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회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후기 열정을 가져다준 일본 탐방(2016.11.27.~12.02,부산 해강고 차주언) 2000년 1월, 전세계가 밀레니엄 시대를 여는 희망과 기대 속에서 2000년을 맞이할 때 힘 겨운 삼수기간동안 임용시험을 통과하여 교사가 된 나에게 인생에서 처음 외국땅을 밟은 곳 이 바로 일본이었다. 나에게 여권과 그 때 필요했던 일본비자를 영사관가서 직접 발급받아 나의 첫 외국여행이자 자유여행의 기회를 줬던 일본. 그렇게 나는 일본이라는 장소가 임진 왜란과 일제강점기의 한민족의 뼈아픈 역사의 장소가 아닌 처음의 설레임을 느끼게 하는 그 런 곳이다. 그 뒤로부터 부산을 거주지로 두고 있는 자의 혜택이라 할 수 있는 쇼핑여행지 로서의 후쿠오카, 대마도를 5번 다녀온 친숙한 일본은, 가깝고 친숙하기만 하지 일본을 공 부해야겠다는 꿈과 열정을 가지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운이 좋아 당첨된 일본속의 한 민족사 탐방 연수는 나에게 일본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꼭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다짐을 하게한 나에게 있어서 큰 의미의 연수이자 탐방이자 여행이 되었다. 11월 27일(일) 부산김해공항-다자이후 텐만궁에서의 점심식사-학술강연-힐튼호텔 일요일 출발은 왠지 모를 들뜬 기분을 가지게 했다. 부산과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제주보 다 더 가깝다. 비행시간은 30분 남짓. 후쿠오카 공항의 공항검색대를 통과하는데 1시간이 넘어 걸려서 가까운 거리를 무색하게 했지만 들뜬 마음으로 가이드님이 안내하시는 다자이 후 텐만궁에 도착했다. 텐만궁은 백제 왕인박사의 후손 학문의 신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 신 신사로 전국체인처럼 있어서 다자이후 텐만궁이 일본에서 텐만궁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 단다. 입구에 청동황소를 만지면 소원성취를 할 수 있다하여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닳아 서 광택이 나는 청동황소를 보니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시험 합격에 대한 염원은 다 비슷해 보였다. 녹나무와 매화나무가 많은 다자이후 텐만궁 내에서 일본식 도시락을 바삐 먹고 학 술강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학술강연 다자이후에서 나고야성터에서 강원대 손승철 교수님의 조선통신사 강의를 시작으로 공주대 서정석 교수님과 단국대 엄 기표 교수님, 규슈대 마쓰마라 다카토시 교수님의 강의까지 야외 답사를 위한 사전강의로서 알찬 내용과 시간이었다. 일본 속에서 한민족의 유물과 유적을 찾아 역사를 증언하는 답사 가이드를 제시해 주시고, 이번 답사의 키워드를 신사, 고분, 절, 성으로 구분해 주셨다. 어
제와오늘, 내일의한일관계에대해생각하고공부해야겠다는다짐을하게되었다. 부산과후쿠오카를同경제권으로묶어, 해저터널을건설하자는제안도신중하게접근해야될것같았다. 경제적협력관계도중요하지만역사인식을공유하고역사청산도함께이루어지면어떨까하는생각을하였다. 한 일간의공감대가형성된다면프랑스와독일의공동역사교과서편찬처럼우리나라와일본도공동역사교과서를편찬하게될그날을기대해본다. 11 월 28 일 ( 월 ) 다자이후 - 다마나의후나야마고분 - 가라쓰의나고야성터 - 힐튼호텔 하카타항구와후쿠오카소프트뱅크돔구장이내려다보이는호텔방에서숙면을취하고이른호텔조식으로배를든든하게채우고 8시에답사여정이시작되었다. 첫번째답사지는다자이후였다. 과거규슈지역을다스리고외교를담당하며관문을지키는역할을한다자이후는백제를생각하게하는유적이었다. 지금의다자이후는당시의청사터로서지금도그규모를알수있게하는초석들이산재해있었다. 다자이후의건축과수성의축성은백촌강전투 ( 지금의동진강유역 ) 에서패한왜가 3천여명에이르는백제지배층과함께일본으로와, 나당연합군이뒤쫓아쳐들어올것에대비한것이라고공주대서정석교수님께서설명해주셨다. 다자이후청사터는바둑판같이계획적인초석들이남아있었으며수성과함께축성된방어진지중하나인오노성 ( 대야성 ) 은조선식산성이라알려져있지만백제식산성이라고도알려주셨다. 다음여정은후쿠오카에서구마모토로가는길목에있는후나야마고분은전방후원분이다. 오키나와와훗카이도를제외한일본전역에분포하는전방후원분이지만, 고분속의문화적유물들은모두한반도관련문화적유물들이라고한다. 백제무령왕릉유물과비슷한부장품이대량출토되었고, 백제양식과비슷한금동관도나왔다. 후나야마고분내역사전시관이휴관일이라유물을볼수없음이안타까웠다. 일본벤또를점심으로먹고나오면서전기차충전소가식당주변주차장에설치되어전기차충전이이루어지고있는모습을보면서친환경차량을대중화하여친환경에너지와지구환경보호에앞장서고있는선진국일본의모습을볼수있었다. 사가현의니고야성터로발길을돌렸다. 풍신수길이자신의고향나고야와같은지명의이곳에조선침략의전진기지로서의히젠나고야성을축조할것을규슈의다이묘들에게명령했다고한다. 그리고풍신수길이죽고임진왜란의기지로서의기능을다한히젠나고야성은파기되어지금의나고야성터로남아보존되고있다. 손승철교수님의설명에서성의구조로본우리나라와일본의성을비교한것이가장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읍성과일본의평성의차이는성안에군인과백성, 민간인들이거주하는읍성과, 군인만거주하는평성으로전쟁이나면성안에모든사람이죽어야전쟁이끝이나는데, 우리나라의읍성은결국민간인들까지피해가갈수밖에없는, 임진왜란과정유재란때우리나라는큰피해를입을수밖에없는구조적원인이있었다는것을알게되었다. 일본의평성은평지에위치하여방어를위해서는해자를만들수밖에없는구조라는것도알게되었다. 1992년임진왜란 400주년기념으로한일양국은박물관을만들었는데, 나고야성박물관, 진주국립박물관을개관하였다한다. 나고야박물관학예사님께서나오셔서나고야성터의의미에대해설명해주셨는데, 이분은부인이한국인이며, 퇴임을하면부산에서양국의우호증진
을 위해 또 다른 인생을 준비중이라고 하시니 한일양국의 가교역할을 수행하시는 모습이 인 상적이었다. 히젠 나고야성의 천수각이 있던 장소에서 바라본 가카라시마는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곳 이라 했다. 백제의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니, 공주의 무령왕릉을 다시 찾아가 보고 싶 은 충동을 느꼈다. 일본 속에 한민족은 곳곳에 살아있는 것 같다.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밤, 룸메이트와 함께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진 후쿠오카 타워앞에 서 사진도 찍고, 근처 마리존 웨딩홀 리조트 앞에서도, 사이드 모모치 해변까지 걸어 힐튼 호텔에 들어왔다. 이렇게 후쿠오카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11월 29일(화) 아리타의 이삼평도예지/도잔신사-간자키의 요시노가리유적-시모노세 키의 아카마신궁/청일강화기념관-메이몬훼리 힐튼호텔 사이드 모모치 해변 이삼평 도예지 도자기 판매점 요시노가리유적 아리타의 이삼평 도예지로의 3일차 여정이다. 이삼평은 아리타 도기의 도조로 알려져 있 다. 이삼평은 충남 공주시 출신으로 왜란 때 일본 히젠국의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조선 침략 후 철수 시 일본으로 데리고 온 도공 중 한사람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자를 만들고 아리타도기의 시조가 된 사람이다. 이삼평의 14대 직계 자손분이 우리 일행을 위해 나와 계 셨다. 내년 2017년은 아리타도기 창업 4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에서도 기념행사를 열 계획 이라고 했다. 철길 안으로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도잔신사 입구를 지나 도자기 도리 이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 감탄하고 도산신사를 거쳐 도조 이삼평의 비까지 쏜살같이 올라갔 다. 마을에서의 잠깐의 자유 시간에 도자기 판매점에 들어가 아리타도기의 아름다움에 또 한번 감탄하였다. 우리의 장인정신을 일본에서 꽃피우다니 가슴 먹먹함과 아쉬움이 남는 시 간이었다. 다음 여정은 야요이 시대의 최대의 환호취락과 독널무덤 유적지인 요시노가리 유적이였 다. 한반도의 농경문화인 벼농사와 세형동검의 청동기 문화가 전래된 곳이다. 역사공원으로 지정되어 과거의 흔적들이 복원 중에 있었다. 인위적이지만 이렇게 오래된 문화를 복원하는 일은 참으로 부럽고 배워야할 부분인 것 같았다. 옹관묘를 보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배 승선시간이 다 되어가는 듯했지만 우리 일행은 시모노세키의 아카마 신궁과 청일강화 기념관으로 향했다. 탐방여정에서 중세사회의 시작인 가마쿠라막부에서 조선통신사의 숙소 로 이용된 아카마 신궁에 도착했다. 시모노세키는 세토내해 400km의 시작으로 오사카까지
갈 수 있는 곳으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처음 상륙한 곳으로 20년전에 세워진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가 있다. 조선통신사는 6척의 배를 타고 오는데, 3척은 기선 사람만 타는 배, 3 척은 짐을실는 배로 9달의 긴 여정을 소화하는 조선에서 온 외교사절단이며, 일본과 교린관 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아스카,나라,교토를 거쳐 천황제국가가 성립되고, 무사정권인 가마쿠라 막부 시작으로, 교토에서 무사정권의 쿠데타에 의해 천황이 시모노세키까지 밀려 오는데 1185년 천황파무사와 막부파무사의 전쟁에서 8살짜리 안토쿠천황을 조모가 안고 죽 음으로써 천황제가 몰락하고 무사정권의 시작되었다. 아카마신궁은 어린 천황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위패를 모신 신궁으로 원래는 아미타사 절이 있었는데, 거기서 조선통신사가 기거 했다고 한다. 청일강화기념관은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이 청일강화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한반도를 세력권에 넣어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게 된다. 동학농민전쟁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군사를 보낸 청일 두나라는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게 된다. 현재의 센가쿠열도(다오위다오섬)은 이 때 일본에 할양된 것으로 현재의 중일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시모노세키는 고대사회에서 중세를 지 나 근대사회를 말해주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메이몬훼리에 승선하여 캡슐호텔과 같은 잠자리 경험도 해보고, 선상에서 온천 경험을 할 수 있어 세토내해를 따라 선상에서의 여정은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카마신궁 청일강화기념관 아카시 대교를 뒤로하고 11월 30일(수) 나라의 도다이지, 호류지- 아스카의 아스카테라/다카마쓰 고분-하얏 트 리젠시 호텔 아침 7시경 메이몬훼리에서 본 전장 4km의 세계 최장 현수교로 고베와 아와지섬을 연결하 는아카시 대교를 통과하였다. 선상에서의 아침 공기는 참으로 시원하고 상쾌했다. 세토내해 를 따라 조선통신사길을 체험하면서 배 안에서의 온천과 캡슐숙박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오사카에 도착하여 나라로 이동하였다. 나라시대의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 도다이지에 도착했다. 도다이지의 모습은 17년 전에 본 모습과 같았다. 나의 세월의 흔적만이 남아 있 었다. 하지만 17년 전에는 몰랐던 한반도계가 도다이지 창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 가라쿠니신사가 도다이지 경내에 있으며, 한국신이 도다이지의 수호신의 역할을 했던 것으 로 우리의 조상을 모셨던 조그마한 신사의 존재는 그때는 몰랐다. 도다이지에서도 한민족의
영향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도다이지 주변의 나라공원의 사슴은 예나 지금이나 나를 물어 서 늘 사슴이 경계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의 17년 전후의 도다이지에서 아스카 문화의 중심지 호류지로 향했다.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이자, 고구려, 백제, 신 라의 삼국시대의 문화를 종합했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고구려의 담징이 그린 것으로 알려 진 금당벽화가 유명하다. 아스카지방의 다카마쓰 고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본 내에 가장 확실한 흔적으로 남아있 는 고구려계 유적으로 다카마쓰 벽화를 볼 수 있었다. 백제 왕흥사를 모델로 한 아스카테라(비조사)에 늦게 도착했다. 오후4시 30분부터 어두어 지더니 오후5시 30분인데 깜깜하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표준경선 동경 135도를 사용하고 있 다. 우리나라의 중앙경선이 동경 127.5도를 지나는대도 말이다. 잃어버린 30분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12월초인데도 이렇게 해가 빨리 진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인 듯했다. 써머 타임을 사용한다 셈치고 생활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비조사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아스카 대불 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아스카테라는 국제교류 의 장으로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승려들이 활동했단다. 오사카 하얏트 리젠시 호텔은 힐튼호텔 그 이상이었다. 롬메이트와 함께 호텔 근처 이자 까야 선술집에 가서 일본의 소박한 술과 야식과 함께하는 밤문화를 체험하였다. 이렇게 4일 째 밤이 깊어갔다. 12월 1일(목) 교토의 고류지/니조성-오사카의 자유시간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의 17년 전후의 니조성에서
이른아침에탐방기간동안생신을맞으신선생님들의축하파티시간을가지며아침식사를마쳤다. 오늘의여정은교토이다. 에도막부를연도쿠가와이에야스가교토를방문할때머물숙소로니조성을완공했다. 마룻바닥은외부의침입자를막기위해발을디딜때마다삐걱거리는소리가나도록장치되어있었다. 17년전의장소에서똑같이사진을찍은내모습을보면서세월의무상함을또한번느낀다. 정원이이쁜니조성이었다. 고류지는교토최고의사찰로쇼토쿠태자가호류지, 시텐노지와함께건립한일본 7대사철중하나이다. 고류지의일본국보 1호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신라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정말쏙빼닮았다. 실제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한반도로부터도래한것이라는기록이고류지에남아있다고전해지지만논란이많다가불상의재료가적송이라는사실이밝혀지면서신라제작설에비중이쏠리고있다. 당시일본에서제조된목조상은대부분녹나무로만들어졌는데, 적송이일본에는없고한반도에서많이자라는나무라는사실이이설을뒷받침한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인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한번더보러가야겠다는생각을했다. 점심을먹고자유시간이약간있었는데, 몇분의선생님들과료안지에가서일본의정원을보고대나무숲을산책하고왔다. 여유롭게일본의문화를즐긴시간이었다. 교토에서유명하다는녹차아이스크림도맛있게사먹었다. 저녁시간은오사카도톤보리에서자유시간이었다. 저녁식사를위해조선일보에서 1500엔을나누어주셨다. 룸메이트와도톤보리의손든남자러너간판앞에서만나우선저녁식사를해결했다. 오꼬노미야끼와파블로의치즈타르트와커피, 그리고카베진, 샤론파스, 퍼팩트휩등소소한일본시내면세쇼핑을했다. 마지막밤타코야끼와맥주로아쉬움을달랬다. 도톤보리에서 파블로의치즈타르트 12 월 2 일 ( 금 ) 오사카성 - 오사카백두학원건국학교 - 부산김해공항 도요토미히데요시의권력의상징오사카성은 17 년전과똑같았다. 화려함속의공허함과 무상함이느껴지는 17 년전과다름이없다 점심으로스시정식을먹고일행은한민족의긍지를지키며재일한국인을비롯한한국교육을희망하는일본인까지한국어와한국사교육을더불어배우며한민족교육을지향하는 70년역사의백두학원건국학교를찾았다. 일본에서재일교포후세들이들려주는우리의전통사물놀이는우리의심금을울리고감동을주었다. 건국학교교장선생님의말씀중습관교육의중요성은현재우리교육에서꼭필요한부분인것같았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의 17년 전후의 오사카성에서 백두학원 건국학교 5박6일이라는 짧지만 긴 여정이 끝나고 모두 각자 출발한 곳으로 돌아갔다. 여행은 돌아 갈 집이 있어 의미있고 행복한 것이라고 주최측 관계자분께서 말씀하셨다. 일본속의 한민 족사 탐방 그 기간 동안 행복했고, 한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돌아온 지금 도 그 기간을 추억하며 행복하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탐방은 유물을 보는 마음가짐을 달리 하는 기회였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겠다, 일본에 대해 공부하겠다, 일본어를 공부하 겠다라는 숙제와 열정을 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또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 5박 6일의 여정을 글로 남긴다. 나의 20년이 되어가는 일본이라는 곳의 친근함과 친숙함이 아는 만큼 보일 수 있도록 지금부터 공부를 시작해 보려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부산 교육청과 조선일보, 신한은행, 포스코 관계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계속 이런 일본 속의 한민족사 교사탐방이 이어져 역사인식의 바른 태도가 학생들과의 공유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