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환경과 민주주의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를 중심으로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논문요약> 후쿠시마 핵발전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에너지정책에 대한 완전한 재검토를 선언했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공식적으로 핵발전포기를 밝혔다. 그 반면에 미국, 프랑스는 시장의 선택에 맡긴다는 구실로,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중동 아시아의 신흥경제국가들은 핵발전의 안전 강화를 전제로 핵발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위험사회의 핵심 주제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통제한다 는 역설에 있다. 하지만 도호쿠 대지진은 절대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 는 것을 현실로서 보여주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수많은 지진에도 핵발전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을 정도로 핵발전의 내진대책이 완벽하다고 강조해왔다. 이처럼 재난관리는 계산과 규제를 통한 위해의 회피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지만, 재난관리에서도 결정이 내려질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협의제 민주주의를 택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이 핵발전을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핵발전 감축과 함께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정책을 전환하는 반면에, 국가통치력이 강한 프랑스와 한국, 러시아는 오히려 핵발전산업의 압도적 선두주자였던 미국과 일본이 핵발전의 불안정으로 인해 악화된 자국의 여론 때문에 주춤한 것을 기회로 핵발전시장의 선두 다툼에 뛰어들고 있다. 66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주요어: 핵발전사고, 에너지정책, 신재생에너지, 위험사회, 핵재난 1. 머리말 일본 후쿠시마( 福 島 ) 핵발전사고는 핵발전의 안전성에 대해 세계가 다 시 한번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사 고 직후 탈핵정책을 표방했던 선진 각국과 중동 아시아의 신흥경제 국가 들은 20여 년간 지속된 무사고에 따른 과학기술의 통제력에 대한 신뢰, 그 리고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 화석연료의 가격 상승, 기 후변화에 따른 CO₂감축압력 등의 환경변화에 대응해 핵발전을 재도입하 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선회하고 있었다. 세계핵협회(WNA)는 2009년 2030년까지 44개국에서 핵발전기 417기가 추가 건설될 것 이라고 발표했 다(WNA 2009). 이들 정부가 핵 확산을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으로 간주하고 경쟁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서두르면서 이른바 핵르네상스 가 도래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2011, 16이하)에 따르면, 2010년 12월 현 재 31개 국가에서 핵발전기 4백 41기가 가동 중에 있으며 이 중 미국 104 기, 프랑스 58기, 일본 54기, 러시아 32기, 한국 21기, 영국 인도 19기, 캐나다 18기, 독일 17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핵발전은 현재 세계 에너지의 6%, 전력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프랑스 일본의 3대 핵발전 강 대국이 세계 핵발전 전력 전체의 50%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핵 발전소는 중국 28기, 러시아 11기, 인도 6기, 한국 5기 등 총 67기에 이르 고, 계획 중인 핵발전소도 인도 58기, 중국 57기, 미국 32기, 러시아 24기, 남아공 16기, 헝가리 12기, 한국 일본 11기,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10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67
기 등 총 287기에 이른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WEC, GE), 프 랑스(AREVA), 러시아(ASE), 일본(Toshiba, Mitsubishi, Hitachi) 등 4개국이 핵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면, 한국은 이제 막 아랍에미리트(UAE)에 첫 핵 발전수출을 한 상태이다. 1)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는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 규모 7.9의 내진설계와 지진해일 10m의 시설설계를 한 전문가들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 자연재해, 그리고 핵발전 운영사인 도쿄전력(TEPCO)의 자사이기주의와 일본 정부 의 늦장 대처가 맞물리면서 일어난 천재와 인재의 복합재난으로 간주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東 北 )지방 센다이시( 仙 台 市 ) 동쪽 179km 해 저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강진과 파고 15m의 지진해일은 미야기( 宮 城 )현 과 이와테( 岩 手 )현 및 후쿠시마현 일부를 초토화시키면서 총 2만 명의 사 망 실종자, 8만 명의 이재민, 300조 원의 재산상 피해를 발생시켰다. 나아 가 제1핵발전 1~4호기의 연쇄 수소폭발과 균열, 노심용융(melt down)으로 이어져 핵재난을 일으켰다. 궁극적으로 핵발전의 위험은 가동중단에도 불 구하고 가동을 중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진이 발생하자 태평양연안에 위치한 핵발전기 15기는 자동으로 제어봉이 삽입되어 가동이 자동정지되 었다. 하지만 원자로가 완전히 정지해도 원자로 안에 남아 있는 핵분열 생 성물의 붕괴 현상은 계속된다. 이 붕괴열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지 후에 도 지속적으로 전원이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해일로 인해 외부 전원과 비상전원 전체가 상실(Station Blackout)되었고, 결국 붕괴열 제거에 실패하면서 4개 원자로의 수소폭발 1) 세계 핵발전시장은 Toshiba-WEC그룹, AREVA-Mitsubishi그룹, GE-Hitachi그룹, 러시 아 ASE 등 4개 그룹이 주도하고 있다. Toshiba가 웨스팅하우스(WEC)를 인수해 경수로와 비 등수로 기술을 모두 확보한 그룹으로 부상하자, AREVA가 일본의 Mitsubishi와 전략적 제휴 를 맺었고, GE이 Hitachi와 전략적으로 제휴하게 된다. 러시아의 ASE는 독자 개발한 모델로 구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한국전력은 가압경수로 기 술을 갖고 핵발전시장에 참여한다. 68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로 이어졌다. 또한 후쿠시마 핵재난은 핵발전의 완전한 통제란 불가능하 며, 그 결과가 지역이나 당사국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적 재앙으로 확장된 다는 것을 현실로 보여준다. 초기 대응의 지체와 부적절한 대응이 사고를 통제불능의 상태로 몰아가면서 국제원자력기구의 국제핵사고등급(INES) 의 5등급에서 한 달 사이에 최고 단계인 7등급으로 상승했다. 복수의 핵발 전기 동시사고의 장기화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히로시마 원폭의 168배 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다를 통해 전 세계로 지속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고, 그에 따라 방사선 피폭에 대한 공포도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 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사고수습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만 일은 계획처럼 진행되고 있지 않다(전진호 2011, 184). 전문가들은 사고 핵발전 기의 안정적인 수습과 폐로밀봉까지 20~30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정치문화의 지형에 따라 이 핵발전사고에 대해 상이 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악의 핵발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핵발전 에 기대를 거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핵발전에 대한 즉각적인 폐쇄 조치를 취하는 국가도 있다. 세계 최대의 핵발전 밀집지역인 유럽과 북미의 각국 은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를 상상을 초월한 위험으로 간주하고 에너지정책 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핵발전의 안전, 대중 수용성, 방사성폐기물 처 분의 높은 투자비용, 사용후핵연료 처리, 핵발전 완전철거 비용, 사고시 손 해배상 비용 등이 다시 정치 쟁점화되면서 탈핵정책으로 급전환하거나 신 규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하고 있다. 그 반면에 신규 건설의 60%가 집중되 어 있는 아시아에서는 공중의 침묵 속에 국가는 안전 강화의 약속을 전제 로 핵발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고도 경제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과 인도, 한국은 여전히 핵르네상스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확성과 치밀성, 숙련성으로 무장한 기술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첨단기술 선진국인 일본에서 자연재해가 핵재난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핵재난이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에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69
27개 유럽 국가의 정상들은 핵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든 있지 않든 현존하는 핵발전기 146기에 대해 정밀 안전점검을 실시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하 고, 대다수 국가가 핵발전의 감축과 폐쇄를 급진적으로 단행하고 있다. 하 지만 아시아 각국은 핵발전이 가져다주는 현재의 경제적 이익을 선호해 새 로운 대체에너지원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핵발전을 유지한다는 보수적 입장 을 취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중국의 정상은 사고 직후 회합을 갖고 핵발 전정책을 유지하되 예상 밖 돌발사고에 대비해 다자간 공조체제를 구축하 는 데 동의한다. 여기서 위험사회의 오래된 질문이 다시 새롭게 제기된다. 얼마나 안전하게 해야 안전하다고 할 것인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의 양태 들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후쿠시마사고 이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 는 전문가와 정치인, 언론의 상이한 반응은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2. 핵발전 위험에 대한 정치적 결정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기술력만으로 자연 의 불확실성이 극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의 도호쿠 대지진과 지진해일 은 알려주고 있다. 지진과 지진해일의 발생확률, 예상되는 피해 등은 비교 적 원인과 기제가 잘 알려져 있고 측정도 가능하지만, 자연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핵발전 위험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기초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위험으로 기계적 고장만이 아니라 자 연재해나 인위적 재해의 발생을 고려해 비상계획, 다중 안전장치 등 대비 책을 세워놓더라도 비록 발생확률은 낮지만 돌발사고가 났다하면 파국 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미지의 위험이다. 핵발전사고의 경우 우선 핵 분열을 정지하고, 핵분열 후 생기는 방사성 물질을 냉각시키고, 그리고 방 70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의 봉쇄 순으로 대응 단계가 진행되는 데 그 각각에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후쿠시마사고는 자연재해 위험과 핵발전 위험의 두 위험이 상호 결합되면 통제할 수 없는 가공할 재난으로 이끌어진다는 것 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대지진과 지진해일은 불확실성의 제어에 실패 하자마자 그 즉시 핵발전 폭발사고로 이어졌다. 핵발전 폭발사고의 비극은 자연재해와 달리 해당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를 방사능 오염 위험 에 노출시킨다는 데 있다. 서유럽 국가들이 핵발전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상황에 서, 한국 정부가 CO₂의 무배출을 부각시켜 핵발전을 가장 안전하고 친환 경적인 청정에너지원 이라 거짓 호명한 것은 위험 소통을 배제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것은 25년 전 서구 전문가들이 서구에서는 체로노빌 핵발전 사고와 같은 대참사가 일어날 수 없다 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과 맞물려 있 다. 당시 핵발전사고는 소련이 핵발전에 대한 기술 수준이 낮고 안전도가 불안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1986/05/02). 그러나 이번 핵발전사고는 안전대비책과 안전기술의 신빙성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일어 났다. 첨단기술에 바탕을 둔 핵발전은 어떤 돌발사고든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전 신화 가 깨진 것이다. 원자로 노심용융사고로 후쿠시마 핵발 전소 인근지역은 핵분열시 생성되는 제논133( 133 Xe 반감기 5일), 요오드 131( 131 I 반감기 8일), 스트론튬90( 90 Sr 반감기 28년), 세슘137( 137 Cs 반감기 30년), 플루토늄239( 239 Pu 반감기 24,000년) 등 10여 가지 방사성 물질에 오 염되었고, 여전히 오염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오염원이 현재에 손실이 국한되는 것과 달리, 핵재난은 이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로 인해 그 영향이 수십 년에서 수만 년에 걸쳐 미래로 확장되기 때문에 다른 위험에 비해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또한 방 사능 오염은 방사선에 노출되더라도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치명적인 영향력 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위험 이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 반경 20km 이내 지역의 주민 12만여 명에게 20년이 걸릴지도 모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71
르는 반영구 대피령을 내렸다. 방사선 피폭 희생자 수에 대한 논란은 차치 하고라도 사고 핵발전소의 반경 20km 이내가 방사성 물질의 심각한 오염 으로 미래가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위험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통제한다 는 역설 에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는 이 역설 때문에 지진이나 지진해일보다 더 큰 공포와 불안을 안기고 있다. 핵발전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견뎌내도 록 설계되어야 하는가? 핵발전은 어떤 위험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가? 최악 의 경우 방사능 누출과 같은 핵발전사고가 일어난다면 누가 그 비용을 지 불할 것인가? 어떤 국가들은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름의 방법 을 동원해 위험을 통제하는 데 반하여, 또 다른 국가들은 경제적 이익 때 문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한다. 그렇다면 원자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국제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우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가 논란의 대상 이 되고 있다. 양자는 핵발전에 닥칠 수 있는 지진해일의 위험을 과소평가 했다. 경제산업성의 보고에 따르면, 지진과 지진해일이 외부 전력선을 끊 고 보조발전기 비상용 배터리 등 비상전력 공급체계를 작동불능으로 만 들었으며, 그 결과 비상시 원자로를 냉각하는 냉각순환체계 의 기능 상실 과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에 대한 냉각 기능의 실패가 이어지면서 원자 로 1~4호기의 수소폭발이 일어났다(전진호 2011, 187). 1~3호기 모두 냉 각체계의 작동 중단 후 1~4일 사이에 원자로 내 핵연료봉 대부분이 녹아 내려 압력용기와 그 바깥을 감싸고 있는 원자로 격납용기까지 손상됐다 (Spiegel 2011/06/01). 격납용기의 손상은 대량의 방사성 물질을 품은 증기 가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자 로를 식히기 위하여 조급하게 해수를 투입했고 방사성을 띤 고농도 오염수 11,000톤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내려 인근 연안을 방사성 물질로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외부 전원이 연결돼 원자로 및 사용후핵연료의 냉각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온도상승이 통제되지 못할 시 원자로 압력용기 72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와 함께 사용후핵연료 저장고마저 폭발하기 때문에 체르노빌사고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후쿠 시마사고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도쿄전력 은 1~3호기 원자로 압력용기의 온도를 섭씨 100 미만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냉각체계에 고장이 잦는 등 불안요 소가 잠재해 있다. 또 87,700톤에 달하는 원자로 내 고농도 오염수의 처리 문제와 원자로 내부에서 핵연료를 빼내는 기술적 문제의 해결 등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향후 핵발전소 인근지역이 얼마나 방사성 물질에 더 노 출될지, 대기와 바다가 얼마나 더 방사능으로 오염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상황에 있다. 일본은 8월 말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발전기 54기가 전체 전력생산량 의 30%를 생산하고 있으나 가동이 중단된 핵발전기는 도호쿠 대지진으로 자동 중단된 동북부 태평양 연안의 핵발전기 15기를 포함해 42기에 이른 다. 지진다발국인 일본에는 위험천만한 핵발전소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총리는 하마오카( 浜 岡 ) 핵발전소에 대해 5월 6일 30년 내 대지진 발생확률 87% 라는 예측결과를 근거로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대지진을 우려해 운 영사인 주부( 中 部 )전력에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 그 근거로 정부는 2011년 1월 공개된 문부과학성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의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 기는 하나 2) 직접적으로는 하마오카에서 노심용융사고가 날 경우 도쿄 수도 권의 3천만 명이 죽음의 재 를 뒤집어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 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어 총리는 2030년까지 건설 예정이던 핵발전기 14기의 신축 계획을 백지화했으며, 핵재처리 계획 중단, 송전과 발전의 분 리방침을 밝혔다(시사IN 2011/05/26). 모두 핵전문가와 관료, 전력산업계 2)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는 핵발전 주변의 지진 발생 가능성과 관련해 하마오카 핵발전이 84% 로 다른 핵발전보다 10배 이상 높았다고 밝혔다. 반면 도호쿠전력의 오나가와( 女 川 ) 핵발전이 8.3%, 니혼전력의 도카이 제2핵발전이 2.4%였다(세계일보 2011/05/09).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73
의 결속체인 이른바 핵마피아 가 오랫동안 금단의 영역 에 봉인해 둔 것들 이다. 이에 반발해 야당인 자민당은 핵발전이 산업계의 전력수요를 감당하 기 위한 필요악 이며 안전하게 운영하면 괜찮다 는 낙관적 입장에서 에너 지정책 사수 를 밀어붙였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하마오카 핵발전소 외의 나 머지 핵발전소에 대해선 안전점검단의 안전 확인을 근거로 재가동을 결정 했다. 결국 도쿄 수도권에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감수해야 하 는 위험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소외지역에 떠넘긴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의 불안과 우려는 커지고 있다. 크고 작 은 사고와 고장이 되풀이돼온 데다 다수의 핵발전소가 지진대와 활성단층 에 위치해 유사시 재난의 위험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진조사연구추 진본부가 지진 발생가능성을 0%로 평가했던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재 난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지진의 발생이 과학적 예측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세계일보 2011/05/09). 이에 핵발전기 13기가 있는 후쿠이 ( 福 井 )현을 비롯해 사가( 佐 賀 )현, 에히메( 愛 媛 )현, 야마구치( 山 口 )현은 주민 들의 안전을 이유로 재가동을 불허하고 있다. 자치단체가 반대할 경우 핵 발전의 가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주민의 여론이 탈핵 의 전환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핵발전정책의 본산인 경제산업성 관료들은 산업계에 대한 전력 공급차 질의 위험을 내세워 탈핵에 반대하고 있다. 핵마피아 의 위기감은 전력사 업 개혁구상 발표를 전후로 정치권에서 총리의 사퇴공세로 재연되었다. 핵 발전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정부는 산업계에 공급해야 하는 에너지의 부족 사태가 야기할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핵발전을 포기할 수 없는 것 이다. 핵발전사고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위 험이지만 에너지 결핍과 그에 따른 산업계의 생산 차질은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기 때문에 정부는 우선 후자의 위험에 대한 회피전략을 구사하 고 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6월 11일 일본 전역 150개 지역에서 시민단 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반핵 시위가 벌어졌다. 74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그 리스 등 처음부터 핵발전을 거부한 국가와 스페인, 벨기에, 아르메니아, 독 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체르노빌사고 후 핵발전을 포기했던 국가는 후쿠 시마사고를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던 위험으로 간주하고 유럽 전체에 핵 발전정책의 포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 국가는 핵발전회의론의 급부상 속에서 탈핵정책의 고수를 재확인하거나 기존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결정했다. 3) 헝가리와 체코,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멕시코 등은 노후 핵 발전기를 새 핵발전기로 교체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그에 반해 세계 1, 2 위 핵발전기 보유국인 미국과 프랑스는 시장의 선택에 맡긴다는 구실로,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중동 아시아의 신흥경제국가들은 핵 발전 안전의 강화를 전제로 핵발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위험통제에 대한 회의가 강화된 가운데 핵발전에 대해 지금까지 제기된 적이 없던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지진과 지진해일, 홍수, 운석충돌, 산불 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테러, 사이버 공격, 비행기 충돌, 대전차 로켓포 공격 등 당초 설계 에 없던 돌발사고의 위험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과연 있을 수 있는지? 자연 재해와 이들 돌발적 사고 위험에 대비한 충분한 보강은 가능한 것인지? 자 연의 불확실성 앞에서 핵발전에 대한 신뢰는 과연 회복될 수 있는지 의문 이 제기된다. 특히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재선택의 갈등 속에서 정부의 정치 적 결단 혹은 여야 합의, 국민투표 등을 통해 핵발전 감축 혹은 폐쇄의 길 을 택하고 있다. 독일은 본래 체르노빌사고를 계기로 탈핵이 공론화되면서 1999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중단과 기존 핵발전소의 폐쇄를 결정했고, 2002년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는 탈핵법 을 제정했다. 하지 3) 지진 위험을 우려해 핵발전을 포기한 그리스(1975)를 위시하여 오스트리아(1978), 스웨덴 (1980), 노르웨이(1984), 오스트레일리아(1986), 이탈리아(1990), 스위스(1990), 네덜란드 (1994), 아일랜드(1999), 독일(1999) 등은 후쿠시마사고 이전에 이미 핵발전소 건설 금지, 핵 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등을 정책기조로 채택하거나 법제화했다.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75
만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 자유민주당(FDP)으로 구 성된 중도 우파 연립정부는 산업계의 반발과 온실가스 감축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세계적으로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바람이 일자 2010년 말 기존의 탈핵정책을 폐기하고 노후 핵발전기 17기의 수명을 2021년까지, 나머지 핵발전기의 수명을 2036년까지 연장하는 핵발전정책으로 전환했 다. 후쿠시마사고가 났을 때도 독일 총리는 전체 전력 수요의 23%를 차지 하던 핵발전기 17기에 대해 3개월 간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가 동의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항의해 25만여 명의 시민들이 베 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등 4개 주요 도시에서 핵발전 반대 시위를 벌 였고, 사고 한 달 뒤 핵발전 반대 시위는 100여 개 도시로 확대되었다. 연 립정부는 3월 중순과 5월 초 실시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브레멘 주의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했고, 반핵 쪽으로 급선회한 여론을 좇아 주춤했 던 탈핵 구상을 재확인해야 했다. 5월 말 연립정부는 노후 혹은 고장으로 멈춰선 핵발전기 7기와 크뤼멜(krümmel) 핵발전소를 즉각 폐쇄 조치했고, 2021년 말까지 핵발전기 6기를 추가적으로 폐쇄하며 2022년 말까지 마지 막 3기를 영구 폐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Spiegel 2011/05/30). 스위스 연방정부도 2007년부터 1990년 채택한 탈핵정책을 뒤집어 3 기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연방정부는 후쿠시마사고 직후 각료회의에서 전면 보류키로 결정했지만 핵발전포기에 관한 최종 결정은 6 월 정기국회로 미루었다(Spiegel 2011/03/14). 이에 5월 들어 2만 명 이상 이 즉각적인 핵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는 반핵 시위를 벌이는 등 반대 여론 이 거세졌고, 마침내 정부는 5월 25일 전력 수요의 40%를 담당하던 핵발전 기 5기를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키로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사고 다음해 국민투표에서 80% 이상의 반대로 핵 발전 4기를 모두 폐쇄했다. 하지만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총리가 2009년 7 월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의 선정과 건설을 허용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 고 올해 초 6월 12일~13일 국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의 도입 여부를 결정키 76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로 했다(Spiegel 2011/06/04). 하지만 후쿠시마사고 이후 여론이 핵발전을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자 총리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핵발전소 건설을 일단 무기한 동결하는 법안을 5월 중순 상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탈 리아 대법원은 정부 법안의 내용이 핵발전의 완전한 포기는 아니라며 국민 이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국민투표의 실시를 확정했다. 국민투표는 핵발전 재추진 계획을 94%의 반대로 부결했다(연합뉴스 2011/06/14). 탈핵을 선택한 이들 국가와는 달리,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1979년 스 리마일섬(TMI) 방사성 물질 누출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사고를 겪은 국 가인데도 핵발전사고에 대해 외형적으로 유사한 낙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 다. 미국 정부는 3월 26일 신규 핵발전 계획을 통과시킴으로써 전체 전력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핵발전에 의존하는 에너지정책의 기조를 바꿀 뜻 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문화일보 2011/03/30). 스리마일섬사고 이후 30 여년 만에 미국의 핵발전 계획이 재개된 것이다. 핵규제위원회(NRC)는 5 월초 뉴저지(New Jersey)주 오이스터 크릭(Oyster Creek) 핵발전소와 뉴욕 (New York)주 나인마일포인트(Nine Mile Point) 핵발전소에 이어 앨라배마 (Alabama)주 브라운스 페리(Browns Ferry) 핵발전소의 비상냉각체계에 안 전 문제의 발생 소지가 있다며 정밀조사를 지시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에 너지부 장관은 5월 12일 핵발전소 건설은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 혔고, 오바마 대통령도 핵발전이 미래 에너지라며 안전점검을 전제로 핵발 전정책을 계속 유지한다고 밝혔다(경향신문 2011/05/14). 프랑스 정부는 후쿠시마사고 이후 노후 핵발전기의 연장은 포기했지 만 핵발전의 지속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은 거부했다. 프랑스는 그 동안 핵발전기 58기에 전력의 80%를 의존하는 형태로 에너지 자립도를 유 지하고 있었다. 과거 핵발전반대 운동에 소극적이었던 시민단체들은 이번 에도 소극적인 저항에 머물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핵발전산업을 활성 화시킬 목적에서 프랑스의 핵발전소는 어떤 지진과 홍수의 위험에도 견 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프랑스 핵발전소는 다른 나라 핵발전소보다 10배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77
는 더 안전하다 는 등 자국 핵발전기술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동아일보 2011/06/01). 프랑스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안전이 강화된 신형 핵발 전기를 무기로 세계 핵발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이다. 영국도 후쿠시 마사고 직후 기존 핵발전기 11기의 가동을 중지하거나 중단할 계획이 없을 뿐 아니라 신규 핵발전기 10기를 추가 건설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Spiegel 2011/03/20). 이들 신자유주의 국가와는 다른 맥락에서 한국과 러시아는 핵발전산업 을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채택해 후쿠시마사고 이후에도 자국 핵발전기의 안전을 과장해 선전하고 있다. 두 국가는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자연재해 를 예측가능한 사건으로 전제할 뿐만 아니라 위험 소통을 지진과 지진해일 에 국한시킴으로써 자국 핵발전소의 위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블라 디미르 푸틴 총리는 후쿠시마사고 이후 러시아 핵발전소는 절대적으로 안 전한 상태에 있다 는 주장을 거듭하면서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하거나 중 단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Spiegel 2011/03/14). 이명박 대통령도 5월 중순 유럽순방 중에 일본과 우리는 지질학적으 로 여건이 다르고 운영 실태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사고 없는 발전소, 후 쿠시마사고는 지진과 쓰나미의 결과이고, 그런 자연재해가 모든 국가에 나 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핵발전소의 운영 및 관리 실력이 일본의 그 것보다 더 낫다(한겨레 2011/05/12), 2020년까지 핵발전소의 수명이 80년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핵발전기술을 개발한다(YTN 2011/09/02) 는 등 확실한 근거의 제시 없이 한국형 핵발전기의 절대 안전 과 우수성 을 주장하며 핵발전기의 건설과 수출의 강행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그는 후쿠시마사고 직후 아랍에미리트와 계약한 핵발전기 4기의 기공식에 참여했고, 2030년까지 핵발전기 80기를 수출한다는 목표를 재확 인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이미 설계수명 30년을 넘긴 노후 핵발전기 인 고리 1호기가 4월 12일 전기계통 고장으로 가동을 멈추었으나 환경 시 민단체와 야당의 핵발전소 폐쇄 요구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된 전기차단기 78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교체와 안전점검을 마친 후 절대 안전 을 주장하며 가동을 재개했다. 중국과 인도는 경제성장과 인구증가에 따른 전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핵발전 확대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의 계획에 따르면 현재 가 동 중인 13기와 건설 중인 28기 외에 57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며, 인도 역시 현재 가동 중인 20기와 건설 중인 6기 외에 58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 이다(IAEA 2011). 피폭국인 일본은 총리가 비록 핵발전 확대정책의 폐기를 공식화하긴 했지만 핵발전 수출정책을 계속하기로 한데다가, 한국과 중국, 인도는 당초의 계획을 강행할 계획이어서 아시아가 새로운 핵발전소 밀집 지대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들 결정은 모두 위험성평가와 같은 과학적 차원이나 총체적 에너지 수급의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동기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이렇게 국가 간 비교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핵발전사고에 대응해 결정하는 데 전문가의 판단보다는 정치의 상황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해당 사회의 정치문화 같은 장기적 요인, 그리고 핵발전산업의 활성화 같은 중기적 요인, 그리고 핵발전사고에 대한 여야의 정치적 결정 같은 단 기적 요인들이 상당한 국가 간 편차를 발생시키고 있다. 전문가의 과학적 판단은 정책 자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무엇이 심각한 자연재해인지, 핵발전이 어떤 위험을 견뎌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과학이 아니라 정치인 것이다. 그에 따라 누가 미래에 그 비용을 지불 하는지도 정치가 결정한다. 3. 위험사회에서의 위험과 위해 세계는 일본 정부와 핵발전 사업자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핵 재난에 휩싸여 있다. 체르노빌사고가 거의 손쓸 여지없이 원자로 1기의 노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79
심용융과 폭발이 급박하게 진행되었다면, 후쿠시마사고는 최초의 원인이 자연재해였더라도 이후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 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또한 체르노빌사고가 신속히 원자로 무덤을 만들어버림으로써 단기간에 상황을 끝냈다면, 후쿠시마사고는 적어 도 원자로 4기에서 심각한 노심용융이 일어났고 방사성 물질의 유출이 장 기화되면서 그 피해가 상상할 수 없이 커지고 있다. 4) 게다가 내륙에 있는 체르노빌사고 때는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직접 흘러들지 않았던 반면에, 후쿠시마사고에선 바다까지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후쿠시마사고를 계기로 인류는 핵시대가 이들 방사성 물질을 인위적으로 생성했을 뿐만 아니라 자 연방사선의 수십만 배에서 1조 배까지 커질 수 있는 위험을 생성하고 있다 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독일 총리는 후쿠시마사고를 통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핵발전의 위험을 깨달았다며 핵발전소의 완전 폐쇄와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을 골자로 하는 탈핵정책을 선언했다. 핵발전은 에너지 생산의 효율성에 비해 항상 안전이 문제로 지적돼 왔 다. 핵발전 같이 논쟁의 여지가 많은 첨단기술의 위험에 대해서는 전문가 들조차 합의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핵발전은 수십만 개의 부품이 조 립된 첨단기술의 거대 장치산업이다. 그 부품들 가운데 하나만 잘못 작동 해도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 원인은 이런 기계적 결함이나 사람의 실수일 수도 있고 자연재해일 수도 있으며 비행기 충돌, 테러, 운석 등 우 연적인 외부 요인일 수도 있다. 돌발사고의 위험에 대한 제어 효과가 확실 4) 이들 인위적 방사성 물질은 강력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서 세포의 증식과 생존에 필수적인 DNA의 사슬을 끊거나 화학적 변성을 초래해 암을 유발하거나 기형아 출산의 가능성을 높인 다. 특히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은 반감기가 각각 30년, 28년으로 한번 누출되면 오랜 기간 자연에 잔존하면서 피해를 장기화시킨다. 세슘과 스트론튬은 토양(해양)에서 작물(사료)을 통 해 축산물(수산물)에 축적되거나 유제품을 거쳐 사람의 체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방사능으로 오염된 공기와 물, 음식 섭취가 직접 몸에 쪼이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유발한다. 방사능의 독 성은 배설이나 목욕 등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방사능 피폭으로 죽은 사람을 화장해도 재 속에 그대로 남는다. 80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하지 않다고 해서 그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핵발전 사고가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후쿠 시마사고 이후 우리는 안전관리체계에 의해 위험요소가 비교적 체계적으 로 관리되는 구조화된 위험 환경에서도 일이 잘못되어지는 돌발적인 상황 을 인정해야 한다. 돌발적인 재난으로 계산된 신뢰 가 갑자기 깨졌을 때 불 안은 더욱 현저해진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록 확률은 낮더라도 재난으 로 이끌어질 수 있는 구조화된 위험에 대한 인식은 불안의 원천이다(노진철 2010, 7). 루만(Luhmann 1991)은 생태학적 위협이나 기술적 위험의 문제에 대한 소통의 특성을 기술하기 위하여 위해(danger)와 위험(risk)을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위해가 자연현상이나 타자, 다른 조직의 결정 등 외 부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물리적 위협인 데 반하여, 위험은 기능적으로 분 화된 사회체계들이 환경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결정에 내재된 복합적인 위협이다. 즉 위험에 대한 인식은 방사능 오염 같은 직접적인 물리적 위해 와 달리 행위자의 결정을 전제로 한다. 후쿠시마사고는 더 이상 인간이 영 향을 미칠 수 없는 지진과 지진해일의 위해가 아니라 피할 수 있던 위험으 로 소통되었고, 사람들은 이들 사고의 원인을 필연적으로 결정에 귀속시킨 다(노진철 2010, 335). 핵발전사고의 위험은 설령 자연재해에서 비롯되었 더라도 다양한 결정들에 수반되는 피해가능성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서, 핵발전사고는 때를 놓치면 통제 불능의 사태에 이르는 위험이 결정을 내리 는 매 순간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노진철 2004a). 따라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 확보와 사고 후 신속 대응으로 2차 피해를 줄일 것이 필수적 으로 요구된다. 후쿠시마사고도 지진에 의한 1차 피해에, 2차 지진해일에 대한 대응 미숙이 겹쳐지면서 방사능 누출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지진해일의 위험을 과소평가해 기술적 문 제의 해결에 실패했다. 애초에 내진설계 기준을 규모 7.9, 지진해일 파고 10m에 대비해 설비했던 것이 예상을 넘은 규모 9.0의 지진과 파고 15m의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81
지진해일이 발생하자 역사상 최악의 핵발전사고를 냈다. 전체 정전에 대 비한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 지진 발생 직후 전원상실에도 불구하고 방사능누출 방지장치가 가동돼야 했지만 이에 실패했다. 30분 내에 냉각체 계를 복구시켜야 하는 비상 상황에서 외부 전력과 비상전원의 장시간 손실 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둘째로, 도쿄전력은 인명과 환경의 보호보다는 핵발전 설비를 재사용 하려는 기업이기적 의도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방어적 방재로 일관했다. 사고 초기 일본 정부가 격납용기에서 수증기를 배기해 용기의 압력을 낮추라는 지시를 했음에도 도쿄전력은 몇 시간 동안 이행하지 않아 사고를 악화시켰다. 셋째로, 일본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주민들 을 치명적 위해인 방사능 오염에 방치했다. 1호기의 폭발을 사고 후 2시간 뒤에야 공식 발표해 주민들은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주민들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불완전하고 일관성 없는 정보 때문에 사 태 파악이 어려웠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누출 사태의 초기 피난지시의 범 위를 핵발전소 반경 3km로 최소화했다가 뒤늦게 밤 11시 반에 10km로, 다 음날에는 20km로 확대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주민들은 대부분 정보의 결 핍으로 24시간 내 방사능 누출이 멈출 것이라는 기대에서 집안에 머무르면 서 비상사태의 소멸을 기다렸다. 넷째로, 핵발전 사업자와 정부, 규제기관의 역할분담 혹은 지휘계통이 원활히 기능하지 않아 초기대응의 부실을 불러왔다. 핵발전 위험의 감독 규제기관인 원전안전위원회 가 전혀 기능하지 못했다. 그 결과 도쿄전력은 3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원자로 건물 내의 비정상적인 높은 방사선량을 확인하고도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이를 은폐했고, 그 결 과 정부의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1~3호기의 노심용융 사실을 두 달 뒤 확인할 정도로 상황 파악도 부실했다.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는 주변국 및 관계국에 통보하고 필요한 협조를 82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요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원의사도 거절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부터 적절한 정보를 신속히 전달하지 않아 국내 및 국제사회의 불신을 초래했다. 사태가 확산된 후 뒤늦게 미국, 프랑스 등의 개별조언을 수용했다. 일본 정부는 인접국가들이 방사능 오염의 광범위한 확산을 우려 하는데도 사전 논의 없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고인 각종 유도방사능을 함 유한 오염수를 수차례 방출하도록 결정했다. 핵발전사고와 핵발전소 폐쇄를 둘러싼 위험갈등은 주민들이 방사능 누 출의 잠재성을 자연재해 혹은 테러, 사이버 공격, 비행기 충돌, 대전차 로 켓포 공격 등 외부로부터 닥친 돌발사고의 위험이 핵발전, 나아가 자연과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인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에 의해 일어난 방사능 누 출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부의 정책결정에 의지함에도 불구하고 혹 은 의지하기 때문에 다시 발생하는 위험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주민들의 불안은 미래가 현재에서 내려지는 결정의 합리성으로서 체험되 는 것이 아니라 위험으로서 체험되는 데 있다. 왜냐하면 방사능 누출이 가 져다줄 재난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보다는 열린 미래에 대한 평가와 관련되 기 때문이다. 몇십 년 혹은 몇만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방사능의 위험 은 매우 장기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 싼 위험갈등은 이처럼 주민들이 갖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가 자신들이 입을 지도 모르는 피해에 대한 원인자의 귀속이 가능할 경우에 발생한다. 루만(Luhmann 1990, 163)은 위험과 위해 구분의 현대사회적 특성으로 인간의 개입, 즉 인간의 행위와 그 결정가능성의 증가에 따른 위해에서 위 험으로의 전환 을 지적한다. 우리는 사회적 재귀성의 증대와 함께 일상에 서 점점 더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위해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 위험으로 변 형되는 것을 경험한다. 특히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기대하지 않은 결과 에 대해 위험의미론을 가지고 조작하면서 핵발전소의 가동 결정뿐만 아니 라 가동중단 결정에서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결정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폐쇄 결정에서도 위험을 경험한다. 이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에 대한 요구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83
도 점점 더 절박해지고, 그와 동시에 결정자와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과 긴 장도 증가한다. 위험과 위해의 개념 구분이 갖는 이론적 장점은 위험을 벡 이 그의 위험사회 (1997)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기술투입의 증가 같은 외 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물리적 위해로 보지 않고, 사회 내부적으 로 환기된 사회적 소통의 결과이자 당사자연관 에 기인한 위험으로 보는 데 있다(노진철 2004a). 이러한 위해로부터 위험으로의 전환이 결정자와 이 해당사자 간에 갈등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위한 구조적인 동기를 제공한다. 방사능 오염의 잠재성에 대한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들의 민감성이 증대하는 것은 그들이 핵재난을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어쩔 수 없는 위해 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정부 혹은 핵발전 사업자, 전문가집단이 내린 결정에 따른 위험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사고는 대체로 계획에 없던 돌 발적인 사고인 탓으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와 사고 은폐에 대한 의 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핵발전의 안전을 관리하 는데도 불구하고 방사능 오염의 위해가 발생하는 데 대한 주민들의 불안이 핵발전소 안전기준의 강화 및 규제의 독립성과 전문성으로 해소되지는 않 는다. 이것은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혹은 노후 핵발전기의 재가동에서 핵 발전소의 기술적 안전에 대한 홍보보다는 결정자와 당사자 간의 신뢰가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루만(Luhmann 1968)은 일찍이 신뢰와 위험의 구분을 도입함으로써 두 영역의 상호관련성을 분명히 했다. 그에 따르면, 행위에 따른 위험을 인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위자에게 기꺼이 믿음을 보내는 것이 신뢰이다. 즉 위험의 존재는 신뢰의 전제조건이 되며, 위험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은 신뢰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확실하고 결정에 따른 위험이 없 다면 신뢰는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윈(Wynne 1987)의 견해 에 따르면, 우선 신뢰는 결정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과 관련이 있으며, 둘째로 일어났던 재난피해를 극복했던 과거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전자가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혹은 노후 핵발전기의 재가동 결정과정에 대한 신뢰 84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라면, 후자는 정부당국과 핵발전 사업자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신뢰이다. 후쿠시마사고의 수습을 맡고 있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여전히 국민들 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많은 정보를 은폐함으로써 불신을 자초하 고 있다. 기업으로서 도쿄전력은 핵발전사고에 대한 관심을 자연재해의 결 과로서 일어난 방사능 누출이라는 주제에 제한했고, 일본 정부도 도쿄전 력으로부터 나오는 제한된 정보에 의지해 재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 다. 결국 일본 정부가 여전히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정부의 결정 에 대한 신뢰 상실의 원인이 되고 있다. 즉, 핵발전의 위험과 관련하여 결 정권한이 있는 정부당국과 당사자인 국민 사이에는 신뢰가 깨어진다. 그리 고 위험에 대한 공중의 반응은 책임 있는 정부당국 및 핵발전 사업자에 대 한 신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위험의 사회적 수용은 핵발전 의 위험과 관련한 결정권한과 비록 분석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상호 밀접하 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핵발전 사업자가 제시하는 정보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부 정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그리고 정부가 행하는 위기관리 능력의 신빙성에 대해 평소 회의하거나 의심한다면, 그것은 불신 때문이다. 루만(Luhmann 1968, 78이하)에 따르면, 불신은 신뢰의 단순한 반대 현상이 아니라 기능적 등가 현상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비록 질적으로는 다르지만 모두 외부로부 터 주어진 정보나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사 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관료들의 권위주의적인 행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는 정책의 수립 혹은 결정과정에서 주민들의 수용거부와 협상실패에서 비 롯되고 있다. 관료적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과거에는 주민들이 통상 정부의 정책결정에 대해 무조건 참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민주화로 인해 주민들의 의견이 정책결정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주민들 은 지역의 이해관계와 상반되거나 불안을 야기하는 정책에 대해 거부를 한 다. 불신은 주민들이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대함으로써 집합적인 거부행동 을 용이하게 해주는 저항의 전략인 것이다(노진철 2004a).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85
4. 핵재난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 처음 핵발전은 전문가들에 의해 기존의 화력발전에 비해 적은 비용으 로 대량의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고 오염이 적은 친환경기술로 평가되었다. 그 결과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국 정부는 고도 산업화에 따라 급격히 증대하는 에너지 수요에 맞추어 경쟁적으로 핵발전소를 세우고 적극적으로 핵발전기술의 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스리마일섬사고와 체르노빌사고가 터지면서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반전 반핵운동과 연계해 핵발전소의 운영 및 신규 건설을 거부하는 본격적인 환경운동을 전개했고, 일부 전문가들이 핵발전의 방사능 오염과 대형 참사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선진 각국의 정 부는 에너지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핵발전 을 폐기물 처리비용과 나중에 발생할 핵발전소 폐기비용을 고려해 경제성 이 매우 낮은 것으로 재평가했으며, 방사능폐기물과 재처리 과정에서 치명 적인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오염기술로 재인식했다. 그 결과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정부든 기업이든 전문가든 모두 핵발전기술의 개발을 포기 했고, 덴마크, 스페인, 아일랜드 등과 함께 에너지 효율을 제고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기술과 태양력, 풍력, 조력 등 대체에너지 기술의 개발에 나섰 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대체에너지가 충당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 아시아의 신흥경제국은 산업계의 반 발 해소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안으로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경 쟁적으로 수립했다. 후쿠시마사고는 이들 국가에게 에너지정책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각 국가는 핵발전의 고수 혹은 폐기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협의제 민주주의를 지배적 정치 체제로 채 택하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후쿠시마사고 이후 녹색당 등의 소수 정당 이 연립 정부를 통해 핵발전 관련 사회적 갈등을 공론화하거나 시민단체들 이 반핵의 시위 형태로 핵발전 위험을 위험 소통에 끌어들였다. 그들의 시 86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선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사고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던 위험으로 보이 는 탓으로 정부의 정치적 결단 혹은 여야 합의, 국민투표 등을 통해 핵발전 소의 감축 혹은 폐쇄 결정에 이르고 있다. 그에 반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들에서는 호각지세인 여당과 야당 간의 권력투 쟁을 배경으로 시민운동의 활동이 주변적이고 미약한 가운데 핵발전을 미 래 전략산업의 한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에서 핵발전은 복합 적인 첨단기술의 운용에서 기대하지 않던 효과와 빠른 연쇄반응 때문에 어 쩔 수 없이 발생하는 정상 사건(Perrow 1984) 이다. 따라서 핵발전사고가 복합적인 첨단기술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면 핵발전의 활성화와 쇠퇴 여부 는 시장의 논리에 맡기자는 논리가 대세를 이룬다. 비록 반핵운동은 저항 은 하지만 중앙집권적인 행정부와 일사분란한 여당을 배경으로 한 정부의 핵에너지 계획을 지연시키는 데 실패한다. 이들과는 달리 국가 주도로 경 제발전이 행해지는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관료주의적 정부는 산업계 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제로서 에너지 공급체계의 자율성 확보를 위하여 에너지정책을 고수한다. 이들의 시선에서 핵발전은 원칙적으로 통제 가능 하다 는 전제에서 후쿠시마사고는 위기관리체계의 부실과 기술적 결함에 의한 사고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 관료주의적 정부는 경제적 가치를 우선 시해 과도한 비용이 드는 대체에너지기술의 개발을 추진하는 대신에 현재 의 투자비용이 적은 핵발전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밀어붙인다. 특히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사고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핵발전기 21기 에 전력생산의 35%인 발전량 비율을 2024년까지 총 35기에 48.5%까지 늘 리는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을 계속 추진할 태세이다. 이명박 정부는 핵발 전을 녹색성장 의 핵심 도구로 상징화해서 핵발전 확대에 올인 하고 있다. 핵발전이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정 부의 주장은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2050년까지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독일 정부의 계획에 견주어 보면 설득력 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방사능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87
피폭에 대한 공포에서 반핵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집단시위와 성명서발표는 공중의 여론에 별다른 충격효과를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핵을 연구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핵공학계와, 원자력위원회, 한국원자력문화재 단,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핵관련 정부기구, 그리 고 한국수력원자력(주), 한국전력공사,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발전소건설 업체 등의 핵발전 산업계 간의 제도화된 결속관계를 지시하는 한국형 핵마 피아 가 정책결정 과정을 장악한 상황에서는 공론장이 민주주의의 기본원 칙인 견제와 균형, 감시와 저항의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체르노빌사고 직후 대부분의 핵발전 국가들이 핵발전소 감축과 폐쇄를 단행한 것과 달리 한국은 오히려 원전기술자립계획(1987) 을 세우고 본격 적인 한국형 핵발전 개발에 나선 것도 핵마피아에 의한 공론장의 왜곡 때 문이었다. 서로 견제해야 할 진흥 홍보기구와 규제기구가 학계 및 핵발전 산업계와 회전문 인사 로 이익과 자리를 공유하는 상황에서는 핵발전에 대 한 논리적 의문, 비판과 이견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 결과 정부와 국민, 여당과 야당, 핵발전 찬성자와 반대자 간의 소통 없이 관료주의적 효율성 과 효과성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조건 없는 가치 동일화와 통합을 강요하며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 및 환경단체의 이해관계와 저항 을 묵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할 수 있다. 유달리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핵발전 확대정책을 고 집하는 정부의 정치적 행동이 잘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 대부터 핵마피아가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시행해온 여론조작을 그 이유 라고 하기에는 1989년부터 15년간 지속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 장 ) 입지과정에서 드러난 주민들의 저항이 너무 거세었다. 5) 또한 이명박 5)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된 방폐장 입지선정 과정에서 정부는 경북 영덕군 남정면, 충 남 태안군 안면도, 경남 양산군 장안읍, 경북 울진군 기성면, 전남 영광군, 강원도 양양군, 88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정부가 핵발전을 청정에너지라고 여론조작을 한 전략이 핵발전 확대정책 을 정당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게 하기에는 2009년 현 재 전체 연령 코호트(25~64세)에서 고교졸업자가 80%, 대학졸업자가 39% 를 차지할 정도로 전체 사회의 교육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중앙일보 2011/09/14). 6) 우리 사회의 높은 교육수준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을 밝 혀낸 MBC PD수첩과 인터넷사이트 BRIC, SCIENG의 활동, 청소년 시 민들의 106일간 지속된 광우병 촛불집회와 인터넷 언론(인터넷 한겨레, 오 마이뉴스, 프레시안, 칼라TV, 615TV, 다음 아고라 등)의 활동 등에서도 확 인된다. 하지만 후쿠시마사고는 스리마일섬사고나 체르노빌사고와 마찬가 지로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공개적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핵발전 감축과 확대를 다투는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서지도 못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태동한 환경단체들이 조직적인 반핵운동을 통해 핵발전의 안 전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국민을 각성시키는 노력을 해왔는데도, 핵발전을 경제성장과 과학적 기술적 진보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와 핵발전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비록 서유 럽 국가들처럼 신규 핵발전소의 계획 철회, 기존 핵발전소의 점진적 폐쇄 등 핵발전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핵발전 확대정책에 대한 공중의 회의와 저항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 가? 우선 핵발전소들이 인구 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소외지역인 울진, 월성, 영광에 집중된 것은 정치적 결정이었다. 핵발전은 도시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가 설치된 지역은 모두 변 경기도 옹진군 굴업도, 경북 영일군 청하면, 전북 고창군, 전북 부안군 위도 등에서 여러 차 례 방폐장의 설치를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모두 실패로 끝났다(노진철 2004b). 6) 특히 25~34세 연령 코호트는 98%가 고등학교 졸업자이고 63%가 대학졸업자로 세계 1위의 교육수준이다.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89
방에 위치한 경제적 낙후지역이고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촌이다. 따라서 정부가 낙후지역을 상대로 법제화된 경제적 지원정책과, (주)한국 수력원자력 본사이전 등의 일자리창출, 원전관련 보조금 등의 수입구조 개 선책을 제시하고 주민투표 등의 주민 자기결정 방법을 도입하면서 과거 핵 발전소나 방폐장 유치에 저항하던 곳들이 오히려 유치경쟁에 나서고 있다 (노진철 2006). 경주의 방폐장 유치도 지질학적으로 지진에 안전한 지층이 어서가 아니라 후보지 경선에서 다른 곳들보다 반대하는 주민이 더 적었기 때문이다. 핵발전의 공포가 세계를 뒤덮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삼척시와 경북 울 진군, 영덕군의 주민들은 핵발전소 유치를 둘러싸고 찬성세력과 반대세력 으로 나뉘어 지역발전과 핵발전 위험을 두고 다투고 있다. 지방의회와 지 역 지도층, 보수적 시민단체들의 연대체인 원전산업유치협의회(삼척), 신규 원전유치위원회(울진), 국책사업유치자문단(영덕) 등이 올해 초부터 주민들 에게 제2원자력연구원 유치를 비롯한 원자력클러스터 구축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었고, 주민들 대다수가 현재에서 실현가능한 지역발전을 미래에 언 제 일어날지 모르는 핵발전 위험보다 선호해 유치신청서 제출에 동참했다. 제2원자력연구원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시설인 파이로 프로세싱 과 소듐냉각고속로의 조기 실용화를 통해 핵발전의 완전한 순환체계를 구 축하는 데 있다. 핵마피아는 이 순환체계의 구축만이 핵발전시장에서 한국 이 경쟁적 우위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3월에 터진 후쿠시마사고가 주민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핵발전 의 위험에 대한 놀라움을 상기시키면서 사회동향연구소 가 삼척 주민을 상 대로 3월 24~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대(46%)가 찬성(41%)보다 많아졌다(한겨레 2011/03/30). 결과적으로 삼척이 강원도의 반대로 유치에 제동이 걸린 것과는 달리, 울진과 영덕은 여전히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면 서도 경북도가 포항의 포스텍과 경주의 중저준위방폐장을 엮어 제안한 동 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에 대한 기대에서 핵발전소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반면 90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세 지역의 반대세력은 지역에 묶여서 정책 결정자인 정부의 핵발전 확대정 책에 대한 전국적인 저항운동으로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재난이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는지, 어느 규모의 재난에 국가가 개입할지, 어느 수준에서 핵발전 사업자의 경제성을 보장할지도 정치가 결 정을 한다. 일본과 한국, 러시아, 중국은 정부가 에너지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국민에게 통보하고 전력회사가 이에 추종하는 관료주의 형태의 국책공(민)영 체제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연료비와 연동된 전력요금제 도, 핵발전소 입지 지자체에 막대한 보조금 및 지방세수 지원, 핵발전사고 시 정부지원을 보증하는 원자력손해배상제도 등을 두어, 전력회사는 정부 의 보호하에 막대한 현금수입과 거대한 조직형성을 보장받아 핵발전의 확 대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제도 와 유사하게 한국 정 부도 2001년 원자력손해배상법 과 원자력손해배상보상계약에 관한 법 률 의 개정을 통해 핵발전 사업자가 3억 계산단위(SDR)의 한도에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유한책임제도를 도입해 대규모 핵재난에 대해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정치적 조치를 취해 놓았다(권용우 2007). 왜냐하면 핵발전은 에너지안전설비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수 있는 노심용융 같은 파 국적인 위험으로 인해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보험조차도 피해에 대한 보상의 보증을 회피하기 때문이다(노진철 2010, 33). 이런 맥락에서 핵발전의 안전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가 무엇인 지를 결정하는 것도 정치이다. 국가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2004) 에 따라 핵재난의 피해경감을 위하여 예방적인 노력을 하고 발생한 재난에 대 해서는 신속히 대응 복구해야 할 의무까지 진다. 기존 핵발전소의 안전설 비 강화, 신규 핵발전소의 내진설계기준 강화, 사고에 대비한 대피훈련 실 시, 비행기충돌 테러 등에 의한 재난의 예방을 위한 철근 콘크리트로 된 이중 격납용기 설비, 원자로냉각장치와 비상냉각장치의 분리도 정치가 결 정을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결정들은 실행에서 항상 대규모의 국가 재정지 원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91
방사능 피폭치의 허용한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도 과 학이 아니라 정치가 한다. 미국은 일반인에겐 X레이나 자연방사선을 연 간 6밀리시버트(mSv/yr)만 허용하지만 원전종사자의 누적피폭치는 연간 50mSv/yr를 최상의 한도로 정해놓고 있다. 일본 정부도 핵재난 이전에는 핵발전 종사자에 대한 누적피폭치의 연간 허용한도를 20mSv/yr로 정해 놓 고 있었지만, 후쿠시마사고의 피폭치가 시간당 400mSv/hr를 넘어서자 상 황의 악화를 막는다는 구실로 핵발전 종사자의 연간 허용한도를 250mSv/ yr로 올렸다(환경운동연합 2011). 그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언은 필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범위에서 누적피폭치 혹은 비상투입시 피폭치 가 설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모든 국가가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과학 적 원칙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건강상 손상을 배제할 수 있는 방사선의 최고한계치를 과학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7) 정치적 결정과정에서는 초과와 미달을 구분하는 수치의 확정만이 중요하 다. 피폭치는 환경파괴의 정도나 정치 경제적 조건 등이 감안되어 설정될 뿐이다. 하지만 피폭치는 일단 설정되면 유해와 무해를 가리는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법적 보상의 규모를 조정하는 데 이용하는 법률 적인 경계치와 기준치로 기능한다. 일본 정부가 연간 피폭치의 허용한도를 250mSv/yr로 올린 것은 직접적으로 손해배상 부담의 축소와 관련이 있다. 나아가 핵발전사고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국고부담으로 처리하는 대신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을 손해배상이 완료될 때까지 10년 이상 국가가 공적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고도의 위험을 동반하는 핵발전은 국가가 그에 대한 예방 대 응 복구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게 재 정적 부담까지도 진다. 따라서 핵발전 사업자들은 정치가들을 강하게 신뢰 7) 물론 안전한 방사선 수치는 없다. 미량이라도 방사선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위험성은 높아진다. 어린이, 노약자는 방사선에 더욱 취약하다. 92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한다. 프랑스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러시아 수상이 후쿠시마사고 직후 자 국 핵발전의 안전에 대해 강변하고 나선 것은 그런 연유이다. 이들의 낙관 론의 근거는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에 대한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심과 맞물 려 있다. 핵발전은 예기치 못한 우연에 의해 전혀 기대치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에, 핵르네상스에서 경쟁하는 3국가는 통제를 하지만 통제 할 수 없는 위험과 더불어 사는 위험사회이다. 5. 합리화가 만들어내는 불안 많은 사람들은 일찍이 겪어본 적 없고,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언제 끝날 지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 파국의 현실로부터 애써 눈을 돌리려 한다.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 운전 중인 핵발전기 21기를 안전검사한 결과 모두 이상이 없다면서, 1조 원의 예산을 들여 방벽을 높이고 비상용 발전기를 추가 설치 한다면, 예상할 수 있는 자연재해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보 2011/05/25). 후쿠시마사고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도 예상할 수 있는 자연재해 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일 본 정부는 후쿠시마사고를 겪은 학습 효과에 의해 신규 핵발전계획을 포기 하고 2050년까지 단계적인 핵발전 감축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은 후 쿠시마사고 이후 위험 담론은 쏟아졌지만 핵발전소의 폐쇄를 요구하는 반 핵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재 난으로부터 배우는 학습능력이 결여된 사회인가? 아니면 핵발전기술의 완 벽성 추구는 그저 기술관료주의에 의한 형식적 합리성의 요구에 지나지 않 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조직화된 정상 위험 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익혀야 만 하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핵발전의 운영은 터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93
사고에 대비해 인접지역에 대한 비상대책을 수립하고 안전점검을 완벽하 게 해야 한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전문가들은 안전을 측정할 수 있는 위험 성평가의 기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핵발전기술이 개발되고 확산되는 과정 에서 통제를 벗어난 파국적인 돌발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더구나 핵발전은 중단한다고 해서 즉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현 세대가 핵발전을 포기하더라도 미래세대는 방사성 폐기물의 관리기술을 계 속 개발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형 가압경수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원자로 설계를 변경한 후 실험로의 안전실험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업운전에 들어갔던 탓인지, 핵연 료봉이 손상된다든가 주요 부품이 제 위치를 이탈한다든가 1차 냉각재에 서 수십 개가 넘는 금속파편이 발견된다든가, 증기발생기가 균열되거나 파 손된다든가 하는 기계적 결함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이런 설계상 결함, 공사상 결함, 운전상 부주의, 부적절한 관리 등 관행적인 장애는 현 재까지 알려진 것만 지난 10년간 183건에 이른다(최예용 Akira Suzuki 이 상홍 백도명 2011, 227). 하지만 공포를 야기하는 핵발전의 방사능 누출 위험은, 이런 관행적인 장애와는 달리 자연재해와 외부적 요인 등의 우연 적인 요인에 의해 원자로의 노심용융이 일어나는 위험, 즉 확률은 매우 낮 지만 손실잠재력은 최대가 되는 위험이다. 특히 월성 핵발전의 경우 5km 떨어진 곳에 활성단층이 있어 지진발생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시뮬레이 션 결과에 따르면, 일본 서쪽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발생하면 동해안에는 파고 1~3m의 지진해일이 덮치는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핵발전기 6기가 가동되고 있는 울진에는 3m에 달하는 해일이 몰려오는 것으로 분석된다. 핵발전 전문가들은 일본과 달리 우리의 핵발전소는 주변에 방파제도 있고 해수면보다 10m 높은 곳에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예상 해일 파고에 비해 3 배가 넘는 방호력이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조용식 2011). 하지만 도 호쿠 대지진은 절대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 는 것을 현실로서 보여주었다. 94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그동안 일본 정부는 수많은 지진에도 핵발전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며 핵 발전소 내진대책의 완벽성을 강조해왔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내진설계 규 모 6.5, 파고 10m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그 규모 이상의 지진과 지진해 일이 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내진설계가 우리보다 잘 돼 있다는 일본 도 합리적 예측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진해일이 문제를 일으켜 핵재난으로 이어졌다. 핵발전 안전 문제는 핵공학의 독점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위험의 관리 대상이다. 하지만 핵마피아가 에너지정책의 결정과정을 장악하면서 그간 핵발전 규제와 안전 분야는 핵르네상스의 진흥정책과 정부의 정보독점에 밀려 핵발전 운영의 하위 개념에 머물러왔다(최예용 외 2011, 230). 그 결과 돌발사고 발생시 인명피해와 대규모 방사능 누출에 대한 예방대책과 사후 피해대책이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핵재난을 몰고 오는 잠재력은 바로 과학과 기술에 의해 통제된 기준에 고착되어 버린 형식적 합리성에 의해 계산되고 계산하는 합리화가 전체 사 회에 위협적인 긴장과 모순을 다시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핵재난은 피해 의 정도나 영향을 예측해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예상치 못한 치명적 인 피해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한국형 핵발전의 절대 안전을 주장 하지만, 사실상 돌발적으로 등장할 위해를 부정하는 안전 개념은 위험은 회피가능하다 는 허구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Luhmann 1990, 134). 재난관리는 결코 완벽할 수 없으며, 그 필요조건에 적합한 완벽한 사람도 없다. 비록 재난관리는 계산과 규제를 통한 위해의 회피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지만, 재난관리에서도 결정이 내려질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 한 새로운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노진철 2008). 결국 이론과 방법론적 도구 에 의해 예측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외부로부터 닥친 예상 밖 의 돌발사고에 의한 방사능 오염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사람들로 하여 금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도록 내몬다. 다시 말하면, 위험사회에서 위험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합리화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95
외부로부터 닥친 위험에 대항하는 데 개인의 능력이 별 도움을 주지 못 한다는 사실은 불안을 더욱 정치적 영역에서 주제화하도록 부추긴다. 핵발 전의 방사능 누출, 먹거리 불안 등 새로운 불안의 주제들이 전파력도 강하 고 쉽게 공중의 여론 대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 이상 위험으로부 터 완전히 자유로운 결정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과학적 연구와 기 술개발을 더 심화하거나 더 엄밀한 제도를 구축해 위험을 확실성으로 전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 이제는 미래에 입을 손실을 현재의 결 정에서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위험이 수반된다. 후쿠시마사고와 같은 치명적인 대형사고의 발생가능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핵발전은 언제 어떻게 재난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이 따른다. 그렇지만 핵에너지가 주는 현재의 유용한 이익 때문에 미래의 가능한 위험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협의제 민주주의를 택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 이 핵발전의 안전에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핵발전소 감축과 함께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정책을 전환했다면, 국가통치력이 강한 프랑스 와 러시아, 한국은 오히려 핵발전산업의 선두주자였던 미국과 일본이 핵발 전의 불안정으로 인해 악화된 여론 때문에 주춤한 것을 기회로 핵발전시장 의 선두 다툼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해 5월 말 지식경제부 내에 원전산업정책국 을 신설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핵발 전 수출, 사용후핵연료 처리 업무를 통합 운영하는 방식으로 핵발전사업 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사고 이후에도 사고의 우연 성에 대한 안전조치 없이 노후 고리 1호기의 재가동을 법적 절차에 따른 안 전진단만 한 후 승인하고 있다. 환경과자치연구소가 5월 말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산시민의 58.6%가 핵발전에 대해 위험을 느끼고, 61.5%가 고리핵발전소 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수명을 연장한 고리 1호기에 대해 42.8%가 폐쇄를 원했다(경향신문 2011/06/03). 하지만 정부는 여론을 무시한 채 노후 핵발전기의 연장 결정을 관료주의적으로 형식적인 절차적 96 기억과 전망 겨울호 (통권 25호)
합리성에 따라 처리한 것이다. 일상에서는 엄청난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지속되는 데 대한 불안이 팽배한데도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 은 현재의 에너지수급을 위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적어도 후쿠시마사고는 핵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에너지 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위험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진다고 해서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불안의 정도가 높아지 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의 위험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은 사고 확률, 예견 되는 손실의 수량적 척도 등의 과학적 지식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 험이 과연 조절 가능한지가 불확실한 데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민 대부분 (65.1%)은 정부가 2024년까지 총 34기의 핵발전기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경향신문 2011/06/03).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노후 핵발전기의 재가동이나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발전을 위하여 절대 안전의 환상을 쫓는 주민과 핵발전의 안전을 불안해하는 주민 사이에 일어난 위험 소통이 주민들 간 대립을 일으키는 부작용은 있지만 위험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있으며, 핵발전 수출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둘러 싸고 시민사회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탈핵 담론이 국가의 핵발 전 담론과 충돌하면서 시민들에게 신재생에너지 등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인 식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중이 위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위험사회 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다. 정부가 위험의 규제와 사전 예방을 위한 위기관리체제에 의지해 공 중의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면, 비록 확률은 낮더라도 거대한 참화로 귀결 될 수 있는 제조된 위험 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불안의 원 천을 제거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제조된 위험들로 인해 예측할 수 없 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대가를 치르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믿는 사람 들이 많다. 비록 통제된 위험 이지만 위험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일이 잘못되어지는 경우를 동시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기든스 1997, 245). 어 느 누구도 참화, 재앙의 가능성에 대해 늘 불안해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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