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인문학 : 임진왜란에서숭례문까지 국토환경심사과고동환
보은속리정이품송 ( 報恩俗離正二品松 )
용머리모양고가소나무훔친일당붙잡혀 - 소나무값 1 억원고가소나무절도 2 명영장 9 명입건 - 7 천만원상당의소나무절도 고액체납전방위압박 고가소나무 3 그루압류 고가의소나무분재훔친 50 대구속 - 3 천만원상당분재 조경수제왕은소나무 백송 일엽송등명품 1 억넘기도 소나무를크기에따라나누면 50 년넘는수령에키가 10m 안팎의장송은주로공공기관이나기업빌딩, 대형아파트단지에들어간다. 이런소나무는대부분산림이울창한강원도에서공수한다. 가격은 1000 만 ~2000 만원대가많지만 100 년넘는소나무는 5000 만원이상인것도있다. 키는크지않아도모양이독특한자연산소나무는가격이급등한다. 수령이오래될수록줄기가하얗게되는백송, 잎이하나만나오는일엽송등 명품 소나무는 1 억원이상에판매되기도한다.
소나무의목재적특징 - 건조과정에서변형이적고내후성이강함 - 북향이나동향에서더잘자람 - 톱과대패를이용하여가공도용이 - 금강소나무는나무바깥쪽의변재보다안쪽의심재가차지하는비율이상대적으로높아미생물이나흰개미의공격에더강하다.
국보제 78 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국보제 1 호목조반가사유상
일본국보제 1 호목조반가사유상
일본국보제 1 호목조반가사유상 - 재질이한반도에서자라는소나무라는것이과학적으로규명 - 1980 년대초, 불상의미소에반한일본인대학생이자기도모르게불상에접근했다가실수로오른손의새끼손가락을부러뜨리는사건이발생했다. 큰소동이일어났지만다행스럽게정밀조사를통해재질이한국에서난적송임이밝혀졌다. - 불상의나무재질은한국에서만자생하는춘양목 ( 적송 ) 이라는것이밝혀짐 - 일본목조불상의대부분이활엽수인녹나무인데, 이반가사유상만이유일하게침엽수인소나무 - 고대한반도에서건너간많은불상과문화유산인것으로추정
도자기를구울때소나무를쓰는이유 - 소나무는재가빨리삮아서공기유통이잘되고불꽃이나무들가운데가장길기때문, 참나무는화력이더세지만재가더디게식는다 - 따라서옛날부터소나무숲옆에도자기굽는곳이다수존재함
- 수많은가마터가존재해왔으며백자, 청화백자, 청자, 분청사기등의다양한종류가만들어지는가마터주변에는소나무가무성
기와도소나무로굽고, 소나무부족현상 - 소나무를태워기와를굽는것은옳지못하니, 지금부터는각고을에서바치는기와를굽는데소나무를쓰지말도록하라 ( 세종실록 41 권, 세종 10 년 8 월 27 일 )
소나무부족현상초가집 ( 화재취약 ) > 기와집으로개량 -> 기와 & 소나무필요 -> 소나무부족
초가삼간 1 2 3
간? 칸? - 칸은기둥과기둥사이, 한옥의크기를나타내는단위 - 집중에서가장작은집은 3 칸집. 초가삼간의그삼간 - 위집은한옥중에서가장작은집, 왼쪽부터마루한칸, 그다음방한칸, 그리고약간덧붙인부엌. 그것으로끝인집
땔감으로쓰이는소나무 - 겨울에는쌀값보다땔감값이더들었음 - 부자라면몇해분의땔나무와숯을쌓아놓고살수있지만서민들은산에서초목을긁어모아겨울을지냄 - 소나무는화력이강해서땔감으로알맞은나무 - 소나무는한번밑동을자르면새줄기가돋아나지않는다. 반면활엽수는땔감으로베더라도그밑동에서다시줄기가난다. 그래서사람들은소나무는그대로두고다른잡목들을잘라서땔나무로썼다. 그런일이오랜세월반복되면서산에는소나무만남게되었다.
천일염 - 소나무로바닷물을끓여소금 ( 자염 ) 을만듬 - 소금 1kg 을만들기위해 2kg 의소나무땔감이필요함 - 태안천일염전의송홧가루로노랗게물든송화소금 - 해송과염전이많은태안반도의대표특산품인송화소금 - 송홧가루가날리는 1 주일정도의짧은기간에만생산가능
구황식품과소나무 - 고구마가소개되기전까지소나무와칡뿌리는대표적인구황식품 - 세조 3 년 (1457) 기근이발생하여소나무벌목을금지한규정을풀어소나무껍질을벗겨먹도록함 - 성종 1 년 (1470) 에도소나무껍질을벗겨식량으로하도록함 - 임진왜란직후선조실록에는구황이란단어가 13 번이나등장 - 소나무는잎을비롯해솔방울, 송진, 소나무껍질등매우다양하게구황식품으로이용, 특히껍질과칡뿌리로크게기근구제에도움
조선시대초기부터소나무보호에심혈 - 소나무보호정책은병조 ( 국방부 ) 에서담당 - 이유는소나무보호의군사적인목적, 즉병선의재료이기때문임, 곳곳에남아있는소나무숲의절경은그런조선시대정책으로인한보호덕분임 - 고려시대부터소나무는선비의지조를상징하는나무로귀한대접을받아왔다. 오죽하면소나무는상목 ( 上木 ), 즉좋은나무로일컬어졌고다른나무들은모두잡목 ( 雜木 ) 으로불림
- 조선시대세조때소나무 1 그루베면장 100 대 - 10 그루를베면가족을변방으로보냄
해변가에소나무가많은이유 - 세종 1 년바닷가의황폐한땅에소나무를심게함 - 소나무수량이고을수령평가의중요한항목 - 운반도편리
왜구의침략과소나무 - 왜구가조선연안에침입한중요이유 - 대마도에는배만들만한재목이없으므로침입하여배를만들어가지고돌아감 ( 세종실록, 세종 3 년 ) - 배만드는기술을중국에게배워배를견고히만들기시작함 - 삼포왜란, 을묘왜변원인중하나
임진왜란과소나무 - 임진왜란은조선의거북선과일본의안택선과의싸움 - 소나무의거북선과삼나무의안택선 - 삼나무는소나무에비해약함 - 영화 명량 에서충파가가능한것은소나무때문
임진왜란해전승리의일등공신, 판옥선 - 개량된왜선을대적할수있는새로운함선의개발이요구되었고, 이리하여출현하게된것이바로판옥선이다 - 판옥선은우선다층전함이라는점이가장큰특징이다. 판옥선은선체가이층으로되어있어적을내려다보며공격을할수있고사정거리도늘릴수있는장점 - 배가 2 층구조라서왜선보다상대적으로높아백병전에능한왜군들이배위로쉽게올라갈수없었고, 더욱이넓은갑판위에왜군보다절대우위에있는화약무기 ( 화포 ) 들을다량으로배치할수있었다
임진왜란후의소나무 - 소나무의중요성을알고도지배층은궁궐과집짓는데만관심 - 결국조선정부의관리부족은소나무의부족 - 임진왜란이후전쟁에서제대로승리하지못한이유 = 소나무부족에따른해군약화 - 또한임진왜란과병자호란으로망가져버린조선에서소나무는궁궐재건에또한번투입으로소나무부족
소나무의시련 - 솔잎먹는송충이 - 태종3년 (1403) 1만명투입 3000말송충이 - 세종3년 (1421) 에는송충이를잡을수없어일부산을불태운일도있었음 - 목재도필요했지만송충이로인한소나무피해는재해, 재해 = 군주의부덕 - 백성들의피해로일부백성들은파묻은송충이를파내서다시바침
소나무재선충병이란? 소나무재선충은크기 1mm 내외의실같은선충으로서매개충 (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 의몸안에서식하다가새순을갉아먹을때상처부위를통하여나무에침입한다. 침입한재선충은빠르게증식하여수분, 양분의이동통로를막아나무를죽게하는병으로치료약이없어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소나무와숭례문문제 - 소나무는대량으로손쉽게구할수있는건축재 - 그러나최고의건축재는아님 - 우리조상들은참나무와느티나무가더강한목재임을알았으며삼국시대와고려시대에는이들목재사용 - 더불어활엽수는잡목으로불리고소나무는조상들과우리들의머리속에절조, 기재, 장생등의형이상학적인상징성과결합하여최고의목재라는인식을형성 - 결국금강송은갈라지면안될최고의재목이라는맹목적믿음을고착시켰고숭례문기둥이나광화문현판의갈라짐현상이국민적관심사가되어버림
숭례문화재와복원
우리민족과함께한소나무전통주택, 궁궐, 거북선부터도자기, 소금, 땔감, 구황식품까지임진왜란승리로이끌고왜구들이노린소나무선조들과세종대왕의지혜가담긴소나무소나무가최고의재목이라는맹목적믿음의아쉬움이공존
감사합니다 국토환경심사과고동환 kdhwanny@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