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 살기 좋은 곳에는 사람이 많은 법이고 그렇지 못한 곳에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요인일 것이 다.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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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04 생업과 경제활동 01 생업환경의 변화 02 기계화로 인한 편리함과 수입의 안정성 - 쌀농사 03 보리농사 04 밭농사 05 근면 성실한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 조개 채취업 06 새만금사업으로 판로가 점점 막막해 지고 있는 어업 07 농사와 바다일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 살기 좋은 곳에는 사람이 많은 법이고 그렇지 못한 곳에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요인일 것이 다. 그곳에 살면서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데 부족하지 않은 물산( 物 産 )들이 보장된 곳, 인간은 주로 이런 곳에 살고 있다. 심포마을은 이런 면에서는 인간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지닌 축복받은 땅이었다. 근면 성실한 육체와 정신만 있다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바다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 간척사업으로 생 긴 기름진 농토에서는 쌀과 보리 등의 곡물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가뭄을 제외하고는 자연재해도 거의 발 생하지 않아서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었다. 이렇게 좋은 경제조건을 가진 심포마을에 사람이 모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심포마을의 풍요로운 경제 적 입지조건은 지속적으로 이 마을에 인구가 유입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 현상에서 심포마을도 예외가 될 수 없었고 사람들은 심포마을을 떠나서 도시의 근대 적인 상공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좇아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포마을의 경제적 입지조건은 점점 매력을 잃어간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 심포마을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은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근면성실하게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 심포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예전에 비해서 다 소 매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눌러살 만한 가치가 있는 땅이었다. 이 장에서는 심포마을 사람 들이 심포에 살고 있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생업과 경제활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9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99

생업과 경제활동 01 생업환경의 변화 심포마을이 가지고 있는 경제기반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서 그 기반이 변해왔다는 점이고 오늘날에도 계속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의 경제생활에서 1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비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 다. 하지만 심포마을과 같은 농촌지역은 1차 산업이 그 지역 경제생활의 거의 전부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심포마을이 가지고 있는 경제기반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서 그 기반이 변해왔다는 점이고 오늘날에도 계속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심포마을은 본래 어촌이었다. 진봉산을 중심으로 약간 높은 구릉 밑에 마을이 형성 되었고 산 밑의 완만한 경사지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밭이 있었다. 수리시설이 마련되지 않아서 논은 매우 적었고 그나마 있는 논은 모두 천수답이었다. 이 정도 농토를 가지고 심 포마을 사람들이 먹고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당시 사람들의 주업은 바다일이었다. 농토가 없는 대신 심포마을에는 조개류가 널려 있는 넓은 갯벌이 있었고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많은 생선을 잡을 수 있는 황금어장이 펼쳐져 있었다. 심포마을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온 물산( 物 産 )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바다는 주인이 없어서 그곳에서 조개를 캐든, 물고기를 잡든, 그들을 제지할 사람이 없었다. 심포마을은 근면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심포마을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역사가 시작되고 심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계속 심포마을의 생업환경은 바다에서 나오는 것으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조용한 어촌 마을이던 심포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이 간척사 업 벌이면서다. 일본인들은 심포 인근의 넓은 갯벌에 주목했다. 일본인들에게는 바다에서 나오는 물산들보다는 농토에서 나오는 곡식이 더 중요했다. 그들은 바다를 메워서 농토를 1955년에 간행된 동진수리조합 사업상황 도.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것을 1955년에 한글로 번역하여 다시 발간한 것이다. 일 본인들은 멀리 운암 저수지에서부터 물을 끌어다가 전라북도 전역에 농업용수를 공 급했다. 일본인들에 의한 간척사업과 근 대적인 수리시설 확충은 조선시대에는 농 사를 지을 수 없던 곳에서도 작물이 자라 게 하였다. 심포마을은 이러한 영향을 가 장 많이 받은 지역이다. 심포마을은 본래 농토가 없었으나 전국에서 가장 넓은 농지 를 보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10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01

1. 다목 방조제 진봉반도 북쪽인 만경강 유역을 농토로 만들기 위해 쌓은 방조제 로 광활 방조제보다는 규모가 작다. 만경 읍 소재지에서 심포마을 쪽으로는 진봉 산이 펼쳐져 있다. 높은 산은 아니고 고 작 해발 5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산줄 기이다. 이 산줄기를 끼고 약간 높은 구 릉에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있었던 마을 들이 있다. 심포마을도 그 가운데 하나이 다. 해발이 낮은 곳은 인공적인 방조제 없 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었다. 다 목 방조제는 광활 방조제처럼 완전히 인 공적인 방조제가 아니라 높은 구릉과 구 릉을 연결한 형태이다. 만경면의 서쪽 끝 부터 시작하여 망해사 부근까지 연결되 어 있다 2. 광활 방조제 바깥쪽 진봉반도 남쪽인 동진강 유역을 농토로 만들기 위해 쌓은 방조제로 이 방조제가 완성되어 본래 지도 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광활면이 탄생하 게 된다. 현재는 이 방조제 바깥쪽으로 거 대한 새만금 방조제가 자리하고 있어서 점 차 방조제 바깥 지역은 육지가 되고 있었 다. 이 지역의 역사는 인간의 농토에 대한 욕망으로 풀이할 수 있다 3. 뒷산에서 바라본 심포마을과 넓은 들 판 전경 현재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만 해도 이 지역은 갈대밭과 갯벌이 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비만 오 면 물에 잠겨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었다고 한다 만드는 근대적인 간척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추진할 만한 경제력도 있었다. 갯벌은 밀물 때는 물이 들어와 있지만 썰물 때는 물이 빠져서 배를 타지 않아도 걸어 서 다닐 수 있다. 썰물 때 열심히 둑을 쌓으면 어느 정도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근대적인 간척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도 소규모의 간척은 빈번했다. 일본인들은 이 전 시기의 소규모 간척으로 조성된 약간의 농지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추진하여 심포마을의 자연환경 자체를 변화시켰다. 심포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진봉반도는 북쪽으로는 만경강 하구, 남쪽으로는 동진강 하구와 접해 있었고 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면에는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썰물 때는 물이 완전히 빠져서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의 갯벌이 수십 km가 펼쳐져 있었 으니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간척사업이었지만 손해 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결국 남과 북으 로 엄청난 규모의 방조제가 생기게 되었고 심포마을에도 넓은 농토가 생겼다. 인공적인 간 척사업으로 인해서 심포마을의 생업환경이 어촌에서 농촌으로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하지 만 농토가 생겼다고 해서 심포에 바다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방조제 바깥쪽으로 갯벌이 있었고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황금어장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하여 심포마을은 농업과 어업이 공존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서 광 복 이후에도 심포의 자연환경에는 변화가 없었고 농업과 어업이 공존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어업과 농업의 공존은 수입면에서 심포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고 이러한 매 력적인 입지조건 때문에 외부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시 작된 새만금사업은 심포마을의 자연환경 변화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토목공사 기술을 보유하게 된 인간은 일제 강점기 조성된 드넓은 농지에 만족 하지 못하고 더 넓은 땅을 원했다. 많은 반대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방조제 건설 공사는 시 작되었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현재 방조제는 완공되었다. 방조제 완공으로 인해서 점차 방 조제 안쪽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가 돼가고 있다. 과거 갯벌에서 여러 가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생업환경이 점차 바뀌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새만금사업은 심포마을을 완전한 농 촌마을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심포마을에 남아 있는 어촌적인 성격 의 경제생활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여하튼 심포마을의 경제생활을 이해하기 위 해서 가장 첫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인공적인 간척사업으로 야기된 자연환경의 변 화와 이로 인한 생업환경의 변화라고 하겠다. 1 2 3 10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03

생업과 경제활동 02 기계화로 인한 편리함과 수입의 안정성 쌀농사 생업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심포마을 사람들도 농민이 되었다. 심포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농업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물은 쌀이다. 1 2 3 생업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심포마을 사람들도 농민이 되었다. 다만 본래 농지가 없던 지역 에 간척사업으로 인해서 농토가 생긴 관계로 이들이 경작한 땅은 일본인 소유의 땅이었다. 심포마을 사람들은 일본인 지주 다목( 多 木 )의 토지를 소작 받아서 경작했다. 어민이 농민 이 된 셈이었다. 이러던 중 1945년 광복이 되고 일본인들은 쫓겨갔다. 광복 후의 귀속재산 은 모두 국가 소유가 되었고 1949년에야 농지개혁을 통해서 농민들에게 유상으로 분배되 었다. 이 시점에서야 심포마을 사람들에게도 자기 소유의 토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 소 유의 땅이라서 소작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생활 형편은 예전보다는 더 나아지게 되었다. 현재 심포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이때 가지게 된 농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이고 그 가운 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물은 쌀이다. 심포마을에는 밭이 별로 없다. 마을 뒷산인 진봉산 구 릉의 약간 경사진 비탈과 마을 안쪽에 약간의 밭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논뿐이다. 농사를 짓는 것은 예전부터 국부( 國 富 )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특히 한국인에게 하얀 쌀밥이란 배불리 먹고 싶은 것, 삶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농기계가 많이 보급되 기 전에는 쌀농사의 모든 과정을 사람의 힘으로 했다. 바쁜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는 허리 를 펼 날이 없을 정도로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농업 가운데 가장 기계화 가 잘된 분야가 쌀농사이다. 심포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1년 중에 농사일을 하는 시간이 50 일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현재의 농사일은 많이 간소해졌고 노동량도 많이 줄었다. 이 러한 농업 기계화로 인한 노동량의 감소와 이에 따른 여유시간의 증가는 심포마을 사람들 의 삶의 방식과 그 지역 사회의 여러 조직 문화에도 변화를 주었다. 1, 2. 일제 강점기 심포마을 인근의 모내 기와 우경 장면. 이 지역에서 벼농사가 대 규모로 시작된 때는 일제 강점기 무렵이 다. 일본인들은 이 지역의 바다를 메우 고 방조제를 쌓아서 대규모의 농지를 조 성하였다 3. 동진수리조합사업상황도 일본인들에 의한 간척사업과 근대적인 수리시설의 확충으로 이 지역은 한국의 대표적인 곡 창지대가 되었다 한편 이 지역은 자연재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수리시설이 매우 잘되어 있어서 가뭄 이 발생하더라도 물이 부족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논농사에 서 나오는 소출은 해마다 거의 일정하다. 밭농사의 경우 그해의 작황과 시장 상황에 따라서 농 산물의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쌀농사의 경우는 쌀값의 변동이 거 의 없다. 이러한 연유로 쌀농사는 수입 면에서는 밭농사보다는 좋지 않지만 기계화로 인해 농 사를 짓기가 매우 편하고 매년 들어오는 수입이 안정적인 장점이 있다. 쌀농사만 지어서는 수 입 증대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손해 볼 일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쌀농사의 특징은 쌀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생활의 안정을 제공한다. 그래서인 지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다. 쌀농사 과정은 이미 오랜 경험과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굳어졌기 때문에 기본적인 농사과정 외에 특별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 다. 농사과정에서의 실험정신이라든지 모험정신은 필요하지 않다. 농약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모를 심은 다음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김매 기를 할 필요 없이 제초제만 뿌려주면 잡초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또한 예전에는 약간이 라도 소출을 늘리기 위해 이앙기로 모를 심은 후에도 손으로 잘못 심어진 모를 교정해주는 작업(일명 논 때우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농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편리해지고 간편한 논 농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자. 10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05

쌀농사 과정 1. 보리짚 태우기 1모작 농사의 경우 보리짚을 태우는 과정은 없으나 2모작 농사의 경우 보리 수확을 마친 후 부터 벼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보리짚을 태우는 일이다. 예 전처럼 땔감이 부족한 시기에는 보리짚이나 볏짚은 지붕을 엮거나 소여물이나 땔감 등으 로 쓰이는 귀한 물건이었으나 현재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서 빨리 태워 없애는 것이 상책이 라고 한다. 다만 태운 보리짚은 논갈이를 할 때 같이 갈아지기 때문에 지력을 높이는 거름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간혹 보리짚을 태우다가 화상을 입기도 하는데 빨리 태워야 논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다가 사고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추수하지 않은 다른 사 람의 보리밭을 태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2. 논갈이 1모작 논의 경우 초봄에 논을 갈아둔다. 2모작의 경우 보리 추수 후 논갈이를 한다. 2모작은 시기를 놓치면 모내기가 힘든 경우가 발생하므로 논갈이 철에는 매우 바쁘다. 보리 추수 후 보리짚을 태우고 논을 갈아준 다음 논에 물을 대고 속칭 로타리 작업 이라 불리는 논갈이 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고 한다. 1 3 4 2 1. 출동한 소방차 2. 보리짚 태우기 작업. 보리추수 후 남은 보리짚을 빨리 태워서 없애야 논농사가 가 능하다 3. 보리짚 태우기 원경 4. 잔불을 살피고 있는 소방관. 보리짚을 태우다가 보리밭에 큰 불이 났다. 다행히 소방차가 빨리 출동하여 불이 잡혀서 큰 피해는 없었다. 이 무렵에는 보리짚을 태 우기 위해 놓은 불이 옆에서 아직 수확되 지 않은 보리에 옮겨 붙어서 발생하는 화 재가 빈번하다. 이때가 되면 소방서도 갑 자기 바빠진다고 한다 바로 옆의 논에서는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 고 있지만 보리를 심지 않은 1모작 논은 이 시점에 미리 논을 갈아서 엎어준다. 1 모작 논의 경우 대개 이르면 얼어붙은 땅 이 녹아내리는 3월이나 늦게는 4월 중순 경부터 논갈이를 한다. 2모작의 경우 보리 수확 이후에 논갈이를 한다 10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07

3. 모판 만들기 모판은 볍씨가 자라나는 요람( 搖 籃 )이다. 모판을 만들어서 파종하는 이앙법이 시행되기 전 에 많이 행해졌던 볍씨를 논에 바로 뿌리는 직파법( 直 播 法 )은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잡초 가 발생하거나 가뭄 등으로 물이 부족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볍씨를 안전하게 모판에 뿌려서 싹을 틔운 후 논에 심는 이앙법은 제초작업이 간소하고 수확량도 더 많아서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전국적으로 성행하였다. 다만 오늘날에는 제초제와 수리시설 등의 발달로 인해서 이앙법과 함께 임진왜란 이후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던 직파법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직파법도 2가지로 나뉘는데 물을 대지 않은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린 후 싹을 틔우는 직파법 과 물을 담은 논에 볍씨를 뿌리는 수파법 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직파법은 모판을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손이 들지 않아서 간편한 점은 있으나 물 등을 잘못 맞춰주면 액미가 생기는 등 실패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앙법에 비하여 초기 노동력은 적게 들어가지만 모를 논에 심은 후에 신경 써주어야 할 일이 많은 편이다. 심포마을의 경우 대부분의 농가에서 2모작 농사를 짓고 있다. 2모작이란 여름에 벼 를 심어서 가을에 추수한 후, 곧바로 보리를 심어서 이듬해 봄에 추수하는 것을 말한다. 1모 작에 비해서 당연히 수입이 월등히 좋고 농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포마을에서 2모작이 대대적으로 시행되는 연유는 보리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인데 10년 전쯤만 해도 보리 값이 너무 싸서 보리농사를 짓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보리가 건강 에 좋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어서 보리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현재 보리 값 은 쌀 값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1모작 농사의 경우 모판을 5월 초순부터 만들기 시작하고 2모작은 5월 하순(25일경) 부터 만든다고 한다. 모판에 들어가는 황토흙은 따로 외부에서 구입하는데 요즘은 상자에 담겨져 판매되는 제품이 있다고 한다. 먼저 모판을 준비하고 황토흙을 모판에 뿌린다. 볍씨를 뿌려서 싹을 틔우기 위함이 므로 너무 두껍게 해도 안 되고 얇게 해도 안 된다. 이와 동시에 모판에 뿌릴 볍씨는 큰 수조 같은 곳에 넣고 물에 불린다. 모판과 볍씨가 준비가 되었으면 모판 에 볍씨를 뿌린다. 너무 한 곳에 몰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모판에 골고루 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모판 하나에 볍씨가 다 뿌려지 면 모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싹은 약 5일 정도 지나면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싹 이 나면 모판 위에 살충제를 뿌린다. 이 때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벌레가 많 이 생겨서 애써 만든 모판을 다 버리게 된다고 한다. 1. 모판을 만드는 것은 쌀농사의 시작이 다. 모판을 만들어서 논에 이식하는 이앙 법은 조선후기부터 성행한 농법으로 실패 확률이 적기 때문에 현재도 선호되는 농법 이다. 다만 현재는 농촌의 노동력이 부족 한 관계로 이앙법과 함께 논에 직접 볍씨 를 뿌려서 싹을 틔우는 직파법도 시행되 고 있다. 쌀농사의 복고화가 진행되고 있 다고나 할까? 노동력의 부족과 농약 등의 발달로 인한 농업의 새로운 변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모판에 사용되는 황토흙 3. 모판에 이식하기 전에 볍씨를 물에 불 린다 4. 만들어진 모판. 쌀농사 과정 가운데 가 장 일손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2 3 1 4 10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09

4. 모판을 논 옆의 모판자리에 설치하고 생장시키기 집에서 만든 모판에 싹이 어느 정도 나면 경운기나 트럭에 모판을 싣고 논으로 온다. 논 옆 에는 논에 모를 심기 전까지 모판을 숙성시킬 목적으로 미리 자리를 만들어둔다. 모판 자 리에는 이미 모판을 옮기기 전에 물을 넣어둔다. 모판을 설치하기 직전부터 물을 빼기 시 작한다. 경운기에서 바로 땅으로 내릴 필요 없이 경운기를 천천히 이동시키면서 모판을 내리 고 바로 모판자리에 모판을 심는다. 이렇게 모판을 모두 설치한 후에는 모판 위에 부직포를 덮어준다. 보온을 위한 것으로 아직 연약한 싹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모판 설치가 끝나면 15~20일 이곳에서 숙성시킨다. 그러면 논에 심을 수 있을 정도 로 키가 자란 모가 된다고 한다. 5 6 1. 모판자리. 집에서 만든 모판을 모내기 하기 전까지 이곳에 두고 숙성시킨다 2. 모판을 싣고 논으로 간다. 요즘은 농로 가 잘되어 있어서 경운기뿐만 아니라 1톤 트럭이나 승용차도 논 바로 옆까지 갈 수 있다. 과거에는 지게로 실어 나르던 일을 지금은 기계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노동력 이 부족해도 힘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3. 모를 옮길 모판자리에 물을 대고 점검 중인 농부 4. 모판에서 싹이 난 볍씨들. 경운기에서 내려와 모판 자리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5. 모판을 경운기에서 곧바로 내려서 설 치한다 6. 모판을 모판자리에 심는다 7. 모판자리에 모판 설치하는 작업 광경 8. 설치된 모판들 9. 모판 위에 부직포 덮어주기 1 2 7 3 4 8 9 11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11

5. 논물대기 모내기를 위해서 논에 물을 댄다. 이때가 되면 밤에도 논에 물을 대느라고 양수기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리는데 요즘은 수량이 많아서 이웃 간 물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는 별 로 없지만 예전에는 논에 물을 대면서 다툼도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심포마을은 농촌진흥 공사에서 관리하는 수로를 통해서 농사용수를 공급받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서 일찍부터 수로정비가 잘되어서 농사짓기는 매우 수월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농촌진흥공사(마을 사 람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부르던 농조 라는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함)에서 논 1필지당 낟알 60kg을 받았다고 하는데 5년 전부터는 무료로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심포마을은 인근의 광활면에 비해서 물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광활은 수로의 높이가 논보다 높아서 수로만 열어주면 논에 물이 자연스럽게 공급이 되지만 심포 마을은 수로가 논보다 낮아서 펌프(양수기)를 이용해서 물을 논으로 퍼 올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논에 물을 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수로에 양수기를 설치한다. 전기가 논까지 공급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논에는 모터식 양수기가 아예 설치되어 있다. 전기가 들 어오지 않는 논은 발전기를 돌려서 물을 댄다고 한다. 양수기에서 퍼올린 물은 배수관을 통 해서 논에 공급된다. 배수관은 농로에서 논까지 길게 연결된다. 배수관이 움직이지 않도록 땅에 말뚝을 땅에 박아준다. 배수관은 추수 때까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사용한다고 한다. 6. 로터리 작업 논에 물을 댄 후에는 다시 논을 갈아주어야 한다. 이것을 심포마을에서는 로타리 작업 이 라고 부른다. 로타리 작업은 논밭을 갈아주는 기계를 장착한 트랙터를 이용해서 한다. 트랙 터가 로터리 작업 중이면 땅에 미동이 느껴질 정도로 진동이 대단했다. 트랙터 가격은 7천 만원 정도이고 로터리 장비는 5백만원이라고 한다. 1, 2. 논 바로 옆까지 전기 시설이 되어 있 다. 전기 시설의 유무는 논의 가격에도 반 영된다고 한다. 심포는 수로가 논보다 낮 아서 물을 대기 위해서는 양수기를 이용 해야 한다 3. 배수관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말뚝을 박 아준다 4. 본래는 변소의 용변을 푸는 데 사용했 다는 도구지만 현재는 양수기의 과열을 막 는 냉각수를 넣는 도구로 사용 중이다 트랙터를 이용한 로터리 작업 1 2 3 4 11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13

7. 비료 주기 로터리 작업이 끝나면 비료를 준다. 1필지 당 7~8포대 주는데 이것을 밑거름이라고 한다. 밑거름을 주는 이유는 작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대개 비료는 모내기가 끝난 후 주는 경우도 있고 모내기 전에 주는 경우도 있다. 트랙터에 달린 비료 살포기를 이용해서 비 료를 준다. 비료는 모내기 전에 주는 것이 좋으나 사정에 따라서 모내기 직후에 주는 경우도 있다 1, 2. 모판을 이앙기로 옮긴다. 6조식 이 앙기로 모를 심었는데 이 이앙기는 모를 6 줄을 한꺼번에 심는 기계이다. 이앙기는 대부분 일제가 많다고 한다. 논 주인은 모 옆 고랑에 서 있다가 이앙기가 오면 모판 을 이앙기 기사에게 건네준다. 이앙기 기 사는 모판을 이앙기에 적재한다 3. 모를 심고 있는 이앙기. 논 1필지에 모 를 심는 데 불과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이앙기를 이용한 모내기는 효 율적이다 4. 이앙기로 모를 심는 동안 농부는 논을 고른다 8. 모내기 논 옆의 모판자리에 옮겨진 모판에서 모가 논에 심을 정도로 키가 자라면 모판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다. 이것을 모내기[ 移 秧 ]라고 한다. 1모작 농사는 5월 25일경에 모내기를 시작하 고 2모작은 6월 10일 이후에 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손으로 모를 심었지만 요즘은 이런 모 습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전부 이앙기를 이용해서 모를 심는다고 한다. 이앙기는 모가 들어 가는 수량에 따라 8조식과 6조식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허리 한 번 곧게 펴지 못하고 모를 심던 것은 이미 너무나 오래된 일이다. 이제는 모든 논에서 이앙기를 이용한다. 1필지 논의 모를 심는 데 불과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모판을 만드는 일이 손이 많이 가서 그 렇지 정작 모내기 작업은 너무나 간단했다. 이앙기 비용은 1필지당 8만원이라고 한다. 이 앙기는 심포마을에서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한다. 대개 대농지를 경작하는 젊 은 농부들이 농기계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1필지의 논에 필요한 모판은 180~200판 이라고 한다. 모내기가 끝난 후 17일 안에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 이때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잡 풀들이 많이 난다고 한다. 과거 농약이 별로 없을 때는 모내기 후에 잡초를 제거해주는 김 매기 작업이 가장 힘든 노동이었다고 한다. 특히 김매기철이 한국에서는 가장 더운 6~7월 경이어서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고 한다. 살충제는 대개 1필지당 6봉지 정도를 살포하는데 본래 정량은 4봉지 정도이나 만일을 대비해서 더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 후 10일 정도 있다 가 요소비료를 1필지당 3포대 정도 뿌려준다. 이것을 웃거름이라 하는데 벼의 낟알이 영그 는 데 도움을 주는 비료라고 한다. 1 2 3 4 11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15

9. 논 말리기 2모작 기준으로 대개 7월 10일경부터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한다. 모내기 후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인데 이 시기에 논에 물이 있으면 뿌리가 튼튼해지지 않고 문고병, 도열병 등이 발생하 기 쉽다고 한다. 논의 물을 빼고 말리는 데는 10일 정도 걸린다. 논의 고랑을 열어서 물을 뺀다 12. 추수 2모작 기준으로 10월 중순경부터 추수가 시작된다. 과거에는 낫을 가지고 일일이 사람 손 으로 추수를 했으나 요즘은 콤바인이 아니면 추수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심포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진봉면은 경작 면적이 전국적으로 매우 큰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추수철이 면 외지에서 콤바인을 보유한 업자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콤바인은 가격이 8천만원이고 고장이 자주 나기 때문에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상당히 부담된다고 한다. 심포마을에도 몇 명의 젊은 농부는 콤바인을 보유하고 있다. 콤바인 작업비용은 1필지당 10만원 정도인데 해마다 물가변동 상황에 따라서 가격은 약간씩 차이가 난다고 한다. 1필지 작업하는 데 불 과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추수가 된 벼는 경운기나 트럭에 실어서 집으로 운반해 온다. 13. 건조작업 심포마을에는 대개 집마다 건조장이 있다. 건조장이란 쌀이나 보리를 수확 후 수분을 말리 는 기계이다. 예전에는 맑은 날 길가에 나락을 놓고 말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요 즘은 이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대신 인공 건조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추수된 쌀을 하루 정도 건조기에 넣고 말리는데 수분이 14% 정도 남도록 건조시킨다고 한다. 10. 논에 물대기 2모작 기준으로 7월 20일경에 다시 논에 물을 댄다. 이때 이삭 거름을 주는데 이는 열매를 크게 만들어 소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1. 건조기가 없던 시절에는 길가에 멍석 등을 깔고 낟알을 햇볕에 직접 말렸다. 요 즘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출처는 심포마을 강종일 씨 댁 앨범이다 2. 건조기. 추수된 쌀과 보리를 말리는 기 계이다. 도정 작업은 외부에서 하지만 대 개 건조는 직접 농가에서 한다. 건조가 잘 되어야 밥맛이 좋고 질 좋은 쌀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11. 농약 살포 이후에는 크게 논농사에 신경 쓸 것은 없고 추수 때까지 농약(살충제)을 5차례 정도 살포하 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농약 살포작업 광경. 경운기 등에 농약통 을 싣고 농약 살포기로 뿌린다. 넓은 대단 위 논의 경우는 헬리콥터나 비행기로 농약 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농약과 비료 의 발달은 농업 생산량의 비약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1 2 11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17

14. 도정 작업 도정( 搗 精 )은 낟알의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이다. 예전에는 어느 마을이나 연자방아나 물레 방아 등이 있어서 여기에 낟알을 넣어서 껍질을 벗겨냈다. 그래서 지금도 도정 작업을 방아 찧기 라고 한다. 도정은 대개 방앗간이나 농협공판장 등지에서 하는데 80kg 쌀 한가마니의 도정 비용은 쌀 3.5kg이라 고 한다. 1 2 3 15. 쌀의 판로 이렇게 생산된 쌀의 판매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개 쌀을 도정한 정미 소에 그냥 넘기는 경우도 있고 농협에 위탁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쌀 가격은 해 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고 한다. 2006년에는 80kg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은 13만 8천원이었 고 추곡수매 가격은 40kg이 5만 2천원이었다고 한다. 대개 쌀의 가격도 어떤 품종을 썼는 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한다. 대개 사람들이 선호하는 품종은 신동진벼, 동진찰벼, 용 화벼, 동진1호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종자의 쌀이 밥맛이 좋아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유명 일본 품종인 아끼바리 는 실제로는 소문과는 다 르게 수확은 좋으나 밥맛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해서 호남지역에 서는 이 품종을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현재 다른 지역에서 나는 쌀들에 비해 서 호남미의 가격이 저렴한 것이라고 한다. 논 1필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적게는 23가마니 에서 많게는 27가마니 정도라고 한다. 농사에 들어간 농약값, 비료값, 농기계 운임 등을 제 외하면 실제 1필지당 이윤은 이보다 훨신 적다고 한다. 1. 추수철이면 도정소들에서는 경쟁적으 로 현수막 등으로 광고를 한다. 농민들 입 장에서는 약간이라도 싼 가격에 도정을 하 는 것이 유리하게 때문에 도정소 간의 출 혈 경쟁도 빈번하다고 한다 2, 3. 진봉농협미곡종합처리장. 진봉면에 서 나오는 쌀과 보리 등을 도정하는 곳이 다. 추수철이면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 이 곳에서 나온 쌀이 삼성 홈플러스 알뜰쌀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농협에 비해 서 판로개척을 잘 해서 그 외 지평선쌀 브 랜드로 나가는 고급쌀도 있다고 한다 1. 강공철 씨의 콤바인 2. 강공철 씨의 개인 농기계 창고. 심포 농 기계 보관창고라고 간판을 달았지만 강공 철 씨 개인 소유라고 한다 16. 쌀농사의 부대수입 - 농기계 운영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농기계가 필요하다. 농기계는 부족한 일손을 덜어주는 중 요한 도구인데 심포마을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농기계가 그리 많이 보급되지는 않 았다고 한다. 하지만 넓은 면적의 농지를 경작하는 젊은 농부들은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의 대형 농기계를 두루 보유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경작하는 농지에서 이 기계 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대규모의 농지를 경 작할 수 있다. 강공철 씨(1953년생)는 3대의 트랙터, 콤바인, 관리기 등을 보유한 이 마을의 젊은 농부이다. 그는 따로 농기계 창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기계 욕심이 많았는데 혼자서 논 12필지(14,400평)를 경작한다고 한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이렇게 넓은 규모의 경지를 혼자 경작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강공철 씨는 12필지 외에도 추가로 농 지를 임차하여 경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광활면에는 농부 혼자서 3만평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강공철 씨는 추수를 끝낸 후 강원도 철원 등지로 가서 콤바인 영업을 한다고 한다. 김 제시에서는 강공철 씨를 포함해서 대략 5대 정도가 나간다고 하는데 수입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콤바인의 가격은 7천만원 이상이지만 기계 수명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 다. 이렇게 값비싼 콤바인을 자기 보유의 농지에서 추수철에만 잠깐 사용해서는 수지를 맞 출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추수철 콤바인 영업 수요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서 부 대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강공철 씨가 주로 가는 지역은 강원도 철원이라고 한다. 강공철 씨가 구입한 콤바인, 트랙터 등의 농기계는 정부에서 저리로 대출해주는 돈 을 빌려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강공철 씨의 말에 의하면 7천만원짜리 농기계를 단돈 1백 만원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몰고 집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농기계 구입에 들 어가는 돈은 빌리기 쉽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농기계 구입자금은 고스란히 농가 부채로 남 게 된다고 한다. 농기계를 많이 가동해서 기계의 내구연한이 다가오기 전에 본전을 뽑고 농 기계 구입을 위해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의 경작 면적으로는 농기계 구 입에 들어간 비용을 뽑고 수지를 맞추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강공철씨는 이 지역 인구 노령화로 인해서 나오는 위탁 경영 농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농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행여 임대농지가 나와도 친척들을 중심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1 2 11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19

생업과 경제활동 03 보리농사 요즘은 보리가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어서 보리값이 쌀값 못지않게 비싸다. 그래서 심포마을에서도 10년 전부터 보리농사를 다시 짓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보리값이 너무 싸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봤자 농사비용조차 뽑기 힘들 정도였다 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가에서 2모작을 하지 않고 쌀농사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 즘은 보리가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어서 보리값이 쌀값 못지않게 비싸다. 그 래서 심포마을에서도 10년 전부터 보리농사를 다시 짓고 있다고 한다. 현재 보리 가격은 쌀 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요즘 시장에 나가 보면 잡곡의 가격이 쌀보다 오히려 비싼 경우 가 많은데 보리는 잡곡 중에서는 그나마 싼 편이라고 한다. 심포마을이 있는 진봉반도 일대는 전국적으로 보리농사를 가장 많이 짓는 지역이라 고 하며 생산된 보리의 품질 또한 수준급이라고 한다. 보리농사는 이 지역 농민들에게 소득 면에서 많은 이익을 주고 있다. 대개 논을 임차해서 경작하는 경우 소작료가 수확의 절반에 이르기 때문에 쌀농사만으로는 농사비용 등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는데 보리 농사는 소작 료 책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보리농사에서 얻는 수입은 고스란히 경작자의 몫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인구가 줄고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경작권이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특히 농기계를 보유한 젊은 농부들의 경우 경작 면적을 넓게 확보하는 것이 전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한 평의 땅이라도 더 경작하고 싶어한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 보리가 익을 무렵 이 지역은 황금들판으로 변한다 12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21

보리농사 과정 1. 볏짚 태워서 거름으로 사용하기 2모작 농사에서는 쌀농사를 짓기 위해 보리짚을 태우듯이 보리농사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 야 할 일이 바로 볏짚을 태우는 일이다. 벼 수확 후 남은 볏짚은 예전에는 지붕을 엮고 새끼 줄도 만들고 소의 여물로도 쓰이는 귀한 존재였으나 요즘은 별로 쓸 데가 없다고 한다. 그 래서 보리농사를 위한 거름으로 쓰기 위해서 태워버린다. 2. 보리종자 살포 보리는 쌀처럼 모판을 만들어서 물을 대놓은 곳에 심는 것이 아니라 여타의 다른 밭작물처 럼 그냥 마른 땅에 씨를 뿌려서 재배한다. 보리종자는 비료를 살포할 때 사용하는 살포기로 뿌린다. 대략 1필지당 100kg 정도의 종자를 뿌린다고 한다. 3 4 3. 복합비료 살포 종자를 뿌린 후 어느 정도 보리 싹이 올라오면 복합비료를 살포한다. 1필지당 8포대 정도 뿌려준다. 복합비료는 보리의 생장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비료를 뿌 릴 때는 먼저 보폭으로 어림잡아 비료를 뿌릴 면적을 미리 정해둔다. 비료가 골고루 뿌려져 야 좋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1. 보폭으로 어림잡아 비료를 뿌릴 면적 을 미리 정해둔다. 그래야만 특정한 곳에 만 비료가 많이 뿌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 다. 사진에 보이는 포대가 면적을 나눈 표 시이다 2. 비료살포기에 비료를 넣는다. 예전에는 비료 포대를 들고 다니면서 손으로 뿌리기 도 했다는데 요즘은 비료 살포기를 이용해 서 비료를 준다. 농기구의 발달로 점점 농 사는 편해지고 있다 3.비료살포기의 시동을 건다. 손으로 힘껏 당겨야만 시동이 걸린다 4.시동이 걸리면 비료살포기를 등에 메고 밭으로 나가서 비료를 뿌린다. 먼저 정해 둔 표시를 넘지 않고 뿌려야만 비료를 골 고루 뿌릴 수 있다 5. 비료가 뿌려진 밭 1 2 5 12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23

4. 제초제 살포 논농사와 마찬가지로 잡초는 작물의 생장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제초제를 살포 하는 것은 농사에 필수적이다. 제초제로 주로 쓰이는 농약은 하모니 수화제, 마세트, 그락 목손, 스토프 등이다. 비료는 기계나 연무기 등으로 살포한다. 5. 웃거름 주기 3월 중순경에 요소비료를 웃거름으로 주는데 웃거름은 보리 열매를 실하게 만들어 소출과 직결된 비료라고 할 수 있다. 1필지당 5포대 정도 준다고 한다. 3번, 4번 과정과 같은 방식 으로 준다. 6. 성장 억제제 살포하기 비료는 벼와는 달리 줄기가 비어 있어서 키가 너무 커버리면 넘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키가 너무 크지 않도록 하는 성장 억제제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 1 1 2 3 4 1. 비료를 살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폭 으로 대략의 살포 면적을 표시해둔다. 농 약을 골고루 살포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2. 비료 살포기에 물을 붓는다. 농약은 물 에 희석시켜서 뿌린다 3. 농약을 물에 타고 희석시킨다 4. 농약 살포기를 등에 메고 밭에 나가서 농약을 뿌린다. 미리 표시해둔 지점을 잘 보고 살포해야만 농약을 골고루 뿌릴 수 있다 1. 속이 비어 있는 보리 줄기.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약해서 키가 너무 커버리면 넘어진다고 한다. 보리로 피리를 불 수 있 는 것은 이렇게 보리 줄기가 비어 있기 때 문이다 2. 점점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 이 무렵이 면 심포마을은 황금밭으로 변한다 2 12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25

7. 보리 추수 보리는 망종(약력 6월 6일경) 후 5일 정도 지나면 추수를 한다. 쌀농사와 마찬가지로 보리 추수도 콤바인을 이용해서 하는데 요즘 생산되는 콤바인들은 대개 쌀과 보리를 모두 추수 할 수 있는 기종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겸용 콤바인들은 벼를 베는 속도는 빠르지만 보리 의 경우는 그리 능률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콤바인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소유의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전용 콤바인을 이용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가장 대단위로 보리농사를 짓는 지역이다 보니 보리추수철이면 보리 전 용 콤바인을 가진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든다. 보리 추수가 한창인 2007년 6월 7일 진봉농협미곡종합처리장 앞의 윤 씨의 보리 밭에서는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산양리에 거주하는 양 씨가 보리 추수를 하고 있었 다. 양 씨는 벌써 6년째 윤 씨의 보리를 추수해주고 있다고 한다. 양 씨는 김제 지역 외에도 서산, 부안, 영광 등지에서도 보리를 추수한다고 한다. 그가 보유한 콤바인은 크라스 콤바인으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콤바인이다. 대당 가격이 7천만원 정도로 매우 고가이다. 김제 지역에도 이 기계를 보유한 사람이 있으나 많지 않아서 추수철에는 전국의 크라스 컴바인 보유 농민들이 김제로 모여든다고 한다. 추수를 해주는 가격은 1필지당 20 만원으로 매우 비쌌는데 그 이유는 기계값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 씨는 보리 추수일을 마치면 육지에서 기계를 수리해서 제주도로 돌아간다고 한다. 양 씨는 제주도에서 1만 2천평 정도의 농지에 보리맥주를 재배한다고 한다. 그는 보리맥주 추수를 빨리 마치고 김제에 와서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양 씨말고도 전라남 도 장성의 업자들도 이곳에 많이 와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의 보리밭에서 생산되는 보리는 품질이 매우 좋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 에서 수요가 많다고 한다. 1필지당 보리 생산량은 80kg 20포대로 쌀보다는 적은 편이라고 한다. 1. 외지에서 심포로 몰려온 보리 추수 업 자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여관도 보리 추 수철이면 이들로 북적인다. 대개 제주도, 전라남도 영광 등지에서 이곳으로 많이 온 다고 한다. 보리농사용 콤바인은 전부 수 입산으로 기계값이 비싸서 대개 빌려서 사 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2. 보리 추수 전용 콤바인 추수 장면 3. 겸용 콤바인 추수 장면 4. 논둑에 차를 대고 있다가 콤바인에 보 리가 가득 차면 차 위에서 바로 보리를 받 는다. 사람의 손으로 하는 작업은 거의 없 다 5. 보리가 노랗게 익은 들판의 정경은 아 름답다 3 4 1 2 5 12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27

8. 건조 작업 쌀농사와 마찬가지로 보리도 추수 후에 건조장에서 건조해야 한다. 쌀보다는 건조온도를 다소 높게 잡아야 하고 시간도 더 걸린다고 하는데 온도는 160도 정도이고 2일 이상 말려 야 한다고 한다. 10. 보리 판매 심포마을에서 생산된 보리의 판매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경작 면적이 그리 넓지 않은 사 람들은 도매상이나 업자들을 통하지 않고 도시에 사는 친지들을 이용해서 직접 판로를 개 척한 사람들이 많다. 판매 가격은 5kg 포장이 1만원이라고 한다. 다만 택배비 4천원은 판매 자가 부담한다고 한다. 요즘은 보리의 인기가 좋아서 추수 후 몇 주 정도면 모두 팔려 나간 다고 한다. 9. 도정 작업 보리 도정도 주로 농협미곡처리장이나 인근의 사설 도정소에서 한다. 다만 보리 재배 면적 이 크지 않은 농가의 경우 보리도정용 가내 도정기로 하는 경우도 있다. 도정비는 40kg당 보통 5천원 정도이나 요즘은 경쟁이 심해져서 3천원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금년 보리농사는 평년작 수준이었다. 그 이유는 봄가뭄이 심했고 추수 전에 비가 많 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협미곡처리장에서 보리 도정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 분 농협과 선계약을 한 사람들이다. 선계약 재배란 농사를 짓기 전에 미리 농 협과 계약을 하고 생산물을 농협에 팔기로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다 만 가격은 시세에 맞게 책정이 되는 변동제라고 한다. 보리는 1필지당 2000kg 정도 생산된다고 하는데 도정용 큰 가마니로 2개에서 3개가 나 온다고 한다. 1 2 3 4 5 1. 택배차에 보리 도정 광고를 부착했다. 보리 추수철이면 도정소마다 경쟁이 심해 져서 택배차에 광고를 붙이거나 현수막 등 을 곳곳에 붙인다 2. 가내 보리 도정기를 이용한 보리 도정 작업. 도정소에 가지 않고 가내 도정기를 이용해서 도정하는 경우도 있다. 작은 규 모의 도정기이지만 성능은 좋다고 한다 3. 집에서 아예 단위별 포장작업까지 이 루어진다. 가장 작은 5kg단위부터 10kg, 20kg, 40kg까지 다양한 용량으로 포장 한다 4. 도정을 위해 보리를 가득 적재한 트럭들 5. 도정이 돼서 나오는 보리를 가마니에 받고 있다 택배를 이용한 보리 판매 광경. 보리 추수 철이면 전국 각지로 팔려 나가는 보리로 심포마을에는 택배차가 분주히 오간다. 물류의 발달은 지역의 경계를 없앴다. 과 거에 심포의 농부가 서울에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는 가락동시장에 직접 가야 했으나 지금은 전국 공통 택배비 4천원이면 전국 어디나 택배로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팔 수 있다. 물류의 발달이 준 혜택을 심포마 을 사람들도 보고 있는 셈이다 12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29

생업과 경제활동 04 밭농사 심포마을에 있는 밭들은 대부분 판매 용도의 농산물을 기르기 위한 밭이 아니고 대개 집에서 소비하는 밭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밭이 대부분이다. 심포마을에는 밭이 적다. 농지의 대부분은 논이고 밭은 마을 뒷산인 진봉산 자락에 조금 있 을 뿐이다. 심포마을에 있는 밭들은 대부분 판매 용도의 농산물을 기르기 위한 밭이 아니고 대개 집에서 소비하는 밭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밭이 대부분이다. 인근의 광활면에서는 논 을 밭으로 바꿔서 감자 농사를 지어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심포마을에서는 밭작물 보다는 쌀과 보리 등의 곡물류에만 전념하고 있다. 밭작물은 곡물류처럼 기계화가 되지 않아서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노동력도 훨씬 많 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활면에는 인근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젊은 농부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이런 일손과 노동량을 감당할 수 있지만 심포마을에는 대개 노령층이 많아서 밭작 물 농사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고 한다. 마을 뒷산의 밭 외에도 심포마을 사람들은 벼를 심고 남은 논의 자투리 공간에도 밭 작물을 심는다. 강종일 씨는 논 옆의 자투리 공간에 밭을 만들어서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 었다. 이 공간은 농기계가 들어가기 힘든 공간이라서 모를 심지 않고 밭으로 이용 중이라고 한다. 면적은 50평 정도로 재배면적으로는 매우 작은 편이었지만 이 공간은 매우 효율적으 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추, 상추, 고추, 마늘, 파 등의 집에서 소 비되는 대부분 작물이 재배되는 자투리 밭. 필자가 이 밭을 백화점 밭이라고 부르 자 강종일 씨의 부인도 맞장구를 치셨다 강종일 씨의 자투리 밭에서 재배되는 작물들 부추 상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고추 녹두 마늘 파 양파 옥수수 13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31

필자가 강종일 씨네 밭을 둘러볼 때 강종일 씨의 부인은 마늘을 수확 중이었다. 먼저 밭에서 마늘을 뽑아낸 후 줄기와 잎은 잘라내고 열매만 거두는 작업이었다. 밭이랑에 걸터 앉아서 도마 위에 마늘을 올리고 칼로 마늘을 자르는 솜씨가 매우 익숙해 보였다. 재배한 마늘을 모두 소비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팔기에는 너무 적었다. 여기서 생 산한 마늘은 주로 집에서 소비하고 남는 것은 주로 친지들이나 자녀들에게 보내준다고 한 다. 심포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논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자녀들에게 챙겨주는 것을 큰 즐 거움으로 생각하고 있다. 밭에서 손질한 마늘은 집으로 옮겨 말린다. 마늘은 음식 양념으로 사용되는 중요한 작물로 김장 때 특히 요긴하게 쓰인다. 강종일 씨는 50평 정도의 자투리 땅을 밭으로 가꿔서 집에서 소비하는 작물을 거의 모두 생산하고 있는데 이러한 연유로 고기, 과일 등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음식물만 시장 에서 구입한다고 한다. 마늘 옆에서 자라는 작물은 녹두인데 녹두는 금방 자라기 때문에 빨 리 수확한 후 배추를 300포기 정도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김장에 필요한 배추로 는 충분하다고 한다. 김장을 담가서 자녀들에게 보내고 집에서는 100포기 정도만 먹는다 고 한다. 2 1. 광활면에서는 몇 해 전부터 지평선 광 활 햇감자 라는 브랜드로 감자를 출하하 고 있다. 사진은 2007년 4월 14일 열린 광활 면민의 날 행사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감자들이다 2. 심포마을 뒷산의 구릉에 위치한 밭. 대 개 집에서 소비할 목적으로 파, 배추, 양파 등의 밭작물을 재배한다 3. 열심히 마늘을 다듬고 계신 강종일 씨 의 부인 4. 작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작물이 자라 고 있다 3 1 4 13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33

생업과 경제활동 05 근면 성실한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조개 채취업 조개 채취업을 하는 사람들을 맨손업자 라 지칭하는데 어구와 어선 없이 간단한 도구만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조개 채취업은 심포마을이 생긴 이후부터 대대로 내려온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한 경제 활동이다. 쌀농사와 보리농사 못지않게 심포마을 사람들의 경제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조개 채취업이다. 일반적으로 조개 채취업을 하는 사람들을 맨손업자 라 지칭하는 데 어구와 어선 없이 간단한 도구만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조개 채취 업은 심포마을이 생긴 이후부터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한 경제 활동이다. 심포마을 사람들치 고 조개를 캐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조개 채취는 옛날부터 이 마을의 경제를 떠받치 던 중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새만금사업으로 인해서 조개를 잡을 수 있 는 갯벌의 면적이 점차 줄고 있고 수입도 예전 같지 않아 조개 채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차 줄고 있다. 예전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때가 되면 바다에 나가서 조개 를 잡아서 많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농사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사람 들은 대개 조개잡이를 잘 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수입면에서 별로 이득이 되지 못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예전처럼 조개잡이만 해가지고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 이다. 심포 사람들에게 바다는 새로운 기회의 대상이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에게 바다는 열심히 일하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다. 새만 금사업 공사가 아직 진행되기 전에는 조개를 많이 잡는 사람의 경우 한 사람이 하루에 100kg 이상도 잡았다고 한다. 당시 시세에 현재 시세와 차이는 있지만 이것을 요즘 시세 로 환산하면 무려 30만원 정도가 된다. 조개를 잡는 일은 대개 여자들의 일이었는데 힘센 남자들도 하루 일당으로 이 정도 수입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상당한 고수입이 보장된 일 조개를 잡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복장은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모자, 긴 장 화, 작업복 등 작업하기 편한 차림이다. 조 개잡이는 대개 여자들의 일이다. 심포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명동마을, 규동 마을 사람들도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와 서 배를 타고 나가 조개를 잡는다 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새만금사업으로 인해서 점차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갯 벌이 줄었고 그나마 작업할 수 있는 갯벌에도 해수 유통이 잘 되지 않아서 점차 조개가 죽 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조개 채취에 매우 능숙한 베테랑 여성 작업자들도 15kg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이제는 점차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조개 채취는 심포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 을 가져다주었다. 농사일은 추수철에만 수입이 들어오는 일이지만 조개 채취는 추운 겨울 을 제외하고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때만 잘 맞춰서 조개를 잡으러 들어가면 항상 매일같이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홀로 심포마을로 이사를 온 젊은 여인도 조개를 잡아서 논밭을 구입하고 자식 을 훌륭히 키울 수 있었다. 심포 사람들에게 바다, 갯벌, 조개 는 생명줄이었다. 심포 사람들에게 조개 채취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현장 조사이다. 필자는 미리 심포마을 사람에 사는 씨와 약속 시간을 잡고 조개 채취 작업을 조사하기로 했다. 둑에서 출항을 기다리다 2007년 6월 30일 아침 7시, 심포항 둑(상무지)에서 필자는 조개를 잡으러 나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개를 잡으러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배를 타고 가는 방법 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트랙터를 타고 육지로 가는 방법이다. 전자는 주로 심포, 안하, 규동 등 13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35

도대바위 1 지의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고 후자는 거전리 사람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배는 주로 심포 항의 뚝방(상무지)에서 출발한다. 미리 배주인과 몇 시에 나가기로 약속을 한다. 배삯은 1 회에 1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인원이 충분히 차지 않으면 출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늘 사람들이 탈 배는 심포마을 전직 이장이신 김 씨의 선외기이다.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말로만 듣던 조개 채취 작업을 필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온 터라 약간 흥분되기도 했다. 본래 약속 시각이 아침 7시 30분이라서 필자는 30분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작업자들도 필자와 같은 시각에 대부분 나와 있었다. 하지만 정작 7시 30분이 되어도 배는 떠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서였다. 물 이 얼마나 빠졌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필자가 물으니 어떤 여인은 대뜸 바다 한 가운데의 조그만 바위를 가르치며 필자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저것이 도대바위란 것인데 저 바위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1순위, 그 다음이 2순위, 가장 낮은 것이 3순위인데 가 장 낮은 3순위가 보여야만 물에 들어갈 수 있어. 조개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의 복장은 간소했다. 젖은 갯 벌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긴 장화 는 필수품이었고 비료포 대로 만든 구덕 은 잡은 조개를 등에 담는 가방이었다. 또 어 망이 있었는데 잡은 조개를 계속 등에 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 2 에 조개가 어느 정도 구덕에 차면 이도에 옮겨 담는다. 한편, 1.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려주는 부표의 역할을 하는 도대바위. 높이가 서로 다른 3개의 바위가 있는데 가장 낮은 위치의 바 위가 보여야 갯벌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 로 물이 빠진 것이다. 필자의 게으름으로 망원렌즈 장착을 하지 못해 도대바위가 잘 보이지 않음을 양해 바란다. 2. 구덕. 조개를 잡을 때 등에 지는 가방이 다. 비료포대 등으로 손수 집에서 만든다 고 한다. 심포마을의 여러 집을 다녀보면 이런 종류의 조개 채취 도구들을 쉽게 찾 아볼 수 있다. 구덕을 등에 메고 조개를 잡 다가 조개가 어느 정도 차면 구덕에서 어 망으로 조개를 옮겨 담는다. 3. 그레. 조개를 잡을 때 가장 중요한 도 구로 어깨에 메고 뒷걸음을 치면서 땅을 훑는 도구이다. 새총 모양이며 재질은 나 무이다. 땅을 훑는 부분은 쇠로 되어 있어 서 견고하다. 새총 모양의 시작 부분에 손 잡이가 있으며 당을 훑는 부분에 걸려 있 는 줄은 허리에 매서 고정한다. 나무로 만 들어져 무겁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지 않 고 작업자가 자주 타는 배에 두고 다닌다 고 한다. 그레 는 조개를 잡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로 어깨에 메고 갯벌 을 훑은 도구이다. 출항! 그들의 들판으로 7시 30분이 넘어서도 사람들이 몇 명씩 오기도 했는데 심포마을 사람은 아 니고 인근의 규동마을 사람들이었다. 규동은 심포마을에서 1km 정도 떨어 진 마을로, 걸어서 오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온다.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기 때문에 구덕 안에 귤, 떡, 음료수 등의 먹을 것 을 싸가지고 오기도 한다. 같이 기다리고 있던 필자에게도 갑자기 흰떡을 한 덩어리 떼어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신다. 물이 없어서 퍽퍽했지만 온정이 느껴져 서 좋았다. 사실 요즘은 조개가 잘 잡히지 않아서 작업장까지 가는 배삯 1만원도 건지지 못하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심은 아직 후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요즘은 꽃게 산란기라서 어업 지도선이 꽃게 조업을 엄격하게 단속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근의 씨는 어업지도 선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꽃게를 잡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근처에 사는 씨가 취해서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을 크게 틀더니 지나가는 노인에게 주정을 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좋은 눈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지만 요 즘 새만금사업으로 어업생산량이 너무 줄어서 생계가 막막해진 그의 이러한 사정을 이해 3 13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37

2 3 4 하는 터라 조용히 넘어간다. 대개 이 지역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심정 은 씨와 같다고 보면 된다. 8시 10분이 넘어서야 겨우 도대바위의 3순위 지표가 보였고 사람들은 둑 밑으로 내 려가서 배를 타기 시작했다. 오늘 배를 같이 탄 사람들은 대부분 규동 사람들이었다. 선주 김 씨 내외, 규동 여인 7명, 남자분 1명 그리고 필자 이렇게 11명이 승선했다. 배에 사 용되는 연료는 갈 때 한 통 올 때 한 통 모두 2통이 든다고 한다. 어선의 연료는 정부에서 나 오는 면세유가 있어서 저렴한 편이라고는 하나 엔진의 연비가 좋은 편은 아니라 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승선하자 선주 김 씨는 시동을 걸고 배를 출발시킨다. 우리의 행선지는 새만금호의 북단이라 할 수 있는 군산비행장 앞 갯벌이다. 선 외기는 속도가 무척 빨라서 1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할 수 있었다. 작업장인 군산비행장 앞 갯벌에 도착했지만 아직 작업을 하기에 물 이 충분히 빠지지 않아서 배 안에서 10여 분 더 대기했다. 우리보다 빨리 출발한 배도 도착해서 대기 중이었다. 드디어 물이 어느 정도 빠지고 작업 장으로 가기 위해 배에서 내렸다. 한꺼번에 한쪽으로 모두 다 내리면 배가 중심을 잃고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한 명씩 내렸다. 배에서 내려 서 작업장까지 걸어가는 데 5분 정도 걸렸는데 조금 걷다 보니 점점 수심 이 얕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 물이 완전히 빠진 갯벌이 나왔다. 걷다 보 1. 어업용 면세유 전용 용기. 일반 난방이 나 차량 운행용 연료는 세금이 많이 부과 돼 있기 때문에 영세 어민이나 농민이 사 용하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래서 정부에 서는 배를 보유한 어민과 농기계를 보유 한 농민에게 특별히 면세유를 제공하고 있 다. 다만 면세유 공급량은 따로 정해진 것 이 있어서 무제한 공급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동안 농어업용 면세유를 승용 연 료로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서 단속이 있 었다고 한다 2. 배를 타기 위해 둑 아래로 내려가는 사 람들. 과거에는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 를 타다가 물에 빠져서 죽은 사람도 있다 고 한다 3. 배에 오르는 사람들. 따로 정박시설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배를 타기 위해서는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야 한다. 비닐 장 화는 이들에게는 필수품이다 4. 작업장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 들. 배를 타고 가면서도 가져온 과일을 서 로 나누고 있다. 속도가 무척 빨라서 배가 흔들렸지만 이들에게 이러한 흔들림은 매 우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니 이미 도착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작업장까지 걸어서 가다 보면 마치 이 사 람들이 물 위에 떠서 작업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굉음을 내며 기계로 작업하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기계 작업은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곳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고무 튜브 같은 것에 기계를 올리고 물 밑으로는 고무 튜브를 넣어서 조개를 품어내는 방식이다. 사람들 말 로는 새만금사업의 여파보다도 요즘 성행하는 이러한 기계식 조개잡이 때문에 조개가 더 없다고 한다. 같이 간 어떤 사람은 저 사람들 때문에 조개씨가 마른다고 불평을 했고 또 어 떤 사람들은 저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하면서 두둔했다. 갯벌에서 삶을 일구다 사람들은 갯벌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침묵이 흘렀다. 물이 빠져 있는 시간 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갯벌에 오르면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묵묵히 작업도구인 그레를 허리에 매기 시작했다. 작업 과정은 매우 간단하고 단순했는데 먼저 그레로 뻘을 얇게 훑다가 조개가 나오면 손으로 잡는 방식이었 다. 말로는 단순하고 간단했지만 사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노동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제 곧 7월이라서 날씨는 찌는 듯 더웠고 바다 한가운데 생긴 갯벌에 그늘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작업을 하러 온 사람들이 전부 얼굴을 거의 가리다시피 하고 온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레질은 보기에는 쉬웠지만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작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허리에 큰 무리가 가는 작업이었다. 또한 조개가 나오면 조개를 잡기 위해 허 1 13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39

1 2 3 4 리를 구부려야 했는데 100개의 조개를 잡기 위해서는 하루에 백 번, 1000개의 조개를 잡기 위해서는 하루에 천 번, 허리를 구부려야 했으니 노동의 강도는 매우 강했다. 새만금사업의 물막이 작업까지 완료되어서 조개로 얻는 수입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 은 조개를 캐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있는 갯벌에는 우리 일행 10명, 다른 배를 타고 온 사람 13명, 모두 23명이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은 매우 조용하다. 서로 잡담을 나누거나 의견을 나눌 시간적 여유가 없다. 간혹 목이 말라서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거나 용변을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다들 열심히 갯벌을 훑었다. 이곳은 육지처럼 이미 상당 기간 물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있었던 곳도 있었는데 이 런 곳은 조개가 살지 않는다. 그래서 작업은 대개 물이 들어오는 쪽부터 시작했다. 갯벌에는 숨구멍도 있었다. 갯벌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숨구멍을 보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숨구멍 아래에는 게, 조개 등의 여러 바다 생물이 살고 있다. 한편 갯벌에는 곳곳에 죽은 물 고기들도 보였는데 어민들이 잡았다가 버린 물고기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며 종종 물이 빠져 도 모르고 있다가 갇혀서 죽은 물고기들도 있다고 한다. 한편 갯벌에는 농약병, 비닐, 종이 등 의 쓰레기도 많았다. 작업 시작 후 1시간 20분이 경과된 시점에 규동에 사는 지난 홍 씨는 생합 1.5kg 정도를 잡았다. 현재 1kg당 시세가 3,000원 정도라고 하니 4,500원 정도 번 셈이다. 필자는 홍 씨를 관찰하며 1시간 동안 몇 개의 생합을 잡는지 관찰해보았고 그 결과가 위의 표 1. 물이 빠지길 기다리는 배. 물이 덜 빠 지면 조개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종종 배에서 내리지 않고 대기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2. 배에서 내려 작업장으로 향하는 사람 들. 배는 수심이 얕은 곳에 가면 지면에 걸 려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무릎 정도 수심까지만 간다. 그 위치 에서 사람들은 내려서 작업장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3. 배에서 내려서 작업장으로 향하는 사람 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배에서도 사람 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광경이 었다. 현장 조사를 하는 동안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은 아마도 사진일 것이다. 대체로 우리가 생산한 사진들은 사실을 있 는 그대로 기록하는데 중점을 둔 다큐멘터 리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 적인 사진을 찍는 것도 조사자에게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종종 사실을 좀 더 아름답 게 기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4. 갯벌. 지금보다 더 갯벌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새만금호 안에서 갯벌이 드러나는 곳이 몇 군데밖에 없다고 한다. 새만금사업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지역의 갯벌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갯벌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 으로 예상된다 시간대별 조개채취 수량표 순위 시간 수량 순위 시간 수량 1 10시 43분 ~ 10시 53분 14개 4 11시 16분 ~ 11시 26분 27개 2 10시 54분 ~ 11시 04분 34개 5 11시 27분 ~ 11시 37분 32개 3 11시 05분 ~ 11시 15분 32개 6 11시 38분 ~ 11시 48분 20개 합계 145개 이다. 1시간 동안 총 145개의 조개를 잡은 셈인데 이것을 무게로 환산하면 대략 2kg 정도 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1시간 동안 이렇게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능력 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도 하고 날짜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차이 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조개를 많이 잡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개잡이는 예전부터 대개 여자의 일이었다. 이곳에서 작업시간은 따로 정해진 것은 없고 물이 빠질 때 들어와서 물이 들어오면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없을 때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이 일정했지 만 현재는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서 배수갑문이 닫혀 있으면 아예 물이 빠지지 않는다. 갑문이 열려 있더라도 인공적인 조치로 인해 예전처럼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을 파악 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오늘은 거의 9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1시 30분까지 작업을 했다. 14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41

1 1, 2, 3. 그레질. 새총 모양의 그레로 갯 벌을 훑으면 조개가 보인다. 운이 좋으면 몇 번만 훑어도 조개가 많이 걸리는 경우 도 있고 운이 없으면 열 번 이상을 훑어도 조개가 보이지 않는다. 대개 작업을 시작 할 때에는 조개가 있는 곳을 잘 찾지 못하 다가도 작업이 무르익을 때에는 조개가 많 은 곳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개 잡는 양 이 늘어난다고 한다 4. 조개를 잡아서 배에 오르는 사람들 5. 돌아가는 배의 사람들. 많이 잡은 사 람들은 기분이 좋은 듯 물을 나누며 돌아 오지만 많이 잡지 못한 사람은 기분이 좋 지 않다 6. 구덕에서 내려져 어망에 담긴 조개. 이 정도면 10kg쯤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정도야 누구나 우습게 잡았지만 요즘은 하 루에 나가서 10kg을 못 잡고 오는 사람들 도 많다고 한다 7. 구덕 안의 조개를 어망에 넣고 있는 선 주 김 씨 2 4 5 3 6 7 14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43

1 4 2 3 6 5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요즘은 수입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작업 도중 징그럽게 (조개 가) 없네~ 라는 푸념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는 조개가 많이 준 셈이다. 갯벌에서의 실질적인 작업 시간은 불과 5시간 정도이다. 배삯 1만원을 뽑아 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마치 택시운전기사들이 회사 납입금 을 채운 후의 수입이 자기 수입으로 생각하듯이 조개 잡는 사람들도 배삯 1만원 어치의 조개를 잡은 후부터 실질적인 자기 수입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 다. 자칫 잘못해서 1만원어치도 잡지 못하는 날이면 그날은 손해보는 장 사가 되는 셈이다. 점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었 다. 1시 30분경에 작업이 종료되었는데 조개를 많이 잡은 사람은 어 망 가득 조개가 담겨 있었고 어망 하나도 채우지 못한 사람도 있었 다. 사람들은 배에 올라서서 서로 얼마나 잡았는지 확인하며 희비 가 엇갈리는 듯했다. 특히 동행한 선주 김 씨와 다른 남자분은 여자들에 비해서 조개를 별로 잡지 못했는데 조개잡이는 여자들 의 일이란 말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동행하신 남자분은 조 개를 가장 적게 잡았는데 잡은 조개를 팔지 않고 그냥 집에 가져가서 먹을 것이라고 한다. 내심 많이 잡은 사람들의 좋아하는 모습이 신경 쓰이는 눈치이다. 1. 심포항으로 입항 중인 일행들 2. 배에서 내리고 있는 사람들 3. 둑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 4. 육지에 오르자마자 조개는 바로 도매업 자의 손에 팔려 나간다. 저울을 바닥에 놓 고 대기하고 있는 도매업자 김용신 씨 5. 조개를 저울에 달고 있는 사람들. 오늘 잡은 조개의 양은 바로 저울에 표시된다. 표시된 중량은 바로 돈이기 때문에 상당 히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조금이라 도 돈을 더 받기 위해 노력할 것도 같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도매업자가 부르는 숫자 를 순순히 인정한다 6. 도매업자의 거래 장부. 이날 거래한 사 람들의 성적(?)이 다 기록되어 있다. 필자 가 이 장부를 노리고 접근하자 도매업자는 황급히 장부를 감췄다. 민감한 사항이 기 록되어 있는 장부였다 돌아오는 배에서 선주 김 씨는 휴대폰으로 조개 도매업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 금 심포 뚝방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알린다.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오르자마자 도매업자 김용 신 씨가 트럭을 대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용신씨는 저울을 하나 놓고는 익숙한 놀림으로 조개의 무게를 달아서 가지고 있는 단골 장부에 기록한다. 오늘 작업하러 나간 10 명 가운데 김용신 씨에게 생합을 판 사람은 모두 7명이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잡은 조개 의 양이 적어서 그냥 집에서 먹을 것이라고 한다. 잡은 양이 얼마나 적었으면 집에서 먹는 편이 더 이익이 되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심포에서 생산된 생합은 서울에서 인기가 매우 좋다고 한다. 오늘 잡은 것은 당일 바 로 서울의 노량진 수산시장과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등지로 직송되는데 조금이라도 싱싱할 때 팔아야 제 값을 받는다고 한다. 오늘의 현지 구입 시세는 kg당 3,000원이라고 한다. 김용 신 씨와 같은 도매업자들은 이것을 가져다가 크기별로 4등급으로 나눈다. 가장 하품을 종 패라 하고 이보다 큰 조개를 각각 소합, 중합, 대합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종패는 1kg에 3천 원, 소합은 4천~5천원, 중합은 6천원, 대합은 7천~8천원의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오늘 잡은 조개의 양 누나 은미 미진 오봉 숙 만석 미나 합계 12kg 16.5kg 18.5kg 14kg 16kg 12kg 15kg 104kg 14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45

생업과 경제활동 06 새만금사업으로 판로가 점점 막막해지고 있는 어업 심포마을은 과거에는 어촌이었지만 현재 심포마을에서 배를 부리며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농업 인구에 비해서는 적다. 이렇게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은 어민들에게도 농토가 생겼기 때문이다. 1 2 심포마을에서 배를 부리는 사람이 적은 이유 심포마을은 과거에는 어촌이었지만 현재 심포마을에서 배를 부리며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은 농업 인구에 비해서는 적다. 1 오히려 심포마을이 속해 있는 진봉면 심포리에서 유일하게 어촌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곳은 안하마을이다. 심포( 深 浦 )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이곳은 육지 쪽으로 깊이 들어온 포구였 지만 현재는 심포라는 본래 이름이 무색하게도 배를 댈 수 있는 포구가 없다. 심포에 본래 있던 포구의 기능이 안하마을로 옮겨간 것이 언제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인들 이 광활 방조제를 건설할 때부터 안하마을에 큰 포구가 생기고 건축 자재와 인부들이 드나 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안하마을에 근대적인 방파제와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시설이 생기면서 심포마을에 있던 전통적인 포구는 그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심포마을에 있던 포구가 안하마을로 옮겨지는 현상과 심포마을에서 어업에 종 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줄어든 점이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심포마을에서 안하마을에 있는 항구까지의 거리가 불과 500m 정도도 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는 지리적 위치 이동과 어업의 쇠퇴와는 별로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포마을을 조사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재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과거 자신의 조부나 증조부 때는 배를 부리거나 고기잡이에 종사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심포는 본래 어촌 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캐던 심포마을 사람들이 자연환경의 1. 심포항 안쪽의 돌산. 일본인들이 광활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자재로 사용하기 위 해 돌산을 깎아내서 현재는 절반도 남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광활 방조제 건설 작 업으로 현재의 심포항이 개발되어서 심포 마을이 가진 포구의 기능은 점차 사라지 게 되었다 2. 심포마을의 강종일 씨도 배를 부려본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사정상 처 분했다고 한다 3.숭어잡이 조업 광경 1. 심포마을에서 배를 부리는 집은 전직 이 장인 김오봉 씨, 강현상 씨, 강현섭 씨, 양길 수 씨, 양길봉 씨, 홍순호 씨, 김현범 씨, 강진 식 씨 등이다. 한편 현재 이 마을에 집을 보유 하고 있는 김영일 씨는 새만금사업으로 어업 수입이 떨어지자 부안으로 이주해서 계속 어 업에 종사 중이라고 한다. 3 14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47

변화로 인해서 농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농부가 된 곳이 심포라는 점은 앞에서 누차 이야기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지는 않겠다. 여하튼 현재 심포마을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의 수가 적은 것은 어민들에게도 농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토가 생겼기 때문에 어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 다. 일단 어업은 농업보다 수입이 좋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 해 동 안 쌀농사와 보리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은데 어업은 잘만 하면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심포마을에서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홍 씨는 2006년에 꽃게잡이로 수천만원 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물론 요즘처럼 국산 어패류의 가격이 비쌀 때이기에 이런 수입 을 올릴 수 있었겠지만 옛날에도 농업보다는 어업이 수입면에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 시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생명과 사회적인 위신이라는 점 이다. 바다에서 고기잡는 일은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위험하다. 잘못하면 고기를 잡으러 나 갔다가 풍랑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조업 중에 실수로 다칠 수도 있고 바다에 빠 져 죽을 수도 있다. 거전리 쪽에서 만난 신 씨는 예전 부산에서 큰 배의 선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정박하려고 닻을 내렸다가 닻줄에 발목이 감겨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일찍 발견돼서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 당시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한다. 이렇게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 위험한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 바다일은 농사일에 비해서는 위험하고 험하다.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하며 때때로 생 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생긴다. 일이 험하다 보니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농사일 을 하는 사람들보다 다소 거친 점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한다. 물론 그들의 성향이 다소 거 칠다고 해서 그들이 무례하거나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조 사 기간에 필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어민들도 많았고 마음이 담긴 음식을 건네주시며 필 자를 격려해주신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 많았다. 다만 직업의 특성상 외적으로 풍기는 인상 에서 느껴지는 다소 거친 면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정리해보면 어업이란 직종은 수입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나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안정적이지는 않은 일이었고 자신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고기잡이를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다소 거친 인상을 주는 직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개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 계를 이어가던 사람들도 농토가 생기면 고기잡이보다는 덜 위험한 농사일에 전념하게 되 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심포마을에서는 배를 부리며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 차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1. 심포에서 부안으로 이사를 간 김씨 의 집마당 한켠에는 전에 사용하던 그물이 놓여 있다. 새만금사업 때문에 이곳을 떠나는 어민들 새만금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다양하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환경적인 재앙이기 때문에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환경보호 적인 측면과 갯벌과 어장의 경제성이 농토보다 더 높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는 경제주의 적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새만금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경제우선주의이다. 새만금사업의 여러 청 사진을 제시하면서 낙후된 전라북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새만금사업이라 는 논리를 펼친다. 전( 前 ) 전북지사인 강현욱 씨는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새만금 재검토 논 의가 진행되자 서울로 상경해서 삭발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사업에서 양측 주장의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 금까지 새만금사업의 추진 경위와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새만금 개발안으로 보아서는 원안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 사회는 또 다른 인공적인 자연환경의 태풍 속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영 향을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바다와 관련된 일들이다. 새만금사업의 핵심은 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간척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바다와 관련된 일들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새만금 방 조제의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어도 조업이 가능하지만 아마도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 게 되어 점차 새만금 방조제 안쪽의 바다가 담수호로 바뀌고 방조제 안쪽에서 점차 말라가 고 있는 갯벌이 농토로 조성된다면 더 이상 현재와 같은 조업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시간 문제일 것이다. 어민들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이곳에서 조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놓고 손익을 계산하 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심포마을의 김 씨는 집을 비워두고 부안으로 이사해서 어 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생활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빠른 결단을 내린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니 어업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수입이 줄어들수록 아마도 이 지역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먼저 떠난 김 씨의 뒤를 따를 것이다.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느 시점까지 이곳에 남아서 어업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인지 저울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1 14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49

1 2 1. 심포에서 부안으로 이사를 간 김씨 의 집. 빈집이지만 종종 들러서 관리를 하 기 때문에 깨끗하다. 2. 심포항에 정박 중인 어선들. 점점 출항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아마도 이곳은 더 이상 어 항의 모습을 갖추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 다. 그때쯤이면 어민들도 모두 각기 살길 을 찾아서 떠날 것이다. 생존을 위한 비장한 투쟁 - 심포항 마지막 풍어제 2007년 3월 3일 오전 10시 심포항에서는 새만금지구 내측 항포구 마지막 풍어제(용왕제) 란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처음에 필자는 이 행사를 풍어제란 명칭이 붙어 있어서 동해안이 나 서해안에서 열리는 전통적인 어촌마을 굿으로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처음이자 마 지막으로 열리는 행사라고 한다. 행사 조사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 필자는 전날 풍어제를 주관하는 심포항 어촌계 사 무실에 들렀다. 어촌계 회원으로 보이는 분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이 행사의 취지를 알 게 되었다. 이 행사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새만금사업에도 불구 하고 방조제 안쪽에 아직까지는 어민들이 활발히 조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 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행사를 위해 어민들은 지역 언론사 및 공공기관에 초청장을 돌리고 행사에 참석해주길 요청했다고 한다. 어민들은 새만금사업으로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 었다. 본래 이 지역은 어족 자원이 풍부한 연안 어업의 보물창고였다고 한다. 해매다 이 지 역에서는 꽃게, 숭어 등이 풍부하게 잡혔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어업 생산물들은 맛이 좋아 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새만금사업으로 어업은 존폐 위기에 처해 있 다. 이러한 위기를 타계해보고자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도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는 많은 어 업 종사자가 있고 이 지역이 어업면에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이번 행 사의 목적이라고 한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행사 준비를 위해서 어촌계 회원들은 모두 나와서 열심 히 일했다.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사인 만큼 어느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나와서 일했다. 그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생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행사 는 전통적인 풍어제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인근의 안하마을에 거 주하는 무녀 강오목 씨를 불러서 무행을 주관하게 하였고 용왕대나 풍어기 등도 세웠다. 다 음날 행사에는 전통 무용인들도 초청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행사를 준 비하던 한 어민은 배를 타는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소 거친 것 같아도 사람들이 순진 하고 순수해서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을 잘 지키지 못한 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행사에 소요 되는 음식은 안하마을 어촌계장집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행사든지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은 빠질 수 없다. 내일 손님들을 대접할 식사는 식당에서 미리 맞춰놓았다고 하지만 풍 어제에 올릴 음식은 이곳에서 직접 장만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밖에서 무거운 천막과 테이 블을 나르며 풍어제를 준비하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열심히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내일 행사 중 무행을 담당하는 사람은 안하마을에 사는 무녀 강오목 씨였다. 무녀라 고 하지만 필자가 동해안 풍어제 등에서 보았던 화려한 무속 행위를 보여주는 무녀들과는 거리가 있는 그냥 평범하고 수수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시골 무당이라고 할까? 하지 만 어딘지 모르게 호기심이 당기는 존재이기도 했다. 강오목 씨는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 았지만 내일 행사에 직접 나서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제시내로 내일 행사를 집행 할 남자무당을 구하러 나간다고 한다. 필자는 강오목 씨를 따라가보기로 하고 김제시내까 지 필자의 차로 동행했다. 강오목 씨가 간 곳은 김제시내에 있는 한 불교용품점이었다. 불교 용품점에 도착해서 강오목 씨는 주인에게 남자무당을 구해달라는 말부터 꺼냈다. 주인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지만 내일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말을 건넨다. 강오목 씨는 주인 15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51

1. 어촌계 사무실 안에서 행사의 취지를 듣고 있다. 이번 행사는 전통적인 풍어제 가 아니라 새만금지구 내측 어민들의 이익 을 도모하기 위한 시위라고 한다 2, 3. 심포항은 평소보다 물이 심하게 많 이 빠져 있었다. 어민들의 말로는 새만금 방조제 수문 관리소에서 어민들의 행사 를 방해하기 위해서 물을 많이 뺀 것이라 고 한다 4, 5. 행사를 위해 천막을 치고 있는 어민들 6. 풍어제에 용왕대와 풍어기가 빠질 수 없다. 용왕대를 준비하는 어민들 1 4 2 5 3 6 15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53

1 5 6 7 2 3 4 8 9 10 의 말을 듣고는 그냥 자신이 무행을 하기로 결심한 듯 자신이 내일 입을 치마와 저고리를 구입한다. 대체 자신에게 들어온 일을 남에게 맡기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풍어제날 풍어제날이 밝았다. 날씨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고 구름이 많이 끼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 었다. 어제 준비한 용왕대에는 형형색색의 풍어기가 바람에 날렸고 중앙의 천막에는 풍어 제를 위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큰비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행사장 곳곳에는 물웅덩이 가 있었다. 어민들은 트럭에 흙을 실어와서 물웅덩이를 메우는 등 손님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풍어제는 강오목 씨의 무행으로 시작되었다. 무행은 먼저 강오목 씨가 용왕님 에게 예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심포항에 나가서 징을 치며 풍어제의 시작을 알리고 다 시 행사장으로 와서 경을 읽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름만 풍어제이지 실제로는 시위의 성 격을 가진 행사라서 사람들은 무행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강오목 씨는 사람들이 앞으 로 나와서 절도 올리고 돼지머리에 돈을 꽂아주기를 바랐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선주 몇 명이 앞으로 나와서 절을 올리며 돈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일정은 각계 인사들의 축하사, 사물놀이, 가야금 연주와 창, 고전무용의 순서로 이어졌다.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 공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날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새만금 방조제 끝의 신시도 앞까지 어선을 몰고 가서 선 상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었다. 심포항에서의 행사가 소극적인 형태의 시위였다면 방 조제까지 어선을 몰고 가서 벌이는 선상 용왕제는 좀 더 적극적인 형태의 시위이다. 필자는 1. 풍어제에 쓸 사과, 배 등의 과일을 물 에 씻고 있다 2.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 다. 풍어제에 올릴 생선을 준비하고 있는 여인들 3. 남자무당을 구해달라고 불교용품점 주 인에게 부탁하고 있는 강오목 씨 4. 치마저고리를 구입해서 나오는 강오 목 씨 5. 풍어기 6. 아침부터 풍어제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7. 음식물을 준비하는 사람들 8, 9. 풍어제단 전경 10. 행사장 한쪽에서 축의금을 접수받고 있다 11, 12. 풍어기를 단 어선들. 아직도 새만 금지구 안쪽에는 이렇게 많은 어선이 있다 13. 선주 몇 명이 앞으로 나와서 절을 올 리고 있다 11 12 13 15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55

1 2 6 7 3 4 5 선발대로 미리 떠난다는 한 어민과 함께했다. 트럭에 용왕기를 싣고 거전마을 쪽의 육로를 통해서 갯벌로 들어갔다. 거전마을 사람들이 조개를 잡으러 들어가는 길이라고 한다. 갯벌은 이미 육 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과거에는 물이 빠진 후 트랙터를 타고 들어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트럭을 타고도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필자는 작 은 배를 탔다. 큰 배는 수심이 얕은 곳까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깊은 곳에 정박 시키고 얕은 곳까지는 작은 배를 이용한다고 한다. 작은 배를 타고 10여 분 가니 큰 배가 나 왔다. 여기서 큰 배를 타고 1시간 이상 가니 집결 예정지가 나왔다. 이곳에서 일행들을 기다 리고 있었다. 비장한 각오로 행사에 임한 어민들에겐 미안했지만 처음으로 타본 어선이라 서 무척 신기하기도 했고 배를 별로 타보지 않아서 재미도 있었다. 어선 안에는 조업 중의 취사를 위한 가스레인지, 가스통 등이 실려 있었고 선실 안에는 침구류 등도 실려 있었다. 배에서 가장 필자의 이목을 끈 것은 갑판 맨 끝의 동그란 구멍이었다. 그 구멍은 배 안에서 대변을 해결하기 위한 구멍이라 한다. 배 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니 어선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를 가르며 달 려오는 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늘 행사는 새만금지구 내측의 김제, 부안, 군산 지역의 어민들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각 지구에서 출발한 배들이 몰려들었다. 집결지인 신시도 앞바다에 삼삼오오 배가 모이자 용왕제가 시작됐다. 선상에서 치르는 용 왕제에는 그해의 풍어와 만선을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지만 오늘은 새만금지구 내에서 어 1. 바다를 보며 예를 올리는 무녀 강오목 씨 2. 제사상에 오른 음식의 위치를 바로잡는 무녀 강오목 씨 3. 용왕님께 풍어제 거행을 알리고 있다 4. 제단 앞에 앉아서 징을 치며 독경을 하 는 무녀 강오목 씨 5. 심포항 방파제로 나가서 징을 치며 풍 어제 거행을 다시 한 번 고한다 6. 육지가 되어버린 갯벌 한가운데 위치한 조개구이집 무인마차. 바로 옆의 갯벌에 서 잡은 싱싱한 조개를 이곳에서 먹을 수 있다. 손님은 대개 미리 주인에게 전화를 주고 오는 예약 손님들이다 7.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변해버린 갯 벌. 이젠 갯벌이라고 하기는 힘들 정도로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8. 우리가 타고 간 어선 9. 갑판 맨 끝의 구멍. 선상 화장실이다 10. 취침을 위한 침구류 등의 물품들이 있 는 선실 9 10 8 156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57

7 8 1 2 4 9 3 5 1. 새만금 방조제 공사 중인 각종 중장비 와 바지선. 물막이공사는 완료되었으나 방조제 상단의 도로 개설 공사 등 아직은 갈 길이 멀다 2. 신시도의 새만금 방조제 건설본부 3. 용왕제를 마치고 귀환하는 길. 빠른 배 는 느린 배를 앞에서 끌어준다 4. 멀리 보이는 땅이 바로 진봉반도이다 5. 용왕제를 마치고 심포항에 도착한 일 행들 6. 어민들의 해상 시위 겸 용왕제에 혹시 모를 돌발사태를 우려해서 출동한 해양경 찰 지도선 7. 용왕밥 주기 8. 바다를 가르며 집결장소인 신시도 앞 바다로 모여드는 어선들 9. 선상 용왕제. 새만금사업으로 생계에 어려움이 많은 어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엿 볼 수 있다 려움을 겪고 있는 어민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풀이 자리가 되었다. 정성 들여서 준비한 음식을 상에 차리고 어민들은 각기 나와서 절을 올리며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했다. 새만금사업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민들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선상 용왕제를 마치고 심포항으로 돌아왔다. 출발할 때 타고 간 배는 속도가 느려서 돌아올 때는 속도가 빠른 다른 배를 타고 갔는데 엔진의 진동이 너무 심해서 배에서 내릴 때는 다리가 얼얼할 정도였다. 심포항에서 열린 풍어제와 신시도 앞바다에서 열린 선상 용왕제는 새만금사업으로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어민들의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는 행사였다. 정부에서는 지구 내 어민들을 위한 이주책을 마련하고 피해에 대한 보상절차를 이미 마무리했다고 하지만 어 민들은 정부의 대책이 미흡함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새만금사업의 지역내 주민 들의 동의서를 받았고 보상금까지 지급된 상황이니 사실 어민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정부 에 대해서 생계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행 사에 참석한 한 어민은 새만금지구 내 어민들의 주장은 새만금사업을 완전히 철폐하라는 것 이 아니라 아직까지 사업의 성격이 확정되지 않았고 향후 정비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므로 그동안만이라도 어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협조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 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이러한 주장조차 묵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6 158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59

새만금건설청 앞 해수유통 요구시위 새만금지구 어민들의 요구조건은 새만금사업의 철폐가 아니라 공사 기간 생업에 임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중 어민들에게 가장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이 바 로 해수 유통 문제이다. 새만금지구는 본래 광대한 갯벌이 펼쳐진 곳으로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한 지역이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육지 근처까지 들어왔다가 썰물 때는 먼 바다까지 도 갯벌이 드러난다. 밀물과 썰물이 오고갈 때 물만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과 조 개 등 어족 자원도 같이 오고간다. 이렇게 먼 바다의 어족자원이 새만금지구까지 들어오기 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방조제가 건설되었고 조수간만의 차이를 조 절하기 위한 배수갑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밀물과 썰물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 하고 있었다. 어민들은 해수 유통을 위해 배수 갑문을 열어줄 것을 수차 요구했는데 새만금건설청 측에서는 공사 기간 중의 장비 운용 문제 등을 들어서 어민들의 요구를 묵살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새만금지구 내측의 바다에는 적조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숭어떼가 집단으 로 폐사하는 일도 발생했다. 숭어떼의 폐사는 배수갑문이 닫힌 상황에서 해수보다 만경강 에서 유입된 민물의 유입량이 많아서 염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2 어민들은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타개해보고자 김제시 소재 새만금건설청에 모 여 농성 시위를 벌였다. 심포항 마지막 풍어제보다도 더욱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의사표현 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김제, 부안, 군산 지역의 피해 어민들이 모두 모여서 해수 유통을 요 구하며 3일간 농성 시위를 벌였다. 이날 참석한 어민들은 500여 명, 심포마을과 안하 마을에서 본 낯이 익은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새만금지구 내에서 어업과 조개 채취업 등에 종 사하는 사람들로 새만금사업으로 생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외 에도 시민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대학생들도 몇 명 보였는데 그 외 시민들의 참여는 없었다. 심포마을을 포함한 새만금 인접 지역을 다니면서도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은 문 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 큰 사회라고는 말 할 수 없는 김제시 안에서도 새만금사업으로 직접 피해를 보 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 사업으로 생길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를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진봉면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심포리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는 심 포마을과 안하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서로 간의 합일점이 없으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 다. 시민들의 참여나 공감도 없었고 언론의 보도조차 없이 피해어민들은 외로운 투쟁을 벌 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시위로 인해서 새만금건설청으로부터 해수유통에 상생적으 새만금 지구 물고기 집단폐사를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 새만금 방조제 내측 물고기 떼죽음 장맛비로 인한 염도 저하 원인 추정 새만금방조제 내측에서 최근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 관계 당국이 원인을 조 사하고 있다. 12일 전북 부안군 어민 들에 따르면 동진강과 만경강 하류인 부안 계화면, 동진면 일대의 새만금방 조제 안쪽 바다에서 물고기 수만 마리 가 폐사했다. 폐사현상은 장마철이 본 격화된 이달 초부터 최근까지 계속 이 어지고 있어 피해는 좀 더 늘어날 것으 로 예상된다. 집단 폐사하고 있는 물고 기는 이 일대에서 주로 서식하는 숭어 와 망둥어 등이며 갯벌의 바지락과 백 합 등 조개류도 일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농촌공사 새만 금사업단은 어선 등을 동원, 지난 7일 부터 죽은 물고기를 모두 수거하는 한 편 시료를 채취해 전문기관에 원인 분 석을 의뢰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장마 철 집중호우로 강 상류의 오염 물질과 민물이 대량 유입되며 부영양화와 염 도 저하 현상이 일어난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군산대 수산과학 대 양재삼 교수는 장마철에는 염도가 떨어지면서 조개류와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곤 한다 며 특히 새만금방조제 내측은 물막이 공사로 해수 유통이 제 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적은 양의 비 에도 염도 저하나 산소부족 현상이 심 해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 만금사업단 관계자는 어민들 주장과 달리 폐사한 물고기는 수천 마리 수준 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피 해가 확산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태 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고기의 폐사는 간척사업 진행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 이라며 하지 만 원인 분석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고 말했다. (전주=연합뉴스)백도인 기자 doin100@ yna.co.kr 연합뉴스 2007년 7월 12일 1 3 4 2 5 로 협조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 역시 영구적인 생계 보장 대책이 될 수 없었다. 2. 심포마을 노인회장 강철상 씨(1938년생)의 부인 김영자 씨(1941년생)는 폐사한 숭어를 치우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해서 일당 5만 5천 원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 측에서는 숭어가 집단으로 폐사하자 이 지역 주민들을 동원하여 죽은 물고기를 치우는 작업을 시행했다. 1, 2, 3. 새만금건설청 앞에 모인 어민들 4. 이들의 요구 조건은 해수 유통이었다. 사업이 완료되기 전 해수 유통을 위해 갑 문을 정기적으로 열어주면 어족자원이 고 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5. 새만금사업에 대한 엇갈린 시각. 새로 운 역사 VS 절박한 생존권 투쟁. 이 사업 에 대한 평가는 현재도 엇갈리고 있다. 6. 새만금건설청 앞에서 시위 중인 어민 들. 이날 시위에는 전라북도 내 대학생들 도 참여하였다. 6 160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61

생업과 경제활동 07 농사와 바다일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 심포마을에도 농업과 조개 채취, 어업 등의 주요 생업과 관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심포와 같은 생업환경이 뚜렷한 지역에 거주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업환경의 이익보다는 그와 다른 점에서 거주의 이점을 찾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도시에서는 먹고살 수 있는 방편이 매우 다양하다. 가족, 이웃, 친구 등의 여러 집단 내에서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또한 같은 직업군 내에서도 자기가 맡 은 일에 따라서 비슷하지만 다른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만큼 사회적인 분화와 분업이 잘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심포마을과 같은 곳은 직업군이 매우 단순한데 주민들 의 직업은 농업, 조개 채취, 고기잡이의 3가지 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요즘 들어서 심포마을에도 농업과 조개 채취, 어업 등의 주요 생업과 관련 없이 살아 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심포와 같은 생업환경이 뚜렷한 지역에 거주하 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농업, 어업 등의 생업환경보다는 그와 다른 생업환경 에서 거주의 이점을 찾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이 들도 분명 이곳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국가의 보조로 사는 사람들 심포마을의 씨(62세)는 자신을 영세민이라고 소개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데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자신 소유의 집이 아닌 강씨네 집이라고 했다. 본래 이 마을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 자식은 도시에서 택배업에 종사하고 있고 자신은 몸이 좋지 않아서 특별히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건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씨는 도시에 사는 아들의 아이를 봐주러 종종 나간다고 한다. 생계는 정부에서 나오는 영세민 생 계보조금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도시에 비해서 심포마을 같은 곳은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 지는 않아서 살 만하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씨말고도 정부 생계보조금을 받아서 살 아가는 사람들이 더 있다고 한다.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 2007년 6월 29일 필자는 초하루 법회를 조사하기 위해 망해사에 갔다. 조사를 마치고 돌 아오는 길에 빨간 조끼를 입고 빗자루를 손에 든 노인 여러 명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김 제시에서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이들에게 지급 되는 하루 일당은 16,300원이고 한 달에 12일을 일해서 들어오는 월수입은 195,600원이 라고 한다. 하루 근무시간은 4시간이고 노동 강도도 그리 강하지 않아서 하고자 하는 사람 이 많다고 한다. 신청은 면사무소에서 받는데 자격 요건은 김제시 거주 70세 이상의 노인 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는 때때로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공공근로 사업이 빈번했다. 162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63

심포마을의 씨(1936년생)는 심포항에서 종종 숭어 낚시를 하는 사람이다. 필자에게 숭어 낚시 일명 훌치기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멋지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 도 했다. 간혹 이분을 마을에서 만나면 시간이 되면 어딘가에 가야 한다고 떠나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심포항에서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분은 전적으로 정부보 조로 생계를 이어가지는 않지만 생계의 상당 부분을 이에 의지하고 살아간다고 한다. 운수업 강 씨의 직업은 택시운전사로 만경읍에 있는 만성택시에서 근무하고 있다. 만성택시는 주주 3명이 공동 운영하는 회사로 현재 택시는 21대라고 한다. 도시처럼 지나가는 손님을 태우는 경우보다도 전화로 예약해서 타는 일종의 콜택시 회사라고 한다. 강 씨는 택시 운전을 하기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군산에서 문구점을 경영한 적도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는 만경읍 버스 터미널 앞에서 문구점을 하다가 이 지역 의 학생수가 점점 줄어서 수지가 맞지 않자 제과점으로 업종 변경을 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권리금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강 씨가 운영하다가 넘긴 제과점은 지금도 성업 중이며 종종 만경읍에 갔던 필자에게 맛있는 빵을 맛보게 해주었다. 강 씨는 택시 운전 외에도 쉬는 날이면 바다에도 가끔 나간다고 한다. 이 지역은 택시 수요가 적어서 이것만으로 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부부가 함께 나가 서 하루에 조개 100kg을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출퇴근 농부 강 씨가 사는 곳은 만경읍의 아파트이다. 하지만 그는 심포마을에도 어머니가 사시는 집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만경에서 이곳으로 출퇴근을 하며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만경읍에 서 심포마을까지는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이다. 도시 기준의 출퇴근 거리로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나 농촌의 열악한 대중교통 수단을 생각한다면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하 지만 요즘은 자가용 승용차가 많이 보급되어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구애하지 않고 만경과 심포를 오갈 수 있다고 한다. 도로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나타난 새로운 직업군이다. 164 바다를 메운 땅, 그들이 그곳에 사는 이유 그들이 심포마을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생업과 경제활동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