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연구 제82권(2014. 9): pp17~35 http://dx.doi.org/10.15793/kspr.2014.82..002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 팔경시, 진경산수화, 풍속지를 중심으로 The Comparative Study on the Landscape Attractions of Seoul in Joseon Dynasty : Focusing on the Eight Scenery Poems, True - View Landscape Paintings and Folklore Literatures 박수지 Park Suji 1), 김한배 Kim Hanbai 2), 이승희 Lee Seunghee 3) Abstract This study aims to figure out 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and social cognition of landscape attractions of Seoul in Joseon Dynasty through old cultural media such as Eight Scenery Poems,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and Folklore Literatures. In the Eight Scenery Poems, while the people in earlier period depicted the institutional places with regional representing mode, people gradually changed their views to Han River with panoramic viewing mode. In the True-View Landscape Painting of the latter period, Eight Sceneries of Jangdong and Scenic Beauties of Seoul and its Vicinity became the visual evidences of townscapes. While the former depicted the memorial sites of Seoul in the similar manner of the regional mode, the latter depicted the Han River view in the panoramic mode. In the Folklore Literatures including Hanyangga, the downtown with marketplaces were introduced as the new lively landscape attractions of Seoul, got more social cognition of the common people finally. Keywords: Regional Representing Mode, Panoramic Viewing Mode, Eight Sceneries of Jangdong, Scenic Beauties of Seoul and its Vicinity, Hanyangga I. 서론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서울의 지역적 고유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실로서의 물리적 원형을 찾는 것과 함께 시대별 사람들이 느꼈던 서울의 모습, 즉 원형적 경관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 또한 중요하 다. 조선시대 서울의 이미지는 원형적 이미지로서 현 대 서울 경관 이미지의 뼈대가 되고 지역성 인식의 바 1)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조경학과 박사과정 수료(제1저자) Ph. D. Candidate,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Univ. of Seoul Primary Author sjpark27@hanmail.net 2)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조경학과 교수(교신저자) Prof.,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Univ. of Seoul Corresponding Author hbkim@uos.ac.kr 3)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조경학과 박사과정 수료 Ph. D. Candidate,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Univ. of Seoul goodsalad@uos.ac.kr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17
탕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당시 서울 사람들에게 인 식되었던 대표 경관과 탐방 명소들을 포괄하는 경관 명소 들의 분포와 인식 양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러한 대중적인 경관 자원들에 대한 인식 상황은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경관 관련 시가( 詩 歌 ), 그 림, 문헌 등 대표적인 문화적 매체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비학술적 문헌을 통한 집단적 이미 지의 연구는 현상학적 경관 연구의 고유한 방법 가운 데 하나다(이규목 2002; 임승빈 1991). 이에 따라 본 논문은 1차적으로 조선시대의 대중 적인 문학, 회화, 풍속지 등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서 울의 지도상에 명기하여 당대 서울 사람들이 가치 있 게 느꼈던 경관명소들의 분포상을 실증적으로 규명 하려 한다. 2차적으로 그러한 명소들의 인식 특성을 매체별, 시대별로 종합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서울의 총체적 경관 이미지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고려 말부터 시작되었던 팔경시와 팔경 그 림들은 중세에서 근대 초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대표 경관을 선정하고 표현하는 동아시아 고유의 문화양 식이었다는 점에서 경관명소 연구에 대표성을 갖는 핵심적 연구대상이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중기, 특히 겸재 정선에 의해 화풍이 정립되었고 우리나라 곳곳 의 명승들이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통 해 중기 이후 경관명소의 실체와 인식을 확인할 수 있 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주로 편찬된 풍속지와 가사문 학들은 경관명소들을 배경으로 한 세시풍속을 다루 고 있어 이 장소들과 관련된 일반 민중의 도시활동과 여가 행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2. 선행연구 검토 관련 선행연구는 조선시대의 도시경관, 장소 연구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당시의 경관에 대해 이규목(1994)은 조 선 후기 서울의 도시경관과 그 이미지 에서 경관 분석 가의 입장에서 당시 여러 매체를 통해 그려 놓은 도시 에 대한 서술과 묘사를 토대로 도시 경관의 형성과정, 특성, 변화를 밝혔다. 당시의 도시 경관에 대한 자료 는 주로 실학파들의 저술이 대부분이었으며 그들의 시각으로 도시 환경이나 미관이 서술되었다. 최기수(1994)는 서울의 원형경관을 경( 景 ) 과 곡 ( 曲 ) 으로 나누어 보면서 팔경시와 팔경도 등을 통해 경 의 사례를 밝히고 사상적 기원을 제시하였으며, 구곡가와 구곡도 등을 통해 곡의 문화적 기원을 밝히 고 서울의 구곡을 발굴한 바 있다. 김한배(1998)는 우리 도시의 얼굴 찾기 에서 서 울의 경관과 그 이미지 변천을 물리적 환경과 도시도 형, 대표 경관의 변화 속에서 찾아보려 하였고, 시대 의 변천 속에도 유지되는 것은 자연 경관과 역사 경관 이고 변화하는 것은 생활 경관이라 하였다. 홍윤순, 이규목(2002)의 한양 원형 경관의 이원 적 중층성 연구 에서는 한양의 원형 경관을 비가시적 관념인 음양적 관점으로 도시의 입지, 거점 시설의 배 치, 토지 이용, 가로 환경의 구성, 건축 환경관의 관계 가 중층적으로 교차 누적됨을 밝혔다. 음양의 이원 적 관계는 물적 환경 측면뿐 아니라 도시의 기능과 활 동, 의미와 체험 측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음을 파악하였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조선시대의 거시적인 도시 의 구조와 지형 경관의 특성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현 대로 오면서 미시적 측면에서 주로 특정 가로나 특정 장소에서 시지각적, 구조적 인식의 특성과 활성화 방 안 등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이 선행연구들은 주로 사 실 위주의 역사적 기록이나 전통사상을 통해서 연구 되었기 때문에 당대 도시 사람들의 도시 경관에 대한 생생한 감성과 인식을 파악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 연구에 비해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서울 사 18 국토연구 제82권(2014. 9)
람들이 느꼈던 서울의 경관적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당대의 문학, 회화, 풍속지 등 다양 한 표현 매체들을 통해 나타나는 당대 사람들의 경관 명소들의 인식 양상을 중첩하여 실증적 방법과 해석 적 방법을 병용하여 분석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들 대부분 매체는 조선시대 사회 상류층의 시각에 편중 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풍속지와 풍 속가사들은 개방적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평민들 의 인식을 반영함으로써 이러한 편중을 보완할 수 있 을 것으로 본다. 실증적 측면에서는 각 문헌에 등장하는 경관명소 들의 지리적 분포를 지도상에 명시하여 매체별 분포 특성을 비교할 것이고, 해석적 측면에서는 각 경관명 소들의 입지적 경관 특성과 인식 및 활동을 분석하고 이를 종합하려 한다. 3. 연구 범위 및 방법 1) 연구 범위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조선 초기 서울 정도부터 조선 말 대한제국 선포 이전까지의 조선시대다. 연구의 공 간적 범위는 조선왕조의 수도였던 한양 성곽을 경계 로 그 안쪽인 도성 내부와 이른바 경교( 京 郊 )로 불렸 던 도성 외부, 그리고 조선 초부터 유상( 遊 賞 )의 대상 지였던 한강 주변부를 포함한다. 연구의 내용적 범위로는 서울과 그 근교를 포함하 는 팔경시와 진경산수화, 풍속지, 그리고 서울을 대 상으로 한 가사문학인 한양가 를 주 연구 대상으로 한다. 팔경시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해서 꾸준히 창 작되어 왔으므로 서울을 대상으로 한 조선 초기와 조 선 중기, 조선 후기의 팔경시들을 대상으로 비교, 분 석한다. 진경산수화는 주로 겸재 정선에 의해 주도되 었으므로 시기적으로는 그가 작품 활동을 하던 조선 중후기로 한정된 서울 대상의 진경산수화들에 연구 가 집중된다. 그리고 서울을 대상으로 하는 풍속지와 가사문학들은 주로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더불어 성 행하였으므로 이 시기에 발간되었던 것들에 한정되 어 연구될 것이다. 2) 연구방법 연구방법은 팔경시와 진경산수화, 풍속지 등 경관과 관련한 고전 문헌 매체들과 관련 연구 문헌들에 나타 나는 경관명소들을 연구하는 문헌 연구가 중심이 된 다. 이를 통해 이들 경관명소들의 지리적 분포를 파악 하기 위한 공간분포 연구, 그리고 시와 그림 등의 표 현을 통해 경관 인식을 파악하는 내용 분석 연구 등 양대 축의 연구가 진행되고 이를 종합하여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의 인식 특성을 규명한다. 내용 분석에 있어서는 팔경시와 진경산수화, 풍속 지 등의 표제부와 내용을 검토하여 경관명소의 성격 을 분류한다. 내용을 매체별, 시대별로 비교하여 경 관적 측면에서 그 인식 양상을 해석할 것이다. 마지 막으로 이제까지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조 선시대 서울에서 선호되었던 경관명소에 대한 인식 의 시대별 변화 추이와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파악 하려 한다. II. 이론적 고찰 1. 매체별 연구 먼저 경관을 주제로 한 문학매체로 팔경시 란 자연 의 승경( 勝 景 )을 여덟 가지 경치로 구분하여 시화( 詩 化 )한 산수시( 山 水 詩 ) 4) 로 중국 소상팔경시 가 그 기 원으로 인정된다. 서울 대상의 팔경시는 조선 초 신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19
도팔경( 新 都 八 景, 정도전) 에서 시작하여 조선 후기 국도팔영( 國 都 八 詠, 정조) 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지어졌다. 이는 한 지역의 특징을 구 성하는 대표 경관들을 집약한 것으로 8경, 10경, 12 경 등 다양한 수의 팔경시들이 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의 산수를 사실적 묘사 기법으 로 표현한 그림으로 18세기 전반 겸재 정선에서 절 정을 이룬다.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답사하고 화폭에 담은 그의 진경산수화는 주변의 산하에서 시작되었 다. 집 주변인 백악산에서 익힌 사생 솜씨를 금강산 과 영남지방의 풍경으로 확대시켜 진경산수화풍을 정립한 것이다. 5) 앞의 팔경시와 연계하여 장동팔경 첩,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 지역의 대표 경 관들을 집약한 화첩들을 팔경 형식으로 제작하였다. 주로 조선 후기에는 실학사상의 대두와 함께 많 은 풍속지들이 편찬되었다. 한경지략 은 조선 정조 때 수도 한성부의 역사와 모습을 자세히 적은 작자미 상의 부지( 府 誌 )로 성곽, 궁실뿐 아니라 산천 명승 시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경도잡지 는 조선 후 기에 유득공( 柳 得 恭 )이 지은 세시풍속지이며 열양 세시기, 동국세시기 보다 먼저 집필된 것으로 여 러 문물제도와 풍속세시를 약술하고 있다. 6) 열양 세시기 는 순조 19년(1819년) 김매순( 金 邁 淳 )이 한 양의 세시풍속과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열양 은 한양, 곧 서울을 지칭하는 것으로 주로 서울 지역에서 행해지던 궁중 및 관청, 민간의 세시풍속 80여 종을 월별로 구분하여 적고 있다(권영민 2004). 동국세시기 는 조선시대 정조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1년간의 세시풍 속을 월별로 기록하였다. 7) 마지막으로 한양가 는 1844년(헌종 10년) 한산거사( 漢 山 居 士 )가 지은 풍 물가사로 조선 왕도인 한양성의 연혁 풍속 문물 제도 도국( 都 局 ) 및 왕실에서 능( 陵 )에 나들이하 는 광경 등을 노래하였다. 8) 앞서의 팔경시를 포함하 는 이와 같은 매체들은 경관명소 연구를 위한 원 자 료로서 가치가 있으며 이들 원문들과 함께 관련 연 구들을 고찰하였다. 이들 봉건시대의 도시를 대상으 로 하는 문학양식들을 포괄적으로 성시문학( 城 市 文 學 ) 이라고 부른다. 9) 국문학자 안장리(2009)는 서울 팔경시 연구 등 다양한 팔경시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다. 특히 그는 조선 후기의 왕들은 여기서 서울의 팔경을 보다 다양 화하여 청풍계 등 사대부들의 개별 은거 공간까지 팔경시의 내용에 포함하게 된 것을 밝혔다. 미술사학 자 조규희(2012)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조의 국도 팔영 을 통해서 지금의 서촌을 포함하는 서울의 북리 를 팔경으로 포함함으로써 한양 최고 경관에 대한 재 평가가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그는 또한 팔경시와 겸 재의 진경산수화에 자주 등장하는 팔경조망식의 그 림, 그리고 동시대에 성행했던 차경( 借 景 ) 형식의 원 림 조성이 상호 내적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 다(조규희 2006a, 2006b, 2008). 미술사학자 강관식 (2006)은 장동팔경첩 제작의 배경적 연구로 겸재 정선 집안의 광주 정문과 장동 김문의 세교를 구체적 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겸재의 장동팔 경첩 등의 지역 기록화는 그의 가문과 장동 김씨 가 4) 팔경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2013년 12월 17일 검색). 5) 진경산수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2013월 12월 17일 검색). 6) 한경지략, 경도잡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2013년 12년 17일 검색). 7) 동국세시기.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folkency.nfm.go.kr(2014년 1월 22일 검색). 8) 한양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2013년 12월 17일 검색). 9) 성시문학은 조선 전기의 신도팔경시, 후기의 국도팔영시 와 같은 집경제영시들과 후기의 대표적 가사문학인 한양가, 한영오백년가 등이 대표적임. 특히, 18세기 이후 조선 후기에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음(권정은 2013). 20 국토연구 제82권(2014. 9)
문과의 교류에 기반하여 장동 김문의 연혁을 기념하 2. 연구의 개념틀 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경관적 측면에서의 연구로, 강영조 배미경 (2002)은 겸재의 진경산수화 100엽을 대상으로 하 여 그림에 묘사된 조망점과 관찰된 조망 행동에 대해 연구하였다. 정기호(2009)는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 첩 중 10점의 시화도를 대상으로 조망 지점을 찾고 그로부터 그림에 표현된 대상을 실제 경관과 비교 검 토하였다. 그에 따르면 양천 일대의 진경산수화들은 겸재가 현감으로 있던 양천 현아의 뒷산인 궁산 일대 가 주 조망점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노재현, 장일영(2008)은 총석정을 대상으로 한 실 경산수화들을 대상으로 그림의 시점과 내용, 표현 방 법 등을 분석하여 풍경 은 경관 에 비해 개인적이며 체험적 지각이며 경관에 비해 한시적 속성을 갖는다 는 것을 확인하였다. 연구 자료는 이미 서술한 대로 서울을 대상으로 한 조선 전후기의 팔경시,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 역 시 조선 후기의 풍속지와 가사문학 등을 대상으로 할 것이다. 연구의 방법은 1차적으로 이상의 문헌 자료 들을 대상으로 실증적 분석을 통한 경관명소들의 지 리공간적 입지분포 연구 가 수행될 것이며, 2차적으 로는 1차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매체별, 시대별로 대상 경관과 표현 내용의 차이를 비교하여 그 사회문화적 의미와 조선 전후기의 인식 양상의 차이를 해석하는 인식 연구 를 수행할 것이다. 이들을 종합하여 결론 적으로 조선시대 전반의 서울 경관명소의 분포와 인 식 양상을 파악하여 제시할 것이다. III. 팔경시를 통해 본 경관명소의 분포와 인식 본 논문은 이와 같은 기존의 이론적 연구들을 통 해 밝혀진 팔경시와 진경산수 그림의 내적 연관성, 그 리고 실제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조망 특성에 주목하 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선호하던 경관명소의 분포 와 인식의 양상을 비교 연구하려 한다. 이와 함께 조 선 후기에 나타난 도시 사회 변화가 평민들의 경관명 소 인식에도 변화를 주었으리라고 보고 당시의 풍속 지와 풍속가사를 통해서 그 양상을 확인하려 하였다. 서울을 대상으로 하는 팔경시는 조선 초 서울 정도 와 도성 공간 구성을 선도하였던 정도전에 의해 제 시된 신도팔경 에서 시작하여 조선 후기 정조 임금 의 국도팔영 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 쳐 지어졌다. 이 팔경시들은 조선 초기 지리서인 신증동국여 지승람 과 이를 조선 후기에 보완한 동국여지비고 그림 1 _ 연구의 개념틀 연구방법 연구자료 팔경시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풍속지, 가사 문학 문헌 연구 입지 분포 연구 인식 특성 연구 종합 결론 신도팔경 외 서울 대상 팔경시 도성 내 매체 간 인식비교 조선시대 경교명승첩, 도성 주변 서울 경관명소의 장동팔경첩 외 조선 전후기 인식 양상 한경지략, 한강 주변 인식 비교 한양가 외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21
에 중점 수록되어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중에서도 서 울 팔경시에 대한 종합적 연구인 안장리(2009)의 논 문에 등장하는 팔경시들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 중기, 후기 각각 3 4편의 대표적 팔경시들의 표제부를 중 표 1 _ 서울 팔경시에 등장하는 경관명소의 분포 시기 조선 초기 (1393~ 1567 선조 즉위) 조선 중기 (1567~ 1724 영조 즉위) 매체 (저자) 신도팔경 新 都 八 景 (정도전 鄭 道 傳 ) 한도십영 漢 都 十 詠 (서거정 徐 居 正 ) 남산팔영 南 山 八 詠 (정이오 鄭 以 吾 ) 담담정 십이영 淡 淡 亭 十 二 詠 (이승소 李 承 召 ) 근가십영 近 家 十 詠 (김상헌 金 尙 憲 ) 한도팔영 漢 都 八 詠 (이민성 李 民 宬 ) 한강 이북 한강 주변 기타 외곽 도성 내부 도성 주변 동호ㆍ상류 남호(용산강) 서호 도성궁원 ( 都 城 宮 苑 ) 열서성공 ( 列 署 星 拱 ) 제방기포 ( 諸 坊 碁 布 ) 종가관등 ( 鍾 街 觀 燈 ) 운횡북궐 [( 雲 橫 北 闕 척헌관등 ( 陟 巘 觀 燈 )] 청풍계( 淸 風 溪 ) 백운동( 白 雲 洞 ) 대은암( 大 隱 巖 ) 회맹단( 會 盟 壇 ) 세심대( 洗 心 臺 ) 삼청동( 三 淸 洞 ) 불암천( 佛 巖 川 ) 도성궁화 ( 都 城 宮 花 ) 종가관등 ( 鍾 街 觀 燈 ) 기전산하 ( 畿 甸 山 河 ) 북교목마 ( 北 郊 牧 馬 ) 흥덕상화 ( 興 德 賞 花 ) 장의심승 ( 藏 義 尋 僧 ) 반송송객 ( 盤 松 送 客 ) 목멱상화 ( 木 覓 賞 花 ) 암저유화 ( 巖 底 幽 花 ) 영상장송 ( 嶺 上 長 松 ) 삼촌답청 ( 三 春 踏 靑 ) 구일등고 ( 九 日 登 高 ) 연계탁영 ( 沿 溪 濯 纓 ) 목멱산 ( 木 覓 山 ) 공극산 ( 拱 極 山 북악) 필운산 ( 弼 雲 山 인왕) 기전산하 ( 畿 甸 山 河 ) 반송송객 ( 盤 松 送 客 ) 동문교장 ( 東 門 敎 場 ) 입석조어 ( 立 石 釣 魚 ) 전교심방 ( 箭 郊 尋 芳 ) 제천완월 ( 濟 川 翫 月 ) 제천완월 ( 濟 川 翫 月 ) 전교목마 ( 箭 郊 牧 馬 ) 교장시예 ( 敎 場 試 藝 ) 남도행인 ( 南 渡 行 人 ) 수창남강 ( 水 漲 南 江 ) 용산어화 ( 龍 山 漁 火 ) 반기조설 ( 盤 磯 釣 雪 ) 옹촌신연 ( 瓮 村 薪 煙 ) 남교안성 ( 南 郊 雁 聲 ) 서강조박 ( 西 江 漕 泊 ) 양화답설 ( 楊 花 踏 雪 ) 마포야우 ( 麻 浦 夜 雨 ) 율도청람 ( 栗 島 晴 嵐 ) 양화추월 ( 楊 花 秋 月 ) 희우사양 ( 喜 雨 斜 陽 ) 잠령초가 ( 蠶 嶺 樵 歌 ) 서강조운 ( 西 江 漕 運 ) 관악춘운 ( 冠 岳 春 雲 ) 22 국토연구 제82권(2014. 9)
시기 조선 중기 (1567~ 1724 영조 즉위) 조선 후기 (1724~ 1897 고종 대한제국 선포기) 매체 (저자) 송계팔영 松 溪 八 詠 (최명길 崔 鳴 吉 ) 국도팔영 國 都 八 詠 (정조 正 祖 ) 구호십 육영 鷗 湖 十 六 詠 (정래교 鄭 來 僑 ) 표 1 _ 서울 팔경시에 등장하는 경관명소의 분포(계속) 한강 이북 한강 주변 기타 외곽 도성 내부 도성 주변 동호ㆍ상류 남호(용산강) 서호 필운화류 ( 弼 雲 花 柳 ) 삼청녹음 ( 三 淸 綠 陰 ) 자각관등 ( 紫 閣 觀 燈 ) 청계간풍 ( 淸 溪 看 楓 ) 통교제월 ( 通 橋 霽 月 ) 삼각백운 ( 三 角 白 雲 ) 도봉홍엽 ( 道 峯 紅 葉 ) 수락청풍 ( 水 落 靑 楓 ) 아차제설 ( 峨 嵯 霽 雪 ) 원릉석조 ( 元 陵 夕 照 ) 석교완월 ( 石 橋 玩 月 ) 천정심승 ( 天 定 尋 僧 ) 반지상련 ( 盤 池 賞 蓮 ) 세검빙폭 ( 洗 劒 冰 瀑 ) 삼각효운 ( 三 角 曉 雲 ) 도봉만하 ( 道 峯 晩 霞 ) 종남석봉 ( 終 南 夕 烽 ) 문수낙조 ( 文 殊 洛 照 ) 아차미우 ( 峩 嵳 微 雨 ) 전교연초 ( 箭 郊 煙 草 ) 압구범주 ( 押 鷗 泛 舟 ) 이릉송백 ( 二 陵 松 柏 ) 쌍포누대 ( 雙 浦 樓 臺 ) 은사신종 ( 恩 寺 晨 鍾 ) 북안화류 ( 北 岸 花 柳 ) 전사구로 ( 前 沙 鷗 鷺 ) 이탄풍범 ( 梨 灘 風 帆 ) 독도신창 ( 纛 島 新 漲 ) 전교대설 ( 箭 郊 大 雪 ) 신촌모연 ( 新 村 暮 烟 ) 용연어화 ( 龍 淵 漁 火 ) 용문제월 ( 龍 門 霽 月 ) 첨학정십경 瞻 鶴 亭 十 景 (신경준 申 景 濬 ) 구정대사 ( 鷗 亭 臺 榭 ) 학야구승 ( 鶴 野 溝 塍 ) 상평행객 ( 霜 坪 行 客 ) 하사귀승 ( 霞 寺 歸 僧 ) 공상채엽 ( 公 桑 採 葉 ) 능실장빙 ( 凌 室 藏 冰 ) 기주망집 ( 碁 洲 網 集 ) 동진만도 ( 銅 津 晩 渡 ) 와서석등 ( 瓦 署 夕 燈 ) 관수화층 ( 冠 峀 花 層 ) 자료: 연구 대상 매체를 참고하여 연구자가 작성.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23
심으로 장소와 내용을 비교 분석하였다. 1. 팔경시에 나타난 팔경명소의 분포 팔경시에 표현된 경관명소의 전체적인 공간 분포는 도성 주변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도성 내부, 한강 주변의 동호 상류, 남호, 서호, 기타의 순으로 분석되었다. 구체적인 지명으로 가장 많이 표현되었던 곳은 남 산과 서촌 지역의 백운동과 청풍계로 분석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경복궁과 도성 주변의 세검정, 삼청동, 종 로, 그리고 한강 주변인 마포, 양화진, 제천정 등으로 나타났다. 그 외 서울의 대표적인 산인 북악산, 인왕산 등의 내사산과 관악산, 삼각산, 도봉산, 수락산, 아차산 등 외사산을 포함한 외곽 산봉우리들이 포함되었다. 2. 팔경시를 통해 본 시기별 팔경명소의 인식 양상 신도팔경 으로 시작되는 조선 초기 팔경시에 나타나 는 경관명소들은 도성 내의 궁궐과 관청, 시가지의 질서 있는 구성 등 조선 건국의 통치 이념을 표현하 는 중심 장소였으나, 중기 이후 시대가 지날수록 대 상 영역의 범위는 넓어지고 유형도 민간 거주지와 누 정, 별서를 포함하는 공간들로 다양해졌으며 장소와 행위들이 결합하여 보다 생활과 밀착된 장소들로 구 체화되어갔다. 한강의 명승, 정자 중에서도 특히 제천정 과 양 화진 이 많이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하 여 중국 사신 접대가 끊이지 않았고 대표적인 향응 이 주로 동호의 제천정 을 출발하여 서호의 양화진 (희우정, 현재 망원정)으로 이어지는 것이었기 때문 이었다(이종묵 2006; 이국진 2012). 동호는 이 밖에 도 살곶이벌(현재 성동구 성수동, 화양동 일대)에 있 던 군마목장( 箭 郊 牧 馬 )과 훈련원( 東 門 敎 場 )으로 인 해 국가 차원의 명소로 지속적으로 인식되었다. 서호 는 경관적으로 뛰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특히 삼남의 세곡과 물산이 집결하는 항구의 활동( 西 江 漕 泊, 西 江 漕 運 )들이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이어진 서울 대상 의 팔경시는 크게 보아 특정 조망점을 전제하지 않 고 한양 전체, 또는 일정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 자원 들을 열거한 지역팔경형 팔경시와 누정 등 특정 조 망점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주변 사방의 경관 대상들을 열거하는 조망 중심형 팔경시로 양 분할 수 있다. 10) 조선 초기의 건국 공신 정도전에 의해 제시된 신도팔경 은 전자의 대표적 사례로 서울 및 경기지 역 전체의 대표 경관들을 통해 조선의 건국과 통치의 이념을 표현한 것으로 지역팔경형 이라고 할 수 있 다. 자연적 요소인 산천의 풍치와 인문적 요소인 사 람들의 행태가 인식되었다. 도성 내부의 궁궐들(도성 궁원), 육조거리와 한성부 5방의 여러 관아가 정연히 배열된 모습(열서성공, 제방기포)을 묘사하는 등 통 치이념을 공공적 경관 질서를 통해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대비하여 남산팔영 은 남산이라는 특 정 조망점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관 대상들을 열거했 다는 면에서 앞의 지역팔경형보다는 조망팔경형의 초기 형태라고 보인다. 남산 주변 산천경개의 풍치 를 표현하였는데 북쪽 산기슭의 구름 속에 펼쳐져 있 는 궁궐의 전경(운횡북궐), 산마루에 우거진 낙락장 송의 풍치, 장마철에 한강에 넘쳐흐르는 물길과 강변 풍경(수창남강) 등을 표현하였다. 10) 이와 유사한 시각에서, 안장리(2009)는 한국의 팔경시를 폐쇄적 유형 과 개방형 유형 으로 나누어, 전자를 지역을 한정하여 지역 내 여덟 개의 경관을 선정 하는 것이고, 후자는 거처나 누정을 중심으로 조망되는 여덟 개 경관을 선정 하는 것으로 구별하고 있으나 용어상 오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음. 24 국토연구 제82권(2014. 9)
조선 중기에도 주로 지역팔경형 의 형태가 일부 유지되기는 하였으나 조선 초기보다 미시적인 도성 내의 주거 지역들이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김상헌의 근가십영 에서는 본인이 거처하던 집 주변인 현재 서촌의 마을 경관을 이루는 경관명소들이 열거된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집에서 바라다보이던 공극산(북 악산)과 목멱산, 필운산(인왕산), 본인이 거주하거나 방문하여 즐기던 명소들인 도성 내부의 청풍계, 백운 동, 대은암, 회맹단, 세심대, 삼청동, 불암천 들이 등장 한다. 주로 이들 장소에서의 풍경에 대한 조망과 그곳 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을 표현하였다. 이는 당시 김상 헌을 필두로 권세를 얻어가던 장동 김씨 문중 세력의 지역 기반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 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후에 겸재의 장동팔경첩 에 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조선 후기에는 지역팔경형 과 조망팔경형 이 복 합적으로 나타났으나, 민간에서 조영한 누정에서 바 라본 주변 경관을 읊은 조망팔경형 의 팔경시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 특히 정조 임금에 의해 제작된 국 도팔영 에서는 지역팔경형 표현이기는 하나 궁궐 근 처 서촌의 거주지 경관인 청풍계의 단풍놀이(청계관 풍), 필운대의 꽃과 버들(필운화류), 북악 삼청동의 시원한 녹음(삼청녹음) 등이 표현된다. 이들 경관명 소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 중후기에 서울 도성 내부 를 중심으로 등장한 소위 성시원림( 城 市 園 林 ) 들로, 궁궐 주변부 마을의 상류 주택에 원림 공간을 만들고 시회( 詩 會 ) 등 다양한 활동에 이용하게 된 현상이 반 영된 것이다. 이는 조선 초기에 궁궐, 관아, 한성부 등 국가적 차원의 경관을 묘사한 것과는 차별성을 보인 다. 같은 작품에서는 조망팔경형 적인 표현도 일부 보이는데 자하골 창의문에서 보는 관등놀이(자각관 등) 와 시가지 상가인 광통교에서 보는 비 갠 후의 맑 은 달(통교제월) 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한강 등 서울의 경관명 소에 귀족, 관료들의 개인 정자가 많이 지어지면서 이들 정자를 조망점으로 하여 조망 대상 경관을 읊은 소위 조망팔경형 팔경시가 많이 늘어난다. 대표적 예가 동호의 정자에서 바라본 팔경을 읊은 정래교의 구호십육경, 신경준의 첨학정십경 등이다. IV. 진경산수화를 통해 본 경관명소의 분포와 인식 서울의 경관명소들이 진경산수화를 통해 재현되고 유통되었던 것은 조선 중후기, 겸재 정선( 謙 齋 鄭 敾, 1676~1759년)이 활동하였던 시기에 집중된다. 본 논 문에서 진경산수화를 통한 경관명소의 연구는 정선 의 작품 중에서 서울과 그 근교를 대상으로 하는 장동 팔경첩( 壯 洞 八 景 帖 ), 경교명승첩( 京 郊 名 勝 帖 ), 양천팔경첩( 陽 川 八 景 帖 ), 퇴우이선생진적첩( 退 尤 二 先 生 眞 蹟 帖 ) 과 그 외 서울의 경관명소들을 표 현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지리 공간 분포 도를 분석하기 위한 기준은 한강 이북의 도성 내부와 외부, 한강 주변부는 서울 외곽 지역의 광주군, 양평 군과 현재 서울 내부의 동호와 경호, 서호, 행호로 분 류하여 분석하였다. 1.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경관명소의 분포 명승, 명소들의 전체적인 공간 분포는 도성 내부가 가 장 많았고, 그중에서도 서촌지역인 청운동, 옥인동 등 이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이는 경관적 우수성 외 에 겸재의 고향인 동시에 학연, 지연이 반영된 것이기 도 하다. 그 외 한강 주변에서는 서호 특히 양화진이 가장 많았는데 이는 서호의 대표 경관이자 겸재가 현 감으로 근무했던 양천에서 가시권 내의 가까운 명소 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호 다음으로는 양수리 부 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겸재의 학연인 장동 김 문의 별서, 서원들이 이 부근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25
표 2 _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등장하는 경관명소의 분포 한 강 이 북 한 강 주 변 시기 매체 도성 내부 도성 주변 광주군 양평군 동호 남호 (용산 강) 서호 행호 장동팔경첩( 壯 洞 八 景 帖 ) 1, 2 청운동(자하동 紫 霞 洞, 청송당 聽 松 堂, 청풍계 淸 風 溪, 대은암 大 隱 岩, 독락정 獨 樂 亭, 창의문 彰 義 門, 백운동 白 雲 洞 ) 세종로동(취미대 翠 微 臺 ) 옥인동(수성동 水 聲 洞, 청휘각 晴 暉 閣 ) 누상동(필운대 弼 雲 台 ) 조선 중후기: 겸재 정선( 謙 齋 鄭 敾, 1676~1759년) 경교명승첩( 京 郊 名 勝 帖 ) 上, 下 세종로동(은암동록 隱 巖 東 麓 ) 옥인동(인곡유거 仁 谷 幽 居 ) 청운동(장안연우 長 安 烟 雨, 장안연월 長 安 烟 月 ) 광주시(녹운탄 緑 雲 灘, 우천 牛 川 ) 양평군(독백탄 獨 柏 灘 ) 구리시(석실서원 渼 湖 石 室 書 院 ) 삼주삼산각 三 州 三 山 閣 ) 광진구(광진 廣 津 ) 송파구(송파진 松 波 津 ) 강남구(압구정 狎 鷗 亭 ) 양천팔경첩 ( 陽 川 八 景 帖 ) 퇴우이선생진적첩 ( 退 尤 二 先 生 眞 蹟 帖 ), 기타 동소문( 東 小 門 ) 세종로동(경복궁 景 福 宮 ) 옥인동(옥동척강 玉 洞 陟 崗, 삼승정 三 勝 亭, 삼승조망 三 勝 眺 望, 동대상춘 東 台 賞 春 ) 세검정( 洗 劍 亭 ) 남산(목멱산 木 覓 山 ) 인왕산(인왕제색도 仁 王 霽 色 圖 ) 용산구(목멱조돈 木 覓 朝 暾 ) 동작구(동작진 銅 雀 津 ) 동작구(동작진 銅 雀 津 ) 마포구, 서대문구 (안현석봉 鞍 峴 夕 烽 ) 마포구-난지도 (금성평사 錦 城 平 沙 ) 마포구-절두산 (양화환도 楊 花 喚 渡 ) 강서구 가양(공암층탑 孔 岩 層 塔 ) 강서구(종해청조 宗 海 聽 潮 ) 강서구, 마포구 (소악후월 小 岳 候 月 ) 고양시-덕양산 (행호관어 杏 湖 觀 魚 ) 마포구(양화진 楊 花 津 ) 영등포구(선유봉 仙 遊 峰 ) 강서구(이수정 二 水 亭, 소요정 逍 遙 亭, 소악루 小 岳 樓 ) 고양시(귀래정 歸 來 亭 ) 고양시(낙건정 樂 健 亭 ) 마포구-절두산 (양화진 楊 花 津 ) 영등포구-선유도 (선유봉 仙 遊 峰 ) 강서구(이수정 二 水 亭, 소악루 小 岳 樓 ) 고양시-덕양산(쌍건정) 고양시-창릉천(귀래정 歸 來 亭 ) 있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최완수 2009). 2.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경관명소의 인식 양상 겸재 정선이 그린 서울의 진경산수화는 크게 두 가지 시각적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 유형은 장동팔 경첩( 壯 洞 八 景 帖 ) 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근중경적 시각에서 특정 주택이나 정자, 원림들을 강조하여 그 린 것이고, 또 한 유형은 경교명승첩( 京 郊 名 勝 帖 )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특정 조망점에서 바라본 개방된 원경의 풍경이 팔경형식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는 경우다. 전자의 대상은 주로 청풍계, 청휘각, 독락정, 인왕산 등과 같은 독립적 장소들로 서촌과 장동 김 문을 대표하는 기념적 장소들이며 그림첩의 구성으 로 보아 팔경시의 유형 중 지역팔경형 팔경시와 유 26 국토연구 제82권(2014. 9)
그림 2 _ 장동팔경도첩 에 수록된 그림(일부) 자하동 청송당 청풍계 대은암 독락정 취미대 수성동 필운대 자료: 최완수. 2009.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 3 _ 경교명승첩 에 수록된 그림(일부) 녹운탄 송파진 압구정 금성평사 양화환도 소악후월 자료: 최완수. 2009. 간송미술관 소장. 사하다. 후자는 주로 겸재가 양천 현감으로 재임할 당 은 주로 배 안을 조망점으로 하였고, 중하류의 그림들 시에 그려졌던 그림들로 한강 상류를 그린 그림들 은 주로 양천 현아의 뒷산인 궁산 과 그곳의 누정인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27
소악루 를 주 조망점으로 하여 그곳에서 보이는 각 방향의 한강과 연안의 언덕이나 섬들, 배경의 먼 산 으로 이루어진 파노라믹한 원경의 경관을 담고 있다 (정기호 2009). 즉, 경교명승첩 에서 볼 수 있는 그 림 대부분의 구도는 특정 조망점에서 본 광각의 시 각 범위를 포함하고 있어 조망팔경형 팔경시의 구 성과 유사하다. 장동팔경첩 이외에 겸재가 그린 서촌의 장소들 은 순수하게 풍경 감상을 위해 찾은 장소들로 대부 분 산 중턱 이상 높은 곳에 위치하여 시가지 방향으 로 개방된 조망을 가진 조망형 경관명소 (삼승조망, 은암동록, 동대상춘)들이다. 이들 조망형 경관명소에 는 대부분 개방된 조망 속의 경관 대상들을 팔경식 ( 八 景 式 )으로 묘사하고 있어 역시 조망팔경형 팔경 시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미술사학자 조규희(2006a, 2006b, 2008)는 겸재의 진경산수화 가 대체로 이러한 넓은 시야의 조망을 즐겨 담게 되 고 조망을 정원에 끌어들이는 차경( 借 景 ) 양식의 원 림들이 동시대에 성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당대의 사 대부 계급들이 사유 토지를 증식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경교명승첩 에 그려진 한강 일대 그림의 구도는 대체로 근경의 수면을 앞에 두고 중경에 대상 경관을 배치한 후 후면 원경에 서울 주변의 관악산, 남산 등 유명산을 배치하여 대상지의 상대적 위치를 알 수 있 게 하는 등 팔경형의 포괄적 조망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수상교통의 편의성으로 행인들이 운집하는 동 작나루 등 나루터들이 자주 선택되어 경관명소들의 사회적 장소성을 중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서원(석실서원)이나 별서(삼주삼산각), 분 원(우천) 등 문화적 의미가 높은 곳들이 선정되었다. 이 문화적 장소들은 장동 김문의 거점적 장소이기 때 문에 선정된 듯하다. 특히 이들 경교명승첩 의 그림 대부분은 겸재의 문우( 文 友 )인 시인 이병연과 시화 상간( 詩 畫 相 看 )의 약조하에 그림마다 표제시가 첨 부되면서 인문적 안목으로 표현된 경관들이었다(최 완수 2009; 조규희 2012). 이들 문화 집단이 찾아내고 명소화한 장소들의 가 치는 경관적 탁월성에 더해서 당시의 특정 지역을 기 반으로 한 당대 주류 세력들의 사회적 힘이 반영된 것 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앞 절에서 나타난 정조의 국도 팔영 에 청풍계 등 서촌 일대의 경관명소들이 포함 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V. 풍속지와 가사문학을 통해 본 경관명소의 분포와 인식 서울을 대상으로 하는 풍속지와 가사문학의 융성은 시기적으로 대부분 조선 후기 실학의 대두와 흐름을 같이한다. 여기서는 서울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풍속지 4종( 한경지략, 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과 조선 후기 가사문학 중 한양가 를 분석하였다. 풍속지는 대부분 경관명소에서 행해지는 일상적 활동들과 축제적 성격의 공공 세시풍속을 다룬 것이 특징이며, 이를 통해 장소 자체의 외관적 매력에 더해 서 이런 공공성이 강한 활동들이 장소성을 강화하여 도시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1. 풍속지, 가사문학에 나타난 경관명소의 분포 경관명소의 전체적인 공간 분포는 도성 내부(53곳) 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도성 주변(14곳), 한 강 주변의 동호 상류(10곳), 서호(6곳), 기타 외곽 (1곳), 남호(1곳)의 순으로 분류되었다. 유형별로는 산천경개와 궁궐, 누정, 단, 묘, 시장, 절, 다리 등의 경 관 요소가 가장 다양하게 나타났다. 특히, 한양가 에서는 시가지의 상업 공간들을 28 국토연구 제82권(2014. 9)
포함하여 경관명소들도 다양하게 언급되지만 그곳 에서 이루어지는 놀이나 상업 활동들을 생생하게 묘 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풍속지와 가사문학을 통해 본 서울의 경관명소 인식 양상 1) 풍속지에 나타난 경관명소의 인식 풍속지와 가사문학 작품은 민중의 일상 생활이 경관 명소의 인식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경지략 의 내용에는 도성 내부에서 물 맑고 바위 좋은 경치 가 표현된 옥류동 과 수성동 (인왕산), 꽃구경하기 에 좋은 유란동 (백악산), 복숭아나무가 많은 도화 동 (백악산)과 개울과 폭포가 있는 협간정 (타락산) 등이 나타난다. 도성 주변에서는 세검정 의 정자와 폭포, 그리고 장마철에 물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동국세시기 에는 도성 내 부에서의 연등행사 때 남산과 북악에서 시내 야경을 구경하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특히나 다른 매체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다양한 놀이와 관련된 활동적 측면이 더 많이 강조되어 있 한 강 이 북 시기 조선 후기(1776년 정조 즉위 ~ 1897년 고종, 대한제국 선포기) 매체 풍속지 가사문학 분류 기준 도성 내부 도성 주변 한경지략 (1890년) 경도잡지 (정조 때로 추정) 백운동, 청학동, 필운대, 도화동, 유란동, 세심대, 필운대의 행화, 북둔의 수성동, 옥류동, 협간정, 복사꽃, 흥인문 밖의 가산( 假 山 ), 개천( 開 川 ), 버들, 천연정의 연꽃, 육의전, 종루 시전, 삼청동 탕춘대의 수석, 배오개 시전, 칠패 시전, 숙청문 팔패 시전 등 서지( 西 池 ), 동지( 東 池 ), 남지( 南 池 ), 세검정, 천연정, 산단( 山 壇 ), 쌍회정 표 3 _ 풍속지와 한양가에 등장하는 경관명소의 분포 남산 열양세시기 (1819년) 필운대 세심대 남산-잠두 동국세시기 (1849년) 수표교, 종각, 만리동고개, 필운대, 흥인문 밖, 북악산의 신무문 뒤, 청풍계, 후조당 남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한양가 (1844년) 명륜당(성균관), 존경각, 광통교, 구리개(을지로), 조양루, 석양루, 명선루, 홍엽정(남산 기슭), 송석원, 영파정(이화동 이화장 앞), 필운대, 상선대, 옥류동, 도화동(성북동), 창의문, 탕춘대, 북일영, 군자정, 큰광통교 칠패(용산구 청파동 일대), 춘조정, 세검정, 옥천암, 한북문, 진관사, 월계 한 강 주 변 동호 상류 남호 (용산강) 제천정, 낙천정, 화양정, 황화정, 유하정, 압구정, 독서당, 살곶이벌 칠덕정 두미(하남 미사리), 춘수루(쉐라톤워커힐) 서호 망원정, 영복정, 담담정 창랑정, 탁영정, 읍청루 기 타 외 곽 남한산성 자료: 연구 대상 매체를 참고로 하여 연구자가 작성.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29
다. 구체적 내용으로 한경지략 에는 도성 내부 필 운대 에서의 풍월과 함께 화개동 은 술과 시 읊기 좋 은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수성동 은 골짜기가 깊고 그윽해서 물 맑고 바위 좋은 경치가 있어서 더울 때 소풍하기 제일 좋은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산의 쌍회정 에서는 단풍놀이를 하는 풍경이 표현되었다. 도성 주변에서는 단오 씨름 장소로 시정 사람들이 많이 모여 구경하던 남산기슭의 산단( 山 壇 ) 이 표현 되었다. 경도잡지 에도 남산 기슭에서 씨름을 하는 모습과 여항에서 부녀자들의 그네뛰기 등의 풍경이 표현되었다. 열양세시기 에는 남산의 잠두 와 필 운대, 세심대 에서 삼월에 꽃놀이를 하는 모습이 표 현되었다. 이들은 대 라는 명칭에서 보듯, 이들은 모 두 주변보다 높은 전망 장소로 꽃놀이의 조건을 충족 시키는 곳이며 주로 서촌과 남촌 부근으로 장안에서 원림이 가장 발달한 곳들이기도 하다. 풍속지에 나타난 경관명소들이 대부분 서촌 부근 인 것은 다른 매체들의 경우와 부합된다. 다른 점은 각 장소가 시각 경관적 측면만이 아니라, 늘 여가활 동이나 세시풍속과 결부되어 그 가치가 설명되고 있 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단오 행사 등은 도성 중심부와 남산 인근에서, 그밖에 다리밟 기 와 연싸움 등 집단적 놀이는 시가지 중심상가 근 처인 종각, 수표교 부근에서(동국세시기) 행해지는 등 도심부의 활동이 강조되는 것은 다른 매체의 내 용과는 다르게 조선 후기에 활성화된 도시생활의 특 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경지략 에서 육의전의 품목별 시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 종루, 배오 개, 칠패, 팔패 등 장안 유명 시전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2) 가사문학에 나타난 경관명소의 인식 한산거사의 한양가 는 19세기 한양의 풍경을 만화 경처럼 담아낸 가사다. 한양가 는 한양의 지리적 위 치 및 역사적 유래, 궁궐의 모습 및 각 관청, 시전( 市 廛 ), 각종 승전( 承 傳 )놀음, 능행( 陵 行 ), 과거( 科 擧 ), 찬양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조선 후기 성시문학 의 경향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시장과 유희 라고 하고 있다(정인숙 2011; 최은숙 2012). 즉, 조선 후기 성시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는 시장 이다(권정은 2013). 이 시기는 도시화의 진행과 더불 어 도시 상업과 유흥의 발달로 배오개, 종로, 칠패 등 3대 시장이 번성하고 각 처의 유상처나 놀이터가 나 타나게 된다. 한양가 등 가사문학 작품이 다른 매 체들과 다르게 특징적인 것은 시장의 모습과 농업, 조 운 등 생업활동과 관련된 장소를 경관명소로 인식하 고 있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다양한 집단놀이가 표 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성 내 여러 시장은 물론, 단 오 때의 씨름, 부녀자들의 그네뛰기, 연싸움, 다리밟 기, 편싸움, 화류놀이 등 다양한 놀음이 이루어진 곳 들을 명소로 인식하고 있다. 고동환(2006)은 이는 조선 후기의 도시화와 상업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 로 보인다 라고 하였다. 한양에서 이루어진 유흥은 계급의 경계를 넘어서 확대된다. 선비, 한량, 포교 등 사회집단별 놀이는 물 론, 특히 일종의 사설 금융기관인 공물방( 貢 物 房 )의 선유놀음 은 공물납품을 전담하는 공인들이 주로 하 는 경강 지역의 유흥거리였다. 그 외 놀이의 장소로서 는 누대와 계곡, 성 내, 성 외의 유상처와 경강 주위의 누정까지 나열된다(남정희 2012). 한양가 에서는 조양루, 석양루, 명선루, 홍 엽정, 송석원, 영파정, 필운대, 상선대, 옥류동, 도화동, 탕춘대, 군자정 에서 행해진 각종 놀음이 표현되어 있다. 도성 주변의 춘수루, 춘조정, 세검 정 에서도 각종 놀음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대 부분은 도성 내의 대중적인 경관명소들이다. 그리고 도성을 벗어난 한강의 서호에서는 창랑정, 탁영정, 30 국토연구 제82권(2014. 9)
읍청루 에서 각종 다양한 놀이가 이루어졌다고 기록 되어 있다. 또한 시장과 같은 생업활동과 관련된 장소가 중 요 경관명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앞의 풍속지와 공 통된 특징이다. 배오개, 종로, 칠패 등이 보여주 는 분주하고 현실감 있는 장면들은 조선 초기에는 상 상하지 못했던 차별화된 역동성을 선사한다(권정은 2013, 151). 구체적 내용으로는 칠패시장 에서 생선 가게의 각색 생선에 대해서, 남문 안 큰 모전 의 각색 실과, 수각( 水 閣 )다리 너머의 각색 상전, 그리고 큰 광통교 너머 육주비전에 대해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 는 것이 특징적이다. 명소를 인식하는 데 단지 자연의 풍치뿐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과 의미가 함께 작용하 는 것이 조선 후기의 새로운 양상이다. 이는 조선 후기에 사회가 보다 개방적으로 상업 화, 도시화되면서 계급의식이 약화되고 한글소설이 나 한양가 와 같은 새로운 대중적 문화양식들이 자 리 잡아가면서 나타나는 미의식의 변화라고 볼 수 있 을 것 같다. 앞의 문학과 미술에서 볼 수 있었던 자연, 인문환경의 시각 경관적 가치에 더해 조선 후기에는 민중들의 놀이와 상업활동 등 보다 도시 생활적 현상 들이 경관명소를 만드는 새로운 매력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들은 여가문화의 자생 적 근대화 과정의 일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VI. 종합: 매체별 시기별 경관명소의 분포와 인식 서울을 주제로 한 팔경시에 있어 조선 초기에는 주로 팔경이라는 복수 시점을 통해 서울의 제도권적 대표 경관들을 집약하는 지역팔경형 의 형식이 우세하였 으나, 중후기에는 급격히 늘어난 누정 등 다양한 조망 명소에서 바라다보이는 사방의 시각적 대상들을 연 속적으로 표현하는 조망팔경형 의 형식이 점증하게 되었다. 조선 중후기에는 팔경시의 대상이 도성 내 궁 궐 주변 사대부의 세거지나 성시원림들로 확장되고 ( 근가십영, 국도팔영 등), 도성 외 한강 주변의 누정을 주 조망점으로 하는 조망팔경형 의 팔경시들 이 동시에 늘어났다. 특히, 팔경시는 개인의 저작이기 는 하나 누정에서의 시회( 詩 會 ) 등 집단적 의사교환 등을 통해 보편적 시각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보이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경관명소로서 누정의 사회문 화적 역할이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 이 상류층의 생활이 반영된 것이라는 특수성을 인정 해야 할 것이나, 후기에 오면서는 송석원 등 누정원 림을 중심으로 시회의 주체 세력으로 중인이 참여하 는 등 경관명소 인식의 중심이 점차 평민 쪽으로 이 동해가고 있었다. 겸재의 화첩에서 서울의 경관명소들은 크게 두 영 역으로 나누어 다루어졌다. 하나는 도성 내부 본인의 주거지인 서촌 주변의 점적인 경관명소들을, 또 하 나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 근교의 거시적 경관 을 각각 팔경식으로 정리한 것이 그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각각 팔경시에서의 지역팔경형 과 조망팔경 형 에 비견될 수 있다. 비교적 후기에 등장하는 원경 조망이 강조된 그림들은 동시대에 성행하기 시작하 였던 차경형 원림과 상호 심미적, 사회적 연관성이 있 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 풍속지나 가사문학 매체들에 나타난 공통된 특징은 조선 전기에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가로와 시장 등 생생한 삶의 현장과 그곳에서의 도시 상업, 놀이와 연회 등 활동적인 도시문화들이 장소별 로 그려지면서 도시의 새로운 활동형 경관명소로 자 리 잡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매체별로 등장하는 경관명소들의 분포를 위와 같 이 <그림 4>와 <표 4, 5>로 정리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종합적 판단을 해 볼 수 있다. 도성과 그 주변을 포함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31
한 강북 지역이 한강 주변을 조금 웃도는 빈도수를 보 이고 있으나 경관적으로 보아 거의 대등한 가치를 가 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가시성이 높은 남산은 전 경 관명소를 통틀어 여러 매체에서 최다 빈도를 보였고 그다음으로 도성 내부 경복궁과 인왕산 밑의 서촌지 역과 도심 시장에 최대 밀집 빈도를 보였는데 이에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강 주변은 동호가 최다, 그다음이 서호, 남호의 순으 로 빈도수가 반감되어 갔다. 동호의 다양한 지형 경관 과 제천정, 독서당 등 공공시설들이 경관 인지도를 높 인 것으로 판단된다. 시대적 흐름으로 보았을 때, 경관명소에 대한 관 점은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그 대상이 국가적 관점 에서 개인적 관점으로, 권위적 기념성에서 개방적 조 망성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자연 적 경관에서 도시적 경관으로 변화해 온 것으로 파악 된다. 이러한 변화의 사회문화적 요인은 자생적인 도 시화, 상업화, 근대화의 과정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VII. 결론 및 제언 본 논문은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들의 실제적 분포 와 그 이미지를 옛 서울 사람들의 시가와 그림, 풍속 지들을 통해서 찾아내려고 하였고, 그러한 서울의 원 형적 경관문화가 현대 서울 도시 경관의 지역성을 강 화하기 위한 기초적 관점이 되기를 바랐다. 조선시대 전반의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 양상을 요 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도성 내부의 경관명소들에 대 한 인식은 초기에 제도권적 시설들인 도성, 궁궐, 육 조거리에서 시작하여 운종가와 청계천 등 도심 상업 공간으로 연장되었고, 후기에는 서촌 지역을 비롯한 궁궐 주변의 거주지 내 성시원림 등의 명소로 확장되 었다. 도성 주변으로는 남산과 인왕산을 비롯하여 멀 리 삼각산과 관악산 등 내사산과 외사산들이 두드러 진 경관명소들로 인식되었다. 한강변의 경관명소들은 조선 초부터 동호, 서호, 남호 등의 경관 구역들이 호수 같은 정경들로 찬탄을 그림 4 _ 매체별 경관명소의 지리적 분포 자료: 연구대상 매체를 참고로 하여 연구자가 작성. 32 국토연구 제82권(2014. 9)
받아왔다. 이 중 동호의 제천정에서부터 서호의 희우 정까지가 공식적 유상경로( 遊 賞 經 路 )로 더욱 강하 게 인식되었었다. 중기 이후의 진경산수화에서 상류 로는 광주로부터 하류로는 행주까지 명소 인식의 범 위가 확장되었으며 이에는 당시 사대부들의 서울 외 곽 별서 조성이 주요인이 되었다. 특히 동호의 위요된 호수 같은 경관과 서호의 잠두봉과 선유봉의 극적인 경관은 조선 중기 이후 가장 자주 그려진 조망형 산 수경관이었으며 이들 또한 언제나 원경의 산들을 배 경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한강변의 누정들과 경 강 상업의 요충지인 각 나루터가 도시민의 활동과 함 께 중요 경관명소로 인식되어 그려졌다. 매체 장소 한강 이북 한강 주변 기타 외곽 도성 내부 도성 주변 동호 남호(용산강) 서호 행호 팔경시 15 25 17 10 8-2 진경산수화 20 2 3 1 9 10 5 풍속지 한양가 표 4 _ 매체별 경관명소 빈도 분포 종합(빈도수) 53 14 10 1 6-1 계 88 41 40 12 23 10 8 광주군 양평군 표 5 _ 매체별 경관명소 분포 인식 종합 구분 팔경시 진경산수화 풍속지, 가사문학 지역별 종합 한강 이북 한강 주변 도성 내부 도성 주변 동호 상류 도성, 궁궐, 운종가, 청계천, 서촌(청풍계, 세심대 등) 남산, 삼각산, 도봉산, 아차산 제천정, 살곶이벌, 압구정 서촌(청풍계, 수성동 외), 경복궁, 동소문 남산, 인왕산, 세검정 양수리(녹운탄 외), 압구정, 광나루, 송파나루 남호 용산, 동작진 동작나루 서호 행호 하류 마포나루, 양화진, 잠두봉, 희우정 양화진, 잠두봉, 선유봉, 난지도 덕양산, 소악루, 귀래정 서촌(옥류동, 세심대, 청풍계, 송석원, 필운대 외), 종각, 개천, 수표교, 가산, 육의전, 광통교, 구리개 남산(쌍회정, 잠두), 칠패, 세검정 제천정, 낙천정, 화양정, 압구정, 독서당 망원정, 담담정, 영복정, 창랑정 기타 외곽 관악산 관악산, 북한산 남한산성 매체별 종합 초기: 지역팔경형 중기 이후: 조망팔경형 우세, 성 내 주거지, 시가지로 확장 팔경시의 명소들과 부합 경관미와 인문적 가치 결합 조망팔경형 표현 우세 경관미와 활동적 가치 결합 놀이, 상업 등 도시적 활동장소로 경관명소 확장 조선 초기 팔경시에는 도성, 궁궐 위주 중기 이후 서촌 등장 후기 풍속지 등에는 시가지와 시장 강조 남산이 최다, 내사산, 외사산 위주 칠패시장 등장 제천정은 사신 유상장 살곶이벌 목장, 교장 압구정은 동호의 상징 동작진은 남행 요충지 마포나루 상업항 희우정(망원정)은 사신 유상장 잠두봉, 선유봉은 시각 초점 초기: 통치거점(궁궐) 중기: 조망거점(한강) 후기: 생활거점(주거지, 시가지)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33
조선 초기에서 중기까지 서울 경관명소의 인식과 소통은 주로 상류계급인 사대부 계층 간에 시가와 진 경산수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다분히 시각적, 문화적 측면에 치중된 양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조선 후기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풍속지와 풍속가사 를 통해 볼 때, 평민들이 경관명소 인식의 새로운 주 체로 부상하면서 경관명소의 영역이 도심 상업가로 와 장터까지 확장되고, 그곳을 즐기는 방식을 과거 의 시회( 詩 會 ) 중심에서 상업활동과 집단놀이에까지 확장시킴으로써 경관의 사회적 측면을 새로이 강화 하였고 경관명소들을 도시민 전 계층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할 수 있다. 연구 결과로 파악된 조선 시대의 전 기간에 걸쳐 일어난 경관명소 인식의 발 전과 개방화는 현대 도시사회에서도 경관의 대중화 를 통한 지역성 발전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발견이라 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강관식. 2006. 광주 정문과 장동김문의 세교와 겸재 정선의 <청 풍계>. 美 術 史 學 報 26권: 119-149. 강영조, 배미경. 2002.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조망 행동: 진경산수화 100엽을 대상으로. 한국조경학회지 30권, 5호: 1-15 고동환. 2006. 조선 후기 서울의 공간구성과 공간인식. 서울학 연구 26권: 1-48. 권영민. 2004.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권정은. 2013. 조선시대 성시( 城 市 ) 관련 시 화( 詩 ㆍ 畵 )의 지 향과 <한양가>의 차별성. 문학치료연구 29권: 139-168. 김한배. 1998. 우리 도시의 얼굴 찾기. 서울: 태림문화사. 남정희. 2012. 한양가 에 나타난 공간의 의미 탐색. 한어문교 육 26권: 239-270. 노재현, 장일영. 2008. 실경산수화에 담긴 같은 경관 그러나 다른 풍경, 그 의미 찾기: 18 19C 총석정 그림을 중 심으로. 한국조경학회지 36권, 5호: 82-93.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959. 동국여지비고. 서울: 서울특별시. 안장리. 2009. 서울 팔경시 연구. 향토서울 74호: 127-165. 유본예. 1981. 한경지략. 서울: 탐구당. 이규목. 1994. 조선 후기 서울의 도시경관과 그 이미지. 서울학 연구 1호: 149-191.. 2002. 한국의 도시경관. 서울: 열화당. 이종묵. 2006. 조선의 문화공간1-조선초기: 태평성세와 그 균 열. 서울: 휴머니스트. 이행. 1986. (신증)동국여지승람 I. 서울: 민족문화추진회. 임승빈. 1991. 경관분석론.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정기호. 2009.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 중 시화도 열점에 대 한 조망점과 대상경관의 연구.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7권, 4호: 74-82. 정인숙. 2011. 19세기 20세기 초 시가를 통해 본 서울의 인 식과 근대도시의 이미지화. 문학치료연구 20집: 165-193. 조규희. 2006a. 조선시대 별서도 연구. 박사학위 논문, 서울대 학교.. 2006b. 별서도( 別 墅 圖 )에서 명승명소도( 名 勝 名 所 圖 ) 로: 정선( 鄭 敾 )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사와 시각문 화 5권: 192-223.. 2008. 가원조망도와 조선 후기 차경에 대한 인식. 미술 사학연구 257호: 105-139.. 2012. 조선 후기 한양의 명승명소도와 국도명승의 재인 식. 한국문학과 예술 10집: 147-194. 최기수. 1994. 서울의 경과 곡. 서울: 서울학연구소. 최완수. 2009. 겸재 정선 2, 3. 서울: 현암사. 최은숙. 2012. <한양가>에 나타난 한양경관과 장소애착성. 한국 문학과 예술 10집: 5-31. 한산거사. 1994. 한양가. 서울: 民 昌 文 化 社. 홍윤순, 이규목. 2002. 한양 원형 경관의 이원적 중층성 연구. 서 울학연구 19호: 75-99. 동국세시기.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folkency.nfm.go.kr (2014년 1월 22일 검색).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 (2013년 12월 17일 검색). 팔경시, 진경산수화, 한경지략, 경도잡지, 한양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2013년 12월 17일 검색). 논문 접수일: 2014. 7. 16 심사 시작일: 2014. 7. 22 심사 완료일: 2014. 8. 11 34 국토연구 제82권(2014. 9)
요약 주제어: 지역팔경형, 조망팔경형, 장동팔경첩, 경교명승첩, 한양가 본 논문은 조선시대 서울을 대상으로 한 팔경시, 진경 산수화, 풍속지 등을 통해 경관명소의 분포와 인식 양 상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서울 팔경시는 조선 초기에 주로 통치시설 위주의 지 역팔경형 경관을 통해 건국 이념을 표현하였고, 중 기 이후에는 궁궐 주변 주거지 성시 원림과 한강 등 승경지의 누정에서 바라보이는 조망팔경형 경관을 표현하였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중후기 겸재를 중심으로 서울의 경관명소들을 기록하고 표현하였다. 장동팔경첩 은 서촌 지역의 기념적 장소들을 근중경적 시각으로 열 거하여 팔경시의 지역팔경형 과 상응한다면, 경교 명승첩 은 한강의 주요 조망점에서 중원경 위주의 개방적 경관을 그려 팔경시의 조망팔경형 과 유사 한 표현을 보였다. 조선 후기 한경지략 등 풍속지들과 한양가 등 풍속가사는 평민들이 참여하는 유상지의 행락과 시 가지의 상가와 시장에서 벌어지는 놀이와 상업문화 를 소개함으로써 서울 경관명소들의 영역을 도시 일 상생활의 장소들로 확장하였다. 조선시대 서울 경관명소 분포와 인식의 비교연구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