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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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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목회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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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을에살았던김장로는어머니뱃속에서부터교회에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주일학교에출석하면서부터교회에서가르치 는것은모두진리이며반드시지켜야할생활의규범이요절대적 인가치라고교육을받았다. 그당시의성지역은우리나라대부분 의교회가그러했던것같이근본주의신앙이지배하고있는곳이었 다. 그의신앙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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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에입학을했습니다신학공부를하면서도항상마음은농촌에머물러 있었고, 언젠가는농촌에내려가겠다는꿈을간직하고있었습니다. 신학교졸업후목사안수를받고목회의길에접어들었습니다. 처음 에는경기도안산상록수역에서반월공단으로가는중간지점의, 아랫 감자골이라고하는공단주변에서개척교회를시작했습니다교회이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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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주제 : 응답하라 2024 자연과학강연일시 : 2014년 17 일( 월) 12:30 ~ 17:15 접수번호 : 비숙박_ 단체-02 신청학교 : 강동고등학교좌석 : 1층-마-16 ~ 1층-마-57 ( 총 42 명) 강연회장오시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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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게시작되었다 이글은감리교내에서일어난이러한흐름중하나인 동체운동에관한대략적인기술이다. 끊노나는 1990 년부터농사를시작하였다. 그리고다음해부터공 동체를시작하였다 :) 1 그동안운동해왔던성향으로유기농업을 시작하였다. 당위로써말이다. 준비작업없이무조건시작했 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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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경상북도지방공무원제 1 회공개경쟁임용시험 - 필기시험합격자및면접시험시행계획공고 ( ) 필기시험합격자 : 491 명 ( 명단붙임 ) 2 필기시험합격자등록및유의사항. : ( ) ~ 7. 6( ) 3 등

농림축산식품부장관귀하 본보고서를 미생물을활용한친환경작물보호제및비료의제형화와현장적용매뉴 얼개발 ( 개발기간 : ~ ) 과제의최종보고서로제출합니다 주관연구기관명 : 고려바이오주식회사 ( 대표자 ) 김영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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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7 ( ). (1) 1),. ( 湖西 ),. 19,., , (2).,,,,.,,., ),.. 1) 조광, 초기천주교의충청도선교와그사회문화적특성, 2014, p.11~30. 프란치스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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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연구 18(1), 2015 pp 환동해권 * 체제이행국가의농업개혁과농업협력 : 북한농업에의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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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인간및생명존재의위기의식에서비롯되었으며, 역사내적인 인식을생명계전체의시각으로확대하여인간의존재위치를 생 명 의관점에서바라보도록하고있다. 인간사회내부의문제의식에 서인간과자연생태계를모두포괄하는총체적인문제인식을갖게 한것이다 물론, 중심적인사회적의제는그방점이이동하더라도그것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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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박사학위논문 목표모호성과조직행태 - 조직몰입, 직무만족, 공직봉사동기에미치는 영향을중심으로 - 년 월 서울대학교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전공 송성화



CONTENTS CSCaritas Seoul Mission. Vision Caritas,,. 28 Yes, I Do 32 DO CAT 2017 SPRING <+>


제 1 과 제자로 부르시니 1.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에 무엇인가를 버려두고 즉시 순종하였다. 그들이 버린 것은 배와 그물이었는 데, 그것은 곧 생업을 포기한 것이다. 2.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전도나 선교를 의미한다. 1. 따르다 는 제자도의 핵심 동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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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Transcription:

기독교와놓밍운통 나의농민운동이야기 오재환 ( 장로, 충남서천신포교회 ) 제 2 의농업생활 1964년 12월 18 일, 나는국민의 4대의무중의하나인군복무를 마치고집에돌아와가족과생활을하게되었다. 군생활을할때는 언제제대하나하고손꼽아기다려도보았지만막상제대하고나니 반겨준다는것은내가폼담아야할집과농업이었다. 그당시만해 도농촌의생활은이루말할수없이형편없었다. 전기가들어오지 않는시골의밤에호롱불을켜놓고그희미한불빛아래서지푸라기 로새끼를꼬고그것을가지고낮에는곡식을담는가마니를생산하 기위하여가족끼리쉴새도없이일을해야만했다. 제대후첫주일을맞이하여교회에나갔는데공덕산끝자락에이 지역을든든히지키고자하는모습으로마을의중앙에자리잡은교 회, 출석하는교인수는당시 70-80여명의성도들이모였는데은 혜가충만한교회였다. 이 교회가지금내가섬기고있는신포교회 이다. 농촌생활은소득이낮고육체의피곤은가중되고모두들희망이 나의농민운동이야기오재환 111

없다고들하지만그렇다고모두다이농촌을떠나면이땅은누가지키고농촌교회는누가봉사하겠는가? 그래서나는결심했다. 하나님께서주신이농촌을지키겠노라고! 모든어려움을감수하고내마음을추스려가며신앙으로살고자바쁘고힘든속에서도주일을꼬박꼬박지키며새벽기도회에도나가고십일조생활을기본으로생각하며신앙과더불어나의농촌에서의삶은이렇게시작되었다. 그렇게시작한나의농촌삶의시작이오늘에와서되돌아보면부족한나에게언제나힘을주시는하나님의은혜였음을고백하지않을수없다. 결혼생활 어느덧흔기가차서결혼을해야할때가되었다. 그러자어떤이들은 늙은총각장가가야지 1" 하면서중매를서주겠다고말을하곤했는데당시우리가정의형편은넉넉하지못한데다아래로남동생셋과여동생하나가있고내가맏이로있다보니장가들기가무척힘들었다. 그럴때마다짚신도짝이있는데하물며사람이야더할나위있으랴하며나스스로위로를받곤했다. 또한성경에도하나님께서아담을만드시고아담을위하여함께할하와를만드셔서부부로짝을지어주시며생육하고번성하라고하셨는데왜나에게짝을지어주지않으랴하며믿음으로기다렸다. 그러던차에하나님께서는나같이가난한집에동고동락을함께할이웃의어느가난한집맏딸을배필로주셔서 1969년 3월 3 일, 내가다니던지금의신포교회에서많은사람들의축복속에결혼식을올렸다. 이제결혼을하긴했는데결혼전부터내가해오던일이하나있었다. 지금은환경공해라해서없어지기도했고아니면차엄벨로대신하는교회도있는데당시우리교회는새벽마다맹그렁맹그렁하고종을쳤다. 그일을내가하고있었던것이다. 결혼하고나서도 112 놓촌과룩획제 20 호

내마음속에는 내일새벽에교회에가서종을쳐야하는데깊은잠에빠지면어떡하나?" 하는생각에잠이오지를않았다. 새벽기도회시간은점점다가와종을치러나가야하겠는데옆에서자고있는신부가캘까봐여간조심스러운게아니었고또한함께살고있던옆방의가족들이캘까봐살그머니일어나서교회에가서종을치고새벽기도를드리고오곤했다어느덧시간이흘러하나님께서는우리가정에귀한선물을주셨다. 바로아들하나와딸하나를주신것이다. 게다가감사한것은하나님께서는부족한나에게이교회를섬기도록장로의직분을주셨다. 그리하여 1982년 11월 16 일당시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이신강명환목사님께서친히오셔서설교해주시고축하해주시면서신포교회장로로임직을받게되었다. 할렐루야! 농민운동의길 1982년 12월 10 일나도현목사님의소개로영등포산업선교회관에서농민운동에대한의식교육을 1 주일간받게되었다. 여기서교육을받고나니까농촌에서태어나소박한농촌교회만을받들어섬기는일만이나의봉사로알았는데의식교육을받고나니갈등이오기시작했다. 허나옳은일이라면해야지어떡하겠는가? 1983년 3월 11 일여기에서그리멀지않은판교교회에서비밀리에모임이있었다. 여기에는목사님들 10여명을비롯하여약 30여명이모여먼저예배를드렸다. 오충일목사님께서약한자편에서농민의정당한요구와뜻을함께하자는설교말씀을듣고결심을다시하게되었다. 예배가마친후에회의에들어가회장에양주석장로가선출되고각임원이구성되었다. 그리고곧바로성명서가채택되고모여있던우리는현장으로달려갔다. 그로부터 1 주일후정보를입수한경찰과안기부, 그리고보안대등정보기관에서우리집에모여들기시작했다그들은내가기독교 나의농민운동이야기오재환 113

농민회에서탈퇴할것과맡겨진일의사임을요구하며은근히압박 해오기시작했다. 그들은우리집에상주하면서식사때가되어도자리에서일어서 지않고나를따라다니면서계속협박했다. 그래서나는꼼짝없이 오도가도못하는신세가되고말았다. 그들은이렇게외부와의접촉 을철저히단절시켰다. 그리고그들의집요한정보작전은시작되어나를기농에서탈퇴하도록사돈의 8촌까지동원하여압력을가했다. 이러기를 1 주일여간계속되었다 그로부터 1 주일후기농회장인양주석장로님이오셔서다른분들 은압력에못이겨사임했다며끝까지투쟁하여승리하자며격려해 주었다. 둘이는다시한번결심했다. 이제남은사람은양주석회 장, 이병희부회장, 이봉구총무, 오재환감사만남고다른임원들은 사임했다. 1984 년 2 월 28 일영등포산업선교회관에서한국기독교농민회제 2 차정기대의원총회가개최되어회장에배종렬장로 ( 전남무안 ), 부회장에경북의성의김영원장로와충남서천의이봉구장로가선 출되었다 강경사건 충남부여군세도면일원에농민들이시중에서구입한토마토종자가불량인것을파종했다가토마토농사를망치게되었다. 이어 려움에처한농민들을돕기위해충남농민회가지원에나섰다. 투 쟁과싸움은계속되었다. 여기에는뜻있는성직자와기독교농민회 원등이경찰서를찾아가항의방문을했고검사실을점거하여농성 에돌입했으며도로를점거하기에이르렀다. 그리고밤에는강경제 일교회에서단식농성에들어갔다. 이러한소식을듣고전국농민회 가지원함으로써투쟁의열기는더욱더뜨거워졌다. 강경제일교회에서단식농성을할때에강희남목사님은부동자세 114 놓촌과묵획쩨 20 효

로긴밤을새우는강인한모습을보여주셨는데젊은우리들은강목사님의강한의지에다시한번용기를얻게되었다 1 주일이지나면서보상협상이물꼬를트게되었다. 그런데직접보상은되지않고간접보상으로협상에임하게되었고투쟁마무리단계에이르자 배종렬연합회장이구속되는사태가벌어졌다 후석방되어이사건은일단락되었다. 하지만 l 주일복역 장항제련소공해사건 충남서천군장항읍에는일제가우리나라를식민통치하면서우리나라의지하자원을제련하여장항항에서일본으로실어가기위하여만든장항제련소가있었다. 그런데여기에서배출되는아황산가스는이곳농작물을심하게오염시켰다. 참깨는아예농사를포기하게만들었고콩이나기타다른밭곡식은수확이심각하게감소하는상태에이르렀으며벼는잎이점점말라죽으면서수확감소뿐만아니라심한지역은아예수확을포기해야할정도가된것이다. 이러한현상은장항제련소에서나오는아황산가스로인한공해가너무도자명한것이었다. 그러나농촌기술센터에문의하면그들은말할수없다며책임을회피하곤했다. 그렇게밖에말할수없는그들의심정도이해가되기도했다. 분명장항제련소에서나오는아황산가스로인한공해가분명한데도그들은그원인을밝혀주기보다는장항제련소는방위산업체라서우리공무원들은공해가원인이라고말할수없다는것이었다. 1984년 5월 6 일신포교회를중심으로하여교회성도들과지역농민등 40여명이장항제련소를찾아가항의방문하고공장최고책임자가나와서우리의요구에응하라고했지만나오지를않았다. 당시만해도전두환군사정권이총으로국민을억압하던때였다. 3시간이지나도나오지를않았다. 이유는신변에위협을느껴서못나오는것이었다경찰이책임자의신변을보호하기로하고나서 나의농민운동이야기오재환 115

야윤기성소장이나와서정중하게사과하고용광로솥을쏟아버렸다. 용광로 l 개의솥이불을끄게되면약 1 억여원의막대한손실을보게되었는데우리농민들의요구가너무나거세어지자이에응하기위하여용광로의솥에불을끄는결단을내리게되었던것이다우리의요구사항은공해를방지하는것이었다. 회사에서우리에게회답해준것은영농시절인 5월에서 9월까지는가동을중단하겠다는것이었다. 그로부터장항제련소는약 5년여간제한조업을하다가온산공장드로이전하여합병하게되었다. 우리는그때장항제련소로부터 1 억 8천여만원의피해보상금액을받아피해입은각농가에지급해주었다. 그일이있고난후에장항지역의사람들은신포교회때문에우리가살게되었다고말하곤했다. 평소에장항시내사람들은빨래를널수도없었고장독을열어놓을수도없었을뿐만아니라날이흐리고저기압일때에는호흡하기도어려운실정이었는데이제는마음놓고살게되었다고칭찬이자자했다 수세폐지활동 1930년경부터왜정말기에각지역에저수지가만들어져서물을담수해두었다가농사철에급수해서쌀농사를지을수있는급수사업이시작되었다. 일본사람들이저수지를만들고서향후 10년동안만수세 ( 물세 ) 를받겠다고했는데그후로 60여년이지나도약속을지키기는커녕 300평당벼현물로 25킬로의수세를받아갔다. 이지역의우리농민들은농지세와수세등을내고나면농사를지어보았자가을에는허탈감만남는실정이었다. 이에기독교농민회와가톨릭농민회가연합해서수세폐지구호를외치며투쟁의목소리를높여갔다이수세폐지요구는전국적으로퍼져나갔다노태우대통령후보가전남유세도중에농민들이수세를폐지하 116 놓촌과목획꽤 20 효

라는거센요구를받았다. 알아본즉수세는농민이부담해서는안될 사항을알게되자경기도유세때대통령이되면수세를폐지하겠다 고공약을했다. 그리고대통령이된후에소정의수수료를내는조 건으로 5 년여간 5 킬로씩낸후에완전폐지되었다. 친환경농법으로의전환 1989 년 2 월, 기독교농민회와가톨릭농민회는전국농민회총연맹의 출범과함께중심과제를바꾸었다. 가톨릭농민회는우리밀살리기운 동과함께생명공동체운동을전개했고기독교농민회도생명공동체 운동으로전환했다나는생명공동체운동의일환인유기농업에접 근하기시작하였고이제는무공해오리농법으로전환하게되었다. 서천군이후원하는명미화단지를이루고이곳에게르마늄농법으로 전환시켜미질 ( 米質 ) 이좋은일품벼를경작하였고일부는오리농법 농사로지은것을직거래하기시작했다 창조주하나님께서창조하신아름다운이자연환경이파괴되고환경오염으로몸살을앓고있는우리의환경을바라보며하나님이주 신이땅에서생명을살리는일이곧농업을살리는일이고농업을 살리는일이곧생명을살리는일임을깨달아오늘도작으나마그 일에자부심을가지고온힘을다하고있다농촌에서흙과더불어 사는것을감사드린다. 뭘 나의농민운동이야기오재환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