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EPA = 연합뉴스) (EPA = 연합뉴스) 지구 건강의 적신호, 이상기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 지구 표면의 온도가 지난 131 년 동안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올 여름 유라시아 대륙에는 유례없는 무더위가 닥쳤고, 반대편의 남아메리카에는 한파가 몰아쳤다. 과연 이상기후 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글 박상현 기자 사진 연합뉴스 DB 74 201009 201009 75
지구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부터 세계 각지에서는 이상 기후의 징후가 발견됐다. 여름인 북반구는 너무 덥고, 겨울인 남반구는 너무나 추웠다. 특히 러시 아 모스크바의 여름은 잔혹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 의 7월 평균 최저 기온은 섭씨 13.5도, 최고 기온 은 23.1도이다. 북위 55도에 위치한 모스크바는 한여름에도 30도를 넘는 날이 거의 없다. 19세기 후반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역대 최고 기온 은 1920년 7월의 36.8도였다. 하지만 7월 30일 수은주가 38.2도까지 치솟으면서 종전 기록을 갈 아치웠다. 문제는 이런 이상 고온이 하루나 이틀 동안만 지 속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8월 첫째 주 모스크바 의 최고 기온은 연일 35도 이상을 유지했다. 러시 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 스, 리투아니아, 핀란드 역시 예년보다 5~15도 북위 40 50도에 위치한 나라들은 대부분 예년보다 훨씬 높은 여 름 기온을 보였다. 7월 6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들이 더위 를 식히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 극심했던 혹서는 한반도에도 찾아왔다.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지속됐고, 곳곳에 폭염특 보가 발령됐다. 지난 8월 22일 서울광장 분수에서 가족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76 201009 201009 77
Exclusive 높은 찜통더위에 시달렸다. 이번 여름 폭염에서 비롯된 러시아의 재난은 가뭄 과 산불로 이어졌다. 러시아 정부는 높은 기온으 로 인해 가뭄 피해를 겪고 있는 수십 곳의 곡창지 대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집중 관리에 돌입 했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의 곡물 수확량은 15~2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여름 살인적인 더위에 시달린 나라는 러시아 외 에도 많았다. 이탈리아는 6월 평균 기온이 1880 년 이후 가장 높았고, 북부의 트리에스테 앞 바닷 물은 30.2도를 나타내 역시 최고점을 찍었다. 프 랑스와 독일,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도 6월말부터 7월까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일부 지역에 서는 낮 기온이 35~40도에 이르렀고, 독일의 열 차에서는 에어컨이 고장 나 실내 온도가 50도에 육박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도 폭염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아 남동부에서는 상수원이 바닥을 드러냈다. 무더위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지치게 했다. 모스크바의 한낮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간 7월말, 참새들이 시원한 분수에 몸을 적 시고 있다. 7월 중순 독일 드레스덴 인근 엘베 강의 수량이 줄어들어 강바닥이 드러났다. 가뭄에 메말라버린 땅은 폭염뿐만 아니라 물 부족 과도 관계가 있다. 기온이 오르는 여름에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으니 토지가 가물 수밖에 없다. 78 201009 201009 79
기후가 온화한 편인 남미에는 7월부터 강력한 한파가 닥쳤다.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 브라질 등 에서 수백 명이 동사로 사망하고 가축과 물고기도 떼죽음을 당했다. 서유럽의 반대에 있는 동아시아도 올여 름은 더웠다. 중국 북부는 2000년대 들 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7월 27일 베이징( 北 京 ), 톈진( 天 津 ), 허베이( 河 北 )성 등 중북부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돌았 다. 대조적으로 간쑤( 甘 肅 )성과 랴오닝( 遼 寧 )성에서는 사상 최 악의 홍수가 발생했다. 일본에서도 7월말 홋카이도( 北 海 道 )를 제외한 열도 대부분이 35도를 넘어 후텁지근한 열기가 전국을 감쌌다. 일본의 서극( 暑 極 )이라 할 만한 기후( 岐 阜 ) 현 다지미( 多 治 見 ) 시의 최고 기온 은 39.4도였고, 나고야( 名 古 屋 )는 38도, 도쿄 도심은 36.1도, 오사카는 35.3도였다. 중국, 일본과 함께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한국도 예외 는 아니어서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전국 60곳의 평균 기온이 평 년보다 0.8도 높았다. 또 한 달 중에 예년보다 덥지 않았던 날이 모스크바가 산불에서 나온 연기로 뒤덮여 회색 도시 로 변했다. 짙은 스모그가 시내에 가라앉았고 시계 ( 視 界 )가 흐려졌다. 8월 6일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 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앞을 걷고 있다. 닷새에 불과했다. 기상청은 강하게 발달 한 고기압 때문에 고온다습한 기류가 유 입되면서 폭염이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캐나다도 최고 기 온 경신 행진에 동참했다. 미국에서는 뉴욕과 워싱턴 D.C. 등 동부와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가 가장 더운 7월을 났다. 독 립기념일 연휴였던 첫 번째 주부터 버지니아, 메릴랜드, 뉴저지 주의 최고 기온은 일제히 35도를 넘었다. 미국의 더위 열풍은 8 월초에도 식지 않아서 남부의 테네시, 아칸소, 미시시피 주부터 동부까지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캐나다에서는 7 월초 밴쿠버 인근의 해안 도시인 화이트록(White Rock), 빅토 리아 국제공항, 칠리왝(Chilliwack) 등이 종전의 최고 기온 기록 을 깼다. 한편 남아메리카에서는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대지가 꽁 꽁 얼었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곳은 페루로 25개 주 가운데 80 201009 201009 81
(EPA = 연합뉴스) 로마의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른 7월 중순, 트레비 분수는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렸다. 올여름 북반구의 혹서는 유난히 오래 지속됐는데, 이상기후의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17개 주에 60일 동안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폐렴이나 호흡기 질 환으로 인해 100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7 월의 평균 최저 기온이 15도지만, 8도까지 떨어져 사람들이 두꺼 운 외투를 입고 외출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또한 볼리비아, 파라과이,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에도 동장군 이 엄습했다.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Patagonia)에는 폭설이 내려 수많은 양들이 죽었고, 볼리비아에서도 강물이 얼어 붙으면서 물고기가 동사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주에서는 아르 헨티나와 칠레 등지에서 이동해온 마젤란 펭귄 500여 마리가 먹 잇감을 구하지 못해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평년보다 기온이 낮 았고 남반구에서는 8월과 11월에 역대 최고 기온을 깼다는 것이 다. 세계기상기구의 2009 전 지구 기후 보고서 에 따르면 남아 메리카의 8월은 이례적으로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고 명시돼 있 다. 1년 만에 기후의 양상이 급변한 셈이다. 이상기후와 지구온난화는 해수면이 낮은 지역을 위협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폭 우가 내릴 때마다 시내가 물바다로 변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30일의 베네치아 모습. 동유럽 도시별 기온( ) 비교 자료 출처 : 세계기상기구 도 시 8월 평균 2010년 8월 6일 최저 기온 최고 기온 최저 기온 최고 기온 러시아 모스크바 12.0 21.5 25 38 우크라이나 키예프 14.4 24.0 22 37 벨라루스 민스크 11.7 21.7 20 35 폴란드 바르샤바 12.3 23.4 17 30 리투아니아 빌뉴스 11.5 21.6 17 30 핀란드 헬싱키 10.7 19.9 15 26 남미 도시별 기온( ) 비교 자료 출처 : 세계기상기구 도 시 8월 평균 2010년 8월 6일 최저 기온 최고 기온 최저 기온 최고 기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8.9 17.3 6 15 브라질 상파울루 12.8 23.3 9 17 파라과이 아순시온 14.3 24.8 4 20 칠레 산티아고 4.8 16.7 5 14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7.8 16.2 3 14 82 201009 201009 83
Exclusive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약 1천300km 떨어진 파타고니아 빙하. 길이가 200km에 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녹고 있다. 안데스 산맥이 있는 남미 서부는 동부보다 기온이 낮다. 이번 한파도 해발 3천m가 넘는 고산지대의 피해가 컸다. 이상 기온의 원인은 지구온난화일까 이처럼 평균보다 훨씬 높거나 낮은 기온이 형성되는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지표면의 온도가 점차 상승하는 지 구온난화 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 많지만, 단순히 하 나의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다. 기후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안순일 교수 는 이상 기온이 온난화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고 말 하면서도 자연적인 변동 역시 크게 이뤄지고 있다 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북반부가 남반구에 비해 온난화가 빠르 고 강하게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빙하나 눈으로 덮여 있던 지역이 점차 줄어들면서 온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처럼 고위도 지역이 가장 큰 영향 을 받을 것이란 지적이다. 엘니뇨(El Nino) 와 라니냐(La nina) 역시 이상 기온을 일으키 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남아메리 카 서부의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높거나 낮아지는 현상을 뜻 한다. 안순일 교수는 현재 태평양에서는 수온이 2도 정도 낮은 라니냐를 보이고 있다 며 6월부터 혹한과 혹서가 나타나고 있 는 곳은 라니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바닷물의 온도가 2도 이상 차갑다는 점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 을 것 이라고 추측했다. 또 대륙권 상부의 기류인 제트기류의 강 한 블로킹(저지) 현상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온실가스 증가와 산림 파괴인지에 대해서 는 논란이 있지만, 확실한 사실은 지구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 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 정부간 기후 변화 협의체(IPCC)에서 발행한 제4차 평가보고서 에도 드러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에서 관측된 기온 추이를 살펴봐도 기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국립기상연구소의 권원태 소장이 내놓은 국제적 기후 변화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후는 20세기 초반에 비해 후반에는 온난하고 강수가 많은 특성을 지니고 있 다. 수십 년 전에 비해 냉방일과 열대야는 늘어난 반면, 난방일과 서리일은 짧아졌 고 한강의 결빙 일수도 무척 줄어들었다. 설악산에 아열대 나비가 출몰하고, 왜가리나 백로 같은 여름 철 새가 텃새로 변하는 것도 온난화의 영향이다. 지난 7월 26일 국립기상연구소가 발간한 강원의 기후 변화 에도 춘천과 강릉의 기온을 측정한 결과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 아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춘천의 2009년 날씨를 1966년과 비교 하면 봄과 여름은 시작일이 각각 10일과 8일 빨라졌으나 가을 과 겨울은 7일과 2일 늦춰졌다. 연평균 기온도 약 35년 사이에 0.8도가 상승했다. 국내에서 기후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곳은 제 주도이다. 과거에는 해발 1천300m 부근에서 관찰되던 구상나 무가 최근에는 1천500~1천700m에 이르러야 눈에 띄고, 온대 지구의 기온이 계속 오르면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사 라질 것이다. 나사(NASA)는 평균 두께 4.8m를 유지 하던 북극 해빙( 海 氷 )이 1.5 3m로 얇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분포 지역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아열대 작물인 망 고, 용과, 패션프루트 등을 재배하는 농 가도 생겨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국립수산과학원은 부산 다대포항 근처의 남형제섬에서 아열대 성 산호류 10여 종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자리돔, 벵에돔도 서식하고 있었다. 기후와 해류의 변동으 로 인해 온대 바다의 생태계가 아열대화한 것이다. 기후 변화 전문가들은 2100년 지구의 지표면 평균 온도가 1990 년에 비해 1.4~5.8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북반 구 고위도 지역은 겨울에 온도가 급속히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반구의 눈과 해빙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해수면은 0.09~0.88m 상승할 전망이다. 인도양의 도서국가인 몰디브가 가라앉는다는 이야기가 현실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Y 84 201009 201009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