지로 시나리오 구축에서 핵심적 변수로 설정될 수 있다. 316 정철호, 미국의 對 인도 핵용인 정책과 對 北 핵정책 변화가능성: 대북 핵정책 시나리오 별 한국의 정책구상, 세종정책연구, (세종연구소, 2011),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62 Ⅳ 북한의 사회변동 Ⅳ. 북한의 사회변동 151

163

164 1990년대 이래 북한변화의 중요한 구성 부분은 사회의 변화이다. 그 하나는 국가와 사회 간의 관계변화이다. 이 변화는 전체주의에서 탈-전체주의 폭정으로의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전체 주의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항시적 총체적 통제 317 라고 할 수 있는 데, 1990년대 이래 이와 같은 성격의 통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통제의 중심에는 당기구의 정치사업이 있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공개총살과 같은 국가의 본보기적 폭력 행 사가, 2000년대 들어서면 당기구 대신에 인민보안부와 같은 사법기 구가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의 사회에 대한 통제기제가 변한 것은 사회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가 발생한 핵심적 이유는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붕괴함에 따라 국가와 당의 행정체계와 기능이 약화되었으 며, 이 때문에 당기구가 제대로 정치사업을 할 수 없게 된 데 있다. 사회 자체 변화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주요한 것으로 주민의 의식구조 변화, 빈부 격차 확대, 세대 간 지역 간 격차 확대, 외부 정보 접촉 확대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하 1절에서 탈-전체주의와 폭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변화한 국가 대 사회 관계를 개념적으로 서술한 이후, 2절에서 사회변화의 대강에 대해 서술한다. 이어 3절은 접경지대의 정세와 의미에 대해 서술한다. 접경지대는 북한변화의 첨단지역이다. 4절은 2010년 이후 정권의 접경지역에 대한 통제 강화 상황에 대해 서술한다. 317 Leonard Schapiro, Totalitarianism (London: The Pall Mall Press, 1972), p Ⅳ. 북한의 사회변동 153

165 1. 정권 대 사회관계의 변화 가. 탈-전체주의와 폭정 1980년대까지 북한 정치체제 또는 정권 대 사회관계를 특징적으 로 말한다면, 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전체주의는 이중의 의 미를 갖는다. 그 하나는 보다 전형적 전체주의의 의미에서 즉 국가의 개인에 대한 항시적 총체적 통제 라는 것이다. 그 다른 하나는 로날드 윈트로브(Ronald Wintrobe)가 독재국가 유형을 분류하면서 특징 지운 바대로, 전체주의는 <억압+충성>을 결합하는 체제 318 라는 것이다. 1980년대 말까지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전체주의가 북한에서 기능 하고 있었다. 그 제도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 계획경제와 배급제이며, 당기구의 조직 및 사상사업이었다.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개인을 경제 적으로 정권에 완전 의존시키는 기능을 했다면, 당기구의 조직 및 사 상사업은 개인을 정치적으로 정권에 종속시키는 기제였다. 또한, 계 획경제와 배급제가 기능하는 한에서, 각종 기관과 기업소가 기능할 수 있었고, 그 토대 위에서 당기구의 개인에 대한 조직 및 사상사업이 전개되었다. 또한 계획경제, 배급제 및 당기구의 기능을 통해 개인은 정권에 항시적이고 총체적으로 종속되었는데, 이는 억압과 충성을 동 시에 창출하는 기제였다. 언급한 세 가지 장치는 개인이 정권이 허용 하는 것에서 일탈하는 것을 방지했을 뿐 아니라(억압), 개인의 그러 한 총체적 항시적 종속은 일부 포괄적 복지혜택 으로 또는 수령과 당의 은혜 로 간주하도록 했다(충성). 그런데 1990년대 이후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 318 Ronald Wintrobe, The Political Economy of Dictatorship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15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66 게 되면서, 당사업의 모체가 되는 기관 기업소의 운영이 난맥에 빠지 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당사업도 동시에 현저히 약화되었다. 다시 말 해, 계획경제와 배급제, 당사업은 소멸하지 않았고 아직도 상당한 영 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개인을 항시적이고 총체적으로 통제 하는 데는 훨씬 모자라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러한 상황을 탈 -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정권에 대한 의존이 감소함에 따 라, 개인이 정권에 대해 적어도 겉으로 적극적으로 충성을 표해야할 이유도 감소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과거와 비교할 때 적어도 개인적 으로 정권에 대해 현저히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충성 의 소멸). 이에 대해 정권은 사법적 억압기관의 현저한 강화로 대응했다(억 압의 강화). 탈-전체주의 현상의 발현이나 충성의 소멸은 정권에게 정치적 도전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 권이 이러한 상황 전개에 대해 당기구의 강화가 아니라 사법적 억압 기구 강화로 대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기관의 개인에 대한 정 치적 통제는 계획경제와 배급제를 통해 개인의 정권에 대한 강력한 경제적 의존의 바탕위에서만 효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경 제적 의존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또한 계획경제와 배급제를 토대로 하는 기관 기업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어야 당기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데,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약화됨에 따라 국가의 기관 기업소 체계 바깥에서 주민들의 활동이 증가했다. 이러한 국가기구 바깥 영 역에서 발생하는 개인 활동은 당기구에 의해 통제되는 대신에, 인민 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사법 보안기관에 의해서만 사후적으 로 통제될 수 있다. 나아가 기관 기업소의 활동이 아예 중앙정권의 통제를 일부 벗어나는 현상도 발생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과거 같으 면 당기구를 통해 예방이 가능했을 것이지만, 요사이는 중앙이 간헐 Ⅳ. 북한의 사회변동 155

167 적으로 파견하는 비사회주의투쟁그루빠 를 통해 다스려지고 있다. 요약하면 북한에서는 과거 <억압+충성>을 특징으로 하던 전 체주의 체제에서 <억압 강화+충성 소멸>을 특징으로 하는 폭정 (Wintrobe)체제로 변하였고, 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가 예방적 정 치 공안 에서 사후 처벌적 사회 공안 으로 변모했다. 319 과거 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의 주요요소가 직장과 거주지에서 당기구의 정치사 업을 통해 일탈이 발생하기 전에 그 일탈을 예방하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이후로는 당기구의 정치사업을 강화하는 대신, 인민 보안부, 국가보위부, 보안사령부와 같은 각종 사회 공안기구가 강화 되었다. 동시에 형법 개정과 형사처벌 기구의 정비와 강화 등이 이루 어졌다. 또한 비사검열 도 강화되었다. 이는 예방적 정치공안 으로부 터 일탈이 발생한 이후에 그 일탈에 대해 형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주축으로 하는 사후 처벌적 사회공안 으로의 변화가 발생한 것을 의 미한다. 2. 사회 자체의 변화 1990년대 이후 북한 사회 변화의 여러 양상에 대해서는 이미 다 른 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320 여기에서는 1990년대 이후 사회변화의 여러 양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다만 그러한 여러 변화 319 박형중, 북한에서 1990년대 정치체제 변화: 전체주의 겸 술탄주의로부터 탈전체주의적 술 탄주의 폭정으로, 정책연구, 제168권 봄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1), pp 북한 사회 변화에 관해서는 이미 상당한 선행연구가 존재한다. 특히 다음을 참조. 조정 아 외,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 (서울: 통일연구원, 2008); 이교덕 외, 새터민 증언으로 본 북한변화 (서울: 통일연구원, 2007). 15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68 의 추동력 인자를 찾아 확인해 본다. 이와 관련하여 네 가지 주요 경 향과 세 가지 추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사회변화의 네 가지 주요 경향을 보자. 첫째는 정치 도덕적 사회주의가 개별 이기적 포퓰리즘으로 계속 변화한다. 이는 북한 내 부의 사회 통념이 과거에는 북한당국이 강요하는 정치적 도덕적 충 성 언어에 의해 지배당했다면, 현재의 추세는 개별 기관의 본위주의 와 개인의 개인주의적 사고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개 인이 치부하려는 노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개인의 숫자 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사회적으로 보면 개인치부(개인축재) 노력이 매우 강력한 경향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사회의 변화 는 이와 같은 개인치부(개인축재)를 원동력으로 하여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셋째, 스타일 변화 유행(현상적인 생활방식) 은 비가역적이다.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1990년대 이후 시장의 확산과 더불어 나타난 외래문화 내부 침투의 확대, 그리고 과 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각종 서비스업의 발전, 일부 부유계층의 형 성 등은 북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외래 문물, 특히 한국 문물의 모방, 부유계층을 중심으로 특히 평양에서 외국 중산층 소비문화를 모방하고자하는 추세가 강력해지고 있다. 넷째, 권력의 상업화 과정 은 비가역적이다. 북한에서 계획경제의 파탄과 시장의 발전은 권력자 들이 치부(개인 축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에서 치부하자면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계획 경제의 파탄에 따라 제도가 취약해지고 재산권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은 권력을 기반으로 축재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조건을 마련해 준다. 권력자는 그 위계에 따라 각종 부정부패 행위에 참가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차별적으로 갖게 된다. 또한 권력자는 이익을 낼 수 있는 상업적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을 뿐 아 Ⅳ. 북한의 사회변동 157

169 니라, 문제가 생기는 경우 비호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추세를 추동하고 있는 것은 아래에 서술하는 세 가지 힘이라 할 수 있다. 세 가지 힘은 첫째, 경제적 개선력, 둘째, 사회문화적으로 삶의 질 개선력, 셋째, 정치적 개선력이다. 첫 번째 경제적 개선력에 포함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째, 이윤 추구력이다. 이는 아직 전면적이거나 합법적이지는 못하지만, 사실상의 생산수단 의 사적 소유로 발전하고 있다. 이득을 내자면 투자가 필요한데, 개인 이 합법적으로 개인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 또는 각종 공공기관의 사업이나 설비에 민간업자가 자기 돈을 투자하고 경영하는 대신 일정액을 상납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둘째, 생계유지 추구력이다.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유명무실화 되면서, 국가의 개인에 대한 총괄적 복지 제공 또는 생계보장 체계도 무너졌다. 이에 각 개인은 수단을 다하여 자신의 생계를 꾸려갈 방도 를 찾아야 한다. 그 생계 방도는 대부분 공식제도 체계 바깥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에는 소영업으로부터 날품팔 이를 넘어 마약 밀매, 매춘 등과 같은 범죄행위를 포괄한다. 셋째, 구 직이다. 생존유지와 관련하여 개인은 먹을 알이 있는 직업을 지향한 다. 먹을 알이 있는 직업이라면 장사와 무역에 관련된 업종이든지 또 는 사법기관원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치부하기 좋은 직 업 같은 것이 있다. 넷째, 이상에서 언급한 사회 측의 추동력에 대해 정권 측은 억제력을 행사한다. 정권은 사회가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 도 그 내재적 추동력을 제거할 수도 없지만,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통하여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정권이 보다 유리한 경쟁우위를 확보 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 낸다. 다음으로 둘째, 사회문화적 개선력으로 삶의 질 개선력이 있다. 여기에는 첫째, 성생활 스타일 개변이다. 구체적으로 이성교제, 이성 15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70 관계 및 성기교에 관한 것들이다. 이는 그동안 사회변화에 따라 이성 관계 등에 대한 국가의 금욕주의적 강요가 약화되는 대신 개인들의 쾌락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식 도락 개변으로써 먹자판의 유행을 들 수 있다. 셋째, 오락유희풍의 유 행이다. 이에는 놀음판, 도박판, 모험체험 의존증 등이다. 321 넷째, 외 모꾸미기 유행이다. 복장과 단장에 훨씬 많은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다섯째, 지적 표현 선호증이다. 말돌이(마을 돌아다니기), 말쌔질(관 여할 바 아닌 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기), 쌔씨개(경솔하게 말을 옮기기) 등은 지적 만족 억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노 력으로 볼 수 있다. 여섯째, 교육을 통해 기술을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이다. 일곱째, 여행을 통해 견문을 확대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국가의 개인에 대한 전체주의적 지배, 다시 말해 국가의 개인 에 대한 항시적 총체적 통제 를 벗어난 개인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질 개선에 노력하고자 하는 지향이 가능해졌고 또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인들의 삶의 질 개선 지향과 노력이 북한사회를 사회문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추동력이다. 여기에 마지막 으로 또 하나의 힘이 존재한다. 이는 이와 같은 지향과 노력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이다. 이와 같은 통제력이 행사되는 이유는 언급한 여 러 지향을 부정하고 말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 그 목적은 그 속도를 통제함으로써 정권 측이 적응할 시간을 벌고 또한 변화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정치적 개선력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첫째, 사회적 지 위나 신분의 구매력이다. 둘째,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판매력이다. 구매 력과 판매력은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돈을 매개로 하여 사고 팔 수 321 이상을 종합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호화생일잔치 유행 이다. 최일준, 북 간부들 사이에 김정일 식 호화 생일잔치 유행, 북한전략정보센터, 2011년 4월 17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59

171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당원이 된다든지 또는 성분을 규정 받는다든지 하는 것이 엄격하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며 달리 변화시킬 방도가 대체로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위나 신분을 뇌물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이 경우 구매하는 자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낮지만,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측이며, 판 매하는 자는 지위나 신분에서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측이다. 다음 으로, 촉매력으로써 알선, 거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촉매력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의 상업적 거래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부정 부패가 발생하고 이와 같은 과정에서 거래와 뇌물이 오가는 것을 촉 매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넷째, 전통적 권위의 자기 붕괴력 이다. 이는 현존 권력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과 선전에 머물거 나 실현 불가능한 조치를 남발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깍아 먹고 주민들로부터 신용을 일어가는 현상을 지칭한다. 다섯째, 위의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언급된 정치적 개선력에 대한 정권의 통 제이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정권은 속도조절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형세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3. 접경지역의 정세와 의미 - 북한변화와 갈등의 선도 지역 앞서 서술한 사회변화의 동력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사회 자체의 여러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어 있다. 여기 서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접경지역이다. 접경지역은 북한에서 발생 하고 있는 여러 사회변화가 첨단으로 나타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정권 대 사회 간의 갈등이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나타났던 곳이다. 이미 1996년 함경북도 청진에 주둔했던 6군단이 고위 장교들의 상업 16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72 행위 개입 및 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해체되었다. 2000년에 당정기구 를 포함하여 도시 혜산은 보위사령부의 비사검열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혜산은 조선의 리비아 로 불리면서 고난의 행군 에도 불구 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깨인 지역이었다. 322 다음으로 2007년 5월 이후 거의 1년간 그간의 시장확대 현상을 단속 하기 위한 비사검열이 현저히 강화되면서 주로 국경지역이 집중 검열 을 받았다. 아울러 2008년 초반 장성택은 3달 동안 신의주 등 국경지 역에 내려가 무역회사들에 대한 검열을 시행했다. 다음으로 김정은이 2010년 9월 당대표자회 이후로 김정은 주도로 접경지역에 대한 각종 명목으로 매우 강력한 비사검열이 시행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북 중 접경지역에 대한 정세 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 중 접경지역은 북한 사 회변화의 첨단지역이며, 또한 정권 대 사회 간의 갈등이 가장 현저하 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따라서 북한 사회 변화의 미래 또는 북한 내륙 지역에서의 사회변화의 미래, 그리고 정권 대 주민 관계의 미래는 현 재의 접경지역에 나타나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2010년 9월 이후 김 정은 주도로 북 중 접경지역에 대한 비사검열이 현저히 강화된 것에 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접경지역이 정권 대 사회가 갈등하고 대결 하는 핵심 지역임을 보여준다. 가. 접경지역 탄생의 역사적 경과 현재 북한의 지역 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북 중 접경 지역과 소위 안쪽(이하 내륙지역 ) 사이 차이이다. 그 접경의 지역 322 림근오, 2000년 혜산 비사검열과 그 잘못, 임진강, 제7호 (서울: 임진강출판사, 2010). Ⅳ. 북한의 사회변동 161

173 차 개요는 다음과 같이 <체제보위>, <대중의존> 및 <접경지역 기 능의 통제관리>라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북한에서 북 중 국경이 접경지역으로 등장한 것은 한 중수교 (1992년)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 접경지역이라 함은 전통적으로 분 계연선지대(휴전선 인접지역, 이하 38선 지역 ) 을 의미했다. 그러나 남한의 노태우 정권 시기 북방정책 및 그 구체적 발현인 한 중수교 (1992년)는 또 하나의 국경연선지대(즉 북 중 접경지역 ) 를 제도적 으로 만들어 냈다. 당시 북 중 국경 통제권은 사회공안 기구인 사회 안전부(당시 명칭)와 그 산하 조선인민경비대로부터 정치공안 기구 인 국가보위부와 산하 조선인민군 제5454부대에로 이전되었다. 이와 함께 북 중 접경지역은 유례없이 정치 공안기구가 직접 관 리 통제하는 지역으로 되었다. 휴전선 통제권을 군사기구인 조선인민 군 최고사령부와 인민무력부가 가지고 있던 점에 대비하여 판단해 보 면 북 중 국경을 이제는 38 휴전선 못지 않은 혹은 더 중요한 통제선 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정치공안 기구로는 보 위부 외에 상설조직으로 조직지도부, 비상설 조직으로 주민등록부의 2개가 더 있다. 당과 군을 포함해 북한의 모든 조직에서 체제안전 관 리 권한은 이 3대 정치공안 기구들에 포진되어 있다) 경험으로 보면 당 조직지도부 검열(이하 집중검열 혹은 지도검열 323 ) 이 1980년 대까지 주체시대에는 유일한 가장 강도 높은 정치공안권 행사였다. 정치공안형 집중검열은 주요기관(당기관, 대학 및 중앙기관)을 대상 으로 전국적 범위에서 1년에 많아야 기껏해야 몇 번 정도였다. 하지 만 요사이 1,500km 이상의 접경지역에는 비사검열 이라는 이름을 띤 323 집중검열은 하부단위에서 발생된 정치적 사건 등의 해명, 평정( 評 定 )을 위하여, 지도검 열은 하부단위의 조직사상적 역량강화를 목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사업이다. 두 가지 모 두 사상투쟁과 혁명화(사상단련)를 수단으로 하여 벌어진다. 16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74 릴레이식 집중검열이 연중 그칠 새 없다. 대비적으로 38 휴전선 지대 에는 이러한 것이 존재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 왜 접경지역이 이토록 제1선 이 되었는가를 대략적으로 정리해보자. 첫째, 1990년대부터 북한에는 조국통일보다는 체제보위 (혹은 고수) 제1선인 접경지역의 강화 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혔 지만, 체제보위라는 피동적 성격은 구사회주의권 붕괴 전에는 명분상 도, 공론( 公 論 )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38선 장벽을 남해바다 끝으로 내밀고 조국을 통일한다 는 것으로써 체제확대(혹은 진공( 進 攻 ))적 성격이었다. 그러다가 개혁 개방, 나아가서는 한 중수교의 체 제불안 공세가 그 사회주의 동방초소를 (북에) 위탁 한 형제국가 중 국과의 접경지역으로부터 현실화 되었다. 둘째, 정책 개념이 능동적 조국통일이 약화되고 피동적인 체제보 위가 강화된 것과 함께 대남혁명로선 의 곁가지( 分 枝 )로 개혁 개방 (대중의존) 노선이 탄생했다. 특히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국제사 회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과 정치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1990년 대 이후 북한에서 가치관 2중화(정치도덕적 가치에 실리적 가치 첨 가)가 신선한 탄력을 받고 급속히 전개했다. 이 같은 현실은 접경지 역에서 체제보위적 시각에 버금가는 만큼 경제실리적 시각을 배양 ( 培 養 )시켰다. 그리하여 현재 체제가 내재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시각 또는 지향의 모순은 접경지역 기능 통제관리 체제가 재정비와 재구 축되는 것을 통해 잠정적 관리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 북한의 개 혁 개방 의 속도가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완전한 체제보위는 개혁 개방된 중국에 대하여 마치 남한에 대한 38선 같은 관리로 접경지역을 전면 차단하면 달성될 수는 있다. 38선 지역은, 단순히 분계연선지대를 군사적으로 전면 차단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구밀도 과소화(도시발달의 억제)와 38선 이 Ⅳ. 북한의 사회변동 163

175 북 전지역을 적대 및 동요 계층의 관리구역(수용소), 추방지 및 소개 지(농출 등을 포함)라는 통제구역을 운영함으로써 입체적으로 획득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이 접경지역을 제1선 개념에 분 류한대도 영토적 여유가 더 이상 없는 북한 실정에서 그 새로운 운영 은 한계에 부딪친다. 그 제도화는 역사적으로 선점한 38선 운영 방식 으로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접경지역 전면차단은 현 상태에서 절실한 체제의 실리적 이윤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과거 대남혁명 노선(즉 체 제확대 노선)이 가능하였던 것은 구 사회주의권 방식의 경제적 지원 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무역이 시장방식으로 일률적으로 정 리된 현 국제 경제질서에서 또 외화보유 수준이 매우 낮은 북한으로 서는 밀무역까지도 가능한 접경지역을 전면차단하고 포기하는 것은 경제적 자살행위로써, 체제보위 자체 목적에도 위배된다. 따라서 이 모순해결을 회피한 북한 체제의 비참한 운명은 필사적 해결의 지양( 止 揚 ) 노력을 산생시킨다. 그것이 내륙지역과 고립시킨 나선특구의 재개발과 또 중국 측에 밀착된 황금평의 개발(신의주 특 구의 재판)이라는 접경지역 신개발(즉 그 기능의 통제관리) 로, 현재 표방의 대안을 띄워 주고 있다. 물론 중국과 국제사회가 보다 납득 하고 수용 가능한 방향이 발견되기까지에는 장기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그 정도의 성과를 내는데 필요한 개 혁 개방 속도를 낼 잠재력이 북한체제에 결핍되어 있다. 둘째, 반대 로 접경지역 신개발은 북한체제의 개혁 개방에 대한 위기감을 자극 한다. 북한은 접경지역 신개발의 과정에서 중국이 개혁 개방이라는 중국적 자기질서를 북한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증강 시킬 수 있다는 데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그 속도 등을 자체 조절하는 능력이 약화 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동북 노후공업지대 개발을 차기 성장 엔진의 한 가지 후보로 삼으려는 중국의 이해관계 16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76 때문에 북한의 접경지역 신개발에 필요조건인 한 가지 기회는 이미 등장해 있다. 나. 내륙지역에 비한 접경지역의 전반적 특성 그러면 내륙지대와 비교할 때 접경지역의 전반적 특성은 무엇인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항상적 비사검열지대라는 것이다. 비사검열 상 태가 정상상태인 지역이다. 이 비사검열의 대상은 다섯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해외와 북한주민과의 접촉이 항시적이다. 둘째, 해 외 문화가 항시적으로 유입된다. 셋째, 내부 정보 유출이 항시적이다. 넷째, 개혁 개방으로 사상염색이 심한 지역이다. 다섯째, 무역이 항시 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하 이러한 항목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 으로 서술한다. <항시적 비사검열 지대> 상대적으로 내륙지역이 간헐적 비사검열 지역인데 비하여 접경지 역은 항시적 비사검열 지대이다. 상기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가치가 큰 접경지역은 당연히 북한체제에게 있어서 폐쇄 불가능한 보급선이자 곧 개방 불가능한 위험선이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항시적 비사검열이 라는 고유의 특이한 통제방식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사검열, 즉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비사투쟁) 정형에 대한 집중지도 검열 에 대하여 여기서 간단히 짚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그 뜻은 지방에서 집행되고 있는 국방위원회 지시 비사투쟁 의 정형 을 중앙이 (즉 김정일 혹은 김정은의 권한과 이름으로) 조직 대행시 킨 비상설적 단체(북한의 속칭 그루빠 )가 (단기적으로) 집중지도 의 방법으로 검열하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다시 말하여 비사검열의 본질 Ⅳ. 북한의 사회변동 165

177 은, 지방의 당, 정권기관 및 현지 군부대들의 정형을 단기 검열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15년이 넘도록, 주권자의 이름과 권한으 로 중앙이 접경지역 전 지방의 권한과 업무를 항시적으로 가로타고 직접 행정대행( 行 政 代 行 )하다 싶은 상태를 만들어 냈다. 다시 말해 중앙의 지방에 대한 제도적 월권( 越 權 )의 합법화 로 완전히 변질되 었다. 한마디로 국가체계의 혼란이다. 이렇듯 국가체계를 혼란시키면서 주권자의 이름과 권한으로 월권 행위를 강행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지방의 변질상태 에 대한 교정하여 지역차를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북한당국의 시각에서 볼 때 합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월권행위가 항시적으로 만연하는 이유 로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것은 둘째, 부정부패라는 체제 자체의 질병 때문이다. 즉 현실적으로 접경지역에 대한 검열은 중앙의 검열 당국 및 그 공무원들이 위법적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체제보위가 목적인 검열의 원래 의도에 대한 배반이며,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대한 지속적인 제도적 침해이다. 즉 지역차를 인위적으로 존속시킴 으로써, 주권자의 이름과 권한을 사칭하여 지방 의 행정과 인민생활을 억압하는 구실을 만들어 내며, 이를 기관 및 개인의 사적 치부에 활용하는 부정한 체제위협 인 것이다. <비사검열의 대상 항목> 그렇다면 그 비사검열의 대상항목은 무엇인가, 또는 비사검열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상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 해외와 북한 주민과의 접촉이 항시적이다. 둘째, 해외문화가 항시적으로 유입된다. 셋째, 내부 정보 유출이 항시적이다. 넷째, 개혁 개방으로 사상염색이 심한 지역이다. 다섯째, 무역이 항시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16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78 해외와 북한 주민과의 인적 접촉 교류 내왕이 자율적으로 활성화된 지역 제도상 북한은 내륙지역이든 접경지역이든 주민이 해외와 자유로 운 인적 접촉과 교류 자체를 체제위협으로 보고 관리하고 있다. 특히 접경지역에는 해 내외 간 주민의 접촉과 교류의 가능성이 존재 하는 바 이것을 불허하고 엄중 단속하는 것이 북한 체제의 주요 통제대상 으로 되고 있다. 원래 중국 조선족과 북 주민 간의 접촉 및 교류는 1984년부터 주 민 상호 비자방문에 관한 양국 간 협정체결로 허용되었고, 연 수만 명 정도의 규모로 시작되었다. 한 중수교 등에 따른 중국 대외개방 진척 으로 남한주민과 미주와 호주 증 재외 한인들의 중국방문이 허용되었 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접경지대를 통해 북한에 있는 월남 이산가족 과의 상봉을 위한 접촉시도가 1990년대 이후 활발히 벌어졌다. (북한 민간은 이를 특히 사람찾기 로 분류한다). 그런데 1996~2005년의 10여 년간에 있었던 탈북 러쉬에 뿌리 둔 각종 접촉과 교류, 내왕 그리고 심지어 그 규모가 수십만으로 추산되는 탈북 이산가족이 새로이 발생 했다. 이 사회적 현상은 탈북, 기획 탈북, 인신매매, 산골동 (살아있는 골동품: 국군포로 등 한국의 고액 정착지원금 수혜자 대상을 접경지 역을 통하여 중국에 넘기는 일을 가리키는 은어), 결혼과 삯벌이를 위한 중국에로의 밀입국 등 다양한 인구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 년간은 북 중 당국의 엄중한 국경관리 등으로 그 유동인구는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한국과 중국에 산재하는 탈북자와 북한에 있는 그 가족친척간의 각종 목적을 띤 교류는 오히려 활발한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특이하고 새로운 양상은 중국 한족과 북한주민 특히 국경관 Ⅳ. 북한의 사회변동 167

179 리 당사자인 군인 등 간의 접촉이 강화되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조선 족이 북한주민과의 접촉 주체였던 것에 새로운 특색이 추가된 셈이다 (아래 항시적 무역 지역 참고). 해외문화의 항시적 유입 지역 북한에 유입되는 해외문화 중에서 일본, 유럽 등 서방의 영향은 접경지역보다는 오히려 내륙지역이 심히 받는데 이는 불가피하게 간 헐적 특징을 띤다. 한국의 영향도 원래는 서방의 영향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접경지역의 역할이 발달하면서 중국과 한 국의 문화 유입이 상대적으로 항시화 되고 있다. 먼저 접경지역을 통해 중국의 영향이 항시화 되고 있는 측면을 보자. 과거에는 북한문화가 중국 조선족에게 전달되는 전통적 제도 틀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 문화 인프라가 문화 역류( 逆 流 ) 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중국문화가 북한에 영향을 끼치는 통로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복장 등 유행, 식문화, 성문화, 볼거리 등 오락물 을 비롯하여 최근 북한의 문화 장르들은 그 중국색을 진하게 띄어 가고 있다. 한국문화도 접경을 통하여 유입되고 있다. 특히 연변과 단둥 등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가 한국색조로 농후해졌고, 대신 전통적이었던 북한 색조는 엷어졌다. 조선족 문화에서 한국 색조가 강해지고 북한 색조가 약해짐에 따라, 조선족의 한국색 문화가 북한에 흘러드는 문 화역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접경지역에서의 내부정보 유출과 중국전화 인프라 접경지역은 북한 내부정보의 유출지역이며 그 인프라로써 통제 16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80 곤란한 중국(휴대)전화망의 지역이기도 하다. 원래 이 중국전화망은 탈북 러쉬가 발생하기 전에는 오히려 해외창구를 독점한 당국자만 누 릴 수 있던 편의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탈북 러쉬가 발생하면서 중국 휴대전화는 접경지역 북한주민의 대중적 국제통신 수단으로 발전했다. 현재는 중국을 합법적으로 여행하며, 체류하는 북주민도 이에 빙자하 여 중국 휴대전화를 상식적인 국제통신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 뿐만 아니라 내륙지역 주민도 접경지역으로 직접 나아서 혹은 맞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면 실시간 통화가 가능하다. 과 거에는 국제통신 편의(전신전화, 텔렉스 및 서신 등)는 기술적 가능 성으로 하여 국가의 완전통제가 가능했다. 이에 대한 치명적인 주민 돌파구가 바로 이 접경지역 중국전화망이다. 이를 통해 내부주민과 중국에 불법 체류하는 북한주민(탈북자, 품팔이꾼, 인신매매자, 마약 장사꾼, 밀무역자 등) 간의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와 함께 정보 의 유출유입이 발생한다. 내부주민과 중국에 합법적으로 여행 체류하는 북한주민 간의 통 신도 정보의 유출유입을 발생시킨다. 또한 내부주민과 한국으로 넘어 온 북한 이탈주민 간의 통신도 당국이 매우 경계하는 정보 유출유입 통로로 되였다. 기술적 및 상업적으로 중국의 국제전화카드를 구입 (중국에서 일반 자유판매가 됨), 이용하면 접경지역에서 해외 그 어 느 나라의 상대방과 통화를 할 수 있다. 개혁 개방의 사상염색 지역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내륙지역과는 달리 접경지역은 중국 개혁 개방 의 사상과 가치관, 현실을 북한 내부로 유입시키는 창구역할을 하게 된다. Ⅳ. 북한의 사회변동 169

181 사상과 가치관의 전달을 보면, 법치주의 전파를 들 수 있다. 사회 를 대표하는 사상의 차원에서 보자면, 북한은 과거 덕치주의 국가였다. 그런데 이것이 1990년대에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현재는 북 한당국이 겉으로 우리식 사회주의(집단주의와 계급적 원칙) 를 복원 하겠다는 재건 노력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불가능하고 다만 그 붕괴속도를 지연하는 것 이외에는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정책 속으로 특색 있는 사회주의, 개혁 개방 중국의 법치주의 및 그 파생적 가치관, 사회관이 유입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를 사 상오염 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학문적 불모지이기 때문에 사상과 가치관을 이성적인 전 파 수단으로 염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간의 경험으로부터 내릴 수 있는 교훈은, 염색은 오로지 북한주민의 현재 세속적 욕구를 만족 시키는 현실적 전파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접경지 역 북한주민에게 중국 위안화, 중국 사람, 중국 상품 및 중국 여행 등 이 일상화됨으로써, (중국의) 사상과 가치관은 북한주민의 삶과 생각 에서 비로소 현실적 교훈으로 편성되고 기능할 수 있게 된다. 항시적 무역지역 접경지역에 비하면 분계연선 및 항구 지대는 간헐적 무역지대로 자리 매겨진다. 북한의 특이한 폐쇄성은 그 정상적 및 전반적 대중무 역의 특혜를 접경지역에 집중시키고 있다. 항시적이라 함은, 내륙지역에 비하여 접경지역은 그 경제적 자구 (자체구입)활동에 기본적으로 중국과의 무역을 편의상 선택한다는 것을 뜻한다. 전국 배급제가 기관배급제 및 자구제로 재편되기 전에 도 신의주와 의주군, 신도군을 제외한 접경지역은 전 북한적으로 식 17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82 량 자급률이 매우 낮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경제적 곤란으로 재편된 이후 접경지역은 자체충당을 위해서는 물론, 내륙지역의 기관 공급과 자구활동에 대한 보장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항시적 무역지 역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적이라 함은, 내륙지역에 비하여 접경지역에서는 그 국가기 관, 기업 및 가계 등 경제주체, 또 도시와 농촌, 노동자, 사무원, 청년 학생, 여성 등 각 계층 등 모든 북한주민과 단체들이 중국과의 무역 (합법적 및 비합법적을 통틀어)에 거의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뜻한다. 식량 등 물자배분 재편 이전에는 무역활동은 제도적으로 제 한된 대외경제기관 전문분야이었다. 하지만 재편 이후 접경지역의 지 대는 이 지역 전 계층 주민들과 기업소, 국가기관들의 경제적 기회로 되였다. 이 경제적 기회 참여가 곧 접경지역의 전반적 무역활동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접경지역의 새로운 무역기능, 경제기능은 국가의 비사검 열 비중 못지않게 중요한 실리적 의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하 접 경지역의 그 무역활동을 보다 자세히 분류해 보기로 한다. 첫째, 접경 지역은 북 중 간 물류지역이다. 최근 공식적 북 중 무역통계들이 보 여주는 바와 같이 대중무역 비중은 증가일로에 있다. 그 적지 않은 부분이 접경지역을 통하고 있다. 특히 광물 중에서 철, 동, 아연 등 각종 정광물은 접경지역을 통하여 수출되고 있다. 원유, 비료, 설비, 차량 등 수입품도 접경지역의 북 중 간 세관을 통과하고 있다. 접경 지역 물류에서는 합법적 무역 외 비합법적인 것, 즉 밀수의 형태를 도외시 할 수 없다. 비록 중국의 시선에서 보면 밀수이지만 북한의 시선에서 보면 밀수가 아닌 물류 형태와 경우가 합법적인 것 못지않 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한족이 중국의 대북무역 주체로 등 장하면서 밀수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접경지역을 통한 폐철 및 폐 Ⅳ. 북한의 사회변동 171

183 비철함금의 대중수출도 적지 않았다. 또 민간 대북지원 물자도 최근 에는 접경지역을 통과하는 추세로 이행하였다. 둘째, 위안화 통화지역이다. 접경지역의 경제적 특색은 다른 지역 에 비해 현저히 위안화 통화지역으로 변화되는 화폐 유통 상황이다. 북한의 매우 낙후한 신용 형편에서 접경지역의 경제적 실동기능은 보 다 안정한 통신 인프라와 함께 통화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가격, 지불, 금리계산, 송금 등 금융개념들이 위안화 본위로 이전된 것은 접경지역의 상식적 상황이다. 화폐유통으로 보면 접경지역은 이 미 중국의 속령에 다름없다. 셋째, 북 중 간 협동생산 지역이다. 여러 가지 경제적 측면과 마찬 가지로 생산의 면에서도 접경지역에는 중국의 손이 일정한 깊이로 개 입되어 있다. 동해 북부어장이 이미 중국어선의 조업 혹은 중국의 투 자에 의하여 조업하고 있음은 1990년대부터의 일이다. 평북도 신도 군 근해 등 서해어장에도 중국 중개업자와 북한 해상경비 당국과의 국제결탁으로 중국 어선들이 영해를 침범하여 버젓이 불법으로 조업 하고 있는 형편이다. 평북 의주군 덕현 철광산, 평북 삭주군 몰리브덴 광산, 양강도 혜산 동광산, 함북 무산 철광산 등은 이미 중국의 투자 로 가동하고 있다. 양강도와 함북도의 림장은 이미 중국의 투자로 채 벌하여 왔었다는 것은 아는 사실이다. 접경지역의 약초 및 토산물 채 집, 모피가공 등도 중국과 관련된다. 넷째, 북 중이 통합적 통상구가 되고 있다. 나선시는 물론 함경북 도, 양강도, 자강도, 평북도 등 접경지역 전체가 대안 중국 국경지역 과 하나의 통합 통상구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자유통상구나 활발한 통상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상구는 북한의 역사상 존 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라 점도 사실이다. 북한에서 나선시의 상 업적 지위는 물론이고 혜산시에 있는 양순 백화점, 신의주에 있는 모 17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84 백화점 등은 다 북 중합작으로 운영되는 상업기관들이다. 북한시장에 서 중국 상품 점유율 증가에 바로 이처럼 접경지역에 전개된 북 중 합작 상업중심들의 적극적 역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 내륙지역에 비한 접경지역 주민의 전반적 특성 이상에서는 내륙지역에 비한 접경지역의 전반적 특성을 정리했다. 여기서는 접경지역 주민의 상대적 특성(이하 접지주민 특성 )을 정리 해보기로 한다. 한마디로 접지주민은 북한의 인격 변화의 선구자적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서는 접지주민과 내지주민의 상대적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다섯 가지 항목을 서술한다. <정치사상적 특징> 북한에서는 1960년대까지 사회주의형 인간 이 지향되고 있었으 나 1970년대부터는 실질상 덕치주의적 인간 으로 전향하였다. 이 덕 치주의는 특수하게는 사회주의적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방향, 보편적 으로는 법치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 덕치주의 인격이 사실상 급격하게 붕괴하 는 양상이 나타났다. 덕치주의 붕괴의 최대 이유는 김일성의 사망과 체제의 변질, 즉 총체적 탈( 脫 )덕치주의에 있었다. 즉 국가로서 덕치주의를 유지할 국 력( 어버이 수령 과 어머니 당 등)의 상실에 있다. 북한은 지정학적 으로 대국들로만 둘러싸인 세계특유의 약소국인데, 국제적 개혁 개방 추이로부터의 이탈을 고집하고 있었다. 북한의 이러한 고집이 주변 대국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도래하자, 덕치주의는 급격히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덕치주의 국가에서 그 사회질서의 붕 Ⅳ. 북한의 사회변동 173

185 괴는 곧 도덕의 붕괴 혹은 전쟁상태 로 몰입을 의미했다. 이에 대해 북한체제가 선택한 대안은 전쟁상태 를 정확히 반영한 선군( 先 軍 )정 치로의 이행이었다. 이러한 전반적 및 급격한 붕괴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 이 바로 접지주민이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붕괴 대안인 각자자구책 이 제 손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그들에게는 체제보 위 선전 혹은 선군정치 허황성을 직시할 눈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지주민의 가치관 변화는 내륙지역 주민의 가 치관 변화를 훨씬 앞섰었다. 즉 이들은 탈정치화, 탈사회화의 선구자 로 되었다. <경제적 특징> 북한은 현재 배금주의의 지배 속에 들었다고 여기는 게 정설이다. 지금에 와서 접지주민이 내륙지역 주민에 비하여 배금주의적 성향이 더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게 되였지만, 주민평균 성향상 배금주의화 속도 기록의 보유자라고는 볼 수 있다. 1990년대 그 고난의 행군 속에 중국 상품을 100배까지의 가격차 로 팔아 초기축적을 기록 갱신했다는 주민은 오로지 당시 접경지역에 만 존재 가능하였다. 내륙지역에 불가능한 이 기적을 접경은 다름 아 닌 고난의 행군 탓에 획득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 면 밀수가 유일하게 가능한 지역이 두말할 것 없이 접경지역이기 때문 이다. 인신매매를 할 수 있는 것도 접지주민의 경제적 특징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면 그 어떤 제동기도 접경지역에는 존 재하지 않는다. 북한 내륙지역에서 가장 곤란하였던 1990년대의 경 우 사람을 죽여서 인육을 판매하는 반인륜적 경제범죄 현상이 일시 17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86 발생된 것을 제외하면, 정상적 경제활동에서 접경주민의 내륙지역에 비한 특성은 밀수 라는 지역 특성적 경제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 닌가 여겨진다. <문화적 특징> 접지주민의 문화적 특징은 장기적인 비사검열 지속으로 인하여 지역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그것은 사회를 철저히 미분화하는 비사검열의 특성과 관련된다. 북한의 집중지도나 집중검열 문화는 정권의 절대적 폭력 하에 주민 상호 간 이간, 감시 및 선착( 先 着 ) 밀고경쟁을 통한 생존방식 이외 모든 문화적 특징을 철저히 분쇄한다. 그 결과는 대체로 두 가지 적응적 생존형태가 나타났는데, 하나는 기능적으로 제도에 밀착된 밀고자로 전환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 력적 부정부패(뇌물상납과 향응접대 등)에 가세하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인륜도덕이나 양심의 여지는 없다. 즉 덕치주의마저 붕괴되 고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약육강식의 비인간적 피라미드 관계만 남는 다는 것이 한 가지 극단적 평가이다. 이러다 보니 그 특징이라고 볼 문화로, 비록 정치적 죄목이라도 돈만 받을 수 있다면 중국대피( 待 避 )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륙지역에서는 상상도 못 할 현상이 접경지 역에서는 나타난다. <사회적 특징> 전국적으로 탈북자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접경지역 사회이 다. 북한은 8.15 직후와 6.25전쟁으로 천 만을 헤아리는 월남 이산가 족 을 휴전선에 보다 가까운 내륙지역에서 발생시켰다면, 1990년대 Ⅳ. 북한의 사회변동 175

187 고난의 행군 으로 적어도 수십만을 헤아리는 탈북 이산가족 을 이번 에는 북 중 접경지역 쪽에 옮겨 또다시 발생시키는 새로운 사회적 비 극을 재현시켰다. 일부 개별적 통계에 의하면 함북도 온성군으로부터 회령시, 무산 군, 연사군, 그리고 양강도 보천군, 혜산시 등 부분적 접경지역에서 주민 50% 이상이 이러한 탈북 이산가족 이라고 한다. 이러한 탈북 이산가족에 드는 주민은 혼인이나 친구관계를 맺는데 새로운 계층 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탈북 이산가족 계층에 대한 대 량 추방을 계획하였던 정부당국도 실제 이렇게 전체 접경지역 사회 의 질을 규정하리만큼 많은 수의 주민들을 추방으로 소화해낼 지역 의 부재라는 난관으로 그 실행에 옮기는 것에 좌절당한 형편이다. 이것은 접경지역에서 기존방식을 따른 사회화 과정의 불가능성 혹 은 종말을 의미한다. <접경주민의 인성적 특징> 이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격이 세다. 비사검열은 해당 지역사회를 일종의 전쟁상태 환경으로 내몬다. 워낙 북쪽 사람 은 북한에서도 성격이 드센데 상시적 전쟁상태로 하여 각자 자기보호 를 자기가 하는 자연권 발동에 항상 동원되어 있다. 둘째, 상업지대 이윤획득에 관한 기품이 특히 발달했다. 내륙지역과 중국을 연결하는 밀수 지대( 地 代 ), 일명 터세 에 대한 확고한 기품이 발달되어 그 수 익을 due 로 여기고 있다. 내륙지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북한 덕치주의 붕괴상이 가장 발달된 인성 소유하고 있다. 위에 서도 말했지만 북한의 도덕사회의 붕괴를 겪고 있다. 그 붕괴상( 相 ) 의 전형은 바로 접경주민으로 놓을 수 있다. 그것은 정상적 비사검열 17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88 의 결과에 다름없다. 사회 질서의 파괴, 특히 도덕질서의 붕괴의 극단 은 인간의 개별화에로 수렴인바 지금은 가족의 해체위기에서는 유턴 한 듯하다 년 이후 접경지역에 대한 비사검열의 양상 북한정권은 사회에 대해 취약해지는 장악력을 보강하기 위해 다 방면으로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1990년대 중반 당을 대신하여 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또한 가장 정권에게 위태로웠 던 1990년대 중반에는 공개총살과 같은 본보기적 국가폭력의 행사가 현격하게 증가했다. 이와 같은 본보기적 국가폭력 행사는 2000년대 들어서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화폐개혁 이후인 2010년의 경우 다시 증가하는 추세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밖 에도 북한정권은 주기적으로 장마당 및 시장 활동에 대한 통제와 이 완을 반복해왔다. 시장활동에 대한 통제는 2005년부터 강화되기 시 작하여 2007년과 2008년 한층 강화되었다. 시장활동에 대한 가장 강 력한 공격은 2009년 11월의 화폐개혁조치였다. 북한당국의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 중에서 현시적으로 가장 중요 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정규적 대응 체계의 강화 이다. 인민보안부, 국가보위부, 보안사령부 등 각종 공안기관의 강화 와 형법 및 형벌 체계 개선이 이에 속했다. 둘째, 비사회주의 타파 그 루빠의 파견과 같이 (원래) 비상설적인 수단이 항시화 되고 있다. 원 래 북한에서는 당기구가 주도하는 당생활을 통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적 사업에 범죄나 일탈을 발생 이전에 예방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당기구의 정치적 사상적 사업이 제구실을 할 수 Ⅳ. 북한의 사회변동 177

189 없게 되자, 상설적인 각종 공안기구를 강화시킴과 함께 비상설적인 비사회주의타파그루빠를 조직했다. 이 그루빠는 보통 당기관, 각종 공안기관의 연합체로 이루어져 상호 담합이 어렵도록 조직되어, 주로 지방과 하부 단위에서 발생하는 당과 정 및 돈주와의 결탁과 결합을 타격 대상으로 했다. 비사회주의 투쟁은 1992~1993년에도 조직되어 공장기업소에 만연하는 생산물 횡령을 단속했다 년 김정일이 사상교양의 시대는 지나갔다 고 선언하면서, 비사투쟁은 본격화되 었다. 대표적인 것이 보위사령부의 혜산의 지방 당정기관에 대한 타 격이었다. 325 이후 2000년대 중후반 들어 비사그루빠의 파견은 중앙 의 지방에 대한 가장 중요한 통제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5년 부터 개혁정책이 공격받기 시작한 이후 2007년 4월 박봉주 총리가 물러나고 그 다음 달인 5월부터 정권의 사회에 대한 비사검열의 강도 는 현격히 증가했다. 326 주목할 만한 것은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전후로 하여, 특히 11월 이후 북한당국의 내부 통제를 위한 각종 검열과 비사투쟁이 현격하게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11년 10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에서 거의 1년여를 넘기고 있다. 또한 각종 지시는 김정은이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검열과 비사투쟁은 3방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탈북 방지 투쟁, 둘째, 대마약 투쟁, 셋째, 중간 간부 검열이다. 지난 1년 동안의 대략의 추이를 보면 이렇다. 첫째, 2011년 초 중동 재스민 혁명에 관한 소식이 북한 내부로 전파될 것에 관한 경계심이 강했다. 둘째, 보위부, 당을 제치고 보위총국(사령부), 호위총국이 직 접 투입되고 있다. 셋째, 각종 합동 검열이 시행됨, 검열단 자체의 부 324 박형중, 북한의 개혁 개방과 체제변화 (서울: 해남, 2004), pp 림근오, 2000년 혜산 비사검열과 그 잘못. 326 박형중, 북한 변화 의 재평가와 대북정책 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90 패가 극심하다. 넷째, 특히 함북도, 양강도 국경 연선을 중심으로 이 루어지고 있고, 9월에는 평안북도로 확대되었다. 다섯째, 호위총국과 보위총국이 직접 나서서 국경경비대와 세관을 그리고 변경지역 보안 기관에 대한 검열을 실시했다. 여섯째, 탈북자 가족을 내륙에 추방하 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곱째, 국경지역에 CCTV를 설치하고 공민 증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2010년 11월 이후 현재(2011년 10월 말)에 이르는 비사검열 주요 활동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김정은은 11월 탈북 저지 및 색출 을 위한 검열대를 파견했고, 이와 관련 5호 담당제를 3호 담당제로 바꾸었다. 327 김정은은 11월부터 보위사령부를 동원하여 함흥시에 대 해 마약 집중 검열을 시행했다 월에는 무산, 혜산 등에서 뇌물 수수, 불법밀무역, 주민탈북방조 등과 관련하여 비리간부에 대한 조 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329 역시 11월에는 김정은 등장이후 사회 기강잡기 차원에서 보위사령부와 국가보위부가 주도하여 각 세관과 무역회사에 대한 강력한 검열이 실시되었으며, 아울러 서비차에 대한 단속도 진행되었다. 330 이 때문에 장마당이 침체했다. 김정은은 아울 러 11월 15일 국가안전보위부에 북 중 국경지역에서 한국 노래가 유 포되고 있는 것을 엄중 처벌할 것을 지시했다. 331 김정은은 또한 2010년 12월부터 보위사령부가 총정치국을 포함 327 강미진, 김정은, 5호담당제를 3호담당제로 바꿔라, 데일리NK, 2010년 2월 24일. 328 정영, 북, 마약단속에 군 보안당국 동원, 자유아시아방송, 2010년 12월 15일. 329 NK지식인연대, 무산군 보안부 간부 15명 숙청, NK지식인연대, 2010년 11월 15일; 문성휘, 북, 김정은 체제 강화 숙청작업, 자유아시아방송, 2010년 11월 27일. 330 최오남, 김정은 등장 이후 세관에 대한 검열 강화로 장마당 침체돼, 열린북한방송, 2010년 11월 4일. 331 남설희, 김정은, 국경지역에서 한국노래 유포자 적발지시, 열린북한방송, 2010년 11월 17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79

191 한 각 군단을 상대로 검열을 하도록 했다. 북한 돈주들의 70%가 군 부에 속해있으며, 대체로 총정치국, 총참모부 등 군부 우두머리들, 후 방 및 정치 지휘성원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김정은은 12월 7일 중 앙당 행정부를 통해 국경지역에 비사회주의를 완전히 없애라 는 지 시를 내렸다. 332 이는 김일성의 생일 전인 2011년 4월 10일까지 진행 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중앙당 행정부 부장을 책임자로 보위사령 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중앙검찰소, 중앙재판소의 부소장급 으로 비사그루빠가 조직되었다. 이 기구에는 즉결처분 권한도 부여되 었다. 이 그루빠는 함경북도 국경지역인 무산, 회령, 온성, 새별, 은덕, 나선 지구에 각각 분산되어 지방 당, 행정, 사법기관과 협조했다. 그 대상은 마약 및 위조지폐 밀매, 탈북도강 및 불법전화, 외국인과의 접 촉을 통한 비밀교류 적발이었다. 2011년 2월 이후 이 그루빠는 보위사 령부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333 특히 탈북문제를 심하게 다루었다 월 초부터 회령에 대해 실시되었던 비사검열은 회령 전체를 대상 으로 했다. 335 다시 말해, 당 간부와 법관들, 공장기업소 일꾼들, 일반 노동자, 기타(마약, 인신매매, 돈 전달 중개자, 손전화기 사용자 등)가 비사검열의 대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비사검열의 주요 대상이 썩을 대로 썩은 회령일군 이고,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한 당 일군과 법관들을 최대한 샅샅이 조사해 처벌 해임하고 새로운 일군들로 교 체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2월 초 양강도 혜산시 송동봉 보안서에서 비서와 지도원이 마약 1kg을 거래하다가 보위사령부 그 332 김명오, 김정은 태양절 전 비사회주의 없애라 지시, 데일리NK, 2011년 2월 7일. 333 NK지식인연대, 양강도 보안서 지도원 보위사령부 검열받던 중 자살, NK지식인연대, 2011년 3월 7일. 334 NK지식인연대, 북 보위사령부, 경비대 탈북브로커 연쇄 검거, NK지식인연대, 2011년 3월 15일. 335 좋은벗들, 최근 북한 실태( ~2011.2) (좋은벗들, 2010),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92 루빠에 체포되었다. 336 지도원은 자살했다. 2011년 초 북한당국은 국경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인 구조사를 실시했다. 인구조사는 현재 거주지에 없는 주민들의 행방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년 12월 30일 국가안전보위부 의 주도하에 주민들의 사상동향을 조사하기 위해 전국 각 시, 군마다 당, 행정, 근로단체간부들로 이뤄진 비사회주의조사그루빠 가 조직되 어 1월부터 활동을 개시했다. 338 통상 이와 같은 비사그루빠는 중앙 당, 도당, 군당의 지휘 하에 인민보안부가 실무를 맡았으나, 이번의 경우는 국가보위부가 직접 장악한 것이 특징이었다. 김정은의 보위부에 대한 2011년 첫 지시는 방북 중국인 반탐 강 화 와 중국내 탈북자를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명령이었다. 또한 보 위부와 군부 합동으로 마약단속 상무조를 조직하여 1월 5일부터 활 동시켰다. 339 과거 마약단속은 인민보안부 담당이었는데, 이번 단속 은 보위부와 군부의 합동으로 진행되는 것이 달라진 점이었다. 1월 초부터는 중앙당군사부와 보위사령부의 3군단 사령부에 대한 집중 검열이 있었다. 340 여기서는 젊은 군관들의 한국영화 시청, 군대의 보 급 및 부패에 대한 불만을 주로 다루었다. 이는 김정은이 당중앙군사 위 부위원장 취임 이후 최초의 검열이었다. 군대의 식량난과 군기문 란, 주민피해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총참모부는 1월 중순 북한군의 식 336 NK지식인연대, 양강도 보안서 지도원 보위사령부 검열받던 중 자살, NK지식인연대, 2011년 3월 7일. 337 문성휘, 북, 국경지역 주민 인구조사 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2월 17일. 338 남설희 북, 국가안전보위부 주도로 주민들 사상동향 조사그루빠 조직,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6일. 339 남설희, 김정은, 체제위협하는 마약과의 전쟁선언, 열린북한방송, 2011년 1월 14일. 340 NK지식인연대, 북한군 3군단 사령부 하층장교 중앙군사위 검열받아, NK지식인연대, 2011년 2월 23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81

193 량실태와 피복상황 등 후방사업과 병사들의 훈련기강을 점검하고 대 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문을 내려 보냈다 월 18일에는 김정일의 지시로, 118상무 라는 조직이 신설되었다. 이 조직의 임무는 보위부 와 검찰, 보안서 당기관의 합동조직으로 주민 보유 영상장비, 마약, 밀수밀매 등 비사회주의 전반에 대한 단속통제였다. 그런데 이 조직 의 구성과 임무는 2005년부터 활동하던 109상무 와 동일했다 월 26일 북한은 이례적으로 선군청년총동원대회 를 개최했다. 343 이는 김정은의 비준하여 열렸으며, 그 기본 목적은 원산, 신의주, 평성 등 에서 조폭청년조직이 난립하여 강도약탈을 일삼는 등, 퇴폐한 자본 주의 풍조 와 연관한 비사회주의 현상 에 대한 정리사업 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344 김정은은 2010년 2월 이후 국가안전보위부, 군 보위총 국, 당조직지도부의 검열성원으로 비사그루빠를 만들어 원산과 신의 주에 내려 보내고 이를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중동의 정치변동 상황 전개에 맞추어 북한당국도 여러 가지 조치 를 취했다. 주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동시에 취해졌다. 345 먼저 주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를 보면 이렇다. 북한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 이후 대대적인 주민 단속을 예견하고 있었지만 취소되었다. 양강도의 경우 2월 초부터 보 위사령부 검열대가 들어와 자료작업에 착수했고 2월 16일이 지나서 부터 집중적인 검거와 단속이 예견되어 긴장감이 높았는데 아무런 이 341 임정진, 북, 군 식량 피복 점검하라 검열조 파견, 데일리NK, 2011년 1월 24일. 342 문성휘, 불안한 북, 주민 감시 조직 또 신설,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3월 2일. 343 임정진, 북 대규모 청년대회 개최 민주화 바람 차단용, 데일리NK, 2011년 2월 27일. 344 룻 김, 김정은이 지시한 선군청년동원대회 개최, 청년들 사상정신상태 정리가 목적, 북한전략정보센터, 2011년 3월 16일. 345 문성휘, 북 당국, 주민통제 수단 총동원,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2월 28일. 18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94 유도 없이 검열대가 철수했다. 또한 김정일 생일 이후로 예견되었던 마약청산을 위한 교방검열 (상호 교환검열)도 전격 취소됐다. 지난 20일에는 인민보안부 명의로 된 지시문이 각 지방 보안서들에 내려 왔는데, 그 내용이 생계형 범죄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낮추고 교양사 업을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 해졌다. 북한당국은 2월 중순경 대학들마다 담당보위원과 보안원들 을 4명씩 추가로 배치해 대학생들의 기숙사 생활까지 주야로 감시한 다든지 기동타격대, 순찰대, 노동자규찰대 인원을 대폭 늘려 순찰 활동을 강화했다. 또한 2002년 이후에는 거의 운영되지 않던 인민반 초소들을 다시 보수하고 매일 저녁 한 개 인민반에서 3명씩 경비조를 구성해 야간경비를 서도록 감시활동을 강화했다. 3월에는 인민보안부 산하에 특수기동순찰대 가 조직되었다. 346 이는 2009년부터 그 설립이 시사되었지만, 2011년 초의 중동사태가 촉진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월 초 김정일의 친필지시가 있었다 한다. 347 규모는 한 개 도에 200명, 시급에는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급에는 헬리콥터 한 대가 배치되었고 착륙장이 신설되었다. 주요 임무는 폭동 진압이다. 구성은 주로 경보병 출신으로 되어 있다. 혜산 시의 경우 기동타격대 가 옛날 연봉 장마당 건물과 검산동에 있는 카 리비료 공장건물에 나누어 주둔했다. 348 연봉 장마당 자리에 200명, 카리비료 공장 자리에 300명이 주둔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기동타 격은 실제로는 최정예부대로 훈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동타격대 훈련은 살인과 테러 실행을 포함할 정도로 매우 가혹하여 자주 인명 사고를 일으켰다. 기동타격대의 훈련이 이토록 가혹한 것은 민간인은 346 편집부, NK 리포트, NK Vision, 제22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11), p 임정진, 북, 김정일 지시로 폭동진압 기구 발족, 데일리 NK, 2011년 2월 23일. 348 문성휘, 북, 기동타격대는 전문 테러부대,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21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83

195 물론 군부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한편 3월 9일부터 신의주 세관와 혜산세관을 비롯한 국경세관이 폐쇄되었다. 349 그 이유는 2월 24일 혜산에 이집트 민주화를 알리는 삐라가 뿌려진 것을 비롯해, 사람이나 중국 핸드폰 등을 통해 리비아 사태 등의 소식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 했다. 3월 9일부 터 세관들에서는 보위 사령부와 중앙 검찰, 국가 보위부, 보안부와 당 일꾼 등을 포함한 검열단의 강력한 검열로 식량을 제외한 물건들의 거래가 차단되었다. 또한 사사(개인)여행자들이 중국에 가기 위해 떼 는 여권도 잘 만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사사여행에 대한 금지 는 5월 중순에도 계속되었다 월경까지도 내부 통제 분위기는 더 욱 강화되었다. 4월경 두 사람 이상씩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길거리 에서 만나더라도 장시간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가 전국에 내 려졌고 인민반에서도 이 같은 내용으로 강습이 있었다. 351 한편 중동 시위 사태로 북한의 근로자 해외파견이 금지되었다. 352 북한은 탈북자 단속을 대폭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3월 하순경 보위사령부는 국경별동대 를 조직하여 탈북자 색출에 나섰다. 353 이들은 온성, 회령을 비롯한 두만강 연선 지역에 본래 근 무하던 국경경비대와 별개로 배치되었다. 보위사령부는 탈북경로를 349 최오남, 최오남 북한 국경지역들에 리비아 소식 확산 막기 위해 혜산세관 폐쇄, 열린 북한방송, 2011년 10월 3일 년 하반기 북한은 청년대장의 배려 라고 하면서, 중국에 친지를 둔 주민들의 방문 을 적극 허용했었다. 50세 이상자에게는 통상 3개월의 중국 여행을 허용하면서, 되도록 많은 경제적 도움을 받도록 했다. 김준호, 북 당국, 중국 친지방문 다시 족쇄, 자유아 시아방송, 2011년 5월 13일. 351 좋은벗들, 두 사람 이상 식사하지도 말고, 장시간 말하지 말라, 오늘의 북한소식, 제 398호 ( ). 352 최민석, 북, 중동사태 이후 근로자 해외파견 금지,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24일. 353 NK지식인연대, 北, 두만강지역 봉쇄에 국경별동대 급파, NK지식인연대, 2011년 3월 25일. 18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96 열어준 경비소대장 등을 간첩 으로 몰았다. 4월 13일에는 국경지역 여단사령부는 북 중 국경지역 경비대 보위지도원들에게 특별경계령 과 함께 탈북자 검거를 위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354 도강하려는 사람들이 건네주는 도강비 는 액수에 관계없이 경비대원 본인이 챙 기되 이 사실을 즉시 경비대 상급기관에 알리라는 것이었다. 성과를 내는 경비대 군인은 포상으로 현금이 지급되며, 공로를 인정받아 후 보당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노동당원이 될 수 있는 화선입당 의 특혜가 주어진다고 했다. 또한 탈북자뿐 아니라 브로커와 선교사까 지도 체포하도록 했다. 4월 5일부터는 주민들의 탈북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일환으로 국경지역에 인발(조명)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다. 355 이 지뢰는 인계철선을 연결해서 땅에서 10cm 정도 높이에 설치하는 데 사람이 지나가다 선을 건드리면 지뢰가 하늘로 발사되면서 인근 을 환하게 밝히는 일종의 조명지뢰이다. 5월 초에는 양강도의 경우 인민반 회의 때 김정은 동지 말씀 이라고 하면서 마약, 밀수, 인신매 매, 비법월경(탈북)자들을 엄중히 처벌할 것에 대하여 포치되었다 356 5월 하순경에는 국경경비대 매 초소마다 보위사령부 검열조가 두 명 씩 배치돼 군인들과 한 사람씩 담화를 벌이는 등 개별적 조사를 통 해 탈북에 가담한 군인들을 색출했다. 이는 김정은 지시에 따른 것 으로 알려졌다. 357 한편 국경일대 탈북 단속의 강화로 탈북 비용이 빠르게 상승했다. 2011년 초 400만 원에 도달했던 도강 비용은 5월 하순경 500만 원으로 다시 올랐다. 358 이러한 추세는 10월까지도 계 354 이명호, 국경 경비대들, 탈북자 검거 위한 새로운 007작전,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4월 26일. 355 현건, 북한 북 중 국경지역에 탈북 막기 위한 조명지뢰 매설 중, 열린북한방송, 2011년 4월 9일. 356 이석영, 北 김정은 비법월경자 엄중 처벌 지시, 데일리NK, 2011년 5월 3일. 357 이석영, 김정은 국경경비대 탈북 방조 뿌리 뽑으라, 데일리NK, 2011년 6월 3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85

197 속되었다 월부터 1118상무 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360 이 조직 은 2010년 11월 18일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되었다. 1118상무 는 당, 인민보안부, 인민군 보위사령부, 검찰 등 북한의 권 력핵심 기관의 간부로 구성되었다. 1118상무 는 검열에 있어 무제한 권한을 받았으며 일반 인민들만 아니라 당 일꾼, 인민군 보위일꾼, 인 민군 장교 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2009년 조직된 인민보안부의 기동타격대가 반란 시위진압을 위해 창설되었 는데, 반란 대상을 색출하는 일을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국가보 위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1118상무 를 만들었다고 한다. 1118상무 는 기존 검열 기관에 대한 불신에서 창설되었다. 북한에는 비사회주의 현상을 근절시키기 위한 검열 조직이 권력기관마다 하나 씩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검열 조직에는 국가보위부 소속의 1118상 무, 보위사령부 산하 전파 감시를 담당하는 27국, 마약밀수와 밀매 행 위를 감시하는 109상무, 꽃제비를 단속하는 111상무, 인민보안부의 순찰대, 기동타격대, 그리고 민방위부의 국경검열초소, 노동자규찰대 등이 있다. 그러나 기존 검열기관들이 인신매매, 마약거래, 밀수, 매춘 행위를 눈감아 주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자 이를 근절할 목적으로 109상무 보다 훨씬 큰 단위의 조직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국경지역 비사회주의를 없애 는 것과 관련하여 앞서 12월에 이어 3월에도 보위사령부가 주도하는 비사회주의 검열이 양강도와 함경북 도에 대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검열은 마약밀매와 밀수, 차판장사 단속, 탈북자 색출 등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양강도 비사회주의 검 358 최민석, 북 국경봉쇄로 탈북 비용 가파른 상승,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5월 27일. 359 좋은벗들, 도강 단속에 도강비 폭등, 오늘의 북한소식, 제425호 ( ). 360 노재완, 북 당국, 권력층까지 검열 강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30일. 18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198 열은 361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서 직접 5명이 파견돼 양강도 지구 사령부 보위부장, 부부장, 지도원들 20~30명과 함께 혜산시 각 동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또 차를 이용해 대규모로 장사하는 것(차판장 사)은 자기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것 으로 지목하여 비사회주의 단 속 대상으로 삼았다. 비사회주의 검열이 일상화되면서 검열성원들까 지 단속보다는 뇌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등 사리사욕 챙기기에 나 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열성원들이 비사회주의를 단속하기 보 다는 자신들의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열 첫날부 터 사사여행자(친척방문을 목적으로 입국해 장사하는 중국인)들이 오는 집을 찾아 다니고 큰 밀수꾼들의 집을 찾아 다니면서, 검열기간 동안 뒤를 봐주는 대가로 끝나고 갈 때 한 몫 챙겨달라 는 등의 부 탁을 했다고 한다. 아울러 무산군을 시작으로 50명의 군 보위사령부 검열 그루빠가 3월 20일부터 파견되어 대대적인 검열을 진행했다 명인 이번 그루빠의 규모는 과거 5~12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이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탈북자 동향파악 및 중국 등 외부와의 전화통화, 한국과의 돈 거래, 밀수, 무직자 색출, 주민여론 등 반체제활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조사했다. 그루빠의 파 견된 이유는 최근 이집트 등 아프리카 사태에 대한 소식이 중국과 한 국을 통해 북한에도 알려진 것 때문이라 했다. 탈북에 대한 단속 강화와 함께 행방불명자가 있는 가정(대다수 탈 북 가정)에 대한 집중감시와 단속이 시작되었다. 북한당국은 3월 21일 부터 대대적인 주민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363 양강도의 경우 각 시, 361 이석영, 마약 단속 검열 또 검열 뇌물에 효과 반감 ; 양강도 소식통, 3월부터 다시 시작돼 검열성원들 사리사욕 챙기기 앞세워, 데일리NK, 2011년 3월 18일. 362 남설희, 反 김정일 싹을 자를 50명 대규모 보위 사령부 검열 그루빠 파견, 열린북한방송, 2011년 3월 30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87

199 군 별로 조직되어 있는 안전위원회 를 중심으로 한국연고자, 탈북자, 행방불명자 가족들을 산골을 비롯한 오지로 추방하라는 지령이 내려 왔다. 이 추방 사업은 2009년 11월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동 간첩사건 을 계기로 하달되었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즉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으면 안쪽 지방으로 이주시키라는 방침이 내려졌고, 탈북자 가족 조사 작업이 진행돼왔다. 364 추방은 4.15 전후로 실시될 것으로 예정 되었다. 이는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 의 지시라고 했다. 김정은은 반동 집안들을 사정보지 말고 쫓아내라고 지시하였으며, 300만 명의 핵심 당원들과 군대만 있으면 사회주의는 언제나 지킬 수 있다고 했다 한다. 국가보위부는 평안남도 등 내륙지방에서도 탈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 를 강화했다. 4월 하순경 남포시 보위부 구류장에 수감된 50명 중 80%인 40명이 탈북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365 함경북도와 양강도의 뒤를 이어 5월 초까지 김정은의 주도하에 평안북도, 자강도에서도 100세대 이상이 강제 추방되었다. 366 또한 5월 1일부터 중국 결혼 브 로커를 색출하는 새로운 검열이 당, 보위사령부, 국가보위부가 중심 이 되어 시작되었다. 북한당국은 8월 6일부터 국경지역의(탈북자 가 족)에 대한 추방을 전면 실시했다. 367 북한당국은 국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에서만 2천 가구를 추방할 계획이며 1차적으로 지난 6일 30가구 를 추방했다고 한다. 이번 추방 계획은 지난 4월 15일(태양절) 전후 363 NK지식인연대, 北, 대대적인 추방 으로 주민정리, NK지식인연대, 2011년 3월 18일; NK지식인연대, 피바람 부는 北 추방현장, NK지식인연대, 2011년 4월 12일. 364 좋은벗들, 탈북자 세대 이주 사업, 일단 중지, 오늘의 북한소식, 제417호 ( ). 365 남설희, 탈북자 색출 및 가족 감시 강화 평남 등 내륙까지 확대, 열린북한방송, 2011년 5월 3일. 366 최오남, 탈북자 가족 강제 추방, 현재 100세대 이상 확인, 열린북한방송, 2011년 5월 4일. 367 NK지식인연대, 지방주권선거가 끝나자 탈북자가족 추방 단행, NK지식인연대, 2011년 8월 11일. 18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00 로 거론 되었다가 지방 주권선거 전인 7월 15일에 당위원회 결정으로 결론 난 것이라 했다. 탈북자 가족 추방 사업은 8월 중순경 잠정 중단 된 것으로 알려졌다. 368 이주 방책이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 론이 났다고 한다. 일단 탈북자 세대 규정 작업이 일단 만만치 않았 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도강을 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너무 많고, 행방불명자를 탈북자로 규정하기가 어려웠다. 행방불명자를 예 외 없이 탈북자로 규정할 경우,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명확히 탈북자 세대로 규명된 집들에 한해 이주시 킨다는 계획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탈북한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거나, 수입 대 지출이 심하게 맞지 않는 집 등에 대해서 는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반면 가족 중에 행불자가 있더라도 소토 지 농사나 장사로 근근이 먹고 살거나, 특별한 변화가 없는 집들은 이주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혹여 행방불명자가 탈북자로 판명이 되더라도, 그동안 연계가 없었다면 당사자에 한해서만 처벌한 다는 방침이 섰다고 한다. 4월 25일을 기점으로 북 중 국경연선의 주요도시들에 탈북을 막 기 위한 군단보위부 청사 가 신설되어 사업을 시작했다. 369 원래 탈 북 단속은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의 책임이었다. 당중앙군사 위원회는 도당에서 책임을 지고 이러한 청사들을 책임적으로 건설하 라고 지시했다. 각도 담당 군단보위부 청사는 국경지역에 위치한 평 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 등 4개 도의 도청 소재지인 신의주, 강계, 혜산, 그리고 청진에 설립됐다. 군단 보위부는 인민군 보위총국 (이전 보위사령부)내 최상위 조직으로 그 이하로는 사단보위부, 연대 368 좋은벗들, 탈북자 세대 이주 사업, 일단 중지, 오늘의 북한소식, 제417호 ( ). 369 조선아, 당중앙군사위원회, 북 중 국경연선 도소재지들 철도연선에 군부 각도 담당 군 단보위부 청사 신설하고 사업 시작,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5월 6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89

201 보위부, 대대보위부 등이 있다. 군단급과 사단급의 보위부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 이상의 보위군관들이 하나의 부서를 이루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보위총국은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5년경 국경감시 및 탈 북주민에 대한 단속을 도맡았던 적이 있었다. 5월 1일부터 2차 마약검열이 공개적으로 실시되었다. 370 김정은 은 마약이 군부에서는 물론 고위급 당 간부들까지 확산되는 것과 관 련, 마약이 뿌리 뽑힐 때까지 강도 높은 검열을 계속하고 심한 경우에 는 공개 총살까지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1차 마약검열은 김 정은의 지시로 2010년 작년 12월 시작되었었다. 1차 마약검열의 중간 총화로 전국적으로 50여 명이 2011년 1월 말에 비공개로 총살되었다. 평양시와 평성시에서 20여 명, 함경남도 함흥시 10여 명, 함경북도 7명, 양강도 5명 등이었다. 이에는 고위 당 간부, 군의 간부, 부유층, 일반 군인 등의 다양한 계층이 포함되었다. 이밖에도 수백 명이 수감되었다. 이 검열은 김정은의 지시로 실행되었다. 1차 마약검열은 비공개였는데, 2차 검열은 공개적으로 실시되었다. 1차 마약검열의 발단은 2010년 12월 군부의 마약 중독이 심하다는 소문이었다. 이에 평양시 안의 군 부들부터 진행된 검열이 시작이었다. 조사 결과 마약 중독현상이 전 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더 큰 문제는 고위급 당간부들과 상류층은 물론 군부와 보위 사령부 요원들도 마약을 하고 일부는 직접 매매를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래서 김정은이 마약검열을 전국적인 범위 에서 하고 총살 등의 엄벌을 내리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 당 시 국경지역 군인들도 하전사들까지 마약을 사용하고 심지어는 직접 판매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보위부 고위 간부들은 물론 보안원 (경찰)들까지 마약을 거래하고 직접 사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 370 최오남, 북한 김정은 지시 마약검열로 50여명 비공개 총살, 열린북한방송, 2011년 5월 8일. 19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02 었다고 한다. 김정은은 또한 5월 중순경 인민반의 지시를 통해 마약 단속을 강화하고, 빙두 생산자와 판매자, 흡입자들을 색출해 엄중 처 벌하라 고 했다 월 초 북 중 접경지역에 후계자 김정은 명의로 탈북자 단속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포치가 내려 왔다. 372 양강도에서는 5월 3일 인민반 회의 때 김정은 동지 말씀 이라고 하면서 마약, 밀수, 인신매매, 비법 월경(탈북)자들을 엄중히 처벌할 것에 대하여 포치되었다고 했다. 행 방불명자가 있는 가정(대다수 탈북 가정)에 대한 집중 감시와 단속이 벌어졌다. 담당 안전원들이 주민요해사업를 통해 행불자를 조사했다. 내부 소식통들은 김정은의 지시로 북 중 접경지역의 통제와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에 비사회주 의 검열이 연이어 진행됐고, 탈북자들의 북한 내 가족들을 오지로 추 방해 집단 거주시키는 강제이주 정책 도 현실화되고 있다. 더불어 외부와 통화하다 적발하면 당사자는 교화소로 보내고 가족들은 추 방조치 한다 는 포치도 내려졌다. 김정일 방중기간 동안(5.20~26) 11개의 북 중 북한세관의 업무 가 중단되었다. 373 그 목적은 김정일 귀국 동선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원래 김정일 열차가 통과하는 최소 하루 전에 세관업무가 중단되고 경호사업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이는 김정일 통과 사실을 알리는 효 과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아예 방문기간 동안 세관업무를 중 단했다. 이 때문에 친척상봉을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여행자들에 대한 귀국이 불가능해졌다. 아울러 김정일 방중기간 동안 북한 내부 371 이석영, 김정은 검열 주도 잦은 단속에 공포 확산, 데일리NK, 2011년 5월 11일. 372 이석영, 北 김정은 비법월경자 엄중 처벌 지시, 데일리NK, 2011년 5월 3일. 373 최정호 이석영, 김정일 귀국 전까지 北 세관 입국 업무 중단, 데일리NK, 2011년 5월 24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91

203 주민이동에도 강력한 통제가 있었다. 여행증명서 발급 중단, 국경경 비대 근무 기강 강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국경지역 외부통화에 대 한 단속도 강화되었다. 374 보위부원이 전파탐지기를 들고 하루 종일 감시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북한은 5월 말경 대대적인 주민등록 재조사에 들어갔다 월 도 시 군 인민회의 선거를 실시하기 위해 선거인 명부 작성을 목적으 로 주민구성 요해를 위한 조사작업이었다. 보안원들은 이번 선거에 빠지거나 행방불명되어 선거에 누락되는 가족은 추방과 처벌을 한다 고 협박했다. 6월 초 북한당국은 국경경비대 군인들에 대한 검열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376 주민들의 탈북에 국경경비대 군인들의 방조( 幇 助 )가 있었 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군인들을 적발, 엄격히 처벌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당국이 지난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양강도 등 접경지역에 김정은 명의로 탈북자 색출을 위한 검열 을 벌였다. 그러나 경비대 군인들을 대상으로 집중검열을 진행한 것 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소식통은 또 매 초소마다 보위사령부 검열 조가 두 명씩 배치돼 군인들과 한 사람씩 담화를 벌이고 있다 고 덧 붙였다. 개별적 조사를 통해 탈북에 가담한 군인들을 색출하고 있다 고 했다. 이처럼 검열조의 경비대 군인들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자 한 초소에서는 군인들이 탈영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와 관련 양강도와 두만강을 사이로 맞대고 있는 중국 창바이( 長 白 ) 지역의 검열도 강화 된 것으로 알려졌다. 374 이석영, 北, 국경 외부통화 단속 김정일 귀국동선 감추려, 데일리NK, 2011년 5월 26일. 375 이석영, 6월 지방인민회의 선거 100% 참여하라, 데일리NK, 2011년 5월 31일. 376 이석영, 국경경비대 탈북 방조 뿌리 뽑으라, 데일리NK, 2011년 6월 3일. 19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04 6월 중순경 북한 보안당국은 보안기관 내부의 기강을 바로 잡고 부정비리를 비롯한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하여 국경지역들에서 대 ( 大 )생활총화와 궐기모임들을 열었다 월 11일 토요일 오전 10부터 오후 2시까지 혜산에서도 양강도 보안국과 혜산시 보안서를 비롯한 산하기관성원들이 혜산시 교시관(김일성, 김정일의 혜산시에 대한 현 지지도관련 사적관) 대강당에서 대생활총화 및 궐기모임을 진행하였다. 특별한 사건이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될 때 진행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보안기관에서 발생한 보안원들의 비리와 전횡을 폭로 비 판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대생활총화와 궐기모임에서 는 회의 이후 보안기관에서 기강을 바로 잡고 보안사업에 전력을 다 할 것을 독려했다. 회의는 보안기관 내부에서 급증하는 마약 복용자 들을 적발하여 해임, 제대 시킬 것을 지시하였으며 보안기관 전체가 주의 할 것을 경고 했다. 특히 국경연선에서 국경 봉쇄 부서와 감찰과 성원들이 저지르는 비리를 공개하고 몇몇 보안원들과 간부들에게 엄 중경고를 주었다. 또한 국경통제, 시장통제를 비롯한 주민통제시 구 타와 폭행을 최대한 자제할 데 대해서와 국경에서 급증하는 불법월경 을 철저히 막을 데 대한 문제, 총기 사용 중 나타난 결함에 대하여 비판했다. 특히 보안원들이 오토바이 구입과 이용 과정에 저지른 비 리와 사건사고, 그리고 마약단속 과정에 발생한 비리와 부정축재 문 제가 도마에 올랐다. 6월 13일 김정은은 군부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에 공동명령 으로 탈북 하는 사람들은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월 377 NK지식인연대, 보안기관내 비리 척결을 위한 회의 진행, NK지식인연대, 2011년 7월 1일. 378 최오남, 서해 우도로 탈북한 9명 본 김정은, 탈북자들 발견 즉시 사살하라, 열린북한 방송, 2011년 7월 13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93

205 11일 소형 선박을 타고 서해 우도 해상으로 9명의 주민이 탈북 한 이 후인 내린 지시였다. 김정은은 오는 7월 24일 도, 시, 군 인민위원회 대의원 선거를 하는데 탈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 안 좋은 영향 을 가져올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생기지 않게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만에 하나라도 탈북 하는 사람들은 조국을 배반하는 역적으로 치부하고 처벌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의 명령에 의해 국경 경비대 군인들은 물론 안전원과 보위원들 에게 실탄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통제도 강화되어 국경지역의 주민 집 에 대한 검열도 무작위로 행해졌고, 주민들이 시장에서 퇴근하는 저녁 에 각 해당 분주소(파출소) 및 보위부, 당기관의 일꾼들이 주민들에게 나라를 배반하는 역적들은 사살 당해도 어디에도 상소할 곳이 없다는 발언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북 중 국경의 세관에서는 중국과의 정상적인 무역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경인 두만강 강가 등에 나가는 시간까지 정해 놓아 시간 외에는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6월 21일 도, 시, 군(구역) 지방 당 조직들에 7월 24에 진행할 도, 시, 군 대의원선거와 관련된 지시가 내려왔다. 379 이번 대의원 선거를 계기로 북한 지방 인민위원회들의 정권강화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번 지시문은 도, 시(구역), 군 대의원선 거를 실시할 선거위원회를 21일까지 조직하며 이번에는 각 지방 보 안부나 보위부 같은 안보기관 간부들의 대의원비율을 이전보다 높이 라고 했다. 또한 이번에 진행될 지방선거에서는 각 지역 공장, 기업소 지배인들 중 생산 계획과 노동자들의 물질문화생활개선에서 위훈을 세운 사람들을 기본으로 이전에 비하여 대의원추천을 10%정도 많이 하라고 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당기관 책임일꾼들을 축소하라고 379 최호연, 7월에 도, 시, 군 지방선거회의 진행 본지소식 확인(제2보), 북한전략정보서비 스센터, 2011년 7월 4일. 19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06 했다. 그리하여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회의를 계기로 체제안 전과 관련한 중앙기관 인사를 통하여 중앙정권을 강화하였다면 이번 에 계기로 지방에서까지 앞으로 발생될 반체제 관련 소요나 불평을 막기 위한 사업에서 성과를 거둔 30대, 40대 간부들이 중심으로 인사 에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각 지방 당조직들과 보안기관 들에서 지방 선거를 계기로 우선시되는 각 지방들에 거주하는 주민들 에 대한 재조사사업이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특히 이번 계기로 탈북 자 가족들에 대한 신원조사가 완결 지어지고 그에 대한 총화가 진행 되었다. 각 지역별로 조직된 선거위원회에 행불자 가족들과 은거자 가족을 확인하기 위한 전담 조직까지 구성해 가동시켰다. 380 함경북 도에서는 지방주권 선거를 위해 유권자 확인사업을 신속히 진행할 데 대한 중앙선거위원회의 지시문이 7월 1일에 내려왔다 고 했다. 이 러한 지시문이 내려진 이유는 행불자와 은거자들이 많아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취라고 했다. 북한당국은 6월 25일부터 7월 24일까지를 선거기간으로 정하고 공장, 기업소들은 물론 국경연선에 대한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381 한편 이번 지방주권기관 대의원선거 에서 북한당국은 선거비 명목으로 주민들로부터 상당 액수의 선거자 금을 반강제적으로 모금했다. 382 선거자금은 각 구 선거위원회들은 선거장을 꾸리고 선거 준비위원회 성원들의 업무추진비나 식사비로 사용되었다. 말로는 자원성의 원칙으로 지원하라고 했지만 동, 인민 반에서는 매 가구별로 일정한 금액을 정하여 모금하였다. 전국적으로 380 문성휘, 북, 대의원 선거 앞두고 행불자 조사 강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7일; NK지식인연대, 北 선거관련, 떠도는 사람 다 집으로 돌아와라, NK지식인연대, 2011년 8월 4일. 381 문성휘, 지방주권선거 투표율 최악,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25일. 382 NK지식인연대, 북한에 이젠 선거자금 모금이란 말까지 생겨, NK지식인연대, 2011년 8월 4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95

207 지역마다 서로 조금씩 차이 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평균 한 가구당 제일 많이 거둔 곳(평양시, 신의주시, 평성시 등)에서 1천원씩 모금했 고, 제일 적게 거둔 곳(양강도, 자강도, 함북도 등)에서는 5백원씩 거 두었다고 한다. 보안당국도 선거 준비로 분주했다. 통상 선거기간은 통제와 단속 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보안당국은 선거일이 공고된 후부터 주민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행사 당일에도 전체 진행을 관여해왔다. 이 번 선거기간에도 주민들의 이동 통제가 여전히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국경연선지역에서는 도강, 밀수행위 색출을 강화하고, 타지역주민들 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선거기간 동안에는 여행증명서를 아 예 발급하지 않았다. 383 이번 선거기간 동안 적지 않은 주민들이 탈북 했다. 회령시에서만 다섯 가족 모두 17명이 탈북했다. 또한 이번 지방 주권선거에는 상당수 유권자들이 불참했다. 군인들의 탈영, 건설현장 에서 도주, 중국 친척 방문 등의 사유가 있었다. 북한당국은 지방주권 선거에 빠진 주민들을 반당, 반혁명분자 로 규정하고 이번 선거기간 에 있었던 조직 이탈사건들을 철저히 수사할 데 대한 노동당 지시문을 각 사법기관들에 내렸다. 북한당국은 7월 24일 실시된 지방주권선거에 불참한 주민들을 검거하기 위해 사법기관들을 총동원했다. 384 이밖에 도 여러 사건이 발생했다. 385 김정은의 지시로 함경북도 6월경 호위총국 검열이 진행되었다 좋은벗들, 7월 24일,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준비 한창, 오늘의 북한소식, 제412호 ( ). 384 문성휘, 북, 지방선거 불참 주민검거 나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2일. 385 NK지식인연대, 지방주권선거구들에서 여러 가지 사건 발생, NK지식인연대, 2011년 8월 5일. 386 문성휘, 북 사법당국, 조직범죄에 속수무책,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22일; 문성회, 북 지방간부들, 호위총국 검열에 초긴장,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15일. 19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08 호위총국은 김정은이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검열 목적 은 지방간부들에 대한 물갈이 작업을 위해 흠집잡기에 나선 것으로 추측되었다. 호위총국 검열대는 2011년 2월 발족했으며, 보위부나 인 민군 보위사령부가 손을 댈 수 없는 도당 내부까지 마음대로 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호위총국 검열대는 4월 말경 함 경남도 당, 정권기관, 사법 행정기관들에 대한 강도 높은 검열을 실시 했다. 검열 결과 함경북도 도보위부 수사과장이 총살형에 처해진데 이어 회령시 보위부 외사부부장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함경북도 전역 에서 극악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호위총국 검 열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외지에서 온 장사꾼들이 잇따라 행방불 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6월 중순까지 진행된 호위총국 검열기간에 각종 범죄가 발생했다. 호위총국 검열대는 6월 초부터 마약과 불법휴대 폰에 대한 기습적인 검열을 강행하면서 적지 않은 주민들을 검거했다. 387 갑작스런 검거 선풍에 놀란 일부 주민들은 6월 하순부터 강화된 국경 경비를 뚫고 목숨을 건 탈북을 강행했다. 검거 선풍에 놀란 주민들의 탈북이 줄을 잇자 지난 7월 8일 행사와 지방주권 선거를 앞두고 있던 북한당국이 불법휴대폰 사용자들에 대해서는 1인당 북한 돈 5만원의 벌금을 받고, 마약사범들에 대해서는 다시는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는 서약서를 쓰게 한 다음 모두 풀어주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풀어 주었던 주민들을 선거가 끝난 후인 7월 26일에 다시 잡아들였다. 6월 25일에 시작된 양강도에 대한 보위사령부와 중앙당 행정부의 합동검열이 7월 중하순경 마무리되었다. 388 합동검열단은 당 정권기 관과 사법 검찰 부문에 대한 검열을 시행했다. 남은 검열기간 도 안의 387 문성휘, 북, 불법휴대전화 마약사범 단속 강화,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3일. 388 NK지식인연대, 보위사령부와 중앙당 행정부 종합검열 진행, NK지식인연대, 2011년 7월 18일; NK지식인연대, 국경경비대 집중검열 진행, NK지식인연대, 2011년 8월 5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97

209 보위기관에 대한 집중 검열을 진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미 7월 6일 부터 도 주둔 보위사령부 7처와 도 보위부, 시 보위부, 혜산세관에 검 열성원들이 사무실을 전개했으며 7월 8일에는 도 주둔 군단사령부에 도 검열성원이 파견되었다고 했다. 7월 20일부터 국경경비여단 본부 와 각 초소들에 검열성원들이 파견되어 군인들의 밀수와 부정축재에 대한 집중검열을 실시했다. 보위기관에 대한 검열의 기본 중심은 국 경연선에서의 주민사상교양, 국경을 통한 외부문화 침투와 그에 연관 된 주민동향, 불순분자들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발생과 유포를 막 기 위한 사업의 진행정형 총화, 보위기관 성원들의 사생활에서 나타 나고 있는 비리와 전횡에 대한 추궁과 문책 등 강도 높은 검열을 진 행할 것으로 추측되었다. 한편 북한은 6월 하순경 나선시에서 불량주 민 조사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389 지난 1월 김정은의 지시로 조직된 마약 상무조직이 6월 중순부터 전체 세관 검사원에 대한 예심까지 진행했다. 390 세관 검사원들은 보 통 돈이 있고, 토대와 권력이 좋은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웬만한 검열 에서는 다 빠져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마약 상무조직 검열에서는 이례적으로 돈, 토대, 권력이 아무리 좋아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예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2010년 8월 마약을 하다 적 발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는 내용의 마약단속 통제를 강화할 데 대한 포고문을 전국에 배포했다. 이후 북한은 10월 인민보안부를 중 심으로 국경지역의 마약 사용자 및 밀수업자 색출을 위한 마약 단속 반 을 조직했다고 밝혔다. 마약 단속반을 통해 체계적으로 감시와 통 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속을 하는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389 문성휘, 나선시, 대대적 주민추방사업 소문,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27일. 390 이진수, 마약상무조직, 6월 중순부터 세관 검사원 예심 진행, 열린북한방송, 2011년 7월 21일. 19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10 주민들이 마약을 하는 상황에서 포고문이나 마약 단속반의 활동은 지 지부진한 성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북한당국은 2011년 1월 김 정은의 지시로 마약 상무조직을 구성, 체제를 위협하는 마약과의 전 쟁을 선언했다. 기존 인민보안성 중심으로 진행됐던 마약단속을 중앙 당을 비롯한 보위부, 군부, 검찰소 등을 포함시킨 대규모 상무조직으 로 구성한 것이다. 한편, 북한당국이 6월 초부터 중국 접경지역 세관 에서 반입물품 통관을 대폭 제한했던 것은 화교 보따리상을 위축시키 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391 이들이 물건을 싸게 팖으로써 외 화상점 영업에 지장을 주며, 내부 정보를 유출하고 외부정보를 유입 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월 초 함경북도 회령시의 경우 5월 초부터 시작된 호위총국 검열 이 총화단계에 접어들면서 대대적인 검거소동이 벌어졌다. 392 양강도 혜산시 역시 5월 초부터 시작된 보위총국 검열과 중앙당 검열로 많은 사람들이 검거되었다. 이번 검열이 군부와 당 간부들에 대한 물갈이 작업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약, 매음행위, 그리고 국 경연선에서 불법휴대전화 사용자들도 표적으로 하고 있었다. 7월 말부터 호위총국 군인들이 국경경비에 대한 긴급 검열에 들 어갔다. 393 이는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전날인 23일 경원군에 서 네 가족이 탈북한 사건이 위에 (김정일)보고 되어 7월부터 호위국 군인들이 국경경비를 섰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국경 도주로 의심되 면 무조건 사격하라. 도주자를 도와줬거나 관계있는 병사들도 무조건 처벌하라 는 김정은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김정일과 그 일가에 391 김준호, 북, 세관통제, 화교상인 겨냥한 것,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6월 17일. 392 문성휘, 지방주권선거 투표율 최악,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25일. 393 이석영, 김정은, 北 中 국경에 호위총국 군인들 배치, 데일리NK, 2011년 8월 4일; 최민석, 김정은, 호위사령부 돌격대 로 활용,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5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199

211 대한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총국 군인들까지 국경지역에 대거 배치하 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주민들에 대한 비( 非 )사회주의 검 열 및 군인들에 대한 보위사령부 검열에도 불구하고 탈북현상이 근절 되지 않자 체제 충성도가 높은 호위국 군인들로 국경 경비를 강화하 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위총국 소속 군인들은 두만강과 접경지역 인 남양, 경원, 온성, 회령, 무산에 집중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7월 말 북한당국은 지방주권선거를 치른 직후부터 군부 사정기관 인 보위총국을 내세워 양강도 주둔 국경경비대에 대한 긴급 검열에 들어갔다. 394 선거기간 동안 주민들의 탈북을 방조한 협력자들을 색 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특히 지난 2월, 주민들의 탈북을 방조하거 나 외부의 적대세력과 연계가 있는 자들을 최고의 엄벌에 처한다는 국방위원회 명령이 각 국경경비대와 해안경비대에 하달된 이후 처음 시행되는 종합검열이었다. 이번 검열에 걸릴 경우 최고 사형까지 받 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 때문에 국경경비대 내부에는 전례 없는 공포감이 흘렀다고 했다. 8월 초 김정은은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해 각 지방에 폭풍군단 이라 는 강력한 검열 그루빠를 조직하여 내려 보냈다. 폭풍군단 은 7월 24일, 지방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체제를 비방하는 낙서사건과 유권자 게시 판 파괴사건들이 전국에서 꼬리를 물고 발생하자 이에 격분한 후계자 김정은이 특별지시를 내려 5월 초 긴급 조직한 군인 검열대라고 했 다. 395 폭풍군단은 보위총국 산하이다. 폭풍 군단은 1차로 8월 1일부터 8월 15일 또는 8월 4일부터 9월 4일까지 활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문성휘, 북, 탈북 방조자 색출위한 집중 검열,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7월 27일. 395 문성휘, 북, 폭풍군단 검열에 주민들 공포,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8일. 396 최오남, 김정은 폭풍군단 이란 강력한 검열 그루빠 조직, 열린북한방송, 2011년 8월 20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12 폭풍군단은 9월 5일 철수했다. 397 중앙당 행정부와 중앙 검찰소, 국가 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보위사령부, 국경경비총국의 요원 등이 포 함된 약 300명이 폭풍군단의 이름으로 한 개 도마다 파견되어 검열했다. 이들은 주로 탈북과 밀수를 단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풍군단 검 열은 군관(소위 이상)들이 중심이 돼 국경경비대와 밀수꾼을 대상으 로 강도 높은 검열을 벌였다. 특히 경비대와 밀수꾼을 통해 탈북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한 검열로 알려졌다. 폭풍군단은 탈북과 밀수가 잦은 곳의 경비초소에 직접 배치됐다. 이들에게는 예 심, 재판, 판결, 후처리까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까지 주어졌다고 했다. 여기에서 후처리는 이들의 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사이의 소문 까지 감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들은 주로 주민들의 사상동향 파악 및 중국 핸드폰 사용자 색출, 한국에 갔다고 확인되는 가족들의 강제 추방, 보위부 관리소 강행과 마약 복용 및 밀매에 가담한 간부들을 공개 및 비공개 처형하는 등의 처벌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폭풍군단 은 검열 시작 2주가 되지 않아, 혜산에서만 50세대를 추방했다 398 고 한다. 검열에 걸린 사람들은 주로 풍서군, 삼수군, 갑산군 등 오지로 보내졌다. 폭풍군단은 마약 등 밀수, 인신매매, 중국 휴대폰 사용자, 행방불명자 순서로 주민과 해당 가족을 추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신매매, 중국 휴대폰 사용자, 행불자는 모두 탈북과 관련됐다고 판 단한 것으로 보인다. 회령에서는 8월 1일, 폭풍군단 의 선발대 17명 이 들어와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이어 8일에는 기본부대가 들어와 각 인민반들에 5명, 보안서들에 3명씩 전문 검열성원들을 배치되었다. 또 8.15 광복절 을 하루 앞둔 14일부터는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에 5일. 397 최오남, 주민들, 폭풍군단은 김정은의 좌경, 열린북한방송, 2011년 9월 5일. 398 이석영, 폭풍군단 검열 2주만에 양강도 50세대 추방, 데일리NK, 2011년 8월 17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201

213 일반 가정집들에 들이닥쳐 무차별적인 가택수색을 실시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사정없이 구타했다. 회령시 소식통은 보통 한집을 검열하는 시간이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며 밥그릇부터 시작해 서 벽장이나 가구 속까지 몽땅 뒤집어 본다고 했다. 이 과정에 숙박등 록을 하지 않은 외부인이 있을 경우 외부인은 물론 집주인도 체포된 다고 언급했다. 주요 단속품목인 불법휴대폰이나 마약, 마약 흡입기 구, 중국화폐가 나오면 현장에서 가족 모두가 체포되어 끌려간다고 했다. 폭풍군단은 북한전역에서 무역회사를 비롯해 개인 장사를 하는 사 람들과 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관해 조사했다. 399 그 이유는 김정은 등장과 관련 무역하는 사람들을 통해 남한의 공작 금이 투자되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특히 평양과 국경 지역들의 무역 회사들과 개인 무역을 하는 사람들의 자금이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 을 해서 생겼는가 하는 것을 깐깐히 조사했다고 한다. 폭풍군단은 무 역하는 사람들의 수출 입 수량과 지불하거나 받은 돈의 액수가 맞는 지 조사하거나,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건들의 양을 축소해서 신고했는 지에 대해서도 수사했다고 한다. 무역회사 등에서 수입하는 물자는 세관에 신고하는 동시에 세금을 무역은행에 내야 하는데, 세금을 적 게 내기 위해 뇌물을 주고 수량을 줄여 보고해 온 경우가 많아 세금 을 적게 냈던 사람도 이번 검열에서 조사받았다고 한다. 또한 의심이 가는 무역업자의 경우 북한에 와 있는 중국인 사업파트너들까지 불러 들여 조사하는가 하면 그들이 북한에 없는 경우에는 조선족들과 화교 들, 해외파견 일꾼까지 동원하여 조사를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폭풍 군단은 행방불명자의 남은 가족들이 북한에서 돈을 쓰는 것 또한 조 399 최오남, 출처를 캐는 이유, 남한의 검은 돈?!, 열린북한방송, 2011년 9월 27일. 20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14 사를 하여 남한으로 탈북한 가족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이 확인되 면 돈을 압수하는 것은 물론 강제추방까지 보낸다고 했다. 폭풍군단의 검열로 인해 중국위안화 대 북한돈 환율과 식량가격 이 폭등했다. 검열이 실시되면 무역회사들의 밀수가 중단되고 수출입 이 지장을 받고 질서를 잡느라 열차통제가 심하여 물류가 지장을 받 기 때문이었다. 400 폭풍군단 검열이 한창이던 8월 중순에 중국 인민 폐 대 북한돈 환율이 1위안 당 360원에서 400원까지 올랐다. 이후 9월 9일 기준으로 양강도 혜산시와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1위안 당 420원 까지 올랐다. 환율이 급등에 따라 가을철임에도 불구하고 식량가격도 1천 9백 원에서 2천 2백 원에 달했다. 심지어 북한산 1등급 쌀의 경우 1kg당 가격이 2천 6백 원까지 올랐다. 8월경 새로 조직된 검열기관인 폭풍군단과 지난해 말 조직된 검 열기관인 1118상무가 충돌했다 월 5일,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만 1118상무에 의해 마약사범 1명이 공개 처형되고 무려 16명의 주민들 이 징역형에 처해졌으며, 수십 명이 노동단련대 처벌을 받았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대량 가혹 처벌이었다. 이러한 사태는 인민군 보위총 국 산하 검열조직인 폭풍군단이 국가보위부 산하 검열조직 1118상무 에 사건조사자료들을 모두 넘길 것을 요구하고 나서자 이에 분노한 국가보위부가 무리하게 검열 총화를 강행하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8월경 북한 국경 전역에 CCTV 설치 작업이 진행되었다. 402 국경 지역에 대한 CCTV설치 사업은 국경지역 검열과 동시에 시작되었으 며 현재 검열은 끝났지만 CCTV설치는 계속되었다. 북한당국의 국 경지역에 대한 CCTV설치 목적은 날로 증가하는 주민탈북과 중국과 400 문성휘, 잇단 검열로 주민들 생계 위협,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12일. 401 문성휘, 북, 일관성 없는 검열 지시로 간부도 반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8월 12일. 402 NK지식인연대, 북한국경지역에 CCTV 설치, NK지식인연대, 2011년 8월 24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203

215 의 밀거래를 막으려는데 있었다. 양강도 혜산과 백두산, 자강도 만토 지역 등 중국 접경지역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었다 월 15일을 계기로 함경북도 무산군에 대한 비사회주의 검열이 시작되었다. 이번 검열의 특징이 있다. 우선 검열 그루빠 성원들의 구성이 당일꾼, 보위일꾼, 보안일꾼, 검찰기관으로 구성 되었고 이들 의 행정소속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검열의 목적은 일반 비사회주의 검열이 아닌 탈북자가족에 대한 조사로 알려 졌다. 8월 27일 탈북주민 7명이 길림성 연길시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404 김정은은 8월 28일 전국적으로 남조선 CD에 대한 단속을 강하게 진행하고 외부로부터 CD와 남조선 물건을 들여오는 통로를 철저히 짓부셔버리라 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405 이에 따라 중앙당 차원에 서 8.28상무가 조직되었는데, 이는 김정은이 지시한 날을 검열조 명 칭으로 삼은 최초의 사례였다. 또한 중앙당과는 별도로 보위총국이 19 24세의 중앙당과 인민무력부 고위층 자녀들로 검열대를 조직하여 국경지역 도시인 양강도 혜산시와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파견했다. 406 이들이 역전과 도로들을 차단하고 무역기관들과 국경경비대 초소들 을 임의로 검열했다. 중앙당 차원의 8.28상무는 9월 초 국경지역에 파 견되었다 상무는 중앙당 선전부 책임아래 각 도의 선전부 간 부로 구성되었다. 이 상무의 검열의 중점 대상은 남한 물건이나 문화 가 들어오는 통로였고, 지역적으로 평양시와 전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핵심대상은 국경지역이었다. 이러한 검열이 추가된 이유는 폭풍군단 403 이귀원, 북 김정일 평북도 자본주의 날나리판 통제강화, 연합뉴스, 2011년 8월 16일. 404 NK지식인연대, 북한탈북주민 7명 중국에서 체포, NK지식인연대, 2011년 9월 17일. 405 이석영, 北 CD알 전쟁? 무작위 가택수색 실시, 데일리NK, 2011년 9월 30일. 406 문성휘, 북, 고위층 자녀들로 국경 검열대 조직,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10월 13일. 407 이석영, 김정은 지시한 날 따서 828상무 검열대 조직, 데일리NK, 2011년 9월 5일. 20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16 이 제기한 검열보고서가 제일 심각한 비사회주의 현상이 대다수 사 람들이 남조선 드라마와 물건에 빠져있는 것 이라고 제기한 것 때문 이었다. 이 지시 이후 CD단속을 전문으로 하는 109상무에 가택수색 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허용되었다. 408 이전에는 관련 신고를 받았거 나 전파탐지기에 이상 신호가 감지될 경우에만 가택 수사를 벌일 수 있었다. 그것도 TV나 DVD기기 근처만 검열할 뿐이었다. 그러나 9월경에는 무작위로 가택수색을 벌일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강도 높 은 단속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단속 과정에서 한국, 미국 영화가 들어 있는 CD알이 발견되면 500달러(북한 돈 140만원) 이상을 주고 그 자 리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뇌물을 바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류장 신 세를 져야 했다. 2010년에는 1천 명 이상의 북한주민들이 외국 영화나 텔레비전 녹화물을 보관 또는 시청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한다 지시에서 김정은은 또한 젊은 청년들부터 고상한 옷차림과 몸단장을 갖추어야 한다 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각 지방 청년동맹들 마다 불량 청소년 그루빠를 만들어 도로나 공공장소에서 청년동맹 옷 차림과 몸단장을 검열하고 위반시 노동단련대 처벌까지 가했다. 410 여성들의 옷차림과 몸단장에 대한 단속은 8월 러시아 방문 이후 김정 일의 지시였다고도 한다. 411 김정일이 기차를 타고 오면서 국경지대 남성들이 윗도리를 벗고 있는 모습이나, 옷차림이 대담한 여성들을 보면서 화를 냈다고 했다. 또는 김정일이 7월 1일에서 6일까지 신의 주를 시찰하는 자리에서 현지주민의 옷차림과 무질서에 대해 평안북 도가 자본주의 날나리판이 됐다 며 검열을 지시했다고 한다 월 408 이석영, 北 CD알 전쟁? 무작위 가택수색 실시, 데일리NK, 2011년 9월 30일. 409 김영권, 북한 지난해 외국 미디어 접촉자 1천명 이상 체포,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5일. 410 문성휘, 잇단 검열로 주민들 생계 위협,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12일. 411 이범기, 北 여성들 너무 나갔나? 레이스 치마 단속, 데일리 NK, 2011년 9월 29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205

217 하순경 평양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즐겨 입는 뺑때바지(스키니진)를 비롯해 장식이 화려하거나 그림 글자가 많은 옷들은 모두 단속 대상 이 되었다. 또 레이스가 달린 치마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전체를 모두 단속할 수 없어 몸에 딱 달라붙거나 지나치게 가슴이 패인 옷, 그리고 영어가 써진 옷들을 중점 단속했다. 골목마다 30~50m 간격으로 규 찰대가 있어서 그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시민증을 검사 하고 해당 인민반에 통보한다고 했다. 단속에 걸린 사람은 인민반에 불려가 비판을 당하고 총화작업을 세게 해야 한다고 했다. 혜산에는 이 그루빠가 9월 4일부터 한 달 기한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검열 성원은 30%가 중앙당 일꾼이고 나머지는 전국의 각도에서 선 발된 당 일꾼이었다. 413 이번 검열의 목적은 여러 가지나 그중 기본적 인 것은 국경연선에서 유포되어 청소년들을 비롯한 많은 사회성원들 에게 자본주의 영향을 주는 한국, 미국 드라마, 영화, 음악과 같은 문 화침투선전물의 유입 유통을 막는 것과 중국에서 한국산 물품을 들여 와 판매 유통하는 밀수꾼들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장마당과 개 인상점들에서 유통되고 있는 한국산 물품의 출처를 밝혀냄으로써 한 국산 물건의 국내 유입통로를 차단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당 선전선 동부 중심의 8.28상무가 출범함으로써, 국경지역 도시들에는 인민보 안부 예하 109상무와 국가보위부가 주도하는 1118상무까지 세 개의 전문검열조직이 상주하게 되었다. 414 이는 권력기관들 간의 충성경쟁 을 반영했다. 폭풍군단, 중앙청년동맹, 중앙당 선전부(8.28상무)의 검열과정에 412 이귀원, 김정일 평북도 자본주의 날나리판 통제강화, 연합뉴스, 2011년 8월 16일. 413 NK지식인연대, 당중앙위원회 선전부 성원들의 검열, NK지식인연대, 2011년 9월 15일. 414 문성휘, 북, 남한문화 차단 새 검열단 조직,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22일. 20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18 서 무허가 영화와 노래알판이 모두 회수되었다. 415 지금까지 허용되 어 왔던 것이라도 세월에 대한 반항과 비탄, 민생을 주제로 한 작품들 이 모두 회수되었다. 특히 8월 한 달 동안 진행된 폭풍군단 검열에서 당국의 승인이 없는 알판이라면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요들까지 모두 회수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각 도에 있는 컴퓨터 봉사소들을 통해 당 국이 허용한 CD와 DVD 알판들을 복사(복제)해 판매했는데 이 경우 해당 컴퓨터 봉사소와 출판 검열국 승인도장을 찍어서 유통시켰다. 그러나 개인들이 갖고 있는 CD복사기를 통해 복제된 알판들은 이러 한 승인도장이 없어 설사 김정일을 찬양한 노래라 해도 회수했다. 9월 4일 양강도 혜산시에서 공개처형이 진행되었다. 처형된 사람은 양강도 도 은행 지배인으로 2009년에 있었던 도내의 화폐개혁을 책임 지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신 화폐 200만원을 빼돌리고 500만원을 불법 적으로 교환했다 한다. 그의 처형은 폭풍군단의 개입결과라 했다. 416 공개처형 장소에는 수많은 기관, 기업소, 근로자들, 중학교 학생까지 참가하도록 했다. 9월 6일에는 국경지역에서 국가보위부 소속 중앙전파탐지국에 의한 이동식 전파탐지가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이 기관은 5월까지 국경지역에서 주둔하다가 철수했다. 과거 전파탐지에 걸린 대상은 벌금이나 노동단련에 처했으나, 이제부터 무조건 교화소로 보낸다고 했다. 417 원래 9월 4일 종료 예정이었지만, 폭풍군단 검열은 9월 중순에도 계속되었다. 418 검열 결과 국경 지역인 혜산시에서만 70세대 이상이 415 문성휘, 북, 기존 인기영화 가요도 금지시켜, 자유아시아방송, 2011년 9월 23일. 416 NK지식인연대, 9월4일 양강도에서 공개처형 진행, NK지식인연대, 2011년 9월 9일. 417 NK지식인연대, 북한 국경지역에 비밀이동전파탐지 팀 가동, NK지식인연대, 2011년 9월 9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207

219 강제추방 되었으며 10월에도 약 50세대 이상이 강제추방 될 예정이 라고 했다. 이번에 강제추방 명단에 오른 대상은 여권발급으로 중국 친척방문 갔다가 오지 않은 사람들의 가족, 중국 핸드폰 사용자, 외국 알판(DVD 등)들을 유포하거나 시청한 사람, 마약 밀매업자와 북한 여성들을 중국으로 넘긴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법관과 세관검 사, 대학생과 예술인 교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10월 감자전투(가을 감자를 많이 캐기 위한 활동)가 끝나면 2차로 강제추방이 진행되는데 동 보안원들과 동사무소들에서는 추방명단 세대들의 감시를 강화했다. 그러나 권력 있는 집안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추방명단에서 제외되기 위해 폭풍군단 성원들에게 뇌물을 주는데 그것이 잘 먹혀 추방명단에 서 빠진다고 했다. 9월 19일에는 무산역 광장에서 공개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재판 은 무산군 보안서가 집행했고, 5명을 재판했다. 이 중 3명은 아편 유 통 및 복용, 나머지 2명은 한국 비디오 시청과 비디오 테이프 판매 및 유통으로 재판을 받았다 월 21일과 22일에는 양강도에서 민 방위 소개훈련이 실시되었다. 9월 24일 김정은은 중국 핸드폰을 이용하여 북한 내부 정보가 새 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핸드폰을 단속하고 강한 처벌을 가하 라는 방침을 내렸다. 420 이를 위해 폭풍군단 검열 이외에도 국가안전 보위부 13국, 체신성 초단파 감지국 검열 성원들이 전파 탐지 및 도 청을 시도했다. 이번 핸드폰 검열에서 적발되는 사람들은 간첩으로 보고 관리소로 보내고 가족은 강제 추방할 것이라 했다. 함경북도에 418 최오남, 폭풍군단 검열 혜산서만 120세대이상 추방, 열린북한방송, 2011년 9월 15일. 419 NK지식인연대, 마약관련 사건으로 무산역 광장에서 공개재판, NK지식인연대, 2011년 10월 6일. 420 현건, 북한, 중국 핸드폰 사용하면 무조건 간첩, 열린북한방송, 2011년 10월 4일. 20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20 서는 9월 중순 도보위부 반탐처가 러시아산 휴대전화 감청기기를 설 치했다. 이 기기는 김정은의 직접 지시로 8월 말경 국가보위부 반탐 국장 인솔 아래 인민무력부 직영 매봉무역총회사가 들여왔다. 함경북 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에 두 대씩 배치되었다. 421 북한은 또한 국경지역에 전파 장애 시설물을 증가 설치했다 월 초 현재, 8월 초부터 시작된 폭풍군단의 검열 결과 함경북도, 양강도, 평안북도에서 수천 명이 조사대상에 올랐다. 423 도별로 수백 명이 공개재판을 받았다. 폭풍군단 검열은 8월 초부터 국경연선지역 군부대와 간부들을 대상으로 도강, 밀매매, 인신매매, 마약 등 불법활 동을 집중 단속했다. 8월 20일에는 중앙당 검열조가 추가로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경경비대원들과 군관, 보위부원도 대거 구속됐다. 대 부분 핸드폰 사용과 도강, 탈북브로커, 한국문세에 걸려 무거운 형량 을 받았다. 탈북브로커와 연계해 도강을 눈감아주거나 심부름을 해준 경우였다. 심문 결과 중국 대방의 연락처가 나오면 중국 공안당국에 수사 협조를 했다. 중국 측에서도 자국민이 탈북브로커나 마약거래 등 불법 활동에 연루됐을 경우, 북한 측과 공조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로써 국경연선지역 단속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비법행위를 해오던 일부 주민들은 국경지역을 벗어나 평안남도 평성시나 함경남도 함흥 등 안쪽 도시로 피해버렸다. 아예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법관들이 뒤를 봐주었는데, 그들이 걸리면 자기들의 비리도 드러나게 될 것을 우려해 적극 피신을 권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한편 각종 421 이석영, 러시아제 휴대폰 감청기기 북 중 국경에 배치, 데일리 NK, 2011년 10월 6일. 422 NK지식인연대, 북 중국경지역에 전파장애기 증가설치, NK지식인연대, 2011년 10월 6일; 김은지, 북한, 국경 지역에 최신형 전파탐지기 증강 배치, 미국의 소리, 2011년 10월 20일. 423 좋은벗들, 폭풍군단 검열 후에도 여진 남아, 오늘의 북한소식, 제423호 ( ). Ⅳ. 북한의 사회변동 209

221 검열단이 전국적으로 살벌하게 진행되면서 통행이 금지되었다. 전국 적으로 검열이 매우 심하여, 보위부나 보안서 일꾼마저 통행에 지장 을 받았다. 424 이와 같은 검열 때문에 간부들 사이에 동요가 매우 심 했다. 425 이러한 검열은 지도부에서 각 부문의 인물을 교체하기로 마 음먹은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사정의 칼날을 피 해가기 어려운 상황으로 간주되었다. 평양시 간부들과 도당 간부들은 이번 검열을 지켜보면서 온 나라가 마른 장작개비와 같다. 모든 사 람들이 장작개비처럼 너무 말라서 조금만 힘줘도 너무 쉽게 부러지고 꺾이는가 하면, 한 점 불길이 붙으면 온 나라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 게 될 것 으로 보았다. 9월 말경 각종 비위를 저지른 철도성 간부 물갈이가 시작되었다. 426 간부 물갈이 이유는 김정은이 관심을 갖는 백두산선군발전소 식량과 자재를 탈취하다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검열의 결과 북한 열차 기관 사들이 열차를 세우고 싶은 곳에 마구 정차하고 도둑질했다고 한다. 한편 일반주민들 차표 한 장을 사기 위해 며칠씩 대기실에서 기다려 야 한다는 불평도 높았다. 철도운영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철도성 사람 들이 중앙당 고위 간부들보다 더 좋은 생활을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10월 16일 양강도 지역의 폭풍군단 검열 총화 회의가 양강도 당 에서 열렸다. 427 회의 결과 10월 말까지 약 300세대를 추방하는 것으 로 확정됐다. 함경북도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최소 150세대가 추방대 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현역 군인들로 구 424 좋은벗들, 온 인민이 이산가족 됐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21호 ( ). 425 좋은벗들, 온 나라가 마른 장작 같다, 오늘의 북한소식, 제421호 ( ). 426 최오남, 北, 갖가지 비위 저지른 철도성 간부 물갈이 시작, 열린북한방송, 2011년 9월 28일. 427 이석영, 폭풍군단 검열 후속조치로 300세대 추방 17일 양강도당 회의 열려 10월 말 까지 추방 지시, 데일리NK, 2011년 10월 17일. 21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22 성된 폭풍군단 검열조는 지난 8월 4일부터 약 한 달간 국경지역에 대 한 특별 검열을 벌였다. 폭풍군단 검열 중에 중국산 휴대전화 사용 마약 복용 및 판매 한국 영화 DVD 시청 중국과 밀무역 탈 북 주선 등의 혐의를 받은 사람과 그 가족들이 추방 대상에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검열은 9월 4일 경에 공식 마무리 됐으나 체 포된 주민들에 대한 추가 수사 도망친 사람들에 대한 수배조치 및 자수 권고 김정은에게 보고 될 최종 보고서 작성 추방세대 확정 등 마무리 작업이 한 달 넘게 이어져 왔다. 함경남도와 양강도는 10월부터 평양 건설자들에게 물자지원을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걷었다. 428 함흥 시내 회상구역 시장과 사포구역 시장 매대 상인들의 경우 1인당 한 달 15만원씩의 책임이 부과됐다. 두 시장은 각각 매대 상인만 500명이 넘기 때문에 1개 시장에서 7천 5백만 원을 걷는 셈이다. 양강도 혜산시장에서도 매대 상인들에게 1인당 10만 원씩 걷었다. 시장관리소는 매대 상인들에게 매일 300~500원의 자리세 를 걷는다. 가전제품 등 고가제품을 파는 상인들은 500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식료품 판매 상인들은 300원 정도다. 15만원이면 1년 치 자릿세에 육박한다. 현재 함흥지역의 시장 쌀 가격으로 따져보면 매대 상인 1인당 쌀 50kg 정도를 걷는 셈이 된다. 10월 하순 국경경비대를 민경 급으로 대우할 데 대한 지시가 하달 되었다. 429 이에 따라 우선 국경경비대의 군복이 교체되었다. 국경경 비대는 일반 군부대들처럼 일반 군복을 공급하면서 정찰소대나 기동 중대에만 위장복을 공급하였었는데, 위장복(일명 개구리복)으로 100% 교체할 데 대한 인민무력부 지시가 내려왔다. 이와 함께 중국과의 국 428 이석영, 北 시장 단속 최근에 좀 느슨해졌다 했더니 소식통 평양 건설사업 지원 명목 시장 상인에 매달 15만원 징수, 데일리NK, 2011년 10월 18일. 429 NK지식인연대, 국경경비대를 민경과 같은 급으로 대우, NK지식인연대, 2011년 10월 27일. Ⅳ. 북한의 사회변동 211

223 경접경지역을 지키고 있는 국경경비대원을 최전연의 민경과 동등한 대우를 해 주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북한에서 민경은 계급적 토대, 즉 성분이 좋은 사람들로 선발배치하고 모두 입당을 시키며 제대되면 대 학도 우선적으로 추천해주며 배치에서도 특혜를 주어왔다. 국경경비 대를 민경과 같이 대우하라는 지시를 전달하면서 앞으로 군인들에 대 한 사상사업과 군사훈련을 보다 강화하며, 경비대의 군수품 역시 민 경(민사경찰)과 같이 공급할 것이라고 선포했다고 한다. 5. 북한 사회 변화의 동력과 방향 이에 관해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북한사회의 많은 변화 는 비가역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권이 이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든 그 변화 자체는 막을 수 없는 것이고, 정권은 다만 주기적인 통제와 이완을 통해 그 속도와 양태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형 성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둘째, 북한정권은 2005년부터 사회의 비가 역적 변화에 대해 거스르는 정책을 취해왔으며, 이 때문에 정권 대 사회 간의 긴장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북한정권은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개최한 이후로 김정은이 책임을 지고 사회통제를 현격히 강화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특히 국경지역의 많은 주민과 간 부가 피해를 보고 있다. 비가역적 변화 중에서 앞으로의 북한 사회 변화와 관련하여 주목 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접경지역과 내측지역 간에 확대되고 있는 지역차이이다. 앞에서의 서술이 시사하고 있듯이 이 지역 차이는 네 가지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 앞으로 이 네 가지 변수의 상태와 조합에 따라 북한의 내부 안정과 불안정 여부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21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24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 소비패턴의 편차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새로운 접경 복잡군중의 탄생이다. 과거 접경 복잡군중은 한국전쟁의 분계연선지대의 주민을 지칭했는데, 중국의 개혁 개방으 로 1990년대부터 북 중 접경지역에 탈북자 성분을 중심으로 <새 복 잡군중>이 발생하고 있고, 이것이 주요한 내부 정치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셋째, 정치적으로 주민의 제도의식에 대한 의식 격차이다. 특히 지역 간부와 중앙에서 파견된 비사검열단 사이에 지역 사정에 대한 현격한 견해차가 존재한다. 넷째, 문화적으로 접경지역과 내측지역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정보 격차이다. 북한사회는 무저항성(주민 측의 인내성)을 특징으로 하지만, 내부 에 변화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소극적 사회에 는 비록 적극적 및 역동적 변화 가능성은 없어도 다음과 같은 변화 가능성은 내재하고 있다. 그 변화 가능성은 첫째, <비가역적 변화 성>에 있다. 저밀도 분포 에너지도 어떤 조건하에서 주어진 한계 이 상으로 집중 강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접경지역 주민 소비패턴이 서서히 달라지는 것은 비가역적 판단과 행동 변화를 축적시킨다. 둘 째, <불가항적 변화성>이 있다. 점진적이더라도 양적 변화가 축적되 면 이에 의해 불가항적 질적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접경 지역에서 새로운 비사검열 그루빠가 덮쳐서 강력한 검열을 실행하더 라도 그 효과가 길어서 보름~한 달을 가지 못한다. 내륙지역에서는 효과가 더 크고 장기간에 걸치는 것과 대비된다. 이는 당사자인 접경 지역 주민은 새로운 복잡군중에 대해 훨씬 너그럽고 포용적 인식을 가지고 있음에 비해, 중앙에서 파견된 검열 간부는 그러하지 못하다. 이러한 인식격차는 지방간부와 내륙지역 간부 사이에도 존재한다. 셋 째, <발생학적 변화성>이 있다. 비록 소극적 온상( 溫 床 )이지만 그 속에 앞으로 다가올 다음 시대에 자기 조직적 대안이 잠복하는 경우 Ⅳ. 북한의 사회변동 213

225 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접경지역의 정보관리가 상대적으로 약화되 고 있는데, 이것은 특히 과반수의 주민이 해외송금 및 접경무역 생활 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이 당장 이 지역에서 큰 변화 를 발생시키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이 지역에 적어도 개혁 개방, 혹 은 통일에 대한 저항감이 엷어져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북한의 수동적 변화에 가장 효력이 큰 상기 네 가지 상태변수가 선택되었다. 각 변수들의 특징을 보자. 첫 번째 변수는 소비패턴차이다. 소비패턴의 차이란, 주민생활에서 중국 상품의 사용범위를 가리킨다. 대중의존 경제의 소비패턴을 말한 다. 구체적으로는 식품, 의류, 생필품, 주거비품 등이다. 이는 대체로 항상적으로 단조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추이를 예측하는 것이 가 능한 변수이다. <소비패턴차 = 접경지역 소비패턴 - 내측지역 소비 패턴>인바, 접경지역에서 소비패턴이 시간적으로 상승하면 내측 지 역의 소비패턴도 상승하는데, 사회통제가 약하면 차이가 줄어들고 사 회통제가 강하면 차이가 벌어진다. 소비패턴 차의 한계 이상 증대 즉 한계 이상의 사회통제는 특히 국경출입통제력을 약화시킨다. 대량탈 북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 상한이 존재한다. 두 번째 변수는 정보관리차이다. 이는 과반수가 생활기반 해외의 존 특성을 가진 접지주민의 통신량과 내륙지역을 기준으로 한 당국의 정보관리 수준과의 차이를 지칭한다. 개략적으로 보면, 접경지역 사 회의 혹은 접경지역 사회를 통한 북한의 대중( 對 中 ) 정보 교류량으로 볼 수도 있다. 그 구성에 해외언론 정보 등이 비례하여 내재한다는 점이 바로 발생학적 사회변화성의 잠재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변수는 항상적으로 단조안정하고 역시 그 추이를 예측 가능한 변수이다. 단순히는 사회통제가 강하면 줄고 사회통제가 약하면 증대한다. 하지 만 사회통제의 영향은 가입자의 안전 대 이득 판단이라는 득실계산보 21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26 다 약하다. 기본결정은 가입자의 득실계산에 의존한다. 따라서 단조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해외언론 정보 유입량은 기본적으로 시간 에 따라 항상 증대한다. 세 번째 변수는 주민제도차이다. 이는 곧 <접경지역 기능( 接 地 機 能 >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제경제 제재 하에서 북한 전체의 자조적 생명선 기능 이라고 볼 수 있다. 체제와의 거리가 매우 가깝 고 제도개선 결핍으로 생긴 사회현실과의 괴리 속에 자생( 自 生 )된 접 지에서의 현실-제도 간의 차이다. 체감 상 접경지역 주민제도 혹은 그 현황은 내륙지역 주민제도보다 이완되고 탈상식적 이다. 따라서 기존 제도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비법적 이며, 정상 도덕적으로 볼 때에도 부도덕적 수단이 빈번히 사용되는 상황이다. 부도덕성의 거 증책임은 현실외면으로 보수에 빠진 체제 측에 놓여야 한다. 탈북과 밀수가 상식인가 아닌가에 대한 인식차이, 혹은 산골동 (살아있는 골 동품: 국군포로 등 한국의 고액 정착지원금 수혜자 대상을 접경지역 을 통하여 중국에 넘기는 일을 가리키는 은어)과 인신매매 의 개념차 등은 접지-내지 주민제도차 지표 중의 일부이다. 즉 접지기능은 북한 의 고립이 심화 될수록 또 경제상황이 악화 될수록 더 강화될 것이며 만약 개방 개혁적일 경우라면 약화될 것이다. 주민제도차는 체제와의 관련상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을 띠는 불확 실성 변수이다. 주민제도차를 가장 불확실하게 만드는 체제적 요인 (사회통제)은, 접지주민 대량추방이다. 접지주민의 대량추방은 2011년 부터 준비되었고 일부 시행되었다. 만약 추방이라는 강한 사회통제가 일어나면 접경지대에 새로운 주민이 유입될 것이다. 내측지역에 비해 접경지대의 여러 여건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결국 접경지역 주민 추 방은 접경지역 문화를 내지에 전파하는 것을 가속시키는 효과를 초래 한다. 지금까지 접경지역 원주민 기득권이 접경문화 내측 지역 확산 Ⅳ. 북한의 사회변동 215

227 의 기본 장애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접경지역 주민 추방이라는 사회 통제는 오히려 내지주민을 새로이 접경지역에 불러들여 그 장애를 제 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 이주민과 남은 선주민 사이의 사회적 긴장이 해소될 때까지 접지기능(접경지역이 북한사회에서 행하는 기 능)은 최소화 되어 있을 것이다. 추방과 소개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추방민은 필요에 따라 살던 곳으로 재출장 온다. 일련의 후유증이 가 시면 접지기능은 원래 수준을 훨씬 웃도는(그 정도는 추방규모에 비 례한다) 새로운 접지기능이 발생하고 사회는 자연적 개방상태로 접 근할 것이다. 체제는 매우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주민제도차는, 사회 통제와의 역동관계 속에 불확실성을 띤 접지기능을 나타낸다. 네 번째 변수는 지방간부차이다. 이는 접경지역 해당 지방간부들 을 불신하는 상징인 접경지역 비사검열 사업으로 발생하는 차이이다. 접경지역에서의 탈북 등 비사회주의적 현상과의 투쟁 을 위해서도 당지 간부들은 적어도 접경지역 환경에 자립적으로 적응해야만 한다. 하지만 중앙이 볼 때 이는 접경지역 간부의 타락으로 간주되고 따라 서 접경지역 간부에 대한 불신으로 변환된다. 그리하여 해당 지역 지 방체제를 무시한 중앙 비사검열이 항시화 되고 있다. 결국 지금과 같 이 중앙이 접경지역 현황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한에서 중 앙과 지방간에 영원한 간부차가 발생하였다. 사회통제가 심할수록 지방간부차는 증대한다. 가장 심한 경우가 철칙 및 가족추방이다. 그러나 신임 간부도 선임자와 다른 선택이 불 가능하다. 또 비사검열은 해당 지역 간부와 담합하여 중앙에서 파견 된 간부를 기만하며, 부정부패와 수뢰라는 편의를 선택하게 되는 경 우가 많다. 이 때문에 결국 비사검열의 효율이 저하되는데, 중앙은 이 에 대응하기 위해 검열의 규모를 확대한다. 이것은 중앙체제의 무능 력과 상황대응력을 저하시킨다. 체제의 정보정치색을 농후하게 하며 21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28 결국 공안기능 강화로 이어져 정치를 위한 정치 의 공전( 空 轉 )정국 이 발생하고 체제안정은 상시적 내부위협에 노출된다. 역시 조종 불 가능한 불확실성 상태변수이다. 2009년 당대표자회 이후 김정은의 주도하에 강화되고 있는 국경 지역에 대한 검열은 전반적으로 정권과 사회 간의 긴장, 특히 정치적 으로 취약한 접경지역 간의 긴장을 현격히 높이고 있다. 여기서 발생 할 수 있는 미래는 두 가지이다. 그것은 북한정권이 현재의 정책을 계속 진행함으로써, 정권 대 접경지역 사회 간의 긴장을 더욱 증가시 키며, 이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양자 간의 관계가 보다 노골적인 갈등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중앙이 보기에 접경지역의 상황은 매우 문란하 지만 이와 같은 문란한 상황은 현재 중앙이 취하고 있는 바와 같은 검열과 통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이 검열과 통제를 강화할수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방 간부를 포 함하여 주민들의 생활과 생계에 대한 위협만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 다. 다른 하나의 미래는 중앙이 지방의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렇 게 되자면, 중앙은 사실상 개혁정책을 취해야 한다. 접경지역의 현실 을 인정하면서 이를 건설적이고 발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치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면, 중앙정부의 조치는 단지 접경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 규모에서 동일한 적용성을 가 지는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정권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 게 될 때 져야 하는 부담이다. 만약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경우, 그동안 또는 2005년부터 억제되어 왔던 변화의 의지와 지향이 한꺼 번에 용출할 수 있고, 이것이 정권이 보기에 매우 위험스러운 상황으 로 흘러갈 수 있다. Ⅳ. 북한의 사회변동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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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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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이상에서 북한변화를 정치, 경제, 사회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를 바탕으로 여기서는 시나리오 기법을 사용하여 향후 5년 동안 북한 내부 변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살펴본다. 단 본 연구의 중점이 북한 체제변화 이기 때문에, 그 주요 변화 트렌드를 포착하고 이해하 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급변사태 가능성 등은 의도적으로 고려 대 상에서 배제했다. 우선 시나리오 기법의 개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하다. 시나 리오란, 미래의 환경이 우리의 조직, 이슈, 국가, 또는 세계와 관련한 미래의 환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stories)이다. 이 러한 시나리오는 예측이 아니다. 예측은 뚜렷한 추세가 존재하며 불 확실성이 개입할 개연성이 낮은 사항에 대해 행해질 수 있다. 시나리 오란 다양한 불확실성 요소 때문에 미래가 복합적이고 불확정일 때,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미래에 대한 도발적이고 그럴듯한 묘사이다. 430 여기서 불확실성 요소란 어느 시점에서 여러 대안 중에서 어느 하나 가 선택됨에 따라 그 이후의 상황 진행이 전혀 다른 경로에 들어서도 록 만드는 변수이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환경 은 여러 복합적 요소들의 작용 때문에 현저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그 다양한 미래를 탐험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써, 그에 함축되어 있는 기회와 위험을 평가하게 해준다. 나아가 시나 리오 기법을 통해 우리는 긍정적, 부정적, 그리고 예측 불가한 다양한 미래 환경 속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를 연습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와는 상관없이 다가오 는 다양한 가능한 미래들 속에서 우리가 현재 견지하는 전략, 변화이 론, 또는 비전이 과연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를 검증해 볼 수 있는 방 430 마츠 린드그렌 한스 반드홀드, 시나리오 플래닝 (서울: 필맥, 2005), p. 50.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21

233 법이기도 하다. 431 시나리오 기법은 주어진 주제에 관련된 상황의 미래 전개와 관련 하여 작용하는 불확실 요소를 찾아내고 그 중요도를 검토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여기서는 앞서의 서술과 함께, 2011년 말까지의 정세 종합 과 2012년 정세전망을 통해, 2012년 이후 북한 내부 변화의 향배에 영향을 줄 핵심 불확실 변수로써 첫째, 북핵문제가 타협인가 대결인 가와 둘째 내부정책이 개혁인가 반개혁인가라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이 두 변수를 조합하면, 네 가지 시나리오가 탄생한다. 즉 첫째, 시나 리오 (A) - 핵 보유 고수와 반개혁 하에서 국가의 수탈적 행태 강화, 둘째, 시나리오 (B) - 핵 협상 타결과 반개혁정책 하에서 외자유치 증대, 셋째, 시나리오 (C) - 핵 협상 타결과 개혁정책 하에서 정권기 관 주도하 시장확대, 넷째, 시나리오 (D) - 핵 협상 결렬 상태 하에서 제한적 경제 개혁이다 년 말까지 정세 종합과 2012년 정세 전망 가. 2011년 말까지 대내외 정세의 상호 연계 평가 2005년 이후 북한은 대내외 정책적으로 다섯 가지 목표를 추진했다. 그런데 2008년 10월경에 이르면, 이러한 전략목표의 실현의 전망이 매우 어둡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09년 초부터 북한은 대내외 강 경정책을 통해 이를 돌파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시도 는 2009년 이후 현재(2009년 10월)에 이르기까지 주변국 특히 한국 431 Global Business Network, Overview of Scenario Thinking Concepts, p. 1, < 22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34 과의 관계에 많은 긴장을 초래했다. 먼저 다섯 가지 정책목표를 보자. 첫째,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확 장하며 핵 보유국가로 인정받는다. 둘째,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받 은 상황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관계를 개선한다. 셋째, 한 국과는 핵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며, 남북관계는 한국이 북한당국을 경 제적으로 지원하는 관점에서 형성한다. 넷째, 대내적으로는 반개혁정 책(시장억압, 국가경제간섭 강화 등)을 추진하는 한편, 개혁 없이 외 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개방사업(폐쇄형 경제특구, 광산물 수출, 인력 수출, 해외원조 수취확대)을 확대한다. 다섯째, 공안정치 강화를 통해 대내정치 안정을 유지하며, 권력세습을 성취한다. 적어도 2007년 2월 13일 이후부터 10월 4일를 거쳐 2007년 말까 지는 이러한 정책목표가 대체로 북한 측에 만족스러운 방향에서 성취 될 수 있는 가망성이 보였다. 특히 당시 한국정부의 협력이 중요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북핵 해결을 장기 과정으로 설정하고 (다시 말해 묵 시적 핵 보유 상태가 일정기간 유지되더라도) 비핵화 협상을 단계적 으로 진행하며, 그동안 대북경제지원 강화를 지렛대로 남북관계를 적 극 확장하는 것을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단계적 비핵화와 병행하여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요 의제로 추진했다. 미국은 한국의 이러한 대북정책 방향과 갈등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수용하고 추종하는 선택 이외의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다. 한편 북한은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확대 를 시도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보수적 반개혁정책을 한층 강화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초 열렸는데, 동시에 내부적으로 장 성택 등 보수파가 득세하고 시장억압 수준 강화 등 반개혁정책 기조 가 현저히 강화되었다. 10 4선언은 한국이 북한에 대해 상당 기간 안 정적으로 경제지원을 보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고, 이것이 북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23

235 한이 내부적으로 보수정책을 강화하는 것과 쌍을 이루고 있었다. 한 국으로부터 장기간 경제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비개혁으 로 내부 경제가 불모에 빠지더라도 북한의 대내경제는 대체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관적 정세를 배경으로 2007년 도 말경 북한당국은 경제문제에 집중한다는 것, 그리고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 것을 천명했다. 그런데 2008년부터 정세의 방향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국 측에 보 수정부가 등장했다. 한국정부는 비핵화, 대북지원, 평화협정 체결 문 제에 대해 보다 원칙적 입장을 취했고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2007년 8월경 미국과 북한 간에 비핵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다. 같 은 시기 김정일이 뇌경색을 당했다. 이 시기의 상황은 현실적으로 북 한이 추구하는 5개의 전략 목표가 모두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북한정권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략적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특히 북한당국의 입장 에서 볼 때 한국의 변화는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국정부의 새로운 입장은 미국정부의 입장에 영향을 주 었고, 결국 북한은 한국 및 미국과 비핵화 문제로 외교적 갈등 국면에 진입하게 되었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경 사실상 중단되었다. 또한 한국이 대북지원을 감소함으로써, 외부지원을 통해 개혁 없는 내부 불모경제를 지탱시키려는 북한당국의 정책이 사실상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외부지원 없는 내부 불모경제는 궁극적으로 내부 불만 증가 를 초래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북한정권의 내부 정치적 부담이 현저 하게 증가하게 될 것이 예상되었다. 여기에다가 2008년 후반기 김정일 건강 악화가 겹치면서, 북한당 국은 정세를 심각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 면하여 북한은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 사이에 대내체제 정비를 단 22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36 행하고 대내외적으로 현저한 강경정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 은 대외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앞에서 언급한 5가지 정책목표를 수용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대내적으로는 강압통치 강화를 통해 사회 내의 불안잠재력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대외정책 차원에서 북한은 정 책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전술적 대응을 달리 해왔다. 이는 대체로 3단계의 순환구조로 이루어졌다. 첫째, 전체 정 세가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목표 달성에 유리하게 진행하면 협상과 타 협을 기조로 유연하게 임한다. 둘째, 불리하게 진행하면, 강경조치를 통해 북한의 전략틀을 한국과 미국이 수용하도록 협박한다. 셋째, 강 경조치는 협상 입지를 개선한 다음, 북한당국은 다시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전략틀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테스트할 목적으로 접촉과 협상을 재차 개시한다. 만약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전략틀을 수용하 면 협상은 계속되고, 그렇지 않는 경우 북한당국은 다시 강경조치를 취한다. 2009년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을 시기적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9년 초부터 7 8월까지는 북한의 공세기였다. 4월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고, 또한 같은 달 자체로 경수로 건설(즉 우라 늄 농축)을 검토할 것을 밝혔고,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했다. 이 과정 에서 북한은 협상입지를 높이는 한편, 협상 조건도 현저히 격상시켰다. 7 8월부터 2010년 3월 천안함 공격에 이르는 시기는 유화 공세의 시기였다. 북한은 한국 및 미국에 대해 일련의 소소한 조치를 통해 선의를 표시하면서 접촉과 협상을 재개했으며,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요구조건에 얼마나 호의적인지 의중을 테스트했다. 북한이 취한 조치 에는 억류자 석방, 이산가족 상봉 개최,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조문 방문이 있었다. 아울러 북한은 2009년 하반기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접촉 진행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미 북 접촉 개시 등을 통해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25

237 한국과 미국의 태도를 탐색했다. 2010년 3월부터 2011년 7월까지는 북한의 공세시기였다. 2010년 3월 북한은 천안함을 공격했고, 11월 미 국 사절단을 북한에 불러들여 우라늄 농축 능력을 과시한 직후 연평 도를 포격했다. 2011년 5월에는 정상회담 개최 준비를 위한 남북 비 밀접촉을 폭로했다. 2011년 7월 이후 협상 국면이 다시 열리고 있다. 같은 달 북한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비핵화를 위한 남북회담에 응했다. 이어서 뉴욕에서 미 북 접촉이 성사되었다. 이제 이러한 전 과정에서 북한당국,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취한 전략적 입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통해 자 신의 입지와 요구를 강화하고 한국과 미국이 이를 수용할 것을 요구 하는 정책 방향을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2009년 전 반기 그간에 비핵화와 6자회담과 관련하여 취해온 입장을 대폭 수정 하여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입장은 오바마 정부 출범 이전인 2009년 1월에 벌써 천명되었다. 432 북한이 2009년부터 취하기 시작한 이러한 입장은 과거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진행을 전제로 하여 성립해 있었 던 협상과정 추진의 전제, 국제적 합의와 협의틀을 전면 부정하는 것 이었다. 그 핵심은 북한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 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전반기 북한이 제기한 새로운 의제를 요약해 보면, 433 핵무기 보유 고수, 농축우라늄 개발의 공식 화, 비핵화 없는 미 북관계 정상화, 미 북군축회담 개최, 6자회담 거 부 및 미 북양자회담 개최 요구, 자체 경수로 건설 착수, 핵능력의 지 속적 강화 등이다. 432 조선민주주의 공화국 외무성 대변인 담화, 2009년 1월 30일. 433 박형중, 북한 변화 의 재평가와 대북정책 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p ; 박형중 외, 북한 핵 보유 고수 전략의 도전과 대응 (서울: 통일연구원, 2010),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38 또 한 가지 유의할 만한 것은 핵문제에 대해 군부가 직접 개입하 여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었다. 북한 매체는 위에서 언급 한 핵문제에 관한 새로운 입장은 군대의 논리도 반영한 비핵화 과정 의 새 출발이라고 밝힌 것이다. 434 원래 핵문제는 외교당국이 다루었 으나, 이제는 조선인민군총참모부가 한반도 핵문제에 관한 군대의 입 장을 밝히는 등 핵문제를 군대가 적극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이다. 또 한 한국의 보수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결 노선의 본질을 무력을 사용 하여 강압하려 한다는 군사의 관점에서 보고, 대남조치도 군대가 전 면에 나서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435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제기한 새로운 전략의제를 수용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먼저 한국의 입장을 보자. 이명박 정부 출 범은 한국의 입장도 상향 조정시켰다. 그 핵심은 두 가지였다. 먼저 한국이 핵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의제로 내세운다는 원칙을 보다 확고하게 제시한 것이다. 즉 한국은 북한 핵문제는 미 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 다 436 라는 것이었다. 둘째, 우리의 비전과 해법을 놓고 주도하는 노 력을 해야 한다 437 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과 해법 의 핵심은 일괄타 결 또는 그랜드 바긴(Grand Bargain)이었다. 이는 그간 진행되어 오 던 (중장기) 단계적 비핵화론과 달리 (신속한) 일괄타결을 지향했다. 그 핵심 내용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하 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지원을 본격화하 434 <60년째 종전 조선의 평화협정 제안 -중-> 6자구도 근원적 문제해결로 선순환, 조 선신보, 2010년 1월 27일. 435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행각과 조선반도 정세, 조선신보, 2009년 2월 14일. 436 유명환,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핵문제, (대한상의 CEO 간담회 강연, ). 437 이명박, 이 대통령 기자회견 모두 발언 전문, 연합뉴스, 2009년 9월 30일.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27

239 는 일괄타결, 즉 그랜드 바긴을 추진한다 438 는 것이었다. 여기서 핵 심부분의 폐기 는 핵물질 및 핵무기 폐기 등 불가역적 조치를 상정하 였다. 이와 같은 조기 일괄타결을 추진하는 목적은 북핵문제가 대화 와 긴장상태를 오가면서 진전과 후퇴, 그리고 지연을 반복해오던 과 거의 패턴을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439 다음으로 미국의 기본입장을 보자. 미국은 북한의 입지 변화 시도 를 수용할 수 없으며, 따라서 북한이 미국과 주변국의 조건을 수락할 때까지 다양한 조치를 통해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협 상이 시작되는 경우는 북한이 핵능력을 포기하고자 하는 가시적이고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는 때로, 한정되었다. 기본적으로 미국정책의 핵심 개념은 전략적 관리론 이었다. 440 미국은 궁극적으로 협상을 통 해 비핵화를 달성하고자 하지만, 북한의 목표가 핵 보유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이를 성취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과 당분간 의미 있는 협상 재개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 438 외교안보, 대외전략, K/S CFR A/S 공동주최 간담회 연설 설명자료, (2009.9), pp 노무현 정부 때 외교통상부 차관보로서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 )한 이 수혁은 일괄타결 이라는 용어는 원래 북한식 용어였다고 회고했다. 이 개념은 2003년 4월 6일 6자회담 구성을 위해 열린 북한, 미국, 중국의 3자 협의에서 북한이 제안했다. 북한의 일괄타결 은 미국의 입장인 선 핵 폐기, 후 관계 정상화 를 배척하고 이의 역순 을 요구하며 보상 형식의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담고 있는 특정한 제안을 위한 용어였 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핵 폐기를 포함한 모든 양자 관심 현안(인권 문제도 당연히 포함)이 해결된 후에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과 미 국은 북한이 사용하는 일괄타결 이라는 용어에 반대하고 포괄적(comprehensive) 해 결 이라는 용어를 고집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그리하여 일괄타결 이라는 용어는 6자회 담 어느 합의문에도 쓰이지 않았고, 각국 대표들도 더 이상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 다. 이수혁은 북핵문제는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하다며, 6자회담 의제들 이 외교적 국내 정치적 기술적 이유와 사정을 감안할 때, 과정 없이 하나의 단계에서 일거에, 동시에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비현실적이다 고 말한다. 이수혁, 북한 은 현실이다: 전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말하는 통일외교 전략 (서울: 21세기 북스, 2011), pp ; p. 138; p Abraham Denmark and Nirav Patel, No Illusions: Regaining the Strategic Initiative with North Korea, 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 (June 2009). 22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40 므로 단기적으로 북한에 압박과 제한정책을 통해 전략적 주도권을 유지하고 중기적으로 상황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조 치를 취해나간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자신의 핵능력을 과 시하고 요구조건을 상향시킨 당면한 상황에서 북한과 협상하거나 거 래하는 것은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미국에 유리하게 변화시 킨 후에나 협상이나 거래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입 장은 클린턴 국무장관에 의해 전략적 인내 라고 표현되었다. 미국은 2009년과 2010년 안보리 결의 1874 이행을 국제적으로 독려하기 위 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각종 경제제재 조치를 추가로 강 화했다. 441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된 협상은 2009년 초부터 2011년 중반까지 사실상 중단되었다. 2009년 4월, 북한 외무성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하여 유엔이 이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6자회담 거부 및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2009년 10월 이후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 비밀접촉의 지속, 그리고 12월 8일부 터 10일까지 보스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 대표의 평양 방문 등을 동 력으로 하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망이 열리는 것 같았다. 2010년 2월 한 미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북한이 요구하는 추가 북 미대화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442 또한 3월 초 중국은 한 미 등과 의견 조정을 거쳐 6자회담이 열리기 전 북 미양자대화를 열고, 미사일 거래 기업 3곳 무역 제재, 6.18 미 재무부 대북제재 기업 추가(대통령령 13382호), 동 대통령령에 따른 추가 제재 대상 기업 발표, 불법활동에 대한 새로운 행정 명령 및 제재 대상 발표, 13382호에 따른 제재 대상 추가 발표. 외교부 북핵기획단, 북핵일지 (2009); 외교부 북핵기획단, 북핵일지 (2010); 임강택 외, 2010년 북한경제 종합평가 및 2011년 전망 (서울: 통일연구원, 2011), pp 황재훈, 한 미 의견 모아..시기, 방법은 결정 안돼 평화협정, 제재해제 북 미 여전히 이 견, 연합뉴스, 2010년 2월 26일.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29

241 6자회담 중이나 회기를 전후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평화회담 예비회담 등을 여는 방안을 북측에 제시할 것으로 전망되 었다. 443 그러나 이러한 정세 변화는 3월 북한의 천안함 공격으로 중 단되었다. 또한 11월에 북한은 연평도를 포격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 개최보다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징벌 조치들 에 주력했다. 2011년 1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미 중정상회담은 이러 한 상황 전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안 정 유지, 남북관계 개선, 9 19성명의 완전 이행, 북한의 우라늄 농축 에 대해 우려, 6자회담 조기 개최 등을 촉구했다. 이후 4월 한 미 북 중의 합의를 거쳐, 6자회담을 3단계 과정을 거쳐 개최하기로 합의 가 이루어졌다. 444 첫째,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남북비핵화회 담), 둘째, 북 미대화, 셋째, 6자회담 개최이다. 이러한 순서는 한국이 사실상 천안함 공격 및 연평도 포격에 대해 북한이 사과하는 문제는 6자회담 개최 문제의 직접적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수용함을 의 미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는 6자회담 재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과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남북 간 대화가 열릴 수 없다는 입장도 동시에 취 했다. 443 노효동, <6자재개시 평화협정 예비회담 부상> (종합) 보즈워스 평화협정 논의 시작 도 중요 언급 4자회담으로 가는 중간 단계 전망, 연합뉴스, 2010년 3월 1일; 유현민, 6자재개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추진 기존 합의 변화 불가피 北 반응 주목, 연합 뉴스, 2010년 3월 2일. 444 김현욱, 미 중관계와 한반도 정세 분석, 주요국제문제분석, 호 (외교안보연 구원, ). 23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42 나. 2008년 이후 남북관계의 전개과정 한편 남북관계는 2008년 이후 줄곧 적대적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한국 측이 볼 때 경색의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2008년 초부터 북한이 군부를 내세워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관리한 것,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2009년 장거리 미사일 실험 및 핵실험,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2010년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 등이 주요한 이유였다. 그렇지만 남북한 사이에는 2009년 하반기로부터 2011년 중반기까 지 적어도 3차례에 걸쳐 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접촉이 존재했다. 445 첫째 접촉은 2009년부터 2010년 천안함 피격까지, 둘째 접촉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셋째 접촉은 2010 연평도 포격 이후 2010년 말에서 2011년 5월까지이다. 그 첫 번째 접촉은 2009년 후반기의 접촉이었다. 그 시발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통전 부장이 2009년 8월 서울을 조문 방문한 것이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 과 김양건 통전부장이 10월 싱가포르에서 만났으며, 정상회담과 관련 한 메모를 작성했다. 이후 11월 7일과 14일에 통일부와 통전부 사이 에 두 번의 접촉이 있었으나 접점을 찾지 못하였다. 이 접촉은 11월 10일 발생한 대청해전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2009년 초에도 한국 정치인을 매개로한 남북접촉이 천안함 피격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 접촉은 국내외 언론을 통해 가장 비교적 자세히 알려졌다. 간 략히 보면, 이렇다. 남북은 10월 싱가포르 접촉을 통해 개최에 관련하 여 구속력 없는 대체적 합의 초안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1월 개성 접촉에서 한국이 강화된 조건을 제기하자 북한이 이에 대 445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을 일부 참조했다. 박형중, 남북 왜 정상회담에 집착하나?, NK Vision, 제27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 pp. 26~29.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31

243 해 거부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11월 이후 다음 해 2월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공개발언을 통해 정상회담에 대한 공식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이를 보다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2008년 8월 22일 김양 건 통전부장의 이명박 대통령 면담 시, 관계가 진전되면, 정상회담을 포함 회담이 가능 하다고 했고, 10월 4일 원자바오( 溫 家 寶 ) 중국 총 리는 평양 방문 시 북측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천명했다고 밝 혔다. 이후 10월 17~18일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김양 건 통전부장이 회동하여, 2009년에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잠정 합의 를 이루어 냈다. 합의 내용을 보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관련한 언 급 을 하고, 한국은 대북 쌀 10만 톤을 지원하며, 국군포로 및 납북자 각 1명의 고향 방문하며, 남측은 답방 (한국 방문)을 고집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446 그런데 한국 측 내에서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반 발 447 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비핵화 관련 언급이 애매하여 북 한의 6자회담 복귀가 명문화되지 않는다는 것, 식량지원이 정상회담 의 전제가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표현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평양으로부터 귀환할 시, 납북자 및 국군포로 수십 명을 대동할 것을 희망하며, 그래야 대규모 식량지원 가능하다는 것 이었다. 이와 같이 강화된 입장은 그 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표명되었 다. 11월 6일 외교안보자문단 조찬 간담회 브리핑에서 참석자들은 남북 정상회담 관련 보도가 나오는데 혹시 회담이 열린다면 북핵과 인권이 의제가 돼야한다 고 조언했고, 이 대통령은 거듭 말하지만 만남을 위한 만남, 원칙 없는 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446 이우탁 조준형, 남북정상회담 논의 어디까지 진전됐나, 연합뉴스, 2010년 2월 1일; 김정은, 임태희-북 김양건 쌀 40만 톤 증 지원합의, 서울신문, 2010년 2월 22일. 447 箱 田 哲 也, 牧 野 愛 博, 南 北 朝 鮮, 幻 の 首 脳 会 談 昨 年 10 月, 日 程 合 意 後 に 決 裂, 아사 히신문, 2010년 2월 4일. 23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44 생각이다 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한국 측은 대표를 통일부 K 국장으로 교체하고 북한 측도 원동연 아태평화위원회 실장으로 교체 하여 11월 7일과 14일 개성에서 추가 회담이 이루어졌다. 448 여기서 한국 측은 국군포로 납북자 각 10명씩 송환할 것을 요구했고, 식량지 원은 남북관계의 전반적 진전 상황 등과 연계해 추진할 수 있지만, 정상회담 의제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혔다. 개성회담을 보면, 남북 한 간 이견이 컸다. 449 북핵 합의문 관련해서 보면, 한국은 비핵화를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핵문제 진전이라는 표현에 만족하 고, 핵문제는 미국과 협상 문제라고 했다. 납북자 문제와 관련 한국은 1인이 아니라 10명 이상을 송환해야 한다고 했지만, 북한 측은 고향 방문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경제지원(인도적 지원)과 관련, 한 국은 핵과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진전이 있으면 얼마든지 지원한다 면서, 회담 대가로 퍼주는 모양새는 안된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한은 식량비료 지원을 합의문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상회담 이전에 전달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한국 측 미디어가 비밀 접촉을 보도하기 시작하자, 한국 측이 북측에 접촉을 중단할 것을 전 달했다. 이후 북측은 한국 측 회담 창구의 최고책임자인 현인택 장관 에 대한 비난을 시작했다 월 17일 로동신문은 통일부 및 통일 부 장관이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 는 비난했다. 이 보도는 11월 17일부터 23일까지 그리고 12월 27일에 있었다. 12월 12일 로 동신문은 포로 및 납북자 문제는 실체 없는 유령 이라고 주장했 다. 451 이 회담이 결렬된 후 11월 27일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과의 448 이우탁 조준형, 남북정상회담 논의 어디까지 진전됐나, 연합뉴스, 2010년 2월 1일. 449 안용현, 남북작년 정상회담 비밀접촉서 합의문 이견, 조선일보, 2010년 2월 1일. 450 箱 田 哲 也, 牧 野 愛 博, 南 北 朝 鮮, 幻 の 首 脳 会 談 昨 年 10 月, 日 程 合 意 後 に 決 裂, 아사 히신문, 2010년 2월 4일.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33

245 대화>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강화된 입장을 다시 밝혔다. 즉 남북문제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하려고 한다.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게 가장 선결문제다. 정상회담은 우리가 당장 정치 적으로 해야 될 이유가 없다.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국군포로, 납치 문제 등을 풀어나갈 수 있다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문제도 대한민국이 당 사자라고 생각한다. 가장 위협을 받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 에 그랜드 바긴이라는 걸 알렸고, (국제사회도)대부분 동의를 했다. 북한문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모든 문제, 정상회담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남북 간 관계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관계로 돌려놓고 그 위에서 얘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핵문제 도 해결하고 북한 인도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해서 남북이 화해 하고 공동번영으로 가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해결되면 언제든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만날 수 있다고 본다. 장소는 사실 두 번 찾아가서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에 와야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소는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어도 된다는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본입장은 1월 4일 신년 국정연설 관련 브리핑에, 1월 2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BBC와의 인터뷰, 452 2월 1일 수석비서관회 의 브리핑 회의, 2월 2일 제6회 국무회의 브리핑에 소개된 이명박 대 통령의 발언에 기조로 유지되고 있었다. 2월 2일 국무회의 발언을 보 면 이렇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언론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남 451 箱 田 哲 也, 牧 野 愛 博, 南 北 朝 鮮, 幻 の 首 脳 会 談 昨 年 10 月, 日 程 合 意 後 に 決 裂, 아사 히신문, 2010년 2월 4일. 452 李 대통령, BBC 인터뷰, 청와대뉴스, 2010년 1월 28일, < view.php?uno=906&cur_page_no=60>. 23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46 북정상회담은 확고한 원칙 아래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충족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다.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하에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 이 원칙을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두 번째 접촉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이후에 진행되었다. 6~9월 사이 국정원과 국가보위부 사이의 접촉이 개성 등에서 이루 어졌다. 여기서 성과가 없자 북한은 정치권 비선을 통해 청와대에 접 근했다. 이 접촉은 11월 연평도 포격으로 중단되었다. 세 번째 접촉은 연평도 포격 이후에 진행되었다 년 12월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류경이 서울을, 2011년 1월 김숙 국정원 1차 장이 평양을 방문했다. 한편 류경 부부장은 1월 초 숙청되었다. 그는 한국의 공작에 휘말려 대남 전략을 유출시켰다는 혐의를 받았다. 보 위부가 타격을 받음으로써 잠시 대남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후 한국과 북한은 5월 9일 개성에서 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주제 로 다시 접촉했다. 14일 회동에는 한국에서 청와대, 통일부, 국정원 대표와 북한에서 국방위 정책국 박철 소장, 아태위 원동연 부위원장, 통전부 맹경일 과장이 참석했다. 북한이 6월 폭로한 남북접촉 정황은 5월 14일 베이징 회동으로 보인다. 세 번의 접촉은 왜 실패했을까?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어려운 시기와 조건에서 남 북정상회담이 추진되었다. 둘째, 협상 장에 나온 대표들의 각자 내부 에서의 지위가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협의 결과를 내부에서 설 득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셋째,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탐색 접촉을 기 획하고 관리하는 데서 많은 문제가 노출되었다. 453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류경, 김숙의 비밀접촉 사실을 부인했다. 동아일보, 2011년 7월 7일.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35

247 이 세 가지를 보다 자세히 보고자 한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을 성 공시킬 만한 전략적 접점이 취약했다. 남북정상이 만나는 목적은 남 북관계를 적어도 중기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전략적 타협의 틀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는 한국정부와 북한당국의 이익이 전반적으 로 수렴해가는 중기 정세가 등장되는 것으로 전망될 때이다. 이해관 계가 추세적으로 서로 갈리는 시기에는 정상회담이 성사 및 성공하기 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정상회담에 대한 탐색 협의가 시작되는 시기 에 남북한의 전략적 입장을 크게 상충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가 없었더라도 그러하다. 한국의 대북 전략 기본입장을 보면 이렇다. 첫 째, 북한은 한국을 단지 경협의 상대가 아니라 전략적 정치적 파트너 로 수용해야 한다. 둘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핵문제이고, 핵문제 는 그랜드 바긴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셋째, 북 한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와 같은 한국 측이 제기하는 인도주의 사 안에 대해 협력해야 한다. 넷째, 정상회담의 (경제적) 대가는 있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보면, 첫째,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 정해야 하며, 우라늄 농축은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다. 둘째, 핵보 유국의 자격으로 미국과 평화협정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한다. 셋째, 남북관계에서 한국은 북한당국을 정치 외교적으로 지지해야 하며, 북 한당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적어도 남북 양측의 공표된 입장에서 보면, 양측 간에 접점은 많 지 않다. 특히 핵문제와 관련하여 그렇다. 그런데 정상회담이 개최되 자면 전략적 타협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성사시키는 것은 보통의 경 우에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갈등과 불신을 어느 정도 걷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회담이 진행되면 타협은 더욱 어렵다. 남북 양측은 상대방 23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48 입장의 견고성에 대해 아마도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한국과 북한 양측에 공히 내부의 이견과 갈등을 확고히 통 제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상대방과 타결하고 맺어낸 약속은 지 켜낼 수 있는 정치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민주국가인 한국의 내부정 치는 갈등적이고 역동적이다. 한국을 놓고 보면, 전략적 기획 차원의 대북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집권 말 기보다는 집권 초기가 좋다. 또한 매우 중요한 것으로써 국민적 합의 가 탄탄할수록 중기적 전략적 차원의 남북관계를 정립시키는 데 성 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지 못한 경우 시간차를 두고서라도 반드 시 뒤탈이 내부적으로 발생해왔다. 북한은 개인 절대 독재국가로 간 주되면 따라서 일사분란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북한의 상층 내부 관계에는 보다 통합적 시기와 보다 분열적 시기 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나 북한이나 내부적으로 분열이 심할수록, 남북한 접촉과 협상의 당사자들이 내부의 통일된 의지를 반영하지 못할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양자 간의 약속은 각 측의 내부 알력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협상에 난관이 등장하는 경우, 각 측 협상 대표는 이를 끈질기고 집요하게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특히 각 측 협상 대표는 자기 측 내부에서 협상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협상장 바깥에서 돌출행동을 하는 것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나 년간의 정상회담 접촉을 보면, 회 담 대표의 위상이 취약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이상에서 언급한 두 조건이 충족된 이후, 남북정상회담은 탁월한 전략적 안목, 기획 및 추진 능력을 가진 실무집단이 존재해야 성공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정부와 북한당국 간의 접촉과 협상 은 아직까지도 스파이 영화와 같은 장치와 과정이 개입하고 있다. 또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37

249 한 남북 간 그리고 주변국 간에 존재하는 갈등과 불신, 남북한 각기의 내부에 존재하는 알력 때문에 남북 간의 접촉과 협상 과정에는 수많 은 지뢰가 장착되어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와 그것 이 추진하는 전략 기획이 궁극적으로 성공하자면 이와 같은 모든 문 제를 인지할 뿐 아니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실무 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고도의 전략적 정치 이 벤트가 성사되고 중장기적으로 궁극적으로 성공하자면, 무엇보다 남 북한이 전략적으로 이익타협에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이익타협은 양 측의 전략적 이익이 추세적으로 수렴되는 역사적 시기에 성사될 가능 성이 더 높다. 확실한 것은 지난 3년간 남북한의 전략적 이해는 수렴 하기보다는 벌어지는 추세 속에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북한은 집 요하게 정상회담 개최에 집착해 왔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 측이 집 착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남북 간 접촉과 관계가 확대될 것에 대한 국내정치적 요구가 높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안 보 불안의 근원인 북한당국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이다. 이는 북한 의 무력 돌발 행동이 노골화되면서 특히 절실해졌다. 북한이 집착하 는 이유도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강력한 한국의 존재자체가 북한당 국에 부담인데, 거기에다가 북한당국에 대해 부정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더 큰 부담이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한국을 정치적 외교적으로 최소한 순치시키고 관리해야 한다. 둘째, 북한당국은 한국의 북한당 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재개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요소가 한국정부와 북한당국에게 정상회담 개최 탐색 시도에의 추동력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분 명 절실한 요구이기도 하면서도, 한국정부와 북한당국 중의 어느 한 23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50 쪽 또는 양쪽이 근본 입장을 수정해야 할 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 측면은 정상회담 탐색 시도를 계속하게 만드는 한편, 두 번째 측면이 결정적 순간에 탐색 시도가 실패하게 만든 가장 궁극적 이유 인 것으로 보인다. 양자 또는 어느 한쪽에 더욱 절실한 상황이 도래해 야 서로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타협이 가능했었을 수 있다. 나아가 북한은 정상회담 개최 탐색 접촉을 더욱 편의적이고 전술 적으로 임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일면 접촉을 진행하면서 만 족스럽지 못할 경우 이를 언제든지 파기하고 무력행사로 돌변하는 것 을 처음부터 작정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접촉 재개 를 통해 상대방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다. 2012년까지 정세 전망 2011년 1월 미 중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한국에 대해 대화 재개 공세를 펴는 한편, 한국에 대해 대남 도발을 지속했다. 주요 대화 재 개 공세를 보면, 1월 신년공동사설,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 조평통 당국회담 제의, 2월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개최 및 무산, 3월 백두산 지진관련 회담, 4월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 령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제의 등이 있었다. 주요 도발 및 기타 대남 대응에는 농협 전산망 해킹(4월 12일), 김정일위원장을 핵 정상회담 에 초청한 베를린 제안 거부(5월), 금강산 재산관리문제 협의 요구(6 월), 국방위 남북 비공개접촉 공개(6월), 남북대화 전제조건 철회 요 구, 한국군 표적지 비난(6월) 등이 있었다. 특히 5월 9일 김정일은 2012년 핵정상회담 초청 이후 대남 및 이명박 대통령 실명 비난이 급증했다. 또한 김정일 방중(6.20~27) 이후에는 비난 강도가 한층 강화되었다. 6월 29일 이후 한국군 군부대 구호 와 관련하여 북한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39

251 매체 및 전체사회를 총동원하여 맹비난했다. 정부대변인성명 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청와대 앞 통지 문 등으로 북한은 동원 수위를 높였다. 아울러 이명박 패당 죄악 단 죄 평양 군민( 軍 民 ) 10만 군중대회가 개최(7.4)되었다. 그러나 전체 정세는 협상 재개 쪽으로 진전하고 있었다. 사실 1월 미 중정상회담 이후, 미국, 그리고 한국과 북한은 정세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었다. 먼저 미국 대북정책의 전술적 수정 동 향이 나타났다. 미국정부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반 도 정세 안정을 바랐다. 또한 농축우라늄 개발 지속 및 남북 군사 충 돌을 우려했다. 미국은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 김태효 전략비서관 방 미 시 한국에 대북정책 완화를 주문(6.24)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협상파로 알려져 있는 웬디 셔먼(Wendy Sherman)을 국무부 정무 차관 임명(7.1)되었다. 미국은 북한에 식량지원 여부를 결정할 목적 으로 식량 상황 조사를 위하여 5월 로버트 킹(Robert R. King) 인권 특사를 포함한 미국 대표단을 인권식량상황 조사단으로 파견했다. 한 국도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한국정부는 6월 24일 이후 천안함 연평 도와 6자회담 분리 가능성 시사했다. 또한 한국정부는 남북경협 사업 자 방북을 허용했다(6.24~26). 이 대통령은 7월 1일 천안함 연평도 에 머물 수 없다. 무엇보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가자 고 발언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은 대북 구호 식량 재개를 결정했다(7.4). 북한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 를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 중의 압력, 추가 도발의 경 우 패착을 둘 위험 등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도 노골적 추가 도발은 어려웠을 것이다. 나아가 2010년 악화된 경제사정을 완화하고 2012년 행사용 물자 비축을 위해 외부지원을 획득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유화 공세는 7월 22일 발리 남북 1차 비핵화 회담을 전후 24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52 해서 다시 시작되었다. 곧 이어 미 북회담이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뉴욕에서 열렸다. 9월 21일에는 베이징에서 2차 남북비핵화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현재(2011년 10월)까지 북한 대 한국과 미국은 뚜렷하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북한은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 을 열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단 회담을 열리면 농축우라늄 프로그 램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으니 일단 회담부터 열자는 것 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중단했을 뿐 아니라 우라늄농축 시설을 가동한 것은 명백한 9 19, 2 13비핵화 합 위 위반이므로, 이것들을 바로잡는 조치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6자회 담이 열릴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454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은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사전조치로써,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 기구 사찰단 복귀, 핵과 장거리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실험 잠정유보 선언을 요구해 왔다. 특히 북한이 마지막 6자회담이 열린 2008년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당시와 유사한 핵시설 불 능화 논의단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2차 남북 비핵화회담에서 북 한은 당초 자신들이 주장해온 국제사회의 대북제제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 같은 전제조건을 철회한만큼 한국도 전제조건을 달지 않고 동등 한 자격으로 6자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55 여러 조건을 볼 때,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여러 접촉과 협상은 진 행되겠지만, 2013년까지 의미있는 현상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는 각각 2012년 행사를 위한 준비기에 진입했다. 2012년 한국, 미국,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고, 중 국에서는 지도부 교체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강성대국 문열기 와 김 454 김진명, 평행선 달린 남북 비핵화 회담, 조선일보, 2011년 9월 22일. 455 최원기, 남북한,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 놓고 견해차, 미국의 소리, 2011년 9월 21일.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41

253 일성 출생 100주년 을 기념해야 하며, 김정은의 후계자로서의 공식 위상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2013년까지 남북관계 및 관련 국제관계의 현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하반기에서 2012년 말까지 각 국가는 국내정치에 집중해야 하기 때 문에 대외관계에서 추진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현상변경은 없지만, 관련 국가는 정세의 안정적 관리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을 앞두고 한국, 미국, 중국과 북한은 정세의 안정적 관리에 우선적 관심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 국은 대선기간 중 북한의 무력 교란행동을 원하지 않으며, 북한은 2012년 내부 경축행사를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데로, 한국, 미국 그리고 중국과 북한은 남-북 -미 핵관련 접촉 등을 통해, 특히 7월 이후 일정하게 전술적으로 유 연성을 발휘해 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공히 2013년 한 미 새 정부 출범까지 전술적 상황관리가 주를 이룰 것이 다. 2012년 말까지 현안에 대한 전략적 타협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지만, 기회주의적 전술적 유연성은 강화될 것이다. 한국, 미국, 북한은 2013년 한 미에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진지한 전략적 타결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하고, 선거국면에 진입해 있고 조만간 교체될 한국과 미 국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실질적 협상을 추진하기 어려우며, 북한도 그리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011년 하반기~2012년까지는 다만 대내 정치적으로 또한 상대국가에 대해 전술적으로 유리한 상황 을 창출하기 위한 전술 행마에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전술 행마에는 북한의 상징적 또는 실질적 위협행동도 포함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현 시점(2011년 10월)에서 향후 중장 기 전략목표, 2012년 말까지 전술목표, 2011년 말까지 당면목표로 다 음과 같은 것을 설정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의 정책목표 24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54 를 보자. 북한은 중장기 전략목표로써, 핵 보유국가 지위를 승인받으 며, 외화벌이 개방 및 대외원조 유입 증대를 통해, 대내 개혁 없이 체제를 유지하고 권력승계를 안정적으로 성취하는 것을 설정하고 있을 것이다. 2012년 말까지 전술 목표로써는 북한이 구조적으로 유 리한 입장을 차지하는 식으로 ( 조건 없는 )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2013년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와 실질적으로 새로 시작될 핵 관련 협 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의 대선에 직간 접으로 개입하여 한국에서 대북한 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을 집권시키는 것이다. 2011년 하반기 전술목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창피주기 와 각종 대남 도발을 통해 직간접으로 위협을 높임으 로써 현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한국 내 여론을 증강시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요구조건(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을 무시한 채 로 남북관계를 재개하고, 조건 없는 6자회담 성사를 요구하는 국제 여론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의 정책목표를 보자. 중장 기 전략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를 조속하게 추진하며, 북한에 대한 관 여를 확대함으로써 북한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한국의 레버리지를 강 화하는 것이며,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2012년 말까지 전술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한 상태(핵 무기 및 미사일 실험 중단, 농축우라늄 생산 중단, IAEA 사찰단 복 귀)에서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2013년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가 북한과 실질적으로 새로 시작할 핵 관련 협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 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천안함 및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 문제를 해결하고 원칙 있는 포용정책 이 관철되는 방향에서 남북관계를 재 개하여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북한의 추가 무력도발을 억제하는 것 이다. 2011년도 하반기 전술목표는 대북정책에서 그간의 원칙이 훼 손되지 않는 방향에서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긴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43

255 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추가도발을 방지하며, 6자회담 재개에 우호적 여건을 조성하고, 북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한국의 대내 정치 압력에 대응하는 것이다. 2012년 말까지 북한의 기본노선은 안정적 상황관리이며 6자회담 개최 이전 협상우위 확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에도 다양한 압 박수단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압박수단에는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재래식 국지도발, 사이버 공격 등이 있다. 또한 선거국면에서 북한이 남북 간 여러 미결 및 시비거리 사안(금강산 관 광, 서해해상경계선 등)과 여타 문제로 한국정부 괴롭히기 및 골탕 먹 이기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북한 내부 이견으로 대남정 책과 남북관계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접촉과 협상과정 에서 북한 강경파가 돌발 기습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2012년 상반기 북한은 내부의 여러 경축행사(2 16 김정은 70세 생일, 4 15 김일성 출생 100주년, 4 25 조선인민군 창건 80돌)에 주력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안정상황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하반기 에는 남한 대선 국면에 적극 개입하여 전쟁이냐 평화냐 를 선택하라 는 식의 도발을 야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년 이후 정세 변화 주요변수 가. 주요변수 1: 2013년 이후 북한 핵문제 - 타협인가 대결인가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2013년 한국과 미국에 새 정부가 수 립된 이후에 핵문제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협상을 진행하게 될 것 이다. 이 협상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가는 남북관계의 향배와 동 24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56 북아 안보 정세,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북한 내부 정세의 전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 나라가 한국과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다 본격적이고 진지한 협상을 진행하게 될 이유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에게 공히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세 나라가 한국과 미국 대통령 임기의 전반부 즉, 2013, 2014, 2015년까지의 시기에 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북한 핵문제는 또 다시 장기 공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협상이 공전하거나 결렬 되는 경우, 북한은 핵능력을 확장하여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할 것이고, 확산 행위를 취할 것을 위협하는 가운데, 한 미와 북한 사이 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것이고, 아마도 한국과 미국이 보다 적극적 으로 대북 내부 교란정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은 외부 원조 조달 부진과 내부 반개혁정책으로 경제난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 에 북한 내부정세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북한당국은 호전적 대외정 책으로 내부위기를 관리할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모두에게 매우 큰 위험을 제기하는 상황 이다. 그런데 설령 2013년 세 나라 사이에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더라도, 이 협상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 과 미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 핵문제 협상을 둘러싸고 견해차이가 크 기 때문이다. 북한이 성취할 수 있는 최대목표는 핵 보유 국가로 인정 받은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교 정상화를 이루어 한 국을 북한의 종속적 파트너로 불러들이는 한편, 한국으로부터 지원성 경제협력을 대량 수취함으로써,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으로 인해 경 제 불모화가 진행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정권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 성취할 수 있는 최대목표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45

257 는 그랜드 바긴을 통해 핵무기 및 핵물질 반출, 우라늄농축 중단을 관철시켜 북한을 조속하게 비핵화시키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지원하 는 가운데 한국주도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그 어느 쪽도 자신이 극대목표 를 일방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양측의 극대목표를 연결한 직선상의 어느 지점 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 타협점이 한국과 미국의 극대목표에 또는 북한의 극대목표에 더 가까운 것은 전적으로 협상과정이 진행되 는 동안 상호가 협박과 회유를 통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와 같은 합의점을 찾는 협상 에는 매우 많은 굴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협상 진행이 자신의 전략틀 안에서 진행되는 경우 협력적으로 나올 것이지만, 그 렇지 못한 경우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 기 위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 역시 유사한 대응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한국과 미국이 제시한 전략틀에 들어오지 않 는 경우, 두 나라는 전략적 인내 에 입각하여 북한의 악행에 대해 징 벌적 압박을 가하면서 상황이 유리하게 변화할 때까지 북한 주도의 협상을 거부한 채로 제재를 통해 압박을 가하면서 기다리는 전략을 택할 것이다. 2013년 이후 세 나라 사이에 북핵문제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그것 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수많은 불확실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협 상 진행과정에서 순차적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불확실 요인이 대두할 것이며, 각 불확실 요인을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이 어떻게 통제하 는가에 따라, 협상의 갈림길에서 선택되는 추후 경로가 매번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또는 정세 갈림길로써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 다.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불확실성은 2012년 한국과 미국의 대통 24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58 령 선거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추구하는가이다. 특히 선거에서 경쟁하는 대북정책 간의 격차가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클 것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는가 보다는 한국에서 어떤 정 치 세력이 집권하는가에 따라 이후 어떤 정세를 맞이하게 되는가가 더 크게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2012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또는 보수,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에 상관없이 한국의 대북정책은 과 거에 비해 보다 중도적 입장을 택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하나의 예측 을 소개하면 이렇다. 만약 새로운 진보정부가 출범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비교할 때 평양에 대해 더 유연하고 협력적이 될 것이며 미국에 대해 덜 협조적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노 무현 정부에 비해 보다 신중하며 대북지원에서도 덜 푸짐할 것 이다. 진보정부는 평화와 안보에 대한 한국의 장기 이익을 주 변 국가 및 미국과의 전체 관계에 비추어 재평가할 것이다. 미 국과의 동맹에 급격한 변화가 없을 것이지만, 약간의 변화가 추구될 것이다. 어떻든 한 미관계는 노무현 정부에서 만큼이나 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년에 보수적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해도, 현 정부와 비교 할 때 북한에 비해 더 유연할 것이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 의 이익에 대해 더욱 의식하게 될 것이다. 456 둘째, 한국과 미국의 정책입장이 보다 수렴하게 될 것인지 또는 보다 갈등하게 될 것인지도 큰 변수 중의 하나이다. 만약 한국과 미국 의 대북정책이 수렴하는 정세가 발생한다면, 북한에 대한 압박과 효 과는 더 커질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요구조건을 마 지못해 수용하든지 아니면, 두 국가를 공히 협박할 수 있는 도발을 456 Tong Kim, A harbinger of change for 2012, Korea Times, October 30,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47

259 저질러야 한다. 만약 심각히 갈등하는 정세가 발생한다면, 북한은 한 국과 미국을 이간질하면서 활로를 찾아나갈 수도 있다. 셋째, 다음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어떠한 대북정책이 채택되는 것 과는 별개로, 한국과 미국이 내세우는 협상조건과 북한이 내세우는 협상조건에 대해 타협이 이루어지는가, 아닌가에 의해서도 정세의 경 로가 크게 바뀔 수 있다. 양측의 협상 조건이 전략적 차이를 반영할 수도 있고, 전술적 차이를 반영할 수도 있다. 어쨌든 매 협상의 계기 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상대방을 자신의 정책틀로 유도하 기 위해 협박과 회유를 구사하게 될 것이다. 전략적 상치가 있다 하더 라도 양측은 전술적 평온을 선택할 수도 있고, 상호 전략적 수렴과정 에 있더라도 전술적 이익을 위해 무력도발과 같은 수단이 투입될 수 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 불확실 요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불확실 요인, 다 시 말해 불확실성의 순간에 어떤 결정이 내려지는 가에 따라 정세의 전략적 경로를 구조적으로 바꾸어버리는 그러한 불확실 변수는 무엇 일까? 북한 핵문제로 문제를 국한시켜 놓고 볼 때, 가장 큰 불확실성 은 한국과 미국이 취하게 될 전략적 입장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이 취하게 될 전략적 입장은 여러 구조적 제약요인 때문에 대체로 정해 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관료집단이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 전략 사고, 업무 집중도와 경험축 적 등에서 연속성을 보여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미국 의 입장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분석하면서, 이에 전술적으로 대응하 는 양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또는 각각 취하게 될 전략적 입장에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하는 세력 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선거 결과가 어떠한가에 불확실성이 있고, 선출된 대통령이 얼마나 24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60 강력한 지지를 누리는가, 새로운 대통령의 정책을 자문하고 실행할 집단의 전략적 사고의 품질과 업무집중도, 이데올로기적 편향, 내부 갈등 분란 여부 등 불확실성 요인은 많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대북정책에서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추수하 게 될 가능성이 2013년 이후는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국과 힘을 합치지 않는 한 돌파력을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 내에도 대북정책을 놓고 다양한 대안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 의 입장에 따라 그 대안 사이의 세력 균형이 변한다고 볼 수 있다. 노 무현-부시 정부의 경우에도( 년) 부시 2기( 년) 의 경우 결국 부시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추수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명박-부시 정부의 경우(2008년) 미국의 정책방향이 한국의 요구에 의해 영향 받았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이후 이명박- 오바마 정부의 경우에도 오바마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입장을 결정한 것은 2009년 2차 핵실험 등 북한의 선제도발이었지만, 한 미동맹을 강조하는 오바마 정부에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입장은 매우 중요 한 고려사항이었다. 2013년 이후에도 한국의 입장은 미국의 대북정 책 입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3년 이후 미국은 기본적으로 대내외 여러 문제 때문에, 북한문제에 집중할 여유를 가 지고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협상 지렛대의 중요한 축의 하나인 경제적 보상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침체 지속에 따라 미국이 볼 때 동북아에 서 한국이라는 동맹국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합리적 대북정책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의 진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지 않으면 미국은 대체로 한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취할 핵 협상 전략을 보자. 북한의 기본전략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단계적 비핵화론에 입각한 살라미 전술을 활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49

261 용하면서 보상은 극대화하고 시간을 끄는 것이 될 것이다. 북한은 핵 무기, 추출된 플루토늄, 플루토늄 프로그램(생산시설), 농축우라늄 제 조 시설, 그리고 핵 운반수단으로써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 현재 다양 한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부득이한 경우 이 중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핵무기 보유상태를 사실상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 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살라미 전술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잘게 잘라서 단계적으로 이행하며, 단계마다 가능한 한 대규모의 일 회성 또는 구조적 보장과 언약을 받아내고자 할 것이다. 또한 협상이 의도한 데로 흘러가지 않으면, 각종 장애를 제기하면서 시간을 끌거 나 새로운 도발을 일으킬 것이다. 그 목적은 제기된 요구를 거부하거 나, 협상입지를 강화시켜 더 많은 반대급부를 받아내기 위해서이다. 북한이 핵능력을 일부 포기하는 방식에는 협상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대안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첫째, 핵능력의 현 상태 동결 에 국한, 둘째, 핵무기, 플루토늄,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보유하고 현 존하는 플루토늄 프로그램만 포기, 셋째, 핵무기, 플루토늄은 보유하 고 현존하는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포기, 넷 째, 핵무기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유지하고, 플루토늄,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포기, 다섯째, 핵무기는 유지하고, 플루토늄, 플루토늄 프 로그램,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포기, 여섯째, 핵무기, 플루토늄과 플루 토늄 프로그램은 포기하고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유지, 일곱째, 핵 무기, 플루토늄, 플루토늄 프로그램,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이다. 457 한국과 미국의 정책 선택에서 내용상으로 핵심적인 것은 북한 비 핵화 전략에 함축되어 있는 세 가지 구성요소의 배합이다. 즉 첫째, 457 함형필, 김정일 체제의 핵전략과 딜레마 (서울: KIDA, 2009), p. 119를 참고로 재정리. 25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62 북한 내구성에 대한 판단으로 중장기 생존인가 조기 붕괴인가, 둘째, 당근과 채찍의 배합으로 관여와 안전제공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가 아 니면 제한과 예방을 중심으로 하는가, 셋째, 비핵화의 중장기 타결추 구인가 또는 조기 타결 추구인가이다. 첫 번째 요소는 북한체제의 내구성에 대한 판단이다. 또는 북한당 국이 한국이나 미국을 거스르는 정책을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는 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는 단순화하면 북한 붕괴 박두론과 중장기 존 속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북한 붕괴 박두론은 지난 20년간 적어 도 네 시기에 걸쳐 지배적 판단으로 등장했다. 458 첫 번째 시기는 1990년대 초반으로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한 직후 시기 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으로 김일성이 사망하고 내부 경제가 붕괴하고 기아가 만연하던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2003년 2차 핵위기의 발생으로 긴장이 격화되던 시기이다. 네 번째 시기는 2008년 말 후반기 김정일이 뇌경색을 맞으면서 조만간 사망가능성이 대두하고 내부적으로 화폐개혁 등으로 인해 경제난과 사회적 불만이 커간다는 판단이 대두하던 시기이다. 물론 서방의 전문가들이 이러한 판단을 할 만한 여러 이유가 북한과 관련하여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은 계속 존속하고 있다. 북한정권 을 이와 같이 취약하게 판단하게 되면, 북한정권이 내부 식량난 등 때문에 대외원조가 절실히 필요할 것으로 추론하게 된다. 따라서 내 부 안정을 위한 대외원조 수취를 위해 북한정권이 조만간 핵문제 등 에서 상당한 양보를 취할 것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취약하거나 또는 조만간 붕괴할 정권에 대해서 두 가지 전략 사 고가 우세해지는 경향이 있다. 첫째, 이러한 취약한 정권에 대해서는 458 Jonathan D. Pollack, No Exit: North Korea, Nuclear Weapons and International Security (London: IISS, 2011), p. 18.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51

263 장기간에 걸친 주고받는 협상을 하기보다는 압박을 통하여 항복시키 고 정책을 바꾸도록 하고자 하는 전략 사고 성향이다. 둘째, 현존 정 권을 진지하게 상대하기 보다는 현존 정권과의 협상을 회피하는 대 신, 현존 정권 붕괴 이후의 사태 전개에 대비하는 것에 치중하는 전략 사고 성향을 강화시킨다. 이 두 번째 전략 사고의 사례 중의 하나는 북한정권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큰 양보를 하더라 도 그것이 결국 북한정권에 이득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 한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에 경 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경수로가 완성되기 전에 북한은 붕괴 할 것이고, 그러면 건설 중인 경수로는 결국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한 국 정부에 의해 완성되어 통일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암묵적 논리가 그것이었다. 459 두 번째 요소는 비핵화를 추구하는 데서, 두 가지 접근이다. 그 하 나는 관여와 안전제공(engagement and reassurance)을 통해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략 사고이다. 그 다음은 제한과 예방(constraints and prevention)을 통 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추진할 능력은 가지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 또는 무기 잠재력은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나단 폴락(Jonnathen D. Pollack)은 두 접근에 다음과 같이 구체 화하고 있다. 460 관여와 안전제공 접근은 인센티브 중심이며, 북한정권이 핵 보 유 필요를 못 느끼도록 만들어 포기를 유도한다는 접근이다. 459 Glenn Kessler, South Korea Offers to Supply Energy if North Gives Up Arms, Washington Post (July 2005). 460 Jonathan D. Pollack, No Exit: North Korea, Nuclear Weapons and International Security (London: IISS, 2011),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64 이 접근은 미끼던지기(inducement), 안전제공과 정권존재정 당성 인정(assurance and validation), 그리고 이와 같은 조치 와 함께 경제사정을 개선하고 북한의 국제고립을 종결시킬 기 회들과 혼합하면 북한이 핵무기에 부여하고 있는 가치를 낮출 수 있고 그리하여 이러한 능력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 포기하 는 결정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수단에는 양자 및 다자 안전보장,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핵설비를 불능 화 하는 데 필요한 기술원조, 현존 원자로보다 핵확산이 더욱 어려운 대체 원자로를 건설해주려고 (한동안) 노력했던 것, 그 리고 여타 형태의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며, 외교 관계 정상화 와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대신할 평화 협정에 관한 협상을 포함 하여 (북한정권에 대한) 정치적 인정(affirmation)을 제공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접근은 제한과 예방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능력을 가 지거나 발전시키는 것을 막아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한 조치에 는 억제와 방어, 불법기술 획득과 무기 이전에 대한 제재와 차 단, 핵기술, 원료 및 지식을 타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막아내고 자 하는 노력, 북한을 고립하고 압박하는 조치, 비록 무력 사용 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제거하는 예방적 조치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 있다. 세 번째 요소는 (속전속결형) 일괄타결 또는 그랜드 바긴과 (중장 기형) 단계적 비핵화론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 하는가이다. 일괄타결 형 정책은 모든 현안을 양측이 한꺼번에 의제로 다루면서 비핵화 과정 을 조속하게 종결짓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그랜드 바긴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했다. 미국 측에서는 2009년 2월 하원 청문회에서 찰스 프리처드(Charles L. Pritchard) 가 이러한 주장을 했다. 461 그는 핵물질과 핵무기를 북한으로부터 제 461 Charles L. Pritchard, Smart Power: Remaking U.S. Foreign Policy in North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53

265 거하고 이와 교환하여 관계정상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농축우라늄 문제, 북한의 핵확산 활동, 그리고 북한 인권문제 등 모 든 의제를 올려놓고 미국과 북한 양측은 양측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곳으로 직접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단계적 비 핵화를 보자.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자는 조엘 위트(Joel Witt)와 레온 시갈(Leon Sigal)이다. 462 이 논리에 따르면, 북한 핵무기를 제 거하는 타결책이 단기간 내에 성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비핵화 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은 플루토늄 과 농축 프로그램을 벽돌 한 장씩 포기하듯이 거래할 용의가 있기 때 문에, 미국이 그에 상응하게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는 그랜드 바긴(Grand Bargain)이 아니라 순 서에 따라 취해지는 상호주의적 행동에 대한 포괄 목록을 작성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과거 노무현 정부가 단계적 비 핵화론을, 미국의 경우 부시 정부 2기에 맺어진 2007년 2 13합의와 10 3합의가 단계적 비핵화론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각각 두 상충하는 선택을 포함한 세 가지 요소가 발생시 키는 경우의 수를 보면, 다음과 같은 8가지가 등장한다. Korea, Statement before the House Foreign Affaris Subcommittee on East Asia, the Pacific and the Global Environment (February 12, 2009). 462 Leon V. Sigal, A Strategy for Dealing with North Korea, Testimony before the 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 (June 11, 2009); Joel Witt, U.S. Strategy towards North Korea: Building Dialogue and Engagement, A report by the U.S.-Korea Institute at SAIS and the Weatherhead East Asian Institute at Columbia University (October 2009). 25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66 <표 Ⅴ-1> 비핵화 정책의 3변수와 8가지 조합 붕괴박두론과 중기존속론 당근론과 채찍론 일괄타결과 단계적 접근 1 붕괴 박두 관여와 안전보장 단계적 접근 2 중기 존속 관여와 안전보장 단계적 접근 3 붕괴 박두 제한과 예방 단계적 접근 4 중기 존속 제한과 예방 단계적 접근 5 붕괴 박두 관여와 안전보장 일괄타결 접근 6 중기 존속 관여와 안전보장 일괄타결 접근 7 붕괴 박두 제한과 예방 일괄타결 접근 8 중기 존속 제한과 예방 일괄타결 접근 위의 8가지 사례 중에서 역사적으로 구체화되어 실시된 경우가 있었다. 먼저 위에서 제 1유형은 제네바 합의라고 볼 수 있다. 1990년 대 미국 조야에는 북한 붕괴론이 풍미했다. 따라서 설령 북한에 대해 <관여와 안전보장+단계적 접근>에 합의해 준다고 해도, 북한정권 이 곧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손해보는 것은 없다는 논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위의 제 2유형에 해당한다. 즉 <중기 존속+관여와 안전보장+단계적 접근>이다. 이명박 정부 의 정책은 제 7유형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제 2유형을 시도하자는 주장도 혼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제 7유형은 <붕괴 박두+제한과 예방+일괄타결 접근>이며, 제 2유형은 <중기 존속+관여와 안전보장+단계적 접근>이다. 제 1기 부시 정부의 경 우는 제 7유형 또는 제 3유형 즉 <붕괴 박두+제한과 예방+단계적 접 근>에 접근했다. 제 2기 부시 정부는 제 2유형에 근접했다. 오바마 정 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중기 존속+제한과 예방론>을 주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미 북 간 협상에 진전이 있어, 북한이 핵무 기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게 폐기할 진지한 준비가 되어 있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55

267 는 경우가 등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북한의 행위에 대한 불 신 때문에 <제한과 예방>을 지속하는 가운데 가속화된 <단계적 접근 론>, 다시 말해 <일괄타결형 단계적 접근론>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이 되어서 한국과 미국에 등장하는 새로운 정부는 어떠한 조합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먼저 <붕괴 박두론> 대 <중기 존속론> 을 보자.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보여주는 현실은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발생시킬 인자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김정일 건강문제, 김정일 사망 후 북한 내부 정치 불안 발생 가능성 문제, 화폐개혁 이후 증가하고 있는 주민의 정권에 대한 불신 등이 있다. 문제는 2013년을 지나면서 언급된 북한 내부 문제가 얼마나 정리되는가이다. 2013년경에 들어서면서, 후계 문제의 안착과 내부경제 개선의 징조가 나타난다면 <중기 존속론>이 우세 해질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붕괴 박두론>의 영향이 강하게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북정책 차원에서 <붕괴 박두론>보 다는 <중기 존속론>에 입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붕괴 박두론>은 상대를 얕잡아 보게 만들어 이쪽에 허점을 만들거나, 기다리고 보자 는 수동적 정책 자세를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기 존속 론>에 입각하여 능동적 정책을 폄으로써 만약 <붕괴>과정이 발생하 는 경우에도 한국의 정책 관여를 높여서 전체 상황 진행 방향에 적극 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관여와 안전보장론> 대 <제한과 예방론>을 보자. 이 역시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방적으로 <관여와 안전보장>을 강조하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울 것 이다. 그 이유는 그동안 북한에 대한 불신이 매우 깊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고 핵 실험을 두 번 이나 거행한 것 에 대해 유엔제재 1718호와 1824호가 실행 중이며, 국제 암거래 커넥 25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68 션을 중심으로 공장형 농축우라늄 시설을 건설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핵 보유 국가 인정 요구를 포기하고 진지하게 비핵화 괘도 복귀 신호 를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관여와 안전보장>의 측면 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비핵화 괘도 복귀를 진지하게 천명하고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가 북 한과 이를 놓고 진지하고 본격적 협상을 개시하자면, <관여와 안전 보장>의 측면에서 북한에 무엇인가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는 <제한과 예방>의 측면과 동시에 <관여와 안전보 장>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 <관여와 안전보장>의 측면과 <제한과 예방>의 측면이 상호 충돌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일괄타결>과 <단계적 접근>을 보자. 한국과 미국에 서는 (속전속결) <일괄타결>을 선호할 것이지만, 이는 북한이 저항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노무현 정부 시기나 부시 2기와 같은 (중장기형) <단계적 접근론>도 한국과 미국에서 내부적으로 큰 저항 에 부딪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능력 증진에 대한 우려감, 북한이 과거에 여러 번에 걸쳐 약속을 파기했다는 인식, 북핵문제가 대화와 긴장상태를 오가면서 진전과 후퇴, 그리고 지연을 반복해오던 과거의 패턴을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려와 고려 때문에, 비핵화 접근론으로써 아마도 <일괄타결 형 단계적 접근론> 또는 <가속화된 단계적 접근론>이 추진될 가능 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배경을 보면, 2013년 이후 만약 북한이 비핵화 괘도에 복 귀함으로써,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 본격적 협상이 시작된 다면, 타협의 여지도 있지만, 결렬되어 갈등으로 귀결할 가능성도 크 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이 <중기 존속+관여와 안전 보장+단계적 접근>을 택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되는 경우,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57

269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 국가로 남는 기간을 최대한 늘리면서도, 한국 과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경제지원을 획득하는 가운데, 내부정치를 안 정하면서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여 장기 안정에 존속할 수 있는 기 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3년 이후 한국과 미국이 이와 같이 북한의 소원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입장을 취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 한국과 미국이 취하게 될 입장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난해하 거나 수용 불가능할 입장일 가능성이 많다. 한국과 미국은 <관여와 안전보장+제한과 예방> 그리고 <일괄타결형 단계적 접근>을 동시 에 주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과 미국 자신 에게도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복잡성 때문에 한 국과 미국은 이러한 입장을 채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협상 결과가 어떻게 귀결되는가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이 여 러 쟁점에 대해 전략적 전술적 손익계산을 어떻게 하는가이다. 한편 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제한과 예방> 조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추 진하는가, 그러한 가운데 북한에게 제시할 <관여와 안전보장>의 인 센티브가 북한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매력적인가가 관건이다. 다른 편 에서는 북한이 <관여와 안전보장>을 보장받는 대가로, 한국과 미국 에 양보해야 할 핵능력은 무엇이며, 그 양보하는 폭과 속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한국과 미국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북한이 최대 목표치를 되살려 보자면, 핵 보유 국 가인정,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및 관계 정상화, 한국으로부터 대량 원 조 유입이다. 한국의 최대 목표치는 일괄타결론에 입각하여 조속한 북한 비핵화를 이루고, 한국 주도하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성취하 는 것이다. 어느 한 측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최종 타협점은 이 양 극단을 일직선으로 이었을 때, 중간 의 어느 지점일 것이다. 그 지점에 한국의 최대 목표치에 가깝게 될 25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70 것인지, 북한의 최대 목표치에 가깝게 위치할 것인지는 한국과 미국 또는 북한이 이 협상에 진입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얼마나 높였느냐 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463 먼저 북한의 입지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464 첫째, 북한이 한국과 미국과의 타협 (다시 말해 핵능력의 (단계적) 포기라는 양보의 대가로 한국의 대량 경제원조 수취)에 기대지 않고 내부 경제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 (예를 들어 중국과의 경제관계 확대)을 찾을 수 있는가, 또한 그 대안 이 얼마나 강력하고 유효한가의 문제이다. 둘째, 북한이 핵능력을 확 장하고 핵무기를 실제 전장 사용이 가능한 무기로써 완성도를 높였다 는 것과 미국 본토를 유효하게 공격할 수 있는 투발 수단인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여 실전 무기로 확보했다는 증거를 얼마나 확실하게 국제사회에 과시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셋째, 북한이 각종 도발을 통해 한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교란할 수 있는가, 넷째, 관련 주변국 을 분열시켜 북한에 대한 통일 전선이 수립되는 것을 얼마나 막을 수 있는가이다. 다음으로 한국과 미국의 입지는 다음과 같은 요인에 따 라 달라질 것이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 <제한과 예방>을 통해 그리 고 각종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통해 핵무기 추가 개발을 방해하는 한 편, 핵국가 지위를 고수하고자 하는 북한정권의 생존 조건을 얼마나 어렵게 할 수 있는가이다. 둘째, 북한은 협상틀이 자신의 전략구도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 대한 각종 도발,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능 력을 과시하는 것을 통해 입지를 개선하고자 시도할 것인데, 이를 두 나라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 또는 제압할 수 있는가이다. 463 이는 협상이론에서 말하는 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와 연 관된다. 이는 현재의 협상이 실패하거나 타협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 취할 수 있는 행동 을 지칭한다. 협상을 결렬시켰을 때의 부담이 타협했을 때의 부담보다 적다면, 굳이 타 협할 필요가 없다. 그 역도 성립한다. 464 이에 대해서는 제Ⅵ장 2절에서 다시 다룬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59

271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과 관련하여 북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얼 마나 성공적인가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협상력이 높아진다. 만약 한 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이 상호 힘의 균형점이 어디인가에 대해 합의 를 할 수 있다면, 양자 사이에 타협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균형 점이 어디인가는 수차례의 반복되는 협상과 결렬, 그리고 협박과 회 유를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 따라서 균형점을 찾기까 지 일정한 갈등과정이 불가피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 나 결국 양자 사이에 상호 힘의 균형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합의에 실 패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양자 사이의 타협은 결렬되고, 보다 높은 수 준에서 협박과 회유의 겨루기가 새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타협의 경우, 북한은 핵능력의 일정 부분을 양보하는 대신, 한국과 미국으로 부터 여러 지원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결렬의 경우, 북한은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압박과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관심은 양측 사이에 핵문제를 놓고 타협이 성립 하는가 결렬이 성립하는가이다. 이 글의 주제가 타협과 결렬의 경우, 그것이 비핵화 문제 또는 한국의 안보에 어떠한 영향이 발생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타협과 결렬이 북한 내부 변화의 향배에 어떠한 영향 을 끼치는가 여부이기 때문이다. 나. 주요변수 2: 2013년 이후 북한 내부 정책 - 개혁인가 반개혁인가 북한은 2005년 이후 반개혁적 정책을 취해오고 있다. 주요 내용은 국내 시장 활동에 대한 억압, 무역회사에 대한 통폐합, 계획경제 강조 등을 통한 국영부문 활성화, 2009년 11월 화폐개혁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시장 세력에 대한 직접 공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정책 26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72 의 동전의 다른 면으로 하여 시도되었던 것이 외화벌이 사업의 대대 적 확대이다. 즉 대내 반개혁정책으로 인한 대내경제가 불모화가 됨 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곤란을 외화벌이 사업 확대를 통해 상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도되었던 것이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 담이다. 만약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 었다면 한국의 북한에 대한 원조성 경제관계가 대대적으로 확대되었 을 것이며,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원조 수취 및 외화벌이 증대를 통해 대내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 의도 는 2008년 한국에서 보수 정부가 등장하고,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구 상되었던 사업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실패했다. 2008년 이후 한국은 북한에 대한 비료와 식량지원을 중단했으며, 특히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도 감소했다. 그 러자 북한은 한편 한국에 대해 강경조치로 보복하는 한편, 다른 편에 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적극 확대하기 위해 나섰다. 그 계기는 2009년 10월 원자바오( 溫 家 寶 ) 중국 총리의 방북이었다. 아울러 2009년 11월 말에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후 경제난이 심화되자, 2010년 5 26조치 를 통해 시장을 전면 허용하고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을 현격히 증가 시켰다. 그러나 시장은 화폐개혁 조치로 인한 타격으로 전반적으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2010년 말부터는 군대를 중심으로 식량 난이 악화되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당국은 2010년 말부터 중국과의 무역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방편으로 각종 무 역회사, 특히 군부 무역회사의 대중국 진출을 장려했다. 2011년 6월 에는 황금평과 나진 선봉에 공동 개발지대 개막식이 거행되었다. 2010년 중반부터 북한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반개혁+외화벌 이 사업 확대> 정책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시행된 반개 혁 반시장 정책에 의해 국내경제의 생산성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61

273 대외원조 수취가 현격히 감소했고, 2010년 말부터 식량난을 호소하 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반개혁 +(남북경협 확대를 통한) 외화벌이 사업 확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2차 정상회담 합의가 무산된 이후로, 북한의 경제정책은 일방적 <반개혁> 정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 은 사실상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거쳐 2010년 5월까지 계속되었다. 북한당국은 2009년 11월 화폐개혁으로 시장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자 했다. 물론 2010년 5월경부터 시장 활동을 재허가 했지만, 시장 인프 라 붕괴와 중하층 상인층 붕괴 등으로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2010년 9월 당대표자회 이후에는 김정은 주도로 비사 검열 증대를 통해 국내 통제를 현저히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유발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당국은 특히 중국을 대 상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당국은 <반개혁+(중국을 대상으로 한) 외화벌이 사업 확 대> 정책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본격 시작된 것은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평양방문이다. 이후 2010년 5.24조치에 대한 대항으로 광물 수출이 현격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적 극적 무역확대 정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중국 외화벌이 사업 확 대 정책에는 광물 수출 증대, 황금평과 나진 선봉과 같은 폐쇄형 특구 설치, 관광 사업 확대, (중 북 접경지역 중국 도시 공단에) 인력 수출 등이다. 이밖에도 북한은 2009년 하반기 정상회담 개최 시도 등 한국 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원조수입을 늘이고자 시도했으며, 2010년 말 부터 식량난을 호소하면서 국제사회에 대북 인도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핵문제에 대한 경직된 자세를 전술적으로 이완하여 한국 및 미국과 핵문제에 대한 재협상을 시작하고자 시도하 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성과를 요약하면, 2010년 5월부터 시장을 허 26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74 용하긴 했으나, 다른 측면에서 시장이 안정적으로 확대하고 또한 시 장을 매개로한 국영기업과 민간 소기업의 생산 활동이 안정적으로 증 대될 수 있는 제도체계의 개혁이나 전반 정치 분위기의 이완은 이루 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외화벌이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 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광물 수출의 증대 이외에는 아직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당국이 정책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그 내용은 이렇다. 현재 정책은 두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반개 혁+(중국 상대) 외화벌이 사업 확대>이다. 그런데 이 정책은 <(중국 상대) 외화벌이 사업 확대>를 통해 충분한 외화를 벌어들여, 반개혁 정책 추진으로 발생한 내부경제 곤란을 상쇄해야지 지탱할 수 있다. 만약 외화벌이 사업이 충분한 외화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가운데 <반 개혁>을 고수하면, 내부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09년 말 화폐개혁 이후의 실상은 북한이 이러한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을 시사 해준다. 그래서 북한은 2010년 중반 및 말부터 대중국 외화벌이 사업 확대에 전면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국 광물 수출이 어려 움에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업에서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 다. 만약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북한이 광물 수출 이외의 수단으로 외화를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는 계기를 찾는다면, 북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내부 반개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 북한정권은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 선택은 반개혁정책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러면 내부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이로 인한 정치불안의 잠재력이 높 아갈 것이다. 북한당국은 정치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철권 테러 정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 붕괴론이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선택은 개혁을 재시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경제적 어려움과 내부정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63

275 치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이다. 반개혁 지속인가 또는 개혁 재시도인가 에서의 선택은 단지 경제 사정뿐 아니라 지도부 내의 분파적 이익과 세 력균형이 개입하게 될 것이다. 어떤 정책이 추진되는가에 따라 분파적 손익관계와 세력관계가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3. 북한 내부 변화의 네 가지 시나리오 가. 기본 구도 이상의 서술에서 볼 때, 2012년 이후 북한 정세를 규정하는 주요 변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 및 미국과 핵 협상이 결렬인가 타결 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내부적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가 아 니면 반개혁정책을 추진하는가이다. 이 두 가지 변수의 조합에 따라 북 한 내부 변화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 보면 이렇다. <표 Ⅴ-2> 2012년 이후 북한 내부 변화 향배 규정 주요 요소와 시나리오 북핵 협상 타결 여부 타결 미타결 반개혁 우세 (B) 국가에 의한 부정합적 이중경제 관리정책의 추구 (A) (대외 종속적인) 국가의 수탈적 행태의 강화 내부 정책 방향 개혁 우세 선택적 교류 확대 정책 (C) 국가기관들의 지대 전유 와 시장 활성화의 병행적 전개 대남 적대 및 교류 억제 정책 (D) 제한적 경제개혁과 국가의 시장 관리를 통한 체제 생존 모색 전면적 교류 확대 정책 대남 적대 및 교류 확대 정책 26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76 (A)의 상황은 2008년 이후 북한의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핵문제 협상이 결렬되면서, 대외원조가 줄어들고, 반개혁정책으로 내부 생산 성이 저하한다. 이는 정권이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놓고 정권 내부 의 경쟁, 정권 대 사회 간의 경쟁이 격화한다. 정권 대 사회 간의 경쟁 은 국가의 수탈 증대로 나타난다. 내부 경쟁은 기관 간에 외화벌이 이권을 놓고 다툼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B)의 상황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하여 북한이 추진했던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북한은 2005년부터 반개혁정책을 지속 추진하는 가운데, 2007년 2 13합의와 10 3합의에 의해 핵문제 와 관련한 협상이 타결되자, 한국과 대대적으로 경제관계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발생했다. 따라서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반개혁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한국과는 대대적으로 지원성 및 외화벌이 경제관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C)의 상황은 2000년부터 2002년(또는 2004년)까지의 상황과 유 사하다. 이 시기까지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유효했다. 북한은 내부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 미국, 일본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이러한 상황은 2001년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장애에 부딪쳤고, 2003년부터 북핵 2차 위기가 전면 전개함에 따라 종결되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유지했으며, 북한은 개혁정책을 2004년 까지 추진했다. 만약 북핵 타결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당국이 대내개혁 조치를 다 시 취한다면, 북한 상황은 (D) 유형에 부합하게 된다. 북핵 및 남북관 계 교착 상태, 제재 지속 상태에서, 북한당국이 외부 원조 감소와 내 부 생산성 저하로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때 북한당 국은 그대로 버티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이상 버틸 수 없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65

277 다고 판단하여, 내부 개혁을 허용함으로 경제 생산성을 높여 경제위 기와 그에 따른 내부 정치 위기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내부 개혁은 정권의 입장에서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 에서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에 실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정책은 실천되지만, 그에 대한 정치적 적대는 강하게 존속한다. 나. 2012년 이후 정세 진로의 네 가지 유형 2008년 이후 현재까지의 북한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위의 (A)에 해당한다. 현재에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이 존재함과 동시에, 이 어려 움을 타개하기 위한 미래형 노력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은 두 가지 선택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첫 번째 선택은 2012년에도 지금의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기본적으로 (A) 상황을 고수하는 것이다. 북한이 만약 대내 반개혁을 고수하지만 외화벌이 사업에서 성공한다면, 시나리오 (A)를 고수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외화벌이 사업에서 실패함으로써 경제위기가 위험수위에 도달하거나 지도부 분란이 발생한다면, 북한은 (D)로 보다 분명하게 옮겨 갈 수 도 있다. 즉 핵문제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내 개혁조치 를 다시 채택하는 것이다. 이를 보다 자세히 보면, 2012년 말까지 한 국 및 미국과의 관계에서 또한 핵문제에서 커다란 돌파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놓고 볼 때, 2012년 말까지 또는 한국 및 미국 정부와 핵문제에 대한 새로운 타결을 이룰 때까지 북한에 대한 대외 지원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가 중국 과의 외화벌이 사업에서도 실패가 거듭되었고 주민들의 정치 동요가 심상치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전망에 직면하여 북한은 2012년 4월경, 다시 말해 김일성 출생 100주년 및 강성대국 문 열기 시점에 26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78 즈음하여, 대주민 유화책으로써 일련의 경제 개혁 조치를 취할 가능 성이 있다. 이렇다면 한편에서 대중국 외화벌이 사업 확대와 더불어, 대내 경제의 생산성이 일정하게 증대함으로써, 북한경제는 어려움을 얼마간 완화시킬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상황은 (D)로 이전하게 된다. 2013년 이후 어느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본격적 협상이 진행된다고 하자. 협상이 타결되는 경우, 한국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이루질 수 있다. 북 한당국은 대외 지원 증대를 바탕으로 대내 개혁을 회피하고 지연하는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북한의 상황은 (B)로 이전하게 된다. 또 다른 선택의 하나는 비핵화 협상의 타결과 함께 내부 개혁에 대한 합의가 강화된다. 이는 비핵화 협상 타결에 따라 대량살상무기 세력 연합이 약화되는 대신, 시장확대를 희구하는 국내 상인층과 내 각의 발언권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의 상황은 (C)로 이 전한다. 아래에서 시나리오 (A), (B), (C), (D)를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 한다. (1) 시나리오 (A): - 핵 보유 고수와 반개혁 하에서 국가의 수탈적 행태 강화 <정세배경>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 농축우라늄 개발 등 북한의 거 듭되는 도발에 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해 왔다. 한국은 북한이 핵을 보 유하는 것이 남북 간 군사 및 정치균형을 북한에 유리하게 바꿀 것을 우려했다. 또한 핵을 보유한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통해, 미국을 매개로 북한의 한국에 대한 우위를 제도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우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67

279 려했다. 한편 미국은 북한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며 중국과 일본에 의해 촉발되고 있는 동북아 역내 군 비경쟁이 강화될 것과 그리고 북한이 (2011년 이후) 앞으로 5년간 핵 무기를 탑재하여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에 대해 우려했다. 또 북한이 중동 등에 핵기술을 판매하거나, 외부세력 에게 핵물질이 유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공할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해 왔다. 한국과 미국은 각각 이러한 우려에서 북한의 핵개발 노력에 대해 <제한과 예방>으로 공동 대응해 왔다. 2차 핵실험 직후 한국과 미국 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관련 무역행위에 대해 제재 를 가하는 것을 명문화한 대북제재 1814를 발효시켰다. 특히 미국은 대북 경제 금융제재를 강화하여 핵무기 개발 및 유지와 관련된 북한 의 재정적 압박을 가중시켜 북한 핵무기 개발을 방해하는 기존 전략 을 좀 더 강력하게 추진했다. 한국은 천안함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2010년 (개성공단 사업을 제외하고) 남북 경제관계를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를 취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10년 이후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이 현격히 증가했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의 경제제재는 직접적으로 북한경제를 현저히 악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이러한 노 력은 북한이 대외경제관계를 확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장애물로 등 장해 있다. 유엔 대북제재와 미국의 노력, 그리고 한국정부의 방해노 력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나선과 황금평 경제특구의 기반시설공사를 마무리하고 대규모 외자유치를 계획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발전 구상 을 선제적으로 제약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북한이 경제특구 운영에서 지대 추출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초국적기업이나 다국적 투자 컨소시엄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지만 이런 투자자들은 유엔의 대북 26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80 제재, 미국 정부의 강경한 제재조치, 그리고 한국에서의 사업 가능성 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강화된 경제제재로 특구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 북한은 불 가피하게 특구 운영의 지대 수입이 상당히 감소될 것을 예상해야만 한다. 나선 특구 같은 경우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과 경쟁하게 하는 구도를 만들어서 대중협상의 교섭력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러시아의 국내 사정 때문에 이런 계획도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의 제재 강화 때문에 무기 밀수출 등의 외화벌이 수입도 감소해서 군수 산업부문에 대한 재투자도 더욱 축소될 처지에 놓여 있다. 465 <북한정권의 대응과 내부 정세 흐름> 북한 지도부는 미국 주도의 경제적 압박의 목적이 단지 북한의 비 핵화 유도에 있지 않고 후계 권력이양 국면을 이용하여 북한의 정권 교체 를 유도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466 이에 대응해서 북한정권은 체 제-정권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국방공업 (군수산업)의 강화발전을 위 한 재정지원과 체제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특수단위들의 사업 보장을 최우선적인 국가적 과업으로 제기하고서, 이를 위해 국내의 경제적 자원에 대한 전시동원체제적 관리를 더욱 강화한다. 북한정권 의 속성상 이런 위기국면에서 개혁적 요소의 경제정책적 시도나 사경 제 부문의 시장 활성화 촉진 같은 조치는 현실적으로 거의 기대할 수 465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 제재 국제공조 노력 덕택에 북한의 무기 수출 액이 (2008년에 비해 2009년) 급감했다고 한다. 강찬호, 북한 무기수출 수익 1년 만에 80% 급감, 중앙일보, 2010년 3월 8일. 다만 북한의 소형 무기 수출은 오래전부터 감 소 추세였다. 2001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관련 통계는 Dick K. Nanto and Emma Chanlett- Avery, North Korea: Economic Leverage and Policy Analysi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January 22, 2010), pp 중앙일보 북한네트 <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69

281 가 없다. 경제적인 총동원체제의 가동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대외적 요 인들로 인해 군수산업의 투자 재원을 보전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한 북한정권은 중국에게서 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이제까지 합의를 지연시켜 온, 나진항을 중국 측에 해군기지로 장기 임차하는 문제를 타결 짓는다. 467 임차 대가로 북한이 얻게 될 경제적 이익 중에는 중 국이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원유와 식량 원조를 대폭 늘리는 것 도 포함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특수단위들도 외화벌이 수입 중 이전 보다 더 많은 부분을 군수산업의 재원 보전을 위해 이전하게 된다. 따라서 특수단위들은 자체 사업비 부족분을 인민경제부문의 수탈 강 화를 통해 보전할 수밖에 없다. 내각의 성기관들이 관리하는 그나마 수익성 있는 사업들을 특수단위들이 가져가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농장의 군량미 할당량도 대폭 증가한다. 위계적 지배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각급 국가기관들에 의한 경 제적 잉여의 하향식 수탈의 먹이사슬은 최종적으로 시장을 통해 생계 를 유지하는 대다수 주민가구들에 대한 수탈로 귀착된다. 건설사업 지원이나 비생산적 우상화사업을 위한 세외부담 강제 징수나 중하급 간부들의 보호세 징수나 수뢰도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다수 주민가구들은 시장 참가를 통해 자가소비용 이상의 경 제적 잉여를 예비하는 것이 대체로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 히 화폐개혁 이후 중하층가구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 화되었기 때문에 주민가구들의 생활형편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시나리오에서는 생계유지에 내몰린 주민가구들에 의한 467 나진항의 해군기지 임차에 관한 북한과 중국 간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공식 보도 에 관해서는 한성관, 북한, 중국 나진항 군사적 이용권 두고 합의 미루고 있어, 북한전 략정보서비스센터, 2011년 8월 16일. 27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82 시장의 공간적 확산과 참가밀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경제 활동을 통해서 창출되는 경제적 잉여에 대한 국가의 중층적 수탈의 강화로 인해 시장은 활성화 면에서 실질적으로 정체 상태에 있거나 위축 되는 경향마저도 나타난다. 극빈층가구나 가족 꽃제비의 증가에서 이 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북한정권의 이런 반시장적인 수탈적 행태의 강화 추세는 산업부 문의 경제관리 역량을 더욱 약화시키게 된다. 사경제 부문의 시장 활 성화가 중국산 소비재 수입물자에 의존한다는 점에 비춰보더라도 시 장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잉여의 생산적 재투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도 문제가 되지만, 이것보다도 군수산업이나 특수단위들의 재원 부 족분을 외화벌이 지대수입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전해 온 결과로 국가 경제의 중심축이 생산부문으로부터 추출부문으로 불가역적일 정도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경제 중심축의 이동은 북한의 보수적 지배엘리트 분파들이 기득이권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경제개혁 대신에 자연자원의 추출이나 여타의 지대 수입(지정학적, 지경 학적 위치에 기반을 둔 항만 임대료 수입이나 관광산업 수입이나 외국 원 조 등)에 의존해 온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국가관료기구에 의한 국민경제의 조정 관리역량이나 생산적 부문에서 자본축적을 도모할 수 있는 자원 예비나 신기술의 도입 또는 산업기반시설 개선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국 내의 자본축적 가능성은 크게 약화한다. 468 또 광업, 수산업 등 추출 산업부문에서도 설비 보강 등 재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 468 군수산업 자체는 생산부문으로 편제되어 있지만 러시아의 예에서 보듯이 탈사회주의 과 도기 동안 군수산업은 민수 전환에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에 체제전환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Steven Rosefielde, Structural Militarization and Russia s Failed Transition, Russia In Global Affairs, Vol. 4, No. 4 (2006) 참조.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71

283 에 최소승자연합 에 기반을 둔 지대 재분배체계에도 내적 긴장이 고 조된다. 재분배 체계 내의 긴장은 각종 권력기관들끼리의 이권 쟁탈 싸움의 격화로 나타난다. 전체 경제 파이가 정체하거나 축소하는 상 황에서 각 권력기관이 자신이 차지하는 파이의 몫을 일정하게 유지하 자면 불가피 다른 권력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득 특권을 약탈해오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쟁탈전에서 특히 김정은 후계체제의 주축으로 등장한 권력기관의 횡포가 심해진다. 중국과의 무역 및 경제협력 확대로부터 북한이 획득할 수 있는 직 간접적 방식의 지대수취는 한편으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에 도움을 주 지만 부정적 현상도 증가시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의도한 것 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북한경제의 생산적 역량의 해체와 대 중 경제적 종속의 촉진을 유도하는 효과를 산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런 경향이 심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원료 공급기지와 하청 조립생산기지, 그리고 저가 소비재 상품의 시장 역할을 하게 되 는 사실상의 후배지로 편입될 수도 있다. 다른 편으로 중국과 사업적 연계를 놓고 특권기관들끼리 쟁탈전이 심화되는 한편, 북한지도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연계를 통한 친중적 영향력의 강화를 우려하 게 만든다. 북한지도부는 권력기관들 간의 알력을 조정하고 친중 영 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폭력적으로 간섭할 수밖에 없게 된 다. 이는 북 중경제관계의 안정적 지속을 어렵게 만들며, 북 중경제관 계가 일차 산품 교역과 중국의 북한 교통 인프라 이용 등 단순 저급 한 단계를 넘어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데 장애를 만든다. 여기에 더해 주민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되기 때문에 사회정치적 불안정도 증가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정권은 사회통제를 강화 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한다. 특히 공안 체계가 강화될 것이며, 각 종 명목의 비사검열이 상시화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점진적으로 북 27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84 한 내부에서 초보적이고 저강도의 정권 저항 사건들(낙서, 삐라, 간부 폭행, 생계호소형 군중행동 등)이 증가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이러한 불안정 요소는 북한 내 북 중 접경지역에서 현저하게 강화될 것이다. 북한정권은 접경지역의 첨단적 변화 상황을 내지 수준으로 낮추기 위 하여 끊임없이 폭력적으로 개입하지만,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 식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 북한정권은 접경지역 당정간부를 끊임없이 교체하지만, 새로운 간부도 접경지역 현지상황에 전임자처럼 적응하 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한편 엄격한 탈북 단속과 탈북 가족 추방 등의 사업은 접경지역에서의 사회정치적 긴장을 한층 높이게 될 것이다. 탈북과 한국으로부터의 송금은 접경지역을 자유화 하기는 했으나, 한 편에서 접경지역에서 잠재적 체제불만 세력을 외부로 배출하는 역할 을 해왔고 한편 접경지역 경제를 얼마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기 때 문이다. 접경지역에 대한 통제조치가 김정은의 지시라고 하면서 진행 되었기 때문에 접경지역에서의 사회정치적 불만고조는 김정은을 직 접대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대외정책> 이러한 정세 하에서 북한의 대외정책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추 진된다. 첫째, 핵 보유 국가 승인 관철 대외정책이다. 둘째, 외화벌이 사업확대 및 원조유입 확대 정책이다. 먼저 핵 보유 국가 승인 관철 대외정책을 보자. 그 목표는 궁극적 으로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 국가로 승인하거나 적어도 장기 간 사실상 묵인하도록 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과 미국 이 북한이 핵 보유 국가임을 승인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며, 단 중기적 으로 6자회담을 개최하게 되는 경우 북한에 구조적으로 유리한 어젠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73

285 다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에 대해 다양한 대화와 압박 수단을 활용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화 의 측면을 보면, 6자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 하되, 그 의제를 북한에 구조적으로 유리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6자회담을 조건 없이 개최해야 하며 개최 이후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 기구 사찰단 복귀, 핵과 장거리 미사일 량 살상무기 실험 잠정유보 선언 등에 대해 고려해보겠다는 것이다. 그 리고 아마도 6자회담이 개최되면, 선( 先 ) 평화협정 후( 後 ) 한반도 비 핵화, 농축우라늄 시설은 평화적 핵 이용으로 북한의 정당한 권리, 경 수로 건설 요구, 동북아 핵 보유국 군축회담 개최 등의 어젠다를 앞세 우고, 북한 측의 비핵화 의무에 대해서 회피하거나 시간을 끌고 또는 비핵심 핵능력을 단계적으로 양보하는 대신 과도한 보상을 받아 내고 자 할 것이다. 또한 한국에 대해서도 북한 핵 보유 묵인 하, 남북관계 정상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그 수단으로는 북한이 전략적 어젠다 와 시기를 결정하여 개최하는 남북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며, 아울러 남북 간의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를 북한정권의 전략틀에 맞추어 확대 하고자 할 것이다. 다른 편에서 압박 수단을 활용할 것이다. 여기에는 주기적으로 또는 협상이 교착되었을 때, 북한의 핵능력 증강 과시(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실험 등)가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 각종 유형의 도 발이 증대될 것이다. 여기에는 2008년 이후 이미 경험되었던 것들로 서해상에서의 군사 도발 또는 위협적 태세 유지, 각종 협박성 선전공 세, 한국의 주요 기관에 대한 해킹, GPS 교란과 같은 신종 도발, 요인 암살 지령 등이 있다. 북한은 이와 같은 대남 위협 도발을 확대하고 다양화할 것이다. 둘째, 외화벌이 사업 확대 및 원조유입 확대 정책이다. 그 목적은 27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86 반개혁정책으로 인해 내부 경제가 불모화하는 것 때문에 발생한 경제 적 어려움을 외부 자원 유입을 통해 완화하는 것이다. 먼저 외화벌이 사업 확대 정책을 보자. 북한이 핵 보유 국가 인정 외교정책을 추진하 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외화벌이 사업확대의 주요 대상은 중국, 그 리고 부차적 대상은 러시아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 증대, 노동력 수출 증대, 관광확대 사업, 폐쇄형 특구 건설 사업, 중국의 투 자 유치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다. 또한 러시아와도 극동 시베 리아 개발에 대한 협력을 적극 모색할 것이다. 여기에는 한계와 가능 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먼저 한계를 보면, 북한의 이러한 대중국, 대 러시아 경제관계 확대 활동은 스스로가 설치해 놓은 난관에 직면할 것이며,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광물 수출을 늘이고 중국 투자를 유 치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일정 수준의 인프라를 보장하고 법적 제 도적 장치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또한 황금평, 나진 선봉과 같은 폐 쇄형 특구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북한은 과거 또는 현재의 한국 과의 사업을 모델을 중국에 제안할 것이지만, 중국은 이에 적극적이 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의 사업 모델이란, 중국은 이러한 사업을 시작 하는 것에 대해 막대한 선불을 지불해야 하며, 폐쇄형 특구의 설치 및 운영과 관련해서도 중국이 전적으로 자금을 내고 사업 위험에 대 해 책임을 지는 한편, 사업이 시작되면 북한에 사용료와 수익금을 납 부해야 한다는 모델이다. 중국이 이러한 사업모델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우호적인 측면은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 확대 정책이 중국의 동북 진흥 정책 그리고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개발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두 나라의 외교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점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핵 보다는 북한문제에 주목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 및 경제 동태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북핵문제를 국제비확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75

287 산 체제 강화라는 점에서 다소 고려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북핵문제 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극동 시 베리아 개발을 위해 한국과 일본에 주목하고 그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북한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북접근을 강화해오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북 중교역 확대의 또 다른 도약점은 2015년이 될 것이다. 2015년은 함경북도와 연해있는 북 중 접경 및 중 러 접경 지역과 관련한 중국의 인프라 건설사업이 대체로 완료되는 시기이다. 2015년에 팔도-삼합-청진 고속도로, 훈춘-권하-나진 고속도로, 화룡 -남평-청진 고속도로, 화룡-남평-무산 연결 철도가 완공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또한 훈춘-장령자-블라디보스톡 고속도로가 2015년 완공된다. 중국과 청진 사이 철도 연결, 도문과 나진 사이의 철도 연 결은 2020년에 완공 예정되어 있다. 또한 앞으로 권하, 도문, 사타자, 개산툰, 삼합, 남평의 통상구 다리 건설 대상도 추진될 것이다. 북한 이 이때까지도 핵문제에 관한 타결을 이루지 못한 채 반개혁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북한은 이와 같은 인프라 정비가 제공하 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것이며, 북한이 내부적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라는 커다란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시기가 되면 중국의 함경북도 지역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현격히 증가할 것이며, 나선 지역에 비해 항만 여건이 현저히 좋은 청진이 중국의 주요 사업 대상으로 등장할 것이다. 다음으로 원조유입 확대 정책을 보자. 그 주요 수단은 세 가지로, 핵 외교, 식량난 외교 및 대남 유화 정책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개최 되거나 또는 개최되지 않은 상태에서라도, 핵무기 개발과 여타 대량 살상무기 개발을 활용하여, 대외원조를 증강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 이다. 다음으로 식량난 외교이다. 북한은 여러 동태를 통해 식량난 그 27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88 리고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내부 인도주의 상황의 악화에 대해 선전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지 원 원조를 증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에는 이들이 요구하는 실 태 조사 및 모니터링 요구에 상당히 호의적으로 응하는 것이 포함된다. 다음으로 대남 유화 정책이다. 북한은 한국정부와 정상회담 개최 여 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색할 것이다. 또한 민간단체와의 교류 협력 에 일정한 정도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개성공단의 안정적 가동과 확대, 금강산관광 재개 등에 호의적 태도를 보일 것이다. (2) 시나리오 (B): - 핵 협상 타결과 반개혁정책 하에서 외자유치 증대 <정세 배경> 한국과 미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 북한을 상대로 본격적인 핵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협상 진행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 불신이 현저하게 높아져 있 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증강된 핵능력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 했고, 한국과 미국은 보다 조속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상은 수차례 결렬되어 단순한 공전 뿐 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위협 조치, 그리고 북한의 핵능력 과시 조치로 몇 차례 위험에 빠졌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북한은 비핵화 괘도 복귀 를 선언하면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일부 핵능력을 포기하기로 하고, 한국과 미국의 보상 제공에 맞추어 핵능력을 추가적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해 나가기로 하는 약속한다.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일부 폐기했을 뿐 아니라 핵능력 증가 가능성을 차단했고, 비확산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고 그에 적절한 보장 장치에 합의했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77

289 그러나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우라늄농축을 폐기하는 문제 자체에 는 합의했지만 실질적 폐기 시기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해결된다는 모호한 약속만을 얻어낼 수 있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부 핵능력 을 포기했지만, 핵무기 보유나 우라늄농축을 상당히 오랜 기간 만약 에 대비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으며, 그 대신 (주 로 한국이 제공하며 과거와 비교할 때 여러 제한조건이 달린) 상당한 규모의 경제지원,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 미국으로부터 보다 개 선된 안전보장 약속을 받아냈다. 이번 핵 타결에서는 2004년 9 19선언을 재확인함과 함께, 두 가지 요소가 특징적으로 추가되었다. 첫째,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비확산 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었고 엄격해졌다. 469 이번 핵 타결의 내용에는 북한이 IAEA에 대해 어떠한 핵 수출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포함 되었다. 둘째, 북한 내부 핵시설의 안전성을 검사하고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 삽입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북한 핵시설 의 안전성 우려는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영변의 여러 핵시설, 그리고 새로이 공개된 우라늄농축 시설 및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시도 등의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것은 전문가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상식이 었다 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직접 인접국들이 핵시설의 안전에 대한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북한에 강 469 Sharon Squassoni & Fred McGoldrick, Nonproliferation Policy Towards North Korea, This paper was produced as part of the project Improving Regional Security and Denuclearizing the Korean Peninsula: U.S. Policy Interests and Options. The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October 2009). 470 북한이 건설 중이라 하는 경수로의 안전성 문제에 관하여 문주현, 북한 우라늄농축프로 그램의 기술적 타당성 및 잠재적 위험 평가, 북한학연구, 제7권 1호 (동국대 북한학 연구소, ), pp 미 북 핵 협상에서 핵 안전성을 새로운 의제로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으로써, Victor D. Cha, Clues to the North s denuclearization, The Korea Joongang Daily, November 3,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90 한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안전성 검사 및 보강 조치를 위하여 영변 플루토늄 시설과 우라늄농축 시설을 공개해야하는 문제에 대해 북한 은 강력히 저항했다. 미국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이러한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관련국들은 이 문제는 미결로 협상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북한은 이러한 협상에서 과거와 비교할 때 현저히 증가된 보상을 획득한다. 그 이유는 과거와 비교할 때 북한의 핵능력이 그만큼 증가 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핵시설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거론하 는 것과 관련해서 북한은 추가적으로 엄청난 보상을 요구했다. 아울 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필요성을 낮추어야 한다는 명분하에서 핵 타결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다. 북한이 이러한 협상에 응하게 된 핵심적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대내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김정 은 후계 체제가 정착하면서 김정은은 지금까지 해왔던 데로 단순하게 내부 통제 강화와 공포 유포만으로 정권을 안정적으로 장기 지탱시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우선 대외관계 면에서 미국과 EU 등 선진국들에서 발원한 지구적 금융위기의 지속과 그에 따른 실물경제 의 침체로 인해 중국경제가 적지 않게 타격을 받게 됨에 따라 북한의 1차 자원 수출 외화벌이가 위축되었다. 또 중동의 민주화 시위에 따 라 여러 나라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감시 공조체제가 강화되는 등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북한의 재래식 무기 수출시장이 축소되고, 이와 관련된 외화벌이 수입도 감소했다. 대내 적으로는 2009년 말 단행된 화폐개혁으로 인해 대다수 경제적 중간 계층 가구들의 하강이동이 발생하여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후계체제의 정당성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이 외국자본의 투자유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79

291 한정권은 후계자 세력의 주도로 미국과의 핵 협상을 타결지었다. 두 번째 이유는 중국과의 관계 증진이 초래하는 부정적 측면에 대 한 우려였다. 2008년 이후 한국과의 이미 2010년부터 북한은 중국과 의 교역확대를 위한 노력을 강화했다. 이 일환으로 북한 내부의 광산 채굴 및 운영권이 상당수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광 산물 수출은 현저히 증가했지만, 중국을 독점 구매자로 하는 광산물 수출 가격은 국제가격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아울러 중국과의 광산 개발은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횡포 및 북한 측의 물적 법적 인프라 미비, 그리고 북한 내 권력기관 간의 이권 마찰로 인한 계약 파기 등으로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아울러 북 중 접경지역에서 위 안화가 사실상 기축통화가 되어 버리는 가운데, 중국이 접경지역의 상업과 경제를 장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접경지역 주민 의 대중국 감정이 악화되었다. 또한 중국과의 경제사업과 관련한 각 종 이권을 놓고 권력기관 간의 암투, 상호 공격과 비방이 증가했다. 결국에 중국과의 경제관계 확대는 정권에게 뚜렷한 이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가운데 각종 문제를 야기하였고, 특히나 북한 내부에 대한 정 치적 영향력 확대가 우려되었다. 여기에다가 함경북도의 각 지역과 중국을 연결하는 각종 철도-도로 연결공사가 2015년 완공 예정이었 는데, 완공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북한 지도부의 중국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했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가 한국 및 미국과의 타협노선을 채택함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차원의 고려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북한정권의 대응과 내부 정세 흐름> 대미 핵 협상의 타결 이후 당과 군부의 보수적 엘리트 분파 연합 은 좀 더 적극적으로 대내외경제정책을 주도한다. 이는 이들이 김정 28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92 은 후계체제를 조기에 안정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변화된 대외관계에 대응하여 개별 분파들의 조직 차원 의 기득이권을 강화하면서 사회정치적 불안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내외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상이하게 조정한다. 우선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좀 더 적극적인 외자유치정책을 추진 하기 위해 시장 촉진 국가 지향성을 부각시킨다. 나선이나 황금평 경제특구 뿐만 아니라 특구 이외 국내 지역에 대한 외국기업의 투자 를 촉진하기 위해 과실송금 보장 등 투자자본 보호 법제를 보강하고, 양질의 저임노동력에 대한 노동통제의 제도적 보장 등을 유인책으로 제공한다. 미국 등 서구국가들의 대북 경제적 관여에 연동된 북한의 이런 정책전환은 세계경제의 침체 국면에서도(다르게 보면 이런 침 체국면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여) 어느 정도 효과를 산출한다. 주 로 중소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나선과 황금평 특구지역에 북한이 비교 우위를 지닌 숙련 저임노동력 활용을 염두에 두고서 몇몇 초국적기업 들이 투자를 하게 된다. 북한은 이에 대응해서 국내 노동자들을 선별 해서 특구지역에 이주시킨다. 또 특구 이외 국내지역에서도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무산광산이나 혜산청년광산 같은 추출산업부문과 성진제 강 같은 중공업부문의 합작투자 이외에도 황해제철이나 단천광산기 계나 나진 선봉화학 등에 대한 중국, 스웨덴, 러시아의 투자도 이루어 진다. 아울러 한국의 대북지원과 경제투자가 재개된다. 그런데 북한은 한국과의 경제협력 사업을 정부 대 정부 간 협력 사업의 성격을 가질 것을 고집한다. 이래야 한국과의 경제협력 사업에 대해 북한당국이 그 진행 정형에 대해 확고하게 장악하며, 또한 그 수입을 사실상 독점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북경제관계를 설정했던 것이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의 합의였다. 따라서 특히 2007년 2차 정상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81

293 회담에서 합의되었던 사업들을 중심으로 남북경제관계가 재가동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 위한 협상 이 시작된다. 아울러 개성공단 확장 사업이 개시되었고, 해주경제특 구 설치 및 안변 조선소 사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북한은 또한 평양, 남포, 신의주, 원산, 함흥, 김책, 나선, 청진의 8개 도시에 경제 특구를 설치할 것을 공표한다. 그런데 대북 투자사업에는 난관이 제 기된다. 한국은 과거와 비교할 때 경제성과 타당성에 대해 비교적 엄 격한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대북지원을 하는 경우에도 과거와 같이 푸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최종 사용처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현실적으로 북한당국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사업처럼 한국이 일체 책임을 지는 대신 북한당국은 안정적으로 고정 현금수입을 확보하는 방식의 사업의 개수를 늘일 것을 고집한다. 또한 한국정부가 여러 명 목으로 북한정부에게 대량의 현물과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을 선호 한다. 북한당국은 한국과의 경제 사업을 위해 중앙이 관리하는 특권 회사들을 전진 배치한다. 이를 통해 북한당국은 자기 측 사업자를 통 제할 수 있고, 정부와 민간들로 갈라져 있는 한국 측을 보다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측은 현실적으로 일사불란하지 못하다. 각 사업에 관여하는 북한의 각종 권력기관은 사업 자체의 순조로운 중장기적 진행을 위한 제도와 여건 마련보다는 뇌물수뢰와 같은 불법 적인 것을 포함하여 기관차원의 단기적 이득 극대화 입장을 노골화하 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자유치를 통한 이런 국가 전략적 산업부문 기업소들의 생산 활동은 내각의 인민경제 활성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한의 보수적 지배분파들은 경제특구의 외자기업이나 국 내 합영 합작기업의 관리를 국내경제 전반과는 분리시켜 폐쇄형 경 제특구( 飛 地, enclave) 경제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28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94 이들은 외자 유입에 수반되는 자본주의적 사회문화의 무분별한 확산 이나 외부세계와의 인적 교류 증대에 따를 주민통제의 무질서한 이완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수적 엘리트 분파들은 대 내적으로는 시장 억압적인 지대추구 국가 지향성을 강화하고, 이런 특구사업이나 합영 합작사업에서 얻어지는 수익도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 및 정권안보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한 지대수입의 성격이 강 하다. 여기서 얻어지는 외현금이나 생산물자는 대체로 특수단위들에 귀속되거나 군수산업에 투입되는 것이지, 국내 경공업부문의 설비 갱 신 등에 투입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즉 선진국이나 초국적기업의 자 본이나 기술 도입 등과 연관된 일종의 적하( 滴 下 )효과 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세 가지 정도의 제도적 통제가 지대의 이런 흐름을 뒷받침 한다. 하나는 내각의 유관 성기관들이 아닌 특수단위들이 실질적으로 이 대외사업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기업들이 자 본주의적 경영방식에 입각해서 운영되고 있지만, 개성공단의 경우와 유사하게 중앙의 외자기업 관리기구가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을 포함 한 기본적인 노동통제 업무를 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 는 합영 합작기업 업무를 보기 위해 북한 내에 상주하는 외국인들의 수를 소수로 제한하고 이들의 활동을 감시하여 사업 관련 활동에 제 약을 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으로 상이한 국가 역할의 추구는 시장의 활성 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경제특구 외자기업이나 외국의 투 자선과 연결된 국내 대기업소나 공장들은 종업원들의 식량이나 기초 생필 물자를 국가의 관리 하에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된다. 또한 국가 는 외화벌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으로 국영상업망에 더 많은 물자를 공급하여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하는 한편, 국영상업망을 통해 각 계층과 지역에 대한 선택적 물자 공급과 가격차별을 증진시킨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83

295 따라서 국영상업망의 활성화는 가중되는 주민 가구의 시장 참가 압력 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안전밸브의 역할을 한다. 이와 달리 미국이 나 EU 등의 경제적 관여정책과 연계해서 식량, 의약품 등 소비물자 가 대량으로 지원됨에 따라 이 원조물자의 유통은 국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활성화를 촉진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471 그렇지만 이 원조물자의 시장 유통은 당, 군대 등 국가기관에 의한 지대 수취 실현과정의 일부분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 물자의 시장판매 에 연루된 대다수 일반 주민들이 얻게 되는 수입은 생계유지를 보장 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정권은 주민들과 이들에 기생하는 하급 당 정 간부들의 생계 유지에 숨통을 터주기 때문에 이렇게 촉진되는 시장 활성화를 일정 정도 묵인하지만 무제한적으로 방임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이 시나리 오에서 북한정권은 대외개방을 통해 확보한 지대를 사용해서, 비록 간부 부패에 따른 어느 정도의 침식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기반한 자 생적인 시장 세력의 형성을 억제할 수 있는 전제적인 (despotic) 사 회지배역량을 보강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또 인민경제 영역의 내생적인 물적요소보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물자에 의해 촉진 되는 시장 활성화의 특질이나, 도로 운송, 통신, 에너지, 전력 사정 등 산업 인프라의 열악한 실태가 사경제 부문의 발전에도 구조적 제약으 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이런 시장 활성화 가능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북한당국의 외자유치 확대와 동반한 대내 반개혁정책은 여러 모 순에 직면한다. 한편에서 외자유치 확대를 위하여 폐쇄형 특구 설치 를 증대함에 따라 이에 취업하는 북한주민의 숫자가 늘어난다. 물론 471 규모는 적지만 북한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의 생산현장에서 절취된 원자재의 불법적 유통 도 시장 활성화에 부분적으로 기여한다. 28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96 북한당국은 특구 소재 외국기업에 누가 취직하고 상대적으로 고임금 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가를 정치적 기준에 따라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외화벌이 특구 운영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정권 유지에 긴요한 간부층과 지역 및 시설에 대한 자원배분을 선택적으로 증가시 킬 수 있으며, 사회 및 정보 통제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기술을 수입 하여 보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외자유치 사업의 운영을 위하여 외국인의 북한 방문이 증가하고, 외자 기업에서 고용되어 대외 영향력에 더 많이 노출되는 주민 숫자가 증가한다. 또한 특구로부터 흘러나오는 상품과 정보가 증가한다. 특히 외자유치 사업이 증가하고 이것의 운영과 존속을 위 하여 국내제도가 수정되어야 하는 압력이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외자 유치가 증가함에 따라 북한 전역이 접경지역화 한다. 이제까지는 중 북 국경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여러 변화 선진지역이었다. 개성공 단 사업이 확장되고 서해평화협력지대 및 해주특구 및 안변 조선단지 가 시작됨에 따라 특히 서해 및 서부전선 일대의 전연지역 및 원산 안변 지역이 제2의 접경지대화 한다. 외부 방문자의 증가에 따라 평 양도 외국풍 영향에 보다 강하게 노출된다. 도식화하자면 이 시나리오에서 북한의 보수적 지배분파들은 한국 및 미국과의 핵 협상 타결을 계기로 한편으로는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경제개방정책을 추진하여 지대 수취원을 보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는 국내의 시장 활성화를 억제하여 기존 체제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 을 제거하고자 하는 반시장적 정책을 견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권이 관리하는 대외 자원 유입이 증가하여 정권의 사회 지배능력이 강화된다. 정권은 외부 자원을 이용하여 각종 지배 장치 를 보강하는 한편 국가 배급 상황을 일정 정도 개선할 수 있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85

297 <북한의 대외정책> 핵 타결의 경우, 북한정권의 생존 환경은 일정한 정도 개선된다. 북한의 대외정책 주안점은 첫째, 대미관계 개선, 둘째, 원조 및 투자 유입 확대에 두어질 것이다. 우선 대미관계 개선을 보자. 대미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는 북한이 미국이 상당히 만족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 보유 국가 인정 관철 외교 를 포기해야 할 것 이며, 비핵화 괘도에 진정성 있게 진입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초보적 조치로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 기구 사찰단 복귀,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중단이 있다. 이와 함께 6자회 담의 틀 내에서 주요하게 한국과 미국의 요구조건과 북한의 요구 조 건을 함께 처리하는 일괄타결이 재차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미국은 장관급 이상 특사를 북한에 파견하여 상호 적대성 포기 를 약속할 것이고, 비핵화 전개에 맞추어 관계 정상화를 이루어 간다 는 원칙적 선언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000년 10월 미 북 공 동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어서 미국과 북한은 연 락사무소를 교환하며, 북한에 에너지 및 인도지원이 제공되고, 국제 금융지원이 시작될 것이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관 련국 회담이 개최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보유 핵물질과 핵무기 반출 을 찬성한다면 미 북정상회담도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물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할 것이지만, 핵심적 관심 사항은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 및 확산, 한국에 대한 위협 행동과 같은 미국 및 동맹국의 안보와 관련된 북한의 대외행동을 순치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권문제와 같은 일부 선언적 관심을 제외하 고 북한의 내부 정치 사정이나 경제 전략에 대해서는 방관자적 입장 28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298 을 취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원조 및 투자 유입 확대를 도모하는 주요 대상은 한국이 될 것이다. 북한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이미 그간에 상 당한 정도로 진전되어 있는 북 중경제관계 확대에 대한 균형추로써 작용할 수 있다. 한국과의 경제관계가 재개됨에 따라 북한당국의 중 국과의 협력 확대에 대한 관심도가 현저히 감소한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함경북도 지역을 중국에 개방하는 문제에 대하여 까다로운 조 건을 제기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선다. 북한당국은 한국 등으로부터의 외자유치와 외화 소득이 증가하고 국가 상업망을 강화시킨 것을 배경 으로 그간에 다소간 어쩔 수 없이 용인되어 오던 북 중 국경에서의 각종 민간 불법교역을 강하게 통제하고 북 중 국경지역에 만연한 자 본주의 날라리 풍 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 또한 함경북도 연해있는 중국 도시들과 북한의 나선 및 청진과의 도로 철도 연결 사업도 지장 을 받는다. 핵문제 타결의 전망이 발생하는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여기서는 기존 남북이 맺은 여러 협약의 유효성을 재확인할 것이며 한국의 북한에 대한 대대적 지원을 약속할 것이다. 이러한 대북지원 의 일부는 북한이 핵문제에서 양보한 것에 대한 대가로 제공될 것이 며 6자회담 참가국 간의 부담 분담의 차원에서 이행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대대적으로 지원하고자 모색할 것이지만, 북한의 반개혁정책으로 인한 흡수 능력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대규모 투 자가 진입하자면 그것이 생산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좋은 정책과 제 도가 북한 내부에 존재해야 하는데 반개혁정책이 이와 관련한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북지원에서 민간투자는 폐쇄형 특구 투자에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지 원을 증강시키고자 하더라도 북한은 모니터링에 여전히 제약을 가할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87

299 것이다. 북한은 한국이 제공하는 대북원조는 북한정권에게 인도되어 야 하며 북한정권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대한 규제를 원하 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자신이 제공하는 자원이 북한 내부에 서 북한주민의 생활 개선과 경제성장의 토대를 닦는데 사용되는 것에 대해 관심을 표명할 것이다. (3) 시나리오 (C): - 핵 협상 타결과 개혁정책 하에서 정권기관 주도 하 시장확대 <정세 배경> (핵 관련 상황은 시나리오 (B)와 동일하다) 한국과 미국에서 새로 운 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 북한을 상대로 본격적인 핵 협상이 진행 되었다. 이러한 협상 진행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 그리 고 북한 사이에 불신이 현저하게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 동안 증강된 핵능력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고, 한국과 미국은 보다 조속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상은 수차례 결 렬되어 단순한 공전뿐 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위협 조치, 그리고 북한의 핵능력 과시 조치로 몇 차례 위험에 빠졌다. 그 러나 종국적으로 북한은 비핵화 괘도 복귀를 선언하면서 현재 보유하 고 있는 일부 핵능력을 포기하기로 하고 한국과 미국의 보상 제공에 맞추어 핵능력을 추가적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해 나가기로 하는 약속 을 한다.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일부 폐기했을 뿐 아니라 핵능력 증가 가능성을 차단했고 비확산에 대한 약속을 받 아내고 그에 적절한 보장 장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이 보유한 핵 무기와 우라늄농축을 폐기하는 문제 자체에는 합의했지만 실질적 폐 28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00 기 시기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해결된다는 모호한 약속만을 얻어낼 수 있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부 핵능력을 포기했지만, 핵무기 보 유나 우라늄농축을 상당히 오랜 기간 만약에 대비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으며, 그 대신 (주로 한국이 제공하며 과거 와 비교할 때 여러 제한조건이 달린) 상당한 규모의 경제지원,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 미국으로부터 보다 개선된 안전보장 약속을 받아냈다. 이번 핵 타결에서는 2004년 9 19선언을 재확인함과 함께, 두 가지 요소가 특징적으로 추가되었다. 첫째,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비확산 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었고 엄격해졌다. 472 이번 핵 타결의 내용에는 북한이 IAEA에 대해 어떠한 핵 수출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포함 되었다. 둘째, 북한 내부 핵시설의 안전성을 검사하고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 삽입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북한 핵시설 의 안전성 우려는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영변의 여러 핵시설, 그리고 새로이 공개된 우라늄농축 시설 및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시도 등의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것은 전문가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상식이 었다.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직접 인 접국들이 핵시설의 안전에 대한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북한에 강한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안전성 검사 및 보강 조치를 위하여 영변 플루 토늄 시설과 우라늄농축 시설을 공개해야하는 문제에 대해 북한은 강 력히 저항했다. 미국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북한에 대한 경수 로 제공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이러한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관련 472 Sharon Squassoni & Fred McGoldrick, Nonproliferation Policy Towards North Korea, This paper was produced as part of the project Improving Regional Security and Denuclearizing the Korean Peninsula: U.S. Policy Interests and Options. The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October 2009).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89

301 국들은 이 문제는 미결로 협상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북한은 이러한 협상에서 과거와 비교할 때 현저히 증가된 보상을 획득한다. 그 이유는 과거와 비교할 때 북한의 핵능력이 그만큼 증가 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핵시설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거론하 는 것과 관련해서 북한은 추가적으로 엄청난 보상을 요구했다. 아울 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필요성을 낮추어야 한다는 명분 하에서 핵 타결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다. 북한 내부에서도 핵 협상을 둘러싼 기존 정책의 변화 조짐이 당. 군 지도부 내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북한은 핵능력의 일부 포기 와 함께 핵 비확산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북한체제의 생존 보장과 북 미관계 정상화, 남한 내로 미국의 전술 핵무기 반입 금지, 그리고 경 수로 건설과 일정 기간 에너지자원의 무상 공급보장 등과 같은 과도 한 주장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한편에서 북한지도부는 이 같은 기존 의 정책노선의 고수가 발생시키는 부작용에 대해 우려해왔다. 첫 번 째, 이 같은 노선은 북한의 대내외정책의 선택을 너무 좁히면서, 북한 의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지나치게 높인다는 우려를 해왔다. 이 같은 노선은 북한이 한국, 미국, 일본과 관계, 그리고 국제사회 일반과 관 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현저히 좁히는 대신, 중국의 정치적 경제 적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 다. 특히 후자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에게 정치적으로 깊은 우려가 아 닐 수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국내 반개혁 및 대외 외화벌이 확대 노선이 정권 유지에 충분한 외화를 벌어주지 못한 채, 정치 경제 적으로 체제유지에 부정적 역효과를 내는 것과 관련했다. 즉 두 번째, 국내 경제적으로 반개혁 대외적으로 외화벌이 확대 경제노선에 한계 와 부작용이 점점 더 노출되었다. 외화벌이 확대노선의 핵심 동력의 하나인 광산물 수출 증대 노선은 한편에서 광산물 수출 자체가 국제 29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02 경제 침체로 인해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이라는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었고, 다른 편에서 무리한 광산물 수출 진흥정책으로 인해 국내경 제의 하부구조가 왜곡되는 한편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내 제조업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셋째, 외화벌이 확대를 위해 추진하던 국내경제와 고립된 수출특구 정책(황금평, 나진선봉, 개성 및 금강산)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중국만을 상대 로 한 수출특구 확대 설치 정책은 북한 관련 정치적 불확실성, 북한 측의 정책과 제도 미비 등 중국 측의 여러 우려와 고자세로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고, 설령 출범한다하더라도 북한 측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 우려되었다. 또한 고립된 수출특구 설치 증대 정책을 성공시키 기 위한 정책 방향과 내부 반개혁정책은 상호 충돌하기 시작했다. 수 출 특구는 국내경제와 고립되어야 했으나, 부정부패를 매개로 특구와 내지 경제 간에 다양한 교환이 발생했다. 특히 특구가 주변 지역에 발산하는 정치적 부작용(정보 확산, 문화적 영향 등)도 매우 컸다. 요약하면,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중국에의 의존 심화에 대한 우 려, 외화벌이 확대 사업이 정권 유지에 충분한 외화를 벌어들이지 못 하면서 체제 부정적 파급 효과를 확산시킨다는 우려에서, 북한 지도 부는 이중의 정책 전환을 고려하게 된다. 즉 한편에서 미국과 핵 협상 을 타결하는 한편, 이를 통해 조성되는 우호적 환경을 중국에 대한 의존 저하 및 대내 경제 생산성 증가를 위한 개혁적 조치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부 개혁 조치가 내부 불안정을 증 가시키기는 하지만 외화벌이 확대 노선의 경우에도 내부 불안정 증가 에 대한 우려는 어차피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혁 조치는 생산 성 증대를 통해 불안정을 정치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으로 인식되었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91

303 <북한정권 대응과 내부정세 흐름> 이러한 판단에 따라 후계주도 세력은 우선 미국의 금융 경제제재 해제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경제적 관여를 유도하기 위해 대미 핵 협상에서 좀 더 실리적인 태도로 임하게 된다. 건강문제로 인한 김정 일 영향력의 약화 및 김정은 후계 추진 세력의 강화라는 이중권력구 조의 형성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주요 지배엘리트 분파 들은 중국에 대한 의존 약화, 기존의 외화벌이 중시 노선과 내부 지대 수취체계의 한계 탈피 필요성, 체제위기 극복을 위한 제한적인 경제 개방 및 내부 개혁 조치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대외 체제안보 여건(대미관계) 개선 필요성 등에 대한 인식을 대체로 공유했다. 이 들은 북 미 간에 핵 협상 타결을 통해 북한이 IMF나 세계은행, 아시 아개발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중 국 이외에 미국, 일본, EU, 남한 등의 자본을 유치해서 북한 내 인프 라를 개선하고 광업, 경공업, 수산업, 관광산업 등을 발전시킬 수 있 는 기회에 관심을 가졌다. 아울러 핵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당국 은 국제금융기구와의 접촉, 북한 관료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해외 연 수에 대한 증대된 관심을 표시했다. 아울러 국내적으로는 2004년 후 반 당시 총리 박봉주가 추진하던 바와 같은 여러 경제 개혁 구상을 토론하는 논설들이 학술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또한 기업경영구조 개선, 금융구조 개선, 농업 개혁 등의 조치도 토론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미 핵 협상이 타결되고 난 뒤 후계체제 지지 분파들의 결속력은 상대적으로 이완된다. 이는 대미관계가 유화국면으로 전환 되면서 이들의 응집력을 유지시켜 온 미국의 북한체제 생존 위협이 감소했다는 지배엘리트 내부의 인식이 확산되고, 또 특수단위들에 대 한 김정은의 장악력이 김정일에 비해 떨어지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 29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04 런 국내외 정세 변화 속에서 주요 분파들은 만성적인 국가 재정위기 를 타개하고, 국가기관들의 부문별 체제 보위 역할의 원활성을 보장 하기 위해 기존의 각급 단위별 독립채산제 관리방식을 좀 더 강화하 기로 한다. 이를 위해 나선특구나 개성공단 관리사업 등을 포함한 중 앙 국가기관들의 사업영역을 조정하여 구획한 뒤에 기관별로 재정수 입을 늘리기 위해 기존 회사들을 재정비하고 신규회사들을 설립해서 외화벌이 원천을 발굴, 개발하거나 외국과의 합영 합작사업을 성사시 키는 데에 주력한다. 473 인민경제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내각도 일부 외화벌이 사업대상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다른 권력기관들에 비해 열 위일 수밖에 없다. 내각 성기관 산하 연합기업소나 1, 2급 공장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열악한 내부 실태 때문에 단기간에 외국자본 투자 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각을 포함한 국가기관들은 당분간 외화 벌이 사업의 확대, 강화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나간다. 474 국가기관들은 각기 외화벌이와 외자유치를 통합 관리하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39호실이나 제2경제 산하의 부강총회사나 경공업성이 나 무역성 등 일부 중앙 성기관들에서 해온 것처럼 수직계열화 된 복 합기업체들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특히 변화되 는 경제 환경에서 이권사업 에 눈을 뜨게 된 군부는 가장 적극적인 473 예컨대 어떤 외국자본이 중앙당 경공업부를 상대로 검덕광업연합기업소에 합작 투자를 하거나, 중앙당 39호실 산하의 수산사업소에 투자할 수 있다. 또 금속공업성의 김책제철 연합기업소나 인민무력부가 관리하는 청진조선소(선박 수리)와 투자 계약을 체결할 수 도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대미관계 개선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경제적으로 개혁적 인 분파들이 국가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국면이 도래했다고 해서 재산권의 다변화 같은 경제개혁 조치의 조속한 시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474 도급 이하 당정 국가기관의 자력갱생체제는 자체적인 외화벌이 사업권한이 그 이전에 비해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지역에 특화된 외화벌이 원천(특산물)의 생 산, 가공, 수출공정을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수익 성이 있는 외화벌이 원천은 대체로 이미 중앙 국가기관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점에 서, 그리고 지방정부가 새로운 수출원천 상품을 개발하더라도 중앙의 권력기관들에게 개발권을 비자발적으로 이전시킬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93

305 입장을 보인다. 직접 관리하는 자산이나 자원의 규모면에서 가장 큰 군부는 기존의 추출자원 수출 위주의 단순가공 외화벌이를 탈피하고 안정적인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내각과 당으로부터 경제실무 전 문가들을 지원받고, 다국적기업 등을 끌어들여서 민수 군수용 소비물 자 생산, 선박 수리, 국제 관광사업 등 수익성 있는 제조업이나 서비 스산업 등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군부는 가장 큰 물질적 수혜자가 되는데, 사실 지배 엘리트 내 개혁적 분파들이 대내 외 경제정책 결정과정을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들이 체제 수호의 핵심 보루인 군부의 기득이권을 인정하고 국방 관련 경제사업 추진을 최대한 지원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당 군 정의 국가기관들에 의한 수익사업 확보 경쟁은 사경제 내 의 자산가들( 돈주 집단)에 대한 위계적인 사적 후견관계망의 확장으 로 이어진다. 개별기관들은 자체 회사들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 기 위해 조직적 권한을 이용한 경제외적 개입에 의해 시장적 경쟁관 계를 배제하고 배타적으로 지대 수입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사적 후견관계가 이전보다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전과 달리 국 가기관들은 이렇게 확보한 지대의 일부를 총회사 등의 수익 산출구조 를 개선하기 위해 사용한다. 예컨대 채굴 채취산업 부문의 생산성 증 대를 위해 외산 설비를 수입하는 데 사용하거나, 외국자본과 합영으 로 전국적 도소매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출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지대의 전유( 專 有 ) 에 의한 생산적 전환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개별 국가기관이나 총회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자본축적 에 해당한다. 국가기관의 간부들이 조직 수준에서의 수익 창출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간부 개인의 비공식적 수입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대의 생산, 분배에 연루된 사적 후견관계망은 불가피하 게 간부 부패를 심화시키고, 지배엘리트 분파들 내 상층 간부들의 사 29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06 적 축재를 촉진시킨다. 이들 가운데 일부 실력자들은 가족이나 친인 척을 내세워 본인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총회사 산하에 기관 명의로 계열사를 설립해서 회사를 운영할 가능성도 있다. 국가기관들의 기업활동과 상층간부들의 사적 축재는 일차적으로 구획화 된 사업 영역에서의 지대 수취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시장을 크게 활성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대의 원천이 되는 경제적 잉여를 창출해야 하는 실무 생산단위로 내려갈수록 다른 국가 기관 회사들 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시장과의 연계가 밀접해진다. 국 가도 이런 실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 통제품목을 제외한 소비성 자재나 부품, 식량 등의 시장 유통이나 계절적 임시 노동시장 등에 억압적 규제를 사실상 철폐한다. 따라서 이 점에서 국영회사들의 활 동은 시장 활성화를 촉진시킨다. 그러므로 시장은 국가기관들의 이런 지대 수취를 가능하게 해 주는 매개적 공간으로써 확산되면서 좀 더 활성화된다. 시장 활성화의 주체는 외국자본과 연결된 국가기관들과 사적 후견관계 안에서 국가기관들이나 간부들의 보호를 받는 대상인 집단이다. 노동력의 국가관리체계의 기본 틀이 유지되는 데에서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정권은 주민생활의 정치적 통제 이완을 우려하 여 사실상 폐기되다시피 한 공장 기업소 소속 노동자들을 단기간에 대량으로 해고 해서 자유로운 임노동자로 전환시키는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 또 주민들이 가족사업(개인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타인 노동 력을 고용하는 것은 정식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및 지방 기관 또는 기업소의 자회사라는 간판을 달고 개인자본을 동원한 개인 사업과 타인고용이 더욱 확산된다. 이러한 여러 조치들로 인해 북한은 사실상 사회주의 상품경제 단계에 들어간다. 이는 중국 개혁 단계에서 년에 해당되 는 시기이다. 또한 2004년 박봉주가 준비하고 있던 보다 대담한 개혁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95

307 의 청사진과 일치한다. 475 사회주의 상품경제란 한마디로 국유기업으 로 이루어지는 시장경제이다. 다시 말해 기업은 여전히 국가소유이지 만, 국가가 그 국유기업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는다. 사실 상 대부분의 국유기업에 대한 국가계획이 폐지되거나 현저히 약화된 형태로만 존재한다. 또한 소비재 유통과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시장적 소기업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주민의 소 득획득과 일상 소비생활은 거의 시장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북한 내부의 이러한 개혁과 변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에 도움 을 요청한다. 2002년 북한 개혁 시도에 의해서 촉발되었던 수년간 %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이 보여주듯이, 전술한 개혁정책의 추진은 북한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북한은 개혁정 책 추진과 관련한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자금과 물자 지원을 국 제기구와 한국에 요청하며 이는 긍정적으로 검토된다. 북한은 또한 개혁을 추진하는 데서의 정책 및 경험 자문을 위해 중국, 한국 및 서 방국가에 대규모의 연수단을 파견한다. 북한은 외자유치 특히 한국자본의 유치를 촉진한다. 외국 투자자 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내부에서 기업경영 자율화 및 시장제도 구비 에 따라 투자환경이 상당히 개선된다. 또한 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한국 정부는 북한 내부 인프라 개축에 관한 원조를 증강할 뿐 아니 라, 개성 공업지대 확장을 비롯하여 북한의 경제 특구에 대한 한국의 투자를 장려한다. 북한의 개혁적 조치에 따라 경제특구는 물론 아직 까지 규제가 많기는 하지만 과거 개성이나 금강산의 경우처럼 내부 경제와 엄격히 격리되어 운영되지는 않는다. 북한은 평양, 남포, 신 의주, 원산, 함흥, 김책, 나선, 청진에 특구를 설치하고 한국 기업에 475 그의 개혁 시안 준비는 2005년부터 보수파의 반발에 부딪쳤고, 박봉주가 궁극적으로 2007년 4월 해임되는 사태를 유발시킨다. 29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08 개방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북한경제는 고도성장 국면에 접어든다. 이를 통해 고용과 소득이 증가하고 특히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세수입 이 늘어난다. 이에 따라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교육, 보건, 치안, 좋은 정책과 좋은 행정 등의 공공재 서비스 능력이 상승한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한국과 국제기구가 북한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 하여 이를 위한 각종기구가 설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접경지역과 내지의 구별이 사실상 소멸한다. 역으로 인구가 희박하고 인프라가 좋지 않은 접경지역 보다는 남포, 평양과 같이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인프라가 좋은 지역에 외국의 관 심과 투자가 집중적으로 유입된다. 북한당국의 입장에서는 남포, 평 양과 같은 핵심지역 발전이 촉진되고, 또한 휴전선 연선지역에서 한 국의 투자도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함경북도 지역에 중국 투 자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개혁에 의해 북 한 경제의 경쟁력이 상승하고, 한국 등 서방국가로부터의 투자 유치 를 통해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국가기관들이나 상층 엘리트의 지대 수취에 의 해 부분적으로 제약되는 시장의 활성화가 지대수취 국가 로 발전할 지, 아니면 외국자본에 종속적인 유사 발전국가 로 나아갈지는 지대 통제를 둘러싼 지배 엘리트 분파들 간의 권력투쟁의 전개양상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국가가 둘 중 어떤 국가 역할을 수행하든지간에 간부 부패의 확산에 따른 국가의 수탈적 행태 는 지 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97

309 <북한의 대외정책> 북한의 대미관계는 기본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시나리오 (B): - 핵 타결과 반개혁정책 하에서 외자유치 증대>와 동일하다. 그러나 시나리오 (B)가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 추진을 상정했는데, 여기의 시나리오 (C)가 내부적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북한 그리고 한국과 미국 간에 상호 신뢰와 호감도는 후자의 경우에 더욱 높을 것이다. 비핵화와 내부 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북한에 대 해, 한국과 미국은 관계 개선과 경제지원에 대해 훨씬 호의적으로 반 응할 것이다. 또한 양측 관계는 훨씬 협력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의 실 무적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또한 북한이 개혁조치를 진행시키는 만큼 외부 투자를 생산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수용능력도 증가하기 때문에, 반개혁정책의 경우에 비해 현저히 많은 투자가 북한지역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나리오 (B)의 경우에 비해 (C) 의 경우, 북한이 한국 및 미국과 사회문화 교류 확대에 훨씬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또한 한국 및 국제기구와 경제관계를 확대하 는 한에서, 중국의 함경북도에 대한 투자에 대해 덜 우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경제가 중국에 일방적으로 예속될 위험이 그 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4) 시나리오 (D): - 핵 협상 결렬 상태에서 제한적 경제개혁 <정세 배경> 2013년 한국 및 미국의 새 정부와 북한당국 간에 본격적 핵 협상 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양측은 오랜 동안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이러 29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10 한 가운데 세계경제 침체의 여파, 중국 경제의 수출경제로부터 내수 경제로의 전환 시도 가운데 성장률 저하 등의 여파로 북한의 주요 수 출품인 원자재 국제가격이 현격히 하락한다. 여기에 더하여 지구 온 난화로 인해 국제곡물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중국의 식량위기가 발 생한다. 그 여파로 북한의 식량위기는 더욱 첨예한 위기 상황에 직면 하게 된다. 북한 자체의 작황도 매우 부진해서 국내 생산량도 급감한다. 대량 아사의 위기가 재발될 조짐이 나타나고, 사회정치적 불안정도 증가한다. 도시 시장을 중심으로 한 사경제 부문에의 주민 참가는 증 가하지만, 대다수 가구의 가처분소득의 한계로 인해 시장 유통 물량 이나 상품 판매는 저조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북한정권의 대응과 내부 정세 흐름>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경제 금융제재 및 한국의 교류 제한 조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정권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각을 앞세워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를 단행한다. 일차적으 로 빈사상태에 놓여 있는 인민경제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내각 관 할 공장 기업소의 자율적 경영 권한을 확대하고, 생산물 일부의 시장 판매를 허용하는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완 화하기 위해 개인이나 가족단위로 한정하여 유관기관의 면허증을 발 급받아 개인집에서 자영 요식업, 수공 제조업, 서비스업의 일부 영업 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또 중앙 수준에서 성기관들의 경제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 특수단위들로부터 소수의 수익성 있는 광산, 탄 광, 생산단위 기업소들을 내각 직속으로 이관한다. 이 조치는 전반적으로 2002년의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유사하면서 도 개인사업 ( 가족사업 )을 면허제로 승인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 개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99

311 인사업 승인조치는 장세(시장사용료)와 별개로 비공식 자영업 종사 자들에게 일종의 소득세를 부과하기 위한 행정절차의 마련과 관계가 있다. 이미 2000년대 초에도 가내 자영업 가구들의 비공식소득을 파 악하기 위해 일부 대도시에서 인민반별로 실태 파악에 나섰던 북한정 권은 이 조치를 시행해서 시 군 지방정부의 재정 수입원을 확충하고, 시장 참가자들에 한정된 장세 부과에 따른 과세의 형평성이나 과중한 세외부담에 대한 주민들의 원망을 완화하고자 한다. 이런 시장지향적 경제정책의 시행은 당연히 김정일의 사전 비준 을 받아 이루어진다. 이전 조치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실무 전문가 들로 구성된 상무조가 만들어낸 정책적 방안이라면, 이 조치는 김정 일의 측근이자 김정은 후계체제를 주도하는 중앙당의 비서나 실세 내 각 총리 같은 고급 당 정 간부들이 생산단위나 건설장을 현지시찰하 거나 현지 요해한 결과를 토대로 만든 대책안이 제의서 형식을 거쳐 나온 인민경제 활성 방안이라는 차이가 있다. 476 이 조치는 공장 기업소보다 인민생활경제 (사경제)에서 어느 정 476 이런 맥락에서 이 시나리오는 김정일 지배체제에서 공식적으로 형성될 수 없는 경제개 혁파 의 존재 양태와 이들의 개혁안이 국가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반제도화된 통로의 운 용 문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가 시장 활성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북한 보도매체에 등장한 다음 해인 2011년 초부터 내각 총리 최영림은 대규모 건설장과 농촌 현장 그리고 연합기업소 등의 생산현장 협의 회에 참가하여 현지료해 를 했다. 백나리, 북 영도자 전담 현지시찰 총리도 나서 나, 연합뉴스, 2011년 3월 23일; 장용훈, 북 총리, 곡창 황남도서 농사지원대책 논 의, 연합뉴스, 2011년 5월 17일; 장용훈, 북 총리, 생산현장서 협의회 열어, 연합뉴 스, 2011년 5월 31일; 김은지, 북한당국, 내각 총리 현지요해 공개 보도 의도는?, 미 국의 소리, 2011년 5월 6일. 물론 최영림을 경제개혁파 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지 생산.건설현장의 실태를 사실대로 보고하는 역할 정도를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 앙당 군사위원회 위원 겸 비서인 최용해도 같은 해 5월에 군 건설부대 관련 대상건설의 정형이나 혜산청년광산의 중국 합영건을 요해하기 위해 현지를 시찰 했다는 비공식 보 도가 있다. NK지식인연대, 최용해 노동당군사위 위원이 양강도를 시찰, NK지식인 연대, 2011년 6월 27일. 그런데 경제부문에 대한 이런 부류의 고급 간부들의 현장시찰 은 경제부문 실정에 대한 비난이 후계자 김정은에게로 쏠리는 것을 예방적으로 차단하 기 위한 복선적 조치일 수도 있다. 30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12 도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 공장 기업소의 경우 소수 지방산업공장에서는 지배인이 사적자금을 융통해서 상품을 생산하 고, 시장에 판매해서 수익을 내고 종업원들의 식량을 해결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고, 소자금으로 설비를 갱신하거나 원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식료일용품 생산이나 의류 임 가공 등에 한정된다. 대다수 지방 산업공장들에게 이 조치는 무용하다. 이 공장들은 이미 오래 전에 생산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 경영 분권화 조치가 생필직장이나 비생산직장 위주로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대규모 공장 기업소들의 경우 대다수가 국가 전략적 산업 부문에 속해 있다. 따라서 주민생활의 기초생필품을 생산하는 경공업 부문의 소수 공장 기업소 이외에는 인민경제부문에 재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인사업 승인 조치는 도시 주민가구들의 적극적 참가를 촉진하 지만, 요식업이나 숙박업과 같이 법규로 지정된 업종들은 영세한 밑 천을 가지고 진입하는 시장 참가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되지 못한다. 이 조치의 실제 효과는 일정 정도 초기투자 가 필요하고 수익성도 높은 불법적인 개인사업들이 적극적으로 묵인 되거나 의도적으로 방임되는 데 있다.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기관 기 업소 명의로 써비차 사업(개인 운송업)이나 PC방, 노래방, 당구장 운영 등 수익성이 높은 개인사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477 이와 같이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 시행은 국가부문의 일부 공장 기 업소 경제일꾼들과 사경제의 개인사업 종사자들의 주도에 의한 시장 의 일정 정도 활성화 효과가 있지만, 단기적으로 북한체제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산출한다. 국지적이긴 하지만 공 477 이런 개인사업의 활성화는 나름대로 기업가적 자질 을 실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 를 제공해 주는 측면도 있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301

313 장 기업소의 가동률 제고나 개인사업의 활성화는 고용 창출 효과를 통해 실업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이 경제개혁 조치는 하급 간부층이나 주민들에게 위로부터의 경제개혁 의 확대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를 확산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의 시장 활성화 효과는 체제 전환의 지연 효과와 긴장된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전자 가 후자의 기능적 일환으로 불안정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 하면 북한의 정치적 지배체제의 특성상 자신들의 기득이권 유지와 구 분되지 않는 체제-정권안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고착된 정세관 을 지닌 지배엘리트 전반의 집합적 멘탈리티와 행위양식은 미국의 대 북제재에 따른 경제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으로 개혁 적 분파들에 의해 추진되는 경제개혁의 한계를 내생적으로 설정해 놓 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년전에 나선특구 개발사업에 착수할 때 북한 지도부는 인민경제 부문을 살리기 위해 매년 특구 외자기업들의 임대 사용료 수입 중 일정액을 내각의 국가예산으로 보전하기로 했으나, 체제안보를 위한 자체 예산 확충 필요성을 내세우는 특수단위들 때문 에 없었던 일로 되고 말았다. 또 특수단위들에게서 이관된 공장 기업 소들의 경우에도 내각은 수입 자재나 부속품 등을 구입하기 위한 외 화 수입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접경지역 경제는 더욱 활성화된다. 북한이 핵 무기 보유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경제의 대외 파트너는 중국 이기 때문이다. 접경지역은 내지의 제한적 개혁조치가 필요로 하는 각종 물자와 설비의 수입 경로가 된다. 또한 개혁에 의해서 일정하게 생산성을 향상시킨 내지 경제의 수출품이 통과하는 통로이다. 이런 사정을 놓고 보면 인민경제 부문의 더 이상의 악화를 막기 위해 외화 예산을 투입해서 필요한 국가적 정책들을 추진해야 하지 30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14 만, 내각을 앞세운 개혁적 분파들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부분적 경제개혁을 통해 시장을 어느 정도 활성화하는 것 말고는 다 른 대안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정치경제적 구도 하에서 전개되는 시장의 활성화가 시장을 비사회주의 서식장 으로 간주하는 김정일이나 보수적인 엘리트 분파들에 의한 폭력적인 조정과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장 기업소의 경영 분권 화 조치를 취하면서 종업원 정원을 축소할 수 있도록 했지만, 노력동 원부의 노동력 조직사업을 보강하여 실업상태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을 집체적으로 건설장 등에 투입하여 이들의 시장 참가를 억제하는 것은 국가의 소극적인 반시장적 조정사업에 해당한다. 2009년 말의 화폐개혁이 보여주듯이 북한정권은 시장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이런 판세를 폭력적으로 조정하려는 정책적 의지와 억압적 지배역량을 아직까지는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나리오 에서 내각의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는 이런 대내외적 요인이 부과하는 경제적, 정치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 조치에 의 해 촉진되는 시장의 활성화는 공간적 확산과 주민 밀집도의 증가를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전환에 크게 유의미한 작용을 하지 못 한다. <북한의 대외정책> 이 경우 북한 대외정책의 기본틀은 위에서 언급한 <시나리오 (A): - 핵 보유 고수와 반개혁 하에서 국가의 수탈적 행태 강화>와 동일 하다. 다시 말해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궁극적으로 북한을 핵 보유국 으로 인정하게 만들 것을 목적으로 다양한 위협행동을 취할 것이다. 시나리오 (A)와 (D)가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의 경우 북한의 도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303

315 발이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시나리오 (A)는 핵 보유 고수 반개혁정책을 추진하지만, 중국과의 대외 외화벌 이 사업 확대를 통해 정권에 통치자금이 유입되고 따라 국내 정치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것을 상정했다. 시나리오 (D)는 대외 외화벌이 사업의 부실로 정권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부득이 내부적 으로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것을 상정한다. 이러한 경우 한국과 미국에서는 또 다시 북한 붕괴론 이 힘을 얻을 것이며, 북한은 이를 보고 위기감을 추가로 강화할 수밖 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북한은 두 가지 이유로 대남 도발을 강 화할 수 있다. 첫째, 내부의 고통이 외부의 도발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논리가 그럴듯하게 보이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국 내정치 관리용 외부 도발이다. 둘째,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얕잡아 보 지 못하도록 방어하기 위한 차원의 도발이다. 다시 말해 내부적으로 취약해진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교란 정책 을 펼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두 나라에 대해 선제적인 도발로 긴장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정책은 북한 내 부 문제를 잠시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의 대중국관계에서는 사랑과 증오 의 밀도가 현저하게 강화 될 것이다. 핵 보유 국가 정책을 고수하는 한, 북한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내부의 제한적 개혁 조치는 대중국 교역 확대 요인으 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북한의 유일한 파트너로 장기화 되는 경우, 북 중 간의 갈등도 증가할 것이다.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던 중국은 북한의 수출입에 대한 독점 구매자 및 판매자라는 지위 를 활용하여 대북한 거래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지속시키거나 변 경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은 고립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 이 중국이 제시하는 불리한 거래조건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30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16 다른 편에서 중국의 이러한 자세와 행태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증가 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 중경제관계는 한편으로는 증가 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끊임없이 불협화와 불미스러운 사고발생으 로 얼룩지게 될 것이다. Ⅴ.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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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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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향후 대략 5년은 북한 내부 변화와 남북관계에 매우 중요한 시기 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이 기간 동안 북한이 핵 무기보유 국가로 등장하는가 아니면 비핵화 괘도에 다시 진입하는가 가 결정이 될 것이다. 둘째, 북한이 현재의 내부적 반개혁정책을 유지 하면서 외화벌이 사업 확대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노선이 안착할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노선이 벽에 부딪치면서 내부 개혁을 다시 추 진해야 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북한의 내부 변화와 대외정책, 그리고 남북관계가 매우 다른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한국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비핵화 괘도에 복귀하고 내부 개혁을 추진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대내 외 정책은 한국의 이러한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따 라서 한국은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달리 전개될 경우에 대해 서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비핵화 여부와 내부 개혁 여부라 는 두 개의 변수가 각각 어느 쪽으로 결정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가지고 관찰하여야 하며, 각 어느 경우가 되더라도 북한정권 이 제기하는 도전을 예견하고 전략적 선제권을 쥐면서 현명하게 대응 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앞으로 5년 후가 지나면, 북한문제 해결에 한국의 입지를 현저히 높이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와 내부 개혁 진 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1절에서 한국의 통일 대북 정책의 중장기 전략 방 향에 대해 서술한다. 2절은 향후 5년 동안 대북정책의 목표와 환경에 대해 서술하고, 3절에서 향후 5년 동안 대북정책 방향을 다룬다. 이러 한 정책 제시에 있어서 핵심 화두는 북한 내부 변화 촉진이다. 앞으로 5년 동안 한국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은 북한의 정책 방향이나 남북관 계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한국이 전략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09

321 있을 수 있는 방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정세 전개가 어느 유형으로 가는가를 관찰하면서 선제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 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의 대북 정책의 방향은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를 진행하도록 하고 내부적으 로도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방향에서 설정되어야 하지만, 북한 이 이를 거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으며 북한 나름대로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상당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 면서 설정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이를 고려하여 대북정책의 기본 방 향을 설정하면서, 정세가 한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때 어떻 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시나리오 별로 서술한다. 1. 통일 대북정책의 중장기 전략방향 전세계적으로 국가 간 관계가 상호의존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가 운데에서도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고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이 정권의 유지를 최우선 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정권의 목표에 근본적으로 기인하고 있다. 따 라서 북한은 자발적으로 변화를 지향하기 보다는 가능한 현재상황을 유지하는 현상유지 기조 하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북한도 정 권의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을 간헐적으로 보 이기도 하였지만 근본적인 개혁과 개방을 회피하는 가운데 임시방편 적으로 정책의 변화를 추진하였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북한의 이와 같은 태도는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적 모습과는 상반 된 것이기 때문에 역내 협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다. 또한, 북한이 현상유지를 고수하는 한 남한과의 건설적 협력관 31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22 계가 전면적으로 설정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서 미래의 통일에 대비하는 한편, 한반도가 세계 및 역내 평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방 지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남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서 성공적으로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모 범적 사례로써 개도국들이 배우고자 하는 대상으로 성장하였지만, 분 단국가로서 겪어야 하는 다양한 도전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아래에서는 북한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남한이 추진해야 할 대 북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변화의 유도를 추진하 는 목표를 체계적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둘째,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한 대북정책의 추진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 이러한 추 진목표와 추진원칙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추진해야 할 대북정책의 방 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 추진목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북한을 궁극적으로 정상국가화하는 것이다. 사실상 북한이 지구상의 여타 국 가와 같이 정상적으로 행위 한다면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관계도 정상 적으로 운영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변화의 최종 모습은 북한이 정상국 가가 되는 것이다. 한편, 남한과 북한은 분단국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여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 과정을 거쳐 통일국가를 이룩하도록 하는 것이 두 번째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다.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과 관련, 통일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11

323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고 밝히면서 제시한 3대 공동체 통일구상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설명 을 하고 있다. 첫째, 3대 공동체 통일구상은 기존의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계승하고 있으며, 남북 간 공동체 형성을 통해서 단계적이고 안정적인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전략이라고 밝히고 있다. 둘째, 3대 공동체, 즉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는 통일을 이루기 위 한 3대 과제로써 비핵 개방 3000 구상, 한반도 신평화구상 등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기조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과제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478 이와 같은 3대 공동체 구상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공동체 형성과 관련, 평화공동체를 위한 핵심과제는 북한 의 비핵화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랜드 바긴, 한반도 신평화구상 등 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여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천안함 폭침사 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도 필요하 며, 남북한 군비통제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실질적 과제도 추진 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경제공동체 형성과 관련, 남 북은 폭넓은 교류협력과 안정적인 발전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북한경제가 회복되고 남북한의 경제가 하나 의 경제 단위로 통합되는 것을 경제공동체로 상정하고 그러한 과정에 서 국제사회와의 협조도 활발히 진행되어 북한경제 개발의 속도를 가 속화하여, 비핵 개방 3000 프로젝트의 본격가동을 통해서 북한주민 의 삶의 질도 개선하고 남북한 경제 격차도 축소하는 미래를 제시하 고 있다. 셋째, 민족공동체 형성과 관련, 진정한 통일을 위해서는 민 478 통일부 홈페이지 < >. 31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24 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한민족 모두의 존엄과 자유, 행복한 삶이 보장 되는 민족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북 간에 존재 하는 유무형의 장벽을 극복하고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다방면의 사회문 화 교류를 통해 이질감을 줄이고 동질성을 최대화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해 한반도의 실 질적 통합이 완성된다는 통일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479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통일방안을 이론적으로 접근해서 북한변화 유도를 위한 대북정책의 추진목표를 상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안이 중심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480 첫째, 평화공동체를 형성하는 우리의 과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이라는 목표가 실질적인 것이 된다. 남한이 북한과 통일을 추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평화를 증진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안정적인 평 화구조가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 는 요인이 북핵문제인 만큼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평화구축은 한반도 의 안정 및 안전 확보를 위한 필수 과제이자 목표인 것이다. 둘째,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우리의 과제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 을 추진하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위기가 직면하고 있는 공급 부족과 생산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경제의 회생은 요원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 바, 북한이 현 재 겪고 있는 경제 및 사회적 위기는 개방과 개혁을 통해서만이 해결 479 통일부 홈페이지 < >. 480 김규륜 외, 상생 공영을 위한 신남북협력 추진전략 (서울: 통일연구원, 2008), p. 45 참조.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13

325 가능하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미국 및 일본과의 수교를 통 한 세계체제로의 편입 없이 폐쇄체제를 유지한 채 북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북한의 개방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북한의 경제성장 기반 구축을 통해 인도적 위기가 재발하는 사태를 방지하고 북한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개혁과 개방이 필 수적인 것이다. 셋째,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우리의 과제는 남북이 통합되고 통 일되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통일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으나,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책목표라 기 보다는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문제가 지속되고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통일이 우리의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존의 방법론으로 서의 통일 논의에서 벗어나 남북 통합을 통한 실질적인 통일을 논의 하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하겠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대북정책을 추진함에 있 어서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서 남한과 북한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 한 과정에서 우리는 상기한 비핵 평화, 개방 개혁, 통합 통일이라는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 추진원칙 이명박정부 대북정책의 추진원칙은 통일부에서 아래와 같이 제시 하고 있는 바, 북한변화 유도라는 세부적 목표를 염두에 둔 추진원칙 은 이와 같은 우리 정부 대북정책 추진원칙과 정합성을 가지고 설정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1 실용과 생산성, 2 원칙에 철저하되 31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26 유연한 접근, 3 국민합의, 4 국제협력과 남북협력의 조화 등 대북정 책의 4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481 첫째, 실용과 생산성과 관련하여 남북관계는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는 것으 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증진 노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실용과 생산성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은 국민들이 동의하는가? 북한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 하는가? 비용 대비 성과가 있는가? 북한의 발전을 촉진하는가? 평화 통일에 기여 하는가 등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원칙에 철저하되 유연 한 접근 원칙과 관련, 북한의 핵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고 진정성 있고 내실 있는 대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되, 접근방 식은 유연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국민합의 원칙과 관련, 정책의 전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민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하며,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에 기반하여 정책을 추진하겠다 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넷째, 국제협력과 남북협력의 조화 원칙과 관 련, 현실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남북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인식 하에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남북관 계가 북핵문제의 해결을 촉진하도록 하는 남북협력이 국제협력과 조 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명박정부 대북정책 추진원칙을 북한변화 유도를 위한 대북정책에 걸맞은 추진원칙으로 변환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중요 하게 간주하여야 할 것이다. 481 통일부 홈페이지 < >.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15

327 <새로운 실현가능 정책수단 발굴 및 실용적 적용> 북한의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호전성을 완화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장기적으로는 궁극적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 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장기적 목표인 통일을 위한 북한변화 유도 정책의 추진원칙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민주주의화 하는 동시에 시장 경제체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단기적이며 우선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성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남 한에 대한 도발을 하지 않도록 하는 호전성 완화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의 호전성을 완화하는 변화를 유도하는 단 기적 정책수단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상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수많은 대북정책을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유 인책과 제재의 정책을 구사하였지만,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책수단의 발굴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새 로운 정책수단이라 함은 기존의 정책을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 기 보다는 당근과 채찍의 양면성을 가진 정책을 사안별로 혼합해서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문별 정책목표의 상호연계 추진> 우리가 북한의 변화를 추구할 때 부문별 변화가 상호작용을 일으 켜서 선순환적으로 부문 간에 변화를 연쇄적으로 벌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개방과 개혁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북한도 경제적으로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간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문제는 군사 안보문제보다는 유연하게 접근할 31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28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부문에서의 개혁과 개방 을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고, 북한경제의 변화가 주민들의 의 식을 변화시키는 사회변동으로 연결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제와 사회부문에서의 북한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정치체제 에 대한 주민들의 변화의 요구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북정책을 이와 같은 경제, 사회, 정치 부문의 변 화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상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어 떻게 호응하느냐에 따라서 그 효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대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부문별 변화 가 상호연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한 행동계획을 사전에 구성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도의 남북관계 및 우호적 국제환경 형성> 북한을 변화시키는 궁극적 목표가 한반도 통일이라는 것은 주지 의 사실이다. 따라서 북한변화 유도의 가장 중요한 행위주체는 남한 이며 대상은 북한이어야 할 것이다. 다만, 남한이 직접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해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남한의 국가적 위상과 역량을 활용해서 국제사회가 남한의 북한변화 유도 프로그램에 동참하도록 하는 간접적 또는 우회적 접근방법이 동 시에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북한변화를 유도하는 국제사회의 노력도 남한이 주도해서 실질적인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 내고 국제 사회에 제시해야만 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남한이 남북관계를 통해서 북한 변화를 유도하는 경우에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야 함은 물론 국제사회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17

329 와 공조해서 북한변화를 유도하는 경우에도 남한이 주도해야 할 필요 가 있는 것이다. 다. 추진방향 이상과 같은 북한변화 유도를 위한 추진목표와 추진원칙을 감안 할 때, 단계적인 접근을 설정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실제적으로 실행 에 옮길 경우에는 단계별 과제들을 현실적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래에서는 정부가 설정한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의 형성이라는 단계적 접근의 포 괄적 문제와 위에서 설정한 각 단계의 개념적 목표인 비핵 평화, 개 방 개혁, 통합 통일을 이룩하는 문제를 종합해서 북한변화 유도의 정 책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새로운 한반도 평화구조 창출을 위한 북한변화 유도정책 추진방향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 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평화구조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본 연구의 주안점인 북한변화 유도 의 문제와 더불어 정책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를 창출하는 문제는 한국이 그동안 쌓아올린 국력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며, 보다 선진적 사고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러한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평화의 개념은 안정되고 신뢰성 있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지향하는 동시에 통일에 기여하는 통일 지향적 평화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는 민주평화 31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30 (Democratic Peace), 시장경제평화(Market Economy Peace), 비 핵화 평화(Nuclear Free Peace)의 3대 평화 개념이 종합적으로 이 룩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482 따라서 북한변화 유도를 위한 정책방향의 첫 번째는 북한이 민주 화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북한의 민주화는 북한정권의 속 성상 요원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북한변화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 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시장경제평화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볼 때 시장경제가 정착된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근 거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경제가 시장경제화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경제난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만, 북한이 평화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도 북한의 시장경제체제 수용 은 중요한 것이다. 세 번째의 비핵화 평화의 문제는 북한이 변화하는 방향에 대해 보다 직접적이며 단기적 정책 추진방향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어렵다는 소 극적 사고가 현실적인 문제의 바탕이라면, 전세계적으로 비핵화되어 야 인류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보다 적극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북 한변화 유도의 정책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2) 북한경제 현대화를 위한 북한변화 유도정책 추진방향 북한의 변화 방향 중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한의 경제를 현대화시킨다는 궁극적 목표 하에 추진수단으로써의 개혁과 개방의 추진문제라 할 수 있다. 북한도 경제난을 타파하고자 1990년 이후 몇 차례의 개혁과 개방과 관련 주요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 482 김규륜 외, 신평화구상 실천을 위한 전략과 과제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p 참조.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19

331 에서 볼 때,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북한 자체로서 추진하는 방향과 남한이 기대하는 방향 및 중국이 요구하는 방향의 3대 개혁 및 개방 의 추진방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남한이 주도해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여야만 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경제 현대화는 북한경제 회생을 위한 자생력 강화의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남한과의 통합을 추진함에 있어 한반도 통일국 가가 남한과 북한의 주민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 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경제 현대화를 위한 변화 유도정책의 핵심 은 남한과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3) 남북통합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북한변화 유도정책 추진 방향 북한변화 유도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의 종착점이 남한과 북 한 간 통합과 궁극적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은 위에서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가 통일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은 우선 적으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남북통합을 위해서는 역시 남한 과 북한이 공통이익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고, 이 를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남북통합을 염두에 둔 북한변화 유도의 정책 방향은 우선적으로 쉬운 사안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복합적인 접 근을 하는 실용적 사고에 기반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북한변화 유도의 정책방향 기본은 우선적으 로 북한주민들이 통일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인식을 깊게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의 주도에 의한 통일이 가져다 줄 32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32 다양한 통일의 긍정적 측면을 북한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 하다. 2. 향후 5년 대북정책 목표와 환경 이상에서 서술한 대북통일정책의 일반적 전략방향은 향후 5년의 정책목표로 구체화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환경을 고 려하는 보다 구체적 정책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역시는 향후 5년 동안 한국의 정책목표, 예상되는 북한의 행보, 중기적 차원에서 남북 한의 교착 상태에서 주도권 고수 정책에 대해 서술한다. 이를 토대로 3절은 향후 5년 대북정책 방향을 보다 구체화한다. 가. 한국의 정책목표 향후 5년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은 북한이 협조하는 가운데 조속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국 등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시키 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내부 개혁을 통해 경제 생산 성을 증가시키고 점진적으로 자유화를 실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의 이러한 정책목표와 충돌하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은 2005년부터 추진해왔고 2009년부터 강화되고 저돌적으로 추 진하고 있는 5개의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전략 목표는 앞서 지 적했듯이, 첫째, 핵능력을 증강하며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다. 둘째, 핵 보유국의 자격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관계를 정상화한 다. 셋째, 한국과는 핵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며, 남북관계는 한국이 북 한정권을 지원하는 관계로 형성한다. 넷째,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을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21

333 취하며, 외부적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적극 확대한다. 다섯째, 내부 통 제를 강화하는 것을 바탕으로 권력세습을 안착시킨다. 북한은 당분간 이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이를 수용하게 하기 위한 대화와 압력 수단을 활용할 것이다. 한국의 정책목표는 단기적으로 북한이 자신의 정책목표에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공세에 대해 방어와 역공을 하는 것이며, 중기적으로는 북한이 정책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 고, 장기적으로 한국의 최대 정책목표를 관철하는 것이다. 이 같은 최 대 목표를 지향하면서,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정책목표 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저지하 고,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협상괘도에 복귀하도록 한다. 둘째, 북 한이 비핵화 궤도에 진입하여 단계적으로 미국 및 주변국과 관계 개 선을 이루도록 하며, 비핵화 협상 시작과 함께 한국 및 주변국과 평화 체제 협상을 시작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평화체제 수립 및 미 북 국교정상화를 비롯하여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도록 한다. 셋째, 한국은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주도적으로 참 여하며, 대북지원은 북한을 비핵화와 내부 개혁을 촉진하고 남북한 사이 당국과 민간의 접촉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전략적으로 추 진한다. 넷째, 북한은 내부 개혁을 추진하여 생산성을 높여 경제 자생 력을 기르며, 대외 원조 및 경제협력은 북한의 개혁을 촉진하고 뒷받 침하는 방향에서 주어져야 한다. 다섯째, 북한은 점진적으로 정치적 해빙 또는 자유화 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인권을 개선하고, 마약, 인 신매매, 불법 거래를 근절한다. 32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34 나. 북한의 대응에 대한 고려 물론 한국이 추구하는 이러한 전략목표에 대해 북한정권이 스스 로 결정하여 협력해 오는 경우가 가장 소망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북한정권이 내부에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으면 발생하 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직면하게 되는 보다 현실적 상황은 한국이 추진하는 정책목표와 북한정권이 추구하는 정책목표가 서로 상치된 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이 한국의 정책목표 추진을 좌절시키면서 자신 이 추진하는 목표를 관철시킬 목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협상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네 가지 방면에서 나타 날 것이다. 첫째, 경제적 지탱 능력 보강이다. 둘째, 핵무기 능력 증강 이다. 셋째, 한국에 대한 도발이다. 넷째, 주변국 분열 외교이다. 이를 자세히 보자. 첫째는 경제적 지탱 능력이다. 핵무기 보유국 전략은 한국과 미국 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와 압력을 유발시킬 것인데, 북한 이 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여기서 핵심은 경 제적 지탱 능력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 및 일본 등 서 방국가와 교역을 하거나 원조를 받지 않고서도, 북한경제를 지탱해 나가는 능력이다. 북한이 경제적 지탱 능력을 확보하고 있을수록 북 한은 내부를 안정시키는 데서 부담이 줄어들며, 추가 핵개발에 사용 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핵문제를 놓고 주 변국과 보다 장기에 걸쳐 핵 게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대안에 는 중국과의 광물 수출 증대를 비롯하여 교역 확대와 각종 사업 전개 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있다. 또한 불법 활동을 통한 외화벌이가 있다. 나아가 핵 외교 및 인도지원 외교를 통한 자원획득이 있다. 이 렇게 벌어들인 외화벌이의 용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핵심 지지층을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23

335 포상하고 정권 유지 주요 기관을 운영하는 것이다. 둘째, 군사력을 유지하며 대량살상무기 추가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셋째로, 국가지탱에 최소한도로 필요한 경제하부 구조를 유지하고, 정치적 최저 한계선에서 주민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출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핵무기 능력 증강이다. 북한은 두 번이나 핵실험을 거행했 지만, 확고한 핵국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도 핵무기 원료를 증강하여 확보하는 것이다. 과거 북 한은 플루토늄 생산에 주력했지만, 북한은 2009년 이후부터는 공개 적으로 우라늄농축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핵무기를 소형 화 경량화 하는 것과 이의 운반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 는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 서 핵능력을 증강하자면, 북한은 많은 자금, 그리고 설비와 기술을 확 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제재는 바로 이러한 북한의 활동을 제한하고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제재 와 제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능력을 과시할 수 있을수록, 북한은 핵 보유 국가 인정 관철 전략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셋째는 한국에 대해 성공적으로 도발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에 대한 도발은 두 가지 목적에서 수행된다. 그 하나는 보다 방어적 목적 이다. 한국은 여러 차원의 국력에서 북한을 압도하기 때문에, 굳이 한 국이 적극적으로 대북 적대정책을 취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존재 자체 가 북한에 위협적이다. 따라서 북한은 한국에 대한 치명적 도발능력 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에 대해 선제 도발하거나 지속적으로 군사적 긴장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의 국력우위가 자동적으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우위 로 변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북한은 도발을 통해 예를 들어 32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36 삐라 살포, 대북선전방송 등과 같은 적대행위 또는 북한과의 약속 파 기 등에 대한 보복을 암시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한국의 행동을 움츠 려들게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보다 공세적 목적을 말할 수 있다. 한국 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의도적 도발을 통해 한국의 행태변화를 유 도하는 것이다. 그 궁극적 목적은 한국이 북한의 도발을 우려하여 스 스로 북한에 호의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등 한국을 북한의 전략틀 내 로 포섭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상황이 개선되고 미국 에 대한 협상력은 현저히 증가한다. 넷째, 주변국 분열 정책이다. 이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이 북한에 대해 그리고 북한의 핵무 장에 대해 갖는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활용하여 북한이 생 존의 활로를 찾는 것이다. 한국은 조속한 비핵화와 한국 주도의 남북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원한다. 미국은 비확산을 실질적 당 면 목표로 놓고 비핵화는 보다 중장기 차원에서 다루고자 하며, 한국 과의 동맹관계 유지 바탕 위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과 평화, 그리 고 북한의 개혁 개방과 점진적 변화를 통한 한반도 통일을 원한다. 중국은 비핵화보다 북한체제의 안정,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중시하 고 있으며, 비핵화는 중장기 과제로 간주한다. 북한은 각 국가 간의 전략적 전술적 견해차이를 활용하거나 이를 증폭시키는 방향에서 끊 임없이 행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행마는 2011년까지 대체로 성공 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2012년 한, 미, 중, 러 등에서의 정권교체, 그리고 아마도 2012년 김정 은의 후계자 지위 고양을 계기로 북한은 주변국을 상호 이간질 할 수 있는 틈새와 기회를 발견하고 활용하기에 강력히 노력할 것이다. 특 히 북한과 주변국에서 새로운 정권이 집권 초반기에 들어서는 2013, 2014, 2015년 동안 북한은 자신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전력을 다하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25

337 면서 주변국을 분열시키기 위한 회유책을 내놓을 것이다. 또한 북한 은 한국의 국내정치에서 북한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그리하여 북 한에 비친화적인 정부의 행위능력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네 가지 전략적 지향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성취하 는가, 그리고 한국 그리고 미국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방어하는가에 따라 양측의 협상 균형이 달라진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취약성이다. 북한의 핵 보유 고수 정책은 주변국으로부터 큰 반발을 살 것이고 주변국을 충분히 분열 시키기도 어려우며, 따라서 북한으 로 볼 때 전략적 돌파 국면이 조기에 열리지 않는 가운데서 대외 지 원이 확보되지도 못하고 내부 불안에 대한 염려로 내부개혁을 실행할 수도 없는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경제적 지탱력을 유 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난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제 조업 기반이 전면 붕괴하여 탈공업화 탈숙련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었 기 때문에 앞으로 광산업, 인력 수출, 외부원조 수취를 통한 외화벌이 사업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세계 경제가 지 속적 호황을 누려서 원자재 값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주변국에서 인력난이 심할 때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앞으로 당분간 세 계 경제 전망은 매우 밝지 못하다. 특히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둔화될 것이며, 이는 북한의 대중 수출 원자재에 대한 수요와 가격을 낮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만약 앞으로 중국 내부에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사건이 점차로 증가할 때, 이것이 북한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편 북한이 내부 생산성을 증대시키지 못하는 가운데 대외 조달 자금과 자원이 줄어들면 북한 내부에서 나누어 먹을 파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이중의 자원 확보 투쟁이 벌어질 수 있고 이것 이 내부 정치 불안의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는 주요 권력기관 32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38 간에, 주요 엘리트 간에 무역특권 쟁취, 타기관 권리 탈취 등 자원 확 보 경쟁이 발생하고 이것이 권력세습에 따른 권력재편과 맞물려 권력 상층 내에서 가시적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둘째는 권력집단 전체 의 대인민 수탈이 증가할 것인데, 이는 정권-주민관계가 더욱 나빠 질 것을 예견한다. 이러한 여건에서 북한은 자신의 취약성을 감추기 위해 두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다. 첫째, 대남 위협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책목표 달성 속도가 부진하거나, 달성 실패가 예견되는 경 우, 북한 측이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는 각종 대남 위협을 강화는 것 이다. 핵무기 사용 위협, 재래식 국지도발, 해킹 확대, 요인 암살, GPS 교란 등이 이에 속한다. 이미 북한의 도발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인데 이러한 양상은 더욱 세련되고 교활해질 것으로 예측된 다. 둘째, 내부 정치 보안을 강화할 것이다. 앞서 지적한 상층 엘리트 내부 갈등 증가 및 정권 대 사회 간의 갈등 증가 잠재성에 직면하여 북한은 각종 감시, 사찰 기관을 현저히 강화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미 드러나고 있듯이, 북한당국은 대중시위에 대한 우려를 높일 것이 며 시위진압 능력을 증강하고자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응을 보자. 한국과 미국은 첫째, 핵보 유를 고수하는 한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할 것이다. 여기에는 각종 제재와 제한을 통해 북한 핵무 기 추가 개발을 억제하는 한편, 핵무기를 보유하고서는 경제적 미래 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문제는 이 제까지의 경험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노력이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하 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추가 핵 개발을 억제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외교적 수단을 동원한 대화와 압력과 함께 핵 개발 자금 동원을 봉쇄하는 것, 각종 무역관련 제재와 제한 조치를 통해 핵관련 설비와 기술을 북한이 취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27

339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역시 이제까지 경험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성 공적이지 못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북한은 국제 핵 암시장에서의 거 래를 통해 농축우라늄 생산 시설을 갖추고 운영하게 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한국에 대한 재래식 도발을 포 함한 각종 도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제압하고자 할 것이다. 만약 한국이 이에 성공한다면, 한국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고서도 보복 받지 않을 자유 공간 을 현저하게 늘림으로써 정책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이 북한의 각종 도발에 대해 완전한 방어벽을 갖추는 것은 이론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 전략적 잠정 타협과 주도권 유지 상호 충돌하고 있는 정책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나 그 어느 측도 상 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갈등을 계속해가는 것은 부 담이 너무 클 때 갈등 참여자들은 전략적 타협을 모색할 수 있다. 그 러나 만약 성사된다고 해도 이러한 전략적 타협은 관련국의 이익 상 치를 잠정적으로 봉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협은 그 일부 내용이 의 도적으로 모호할 것이며, 실천과 진행과정에서 새로운 갈등과 협상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우선, 주요 관련국인 4국가의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다시 확인해 보자. 북한목표의 핵심은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 북한 주도의 남북관계를 수립하여 내부 개혁 없이 원조를 받아 체제를 지탱하는 것이다. 한국의 핵심 목표는 북한을 조속히 비핵화 시키고 한국 주도 의 남북관계를 수립하여 북한의 개혁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 의 핵심 목표는 비핵화 비확산이고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막는 것 32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40 이며, 북한을 개혁 개방 시키고 비핵화 하는 것이다. 중국의 핵심목표 는 북한체제의 안정과 존속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는 상 태에서 개혁 개방과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반되거나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이해관계를 추진하 는 4국가가 전략적 타협을 이루어내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 약 타협이 성립한다면, 4국가가 공유하는 이해관계가 반영됨과 함께 각 국가의 협상력을 그 내용에 반영하게 될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타협의 내용, 그리고 그에 대한 각 국가의 이해관계 또는 정당화는 다음과 같이 서술될 수 있다. 우선 핵심사항인 비핵화를 보자.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각국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 북한 은 핵 보유 고수를 요구한다. 한국은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를 요구하 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를 요구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비확산을 우 선시하면서 단계적 비핵화도 수용할 생각이 있다. 중국의 단계적 비 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충하는 요구를 종합한 타협으로서 비확산 요구를 반 영한 단계적 비핵화론이 재등장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미국과 중국 이 공히 북한의 비핵화는 장기적 과정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미국은 비확산을 우선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북한의 핵 보유 고수 요구는 나머지 세 나라에게 수용되지 않으며, 한국의 조속한 비핵화 요구는 한국 단독으로 관철하자고 해도 적절한 수단이 결여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든 북한이든 단계적 비핵화 타협 안을 추수하지 않는 경우,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외교적 압력에 노출 되거나 또는 외교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단계적 비핵화 를 다시 추구하더라도 한국과 미국은 이 과정이 가능하면 속도가 빠 르게 진행될 것, 그리고 도중에 북한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파기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장착하고자 할 것이다. 단계적 비핵화론이 재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29

341 생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라늄농축 시설을 포함하여, 핵시설 가동 중단 불능화 폐기의 3단계를 다시 밟아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데 이와 같은 단계적 비핵화론의 재생은 한국과 미국 내에서 상당한 여론의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단계적 비핵화론이 타결됨과 함께 평화체제 회담이 시작될 것이며, 남북관계와 미 북관 계가 점진적으로 관계가 개선될 것이다. 미 북은 의사소통을 위하여 상호 연락 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타협이 반드시 숙명적으 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타협에 대한 전략적 합의가 아 예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정책 결정자가 경제를 지탱하는 데 자신을 가지며, 핵능력을 효과적으로 증강시키며, 또한 한국에 대한 위협 능력을 충분히 보유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 북 한당국은 자신의 최대 요구 관철, 즉 핵 보유 국가 인정을 끝까지 고 집할 것이다. 이 경우 타협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북한의 내부사정이 이번에는 정말로 붕괴 직전에 왔다고 판 단하면서, 압력을 통해 더 좋은 조건을 쟁취할 수 있다거나, 또는 협 상을 회피하면서 붕괴 이후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면, 타협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미 중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중국과 북한이 극대 요구를 고집하는 한편, 한국과 미국도 상대방의 일방적 항복을 요구하는 경우 타협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전략적 타협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 일정한 긴장상태에 서 외교적 수단과 그 밖의 다른 수단을 활용하면서 정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기 위한 행마를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 잠정적인 전략적 타협을 하더라도 그러한 타협 안에 한국과 미국이 타협 이행과정에서 전략적 우세와 정세 장 악을 할 수 있는 요소를 장치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에는 좁게는 비핵 33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42 화와 관련해서 본다면 핵물질과 핵무기의 조속한 반출을 강제할 수 있기 위한 수단을 장착해야 한다. 또한 한 번 한 약속은 지킨다 는 원칙 하에서 북한과 다른 참여국이 일방적으로 협약 이행을 파기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또한 타협이 성사되는 경우 북한에 대한 주변국의 원조증여와 경제관계가 확대할 수밖에 없 고, 또한 북한과 주변 세계의 접촉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활용 해야 한다. 특히 외부원조와 경제관계 확대가 정권의 재정력을 강화 하고 친정권 집단의 치부에 기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성장 과 일반주민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 개혁이 발생하는 방향에서 사용되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 다. 나아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각 종 불법활동과 내부 인권 침해에서 가시적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 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과 정세진행 방향이 가시화된다면 북한과의 잠정 전략 타협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전략적 우세와 북한 의 건설적 변화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3. 향후 5년 대북정책 추진 원칙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 인정 관철 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을 한동 안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미국, 중국과 북한을 핵 심으로 하는 4나라 사이에 핵문제의 향배를 놓고 협상이 벌어질 것이 다. 이 협상은 타협에 도달할 수도 있고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를 보면 한국의 대북정책은 세 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첫째, 협 상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둘째, 협상이 타결되는 경우, 셋째, 협상이 결렬하는 경우이다. 또한 보다 세부적으로는 핵 타결이 이루어지지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31

343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내부적으로 비개혁을 고집하는 경우와 경제난 때문에 개혁정책을 도입하게 되는 경우이다. 다음으로 핵 타협이 된 상태에서 북한이 비개혁정책을 고수하는 경우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네 가지 경우가 북한 내부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떠 한 상황을 의미하는 가는 앞서서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도출했다. 여기서는 한국이 협상에 도달하게 될 때까지, 그리고 핵 타결 여 부 또는 북한의 비개혁 또는 개혁 여부와 상관없이 견지해야 하는 대 북정책 원칙을 설정한다. 다음으로 위에서 협상 타결과 결렬, 비개혁 과 개혁이라는 변수의 조합으로 발생한 네 가지 시나리오 중의 하나 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한 정책 방향을 살펴본다. 가. 대북정책에서 북한의 이미지 한국의 대북정책에서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기본관념을 가기고 있었는가가 매우 중요했다. 그간의 한국에서의 대북통일 정책은 대체 로 낙관론에 기초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현실론 에 입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정부의 정책은 우리가 잘해주면,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가고, 그리하면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라 는 식의 관점에 입각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고, 비핵 개방 3000 론 도 비핵 개방을 전제하고 정책 사고를 전제하며 우리가 정책 입장만 제대로 잡으면 북한의 개방이나 비핵화가 비교적 조만간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전망에 입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 현실은 북한의 대내 정책 방향 또는 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기득권 체계는 북한의 본 격적이고 실질적 개혁정책 추진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고 개방의 경우에도 흔히 묵시적으로 상정되어 있듯이 개혁과 연계되어 추진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을 고수하는 데 필요한 33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44 외화벌이 사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비핵화 와 관련해서도 보면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 또는 평화번 영정책 그리고 현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도 사실상 북한이 비핵화 를 추진하고 있다 는 전제가 성립해야 논리가 서는 정책 방안인데, 북 한은 이미 핵실험을 두 번이나 거행하였으며, 특히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에는 핵무기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추 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을 포기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 사활을 걸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집요하게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북정책이 현실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북한은 과거 정부의 정책에 상정되어 있듯이 핵을 포기할 것이며 개혁과 개 방으로 전진하고 있는 북한 이거나 비핵 개방을 통해 일인당 국민소 득 3,000달러를 달성하는 정책을 조만간 수용할 북한 이 아니라, 앞 으로 상당기간 동안 비핵화도 개혁 개방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한 국에 대해서는 한층 더 공세적이고 도발적 정책을 취할 북한 이다. 따 라서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이와 같은 북한을 상정하고 이러한 북한을 우리 이익의 입장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숙고해야 한다. 앞으로 대북정책이 상정해야 하는 북한은 다음과 같은 북한이다. 대외적으로는 집요하게 핵무기 보유 국가 인정을 관철하고자 하면 대 내적으로는 반개혁정책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시장에 대한 자의 적 간섭과 통제를 예측불가능하게 행사하고, 이러한 정책이 발생시키 는 내부 경제의 불모성을 외화벌이 사업 확대를 통해 보충하고자 노 력하는 정권이다. 이러한 정권이 추진하는 외화벌이 사업은 광산물 수출, 개성공단과 같은 폐쇄형 특구를 만들고 인력을 수출하여 임금 독점, 대량살상무기 외교 및 식량난 외교를 통하여 대외원조 수입 증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33

345 가 등 내부경제의 생산성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는 데는 전혀 기여하 지 않고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외환 보유를 증가 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권은 대내적으로 사회와 주민의 지향과 바램, 변화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내부 교란과 위험 요소가 높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정권은 한국을 굴복시켜 전략적 하수인으 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내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남 교란 정책을 대대적으로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향후 남북관계 또는 북한의 대남정책 을 예측하게 될 때 낙관론에 경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의 대북 정책은 현실론적 입장에서 북한의 한국에 대한 교란과 도전이 향후 대략 5년 동안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입각해야 한다. 한국에서 낙 관론이 지배적인 전망이 되는 것은 보통 북한이 경제난 때문에 태도 를 완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비핵화에서의 상황 개선이 있 을 것으로 예상하며, 내부적으로도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와의 교역확대나 내부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언론 매체는 북한의 어떤 조치나 동향을 주로 비핵화 및 개 혁 개방이 진전할 것이라는 틀에 맞추어 해석하고 전파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개혁 개방 이라는 단어는 분리될 수 있다 는 것 즉 <외화벌이사업 확대+내부적 반개혁>이라는 세계도 가능 하다는 것을 환기해야 할 것이며, 북한이 이러한 방면에서 노력하게 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전과 기회가 무엇인지를 밝혀 내 활용해 야 할 것이다. 33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46 나. 대북정책의 전략적 원칙: 적극적 억지와 적극적 관여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추진하는 목표와 북한이 추진하는 목표는 대부분의 경우에 상충한다. 따라서 앞으로 5년간 한국과 북한 간에 긴장과 갈등이 상존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물론 한국과 북한 모두 남북관계의 일정한 관리 또는 상대방에 대한 평화적 제압을 바라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의 노력 역시 지속될 것이다.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정책목표를 다시 한 번 거론하며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저지하고, 북 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협상궤도에 복귀하도록 한다. 둘째, 북한이 비핵 화 궤도에 진입하여 단계적으로 미국 및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이루도록 하며, 비핵화 협상 시작과 함께 한국 및 주변국과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 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평화체제 수립 및 미 북 국교정상화를 비롯하여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도록 한다. 셋째, 한국은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대북지원은 북한이 비 핵화와 내부 개혁을 촉진하고 남북한 사이 당국과 민간의 접촉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한다. 넷째, 북한은 내부 개혁을 추진 하여 생산성을 높여 경제 자생력을 기르며 대외 원조 및 경제협력은 북 한의 개혁을 촉진하고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주어져야 한다. 다섯째, 북한 은 점진적으로 정치적 해빙 또는 자유화 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인권을 개선하고, 마약, 인신매매, 불법거래를 근절한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하자면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적극적 억지와 적 극적 관여를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주변국 및 국제사회 와 협력하여 북한의 불법활동을 차단하며, 북한으로의 자원 유입이 북한의 행태 변화와 내부 정책변화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주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한국은 주변국 및 국제사회와 협조하여 북한의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35

347 핵무기 및 투발수단 증강 노력을 외교적으로 또한 국제적 제재 수단 을 통해 억제하고 좌절시켜야 한다. 셋째, 한국은 남북 간 군사적 긴 장완화에 노력하는 한편, 증대하고 세련되어 갈 가능성이 높은 북한 의 각종 도발을 억제하거나 좌절시킬 수 있는 경계태세와 능력을 갖 추고 있어야 한다. 넷째, 한국은 비핵화 문제와 남북관계 관련 문제에 서 현실적이고 현명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러 시아와의 관계에서 불성실하고 비현실적인 북한을 고립시킬 수 있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다섯째, 한국은 북한 내부 붕괴 가능성에 대 해 과도한 기대를 통해 기다리는 정책을 취하는 대신 북한 내부 변화 를 촉진할 수 있고 북한 내부의 취약성을 활용할 수 있는 정책 구상 에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북한당국과의 긴장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북한에 대해 관 여의 폭과 깊이를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가지 고 있는 장점, 즉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라는 모델의 매력을 북한 사회에 발산하여 변화를 촉진하는 장점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수 단이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한국이 안정, 복지와 번영을 구가한다는 자체 가 북한 내부에서 한국을 모방하고자 하는 또는 궁극적으로 통합하고 자 하는 정치적 여론과 압력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경험을 참조해 볼 때 이러한 모방 압력은 한국과 북한에 대해 첫째, 지렛대를 높일 때, 둘째, 한국과 북한이 더욱 두터운 상호 연계 를 수립하게 될 때,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483 이제까지는 흔히 남북 간 연계를 확대하는 것이 한국의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높이는 것이다 라는 주장이 회자되곤 했었다. 그러나 483 박형중, 통일국가의 정치체제와 이념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주최 세미나 발표 논 문, ),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48 지렛대를 높이는 것과 두터운 상호 연계는 서로 상관은 있지만 반드 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렛대가 의미하는 것은 북한정권이 외부의 민주화 압력에 대해 얼마나 취약하게 되는가에 관련한다. 484 지렛대 는 첫째, 한국-서방에 대한 북한정권의 흥정력 또는 독재적 악행을 징벌할 목적으로 또는 정치적 민주화를 촉진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한국-서방의 행위를 북한정권이 회피할 능력과 관련한다. 지렛대는 둘째, 한국-서방의 행위가 북한정권에 가하는 잠재적 경제, 안보 또는 여타 충격에 대한 취약성과 관련한다. 한국-서방과의 연계는 다음과 같이 정의 된다. 즉 연계는 연결의 밀도(경제, 정치, 외교, 사회, 조직) 그리고 한편에서 특정 국가와 다른 편에서 미국, 유럽연합 및 서방이 지배하는 다자제도 사이에 (자본, 재화와 서비스, 사람, 정보) 국경 초 월 흐름의 밀도이다. 연계는 다차원적 개념으로 개별 정치체, 경제와 사회를 서방 민주주의 공동체와 연결하는 상호의존의 수많은 네트워 크를 포괄한다. 485 이러한 연계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북한 내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북한의 민주화에 세 가지 방식으로 기여할 것이다. 486 즉, 첫째, 연계는 독재자의 악행이 초래한 국제적 반향을 증폭시키며 따라서 그와 같은 악행의 비용을 높인다. 둘째, 연계는 국내적으로 민 주적 규범을 준수하는 행위를 지지하는 층을 만들어 낸다. 셋째, 국내 적으로 권력과 자원의 배분을 재형성하며, 그리하여 민주세력과 야당 세력을 강화하고 독재자를 약화시키고 고립시킨다. 484 Steven Levitsky and Lucan A. Way, Competitive Authoritarianism: The Origins and Dynamics of Hybrid Regimes in the Post-Cold War Era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p Ibid., p Ibid., p. 32.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37

349 4. 향후 5년 대북정책의 기본방향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위와 같은 북한을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본방향을 견지해야 한다. 가. 전략적 선제와 적극적 대응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우리가 북한의 정책과 조치에 반응하는 수 동적 상황에서 사고하지 말아야 한다. 즉 상대방의 전략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상황의 틀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전략 적 틀로 상대방을 유도하고 반응하는데 초점을 두고 사고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이 핵 보유를 고수하고 대내 반개혁, 외화벌이 사업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데서 직면하는 난관과 제기하는 도전에 대해 선제적 지식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전략적 주도권을 잡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정세에 대한 안이한 낙관론, 비핵 개방 이후의 북한에만 집중하는 정책 사고로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어렵다. 나. 도발에 철저 대비 북한은 핵 협상이 시작되기 이전, 과정,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도 발을 끊이지 않고 시도할 것이다. 특히 핵 보유 국가 인정을 추진하는 북한이 크고 작은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그 이유는 한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한국에 대해 도발하더 라도, 이미 두 번의 핵실험을 한 준-핵국가인 북한에 대해 한국이 무 33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50 모하게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이 도발을 일으키는 목적은 협상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증가시키기 위 한 목적 이외에도 내부 불안 요인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외부 위협을 동원해 주민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것이다. 협상 입지 강화용 도발은 특히 협상 개시 이전이나 결렬되었을 경우가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러한 경우 입지를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현실 적으로 북한의 도발 양태는 (예를 들어 국지 군사도발 이외에도 암살 지령, 해킹, GPS 교란 등) 이미 매우 다양해 졌는데 앞으로 더 다양 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 정권과의 거래는 철저한 상호주의 추진 북한이 스스로는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수고를 하거나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 이에 대해 우리가 상호주 의적 원칙에 입각하여 보상할 수 있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이와 같 은 사례로써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의 주고받 기이다. 그동안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또는 6자회담 합의인 경우, 북한을 제외한 참가국이 북한에 대한 보상 조치를 취해왔다. 이러한 원칙은 남북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군사적 양보, 납북자 송환, 유해발굴에 협조 등) 북한정권이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을 지 불할 수 있다는 원칙을 견지하되, 이 경우 상호주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39

351 라. 주민의 정치사회적 역량강화 추진 외부 압력 또는 인센티브를 통해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바꾸는 것 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이 의미 있게 바뀌는 경우는 북한주민의 대정권 발언력이 높아지는 경우 에만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방향에서 전략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주민의 내부 정치적 발언력이 높아지지 않는 한 북한정권이 나쁜 정책을 거듭하고 정책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또 다시 나쁜 정책과 정책 실패가 반복될 것이다. 북한에서 식량난이 장기화되고 북한주민의 생명권 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외부 국가와 기관이 북한에 식량 원조 를 해주지 않아서가, 또는 충분히 제공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북한 정권이 지속적으로 나쁜 정책을 시행하고 정책 실패를 거듭함에도 불 구하고 이를 교정하고 견제할 수 있는 내부 동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생명권 보장은 북한주민이 정치사회적으로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북 한정권이 나쁜 정책이나 정책 실패를 저질렀을 때, 정권이 정치적 위 험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자각을 만들어 낼 때에야 구조적이고 항구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북한 핵문제도 북한주민의 내부 역량강화를 통해 북한당국이 북한주민의 복지에 재 앙을 초래하는 핵 무장 정책을 수정하도록 하는 내부 압력을 만들어 낼 때에야만 실효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이러한 내부 압력이 존재하 면 북한당국이 주민의 생활을 희생하고 핵 무장을 위해 동원해야 하 는 자원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으며, 대외적 책략 공간이 줄어 들 것이다. 대북정책은 정권과 주민을 구별하며 주민의 역량강화를 촉진한다 는 화두를 모든 정책 사안을 숙고할 때마다 고려해야 한다. 물론 구체 34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52 적 현실 사례에 직면하면 정권과 주민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항상 이것을 화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하면 그때그때 실용적인 방법, 또는 덜 나쁜 방법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거듭되어야 중장기적으로 북한주민의 마음을 살 수 있는 포석을 깔 수 있게 될 것이다. 정권의 나쁜 짓은 엄하게 대하지만, 좋은 일에 대 해서는 상호주의로 보상할 수 있고 북한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 면 정권의 나쁜 짓과는 별개로 한국정부는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한국이 정권과 주민을 구별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 한국이 북한 정 권이라는 방해자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을 만들 위해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주민들에게 인식되 어야 한다. 이래야 북한주민의 내부적 정치 발언권이 증가할 수 있 고궁극적으로 한국에 보다 적극적으로 우호적 여론이 형성될 수 있 다. 특히 한국의 대북정책은 주민이 정권에 대해 정치적 발언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배려하는 데 현저하게 높은 관심을 기울 여야 한다. 마. 외부 의존성과 내부 취약성을 적극 활용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앞으로 정권 대 주민 간의 갈등 양상이 보다 복잡 다양해지며 그 강도도 증가할 것이 라는 점, 둘째, 북한정권의 외부 지원에 대한 의존성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한국이 개입할 수 있는 기회 의 창이 열리는데 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보 다 적극적이고 대국적인 관점에 출발하여 이와 같은 대북사업을 과감 히 확대하며, 주민의 고용과 산업연관(하청업체 고용)을 증대시키도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41

353 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인도적 지원, 북한정권과의 거래성 지원, 민간 중심의 경제협력(폐쇄형 경제특구와 임가공을 포함)을 적극 추 진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업에는 항상 전략적 전술적으로 활용해 야 할 측면과 방어해야 할 측면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한국은 이에 따른 손익 계산을 전략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은 이러한 사업을 전개함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여러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한편,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편 앞으로 북한 내부에서 정권 대 주민 간의 갈등이 점차로 확대될 것에 주목하 여 이를 관여의 기회로 포착하는 정책이 구상되어야 한다. 북한 내부 에서 이미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그룹의 등장, 빈부격차 증대, 도농격 차 증대, 세대격차 증대, 중앙 대 지방의 갈등 증가, 외부 정보 유입 증가 등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열쇠도 역시 북한에 대 한 적극적 관여정책이다. 5. 향후 5년 대북지원 전략의 원칙과 방향 대북지원은 앞으로도 한국이 북한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중 요한 정책수단이 될 것이다. 이는 북한정권의 행태를 변화시키는데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북한주민에 대한 접촉면을 넓히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대북지원 에 관한 전략 사고를 높은 수준에서 전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할 수 있다. 34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54 가. 3대 기본 원칙 첫째, 앞으로의 대북지원에서는 정권과의 상호주의적 거래와 주 민에 대한 인도지원을 분명하게 분리하여 사고하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한국은 국익에 부합하다면 북한정권과의 정치적 거래에도 적극 적으로 임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북한정권에 대해 상호주의적 원칙에 서 보상성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지원물품이 주민에게 정확히 전달되는 지에 대한 모니터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때에야 대북지원이 국내 정치 논란 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한국의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이 정치 날 씨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둘째, 대북지원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정치적 전략적 고려가 강화 되어야 한다. 대북지원은 가급적이면 북한정부에게 대량의 물자를 전 달하는 것을 지양하고 소액 다품종 위주로 하며 대북 주민접촉을 확 대하는 방향에서 구상되어야 한다. 이는 북한당국이 스스로 개혁정책 을 추진하지 않는 한에서 외부에서 조달되는 특히 공짜 자원은 궁극 적으로 정권 강화를 위해 사용되든지 부패 메커니즘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이 원조를 통해 북한경제를 살리고 북한주민의 기아를 구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 한의 경제회생과 주민생활 향상은 북한당국이 정책을 바꾸어 스스로 노력할 때만 가능하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원조는 북한당국이 스스로 추진하는 개혁정책을 도울 때에만 성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은 조건부 원조이어야 하며 그 최종 사용에 대한 엄격한 모니터링이 존재해야 한다. 북한당국이 스스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에만 한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43

355 국과 국제사회는 성공할 수 있고 특히 대규모로 원조도 가능해진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북한경제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정책 과 제도개혁을 집중하여 지원함으로써 북한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경 제난과 인도적 재난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을 개선하는 데서 핵심적인 것은 인도지원, 개발지원, 당국 간 정치적 거래이다. 한국의 대북지원 의 원칙과 전략은 이 세 가지 개념의 차이성을 식별해야 하며 대북지 원에서 각 지원방법을 적절히 배합하고 활용하며 각 지원방법에 고유 한 목적 그리고 적절한 수단과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이에 대해 자세 히 설명하면 이렇다. 487 나. 보론: 인도지원의 개념 한국의 대북지원 정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인도지원 에 대한 개념적 혼동이다. 인도지원에는 그 목적에 맞는 원칙과 수단 이 존재한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인도지원을 개발지원이나 당 국 간의 정치적 거래로 혼동하게 된다. 이러한 혼동이 한국의 대북지 원 논쟁이 소모적 이데올로기 논쟁이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따 라서 대북지원 정책을 논할 때, 인도지원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487 여기의 서술은 박형중,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의 개념과 원칙, KDI 북한경제리뷰, 2011년 2월호 (KDI, ), pp. 3 9, 그리고 박형중, 인도적 지원과 남북관계: 구조, 쟁점, 추진방향, 인도적 지원과 남북관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세미나 자 료집, )를 활용했다. 34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56 인도지원의 개념 인도지원이라 함은 사람에 의해 야기된 위기 또는 자연에 의해 야 기된 재난에 대한 단기 긴급 구호활동을 의미한다. 인도지원과 구별 되는 개념이 개발지원이다. 긴급 구호 활동은 고통스러운 증세를 완 화하는데 집중하며, 증세를 유발한 원인은 치료하지 않는다. 증세를 종결시키자면 그 증세를 유발한 원인을 제거하는 보다 장기적이고 체 계적 활동이 필요하다. 이것이 개발지원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대체로 단기적인 인도지원과 동시에 또는 순차 적으로 장기적 차원의 개발지원이 시작된다. 그러나 어떤 국가들에 대해서는 본격적 개발지원이 시작되지 못하고 인도지원 성격의 원조 가 영속화된다. 인도지원은 해당 국가정부 활동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지원 또는 현물전달이 대부분이고, 그 이행 주체는 국제 비 정부기구나 유엔기구들이다. 때때로 프로젝트 이행과 관련한 기술원 조가 제공되고, 정책대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의 원조는 재난 을 초래한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며, 또한 해당 국가의 정부와 사회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함양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에 비해 개발지원은 원조를 제공하는 측이 아니라 원조를 받는 국가 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주도가 되어 개발계획을 수립한다. 또한 해당 정부 행정체계의 정책입안과 집행 능력의 향상, 그리고 시민의 참여 와 협력의 확대 등을 통해 해당국가가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여 자체 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개발원조는 재 화와 용역을 직접 전달하는 프로젝트 원조와 함께 해당국 정부에 현 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 원조를 주요 형태로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발원조가 이루어지자면, 무엇보다도 해당국 정부와 사회가 스스로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원조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45

357 제공국이 이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만약 해당국 정부와 사회가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며 원조된 재화와 용역을 부정적 용도로 전용할 것이라는 의심이 존재하는 경우, 개발원조의 시행은 불가능하다. 이 러한 경우에 인도지원 형식의 원조가 장기화된다. 인도주의 원조와 사마리아인의 딜레마 인도지원은 장기화되는 경우 부작용을 야기한다. 이는 마치 환자 에게 치료약은 주지 않고 증세 완화용 진통제만 장기 투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인도지원은 나쁜 정책과 제도를 수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쁜 정책과 제도가 초래한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수행된다. 이러한 활동이 장기화되는 경우, 인도지원은 해당 국가 정부의 나쁜 정책과 제도가 오히려 지탱하도록 도와준다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정부는 특정 지역의 기근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정책과 제도 개혁 을 회피한다. 그러면 인도주의 위기가 발생하여 국제적으로 비상벨이 울리며, 외부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시작된다. 그러면 위기가 완화되 고, 그러면 해당 정부는 나쁜 정책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서도 계속 생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내년에도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내년에도 비상벨이 울리며, 인도주의적 개입이 필요하게 된다. 인도 주의적 위기와 개입은 영원히 계속된다. 이것이 이른바 사마리아인 의 딜레마 이다. 유엔과 국제기구가 1995년 이후 전개해오고 있는 활동은 인도지 원 차원의 지원이다. 이는 인도지원이 15년 이상 전개되어 오고 있는 매우 이례적 경우이다. 그 이유는 북한당국이 제도와 정책 개혁을 지 향하는 개발지원을 수용할 의지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 34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58 문에 북한과 관련해서는 인도지원의 장기화, 또는 대외원조가 야기하 는 부정적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위의 사 마리아인의 딜레마 라는 표현 이외에도, 원조의 저주 488 또는 구호 의 함정 489 이라는 표현으로 개념화되어 있다. 대북 인도 지원과 식량지원 국제적으로 인도지원은 단기적 처방이지만 한국에서는 대북원조 그 자체를 인도지원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사회는 대북 인도 지원에 대해 숙고하고 논쟁해왔지만 이는 국 제적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하고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현실적 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인도지원에 대한 문건이나 분석 중에서 북한과 같은 경우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국제사회의 경우 인도지원 이라 함은 대부분 돌발적 자연 재난, 난민 구호 또는 국가붕괴와 같은 경우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한 인도주의 원칙과 서술은 북한의 경우처럼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확고하며 또한 장기 위기에 처해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사실상 해당 사항이 없다. 나아가 한국의 정부와 사회가 북한에 대해서 지원했던 행위 중에 서 엄밀한 의미에서 인도지원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정부와 사회는 인도지원과는 다른 행동을 하면서 이를 인도지원 이라 불러왔다. 인도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취 488 Simeon Djankov, Jose G. Montalvo, and Marta Reynal-Querol, The Curse of Aid, Journal of Economic Growth, Vol. 13 (2008), pp Christopher B. Barrett, Food Aid as Part of a Coherent Strategy to Advance Food Security Objectives, ESA Working Paper, No (September 2006), p. 4.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47

359 약계층 수혜 원칙 이고 이를 적정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부와 사회는 많은 경우에 북한당국에게 물자를 전달하는 행위 를 인도지원 이라 불러왔다. 또는 수해지원의 경우에서처럼 급작스러운 재난에 대한 지원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모니터링이라 함 은 한국 물자가 북한당국에게 양도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그 물자가 실제로 수해주민에게 전달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포함 되지 않았다. 즉 한국이 인도지원 명목으로 전달한 물자의 최종 사용 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인은 많은 경우에 사실상 무시되었다. 또는 인도지원이라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등 인도지원의 원래 목적과는 다 른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인도지원 이라는 것이 인도지원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북 인도 지원 은 정치적 논란을 야기했다. 이러한 대표적 사례가 대북 식량지원이다. 한국에서 대북 인도 지원이라 할 때 식량지원이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다. 식량지원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490 프로그램 식량지원, 프로젝트 식량지원, 긴급 식량지원이다. 이 중에서 돌발적 자연 재해, 난민 등에 대한 긴 급 식량지원이 인도주의 지원 또는 구호지원으로 불린다. 프로그램 식량지원과 프로젝트 식량지원은 개발형 식량지원 또는 비-긴급 식 량지원으로 구분된다. 프로젝트 식량지원은 학교 급식, 식량취로사업, 산모 및 영유아 급식제공 등이 해당된다. 세계식량계획과 서방 NGOs의 대북 식량 원조 활동은 대부분 프로젝트 원조이며 이들 기관은 주민 을 직접 대상한다. 프로그램 식량원조는 어느 한 정부로부터 다른 정 490 Christopher B. Barrett and Daniel G. Maxwell, Food Aid After Fifty Years: Recasting its Role (London: Routledge, 2005), pp ; Frederic Mousseau and Anuradha Mittal, Food Aid or Food Sovereignty? The Oakland Institute (October 2005), pp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60 부로 직접 제공된다. 원조국 정부는 수혜국 정부가 식량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외화 대금을 좋은 조건으로 대부하는 대신, 자기 나라 식량 을 판매하거나 정치적 요구조건을 관철시킨다. 이러한 프로그램 원조 는 상대방 정부에 대한 현금 재정지원과 다름없다. 프로그램 식량원 조는 일반주민의 식량안보 개선이나 영양불량상태 개선과는 관련이 없다. 또한 이러한 방식의 식량원조는 역사적으로 원조국의 잉여농산 물 처리와 관련을 맺어왔다. 수혜국 정부는 이중의 이익을 얻는다. 식 량수입 외환을 절약하며 수입 식량을 국내시장에 판매하여 재정 수입 을 증가시킨다. 수원국 정부는 이러한 이득을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재정지출을 늘리는데 사용한다. 프로그램 식량원조에는 조건이 따라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혜국 정부는 공여국 정부의 외교안보 사안 에 협력하거나 국내 판매대금을 공동기금으로 조성하여 결제발전에 사용한다는 등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식량원조는 북한이 식량을 수입하는데 필요로 하는 외환을 한국정부가 좋은 조건 으로 빌려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프로그램 식량원조였다. 한국정부 는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관리하며 국내이익단체의 압력을 완화하고 자 했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은 적절했거나 또는 적절하지 않았었을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식량지원은 그 내용상 인도지원이 아님에 도 불구하고 인도지원이라 불렸다. 따라서 명칭과 내용이 상치한데에 서 혼란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한국 내부에서 격렬한 정치적 논란이 벌어졌다. 다. 대북지원 정책의 8대 방향 이상의 논의에서 당국 간 정치 거래성 지원과 인도지원을 포괄하 여 대북지원과 관련하여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북한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49

361 에 대한 어떤 물자지원을 인도지원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면 인도지원 의 개념에 맞는 행위에 대해서만 그래야 한다. 다시 말해, 여러 이유 로 재난에 직면한 취약계층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이를 적정한 수준에 서 확인할 수 있는 물자전달 행위만 인도지원이라고 불러야 한다. 단 순하게 북한당국에 물자를 건네는 것 또는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써 북한당국에 직접 전달되는 물자를 인도지원 이라 선전해서는 안된다. 둘째, 한국은 지원의 목적과 전달방법에 대해 보다 심각한 숙고를 해야 한다. 여러 조건 때문에 한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것, 또한 궁극 적으로 대량 지원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대북지원과 관련하 여 한국에서 격렬한 논쟁이 야기된 주요한 이유는 지원의 목적에 혼 동이 있었고 또한 지원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의 대북 인도지원은 재검토되어 야 할 필요가 있다. 인도지원은 대체로 물자지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물자의 대부분은 전용하기가 매우 쉽다. 대표적으로 쌀이 그러하다. 따라서 그 전용유혹도 매우 높다. 이처럼 전용이 용이하고 유혹이 높 은 물자로 구성된 인도지원 중심의 대북원조를 하면, 모니터링 문제 는 항시적 논란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보다는 다른 방식의 지원을 모 색하고, 거기에 대북지원의 주력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 이다. 셋째, 대북지원은 인도지원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빈곤타파 지원, 다시 말해 개발지원이어야 한다. 북한의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의 특 징은 돌발성 재난 때문이 아니라 다수 주민의 장기 영속적 빈곤의 문 제이다. 따라서 대북지원의 핵심은 구호지원이 아니라, 취약계층이 빈곤의 함정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지원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하여 인도지원은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대북지원을 인도지원 중심으로 특히 식량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방식은 극복되어야 한다. 35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62 나아가 지금까지 진행되어오고 있는 방식의 식량지원이 과연 적절한 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몰론 급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대한 대북 인도지원은 필요하다. 또한 대북지원 이 아니라 북한의 취약계 층 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단기 인도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 적 이유로 해마다 반복되는 식량사정 악화에 대해서 인도지원 이라 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또는 인도지원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북 한에 대한 한국의 원조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취약계층이 빈곤으로부 터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원조방 식을 개발하고 관철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원의 명칭도 대북 인도지 원 이 아니라 북한 내 빈곤 타파 지원 또는 북한 취약계층 지원 으로 바뀌어야 한다. 넷째, 인도지원과 함께 인도지원 종결을 위한 지원을 동시에 진행 해야 한다. 원조에는 여러 가지 목적과 방법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인도지원은 가장 좋지 않은 원조 목적과 방식에 해당한다. 이것이 원 인치료가 아니라 증세(=진통)치료이며, 상대 당국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자생 능력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해치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지원이 영구화 되면 부정적 측면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 인도지원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인도지원을 하더라도 그것을 종결시키기 위한 원조를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이는 진통제와 함께 치료약을 동시에 처방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면 식 량지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미래에 발생하는 것을 돕는 원조 를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북한당국이 이의 수용을 거부한다면 한국 의 이해상관자들은 북한당국에게 이를 강력히 요구해야 하며, 여러 방식으로 북한당국이 이를 수용하도록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압 력을 행사해야 한다. 만약 한국의 대북지원 민간단체가 단합하여 이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51

363 를 요구하면 북한정권에 큰 압력이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민간단체 의 활동 환경도 개선될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이중적 노력이 존재하 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북한당국과 북한주민에 해를 끼치는 것이고, 한국 내부에서 대북지원 추동력도 약화시키는 것이 된다. 한국의 이 해 상관자들은 해마다 일이 닥쳐서야 인도지원을 하니 마니 로 논쟁 하지 말고, 북한정부에 압력을 넣고 한국의 여론을 설득할 수 있도록 <단기 인도지원+중기 인도지원 종결>을 목적으로 한 지원 추진 관 련 정치적 실무적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인도 개발지원이 중 장기적 생명력과 내구력을 가질 수 있다. 다섯째, 선의에서 열심히 노력한 것이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는 것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북한당국에 물자를 건 네는 것을 인도지원이라는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원은 물론 선의에서 행해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북한당국이 자의적으로 처분 할 수 있는 자원을 증가시켜 주는 한편, 정작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지금까지 진행 되어오고 있는 방식의 대북 인도지원, 특히 식량지원 은 북한주민의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음에 높은 관심이 돌려져야 한다. 북한의 중장기적 발전 및 일반주민의 빈곤문 제 해결에 기여하는 대북지원 행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당국과 매우 어려운 협상과 갈등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자각이 증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세상에는 쉬운 것이 없다. 여섯째, 정권과 주민을 구별해야 한다. 한국에서 대북지원이 생존 위기에 빠지게 된 핵심원인 중의 하나는 정권과 주민을 구별하지 않 은 것에 있다. 정권과의 거래에 대해서는 엄격히 상호주의를 적용해 야 한다. 여기서 정권과의 거래라 함은 예를 들어 남북관계 관리용으 로 북한당국에 대해 물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북한당국 35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64 에 이득을 주는 행위를 했음으로 북한당국도 당연히 그에 상응하게 한국에 이득을 주는 행위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거래를 놓고 유연 한 상호주의 는 필요 없고, 분명한 장삿속에서 입각하여 엄격한 상호 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즉 상호 행위 또는 거래에서 수혜이익의 등가 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주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 행 하는 물자지원과 관련해서는 국제수준의 모니터링이 보장된다면 지 원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증가시켜야 한다. 한국은 이점에 대해서 대내외적으로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 이래야 한국 내부에서의 지 원 하느냐 마느냐 의 논쟁이 완화될 것이며 북한당국에게 정치적 압 력이 될 것이며, 국제적으로 한국이 대북(인도)지원을 방해한다는 식 의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권과 주민을 구별하라는 것이 정권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도지 원의 명목으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서는 모니터링 원칙을 확실히 천명 하고 준수하라는 것이다. 또한 인도지원 명목으로 제공되는 것이면 이것의 목적은 오직 목표 주민집단의 복지 향상에만 국한된다는 입장 을 고수해야 한다. 인도지원을 통해 남북 화해를 도모한다 라거나 남 북관계를 개선한다 라거나 통일을 앞당긴다 라거나 하는 식의 거창한 구호를 내걸지 말라는 것이다. 인도지원을 한다면서 다른 목적을 개 입시키면 정치적 날씨 변동에 따라 인도지원이 휘둘리게 되는 것을 자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지원 한다면서 모니터링 원 칙을 고수하지 않으면, <인도지원=북한정권 돕기>라는 등식을 불가 피 성립시킬 수밖에 없다. 옳거나 옳지 않거나 현실적으로 정치적으 로 의미 있기에 충분한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인식이 성립해있다. 과거 인도지원 의 담론과 현실에 이러한 측면이 존재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당장 편의 때문에 미래를 망친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의 인도지원 이해 상관자들은 인도지원 이라는 이름의 원조가 북한주민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53

365 복지 향상이 아닌 다른 정치적 목적(예를 들어 북한정권의 대외 행태 변화)에 활용되며 그러한 가운데 인도지원의 규범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이를 허용하면 중장기적으로 인도지원이라는 이 름의 원조는 자체의 내구성을 훼손하게 된다. 일곱째, 한국의 대북(인도)지원은 국내외적으로 단합해야 한다. 수원국이 외부 원조 수취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원조만 수취하며, 외 부 원조에 붙어오는 개혁 압력을 회피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한 나라 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 원조 공여자가 다수이며, 이 다수는 수원국에 대해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원조 제공을 위해 경쟁한다. 이 러한 상황은 수원국이 다수의 공여자를 경쟁시키면서 자기 입맛에 맞 는 방식의 원조만 수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 북한에 대한 지원의 경우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과거 한국이 쌀과 비료를 다량으로 북한당국에 전달하고 그 사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을 때 국제 원조기구들은 한국의 이러한 행위 때문에 자신들의 북한정권에 대한 협상력이 손상 당하고 있다고 불평 하곤 했다. 우연일수도 있지만 한국이 2008년 대량지원을 중단한 이 후로 북한당국의 국제 원조기관과의 협상태도는 과거와 비교할 때 상 당히 협조적이고 수용적으로 변화했다. 원조제공자를 경쟁시켜 입맛 에 맞는 제공자를 선택하는 것은 한국의 (민간) 대북원조와 관련해서 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규모 민간단체가 대부분이 기 때문에 북한정권과의 협상에서 힘의 균형이 현저히 불리해질 수밖 에 없다. 여기다가 한국의 원조제공자들과 북한당국 간의 최초 거래 조건이 전자에게 매우 불리하게 성사되었다. 한국의 원조제공자들은 여러 이유로 다른 경우와 비교할 때 불리한 거래조건을 감수했다. 일 단 일종의 역사적 가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를 교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교정하지 않는 것은 북한을 포함 대부분의 이해상관자에 35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66 게 장기적 차원에서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북(인 도)지원의 환경을 개선하자면, 한국의 여러 단체가 단합하고 북한정 부와 단체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한 한국의 정부 차원 의 지원은 국제기구 및 다른 나라 정부의 대북지원과 협의체계를 갖 춘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여덟째, 국제원조 업계의 정책자산을 창의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원조 역사가 제시하는 교훈 중의 하나는 외래 지원이 내부문제를 해 결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원조업계의 철칙은 해당 정부가 해야 할 일(공공서비스 제공)을 외부기관이 들어가서 대신해 주지 말라는 것이다. 내부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가 발생해 있을 때에만 그것을 돕는 원조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 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의 지를 가지지 않은 나라들이 현실적으로 원조를 가장 필요로 하는 국 가들이다. 이러한 나라들에 대해 원조를 제공하는 것에는 많은 위험 이 도사린다.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하더라도 대부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일반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라들에 대한 여러 방식의 원조 행위는 여러 이유로 포기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국제 학계에 전개되어 있다. 한국의 대북(인도)지원은 국제 학계의 이러한 여러 논의에 대한 이해를 깊이 고 여러 원칙과 정책 방안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것에 대해 보다 많은 투자와 관심을 돌려야 한다. 만약 이러한 자산들이 과거 대북(인도) 지원의 입안과 실행에 활용되었다면 정치 날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또는 정치날씨의 변화를 억제하면서 대북지원이 생산적 생명력을 가 지는데 기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55

367 6. 시나리오별 대북정책 고려사항 이상에서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복귀 및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 이행, 그리고 내부 개혁정책 추진 촉진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대북정책의 일반 원칙을 서술했다. 이는 한국의 기본입장이 되어야 할 것이며, 상황 변화에 관계없이 대체로 견지되어야 하는 입장이다. 이하에서는 일정기간이 지나 상황 변화가 발생했을 때 한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 변수, 즉 비핵화 추진 여부와 개혁 추진 여부에 따라 대북정책의 방향에 무엇 이 가미되어야 하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이 두 가지 변수의 조합이 발생시키는 네 가지 시나리오 상황에서 대북정책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 가를 서술한다. 시나리오 A - 핵 보유 고수와 반개혁 하에서 국가의 수탈적 행태 강화 북한이 핵 보유 고수 정책을 취하는 한에서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 한 대화와 압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핵 보유가 북한당 국 자신에게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핵 교착 상태의 경우에라도 만약 북한당국이 국군 유해 발굴, 납북자 송환, 이 산가족상봉행사 개최와 같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는 경 우에 대해서는 상호주의 원칙에서 보상할 수 있다. 대북지원은 최소 한의 인도지원에 국한할 수밖에 없다. 민간차원의 소규모 대북인도지 원은 모니터링 규범 준수의 원칙 하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세에서는 폐쇄특구 확대 사업 등을 추진할 것이나 이와 같이 비개 혁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한 단순 외화벌이용 사업에 적극 호응하는 것은 회피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이 추진되는 한에서 내부 35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68 경제 불모화 및 내부 통제 강화로 인하여 정권 대 주민 간의 긴장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긴장이 유발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유의하면서, 내부 개혁 압력을 높이는 방향에서 행마해야 한다. 시나리오 B - 핵 타결과 반개혁정책 하에서 외자유치 증대 핵 타결 하에서 북한은 외부와의 관계를 현저히 개선하며 외부와 의 여러 사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의 주요 내용은 외화 벌이를 증대하여, 내부 반개혁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은 그 자체로 심각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 외부 교류의 확대를 허용 하면서도 주민을 그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며 통제를 강화하는 것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정책은 일단 우리 측이 남북교류 및 대 외교류를 적극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북한정권이 설치한 격리가 스스 로 해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예를 들어 안변 조선소 건설과 같은 외화벌이 사업을 실시하는 경우, 이러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 기 위해서는 3통(통행, 통신, 통관)이 보장되고 북한 내부 경제제도 가 현격히 개혁되어야 함을 전제로 내세우는 개혁 촉구 정책을 추진 해야 한다. 시나리오 C - 핵 타결과 개혁정책 하에서 정권기관 주도하 시장확대 이는 일반적으로 한국이 상정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다. 한국은 정부 및 민간차원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북한의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는데 우선적으로 대량의 지 원을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교육, 보건과 같이 인간자본을 개선할 수 있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제가 갖추어져야 한국의 Ⅵ.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357

369 대북 인프라투자, 그리고 상업적 투자가 생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D - 핵 협상 결렬 상태에서 제한적 경제개혁 이 경우는 북한이 가장 취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북한정권의 내부 행태는 1990년대 중후반과 같은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한편에 서는 시장확대를 허용 하면서도, 이것이 발생시키는 정권 불안 요소 를 제어하기 위해 공개처형의 증대와 같은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다. 또한 정권이 이러한 상황에 몰리게 되면, 한국에 대한 도발을 현 저히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한국은 북한 도발 억지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북한 내부 불안정 가능성을 높게 보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북한에 대한 인도지원, 그리고 대북 민간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35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70 Ⅶ 요약 및 결론 Ⅶ. 요약 및 결론 359

371

372 북한은 1990년대 위기를 거쳐, 2000년대 대체로 안정되었다. 그 러다가 2009년 이후 대내외 생존 여건 악화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 이 이 생존 여건 악화를 극복하면 또 다시 상대적 안정기에 진입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불안정이 심화될 수도 있다. 어떤 결과 가 발생하는가는 북한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주 요 이해 상관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현명한 행마 를 두는가도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를 결정짓는 중요 요인 중의 하 나이다.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세 가지 문제의 복합체로 이루어졌다. 첫째, 권력세습의 위기이다. 김정은은 20대 후반으로써 나이가 매우 어리고, 후계자로서의 명망과 권력기반을 확충해나갈 충분히 시간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세습후계자로 등장했다. 둘째, 대외관계의 위기 이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과 관계악화 그리고 국제적으로 강화된 제재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해외 경제 지원도 대폭 삭감되었다. 셋째, 내부 통치의 위기 또 는 정권 대 사회 간 긴장의 강화이다. 2004년까지 추진했던 개혁적 정책을 2005년부터 점진적으로 폐기했고, 이에 따라 정권 대 사회 간 의 긴장이 높아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당국은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부와 같은 내부 공안체계를 현저히 강화했다. 이 글은 향후 5년(2012~2016)간 북한변화를 어떻게 하면 촉진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분석했다. 그 첫째 는 정치, 경제, 사회의 세 분야에 걸쳐 현재까지 북한이 도달한 변화 상을 검토하고, 그에 내재해 있는 변화 추동인자와 동력을 찾아내고 자 한다. 이를 위해 이러한 작업에 도움을 주는 학문적 개념과 이론을 활용한다. 단 본 연구의 중점이 북한 체제변화 이기 때문에, 그 주요 변화의 구조적 트렌드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또 Ⅶ. 요약 및 결론 361

373 한 다른 프로젝트와의 분업관계를 고려하여 김정일 건강변수, 급변사 태 가능성 등은 의도적으로 고려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를 바탕으로 둘째, 앞으로 5년간 북한의 체제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권력승계와 정치변동> 북한은 독재정권 유형 중에서 개인 독재정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정치변동에서 주요 관찰사항은 통치자와 군부, 통치자와 국내엘리트, 내부세력과 외부세력의 관계, 그리고 정권 대 주민의 관 계이다. 이를 보다 구체화하면, 북한정권 변동의 동력과 방향과 관련 한 주요 변수를 6개를 설정할 수 있다. 이는 첫째, 최고통치자와 후계 자의 관계, 둘째, 권력 엘리트 내 갈등 구조, 셋째, 최고통치자와 군부 와의 관계, 넷째, 혁명적 반대세력의 유무와 형세, 다섯째, 외부세력과 북한 내부의 연계 관계, 여섯째, 정권 대 주민 간의 관계이다. 앞으로 5년간의 북한 정세에서 핵심적 사항은 권력승계 문제이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작업은 2009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 작되었다. 이후부터 북한 내부에서 권력 재편의 속도가 빨라졌다. 2010년 9월에 개최되었던 당대표자회의는 이와 같은 권력개편을 잠 정적으로 일단락하고 새로운 권력진용의 출범을 알리는 기념식 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이와 같은 권력개편을 통해 1995년 선군 정치가 시 작된 이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던 군고위 장성과 당 내부의 고위 간부가 정치 일선에서 퇴장했다. 그 대신에 신군부와 장성택을 중심 으로 하는 민간당료가 득세했다. 김정은의 후계 권력의 중추는 군과 공안기구이다. 이는 과거 김정 일이 당을 중심으로 권력기반을 확대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군 36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74 부에는 총참모장 이영호와 정찰총국장 김영철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 바 신군부가 대두해 있다. 또한 김정은의 후계작업 추진과정에서 국 가보위부, 인민보안부, 보위총국과 같은 공안기관의 역할이 현저히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은 국가보위부를 관장하 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김정은 권력체계 구축을 위한 상층 엘리트의 개편과 중하층 엘리트의 개편이 지속되고 있다. 류경, 주상 성, 홍석형을 비롯한 일련의 고위 간부가 숙청되었다. 부패와 비리 혐 의를 걸어 지방의 당 국가기구의 주요 간부를 대폭 교체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주로 30 40대의 젊은 간부들이 득세하고 있으며, 이 들에 대한 대우도 특별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김정은에 대한 개인숭배 논리와 기념물이 증가하고 있다. 김정일이 외교와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며, 김정은은 내부통제를 주도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내부 통제에 대한 각종 지시는 김정은 명의로 내려가고 있다. 또한 각종 선전과 사진 등에서 김정은을 김정일과 동급 또는 그 이상으로 내세우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이 주축이 되어 특히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사회통제를 강화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경제변동> 북한경제의 여러 구조적 특징과 여건은 북한의 체제변동과 관련 하여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개념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독재의 경제논리이다. 즉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 지하자면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 집단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어 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경제적 합리성과 정치적 합리성은 충 돌한다. 둘째, 독재의 경제논리는 북한에서의 시장확대에도 반영되었다. Ⅶ. 요약 및 결론 363

375 이는 정치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치적 자본주 의란 이윤 창출의 기회가 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 치적 연줄에 의해 좌우된다. 실제로 1990년대 이래 북한의 시장확대 에서 각종 정권기관의 외화벌이 활동이 주요한 동력을 이루어왔다. 셋째, 독재정권에서 소수 권력집단의 확보하는데 소요되는 경제 잉여 는 두 가지 방식으로 확보된다. 내부지대와 외부지대이다. 내부지대 는 권력기관과 지지층에게 상업 활동의 각종 독점권을 배분하는 것과 부패 묵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외래지대에는 다섯 가지의 원천이 존 재한다. 원자재 지대, 위치지대, 전략적 지대, 정치적 지대, 이민자 지 대이다. 이와 같은 외래지대는 북한이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을 취함 으로써 발생하는 경제 불모성을 각종 외화벌이를 통해 보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북한의 경제정책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시장확대에 대해 방 임과 장려였다. 이에 힘입어 북한에서 시장은 2004~2005년에 이르 러 정점에 도달했다. 북한당국은 2005년부터 정책방향을 시장에 대 한 통제와 억제로 바꾸었다. 시장확대에 대한 중앙당 보수파의 반격 때문이었다. 이러한 반개혁정책은 2009년 11월 화폐개혁정책에서 정 점을 이루었다. 2009년 화폐개혁의 충격은 매우 컸다. 2010년부터 식량사정이 악 화되었고 북한내부 경제는 침체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경제 파이가 축소함에 따라 정권의 주민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고 또한 정권기관간 의 경쟁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과 2011년의 북한의 경제 동 향은 화폐개혁의 후과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경제정책의 측면이다. 그동안 시장과 무역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하던 북한당국은 2010년 5 26 지시를 통해 시장과 무역을 재허용하는 방침을 선택했다. 그리고 북 36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76 한은 2010년 말부터 대중 무역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다음 으로 후계과정의 진행과 이러한 정책 변화는 개별 기관 또는 개인들 의 돈벌이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 경제 이권의 분배 변동은 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 권력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관찰 요소이다. 최근 관찰의 핵심은 김정은 후계 구축과 관련하여, 기존 권력층의 돈줄 체 계가 어떻게 재조정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 2011년 북한의 주 요 경제 동향에는 2012년 강성대국 진입 축하행사를 위한 경제자원 동원과도 관련되어 있는 양상이 나타났다. <사회의 변동> 1990년대 이래 북한변화의 중요한 구성 부분은 사회의 변화이다. 그 하나는 국가와 사회 간의 관계 변화이다. 이 변화는 전체주의에서 탈-전체주의 폭정으로의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전체 주의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항시적 총체적 통제 라고 할 수 있는데, 1990년대 이래 이와 같은 성격의 통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 한 통제의 중심에는 당기구의 정치사업이 있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공개총살과 같은 국가의 본보기적 폭력 행사가, 2000년대 들 어서면 당기구 대신에 인민보안부와 같은 사법기구가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의 사회에 대한 통제기제가 변한 것은 사회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회변화가 발생한 핵심적 이유는 계획경제와 배 급제가 붕괴함에 따라 국가와 당의 행정체계와 기능이 약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당기구가 제대로 정치사업을 할 수 없게 된 데 있다. 사회 자체 변화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주요한 것으 로 주민의 의식구조 변화, 빈부 격차 확대, 세대 간 지역 간 격차확대, 외부 정보 접촉 확대 등을 지적할 수 있다. Ⅶ. 요약 및 결론 365

377 이와 같은 변화가 첨단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 북 중 접경지역 이다. 이 지역에서는 각종 사회변화와 정권 대 주민관계 변화가 첨단 으로 나타나며, 또한 정권과의 갈등이 가장 깊은 지역이다.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전후로 하여, 특히 11월 이후 북한당국은 특히 접경지 역을 중심으로 각종 검열과 비사투쟁이 현격하게 강화했다. 2011년 10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에서 거의 1년여를 넘기고 있다. 또 한 각종 지시는 김정은이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검열과 비사 투쟁은 3방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탈북 방지 투쟁, 둘째, 대마약 투쟁, 셋째, 중간 간부 검열이다. 지난 1년 동안의 대략의 추이를 보 면 이렇다. 첫째, 2011년 초 중동 재스민 혁명에 관한 소식이 북한 내 부로 전파될 것에 관한 경계심이 강했다. 둘째, 보위부, 당을 제치고 보위총국(사령부), 호위총국이 직접 투입되고 있다. 셋째, 각종 합동 검열이 시행됨, 검열단 자체의 부패가 극심하다. 셋째, 특히 함북도, 양강도 국경 연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9월에는 평안북도로 확대되었다. 넷째, 호위총국과 보위총국이 직접 나서서 국경경비대와 세관을 그리고 변경지역 보안기관에 대한 검열을 실시했다. 다섯째, 탈북자 가족을 내륙으로 추방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여섯째, 국경 지역에 CCTV를 설치하고 공민증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향후 5년 북한 내부 변화 시나리오> 2012년 이후 북한 정세의 행로를 변경시킬 수 있는 불확실 변수 는 두 가지로 설정될 수 있다. 여기서 불확실 변수란 어느 시점에서 여러 대안 중에서 어느 하나가 선택됨에 따라 그 이후의 상황 진행이 전혀 다른 경로에 들어서도록 만드는 변수이다. 하나는 한국 및 미국 과 핵 협상이 결렬인가 타결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내부적으 36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78 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가 아니면 반개혁정책을 추진하는가이다. 이 두 가지 불확실 변수의 조합에 따라 북한 내부 변화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두 변수를 조합하면, 네 가지 시나리오가 탄생한다. 즉 첫째, 시나리오 (A) - 핵 보유 고수와 반개혁 하에서 국가의 수탈적 행태 강화, 둘째, 시나리오 (B) - 핵 협상 타결과 반개혁정책 하에서 외자유치 증대, 셋째, 시나리오 (C) - 핵 협상 타결과 개혁정책 하에 서 정권기관 주도하 시장확대, 넷째, 시나리오 (D) - 핵 협상 결렬 상태 하에서 제한적 경제개혁이다. 이를 자세히 보면 아래와 같다. A형 지속 2008년 이후 현재까지의 북한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위의 (A)에 해당한다. 현재에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이 존재함과 동시에, 이 어려 움을 타개하기 위한 미래형 노력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은 두 가지 선택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첫째 선택은 2012년에도 지 금의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기본적으로 (A) 상황을 고수하는 것이다. 북한이 만약 대내 반개혁을 고수하지만 외화벌이 사업에서 성공한다면 시나리오 (A)를 고수할 수 있다. D형으로 전환 그러나 만약 외화벌이 사업에서 실패함으로써 경제위기가 위험수 위에 도달하거나 지도부 분란이 발생한다면 북한은 (D)로 보다 분명 하게 옮겨 갈 수도 있다. 즉 핵문제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내 개혁조치를 다시 채택하는 것이다. 이를 보다 자세히 보면, 2012년 말까지 한국 및 미국과의 관계에서 또한 핵문제에서 커다란 돌파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놓고 볼 때, 2012년 말까지 또는 한국 및 Ⅶ. 요약 및 결론 367

379 미국정부와 핵문제에 대한 새로운 타결을 이룰 때까지 북한에 대한 대외 지원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 에다가 중국과의 외화벌이 사업에서도 실패가 거듭되었고 주민들의 정치 동요가 심상치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전망에 직면하여 북한은 2012년 4월경 다시 말해 김일성 출생 100주년 및 강성대국 문 열기 시점을 즈음하여, 대주민 유화책으로써 일련의 경제 개혁 조 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다면 한편에서 대중국 외화벌이 사업 확대와 더불어 대내 경제의 생산성이 일정하게 증대함으로써, 북한경 제는 어려움을 얼마간 완화시킬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상황은 (D) 로 이전하게 된다. B형으로 전환 2013년 이후 어느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 비 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본격적 협상이 진행된다고 하자. 협상이 타결 되는 경우, 한국과 미국의 북한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이루질 수 있다. 북한당국은 대외지원 증대를 바탕으로 대내 개혁을 회피하고 지연하 는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북한의 상황은 (B)로 이전 하게 된다. C형으로 전환 또 다른 선택의 하나는 비핵화 협상의 타결과 함께 내부 개혁에 대한 합의가 강화되는 경우이다. 이는 비핵화 협상 타결에 따라 대량 살상무기 세력 연합이 약화되는 대신, 시장확대를 희구하는 국내 상 인층과 내각의 발언권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의 상황은 (C)로 이전한다. 368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80 <향후 5년 북한변화 촉진을 위한 대북정책 방향> 향후 대략 5년은 북한 내부 변화와 남북관계에 매우 중요한 시기 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이 기간 동안 북한이 핵 무기 보유 국가로 등장하는가 아니면 비핵화 괘도에 다시 진입하는가 가 결정이 될 것이다. 둘째, 북한이 현재의 내부적 반개혁정책을 유지 하면서 외화벌이 사업 확대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노선이 안착할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노선이 벽에 부딪치면서 내부 개혁을 다시 추 진해야 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북한의 내부 변화와 대외정책, 그리고 남북관계가 매우 다른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한국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비핵화 괘도에 복귀하고 내부 개혁을 추진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대내 외 정책은 한국의 이러한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따 라서 한국은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달리 전개될 경우에 대해 서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비핵화 여부와 내부 개혁 여부라 는 두 개의 변수가 각각 어느 쪽으로 결정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가지고 관찰하여야 하며, 각 어느 경우가 되더라도 북한정권 이 제기하는 도전을 예견하고 전략적 선제권을 쥐면서 현명하게 대응 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앞으로 5년 후가 지나면 북한문제 해결에 한 국의 입지를 현저히 높이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와 내부 개혁 진척 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향후 5년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은 북한이 협조하는 가운데 조속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국 등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시키 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내부 개혁을 통해 경제 생산 Ⅶ. 요약 및 결론 369

381 성을 증가시키고 점진적으로 자유화를 실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의 이러한 정책목표와 충돌하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은 2005년부터 추진해왔고 2009년부터 강화되고 저돌적으로 추 진하고 있는 5개의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전략목표는 앞서 지 적했듯이 첫째, 핵능력을 증강하며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다. 둘째, 핵 보유국의 자격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관계를 정상화한다. 셋째, 한국과는 핵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며, 남북관계는 한국이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관계로 형성한다. 넷째, 내부적으로 반개혁정책을 취하며, 외부적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적극 확대한다. 다섯째, 내부 통 제를 강화하는 것을 바탕으로 권력세습을 안착시킨다. 북한은 당분간 이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이를 수용하게 만들기 위한 대화와 압력 수단을 활용할 것이다. 한국의 정책목표는 단기적으로 북한이 자신의 정책목표에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공세에 대해 방어와 역공을 하는 것이며, 중기적으로는 북한이 정책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한국의 최대 정책목표를 관철하는 것이다. 이 같은 최대 목표를 지향하면서,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정책목표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저지하고,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협상괘도에 복귀하도록 한다. 둘째, 북한이 비핵화 궤도에 진입하여 단계적으로 미국 및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이루도록 하며, 비핵화 협상 시작과 함께 한국 및 주변국과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평화체제 수립 및 미 북 국교정상화를 비롯하여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도록 한다. 셋째, 한국은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 며, 대북지원은 북한을 비핵화와 내부 개혁을 촉진하고 남북한 사이 당국과 민간의 접촉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한다. 370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82 넷째, 북한은 내부 개혁을 추진하여 생산성을 높여 경제 자생력을 기 르며, 대외원조 및 경제협력은 북한의 개혁을 촉진하고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주어져야 한다. 다섯째, 북한은 점진적으로 정치적 해빙 또 는 자유화 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인권을 개선하고, 마약, 인신매매, 불법거래를 근절한다. 앞으로 대북정책은 북한에 대한 현실적 이미지를 전제로 해야 한다. 즉 대외적으로는 집요하게 핵무기 보유 국가 인정을 관철하고자 하 면, 대내적으로는 반개혁정책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시장에 대한 자의적 간섭과 통제를 예측불가능하게 행사하고, 이러한 정책이 발생 시키는 내부 경제의 불모성을 외화벌이 사업 확대를 통해 보충하고자 노력하는 정권이다. 이러한 정권이 추진하는 외화벌이 사업은 광산물 수출, 개성공단과 같은 폐쇄형 특구를 만들고 인력을 수출하여 임금 독점, 대량살상무기 외교 및 식량난 외교를 통하여 대외 원조 수입 증가 등 내부 경제의 생산성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는 데는 전혀 기 여하지 않고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외환 보유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권은 대내적으로 사회와 주민의 지향과 바램, 변화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 로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내부 교란과 위험 요소가 높 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정권은 한국을 굴복시켜 전략적 하수 인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내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남 교란 정 책을 대대적으로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위와 같은 북한을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첫째, 전략적 선제와 적극적 대응이다. 앞으로 의 대북정책은 우리가 북한의 정책과 조치에 반응하는 수동적 상황에 서 사고하지 말아야 한다. 즉 상대방의 전략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상황의 틀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전략적 틀로 상대 Ⅶ. 요약 및 결론 371

383 방을 유도하고 반응하는데 초점을 두고 사고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도발에 철저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핵 협상이 시작되기 이전, 과정,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도발을 끊이지 않고 시도할 것이다. 특히 핵 보유 국가 인정을 추진하는 북한이 크고 작은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 이 현저히 높다. 셋째, 북한정권에 대해서 이익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한 상호주의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는 하지 않았을 것 이지만,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수고를 하거나 비용을 지출하 는 경우, 이에 대해 우리가 상호주의적 원칙에 입각하여 보상할 수 있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넷째, 북한 대북정책은 정권과 주민을 구별 하며, 주민의 역량강화를 촉진한다는 화두를 모든 정책 사안을 숙고 할 때마다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이 의미 있게 바뀌는 경우는 북한주민의 대정권 발언력이 높아져, 정권의 정책이 보다 주 민 친화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물론 구체 적 현실 사례에 직면하면, 정권과 주민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항상 이것을 화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하면 그때그 때 실용적인 방법 또는 덜 나쁜 방법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이 거듭되어야 중장기적으로 북한주민의 마음을 살 수 있는 포석을 깔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섯째, 북한의 내부 취약성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정책 방향 추진한다. 앞으로 정권 대 주민 간의 갈등 양상이 보다 복잡 다양해지며 그 강도도 증가할 것을 예견하면서 북한 내부에서 전향적 요소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여기에 한국의 정부와 사회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취약성을 활용하자면 다소간 적극적 관여 정책이 필요하며, 이에 따 른 손익 계산을 전략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37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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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학연구. 제7권 1호(동국대 북한학연구소), 박형중.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의 개념과 원칙. KDI 북한경제리뷰. 2011년 2월 호(KDI), 박형중. 북한에서 1990년대 정권 기관의 상업적 활동과 시장확대. 통일정책연 구. 제20권 1호(통일연구원), 북한에서 1990년대 정치체제 변화: 전체주의 겸 술탄주의로부터 탈전체 주의적 술탄주의 폭정으로. 정책연구. 제168권 봄호(국가안보전략연구 소), 남북 왜 정상회담에 집착하나?. NK Vision. 제27호(북한민주화네트 워크), 장용석. 국가사회주의와 국가계급 지배의 동태성: 북한지배체제 연구에 대한 함 의. 통일문제연구. 통권 51호(평화문제연구소), 정철호. 미국의 對 인도 핵용인정책과 對 北 핵정책 변화가능성: 대북 핵정책 시나 리오 별 한국의 정책구상. 세종정책연구 (세종연구소), 최봉대. 북한의 지역경제협력 접근방식의 특징: 신가산제 사인독재정권의 혁명자 금관리제도와 대외경제협력의 제약. 현대북한연구. 제14권 1호(북한대 학원대학교), 한기범. 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행태와 관료정치: 경제개혁 확대 및 후퇴를 중 심으로 (2000~09).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Beck, Martin. Rente und Rentierstaat im Nahen Osten, Martin Beck et.al. (eds.) Der Nahen Osten im Umbruch: Zwischen Transformation und Autoritarismus. Wiesbaden: VS Verlag, Bellin, Eva. Coercive Institutions and Coercive Leaders. Marnom Pripstein Posusney and Michele Penner Angrist (eds.). Authoritarianism in the Middle East: Regimes and Resistance. London: Lynne Rienner Publishers, Bratton, Michael and Nicolas Van De Walle. Neopatrimonial Regimes and Political Transitions in Africa. World Politics. Vol. 46, No. 4, July De Mesquita, Bruce Bueno and Hilton L. Root. The political roots of poverty: The economic logic of autocracy. The National Interest 참고문헌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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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3. 기타자료 박형중. 김정일 5월 방중과 2005년형 생존전략의 위기. Online Series CO 11-18, 당대표자회의 재평가: 새로운 권력 연합 출범의 자축 기념식. Online Series CO 11-25, 통일국가의 정치체제와 이념.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주최 세미나 발 표 논문 인도적 지원과 남북관계: 구조, 쟁점, 추진방향. 인도적 지원과 남북관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세미나 자료집 외교부 북핵기획단. 북핵일지 북핵일지 외교안보. 대외전략. K/S CFR A/S 공동주최 간담회 연설 설명자료 유명환.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핵문제. 대한상의 CEO 간담회 강연 이시마루 지로. 식량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세종연구소 제7차 정책토론회 자료 조선민주주의 공화국 외무성 대변인 담화. 2009년 1월 30일.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2010~2011. 통일부. 월간 북한동향. 12월호(통일부), ACAPS. Secondary Data Review: Democratic People s Republic of Korea Barrett, Christopher B. Food Aid as Part of a Coherent Strategy to Advance Food Security Objectives. ESA Working Paper, No September Christian von Soest. Persistence and Change of Neopatrimonialism in Africa, Latin America, Southeast Asia. Paper presented at the workshop Neopatrimonialism in Various World Regions. GIGA German Institute of Global and Area Studies, Hamburg. April Denmark, Abraham and Nirav Patel. No Illusions: Regaining the Strategic Initiative with North Korea. 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 June 참고문헌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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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세계일보. 아사히신문. 연합뉴스. 열린북한방송. 오늘의 북한소식. 임진강. 자유아시아방송. 조선신보. 조선일보. 조선중앙통신. 중앙일보. 청와대뉴스. 통일한국. 한국경제. 한국일보. NK지식인연대. 朝 日 新 聞. NK Vision. Korea Times. The Korea Joongang Daily. Washington Post.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 조선닷컴 < 중앙일보 북한네트 < 통일부 홈페이지 < 참고문헌 379

391

392 최근 발간자료 안내 연구총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 미 전략적 협력에 관한 연구 전성훈 7,500원 세계경제위기와 미 중관계 변화 연구: 북한 핵문제에 미치는 영향 황병덕, 신상진 9,000원 북한의 국력 평가 연구 전현준 외 10,000원 북한경제의 시장화 실태에 관한 연구 임강택 9,000원 세기 한국의 동아시아국가들과 전략적 협력 강화방안 여인곤 외 10,000원 북한체제 전환을 위한 전략적 과제와 한국의 동북아 4국 협력전략 배정호 외 10,000원 북한 변화 의 재평가와 대북정책 방향 박형중 외 10,000원 북한 개방 유도 전략: 목표, 기본방향 및 단계별 과제 최진욱 외 10,000원 북한주민 인권의식 고취를 위한 전략적 인권외교의 방향 홍우택 외 6,500원 통일대비 북한토지제도 개편방향 연구 허문영 외 9,000원 북한인권 침해구조 및 개선전략 이금순, 김수암 7,500원 통일대계 탐색연구 조 민 외 8,000원 Modernization and Opening-Up of North Korean Economy: Roles and Efforts of Neighboring Countries 김규륜 외 7,500원 Peace-Keeping on the Korean Peninsula: The Role of Commissions Gabriel Jonsson 20,000원 북한 핵 보유 고수 전략의 도전과 대응 박형중 외 9,500원 탈사회주의 경제이행 국가의 권력구조 유형과 개혁 경로: 포스트-김정일 체제에 대한 시사점 최진욱, 김진하 8,000원 북한 개방화와 인권개선 방안연구 김국신, 김연수, 서보혁 7,000원 북한의 체제위기와 사회갈등 조한범, 양문수, 조대엽 7,500원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동북아전략 환경의 변화와 한국의 동북아 4국 통일외교전략 배정호 외 12,500원 북한주민 인권의식 실태연구 이금순, 전현준 8,500원 라진 선봉지역 물류분야 남북 협력방안 연구 김영윤, 추원서, 임을출 8,000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새로운 접근과 추진방안: 3대 공동체 통일구상 중심 박종철 외 11,500원 통일한국의 정치체제 허문영 6,000원 북한 핵에 대한 억지방향 연구 홍우택 5,000원 북한의 포스트 김정일체제 전망 정영태 외 11,000원 북한 주민의 의식과 정체성: 자아의 독립, 국가의 그늘, 욕망의 부상 조정아 외 17,000원 북 중 경제관계와 남북경협의 대북 파급효과 비교분석 최수영 7,500원 East Asian Community Building: Issue Areas and Perspectives of Regional Countries 김규륜 외 10,000원 (Ⅰ) 신아시아 외교와 새로운 평화의 모색(Ⅰ) 김규륜 외 13,000원 (Ⅱ) 신아시아 외교와 새로운 평화의 모색(Ⅱ) 김규륜 외 13,000원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와 북한 핵문제 전성훈 14,500원 최근 발간자료 안내 381

393 북한군의 기강 해이에 관한 연구 이교덕 외 11,000원 통일 진입과정에서의 북한 재건 방향 최진욱, 김진하 5,500원 북한의 부문별 조직실태 및 조직문화 변화 종합연구 정영태 16,000원 북한형사재판제도 연구: 특징과 실태 이규창, 정광진 8,000원 북한주민의 삶의 질: 실태와 인식 김수암 외 12,000원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 협력적 위협감축(CTR)의 적용방안 박종철 외 10,000원 대북한 핵협상 전략구상방향 홍우택 외 6,000원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대응 허문영, 마민호 12,000원 북한 핵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대북 핵전략 배정호 외 11,000원 평화통일을 위한 통일외교 전략 박영호 외 13,500원 (Ⅰ) 중국의 G2 부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추진전략 제1부 황병덕 외 15,500원 (Ⅱ) 중국의 G2 부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추진전략 제2부 황병덕 외 13,500원 (Ⅲ) 중국의 G2 부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추진전략 제3부 황병덕 외 18,000원 학술회의총서 북핵 문제 해결 방향과 북한 체제의 변화 전망 6,500원 북핵 일괄타결(Grand Bargain)방안 추진방향 5,500원 이명박 정부 2년 대북정책 성과 및 향후 추진방향 8,000원 독일 통일 20년과 한반도 통일비전 6,000원 분단관리에서 통일대비로 5,500원 독일 통일 20년과 한국의 통일대비 7,000원 한반도 통일비전과 국제협력 4,000원 북한인권 실상과 효율적 개입방안 8,500원 협동연구총서 북한개발지원의 포괄적 추진방안(총괄보고서) 임강택 외 8,500원 북한개발지원의 이론과 포괄적 전략 박형중 외 10,000원 북한개발지원의 쟁점과 해결방안 김정수 외 10,000원 북한개발지원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 장형수 외 10,000원 북한개발지원체제의 구축방안 이종무 외 9,000원 지방자치단체의 북한개발지원 전략과 접근방법 양현모 외 10,000원 복잡계 이론을 통한 북한의 정상국가화 방안 연구(총괄보고서) 김국신 외 6,000원 북한체제의 행위자와 상호작용 이교덕 외 8,000원 북한 계획경제의 변화와 시장화 이 석 외 9,000원 탈냉전 이후 국제관계와 북한의 변화 민병원 외 8,000원 비핵 개방 3000 구상: 추진전략과 실행계획(총괄보고서) 여인곤 외 7,500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및 추진환경과 전략 박종철 외 8,000원 비핵 개방 3000 구상: 한반도 비핵화 실천방안 조 민 외 9,000원 비핵 개방 3000 구상: 북한의 개방화 추진방안 함택영 외 7,500원 382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94 비핵 개방 3000 구상: 남북경제공동체 형성방안 조명철 외 7,000원 비핵 개방 3000 구상: 행복공동체 형성방안 이금순 외 7,500원 북한정보체계 실태조사(총괄보고서) 황병덕 외 12,000원 북한정보체계 실태조사( 上 ) 황병덕 외 14,000원 북한정보체계 실태조사( 下 ) 황병덕 외 13,000원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통일정책의 세부 실천방안 (총괄보고서) 여인곤 외 9,000원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통일정책의 추진환경 및 전략과 실천방안 박영호 외 9,500원 이명박 정부 대북통일정책의 세부실천방안 허문영 외 7,000원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의 세부실천방안(1): 협력 네트워크 외교 분야 남궁영 외 7,500원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의 세부 실천방안(2): 포괄적 실리외교 분야 전재성 외 9,500원 이명박 정부 안보정책의 세부 실천방안 이수훈 외 7,500원 북한의 정상국가화 지원방안 연구(총괄보고서) 이교덕 외 7,000원 북한의 정치부문 정상국가화 지원방안 전현준 외 7,500원 북한 시장 진화에 관한 복잡계 시뮬레이션 조정아 외 14,000원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방안 민병원 외 7,500원 북한정보관리체계 개선방안(총괄보고서) 황병덕 외 14,500원 북한정보관리체계 개선방안( 上 ) 황병덕 외 13,000원 북한정보관리체계 개선방안( 中 ) 황병덕 외 12,000원 북한정보관리체계 개선방안( 下 ) 황병덕 외 13,500원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프로그램 연구: 국제사회의 경험 분석(총괄보고서) 임강택, 이상연 11,000원 부패의 개념과 실태 및 반부패 개혁 박형중 외 10,000원 체제전환국의 시장 - 민주제도 건설 지원 박영호, 캐스린버티니, 린리 13,000원 국제사회의 개발지원전략과 협력체계 연구 장형수, 김석진, 김정수 9,500원 수원국의 역량발전을 위한 개발협력 전략과 사례 이종무, 김태균, 송정호 9,500원 인프라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 사례와 시사점 이상준, 남경민, 임을출 9,000원 논총 통일정책연구, 제18권 1호 (2009)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8, No. 1 (2009) 2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8권 2호 (2009)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8, No. 2 (2009) 2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9권 1호 (2010)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9, No. 1 (2010) 2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19권 2호 (2010)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9, No. 2 (2010) 2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20권 1호 (2011) 10,000원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20, No. 1 (2011) 20,000원 통일정책연구, 제20권 2호 (2011) 10,000원 최근 발간자료 안내 383

395 북한인권백서 북한인권백서 2009 이금순 외 10,000원 White Paper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09 이금순 외 20,000원 북한인권백서 2010 박영호 외 20,000원 White Paper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10 박영호 외 20,000원 북한인권백서 2011 김국신 외 17,500원 White Paper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11 김국신 외 17,500원 기타 2009 Lee Myung-bak Government s North Korea Policy Suh, Jae-Jean 5,500원 2009 김정일 현지지도 동향 ,000원 2009 The U.S.-ROK Alliance in the 21st Century Bae, Jung-Ho, Abraham Denmark 10,000원 2009 북한의 주요현안과 한 미 전략적 공조 배정호 10,000원 2009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미 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배정호 10,000원 2010 김정일 현지지도 동향 1994~ ,000원 독일통일백서 13,000원 세기 러시아의 국가전략과 한 러 전략적 동반자관계 10,500원 2010 Russian National Strategy and R.O.K.-Russian Strategic Partnership in the 21st Century 13,500원 2010 NPT 체제와 핵안보 13,000원 2010 Nuclear Security 2012: Challenges of Proliferation and Implication for the Korean Peninsula 15,000원 2010 통일 환경 평가(통일대계 연구 ) 박종철 외 18,000원 2010 통일비전 개발(통일대계 연구 ) 조 민 외 12,000원 2010 독일의 평화통일과 통일독일 20년 발전상(통일대계 연구 ) 황병덕 외 16,000원 2010 사회주의 체제전환 이후 발전상과 한반도통일-중국, 베트남 및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전환 중심(통일대계 연구 ) 황병덕 외 15,000원 2010 전환기의 북한과 통일담론(통일대계 연구 ) 배정호 편저 11,000원 2010 한반도 통일과 주변 4국(통일대계 연구 ) 최진욱 편저 11,000원 2010 Korean Unification and the Neighboring Powers(통일대계 연구 ) 최진욱 편저 13,000원 2011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통일대계연구 ) 박형중 외 17,000원 2011 북한변화를 위한 한 중 협력방안(통일대계연구 ) 임강택 외 6,500원 2011 남북 친화력 확대 방안(통일대계연구 ) 조 민 외 6,000원 2011 통일대비를 위한 국내과제(통일대계연구 ) 박종철 외 13,000원 2011 통일외교 과제와 전략(통일대계연구 ) 최진욱 외 13,000원 2011 US-China Relations and Korean Unification(Grand Plan for Korean Unification ) 최진욱 편저 12,000원 384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96 2011 통일 비용 편익 연구의 새로운 접근: 포괄적 연구요소의 도입과 대안의 모색 (통일 비용 편익 종합연구 11-01) 김규륜 외 19,000원 2011 체제전환 비용 편익 사례연구(통일 비용 편익 종합연구 11-02) 조한범 외 10,500원 2011 통일 비용 편익 추계를 위한 북한 공식경제부문의 실태연구 (통일 비용 편익 종합연구 11-03) 임강택 외 9,500원 년 통일예측시계구축 박영호, 김형기 7,500원 2011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4국의 입장과 역할 배정호 외 6,500원 2011 Korean Unification and the Positions and Roles of the Four Neighboring Powers 배정호 편 8,500원 2011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북아 전략환경의 변화와 한반도 배정호 편 12,000원 Unification Clock: When will We See a Unified Korea? Park Young-Ho, Kim Hyeong Ki 4,000원 2011 알기쉬운 통일교육 12주제 허문영 외 15,000원 연례정세보고서 2009 통일환경 및 남북한 관계 전망: 2009~2010 7,000원 2010 통일환경 및 남북한 관계 전망: 2010~2011 7,000원 통일정세분석 비매품 년 북한 신년 공동사설 분석 최진욱, 전현준, 정영태, 조정아, 최수영, 박영호, 박형중 하반기( 08년 7월~12월) 북한의 정세 분석 최진욱, 임순희, 전현준, 정영태, 조정아, 최수영 북한의 대남 비방 공세의 의도와 전망 최진욱, 전현준, 정영태 북한의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결과 분석 전현준 년 북 중무역의 주요 특징 임강택, 박형중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 결과 분석 최수영, 정영태 한 미 정상회담 결과분석 김국신 년 북한 신년 공동사설 분석 임강택 외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2차 회의 결과 분석 최수영 김정일 방중과 중국의 전략외교 배정호, 박영호, 전병곤 상반기 북한정세 분석 보고서 정영태, 이교덕, 최수영, 임순희, 조정아 독일통일 20주년 조망: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시사점 황병덕 야로슬라블 한 러 정상회담 결과 분석 여인곤 북한 3대 세습 후계구도 분석 및 정책변화 전망 김진하 년 북한 신년 공동사설 분석 최진욱 외 미 중 정상회담의 의미와 한국의 전략적 고려사항 배정호 외 년 미 중 정상회담 평가: 동북아 및 한반도에의 함의 황병덕 외 년 헌법 개정 이후 북한 노동법제 동향 이규창 최근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임순희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4차 회의 결과 분석 임강택, 최진욱 최근 발간자료 안내 385

397 중동 민주화 혁명과 한반도 전략적 함의 배정호, 박영호, 박재적, 이기현 북한의 여성권 아동권 관련 법 제정 동향 임순희, 김수암, 이규창 상반기 북한정세 분석 보고서 최진욱, 임강택, 임순희, 정영태, 김진하, 한기범 KINU 정책연구시리즈 비매품 신평화구상 실현을 위한 전략과 과제 김규륜 외 (Ⅰ) 접경지역의 평화지대 조성을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Ⅰ): 접경지역 평화적 이용을 위한 이론적 검토와 사례연구 손기웅 외 (Ⅱ) 접경지역의 평화지대 조성을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Ⅱ): 접경지역 평화적 이용을 위한 기존제안 검토 손기웅 외 대북정책의 대국민 확산방안 조한범 외 통일 예측 시계 구축 박영호, 김지희 북핵일지 조 민, 김진하 미국 대북방송 연구: 운용실태 및 전략을 중심으로 이원웅 한반도 녹색성장을 위한 남북한 산림협력 법제 개선방안 예비연구 이규창 년 통일예측시계 박영호 외 북한 경제개발계획 수립방안 연구: 베트남 사례를 중심으로 임강택 외 (Ⅲ) 접경지역의 평화지대 조성을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Ⅲ): 정책제안 손기웅 외 (Ⅳ) 접경지역의 평화지대 조성을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Ⅳ): 2010년 코리아 접경 포럼 자료집 손기웅 외 재스민혁명의 분석과 북한에 대한 시사점 박종철 외 창지투( 長 吉 圖 ) 선도구와 북한나선특별시, 러시아 극동지역 간 경제협력 과제 림금숙 자회담과 남북관계: 전망과 대책 박종철 외 보호책임(R2P)의 이론 및 실행, 그리고 한반도에의 함의: 리비아 및 코트디부아르 사태를 중심으로 조정현 남북러 가스관 사업의 효과, 쟁점, 과제 이윤식 DMZ 총람: 개요, 정치 군사적 현황 손기웅 외 DMZ 평화적 이용의 국가적 의미 손기웅 외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비매품 2009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제4권 1호 박영호, 이금순, 김수암, 홍우택 2009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제4권 2호 박영호, 이금순, 김수암, 홍우택 2010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제5권 1호 김국신, 김영윤, 전현준, 이금순, 이규창 2010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제5권 2호 김국신, 전현준, 이금순, 이규창 2011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제6권 1호 김수암, 전현준, 이규창 2011 북한인권: 국제사회 동향과 북한의 대응, 제6권 2호 김수암, 김국신, 이규창 386 통일대비를 위한 북한변화 전략

398 Studies Series 비매품 The Evaluation of Regime Stability in North Korea: Scenario Workshop Choi Jin-Wook, Kim Kook-Shin, Park Hyeong-Jung, Cheon Hyun-Joon Cho Jeong-Ah, Cha Moon-Seok, Hyun Sung-Il Developing Inter-Korean Economic Relations for the Advancement of the Korean Peninsula Lim Kang-Teag, Kim Kyu-Ryoon, Jang Hyung-Soo, Cho Han-Bum, Choi Tae-Uk The Everyday Lives of North Koreans Cho Jeong-Ah, Suh Jae-Jean, Lim Soon-Hee, Kim Bo-Geun, Park Young-Ja North Korea s Regime Maintenance Policy Since the Kim Jong-il Regime and Prospects for Change Chon Hyun-Joon, Jeung Young-Tae, Choi Soo-Young, Lee Ki-Dong Strategy for Encouraging North Korean Opening: Basic Direction and Sequential Tasks Choi Jinwook, Lee Kyo-Duk, Cho Jeong-Ah, Lee Jin-Yeong, Cha Moon-Seok Unification Clock: Predicting Korean Unification Park Young Ho A New Approach to the National Community Unification Formula Park Jong Chul, Hong Woo Taek, Lee Kyu Chang, Kim Philo, Chun Chae Sung, Cho Seong Ryoul, Hong Ihk Pyo, Hwang Sun Hye 기타 비매품 Unification Clock: When We Meet a Unified Korea Park Young Ho 2010 In Search of New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Kim Kyu-Ryoon 최근 발간자료 안내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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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통일연구원 定 期 會 員 가입 안내 통일연구원은 민족공동체 실현을 위한 국민 역량을 축적하고 통일환경 변화에 적극적 주 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통일문제에 관한 제반 사항을 전문적,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 습니다. 본원의 연구성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자 연 간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간 회원에게는 간행물을 우편으로 우송해 드리며 각종 학술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혜 택을 드립니다. 1. 회원 구분 가) 학생회원: 대학 및 대학원생 나) 일반회원: 학계나 사회기관소속 연구종사자 다) 기관회원: 학술 및 연구단체 또는 도서관 2. 가입방법 가) 회원 가입신청서 작성 나) 신한은행 (예금주: 통일연구원)으로 계좌입금 다) 연회비: 학생회원 7만원, 일반회원 10만원, 기관회원 20만원 3. 회원 특전 가) 연구원이 주최하는 국제 및 국내학술회의 등 각종 연구행사에 초청 나) 연구원이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인 통일정책연구,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단행본 시리즈인 연구총서, 학술회의 총서, 협동연구총서, 통일정 세분석 등 우송 다) 도서관에 소장된 도서 및 자료의 열람, 복사이용 라) 구간자료 20% 할인된 가격에 구입 4. 회원가입 문의 가) 주소: ( )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수유동) 통일연구원 통일학술정보센터 출판정보관리팀 도서회원 나) 전화: (02) , FAX: (02) 다) 홈페이지: 가입기간 중 주소변경시에는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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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성 명 회원가입신청서 입금자 (입금일자) 근 무 처 직 위 간 행 물 받을 주소 (우편번호 : ) 전 화 내선 전화 연 락 처 핸드폰 FAX 전자메일 전 공 및 관심분야 회원구분 학생회원 ( ) 일반회원 ( ) 기관회원 ( ) 본인은 통일연구원의 연회원 가입을 신청합니다. 20 년 월 일 신청인 (인) 본 신청서를 보내주십시오. ( )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수유동) 통일연구원 통일학술정보센터 전화: (02) , FAX: (02) [email protected] 신한은행 온라인 (예금주: 통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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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변화에는 바람직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북한 변화에도 이것들이 섞여있다. 이 글은 앞으로 대략 5년간 북한 변화를 규정할 주요 인자를 찾아내며, 바람직한 변화를 조장하는 정책 구상에 대해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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