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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1990년대 위화(余華)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심 혜영 * <目 1) 次> 1. 머리말 2. 가랑비 속의 외침(在细雨中呼唤) 존재에의 연민, 시간과 기억 3. 살아간다는 것(活着) 이야기, 더 넓은 생명의 세계로 4. 허삼관 매혈기(许三官卖血记) 5. 위화 소설의 미학 6. 위화 소설의 당대적 의미 7. 맺음말 1. 머리말 1990년대 이후에 쓰여 진 위화의 장편소설들은 좋은 문학작품이 주는 위로와 힘과 통찰을 제공해준다. 위화의 소설들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 성결대학교 교수, hytree@sungkyul.ac.kr

356 中國現代文學 第39號 전하면서, 그 속에서 삶에 대한 통찰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정신의 여 유와 삶이 도달할 수 있는 고상함(高尚) 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시작되는 위화의 90년대 소설들을 읽 으면서 우리는 삶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의 마음(同情和怜悯之心) 이 위화 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임을 확인할 수 있다.1) 삶에 대한 깊은 연민 과 공감에서 출발하는 위화 소설이 지향하는 것은 고상함과 초월, 진리 와 의미, 영원과 희망의 드러냄이다. 위화는 이것을 눈물의 넉넉함과 절 망이 존재하지 않음, 살아간다는 것의 힘과 운명과의 우정 등으로 바꾸 어 말하기도 한다. 위화가 자기 문학의 궁극적 지향을 드러내기 위해 제시하는 이런 것 들은 90년대 위화의 작품들을 읽어내는데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글은 위화가 제공하는 이런 실마리를 한편에 붙잡고,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로 이어지는 일련의 장편소 설들, 그 중에서도 특히 위화의 새로운 문학적 탐색의 결정이라 할 허 삼관 매혈기 를 통해 위화의 문학의 눈2) 이 보아내고 있는 인간과 삶의 1) 고상함, 공감과 연민 은 위화가 1980년대의 문학실천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깨닫게 된 문학의 사명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이것은 위화의 1990년대 이후 창작의 새로운 토대로 이해할 수 있 다. 이와 관련된 위화의 언급은 아래의 인용 참조. "我以为文学的伟大之处就 是在于它的同情和怜悯之心 并且将这样的情感彻底地表达出来 "( 我的写作 经历, 没有一条路是重复的, 114쪽), "作家的使命不是发泄 不是控诉或者 揭露 他应该向人们展示高尚 这里所说的高尚 用同情的目光看待世界 " ( 活着, 中文版自序, 3쪽) 2) 许三官卖血记 의 英文版 自序 (2002)에서 위화는 피를 파는 것에 얽힌 두 가지 사연을 소개하면서, 문학의 눈 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의 질문을 던진 다. 그 두 사연은 궁벽한 산골마을에서 평생 피를 팔아 도시로 나간 아들을 뒷바라지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종적을 감추어버리고 더 이상 전화도 통하지 않게 된 아들에게,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를 걸기 위해 매일처럼 세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가서 전화를 걸었다는 이야기와 사천(四川)의 한 농민이 30년 동안이나 피를 팔아 살다가 에이즈에 감염되자 세 번씩이나 수 의를 입고 대나무 침대 위에 누웠다가 네 번째는 마침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 다는 이야기이다. 위화에 의하면 문학의 눈 은 이런 이야기 속에서 매번 세 시간 이상을 걸어가서 존재하지 않는 전화번호를 돌리는 아버지와 세 번씩 이나 수의를 입고 누웠던 농민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문학의 눈 은 축축하게 젖는다. 위화는 문학의 눈 이란 곡절 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기막힌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57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 것이며, 그의 인간과 삶에 대한 문학적 탐색이 일구어 내는 새롭고 가치 있는 문학적 진실 혹은 진리는 무엇인가, 위화 소설의 미적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위화 소설이 가지는 당대적 의미는 무엇인가의 질문들에 대해 살펴보고자한다. 2. 가랑비 속의 외침 존재에의 연민, 시간과 기억 위화의 90년대 소설이 이전 소설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근본적인 전 환은 위화 자신의 고백처럼 작가가 자기소설 속의 인물들을 새롭게 만 나게 된 데서 시작한다. 작가는 이전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을 지배하고 명령하는 자리에 서 있지 않고, 점점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내면의 소리와 탄식과 함성, 울음과 미소를 들으며, 그들이 마 땅히 얻어야만 하는 권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위화의 장편 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인 삶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은 바로 그 만남에서 비롯된다.3) 위화의 문학이 80년대 작품들에서 보여주던 현실 과의 긴장과 갈등, 저항과 대립의 좁고 긴 터널을 벗어나 마침내 밝은 출구에서 인간에 대한 탐색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서이다. 위화 문학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 첫 장편인 가랑비 속의 외침 에는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로 이어지는 위화의 문학적 탐구에서 현실 속에서 더욱 더 깊고 지속적인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라고도 말 한다. 여기에서 위화가 말하는 문학의 눈 이란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흩어지 는 삶의 표면 속에서 변함없이 그 밑을 흐르는 어떤 것을 보아내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삶 때문에 공감과 연민으로 축축하게 젖어드는 눈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3) 就这样 我和一个家庭再次相遇 和他们所见所闻再次相遇 也和他们的欢乐 痛苦再次相遇 我感到自己正在逐渐 地加入到他们的生活之中 有时侯我幸 运地听到他们内心的声音 他们的叹息喊叫 他们的哭泣之声和他们的微笑 " ( 在细雨中呼唤, 中文版自序, 2쪽)

358 中國現代文學 第39號 지속적으로 중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인간에 관한 몇 가지 근본적인 질 문들과 탐구의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위화의 문학의 눈(文学的眼睛) 이 주목하는 인간의 존재 조건 자기에 게 묶인 존재 4), 시간을 사는 존재, 기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상황과 관련된다. 가랑비 속의 외침 속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갇혀 있고 자신에게 짓눌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질과 환경과 생존의 책 임 속에 갇힌 채, 안간힘으로 발버둥치지만 서로는 서로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 되지 못한다.5) 가랑비 속의 외침 의 첫 장에서, 회상 속에서 등 장하는 가랑비 속의 외침 은 자기에게 묶인 존재 로서의 인간의 존재상 황을 환기시키는 메타포로 읽혀진다. 1965년 한 아이가 어두운 밤에 대해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시작 된다. 나는 그날의 가랑비가 흩날리던 저녁을 회상한다. 당시 나는 이미 잠 이 들어 있었다. 나는 너무나 앙증맞은 모습으로 마치 장난감처럼 침대 위 에 놓여져 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적막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나 는 점차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빗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점차 잊혀진다. 분명 이때였을 것이다. 내가 안전하고 또 고요하게 잠 속으로 빠 져들어 가 있을 때, 마치 고적한 길 하나가 그 앞에 나타나고, 나무와 풀숲 이 차례로 비켜나는 것 같더니, 한 여인이 흐느낌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소 리가 멀리서 전해져 온다. 목이 잠긴 목소리가 애초의 더할 나위 없이 고요 하던 어두운 밤 속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고, 그것이 지금 어린 시절의 나를 회상하는 나를 심한 전율에 떨게 한다. 4) 자기에게 묶인 존재 란 개념은 필자가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에 서 빌려온 것이다. 레비나스는 주체의 성립을 익명의 존재 속에서 존재자가 출현하는 사건으로 설명하며, 이 존재자의 출현을 홀로서기 라 부른다. 홀로 서기 는 존재의 익명성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에 대해 지배권을 확립하고 존 재의 주인이 되는 일종의 독립이고 자유이다. 그러나 홀로 선 존재자는 홀로 섬과 동시에 자기에게 몰두하는 자기 동일성에 갇히게 된다. 홀로 선 존재자 가 자기 동일성에 갇히고, 자기생존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짓눌리는 상황을 레비나스는 존재의 물질성 과 자기에게 얽매임 으로 설명한다. ( 시간과 타자, 46-55쪽) 필자는 레비나스의 자기에게 얽매임 이라는 개념을 가랑비 속의 외침 에 나타난 인간의 존재조건을 설명하는데 사용하였다. 이와 관련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졸고, 위화(余华)의 글쓰기와 문학의 진실, ( 중국어문논총, 2005) 을 참조할 수 있다. 5) 졸고, 위화(余华) 소설에서의 시간, 죽음, 기억에 관하여 가랑비 속의 외침(在细雨中呼唤) 을 중심으로 (성결대 인문과학논총, 2005) 참조.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59 나는 자신을 본다. 한 놀란 아이가 공포의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의 얼 굴형은 어둠 속에서 흐릿하여 알아볼 수가 없다. 그 여인의 부르는 소리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나는 너무나 절박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또 다른 소리 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또 다른 소리가 나타나서 그녀의 부름에 대답해주 고, 그녀의 울음소리를 그치게 해 줄 수 있기를, 그러나 그런 소리는 나타나 지 않았다. 지금 나는 당시 나 자신이 두려움에 떨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 다. 그것은 바로 내가 끝내 그 부름에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 문이다. 고독하고 의지할 데 없는 함성보다 더 사람을 전율하게 하는 것은 없다. 비 내리는 광활한 어두운 밤에.6) 가랑비 내리는 광활한 어두운 밤에 홀로 누군가를 부르는 고독하고 의지할 데 없는 외침( 孤独的无依无靠的呼唤声 ), 얼마 후 마치 그 부름 에 대한 응답처럼 나타났던 검은 도포를 입은 한 남자는 이내 사체로 발견된다. 가랑비 속의 외침 전체의 이야기 구성과는 별다른 관련을 가지지 못하는 이 첫 장은 모든 것을 적당히 삼켜버리고, 적당히 윤곽을 흐리며, 대기를 무겁게 가라앉히는 가랑비 같은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구 도 대답하는 이 없는 고독한 부르짖음을 내뱉다가 결국은 죽음이라는 낯선 응답만을 맞이하게 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강렬한 메타포로 읽 혀진다. 이 메타포가 환기시키는 뿌연 암시 속에서 바라보면 가랑비 속 의 외침 안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흐느낌 같은 외침으로 누군가를 부르지만, 그 부름은 누구의 응답도 얻지 못한 채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고독한 삶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시간을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은 위화가 가랑비 속의 외침 에 서 좀 더 의식적으로 그려내려고 한 존재의 모습이다. 위화는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어린 동생의 죽음을 회상하는 나 의 입을 빌어 우리는 결코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 아가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를 앞으로 혹은 뒤로 밀어가며 우리의 모 양을 변화시킨다. 7)라고 말한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인간은 어떤 공간에 붙박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앞으 6) 在细雨中呼唤, 2-3쪽. 7) "我们并不是生活在土地上 事实上我们生活在时间里 时间将我们推移向前或 者向后 并且改变着我们的模样 " ( 在细雨中呼唤, 31쪽)

360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로 떠밀려가면서, 그 물리적 경험적 시간의 절대적 규정 속에서 빚어지 고 파괴되고 소멸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시간에 떠밀려가면서 애초에 주 어져 있던 생명의 빛나는 재화들을 하나씩 잃어가며, 보이지 않는 시간 이 만들어내는 무참한 파괴와 상실을 무방비로 겪다가, 어느 순간 문득 다가온 시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마침내 그 시간의 흐름 밖으로 벗어 져 나가게 되는 것이 가랑비 속의 외침 이 보여주고 있는, 탄생에서 죽 음까지의 삶의 모습이다.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가면서 모든 혈기와 꿈과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형 손광평(孙光平)과 동네 처녀 풍 옥청(冯玉青)의 삶이다. 폭군이자 난봉꾼인 아버지 손광재(孙广才)의 지 지와 후원 하에 어린 시절엔 누구보다 당당하고 오만하게 골목대장 노 릇을 했던 손광평은 철이 들어가며 점차 도시 아이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고, 우연히 바라보게 된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온몸이 흙투 성이인 채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논두렁에 서 있는 노인의 모습 속에 서 자기 앞에 서있는, 자신의 움직일 수 없는 최후의 모습 을 발견하고 는 공허와 절망에 빠져들게 된다.8) 어린 시절 눈부신 미모와 풍만한 육 체의 아름다움으로 동네 총각들과 나 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던 풍옥청 을 십여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의 모습에 새 겨진 엄청난 변화는 시간의 잔혹함 속에서 처참하게 시들어 버린 아름 다움 9)을 목격하는 비애를 절감하게 한다. 그러나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위화의 문학의 눈 이 바라보는 인간 이 이렇게 물리적 경험적 시간의 절대적 규정 속에서 파괴되고 소멸되 어 가는 모습인 것만은 아니다. 가랑비 속의 외침 는 인간이 물리적 경험적 시간의 규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직시하며 출발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시간의 영역을 드러내 8) "我几次看到孙光平站在田头 呆呆地望着满脸皱纹满身泥土的疲惫老人 从田 里走上来 我看到哥哥眼睛里流出来的空虚与悲哀 孙光平触景生情地想到了 自己命运的最后那部分 ( 在细雨中呼唤, 52쪽) 9) " 我第一次亲眼目睹到美丽的残酷凋零 " ( 在细雨中呼唤, 130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61 보임으로써, 인간이 그런 현실과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 또 다른 현실이란 외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내적이고 정신적이며 창조적인 시간이 빚어내는 현실이 다. 그런 현실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억이다.10)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위화의 문학의 눈 이 바라보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은 기억 하는 존재, 기억을 통해 물리적 삶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로서의 모습이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할아버지 손유원(孙有元)과 나 손광림(孙光 林)은 기억이 창조해내는 내적인 시간경험을 통해, 물리적 현실에서의 상처를 치유 받고 그 내적인 시간 속에서서 작은 휴식을 누린다. 젊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혈기왕성했던 손유원이 만년에는 모든 것을 잃고, 무뢰배 같은 난폭한 손광재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애물단지로 취급을 받으며 온갖 구박 속에서 근근이 목숨을 유지하며 살아갈 때도, 기억은 그 손유원이 현실에서 겪는 온갖 박대와 조롱을 피해, 홀로 미소 지을 수 있는 은밀한 내적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삶에서 위로가 되 고 도피처가 된다. 그 할아버지 손유원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구박덩어 리로 살면서, 가족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늘 홀로 떠도는 존재인 나, 손광림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소우(苏宇)가 병으로 죽고 난 뒤 그 상실의 빈 자리와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그 상실을 상실 아닌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도, 내 안에 뚜렷하게 남아 늘 나와 함 께 존재하는 소우의 기억이다.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소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내가 기억 속에서 소우와 함께 했던 순간들의 느낌이나, 소우의 몸짓, 그가 주었던 따뜻한 느낌들을 되살리는 순간 소 10) 인간을 근본적으로 시간을 사는 존재, 시간 속에서 모든 것들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상실과 허무를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바라보면서, 다른 한편으 로는 그러한 상실과 허무가 기억을 통해 치유되고, 잃어버린 시간들이 기억 을 통해 회복되고 되찾아질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 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와 상통한다. 가랑비 속의 외침 의 한국어판 서문에 서 위화는 기억이 삶에 부여하는 생기(生氣) 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프루스 트의 작품의 한 장면을 소개한 바 있다.

362 中國現代文學 第39號 우는 다시 내 곁에, 내 안에 늘 함께 있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기 억은, 인물들이 물리적 현실의 한복판에서 겪는 상실을 비켜서서 자신만 의 내밀한 세계 속으로 숨어 누릴 수 있는 작은 정신의 안식처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기억이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누릴 수 있는 작은 위로와 휴식의 안식처가 되는 것을 넘어서 서, 현재 속에서 과거를 언제나 생생하게 다시 살아있을 수 있게 하는 과거의 기표 임을 보다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남문(南門) 의 삽화를 통해서이다. 주인공인 나 는 고향을 떠난 지 십 여 년이 흐른 후, 어두 운 밤에 문득 다시 고향의 남문으로 돌아와 지난 날 소우와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그러나 이제는 공장 터가 되어 과거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남문의 저수지 앞에 선다. 이미 사라져버린 옛 저수지 터를 망연히 바라보던 내 앞에서 문득 너무나 또렷하게 되살아나 펼쳐 지는 옛 저수지의 정경은 내 안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던 저수지의 존재를 단번에 환기 시키며, 과거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고 현재 속에 영 원히 살아있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비록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나는 과거 집이 있던 자리와 연못의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해낼 수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갔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달빛은 나로 하여금 과거의 그 연못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연못의 돌연한 출현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감정의 습격에 직면하게 했다. 기억 속의 연못은 언제나 내게 따뜻한 위로 를 주었는데, 이번에 정말로 나타난 연못은 오히려 내 과거의 현실을 환기 시켜주었다. 물 위에서 떠다니는 더러운 것들을 보면서 나는 연못이 결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과거의 한 기표로서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나를 일깨우기 위해 여전히 남문의 땅 위에서 굳건하게 지키고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1) 이 남문 의 삽화는 과거의 순간들은 소멸되거나 상실되는 것이 아니 라, 우리 안에 숨어 있다가 갑작스런 빛에 의해 조명되는 것이고, 그 11) 在细雨中呼唤, 20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63 것이 자연스럽게 의식에 떠올랐다는 사실은 그것의 진실성의 증거가 된 다. 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12) 여기에서 기억은 단지 우리 삶의 작은 위 로와 안식만이 아니라, 모든 흘러가버리는 것들, 유한하고 순간적인 것 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복원하여 영원히 현재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 게 하는 위대한 정신의 능력으로 나타난다.13) 가랑비 속의 외침 의 첫 장에서 가랑비 내리는 어두운 밤에 홀로 누 군가를 절규하듯 부르지만 끝내 응답을 얻지 못하고 가랑비 속에 묻혀 버렸던 외로운 외침은 가랑비 속의 외침 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점점 거세지는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불의 세찬 외 침으로 바뀌어져 나타난다. 그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12)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 72쪽 13) 이 남문 의 삽화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아득한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방울 소리가 돌연 옛날의 그 방울 소리인 채 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묘사하는 다음 대목과 무척 유사하다. 내가 내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한 것은 우리에게서 분리 되지 않은 지나간 세월의 관념이었다 그 소리를 나는 다시 들었다. 아득 히 먼 과거에 있었던 소리건만 나는 옛 소리 그대로 들었다 지금도 내 마음에 울리는 것이 틀림없는 그 작은 방울이라는 생각을 하자, 나는 등골 이 오싹했다 그 방울 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으려면, 나는 나 자신 가운 데로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그 방울 소리는 언제나 내 가운데 있었고, 또 한 그 방울 소리와 현재의 순간 사이에는, 내가 짊어지고 다니는 줄도 몰랐 던 무한히 펼쳐온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 아득한 순간은 여전히 나 자신과 단단히 연결되어 내 가운데로 깊이 내려가기만 하면, 아직도 그리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7편 되찾은 시 간, 732-733쪽)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베르그송 철학을 문학화한 것이라 고 불릴 만큼 베르그송의 철학적 관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나타나는 시간과 기억에 관한 위화의 관점 역시 프 루스트의 작품만큼 이나 베르그송의 시간, 기억, 직관에 관한 이론과 기본 적으로 상통하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기억을 통해, 지나가버린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영원히 존재하는 현실로 살아있음을 말하는 남문 의 삽화는, 정신의 유기적 전체성 을 이야기하면서 흘러가버린 것처럼 보이는 모든 과거가 사실은 언제나 현재와 함께 있으면서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고 현재에 끊임없는 울림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는 베르그송의 관점과 일 치한다. ( 베르그송의 철학, 51쪽)

364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먼 곳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갈수록 거세지는 빗방울 과 그 불꽃은 한데 뒤섞였지만 타오르는 불은 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거세어졌다. 그것은 마치 가로막을 수 없는 함성이 빗속에 서 솟아 나와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14) 이것은 물리적 시간에 묶여 그 속에서 상실과 파괴를 겪으며 살아가 도록 운명 지워진 인간이 그 삶의 조건 속에서 경험하는 어쩔 수 없음 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위대한 능력인 기억을 통해 맛보는 자기 구원의 환희와 감격을 표현해주고 있다.15) 3. 살아간다는 것 이야기, 더 넓은 생명의 세계로 물리적ㆍ경험적 시간 속에서의 상실과 파괴를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기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는 살아간다는 것 에서 보 다 전면적으로 진행된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혈기 등등하던 젊은 시절의 갖가지 사연들을 뒤로 하고 초라한 만년을 보내는 손유원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그의 고단한 삶에서 위태롭게 잠시만 맛볼 수 있는 휴 식의 시간이었지만, 살아간다는 것 의 복귀(福贵)에게서 기억은 파란만 장했던 삶 전체를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불행보다는 행복으로 회상할 수 있게 해주며, 이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창조적 자유의 기쁨 속에서 복 귀의 만년을 너무나 풍요로운 누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살아간다는 것 에서 민요를 채집하러 다니던 나 는 복귀와 같은 옷 을 입고, 복귀처럼 깊이 패인 주름을 하고 복귀 같은 실없는 웃음을 웃 는 가난한 시골 노인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지만, 정작 자기가 살아온 삶 14) 在细雨中呼唤, 294쪽 15) 이와 관련하여 가랑비 속의 외침 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졸고, 위화 (余华) 소설에서의 시간, 죽음, 기억에 관하여 가랑비 속의 외침 (在细 雨中呼唤) 을 중심으로 (성결대 인문과학논총, 2005) 참조.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65 의 모든 과정들을 그의 기억 속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꽉 붙잡고 있 으면서 그것을 낱낱이 이야기로 다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복귀뿐이 다. 복귀는 유일하게 자신의 지난 온 삶을 환히 꿰뚫어 알고, 자기가 젊었을 때 걸어온 길의 모습을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늙 어왔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너무나 잘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다.16) 지나온 삶을 낱낱이 기억한다는 것은, 지나간 삶을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이야기로 새롭게 창조하여 다시 한 번 산다는 것이 다. 복귀는 지나 온 자기 삶의 기억들을 통해 한 차례 한 차례 삶을 다 시 살아갈 수 있는 17) 행복한 정신의 보금자리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 다. 복귀의 행복감은 도박으로 어이없이 온 재산을 날리고, 영문도 모르 는 채 전쟁에 끌려 가 젊은 시절을 모두 잃고,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 에서 자식 둘이 모두 처참하고 어이없게 죽음을 당하고, 병약한 아내와 손자, 사위까지도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나는 참담한 삶의 과정을 거친 후 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복귀는 가족들이 모두 자기보다 먼저 세 상을 떠나고 자신만이 홀로 남겨진 외로운 노년을 보내면서도 그 일이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자기 손으로 먼저 가족들을 다 땅 을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제 비로소 발을 뻗고 누워도 아무 걱정이 없을 수 있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복귀가 삶의 과정에서 겪은 모든 상실들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복귀가 기억을 통해 사는 또 하나의 삶, 이야기의 신기함 으로 구축한 자신만의 영역, 광활한 정신의 세계 속에 서 물리적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그 어느 것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 재산으로 도살 직전에 놓여 있던 늙은 소를 사고는 그에게 복귀 란 이름을 붙여 준다. 할아버지가 된 복귀가 늙은 소 복귀 와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 16) "可是我再也没遇到一个像福贵这样令我难忘的人了 对自己的经历如此清楚 有能如此精彩地讲述自己 " ( 活着, 37쪽) 17) "他喜欢回想过去 喜欢讲述自己 似乎这样一来 他就可以一次一次地重度此 生了 " ( 活着, 37쪽)

366 中國現代文學 第39號 화 속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복귀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지낸다. 기억 은 살아간다는 것 에서도 물리적 현실이 가져다 준 상실을 넘어서고, 순간성과 유한함을 넘어서는 힘으로 그려져 있다. 기억 속에서 누리는 삶의 풍요 외에, 살아간다는 것 에서 복귀의 삶 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복귀가 자기 삶의 깊은 상처와 상실의 아픔을 통해 더 넓은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삶에 대한 허허로움과 더불어 복귀의 만년의 모습은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 러내주고 있다. 삶의 모든 재화들을 잃고 홀로 남겨진 노년의 복귀는 마 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고 죽음 앞에 강제로 끌려가게 된 늙은 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깊은 연민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너무 늙어 이제는 고깃덩어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늙은 소의 모습이 복귀에게는 죽을 운명 앞에서 눈물 흘리는 가련한 얼굴로 압도해온다. 그 얼굴의 호 소를 애써 뿌리치려 하지만 복귀는 결국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늙어 도 살당하기 직전에 있는 소를 사서 그의 생명을 구하고 주변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 소를 가족으로 삼아 함께 지낸다. 복귀의 이런 모습은 그가 자기 가혹한 상실로 점철된 자기 삶의 과정을 통해 생명에 대한 더 깊 은 연민에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늙은 소에게 자신과 먼저 세 상을 떠난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 부르며 대화를 나누는 복귀 의 모습은 복귀의 정신이 경계를 초월한 광활한 생명의 세계 속에서 살 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만년의 복귀가 햇빛 가득한 나무 아래 앉아 넘치 는 웃음과 일렁이는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낼 때의 모습 은, 자기 몫으로 부여된 모든 삶의 시간들을 통과하고 난 뒤, 그 시간이 만들어낸 탄생과 죽음, 행복과 고통, 고요함과 떠들썩함, 기억과 느낌, 이해와 상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와 신기함 18) 속에서, 복귀와 자 연 사이의 경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18)"我相信是时间创造了诞生和死亡 创造了幸福和痛苦 创造了平静和动荡 创 造了记忆和'感受 创造了理解和想象 最后创造了故事和神奇 " ( 活着, 日 文版自序, 6-7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67 쏟아져 내리는 햇살 속에서 노인의 새카만 얼굴은 햇빛 속에서 웃음으로 생기가 넘쳤고, 얼굴의 주름은 기쁨으로 일렁거렸다. 주름 속에 가득 찬 진 흙은 마치 들판 사이에 가득 펼쳐진 작은 이랑들 같았다.19) 처음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할 때의 복귀의 이러한 모습은,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엉덩이에 붙은 먼지들을 툴툴 털어내며, 다시 소 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복귀의 마지막 모습과 고요하게 조응하면서, 마치 복귀가 풀어내는 한편의 인생 이야기가 끝나면서, 삶이라는 무대의 막도 내리고,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저녁 무렵 농가의 굴뚝 위로 피어오 르는 안개처럼, 공기 속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노을처럼 서서히 검은 밤을 부르는 대지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노인과 소는 천천히 멀어져간다. 나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노인의 거칠게 쉰 목소리가 멀리서 전해져 오는 것을 듣는다. 그의 노래는 광활한 저녁 무 렵 바람처럼 나부낀다 밥 짓는 연기가 농가의 굴뚝 위로 아물아물 피어올라, 노을빛이 사방으로 비추는 공기 속에서 흩어져버린다. 여인이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간간히 들 리고, 한 남자가 똥통을 메고 줄곧 멜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앞으 로 지나간다. 천천히 온 들판이 고요 속으로 들어가고, 사방은 희미해지고, 석양빛은 점점 사라져간다. 나는 황혼이 바야흐로 막 사라져버리고 나면 검은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 리라는 걸 안다. 나는 광활한 대지가 튼실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본 다. 그것은 부르는 모습이다. 마치 여인이 자기의 아이들을 부르듯이 대지는 검은 밤의 도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20) 대지만큼 광활하게 펼쳐진 복귀의 삶과 복귀의 마음이 광활한 저녁 들판 위에 노래가 되어 나부낀다. 늙은 소와 더불어 집으로 돌아가는 복 귀의 마지막 뒷모습은 환하게 열려 있는 생명의 근원을 향해 나아가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된다. 마치 여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부르듯 부르는 대 지의 부름을 좇아 고요히 내려오는 검은 밤 속에서 모든 것들의 윤곽이 사라지고, 노인과 소 의 뒷모습도 그 검은 밤에 섞여 유유히 사라져간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 을 통해서, 한평생 고난을 겪고 가족들이 모 19) 活着, 6쪽. 20) 活着, 194쪽.

368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두 먼저 떠나가 버렸지만 여전히 세상을 우호적으로 대하고 한 마디 원 망의 말도 하지 않았던, 미국 민요 올드 블랙조우 속의 노인 올드 블 랙조우가 보여준,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고도 세상을 낙관할 수 있는 삶 의 태도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21) 그것은 곧 위화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우정이라고 했던 운명과의 우정 을 그려내려는 것이기도 하 다.22) 운명과의 우정 이란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모든 당위적 아집을 내 려놓고, 삶이 부여하는 모든 것들을 생명의 책임으로 기꺼이 품고 끌어 안는 겸허하고 허허로운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겪고 난 뒤에 부르는 삶에 대한 보다 넉넉한 긍정과 낙관의 노래, 삶의 모든 내 용들을 통째로 끌어안고 모든 아픔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승화시켜 부르 는 노래가 바로 위화가 깊은 감동을 받고, 복귀를 통해 다시 한 번 구현 해내고자 결심했던 올드 블랙 조우 의 고상함 이다.23) 4. 허삼관 매혈기 1) 매혈과 자라 노릇 살아간다는 것 이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제시되었던 기억하는 존 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보다 전면적인 긍정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한다면, 허삼관 매혈기 는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보여 진 또 하나의 모습, 즉 자기에게 묶인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보다 진전된 탐색을 보여주고 21) "正是在这样的心态下 我听到了一首美国民歌老黑奴 歌中那位老黑奴经历了 一生的苦难 家人都先他而去 而他依然友好地对待这个世界 没有一句抱怨 的话 这首歌深深地打动了我 我决定写下一篇这样的小说 就是这篇 活着 写人对苦难的承受能力 对世界乐观的态度 ", 活着, 中文版自序, 3쪽. 22) " 活着 讲述了一个人和他的命运之间的友情 ", 活着, 韩文版自序, 4쪽. 23) 주 22) 참조.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69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허삼관 매혈기 는 농촌의 한 생사공장 에서 일하는 건실하고 우직하고 가난한 노동자 허삼관이, 같은 생사공장 에서 꽈배기를 파는 미모의 허옥란(许玉兰)과 결혼해서, 아들 셋을 기르 며 살아가면서 겪는 갖가지 희비애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에 서도 나타나듯이 피를 파는 일 은 이야기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에서 중 요한 매듭이고 또 중심 고리가 된다. 건장한 청년 허삼관이 이가 다 빠 지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될 때까지의 삶의 여정은 곧 피를 팔아 살 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피를 파는 일이란 위화도 언급하고 있듯이 당대 중국의 문맥 속에서 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팔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방식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허삼관이 살아가는 공 동체 안에서도 피를 파는 일은 한편으로 이런 가난한 삶의 비참함을 드 러내주고 있다. 허삼관이 처음으로 함께 따라나서서 피를 팔고 황주와 돼지 간볶음을 먹었던 근룡(根龙)이는 결국 피를 파는 일 때문에 뇌일혈 로 죽음을 맞게 되고, 작품의 후반부에서 허삼관 역시 일락(一乐)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도하게 피를 팔다가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 를 넘기게 된다. 그러나 피를 파는 일이 허삼관 매혈기 에서 그런 비참 함으로만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허삼관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 안에 서 피를 파는 일은 오히려 그가 건장한 남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남들처럼 장가가고 자식 낳고 대소사를 치르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요긴한 돈 나무(一棵摇钱树) 이 기도 하다.24) 허삼관 역시 피를 판돈으로 허옥란(许玉兰)과 결혼을 하고, 피를 팔아 큰 아들 일락이가 사고를 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한 방씨 아 들의 병원비를 대기도 하고, 피를 팔아 기근으로 굶주린 가족에게 국수 를 사 먹이기도 하면서 삶의 고비 고비를 넘어간다. 그런데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면서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일이 건강의 징표와 생존의 수단이라는 의미 외에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의미를 24) "四叔 照你这么说来 这身上的血就是一棵摇钱树了?", 许三观卖血记, 5쪽.

370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나타내주고 있음이 발견된다. 그것은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일이 점점 자 라노릇(做乌龟的事) 25)과 연결되면서 더 명료해진다. 허삼관 매혈기 는 어떤 의미에서는 허삼관의 자라노릇 이야기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을 만큼 허삼관의 자라노릇 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져 있다. 동네 사람이 허삼관의 바보노릇을 조롱하며 붙여준 자라 라는 별명은 바람을 피운 여자의 남편을 놀릴 때 쓰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허삼관이 한평생 추구했던 평등 한 삶과는 달리 그의 몫으로 주어졌던 불평등한 삶을 총 체적으로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허삼관이 추구한 평등은 자기가 속 한 공동체 안에서, 이웃들과 똑같으면 되고, 그가 아는 사람들과 똑같 으면 되는, 남들이 잘되면 나도 잘돼야 하지만, 남들이 못되면 내가 못 되는 것도 괜찮다는 소박한 평등의식과 기대를 말하는 것이다.26) 그것 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도 남들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누리며 살아보 겠다는 소박한 계산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허삼관의 삶에 대한 성 실성 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허삼관이 처음으로 피를 판 후 땀이 아니라 피를 팔아 번 돈이니 다른데 쓰지 않고 마누라를 얻는데 써야한 25) 자라(乌龟) 는 본래 아내가 외도를 한 남자를 조롱할 때 부르는 별명이다. 허삼관 매혈기 에서는 아내 허옥란이 결혼 전에 하소용과의 관계에서 낳은 일락이를 허삼관이 내내 키우고 그의 뒤치다꺼리까지 담당하며 사는 모습 을 풍자적으로 자라노릇 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 의 한국어 판 번역본에서는 이것을 자라대가리 라고 번역했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원 문대로 자라 라고 번역하였다. 26) "他是一个像生活那样实实在在的人 所以他追求的平等就是和他的邻居一样 和他所认识的那些人一样 当他生活极糟糕时 因为别人的生活同样糟糕 他也会心满意足 他不在乎生活的好坏 但是不能容忍别人和他不一样 ( 许 三观卖血记 韩文版自序, 5쪽)" 许三观卖血记 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 을 평등에 관 한 소설이라고 설명하면서, 두 가지 종류의 평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나 는, 장미의 아름다움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박학다식함을 감히 넘볼 수 없 는 평범한 한 백성이 그들과 더불어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평등, 즉 죽음 의 평등이다. 위화는 죽음을 상쾌한 저녁이라고 찬미한 시인 하이네가 고통 의 대낮같은 삶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평등이라고 말한 죽음의 평등을 소 개한다. 그러나 이것과는 다른 또 하나 평등이 있는데, 그것은 남들처럼 아 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살고, 남들 앞에서는 비록 초라하게 보일 지라도 자 기 처자 앞에서는 큰소리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두에게 가능한 평등이다. 이것이 바로 허삼관이 추구하는 평등이다. ( 许三观卖血记, 韩文版自序, 4-5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71 다고 생각할 때나, 일락이가 자기 자식이 아니니 피를 판 돈으로 만큼은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줄 수 없다고 주장할 때, 아내 허옥란이 바람을 피 우고 자식까지 낳아온 것이 억울해 자기도 임분방(林芬芳)을 찾아가 맞 바람을 피울 때, 자기 마누라를 강간한 하소용(何小勇)에 대한 삭지 않 는 미움 때문에 자기의 세 아들을 불러놓고 이다음에 크면 하소용의 딸 들을 강간해버려야 한다고 가르칠 때, 허삼관의 이런 모습은 모두 그가 가지고 있는 소박한 평등의식을 드러내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허삼관의 이런 기대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삼관에게 주어진 삶의 몫은 시종 불평등한 것들이다. 허삼관 매혈기 의 마지막에서 허삼 관이 투덜거리듯 내뱉는 말은 그가 한평생 평등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노년에 자기 삶의 결론으로 깨달은 것은 삶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임을 말해준다. 자라노릇 은 이런 허삼관 인생의 불평등을 집약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이다. 허삼관의 자라노릇은 9년이나 자기 자식인 줄 알고 키운 일락이가 허옥란의 외도로 생긴 하소용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돌고, 그런 일락이가 방씨네 아들들과 싸우다가 방씨 아들의 머리를 깨서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피를 팔기로 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그 후 에 허삼관의 자라노릇은 점차 왕자라 노릇(乌龟王) 으로 발전해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허삼관의 자라노릇 이 환기하는 의미가 점차 달라진 다는 점이 주의를 끈다. 허삼관이 가장 아끼던 일락이가 허옥란이 결혼 전에 하소용과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터에, 방씨네 아들들과 혈투를 벌이다가 방씨 아들의 머리를 찍어 눕힌 사건 이 나서, 이 때문에 방씨가 병원비 대신 허옥란이 애지중지하는 가구들 을 모두 실어가 버렸을 때 낙심해서 엉엉 우는 허옥란을 보며 그 옆에 앉아 덩달아 엉엉 울던 허삼관이 결국 피를 팔아 가구를 찾아오기로 결 심할 때만 해도, 허삼관의 마음은 견딜 수 없는 억울함과 수치심으로 가 득 차 있었다. 하소용의 아들을 자기 아들인자식인 줄 알고 공짜로 먹여 키운 것 만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라노릇 인데 거기다가 그 일락이 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땀도 아닌 피를 팔아야 한다는 일은 자라 중에도 왕 자라노릇 이 아니냐고 허삼관은 항변한다. 턱없이 손해

372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봐야 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그 보상을 위해 자기 자식들에게 하소용 의 딸을 강간하라는 다짐까지 받고서야 허삼관은 비로소 병원비를 마련 하기 위해 피를 팔러 나선다. 그런데 허삼관이 수치심과 억울함을 감수하며 마지못해 하던 자라노 릇 이 작품의 후반으로 가면 완전히 달라진 차원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국수사건이다. 기근이 오랜 기간 계속되어 가족 들이 멀건 옥수수죽만 마셔댄 날이 무려 57일이나 되었을 때 허삼관은 피를 팔아 식구들에게 푸짐하게 국수 한 그릇을 사주기로 결심한다. 하 지만 목숨을 바꿔 얻은 거나 마찬가지인 피를 팔아 만든 돈으로 하소용 의 아들인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준다는 것이 해도 너무한 일이라고 생 각한 허삼관은 일락이를 타일러 국수 대신 고구마를 사먹으러 가도록 한다. 오랜만에 일락이를 뺀 가족들과 함께 승리반점에 가서 국수를 먹 고 돌아온 허삼관은 일락이가 밤이 되도록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 을 보고, 걱정을 하며 찾아 나섰다가 동네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 이는 일락이를 발견한다. 허삼관은 그런 일락이를 얼른 들쳐 업고는 반 가움과 안도의 마음을 한바탕 욕설로 풀어놓지만, 욕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국수 먹으러 가는 거냐고 좋아라 묻는 일락이에게 이내 누그러진 어조로 그렇다고 대답하고 승리반점으로 향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삼관의 자라노릇은 억울하지만 할 수 없이 짊어 지는 짐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여 짊어지는 짐으로 바뀌어 진다는 점 이 주목된다. 그리고 허삼관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살아간다는 것 에 서 복귀가 당초에게 외면하고 돌아서려 했지만,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비싼 값을 치르고 그 생명을 살린 늙은 소와의 만남을 연상케 한다. 복 귀의 모질지 못한 마음이 죽음을 눈앞에 둔 늙은 소의 불쌍한 처지에 압도당했던 것처럼, 허삼관의 여린 마음도 일락이의 가여운 얼굴의 호소 에 압도당한다. 일락이의 곤궁과 궁핍, 그의 저항할 수 없는 상처받은 얼굴의 호소가 허삼관의 마음을 깊은 연민으로 이끌고, 그 연민 속에서 허삼관은 일락이의 우는 얼굴의 호소를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요 청으로 수용하는 것이다.27) 이후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사고를 당해 목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73 숨이 위태로워진 하소용을 위해 지붕에 올라가 그를 위해 그의 영혼을 불러주라고 부탁하며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 고 가르친다. 허 삼관의 착함과 밝은 양식(良識)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28) 허삼관은 착한 인물이다. 허삼관의 착함은 흔히 착한 인물 이 가지는 평면적 단순성이나 몰개성화를 훌쩍 벗어나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실 감과 결합되어 있기에 더욱 돋보인다. 나름대로의 계산과 엉뚱한 어리석 음, 미움과 원망, 자기 손해 본 것을 억울해하고 남이 잘못된 것을 고소 해하기도 하는 소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감정들이, 남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래도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고 다독이고 감싸 안고 함께 나아가는 착 함과 한데 뒤섞여 있으면서, 늘 그의 삶을 인간미 넘치는 삶으로 만드는 인격의 핵심으로, 삶의 추동하는 근원적 동기로 살아있다. 허삼관의 생 동하는 개성과 처신의 자연스러움은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착함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허삼관 매혈기 의 교훈적인 메시지들을 새로운 일 깨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허삼관의 생생한 개성을 통해 사람 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는, 어쩌면 낡아버 린 메시지들이 다시 신선함 속에서 전달되는 것이다. 허삼관이 보여주는 착함은 또한 비범한 인물에게서 보여 지는 탁월함 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서 우러나오 는 미덕이고,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 고상함 이기 때문에, 오 히려 인간이 선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보다 강력하게 호소해주 고 있으며, 이점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표명하는 휴 머니즘 작품이 되기도 한다. 27) 타인에 대한 연민을 타자와의 만남이나 타인의 얼굴의 호소로 해석하는 것 은 레비나스의 관점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은 우리 밖에서 우리의 유한성의 테두리를 깨뜨리고 우리 삶에 개입한다. 타자의 곤궁과 궁핍은 하나의 명령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는 말로 타인의 얼굴의 도덕적 호소를 이야기한다. (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147-149쪽) 28) 비록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궁민의 처지지만, 허삼관은 그럴수록 삶의 양식으로서의 양심만큼은 가난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 늘 존재인 허삼관의 그늘에서 우리는 밝은 양식의 빛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우찬제, 삶, 그 연민의 서사체, 허삼관매혈기, 334쪽)

374 中國現代文學 第39號 2) 대속의 책임과 초월 자라노릇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던 허삼관이 결국 우 는 일락이를 들쳐 업고 가서 국수를 사주더니, 그 후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하던 일락이가 자신의 부탁을 듣고 하소용을 위해 지붕 위에서 이름을 부르고 내려오자 자기 얼굴과 팔에 칼로 피를 내고 동네사람들 이 모두 모인 앞에서 일락이가 지금부터 자신의 친자식이라고 선언한다. 허삼관의 친자 선언은 그 후 시골의 생산대로 보내진 일락이가 급성간 염으로 목숨이 위독하게 되자 그 치료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피를 파는 희생의 행위로 이어진다. 죽음을 무릅쓰 고 피를 팔며 일락이에게로 향해 가는 허삼관의 매혈의 여로에서는 마 치 마태수난곡 이 울려 퍼지는 듯 비장한 느낌이 울려 퍼진다.29) 작품의 후반에서 허삼관이 일락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 을 내놓고 강행하는 매혈의 행위는, 허삼관의 삶의 태도가 소박하게 남 들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남들만큼 자신을 위해 누리며 살아가겠다는 이 전의 평등 의 추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있음을 보여준 다.30) 허삼관은 이제 양자였던 일락이를 친자 삼고, 그 일락이에 대한 사랑으로 그에게 부과된 삶의 짐을 스스로의 짐으로 떠맡는 대속의 행위 29) 가랑비 속의 외침 의 한국어판 옮긴이의 말 에는 위화가 허삼관 매혈기 을 쓰는 동안 몇 번씩이나 바하의 마태수난곡 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소개 되어 있다. 30) 왕안이가 허삼관의 영웅성을 말하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余华的小说是塑造英雄的 他的英雄不是神 而是世人 但却不是通常的世 人 而是违反那么一点人之常情的世人 就是那么一点不循常情 成了英雄 比如许三观 倒不是说他卖血怎么样 卖血养儿育女是常情 可他卖血喂养 的 是一个别人的儿子 还不是普通的别人的儿子 而是他老婆和别人的儿 子 这就有些出格了 像他这样一个俗世中人 纲常伦理是他的安身立命之 本 他却最终背离了这个常理 他又不是为利己 而是问善 这才算是英雄 否则也不算 许三观的英雄事迹且是一些碎事 吃面啦 喊魂什么的 上不了 神圣殿堂 这就是当代英雄了 他不是悲剧人物 而是喜剧式的 这就是我喜 欢 许三观卖血记 的理由 王安忆评 许三观卖血记 (http://www.joyo.com/book 卓越网 书评)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75 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위화의 문학의 눈 에 비친 인간은 자기에게 묶인 존재,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기에게 몰두해 있는 존재, 존재의 물질성을 원죄처럼 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살 아간다는 것 을 거쳐 허삼관 매혈기 에 이르면 위화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에 묶인 존재의 틀을 벗어나 공동체 안에서 타자 에 의해 부여된 대속의 책임 을 자기 책임으로 짊어지고 나아가는 책임 의 주체로 세워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삼관의 매혈은 여기에서 자신 의 존재를 짊어져야 하는 홀로서기 의 책임 과는 다른 타인에 대한 책 임 을 자기 책임으로 감당하는 행위로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31) 초월 은 위화 문학의 키워드이다. 위화가 문학이 도달해야 한다고 생 각한, 그의 문학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고상함 이라는 것도 바로 이 초 월 과 다르지 않다.32) 허삼관 매혈기 에서 이 초월 은 존재의 자기 유 지 본능과 그것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 세속적 질서를 뛰어넘어서 존재 의 보다 높은 초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통해 그려진다. 허삼관의 자라노릇은 이해관계의 타산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세상의 질서 안에서 는 타산이 맞지 않는 결손이고 시듦이며 어리석음 이지만 자기 생존의 요청에 사로잡혀 사는 존재인 인간이 자기 존재의 결박을 넘어서서 드 넓은 가치 지향에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탁 월이며 높음 이 된다.33) 허삼관의 자라노릇이 곧 허삼관의 영웅성과 하 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허삼관의 삶은 자기 보존의 노력과 합리적 계산으로 이루어진, 주고받음의 대차대조표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평 등 의 가치가 중시되는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허삼관이 넘어서서 도달한 자리는 무력하고 비참한 타인의 호소 앞에서 그 호소를 자신에 대한 거 부할 수 없는 요청으로 수용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을 초월하 여 타인의 짐을 자기 짐으로 짊어지고 가는 책임주체로 세워져 나가는 31) 타인의 얼굴, 182쪽. 32) "这里所说的高尚不是那种单纯的美好 而是对一切事物理解之后的超然 "( 活着, 中文版自序, 3쪽) 33) 위의 책, 190쪽.

376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34) 5. 위화 소설의 미학 1) 낙관적 어조 와 가벼움 의 힘 ('轻'的力量) 허삼관 매혈기 의 첫 장은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 와 눈이 맞아 달아나 갈데없이 버려졌다가 작은 아버지 손에 자란 허삼 관의 불우한 생장 환경이, 노망이 들어 아들과 손자도 구분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의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통해 그 모든 축축함과 무게를 내려 놓고 엷게 붓질된 구름처럼, 가볍게 나부끼는 바람처럼 스케치되어 있 다. 우찬제의 지적처럼 허삼관 매혈기 는 슬픔을 농담처럼 이야기하고, 연민과 격정을 자아내는 비극적 삶의 내용을 종종 희극적인 말놀음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독특한 카타르시스와 여운의 심미적 경험을 제공해준 다.35) 심각하고 무거운 상황을 가벼움과 웃음에 담아 받아들일 수 있게 하 는 것은 위화의 소설의 힘이고, 아름다움이다. 위화의 소설은 현실에 밀 착해있고 그 현실은 어둡고 무겁지만, 위화는 그 어둡고 무거운 현실을 34) 이것은 한편으로는 허삼관 매혈기 의 인간에 대한 탐구가 깊은 종교성에 로까지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양자였던 일락이를 피로 값 주고 친자로 삼고, 그 친자 삼은 남의 아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허삼관의 희생은 위화의 마태수난곡에 대한 언급과 어우러져 허삼관 매혈기 을 기독교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도 읽을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대혁명 시기 허옥란의 과거 행적이 공개 비판을 받고 바야흐로 가정 안에서도 비판대회를 열게 되었을 때, 허옥란이 자식들 앞에서 낯 뜨거운 자아비판을 하고 그것을 듣고 자식들이 킥킥대는 우스꽝 스러운 장면 속에서 허삼관이 돌연 자신도 허옥란과 똑같이 죄 지은 자라 고 고백하는 장면 역시 성경에서 창녀였던 마리아를 유대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려 하는 군중들 앞에서 예수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 라 고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35) 삶, 그 연민의 서사체, 허삼관매혈기, 330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77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어조로 담아내어, 그 사이에 낙관적인 여유가 개입할 틈 을 제공한다. 위화의 장난기가 가득한 눈 으로 바라보면, 현실 에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풍성하며, 그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배꼽을 잡고 웃다보면 현실은 그럭저럭 견딜 만 한 것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겨나기도 한다. 위화의 소설에는 이런 낙관적인 어조의 힘 이 있다.36) 위화가 서양의 고전음악에 매료되면서 자신이 거기에서 받은 깊은 감 동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음악의 서술(音乐的叙述) 이라는 용어는 위 화 소설이 가지는 이러한 미학적 효과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화는 일찍이 바하의 마태수난곡 을 들었던 경험을 전달하 면서,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연주되어야 하는 풍부한 내용이 단지 한 두곡 선율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완벽하게 감동을 전달해내는 음악의 표현 기법에 깊은 감동을 받고, 이것을 음악의 서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美妙)서술 이라고 찬탄한다.37) 이 음악의 서술 의 미학적 핵심 은 가벼움 힘 ('轻'的力量)에 있다. 이후 얼마 안 되어서, 나는 또 쇼스타코비치의 제 칠교향곡 제 일악장 의 서술 속에서 가벼움 의 힘을 들었다. 그 유명한 침략삽입부에서, 침략자 의 발걸음이 작은 북 속에서 175번이나 중복되어 나의 마음을 압박하고 있 었다. 음악은 공포와 반항, 절망과 전쟁, 억압과 해방 속에서 갈수록 더 무 겁게 가라앉았고, 갈수록 더 거대한 소리로 사람들의 감관을 두렵게 했다. 나는 처음으로 들었을 때, 부단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 가? 어떻게 이 무한히 무거운 음악의 삽입부를 마무리할 것인가를. 마지막 순간이 나를 전율하게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날카로운 서정적인 짧은 곡조 로 이 거대하고 두려운 삽입부를 마무리했다. 그 짤막한 서정적 현악이 광 활함 속에서 가볍게 나부꼈다. 이것은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힘 있는 서술 이었다.38) 여기에서 위화는 거대한 선율과 격앙된 리듬을 서정적 현악의 짤막한 36) 김기택, 낙관적인 어조의 힘, 창작과비평 132호, 창비. 37) 音乐影响了我的写作, 音乐影响了我的写作, 9쪽. 38) 위의 책, 10쪽.

378 中國現代文學 第39號 곡조로 가볍게 마무리함으로써 리듬과 선율이 살아있고, 절제된 여운이 감동을 증폭시키는 가벼움 의 힘('轻'的力量)의 미학적 효과에 주목한다.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 를 박자는 기억의 속도이고, 선율은 부드럽게 약동하며, 휴지부(쉼표)는 韵脚에 의해 감추어져 있는 한 수의 민가 라 고 설명한 바 있다.39) 허삼관 매혈기 의 각 장의 끝부분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대사로 마무리 되면서 긴 울림을 남기고, 장과 장의 연결은 전 체적으로 점점 풍부해지고 장엄해지는 주제를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허 삼관 매혈기 안에서 위화가 감동했던 음악의 서술 과 가벼움 의 힘이 울려나온다. 2) 길이 (长度) 속에서 바라보기 그러나 위화 소설이 주는 감동이 서술기법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 다. 그것은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과 더 근본적으로 연관되 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 를 길이를 가지는 것 들에 대한 연민 을 나타내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길이를 가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나타내준다. 한 줄기 길, 한 줄기 강물, 한 자락의 무지개, 끊임없이 면면히 이어지는 한 줄기 기 억,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한 수의 민가, 한 사람의 일생 같은 것들에 대 한.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둘둘 말란 한 타래의 실처럼 이야기에 의해 천천 히 풀려져 나오는 것이다.40) 위화의 문학이 주는 감동은 길이를 가지는 것들에 대한 위화의 깊은 연민과 맞닿아 있다. 길이로서 바라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삶을 시작과 끝을 가지는 유한성 속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유한성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연결되어 끝없이 펼쳐 39) "这本书其实是一首很长的民歌 它的节奏是回忆的速度 旋律温和地跳跃着 休止符被韵脚隐藏起来 " ( 许三观卖血记, 中文版自序, 3쪽) 40) 许三官卖血记, 中文版自序, 2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79 져 나가는,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것 은 모든 것들을 다 겪고 난 뒤에, 지나온 삶들을 전체로서 바라볼 수 있 는 자리로 물러서서 지나 온 삶의 긴 끈을 실타래의 실을 풀듯이 풀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 에서 복귀가 민요 수집가인 나 에 게 지나 온 삶의 긴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 낼 때, 그 속에서 풀려 나오 는 삶의 실타래 속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하나로 감겨 있다. 길이로서 바라본다는 것은 또한 현미경이 아니라 망원경으로 바라본 다는 것이기도 하다. 삶을 현미경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흔히 더럽고 짐승스럽고 짧은 것 41)을 벗어날 수 없지만 현미경이 아니라 망원경으로 바라볼 때, 삶은 윤곽을 갖고 흐름을 갖게 되며, 희비애환 속에서도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와 관조가 가능해지는 것이 다. 삶은 그것이 길이 속에서 되돌아보아질 때 비로소 총체적으로 의미 화 되고 부침을 갖는 리듬이 되고 슬픔과 웃음이 한데 어우러져 흐르는 가락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곧 위화가 말하는 리듬과 가락과 쉼표가 어 우러진 한 자락의 노래일 것이고, 한 사람의 삶과 모든 삶이 만나는 희 비애환이 녹아 든 민요일 것이다. 위화에게서 삶을 길이로써 바라본다는 것은 또한 그가 지나 온 삶의 아픔과 회한을 눈물의 넉넉함으로 씻어내고, 그 눈물의 넉넉함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의 힘을 이야기하고 절망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42) 삶을 운명과 더불어 누리는 진한 우정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삶은 어둠과 슬픔과 고통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아픔과 웃음과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살 아간다는 것 에서의 복귀에게, 허삼관 매혈기 에서의 허삼관에게 삶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서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 을 잃고 홀로 남겨진 복귀에 대해서 위화는 방관자의 눈으로 보면 복 귀의 일생은 고난을 겪어낸 일생이지만 복귀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면 41) 심미적 이성의 탐구, 70쪽. 42) "我相信 活着 还讲述了眼泪的宽广和丰富; 讲述了绝望的不存在; 讲述了人 是为了活着本身而活着的 "( 活着, 韩文版自序, 5쪽)

380 中國現代文學 第39號 나는 그가 행복을 느꼈을 때가 더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43)고 말한다. 허삼관 매혈기 안에는 눈물을 흘리는 허삼관의 모습이 수없이 등장한 다. 그러나 그 눈물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과 한데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오랜 굶주림으로 모두 의 얼굴이 누렇게 뜨고 죽 한 사발 제대로 얻어먹기 힘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허삼관은 말로 아이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침이 줄줄 흐 를 만큼 맛있는 요리들을 한 접시씩 차려주며, 아이들은 아버지가 말로 차려준 푸짐한 생일잔치에 서로 앞 다투어 참여하면서 배고픔의 고통을 잊는다. 허삼관 매혈기 의 백미로도 꼽힐만한 이 장면을 통해서도 우리 는 이야기의 창조를 통해, 삶의 허기와 주림을 풍요로운 정신의 향연으 로 바꾸는 인간 정신의 넉넉한 힘을 발견하게 된다. 위화가 말하는 살아간다는 것 의 힘은 안간힘의 오기로 버텨냄이 아 니라, 넉넉하게 넘어서서 바라보며, 각별한 우정의 대상인 운명이 그에 게 부여한 모든 삶의 내용을 책임으로, 향유로 넉넉하게 받아들여 누릴 수 있는 힘이다. 복귀와 허삼관이 보여준 것처럼 삶을 통째로 우정의 대 상으로 끌어안고 받아들여 누리는 주체의 넉넉한 정신 속에서는, 삶의 모든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은 그대로 일종의 향유(享有) 일 수 있음 을 위화의 소설은 말해준다. 위화 소설이 주는 감동과 힘 저변에는 바로 삶을 바라보는 위화의 이 균형 잡힌 시선 속에서 발휘되는 감동과 힘일 것이다. 6. 위화 소설의 당대적 의미 지금까지 살펴본,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43) "我说在旁人眼中福贵的一生是苦熬的一生; 可是对于福贵自己 我相信他更多 地感受到了幸福 "( 活着, 日文版自序, 6쪽)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81 매혈기 로 이어지는 위화 소설의 중심 주제를 시간과 기억에 관한 것, 그리고 자기에게 묶인 존재와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대속의 주체 로 정리해놓고 보면, 위화의 소설들에 나타난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 인 관점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베르그송의 철학이나, 주체의 자기 정립 과 자기 초월에 관한 레비나스의 철학과 깊은 관련성을 드러내 준다. 그 리고 이점에서 위화의 소설은 인간 정신의 위대한 능력과 인간 경험의 주관성을 새롭게 조망하면서 근대적 사유 속에서 부정된 인간 을 복원 시키려 한 베르그송의 철학이나 의식과 세계를 분리시키고 세계를 대상 화하는 방식을 통해 의식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그 결과로 자기 동일성 에 갇히게 된 근대적 주체개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레비나스의 철 학이 가지는 근대 비판적 의미 역시 공유하고 있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삶을 시간 경험 속에서 바라보면서, 과거라는 것 이 우리의 정신 안에서는 소멸되거나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 아있으면서 특정한 계기를 통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자신의 실재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우리의 정신 안에서 과거와 현재는 분리될 수 없는 지속 으로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의 실재성(혹은 진실성)은 객관 적인 앎이 아니라 직관의 통찰을 통해 파악되고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이 점은 위화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베 르그송의 철학은, 시간을 동질적이고 객관적이며 분할 가능한 것으로 보 는 근대 과학의 대전제를 비판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되 는 시간이란 오히려 주관적이고 다양한 질적 계기와 지속으로서 경험되 는 것임을 이야기하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적 시간의 본질은 객관적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직관이라는 정신의 능력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라는 점이 아울러 강조되 고 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점에서 근대의 물리적 계량적 시간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진화론과 과학주의, 계산적 합리주의, 기계론적 심리학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사유 전반에 관한 근본적인 비판의 성 격을 지니고 있다. 위화의 소설 역시 물질적ㆍ계량적 현실관과 계산적 합리주의로 인간

382 中國現代文學 第39號 과 삶을 해석하고 기획하고 재단하는 근대적 관점에 대한 강한 반문과 비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삶의 조건의 기계적인 평등과 인위 적 합리성을 추구하고, 인간성의 보편적 본질과 인간에 내재한 종교적 초월적 지향을 부정하며, 인간성을 물질적ㆍ사회적ㆍ계급적 속성으로 환 원하려 했던 사회주의 중국의 역사, 근대기획으로서의 극단적인 사회주 의적 실험의 역사에 대한 반문과 비판이기도 하다. 위화의 소설이 주인 공을 통해 억울함을 감수하는 넉넉한 인내와, 눈물과 해학의 관용이 삶 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윤활유임을 보여주면서, 삶은 본질 적으로 불평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불평등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가 바로 현실의 냉혹함을 감싸고 녹이면서 삶의 고상함을 일구어내 는 삶의 가능성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적인 삶의 가치나 원리가 기계적 타산적 합리성만으로 설명되고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밖에 허삼관을 통해 드러내 보이는 삶의 고상함과 초월의 가능성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중국에서의 사이비 종 교성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지면서 또한 사회주의 내에서는 부정되었던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초월적 지향의 보편성에 대한 강한 긍정으로 도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 위화소설의 중심주제인 자기에게 묶인 존재에서 대속 의 주체로 나아감은 또한 인간이 주체의 물질성에 짓눌리며 자신에게 몰두하는 자기에게 묶인 존재에서 출발하지만 마침내 타인의 얼굴의 호 소를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요청으로 수용함으로써 자기에게 갇 히지 않고 열린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며, 타인의 짐을 자신의 짐으 로 짊어지는 대속의 선택을 통해 자신에의 얽매임을 벗어나 온전한 책 임의 주체로 세워지는 초월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레비나 스의 철학과 긴밀한 상관성을 보여준다. 레비나스는 개체를 전체의 부분 으로 보는 존재론적 전체주의와 정치적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하며, 고유 한 인격의 절대적 가치를 중시하고, 무엇보다도 개체성과 내면성을 존중 한다. 이 점은 위화의 90년대 소설에서도 공유된다. 위화의 소설에서는 개성과 인격을 갖추고, 삶 속에서 만나는 갖가지 계기들을 누리고 감수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83 하며, 삶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늘 역사나 사회 와 같은 전체 보다 더 전면에 놓여져 있다. 개개의 인간은 역사의 한 계 기나 전체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주목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끌어안고 자기 삶의 책임을 감당하는 개별 주체로서 그 려진다. 이러한 위화의 소설을 당대 중국의 문맥 속에서 바라보면, 극단 화된 정치적 전체주의로서의 문혁시기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문혁을 비 판하면서도 역시 인간을 일차적으로 집단과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서 역사의 주체로서의 재정립을 꿈꾸던 80년대의 인간관에 대해서도 일 정한 비판적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개체성과 내면성, 고유한 인격성에 대한 레비 나스의 존중이 폐쇄적이고 고립된 자아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자아의 좁은 굴레를 벗고 공동체를 품어 안을 수 있는 든든한 주체성의 정립에 대한 탐문으로 나아간 것처럼 위화의 소설에서도 인간 한사람 한 사람 의 삶의 개체성에 대한 중시는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자기 정체성의 확 립의 주장에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타자와의 만남과 타자에 대한 전 적인 수용과 타자의 삶의 짐을 자신의 짐으로 떠안는 성숙한 책임성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공동체의 수립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방향으로 나아 간다. 이 점은 위화의 소설에서 제시되는 새로운 아버지상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위화의 소설은 문혁시대에 철저하게 부정되었던 가정과 가 정 안에서의 아버지의 자리를 새롭게 조망하고44) 군림하는 아버지가 아 니라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새 로운 아버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의 회복은 단순히 배타적 방어적 혈연공동체로서의 가정의 회복을 넘어서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 에서 허삼관이 외도한 아내 허옥란과 그 상대인 하소용의 잘못을 기꺼이 용 서하며, 아내가 외도해서 낳아온 남의 아들을 친자로 삼고, 그 아들을 44) 王世诚은 복귀와 허삼관을 통해 세워지는 아버지 상이 90년대 중국문단에 서 차지하는 의미를 높게 평가하면서, 그것이 위화에게 있어서는 80년대 소 설의 주조였던 부친 살해 의 심리적 경험을 거치고 난후 이것을 완전히 극 복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 向死而生, 198-204 쪽)

384 中國現代文學 第39號 위해 목숨 까지 내어 놓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회복되는 것은 단지 혈 연공동체로서의 가정이 아니다. 허삼관이 기꺼이 선택하는 헌신적 삶은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 체 전체를 끌어안고 회복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허삼관에 의해 회 복되는 것은 가정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애 위에 수립되는 공동체이 다. 요컨대, 80년대 이후의 중국 문학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위화의 소설 들은 개인과 인격을 부정하며 개체를 전체와 역사의 부분으로만 보던 문혁 이전까지의 사회주의 문학이나,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위 대한 인간의 회복을 꿈꾸었던 80년대 문학, 그리고 사회주의시장경제의 본격적인 운영 속에서 왜소화되고 무력화된 개체의 모습이나, 본능적 욕 망적 존재의 적나라한 모습, 소외된 개인의 내면으로의 도피, 주체의 방 향 상실 등만을 주로 보여주던 90년대 문학의 일반적 경향과 구별되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주체 수립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시대의 존재론적 전체주의 속에 서 부정되던 개인과 내면, 인격의 회복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런 고유한 인격을 갖춘 개인을 책임 주체로 제시하지만, 그러나 그 개인의 내면성 과 고유한 인격은 자신에게만 몰두하며 자기 동일성의 틀 안에 갇힌 존 재가 아니라, 타인을 수용하고 타인의 잘못과 타인으로 인해 받은 상처 들을 다 용서하고 수용하며 더 나아가 타인의 짐을 자기 짐으로 기꺼이 떠맡아 지는 대속의 주체 의 수립을 통해 진정한 공동체적 연대의 형성 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적 주체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이 위화소설이 90년대 소설 안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자리이기도 하다.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85 7. 맺음말 위화의 90년대 장편소설은 혼란과 어둠의 좁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 난 뒤 비로소 도달한 탁 트인 빛의 환한 출구에서 시작된다. 그 새로운 출구에서 시작되는 위화소설의 여정은 자기에게 묶인 존재요, 시간 속에 서 소멸되는 존재인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공감( 가랑비 속의 외침 )에서 출발해서, 기억을 통해 창조하고 초월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주어진 모든 운명을 끌어안고 생명의 세계와 하나 되기까지 넓혀지고 넉넉해질 수 있는 인간 정신의 광활함에 대한 발견( 살아간다 는 것 )에로 나아가고, 다시 자기에게 묶인 존재의 굴레를 훌쩍 벗고 타 인의 짐을 자기 위에 짊어지는 대속적 주체로까지 나아가는( 허삼관 매 혈기 ) 승화와 초월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에서 우리에 게 전해지는 것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공감과 신뢰이고, 삶에 대한 힘찬 긍정이고, 인간의 가능성과 삶의 초월성에 대한 희망이다. 이것이 곧 위화가 자신의 문학이 써내고자 했고 마침내 써냈다고 자부하는 진 리와 고상함일 것이다. 위화의 작품이 주는 감동의 근원에는, 범속한 인간의 생존이 던져져 있는 좁은 테두리를 넘어서 려는, 인간과 삶을 향 한 초월에의 의지가 있고, 그 뒤에는 문학적 진실은 고상함과 진리, 영 원과 희망을 길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위화의 굳센 믿음이 있다.45) 그 결과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인간과 삶에 대한 보다 깊은 공감과 그 가능성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45)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근원에는 이러한 초월에의 의지가 있다. 예술의 기쁨은 있는 것을 확인하는 알아봄의 기쁨 못지않게 있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힘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서 온다 예술은 초월의 방법이다. ( 심미적 이성의 탐구, 52쪽)

386 中國現代文學 第39號 參 考 文 獻 余华, 在细雨中呼唤 (上海: 上海文艺出版社 2004) ------, 活着 (上海: 上海文艺出版社 2004) ------, 许三官卖血记 (上海: 上海文艺出版社 2004) ------, 没有一条路是重复的 (上海: 上海文艺出版社 2004) ------, 音乐影响了我的写作 (上海: 上海文艺出版社 2004) 王世诚, 向死而生 余华 (上海: 上海人民出版社 2005) 위화, 최용만 옮김, 가랑비 속의 외침 (서울: 푸른숲, 2003) 위화, 백원담 옮김, 살아간다는 것 (서울: 푸른숲, 1997) 위화, 최용만 옮김, 허삼관매혈기 (서울: 푸른숲, 1999) 위화, 박자영 옮김,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서울: 푸른 숲, 2000) 엠마누엘 레비나스, 강영안 옮김, 시간과 타자 (서울: 문예출판사, 2001) 강영안,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5) 엠마누엘 레비나스, 서동욱 옮김, 존재에서 존재자로 (서울: 민음사, 2001) 김우창, 심미적 이성의 탐구 (서울: 솔, 1998) 김우창, 정치와 삶의 세계 (서울: 삼인, 2000) 김형효, 베르그송의 철학 (서울: 민음사, 1995)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서울: 국일미 디어, 2005) 오영환 지음,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 (서울: 통나무, 1997) 송영진 편역,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서울: 서광사, 2001) 김규영, 시간론 (서울: 서강대학교출판부, 1993)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서울: 푸른숲, 1997) 김기택, 낙관적인 어조의 힘, 창작과비평 132호(서울: 창비, 2006 여 름) 王安忆评, 许三观卖血记 (http://www.joyo.com/book 卓越网 书评) 张永义, 音乐影响了余华, 中国青年报, 2005. 05. 30. 张洪德, 余华:重复叙述的音乐表现, 文学视界 http://www.white-collar.net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87 졸고, 위화(余华)의 글쓰기와 문학의 진실, 중국어문논총, 2005 ------, 위화(余华) 소설에서의 시간, 죽음, 기억에 관하여 가랑비 속의 외침 (细雨中呼喊) 을 중심으로, 성결대학교 인문과학 논총, 2005

388 中國現代文學 第39號 Abstract Humanism and Aesthetics in the 1990 Yu Hua's Novels Shim, Hye-young This paper examines the essential features of man and life as portrayed via Yu Hua's literary eyes, their literary truth, and the reservoir of the artistic affection inherent in his novels, basing on the following three works: Shouting in the Drizzling Rain, Life, and A Story of Mr. Xu San-guan's Selling Blood. The itinerary of his novels develops according to the following three tracks: 1) beginning from deep sympathy towards man who, on the one hand, is imprisoned by himself, and who, on the other, is gradually forgotten with the passage of time (Shouting in the Drizzling Rain, Life); 2) transcending the limit of mundane reality through remembrance and moving toward magnanimous human spirit to the extent of becoming one with life, while embracing one's given fate(life); 3) transcending the limit as imprisoned being by himself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sublated as the subject who comes under a yoke on other's behalf. (A Story of Mr. Xu San-guan's

1990년대 위화(余华) 소설의 휴머니즘과 미학 389 Selling Blood) His literary devices on time and remembrance as employed in the 1990s novels show striking similarities with literature and philosophy of Marcel Proust and Bergson, while the part portraying the being imprisoned by oneself and the redemptive subject, with the philosophy of Emmanuel Levinas. Yu Hua conveys these themes effectively through the narrative technique generating depressed sorrow in form of bright laughter, and through his balanced vision and insight of life which could only be obtained when life is seen in its wholeness. At the depth of the novels' artistic excellence lies in his firm conviction and expectation towards the human potentiality and life's transcendency. Meanwhile, there exists the author's belief that literature should concern elegance, truth, eternity, and hope. Based on the aforementioned literary features, the reader comes to share with the author the deep sympathy toward man and life, together with the possibility of transcendence from human bondage. Key words: Humanism, Aesthetics, Yu Hua, Novels, literary eyes, literary truth, remembrance, time, Shouting in the Drizzling Rain, Life, A Story of Mr. Xu San-guan's Selling Blood, transcendence, being imprisoned by one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