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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효주*1) 차례 Ⅰ. 서론 Ⅱ. 권력적 자본으로부터의 소외 Ⅲ. 지배 권력에 의한 억압과 불평등 Ⅳ. 폭압적 세계로 인한 주체성 상실 Ⅴ. 결론 국문초록 신경림 시에는 집단적 주체인 우리 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우리 는 여타 시인들의 민 중시에 등장하는 주체들과는 달리 민중을 대상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이 글은 신경림 시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하여, 집단적 주체인 우리 와 대립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를 파악하고, 주체와 타자가 맺고 있는 상관성을 통해 신경림 시에 내재된 시적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신경림 시에서 주체와 대립하는 타자로서의 세계는 폭력적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세계와 대립적 관계에 있는 우리 는 농민, 노동자, 약자로서의 도시민이다. 농민으로서의 우리 는 자본에서 소외된 채 피폐한 삶을 이어간다. 그들은 그 속에서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지만 권력적 자본 앞에서 무기력한 태도를 보인다. 노동자인 우리 역시 지배 권력 을 가진 세계 앞에서 수동적 인간으로 살아간다. 도시에서 약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인 우리 또한 농민, 노동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난 가난한 도시민들은 농민,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권력의 중심 세계에서 소외된 *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528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채 수동적 삶을 살아간다. 우리 가 권력을 가진 타자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타자 앞에서 취하는 수동적 태도는 주체의 본래적 모습이 아니다. 주체는 타자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이다. 타자는 주체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주체의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우리 의 인식과 태도는 폭력적 세계인 타자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우리 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주체의 수동성은 결국 폭력적 자본과 권력으로써 우리 를 억압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타자, 즉 폭력적 세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주제어 : 주체, 타자, 세계, 농민, 노동자, 도시민, 억압, 폭력 Ⅰ. 서론 신경림은 1956년 이한직의 추천으로 진보적 성향의 문예지 문학예술 에 갈대, 낮달, 석상 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문단 데 뷔 이후 60년이라는 긴 시력을 가진 신경림은 그동안 11권의 시집과 6권의 시선집 및 2권의 전집을 발간했을 뿐 아니라 평론집과 산문집 16권, 편 역 서 13권 등을 펴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불평등한 삶과 그들의 삶 속에 스며있는 슬픔과 분노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그려온 시인이다. 민중시, 민중문학이라는 한길을 걸어온 신경림은 여타 시인들의 민중시 와 변별되는 그만의 시세계를 구축해왔다. 민중 1) 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1) 민중이란 역사에 있어서 부나 권력, 그리고 명성이나 특권적 지위에 가깝지 않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개념화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민중을 정치권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피지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고, 경제활동이 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 사회에 있어서 주로 사회적 생산의 직접 담당자로 되면서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29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민중과 함께 행동하는 주체 2) 가 여타 민중시에 나타 나는 주체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보인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 다. 3) 일반적으로 시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주체는 시적 대상을 자신과 분리 하여 대상화한 뒤 그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이때 대상은 주 체와 엄연히 구분된 존재로 드러난다. 이런 구조는 민중시에서도 마찬가지 다. 시에 등장하는 발화자, 즉 화자는 대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서 자신이 감각하고 인지한 후 그 대상을 그려낸다. 그러므로 시 속에 나타 나는 대상의 모습은 주체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주체는 대상과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 그렇게 됨으로 써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거리가 발생하게 된다. 노동의 산물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사회적 지위라는 관점에서는 피동적 성격을 지 니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정치권력이나 기존의 권력에 저항하거나 대항 하는 사람들, 지역이나 사회 등의 제집단에서 저변의 소리를 대표하는 능동적 성격을 갖는 사람들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민중이란 소외된 인간과 소외로부터 회복하려는 의도를 가진 인간들이 결합된 상태 라고 할 수 있다.(박현채, 민중과 경제, 정우사, 1979, pp.8-9. 참고) 신경림의 시에서 민중의 의미 역시 박현채의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경 림 시의 민중은 농민, 광부, 장꾼, 공사장 인부, 도시 빈민 등의 집합체로서, 자본과 권력의 중심 세계로부터 변두리로 밀려난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계층 을 말하는데, 이 들은 피동적 태도와 능동적 태도를 두루 보여준다. 다만, 민중을 구성하는 인물들 중 유독 농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신경림의 민중시가 갖는 특이점이라 하겠다. 2) 하나의 개체, 즉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것 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기의식을 가지게 될 때 주체성이 성립한다.(이정우, 주체란 무엇인가, 그린비, 2009, p.17.) 이 글에서 말하는 주체 역시 의식 활동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개체이며,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항상 새롭게 구성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에 따라 주체는 시 속에 서 다양한 유형으로 등장하게 된다. 다만, 주체가 집단적 주체인 우리 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대체로 무기력하고 수동적 태도를 지닌 모습으로 등장한다. 3) 고은, 고정희, 김지하 등의 민중시에 나타나는 주체는 민중을 대상화하여 하나의 시 적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입장에 위치해 있다.

530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그런데 신경림이 주목하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으로서의 시적 대 상들은 주체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주체와 동일한 존재, 즉 집단적 주체 인 우리 4) 로 등장한다. 다시 말하면,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민중 속에 주체가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주체와 대상은 각각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서 우리 를 구성한다. 따라서 주체는 민중이 라는 대상을 바라볼 때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타자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자 자신을 포함한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한다. 화자는 마치 우리 라는 집 합체가 하나의 개체인 듯이 5) 발언한다. 그러하기에 주체인 민중의 발언은 대체로 주관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감정이 폭발하고 분노가 날것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대상이었던 민중이 이미 주체와 하나가 되어 집단적 주체 로서 하나의 발언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는 보통 민중시에서 민중이라는 대상을 타자화붙이기 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림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나 가 아닌 우리 6) 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4) 신경림 시에 등장하는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는 대부분 농민들로써 구성된다. 그 외에도 광부, 장꾼, 공사장 인부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도 역시 우리 에 포함된다. 민중인 우리 를 구성하는 개별적 주체들의 공통분모는 가난과 소외와 불평등 등이다. 우리 는 모두 피지배계급으로 정치와 사회, 자본 등에서 소외된 채로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삶에서 영구히 탈출하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에 갇힌 형태로 등장 한다. 이러한 삶으로 인해 신경림 시의 민중들은 대부분 울분과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속으로만 삼키며 주먹을 움켜쥔 채 살아간다. 그러다 때로는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때 행동하는 주체 대부분은 개별적 주 체가 아닌 우리 라는 집단적 주체의 형태를 띠게 된다. 5) 이정우, 앞의 책, p.25. 6) 이동희는 우리 가 누구인지, 또 무엇을 통해 우리라고 명명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언 급하면서, 農 舞 와 歸 路 를 예로 들어, 우리 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즉, 우리로서의 동일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공유하고 있는 원통한 슬픔 이라고 설명한 다.(이동희, 우리의 슬픔, 개인의 비애 -신경림의 농무 (1973)와 새재 (1979), 현 대문학의 연구 15, 한국문학연구학회, 2000, pp.187-189.) 이는 시인이 우리 의 일원 이 되어 집단적 주체인 우리 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시인과 우리 에게 원통한 슬픔 이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31 현상은 특히 초기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 는 발화하는 화자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된다. 물론 시에서 발언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하나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목소리는 개별적 주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 니라 집단에서 나오는 공동의 목소리, 즉 우리 의 목소리이다. 공동의 발화 자이면서도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화자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된다. 주체는 주체 자신인 우리 를 대상화시킴으로써 시적 대상이 된 우리 의 삶 과 그 삶에 내재된 고통과 울분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신경림이 우리 를 자신과 동일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신 경림 자신이 농민이요 광부요 공사장 인부요 장꾼이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7) 신경림은 동국대 영문과 재학 중 같이 어울려 다니던 선배 가 한 사건에 연루되어 잡혀가는 일이 발생하자 두려움을 느끼고 귀향을 선택한다. 집으로 돌아온 뒤 어려워진 집안 형편 속에서 자신에 대한 가족 의 믿음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잘 되지 않자 밖으로 떠돌게 된다. 공 사장과 광산, 그리고 여러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신경림은 민중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마음 깊이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들이 농무 에 잘 나타나 있다. 8) 따라서 신경림은 농민과 광부들의 삶을 그려낼 때 지식인 혹은 농민과 광부의 입장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가 아니라 농민이었던 자신, 광부였던 자신의 목소리로써 그려냈다. 그렇기 때문에 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러나 발화자가 우리 로 나타나는 시편들에서 원통한 슬픔뿐 아니라 타자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소극적 저항 의지 등도 드러나므로 원통한 슬픔 만으로 우리 의 의미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7) 신경림은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시골 사람들과 어려움을 같이 겪고, 억울함을 함께 당하고, 가난을 더불어 맛보 (신경림, 우리 시의 이해, 한길사, 1986, p.56.)았다. 그 는 시골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과 억울함을 겪는 동안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계(타자)와 대립관계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일 수 있었다. 8) 신경림, 낙타, 창비, 2008, pp.120-124.

532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농민의 목소리로 농민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엄격히 분리된 화자 와 대상이 하나의 우리 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9)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주체는 고정되어 있는 절대불변의 주체가 아니라 수많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존재이다. 이는 대면하는 타자와의 경험들에 의해 주체가 계속하여 새롭게 구성되기 때문 이다. 다시 말하면, 주체가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 혹은 타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질에 의해 주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구성된다는 의미이다. 이 처럼 타자와의 관계 맺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구성되는 것이 주체이기에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주체를 시인으로 고정화하여 바라보거나 타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주체만을 중심에 두고 시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신경림 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경림의 시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타자의 상관성과 둘의 관계가 어떤 연결 지점 을 갖는가 하는 점을 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10)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먼저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우리 라는 집단적 주체 11) 에 주목하려 한다. 12) 신경림 시에서 집단적 주체 9) 신경림은 민중문학이 정말로 훌륭한 민중문학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 나로 민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사실도 들어질 수 있 다고 말한다.(신경림, 민중의 발견과 문학에 있어서의 참여 -몇가지 최근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숙대학 보 22,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위원회, 1982, p.249.) 이 발언에는 민중문학의 핵심이 민 중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파악에 있다 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10) 김지녀는 문학텍스트에서 주체와 타자의 문제는 일정한 미적 질서를 창출해내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작동기제 라고 설명했다. 김지녀, 김춘수 시에 나타난 주 체와 타자의 관계 양상 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12, p.18. 11) 술어적 주체란 자신에게 붙은 술어들을 통해서 성립되는 주체를 말하는데, 우리 와 같은 집합체도 술어적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 라는 개념은 그것에 속한 각각의 개별 주체들이 그것을 확장된 나 로서 이해할 때 성립(이정우, 주체란 무엇인가, 그린비, 2009, 14, p.25.)한다. 신경림의 시에 나타나는 우리 역시 나 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집합적 주체로도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33 인 우리 가 누구이며, 우리 와 대립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즉 타자로서 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것이다. 13) 그리고 주체와 타자가 맺고 있 는 상관성을 통해 신경림 시에 내재되어 있는 시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 히고자 한다. Ⅱ. 권력적 자본으로부터의 소외 신경림의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인물들 중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인 물 유형은 농민이다. 14) 1970~1980년대의 문단에서 농민이나 농촌을 소재 12) 신경림 시에 등장하는 우리 에 관심을 가진 논의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강하는 우리 가 지시하는 대상을 밝힘으로써 주체가 구현하려고 하는 담론을 밝히고자 하였 다. 그는 나 의 위치와 타자의 위치가 갖는 거리를 우리 라는 지시행위로써 상쇄시 키는 것이 농무 가 보여주고 있는 민중의식에 대한 실천 이라고 설명했다.(이강하, 신경림 농무 에 나타난 우리 의 의미와 효과, 동남어문논집 39, 동남어문학회, 2015, pp.69-98.) 이동희는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원통한 슬픔 이라 할 수 있는 데, 민요가락 은 이 슬픔을 이해하는 길이며, 서사 는 농꾼들의 현실을 통해 우리의 슬픔 을 새로운 감수성의 영역으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이동희, 우리의 슬픔, 개인 의 비애 -신경림의 농무 (1973)와 새재 (1979), 현대문학의 연구 15, 한국문학연 구학회, 2000, pp.187-189.) 반면 서범석은 우리 라는 퍼소나가 농민의 고통을 묘사 하는 데 장애적 장치가 되었다고 해석하면서, 시인이 농민의 삶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농민에 대한 대변자의 기능만 수행했다고 평가했다.(서범석, 신경림의 농무 연구 -농민시적 성격을 중심으로, 국제어문 37, 국제어문학회, 2006, pp.163-193.) 그러 나 시에 나타나는 주체는 우리 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에 속할 뿐 아니라 농민 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주체이므로 집단적 주체라 하더라도 농민의 고통을 구체적 으로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된다. 13) 타자란 주체와 마주하는 관계 에 있는 타인의 얼굴이며 타인의 얼굴은 곧 신의 재림 이며 형이상학의 하강 이다.(윤대선, 레비나스의 타자철학, 문예출판사, 2009, p.22) 이 글에서 말하는 타자 역시 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으로서의 존재를 말하며, 신경림 시에서 주체와 대립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또한 타자가 된다.

534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로 한 문학이 수적으로 상당히 적어졌고 독자들의 관심에서도 밀려나 있는 현실 15) 을 고려해 본다면 신경림의 농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시적 형 상화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신경림은 농촌을 소재로 하거나 농촌에 대해 쓴 많은 작가들의 글 대부 분이 이것이다, 하고 내놓을 수 있는 뚜렷한 것을 찾아낼 수 없다. 고 언급 하면서, 이러한 이유가 농촌 현실에 대한 파악에 있어 적극성이 결여되었 기 때문 16) 이라고 했다. 그러면 신경림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농촌 의 삶 속으로 들어가 정책과 문화와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농민의 고통과 울분을 직접 체험하면서 농촌현실의 참모습을 오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 다. 그의 시에서 농민의 삶이 단지 소재에만 머무는 한계를 뛰어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경림이 근 십 년 간의 시골생활을 마치고 김관식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처음으로 쓴 시 겨울밤 은 그가 체험을 통해 파악했던 피폐한 농촌현실과 농민의 삶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14) 이 글에서 우리 의 구성원을 (각 장에서) 농민과 노동자와 도시민으로 유형화한 것은 이들이 각각 소외되고, 억압당하고, 주체성을 상실한 인물로서 대립하는 세계뿐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방법에서 각각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5) 염무웅, 농촌현실과 오늘의 문학 -박경수작 凍 土 에 관련하여, 신경림 편, 농민 문학론, 온누리, 1983, p.20. 16) 신경림 편, 농촌현실과 농민문학 -그 전개과정에 나타난 문제점, 위의 책, p.49.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35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겨울밤 전문 이 시는 겨울과 같은 현실 속에서 슬픔과 괴로움을 가슴에 안고 사는 시골 농민들의 한탄과 체념적인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서 농민들 은 우리 17) 라는 집단적 주체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겨울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 가 피부로 느끼는 현실적 고민과 함께 현재의 슬 17) 김성규는 겨울밤 에 등장하는 우리 라는 복수 화자를 기존 서정시의 개인적 화자 를 초월하는 집단적이고, 민중적인 인물 을 구현(김성규, 신경림 시 연구, 충남대 박사학위논문, 2015, p.70.)하는 시적 화자로 보았다.

536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픔 18) 과 괴로움 을 풀어내고 있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어느 밤에 농민들은 협동조합에 딸린 방 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판을 벌인다. 농한기인 겨울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시골의 풍경이다. 겨울날 농부들이 모여서 묵내기 화투를 치는 모습은 한편 한가로워 보인다. 그러나 겨울밤 에 나타난 우리 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화자의 발언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는 우리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는 우리만의 괴로움을 안고 산 다. 이 슬픔과 괴로움은 이들 농민들만 알 뿐 타인은 결코 알지 못하는 것 이다. 그래서 이들이 느끼는 슬픔과 괴로움은 우리 의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이해 받거나 공감 받지 못한다. 이 감정들은 조금도 밖으로 표 출되지 못하고 농민들의 가슴속에 갇혀 있다. 이런 가슴을 안고 사는 우 리 이기에 화투를 치고 있는 한가한 시간에도 여유와 평화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가 이렇게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원인은 농민( 우리 ) 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방앗간 뒷방에 모여 있는 우리 는 바깥세상을 덮은 희고 순결한 빛깔의 눈과 대비되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농민들의 입을 통해 가장 먼저 언급 된 것은 쌀값 비료값 얘기 이다.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돈이다. 일 년 동안 농사를 잘 지어 제값에 팔아야 식구들과 한 해 동안 먹고 살아 갈 수 있기에 제대로 된 쌀값을 받지 못할 경우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게 된다. 이들이 쌀값 을 화제로 삼았다는 것은 쌀값이 곧 슬픔과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비료값 역시 농민들이 안고 있는 18) 이동희는 팍팍하고 답답한 삶의 시간들, 가난과 원통함의 시간들 자체 가 우리 가 느끼는 슬픔의 내용이며, 이는 묘사된 풍경에서 나온다고 보았다.(이동희, 앞의 글, p.188.)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37 고민 중 하나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비료를 구입해야 하지만 궁핍 한 그들의 형편에 비료값을 마련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비료 값이란 자신들의 삶을 짓누르는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이다. 쌀값과 비료값 은 농민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자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가정경 제와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농민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란 실로 엄청날 것이다. 농민들이 모여서 묵내기 화투를 치 는 것은 단순히 더디게 흐르는 겨울날의 긴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려는 목 적에서가 아니라, 우리 라는 공동체에 기대어 이러한 삶의 무게를 덜어내 고 위로도 받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쌀값과 비료값 이야기에 이어 우리 는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 가 아기를 밴 사건을 이야기한다. 우리 의 딸인 분이가 돈 벌러 서울에 갔다 가 예상치 못하게 아기를 배게 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은 먹고 사는 문제에 서 파생된 우리 의 괴로움을 가중시킨다. 우리 는 모두 어떡할거냐 라 고 걱정하지만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여기에 권력자의 대표격인 면장 의 딸이 선생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이의 축복 받지 못할 임신 소식과 대비 되면서 분이가 처한 현실을 한층 더 불운하게 만든다. 이 시에서 들려주는 쌀값 비료값 과 분이 의 이야기에서 농민을 슬프 고 괴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가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라고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자본은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 지 못했다. 자본은 자본을 가진 자들의 금고에서만 축적될 뿐 가난한 국민 들은 자본으로부터 늘 소외된 채 더욱 더 가난해질 뿐이다. 권력을 거머쥔 자본 19) 은 농민들에게 가혹했다. 돈이 없는 농민들은 비료값도 감당하지 못 하고 한해 한해를 겨우 버티며 생존을 이어간다. 그들의 가난은 자식들에 19) 여기에서 말하는 자본은 재화의 집합 으로서의 의미도 갖지만, 대체로 자본을 기반 으로 건설된 세계를 의미한다.

538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게로 대물림되어 딸들은 먼 서울로 가서 식모살이를 하고 돈이 권력이 되 는 사회에서 혼전 임신 같은 원치 않는 일을 겪으며 비참하게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우리 는 자신들의 삶을 직접 위협하는 권력적 자본의 세계 앞에 서 무기력한 태도를 보일 뿐이다. 20) 우리 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타자는 거대한 자본의 세계이며, 이 세계는 우리 가 가진 미약한 힘만으로는 결 코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는 슬픔과 괴로 움을 느낄 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대신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 라도 맡아 보거나, 아니면 닭이라도 쳐 보고 돼지라도 먹 여보거나 그 것도 안 될 경우 연애편지라도 써서 현재의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자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마저도 그저 생각 수준에만 머물 뿐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대신 자신들의 힘으로 행동하기보다 우연적 인 자연의 힘, 즉 하얀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을 덮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농민들이 이렇게 스스로 일어서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조국이 라고 믿었던 나라조차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조 국을 믿지 못한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불신하고 부정하는 농민들의 인식은 3월 1일 에 잘 드러나 있다. 골목마다 똥오줌이 질퍽이고/ 헌 판장이 너풀거리는 집집에/ 누더기가 걸 려 깃발처럼 퍼덕일 때/ 조국은 우리를 증오했다 이 산읍에/ 삼월 초하루가 20) 양문규는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자조적인 표명은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결연한 의지의 역설적 표현인 셈 이라고 했다. 그러나 화자가 다섯 번 이나 반복하는 ~ 볼거나 와 어떡할거나 라는 발언을 고려해보면,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이라는 시구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읽어내기는 어렵다.(양문규, 신경림 시에 나타난 공동체의식 연구, 어문연구 50, 어문연구학회, 2006, p.263.)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39 찾아올 때.// 실업한 젊은이들이 골목을 메우고/ 복덕방에서 이발소에서 소줏 집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음모가 펼쳐질 때/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 이 산읍에/ 또다시 삼월 일일이 올 때.// 이 흙바람 속에 꽃이 피리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 다 이 흙바람을/ 타고 봄이 오리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아아 이 흙바람 속의/ 조국의 소식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 계집은 모두 갈보가 되어 나가고/ 사내는 미쳐 대낮에 칼질을 해서/ 온 고을이 피로 더럽혀질 때/ 조국은 영원히 떠났다 이 산읍에/ 삼월 초하루도 가고 없을 때. 3월 1일 전문 위 시에서 보여주는 우리 의 삶을 들여다보면, 골목마다 똥오줌이 질 퍽이고/ 헌 판장이 너풀거리는 집집에/ 누더기가 걸려 깃발처럼 퍼덕 이 고, 실업한 젊은이들이 골목을 메우고 있다. 위생적인 환경과 안전하게 보호해줄 집과 인간다운 삶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지독한 가난은 농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결국에는 그들의 삶을 누더기로 만들어 버 린다. 거기에다 앞으로 농촌을 이끌어나갈 젊은이들조차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골목과 골목을 배회하게 되므로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1연에 그려져 있는 누더기가 깃발처럼 펄럭이는 장면은 농촌 사람들의 피폐한 생활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이미지라 고 할 수 있다. 누더기와 같은 가난의 지속은 농민들로 하여금 조국 에 대해 불신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조국 은 3 1운동을 통해 되찾고자 한 정치적 국가로서 의 조국이 아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보듬어주고 가난이라는 짐을 함께 짊어져 줄 평등한 자본사회로서의 조국이다. 그러나 우리 의 바람과는 달리 조국은 굶주리고 헐벗어도 우리 를 외면한다. 조 국으로부터도 소외당한 우리 는 조국이 우리를 증오 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에 우리 는 복덕방에서 이발소에서 소줏집에서 음모를 펼치지 만 결국에는 조국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는 처지가 된다.

540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우리 에게 3월 1 일 21) 은 조국의 해방뿐 아니라 가난과 소외와 핍박으 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하기에 누추한 현실에서도 3월 1일을 기다 리며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가고 또 다시 새로운 3월 1일이 돌아와도 우리 에게 조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국이 버린 산 읍에서 우리 는 가난하고 누추한 삶을 겨우 유지해나갈 뿐이다. 계집은 모두 갈보가 되어 나가고/ 사내들은 미쳐 대낮에 칼질을 한다. 고을은 온 통 피로 더럽혀 지지만 조국은 그러한 우리 를 버리고 영원히 떠나버린 다. 이제 우리 에게 3월 1일은 달력에서 사라져버린 날짜이며, 따라서 태 극기를 흔들며 되찾아야 할 조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는 조 국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국민들이다. 산읍의 농민들을 소외시키고 결국에는 농민을 영원히 버리기까지 하는 조국 은 자본이 건설한 세계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자본은 도시와 도시의 자본가를 위해 복무했다. 반면 농촌은 자본의 세계 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다. 이로 인해 도시와 농촌의 경제발전은 불균형적 인 형태가 되었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경제개발과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경제의 몸집이 비대해지는 도시와는 달리 농촌은 인구가 현저히 줄어들고 살림은 몹시 빈약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농민들은 거대한 자본의 방망이가 휘두르는 광포한 힘을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확인했기에 이 산읍에 언젠가는 봄이 오리라 는 것을 믿지 못한다. 타자인 자본 세 계 와 우리 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이루면서 피지배계급인 21) 이 시의 제목인 3월 1일 을 단순히 봄으로 바라보는 시각((박순희 민병욱, 신경림 시의 장소 연구 -시집 농무 를 중심으로-, 배달말 54, 배달말학회, 2014, p.258.)은 이 시의 의미를 단순화시키기 쉽다. 만약 논자들의 견해처럼 봄 으로 보았다면, 시인 이 굳이 일( 日 )을 표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일을 분명히 명시한 것은 제목 자체가 갖는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드러내준다. 이 글에서는 3월 1일 을 일본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항거일로 파악했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41 우리 는 자본의 억압과 소외 속에서 궁핍한 삶을 이어간다. 우리 가 가 난하게 살아가는 것은 농민들이 게으르거나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닭이라도 쳐볼 까, 아니면 돼지라도 먹여볼 까, 하는 고민을 거듭하고, 쌀값 비료값 걱정이 앞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공정성을 상실해버린 자본은 농촌을 외면한 채 도시로만 향했고, 농민들은 자본의 소외 속에서 점점 더 가난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가난을 짊어진 우리 의 가슴에는 삶에 대한 희망이 아니 라 분노와 울분만 쌓이게 된다. 우리 가 느끼는 이러한 감정은 결국 권력 적 자본과의 그릇된 관계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 하겠다. Ⅲ. 지배 권력에 의한 억압과 불평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국가가 정한 법률에 의해 평등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평등은 불평등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 본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권력을 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분명한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세계 역 시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그리고 생활수준이 낮은 노동자 와 같은 하층민들은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 에게는 불평등한 사회를 변혁시킬 만한 힘이 없다. 때로는 변혁을 이끄는 힘이 아니라 변혁시키려는 의지조차 드러나지 않거나 의지가 있더라도 그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대신 내면에서 분노만을 키우기도 한다. 박서방은 구주에서 왔다 김형은 전라도/ 어느 바닷가에서 자란 사나이./ 시월의 햇살은 아직도 등에 따갑구나./ 돌이 날고 남포가 터지고 크레인이

542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운다./ 포장 친 목로에 들어가/ 전표를 주고 막걸리를 마시자./ 이제 우리에겐 맺힌 분노가 있을/ 뿐이다. 맹세가 있고 그리고 맨주먹이다./ 느티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워놓은/ 면서기패들에게서 세상 얘기를 듣고./ 아아 이곳은 너무 멀구나, 도시의/ 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 오늘밤엔 주막거리에 나가 섰다 를/ 하자 목이 터지게 유행가라도 부르자./ 사이렌이 울면 밥장수 아주머니의/ 그 살찐 엉덩이를 때리고 우리는/ 다시 구루마를 밀고 간다./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밀린 간조날을/ 꼽아보고. 건조실 앞에서는 개가/ 짖어댄다 고추 널린 마당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제기를 찬다. 수건으로/ 볕을 가린 처녀애들은 킬 킬대느라/ 삼태기 속의 돌이 무겁지 않고/ 십장은 고함을 질러대고. 이 멀고/ 외딴 공사장에서는 가을해도 길다. 遠 隔 地 전문 원격지 란 일반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시 에 나오는 원격지 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시의 소음 마저도 그리워지게 만드는 벽지의 공사장이다. 이 공사장에는 구주 22) 와 전라도 등 지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노동자인 우리 는 돌이 날고 남 포가 터지고 크레인이 우는 이곳에서 폭발물로 깨뜨린 돌을 구루마 로 옮기는 일을 하는 막노동자들이다. 23) 매일 폭약으로 돌을 깨는 위험한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지만, 우리 가 22) 구주 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띤다. 하나는 규슈( 九 州 ) 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지명이며, 다른 하나는 유럽( 歐 洲 )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구 주 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외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게 된 사정으로 보아) 이곳저곳으로 떠돌면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온 박서방 이 노 동자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23) 송지선은 기계화된 노동 체계 속에서 우리는 그 기능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나약하 고 수동적인 존재로 노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농민이 주체적 자아로 일을 할 수 있는 농사와 대비되는 노동환경이다. 라고 설명하면서 원격지 는 화자의 실존이 희 미한 곳이라고 설명했다.(송지선, 신경림의 농무 에 나타난 장소 연구 51, 국어문 학, 국어문학회, 2011, p.131.) 실존이 희미해지는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결코 주체적일 수 없으므로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43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맺힌 분노 와 맹세 와 맨주 먹 뿐이다. 노동을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긍정과 자기 독립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며,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주변 세계를 정복한다. 24) 그러나 우리 에게 있어 노동이란 그저 생존을 위한 고투에 불과하다. 노동으로도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 는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와 맹세와 맨주먹 은 현실에서 실제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되지 못한다. 우리 는 기다리던 월급의 지급이 미루어져도 대응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으로 간조 날을/ 꼽아 보기만 할 뿐 사용자에게 월급을 요구하거나 불평과 불만을 쏟 아내지 못한다. 사용자의 권력에 불만을 표시했다가 그나마 얻게 된 일자 리마저 잃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분노하지만 밖으로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맹세하지만 맹세도 결국 맹세에서 끝을 맺고 만다. 우리 가 가지고 있는 맨주먹으로 이루어내고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 없고 힘도 없는 우리 들은 그저 가슴속에 맺혀있는 분노만 느낄 뿐이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도 개선 에 대한 의지도 없으며, 모든 판단과 의지가 결여된 채 사이렌 소리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이런 수동성은 대항할 수 없는 지배권력의 힘이 원인 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 의지는 가지지 못했으나 우리 는 서서히 가슴속 에 쌓여가는 분노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 가 가지고 있는 분노는 이제 라는 부사가 말해주듯 현재에 이르러서야 가슴속에 맺히게 된 것이 다. 이것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 혹은 어떤 대상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 문에 현재 분노하게 되었으며, 또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대상은 누구일까. 24) 강영안, 주체는 죽었는가, 문예출판사, 1996, pp.223-234.

544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遠 隔 地 에서 노동자들을 억압하거나 노동자들의 위에서 군림하는 권 력자는 고함을 지르는 십장 과 미뤄지는 월급 과 노동자를 일터로 몰아 붙이는 사이렌 소리, 이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이다. 십장, 월급, 사이 렌 이 세 가지는 노동자들을 존엄한 한 인간이 아닌 일하는 도구로 전락시 킨다.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구로서의 노동자에게 사용자는 어떤 인간적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이 시에 사용자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사용자를 대변하는 십장이 등장한다. 십장은 노동자들을 감독하거나 지시하는 우두머리로 사용자를 대신하여 일을 시 키는 사람이다. 단순히 역할만을 고려한다면 십장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 에서 두 계층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맡거나 둘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십장은 오직 사용자의 입장만 을 충실히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삼태기에 돌을 담아 나르며 킬킬대는 처녀애들을 향해 고함 을 질러대는 십장의 태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고된 노동을 하고 있으나 아직은 사는 일이 즐거운 처녀들을 십장 은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사용자가 가진 권력을 그대로 위임받은 십장은 처녀들이 오직 작업에만 집중하기를 종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고함을 질러대며 노동자를 몰아붙이고 사이렌 을 울려대며 식후의 짧은 휴식 시간조차 누리지 못하게 하는 십장이, 노동 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는 전혀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가 밀린 간조날 을 손꼽아 기다려도 그런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 다. 물론 시에서는 고함을 지르는 십장의 모습만 보여주지만 흙먼지를 뒤 집어쓰고 밀린 간조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 에 대해 반응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사이렌을 울려서 밥집에 있는 노동자 들을 다시 일터로 불러내고 일을 하면서 킬킬대는 처녀애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전형적인 사용자의 모습을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45 십장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국가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등한 입장에 서 노동계약을 맺도록 법으로 정해놓았으나 사용자에게 노동자는 자신들 이 원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하나의 도구로 인식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 도 아닌 것이다. 막노동자인 우리 가 살아가는 세계는 지배 권력을 가진 사용자가 만든 세계이다. 이 세계가 가지고 있는 권력 앞에서 우리 는 수동적인 인간으 로 살아간다.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사용자 혹은 십장에게 항의하지 못하 고 속으로만 분노를 키운다. 반면 사용자는 사이렌 소리로 노동자의 시 간을 억압하고 월급으로써 노동자의 분노를 제압한다. 우리 는 지배 권력 과의 불균형적 관계 속에서 점점 더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그리고 억 울린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막걸리 를 마시고 섰다 를 하고, 목이 터지 게 유행가 를 부르고 밥장수 아주머니의/ 그 살찐 엉덩이를 때리 면서 하 루하루를 견디어낸다. 결국 우리 가 가진 것이 맨주먹 뿐이라는 패배적 자기인식 때문에 그 어떤 실천적 행동도 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다. 노동자들의 이런 모습은 그 겨울 에서도 반복된다.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금방앗간/ 그 아랫말 마찻집 사랑채에/ 우리는 쌀 너 말씩에 밥을 붙였다./ 연상도 덕대도 명일 쇠러 가 없고/ 절벽 사이로 몰아치 는 바람은 지겨워/ 종일 참나무불 쇠화로를 끼고 앉아/ 제천역전 앞 하숙집에 서 만난/ 영자라던 그 어린 갈보 얘기를 했다./ 때로는 과부집으로 몰려가/ 외상 돼지 도로리에 한몫 끼였다./ 진눈깨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보름께면/ 객지로 돈벌이 갔던 마찻집 손자가/ 알거지가 되어 돌아와 그를 위해/ 술판이 벌어지는 것이지만/ 그 술판은 이내 싸움판으로 변했다./ 부락 청년들과 한산 인부들은/ 서로 패를 갈라 주먹을 휘두르고/ 박치기를 하고 그릇을 내던졌다./ 이 못난 짓은 오래가지는 않아/ 이내 뉘우치고 울음을 터뜨리고/ 새 술판을 차려 육자배기로 돌렸다./ 그러다 주먹들을 부르쥐고 밖으로 나오면/ 식모살

546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이들을 가 처녀 하나 남지 않은/ 골짜기 광산부락은 그대로 칠흑이었다./ 쓰러 지고 엎어지면서 우리들은/ 노래를 불러댔다. 개가 짖고 닭이/ 울어도 겁나지 않는 첫새벽/ 진눈깨비는 이제 함박눈으로 바뀌고/ 산비탈길은 빙판이 져 미 끄러웠다. 그 겨울 전문 이 시의 배경은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광산부락이다. 그리고 처녀가 하나도 남지 않은/ 골짜기 광산부락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는 광산의 노 동자들이다. 명일이 되었으나 광부 몇 명을 제외한 타지 출신들은 대부분 명일을 쇠러 집으로 가지 못하고 부락 출신 청년들과 함께 밥을 붙 여 먹는 마찻집 사랑채에 모여서 어린 갈보 얘기 를 하거나 과부집으로 몰 려 가는 등의 파행적 행동을 통해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를 해소하고 자 한다. 그러나 알거지가 된 마찻집 손자 를 위로해준다는 명목으로 마 련한 술판에서 억눌렸던 우리 의 감정이 폭발하여 싸움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25) 패를 나누어 싸우는 부락 청년과 한산인부들은 비록 패싸움을 벌이기는 하나 이들은 모두 광산 노동자로 우리 라는 테두리 안에 포함된다. 부락 25) 박순희 민병욱은 장소란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 되며, 인간 실존의 중심이 되는 것 으로서 신경림 시에서 삶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삶의 현장인 장소 와의 유대감을 잃고 실존의 중심이 흔들리게 되는 민중의 모습에 주목한다. 논자들은 그 겨울 의 노동자들은 농촌을 떠나와 새로운 장소에서 장소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 기 때문에 뿌리 뽑힌 존재로 떠돌아다니며 고달픈 삶 속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 설명한다.(박순희 민병욱, 신경림 시의 장소 연구 -시집 농무 를 중심으로-, 배달말 54, 배달말학회, 2014, pp.255-263.) 이들의 논의를 빌리면, 광산 노동자들이 술판과 싸움판을 벌이고, 화해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이런 행위들은 결국 실존의 원초 적 장소인 고향을 잃은 데서 오는 상실감과 불안감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는 일면 타당한 분석이다. 그러나 우리 가 밖으로 나갈 때 주먹들을 부르쥐 는 행위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주먹을 부르쥐 는 행위는 가슴속의 분노를 밖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 시를 장소 상실 만 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47 청년과 한산인부를 광산 노동자와 우리 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두 패들이 싸움을 멈춘 뒤 다시 술판을 벌이다가 밖으로 나올 때 주먹들을 부르쥐 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때 주먹을 쥔 사람들이 부락 청년과 한산인부로 각 각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먹을 부르쥐고 나와서 쓰러지고 엎어지면서 우리들은/ 노래를 불러댔다 라고 말하는 화자가 밖으로 나온 모든 사람을 우리 라고 지칭하고 있으므로 부락 청년들과 한산인부 모두 가 바로 우리 를 이루는 구성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다 같이 주먹을 부르쥔 것은 이들이 느끼는 분노의 감정이 통일된 하나의 공 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이 시에서 이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시어를 살펴보면 그것이 광산 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따라서 부락 청년과 한산인부는 광산 노동자이며 이들은 현실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끼 고 있는 우리 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광산 노동자인 우리 는 그대로 칠흑 인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불러댄다.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허전한 마음을 술과 갈보 이야기와 싸 움으로써 해소시키고 있는 우리, 이런 우리 로 하여금 주먹을 부르쥐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주먹 은 신경림의 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데, 맨주먹이나 빈주먹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분 노 혹은 저항적 의미를 함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형태, 즉 떨고 있거나 부르쥐고 있는 주먹 형태로 나타난다. 그 겨울 에서 드러나는 주먹은 후 자의 의미에 가깝다고 하겠다. 한산인부들과 부락 청년들이 주먹들을 부 르 쥔 것은 취기 때문이 아니며 처녀들이 모두 식모살이 를 가고 없어서 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에 대해 분노하고 있 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밤을 견디는 이들은 그러나 그 어둠을 걷어내거나 자신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해 저항 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주먹을 부르쥐고 노래를 불러댈 뿐이다.

548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진눈깨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서 개가 짖고 닭이/ 울어도 첫새벽이 두렵 지는 않다고 발언하지만 그저 빙판이 된 미끄러운 산비탈 길을 걸어 올라 갈 뿐이다. 이들의 부르쥔 주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풀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 가 이렇게 분노를 행동으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내면에 묻어두는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배권력과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지배 권력으로부터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가 개선되지 못할 경우 우리 의 저항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Ⅳ. 폭압적 세계로 인한 주체성 상실 앞에서 집단적 주체인 우리 를 구성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사회 혹은 자본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면서 속으로 울분과 분노를 키우는 모 습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들과 대비되는 사람들, 즉 도시에서 거주하 는 시민들은 모두 자본과 문화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 신경림의 시에 등장하는 도시민들은 어둠 26) 으로 표상되는 폭압적 세계 27) 에서 농민이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억눌린 삶을 이어간다. 이 26) 신경림의 시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미지 어둠 은 어두운 상태를 의미하기보다 대부 분 화자와 약자들을 위협하는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띠고 있다. 신경림의 시편에서는 어둠 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어둠 으로 표상되 는 존재가 힘없는 약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약자들이 살아 가는 세계에서 힘을 가진 강자, 혹은 지배 권력 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어둠 을 약자들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폭압적 세계로 보았다. 27) 도시의 가난한 시민들에게 폭력과 억압을 일삼는 폭압적 세계는 분명한 이름을 가진 존재 혹은 상징적 이미지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 움과 분노, 울분 등을 통해서 수동적인 삶을 강제하는 폭압적 세계를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49 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은 땅 잃고 쫓겨온 늙은이들 이 사는 산동네 ( 밤비 )이거나 서울에서도 떠밀려 ( 갈구렁달 ) 자리 잡은 도시 변두리 이다. 이들은 자본과 권력의 중심 세계에서 소외된 채 지독한 가난 속에서 한숨과 울분의 삶을 살아간다. 질척이는 골목의 비린내만이 아니다 너절한 욕지거리와 싸움질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깊은 가난만이 아니다 좀체 걷히지 않는 어둠만이 아니다 팔월이 오면 우리는 들떠오지만 삐꺽이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아니면 소줏집 통걸상에서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외국의 어느 김빠진 야구경기에 주먹을 부르쥐고 미치광이 선교사를 따라 핏대를 올리고 후진국 경제학자의 허풍에 덩달아 흥분하지만 이것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쓸개 빠진 헛웃음만이 아니다 겁에 질려 야윈 두 주먹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서로 속이고 속는 난장만이 아니다 하늘까지 덮은 저 어둠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전문

550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우리 가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여기 는 질척이는 골목 과 너절한 욕 지거리와 싸움질 이 끊이지 않는, 깊은 가난 이 점령해버린 공간이다. 도 시인들이 누리는 풍요로운 문명의 혜택을 누려보지 못한 채 하늘까지 덮어 버린 어둠 의 공간 속에서 우리 는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과 상 관도 없는 야구경기에 주먹을 부르쥐 기도 하고, 미치광이 선교사를 따라 핏대를 올리 기도 하며, 후진국 경제학자의 허풍에 덩달아 흥분 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쓸개 빠진 헛웃음 을 웃고, 겁에 질려 두 주먹이 야위어가고, 하늘까지 덮은 어둠을 걷어내지 못한 채 서로 속이고 속 는 난장 속에서 살고 있다. 화자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 다. 그러나 부끄러워해야 할 것 은 정작 따로 있다고 거듭하여 밝히고 있 다. 화자가 말하는 우리 를 진정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 까. 화자가 들려주는 우리 의 행위들을 짚어보면 부끄러워해야 할 것 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는 상관없는 야구 경기에 주먹을 부르쥐고, 미치광이 선교사를 따 라 핏대를 올리며, 경제학자의 허풍에 흥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미 없는 헛웃음을 웃고, 겁에 질려 두 주먹은 야위어만 가고, 또 끊임없이 서로 속 고 속인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들을 살펴보면, 그 행위 속에 우리 가 빠 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행위의 주체는 우리 가 아니다. 정작 우리 의 삶에서 우리 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중 누구도 우리 가 주체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는 데 있다. 그래서 화자는 그런 우리 자신에게 더욱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들의 현재를 정확하게 인식했을 때만이 삶이 안고 있는, 혹은 자신들 이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를 발견해낼 수 있으며 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는 자신들의 삶에서조차 배제된 채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자신의 삶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고 있기에 화자는 그러한 자신들이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51 몹시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가 이렇게 주체성을 상실한 채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것은 화자의 발언 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체를 억압하는 타자로서의 세계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이 세계는 어둠 의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어둠은 우 리 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존재이다. 우리 가 느끼는 두려움은 매우 강 력한 것이어서 우리 가 우리이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 는 겁에 질려 어둠 을 향해 힘 있게 부르쥐어야 할 주먹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제 우리 에게는 야윈 두 주먹뿐이다. 화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느낄 때 모든 것이 바로 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가 거짓을 벗어던진 참 나 인 우리 를 되찾고, 나아가 잃어버린 우리 의 삶과 우리 의 세계를 회복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그리하여 하 늘까지 덮어버린 어둠을 걷어버리고 가난도 벗어던지고, 거짓된 삶이 아닌 스스로 주먹을 불끈 쥐고 거짓에 대항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표층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화자의 전체적 인 발언을 통해서 행간에 숨겨져 있는 희망을 유추해낼 수 있을 뿐이다. 화자의 간절한 희망이 표층을 뚫고 그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낼 때 그 희망 은 실천적인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에서는 주체성을 상실한 우리 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데서 머무 르고 말았다.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둠 의 힘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銀 河 에서도 세계는 우리 에게 두려움 그 자체로 인식된다. 놈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고래다/ 책과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삼키고 승용차를 삼키더니/ 종당에는 마을을 삼키고 사람들마저 삼켜버렸다/ 마침내 우리는 놈의 뱃속에 들어앉았다/ 놈이 기우뚱대는 대로 이리 몰리고

552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저리 몰리고/ 나둥그러지고 엎어지고 서로 대갈받이하고// 감히 누가 쇠꼬챙이를 갈아 장벽( 腸 壁 )을 찌르거나/ 종이 따위 인화물질을 모아 불을 지를 엄두를 내랴/ 재채기를 해서 우리를 토해내게 하기에 앞서/ 놈이 더욱 요동칠 것이 두려운데/ 그 사이 부패물에 섞여 우리 몸은 서서히 썩어가겠지/ 하늘 저 높은 데서 또 은하는 더욱 푸르고 銀 河 전문 銀 河 에서 우리 는 삶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과 함께 놈 에 게 잡아먹힌 존재이다. 우리 와 함께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들이 책 과 텔레비전과 냉장고 와 승용차 라는 점에서 우리 를 도시민으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우리 는 가난한 도시빈민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기 력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도시빈민들과 유사한 약자들 의 집합이라고 하겠다. 우리 는 강제적 힘에 의해 놈 에게 잡아먹혔으나 놈의 뱃속을 탈출하 기 위해 어떤 노력도 시도하지 않는다. 비록 무력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자 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삶의 의지를 상실해버린 인간처럼 아무 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의 현실적인 능력 부족에서도 그 원인 을 찾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놈 에 대한 두려움이 압도적인 힘으로 작 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명을 방기해버린 우리 는 감히 누가 쇠꼬챙이를 갈아 장벽 ( 腸 壁 )을 찔러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종이 따위 인화물질을 모아 불을 지를 엄두를 내 지도 못한다. 화자의 발언을 보면 우리 는 결코 탈출할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53 들은 구체적인 탈출 방법을 알고 있으나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태도는 놈 이 이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를 방증해주 고도 남음이 있다. 놈 이 가진 폭력적인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자신을 놓아버리는 우리 에게 주체성이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부패물에 섞 여 자신들의 몸이 서서히 썩어갈 것임을 인지하고 있으나 주체성을 상실 한 우리 는 아무런 저항 없이 현실을 수용한다. 폭력적 권력 앞에서 약자 는 한없이 나약해지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상실한 우리 는 이미 우리가 아니며, 우리 속에서 우리는 이미 소멸된 존재들이 다. 이제 우리 의 주인은 생살여탈권( 生 殺 與 奪 權 )을 쥐고 있는 놈 이다. 놈 은 이 시에 내재된 함축적 의미를 길어 올릴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 이다. 화자의 발언을 보면 놈 은 거대한 고래가 되어 책과 텔레비전과 냉장고 승용차 는 물론 종당에는 마을을 삼키고 사람들마저 삼켜버 리 는 두려운 존재이다. 삼켜진 우리 는 모두 고래의 뱃속에서 썩어가지만 끝까지 놈 의 정체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제목만을 두고 본다면 놈 은 은하가 된다. 우리 는 모두 은하의 뱃속으로 끌려들어가 갇히게 되고 서서히 썩어갈 운명이다. 그러나 2연 마지막 행에서 우리 몸 이 썩 어갈 때 은하 는 높은 데서 더욱 푸른 존재로 빛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 서 놈 과 은하 를 동일한 존재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거대한 고래 라는 비유적 표현 외에 놈 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므 로 놈 의 존재 파악을 위해 놈 을 대하는 우리 의 태도를 살피는 우회 적 방법을 선택하기로 한다. 우리 는 마을과 함께 삼켜져서 놈의 뱃속에 들어앉 게 된다. 고래의 뱃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나둥그러지고 엎어지고 서로 대갈받이 를 하면 서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우리 는 놈 에게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놈 이 움직이는 대로 이리 몰리고 저리 몰 린다. 이렇게 저항을 하지 못할

554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상대인 놈 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폭력적인 존재이다. 이 존재에게 한낱 먹거리로 삼켜진 우리 는 삶의 터전인 마을은 물론 일상을 가능하게 했던 책과 텔레비전과 냉장고와 자동차와 함께 놈 의 뱃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이제 놈 은 우리 의 세계가 된다. 이 세계에서 우리 는 놈이 더 욱 요동칠 것 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꺼져가는 남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집단적 주체인 우리 와 마주한 세계는 폭력적인 세계이다.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몸을 흔들어 요동을 치면서 뱃속의 우리 를 부패물들과 섞이게 만들어 우리 몸 을 서서히 썩어가게 만들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 게 할 폭력으로서의 세계인 것이다. 다가올 우리 의 죽음은 폭압적 세계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이 세계를 묵 인하고 받아들인 것은 우리 자신이다. 탈출할 방법을 알고 있으나 두려 움으로 인해 그 방법을 외면했고, 스스로의 주체성도 지켜내지 못했다. 주 체성을 상실한 우리 에게 폭력적인 세계가 베푸는 것은 죽음뿐이다. 설령 요행히 이 죽음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삶을 되찾지는 못 할 것이다. 끈 에서는 주체성을 상실한 채 자신의 삶이 아닌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도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들을 따라 몇 번 디스코홀엘 간 일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홀을 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에 압도당했다. 이 엄청난 힘의 저장에 때로 흥분하기도 했 다. 그러나 그 얼마 뒤 나는 보았다. 이 열기, 이 힘을 조작하는 사내가 있음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과 발에 매인 끈을 조작하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끈에 매인 모든 사람들이 울고 웃고 들떠서 날 뛸 때 그의 얼굴에 어린 것은 오직 쓴 웃음이었다. 퇴근길 버스에서 또는 늦은 잠자리에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의 손발에 매인 이 끈을 조작하는 그 추악한 사나이는 누구인가. 아니, 우리들의 손발에 서 이 질긴 끈이 끊어질 그날은 영 없을 것인가. 끈 전문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55 이 시에서 우리 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땅 잃고 쫓겨 온 늙은이 인지 혹은 날품 ( 가난한 사랑 노래 )을 파는 산동네 젊은이인 지, 아니면 어둠이 덮은 가난 속 ( 歸 路 )을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가장인 지 구체적인 정보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우리 가 타자에 의해 생을 조종당하는 약자들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우리 가 강자에게 휘둘리고 억 압당하는 힘없는 약자라는 점에서 끈 에 나타나는 우리 는 신경림 시에 등장하는 민중의 모습과 닮아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약자로서의 우리 는 몇 번 친구를 따라 디스 코홀에 간다. 그곳에서 낯선 열기와 엄청난 힘에 압도되어 흥분하기도 한 다. 생경한 문화를 접한 우리 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디스코 홀의 광기와도 같은 뜨거운 열기에 휩쓸려 울고 웃고 들떠서 날 뛰게 된 다. 그러다 문득 나 28) 는 이 힘을 조작하는 사내 를 보게 된다. 그 사내 는 디스코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손과 발에 끈을 매어 놓고 조작하고 있었다. 즉, 그 공간에서 울고 웃고 들떠서 날뛰는 사람들의 행위는 주체적 인 것이 아니라 타자인 사내의 조종에 의해 벌어진 결과였던 것이다. 화자 는 자신들을 흥분시키고 디스코홀을 뜨겁게 만든 것이 모두 사내의 의도된 조작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끈에 매인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지 하지 못한다. 이들은 사내가 쥐고 있는 끈 이 자신들의 고유한 주체성을 훼손시키고 꼭두각시처럼 자신들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오 직 디스코홀의 열기에 휩싸여 춤추고 웃고 떠들 뿐이다. 모든 사람들을 끈으로 묶어 조작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내는 우리 28) 이 시에서는 우리 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으나 발화자가 우리 가 아니라 나 이다. 우리 가 집단적인 발화자로 설정된 다른 시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1인칭 화자도 결국 우리 를 구성하는 일부로 등장하므로 나 와 우리 를 구분하지 않았다.

556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와 관계 맺고 있는 타자로서의 세계가 된다. 이 세계는 우리 의 삶을 능동 적인 것에서 수동적인 것으로 치환해 버리고, 그러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도록 뒤에서 사람들을 조종한다. 세계의 권력을 대표하는 사내 는 숨 어서 은밀하게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춤추고 떠드느라 사내를 발견하지 못한다. 시행 마지막에 이르러 질긴 끈이 끊어질 그날은 영 없을 것인가 라며 탄식하듯 내뱉는 화자의 말은 훼손된 주체성을 회복하고 스스로 끈을 끊을 날이 영원히 오 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권력의 힘으로 사람들을 휘두르고 조종하 는 폭압적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주체성을 훼손시키고 자신의 권력에 굴복하게 만든다. 주체성이 훼손당한 주체들은 세계라는 타자의 폭력에 의해 강제된 생각과 강제된 행동을 하게 된다. 모 든 것 위에 군림하는 세계에 갇힌 우리 는 이미 우리 를 잃어버린 존재 들이다. Ⅴ. 결론 신경림 시에는 집단적 주체인 우리 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주체는 여 타 시인들의 민중시에 등장하는 주체들과는 달리 민중을 대상화 하지 않는 다.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민중 속에 주체가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주체와 대상은 각각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서 우리 를 구성한다. 이렇게 주체가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행동한다 는 점에서 우리 는 매우 특징적인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신경림 시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하여, 집단적 주체인 우리 가 누구이며 우리 와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57 대립적 관계를 맺고 있는 (타자로서의) 세계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더불어 주체와 타자가 맺고 있는 상관성을 통해 신경림 시에 내재된 시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신경림의 시에서 주체와 대립하는 타자로서의 세계는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세계와 대립적 관계에 있는 우리 는 대체로 농민과 노 동자와 약자로서의 도시민이다. 먼저 농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의 삶을 들 여다보면, 자본은 자본가들의 금고에서만 축적될 뿐 농민들은 자본에서 소 외된 채 피폐한 삶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우리 는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 지만 자신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권력적 자본 앞에서 무기력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지배권력을 가진 세계 앞에서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견디어낼 뿐이다. 도 시에서 약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의 우리 도 농민과 노동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경제개발을 위해 거대 자본이 투자되었으나 도시민 모 두가 자본과 문화의 수혜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신경림의 시에 등장 하는 도시민들은 농민이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권력의 중심 세 계에서 소외된 채 지독한 가난 속에서 한숨과 울분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 은 울분을 표출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작은 희망조차 드러내지 못하는데, 이러한 수동성은 우리 가 이미 주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주체성 상실 은 우리 를 억압하는 타자로서의 폭력적인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와 마주한 세계는 닥치는 대로 우리 의 삶을 집어삼키고 결국에는 우리 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 는 그러한 폭압적 세계를 탈출할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포기해버린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맨주먹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점과 세계의 권력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컸던 것에 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558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집단적 주체인 우리 가 권력을 가진 타자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수동 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주체의 본래적 모습이 아니다. 주체는 스스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이다. 주체의 외부에 있는 타 자는 주체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주체의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끼치게 된 다. 다시 말하면, 주체의 인식이나 태도는 본래 주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체와 관계하는 타자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경림 시에서 집단적 주체인 우리 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주체 의 수동성은 결국 폭력적인 자본과 권력으로써 농민과 노동자와 약자로서 의 도시민을 억압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폭력적인 타자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 하겠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신경림, 신경림 전집 1 2, 창비, 2004. 2. 논문 및 단행본 강영안, 주체는 죽었는가, 문예출판사, 1996, p.25. 김지녀, 김춘수 시에 나타난 주체와 타자의 관계 양상 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12, p.18. 박순희 민병욱, 신경림 시의 장소 연구 -시집 농무 를 중심으로-, 배달말 54, 배 달말학회, 2014, p.258. 서범석, 신경림의 농무 연구 -농민시적 성격을 중심으로, 국제어문 37, 국제어문 학회, 2006, pp.163-193. 송지선, 신경림의 농무 에 나타난 장소 연구 51, 국어문학, 국어문학회, 2011, 131 면. 신경림, 낙타, 창비, 2008, pp.120-124., 민중의 발견과 문학에 있어서의 참여 -몇가지 최근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숙대학보 22,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위원회, 1982, p.49. 신경림 편, 농민문학론, 온누리, 1983, p.20. 양문규, 신경림 시에 나타난 공동체의식 연구, 어문연구 50, 어문연구학회, 2006, p.263. 이강하, 신경림 농무 에 나타난 우리 의 의미와 효과, 동남어문논집 39, 동남어 문학회, 2015, pp.69-98. 이동희, 우리의 슬픔, 개인의 비애 -신경림의 농무 (1973)와 새재 (1979), 현대 문학의 연구 15, 한국문학연구학회, 2000, pp.187-189. 이정우, 주체란 무엇인가, 그린비, 2009, p.25.

560 韓 民 族 語 文 學 第 72 輯 Abstract We as a Collective Main Agent, and a Violent World -With focus on the relations between a main agent and others presented in Sin, Gyeong-rim s Poem- Jo, Hyo-Ju There frequent appears a collective main agent- We in Sin, Gyeong-rim s poems. We are very distinguishing in that We don t objectify people unlike the main agents appearing in other poets people poems. This writing, taking note of such a characteristic of Sin, Gyeong-rim s poem, aims at grasping a world which forms conflictory relations with Us, and clarifying the poetic meaning inherent in Sin, Gyeong-rims poem through the correlation between a main agent and others. A world as others, which are in conflict with a main agent, assumes a violent aspect. We, who are in conflict with such a world, are farmers, laborers and urban dwellers as an underdog. We as farmers are earning an impoverished living just in a state of being left out of capital. Although they feel grief and distress in the midst of poverty, they show a lethargic attitude towards power-wielding capital. Also, We, as laborers, are living as a passive person in front of the world having ruling power. We, who are living as an underdog in a city, aren t any different from farmers and laborers. Penniless urban dwellers, who were pushed out of the center of a city, are earning their passive living, alienated from the central world of capital and authority in the same way as farmers and laborers. The fear and rage we feel at others having power, and the passive attitude, which We take towards others, are not a main agent s inherent appearance. A main agent is an existence who is organized by others. Others get to have an influence on a main agent s cognition and attitude through the formation of relationships with a main agent. Accordingly, it might be safe to say that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 와 폭력적 세계 561 our cognition and attitude embodied by Sin, Gyeong-rim s poems are organized by a violent world, i.e. others. Anxiety and fear we feel, and a main agent s passivity are finally caused by others, i.e. a violent world, which suppresses Us, and makes us tremble with fear. Key Word : A Main Agent, Others, A World, Farmer, Laborer, Urban Dweller, Suppression(Repression), Violence 조효주 소속 :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전자우편 : nook-2@hanmail.net 이 논문은 2016년 3월 12일 투고되어 2016년 4월 10일까지 심사 완료하여 2016년 4월 16일 게재 확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