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an Cultural Foundation Magazine Vol. 22
CONTENTS 090 속살을보다 004 여는글정민정 066 문화돋보기 Ⅱ 092 [ 시각예술 ] 2016 부산비엔날레... : 그속에사람이있다송만용 012 문화돋보기 Ⅰ 부산의자매도시를찾아가다 7 044 말문을열다 046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양순주 054 부산의해양문화를말하다정원조 058 올댓부산, 사진가문진우의발길이닿지않는부산은없다이광수 068 부산연극, 그성찰과전망김문홍 072 부산의연극김성배김영희이혁우정경환 078 눈을맞추다독자와의교류 096 [ 창작발간 ] 독립출판을바라봄, 바래봄강은경 102 [ 예술기획 ] 문화가있는날, 두가지변수와두개의가능성정상도 106 [ 영화 ] 영도 ( 影島 ) 를소재로한두편의부산다큐멘터리김이석 014 사막에서피어난중동문화의중심두바이김태진 020 일상과예술이공존하는삶을꿈꾸는오클랜드박지선 028 세계공연예술의변방도시, 그무한잠재력과가능성케이프타운장광열 034 새롭고젊은도시의다이내믹한변신티후아나헤라르도고메스미첼 Gerardo Gómez Michel Busan Cultural Foundation Magazine Vol.22 062 문화예술창작공간의역할함수경 086 손을잡다 어둠속의대화, 마음을열다오숙희 부산문화재단 공감그리고 부산문화재단에서발행하고있는계간지 공감그리고 는국 내외문화예술전반을아우르는 ' 정보제공형문화예술잡지 ' 입니다 공감그리고 에실린글과사진은부산문화재단과저작권자양측의동의없이무단으로사용할수없으며, 공감그리고 에실린글은모두개인필자의의견임을밝혀드립니다. 110 부산문화재단은지금 통권 22 호정기간행물 ( 부산광역시바 01159) 등록일 2011.6.23 발행일 2016.11.10 발행처부산문화재단부산광역시남구우암로 84-1( 감만동 ) Tel.051-744-7707 www.bscf.or.kr 편집주간정봉석편집위원구본호, 김종균, 김희진, 동길산, 정민정, 정봉석편집기획부산문화재단기획홍보팀디자인 제작한글그라픽스 Tel. 051-632-7842 002 공감그리고 003
여는글 공감그리고, 글정민정 (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지식공유센터팀장, 본지편집위원 ) 유난히길고뜨거웠던여름이지나갔다. 가을의한가운데에서도무덥게느껴지던낮의기온도이제야물러간듯하다. 조금은낯설게까지느껴졌던지난여름의열기는언제나그랬듯어느새시원한바람으로그리고이제는옷깃을여미는차가운바람이되어곳곳을스며든다. 차가운바람이불어오면여름의기억은온데간데없이사라지면서새로운기운으로모든감각이재배열되기도하지만, 오히려잊고있었던감정이나무언가처음시작하면서품었던각오와의지가날카롭게되살아나기도한다. 다양한분야에서펼쳐지고있는문화예술현장의이야기를담은 속살을보다 에서는지난여름처음으로개최된 2016 부산아트북페어 를바탕으로새롭게성장하고있는부산의독립출판계에대한바람과기대를들어본다. 또한부산시립미술관과고려제강의공장을활용한 F1963 에서개최되고있는부산비엔날레에대한해석과최근다양한문화예술적시도가일어나고있는영도를배경으로한부산감독들의다큐멘터리영화두편의의미그리고매월마지막주수요일마다시행되고있는 문화가있는날 에대한평가와제언을담았다. 문화비평지로창간된 공감그리고 가독자들과더욱가깝게다가가기위해새롭게변모한뒤 7번째인사를건넨다. 새롭게기획방향을설정한뒤열심히달려왔던뜨거운열기를잠시식히며, 그간혹시잊고있었거나미처떠올리지못했던것들을되살펴보는시간이 공감그리고 에도필요했는지모른다. 이번호의기획코너에서는부산의연극을중심으로현재의상황과앞으로의방향에대해서이야기한다. 어려운환경속에서도꾸준히작업을하고, 다양한비평, 아카이빙활동을하고있는현장의이야기와더불어독특한잠재력을가진부산의연극이나아가야할방향성에대한현장의고민을들어본다. 특히 연극은삶과인간에대한이야기 이기때문에 연극은기능과기술의문제가아니라삶과인간에대한진정에서부터출발해야한다. 는김문홍선생님의말씀은연극뿐만아니라다른문화예술활동에서도, 나아가수없이많은비인간적이고비문화적인상황과마주하는일상과현실속에서목적을잃은채무작정달려가지는않았는지스스로뒤돌아보는계기가될것이다. 이외에도부산의문화를다른지역의전문가입장에서바라보는부산문화바라보기와부산의원로예술인과신진예술인간의만남, 활발한활동을펼치는중진예술가를소개하고, 문화예술교육에대해이야기하는 말문을열다 코너도다양한이야기를준비했다. 또한지난 9월초순개최된 배리어프리영화제 사례를통해문화예술분야의배리어프리콘텐츠제작에대한필요성에대해서도생각해볼기회를제공한다. 매번새로운잡지가나올때마다뿌듯한마음도들지만그만큼고민도쌓여간다. 참여해주신필자분들과잡지를기다려주신독자분들께도감사의말씀을전하며, 이번가을호에서전하는다양한이야기들이바쁜일상속에서잊고있었던처음의마음과의지를다시한번떠올리며올한해를잘마무리할수있는작은계기가되기를바라본다. 매호마다 4 개의자매도시를찾아가는긴여행도이제막바지에다다르고있는데, 이번호에서는 티후아나, 오클랜드, 웨스턴케이프주, 두바이로떠난다. 평소에비교적자주접할수있는도시가 아니기에각도시를경험한필자들의이야기는새로운자극이되기도한다. 004 공감그리고 005
020 page 오클랜드아트페스티벌 The Chorus; Oedipus 006 공감그리고 007
078 page 눈을맞추다뮤지컬 < 외로운성 > 008 공감그리고 009
092 page 2016 부산비엔날레 < 손에서손끝으로 > 010 공감그리고 011
공감그리고 자매도시를찾아가다 26 7
조금 오래전 유행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에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을 보며 위쪽은 공 기부터 다르다며 놀려먹던 장면이 있었다. 초고층(超高層). 크고 높은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그 탄생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질긴 것이어서 현재도 그 정도가 결코 수그러들 지 않은 듯하다. 세계 곳곳에 세워진 마천루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 기록을 갈아치우 사막에서 피어난 중동 문화의 중심 두바이 글 사진 김태진 kimylee art gallery 대표, eazel 공동설립자 며 높이 경쟁을 하고 있다. 또한 그럴 때마다 빠짐없이 언급되는 곳이 바로 두바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두바이는 세계 최고, 최초, 최대 등 무적 의 수식어로 다가오는 도시이다.
문화돋보기 Ⅰ 사막에서피어난중동문화의중심두바이 반이슬람적개방정책이밑거름된예술산업 두바이 Dubai 사막의작은무역도시, 중동의홍콩 이되다 내할아버지는낙타를탔고, 나의아버지도낙타를탔지만, 난 벤츠를타고, 내아들은랜드로버를타고, 그의아들도랜드로버를 탈것이다. 하지만내증손자는다시낙타를타게될것이다. 이는 현두바이의국왕이자아랍에미리트의부통령의부친인쉐이크라 시드빈사이드알막툼 (1912-1990) sheikh rashid bin saeed al maktoum 이했던 말이다. 7 개의토후국으로이루어진에미리트연합국중의하나인두바 이는약 4,114 km2와인구 250 만명의작은국가이다. 1966 년까지 만해도척박하고메마른사막의작은무역도시에불과했던두바이 는오일의발견과함께막대한부를축적했다. 하지만타중동의나 라와는다르게쉐이크라시드는오일에의지한국가발전은한시적 이고한계가있다고판단해 ( 두바이는지금으로부터약 10 년, 아부 다비는약 100 년정도후자원고갈이예측된다 ) 주변의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대한예산을들여항만과공항을만들고경제및무역 산업인프라구축에힘을쏟았다. 그후 50 년, 두바이는 중동의홍 콩 이라불리는금융 경제 무역 관광의중심지가되었다. Dubai Abudhabi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Dubai 아랍에미리트를구성하는 7개의토후국중하나인두바이의수도이며아랍에미리트의최대도시이다. 두바이의경제는석유산업으로부터발전했지만, 현재는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서비스등이경제를이끌고있다. 도시의대표적인상징으로더월드, 팜아일랜드같은인공섬과초고층호텔, 세계에서가장큰쇼핑몰, 세계최고층빌딩부르즈할리파가있다. 두바이는중동지역에서가장살기좋은도시로자주선정되고있다. 오일붐이후초기두바이의문화예술관련기반은국가지원이나정책에의한성장이아닌시장경제와주변정세에따른자연스런운결과였다. 어렵지않은비자발급과사업허가그리고세금이없다는천혜의조건을바탕으로쥬메이라 Jumeira 지역과두바이국제무역센터 Dubai International Finance Center 같이과거부촌혹은외국인밀집지역을중심으로오페라갤러리 opera gallery, 그린아트갤러리 Green art gallery, 쇼케이스갤러리 showcase gallery 등의갤러리들이들어서기시작했다. 또한두바이는이슬람을국가의근간으로하는이슬람국가이나국가정책의특성상아랍권에서타문화에가장개방된나라이기도하다. 아마해변에서여성들이비키니를입을수있고술에취한관광객을목격할수있는유일한아랍국가가아닐까싶다. 이러한이유덕분에많은예술가가두바이로이동하였는데, 특히문화적으로폐쇄적인인접아랍국가 ( 이란, 시리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등 ) 의예술가들에게는예술활동의자유를보장받을수있는유일한선택이기도했다. 갤러리들과다양한문화지형의예술가들의유입과더불어과거아랍권문화의중심지 (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카이로 ) 들의정세적혼란과불안은두바이가새로운문화적요충지로자리잡는데일조하였다. 그예로두바이에자리잡은다수이란계갤러리및컬렉터들의이동을들수있다. 두바이의가장오래된갤러리중의하나인써드라인 The Third Line 의대표인서니라흐바르 Sunny Rahbar 는이란계부모를둔두바이태생이며두바이의컬렉터이자후원자인파르하드파르잠 FarhadFarjam 과라민살사리 RaminSalsali 또한이란출신의사업가들이다. 파르잠컬렉션 The Farjam Collection 은 DIFC 에위치한비영 1964 년두바이현재두바이 016 공감그리고 017
문화돋보기 Ⅰ 사막에서피어난중동문화의중심두바이 운타운디자인두바이 Downtown Design Dubai, 알서칼애비뉴갤러 리나이트 Alserkal Avenue Gallery nigh t 를비롯한다양한문화예술행 사들이두바이전역에서벌어진다. 두바이아트시즌의시 작을알리는시카아트페어는두바이의가장오래된사적 지알파히디 Al Fahidi 에서벌어지는행사로 GCC 지역에거 주하는작가들을집중조명한다. 이기간에가장큰이벤 트중하나로아트두바이는매년 3 월에개최된다. 마디 시카아트페어 낫쥬메이라 MadinatJumeira 에서열리는이국제아트페어는약 90 개의다양한갤러리들이참여하는데세가지의프로그 램으로구성되어있다. 컨템포러리섹션, 중동근대작가 들을조명하는근대섹션그리고매년특정한테마나지 역을포커스한마커섹션으로이루어진다. 페어기간중 아브라즈그룹미술상 Abraaj Group Art Prize 의수상자를발표하고 수상자의전시가함께열린다. 아트시즌전체가아닌아트두바이가벌어지는한주 간만행사들을방문하는관광객의수는 2015 년 25,000 명으로집계됐고이기간에미화약 3,500 만불의추가적 두바이아트시즌 인경제이득을가져왔다고한다. 모래뿐인사막에풀한포기나지않던두바이가연간 1,400 만명이상의방문자 를받는중동문화의허브그리고관광도시가되기까지 리개인미술관으로이슬람근 현대개인소장품을전시하고, 살사리프라이빗뮤지엄은 Salsali Private Musuem 최초 Sheikh Mohammed bin 했다. 쉐이크모하메드빈라시드알막툼 Rashid Al Maktoum ( 현아랍에미리트의부통령, 수상이자두 불과 50년이걸렸다. 그거침없는행보와발전이앞으로의두바이가더기대되는이유이다. 로 2011 년오픈한두바이내의개인미술관으로수십 바이의국왕 ) 이설립한이기관은두바이전략적계획 년간수집한작품들을바탕으로한무료기획전시를 (Dubai Strategic Plan 2015) 을통해다양한문화예술 제공한다. 활동후원과기반시설을마련해왔다. 2016 년완공된 50 년의짧은역사로이룬중동문화의허브 두바이오페라하우스를비롯해두바이의건립역사를 조명할에티하드미술관 ethihad museum, 중동및 GCC 작가 한층다져진토대위에두바이가더빠르게중동문 들의후원및전시, 레지던스기회를주는타쉬킬파운 화의요충지로성장하게될수있는배경에는두바이 데이션 tashkeel foundation 등의하드웨어적인요소들과다양 정부의적극적인지원이한몫했다. 2007 년당시경제 한예술지원과행사들같은소프트웨어적인일들을병 공황에처했던두바이는세계금융무역의중심지에서 행해나갔다. 문화관광산업을통해재도약을하려는야심찬계획을 세웠다. 체계적이고국가적인차원에서의문화기반융 두바이아트시즌 Dubai Art Season 이라는명칭아래매년 3 성을위해두바이정부에서는 2008 년에정부산하기관 월부터 4 월까지열리는이기간에는아트두바이 Art Duabi, 인두바이문화예술기관 The Dubai Culture and Arts Authority 을신설 글로벌아트포럼 Global Art forum, 시카아트페어 Sikka Art fair, 다 018 공감그리고 아트두바이 019
Auckland 한국에서 11시간을 살짝 넘는 시간을 날아가면 뉴질랜드 북섬에 자리 잡은 오클랜드에 닿는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듯 위엄과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는 자연경관, 대지를 발로 구르고 주먹 쥔 손으로 온몸을 치며 크게 아우성치는 원시 적이면서도 절도 넘치는 마오리족의 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가 가득한 원피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는 태평양 사람들 등 뉴질랜드를 떠올리는 방식 일상과 예술이 공존하는 삶을 꿈꾸는 오클랜드 글 사진 박지선 독립 프로듀서, 프로듀서그룹 도트 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방식이야말로 그들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문화돋보기 Ⅰ 일상과예술이공존하는삶을꿈꾸는오클랜드 오클랜드 Auckland 1 2 2016 Auckland Arts Festival (photo by Gate Photography) 1.Fire Garden at Auckland Domain 2. The Chorus; Oedipus 르게증가하고있다. 2021 년까지는아시아인구는 회를갖고참가할수있어야한다는것으로, 문화예술 27%, 태평양지역인구는 17%, 마오리 12% 까지증가 의기회를확장하고, 정보전달의소통창구를효과적 할것으로보이며, 현재 40% 에달하는오클랜드의이 으로운영하며, 문화예술로의접근과참가에문제가되 민인구도점점증가하고있다. 오클랜드내사용언어 는장애를제거하는것을주요쟁점으로하고있다. 두 의수가 175 개라는점을떠올린다면 40 만명이안되 번째는투자 Investment 로, 오클랜드의가치를평가하고문 는인구속에얼마나다양한문화가존재하는지를상상 화예술의투자를확대한다는것이다. 세번째는기반시 공존, 다문화도시를지탱하는삶의철학뉴질랜드사람들은모든공식행사의언어를마오리어로시작한다. 이 Auckland 할수있게된다. 오클랜드의문화예술도공존을중심에두고있다. 다양한사람들과문화들이어떻게존중되고통합되며오 설 Infrastructure 로, 문화예술조직과시설의생동감있는네트워크를구축해오클랜드를문화중심지로만들고자하는계획이다. 네번째는장소만들기 Place-making 이다. 는뉴질랜드에서뿐만아니라국제행사에서도마찬가지이다. 초청받은 클랜드만의독특한색을만들어나갈수있을것인가? 이들은오클랜드의다양하고독특한다문화적요소가 연사는늘마오리언어로연설의포문을연다. 물론, 그곳에있는사람 이미도시내에존재하는다양한예술적자산을어떻게 오클랜드의고유한장소성을만들수있다고보며, 공 들의대다수는고개를갸웃하고, 이들의문화를모르는행사주최자라 가치있게드러내고확장할수있을것인가? 공예술을활성화하고, 지역과장소를기반으로하는예 면순간당황하기일쑤이다. 뉴질랜드에는정치적변혁시기인 70, 80 년대마오리족여성들이중심이되어잃어버린언어를찾기위해평화운 삶의질을높이는예술과일상의통합 술활동을통해오클랜드의이야기를만들어내고자한다. 다섯째는정체성 Identity 으로, 마오리문화의차이점을 동을했던역사가있다. 그결과마오리족들은언어와함께그들의문화를지키며뉴질랜드에서평화롭게공존할수있게되었다. 현재영어, 마오리어, 뉴질랜드사인언어가뉴질랜드의공식언어이다. 이들의삶의철학을한단어로말하자면, 공존 일것이다. 인간과자연의공존, 다문화간의서로다른삶들의공존, 장애인과비장애인의공존. 공존의삶! 오클랜드는뉴질랜드에서가장다문화적인도시이다. 2013 년조사에따르면, 유럽인의구성이 55%, 아시아인구는 23% 가넘어서고있다. 태평양지역인구가 14%, 마오리 11% 이며소수민족그룹과인구는빠 오클랜드 뉴질랜드 Auckland 1840 년윌리엄홉슨 (William Hobson) 총독이오클랜드를식민정부의수도로정하고영국초대해군장관과인도총독을지낸오클랜드백작 (Earl of Auckland) 의이름을따서명명했다. 1851 년자치구가되었고, 1865 년웰링턴시로대체되기전까지뉴질랜드의수도였다. 오클랜드위원회 Auckland Council 는공존하는삶의가치를높이고, 오클랜드를세계에서가장살기좋은도시로만들기위해예술과문화를핵심가치로두고있다. 그들의믿음은오클랜드의삶의질을높이기위해서는예술이일상의삶으로통합되어들어와야한다는것이다. Toi Whitiki 는 2010 년부터오클랜드위원회에서 5년간의연구조사를통해만들어낸문화예술전략액션플 Arts and Culture Stragetic Action Plan 이다. 액션플랜에는여섯개의키워드와각각의목적이드러나있다. 첫째는참가 Participation 이다. 모든오클랜드사람들은문화와예술의기 존중하고, 기념하면서오클랜드만의독특한문화정체성을만들어나가자는것이다. 여섯번째는창조경제 Creative economy 이다. 오클랜드는크리에이티브분야에종사하는사람들의비율이뉴질랜드타지역과비교에매우높은편으로크리에이티브산업의 49% 가오클랜드에몰려있다. 현재 900 여개의영역에서 18,000 여명이고용되어있다. 오클랜드위원회는크리에이티브산업관련교육을확장하고, 전문가들간의협업을통한오클랜드의경제향상을액션플랜의주요목적중하나로삼고있다. 오클랜드위원회의문화예술전략액션 022 공감그리고 023
문화돋보기 Ⅰ 일상과예술이공존하는삶을꿈꾸는오클랜드 플랜은 2010 년동안 5 년간의리서치를통해만들어 낸핵심계획들이며, 2015 년부터위의여섯개의핵심 키워드와목표를다른문화예술기관과공유하고오클 랜드를문화예술의대표적인도시로만들기위한노력 을시작했다. 오클랜드의가장대표적인예술행사인오클랜드아 트페스티벌 Auckland Arts Festival 의비전과프로그램또한위의 액션플랜의범주와크게다르지않다. 매년 3월뜨거운여름에열리는오클랜드아트페스티벌은 2003 년 1 오클랜드시의회에의해다시부활된후올 3 월 8 번째 축제를마쳤다. 오클랜드아트페스티벌은연극, 무용, 서커스, 재즈, 클래식음악, 록밴드, 시각예술등전 예술분야를망라하는종합예술축제로, 대표적인국제 예술축제를지향하며, 예술을통해오클랜드의사회, 문화, 경제적행복을이끌어나가는것을축제의비전 으로삼고있다. 2016 년 3 월 2 일부터 20 일까지 19 일 동안열린축제에는 41 개국에서해외아티스트 200 여 명을포함해 1,160 여명의아티스트가참가했다. 다양한문화의경험과예술적지평을넓혀주는축제 65억이라는축제의예산만보더라도축제의규모를가히짐작할수있다. 올해까지축제예술감독을맡은칼라반존 Carla Van Zon 은축제의핵심주제를문화적다양성 Diversity 에두고, 모두가즐길수있는축제, 모두가접근할수있는축제를지향한다고한다. 175 개의언어 가사용되고아시아와소수민족의인구가 48% 에달하는환경에서그녀는늘자신의관객을꼼꼼히살피며그들에게예술적경험을제공할수있도록프로그래밍의다양성에주목하는듯하다. 예술축제의역할에대해서예술감독은 축제는예술가와관객사이의퍼 실리테이터역할을하며, 동시에모험을감수할수있어야한다. 고말한적이있다. 즉, 관객이누구인가를정확히알아야하며, 때로는기존의아트센터가선택하지않는것에대한과감한선택도해야한다는말이다. 예를들어, 오클랜드의아트센터에서는마오리, 남태평양지역의작품들을프로그래밍하는경우가없 Auckland Arts Festival( 사진 www.aucklandfestival.co.nz) 을했다. 칼라반존 Carla Van Zon 이한국을찾을때마다늘오클랜드의한국이민자들을언급하며, 그들을축제의관객으로초대하는동시에작품을통해다른문화에대한이해를높이고삶을풍성하게할수있다는말을했던기억이떠오른다. 다. 또한실험적이고난해한작품에대해서도쉽게문 축제에는모두가즐길수있는무료행사가많다. 을열지않는다는것이다. 축제야말로관객들에게늘 2016 년에도약 200 여편의무료행사에 93,000 여명 익숙한것들이아닌새로운작품들을소개함으로그들 이참가했다고한다. 가장대표적인프로그램은역시 의예술적지평을넓혀주는역할을해야함을축제의 White Night 으로오클랜드페스티벌에서가장늦은 중요한역할로삼고있는것이다. 밤까지즐길수있는매력적인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축제는올해 4 편의세계초연과 15 편의뉴질랜드초 3 월 12 일저녁 6 시부터자정까지열렸다. 오클랜드뮤 연공연을올렸으며, 올해프로그램에는특히한국작 지엄, 아트갤러리, 뉴질랜드해양박물관, 시도서관 품으로 LG 아트센터제작음악극 < 더코러스 ; 오이디 등지역의모든문화예술기관, 광장, 공원등 100 여곳 푸스 > 와전통음악단체인노름마치의작품을초청해 의장소와연계한하룻밤갤러리프로그램으로공연, 한국의예술작품과오클랜드관객들사이의다리역할 음악, 전시, 영화, 디지털아트등 300 명이상의아티 024 공감그리고 025
문화돋보기 Ⅰ 일상과예술이공존하는삶을꿈꾸는오클랜드 스트들과 25,000 명이상의관람객들이참가하였다. 무료로운영되는 White Night 버스에올라타면자정까지갤러리순회를하며, 다양한예술적경험을할수있어모든연령대의사람들에게인기가높다. 가족의날프로그램도 5,000 여명이참가하는대규모무료행사인데, 시내중심에자리잡고있는아오테아광장 AOTEA SQUARE 에가족중심의워크숍과공연들이펼쳐진다. 아오테아광장은축제기간에는축제클럽으로탈바꿈된다. 자유롭게놓인빈백들과테이블과의자들, 작은무대, 임시카페와바등이설치되어있으며, 한편에는스피겔텐트 Spiegeltent 가세워져밤에는재즈, 록등음악공연이이어진다. 올해는오클랜드의대표적인컨템퍼러리미술작가들이수백명의관람객들이보는가운데, 축제광장에서페인팅작업을하며, 시민들과예술적과정을공유하는시간을가졌다고한다. 축제의행정감독데이비드인스 David Inns 는축제중페스티벌클럽이야말로돈을버는공간이아니라오히려축제에서비용을들여평소공연과친밀하지않은사람들에게축제를즐길수있는장이되어야한다고말한바있다. 아오테아광장이야말로그들이지향하는축제의정신이담겨있는장소인것이다. 리에이티브뉴질랜드는중국,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을주요국가로설정하고, 뉴질랜드아티스트들의아시아국가들과의공동제작, 국제행사참가등다양한협력을지원한다. 또한아시아와뉴질랜드아티스트, 단체, 프로듀서, 큐레이터등의장기적인협력지원을하는 Asia New Zealand Artform Exchange 와 3개월간레지던시를지원하는 Artist Residencies, 뉴질랜드아티스트와아시아포커스 6개국아티스트와의협력프로젝트를지원하는 (2017 년 7월내프리젠팅되는프로젝트지원 ) Asia New Zealand Co-commissioning Fund 도있다. 이중 Artist Residencies 프로그램은뉴질랜드예술가들의아시아내레지던시뿐만아니라아시아예술가들의뉴질랜드내레지던시도포함하고있으며, 아시아뉴질랜드파운데이션 Asia New Zealand Foundation 에서지원한다. 조금은낯선여름을경험하고싶다면오클랜드의 3월도좋을듯싶다. 2년마다열리던오클랜드아트페스티벌이이제는매해열리고있다. 2017 년은 3월 8일부터 26일이다. 일상과예술이공존하는삶을꿈꾸는오클랜드로. 뉴질랜드의문화도시오클랜드, 협력의손을뻗다모두가접근할수있는축제를지향하는오클랜드아트페스티벌은 2015 년부터시각 청각장애인들을위한프로그램을운영하고있다. 2016 년에는 <Duck, Death and the Tulip>, <Te Po> 두작품에대해시각장애인들을위한오디오설명을제공했으며, <Te Po>, <Not in our Neighbourhood> 두작품에대해서는청각장애인들을위해무대위사인언어를제공했으며, 축제의모든공연장의 80% 에휠체어가들어갈수있는시스템을마련했다. 작년오클랜드공연장에서끝까지비어있던제일앞줄에마지막으로안내견과함께입장하는시각장애인들의모습은그들의공존의삶을다시한번느끼게해준시간이었다. 오클랜드사람들은자연과사람의공존, 장애인과비장애인의공존, 인간과동물의공존, 다문화간의공존의삶속에이제일상과예술의공존을꿈꾸고있다. 그리고밖의세상에도협력의손을뻗친다. 그들의아시아와의적극적인협력의손짓은 2015 년부터이다. 뉴질랜드의문화수도라고할수있는오클랜드에본부를두고있는크 026 공감그리고 027
공연예술 부문에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아직은 변방이다. 세계 공연예술 시장에 서 아프리카의 춤과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공연예술 시장의 확장이란 측면에서 보면 향후 아프리카는 중남미 국가들과 함께 그 성장 가능 성이 적지 않은 곳이다. 세계 공연예술의 변방도시, 그 무한 잠재력과 가능성 케이프타운 글 사진 장광열 무용평론가,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겸임교수
문화돋보기 Ⅰ 세계공연예술의변방도시, 그무한잠재력과가능성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Cape Town 무용으로발돋움하는아프리카문화의희망 아프리카의여러나라중에서도남아프리카공화국은가장 선진화되어있다고알려져있다. 수도인요하네스버그와케이 프타운은마치유럽을연상할만큼도시가비교적잘정비되 어있고치안도안전한편이다. 세계적으로유명한테이블마 운틴과희망봉이가까운곳에있는웨스턴케이프주의케이프 타운 Cape Town 은남아프리카공화국여행자에게가장인기있는 여행지이기도하다. 내가이두도시를방문한것은 2 년전발 레축제와국제발레콩쿠르취재를위해서였다. 케이프타운에서는 2 년에한번씩남아프리카국제발레콩 쿠르 South African International Ballet Competition 가열린다. 올해로이콩쿠르는 7회째를맞았으며, 이콩쿠르개최로케이프타운은무용을통한문화도시로서의이미지를조금씩쌓아가고있다. 오늘날의국제발레콩쿠르는단순히댄서들의기량을겨루는경연대회이상의그무엇을갖고있다. 단순한경연이아닌교류를전제로한다양한프로그래밍은도시나국가의홍보수단혹은전략적인문화정책의하나로활용된다. 예선이나준결승탈 Cape Town 웨스턴케이프주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 Cape Town 케이프타운시는남아프리카공화국의웨스턴케이프주에있는행정구로케이프타운전체를포함하고있다. 케이프타운은남아프리카공화국의입법수도이며수에즈운하가개통되기전에는유럽에서아시아로가는항로의주요거점이었다. 석유정제, 화학제품과비료생산, 시멘트생산, 자동차조립이주된산업이다. 가장중요한산업이선박수리이며, 세계최대규모의건선거가있다. 락자들에게오히려유능한발레교사들의클래스를제공하는스위스로잔국제발레콩쿠르처럼유난히교육적인기능을강화해다른콩쿠르와차별화하기도하고, 유스아메리카뉴욕발레콩쿠르처럼 700 여명의댄서가경연에참여하는매머드콩쿠르로자국의힘을과시하기도한다. 제6회 SAIBC South African International Ballet Competition 은아프리카와미국, 유럽, 중남미, 아시아등지에서온 68명의댄서가참가해 2월 18일부터 22일까지케이프타운의 Artscape 극장에서개최되었다. 특히 2014 콩쿠르에는중국과한국, 쿠바의댄서들이대거입상했다. 중국은금 은 동을합쳐모두 6개의메달을, 한국은 4개그리고쿠바는각각 2개의메달을땄다. 2016 년올해제7회 SAIBC 는 2월 23일부터본격적으로콩쿠르가시작되었고, 5일동안에걸쳐남아프리카, 미국, 쿠바, 한국, 라트비아, 러시아, 이탈리아, 멕시코, 아제르바이잔에서온참가자들이경연을벌였다. 올해참가인원은다른국제발레콩쿠르의평균참가자숫자보다다소 적었다고한다. 참가자들에따르면작년부터남아공입국시미성년의경우보호자확인절차와공증제도가강화되었는데, 아직홍보가덜되어많은혼선을빚고있다는것이다. 남아공에도착했는데공증서류가없어돌아간팀이몇몇있었고, 서류절차가까다로워진것도콩쿠르의참가인원감소를가져온이유가되었다는것이다. 아프리카발레발전의동력이되다케이프타운의남아프리카국제발레콩쿠르는 Scholar(dancers aged 12 to 15 years), Junior (16 to 20 years), Senior (21 to 26 years) 등 3개부문으로나누어시행되며, 시상은주니어와시니어, 클래식발레와컨템포러리발레그리고남녀무용수로나누어이루어진다. 총상금은 370,000 랜드 ( 약 4천만원 ). 무대리허설까지친다면아주힘든일정의콩쿠르임이분명하다. 콩쿠르의기간이비교적긴만큼참가자들에게는체력관리를포함해하루하루의컨디션을잘유지하는것이필요한만큼아주섬세한콩쿠르였다. 참가자들은비록힘은들겠남아프리카국제발레콩쿠르 030 공감그리고 031
문화돋보기 Ⅰ 세계공연예술의변방도시, 그무한잠재력과가능성케이프타운 지만계속무대에설수있어서입상여부를떠나지속 를비롯한두도시에서쿠바와중국, 그리고남아프리 적인훈련이가능하다는점에서자신들의춤기량향상 카의청소년발레무용수들과함께공연을펼친것처럼 을위한또다른기회가되고있었다. 남아프리카의주요도시를연계한청소년들의정례적 인연합공연은발레예술을통한국제교류의장으로서 남아프리카국제발레콩쿠르는 Dirk Badenhorst 가 온전히자리매김되고있다. 2008 년에처음시작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입법 부수도인케이프타운에서 2년에한번씩열린다. 2014 년에도콩쿠르참가자들의수준이만만치않았었는데올해 2016 년콩쿠르는심사위원들의면면이나참가자들의기량등에서예년에비해더욱성장을기록한것으로평가받았다고전해진다. 남아프리카국제발레콩쿠르는국제콩쿠르개최를통해아프리카국가의발레발전을위한동력을제공하겠다는의지와함께 Youth 발레단들의공연을함께편성, 세계여러나라의청소년발레댄서들을통한국제교류를실현하겠다는주최측의야심찬의지도읽을수있었다. 2014 년에는케이프타운에서의콩쿠르가끝나는마지막날에수상자들의갈라공연을편성하고이후에는요하네스버그로장소를옮겨청소년들이참여하는별도의발레공연을편성했다. 올해는남아프리카공화국의행정수도인프리토리아에서 2회공연과림포포에서한차례공연이이어졌다. 이같은시도는청소년들의문화예술교류를통해남아프리카공화국의국가이미지를높이고친밀감을갖도록하겠다는문화정책의한단면을보여주는것이다. 2014 년과 2016 년우리나라의청소년발레전공생들로이루어진코리아유스발레단이케이프타운에이어요하네스버그와프리토리아부산국제무용제초청 CAPE DANCE COMPANY 케이프타운공연예술의메카, ARTscape 케이프타운을대표하는공연장은 ARTscape 이다. 우리나라의예술의전당과같은곳으로 CIVIC CEN- TER 와맞닿아있다. 남아프리카발레콩쿠르와수상자들의공연역시이공연장에서열렸다. 음악, 연극, 무용공연이주로열리는복합공연장의성격을띤이곳은케이프타운공연예술의메카이기도하다. 케이프타운을근거지로활동하는두개의무용단체가부산국제무용제에초청되어내한공연을갖기도했다. 케이프타운을대표하는현대무용단인 Cape Dance Company 는 2014 년부산국제무용제에초청되어부산문화화관중극장에서 <Convivencia> 와 <When Dawn Comes> 두작품을공연했었다. 라벨의음악 볼레로 에맞춰 10명의무용수들이군무와현대발레작품을선보인이단체는당시아프리카무용수들특유의유연성이정통발레테크닉과다채로운현대무용테크닉과접목된작품으로주목을끌었다. 또다른단체인 Spanish Dance Theatre 는스페인의정통플라멩코와컨템포러리플라멩코모두를공연하는단체로케이프타운과요하네스버그등남아프리카공화국과인근아프리카여러나라에서다양한공연활 동을펼친다. 오랜경험을가진두명의댄서들이두개의컨템포러리탱고작품을공연해관객들의뜨거운박수를받았다. 아프리카한중심에서세상의문화를만나다 세계 5대관광지로꼽히는케이프타운은입법부의수도이자요하네스버그에이은대도시답게도시의역사를말해주는건축물과박물관등근대적인건축물과 19세기건축물을개조한현대적인건물들이공존해있다. 컴퍼니가든에는남아프리카문화사박물관인 Slave Lodge 와남아프리카박물관 SA Museum SA National Galley, 국립미술관, 세인트조지성당 St. George Cathedral 등이위치해문화예술의중심지를이루고있다. 남아프리카문화사박물관 1층에는고대이집트와그리스로마시대의전시물, 중국, 일본등아시아여러나라의도자기와가구유리제품과 17~19 세기케이프타운에서사용되었던생활용품등을전시하고있다. 2층에는도자기와은제품, 무기, 드레스, 완구, 악기등도함께전시되어있다. 남아프리카박물관은 1825 년에문을연아프리카에서가장규모가큰박물관이다. 바위에그려진 2만년 남아프리카국립미술관 등의회화와조각작품, 18세기의인물초상화부터아방가르드작품까지다양한작품들이전시되어있다이밖에케이프타운에는또한이곳에거주하는이슬람교도의생활, 역사등을전시한보카프박물관 Bo-Kapp Museum, 미술관인미하엘리스아트컬렉션 Michaelis Art Collection, 유대박물관 Jewish Museum, 18세기부자들의생활을엿볼 Koopmans Wet House 수있는저택인코프만스다웨트하우스등이색적인미술관과박물관도있다. 보카프 ( 말레이 ) 박물관은오래된건물이많이남아있어중요문화재로보호되는말레이사람들의거주구역에있다. 18세기에지은박물관으로케이프타운에서가장오래된건물중하나이다. 19세기의전형적인말레이계이슬람교도의생활이나문화를소개하고있으며마차나짐차등도전시하고있다. 유대박물관은남아프리카에서가장오래된시나고그 Synagogue, ( 유대교사원 ) 를박물관으로만든것으로유대교역사와의식상중요한물건들이보존되어있다. 전그림과코이신족 ( 무시맨 ) 의주거모형, 도구장식 품, Kydenburg Heads 라불리는 10 세기무렵진흙을 구워만든마스크, 300 만년전의화석과길이 20 미터 의고래골격등이주요전시물이며, 남아프리카의생 물과박제그리고광물등도전시되어있다. 그런가하면남아프리카국립미술관에는남아프리 카와인근여러나라를비롯해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032 공감그리고 ARTscape 공연장 033
문화돋보기 Ⅰ 자매도시를찾아가다 티후아나가국경지대라는지정학적사정으로사람들과물자가드나드는교류의거점이되었듯이, 부산또한바다를낀항구도시라는지정학적이유로교류의거점이되었다는점은두도시의큰공통점이다. 부산시의구호가 다이내믹부산 이라는걸생각해보면티후아나또한지난 25년간 2배에가까운인구성장과도시화된모습으로부산과같이다이내믹한모습을보여주고있다. 이런면에서티후아나와부산은모두늘새롭고, 젊고, 역동적인도시들이다.
문화돋보기 Ⅰ 새롭고젊은도시의다이내믹한변신티후아나 티후아나 Tijuana Tijuana Cultural Center 씬시티에서역동적도시로의다이내믹한변신 16세기유럽정복자들이지금의캘리포니아지역을식민지로만들고사제들을데려와티후아나에종교건물을짓고선교활동을하였다. 1889 년공식적으로도시로세워진티후아나의역사는 127 년이되는셈이라, 5세기가넘는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모렐리아등멕시코의다른도시들이나혹은몇천년의서울이나부산보다그역사가비교적짧다. 오늘날멕시코에서다섯번째로인구가많은티후아나는도시가건설되고 1920 년대까지크게성장하지못했는데, 이런상황은미국이 1920 년부터 1933 년까지시행한금주법인볼스테드법으로바뀌게된다. 산디에고와국경을마주한티후아나는알코올이합법이었기에알코올소비를위해사람들이넘어오게되면서각종유흥서비스사업분야가번창하게되었다. 주로술집, 식당, 카바레, 카지노, 경마장과매춘업소등이들어서면서도시의경제는급속한성장세를타게되었는데, 이때문에티후아나는일탈과타락의온상이라는오명을쓰게되었다. Tijuana 티후아나 멕시코 Tijuana 멕시코바하칼리포르니아주의최대도시이다. 또한라틴아메리카의최북단도시로 멕시코의골목 또는 라틴아메리카의골목 의이름으로도알려져있다. 샌디에이고와맞닿아있어미국에서멕시코로들어가는교통의중심지인티후아나는멕시코의장단점이혼합된곳으로알려져있다. 경제적번영과유흥산업, 상업의중심지로티후아나에가면멕시코의화려한시장과문화를맛보기에충분하다. 미국의금주법으로인해일었던붐은 40년대에와서국내외에서이주민들이유입되었고, 이때문에티후사그라지긴하였으나, 여전히많은관광객이산디에아나는멕시코각지에서모인이들로북적이게되었다. 고와캘리포니아를통해티후아나로왔다. 때문에유이런정황들은서로다른곳에서모인이들의다양한흥분야뿐아니라각종제조품과서비스가늘어나기시표현과삶의양식이반영되어티후아나의문화가다양작했다. 이렇게미국과맞댄국경으로워낙많은사람이해지고풍성해지는결과를가져오도록하였다. 더욱이넘어와, 한때티후아나는세상에서제일방문객이많멕시코와미국의양자관계가밀접해지면서티후아나은국경이라불리기도했다. 사람과물자의거대한이의문화에미국적요소가가미되게되었다. 동은 70년대멕시코와미국국경사이에서생겨난마킬라도라산업 1) 으로인해급격한가속도를받게된다. 현이런맥락에서티후아나문화센터프로젝트 (Centro 재멕시코마킬라도라산업단지에는현대와삼성등한 Cultural Tijuana, CECUT)- 이후 CECUT- 가탄생하국회사도진출해있다. 티후아나가국경지대라는지정게되었다. 이센터에는극장, 박물관, 전시회, 영화관, 문학축제와영화축제, 미술비엔날레등여러가지학적사정으로사람들과물자가드나드는교류의거점문화활동들이벌어진다. 1982 년에출범한이센터는이되었듯이, 부산또한바다를낀항구도시라는그지당시로는상당한미래파건축양식으로지어졌으며, 당정학적이유로교류의거점이되었다는점은두도시시지어진천체모양을딴영화관은멕시코에서여전히의큰공통점이다. 부산시의구호가 다이나믹부산 이유일한건축양식을자랑하는영화관이다. 그때부터성라는걸생각해보면내가거의평생살았던티후아나장하기시작하여그이름이시사하듯문화의중심지로또한지난 25년간 2배에가까운인구성장과도시화율자리잡은이곳은티후아나지역의문화거점일뿐아니을보이며부산과같이다이나믹한모습을보여주었다. 라각종국제적차원의많은이벤트를개최하고있다. 이를테면, 공연장에서는매우고전적인무용가들을 CECUT, 티후아나의문화거점초대하여공연을선보이는데이들중에는세계적으로도시가급성장하고발전하면서일자리가늘어나자유명한러시아의볼쇼이무용단원들도포함되어있다. 1) 마킬라도라 (Maquiladora) 는일반적으로북부접경지대에위치하고수출을원칙으로하는멕시코의조립가공업체를일컫는다. [ 네이버지식백과 ] 마킬라도라 ( 세계지명사전중남미편 : 인문지명, ( 주 ) 푸른길 ) 036 공감그리고 037
문화돋보기 Ⅰ 새롭고젊은도시의다이내믹한변신티후아나 활동이라하면늘수도에서만일어나게마련이었고, 거나, 해수욕을하거나, 배를타고바다위를누비거 아직도그런경향이있다. 그래서필자의입장에서는 나, 낚시를하는등의활동은거의하지않는다. 하지 처음부산에왔을때부산국제영화제가지방에서개최 만그거대하고아름답고또한편으로매우위험한존 됨에도불구하고이렇게규모가큰행사인것이의아했 재인바다가곁에있다는자체만으로도티후아나인이 다. 마찬가지로미래파스타일의건축양식을자랑하는 되기에는충분하다. 영화의전당이나, 아시아에서는가장중요한국제영화 언어의장벽에도불구하고티후아나인으로부산이 제중의하나라는사실등이티후아나의 CECUT 와그 고향처럼느껴지는점들은숱하게나열할수있다. 멕 곳에서일어나는각종문화활동, 티후아나의문화운 시코와한국두반도국가들모두바다와운명을공유하 동과여러작가와예술가들의노고를생각나게했다. 고있는데, 티후아나는멕시코의북서쪽, 부산은한국 티후아나에서는 CECUT 뿐만아니라다른문화활동 의동남쪽으로두도시모두나라의끝에위치해있고 의기회들이많다. 소극장들이여러개있는데이중다 지금까지언급했듯둘다바다를끼고있다. 한편티후 Tijuana Cultural Center 수는독립소극장의형태로운영되고있다. 이러한소극장에가면지역연극작가와연극배우들이선보이는 아나는미국과닿아있고, 부산은일본과마주하고있어두도시모두국가간역사적갈등을몸소체험해야 현대무용또한 1999 년부터 수송중인몸 Cuerpos en Tránsito 라는국제무용경연대회가개최되고있다. 대회이름의 수송 이암시하는국경선도시의역동성이춤에도그춤을실현하는몸에서도감지된다. 이장소에서 1년내내연극, 클래식음악, 대중음악콘서트나뮤지컬, 아동극등다채로운공연을감상할수있다. 필자에게는마르셀마르소라는프랑스팬터마임무용수의공연을본것이 CECUT 에서의잊을수없는추억이다. CECUT 의또다른매우중요한측면은대중을대상으로한예술교육인데, 이런과정을통해사람들이비용을들이지않고도리골레토, 카르멘등의유명한공연들을노천콘서트형식으로즐길수있다. 대중을위해공연을하는이들중 CECUT 에서 1990 년에결성한바하캘리포니아오케스트라가단연돋보이는데이들은공연과함께아동 청소년을대상으로강좌를열어클래식악기수업도실시한다. 데, 필자가본것중에기억에남는전시가있다. 유럽에서과거에종교재판을할때사용하던고문기계들을전시했던행사였는데, 그중모든관람객들의입을벌어지게한것은철의처녀 Doncella de hierro, 영어로 iron maiden 라불리는철로된고문기계였다. 기계위에는철로제작된여성의얼굴이붙어있고, 아래는성인한사람이들어가면사방에공간이그리남지않을만큼의빈공간이길게늘어진종모양의몸통이있고앞쪽에는사람이들어갈수있게여닫이문으로되어있다. 문제는안쪽에뚫려있는공간에철로된크나큰가시들이박혀있는데이는사람이들어가면가슴팍과등을뚫고도남을만큼튼튼하고큰가시들이다. 이철의처녀는그대로종교재판희생자의관이된다. CECUT 은이와더불어예술영화상영관이있는데때문에상업영화를찾는일반대중들틈에서색다른취향을가진관객들의욕구를충족시켜준다. 이곳에서는멕시코와라틴아메리카지역에서제작된가장완성도높은영화들뿐아 최신작들을감상할수있다. 또한유명가수들이나밴드들이공연을펼치는대중음악콘서트장은더욱쉽게찾아볼수있다. 또한과학이나역사박물관이있어서아이들에게큰교육효과를누리고있다. 변화와역동성, 부산과티후아나를잇는축티후아나는멕시코북서쪽의국경도시이며해변을낀도시이다. 그래서인지해안도시부산은바다건너멀리있는내고향을생각나게한다. 티후아나는태평양연안이라바닷물이매우차고해수욕하기에적합하지않아서사람들이해변을거닐거나, 일광욕을즐기 Domo Imax 했다는것또한공통점이다. 두도시모두변화와역동성, 즉다이내믹함과함께늘발전되어왔다. 이는두도시의사람들에서도드러난다. 예전에티후아나인들은 북쪽의야만인들 이라고불리던때가있었다. 오늘날도북쪽사람들은예의를갖추어말하기보다직설적이고단도직입적으로말하는성향이있어상스럽다는얘기를듣는다. 부산사람들또한서울사람들에비해무뚝뚝하고직설적이라는얘기를듣는다. 우리는이런우리자신이싫지않고, 이것이우리의정체성이다. 그래서북쪽지방티후아나사람인내가남쪽지방부산에서이렇게고향처럼잘지내나보다. CECUT 의또다른매력은갤러리와전시회관이다. 니라매년영화제를개최함으로써전세계에서제작되 갤러리는티후아나의역사와관련된전시품들을상시 는예술성높은최신작들을접할수있다. 배치해두는반면전시회관들은전시테마를늘바꿔가 며운영한다. 회화와조각의작품종류가달라지거나 이렇게지방도시가문화적으로성장하는것은멕시 고전과현대작품등시기별로달라지기도한다. 현대 코와같이중앙집권적국가에서는쉽게일어날수있 작품으로는멀티미디어가첨가된설치작품들도있는 는일이아니다. 멕시코에서가치있는예술이나문화 038 공감그리고 039
문화돋보기 Ⅰ 새롭고젊은도시의다이내믹한변신티후아나 Crónica de un tijuanense en Busan por Gerardo Gómez Michel Tijuana Soy un mexicano nacido en Tijuana, una ciudad fronteriza en el extremo noroeste de México que descansa sobre la costa del océano pacífico y tuve la suerte, luego de pasar dos años en Seúl, de llegar a Busan hace casi cuatro años para trabajar y vivir en esta ciudad que con todas las diferencias que existen, me permite en muchos sentidos sentirme como en Tijuana, mi tierra al otro lado del mar. En esta época de migraciones globales, de personas que pasan de un continente a otro por trabajo, por estudios, por supervivencia e incluso algunos por amor, la adaptación a un nuevo entorno, a una nueva sociedad, a una nueva lengua no siempre es fácil, como no lo es la vida en general, pero siempre hay aspectos, detalles de la vida que uno comienza a construir en una nueva ciudad que se entrelazan con los recuerdos de nuestra ciudad natal, con los sabores y colores que dejamos atrás, con la gente y el paisaje que nos ha sido familiar toda la vida, es decir, con todo aquello que nos da sentido e identidad. A continuación quiero contar un poco sobre Tijuana, su historia, sus características regionales, su gente, su comida, sus bondades y sus conflictos, todo eso que recuerdo y que me hace ser tijuanense, y al mismo tiempo, comentaré de qué manera he podido conectarme con Busan, de qué manera he logrado tejer mi identidad y mi memoria de Tijuana con esta ciudad al otro lado del pacífico que me ha recibido y que yo, de alguna manera, he adoptado como mi segunda ciudad. Un poco de historia A pesar de tener una historia más larga si pensamos en las comunidades indígenas, como los kumiai y cucapás, que habitaron la región antes de la llegada de los europeos, en las misiones que fundaron los religiosos en la zona de California durante la colonia, en las rancherías que hubo luego de la independencia de México, en realidad Tijuana como ciudad es muy joven. Fue fundada oficialmente en 1889, es decir, tiene 127 años de edad, muy poco a comparación de otras urbes del país como la Ciudad de México, Guadalajara, Morelia, entre otras, que fueron fundadas hace 5 siglos o más (ni qué decir de la antigüedad de una ciudad como Busan, seguramente milenaria en la historia de la península coreana). En este sentido, son Tijuana y Busan extremos opuestos, pero veremos más adelante que en muchos otros sentidos no lo son. Pero volviendo un poco al relato de Tijuana hay que mencionar ciertas etapas fundamentales de su historia y lo que esto significó en su desarrollo hasta nuestros días como la quinta ciudad más poblada de todo México. Desde su fundación hasta los años 20, Tijuana creció de manera modesta, sin embargo, un acontecimiento externo provocó que esta situación cambiara creando el primer boom de la ciudad. Me refiero a la implantación de la Ley Volstead en los Estados Unidos de 1920 a 1933, la llamada ley seca que prohibía el comercio y consumo de alcohol. Siendo Tijuana frontera de San Diego y muy cercana de Los Ángeles, en el estado de California, poco tiempo pasó para que se estableciera de este lado de la frontera, donde el alcohol era legal, un desarrollo de la industria de los servicios, claro está, principalmente bares, restaurantes, cabarets, casinos, hipódromo e inevitablemente también casas de prostitución. Al mismo tiempo que la ciudad crecía a un ritmo acelerado, igualmente crecía su fama como una de las sin city del mundo, lo que se convertiría en la leyenda negra de Tijuana: una ciudad de vicio y perdición desde la mirada tanto de mexicanos como de estadounidenses. Esta circunstancia propició que cruzaran la frontera para visitar la ciudad multitudes que querían divertirse, beber, apostar en los casinos, y junto a ellos llegaban también grandes personalidades de Hollywood, del deporte, de la música e incluso de la mafia de Estados Unidos, como el célebre Al Capone. Esta etapa marcó a la ciudad y su percepción en México y en el mundo durante muchos años con un matiz negativo Desarrollo contemporáneo A pesar de que a partir de la década de los 40 se había extinguido el boom provocado por la ley seca, la ciudad ya nunca dejó de ser un atractivo para los turistas que llegaban de muchas partes del mundo vía San Diego, California. Ofreciendo cada vez más productos y servicios, además de los relacionados con los vicios que se mantuvieron, Tijuana continuaba atrayendo tanta gente que se ha llegado a considerar como la frontera más visitada del mundo por la cantidad de cruces entre los dos países. Actualmente alrededor de 35 millones de personas al año cruzan en ambos sentidos la frontera en la región que abarca San Diego y Tijuana, casi 100,000 personas cada día! Esta tremenda actividad humana y comercial tuvo su gran impulso en la década de los 70 debido al nacimiento y gran desarrollo que tuvo la industria maquiladora en las regiones fronterizas entre México y Estados Unidos, cabe mencionar que de las fábricas maquiladoras en Tijuana hoy día, las plantas que instalaron Hyundai y Samsung son de las más grandes del país. Esta es otra de las características que siempre me hacen pensar en Tijuana y Busan como ciudades paralelas, ambas le deben su acelerado desarrollo moderno a su ventajosa posición dentro del mapa de la globalización, su cualidad como puertos (Tijuana por tierra y Busan por mar) excepcionales de intercambio de mercancías y servicios, y como consecuencia el paso y algunas veces instalación definitiva de personas de todas partes del mundo. Sé que el lema de Busan es el de ser una ciudad dinámica (Dynamic Busan!) y ese dinamismo yo lo he vivido toda mi vida en Tijuana, una ciudad que en los últimos 25 años duplicó su población y espacio urbano. Un fenómeno que seguramente ha vivido Busan también. En este sentido, tanto Tijuana como Busan son ciudades nuevas, jóvenes y dinámicas. A diferencia de lo que puede pasar en ciudades y pueblos de larga tradición en los que los cambios no suceden muy a menudo, como tijuanense me ha tocado ver una ciudad en constante cambio y transformación, de calles, edificios, barrios que hasta hace poco no existían. Al pasear por Busan, uno puede darse cuenta de que la ciudad también se ha reinventado en las últimas décadas. Por sólo mencionar un ejemplo, al pasar por Centum City la sensación que se tiene es de una ciudad evolucionada. En el caso de Tijuana, el paralelo es lo que se llama la Zona Río, la parte de la ciudad que fue diseñada para ser la zona moderna de Tijuana y la más dinámica y que en pocos años pasó a ser parte importante de la identidad urbana de la ciudad y de sus habitantes, como sucede en el caso de Busan con el hermoso puente de Gwangan. La cultura Gracias al intenso crecimiento y desarrollo de la ciudad y a la dinámica migratoria nacional (y también un poco 040 공감그리고 041
문화돋보기 Ⅰ 새롭고젊은도시의다이내믹한변신티후아나 Tijuana internacional) debidos a la gran oferta de empleos que ofrecía la ciudad provocó que Tijuana se convirtiera en una comunidad de mexicanos de todas las regiones del país. Esta circunstancia, por su parte, enriqueció la vida cultural con visiones artísticas de muy variada expresión que, además, están siempre abonadas con el fenómeno sociocultural que surge de la relación binacional entre México y Estados Unidos. En este contexto es que nace el proyecto del Centro Cultural Tijuana (el CECUT, como se conoce en la ciudad), un complejo cultural que tiene teatro, museo, exposiciones, cine planetario, festivales de literatura y cine, bienales de artes plásticas, entre otras muchas actividades. Fue inaugurado en 1982 con un diseño arquitectónico futurista para su tiempo, con un edificio en forma de esfera (el cine planetario) que sigue siendo único en el país, y desde entonces ha seguido creciendo y se ha convertido en el polo cultural más importante de la región, no sólo de Tijuana, con eventos muy reconocidos a nivel internacional. Hay que pensar que esto no fue fácil en un país tan centralista como México, donde durante tanto tiempo todo lo que valía la pena en arte y cultura pasaba sólo en la capital. Por esta razón, cuando vine a Busan y me enteré de la gran importancia del Festival Internacional de Cine de Busan (con su edifico igualmente de diseño futurista) uno de los más importantes de Asia, y saber que esto se construyó aquí con mucho esfuerzo y no en Seúl, me hace pensar en Tijuana y lo que allá ha significado el CECUT y sus actividades, pero también lo mucho que han sido reconocidos en el país y en el mundo el movimiento cultural de la ciudad y la labor de los artistas de Tijuana. Paisaje y comida Decía al principio de este artículo que las personas buscamos siempre algún tipo de anclaje para construir nuestra identidad cultural. Creo que uno de los más fuertes lazos identitarios (después de la lengua y la religión) que uno puede tener con su entorno es el del paisaje del lugar donde nacemos, crecemos y vivimos. No por nada llamamos al lugar donde nacemos mi tierra. Tijuana comparte con Busan la cualidad de ser ciudad costera. El mar como escenario, en mi caso, es una visión que relaciono con la sensación de estar en casa. No importa que uno no pase mucho tiempo en la playa tomando el sol o nadando o paseando en barco o pescando (cosas que. por otra parte, no se practican mucho en Tijuana), pero uno como gente de costa siempre sabe que ahí está el mar, cerca, inmenso como algo bello y peligroso al mismo tiempo, el mar es una presencia constante en los tijuanenses aunque muy pocas veces realmente vayamos a nuestra playa, quizá porque no es la más bonita de México ni mucho menos, quizá porque el agua del pacífico siempre está muy fría y no es muy agradable a veces meterse a nadar, pero con saber que el mar está ahí, al alcance de la mano nos sentimos contentos. No obstante, en muchos sentidos somos gente de tierra, en una región semiárida de poca vegetación, calor seco y con largas sequías, casi se puede decir que somos gente de desierto. Y creo que sí, que esas son las dos grandes y contradictorias señas de identidad que asumimos, ya no sólo los tijuanenses sino la gente de todo el estado de Baja California, somos gente de desierto y de mar al mismo tiempo. Podría decir que somos más apegados a la tierra que al mar (en Tijuana no hay puerto ni industria pesquera, eso sucede 100 kilómetros al sur en el internacional puerto de Ensenada), quizá de la misma manera que la gente de Busan quizá esté tradicional y culturalmente más ligada a la montaña (como sucede en Corea en general, creo), el mar nunca deja de ser la gran presencia en la vida de sus habitantes y uno de sus signos de identidad. Pero por otro lado, lo que no puede negarse, aunque no vayamos mucho al mar, es que en ese otro aspecto cultural tan querido de las personas: su comida, el mar y sus riquezas tiene un primerísimo lugar en Tijuana. En este sentido es que como tijuanense uno se acomoda tan bien al ambiente de Busan, a su gastronomía especializada en pescados y mariscos, la mejor de Corea, que nos hace recordar nuestra cocina, nuestros numerosos restaurantes con sus pescados y mariscos frescos en diversos platillos exquisitos donde tiene un lugar especial un orgullo de la región: la langosta. Para cualquier visitante esta es siempre una de mis recomendaciones: no dejar de visitar Puerto Nuevo, a solo 30 kilómetros al sur de Tijuana bajando por la costa. Este pequeño poblado pesquero ofrece la mejor y recién pescada langosta de México, que pasa de estar viva en los estanques de los restaurantes al plato del cliente, una visión que es tan típica de Busan con gran variedad de especies marinas y no sólo langosta. Podría mencionar más detalles que me hacen como tijuanense sentir mucha afinidad con Busan, claro está salvando la distancia de los idiomas. Estas dos ciudades, en los extremos de sus respectivos países, Tijuana en la última esquina de México en el noroeste y Busan en la esquina sureste de Corea, ambas parte de penínsulas comparten un destino y una identidad ligada mar, por un lado, y por el otro, son fronteras paradigmáticas de sus países, con Estados Unidos y Japón, respectivamente, situación que por otro lado, no ha dejado de tener sus etapas históricas muy conflictivas. En este sentido, no es raro comprobar que han desarrollado una cualidad de reinvención y de dinamismo, lo que se refleja en el carácter de su gente. En algún momento los habitantes de la región fuimos llamados los bárbaros del norte por la gente de la capital. Todavía hoy día se dice que la gente del norte somos muy broncos (salvajes), porque somos muy directos y francos al hablar y al convivir con la gente, no somos tan protocolarios, y cierto, a veces también poco refinados, pero eso nos gusta, nos gusta ser así y con ello nos identificamos. Seguramente eso también sea un motivo por el que como norteño de Tijuana me siento a gusto con los sureños de Busan! 042 공감그리고 043
문화예술정보 말문을열다 046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양순주 054 부산의해양문화를말하다정원조 058 올댓부산, 사진가문진우의발길이닿지않는부산은없다이광수 46 54 58 062 문화예술창작공간의역할함수경
말문을열다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 캔버스에투영된색감들의말소리 부산미술계의 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 글 양순주문학평론가 046 공감그리고 047
말문을열다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 양순주 서울사람들이미술판을독차지하고있을때, 그에대한반발로서울을제외한이남의작가들이클럽을만들어남부현대미술전을기획했다. 자했다. 이것이 1960 년대말에동아국제미술전람회에서입상한 태양 이라는작품이다. 강선보는학창시절에풍경, 정물, 인물등을그리기도했으나 태양 이후비구상 ( 非具象 ) 작품들을그리기시작한다. 강선보 2.4m 1.2m 철판에쇠파이프를돌리면서그속에온갖우주의 결국예술작품은가장미적인것에감정을이입하여그이미지를표현하는것이다. 글로혹은그림으로미적세계를그려내는문학평론가양순주님과서양화가강선보님이예술에대한생각을씨줄과날줄로직조하듯한편의텍스트로엮어냈다. 신비를담아낸일종의반입체적인작품을완성해서울, 일본, 부산간의합동전시인 이후 ( 以後 ) 작가전 에참여하기도했다. 그러한과정속에서다시평면으로전환하려던중, 누구나다할수있는붓대신스프레이작업에착안하게된다. 유화스프레이작업의의미 양순주최근에그린작품들은모두여성의뒷모습, 특히엉덩이 를부각시킨이미지로형상화되어있다. 일관된이미지를통해강 조하고싶은것은무엇인가? 유년시절, 원형의기억 강선보미적인요소를가장많이내포하고있는것은죽은것보 양순주그림을그리기시작한특별한계기가있었는지궁금하다. 다는살아있는것이다. 식물, 동물할것없지만그중에서도움직이는동물이고, 동물중에서도인체가가장미적인것이다. 거기 강선보중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그렸던그림이미공보원에서특선으로당선되어전시가되었다. 부산사범대미술과를다니며석고데생이나하야리야부대미군들의초상화를그리면서학비 에감정이입을하게되면훌륭한예술작품이나올수있다. 더욱이인체중가장아름다운선으로나타나는것이엉덩이선이라고생각해이를지속적으로그려왔다. 를벌기도하였다. 졸업후 2년간미술선생을하다가이후로는기계공고에서오랜기간교장을하며기계공업, 공업디자인관련한일을지속했다. 기계공고근무중에혁미술동인의멤버가되면서다시그림을그리기시작했다. 풍년을상징하는작품을구상하며 양순주그렇다면선의아름다움을표현하는방식이중요할수밖에없을듯하다. 미적세계를표현해내는기교라할유화물감을스프레이로분사하는방식을소개한다면? 김해들판에찾아가농부들이논에물을대기위해물을퍼올리는건실한모습을그리고자했으나낙담했다. 배를타고낙동강물금에서구포다리쪽으로내려오던중하늘을올려다보았다. 내리쬐는눈부신태양을보고 아, 저거다! 라고느껴이를그리 강선보컴프레서의스위치를누르면바로작동이되고, 호스를통해서압축공기가나온다. 스프레이통안에물감을넣고호스를꽂은후분사를하면된다. 차량도색하는것과비슷한원리다. 기시작했다. 기계공고미술실에서 100 호캔버스에동그란원을그려우주의신비, 태양의신비를담아냈다. 물감을짜서발바닥으로, 나이프로, 붓으로밀기도하고, 휘발유를부어불을질러부글부글끓게하여햇볕만큼강렬한태양 / 우주의표면을표현하고 작업실한편에는그의그림도구인유화스프레이가널려있었다. 작가는한동안그림그리기에소홀했다고고백했다. 그러나인체의윤곽선을세밀하게그리기위한꼼꼼한테이핑작업이나유화스프레이를분사할때강약을조절하는섬세함은교직에몸 048 공감그리고 049
말문을열다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 담고있는동안연마했던기술들로부터나오는것임을확인할수있었다. 표현방식뿐만아니라내용적차원역시그의삶의길을따르는어떤연속성이있었다. 우주적신비로외연을확장했던젊은날의그림들은연륜이쌓여가며인간의근원을탐구하는굴착기로변모한다. 어머니의따뜻하고포근한모성을상징하는그의작품들은풍요로움을추구하고자했던열망과도맞닿아있다. 이는작고가는구멍이지만다채롭게흩뿌려지는유화스프레이의특성처럼하나이지만동시에다양한색으로분출되는것이다. 또한확정된형상으로드러내보이는것이아니라물음표로남겨진여성의뒷모습은보는이들의궁금증을자아낸다. 그의작품은그림을마주한관객들에게로열려있다. 새로움, 변화에대한추구양순주작품이매개가되어작가는자신을되돌아보는계기를마련한다. 강선보작품 < 태양 > 자기세계를구축하기위한자기정진 ( 갱신 ) 을게을리해서도안되지만동시에외부세계와의관계맺기또한중요하다고생각한다. 그한가지방법이동인활동이아닐까한다. 이를지속하는동력은무엇인가. 강선보혁미술동인전, 부산해운대작가전, 남부현대미술전등에여전히참여하고있다. 서울사람들이미술판을독차지하고있을때, 그에대한반발로서울을제외한이남의작가들이클럽을만들어남부현대미술전을기획했다. 혁은불꽃빛날혁 ( 爀 ) 이라는이름그대로부산의신진작가들의불타오르는정열을쏟자는의미로결성한단체이다. 혁역시미술계 의고정질서를거부하고자하는것에서출발했지만초창기에는어려움도있었다. 새로운것, 현대적인것을지향하며순항하다가도침체기를겪기도했다. 창립 30주년이되었을때발전적해체냐지속이냐하는기로에놓이기도했으나한달에한번씩모이며인간적유대를강화하기도하고중국과러시아와함께삼국교류전을행하면서그위기를극복하고자했다. 자신이선택한길을걸을때, 처음마음속에지녔던실험정신과패기, 정열은어떻게지속될수있을까하는물음이나를따라다닌다. 글을계속쓰면서도어떤글을써야할까, 또글을쓰는일과사람들과관계맺고살아가는일은어떻게함께갈수있을까하는고민은여전히내머리를어지럽힌다. 글을쓰는일이나그림을그리는일은마지막에가서는결국단독적인작업이되는경우가많다. 그러나그것이나르시시즘적인것으로, 독단적인것으로함몰되지않기위해서는함께할수있는가능성을언제든열어두어야한다. 이는공동작업, 협업과같은실험으로드러나기도하고, 사람들과관계맺고살아가는시간들속에서찾아질수도있다. 그와이야기를시작했을때 그림은혼자서할수있기때문에좋다 는말에약간흠칫했다. 그러나그의삶의내력을들으며이야기를나누는동안어쩌면내가조금은오해를하지않았을까하는생각이들었다. 특히 1963 년에결성된혁에서여태껏활동하고있는그에게있어서, 동인활동을지속할수있는힘이무엇일까하는생각을오래도록했다. 간단한답변을들을수있었다. 신뢰를가지고함께하면서도, 서로가가장잘할수있는역량을발휘해기획, 전시를행함으로써힘든시간을극복하고자하는계기로삼아나간다는것. 그속에서관계는회복되거나깊어진다. 그렇게차곡차곡쌓아올린시간의결들은울퉁불퉁할지라도하나의그림을만들어낸다. 씨줄과날줄이엮여직조해낸텍스트처럼. 그것은곧아름다운하나의작품으로완성된다. 050 공감그리고 051
말문을열다 부산미술계의원로작가강선보와의만남 은아드리엥으로가득차버리지만, 간신히일상을회복한그에게안나는트라우마를상기시키는존재이기때문이다. 그는약혼자를상실한아픔을가진안나에게죄책감을가지고용서를구하고자한다. 딱거기까지가아드리엥이할수있는최대치이다. 도덕적선을넘어설수없는아드리엥과너무늦었음을직감한안나는기차역에서짧은키스를나눈다. 결코이루어질수없는둘의관계는절제된듯하지만애틋함이묻어나는입맞춤으로연출된다. 바이올리니스트아드리엥은전쟁의상처를회복하지못했다. 그럼에도인간의죽음 / 죽임에대해끊임없이사유하며괴로워한다. 나약한예술가는정신병원치료를받으면서도용서받기위해독일행이라는단호한행동을마다하지않는다. 그러면서도여전히연약한마음을떨쳐내지못한다. 오종은전쟁과예술, 사랑 / 아름다움이라는주제를이처럼미묘한감정의차이, 모순된심리들의교차로섬세하고노련하게연출해낸다. 특히복잡미묘한관계속에는에두아르마네의그림 자살 이놓여있다. 프란츠의마음을사로잡았던그림, 아드리엥의방에상징적으로걸려있던그림, 영화의말미에서안나앞에놓여있는그림이바로그것이다. 이후루브르를다시찾아 캔버스에얽힌또다른이야기프랑수아오종의신작 프란츠 를보았다. 에른스트루비치의영화 내가죽인남자 (1932) 를원작으로한이영화는, 프란츠로분한피에르니네이의흡인력있는연기, 베니스영화제신인여우상에빛나는폴라비어의절제된감정묘사와함께흑백과컬러를적절하게배치한감독의탁월한연출감각으로관객들을매료시켰다. 간안나는마네의그림을감상한다. 그녀의옆에서한남자가이그림을좋아하는이유가무엇인지묻는다. 안나 는대답한다. 삶을유지하고싶게해준다는것. 서로의곁을채워줄수는없지만살아가는동력이되어주는, 그 럼으로써함께할수있는것이마네의 자살 이라는역설이아닐까. 캔버스는말한다. 거기에서나는무엇을듣 고, 보고있는가. 1 2 3 1차세계대전에참전한프란츠가전사한후, 그의약혼녀와부모님이사는독일마을에한남자가찾아온다. 프란츠와함께음악원을다닌친구라고자신을소개한그와보내는시간들덕택에세사람은위로받는다. 침울한일상을살아가던그들에게아드리엥은어떤활기를불어넣어준다. 그러나아드리엥은사실전장에서프란츠에게총구를겨누고그를죽인장본인이었다. 사람을죽였다는죄책감때문에용서를구하기위해프랑스에서독일까지 찾아온것이다. 프랑스로돌아가기전날밤, 아드리엥은프란츠의약혼녀안나에게그사실을고백한다. 다음날, 밝고다정했던그녀는냉담하게아드리엥을떠나보낸다. 그녀는웃음을잃어버리고, 프란츠의죽음을알게된직후처럼다시금무기력한삶을살아가다결국자살까지시도하게된다. 프란츠의부모는이러한사실을알지못한다. 두사람의결혼을바라는부모의제안으로안나는아드리엥을찾아나선다. 프랑스로가는여정에서독일인-프랑스인이서로를경계하고증오하는마음을경험하게된다. ( 처음아드리엥이찾아왔을때, 모든프랑스인은내아들을죽인살인마다. 라며그를쫓아낸부친의말역시이를상징한다.) 안나는전쟁으로희생당한인간들이서로를돌보지못하고적대시하는현실을프랑스에서체감하게된다. 문학을사랑하고음악으로교감을나누었던프란츠가안나에게편지로알려준프랑스라는낭만적세계는, 사실상환상일뿐이었음을목격한다. 그러한혼란속에서안나는우여곡절끝에아드리엥과만난다. 그러나두사람의해후는예견된것처럼해피엔딩이되지못한다. 어느새안나의머릿속 1 강선보 < 상황 > 강선보 서양화가 양순주 문학평론가 2,3 양순주공저 <1980 년대를읽다 > < 유토피아라는물음 > 남부국제현대미술제 1회 ~3회중국텐진아카데미초대개인전부산미술동인전 1963 년 ~2016 년한국러시아우정의가교전해운대작가회 1994~2016 년한국, 중국, 러시아삼국교류전부산미술제, 회화제, 미술대전구인전 2006 년, 2016 년부산시립미술관기획영향과반향전 ( 개인전 ) 부산미술협회원로회원 2013 년 해석과판단 으로비평활동.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과비평공동체 해석과판단 에서활동중, 웹진 문화다 에서 양순주의독립영화路 코너연재공저 1980 년대를읽다, 유토피아라는물음 052 공감그리고 053
말문을열다 부산의해양문화를말하다 1 부산의해양문화를말하다 2 글 정원조 ( 재 ) 강원발전연구원관광환경실연구원사진제공 국립해양박물관, 만디버스, 사상구, 낙동강생태탐방선을숙도사무소 부산이라는이름을처음들은것은아버지를통해서였다. 약주를드시고집으로들어오시면서기분좋아부르시던노랫말속에서였다. 꽃피는동백섬에봄이왔건만 / 형제떠난부산항에갈매기만슬피우네 / 오륙도돌아가는연락선마다 / 목메어불러봐도대답없는내형제여 / 돌아와요부산항에그리운내형제여. 부산항그리고부산이라는말은그렇게기억속에오랫동안남아있게되었다. 그래서인지가끔매스컴에서부산이라는단어를들으면고향같다는생각이든다 국립해양박물관변화무쌍한역동적인해양도시부산예전에내가알던부산은해운대, 광안리에서해수욕을즐기거나자갈치시장, 민락동회센터에서해산물을먹는것이전부였지만, 10여년전부터국립해양박물관을비롯한미술관, 아트센터등다채로운문화시설이곳곳에세워지고마을단위문화창작공간인또따또가나감천문화마을, 이바구캠프등다양한볼거리가생긴것같다. 또한대형백화점, 초고층아파트등초고층건축물들도많이생기고, 해운대신시가지나센텀시티를가보면최신트렌드에맞추어놓은첨단도시의모습에놀라곤한다. 해양공간의변화도함께이루어지고있는데북항재개발, 오륙도재개발, 갈맷길, 해파랑길등수변공간정비로친수공간이대폭확대되어방문객에게새로운볼거리를제공하고있다. 다이나믹부산 이라는슬로건처럼방문할때마다놀라움을안겨주는변화무쌍한해양도시의역동적인모습이담겨있다. 산만디에서바다를조망하다본디부산은지명에서알수있듯이산이많은도시이다. 특히부산사투리로산고개라는뜻의 산만디 가 1. 감천문화마을, 2. 만디버스발달되어있는데한국전쟁당시피난민의대량유입으로무허가건축물이대거들어서면서복잡하게형성된취락을쉽게볼수있다. 슬픈역사가서려있는장소이지만산비탈아래옹기종기모여있는취락을따라형성된꼬불꼬불한산복도로에서부산도시경관과바다풍경을감상하는것은외지인들에게색다른추억을남겨준다. 최근에는지그재그꼬부랑길을버스로탐방하는시티투어 ( 만디버스 ) 가생겨쉽고편리하게산복도로의주요포인트에서바다를감상할수있게되었다. 해양민족으로서부산인의기질부산하면떠오는것중에부산인의기질을빼놓을수없다. 억세고거친입담과무뚝뚝한사투리억양으로대표되는이미지는상업영화 친구 나 국제시장 등을통해외지인들에게깊은인상을남겼다. 부산사투리의음운적특성을분석해보면더욱확연하게알수있는데, 말속에주로경음 ( 된소리 ) 과격음 ( 거센소리 ) 으로구성되어거칠게느껴지며, 전체적으로억양이내려가는형태로음절길이가짧고단정적이기때문에무뚝뚝하고직설적이라는인상을준다. 이러한이미지는낙동강으로내륙과단절되고험준한산과해안 054 공감그리고 055
말문을열다 부산의해양문화를말하다 으로문현혁신지구는금융중심지로특화개발되며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남부발전외 11개유관기관이입지할예정이다. 이들기관이모두이전을하면부산은항만을중심으로한인적 물적교류증대, 해양연구를기반으로한관련산업진흥, 영상문화를기반으로한영화 영상산업육성등지식기반산업클러스터구축을통해세계적수준의해양문화거점으로명실상부한국제해양문화도시가될것으로생각한다. 에접한변방에입지한부산의지리적특성에서기인한다. 또한부산의인구는 19세기후반개항과함께무역항이들어서면서급격하게증가하였고, 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국내해상물류운송의중심지로서발전하게되자부두에서종사하는노동자들이대거필요하게되었는데식민지시기이들상당수가외부에서대거유입되어거친바닷일을하는뜨내기들로채워져부산인의해양민족적기질도이러한이미지를고착화하는데한몫을한것같다. 부산의해양역사변천과정올해로개항 140 주년을맞이한부산항은우리나라근대화를이끈견인차역할을한항만으로바다와함께한수많은해양역사문화를간직하고있다. 부산의해양역사를부산항을중심으로살펴보면, 개항이전에는대구, 청어등을주어종으로한수산업이발달했으나, 개항이후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일본과의식품 방직등경공업무역이활발하게이루어졌다. 광복이후에는수산업비중이점차감소하였는데어류보다는양식어업의발달로해조류, 패류가증가하게되었다. 한국전쟁을거치면서 1960 년대수출위주의공업화정책으로부산항은국내무역량의 90% 이상을차 지하였으나, 지금은다른도시에도무역항이많이생겨비율은많이줄었다. 하지만현대수출입무역의컨테이너화추세에따른컨테이너화물량은국내 95% 를차지하여국내최대무역항으로역할을하고있다. 국제해양문화거점도시부산 2005 년정부의수도권소재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계획에따라각지역마다특성화된혁신도시조성을추진하게되었다. 부산의경우동삼혁신지구에해양 수산분야의 4개공공기관, 센텀혁신지구에영화 영상분야의 3개공공기관, 문현혁신지구에금융등분야의 6개공공기관이이전하게된다. 우선영도동삼혁신지구에는세계적인마린테크노폴리스로육성되며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국립해양조사원,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과유관기관 13개가입지할예정이다. 이와함께중심지에랜드마크시설과해양친수공원등시설정비를중심으로주변에민간투자촉진, 해양연구, 관광측면에서도활기를창출할것으로예상한다. 해운대센텀시티시네포트단지내에조성될센텀혁신지구는영화 영상을중심으로특화되어개발되며,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와유관기관 7개가입지할예정이다. 끝 2 다시방문하고싶은도시부산지난달용호만다이아몬드베이요트투어에서시작된부산탐방은낙동강생태탐방선을타고낙동강일대를순회하면서삼락공원주변에조금씩피어난억새풀과작은코스모스를보면서가을이성큼다가왔다는것을실감할수있었다. 코스모스의꽃말처럼부산사투리에서나오는직설적이고거친이미지내면에는꾸밈없이자신을드러내는솔직함과순수함을느낄수있었다. 몇해전오랜만에방문한부산에서급격하게변해버린첨단의도시모습에다소어색하였지만그래도추억이깃든자갈치시장에서여전히바쁘게움직이며복잡하고다소어수선하고정리가되어있지않아시끄럽고소란스럽지만사람사는정이있어살기좋고언젠가살아보고싶은행복한도시부산임을확인할수있었다. 부산이좁으면좁다고할수있지만나에게는아직안가본곳, 모르는곳이더욱많기에계속해서방문하고싶어지는제2의고향이다. 이번가을 2016 부산불꽃축제를볼겸가족과함께다시방문해야겠다. 1 1. 삼락공원 2. 낙동강생태탐방선 056 공감그리고 057
말문을열다 사진가문진우의발길이닿지않는부산은없다 문진우사진작가 사진작가문진우 올댓부산, 사진가문진우의발길이닿지않는부산은없다 동아대학교영문학과졸 / 동대학원신문방송학과석사부산매일신문사진부기자 - 부장역임 2002 년부산아시아경기대회공식사진기록담당관역임 2003 년대구하계 U대회공식사진기록담당관역임사진전문갤러리 < 포토갤러리 051> 관장역임 글 사진 이광수부산외국어대교수 ( 인도사전공 ), 사진비평가 넣은다큐멘터리로서그는사진작업을하였다. 사진가문진우의지난 40년은카메라에취해사진을가리지않고살아온시간이다. 두주불사, 시인변영로가술이라면그어떤술도가리지않았듯, 사진가문진우는그어떤사진도가리지않았다. 콘테스트에출품도해보고, 작품이라고콘셉트를잡아작업하곤했지만, 이내별로의미없는일이라는걸알게되었다. 지금은그냥사진만찍을뿐이다. 산이거기에있어서산을오른다고어느등산가가말했듯, 찍을대상이있어서그대상을좋아해서찍을뿐이다. 딱히작품이라고정해놓거나목표로삼고정진해왔다고말하진않는다. 찍어놓고나니그것이오래묵혀져기록이되고, 그것이작품이되면그것으로좋고안되도그만이다. 그작품성에목매달거나시대를기록해야한다는사명감을가지고한것도아니다. 사진가문진우는대학에들어가서전공공부보다사진을더많이공부하고몰두했다. 그러다문득자신도본격적으로작업같은것을해보고싶었다. 그렇게해서시작한것이도시아웃사이더에관한것이었다. 지금에와서보니작품이되었지만, 딱히그들에대한기록으로어떤작품을남기고자했던것은아니다. 어떻게하는것이작품이되는지, 작품을만들기위해서는어떻게해야하는지에대해서보통이상으로고민하거 나애끓은적도없다. 그런점에서문진우의사진은그야말로사진적이다. 철저히도구적이라는의미다. 자기정체성이없다고해야하나아니면멀티정체성이라해야하나? 그러다보니문진우의사진안에는온갖장르가없는게없다. 메시지가강한다큐멘터리에서부터별메시지없는오래된다큐멘터리그리고무미건조한다큐멘트까지, 사협사진에서부터관념사진까지때로는내마음이가는바에따라, 때로는고객이원하는바에따라찍는다. 문진우는사진에관해서만은그야말로르네상스적사진인이다. 문진우가대상을보는시선은최민식의그것과많이닮았다. 부산에서사진을시작했으니부지불식간에그럴수밖에없었을것임은두말할필요가없다. 여러가지사진의기법과분위기가그렇다. 스냅샷을하면서주로결정적순간을포착하고자하였는데, 사실, 그결정적순간이라는것은사건에대한구체성이배제된것으로역사적해석을위한기록자료로쓰기에는한계가있다. 그것은보는사람으로하여금느낌을많이갖게하는데최민식은그순간포착을통해질긴휴머니즘을재현하고자하였고, 문진우는그것을통해도시속외딴이질감을재현하고자하였다. 당연히연출된사진도없고, 시선의큰변화도없다. 최민식과마찬가지로전체시대상을기록하려하지않았기때문에원 부산에서활동하는사진가는여럿있다. 지금은돌아가신최민식선생이그대표적인예지만, 그외에도많은사진가가있다. 그런데그여러사진가가운데부산에대해가장많은사진을남긴사진가가누군가라고질문하면지체없이 문진우 라고대답할수밖에없다. 그는대상으로서도부산의모든것을찍었지만, 사진의장르로서도매우다양한사진을찍는다. 해운대, 다대포, 송정, 청사포등부산의바닷가는물론이고범어사, 삼광사, 사직야구장, 서면, 남포동, 자갈치, 영도, 하야리야부대등그가카메라를들이대지않는곳이있을까? 아무리생각해도그런곳을찾을수없을정도로그는부산의곳곳을찍었다. 때로는무덤덤한기록으로, 때로는사진가의감성을이입한서정적인시풍 ( 詩風 ) 으로때로는사회적메시지를강하게불어 2010, 하야리아, 문진우 058 공감그리고 059
말문을열다 사진가문진우의발길이닿지않는부산은없다 경 ( 遠境 ) 이나전경 ( 全景 ) 같은것을거의남기지않았다. 그에게다큐멘터리사진은객관적자료가아닌세계의주체적해석과그것의전달매체이다. 그렇지만문진우의시선은최민식보다훨씬다양하고, 부드럽다. 최민식이자갈치시장을중심으로가난하고소외당한이들에대해강렬한휴머니즘차원에서격문같이무겁게가지면서작업을했다면문진우는좀더문학적차원의세계에대한해석을하는시와같이작업을한다. 부산하면떠올리는장소중의또하나대표적인것으로산복도로, 라는게있다. 산의배를갈라길을내고동네를만들었다는, 그래서슬픈역사를담고있는부산에있는지역이다. 산복도로는사진가문진우가사진시작할때부터주목해온소외된도시사람들의섬이다. 젊은이는떠나고, 남은건허리굽은노인들밖에없다. 사진이란작품을위해찍는것이아니고마음이꽂히니찍는것이기때문이다. 그저그들이사는모습을내마음가는대로찍어기록할뿐이다. 부산에서거주하고부산에서활동하는사진가가부문진우의자기시각을배제한다큐멘터리, 즉객관산을찍는다는것은너무나당연한일이다. 그래서그적정보제공의성격이강한다큐멘트로서의사진은는바다를찍는다. 바다를바라보면서누구나가잠기 하야리아 Hialeah 이다. 이사진은 1950 년들어선곤한그낭만의세계, 그것을담는사진은비록소재부산의한미군부대가 2006 년폐쇄됨에따라그모습주의라하더라도개의치않는다. 사진은마음가는대을있는그대로기록해놓기위해부산시가위탁한공로찍는것이기때문에그렇다. 바다를찍고싶어집을식사진가로참여하여남긴작업이다. 사진가고유의아예해운대로옮겼고, 그리하여아침저녁으로, 흐린시선이나시각이나특별한메시지는없다. 다만사진날은흐린날대로, 비오는날은비오는날대로바다와가가재현을했다면그장소가폐쇄되고사라지는모하늘을담는다. 그리고 1997 년전시를했다. 바다, 습을그느낌그대로옮기는것이다. 부산시민의입장하늘그리고오브제 다. 자신이숨이멎을듯한감성에서는우리품으로되돌아오는우리의시민공원이니을잿빛바다에서느꼈다면그감성그대로, 설사그것좀더밝고활기차게그릴수도있겠으나사진가는그이싼티나는보통의감성이라할지라도그것을그대러한사회사적해석이전에대상이갖는쓸쓸함을우로카메라로담을뿐이다. 선으로본것이다. 해가뜰무렵부터시작하여그림자가지기시작하는오후를지나사물이어둠속으로들 < 비정도시 >88년용두산공원, 문진우 < 비정도시 >90년전철내, 문진우 < 내맘속다큐한장 >76년강서명지, 문지우 < 비정도시 > 85년남포동, 문진우어가는밤시간까지모든모습을최대한있는그대로담았다. 봄도있고가을도있고눈내린겨울도있다. 사진가가 1998 년부산전국체전과 2002 년부산아시안게임부터 20년가까이쌓아온무미건조한공적기록의내공이잘드러나는작품이다. 사진가문진우는부산사진가다. 부산을주로찍고부산에서주로활동한다는의미도있지만, 소위중앙에서는별로알려져있지도않고, 특별한줄도닿지않은변방의사진가다, 라는의미다. 그가첫작품을선보이는것은 1993 년에 불감시대 라는제목의도시풍경이었다. 그는도시를 불감 과 상실 이라는키워드로읽었다. 상실 은 70,80 년대에본격적으로전개되면서드러난도시공간에서소외당하는사람들을향한언어다. 사진가의메시지가강하게들어간기록적성격이짙은전형적인 80~90 년대다큐멘터리스타일이다. 대상을재현하는스타일상은특정한기법에치우치지않고주제에따라다양하게나타난다. 특별히어떤스승에게서배운적도없고, 그래서어떤줄에서본적도없고, 그래서누구에게도빚진적도없는팔십년대이땅에서자생하여일각을이룬다큐멘터리사진가의표상이다. 부산이라는한지방의사진가문진우가 2016 년서울충무로에있는갤러리브레송의기획전 사진인을찾아서 의여덟번째주자로초대받아전시를했다. 학맥이나인맥등에좌지우지하지않고, 오로지작품성하나만가지고평가하자는그래서빽없고힘없는숨어있는사진가고수를찾아발굴하자는취지로기획한전시다. 비록큰상을주는것도아니고, 어떤권위있는단체가보증하는것도아니며, 화려한전시를해주는것도아니지만, 묵묵히작업만하는그를부산아닌서울에서도눈여겨보고인정했다는사실이의미가있는것이다. 아울러한국의대표적사진출판사인눈빛에서야심차게진행하고있는눈빛사진가선의스물여덟번째에선정되어그의대표작이 비정도시 라는이름으로출간되었다. 부산의사진가지망생들에게문진우는좋은귀감이될것이다. 060 공감그리고 061
말문을열다 문화예술창작공간의역할 문화예술창작공간의역할 글 사진 함수경신라대학교외래교수, 잉스문화예술교육연구소대표 고, 일상의삶에서창작활동에참여하는상향적이고자발적인방식으로의전환이다. 즉문화예술이순수예술에만국한되는것이아니고예술가만의예술이아니라개개인의창조적활동으로문화적역량을펼쳐나갈수있다는것이다. 이러한전환은부산의문화예술창작공간들에의해서실현되고있다. 시민과의상호작용을통한예술참여와경험의중요성을강조하면서이제시민과예술가의성장에문화예술창작공간은어떤시설보다시민가까이있으며, 시민속에함께예술함으로나아가고있다. 문화민주화 Democratization of Culture1) 의대안적개념으로문화민주주의 Cultural Democracy 는국가문화예술정책의한계를극복하고자제시되었다. 문화의민주화정책에서정부는예술센터나미술관을세워유명공연이나미술작품을순회전시하면서질높은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연극등의고급예술에대한접근성을높이고자했다. 하지만오히려 모든사람을위한고급문화 the best for the most 정책은취지를벗어나예술은전문가에게체계적으로배워야하며예술가는특별한재능이있어야하고작품은일반대중이어렵고이해하기힘든것으로여겨지게만들었다. 문화민주주의는중앙정부에서하향식으로내려오던문화예술정책을시민이스스로지역문화를만들어나가 1) 문화의민주화 (Democratization of Culture) 정책에대한비판과함께새로운문화정책의지향점으로등장한것이문화민주주의 (Cultural Democracy) 이다. 문화민주주의의이념은오페라, 발레, 교향악, 연극등고급예술의대중화를주창하는전통적인이념과대비되는개념이다. 고급예술의대중화정책은다수의대중이그들의문화를스스로창조해나갈권리를제한혹은방해한다고보고, 대중들이스스로그들의문화를창조해나갈권리를주장하고이를위해대중에게예술참여기회의균등성, 문화의생산수단에의동등한접근을강조한다. 전병태 (2007), 커뮤니티아트진흥방안연구. 부산의창작공간들은부산문화재단에서운영하는곳 2) 이외에도위치나환경에따라드러나는색은조금씩다르지만, 예술로지역의생기를돋게하고있다. 빌토마스 Bill Thomas 박사는인간의생기를가라앉게하는약은있지만, 세상어디에도생기를끌어올리는약은없다고했다 3). 하지만예술로그것이가능해보인다. 예술이인간과지역에생기를돋게하고소통, 경험의예술로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교화 edification 될때문화예술창작공간은 장소 에서열린 광장 으로나아가게될것이다. 문화예술창작공간은예술가에게그규모나위치, 환경적특성에따라일정기간작업실로이용하거나입주해서작품활동을할수있도록공간을제공한다. 작품활동중에예술가의작업과지역시민과연관되는문화예술교육을기획하거나, 주민과함께실행시킬수있는기반을주기도한다. 따라서문화예술창작공간이자리잡은지역의시민들은환경적특성이나위치에서벗어나적극적인문화적활동과자원그리고지원으로문화적접근성 accessibility 이높아진다. 이렇게시민과예술가가상호작용하는장소가열린광장으로의모든사람에의한문화 culture by everybody 가실현되는곳이될때문화생산자인예술가의역할은중요하다. 예술가가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시민과만나는실험을하는동안경험되는예술은 2) http://www.bscf.or.kr/10/01.php 부산문화재단창작공간 ( 감만창의문화촌, 홍티아트센터, 또따또가외 ) 3) EIDF 2014 ALIVE INSIDE DR. Bill Thomas. MD. 062 공감그리고 063
말문을열다 문화예술창작공간의역할 과거의것을답습하는것이아니라끊임없이생산되는새로운생각이실행되어야한다. 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예술가가자신의작업을하면서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시민과만날때, 과연예술이가지는소통, 경험으로의의미는무엇일까에대한질문이필요하다. 1. 소통장소로의창작공간인가? 소통이란사물이막힘이없이잘통하거나, 의견이나의사따위가남에게잘통하는것이다 4). 창작공간에서예술가와시민은예술작업을통해소통의과정을경험한다. 예술작업을통한소통이란예술작품자체에대한감상이외에도내적감각 5) 으로예술적요소그리고상징적질서를시민이직접체험하는것이다. 예술가의작업을그대로기계적으로접고, 오리고, 연주하고, 춤추는것에서넘어작가의의도를여과 편집 해석 재구성하는활동으로이어질때활발한소통이가능할것이다. 이러한소통은지역주민과공단근로자에게예술이일상과동떨어진것이아니라쉽게언제나접할수있는흥미로운것으로자리잡을수있으며, 예술가에게는개인적감정과감각안에만갇혀있지않고세계와연결된교류의문고리를당길기회가되는것이다. 결과적으로창작공간에서예술교육은시민에게예술가의세계를이해할수있는기회를제공하고, 예술가에게는세상과직접대화할수있는감각적소통이될수있는것이다. 뉴미디어시대에좀더빠르고확산적인기술의힘을지불한대가로사람들과의직접적접촉의필요성은사라지는현실에서예술작업은깨어있는교육과협동학습으로지역공동체의활동을끌어낼수있는것이다. 4)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46667&supid=kku000184422#kku000184422 5) Lou Marinoff(2003), 철학상담소 (philosophy can change your life) 064 공감그리고 2. 경험으로서의예술이가능한창작공간인가? 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예술교육은논리적체계화된내용을넘어감각적으로예술을직접탐색하는경험을통해예술의본질에대해새롭게다가서고있다. 창작공간에서생생한예술교육이자연스러운소통의경험이될때예술의예술이될수있다. 예술은질적으로세계와가장직접적으로대면하는데서발생하는것이라경험의직접성과완성이라는측면을지니고있다 6). 창작공간에서시민은박물관이나미술관, 공연장에서 구경 하며대상화했던예술을경험의직접성과완성으로예술가의세계를이해하게되는것이다. 예술가의작업장에서볼수있는것은단지눈으로만확인되는것이아니다. 미완성캠퍼스에흘러내린물감에서나오는소리, 작곡된연주에서보이는거대한물질, 멈춰있는몸에서보이는생명력그모든에포트 effort7) 는예술가가작업하는공간그장소에서몸으로경험될수있다. 일반적으로활발한신체적행동이있고난후에야진정한사고가가능하며머리뿐만아니라손과신체의다른부분을직접사용하는동안획득한것을체계화하려고할때진정한사고가따라오는것이라고했다 8). 예술가의질적인세계를만날때예술교육은예술교육의실천 9) 이된다. 이때예술가가직접적으로예술에대한본성을고민하지않거나예술의본성이교육과맞닿아있음을몸소느끼지못하면예술이시민들을만날때예술가의질적인세계를나누기는어렵다. 이렇게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예술교육은물리적이고감각적이며신체적으로발산되고표현된다. 발산 은폭발적이고즉흥적이며여운없이모든것을소모하는것이고 표현 은바로거기멈춰서고, 한걸음내딛으며성장하는것으로완성될때까지마무리하는작업과연구다. 예술가는발산과표현을통해자신의작업에대한예술원리와신념그리고철학과이론을체계화하며예술교육으로새롭게자신의잠재적가능성을발휘할수있어야한다. 창작공간에서균형잡힌발산과표현은곧예술가의자아실현으로대중을고양 edification 시킬수있는경험으로서의예술로시민과함께성장할수있다. 인간의몸짓은인간의다른어떤특성보다그사람의지성적인판단의기준이될수있다 10) 고했다. 오랜기간축적된예술가의경험이몸을통해전달되는과정에서예술교육실천은시민에게그어떤논리적인설명이나이론보다더공감될수있다. 첨단의어떤지도라도그지방을탐험하는 직접적인경험 을대신할수없는것처럼, 예술교육의생생함은예술가의몸으로전달될때가장효과적일것이다. 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일상의삶을통해예술함으로써모든시민은예술가가된다. 6) Dewey(1934), Art as Experience. 7) 움직임의질, 노력 8) Dewey(1938), Experience & education. 9) 예술교육의실천은예술의본성을제대로알고몸으로느끼는데서출발해야하며예술의본성은교육의본성과맞닿아있다. 김연희 (2012), 존듀이의교육미학. 10) http://daver.kr/xe/173688 송종건 065
부산의연극문화돋보기Ⅱ 068 부산연극, 그성찰과전망김문홍 072 부산의연극김성배김영희이혁우정경환 68 72
문화돋보기 Ⅱ 부산연극, 그성찰과전망 연극비평전문지 < 봄 > 부산연극의현재적지형도 부산연극, 그성찰과전망 글 김문홍극작가, 연극평론가, 부산공연사연구소장 사진제공 부산연극협회, 나소페스티벌, 부산소극장협의회 현재에대한정확한진단과성찰없이는미래에 대한전망이불투명하다. 그래서부산연극의명확 한전망을예측하기위해서는 지금이곳 의현실 을냉정하게직시해야할필요성이있다. 그렇다면 지금부산연극의현재적지형도는어떠한가. 우선 부정적인현상부터진단하면짙은안개속을걷고 있는것처럼방향성과목표가불투명하다. 각개전 투식의연극적작업은활발한데부산연극의정체 성과전통을기반으로독창적미학과방법론이부 재하고, 각분야에서발군의인재들이뛰어난능력 을발휘하며활동하고있기는한데발전을위한총 합으로서의연대가부족하다. 연극예술의작업적 성과를위한체계적기록문화와비평이부진하고, 진단과비전을위한토론문화가활성화되지못하 고, 각세대간의소통이이루어지지않고있다. 또 한극작가는우후죽순격으로양적인팽창을보이 고있는데, 진정한연극텍스트로서의뛰어난희곡 을생산하는작가는드물다. 그렇다고긍정적인측면이없는것은아니다. 연 극평론가인김남석의극단사정리작업이눈에띄 게활발하다. 그는부산에서가장오래된극단인 전위무대를대상으로 전위무대의공연사와공연 미학 (2014, 도서출판해성 ), 30여년간독창적인연극방법론을견지해온부두연극단을대상으로 부두연극단의공연사와공연미학 (2015, 연극과인간 ) 을연달아상재했으며, 현재극단열린무대와극단부산레퍼토리스스템의연극작업을정리하고있는데곧그결실이드러날예정이다. 다음은비평매체의발간이다. 연극배우진선미가연극비평전문무크지인 봄 을지금까지 6호나발간해오면서부산지역연극공연에대해비평작업을해오고있다. 거기다비평글쓰기에대한강좌를개설하여신인비평가를발굴하는작업을진행하고있다. 비평전문지 봄 을통해의미있는연극공연을집중조명하고, 연극이슈와시론, 그리고공연리뷰를통해전문비평가, 관객비평, 타장르비평가를동원하여부산연극의작업성과를조명하고있다. 그리고 부산공연사연구소 의활동또한빼놓을수없는성과이다. 지난 2013 년에부산문화재단과후원으로부산문화예술전자아카이브연구용역을체결하여연극분야데이터베이스를구축하여, 문화재단홈페이지에부산연극자료를집 대성하여탑재했다. 부산지역의연극예술인, 공연장, 공연단체, 연극행사, 주요작품, 연극관련학과및평론학술에대한자료를총집대성하여부산연극사를재정비하는성과를이룩했다. 현재는부산연극인인명사전편찬작업을진행하고있다. 희곡문학을활성화하기위한수상제도도빼놓을수없다. 지난 2014 년부터최우석치과원장의재정적후원으로 김문홍희곡상 이제정되어시행되어오고있다. 그해에초연된부산지역의창작희곡이나처음발표한희곡을대상으로엄정한심사를거쳐 12월에시상하고있는데상패와창작지원금을수여하고있다. 지금까지극작가이며연출가인최은영 ( 제1회 ), 김숙경 ( 제2회 ) 이수상자로선정되었으며, 2016 년 12월에는제3회수상자를결정하여시상할계획이다. 젊은연극인들의연대를통한연극작업또한괄목할만한성과를이룩하고있다. 지난해부터나다소극장주최로시행하고있는 나소페스티벌 과수년전부터청춘나비소극장주최로진행해오고있는 068 공감그리고 069
문화돋보기 Ⅱ 부산연극, 그성찰과전망 단막극페스티벌행사인 나는연출이다 가바로 통해부산연극에신 구심점을잃고모래알처럼흩어져연대감이정착되 연극이제대로자리를잡기위해서는옳은소리와 그것이다. 나소페스티벌은 30 대를주축으로한젊 선한기운을불어넣 지못하고있다. 연극발전을위한세미나에가보 쓴소리를하는이들을오히려너그럽게포용하여 은연극인들이연대하여공연작품의테마와콘셉 고있다. 또한부산과 면참석한관중보다주제발표자가더많을정도로 그들의제언과충언에귀를기울여야한다. 주체의 트를설정하여당대현실에대한예리한현실인식 일본후쿠오카연극 그참여율이저조하다. 개별극단들은공연행위에 정책결정에무비판적으로찬성하고부화뇌동하는 과독창적이고실험적인연극미학으로지역연극계 인들이주축이되어 만급급할뿐타극단의공연에는외면과무관심이 세력들을오히려경계해야한다. 이처럼열린사고 에새바람을불러일으키고있다. 청춘나비소극장 시행하고있는한 팽배해있다. 공연의예술적성과와역사를기록하 가전제되지않는한부산연극의발전은요원하다. 의단막극페스티벌역시 20 분내외의단막극공연 일연극교류를위한 는일에는소홀하고, 공연의가치평가에대한비평 을통해, 신인연출가의등용문을위한플랫폼역 연극축제도, 부산연 적작업에대해서도무관심과냉대의기류가형성 부산연극은무한한잠재적에너지를보유하고있 할을하고있다. 이페스티벌은관객과전문비평가 극의글로벌전략을 되어있다. 극작가는많은데뛰어난극작품은별로 다. 이제는연극작업에만급급할것이아니라연극 가공연후에평점을매겨, 우수한작품에는재정 위한시금석역할로 연극소식지 < 보고보고 > 없다. 지금까지부산연극제의창작초연이라는제 을처음시작할때의초심으로돌아가지않으면안 적지원 ( 보조금, 공연장제공 ) 을하여다음해에장 주목을끌고있다. 도에의해극작가를양산하는일에만급급했지스 된다. 왜무엇때문에, 누구를위해연극을하는가 막극공연을할수있는기회를제공하고있다. 젊은연극인들의이러한움직임은관습적나태에빠 부산연극전망을위한제언 타시스템으로뛰어난극작가를키우는데에는소홀했다. 이제는양적시스템에서질적인포커스로 에대한근원적인질문으로회귀해야한다. 연극은삶과인간에대한이야기이다. 연극인이삶과인간 져있는기성연극인들의혼미한연극정신을일깨우는한편, 상업적연극환경에서는엄두를낼수없는순수연극의해방구로부산지역연극의지형도를새롭게형성하는데큰몫을한다. 그리고 2014 년부터시행해온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의페스티벌도침체된부산연극에활력을불어넣고있다. 이단체는소극장을자체운영하고있는극단의연합체로, 계간연극소식지 보고보고 발간, 신인배우발굴, 소극장연극페스티벌을 부산은현재약 40여개의극단과 30여개가넘는소극장이있을정도로양적팽창을이룩하고있다. 그러나외적이고현상적인팽창에비해질적인내적성장은답보상태에있다. 길거리의담벼락에서는정체불명의연극포스터들이난무하고있어, 서울의대학로와같은연극의상업화가진행되고있어뜻있는이들의빈축을사고있다. 부산연극의미래비전을위해서는지역연극계에서버리고싶은유산을과감하게추방해야할것이다. 400 여명의연극인이존재하고있는데모두가 전환해야한다. 한두명의작가라도제대로키우는일이시급하다. 공연과비평은동전의안팎과같다. 비평이활성화되어야제대로된공연활동이정착된다. 연극은현장작업자가존중되고그들에의해연극이주도적으로이루어져야한다. 그런데예술과연극관련단체의장들은대부분현장활동을하지않는소위 관변예술인 들이주도하고있다. 이들이사적연대를이루어행사를독점하다시피하면서연극인들은사분오열되어힘있는문화권력에편승하거나무관심으로일관하고있다. 부산 에대한진정성이없다면그것은아주큰문제이다. 연극은기능과기술의문제가아니라삶과인간에대한진정에서부터출발해야한다. 중이염불에는관심이없고젯밥에만눈독을들이면그절은결국망하고만다. 결국모든것은외형이아니라내면이고, 기교가아니라작업에대한진정성이다. 이것이부산연극의화두가되어야한다. 070 공감그리고 071
문화돋보기 Ⅱ 부산의연극 김성배김영희이혁우정경환 사회자 안녕하십니까. 부산문화재단기획홍보팀장 김영희 1970~80 년대에의연극은운동적인면이컸 조정윤입니다. 바쁘신와중에이렇게참석해주셔서감 어요. 학생들이전공과상관없이사회적의식을가지 사드립니다. 전국적으로부산이인지도가있는장르는 고마당극과민족극을활발하게공연했습니다. 또한, 아무래도연극이아닐까싶습니다. 오늘좌담은 부산 대학 ( 부산대, 동아대, 수산대등 ) 극단이가지고있는 의연극 이라는주제로부산의연극의과거, 현재그리 힘이매우크고중요했다고생각을해요. 당시서구의 고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을조명하는자리를만들어 연극체험을이들극단을통해서할수있었습니다. 볼까합니다. 먼저, 각자활동하시고계신분야를바탕 으로부산연극의뿌리와정체성에관한이야기를나눠 김성배 부산의연극양식을거슬러올라가면부산의 보도록하겠습니다. 동래야류, 수영야류같은들놀음, 마당극, 꼭두각시등 의전통민속양식으로부터영향을받지않았나싶습 부산의연극 정경환부산연극의뿌리는아무래도 1970~80 년대극단의활동이컸죠. 극단전위무대, 극단레퍼토리등이있었고, 학계에서는부산대, 동아대, 수산대등의 니다. 정경환연도별로정리를해줄필요가있는것이 1970 극회출신연출가와배우가많이배출되었어요. 이분 년대에극회중심이나기존의극단들은예전에번역극 들이 1980~90 년대연극계를이끌어왔고, 2000 년이 위주로작품을제작했다면, 1980 년대들어서는연희, 후부터는연극영화과들이자리를잡으면서부산예술 민족극등과같은새로운양식을갖자는바람때문에 대등을중심으로배우들과연극종사자들이활동을하 전통민속양식을가져온케이스가많았어요. 게됩니다. 일시장소사회 2016. 9. 9( 금 ) 오후 4시감만창의문화촌 3층회의실조정윤부산문화재단기획홍보팀장 좌담자 김성배한결아트홀대표김영희연극비평가이혁우부산시립극단배우 이혁우제가있는부산시립극단은 1998 년에창단되어, 2018 년도에 20주년을맞이합니다. 현재는곽종필 김영희 1970~80 년대우리의민속전통적인연극들이 ( 포스트 ) 모더니즘연극과자연스럽게만나면서매우실험적인양식이많아졌어요. 개인적으로는 1980 년대 정경환극단자유바다연출가 선생님이예술감독을맡고계십니다. 창단멤버는 3 명 서사극을처음알게되었는데, 그때신선한느낌과동 정도있으며, 꾸준히활동을하고있습니다. 시에우리전통극의한양상을보는듯익숙했습니다. 072 공감그리고 073
문화돋보기 Ⅱ 부산의연극 김성배 산연극의현주소, 현안등에대해이야기를나눠보도 작극작가들도많지않았지만, 창작극에대한인식이 색깔에맞추어필요에의해서공연을관람하는것은굉 록하겠습니다. 높지않았어요. 대부분작품들이번역극아니면서울 장히좋은것같아요. 물론여기에발맞춰시립극단또 김영희 저는부산연극의위기보다는인문학전체의 에서인기있는우수작품을리마인드하는공연이대부분이었죠. 최근에는부산연극제에서창작극이아니면 한외부에서하지못하는공연들을올려부산연극판에풍성한볼거리를제공해야할것입니다. 위기라고생각해요. 과거에는물질적으로지금보다가난했지만, 대학생이연극을보는것이자연스럽고, 당 참여를하지못하는등의방법으로창작극에대한인식을변화시킴으로써부산의희곡작가양성과좋은창작 정경환 네. 현재창작극에대한인식변화와더불어 당했던행동이었어요. 하지만요즘학생들은연극관 극이나오는긍정적인시각도있습니다. 이제부터는창작극의독창성문제도생각해볼수있을 물론서사극과우리전통극형식은다른부분이많지만 람을잘하지않죠. 연극은뭔가어두운것같고, 극장까지찾아가는것도애매하고, 안봐도크게문제가되 김영희 과거에는희곡을쓰는극작가가별도로있고 것같습니다. 창작성뿐만아니라작가, 연출가, 극단들의성격에맞춘독창성을찾아내야한다는것이죠. 또 유사한부분도많거든요. 저도그렇고이와관련된연 는것도아니고. 학생들이인문학을어렵고, 불편하다 그희곡을바탕으로연출가의해석에따라희곡을무대 한이독창성들을어떻게활성화시킬것인가에대한 구를한사람들이많습니다. 고생각하는것들이그대로연극에서도드러나는것이 위에이미지화했다면, 요즘에는한사람이동시에두 현안도있습니다. 이런자주적인발전이부산지역의 에요. 또다른한편으로는희곡연구자들도상대적으 작업이상을겸하는경우가많아졌습니다. 즉극작과 성격으로만들어질것입니다. 정경환 시대적과제가정치, 사회적참여부분이컸 로시나소설에비해서참없거든요. 과거에도그랬지 연출을동시에하는경우죠. 비평의경우도마찬가지 기때문에그자체에서민중들에대한관심, 이런것들 만, 지금현재도마찬가지에요. 대학교에서도희곡론 입니다. 희곡을공부하면서현장비평을하는사람, 작 김영희예, 실제로 부산 은지역적, 역사적으로의 이극대화되면서자연스럽게야류라든지연극양식에 같은강의를개설하지않는경우도허다하고, 연구자 가이면서비평을하는사람등으로다양한관점과입장 미있는주제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이를잘살리 관심을갖게되고더들어왔죠. 지역적인특성으로보 들도많지가않아요. 허긴국문과존재마저위협당하 에따라비평행위가이루어지고있습니다. 제가비평 지못하고있습니다. 지역이라는키워드로부산을소 자면대표적인것이동해안별신굿, 그리고연희단거 고있으니. 또한연극비평하는사람들도다른장 활동을하면서느낀점은이렇습니다. 연극비평의일 재로한연극이있어왔지만단발성으로끝나는경우가 리패의 오구, 자갈치극단등의활동이컸죠. 르에비해부족한현실입니다. 그렇게양적으로충분 정한틀을존중하는것도중요하지만, 연극을보지않 많습니다. 지속적인관심이필요합니다. 최근부산극 하지않으니질적인다양성과수준도담아내기가어렵 은사람들도비평을통해서충분히연극을상상하고미 단역사에관한정리가속속나오고있는데의미있는 김영희 시간을더거슬러생각해보면 1920 년대에는 다는생각도합니다. 학적접근까지가능하도록하는비평이필요하다고생 작업입니다. 이작업을부산에서이론이든현장이든연 학생극운동이있었어요. 동경으로유학갔던학생들이, 그중에서는김우진같은연극전공자도있었지만 이혁우 현재공공기관을민영화시키는경우가많은 각해요. 그러니깐비평자체가하나의에세이처럼작품으로남게된다면많은사람들이비평읽는재미를 극활동을해온사람들이더애정을가지고할필요가있다고생각합니다. 극단사뿐만아니라대학극회, 배 그렇지않은사람들도많았죠. 이학생들이모여방학 데, 부산문화회관도내년에재단법인으로출범을하는 느낄수있다고생각합니다. 우, 극장등각자기억속에존재하는역사를기록으로 이되면부산을시작으로해서원산까지순회공연을했다는자료를볼수있습니다. 부산지역이연극운동의 과정이라예술단민간위탁등혼란스러운부분이많은상황입니다. 부산시립극단은공공성, 공정성, 공익성 김성배 부산연극의현상황을돌이켜볼때, 다양성 체계화하는작업들이필요합니다. 이는한사람의열정만으로되는것이아니니체계적으로유도할수있는 출발로서큰의미를가지고본다면과거학생극운동이 등이존재해야하는데, 개인의욕심보다는시민을위 이존재함에도불구하고현재극단들은워낙열악하다 정책이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그단초를마련했다고도볼수있을듯합니다. 한접근이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부산연극판에서시 보니지원금에의존하는구조에있는게아닌가싶어 사회자 네. 과거큰흐름을짚어보자면부산연극은 립극단에대한부정적인시선들도있지만동지애로봐주셨으면합니다. 요. 지원금을받으면공연을하게되고, 받지못하면공연을하지못하는경우도있습니다. 서울에서는좋은 김영희 야류등과같은전통양식으로부터전승되어온것에서 공연을올리면지원혜택을받을수있는공연사후지원 시작하여, 1920 년대학생극운동, 1970~80 년대에 정경환부산연극은최근 10 년간두가지변화가있 금제도도있던데, 부산에서도검토해볼부분인것같 민중극, 대학의극단들이중심이되고본격적으로주 었습니다. 과거부산극단들이수적으로적었는데, 현 습니다. 요극단들이활동및공적인영역의부산시립극단도창 재는양적으로굉장히많이늘어났다는것입니다. 극 단되면서활발하게진행되었던것같습니다. 단수가늘어난데는연극영화과졸업생들이많이배출 이혁우다양성의작품에대해서말씀드리고싶어요. 현재는부산의연극뿐만이아니라문화예술모든장르 되고, 젊은극단의양적인증가가있었고요. 두번째로 최근에는각자색깔과성격에맞춰서생겨나는신생극 들이위기라고들하죠. 지금부터는각자분야에서부 는창작극에대한인식의변화입니다. 과거부산은창 단과극장들이많은것같아요. 관객들이이런성격과 074 공감그리고 075
문화돋보기 Ⅱ 부산의연극 사회자네. 부산외부에서정리해서기록화하는부분을생각해볼때내부적으로반성해야되는지점이아닌 김영희개별극단에서도현재진행중인연극들의과정을전체적으로기록하는사람이필요하다고생각 독공연을함으로써극단들에게작품을보여주고, 일반인들도낭독공연을통해서희곡의텍스트를볼수있 이혁우 가싶습니다. 부산연극계자체에서도기억의기록화 해요. 게끔하는것이죠. 이런것들을통해서새로운극작가 에대한공동작업도생각해볼수있을것같습니다. 부 를발굴하고, 희곡이라는기본적인텍스트의중요도를 산연극의현안에대해서이야기가나오면서자연스럽게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에대해서도나오고있는 정경환물론, 이런부분들이중요하고필요하다고생각을하면서도막상여러가지닥친고민순위에서 쇼케이스형식으로발표하는기회가곧만들어질것입니다. 것같습니다. 김성배지금까지발간된부산연극사관련자료를보면 2006 년도에는연극협회에서부산연극사를정리하였고, 김문홍선생님이 2007 년도에는연극제 25년, 멀어져있는것이현실이에요. 막상공연이끝난후사진기록뿐이니아쉬울때도많고요. 이혁우저는소통과교류가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창구가많이없는것같아요. 과거에는연극제와같이 사회자계속해서소통이라는키워드는중요하게생각을하지만, 이제는구체적인방식을찾아내서서로간의소통을통해서공동의작업과이익이들어가야하는부분이마련되어야하겠다는생각을가지게됩니다. 은경우에는인원이 10명으로한정이되어있거든요. 단원수를늘려주면부산에서활동할수있는인력들이참여할수있는기회도생기고, 그만큼단원을확보하 2008 년도에는해방전후 2000 년도초반까지정리를하였고, 소극장사와극단공연사자료등이있습니다. 이런자료들이라도있어서다행이긴하지만, 벌써 10 서로교류할수있는자리가많았는데, 현재는교류할수있는기회가많이줄어든것같아요. 또한, 시립극단과일반극단이소통하고교류할수있는장이많이 정경환또다른소통의측면을보자면극단의속성이변해버린부분도있습니다. 옛날에는극단이라는중심 다보면스케일이큰공연을올릴수도있고요. 김영희논외로부산소극장의환경적인여건에관해 년이지난자료들인것으로새롭게정리하여자료를분 있었으면합니다. 으로극단에서동인제시스템으로배우교육까지다포 이야기드리고싶어요. 연극극장이라하면바로떠오 석하고, 기록으로보여줄시기라고생각합니다. 함해서운영이되었다면, 지금은대학의연극영화과에 르는것이지하의습기냄새, 좁은화장실등이떠오르 김영희부산연극의거시적인기록도중요하지만실제로자료사형식의글들은자료를찾기위해보는경 김성배부산시립극단을보자면부산에굉장히실력있는배우들이많이있지만, 문화회관이라는곳에한정되어있는것같습니다. 부산시립극단은문화회관만 서배우를배출하고, 극단은작품을제작하는곳으로되었죠. 그러나연극이라는것이단순히 4년간일반적인교육으로배우가만들어지지는않거든요. 새롭게현 거든요. 개선이안될까하면서도한편으로는극단의어려운여건도생각을해야겠더라고요. 여러가지환경개선문제에대해서정부지원을받아추진을해보 우가아니면대중에게잘읽히지않습니다. 이런글들 을위한극단이아닌시민들을위한극단이죠. 좋은배 장에와서재교육이라는것이필요하고, 선배들로부터 면어떨까싶어요. 은보통이성에호소하는글입니다. 일반인들이쉽게그러나충분히공감되는감성적인기록도필요합니다. 우들의연기력을외부에서도자주선보일수있으면좋은데, 시민들이일부러찾아가야하거든요. 공공과민 기술적, 철학적부분들을전수받아야하는데이부분이생략되는경우가많은것같아요. 이런부분들에대 정경환 물론중요한부분이긴하지만현실은소극장 간의협업을위해서는서로소통과교류할수있는연 한소통도필요합니다. 이남아있는자체만으로도다행인거에요. 실제로저희 김성배맞는말씀입니다. 공연보같은것은어쩔수없이딱딱한내용으로나올수밖에없겠지만, 여러가지내용과에피소드들을묶어스토리텔링화한다면부산연극에대한배우, 관객, 작품기록을자연스럽게풀수있지않을까싶습니다. 극무대가많아져야할것같습니다. 정경환공연은관객과만나서공연이끝난후의시점만이중심이아닌, 그공연이이루어질때까지의과정에서일어나는이해관계충돌, 이해, 대화, 작가와 사회자네. 맞습니다. 이런부분들은부산연극뿐만아니라다양한예술분야에서일반적으로나타나고있는증상인것같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상호교류, 소통창구는확대되어야할것같다는생각이 극단도태풍매미로피해를입어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지원을받아환경을개선했지만, 임대공간으로시간이지나면건물에서결국쫓겨나야되더라고요. 사회자네. 현재홍대나부산의또따또가등의경우 정경환 연출가의만남등다양한작업들이중심이되고창작의힘이된다는것이죠. 연극은단순히작가가글을쓰고발표하는것이아니라, 작가가희곡을쓰면연출을 듭니다. 이혁우 저는부산연극인들의부산지역이탈현상에 를보았을때젠트리피케이션으로문제가되고있는것같습니다. 지역문화진흥법에서생활문화시설같은경우에는정부가지원을해줄수있도록되어있고, 이런 통해서배우와스텝을만나고그들과의에너지충돌, 대해서말씀드리고싶습니다. 과거에도그렇지만현재 부분들을확대시켜서민간에서운영하는예술시설에 충돌이해소하는과정이중요합니다. 지금은창작희곡 연극인들이희망이없어요. 꿈을찾아가는데여기서힘 대해서환경개선될수있도록정책마련이필요해보 작품발굴, 극작가양성문제가있어서부산극작가협 드나저기서힘드나힘든것은마찬가지고, 이왕힘든 입니다. 부산의연극이라는주제로진행된좌담은마 회에서는올해연극협회와소극장협의회하고, 이제까 거큰곳에서굶어보자는마음으로, 오디션의기회가 무리짓도록하겠습니다. 바쁘신와중에도이번좌담 지희곡을작가가쓰고발표하는과정을했었는데, 낭 많은수도권으로가게되는것이죠. 지금시립극단같 에참여해주셔서감사합니다. 076 공감그리고 077
자매도시를 찾아가다 눈을 문화 맞추다 돋보기Ⅰ 2 눈을 맞추다 독자와의 교류 눈을 맞추다 는 문화예술의 생생한 현장 뒷이야기, 모습 등 직접 찍은 사진을 실어 예술인들과 시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1 078 공감그 리 고 079
눈을맞추다 책속에갇힌전통과역사, 축제로살아난다. 역사는지겹고따분한것인가? 전통문화는저절로이어지는가? 구경만말고함께어우러져놀아보자. 그래야제대로느낄수있다. 우리의정 ( 情 ) 과한 ( 恨 ), 아픔까지도. 춤으로, 음악으로, 연극으로만들고보니흥이살고역사가되살아난다. 3 4 음악을듣는가? 몸으로느끼는것이다. 불이꺼지고조명이켜진다. 혼신의열정으로연주하는연주자, 5 무대를채우는폭풍같은선율에관객은취한다. 빠져든다. 귀가즐겁다. 눈이즐겁다. 열정은어디에남는가? 직접해보자. 음악이온몸을채운다. 080 공감그리고 081
눈을맞추다 8 6 아이들이문화와놀면마음이한뼘은자란다. 아이에게서연필을뺏어라. 붓과물감, 크레파스를쥐어줘라. 칠판에서떨어져그림을보게하라. 책에서눈을떼고손으로만지고, 두드리고, 놀게하라마음이커지고생각이커진다. 그렇게문화를친구삼아놀다보면 아이는어느새한뼘은성큼자란다. 9 7 082 공감그리고 083
눈을맞추다 마음을열면경계없이통할수있다. 지나치게까다로우면싫증난다. 편하게할수없으면꺼려진다. 쉽게접하지못하면멀어진다. 문화가그렇다. 너무차려입어불편하고어색한옷처럼공연히무게잡고복잡하게치장하면어렵고피곤해서오래볼수가없다. 10 그래서가볍게, 쉽게, 편안하게만나야한다. 문화는카페가듯, 산책하듯맘편히즐기자. 12 11 1. 구포지신밟기발표회구포 1 동비석골풍물단공연 / 사진김혜옥 2. 22 회동래읍성축제뮤지컬 < 외로운성 > / 사진김연정 3. 22 회동래읍성축제 / 사진김효숙 4. 금정수요음악회 / 사진강성규 5. 감만아트페스티벌 / 사진김은미 6. 홍티아트센터입주예술가릴레이전 < 독 : Dock> 전시 / 사진안수아 7. 홍티아트센터투어 / 사진김정숙 8. 꿈다락토요문화학교토토즐지키자프로젝트 9. 공장속예술놀이터 ( 예술지구 P) / 사진박지영 10. 오픈스페이스배 5 인전, 작가와의대화식전공연 / 사진 soon ae Yoo 11. 2016 부산비엔날레 / 사진나해주 12. 오픈스페이스배 5 인전 / 사진 soon ae Yoo 084 공감그리고 085
손을잡다 어둠속의대화, 마음을열다 어둠속의대화, 마음을열다 배리어프리 (barrier free) 글 오숙희동아대학교한국어문학과강사, 배리어프리영상포럼부회장사진제공 KNN, 시청자미디어센터, 배리어프리영화제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오감 ( 五感 ). 인간은다섯가지감각을가지고있다. 대부분의인간이태어나면서부여받는오감 ( 五感 ) 은복잡한세상을알아가는훌륭한도구이기도하다. 그런데문명이발달할수록단하나의기관에노동력이집중된다. 혹사 수준의쓰임을당하는감각기관은바로 눈 이다. 디지털화되어가는현대사회에서쏟아지는정보의양은쓰나미를방불케하고, 시각화되어있는이정보들은제대로걸러내기조차어려울정도다. 한번생각해보자. 우리는일어나면서부터거의무의식적으로스마트폰을집어든다. 당신이잠든사이에카카오톡이나페이스북과같은 SNS 에는누군가당신을찾아왔고, 그의발자국이남아있다. 아마도당신은그흔적을찾는일로아침을시작할것이다. 스마트폰은하루종일다정한친구혹은귀찮은족쇄가되어당신의청바지뒷주머니에꽂혀있거나, 걸음걸이에따라흔들리는당신의가방속에들어있을것이다. 아니면지금당신의손안에쥐어져있거나. 어른손바닥크기를크게벗어나지않는이훌륭한도구를 100% 사용하려면 보기 에집중할수밖에없다. 그렇다. 스마트폰은시각을중심으로발달한, 디지털사회에사는현대인들에게최적화된생활도구이다. 그런데눈이보이지않는다면? 일순간모든감각기관이절단된것처럼암담해지지않나? 마치갑자기배터리가나가버린스마트폰처럼. 배리어프리는행복하게살기위한물리적제도적장벽을없애자는 운동 배리어프리 (barrier free) 라는용어가처음등장한장르는건축이다. 1974 년국제연합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없는건축설계 (barrier free design) 에관한보고서가나오면서사용되기시작했다. 이후일본, 스웨덴, 미국등선진국을중심으로휠체어를탄고령자나장애인들도비장애인과다름없이편하게살수있게하자는뜻에서주택이나공공시설을지을때문턱을없애자는운동을전개했고, 이것이계기가되어전세계로확산되었다. 그러니까배리어프리는모두가행복하게사는도시를만들기위하여물리적 제도적장벽을없애자는 운동 에서출발했다. 화면해설영화등다양한배리어프리콘텐츠의필요성대두그로부터 30여년이지난지금, 건축물이나도시와같은공간적인분야이외에도배리어프리가필요한장르가또있다. 바로문화콘텐츠다. 특히영화처럼누구나즐기는대중영상콘텐츠에대한배리어프리버전의제작, 즉시각장애인을위하여영화에해설을입힌화면해설영화를요구하는목 제1회배리어프리영화축제소리는꽤높다. 부산국제영화제도시청자미디어재단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와함께지난 2010 년부터상영작가운데몇편을선정하여화면해설과자막해설을입혀시청각장애인들이영화제를즐길수있도록해오고있다. 필자는 2011 년부터부산국제영화제화면해설작가로참여하고있는데, 2010 년이후해마다 10편이넘는작품들이화면해설영화로제작되다가올해는 4편만제작되어아쉬운마음이크다. 하지만부산국제영화제의상영작이화면해설로제작되면서이것이기폭제가되어지금은부산에서화면해설과관련한교육이활발하게이루지고있다. 화면해설에관심이있거나활동중인작가, 성우, 연출자등으로구성되어있는배리어프리영상포럼에서는지난해에이어올해도배리어프리영화제를개최했다. 부산광역시와영진위의지원으로진행된배리어프리영화제는가마솥같던불볕더위에, 가을바람이잠깐씩스치던지난 9월초순. 부산시민공원잔디밭에서누구나편안하게즐기는영화축제로마련되어많은사랑을받았다. 배리어프리영상포럼의활동역시배리어프리콘텐츠의필요성이낳은결과라고할수있을것이다. 086 공감그리고 087
손을잡다 어둠속의대화, 마음을열다 악가들의노래와성우드라마그리고해설만으로 각장애인송영희대표가운영하고있는곳으로 진행됐다. 오케스트라는피아노가대신했다. 스토 100 분동안완벽한어둠을경험할수있는일종의 리를이해하는데걸림돌은없되, 아름다운음악을 체험공간이자카페이다. 비시각장애인은 어둠속 즐길수있도록주요한노래와아리아는모두살리 의대화 에입장하면두통을느낀다. 눈이, 계속해 는방향으로구성되었다. 레치타티보는성우드라 서빛을찾으려고하기때문이다. 그러다가 보기 마로, 아리아의내용은노래전이나후에성우가목 를포기하게되면, 그순간다른감각이열린다. 그 소리로연기를하거나, 해설자가내용을읽어주었 감각은상상력을불러일으킨다. 8 명의출연자가 다. 공연시간은 90 분. 공연이끝난후시각장애인 100 분동안 어둠속의대화 에서체험하고그려 과비장애인이섞여있던객석에서환호와격려의 낸세상은저마다달랐다. 어둠속의대화에나온 박수가쏟아졌다. 이후이어진인터뷰에서시각장 출연자들은 어둠, 보이지않음 은불편한것일 애인은옆사람에게묻지않아도스토리가이해되 뿐, 우리가생각하는것만큼불행한것은아니라는 배리어프리영화제작체험 어좋았다고답했다. 또한오페라를처음보았는데어렵지않고흥미로웠다는이야기도있었다. 그런 결론에이르렀다. 이결론이어둠속의오페라 < 라보엠 > 을이끄는용기가됐다. 시각장애인을포함하여누구나즐길수있는배리어프리콘텐츠영상예술인영화는누구나즐길수있다고는하지만사실은틀린말이다. 어르신의경우, 한국영화인데도전개가빠르거나복선과상징이많은작품은 이야기를따라가기가힘들어서어렵다. 는분들이제법많다. 이들에게화면해설영화는친절한안내인의역할을한다. 이렇듯배리어프리콘텐츠는활용범위가꽤넓다. 시작은시각장애인을위하여제작되었지만, 수용자는그보다훨씬폭이넓은것이다. 이와같은활용도는배리어프리오페라를제작하면서도입증되었다. 우선오페라는낯설고어렵다. 연극처럼한국말로된대사가있는것도아니다. 오페라에서대사에해당하는레치타티보 recitativo 는거의외국어다. 특히이탈리아어가많은데이탈리아에서도오페라를방송하거나공연할때는자막을넣는다고한다. 이유가뭘까? 이미사용하지않는언어로노래하기때문에현대의이탈리아인들도모르는언어라는말이다. 그러다보니, 조수미의말처럼 옆에서성악가가부르는노래 가사를모르는경우 도종종발생한다. 한마디로오페라를편안하게즐기기에는 벽 이너무높다. 오페라가가지고있는모든특징이 장애 가되기때문이다. 그런데이런오페라를배리어프리로만들겠다고? 완성으로가는길은생각보다험난했지만결과적으로불가능한이야기는아니었다. 특히암전상태에서공연된어둠속의오페라 < 라보엠 > 에대한평가는호평일색이었다. 효과적인전달을위하여원작을해체하여재구성한 < 라보엠 > 은일반오페라형식이아니라, 공연장의모든조명을끄고성어둠속의오페라 < 라보엠 > 데비장애인들에게서도이와비슷한반응이나왔다. 오페라가어렵게느껴지지않았다는것이다. 배리어프리오페라가오페라의높은문턱을낮추는역할을한것이다. 눈이닫히면다른감각이열리고그때상상의세계가펼쳐진다! 또한가지, 사방이캄캄하니까눈이보이지않는대신귀가열려오히려집중하게되었다는이야기도있었다. 사실, 배리어프리오페라를제작하면서알게된새로운사실은 어둠 곧 보이지않음 에대한것이었다. 도시에태어나고살아가는현대인들이 완벽한어둠 을체험하기란하늘의별따기만큼이나어렵다. 도시에서빛은, 어디선가반드시새어들어온다. 그리고우리의눈은본능적으로그빛에반응한다. 어둠속의오페라를담당했던영화의전당조명감독의말을빌면, 가장표현하기어려운조명이완벽한암전 이라고할정도니까. 비장애인들은알수없는 완벽한어둠 과 보이지않음 을느껴보기위해서울북촌에위치한 어둠속의대화 를방문했다. 어둠속의대화 는시 법적제도적장치를마련하여장애인에게문화향유권돌려주어야어둠속의대화를체험하게되면 시각장애인들이머릿속에서그리고있는이세상은현실보다훨씬아름답고따뜻하지않을까. 우리가범접하지못할순수의세계가있을지도모르겠다. 는생각을하게된다. 또, 그동안마음이닫혀있던쪽은장애인이아니라몰이해상태였던비장애인이었다는생각도하게된다. 어떤부분이든지신체의일부가훼손되거나기능을하지않는것은분명힘든일이다. 그러나눈이보이지않는다고해서모든시각장애인들이불행한것은아니다. 그들은불편할뿐이다. 불편은제도와장치로많은부분, 해소할수있다. 완벽하지는않지만건널목의턱이낮아지면서장애인의이동이옛날보다는편해졌다. 이처럼문화예술분야에서도더욱다양한배리어프리콘텐츠가제작되어긍정적인역할을할수있기를바란다. 088 공감그리고 089
문화예술장르별비평속살을보다 092 시각예술 2016 부산비엔날레... : 그속에사람이있다송만용 096 창작발간 독립출판을바라봄, 바래봄강은경 102 예술기획 문화가있는날, 두가지변수와두개의가능성정상도 106 영화 영도 ( 影島 ) 를소재로한두편의부산다큐멘터리김이석 92 96 106
속살을보다 2016 부산비엔날레... : 그속에사람이있다 도시와주민들을위한예술적체험과치유의장 사실비엔날레는 2 년마다열리는전시회를말한 다. 비엔날레에따라 성격이다를수있지만주로 그도시가갖고있는역사를기억하기위한행사이 거나쇄락한도시의산업공간을재생하여관광자원 화하고주민들에게예술적체험과역사그리고치유 의기회를제공하려는의도에서출발하는행사 가 대부분이다. 2016 부산비엔날레는시립미술관에서 저우원도우 <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 는현대미술의도입과정의충격과적응의역사를다 공론장 (Hybridizing Earth, Discussing Multitude) 루고있고, F1963 에서는도시산업공간의재생의 이그것이다. 그리고 3 개의 Project 로구성되어있다. 관점이중심을이루고있다. 그러나태생적으로비 먼저부산시립미술관에서전시되고있는 Proj- 엔날레에는감추어진혹은잊어버린시각적감성충 ect1 의기획의도를보면, 이번전시는이를통해 격으로불편한전시회이다. 현대미술의동시대적감 90 년대이전의자생적, 로컬아방가르드시스템과 2016 부산비엔날레... : 그속에사람이있다 글 송만용미술평론가, 동서대학교교수사진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F1963( 고려제강수영공장 ) 성을확인할수있는장이면서현대예술감수성의척도이기에전문적감수성과미감이필요한전시회이다. 때문에주제의성공적인펼침과감염 (?) 이성공의잣대가되어야만함에도불구하고관객수로평가받는불쌍한전시회가비엔날레이다. 90년대전후의비엔날레에대한근원적질문 90년대이후에대두한글로벌비엔날레시스템, 이둘의관계 ( 연속-불연속 -습합) 를집중적으로거론할생각입니다. 이것은전시형식으로서의 비엔날레 에대한근원적인질문이며, 작가적존재에대한반성과비판을하고자하였다. 고한다. 이들작품들의차이를보면, 중국의작가들은대체적으로천안문사건이후자기정체성에대한물음을다각적으 그런데하나의전시회인 2016 부산비엔날레를자 로던지고있음을알수있다. 반면일본의작가들은 대주제 혼혈하는지구, 다중지성의공론장 (Hybridizing Earth, Discussing Multitude) Project 1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구어샤오옌 ( 중국 ), 사와라기노이, 타테하타아키라, 우에다유조 (J-team, 일본 ), 김찬동 ( 한국 )] Project 2 F1963, 큐레이터 ( 윤재갑 ) 세히보면, 2개의전시로구성되어있다. 즉부산시립미술관의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 와 F1963 의 혼혈하는지구, 다중지성의 자기주변의현실문제를거대한규모와미술외적인표현방법론의확장을추구하고있다. 여기에한국의작가들은대체적으로현대미술의파동속에서개념 Project 3 주최 부산시립미술관강당, F1963 중앙정원, 부산비엔날레학술정책팀부산광역시, ( 사 )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이이남 < 혼혈하는지구 > 조아나라이코프스카 <My father never touched me like that> 2016 부산비엔날레 ( 운영위원장 : 임동락, 전시감독 : 윤재갑 ) 가시작되었다. 이번부산비엔날레는 9월 3 일부터 11월 30일까지총 89일동안부산시립미술관과 F1963 ( 고려제강수영공장, 회장홍영철 ) 1) 에서개최되며, 22개국 118 명 ( 팀 ) 의 328 점이참여하고있다. 1) 약 3,000 평으로구성된 F1963 에서 1963 은바로공장설립연도이다. 또한고려제강은철제와이어를생산하는국제적인기업이다. 여기서철로만든와이어는광안대교등구조물의안전과미감을표현하는데사용되는주요한요소이다. 이러한와이어를생산하던공장이예술공간으로탈바꿈한것이바로 F1963 이다. 092 공감그리고 093
속살을보다 2016 부산비엔날레... : 그속에사람이있다. 과물질성에대한의문을던진것으로보인다. 그러다보니우리시간의마디마디속에서각국가의예술가들이무엇을고민하고있었는지를살펴볼수있는좋은기회이다. 대표적인작품으로장샤오강의 < 혈연 : 대가족 3>, 조우티에하이의 <10 년전 >, 하용석의 < 미완성의프로젝트 > 를들수있다. 시민의예술적공감대형성에의미다음으로이번부산비엔날레에서가장강한임팩트를준, 일명 네모 3개 의전시장으로불리는 Project 2인 F1963 이있다. 기획의도를보면, 다양한종교, 다양한인종, 다양한국적의예술인조로파이글 <Poppy> 과학자들이한자리에모여서전세계인류의과거와현재, 미래를토론하는다중지성의공론장 이라먼저관객들에게소위붉은치마로알려져있는고한다. 그연장선상에서관람객참여형작품이눈조로파이글의 <POPPY> 를보면, 이작품에붙어있에띈다. 이것은어렵고난해하다는통념의비엔날는부제인 마약을상징하며 - 양귀비 를눈여겨보레를시민의예술적공감대를넓히고자하는부산비는사람은많지않을것이다. 그래서붉은양탄자가엔날레의노력의결과로보인다. 대표적인미디어천장에매달려서윙 ~ 윙 ~ 하며돌아가는광경은마아티스트이이남 ( 한국 ) 작가의 < 혼혈하는지구 (Hybridizing Earth)> 를들수있다. 즉구글의신기술틸약, 양귀비보다는어린시절의목마를연상시키기도하고이슬람의탄누라춤 2) 을연상시키기도한다. 즉트브러쉬 (Tilt Brush) 와세계최초로협업한작품이무한히도는그형상속에서마약등병리적현상을다. 관람객은틸트브러쉬를사용하여가상의 3D 공떨쳐버리고자하는것이아닐까? 간에직접그림을그릴수있다. 이외에도이벨리쎄과르디아페라구티 ( 이탈리아 ) 의 <Selvage>, 진양핑다음으로는조아나라이코프스카의 <My father ( 중국 ) 그리고팍승천 ( 홍콩 ) 의작품 <A Travel without Visual Experience (#3)> 가있다. 그외작품으 never touched me like that > 이다. F1963 전시장모퉁이를돌아서면, 상단에화면으로아버지와로는, 조로파이글의 <POPPY>, 조아나라이코프스딸이나타나그저머리를맞대고서로얼굴을쓰다카의 <My father never touched me like that..>, 듬고있다. 절묘한균형과단순한동작으로이어지최기창의 <Long may you run> 을들수있다. 는조아니라이코프스키의작품은홀로코스트, 즉나치에의해유태인 600 만명이아우슈비츠등에서 2) 탄누라춤은무아지경속에서세속의짐과욕망을점차털어버린다는의미로계속돌며그과정에서물질적욕구에가득찬몸은무거워천상에있는신에게가까이할수없다는이슬람의신비주의관을볼수있다. 죽은사건속에서살아남은아버지의얼굴을쓰다듬고있다고한다. 애정그이전의미안함과역사속에서어쩔수없이자행된인간의폭력, 그곳에서살았던한인간에게갖는애상과그것을보는연민이이작품에있다. 그래서눈물겹다. 다음으로아쉬울뻔했던, 최기창의작품 <Long may you run> 이다. 같이관람한친구의추천이없었다면지나쳤을작품이다. 그담담한표현과수식과과장을없애버린작가의의도가오랜여운을남기는작품이다. 벽에남겨진시간의역사혹은폭력, 즉낙서의자유스러움과그자유너머에있는아픔의이중적메타포가나만가슴저미게하는작품은아닐것이다. 작가와작품, 시민모두의소중한자산이번 2016 부산비엔날레에서가장큰특징은 F1963 과패키지상품이다. 비어있던폐공장을예술공간화하였으며나아가카페공간마저예술작품으로끌어들이고있어앞으로그활용도가기대된다. 다음으로한국철도공사부산경남본부와함께 2016 부산비엔날레 KTX 패키지상품을출시했다는점이다. 다만아쉬움이있다면, 첫째가펀드구축의어려움이었다고한다. 후원업체에서약속한것과는달리적은금액을후원하여전시준비에많은어려움이있었다고한다. 언제쯤이면광주비엔날레까지는아니더라도여유로운예산을가질수가있을까? 다음으로부산 ( 부산영화제 ), 경남 ( 창원조각비엔날레 ) 넓게는광주비엔날레까지하나의비엔날레투어코스로묶는방법은없을까? 나아가이렇게좋은전시를더대중가까이서볼수는없을까? 홈페이지를넘어서는적극적인미디어활용이필요할것이다. 그러나 2016 부산비엔날레에는작가와작품만이있는것이아니다. 태풍치바때문에걱정되어전시장에남아바람에날아간 (?) 지붕을수선하는사무국 1 2 1. 윤필남 < 손에서손끝으로 > 2. 최기창 <Long may you run> 사람들! 전시장을묵묵히지키고있는많은자원봉사자와도슨트그리고우리자신, 부산시민들! 이모두가부산비엔날레의소중한자산이며순간이아닌영원으로나아가는부산비엔날레임을우리는알아야한다. 094 공감그리고 095
속살을보다 독립출판을바라봄, 바래봄 독립출판을바라봄, 바래봄 글 강은경독립출판브랜드 & 디자인스튜디오 Small Batch Books 운영사진제공 부산독립출판연구소 (BSPL) 2016 부산아트북페어 <FROM THE MAKERS> 전시 - 책과바다사이 2016. 7. 7( 목 ) 7. 10( 일 ), 아트소향내소전시실 마켓 프롬더메이커즈 2016. 7. 9( 토 ) 7. 10( 일 ), 아트소향전관 독립출판을주제로부산에서처음으로열리는책시장으로, 전국에서발행되는다양한독립출판물을창작자 ( 제작자 / 작가 ) 가직접판매, 홍보하며창작자와관람객이만나책을매개로함께즐기는축제이다. 2016 부산아트북페어 <FROM THE MAKERS> 지난여름부산에서최초로독립출판물박람회 2016 부산아트북페어 가열렸다. 4일에걸쳐전국에서다양한독립출판물을만드는창작자들이직접만든작업들을소개하고판매하며관람객과만나는판매마켓과더불어 다팔리고없는무한정판의세계, 창작하는유령들 과같은주제로한기획자와창작자의토크, 또 책과바다사이 라는주제의특별전시등이다채롭게펼쳐졌다. 어느정도예상은했으나그예상을웃도는사람들이방문해성황리에마쳤다고한다. 나는이행사를그누구보다기다렸고, 내작업들을선보이기도했으나개인사정으로인해 4일간행사장에갈수는없었다. 현장의생생함은전달할수없을지모르겠다. 다만부산에서독립출판물을만드는서울사람으로서어쩌다이흐름에몸을맡기고함께떠내려가게되었는지, 부산에서독립출판물을만들고지켜보며느꼈던생각들을더듬어이야기해보려고한다. 오롯이내목소리를내는백퍼센트의내책그렇다. 나는어쩌다여기까지떠내려왔다. 독립출판이라는장르가태동할때나는회사를다니고있었고, 회사를다니면서주류의출판사편집자와함께내생에첫에세이를내기위해글을쓰고있었다. 당시독립출판물은이게책이냐는반문이일반적이었던, 대체로규정할수없을정도로랜덤하고산발적인창작자들의인쇄물의총합이었던듯하다. 책이라고아무도인식해주지않는어떤얇은인쇄물혹은그도아닌물체의애매한경계에걸쳐져있던그모든인쇄물들말이다. 책이라는것은당연히출판사를통해만들어지고교보문고에서검색하고살수있어야하는것이었다. 등단한작가들, 검증된전문가집단들이책을내는것이니책을내고저자가되는것은나에게도역시다른카스트의이야기였다. 나는아는분의아는분이작은출판사를운영하고계셨고, 내이야기를연재형식으로잡지에실을기회를얻었고, 그잡지의글이다른출판사편집자의눈에띄어단행본출간을제의받았다. 로또같은것이었다. 만드는내내저자가되어내책에사인을해주는상상을하면글쓰기의산고는참을만했고, 실 제로책을냈던경험자체는굉장한것이었음에도불구하고내가내책을만들면서의견은낼수있어도결정할수는없다는사실을알았을때의황망함과실망, 인세를먹고사는일은도대체누구에게해당되는건지알수없는출판계수익구조의현실등을체험한과정이기도했다. 고작책한권을내본것으로내가출판계를논할수는없지만, 고작책한권으로도나는내목소리를오롯이낼수있는백퍼센트의내책을내가만들자는결심같은걸하게되었다. 주류에서다루지않는내용과형식의출판물독립출판은말그대로주류에서다루어주지않는내용과형식의출판물이다. 나는보통독립출판에대해서사람들에게설명할때가장쉬운예로, 대형출판사에서내주지않을것같은종류의책을만드는일이라고설명하곤한다. 대형출판사는팔리는책을낸다. 단순하고명쾌하다. 사람들이사서볼만한콘텐츠를기획하고그기획에맞는내용을만들어줄창작자를섭외해서글과그림을넣고디자이너가책을만들면, 마케팅 홍보를열심히하고전국의유통배급망을통해온오프라인서점매대에올 096 공감그리고 097
속살을보다 독립출판을바라봄, 바래봄 린다. 이과정에서저자는몇퍼센트의역할을맡을 동시에생산과소비로이루어지는느리고불편한소 까? 자신이원하는대로책을만들수있을까? 내용 통방식은, 어디서나언제든동시에존재하는소셜 이너무적거나너무방대해서, 이야기가너무보편 네트워크상의흐르는소통보다매력이있다. 나는 적이거나너무개인적이라서, 전체적인분위기가너 독립출판물의영역이그어딘가에있을때생명력이 무어둡거나그반대이거나, 만들고싶은책의크기 있다고생각한다. 실제로내가부산에서독립출판 가너무크거나작거나일반적이지않은모양이거 물을만드는수업이나워크숍을할때부산그리고 나, 콘셉트가너무트렌디하거나혹은너무고루하 창원, 울산, 대구등다양한곳에서찾아오는사람 거나. 당신이생각할수있는모든상황들로인해당신이정말말하고싶었던것을담은책의출판을거절당할수있다. 허다하다. 결국내이야기를나보다잘할수있는사람은없고, 그런면에서독립출판물은태생적으로어떤이야기라도그모양그대로를거의완벽하게담아낼수있는최적의매체일지모른다. 이야기하는사람 ( 저자 ) 의의도는글이나사진, 그림뿐만아니라책의만들어낸방법과유통시키는방법으로도전달된다. 상업성보다작가주의가우선되기때문에그렇다. 매대에꽂힐수있는크기를고려하지않고비상식적으로크거나작게만들수있고, 덜렁덜렁종이한장으로된것도의도에따라서는책이라고부를수있다. 책인가아닌가의문제는책을만든사람이이것을책이라고부를것인가에따라결정된다. 그안에하나의완결된이야기가의도한대로들어가있다면그자체로책이라고불러도좋을것이다. 내생각에는독립출판물에서의책의정의는이렇게까지도확장될수있고, 마치예술이그러한것처럼, 독립출판물은저자가책이라는범위안에서가장자신의목소리를날것그대로강력하게전달할수있는표현의틀이다. 그리고저자의지위는스스로획득할수 있으므로기본적으로누구나이시장의창작자가될수있다. 나는이점이독립출판이가지는중요한가치중하나라고생각한다. 다양한방식과세분화로건강한시장형성출판사를통해서만드는책에대한아쉬움과한계를느꼈던사람들이나창작의표현과소통매체로서책을만들어온몇몇은독립출판물의흐름과상관없이스스로자신의책을만들어왔을것인데, 그렇게비오기전구름속수증기같던이러저러한인쇄물들을모아서한자리에서보여주면서비로소피부에닿아 어. 비가오네. 라고살갗으로느끼게해줬던것이홍대의작은서점유어마인드에서 8년전시작한독립출판물페어언리미티드에디션이었다. 이제는광화문일민미술관을빌려도미어터지게방문하는사람들의물결을당해낼수없는국내최대의독립출판물페어가된그 8년동안도대체무슨일이일어난걸까. 예나지금이나매시즌쏟아져나오는신간들에도불구하고독서율은기아상태, 사회안에서늘소수자였던독서인구가갑자기늘어났을이유는없어보 인다. 대형서점과출판사는트렌드셀러를베스트셀러로만들고팔기위해총력을기울인지오래고, 저자들은강연을해야책을팔아먹고살수있고, 동네서점들은학습지교재를팔지않으면살아남지못하게된상황도새로울것은없다. 과연무엇이이흐름을만들어냈나. 대개는창작자들이자신의작업을선보일수있는경로가지극히좁았다가다른우회로가생긴데서찾을수있을것이다. 내경우가그렇다. 지긋지긋한청년실업상황은나아지지않는데매년창작자들은사회로떠밀리듯나오고인정하든아니든필요이상으로많아진창작자들은강제로주어지는잉여의시간들에밑져야본전이니자아실현이라도해보자며성역없는이바닥에발을디딘다. 운이좋으면작업이잘팔리기도하고돈이되는큰출판사와계약이될수도있는일이다. 내작업세계를지키면서도일할수있는다른기회를얻거나그도아니면다른작업자들의작업을보며자극이라도받을수있으니잃을것이없다. 무엇이든 ( 거의 ) 가능한표현, 가능한매체이면서 들을만난다. 그리고그들은모두자신의어떤이야기를하기원하는데한번도비슷한이야기가없고모든이야기는책으로만들어질만한가치의이야기들이다. 나는이들의이야기를책으로만들고읽으면서부산을, 부산사람들을알아가기도한다. 더많은부산사람들의이야기를듣고책으로만들고싶고만들어져야한다고생각한다. 부산에서는부산의이야기를담은책들이많으면좋겠다. 부산국제영화제는부산에서열려야하듯이, 지역의이야기는지역에서만들어지고먼저읽히면좋겠다. 그런의미에서부산에서서울다음으로큰규모의북페어가열린것은매우환영이다. 더많은사람들이새로운창작자가되고소비자가되어서이시장을뛰게만들면좋겠다. 창작자에서서점으로이동한독립출판 2.0 의시대더많은사람들이독자에서저자가되어야한다고생각한다. 책이어떤특권층의전유물이아니라독립출판물이라는이름으로누구라도저자로서그목소리를내도괜찮은만만한장이깔렸기때문이다. 책을쓰는사람이많아지면이시장에생산자이면서소비자인사람들이많아질테고, 시장의크기가커 098 공감그리고 099
속살을보다 독립출판을바라봄, 바래봄 지면자연스럽게다양한책의가치와결을고르는와 게될거다. 서점주인들은그들자체혹은그들의선 을통해서그지역의사람을만나고그의이야기를 상은지극히정상적인성장단계를보여준다는점때 중에더다양한방식의건강한시장이세분화되며동 택 ( 큐레이션 ) 자체가힘을갖게될것이고, 그럴수록 통해잠깐살아볼수있을것이다. 그래서서울사람 문이다. 초기에는시장을만들고스스로커지는것 반성장하게될것이기때문이다. 더욱더독립출판물을만드는작가들과또그들을추 으로서나는더욱이서점들에서부산의이야기를 을감당하는데벅찼던창작자들그리고유통배급업 종하는잠재적고객들이자팬들과면밀한관계를가 찾고읽고싶다. 샵메이커즈, 책방숲, 업스테어, 산 자들, 서점주인들이이제이상황을관찰하고서로 공급과소비를하는사람이생기면당연히시장이 지게될것이다. 그들은그들의생존을위해서고객 복도로책살롱그리고그외의내가모르는부산의 모여과거와현재와미래를이야기하기시작했다. 생겨나듯이, 독립출판물을취급하는서점이늘어나 들에게그서점에찾아가야할이유를만들어야할 독립출판서점들을방문해보시라. 그리고당신의목 그것만으로도충분히건강하게이시장이살아서스 면서독립출판계는폭발적으로성장했다. 서울은매 것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은결국그서점에서만가 소리도보태어주시라. 당신도충분히매력을느낄 스로의생명력을연장해가고있다는믿음과안도감 달새로운독립출판서점들이생기고있어서매달서 능한경험에시간과돈을기꺼이내게될것이고그 수있는새로운방식의책과독서경험을가까이에서 을준다. 부디, 독립출판계가건강하게만자라주면 점들의현황을새로업데이트해야할지경이다. 물 것이작은서점을지속가능하게하는동력이될것 할수있는공간이다. 나는그가커서무엇이되던원이없겠다. 론 1 세대독립출판서점중몇몇은 2~3 년을고비로 이기때문이다. 문을닫거나위치를옮기거나온라인서점으로옮겨 실제로많은독립출판서점들은책을파는기본기 여기까지글을쓰고나니내가이토록낙관주의자 가기도했지만그러면서성장세가꺾이기는커녕그 능이외에대규모서점들이하기힘든다양하고실 였던가싶다. 물론, 독립출판시장의비약적성장과 들의사례를발판삼아지속가능성을고민한다양한 험적인행사와프로젝트들을진행하고있다. 물론 찬란함의한편에서는우려와자조의목소리도생겨 콘셉트들의서점이새로생겨나고, 작은서점들이 서점의입장에서는독립출판물서점의취약한수익 나고있다. 독립출판물시장안에서도주류와비주 모여이흐름에대한다양한고민들을나누는자리 구조때문에여러방편의마케팅 홍보방법을실험 류가형성된다든지, 인기와권력구조가보인다든 가활발하게일어나고있는것을보면확실히지금 하고있는것이기도하지만내가아는한그들은절 지, 실험은끝났고한계에봉착했다든지하는것들 은독립출판의중심이창작자에서서점으로이동한 대로돈을벌기위해이일을시작하지않았다. 그렇 이다. 그렇다면독립출판은거품이었고이제사그 독립출판 2.0 의시대로보인다. 기때문에책을매개로한대안문화공간을운영하는 라질것인가? 창작자들은계속이시장을믿고자기 사람들에가깝다. 그리고조금씩성장하는이시장 작업을해나가야할까. 독립출판서점들은지속가능 이시대에서가장중요한역할을하는것은무엇 에서서점주인으로서자생하는방식에고군분투중 한운영을할수있을까. 결론적으로내가이모든 일까. 나는현대미술에서큐레이터가한축을형성 이다. 상황을낙관적으로보는것은이런모든담론과현 하듯, 서점의역할이결국이시장을존재하게할지 모른다고생각한다. 기본적으로독립출판물들은상 독립출판물시장의자생력에대한생산적논의 품이면서작업이기때문에이것이보이고만져지는 부산에도대체불가능한역할을하는독립출판서 연결지점이필요하다. 자연스럽게 ( 그들이의도하지 점들이있다. 그곳에서부산작가들의작업을만나 않았다하더라도 ) 서점의주인들은작업을소개하고 면고향사람을만난것처럼반갑다. 부산의어느동 구매자와연결해주는큐레이터, 서점은갤러리의역 네를강아지와산책하면서그린만화를읽으면나는 할을한다. 그런면에서앞으로독립출판물서점들 낯선곳에서친구를만든것같을것이다. 에어비앤 은지금보다훨씬더전문성과고유의성격을가지 비가여행은그곳에서살아보는거라던데, 나는책 100 공감그리고 101
속살을보다 문화가있는날, 두가지변수와두개의가능성 두가지변수와두개의가능성 글 정상도국제신문논설위원 분수령맞은 문화가있는날 2014 년 1월 29일오후 2시부산역. 갑오년설연휴가시작되는이날고향을찾는귀성객을위한깜짝공연이펼쳐졌다. 국악공연팀 부산예술단 의모둠북과판굿공연, 비보이퍼포먼스팀 킬라몽키즈 의현란한몸짓, 퓨전관현악그룹인 YWCA 브라스밴드 의선율이설분위기를한껏띄웠다. 오후 3시부터는부산역 2층 맞이방 에서부산시립예술단의화려한공연이이 어졌다. 문화가있는날 첫행사는이렇게무르익었다. 문화가있는날 은시민이일상에서문화를향유할수있는환경을조성해문화융성시대의토대를마련하자는취지로매월마지막주수요일마다전시, 영화, 스포츠, 공연관람을무료혹은할인된가격으로즐길수있도록하는정책이다. 문화융성을국정기조의하나로내세운박근혜정부의대표적인문화정책으로꼽힌다. 부산에선이후주요문화시설의무료 할인관람및야간개장과다양한문화프로그램이이어졌다. 그런성과가지난해광역시 도가운데 문화가있는날 지역문화시설참여율 1위로나타났다. 하지만 문화가있는날 은여전히 2%, 아니그이상부족하다. 이를안다는시민이두명중한명꼴이고, 제대로즐기고있다는시민은세명중한명꼴이다. 게다가 문화가있는날 은두가지큰변화의계기를맞았다. 문화기본법개정안의국회통과로지자체와민간기업이적극적으로참여할수있는법적근거를마련한것이하나라면, 지자체합동평가지표에공공문화시설의 문화가있는날 참여율이추가됨에따라각지자체가부담을가질수밖에없다는점이나머지하나다. 이는 문화가있는날 활성화라는긍정적인측면과함께실적위주의관주도가능성증가라는부정적측면을동시에갖는양날의칼일수있다. 그결과는시민이얼마나제대로 문화가있는날 을즐기느냐에달렸다. 통계로보는 문화가있는날 의민낯 문화가있는날 은갈길은멀다. 이는홍보부족이나콘텐츠부족등표면적인이유말고도 문화가있는 날 이추구하는목표와도관련이있다. 문화가 이제부터즐기세요. 해서융성하는것은아니라는말이다. 사정이이러니 문화가있는날 에대한국민인지도와참여도는아직높은점수를받기엔턱없이부족한상태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지난 5월, 15세이상국민 2,500 명을대상으로벌인설문조사에따르면전체의 57.6% 가 문화가있는날 을알고있다고응답했다. 이는지난해 8월조사때보다 12.4% 포인트늘었으나국민의절반이모르고있는것과마찬가지다. 게다가 문화가있는날 을아는사람가운데실제로프로그램에참여한비율은 38.1% 에그쳤다. 프로그램불참이유로평일이라시간을내기어려워서 (57.4%), 프로그램에대한상세정보를얻기어려워서 (15.8%), 인근에이용할수있는문화시설이적어서 (12.1%) 등이꼽혔다. 2014 년 1월 문화가있는날 이처음시작될당시 883 개였던프로그램수는올해 6월현재 2,200 여개로 3배가량늘었다. 참여시설도영화관,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등 1,000 개를훌쩍넘겼다. 그래도국민이볼때는부족하고모자란것투성이다. 102 공감그리고 103
속살을보다 문화가있는날, 두가지변수와두개의가능성 부산은더상황이열악하다. 부산시의올해 문화가있는날 예산은 7200 만원, 16개구군으로나누면 1곳당 450 만원을쓸수있다. 참여시설은부산시문화시설 187 곳가운데 39% 인 73곳. 전체의 45% 를차지하는공연장을끌어들이지못한탓이다. 이런가운데서도수산가공선진화단지직장배달콘서트, 동구와영도구, 강서구의작은음악회, 금정구지역거점특화공연등이이뤄졌으니문화향유를갈구하는시민의바람을새삼느낄따름이다. 문화가있는날 무엇이문제인가 문화가있는날 에대한비판적시각은이의탄생에서부터비롯됐다. 박근혜대통령은문화융성의기치를내걸고문화융성위원회를만들었다. 초대위원장이김동호현부산국제영화제이사장이다. 우리문화현장이얼마나황폐했으면이런정책이필요할까하는상황인식에서 문화가있는날 을수긍했고, 김위원장을믿었던측면이있다. 문화활성화를위한캠페인사업이필요하며문화향유가개인의권리임을자각하는분위기가만들어져야한다는당위성이있었다. 그런데 문화가있는날 은기존문화행정과겹칠수밖에없다. 이를주도하는문화융성위원회와문화체육관광부의어정쩡한동거가불가피했다. 예산이중복되거나제대로지원되지않는일이발생하는이유이다. 그러니 문화가있는날 은부족한예산지원에다기존행사를몰아서하자는식의추진으로많은지적을받게된것이다. 당연히 문화가있는날 은새로운문화생태계조성의계기여야한다는바람을충족시키기엔미흡한성적표에머물고있다. 연극, 뮤지컬, 미술관, 음악회를못가는소외계층을보듬어문화사각지대를없애고, 차별화한콘텐츠로문화향유의즐거움을선사하고, 문화예술계저변을넓히는데기여하기엔부족하다는평가가그예다. 문화가있는날 변신의기회는있다프랑스는 1984 년부터매년 9월셋째주말 ' 문화유산의날 ' 을운영하고있다. 엘리제궁, 상원의사당, 총리공관등공공시설과전국주요박물관과미술관을무료로개방해프랑스문화의위상을자랑한다. 이처럼문화의힘은국력과직결된다. 성장논리에매몰돼앞만보고달려온우리나라는이제문화를즐기고누리는시대로도약할때가됐다. 문화와 함께할때우리의삶이여유로워지고행복해진다. 그런면에서 문화가있는날 도그가능성을무시할수없다. 문화가있는날 은문화기본권을행사할수있는토양이될수있다는점에서유의미하다. 그만큼돌다리도두드려건너듯천천히가야한다. 문화기본법개정안을통한 문화가있는날 법제화가그예다. 관련사업을안정적으로지원함으로써다양한문화향유기회를제공하겠다는취지다. 지자체와민간기업의적극적인참여를유도할수있는법적근거도함께마련됐다. 문화기본법개정안은지난 5월 19일국회본회의를통과했다. 이에따라문체부장관이 문화가있는날 을지정, 운영할수있게됐다. 이전까지 문화가있는날 은법적근거가없어정부의문화향유확대캠페인수준에머물렀다. 지자체에도문체부가권고하는정도에그쳤다. 문화융성위원회가문화기본법개정안국회통과이튿날인 5월 20일제주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 14개광역시 도문화재단과맺은 문화가있는날 및문화융성활성화를위한업무협약 (MOU) 도이러한배경에서이뤄졌다. 문화가있는날 의또다른변수는정부가지난 8월부터지자체합동평가지표에공공문화시설의 문화가있는날 참여율지표를포함시킨것이다. 정부는지자체별공공문화시설의행사참여율을토대로내년상반기중인센티브지급등방식으로예산을차등지원할방침이다. 전국문화회관과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등공공문화시설이 문화가있는날 에적극적으로참여할수밖에없는시스템이만들어진셈이다. 하지만지자체입장에선부담이불가피하다. 부산문화회관, 부산시민회관, 영화의전당등을비롯해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등부산지역평가대상에포함된 36곳의공공문화시설에비상이걸린것은불을보듯뻔한일이다. 정부가이두가지변수를얼마나효율적으로활용하느냐는점이정책적인차원에서이뤄지는것이라면민간차원에서 문화가있는날 의가능성은기업과젊은층의참여유도에서찾을수있다. 우선민간기업의문화예술후원활동 ( 메세나 ) 을 문화가있는날 과결합하는일이다. 기업으로서는정부의문화융성정책에발맞추면서전략적문화마케팅으로활용할수있기때문이다. 기업들의활발한참여는 문화가있는날 활성화의촉매제가될수있다. 창의적인콘텐츠로무장한양질의문화프로그램은기업의홍보에도순기능을한다. 기업의정체성과 문화가있는날 의앙상블은해당기업에는새로운동력을제공하고시민들에겐 생활속문화참여 의기회를준다. 무엇보다중요한점은젊은문화예술인에게 멍석을깔아주는일 이다. 그들이전국의공연장은물론전통시장과공원등지에서열정을분출할수있도록도와야한다. 클래식이나전통예술, 대중문화등장르를가리지말고학력이나경력보다실력과열정을기준으로무대에설젊은이를뽑아지원하는방식이다. 그사이에서자연스럽게옥석이가려진다면그게바로문화예술의저변확대이자흙속에서진주를찾는일이다. 104 공감그리고 105
속살을보다 영도 ( 影島 ) 를소재로한두편의부산다큐멘터리 영도 ( 影島 ) 를소재로한두편의부산다큐멘터리 < 그림자들의섬 > 과 < 그럼에도불구하고 > 글 김이석동의대영화학과교수, 현부산영화평론가협회부회장 영도 ( 影島 ). 한자로 그림자섬 이라는뜻을가진이섬에는아주오래전부터사람이살았다. 그기록이멀게는신석기시대까지거슬러올라갈정도라하니, 영도는부산에서가장먼저사람이살았던땅인셈이다. 1) 1934 년영도대교가개통되면서영도는육지의일부가되었다. 한국전쟁이발발하고, 수많은피난민들이부산으로몰려들면서영도다리는애환의장소가되었다. 지금은육지와연결되어있지만영도는여전히섬과같은존재다. 부산의다른지역들에비해환경은낙후되었고, 그곳에살고있는사람들의삶도시대의흐름에서조금은비껴나있다. 고층빌딩에둘러싸인도심과는다른풍경덕분에영도는부산을배경으로한영화들속에자주등장하곤한다. 하지만이영화들속에서영도는늘스쳐지나가는공간에불과했다. 그런데최근이공간과이사람들에게초점을맞춘두편의다큐멘터리가등장했다. 김정근감독의 < 그림자들의섬 > 과김영조감독의 < 그럼에도불구하고 > 가그작품들이다. 1) 영도구청홈페이지 http://www.yeongdo.go.kr/05about/03_03.asp 노동자에게마이크를넘기다 : < 그림자들의섬 > 김정근에게영도는한진중공업의땅이다. 따라서그 의영화를특징짓는이미지는크레인과배그리고노동 자들이다. 김정근은김진숙, 85 호크레인, 희망버스 등의단어들로기억되는 2012 년한진중공업사태이후 의이야기를카메라에담았다. 당시사측의일방적인 정리해고에맞서무려 309 일동안크레인위에서홀로 농성을벌였던김진숙씨를비롯하여한진중공업의노 동자들이직접카메라앞에앉아자신들이참여했던노 조활동의이야기를들려준다. 소재만놓고보면격렬한시위현장의모습등이중 심이된영화일것같지만, 예상과는달리 < 그림자들의 섬 > 의대부분은인터뷰로구성되어있다. 김진숙씨를 포함한다섯명의노조원들은입사직후부터현재에이 르기까지자신들이한진중공업과함께했던시간들을 회상한다. 때로는담담하게때로는울먹이며그들은대기업에입사했다는기쁨, 기대와는사뭇달랐던작업환경때문에느꼈던실망감, 노조를만드는과정의두려움, 동료에대한섭섭함과고마움등을회상한다. 영화전체를인터뷰로구성한것은매우대담한발상이었다. 사실이런구성은관객입장에서는불친절하게느껴질가능성이크다. 영화의흥행에도그다지도움이되지는않았을것이다. 이점은감독도이미알고있었을것이다. 그렇다면그는왜이처럼단조로운형식을선택한것일까? 여기서기억해야할사실은김정근이이미 2012 년에한진중공업사태를다룬르포르타주형식의영화 < 버스를타라 > 를연출한바있다는점이다. 따라서만일원했다면그는언제든지시위현장의모습같은스펙터클한영상들을활용할수있었다. 하지만김정근은스펙터클한영상들대신인터뷰를선택했다. 그이유를감독은다음과같이밝히고있다. 106 공감그리고 107
속살을보다 영도 ( 影島 ) 를소재로한두편의부산다큐멘터리 < 그럼에도불구하고 > 에는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도시 우리는살면서정 재계인사들의강연이나인터 재개발등굵직굵직한역사의소용돌이속에서용케살 뷰를자주듣죠. 그에반해노동자들의이야기를 아남은평범한영도사람들의희로애락이담겨있다. 오랫동안듣는경우는드물어요. 그래서노동자들 에게마이크를넘기는것이중요하다고생각했어 김영조의영화속에서영도는여전히섬으로존재한 요. 2) 다. 바지선과대형크레인이즐비한영도는항구도시 부산의원형질적인풍경이다. 하지만오늘날이런풍 < 그림자들의섬 > 이라는이영화의제목은작품의배 경은다리건너도심의풍경과는사뭇이질적인것이 경이된영도에서따온것이다. 한진중공업은영도를 되어버렸다. 영도의사람들역시도심속사람들과는 대표하는회사였으며영화에등장하는노동자들은영 다른모습으로살아간다. 감독의작업노트에는영도사 도의사람들이었다. 하지만김정근감독이만난사람 람들에대한인상이다음과같이기록되어있다. 들은온전한인간이아니라그림자로취급받아왔다. 그림자들의섬 이라는제목에는이런부당한대접에 대한분노와좌절의감정이담겨있다. 이제는언론을 통해어느정도알려진사실이지만, 김정근감독자신 도노동자출신이다. 고등학교를중도에그만두고인 쇄소와신발공장등을떠돌면서감독은자기자신과 세상에대해알아나갔다. 영화로삶의진로를변경한 이후에도그는다음영화를만들기위해또생계를유지하기위해여전히일하고있다. 영화의마지막부분에서김진숙씨는 1987 년이전의노예생활로지금노동자들이다시돌아갈수는없다. 고말한다. 이것이스스로를문화노동자라고규정하는김정근이이영화를만든이유이기도하다. 지지고볶으면서그냥삽니다 : < 그럼에도불구하고 > 김영조에게영도는서민들의땅이다. 따라서김영조의영화를특징짓는이미지는사람들의얼굴이다. 불꽃을튀기며거대한선박을수리하는용접공의두터운작업복속에서풍겨나오는퀴퀴한땀냄새, 뿌리뽑힌삶속에서도한가닥위안을찾고싶었던피난민을달래주던점바치들의중얼거림, 차마말로표현할수없는상처를가슴에묻고살아가는해녀의자맥질. 비록주목받지못했지만그들의강인한삶의흔적은영도의골목과해변그리고선창에남아있다. 2013 년, 47년만에영도다리가재개통되면서소외되었던땅영도는화려하게부활하는듯보였다. 도개 ( 道開 ) 시간에맞춰몰려들관광객들을맞이하기위해동네를새롭게단장하는계획도세워졌다. 영도사람들도기대에부풀었다. 영화의마지막장면에는점바치할머니가영도대교의성공적인재개통을기원하는제 ( 祭 ) 를지내는모습이담겨있다. 하지만현실은이들의기대와는달랐다. 점바치골목을마지막까지지키던할매들은자신들의일터와삶터를잃을위기에처한 다. 늙은강아지를벗삼아살아가던할매의처지도크게다르지않았다. 제주도에서건너와물질로가족을건사해왔던해녀의일터에도중장비들이들어왔다. 언젠가자신이만든배위에서색소폰을멋지게불어보리라꿈꾸었던용접공은조선소가문을닫으면서미화원으로하루하루를살아가야하는처지에놓인다. 이영화의제목은두가지로해석가능하다. 장밋빛약속들이가슴을부풀게하기도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현실은달라지지않았거나오히려더나빠졌다는의미가그하나라면, 현실은그저예전처럼살고싶다는소박한꿈마저도쉽게허락되지않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인간들은자신의삶을살아갈것이라는의미가다른하나다. 김영조감독의전작들을감안할때, 아마도두번째해석이감독의의도에더가까울것이다. 다른듯닮은두편의영화영도라는같은공간을배경으로하고있지만김정근과김영조의카메라가향하는방향은다르다. 거시적인관점에서사회적문제를다루는김정근의카메라는영도의경계너머로확장되어나간다. 반면미시적인관점에서인물들의개인사를조망하는김영조의카메라는영도의내부로더깊이파고든다. 영화의지향점은다르지만, 공간과인간을대하는그들의태도는서로닮았다. 무엇보다이두편의영화는솔직하고겸허하다. 두감독모두자기자신을부각시키기보다는카메라앞에있는공간, 사건, 인물들이스스로말하게만든다. 경박한유아론적태도와자극적이고선정적인영상으로채워진다큐멘터리들이범람하는요즘, 이처럼진솔한두편의영화가부산감독들에의해만들어졌다는사실이매우다행스럽고자랑스럽다. 2) http://news.maxmovie.com/256275 < 그림자들의섬 > : 2014 년서울독립영화제대상 (2016 년 8월 25일개봉 ) < 그럼에도불구하고 > : 2015 년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경쟁부문 심사위원특별언급, 2016 년서울환경영화제대상및관객상 (2017 년개봉예정 ) 108 공감그리고 109
재단은지금 부산문화재단은지금 좋아서하는동아리, 일상에예술을입히다부산문화재단은지난 6월부터사하구생활문화연합회창립총회를시작으로남구, 금정구, 북구, 동래구, 부산진구, 사상구, 영도구등총 8개의지역별생활문화연합회를구성하였다. 7월부터는국악분야생활문화연합회를시작으로무용, 밴드, 연극, 기악, 합창분야연합회를조직하였다. 작년까지개별동아리지원형태로만진행했던사업을올해는지역별, 장르별동아리연합회를구성하여지원하고있다. 사하구생활문화예술제를시작으로 12월까지부산전역에서시민들과함께하는다채로운생활문화예술제가열리고있다. 시민들이직접기획한이번예술제를통해생활문화동아리의열정과에너지를느낄수있을것이다. 또한재단에서는부산지역생활문화활성화를위하여공공의영역에서더많은동아리들이지원받을수있도록체계를구축할예정이다. 문의 : 문화사업팀 051-745-7252 추억이새록새록감만예술운동회 2016 감만아트페스티벌 - 감만예술운동회개최 2016년 10월 1일 ( 토 ), 감만창의문화촌올해세번째로열린 <2016 감만아트페스티벌 > 은감만동지역내의다양한단체와지역주민들, 예술가가함께만들어가는운동회로 200 명이청팀과백팀으로나누어나도작가, 나도행위예술가, 공굴리기등의프로그램이진행되었다. 이번행사를위해지역내어린이집, 초등학교, 육군제2보급단, 감만사회복지관에서참여하였으며, 이밖에도감만동주민들이옛운동회의추억을전시로풀어내는감만만감, 리사이클링아트전시, 감만예술시장과지역주민공연등의다채로운프로그램이운영되었다. 문의 : 창작공간팀 051-745-7247 원로미술가의작품을통해만나는시대의발자취 < 부산원로미술가특별초대전 > 2016 년 9월 27일 ( 화 ) ~ 10월 2일 ( 일 ), 부산시청 1, 2, 3 전시실 낭만의가을, 온삶속에책을담다 2016 독서문화축제 < 온삶속에책 > 개최 2016년 10월 15일 ( 토 ) 16일 ( 일 ), 부산교육대학교일원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원로예술인창작지원 - 님의예술혼, 상생으로통하다 사업으로 < 부산원로예술가특별초대전 > 을개최하였다. 전시는김봉진 ( 서양화가 ), 오재수 ( 문인화가 ), 정운재 ( 서예가 ) 등지역의명망있는원로작가 36명의작품 108 점을통해부산미술의과거, 현재, 미래를재조명하였다. 2017 년에는문학분야지원을통해원로예술인의창작의욕과업적을기리는자리를마련할예정이다. 온삶속에책 을주제로열렸던 2016 년독서문화축제는책을매개로하여, 부산지역독서관련단체및작가들이참여해다채로운볼거리와즐길거리를선사하였다. 주요프로그램으로는스토리강연, 시민참여공모전시, 도서증정이벤트등이진행되었으며, 책속에서만나는부산이야기, 부산작가와함께하는낭독여행 등의사전프로그램도진행되었다. 부산문화재단은이번행사를통해일상에서책읽기문화를활성화시키고, 독서로어울릴수있는장을마련하였다. 문의 : 예술진흥팀 051-745-7233 문의 : 문화교육팀 051-745-7288 110 공감그리고 111
부산문화재단은지금 2017 년도부산문화재단창작공간입주예술가공모안내 - 창작공간 : 감만창의문화촌, 홍티아트센터 - 접수기간 : 2016. 10. 19.( 수 ) ~ 11. 18. ( 금 ) 16:00 까지 감만창의문화촌 - 장르 : 시각, 공연, 문학, 다원예술등 - 입주기간 : 2017. 1. ~ 12.(1 년간 ) - 선정규모 : 14 팀내외 - 지원내용 : 창작공간및창작프로그램지원 문의 : 창작공간팀감만창의문화촌 051-745-7248 홍티아트센터 - 장르 : 시각 ( 설치미술중심, 프로젝트 ) - 입주기간 : 2017. 1. ~ 12.( 단기 3 월 ~5 월 / 장기 1 년간 ) - 선정규모 : 10 팀내외 - 지원내용 : 창작공간및창작프로그램지원, 해외교류전참여 문의 : 창작공간팀홍티아트센터 051-263-8662 2017 <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 > 사업설명회개최 부산지역예술단체및예술인의순수문화예술창작활동을지원하는 <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 > 사업의사업설명회가 11월마지막주에개최될예정입니다. 지원신청방법, 신청자격, 신청제한사항등에대한상세한설명과 1:1 컨설팅을추진할예정이니예술인분들의많은참여바랍니다. 문의 : 예술진흥팀 051-745-7231~4 112 공감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