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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통신218-진행

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5권심층-양화1리-1~172

2015년9월도서관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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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로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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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醫報 영인본을낸이야기 奇昌德 大韓醫史學會회장 1967 년가을로기억하고있는데정확하지는않으나이때 조선의보 제5권제3호를인사 동의영창서점에서발견한것으로알고있다. 내가귀중히간직하고있는 조선의보 1) 와명칭은 같은데우선시대가다르고크기도다른흠하나없는깨끗하고질좋은종이의조선의사협회 발행 조선의보 였다. 이한권을봉투에넣어가지고돌아와곰곰히생각하니강석영형의말이 생각났다. 조선의보 에관한이야기를들은것은 1947 년정월로기억한다. 김두종선생이문교부의 학교육과에서발행하던 조선의사시보 를인수받아 1946년 12 월에발간한 조선의보 창간호를 보고강석영형이 옛날(1930 년대) 에도 조선의보 가있었는데같은이름으로나와앞으로혼돈이 올거야 라는말을해준기억이떠올랐다. 조선의보 제5권제3호의내용을살펴보고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병리학교실내의조선의 사협회에서발간한것을알게되어바로연세대학교도서실을방문하여 조선의보 열람을신청 하였다. 그랬더니이도서관에는 조선의보 가없다는것이었다. 설명을해도모른다고해서돌 아왔다. 서울대학교의과대학도서실에도문의해보고규장각에도알아보았다. 단한권도찾아 낼수가없었다. 그후알아보니연세대학교도서실에는 조선의보 제1권제1호외에몇권이보 관되어있다는것이었다. 그후직접살펴보왔으나생각외로보관이잘되어있지않았다. 이러한 조선의보 의정체를알게된후 1945년경원남동네거리에서의서만전문으로취급 하던과학사( 科學社 ) 의김사장이생각났다. 김사장은독일어, 또는영어, 일본어로된외국의의 서를잘알고계셨을뿐만아니라국내의의학잡지즉 조선의보, 임상의학, 조선치과의보 등 월간지도취급하고있어당시의월간지는과학사에서구입하고있었다. 그런데 1967년경에는인 사동에서고서적을취급하고계셨는데주로미술관계의것이많았다. 그러나의서를취급하신분 이므로김사장에게물어도보고부탁도했다. 1967 년가을은일본에서실험동물학을공부하고봄에돌아와성모병원을사직하고무교동 에서개업을하고있을때였다. 자유업이라시간도있고수입도있어구애받지않고돈을쓸수 있어책을구입하는데도무리가가지않았다. 이러한때였으므로본격적으로의서라기보다는의 학영역의잡지와기록등을모으기시작하였다. 이러한수집은어려서부터나의취미였는지도모 른다. 1) 1946년 12 월문교부의학교육과에서발간하던朝鮮醫事時報를金斗鍾이인수하여朝鮮醫報로개칭해서창간호이자송년호를시작으로제1권은제1호부터제10호까지 8 권을, 제2권은제4 호까지, 제3권은 1949년 5월에제2 호를내놓고계속하지못하고중단한의학전문월간지이다.

1970 년어느날김사장으로부터전화를받고인사동에나가보니전혀생각지도않았던 조 선의보 제2권제1-4 호, 제3권제1-4호등무더기로 8 권을구해놓고있었다. 이렇게해서수년을 두고쫓아다닌보람있어관혼동에서제1권 2, 3호와제6권제2호를구하고확실하지않으나다른 곳에서또제4권 2, 3 호를구했다. 그후제7권제1, 2, 3호도구하고또깨끗하지못한상태였지 만제1권제1 호도손에넣게되어너무도기뻤다. 그래서이때까지모은 18권을우선한권으로 합쳐서 제본을하였다. 그리고는서가에찌르고몇년을무관심하게지냈다. 낱권의 조선의보 를합본한이유는중요하다는것을알아서가아니라이전에 1946년에나 온 조선의보 창간호부터 12 호까지를한권으로묶어제본했던 조선의보 제1권의행방이불명 해져 문이다. 6개월간을찾아다녀모교수방에서제본해두었던덕택에발견하여가져온일이있기때 이 조선의보 를발간한조선의사협회의이름이처음보인기사는 1923년 10월 26일자매 일신보와동아일보에 조선의사협회창립에뜻을가진몇명의의사들이경운동홍제의원( 洪濟醫 院 ) 에모여협의한결과형편상내년(1924) 에창립총회를가지기로연기하였다. 2) 라는보도이다. 다음해동아일보 3) 에 이미알려져있는것과같이조선의사협회의창립총회를 1924년 10월 5일 오후 7 시에시내의명월관에서개최한다고 라는예고보도가나와조선의사협회의창립이연기 되었음을말해준다. 이기사에는주체자의성명, 모이기로한의사의이름이나수또는취지문 등에관해서전혀기록이없어이회의내용을알수없다. 1년이지난 1925년동아일보4) 는 작년가을에창립한조선의사협회는그후이름을조선의 사간친회라개칭하고 23일오후 7시돈의동명월관에서제2회정기총회를개최한다는 데지방의의사들도많이참가하기를바란다더라. 라는예고보도를하였고매일신보5) 에서는 조선의사간친회 2회정기총회 23 일에 라는제목으로동아일보와같은내용이게재되어있을뿐 회의운영이나사업에관한내용은보도되어있지않다. 그러나조선의사협회가아니라조선의사 간친회로발족했음을알수있다. 그후 1927년 9월 22일자동아일보6) 에 제4회조선의사간친회 총회개최 라는예고형식의보도가또나와있다. 이러한 1923년부터 1927년까지의신문에보도된 기사를정리해보면시작은조선의사협회창립이었으나사정에의해조선의사간친회로이름을 바꾸어 1924년창립한이후매해정기총회를개최해오다 1930년다시조선의사협회로발족한 것같다. 1930년 2월 23일자동아일보7) 에 전조선사람의사들이얼마전부터그통일된기관을설치 코져준비중이던바지난 21일시내돈의동명월관본점에서시내각방면의사와지방의사들 70 여명이모여조선의사협회를창립하는동시에아래와같은사건을결의하였다. 라는기사에이 어목적으로조선의학계발전, 조선민중위생사상향상보급, 지식교환급상오친목등을정하고, 역원( 임원) 으로간사장朴啓陽, 간사에尹日善, 劉相奎, 白麟濟, 李容卨, 金明學, 劉日濬, 任明宰, 2) 每日申報제5699호醫師協會는創立을延期하고준비에분망중 1923년 10월 26 일자, 東亞日報제1154 호朝醫創立延期, 1923년 10월 26일자 3) 東亞日報제1498호朝鮮醫師協會 1924년 10월 4 일자. 4) 東亞日報제1848 호醫師協會總會, 1925년 9월 19일자 5) 每日申報제 6383호朝鮮醫師懇親會 2回定期總會 23 日에, 1925년 9월 21일자 6) 東亞日報제2536호朝鮮醫師懇親會 1927년 9월 22 일자. 7) 東亞日報, 제3421 호 : 朝鮮醫師協會, 전조선의사를망라하야 昨日 21 日에創立, 1930년 2월 23 일자. 尹日善 : 朝鮮醫師協會創立回顧, 나의걸어온길-학술원원로회원회고록- pp. 68-70. 에는創立總 會가아니라 發起總會로기록하고있다.

高永穆, 沈浩燮, 金鐸遠, 安鍾書, 申弼浩, 李甲洙, 吳漢泳, 李丙勳 등을선출한내용이게재되어있 다. 그후 3월 6일종로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1930년 2월 21일선출된간사들이모여간사회 를열고일반위생사상보급과의사협회의기관지발행에대해장시간토의한끝에 조선의사협 회의사업으로의학잡지 조선의보 을발간키로한다. 라는 조선의보 발간사업을정하고부서도 결정하였다. 8) 되었다. 즉간사장 박계양 간사서무부유상규, 오한영, 김탁원, 이병훈, 임명재 경리부 안종서, 신필호, 이갑수, 백린제, 고영목 사회부심호섭, 이용설, 유일준, 윤일선, 김명학등부서별역원의명단이발표 이렇게해서조선의사협회가창립되었음을신문기사를통해정리할수있다. 한편 이조선의사협회의창립은 1908년 11월 6일한성에거주하는한국인의사 10여명이 모여회장에김익남, 부회장에안상호, 총무에유병필등을선출하여창립한한국의사연구회가 1910년한국이일본에합병되면서해산되었지만이한국의사연구회가해산된지 20여년만에다시 부활한것이다 라고 1929년경부터의사협회창립을주도했다는윤일선교수의회고담9) 이있다. 이회고담으로미루어보면조선의사간친회의역할이애매해진다. 이부분은시간을두고연구해 야할문제라고본다. 이러한내용으로보아조선의사협회는최초의한국인의사들의유훈을받들어조선의사간 친회를거쳐창립한한국인의사간의친목과학술발전을위한단체로발족하여사업이시작되었 다고이해할수있다. 이렇게해서시작된학회지발간사업을윤일선교수의노력으로 1908년이 래처음한국인의사의연구논문지을겸한한국인의사의소식지 조선의보 창간호가 1930년 11월22 일에발간되었다. 제1권제1 호뒷면에편집인윤일선, 발행인박계양, 발행소세브란스연합 의학전문학교병리학교실내조선의사협회라고기재되어있다. 1984년 10월 13일이기용숙교수의기일이여서 10주기를기념하기위해추모집발간을계 획하고자료를수십하면서전종휘교수의지도를받고있던때에하루는전종휘교수가직접나 의서실로오셔서많은조언을해주셨다. 이때나는무심코결본이많으나제본해놓은 조선의 보 를교수님에게보였더니의외로교수님은놀라시면서중요문헌임을강조해주셨다. 이러한선 생님의고증을받고 조선의보 의완질을계획하게되었다. 방법은일본의의과대학과교환된기 록을찾아보존된 조선의보 를복사해와서결본을채울수밖에없다고생각했다. 나는 1979년경부터 Pierre Fauchard Academy 일본부회, 일본치과의사학회, 일본의사학회등 에동참하여이들과학술적교류가시작되어총회및학술대회에참석하는기회를얻게되었다. 이러한관계로 1 년에한두번은일본에건너가는기회가있어이기회를이용하여 조선의보 에 나타나있는 조선의보 를교환한일본의의과대학도서관을방문하기로하였다. 1984 년봄처음간곳이나가사끼( 長崎 ) 의과대학이였는데오래된책이라서보관서적으로 분류되어창고에들어있다는이유로협조해주지않았다. 그래서 조선의보 창간부터문헌교환 이가장많이기록되어있는구마모도( 熊本 ) 의과대학방문도취소하고귀국하였다. 그해가을에동경에갈일이있어동경의과치과대학도서관을방문했더니그곳에서 8) 東亞日報제3435 호 : 朝鮮醫師協會部署決定, 1930년 3월 9 일자. 9) 尹日善 : 朝鮮醫師協會創立回顧, 나의걸어온길-학술원원로회원회고록- pp. 68-70. 1966년

실험동물학을공부하기위해동경에가있을무렵동경대학의학부도서관에서근무하면서나의 편이를많이봐주던이시가와( 石川 ) 서사를만나게되어또많은도움을받았다. 이곳도역시 조선의보 는보관서적으로되어있어쉽게찾아내지못하였다. 그러나그다음날방문했을때는 이시까와서사가 조선의보 를한뭉치가지고올라왔는데그안에서제4권 1 호, 제5권제1 호, 제 6권제3 호등을골라복사할수있었다. 문제는제4권 4 호, 제5권제2, 4 호, 제6권제1, 4호제7권 제4호등 6권인데이들은포기할생각으로대화를나누고있었는데이시까와서사의권유와알 선으로동경대학의학부도서관을방문하여기대하지않았던제5권제2호와제7권제4호를구하 게되고제4, 5, 6권은제3 호까지만발행된사실도알게되어매우기뻤다. 이제는제6권제1호한 권만이결본인셈이다. 1985 년일본치과의사학회가동경치과대학에서개최되어참석하게되었다. 그때잘알고지 내던하세가와( 長谷川 ) 교수에게의논했더니그분이도서관에문의한즉신축한도서관에아직포 장된상태의꾸러미로있다해서부탁만하고돌아왔다. 그후그꾸러미에서찾아복사했다고하며 제6권제1 호를우편으로보내왔다. 그런데이제6권제1호는앞면의몇장이없는 3쪽부터의상태 였다. 다음해 1986 년게이오( 慶應 ) 대학도서실에도 조선의보 가있다는소식을듣고찾아가 그곳에서조선의사협회간사장李甲洙선생의고劉相奎강사조문과고유상규강사의사진, 이 면의약력, 그리고본문 2면즉 3매분 5면을얻어 1967 년부터시작한 조선의보 모으기를 1986 년에야완전한전질로갖추게되었다. 햇수로 20 년이걸린셈이다. 1978년 10월 3일 Pierre Fauchard Academy(PFA) 일본부회이사와미국본부이사들이동경 에서합동이사회를개최하였다. 이때초대되어이합동이사회에참석하여 Pierre Fauchard Academy 한국회창립을제의하여 1980년 5월 3 일인준식과동시에창립총회를가졌다. 이 PFA 의취지는국제적으로치의학문화의교류와유대, 동업자간의상부상조와공존공영에동참, 자기 연찬으로양질의치과의료봉사, 숭고한인간성으로복지사회에공헌, 삐에르포샤르의사상보급 으로사회번영에공헌등을들고있으나구체적인내용에는전문분야의저작과출판보급도포함 되어있다. 이정신에입각하여 조선의보 의영인본발간을생각해냈다. 10) 여러모로생각한끝이 조선의보 영인본을현대의학사의이승루사장에게맡기기로하고 1987년 5월에있을 P.F.A. 한국회제8 차총회및학술회때배부할수있게끔부탁하였다. 그리고 이사실을전종휘선생님에게알려드렸다. 선생님은매우만족해하시며앞으로보내드릴분의 명단과주소를손수적어보내주셨다. 기박사님 < 전약> 또이번 조선의보 영인본을출간하신일놀라운일이될것입니다. 지시 에따라배본처을생각하여별지에명단을적었음니다마는이것은어데까지나참고로하시고 선생께서결정하시어배본을하여주십시오. 이제는책이나왔으니의협신보편집부(794-2487, 2488) 에전화를걸어기자를불러모든사연과선생의도서실을소개토록하여주시옵기를바랍니 다. 이런사실이교육적이고계몽적이되겠기에의도적으로해보려는것입니다. 안녕히계십시 오. 5. 19 전종휘아룀 10) 조선의보 기창덕소장영인본에는 [ 한정판 200 부중호],[Pierre Fauchard Academy의사업취지에따라 P.F.A. 한국회에서제1 차로 조선의보 영인본을간행한다] 라는간행취지를명시해두었다.

명단 ( 명단에는우편번호와주소까지분명히적혀있음) 1. 김두종, 2. 윤일선, 3. 이용설, 4. 김동익, 5. 조동수, 6. 하두철, 7. 문태준, 8. 의협 신보, 9. 의사신문, 10. 의학신문, 11. 병원회보, 12. 서울특별시의사회, 13.-24. 까지는시, 도 의사회 25. 대한의학도서관협회, 26. 강석영, 27. 정일천, 잔여분이있으면비의학계대학도 서관( 예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등) 에도보내드림이엇덜넌지요! 드디어제본까지마치고아직마르지도않은 조선의보 영인본한권을견본으로이승루 사장이직접들고와서보여주었다. 제1권제1 호안표지에한자로쓴나의서명이만족스러웠다. 그러나이책들을구한장소와날짜가지워져있었다. 물론나만이가질책이아니므로당연하지 만 내가이영인본을낼때까지얼마나고생했는데 라는아직까지의수고가생각나서였다. 나는이날전종휘선생님이주최하는만찬회에초대되어있었다. 장소는신라호텔 12층인 가? 분명하지않으나모처럼의초대이므로선물로지금막가져온 조선의보 영인본을포장도하 지않고들고나섰다. 그리고소중하게선생님께드렸다. 이날이바로사모님의 7순잔치여서가 족들이모두모여있었다. 이자리에김일순교수도참석하고있어가족이아닌사람이또있다 고자위하고지났는데나중에알고보니김일순교수도친척이여서외인은나혼자였음을알았 고그때가지고간최초의 조선의보 영인본을김일순교수가간직하고있음도최근에알았다. 출간된 조선의보 영인본은 P.F.A. 의사업취지에따른것이므로우리회원들에게우선 1권 씩나누어주고전종휘선생님이알려주신명단에의하여배부하였다. 선생님의각시도의사회 에보내라는지시중일부는제외하였다. 그러나비의학도서관인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 서관, 시립중앙도서관, 정신문화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등과각군사관학교도서관에는기증하 였다. 그리고당초의계획대로각의과대학도서실또는도서관에보내고나름대로선정한의사, 치과의사또는알고지내던역사학교수몇분에게도보내드려 200 권을모두분배하였다. 전종휘선생님의요구사항중내가할수없었던것은신문사에연락하는일이었다. 이 조 선의보 영인본을낸일은나로서할수있은일이였고우리선배들이한일의일부나마나의손으 로보존할수있으면하고한일이여서자랑스러운일이못된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 그러나전 종휘선생님의극성스러운제안으로몇몇신문사에서취재하러왔었다. 또일부신문에는분에 넘치는찬사도기재하고있었다. 연세의사학 의부탁이 조선의보 를수집하게된동기와그과정이였기때문에여기서는 조선의사협회의역사는생략한다. 현재알고있는조선의사협회의내력이신문에보도된내용과 협회를주도해온윤일선선생의회고록의내용이다소다르기때문에좀더자세한조사를한다 음기술하기로한다. 이글은나만이알고있던 조선의보 를수집한과정과영인본의발간, 그 리고그영인본의배부처를기억나는대로적으면서그때그때의나의주변이야기와조선의사 협회창립까지의과정을당시의신문과윤일선교수의회고록을참고하여간단히설명하였다. 정 사가아니므로객설로읽어주기바란다. 1997년 11월 19일사직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