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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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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기 255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학술세미나 불기 255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학술세미나 북한불교의 이해 개성 영통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Dongguk Univ. 북 한 불 교 의 이 해 동 국 대 학 교 불 교 문 화 연 구 원 북한불교의 이해 일 시_ 2013년 6월 1일(토) 오후 1:00~ 6:00 장 소_ 동국대학교 문화관 학명세미나실 금강산 신계사 복원 남북공동 낙성식 주 최_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단 후 원_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한국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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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정표 항 목 시 간 논문주제 및 발표 개회식 1:00~1:15 삼귀의 및 반야심경 개회사 현각 스님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기조강연 1:15~1:45 북한불교 법타 스님 (동국대 정각원장) 제1주제 1:45~2:15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제2주제 2:15~2:45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발굴 조사와 연구의 현황- 이노우에 나오키 (교토부립대) 2:45~3:00 중간 휴식 제3주제 3:00~3:30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강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4주제 3:30~4:00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이종수 (동국대) 제5주제 4:00~4:30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4:30~4:40 중간 휴식 종합토론 4:40~5:50 좌장: 고유환 (동국대) 발표자 전원 폐회식 5:50~6:00 폐회사 김종욱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장) 사홍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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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 차 제1주제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7 조성렬_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제2주제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 발굴조사와 연구의 현황 - 31 이노우에 나오키_교토부립대 제3주제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87 강현_국립문화재연구소 제4주제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15 이종수_동국대 제5주제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45 이지범_고려대장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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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1주제 조성렬_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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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1주제 조성렬 ** 1)2) ** 목 차 ** Ⅰ. 머리말 Ⅱ. 북한체제와 종교 Ⅲ. 인민민주주의개혁기 북한의 종교정책과 불교 Ⅳ. 사회주의개혁기 북한의 종교정책과 불교 Ⅴ. 남북교류협력기 북한의 종교정책과 불교 Ⅵ. 맺음말 Ⅰ. 머리말 북한에서 조선불교도연맹(이하 조불련)이나 조선그리스도연맹 등과 같은 종교 단체들이 결성된 지 60여 년이 지났고,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일부 종교단체들과 활 발한 교류를 해 왔다. 하지만 북한에는 어떤 종교도 인정하지 않으며, 북한의 종교 단체들은 공산화 통일전선 구축을 위한 위장조직에 불과하고 북한의 외화벌이에 동 * 이 발표문은 졸고, 북한불교의 특징과 성격, 북한학연구 제6권 제2호, 2010, pp.27~81를 새로운 주제에 맞도록 대폭 수정 보완해 작성된 것임을 밝혀둡니다.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9
10 원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 미 행정부 산하의 독립기구인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2013 연례 종교자유보고서 를 발표하면서 북한, 중국 등 15개 나라를 종교자유 특별우려 대상국(CPCs)으로 지목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당국이 지하교회 활동을 하는 개신 교도들이나 점보는 사람들을 체포나 구금, 심지어 처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종교를 접한 뒤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상당한 수의 종교인들이 수감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1) 반면, 북한 당국은 모든 주민들이 완전한 종교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 다. 지난 2009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실시한 북한에 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에 참석한 강윤석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법제부장은 헌법 68조에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지며 사람들은 자기 신념에 따라 어떤 종교든지 자유로이 믿을 수 있으며, 종교인들은 평양 봉수교회, 장충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70여 개 성당, 교 회당, 사원에서 종교의식을 자유롭게 진행하고 있다 고 말했다. 2) 1991년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불련에 소속된 승려는 300명 정도이고, 이들을 제외한 중앙당 소속의 신분을 가진 책임지도원이 직무를 맡고 있는 유물보존총국 소속의 인원들 중 일부도 불교신도로 분류된다. 조불련에 가입된 인원은 약 1만 명이고, 전국에서 약 10만 정도의 신도가 부처님 오신 날, 출 가절, 성도절, 열반절 등 불교의 4대 명절 등 불교행사에 참가한다고 한다. 3) 이처럼 북한의 종교 실태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불교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한당국의 사회정책과 불교정책을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목적을 위해 본 연구는 우선 제1절 왜 현 단계에서 북한불교의 실체와 성격 규명이 필요한지 문제의식을 제시하였다. 제2절에서 ) USCIRF, Annual Report 2013, April 30, 2013, pp.108~116. 2) 김영권, 북한 그리스도연맹 결성 65주년으로 본 북한 기독교, 미국의 소리 2011년 2월 8일에서 재인용. 3) 이지범, 오늘날 불교의 현황, 불교닷컴, 2012년 4월 13일. 10 북한불교의 이해
11 년 해방 이후 북한당국의 종교 및 불교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제3~5절에서는 인 민민주주의혁명기와 사회주의혁명기, 남북교류협력기로 나누어 북한의 종교정책 과 그에 따른 북한불교 파급영향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요약함으로써 결 론에 대신한다. Ⅱ. 북한체제와 종교 1. 북한체제의 종교관 북한의 종교관을 결정지은 요소는 사회주의이론과 주체사상의 두 가지이다. 북 한 사회주의체제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며, 북한 고유의 주체사상 으로 재편되었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영향 때문에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60년 넘게 반종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첫째는 사회주의이론과 종교의 관계이다. 현존사회주의의 뿌리가 된 과학적 사 회주의이론의 창시자인 마르크스는 종교에 대하여 언제나 비판적인 입장에 섰다.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에 나온 서 술이다. 그는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데, 어 째서 전도된 세계의식인 종교를 인간이 만들었는가 하면 국가 사회 자체가 전도되 어 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종교는 현실의 불행으로 고뇌하는 민중의 한숨, 아편 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상적 행복을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민중의 현실적 행복을 찾는 것 이다. 그리하여 이제 종교비판은 법 비판으로, 신학비판은 정치비판으로, 더 나아가 비판은 실천으로 바뀌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력사사전 (1971), 조선 문화어 사전 (1973), 철학사전 (1981)에서는 종교를 신, 하느님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고 숭배하는 것으로 규정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11
12 하였다. 여기서 북한과 마르크스 종교관의 다른 점은 마르크스가 종교를 형이상학 적이고 관념적인 신념이라고 본 데 비해, 북한에서는 논리체계 없이 막연한 신비주 의, 몽매주의에 기초해 비현실적인 미신과 동일시되었다. 북한에서는 종교의 기능을 지배계급의 착취도구로도 인식했다. 마르크스주의가 종교를 아편으로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시 기독교가 기성의 정치체제를 신성 화하는 도구로 변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종교들이 정치와 유착해 봉 건지배계급들의 특권과 결탁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종교들이 생산적인 일 도 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이처럼 북한의 종교관은 마르크스주의의 종교관에 입각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미신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입장 은 1970년대 이후 마르크스가 말하는 이른바 정치적 종교(political religion) 로서 주체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둘째는 주체사상과 종교의 관계이다. 1972년 이후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북한 의 종교기구들이 재등장한 것도 북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확립과 연관이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오늘날 북한의 종교는 주체사상의 틀 속에서 사상적으로 종속된 방식으 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북한당국은 1972년 12월에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 을 제정하고 김일성을 수령으 로 규정하는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하였다. 북한헌법 제3조는 북한정권이 조선노동 당의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고 규정하고 있으며 조선로 동당 규약 전문에는 조선노동당은 오직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 된다 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주체사상이 당과 국가의 지도이념이자 정치 경제 사 회 문화뿐만 아니라 종교까지도 규율하는 통치이념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 북한당국은 1974년에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이하 유일사 상 10대 원칙 )을 발표하였다. 이 원칙이 발표된 이후 북한사회에서는 주체사상과 그 창시자인 수령 이외에 다른 숭배대상이 존재하기 어렵게 되었다. 4) 실제로 북한 4) 유일사상 10대 원칙 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자, 12 북한불교의 이해
13 에서는 유일사상 10대 원칙 이 발표되면서 모든 부문에서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종교활동의 보장은커녕 모든 종교의 가르침도 이 유일사상 10대 원칙 의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당국은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김일성의 저작을 경전화했으며, 김 일성주의 학습을 의식화 의무화하고, 주민들의 옷에는 김일성 초상 배지를 달도록 했으며, 곳곳에 김일성 동상을 건립하고, 김일성의 연고지를 성역으로 만들어 주민 들을 참배하도록 하여 이를 완전히 종교화한 것이다. 5) 따라서 이러한 주체사상의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된 북한에서는 어떤 종교라도 독자적인 특색을 갖추며 존립하 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2. 북한당국의 불교인식 북한의 불교에 대한 인식 변화는 조선말대사전 의 개념 변화에서 선명하게 읽 을 수 있다. 1982년판 조선말대사전 의 정의는 1972년 헌법에서 규정한 반( 反 )종 교선전의 자유 에 입각하여 불교를 폄하하고 봉건잔재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2년판에서는 앞의 <표-1>에서 정리한 1992년 북한헌법의 규정처럼, 제한적이기 는 하나 종교건물의 신축이나 종교의식을 인정하는 신앙의 자유 에 입각해 보다 객 관적으로 재정의되었다.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말대사전 을 살펴보자. 남북간 불교교류가 없었던 1982 년 판에서는 불교에 관해 현실세계에서의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여야 한다는 노예 김일성을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자, 김일성의 권위를 절대화하자,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의 교시를 신조화하자, 김일성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지키자,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자, 김일성을 따라 배 워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 인민적 사업작풍을 소유하자, 김일성이 안겨준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로서 충성으 로 보답하자,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 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규율을 세우자, 김일성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자. 5) 북한연구소 편, 북한총람 1945년~1982년, 1983년 4월, pp.1240~1241.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13
14 적인 굴종사상과 무저항주의를 설교하는 데 있다. 봉건지배계급의 사상적 지배 도구로 리용되면서 인민대중의 계급의식과 투쟁의식을 마비시키고 우리나라의 문 화와 과학발전에 막대한 해독을 끼쳤다 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북교류가 시작된 1990년대 들어와 불교에 대한 사전적 정의도 바뀌었 다. 1992년 판 조선말대사전 에는 인간을 고뇌에서 해방하며 자비심을 베푸는 것 을 리념으로 하고 속세를 떠나 도를 잘 닦으면 극락세계에 이른다고 설교한다 라고 하여 객관적인 서술로 바뀐 것이다. 6) 불교 관련 조선말대사전 의 개념 변화는 북한당국의 불교 인식이 변하고 있음 을 보여주는 것이다. 1982년판의 정의는 1972년 헌법에서 규정한 반( 反 )종교선전 의 자유 에 입각하여 불교를 폄하하고 봉건잔재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2년 판에서는 앞의 <표-3>에서 정리한 1992년 북한헌법의 규정처럼, 제한적이기는 하 나 종교건물의 신축이나 종교의식을 인정하는 신앙의 자유 에 입각해 보다 객관적 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전적인 정의의 변화 말고도, 북한불교의 특징적인 모습을 통해 북한 당국의 불교 인식을 읽을 수 있다. 남한불교와 비교해 보았을 때 북한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취처육식( 娶 妻 肉 食 )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북한불교 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일제시대 불교의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보다도 더 철저하게 일제청산을 내걸었던 북한에서 어찌하여 일제 시대 불교의 잔재가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북한당국의 불교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 으로 보인다. 북한당국은 북한불교 내의 일제잔재를 문제 삼기보다 북한불교 그 자 체를 봉건잔재로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당국은 해방 이후 북한불 교를 불교교단 내부의 정화 차원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차원에서 반봉건 인민민 주주의 개혁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 때문에 북한불교 내부의 일제잔재를 청산하려 6) 북한연구학회 편, 북한의 종교, 북한의 새인식 5: 북한의 사회, 경인문화사, 2006, pp.327~328 에서 재인용. 14 북한불교의 이해
15 하기보다 아예 북한불교 자체를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 Ⅲ. 인민민주주의개혁기 북한의 종교정책과 불교 1. 북한의 인민민주주의개혁과 종교정책 8 15해방 뒤 북한지역에서 인민정권이 수립된 뒤, 북한정권은 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맨 처음 취한 정책은 토지개혁이었다. 무상몰수 무상 분배 를 표방한 북한의 토지개혁은 유상몰수 유상분배 라는 원칙 아래 시행된 남한 의 농지개혁보다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부족한 식 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급제가 도입되었고, 1957년 11월 내각결정 96호 및 102 호 에 의해 협동농장원을 제외한 모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식량배급제를 실시하였다. 북한당국은 명분상으로만 종교를 허용했을 뿐 토지개혁과 노동정책을 통한 직접 적인 탄압과 행정적인 간섭을 심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종교 개입정책을 시행하였 다. 북한의 초기 종교정책은 인민정권의 수립과 대남 체제경쟁에 대비한 통일전선 의 차원에서 접근되었다. 김일성은 정권수립 초기에 종교가 이념투쟁과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위한 반혁명 적 요소로서 제거의 대상이라고 간주했지만, 당시까지 북한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종교세력을 무작정 배척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에 동 조할 수 있는 종교인들을 통일전선으로 묶여둘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초기 종교정책은 김일성 자신의 정권을 공고화하고 반제 반봉건 혁명을 추진하기 위한 필요성과 이용가치에 따라 선별적인 종교정책을 취했던 것이 다. 7) 그렇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정권수립의 초기에는 형식적으로나마 종교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7) 오일환, 북한종교(2): 북한의 종교정책, 북한 2009년 3월호.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15
16 하지만 북한정권이 안정화되면서 점차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 다. 1948년 9월 정부수립 이후 북한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어느 나라든지 기존에 시행된 정책들을 성문화한 것이 헌법이라는 점 을 고려할 때, 북한의 제헌헌법은 북한의 종교정책을 잘 보여준다. 북한헌법 ( ) 제2장 14조에서는 공민은 신앙 및 종교의식거행의 자유를 가진다 고 되어 있 다. 하지만 1950년 3월 3일 북한당국은 형법을 제정하면서 종교탄압을 본격화하였 다. 1950년 3월 3일 북한형법 은 종교단체에 기부를 강요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57조)고 규정하고 종교단체에서 행정적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 하의 교화노동에 처한다 (제258조)고 규정함으로써 종교를 믿는 자유는 인정하면 서도 일체의 성직 활동을 금지시켰다. 2. 토지개혁, 배급제 및 전쟁이 북한불교에 미친 영향 (1) 토지개혁, 배급제 실시와 북한불교 북한당국의 토지개혁은 북한 종교계의 기반을 뒤흔든 최대의 사건이었다. 1946년 3월 발효된 토지개혁법령 으로 사찰과 교회의 토지가 몰수당해 북한의 종교는 재 기할 수 없는 치명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1946년 3월 5일부터 30일까지 26일 동안 실시된 북한의 토지개혁으로 1,050,038 정보( 町 步 )의 토지가 무상 몰수되었고, 이 가 운데 1.4% 정도인 종교단체 소유의 토지 14,855 정보가 무상으로 몰수당했다. 8) 종교단체 소유토지의 대부분은 사찰 토지이다. 토지개혁령 제5장 산림 제21조 에서 일본인 지주 및 승원 등의 일체 산림은 몰수한다 고 규정하여 토지뿐만 아니 라 사찰이 소유한 산림까지도 몰수당하였다. 9) 농지뿐만 아니라 임야까지 포함된 8) 김일성의 북조선임시위원회 제1차 확대집행위원회 보고. 신법타, 북한불교연구: 20세기 최근세의 북한불교 변화에 대한 연구, 민족사, 2000, p.111에서 재인용. 16 북한불교의 이해
17 토지개혁으로 북한사찰의 존립기반이 붕괴되었고, 사찰 재정의 취약은 사찰공동체 의 이완을 초래하였다. 당시 북한당국은 5정보 이상을 소유한 사찰의 토지를 모두 무상으로 몰수하였는 데, 석왕사에서만 4,000여 정보의 토지가 몰수당하였고, 보현사, 건봉사, 유점사, 귀 주사 등도 많은 토지를 몰수당하였다. 이처럼 대규모의 토지와 산림을 소유했던 북 한의 사찰들은 토지개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경제적 기반을 상실했다. 토지개혁으로 인한 사찰 식량의 부족은 스님들의 생존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 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946년 3월부터 북한당국이 식량배급제를 실시하는 바람 에 북한불교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10) 배급제의 실시로 일하지 않고는 먹지 말라 는 원칙에 따라 종교단체의 일정 인원 이상에 대해서는 배급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 하였다. 이처럼 사찰농지가 몰수된 데다가 배급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에 사찰에 거 주하는 많은 북한스님들이 노역장으로 가거나 머물던 사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식량배급제의 실시로 인해 석왕사에서는 200명이 넘던 스님들이 30여 명으로 줄 어들었고, 100명 이상의 스님들이 주석( 駐 錫 )하던 보현사, 건봉사, 유점사, 귀주사 등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밖에 작은 절들은 규모에 따라 5명 이하로 축소 제한되었 다. 11) 이와 같이 토지개혁으로 사찰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식량배급제 까지 실시되자, 많은 스님들은 사찰에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2) 한국전쟁과 북한불교 이처럼 해방정국에서 북한당국의 토지개혁과 식량배급제로 인해 북한불교의 재 9)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북한사찰연구,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p ) 북한에서 처음 식량배급제도가 도입된 것은 52년 5월이었으나 시험단계였고, 이를 토대로 1957년 내각결정 제96호 및 제102호로 식량판매를 국가적 유일체계로 함에 대하여 를 발표하면서 전면 적으로 실시됐다. 이 결정에 따라 식량의 자유판매제가 폐지되고 노동자 사무원에 대한 식량의 완전배급제가 시작됐다. 11) 김병로, 북한 종교정책의 변화와 종교 실태, 통일연구원, 2002, pp.9~10.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17
18 정적, 인적 기반이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그리하여 사찰운영의 물적 토대가 무너지 자 스님들의 사찰 내 거주가 불가능해졌다. 이와 같이 참담한 북한불교의 상황을 더 욱 악화시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으로 북한불교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인적, 물적인 피해를 입었다. 북한지역의 사찰들이 대부분 산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찰에 군 입대를 기피한 청 년들과 공산당을 반대하는 인사들이 은신하여 투쟁하게 되자, 북한당국은 사찰에 대한 삼엄한 감시와 강도 높은 탄압을 가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 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지던 북한지역의 불교 신행활동조차도 불가능해졌다. 스님들과 절에 상주하던 신도들은 인민군 또는 인민자위대로 대거 전장에 동원 되었다. 12) 1950년 7월 15일 북한의 불교도들은 불교신앙협회, 불교청년사, 여성불 교도회가 모여 연합회의를 열고 1,300명이 자발적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인민자위 대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밖에 많은 스님들이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거나 피 살되는 비운을 겪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북한지역의 수많은 사찰과 문화재들이 소실됐다. 해방 직후에 1,793개가 있던 사암 가운데 대부분이 소실되고 현재는 60 여 개밖에 남아있지 않다. 13) 휴전이 되자 북한당국은 패전 책임의 일부를 종교인들에게 전가하여 목사와 선 교사, 신부를 미제 스파이로 몰아붙여 대숙청을 단행했다. 또 전쟁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불교승려들을 반동분자로 지목하여 여행과 진학, 장학금 수여, 공직사회 진출 등에 제재를 가했다. 이 조치는 1965년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14) 12) 이정, 북한의 사찰과 문화재, 불교평론 제5호, 2000년 5월. 13)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1939년 12월말에 조사가 기록에 따르면, 북한지역의 사찰은 경기도 30곳, 강 원도 56곳, 황해도 124곳, 평안도 87곳, 함경도 106곳 등 총 403곳이 있었다. 해방직후 기록으로 남아있는 북한지역의 사암은 경기도 269곳, 강원도 253곳, 황해도 376곳, 평안도 570곳, 함경도 325곳 등 총 1,793곳이 된다.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북한사찰연구,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p.33. 및 pp.534~ ) 이정, 앞의 글, 북한불교의 이해
19 Ⅳ. 사회주의개혁기 북한의 종교정책과 불교 1. 북한의 사회주의개혁과 종교정책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복구, 재건과 사회주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하여 1957~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1946년의 토지개혁 때 나누어주었던 모든 토지를 협동농장으로 바꾸고 사유재산제를 폐지하였다. 또한 북한당국은 일 반주민에 대한 사상검토사업(1958~59)을 전개하면서, 봉건잔재 척결대상으로 종교 를 지목하고 종교행위를 완전히 금지시켰다. 그리하여 1950년대 중반 이후 북한사회에서 공식무대에서 종교단체의 이름이 사 라졌다. 조불련은 1965년부터 1971년 사이, 조선그리스도연맹은 1964~1973년 사 이, 조선천도교회는 1949~1973년 사이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종교 단체의 은둔은 1972년 사회주의헌법이 채택되고, 주체사상이 북한의 지배적 이데 올로기로 확립될 때까지 계속된다. 1972년 12월 27일 북한은 기존 헌법을 사회주의헌법으로 개정하면서 모든 공민 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가진다 고 명시하였다. 이처럼 반종교 선 전의 자유 를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는 법적인 근거 가 마련되었다. 주체사상의 확립 이후, 북한당국은 이 헌법 조항에 근거하여 기존의 종교들을 북한사회주의 체제에 맞게 개조하기 시작했다. 1972년 9월 북한의 종교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조불련이 조불련 중앙위원회의 이 름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뒤를 이어 1974년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와 조선기독교연맹, 1988년 6월 조선카돌릭협회가 뒤를 이었다. 이처럼 1970년대 초 부터 북한에서 종교단체들이 다시 등장한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 확립과 더불어 남 북 당국자간 대화가 시작되고 국제사회와의 종교교류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 소련과 동구권의 개혁 개방이 본격화하자, 북한당국은 사찰 및 교회의 건립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팔만대장경 번역을 국책사업으로 추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19
20 진하는 등 다소 유화적인 다양한 종교 활동을 보여 주었다. 일부 종교 활동의 규제 를 완화하는 등 종교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방세계로부터 북한에 종교자 유가 없다는 거센 비난이 제기됨에 따라, 북한당국이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 는 것처럼 선전하고 오히려 대남 통일전선 구축에 남한의 종교단체를 이용하려 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북한불교는 아직까지 북한 내의 반종교선전 강화 라는 실질적 과제와 국제종교단체와의 연대, 남한 및 재외동포 종교인들과의 상층통일전선 구 축 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동시적으로 결합시킨 이중적인 종교정책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북한당국의 종교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89년 평양 세계청소년축전의 개 최이다. 15) 북한당국은 남한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의 세계청소년 축전을 평양에서 개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북한당국이 1989년 평양 세계청소년 축전을 준비하면서 종교의 자유에 대해 대대적인 검토에 착수하게 된 것으로 보인 다. 북한당국이 평양 세계청소년 축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국제사회와의 교류 협 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양 세계청소년축전은 북한이 기대했던 국제적 이미지 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가져다주지도 못한 채, 국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재정낭비를 초래함으로 써 결과적으로 북한의 체제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2. 사회주의개혁이 북한불교에 미친 영향 (1) 사회주의체제의 구축 이후 종교활동의 재개 1950년대 중반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던 조선불교도연맹이 1970년대에 들 15) 북한 외교관출신 고위급 탈북자들의 증언 20 북한불교의 이해
21 어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2년 9월부터 북한불교계에서 조선불교도 연맹 중앙위원회 라는 이름이 등장하였다.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의 임무는 대 외사업, 즉 해외불교계와의 교류나 남한불교계와의 교류 협력사업이다. 조불련 중앙위원회는 종교단체를 관할하는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제6과가 담 당하고 있다. 16) 과거와 달리 중앙위원회 라는 이름을 덧붙인 것은 조불련의 역할이 대중조직을 상대로 한 하층통일전선 사업이 아니라 대남, 대외용 상층통일전선 사 업이기 때문에 중앙부서의 역할만 필요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형 식상으로 지방조직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지방 당조직이나 행정조직의 관할 아래에 있어 조불련 중앙위원회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그 뒤에는 이와 같은 통일전선사업을 넘어, 국제사회와의 종교교류 필요성 때문 에 종교활동의 허용 폭이 점차 확대되어 갔다. 1981년 7월에 인도, 스리랑카, 태국 등에 조불련 대표단을 처음으로 파견하였고, 1982년 8월에는 몽골에서 개최된 제6 차 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에 처음 참가했으며, 1986년 12월에는 세계불교도우의회 (WFB)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1989년 7월에 개최된 제13차 세계청 년학생축전의 개최를 계기로 조불련을 비롯한 북한종교계의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 했고, 나아가 남북한 불교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2) 남북한 체제경쟁과 북한불교의 재기 1989년의 평양 세계청소년축전의 개최는 북한당국이 외부세계로 문을 열기 시작 하고, 불교를 비롯한 종교의 허용과 종교시설 신축의 주요계기로 작용하였다. 세계 평양축전을 준비하면서 북한당국은 통역사 양성을 위해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 외국어대학 등 어문학계 출신들을 제3세계에 어학연수를 보냈다. 또한 제3세계 청 소년들이 평양에 들어와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종교시설들을 하나씩 만들기 시 작했다. 그 결과 묘향산 보현사의 복원(1987)과 장충성당(1988), 봉수교회(1988), 16) 오일환, 북한의 종교실태- 개신교, 북한 2009년 4월호, p.139.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21
22 칠골교회(1989)와 같은 종교건축물이 신축되었다. 이와 같은 종교건축물의 건립 외에도 본격적인 종교연구가 시작되었다. 1989년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산하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이슬람교 등 5개 학 과를 설치하였고 그 뒤 정교회 학과가 추가로 신설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양강도 삼수군 중흥사에 승려교육기관인 불학원( 佛 學 院 )이 설치되었다. 이처럼 북한은 국 가 차원에서 종교지도자 양성체제를 마련하였고, 1989년 5월에는 종교차원에서 남 북대화와 통일논의 등 대남선전과 국제적 연대성 강화를 위한 창구로서 조선종교인 협의회(KCR)가 창립되었다. 북한의 불교는 이러한 변화된 종교정책으로 인해, 1986년 12월에 조선불교도연 맹이 세계 불교도 우의회(WFB)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1988년 5월 조선불교도연 맹 중앙위원회 주관으로 묘향산 보현사에서 북한정권의 수립 이후 처음으로 석가탄 신일 기념법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매년 출가절(음력 2월 8일), 열반절(음 력 2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 성도절(음력 12월 8일) 등 불교의 4대 명절에 맞춰 기념법회를 공개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17) 1980년 중반부터 2 3년을 간격으로 묘향산 보현사 팔만대장경보관소(1987년), 광법사(1991년), 조불련 청사(1992년), 정릉사(1993년) 등 대규모 건물이 신축되고 사찰을 꾸준히 복원함으로써 북한불교는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추어 왔다. 그리고 문 화재 보호와 주체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사찰에는 예전 스님들을 전문관리자로 임명 했다. 이는 미봉책이기는 하지만 사찰을 스님 출신에게 맡김으로써 종교적 기능을 부분적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8) 이 점에서 타종교와 다른 북한불교 만의 특색을 이루고 있다. 17) 김병로, 앞의 글, 2006, p ) 오일환, 북한종교(2): 북한의 종교실태- 불교, 북한 2009년 5월호, p 북한불교의 이해
23 Ⅴ. 남북 교류협력기 북한의 종교정책과 불교 1. 남북교류협력과 종교정책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 제5장 68조에서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 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 고 개정되었다. 그 결과 1992년 4월에 개정된 북한헌법 상으로 종교들의 독립성을 다소 보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 규정에 따르면, 오늘날 북한에서는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이 유지되고 있지 만, 북한의 체제위기를 반영하여 외세와 결탁하거나 체제도전세력으로 떠오르지 못 하도록 철저하게 견제당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조항은 1998년 9월에 제정된 북한헌 법에서 누구든지 라는 단어 하나만 삭제되었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있으며, 2009 년 4월의 헌법개정과 2011년 4월의 헌법 일부수정 때도 이 조항은 바뀌지 않고 유지 되고 있다. 명 칭 종교관련 조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2장 14조] 공민은 신앙 및 종교의식거행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4장 54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 사회주의헌법(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 <출처> 해당년도 북한법령집 <표 1> 북한헌법의 종교관련 조항 변화 [제5장 68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 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 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 [제5장 68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 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 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 [제5장 68조] 위와 같음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23
24 1992년 사회주의헌법의 제정 이후 북한당국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와 종교교류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종교단체들의 대외교류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외국종교단체나 국제원조기구의 상대역할 을 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특히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90년대 중반 이후의 식량난 등 체제위기가 발생하자, 북한당국은 대내적으로 북한주민들의 종교 활동에 대해 계속 억압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다양한 외국 종교단체와 접촉하여 서 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과 인도적 지원을 확대시키는 일종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종교를 활용하고 있다. 19) 최근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수집한 시기별 종교탄압의 사례를 보면, 한국전쟁 시 기와 1950~60년대 사이에는 종교탄압의 사례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남 북교류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부터 북한당국에 의한 종교탄압이 크게 늘어났 다. 20) 이것은 중국에서 종교를 접했던 탈북자들이 귀국 후 종교생활을 계속하거나, 남북한 교류협력이 북한주민의 종교활동을 크게 촉발시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표 2> 북한 내 종교탄압 현황 북한의 종교박해 건수 세부항목(1950~2010) 시기별 종교박해 건수 <출처> 국민일보 2011년 9월 9일. 19) 북한인권연구센터 편, 북한인권백서 2008, 통일연구원, 2008, p ) (사)북한인권정보센터, 2011 북한인권백서, 2011년 9월 7일. 24 북한불교의 이해
25 2. 남북교류협력이 북한불교에 미친 영향 (1) 남북 교류 협력의 활성화와 남북불교의 교류 남북한 간의 종교교류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식량난에 봉착하면서 종교계의 인도적 지원을 계기로 본격화하였다. 남북한 종교교류의 건수를 보면, 1990년 2건, 1991년 13건, 1992년 7건, 1993년 1건, 1994년 4건이었으나 1995년 북한의 수재와 관련하여 인도적인 지원이 실시되면서 1995년에는 12건으로 늘었다. 특히 1995년 5월 조불련 측이 북한지역의 홍수피해 상황을 남한불교계에 공식적으로 알려옴에 따라 북한수재민돕기 범종단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본격적으로 종교계의 대북 지 원이 시작되었다. 남한 불교계는 일찍이 북한불교계와 교류를 해왔던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 협) 외에 한국JTS,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불교운동본부( 좋은 벗들 로 개명), 북녘동 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민족화합불교추진위로 개명)가 잇달아 창립되어 대북 인도 적 지원에 나서고, 조계종 총무원도 직접 나서 조불련에 지정 기탁하는 방식으로 식 량, 의약품, 생활용품 등 지원사업을 전개하였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면서 종교교류의 횟수 도 1998년 35건, 1999년 20건,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던 2000년에는 21건으로 크게 늘었다. 2001년에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등장에 영향을 받아 남 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남북간 종교교류는 9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2002년 하반기 이 후 남북교류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종교별로 적극적인 교류와 협력이 재개되었 다. 21) 이와 같은 남북종교 간의 교류와 협력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불교계에서는 2000년 6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운동본부(민추본)이 창립되어 본격적인 남북불교 간의 교류 협력에 나섰다. 2002년 이후 남북불교간의 교류는 기 존의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에 더해 신계사, 영통사 복원불사, 불교문화재 공동 조사 21) 김병로, 앞의 책, 2002, p.50.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25
26 발굴 및 복원, 59개 사찰에 대한 단청불사 지원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22) 그밖에 도 남과 북에서 각각 남북불교도 동시법회를 열거나 서울, 평양에서 남북불교도가 한 자리에 모여 합동법회를 개최하고, 금강산 신계사 성지순례를 봉행하기도 하였 다. 2003년과 2004년에 시작된 북한사찰의 복원불사는 2005년 10월에 개성 영통사, 2007년 10월에 금강산 신계사의 낙성식을 각각 가졌다. 복원된 북한사찰의 운영문 제를 둘러싸고 남북이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조계종 측은 남북한 스님의 공동상주 및 공동운영을 북측에 요구했지만, 조불련 측이 끝내 공동상주 및 공동운영 방안을 거부하였다. 만약 남한 스님들이 북한지역에 상주하며 북한스님들과 신계사를 공 동 운영할 수 있었다면, 불교통합뿐만 아니라 남북통합 과정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23) <표 3> 북한 현지에서의 공식 법회 (단위: 회) <출처> 법보신문 2013년 1월 23일. 22) 정영철, 불교계 대북 지원협력 사업의 방향과 과제, 민족통일과 불교통합-남북불교의 교류와 협력 방안, 조계종출판사, 2009, p ) 조성렬, 남북불교의 통합전략과 추진과제, 민족통일과 불교통합-남북불교의 교류와 협력 방안, 조계종출판사, 2009, pp.169~ 북한불교의 이해
27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금강산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악화되 면서 남북 불교간의 교류 협력사업도 크게 위축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9년 8월 31일 중국 선양에서 남한 7대 종단의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 조선종교인협 의회(KCR)가 남북 종교간 교류의 활성화 방안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여기서 조계 종 총무원장의 방북을 포함해 금강산 평화기도회와 음악회 등이 협의되었다. 이와 같은 남북종교 간의 합의에 따라 2010년 1월 30일~2월 2일 사이에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단장으로 하는 남한불교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조계종 방문단은 조 불련 측과 3개항 합의와 6개 사업에 관해 합의를 이루었다. 하지만 2010년 5.24조치 로 남북관계가 전면 단절되면서 남북불교계의 합의가 이행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도 2011년 9월에는 남한불교대표단 일행이 5.24조 치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등, 한국불교계가 분단된 남북한에 다리를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2)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북한불교 2012년 4월 김정은 체제의 공식 출범 이후 북한 불교계에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 지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북측 조불련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앞으로 팩스를 보내, 조불련 중앙위위원장의 교체를 공식적으로 알려왔다. 이에 따르면, 2012년 11월 19일 중앙위원회 17기 4차 전원회에서 위원장이던 심상진 대선사를 신병관계로 조불련 부위원장으로, 강수린 상무위원을 조선불교도연맹 위원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신임 강수린 조불련 위원장은 지난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2006년 6.15 민족통 일대축전,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실무회담 대표단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다. 강수린 신임 위원장은 조불련 중앙위원회 상무위원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원회 위원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지 1년이 갓 넘은 시점에서 불교정책의 변화를 평가하기는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27
28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뒤 에도 종교자유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USCIRF의 보고서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2013년 1월까지 북한 내 인권과 종교자유 상황에 아무런 개선이 없었다 고 지적했다. 이어서 북한당국이 모든 종교활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김씨 일가를 사이비 종교처럼 극단적으로 우상화시키며 숭배를 강요하고 있다"고 평가 했다. 24) Ⅵ. 맺음말 해방 직후 북한불교는 남한불교보다 훨씬 엄혹한 정치사회적 환경에 처해 있었 다. 북한당국의 토지개혁으로 인해 불교가 갖고 있던 농지와 산림의 거의 대부분을 몰수당했을 뿐 아니라, 식량배급제의 실시로 사찰의 물질적 기반이 무너졌다. 설상 가상으로 한국전쟁으로 북한지역에 있던 대부분의 사찰들이 파괴되어 버렸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북한당국의 사회주의적인 종교개조작업은 결과적으로 북 한불교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하였다. 북한당국은 불교를 봉건잔재로 간주했기 때 문에 북한불교 내의 일제잔재를 청산하기보다 인민민주주의혁명을 통해 아예 북한 불교 자체를 없애려고 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1970년대 들어와 북한불교가 재기 했을 때 그 내부에 일본불교의 잔재를 온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북한불교의 현재 모습이 모두 일본불교의 잔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늘 날 북한의 스님들이 사찰에서 가정생활을 하지 않고 사하촌에서 가정을 꾸리고 출 퇴근한다는 점에서, 같은 대처승 제도라고 해도 북한불교는 일제시대의 불교와 차 이가 난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60세 이전까지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 에 스님의 부인들도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점도 일제시대 불교의 잔재라기보다 사 회주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4) USCIRF, Annual Report 2013, April 30, 2013, pp.108~ 북한불교의 이해
29 오늘날 북한불교를 대표하고 있는 기구는 조선불교도연맹이다. 조선불교도연맹 은 반관반종( 半 官 半 宗 )의 성격으로 띠고 있으며 북한지역의 60여 개 사찰 가운데 20여 곳만을 관장하고 있다. 또한 주지 임명권과 사찰의 재산권은 조선로동당이 행 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불교의 처지는 일제시대의 사찰령 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북한불교가 남한불교와도 많은 차이가 나고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남북불교의 차이점이나 북한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 다. 조불련이 비록 조선로동당의 외곽단체로 출발했지만 남한의 종단과 같은 기능 도 담당하고 있다. 북한스님들이 처음엔 당원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매일 부처 님께 예불을 올리고 불경을 읽고 염불을 외는 등 적어도 겉으로는 남한스님들과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오늘날 북한의 불교를 바라볼 때,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만 집착한다면 올바른 인 식과 평가를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북한불교는 남북교류협력시기 이후 진화의 과정 에 있기 때문에, 미래의 관점을 통해 북한불교의 성격을 올바로 규정할 수 있을 것 이다. 북한의 불교정책과 북한불교의 변모 29
30 참고문헌 김병로, 북한 종교정책의 변화와 종교 실태, 통일연구원, 2002 김병로, 북한의 종교, 북한연구학회 편, 북한의 새인식 5: 북한의 사회, 경인문화사, 2006 김영권, 북한 그리스도연맹 결성 65주년으로 본 북한 기독교, 미국의 소리, 2011년 2월 8일 북한연구소 편, 북한총람 1945년~1982년, 1983년 4월 북한인권연구센터 편, 북한인권백서 2008, 통일연구원, 2008 (사)북한인권정보센터, 2011 북한인권백서, 2011년 9월 7일 사찰문화연구원 편, 북한사찰연구,(사)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신법타, 북한불교연구: 20세기 최근세의 북한불교 변화에 대한 연구, 민족사, 2000 오일환, 북한종교(2): 북한의 종교정책, 북한 2009년 3월호 오일환, 북한의 종교실태- 개신교, 북한 2009년 4월호 오일환, 북한종교(2): 북한의 종교실태- 불교, 북한 2009년 5월호 이 정, 북한의 사찰과 문화재, 불교평론 제5호, 2000년 5월 이지범, 오늘날 불교의 현황, 불교닷컴, 2012년 4월 13일 정영철, 불교계 대북 지원협력 사업의 방향과 과제, 민족통일과 불교통합-남북불교의 교류와 협력 방안, 조계종출판사, 2009 조성렬, 남북불교의 통합전략과 추진과제, 민족통일과 불교통합-남북불교의 교류와 협력 방 안, 조계종출판사, 2009 국민일보 2011년 9월 9일 법보신문 2013년 1월 23일 USCIRF, Annual Report 2013, April 30, 북한불교의 이해
31 제2주제 이노우에 나오키( 井 上 直 樹 )_ 京 都 府 立 大 学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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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2주제 이노우에 나오키( 井 上 直 樹 ) * 25) ** 목 차 ** 글을 시작하며 1. 식민지시대의 고구려 사원 연구 2. 북한의 고구려 사원 연구 3. 북한의 고려 사원 조사 소결( 小 結 ) 글을 시작하며 북한에 있는 사원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러나 신증동국여 지승람 등의 기록에 다수의 사원이 존재하고 있고 1), 또 식민지 시대에도 보현사와 성불사 등과 같은 사원들이 확인되고 있다. 2) 해방 후에도 그 사원들이 건재하였고, * 京 都 府 立 大 学 교수 1)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북한문화재해설집 사찰건축 편(1998년)에 의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보이는 북한 지역의 사원은 571개라고 한다. 2) 関 野 貞, 조선미술사 ( 조선의 건축과 예술, 岩 波 書 店, 1941, pp.180~183)에는 북한 지역의 사원 으로 성불사가 언급되고 있다. 또한 조선고적도감 12(조선총독 부, 1932)에는 1909년( 明 治 42),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33
34 조선의 절 안내 (조선문화보존사, 2003년) 등에도 보현사 등 조선 시대부터 존재 했던 사원과 해방 후에 복원된 광법사 등의 사원이 소개되고 있다.(본고의 말미에 있는 북한 지역의 사원 참조) 이외에도 발굴 조사에 의해 밝혀진 사원도 적지 않 다. 그러나 그 발굴조사의 성과는 논문 등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아서 아직 상세하게 밝혀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정릉사와 같이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사원연구 가 진전되고 있는 곳도 있다. 3) 특히 고구려 사원은 정릉사 이외에도 발굴조사가 이 루어져 그 성과 위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사원 연구 는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고구려의 불교문화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한 반도 남부의 백제 신라 지역, 심지어 일본 열도의 고대 사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 경시 할 수 없다. 그런 만큼 북한의 고구려 사원의 연구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사원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선 북한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 행되고 있는 고구려 사원 연구 상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또한 북한에서는 최근 일본의 大 正 大 學 과 합동 조사를 통해 영통사가 발굴 조사 되어 그 보고서도 간행되었다. 4)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북한의 사원 조사 보고는 많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연구 상황 하에서 발굴 조사 성과를 언급하는 것은 북한 의 사원 연구 현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할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구려 사원의 연구 현황에 이어서 개성에서 발굴된 영통사의 발굴 성과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 다. 이를 통해 북한 사원의 연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되었으면 한다. 1. 식민지시대의 고구려 사원 연구 북한의 고구려 사원은 해방 이전부터 이미 일본인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 1913년( 大 正 2)에 조사된 평안남북도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 사원건축이 소개되고 있다. 3) 김일성종합대학,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 유적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6). 또한 일본어 번 역으로 김일성종합대학편, 呂 南 喆 金 洪 圭 訳, 5세기 고구려문화 ( 雄 山 閣, 1985)가 간행되고 있다. 4) 대정대학종합불교연구소 編, 영통사지 ( 大 正 大 學 出 版 會, 2005) 34 북한불교의 이해
35 고, 그 성과는 고구려 사원 연구에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해방 후 북한의 고구려 사원 연구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먼저 해방 이전 북한 지역 고구려 사원의 조사 상황을 개관해 두고자 한다. 1) 원오리 폐사 원오리 폐사는 평양의 서북쪽 약 24km에 위치한 해발 248m의 만덕산 서남쪽 기 슭의 평안남도 평원군 덕포리(구, 덕산리)에 있다. 1932년(소화 7)에 고구려 시대의 니불( 泥 仏 )이 매물로 나와 그것을 오바 츠네키치( 小 場 恒 吉 )가 총독부로 가져왔는 데, 1935년(소화 10)에 그 출토지가 원오리 폐사인 것으로 밝혀져 주목되었다. 그 후, 1937년(소화 12) 5월 12일부터 29일까지 17일간 조사가 이루어졌다. 고구려 사 원의 첫 발굴이었다. 5) 사지( 寺 址 )는 상하 2단으로 축성되었다. 하단은 완만한 경사면으로 협소하기 때 문에, 산문( 山 門 )과 작은 건축물 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비해 넓은 상단 은 사원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어서 조사도 상단의 중앙에서 행해졌다. 그 결과 중앙부의 서쪽에서는 고려기와편과 도자기 조각이 출토되었고, 중앙에서 는 고려 말기로 추정되는 청자완( 靑 磁 碗 )을 넣었던 청동제 함이 출토되었으므로 고려 시대에 조영된 사원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동쪽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유구가 출토되 었다. 폭 170cm, 두께 20cm로써 길이는 약간 다른 두 판석이 남북으로 나란히 있었고, 또 그 동쪽에는 건물기단의 측석( 側 石 )으로 보이는 판석( 板 石 )이 줄지어 있고, 그 남 쪽의 산성( 山 城 )에는 원형 초석이 2개 발견되었다. 또 이외에도 원형 초석이 발견되었 다. 그러나 유적의 파괴가 심해서 유구 전체의 모습은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서 연화 문 와당( 瓦 當 )과 장식기와[ 鴟 尾 ] 및 太 安 이 양각으로 새겨진 전돌도 출토되었다. 고 구려 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사된 이후 고려 시대에 다시 재건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평양 남부의 토성리에서 출토된 니불 거푸짚[ 泥 佛 范 ]은 이 원오리 폐사 니 5) 조선고적연구회, 소화십이년도고적조사보고 (조선고적연구회, 1938)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35
36 불의 거푸집이라고 볼 수 있는 동일 형식의 것이었다. 또한 만덕산 북쪽 산기슭의 귤리( 橘 里 )에 있는 폐사에서도 동일한 모양의 니불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2) 청암리 폐사 청암리 폐사는 평양 중심부에서 동북 약 3km, 대동강의 북쪽 언덕에 위치한 평양 부 대동강면 청암리에 있다. 동서 약 2.3km, 남북 약 0.9km의 동쪽 북쪽 서쪽 세 방 향이 흙벽[ 土 壘 ]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에는 고구려 왕궁 유적으로서 청암리 토 성이라고 여겼다. 그곳에는 고구려 기와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땅속에서는 고 구려 와당과 초석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38년(소화 13) 평양부립박물관 관장이었던 코이즈미 아키오( 小 泉 顕 夫 )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굴착중의 배수구 아 래에서 교란( 攪 亂 )되지 않은 기와 층과 초석을 확인하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1938 년도(소화13)에 小 泉 顕 夫 와 요네다 미요지( 米 田 美 代 治 )에 의해 10월 25일부터 11 월 20일, 그리고 이듬해인 1939년 6월 5일부터 1개월 동안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 다. 6) 이때의 조사를 통해, 중앙에 평면팔각형 건물이 있었고 그 동서 북쪽으로 건물 터가 배치되었으며 그 남쪽으로 문지( 門 址 )가 있었던 가람 배치가 확인되었다. 중앙의 팔각형 건물은 대지의 중심부에 있는데, 암반을 팔각형으로 깎고 그 주위 에 할석( 割 石 )을 나란히 배치하여 기단을 형성하고 있다. 주요 부분은 이미 파괴되 었지만, 한쪽 변은 약 9.5m이고, 그 바깥 측에 각 변 5, 6개가 있는 방형( 方 形 )으로 만들어진 홈을 판 작은 초석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면을 맞춰서 할석을 나 란히 했고, 그 바깥 측에 우락구( 雨 落 溝 )로 여겨지는 폭 70cm의 옥석 깔개를 둘러 놓았다. 기단 상부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초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면과 서면 에 기단으로 통하는 계단의 유구와 밖으로 펼쳐진 폭 약 2m의 옥석을 깐 보도가 있 고, 남면은 문지로 여겨지는 유구에 연결되고, 서면은 건물지에 연결된다. 동 북면 6) 조선고적연구회, 소화십삼년도고적조사보고 (조선고적연구회, 1940); 齋 藤 忠, 소화십사년에 있 어서 조선고적조사의 개요 ( 고고학잡지 30-1, 1940) 36 북한불교의 이해
37 도 계단 보도의 흔적이 확인되고 각기 건물지로 펼쳐져 있다. 남쪽에 문지로 추정되는 건물은 팔각형 건물과 옥석깔개 보도로 연결되고, 동서 양단에 회랑( 廻 廊 )으로 여겨지는 건물지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고구려시대의 문지 위에 고려시대의 건물이 세워졌던 것 같다. 그래서 고려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동쪽 의 건물은 최북단의 초석에서 남쪽까지 남북 길이가 23.48m에 달하지만, 동쪽 변은 초석 5개, 남쪽 변은 초석 1개만이 남아있으므로 파괴가 심하다. 초석부근에서는 고 구려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서쪽 건물지도 경작에 의한 파괴가 두드러지고, 남북으 로 21m, 동서로 12m의 우락구( 雨 落 溝 )만 남아 있다. 중심의 팔각형 건물로 연결되 는 보도가 있는데, 그 거리는 11.72m로 보도를 중심으로 계산하면 그 건물의 크기 는 남북으로 27m가 된다고 한다. 팔각건물지의 북측에는 정면 32.46m, 안쪽 방향으로 19.18m의 대기단( 大 基 壇 ) 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건물지가 있다. 기단 상부는 파괴가 두드러져 초석의 근고석 ( 根 固 石 ) 밖에 없지만 고려기와가 많고 그 하층에 고구려 기와가 다수 있어서 보고 서는 이 건물을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았다.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기단 하층에는 남 북으로 팔각건물지와 같은 모양의 옥석이 깔린 빗물받이와 작은 초석이 발견되었 다. 고구려 시대의 건물지라고 생각되었지만, 그 이상의 조사는 그 다음 연도의 과 제가 되었다. 이 대지의 북쪽에는 팔각건물지의 남북 축으로부터 동쪽으로 전돌이 깔린 건물 지가 확인되었다. 파괴가 심해서 초석이 하나만 남아 있었지만 다섯 곳에서 초석을 지탱하던 돌이 발견되었으므로 동서로 길게 남면한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 다. 이곳은 고려기와가 출토되었고 고려시대의 건물로 추정되었다. 다음해 1939년에도 요네다 미요지( 米 田 美 代 治 )를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전돌이 깔린 건물의 서쪽으로 두 개의 건물지가, 그 북쪽으로도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7) 7) 米 田 美 代 治, 조선상대의 건축과 가람 배치에 미친 천문 사상의 영향 ( 증보 조선 상대 건축의 연 구, 혜문사, 2007, pp.178~179, 原 載, 조선상대 건축의 연구 秋 田 屋, 1944); 小 泉 顯 夫, 고구려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37
38 청암리 폐사에서는 寺 라고 새겨진 기와조각과 금동불상의 광배로 생각되는 유 물이 출토되어 고구려시대의 사지로 여겨지게 되었다. 보고서는 팔각건물지를 탑 지( 塔 址 ), 그 북쪽의 대형 건물을 금당, 나아가 벽돌이 깔린 건물을 강당이라고 이해 했다. 그 때문에 이 절은 문 탑 금당이 늘어서 있는 사천왕사 식의 가람이라고 생 각되어 왔다. 그러나 그 후 일본의 비조사( 飛 鳥 寺 )의 조사에 의해서 재차 주목되어 동서의 건물도 금당으로 여겼고, 1탑3금당 식의 사원으로 이해되었다. 8) 또한 코이즈미 아키오( 小 泉 顯 夫 )는 옛날 이곳에 금강사( 金 剛 寺 )가 있었다는 전 승이 있는 점, 이 부근이 금강탄( 金 剛 灘 ), 금강전( 金 剛 畑 )으로도 불려졌다는 점, 여 기에 더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1의 평양고적조 에 金 剛 寺 [유적이 평양부 동북쪽 8리에 있다( 遺 基 在 府 東 北 八 里 )] 라는 문구가 있는 점으로부터 이 사원의 사 지를 금강사라고 추정했다. 이 금강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7년 (498) 7월조에 秋 七 月 에 金 剛 寺 를 창건하다 라고 되어 있으므로 고구려시대의 사 원인 것이다. 금강사는 그 후 고려사 등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도 존 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려의 기와가 출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청암리 폐사의 창건 기와를 5세기 초의 것으로 보고 이를 금강사로 보는 것에 비판 적인 의견도 있다. 9) 3) 상오리 폐사 상오리 폐사는 평양특별시 대성구역 림흥동(구, 평양 대동군 임원면 상오리)에 있으며, 평양의 동북 약 6km, 청암리 폐사의 동남쪽 약 2km의 대동강 북안( 北 岸 )에 위치해 있다. 1939년(소화 14)에 조선고적연구회 평양연구소의 사업으로서 같은 해 7월 하순부터 8월에 걸쳐 사이토 다다시( 齊 藤 忠 )와 코이즈미 아키오( 小 泉 顕 夫 )에 청암리 폐사 조사 ( 불교예술 33, 1958) 등 8) 奈 良 국립문화재연구소, 飛 鳥 寺 발굴조사보고 ( 眞 養 社, 1958) 9) 千 田 剛 道, 청암리 폐사와 안학궁 (나라 문화재연구소, 나라 문화재 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논문 집, 同 朋 舍, 1983) 38 북한불교의 이해
39 의해 조사되었다. 10) 그 결과, 팔각형 건물지와 동서 방형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팔각건물지의 한 변은 약 8m이고, 약 80cm 폭의 우락구( 雨 落 溝 )로 보여지는 옥 석깔개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외연으로부터 약 3.6m 내측에 절석( 切 石 )이 널빤지 처럼 깔려서, 동서 24.2m, 남북 21.8m의 방형의 구획을 형성하고 있다. 외연에는 빗물이 떨어지는 바깥 측면에 폭 90cm의 천원석( 川 原 石 )의 돌 깔개가 둘러져 있는 데, 북면 남면에는 돌 깔개가 끊어지고, 평석( 平 石 )이 남아있어 계단의 흔적이라고 생각된다. 초석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바깥 측면에는 옥석 깔개로부터 약 4m 떨어진 곳에 동서 약 12.6m, 남북 약 25.8m의 남북으로 길게 뻗친 동서 건물지가 있다. 그 사이에는 팔각건물지에서 동 서 건물지로 통하는 길이 약 70cm, 폭 약 40cm의 평석이 나란히 깔려져 있다. 서쪽 은 5장을 다 갖추고 있지만 동쪽은 3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 동서 건물지의 기단은 길이 약 50cm의 판석이 외부를 두르고 있으며, 그 외연에는 약 2m의 간격을 두고 방주( 方 柱 ) 모양의 촉꽂이[ 枘 ]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교차하여 배치되어 있다. 팔각건물지의 동서 건물지는 청암리 폐사와 같은 모양의 금당으로 여겨지고 있 다. 팔각건물지의 북측은 그 다음 해에 조사 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실시되지 못하 여 밝혀지지 못했다. 그러나 넓은 공터가 있어서 거기에 건물지가 존재했을 가능성 도 충분히 있다. 그 곳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수막새[ 軒 丸 瓦 ]가 20여점 발견되고, 東 자가 새겨진 평기와도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네모꼴의 금동금구( 金 銅 金 具 )와 금동수식구( 金 銅 垂 飾 具 )도 출토되었다. 4) 기타 그 외에도 평양시 토성리에서는 寺 라고 각인된 기와가 출토되었다. 11) 여기에서 10) 齊 藤 忠, 소화십사년에 있어서의 조선 고적 조사의 개요 ( 고고학 잡지 30-1, 1940); 同 아스카 시 대 사원의 원류로서 고구려 사원의 한 형식 ( 일본 고대 유적의 연구 논고 편, 吉 川 弘 文 館, 1976)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39
40 는 니불 거푸짚[ 泥 佛 范 ]도 발견되었다. 12) 다무라 코이치( 田 村 晃 一 )는 이곳을 사지 로 여기고 延 嘉 七 年 銘 金 堂 仏 光 背 에 보이는 樂 浪 東 寺 가 그것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 근거로 동경국립박물관 소장의 樂 자가 새겨진 기와를 거론한 다. 13) 그것은 樂 浪 東 寺 를 낙랑 토성의 동쪽 사원으로 이해하기 때문인데 가능성 이 있다. 또한 조선고적보물조사자료 에는 낙랑토성으로부터 서쪽으로 3km 정도의 장매 리( 長 梅 里 )에 원암( 猿 岩 )이라고 불리는 부락에 있고 절의 이름이 자세하지 않으며 기와조각(고구려 시대)이 다수 흩어져 있다 고 하였고, 14) 고구려 시대의 기와가 출 토되어 고구려 사원이 있었다고 여겨졌는데 여기에서 巖 寺 라고 새겨진 평기와가 발견되었다. 15) 또한 이 책에는 남현사지( 南 縣 寺 址 )로 불리는 초약동( 草 藥 洞 ) 부락 의 서쪽 방향 약 200칸 떨어진 대동강 언덕에 있으며, 기와조각이 산재해 있는데 약 20년 전에 폐사되었다 고 하므로 16) 남현사가 예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북한의 고구려 사원 연구 (1) 정릉사의 발굴 조사 해방 후 북한의 고대 사원 연구 동향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고구려 사원의 연구 와 관련하여 경시할 수 없는 것이, 1974년에 김일성종합대학에 의해 행해진 정릉사 11) 關 野 貞 편, 조선고적도보 2 (조선총독 부, 1927) 12) 梅 原 末 治 편, 復 刻 朝 鮮 古 文 化 綜 鑑 4 (출판과학종합연구소, 1986, p.32, 原 載 鮮 古 文 化 綜 鑑, 養 德 社, 1976) 13) 田 村 晃 一, 고구려의 사원 터에 대한 약간의 고찰 ( 낙랑과 고구려의 고고학, 同 成 社, 2001, pp.373~375) 14) 조선고적보물조사자료 (조선총독 부, 1942, p.412) 15) 關 野 貞 편, 조선고적도보 2 (전게서) 16) 조선고적보물조사자료 (전게서, p.416) 40 북한불교의 이해
41 발굴 조사이다. 17) 정릉사는 평성시 역포구역 무진리 왕릉동에 위치해 있다. 북쪽 언덕에는 진파리 ( 眞 坡 里 ) 고분군이 있고, 북쪽 150m에는 동명왕릉( 東 明 王 陵 )으로 전하는 능이 있 다. 사지의 일대는 기와 조각이 분포해 있고, 동명왕릉과 함께 발굴 조사되었으며, 유구가 확인되었다. 조사지역은 동서 233m, 남북 132.8m, 면적 m2로 거기에서 18개의 건물 지와 10개의 회랑 터가 발견되었다. 유구는 남북 회랑에 의해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팔각 기단지가 발견된 중 앙을 제1구역으로 하여 회랑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유구의 중심 부분이 되고 있다. 이 제1구역의 서쪽을 제2구역, 나아가 그 서쪽을 제4구역으로 하고, 제1구역의 동쪽 을 제3구역, 또 그 지역을 제5구역으로 한다. 제1구역은 사방이 회랑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으로부터 중문지(제4호 건 축지), 그 바로 북쪽에 팔각기단건물지(제1호 건물지)가 있다. 한 변의 길이가 7.2m 에 직경 10-20cm의 돌이 깔려있고 초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외측의 폭 80cm는 돌을 깔지 않고 판석을 놓고, 그 밖에는 약 60cm 폭의 우락구( 雨 落 溝 )가 있고 바깥 주변은 한 변이 8.4m이다. 그 동서남북 사변의 중앙부, 남북 1.3m, 동서 2m는 돌을 깔지 않아서 계단지로 추정되고 있다. 2호 건물은 팔각 기단건물지의 서쪽 9.2m, 동쪽으로 5.5m 떨어진 곳에 있고, 정 면 3칸, 측면 2칸, 남북 22.8m, 동서 13.8m의 남북으로 긴 건물지이다. 초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근석( 根 石 )이 남북으로 2줄, 4개씩 남아있다. 제3호 건물지는 남북 20.05m 동서 13.4m로 초석은 남아있지 않고 근석만이 남아있다. 팔각건물지의 북 쪽 4.4m의 곳에 폭 6.8m의 회랑이 있고 그 앞 4.8m에 있는 것이 6호 건물이다. 동 서 17.8m, 남북 14.8m로 파괴가 심해 초석도 발견되지 않고 남북으로 적석( 積 石 )만 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보고서는 이를 금당이라고 간주한다. 청암리 폐사와 달리, 17) 김일성종합대학,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 유적 (전게서); 김일성종합대학 편, 呂 南 喆 金 洪 圭 譯, 5세기 고구려 문화 (전게서).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41
42 팔각건물지의 북쪽에 회랑이 있고, 그 북쪽에 금당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여 1탑3금 당 사원으로 본다. 이 건물의 서쪽 7.8m에 5호 건물지가 있는데, 남북 19.4m, 동서 13.5m 넓이에 초석은 남아있지 않고, 근석( 根 石 )이 남북 6개, 동서 3개가 발견되었 다. 보고서는 이를 경루( 經 楼 )라고 이해한다. 6호 건축지의 동쪽 5m에 있는 것이 동 서 16.4m, 남북 13.8m의 7호 건물지이다. 근석( 根 石 )이 네 모서리와 동서에 두 줄 로 3개씩 있다. 보고서는 종루( 鐘 楼 )로 비정한다. 이 북쪽에는 폭 5.1m의 회랑이 있고, 그 너머로 북쪽 4.4m 지점에서 서쪽으로부 터 8 9호 건물지, 그 북쪽에 10호 건물지가 있다. 8호 건물지는 동서 44m, 남북 14.5m의 넓이로 보아 강당으로 여겨진다. 9호 건물지는 파괴가 심하고, 남북 약 10m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0호 건물지는 제1구역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동서 16m, 남북 11.8m로, 동북은 회랑으 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사이는 전돌이 깔려져 있다. 내부에는 온돌 시설도 있어, 보 고서는 고위층의 침실 로 보고 있다. 제1구역의 서측의 제2구역에서는 회랑문지( 回 廊 門 址 )와 2개의 건물이 발견되었 다. 남쪽의 1호 건물지는 동서 26.1m, 남북 18.2m로 18개의 초석과 15개의 근석이 발견되고, 온돌 유구도 발견되었다. 그 북쪽 5m에 2호 건물지가 있고, 1호 건축과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2호 건물지는 동서 20m, 남북 11.2m로, 정면 5칸, 측면 4 칸이며 주지( 柱 址 )는 26개소, 초석 13개가 발견되었다.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온돌도 있으므로 보고서는 주방으로 보고 있다. 그 서쪽의 제4구역은 파괴가 심하고, 건물지의 서측 부분인 동서 8.2m와 남북 22.3m만이 발견되었다. 주지( 柱 址 )는 30개소, 초석 15개가 발견되었다. 그 북쪽에 는 폭 5.3m의 구지( 溝 址 )가 발견되었다. 제1구역의 동쪽에 있는 제3구역과 제5구역의 동남부는 작은 시내에 의해 유적의 파괴가 극심하고, 제3구역에서는 건물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제5구역은 북쪽에 회 랑이 있고, 그 북쪽에는 3개의 건물지가 있다. 북쪽 회랑과 직결되는 가장 큰 건물지 가 1호 건물지인데 동서 21.4m, 남북 15.6m, 정면 5칸, 측면 5칸의 건물지에 원형과 42 북한불교의 이해
43 방형의 주지( 柱 址 )가 있다. 여기에는 온돌 시설도 있어, 보고서는 많은 사람들이 숙 식하는 공간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 동쪽에 있는 것이 2호 건물지로, 동서 9m, 남북 7.4m,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동측에 온돌이 있다. 그 남쪽에 남북 26.2m, 동 서 4.2m의 남북으로 긴 장랑식( 長 廊 式 )의 3호 건물지가 있어 승방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 제2구역과 제3구역의 남측으로부터는 원형의 전돌을 깔아 놓은 시설이 2 개 발견되고 있는데 용도는 잘 모른다. 정릉사에서는 치미( 鴟 尾 ), 와당( 瓦 當 ), 전( 塼 ), 토기( 土 器 ) 등이 출토 되었다. 평 기와에는 寺, 泉, 定 이 각인된 것도 있고, 토기에는 定, 定 陵, 陵 寺, 飛, 衆 僧 등이 새겨져 있다. 보고서는 남문과 팔각탑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 북쪽으로 건물지가 있고, 또한 그 북쪽에 건물지가 있으므로 청암리 폐사와 동일한 가람 배치였다고 한다. 그러나 출 토된 와당이 청암리 폐사와 비슷하지만 기하학적 엄밀성 이 청암리 폐사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청암리 폐사보다 먼저 조영되었고, 광개토대왕이 392년에 건립한 사원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2) 봉산군 토성리 폐사 황해북도 봉산군 토성리에서 발견되어 1987년에 조사보고가 소개되었다. 18) 사 원은 봉산군역의 남쪽 1km의 공동 탈곡장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해당 지역에서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려 조선 시대의 기와도 발견되었다. 팔각건물지와 그것을 중 심으로 서쪽과 북쪽에 건축지가 있고, 또 그 동남으로부터 전돌을 깐 원형 시설이 확인되었다. 팔각형의 기초 부분은 한 변이 7.7m로 판석을 늘어놓았지만 그 내부는 교란( 攪 亂 )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외측 1.15m를 정돈하여 천원석( 川 原 石 )을 깔고, 그 양쪽에 점판암을 세운 폭 0.7m의 우락구가 있다. 우락구의 바깥 변은 9.1m로 남면의 중앙에는 폭 0.8m, 길이 0.85m 정도의 방형 화강암이 남아 있다. 18) 남일룡, 황해남도 봉산군 토성리 고구려 절터에 대하여 ( 조선고고연구 호)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43
44 팔각건물지로부터 서측 7.4m에 남북 18m, 동서 9.1m의 남북에 긴 건물지가 발 견되고, 여기에도 폭 1.4m의 우락구가 있다. 또한 팔각건물지의 중심에서 27.3m 북쪽에도 폭 1.8m의 우락구를 가진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동측은 파괴가 심해 유구 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팔각건물지에서 동남쪽 36m 떨어진 곳에 돌을 깐 원형 시설이 있지만, 이쪽도 파괴가 심하여 직경 2.5m 부분만 남고 모서리는 붕괴되었 다. 유물은 기와가 대부분으로, 팔각건물지를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다. 보고자는 이 지역이 4세기말에 고구려 영토가 되었고 이 사원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건 립 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상세한 보고를 기다려 검토하고 싶다. 3) 함경남도 신포시 오매리 사원지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편 조선유적유물도감 고구려편 2(외국문물종합 출판사, 1990년)에 의해 소개되고 있지만, 그에 따르면 명문이 들어간 금동판이 1988년 6월에 함경남도 신포시 오매리 사원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해당 사원지 는 고구려 발해의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금동판은 발해 문화층에서 출토되었 다고 한다. 금동판에는 못이 박혀 있어서 건물지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 고 있다. 금동판은 길이 41.5cm, 폭 18.5cm, 두께 cm라고 한다. 12행의 명문 이 있고 판독 가능한 문자는 113자이고, 판독 할 수 없는 문자는 26자가 된다고 한 다. 내용은 불교에 관한 것으로, 연호 간지( 干 支 )가 있다. 보고서에는 太 和 三 年 歲 次 丙 寅 二 月 卄 六 日 / 甲 戌 朔 라고 하였다. ( 의 글자는 추정 문자 /은 줄바꿈 표시- 저자). 보고서는 太 和 3년 2월 초하루가 갑술이 되는 경우는 중국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고구려의 양원왕(545~559년)의 연호로 추정한다. 그것이 발해 문화층으로 부터 출토된 것은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지고, 발해에서도 계속 사용되었기 때문이 라고 여겨진다. 또한, 노태돈의 신포시사원지 금동판 명문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역주한국고대사금석문 )은 和 三 年 을 장수왕 14년(426) 갑술일, 장수왕 74년(486) 임술일, 양원왕 2년(546) 갑술일, 영양왕 17년(606) 병술일, 보장왕 25년 44 북한불교의 이해
45 (666) 무술일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19) 또한 명문은 다음과 같다 (노태돈 판독). 의 글자는 추정 문자 는 판독되 지 않는 문자 三 輪 垂 世 耳 所 階 是 故 如 来 唱 圓 教 於 金 河 神 之 妙 宅 現 闍 維 迎 於 後 代 是 以 慧 郎 奉 爲 圓 覺 大 王 謹 造 茲 塔 表 刻 五 層 相 輪 相 副 願 王 神 昇 兜 率 査 勤 弥 勒 天 孫 倶 會 四 生 蒙 慶 於 是 頌 曰 聖 智 契 眞 妙 應 群 生 形 言 暉 世 育 道 成 迷 稟 生 死 形 神 會 性 則 登 聖 明 和 三 年 歳 次 丙 寅 二 月 廿 六 日 戌 朔 記 首 1997년에 이 사원에 대한 논문으로 한인호의 금호지구 매오리 사원지에 대해서 ( 조선고고연구 호)가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이 사원은 고구려 사원으로 발해에 계승되었다고 한다. 20) 하층에서 고구려 기와 등이 출토되고 있어, 앞에서 서 술한 금동명도 태화 3년 병인년(546) 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곳에는 6세 기에 고구려 사원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 사원은 고구려 시대에 창건 된 후 발해 대에도 계승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람 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 19) 노태돈, 신포시 사원지 금동판 명문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역주한국고대사금석문 고구려 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소, 1992, pp.143~146) 20) 한인호, 금호지구 오매리 절터에 대하여 ( 조선고고연구 호)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45
46 다고 한다. 즉, 탑의 서측과 후측에는 좌금당 중금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있 고, 그 북쪽에는 온돌 시설을 갖춘 건물이 있어 승방이라고 추정된다. 또한 우금당 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고, 고구려의 대표적인 1탑3금당 가람이었다고 이해되므 로 이 절을 고구려 사원으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건물도 고구려척( 高 句 麗 尺 )을 기 준으로 설계되고 있어 이것도 고구려 사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 위에, 발해는 그것을 이용하면서도 중심축을 동서로 개량한 것이며, 발해는 고구려 사원 의 기술을 계승 발전 시켰다고 한다. 사원 출토 유물과 건물지 유구의 상황 등은 보다 자세한 보고서의 간행이 기다려 진다. 4) 북한의 고구려 사원 연구 현황과 과제 이상 해방 후 북한의 고구려 사원 발굴 성과에 대해 개관하였다. 이외에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따라서 현재까 지 알려진 북한의 고구려 사원의 발굴조사는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북한에서는 이 러한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고구려 사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그래서 아래 에서는 북한의 고구려 사원의 연구 현황과 과제에 대해 언급해 두고자 한다. 북한에서 고구려 사원이 적극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정릉사의 발굴 이후 이다. 특히 정 릉사의 조사를 근거로 고구려 사원의 가람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효시가 된 것이 이미 북한 사찰연구의 현상과 과제 ( 북한문화재해설 집 사찰건축 편)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21) 한인호의 정릉사 건축의 평면구성에 대 하여 ( 역사과학 호)이다. 22) 한인호는 석탑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건 물이 배치되고, 석탑의 남쪽에 중문, 북쪽에 금당 경루 종루, 그리고 그 북쪽에 강 21) 북한 사찰 연구의 현상과 과제 ( 북한문화재해설집 사찰건축 편, 전게서) 22) 또한 이 논문의 일본어 번역은 김일성종합대학 편, 呂 南 喆 金 洪 圭 역, 5세기 고구려 문화 (전게 서)에 수록되어있다. 46 북한불교의 이해
47 당이 있는 금강사(청암리 폐사)의 가람은, 정릉사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릉사에서는 중앙의 동서에 있는 회랑에 의해 각 건물이 남북으로 구 분되는데, 이러한 구조가 금강사와 백제 신라의 사원에 허용되지 않은 것에 주목하 였다. 그는 정릉사의 중간 회랑은 안학궁( 安 鶴 宮 )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건립 시기 는 안학궁과 거의 같고, 금강사보다도 앞서는 평양 천도 무렵이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그곳에서 이용된 고구려척이 35cm 전후이며, 팔각건물지의 서측 건물지는 동 측보다 커지고 있어서 비대칭법으로 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건축법을 고 구려 사원의 독자성으로 보고 백제와 신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역설했다. 이러 한 이해는 후속 연구에서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이처럼 고구려 사원의 가람과 고구려척이 백제 신라 사원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 견해는, 그 후 한인호의 삼국시기 탑의 변천과 그에 방영된 건축술 ( 역사과학 호)에서도 강조되었다. 즉 한반도에서는 고구려에서 사원이 처음 건축되었 고, 그 고구려 사원이 백제와 신라의 사원 건축에 기준이 되었으며, 삼국시대의 탑 건축의 우수성과 공통성은 고구려의 건축 기술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면서 고구려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한인호의 고구려 건축의 역사적 지위 ( 고고민속논문집 9, 1984)에서도 확인된다. 그 후에도 한인호는 정릉사에 대하여 ( 조선고고연구 호)에 고구려 사 원의 신라 일본의 영향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1탑3금당 의 가람을 사신신앙과 결합한 護 國 護 王 의 불교 사상과 결부되어 형성되었다고 주 장하는 것으로, 이것에 의해서 1탑3금당의 고구려 사원의 독자성이 더 강조되는 것 이다. 그 후 허철준은 정릉사 편면북원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몇 가지 고찰 ( 역사과 학 호)에서 정릉사 문화층이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점, 시대에 따라 다른 두 개의 척( 尺 )이 사용된 점 등을 감안하여 정릉사가 한 번에 건립 된 것이 아니라, 두 차례에 걸쳐 건립되고, 장군총 천추총과 같은 형식의 기와가 출토되고 있기 때 문에 정릉사는 5세기 초의 평양 천도 때 먼저 건축되고, 그 후 5세기 중엽으로 확대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47
48 되었다고 지적했다. 정릉사와 함께 고구려 사원으로 알려져 있던 청암리 폐사는 삼국사기 에 보이 는 금강사로 이해하는 견해가 제출되어 있었지만, 리화선의 고구려 금강사와 그 터자리 구성에 대하여 ( 조선고고연구 호)는 청암리 폐사 출토 기와가 장 군총의 것보다 느리고, 장안성의 그것보다도 오래된 것으로 보고 청암리 폐사가 곧 금강사라는 설을 제창함과 더불어 거기에 사용된 기준척도 정릉사와 동일한 35cm 의 고구려척( 高 句 麗 尺 )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연구를 근거로 이후에 고구려 사원의 가람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연 구가 등장하게 된다. 장상렬의 고층 나무탑을 기본으로 하는 1탑3금당식 사원건축 형식의 력사적 연원 ( 력사 과학 호)은 요동성총에 그려진 목탑이 고구려 최초기의 사원형태를 나타낸다고 하고, 그 후 5세기 초의 정릉사를 고구려 사원 건 축의 중기 단계로 보며, 498년의 금강사를 후기 단계로 본다. 이와 같이 고구려 사 원은 중기 이후, 1탑3금당이 되지만, 그것은 불교 사원 건립 후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 내부에서 1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었 다고 한다. 이러한 고구려 사원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그 후 리인동에 의해 적극 적으로 주장된다. 리인동의 1탑 3금당식 절 건축 형식의 형성 과정에 대하여 ( 조선고고연구 호)는 고구려 사원의 변천 과정을 1 맹아기 2 초기단계 3 중기단계 4 완 성단계로 나누어 논한다. 1 맹아기의 사원에는 초문사와 이불란사가 해당하고, 기 존 건물을 개축하여 사원이 형성되었다고 이해한다. 2 초기단계는 4세기 말 ~ 5세 기 초로서, 탑이 건립되는 시기라고 한다. 3 중기단계는 정릉사가 해당하고, 1탑3 금당의 가람이 형성된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4 완성단계는 금강사가 해당한다고 한다. 3 중기단계의 정릉사 단계에서는 탑의 동서 건물이 비대칭이었지만, 4 완성 단계가 되면 탑의 동서의 크기는 동일하게 되어 동서 대칭이 된다고 이해하면서 고 구려 사원 가람의 변천을 종합적으로 논했다. 또한 이듬해 리인동은 1탑 3금당식 절 배치의 고구려적 성격 ( 조선고고연구 48 북한불교의 이해
49 2003-2호)을 발표하고 고구려 독자의 1탑3금당의 가람 배치의 연원이 전실 후실 측실로 구성된 안악3호분 등이 고구려 무덤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릉사의 가 람 배치가 비대칭이 아님을 근거로 정릉사는 1탑3금당의 가람 완성시기의 전 단계 에 해당하며, 그것은 1탑3금당이 외래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국 안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고 완성된 것임을 나타낸다고 하면서 1탑3금당의 고구려 발생설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한인호 이래로 1탑3금당 고구려국내 발생설은 연구 의 진전과 함께 강조되었으며, 신라 일본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역설되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지금까지의 주요한 발굴 조사에 의거한 북한의 고구려 사원 연구 동향 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 외에도 북한에서 고구려 사원으로 이해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면, 평안남도 순천시 용봉리에서 발견된 요동성총에는 요동성이라고 생각되는 성곽도가 있고, 거기에는 탑으로 보이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탑으로 간주하고, 이를 광개토대왕이 395년에 건립한 것으로 이해하며, 고 구려 사원의 초기적인 양상을 나타낸 것으로, 당시 다층 목탑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3) 삼국유사 권3 고려 영탑사에는 팔면칠급석탑 이 보이므로 고구려 에도 석탑이 존재했다고 주장하고, 고구려 사원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평가한다. 24) 또한 평양 평천구역 평천동에서는 금당 반가상과 永 嘉 七 年 銘 의 광배가 발견되었는 데, 그곳은 한때 고구려 시대의 사원이었다고 생각된다(평천리사지). 25) 앞에서 서 술한 1942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에 언급된 남현사 폐사 도 적극적으로 고구 려 사원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평양시 토성리에서는 樂 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고 있는데, 이것을 樂 寺 址 로서 고구려 사원으로 간주하고 있 23) 장상렬, 요동성탑 ( 고고민속 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呂 南 喆 金 洪 圭 역, 고구려 문화 ( 同 朋 社, 1982) 등 24) 한인호, 삼국시기의 절간 유작에 관한 연구 ( 고고민속논문집 12, 1990) 25) 梅 原 末 治, 평양 평천리 출토의 금동 반가사유상 ( 조선학보 31, 1964) 이에 대한 연구는 田 中 俊 明 의 고구려 금석문 - 연구의 현황과 과제 ( 조선사연구회논문집 18, 1981)에 상세하게 논의되 고 있다.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49
50 다. 26) 이 외에도 조선유적도감 에서는 평양시 모란봉 구역 인흥1동의 중흥사 당 간지주를 고구려의 것으로 소개하고, 이 절을 고구려 사원으로 본다. 27) 이 당간지주 는 현재 평양의 광법사로 옮겨졌지만 이 광법사도 고구려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 다고 이야기 된다. 이 외에도 모란봉 남쪽의 중턱에는 고구려 시대의 돌계단과 사자 상이 있어서 고구려 사원인 영명사가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28) 이처럼 북한에서는 393년에 광개토왕이 평양에 9사( 寺 )를 건립했다는 삼국사 기 의 기록과 관련시켜 평양의 사원을 적극적으로 고구려 사원으로 본다. 덧붙여 서, 손영종의 고구려사의 제문제 (사회과학원, 2000년, 나중에 신원원에서 2000 년에 다시 간행함)는 평양의 고구려 사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원을 지적하고 있다. 1. 영명사(중구역 모란봉) / 2. 상오리 폐사(대성구역 림흥동)/ 3. 광법사(대성 구역 대성동)/ 4. 서풍사지(대성구역 대성동) / 5. 금강사(대성구역 청암동) / 6. 대왕사지(동대원구역)/ 7. 산사지(동대원구역) / 8. 중흥사(모란강구역) / 9. 탑 제동 사지(대동강구역 탑제동) / 10. 평천리 사지(평천구역)/ 11. 남현사(악랑구 역 악랑동) / 12. 악랑동 신사(악랑구역 정오동) / 13. 류현리 사지(력포구역 류현 동) / 14. 사동후산(대동구역) / 15. 청호동 폐사(대성구역) / 16. 노산로 폐사 (대성구역) / 17. 율리 폐사(선교구역) 그러나 이러한 사원 모두를 적극적으로 고구려 사원으로 간주할 구체적인 근거 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법사를 고구려 사원으로 여기는 것은 광법사사 적비 에 승려 아도화상이 후진의 부견으로부터 와서 불전을 만들었다( 僧 阿 道 和 尚 符 秦 より 来 たり 仏 殿 を 作 る) 라고 한 것을 근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엄 격한 사료 비판에 기반하여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광법사의 5층탑에 대해서도 26) 한인호, 고구려 건축의 역사적 지위 ( 고고민속논문집 9, 1984) 등 27)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편, 조선유적유물도감 고구려편 2(외국문물종합출판사, 1990, pp ) 28)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편, 조선유적유물도감 고구려편 2 (전게서, pp.285~286) 50 북한불교의 이해
51 고려시대의 것으로 생각되므로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며 29) 이에 대해서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중흥사도 당간지주가 고구려 양식을 띠고 있고 주변에서 고구려 기와가 다수 발 견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고구려 사원으로 이해되고 있다. 30) 그러나 일본에 서는 오히려 고려 시대의 사원으로 간주하고, 중흥사 자체도 고려의 문종 연간에 중 흥사 조영에 관한 기술이 있기 때문에, 고려 시대에 건립 됐다는 의견도 있다. 31) 이 처럼 북한의 고구려 사원 이해에 대해서는 이론도 적지 않고, 유적 유물을 통한 종 합적인 검토가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상세한 정보의 제시가 기다려지는 것이다. 3. 북한의 고려 사원 조사 - 개성 영통사 - 이상에서 지금까지 북한의 고구려 사원 연구 동향에 대해 언급하였지만, 고구려 사원 이외에도 정릉사처럼 해방 후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복 원된 사원이 있다. 그것이 영통사이다. 마지막으로 그 성과에 대해 개관해 두기로 한다. 영통사는 개성 시내에서 약 10km 동쪽 방향의 개성시 용흥동 오관산 남쪽에 있는 고려 시대 사원이다. 고려 초에 창건된 이후 18세기경까지는 폐사되어 있었다고 한 다. 세키노 다다시( 関 野 貞 )가 1912년에 정리한 조선고적조사약보고 에는 廢 靈 通 寺 大 覺 國 師 碑 同 刹 竿 支 柱 同 五 重 石 塔 同 三 重 石 塔 만 남아있다고 전한 다. 덧붙여서 세키노( 関 野 )는 영통사의 석탑을 고려시대의 것으로 생각하고, 영통 29) 東 潮 田 中 俊 明,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중앙공론사, 1995, p.326) 30) 한인호, 삼국시기의 절간 유작에 관한 연구 ( 고고민속논문집 2, 1990) 31) 東 潮 田 中 俊 明,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중앙공론사, 1995, p.326) 또한, 齋 藤 忠 은 이 당간지주를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지만, 신라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齋 藤 忠, 북 조선고고학의 새로운 발견, 雄 山 閣, 1996, p.109)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51
52 사에는 크고 작은 3기의 석탑이 있는데 형태가 평범하지 않다( 霊 通 寺 モ 大 小 三 基 ノ 石 塔 アレトモ 形 態 平 凡 ナルヲ 免 カレス) 고 보고하고 있다. 32) 조선고적도보 6(조 선총독 부, 1918년)에도 실려 있는 영통사 사진은 완전히 폐사된 모습을 보이고 있 다. 그 후 1996년에 대정대학이 창립 70주년 기념학술연구 사업이었던 고려 불교 유적 조사 연구 로 영통사 조사를 북한에 신청하여 허락받고, 1997년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와 현지 공동 답사를 거쳐 1998년과 1999년에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 33) 조사는 1998년 4월 중순부터 5월말까지(1차 발굴), 같은 해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제2차 발굴), 1999년 4월부터 7월 중순까지(제3차 발굴), 같은 해 7월 말 부터 10월 중순까지(제4차 발굴)의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유적은 사원 터의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흐르는 두 시냇물이 합류하는 곳에서 남문 축대까지 의 입구구역, 당간지주와 대각국사비가 있는 남문 축대에서 중문 축대까지의 정원 구역, 5층 석탑과 3층 석탑이 있는 중문 축대에서 북측 축대까지의 기본가람구역, 의천의 사당구역과 부도구역으로 구성된다. 제1차 조사에서는 석탑의 북쪽 건물지 를 중심으로 하고, 제2차 발굴에서는 5층 석탑과 3층 석탑 그리고 그 남쪽의 건물지, 중문지, 중문축대, 남 서쪽의 회랑, 대각국사비, 당간지주를 조사했다. 제3차 발굴 에서는 제1차 발굴에서 조사된 건물지 북쪽의 두 개 건물지, 기본가람구역의 서측 을 조사했으며, 제4차 발굴에서는 기본가람구역의 동쪽 지역의 건물지, 의천의 묘 지, 부도구역, 입구구역, 남문지와 축대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입구구역에서는 연못[ 池 ] 다리 소정지( 小 亭 址 ) 도로 유구가 발견되었다. 연못 의 유구는 남북 약 37m, 동서 약 12 m이다. 연못의 북쪽 약 31m에 다리 흔적이 있 다. 교대( 橋 台 ) 및 교각이 남아있어 보고서는 이것을 문헌에 보이는 심해교( 心 海 橋 ) 로 간주한다. 이 다리의 동각대( 東 脚 台 )로 이용된 바위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고 생각되며, 그 소정지에는 기단지 주지( 柱 址 ) 계단지가 남아있다. 도로의 흔적 32) 조선총독 부, 조선고적조사약보고 (조선총독 부, 1914, p.40) 33) 대정대학종합불교연구소 편, 영통사지 ( 大 正 大 學 出 版 會, 2005), 이하, 영통사의 발굴상황에 대해 서 같은 책에 의거한다. 52 북한불교의 이해
53 은 연못의 서측 바위를 조각해 L자형의 단을 만들고 그 단 위에 쌓아 올린 석적( 石 積 )의 위에 있다. 이 도로는 사지( 寺 址 )의 서쪽을 흐르는 개울을 건너 남문으로 통 한다. 이 입구에는 霊 通 洞 門 五 冠 山 이라고 새겨진 자연 반석이 있다. 기본가람구역은 건물지의 배치 상태에 따라, 서측가람구획과 동쪽가람구획으로 나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우선, 5층 석탑 등이 있는 서측가람구역에서는 5층 석탑 으로부터 약 6m 북쪽에 사면을 돌로 쌓아 올린 제1건축지 기단부가 발견되었다. 제 1건물지는 정면 3칸(약 11.6m), 측면 3칸(약 8.9m), 그 바깥쪽에는 길이 100~ 130cm, 높이 30cm의 기단석이 동서 14.2m, 남북 12.8m로 둘러싸여 있다. 이 제1건 물지의 남쪽 기단 중앙에는 계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석재가 남아있고, 계 단은 난간석을 한 장씩 세우고 그 사이에 디딤돌을 가로로 여러 개 설치하였다고 생 각된다. 제1건축 제1건물지의 약 20cm 하층에서 서로 겹친 두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상 층의 제1건축 제2건물지는, 제1건축 제1건물지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파괴 가 심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은 잔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초석 5개와 근고석( 根 固 石 )이 확인되고 있다. 정면 5칸(약 15.3m), 측면 4칸(약 10m)으로, 사면에는 동서 약 15.2m, 남북 약 18.4m, 높이 약 1.35m의 기단이 둘러싸고 남쪽 중앙 부분이 조 금 앞으로 나오고 있어 돌출형을 이룬다. 그 하층의 건물지는 유적의 파괴가 심하긴 하지만 제2건물지보다 덜 하다. 또 제2건물지의 기단보다 약 1m 안쪽에 치우쳐져 있으며, 북쪽은 기단석이 남아있다. 보고서는 남아 있는 기단을 제3건물지로 추정 한다. 정면 5칸(약 13.5m), 측면 3칸(약 8m)이며, 기단은 제2건물지와 같은 모양의 돌출형으로 남쪽이 약 16.5m, 동서 약 13.3m, 높이 약 1.35m이다. 이상의 것으로 보아, 제1건물지는 적어도 세 번 개축되었지만, 기단은 기본적으 로는 최초의 것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제1건물지의 남쪽 약 17m 떨어진 곳에 제2건 축지가 있다. 여기서는 두 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상층 문화층에서는 초석이 일 부 발견되고 있지만, 크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이동해 온 것으로 추 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북 2열로 동서 6개의 근고석이 발견되고, 정면 5칸(약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53
54 23m), 측면 3칸(약 15m)의 건물지(제2건축지 제1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또한, 중 문 축대의 남쪽에는 동서로 여섯 개의 방형 초석이 나란히 있다. 보고서는 이 초석 을 제2건축 제1건물지의 것이라고 추정하고, 누각식 건물이었을 가능성을 지적한 다. 길이 100~160cm, 폭 30cm, 높이 30cm 크기의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기단이 동 서 약 30m, 남북 약 17.5m의 길이로 북서쪽에 일부 남아있다. 그 하층에서는 회랑 과 문지( 門 址 ), 지하수로가 발견되었다. 제1건물지의 북쪽 약 17.3m에는 제3건축지가 있다. 여기에서는 다른 시대의 네 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가장 상층에서 정면 5 칸(약 11.6m), 측면 5칸(약 11m) 의 건물지가(제3건축지 제1건물지), 그 서측에는 정면 5칸, 측면 5칸(약 11.6m ), 측 면 5칸(약 11m)의 건물지(제3건축지 제2건물지)가 확인 되었으며, 이 건물지들은 대칭을 이루고 있어서, 보고서는 종루와 경루로 간주한다. 제1건물지와 제2건물지 에는 각각 동서 약 3.8m, 남북 13.8m, 동서남북 약 13.8m의 기단이 둘러싸고 있다. 그 하층에서는 정면 7칸(약 23.5m), 측면 5칸(약 10.5m)의 건물지(제3건축지 제3건 물지)가 발견되었다. 이 건물지의 남쪽 기단에서는 세 개의 계단지도 발견되고 난간 의 지지돌, 발판대의 지지돌 등도 확인되고 있다. 계단의 폭은 중앙의 것이 약 3m, 그 동서가 약 2.5m이다. 제3건물지 주변에서는 동서 약 28.5m, 남북 약 14.5m의 기 단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그 하층에서는 건물지(제3건축지 제4건물지)가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는 파괴가 심하여 초석은 발견되지 않았고, 동서 약 17m, 남북 약 11m의 기단만이 확인된다. 제3건축지의 북쪽 기단으로부터 약 7.5m 북쪽으로는 제4건축지가 있다. 여기에 서도 네 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맨 위의 문화층에는 돌출 모양의 기단이 있고, 거기에는 동서 두 개의 건물지가 확인된다. 동쪽의 제4건축지 제1건물지는 정면 4 칸(약 12m), 측면 2칸(약 5.6m)이다. 건물의 남쪽과 서쪽에는 기단의 흔적이 발견 되었지만 파괴가 심하다. 기단은 동서 약 15m 이상, 남북 약 7m 이상 있었다고 생 각된다. 서쪽 제4건축지 제2건물지는 파괴가 현저하여 초석 1개만이 확인된다. 그 하층에서는 정면 7칸(약 20.1m), 측면 3칸(약 7.4m)의 제4건물지 제3건물지가 발 54 북한불교의 이해
55 견되었다. 이 건물지 주변에는 길이 cm, 폭 25-35cm, 높이 20-25cm 크기의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기단이 있고, 동서 약 22.5m, 남북 약 10.3m이다. 또한 이 제3건물지의 하층에서는 정면 5칸(약 13.5m), 측면 3칸(약 7.2m)의 제4 건축지 제4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동서의 기단은 파괴가 현저하지만, 남북의 기단은 각각 2단, 1단 씩 남아있고, 이 기단은 동서 약 17m, 남북 약 10.3m이다. 또한 제1 제2건물지의 상층에서도 규모 등은 불분명하지만, 건물지가 확인되고 조선 시대 유 물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서측가람구역에는 남쪽 서쪽 동쪽 회랑이 확인되고 있다. 남쪽 회랑은 중문으로부터 동서로 각각 5칸(약 14.5m)이 있다. 서쪽 회랑은 잔존 상황이 좋지 않 지만, 동서 1칸(약 1.3m), 남북 27~28칸(약 83.7~86.8m)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쪽 회랑도 보존 상황은 좋지 않다. 그 북쪽 끝은 불분명하지만 서측가람구 역과 동측가람구역에서 공동으로 이용한 복회랑( 複 回 廊 )이었다. 북쪽 회랑도 교란 과 파괴가 심하여 분명하지 않지만, 보고서는 서측 가람의 제4건물지의 동쪽 벽 서 쪽 벽으로 이어졌다고 추정한다. 또한 이들 회랑의 하층에서도 회랑 터가 발견되고 있다. 초석 등은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남쪽 회랑 동쪽에 근고석이 있고 동쪽 회랑 남쪽에 동서로 2개의 초석이 남아있다. 이로 볼 때 하층의 회랑은 그 위의 회랑보다 도 남북의 길이가 6.5m 이상 짧고, 동서 폭이 2m 이상 줄어들며, 동쪽 회랑과 서쪽 회랑 사이도 4m 이상 좁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동측가람구역에서는 중문 축대로부터 약 17m 북쪽에서 건물지가 발견되었다(제 1건물지). 여기에서는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된다. 최상층은 경작 때문에 교란이 심 하고, 건물지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 하층에서는 정면 3칸(약 10m), 측면 3칸(약 9.3m)의 제1건축지 제1건물지가 존재하며 기단 일부가 남아있다. 기단은 동서 약 12.6m, 남북 약 12 m로 추정되고 있다. 그 하층에서는 정면 3칸(약 6.6~7.2m), 측면 3칸(약 6.6~7.2m)의 제1건축지 제2건물지가 발견되었는데 파괴가 심하다. 이 건물 지의 하층에도 건물지가 확인되지만, 파괴가 심하여 건물지의 크기 등은 불분명하 다.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55
56 제1건축지의 북쪽으로 약 8.5m의 한 단 높은 곳에는 제2건축지가 있다. 여기에 서는 정면 7 칸(약 27.3m), 측면 3칸(약 11.9m)의 제2건축지 제1건물지가 발견되었 다. 그 외측에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쪽만 1단의 기단이 일부 둘러싸고 있 다. 남쪽 기단의 남은 부분은 약 32m로, 그 중심 부분에는 난간 지지돌과 계단의 디 딤돌이 남아 있으며, 계단은 남북 약 1.2m, 동서 약 3.4m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하층 에서는 정면 5칸(약 11.6m), 측면 3칸(약 8.6m)의 제2건축지 제2건물지가 발견되 었다. 또 그 하층에서는 고려시대 또는 그 보다 앞서는 신라시대 기와 조각이 출토 되었으므로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제2건물지 제3건축지), 건물지의 규모 등은 불분명하다. 동측가람구역에서도 회랑 터가 발견되었지만, 남쪽 동쪽 서쪽만이 밝혀졌고, 북쪽 회랑은 불분명하다. 남쪽 회랑의 초석은 남아 있지 않지만, 12개의 근고석이 발견되었다. 동쪽 회랑은 남북 12칸(약 37.2m), 동서 1칸(약 3.1m)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회랑은 서측 가람의 동쪽 회랑이다. 조사 결과 보고서는 영통사가 고려 초기부터 폐사가 되었던 16세기경까지 적어 도 세 번 중수되었다고 한다. 제1차 가람은 마지막에 세워진 문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6.5m에 문이 있었고, 그 북쪽 약 13m에 고려의 특징을 겸비한 3층 석탑이 있었 다. 또 거기에서 약 6.5m 북쪽에 제1건축지 제1건물지가 있었고, 그 북쪽 약 15.5m 에 제3건축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북쪽에도 건물이 있었는데, 대각국사비의 기술 로 볼 때 식당과 승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2차 가람은 의천이 영통사에 들어간 시기를 전후로 한 11세기 후반 또는 12세 기 초부터 13 세기 말 14세기 초까지 중수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기에 사역( 寺 域 )이 확대되고, 새로운 건물도 세워졌다고 본다. 중문은 제1 가람보다도 약 6.5m 남쪽에 조성되고, 그 남쪽에는 남문도 설치되었다. 이어진 회랑과 함께 규모도 커지 고 동측구역에 새롭게 가람이 조성되었다. 제1 2건축이 신설되면서 서측가람의 동 쪽 회랑은 복회랑( 複 回 廊 )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5층 석탑이 3층 석 탑의 남쪽에 세워지고, 제1 3건물도 이 시기에 확대된 것으로 추정한다. 56 북한불교의 이해
57 그 후, 의천이 입적 한 1101년경에는 제4건물지 제3건물지가 축성되고, 동측 가 람에는 제1 2건물지가 신설되어 남쪽으로 확대되면서 남문도 신설되었다고 한다. 또한 3층 석탑 앞에 누각식 건물이 세워졌고, 5층 석탑의 동남 서남에 있던 종루 경루도 제3건축지로 옮겨 축성되었다고 추정한다. 이후 제3차 가람 중수 시기에 남문이 없어지고, 남문이 있던 곳의 서북쪽에 당간 지주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원은 쇠퇴해 갔다고 본다. 영통사에서는 기와와 도자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가장 많았던 것이 기 와 조각이다. 서쪽 가람 제1 3 4건축지에서는 大 施 主 嘉 善 大 夫 世 文 両 主 養 施 主 李 成 武 両 主 瓦 化 主 正 化 天 王 施 施 主 施 라고 양각된 명문 기와 등이 출토되었 다. 황해남도 봉천군 월산리에서 발견된 청자는 10세기 무렵의 형태 제작 기법 유 약과 유사한 청자가 출토되었고, 서측 가람의 3층 석탑은 통일신라와 고려 양식을 겸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화엄수좌원통이중대사균여전 에 의하면, 균여가 26세(948년)에 영통사 의순으로부터 불교를 배웠다 는 기사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영통사는 948년 이전인 10세기 초에는 성립되었다고 한다. 한편, 폐사 시기이지만, 제1건축지 제3 문화층에서는 가정42년(1564) 이라고 쓰 인 명문 기와와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사용된 청화백자가 출토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16세기 말 17세기 초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또 송도유람기 에 영통사가 화재를 입었다고 하는 기사에 주목한다. 영통사 발굴시에는 숯과 재가 있는 층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송도유람기 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이 때문에 영 통사는 16세기 말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발굴 성과를 토대로 영통사는 현재 복원되어 있다. 小 結 이상에서 지금까지 북한에서 고구려와 고려 사원의 발굴 성과 연구 상황에 대해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57
58 언급해 왔다. 입수한 정보는 별로 많지 않고, 한정된 자료에서 연구 상황의 정리 역 시 충분하지 못한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동향에서 볼 때, 적어도 북한 사원의 종합적인 발굴 복원은 정릉사와 영통사뿐이므로 적극적으로 고대 사 원의 발굴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에서 사원이 경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구려 사 원에서 언급했듯이, 평양 방광사( 方 広 寺 )처럼 발굴되어 있지는 않으나, 복원되어 있는 것도 일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그들을 고구려와 결부시켜 이 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작업은 발굴 조사에 근거한 검증이 필수적이다. 정릉 사 이외에도 본문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사원의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상세한 보고는 거의 없다. 사원 연구의 진전을 위해서도 발굴 성과의 공개가 필요하 고, 그것을 근거로 한 연구자들의 논의도 중요하다. 북한에 있어서 고대 사원의 발 굴 조사 연구는 고구려 사원의 백제 신라 및 심지어 왜( 倭 )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고려 조선 시대 사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해당 시기 의 한반도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보다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연구의 기반이 정비되어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No 지역 No 사원명 No 지역 No 사원명 평양특별시 개성직할시 광법사 동금강사 정릉사 영명사 법운암 용화사 동금강암 관음사 대흥사 안화사 화장사 북한 지역의 사원 황해북도 함경남도 성불사 심원사 원명사 귀진사 양천사 용흥사 안불사 광제사 정광사 가퇴사 귀주사 58 북한불교의 이해
59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59 * 참고문헌 북한문화재해설집 (사찰건축편), 조선의 절안내 조선문화보존사 복흥사 동덕사 평안남도 안국사 정진사 법흥사 함경북도 개심사 쌍계사 청계사 곡천사 관해사 (말사) 기린사 관음사 대승암 불정암 겸불암 평안북도 금광사 천주사 서운사 만년사 개원사 양화사 심원사 보월사 보현사 보현사상원암 보현사불영암 보현사능인암 보현사금강암 보현사축성전 보현사하비로암 화장암 계조암 용문사 강원도 석왕사 표훈사 정양사 표훈사보덕암 안변보현사 건봉사 신계사 장안사 유점사 마하연사 용공사 황해남도 신광사 강서사 묘음사 묘음사현암 자혜사 패엽사 월정사 원정사 양강도 1 2 중흥사 종덕사
60 제2주제 * 井 上 直 樹 34) ** 목 차 ** 글을 시작하며 조선 머리말 국립문화재연구소 60 북한불교의 이해
61 의 절안내 조선문화보존사 김일성종합대학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유적 김일성종합다학출판사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61
62 62 북한불교의 이해
63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63
64 塼 塼 64 북한불교의 이해
65 塼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65
66 66 북한불교의 이해
67 김일성종합대학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유적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67
68 68 북한불교의 이해
69 塼 塼 塼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69
70 塼 塼 남일룡 황해남도 봉산군 토성리 고구려 절터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호 70 북한불교의 이해
71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71
72 한인호 한인호 금호지구 오매리절터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호 72 북한불교의 이해
73 의 과 한인호 정릉 사건축의 평면구성에 대하여 호 한인호 의 과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73
74 한인호 한인호 삼국시기 팁의 변천과 그에 방영된 건축술 역사 과학 호 한인호 고구려 건축의 력사적 지위 고고민속론문집 년 한인호 정릉사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호 허철준 정릉사 편면북원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몇가지 고찰 역사과 학 호 리화선 고구려 금강사와 그 터 자리 구성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호 74 북한불교의 이해
75 장상렬 고층나무탑을 기본으로 하는 1탑3 금당식 사원건축형식의 력사적연원 력사과학 호 리인동 리인동 탑 금당식절건축형식의 형성과정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호 리인동 탑 금당식절배지의 고구려적성격 조선고고연구 호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75
76 한인호 장상렬 료동성탑 고고민속 호 한인호 삼국시기의 절간유작에 관한 연구 고고민속론문집 년 한인호 고구려건축의 역사적지위 고고민속론문집 년 76 북한불교의 이해
77 서풍사 대왕사 한인호 삼국시기의 절간유작에 관한 연구 고고민속론문집 년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77
78 78 북한불교의 이해
79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79
80 80 북한불교의 이해
81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81
82 82 북한불교의 이해
83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83
84 84 북한불교의 이해
85 북한의 고구려 고려 사원 85
86 조선의 절안내 조선문화보존사 86 북한불교의 이해
87 제3주제 강 현_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88
89 제3주제 34) 강 현 * ** 목 차 ** 1.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 2. 북한의 문화재 보존 현황 3. 북한 소재 불교문화재 관련 교류협력 방향과 보존의 과제 4. 글을 마치며 남북 분단 이후 오랜 기간의 시간이 흘렀으며, 이러한 오랜 시간의 단절은 한민족 이면서도 이질성이 증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나마 1980년대 이후 조금씩 북한에 관한 정보들이 소개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들어서는 교류사업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분단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재 분 야도 이러한 교류 과정을 통해 점차 상호간의 이해가 증진되고 있으나, 북한 체제의 폐쇄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그 전모가 모호한 실정이다. 본고에서는 단편적이나마 지금까지 알려진 북한 불교문화재의 현황을 살펴보고 향후의 교류협력 과제를 모색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 *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89
90 지만 불교 문화재의 현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자료로 알려져 왔다. 물론 북한의 체제 속성상 지금도 그 전모의 파악이 어려운 점이 있으나, 1980년대 이후 제한적이나마 일본이나 제3국을 통해 수집된 북한에서 출간된 문화재 관련 실태와 현황 자료가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국내에서 재정리한 자료집의 발간이 간 헐적으로 이루어져왔다 1). 또한 그와 함께 관련된 논고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2). 1980년대 필자가 속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북한의 문화재와 관련된 자료 수집 작업을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자료집의 발간 등의 사업을 시행하여 왔다. 아래에서 는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간단히 북한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의 과제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1.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자료들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그 전모가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이후 민 1)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북한문화재 실태와 현황, 국립문화재연구소, 1985 ; 북한문화재대관, 한국안보교육협회, 1991 ; 북한문화재자료목록,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 북한문화재도록, 문화재관 리국 문화재연구소, 1993 ;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사진으로 보 는 북한회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 박대남, 북한의 문화재 실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 논고로 발표된 것은 아래와 같다. 김봉건, 북한문화재 조사와 전망, 문화재 제30호, 국립문화재 연구소, 1997, pp.109~122 ; 김봉건, 북한 석조물 실태조사, 북한문화재해설집 Ⅰ, 국립문화재 연구소, 1997 ; 이호관, 북한의 문화유산, 박물관휘보 14, 2003, pp.5~40 ; 지병목, <문화유물 보호법>을 통해 본 북한의 문화유산, 문화재 제36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pp.39~67 ; 하문 식, 북한의 문화재 관리와 남북교류, 정신문화연구 106, 청계사학회, 2007, pp.279~305 ; 최오 주, 남북통일 대비 문화재보존관리 정책연구, 호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 박영근, 남 북한 문화재 교류협력방안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 최성 은, 불교문화재 관련 대북교류의 과제, 통일시대를 위한 민족문화자산 남북협력, 통일부 문화 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 pp.59~ 북한불교의 이해
91 간부분에서도 자료의 소개들이 진행되었으며, 정부차원에서도 북한의 문화재와 관 련된 내용의 자료 수집이 추진되었으나, 북한 체제의 특성에서 기인한 폐쇄성으로 인하여 이러한 자료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필자 가 속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도 1980년대부터 북한의 문화재 관련 사업을 추진하 기 시작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는 작업을 추진하여 왔는데, 구체적으 로는 미술공예연구실의 주도로 1984년 11월부터 국내외 관련기관이나 학자를 통해 관련 자료를 간접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사업 추진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자 관계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북한문화재연구 위원회>를 구성하고, 문화공보부, 국토통일원, 국가안전기획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의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문화재 관련 자료를 지 속적으로 수집 분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수집된 자료는 보고서로 발간하여 소개하였는데, 1985년에는 북한문화재 실태와 현황, 1990년에는 북한문화재 관계문헌 휘보 등의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또한 1991년 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고학, 고건축, 역사학 등의 조사자료를 도면과 함께 수록한 북한문화유적발굴개보( 槪 報 ) 를 발간하였으며, 1992년에는 당시까지 수집된 북한문화재 관계 도서, 필름, 사진 및 비디오테이프 등의 목록을 정리한 북한문화재 자료목록 을 발간하였다. 이 시기까지의 사업은 수집된 자료 를 정리하고 목록을 제공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고서 발간 작업이 추진되었는데, 이후의 작업은 주로 수집 된 자료를 각 분야별로 재정리하여 해제를 달거나 간단한 분석을 시도하는 내용으로 발전하였다. 그러한 보고서로 1997년부터 발간된 북한문화재해설집 3) 을 들 수 있으 며, 이외에도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지속적으로 보고서 발간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집된 북한의 불교문화재의 현황을 토대로 하 3) 현재까지 북한문화재 해설집 은 총 4권이 발간되었는데, 석조물편(Ⅰ권, 1997), 사찰건축편(Ⅱ권, 1998), 일반건축편(Ⅲ권, 2002)의 3권은 건축문화재에 대한 해설을 수록하였으며, 2004년 발간한 Ⅳ권은 북한의 주요박물관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자로 발간하였다.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91
92 여 유물과 유적으로 구분하여 개관해 보고자한다. 일반적인 문화재의 분류방법으 로 보면 불교문화재도 크게 회화, 조각, 공예 등의 동산문화재와 사찰, 사지 등 부동 산문화재의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북한의 문화재 구분법도 유적과 유물로 대 별하므로 이러한 구분법에 따라 문화재의 현황을 고찰하여 보고자한다. 가. 동산문화재(유물) 현황 먼저 북한의 불교문화재 중 유물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존 재하는 불교문화재는 그 소장 위치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즉 박 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과 사찰에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다. 우선 박물관의 소장 유물을 개관하여 보고자 한다. 북한에서 박물관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사립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국립이나 공립이라 할 수 있는데, 전국 각지에 세워져 있는 혁명사적관을 비롯한 기타 각종 전시관은 300여 곳에 이른다 4). 그 중 특히 각 시도에 설치된 국립박물관에서 중요한 불교 유물을 소 장하고 있다. 주요 지역별로 설립된 국립박물관은 해방 이후 관련 법령을 정비하면 서 북한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유적을 발굴하고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전국 각지에 박물관을 설립하는 정책이 수립되어 1965년까지 평양특별시를 비롯한 각 지방에 박물관을 설립함으로써 형성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1일 개관한 조선중 앙력사박물관을 비롯하여 도청 소재지급인 청진, 해주, 신의주, 함흥, 사리원, 강계 등에 역사박물관이 연이어 개관되었는데 5), 이 중 특히 불교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은 조선중앙력사박물관(평양특별시), 향산력사박물관(평안북도), 고려박물 관(개성), 사리원력사박물관(황해북도), 청진력사박물관(함경북도), 조선미술박물 관(평양), 평성력사박물관(평안남도) 등으로,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개성 고려박물 4) 장경희, 북한의 박물관, 예맥, 2011, p.11. 5) 장경희, 앞의 책, p.10. ; 지병목, 북한의 주요 박물관과 문화유산, 북한의 주요박물관 소장품(북 한문화재해설집 Ⅳ),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p 북한불교의 이해
93 관을 제외하면 소장된 불교미술품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6) 지금까지 파악된 것 으로 보면 북한의 박물관 소장 불교문화재 중 가장 많은 것은 불교조각이고 그 다음 석탑과 비( 碑 )와 같은 석조문화재, 범종과 반자 등의 금속공예 순이며, 불교회화는 그 수가 매우 적다. 현재 북한의 국립박물관 현황과 소장하고 있는 유물의 특성을 개관하면 <표 1>과 같다. 소재지 박물관명 개관일시 유물수량 불교관련 문화재 소장 현황 비고 평양 특별시 개성 직할시 조선중앙력사 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 조선민속박물관 총15만여점 국보 120, 준국보 66 국보 83, 준국보 102 국보 64, 준국보 87 고려박물관 약 9천여점 영강7년명 금동광배( 永 康 七 年 銘 金 銅 光 背 ), 평양 원오리( 元 五 里 ) 출토 소조 보살입상 등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 등 의 불교조각 30구 정도 소장 조선후기 아미타불도 1점 등 불화 다수 소장 전 적조사지 철조불상 등 개성 인근 수 집 고려시대 불교문화재 불일사 5층탑, 현화사 7층탑 등 석조물 야외전시 함경북도 청진력사박물관 약 1만여점 고려시대 금동보살좌상 1구 함경남도 함흥력사박물관 약 5천여점 자강도 강계력사박물관 석왕사 사자모양 놋향로 평안북도 향산력사박물관 약 5천여점 팔만대장경, 금동미륵보살반가상, 고려 시대 청동 다라니당( 陀 羅 尼 幢 ), 유점사 범종 등 신의주력사박물관 약 5천여점 평안남도 평성력사박물관 약 1만여점 금동여래입상 1구, 범종 1점 등 황해북도 사리원력사박물관 고려시대 청동 불보상살 3구, 금강령 등 황해남도 해주력사박물관 약 3천여점 강원도 원산력사박물관 천여점 표 1. 북한의 지역별 주요 국립박물관 현황 장경희, 북한의 박물관, 예맥, 2011, p.12. 수록 표를 수정 재작성 강원도 석왕사,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 등 사찰과 사지에서 수습한 불상, 향로, 범종 등 개성 성균관 대성전, 동무, 서무, 계성사 강계 아사의 동헌과 서헌 보현사 6) 최성은, 불교문화재 관련 대북교류의 과제, 통일시대를 위한 민족문화자산 남북협력, 통일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 p.61.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93
94 나. 부동산문화재(유적) 현황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유물 외에 가장 중요한 불교 유물의 소장처는 당연 한 것이지만 사찰이다. 현재까지 북한의 사찰에 소장된 문화재는 도록이나 자료집 등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사실 그 수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이는 문화재 보유현황 을 확인할 수 있는 사찰이 많지 않기 때문이며, 그나마도 겉으로 드러난 문화재 외 에 보유 목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문화재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는 사찰도 특정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비교적 소장 문화재가 많이 확인되는 지역은 강원도로 석왕사( 釋 王 寺 ), 정양 사( 正 陽 寺 ), 삼불암( 三 佛 庵 ), 마하연지( 摩 訶 衍 址 ), 표훈사( 表 訓 寺 ) 등에서 마애불 상과 석불 등 불상, 석탑, 석등, 부도, 비 등의 석조문화재 등이 확인된다. 또한 개성 시도 영통사( 靈 通 寺 ), 현화사( 玄 化 寺 ), 화장사지( 華 藏 寺 址 ), 안화사지( 安 和 寺 址 ) 등의 고려시대 사지에 석탑, 부도, 당간지주 등의 유구가 남아있다. 기타 다른 지역 에서는 도별( 道 別 )로 3 4곳 정도의 사찰 등만이 확인되는데, 소장유물은 대부분 석탑, 석등 등의 석조문화재이며, 불전에 봉안한 불상이 그 다음으로 남아 있으며, 후불탱화 등의 회화 자료는 희귀한 편이다 7). 지금까지 조사된 북한 소재 불교문화재를 개관해 보면 박물관 소장 유물의 경우 고구려와 고려시대의 유물이 다수를 차지한다. 조선시대의 불교문화재 수량이 많 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러한 원인이 조선시대 불교문화재가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혹은 북한의 종교정책과 관련한 사찰의 탄압으로 인해 많은 수의 사찰이 없어지면서 그 때 문화재들이 산일되어 버렸기 때문인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후자 일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사찰 소장 문화재도 파악된 사찰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수량이 많지 않다. 이것도 해방 이후 초기 불교탄압 과정에서 많은 수의 사찰들이 사라진 것이 가장 일차적인 원인이라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사찰수와 관련된 자료를 7) 최성은, 앞의 글, pp 북한불교의 이해
95 검토해 보고자 <표 2>에 북한의 사찰 및 암자수와 관련된 기존의 자료들에서 파악 된 내용을 정리하여 보았다. 이를 보면 적어도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현존하던 사찰 의 수가 3, 4백 개소에 이르렀으며, 그리고 31본산 중 8개의 본산 8) 이 북한에 존재하 고 있었으나 해방 이후 최근에 파악된 유존 사찰의 수는 50~60개소 정도 밖에는 되 지 않아 많은 수의 사찰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9). 표 2. 각 자료에 나타난 북한의 사찰 및 암자 수 사료에 보이는 사찰수 유존 사찰수 구분 지역별 경기 강원 황해 평안 함경 자강 양강 계 東 國 輿 地 勝 覽 (16C 초) 財 産 臺 帳 (1911년경) 總 督 府 學 務 局 통계자료 (1939년 12월) < 太 古 寺 寺 法 >(1941) 북한사찰연구 (1993)의 제반 기록 검토 사암목록 ,793 북한의 절과 불교 (1989) 북한사찰연구 (1993)의 추정 현존사찰 조선의 절 안내 (2003) 북한의 전통사찰 (2011) 6 (사지 2 포함) 11 (사지 2 포함) 12 (사지 2 포함) (사지 6 포함)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북한사찰연구, 사단법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p.531을 참조하고 일부 자료 추가 재작성 지금까지 개관해 본 불교문화재의 현황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우선 파악되는 불 8) 유점사, 성불사, 패엽사, 법흥사, 영명사, 보현사, 석왕사, 귀주사 등 8개 본산으로 이중 영명사, 귀 주사는 폐사되었다.(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북한사찰연구, 사단법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p.32.) 9) 북한에서는 정권수립 초기부터 사회주의 종교관에 의해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1946년 3월 5일부터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종교단체가 소유한 토지 15,195정보를 무상몰수하였고, 특히 사 찰재산이 5정보 이상인 경우 모두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하였다고 하며, 승려는 노동현장에 부역 시켜 승려들을 사찰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고 탁발을 금지하는 등의 초기 불교 정책으로 인해(사찰 문화연구원 편저, 앞의 책, p.28.) 유존 사찰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은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95
96 교문화재의 그 수량이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향후 조사에 따라 수 량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의 종교 정책으로 인한 멸실 의 가능성도 있다. 한편 매장문화재의 경우 향후 상대적으로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 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조사가 진척되면 많은 수의 유물이나 유적 등이 새로이 드러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발굴조사가 진행되면 출토 유물의 수량도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 2. 북한의 문화재 보존 현황 가. 관련 법제도의 전개과정 10) 북한의 문화재 보존은 해방 이후 남북으로 갈라지면서부터 다른 길을 걷기 시작 하면서 독자적 성격을 띄고 전개되어왔다. 일제강점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이미 오 랜 시간이 지난 만큼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의 차이도 어느 정도 상존하는 것이 현실 이다.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의 김일성 위원장 이름으로 1946 년 4월 29일 전문 11조로 구성된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과 <동 시 행규칙> 및 <시행수속>을 제정한 것이 시초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법령을 그대 로 계승한 측면이 있다면 1948년경에 들어서면 나름대로의 법령 정비를 시도한다. 즉 1948년 11월 <물질문화유물보존에 관한 규정>(내각결정 110호)은 1948년 9월 9 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포 직후에 바로 제정된 문화재 관련법으로 초기의 법 제정비와 이를 담당할 전담기구의 설치 등이 규정된 법이라 할 수 있다. 모두 8조로 구성되어 내용이 간략하고 기본원칙만을 제시한 법령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 10) 이규창, 통일대비 민족공동문화자산 공동보존을 위한 법제정비 방안, 통일시대를 위한 민족문 화자산 남북협력, 통일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 pp.151~ 북한불교의 이해
97 은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 유물들을 보존 관리하기 위하여 내각 직속으 로 조선물질문화조사보존위원회 를 두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규정과 동시에 <조선 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에 관한 결정서>,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 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는데,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 산하 부서로 원 시사 및 고고학부, 미술 및 건축부, 민속학부, 박물관지도부, 총무부를 둘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종래 문화선전성에서 담당하던 역사박물관에 대한 관리지도 및 북조 선고적보존회에서 담당하던 업무를 보존위원회로 이관하도록 하였다. 보존위원회 는 명실공히 북한에서의 문화유산에 대한 최고의 조사연구, 보존 및 관리기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각 수상에 직속되어 중앙조직과 지방조직(도위원회), 유물관리위원 회로 구성되어 있다 11). 이후 문화재 보존 관련 법령이 새로이 재편되는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년대 들어 명승지와 천연기념물, 유적에 대한 일련의 규정들이 제정되는데, 세부적 으로는 <명승지의 보호관리 및 리용에 관한 규정>(1990), <천연기념물의 보호관리 에 관한 규정>(1990), <력사유적과 유물보존에 관한 규정>(1992)이 순차적으로 제 정되었다. 그리고 1993년 12월 10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김일성 당시 주석의 교시 를 내세워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 여>라는 결정을 하였다. 최고인민회의는 이 결정에서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발굴수 집사업, 손상된 유적과 유물의 복원사업, 민족문화유산의 보존관리 사업을 활발하 게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문화유산보전관리와 관련한 법과 규정을 새롭게 제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북한은 1994년 4월 7일 <문화유물보 호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문화유물보호법>은 전체 6장 52조로 구성되어 있 는데, 전체적인 구성은 1장. 문화유물보호법의 기본, 2장. 문화유물의 발굴과 수집, 3장. 문화유물의 평가와 등록, 4장. 문화유물의 보존관리, 5장. 문화유물의 복구개 건, 6장. 문화유물보호에 대한 지도통제로 되어 있다 12). 11) 지병목, 문화유물보호법을 통해 본 북한의 문화유산, 문화재 제36호, 2003, p ) <문화유물보호법>의 체계는 1992년의 <력사유적과 유물보호에 관한 규정>과 매우 유사하다. 총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97
98 나.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의 제도적 문제 검토 <문화유물보호법>을 근간으로 하여 북한의 문화재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북한의 <문화유물보호법>을 다루기 전에 북한의 문화유산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 것인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헌법 제41조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사회주의 근로자들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다운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문화 를 건설한다. 국가는 사회주의적 민족문화건설에서 제국주의의 문화적 침투와 복 고주의적 경향을 반대하며 민족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사회주의 현실에 맞게 계승 발 전시킨다 고 하여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에 관한 기본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 다 13).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미묘한 표현이지만 문화재의 보존도 사회주의 현 실에 맞게 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유물보호법>에서도 보인다. 특히 제7 조 에 명기된 바에 의하면 즉 국가는 문화유물을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과학적으로 밝히며 인민들 속에서 애국주의 교양을 강화하는데 널리 리용하도록 한다 라고 하 였는데, 이는 문화재가 문화재 그 자체로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또는 주 체사상 등의 교양 도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러한 사항은 불교문화재의 보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북한의 사 찰이 해방 이후 최초 탄압의 대상이었던 것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후 사찰의 복원 사업 등이 진행된 이면에도 사찰 그 자체가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으 로 민족의 문화 수준과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대상이며 이는 교양강화를 위해 활용 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이 그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사찰이 문화재 로서의 가치로 중요시되도록 하였으며 사찰에 주재하는 승려도 사찰문화재 관리를 위한 전문인의 성격이 강하고 14) 본래의 기능과는 차이를 갖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 4장 19조로 이루어진 이 규정은 제1장. 일반규정, 제2장. 역사유적과 유물의 발굴, 평가 및 등록사 업, 제3장. 역사유적과 유물의 복구 및 보존관리, 제4장. 역사유적과 유물에 대한 감독 통제기관의 임무와 권한 등이다.(지병목, 앞의 글, p.47.) 13) 장호수, 북녘의 고고학과 문화재관리, 백산자료원, 2000, pp.195~ 북한불교의 이해
99 다음으로는 구체적으로 보존의 행위가 어떠한 체계로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고 자 한다. <문화유물보호법>에 나와 있는 보존 관련 행위를 정리하고 그 수행주체나 승인주체를 명시한 것이 아래의 표이다. 행정체계상으로 보면 주로 중요한 사항의 최종 승인은 내각에서 하도록 되어 있고, 전문적인 사항의 검토 및 지도 등은 문화 유물보존지도기관에서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은 중앙은 문화보존지도국을 말하며 우리의 문화재청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이다 15). 이 러한 체계는 남측과 대동소이한 체계라 할 수 있다. 다만 주목되는 것은 남측의 경 우 문화재 관련 모든 행위들의 최종적인 책임이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에 의해서 결정되는 반면, 북한에서는 중요한 사항이 내각에서 결정된다는 점은 문화재 행정 이 독립성을 갖고 시행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결정 권한은 상부에서 관여할 수 있는 구조인 것으로 보인다. 구분 내용 주무(허가 또는 승인) 기관 발굴허가 발굴 및 유물 수집 발견유물처리 역사유물 수집 지정 표 3. <문화유물보호법>에 나타난 주요 문화유산 보존 관련 행위 수행 주체 문화유물의 평가와 등록 중앙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 (문화보존지도국) 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 해당기관 문화유물보존기관 국보 문화유물 구분 평가 등록 준국보 문화유물 내각 (구 정무원) 중앙문화유물 보존지도기관 (문화보존지도국) 일반 문화유물 중앙문화유물 지방문화유물 14) 정태혁 신법타, 북한불교답사기, 민족사, 1990, p.297. 참조 15) 참고로 문화보존지도국과 박물관의 관계에서 한국과 다른 점은 문화보존지도국 산하에 조선중앙 력사박물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 박물관이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경우 국립박 물관이 문화관광부 산하로 되어 있는 것과 비교된다. 반면 문화성 산하에는 조선미술박물관이 별 도로 속해있다. (장경희, 앞의 책, p.20.)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99
100 보존지도기관 (문화보존지도국) 보존지도기관 등록문화유물의 폐기 이관 개명 내각(구 정무원) 또는 중앙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문화보존지도국) 문화유물 보존관리 문화유물보존기관, 역사유물보관기관, 사업소, 단체, 공민 특수지역 내 문화유물인 경우 지역관할기관 역사유적 보호구역 설정 내각(구 정무원) 일상 관리 역사유적 표식 설명문 설치 문화유물보존기관 및 활용 역사유적의 이용 중앙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문화보존지도국) 역사유물의 모조품 제작 중앙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문화보존지도국) 문화유물 촬영 및 벽화무덤 참관 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 국외전시 반출 내각(구 정무원) 중앙문화유물보호 감독 통제 문화유물감독기관, 해당 감독기관 박물관 또는 민속촌 건립 내각(구 정무원) 국가적 중요 역사유적 복구 내각(구 정무원) 수리 복 역사유물의 복원 중앙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문화보존지도국)이 지정한 기관 원 이전 역사유적의 이전 내각(구 정무원) 기타 보호사업의 지도 중앙문화유물보존지도기관(문화보존지도국) 지병목, <문화유물보호법>을 통해 본 북한의 문화유산, 문화재 제36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p.58의 표 를 수정 재작성 다음으로 지정된 현황을 살펴보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최근까지 파악한 북한 의 문화재 지정 현황은 국보유적 193건, 보존유적 1,723건, 국보유물 83건, 준국보 유물 121건, 명승지 223건, 천연기념물 467건이다 16). 그러나 국보유적을 제외한 나 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목록이 확인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 다. 그러므로 국보유적에 한해 다시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성 및 성곽이 23건, 궁궐 관아 주거 등을 포함한 일반건축이 43건, 유교 관련 건축물이 5건, 불교 관련 사지, 건축물, 불탑 등은 80건, 고분 및 무덤이 24건, 기타가 18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6) 박대남, 북한의 문화재 실태(주제가 있는 통일문제 강좌 22), 통일부통일교육원, 2008, p.24. 한 편 장경희는 2010년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국보유적 193점, 보존급유적 1,776점, 국보유물 286 점, 준국보유물 301점이라 하였으며(장경희, 북한의 박물관(아름다운 우리문화재 4), 예맥, 2010, p.16.), 이는 국보유적의 수량은 동일하고 나머지는 수량이 증가한 것으로 이것이 2008년에 비해 2010년까지 지정 수량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100 북한불교의 이해
101 이 중에서 불교와 관련된 것은 사찰건축과 석조물로 80건에 달하여 전체의 약 41.5% 정도에 달하는 유적이 불교와 관련된 것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는 적은 수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북한에서 불교 문화재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보호대상 유형구분(제2조) 지정구분(제17조) 비고 문화유물 표 4. 문화유물보호법( ) 상의 지정체계 및 평가 등록 수행 주체 력사유적 원시유적, 성, 봉수터, 건물, 건물터, 무덤, 탑, 비석, 도자기가마터, 쇠부리터 력사유물 생산도구, 생활용품, 무기, 조형예술품, 고서 적, 고문서, 인류화석, 유골 국보 력사유적 준국보 력사유적 일반 력사유적 국보 력사유물 준국보 력사유물 일반 력사유물 부동산문화재 개념으로 유적, 단일 건물, 건물군 모두 포함 동산문화재 개념 표 5. 북한의 국보유적 유형별 분류표 구분 세부내용 건수 비고 도성 2 개성옛성, 평양성 기명성석 평지성 3 연산읍성, 경성읍성, 청해토성 성 및 성곽 산성 13 대성산성, 청암리산성, 황룡산성 등 성곽 5 평양성, 고려장성, 발어참성 등 소 계 23 궁궐(터) 3 안학궁터, 함흥본궁, 만월대 누정 18 연광정, 부벽루, 을밀대 등 문루 14 보통문, 대동문, 대성산성 남문 등 일반건축 사우 4 숭인전, 숭령전, 수충사, 삼성사 관아 2 강계 아사, 함흥 선화당 주거 1 김응서집 제사 1 화성동 제단 소 계 43 성균관 1 개성 성균관 유교 관련 서원 3 용곡서원, 소현서원, 숭양서원 향교 1 창성향교 소 계 5 사찰 40 묘향산 보현사, 석왕사 호지문 등 불교 관련 사지 5 금강사지, 신계사지 등 불탑 16 보현사 9층석탑 등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01
102 불상 5 묘길상, 적조사철부처, 관음사대리석관음상 등 종 2 연복사종, 유점사종 당간지주 1 중흥사 당간지주 석등 1 자혜사석등 석당 2 성동리 다라니석당, 해주 다라니석당 부도 1 화장사부도 불감 1 영명사8각 석불감 비갈 6 광조사 진철대사탑비, 현화사비 등 소 계 80 고분 및 무덤 21 대성산 고구려무덤떼, 호남리사신무덤 등 고분 및 무덤 기타 3 노암리, 용동리, 관산리 고인돌 소 계 24 첨성대 1 개성첨성대 석교 2 주둔리 무지개다리, 선죽교 석빙고 1 해주 석빙고 기타 유적 종 1 평양종 비갈 5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순수비, 표충비 등 기타 8 대성산 연못떼, 상원 검은모루유적 등 소 계 18 합 계 193건 박대남, 북한의 문화재 실태(주제가 있는 통일문제 강좌 22), 통일부통일교육원 북한의 지정 현황을 검토해 보기 위해 남한의 문화재 지정 현황과 비교를 해보고 자 한다. 비록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남북한의 문화재 현황을 비교해 보면 북 한의 지정 관리 등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선 현 재 남한은 국가지정 문화재가 3,479건, 시도지정 문화재가 5,279건이며, 최근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실시되고 있는 등록문화재 547건 등을 합치면 총 11,788건 에 달한다.(표 6. 남한의 문화재[지정 등록] 총괄 현황 참조) 또한 불교문화재를 보면 사지, 사찰, 전각, 석탑 등 유적 또는 건조물로 분류할 수 있는 지정문화재가 1,383 건이며, 유물은 불교회화 463건, 불교조각 1,116건, 불교공예 249건 등 1,828건이 지정되어 있어 유적과 유물 전부는 총 3,221건에 이르고 있다.(<표 7. 남한의 불교 문화재 현황> 참조) 이것을 전체 문화재 지정건수에서 등록문화재를 제외한 국가 102 북한불교의 이해
103 및 시도지정문화재 건수와 비교해 보면 전체의 28.7%에 달하는 수량이다. 표 6. 남한의 문화재(지정 등록) 총괄 현황 구분 유형문화재 기념물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타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 합계 국가지정 문화재 315 1, ,479 구분 시도 유형문화재 시도 기념물 시도 무형문화재 시도 민속문화재 문화재자료 합계 시도지정 문화재 2,844 1, ,483 5,279 총계 4,920 2, ,483 11,241 등록 문화재 총계 총 11, 년 3월 31일 현재 문화재청 통계자료를 이용하여 작성 표 7. 남한의 불교문화재 현황(2013년 3월 현재) 구분 수량 소계 소계 유적 사지, 전각, 석탑, 석등 등 포함 1,383 1,383 1,383 괘불화 40 탱화 410 불교회화 판화 사경화 1 벽화 10 석조 686 금속조 107 유물 불교조각 목조 261 1,116 건칠조 11 1,838 소조 51 의식법구 133 공양구 29 불교공예 장엄구 20 사리장치 복장품 11 기타 31 총 계 3,221 문화재청 문화재정보의 유형분류를 참조하여 작성. 건수는 국가지정 및 시도지정을 모두 포함한 수량임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03
104 이에 비하면 지금까지 파악된 북한의 지정 문화재는 지금까지 파악된 국보유적 193건을 포함하여 약 2,800건 정도로 그 전체 수량이 남한의 1/4 정도에 불과하여 절대적으로 그 수량이 적은 편이다. 문화재의 지정 수량은 관련 정책이나 지정 방법 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우선 절대 숫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조사연구 등이 진 행이 덜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향후 조사연구 등을 통해 문화재의 발 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문 화재 중 사찰 소장 문화재의 경우 사찰이 멸실된 경우에 이미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매장문화재의 형태로 존속하는 사지의 경우에는 잔존 해 있을 가능성이 많으며 특히 경제개발이 급속히 진행된 남한에 비해 북한의 경우 에는 많은 수의 사지들이 남아 있을 경우가 많으므로 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많 은 수의 불교문화재들이 추가 지정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3. 북한 소재 불교문화재 관련 교류협력 방향과 보존의 과제 가. 조사연구 사업의 추진 남북한의 문화재 분야 교류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전국적인 단위의 조사연 구이다. 현황이 파악되어야만 향후의 계획도 체계적으로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앞 에서도 살펴보았지만 현황을 살펴보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정확한 자 료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폐쇄적인 성격은 문화재에도 적용되어 정확한 지 정 목록 자료 등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문화재 조사가 중 요한 것은 많은 수의 문화재 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불교문화재는 아직도 많은 수가 드러나지 않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 는데 이러한 것은 다음과 같은 비교를 통해 추정한 것이다. 우선 북한의 문화재 지 104 북한불교의 이해
105 정 현황을 남한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현재 알려져 있는 수량은 매우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남한의 경우 2010년부터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추진하 고 있는 폐사지 조사를 통해 매우 많은 수의 폐사지들의 현황이 조사, 정리되고 있 다 17). 북한의 경우에도 실제 많은 수의 사지들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 단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경제성장과 함께 국토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많 은 수의 사지들이 보존의 위협에 직면하거나 건설과정에서 훼손되었던 것으로 보면 오히려 저개발 상태의 북한에 많은 수의 사지들이 매장문화재의 형태로 존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남북간의 공조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필자의 의견으로 북한의 문화재 조사연구를 남북한이 협력 하여 실시하여 나가는 방법은 2가지 방향에서 기획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 선 가장 먼저 실시할 수 있는 것은 공동조사이다. 이러한 조사사업은 2000년대 들어 신계사 복원과 관련한 사업, 개성의 만월대 지역 조사 등의 사업에서 추진되었다. 이러한 사업은 문화재 보존 분야에서의 경험의 공유와 서로간의 이해를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인 사업이며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 다. 한편 조사의 중요성은 보존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 하다. 특히 유적 및 건축물에 대한 정밀실측 조사사업은 보존의 가장 기초가 되는 조사라고 할 수 있다. 정밀한 상세조사를 통해 작성되는 정밀실측도는 향후 보존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된다. 특히 건축물의 경우에는 환경의 통제가 쉽지 않고 구조 물이라는 성격상 지속적인 수리, 정비 등의 유지관리 작업이 필수적이며, 이 때 필 요불가결하게 현상변경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변경의 내용을 기록해 놓지 17)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를 주관하여 2010년 서울 인천 경기지역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하 였으며( 한국의 사지 (2권), 문화재청, 2010), 2011년에는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제주도, 전라 남도를 조사하였다.(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2권), 2011) 2012년에는 대구광역시와 경상 북도를 조사한 보고서(불교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지 현황 조사보고서 (3권), 문화재청, 2012) 를 발간하였으며, 연차별로 전국을 조사하여 보고서로 발간될 계획이다.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05
106 않으면 원형을 알 수 없게 되어 온전한 보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기 때 문이다. 또한 기록보존이 갖는 중요성은 최근의 숭례문 화재사건과 같은 천재지변 이나 인재에 의한 소실 위험도 상존하기 때문에 원형기록의 작성은 가장 먼저 이루 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사업의 진행이 잘 시행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18). 한편 이러한 조사사업의 한계는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북한지역에서 문 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즉 평양이나 개 성 주변, 또는 금강산과 같은 특수한 지역에서 가능한 사업으로 북한 전역에 위치하 고 있는 불교문화재 전반에 적용시키기에는 북한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 한 계이다. 그러므로 공동조사사업은 가능한 지역에서 실시하되 나머지 지역에 대해 서는 북한이 자체 조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북한 자체의 조사연구 역량을 키워주어 보다 많은 자료들이 북한의 전문인력들 을 통해 조사되고 보고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때 앞에서 언급한 공동조사 는 실제 조사연구 인력의 수준을 높이거나 혹은 조사방법론의 공유를 통해 북한 자 체 인력으로 조사된 자료들이 학술적 자료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 사 업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보존의 인프라 구축 지원 방법 한민족의 소중한 자산인 불교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남북한이 협력해야 함에는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사정에 대한 이해 없이 협력은 불가능하 며, 또 전략적인 접근이 없이는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18) 이와 관련하여 2004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북한의 사찰 건축문화재 실 측조사 사업을 시행한 바 있다. 이 사업은 2009년까지 매년 3~7동 정도의 건축물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여 총 31동의 북한 소재 사찰건축물에 대한 정밀실측 조사를 진행한 사업이다. 그러나 실측 조사시 남측 인원의 현지 실사 문제, 사업비의 전용 가능성 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강현, 앞의 글, pp.44~46.) 106 북한불교의 이해
107 북한의 불교문화재는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현황 파악도 쉽지 않고 또 경제적인 문 제로 인하여 보존에 문제가 있는 것도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북한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 고 또 어떤 것이 우선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검토해보면 결국은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되 궁극적으로는 자체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역량 을 키워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 지원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 중의 하나가 보존 관련 장비 지원이다. 동산 유물의 보존에 있어서는 보존의 시설 문제가 가장 크다. 북한의 박물관은 시설이 건 립된지가 오래되어 노후화한 경우가 많으며 일부 박물관은 옛 건물을 전용하여 사 용하는 경우도 있어 보존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북한의 불교문 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시설은 노후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판단된다 19). 유물 의 경우 보존환경이 나쁜 경우 급속한 훼손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점에서 노후한 박물관 시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것과 관련하여 개 성박물관의 경우 보존시설을 지원하는 사업에 대한 협의도 진행되었던 바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한편 2000년부터 시작된 유네스코 신탁기금 사업의 경우 최초 고구려 벽화고분 의 보존과 관련된 사업을 주로 전개하다가 점차 북한 내에 소재한 다른 유적과 박물 관 소장 유물들의 전반적인 보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북측의 보존과 관 련된 기관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추진하였다 20).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이루 어진 2단계 사업에서 이러한 전략적 방향에 기초하여 문화보존센터(Korean Cultural Preservation Center)의 능력 개발을 위한 훈련과정 운영 및 장비 제공 등의 사업이 추진되었다. 19) 시설의 노후화 문제로 일부 증개축 및 신축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장경희, 앞 의 책, p.13.) 건축물의 시설을 고급화하고 최적의 보존시설을 갖추는 등의 지원이 추가적으로 필 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20) 강현, 건축문화유산 분야의 남북교류 현황과 향후 과제, 통일시대를 위한 민족문화자산 남북 협력, 통일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pp.49~50.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07
108 불교문화재의 보존과 관련하여서도 이러한 협력 방법의 모색이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의 경우 1997년 북측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 구소와 일본 다이쇼 대학이 공동으로 답사를 실시한 이후 1998~99년 발굴작업을 진 행하고 이후 복원사업이 추진되었는데, 이 때 천태종단에서 주로 복원불사와 관련 된 물적 지원을 실시하여 2005년 낙성이 되었다. 복원사업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 럼 북한의 문화재 정책과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원된 영통사는 결국 국보유적 으로 지정되었지만 당시 복원에 대한 학술적 토의가 부족하고 콘크리트로 복원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표 8. 남한 지역 사지 및 문화재 지정 현황 지역구분 건수 문화재 지정현황 사적 기념물 문화재 자료 합계 서울특별시 경기도 지역 인천광역시 (서울 인천 포함) 경 기 도 소 계 강원도 지역 강 원 도 소 계 충청북도 지역 충청북도 소 계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지역 충청남도 (대전 포함) 소 계 경상북도 지역 (대구 포함) 경상남도 지역 (울산 부산 포함) 전라북도 지역 전라남도 지역 (광주 포함) 제주도 지역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1, 소 계 1,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소 계 전라북도 소 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소 계 제 주 도 소 계 총 계 5, (재)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사지총람 색인집, 문화재청, 2010, pp.8-9. 수록 표를 편집 재작성 비고 108 북한불교의 이해
109 다. 복원의 문제 북한의 유적 보존과 관련하여 하나 제기하고 싶은 문제 중 하나는 복원( 復 元 )의 문제이다. 북한의 경우 <문화유물보호법>에서도 명기하고 있는 것처럼 복원, 즉 복 구개건 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다. <문화유물 보호법>에 의하면 복구개건 은 파손되었거나 없어진 문화유물을 재현하는 중요 한 사업 이라 규정하고 21) 이러한 사업이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문화재 보존 사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원래의 진정성이 있는 유물이나 유적으로 보 존하여 후세에 전승하는 것이 일차적이라 하면, 복원은 부차적인 것임에도 불구하 고 이렇게 법령에 명기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는 근본적 으로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문화유물보호법>의 제정 취지를 보 여주는 제1조를 보면 (이 법은) 문화유물 보호관리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우 고 문화유물을 원상대로 보존하여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 발전시키며, 인민들 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데 이바지한다 라고 하고 있다. 이는 매우 원칙 적이면서도 선언적 문구이기는 하나 사회교육의 수단으로 문화재가 인식되고 있는 일단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도에도 고적조사나 보존사업이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 기에 조선총독부의 사회교육과 로 통합되는 모습에서 문화재가 이데올로기적 교육 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한 단편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이러한 모습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서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된 문화재에 대한 복구 작업이 실 시되기도 하였으나, 실제 북한이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보수 복원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 붕 괴는 북한에게 민족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조선민족 제일주의 를 전면에 내세우 며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시작하도록 하였으며, 문화재 관련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추진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22). 현재 북한의 국보유적으 21) 제36조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09
110 로 지정된 것에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한국전쟁 시 파괴 된 것을 복원한 것들이 다수 들어가 있다 23). 서구적 보존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복원 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시행될 수 있는 것이나, 북한에서는 이러한 복구개건이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최근 남한에서도 복원사업 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24), 철저한 고증연구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 되고 있으며, 또한 복원이 가져올 유적의 진정성 훼손을 우려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 은 것이 현실이나, 북한의 체제 특성상 이러한 반대는 힘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 러한 상황은 충분한 고증연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복구 및 개건이 이루어지고 이는 원형의 훼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된다. 향후 통일시대에 대비 하여서도 이러한 복구 및 복원이 보다 신중히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4. 글을 마치며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1990년대 및 2000년대 들어 그 이전에 비해 훨씬 활발히 전 개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의 남북 관계 경색은 이러한 노력이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의 보존은 민족공동체의 공동자산인 문화유산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미래 의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 주어야 되는 책임에서 비롯된다. 이는 현실적인 정치적인 22) 박대남, 북한의 문화재 실태(주제가 있는 통일문제 강좌 22), 통일부통일교육원, 2008, p ) 국보유적 제10호인 대성산성( 大 城 山 城 ) 남문은 고구려 시기 대성산성의 정문으로 평양 천도 이전 인 4세기말에서 5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8년에 복원한 것이다. 제 17호인 평양의 부벽루( 浮 碧 樓 ) 역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전후 다시 복구한 것이며, 제22 호인 평양성의 전금문( 轉 錦 門 ) 역시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59년 복원한 것이다. 최근 발굴 후 전면 복원된 신계사( 神 溪 寺 ), 영통사( 靈 通 寺 ) 등이 모두 국보유적 제191호, 192호로 지정된 것을 보면 복원된 건물에 대한 태도가 남한과는 차이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24) 실례로 경주의 황룡사지( 皇 龍 寺 址 ), 익산의 미륵사지( 彌 勒 寺 址 ), 부여의 정림사지( 定 林 寺 址 ) 등 고 대의 주요 사찰들에 대한 복원 논의가 진행 중이며, 실제 사업이 추진되는 곳도 있는 것이 현실이 다. 110 북한불교의 이해
111 문제를 벗어나 보다 거시적이며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불교문화재와 관련하여서는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종교 자체에 대 한 부정적인 인식에 기초하여 문화재 보존 정책이 수립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많 은 수의 불교문화재들이 보존 전승 등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결국에는 훼손되고 멸 실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나마 1960년대 들어 비록 우리 의 역사와 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보존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책을 표명한 이래 전쟁 중 파괴된 사찰이나 문화재를 보존하는 정책을 펴면서 25) 일부의 사찰들이 살아남 은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이 불교와 문화재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지니고 있는 문제로 인하여 보존에 있어서의 문제는 현재진행형 이다. 진정한 불교문화재의 보존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복합적이고 다중적이다. 즉 이데올로기적 선전도구로서의 문화재, 민족의 문화재( 文 化 財 )로서의 불교문화재, 성보( 聖 寶 )로서의 불교문화재, 또한 살아 있는 문화유산(living Cultural Heritage) 으로서의 불교문화재 등이 매우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아 있는 문화재는 문화재 그대로 잘 보존하고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 이루어질 수 있도 록 하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또한 향후 이 분야에서의 관심과 교류는 탈정치적이며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며 지속적인 관 심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라 생각된다. 25) 1966년 10월 조선노동당대표자회의에서 주체적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발 전시켜야 한다는 정책을 표명한 이래 불교 및 사찰을 종교가 아닌 단순한 문화사업의 차원에서 접 근하여 보존하는 정책을 지속하였다.(사찰문화연구원 편저, 앞의 책, pp.28~29)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11
112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북한 문화재 실태와 현황, 1985 국토통일원, 북한의 문화재 보존 및 활용 실태, 1986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북한 문화재 관계 문헌 휘보, 1990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북한 문화재 사진전 도록, 1992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북한사찰연구, 사단법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박상철 김창규, 북한의 문화재보호관계법제(북한법제분석95-1), 한국법제연구원, 1995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문화재해설집 1 - 석조물편, 1997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문화재해설집 2 - 사찰건축편, 1998 장호수, 북녘의 고고학과 문화재 관리, 백산자료원, 2000 조선문화보존사 편집부, (법제해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문화유물보호법 해설(3), 2001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문화재해설집 3 일반건축편-, 2002 지병목, <문화유물보호법>을 통해 본 북한의 문화유산, 문화재 제36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리기웅, 우리나라 중세탑, 조선문화보존사, 2004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문화재해설집 4 - 북한의 주요 박물관 소장품, 2004 장명봉 편, 최근 북한법령집, 북한법연구회, 2005 장호수, 북한의 문화재보존관리 체계-법, 제도와 기구, 정책, 통일과 국토 가을 겨울호, 한 국토지공사, 2005 리철 리기웅 김명철 공저, 문화유산 애호가들의 벗, 조선문화보존사, 2005 박대남, 북한의 국보유적 개설,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2006 조계종, 북한의 건축문화재, 북한불교의 이해
113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 문화재 관계문헌 휘보 증보판, 2007 이지범 책임집필, 남북 불교 교류의 흐름 -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 체추진본부, 2010 장경희, 북한의 박물관(아름다운 우리문화재 4), 예맥, 2011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북한의 전통사찰 1 10권, 도서출판 양사재, 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 국보유적 연혁 자료집, 2012 강현, 건축문화유산 분야의 남북교류 현황과 향후 과제, 통일시대를 위한 민족문화자산 남 북협력, 통일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최성은, 불교문화재 관련 대북교류의 과제, 통일시대를 위한 민족문화자산 남북협력, 통일 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이규창, 통일대비 민족공동문화자산 공동보존을 위한 법제정비 방안, 통일시대를 위한 민 족문화자산 남북협력, 통일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의 불교문화재 현황과 교류협력 과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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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제4주제 이종수_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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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제4주제 이종수 * 26) ** 목 차 ** 1. 머리말 2. 북한 소재 사찰과 간행 불서 3. 일제강점기 불교문헌 목록 4. 불교문헌의 종류와 조사의 필요성 5. 맺음말 1. 머리말 북한은 우리와 같은 언어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분단 이후 60여 년 간 접근이 통제되어 왔다. 또한 북한 당국의 폐쇄적인 태도로 인 해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국가의 사람들도 북한에 대한 자유로운 정보 획득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런 이유로 북한에 있는 문화재 현황도 부분적 자료에 의거하여 파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불교문헌이라고 하는 세부항목으 로 들어가면 그 정보 획득 방법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북한에 있는 문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조교수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17
118 화재 역시 우리 민족의 문화재이므로 그 목록을 파악하고 공동 보존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1) 북한문화재에 대해서는 문화재연구소에서 북한문화재자료관 사이트를 운영하 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1998년 이후 정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 다.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민간 차원에서도 각계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였으며, 그 성과로 개성 영통사, 금강산 신계사 등을 발굴 복원하기도 하였다. 2) 그러나 2008년 정권 교체와 금강산 총기사건 등으로 인 해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후 민간 교류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다시 개선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비 역시 필요하다. 특히 불교문 화재는 북한의 전체 문화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남한 불교계의 대비가 요청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문화재 가운데 건축물이나 공예품은 그 대체적인 목록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협력하여 보존할 것인지를 대비할 수 있겠지만, 불교문헌에 대해 서는 지금까지 고려된 바 없다. 불교문헌이 북한에 얼마나 있고 어떻게 보존되고 있 는지는 전혀 무지한 실정이다. 불교문헌은 불교계 문화재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민 족의 혼이 깃들어 있는 정신 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런 인식에 기반하여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는 2012년 3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BC)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외에 있 는 한국판본 및 한국찬술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불교문헌을 대상으로 그 목록을 조사하고 이미지를 획득하며, 또 원전자료를 텍스트로 만들어 번역하여 인터넷을 통한 무상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북한에 있는 한국 판본 및 한국찬술 문헌도 그 조사대상이 된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북한 소재 사찰 불교문헌 목록을 중심으로 북한 1) 북한불교와 관련한 연구서 및 논문으로는 법타 스님의 북한불교연구 (민족사, 2000)와 황인규의 북한지역 사찰의 불교사적 의의 ( 대각사상 17, 2012) 등이 있다. 2) 김상현, 영통사 발굴 및 복원의 역사적 의의, 천태학연구 9, 천태불교문화연구원, ; 대 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편,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백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북한불교의 이해
119 의 불교문헌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북한 소재 사찰의 수적 추이를 살펴보고, 또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고전적종합목록 검색을 통해 조선시대까지 북한지역 사찰에서 간행된 불서목록을 추출할 것이다. 그리고 1940 년경에 동국대 도서관에서 편찬한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가운데 북한지역 8개 본산(유점사, 패엽사, 성불사, 영명사, 법흥사, 보현사, 석왕사, 귀주사)의 불교문헌 목록을 정리하여 소개할 것이다. 습자지에 볼펜으로 기록한 조선사찰귀중재산목 록 은 총 24개 본산 3) 과 그 말사 소장의 귀중재산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자료 의 중요성은 일찍이 제기된 바 있으나 지금까지도 DB화 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선 본고의 주제를 감안하여 일제강점기 북한지역 사찰의 불교문 헌 목록을 정리하고 그 자료의 종류를 분류함으로써 언젠가는 시행 될 북한 지역 사 찰 소재 불교문헌 조사에 대비하고자 한다. 2. 북한 소재 사찰과 간행 불서 1) 북한 소재 사찰의 數 的 推 移 북한지역 사찰 목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1918), 동국 대도서관 편찬의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1940), 사찰문화재연구원 편찬의 북한 사찰연구 (1993) 등이 있다. 이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사찰을 비교해보면 조사한 시점의 북한 소재 본산과 말사는 조선불교통사 에는 총 401개가 소개되어 있으나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에는 총 342개, 북한사찰연구 에는 총 61개 사찰 목록이 있다. 이 가운데 본산이었던 유점사, 영명사, 석왕사, 귀주사는 한국전쟁 이후 폐사 3) 동국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의 26개 사찰은 다음과 같다. 麻 谷 寺, 海 印 寺, 松 廣 寺, 法 住 寺, 仙 岩 寺, 鶴 林 寺, 銀 海 寺, 孤 雲 寺, 金 龍 寺, 通 度 寺, 梵 魚 寺, 貝 葉 寺, 奉 恩 寺, 傳 燈 寺, 歸 州 寺, 奉 先 寺, 乾 鳳 寺, 釋 王 寺, 釋 王 寺, 楡 岾 寺, 普 賢 寺, 法 興 寺, 永 明 寺, 成 佛 寺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19
120 되었기 때문에 북한사찰연구 목록에는 없다. 그런데 북한사찰연구 에는 사찰 명이 있으나 조선불교통사 와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에 없는 곳도 있다. 개성 의 관음사와 안화사, 평양의 정릉사, 평안남도 성천군의 정진사, 평안북도 의주군의 금광사, 평안북도 향산군의 능인암 영산전과 칠성암, 강원도 고성군의 석왕사 등 9 개 사찰이 그곳이다. 이 사찰들은 조선불교통사 와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에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거나 그 이후에 창건된 사찰일 것이다. 아래 표에서는 그 9개 의 사찰을 제외하였다. 1 유점사 4) 의 말사 산내말사 회양군 조선불교통사(60)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50) 북한사찰연구(6) 홍성암, 백련암, 중내암, 원통암, 선원, 반야암, 명적암, 득도암 장안사, 표훈사, 봉일사, 지장암, 안양암, 영원암, 도솔암, 중관음암, 하관음암, 마 하연, 정양사, 백화암, 불지암, 원통암, 돈도암, 만회암, 수미암, 선암, 보덕암, 신림암, 보현암, 청련암 장안사(지장암, 장경암, 안양암, 영원 암, 관음암, 하관음암), 장훈사, 봉일 사, 마하연, 정양사, 백화암, 불지암, 표훈사(원통암, 신림암, 청련암), 돈 도암, 만회암, 수미암, 선암, 보덕암 춘천군 청평사, 상원사 청평사, 심원사, 상원암 철원군 심원사, 성주암, 석대암, 지장암, 남암, 안양사, 복희암, 수월암 성주암, 석대암, 지장암, 남암, 안양 암, 안양사(복혜암) 간성 신계사, 보광암, 보운암, 상운암, 법기암, 명적사, 신계사, 보광암, 발연암, 문 금강산 발연암, 문수암 수암 금화군 수태사, 천불암, 장연사 수태사, 천불암, 장연사 통천군 용공사, 관음사, 은적사, 화장사, 천곡사 천곡사, 용공사, 관음사, 은적사, 화 장사, 이천군 보살사, 감로사, 보월암 보살사, 감로사, 보월암 평강군 영주암 영주암 화천군 보련암 관응사 표훈사, 정양사, 불 지암, 마하연, 보덕 암 용공사 4) 강원도 간성군 금강산 120 북한불교의 이해
121 2 패엽사 5) 의 말사 산내말사 해주군 조선불교통사(34)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26) 북한사찰연구(7) 월정사, 도솔암, 월출암, 지자암, 달마 암, 봉림암, 칠성암, 백련암 신광사, 북암, 운수암, 안양암, 보발암, 정각사, 은적암, 안수사, 동고사, 우명사 월정사, 달마암, 봉림암, 칠성전, 백련암 월정사 북암, 운수암, 안양암, 정각사, 동고사 신광사 신천군 묘각사, 낙산사, 자혜사 묘각사, 난산암, 자혜사 자혜사 옹진군 청련사 청련사 장연군 쌍계암 쌍계암 송화군 수증사, 운흥사, 화장사 수증사, 운흥사, 화장사 화장사 은율군 정곡사, 진봉암, 원정사 정곡사, 진봉암, 원정사 원정사 안악군 연등사, 고정사, 수도암 연등사, 고정사, 수도암 재령군 묘음사, 현사 묘음사, 현암 묘음사, 현암 3 성불사 6) 의 말사 조선불교통사(36)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21) 북한사찰연구(4) 산내말사 안국사, 원통사, 상원암 원통암, 상원암 황주군 심원사, 도관사, 흥복사, 성전암, 서사암, 서원암, 지장암, 관정사, 송림사, 칠봉암 봉산군 고산사, 경암사, 독정사, 약수암, 백운암 독정사 심원사, 성전암, 서사암, 서원암, 지 장암, 관정사, 송림사 심원사 서흥군 귀진사, 속명사 귀진사, 속명사 귀진사 수안군 영천사, 함굴암, 가탈암, 청암사 영천암, 함굴암, 가탈사 곡산군 고달사, 관적사, 희랑암, 자효사, 우수암, 국화암 고달사, 관적사 평산군 관북사, 석종사, 북수사 관북사, 북수사 연백군 강서사 강서사 강서사 신계군 원명사, 월은사 원명사 원명사 5) 황해도 신천군 구월산 6) 황해도 황주군 정방산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21
122 4 영명사 7) 의 말사 조선불교통사(16)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12) 북한사찰연구(2) 대동군 광법사, 법운암, 영천사, 두타사 광법사, 법운암, 영천암, 두타사 광법사, 법운암 중화군 옥천사, 심곡사, 수락암, 은구사, 용산사, 길상사, 고봉사 옥천사, 심곡사, 용산사, 길상사 용강군 보림사, 용천사, 신덕사, 회용사, 일운암 보림사, 용천사, 신덕사, 회용사 5 법흥사 8) 의 말사 조선불교통사(32)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30) 북한사찰연구(3) 평원군 동금강암, 영천사 청룡사, 영천사, 동금강암 동금강사 순천군 안국사, 관음사, 서림사, 윤필암, 북암 임제암, 안국사, 관음사, 북암 안국사 강동군 가산사, 동림사 가산사, 동림사 성천군 향풍사, 통선암 향풍사, 통선사 향풍사 맹산군 서림사, 공암사 서림사, 공암사 영원군 월굴암, 운흥사, 성룡사 운상암, 은적암, 삼덕암, 오운암, 월 굴암, 운흥사, 성룡사 덕천군 남산사, 학원암, 백운암, 법련사, 창암사 학원암, 백운암, 법련암 개천군 영대사, 내원암, 마애사, 관음사, 영축암 관음사, 영축암, 영대사, 내원암 안주군 칠불사, 원적사, 용화사, 금동사 칠불사, 원적사, 용화사 숙천군 청룡사, 동산사 6 보현사 9) 의 말사 산내말사 태천군 조선불교통사(112)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81) 북한사찰연구(13) 안심사, 내원암, 보윤암, 화장암, 법왕대, 상원암, 축성전, 불영대, 내보현암, 불지암, 보발암, 금강굴, 삼성대, 설령대, 하비로암, 중비로암, 상비로암, 보월사, 남정암, 계조 암, 일출암, 백운암, 신흥암, 은봉암 양화사, 상운암, 화장암, 원적암, 내원암, 축성전, 송림사 안심사, 내원암, 보윤암, 화장암, 상원암, 축성전, 불영대, 내보현 암, 보발암, 금강굴, 설령대, 하비 로암, 중비로암, 보월사, 계조암, 일출암, 백운암 양화사, 원적암, 상운암 금강암, 보월사, 불 영대, 상원암, 축성 전, 하비로암, 화장 암 양화사 7) 평안남도 평양부 금수산 8) 평안남도 평원군 법홍산 9)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 122 북한불교의 이해
123 영변군 서운사, 학귀암, 보현사, 오봉사, 불경사, 천주사, 동관음암, 추동사, 천등사, 백운암 용문사, 서운사, 학귀암, 보현사, 오봉사, 불경사, 천주사, 동관음 암, 추동사, 천등사, 백운암 박천군 심원사, 천황사 심원사, 천황사, 서공암 심원사 정주군 희천군 심원사, 봉명사, 보현사, 제석사, 극락암, 개원사, 자운사 원명사, 금선대, 백련암, 낙풍암, 흥복암, 명패암, 학성암, 풍덕암, 척반대, 고적대, 삼성암, 은선암, 두타암, 청학대, 보현사, 성불암, 은굴암, 굴암, 영대암 운산군 견성암, 서림사 견성암, 서림사 선천군 보광사, 봉암사, 북송사, 은봉암 은봉암, 봉암사 용천군 용흥사, 원통사 용흥사 의주군 금린사, 금강사, 천왕사, 나한사, 영장사, 추월암 심원사, 봉명암, 보현암, 극락암, 개원사 원명사, 금선대, 백련암, 낙풍암, 신흥암, 풍락암, 흥복암, 풍덕암, 척반대, 고적대, 삼성암, 은선암, 두타암, 청학대, 보현사, 성불암, 은굴암, 영운암, 만수암, 서상암, 현성암 금린사, 금강사, 나한사, 영장사, 추월암 창성군 용운사, 용문사 구성군 만년사, 굴암사, 동림사, 길상사 만년사, 굴암사, 백운암 벽동군 보은사, 백운사, 영은사, 중양사, 서운사, 중흥사 청암사, 죽암사 후창군 오암사, 관음사 위원군 음지사 음지사 강계군 오남사, 자북사, 서운사, 봉천사, 청련암, 용화사 삭주군 보현암, 미륵사, 심원사 보현사 초산군 복흥사, 우수암, 천진암 철산군 국청사 국청사 오남사, 자북사, 서운사, 천주사 서운사, 천주사 개원사 용화사 7 석왕사 10) 의 말사 산내말사 조선불교통사(48)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55) 북한사찰연구(4) 내원암, 보문암, 향적암, 안양암, 백화 암, 삼수암 내원암, 보문암, 향적암, 안양암, 백련 암, 삼수암 안변군 성도암, 보현사, 영축암 성도암, 보현사, 영축암 보현사 덕원군 무달사, 재성암, 명적사, 적조암, 장림 무달사, 재성암, 명적사, 적조암, 운석 명적사 10) 함경남도 안변군 설봉산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23
124 사, 몽월암, 만경암 사, 갈월사, 만경암 문천군 도창사, 청련사, 운흥사, 견성암 도창사, 청련사, 견성암 고원군 양천사, 백련암, 대승사, 각원암 양천암, 백련암, 각원암 양천사 영흥군 운수사, 안불사, 운주사, 견성암, 지흥사 운수사, 안불사, 운주사, 견성암, 지흥사 정평군 성불사, 친견사, 조계사, 동안사, 환희사 성불사, 친견사, 조계사, 동안사, 환희사 함흥군 용흥사, 광흥사, 보문사 용흥사, 광흥사, 보문사 용흥사 경흥군 보현사, 월명사, 신흥사 보현사, 월명사 온성군 영월사, 개원사 영월사, 개원사 종성군 곡천사 곡천사, 백련사, 운주사, 은적사 회령군 백천사, 극락암 백천사, 극락사 무산군 백운사, 수월암 백운사, 수월암 이천군 상원암 상원암 경성군 신흥사, 복흥사 북청군 관음사 신흥군 벽송암 청진군 청용사, 청운사 부령군 백운사 8 귀주사 11) 의 말사 함흥군 조선불교통사(55)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59) 북한사찰연구(9) 개심사, 대승암, 견불암, 보문암, 은적 암, 관음암, 은성암, 불지암, 흥복사 극락암, 개심사, 대승암, 견불암, 보문암, 관음암, 은적암, 은성암, 불지암, 흥복암 홍원군 흥덕암, 은적사, 도솔암 흥덕암, 은적암, 향파암 북청군 이원군 단천군 광제사, 보현암, 벽해암, 보덕암, 백운 암, 청련암, 학린암, 연화암, 보성암, 감 로암, 수암사, 대인사, 유선암 복흥사, 옥수암, 정토암, 성도암, 도덕 암, 보성암, 관해암, 정광사 보현사, 도덕사, 개화사, 추파사, 가퇴 사, 연화사, 동덕사 갑산군 자복사 자복사 광제사, 보현사, 벽해암, 보덕암, 백운 암, 청련암, 학린암, 연화암, 보성암, 감 로암, 수암암, 대인사, 유선암, 관음사 복흥사, 옥수암, 정토암, 성도암, 도덕 암, 보성암, 관해암, 정광사 보현사, 도덕사, 개화사, 추파사, 가퇴 사, 연화사, 동덕사 광제사 정광사 삼수군 중흥사 중흥사 중흥사 성진군 운흥사, 광적사, 은선암 운흥사, 광적사, 은선사, 오봉암 가퇴사, 동덕사 11) 함경남도 함흥군 설봉산 124 북한불교의 이해
125 길주군 보현사 보현사 명천군 개심사, 쌍계사, 송덕사 개심사, 쌍계사, 송덕사 개심사, 쌍계사 경성군 관해사, 대동사, 장동사 관해사, 대동사 관해사 청진군 청계사, 유계사, 흥복사 청계사, 유계사 청계사 명주군 은적사 신흥군 벽송암 은성군 개원사 2) 북한 사찰 간행 불서 목록 북한 소재 사찰 간행 불서 목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고문헌 목록을 제공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고전적종합목록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검색은 각 기관의 고서 전체가 연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비교 검색에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동국대도서관을 비롯하여 고려대도서관, 전남대도서관 등의 일 부 고서목록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동시에 검색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모 든 도서관이 연계되어 있지 않고, 또 개인 소장 자료는 검색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계 가 있다. 그래서 기존의 연구 12) 를 참고하면서 한국고전적종합목록 검색을 통해 북 한 지역 사찰의 판본을 정리하였다. 이 검색에서 발행지와 발행자 등을 통해 검색할 수 있는데 아래의 표는 발행자에 북한 지역 사찰명을 대입하여 간기에서 발행자와 발행년이 확실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12) 박상국, 全 國 寺 刹 所 藏 木 板 集, 서울: 文 化 財 管 理 局, 1987, pp.78~89; 김성수 외4명, 조선전기 기 록문화 연구, 청주고인쇄박물관, 2013, pp.210~213; 禹 秦 雄, 조선시대 묘향산 보현사 간행 판본 고, 서지학연구 51,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25
126 1 유점사 및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蒙 山 和 尙 法 語 略 錄 德 異 ( 元 ) 著 ; 信 眉 譯 解 유점사 禪 門 拈 頌 集 慧 諶 編 유점사 禪 源 諸 詮 集 都 序 宗 密 ( 唐 ) 述 유점사 禪 家 龜 鑑 休 靜 撰 유점사 妙 法 蓮 華 經 유점사 大 藏 一 覽 集 陳 實 ( 明 ) 編 유점사 造 像 經 提 雲 般 若 譯 ; 聳 虛 改 編 유점사 藥 師 瑠 璃 光 七 佛 本 願 功 德 經 義 淨 ( 唐 ) 譯 유점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鳩 摩 羅 什 譯 ; 慧 能 ( 唐 ) 口 訣 신계사 妙 法 蓮 華 經 要 解 鳩 摩 羅 什 譯 ; 戒 環 ( 宋 ) 解 장안사 緇 門 警 訓 性 聰 註 표훈사 高 峰 和 尙 禪 要 持 正 ( 元 ) 錄 ; 洪 喬 祖 ( 元 ) 編 표훈사 緇 門 警 訓 性 聰 註 표훈사 禪 林 寶 訓 淨 善 ( 東 吳 ) 重 集 표훈사 妙 法 蓮 華 經 要 解 鳩 摩 羅 什 譯 ; 戒 環 ( 宋 ) 解 표훈사 高 峰 和 尙 禪 要 持 正 ( 元 ) 錄 ; 洪 喬 祖 ( 元 ) 編 표훈사 法 集 別 行 錄 節 要 幷 入 私 記 知 訥 著 표훈사 雲 水 壇 歌 詞 慶 熙 編 표훈사 妙 法 蓮 華 經 要 解 鳩 摩 羅 什 譯 ; 戒 環 ( 宋 ) 解 표훈사 패엽사 및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鳩 摩 羅 什 ( 印 ) 譯 ; 慧 能 ( 唐 ); 治 父 川 老 ( 宋 ); 傅 大 土 ( 梁 ); 如 如 居 士 解 패엽사 大 報 父 母 恩 重 經 패엽사 妙 法 蓮 華 經 要 解 鳩 摩 羅 什 譯 ; 戒 環 ( 宋 ) 解 패엽사 狗 子 無 佛 性 話 揀 病 論 眞 覺 著 수증사 大 乘 起 信 論 疏 수증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宗 杲 ( 宋 ) 著 ; 慧 然 ( 宋 ) 錄 ; 黃 文 昌 ( 宋 ) 重 編 수증사 圓 頓 成 佛 論 知 訥 著 수증사 現 行 西 方 經 元 旵 編 신광사 法 集 別 行 錄 節 要 私 記 知 訥 著 신광사 妙 法 蓮 華 經 신광사 북한불교의 이해
127 11 妙 法 蓮 華 經 觀 世 音 菩 薩 普 門 品 ( 諺 解 ) 幸 悟 等 編 신광사 觀 世 音 菩 薩 靈 驗 略 抄 신광사 誡 初 心 學 人 文 知 訥 著 월정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宗 杲 ( 宋 ) 著 ; 慧 然 錄 ; 黃 文 昌 重 編 월정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慧 然 綠 월정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宗 杲 ( 宋 ) 著 ; 慧 然 ( 宋 ) 錄 ; 黃 文 昌 ( 宋 ) 重 編 월정사 黃 檗 山 斷 際 禪 師 傳 心 法 要 希 運 ( 唐 ) 述 ; 裵 休 ( 唐 ) 集 월정사 天 台 四 敎 儀 略 抄 월정사 성불사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大 報 父 母 恩 重 經 귀진사 蓮 經 別 讚 金 時 習 撰 귀진사 妙 法 蓮 華 經 要 解 鳩 摩 羅 什 譯 ; 戒 環 ( 宋 ) 解 귀진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귀진사 大 方 廣 佛 華 嚴 經 疏 澄 觀 ( 唐 ) 撰 述 ; 淨 源 錄 疏 注 귀진사 龍 龕 手 鑑 귀진사 大 方 廣 佛 華 嚴 經 疏 澄 觀 ( 唐 ) 述 귀진사 誡 初 心 學 人 文 知 訥 述 귀진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심원사 蒙 山 和 尙 法 語 略 錄 ( 附 ) 普 濟 尊 者 法 語 蒙 山 ( 元 ) 著 ; 信 眉 譯 심원사 碧 巖 錄 심원사 證 道 歌 玄 覺 ( 唐 ) 著 심원사 五 大 眞 言 심원사 長 壽 滅 罪 護 諸 童 子 陀 羅 尼 經 佛 陀 波 利 奉 詔 譯 심원사 般 若 波 羅 蜜 多 心 經 略 疏 심원사 高 峰 和 尙 禪 要 原 妙 說 ; 持 正 錄 ; 洪 喬 祖 編 심원암 영명사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大 報 父 母 恩 重 經 광법사 水 陸 無 遮 平 等 齊 儀 撮 要 미상 심곡사 妙 法 蓮 華 經 弘 傳 序 戒 環 解 심곡사 1678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27
128 5 법흥사 및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景 德 傳 燈 錄 道 原 ( 宋 ) 纂 법흥사 禪 門 拈 頌 集 慧 諶 ( 高 麗 ) 編 법흥사 景 德 傳 燈 錄 道 原 ( 宋 ) 纂 법흥사 蒙 山 和 尙 六 道 普 說 蒙 山 ( 元 ) 著 안국사 預 修 十 王 生 七 齋 儀 纂 要 大 愚 集 述 안국사 預 修 十 王 生 七 齋 儀 纂 要 大 愚 集 述 영천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宗 杲 ( 宋 ) 著 ; 慧 然 ( 宋 ) 錄 ; 黃 文 昌 ( 宋 ) 重 編 영천사 振 虛 集 圓 照 撰 청룡사 보현사 및 말사 간행 불서 13)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緇 門 警 訓 [ 如 근( 明 ) 著 ] 보현사 發 心 修 行 章 元 曉 ( 新 羅 ) 述 보현사 碧 松 堂 埜 老 行 錄 休 靜 著 보현사 禪 家 龜 鑑 諺 解 休 靜 ( 朝 鮮 ) 撰 ; 金 華 道 人 ( 朝 鮮 ) 譯 보현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宗 杲 ( 宋 ) 著 ; 慧 然 ( 宋 ) 錄 ; 黃 文 昌 ( 宋 ) 重 編 보현사 禪 宗 永 嘉 集 玄 覺 ( 唐 ) 撰 ; 行 靖 註 ; 淨 源 修 定 科 ; 得 通 說 誼 보현사 看 話 決 疑 論 知 訥 著 보현사 禪 家 龜 鑑 休 靜 著 보현사 禪 源 諸 詮 集 都 序 宗 密 ( 唐 ) 述 보현사 緇 門 警 訓 [ 如 근( 明 ) 著 ] 보현사 虛 白 集 明 照 著 ; 南 印 編 보현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得 通 說 誼 보현사 法 集 別 行 錄 節 要 幷 入 私 記 知 訥 著 보현사 禪 源 諸 詮 集 都 序 宗 密 ( 唐 ) 述 보현사 預 修 十 王 生 七 齋 儀 纂 要 大 愚 集 述 보현사 大 方 廣 圓 覺 修 多 羅 了 義 經 佛 陀 多 羅 ( 唐 ) 譯 ; 宗 密 ( 唐 ) 述 解 보현사 妙 法 蓮 華 經 보현사 金 剛 般 若 經 疏 論 纂 要 助 顯 錄 慧 定 ( 宋 ) 述 보현사 景 德 傳 燈 錄 道 原 ( 宋 ) 纂 보현사 首 楞 嚴 經 般 剌 蜜 帝 ( 唐 ) 譯 ; 戒 環 ( 宋 ) 解 보현사 大 乘 起 信 論 疏 眞 諦 ( 梁 ) 譯 ; 法 藏 ( 唐 ) 述 ; 宗 密 ( 唐 ) 錄 보현사 ) 禹 秦 雄 은 조선시대 묘향산 보현사 간행 판본고, 서지학연구 51, 북한불교의 이해
129 22 緇 門 警 訓 性 聰 註 보현사 梵 網 經 盧 舍 那 佛 說 心 地 法 門 品 菩 薩 戒 本 鳩 摩 羅 什 ( 後 秦 ) 譯 보현사 佛 祖 宗 派 之 圖 道 安 增 補 보현사 諸 眞 言 集 [ 編 者 未 詳 ] 보현사 妙 法 蓮 華 經 보현사 雪 巖 雜 著 秋 鵬 著 보현사 雪 巖 集 秋 鵬 著 보현사 刪 補 梵 音 集 [ 編 者 未 詳 ] 보현사 月 渚 堂 大 師 集 道 安 著 보현사 大 悲 心 多 羅 尼 보현사 觀 世 音 菩 薩 靈 驗 略 抄 보현사 隨 求 多 羅 尼 보현사 阿 彌 陀 經 보현사 請 文 보현사 高 峰 和 尙 禪 要 高 峰 ( 元 ) 著 ; 釋, 持 正 ( 元 ) 錄 ; 洪 喬 祖 ( 元 ) 編 보현사 天 地 八 陽 神 呪 經 義 淨 奉 詔 譯 보현사 禪 家 龜 鑑 休 靜 著 보현사 虛 靜 集 法 宗 著 보현사 玉 樞 經 보현사 諸 般 文 보현사 佛 說 大 目 連 經 法 天 譯 보현사 禪 源 諸 詮 集 都 序 宗 密 ( 唐 ) 述 ; 秋 鵬 科 評 보현사 虛 白 集 明 照 著 ; 南 印 編 보현사 淸 虛 堂 集 休 靜 著 보현사 佛 說 大 報 父 母 恩 重 經 諺 解 [ 著 者 未 詳 ] 보현사 미상 47 曹 洞 五 位 내원암 法 集 別 行 錄 節 要 幷 入 私 記 知 訥 著 내원암 禪 家 龜 鑑 休 靜 撰 내원암 禪 源 諸 詮 集 都 序 宗 密 著 내원암 月 渚 堂 大 師 集 道 安 著 내원암 般 若 波 羅 蜜 多 心 經 素 夫 (?) 解. 백운사 高 峰 和 尙 禪 要 持 正 ( 元 ) 錄 ; 洪 喬 祖 ( 元 ) 編 보윤암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불영대 茶 毘 文 불영대 水 陸 無 遮 平 等 齋 儀 撮 要 불영대 眞 言 集 불영대 蒙 山 法 語 蒙 山 ( 元 ) 撰 ; 釋, 信 眉 譯 訣 심원사 般 若 波 羅 蜜 多 心 經 略 疏 仲 希 ( 宋 ) 述 ; 孝 寧 大 君 等 諺 解 심원사 念 佛 普 勸 文 明 衍 集 용문사 1765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29
130 61 三 門 直 指 振 虛 捌 關 은적사 長 壽 滅 罪 護 諸 童 子 陁 羅 尼 經 축성전 梵 綱 經 화장암 梵 綱 經 화장암 蒙 山 和 尙 法 語 略 錄 德 異 ( 元 ) 著 ; 信 眉 譯 解 빙발암 禪 門 拈 頌 說 話 慧 諶 編 선정암 四 分 律 七 聚 大 目 抄 은선암 석왕사 및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蒙 山 和 尙 六 道 普 說 蒙 山 ( 元 ) 著 석왕사 法 華 靈 驗 傳 석왕사 佛 說 大 目 連 經 法 天 譯 석왕사 佛 說 大 目 連 經 法 天 譯 석왕사 賢 首 諸 乘 法 數 行 深 ( 明 ) 編 集 석왕사 禪 宗 永 嘉 集 玄 覺 ( 唐 ) 撰 ; 行 靖 註 ; 淨 源 修 定 科 ; 得 通 說 誼 석왕사 勸 供 諸 般 文 석왕사 西 方 無 異 路 석왕사 高 峰 和 尙 禪 要 持 正 ( 元 ) 錄 ; 洪 喬 祖 編 석왕사 妙 法 蓮 華 經 要 解 鳩 摩 羅 什 ( 後 秦 ) 譯 ; 戒 環 ( 宋 ) 解 석왕사 誡 初 心 學 人 文 知 訥 述 석왕사 法 集 別 行 錄 節 要 幷 入 私 記 知 訥 著 석왕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五 家 解 六 相 ( 慧 能 )... 等 解 ; 虛 堂 ( 己 和 )... 等 編 석왕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 五 家 解 ) 慧 能 ( 唐 ); 己 和 等 解 석왕사 禪 門 五 宗 綱 要 喚 惺 ( 志 安 ) 編 석왕사 法 集 別 行 錄 節 要 幷 入 私 記 解 知 訥 著 석왕사 禪 源 集 都 序 科 記 定 慧 撰 述 ; 海 源 證 正 ; 護 敬 通 攷 ; 總 활 編 錄 석왕사 禪 門 五 宗 綱 要 喚 惺 ( 志 安 ) 編 석왕사 大 乘 百 法 明 門 論 天 親 著 ; 玄 奘 譯 ; 德 淸 述 석왕사 天 鏡 集 海 源 著 ; 翠 雲, 聖 岸 共 編 석왕사 喚 惺 詩 集 志 安 著 ; 聖 訥 編 錄 석왕사 金 剛 般 若 經 疏 論 纂 要 刊 定 記 會 編 宗 密 ( 唐 ) 述 疏 ; 子 璿 ( 宋 ) 錄 記 ; 釋, 行 策 ( 淸 ) 會 編 석왕사 阿 彌 陀 經 要 解 鳩 摩 羅 什 譯 ; 智 旭 ( 明 ) 解 석왕사 雪 峯 山 釋 王 寺 記 宏 演 撰 석왕사 雪 峯 山 釋 王 寺 記 休 靜... 等 撰 석왕사 天 鏡 集 海 源 著 ; 聖 岸 編 錄 ; 等 麟 校 正 ; 瀛 齋 管 刻 석왕사 地 藏 菩 薩 本 願 經 諺 解 견성암 櫟 山 集 : 暎 虛 堂 遺 集 善 影 撰 내원암 禪 宗 永 嘉 集 玄 覺 ( 唐 ) 도성암 북한불교의 이해
131 8 귀주사 말사 간행 불서 연번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1 大 乘 起 信 論 疏 法 藏 ( 唐 ) 述 ; 宗 密 ( 唐 ) 錄 개심사 大 乘 起 信 論 疏 法 藏 ( 唐 ) 述 ; 宗 密 ( 唐 ) 錄 개심사 妙 法 蓮 華 經 弘 傳 序 개심사 天 地 冥 陽 水 陸 齋 儀 纂 要 竹 庵 編 개심사 月 波 集 兌 律 著 견불암 기타 사찰 불서 연번 서명 저자 지역 발행자 발행년 1 預 修 十 王 生 七 經 藏 川 述 평안도 천명사 佛 說 四 十 二 章 經 평안남도 석수암 西 方 無 異 路 평안남도 송방사 佛 頂 心 觀 世 音 普 薩 大 陀 羅 尼 經 [ 譯 者 未 詳 ] 평안남도 해탈사 法 集 別 行 錄 節 要 幷 入 私 記 知 訥 著 평안남도 해탈사 禪 源 諸 詮 集 都 序 宗 密 ( 唐 ) 述 평안남도 해탈사 阿 彌 陀 經 평안남도 해탈사 蓮 宗 寶 鑑 普 度 編 輯 평안북도 고묘불당 圓 頓 成 佛 論 知 訥 著 평안북도 반야암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 三 家 解 ) 鳩 摩 羅 什 ( 後 秦 ) 譯... 己 和 ( 朝 鮮 ) 說 誼 ; 學 祖 ( 朝 鮮 ) 重 校 평안북도 의상암 大 報 父 母 恩 重 經 평안북도 조원암 雲 水 壇 歌 詞 慶 熙 編 함경남도 개단사 水 陸 無 遮 平 等 齋 儀 撮 要 [ 編 者 未 詳 ] 함경남도 영덕사 妙 法 蓮 華 經 함경남도 조계사 원통암 大 報 父 母 恩 重 經 함경남도 진정사 妙 法 蓮 華 經 함경남도 진정사 長 壽 滅 罪 護 諸 童 子 陁 羅 尼 經 황해도 구중사 天 地 冥 陽 水 陸 齋 儀 竹 庵 撰 황해도 불봉암 蒙 山 和 尙 六 道 普 說 蒙 山 ( 元 ) 著 황해도 불회암 禮 念 彌 陀 道 場 懺 法 王 子 成 ( 元 ) 集 황해도 석두사 妙 法 蓮 華 經 황해도 석두사 顯 正 論 得 通 著 황해도 석두사 大 報 父 母 恩 重 經 황해도 석두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宗 杲 ( 宋 ) ( 宋 ) 重 編 著 ; 慧 然 ( 宋 ) 錄 ; 黃 文 昌 황해도 석두사 1546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31
132 25 首 楞 嚴 經 황해도 석두사 觀 無 量 壽 佛 經 황해도 석두사 地 藏 菩 薩 本 願 經 法 燈 황해도 석두사 蒙 山 和 尙 六 道 普 說 蒙 山 ( 元 ) 著 황해도 석두사 十 地 經 論 황해도 성숙사 首 楞 嚴 經 戒 環 ( 宋 ) 解 황해도 성숙사 妙 法 蓮 華 經 황해도 연봉사 阿 彌 陀 經 황해도 월출암 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 도경 황해도 월출암 妙 法 蓮 華 經 황해도 이순변 首 楞 嚴 經 戒 環 ( 宋 ) 解 황해도 자비령사 地 藏 菩 薩 本 願 經 法 燈 황해도 자비령사 蒙 山 和 尙 六 道 普 說 蒙 山 ( 元 ) 著 황해도 자비령사 六 經 合 部 황해도 자비령사 미상 39 妙 法 蓮 華 經 鳩 摩 羅 什 ( 姚 秦 ) 奉 詔 譯 ; 戒 環 ( 宋 ) 解 ; 省 거( 朝 鮮 ) 書 황해도 장불사 地 藏 菩 薩 本 願 經 法 燈 황해도 중암 妙 法 蓮 華 經 황해도 중암 賢 首 諸 乘 法 數 行 深 ( 明 ) 編 集 황해도 중암 禪 宗 永 嘉 集 玄 覺 ( 唐 ) 황해도 천불사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황해도 천불사 六 祖 大 師 法 寶 壇 經 황해도 청암사 四 溟 根 源 錄 황해도 학림사 預 修 十 王 生 七 經 藏 川 述 황해도 흥률사 妙 法 蓮 華 經 황해도 흥률사 念 佛 普 勸 文 明 衍 集 황해도 흥률사 일제강점기 불교문헌 목록 1940년경에 동국대 도서관에서 편찬한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은 총 24개 본산 과 그 말사의 귀중재산 목록을 소개하고 있다. 습자지에 필사되어 있어서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도 있지만 당시 불교계의 재산현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는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132 북한불교의 이해
133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가운데에 불서 및 목판 상황도 정리하고 있어서 당시의 불서 소장 사항을 알 수 있다. 아래는 그 목록을 정리한 것이다. 1 유점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유점사 신계사 경율논(책 60종, 목판 1종 35매) 중국찬술(7종) 한국찬술(4종) 사지류(17종) 기타(5종) 화엄경(5부), 법화경(5부), 열반경(2부), 원각경(3부), 사분율(1부), 기신론(4부) 불조통재(1부), 회현기(2 부), 금강경간정기(3부), 염송(2부) 대명법수(1부) 어필(2), 완문(6), 첩문(1), 立 案 (5), 사적(1) 화엄경(6), 법화경(7), 원각경(1), 반야경 (1), 능엄경(2), 부모은중경(1), 목련경 要 集 (2) 염송(1부) 완문(12), 절목(1) (1), 기신론(1) 장안사 화엄경(1질), 법화경(1질) 표훈사 원각경(2), 반야경(2), 능엄경(10), 십지 론(40) 심원사 화엄경(1부81), 법화경(1부7), 칠성경(2) 마하연 화엄경(66), 화엄경(50) 정양사 대장경(6,447), 화엄경(81) 백화암 화엄경(81) 수태사 용공사 법화경(7), 정토삼부(244권 3부), 법화경 (1) 화엄경(143), 법화경(19), 원각경(11), 금 강경(3), 능엄경(10), 사십이장경(1), 삼 도서(2) 부경(1), 기신론(11) 관음사 화엄경(5), 법화경(7) 성주암 석대암 화엄경(54), 법화경(16), 원각경(7), 능엄 경(2), 범왕경(1), 약사경(1), 지장경(2) 화엄경(40), 법화경(7) 지장경판(35매) 안양암 법화경(2부) 안양사 복혜암 법화경(1부) 상원사 能 音 經 (1), 蓮 花 經 (1) 관응사 부모은중경(1), 약사여래본원경(1), 불설 대목련경(1), 화엄경(3), 금강경(1), 연화 경(1) 완문(9), 입안(1), 절목(4), 상량 문(1), 양안(10), 장안사사적(1) 금강경간정기(10) 염송(30) 어필(1), 양안(2), 각양문서(1) 선문촬요(2) 葛 來 事 蹟 (1) 칠조성교 (3), 교행신 증(3) 칠조성교 (1), 교행신 증(1) 미타참문(2)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33
134 2 패엽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경율논(책 32종, 목판 2종 161매 이상) 중국찬술(1종) 한국찬술(1종) 사지류 기타 패엽사 화엄경(3), 법화경(4), 원각경(2), 능엄경(1), 반야경(1), 법화경(1), 기신론(1) 연화경판(1) 지장전 법화경(1) 월정사 달마암 봉림암 묘각사 신광사 북암 운수암 안양암 정각사 동고사 청련사 수증사 진봉암 화장사 운흥사 법화경(1) 법화경(1), 원각경(1) 아미타경(1) 법화경(1부), 아미타경(1부) 법화경(7), 화엄경(7), 지장경(1), 금강경(1), 법화경(7) 경판(160매) 법화경(7) 법화경(7) 법화경(5), 원각경(7), 기신론(3) 법화경(3), 원각경(3) 화엄경(2) 법화경(3) 법화경(7) 법화경(2) 법화경(1) 화엄경(5) 전등록(1) 염송(1) 3 성불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성불사 심원암 서사암 화엄경(10), 법화경(7), 화엄경(81) 화엄경(40) 원각경(1), 능엄경(1) 귀진사 화엄경(10) 대장경(1,500) 속명사 화엄경(1) 경율논(책 21종, 목판 1500매) 중국찬술(1종) 한국찬술(1종) 사지류 기타 要 集 (1) 영천암 범망경(1), 법화경(1), 화엄경(1), 장수경(1), 기신론(4) 염송(5) 함굴암 강서사 법화경(2) 화엄경(55), 법화경(7), 금강경(1), 원각경(3), 범망경(1), 미타경(1) 원명사 미타경(1) 134 북한불교의 이해
135 4 영명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영명사 광법사 경율논(책16종, 목판 416매) 중국찬술(1종) 한국찬술(7종) 사지류 법화경(1), 유마경(3), 아미타경(1) 대장경(416) 화엄경(67) 임제록(1) 선가귀감(1), 불교통사(2), 불교약사(1), 연담집(2), 선요사기(1), 예수문(1) 기타 (책 3종, 목판 1매) 진언집(1) 법운암 아미타경(1), 태장경(1), 목련경(1) 진언집(1) 영천암 보림사 용산사 길상사 회룡사 화엄경(60) 화엄경(62), 법화경(24), 목련경 은중경합부(1) 화엄경(19), 법화경(19) 법화경(7), 반야경(1), 화엄경(1) 삼문직지(1) 진언집(1) 다라니판(1) 5 법흥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경율논(21종) 법흥사 금강경(1), 지장경(2), 조상경(1) 요집(1) 학원사 미타경(1), 법화경(1) 운상암 지장경(1), 은중경(1) 치문(1) 내원암 법화경(1) 요집(1) 영대암 화엄경(1) 요집(1) 성룡사 동림사 가산사 안국사 동금강암 법화경(2) 법화경(4) 팔양경(1) 금강경(1), 화엄경(2), 삼부합경 (2), 은중경(2), 무량수경(3), 관무 량경(3) 법화경(7), 은중경(1), 아미타경(1) 중국찬술(8종) 도서(2), 몽산법 어(1), 선원제전 집(1) 한국찬술 (책 4종, 목판 1종 300매) 선문증정록(1), 선문사변만어(1) 염송판(300매) 범음집(1),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1) 사지류(3종) 사적책(1), 선조대 왕어필(2), 사찰사 료(2) 기타(2종) 중회집(1), 법설축경 집(1)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35
136 6 보현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보현사 양화사 서운사 오봉사 봉명암 경율논 (책 56종, 목판 34종 6780매 이상) 현담홍자권(50) 대장경판(4,023매), 대화엄경판 (1,267매), 대문법화경판(30매), 疏 법화경판(126매), 대문금강경판 (13매), 疏 금강경판(64매), 원각경 판(166매), 능엄경판(125매), 대미 타경판(56매), 소미타경 미타예 문판(50매), 십육관경판(21매), 지 장경판(36매), 목련경판(26매), 은 중경판(41매), 범망경판(66매),? 彌 경판(29매), 주심경판(11매), 관 음경판(11매), 고왕경판(11매), 팔 양경판(14매), 칠성경판(12매), 시 왕경판(21매), 玉 板 경판, 持 心 경 판, 大 歲 경판, 百 殺 경판, 解 送 경 판, 安 宅 경판(79매), 度 厄 경판(79 매), 竈 王 경판(79매), 會 命 경판(79 매), 敗 目 경판(79매), 權 世 경판(79 매), 기신론판(40매), 무간론판(18 매), 疏 판(29매) 화엄경(3), 법화경(12), 원각경 (7), 능엄경(16), 미타경(2), 금강 경(2), 기신론(13) 법화경(7) 법화경(1), 지장경(1) 천수성경(1), 미타경(1) 중국찬술 (책 13종, 목판 3종 146매) 연종보감(118), 금강반야경소 론찬요조현록 (116), 전등록판(26 매), 대혜서장 판(77매), 치문 경훈판(43매) 대장일람(5), 대 혜서장(1), 선원 집도서(1) 한국찬술 (책 21종, 목판 21종 1126매) 심요첩(13), 삼문직지(39), 三 時 繫 念 文 (19), 왕생문(55),?자 문(2), 감응?(3), 음양문(12) 염송설화판(258매), 선문귀감 판(25매), 初 心 판(18매), 發 心 판(18매), 自 警 판(18매), 子 虁 文 판(145매), 志 般 文 판(33매), 豫 修 文 판(17매), 中 禮 文 판(17 매), 諸 般 文 판(53매), 범음집판 (91매), 結 手 文 판(11매), 施 食 文 판(4매), 운수단판(42매), 청 허집판(79매), 허백집판(28매), 월저집판(55매), 설암집판(119 매), 허정집판(52매), 월파집판 (33매), 物 外 集 판(10매) 별행록(2) 천황사 법화경(2) 승가예문(1) 청학대 법화경(7), 금강경(1) 보현사 범망경(1), 미타경(1), 무량수경 (1), 십지관경(1), 금강경(1), 지장 禪 要 集 (1) 절요(2) 경(1), 준제경(1), 천수경(1) 서임사 법화경(1), 미타경(1), 은중경(1) 전등록(1) 일용집(1) 사지류(18종) 緣 起 書 (2), 보현 사고금사적(1), 사적편록(1), 사 적기(1), 향산이 적(1), 보현 塑 畵 조성록(1), 太 白 山 普 濟 禪 門 錄 (1), 정종대왕어 필연당지록(1), 명장이여송서간 병??서산대사감 장(1), 서산대사 유첩(1), 寺 田 實 進 狀 (2), 종파도 (3) 牒 판(29매), 榜 판(29매) 緣 起 書 (1), 불량 전답(1), 遺 物 持 掌 記 (4) 기타 (책 1종, 목판 2종 56매) 진언집판(38매), 隨 求 多 羅 尼 판(18 매) 은적암 원각경(3), 연화경(3) 선문염송집(1) 금린사 만년사 화엄경(3) 법화경(5), 무량수경(1), 법화경 (10), 미타경(10) 사찰세칙(1), 寺 錄 (1) 136 북한불교의 이해
137 굴암사 음지사 만년사 백운암 진언경(1) 금강경(1) 화엄경(10), 묘법연화경(20), 범 망경(1), 불명경(1), 미타경(1), 지 장경(3), 은중경(1), 辨 正 經 (1) 진언경(1) 중흥사 화엄경(1), 연화경(1), 금강경(1) 要 集 (1) 대혜보각선사 서(2), 선원제전 집(2) 화엄품목(1), 선가귀감(4), 절요 사기(4), 간화결의론(2), 운수단 (3), 화엄예문(2), 천지명양수륙 의찬요(1) 화엄경(10), 법화경(10), 원각경 금강사 要 集 (4) (2), 기신론(2) 나한사 원각경(1) 緣 起 書 (1) 영장사 추월암 화엄경(7) 법화경(7) 국청사 기신론(3) 도서(1), 선요(1) 절요(1) 寺 有 田 沓 冊 (1) 미타참찬(4) 7 석왕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석왕사 진헐당 내원암 보문암 경율논 (책 77종, 목판 12종 621매) 화엄경변상(1), 능엄경(10), 은 중경(1), 藏 本 화엄경판(1부10매), 演 義 화 엄경판(1부80매), 묘법연화경판 (1부7매), 법화경판(180매), 금 강경판(66매), 미타경판(13매), 大 文 금강경판(6매), 은중경판 (12매), 금강경간정기판(102매), 기신론판(104매), 백법론판(9 매), 심성론판(21매) 疏 화엄경(60), 법화경(7) 疏 화엄경(1부40), 抄 화엄경(1부 80), 원각경(3부각4), 능엄경(2 부), 반야경(2부), 범망경(1), 미 타경(1), 십육관경(1), 은중경 (1), 지장경(1), 법화경(1부7), 기 신론(4부각4), 십지론(1부5), 간 정기(3부각4), 抄 화엄경(80), 법화경(7), 대원 각경(5), 수능엄경(2) 중국찬술 (9종) 서장판(29매), 도서판(34매), 선요판(13매) 법보단경(1), 회 현기(1부10) 한국찬술 (14종, 목판 15종 290매) 범음집(1), 청허필(1) 절요판(25매), 오종강요 판(5매), 선가귀감판(12 매), 초심자목판(9매), 結 手 文 판(31매), 中 礼 文 판 (26매), 雲 水 集 판(10매), 諸 般 集 판(25매), 志 般 集 판(24매), 豫 修 集 판(12 매), 喚 醒 集 판(10매), 천 경집판(44매), 煙 巖 集 판 (36매), 白 首 文 판(11매),? 合 文 판(10매) 염송(1부10), 설화(1부 10), 범음집(1) 사지류 (11종, 목판 5종 10매) 해인사사적(1), 列 聖 朝 御 筆 (1), 정종대왕어필 (2), 철종대왕어필(1), 이태왕어필(1), 지공화 상교지(1), 나옹화상교 지(1), 무학화상교지(1) 석왕사사적판(6매),?황 제어제필판(1매), 선조 대왕어필판(1매), 숙종 대왕어필제판(1매), 영 종대왕어필제판(1매) 기타 (5종, 목판 2종 17매) 祈 禓 偈 (1), 聖 齊 文 (1) 진언집판(13매), 畵 千 手 (4매) 용감수경(1부7)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37
138 향적암 연화경(7), 아미타경(1), 행원품경(1) 佛 糧 冊 (1) 聖 齊 文 (1) 무달사 연화경(7), 미타경(1) 재성암 운석사 갈월사 만경암 견성암 법화경(7), 미타경(1), 부모은중 경(1) 법화경(7) 화엄경(14), 십육관경(1), 법화 경(7), 부모은중경(1), 범망경(1) 연화경(7), 지장경(1) 법화경(3) 운수사 금강경(2), 법화경(4) 범음집(1) 안불사 운주사 지흥사 성불사 화엄경(42), 법화경(2), 원각경 (1), 기신론(3), 도서(3) 법화경(3), 금강경(2), 화엄경(1) 법화경(3), 능엄경(6), 금강경 (6), 기신론(3) 법화경(1), 금강경(8), 원각경(1), 미타경(1), 화엄경(1), 능엄경(1) 전등록(10), 선 요(1), 도서(1), 서장(1) 法 數 (1), 집(1) 친견사 법화경(1질), 금강경(1질) 도서(1) 동안사 환희사 용흥사 보현사 곡천사 법화경(2) 법화경(7) 화엄경(80), 법화경(7), 원각경 (4), 미타경(1) 연화경(4) 법화경(1), 묘법연화경(1) 선원 예수문(1), 결수문(1) 심성론(1) 佛? 魂 記 (2) 다라니경(1) 시식문(1사본), 제반문(2 사본), 배비문(1사본), 결 수문(1) 벽송암 법화경, 부모은중경, 지장경(1), 육조단경(1) 백련사 화엄경(2) 예불요집(1) 운주사 묘법연화경(8) 疏 文 (1사본) 8 귀주사 및 말사 소장 불교문헌 경율논 (책 89종, 목판 1종 47매) 중국찬술(36종) 한국찬술(25종) 사지류(11종) 기타(9종) 귀주사 화엄경(16), 능엄경(10), 기 신론(8), 금강경(4), 원각경 (4), 법화경(28), 유마경(6), 십육관경(1), 미타경(1), 지 장경(1), 불본행집경(12), 범 전등록(10), 도서(2), 서장(2), 선요(2), 정 선치문(1), 육조단경 (1), 회현기(10), 치문 (3), 영가집(1), 현수 염송(10), 절요(2), 초심발심자 경문(1), 조석송주예참심경(1), 여래행적(1), 결수문(2), 제가종 파(1), 오종강(1) 성조기일기(1), 사중성조하기책 (3), 권선?봉상성 책(1), 주지선사 안(1), 후기하기 수계의(1), 독서 당도(1), 함흥동 궁범례(1) 138 북한불교의 이해
139 개심사 대승암 견불암 보문암 망경(2), 사분율(4), 불유교 경(1) 화엄경(313), 대반열반경(9), 반야경(8), 지장경(2), 대승 요의경(1), 기신론(16), 인명 론(1), 대승백법론(1), 범망 경(4), 십지론(6), 阿 嚕 力 經 (1), 무량수경(1), 천수경(1), 법화경(21), 원각경(24) 법화경(7) 법화경(7) 법화경(7) 법수(1), 임제록(1) 경율이상(8), 석가보 (2), 간정기(14), 자비 도량참(1), 역조화엄 지험기(1), 선요(5), 치문(4), 전등록(15), 법수(2) 은적암 법화경(9) 요집(1) 범음집(1) 불지암 법화경(7) 금강소기(6), 회현기(19), 능엄 기(19), 대장경목록(2), 결수문 (1), 별행록(4), 염송(9), 설화 (4), 팔식규구행상(1) 책(1), 寺 事 蹟 (1), 성조기일기(1), 어필(1), 극락암 사적(1), 동사치 화지(1) 흥복암 법화경(14) 귀주사본말사법(1) 흥덕암 은적암 광제사 벽해암 복흥사 성도암 도덕암 보성암 범망경(1), 법화경(2), 화엄 경(1) 연화경(26), 능엄경(3), 원각 경(1), 기신론(5) 화엄경(59), 법화경(20), 인 명론(1), 원각경(9) 법화경(1질) 화엄경(1부), 반야경(2부), 기신론(2부), 법화경(2부), 원각경(2부), 능엄경(2부) 법화경(1) 법화경(2), 화엄경(2) 법화경(1), 범망경(1), 화엄 경(1) 大 藏 覽 (1) 전등록(7) 서장(1), 도서(1), 선 요(1), 치문(1), 연종 보감(1) 전등(1부), 四 集 (4) 법수집(1) 절요(2), 예수문(1) 염송(1부) 관해암 원각경(2), 법화경(5) 염송(9) 정광사 보현사 도덕사 추파사 법화경(22), 원각경(7) 법화경(4) 법화경(6) 금강경(2), 법화경(2) 가퇴사 법화경(17), 원각경(3), 연화 경(1), 기신론(2) 동덕사 연화경(3), 원각경(2) 선요(2) 중흥사 은선암 개심사 법화경(1) 법화경(5) 법화경(7), 은중경판(47매)?승?(4), 진언집 (1), 오백팔법 (1), 화장세계기 (1), 회?기(10), 제경안목(1)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39
140 송덕사 청계사 묘법연화경(10), 능엄경(4), 원각경(3), 미타경(1) 법화경(2), 능엄경(1), 新 記 법화경(1) 선요(1) 대명법수(1) 선문설화(2) 제반문(2) 유계사 묘법연화경(2), 능엄경(2) 제반집(1) 벽송암 법화경(3), 부모은중경(1), 지장경(1) 육조단경(1) 4. 불교문헌의 종류와 조사의 필요성 앞에서 제시한 북한 사찰 간행 불서 목록을 정리해 보면, 1416년부터 1888년까지 총 90종의 불서가 214회 간행되었는데, 15세기 7회, 16세기 93회, 17세기 58회, 18 세기 44회, 19세기 10회, 발행년 미상 2건이 판각되었다. 이를 다시 주제별로 나누 어 보면 경전 및 논서가 30종 88회 판각되었고, 중국찬술은 17종 52회, 한국찬술은 43종 74회 판각되었다. 아래는 이러한 사항을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대주제 소주제 불서 경율논 (30종 88회) 중국찬술 (17종 52회) 한국찬술 (43종 74회) 경전 (27종 81회) 논서 (3종 6회) 선서 (11종 41회) 교훈 (2종 6회) 기타 (4종 5회) 선서 (7종 20회) 문집 (16종 22회) 관무량수경 1회, 관세음보살보문품 1회, 금강경 10회, 금강경간정기 1회, 금강경조현록 1회, 대비심다라니 1회, 묘법연화경 20회, 반야심경 3회, 범망경 3회, 부모은중경 7회, 불설대목련경 3회, 불정심관세음보살 대다라니경 1회, 사분율칠취대목초 1회, 사십이장경 1회, 수구다라니 1회, 수능엄경 4회, 아미타경 5회, 약 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 1회, 예수시왕생칠경 2회, 원각경소 1회, 육경합부 1회,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 니경 3회, 조상경 1회, 지장보살본원경 4회, 천지팔양신주경 1회, 현행서방경 1회, 화엄경소 2회 대승기신론 4회, 대승백법명문론 1회, 십지경론 1회 경덕전등록 3회, 고봉화상선요 6회, 대혜보각선사서 7회, 몽산법어 9회, 벽암록 1회, 선림보훈 1회, 선원제 전집도서 7회, 선종영가집 4회, 육조법보단경 1회, 전심법요 1회, 증도가 1회 치문경훈 5회, 연종보감 1회 대장일람집 1회, 용감수경 1회, 천태사교의약초 1회, 현수제승법수 2회 간화결의론 1회, 법집별행록절요 7회, 선문염송집 3회, 선가귀감 5회, 선문오종강요 2회, 구자무불성간병 론 1회, 조동오위 1회 벽송당야로행록 1회, 삼문직지 1회, 설암집 2회, 역산집 1회, 연경별찬 1회, 염불보권문 2회, 원돈성불론 2회, 월저당대사집 2회, 월파집 1회, 진허집 1회, 천경집 2회, 청허당집 1회, 허백집 2회, 허정집 1회, 현정론 1회, 환성시집 1회 의례 산보범음집 1회, 운수단가사 2회, 제반문 2회, 제진언집 2회,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2회, 다비문 1회, 수륙 140 북한불교의 이해
141 (11종 19회) 무차평등재의촬요 3회, 예념미타도량참법 1회,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3회, 오대진언 1회, 청문 1회 합계 사적기 (1종 2회) 기타 (8종 12회) 석왕사기 2회 발심수행장 1회, 불조종파지도 1회, 계초심학인문 3회, 관세음보살영험약초 2회, 법화영험전 1회, 사명근 원록 1회, 서방무이로 2회, 옥추경 1회 90종 214회 그리고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에 의거하여 보면, 일제강점기에 각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던 목판은 98종 11,506매 이상이었고, 불교 전적은 610종이었다. 전적 의 경우는 중복되는 것도 있으므로 실질적인 種 數 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이를 도표 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경율논 중국찬술 한국찬술 사지류 기타 사찰명 목판 전적 목판 전적 목판 전적 목판 전적 목판 전적 유점사 1종 35매 60종 - 7종 - 4종 - 17종 - 5종 패엽사 2종 161매 이상 32종 - 1종 - 1종 성불사 1,500매 21종 - 1종 - 1종 영명사 416매 16종 - 1종 - 7종 - - 1매 3종 법흥사 - 21종 - 8종 1종 300매 4종 - 3종 - 2종 보현사 34종 6,780매 이상 56종 3종 146매 13종 21종 1,126매 21종 - 18종 2종 56매 1종 석왕사 12종 621매 77종 - 9종 15종 290매 14종 5종 10매 11종 2종 17매 5종 귀주사 1종 47매 89종 - 36종 - 25종 - 11종 - 9종 소계 49종 9,560매 이상 372종 3종 146매 76종 37종 1,716매 77종 5종 10매 60종 4종 74매 이상 25종 총계 목판 98종 11,506매 이상 전적 610종 국립중앙도서관 검색을 통해서 찾아지는 불서들은 동국대학교 도서관이나 규장 각, 또는 고려대도서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이므로 서지적 연구에 있어서는 굳 이 북한지역을 방문하지 않아도 조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목판이나 그 외의 전적들 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조사할 수 없는 불서라면 거의 유 일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전류는 대부분 남한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으로 생각되지만, 寺 誌 類 의 전적들은 대부분 유일본일 것이다. 또한 목판은 판본의 근거가 되는 자료이므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41
142 그런데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이러한 문헌 자료가 북한에 얼마나 현존하고 있는 가 하는 점이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사찰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상당수의 목판과 전적들이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또 북한 당국이 오랫동안 종교를 부정 적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에 불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 므로 더욱더 그 목록이 궁금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1958년 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필사하여 발간한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도서목록(한서 분류목록) 의 佛 敎 綱 에 실려 있는 목록인데, 여기에는 불과 50종의 불서만을 소개 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가운데는 근대에 발간된 책도 있으므로 조선시대 이상으로 올 라가는 간본은 40종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그 목록을 제시하면 아래 와 같다. 주제 경전류 중국찬술 한국찬술 기타 서명 金 剛 波 羅 蜜 經, 川 老 金 剛 經, 金 剛 經, 金 剛 心 經, 柳 城 縣 金 綱 經, 金 剛 般 若 波 羅 蜜 經, 法 華 經 妙 音 菩 薩 ( 卷 7), 法 蓮 華 經 ( 卷 7), 蓮 華 經 ( 卷 4-7), 妙 法 蓮 華 經, 楞 嚴 經, 華 嚴 經, 華 嚴 經, 大 方 廣 佛 華 嚴 經 䟽 ( 卷 75-76), 조선한글화엄경, 維 摩 經, 圓 覺 䟽 鈔, 梵 網 經, 地 藏 經, 楞 伽 經 會 譯, 校 刊 寫 本 楞 伽 師 資 記, 恩 重 經 諺 解, 佛 說 大 報 父 母 恩 重 經, 佛 說 大 報 父 母 恩 重 經 科 判, 불설 대보부모은중경, 佛 祖 三 經 指 南, 大 悲 陀 羅 尼 經 ( 千 手 經 ), 千 手 經, 畵 千 手 經, 佛 說 安 宅 經, 佛 說 竈 王 經 六 祖 法 寶 壇 經, 緇 門, 入 乘 起 信 論 䟽 記 會 本, 大 慧 普 覺 禪 師 書, 高 峰 和 尙 禪 要, 證 道 歌 註 頌 禪 敎 釋, 禪 家 龜 鑑, 普 照 法 語, 眞 覺 語 錄, 禪 學 入 門, 佛 子 必 覽, 釋 門 義 範, 朝 鮮 佛 敎 通 史, 朝 鮮 佛 敎 略 史 金 陵 刻 經 處 流 通 經 典 目 錄, 覺 世 入 錫, 祖 庭 事 苑, 西 域 之 佛 敎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서가 위의 표에서 제시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조사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만다. 대부분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이 므로 굳이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서 조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성종합 대학 도서관 목록이 북한 소장 불교문헌 전부라고 보기 어렵다. 또 묘향산 보현사의 경우 비교적 한국전쟁의 피해를 덜 입었기 때문에 목판과 전적들이 남아 있을 가능 성이 높다. 실제로 2007년에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해인사 팔 만대장경을 인출한 6,793본 전질 14) 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보현사 박물관에 소 장되어 있다고 한다. 15) 그러므로 북한 소재 사찰 불교문헌들이 어딘가에 소장되어 14) 보현사에 소장되어 있는 해인사 팔만대장경본은 1932년에 인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2 북한불교의 이해
143 관리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학자들 중에 북한에 많은 고문헌이 소장되어 있고 불교문헌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북한의 사회과학원과 철학연구소, 그리 고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등과 같은 인문학 연구기관의 귀중도서실에 불교 전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귀중도서실에는 중국학자들도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목록조차 구할 수 없어서 불교문헌의 규모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 러나 북한 소장 불교문헌 조사의 가능성을 단념할 필요는 없다. 만약에 북한이 그 문헌들을 소장하고 있다면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 유산인 만큼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며, 또 그 정신유산에 대한 공동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 기 때문이다. 남한의 불교문헌과 북한의 불교문헌을 비교 분석하는 연구는 남북한이 단일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불교문화가 남북한에 걸쳐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1940년대까지 북한 지역 사찰이 소장하고 있던 문헌이 대부분 조선후기 목판이나 판본이었던 점에서 볼 때, 이러한 비교 연구를 통해 서지학적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청허휴정 의 후학들이 묘향산과 금강산을 중심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규명할 수 있게 될 것 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에서 한 단계 진전된 결과물을 획득 할 수 있게 된다. 조선시대 우리 불교계가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일구었던 불교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문헌학 분야에서 민족 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북한의 불교문헌에 대한 공동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 야 할 것이다. 15) 정창현, 보현사 활용한 종합박물관 곳곳이 국보, 처처가 보물유적, 민족21 135, 2012, 6월호, pp.140~142. 북한 소재 사찰의 불교문헌 143
144 5. 맺음말 이상에서 북한지역 사찰의 목판 및 판본과 일제강점기에 소장했던 불서 목록을 통해 북한에 여전히 다량의 불서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공동조사의 필요성 을 주장하였다. 공동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자료정리 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은 근대 불교계의 재산 상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에도 아직 DB 구축과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 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자료 가운데는 북한 소재 사찰 재산 목록도 있으므로 정리와 분석을 통해 북한 지역 사찰 조사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불교문헌은 그 규모도 전혀 파악되지 못하였고 소재처도 불분명한 실정 이다. 그 접근 방법도 남북한의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조사는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한 불교문헌의 학문적 문화적 중 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조사의 기회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야 한다. 남북한의 우호적인 학문적 교류를 지속적으로 시도하여 북한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문헌을 조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본고에서 정리한 목록들이 기초가 되 어 언젠가 있게 될 남북한 공동 조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44 북한불교의 이해
145 제5주제 이지범_고려대장경연구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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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제5주제 이지범 * 16) ** 목 차 ** Ⅰ. 서론 Ⅱ. 남북한 불교교류의 역사적 전개 Ⅲ.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Ⅳ. 결론 Ⅰ. 서론 1. 연구목적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 북관계는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 립 국면이 지속됨에 따라 수많은 갈등과 변화가 있었다. 남북불교의 교류와 협력에 있어서도 세계정세와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인 환경, 남북한 정치, 군 사,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제 조건에 의해 파생되는 국내적 요인과 현행법 및 제도, * 고려대장경연구소 사무처장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47
148 사람들의 심리적 사항까지 총괄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사항들이 그대로 반영된 상황에서 추진된 남북한의 불 교교류와 1991년 9월 18일 제46차 UN총회에서 동시 가입한 남북한 체제 하에서의 불교계가 분단 이후로부터 오늘날까지 교류와 협력을 가진 사실과 그 교류의 성과 를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향후 추진될 수 있는 남북 불교교류의 방향을 가늠해 보고 자 한다. 여기에는 남북한의 불교교류에 대한 공과( 功 過 )와 시대적 한계 등을 점검 하고, 앞으로 남북한 불교계가 진행할 교류와 협력사업에 있어 다양한 방안으로써 의 기능도 같이 모색하였다. 남북한의 불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통일논의와 더불어 교류의 형태 로 새로운 국면을 갖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 시기의 통일논의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불교계의 통일운동도 이 시기로부터 88서울올림픽 공동 개최를 위한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불교본부 (추진불교본부)가 발족하면서 국내에서의 교류 추진이 진행되었고, 더욱이 이를 계기로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 단협) 등 공식기구가 통일과 남북교류 논의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구도를 갖 게 되었다. 그렇지만 본 연구에서는 교류와 직접 연관된 부문만을 다룬다. 1980년대 후기부 터 1990년대 초기까지 전개된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진보세력을 대변한 민족자주 통일불교운동협의회 (통불협)를 비롯하여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와 대한 불교청년회(대불청), 동국대학교 불교학생회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남북한의 불교적인 교류는 한민족불교교류추진 미주불교협의회 (한불협)가 설립과 활동 근거지로 둔 미국 로스앤젤레스( 羅 城, Los Angeles)라는 국외지역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대까지 남북한 불교교류사( 史 )에서는 이 시기까지 추진된 민간단체의 통 일운동을 빼놓고 하나의 과제로 정리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남북 한 불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미국 LA에서 만나기까지 교류의 동기를 실질적으로 부여한 불교계의 통일운동까지 포함하였다. 여기에는 그동안 남한의 통일운동이 148 북한불교의 이해
149 북한불교계와 교류를 주요한 사업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했던 88서울올림픽 공동추 진불교본부와 8.15 남북불자공동기원법회 남한준비위원회 (8.15 남한준비위)를 중 심으로 한 국내의 통일운동과 함께 한불협 이후 결성된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 의회 미주본부 (평불협 미주본부)가 중심이 된 국외지역에서의 남북한의 불교교류 과정을 서술하고, 또한 국내외의 다양한 통일노력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는 남북한 불교계가 지금까지 추진해 온 여러 형태의 교류와 관련하여 민족문화의 회복운동(Irredentism) 1) 과의 접목을 시도하고자 한다. 따라 서 남북한 불교의 교류활동을 사적( 史 的 ) 관점에서도 기술하였다. 민족문화의 회복 적 관점에서는 남북 불교교류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또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들과 앞으로 다양한 논의가 이루 어지기를 기대한다. 2. 남북한 불교교류의 경향성 분단이후 거의 모든 것이 단절된 상황에서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1990년대에 들 어와서 급진전되었다. 2008년도 이전까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치러진 모임까 지 합하면,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매년 십여 차례 가까이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불교계의 교류는 일관되게 진행된 내용도 있었지만, 그 당시 남북간의 정치적 상황 과 대립적인 요소까지 반영되어 나타나는 몇 가지 교류의 경향성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남북불교계, 당사자간의 독자적인 통로가 개설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분 단이후 처음 개최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비롯하여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1) 민족문화 회복운동( 民 族 文 化 回 復 運 動 )을 가리키는 이리덴티즘(Irredentism)은 실지( 失 地 ) 회복주 의, 미회수지 병합주의, 민족 통일주의 등으로 해석된다. 이 주의는 19세기 말 이탈리아 역사상의 용어로 이탈리아 이레덴타(Italia irredenta: 미회수 이탈리아)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타 국의 영역 내에 있는 일정지역의 주민 대부분이 인종적 언어적으로 자국민과 동일할 때에 그 지역 을 자국에 병합하려는 주의 및 운동 을 지칭하는 의미인데, 이 글에서는 5천년의 역사 속에 자리하 고 있는 불교가 분단을 말미암아 단절되고 이질화된 민족의 문화를 다시 잇고 본래대로 되찾는데 있어서 남북한의 불교가 기여하기 위한 교류활동의 전반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49
150 포함된 남북 공동발원문의 채택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교류 초기의 통로는 미국의 한인불교계와 평불협미주본부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중개교류의 단계에 머 물렀다. 그 예로써 1991년 개최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의 경우, 미국 LA지역 한인 불교계의 노력으로, 그후 중단되었다가 1995년에 다시 재계된 중국 북경에서의 남 북불교회의 경우도 미주지역을 통해 전개되었거나 통로를 담당해 왔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은 남북한 정치 군사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남북한 불교간의 독자적 통로 개설로까지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북불 교 양측이 모두 제3자의 중개 하에서 접촉을 가짐으로서 남북간 형성된 정치적 부 담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경제난으로 인한 대서방 관계개선이 시급했던 북한의 입장 에서 보면 한국의 불교계보다는 미주지역이나 일본, 중국지역에 있는 불교계와의 연대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는 요인도 작용되었다. 지난 1989년 한강 연등대법회 에서와 같이 판문점 등을 통한 한반도 내에서의 접촉이나 회의가 불가능했던 것에 서도 알 수 있다. 남북한 불교교류에 있어 독자적인 통로가 만들어 지기까지는 교류 가 시작되고 거의 10년이 지난 200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두 번째는 북한은 남북한 불교교류에 있어서도 대서방 관계개선이라는 국익적 측면을 먼저 고려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웃종교인 기독교와 가톨릭이 북한의 종 교계와의 접촉에서도 나타난다.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와 또는 로마 교황청 과 연결되는 국제교류의 실리는 곧바로 북한 종교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조선종교인 협의회 회장(장재철 조선천주교인협회 위원장)이 조선적십자사 총재를 겸하고 있 는 것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실제 1986년과 87년 미국 교회협 대표단의 방북 이 이루어진 이후 1988년 중국 북경에서 미 북 참사관급 접촉이 개시되었고, 1990 년 6월 미국 장로교협의회가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한시해 위원장을 초청하 면서 미 북한간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된 바 있다. 빌리그래함 목사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된 이면에는 국외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의 보이지 않은 활 동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 LA지역의 한인 불교계가 북한의 조불련에 대해 관심이 갖게 된 것이 당연하였다고 볼 수 있다. 2006년 평불협미주본부 회장 150 북한불교의 이해
151 김도안 스님의 입적으로 말미암아 미국 내의 우호적인 파트너가 사라진 것을 우려 하는 점도 이와 같다. 또한 일본의 경우는 1995년에 처음으로 조불련이 직접 진출한 것을 보면 일본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일본에는 조총련이라는 조직을 통한 방법도 있었지만 일본불교와의 직교역을 바라는 조불련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교류 에 보다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각종 불교회의마다 그 성격이 뚜렷이 구분되고 실행된 점이다. 이것은 남북교류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 LA에서의 남북불교도 합동법회가 상대적으로 종교문제에 관한 내용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에 상응 하는 조불련 관계자의 참석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1995년 중국 북경회의나 일본 동 경회의에서 가진 교류의 경우 종교적인 문제보다는 조국통일에 관한 것을 주된 의 제로 다루고 인도적 지원문제와 연결된 점이 더 컸다. 결국 북한 당국의 관심사로까 지 대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교류와 달리 기독자간의 대화에서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한시해, 양형섭 등 북한의 주요한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참석 하고, 기독학자회의에는 한시해 위원장과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리종혁, 해외동포원 호위원회 전경남 위원장 등이 초청되어 참석한 경우가 있었지만, 남북한 불교교류에 는 국제적인 영향력과 북한에서 정치적 위상이 높은 거물급 인사들이 참석하지 못했 다. 이는 북한체제 내에서의 북한불교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네 번째, 북한의 조불련 대표들이 남북한 접촉이 있을 때마다 들고 나오는 정치적 의제가 거의 대부분 조국통일에 관한 내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조불련이 북한사회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과 기능적 측면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조불련을 이끌어 왔던 고 박태화 위원장은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 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직책과 함께 최고인민회의 내 상설기구인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제4기 조불련 중앙위원장을 맡았던 유영선 위원장과 제6대 강 수린 현 조불련 위원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또한 조불련이 북한 내의 조국통일전선 부와 조평통, 원호위원회 등으로부터 직접 영향력을 받는다는 점과 이들 대부분은 통일문제에 관한 일을 하거나 담당하는 곳이며, 원호위원회 역시 형식은 이산가족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51
152 문제와 재외동포 문제를 총괄하는 곳으로 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통일문제에 맞 춰져 있다. 따라서 북한 불교계의 정치적인 활동영역은 통일문제와 연동된 사업이 라 할 수 있다. 다섯 번째, 1995년 이후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북한 조불련의 교류 의제가 정치 적인 내용에서 경제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의제의 변화에 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변화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조불련의 교류의제 변화는 조계종, 천태종 등 대표적인 종단과의 교류와 일반 불교통일단체와의 교류에서 볼 수 있다. 사찰 복원 등과 같이 재정적인 비용이 큰 경우와 통일운동과 연계를 고려 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보수 종단의 목소리가 남북 불교교류에 서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북한불교가 남한 불교계와의 접촉통로를 다변화하던 것을 조계종과 몇몇 통일단체로 단일화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 전까지만 해도 조불련은 남북불교의 교류 파트너로 특정 종단이나 단체를 지목하지 않고 다양하게 접촉해온 것과 다른 점이다. 위와 같이 북한의 불교계는 남한 및 제3국과의 독자노선 또는 자립적 교류와 협 력사업을 추진하기보다 북한 당국이 정해 놓은 통일정책의 틀 안에서 종교교류에 국한된 활동영역을 가졌다. 그러므로 향후 북한불교가 지향하는 교류방식은 대화 창구로써의 국제교류 더불어 통일운동과 연계한 교류활동과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한 교류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남한 불교계는 인도적 지원과 공동사업을 통한 교류와 협력을 재추진하고, 북한불교계와의 접촉 빈도를 높이거나 교류를 다각화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Ⅱ. 남북한 불교교류의 역사적 전개 남북한의 불교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모든 것이 단절되면 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1972년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조불 152 북한불교의 이해
153 련)이 활동을 재개하고 한국의 불교가 국제교류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북 불 교교류가 주요한 의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2) 1980년대 한국사회 내의 통일운동이 다양한 차원에서 전개되면서 남북한 불교에 대해서도 입장을 표방하게 된다. 남북 통일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식의 지평이 확대 됨에 따라 불교계도 통일운동단체들과의 연대를 이루는 한편으로, 남북 불교교류의 당위성을 표방하고 실질적 만남과 교류를 위해 국내외적으로 다양하게 교류적인 논 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기까지 간접적 경로를 통한 접촉단계에 머물던 남북 불교교류는 후 기로부터 교류 경로가 중국을 통해 추진되면서부터 주요 현안으로 다루어지는 단계 로 발전한다. 종단과 불교통일단체가 실무접촉을 가지고 방북과 인도적 지원사업 의 추진, 그리고 남북 불교도간의 공동법회와 동시법회와 같은 일정한 형식적인 틀 에서 남북한의 불교교류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남북한 불교교류의 변천사는 통일운동에 의한 태동기와 모색기, 통일운 동을 통한 형성기, 통일사업과 연대하는 성장기와 이후 교류와 협력에 의한 확장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남북한 불교교류의 변천사에 나타난 1980년~2000 년대까지의 불교교류를 살펴보면 다음의 <표1>과 같다. 1980년대에 추진된 국내 불교계의 통일노력을 시기적으로 보면, 초기까지는 한 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를 중심으로, 중기에는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과 대불련 등과 후기에는 민족자주 통일불교운동협의회(통불협)를 중심으로 국내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남 북불교의 직접 만남보다 상호 교류에 대한 제의와 같이 국내에서의 자체적인 통일 적 사업을 추진하거나 통일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형성하였다. 2) 남북간 종교교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문제위원회가 주최한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관심의 성서적, 신학적 근거에 관한 세미나 가 1986년 9월 2일~5일까지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되고, 여기 에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단 5명이 참가함으로서 남북 기독교인들이 분단 이후 처음 만남(글리온 회의)을 가졌다.(김영주, 남북기독교의 교류와 협력, 통일종책 연구조사 토론자료집,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2007, p.225)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53
154 1990년대 중반부터 통일운동에 의한 교류보다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실질적인 교 류와 협력으로 발전하게 되고, 불교종단의 참여 등으로부터 교류의 형태와 내용이 세분화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남북한의 불교계는 금강산 신계사 및 개성 영통사의 복원사업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함께 가꾸게 된 다. 또한 6 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불교교류는 북한에서 표방한 우리민족 끼리 라는 의미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만드는데 참여 하게 된다. <표1, 남북한 불교교류의 변천사> 구분 태동기 모색기 형성기 성장기 확장기 시기별 1977~84년 1985~86년 1987~90년 1991~99년 2000년 이후 중심기구 및 단체 한국대학생 불교연합회 (대불련) 민중불교 운동연합 (민불련) 민족화합 공동올림픽추 진불교본부 민족자주 통일불교 운동협의회(통불협) 조국평화통일불교협 회(평불협) 불교종단 등 민족화합불교추진위 (조계종, 천태종 등) 원회(불추위) 주요의제 통일논의/ 교류제의 교류논의/추진 z교류/협력추진 1. 88서울올림픽과 한강유등제로부터 1988년 5월 13일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불교본부 준비위원회(추진불교본부 준비위) 가 발족하고, 이어 그해 6월 12일 서울 개운사에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공동올림픽 기원법회 가 열렸다. 이로써 남북 불교교류의 당위성은 서독의 재 유럽민주한인협의회, 미국의 한인불자들과 유학 승려들의 참여로부터 국내 불교종 단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공동올림픽추진불교본부와 8.15남북불자공동기원법회 남한준비위원회 (남한준 비위) 등이 결성된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종교로서 민족의 통일에는 빠질 수 없다 는 당위성과 필요성이 크게 제기된다. 이들 단체와 연대적 조직들과의 지향 점을 달리하였지만,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1988년 6월 16일 종무회의 결의를 통 154 북한불교의 이해
155 해 종단 안에 상설기구로 통일문제특별위원회 또는 불교통일연구원 을 설립하겠 다는 기본 방침을 정하게 된다. 3) 이것은 조계종단이 남북 불교교류에 있어 처음 공 식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조계종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1988년 7월 평양을 방북한 미국 국적의 기대원 스님에 의해 조불련중앙위원회에 전달되고, 1988년 11월 미국 LA에서 열린 제16차 WFB대회로부터 남북한 불교교류에 대한 논의가 불교종단 내 부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불교계 내부의 논의와 함께 8.15남북공동기원법 회와 국내 불교단체들의 통일운동과 남북 불교교류에 대한 열망, 그리고 대한불교 조계종 신분의 신법타 스님이 1989년 6월 평양을 단독 방문하고, 조불련 박태화 위 원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백자 불상 1좌를 그해 7월 조계종 총무원에 다시 전달하면 서 남북 불교교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모든 여건이 불교계가 바라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 내적으로는 교류 주체가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강유등제에 대해 조불련이 남북불교도 대표회담 ( 조불련 대변인 전문) 제안을 하고 여기에 대해 1989년 10월 10일자로 18개의 재야 불교단체가 참여한 남북불교교류 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이 처음 발표되었다. 그 당시 조불련의 제안으로 말미암 아 남북한 불교교류의 방식과 교류 주체의 문제를 동시에 거론한 남한불교계의 첫 입장이었다. 즉 북한불교와의 교류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또 누구를 대표로 하 여 추진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남북 불교교류를 먼저 진척시킨 것은 공동올림픽추진본부( )와 통불협( ), 대불련, 대불청 등 불교 재야단체들이었다. 이러한 국면 속에서 남북불교계는 1990년대에 들어와 직접교류를 갖게 된다. 북 한의 조불련은 1989년 7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 축)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국제 교류행사 등을 추진했다. 이것은 1987년 묘향산 보현사에서 개최 된 국제평화대행진 개막 행사를 전례로 인정받은 것으로 불 수 있다. 1990년 8월 31 일에는 조불련중앙위원회가 주최한 조국통일기원법회 가 각 시 도위원회의 임원 3) 월간 해인, 1989년 11월호(통권 제93호)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55
156 과 불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묘향산 보현사에서 개최되었고, 그해 10월 18 일~23일까지 평양 대극장에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 가 열린 다음, 조불련중앙위원 회는 윤이상음악연구소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주관으로 1990년 10월 21일~29일까지 서울에서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제17차 한국대회가 열리고, 조불련을 WFB에 의 해 초청하지만 불참하였다. 그러나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국내가 아닌 미국 LA를 중 심으로 전개되었다. 그 시작은 1988년 미주지역의 기독교 인사들로 주축이 된 조국 통일북미주협회 (통협)의 후원이 적지 않았다. 4) 2. 분단 이후 첫 만남과 공식 교류 1989년 2월 초 미국 LA 관음사에서 결성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미주불교인 협의회 (평불협)의 회장 도안스님, 부회장 법타스님이 1991년 4월 21일~5월 10일까 지 2차 방북을 통해 조불련 박태호 위원장, 홍화두 고문 등과 6차례 걸친 교류회의 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묘향산 보현사 종각에서 주지 청운스님(최형민)과 공동 으 로 통일타종 의식을 가졌다. 조불련에서는 1990년 7월 불교학원( 佛 學 院 ) 승려들이 중국을 방문하고, 1991년 1월 23일을 기해 평양 용화사를 비롯하여 묘향산 보현사, 금강산 표훈사, 구월산 월정사, 칠보산 개심사 등지에서 성도절 및 조국통일기원법 회 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분단 46년 만에 남북 국외불교도들이 1991년 10월 28일~11월 10일까지 미국 LA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과정을 만들어 냈다. 제1차 남북 및 해외동 포 조국통일기원 불교도합동법회 명칭으로 열린 이 법회에는 남북한 불교계에서 100여 명이 같은 자리에서 상견례를 하고 민족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법회의 형 식을 같이 진행함으로서 그동안 달라진 불교의 전통과 문화를 경험하고 앞으로 개 선할 수 있는 여건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 법회에서 남측이 순수한 불교교류에 역점 4) 신법타, 북한불교연구, 민족사, 2000, pp.592~ 북한불교의 이해
157 을 둔 주장을, 북측이 국가보안법의 철폐 등을 주장하면서 각기 다른 입장과 시각 차이를 드러냈지만, 종교교류의 새로운 확장 또한 불교가 남북교류에 있어 앞장 설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로 평가할 수 있다. 그 후 남북한의 불교는 조불련이 국제교류를 모색하면서 금강산 표훈사와 묘향 산 보현사 등 전국의 사찰에서 1992년 5월 10일 석탄절 기념법회를 통해 찬불가 합 창 및 탑돌이 등 전통 불교의식을 처음으로 재현하였다. 5) 한편, 국내에서는 실천불 교전국승가회( )와 전국불교운동연합( )의 창립으로 불교계 통일 운동이 힘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하던 남북불교는 1994년 6월 2일 동경 진여산장에서 총련 재일본조선불교도협회(약칭 조불협) 서태 식 회장의 주선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조계종단의 개혁 국면이 형성되면서 남북 불교교류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1994년 7월 8 일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한데 이어 조문파동이 생기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경색되고 말았다. 그러한 가운데, 1995년 5월 24일~26일 중국 북경에서 조불련의 박태호 위원장, 서기장 심상진(5대 위원장), 상무위원 유성철(4대 위원장)과 함께 평불협 회장 법타 스님,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시현스님과 사업부장 설송스님이 참석한 남북불교회 의가 개최되었다. 이로써 1991년 이후 중단된 남북 불교교류를 다시 시작되었으나 양측의 입장 차이로 대표자간의 회의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향후 지속적인 접촉과 교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 회의에서 한국 불교 계가 북한 조불련에 대해 인도적 식량지원을 약속하는 등 남북 불교교류의 대상이 조불련중앙위원회로 설정되고, 1994년 수해와 95년 홍수피해를 입은 북한의 상황 을 공식적으로 조불련이 남한 불교계에 직접 알리는 등 현안문제에 있어 남과 북의 불교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대화 통로(채널)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첫 테 이블이었다. 그 후 조불련은 1995년 12월 26일을 기해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위치한 용화사에 5) 신법타, 앞의 책, p.562.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57
158 서 기념보고회를 겸한 조불련 창립50돌 기념법회 를 개최하면서 조불련중앙위원회 와 시 도 군위원회의 교직자들과 전국의 사찰 주지들과 평양시의 신도 등 400여 명을 참가시키고, 특히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염대준 의장과 조선기독 교연맹 중앙위원회 강영섭 위원장,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청우당 중앙위원회 한영수 부위원장 등 북한의 정치, 종교단체의 대 표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을 <조선중앙TV>가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북한종교에 서의 조불련에 관한 북한 당국의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된 첫 번째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북한의 조불련중앙위원회가 남북간 불교교류에 있어 공식적인 교류 파트너로서의 지위 획득과 더불어 단일 창구로써의 위상을 갖게 된 중요한 의 미를 가진 종교행사로 평가된다. 3. 인도적 지원을 통한 남북 불교교류 1994년부터 96년까지 북한이 적극적으로 남한의 종교와 통일단체를 중심으로 수해를 입은 상황을 알리게 된다. 이러한 북한의 상황은 남북대화 및 통일운동 그리 고 남북한 종교교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를 주었다. 조계종단에서는 1997년 4월 13일~14일까지 중국 북경(해당화식당, 오주호텔)에 서 조계종 사회부장 능관스님과 조불련 심상진 서기장 등이 남북불교회의를 개최하 고, 분단이후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 봉축 남북공동발원문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그해 5월 14일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서울 조계사와 평양 광법사에서 열린 동시법회 를 통해 발표했다. 이날의 공동발원문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합의 발표된 것이다. 1997년 4월 북경에서 열린 남북불교회의에서는 제2차 남북불교대표자 조국통일 기원법회의 개최와 부처님오신날(불탄절) 법요식에서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타종식 과 함께 합의한 공동 발원문을 봉독한다는 내용과 함께 수해를 입은 북한의 어려움 에 대해 조선불교도연맹을 통한 식량 등을 지원하도록 주선한다는 등 3개항의 합의 서가 체결되었다. 이 합의서의 파급효과는 대북지원에 대한 종단적 관심을 제고하 158 북한불교의 이해
159 였고, 1995년부터 다시 재개된 남북 불교교류에 있어 불교적 내용을 포함하는 부처 님오신날 남북 공동발원문을 매년 채택하고 봉독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한편, 남한 불교계는 북한지역의 수해피해 등을 돕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단체로 종단협을 비롯한 불교계 단체들을 중심으로 1997년 5월 6일 강남 봉은사에 서 북녘동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 (상임추진위원장 지선스님, 약칭 불추위)가 창립 되었다. 이어 불추위는 조계종단 등과 공동으로 같은 해 5월 20일 조계사에서 북녘 동포돕기 한 생명 살리기 100일 결사법회 입제식을 갖고, 교구본사 등 전국 단위로 확대 실시하였다. 불교계의 북한돕기 사업을 범종단적으로는 불추위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조 계종단에서는 1997년 6월 14~16일까지 중국 북경(오주호텔)에서 조불련 황병준 부 위원장, 심상진 서기장, 유성철 상무위원과 조계종 사회부장 능관스님, 사회부 최종 환 과장이 실무대표단으로 참석하여 식량지원에 따른 전달 방법 등에 대해 협의를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교류 방식은 기존에 미국(평불협미주본부)을 통해 조불련 과의 교류 통로가 중국을 통해 추진된 첫 번째의 사례가 된다. 한편, 1997년 5월 23~30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평불협미주본부 회장 도안스님은 그해 7월 8일 조불련과 평불협이 황해도 지역에 국수공장을 설립한다는 합의사항 을 공개한다. 같은 해 12월 29일 평불협미주본부 부회장 장지현 정사가 평양에 파견 되어 조불련과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위치한 금강( 金 剛 )국수공장 설립에 대한 합의 서를 체결하는 등 불교계의 참여도 구체화 되었다. 이 시기 불교계의 인도적 지원단체로 1997년 5월 6일 출범한 불추위는 1998년 1 월 24일 확대 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명칭을 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약칭 불교 추진위) 로 개칭하는 등 조계종단의 지원으로 종단협의 공식 기구로 설치된다. 또한 같은 해 3월 14일 중국 북경에서는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참사 황순)와 금 강산국제그룹(회장 박경윤), 평불협(회장 신법타)이 금강산문화재 복원을 위한 합 의서 를 채결하고, 6월 18일 종단협 강당에서 금강산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공동위 원장 법타스님, 성초 통리원장, 김동현 박사)가 발족되었다. 이어 9월 16일에는 북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59
160 경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과 금강산신계사 복원에 관한 협약서 를 체결하게 된다. 특히 1997년 3월 14일 중국 북경에서의 남북불교회의는 공동합의서를 체결하였 다. 그 내용은 2차 남북불교 대표자 조국통일 기원법회의 개최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하여 조국통일기원 타종식과 함께 공동발원문을 봉독하기로 한 것이다. 남북 불교교류의 가장 큰 종교적 성과라 평가되는 남북 공동발원문은 1997년부터 남북 의 불교계가 공식회의를 통해 합의와 채택, 동시 낭독 등을 매년 개최해 오다가 2010년부터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이다. 이 시기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직접 통과하여 한 우 500마리를 북한에 지원하면서, 남북관계를 비롯한 금강산관광 사업이 공식적으 로 확정된다. 중국 북경에 위치한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부위원장 송호경) 와 공식적인 채널이 가동되고, 그해 11월 18일 현대 금강산광광선이 첫 출항하면서 현실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부가 그해 8월 8일 8.15종교인 방북을 승인함으로 서 종교인들의 방북이 이루어지고, 북한에서도 그해 9월 5일 신헌법을 개정하였다. 특히, 1998년 9월 3일 남한의 정부기관으로 민족화해협력 범민족협의회 (약칭 민화협)가 발족하는 등 남북불교계의 교류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통일부가 그해 9월 18일 대한적십자사(약칭 한적)를 통한 민간단체 개별지원 허용조치 등에 따라 조불련에 지정 기탁하는 방식으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다. 1999년 1월 1일부터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고, 그해 1월 13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에서 참여하는 형태의 범종교단체남북교류협의회 가 창립된다. 또한 그해 2월 10 일에는 다시 통일부가 민간단체 대북지원 창구다원화 조치 를 발표하게 됨으로서 불교계의 참여도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1990년대까지의 남북한 불교교류는 특히 1999년부터 조계종과 진각 종 등 종단차원의 방북이 진행되면서, 남북 불교교류는 불교단체와 더불어 협력의 단계로 발전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 바탕에는 인도적 지원 프로그 램이 작동되었다. 160 북한불교의 이해
161 년대 이후 남북 불교교류 1) 남북 공동행사에 의한 남북 불교교류 1990년대까지 통일전선 차원의 교류를 추진해온 북한의 종교계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민족공조 에 입각한 남한 종교계와 국외 종교단체들과의 교류와 만남 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6.15공동선언의 이행과 실천을 기치로 적극적으로 남북 한 종교계가 교류를 추진하면서, 1 3.1민족대회 민족통일대축전 민족대회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등 4대 공동 행사로 교류의 틀을 정 례화한 것이 특징이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개 최하면서 남북한의 종교교류도 같이 확대되었다. 특히 2001년부터는 6.15 민족통 일대축전이 정부차원의 공동행사로 처음 개최되면서 8.15민족대회와 2002년에는 10월 3일 개천절까지 공동행사로 열리게 되었다. 2003년부터는 3.1절 행사까지 공 동행사로 개최되면서, 남북한의 종교계는 2007년까지 매년 네 차례 이상의 공식적 인 만남을 가졌다. 2001년 1월 10일 평양에서는 북한 당국의 주도로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 는 2001대회 가 개최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해 를 선포한다. 이어북 한이 2001년 5월 28일을 기해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돌 맞아 우리민족끼리 통일 의 문을 열어나가기 위한 정당 단체 합동회의 개최를 제안하면서, 남한의 7개 종단 과 민화협, 통일연대 등이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2001 민족공동행사 추진 본부 를 결성하고, 그해 6월 14일~1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공동행사로 6 15공동 성명 이행을 위한 민족통일 대토론회 를 대규모로 개최하였다. 같은 해 10월 31일에 는 남한 정부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통령령 제 15920호)을 개정 하는 등 남북간 대화에 전향적으로 나섰다. 2002년 8.15민족통일대회에는 8월 14일~17일까지 서울(워커힐호텔)에서 민족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61
162 공동행사 추진본부 주최로 개최되면서 북측대표단 116명이 참가하게 된다. 여기에 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북한불교계의 최고 수장인 박태화 위원장 등이 서울을 방문 했다. 이로써 남북 불교교류가 직접교류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더욱이 조불련 박태 화 위원장 등은 서울에서 금강산 신계사 복원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북한사 찰에 대한 단청불사와 관련하여 남한 불교대표단의 평양 초청을 제시함으로서 교류 와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3년 2월 10일에는 민족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가 3.1 민족대회 의 서울 개최 합의를 발표하고, 그해 3월 1일~3일까지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 가 개최되었다. 3월 1일 서해 직항로를 통해 서울에 도착 한 3.1절 민족공동 통일행사 북측대표단이 참가하고, 3월 2일 서울 봉은사에서 3.1절 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합동법회 가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합동법회 로 봉행되었다. 6) 이로부터 4대 공동행사가 남북한 교류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교류의 양 적 확장과 내용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남한의 종교계는 북한 과의 교류 테이블에서 교류의 순수성을 강조하기보다 선교 내지 선전 차원의 내용 을 반영하고, 불교교류에 있어서도 향후 북한지역의 선점적( 先 占 的 ) 요소가 나타나 기 시작했다. 또한 이전까지 미국과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교류가 축소되고, 금강산 및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교류하게 됨으로서 향후 남북대화의 단절 상태에서 나 타날 수 있는 교류방식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동안 교류 협력사업에 있어 민족 문화재에만 국한된 내용은 결국 남한불교계의 몫으로만 남게 될 개연성이 내제해 있고, 민족공조에 의한 교류를 강조해온 북한불교는 어떠한 형태로든 남한불교와의 6) 2003년 서울에서 열린 3 1절 민족대회는 1996년 2월 남북종교인 북경회의(중국 베이징)를 첫 시작 으로 1997년 5월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가 주관한 북경평화모임, 1999년 4월 북경평화모임, 2001년 3월 금강산 평화모임 등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날 3 1 민족대회에는 북측의 천도교청우당,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가톨릭협회 등 4개 종단과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 계자들이 참석하고, 그해 3월 2일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각 부문별로 행사를 개최했다.( 한 겨레신문, ) 162 북한불교의 이해
163 교류를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불교계는 북한이 남한과의 종교교류에 대해 그동안 북한종 교정책에 있어 원칙적으로 문제삼아오던 심적( 心 的 ) 오염원 등의 문제와 달리 다 른 어떤 분야보다도 꾸준히 진행하여왔으며,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기에도 국외거주 종교인들의 만남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를 추진해온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도 북한의 종교계는 종교사업으로써의 확장과 함께 남한 종교계와의 교류 내지 종 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남북화해 협력의 기반을 다지 고 평화공존의 초석을 놓는데 종교분야의 적극적인 참여를 더 요구받게 되었다. 특히 2003년 7월 28일~30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단청문화 전시회 및 토론회 가 <조선중앙TV>에서 소개되었고, 2005년 6.15민족통일대축전 때 평양을 방문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개막연설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에 소 개된 것은 아주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2007년 6.15공동행사와 10.4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조계종 총무원 장 지관스님이 직접 참가함으로서 민간분야에 있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 지위를 획득하였다는 성과가 있다. 이것은 향후 통일시대에서의 사회적 기반을 이 루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불교계가 통일과정에서의 중요한 역할이 지속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할 필요가 있다. 2) 민족문화유산에 의한 남북 불교교류 남북한 불교교류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1991년 미국 LA에서 만나고 다시 중단되 었다가 1995년에 다시 교류를 재개하지만, 한반도에 내재한 정치 군사적 상황에 따른 변화가 극복되지 못함으로써 부정기적인 교류에 머물렀다. 그러나 1997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과 조불련중앙위원회가 부처님오신날 봉축 남북 공동발원문 채택과 더불어 남북 동시법회를 매년 개최하고, 남한 불교계가 북 한지역의 수해와 가뭄을 돕기 위해 적극 나섬으로서 교류의 신뢰를 만들었다. 금강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63
164 산관광을 비롯한 조계종, 진각종 등 불교종단의 방북 등이 연이어 추진되면서 남북 한의 불교는 <표2>와 같이 조직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게 된다. 더욱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정부차원(민화협)과 민간차원의 교류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남북 불교교류 또한 종단차원에서의 조직 결성과 사업 준비 그리고 불교단체들의 참여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조계종단에서 금강산 신계 사를, 천태종단에서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을 2003년부터 각기 추진 7) 하였고, 조계 종 총무원장(법장스님, 지관스님, 자승스님)의 평양방문과 2002년 조불련 박태화 위원장의 서울방문은 인적 교류와 협력의 틀을 만들어 냈다. 북한이 1999년 봄 당국차원에서 개성 영통사복원추진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하 고, 남한의 문화재청에서 2000년 2월 22일 북한지역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신탁기금 10만 달러를 세계유네스코를 통해 북한에 지원하는 등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남북 7)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은 2004년 11월 20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장 종산스 님, 총무원장 법장스님 등 남측 200여명과 심상진 부위원장, 서화( 敍 和 ) 정서정 서기장, 류인명 책임 부원, 차금철 책임부원 등 조불련 임원과 불교신도, 그리고 리의하 문화보존지도국 부국장, 한용걸 평양건설건재대학 교수, 리기웅 문화보존지도국 유적실장, 황명호 문화보존지도국 조선문화보존 사 설계실장, 문화보존지도국의 최일남, 송철민, 서철민, 리동혁 등과 북측 민화협 전성철 책임부원 등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을 남북 합동으로 봉행했다. 개성 영통사 복원과정은 1997년 가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일본 다이쇼대학에서 현 지답사를 가진 바 있으며, 이미 북한 당국에서는 1997년 봄부터 1998년 가을까지 1차~4차 기초 발굴조사를 마쳤다. 이후 1999년에 조선불교도연맹 등 북한의 3개 단체로 구성된 영통사복원추 진위원회 가 발족했다. 남한의 천태종은 북측 조선경제협력위원회의 지원으로 2000년 11월 개성 방문과 영통사 현지답사를 진행하였다. 이후 조불련과 천태종은 2003년 2월 27일 중국 북경에서 남북공동 복원불사에 약정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회의에는 조불련에서 심상진 서기장과 정혜스 님, 정덕스님, 최경철 참사, 김성철(개성영통사복원추진위원회)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개성 영통사 복원불사는 2003년 10월을 기해 착공되어, 천태종에서 10월 27일 1차 지원을 시작으로 2004년 3월 29일까지 6차 걸쳐 기와 약 46만여 장을 지원하였고, 2004년 4월 26일부터 7차 지원 이 시작되어 2005년 3월 29일까지 총 16차에 걸쳐 단청용 도료 및 각종 첨가제, 작업도구, 전기제 품, 굴착기 불도저 등 중장비와 장비오일, 각종 건축 마감재, 페인트, 타이어, 행사용 비품, 조경 용 묘목 등(단청재료 3천 세트, 묘목 1만 그루, 비닐 자재 60톤 등)을 지원했다. 이로써 2005년 10 월 31일 낙성식을 봉행하고, 2007년 6월 8일~8월 25일까지 7차에 걸쳐 3,490명이 개성 영통사 성 지순례를 가졌으며, 2007년 11월 14일 대각국사 의천 다례재를 처음 봉행한데 이어 거의 매년 개 최하고 있다. 164 북한불교의 이해
165 공동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1998년에 시작된 금강산관광에 대해서 2004년 5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4.29 결정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 관리기관 설립운영규정, 금강산관광지구 세관규정, 금강산 관광지구 출입, 체류, 거주규정 등 3건의 규정을 채택함으로써 금강산관광사업에 관한 법적 제도적인 기반이 모두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국면에서 남북불교계는 남북 공동단청 및 개금불사 추진 8) (2003년), 남북 단청문화 전시회 및 토론회 개최 9) (2003년 금강산), 고구려유적 세계문화유산등록 기념 남북공동 사진전시회 및 학술토론회 개최(2004년 금강산), 북관대첩비 환수 인도사업 10) (2006년, 개성),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 11) (2006년), 동국대학교(총장 홍기삼) 개교 100주년 기념법회(2006년 묘향산 보현사), 평양 광법사 연등달기 행 사(2007년), 약탈 민족문화재 반환을 위한 합의서 체결 12) (2008년), 평양 양묘장 사 8) 2002년 12월 21일 중국 북경(평양관) 회의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등과 조불련 이 북한지역 사찰에 대한 단청( 丹 靑 ) 의향서 를 체결하고, 남측에서 단청 안료 등 원자재를 직접 제 공하는 등 북한지역 총 59개 사찰의 총 123,715평에 대한 단청 불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9) 2003년 7월 28일~30일까지 금강산 김정숙 휴양소(현 외금강호텔)에서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불교계가 공동으로 개최한 학술 문화행사로 남북 단청문화 전시회 및 토론회 를 열었다. 10) 2006년 3월 1일을 기해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약탈되어 일본 야스쿠니( 靖 國 ) 신사에 있던 북관대첩비( 北 關 大 捷 碑 )가 남북 공조에 의해 그해 3월 1일자로 북한으로 인도되었다. 또 3월 1일자로 남한의 불교계가 주도하는 조선왕실록 환수운동 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동 환수위 원회에 지지 서신으로 보내왔다. 남북한 불교계가 긴밀하게 공조활동에 의하여, 1913년 데라우치 마사다케( 寺 內 正 毅 ) 초대 조선총독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어 동경대에 보관된 이후 약탈된 지 93 년 만에 조선왕조실록을 되찾게 되었다. 11) 건학 100돌을 맞은 동국대학교(총장 홍기삼)는 조불련 초청으로 2006년 3월 14일~18일까지 평양 과 묘향산 보현사를 방문하고 개교 100주년 기념법회 를 개최했다. 동국대 이사장 현해스님, 홍기 삼 총장,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 회장 법타 스님, 정인악 이사장 등과 보현사 주지 청운스 님과 대중스님 그리고 조불련 심상진 부위원장, 정서정 서기장 등 관계자, 그리고 보현사 신도들이 함께 법회에 동참하였다. 또한 같은 기간에 홍기삼 총장은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을 만나 학교 간 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1906년에 설립된 불교계의 최초학교인 명진학 교 (현 동국대학교)의 창학( 創 學 ) 자금을 댄 17개 사찰 중 북한에는 보현사 외에도 금강산 유점사, 강원 고산군 설왕리의 석왕사, 함남 함주군 경흥리의 귀주사, 황해남도 해주시 신광동의 신광사가 있다. 한편, 홍기삼 총장은 2005년 7월 20일~25일간 평양과 백두산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 황 종연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시인 고은, 평론가 백낙청, 소설가 황석영 씨 등과 같이 참가하고, 보 현사 등 방문한 바 있다.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65
166 업(2008년) 등 민족문화재와 관련된 교류와 협력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2000년대의 남북 불교교류는 한 단계 도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개성공단에 대한 조치로서, 군사 분계선을 통한 남북간 통행에 대한 북한의 제한, 차단 조치가 2008년 12월 1일부터 시행함에 따라 남북관계가 더욱 얼어붙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국지적 군사적 도발 가능성까지 우려하며 남북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남 북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남북 당국 어느 쪽에서도 정책적 변 화를 모색하지 않음으로서 남북 관계는 장기간 경색 모드로 전환되고 말았다. <표2, 1995년 이후 남북 불교교류 유형 13) > 구 분 남북 불교교류의 유형과 시기 유형별 교류사업 협력사업 회의 등 행사 등 1 조불련 불학원지원 종단주도형 (교류/협력사업) 1 정기회의 개최 (매년12~2월) 2 부정기회의 개최 (시기별 등) 3 공동행사 참가 (매 시기별/대표단) 1 부처님오신날 봉축 공동발원문 낭독 2 봉축 연등달기 (금강산 신계사, 평양 광법사) 3 정기행사 (신계사, 영통사 복원기 념일) 4 종단협 대표단 방북 ( ~5.4 평양) 5 3.1절 민족대회-법회 ( 서울 봉은사) 6 고구려유적 세계문화유산 등록 기념 남북공동 사진전시회/학술 토론회( 금강산) 7 팔만대장경 판각천년 조국통일기 (진각종: 99년) 2 북한지역사찰 단청불사(2003년) 3 금강산 신계사, 개성 영통 사 복원사업 추진 (2003~2008년) 4 북한못자리용 비닐 방막지원(2005년) - 조계, 천태, 진각종 5 조불련 휄체어전달 -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2006년) 6 평양 양묘장사업 - 민추본, 2008년 12)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약탈된 민족문화재 반환을 위한 합의서 가 체결되 었다. 이 합의는 조불련과 공동으로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위한 공동 성명 을 먼저 발표하고, 이어 조불련으로부터 국제법상의 조치를 위한 변호사 선임권 을 최초로 위임을 받는다. 이는 일제강점 기에 국외로 약탈 반출된 민족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남과 북이 공조한 첫 사례로서, 향후 민족문화 재 반환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13)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남북불교 교류의 흐름-남북 불교교류 60년사, 2010 ; (사)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평불협 창립20돌 자료집, 여래기획, 북한불교의 이해
167 단체주도형 (교류행사/사업) 원법회( 묘향산보현사) 1 단체간 교류 추진(1991년~현재까지) 남북해외불교도조국통일기원법회(91년, 미국LA) 남북불교회의(평불협: 95년, 중국 베이징) 청공 윤이상선생 천도재(98년, 평양 광법사) 조불련 스님용 홍가사( 紅 袈 裟 ) 전달 (평불협,부산참여불교운동본부: 2003년 10월) 평북 용천폭발사고 구호물품 지원(2004.6월) 조불련 전국신도회-조계종중앙신도회 실무회의 (2005.7월, 개성 자남산여관) 북관대첩비 인도(북관대첩비기념사업회 2006년)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법회 개최 ( ~18, 평양과 묘향산 보현사) 고려대장경 번역에 관한 남북공동 학술회의 ( 월, 중국 심양) 해외반출 민족문화재 환수공조사업(2006년 ~) 2 남북공동행사 참가(2001~2007년) 3.1 민족대회 참가/주관(2003년) 6.15 민족통일대축전 참가, 아리랑공연 관람 8.15 민족대회 참가, 아리랑공연 관람 10.3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참관, 공연 관람 7 북한의 전통사찰 (전10권) 간행함 - 민추본, 2011년 1 금강국수공장 설립/지원 (평불협: 97~현재) 2 나진-선봉지역 영양빵 지 원사업(한국JTS : 98년) 3 북한농촌비료지원 (불추위: 99년 등) 4 양파종자 지원사업 (평불협: 2004년) 3) 남북간 대립 국면에서의 불교교류 2009년부터 워낙 무게가 실린 남북한의 정치적인 현안 의제들이 대두되면서 남북 대화 그 자체가 불투명하게 시작되었다. 더욱이 1997년 이후 매년 1월~3월 사이 중 국 등 제3국을 비롯한 금강산에서 열리던 남북불교회의도 연기되거나 제한되었다. 그렇지만 북한의 불교계는 2009년 초부터 활기를 띄었다. 그것은 2000년 이후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함남 양천사, 평양 법운암 등 사찰 방문이 북한 언론을 통해 보 도되고, 2006년 3월 김책시 길주군으로 옮겨진 북관대첩비를 2회 방문하는 등 민 족문화재의 보존에 관한 각별한 말씀 이 있었다고 전해질 뿐만 아니라 2009년 3월 초 조불련 제의로 3월 16일~19일까지 중국 심양에서 남북불교회의는 2007년 이후 거의 1년 넘게 교류의 테이블에 직접 나오지 않았던 조불련과 다시 접촉하고 실무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67
168 현안을 협의하였다는 것 이외에도 조불련이 다시 교류와 국제무대로 복귀했다는 점 에서 의의가 있다. 2009년은 조 중 수교 60주년인 해로써 이미 양국은 조 중우호 ( 中 朝 友 好 )의 해라는 시점에서 조불련의 중국이 개최한 세계불교포럼의 참가는 남 북 불교교류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10년에 들어와 더욱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2009년 12월에 취임한 조 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초청으로 2010년 1월 30 일~2월 2일까지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는 2005년 6.15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한 법장스님과 2007년 6.15공동행사와 10.4 정상회담 두 차례 방북한 지관스님 에 이어 세 번째로 남한 불교계의 최고 수장이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또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전국 7개 교구본사 주지스님과 불교단 체장 및 이웃종교 인사 등 총 37명은 2011년 9월 2일~6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조불련 심상진 위원장을 비롯한 조불련 관계자와 보현사 주지 최형민 스님 등 200여명이 참 석한 가운데, 9월 5일 묘향산 보현사에서 팔만대장경 판각 천년 조국통일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 를 봉행했다. 또 2011년 9월 21일~24일까지 7대 종단대표자가 방 북하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김영주 KNCC 총무 등 7대 종교지도자와 북측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부위원장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리종혁 부위원장을 만나 교류에 관한 협의를 가졌다. 그러나 2012년 중반부터는 모든 교류 통로와 대화가 막힌 상황에서 1997년부터 조계종과 조불련이 매년 공동 채택과 동시 낭독을 해오던 부처님오신날 남북 공동 발원문 조차 2010년~13년까지 중지되고 말았다. 북한의 조불련에서도 2012년 11월 20일 기해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위원장에 강수린 대선사가 선출되고, 12월 26일 평양 광법사에서 조불련 창립 67돌 기념보고회를 통해 공식 취임했다. 2013년에도 남북간 대립 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불교 계가 바라고 추진하는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정치 군사적인 대립을 넘어 종교라 는 공통분모와 신계사, 영통사라는 실질적인 공간을 통해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예측할 수 있다. 168 북한불교의 이해
169 Ⅲ.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 남북 불교교류의 성과와 한계 1991년 분단 이후 처음 접촉한 남북한의 불교계는 간접에서 직접, 교류에서 협력 이라는 과정으로 발전되었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남북 불교교류는 북한지역 의 옛 사찰 복원을 비롯하여 단청불사 등 민족문화재의 보존과 연계되어 활발하게 전개되고, 여기에는 양측 간의 기술 전수와 교환을 통해 분단 이후 단절된 민족문화 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불교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또한 윤이 상음악연구소, 조선중앙박물관, 문화지도총국 등 북한의 기관과도 연계하는 등 교 류의 대상(partner)도 다양화되고 있다. 여기에 금강산관광, 개성관광이라는 요소도 하나의 동인( 動 因 )으로 작용한 측면 도 있었다. 특히, 2005년부터 양측의 불교 신도회와 민간단체간의 교류가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와 공감을 만들었으며, 조선왕조실록(2006년), 조선 왕실의궤(2006~2008년), 미국 보스톤미술관 소장-개성 화장사 라마탑형사리구와 사리의 반환 추진 등 국외로 반출 약탈된 민족문화재에 관한 환수사업(2008년~현 재) 등과 관련하여 남북한의 불교가 공조하고 있는 사례는 앞으로 남북 불교교류의 조직적인 연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새로운 교류형태라 할 수 있다. 또한 2011년 고 려 초조대장경 판각 천년을 기념해 추진된 묘향산 보현사에서의 고려대장경 천년 기념 조국통일기원법회 와 같은 유형과 금강산 신계사 및 개성 영통사 복원기념 행 사는 앞으로 정기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범 사례이다. 이와 같은 남북한의 불교교류에 있어 중국이나 세계 각국이 자국 내의 종교유입 에 대한 통제가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 북한에 대한 국제여론의 환기 와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교류의 당사자인 북한불교가 대화의 방식과 교류의 내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교류뿐만 아니라 북한 방문자들에 대한 불가피 한 대응이라는 이유들이 작용하기도 했으나, 아직 북한에서는 신앙적 형태의 변화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69
170 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다만, 이 시기의 북한은 북한의 종교를 제한하고 규제하 는 것보다 종교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해두고 주민들에게는 신앙의 자유를, 단체에게는 활동의 보장을 운용하는 것이 더 효용적이다 는 판단 아래, 종교 정책상 의 궤도를 보완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정책 시간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북한의 종교는 아직 헌법상의 하위체계의 미적 구성으로 인해 자체적인 종교 기능을 수행하는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의 종교기관들은 아직 미흡하지만 남한 종교인과 미국과 일본 등 재외동포들의 주 요 인사들에 대한 평양 초청과 교류 사업에서의 독자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점과 조불련중앙위원회의 부설로 설립된 불련무역회사(2004년 12월)와 같이 부문적으 로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단계로까지 활용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국제교류와 남북교류에 보다 적극성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매 시기마다 진행된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매우 독특한 배경과 목적 그리 고 교류의 특징을 갖고 있다. 남한 불교계의 경우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교류의 담당 자들이 바뀌었고 관련 단체도 많아졌고 역량의 차이도 크다. 이에 따라 교류의 의제 도 다양하게 된 장점도 있으나 혼선의 불이익도 초래될 수 있다. 여기에 반해 북한 불교계의 경우에는 교류가 시작된 이래 거의 대부분의 동일한 인사들이 교류의 테 이블에 참가하고, 각기 정해진 업무에 따라 교류업무와 내용을 처리하고 있기에 전 문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간 추진된 남북한 불교교류의 발달 과정 <표3>을 통해 교류의 현재적 상황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표3, 남북 불교교류의 발달 단계> 구분 발달단계(3관) 단계별 1단계 - 관심 2단계 -관계 3단계 - 관활( 關 活 ) 시기별 1945~1987년 1988~1999년 2000년 ~ 현재 주제별 체제수호에 따른 복무 교류의 필요성 제기 교류 파트너로서의 역할 변 수 전쟁에 의한 인식 결여 국제홍보/자연재해 사회적 요구와 경제요소 170 북한불교의 이해
171 또한 그간 추진된 남북한 불교교류의 흐름을 통해 교류의 체계를 인식하고 접근 할 필요가 있다. 교류는 상호간의 목적달성과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과정이다. 즉, 교류에서는 협상이론에서 말하는 완전한 협조자(fully cooperative partner)는 존재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북 불교교류에서는 상호간의 공동이익(common interest) 이나 결합이익(joint interest)을 위해 교류 당사자가 직접 누릴 수 있는 이익의 합 ( 合 )이 있어야 바람직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14) 오늘날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현재 교류 당사자가 누리는 이익의 합인 공동이익 보다는 당사자의 개별이익보다 전체이익에 더 중점을 둔 결합이익(문제당사자가 결합함으로써 생성되는 이익을 지칭함)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협상 에서와 마찬가지로 교류 또한 공통적이면서 상반되는 이익의 조합을 새롭게 변화시 키려고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종단)가 명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나 행 태를 말한다. 지금까지 남과 북 사이에 진행된 불교교류는 이해관계가 보완 또는 상 충되는 당사자간의 공유되는 이익을 모색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구체적인 제안을 교 환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의 사안에 대해 둘 이상의 의사결정 주체가 임의로 복합적인 이해사 안을 주고받는 교환을 통하여, 다른 형태의 행동 결과보다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상호 전략적 조우과정이 요구된다. 여기서 고려할 사항은 조불련과 같이 분명 한 이해당사자(parties or sides), 사찰복원 등과 같은 사안들의 집단적 선택, 상대방 과의 결과 의존 성질, 조선중앙박물관과 같은 기관과의 상호 연대와 모색을 통한 정 보교환과 의존, 상대방에 대한 협상력(negotiation power) 등 매우 중요한 결정요 소를 협의기구와 조직 차원에서 보다 면밀하게 분석해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1) 남북 불교교류의 유형 비교 1970년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활동과 교류를 시작한 남북한의 불교가 이루어온 14) 이달곤, 협상론, 법문사, pp.15~21.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71
172 교류의 유형을 통해 향후 변화하거나 전환되어야 할 과제를 고찰해 볼 수 있다. 그 유형은 통상 1970년까지는 고립적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후 1990년대까지는 통일운동과 연계하고 국외불교의 조직을 통한 교류가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제반의 교류 사업에 있어 그간 주도적인 역 할을 해온 평불협, 불추위 등 불교통일단체와 더불어 종단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면 서 교류와 협력사업도 활기를 띄었다. 이러한 남북 불교교류는 간접교류에서 직간 접 그리고 직접교류로 확대되었다. 시기적으로 나타난 남북 불교교류의 유형비교 와 현황을 보면 다음의 <표4, 5>와 같다. 교류기간 분단이후~1970년대 1980~90년대 2000년대 이후 교류현황 교류방법 교류변수 *장소: 국내 및 해외 *대상: 불투명함 *의제: 체제선전에 기여 *주요내용 -각 체제 수립에 기여함 *보조내용 -국제행사 등 우회교류를 추진함 *전쟁이후 첨예한 대립구도(반공 개념 등장) *양측 모두 교류보다는 체제성장 에 집중함(종단정화운동, 조불련 의 재구성 등) <표4, 남북 불교교류의 유형비교> *장소: 미국,일본, 중국 *대상: 해외 북한조불련 *의제: 국제교류의 요청, 인도적 지원 참여 *주요내용 -통일운동과의 연계선상, 국외불교의 참여 *보조내용 -인도지원 사업에 의한 교류사업 추진 *정치적으로 통일사업을 이용함(국가 보안법 등) *사회 민주화운동과의 부문 연계사업 *88서울올림픽 개최 *김일성 주석 사망(1994년) *장소: 중국, 금강산, 개성, 평양 등 *대상: 조불련, 민화협, 사회과학원, 문화총국 *의제: 공동행사,사찰복원 등 인도 적 지원 *주요내용 -직접교류에 의한 협력 사업(공동 사업 추진) *보조내용 -인도적지원과 남북공동 행사 참가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금강산관광 등의 시작 *북미,북일 간의 관계 정상화 *보수정권의 탄생(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011년 12월 17일) 교류평가 *개별 고립형 교류 : 교류대상을 설정하지 않음. *상호 대립형 교류 :불신 -WFB가입 반대성토-핵문 제 등 *국외 의존형 교류 : 미국,일본,중국 등 불교 단체와 개인 에 의한 중계 교류가 추진됨 *인도적 지원형 교류 :1995년 이후 조불련 등 지정기탁 방 식의 인도지원에 의한 교류가 추진됨. *통일운동 연계형 교류 :국내외 통일단체들과의 연대에 의한 교류가 추진됨 *종단적 참여형 교류 :민화협, KCRP, WFB, 중국 세계불 교포럼 등에 종단적 가입 참여를 통한 직접교류를 추진함 *공동협력 사업형 교류 :신계사, 영통사 복원 단청불사 등 기술지원, 국수공장, 양묘장사업 등 *공동 행사형 교류(3.1절, 6.15 및 8.15 행사, 10.3개천절) :민화협 등 남북공동행사에 주도적 참여를 통한 교류가 추진됨 *불교문화재를 통한 교류 172 북한불교의 이해
173 :종단 사찰, 단체가 주도하는 기념, 연대의 교류가 추진됨(고려대장경 판각천년기념행사, 국외 반출문화 환수사업 등) 남북불교도합동법회 (1991년, 미국 LA) 남북불교계 접촉 (1994년, 일본 동경) 남북불교회의 (1995년, 중국 북경) 남북불교회의 (1997년, 중국 북경) 진각종단 평양방문 (1999년 평양) 남북불교회의 (2002년, 중국 북경) 8.15민족대회 (2002년, 서울) 3.1절 민족대회 (2003년, 서울) 단청불사 대표회의 (2003년, 평양) 남북불교대표자회의 (2004년, 금강산) 6.15민족대축전 (2005년, 평양) 교류제목 교류배경 교류유형 교류특징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조 국통일기원 제1차 남북불교 도합동법회(2005년, 금강산) 개성 영통사 복원행사 (2005년, 개성) 북관대첩비 환수 (2006년, 개성-길주) 조선왕조실록 환수사업 (2006년, 일본-오대산) 동국대 개교100주년 기념법 회(2006년, 보현사) <표5, 분단이후 추진된 남북 불교교류의 현황 분석> 기독교 등 남북대화에 따른 불교교류의 필요성 대두 제4회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 교에 관한 기독자 도쿄대회 초청됨 1991년 첫 만남이후 중단된 교류 재계 인도적 지원에 따른 정기회의 성격/구축 진각종 종단대표 방북에 의한 지원 정상회담에 의한 종교교류 활 성화 2002년 8.15민족대회참가(공 동행사 참관단) 정상회담에 의한 북한종교계 의 서울 첫 방문 남북공동 협력사업에 대한 첫 실행안 금강산신계사 복원을 위한 공 동합의 남북공동 행사에 명예대표로 총무원장 법장스님 참가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를 개최함(중국북경, ) 남북공동 복원사업의 첫 성과 북한당국의 입장 수용이 가능 한 사업 민족문화재에 관한 남북공조 와 지지 역사적 관계에 기초한 남북 교육기관 교류 남북불교 합동법회와 연석회의 일조불교친선협회 초청 (조불련, 4명) 대표자간의 접촉과 실무대표 회의 실무 대표자간의 교류회의 조불련 초청에 의한 실무 대표자간의 협력사업회의 남북불교 접촉 등(조불련 4명 참가) 남북불교 합동법회와 타종식 공동사업에 대한 첫 실행안 합의 신계사 복원을 위한 남북불교 대표자회의 공동행사 참가하여 개막 연설 을 함 남북불교 신도단체 대표단간 의 교류(조불련 전국신도회) 북한사찰 공동복원 사업(조불 련-천태종) 국외 반출문화재의 환수에 따 른 홍보 국외 반출문화재 환수사업 교육기관 설립에 관한 역사 공유와 교류 분단이후 최초의 만남과 법 회, 연석회의 개최함 조불련, 박태화 위원장 등 참 가. 일본 최초 입국함 중단된 교류의 새로운 시작과 대표자간의 만남 남북공동발원 공식채택 (공동발원문 공식화) 종단대표 첫 방북사례 신계사 복원, 단청불사에 관 한 합의 분단이후 북한불교 최고 수장 인 박태화 위원장의 한국 첫 방문 분단이후 북한불교계가 최초 로 서울방문 합동법회 북한지역 사찰에 대한 최초의 단청불사 지원 분단이후 최초의 조계종과 북 한 조불련과 공동사업 분단이후 최초로 한국 불교계 수장이 평양을 방문 분단이후, 남북한 불교신도단 체 첫 합동법회 사찰 공동복원/ 순례, 다례재 봉행 국외 반출문화재의 남북 공조 사업 차원 국외 반출문화재의 남북공조 사업 차원 김일성종합대학과 교류를 위 한 각서(MOU)체결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73
174 신계사 낙성법회 (2007년, 금강산) 6.16민족대축전 (2007년. 평양) 10.4남북정상회담 (2007년, 평양) 내금강관광 (2007년, 금강산) 조선왕실의궤/화장사 출토유 물 환수사업(2008년. 평양) 신계사 2돌기념법회 (2009년, 금강산) 조불련 초청방문 (2010년, 평양) 팔만대장경 판각 천년기념 합 동법회 등(2011년, 평양, 묘향 산) 인도적 지원 전달식 (2011년, 개성 봉동역) 남북공동 복원사업의 첫 결과 (성과) 공동행사, 총무원장 지관스님 참가 제2차 정상회담에 총무원장 지관스님 참가 내금강산 방문 일제시기 해외 반출된 민족문 화재 환수운동(2006년9월 지 지성명) 신계사 복원 2돌에 대한 기념 행사 북측초청에 따른 방문, 총무 원장자승스님 방북 조불련 초청과 합동행사, 총 무원장 자승스님 등 평양방문 인도적 식량지원, 육로 전달 방식 추진됨 북한사찰 공동복원 사업(조불 련-조계종) 공동행사 참가하여 개막 축사 연설 남북정상회담에서 종교분야 에 대한 연설 조불련 청사 방 문/회의 표훈사 등 내금강의 불교 성 지순례 남북공조에 의한 문화재 환수 운동(일본-미국 대상) 신계사 복원 기념법회 개최 조불련 청사 방문 및 남북불 교회의 개최 묘향산 보현사 합동법회 및 남북불교회의 개최 등 조불련, 금강국수공장 식량지 원에 의한 교류 금강산 옛 4대사찰-신계사 복 원(조불련 4대 위원장 참석함) 한국불교계 수장의 2번째 방 문임 남북정상회담의 분야로 참가함 유영선 위원장과 회의 분단이후 처음으로 내금강산 을 찾음 분단이후 최초의 위임장을 받 게 됨 조불련 신임 리규룡 부위원장 이 주관함 한국불교계 수장의 3번째 방 문임 한국불교계 수장의 4번째 방 문임 종교계, 2011년 육로 방식의 인도지원 사항 출처: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남북불교교류의 흐름-남북불교교류60년사, 2010 ; (사)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평불협 창립20돌 자료집, 여래기획, 2012) 2. 남북 불교교류의 과제 통일과정에서는 교류와 통합의 대상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저 것 다 관련 짓는다 는 것은 자칫 개별화된 특성을 고려하는데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교류의 중심을 자칫 흩뜨릴 수도 있다. 그동안 이웃종교가 통일운동과 연계되는 활 동을 먼저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교류에 있어 신계사, 영통사의 복원 등 규모면이나 실질적인 교류과정에서는 남북한의 불교가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험 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 등 이웃종교와 마찬가지로 남북한의 불교가 정치적, 관계적인 차원을 넘어 단독의 공동행사를 전개하지 못하였다. 다만, 2002년 박태화 위원장이 6.15공동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을 방문하고, 2003년에는 3.1절 민족대회 기간 중에 174 북한불교의 이해
175 서울에서 합동법회 개최를 추진하였지만 이와 같은 행사는 모두 자립적으로 독립적 인 행사로 규정하기는 부족한 측면이 너무 많다. 그리고 금강산이나 평양에서의 공 동 및 합동행사를 개최한 경우는 많이 있었더라도 서울 등 제3국에서의 남북불교계 만의 행사를 갖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미 전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남북 불교교류의 역량에 따라 독립적인 합동법 회 등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나아가 통일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는 역할을 남북한의 불교계가 맡을 수 있도록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의 교류가 빈번하고 활발해지면서 북한을 방문한 남한 종교인을 포함하여 북한 내에서 행해진 공동 법회와 연등달기 행사 등 불교행사와 가톨릭의 장충성당 미사, 개신교의 칠골교회 예배 등 신앙 활동을 제한 적으로 허용한 바 있다. 이것에 대해 국내의 몇몇 학자 및 보수 연구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북한이 이들 종교계로부터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양보의 수준일 것이다 등으 로 특례적인 조치로 규정한 바 있다. 또 일시적으로 종교 활동을 허용했을 뿐 북한 내부의 변화로까지 볼 수 없는다 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지금까지 북한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 현상에 대해, 북한이 허용하고 있 는 종교교류는 통일에 기여하는 무언가를 종교적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남한에서는 남북한 종교교류를 선교 내지 포교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정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의 경우는 통일에 필 요한 종교적 역할로만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한의 종교가 바라 는 것이 이와 같다면, 실질적인 대화나 교류의 성과를 촉진하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정치 내지 군사 우선주의에서 문화주의로, 남한도 자기 종교만의 선교와 같은 목적을 버리고 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민족적인 과제 인 조국통일이라는 명제 아래 민족통일성 회복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남북 종교교류 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종교의 평화적인 기여는 분단국가의 통일 촉진에 필요한 좋은 요소로 작동될 수 있다. 남북한의 불교교류가 거의 60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불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75
176 교가 해왔던 일을 점검하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불교교류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하 여 불교 종단과 민간단체 차원에서 접근하고 추진할 수 있는 과제를 몇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1) 남북 불교교류의 성격과 과제 남북 불교교류의 목적은 우리 민족 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자유 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불교가 만들고자 하는 과정 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 불교의 교류는 실현과 미실현의 이분법 개념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지금은 몇%가 이루어진 상태라는 식의 지속적인 발전 과정으로 설정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현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은 외형적이든 내면적이든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지 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에 있어 불교의 과제는 한마디로 파트너의 위상강화 즉, 조불련의 자립성과 독립성을 높여주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북한 종교 내에서의 조불련의 위상이 강화될 경우는 제3 국에서의 법회, 회의 등 각종 접촉이나 남북 불교교류의 실질적인 폭이 크게 확장된 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조불련의 주요업무가 첫째로 남한을 포함한 제3국과의 종교교류, 둘째는 북한종교의 실질성 확인, 셋째로는 승려교육 및 사찰관리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볼 때, 남북 불교교류의 제 1과제는 조불련의 위상을 높이는데 필요한 교류의 과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남북 불교교류에 있어 북한사회 내에서 조불련이 가지고 있는 위상이 지 금보다 훨씬 강화되기 위해서는 남한불교 내의 종단적인 합의화, 교류창구의 실질 화, 교류주최의 전문화, 지원방법의 통일화 등이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 하다. 북한불교계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개별종단 차원이 아니라, 범종단적 으로 합의 를 도출하여 마련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남북 불교교류에 의한 교류협력과 인도적인 지원 창구는 실현가능한 창구와 신 뢰가 충분히 구축되어 있는 창구가 가장 효율적인 것이 된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남 176 북한불교의 이해
177 북 불교교류의 인센티브(incentive)를 마련하게 한다. 교류 주체의 전문화는 다양한 경험과 신뢰가 구축된 단체나 개인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대응하는 방법적 조치 일 것이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는 항상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교류와 협력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 학술 및 문화 교류의 통일화는 불교와 불교문화재로 설정할 수 있으 나, 학술의 범위는 불교가 통일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까지도 포괄하고 있 다. 그리고 북한 주민과 어린이들을 위한 협력과 지원방법의 통일화는 대명제는 인 도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2) 조불련과의 교류 추진 방법 남한 불교계가 조불련과 추진하는 문화교류 및 인도적 협력과 지원사업 더 나아 가서 통일의 과정에서 남북 불교의 통합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현재의 교류방식과 지원 및 협력사업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우선, 불교의 종단과 민간단체 차원에서 추진하는 교류협력과 지원 그리고 통일 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조직적인 구성을 갖추는 것이 요구된다. 현재의 조계종단의 통일교류 창구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를 보다 전문화하고, 남한불교계의 대표성을 담보하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를 확대 강화하고 여기에 인력과 자금을 집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여기에는 교류협력에 대한 사업 중심의 노력뿐만 아니라 연 구와 불교의 통일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 야 한다. 다음으로, 조불련과의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이 종단에서만 진행되기보다는 지 역별, 사찰별 역할분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선택과 집중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찾고, 종단차원에서는 전체적인 방향과 원칙을 결 정하고, 협력과 지원사업에서는 그 대상을 조불련중앙위원회로 정하고 그 조직의 일로 집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반면 지역별, 사찰별로는 북한의 각 지역 과 중요 사찰을 중심으로 교류와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77
178 람직하다. 화해와 협력단계에 이르면 종단차원에서 조불련과의 신뢰를 증진하는 것에 기초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연합단계에 이 르게 될 경우에는 종단차원에서 북한불교와의 교류협력 및 지원을, 지역이나 사찰 별로는 북한 지역 및 중요 사찰에 대한 지원사업을 통해 교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북불교가 하나의 조직체로 결합하는 준비를 효율적으로 전개하 고 추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국가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의 불교를 위한 전 면적인 협력과 지원사업이 진행되어야 하며, 이는 종단차원에서는 공통의 불교입법 마련과 통일기구의 구성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이나 사찰별로는 사 회적 통합과 불교의 문화적 통합의 역할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남한 불교계가 조불련과의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은 불자들의 힘과 의 지를 모아서 불사( 佛 事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불교 종단이나 각 사찰의 문 제가 아니라 불자들의 통일의 염원과 의지에 기초해야만 불교계의 교류협력과 지원 사업이 올바르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단의 승가와 재가들을 설득하 고, 통일의 과정에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방 법들이 제시되어져야 한다. Ⅳ. 결론 해방 이후, 오늘날 북한의 종교와 존재기반은 복무와 자율의 어떤 형태로도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불교와의 파트너십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남한의 불교계가 목표를 결정하고, 모든 통일정책과 교류방안을 그 방향으로 사업을 수행하면서, 불 교계가 원( 願 )하는 방향 내지 형태의 통일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각 종단과 불교 통일단체들이 함께 전략을 수립하고 그 실행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남북간에 형성된 교류의 문화적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 <표6>와 같다고 할 수 있다. 178 북한불교의 이해
179 <표6, 남북 불교교류의 문화적 관계> 구 분 남북 불교교류의 문화적 관계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타인단계 손님으로 시작해서 친구관계로 가족으로 주인이 돼야 안내단계 배려를 해야 한다 이해를 하고서 타인을 인정해야 포용하도록 대상단계 관계를 가지고 교류를 만들어 협력을 유지하여 통합으로 가야 구분단계 동반(소속감)해야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확인하면 목적이 확산되도록 이와 같은 교류 문화적인 관계에서 보면 북한불교계에 대한 남한불교계의 수위 는 모든 단계에서 2단계 타인 친구, 안내 이해, 대상 교류, 구분 신뢰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부분적으로 3단계의 문화적 수준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 남북한의 불교교류가 한 단계 더 발전한 타인 가족, 안내 인정, 대상 유지, 구분 신뢰 확인 의 3단계 문화적 수준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의미의 교류 관계를 형성할 수 있 다고 본다.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에서 볼 때, 남북한의 불교교류는 종단 주도하의 파트너십 에 대해 북한불교 내의 조직 책임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감과 불확실성을 해소시 켜 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통일 이후 북한불교의 위상과 생활 속에 자리 하는 불교의 전통양식( 樣 式 )을 제공하는 계획을 수립 홍보하여, 통일이라는 특수 한 조건이 형성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추진해온 남한 불교계의 통일지향적 프로세스(process)로 인해 북한으로부터 확실한 인지도를 가 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불교와의 교류를 위한 남한 불교계의 통일프로세스는 대내적으로, 일관된 불교계 통일사업을 유지하면서 종단규합 경제력 비축 지원체계 정비 등을 통하여 불교적인 통일정책의 수립과 추진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대외적으로는 북한 불교와의 교류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지속적인 지원 및 교류사업을 통하여, 북한 내 에서의 평가도를 높이고, 교류협력의 구체적인 토대가 마련되었을 경우, 남북한 정 부 또는 통합정부로부터 참여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로부터의 보장체계를 획득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79
180 이러한 전제는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의 진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북한의 불교통합에서도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더 나아가 평화통일이 이룩되는 것이 전제조건임은 틀림없지만, 북한불교에 대한 남한불교의 선( 先 )포교 주의와 우월주의, 그리고 여러 가지 부정적 시각을 배제하고, 동시에 남한불교에 대 한 북한불교의 사회주의 통일전선전략이 제외되어야만 통합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 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불교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상호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어떻 게 형성할 것인가? 먼저 남북한과 남북불교간에 현존하거나 향후 발생할 문제를 통 일과 불교통합 과 결부된 문제 또는 남북통일을 완성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정책 적인 문제로 설정하여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남북 불교의 통합 문제는 양( 兩 ) 정부의 평화정착을 위한 일정기간 분단관리정책에 적 응하는 문제, 즉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자세를 견 지해야 한다. 즉 남북한의 불교는 통합을 통합정책의 추진이라는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려고 할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정부가 전개하는 일정기간 평화관리정책에 충분한 적응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남과 북 사이의 평화관리정책 15) 에 적응을 통한 남북불교 의 통합방식은 체계통합(system integration)과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으로 나 뉘어 볼 수 있다. 체계통합은 남북한의 불교 조직의 하드웨어(hardware), 즉 종단 종헌 및 종법, 사원경제, 교육제도, 종단정치 및 조직, 신도체계 등의 통합을 가리킨 다면, 사회통합은 그 조직의 소프트웨어(software), 즉 불교교리 및 사상, 교단계율 및 규범, 불교의식과 형태, 불교문화의 가치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합방식은 필 요조건일 뿐이지, 체계 통합이 자동적으로 사회통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15) 1960년대 독일문제에 대한 정책적 변화에 따라 사용된 분단질서(Teliordnung) 에서 유래된 분단 관리 (김학성, 서독의 분단질서관리 외교정책 연구, )와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이 채택하면서부터 전개된 상황은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분단이라는 현실 자체를 효율적 으로 관리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평화유지 라는 개념과 남과 북 양정부의 실질적인 노력을 합쳐 평화관리정책 이라는 개념을 정의하였다. 180 북한불교의 이해
181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특정 시점에서 높은 수준의 체계 통합을 보이는 사 회라도 사회 통합은 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16) 그러므로 남북한의 불교 통합은 남과 북간의 평화통일 구조 위에서 이루어지는 불교의 내외 적인 체계통합과 사회통합, 각 분야의 양과 질, 교단의 구조와 주체의 행위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남북한 불교계의 통일지향적 프로세스는 앞으로 진행될 통합정부의 형태 에서 남북불교의 통합까지 실현가능한 설계도면 17) 을 작성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 러므로 우리들은 북한에서 개혁 개방이 진행될 경우에는 북한의 종교지형 또한 대 폭 변경되거나 확대될 수도 있다. 이것은 북한의 종교단체들이 일정하게 자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전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발전모형으로 까지 전환할 것으로 전망할 수가 있다. 또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지니고 있는 전통성과 문화적인 동질성을 회복 하는데 남북한의 불교계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북한에서 불교 그 자체를 다 른 외세, 외래종교보다 배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민족문화 공동체를 다시 이루어 가는데 불교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의 불교교류를 위한 과정은 우선 양측간 신뢰를 쌓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 다. 이를 위해서는 휴전선을 넘어 개인과 집단간 솔직한 대화와 공동이익 추구가 무 엇보다 필요하다. 조불련과 남한 불교계간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공식 비공식 적 상호 교류를 통한 네트워크를 넓혀가야 한다. 단, 통일과정에는 남북한 중 어느 한쪽이 너무 빠른 교류로 말미암아 현재의 사회질서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지 않도록 속도조절에 힘을 써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18) 는 전문가의 지적과 같이 남북 16) Lockwood : 이해영,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푸른숲, p ) 그 사례로 2000년에 신법타 스님이 작성한 통일종헌은 1993년 초 향린교회 제직회 산하 부서로 출 범한 통일희년위원회(위원장 문홍주)를 주축으로 통일공화국 헌법(초안)작성위원회가 같은해 5 월 2일 통일공화국 헌법( 草 案 ) 공청회를 개최한 후, 5월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상에 발표된 자 료를 바탕으로 임의적 재구성을 한 것이 중앙승가대학교 교지 <승가 僧 伽 >지( 誌 )를 통해 지상 발표 된 바 있다. 18) 로버트A 스칼라피노, 한반도 화해시대, 문화일보 창간9돌 특별기고문( 면 기사)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81
182 한 불교계가 공히 안고 있는 문제를 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0년대에 들어와 남북한 불교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교류와 협력사업에 대한 일련의 조치가 점진적으로 협의되고는 있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주위 환경 및 내부 조건은 다르기 때문에 남북한 불교간의 발전적인 측면도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지거 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불교인들에 의한 교류 와 협력 과정을 만들고 불교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불교 문화적 방안 등 검 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공동의 불교적인 전통을 되찾아 재통 합의 목적을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남북한 불교교류의 과제는 앞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우리는 특수한 남 북한 상황에서 남북한의 불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와 불교는 통일과정에서 왜 중 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남과 북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발전적으로 이루어질 때 해결될 수도 있다. 양진영간 긴밀한 관계는 곧 통일환경 19) 을 조성하면 서 통일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곧 남북한 불교계가 직면한 과제도 같이 풀어갈 수 있는 첫 번째의 과정이기도 하다. 2013년 4월 11일 방한한 북태평양조약기구 나토(NATO)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 무센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강창희 국회의장을 만나 이야기한 김정은 정권 이 수년 내에 붕괴할 것 20) 이라는 불가역적인 예측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현재, 남북 간에 형성되어 있는 대립 국면을 우리가 냉철하게 직시하고 우리 민족과 불교가 상 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서로 행동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더욱이 우리가 바라 는 통일은 남북의 이념과 노선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 스스로가 극복하 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9) 통일의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한이 견지하고 있는 체제의 특성과 한반도 통일에 직 간접으로 영향 을 미칠 수 있는 국제상황 및 세계사적 추세를 일컫는 포괄적 개념이다. 또한 한국민족의 역량, 세 계열강들의 이해 관계와 연결되었던 분단과정과 남북한의 국가 사회적 역량, 동북아 각국의 이해 관계와 연결된 통일과정 및 우리가 추진하는 통일정책이나 통일방안 및 통일의 의미까지를 포괄 하고 있다.(김도태 김윤영, 21세기 통일국가경영, 박영률출판사, pp.18~20) 20) 월간 조선, 2013년 3월호(인터뷰 기사 중에서) 182 북한불교의 이해
183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 최종병기활 중에서>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을 비롯하여 종교, 문화, 학술 등 각 분야에서 서로가 서로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며 존중할 때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의 증진은 물론 통일 과정까지도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남북한 불교교류의 성과와 과제 183
184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서울시 중구 필동 2가 82-1번지 동국대학교 충무로영상센터 본관 202호 02) ,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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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비계획의 기본구상 5.1 유적 및 유구 정비 복원 사례연구 5.1.1 미륵사지(彌勒寺址) 미륵사지는 삼국유사 백제 무왕조에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길에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에 의하여 이곳을 메우고 3개의 불당과 탑, 회랑 등을 세웠 다는 기록이 있으며, 미륵사의 배치는 삼원병렬식(三院竝列式)으로 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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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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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4 45 2012 46 47 2012 48 49 추억의 사진 글 사진 최맹식 고고연구실장 죽음을 감지하고 미리 알아서 죽은 미륵사지 느티나무 이야기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 미륵사지는 가장 오랫동안 발굴 작업이 이뤄진 곳 미륵사지는 발굴 종료 당시,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가장 오랫 동 안 발굴했던 유적이다. 1980년 7월 7일 발굴을 시작해 1996년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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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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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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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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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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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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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2) 2호 주거지 주거지는 해발 58.6m의 조사지역 중앙부 북쪽에 3호 주거지와 중복되어 위치하고 있다. 주거지는 현 지표층인 흑갈색사질점토층(10YR 2/3)을 제거하자 상면에 소토와 목탄이
(중등용1)1~27
3 01 6 7 02 8 9 01 12 13 14 15 16 02 17 18 19 제헌헌법의제정과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5월 10일: UN 감시 하에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1948년 6월 3일: 헌법 기초 위원 선출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소집. 헌법 기 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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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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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지원단체 지원품목 수량 금 액 지원경로 2000 북한동포돕기제주도민운동본부 감귤 3,000톤 237 독자창구 강 원 도 농업용 비닐 27,000롤(415톤) 55 한적 북한동포돕기제주도민운동본부 당근 2,000톤 58 독자창구 강 원 도 연어치어55만미방류자재1식(21종)등 13 솔잎혹파리 공동방제 관련 약제 23 한적 남북강원도협력협회 농업용비닐 195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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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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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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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북한에대한이해를돕기위해통일교육원에서발간한교재입니다. 각급교육기관등에서널리활용하여주시기바랍니다. 차례 Ⅰ. 북한이해의관점 Ⅱ. 북한의정치 차례 Ⅲ. 북한의대외관계 Ⅳ. 북한의경제 Ⅴ. 북한의군사 Ⅵ. 북한의교육 차례 Ⅶ. 북한의문화 예술 Ⅷ. 북한의사회 Ⅸ. 북한주민의생활 차례 Ⅹ. 북한의변화전망 제 1 절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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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히 묻고 가까이 실천하는 선진 산림과학 3.0 시대를 열겠습니다! 01 03 05 05 06 07 08 08 10 10 11 임업인에게는 희망을, 국민에게는 행복을 带 NIFoS 1 중국 닝샤회족자치구() 중국 무슬림 인구 주요 분포도 중국 닝샤의 회족 자치구 3 중국 무슬림 인구 Top 11 지역 순위 지역( 省 ) 인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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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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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CONTENTS 03 04 06 14 21 27 34 40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17 Historical Dictionary of North Korea Auf den Spuren der Ostbarbaren Czech-Korean Dictionary 18 19 Transforming Korean Politics:
문화재이야기part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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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한국전쟁소고내지(090518)
2010년 남침60주년 증보판 우리 민족사 최대 비극, 6. 2 5 바로 알기!! 글 김순욱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발 행 처 : 영락교회 선교부 주 소 : 100-032서울특별시 중구 저동 2가 69번지/전 화 : (02) 2280-0114 협 찬 : 6.25한국전쟁 진실알리기운동본부 국방부 보안성 검토필: 2005. 07.14(국방부훈령
CR2006-41.hwp
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2020 나주도시기본계획 일부변경 보고서(2009).hwp
2020 나주도시기본계획일부변경 2009 나주시 목 차 Ⅰ. 나주도시기본계획변경개요 1. 도시기본계획변경의배경및목적 1 2. 도시기본계획변경의기본원칙 2 3. 도시기본계획변경의범위 3 4. 추진절차 4 Ⅱ. 도시현황및특성 1. 도시현황및특성 5 2. 역사적 문화적특성 20 3. 도시세력권 24 4. 도시기능 25 5. 상위및관련계획검토 26 6. 개발잠재력분석
2016년 신호등 10월호 내지.indd
www.koroad.or.kr E-book 10 2016. Vol. 434 62 C o n t e n t s 50 58 46 24 04 20 46 06 08, 3 3 10 12,! 16 18 24, 28, 30 34 234 38? 40 2017 LPG 44 Car? 50 KoROAD(1) 2016 54 KoROAD(2), 58, 60, 62 KoROAD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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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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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2002report220-10.hwp
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棄 権 DNS: 欠 場 )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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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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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2. 3. 4. 제2장 아동복지법의 이해 12 4).,,.,.,.. 1. 법과 아동복지.,.. (Calvert, 1978 1) ( 公 式 的 ).., 4),. 13 (, 1988 314, ). (, 1998 24, ).. (child welfare through the law) (Carrier & Kendal, 1992). 2. 사회복지법의 체계와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소비자문제연구 제41호 2012년 4월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용약관의 약관규제법에 의한19)내용통제 가능성* : Facebook 게시물이용약관의 유효성을 중심으로 이병준 업 요약 업 규 규 논 업 쟁 때 셜 네트워 F b k 물 규 았 7 계 건 됨 규 규 업 객 계 규 므 받 객 드 객 규 7 말 계 률 업 두 않 트 접속 록 트 른징 볼 규 업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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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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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2002 年 2 月 昌 原 大 學 校 大 學 院 音 樂 科 安 明 基 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Sonata for B-flat
211 1-5.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石 村 洞 百 濟 初 期 積 石 塚 이도학, (서울의 백제고분) 석촌동 고분, 송파문화원, 2004. 서울 特 別 市, 石 村 洞 古 墳 群 發 掘 調 査 報 告, 1987. 1-6. 고창지석묘군 高 敞 支 石 墓 群 문화재관리국,
210 참고문헌 1. 능묘 1-1. 경주황남리고분군 慶 州 皇 南 里 古 墳 群 경상북도, 文 化 財 大 觀, 1-V, 慶 尙 北 道 編, 2003. 문화재관리국, 天 馬 塚 發 掘 調 査 報 告 書, 1974. 1-2. 함안도항리 말산리고분군 咸 安 道 項 里 末 山 里 古 墳 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咸 安 道 項 里 古 墳 群 5, 2004.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1. 2. 3. 4. 5.
1. 2. 3. 4. 5. 1 10 11 12 13 14 부여는 그 도장에 예왕지인( 濊 王 之 印 : 예왕의 인장)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 나라에는 오래된 성이 있는데, 이름을 예성( 濊 城 )이라 고 한다. 본래 예맥의 지역인데, 부여가 그 가운데 왕으로 있었다. 1 15 16 17 18 19 20 1 2 21 2 22 1 2 23 24 1 2 25 26
³»Áö_10-6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82-대한신경학0201
www.neuro.or.kr 2010 1 Vol. 82 www.neuro.or.kr 01 5 January 2010 2007 Newsletter of THE KOREAN NEUROLOGICAL ASSOCIATION 2010 NO.82 2010.JANUARY C o n t e n t s 04 05 06 10 13 17 18 20 22 25 28 32 33 36
04 Çмú_±â¼ú±â»ç
42 s p x f p (x) f (x) VOL. 46 NO. 12 2013. 12 43 p j (x) r j n c f max f min v max, j j c j (x) j f (x) v j (x) f (x) v(x) f d (x) f (x) f (x) v(x) v(x) r f 44 r f X(x) Y (x) (x, y) (x, y) f (x, y) VOL.
2003report250-12.hwp
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1362È£ 1¸é
www.ex-police.or.kr 2 3 4 5 6 7 시도 경우회 소식 2008年 4月 10日 木曜日 제1362호 전국 지역회 총회 일제 개최 전남영광 경우회 경북구미 경우회 서울양천 경우회 경남마산중부 경우회 경북예천 경우회 서울동대문 경우회 충남연기 경우회 충남예산 경우회 충남홍성 경우회 대전둔산 경우회 충북제천 경우회 서울수서 경우회 부산 참전경찰회(부산진)
2.pdf
1 1 1441 1457 5 1441 7 23 1448 1 145 1451 1452 2 1455 3 1457 3 1 4 1681 7 5 1698 6 [] 7 2 1457 3 6 1452 ~ 1455 196 1581 1 12 31448 4 3 ; 2 145 7 2 ; 1 1 21796 3684 2 1 1452 5 18 3 1 11455 6 11 4 1 5 12
5 291
1 2 3 4 290 5 291 1 1 336 292 340 341 293 1 342 1 294 2 3 3 343 2 295 296 297 298 05 05 10 15 10 15 20 20 25 346 347 299 1 2 1 3 348 3 2 300 301 302 05 05 10 10 15 20 25 350 355 303 304 1 3 2 4 356 357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진 의학 지식과 매칭이 되어, 인류의 의학지식의 수준을 높 여가는 것이다. 하지만 딥러닝은 블랙박스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단지 결과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의학지 식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실제로 의학에서는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때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해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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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텔레비전의 폭력행위는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묘사되는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만화프로그램의 내용분석을 통해 각 인 물의 반사회적 행위 및 친사회적 행위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맥락요인들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를 조사하였다. 맥락요인은 반사회적 행위 뿐 아니라 친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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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04. 12 2004. 11 25 26 2004. 12 % 50 40 30 20 10 0 華 東 華 北 中 南 西 南 東 北 西 北 전 체 중 대 형 차 중 형 차 소 형 차 경 차 2004. 11 27 帕 28 2004. 12 2004. 11 29 30 2004. 12 2004. 11 31 32 2004. 12 2004. 11 33 34 2004.
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2017. 6. 22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구위원송대성박사前 ) 세종연구소소장방효복예 ) 중장前 ) 국방대학교총장남성욱박사고려대행정전문대학원장이원우박사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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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of Rearing Traditional Accomodations: The Study of Rearing Traditional Accomodations: 제1장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제2장 관련 정책 및 현황의 검토 제3장 국내외 사례 조사 분석 제4장 전통고택 및 사찰 템플스테이 활성화 방안 제5장 사업 추진방안 제6장 결론 및 정책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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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VOL.13 No.4 2011 08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CONTENTS XXXXXX XXXXXX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3 XXXXXXXXXXXXXXX XXXXXXXXXXXXXX 4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5 6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2014 경영학회_브로셔 내지
2014 08. 18-08. 20 2 02 03 04 05 05 05 06 07 08 08 08 09 10 11 12 13 16 17 19 22 23 23 23 24 24 25 25 27 28 29 30 30 32 33 34 34 35 35 35 37 37 38 39 39 40 42 43 44 44 44 46 47 49 50 51 3 4 5 6 7 8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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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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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감사회보 5월
content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동정 및 안내 상장회사감사회 제173차 조찬강연 개최 상장회사감사회 제174차 조찬강연 개최 및 참가 안내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조직의 역 량과 경영리더의 역할의 중요성 등 장수기업의 변화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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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기념전 시련과 전진 주 최 :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 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중앙일보 후 원 : SK Telecom, (주)부영, 다음 일 정 : 2005.8.14(일) ~ 8.23(일) 장 소 : 대한민국 국회 1. 내용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인용, 발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 주셔야 합니다. 2. 본 자료는 http://www.kdemocracy.or.kr/kdfoms/에서
<B1B9C8B8C0D4B9FDC1B6BBE7C3B3BAB85F BB0DCBFEFC8A35B315D2E706466>
2011 Winter 02 08 10 News 14 Article Report 42 NARS Report 60 NARS Report Review 68 World Report 84 Column 94 Serial 116 2011 Winter 11 www.nars.go.kr 01 02 w w w. n a r s. g o. k r 03 04 01 02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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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Group 2006 AUTUMN Volume. 02 Focus Group 2006 AUTUMN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를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2009_KEEI_연차보고서
http://www.keei.re.kr KOREA ENERGY ECONOMICS INSTITUTE KEEI ANNUAL REPORT 2010. 5 KOREA ENERGY ECONOMICS INSTITUTE 3 KOREA ENERGY ECONOMICS INSTITUTE 4 KOREA ENERGY ECONOMICS INSTITUTE 5 KOREA ENERGY
01정책백서목차(1~18)
발간사 2008년 2월, 발전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출범한 새 정부는 문화정책의 목표를 품격 있는 문화국가 로 설정하고, 그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권한과 책임의 원칙에 따라 지원되고, 효율의 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문화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란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緊 張 冷 戰 體 制 災 難 頻 發 包 括 安 保 復 舊 地 震 人 類 史 大 軍 雷 管 核 禁 忌 對 韓 公 約 ㆍ 大 登 壇 : : : 浮 上 動 因 大 選 前 者 : : : 軸 : : : 對 對 對 對 對 戰 戰 利 害 腹 案 恐 喝 前 述 長 波 大 産 苦 逆 說 利 害 大 選 大 戰 略 豫 斷 後 者 惡 不 在 : : 對 : 軟 崩 壞
학부모신문203호@@
02 05 06 08 11 12 2 203 2008.07.05 2008.07.05 203 3 4 203 2008.07.05 2008.07.05 203 5 6 203 2008.07.05 2008.07.05 203 7 8 지부 지회 이렇게 했어요 203호 2008.07.05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근 2달여를 촛불 들고 거리로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2009. 2. 6. 법률 제944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도시정비법 이라 한다) 제4조 제1항, 제3항은 시 도지사 또는 대도시의 시장이 정비구 역을 지정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제외한
대 법 원 제 1 부 판 결 사 건 2012두6605 사업시행계획무효확인등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1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이인재 외 2인 피고, 피상고인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장 외 1인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외 3인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12. 2. 2. 선고 2011누16133 판결 판 결 선 고 201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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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1 2 3 4 5 6 경제적 요구 생산성 경쟁력 고객만족 수익성제고 경제성장 고용증대 외부여건의 변화: 범지구적 환경문제의 심화 국내외 환경규제의 강화 소비자의 의식 변화 환경비용의 증대 환경단체의 압력 환경이미지의 중요성 증대 환경적 요구 자원절약 오염예방 폐기물저감 환경복구 삶의 질 향상 생태계 보전 전통적 경영 경제성과
성인지통계
2015 광주 성인지 통계 브리프 - 안전 및 환경 Safety and Environment - 광주여성 사회안전에 대한 불안감 2012년 46.8% 2014년 59.1% 전반적 사회안전도 는 여성과 남성 모두 전국 최하위 사회안전에 대한 인식 - 2014년 광주여성의 사회안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범죄위험 으로부터 불안하 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76.2%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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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작물실용화사업단 인식조사 및 실용화 방향 설정 GM작물 인식조사 및 실용화 방향 설정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김욱 박사 1. 조사목적 GM 작물 관련 인식조사는 사회과학자들을 바탕으로 하여 국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GM 작물 관련 인식 추이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탐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2. 조사설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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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3 장애인영역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1 202 _ 평택복지재단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2 3 2 3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3 204 _ 평택복지재단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2 3 4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5 2 3 4 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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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JEONNAM DRAGONS FOOTBALL CLUB MATCH MAGAZINE VOL.136 / 2014.10.16 Preview Review News Poster PREVIEW K LEAGUE CLASSIC 32R JEONNAM VS SEOUL / 14.10.18 / 14:00 / 광양축구전용구장 서울과 뜨거운 한판 승부! 전남드래곤즈가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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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회지 2004;25:721-739 비만은 심혈관 질환, 고혈압 및 당뇨병에 각각 위험요인이고 다양한 내과적, 심리적 장애와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체중감소는 비만한 사람들에 있어 이런 위험을 감소시키고 이들 병발 질환을 호전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호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지지하는 연구들은
경영학회 내지 최종
2014 08. 18-08. 20 2 02 03 04 05 05 05 06 07 08 08 08 09 10 11 12 13 16 17 19 22 23 23 23 24 24 25 25 27 28 29 30 30 32 33 34 34 35 35 35 37 37 38 39 39 40 42 43 44 44 44 46 47 49 50 51 3 4 5 6 7 8 9 10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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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2013 국토조사연감 075 전국 대기오염도(SO2) 0.020 0.018 1995년 대기오염도(SO2) (ppm) 0.018 0.016 0.014 0.012 0.010 0.008 0.007 0.006 0.006 2010년 2012년 0.004 0.002 0.000 1
제1장 국토조사 개요 제2장 주요 국토지표 제3장 주요 통계자료 요약 제4장 부록 074 SECTION 6. 환경과 방재 대기오염도(SO2, 아황산가스) 제 2장 주요 국토지표 지표명 대기오염도(SO2) 개념(산정식) 단 위 대기 중 이산화황의 농도 ppm 제공연도 1990~2012 공간단위 시도, 시군구 자료출처 환경부 대기오염도현황 대기오염물질 중 아황산가스의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전문용어의국어화 강현화 1. 들어가기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 사용의 전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전문 용어의 사용자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포 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출발점을 시작으로 과연 전문 함 용어의 국어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전문 용어 연구의 쟁점 2.1. 전문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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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 20081210 자문회의자료집.hwp
회의자료 慶 州 四 天 王 寺 址 發 掘 調 査 (3 次 ) 2008. 12. 10.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慶 州 四 天 王 寺 址 發 掘 調 査 (3 次 ) Ⅰ. 조사개요 1. 유 적 명 : 경주 사천왕사지(사적 제8호) 2. 소 재 지 : 경주시 배반동 935-2번지 일대 3. 조 사 목 적 : 사천왕사의 가람구조와 범위 확인 4. 조 사 기 간 : 2008년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24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 등을 수행하여 인니전력 이다. 공사(PLN)를 비롯한 인니
지도학발달06-7/8/9장
3 1 7 17 95101G 421d 221 2 3 4 1971 34 12 1804 1866 1972 31866 4 1 5 33 1866 3 6 31866 3 1803 1877 1804 1866 2 02333 318 4 51 633 3 6 2022 222 31866 1955 1931 3 916 7 1925 1925 10 9 1862 65 8 7 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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