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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송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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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 인 로 커 dedicated to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and you 7 時 10 分 :: HASHE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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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ntents 1. 결벽과 굴절 main story 센도 + 사쿠라기 6 큐브 CUBE 25 수혈 38 재생을 꿈꾸다 52 포옹 66 side story 내일 81 이전 93 모호한 경계선 As Time Goes By Akira Sendoh 126 Hanamichi Sakuragi 코인로커 Coin Locker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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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벽과 굴절 main story 센도 + 사쿠라기 큐브 CUBE 수혈 재생을 꿈꾸다 포옹 side story 내일 이전 以 前 모호한 경계선
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나의 세상에는 빛도 소리도 없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온통 안개가 드리워진 듯 자욱하게 흐려져 있다. 그 부연 세상 속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전부터 익숙해져 있는 손끝에 닿아오는 농구공의 감촉이 유일하며,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그 공 을 허공에 떠 있는 림 속에 거칠게 꽂아 넣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 뿐이다. 코트 위에서 달리고 있을 때만이 나의 몸은 격렬하게 율 동 했고, 정해진 40분의 시간 속에서만 마치 그림자 같았던 나의 존재가 실체를 얻는 것 같았다. 주위의 사람들은 목 잘린 시체 마냥 분별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물체에 불과했고 내게는 존재를 인식하는 힘이 결여되 어 있었다. 그 순간. 선명한 핏빛의 머리가 내 시야를 가득 채우던 그 순간까지는. 센도, 너는 내가 쓰러뜨린다! 삽시간에 시야가 확 트이고 뚜렷한 붉은 색을 중심으로 회색빛 의 내 세상에 색( 色 )이 번져나간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안개의 벽이 일순간에 부수어지는 듯 했다. 적막이 생명력 가득 찬 함성으로 바뀌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직접 닿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얼굴에 배어버린 가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에게 말
7 7 했다. 잘 부탁한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대면서, 센도는 벌써 몇 시간째 쇼호쿠의 교문 앞에 기대어 서 있었다. 사실 학교가 파하려면 꽤나 먼 이 시 간에 자신의 수업까지 모른 척 해 가며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온 것 은 확실히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을 무작정 세어가며 가슴 졸이고 있기에 손바닥에 남겨진 감촉은 너무 나 뜨거웠다. 눈언저리가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눈매의, 활화산처럼 뜨겁고 야생동물처럼 유연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껏 튀 어 올라 진정되지 않는 심장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반해버린 것은 자신인 것이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간 적은 없어도, 일단 이렇게 된 이상 주저 없이 손을 내뻗을 각오가 센도에겐 되어 있었다. 꼭 쥐고 있던 손을 펴고 흥건히 흐른 땀을 바지 깃에 무심히 문 질러 닦는다. 그를 만난 이후로 며칠 간 머리를 싸매 가며 준비해 온 자신의 이야기에, 그는 화를 낼지도 모르고 어쩌면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 른다. 아니면 아예 정신병자 취급을 당해 진심마저 전해지지 않을 우려도 있다. 그러니 손바닥에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해도 창피한 일은 아니라며 마음을 달랜다. 하늘에 긴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쳐다보다, 어 깨를 한 번 털고 손등까지 덮인 교복 자락을 걷고 시계를 바라보았 다.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고 해는 높게 솟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이제 슬슬 수업이 끝날 시간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쇼호쿠도 부 활은 없을 것이다. 센도는 담벼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쭉 펴고, 손으로 흐트러진 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자신이 지금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프러포즈 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성별의 남자 에게. 갑자기 시간이 더욱 길게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좋아해. 사귀자. 네가 필요해. 반했어. 내 것이 되어줘. 입 속으로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을 여러 단어들을 중얼거려 본 다. 어쩌면 너무 직접적인 고백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원래 이런 저런 세간의 일반적 통념이라는 것에 그리 비중을 두고 살아오지 않은 센도에게 있어서는 동성에게 반했다는 것 정도 그다지 장애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혈기왕성한 열혈소년 사쿠라기에 이르면 자신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남자에게서의 애정고백이라는 것
9 9 은 그야말로 청천날벼락 크로커다일 던디가 홀로 뉴욕 한 복판에 내던져진 듯한 문화적 충격일 수도 있는 것이다. 히코이치의 말에 따르면 사쿠라기의 고교 최대 소망은 자그마치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함께 하는 등교 라고 했다. 자신에게 흑 심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전해주며 마치 초등학생 아이 같다고 웃는 히코이치에게 동조할 수 없어 괜스레 짜증이 났었다. 거기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센도의 미간은 더욱 날이 선 각도를 그렸다. 팔짱을 끼고 심히 고민이 되는 태도로 처음부터 어떻게 말을 걸어 야 할지 걱정을 한다.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자신은 귀여운 여자아이와는 수성과 명왕성 의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때, 고뇌 덕에 더욱 찌푸려져 있던 뇌의 주름이 하나하 나 펴지고 심려 끝에 피어오르던 연기마저 사라질 정도로 시원스럽 고도 커다란 목소리가 귓가로 파도치듯 밀려 들어왔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센도는 그만 냉동실에 넣어 진 멸치처럼 몸이 굳었다. 여, 센도. 우리 쇼호쿠에는 웬일이냐! 뻣뻣하게 경직한 근육 아래서 유달리 팔딱거리며 존재를 주장하 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살그머니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고, 팔짱은 풀지 않은 채 스륵 뒤돌아선다. 바로 눈앞에, 며칠 간 그토록 선명하게 떠올라 사라지지 않던 사람의 실물이 있다. 여과 없이 시야에 가득 차 들어오는 태양보다 강렬한 빨간색에 눈 이 부시다. 강렬하면서도 깔끔한 선을 그리고 있는 짙은 눈썹과 맑은 눈동자를 담아내고 있는 날카로운 눈매, 시원스런 콧날과 의 외로 새치름한 색의 뚜렷한 선을 가진 입술. 시선이 여전히 무
1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어라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는 통에 살짝 벌려져 혀끝이 내보이는 입술에까지 닿자 센도는 그만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상상이 아닌, 실재하고 살아 움직이는 사쿠라기의 생생함에 당 황했음을 감추기 위해 여유를 가장한 느릿한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 았다. 사쿠라기는 일명 사쿠라기 군단 이라 불리는 자신의 중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다소 흐트러진 차림새로 교문 앞에 서 있는 중 이었다. 센도는 고개를 잠깐 갸웃해 보이고, 손가락으로 사쿠라기 옆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똑바로 짚어가며 이름을 불렀다. 아, 그러니까 미토 군, 다카미야 군, 오오쿠스 군, 노마 군. 맞지? 예상치 못한 호명에 오늘은 무슨 사건일까 기대하며 헤실헤실 웃고 있던 그들의 표정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 뚜렷한 놀라움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센도는 최대한 호의적인 웃음을 띄워가며 그들의 손을 끌어당겨 억지로 악수를 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요전의 연습시합 때 보았겠지만 나는 료난 의 센도 아키라야. 그린 듯한 센도의 미소에 공기는 더욱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원 래부터 아무리 웃어보아도 주위로부터 속을 알 수 없다. 는 말만 진득하게 들어온 센도였으니 이 정도의 반응은 오히려 가벼운 편인 지도 몰랐다. 실은 장수를 쏘려면 먼저 말을 쏘라했듯이, 직접 공략이 힘 들면 주위부터 노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 히코이치에게 사쿠라 기의 주변에 대한 정보를 간절하게 부탁한 센도였다. 척 보아도 사쿠라기는 의리가 있을 법한 타입이니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 면 틀림없이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11 11 있었다. 그러나 명백히 주위를 채우고 있는 무거운 적막에 히코이 치가 애써 알아다 준 정보도 소용이 없는 건가 싶어 센도는 절망했 다. 사실, 주변에서부터의 접근이라 생각해 사쿠라기에게의 인사 마저 잊고 막상 본인을 앞에 둔 채 느닷없이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 버린 것도 꽤나 맹한 짓이었지만, 그것을 자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지금의 센도에게는 없었다. 센도가 가타부타 반응이 없는 그들을 눈앞에 두고 이젠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사쿠라기의 얼굴이 가까워져 온다 싶은 순간 멱살이 쥐어졌다. 너, 이 자식! 앞 으 로 잘 부탁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더구 나 네가 어떻게 내 친구 녀석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거지? 솔직 히 고백해!! 너 료난의 스파이지!!! 이마에 핏대가 세워진 채로 격분하고 있는 사쿠라기를 보고 있 자니 그 지나친 충격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상기된 사쿠라기의 얼굴이 잔뜩 확대되어 눈앞에서 아른거리자 갑자기 그대로 끌어안 아 키스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불끈 솟아올라왔지만, 여기서 그 마음을 결의에 옮겼다가는 자신은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는지도 몰 랐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돌아가는 사쿠라기의 사고 회로를 귀엽다고 생각하며, 센도는 트레이드마크인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참으로 불운하게도, 그것이 아마도 사쿠라기 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 한 듯 목을 틀어쥐고 있는 손아귀 힘은 더 욱더 강력해졌다. 너, 웃어?! 금세라도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절체절명의 때, 센도는 극적인 타이밍을 노려 그 무엇보다도 사쿠라기를 자극할 수 있는 질문을
1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풀쑥 던졌다. 연습은, 죽도록 하고 있어? 순간 사쿠라기의 얼굴이 멍해지더니, 쳇 하는 표정으로 센도의 옷깃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 섰다. 멀어지는 온기가 어쩐지 서운하다. 다음엔 안 져! 한 마디지만 온 몸으로 분함의 오라를 강력발산하고 있는 뒷모 습을 바라보며, 센도는 또 다시 웃었다. 그리고 벼르고 별러왔던 대시를 했다. 농구하러 가지 않을래? 젠장! 사쿠라기는 또 다시 퉁, 하고 보기 좋게 튕겨 나간 볼을 잡으 려 허리를 숙이며 오늘따라 몇 번째일지 모를 불만 섞인 투덜거림 을 내뱉었다. 애초에 요헤이들과 함께 놀러나 가면 좋았을 것을, 센도의 농구하자는 말 한 마디에 이런 외각의 공원까지 끌려나와 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이 조금은 바보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리 생각할 거라면 처음부터 거절했으면 되었을 텐데, 얄 미울 정도로 여유 있어 보이는 센도의 표정 뒤에서 무언가 절박하 게 흔들리고 있는 감정의 파장을 읽어낸 것이 실수였다. 자신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울림에는 약했다. 심장을 자극해 오는 미 묘한 마음의 흔들림. 몸을 일으키고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티셔츠를 끌어올려 이마를 훔치며, 사쿠라기는 다시 기세 좋게 소리쳤다. 아직 멀었다, 센도!
13 13 공을 그에게 건네주고 골대 밑으로 다가가 섰다. 시합 때도 여 실히 느꼈던 거지만, 센도의 농구실력이라는 것은 결코 그의 언동 처럼 흔들흔들 대충대충 호락호락 넘어갈 듯한 것은 아니었다. 느 긋해 보이는 것은 성격일지도 모르나, 그의 코트 위에서의 위압감 과 박력이라는 것은 농구를 시작한 지 한 달 남짓한 사쿠라기가 보 기에도 피나는 노력과 꾸준한 반복연습에 의해 쌓여져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쿠라기는 솟구쳐 올라오는 억울함에 입술을 꽉 깨 물었다. 루카와를 볼 때마다 치밀어 오르곤 하는 조금 더 빨리 시 작했더라면 하는 욕심은, 이상하게도 센도를 마주 대할 때면 극에 달했다. 잘난 척하며 나서 쓰러뜨리겠다. 라고 말한 후에, 오히려 꺾이 어 버렸다. 사쿠라기에게 있어 그 이상의 수모는 없었다. 분하고 또 분한 마음에 악수하려 내민 그의 손을 지나칠 정도로 힘껏 잡아 주고 돌아섰지만, 사실 그것은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 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내내, 자신을 코트로 불러내던 센 도의 여유 만만한 웃음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패배란 것은 참으로 그 독소가 짙은 것이었다. 그럼, 가볼까. 센도가 몇 번 공을 퉁기더니, 맹렬하게 드리블해 들어왔다. 온 몸을 탄력 있게 긴장시킨 후, 모든 정신을 센도에게 집중한다. 그 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센도의 눈길이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 하자, 몸 속 저 끝에서부터 강렬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시간 따위가 무슨 문제란 말이야! 소리를 한 번 지르고, 그를 막아섰다. 전해져 오는 열기가 너무 나 뜨거웠다.
1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후. 한계까지 긴장되었다 이완된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쿠라기는 그만 파란 하늘을 얼굴 위로 지고 코트 위에 대자로 누 워버렸다. 강렬하게 쏟아져 내리던 빛들이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 의 색을 머금고 온화한 노을빛으로 주위를 물들이고 있었다. 눈을 감자, 갑자기 시원한 감촉이 코끝에 닿아왔다. 마셔. 사쿠라기는 몸을 일으켜 주저 없이 센도에게서 내밀어진 음료수 캔을 받아들었다. 많은 땀을 흘린 탓에 안 그래도 목이 칼칼한 참 이었다. 갑자기 깊어지는 갈증을 느끼며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있 는 알루미늄의 풀 탭을 젖히는 순간, 쏴아. 하고 청량한 소리와 함께 탄산음료의 기포가 한껏 터져 나왔다. 음료수를 마시려다 오 히려 뒤집어 쓴 사쿠라기의 모습을 보며 센도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훗. 하하하하하하! 사쿠라기가 센도를 노려보며 눈을 깜박인다. 속눈썹이 물에 젖어 색이 더욱 짙어졌다. 붉은 머리칼 끝으로 뚝뚝 물방울이 듣는다. 멀리서 잊고 있던 매미소리가 시끄러울 정 도로 크게 들렸다. 센도가 똑바로 사쿠라기의 눈을 응시하자 혼 곤한 열기가 주위를 감싼다. 센도의 시선이 시간마저 붙잡고 둘이 서 있는 공간을 세상에서 유리시킨 듯했다. 움직임이 점 점 느려지다 마침내 정지했다 싶은 순간, 센도가 고백했다. 좋아해.. 센도의 손가락이 젖어서 흐트러진 사쿠라기의 머리칼을 쓸어 올
15 15 렸다. 센도의 손짓에는 주저함이 조금 남아있었으나, 사쿠라기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이 없다. 예상했던 욕설도 정신병자 취 급도 날아오는 주먹도 없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흐 른 뒤 사쿠라기는 센도의 손길을 가만히 내버려 둔 채로 미동도 않고 대답이 아닌 질문을 되돌렸다. 왜? 예기치 않았던 물음에, 센도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 실 뚜렷하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까닭이랄 것도 없었다. 너는 내 인생 유일한 색( 色 )이었다고. 네 강렬한 생기가 죽어있던 내 심장 을 다시 두드리며 일깨워와 내 심장은 이제 너를 향해서만 박동하 고 있다고. 이야기하자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명확하게 그래서 야. 라고 이 넘칠 것 같은 감정을 표현하기에 센도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단어들은 너무나 미진하고 또 미약했다. 그래서 그 냥, 다시 한 번 말했다. 좋아해. 그러면 안 돼? 시선을 피하지 않고 투명하게 젖어있는 사쿠라기의 눈을 응시하 며 조용히 거리를 좁히고 입술을 겹쳤다.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혀로 살짝 입가를 쓸고, 노곤한 열기와 점점 빨라지는 고동소리로 그에게 부딪혀갔다. 센도도 사쿠라기도 눈을 감지 않았다. 몇 분 인지 모를, 현실과 분리된 몽환의 시간이 흐르고 사쿠라기가 먼저 몸을 비켜내었다. 센도를 남겨두고 일어선 그의 뒷모습은 단호했다. 달갑지 않아. 해가 지고 있었다.
1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오늘따라 멀었다. 사쿠라기는 몇 번이고 소맷자락으로 입술을 훔쳐내며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시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센도는 너무 진지했다. 그 녀석, 언제나 웃고 있지만 코트에서 자신과 마주 섰을 때 지었던 웃음만 은 무언가 틀리지 않나 생각했던 것이 옳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신 후, 사쿠라기의 세상을 바 라보는 눈은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만 세 상을 보던 시야에 한 겹 얇은 막이 덧씌워진 듯 했다. 아무리 자책 해보아도 아버지는 다시 살아올 수 없었고, 아무리 사랑한다고 매 달렸어도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나가버렸다. 과거에서부터 되풀 이되는 사랑을 잃은 혹은 버려진 트라우마가, 상처받는 것에 남달 리 예민한 성격을 만들어버렸다.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지만 누 구에게도 깊게 다가서는 것은 힘들었었다. 자신도 모르게 언제나 자신의 영역 이라는 것을 설정해 놓고 있었고, 그 안으로 받아들 인 사람들은 중학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모두 나누어왔던 사쿠라기 군단이 유일했다. 그 녀석들은 언제나 뜨거웠기에 냉담히 식어있 는 자신의 영혼에 늘 온기를 전해주었다.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열 ( 熱 ), 그것이 바로 친구라는 이름의 그들이었다. 요헤이는 가 끔 너무 가시를 세우다보면 포옹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돼. 라고 사쿠라기에게 충고했었지만, 달리 누군가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를 못 느꼈기에, 아직은 우정으로 후끈 달아오르는 심장만으로 충분했기에, 사쿠라기는 그럭저럭 호쾌한 다혈질의 꽤 나 불량스런 이미지로 이런저런 가벼운 친교관계를 유지한 채 별 부족함을 못 느끼며 살아왔던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들에게 숱하게 고백도 하고, 하루코 같은
17 17 귀여운 아이에게 반해도 보고. 바닥으로 깊게 잠겨있는 내면과는 달리 무척이나 거칠어 보이는 외견과 무성한 소문 덕에 성공해 본 적은 그다지 없지만 그래도 꽤 나 오래 사귄 연상의 애인이란 것도 있었다. 귀엽네. 하며 프러 포즈해 주었던 그녀도 결국은 차가워. 라며 떠나가 버렸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걸음이 느려졌다. 터벅 터벅 발소리를 내며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던 사쿠라기는 지친 표 정으로 길게 늘어진 담벼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그토록 직접적으로 부딪혀오는 좋아해 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 은 없다. 닿아오는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뜨거웠다. 센도 아키라. 이름을 한 번 부르고, 사쿠라기는 또 한 번 입술을 훔쳤다. 그 래도 온기는 가시지 않았다. 일요일, 그만 늦잠을 자 버렸다. 사쿠라기가 잠에서 깬 것은, 요란스레 들려오는 현관문을 두드 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비척거리는 몸짓으로 일어나서 머리칼을 손으로 스윽 털어 내며 현관으로 향했다. 힐끔 시계를 보니 어느 새 11시가 넘어서고 있다. 밖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 는 것은 틀림없이 요헤이일 것이다. 왜 안 들어오고 저렇게 옆집 에 민폐를 끼쳐가며 쾅쾅거리고 있는 것인지. 열쇠 있잖아! 투덜거리며 문을 열자, 전혀 의외의 인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일에 눈만을 깜박이는 것도 잠시, 열쇠로 문을 열기가 좀 뭣한 상황이어서.
1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요헤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센도의 뒤에서 그가 고개를 내밀었 다. 안 그래도 잠에서 갓 깨어 멍한 사쿠라기의 얼굴은, 이미 센 도의 얼굴을 시야에 담은 후부터 그야말로 입이 헤 벌어진 채로 가 관이다. 요헤이가 혀를 쯧쯧 차며 사쿠라기의 가슴 언저리를 팡팡 두드렸다. 올라오는데, 계단에 앉아있더라고. 너 만나러 온 거냐고 물었 더니 그렇다고 해서. 그 그래? 얼떨결에 요헤이에게 대답을 하고,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뒤 센도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어떻게 된 신경인지 표정 에 변화도 없다. 사쿠라기가 추궁하는 듯한 얼굴로 계속 쳐다보자 니, 센도가 변명 같지도 않은 대답을 흘려보냈다. 너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같이 가자기에. 후. 쳇바퀴를 타는 것 같은 요헤이와 센도의 대답에 사쿠라기는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몸을 비켜섰다. 센도 가 먼저 발을 디디고 요헤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자 그는 발 을 멈춘 채 손에 들었던 편의점 봉투만을 사쿠라기의 손에 건네어 준다. 원래 이것만 전해주고 가려고 했어. 좀 일찍 일찍 일어나서 끼 니 좀 챙겨먹으라고.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네 유모 소리를 들어 야 하냐! 사쿠라기가 머쓱한 표정으로 서 있자, 미토는 바닷바람처럼 시 원스러워 보이는 웃음을 짓더니 인사치레 마냥 센도의 몸을 툭 치 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센도가 문을 닫고 신을 벗은 후
19 19 방 안으로 들어서 사쿠라기를 말끄러미 쳐다본다. 그 시선이 묘하 게 신경이 쓰인다. 안 그래도 어젯밤 내내 센도의 고백이 마음에 걸려 뒤척이다 새벽에야 간신히 잠든 사쿠라기였다. 그러니, 말도 곱게 나갈 리가 없다. 뭐야! 쏘아붙이자 센도는 밉살스럽게도 초연한 표정으로 사쿠라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대답을 돌렸다. 그냥, 옷 좀 입었으면 해서. 센도의 말에, 그제야 사쿠라기는 자신이 박스팬티 하나만을 걸 쳐 입은,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차림 그대로라는 사실을 깨달았 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화가 난 동작으로 거칠게 벽 쪽에 붙어있는 장으로 다가서더니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꺼내어 쿵 쾅거리며 욕실로 사라졌다. 센도는 그러한 사쿠라기의 동작을 내 내 지켜보다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욕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천천히 바닥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나 좁은, 가구랄 것도 변변히 없는 참으로 간소한 방이다. 그 러나 의외로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는 탓에 비루하다는 느낌은 조 금도 들지 않았다. 사쿠라기가 샤워를 하는지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에 섞여서 달갑지 않아. 라고 단호히 자신의 감정을 잘 라버리던 사쿠라기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무작정 찾아오긴 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 다. 그저 얼굴만이라도 볼까 했는데 다행히 미토를 만나 얼결에 방안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일단은 쫓겨나지는 않았으니 비록 그것이 함께 있던 미토의 덕분이라 해도 어쨌든 오늘 하루는 이 방 안에서 미적거려 볼 심
2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산이다. 넘어야 할 산이 멀고도 높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은 무엇보다 느긋함과 끈질김이다. 센도는 아예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다다미 위로 드러누워 버렸다. 자러왔냐! 일어나. 툭툭 내질러지는 발차기에 눈을 떴다. 아마도 깜박 잠들었던 모 양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자 사쿠라기 가 뚱한 표정을 하고 몸을 약간 기울인 채 서 있다. 밥 먹어라. 간단한 말만 던져놓고, 사쿠라기는 작은 상 하나를 밀어놓더니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센도가 비비적거리며 일어나 상 위를 보 자 갓 지은 듯한 쌀밥이 흰 접시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고, 아마도 아까 미토가 전해주었지 싶은 레토르트 카레는 봉지 째 끓는 물 가 득한 냄비 속에 잠수해있다. 어쩐지, 무언가 부족한 듯하면서도 어색한 이 상황이 묘하게 마음에 들어, 센도는 살짝 웃었다. 그러 자 센도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던 사쿠라기가 휙 시선을 돌린다. 왜 저렇게 웃는 거야, 저 녀석. 코트에서 마주 섰을 때 보여주던 여유 만만한 웃음과도, 맹렬히 공을 튀기며 돌진해 들어갈 때 보여주던 즐거운 웃음과도, 어쩌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친근감 있게 처진 눈매를 가늘게 접으며 보여 주던 난해한 웃음과도, 지금의 웃음은 질이 달랐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물에 비친 달이 동심원을 그리며 잔잔히 퍼지는 듯한 조 용한 웃음, 갓 부풀기 시작하는 초승달을 닮았다. 그 웃음에, 조금씩 체온이 올라가는 것 같다. 어쩐지 머쓱해진 사쿠라기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냄비에서 카레가 담긴 팩을 꺼내
21 21 어 가위로 성의 없이 잘랐다. 그리고 꽤나 그럴듯한 향이 풍겨 나 오는 카레를 주르륵 센도의 그릇에 쏟아 붓는다. 소복이 담겨있는 밥 위로 카레가 얹히는가 싶더니, 이내 접시 밖으로 뚝뚝 흘러내 렸다. 그러나 미끄러지듯 흘러 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카레에 센도도 사쿠라기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먹어. 무뚝뚝한 사쿠라기의 목소리에, 센도가 아이처럼 응 하고 대답 하고는 수저를 들어 쓰윽 쓰윽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카레보다 맛있다고 생각하며, 센도는 입 안 가득 밥알을 물고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어쩌면 지금 이대로도 좋을 지 모른다. 사쿠라기는 어제처럼 모질게 자신을 밀어내지 않으니,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삼아 찬찬히 사쿠라기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이다. 혹시나 앞으로도 이리 소소한 상차림으로 또 마주앉 아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센도의 웃음은 이제 아주 함박웃음이 되어 버렸다. 바보처럼 계속 웃어가며 쉬지 않고 수저질을 하는 센도를, 사쿠 라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쿠라기의 얼굴은 여전히 붉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어디서 앞치마까지 찾아내어 두르고, 센도는 양손에 고무장갑을 낀 채 사쿠라기를 밀어내었다. 몇 번 말리려 하다가 사쿠라기는 이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센도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바닥 에 주저앉았다. 생활감 없어 보이는 단정한 외모에 비해 의외로 가사 일에 익숙한 듯, 그릇을 슥슥 닦아내고 헹구어 가지런히 정
2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리하는 손놀림이 꽤나 재다. 미간을 모으고, 팔짱을 낀 자세로 앉 아 센도의 하는 양을 죽 지켜본다. 어째서일까. 자신에게 있어서도 센도는 첫 만남부터 꽤나 뜨거운 스파크를 전해주었던 인물이었다. 천재 라고 그를 스스럼없이 칭하던 히코 이치의 말에 얼굴을 보기 전부터 혼자만의 라이벌의식에 불타올랐 고, 막상 얼굴을 본 순간에는 그 유들유들한 웃음에 발끈했으며, 코트 위에서는 도무지 꺾을 수 없음에 또 속이 상했다. 그러나 센 도가 자신에게 좋아해 라는 말을 들려주었을 때는. 뜨거웠다. 키스할래? 뜬금없이 물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로 싱크대 주변에 튄 물 기까지 꼼꼼히 닦아내고 있던 센도가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사쿠라 기를 돌아보았다. 키스해 보자고. 말을 건네는 사쿠라기의 가라앉은 눈동자에서는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센도는 가만히 사쿠라기를 바라보다, 장갑을 벗고 손을 쓱 쓱 앞치마에 문지른 후 다가와 한 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앉았다. 왜 키스하고 싶은데?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묻는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무엇을? 열( 熱 )을. 키스하면 알 것 같아? 글쎄.
23 23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함께 입술이 겹쳐졌다. 사쿠라기의 몸을 살짝 밀어 쓰러뜨리면서, 센도는 각도를 달리해 다시 한 번 입술 을 겹쳤다. 애태우는 연인에게 다가가는 듯한 열정이 아니라 신에 게 맹세하는 듯한 경건함으로 부드러운 피부에 입을 맞춘다. 살며 시 입가를 핥자 사쿠라기의 입술이 벌어졌다. 사이로 말캉한 살을 밀어 넣으며, 손가락으로는 만지면 데일 듯 불타는 빨간 머리칼을 애무한다. 유일한 색. 유일한 목소리. 너밖에 안 보여, 난.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밖에 볼 수 없어 인지도 모른다. 사쿠라기는 또렷하게 빛나고 있는 깊은 우물처럼 흔들림 없는 센도의 진중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센도는 진심이다. 자신도 싫은 것은 아니 다. 조금 더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잃을 수도 있음에 지레 겁먹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연인 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영역 안으로 초대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센도의 마음과 몸은 뜨겁다. 그의 온기를 전해 받으면, 자신도 따스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굳기 시작한 심장을 다시 풀어내어 또 한 번 누군가에게 좋아해 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용서를 빌 대상은 센도가 아 니나, 용서받고 싶은 대상은 자신의 마음을 두드려준 그라는 생각 이 갑자기 들었다. 사쿠라기는 눈을 감고, 센도의 어깨에 팔을 감아 그를 더 가까 이 끌어들였다.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좀 잘 해 봐. 열이, 다가온다.
2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볼에 스쳐오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25 25 차르륵 차르륵 찰칵찰칵. 어린 시절 무척이나 좋아하던 장난감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육면체가 모여 더욱 커다란 육면체를 이루고, 윤이 나는 플라스틱 위로는 짙은 글씨로 숫자들이 뚜렷하게 쓰여 있었 다. 모든 숫자들을 색을 맞추어 차례대로 정렬하면 놀이가 끝이 나는 그 장난감을, 나는 아쉽게도 단 한 번도 완벽하게 맞추어 본 적이 없다. 내 손안에 쥐어진 그 장난감은 늘 어딘가 색 혹은 숫자 가 어긋나 있었고 이내 아무리 애써도 손쉽게 놀이를 끝낼 수 없음 에 실망했던 나는 미련 없이 그 장난감을 어딘가에 던져두었다. 아마도 아직도 그 장난감은, 무언가 하나가 어긋난 채로 집 안 의 구석 어디에선가 먼지에 쌓인 채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CUBE 어, 이런 곳에 이게 있었네. 사쿠라기는 정리하고 있던 서랍의 한 구석에서, 마치 자신은 처 음부터 그 곳에 자리했었다는 듯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쿡 처박혀 있던 큐브 퍼즐을 찾아내었다. 언제 그 곳에 그런 것을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두 손으로 잡기도 버거웠던 그 퍼즐은 이제는 사쿠라기의 한 손바닥 위에 무리 없이 얹힌 채 틈 사이사이로 먼지를 뒤집어 쓴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그리 오래되지
2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않았던 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던지듯 건네주었던 바로 그 장난 감. 너는 풀 수 있겠니? 그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었다. 얽히고설킨 듯 무척이나 복잡 해 보여도 사실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는 퍼즐. 그리고 일그러져 있던 세상. 사쿠라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찌 보면 울음처럼도 보이는 애 매한 웃음을 지었다. 후 하고 불어 소복하게 물체의 위에 쌓여있 는 먼지를 털어 내고 그것을 조심스레 가방 안의 트레이닝 복 틈으 로 감싸 넣는다. 원체 서랍 정리란 것도 집에 와서 머무는 날이 점 점 많아지는 센도의 옷가지라도 보관해줄까 해 시작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한 자락을 잡고 있는 장난감. 까맣게 잊고 있던 그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센도 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연에 의해 찾아진 것이 제법 신기했다. 센도에게 보여줄까.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가방을 두른 채 사쿠라기는 집을 나섰다. 땀이 가득 밴 공기지만, 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청량하다. 지역예선이 가까워져 오고 있기 때문인지, 늘 활기찬 사쿠라기 뿐 아니라 모든 부원들의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코트의 위가 사쿠라기는 견딜 수 없이 좋았 다. 신경을 베일 듯 날카롭게 긴장시키고, 한 순간도 상대를 놓치 지 않으려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면 마주서 있는 상대의 숨소리까지 도 전해져온다. 일정한 박자로 품어져 나오는 거친 호흡, 투지와 패기로 가득
27 27 차 있는 장중한 울림. 한 번도 무언가에 이렇게 몰두해 본 적이 없었다. 몰두할 수 있 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소모품처럼 무 심히 즐기며 흘려보내고 있었고, 또 그런 자기 자신의 모습에 나 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숫자 하나가 어긋난 큐브처럼 자신은 어딘가 부족한 존 재였다는 것을, 그를 만나고 알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닿아왔던 누구보다도 뜨겁고 누구보다도 진지하며 누 구보다도 깊은 공명을 전해주는. 센도를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루카와가 바람을 일으키며 바로 옆으로 빠져나갔다. 호쾌하게 림 에 농구공을 꽂아 넣고서, 루카와는 기분 나쁜 듯 사쿠라기를 한 번 째려보더니 차갑게 내뱉었다. 멍청이, 한 눈 팔지 마. 사쿠라기의 눈썹이 치켜져 올라가고 대뜸 치고 들어오는 비난에 발끈할 틈도 없이 루카와는 잽싸게 라커룸 안으로 사라져버린다. 사쿠라기가 아무리 천재임을 스스로 외쳐댄다고 해도, 사실 루카 와나 센도와의 갭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속도로 자신이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따라잡고 싶은 상대를 따라잡고 있지 못 함에 늘 분해하고 있는 사쿠라기에게 있어 가끔씩 툭툭 던져지는 루카와의 날카로운 일갈이라는 것은 꽤나 견디어내기 힘든 고통이 었다. 흥, 두고 봐라. 언젠가 내가 꼭 쓰러뜨려 줄 테니까. 지금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온 다짐을 또 한 번 가슴에 새기
2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고, 사쿠라기는 공을 튕기며 림을 향해 돌진해갔다.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 힘껏 점프한다. 공기를 가를 듯이 뛰어오를 때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 한 해방감이 몸을 감싼다. 눈앞에 목표가 보이는 순간이라면 그 어떤 것도 잊을 수 있다. 버림받았다는 것도, 잃었다는 것도. 푸욱 젖어버린 유니폼을 벗고, 갈아입을 새 티셔츠를 꺼내기 위 해 라커를 열어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수건이니 대체로 펴 보지 도 않는 교과서니 이런저런 잡동사니 틈에 파묻혀 버린 것인지, 좀처럼 찾고자 하는 티셔츠가 손가락 끝에 걸려주질 않았다. 그러 자 사쿠라기는 아예 가방 속의 물건들을 라커룸의 바닥에 엎어 버 렸다. 손으로 이 곳 저 곳을 헤쳐 가며 옷을 찾는 도중에 아침에 넣어두었던 큐브 퍼즐이 툭 하고 굴러 나왔다. 멈칫했던 것도 잠 시, 이내 무심한 태도로 퍼즐을 집어 다시 가방 속에 밀어 넣는 사 쿠라기의 손길에, 소리도 없이 옆에서 교복의 단추를 채우고 있던 루카와의 시선이 다가와 멎었다. 뭐야, 그거.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이 드문 루카와의 목소리에 사쿠 라기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루카와의 눈길을 좇아 그의 시 선이 머무는 것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퍼즐이라는 것을 알아채 자, 사쿠라기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대답을 했다. 큐브 퍼즐. 센도에게 보여주려고. 왜? 그 녀석, 이런 것 잘 할 것 같은 이미지잖아.
29 29 그게 아니고. 오늘따라 말이 꽤 많은 루카와라고 생각하며, 사쿠라기는 바닥 에 주저앉은 채 루카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투명 하게 얼어붙어 있는 루카와의 눈에서는 온기가 읽히지 않는다. 어째서 센도냐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사쿠라기의 시선을 받아내고만 있던 루카 와가, 마침내 말을 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말인데, 이상하게도 차가운 김 서린 긴장이 주변에 팽배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 이 흘렀을까, 잔뜩 당겨져 있던 실을 먼저 이완시킨 것은 사쿠라 기였다. 태연한 척 하며 뒤적거리고 있던 소지품들 사이에서 원하 던 티셔츠를 찾아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부터 하얀 면 티 를 뒤집어쓰며 어눌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너도 퍼즐 잘 하냐? 멍청이, 모른 척 하지 마. 여우 따위에게 멍청이라 들을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어. 뒤돌아서 짐을 챙기는 사쿠라기의 어깨가 싸늘하다. 루카와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쿠라기에게는 보이지 않았 다. 대답, 하고 가. 끈질긴 루카와의 말에, 사쿠라기가 마침내 뒤돌아섰다. 어느 정 도의 거리를 두고 선 사쿠라기는, 한동안을 아무 말 없이 루카와 를 그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대 답을 했다.
3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센도는, 요헤이를 미워하지 않아. 루카와의 표정이 부수어졌다. 몰랐던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자신의 시선이 루카와에게 따라 붙는 만큼 루카와의 시선도 언제나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단 지 사쿠라기는 루카와를 향한 자신의 시선이 일종의 동경과 부러움 그리고 따라잡고 싶다는 욕망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 지하고 있는데 비해, 루카와의 자신을 향한 시선이 전해주는 감정 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을 바라보는 센도의 눈길을 이해한 순간 자 연스레 루카와의 시선의 뜻도 사쿠라기는 깨달았던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잠겨 있는 입 대신에 더욱 묵직한 감정의 무게를 실어 끝없이 다가오는 검은 눈동자. 차라리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 다. 조금씩 센도에게 젖어가고 있는 지금, 루카와의 시선은 틀림 없이 설렘이라기보다는 부담이었다. 그는 사쿠라기가 따라잡고 싶 은 상대이자 라이벌이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걷고 싶은 상대는 결 코 아니었다. 틀림없이, 앞으로 이대로 농구를 계속해도 저만큼 자신에게 승 부욕을 불러일으키는 상대를 만나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 음에는 하루코 덕택에 시작된 경쟁심이었지만, 농구에 진지해지고 시합에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진 지금은 눈앞에서 질투가 나기까지 하는 플레이로 늘 사쿠라기를 몰아붙이는 루카와의 존재 가 내심 고맙기까지 했다. 저 사람이 자신의 곁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한, 사쿠라기는 제자리에 멈추어 서 있을 수가 없다. 언제나
31 31 다그쳐지고 채근 당해서 앞을 향해 달려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무엇보다도, 직선적인 사로잡는 듯한 격한 눈길에만은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다. 센도는, 흔히 이야기하는 교제 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너무나 자연스레 사쿠라기의 일상 속으로 배어 들어왔었다. 굳이 사쿠라기를 바꾸려 시도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는 어느새 사쿠라기의 하루 속에 진득하게 묻어있었 다. 미토와도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듯 가끔 필연적으로 얼굴 을 마주치게 될 때마다 서로를 툭툭 치며 다정스레 인사를 나누었 고, 다카미야, 오오쿠스, 츄우 등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마치 항 상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만 같은 익숙함까지 전해주고 있었다. 일일이 서로 맞추어가려 의견을 조율하지 않아도, 특별히 애쓰 며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센도와 함께 있을 수 있다 는 사실이 사쿠라기에게는 무척이나 편안하고 또 감사한 것이었 다. 센도에게는, 어쩐지 너무나 급작스럽게 내달려 가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자신의 불안함마저도 고요히 가라앉힐 듯한 나른함이 있 었다. 그에 비해 루카와의 시선은, 뚫어져라 자신만을 응시하고 혹여 요헤이와 어깨라도 두를라치면 불쾌한 기분을 가득 싫어 아플 정도 로 깊숙하게 박혀오는 그 시선만은,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흘러 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처럼 굴곡 없이 사쿠 라기 안으로 침윤해 들어오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격정적인 불안 함보다는 늘 안심할 수 있는 안온함이 좋았다. 센도는 루카와처럼 사쿠라기의 무언가를 부수고 자극하며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
3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라, 미처 자각할 틈도 없는 사이에 사쿠라기의 삶 속으로 젖듯이 스며 들어왔다. 그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나 지 않고 섞이는 법을 센도는 알고 있는 듯 했다. 사쿠라기는 느릿한 걸음걸이에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가방의 끈 을 다시 들추어 매었다. 이제 몇 분만 더 걸으면 센도를 만날 수 있다. 아까부터 말이 없네? 간단하게 끼니라도 때울까 해 들어온 라면집에서, 사쿠라기는 쉬지 않고 젓가락질만을 했을 뿐 나란히 앉은 센도의 얼굴을 제대 로 쳐다보려고도 않고 있었다. 센도는 라면 몇 가닥을 입에 문 채 후루룩거리며 별 다른 긴장감이 없는 태도로 사쿠라기에게 물었 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어? 사쿠라기의 몸짓이 잠시 정지한다. 사쿠라기는 고개를 여전히 파묻은 채 센도에게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찡그렸다. 어쩐지, 루 카와의 그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평상시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하지만 지독하게도 메말라 보였던 그 순간 의 그 표정. 그냥, 루카와가 말을 채 다 이을 수가 없었다. 마치 분필가루를 삼키기라도 한 듯 목이 까끌거렸다. 갈라져 나오는 사쿠라기의 목소리에, 센도가 웃으며 사쿠라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래. 알았어.
33 33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 되물을 수가 없다. 자신의 등을 살짝 쓰다듬고, 짧게 정리되어 목 언저리에서 부드럽게 물결치고 있는 머리칼을 감아오는 센도의 손가락을 느낀다. 그 은밀한 간지러움 이 좋아 고양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몸을 기울여 센도에게 기대었 다. 그래, 괜찮다니까. 다시 한 번 송진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감싼다. 그만 일어나자. 나 오늘 재워 줘. 루카와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센도는 그가 자신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었다. 화려한 플레이나 시선을 끄는 외모, 출중한 능력 같은 것이 아 니라 더욱 근원적인 부분에서, 센도는 자신과 같은 그림자를 보았 다. 코트에서는 그토록 강렬히 실체임을 뽐내지만, 일상으로 돌아 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일은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버린다. 틀림 없이 그도 농구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특별히 여기는 일 없이 십 수 년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쿠라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사쿠라기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센도는 설핏 웃음을 흘리고 있었 다. 사쿠라기가 미처 끝내지 못했던 말을 어쩐지 듣지 않아도 모 두 알 수만 있을 것 같았다. 루카와가 사쿠라기를 만나고 겪었을 그 복잡하고도 끊임없는 감 정의 분수가 마치 자신의 것처럼 선선하게 잡혔다. 가장 깊은 곳 에서 둘은 같은 어둠을 뒤집어쓰고 있다. 단지 센도 자신은 무심 함을 가장하기 위해 스스로 외향의 포장을 두른 것뿐이었고 루카와
3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는 그러지 않았다는, 어떻게 보면 그저 선택의 차이일 뿐인 것이 다. 드러나는 표면이 다를 뿐 그 속에 감추어진 세상에 대한 밋밋 한 감정만은 한가지였다. 그러니 적요하기 짝이 없었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별 다를 바 없었던, 마치 녹아버린 시계처럼 늘어 져 있는 나날들 속에서 루카와에게 있어서의 사쿠라기란 그 얼마나 심장을 뒤흔들어대는 열렬함의 폭풍 같았을는지. 자신도 여전히 맨 처음 시야에 뛰어 들어왔던 생생한 붉은 머리 의 충격과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대었던 목소리의 파고를 기억하고 있다. 그 색과 소리는 자신의 세상을 부수고 생경한 감각의 세계 를 열어 줄 정도로 강렬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쿠라기의 그 활달함과 생명력이라는 것은,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는 상처 입은 내면을 담보로 이루어진 것이다. 허물어진 적이 없는 것도 아닌 심장을 가지고 그래도 솔직한 시선으로 세상 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쿠라기의 성격은 알면 알게 될수록 더욱 센도를 잡아끌었다. 쉽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밀어 내지도 않는다. 아픔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아픔에게까지 민감하다. 사쿠라기는, 본질적으로 상처를 이해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 다. 그렇기에 수없이 무너져가고 또 무수한 아픔을 마음에 새겨가 면서도 기울어진 세상에 똑바로 발을 디디고 살아올 수 있었을 터 였다. 조금은 어두워도, 아직은 굴절되지 않은 맑은 시선. 바라보고 있고 닿아있노라면 센도 자신까지도 정화되는 것만 같 았다. 어떻게 해서든 아직은 굳게 닫혀있는 사쿠라기의 마음속까 지 파고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된다. 이미 자신은 문을
35 35 두드렸고, 조금씩 그 문이 자신을 향해 열리고 있다는 자신감이 센도에게는 있었다. 생각하느라 느려진 발걸음 탓에 벌써 저만치 앞서 있는 사쿠라 기를 달려가 잡았다. 무작정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잡아당긴다. 왜 그래! 화는 내지만, 사쿠라기의 얼굴은 붉어져 있다. 그는 일찍이 자 신에게 말했던 것이다. 너의 열( 熱 )이 좋아 라고. 나, 지금도 뜨겁지? 귓가에 훅 숨을 불어넣으며 물었다. 앗, 하는 사이에 주먹이 날아온다. 살짝 고개를 비켜 사쿠라기의 공격을 피하면서, 센도는 이번에는 정말로 크게 웃었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색이 조금씩 어둠위로 번져가고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아침의 빛에 눈을 뜬 센도는, 곁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소중한 사람의, 명주실처럼 가느다랗 고 붉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손가락 틈으로 그 가는 실이 파 고 들어올 정도로 돌돌 감아 본다. 상처랄 수도 있는 자욱이 손가 락에 새겨졌다. 피부가 약간 따끔하지만 지금의 이 감촉을 언제까 지나 잊고 싶지 않다. 자신의 몸에 흔적을 새긴다면, 센도는 사쿠 라기를 새기고 싶었다. 자신의 영혼에 자국을 남긴다면, 센도는 사쿠라기를 사랑하는 마음의 자국만을 남기고 싶었다. 뒤척거리며 잠을 잔 탓에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는 사쿠라기의 앞 머리칼을 살짝 쓸어 올리며, 드러나는 단정한 이마에 입을 맞 추었다. 다시 한 번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흘러 내려가 있는 이 불을 정리해 목까지 끌어 덮어 주었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3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정리하고 사쿠라기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후우 기지개를 켰다. 팔을 위로 죽 뻗어 올리자, 무언가가 둔탁한 감 촉으로 손끝에 부딪혀 온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몸을 틀자, 어제 센도에게 보여준다며 가방 속에 넣어놓았던 큐브 퍼즐이 어느 틈에 굴러 나온 것인지 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그에게 건네어주고 맞추어 보라고 할 심산이 었는데, 루카와 덕에 마음이 심란해 큐브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 었다. 어쩐지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맞추어 본 적이 없는 퍼즐, 누군가가 맞추어 준다면 어쩐지 구원받은 듯한 느낌마저 들것도 같았었다. 사리에 맞지 않 는 자신의 생각에 사쿠라기는 한 번 쓴웃음을 짓고 퍼즐을 집어 들 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서랍 어딘가에 넣어두기 위해 시선을 비껴내던 순간, 퍼즐이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다시 화들짝 돌리고 뚫어져라 손위에 쥐어져 있는 퍼즐을 바라다본다. 어제만 해도 틀림없이 어긋나 있었던 퍼즐이, 어느새 색을 맞추 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 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옷가지들이 정돈되어 있고 어제 매고 다녀왔던 가방도 안이 깨끗하게 정리 된 채 얌전히 개켜져 있다.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한 사쿠라기는 저도 모르게 하하하 웃어 버렸다. 퍼즐은, 제 주인을 찾았던 것이다. 아마도 센도는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새벽빛을 받으며, 잠 속을 헤매고 있던 자신의 옆에서 이 퍼즐을 맞추고 있었을 것이다. 지
37 37 금 그가 곁에 없기 때문인지 마치 어린 시절부터 계속 비틀어져 있 던 퍼즐이 스르륵 스스로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 다. 너는 풀 수 있겠니? 아버지의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손에 퍼즐을 쥐어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두 볼이 축축해져 온 다. 어긋나 있던 자신의 한 부분이, 센도에 의해 풀려진 듯한 불가 사의한 기분. 사쿠라기는 타고 흐르는 눈물을 굳이 닦으려 하지 않았다.
3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나는 시인( 詩 人 )의 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란 우울 속에서 헤엄치는 존재들이고, 나는 근본적으로 심장이 창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輸 血 센도는 최근, 하얗게 핏기를 잃고 메말라 있던 자신의 심장에 붉은 피의 윤기를 더해주는 존재를 만났다. 너의 열( 熱 )이 좋아. 라면서 다가온, 오히려 자신이 태양의 뜨거운 온기를 가지고 있는 그는 어느덧 센도의 심장 가장 뒤편에 문신처럼 새겨져 두근두근 그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 고 그 남자 때문에 센도는 요즘 참으로 열여섯 청춘다운 고민을 한 다. 열( 熱 )이라면, 내게는 더 뜨거운 부분도 있는데. 센도는 성( 性 )적인 면에서 어떤가하면, 결벽증인 타입이었다. 체질적으로 타인의 체온이 닿아오는 것을 싫어했고 혀가 섞이는 축 축한 느낌도 좋아하지 않았다. 만지는 것도 만져지는 것도 귀찮아 서 섹스에도 담백한 편이었고 마음이 닿지 않은 상대와의 스킨십에 는 본질적으로 신경질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도는 최근 사쿠라기에게 닿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교제하기 시작하고부터 거의 하루도 거른 적이 없는 농구연습에서조차, 어쩔 수 없이 피부가 스치고
39 39 손가락이 닿는 것만으로도 두근 하고 느껴버린다. 마주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할 때에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사쿠라 기의 목울대나 살며시 벌어지는 입가 사이로 보이는 혀끝에 민망할 정도로 얼굴이 붉어져 참을 수 없다. 수도 없이 주고받은 키스에 도 사쿠라기의 혀만은 달고 또 달아 서로 엉킬 때마다 그만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소원해 버린다. 이대로 간다면 나는 욕구불만으로 죽어버릴지도 몰라. 센도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색이 입혀진다고 생각했었다. 드디어 마음을 바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고,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사쿠라기를 처음 보았던 순간 그렇게 생각했었다. 무엇 을 하든 진심보다는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좋았다. 그런 자신을 일러 주변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거나 속을 알 수 없다거나 하는 말로 묘사했지만, 사실 센도에겐 삶에 대한 여유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고 자신의 속을 알 수 없는 것은 스스로 도 마찬가지였다. 무얼 원하는 걸까.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왜 숨 쉬고 있을 까. 그렇게 고민해보면 사실 살아가야 할 까닭이라는 것조차 없었지 만, 그렇다 해서 굳이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 신은 마치 머리는 구름에 처박은 채 허공에 발을 대롱거리며 붕 떠 있는 듯 했고, 스스로의 삶조차도 똑바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 러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이토록 절절히 깨달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을, 그와 손을 마주잡고 처음 알았던 것이다. 사쿠라기와 마주 선
4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순간부터, 잊고 있었던 심장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쿵쾅거리며 애 타게 주장하고 있다. 후. 한숨이 흩어진다. 그러나 달아오른 마음은 흩어 지지 않는다. 센도는 셔츠 자락을 입가까지 최대한 끌어올리고, 자신을 감추 기 위해 애썼다. 이런 순간은, 사쿠라기와 몸을 마주 안고 그를 끝까지 자신 속으로 흡수해 버리고 싶은 이런 순간은, 자신을 세 상으로부터 온통 가릴 수 있는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 겠다. 혹에라도 이런 마음 들켜 처음으로 잡고 싶다고 생각한 상 대에게서 떨쳐지는 일이 없도록. 드디어 살아갈 수 있겠노라고 생 각한 세계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또 한 번 마음을 잃은 채로 부유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그래도, 시선 안에 가득 찬 사쿠라기 의 선연한 얼굴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센도! 아득하다고 생각했다. 센도!!! 보다 강해진 목소리에 눈을 떴다. 조금씩 눈가에 초여름의 파란 하늘이, 신록으로 물들어 있는 나뭇가지가,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눈부신 붉은 색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 사쿠라기. 웃으면서 저도 모르게 팔을 벌렸다. 그러나 굳게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사쿠라기는 좀처럼 내민 팔을 잡아주지 않는
41 41 다. 너 이런데서 잘도 자는구나. 응? 사쿠라기의 곤란한 듯한 조금은 화가 난 듯도 한 말에 주위를 둘 러보았다. 센도가 등을 기대고 잠들어 있던 것은 쇼호쿠의 교문이 었고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잠들었던 탓에 얼굴은 화끈 거릴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미안. 도대체 너란 녀석은!!! 센도의 대중없는 사과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를 말하려던 사쿠라기는, 말을 잇기를 체념해 버린 듯 센도에게서 등을 돌렸 다. 그리고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 나간다. 사쿠라기. 작은 목소리였지만, 사쿠라기는 금세 고개를 돌려 뒤돌아봐 주 었다. 사쿠라기! 벌떡 일어나 달려가 사쿠라기의 팔을 잡는다. 성가신 듯 훠이훠 이 휘둘러지는 손을 꽉 움켜잡고 놓지 않는다. 손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쿠라기가 좋아서, 팔을 크게 돌릴 때마다 함께 흔들리는 붉은 머리칼도 너무 아름다워서, 센도는 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었 다. 아직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곁에 있다.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 더 깊은 곳까지 닿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은 자신만의 것일 뿐, 사쿠라기는 여전히 찬란하고 센도는 아직 달아 있었다. 그리 고 중요한 것은 찬란한 사쿠라기보다도, 여전히 뜨거운 자신이었
4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다. 그 까닭은 아마도 사쿠라기를 볼 때마다 심장에 새로운 피가 흐르기 때문일 거라며, 센도는 더욱 사쿠라기에게 달라붙었다. 언 제 사쿠라기를 향한 자신의 열이 식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단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우일 뿐일 테다. 어째서 나는 사 쿠라기가 될 수 없을까 하는 고민도 그저 하염없이 사쿠라기에게 닿아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의 파편일 뿐이다. 그리 쉽게 잃을 리 가 없다, 생애 단 한 번, 최초로 얻은 이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 을. 날씨가 너무 더워 공원에서의 농구 연습은 생략하고 사쿠라기의 집으로 파고들었다. 사쿠라기는 센도가 이렇게 떼를 쓰듯 달라붙 을 때면 늘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별 말없이 받아들여준다. 그 결과로, 지금은 샤워 후 나란히 다다미 위로 발을 뻗고 앉아 진 지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센도가 발을 움치럭 대는 통에 양말을 신지 않은 맨 발이 서로 마주 닿는다. 약간 서늘한 자 신의 발에 비해 조금은 따뜻한 사쿠라기의 발, 센도는 그 온기가 좋아 계속 발을 비벼대었다. 그러자 사쿠라기의 어깨가 흠칫 떨리 고, 사쿠라기는 이내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를 더 사납게 치켜 올린 채 센도를 쏘아본다. 하지만, 닿아 있는 게 좋은걸. 어리광도 이런 어리광이 없다. 센도는 움츠러뜨린다고 작아질 리도 없는 어깨를 가능한 한 움츠리고 작게 가르랑거리듯 속삭였 다. 그러자 사쿠라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다리를 움직여 센 도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닿는 게 좋으면 네 발끼리 비벼대란 말이야! 도대체가
43 43 길거리에서 잠이나 자고! 아아, 또 잔소리의 시작이다. 센도는 사쿠라기에게는 들키지 않 을 정도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얼른 키스를 했다. 하나! 하나미치! 이건 미토의 목소리다. 여전히 킥킥대며 사쿠라기와 장난을 치 고 있던 센도는 문 밖에서 들려오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 사쿠라기의 이야기로는 미토는 이 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사쿠라기가 안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문을 벌컥벌컥 열고 잘도 들어왔던 듯한데, 센도와 사쿠라기가 이른바 연인 사이가 되고 나서는 미토는 늘 문 밖에 서서 사쿠라기의 이 름을 부르게 되었다. 그 마음이 묘하게 이해가 될 것도 같고 이해 할 수 없는 것도 같 아 센도는 작게 웃었다. 아마도 저런 점들이 자신이 사쿠라기의 일상에 파고들면서 생긴 소소한 변화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둘씩 늘어난 벽에 붙이는 옷걸이라든가, 가지런히 맞추어져 TV 위에 올려져 있는 큐브퍼즐이라든가, 서랍 속에 나란히 개켜져 있는 자신의 운동복이라든가. 갑자기 가슴 가득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센도가 헤실 거리며 웃 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미토가 들어섰다. 사쿠라기는 어느새 일 어나서 미토가 들고 온 이런저런 먹을거리들을 받아들고 있다. 덥지? 앉아있어. 사쿠라기는 미토에게 앉을 것을 권한 후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원체 좁은 방이라서 부엌이랄 것도 없지만, 일단 싱크대와 작은 냉장고가 놓여 있는 쪽은 부엌이고 도대체 치워지는 날이 없는 듯
4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늘 요가 깔려있는 창가 쪽은 침실인 거라고 사쿠라기는 농담처럼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오늘도 배달? 센도는 웃으며 미토에게 물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 를 하고 있는 미토는 종종 끝날 시간에 들러 남은 음식들을 혼자 사는 사쿠라기에게 전해주고는 했다. 한껏 당겨진 활시위 마냥 팽 팽하고 꽤나 날카로운 이미지라서 섬세한 면은 없지 않을까 했는 데, 미토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쿠라기에게 다정하고 무른 구석 이 있었다. 하긴 센도가 보기에 사쿠라기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사쿠라기에게 물렀다. 그런 거죠, 뭐. 저 녀석 정크 푸드 꽤나 좋아하거든요. 사실 사쿠라기는 정크 푸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혼자 사는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안 되고, 몇 번 먹어본 사쿠라기의 음식 솜씨는 겉치레로 라도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미각의 만족을 위해 서라기보다는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글자 그대로 식사 라는 느낌. 아무튼 그런 까닭에 미토의 아르바이트 처가 바뀔 때마다 사쿠라기의 주식도 바뀌어 갔다. 지난 번 미토 가 케이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는, 단 음식을 상당히 좋아 하는 사쿠라기조차 정말 케이크는 이제 질렸다며 인상을 찌푸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기. 네? 그 때의 사쿠라기 얼굴을 떠올리며 웃고 있던 센도는, 전부터 미토에게 궁금해 하고 있던 것을 오늘 하나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45 45 사쿠라기의 삶에 발을 딛고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미토와 사쿠라기 사이의 강한 결속감, 센도는 그것이 때로 부럽기도 하고 때로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늘 사쿠라기에게 있어 미토란 존재는 다 행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쿠라기가 평탄하게 살아온 것만 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짐작하게 되면서, 항상 곁에서 지지해 줄 수 있는 친구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인 것 이다. 그리고 그리 생각하는 만큼, 역으로 미토는 자신과 사쿠라 기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미토 군은 사쿠라기와 나 이렇게 된 거, 불편하지 않아? 미토는 센도의 질문을 듣더니 한 번 고개를 돌려, 등을 보인 채 무언가 열심히 담아내고 있는 사쿠라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센도를 찬찬히 마주보았다. 센도 상, 하나미치는 메마른 것에 비해서는 너른 심장을 가지 고 있는 아이예요. 센도 상의 위치가 하나미치 안에서 아무리 높 아져가도, 그 아이 안에 있는 제 위치가 낮아질 일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 저를 향해 있는 마음을 떼어내어 당신에게 주는 것이 아 니라, 새로운 사랑을 키워내 당신에게 주는 거라고 믿고 있어요. 대답하는 미토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나 사쿠라기 군단 녀석들은 하나에게 있어서 돌아갈 곳 인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삶 자체에 지쳤을 때,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나 불현듯 불안 해질 때, 언제라도 그 자리에 존재해 안심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자라고 또 자라서 자신만의 생활 기반을 잡고 특정한 누 군가에게 마음을 주어도 우리 곁에서 저 아이가 멀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4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바로 그런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저는 친구라는 입장을 선택한 겁니다. 사랑 받는 건 센도 상일지 모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건, 저도 마찬가지지요. 대답을 하고, 미토는 웃음 지었다. 센도는 명치끝이 뻑뻑하게 저려오는 느낌이 들어 그저 미토를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센도 상, 우리 하나미치를 마음껏 사랑해주세요. 있 는 힘껏 그 아이를 잡아끌어 앞으로 달려가게 해 주세요. 설령 넘 어지더라도 그 애 뒤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미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 나, 간다. 어? 요헤이, 저녁 안 먹고 가? 부산하게 무언가를 준비하던 사쿠라기가 달려 나와 미토의 어깨 를 붙들었다. 오늘은 일찍 갈게. 미토는 사쿠라기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고 문 밖으로 걸어 나 갔다. 바래다주려는지 사쿠라기가 나가는 모습과 함께 문이 닫히 는 소리를 들으며 센도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쿠라기에게 있어 미토가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사쿠라기에게 있어 자신은 어떤 존재인 걸까. 또, 자신에게 있어 사쿠라기는 어떤 존재인 걸까. 바라보는 첫 순간에 마음을 빼앗겨 지금 이 순간까지 달려왔지 만, 앞으로 자신은 그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 것일까. 언제까 지나 지금처럼 함께 농구하고 천진하게 웃으며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소년은 언젠가 청년이 된다. 철없 고 고집스러웠던 아이는 세상에 적응해 가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47 47 그 사실을 센도는 알고 있고 아마 사쿠라기도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침내 센도는 요 며칠 간 자신을 사로 잡고 있던 그 욕망의 정체를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역시 불안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시간과 함께 변할지도 모르는 것이, 지금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쿠라기가 영원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힘껏 끌어안고, 그의 안으로 파고 들어가 사쿠라기 안에 자신을 새기고, 마침내는 자신의 영혼에 사쿠라기를 절대 잊을 수 없게끔 깊게 각인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센도는 사쿠라기의 피를 갖고 싶었다. 두근 하고 심장이 박동 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타고 사쿠라기를 향한 마음이 흐르는 것처 럼, 사쿠라기의 피 속에도 자신이 흐르기를 바랐다. 사쿠라기의 피를 수혈 받아 자신의 창백한 심장이 붉게 물들어 깨어나기를 바 랐다. 사쿠라기를 만난 후로 자신의 심장에 조금씩 핏기가 돌고 있다는 믿음을 지키고 싶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은 지금 사쿠라기가 없으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쿠라기! 사쿠라기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달려가 붙잡았다. 스 스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 오르는 열정에 온 몸이 타들 어 가는 듯 했다. 목이 마르다. 뇌가 요동친다. 사쿠라기가 갖고 싶다. 사쿠라기!!!!
4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채 언어가 되어 품어져 나오지 못하는 말들이 그대로 열이 되어 온 몸 속을 뛰어 다닌다. 너를 좋아해. 너를 안고 싶어. 네가 필요해. 네 피를 나에게 줘. 사쿠라기. 끌어안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뜨거운 바깥공기가 묻어있는 사쿠 라기의 옷 속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무작정 얼굴에 입맞춤의 세례 를 퍼붓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거친 키스에 사쿠라기의 입 술이 조금 찢어졌다. 센도! 당황한 사쿠라기의 목소리가 들리고 얼굴에 통증이 느껴졌다. 키스하고, 사쿠라기에게 맞았다. 이상하다. 사쿠라기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 바보 센도.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안타까워하는 듯한 사쿠라기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고 사쿠라기 의 손가락이 다가와 센도의 얼굴을 쓸었다. 그 손가락에 축축한 물기가 묻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센도는 자신이 울고 있음을 알았 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 자신은 그저 사쿠라기가 좋다. 그런데 사쿠라기를 좋아하고 있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상처를 주게 될 지도 모르고 미움 받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그 저 간절하게 사쿠라기를 안고만 싶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격렬한 욕망이, 그렇게도 나쁜 것일 까. 자신이 조금이라도 색채가 있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사쿠 라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하나를 바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
49 49 마치 끈이 떨어진 꼭두각시처럼 정지한 센도를 바라보며 사쿠라 기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처음 다가올 때의 이 사람은, 초조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당하고 아름다 워 보였다. 그러나 그 만큼 어딘가 비어 보였다. 꼭 먼지가 자욱이 쌓인 오래 된 인형처럼 가라앉아, 내밀어오는 손을 자신이 잡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곰팡이가 슨 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센도는 무척이나 뜨거웠지만 그의 뜨거움을 접하면 접할수록 이전까지 얼어붙어 있던 그의 심장을 보게 되는 듯 해 가 슴이 아팠다. 그래서 끝내 그의 손을 밀쳐낼 수가 없었다. 아픔으 로 물들어 지독히 메말라 가는 괴로움을, 사쿠라기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온기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만큼, 스스로 불 태울 때 필요한 용기를 깨닫고 있다. 센도의 눈을 바라다본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진득하게 가라앉아 있는 짙은 색의 동공에 마음이 흔들린다. 어째서인지 사 쿠라기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말로 표현되지도 않은 자신을 향 한 센도의 감정이 이렇게 물결처럼 흔들리며 박혀들어 오는지, 이 토록 약하면서도 또 강한 존재를 자신이 붙들게 되었는지, 사쿠라 기는 진실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끌어안았다. 한 손에 채 안기지도 않는 커다란 남 자의 몸이 열을 가지고 다가온다. 팔이 교차되어 둘러지고 자신이 센도를 가둔 것인지 센도 안에 자신이 갇힌 것인지 그저 서로를 꽉 붙들고 있을 뿐이다. 사쿠라기는 혼자서 서 있기도 벅찼었다. 자신의 심리적 외상과 고독에 흠뻑 젖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마음을 열어줄 틈이 없었
5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다. 그런데 처음으로, 누군가와 자신의 상처를 나누며 함께 살아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상처마저 끌어안아 해소시켜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진심으로 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센도가 자 신의 어긋나있던 일부를 풀어준 것처럼, 자신이 이 사람의 온기를 지속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센도, 나는 너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 네가 좋아서, 나도 좋아졌어. 미끄러지듯 가늘게 떨리고 있는 눈꺼풀에 키스했다. 사쿠라기. 마주 불러오는 센도의 목소리는 쉬어 있다. 까칠하게 메말라 금 세라도 바스락거리며 부서져버릴 듯한 낙엽과 같다. 왜 몰랐을까. 이 사람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약하고 수줍은 심장을 가진 사람 이었다. 응. 자신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사쿠라기는 가슴 가득 센도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눈물이 겹쳐지는 지금에야말로, 비로소 센도 를 껴안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가 돼서 살자, 우리. 목덜미에 묻히는 센도의 입술이 뜨겁다. 자신의 옷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센도의 손을, 사쿠라기는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함께 사는 것이다, 앞으로 이 사람과. 습하고 심해어처럼 깊숙이 가라앉아 있으며 한없이 약한 이 사 람과.
51 51 이제부터 사쿠라기가 수혈해주지 않으면 아니 될 이 사람과. 센도에게서 전해 받은 열을, 이제 사쿠라기가 그에게 돌려준다. 몇 배나 뜨거운 심장을 담아, 그가 격렬히 자신에게 부딪혀오는 것만큼 자신도 절실하게 매달려가면서, 이제 앞으로는 서로의 피 를 나누며 걸어가는 것이다. 센도와 만날 수 있었던 건 기적이라고, 사쿠라기는 센도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받아들이며 생각했다. 앞날은 모른다. 바로 눈앞의 내일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과 센도가. 밀려들어오는 열을 느끼며, 사쿠라기는 눈을 감았다.
5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나는 죽기보다 소멸하기를 바랐다. 내세에 대한 희망도 윤회에 대한 기대도 없이,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그저 사라지고 싶었다. 마냥 행복하다고만 하는 천국도 싫었고 다시 태어나 살아야 한 다는 것도 진저리가 났다. 단지, 잊혀지고 싶었다. 그리고 잊고 싶었다. ( 再 生 ) 센도는 그늘 속에 숨어있었다. 숨어있다기보다 마침 멈추어 선 곳이 그늘이라는 편이 맞는 표 현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사쿠라기를 발견했음에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까닭은 사쿠라기가 자신으로서는 처음 보는 서릿발 같은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고, 아니면 사쿠라기의 앞에 서 있는 낯선 인영( 人 影 )때문인 지도 몰랐다. 센도에게는 등을 돌리고 있는 그 사람은 대기업의 샐러리맨 같은 풍모의, 하지만 자신을 가꾸는 데도 게으르지 않아 꽤나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세련된 남자였 고 사쿠라기는 미간을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그 남자의 앞에 굳은 듯 서 있었다. 계속 무언가 말을 건네는 남자에게도 사쿠라기는 묵묵부답이었고 마침내 그는 곱게 접힌 종이쪽지 하나를 사쿠라기 에게 건네 준 채 뒤를 돌아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돌아 선 그의 외모는 단정했지만 아무래도 순혈의 일본인 같지 않았으며 약간 흐트러져 내려온 머리칼에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
53 53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던 탓인지 그는 센도를 지나쳐가며 어깨를 부딪쳤고,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죄송합니다. 라고 나 직한 사과를 하고 멀어져갔다. 사쿠라기는 멀리서 손에 쥐어진 종 잇장을 펴보지도 않은 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아무래도 관계없다 는 태도로 주머니에 그것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 계단을 오르려 하는 순간, 센도는 그를 불렀다. 사쿠라기!. 조금의 간격을 두고 천천히 사쿠라기가 센도를 돌아본다. 시선 이 마주쳤는데도 사쿠라기의 미간의 주름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센도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 타닥타닥 뛰어가 사쿠라기와 마주섰다. 그리고 웃었다. 어차피 얼굴 표정만으로 짓는 웃음 따 위 익숙해져버린 지 오래다. 왜 그렇게 웃어? 익숙해져버린 지 오래인데, 사쿠라기는 센도의 웃음이 거짓이라 는 것처럼 늘 까닭을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센도의 가라앉은 가 슴은 조금씩 앙금이 피어오른다. 누구야? 대답대신 질문을 되돌렸다. 사쿠라기에게는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왜곡하지 않고 바로 맞받아 쳐 오는 올곧은 성격 때문에도 그렇고 진심을 품 은 채 떠보는 양 주변만을 뱅뱅 맴도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 에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만은 사쿠라기에게서 바로 대답이 돌아 오지 않는다. 센도는 발로 몇 번 지면을 툭툭 차 대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5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아까 그 남자, 직장인인 것 같던데 꽤나 한가하네. 고등학생 의 하교시간에 맞추어 집까지 찾아오고. 가족이 죽었으니까 휴가라도 얻었겠지.. 응? 센도의 한 박자 늦은 반응에도 사쿠라기는 별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미안. 모처럼 찾아와 줬는데 헛걸음했네., 에? 도대체 저 생면부지의 남자가 상( 喪 )을 당한 것과 센도의 발길 이 헛수고가 되는 것에는 무슨 개연성이 있는 걸까. 잘 가라. 연락할게. 센도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쿠라기는 계단을 올라 마치 거울 속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스윽 하고 문 속으로 사라졌 고, 철커덩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센도는 문이 닫히고도 한 동안을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사쿠라기는 문을 닫자마자 현관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꽉 움켜쥔다. 그러자 오른손 까지 함께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사쿠라기는 피식 웃음 지었 다. 잃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상처가 생겨날 때마다 해묵은 상처까지 기억을 헤치고 올라와 욱신거린다. 조금 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행 복해져 가고 있는 거라고 센도를 알게 된 후 그리 생각했는데, 결 국 시간으로도 치료될 수 없는 무언가는 있는 것이다. 언젠가 잘
55 55 라내었던 마음이 이제 와서 또 다시 피를 흘리며 통증을 호소해 온 다. 아프다고 소리를 친다. 이래서 사쿠라기는 싫은 것이다. 소중 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갖게 되는 것이. 다시 그 감 정의 치사량 안으로 발을 디디는 것이. 부스럭거리며 아까 토오루에게 건네어 받은 쪽지를 펼쳤다. 적 혀 있는 것은 병원의 영안실 호수와 토오루의 연락처다. 토오루는 에리의, 그러니까 사쿠라기가 가장 오래 사귀었던 여자의 동생이 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래서 잊고 있었던 그 가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때는 솔직히 놀랐었다. 그리고, 누나가 죽었어. 널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서 데 리러 왔다. 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온 몸의 신경기능이 정지 해 있었다. 아픈 걸까. 슬픈 걸까. 어머니가 집을 나갔을 때는 아팠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슬펐다. 그런데도 그 당시에는 사쿠라기는 자신이 아팠고 슬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월이 아주 오래 흐르고 스스럼없이 눈물을 보 일 수 있는 상대를 만나고서야 그 때 자신이 아팠고 또 슬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에리는, 온통 눈물 속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았던 그녀는, 죽기 전에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요헤이를 만나고, 농구를 하게 되고, 센도를 끌어안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녀도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을, 몰두할 무언가를,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누군가를 얻을 수 있었을 까.
5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같은 고통 속에서도 냉담하게 식어있던 자신과는 달리 에리는 뜨겁게 부풀어 있는 여자였다. 눈물을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 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화사하게 빛났다. 한참이나 연상이 었던 그녀에 비하면 아직 아이였던 사쿠라기를 귀엽다 며 품어 주 고, 마음을 나누어주고, 변하지 않는 사쿠라기에게 차가워 라며 인사하고 먼저 떠나갔다. 그 때의 사쿠라기는 그저 열( 熱 )을 갈구하고 있었을 뿐 다른 사 람에게 온기를 나누어 줄 줄 몰랐다. 아마도 이맘때쯤 에리를 만 났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세상에 없 다. 그리고 센도가 다가와 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아직까지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채 잔뜩 움츠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해답이 없는 후회다. 사쿠라기는 여전히 주저앉은 채 한참을 물끄러미 해가 지기 시 작하는 창의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에리는, 저무는 노을 같은 여자였다. 타오르지만, 쓸쓸하다. 첫 만남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시기는 중학1학년 무렵, 아버지도 아직 돌아가시기 전으로 사쿠 라기는 실컷 세상을 부수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아마도 어울 리던 폭주족 선배의 여자였는지 아니면 자주 가던 술집의 아가씨였 는지 지금에 와서는 오래된 필름처럼 흐릿하다. 아무튼 그녀와는 이 곳 저 곳에서 종종 부딪히곤 했는데, 혼혈인 탓인지 표범처럼 늘씬하고 유연한 체형과 시원스럽고 강단 있어 보이는 뚜렷한 이목 구비 때문에 그녀는 항상 눈에 띄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에 리는 늘 사쿠라기에게 윙크를 보내곤 했고 그럴 때마다 사쿠라기는
57 57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런 사쿠라기를 보며 에리는 언제나 크게 웃었고 어쩐지 저 웃 음이 가슴에 맺혀든다 싶을 무렵 그녀는 직접 말을 걸어왔다. 너, 언제나 버려진 맹수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니? 스스로 깨닫고 있지 못했던 부분인 만큼 당황했고, 그 당황스러 움은 분노로 표출되었다. 한껏 눈가에 힘을 담아 노려보는 사쿠라 기의 빨간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으며 그녀는 더욱 크게 웃었었다.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매가 아니라 버려진 맹수 같은 눈매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귀엽구나, 너. 너도 역시 결손가정의 아이 맞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중학1년이라 해도 엔간한 고등학생들보다 도 더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 자신을 아이취급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태연하게 상처를 건드려대는 점은 더욱 싫었다. 버 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늘 초연한 척 애를 써왔던 사쿠라기에게 있어 그녀의 말은 역린에 꽂힌 바늘이었다. 더 이상 떠들어대면 아무리 여자라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소 리를 질렀다. 시끄럿! 너 따위가 뭘 안다고 잘난 척이야!! 으르렁거리는 사쿠라기에게도 에리는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 려 사쿠라기의 얼굴을 더욱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그녀는 똑 똑히 말했었다. 알 수 있어. 나도 부모가 없으니까.! 너를 보면 십대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자꾸 건져내 주고 싶어 져. 사실상 너는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르는데도 자꾸
5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손을 잡고 끌어주고 싶어져. 너, 나하고 사귈래? 사쿠라기와 에리의 교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지나칠 정도로 동류였던 것이 문제일지도 몰랐다. 둘 다 버림받은 존재였고, 둘 다 열( 熱 )을 그리워하고 있었으 며, 둘 다 부수어진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에리는 자신의 거울 속 모습 같은 하나미치를 이끌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녀와 사쿠라기는 서로에게 있어 동지는 될 수 있어도 구원 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을 때는 분명히 상처를 받았었지 만, 실상 사쿠라기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뜨거운 그녀의 열정 은 포장일 뿐이었고 딱딱한 밀랍 속에서 사실은 그녀도 누군가가 자신의 두꺼운 벽을 녹여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에 리는 사쿠라기의 단단한 껍질을 벗겨냄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애초에 그녀에게도 사쿠라기에게 도 날개는 없었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더욱 상처가 되었고, 그녀 가 떠났을 때의 사쿠라기의 충격이란 비록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었 다 해도 그 여파가 굉장했다. 마주보고 선 듯 같은 감정의 선상 위 에서 걷고 있는 사람에게서마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면, 도 대체 자신은 어디에서 빛을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에게서 존 재의 의미를 얻고 부활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에리와 헤어진 이후로 사쿠라기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결박했다. 자신도 에리도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마녀의 커튼이 어둡게 드리워진 새카만 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쿠라기는 새벽(아키라)을 만났다.
59 59 톡. 어디선가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톡!! 소리가 좀 더 커졌다. 센도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 다. 사쿠라기의 집 앞에서 돌아오자마자 씻을 겨를도 없이 침대로 파고들었었다. 아직도 잘 가라 던 사쿠라기의 목소리가 쟁쟁 울 리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몸을 겹쳤다. 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다.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닿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뜨거운 사쿠라기의 몸을 부둥켜안던 그 순간 더 이상 내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영원을 믿을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한 영혼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사그라질지 모르지만 불타고 있는 한은 그 뜨거운 온도에 모든 걸 내맡기기로 하고 순수하게 사쿠라기에게 돌진해갔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은 사쿠라기가 아니다. 그의 모든 것을 모른 다. 사쿠라기 를 빼앗고 싶은데, 흡수하고 싶은데, 씹어서 소화 시키고 싶은데, 아직도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은 초조감이 온 몸을 감싼다. 사랑이란 원래 이런 것일까. 누군가에게 모든 것 을 드러내놓고 피가 흐르는 심장을 바친다는 건 이런 것일까. 어차피 사쿠라기에게 받은 피, 모조리 돌려주어도 관계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은 죽어버린다. 죽는 건 상관없지만 사쿠 라기를 향한 마음마저 사라져버린다. 쨍그랑!
6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상념에 빠져있을 무렵 파열음이 퍼졌다. 그제야 센도는 자신이 유리창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에 움직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 다. 창문은 이미 작게 균열이 가 바람이 새어들어 오고 있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사쿠라기가 조각나 보였다. 어째서인지 교복을 입고 있다. 사쿠라기!!! 저도 모르게 닫혀 있는 유리창으로 얼굴을 들이밀다 쿵! 하고 이마를 찧었다. 창의 금은 더욱 커졌다. 사쿠라기가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밤인데도 선명하게 시야에 잡혔다. 센도는 욱신거리는 이마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 갔다. 바보냐, 넌. 차가운 밤공기에 조금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사쿠라기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 나온 센도에게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응. 바보인가 봐.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사쿠라기도 왜 그렇게 웃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하늘로 돌리더니 마치 센도가 아닌 은색으로 그물 어가는 달에게 말을 걸 듯 이야기한다. 검은 옷 있으면 입고 나와라.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줄게. 응? 여자친구? 빨리! 영문을 모르는 센도는 엉겁결에 사쿠라기에게 등을 밀려 옷까지 갈아입고 다시 나오는 처지가 되었다. 센도가 머뭇거리며 앞에 서 자 사쿠라기는 셔츠의 깃을 똑바로 세워주고 잘못 잠긴 블레이저의
61 61 단추를 다시 채워주었다. 그리고 센도의 손을 잡은 채 적막에 휩 싸여있는 밤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기, 어디 가는 건지 물어봐도 돼?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이쯤 되면 아무리 센도라도 한 마디쯤 불평을 하고 싶어진다. 낮에는 한기가 도는 표정으로 모르는 남자 와 마주서 있었고 센도를 잔인하게 밀어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찾아와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상복처럼 새카만 옷으로 도배를 하게 한 채 무작정 어디론가 끌고 간다. 도대체 저 사람은 자신이 오후 내내 해야 했던 고민의 일부라도 이해하고 있을까. 점차 소리 지 르고 싶을 정도의 불만이 켜켜이 쌓일 무렵, 센도의 생각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멎었다. 상복 처럼 새카만. 틀림없이 낮의 그 남자, 가족이 죽었다고 말했었다. 역시 사쿠라기는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센도는 고민을 멈추고 잠자코 사쿠라기를 따라 걷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알아도 몰라도 달라질 일은 없다. 토오루. 참 쓸쓸한 곳이다. 흰 국화다발 속에서 한 여인이 미소 짓고 있었다. 사쿠라기는 한참 동안을 그 사진을 바라보더니, 에리, 사진이 실물보다 아니 구나. 손해네. 라며 웃었다. 웃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한참을 콜록 거렸다. 사쿠라기가 토오루라 부른 사람은 사쿠라기가 웃는 동안 에도 웃다 콜록거리는 동안에도 마침내 기침 탓인지 훌쩍거리는 동 안에도 말없이 계속 곁에 서 있었다.
6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와줘서 고마워. 그가 입을 연 것은 사쿠라기와 센도가 분향을 끝내고 복도 밖으 로 나왔을 때였다. 오고 싶었으니까. 사쿠라기는 토오루의 시선을 피한 채 대답했다. 낮의 데면데면 한 태도 때문에 토오루는 아마도 사쿠라기가 찾아와 주리라고는 생 각지도 못한 듯하지만, 사쿠라기로서도 에리의 가는 길은 지켜주 고 싶었다. 좋아한 사람이었고, 자신과 닮은 사람이 외롭게 떠난 다는 사실도 싫었다. 막상 토오루에게서 부고를 들었을 때는 충격 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되레 무덤덤해졌어도,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하염없이 에리가 생각이 났다. 토오루는 눈가가 이미 새빨개져 있는 사쿠라기와 조금 멍한 표 정으로 서 있는 센도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누나의 유언은 지켜진 것 같구나. 라고 다소 물기 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응? 되묻는 사쿠라기에게 토오루는 말없이 편지 한 장을 쥐어주었 다. 그리고 센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에 들렀다. 사쿠라기는 밤이슬에 젖어있는 모래 위에 주저앉아 토오루가 전 해준 편지를 뜯어 읽었다. 그리고 십 분이 넘는 시간을 넋을 놓고 앉아 있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사쿠라기의 웃음소리 에 하늘의 별이 흔들릴 지경이다. 사쿠라기? 어깨를 붙드는 센도에게 하나미치는 여전히 눈물이 쏟아질 정도
63 63 로 웃으며 들고 있던 편지를 내밀었다. 사쿠라기가 꼭 쥐고 있었 던 탓에 볼품없이 구겨진 편지에는 휘갈긴 듯한 글씨체로 단 한 줄 만이 적혀있었다. 사랑해라, 하나미치. 한 여자가 이전에 사쿠라기가 좋아했던 여자가 남긴 단 한 마 디의 말. 사랑해, 하나미치. 가 아닌 사랑해라, 하나미치. 담겨 있는 그녀의 마음이 모래 위에서 부수어지는 포말처럼 잘 게 잘게 가슴속으로 스미어든다. 내가 자기 이후로 50번이나 실연을 당했다는 걸 알면 에리 펄 펄 뛰겠지. 사쿠라기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울린 다. 그리고 마침내 밤을 지나 새벽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면 바보 처럼 기뻐하겠지.. 센도, 죽는다는 건 뭘까. 파도소리가 가까워졌다. 밤을 온통 뒤집어쓴 바다는 밀려왔다 다시 밀려간다. 너는 죽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있어? 사쿠라기의 말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사쿠라기의 질문에 센도는 한참을 망설였다. 죽고 싶었냐고 물어보아도, 자신은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드물었다. 삶 도 죽음도 아무래도 좋았고, 정해진 수명이라는 것이 두렵지 않았 다. 오히려 내일이란 이름으로 한없이 뻗어있는 것만 같은 시간 이, 귀찮았다.
6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나는, 죽기보다 소멸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무겁기만 했던 시간이, 사쿠라기를 만난 이후로는 갑 작스레 흐르기 시작해 어리둥절하다. 조금이라도 덜 사랑하게 될 까봐 안타깝고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고 싶어 애가 탄다. 이 마음 은, 사쿠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이 마음만은 어딘가에 남겨 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자신이 잊혀도 누군가가 사랑을 기 억할 수 있도록. 사쿠라기에 대한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런데 최근 재생을 꿈꾸고 있지. 센도는 일어나 옷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그리고 바닷가까지 다 가가 손을 담갔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어. 잊혀지고 싶었어. 그저 죽는 것이 아 니라 내 존재 자체를 지우고 부디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삶이길 바랐 어. 그런데 사쿠라기. 너를 좋아하게 되고 나는 재생하고 싶다는 소 망을 갖게 된 거야. 다시 태어나 너를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는 안 해. 하지만 말이야, 내 몸 한가득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새기 는 거야. 내 몸을 흐르고 있는 피에,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 는 체액에, 내 삶에 대한 기억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의지를,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잔뜩 새겨서 죽은 이후에는 다시 흙으로, 물로 돌아가 자연으로 발신되고 싶어. 널 좋아했던 기억 을 기록한 채 씨앗을 틔우고 물이 되어 순환해 재생하고 싶어. 내 존재는 소멸해도 널 향한 내 마음은 생명을 타고 흐를 수 있도록. 너 정말 바보구나. 하지만 사쿠라기의 말에 비난의 기색은 없다. 아마도 사쿠라기 에 의해 다시 뛰게 된 자신의 심장은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65 65 존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기쁘고 조금 더 행복한 마음으로 사쿠라기를 바라보아, 온통 사랑하는 마음 투 성이인 격렬하고도 애틋한 이 애정이 스스로가 사라져도 마음만은 남아, 돌고 또 돌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 덧없이 유한한 존재인 자신도, 영원을 그릴 수 있다. 손가락을 뻗어 머리칼을 매만져오는 센도의 손길을 느끼며, 사 쿠라기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사랑의 가장 큰 기적은, 아마도 타인의 존재를 긍정함으로써 자 신의 존재마저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에리와는 그렇 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그럴 가능성조차 바라 본 적이 없 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자신도 말할 수 있다. 센도를 만나고 처 음으로, 사쿠라기 역시 재생을 꿈꾸게 되었다고 똑같은 대답을 되 돌려 줄 수 있다. 사랑해라, 하나미치. 사랑해, 센도.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6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그 붉은 빛이 눈앞에서 흔들리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이 없었다. 달리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게 될 것이라고는 상 상해 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붉은 빛은 스러져갔고, 이제 그의 달리는 모습을 떠 올리며 울고 있다. 抱 擁 쇼호쿠가 제왕 산노오를 쓰러뜨렸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과 함 께 들려온, 쇼호쿠의 승리보다도 더 거짓말 같았던 그 이야기는 사쿠라기가 산노오 전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시합 중 도에 등을 다쳤으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를 했다고 전해 들었을 때는 사쿠라기답다 며 웃을 여유가 있었으나, 시합 후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몸이 둥실 허공으로 부유하고 발밑이 무한정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탈색되었다. 사쿠라기를 만나고 얻은 색( 色 )은 그가 쓰러지자마자 썰물처럼 센도의 세상에서 밀려나갔다. 센도 상? 센도 상!! 몇 번이고 이름을 불러오는 히코이치를 뒤로하고, 센도는 비틀 거리며 부활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귀가했다. 아무도 센도를 붙잡지 않았다. 어딜 보는 거야.
67 67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사쿠라기는 창가로 향했던 얼굴을 다 시 돌렸다. 침대 곁의 간이 의자에는 조금 부루퉁한 얼굴로 루카 와가 앉아 있었다. 산노오 전에서 입었던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 되고 드디어 재활훈련이 시작되었을 무렵 주니어 대표 팀 훈련에서 복귀해 일부러 그 유니폼을 입고 찾아왔던 저 성격 나쁜 녀석은, 어느새 매일같이 이 재활원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방학이라 하나 부활 후의 오후에, 카나가와 외각에 있는 이 재활원까지 왕복하는 일은 그리 간단할 리가 없다. 도대체 무 엇 때문에 이 귀찮은 일을 반복하는 거냐며 사쿠라기는 불쑥불쑥 루카와에게 묻고 싶어질 때가 있었지만, 돌아올 대답이 두려워 차 마 그리하지도 못했다. 언젠가 보았던, 루카와의 부서진 표정을 사쿠라기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부딪쳐오는 저 검은 눈동자는 순수하고 올곧다. 차라 리 직접적으로 입을 열어 무언가를 요구해오면 딱 잘라 거절할 수 도 있을 텐데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 먼저 에두른 태도로 어 림짐작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도 자의식 과잉일 테다. 그렇다고 해서 조금씩 잠식해 들어오는 것 같은 저 육중한 감정의 무게를 이 겨낼 자신도 없다. 해가 지는데 안 가냐? 결국 무뚝뚝한 질문이 나와 버렸다. 루카와는, 창에서 스며들어오는 저녁놀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 는 사쿠라기의 머리칼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의 등받이에 걸쳐놓았던 트레이닝복 을 걸쳤다. 가타부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묵묵히 돌아갈 준비를 하는 걸
68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보니 사쿠라기의 가슴 한 구석이 따끔거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 는 것이다, 이런 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니 주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 루카와와 함께 있을 때의 무 거운 공기의 눌림이 사쿠라기는 싫었다.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루카와의 감정에 질식사할 것 같다. 그렇다 해서 루카와가 그 감 정에 뚜렷한 이름을 붙여 사쿠라기에게 돌진해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이 애매한 상황에 먼저 지쳐버리는 것은 늘 사쿠라기였고, 그래서 루카와에게 귀가를 재촉하게 되는 것도 항 상 사쿠라기였다. 가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루카와는 정말 돌아 가지 않을지도 몰랐다. 내일 또 올게. 필요한 것 있어? 하아. 사쿠라기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오지 말라 해서 오지 않을 녀석이라면 걱정도 없다. 주간 바스켓 최신호. 응. 짧은 대답과 함께 문이 닫혔다. 히코이치에게서는 몇 번 안부전화가 왔었다. 그 전화로 우오즈 미의 걸쭉한, 하지만 걱정이 배어있는 격려인사도 들었고 다른 료 난 부원들에게서도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센도의 목소리가 없어 히코이치에게 물었더니 갑작스레 녀석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이야 기를 들어보니 요 근래에는 부활에도 드문드문하다는 것이다. 원래 목숨 걸고 농구하는 녀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센도는 농구
69 69 를 좋아했다. 정말 좋아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도 되고, 그 일 때문에 자신에게도 문안조차 오지 못하는 것인가 추측해 보았지 만 사실 스스로의 마음속에서도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센도는 아마도 사쿠라기의 부상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일 테다. 센도에게 비추어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자각이 사쿠라기에게 는 있었다. 상처가 있지만, 달려 나간다. 그늘 진 부분이 더 많지만 소량의 빛만으로도 응달을 숨길 수 있다. 센도의 세상에 천연의 색을 가 득 채운다. 센도는 그런 사쿠라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미치를 자신의 세상의 빛처럼 여긴다. 센도에게는 늘 그런 위태로운 면이 있었다. 사람이란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사쿠라기 는 생각한다. 그러는 자신도 죽 스스로를 좋아해 왔냐 하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센도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는 그를 좋아하 는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센도는 사쿠라기를 좋아하면서도 그 때문에 스스로를 좋아 하게 되진 않은 것 같았다. 사쿠라기 때문에 세상을 좋아하게 된 것 역시 아닌 것 같았다. 그 점이 사쿠라기는 늘 불만이고 가슴 아 팠다. 센도의 세상에는 사쿠라기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 받는 건 기쁘지만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상대라니, 영원을 다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런 건 아무래도 치사량이다. 잃으 면 죽어버린다. 먼저 좋아한다고 말을 걸어올 때도 센도는 불안정해 보였다. 처 음으로 몸을 겹치게 되었던 그 날에도 센도의 폭풍 같았던 키스에 는 젖은 울림이 있었다. 사쿠라기가 좋아한다고 말할 때면 슬픈
70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사쿠라기가 눈앞에 있으면 언제나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도 그 시선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센도의 눈앞에서 물리적인 상처에 의해 자신이 사라져 있 다. 그 녀석은 그 간극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 설 령 지금은 아니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언젠가는 사쿠라기가 사라지 리라는 두려움에 혼자서 떨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보 녀석! 사쿠라기는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창에서 사쿠라기의 머리칼 위로 떨어지던 저녁 햇살이 갈 곳을 잃고 이불 위에 그림자를 그렸 다. 센도도 마찬가지다. 사쿠라기는 얇은 천 하나로 가려져 있을 뿐인데 천을 젖힐 생각은 안 하고 표면 위에서 그림자를 그린다. 사쿠라기는 조용히 시간이 어서 흐르기만을 빌었다. 이 재활훈 련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 센도의 얼굴에 대고 직접 화를 낼 수 있 기를 기도했다. 퉁. 몇 번을 해도 튕기어 나간다. 얼마나 오래 슛을 쏘고 있었는지 이제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팔을 늘어뜨린 채 센도는 코트 위에 주저앉았다. 한 주 두 주 석 주 한 달. 주말에는 한 번도 사쿠라기와의 연습을 거른 적이 없었는데, 그 연습이 중단 된 지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기 간을 헤아리며 자신이 그를 보지 못한 하루하루를 낱낱이 세고 있 었다는 것을 깨닫자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괜찮다고 했다. 히코이치의 말에 따르면 회복은 순조롭고 재활
71 71 훈련도 무리 없이 잘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 사쿠라기를 처음 보았을 때 여과 없이 자신에게 가득 쏟아져 들 어오던 것은 그의 생명력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가시광선, 그 빛을 받아 천연색으로 깨어나는 세상. 막상 다가선 이후에는 그가 그렇게 밝은 면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 달았지만, 그래도 센도는 좋았다. 사쿠라기가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사쿠라기가 자신을 채워주었듯이 자신도 사쿠라기의 공허를 조금씩 채워나가고 싶었 다. 그런데 막상 그 소망이 이루어지면 질수록 조금씩 불안해졌던 것이다. 시간이, 내일이, 두려워졌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마 주보고 있을까. 내일이 되어도 사쿠라기는 웃어줄까. 사쿠라기의 삶에 묻어가면서도, 그의 일상에 흔적을 새기면서도, 뜨거운 그 몸을 하나 가득 끌어안으면서도, 센도는 무서웠다. 좋아하면 좋아 할수록 원하면 원할수록 허기진 공포는 커져만 간다. 자신의 심장 은 이전의 무감각했을 때와는 달리, 사쿠라기의 웃음 하나에 활짝 피어나고 울음 하나에 골로 팬다. 지독할 정도로 감정의 파고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이제는 사쿠라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생명력이 흠집을 입었다. 사쿠라기가 다쳤다. 그의 질주가 멈추었다. 센도는 미칠 것만 같았다. 사쿠라기가 너무나 보고 싶은 동시에 차마 볼 수가 없다. 먼저 다가설 용기는 있었으면서도 왜 계속 그 를 지켜볼 용기는 갖지 못한 것일까. 앉아있던 코트위로 엎드렸
72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다. 골대의 그림자가 등위로 길게 드리워진다. 이곳에서 사쿠라기 에게 처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사쿠라기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툭툭. 무언가가 허리께를 내지르고 있다. 한참을 고개를 파묻고 있던 센도는, 반사적으로 사쿠라기?! 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시선의 끝에 잡힌 것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루카와였다. 연습할 게 아니라면 꺼져라.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루카와는 가느다랗게 늘어진 그림자 탓 인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조금 놀랐지만, 센도는 아직도 젖어있는 얼굴을 훔칠 생각도 않 은 채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사쿠라기에게 가지 않았네. 루카와가 매일같이 재활원까지 왕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었지만 이내 떨쳐버렸다. 루카와가 사쿠라기의 부상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건강할 때의 사쿠라기도 어차피 자신의 손안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사쿠라기 가 다쳤다 해서 루카와가 잃을 것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센도는 바닥을 구르고 있던 공을 집어 들었다. 난 연습 끝났어. 그럼.
73 73 멍청이에게는 오전에 다녀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부활이 없 으니까.. 원래 이 장소도 녀석과 너보다는 내가 먼저였어. 그런데 왜 그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느냐고 묻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자신과 사쿠라기가 늘 여기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루카와가 일부러 이곳을 찾았을 리 만무했다. 지금은 사 쿠라기가 재활원에 있으니 예전처럼 들른 것일 테다. 번연히 알고 있는 답인데도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사쿠라기의 얼굴만 떠돌고 바로 뒤에는 오늘 아침에도 사쿠라기를 만나고 온 루카와가 서 있다. 울컥, 하고 까닭 모를 감정이 치밀 어 오르는 순간 루카와가 지친 어조로 물어왔다. 너, 왜 녀석을 만나러 가지 않는 거지. 센도는 천천히 루카와의 눈을 마주 보았다. 흑연을 녹여낸 듯 검은 눈동자에 분노가 출렁이고 있다. 화가 날 만도 하다. 루카와 입장에서 보면 센도는 가진 편인 것이다.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소 홀히 하고 있는 편인 것이다. 하지만 좋아서 그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와는 달리 난, 다친 그 애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루카와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 졌다. 그건, 녀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 입기 싫은 네 마음을 위해 서일 뿐 아니냐? 녀석이라면 네가 아무리 지독한 꼴을 당해도 끝 까지 지켜보고 끌어안아 줄 거다. 비겁한 녀석. 엉망이 될 때까지 패 주고 싶어. 으득. 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루카와가 씹듯이 내뱉었다.
74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그럼 그렇게 해 줄래? 센도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루카와의 주먹이 센도의 얼굴 에 작렬한다. 센도는 신음도 없이 나가떨어졌다. 너같이 자기본위인 놈은 질색이야. 루카와는 저벅저벅 멀어져갔다. 센도는 입가에 비린 맛을 느끼 면서 정신없이 웃었다. 정말로 자기본위의 애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등 뒤에서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미래가 어쩔 수도 없 이 무서운 것이다. 눈앞에서 기억되고 있는 사쿠라기와 함께 걸어 온 과거보다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어쩌면 사쿠라기가 없을 지 도 모를 미래가 무서울 뿐이다. 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노심초사하는 노인네 같다고 비웃어도 할 말이 없다. 희망을 가질 줄 모르는 바보라 손가락질 해도 좋고 맞서 싸울 용기가 없는 겁쟁이라고 욕해도 좋다. 하지 만, 자신은 정말 사쿠라기가 없으면 안 된다. 부활도 나가지 않는 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것이 언제인지도 가물 했다. 주위는 하 나 가득 잿빛이고 신체는 점점 무감각해져 간다. 이미 자신은 정 상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고서야 간신히 깨달았다. 자신의 사랑은 이타( 利 他 ) 가 아닌 이기( 利 己 )였다. 마주보게 된 순간 사쿠라기를 위해 살고 싶다고 바랐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살기 위해 사쿠라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는 것처럼, 물이 없으면 헤엄칠 수 없는 것처럼, 센도의 존재 자체가 사쿠라기를
75 75 필요로 한다. 그의 결락을, 자신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슬픔은 마치 바오바브나무처럼 자라간다. 센도의 지구 중심까지 뿌리를 뻗고 센도의 우주 저 끝까지 가지를 증식한다.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 어느 곳에 손을 내밀어도 잡고 싶은 사람이 없다. 센도는 끝까지 사쿠라기의 문안을 가지 않았다. 복귀 축하한다, 사쿠라기. 툭툭 격려하는 손짓과 함께 여기저기서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온 다. 사쿠라기는 쑥스러운 웃음으로 답했다. 언제나 아이언 바디라 고 떠들었던 처지에, 아무리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해도 방학 내내 재활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는 건 사쿠라기에게 있어서는 이미 숨기 고 싶은 과거였다. 선생부터 시작해서 동급생과 농구부원들의 환 영의 목소리가 마냥 멋쩍고 부끄럽다. 하지만 머쓱한 태도로 머리 칼을 긁적이는 사쿠라기의 눈가는 약간 붉어져 있었다. 이 모든 건 농구를 시작하면서 얻게 된 것이다. 이전보다 조금 은 부드러워진 눈매, 서슴없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동급생과 문제 일으키지 마라. 면서도 퇴원을 축하해주는 선생, 그리고 한 없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는 농구부원들. 돌아온 곳에서 기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쿠라기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새삼, 자신이 다시 돌아가 설 자리가 있었 다는 사실이 기뻐졌다. 그래도 사쿠라기가 받아야 할 축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활 훈련 내내 계속해서 머리에 떠올리고 있던 녀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등교는 했다 해도 아직 본격적인 부 활동은 무리인 사쿠라기는,
76 Akira Sendoh X Hanamichi Sakuragi 안자이 선생과 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느 릿하게 걷고 있던 발걸음이 어느새 조급해졌다. 센도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석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시간보다, 오히려 길다. 더구나 공백의 시간은 굳 이 그래야만 했던 시간들도 아닌 것이다. 사귀게 되고, 키스하게 되고, 서로 몸을 겹치게 되면서 까지도 여전히 두려움에 굳어 있 는 그 녀석이, 사쿠라기는 미웠다. 밉지만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숨고만 싶어 하는 그가 먼저 다가와 준 것이다. 밀어내 는 사쿠라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안아 준 것이다. 버석버석 메 말라가던 사쿠라기를, 애정의 비로 적셔준 것이다. 사랑을 갚는다 고 하면 이상하다. 애초에 물건처럼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 만 사쿠라기는 갚고 싶었다. 돌려주고 싶었다. 자신은 소멸되어도 사쿠라기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생명을 타고 재생되었으면 좋겠다 는 이야기를 하는 센도에게, 아파하는 사쿠라기를 감내할 자신이 없어 도망쳐 버리는 센도에게, 사쿠라기를 만나면서부터 언젠가 사라졌던 그 텅 빈 미소를 다시 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센도에게, 자신의 마음으로 센도의 마음을 갚고 싶었다. 사쿠라기가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요헤이와 친구들과 루카와와 농구와 그리고 센도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활짝 열어 젖히게 해 놓고서 자신만은 모른 척 하는 것을 용서할 수가 없다. 받아 들여 달라고 잔뜩 두드려 열어 놓고서 혼자서만 도망쳐 버리 는 건 비겁하다. 헉헉헉. 어떻게 역까지 달려 전철을 타고 다시 료난고교의 앞까지 달려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체육관까지 쉬지 않고 달음박질해서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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