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의 성공과 실패 2012년 3월 6일 화 이광호 1. 떠남- 그 시작의 이야기 2009년 2학기 대학에서 글쓰기 대학국어 수업을 하다가 낙태를 경험하는 여학생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을 알게 우연히 되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결국 나는 6개월 동안의 고민 끝에 본의 아니게 전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연구하고 강의하는 영적 돌봄 혹은 인성교육으로서의 성교육 은 누가 전공으로 인정 해 주지도 않겠지만, 나는 이게 내 전공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지각 결석이 많은 여학생들 일부와 대화하고 면담하던 중, 하혈 등 낙태 후유증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무력한 생명을 죽이는 일- 낙태가 먼 곳에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눈 앞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그리고 피부로 알게 된 것이다. 한 여학생 과의 면담 후 나를 채웠던 느낌은 이것이었다. 낙태는 더 이상 일부 비행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이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무의식에 성을 내 면화시켜 주는 이 시대의 문화, 특히 대중문화가 왜곡된 성을 주입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 것이 다.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결론은 아니다. 불현듯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었다. 이건 하나의 영감( 靈 感 ) 같은 심증( 心 證 )이었던 것이다. 내가 스물 여섯 살 무렵, 우리 나라에서 대유행했던 노래- 박 지윤의 성인식 이 길거리 어디를 가도 들려오는 것을 체험하면서 저 노래 참 나쁘고 싫다 는 생각을 했 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저런 음악과 춤, 내가 싫으니까 나만 안 듣고 안 보면 된다는, 관심주지 말자 는 생각으로 10년 넘게 살아왔다. 그런데 나보다 15살 정도 어린 20대 초반의 낙태 경험한 여대생들을 면담하면서 내 생각에 균열이 생 겼다. 저런 류의 노래를 내가 싫어하니까 나만 안 듣고 무시하면 그만이지! 라는 개인 차원에서의 의도적 무관심주의만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가진 어른으로서 또 부모로서 내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하 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대중문화 속에 성( 性 )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 지를 연구하게 되었고, 2010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 동안 연구하면서 처음 가졌던 심증( 心 證 )-혹시 대 중문화가 왜곡된 성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내면화시켜서 지난 10년 동안 낙태와 미혼모가 폭증하는 것 은 아닐까?-은 확신( 確 信 )으로 바뀌었다. 마음과 정신에 확신은 생겼지만 내 몸은 이전에 내가 하고 있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전 공-국어학 분야와 병행하는 길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박사학위까지 할 정도로 10년 넘게 이 분야를 공부 했고, 또 내 전공을 더 깊게 파야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안정적 경제 여건이 마련된다는 현실 적 고려도 포함된 고민이었다. 그냥 버리고 가기에는 아까운 것들도 참 많았기 때문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그 고민은 비교적 쉽게 풀렸다. - 1 -
내가 가진 역량의 90%정도를 국어학 내 전공에 쏟아 부으면서 연구 업적과 수업 등의 일을 하면서, 10%의 여력( 餘 力 )을 동원해서 과연 이 일-새로운 성교육 분야를 개척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기 때문 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내 삶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판타지 소설이거나 SF 영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무언가 나를 잡아끄는 것 같은 강한 마음의 끌림,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은 없지만 계 속 그리로 가고 싶어지는 그 느낌을 따르기로 했다. 상당히 두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그리로 가고 싶 은 내 마음 속 그 느낌을 외면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느낌을 따라산 지 2년이 넘었다. 이 글을 왜 쓰냐하면? 늘 글을 쓰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의 내 삶을 통 찰해보고 싶다. 나를 이끌어온 그 느낌을 따라 내가 잘 왔는지 우선 살펴보고 싶고, 또 그 느낌을 따라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다. 구체적으로 지난 2년 동안 내가 성취한 것과 실패한 것을 정 리해 볼 것이다. 2. 성취한 것 성취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연구한 내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톨릭 교회와 학교 교육 안에서 공식적 차원은 아니지만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명함에 자칭 생명문화 연구가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진정한 성교육은 생명교육 인문학 교육입니다., 청소년 낙태의 문화적 토대는 10대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소비시키는 대중문화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2 년 가까이를 불러주는 곳에 가서 강의하며 떠돌아 다녔다. 이전의 직업과 전공을 접고,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 이라고 나 스스로 를 설득하면서 필요성 하나만 보고 시작했다. 연구비와 생활비는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충당해야만 했 기 때문에 내 경제력이 한계에 도달할 시점 - 늦어도 2년 안에는 가시적인 승부를 봐야만 하는 리스크가 매우 큰 일이었다. 1 가톨릭 교회와 그 안의 중고등학교 교육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이면서 필요성을 인정해 준 곳은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중고 등학교였다. 서울 대교구 중고등부 학교사목부(KYCS)의 장경진 신부님께서 일선 학교 교육에 나가시는 봉사자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의 기회를 주셨고, 18개월이 지난 지금 KYCS에는 생명교육이라는 프로그램 으로 성교육이 준비되어서 2012년 3월학기부터 실제 강의가 진행될 예정에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박경미 수녀님과 유희선 수녀님의 주선으로 계성여고에서 특강 5회가 진행될 수 있었 다. 또 이상민 수녀님과 민영미 수녀님의 도움으로 성심여고와 성심여중에서, 그리고 여선희 수녀님의 도 움으로 광주 살레시오 여중과 여고에서 강의를 여러 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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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있었고, 위 사진의 살레시오 여중처럼 반장 부반장 등 간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있었다. 매 강의마다 수녀님들께서 시종일관 강의에 함께 해 주시면서 강의를 꼼꼼하 게 들어주셨다. 거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소문도 수녀님들께서 직접 내 주셨고, 그래서 별 다른 광고나 선전 없이도 내 연구와 강의가 이곳저곳에 퍼져갈 수 있었다. 2 예수회와 서강대의 도움 강의를 하면서 받게 된 소감문들이 있었는데, 그 소감문들 중 일부를 주변 지인들께 이 메일로 전달하 면서 내 연구와 강의의 중요 내용을 알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소감문을 전달 받았던 분들 중 한 분 이 예수회 박종인 신부님이셨는데, 박신부님께서 이 문서들을 배성문 수사님께 전달했고, 배 수사님을 만 나면서 나는 2011년 1학기에 예수회 센터 미디어 문화론적 성교육 이라는 제목으로 15주 강의를 개설할 수 있었고, 또 예수회 센터 피정 방 하나를 내 연구실로 쓸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 동안은 연 구실 없이 집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다녔는데, 영구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100배 나은 연구와 강의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후 예수회 부관구장 정제천 신부님의 요청으로, 젊은 연학( 硏 學 ) 수사님들 15분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번 할 수 있었고, 이 강의를 들으셨던 서강대 기숙사 사감 수사님의 추천으로 벨라르미노 학사 기숙사 생 300여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날 강의는 7시 30분 경에 시작해서 9시쯤 마쳤는데, 사감 - 4 -
수사님 말로는 그날 밤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잠을 자지 않고 열띤 토의와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그 구체 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이후에 예수회에서는 나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셨고 또 부관구장 정제천 신부님께서는 예수회원이 모두 1년에 1회 받아야 하는 성교육을 나에게 의뢰하셨다 이 강의는 2012년 4월 17일, 18일 21일로 예 정되어 있다. 3 가톨릭 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의 한 학기 강좌 이렇게 살던 중에 서울 대교구에서 주최한 미혼모 관련 발표회(2011년 2월경)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가톨릭 의대 맹광호 교수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맹교수님께서 나를 가 톨릭 의대 교목실장님이신 김평만 신부님께 소개 추천해 주셨고, 그래서 2011년 5월에는 가톨릭 간호대 1학년 학생들 100여명을 대상으로 2회의 특강(1강-대중문화와 성, 2강-정결한 삶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간호대생들과 강의를 함께 들으셨던 김평만 신부님께서 강의 바로 다음 날 전 화를 주시더니, 특강 했던 주제로 한 학기 동안 생명대학원에서 강의를 해 보라고 권유해 주셨다.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데 강의를 맡긴다고 하셔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사양했었다. 생명윤리나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 생명을 죽이게끔 하는 문화의 심층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매우 생소 한 연구여서 생명 대학원의 전문 영역과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생명 윤리나 철학의 전문적인 내용은 몇 년 공부하면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내가 가진 생명에 대한 태도는 공부만 한다고 해서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양하지 말고 맡으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맡아서 진행한 강의가 생명대학원 2011년 2학기 생명과 문학 이었다. 15주 동안의 강의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성을 내면화시켜주는 문화가 근본 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청소년과 청년들의 임신 낙태 미혼모가 급증한다.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큰 청소 년들은 <성-사랑-생명>을 하나로 인식하고 성이란 사랑의 길을 지나서 생명의 가능성을 긍정할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무의식적 태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큰 반면, 현재의 상업적 대중문화는 욕망과만 결합 된 성을 매우 환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성행위라는 문턱을 넘기가 매우 쉬워졌다. 그러니 까 성교육의 대안은 콘돔 교육이 아니라, 문화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인문학적이며 영적인 통 찰력을 키워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였다. 다양한 증거들을 대중문화 상품과 인문고전(주로 소설)을 예로 들어가면서 비교대조하는 강의를 했었는 데, 내 연구와 강의 내용을 잘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의심하시거나 반신반의하시는 분들도 계셨 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내용이고 또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50대여서 그러셨던 것 같다. 20-30대의 젊은 수강생들의 경우는 수업 시간 밖에서 이 메일 등을 통해 깊은 동의와 공감을 표하는 경 우가 많았다. 여기서도 수녀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 주셨다. 특히 이희순 유딧 수녀님께서 이곳저곳에 강의 내용을 알려 주셨고 전혀 모르는 분들- 대체로 신부님과 수녀님들에게서 연락을 참 많이도 받았다. 유딧 수녀님 께서 임상사목교육(CPE)를 하고 계셔서 그쪽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강의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의 내용과 제목을 영적 돌봄 의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생각해 볼 수 있 - 5 -
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 연구와 강의의 제목을 영적 돌봄으로서의 청소년 청년 성교육 혹은 인성 교육으로서의 청소년 청년 성교육 이라고 새롭게 명명하게 되었다. 3 주교회의 새 생명 프로젝트 포럼에서 발표 2011년 11월 25일이는 주교회의 생명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새 생명 프로젝트 포럼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대중문화와 성교육 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청주교구 생명 위원회 총무이신 송열섭 신부 님께서 봄부터 의뢰하신 주제였는데, 생명대학원 한 학기 강의 내용을 25분으로 압축해서 발표했다. 뮤직비디오 한 편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이 영상과 음악이 청소년들의 무의식에 스며들면서 왜곡 된 성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실제적인 성교육은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가 담당하고 있고, 이 둘은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하여금 문화를 통해서 배운다는 의식조차 없이 왜곡된 성을 배우게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발표였다. 당연히 교육적 대안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 어로 선하고 바른 것을 알려주는 교육에 가톨릭 교회가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터지면 20년 전부터 토론회 한 번 하고 늘 나오는 결론-교육이 필요하다-를 나도 반복한 것이 었다. 기획사는 자본을 투자해서 성을 왜곡하는 상품을 만들고 대량 살포하는데, 교회는 이것을 감지조차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까 좀 슬퍼졌다. 생명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님과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 그리고 많은 신부님 수녀님과 신자들께서 놀 라면서 발표를 들어주셨는데, 모두다 처음 보는 뮤직 비디오에 처음 듣는 설명이라고 하셨다. 이날 느낀 것 중 하나는 학생들 교육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 교육과 지도자 교육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제한된 역량을 일회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학생 교육에 쓰기보다는 어른들을 각성시키는 데 우 선적으로 사용해야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된 것이다. 4 주교회의 청소년 사목 위원회 강의 2012년 2월 6일에 한 강의였는데, 거의 일주일 전에 전화가 왔다. 강의할 수 있냐고? 강의는 청소년 사 목 위원회 위원장 주교님이신 이기헌 주교님과 위원 신부님 13분 정도가 들으신다고 했다. 청소년 사목 위원회 김재형 간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여기저기서 내 강의에 대한 추천을 동시다발적으로 받았던 - 6 -
것 같았다. 아마도 주교회의 새 생명 프로젝트 포럼이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내가 알 수 없었다. 평소에 하던 강의를 좀 더 다듬어서 강의하러 중곡동 CBCK로 갔는데, 지금까지 평생 연구하고 강의만 하고 살아온 나였지만 이날 강의는 많이 떨렸던 것이 사실이다. 강의 시작되고, 불 꺼지니까 멀리서 큰 사각 테이블 반대편에 주교님 앉아 계시고 그 주변에 신부님 10 여 분.. 검은 옷에 흰 로만 칼라만 13개가 보이는데, 모두 90분 강의 내내 굳은 표정 내지는 무표정 무반 응이신데 주교님께서는 강의 도중 뭔가 내가 하는 말과 슬라이드에 요약해서 제시된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으셨다. 90분의 시간에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질의 응답 없이 강의를 마쳤다. 강의 마치고 명함 달라고 하시면서 신부님 소속 교구 교육에 초대하시겠다고 하시는 몇 분 신부님들께 명함 드리고 인사 드 리고 도망치듯 얼른 나왔다. 내 강의 이후에 휴식 시간을 가진 후 회의가 지속된다고 했다. 강의에 대한 피드백은 그날 강의 들으셨던 살레시오회 백광현 신부님께서 내게 직접 전화를 주시면서 받게 되었다. 청소년들만을 위한 내용이 아니라, 정결 서원을 하고 사는 우리 수도자들에게도 필요한 내 용입니다. 라고 하셨고, 정결 서원을 하고 살지만 문화가 이러니까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살레시오회에서 기회를 만들어서 강의와 학술 발표 때에 초대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후에 백광현 신부님을 직접 찾아뵈었을 때 내게 하셨던 말씀은, 그날 봤던 뮤직비디오나 공연 내용은 전부 다 처음 보는 것이었고, 그래서 너무 놀라서 신부님들이 굳은 표정이었다는 것이었다. 핵심 내용이 전달이 안 된 것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강의 내용에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니까 공연한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무서운 말씀을 덧붙 여 주셨다. 평신도가 이 일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일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박해가 온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으로 잘 극복해야 한 다. 십자가의 성요한을 감옥에 가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십자가의 성요한 잘 몰라서 모른다고 대답함) 그 동료들이다. 수도회는 여러 가지 한계가 많아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기도와 미 사중에 꼭 기억하겠고, 살레시오회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꼭 모색해 보겠다. - 7 -
저녁식사 포함해서 3시간 가까이 백 신부님과 이야기하면서 많은 영적 격려를 받았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악이 움직이는 방식이 있고, 반드시 박해가 올 거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 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복사판 이야기를 나는 이후에 다른 신부님에게서 똑같이 들었다. 5 마산교구 생명 강의 아무 연고도 없는 마산 교구에서 나에게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가정사목국에서 2012년 1월 31일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대상으로 강의를 마련해 주셨다.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3개 강의를 하루 종일 듣는 일정이었는데, 명서동 성당에 200명 정도 오셔서 강의를 들어주셨다. 평일 낮이어 서 젊은이들은 올 수 없는 시간이었는데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강의에 공감해 주셨다. 마산 교구 총대리 블라시오 몬시뇰께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일 앞자리에서 강의를 경청해 주셨고, 강의 마치고는 아낌 없는 격려와 영적 조언을 해 주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거금의 후원금도 내 계좌 로 보내 주셨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은 것이다. 2월 26일 주일에는 마산교구 청소년국에서 청년들 대상으로 강의를 마련해주셨다. 이날 창원 중앙역으 로 나를 마중 나오신 박혁호 신부님과 1시간 30분가량 점심 식사를 하면서 신부님께서는 뜻하지 않게 나 에게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명쾌함으로 개인 강론을 해주셨는데, 그 내용이 살레시오회 백광현 신부님께 서 내게 해 주신 이야기와 거의 같았다. 박해는 반드시 온다. 가장 무서운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십자가의 성요한을 누가 감옥에 가두었 는지 아나? (이번에는 안다고 대답-전에 백신부님께 들어서)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서 형제님 공격하고 비방해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터무니 없는 말로 비방하면 그런 말에 위축되지 말고 가볍게 넘기고, 그런 비방 중에서도 내게 장차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잘 기억했다가 연구하는 데 보충하라. 신학을 했냐 철학을 했냐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그런 말은 신부님들이 강론하거나 책을 내도 늘 듣는 말이다. 지금은 공부할 여건이 안 되겠지만 그 공부가 필요하면 하느님께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반드시 만들어주신다. 그때 하면 된다. 미세한 판단 기준을 내세워서 시비 거는 일에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가톨릭 교회가 지난 2000년 동안 워낙 많은 이단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등장 했을 때 교회가 자동적으로 취하게 된 태도가 이단 심판관 내세워서 검증하겠다는 거니까 위축되지 말고 - 8 -
대승적 차원에서 크게 이해해라. 형제님 강의 내용은 신학이나 윤리까지 가서 검증할 필요도 사실 없다. 명백하게 생명을 죽이는 쪽으로 사람을 속이는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느님께 민감해야 하느님의 뜻을 빨리빨리 깨달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기도 열심히 해 야 한다. 혼자서만 기도해서 될 일 아니니까 아내는 물론 형제님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 그룹 꾸 려서 기도 부탁해라. 그리고 앞으로 여러 교구의 성당에 가서 강의할 일이 많이 생길텐데 그때마다 꼭 주 임 신부님께 안수 기도를 청하고 강의에 임해라. 준비는 형제님이 했지만 강의는 하느님께서 하신다... 한 시간 동안의 점심 식사가 나에게 특화된 개인 강론 시간이었다. 십자가의 성요한 예를 들면서 반드 시 박해가 온다는 동일한 내용을 다른 신부님에게서도 들었다고 말씀 드리니까, 그렇다면 정말 하느님께 서 형제님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이니까 더 깊게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라고 하셨다. 여러 가지 걱정과 근심 때문에 마산 내려가기 전날 밤에 사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와 내 강의 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을 들으면서 사실, 심적 영적 육체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는데, 식사하면서 들 은 속사포 같은 개인 강론 덕분에, 천사가 가져다 준 빵을 먹고 힘을 내서 걸었던 엘리야처럼 힘을 낼 수 있었다. 점심 식사 마치고 성당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성당이 거의 꽉 찰 정도로 모여 있었다. 300명은 넘고 400명은 조금 안 될 정도의 청년들과 어른 신자들이었다. 지난 번 평일 날 강의 때 오셨던 부모님들이 자 녀들을 다 보내신 듯 했다. 마산교구 청년 생명교육(2012년 2월 26일 주일) 강의 마치고 이틀 후 박혁호 신부님께서 내게 전화로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주셨다. 1-마산 교구 청년들과 어른들 중 일부는 내 열성팬이 형성된 것 같다. 2-이 강의 들으면서, 특히 여학생들이 남자 친구들의 성관계 요구에 무조건 싫다 가 아니라 왜 안 되 는지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생겼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것 자체가 이미 엄청나게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 이다. 이 연구와 강의는 계속 되어야만 한다. 3-특정 인기 걸그룹-소녀시대 관련한 내용에서는 열성팬들이 있었는지 너무 과도한 해석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 9 -
4-강의 내용이 많아서 좀 긴데, 이것을 청년들 청소년들이 앉아서 듣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그래 도 시간 기니까 다음 번 강의 때는 내용을 더 압축하자. 5-다음 강의 때는 인공피임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인공피임이 어떻게 영아유기나 영아살해 아동학대 등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좀더 자세히 강의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산 교구에는 앞으로 두 번 더 내려 가기로 했다. 마산-창원 지구의 거점 본당인 명서동 성당에서 두 번 강의를 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진주 지구와 거제 지구로 자리를 옮겨서 같은 연수의 기회를 마산 교구 에서 마련해 주시기로 하셨다. 7월에 예정되어 있는 두 번의 마산 교구 강의가 또 기다려진다. 백광현 신부님 말씀과 박혁호 신부님의 공통된 말씀- 박해는 반드시 오고, 반대자는 멀리 있지 않고 매 우 가까이 있다-을 들으면서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내적 갈등의 상당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 납득이 되니 까 이전처럼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도 대체로 그림이 그려졌다. 내가 이 길 가는 것으로 발생한 막대한 기회비용에 대해서 끊임없이 아까워 하셨던 주변 분들이 계셨 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제일 못 마땅해하셨다.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그런 일도 해야지 10년전 지방대로 시간 강의 다닐 때처럼 똑같이 지방으로 다 니는 게 말이 되느냐, 제 정신이냐? 국문과로 다시 안 돌아갈거냐? 는 말씀, 강의하면 강의료 받고 돈벌 이는 서서히 될 것 이라고 말씀 드려도 푼돈 벌어서 뭐하냐 퇴직금 나오는 안정적인 자리에 있어야지 하 는 말씀 들을 때는 온 몸에 기운이 쑥 빠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가장 심각한 방해와 고민하게 하는 문제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이미 내게 왔고 또 앞으로도 올 것이다. 이상하게도 협력과 도움은 이전부터 잘 알던 사람들에게 온 것이 아니라,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 던 분들에게서 크게 왔다. 돌이켜 보면, 이전부터 잘 알던 분들의 상당수는 오히려 이 길 가는 데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열심히 방해만 한 경우가 많았다. 6 청주교구 생명학교와 꽃동네 대학교 청주 교구는 생명운동을 꾸준히 지속해온 꽃동네가 있고 또 생명위원장 장봉훈 주교님과 송열섭 신부님 이 계시기 때문에 생명 교육 시범 교구로 선정되었고, 가정사목국장 이준연 신부님의 주도로 2011년에 생 명학교를 전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전문가 확보가 어려워서인지 나에게도 강의 요청이 3개가 왔다. 1강은 도대체 성교육이란 무엇인가? 2강은 인공피임은 왜 반생명적인가? 3강은 왜 천주교 신자들이 생명수호에 나서야 하는가? 였고, 내 강의가 늘 그렇듯이 이론과 이념에서 시작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례 에서 시작하여 문화적인 방법론으로 생명 문제를 일단 들으면 이해되게끔 3개 강의 모두를 전개했다. 강의를 모두 꼼꼼하게 챙겨 들으셨던 이준연 신부님께서 청소년 청년들을 위한 생명교육 성교육에 내 강의의 내용과 방식이 매우 적합하다는 적극적인 공감 표명을 해 주셨고, 2012년에는 내가 하고 있는 연 구의 더 깊은 내용을 생명학교 심화 과정, 즉 학교 현장에 투입될 강사 양성 과정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 해 주셨다. 받아들였다. 청주 오고 가는 길이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 10 -
심화 과정의 내 강의를 들은 분들이 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콘돔 교육이 아닌,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줄 수 있는 성교육을 구체적인 방법론을 직접 토의하면서 마련하실 것이다. 꽃동네 대학교의 신상현 수사님도 내게는 은인 중의 한 분이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동네 대학교에 특강을 마련하시고 초대해 주실 뿐만 아니라, 짧은 만남의 시간이지만 늘 고밀도의 영적 조건을 내게 아 끼지 않으신다. 핵심 내용은 백광현 신부님, 박혁호 신부님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워딩이 좀 다를 뿐..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거다.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찬성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 박해와 반대는 반드시 온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까, 나에게 영적 조언을 해 주신 분들의 공통 내용이 더 심도 있게 파악되어 버렸 다. 이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글을 써서 얻는 유익이라 할 것이다. 나에게 꾸준히 특강 요청을 하시면서 나를 배려해 주시는 신상현 수사님도 맹광호 교수님처럼 사실 내 강의를 직접 들어보신 적이 없다. 세상은 정말 희한하다. 나를 믿어주시고 추천해 주시는 분들도 내 강의 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으시고, 내 강의가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고 오류가 많다고 하신다는 분들도 사실 내 강의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으시다. 이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그냥 나의 길을 가고자 한다. 지난 2년을 돌이켜 보면, 내가 개인 차원에서 시작한 허접하기 그지없는 연구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준 곳이 청주교구와 꽃동네 그리고 마산교구였다. 마산은 정말 폭발적이다. 왜 청주, 꽃동네, 마산에서 제 일 먼저 이런 반응이 나왔는가를 청주교구 송열섭 신부님, 이준연 신부님, 꽃동네 신상현 수사님, 김승주 신부님 그리고 마산교구 박혁호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요약되는 내용은 모두 오랫동안 20년 넘게 생명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실천적인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공동체였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심각하게 고민하던 분들이 적당한 도구를 발견하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나무에 못이 깊게 박혔는데, 손으로 빼려니까 안 빠져서 고민하던 차에 장도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하면 아마 맞을 것 이다. 7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 가장 최근에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총무 송열섭 신부님께로부터 받은 연락이 3월에 생명위원회 위원 개 편이 있는데, 그 때 위원으로 들어와서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느닷없는 요청이어서 당 황스러웠다. 그동안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우리말 위원이나 용어 위원회 용어 위원은 내 전공 국어국문학 의 전문성이 인정되어서 참여한 것인데, 사실 생명위원회 참여는 나 스스로 이 분야에 전문성이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생명위원회 참여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이었다. 거절할 수 없어서 회의에는 열심히 참석하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송신부님께서는 3월에 임명장 받고 참여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며칠 후 가톨릭 의대에서 우연히 맹광호 교수님을 만나뵙게 되었는데, 그 때 맹교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당신은 생명위원회 위원에서 이제는 은퇴하실 예정이고, 그 대신 나를 추천해 주셨다고 하 셨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일도 그저 우연히만 이루어지는 법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11 -
내가 맹광호 교수님을 직접 만나뵌 것은 서너 번밖에 되지 않는다. 이 메일로 몇 번 연락 드리면서 학 생들이 내게 제출한 강의 소감문 몇 편과 내 동영상 강의 한두 편을 보내 드린 것이 전부였는데, 이 분은 어디를 가시든지 나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내가 내 능력만으로 결코 가기 어려운 거의 모든 길을 뚫어주셨다. 가톨릭 의대 교목실장 김평만 신부님께 나를 추천해 주셔서 의대 간호대에서 특강 여러 번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그것이 기회가 되어서 나는 지금 가톨릭대 성의교정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구 실 하나를 사용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또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으로도 추천해 주셔서 그 안 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연구를 하는 데 실제적으로 필요한 물질적 토대 마련은 맹교수님께서 나 이광호라는 축구공을 실질적인 자리에 토스해 주신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김평만 신 부님께 토스하셨고, 이번에는 주교회의 송열섭 신부님께 토스하신 것이다. 뜻을 정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면 어떻게든 길은 열린다는 것을 체험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 다 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전의 나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사람들은 길이 있는 곳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가던 길에서 나와서 비포장도로로 들어와서 내가 성취한 것을 요약하면, 나의 연구 와 강의 내용이 가톨릭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필요성을 인정받았고 내용도 검증받았다 는 것이다. 이것이 그간 내가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3. 실패한 것 당초에 기대하고 바랐던 것인데 달성하지 못했던 것도 하나 있다. 그것은 내 연구비와 생활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의 확보이다. 이것은 처절한 실패까지는 아니지만 명확한 실패다. 당초 나와 내 아내가 가진 전재산은 4000만원 정도. 사는 집도 아버지 집 옥상에 옥탑방 올려서 살고 있으니까 내 집도 전세금도 없는 상황이었다. 1000만원으로는 당장 차를 샀다. 경차 모닝. 여러 곳을 다 녀야 하니까. 그리고 남은 3000만원은 연구비와 생활비로 쓰기로 했다. 짧으면 1년 반 길면 2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로지 경제적 여건 때문에 내 연구와 강의는 늦어도 2년 안에는 승부를 확실히 봐야만 하는 게임이었다. 2년 후 내 연구와 강의가 그 가치를 인정 받아서 확실한 경제력이 확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더 하고 싶어도 절대 지속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고, 또 내 인생의 황금 같은 2년을 엄청난 기회비용을 무릅쓰고 투자하는 것이어서 아무리 마음을 비워도 부담감을 완전히 씻어낼 수는 없었다. 2년 정도가 흐르면서 가진 돈은 거의 바닥이 났지만, 그때부터 적지 않은 곳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내 가 별도로 선전하지 않아도 내 강의를 들으신 분들께서 이곳저곳에 좋은 소문을 내주셨기 때문인데, 특히 수녀님들께서 그 역할을 너무도 성실히 기꺼이 담당해 주셨다. 그래서 강연료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생활비와 연구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진 돈이 거의 다 떨어지고 있을 즈음에 그동안 나에게 큰 호의를 베풀어 주셨고 또 나에게 비빌 언 덕을 마련해 주고 싶어 하셨던 서강대에서 교수 공채가 진행되었는데,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기존 내 전공을 1년 반 가량 떠나서 성교육 연구에 전념했기 때문에 지난 1년 간 내 전공 분야의 연구 업적이 전 혀 없었다. 이것이 내 가장 큰 결점이었지만 전혀 후회 없는 공백이었다. 그러나 2월까지 가진 돈 다 쓰 면서 연구하고, 3월부터는 월급 받자고 생각하고 지원한 것이어서 탈락하고 나서는 앞이 캄캄했던 것이 - 12 -
사실이었다. 이 연구는 세상에 필요한 일이기는 한데, 세상이 원하지는 않는구나! 돈을 벌고 지위나 명예를 쉽게 얻 으려면 세상에 필요한 일보다는 세상이 원하는 일을 해야하는구나! 하는 것을 그때만큼 깊게 느껴본 적은 또 없었던 것 같다. 처음 하루 동안 솔직히 막막했다. 그러나 탈락 통보를 받고 이틀 후, 광주 가톨릭 신학대에 강의를 다 녀오면서 마음이 금새 회복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하느님이 먹이시는 엿은 보약이다. 나는 수퍼울트라 그레이트 빅엿을 먹었으니까 보약 중의 보약을 먹은 거다. 다시 분별해서 또 내 길을 찾아가자. 이런 마 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경제 생활 때문에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특히 이 전의 내 전공으로 컴백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길이 아니구나!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어도 다 른 방식으로 그 열렸던 길이 막히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나는 내 이전 전공으로 컴백하지 않겠다는 생 각 그리고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영적 돌봄과 인성교육으로서의 성교육 에 전념해서 밥을 먹고 살아 야 함을 다시 결심했다. 내가 갈 길이 아니면 뻔히 열렸던 길도 닫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가톨릭 의대 간호대 김평만 신부님께서 나에게 연구원 자리를 제공해 주셔서 지금 은 가톨릭대 반포 성의 교정에서 내가 쭉 해오던 영적 돌봄으로서의 성교육 연구 와 김평만 신부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간호대생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연구 중이다. 물론, 연구실도 생겼고 월급 도 받는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누리는 엄청난 호사이다. 여기가 중간 기착지인지 아니면 뿌리를 내려야 하는 곳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개인 연구가로서 2년 안에 내 연구비와 생활비를 충분히 확보할 만큼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혼자 연구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내 개인의 뜻이었던 것 같다. 당장 나를 믿어주고 도와줄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당시에 내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생각이었던 것 같고, 전공을 완전히 바꾸 어서 2년 안에 충분한 밥벌이를 하겠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2년을 결산해 보면, 결국 내 경제력에 의한 시간표에서 나온 계획만 실패한 것일 뿐, 이전 전공을 떠나서 성-사랑-생명 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의 성교육적 대안을 제시하는 쪽에서는 내가 감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성공했다. 2년 안에 경제력이 갖추어지는 것과 2년 안에 내 연구와 강의가 의미 있 게 확산되는 것- 둘 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인데 후자는 성공했고 전자는 실패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쪽에서는 성공한 것이고, 하느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는 쪽에서는 실패한 것이다. 대형 사고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실패는 나의 분별에 큰 도움을 준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이 길을 죽을 때까지 걸어갈 것 같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며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하며 목표 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