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1절 자연과 인문환경 276 남일면의 지리적인 위치는 크게 성봉 계열의 산맥과 진악산 계열의 산맥으로 둘 러싸여 있는데 성봉 계열은 성봉에서 남이면과 경계를 이루며, 선봉과 산제당산으 로 이어지는 산맥과 성봉에서 솔재와 성덕봉, 갈미봉, 목사리재, 두어기재, 평댕이 재를 지나 마하산 덕기봉, 외약꼴날을 이루고, 호미산, 시루봉을 지나 마장리 말밑 이를 이루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로 신동리, 신정리, 덕천리, 상동리, 마 장리가 자리하고 오약꼴날에서 부리면으로 뻗다가 서낭당고개와 창고개에서 다시 남일면으로 들어와 큰고개와 황새봉을 이루고, 흔터골 날망에서 부리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에 삼태리가 자리하고 있다. 진악산 계열은 함 박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육백고이산이라 부르는 백암산과 서암산, 잣고개를 지나 마당목을 이루고, 열두봉재, 보티재를 지나 삼각봉, 왕사봉을 지나 진악산 관음봉 을 낳는다. 큰깎음산, 비지개날, 비실재를 지나 사미실 부엉산을 낳고 금산읍과 경 계를 이루며 황풍리 뒷산을 낳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과 부엉산에서 팔학산, 비봉산, 갈미봉, 봉등산을 낳는다. 보석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황풍리, 상동 리, 초현리가 자리하고, 또 이와는 별도로 신천리가 진악산 관음봉에서 물굴봉을 지나 마이산을 낳고 투실재, 소티재, 작은재, 큰재를 지나 남이면과 경계를 이루며 대복골산을 이루는 산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한편 물의 흐름을 보면 성봉, 선봉의 물이 모여 신동천을 이루고, 성덕봉과 갈미 봉의 물이 신정천을 이룬다. 덕천리 앞에서 남이면에서 내려오는 봉황천과 합류하 고 남이면에서 내려오는 보석천이 다시 덕천에서 합류하여 남일면 가운데를 적시 며 금산읍으로 흐르고 있다. 산과 물의 흐름에 따라 각 마을 경계를 이루고 나아가 면계, 군계, 도계 등을 이 루고 있음을 볼 때 산과 물의 흐름은 각 마을의 이름을 낳게 하고 그 흐름에 따라 문 화와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환경이 된다. 남일면 또한 이 산과 물의 흐름에 따라 다른 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성봉에서 동북으로 길게 형성된 산줄기를 통하 여 진안군 용담면과 무주군 부남면과 도계를 이루고, 부리면과 면계를 이루고 있으 며, 또한 진악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통하여 남이면과 금산읍과 면계를 이 루고 있다. 남일면과 면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을 보면 북으로 금산읍 하옥리 신대리, 부 리면 창평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부리면 선원리 관천리와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와 접하고, 남으로는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구석리 흑암 리 매곡리 성곡리와 금산읍 계진리와 접하여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제2절 역사 남일면에서는 선사시대 고인돌 등의 유적들이 다수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그 역 사의 유구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남일면은 유향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고려시대 말 공민왕을 옹립했 던 율정 윤택선생은 벼슬을 사양하고 남일면 초현리에 낙향하여 후학을 기르는 일 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 던 중 충목왕이 죽자 이승로 등과 더불어 강릉대군(후일 공민왕)을 옹립하려 하였 으나 충정왕이 등극하자 일시 광양감무로 좌천되었다가,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 자 밀직사에 들어가 제학이 되었고, 개성부윤 등을 지냈다. 그 뒤 1361년 정당문학 이 더하여졌고, 1363년 첨의찬성사에 이르렀으나 사양하고 지금의 초현리로 낙향 하였다. 이후 선생은 후학을 기르는 일에 전념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남일면이 유향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제3절 유래 277 남일면은 본래 금산군의 남쪽이 되므로 남일면이라 하였으며, 1914년 군면 통폐 합에 따라 황풍, 마장, 상동, 초현, 덕천, 신정, 신동, 신천, 음대 등 9개 리로 개편하 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4절 변화 278 남일면의 마을의 변동을 보면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살필 수 있다. 현재 기 록으로 전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영조 13년(1789)발간된 호구총수 시기와 1872년 금산군지도 시기, 그리고 읍면 통폐합 직전의 시기와 통폐합 이후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789년 호구총수 시기에는 삼태곡리( 三 台 谷 里 ), 마장리( 馬 壯 里 ), 원동리( 院 洞 里 ), 신동리( 新 洞 里 ), 신천리( 新 川 里 ), 대보리( 大 甫 里 ), 수철리( 水 鐵 里 ), 동소리( 東 所 里 ), 황풍정리( 皇 風 亭 里 ), 초현리( 草 峴 里 ) 등 10개 리가 나타나고, 1872년 금산 군지도에는 황풍정, 사미곡, 삼태곡, 동소리, 초현리, 신천리, 양대리, 마장리, 천 석동, 홍도리, 신동리, 신정리, 음대보, 수철리, 사기소 등 15개 리가 나타난다. 이 후 1914년 통폐합 직전까지는 황풍, 사미, 삼태, 마장, 호미, 하동, 상동, 교동, 만 석동, 초현, 덕천, 월평, 평대, 홍도, 덕흥, 신정, 수철, 사기소, 신동, 돌모롱, 음대, 양대, 벌넘어, 신천 등 24개 리가 있어 1789년 호구총수 로부터 125년 동안 마을의 수가 14개 리가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125년 동안 새로운 마을이 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단지 양적으로 새로운 마을이 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마을 이름도 변 화가 있었음을 볼 때 이 시기에 마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되리라고 본다. 1914년 읍면 통폐합으로 남이면의 매곡리 일부와 부서면의 나천리 일부를 합하여 황풍리, 마장리, 상동리, 초현리, 덕천리, 신정리, 신동리, 신천리, 음대리 등 9개 마을을 법정마을로 하여 남일면이라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마을 이름의 변화와 오늘날 각 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이름을 비교하여 보 면 그 이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1789년경에 수록되어 있는 한자말로 된 마을 의 이름은 각 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우리말의 뜻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을 엿볼 수 있으며, 1914년 직전의 마을 이름은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한자말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1914년 통폐합으로 본래의 뜻이 인위적으로 변화를 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일본이 각 마을의 통폐합을 통하여 마을의 구조변화를 시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늦게 생긴 마을이 먼저 생긴 마을을 따르지 않고 법정 마을로 나타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데, 이 또한 마을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는 점이라 볼 수 있 겠다.
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5절 황풍리( 皇 風 里 ) 1. 마을개관 황풍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육백고지산이라 부르는 백암산과 서암산을 낳고 잣고 개를 지나 마당목을 이룬다. 마당목에서 열두봉재와 보티재를 지나 삼각봉과 왕사 봉을 이루고 진악산 관음봉을 낳는다. 관음봉에서 큰깎음산과 비지개날을 지나 비 실재를 이루고 사미실 부엉산을 낳는다. 황풍리는 부엉산에서 한 맥이 금산읍 하 옥리와 신대리를 경계로 하여 북동쪽으로 뻗어 서당골을 지나 황풍리 뒷산을 이루 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과 부엉산에서 한 맥이 남으로 성곡리와 경계를 이루 며 팔학산에 이르러 동쪽으로 뻗어 상동리와 경계를 이루며 안골 날망을 이루고 봉 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산줄기와 함께 하는 물줄기는 모두 봉황천으로 흐르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금산읍 신대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남일면 마장리와 접하 고, 남으로는 남일면 상동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성곡리, 금산읍 하옥리와 접 하고 있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79 <사진 1> 마을전경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는 황풍정리( 皇 風 亭 里 )가 보이고, 1872년 금산군지도에는 황풍정, 사미곡이 나타난다. 1914년 통폐합 직전까지 황풍, 사미가 나타나며, 1914년 통폐합에 따라 사미리와 삼태리, 마장리 의 각 일부와 부서면의 나천리 일부를 합하여 황풍리라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황풍리와 사미리, 안터, 새터 등이 황풍 1, 2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280 - 황풍리 : 고려 충렬왕 때 중국 요양행성 참정을 지낸 낙천재 김신 선생이 귀 국하여 고향 금산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선생의 귀국을 아쉬워하여 중국 황 제의 바람이 미친다 는 뜻으로 만리황풍 이라는 글씨를 새겨 주었다고 한 다. 고려 조정에서는 참뱅이들을 장원으로 하사하고 마을을 만리황풍이 머 무는 마을이라 하여 황풍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 다그미 : 황풍 동쪽, 봉황천 건너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 새문 : 황풍리에서 남이면 성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한다. - 새미실 : 마을에 아주 좋은 샘이 있어,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샘실, 변하 여 새미실, 새미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이름난 선비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 라 하여 사미리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남사정 : 새미실 앞에 있는 들을 지칭한다. - 새터 : 사미리 동쪽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또는 신기라 한다. - 안터 : 사미리 안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안쪽에 있으므로 안터 또는 내기라 고 한다. - 안골 : 만리황풍 비각과 사당이 있는 마을이다. 4. 문화유적과 민속 - 황풍사 : 충간공 낙천재 김신 선생을 배향하고 있으며, 만리황풍비 가 마을 에 따로 세워져 있다.
<사진 3> 황풍 할머니탑 <사진 2> 황풍사 만리황풍비 <사진 4> 황풍 할아버지탑 제6장 남일면(南一面) 281 <사진 5> 황풍사 - 황풍리 돌탑 : 마을의 형국이 제비혈로서 마을 앞의 다리를 지네혈로 비정하 여 지네와 상극인 두꺼비를 봉안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으로 조성하 였다. - 새미실 돌탑 : 마을에 도깨비 장난으로 인한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이를 제 압하기 위해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6절 상동리( 上 洞 里 ) 1. 마을개관 상동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을 향하여 이어와 대양리 함박산을 낳는다. 함박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육백고지산이라 부르 는 백암산과 서암산을 지나 마당목을 이룬다. 마당목에서 열두봉재와 보티재를 지 나 삼각봉과 왕사봉을 이루고, 진악산 관음봉과 덜메기재를 지나 남쪽으로 뻗어 비 실재를 지나 남일면으로 들어와 황풍리 부엉산을 이룬다. 팔학산에서 황풍리와 경 계를 이루며, 칫골과 고지산을 낳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과 팔학산에서 갈미 봉과 뒷동산을 지나 초현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봉등산을 낳고, 작수골로 내려 봉황 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상동과 하동이 자리하고 또 하나의 산맥이 함박산에 서 서남쪽으로 뻗어 오두재, 선봉, 더기산, 산제당산, 접사리산, 광대정재, 성치산, 고무골산을 낳으면서 남일면으로 들어와 성봉에서 솔재, 성덕봉, 갈미봉, 목사리 재, 두어기재, 평댕이재를 지나 큰주정봉을 이루고 외약꼴날을 지나 음백골 날망에 서 덕천리와 경계를 이루며 비늘바위를 이루고 다리골로 내려 봉황천으로 들어가 282 <사진 6> 마을전경
는 산맥 사이에 다리골, 정착농원, 만석동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일면 황풍리 마장리와 접하고, 동으로 부리면 관천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초현리 덕천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성곡리 매곡 리와 접하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는 신동리( 東 所 里 ) 가 보이고, 1914년 통폐합 직전까지는 상동( 上 洞 ), 교동( 橋 洞 ), 만석동( 萬 石 洞 )이 나 타나다가 통폐합에 따라 하동리, 마장리 일부를 합하여 상동리( 上 洞 里 )라 하고 오 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상동, 하동, 다릿골, 정착농원 등이 상동 1, 2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 동수 : 마을의 지형이 오동나무에 새집이 앉아 있는 형국이므로 동소라 하였 다고 전하며 동소가 변하여 동수라 부른다고 한다. - 상동 : 웃동수라고 하며 동수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상동수, 상동이라 한다. - 석별이재 : 상동수에서 초현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 물푸레 : 상동 앞에 있는 보를 지칭한다. - 베룩보 : 물푸레 아래쪽에 있는 보를 말한다. - 하동 : 아랫동수라 하며 동수마을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어 하동수, 하동이라 한다. - 사부렁 : 아랫동수에서 황풍리 새미실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 절골 : 하동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절이 있었다고 해서 절골이라 부른다. - 갱이보 : 아랫동수 앞 들에 있는 보를 갱이보라 한다. - 비실재 : 하동리에서 남이면 성곡리 비리실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 정착농원 : 다릿골에 딸린 마을로 1955년 11월에 화재민 구호 대책으로 생긴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83
마을이다. - 다릿골 : 봉황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 다릿골 또는 교동이라 하였다. - 다릿골재 : 다릿골에서 부리면 관촌리 갑바레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한다. - 만석동 : 다릿골 동남쪽에 있으며 옛날에 만석을 하는 장자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만석동이라 하였다. - 비늘바위 : 만석동 동쪽에 봉황천 가에 있는 바위로, 한자로 인암( 鱗 岩 )이라 한다. - 이창보 : 만석동 앞에 있는 보를 지칭한다. - 천석동 : 만석동 조금 못 미처에 있던 마을이다. - 비봉산 : 아랫동수 뒤에 있으며 금계포란형의 명당이 있어 비봉산이라 한다. - 칫골 : 아랫동수 뒤에 있는 골짜기로 꿩이 엎드려 있는 복치혈의 명당이 있 다고 한다. 이 골짜기에 지치바우와 지암폭포가 있다. 제7절 마장리( 馬 壯 里 ) 1. 마을개관 284 마장리의 위치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을 향하여 이어와 대 양리 함박산을 낳는다. 함박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오두재, 선봉, 더기산, 산제 당산을 지나 접사리산, 광대정재를 낳고 성치산과 고무골산을 이루면서 남일면으 로 들어와 성봉을 낳는다. 성봉에서 솔재와 성덕봉, 갈미봉을 이루고 목사리재, 두 어기재, 평댕이재를 지나 마하산 덕기봉인 큰주정봉산을 이루고 외약꼴날을 날망 을 이루고 내려오다 두 맥으로 나뉘어 한 맥은 마장리를 이루고 또 한 맥은 삼태리 를 이룬다. 마장리와 호미동을 이루는 산맥은 외약꼴날에서 상동리와 경계를 이루 면서 호미동 비모골 날망에서 서쪽으로 내려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줄기와 비모 골 날망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삼태리와 접하면서 호미산과 시루봉을 지나 말밑이 를 낳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줄기이고, 삼태리를 이루는 산맥은 외약꼴날에서 부리면 관천리와 배정이를 나누며 서낭당고개와 창고개를 지나 다시 남일면으로
<사진 7> 마을전경 들어와 부리면 선원리, 창평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큰고개를 지나 황새봉을 이루고, 흔터골 날망에서 봉황천을 따라 길게 뻗어 봉황천과 금산천이 만나는 곳으로 들어 가는 산맥이 있다. 이 산줄기와 함께하는 물줄기는 크게 봉황천 유역에 마장리가 있고 관천 유역에 삼태봉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금산읍 신대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부리면 선원리 창평리 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상동리, 부리면 관천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일면 상동 리 황풍리와 접하고 있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 마을의 역사 285 역사적으로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와 1872년 금산군지도에 는 삼태곡리( 三 台 谷 里 ), 마장리( 馬 壯 里 )가 보이고, 1914년 통폐합 직전까지는 삼태 ( 三 台 ), 마장( 馬 壯 ), 호미( 虎 尾 )가 나타난다. 1914년 통폐합으로 마장리라 하여 오늘 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는 마장리, 삼태리, 비모골, 옴팡거리 등 자연마을이 마장 1, 2, 3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286 - 마장리 :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지형이 말의 형국이라 하여 마장이라는 설과 조선시대에 말을 기르던 마을이라 하여 마장리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무내미 : 마장리를 따로 부르는 말로 봉황천 물가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물 남이인데 변하여 무내미라고 한다. - 삼태곡 : 마을 뒷산인 황새봉에 사모바우라는 바위가 있는데 마을의 지형이 삼태육향이 나온다는 자리에 위치하여 삼태리라고 한다. 또한 서디실이라고 도 하는데 서디실은 본래 마을이 자리하고 있던 흔터골 서쪽에 세 개의 산줄 기가 뻗어 있어 서대실이고 변하여 서디실이라 하였는데, 한자화하여 삼태 곡 또는 삼태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 호미동 : 비모골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지형이 쌍호휘미( 雙 虎 煇 尾 )의 형국이 므로 호미동이라 하였다. - 옴팡거리 : 마장리와 삼태리 사이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자리한 지형이 옴 팡 들어가 있다고 하여 옴팡거리라 한다. - 옹기점 : 비모골 서남쪽에 있던 마을로 이곳에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 흔터골 : 삼태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예전에 삼태리가 자리했던 곳으로 화 재가 나서 마을을 옮겼으며 지금도 몇 집이 살고 있다. - 곰말 : 삼채리 황새봉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 웃말 : 삼태리 저수지 쪽에 있는 마을이다. - 죽말 : 삼태리 입구에 있으며 대나무가 많아 죽말이라고 한다. - 황새봉: 삼태리와 선원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황새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 여 황새봉이며 이 산 위에 사모바우가 있다. - 말밑이산 : 마장리 북쪽에 있는 산으로 말의 엉덩이에 해당하는 곳인데, 말머 리는 무주로 가는 도로에 있는 마두실 이라고 한다. - 두꺼비바위 : 호미동 또는 비모골이라 는 마을에 있는 바위로 예전에 박이방 이라는 사람이 이방을 하는 것이 부끄 러워 매일 술만 먹었다. 하루는 술을 먹고 집에 온 박이방이 서울 사람의 명 성을 팔아 그의 이름이 심영검이라고 <사진 8> 두꺼비바위
거짓말을 하였다. 그의 아내는 매일 밤 후원에 나가 심영검의 도움으로 벼슬 길에 오르기를 빌었다. 어느 날 실제 서울의 심영검이라는 사람이 장원급제 해 삼도암행어사가 되어 우연히 이 마을을 들렀다가 이 말을 몰래 듣고 자초 지정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영검이 박이방의 학문을 알게 되어 후에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뒤로 박이방이 정성을 들여 판서에 오른 바위라 하여 박이방바우라고도 한다. - 말머리바위 : 마장 서쪽에 있는 바위로, 말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말머리바위 이다. 4. 문화유적과 민속 - 숭모사 : 여말선초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도소재 박힐, 의율재 박인, 임회 당 박희권 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단종이 돌아가신 날 제를 모시는 망부단이 있고, 충절과 행장을 기록한 삼세충의비가 있다. - 정충사 : 송제 양제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다 순 절한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정충대의비를 건립하였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87 <사진 9> 숭모사 <사진 10> 정충사
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8절 초현리( 草 峴 里 ) 1. 마을개관 초현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을 향하여 이어와 대양리 함박산을 낳는다. 함박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육백고지산이라 부르 는 백암산과 서암산을 지나 마당목을 이룬다. 마당목에서 열두봉재와 보티재를 지 나 삼각봉과 왕사봉을 이루고 진악산 관음봉을 낳는다. 이 관음봉에서 남이면 성곡 리 큰깎음산과 비조봉을 이루고 덜메기재를 지나 남쪽으로 뻗어 비실재를 지나 남 일면으로 들어와 황풍리 부엉산을 이루고 팔학산에서 황풍리와 상동리를 분리시키 고 동수고개를 지나고 비봉산을 낳는다. 비봉산에서 갈미봉과 웃동수 뒷동산을 지 나 상동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초현리에 이르러 봉등산과 풀고개를 낳고 덕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맥을 주산으로 하고 관음봉에서 물굴봉, 마이산, 투실재, 소티재, 작은재, 큰재, 대복골산, 똥독골재를 지나 신천리와 월평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삼 태봉을 낳고 보석천으로 들어가는 산맥과 대복골산에서 동북으로 뻗어 새내고개, 오동골을 지나 신천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정의사 뒷산에 이르는 산맥과 대복골산 에서 새내고개와 사자봉을 지나 호티재를 이루고 보석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등 세 288 <사진 11> 마을전경
개의 산맥을 안산으로 하여 자리하고 있다. 이 산줄기와 함께하는 물줄기는 모두 보석천으로 합류하여 흐르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동과 북으로 남일면 상동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덕천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매곡리, 남일면 신천리와 접하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 초현리( 草 峴 里 )가 나타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초현리로 부르고 있다. 현재는 도로를 중심으로 하 여 상초현과 하초현이 초현 1, 2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 초현리 : 풀고개 또는 구름고개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풍수지리학에서 운중 반월형의 형국으로 지혜로운 선인이 머물며 화평한 세상을 기원하는 구름고 개 또는 사람을 기르고 푼다는 뜻으로 풀고개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이를 한자화하여 초현 또는 운현이라고 한다. - 안리들 : 초현 앞 들을 지칭한다. - 취입보 : 초현 북쪽에 있는 보를 취입보라 부른다. - 가리니 : 갈운리라고 하며 구름고개 위에 있는 마을이다. - 곰말 : 삼정승바위가 있는 마을을 말하며 곰말은 오래된 마을을 말한다. - 새터 : 새로 마을이 들어섰다고 하여 새터라고 하며 남일초등학교가 있는 부 근을 말한다. - 웃말(상초현) :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아랫말(하초현) : 도로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 불당골 : 상초현 위 끝 쪽의 마을로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이라 전한다. - 봉등산 : 상초현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봉황이 올라가는 형국이라 하여 봉등 산이라 한다. - 삼태봉 : 초현 앞에 세 개의 산줄기가 안산을 이루고 있다. 하초현 앞의 안 산, 학교 앞의 뫼도리산, 정자 건너에 있는 앞산이 있다. - 선침골 : 봉등산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신선이 바느질을 하는 형국이라 하여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89
선침골이라 한다. - 삼정승바우 : 하초현 곰말에 있는 바위로 세 개의 바위가 나란히 있어 삼정 승이 난다고 하였으며, 예전에 율정 선생이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하여 삼태바 우라고도 한다. - 오장군바우 : 예전에 오장군이 보석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들고 온 바위라고 하는데 하나는 수래 끝에 있고, 하나는 덕천으로 가는 고개에 있으며, 또 하 나는 초현마을 뒤에 있다고 한다. 오장군바위는 고인돌로 알려져 있다. - 황새바우 : 구름고개에 있는 바위로, 황새가 많이 앉는다하여 황새바우라고 하기도 하고, 모양이 두꺼비처럼 생겼다하여 두꺼비바우라고도 한다. 4. 문화유적과 민속 290 - 풀고개 석장 : 70세가 넘는 노부부가 풀고개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무 열매를 따러 갔다가 호랑이 새끼인 줄 모르고 짐승을 집으로 데려왔다. 다섯 달이 지난 어느 날 두 마리 호랑이가 와서 새끼 호랑이를 돌보는 것을 보고 호랑이 새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나의 아들을 키워주어 고맙다.오늘밤 호랑이 새끼는 이제 집을 떠나야겠다. 고 말하고 그 대신 진악산 동쪽 굴로 오라고 했다. 노부부가 진악산 동굴을 찾 아가니 산 아래 사람들이 비가 오지 않으면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위한다 고 호랑이를 잡아 기우제를 지내는 바람에 호랑이 씨가 끊어지겠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이무기한테 제를 지내지 말고 산신을 위해 지내라고 전하였다. 그리고 만병통치약인 산삼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또한 산삼을 얻은 자리에 석장을 세우라고 하였는데, 석장이 세워진 곳이 처음으로 인삼이 재배된 곳 이라 전해지고 있다. - 정의사 : 단묘충신 전리판서 곽사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 효자윤공거비 : 율정 윤택 선생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벼슬을 버리고 초현으 로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데 이후 윤택 선생의 장남 윤구생이 고려 말 판전농사사에 올랐으나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초현리로 돌아와 극진히 모셨다고 전한다. 이 비는 그의 효행을 기리는 비로서, 이들 부자의 교육적 열정으로 초현에서는 많은 선비가 배출되었으니 율정 선생과 그의 아들 윤구생은 초현리가 뿌리 깊은 유림의 고장이 되는 초석을 마련하 였다고 할 수 있겠다.
<사진 12> 정의사 제9절 덕천리( 德 川 里 ) 1. 마을개관 덕천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크게 세 개의 산맥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평대리 가 자리하고 있는 산맥으로 성봉을 낳으면서 성봉에서 솔재, 성덕봉, 갈미봉, 목사 리재, 두어기재, 평댕이재를 지나 집재골 날망에서 큰주정봉을 이루고 홍도리와 경 계를 이루면서 작은주정봉을 지나 삼태봉으로 이루고 신정천으로 들어가는 산줄기 와 큰주정봉에서 외야꼴날을 지나 띠야골 날망에 이르러 상동리와 경계를 이루며 비늘바위를 낳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줄기 사이에 평대리가 있다. 또 월평리가 자리한 산맥으로 함박산에서 육백고지산이라 부르는 백암산과 서암산을 지나 잣 고개, 평풍바위산, 마당목, 열두봉재, 보티재, 삼각봉, 왕사봉, 수리넘어재, 진악산 관음봉, 물굴봉, 마이산, 투실재, 소티재, 작은재, 큰재, 대복골산, 똥독골재를 지 나 신천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먹점산을 낳고 봉황천과 신정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들어가는 산맥 끝자리에 월평리가 자리하고 있다. 또 하나는 덕천리가 자리하고 있 는 산맥으로 진악산 관음봉에서 큰깎음산, 비지개날, 덜메기재, 비실재, 떡봉, 새미 실재, 갈미봉, 동수고개, 봉등산, 풀고개를 지나 초현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대소피 를 낳고 봉황천과 보석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들어가는 산맥 끝자리에 덕천리가 자 리하고 있다. 물줄기는 크게 봉황천, 신정천, 보석천 등 세 개의 큰 물줄기가 덕천 리에서 합류하고 있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91
<사진 13> 마을전경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일면 초현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남일면 신정리,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신정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일면 신천리 와 접하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 대보리가 나타나고, 1914년 통폐합 직전에 덕천( 德 川 ), 월평( 月 坪 ), 평대( 平 大 )가 나타난다. 이후 통폐합 으로 덕천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각 마을이 덕천 1, 2, 3리를 이루고 있다. 292 3. 지명유래 - 덕천리 : 앞에는 새내가 있고, 뒤에는 덕기봉이 있어 덕천이라 불렀다. - 더그내 : 덕기봉과 봉황천이 흘러 산과 물 그리고 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덕망있는 사람들이 많이 난다고 하여 덕천이라 한다. 더그내는 어원으로 보 면 덕 이 크다는 뜻으로 큰내가 있는 마을을 뜻하며 덕기봉도 큰 산을 뜻하 는 말이라 할 수 있다.
- 먹점 : 월평리라고도 하며 먹점은 먹점산 밑에 마을이 있으므로 먹점이라 하 였다. 월평리는 마을의 형국이 옥토망월형이라 하여 월평리라 한다. - 큰골 : 먹점 뒤에 있는 큰 골짜기라 해서 큰골이라 한다. - 벌대부 : 대붓들 동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벌대부, 또는 평대리라 한다. - 쇠막골 : 벌대부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쇠[금]를 캐는 막이 있었다 하여 쇠 막골이라 부른다. - 집채골 : 벌대부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 서당골 : 평대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전에 서당이 있었다 하여 서당골이라 부른다. - 마하산 : 남일면 덕천리 상동리 홍도리, 부리면 관천리 불이리, 부남면 가당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마하산 또는 마산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덕기봉이라고 부르고 있다. 산의 형체가 말의 형국이라 하여 마산이 라 하였다고 한다. - 덕기봉 : 큰주정봉이라고도 하는데 들을 앞에 두고 크게 일어서 있어 덕이 크게 일어서는 산이라 하여 덕기봉이라 한다. - 투리봉 : 덕기봉에 따른 산으로 신선이 낚시를 드리우는 형국이라 하여 투리 봉이라고 한다. - 오장군바우 : 대피소들 날망에 있는 바위로 밭에 묻혀 있다고 하며 고인돌로 알려져 있다. 4. 문화유적과 민속 - 더그내 돌탑 :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죽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여 탑을 조성하였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93 <사진 14> 덕천 왼쪽탑 <사진 15> 덕천 오른쪽탑
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10절 신정리( 新 亭 里 ) 1. 마을개관 신정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성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남일면 신동리와 경계를 이루며 지치골 날망에서 북으로 뻗어 앞재를 지나 질금재를 이루고 신동천으로 들 어가는 산맥과 지치골 날망에서 동북쪽으로 뻗어 용담면 송풍리와 경계를 이루며 솔재를 지나 성덕봉, 갈미봉을 낳고 이 갈미봉에서 부남면 대소리와 경계를 이루면 서 목사리재를 이루고 다시 북쪽으로 뻗어 두어기재와 평댕이재를 지나 대낭골 날 망에서 덕천리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 뻗어 주정봉과 삼태봉을 낳고 신정천으 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줄기와 함께하는 물줄기는 신정리의 물줄기가 돌모랭이 앞에서 신동천과 만나 흐르다 원동리 물과 합류하여 흐르다 홍 도리물과 합류하여 신정천을 이루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일면 신동리 덕천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무주군 부남면 대류리 대소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일 면 신동리와 접하고 있다. 294 <사진 16> 마을전경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는 원동리( 院 洞 里 )가 보이고, 1872년 금산군지도에는 신정리, 홍도리가 나타난다. 1914년 통폐합 직전에 는 홍도( 紅 桃 ), 덕흥( 德 興 ), 신정( 新 亭 )이 보이고 있으며, 1914년 통폐합으로 신정리 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신정리, 원동리, 홍도리 등 자연마을이 신동 1, 2리를 이루고 있다. 다만 1789년에 보이던 원동리가 1914년대에는 나타나지 않고 덕흥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3. 지명유래 - 신정리 : 마을의 지형이 조리형이라고 하며 마을에 정자나무가 있어 신정이 라 하였다. 본래 지치골 앞에 새터라고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 마을이 자리하 고 있는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 너더리 : 신정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널로 놓은 다리가 있어 널다 리라 하였다가 변하여 너더리가 되었다. - 솔티 : 신정리에서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송티라고 도 부른다. - 원동 : 조선시대 금남원이 있어 원동이라 한다. - 목사리재 : 원동에서 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의 목사리로 넘어가는 고개 를 말한다. - 홍도리 : 마을의 지형이 홍도낙반형( 紅 桃 落 盤 形 )의 명당이라 하여 홍도리라 한다. 음지땀과 양지땀, 웃땀, 바깥땀으로 마을이 나뉘어져 있다. - 망태골산 : 신정마을 동쪽에 있다. 산의 형국이 중이 바랑을 진 형국으로 이 산에서 돌이 굴러오면 초상이 난다고 하여 망태골이라 한다. - 투구봉 : 장군봉이라고도 하며 원동리 남쪽에 있다. 산의 모양이 투구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투구봉 또는 장군봉이라 한다. - 삼태봉 : 홍도리로 들어오는 어귀에 있는 산으로 형국이 삼태미처럼 생겼으 므로 삼태봉이라 한다. - 말대가리바우 : 원동리 덩골에 있는 말대가리산에 있으며 말머리처럼 생겼 으므로 말대가리바우라고 한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95
4. 문화유적과 민속 - 홍도 돌탑 : 마을의 안녕을 위하 여 조성하였다. <사진 17> 홍도 돌탑 5. 홍도화축제 296 남일면에서 개최되는 홍도화축제는 강의 민속과 문화를 통하여 생태문화체험과 강촌여울의 전통놀이, 여름휴가와의 결합, 여름관광문화를 육성하고, 금강생태환 경과 관광문화를 결합하는 생명의 고향 금산창출을 위해 개최되는 축제이다. 홍도 화축제의 개요와 주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 주 제 : 자연과 꽃과 사람의 만남 - 참여인원 : 34,000여 명 - 주 최 : 홍도화축제추진위원회 - 공연행사 : 개막행사, 산촌가요제, 불꽃놀이, 고적대, 밸리댄스, 마술쇼, 관 현악, 색소폰, 초청가수, 합기유술, 어르신 율동체조 등 - 체험행사 : 토종 인삼캐기, 산나물 고사리 채취, 건강걷기 대회, 실개천 뱀장어 잡기, 전국 사진촬영대회, 홍도화그리기 대회, 낚시대회, 두루봉 등산대회 등 <사진 18> 홍도화축제 1 <사진 19> 홍도화축제 2
- 부대행사 : 면민 팔씨름대회, 민속놀이(윷놀이, 투호) 경연대회 - 상설부스 : 인삼병 만들기, 향첩 만들기, 떡 메치기, 수지침, 짚풀공예, 이혈 건강체험, 희귀염소 남북이, 먹거리 및 토산품 판매 - 이벤트 행사 : 특이 복장 분장, 어린이 말 태우기, 관광객 팔씨름대회 홍도화축제는 전국에서 관광객 34,000여 명이 방문하였으며, 다채롭고 이색적 인 체험위주의 행사를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게 운영하여 행사규모 및 운영 측면에 서 질적으로 한 단계 향상된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제11절 신동리( 新 洞 里 ) 1. 마을개관 신동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을 향하여 이 어와 남이면 대양리 함박산을 낳는다. 함박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주천면 무릉리, 주천면 용덕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오두재, 선봉, 더기산, 산제당산, 접사리산, 광대 정재, 성치산, 고무골산을 지나 남이면 구석리와 용담면 와정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성봉을 낳고 남일면으로 들어온다. 성봉에서 남이면 구석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동 북으로 뻗어내려 선봉, 재넘어, 산제당산, 웃질재를 지나 객별산을 낳고 신동천으 로 들어가는 산맥과 성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남일면 신정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안골 날망을 이루고 다시 북쪽으로 뻗어 분모골 날망, 질금재를 지나 신동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줄기와 함께하는 물줄기는 이 두 산줄 기가 만나는 사이를 흐르는 신동천이 흐르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이면 구석리, 남일면 음대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남일면 신정리, 용담면 송풍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용담면 옥거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 면 구석리와 접하고 있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97
<사진 20> 마을전경 2. 마을의 역사 298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는 신동리( 新 洞 里 ), 수철리( 水 鐵 里 )가 보이고, 1872년 금산군지도에도 신동리, 수철리, 사기소가 보인 다. 1914년 통폐합 직전까지는 수철( 水 鐵 ), 사기소( 士 基 所 ), 신동( 新 洞 ) 등이 나타나 고, 1914년 통폐합으로 신동리( 新 洞 里 )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사기소, 수천리, 신동리 등 자연마을이 신동 1, 2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 사기소 : 사구시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사기를 굽던 사기소가 자리하던 마을이므로 사기소라고 한다. - 무주티 : 사기소에서 남이면 구석리 십이폭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 수철리 : 마을 한가운데 약수가 있어 찬물을 먹어도 단맛이 돈다고 할 만큼 물이 좋은 마을이라 하여 수철리라 한다. - 신동리 : 새말이라고도 하며 새로 생긴 마을로서 그 이전에는 옹기골, 또는
다래골이라 하였다. - 솔공재 : 신동에서 사기소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한다. - 입구지 : 신동리에서 전북 진안군 용담면 신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 한다. - 고무골 : 신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곰이 살았다 하여 곰골에서 변 하여 고무골이 되었다. - 수천리 : 신동 남쪽에 있는 마을을 지칭한다. - 고무골고개 : 고무골 위에 있는 고개로, 신동리에서 전북 진안군 용담면 옥 포동으로 넘어간다. - 새적골 : 신동리와 음대리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새적골이라 한다. - 객별굴 : 갯벌굴로도 불리며, 신동리 어귀 객별산에 있는 굴로 예전에 이 굴 에서 약수가 나왔다고 한다. 4. 문화유적과 민속 - 분청사기 및 조선백자 도요지 : 세종실록지리지 에 나오는 관요로서 중품 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299 <사진 21> 신동저수지
제4권 비단고을 이야기 제12절 음대리( 陰 大 里 ) 1. 마을개관 음대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을 향하여 이어와 남이면 대양리 함박산을 낳는다. 함박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주천면 무릉 리, 용덕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오두재, 선봉, 더기산, 산제당산, 접사리산, 광대정 재, 성치산, 고무골산을 지나 남이면 구석리와 용담면 와룡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성봉을 낳고 남일면으로 들어온다. 성봉에서 남이면 구석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동북으로 뻗어내려 선봉, 재넘어를 지나 소로골 날망에 이른다. 음대리는 이 소로골 날망에서 한 맥이 남일면 신천리 와 경계를 이루면서 매봉산을 이루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과 소로골 날망에 서 신동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큰골과 세적골을 지나 돌모랭이 뒷산에 이르러 신동 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물줄기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봉황천을 경계로 신천리와 경계를 이루고, 신정천 을 경계로 하여 신정리와 덕천리와 경계를 하고 있어 큰 물줄기가 만나는 지역으로 넓은 들이 매우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일면 신천리 덕천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덕천리 신정 300 <사진 22> 마을전경
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신동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구석리와 남일면 신천리와 접하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는 대포리( 大 甫 里 )가 보이고, 1872년 금산군지도에는 음대보가 있다. 1914년 통폐합 직전까지는 돌모롱, 음대리( 陰 大 里 )가 나타나고, 통폐합으로 음대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는 음대, 장터, 돌모랭이 등 자연마을이 음대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 음대리 : 대붓들 음달 쪽에 마을이 있어 음대부, 음달대부라 부르다 음대리라 한다. - 대보리 : 음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을 지칭한다. - 배낭굴 : 음대 뒤에 있는 골짜기로 바람이 세다 고 하여 바람굴이라고도 부른다. - 찬물내기 : 음대 앞에 있는 들로, 유난히 찬 물이 났다하여 찬물내기라 한다. - 장터 : 음대마을 북쪽에 있으며, 예전에 이곳에 <사진 23> 중혼탑 시장이 있었으므로 장터라고 하였으며 금일초등학교 부근을 말한다. - 돌모랭이 : 마을 모랭이에 돌이 많이 있으므로 돌모랭이라 한다. - 웃말 : 음대마을 모래섬을 경계로 그 위에 있는 마을을 웃말 또는 뒷말이라 한다. - 아랫말 : 모래섬을 경계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 산천재 : 옛날 명재 윤증 선생이 개설한 서원이 있던 마을을 말한다. - 모래섬 : 음대마을 가운데를 말하는데 지금은 길이지만 예전에는 도랑이 있 어 모래가 높이 쌓여 있었으므로 모래섬이라 하였다. - 영재골 : 신정리에서 내려오는 물살이 세어서 사람들을 많이 상하게 하였다 고 한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301
4. 문화유적과 민속 - 세효각 : 효자 김계희 선생을 기리는 사당이다. - 산천재 서원지 : 소론파의 지도 자 명재 윤증이 개설하였던 서원 지로, 서원터에 명재윤선생사우 지허지라는 비석과 우물이 남아 있다. <사진 24> 세효각 제13절 신천리( 新 川 里 ) 1. 마을개관 302 신천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봉황천을 사이에 두고 다른 두 개의 산맥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을 향하 여 대양리 함박산을 낳는다. 함박산에서 육백고지산이라 부르는 백암산과 서암산 을 지나 잣고개를 이루고 병풍바위산을 지나 마당목을 이룬다. 마당목에서 열두봉 재, 보티재, 삼가봉, 왕사봉을 이루고 수리넘어재, 진악산 관음봉, 물굴봉을 지나 마이산을 낳는다. 마이산에서 투실재, 소티재, 작은재, 큰재를 지나 남이면 매곡리 와 경계를 이루며 신천리 대복골산을 이룬다. 대복골산에서 동북으로 뻗어 새내고 개, 오동골을 지나 정의사 뒷산에 이르러 석동천으로 들어가는 산줄기와 대복골산 에서 신천1리와 2리를 가르며 동으로 뻗어 똥독골재를 지나 제공골 날망에 이르러 월평리와 경계를 이루며 다시 한맥이 북으로 흘러 정의사 뒷산 맞은 자락을 낳고 보 석천으로 들어가고 한 맥이 남으로 흘러 제공산(먹점산)을 이루고 봉황천으로 들어 가는 산맥 사이에 신천리 대부분이 자리하고 있다. 또 하나의 산맥은 양대리 봉황 천 건너 산으로 함박산에서 오두재, 선봉, 더기산, 산제당산, 접사리산, 광대정재,
<사진 25> 마을전경 성치산, 고무골을 지나 성봉을 낳고 남일면 신동리로 들어온다. 성봉에서 남이면 구석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선봉, 재넘어를 지나 도장골 날망에 이르면 한 맥이 부 엉뎅이양지산을 이루고 십이폭포골물로 들어가고 한 맥이 신동리와 경계를 이루면 서 붓당골 날망에 이르러 음대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매봉산을 이루고 봉황천으로 들어가는 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줄기와 함께하는 물줄기도 크게 보석천 과 봉황천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즉 보석천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들어가고 봉황천 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들어가고 있는데 새내 마을의 물이 흐르다 보석천으로 합류 하고 봉황천 줄기에 양대부, 벌너머, 용실목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이면 매곡리와 접하고, 동으로 남일면 덕천리 음대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신동리 음대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구석리 매곡 리와 접하고 있다. 제6장 남일면( 南 一 面 ) 303 2. 마을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남일면 지역으로 1789년 호구총수 에는 신천리( 新 川 里 ) 가 보이고, 1872년 금산군지도에는 신천리, 양대리가 보인다. 1914년 통폐합 직전 까지는 양대( 陽 大 ), 벌넘어, 신천( 新 川 )이 나타나고, 통폐합으로 신천리라고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신천, 양대리, 벌넘어, 용실목 등 여러 자연마을이 신 천 1, 2리를 이루고 있다.
3. 지명유래 - 새내 : 마을이 새내 가에 있으므로 새내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 여 신천이라 하였다. 또 마을이 보석천, 봉황천과 마이산 마하산 사이 즉, 양 마지간에 있어 사이의 준말 새 와 물을 뜻하는 내 가 모여 새내가 되었다 는 이야기도 있다. 안고샅, 밤쪽골, 골담, 밭가운데, 웃말, 옥림터, 낡은터로 마을이 나뉘어진다. - 매실재 : 신천리에서 남이면 매곡리 매실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한다. - 분박골 : 신천리에서 남이면 매곡리 탕건바우로 넘어가는 고개를 분박골이 라 한다. - 양대리 : 대붓들 양달에 마을이 있어 양대부 또는 양대리라 한다. - 벌넘어 : 대붓들 서쪽 봉황천 건너에 마을이 있어 벌넘어라고 하며, 돌독골, 가치리, 가지리라고도 부른다. - 용실목 : 마을의 지형이 단지처럼 생겼으므로 용실목 또는 용수목이라 한다. 4. 문화유적과 민속 - 들독골 돌탑 : 마을의 안녕을 위하 여 조성하였다. <사진 26> 들독골 돌탑 304 집필 : 신배승 (시인, 금산역사문화연구소 회원) 참 고 문 헌 금산군, 1969, 금산군지. 금산군, 2006, 아름다운 금산. 금산문화원, 2006, 가마실, 보면 볼수록 넉넉한 마을. 금산역사문화연구소, 2006, 금산역사문화연구. 송용재, 1996, 금산의 금석문. 안용산, 2005, 생명의 땅, 땅이름 이야기. 이해준 강성복, 2006, 진악산 기슭에 꽃피운 천년의 터전. 한글학회, 1974, 한국지명총람 4 -충남편-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