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0 마을회관, 일상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소비하는 공간 0 일상식, 그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03 의료 서비스, 생활의 활력소 04 마을 잔치, 무료한 일상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시간 05 관광과 여행, 무료한 일상 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시간 06 망해사 앞 이발소, 일상과 여가 시간 소비의 도우미 07 만경읍 월광사진관, 일상과 여가 시간 소비의 도우미 08 광활약방,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
심포마을 사람들의 여가시간 심포마을에서 여가시간( 餘 暇 時 間 )이란 농업, 어업 등의 생업이나 종교 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요소이다. 그 이유는 심포마을 사 람들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농촌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소수에 속한다. 다만 아마도 이러한 사람 들을 가족 구성원으로 두고 있는 가정은 이들에 의해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이란 과연 얼마나 될까? 직업, 성별, 연령별로 적지 않은 여가시간이 많은 것은 농업의 기계화와 농약의 발전 때문이다. 농업의 기계화와 농약의 발전은 예전에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매우 빠르고 손쉽게 기계와 약품의 힘을 빌려서 함으로써 사람에 게 편리( 便 利 )와 여가시간, 그리고 수입증대라는 3가지 큰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확보된 것들, 그 중에서도 여가시간은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많은 여가시간 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종사하고 있는 농업과 관련된 사람들은 대개 년 동안 농 사일에 소요되는 시간이 50일 정도이며 그 외 시간에서 경제활동은 부업으로 나가는 조개 채취 정도라고 말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대략 연간 008년 주5일 근무자를 기준으 로 0일 정도인 것으로 볼 때 그들에게 주어진 300여 일에 가까운 시간은 분명 막대한 여가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이란 주일이라는 시간의 주기를 기준으로 5일 또는 6일을 일하고 남은 하루(일 요일)라는 시간 혹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남은 이후 시간을 의미한다. 도시에 사는 사 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시간적인 법칙 하에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러 한 도시의 시간적인 법칙이 형성된 것은 직장, 학교 등의 시간표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 도시에 많이 존재하 기 때문이며 이곳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은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앞장에서 설 명한 심포마을 사람들의 사회조직, 종교활동, 세시행사 등은 어떤 면에서는 막대한 여가시간의 효과적 소 비라는 일종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마련된 성격이 강하다. 이렇듯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의 소비란 현재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이며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 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농촌의 경우는 이러한 도시의 시간 법칙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 람들에게는 따로 휴일( 休 日 )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 휴일이란 농사일 혹은 바다일이 없는 날이 며 (바다일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농사일의 경우, 설령 일이 조금 바쁘더라도 급한 용무가 있으면 얼 마든지 다음날 혹은 그 다음날로 미룰 수 있다. 심포마을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처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시간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심포마을에서도 직장생활자, 학생,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일주일에 5~6일 일하고 ~일 쉬는 시간 법칙 이번 장에서는 심포마을 사람들이 현재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여가시간의 소비를 일상생활과 연관지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여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유흥을 즐기고 일상생활을 영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의 과정, 현상의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이렇게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한 것이며 현상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이유는 모두 그 이유들에 대한 장황한 근거이다. 8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85
여가 일상생활 0 마을회관 일상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소비하는 공간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마을회관은 일상을 같이하는 공간이자 마을의 중대사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이기도 하며 마을의 중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3 4 5 심포마을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 바로 마을회관이다. 심포마을 사람들 에게 마을회관은 일상을 같이하는 공간이자 마을의 중대사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자 리이기도 하며 마을의 중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마을회관 이란 매일 숨을 쉬는 것처럼 중요한 곳이며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마을회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심포마을 노인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일상 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개 노인회 소속원들이다. 이들은 심포마을 인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 하는 사람들로 마을의 터줏대감들이자 마을 행사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꾼들이기 도 하다. 이들이 마을회관에서 행하고 있는 일들을 사회조직을 설명하는 장에서 이미 언급 했기에 이번 장에서는 길게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회조직이라는 거창한 측면 에서 바라보지 않고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주어진 막대한 여가시간을 함께 소비하는 공간 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마을회관의 일상은 노인회장 강철상 씨의 기상과 함께 시작된다. 강철상 씨는 심포 마을의 노인회장직을 007년 4월경부터 맡고 있다. 전직 회장인 강경상 씨의 임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회장직을 그만두게 되어서 강철상 씨가 대신 맡게 된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임무는 바로 마을회관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이라고 한다. 아침 8시 경에 마을회관의 문을 열고 저녁 6시경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심포마을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대개 8시 이전에 마치기 때문에 8시에 벌써 마을회관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 다. 특히 농번기가 지난 한가한 시기나 겨울철에는 특히 그렇다고 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온천여행 을 시켜준다는 호객엽서. 대개 이런 관광 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마을 에서도 몇 번 이런 여행을 갔다가 좋지 않 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고 한다. 심포마을회관 전경. 옥상에 모정을 설 치한 것이 이 지역 마을회관의 특징이다 3. 고스톱. 남자들의 가장 좋은 오락거리 중의 하나이다. 대개 점당 50원짜리 고 스톱이라서 큰돈을 잃는 사람은 별로 없 지만 그래도 간혹 돈이 오가는 일인지라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요즘은 고스톱으로 딴 돈으로 술이 나 음식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4. 심포 구마을회관 전경. 현재의 마을회 관이 완공되기 전에는 이 건물을 사용했 다. 현재는 여성들이 사용하고 있다 5. 여성회관의 일상도 남성회관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남성회관에서는 점 50원짜리 고스톱을 친다면 이곳에서는 0원짜리 민화투라는 점 정도 이들은 이곳에서 일상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와서 점심식사 전까 지 텔레비전도 함께 보고 장기나 바둑을 두기도 하며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목침을 베고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도 무척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들이다. 도 시의 노인정도 이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도시의 노인들과 심포마을 노인들의 가장 큰 차이 점은 도시의 노인들은 대개 경제생활을 하지 않지만 이들은 모두 아직도 농업 등에 종사하 며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사일이 나름대로 바쁠 텐데 농사철에도 이들이 마을회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농약과 기계화 덕분이다. 예전 같으면 모를 심은 후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김 매기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제초제 한번 뿌려주면 잡초가 올라오지 않으니 예전 김매기 할 때의 고생스러움도 없을 뿐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일상에서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보다는 여가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늘어난 여가 시간이 무척 여유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바쁠 때는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다 가도 정작 한가해지면 다시 바쁠 때를 그리워하듯 심포마을 사람들도 그들에게 주어진 여유 로운 일상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바다일이 많을 때는 농사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바다에 나가서 조개를 캐면 수입이 좋았기 때문에 부업으로 많이 했지만 현재 는 바다일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서 점점 농사일을 마친 이후의 시간은 완전한 여가 시간 이 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여가 시간을 효율적이고 재미있게 소비할 수 있는 대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같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8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87
여가 일상생활 0 일상식 그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음식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 대체로 사람 먹고 사는 것이야 다 같다 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심포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이해되기도 하는데 정말로 이 마을에서는 특징 지을 만한 음식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포마을을 조사하는 기간에 가장 잘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심포마을에서만 볼 수 있 는 특수한 모습들이었다. 한국의 다른 농촌 마을을 조사할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마을만 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징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음식이다.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음식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 대체로 사람 먹고 사는 것이야 다 같다 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심포마을 사람들 이 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이해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이 마을에서는 특징을 지을 만한 음식 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하지만 심포마을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심포마을의 특징이라면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제사에 해산물을 많이 올린다는 정도였는데 이것은 이미 제례를 설명하는 장에서 다 언급했기에 이번 장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점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들은 매일매일 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하지 만 그들이 먹고 사는,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음식들을 이야기하는 것도 심포마을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들이 날마다 먹는 음식들에 대해서 살펴보 고자 한다. 강철상 씨네 아침상 강철상 씨 댁의 일상식 007년 7월 일 필자는 노인회장 강철상 씨 댁에서 아침식사 초대를 받았다. 이날은 7월 0일경 예정된 심포마을 어르신들의 국립민속박물관 견학을 위해서 김제의 여행사에 가서 버스를 예약하기로 한 날이다. 필자는 이날 하룻동안 강철상 씨 내외분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는데 아침에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필자의 말을 듣고 강철상 씨는 친절하게도 필자 를 아침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강철상 씨는 대개 아침 7시경이면 식사를 하신다고 한다. 대개 6시경이면 기상하기 때문에 세면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침식사를 하신다고 한다. 대개 아침은 점심식사 나 저녁보다는 조금 가볍게 먹는다고 하는데 이날은 필자를 위해서 특별히 보신탕을 내오 셨다. 강철상 씨는 보신탕 한 그릇을 매우 맛있게 드셨지만 필자는 보신탕을 먹지 않아서 그냥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보신탕을 만드신 강철상 씨의 부인께서도 보신탕을 드시지 않 는다고 하시는데 맛을 보지 않고도 어쩌면 그렇게 맛있는 보신탕을 만드시는지 궁금했다. 보신탕 외에 아침식사로 나온 반찬들은 파김치, 오이무침, 찰밥, 각종 나물 등이었는데 거 의 대부분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들이라고 한다. 심포마을 사람들은 대개 밭작물은 사서 먹지 않고 직접 재배해서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기 등을 제외하고는 따로 장을 보지 않 는다고 한다. 이날 저녁식사에도 초대를 받았다. 강철상 씨 부부는 객지에 나와서 고생한다며 필 자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해주셨는데 일부러 필자를 위해 만경의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오 8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89
셨다. 평소 남을 대접하기 좋아하시는 강철상 씨 부부는 얼마 전에는 만경읍의 성당에 다니 는 필리핀 근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삼겹살을 대접했다고 한다. 일과 시간이 모두 끝난 저녁 시간이라서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이럴 때 술 한잔이 빠질 수 없다. 강철상 씨는 직접 담근 오디술을 내오셨는데 인근의 인향리에서 직접 따다가 담근 것이라고 한다. 삼겹살을 굽기 위해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판을 올리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렸다. 노릇노릇하게 익자 고기를 상추와 같이 싸 먹었다. 강철상 씨 댁은 따로 쌈장을 만들지 않 고 양념을 하지 않은 된장을 그대로 먹었는데 맛이 매우 구수했다. 이 댁에서는 된장을 직 접 담근다고 하는데 밭에서 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어도 된장은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고 한다. 된장을 만들면 도시에 사는 자녀들에게 보내주는데 자녀들은 시판 된 장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개 된장은 월경에 담그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된장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콩은 심포마을에서 재배된 것을 이웃에게서 구입하는데 국산콩이 아니면 제대로. 아침식사에 나온 보신탕. 오이무침 3. 파김치 4. 가지무침 5. 미역국. 보신탕을 먹지 못하는 필자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다 6. 마늘장아찌. 오디술. 집에서 손수 담근 술로 향기가 좋고 맛이 아주 좋다. 만경읍의 정육점. 고기 질이 매우 좋다 고 한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돈을 내 는 강철상 씨 3. 강철상 씨 부인은 수박 한 덩이와 호박 을 하나 샀다. 밭에서 나지 않는 것은 대 개 시장에서 구입해서 먹는다 4.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 살 5. 밭에서 재배한 상추. 대개 이런 야채 는 텃밭에서 재배해서 먹지 사서 먹진 않 는다고 한다 6. 맛이 일품이었던 된장찌개. 손수 만 든 된장과 심포에서 나는 생합이 들어 있 었다 7. 집에서 직접 만든 된장. 쌈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된장을 그냥 내놓았는데 맛 이 매우 구수했다 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된장을 만들기 위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콩을 깨끗하게 씻어서 삶는 일이다. 콩을 삶을 때 너무 오래 삶거나 덜 삶아지면 안 되기 때문에 주의해서 잘 삶아준다. 3 그 후 잘 삶아진 콩을 방아에 넣고 찧는데 완전히 으깨질 정도로 잘 찧어주 어야 한다. 4 찧어진 콩으로 상자 모양의 메주를 만든다. 5 만들어진 메주를 따뜻한 방에 서 노란 곰팡이가 필 때까지 0일 정도 숙성시킨다. 6 숙성이 잘 되면 메주를 물에 씻는다. 7 그리고 메주를 간장에 담근다. 8 메주가 어느 정도 익으면 메주를 찧어서 간장에 녹인 다. 된장이 완성되었다. 강철상 씨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장 맛이 좋은 음식은 된장찌개였다. 강철상 씨의 부인께서 손수 만드 신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에는 심포에서 나는 생합이 들어 있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삼겹살로 배를 많이 채운 필자였지만 밥을 한 공기 훌쩍 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된장찌개 때문이었다. 3 3 4 4 5 5 6 6 7 9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9
강공철 씨 댁 농번기 점심식사 마을에 매일 오는 식료품 행상 007년 5월 일, 필자는 심포마을의 강공철 씨의 모내기 과정을 조사 중이었다. 강공철 씨 는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은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매우 넓은 면적의 농사를 짓 는, 이 마을에서는 비교적 젊은 농부였다. 대화를 나누던 중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숙 소로 가서 점심을 먹으려는 필자에게 자신의 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자며 팔을 끌었다. 강 공철 씨의 호의에 매우 감사해하며 강공철 씨의 집에 갔다. 강공철 씨의 집은 이 마을에서 는 드물게 층집이었다. 가족은 강공철 씨 부부와 만경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한 명이었 다. 심포마을의 집들은 대개 저녁 9시 정도만 되어도 불이 꺼지는 집들이 많은데 강공철 씨 의 집은 더 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서 평소 필자는 이 집을 눈여겨보던 차였는데 역시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강공철 씨는 농사일에 대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있게 이야기하신다. 특히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농기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농기계 창고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요즘처럼 바쁠 때에는 부부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힘들 때가 많아서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해결한다고 한다. 요즘이 년 중 가장 바쁜 때라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 강공철 씨의 부인은 점심식사를 준비 중이셨다. 이야기를 나 누던 필자는 부엌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점심식사에 나온 반찬 은 잘 익은 김치와 단무지무침, 부침개, 상추무침, 멸치였다. 밥은 콩밥이었는데 평소 흰쌀밥 보다는 잡곡을 많이 넣어서 먹는다고 한다. 오늘 반찬에 올라온 야채는 대개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고 계란, 고기 등의 육류 는 김제시장에서 사온다고 한다. 강공철 씨는 김제시내 대형 할인마트도 종종 이 용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시장이 더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농촌에서 살다 보 니 대체로 사서 먹는 음식보다는 집에서 재배해서 먹는 음식이 더 많으며 식구들이 먹는 것에는 농약도 거의 치지 않는다고 한다.. 점심 식탁 위에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은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김치. 상추무침. 텃밭에서 재배한 상추로 만 든 반찬이다 3. 단무지무침. 필자가 특히 맛있게 먹은 반참이다 4. 마른 멸치와 고추장. 식사를 마친 후 강 공철 씨와 멸치 안주에 소주를 한잔 했다 5. 맛있게 잘 부쳐진 부침개. 야채와 오징 어가 들어 있었다 6. 점심식사를 하고 계신 강공철 씨 7. 점심식사를 위해 부침개를 만들고 계 신 강공철 씨의 부인. 양말과 속옷을 팔러 다니는 행상. 식료품을 판매하는 행상. 멀리 익산에 서 여기까지 온다 3. 김제시내에 얼마 전에 생긴 홈플러스 할인마트. 시내 전지역은 무료로 배달까 지 해준다고 한다.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 서 심포마을 사람들의 식료품 선택의 폭 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4. 김제시장.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시장이다 심포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마을에 들어오는 상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개 반찬거리 를 파는 행상들과 개를 사러 다니는 상인들, 옷을 파는 상인들 등 매우 다양하였는데 요즘 은 교통이 좋아지고 택배 거래가 활발해져서 심포마을 사람들도 좀 더 다양한 물건들을 구 입하고 있다고 한다. 서 씨는 익산에 사는 음식물 행상으로 심포마을에는 주일에 번 정도 방문한다 고 한다. 그가 파는 음식들은 대개 반찬거리로 두부, 야채, 통조림 등이다. 그의 주요 고객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는데 가장 잘 팔리는 음식은 두부라고 한다. 서씨의 장사는 그리 신통치는 않아서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3 4 5 6 7 3 4 9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93
여가 일상생활 03 의료 서비스 생활의 활력소 3 심포마을의 여러 노인들에게 건강 문제는 가장 큰 관심거리인데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 자주 간다. 노인 들이 병원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은 완치가 아닌 증상의 호전이다. 4 5 6 심포마을 사람들은 대개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많다. 이들은 대개 젊은 시절 많은 육체 노 동을 겪은 사람들로 이로 인한 크고 작은 질병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대개 몸의 여러 곳 이 쑤시고 결리는 증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런 증세는 대개 질병이라기보다는 만성적인 육체노동에 의한 근육통인 경우가 많아서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 그래서 이런 증 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병원을 가면 대개 진통제 처방을 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온몸 이 쑤시고 결려서 매우 불편해하는 심포마을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다는 병원, 약국,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몸을 돌보곤 한다.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 약사, 한의사들은 약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곧 나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질병이라기보다는 만성 근육통에 가까운 그들의 증상을 완 치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없다. 심포마을의 여러 노인들에게 건강 문제는 가장 큰 관심거리인데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 자주 간다. 그 가운데에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는 사람들도 있지 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젊은 시절 과도한 육체노동으로 인한 만성 근육통 때문에 병원에 간 다. 이러한 노인들이 병원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은 증상의 호전이다. 그들은 필자에게 그들이 다니는 병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품평들을 늘어놓았다. 만경읍의 의원에서 가서 약을 받아서 먹고 물리 치료를 받으니까 그렇게 아프 던 몸이 좋아지더라구. 역시 의원이야. 다음 주에 또 가려구. 김제시내 버스터미널 앞의 가정의학과를 자주 가는데 의사 선생님도 친절하고. 병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할 머님.. 만경읍행 8번 버스에 올랐다. 3. 만경읍 한양의원에 가는 할머니. 한양 의원은 노인성 질환 전문 병원이라고 한 다. 이 지역 노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곳이다. 4.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후 물리 치료를 받기 위해 준비 중인 할머니. 5. 옆에는 이미 와 있는 다른 노인이 물리 치료 중이다. 6. 종아리와 허벅지 등이 너무 결리고 아 프다는 할머니는 다리에 물리치료기를 감싸고 누웠다. 거기 다녀오면 한 일주일은 몸도 아프지 않고 좋아서 자주 가는 편이지. 만경읍 의원에는 무슨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만경읍 다른 가게들은 장사가 잘 안 되는데 병원이나 약국은 정말 잘되는 것 같아. 병원에 대한 품평은 이웃들을 만날 때 더 많아진다. 그들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고 얻은, 자신의 몸에 맞는 병원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교환하는데 그 모습은 적절한 표현 이 될지는 모르지만 흡사 도시의 젊은이들이 기호에 맞는 미용실을 고르는 모습과도 유사 해 보였다. 여하튼 그들 주위의 병원들은 그들에게 비교적 만족할 만한 의료서비스를 제공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제공된 의료서비스는 그들의 고민을 본질적으로 해결해주 는 것이 아닌 잠시나마 증상을 호전시켜주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지역 의료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시의 병원도 의료보험의 적용이 되지 않 는 부분은 점차 생활의 편리와 윤택함을 위한 쪽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처럼 이들에게 주어 진 의료 서비스도 치료라는 의료 서비스의 본질보다는 일종의 여가생활의 측면이 점차 강 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9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95
여가 일상생활 04 마을 잔치 무료한 일상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시간 마을 잔치는 김상기 이장의 마이크 방송으로 시작되었다. 지금 마을회관에서 심포마을 단합대회가 있으니 모두 들 참석해서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노래도 한 자락씩 합시다. 빨리 오세요. 007년 3월 9일, 심포마을회관에서는 심포마을단합대회 라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이번 잔치는 년에 한 번씩 가는 마을 사람들의 정기 관광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래 심포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약간의 회비를 내고 김제시에서 마을회관 운영비로 나오는 돈 과 마을 사람들 가운데 경사를 맞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약간의 기부를 받아서 년에 한 번 씩 가까운 곳으로 관광을 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주민들 사이에 시간이 맞지 않는 등 문제가 생겨서 마을 잔치로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관광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단합대회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 만 의견을 달리하는 마을 사람들도 별다른 불만 없이 집행부의 결정을 잘 따르고 있었다. 작년에는 대통령의 별장이 있던 청남대에 갔었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하룻동 안 잘 놀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함께 가는 관광이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 도 종종 발생하는데 노인회장 강철상 씨의 말에 의하면 특히, 노인 몇 분이 미처 버스를 타 지 못해서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데리고 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관광을 가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당일치기 관광의 경우 0만원 정도 든 다고 하는데 하는데 이 비용은 대개 마을회관 운영비와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관광 참여자 들에게 인당 만원씩 회비를 받아서 음식비용으로 쓴다고 한다. 마을 잔치 등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마을 이장 이다. 이번 잔치에도 심포마을의 김상기 이장은 전날부터 돼지를 사다가 손수 도축하고 손 질해서 마을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수고하고 계셨다. 돼지 마리면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강종월 씨의 사진첩에서 발견한 980 년대 마을 사람들의 관광 사진. 심포마을 사람들끼리 관광을 가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며 그 연한도 매우 깊다. 마을 전체적 으로 관광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마 을계에서도 빈번하게 관광을 간다. 때로는 남자들끼리만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관광을 간다. 합천 해인사. 지 금은 정장을 입고 관광을 가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 관광 을 갈 때는 정장 차림이 많았다. 우리들의 옛날 사진들을 보면 아마 부모님들도 정 장 차림이실 것이다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올해는 돼지값이 많이 올라서 30만원 정도 주었다고 한다. 전날 잡 은 돼지는 부위별로 잘 손질해서 내장, 머리, 발 등의 잘 먹지 않는 부위도 버리지 않고 냉동 해두었다가 마을회관에서 안주거리로 사용한다고 한다. 돼지고기 이외에 마을 잔치를 위해 준비된 음식은 잡채, 귤, 나물, 돼지고기 전골, 나 물, 김치 등이었고 음료수와 맥주, 소주 등의 주류도 준비되었다. 대개 주류는 마을 사람들 가운데 뜻을 모은 사람들이 기부한 것이다. 마을 잔치는 김상기 이장의 마이크 방송으로 시작되었다. 지금 마을회관에서 심포 마을 단합대회가 있으니 모두들 참석해서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노래도 한 자락씩 합시다. 빨리 오세요. 김상기 이장의 방송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회관으로 모이고 현 관에는 사람들이 신고 온 신발로 가득 찼다. 평소 마을회관에는 노인회원들만 주로 있었는 데 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주민들 대부분이 노령자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 도 젊은 사람들은 알아서 나이 든 사람들을 대접하였다. 좋은 음식과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래다. 노래방 기계는 오늘의 분위기를 달 구는 데 빠질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 한 자락씩 했고 사람들 은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마을 잔치에는 심포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도 참석하셔서 마 을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본래 관광을 가는 것이었지만 이를 대신한 오늘 마을 잔치는 마을 사람들의 많은 호 응 속에 잘 치러졌다. 마을회관에서 마을 주민들끼리 모여서 노는 것 빼고는 별다른 유흥거 9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97
리가 없는 심포마을이기에 이러한 마을 잔치는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여흥이 되었다. 또한 여러 일로 바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심포마을 단합대회라는 행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다만 내년에는 관광을 갈지 아니면 올해처럼 단합대회를 할지 아직 결정이 되지 않 았다고 하는데 김상기 이장과 강철상 노인회장의 의견으로는 마을 주민들 중 고령자가 점 점 많아지기 때문에 주민 모두 참가하는 관광은 점차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잘 손질된 돼지고기 부위들. 다리, 머 리 등이다. 이런 부위들은 잔치 때 먹지 않고 마을회관에서 안주거리로 이용된다. 돼지고기구이를 위해 손질된 부위 들. 예전에는 대개 고기를 삶아서 먹었 지만 요즘은 구워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고 한다 3. 마을 행사나 관광 때 돈을 낸 사람들. 대개 행사에는 참가하지 못한 젊은 사람 들이나 집안에 경사를 맞은 사람들이 돈 을 낸다 4. 관광과 관련된 경비 내역과 찬조금 내 역 5. 마을 단합대회가 마을회관에서 있음 을 알리는 김상기 이장의 방송 6. 마을 여성들은 음식을 장만한다. 어떤 행사나 여자들의 손이 없이는 일이 진행 되지 않는다 7. 대개 고령자들은 방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약간이라도 젊은 사람들은 바깥에 서 먹는다. 장유유서( 長 幼 有 序 )의 원칙 은 이곳에서는 매우 철저히 지켜진다 8. 노래방 기계를 틀고 노래하는 마을 사 람들 4 3 5 6 7 8 9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99
여가 일상생활 05 관광과 여행 무료한 일상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시간 옛날에는 대개 마을 사람들끼리 국내의 관광지를 주로 다녔다고 하는데 970년대에는 서울, 설악산, 속리산 등에 많이 갔다고 한다. 특히, 서울은 심포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였다. 3 4 심포마을 사람들과 면담조사를 하면서 눈여겨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의 사진첩이었 다. 필자가 사진첩을 본 이유는 필자가 볼 수 없는 과거 시점의 심포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진이 그러하듯 관광 사진이 많 았다. 옛날에는 대개 마을 사람들끼리 국내의 관광지를 주로 다녔다고 하는데 970년대에 는 서울, 설악산, 속리산 등에 많이 갔다고 한다. 특히, 서울은 심포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던 관광지였다. 경복궁, 창경궁 등의 고궁은 물론 남산 식물원, 명동 등 서울은 심포마을 사람 들에게는 구경할 것이 많은 별천지였다. 980년대에 들어와서 심포마을 사람들은 제주도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이 무렵부터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990년대부터는 드디어 해외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태국, 중국, 유럽 등지로 여행을 갔으며 심포마을 사람들 가운데 해외여행 한두 번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심포마을 사람들이 관광 여행을 자주 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일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심포마을 사람들은 일정을 조절해 가면서 얼마든지 여행을 갈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여행 등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여 행은 주로 농한기를 이용한다고 한다. 심포마을 사람들은 대개 연간 평균적으로 ~3번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일단 마을에서 공동으로 가는 단체여행이 번, 그 외 크고 작은 계모임에서 ~번, 그리고 농한기에 단체 로 가는 해외여행 등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년에 여름 휴가 기간에나 여행을 가는 것 에 비하면 심포마을 사람들의 여행 횟수는 많은 편이다.. 966년 서울 창경원. 960년대 심 포마을 사람들에게 최고의 관광지는 서 울이었다. 974년 심포마을 사람들의 단체 관 광. 여자들은 한복, 남자들은 정장 차림 이다 3. 980년대부터 가기 시작한 제주도 4. 여름엔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즐기며 시원한 수박도 먹었다 심포마을 사람들이 하는 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단체 관광이라는 점이다. 도시에 사 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 단위, 혹은 부부 단위로 여행을 많이 가지만 심포마을 사람들은 마 을 사람들이 단체로 가거나 계모임에서 여행을 간다. 이런 관광 모임 가운데 가장 성행하는 것이 바로 동갑계이다. 심포마을에는 동갑계라는 친목계가 성행하고 있다. 이는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의 친목 모임인데 이들은 일 년에 한 번씩 관광을 가는 등의 여흥을 통해 서로 친목을 도모하 고 있다. 이들은 관광뿐만 아니라 서로의 경조사( 慶 弔 事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이사를 가거나 집을 새로 짓는 등의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축하한다. 그래서 심포마을의 여 러 집을 다니다 보면 증 갑계원 일동 이라고 찍힌 거울 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갑계원 일동이 이사, 신축 등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마련 한 선물이다. 정축년( 丁 丑 年 : 937년)생들의 동갑계인 정축갑계는 심포마을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동갑계이다. 현재 총 회원수는 34명인데 남자들은 정회원이고 여자들은 준회원이라고 한다. 본래 남자들은 결혼하기 전부터 이런 계모임을 만들어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데 결혼 후에 는 그들의 아내들까지 동갑계에 가입하는 식이다. 이들은 매년 한 번씩 부부동반으로 관광을 간다고 한다. 올해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007년 4월 6일 아침 6시 30분, 심포마을에는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정축갑계원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회원들은 일찍부터 30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0
단장을 하고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오늘 관광 참여 인원은 명으로 회원 모두 가진 않았는데 정축갑계원인 심포마을의 강충국 씨는 작년에 제주도에 다녀왔기 때문에 올해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하튼 명 의 회원이 참여하는 제주도 관광은 정축갑계의 연간 행사 중에는 가장 큰일이라고 한다. 아침 6시 30분에 심포마을회관 앞으로 버스가 도착했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나와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여행 중에 먹 을 술과 음식을 버스에 실었다. 심포에서 버스를 타고 목포까지 가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갈 예정이며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타고 올 것이라 한다(박 3일 일정). 비행기를 타고 가 면 편하긴 한데 제주도로 가는 배에서 화투도 치고 술과 음식을 나누는 재미가 있어서 배를 타기로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제주도는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라서 새로운 곳을 구경한다기보다는 회원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데 더 의의를 두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되자 대부분의 사람이 도착했으나 규동에 사는 회원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의 차로 규동 회원을 태우러 다녀올 수밖에 없었는데 항상 관광을 떠날 때는 이 런 일들이 발생하게 마련이라고 한다. 여하튼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 정축갑계원들은 심 포마을을 떠났고 박 3일간 즐거운 제주도 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한다.. 심포마을 사람들이 자주 놀러가는 곳 중의 하나인 절, 3. 여성들의 꽃놀이를 갈 때는 환한 색 상의 한복을 주로 입었다 4. 지금은 관광지에서 취사를 할 수 없지 만 예전에는 취사가 자유로웠다. 산에 올 라서 음식과 술을 나누는 사람들 5. 여름엔 시원한 해수욕이 최고 6. 강동황 씨가 집을 새로 지었을 때 정 축갑계원들이 기념으로 선물한 거울. 동 갑계원들이 선물한 거울은 심포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7. 제주도 여행 길을 떠나는 정축갑계원 들. 혹시 비가 많이 와서 목포에서 출발하 는 제주도행 배가 뜨지 못할까봐 걱정하 는 이도 있었다 8. 삼삼오오 버스로 모이는 정축갑계원들 9. 관광에 먹고 마시는 것을 빼면 무슨 재 미가 있겠는가. 음식을 버스에 실고 있는 정축갑계원 0. 떠나기 전 버스 안. 비가 오고 있었지 만 회원들은 들뜬 모습이다 7 6 8 3 4 5 9 0 3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03
여가 일상생활 06 망해사 앞 이발소 일상과 여가 시간 소비의 도우미 파란 함석 지붕에 간판도 없이 이발소 표시등만 돌아가고 있는 시골 이발소. 도시에서는 미용실에 밀려서 점차 이 발소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이발소가 건재했다. 심포마을에 처음 내려왔을 때 눈여겨봐오던 곳이 바로 망해사 옆의 이발소였다. 파란 함석 지붕에 간판도 없이 이발소 표시등만 돌아가고 있는 시골 이발소. 도시에서는 이젠 미용실 에 밀려서 점차 이발소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이발소가 건재했 다. 필자는 이 간판도 없는 이발소를 망해사 앞 이발소 라고 이름 지었다. 현재 이발소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은 남수한 씨(955년생)이다. 그에게 이 이발소의 연혁을 물어보니, 본래 이곳에서 이발을 하던 사람은 이기균이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김제, 부안 지역의 섬 등을 오가며 이동 이발을 해주던 사람으로 어느 곳에 거처를 두지 않 고 떠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기균 씨는 심포마을에 들어오게 되었고 마을 사 람들은 그의 이발 솜씨를 귀하게 여겨서 현재의 이곳에 이발소를 차리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발을 한 번 하려면 면소재지나 만경읍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마을 가 까운 곳에 이발소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편리했다. 이러한 연유로 이기균 씨는 이 곳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남수한 씨는 고향이 명동(심포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으로 본래 이기균 씨의 이 발소에서 손님 머리를 감겨주는 등의 조수 노릇을 하다가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웠다고 한 다. 그러던 중 그에게 이발소 운영을 넘겨받게 되었고 0년 정도 이곳에서 이발소를 운영했 다고 한다. 잠깐 전주로 이발소를 옮기기도 했으나 다시 돌아와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 는 다만 이곳에서 살진 않고 김제시내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침에 이곳으 로 출근했다가 저녁 무렵에 퇴근한다고 한다. 하루에 많으면 0명 정도 이발을 해줄 때도. 이용 요금표. 995년 요금표지인데 지금도 요금은 그대로이다. 면도가 끝나자 머리를 감겨준다. 물뿌 리개, 비누거품을 내는 플라스틱 용기, 그 리고 면도 거품솔. 도시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물건들이다 30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05
. 남수한 씨는 바리깡보다는 가위를 주 로 사용해서 이발을 한다. 옛날 이발의 맛 그대로랄까?. 다이알 비누를 풀어서 만든 비누거품. 그 향긋한 냄새와 솔이 뒷목에 닿는 상쾌 한 기분. 도시에서는 이제 맛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면 도를 하고 있는 남수한 씨 3, 4. 이발의 백미는 역시 면도다. 이발소 의자를 뒤로 눕히고 면도가 시작되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하다 있다고 하는데 심포마을, 명동마을 등의 인근 마을의 남자들은 대부분 그에게 이발을 한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현재는 이발소에 손님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비오는 날이 면 이 이발소가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고 한다. 이발 요금은 7천원이고 면도 는 서비스라고 한다. 필자가 남수한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심포마을의 강종일 씨가 이발을 하러 오셨다. 강종일 씨는 익숙하게 웃옷을 벗으시고 이발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깎아달라는 말도 필요 없이 그냥 이발 의자에 앉아 있자 남수한 씨는 가위를 들고 이발을 하기 시작한다. 정성스 럽게 이발을 하는 남수한 씨, 이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라고 한다. 시원하게 이 발을 하고 난 후 남수한 씨는 비누거품을 내서 뒷목에 바르고 잔머리를 면도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이발소나 미용실처럼 일회용 면도기를 이용하지 않고 이발소용 면도칼로 능숙하게 면도하는 모습에서 그의 경력이 느껴졌다. 뒷목 면도가 끝나자 이발소 의자를 눕히고 면도가 시작되었다. 비누거품을 다시 내 서 코밑과 턱밑에 바르고 또다시 능숙한 솜씨로 면도칼을 놀린다. 보기만 해도 시원할 정도 로 깨끗하게 면도가 되었는데 강종일 씨의 면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규동에 사시는 다른 손님이 들어오신다. 면도가 끝나자 이번에는 머리를 감겨주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옛날 모습 그대로의 이발소 세면대에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감겨주었다. 강종일 씨 다음 순서는 필자였다. 조사 기간에 머리를 자르지 못해서 덥수룩하던 필 자도 남수한 씨에게 머리를 맡겼다. 30여분 동안 이발, 면도, 세면을 한 후 말끔해진 필자, 만족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옛날 모습 그대로의 시골 이발은 색 다른 경험이었다. 3 4 30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07
여가 일상생활 07 만경읍 월광사진관 일상과 여가 시간 소비의 도우미 비록 간판은 월광스튜디오 라고 바뀌어 있었지만 겉에서 풍기는 인상은 심포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던 월광사진 관 이 분명했다. 그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던 필자는 사진관 안에 주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3 4 요즘 세상에 사진이란 값싸고 누구나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매체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사진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사진기를 가지고 있는 경 우는 매우 드물었고 사진을 인화하고 현상하는 비용도 매우 비쌌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 들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곤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사진을 백일, 돌, 입학, 졸업 등 일 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에 찍었다. 사진은 인생사의 중요한 시점에 빠질 수 없는 개인의 역사를 기록해주는 매체였다. 심포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월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김상기 씨는 월남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35mm 소형 카메라로 마을 사람들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고 한다. 하 지만 대체로 심포마을 사람들에게 사진이란 쉽게 얻을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고 일생의 중 요한 시점에 사진관에 가서 한 장씩 찍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007년 6월 8일, 필자는 심포마을의 강훈영 씨 댁을 조사 중이었다. 강훈영 씨 모친과 취미생활인 노래 부르기에 대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필자는 어르신께 사진첩을 보여달 라고 부탁을 드렸다. 사진첩을 보여주시며 이런저런 설명을 하시던 어르신께서는 시집 오기 전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며 친정 마을의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할머니, 이 사진들은 어디에서 찍으신 건가요? 응, 그 사진들은 만경읍의 월광사진관에서 찍은 것들인데. 사진관집 아저씨를 얼 마 전에 읍내에서 본 것 같아. 지금도 정정하시더라구. 예 할머니 당시에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강훈영 씨 모친의 사진 두 장. 한 장 은 친정 마을의 절친한 친구와 함께 찍은 것이고 또 한 장은 시집오기 전에 찍은 것 이다. 이 사진들은 모두 만경읍의 월광사 진관에서 찍었다고 한다. 3, 4. 978년 3월 0일 심포마을에는 어 린이들을 대상으로 놀이기구를 태우고 사진을 찍어주는 업자가 들어왔다고 한 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귀여운 자녀들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강종 일씨와 강종월 씨의 사진첩에서 발견한 같은 종류의 사진들. 당시만 해도 사진이 란 매우 중요한 유흥거리이자 인생사의 기록 매체였다. 아니, 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찍었지 쉽게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 어르신과 대화할 때는 사진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월광사진관이란 곳에는 별 로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만 점차 심포마을 사람들의 집들을 방문하면서 월광사진관이란 곳 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면서 월광사진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007년 7월 일, 필자는 만경읍의 천주교성당을 조사하고 돌아오던 중 점심식사를 하 기 위해 만경읍내로 들어갔다. 골목에 주차한 후 식당을 찾다가 우연히 월광사진관을 발견 했다. 사실 월광사진관이란 곳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비록 간판은 월광스튜디오 라고 바뀌어 있었지만 겉에서 풍기는 인상은 심포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던 그곳 월광사진관 이 분명했다. 그 앞에서 조금 머뭇거 리던 필자는 사진관 안에 주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관을 운영 중인 배상철 씨는 그의 부친 배식만 씨가 문을 연 월광사진관을 물려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에게 이 사진관의 연혁에 대해서 물었다. 월광사진관의 문을 연 배식만 씨(9년생. 004년 작고)는 고향이 김제군 부량면 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서 함경도 함흥으로 이주해서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 서 우연히 사진기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것은 아니고 사진 기술자 의 일을 도와주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라고 한다. 광복 직전 김제로 다시 내려온 배식 30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09
만 씨는 백산면 석교리에서 자신의 사진관을 열었다. 당시 배식만 씨가 차린 사진관은 시골 집의 헛간 같은 곳으로 지금과 같이 시장에 있는 가게가 아니었다고 한다. 시작은 비록 초 라했지만 배식만 씨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고 얼마 후 만경읍으로 이사를 해서 이곳에 945년경에 월광사진관 간판을 내걸었다. 배식만 씨는 주로 결혼식 출장 사진과 처녀 총각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고 한 다. 당시만 해도 사진기가 매우 드물어서 친한 친구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관을 찾 았다. 또한 학생들이 소풍 가는 날에는 미리 예약을 받아서 사진기를 빌려주기도 했다고 한 다. 당시만 해도 일이 많아서 배식만 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사진 일을 했다고 하는데 요즘 은 예전에 비하면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당시에 가장 바쁠 때는 새학기가 시작할 무렵 이었다. 새학기가 되면 학생들은 학생증이나 학생기록부에 올릴 증명사진을 내야 했는데 만경읍에 사진관이 월광사진관밖에 없어서 그 많은 학생의 증명사진을 모두 찍어야 했으 니 정말 바빴다고 한다. 밤을 새워 현상과 인화를 하고 연탄불 위에 인화지를 말려야만 아 침에 사진을 찾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일들은 모두 추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고 한다.. 간판은 월광스튜디오로 바뀌어 있지 만 예전 모습 그대로인 월광사진관. 원판 사진기와 각종 조명장치들 3. 가족 사진,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해 마 련된 각종 장식물들 4.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래된 사진 들이 걸려 있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5. 월광사진관 층. 지금은 잘 사용하 지 않아 먼지만 수북이 쌓였지만 예전에 는 이곳에서 현상, 인화 작업을 주로 했 다고 한다 6. 월광사진관에서 만든 만경읍 소재 여 러 학교의 졸업 앨범들 7. 오래된 사진기. 지금은 거의 고물 수준 이 되었지만 예전 출장 사진촬영을 나갈 때 주로 사용하던 장비들이라고 한다 8, 9, 0,. 배식만 씨가 남긴 사진들. 잘 찍은 사진들이 많다. 배식만 씨의 모델 은 주로 가족들. 960년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사 진. 배식만 씨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3. 현재 월광사진관을 운영 중인 배상철 씨의 어릴 때 사진이다. 당시에는 남자 아 이가 태어나면 오래 살라고 여자 아이의 옷을 입혀서 사진을 찍곤 했다고 한다 4. 탈곡 작업. 흑백 사진에 색을 입혀서 색깔을 입히는 것은 당시에 크게 유행했 다고 한다 7 8 9 3 5 0 4 6 3 4 3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
여가 일상생활 08 광활약방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 입구에 세워진, 약간은 이질적인 불상과 돌탑들, 삐삐 호출 방법을 적어놓은 두 자리 국번의 사설 공중전화 박스, 흡사 현판과도 같은 매우 클래시컬한 간판, 그리고 어떤 용도의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아버린 박카스 통 등 이유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필자가 태어난 곳은 지방의 작은 도시이다. 그 작은 도시에서도 우리 집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과 가까이 있었다. 이른바 시내( 市 內 ) 에 위치하고 있던 셈이다. [시내( 市 內 )란 도시의 내부를 뜻하는 한자어이지만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를 시내라고 부른다.] 그곳은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이 사는 곳이요, 내가 필요로 하 는 모든 물건이 있는, 어린 시절 나에게 그곳은 이 세상의 전부였다. 내가 태어난 도시보다 더 크고 화려한 도시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무렵 이 세상의 전 부가 그곳이 아님을 너무나 빨리 알아버렸고 그곳은 나의 관심의 대상에서 점점 밀려났다. 이 같은 관심 대상의 변화 추세는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더 크고, 화려하고, 편리한 메트로시티 를 지향하는 추세는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일반상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 속에 인구의 중심축이 점점 도시로, 그 중에서도 수도권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러한 추세에서 소외된 것들은 우리의 시야와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지나간 시간에서 얻은 많은 편리한 것들이 있었다면 분명 그 이면에는 무심코 버리고, 넘겨버리고, 지워버린 많은 소중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김제시 광활면에서 만난 신기한 약방 007년 월 일 아직은 찬바람이 매서운 날, 필자는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의 심 포마을 민속조사를 위해 현장에 있었다. 오전 조사를 마친 후 심포마을에는 식당이 없어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간 곳이 인근의 광활면이다. 광활면은 일제 강점기에 간척사업으로. 까스명수는 5백원, 사리돈은 백원. 우리에게 익숙한 약들의 판매가격을 친 절하게도 적어두셨다. 정체불명의 석상과 꽃들, 강렬한 인상 의 광활약방 문전 생긴 지역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유일하게 면 전체에 임야( 林 野 )가 평도 없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이주해 온 농업이주민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농촌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매우 인공적이고 계획적인, 지금 기준으로는 일종의 신개발 지역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심포마을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필자의 눈에 확~ 들어오는 무 언가가 있었다. 입구에 세워진 약간은 이질적인 불상과 돌탑들, 삐삐 호출 방법을 적어놓은 두 자리 국번의 사설 공중전화 박스, 흡사 현판과도 같은 매우 클래시컬한 간판, 그리고 어 떤 용도의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아버린 박카스통 등 이유는 모르겠지만 필자 는 그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곳의 이름은 바로 광 활 약 방. 신기한 그곳은 필자 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딸랑 종소리가 우리가 들어왔음을 약방주인에게 알린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약방주인 신사문 씨(96년생. 007년 7월 작고)의 안주인되시는 할머님이었다(성함을 밝히시지 않음).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넉살 좋게 말하자 할머님은 맥소롱 한 병을 내미신다. 일단 맥소롱 한 병을 들이켜고 박카스 병을 달 라고 하자. 할머님은 조그만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꺼내서 우리에게 건내신다. 얼마죠?,300원 대화는 아주 짤막했다. 일단 안면을 트고 난 후 우리들은 할머니께 전형적인 수법으 로 질문을 해댔다. 저 할머니, 약방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3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3
. 신사문 씨에게 부여된 약업사 허가증. 본래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 면허를 가진 사람에게만 약국을 차릴 수 있는 자격을 주지만 약사 면허제가 시행되기 이전부 터 약방을 운영한 사람이나 시골의 오지 지역에는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는 약방 을 허가해주었다. 광활약방 내부. 천장에는 선풍기가 달 려 있고 오래된 샹들리에도 보인다. 우리 들의 기억의 저편에 있는 그 약방의 모습 이 바로 이런 것일까? 3. 삐삐 호출 안내문이 붙어 있는 공중 전화기. 국번도 지금은 쓰지 않는 자리 이다 4. 광활약방 간판. 예전에는 현상소 역할 도 했다고 한다. 코니카 필름의 전신인 사 쿠라 필름이란 명칭이 간판의 연혁을 짐 작하게 한다 5, 6, 7. 광활약방 내부 모습. 약장과 실내 장식은 개업할 때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8. 담배판매대와 오래된 주판. 요즘은 약 보다는 담배가 더 많이 팔린다고 한다. 그 앞에 오래된 주판과 가위가 보인다 광활약방, Since 96 약방주인인 신사문( 申 士 汶 ) 씨는 본래 정읍( 井 邑 ) 출신으로 태인에 거주하다가 93년 당 시 나이 5세 때 부친을 따라서 광활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들 가족도 광활에 이민 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농업이주민이었다. 그러던 중 신사문 씨가 약방을 차린 때는 그의 나 이 30대 중반인 96년경이다. 어떠한 연유로 약방을 차리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현재 김제의 농촌지역에는 약국이나 약방이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각 면에 약방이 한두 곳은 있 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인구가 감소하고 고통여건이 좋아지면서 점차 약방의 수가 줄어 서 이제는 김제 농촌지역에 거의 유일한 약방이 바로 광활약방이라고 한다. 약방 안의 약장, 바닥재, 천장재 등은 모두 개업 당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실력 있 는 전주와 군산의 목수를 초빙해서 약장을 짜서 그런지 지금도 약장은 건재하다. 지붕도 본 래는 기와지붕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김제 농촌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함석지붕이다. 광활약방 옆의 가게는 본래 안주인께서 운영하는 구멍가게였는데 현재는 그냥 비워둔 상 태다. 신사문 씨의 큰아드님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익산에서 약국을 하신다고 한다. 교통환경이 좋아져서 멀리 김제시내나 만경읍 지역에 있는 병원이나 약국으로 손님 을 다 빼앗겨서 예전만큼 약방이 잘되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상비약이나 담배 등 을 사러 오는 사람은 간간이 있어서 그냥 시골에서 하는 일 없이 있기보다는 약방을 열어두 고 소일하신다고 한다. 다만 신사문 씨의 나이가 고령이고 오랜 기간 병을 앓고 계셔서 이 약방이 그리 오래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우리들은 약방 구석구석을 촬영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머니께 건네고 익산에서 약국을 하신다는 큰아드님의 연락처를 받아서 나왔다. 3 4 안녕! 광활약방 007년 7월, 전시운영과 김윤정 선생이 김제로 내려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는 김제 지역 전시자료 수집. 전시운영과에서는 내년에 김제지역의 사람과 땅 그리고 유물을 소재 로 한 전시를 기획 중이다. 하지만 전시에 이용할 유물 수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광 활약방은 그나마 유물을 수집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었다. 김윤정 선생은 내려오기 전에 익 산에서 약국을 하시는 큰아드님과 미리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했고, 필자는 익산의 약국 전 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민속박물관에 근무하는 박수환이란 사람입니다. 혹시 광활약 방 큰아드님 아니신지요? 맞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그 시골의 약방을 아시죠? 예, 저희가 요즘 김제 심포마을에서 민속조사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던 중에 인근 의 광활약방을 발견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뭐 유물수집과 서면조사랄까 요. 흠,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저희 아버님이 며칠 전에 작고하셨어요. 약방 안의 아버님 유품들은 제가 태워버렸고요. 폐업신고도 했답니다.. 아쉽게도 광활약방도 우리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우리에게는 없어지기 전 의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좋은 교훈이자 960년대 약방의 모 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려 신사문 씨의 명복을 빈다. 5 6 7 8 3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반복되는 일상 속의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 여가와 일상생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