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財 ) 東亞文化硏究院發掘調査現場說明會第 62輯 진동우회도로건설공사구간내문화유적發掘調査現場說明會 2 0 0 6. 6
Ⅰ. 조사개요 1. 조사명 마산진동우회도로건설구간내유적발굴조사 2. 조사대상지역및면적 조사대상지역 : 경남마산시진북면지산리산 90-7번지일원 조사대상면적 : 총 5,184m2 3. 조사기간 2006. 3. 16 ~ 2006. 7. 3( 실조사일수 100 일간) 4. 조사기관 ( 財 ) 東亞文化硏究院 5. 조사단구성 조사단장 : 신용민( 동아문화연구원부원장) 지도위원 : 임효택( 동의대학교교수, 도문화재위원) 책임조사원 박광춘( 동아대학교교수, 문화재전문위원) : 배덕환( 동아문화연구원조사과장) 조사원 : 박미정( 동아문화연구원전임연구원) 조사보조원 : 황은희( 동아문화연구원연구원) 김세진( 동아문화연구원연구원) 보조원 : 김정호( 동아문화연구원연구원) 김지혜( 동아문화연구원연구원) 최 은( 동아문화연구원연구원) 6. 조사의뢰기관 ( 주) 한진중공업, ( 주) 대왕 E&C - 5 -
Ⅱ. 조사경위및목적 조사대상지는행정구역상마산시진북면지산리산 국토관리청에서시행하는진동우회도로건설구간에해당된다. 접한진북면덕곡리와지산리일대에대한 90-7번지일원으로부산지방 조사대상지역과연 2004년경남문화재연구원의지표조사 결과고려~ 조선시대의분묘군과유물산포지등이확인되었으며우회도로건설공사 에앞서 2005 년우리연구원에서시굴조사를실시하게되었다. 시굴조사결과, 시 기미상의석곽묘 1 기, 조선시대분묘 7 기, 수혈유구 7 기등의유구및청자편, 분청 사기편등의유물이수습되었다. 이에따라상기지역은공사에앞서발굴조사를 실시하여매장문화재의성격을파악하고그결과에따른문화재보존대책을판단할 수있는근거를마련하여공사시행여부를판단하고자함에그목적이있다. Ⅲ. 조사대상지역의주변유적 조사대상지의행정구역상소재지인마산시는 1995년시군통폐합에따라이전창 원군의 1 읍( 내서읍) 과 4 면( 구산면ㆍ진동면ㆍ진북면ㆍ진전면) 을편입하여이전보다 크게늘어나, 현재 329.67 km2이며( 하지만경상남도의다른시군에비한다면그면적 은좁은편이다), 1읍 4면 27 동으로구성되어있다. 마산지역의지층은하부화성 활동으로인하여형성된진동층에해당하며, 무학산지와여항산지등크게 2개의 산지지형을주축으로이루어졌다. 조사대상지는이가운데후자인여항산지에속해 있는서북산의남동쪽봉우리에해당된다. 여항산지에서발원하는하천은무학산지 에서발원하는것에비해상대적으로유로가길고하상구배가완만하며유역에넓 은충적평야를형성하고있다. 청동기시대에해당하는유적과유물은이미다수가조사보고된바있으며, 삼한 시대에는경남지역에서전남지역에이르기까지남해안의해안을중심으로한해양 문화집단인 浦上八國 의존재가주목할만하다. 三國史記 의기록에의하면맹 주국은마산포구를끼고있는 骨浦國 으로보고있으며, 이세력이전남해안까지 뻗쳤다는기록이남아있다. 창원군의또다른지역인진해현은( 지금의진해시가아 니고마산시에편입된진동ㆍ진전ㆍ진북의삼진지역을말한다) 선조 34 년(1601 년) 함안군에속했다가광해군 9 년(1617 년) 진해현을설치하면서독립하였다. 그러다가 인조 5 년(1627 년) 에창원에합해진것이다. 이후인조 7 년(1629 년) 에는잠시분리 되어함안군에이속되었다가인조 17 년(1639 년) 에다시현으로독립하였다. 조사지역주변에서확인된청동기시대유적으로는진동유적, 진동리청동유물출 토지, 성문리지석묘군, 신촌리유적, 신촌리지석묘ㆍ석관묘및현동유적의주거지, 다구리마제석검출토지, 곡안리지석묘군, 오서리지석묘군등이분포하고있다. - 6 -
이유적들에서무문토기, 단도마연토기, 석검, 석촉등이출토되었다. 삼국시대유적은덕곡리고분군, 신촌리고분군, 대평리유적, 강곡리연동유적, 현 동유적등이며패총, 주거지, 고분등이확인되었다. 조선시대의유적으로는진해현 성과사동리성지, 파산봉수대와가을포봉수대등관방유적이조사되었다. 조사대상지역주변의중요유적은다음과같다. 1. 마산인곡리의림사삼층석탑 소재지: 마산시진북면인곡리 439 진북면인곡리의림사경내에위치하고있는 3층석탑으로화강암으로만들어졌 다. 탑의받침대는 2 중이며, 현재의높이는 3m 이다. 상하받침대의면석에는 2개의 모서리기둥과중앙을받쳐주는받침기둥을새겨넣어목조건축양식의느낌을준 다. 탑신에는각층마다 2개의모서리기둥을새겨넣었으며지붕돌의처마밑받침 은 5 개의층을이루어전형적인신라석탑의처마받침형태를계승하고있다. 탑 의맨꼭대기부분에는탑위쪽의장식을떠받치는받침대만남아있고다른부분 은유실되었다. 탑의지붕돌과받침대가약간파손되기는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조형미를갖추고있다. 탑주변에석등받침돌과당간지주등의석재가남아있다. 2. 마산신촌리유적 소재지: 마산시진북면신촌리산 87 진동삼거리에서함안으로통하는길목에위치하며주거지, 시대유구와삼국시대의분묘로이루어져있다. 석관묘등의청동기 대평리유적과는동서방향으로약 1km 가량떨어져있다. 청동기시대유구들은신촌부락을둘러싸고있는구릉일대 와대평마을로가는백옥고개까지상당히넓게형성되어있으며 1980년 4월국립 경주박물관에서발굴조사를실시한결과, 청동기시대석관묘 28기와주거지 2 동, 삼국시대석곽묘 3기와석실묘 2 기가확인되었다. 석관묘는길이 2m 내외의소형 으로판석재를사용하여네벽을축조하였으며무문토기옹, 석검, 석부, 석촉등의석기류가출토되었다. 홍도등의토기류와 3. 마산대평리유적 소재지 : 마산시진북면대평리답 268 진북면대평리대평마을일대에위치하고있다. 유적의주변에는진동만을끼고 비교적넓은평야지대가형성되어있는데, 이중진북초등학교를에워싼해발 50~60m 의구릉일대에삼한시대의주거지, 패총, 분묘등이분포하고있다. 패총은 - 7 -
주로구릉아래쪽에형성되어있으며, 분묘는주로남쪽과서쪽구릉을따라넓게 분포하고있다. 1991ㆍ92년에창원대학교박물관에의해두차례학술조사가실시 되었는데삼한~ 삼국시대의목관묘, 석관묘, 옹관묘, 그리고 6세기대이후의석실분 등총 30 여기의분묘가확인되었다. 또한주변에서채집되는유물들은패총출토 유물들과동일하며산포범위또한상당히넓게나타나고있기때문에분묘조영집 단의주거지가분포할가능성이높은것으로추정된다. 4. 마산진북면일반산업단지내유적 소재지 : 마산시진북면망곡리 353답 진북면망곡리진북일반산업단지조성부지내에위치하는유적이다. 2004년 9월 경남발전연구원에서지표조사를, 2005년 8월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시굴조사를실 시하였다. 조사대상지는진동천의양쪽하안에형성된충적지이며청동기시대자귀, 통일신라~ 고려시대의토기편등이채집되었다. 입지와유물의출토양상으로보아 청동기시대의취락이존재할가능성이높으며신촌리유적과동일성격의유적으로 추정된다. 5. 마산망곡리연동유적 소재지 : 마산시진북면망곡리 82 진북면망곡리연동마을주변을에워싸면서남서향으로뻗어내린구릉일대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석관묘에서부터삼국시대석곽묘에이르기까지다양한유구 가분포하고있는것으로판단되며, 무문토기, 단도마연토기, 도질토기등이채집되 었다. 인근의신촌리유적이나진동천변에있는 마산진북일반산업단지내유적 과관련성이있는유적으로추정된다. 6. 마산덕곡리고분군 소재지 : 마산시진북면덕곡리산80임 진북면덕곡리덕기마을과덕곡마을사이에형성된설상( 舌狀 ) 의구릉지에입지 하며구릉의동서양쪽으로는지산들과오미들이각각형성되어남쪽으로뻗어진 동만으로이어진다. 삼국시대석곽묘를위주로하며삼국시대도질토기, 조선시대 전기의분청사기편등이채집되었다. - 8 -
7. 마산진동유적 소재지 : 마산시진동면진동리 116-3 답일원 진동면진동리성뒷들과오미들에서진동만으로유입되는태봉천하구의범람원 에형성된유적으로 2004~2005 년경남발전연구원역사문화센터의발굴조사결과, 약 400m 에달하는청동기시대지석묘군분포대, 석관묘 41 기, 밭, 야외노지등과 총길이 61m 에달하는고려시대도로유구등이조사되었다. 특히지석묘, 석관묘 등의집단묘역은국내최대규모로써문화재보존결정후현재사적지정작업이진행 중이다. Ⅳ. 조사내용 1. 조사방법 조사대상지역은서북산( 해발 739m) 에서남동쪽으로뻗어내린마지막봉우리( 해 발 122m) 의동쪽구릉말단부에해당한다. 구릉은비교적경사가심한편이며, 조 사전에는지름 30 cm 내외의소나무숲이이루어져있었으나최근에조성된현대 분묘의이장과계단식전답, 임시도로, 축사등으로인해원지형이상당부분훼손된 상태이다. 조사는시굴조사결과에따라발굴조사범위를전면제토하는방법으로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대상지역은대부분부식된표토층과풍화암반편이혼입된황갈색 퇴적토, 풍화암반층의 3 개층으로대별되며, 특히유구는생토인풍화암반층을굴착 하여조성하였다. 조사결과, 유구는대체로남동쪽구릉사면에집중분포하고있으 며북서쪽구릉과남서쪽구릉사면에서도유구가일부확인되었다. 삼국시대횡구 식석실묘 1 기, 조선시대분묘 5기ㆍ수혈 4 기, 시기미상의분묘 2기ㆍ수혈 11기ㆍ 주혈군등의유구가확인되었다. 2. 조사내용 1) 횡구식석실묘( 삼국시대) 평면장방형의석실묘로조사구간의남서쪽구릉사면에위치한다. 봉분과석실 상부는삭평되어천정구조는알수없었으나벽석하부가일부남아있어구조는 추정가능하다. 석실은주축방향이 N-4 -W로등고선과거의평행하며벽석은점판 - 9 -
암, 화강암등을이용하여횡평적하였는데, 동ㆍ서장벽은 3~4 단, 북단벽은 4 단, 남 단벽은 2 단만잔존한다. 석재는대부분 30~60cm 가량의점판암을이용하여쌓았 으나남단벽벽석만은화강암으로막음처리하였다. 벽석의축조수법은경사면위쪽 인북단벽과양장벽은점판암으로가로쌓기하여축조한것에반해경사면아래쪽인 남단벽은화강암 1 매로세로쌓기한차이가있다. 횡구부의벽석은한벽전체를사 용하였는지, 또는일부분을사용하였는지의여부는횡구부로추정되는남단벽의일 부가유실되어정확한양상을파악하기어렵다. 석실은장단축비율이 2:1에가까울정도로폭이비교적넓고동장벽에만 10~20cm 가량의할석을시상석으로깔았으며북단벽쪽에서두침석이확인된다. 석실묘의시상을한쪽면에만시설한것은울산화산리유적, 양산하북정유적등 동시기의석실묘에서도나타나는양상과동일하다. 유물은북단벽과동장벽의접점부분에대부병이놓여있고좌측으로유개단각고 배 2 점이부장되어있다. 유구의잔존상태나유물배치양상으로볼때두향은북향 으로추정된다. 대부병은경부폭이세장하며구연이외반한다. 또한경부와동체부에종장연속 문이시문되어있는형태로울산화산리 6호 2 차시상출토품, 양산하북정유적 출토품과유사한 6세기말에서 7세기전반에편년될수있는기형의특징을보인 다. 유개단각고배중개의꼭지는環狀形이며고배는각부에 1단의방형투공이둘러 져있고투공아래에는돌대가있다. 석실묘묘광길이 : 340cm, 너비 : 197cm 석실묘길이 : 220cm, 너비: 100cm, 깊이: 50cm 2) 분묘 조사구간의남서쪽구릉사면에위치하며모두 7 기가확인되었다. 분묘의배치상 태는북동- 남서향, 남- 북향, 남동-북서향을띠고있으며내부에서유물은출토되지 않았으나주변채집품등으로볼때조선시대의분묘로추정가능한것이 5 기, 시기 미상이 2 기이다. 1호분묘를제외하고는토층내부토가황갈색사질토의단일토로 구성되어있다. (1) 1 호분묘( 조선시대) 1호분묘는평면형태가장방형을띠며주축방향은남- 북향이다. 토층양상은 Ⅰ~ ⅠⅤ 층으로세분가능한데, Ⅰ~ Ⅶ층은봉분토, ⅧㆍⅨ층은상부충진토, Ⅹ~ Ⅻ층은충 진토, ⅩⅢ~ⅩⅤ 층은바닥정지토로추정되며내부에서출토되는유물은없다. 분묘길이 : 240cm, 너비 : 140cm, 깊이 : 85cm - 10 -
(2) 2~7 호분묘 [ 표 1] 분묘속성표 길이 (cm) 너비 (cm) 주축방향수습유물깊이 (cm) 비고 분묘 2 165 65 남동-북서ㆍ 60 조선시대 분묘 3 160 70 남-북ㆍ 45 조선시대 분묘 4 155 52 남동-북서ㆍ 40 조선시대 분묘 5 215 75 남-북ㆍ 55 조선시대 분묘 6 157 78 남- 북 53 시기미상 분묘 7 110 50 북동- 남서 30 시기미상 3) 수혈 조사구간의남동쪽구릉사면에위치하며주축방향은남- 북향이대부분이다. 평 면형태는방형과부정형을띠며출토유물상조선시대로추정가능한것이 4 기, 시 기미상이 11 기이다. (1) 4 호수혈( 조선시대) 4호수혈은평면형태가방형으로주축방향이북서-남동향이며잔존길이 355cm, 너비 250cm 이다. 수혈내부에서소량의목탄과유물로는청자와분청사기, 백자가확인되었다. 기 종은발과접시가대부분이며잔도소량확인되었다. 청자중鉢은기외면이곡면 을이루며올라가며구연이직립하거나살짝내만하는형태를띤다. 이러한형태는 13세기말에서 14 세기전반에유행하는干支銘청자와유사한형태로생각된다. 내 외면에시문된문양에서도내저면의가운데여러겹의동심원을상감으로장식하고 그주위에여의두문을베풀거나내면의기벽가운데중심문양으로도식화된운문, 학문으로장식한것으로도이시기로추정할수있다. 분청사기는상감청자의전통을이어받은상감분청사기가다수를점하며무문의 분청사기도확인되었다. 분청사기역시발과접시가주종이며 15세기대의유물로 생각된다. 백자는 1 점확인되었으며저부에서살짝각이져서올라가는접시이다. 연질의 지방백자로추정된다. - 11 -
[ 표 2] 수혈속성표 길이 (cm) 너비 (cm) 깊이 (cm) 주축방향수습유물비고 수혈 1 330 120 14 남-북자기편, 옹기편조선시대 수혈 2 340 162 60 남-북자기편, 옹기편조선시대 수혈 3 350 228 52 남-북자기편, 옹기편조선시대 수혈 5 172 98 23 북동- 남서 시기미상 수혈 6 172 143 33 남- 북 시기미상 수혈 7 88 60 36 남동- 북서 시기미상 수혈 8 266 360 30 남동- 북서 시기미상 수혈 9 197 113 14 동- 서 시기미상 수혈 10 140 135 20 남- 북 시기미상 수혈 11 119 76 19 동- 서 시기미상 수혈 12 83 68 23 동- 서 시기미상 수혈 13 60 48 13 남- 북 시기미상 수혈 14 175 120 15 북동- 남서 시기미상 수혈 15 120 160 19 북동- 남서 시기미상 4) 주혈군( 시기미상) 조사구간의남동쪽구릉사면에위치한다. 주혈의내부토는갈색점질토, 명갈색 점질토에소량의목탄알갱이를포함하고있다. 깊이는 6~40cm 가량이며정형성 은보이지않는다. Ⅴ. 조사성과및조사단의견 1. 금번조사대상지는 마산진동우회도로건설공사구간에대한발굴조사( 진북 면지산리유적) 로조사착수시현대분묘의이장, 계단식전답, 임시도로, 축사등 으로인해상당부분훼손된상태였으며삼국시대석실묘, 조선시대분묘ㆍ수혈, 시 기미상의분묘ㆍ수혈ㆍ구ㆍ주혈군등총 25 기의유구가확인되었다. 2. 횡구식석실묘는비교적잔존상태가양호하며대부병 1점과유개단각고배 2 점등 6 세기말~7 세기전반으로편년가능한유물이출토되었다. 발굴조사대상지내 에서 1기만확인되었지만남쪽의구릉하부에는동시기의유구들이존재하고있을 가능성이높은것으로판단된다. 3. 발굴조사시조선시대분묘와수혈유구등을염두에두고조사를진행하였으나일부는이장된분묘및자연구등으로밝혀졌으며, 확인된분묘내부에서도유물은 - 12 -
출토되지않았다. 그러나, 서쪽사면부의분묘 1~5호에서채집된자기편등을감안 할때조선시대에조성된분묘로보아도큰무리는없을듯하다. 또한동사면에서 확인된수혈(1~4 호) 에서는조선시대백자편등이출토되며, 구릉동쪽사면에배치 된주혈군내부에서는목탄이소량확인되나배치상태만으로는시설을추정하기에 는무리가있다. Ⅵ. 토의사항 - 유적의처리문제( 공사시행여부등) - 13 -
圖 版
도판 1. 조사전전경( 시굴조사후, 동 서) 도판 2. 조사후전경( 동 서) - 17 -
도판 3. 석실묘 조사전 전경(서 동) 도판 4. 석실묘 시상석 노출상태(남 북) - 18 -
도판 5. 석실묘북단벽유물노출상태 도판 6. 석실묘출토유물 - 19 -
도판 7. 조선시대분묘1 호조사후전경( 동 서) 도판 8. 조선시대분묘1 호토층단면( 동 서) - 20 -
도판 9. 수혈4 호유물노출상태( 동 서) 도판 10. 수혈4호출토유물 - 21 -
( 財 ) 東亞文化硏究院現場說明會第 62輯 진동우회도로건설공사구간내문화유적發掘調査現場說明會資料 인쇄일 / 2006 년 6월 26일발행일 / 2006 년 6월 27일 編輯 發行 / 641-811 경남창원시도계동 412-7 봉영 B/D 401호 TEL : (055) 265-9150~3 FAX : (055) 265-9154 E-mail : feaci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