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잡지京都雜志 풍속(風俗) 건복(巾服) 사대부는 집에 있을 때 복건(幅巾)이나 방관(方冠) 정자관(程子冠) 동파관(東坡冠) 을 쓰고, 벼슬에 나간 자는 당건(唐巾)을 쓴다. 거리 밖으로 나갈 때는 갓을 쓰고, 당혜(唐鞋)나 운혜(雲鞋)를 신는 등 의관을 갖춘다. 선비가 입는 겉옷[儒服]은 도포(道袍)다. 벼슬아치의 일상복도 같다. 그러나 무관 의 일상복은 직령(直領)이다. 겨울철에 쥐고 다니는 부채는 모선(毛扇)이다. 만드는 방법은 두 쪽의 손잡이를 묶기 위해 누런 담비 턱수염으로 대나무마디처럼 감싼 다음 검은 비단 한 폭으로 잇는다. 혹은 수달 가죽으로 손잡이를 감싸기도 한다. 손을 따듯하게 하고 찬바람으 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봄과 가을에는 비단을 사용하여 먼지를 막고 노루 가죽으로 손잡이를 감싼다. 옷에 지니는 소도(小刀)는 물소뿔[犀], 대모(玳瑁), 침향(沈香), 흑각(黑角), 배나 무(華棃) 등을 재료로 칼자루와 칼집을 만든다. 혹은 검은 구리[烏銅]로 칼자루를 장식하는데 왜인들의 제작법이다. 여염집 부녀자들은 웃옷으로 녹색 규의(袿衣)를 입는데, 외출할 때는 따로 옷 한 벌로 머리를 가린다. 士夫平居多戴幅巾方冠程子冠東坡冠 朝士唐巾 街上俱用笠子穿唐鞋雲鞋 儒服道袍 朝 士常服亦用之 武官常服直領 冬持毛扇 其制兩柱裹以貂頷黃毛作竹節狀聯以黑緞一幅 或用獺皮裹柱 取其暖手護面也 春秋用紗幅障塵獐革裹柱 衣帶小刀用犀玳瑁沈香黑角華 棃爲柄鞘 或有烏銅鏤柄 倭制也 閭巷婦女綠袿衣 在街上另用一衣羃首 주식(酒食) 이름난 술에는 소곡(小麴), 도화(桃花), 두견(杜鵑) 등이 있는데, 모두 봄에 빚는 좋은 술이다. 지역별로는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황해도의 이강고(棃薑膏), 호남의 죽력고(竹瀝膏) 등이 또한 권할 만한 술이다. 노구솥 이름으로 전립투(氈笠套)라는 것이 있는데, 그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다.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 물을 넣어 채소를 데치고 그 둘레로 고기를 얹어 굽 는다. 안주를 만들거나 밥 짓기에 모두 좋다. 탕평채(蕩平菜)는 녹두유(菉豆乳), 돼지고기[猪肉], 미나리싹[芹苗] 등을 실같이 썰어 초장에 묻힌 것이다. 매우 청량하여 봄철 밤에 간식으로 먹기 좋다. 여러 채소를 절일 때는 새우젓국에 무 배추 마늘 고춧가루 소라 전복 조기 등을 섞어 - 1 -
독에 넣고 담가 겨울 내내 묵히는데, 매우 맵다. 제어(鮆魚)는 속칭 위어(葦魚)라고 하는데 한강 하류 행주에서 잡힌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사옹원(司饔院) 관리가 그물로 잡아 임금에게 진상한다. 생선장수들 은 웅어 사라고 외치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웅어는 횟감으로 좋다. 복숭아꽃이 다 떨어질 무렵에 복어국을 먹는다. 독 때문에 복어를 꺼리는 자들은 숭어[秃尾魚] 국 으로 대신한다. 酒名小麴桃花杜鵑 皆春釀之佳者 浿城甘紅露 海西棃薑膏 湖南竹瀝膏 亦有餉到者 鍋 名氈笠套取其形似也 瀹蔬於中燒肉於沿 案酒下飯俱美 蕩平菜者菉豆乳猪肉芹苗縷切用 醋醬衝之 極凉春晩可食 雜葅煑鰕鹽汁候淸蘿葍菘蒜番椒螺鰒石首魚 用陶甕和淹經冬辛 烈 鮆魚俗名葦魚 産於漢江下流杏1)洲 春末夏初司饔院官網捕進供 漁2)商遍街呌賣以爲 鱠材 桃花未落亦食河豚羮 憚其毒者代以秃尾魚蒸 차와 담배[茶烟] 차는 토산품이 없어 연경에서 수입하지만 작설(雀舌)이나 강귤(薑橘)로 대신하기 도 한다. 관청에서는 찹쌀을 볶아 물에 탄 것을 차라고 한다. 최근에는 백두산 삼나 무 싹으로 차를 만든다. 평안도 삼등(三登), 성천(成川) 등지에서는 금사연(金絲烟)이란 담배가 생산된다. 속칭 서초(西草)라고 하는데 맛이 매우 좋다. 벼슬한 자들은 반드시 담배합을 지참 하는데 쇠로 주조한 것이고 은동으로 매화와 대나무를 새겼으며 자색 녹피로 끈을 달아 재떨이와 함께 말 뒤에 달았다. 비천한 자는 존귀한 자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우지 못했고, 관직자가 길을 가기 위해 벽제(辟除)3)를 할 때, 담배 피우는 자가 있으면 엄히 다스렸다. 茶無土産貿於燕市 或代以雀舌薑橘 官府4)熬糯米沈水亦謂之茶 近俗或用白頭山杉芽 關西之三登成川等地産金絲烟 俗稱西草甚珍之 朝士必有烟盒鐵鑄銀銅梅竹紫鹿皮綬幷 烟盃携在馬後 卑賤在尊貴之前不敢吸烟 朝士出街辟除含烟者甚嚴 과일과 오이果瓜5) 當在茶烟下 배 종류 중에 좋은 것으로 추향(秋香)이 있다. 황해도 황주(黃州), 봉산(鳳山) 등 지에서 나오고, 이름이 월화(月華)인 감은 조금 둥글면서 네모난 구멍이 있다. 경기 1) 광문회본에는 杏이 幸으로 되어 있다. 2) 광문회본에는 魚로 되어 있다. 3) 벽제(辟除)는 지위 높은 사람이 지나갈 때 구종별배(驅從別陪)란 수행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잡인의 통행을 통제 하는 것이다. 4) 광문회본에는 附로 되어 있다. 5) 과와(果瓜) 항목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앞으로 규장각본 이라고 함)에는 1권 맨 뒤에 있으나 세주 當 在茶烟下 에 의해 이동하였다. - 2 -
도 남양과 안산에서 생산한다. 귤, 유자, 석류 등은 모두 남쪽지방의 산물이다. 서울 에서는 화분에 석류를 기르는 것이 유행이다. 털이 없는 복숭아를 승도(僧桃)라고 하고, 털이 있으며 아주 크고 일찍 익으면서 맛도 상쾌한 복숭아를 유월도(六月桃) 라고 한다. 울릉도에서는 대부분이 크고 씨는 종자를 삼는 복숭아가 나는데 이를 울릉도(鬱陵桃)라고 한다. 호박[南瓜]을 돼지고기와 한데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다. 여기에다 조기 대가리를 넣으면 맛이 더 좋아져 진솔한 여름반찬으로 삼는다. 棃之佳者曰秋香自海西之黃州鳳山等地而至柹名月華小團6)長存方穴産於畿內之南陽安 山 橘柚石榴俱南産 京城盆養石榴 亦盛桃之不毛者曰僧桃 有毛以絶大早熟爽美曰六月 桃 鬱陵島中多大桃取核而種之曰鬱陵桃 南瓜同猪肉煑味佳 亦調以乾鮸魚頭爲夏月眞率 之饌 제택(第宅) 사대부는 문을 높이 세울 수 있지만 서민들은 법으로 금지한다. 당(堂) 앞에 전나 무로 시렁을 만들어 걸어 매고 그 남은 부분으로 호로(葫蘆), 산개(傘蓋)7), 상학(翔 鶴) 모양을 만드는데, 이것을 노송취병(老松翠屛)8)이라고 부른다. 당내(堂內)에는 유황지(油黃紙)를 깔아 기름이 엉긴 듯이 미끄럽다. 그 위에 壽福 글자를 넣은 용 수초(龍鬚草) 자리를 깔며 화문석과 은낭(隱囊)을 배치해둔다. 창은 열고 닫을 수 있는 만자(卍) 무늬 이중창을 단다. 창호지에 기름을 먹여 정결하기가 은니색[泥銀 色] 같다. 밖을 내다볼 수 있게 유리를 넣는다. 여항(閭巷)에서 흰 널판으로 새 문을 달 때 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時 姜太 公造 라고 쓰는데, 오행에서 금에 해당하는 庚 과 申 을 써서 나무를 이기는 뜻을 취한 것이다. 士夫高大其門庶人有禁 堂前結樅棚引 其餘梢爲葫蘆傘蓋翔鶴之狀 號老松翠屛 堂內舖 油黃紙滑如凝脂 再舖龍鬚草壽福字席置花紋隱囊 牖設卍字複窗遊移開闔 糊紙着油凈如 泥銀色嵌琉璃瞰外 閭巷新設白板門書庚申年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造 盖取金克木 之義也 마려(馬驢) 붉은 색 말을 절다(截多)라고 하고 밤색 말을 구랑(勾郞)이라고 하며 붉은 털과 흰털이 섞인 말을 부루(夫婁), 검정말을 가라(加羅), 누런색 말을 공골(公鶻), 검은 갈기가 있는 누런색 말을 고라(高羅), 갈기가 검고 털이 흰 말을 가리온(加里温), 볼 6) 광문회본에는 圓으로 되어 있다. 7) 산개(傘蓋)는 우산 같이 생긴 의장물(儀仗物)로 자루는 길고 꼭대기는 둥글며 유소(流蘇)를 달았다. 8) 노송취병(老松翠屛)이란 늙은 소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틀어서 만든 병풍이란 뜻이다. - 3 -
이 줄이 나 있는 말을 간자(間者) 등으로 부른다. 이것들은 본래 만주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경 개시(開市) 무역 때 배운 용어다. 말을 타면 말고삐를 오른쪽에 두고 당긴다. 당상관은 왼쪽에서도 당길 수 있게 하는데 고삐가 부드럽고 길다. 유생들은 당나귀를 즐겨 타고 관리들도 탈 수 있지 만 무관이 타면 조롱거리가 된다. 紅馬曰截多 栗色馬曰勾郞 紅沙馬曰夫婁 黑馬曰加羅 黃馬曰公鶻 黑鬃黃馬曰高羅 海 騮曰加里温 線臉曰間者 此本滿洲語東人于開市時效之也 騎馬者有右牽 堂上官添左牽 其轡沃若而長 儒生愛跨驢 朝士亦可騎 武官騎者致謗議 기집(器什) 세속에서는 놋그릇을 중시하여 밥, 탕, 나물, 고기 등 식탁에 오르는 모든 것들을 놋그릇에 담는다. 심지어 세숫대야나 요강까지 놋쇠로 만든 것을 쓴다. 俗重鍮器 人必具飯湯蔬炙一卓之用 至頮盆夜壺皆以鍮鑄 문방(文房) 붓은 족제비 털로 만든 황서랑미필(黃鼠狼尾筆), 종이는 설화죽청지(雪花竹淸紙), 먹은 해주에서 만든 유매묵(油煤墨), 벼루는 남포(藍浦)9)에서 나는 오석연(烏石硯) 을 제일로 친다. 근래는 위원(渭原)10)에서 나는 자석연(紫石硯)을 많이 사용한다. 黃鼠狼尾筆 雪花竹淸紙 海州油煤墨 藍浦烏石硯爲佳品 近頗用渭原紫石硯 화훼(花卉) 화초를 가꾸는 능력은 왜인들의 소철(蘇鐵)이나 종려(棕櫚)에까지 미친다. 중국 연경에서는 가을에 해당(海棠)을 귀하게 여긴다. 매화는 녹색 꽃받침이 거꾸로 달린 채 저절로 꺾인 것을 아름답게 여긴다. 국화는 홍색, 황색, 백색, 삼학령(三鶴翎), 금원(禁苑), 황취(黃醉), 양비(楊妃) 등의 이름이 있고 또 오홍색과 대소 설백(雪白) 등의 품목이 있다. 養花卉能致倭蘇鐵棕櫚 燕中秋海棠爲貴 梅以綠蕚倒垂自然槎爲佳 菊有紅黃白三鶴翎禁 苑黃醉楊妃之號 又有烏紅大小雪白諸品 집비둘기(鵓鴿)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에는 여덟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온 몸이 흰 전백(全白) 9) 남포(藍浦)는 충청남도 보령에 위치한 지명이름이다. 10) 위원(渭原)은 평안북도에 위치한 지명이름이다. - 4 -
이 있고, 둘째는 흰 몸에 검은 꼬리, 그리고 머리에 검은 점을 지닌 점오(點烏), 셋 째는 붉은 몸에 꼬리가 흰 자단(紫丹), 넷째는 몸이 희고 머리와 목이 검은 흑허두 (黑虛頭), 다섯째는 몸이 희고 머리와 목이 자색인 자허두(紫虛頭), 여섯째는 몸이 희고 목이 붉으며 겹으로 된 날개 끝에 붉은 점이 있는 천앙백(天仰白), 일곱째는 몸은 검고 꼬리는 흰 흑층(黑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겹으로 된 갈색 날개 끝에 금 색 점이 있는 승(僧)이다. 養鵓鴿有八目之稱 其一全身白曰全白 其二身白尾黑頭戴黑點曰點烏 其三身赤尾白曰紫 丹 其四身白頭頸黑曰黑虛頭 其五身白頭頸紫曰紫虛頭 其六身白頸赤翎端有二層赤點曰 天仰白 其七身黑尾白曰黑層 其八褐色翎端有二層金色點曰僧 유상(遊賞) 필운대 행화(杏花), 북둔의 복사꽃, 흥인문밖 버들(楊柳), 천연정(天然亭) 연꽃, 삼 청동 탕춘대(蕩春臺)의 수석(水石)이 술과 노래를 즐기려는 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 이다. 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이를 하루 만에 두루 돌면서 성 내외의 꽃과 버들을 감 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질 무렵에 다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弼雲臺杏花 北屯桃花 興仁門外楊柳 天然亭荷花 三淸洞蕩春臺水石 觴詠者多集于此 都城周四十里 一日遍巡周覧城內外花柳者爲勝 凌晨始登昏鍾可畢 山路絶險有委頓而返 者 노래와 광대(聲伎) 북, 장구, 해금, 피리, 단소, 대금 등으로 합주하는 것을 타풍류(打風流)라고 한다. 선전관(宣傳官)에 적을 둔 것을 내취(內吹)라고 하고 장용영(壯勇營)11) 훈련도감 금 위영 어영청에 속한 것을 세악수(細樂手)라고 한다. 이원(梨園)12)의 속악부(俗樂部) 에도 이것이 있다. 노래는 청탁(淸濁)의 두 가지 음이 있는데 이것을 변화시킨 중대엽(中大葉)13), 삭 대엽(數大葉)14) 등의 명칭이 있다. 엽(葉)은 강(腔)이라고 하는데, 곡조를 말한다. 춤은 반드시 대무(對舞)를 추는데 춤사위는 남자는 소매로, 여자는 손으로 한다. 11) 장용영(壯勇營)은 조선 정조 15년(1791)에 서울과 수원(水原)에 설치한 군영(軍營)으로, 순조 2년(1802)에 총리영(總理營)으로 고쳤다. 12) 이원(梨園)은 교방(敎坊)의 다른 말로 장악원(掌樂院)의 좌방(左坊)과 우방(右坊)을 아울러 이르는 이름이다. 좌방은 아악(雅樂)을 우방은 속악(俗樂)을 맡았다. 13) 중대엽(中大葉)이란 만대엽(慢大葉)보다 빠르고 삭대엽(數大葉) 보다 느린 곡조다. 시조시로 사설을 얹어 불 렀다. 14) 삭대엽(數大葉)이란 빠른 곡조의 가곡이다. 우조와 계면조 두 음계가 있다. - 5 -
내의원(內醫院)과 혜민서(惠民署)에는 의녀(醫女)를 두었고, 공조(工曹)와 상의원 (尙衣院)에는 침선비(鍼線婢)를 두었다. 모두 관동(關東)과 삼남(三南) 지역에서 뽑 은 기녀들이다. 잔치가 있을 때 불러서 가무를 시킨다. 내의원(內醫院)의 의녀는 검 은 비단으로 만든 가리마(加里麼)를 쓰고 다른 기녀들은 감은 베로 가리마를 삼는 다. 가리마라는 것은 우리말로 씌우개[羃]로 서간 봉투 같은 형태여서 머리카락을 가릴 수 있다. 연극은 산희(山戱)와 야희(野戱) 양부(兩部)로 나뉘어 나례도감(儺禮都監)에 속해 있다. 산희는 시렁을 매어 장막을 친 무대에서 사자, 범, 만석중의 춤을 춘다. 야희 는 당녀(唐女)와 소매(小梅)로 분장하고 춤을 춘다. 만석은 고려 중 이름이고 당녀 는 고려 때 예성강(禮成江) 가에 살던 중국 창녀다. 소매는 옛날 미녀의 이름이다. 皷腰皷奚琴橫篴15)小竹+觱篥合奏謂之打風流 籍係宣傳官廳曰內吹 壯勇營訓局禁御二 營曰細樂手 梨園俗樂部亦有之 歌用淸濁二音 轉變有中大葉數大葉等名 葉猶言腔也 舞 必對舞 男拂袖女翻手 內醫院惠民署有醫女 工曹尙衣院有鍼線婢 皆關東三南選上妓也 宴集招致歌舞 內醫院醫女戴黑緞加里麼餘用黑布爲之 加里麼者方言羃也 其形如書套可 以羃䯻 演劇有山戱野戱兩部屬於儺禮都監 山戱結棚下帳作獅虎曼碩僧舞 野戱扮唐女小 梅舞 曼碩高麗僧名 唐女高麗時禮成江上有中國倡女來居者 小梅亦古之美女名 도희(賭戱) 투전(投箋)은 지패(紙牌) 같은 것으로 사람 물고기 새 꿩 별 말 노루 토끼 등 1부터 9 까지 있고 각각에는 장(將)이 있는데 인장(人將)은 황(皇), 즉 황제이고 어장(魚將) 은 용(龍), 조장(鳥將)은 봉(鳳), 치장(雉將)은 매[鷹], 성장(星將)은 극(極), 즉 북극 성, 마장(馬將)은 수레[乘], 장장(獐將)은 호(虎), 토장(兎將)은 취(鷲)다. 모두 여든 가지 패를 팔목(八目)이라고 한다. 이를 둘로 나누어 사람 물고기 새 꿩은 노(老)로, 별 말 노루 토끼는 소(少)로 사용한다. 투전의 글자는 기괴하여 전서(篆書) 같기도 하 고 초서 같기도 하다. 投箋者紙牌類也 人魚鳥雉星馬獐兎自一至九 人將曰皇 魚將曰龍 鳥將曰鳳 雉將曰鷹 星將曰極 馬將曰乘 獐將曰虎 兎將曰鷲 凡八十葉號爲八目 人魚鳥雉用老 星馬獐兎用 少 箋字似篆似草奇恠 시포(市舖) 서울에는 종가(鍾街)를 끼고 큰 점포가 있어 각기 비단, 명주, 종이, 베 등을 팔 고, 그 나머지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무릇 장을 보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배오 개[棃峴]와 소의문(昭義門) 밖으로 모였다가 정오경에 종가로 모인다. 장안 생활에 15) 광분회본에는 笛으로 되어 있다. - 6 -
필요한 물건들은 동부채칠패어(東部菜七牌魚)라고 하여 동부에 채소가, 칠패에 생선 이 많다. 남산 아래에서는 술을 잘 빚고 북부에서는, 떡집이 많다고 하여 남주북병 (南酒北餠)이라는 속담도 생겼다. 약포(藥舖)는 갈대로 만든 발을 내려뜨리고 신농유업(神農遺業), 만병회춘(萬病 回春) 등을 쓴 기를 걸어놓는다. 약을 파는 사람들은 봉사(奉事)라고 불린다. 緞紬紙布諸大舖挾鍾街 而居餘皆散處 凡趨市者晨集于棃峴及昭義門外 午集于鍾街 一 城之所需者 東部菜七牌魚爲盛 南山下善釀酒北部多賣餠家 俗稱南酒北餠 藥舖埀葦簾 揭神農遺業萬病回春等號 賣藥者皆稱奉事 시문(詩文) 어린 아이들에게는 우선 주흥사(周興嗣)16)의 음으로는 원나라 사람 증선지(曾先之)가 쓴 람 강소미(江少微)의 통감(通鑑) 이나 천자문(千字文)17) 을 가르치고 다 사략(史略) 을 배우게 한다. 송나라 사 소학(小學) 을 가르치고 난 후에는 다른 책 을 가르친다. 봄과 여름에는 초본당시(抄本唐詩) 를 읽는데, 송지문(宋之問)의 한식시(寒食詩) 가 맨 먼저 나온다. 시의 첫 구절이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다(馬上逢寒食). 로 되 어 있어 책 이름을 여항에서는 마상당음(馬上唐音) 이라고 속칭한다. 전등신화(剪燈新話) 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두문자를 익히는데 도움 이 되기 때문이다. 전등신화 는 원나라 학자인 구우(瞿佑)가 편찬한 책으로 우리나 라에서는 수호자(埀胡子) 임기(林芑)가 주해를 달았다. 유생들은 여름 과제로 시부(詩賦)를 짓는데, 산의 절이나 들의 정자에 모이는 것 을 접(接)이라고 한다. 시는 제목 중에 운(韻) 자로 한 자를 찍어 20개의 운을 만드 는데 5운과 6운을 입제(立題)라 하고, 7운과 8운을 포두(鋪頭), 9운과 10운을 포서 (鋪叙)라고 하여 조금씩 층절(層節)을 변화시키다가 회제(回題)에 이른다. 부(賦)는 30개의 운을 돌리는데, 7운과 8운을 파제(破題), 9운과 10운을 포두(鋪頭)라고 하 는 것 말고는 시의 경우와 대략 동일하다. 시율(詩律)을 속칭 풍월(風月)이라고 하는 것은 음풍영월(吟風詠月)을 말하는 것 이다. 잔치에 모여 운자를 집고 즐겨 청색, 황색, 홍색, 백색의 측리(側理)18), 취우 (翠羽)19) 등 전지(箋紙)에 폭을 이어 베껴 나간다. 小兒先授周興嗣千文 次曾先之史略 少微通鑑或小學 以及於他書 春夏讀抄本唐詩 以宋 之問寒食詩爲首 俗號馬上唐音 閭巷最愛剪燈新話以其有助於吏文也 剪燈新話元瞿佑撰 16) 주흥사(周興嗣)는 중국 남조시대 양(梁) 나라 사람으로 왕희지 글자를 모아 천자문의 글을 만들었다. 17) 광문회본 외에는 千文으로 되어 있으나 번역은 千字文으로 하였다. 18) 측리(側理)는 종이의 일종으로 태지(苔紙)다. 19) 취우(翠羽)는 취조의 깃털로 시축이나 책의 겉장 장식으로 많이 사용한다. - 7 -
東士埀胡子林芑註解 儒生夏課詩賦聚於山寺野亭曰接 詩押題中一字二十韻 第五六曰立 題 第七八曰鋪頭 第九十曰鋪叙 稍變層節至於回題 賦轉三十韻 第七八曰破題 第九十 曰鋪頭 餘與詩略同 詩律俗稱風月吟風詠月之謂也 宴集拈韻喜用靑黃紅白側理翠羽等箋 聯幅而寫之 글씨와 그림(書畵) 글씨에는 촉체(蜀體)가 있는데, 조송설(趙松雪)의 서체20)를 말한다. 고려 충선왕 (忠宣王)이 원나라 성종(成宗)의 부마(駙馬)로 태위(太尉)에 진작되어 심양왕(瀋陽 王)으로 연경에 머물고 있을 때 조송설이 드나들었으므로 그의 필적이 많았다. 그것 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지금도 그 서체를 본받는다. 촉체라고 한 것은 초체(肖體)를 잘못 말한 것이고 초(肖) 자는 조(趙) 자의 반쪽이다. 또한 액체(額體)라는 것이 있 는데, 원나라 중 설암(雪菴)의 서체로 편액의 표제 글씨로 적당하여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설암이 쓴 병위삼첩(兵衛森帖) 21)이라는 서첩이 유행한다. 비백서(飛白書)라는 서체는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가른 다음 먹을 묻혀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耻) 등의 글자를 쓰는 것인데, 점찍 기, 긋기, 파임, 삐침 등을 임의로 하여 물고기, 게, 새우, 제비 등을 형상을 만들기 도 한다. 벽에는 종규가 귀신을 잡는 그림(鍾馗捕鬼圖), 신선이 사슴을 탄 그림(仙人騎鹿 圖)을 건다. 병풍그림으로는 금강일만이천봉(金剛一萬二千峯) 그림이나 관동팔경(關 東八景) 그림이 있고, 소병(小屛)으로는 화조(花鳥)나 나비 그림을 그리며, 혼례병풍 (婚屛)으로는 백자도(百子圖),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요지연도(瑤池宴圖) 등의 그림이 있다. 공식 잔치에는 제용감(濟用監)에서 제작한 모란대병(牡丹大屛)을 사용 하는데, 사족들이 혼례 때 빌려 쓰기도 한다. 書有蜀體謂趙松雪也 高麗忠宣王以元成宗時駙馬進爵太尉瀋陽王留燕邸 松雪遊王門故 筆蹟多 東來至今效其體 蜀體者肖體之訛也 肖卽趙字之半也 又有額體 元僧雪菴體也宜 於題額故曰額體 今有雪菴所書兵衛森帖行於世 飛白書削柳枝歧其端蘸墨寫孝悌忠信禮 義廉耻等字 點畫波拂隨意作魚蟹蝦 燕狀 壁揭鍾馗捕鬼仙人騎鹿圖 屛畵金剛一萬二千峯 或關東八景 小屛花鳥蛺蜨22) 婚屛百子圖郭汾陽行樂圖瑤池宴圖 公讌用濟用監牡23)丹 大屛 士族婚禮亦借用 20) 조송설(趙松雪)은 조맹부(趙孟頫)이므로 조맹부체를 말한다. 21) 고려말에 전해진 설암의 글씨는 이것 외에 춘종첩(春種帖), 동명(東銘) 등이 있다. 설암은 원나라 승려로 법 명은 부광(傅光), 호는 현휘(玄暉)다. 22) 광문회본에는 蝶으로 되어 있다. 23) 규장각, 광문회본에는 牧으로 되어 있다. - 8 -
혼의(婚儀) 신랑은 백마를 타고 자색비단의 단령을 입고 서대(犀帶)를 띠고 겹날개가 달린 사모(紗帽)를 쓴다. 행렬 앞에는 청사등롱 네 쌍을 배치한다. 기러기애비(鴈父)는 주 립(朱笠)에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기러기를 받들고 천천히 앞서 걸어간다. 관청 하 인들을 빌어 행차를 배호(陪護)한다. 신부는 황동(黃銅)으로 정수리를 장식한 팔인 교(八人轎)를 탄다. 사면은 발을 드리고 행렬 앞에 청사등록 네 쌍과 안보(案袱) 한 쌍을 배치시키는데, 대추, 포, 옷상자, 경대는 머리에 이고 가고 부용향(芙蓉香)은 들고 간다. 계집종 12명은 단장을 곱게 하고 고운 옷을 입고 짝을 지어 앞에 가고 유모(乳母)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가리마를 쓰고 말을 타고 뒤를 따르는데 또한 관 청 하리들을 동원하여 배호(陪護) 시킨다. 新郞跨白馬衣紫綃團領繫犀帶戴複翅紗帽 前排靑紗燈籠四對 鴈父朱笠黑團領捧鴈徐步 在前 借諸司吏隸陪護籠街 新婦乘黃銅頂八人轎四面垂簾 前排靑紗燈籠四對案袱一對戴 棗脩衣凾鏡臺擎芙蓉香 十二婢靚粧麗服作雙前導 乳母戴黑繒羃羅跨馬隨後 亦用吏隸陪 護籠街 유가(遊街) 선비가 급제했다는 방문이 걸리면 유가를 하는데, 세악수(細樂手), 광대(廣大), 재 인(才人)을 동원한다. 광대란 창우(倡優)를 말한다. 비단옷에 초립(草笠)을 쓰고 채 화(綵花)를 꽂고 공작 깃털을 들고 난무(亂舞)를 하며 재담을 늘어놓는다. 재인은 줄을 타고 재주를 넘는 등 온갖 유희를 벌인다. 進士及第放榜遊街帶細樂手廣大才人 廣大者倡優也 錦衣黃草笠揷綵花孔雀羽亂舞詼調 才人作踏索筋斗諸戱 가도(呵導) 재상이나 시종신하의 행차를 알리는 가도(呵導) 소리는 웅장하고 맑고 거세기가 각기 다르다. 그 앞을 지나가거나 말을 타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혹은 소 매를 저으며 꿇어앉아있지 않은 자는 우선 길가 집에 잡아 가두었다가 치죄한다. 초헌(軺軒) 가마나 말을 타고 문을 드나들 때마다 종들이 일제히 삷우[白右]라고 외치는데, 우(右)라고 한 것은 위를 뜻한 것이고 백(白)이란 것은 모자가 문 상방 (上枋)에 부딪힐까 염려해서다. 이 때문에 이후로도 폐기되지 않은 의절(儀節)이 되 었다. 卿宰侍從呵導聲雄渾淸激各殊 有犯前導或騎馬含烟掉袂不坐者並拘路傍舍拿治 乘軒坐 馬出入門衆隸齊聲白右 右者上也白者慮其帽礙於楣也 以爲不可廢之儀節 - 9 -
세시(歲時) 원일(元日) 이날은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이를 세장(歲粧)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가 절하는 것은 세배(歲拜), 시절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세찬(歲饌), 그 때 쓰 는 술은 세주(歲酒)다. 세주는 데우지 않는데, 봄을 맞이하는 의미를 갖는다. 부녀자 들끼리는 곱게 차린 어린 계집종을 보내 좋은 말로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한다. 관직을 가진 집에서는 대청 위에 옻칠한 상을 비치해 두 어 부리는 아전들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두고 가게 하는데, 이를 세함(歲啣)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왕기(王錡)의 우포잡기(寓圃雜記) 24)에 서울 풍속에 매번 설날 이 되면 주인은 하례를 위해 모두 집을 나가고 단지 백지 장부와 붓과 벼루를 책상 위에 두어 하객이 와도 장부에 이름만 적고 갈 뿐 맞이하고 보내는 일이 없다. 고 하였는데, 이것이 세함의 시초인 것 같다. 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 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추 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몇 그릇 먹었냐고 할 정도다. 내 가 아는 바로는 육방옹(陸放翁)의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 25) 주(註)에 시골 풍속 으로 설날 행사에 반드시 탕병(湯餠)을 사용하는데, 이를 동혼돈(冬餛飩), 연박탁(年 餺飥)이라고 한다. 고 했다. 수성선녀도(壽星仙女圖)나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같은 것을 세화(歲畵)라고 한 다. 또한 금갑(金甲)의 두 장군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길이가 한 길이 넘으며 하나 는 도끼를 들고 하나는 절월(節鉞)을 들었다. 이것을 궁궐문 양 문짝에 거는데, 이 를 문배(門排)라고 한다. 또한 꿰맨 도포에 검은 모자를 쓴 상을 중합문(重閤門)에 붙이기도 한다. 임금의 내외척 및 여항에서도 또한 이를 얻어 붙이는데, 그림은 문 짝 크기에 따르고, 작은 문 상방(上枋)에는 또 귀신 머리를 그려 붙인다. 세속에서 는 금갑을 입은 두 장군은 울지공(尉遲恭)과 진숙보(秦叔寳)이고 꿰맨 도포에 검은 모자를 쓴 자는 당나라 학자인 위정공(魏鄭公)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학 자인 송민구(宋敏求)가 쓴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 26)에 도가(道家)에서 천문의 24) 우포잡기 는 모두 10권으로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에서 정통(正統) 간의 조야(朝野) 사적을 실었다.( 사고 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참조.) 왕기는 중국 명나라 장주(長州) 사람으로 자는 원우(元禹), 별호는 몽소도인 (夢蘇道人)이다. 25) 세수서사시 는 검남시고(劒南詩稿) 권38에 있다. 저자 육방옹(陸放翁)은 중국 송나라 산음(山陰) 사람으 로, 이름은 유(游)이며, 방옹은 호다. 보장각(寶章閣)의 대제(待制)를 지냈고 85세를 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26) 송민구(宋敏求)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로 자는 차도(次道)이다. 당의 무종(武宗) 이후의 실록을 사찬(私撰)하 였고 직학사(直學士)를 지냈다.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 당대조령집(唐大詔令集), 장안지(長安志) 등이 있다. 춘명퇴조록 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있다. - 10 -
수위인 금갑장군을 그릴 때 갈장군(葛將軍)은 깃발을 들고 주장군(周將軍)은 절월을 들도록 주정하였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문배 그림이 갈주 두 장군과 유사한 것을 보면 세속에서 이를 전기(傳奇)27) 중에 나오는 당나라 태종 때의 일이라고 억지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각각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든다. 길이는 세 치 가량인데 혹 콩윷이라고 하여 콩같이 작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만든 윷을 던 져 내기하는 놀이를 윷놀이[柶戱]라고 한다. 윷을 던져서 네 쪽이 다 엎어지면 모 (牡)28), 네 쪽이 다 잦혀지면 윷[忸]29), 세 쪽이 엎어지고 한 쪽이 잦혀지면 도 (徒), 두 쪽이 엎어지고 두 쪽이 잦혀지면 개(个)30), 한 쪽이 엎어지고 세 쪽이 잦 혀지면 걸(傑)31)이라고 한다. 윷판에는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주 앉아 던지는데 각각 말 네 개씩 쓴다. 도는 한 밭씩 가고, 개는 두 밭, 걸은 세 밭, 윷은 네 밭, 모는 다섯 밭씩 각각 간다. 밭 중에는 돌아가는 길과 질러가는 길 이 있어 말이 빨리 가는가 늦게 가는가에 따라 내기를 결정한다. 에 가장 성행한다.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마 설문(說文) 32)에 이 놀이는 정초 사(柶)는 비(匕)라고 하였는데, 특히 네 개의 나무라는 뜻을 취하여 사희(柶戱) 라고 했다. 이수광(李睟光)의 유설(芝峯類說) 33)에서는 지봉 윷은 내기놀음[攤戱]이니 즉 저포(樗蒲)34)라고 했다. 그러 므로 윷놀이는 즉 저포의 일종이나 저포라고 할 수는 없다. 세속에서는 설날에 윷 을 던져 얻은 괘(掛)로 새해의 길흉을 점치는데 대개 세 번을 던져 64괘 중 하나에 배정한다. 각 괘에는 다음과 같은 요사(繇辭)35)가 있다. 윷점 掛(괘) 요사(繇辭) 도 도 도 乾(건) 兒見慈母 아이가 어머니를 만난다. 도 도 개 履(리) 鼠入倉中 쥐가 창고에 들어간다. 도 도 걸 同人(동인) 昏夜得燭 밤에 불을 얻는다. 도 도 모 无妄(무망) 蒼蠅遇春 윷과 모는 같은 것으로 여긴다. 27) 전기(傳奇)란 괴담소설로 일반적으로는 중국 당나라 사람들과 송나라 사람들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글로 쓴 단편소설을 말한다. 28)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서는 모(牟) 라고 표기하였다. 29)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서는 류(流) 로 표기하였다. 30)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서는 개(開) 로 표기하였다. 31)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서는 걸(杰) 로 표기하였다. 32) 설문(說文) 은 중국 후한시대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 다. 33) 지봉유설 은 이수광의 학문세계가 집약된 저술로서 20권 10책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기사일 문집(奇事逸聞集)이면서 동시에 유서(類書)의 성격을 지녔다. 수록 내용은 모두 25분야에 이른다. 이수광(李睟 光, 1563~1628)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문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 다. 34) 저포(樗蒲)는 백제 때 나무로 주사위를 만들어 놀던 놀이다. 35) 요사(繇辭)란 앞으로의 조짐에 대한 예언적인 점사(占詞)다. - 11 -
파리가 봄을 만난다. 도 개 도 姤(구) 大水逆流 큰 물이 거슬러 흐른다. 도 개 개 訟(송) 罪中立功 복죄(服罪) 중에 공을 세운다. 도 개 걸 遯(둔) 飛蛾撲燈 나는 개미가 등불에 부딪친다. 도 개 모 否(부) 金鐵遇火 금이나 쇠가 불을 만난다. 도 걸 도 夬(쾌) 鶴失羽翮 학이 날개를 잃는다. 도 걸 개 兌(태) 飢者得食 주린 자가 밥을 얻는다. 도 걸 걸 革(혁) 龍入大海 용이 큰 바다로 들어간다. 도 걸 모 隨(수) 龜入笱中 거북이가 통발 속으로 들어간다. 도 모 도 大過(대과) 樹木無根 나무에 뿌리가 없다. 도 모 개 困(곤) 死者復生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 도 모 걸 咸(함) 寒者得衣 추운 자가 옷을 얻는다. 도 모 모 萃(췌) 貧人得寳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는다. 개 도 도 大有(대유) 日入雲中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개 도 개 睽(규) 霖天見日 장마에 해를 본다. 개 도 걸 離(리) 弓失羽箭 활이 화살을 잃는다. 개 도 모 噬嗑(서합) 鳥無羽翰 새가 날개가 없다. 개 개 도 鼎(정) 弱馬駄重 약한 말이 짐이 무겁다. 개 개 개 未濟(미제) 鶴登于天 학이 하늘에 오른다. 개 개 걸 旅(려) 飢鷹得肉 주린 매가 고기를 얻는다. 개 개 모 晋(진) 車無兩輪 차에 두 바퀴가 없다. 개 걸 도 大壯(대장) 嬰兒得乳 어린애가 젖을 얻는다. 개 걸 개 歸妹(귀매) 重病得藥 중병에 약을 얻는다. 개 걸 걸 豊(풍) 蝴蝶得花 나비가 꽃을 얻는다. 개 걸 모 震(진) 弓得羽箭 활이 화살을 얻는다. 개 모 도 恒(항) 拜見踈賓 서먹서먹한 손님에게 절하여 뵈인다. 개 모 개 解(해) 河魚失水 물고기가 물을 잃는다. 개 모 걸 小過(소과) 水上生紋 물 위에 무늬가 일어난다. 개 모 모 豫(예) 龍得如意 용이 뜻대로 얻는다. 걸 도 도 小畜(소축) 大魚入水 큰 고기가 물에 들어간다. 걸 도 개 中孚(중부) 炎天贈扇 염천(炎天)에 부채를 기증한다. 걸 도 걸 家人(가인) 鷙鷹無爪 새매와 매가 발톱이 없다. 걸 도 모 益(익) 擲珠江中 구슬을 강 속에 던진다. 걸 개 도 巽(손) 龍頭生角 용의 뿔이 생긴다. 걸 개 개 渙(환) 貧而且賤 가난하고 또 천하다. 걸 개 걸 漸(점) 貧士得祿 가난한 선비가 녹을 얻는다. 걸 개 모 觀(관) 猫兒逢鼠 고양이가 쥐를 만난다. - 12 -
걸 걸 도 需(수) 魚變成龍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 걸 걸 개 節(절) 牛得蒭荳 소가 풀과 콩깍지를 얻는다. 걸 걸 걸 旣濟(기제) 樹花成實 나무의 꽃이 열매를 이룬다. 걸 걸 모 屯(둔) 沙門還俗 중이 속세로 돌아간다. 걸 모 도 井(정) 行人思家 나그네가 집을 생각한다. 걸 모 개 坎(감) 馬無鞭策 말에 안장과 채찍이 없다. 걸 모 걸 蹇(건) 行人得路 행인이 길을 얻는다. 걸 모 모 比(비) 日照草露 해가 풀의 이슬을 비춘다. 모 도 도 大畜(대축) 父母得子 부모가 아들을 얻는다. 모 도 개 損(손) 有功無賞 공을 세우나 상이 없다. 모 도 걸 賁(분) 龍人深淵 용이 깊은 연못에 들어간다. 모 도 모 頤(이) 盲人直門 판수가 문에 다다르다. 모 개 도 蠱(고) 暗中見火 어둠 속에서 불을 본다. 모 개 개 蒙(몽) 人無手臂 사람이 손과 팔이 없다. 모 개 걸 艮(간) 利見大人 이(利)가 대인을 만난다. 모 개 모 剝(박) 角弓無弦 각궁(角弓)에 활줄이 없다. 모 걸 도 泰(태) 耳邊生風 귓가에서 바람이 일어난다. 모 걸 개 臨(임) 穉兒得寳 어린애가 보배를 얻는다. 모 걸 걸 明夷(명이) 得人還失 사람을 얻었다가 도로 잃는다. 모 걸 모 復(복) 亂而不吉 어지럽고 길하지 못하다. 모 모 도 升(승) 生事茫然 살 일이 아득하다. 모 모 개 師(사) 魚呑釣鉤 고기가 낚시를 삼킨다. 모 모 걸 謙(겸) 飛鳥遇人 나는 새가 사람을 만난다. 모 모 모 坤(곤) 哥哥得弟 형이 동생을 만난다. 男女悉著新衣曰歲粧 往拜親戚長者曰歲拜 饋以時食曰歲饌 酒曰歲酒 歲酒不温寓迎春 之意 婦女遣靚粧少婢以吉語相問曰問安婢 仕宦家置髹案於堂上司吏摺紙具名來置案上 而去號歲啣 按王錡寓圃雜記京師風俗每正朝主人皆出賀惟置白紙簿並筆硯于几賀客至書 其名無迎送也 此即歲啣之始 粳米餠按摩成條候硬橫截薄如錢烹調雉肉胡椒屑爲歲饌之 不可缺者 至稱添齒者爲餠湯第幾椀 按陸放翁歲首書事詩註鄕俗歲日必用湯餠謂之冬餛 飩年餺飥 壽星仙女直日神將圖謂之歲畵 又金甲二將軍像長丈餘一持斧一持節揭于宮門 兩扇曰門排 又綘袍烏帽像揭重閤門 戚里及閭巷亦得爲之 畵隨門扇 而小門楣又粘畵鬼 頭 俗以金甲者爲尉遲恭秦叔寳 綘袍烏帽爲魏鄭公 按宋敏求春明退朝錄道家奏章圖天門 守衛金甲人葛將軍掌旌周將軍掌節 今之門排似卽葛周二將軍 而世俗乃以傳奇中唐文皇 時事傅會之爾 赤荆二條剖作四隻長可三寸許或小如半菽擲之號爲柶戱 四俯曰牡 四仰曰 忸 三俯一仰曰徒 二俯二仰曰个 一俯三仰曰傑 局畵二十九圈 二人對擲各用四馬 徒行 一圈 个行二圈 傑行三圈 忸行四圈 牡行五圈 圈有迂捷 馬有遲疾 以决輸贏 元日此戱 - 13 -
最盛 按柶說文云匕也特取四木之義謂之柶戱 李睟36)光芝峯類說以爲攤戱攤卽樗蒲也柶 戱者樗蒲之類也而不可便謂樗蒲也 世俗元日又擲柶占新歲休咎 凡三擲配以六十四卦有 繇辭 徒徒徒乾兒見慈母 徒徒个履鼠入倉中 徒徒傑同人昏夜得燭 徒徒牡无妄 忸與牡 同用 蒼蠅遇春 徒个徒姤大水逆流 徒个个訟罪中立功 徒个傑遯飛蛾撲燈 徒个牡否金 鐵遇火 徒傑徒夬鶴失羽翮 徒傑个兌飢者得食 徒傑傑革37)龍入大海 徒傑牡隨龜入笱38) 中 徒牡徒大過樹木無根 徒牡个困死者復生 徒牡傑咸寒者得衣 徒牡牡萃貧人得寳 个徒 徒大有日入雲中个徒个睽霖天見日个徒傑離弓失羽箭个徒牡噬嗑鳥無羽翰个个徒鼎弱馬 駄重 个个个未濟鶴登于天 个个傑旅飢鷹得肉 个个牡晋車無兩輪 个傑徒大壯嬰兒得乳 个傑个歸妹重病得藥 个傑傑豊蝴蝶得花 个傑牡震弓得羽箭 个牡徒恒拜見踈賓 个牡个 解河魚失水 个牡傑小過水上生紋 个牡牡豫龍得如意 傑徒徒小畜大魚入水 傑徒个中孚 炎天贈扇 傑徒傑家人鷙鷹無爪 傑徒牡益擲珠江中 傑个徒巽龍頭生角 傑个个渙貧而且 賤 傑个傑漸貧士得祿 傑个牡觀猫兒逢鼠 傑傑徒需魚變成龍 傑傑个節牛得蒭荳 傑傑傑 旣濟樹花成實 傑傑牡屯沙門還俗 傑牡徒井行人思家 傑39)牡个坎馬無鞭策 傑牡傑蹇行 人得路 傑牡牡比日照草露 牡徒徒大畜父母得子 牡徒个損有功無實 牡徒傑賁龍人深淵 牡徒牡頤盲人直門 牡个徒蠱暗中見火 牡个个蒙人無手臂 牡个傑艮利見大人 牡个牡剝 角弓無弦 牡傑徒泰耳邊生風 牡傑个臨穉兒得寳 牡傑傑明夷得人還失 牡傑牡復亂而不 吉 牡牡徒升生事茫然 牡牡个師魚呑釣鉤 牡牡傑謙飛鳥遇人 牡牡牡坤哥哥得弟 여항의 부녀들은 맨 널빤지 짚단 위에 가로로 놓고 양쪽 끝에 마주 보고 서서 구 르며 높이 뛰는데, 차고 있는 패물이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서 떨어져 나가 면 이를 보며 재미있다고 한다. 이를 초판희(超板戱), 즉 널뛰기라고 한다. 내 생각 에는 주황(周煌)40)이 쓴 유구국기략(琉球國記略) 에 그곳 부녀들은 널빤지 위에 서 춤을 추는데 이를 판무라고 한다. 고 한 것에서 우리나라 널뛰기와 같은 종류임 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유구국에서 입조(入朝)할 때 혹 누군가가 우리 것을 보 고 좋아서 따라 한 것은 아닐까. 중들이 북을 지고 거리로 나와 치고 다니는 것을 법고(法皷)라고 한다. 모연문(募 緣文)을 펼쳐놓고 방울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자도 있고, 쌀자루를 메고 대문 근처에 서 재(齋) 올리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또한 속세의 떡 두 개를 중의 떡 한 개와 바 꾸는데, 풍속에 중 떡을 얻어 이를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마마, 즉 두종(痘腫)을 잘 넘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임금 때41) 조정에서 중들을 도성(都城) 안으로 36) 규장각본은 睟가 粹, 광문회본은 晬로 되어 있다. 37) 연대본은 革으로, 규장각본은 葦, 혹은 茸으로 되어 있다. 38) 광문회본에는 筍으로 되어 있다. 39) 규장각본은 个로 되어있는데 傑로 바로잡았다. 40) 주황(周煌)은 중국 청나라 부주(涪州) 사람으로 자는 경원(景垣), 호는 해산(海山)이다. 유구부사(琉球副使)를 지낸 바 있다. 41) 정조(正祖)를 말한다. - 14 -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성 밖에서나 이런 풍속이 남아 있다. 남녀가 일 년 동안 머리를 빗을 때 납지대(蠟紙帒)42)를 써서 빠진 머리카락을 모 아 빗접 안에 넣어 두었다가 반드시 설날 해질 무렵을 기다려 문 앞에서 태운다. 내 생각에는 의약에 정통했던 당나라 사람 손사막(孫思邈)43)이 쓴 천금방(千金方) 에 정월 인일(寅日)44)에 백발을 태우면 길하다. 고 하였는데, 설날에 머리카락을 태우는 풍속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광이라는 이름의 귀신은 밤에 인가에 들어와 신을 훔쳐가기 좋아한다. 주인은 이를 불길하게 여기고 아이들은 겁을 먹어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일찍 잔다. 마루 벽 위에는 체를 걸어 두는데, 그 이유는 야광이 집에 들어왔다가도 체 구멍을 세다 가 다 세지 못하고 닭이 울면 이내 도망간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혹 어떤 사람 은 야광은 여윈 귀신[癯鬼]이므로 구광(癯光)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여위었 다는 구(癯)의 뜻과 야(夜)가 우리말로는 비슷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내 생 각에는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야광은 즉 약왕(藥王)의 음전(音轉) 현상일 뿐이고, 약왕의 모습이 아이들이 두려워할 만큼 추해서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든 것 이다. 閭巷婦女用白板橫駕藁枕上分立兩端 激盪而跳數尺許 環珮琤然以困頓爲樂 號爲超板戱 按周煌琉球國記略其婦女舞於板上曰板舞與此相類 國初琉球入朝抑或慕而效之者歟 緇徒負大皷入街巷擂動謂之法皷 或展募緣文叩鈸念佛 或荷米帒沿門唱齋 又用一餠換俗 二餠 俗得僧餠飼小兒以爲善痘 當宁朝禁僧尼不得入都門 城外尙有此風 男女一年梳頭 用蠟紙帒貯退髮留梳函中必待45)是日黃昏燒於門前 按孫思邈千金方正月寅日燒白髮吉 元日燒髮昉於是 鬼名夜光夜入人家喜偸鞋 鞋主不吉小兒畏之藏鞋滅燈早宿 廳壁上縣篩 夜光計其孔不盡鷄鳴乃去云 或言夜光者癯鬼也當曰癯光 癯與夜東語相近也 按此說非也 夜光卽藥王之音轉也 藥王像醜 故怖兒使之早宿 해일 자일 사일(亥子巳日) 정월의 첫 번째 해일을 돼지날, 첫 번째 자일을 쥐날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의 오 랜 행사로서 궁중에서 낮은 지위의 젊은 관리들 수백 명이 잇달아 횃불을 땅에 끌 면서 돼지 그슬리자, 쥐를 그슬리자. 하고 외치며 돌아다녔다. 임금은 태운 곡식 을 주머니에 넣어 이것을 재상들과 근시들에게 나누어 주며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표시하였는데, 이 이후로 폐지되었다가 정조 임금이 등극하자 이 옛 제도를 복구하 42) 납지대(蠟紙帒)는 빗질할 때 바닥에 까는 밀랍한 종이포대를 말한다. 43) 손사막(孫思邈)은 중국 당나라 화원(華原) 사람으로 백가(百家)의 설에 통했으며 특히 의약에 정통했다. 천 금요방(千金要方) 을 비롯하여 복록론(福祿論), 섭생진록(攝生眞籙), 은해정미(銀海精微) 등의 저술이 있 다. 44) 인일(寅日)은 간지에 寅 이 들어있는 날이다. 45) 광문회본에는 待가 徒로 되어 있다. - 15 -
여 주머니를 하사하였다. 주머니는 비단으로 만들었다. 돼지주머니는 둥글고 쥐주머 니는 길다. 쥐날에 여항에서는 또한 콩을 볶으면서 주문을 외는데 쥐주둥이 지진 다. 쥐주둥이 지진다. 고 한다. 돼지날에 콩가루로 얼굴을 씻으면 검은 얼굴색이 점 점 희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돼지 빛깔이 검기 때문에 그 반대의 뜻을 취한 것이 다. 正月上亥爲豕日上子爲鼠日 國朝故事宮中小宦數百聯炬曳地呼燻豕熏46)鼠 燒糓種盛于 囊 頒賜宰執近侍以眎祈年之意 頒囊尋廢矣 當宁御極復頒囊用錦製亥囊圓子囊長 子日 閭巷亦炒豆呪云鼠嘴焦鼠嘴焦 亥日作豆屑澡面黑者漸白豕色黑故反取其義也 巳日不理 髮忌蛇入宅 인일(人日) 인일에 임금은 각신(閣臣)들에게 동인승(銅人勝)을 나누어 준다. 이것은 작고 둥 근 거울 같은 것으로 자루가 달려있고 신선을 새겨 넣었다. 인일과 3월 삼짇날, 7 월 칠석, 9월 중양절에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취하는 것을 절제(節製)라고 한다. 頒銅人勝于閣臣如小圓鏡有柄鏤仙人 是日及重三重七重九皆設科取士曰節製 입춘(立春) 경기도 산골지방 여섯 고을에서는 움파[蔥芽] 산겨자[山芥] 승검초[辛甘菜]등을 임금에게 진상한다. 산겨자는 이른 봄에 눈이 녹을 무렵 산 속에서 자생하는 겨자 다. 더운물에 데쳐 초장에 무쳐 먹으면 맛이 매우 맵기 때문에 고기를 먹은 뒤에 먹어야 좋다. 승검초는 움집에서 키운 당귀(當歸)의 싹인데 은비녀가락같이 맑으며 꿀을 그 사이에 끼워 먹으면 맛이 매우 좋다. 승정원에서 초계문신과 시종대신에게 궁궐에서 쓸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고, 제학에게는 운을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 설날 연상시(延祥詩)와 단오 때의 단오첩 (端午帖)도 모두 이 예에 따른다. 여항 시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련 문구를 썼다. o 수여산 부여해 (壽如山 富如海 : 수명은 산 같이 재물은 바다 같이 되라.) o 거천재 래백복 (去千灾 來百福 : 온작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o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 입춘에 대길하고 계절따라 다경하라.) o 국태민안 가급인족 (國泰民安 家給人足 :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니 집 집마다 넉넉하다.) o 요지일월 순지건곤 (堯之日月 舜之乾坤 : 요 임금 세월이고 순 임금 세상이어 46) 광문회본에는 熏이 燻으로 되어 있다. - 16 -
라.) o 애군희도태 우국원년풍 (愛君希道泰 憂國願年豊 : 임금을 섬겨 큰 정치 희망하 고 나라를 염려하며 풍년을 기원한다.) o 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 천하는 태평한 봄이고 사방에 아무 일 없다.) o 국유풍운경 가무계옥수 (國有風雲慶 家無桂玉愁 : 나라에 풍운의 경사 있고 집 안에 땔거리 먹거리 걱정 없으라.47)) o 봉명남산월 인유북악풍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 : 봉황은 남산 달 아래서 울고 기린은 북악산 바람을 따라 노닌다.) o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灾從春雪消 福逐夏雲興 :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복 은 여름구름처럼 일어나라.) o 유색황금눈 이화백설향 (柳色黃金嫰 梨花白雪香 : 버드나무 빛깔은 황금처럼 곱 고 배꽃은 흰눈처럼 향기롭다.) o 북당훤초록 남극수성명 (北堂萱草綠 南極壽星明 : 어머님 근력 푸른 풀처럼 좋 으시고 아버님 오래오래 사시라.) o 천상삼양근 인간오복래 (天上三陽近 人間五福來 : 하늘은 정월 봄이 되었으니 인간세계에 오복이 온다.) o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 을 열면 만복이 온다.) o 계호신세덕 견폐구년재 (鷄呼新歲德 犬吠舊年灾 : 닭 울음소리에 새해 덕이 들 어오고 개 짖는 소리에 묵은해 재앙이 나간다.) o 문영춘하추동복 호납동서남북재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 대문으로는 사계절의 복을 맞이하고 방문으로는 사방의 재물을 받아들인다.) o 육오배헌남산수 구룡재수사해진 (六鰲拜獻南山壽 九龍載輸四海珍 : 여섯 마리의 자라는 만수를 바치고 아홉 마리 용은 사해의 재물을 실어 온다.) 방문 상방에는 다음과 같은 단귀의 첩[單貼]을 붙인다. o 춘도문전증부귀 (春到門前增富貴 : 봄이 문전으로 오니 부귀가 늘어난다.) o 춘광선도길인가 (春光先到吉人家 : 봄빛은 길한 사람 집에 먼저 온다.) o 상유호조상화명 (上有好鳥相和鳴 :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o 일춘화기만문미 (一春和氣滿門楣 : 봄날의 화기가 문 상방에 가득하다.) o 일진고명만제도 (一振高名滿帝都 : 이름을 높이 날려 장안에 가득하라.) 사대부 집에서는 대부분 새로 글을 짓거나 혹은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을 따서 사용한다. 47) 계옥(桂玉)은 계수나무보다 비싼 장작과 옥보다 귀한 밥이라는 뜻으로, 생활고를 비유한 말이다. - 17 -
畿峽六邑進葱芽山芥辛甘菜 山芥者初春雪消時山中自生之芥也 熱水淹之調醋醬味極辛 烈 宜於食肉之餘 辛甘菜者窨養當歸芽也 淨如銀釵股夾蜂蜜噉之甚佳 承政院抄啓侍從 製進 殿宮春帖子牌 召48)提學命韻考第 元日延祥詩及端午帖俱用是例 閭巷市井通用對 聯 壽如山富如海 去千災來百福 立春大吉建陽多慶 國泰民安家給人足 堯之日月舜之乾 坤 愛君希道泰憂國願年豊 天下太平春四方無一事 國有風雲慶家無桂玉49)愁 鳳鳴南山 月麟遊北岳風 災從春雪消福逐夏雲興 柳色黃金嫰梨花白雪香 北堂萱草綠南極壽星明 天上三陽近人間五福來 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 鷄呼新歲德犬吠舊年災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六鰲拜獻南山壽九龍載輸四海珍 門楣上單帖 春到門前增富貴 春光先 到吉人家 上有好鳥相和鳴 一春和氣滿門楣 一振高名滿帝都 士大夫多用新製 或揀古人 佳語 보름날(上元) 찹쌀밥에 씨 발린 대추, 감떡, 그리고 찐 밤과 잣을 섞은 다음 다시 꿀 기름 간장 등으로 조리한 것을 약밥[藥飯]이라고 하여 보름날의 좋은 음식으로 오래된 신라 풍속이다. 내 생각에는 동경잡기(東京雜記) 50)에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주사(天柱寺)에 행차했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 왕을 일깨워주어 반역을 꾀한 중을 사살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풍속에 보름날 찰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먹 임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정월 14일 밤에 짚을 엮어 인형을 만들고 이를 제웅 [處容]이라고 부른다. 제웅 머릿속에 동전을 감추어 둔다. 아이들이 밤새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다니다가 주 인이 문을 열고 제웅을 던져주면 이것을 잡아당기며 끌고 하다가 제웅 머리를 깨고 다투어 그 속에 둔 동전을 꺼내간다. 내 생각에는 문헌비고(文獻備考) 51)에 신라 때 헌강왕(憲康王)이 학성(鶴城)52)에서 유람할 때 동해바다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 리고 임금 행렬 앞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다. 그중 한 아들이 행렬을 따라 서 울로 들어왔는데, 그 이름이 처용으로 지금 장악원(掌樂院) 향악부(鄕樂部)에서 공 연하는 처용무(處容舞)가 이것이다. 풍속에 맹인의 점을 믿어 그가 일월성과 수성 (水星)이 명궁(命宮)53)에 든 사람은 모두 재액(災厄)이 있다고 하면 해당자는 종이 48) 규장각본에는 召가 名으로 되어 있다. 49) 규장각본에는 玉이 王으로 되어 있다. 50) 동경잡기 는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의 지지(地誌)다. 작자미상으로 전해오던 동경지(東京誌) 를 1669년 민 주면(閔周冕) 등이 향중인사와 함께 편집, 보완하여 동경잡기(東京雜記) 라고 개칭, 간행하였고, 1711년에 보 완하여 재간하였다. 51) 문헌비고(文獻備考) 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로 장고(掌故 : 전례(典禮)와 고사(故事))에 관한 유서 (類書)로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우리 것의 편찬이 요청되어 영조 46년(1770)에 처음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왕명으로 시작된 편찬 사업은 서명응(徐命膺) 등이 주도해 반년여 만에 상위(象緯) 여지(輿地) 예(禮) 악(樂) 병 (兵) 형(刑) 전부(田賦) 시사(市蛇) 선거(選擧) 재용(財用) 호구(戶口) 학교(學校) 직관(職官) 등 총 13고 100권으 로 완성되어 1770년 8월에 인쇄되었다. 52) 학성(鶴城)은 현재 울산(蔚山)이다. - 18 -
를 잘라 해와 달 형상을 만들어 나무에 물려 지붕 용마루에 꽂기도 하고, 종이에 밥을 싸서 밤중에 우물 속으로 던져 액땜을 한다. 제일 꺼리는 것은 처용으로 이것 이 명궁에 들면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길에 버려 액을 제거한다.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깎아 청색, 홍색, 황색 등 색별로 칠한 후 채색실로 끈을 단 작은 호로병을 차고 다니다가 보름밤에 몰래 버림으로써 액땜을 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밤이나 무를 깨물면서 일년 열두달 무사태평하게 해달라고 비는데, 이것을 부럼[嚼癤(작절)]이라고 한다. 또 소주 한 잔을 마시면서 귀를 밝게 해달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섭정규(葉廷珪)54)가 쓴 해록쇄사(海錄碎事) 에 사일 (社日)에 치롱주(治聾酒)를 마신다. 고 했는데, 지금 이 풍속이 보름으로 옮겨진 것 같다. 이날은 꼭두새벽부터 갑자기 상대방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 고 한다. 그래서 온갖 꾀를 내어 불러도 응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육방옹(陸放翁)의 시에 정원에서 주사위 놀고 떠들며 새해맞이가 한창인데 춘곤(春困) 파는 아이들은 새 벽같이 일어난다. 55)고 하였는데, 그 시의 주석에 입춘날 새벽에 서로 불러 춘곤 을 판다. 고 한 것을 볼 때, 지금 풍속인 정월 보름날의 더위팔기도 이런 종류인 것 같다. 서울 도성의 북문을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는데 문은 항상 닫아두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곳은 물과 계곡이 무척 맑고 그윽하여 정월 보름 전에 여염집 부녀들이 이곳에서 세 번 놀고 가면 액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무명실을 자아 옷을 지으면 길한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부녀자들은 보름날 자은 실 을 선물로 서로 보낸다. 새벽에 종각 네거리에서 흙을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뿌려 묻거나 부뚜막에 바르 는데, 부자 되기를 구하는 것이다.56) 나물을 먹을 때 대개는 외꼭지나 말린 가지, 무 잎 등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모 두 천천히 말려 두었다가 보름날 삶아 먹는데, 이렇게 하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개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파리가 많이 끓어 야위 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속담에 우스갯소리로 굶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 고 한다. 봄을 타느라 얼굴빛이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정월 보름날 남의 집 밥을 백 군 데에서 빌어다가 절구를 타고 개와 마주앉아 개에게 한 술 먹이고 자기도 한 술 번 갈아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53) 사람의 사주 방위로 성명술사(星命術士)들은 사람의 생시(生時)에서 태양궁(太陽宮) 방향으로 돌다가 묘(卯) 에서 만나는 것이 그 사람의 명궁(命宮)이라고 한다. 54) 섭정규(葉廷珪)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사충(嗣忠)이다. 55) 여기서 육방옹(陸放翁)의 시는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 를 말한다. 56) 이것은 재력가들이 밟고 다니는 시전거리 흙을 옮겨옴으로써 재복도 함께 옮겨지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뜻이 담겨있다. - 19 -
짚을 군대깃발인 둑기[纛旗] 모양으로 묶고 장대 끝에 매달아 집 곁에 세우고 새 끼를 사방으로 벌려 고정시킨다. 이것을 벼 낟가리[禾積]라고 한다. 조선시대 옛 행 사 중에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57)에 나오는 내용인 경작하고 수확하 는 형상을 본 따 정월 보름날 대궐 안에서 좌우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었다. 이것도 아마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여항의 볏가릿대[禾竿]도 바로 이와 같은 행사인 것 이다.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면 과일이 많이 열리는데 이것을 과일나무 시 집보내기[嫁樹]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명나라 사람 서광계(徐光啓)가 쓴 (農政全書) 58)에는 농정전서 오얏나무에만 이 방법을 쓴다고 하였다. 糯米飯揉以棗肉杮餠 蒸栗海松子更調蜂蜜芝麻油陳醬號藥飯 爲上元佳饌 新羅舊俗也 按東京雜記新羅炤智王十年正月十五日幸天柱寺有飛烏警告于王射殺謀逆僧 國俗以上元 作糯米飯飼烏報賽 十四日夜結草偶號處容 顱中藏銅錢羣兒終夜打門喚處容 主人開門擲 之 羣兒得便捶曳破顱爭錢 按文獻備考新羅憲康王遊鶴城 東海龍率七子歌舞於駕前 其 一子隨駕入京名曰處容 今掌樂院鄕樂部有處容舞是也 俗信盲卜盲言日月及水星直命宮 俱有災厄 剪紙象日月鉗以木揷屋脊以紙裹飯夜半投井中禳之 最忌處容直星作草偶棄于 道可禳 童女珮旋木小葫蘆靑紅黃各一用綵絲爲綬 上元夜半潜捐于道消厄 淸晨嚼栗或蘿 葍祝曰一年十二朔無事太平謂之嚼癤 又飮燒酒一盞令人耳聰 按葉廷珪海錄碎事社日飮 治聾酒 今俗移於上元 士女凌晨猝然相呼諾之則曰賣吾暑 百計呼之不肯答 按陸放翁詩 呼盧院落譁新歲買困兒童起五更註立春未明相呼賣春困 今俗賣暑亦此類也 都城北門曰 肅淸恒閉而不用澗壑淸幽 上元前閭巷婦女三遊此門 謂之度厄 繅木綿絲製衣吉祥 婦女 以上元絲相贈遺 曉掘鍾閣十字街土傅竈財聚 食菜者凡瓜顱茄皮蘿葍之葉皆不棄 徐徐曬 乾以待上元烹食 不病暑 不飼犬 飼之則多蠅而瘦 俗戱餓者爲上元犬 小兒春病黧瘠者上 元乞百家飯 騎臼對犬而坐 與犬一匙自噉一匙 不復病 束藁如纛狀冒竿首建屋傍張索把 定稱禾積 國朝故事正月望日大內象豳風七月耕穫狀分左右角勝盖亦祈豊之意 而閭巷禾 竿亦其一事爾 果樹歧枝閣石子則果繁謂之嫁樹 按徐光啓農政全書唯李樹用此法也 삼문(三門)59) 밖의 주민들과 아현(阿峴) 주민들이 만리동 고개에서 돌을 던지며 서로 싸웠는데, 속설에 삼문 밖 편이 이기면 경기 일대에 풍년이 들고 아현 편이 이기면 팔도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지어 와서 아현 편을 돕는다. 용산과 마포에 사는 불량소년들 중에는 패를 바야흐로 싸움이 한창 심해지면 고함소리가 땅을 흔 들 정도가 되며 이마가 터지고 팔이 부러져도 후회하지 않는다. 관에서 가끔 이를 57) 시경 빈풍 은 8권에 있으며 7월편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시(天時)를 따라 민사(民事)가 주어진다 는 내용이다. 58) 농정전서 는 1639년에 간행된 전 60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한나라 이후로 발달해 온 농가의 설을 총괄하 고 수력학과 지리학을 참조한 중국 최고의 농정서(農政書)다. 이 책을 쓴 서광계(徐光啓)는 중국 명나라 때의 학자로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다. 마테오릿치로부터 천체에 관한 지식을 배웠으며 역법에 정통하였 다. 대표적인 저서로 1639년에 간행된 이 농정전서 가 있다. 59) 삼문(三門)이란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및 그 중간의 소의문(昭義門, 서소문)을 말 한다. - 20 -
금하는 조치를 취한다. 성안의 아이들도 이를 본받아 하므로 행인들이 모두 돌에 맞을까 무서워 피해 돌아간다. 내 생각에는 당서(唐書) 고려전(高麗傳) 60)에 매 년 정초에 군중들이 패수(浿水) 가로 모여 노는데 물과 돌을 서로 끼얹고 던지며 밀고 밀리기를 두세 번 하다가 그친다. 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돌싸움[石戰] 풍속이 시작된 것 같다. 아이들은 액(厄) 자를 종이연에 써서 해가 질 때 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연은 댓 가지를 뼈대로 하고 종이를 풀로 발라 마치 작은 키처럼 만든다. 연의 종류로는 오 색연(五色鳶), 기반연(碁斑鳶), 묘안연(猫眼鳶), 작령연(鵲翎鳶), 어린연(魚鱗鳶), 용 미연(龍尾鳶) 등 이름이 특이하고 색이 번성하다. 중국에서는 연[風箏]61) 날리기를 늦은 봄의 놀이인데 우리나라는 동천(冬天), 즉 겨울철부터 정월보름까지만 즐긴다. 연 날리는 법은 한 곳으로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종횡으로 쓸고 흔들어 다른 연과 교차하여 줄을 많이 끊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연줄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개 실을 합치고 아교를 문질러 백말꼬리 같이 매끈하게 만든다. 혹은 누런 차 자로 물을 들인다. 바람을 거슬러 쨍쨍 울리는 줄이 남의 줄을 잘 끊는다. 심한 경 우는 연줄에 사금파리 가루나 구리 가루를 바르기도 한다. 그러나 연줄 싸움은 교 차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 장안 소년 중에 연싸움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나면 왕왕 지체 높은 부자 집에 불려가기도 한다. 매년 정월 13일이나 14일에는 수표교(水標 橋) 주변 위아래로 연싸움을 보러온 구경꾼들이 담을 쌓은 듯 모인다. 아이들은 연 줄싸움을 하다가 혹 끊어진 연을 쫓아 담을 넘고 지붕에 올라서므로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고 놀란다. 보름이 지나면 다시는 연날리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명주실 한 가닥에 거위 솜털을 매어 바람에 날리는데, 이것을 고고매(苦 苦妹)라고 부른다. 고고매란 몽고말로 봉황(鳳凰)이다. 해가 지면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오르는데, 이것을 달맞이[迎月]라고 한다. 달을 먼저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달이 뜨면 장안 사람들은 모두 종가로 나와 종소리를 듣고 각기 흩어져 여러 다 리를 밟고 다닌다. 그러면 각병(脚病)이 낫는다고 한다. 대소 광통교(廣通橋) 및 수 표교 인기가 제일 좋다. 이날 저녁은 야금(夜禁)을 푸는 관례가 있다. 그래서 인산 인해를 이루어 피리를 불고 북을 치고 노느라 떠들썩하다. 내 생각에는 육계굉(陸啓 浤)의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 62)에 정월 보름날 밤 부녀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 와 다리로 달려간다. 고 했다. 또 명나라 사람 우혁정(于奕正)이 쓴 京景物略) 63)에는 제경경물략(帝 정월 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서로 이끌고 나와 돌아다니면서 60) 신당서 는 전체 225권으로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송기(宋祁) 등이 편찬한 것이다. 이중 권210 열전(列傳) 145에 고려전(高麗傳) 이 있다. 61) 중국에서는 연을 풍쟁(風箏)이라고 한다. 62)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 는 중국 청대에 우씨(尤氏)가 서문을 쓴 예문지(藝文志) 안에 수록되어 있으나 작 자와 출처는 미상이다. 63) 우혁정은 초명은 계로(繼魯), 자는 사직(司直)이다. 효심과 우애가 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제들에게 재 산을 나누어주고 시골에 거하면서 종일 독서하고 시 짓고 명산을 유람하였다. 남긴 책으로는 금석지(金石志) - 21 -
질병을 없앤다고 하는데 이것을 백병쫓기[走百病]이라고 한다. 고 했다. 심방(沈榜) 의 64)에는 완서잡기(宛署雜記) 정월 16일 밤에 부녀자들이 떼를 지어 놀았으며 대개 다리가 있는 곳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리를 건너갔는데, 이것을 액을 건넜다.[度厄] 고 한다. 고 했다. 내 생각에는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다리밟기 풍속 의 유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는 정월 보름날 밤 다리밟기는 고려 때부터 내 려오는 풍속인데 매우 성행하여 남녀들이 길거리를 메워 밤새도록 왕래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법관이 이를 금지하고 체포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 하였다. 지금 풍속에는 부녀자들이 다시는 다리밟기하는 일이 없어졌다. 三門外阿峴人飛石相鬪於萬里峴上 俗云三門外勝則畿內豊 阿峴勝則諸路豊 龍山麻湖惡 少結黨救阿峴 方其酣鬭65)時喊聲動地破額折臂亦不悔也 當部往往禁斷 城中羣兒亦效 而爲之 行人皆畏石回避 按唐書高麗傳每年初聚戱浿水之上以水石相濺擲馳逐再三而止 此爲東俗石戰之始 童子書厄字於紙鳶日暮斷送 鳶制竹骨糊紙微似箕狀五色或碁斑猫眼 鵲翎魚鱗龍尾名色特繁 中國風箏爲晩春之戱 東俗自冬天至于上元 且其飛法不住定一處 縱橫掃盪與他相交以多割爲快 合絲淬膠淨如白馬尾或染梔66)黃凌風而呌者最善割 甚者 傅以磁末銅屑然在交法之能否 都下少年有以善交鳶噪名者豪貴家往往延致 每上元前一 兩日水標橋沿河上下觀交鳶者簇如堵墻 羣童候斷搶絲或追敗鳶踰墻越 屋人多怖駭 過上 元後不復飛鳶 小兒用獨繭絲繫鵝毳順風而颺之號苦苦妹 蒙古語鳳凰也 黃昏持炬登高謂 之迎月 以先見月者爲吉 月出後都人悉出鍾街聽鍾散踏諸橋云已脚病 大小廣通橋及水標 橋最盛 是夕例弛夜禁人海人城67)簫皷喧轟 按陸啓浤北京歲華記正月十五夜婦女俱出門 走橋 于奕正帝京景物略元夕婦女相率宵行以消疾病曰走百病 沈榜宛署雜記十六夜婦女 羣遊凡有橋處三五相率以過謂之度厄 此卽東俗踏橋所沿也 芝峯類說云上元踏橋之戱始 自前朝在平時甚盛 士女騈闐達夜不止 法官至於禁捕 今俗婦女無復踏橋者矣 2월 초하루[二月初一日] 우리 임금(正祖)이 병진년(1796)에 재상들과 옆에서 모시는 시종(侍從)들에게 중 화척(中和尺)이라고 부르는 자를 내렸다. 이 자는 반죽(斑竹) 및 붉은 물을 들인 향 나무로 만들었다. 이제도는 중국의 중화절(中和節) 고사를 고쳐 시행한 것이다. 정월 보름날 세운 볏가릿대[禾竿]를 풀어내려 솔잎을 깔아 찐 떡을 나이 수대로 노비들에게 먹인다. 세속에서는 이 날을 노비일이라고 하는데 농사일이 이날부터 시작되므로 먹이는 것이라고 한다., 경물략(景物畧) 등이 있다. 64) 심방은 중국 명나라 때 사람이다. 완서잡기 는 20권으로 된 책이다. 65) 규장각본에는 鬪로 되어있다. 66) 규장각본에는 梔가 桅로 되어있다. 67) 규장각본에는 城이 夜로 되어있다. - 22 -
집안을 청소하고 자른 종이에 香娘閣氏速去千里 68) 여덟 자를 써서 서까래 위 에 붙인다. 각시(閣氏)란 우리말로 여자라는 뜻으로 향랑각시는 노래기[馬陸(마육)] 를 지칭한다. 노래기가 싫어 물리치려고 쓴 말이다. 當宁丙辰 頒中和尺于宰執侍從 尺用斑竹及紅染木 制修中和節故事也 卸下上元禾竿作 松葉夾餠饋奴婢如其齒數 俗稱奴婢日 東作伊始故饗此屬云 灑掃堂宇剪紙書香娘閣氏速 去千里八字粘椽上 閣氏者東語女子也 香娘閣氏蓋指馬陸也 惡而辟之之辭也 한식(寒食) 서울 사람들이 묘를 찾는 날은 설날, 한식, 단오, 중추의 사명절(四名節)로 이중 한식과 중추가 제일 성하여 사방 교외에서 성묘객으로 줄이 끊이지 않는다. 都人上冢用正朝寒食端午中秋四名節 寒食中秋最盛 四郊士女綿絡不絶 삼짇날(重三) 진달래꽃을 따다 찹쌀가루와 섞어 둥근 떡을 만든 다음 참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 (花煎)이라고 한다. 采杜鵑花揉糯米粉作團糕 煎以芝麻油號花煎 4월 초파일(四月八日) 이날 손님을 초청하여 음식을 차릴 때 느릅잎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내놓 는다. 이것을 부처탄신일에 먹는 소찬이라고 한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동이에 물을 떠다가 등간(燈竿) 아래에 놓고 바가지를 물 위에 띄우고 빗자루로 바가지 등을 두 드리면 진솔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을 수고(水皷)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장원(張遠) 의 오지(隩志) 69)에 서울 중들의 풍속 중에 염불하는 자들은 언제나 콩으로 그 횟수를 세었다가 사월 초파일 부처탄신일이 되면 그 콩을 볶고 소금을 살짝 뿌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먹기를 권하여 인연을 맺는다. 70)고 하였는데, 지금 콩 볶는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 생각에는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 에 정월 보름밤에 아이들이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될 때까지 북을 친다. 이것을 태평 고(太平皷)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의 수고(水皷)는 태평고와 유사한 것으 로 부처탄신일에 등석(燈夕) 행사가 있으므로 이 때로 옮겨온 것이다. 68) 향랑각시야 속히 천리 밖으로 가거라. 라는 뜻이다. 69) 오지(隩志) 는 중국 명나라 때 나온 책이나 발간 시기는 알려진 바 없다. 책을 쓴 장원은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행지(行之)이며 벼슬을 하지 않고 산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70) 이것은 과거 북경에서 유행했던 사두결연(舍豆结缘)의 풍속을 말하는 것이다. - 23 -
인가에서는 자녀의 수대로 등을 다는데 밝을수록 길하게 여긴다. 등을 다는 대는 대나무 큰 것 열 개를 겹쳐 묶어 완성한다. 이보다 더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경우는 오강(五江)에서 말 짐으로 실어온 돛대를 사용한다. 돛대 머리는 꿩 깃을 꽂아 장식 하고 각색 깃발을 매달기도 하며 일월권(日月圈)을 꽂아 바람에 어지럽게 돌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종가에 늘어선 시전들은 항상 크고 높은 것을 좋아하여 등 대에 새 끼줄 수 십 개를 매달아 쓰러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운다. 왜소한 등 대를 세웠다가 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이날 밤은 관례에 따라 야간통금이 해제된다. 등 구경 을 나온 사람들은 남산이나 북악산 같은 남쪽과 북쪽의 산록으로 올라가거나 혹은 퉁소와 북을 들고 시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내 생각에는 고려사(高麗史) 에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 시골 읍에 이르기까지 정월보름의 연등행사는 이틀간 열려 왔다. 그러나 최이(崔怡)에 의해 이 행사가 사월 초파일로 옮겨졌다.71) 고 한 데서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또 내 생각에는 고려사 에 우리풍속에 사월 초파일을 석 가의 탄일로 여겨 집집마다 등을 밝히며, 행사 수십일 전부터 아이들은 자른 종이 를 등 대에 달아 깃발을 만들고 그 비용은 장안 거리를 두루 누비면서 얻은 쌀과 베로 마련하였다.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 등 대에 깃 발을 다는 것도 고려의 호기 풍속과 같은 종류다. 등의 종류에는 마늘등 연꽃등 수박등 학등 잉어등 자라등 병등 항아리 등 배등 북등 칠성등 수자등(壽字燈)이 있는데, 모두가 그 형상을 따른 이름 이다. 종이를 바를 때 혹 푸른색 비단을 이용하여 운모(雲母)를 새겨 넣기도 하고 비선(飛仙)이나 화조(花鳥) 그림으로 장식한다. 북등에는 삼국지 이야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림자등[影燈] 안에 등을 돌아가게 하는 선기(旋機)를 넣고 종 이를 잘라 말을 타고 매와 개를 데리고 범, 사슴, 꿩, 토끼 등을 사냥하는 모양을 만들어 선기에 붙인 다음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돌게 하면 등 밖으로 움직이는 그 림자를 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소동파(蘇東坡)의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 72)라는 글에서 그림자등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본다고 한들 삼국지를 한 번 더 보는 것만 같을까. 라고 한 것을 보면 그림자등의 그림이 삼국지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범석호(范石湖)73)가 상원오하절물배체(上元吳下節物排體) 시에서 그 림자가 돌아가니 말을 타고 종횡으로 달린다. 라고 한 주석에 이것이 마기등(馬騎 燈)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송나라 때부터 이러한 등이 있었던 것 같다. 延客設饌楡葉餠煑豆烹芹 云是佛辰茹素 又童子設盆水于燈竿下泛瓢用帚柄叩其背爲眞 率之音號爲水皷 按張遠隩志京師俗念佛號者輒以豆識其數至四月八日佛誕生之辰煑豆微 撤以鹽邀人于路請食之以爲結緣也74) 今俗煑豆盖昉於此 又按帝京景物略元夕童子撾皷 71) 최이(崔怡)는 고려 무신정권 집권자인 최우(崔瑀,? ~1249)로 본관은 우봉(牛峯)이다. 뒤에 이(怡)로 개명하 였다. 아버지는 충헌(忠獻)이다. 72)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 는 소동파의 시 제목이나 출처는 미상이다. 73) 범석호는 범성대(范成大)다. 범성대의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거사(石湖居士)다. 석호집(石湖集), 남비 록(攬轡錄) 등의 저서가 있다 74) 오지(隩志) 원문에는 京師僧俗 이라고 하였다. - 24 -
旁夕向曉曰太平皷 今俗水皷似卽太平皷 而佛日爲燈夕故移用之也 人家點燈依子女多少 以明亮爲吉 燈竿縛大竹累十而成 侈者駄致五江檣桅 頭揷雉羽繫色幟或揷日月圈隨風眩 轉 鍾街列廛務尙高大張數十索邪許引起 矮小者人皆嗤之 是夕例弛夜禁 觀燈者遍於南 北麓或擕簫皷沿街縱觀 按高麗史王宮國都以及鄕邑正月望燃燈二夜崔怡於四月八日燃燈 又按高麗史國俗以四月八日是釋迦生日家家燃燈前期數旬羣童剪紙注竿爲旗周呼城中街 里求米布爲其費謂之呼旗 今俗燈竿揷幟者呼旗之類75)也 燈名蒜蓮西瓜鶴鯉黿鼈甁缸船 皷七星壽字類皆象形 紙塗或用碧紗嵌雲母飾飛仙花鳥皷燈 多畵三國故事 又有影燈裏設 旋機 剪紙作獵騎鷹犬虎鹿雉兎狀 傅於機爲風炎所轉 外看其影76) 按東坡與吳君采書云 影燈未甞見與其見此何如一閱三國志耶 此必以三國故事作影也 又范石湖上元吳下節物 排體詩轉影騎縱橫註云馬騎燈 盖自宋時已有此制 단오(端午) 이날 임금은 애호(艾虎) 쑥을 각신(閣臣)에게 내리는데, 짧은 볏짚 새끼줄로 채화 (綵花)77)와 함께 묶은 모양이 여뀌 이삭처럼 무성하다. 또한 새로 만든 부채를 나 누어 주는데 이것을 단오선(端午扇)이라고 한다. 제일 큰 것은 대나무가 거의 쉰 마 디나 되어 이를 백첩(白帖)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얻게 되면 대부분 금강일만이천 봉(金剛一萬二千峰) 그림을 그려 넣는다. 최근 풍속은 버들가지 복숭아꽃 나비 연꽃 은붕어 해오라기 가마우지 등의 그림을 즐겨 넣는다. 내 생각에는 筆) 78)에 계암만필(戒菴謾 단오 때 임금이 서울에 거주하는 내관직들에게 궁선(宮扇)을 내리는데 대 나무살에 붙인 종이에 새와 짐승을 그리고 오색 실로 애호를 묶었다고 한 것이 바 로 이것이다. 이날 영 호남의 병사와 수사들은 조정 대신이나 친구에게 부채를 보내는데, 전주 와 남평에서 만든 것을 가장 좋게 여기는데 부채머리 모양이 중처럼 생긴 것, 뱀 대가리 모양인 것, 고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뿔이 밖으로 난 것과 안으로 굽은 것, 너비가 넓어지는 모양과 좁아지는 모양 등 제각각이다. 대개는 흑 백 두 색을 좋아하며 부인과 어린아이는 홍색과 황색, 신랑은 청색 부채를 쥐고 다닌다. 근자에 는 검푸른 색의 부채도 생겼는데, 세속에서 자못 고급스럽게 여긴다. 단선(團扇)은 기름이나 검은 칠을 칠하는데 오동나무잎과 비슷한 모양도 있다. 남자들은 단선을 집에서만 사용하고 외출할 때는 두고 나간다. 부인들은 여러 가지 색의 단선을 가 지고 다닌다. 단오를 민간에서는 수릿날[戌衣日]이라고 한다. 술의(戌衣)는 우리말로 수레[車] 75) 광문회본에는 遺로 되어 있다. 76) 광문회본에는 影이 形으로 되어 있다. 77) 채화(綵花)란 비단을 떠다가 염색을 하고 꽃잎으로 재단한 후 밀랍을 씌워 인두질을 한 가화(假花)의 하나다. 78) 계암만필 은 8권으로 되어 있으며, 저자는 이후다. 그의 자는 후덕(厚徳), 호는 계암노인(戒菴老人)이다. 강 음(江隂) 사람으로 생활이 어려워 과거에 나가지 못하고 80여 세를 살다가 죽었다. - 25 -
다. 이날 쑥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데 모양이 수레바퀴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쑥잎 중에 작고 둥글고 뒷면이 흰 것을 햇볕에 말린 다음 곱게 비벼서 불 똥으로 불을 일으키는 부싯깃[火絨]을 만든다. 또 쑥을 문드러지게 찧어 떡에 넣으 면 녹색을 낸다. 이것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기 때문에 쑥을 수리치[戌衣 翠]라고도 한다. 본초강목 에 천년 묵은 쑥을 중국인들은 구설초(狗舌草)라고 부 른다. 고 한 것이 바로 이 쑥이다. 내 생각에는 무규(武珪)의 79)에 연북잡록(燕北雜錄) 요나라 풍속에 5월 5일에 발해의 주방에서 쑥떡을 올린다. 고 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여자아이들은 홍색과 녹색의 새옷을 입고 창포탕으로 세수를 한다. 또한 창포 뿌 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고 주사(朱砂)를 발라서 머리에 꽂는다. 이를 단오 치장[端午 粧]이라고 부른다. 여항에서는 부녀자들이 곳곳에서 그네뛰기[秋千戱]80)를 한다. 내 생각에는 완서잡기 에 연경에서는 오월 초하루부터 5일까지 작은 규방아씨들 을 갖은 모양으로 곱게 꾸며주며, 출가한 여자들도 각기 친정에 근친을 가기 때문 에 이 날을 여아절(女兒節)이라고 부른다. 고 하였는데 연경과 우리나라가 그리 멀 지 않으므로 왕왕 풍속이 서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장안의 소년들은 남산 기슭에 모여 어울려 씨름을 하는데, 그 방식은 두 사람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마주 본 다음 각자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정강이를 잡은 다음 동시에 일어나면서 상대를 들어 메어친다. 그 기술로는 안다리걸기[內句], 밭다리걸기[外句], 배지기[輪起]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국인들이 이를 따라 하므로 씨름을 고려기(高麗技)라고도 하고, 요교(撩跤)라고도 한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옥추단(玉樞丹)을 제조한다. 이것을 차고 다니면 재액이 물 러난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주사(朱砂)로 벽사문(辟邪文)을 찍는다. 이것을 문 상방에 붙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월 5일 천중지절(天中之節)에 위로 천록(天祿)을 얻고 아래로 지복(地福)을 얻 어 치우(蚩尤) 신의 동두(銅頭)와 철액(鐵額), 적구적설(赤口赤舌)로 404가지 병이 일시에 없어져라. 빨리 시행하라. 또한 다른 벽사문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갑작(甲作)은 흉직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胇胃)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雄 伯)은 도깨비를 잡아먹고, 등간(騰簡)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저(攬諸)는 허물을 잡아먹고, 백기(伯寄)는 환상을 잡아먹고, 강량(强梁)과 조명(祖明)은 둘이 함께 책사(磔死)81)에 기생하는 귀신을 잡아먹고, 위수(委隨)는 관(觀)을 잡아먹고, 79) 연북잡록 은 사경(思卿) 무규(武珪)의 기록이다. 송나라 인종 때인 1061년에 무규가 거란에서 도망하여 돌 아온 사실이 있어 이 책을 지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80) 원문에서는 추천(鞦韆)을 추천(秋千)으로 표기하였다. 81) 책사(磔死)는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무거운 형벌인 책형(磔刑)을 당한 시체다. - 26 -
착단(錯斷)은 거(巨)를 잡아먹고, 궁기(窮奇)와 등근(騰根)은 둘이 함께 벌레를 잡아 먹는다. 무릇 이 열 두 신을 시켜 흉악한 것들을 내쫓기 위해 네놈들을 위협하여 몸뚱이를 잡아다가 허리뼈를 부러뜨리고 네놈들의 살을 찢고 내장을 뽑으려 한다. 네놈들 중 빨리 서두르지 않고 뒤에 가는 놈들은 열 두 귀신의 밥이 될 것이다. 이것은 즉 속한서(續漢書) 82) 예의지(禮儀志) 에 있는 내용으로 납일(臘日) 전 날 큰 나례(儺禮)83) 행사 때 역질 귀신을 쫒을 때 초라니가 화답하며 부르던 가사 다. 頒艾虎于閣臣用小桿纏束綵花簌簌如蓼穗 又 84)頒新扇號端午扇 絶大者竹幅滿五十 名白帖 得此者多畫金剛一萬二千峰 近俗喜寫折枝桃花蝴蝶芙蓉銀鯽鷺鶿 按戒菴謾筆端 午賜京官宮扇竹骨紙面俱畫翎毛五色線纏繞艾虎者 是也 湖嶺藩閫雄府致扇于朝列朋舊 以全州南平縣制爲佳 僧頭蛇頭有環無環外角內角濶沿狹沿制樣各殊 俗喜白黑二色 紅黃 與婦人小兒 靑者新郞把之 近有一種鴉靑色扇俗頗尙之 團扇着油或黑漆有似桐葉樣者 男子在家則搖 出門便捨 婦人持諸色團扇 端午俗名戌衣日 戌衣者東語車也 是日作艾糕 象車輪形食之 故謂之戌衣日 艾葉微圓背白曝乾可碎作火絨 又可爛搗入糕發綠色以其作 車輪糕 故號戌衣翠 本草千年艾華人呼作狗舌草者是也 按武珪燕北雜錄85)遼俗五月五 日渤海86)廚子進艾糕 此東俗之所沿也 小兒女著紅綠新衣菖蒲湯頮面 又削菖蒲根作簪 點朱砂揷䯻號端午粧 閭巷婦女盛爲秋千戱 按宛署雜記燕都自五月一日至五日飾小閨女 盡態極姸 已出嫁之女亦各歸寧號是日爲女兒節 我東與燕中不甚遠 故風俗往往相襲 都下少年會于南山之麓 與之角力 其法兩人對跪各用右手拿87)對者之腰 又各用左手 挐對者之右股 一時起立互擧而抨之 有內句外句輪起諸勢 中國人效之號爲高麗技 又曰 撩跤 內醫院製88)玉樞丹 佩之禳災 觀象監朱砂搨辟邪文 俗粘門楣曰五月五日天中之節 上得天祿下得地福蚩尤之神銅頭鐵額赤口赤舌四百四病一時消滅急急如律令 又一本曰甲 作食胸89)胇胃食虎雄伯食魅騰簡食不祥攬諸食咎伯起食夢强梁祖明共食磔死寄生委隨食 觀錯斷食巨窮奇騰根共食蠱凡使十二神追惡凶赫女軀拉女幹節解女肉抽女肺膓女不急去 後者爲糧 此卽續漢書禮儀志臘一日大儺逐疫侲子所和之詞也 82) 속한서 는 사마표(司馬彪)가 편찬한 것이다. 사마표의 자는 소통(紹統)이며 진(晉)나라 종실(宗室)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전체로 광무(光武)에서 헌제(獻帝)까지 200년간 12세를 80권으로 엮어 속한서(續漢書) 를 편찬하였다. 책 중 십지(十志) 는 팔지(八志) 만 남았다. 그중 두 번째가 예의지 다. 83) 나례(儺禮)는 섣달 그믐밤 귀신을 쫓는 제의다. 84) 연대본과 규장각본 모두 頒 앞에 띄어 쓰지 않았다. 85) 규장각본에는 연북잡지(燕北雜志) 로 되어 있으나 연북잡록(燕北雜錄) 이 맞다. 86) 규장각본에는 勃海로 되어있다. 87) 광문회본에는 拿이 拏으로 되어 있다. 88) 연대본, 규장각본에는 制로 되어 있다. 89) 광문회본에는 이체자인 月+凶으로, 규장각본 연대본에는 歹+凶으로 되어있다. - 27 -
6월 보름(六月十五日) 이날은 속칭 유두절(流頭節)이라고 한다. 분단(粉團)을 만들어 꿀물에 넣어 먹으 므로 수단(水團)이라고도 한다. 내 생각에는 고려사(高麗史) 에 희종(熙宗) 즉위년 (1204) 6월에 시어사(侍御史)90) 두 사람과 관리 최동수(崔東秀)가 광진사(廣眞寺) 에 모여 유두음(流頭飮)을 가졌다. 고 하였는데, 나라풍속에 이달 15일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서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모여 술을 마시는 풍속을 유두음(流頭飮)이라고 한다. 俗稱流頭節 作粉團澆以蜜水食之號水團 按高麗史熙宗卽位六月丙寅有侍御史二人與宦 官91)崔東秀會于廣眞寺作流頭飮 國俗以是月十五日浴髮東流水 祓除不祥因會飮號流頭 飮 복(伏) 이날 개고기를 삶을 때 파뿌리를 같이 넣으며 닭고기나 죽순을 추가하면 맛이 더 좋아지는데, 이것을 개장[狗醬]이라고 한다. 혹은 국으로 끓이는데 후추를 넣어 조 리한다. 여기에 밥을 말아 먹으며 땀을 흘리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몸을 보신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사기(史記) 에 진덕공 2년에 처음으로 복사(伏祠)를 짓고 사문(四門)에서 책구(磔狗), 즉 개를 찢어 죽여 충재(蟲災)을 막았다. 92)고 하였는 데, 책구란 복날과 관련된 고사(故事)로 지금 풍속에서도 이것을 따라 개를 잡아먹 는다. 狗肉和葱白爛蒸 入鷄笋更佳 號狗醬 或作羮調以番椒屑澆白飯食之發汗 可以祛暑補虛 按史記秦德公二年初作伏祠磔狗四門以御蟲災磔狗 卽伏日故事而今俗遂食之 중원(中元) 중원을 속칭 백중절[百種節]이라고 한다. 서울 장안 사람들은 먹을 것을 성대하 게 차려 산에 올라 가무를 하며 놀았다. 내 생각에는 우란분경(盂蘭盆經) 에 비구 목련(目連)93)이 7월 15일에 백미(百味)와 오과(五果)를 갖추어 쟁반에 쌓아두고 시 방대덕(十方大德)94)에게 공양하였다. 고 하였는데 지금 백종(百種)이라고 하는 것은 이 백미를 말하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불교를 숭상하여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었는 90) 시어사(侍御史)는 어사대(御史臺)와 감찰사의 종5품 벼슬이다. 91) 광문회본에는 者로 되어 있다. 92) 이것은 사기(史記) 권28에 나오는 내용으로 원문은 磔狗邑四門以禦蠱菑 로 묵힌 밭의 해충인 고치(蠱菑) 를 예방하였다고 하였다. 사기 는 중국 한나라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이 찬(撰)하였다. 93) 목련(目連)은 석가의 제자로 그의 어머니가 죄를 짓고 죽어 아귀도에 떨어져 있을 때 석가의 도움을 요청하 고 시방대덕에게 공양을 올려 어머니 영혼을 구제한 인물이다. 94) 시방대덕이란 각 방위의 높은 덕을 가진 중들을 말한다. - 28 -
데 지금 풍속은 단지 맘껏 마시고 배불리 먹을 뿐이다. 혹자는 이날 옛 풍속에 백 가지 곡식의 씨를 진열하였기 때문에 백종(百種)이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황당무계 한 설이다. 俗稱百種節 都人盛設饌登山歌舞爲樂 按盂蘭盆經目連比邱七月十五日具百味五果以著 盆中供養十方大德 今所云百種卽百味之謂也 高麗崇佛爲盂蘭盆會 今俗只醉飽而已 或 云是日舊俗陳列百糓之種故曰百種 無稽之說也 중추(中秋) 이날은 속칭 추석(秋夕)이라고 하기도 하고 가위[嘉排]라고도 한다. 내 생각에 삼국사(三國史) 에 신라의 유리이사금이 왕녀(王女) 두 사람을 시켜 6부의 여자를 반으로 나누어 거느리고 7월 보름부터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여 을야 (乙夜 : 이경)가 되어 파했다. 이렇게 8월 보름까지 하여 그 간의 길쌈한 공의 많고 적음을 보아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했다. 이 때 노래 와 춤 등 온갖 놀이를 다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가위라고 했다. 이 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 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우아 하였다. 고 하였다. 俗稱秋夕 又曰嘉排 按三國史 新羅儒理尼斯今使王女二人分率六部女子 自七月望集大 部之庭績麻乙夜而罷 至八月望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以謝勝者 於是歌舞百戱皆作謂 之嘉排 是時負家一女子起舞歎曰會蘇會蘇 其音哀雅 중구(重九) 이날은 국화를 따다가 떡을 해먹는데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떡과 같은 것으로 이 역시 화전(花煎)95)이라고 한다. 采菊花爲糕 與重三之鵑花糕同 亦稱花煎96) 10월 오일(十月午日) 시월 중에 간지에 오(午)가 들은 이날은 속칭 말날[馬日]이라고 하여 팥을 쪄서 떡을 만들어 외양간에 놓고 말의 건강을 축원한다. 그런데 병오일(丙午日)에는 이 행사를 하지 않는데, 병(丙)과 병(病)의 음이 서로 유사하여 말에 병이 날까 꺼리기 때문이다. 俗稱馬日 蒸赤豆餠設廐中 祝馬健 丙午日則否 丙與病音相類 忌馬病也 95) 전(煎) : 규장각본에는 고(糕)로 나왔으나 전(煎)이 맞다. 96) 규장각본에는 糕로 되어 있다. - 29 -
동지(冬至) 이날 임금은 새 책력을 하사하는데 황장력(黃粧曆)과 백장력(白粧曆)이 있으며, 책에는 어새(御璽) 중에 동문지보(同文之寳) 를 찍었다. 대대로 벼슬을 해온 사환가(仕宦家) 집안에서는 각기 구관전리(句管銓吏) 한 사람 씩 있어 벼슬에 나가는 집안사람이 있으면 고신(告身), 즉 사령장 교지를 써주고, 군현(郡縣)의 수령으로 나가는 경우는 전리에게 특별히 당참전(堂叅錢)을 지급한다. 당참(堂叅)이란 새로 수령에 제수(除授)되면 도당(都堂), 즉 의정부를 찾아가 인사하 는 것을 말하며 당참전의 전(錢)이란 전리가 이때 쓰게 될 비용인 것이다. 매년 동 지가 되면 전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청장력 한 권을 주인집에 바친다. 또한 서울 옛 풍속에 단오 부채는 벼슬아치가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지 책력은 아전이 벼슬 아치에게 주는데 이를 가리켜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하며, 이러한 선물교환 풍 속이 시골의 친지, 묘지기, 그리고 소작인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날 팥죽을 쑬 때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을 만들어 죽에 넣고 먹을 때 꿀을 탄 다. 팥죽을 문짝에 뿌려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 내 생각에는 종름(宗懍)의 시기(荆楚歲時記) 97)에 형초세 공공씨(共工氏)에게 모자란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頒新曆黃粧白粧 安同文之寳 仕宦家各有句管銓吏一人掌寫告身 出宰郡縣給堂叅錢 堂 叅者守令新除叅謁都堂之謂也 錢爲銓吏所資 每於冬至獻靑粧曆一卷 又都下舊俗端午之 扇官分于吏 冬至之曆吏獻于官 是爲夏扇冬曆 波及鄕曲親知墓奴庄客 赤豆粥用糯米粉 爲鳥卵狀投其中和蜜食之 是日潑豆粥於門板以辟惡 按宗懍荆楚歲時記共工氏有不才 子98)以冬至死爲疫鬼畏赤小豆 故冬至日作赤豆粥以禳之 납평(臘平) 본조(本朝), 즉 조선은 간지에 미(未)가 들어가는 날이 납일(臘日)이다. 내 생각에 는 지봉유설 에서 중국 후한 사람인 채옹(蔡邕)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靑帝)는 미 일(未日)로 납일을 정하고, 적제(赤帝)는 술일(戌日)로, 백제(白帝)는 축일(丑日)로, 흑제(黑帝)는 진일(辰日)로 각각 납일을 정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납일을 미일로 한 것은 대개 동방이 목(木)에 속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 날 임금은 납약(臘藥)을 내리는데 내국(內局)99)에서 만든 것이다. 청심원(淸心 97)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는 초나라 풍속 36종을 수록한 세시기(歲時記)다. 중국 육조시대 후베이(湖北) 지방 과 후난(湖南) 지방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6세기 중엽에 양나라 종름(宗懍)이 편찬하였다. 현존 하는 중국 세시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나라 특유의 세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풍속도 기술되어 있 다. 98) 규장각본에는 才와 子 사이에 之가 있다. - 30 -
元)은 근심이 많고 소화가 안 될 때 잘 듣고, 안신환(安神丸)은 신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으며, 소합원(蘇合元)은 곽란을 치료하는 데 주효하여 이 세 가지 환약을 가장 요긴하게 여긴다. 우리 임금(정조) 때 새로 두 종의 약을 제조하였는데 이미 있던 두 약을 등분하고 가감한 것으로 실로 백성에 대한 임금의 깊은 배려에서 나 오게 되었으며 소합원보다 효력이 더욱 빠르다. 그 이름은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 (廣濟丸)이다. 경기도 내에 산간 고을에서는 예로부터 납일 제사에 쓰는 돼지를 바 치기 위해 그 지방 백성들을 동원하여 멧돼지를 수색하여 잡았으나, 임금(정조)께서 특명을 내려 이를 폐지하고 장용영(壯勇營) 장교들로 하여금 포수를 데리고 용문산 (龍門山)과 축령산(祝靈山)으로 가서 사냥하여 바치도록 하였다. 참새를 잡아 어린 아이를 먹이면 마마를 잘 넘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장안에서는 사사롭게 새총 을 쏘지 못하게 금하였는데 이날만은 참새 잡는 것을 허락하였다. 本朝以未臘 按芝峯類說引蔡邕之說靑帝以未臘赤帝以戌臘白帝以丑臘黑帝以辰臘我國臘 用未 葢以東方屬木云 頒臘藥內局所制也 淸心元主閔塞 安神丸主熱 蘇合元主癨 三種 爲最要 當宁朝新劑二種等分加減 寔出睿思 比蘇合元效尤速 賜名濟衆丹廣濟丸 畿內山 郡舊貢臘猪發民搜獵 當宁朝特罷之 壯勇營將官領礮100)手獵于龍門祝靈諸山以進 捕黃 雀飼小兒善痘 都城中不得私放鳥槍 是日許令捕雀 섣달그믐날밤(除夕) 이날 궁궐에서는 대포를 쏘는데 이를 한 해를 마감하여 쏘는 포라고 하여 연종방 포(年終放礮)라고 불렀다. 지방의 병사와 수사, 그리고 각 군에서는 제석 전에 서울로 선물을 보내며 안부 를 묻는 서신을 보낸다. 서신 안에는 꿩 닭 포 물고기 연초 술 등 각자가 보내는 토산 물의 물목을 적어 작게 접은 쪽지를 함께 넣는데, 이것을 총명지(聦明紙)라고 부른 다. 내 생각에는 주처(周處)101)의 풍토기(風土記) 에 촉나라 풍속에 연말이 되어 서로 선물하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餽歲)라고 한다. 고 한 것을 보면 이러한 풍속은 옛날부터 내려온 것 같다. 이날 집 전체에 등을 켜놓고 외양간과 뒷간에까지 등잔을 놓은 채 밤새 잠을 자 지 않으며 수세(守歲)한다. 세속에서는 제야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센다고 하여 어 린아이들은 이렇게 될까 심히 두려워 잠을 자지 않는다. 혹 잠을 자는 아이가 있으 면 다른 아이들이 쌀가루로 눈썹을 어지럽게 바른 다음 거울을 대면서 놀리며 웃는 99) 내국은 내의원(內醫院)을 말한다. 내의원은 조선조 때 궁중 의약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삼의원(三醫院)의 하 나로 태조 원년에 전의감(典醫監)을 이렇게 고쳤다. 26대 고종 32년(1895)에 전의사(典醫司)로 고쳤다. 관원 으로 도제조(都提調)ㆍ제조(提調)ㆍ부제조(副提調) 각 1명씩 두었는데 부제조는 승지(承旨)가 겸임하였다. 내국 (內局), 상약(尙藥) 등의 이칭이 있다. 100) 礮는 砲의 이체자이다. 101) 주처(周處)는 중국 진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자은(子隱)이다. 오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진나라에 다시 와서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공을 세웠다. - 31 -
다. 내 생각에는 온혁(溫革)102)의 쇄쇄록(瑣碎錄) 에 제야에 신불(神佛) 앞과 마 루, 방, 뒷간 등 모든 곳에 등 밝히기를 새벽까지 하는 것은 집안에 광명이 들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고, 또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103) 에 제석에는 선비집안이나 서민집안이나 화롯가에 둘러 앉아 아침이 되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고 하였다. 禁中發大礮號年終放礮 藩閫列郡歲除前餽問都下 書緘中另具小摺列錄土産雉鷄脯魚烟 酒諸種謂之聦明紙 按周處風土記蜀俗晩歲相餽問謂之餽歲 此風自古而然矣 渾舍張燈以 至廐溷 各點一盞達夜不睡以守歲 俗云除夜睡雙眉白 小兒甚憚之 或睡他兒以米粉抹之 擾使對鏡以爲戱笑 按溫革瑣碎錄104)除夜神佛前及廳堂房溷皆明燈至曉主家室光明 又孟 元老東京夢華錄除夕士庶之家圍爐團坐達朝不寐謂之守歲 102) 온혁(溫革)은 중국 송나라 혜안(惠安) 사람으로 자는 숙피(叔皮)다. 쇄쇄록 은 그의 저서다. 103) 동경몽화록 의 작자 유란거사(幽蘭居士) 맹원로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이다. 금의 침입으로 남송으로 온 후 북송의 수도인 변경(汴京)의 문물과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10권으로 구성되었다. 104) 규장각본에는 쇄쇄록(碎瑣錄) 으로 쓰고 있으나 문헌통고(文獻通考) 에 쇄쇄록(瑣碎錄) 으로 되어있다. - 32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정월正月 입춘(立春) 입춘 며칠 전에 승정원(承政院)에서는 당하관 시종(侍從)과 초계문신 중 각 대전 과 궁에 붙일 춘첩자(春帖子)를 지을 제술인 명단을 임금에게 올리고 대제학(大提 學) 대제학을 차출할 수 없으면 양 관105)의 제학(提學) 에게는 오언율시와 칠언 율시 및 절구(絶句)의 운(韻)을 각기 한 편씩 출제하게 한다.106) 그리고는 과거 시 험처럼 삼하(三下) 이상의 점수를 합하여 입격자를 뽑는데, 분배(分排)의 표지로 채 워 넣은 글머리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세어 그 수대로 베껴 제출하게 한다.107) 춘첩자를 쓸 종이는 길고 넓은 닥종이를 써서 세로로 자른 다음 검정실 무늬의 큰 테와 위로 연잎, 아래로 연꽃을 새긴 문양판을 찍어 만든다. 각신(閣臣)은 제학부터 대교(待敎)까지 각자의 뜻에 따라 짓고 각 문체로 써서 올린다. 정월초하루에 쓰는 연상시(延祥詩)나 단오 때의 단오첩(端午帖)도 이와 같은 방식을 따른다. 여염과 시전에서도 모두 전지(剪紙)에 입춘(立春) 108)이라고 써서 기둥과 문 상 방에 붙인다. 혹은 입춘 대신 시사(詩詞)를 쓰기도 하는데 새봄을 축하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뜻을 담은 것은 궁전의 춘첩자와 같다. 농가에서는 입춘일에 보리뿌리를 캐어 하루 묵혔다가 그 생긴 것을 보고 한 해 점을 치는데,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중간으로, 단지 뿌리만 있고 가지가 없으면 흉년으로 여긴다. 前立春數日 承政院就堂下侍從抄啓各 殿宮春帖子製述人牌 招大提學 大提學未差則招 兩舘提學 以五七律絶各一篇出䪨109) 科次選入格三下以上計合 用番數篇首撗勒幾畵分 排標識 使之依數寫進 紙用長廣楮注縱截之 每截印烏絲大欄上作蓮葉下作蓮花 閣臣則 自提學至待敎隨意撰各體寫進 元日延祥詩端午帖放此110) 閭閻市廛 皆剪紙 寫立春貼 之111)柱楣 或代以詩詞 道祝釐之意 如宮殿春帖子之例 農家以立春日 採宿麥根 占歲美 惡 三歧以上爲豊 兩歧爲中熟 單根不歧 則爲歉 105) 양 관이란 홍문관과 예문관을 말한다. 106) 오언시나 칠언시는 글자 수를, 율시나 절구는 구(句)의 수를 따르는 근체시(近體詩)의 분류방식이다. 107) 제술 채점은 전체를 10푼(分)으로 나누는데, 1등인 거수(居首)가 10푼이고 삼하는 1푼이다. 108)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앞으로 민박본 으로 줄임)에는 寫立春大吉四字貼之 로 되어있다. 109) 䪨은 韵, 韻과 같은 글자이다. 110) 前立春數日~元日延祥詩端午帖放此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11)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앞으로 민박본 으로 줄임)에는 寫立春大吉四字貼之 로 되어있다. - 33 -
원일(元日) 좋은 쌀로 가루를 내어 체를 쳐서 고르고 맑은 물에 반죽하여 찐 것을 안반에 놓 고 떡메로 오래 친 다음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문어발처럼 둥글고 길게 늘인 모 양의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권모(拳模)라고 하며 가래떡을 말한다. 미리 준비해 둔 장국이 끓을 때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얇게 썰어 넣으면 끈적거리지도 않고 부서 지지도 않아 좋다. 또 여기에 돼지, 소, 꿩, 닭 등의 고기를 넣는다. 섣달그믐 밤중 에 집식구 수대로 끓여 한 그릇씩 먹는다. 이것을 떡국[餠湯]이라고 한다. 여항에서 는 어린아이 나이를 물을 때 여태 떡국 몇 그릇 먹었냐. 고 묻는다. 내 생각에는 중국 송나라 시인 육방옹(陸放翁)112)이 세수시(歲首詩) 113)에서 밤중에 제사를 지낸 후 박탁(餺飥)을 나누어 먹었다. 고 쓰고 주(註)를 달기를 시골풍속에는 새해 가 되면 반드시 떡국을 먹는다고 하고 이것을 동혼돈(冬餛飩), 연박탁(年餺飥)이라 고 하였는데, 이 떡국을 말하는 것 같다. 중들은 섣달그믐밤 자시가 지나면 인가 문밖을 돌며 큰 소리로 재미(齋米)를 청 한다. 수세(守歲)하느라 모여 앉아 통금이 해제된 것도 모르고 떠들다가 이 소리를 들으면 서로 돌아보며 벌써 새해가 되었네. 라고 한다. 정조 임금 원년에 중이 도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후로 이러한 풍속은 끊어졌지만 지방에는 간혹 있 는 일이다. 대궐 궁전 부근에서 포를 각기 세 번 쏜다. 지방 관아에서는 광대들이 괴뢰의 탈 을 쓰고 바라를 울리고 곤봉을 휘두르고 호령을 하면서 무엇을 몰아내는 시늉을 하 며 몇 차례 두루 돌아다니다가 나간다. 대개 악귀를 쫓기 위해 행해 온 나례(儺禮) 의 오랜 풍속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114)에는 설날과 동짓날에 모두 임금이 어전(御殿)으로 나와 하례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어 때를 당하면 신하들은 품계를 올려 행사를 치 르려 하지만 그때마다 대개는 임금이 임의로 정지시킨다. 그 이유는 조선왕조의 법 도가 겸손하고 검소한 것을 서로 받들므로 문서로는 예법이 존재함을 밝혀두지만 실제로는 이를 생략하여 간편하고 꾸밈없음을 쫓으려는 것으로 중국에서도 한나라 나 당나라 이래로 따라오지 못하는 바다. 하루 중 밝고 맑은 때를 골라 의정부 대신이 임금에게 새해 문안드리기 위해 종 친과 문무백관 중 2품 이상 신하를 인솔하여 인정전 뜰 품계석 아래 문무를 가려 112) 육방옹(陸放翁)은 중국 송나라 산음(山陰) 사람으로, 이름은 유(游)이며, 방옹은 호다. 보장각(寶章閣)의 대 제(待制)를 지냈고 85세를 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113) 세수시 는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 로 검남시고(劒南詩稿) 권38에 있다. 114) 국조오례의 는 조선 세종 때 국가의 모든 의례절차를 오례(五禮)인 길례(吉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군 례(軍禮), 흉례(凶禮)로 분류하여 제정한 책이다. 세종 때 경제육전속전(經濟六典續典) 이 이루어지고 국조오 례의(國朝五禮儀) 가 상정되어 후에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에 들어간다. 그러나 당시에는 완성되 지 못하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의 손을 거쳐 성종 때인 1474년에 신숙주(申叔舟), 정척(鄭陟) 등이 완성하 였다. - 34 -
순서대로 선다. 승지 1인과 사관 2인이 나아가 각 궁전의 승전중사(承傳中使)115) 궁의 중사는 승언중사(承言中使)라고 칭한다. 에게 청을 넣으면 중사는 대전에 서 나와 대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대신 이하 모두 무릎을 꿇고 대신이 正朝에 問 安드립니다. 라고 구두로 전하면 중사가 일어나고 대신 이하 모두 일어난다. 중사가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나와 대신 앞에 무릎을 꿇으면 대신 이하 모두 무릎을 꿇는다. 중사가 지도(知道)116) 궁의 중사는 지실(知悉)이라고 말한다. 라고 구두로 전하면 대신 이하 모두 물러간다. 약방(藥房), 내각(內閣), 승정원(承政 院), 옥당(玉堂)117)의 관원들은 합문(閤門) 앞에서 문안드리는데, 절차는 위와 같다. 동지 때나 제석 때의 문안도 같은 방식인데, 제석 때는 신시(申時), 즉 오후 4시경 전후에 행한다. 외관직은 목사 이상의 벼슬만 설과 동지에 전문(箋文)118)을 올려 하 례 드리고 각신(閣臣)을 지낸 사람은 비록 현감(縣監)으로 있더라도 역시 전문을 올 린다. 탄신일에도 이와 같다. 선조, 즉 정조 임금 때는 매년 설에 친히 만든 권농윤음(勸農綸音)을 8도 관찰사 와 4도(四都)119) 유수(留守)에게 내렸는데, 대개 이것은 동한(東漢) 때 동경에서 입 춘날이면 범죄자를 관대(寬大)하게 처리하는 교서를 내렸던 것과 같은 뜻이다. 설날부터 초사흘까지 승정원에서는 각방(各房)의 공사(公事)를 받아들이지 않 고,120) 내외아문(內外衙門)에서도 출근하지 않으며 시전도 문을 닫고 감옥은 비워 놓으며 지체 높은 관리들은 집에 손님을 들이지 않고 명함만 받아둔다. 농암(農 巖)121) 선생 시에 대문에 놓인 손님 명함 사흘을 머물고 비취색 잔의 도소주가 소 년을 일으킨다. 고 하였다.122) 내 생각에는 사민월령(四民月令) 에 술을 드리는 순서는 마땅히 작은 데서 시작된다고 한 것으로 보아 나이 어린 자가 먼저 일어나 술을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남녀노소 모두 새로 만든 의복 한 벌을 입는데, 이것을 설빔[歲庇廕]이라고 한다.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손님 이 오면 술과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데, 이것을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설날 이후 수삼일 동안은 장안의 남녀들은 여유롭게 단장하고 나들이옷을 입고 돌아다니다가 구석진 길에서도 아는 이를 만나면 문득 반갑게 웃으며 새해엔 크게 평안하시오. 라고 말하면서 길하고 경사스런 일만 들추며 서로 축하하는데, 예를 들 115) 중사(中使)란 대궐 안에서 왕의 명령을 전하는 내시(內侍)를 말한다. 116) 지도(知道)는 알았다는 뜻으로 임금이 사용하는 말이다. 117) 옥당(玉堂)은 홍문관을 말한다. 118) 전문(箋文)은 한문 문체(文體)의 이름으로. 나라에 길흉(吉凶)이 있을 때 신하가 임금에게, 그리고 임금이 그 어버이 상왕의 수하(壽賀) 때 써 올리는 4 6체의 글이다. 119) 4도(四都)란 송도, 수원, 광주, 강화를 말한다. 120) 각방공사(各房公事)란 승정원에서 6조(曹)의 일을 챙겨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임무를 말하는데, 이를 하 지 않으므로, 결국 관리 모두가 정초 3일간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121) 농암(農巖)은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호로, 저자인 김매순의 고조부 김창흡의 형이다. 122) 시는 농암집(農巖集) 권6에 있으며 제목은 元朝有懷京洛舊事口占示兒輩 다. - 35 -
면 (올해엔) 아들을 보시오(添丁), 벼슬에 나아가시오, 병환이 없기를, 돈 많 이 버시오, 등의 말로 각기 상대방이 바라는 사항으로 문안하는데, 이것을 덕담(德 談)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나의 고조할아버지가 지은 신세시(新歲詩) 에 장안 남 녀가 길에서 축하를 나누는데 이날 안색은 양쪽 모두 윤기가 있다. 고 하였다.123) 好稻米作末細篩 淸水拌勻 蒸124)熟置木板上 用杵爛搗 分作小段 摩轉作餠 體團而長如 八梢魚股 名曰拳模 先作醬湯候 沸將餠細切如錢形 投之以不粘不碎爲佳 或和以豬牛雉 鷄等肉 除夕夜半家人計口喫一椀 名曰餠湯 閭巷125)間問兒小年齒 輒曰 今喫餠湯幾椀 放翁歲首詩云 中夕祭餘分餺126)飥 註 鄕俗歲日 必用湯餠 謂之冬餛飩 年餺飥 疑卽此 物也 僧人候除夕子夜半 到人家門外高聲請齋米次 守歲者 方襍坐諠譁不覺更闌 聞此聲 則相顧曰 歲已新矣 先王初元 禁僧尼不得入都城 故此風遂絶 而鄕村間或有之 禁中宮 殿近處 各放砲三響 外邑官府 則優人着傀儡假面 鳴鑼揮 一作楎 棒呵喝 作驅逐狀 回旋數匝而出 盖侲儺遺法也 五禮儀 正朝至日皆 御殿受賀而臨時禀 旨輒權停盖 本朝 家法以謙儉相承著其文以存禮制畧其實以從簡質此漢唐以來中朝之所不及也 平明議政大 臣 率宗親文武百官二品以上 詣仁政殿品石下成班序立 承旨一員史官二員進去請各殿宮 承傳中使 宮則稱承言 中使出詣大臣前跪 大臣以下皆跪 大臣口告問安 中使起 大臣 以下皆起 中使入內少頃出詣大臣前跪 大臣以下皆跪 中使口傳知道 宮則曰知悉 大臣 以下退 藥房內閣政院玉堂詣閤門問安如上儀 至日除夕放此 除夕用申時 外官牧使以上 正至日進箋陳賀 閣臣雖縣監亦進箋 誕日放此127) 先朝每於元朝 下御製勸農綸音于八 道觀察使四都留守 盖東京以立春日下寬大書之意也 自元日至三日承政院不入各房公事 內外衙門不開坐 市廛閉 囹圄空 公卿家不許輒通門刺 農巖詩曰朱門賓刺留三日翠勺屠 蘇起少年 按四民月令云 進酒次第當從小起以年少者先起 男女老少皆着新套衣服曰歲 庇廕 遍謁親戚鄰里長老曰歲拜 客至設酒食128)餉之曰歲饌 歲後數三日都中士女往來穰 穰靚粧袨服交映 阡陌塗遇所識輒笑嘻嘻 道新歲太平 舉吉慶事以相賀 如添丁進祿除憂 病獲錢粮之類 各視其人所望謂之德談 高祖考新歲詩曰都人129)士女途中賀 是日顔色兩 敷腴 모든 법사에서는 금지 조항을 두고 있는데, 이중 우금(牛禁)130)이 가장 크다. 이 를 지키지 않으면 해당 기관에서 패를 내어 잡아 조치한다. 그러나 매년 설을 맞이 123) 저자 김매순의 고조부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다. 신세시(新歲詩) 는 삼연집(三淵集) 권1에 있다. 124)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앞으로 고대본 이라고 함)에는 蒸이 빠져있어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앞 으로 연대본 이라고 함)에서 추가하였다. 125) 광문회본에는 巷이 閻으로 되어 있다. 126) 고대본에는 餺이 食+專으로 되어있는데 바로잡았다. 아래 年餺飥 의 餺도 마찬가지이다. 127) 平明議政大臣~誕日放此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28) 고대본에는 食이 肉으로 되어있다. 129) 민박본에는 都中으로 되어있다. 130) 우금이란 농우(農牛)를 보호하기 위하여 소를 일체 잡지 못하게 하는 금지법이다. - 36 -
하여 간혹 특지(特旨)로 3일간 패를 깊이 보관하고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에서 는 숨김없이 소를 잡아 팔 수 있으므로 큰 고기 덩이를 시내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저암(著庵) 유한준(兪漢雋)131)의 원일잡시(元日雜詩) 에 동쪽 교외 소는 흥 인문으로, 남쪽 교외 소는 숭례문으로, 양쪽 문으로 들어오는 소가 하루에 천 마리 인데 도성 안에 살아남은 소는 한 마리도 없다. 고 하였는데, 속담에 가까운 말이긴 하나 실상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설날부터 보름까지 소년들은 서로 모여 윷놀이를 한다. 이것을 척사(擲柶)라고 부 르기도 한다. 보름이 지나면 윷을 거두어 감추는데, 이날 이후로 계속하면 농사에 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름을 넘겨 윷놀이를 하면 벼가 죽는다. 라는 속담도 있다. 놀이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종이에 동그라미 20개를 바깥으로 빙 둘러 그리 고 다섯 번째 동그라미마다 안으로 직선으로 동그라미 2개를 그린다. 정 가운데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면 모두 29개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동그라미에는 자 호를 표기하는데 첫 번째는 입(入), 두 번째는 공(拱), 세 번째는 열(裂), 네 번째는 출(出)이라고 쓰고 가운데 동그라미는 방(房)이라고 쓴다. 윷은 둥근 나무토막을 둘 로 쪼개 산가지 모양으로 네 개를 만든다. 두 사람이 상대가 되어 던지는데 엎어지 고 잦혀진 상태를 보고 정해진 동그라미 숫자에 따라 말을 두어 나간다. 모두 엎어 지면 모로 다섯 칸을 움직이고, 모두 잦혀지면 윷[柔]으로 네 칸, 셋이 잦혀지고 하 나가 엎어지면 걸로 세 칸, 둘씩 잦혀지고 엎어지면 개로 두 칸, 셋이 엎어지고 하 나가 잦혀지면 도로 한 칸을 움직인다. 가야할 칸에 말이 미리 있을 때 적의 말이 면 먹고 자기 말이면 합한다. 모나 윷이 나오거나 적의 말을 먹으면 연이어 던진 다음 모두를 합쳐 계산한다. 말을 두는 방식은 오른쪽에서 돌아 한 바퀴 돌고 나오 는데 입 이나 공 위치에 간 말은 꺾어 안으로 빨리 돌 수 있고 입 으로 들어간 말은 방 에 이르면 또 왼쪽으로 꺾을 수 있으므로 가장 빠르다. 그 속도의 차이나 어긋나고 바름이 예측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네 말을 빨리 나오게 하는 자가 이 기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짚을 베개 모양으로 묶어 땅에 놓고 그 위에 널판을 올려놓은 다음 좌우로 균형을 맞추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로 엇갈리며 뛰는데, 몸을 높이 올릴 수록 잘한다고 한다. 이것을 널뛰기[跳板戱]라고 한다. 諸法司皆有禁條 而牛禁爲大 有犯者該司出牌拿治 每當正朝 或以特旨限三日藏牌 則民 間公得屠宰肥肉 大胾磊落坊市 兪著庵漢雋元日雜詩曰東郊之牛興仁門南郊之牛崇禮門 兩門牛入日千頭一入城中無返魂 詞雖近俚 而亦可謂記實矣 自元日至上元 少年相聚作 四木戱 或稱擲柶 過上元則收局藏之謂不利於稻 諺曰過望擲柶禾稻死 其法畵紙爲圈 二 十圈在外圓布 每五圈向內直布 二圈中置一圈 摠二十九圈 外圈向內處各標字號 第一曰 入 第二曰拱 第三曰裂 第四曰出 中一圈命之曰房 剖木爲四枚如环珓狀 兩人對擲 視其 仰俯 計圈置馬而行之 皆俯曰牡行五圈 皆仰曰柔行四圈 三仰一俯曰桀行三圈 俯仰各二 131)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자는 만청(曼淸) 여성(汝成), 호는 저암(著庵), 창애 (蒼厓)다. 문인이자 서예가로 이름 높던 유한지(兪漢芝)의 사촌형으로 문장뿐 아니라 서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학자다. - 37 -
曰開行二圈 三俯一仰曰刀行一圈 先有馬當其圈 敵則食之 己則合之 得牡柔者食敵馬者 連擲合計 凡置馬皆從出右 繞行于外一周而出 値入拱二圈則折而內差速 由入者値房則 又折而左最速矣 遲速奇正不一其端 大要先出四馬者勝 兒女輩束藁如枕形置之地 加板 其上 令左右適均 兩人對立迭跳以竦 身高者爲雋 名曰跳板戱 설날 밤에 민속에서는 이강신(羸羌神)이 인가에 들어와 신을 훔치는데, 이를 당한 사람은 재앙이 있다고 하여 집집마다 신을 감추고 아이들에게는 일찍 자고 문밖으 로 나가지 못하게 훈계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을 겁주려는 데서 나온것 같으나 이제는 익숙한 풍속이 되었다. 잠곡 김육(1580~1658)은 1619년 설날에 다음과 같 은 이강(羸羌) 132)이란 제목의 오언고시(五言古詩)를 썼다. 元日之夜 俗爲羸羌神入人家竊屨 被竊者有殃 家家取屨藏之 戒兒童早睡無得出門 其初 似出於誑嚇小兒 而遂以成俗 潛谷金相國堉有羸羌詩曰 옥황상제 곁에 작은 귀신 있으니 帝旁有小鬼 그 이름 이강이라 하지 其名曰羸羌 파리한데 날래기는 바늘 같고 瘦削銳如針 형체는 가늘면서 길지 形體細而長 설날 밤 짙은 어둠을 타고 元宵乘暗黑 머리는 풀고 옷소매는 걷은 채 被髮褰衣裳 표연히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飄然自天下 기세는 어찌 그리 양양한지 志氣何揚揚 바람과 비를 수레삼아 달리고 風雲爲駕馭 해와 달이 빛 없는 때를 즐겨 日月喜無光 인간 세상 두루두루 다니는데 周行遍人寰 어느 곳이든 안가는 곳 없지 無處不方洋 구중 궁궐 대문도 밀어젖히는데 尙排九重門 몇 길 높은 담장쯤이야 문제되랴 何有數仞墻 부호들 집은 훌쩍 넘어 들어오고 乘陵富豪宅 가난한 마을은 걸어서 들어오지 踐踏貧賤鄕 주인 잠들기를 몰래 기다리다 潛伺主人睡 신발 훔치고는 재앙을 내리니 竊履施禍殃 집집마다 모두 두려운 마음으로 家家盡疑懼 대문 걸어 잠그고 신발 깊이 감추지 閉戶深自藏 아이들은 겁이나 감히 밖을 못나가고 兒童不敢出 아녀자들은 서로 놀라 떨고 있으니 婦女相驚惶 132) 이강(羸羌) 이란 시는 잠곡선생유고(潛谷先生遺稿) 권1에 수록되었다. - 38 -
맘대로 조화의 권세를 오로지 하고 頗專造化權 삶과 죽음의 그물망 잡을 만하지 能執生死網 예로부터 내려오는 얘기라고 하나 流傳自古昔 그 말 참으로 황당하다 此語誠荒唐 인생에는 정해진 분수가 있어 人生有定分 대명은 하늘에 달려 있는 법인데 大命懸穹蒼 하찮은 한 마리 요괴가 么一麽妖魅 아무리 독한들 어찌 상처 입힐까 雖毒焉能傷 하물며 상제의 밝은 빛이 又況上帝明 아래 세상을 두루 비추시며 照臨下土方 온갖 신들은 각기 자리 지키고 百神守其位 일월성신 밝은 빛 들어내는데 星辰耀精芒 어찌 이런 기괴한 귀신을 받아들여 其容此怪鬼 망령되게 기세를 부리게 하나 妄使氣勢張 단지 생각건대 천도가 멀다보니 但念天道遠 짧은 생각으론 헤아리기 어렵구나 難以寸心量 사악함은 본디 바름 해치고 邪固害於正 이치도 간혹 법에 어긋나는데 理或反其常 망망한 저 넓은 하늘 속에 茫茫廣莫中 요기가 어찌 창성할 수 없으랴 得無妖氣昌 깊이 생각하니 온갖 감회 일어나고 沈思百感生 전혀 맹랑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 恐亦非孟浪 어찌하면 의천검 큰 칼을 얻어 安得倚天劒 구름 뚫고 그 놈 내장 도려낼까 決雲刳其腸133) 도화서에서는 세화(歲畵)를 올리는데 금갑신장(金甲神將)은 궁전 문에 붙이고 신 선을 그린 그림, 닭이나 범을 그린 그림은 친척이나 가까운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한다. 궁궐에서는 해일과 자일에 각색의 비단으로 주머니[佩囊]를 만드는데, 여러 끈을 꿰고 묶어 아래로 내려뜨려 유소(流蘇)를 만드는데 큰 나비가 달린 듯 모양이 화려 하다. 이것을 설날 문안드리러 온 측근 신하와 공경대부, 재상 등에게 하사한다. 이 것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으나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해와 자가 십 이지의 끝과 처음이므로 이날 주머니를 만드는 것은 한 해의 복록을 주머니에 담는 뜻이라고 한다. 설날과 보름에 인가에서는 선조 제사를 지낼 때 제수로 강정(羗飣)을 높이 친다. 도수가 높은 술로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떡을 만들어 가늘게 썬 다음 끓는 기름에 133) 諸法司皆有禁條~安得倚天劒 抉雲刳其腸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39 -
넣으면 누에고치처럼 둥글고 크게 부풀어 오르는데, 그것에다 엿과 볶은 흰 참깨를 묻힌 것이 강정이다. 혹은 볶은 콩가루를 묻히기도 한다. 주례(周禮) 134) 이 식(酏食) 의 주석에 술과 쌀로 떡을 만드는데 지금의 기교병(起膠餠)135)과 같다. 고 하였는데 아마 그것도 강정의 한 종류인 것 같다. 중국 송나라 동래(東萊) 여조 겸(呂祖謙)이136) 쓴 제식(祭式) 에 설날 누에고치를 올린다. 는 문구가 있고 성재 (誠齋) 양만리(楊萬里)의 상원(上元) 시 중에 사퇴(麝䭔)는 궁중 풍으로 큰 잔치 를 도와주고 분견(粉繭)은 시골풍으로 고향생각 나게 한다. 고 하였는데,137) 여기서 분견이란 강정을 말한다. 퇴(䭔)는 찐 떡이다. 圖畵署進歲畵 金甲神將貼宮殿門 仙人鷄虎貼照壁 或頒賜戚畹近臣家 禁中以亥子二日 裁各色綾緞造佩囊 穿結雜138)組下作流蘇栩栩如大蝴蜨 正朝候班近臣卿宰例得頒賜 其 來甚久而莫省所以 或曰亥子居十二辰終始 以是日造囊者 囊括一歲福祿之意也 正朝上 元 人家祭先羌飣爲上羞 羌飣者以烈酒和糯米粉搦搏作餠 細切待乾 用油浴煎 卽浮起圓 大形如蚕繭 沃以餳炒白胡麻衣之 或用炒菽屑 周禮酏食䟽云以酒酏爲餠若今起膠餠 疑卽羌飣之類 東萊祭式有元日薦繭之文 楊誠齋上元詩曰麝䭔宮樣陪公讌粉繭鄕風憶故 園 粉繭者今之羌飣也 䭔蒸餠也 인일(人日) 공조(工曹)에서는 화승(花勝)139)을 올린다. 또한 각 궁전에 동인승(銅人勝)을 진 상하는데, 이것은 구리로 공 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인형을 새긴 것이다. 정월 인일, 삼월 삼짇날, 칠월 칠석, 그리고 구월 중양절에 임금이 친히 문제를 내어 성균관 상재(上齋)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데, 대신과 홍 문관과 예문관 제학을 독권관(讀券官)으로 삼아 임금 앞에 나아가 과거의 순서를 정한다. 시험에 수석한 자에게는 간혹 급제를 내리기도 하고 그 나머지도 성적대로 상을 내린다. 이것을 절일제(節日製)라고 하며, 어떤 때는 사학(四學) 학생에게도 시 험자격을 주는데, 이 경우는 통방외(通方外)라고 한다. 工曹進花勝 又鑄銅如圓毬狀 上刻人形名曰銅人勝 殿宮各進一枚 正月人日三月三日七 134) 주례(周禮) 는 주나라 때 작성되고 후대에 증보한 중국 최고(最古)의 법전으로 당대 이후부터 이렇게 불렸 다. 135) 기교병(起膠餠)은 기면병(起面餅)이라고도 하며 표면에 쌀가루를 발라 발효시킨 것으로 강정과 같다. 136) 여조겸(呂祖謙)은 송나라 사람으로 시, 서, 춘추에 능통하였으며 주희(朱熹), 장식(張栻)과 함께 강남의 삼현 (三賢)으로 불렸다. 137) 양만리(楊萬里)는 송나라 사람으로 시의 제목은 故蘇館上元前一夕陪使客觀燈之集 이며 성재집(誠齋集) 권 29에 있다. 138) 고대본에는 雜이 襍으로 되어 있다. 139) 화승(花勝)은 고대 부녀(婦女)들이 머리를 장식했던 일종의 수식(首飾)으로 색종이를 가위로 잘라 만든다. 인승(人勝)이라고도 하며 인일에 만들며, 그래서 인일을 인승절(人勝節)이라고도 한다. - 40 -
月七夕九月九日 下御題于成均館試取上齋生 以大臣及兩館提學爲讀券官詣榻前科次 居 首者往往賜第 其餘頒賞有差名曰節日製 有時140)並四學生許赴謂之通方外 상신일上辛日141) 이날 임금은 사직단에 나아가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대제(祈穀大祭)를 행하는데, 방식은 종묘 의례와 같다. 임금이 직접 제사를 올리지 못할 경우는 대신들이 섭행 (攝行)한다. 정조 임금은 재위기간 24년 동안 매년 꼭 친향(親享)을 하였는데, 비록 위예(違豫)142)한 때라도 조정 신하들이 섭행(攝行)을 극력 청하여도 허락하지 않았 으니 백성을 생각하고 농사를 중히 여김이 이같이 지극하였다. 사직 제사는 이전에 는 중사(中祀)였으나 정조 임금 11년(1787)부터 대사(大祀)로 승격되었다. 大駕親行祈穀大祭于社稷 百官陪祭如太廟儀 非親享則大臣攝行 先朝臨御二十四年每歲 必親享 雖間値違豫 廷臣力請攝行亦不許 勤民重農之意 嗚呼至矣 社稷舊在中祀 至先 朝丁未始陞爲大祀 상해일(上亥日) 부녀자들은 이날 조두(澡豆)143)를 만든다. 속담에 돼지날에는 조두를 만들어 얼굴 을 씻고 쥐날에 잘 차려 입으면 출가한 형제가 집에 돌아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안색이 좋아져서 다시 보게 된다는 뜻이다. 婦女以上亥日作澡豆 諺曰豕日作豆鼠日盛飾 出去親哥還家不識 謂顔色美好改觀也144) 보름날(上元) 찹쌀을 대강 쪄서 만든 밥에 기름과 꿀과 진장을 넣어 비비고 씨 뺀 대추 살과 깐 밤을 잘게 썰어 쌀 양에 맞게 고루 넣고 다시 은은한 불에 쪄서 제사상에 올리 고 손님에게 대접하며 동네 이웃이 서로 나눈다. 이것을 약밥[藥飯]이라고 한다. 우리 관습에 꿀을 약으로 쓰므로 꿀밥을 약밥이라고 하고 꿀과자를 약과라고 한 다. 세속에 전하기를 신라 소지왕이 까마귀 말을 듣고 금갑(琴匣)을 쏘아 화를 면 한 이적이 있어 감사의 뜻으로 까마귀밥으로 만든 것이 약밥이고 이것이 우리 고유 의 풍속이 되었다고 한다. 역관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 사신들이 연경에 가서 140)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41) 상신일(上辛日)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42) 위예(違豫)란 제왕이 병이 생겼을 때 삼가 가려서 쓰는 휘칭(諱稱)이다. 143) 조두(澡豆)란 고대 이래 세수나 목욕할 때 쓰던 용품으로 팥을 갈고 여기에 향료를 섞어 만든 비누다. 144) 去親哥還家不識 謂顔色美好改觀也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41 -
보름을 쇠게 되면 반드시 요리사에게 이 음식을 만들게 하는데, 연경 귀인(貴人)들 이 이것을 맛보면 반색을 하며 다른 음식을 다 마다할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그 방법을 전하여도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까마귀 설은 매우 황당한 이야기지만 중국에는 이것이 없으므로 우리 고유의 풍속이라는 설은 무고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근자에 본 책 중에 당나라 위거원(韋巨源)이 쓴 145)라는 식보(食譜) 책에 유화명주(油畵明珠) 라는 글이 있어 그 주석을 보니 보름 때 먹는 유반(油飯)은 약밥 재료 모두를 간략히 말한 것이니 앞으로는 유반이라고 해야 한 다. 그렸다고 한 것은 붉은 옻칠이 섞인 것처럼 보이고 명주같다고 한 것은 매끈하 고 고운 빛깔이 나기 때문이다. 고 하였다. 이것은 곧 약밥을 뜻하므로 중국의 문물 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며 신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호사가들이 멋대로 이 고 사에다 억지로 붙인 것이다. 그러면 중국에는 옛날에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는가. 그것은 마치 주나라와 노나라 예제는 없어졌지만 담(郯)나라에 그것이 관기(官紀)로 남았고 하(河)와 낙(洛)의 음악과 학문은 사라졌지만 민(閩)에서 유학이 일어난 것 과 같다. 문물이 본시 이런 것인데 어찌 약밥뿐이겠는가. 이날 날이 밝아올 때 술을 한잔 마시는데, 이것을 귀밝이술[明耳酒]이라 하고 밤 세 톨 깨무는 것을 부스럼 깬다[咬瘡果]고 한다. 또 이른 새벽에 정화수 한 그릇 길어오는 것을 용알뜨기[撈龍子]라고 한다. 정결 한 종이에 흰밥을 싸서 강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심[魚鳧施]이라고 한다. 부녀자나 아동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친한 사람을 만나면 급히 부른다. 그 사람 이 응답하면 곧 내 더위 사라. 고 한다. 불러도 지나가고 응하지 않으면 팔지 못한 것이다. 10월 초부터 남자아이들은 연날리기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나무로 만든 작은 호 로(葫蘆) 3개를 차고 다닌다. 이듬해 정월 보름밤이 되면 가지고 놀던 연은 공중으 로 날려 보내고 차고 다니던 호로는 길에 버리는데 엽전 1전씩 매단다. 이를 방액 (防厄), 즉 액막이한다고 한다. 여항의 소민들은 점쟁이[日者]에게 명수(命數)를 물어 흉성(凶星)이 든 해라는 점 이 나오면 제웅[芻人]을 만들고 뱃속에 엽전을 넣어 길가에 버린다. 그러면 이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제웅을 치고 부수어 엽전을 빼간다. 이를 대액(代厄), 즉 액땜이 라고 한다. 粘稻米畧蒸爲飯 拌油蜜豉醬棗栗取肉細切投146)之多寡視米 再蒸爛熟 薦祖羞賓鄰里相 饋 名曰藥飯 東俗謂蜜爲藥 故蜜飯曰藥飯 蜜果曰藥果 世傳新羅炤智王感烏告射琴匣 之異 作以飼烏 遂爲土風云 聞譯人言 我使赴燕 値上元必令饔人設此 燕中貴人得而甞 之莫不變色大驩 百味盡廢 傳其方不得成 烏告之說雖甚荒誕 中國無是物 則起於土風似 不誣也 近閱唐韋巨源食譜有曰油畵明珠 注云上元油飯摠藥飯材料而約言之必將曰油飯 145) 위거원(韋巨源)은 중국 당나라 때 인물로 음식에 관한 해설서인 식보(食譜) 를 썼다. 여기서 유화명주(油畵 明珠)의 유화는 약밥이 번지르르한 모양을, 명주는 그 색을 표현한 것이다. 146) 고대본에는 投가 収로 되어 있다. - 42 -
畵者丹漆錯也 明珠者潤麗色也 意藥飯 故是中國物而傳于東 自新羅始好事者從而傳會 耳 然則中國之昔有而今無何也 曰周魯無禮制而官紀於郯 河洛無絃誦而儒興於閩物 固 有然者 豈獨藥飯147)哉 淸晨飮酒一盞曰明耳酒 嚼栗三箇曰咬瘡果 凌晨汲井華水一器謂 之撈龍子凈紙裹白飯投水謂之魚鳧施 婦女兒童朝起遇所親者急呼之 其人應則曰買吾暑 暍 去不應則以爲賣不售148) 兒童以十月初 男放紙鳶 女佩木雕小葫蘆三枚 至上元夜鳶 飄于空葫蘆捐于道 各繫一文錢 名曰防厄 閭巷小民問命于日者謂年直凶星 則作芻人納 錢于腹棄之道側 聽羣兒打破取錢而去 名曰代厄149) 보름날 밤에 열두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 열두 달 액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하여 재상과 귀인으로부터 여항 백성들까지 늙거나 병든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리밟 기를 하러 나온다. 가마나 말을 타고 오기도 하고, 지팡이도 짚고 나막신을 끌고 나 오기도 하여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찬다. 악기와 술병이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벌려 있다. 일 년 중에 도읍이 구경꾼들로 성황을 이루는 날은 오직 보름밤과 사월 초파 일로 이 두 날만은 매번 임금의 명으로 통금을 해지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볏짚을 만들고 쌀 주머니를 다는데, 위는 뾰쪽하게 하고 아래 는 넓게 하여 장대에 묶어 마당 가운데에 세운다. 이것을 화적간(禾積竿), 즉 볏가 릿대라고 한다. 이것은 2월 초하루에 장대를 눕혀 매단 쌀을 꺼내 떡을 해 먹는다. 농가에서는 초저녁에 홰를 만들어 불을 붙인 다음 무리를 지어 동쪽을 향해 달리 는데, 이것을 달맞이[迎月]라고 한다. 달이 위로 뜨면 그 둘레의 색을 보고 그해 풍 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점을 친다.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0)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정월보름 농가에선 언제나 달뜨기를 기다린다. 북쪽 가까이 뜨면 산골 에 풍년들고 남쪽으로 기울면 해변 곡식이 잘 익는다. 달이 붉으면 가물까 걱정이 고 흰색이면 홍수가 날까 두렵다. 알맞게 황색이어야 대풍년이 들 것이로다. 농민들은 수수깡을 세로로 가운데를 갈라 한쪽 편에 작은 구멍 열두 개를 뚫고 그 구멍마다 콩 한 알씩 박아 넣어 열두 달을 나누어 표시한다. 다른 한 쪽도 같은 간격으로 열두 구멍을 파서 둘을 합친 다음 봉해서 물속에 넣어 하룻밤을 재운 후 꺼내 열어보아 콩이 얼마나 불었는가에 따라 그달이 비가 많을 것인지 가물 것인지 점치는데, 이것을 달불음[潤月]이라고 한다. 시정 소년들은 빈 공터에 모여 조를 나누고 진을 친 다음 돌을 던져 승부를 내는 데, 이것을 편싸움[邊戰]이라고 한다. 진행 도중에 머리가 깨지고 눈을 다쳐도 동정 하는 일이 없다. 속설에 이기는 편의 방위에서 풍년이 든다고 한다. 147) 연대본에서 飯을 추가하였다. 148) 婦女兒童朝起遇所親者急呼之~去不應則以爲賣不售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49) 閭巷小民問命于日者謂年直凶星~曰代厄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50) 차천로(1556~1615)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 난우(蘭嵎) 귤실(橘室) 청묘거사 (淸妙居士)다. 조선 선조 때 문장가로 저서에 오산집(五山集) 이 있다. - 43 -
향촌의 부잣집에서는 잡곡밥을 지어놓고 품을 팔아 어렵게 사는 이웃 사람들을 불러 한 그릇씩 먹인다. 부잣집이 많은 동네에서는 하루에 여러 그릇을 먹게 된다. 속담에 밥 아홉 그릇 먹고 땔감 아홉 짐 한다. 고 하는데, 밥을 배불리 먹어 기력 이 강해졌다는 말이다. 이날 김에다 취나물 등속과 밥을 싸서 많이 먹으면 좋다고 하는데, 이를 복쌈[縛 苫]이라고 하며 역시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있다. 보름에 인가에서는 개를 굶기는데 이날 먹이면 개 몸에 파리가 들끓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속담에 명절을 굶고 넘어가는 사람을 비웃어 개 보름 쇠듯 한다. 고 한 다. 上元夜踏過十二橋謂之度盡十二月厄 自卿宰貴人以至委巷庶民除老病外無不畢出 輿馬 杖屧塡塞街坊 笙簫壺榼所在成聚 一年中都邑遊觀之盛惟上元與四月八日爲最 此兩夜每 降旨弛禁 有田者織稻穰貯米束之 令上銳下廣縛竿立庭中謂之禾積竿 至二月初吉 偃竿 取米作䭐啖之151) 農家以152)初昏束炬點火 成羣向東而走 謂之迎月 月旣上 眂其輪色 占歲美惡 車五山天輅詩曰 農家正月望 常153)候月昇天 近北豐山峽 差南稔海邊 赤疑焦 草木 白怕漲川淵 圓滿中黃色 方知大有年 農人取薥154)黍莖 中剖之 一邊鑿小竅十二 每竅納菽一枚 分標十二月 一邊相對鑿竅如其數 復合而封之 投水中一宿 而出啓視燥濕 卜本月澇旱 謂之潤月 市井少年就空曠處 分曹布陣投石決勝 謂之邊戰 雖破壞頭目不恤 也 俗謂勝邊方位占豊年 鄕村上戶作雜穀飯招隣里傭保人饋一椀 上戶多處或一日累椀 諺曰喫飯九椀負薪九擔 言飽喫氣力健也155) 用海衣馬蹄菜之屬包飯而喫以多爲貴 名曰 縛苫 亦祈穀之意也 上元日人家不飼犬 謂飼則蠅繁 俗嘲飢度良辰者曰狗兒上元156) 2월(二月) 2월과 3월 사이에 간혹 바람이나 비가 겨울철157)같이 찬데, 속칭 이것을 꽃샘추 위[花妬媢]라고 한다. 속담에 2월 바람에 큰 독이 깨지고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 어 죽는다. 고 한다. 한강에 동빙고와 서빙고를 두어 얼음을 보관하였다가 나누어 주는데 모두 주례 (周禮) 의 방식을 따른다. 2품 이상 관료와 각신(閣臣)에게는 빙패(氷牌)를 지급하여 길흉사 때 얼음을 쓸 수 있도록 하는데, 5월 초하루부터 7월 그믐까지 석 달 안에 151) 有田者織稻穰貯米束之~偃竿取米作䭐啖之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52) 연대본에서 以를 추가하였다. 153) 고대본에는 賞이 相으로 되어있다. 154) 고대본에는 薥이 蜀으로 되어있다. 155) 市井少年就空曠處~言飽喫氣力健也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56) 上元日人家不飼犬 謂飼則蠅繁 俗嘲飢度良辰者曰狗兒上元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57) 본문의 동령(冬令)은 동계(冬季), 즉 겨울철과 같은 뜻이다. - 44 -
만 신청할 수 있다. 二三月之交往往158)風雨凄冷如冬令俗稱花妬媢 諺曰二月風打破大甕 花妬媢未老死凍 京江置東西二氷庫 藏氷啓氷一用周禮 二品以上及閣臣皆給氷牌有吉凶事得取氷用之 自 五月朔至七月晦159) 초하루[朔日] 우리 풍속에 2월 초하루는 노비날이라고 한다. 쌀가루로 만두 모양의 떡을 만들고 껍질을 벗긴 팥을 소[餡]로 놓고 솔잎을 깐 시루에 넣어 찐다. 이것을 송편이라고 하며 노비들에게 나이 수대로 두루 먹인다. 이날은 거실 안팎을 정결하게 치우고 구석 깊은 곳까지 비질을 하여 깨끗이 쓸어낸다. 정조 임금께서는 병진년, 즉 1796년 2월 초하루에 공경대부와 측근 신하에게 자 [尺]를 내려 중화절(中和節)160) 옛일을 재현하였다. 이때 정조 임금이 친히 쓴 시 를 보면 중화절에 자를 하사하니 홍니(紅泥)161)를 구중궁궐에 내린다. 이것으로 오색선을 재단하여 산룡(山龍)162)을 깁도록 하기 위함이다. 고 하였다. 이 자는 시 중에 쓰이는 포백자[布帛尺]보다 조금 짧다. 내 생각에는 당시(唐詩)에 2월 초하루 를 중화절이라고 하였고, 백향산집(白香山集) 163)에는 중화절에 자를 하사받고 감 사장을 쓴 글이 있는데 오늘 홍아(紅牙)로 만든 자와 은으로 만든 자 각기 하나를 하사받았는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맞이하여 도량을 모두 동일하게 하시 라는 명을 내리신 것이다. 라고 하였다. 俗謂二月朔日直奴婢 粉米作餠如饅頭樣小豆去皮爲餡 入甑中覆松葉蒸熟名曰松餠 遍 饋奴婢如其齒數 淨掃室內外 雖僻奧處皆用帚箕164) 先朝丙辰仲春朔日 頒公卿近臣尺修 中和節故事 御題詩曰頒尺中和節 紅泥下九重 裁來五色線 許爾補山龍 尺比行用布帛尺 差短 按唐詩以二月朔日爲中和節 白香山集有中和日謝恩賜尺狀云 今日奉宣賜紅牙銀寸 尺各一者 當晝夜平分之時 頒度量合同之令165) 158) 연대본에서 往往을 추가하였다. 159) 京江置東西二氷庫~自五月朔至七月晦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60) 당나라 덕종(德宗) 때 농사력으로 2월 1일은 중화절(中和節), 3월 3일은 상사(上巳) 9월 9일은 중양(重陽) 이라고 하고 이를 합하여 삼령절(三令節)이라고 불렀다. 161) 홍니란 옥새(玉璽)를 찍는 인주이므로 옥새가 찍한 자(尺)를 내렸다는 뜻이다. 162) 산룡(山龍)이란 임금의 곤룡포에 그려진 산과 용을 말하는 것이므로 곧 임금을 나타내며, 이 글은 임금을 보좌하라는 뜻을 담은 시다. 163) 백향산집(白香山集) 은 백락천(白樂天)의 문집 이름이다. 164) 俗謂二月朔日直奴婢~雖僻奧處皆用帚箕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65) 按唐詩以二月朔日爲中和節~頒度量合同之令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45 -
초6일初六日166) 농가에서는 초저녁에 묘수(昴宿), 즉 좀생이별과 달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가를 보아 한 해 운수를 점친다. 둘이 같이 가거나 한 치 못되는 거리를 두고 앞서가면 한 해가 길하고 만약 앞이나 뒤로 한 치 이상 멀리 떨어져 가면 그 해는 흉년이 들 어 어린 것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징험해 보면 자못 들어맞는다. 農家以初昏眂167)昴宿去月遠近以占歲事 竝行及差前尺寸以內爲吉 若先後太遼闊168) 則謂歲將儉 幼少不見収哺也 驗之頗中 상정上丁169) 종묘에서의 석전례는 춘추로 2월 상정(上丁), 즉 첫째 정일(丁日)에 갖는다. 인가 에서는 상반(㫾飯) 즉 세속에서 소위 점심 을 먹는 기준으로 삼아 이날 이후로 점심을 먹다가 가을 상정일이 되면 그만 둔다. 그것은 이 두 날이 해 길이의 기준 이 되기 때문이다. 文廟釋菜行於春秋二仲上丁 而人家㫾飯 俗所謂點心 視而起止 盖以是爲日晷長短之 候也 춘분春分170) 춘분 전후로 보리와 밀을 심고, 일을 마치면 관찰사와 유수는 각기 관내의 농사 형편과 비가 충분히 왔는지를 임금께 아뢰고 대궐과 관상감, 승정원, 그리고 전국의 감영에 모두 측우기를 설치한다. 내관이나 외관 모두 참석한 가운데 한 해 점을 치 는데 상강(霜降)이 되면 멈춘다. 춘분 후부터 추분 전까지 관찰사나 군수나 모두 가 족을 거느리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일에 백성이 동원되면 농사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春分前後種兩麥訖 觀察使留守各以部內農形雨澤 啓聞 大內及觀象監政院內閣八道四都 營下皆置測雨器 中外參驗以占歲事至霜降而止 春分後秋分前不許營邑率眷 以其役民妨 農也 166) 연대본에서 初를 추가하였다. 167) 고대본(광문회본)에는 眂가 目으로 되어있다. 168) 연대본에서 闊를 추가하였다. 169) 상정(上丁)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70) 춘분(春分)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46 -
3월(三月) 경성의 꽃놀이는 삼월에 제일 성하다. 남산의 잠두(蠶頭)와 북악의 필운대(弼雲 臺)와 세심대(洗心臺)가 꽃놀이 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구름같이 모 이고 안개 끼듯 꾀이는 것이 한 달 내내 줄지 않는다. 세심대는 선희궁(宣禧宮) 뒤 산줄기에 있다. 신해년, 즉 1791년에 정조께서 육상궁(毓祥宮)과 선희궁(宣禧宮)을 배알하실 때 보여(步輿)를 타고 기로소 원로들과 가까운 신하들을 거느리고 세심대 에 올라 활도 쏘고 시도 지었는데, 이 때 이후로 매년 행하는 행사가 되었다. 대개 이 두 궁과 영조 임금의 잠저가 모두 이 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일대를 바라보 는 성군의 마음은 마치 이곳을 풍패(豊沛)171)나 남양(南陽)172) 같이 여기는 것이다. 근처에 거주하는 남녀노소 모두 목을 빼고 임금의 행차를 기다린다. 이는 아득한 옛날에 영대(靈臺)173)와 반수(泮水)174)에서 있었던 유풍을 보는 듯하다. 을묘년, 즉 1795년 봄에도 정조 임금은 조정 신하와 세심대 아래 거주하는 유생들을 불러 운 을 내린 후 화답하는 시를 짓게 하여 내각에서 합쳐 올리게 하였고, 신해년 이후에 지은 것들을 모아 상하 두 편으로 인쇄하도록 하였다. 당시 참석했던 선비들에게는 어제시(御製詩)를 내렸는데 두 산이 진정 한 집처럼 보이고, 일천 그루 나무 또한 하나의 정원을 이루었다. 는 내용의 시구다. 이것은 일시에 전해져 태평성사를 담은 시로 암송되었다. 정조 임금은 송나라 고사를 모방하여 3월 중에 내각 신하들을 거느리고 후원에서 꽃을 감상하고 낚시하는 연회를 가졌다. 계축년, 즉 1793년 봄에는 난정(蘭亭)175) 에서 있었던 고사(故事)를 따라 물굽이에 술잔을 띄워 마시는 모임을 가지면서 자 제들까지 참석하도록 명하였다. 승지와 사관까지 합치면 모인 수는 39인이다. 정조 가 승하하신 후 5년이 되는 갑자년(1804)에 내가 내각의 직책을 맡게 되어 봉모당 (奉模堂)176)을 배알하고 이어 봄철 대봉심(大奉審)을 거행하였는데, 그 때 개유와 (皆有窩)177)에 보관된 중국 서적을 볕 쬐이는 일로 후원에 가니 꽃이 만발하였다. 늙은 서리가 앞을 인도하면서 연못과 누대와 정자를 가리키며 이곳이 정조 임금께 서 각신들에게 잔치를 베푸시던 곳입니다. 라고 하였다. 우두커니 서서 이를 바라보 니 선왕을 보는 듯 감회가 일었다. 京城花柳盛於三月 南山之蠶頭北岳之弼雲洗心二臺爲遊賞湊集之所 雲攅霧簇盡一月不 衰 洗心臺宣禧宮之後麓也 辛亥暮春 先王展拜毓祥宣禧二宮 以步輿御是臺 率耆老近密 171) 풍패(豊沛)는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172) 남양(南陽)은 후한 광무제의 고향이다. 풍패나 남양은 황실에서 보호하는 곳이다. 173) 영대(靈臺)는 주나라 문왕이 백성들과 동락하던 누대 이름이다. 174) 반수(泮水)는 주공이 여러 번비들을 회견하던 곳이다. 175) 난정(蘭亭)은 중국 동진의 목종이 353년 계축년에 왕희지 등이 모여 목욕, 제액하던 정자다. 176) 봉모당(奉模堂)은 역대 어제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정조가 창덕궁 안에 세운 건물 이름이다. 177) 개유와(皆有窩)는 창덕궁 부용정 남쪽에 있던 건물로, 주로 중국 서적을 보관하였다. - 47 -
諸臣射侯賦詩 自是歲以爲常 盖二宮及英宗舊御邸皆在岳下 故聖意視此一區如豊沛南陽 而178)父老士女莫不引領望幸 藹然有靈臺泮水之風 乙卯春則又招朝士儒生之居在臺下者 令賡歌以進 命內閣合辛亥以後上下篇什179)印成一帙進御 諸生亦得頒賜 御製詩 有曰兩 山眞一戶 千樹亦同園 一時傳誦以爲太平盛事 先王倣宋朝故事 以三月中180)率內閣諸臣 設賞花釣魚宴於後苑 癸丑春以蘭亭舊甲爲曲水流觴之會 命諸臣子弟皆與焉 並承旨史官 以備三十九人之數 昇遐後五年甲子 臣忝閣職肅拜奉模堂 仍行春節大奉審 曝皆有窩四 部書 時苑中百花盛開 老吏前導者指所歷池臺亭榭曰此先王宴閣臣處也 竚立瞻望有珠簾 羽帳之感 청명(淸明) 우리나라 국전(國典)에는 주례(周禮) 를 따라 한 해 다섯 번 개화(改火)한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이 중 청명 때 하는 개화를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내병조(內兵 曹)181)에서는 청명절에 들어가는 시각을 기다렸다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 서 불을 만들어 올리면 임금은 이것을 내외의 모든 관청과 대신 집에 내린다. 례(周禮) 하관(夏官) 을 보면 사관(司爟)182)이 주 화령(火令)을 관장한다고 하였다.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주례 에는 사계절을 따라 불을 바꾸는데 오직 3월을 제일 로 치는 이유는 큰 불을 일으키는 심성(心星)183)이 이때 제일 높게 뜨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國典依周禮有一歲五改火之文 而最重淸明184) 內兵曹候入節時刻185)鑽柳取火 進御 頒 于內外諸司及諸達官家 周禮夏官 司爟掌火令186) 張子曰周禮四時變火 惟季春最嚴 以 大火心星其時太高也187) 한식寒食188) 178) 연대본에서 而를 추가하였다. 179) 연대본에서 什을 추가하였다. 180) 연대본에서 中을 추가하였다. 181) 내병조(內兵曹)는 조선조 병조(兵曹)에 딸린 관청으로 궁궐 안에서 시위(侍衛)ㆍ의장(儀仗)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 182) 사관(司爟)은 봉화(烽火)등 불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직책이다. 183) 심성(心星)은 28수의 하나로 삼성(三星), 또는 삼성(參星)이라고도 한다. 184) 國典依周禮有一歲五改火之文 而最重淸明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85) 연대본에서 候入節時刻 을 추가하였다. 186) 內兵曹~司爟掌火令 은 연대본과 민박본을 참조하였다. 고대본에는 寒食條에 위치해있고 頒于內外諸司及諸 達官家가 頒于禁中諸司大臣家로 되어있다. 187) 張子曰周禮四時變火 惟季春最嚴 以大火心星其時太高也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188) 한식(寒食)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48 -
조상 묘에 올라 제사 지내는 것은 모두 주자 가례를 따른다. 풀을 뽑고 묘를 수리 하는 것도 이 날을 택한다. 上墓行祭一遵朱子家禮 伐草修莎亦用是日 삼짇날(三日) 우리 풍속에 기제사(忌祭祀)를 중히 여기고 시제(時祭)를 가볍게 여기는데, 이것 은 변방 오랑캐 풍속을 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중엽에 유현(儒 賢)이 무리지어 나오고 예를 좋아하는 사대부가 많아지면서 시제를 중히 여기게 되 었는데 대개는 가난하여 사시제(四時祭)를 다 지내지 못하고 봄가을로 두 차례 지 내는데 그치는데, 봄에는 중삼(重三), 즉 삼월 삼일을, 가을에는 중구일(重九日)에 행하는 자가 많다. 國俗重忌祭不重時祭未免夷陋 至本朝中葉儒賢輩出 士大夫多好禮者始以時祭爲重 而大 抵貧儉鮮能行四時祭 止行於春秋二時 而春用重三秋用重九者爲多 곡우(糓雨) 강에서 잡는 맛있는 고기로 공지(貢脂)189)라는 민물고기가 있다. 큰 것은 한 자나 되며 비늘이 잘고 살이 쪄서 회로도 좋고 국을 끓여 먹어도 좋다. 이 고기는 매년 3월 초에 한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미음(渼陰)190)까지 올라와 멈춘다. 곡우 전후로 3일간이 가장 많고 이때가 지나면 곧 없어진다. 강촌 사람들은 이 고기를 통해 절 기가 이른지 늦은지를 안다. 농암 김창협의 시에 물고기가 곡우를 맞아 비늘 번뜩 이며 올라간다. 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지는 곡지(糓至)를 잘못 발음하여 생긴 말이라고 하는데 곡지란 곡우(糓雨)에 온다는 뜻이다. 江魚之美者有貢脂焉 大者尺許鱗細肌厚可膾可羮 每以三月初 溯流東上至渼陰而止 糓 雨前後三日爲最盛 過此則消耗向盡 江村人以占節氣早晩 農巖詩云魚迎穀雨鱗鱗上 是 也 或曰貢脂糓至之訛 糓至者以糓雨至也 4월(四月) 위어(葦魚)는 제어(鱭魚)191)다. 생김이 얇고 좁고 모리는 커서 갈대 잎처럼 보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살지고 연하기가 보통 생선에 댈 수 없다. 4월 초가 되면 이 고기들이 바다 조수를 타고 올라오는데 바다와 통하는 강어귀에 간혹 있지만 대개 는 왕도(王都), 즉 수도 서울에 있으며 수도가 아닌 곳은 절대 볼 수 없다. 그러나 189) 공지(貢脂)는 꽁치를 지칭하는 듯하나 꽁치는 바닷고기여서 그와 유사한 민물고기인 것 같다. 190) 미음(渼陰)은 과거 석실서원이 있던 미음나루 부근이며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이다. 191) 위어(葦魚)나 제어(鱭魚) 모두 웅어에 대한 다른 표기다. - 49 -
백제 수도인 부여나 고려 수도인 개성에서는 근근이 나는 정도며 오직 한양 행주에서 가장 많이 나고 맛도 좋다. 매년 입하(立夏)가 되면 사옹원(司饔院)에서 낭관(郞官) 한 명을 차출하면 그가 소속 관원들을 거느리고 행주 물가에 나아가 그 물로 위어를 잡아 날마다 수라 만드는 주방에 공급한다. 그 나머지는 상인들이 가 져가는데, 이것과 임금이 하사한 것 등을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3 월과 5월 중에 서울 사람으로서 이 물고기를 배불리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 다. 葦魚者鱭也 薄狹而長頭若葦葉然故名 腴嫩不侔常魚 以四月初乘潮而上 江口通海處往 往有之 而大抵皆王都非王都則絶不見 然扶餘 百濟都 開城 高麗都 所産厪厪 漢陽 杏洲寔蕃而嘉 每立夏氣至 司饔院差郞官一員 率其屬出次洲上 施罛取之日供御廚 其餘 洩於商販 播於頒賜者不可勝數 故四五月之間 都人無不飽是魚者192) 초파일(八日) 인가는 물론 관청과 시전에서 모두 등 대를 세운다. 등 대는 대나무를 잇대어 묶 어 만드는데, 높은 것은 10여 길이나 된다. 비단을 잘라 만든 깃발을 등 대 위에 단다. 깃발 아래에는 막대기를 가로 대어 고리를 단 다음 양쪽으로 줄을 달아 그 끝이 땅까지 내려오게 한다. 밤이 되면 점등하는데 많을 때는 10여 등을, 적을 때 는 서너 등을 단다. 등의 수는 집의 아이 수를 따른 것이다. 등은 재갈 물리듯 층층 이 쌓기 때문에 구슬로 꿴 듯이 보인다. 먼저 줄 한끝을 제일 꼭대기 등 머리에 잡 아매고 다음에 제일 아래 등 꼬리에 매어 줄을 서서히 잡아당기면 고리까지 올라가 멈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빛나는 모습이 마치 하늘을 가득 채운 별 같다. 등 모양은 마늘형, 오이형, 꽃잎형, 날짐승형, 들짐승형, 누대형(樓臺形) 등 가지각색으 로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은 등 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楡葉餻]과 소금 간을 하여 찐 콩을 먹는다.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듯 물을 담은 동이에 바가지 를 엎어놓고 돌리면서 두드리며 즐거워하는데, 이것을 수부(水缶)라고 한다. 중국에 서는 상원(上元), 즉 정월 보름에 연등행사를 하는 반면 우리는 사월 초파일에 한 다. 그 기원은 불교에서 나온 것으로 이날이 석가의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궁가(宮家)와 내사(內司), 내영(內營)에서는 초파일에 등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쳐 정교함과 화려함을 경쟁하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선왕이신 정조 임금께서도 대비전과 혜경궁에서 이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 뜻을 따라 시절의 유풍을 없애지 도, 생략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한번은 이러한 일이 있었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과 누각에 올라 관등(觀燈)을 하는데, 내영에서 먼저 들어온 등은 제작법이 매우 기이 하고 유리와 운모와 쇠붙이와 옥으로 등 깃을 장식하니 광채가 번쩍이므로 보는 사 람들이 주목하고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그런데 다음으로 내사에서 등을 올리겠다 고 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하여 잠시 후에 등이 들어오는데 시골에서나 파는 싼 종 192) 葦魚者鱭也~都人無不飽是魚者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50 -
이로 붙여 만든 오이 모양의 등이었다.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임금 또한 잠시 그 천함을 괴히 여겼는데, 이때 내관 일을 맡은 노황문(老黃門)이 나와 엎드려 아뢰 기를 등은 이와 같은 수준 정도면 족한 줄로 압니다. 불을 살라 밝음을 얻을 수 있는 점은 피차 한가지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잠자코 말없이 있다가 내영의 등은 걷어 내보내고 나중에 온 등을 대궐안 뜰에 걸라고 명을 내리었다. 이날 이 일을 본 자들은 경연 신하와 호위병으로부터 대궐안 하인과 문지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쳐다보며 동요하는 기색이었다. 오호라 선왕이 가까이 있는 말을 잘 살핀 일은 순 (舜) 임금과도 부합되는 것으로 비록 문지방이나 길을 소제하는 천한 사람도 이 일 로 충성심을 느낄 수 있었으니, 이와 같이 성절(盛節)을 이루심은 수레의 규식(在輿 之規)193)에도 있고 침실의 잠언(居寢之箴)194)과도 같이 오로지 옛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일으킨 노황문은 궁중에 오래 거하여 임금이 예우하던 원로인데, 외부로는 그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다. 人家及官府市廛皆竪燈竿 聯束竹木爲之 高者十餘丈 剪綵195)帛爲幟揷之竿 杪幟下橫木 爲鉤 納繩鉤中 垂其兩端于地 至夕點燈 多者十餘少者三四 人家則皆196)以童稚口數爲 凖 層累相啣如貫珠狀 先將繩一端繫于最上燈之頭 次將一端繫于最下燈之尾 徐徐挽上 至鉤而止 登高望之煜爚如滿天星宿 燈有蒜苽花葉鳥獸樓臺之形 種種色色難以具悉 兒 童就竿下197)布席 設楡葉餻鹽蒸豆 覆瓠盆水中輪流考擊以爲樂 名曰水缶 中國燃燈用上 元 而東俗用四月八日 其源出於竺敎 盖以是日爲如來降期也 諸宮家及內司內營以八日 造燈進御競尙精麗 其來久矣 先王上奉殿宮承歡順志於時節故事不欲遽加裁省 嘗與諸近 臣御樓觀燈 內營燈先入 形製甚奇飾以玻瓈雲母金璧翠羽光彩炫燿 觀者咸注目稱美已 而內司請進燈 上可之 少焉燈入乃邨巷所賣紙糊苽子樣也 諸人愕然 上亦頗恠其陋 老黃 門管司者進伏徐奏曰 燈如是足矣 炷火取明彼如此一也 上黙然良久命撤內營燈出 取其 燈懸之內庭 是日睹其事者自筵臣衛士以至掖隸門卒無不相顧動色 嗚呼先王之好察邇言 同符大舜 故雖門巷掃除之賤亦得以因事納忠 成此盛節在輿之規居寢之箴孰謂專美於古 昔哉 老黃門盖宮中耆宿 上所禮遇者 外廷不知其名云198) 5월(五月) 단오(端午) 193) 재여지규(在輿之規) 는 재여유려분지규(在輿有旅賁之規) 로 여분(旅賁)은 수레 좌우에서 호위하는 군사직이 다. 은나라 탕왕(湯王)의 고사(故事)에 나온다. 194) 거침지잠(居寢之箴) 은 거침유설어지잠(居寢有褻御之箴) 으로 설어(褻御)는 가까이 모시는 신하다. 주나라 선왕(宣王)의 고사에 나온다. 195) 고대본(광문회본)에는 綵가 絲로 되어있다. 196) 연대본에는 皆가 뒤의 凖과 層 사이에 있다. 197) 연대본에서 下를 추가하였다. 198) 諸宮家及內司內營以八日~外廷不知其名云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51 -
우리나라에서는 단오를 수릿날[水瀨日]이라고 하는데 물여울에 밥을 던져 굴삼려 (屈三閭)199)를 제향하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그곳이 서로 만리 이 상 떨어져 있고 세대도 천년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말과 풍속이 바뀌지 않고 그 정 신도 명확하기가 예나 지금이나 같으니 어찌 감탄하고 사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진 자를 그리워하고 옛일을 좋아하는 것이 다른 지방에 비해 별나다. 마치 한자(韓子)가 말했듯이 연나라 선비와 조나라 선비는 각기 그 나 라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 그런 것인가.200) 머리를 땋은 총각이나 처녀들은 창포를 캐다가 물에 끓여 머리를 감고 깨끗이 닦 은 4~5치 되는 흰 뿌리를 끝에 붉은 칠을 하여 머리에 꽂기도 하고 몸에 차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대대례기(大戴禮記) 201)에 한다고 하였고, 송나라 왕기손(王沂孫)202)의 단오 때 축란(蓄蘭), 즉 창포로 목욕 단오첩(端午帖) 에 창포를 나누어 주 어 새기게 하는 것은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라고 한 것을 보면 그 유래가 몹시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녀 연소자들은 그네뛰기를 한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모두 그네를 뛰지만 관서 지방이 더욱 활발하다.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 모여 즐기는 것 은 설날과 거의 같다. 관상감에서는 도장으로 찍은 붉은 부적을 올리면 이것을 문 상방(上枋)에 붙인다. 공경대부나 측근 신하들도 관례에 따라 부적을 얻는다. 그 반사문(頒賜文)은 다음과 같다. 오월 오일은 천중절이다. 위로 하늘이 내신 녹을 얻고 아래로 땅이 준 복을 받으며, 치우(蚩尤) 신의 동두(銅頭)와 철액(鐵額)과 적구(赤口)와 적설(赤舌)로 4백 4가지 병을 일시에 소멸하니 율령을 내린 듯 서둘러라. 정조 임금 을묘년(1895) 이후로 이것을 불경인 은중게(恩重偈)로 바꾸었는데 나무 삼만다 모다니 엄 아아 나 사바하오. 라고 하여 대개 효심을 일으키는데 화정(和靖)의 금강경(金剛經)을 이 용한 것이다. 직제학 벼슬을 했던 집안 당내 형 집에 선왕이 내린 쑥호랑이[艾花]가 하나 있 다. 가지 하나를 길이가 예닐곱 치, 두께가 세 푼 되게 깎고 몸체 중간부터 점차 좁 게 하여 밑은 뾰족하게 만들었으므로 머리에 꽂기 좋다. 몸체의 중간 윗부분은 양 면으로 창포 잎을 붙였는데 너비가 몸체만 하므로 그 나머지를 밖으로 약간 나오게 한 것이 갑옷이 헤진 모양과 같다. 진홍 모시를 잘라 꽃을 만든 다음 그 속을 잎이 199) 굴삼려(屈三閭)는 중국 초나라 충신으로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냈던 굴원(屈原)을 말한다. 200) 한자(韓子)는 중국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 768~824)다. 201) 이 내용은 대대례기 전 13권 중 제2권 하소정(夏小正) 에 있다. 편저자인 대덕(戴德)은 중국 한나라 사 람으로 자는 연군(延君)이다. 예기(禮記) 214편을 줄여 대대례기(大戴禮記) 85편을 구성하였다. 청나라는 기존의 13경(經) 외에 대대례기(大戴禮記) 를 비롯하여 국어(國語) 사기(史記) 한서(漢書) 자치통감(資治 通鑑) 설문해자(說文解字) 구장산술(九章算術) 주비산경(周髀算經) 등 8책을 추가하여 21경(經)이라고 하 였다. 202) 왕기손(王沂孫,?~1290)의 자는 성여(聖與) 호는 벽산(碧山)으로 중국 절강 소여(紹興) 사람이다. 원나라 지배 때 학정(學正)을 지냈다. 세시잡기(歲時雜記) 에 실린 원문은 다음과 같다. 王沂公帖子云 明朝知是天中 節 旋刻菖蒲要辟邪. - 52 -
있는 곳까지 뚫고 풀로 붙여 꽃받침이 위로 향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오색실로 몸체를 꽃받침까지 비탈지게 동여 묶었다. 애호는 대개 궁중 풍속으로 그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추측컨대 명물(名物) 203) 책을 참고하면 이것은 갈대쑥(蒹艾)과 장명 실(長命縷)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는 것 같으나 재료에 정작 쑥을 보지 못해 의심 이 간다. 그러나 육방옹(陸放翁)의 시204) 중오(重五) 에 심하게 시들었지만 여전 히 쑥 한가닥이 비녀가 된다. 고 한 것은 이 식물, 즉 쑥을 말한 것이다. 사도시(司䆃寺)205)에서는 궁궐 창고의 메주콩을 도성 근처 사찰의 중들에게 맡겨 장을 만든 다음 장곡(醬麯)은 역어류해(譯語類解) 206)에 나오는데 우리 풍속으로 메주를 말한다. 단오일에 진상한다. 쌀이나 베를 다루는 아문(衙門)이나 도성에 거주하는 사대부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재료를 주고 시켰다가 진상을 바치고 나면 와서 찾아간다. 공조와 호남 영남의 두 감영 및 통제영에서는 단오에 즈음하여 부채를 만들어 진 상하였고, 조정의 시종신 이상과 삼영(三營)207) 모두 관례에 따라 차등 있게 받는 다. 부채를 얻은 자는 이것을 다시 친척이나 친구, 묘지기, 소작인 등에게 나누어 준다. 그래서 속담에 향촌에서 생색을 낼 때 쓰는 말로 여름에는 부채, 겨울에는 책력(夏扇冬曆) 이란 속담이 생겼다. 통영으로부터 받는 진상품에는 추가로 가위와 인두, 은장도 등이 있다. 옛날 부채는 접지 않았다. 그래서 반첩여(班婕妤)208)의 환 선(紈扇)이란 시에 둥글기가 명월같다. 고 한 것이다. 옛 악부(樂府) 209)의 백단 선가(白團扇歌) 중에 장창(張敞)210)이 말을 몰고 장대가(章臺街)211)를 갈 때 얼굴을 가린 채 말에 기대었다고 한 것이 이 물건이다. 영락(永樂) 연간에 우리나라에서 접 는 부채를 진공하였더니 황제가 이것을 보고 그대로 만들 것을 명한 일이 있었는 데, 그 이후로 접는 부채가 세상에 퍼진 것이다. 國人稱端午曰水瀨日 謂投飯水瀨享屈三閭也 地之相去萬有餘里 世之相後千有餘年 謠 俗不改精爽如在 何令人感慕至此也 抑東人之懷賢好古別於他方 如韓子所云燕趙之士出 乎其性者耶 男女丱角者採菖蒲煎湯洗沐 取根白四五寸洗消 令淨朱塗其端 或揷或佩 按 203) 명물(名物) 은 시전(詩傳) 에 나오는 여러 동식물명을 정리한 시전명물집람(詩傳名物集覽) 을 말한다. 204) 육방옹(陸放翁)의 시는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 다. 205) 사도시(司䆃寺)는 조선조 때 궁중의 쌀과 장(醬) 공급을 맡아 보는 관청이다. 태조 1년(1392)에 설치한 요 물고(料物庫)를 3대 태종 때에 공정고(供正庫)고 고친 적이 있는데, 모두 사도시의 전신이다. 206) 역어류해 는 숙종 16년(1690)에 역관(譯官) 김경준(金敬俊) 김지남(金指南) 신이행(愼以行) 등이 편찬하여 사역원(司譯院)에서 간행하였다. 2권 2책이다. 청(淸)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나 문장 가운데 긴요 한 것을 가려 한글 음을 달고 중국 음도 달아 놓았다. 역과초시(譯科初試) 및 한학(漢學) 교재로 사용하였다. 207) 삼영(三營)은 삼영문(三營門)으로 훈련도감(訓鍊都監)ㆍ금위영(禁衛營)ㆍ어영청(御營廳) 및 삼군문(三軍門)을 말한다. 208) 반첩여(班婕妤)는 중국 전한시대 시인으로 반황(班況)의 딸이다. 첩여는 궁녀의 직명이다. 209) 악부(樂府)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 이름인데, 시중의 음악을 채취하여 악보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음악이 실린 책을 악부(樂府) 라고 한다. 210) 장창(張敞)은 중국 전한시대 선제(宣帝) 때 승상이다. 211) 장대가(章臺街)는 거리 이름이다. 장대는 중국 진(秦) 나라 때 궁전 안에 있던 누대(樓臺)이다. - 53 -
大戴禮五月五日蓄蘭爲沐浴 宋王沂公端午帖旋刻菖蒲要辟邪 其所從來盖遠矣 男女年少 者爲鞦韆戱 京鄕皆然而關西尤盛 鮮衣美食相聚娛嬉 與元朝略同 觀象監印進朱符 揭之 門楣 卿宰近臣例得 頒賜文曰 五月五日 天中之節 上得天祿 下得地福 蚩尤之神 銅頭 鐵額 赤口赤舌 四百四病 一時消滅 急急如律令 先朝乙卯以後易以恩重偈 文曰曩謨三 滿多 沒駄喃唵 誐誐 曩婆嚩訶 盖孝思所推而用和靖金剛之意也212) 堂兄直學宅有 先朝 時端午所賜艾花一枝 削木爲體長可七八寸博三分許 自半以下漸殺至本而銳之令可簪 上 半兩面夾以菖蒲葉 其博凖體其長 出體外少許 對袖如甲拆狀 剪絳紵爲花竅其心貫至葉 處中貼糊之令瓣向上 以五色絲繫跗下斜縱過瓣纒束竟體 盖禁中故事 而未詳其緣起何 竊稽名物似蒹艾長命縷二義 而材料中不見所謂艾者亦可疑也 放翁重五詩云 衰甚猶簪艾 一枝 卽此物也 司䆃寺以御廩黃豆分授近城寺刹雇僧徒 製醬麯 醬麯見譯語類解 國俗 稱爋造 以端午日進上 有米布衙門及都下士大夫家亦各出材寄製 待進上後取來213) 工 曹及湖南嶺南二監營及統制營趂端午造扇進御 朝廷侍從214)以上三營皆例餉有差 得扇者 又以分之親戚知舊塚人佃客 故諺曰鄕中生色夏扇冬曆 統營所餉又有剪子砑刀銀鉐項 刀215)之等 古者扇不摺疊 班婕妤紈扇詩曰 團團似明月 古樂府有白團扇歌 張敞走馬章 臺街以便面附馬 皆是物也 永樂中朝鮮進摺疊扇 帝命尙方照樣製之 遂遍天下 초10일初十日216) 5월 10일은 태종 임금이 돌아가신 날이다. 임금은 22년을 재위하시면서 왕위 18년, 상왕위 4년 하늘을 섬기고 근면히 백성을 다스림에 한시도 흐트러짐이 없 었다. 대점(大漸), 즉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은하수를 보며 가뭄을 걱정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를 만나면 비를 내려달라고 빌어 우리 백성에 게 혜택을 주리라. 고 하였다. 그리고 임종을 하자217) 하늘에서 과연 비가 쏟아졌 다. 이로부터 매년 태종의 기신일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문득 비가 내리니 백성 들이 이를 태종우(太宗雨)가 내렸다고 한다. 선조 임금 때인 임진년(1592)이 되기 수년 전부터 이러한 징험이 점점 줄어들더니 얼마 안 있어 왜란이 일어났으므로 사 람들이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임금이 돌아가신 해가 영락 20년(1420)이니 임진년 (1592)까지 171년이 된다. 근세 이래로 비록 해마다 반드시 비가 올 수는 없는 일이지만 4, 5월간에 대개 가뭄이 들 때 농민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헌릉 212) 觀象監印進朱符~盖孝思所推而用和靖金剛之意也 는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13) 司䆃寺以御廩黃豆分授近城寺刹雇僧徒~待進上後取來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14) 연대본에서 侍從을 추가하였다. 215) 고대본(광문회본)에는 砑刀銀鉐項刀가 烙鐵佩刀로 되어있다. 216) 고대본(광문회본)에는 初十日이 十日로 되어있다. 217) 본문에 나오는 철의(綴衣)는 휘장인데, 왕이 죽어 이것을 걷어내면 장례준비가 시작되기 때문에 왕이 임종 하였음을 뜻한다. - 54 -
전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겠지. 라고 말하고 이 날이 되어 비가 오면 흔쾌히 서 로 말 걸기를 헌릉 전하가 과연 영험이 있구나. 라고 한다. 오호라 옛 임금을 잊지 않음이 4백년이 하루 같으니 아름답고 장하다. 五月初十日 太宗恭定大218)王忌辰也 王在位二十二年 在位十八年219)在上王位四年爲 二十二年 敬天勤民夙夜不懈 大漸之日猶以雲漢爲憂曰予當請于上帝乞一雨以惠吾民也 綴衣甫出天果沛然下雨 自是每値忌辰雨輒220)如期 國人稱之曰太宗雨至 宣祖壬辰前數 歲稍不驗 尋有島夷之亂221) 人尤異之 王薨於永樂二十年壬寅至萬曆壬辰爲一百七十一 年 近世以來雖不能每年必雨 四五月之交例多亢旱田野 小民猶詘指以須曰獻陵殿下庶 幾顧我乎 至是日而有雨 則又莫不欣然相告222)曰獻陵殿下果有靈矣 於戱不忘之思四百 年如一日 猗歟盛哉 6월(六月) 내의원에서는 유월 중 토왕일(土旺日)223)에 황제(黃帝)에게 제사하고 옥추단(玉樞 丹)을 제조하여 임금에게 올렸다. 임금은 이 약을 각신들에게 세 개씩 하사한다. 內醫院以季夏土旺日祀黃帝 製玉樞丹進御 內賜閣臣人三枚 보름(十五日) 신라와 고려 때 사람들은 남녀가 술과 음식을 갖추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서 옛 날 진유(溱洧)224)의 풍속처럼 머리도 감고 잔치를 열면서 즐기고 상서롭지 않은 것 들을 물리쳤다. 고로 이 날을 유두(流頭)라고 한다. 이후로 이러한 풍속은 없어졌지 만 이로 인해 명절이 되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수단(水團)과 수교[水角兒]225) 를 이 시절의 대표 음식으로 여긴다. 수단은 설날의 흰떡과 같은데, 그보다는 더 가 늘고 자를 때 더 도톰하게 잘라 쌀가루를 묻혀 씌운 다음 끓는 물에 잠시 삶아 건 져 꿀물 속에 넣고 얼음으로 차게 해서 마신다. 수교는 밀을 맷돌에 갈아 가늘게 218) 연대본에서 大자 추가하였다. 219) 고대본(광문회본)에는 在位十八年 뒤에 總자가 씌여 있다. 220) 연대본에서 雨輒을 추가하였다. 221) 고대본(광문회본)에는 亂이 難으로 되어 있다. 222) 광문회본에는 告가 顧로 되어 있다. 223) 토왕일(土旺日)이란 땅의 기운이 왕성한 날이라는 뜻이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네 절기 전에 각기 토왕 일이 18일간 있다. 224) 진유(溱洧)는 하남성에서 발원하는 진수(溱水)와 유수(洧水)를 말한다. 경치가 아름다워 남녀들이 몰려와 즐 겼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의 주석에 이것을 남녀춘유지락(男女春游之樂)이라고 하여 음란함을 비유한 말이라고 하였다. 225) 수교위를 말한다. 수교위란 중국에서 물만두로 통하는 수교(水餃)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다. - 55 -
체를 쳐서 밀기울을 걷어내고 물로 반죽하여 조금씩 떼어내 방망이로 골고루 손바 닥 크기로 민다. 그리고 늙은 오이를 잘게 썰어 돼지,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 을 넣고 기름과 간장으로 조미한 것으로 푹 익혀 소를 만든 다음 이것을 양쪽 머리 를 말아 합친 가운데에 넣어 오므리면 만두와 비슷한 모양이 된다. 이것을 푹 쪄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 여형공(呂滎公)의 세시잡기(歲時雜記) 226)에 단오 때 수단을 만드는데, 또한 백 단이라는 이름이 있고 정교한 것은 적분단(滴粉團)이라고 한다. 고 했다. 장뢰(張 耒)227)의 시에 수단과 얼음에 사탕을 담근다. 고 하였다. 천보유사(天寳遺事) 228)에 궁중에서는 매년 단양절이 되면 분단과 각서를 만들어 금빛쟁반에 놓고 소 각궁(小角弓)229)에 화살을 걸어 분단을 맞히게 하여 적중한 자에게 이를 먹게 한다. 대개 분단은 미끄러워 맞히기 어렵다. 고 하였다. 이것은 건단(乾團)으로 물에 넣 지 않은 것이다. 이로 보건대 수단은 중국에서 단오절에 만드는 것으로 우리나라 에서는 유두로 옮겨 만들게 된 것이다. 부녀자들은 밀가루로 바둑알만 하게 누룩을 둥글게 만든 다음 비단을 오려 붙이면 오색이 서로 어울려 번쩍인다. 세 개씩 이어 달고 그 위에는 실 고리를 만들어 찰 수 있게 한다. 이것을 서로 선물로 보내는데 유두 누룩[流頭麯]이라고 부른다. 麗羅時國人士女具酒食 就東流水頭沐浴 宴樂祓除不祥 如古昔溱洧之俗 故名其日曰流 頭 後來雖無此俗 而沿爲名節 至今不改 水團水角兒爲時食盛饌 水團者作餠如元日拳模 而軆差細 切差厚 塗米粉爲衣 畧烹漉取入蜜水中調氷230)啜之 水角兒者磨小麥 細篩去 麩 拌水分作小片 用木椎子碾勻如手掌大 老黃苽細切和豬牛鷄肉加油醬諸味 爛炒作饀 捲合兩頭 當中摺蹙 略似饅頭形 蒸熟蘸醋醬啖之 呂滎公231)歲時雜記232)云 端午作水團 又名白團 其233)精者名曰滴粉團 張耒詩云 水團冰浸砂糖裹 234) 天寳遺事云 宮中每到端陽 造粉團角黍 貯於金盤中 以小角弓架 箭射粉團 中者得食 盖粉團滑膩難射也 此則乾團不入水者 據此則水團是中國端午日 所設 而吾東移設於流頭也 226) 여형공(呂滎公)은 여희철(呂希哲)로 자는 원명(原明)이다. 저서에 여씨잡기(呂氏雜記) 가 있다. 원문은 고 금사문류취(古今事文類聚) 를 참조하였다. 227) 장뢰(張耒, 1054~1114)는 송나라 시인으로 자는 문잠(文潛), 호는 가산(柯山)이다. 강소(江蘇) 청강(清江) 출신으로 소동파에게 배웠다. 228) 천보유사 는 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기록으로 당시의 특별한 일이나 기이한 소문 등을 기록하였다. 229) 소각궁(小角弓)이란 작게 만든 활이다. 230) 고대본(광문회본)에는 氷이 水로 되어 있다. 231) 고대본(광문회본)에는 呂榮公으로 되어 있다. 232) 고대본(광문회본)에는 세시(歲時), 연대본에는 세시기(歲時記) 로 나와 있으나 여형공(呂滎公) 여희철(呂 希哲)의 저서는 세시잡기(歲時雜記) 이므로 원래의 책이름을 따라 교정하였다. 233) 고대본(광문회본)에는 其가 最로 되어 있다. 234) 광문회본에는 張耒 文潜 詩云水團冰浸砂糖裹天寳遺事云 으로 되어 있어 교정하였다. 민박본에는 세주 로 처리되어 있지 않다. - 56 -
婦女取小麥屑作團麯如棊子 大剪綵帛塗之 五色相間斑瀾然 三三連綴 上作絲鉤 令可 佩 以相贈遺 名曰流頭麯235) 복날(伏日) 개를 삶아 국을 해먹는 것은 양기를 돕기 위함이요, 팥죽을 쑤는 것은 여역 귀신 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세속에서 대추나무는 삼복에 열매를 맺는데 비가 오면 결실이 없다고 한다. 충청 도 청산과 보은 두 고을은 땅이 대추심기에 알맞아 그곳 사람들은 대추농사를 업으 로 삼는다. 대추나무가 농장이 마주보고 있을 정도로 많아 시집보내는 비용과 입고 먹는 비용까지 다 이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삼복일에 비가 붓듯이 내 리면 보은 처자 눈물은 비 오듯 쏟아진다. 는 말을 만들었다. 烹狗爲羮以助陽 煑豆粥以禳癘 俗謂棗樹以三伏日結子雨則不結 靑山報恩二邑地宜棗 居人以236)爲業 千樹之園所在 相望 婚嫁衣食悉出其中 故好事者爲之語曰 三伏日雨如 注 報恩處子淚如雨 7월(七月) 제주 옛 탐라국으로 전라도 관할 해중(海中)에 있다. 에서 공출한 말이 이달에 서울에 이른다. 상품은 사복시 소속의 궁궐 마구간을 채우고 그 다음은 차례로 동 교(東郊) 살곶이다리[箭橋] 목장에서 기른다. 대신 각신 시임승지(時任承旨) 및 사관 모두에게 하사품으로 한 필씩 내린다. 濟州 古耽羅國 在全羅道海中 貢馬以是月至京師 上品充閑廐 其次分畜東郊箭橋牧場 大臣閣臣時任承旨史官皆得頒賜一疋237) 중원(中元) 세상에 전해오기를 신라의 오랜 풍속에 왕녀(王女)가 6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대부(大部) 뜰에 아침 일찍 모여 길쌈하여 8월 보름에 그 공의 많고 적음 을 보아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면서 서로 가무를 하며 온갖 놀이를 하다가 파했다. 그래서 7월 보름을 백중절[百種節]이라고 하고 8 월 보름을 가배일(嘉排日)이라고 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신라와 고려 때는 불교를 235) 婦女取小麥屑作團麯如棊子~以相贈遺 名曰流頭麯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36) 연대본에서 居人以을 추가하였다. 237) 濟州 古耽羅國 在全羅道海中 ~大臣閣臣時任承旨史官皆得頒賜一疋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57 -
숭상하여 우란분(盂蘭盆) 때 공양하는 옛 풍속을 모방하여 7월 15일 중원일에 백종 (百種), 즉 온갖 꽃과 과일을 갖추어 공양하고 복을 빌었으므로 백종절이라는 이름 이 생겼다고 한다. 두 가지 설 중에 누가 옳은지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은 오로지 그 이름만 남았을 뿐 행사는 없다. 그러나 절에서는 이날 재를 준비하여 조상의 혼 앞에 천신하고, 시정 백성들은 서로 모여 마시며 즐기니 대개 위의 옛 풍속을 따른 것이다. 世傳新羅故俗 王女率六部女子 自七月旣望早集大部庭績麻 至八月十五日考功多少 負 者置酒食以謝勝者 相與歌舞作百戱而罷 故以七月望日爲百種節 八月望日爲嘉排日 或 曰羅麗崇佛倣盂蘭盆供遺俗 以中元日具百種花果供養祈福 故以名其日 二說未詳孰是 今則惟存其名而並無其事 然僧家以是日設齋薦先魂 市井小民相聚燕238)飮以爲樂 盖略 沿舊習也 8월(八月) 추분秋分239) 제주 한라산과 남해 경상도 소속 현 이름이다. 금산 산 이름이다. 이 춘분과 추분에 노인성(老人星)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 사람들 중 장수한 사람 들을 보면 70~80세는 오히려 일찍 죽은 편이다. 근년에 순천 전라좌도의 읍 이름 이다. 수영에서 별을 보았다는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데 노인성은 다른 별에 비해 매우 크고 정홍색(正紅色)을 띠었고 환히 밝은 것이 달과 같다고 하며, 추분 전후로 수일간 볼 수 있는데 매번 한밤중에 병(丙) 방향에서 떠서 새벽까지 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는 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 240)에 중추가 있는 8월에 수도 남교에서 노인성에 제 지낸다고 하였고, 예기(禮記) 분야(分野)242)의 별에 제 지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241)에도 제후들이 자기 국조오례의 에 수성에 대한 제사는 추분을 이용하여 5일간 재를 올리며 헌관은 삼품(三品) 벼슬이 맡는다고 하 였다. 여기서 수성은 노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국초에는 사전(祀典)에 이 제사가 들어 있었음은 의심할 바 없으나 도중에 없어져 지금은 그것이 어느 때 인지 알 수 없다. 1787년에 정조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널리 물어 친히 성단(星壇) 238) 광문회본에는 燕이 讌으로 되어 있다. 239) 추분(秋分)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40) 후한서 는 남보의 송나라 대신 범엽(范曄, 398~445)이 편찬하였다. 범엽은 지금의 하남성인 순양(順陽) 사람으로 자는 울종(蔚宗)이다. 책은 원정십기(原定十紀), 십지(十志), 팔십열전(八十列傳) 등 100권인데, 십지 중 팔지(八志) 만 남아있으며 그중 두 번째가 예의지 다. 241) 예기 는 주나라 말기 이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정비한 책이다. 242) 분야(分野)는 구역(區域)이란 뜻으로 고대에는 이에 근거하여 하늘의 구역에 상응하여 지구의 길흉을 예측 할 수 있다고 믿었다. - 58 -
을 정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직접 서문을 지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濟州漢拏山南海 慶尙道縣名 錦山 山名 皆以春秋二分見老人星 故土人多壽考者七 八十猶以爲夭 近年有見之於順天 邑名在全羅左道 水營者爲余言 星比他星絶大色正 紅煌煌如月 秋分前後數日皆有之 每以夜半升于丙地比曙不沒云 按後漢書禮儀志中秋之 月祀老人星于國都南郊 禮諸候祭分野之星 天下之見此星無如我國 而其見實在箕尾之南 政當我國分野 故五禮儀有祀壽星 儀日用秋分齋五日獻官秩三品壽星卽老人星也 據此則 國初之載在祀典無疑 而中廢不擧不知在於何時 正廟丁巳博詢諸臣親定星壇享儀 御製序 文欲行之而未果 중추(中秋) 중추일을 가배 라고 칭한 것은 신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달에 만물이 성숙하고 또 중추가절이라고 칭하므로 민간에서는 제일 중히 여긴다. 이날 아무리 궁벽한 시 골의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먹는다. 안주나 과일도 분수에 넘치게 가득 차린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 도 있다. 사대부 집에서는 설, 한식, 중추, 동지를 사명일(四名日)이라고 하여 묘제(墓祭)를 행하는데, 설이나 동지 때 혹 행하지 못하더라도 한식과 중추 때 행하며 한식보다 는 중추 때 많이 행한다. 유자후(柳子厚)243)가 병졸과 노복과 품꾼과 걸인 모두가 부모 묘를 찾게 되었다. 고 말하였는데, 오직 이 날이 그러하다. 嘉排之稱昉於新羅 而是月也百物成熟 中秋又稱佳節 故民間最重 是日雖窮鄕下戶 例皆 釀稻爲酒殺鷄爲饌 肴244)果之品侈然滿盤爲之 語曰加也勿減也勿 但願長似嘉排日 士大 夫家以正朝寒食中秋冬至四名日行墓祭 而正至或有不行者惟寒食中秋爲盛 而寒食又不 如中秋之盛 柳子厚所謂皂隸傭丐皆得上父母丘墓者 惟此日爲然 9월(九月) 세종 임금 때 우의정 유관(柳寬)245)이 당나라와 송나라의 고사를 본받아 삼월 삼 짇날과 구월 중양일을 영절(令節)로 하여 대소 신료들에게 명승지를 택하여 유람하 고 즐기게 함으로써 태평한 기상을 나타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그 243) 유자후(柳子厚)는 당나라 말기 문인으로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이다. 본명은 종원(宗元)이고 자후는(子厚) 자 다. 244) 고대본(광문회본)에는 肴가 又有으로 되어있다. 245) 유관(柳寬, 1346~1433)의 호는 하정(夏亭), 자는 몽사(夢思), 경부(敬夫)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개 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황해도 문화현에 있는 정계서원(程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하정유집(夏亭遺 集) 이 있다. - 59 -
러나 중엽 이후로 여러 차례 난리를 겪으면서 이 풍속은 쇠퇴하였으나 (단풍이 들 고 국화가 피면 남녀가 구경하며 즐기는 것이 봄에 화류놀이 하는 것과 같다.)246) 옛 일을 좋아하는 많은 사대부들은 중양일에 등고(登高)247)하여 시를 지으며 즐긴 다. 世宗莊憲王時 右議政柳寬請倣唐宋故事 以三月三日九月九日爲令節 使大小臣僚選勝遊 樂以形容太平氣象 上可之 中葉以來屢經喪亂 此風遂衰248) 而士大夫好古者多以重陽日 登高賦詩爲樂249) 10월(十月) 10월이 되면 추워지기 시작하므로 인가에서는 겨울나기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이용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인데, 그중에서 김장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다. 김장 이라는 것은 무와 배추를 가져다가 소금물에 절인 다음 고추, 생강, 파, 마늘 등 온 갖 조미료를 넣어 항아리에 가득 담아 땅에 묻어 얼어 터지지 않도록 방비한다. 두 자미(杜子美)의 추채(秋菜) 시에 겨울 무는 식사의 반이다. 라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孟冬始寒人家御冬 百用莫不及此措置 而沈藏爲大政 沈藏者取蘿葍根菘菜莖沈鹽水爲菹 加椒薑蔥蒜諸味甕盛 而窖藏之以防凍壞 杜子美秋菜詩曰冬菁飯之半政 此謂也250) 초하루朔日251) 10월 초하루부터 내관직과 외관직 관원 모두 공복(公服)으로 난모(煖帽)를 착용 하는데, 당상관은 표피(貂皮)를 사용하고 당하관은 서피(鼠皮)를 사용한다. 이것은 2월 초하루가 되어야 벗는다. 겨울이 따듯하고 봄이 추운 경우에도 자기 맘대로 벗 거나 쓰지 못한다. 自十月朔日 京外官公服皆着煖帽 堂上用貂皮 堂下用鼠皮 至二月朔日始除 雖冬煖春寒 不得任便脫着 오일午日252) 246) 광문회본에는 앞의 빠진 내용 대신 이부분, 즉 楓菊時士女遊賞略似花柳 이 실려 있다. 247) 등고(登高)란 높은 곳에 올라 양기를 흠뻑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248) 世宗莊憲王時 右議政柳寬請倣唐宋故事~中葉以來屢經喪亂 此風遂衰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고대본(광 문회본)에는 이 내용 대신 楓菊時士女遊賞略似花柳 으로 되어 있다. 249) 연대본에서 爲樂을 추가하였다. 250) 孟冬始寒人家御冬~杜子美秋菜詩曰冬菁飯之半政 此謂也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51) 朔日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 60 -
인가에서는 10월 말날에 떡을 쪄서 터주신에게 고사를 올리고 집안사람들을 불 러 같이 먹는데, 이 때 하는 떡을 마일병(馬日餠)이라고 한다. 무일(戊日)을 제일로 치고 임일(壬日)이나 경일(庚日)을 그 다음으로 여긴다. 오직 병일(丙日)은 피한다. 人家以十月午日甑餠祀土神 聚家人共啖 謂之馬日餠 戊爲上 壬庚次之 惟丙不用 20일(二十日) 강화 부근 바다 가운데에 암초가 있는데, 이것을 손돌목[孫石項]이라고 한다. 방 언에 산수가 험하고 좁은 곳이 목 [項]이 된다고 말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고려 때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10월 20일에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어서 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날이 되면 바람이 많이 불고 매섭게 추워 뱃사람들은 조 심하고 삼가며 집에 있는 사람도 털옷을 준비하고 근신한다. 江華海中有險礁曰孫石項 方言謂山水險隘處爲253)項 世傳高麗時254)有梢工孫石者以十 月二十日寃死于此 遂以名其地 至今値是日多風寒栗烈 舟人戒嚴 居者亦謹備衣裘 11월(十一月) 동지(冬至)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어람(御覧)하고 반사(頒賜)할 내년 역서(曆書)를 임금께 올 린다. 상품(上品)은 황색으로 장정한 황장력(黃粧曆)이고 그 다음은 청장력(靑粧曆), 백력(白曆), 중력(中曆), 월력(月曆), 상력(常曆) 등 종이 품질과 장정 모양으로 구별 한다. 서울의 각 관청은 미리 종이를 모두 갖추었다가 관상감에 부탁하여 인쇄한 다음 장관과 소속 관료들에게 차등을 두고 분배하여 각기 고향과 이웃 친지들에게 줄 것을 마련하도록 한다. 이조의 서리들은 역서를 벼슬을 많이 낸 여러 진신가(搢 紳家) 중에서 주인으로 삼은 집에 나누어주는데, 일명(一命), 즉 초임(初任) 이상으 로서 이조 전랑(銓郞)에 속한 자에게는 관례를 따라 청장력을 한 건씩 증정한다. 사 천(槎川) 이병연(李秉淵)의 시에 서리는 청장력을 보내오고 집에서는 팥죽을 내온 다. 고 하였다. 귀신을 몰아내는데 팥죽을 쓰는 것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 풍속은 아니므로 자세히 열거하지 않는다. 觀象監進明年曆書 御覧及頒賜 上件皆黃粧255) 其次有靑粧曆白曆中曆月曆常曆等名色 以紙品粧樣爲別 京司各衙門預具256)紙物 付本監印出 長官與郞僚例分有差 爲酬應鄕鄰 252) 午日의 내용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53) 고대본(광문회본)에는 爲가 謂로 되어 있다. 254) 고대본(광문회본)에는 世傳高麗時이 甞으로 되어 있다. 255) 고대본(광문회본)에는 粧䌙으로 되어있다. - 61 -
之用 吏曹胥吏分主搢紳諸家所主家 自一命257)以上名258)屬銓郞者 例呈靑粧曆一件 李 槎川秉淵詩曰 吏送靑粧曆 家傳赤豆粥 辟鬼昉於中華不專爲國俗 故玆不詳列259) 12월(十二月) 제주도는 옛 탐라국이다. 감귤 생산지여서 세공품(歲貢品) 감귤이 동짓달과 섣달 두 달에 걸쳐 서울에 이르면 임금은 성균관 학생들에게 이것을 내린다. 그리고 친 히 시험제목을 내어 절일제(節日製)의 예에 따라 시험을 치러 거수(居首), 즉 장원 한 자에게는 급제를 내리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고 한다. 서암(恕庵) 신정하 (申靖夏)260)의 시에 팔도에서 하례 전문(箋文)이 같은 날 도착하고 제주 감귤은 그 다음으로 왔다. 고 하였는데, 동짓날 궁중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감귤이 세공으로 올 때 날씨가 매우 추우면 임금이 공인들을 직접 불러 보시고 옷도 주시고 먹을 것 도 내려 먼 지방에서 온 백성을 위로하는 뜻을 보이시기 때문에 제주 공인들은 은 택을 바라고 매우 추울 때를 기다려 장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감제는 12월에 여 는 경우가 많다. 감영과 병영과 주현(州縣)의 지방관들은 연말이 되면 관할 지방의 토산물을 친척 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보내는데, 이것을 세의(歲儀)라고 한다. 선물의 양과 질은 각 자의 뜻에 따르는데 평안도와 황해도 양도의 병마사(兵馬使)는 조정의 관리로 시종 (侍從)261) 이상의 벼슬을 한 자에게는 서로 알고 모르고를 떠나 세의를 하는데 단 오 때 삼영(三營)에서 부채를 보내는 예처럼 물종과 서간의 말에 모두 정해진 법식 이 있다. 濟州古耽羅國也 地262)産柑橘 歲貢以至臘二月至京師 頒賜舘學生 下御題試取如節日製 之例 居首者賜第名曰黃柑製 申恕庵靖夏詩曰 八道箋文同日至 濟州柑橘二番來 盖至日 詠禁中事也 貢柑之來値寒極 則自上引見領貢人 賜衣宣飯以示柔遠之意 濟人覬望恩澤 必候極寒而入城 故柑製多在臘月 營閫州縣每於歲末 以土物餉親戚知舊 謂之歲儀 多寡 闊狹各自隨宜 而平安黃海兩道兵馬使問朝廷搢紳曾任侍從以上 不以知不知爲限 物種書 詞皆有定式 如三營端午扇之例263) 256) 광문회본에는 具가 其로 되어 있다. 257) 광문회본에는 命이 名으로 되어 있다. 258) 민박본에는 一命以名 으로, 연대본에는 一命以上名 으로 되어 있다. 259) 고대본(광문회본)에는 列이 別로 되어 있다. 260) 신정하(申靖夏, 1681~1716)의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자는 정보(正甫)이고 호는 서암(恕菴)이다. 숙종 31 년(1705)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부교리(副校理) 등을 지냈다. 문집 서암집(恕菴集) 이 있다. 261) 시종(侍從)은 시종신을 말하며, 조선조 때 홍문관 옥당(玉堂), 사헌부 사간원 대간(臺諫), 예문관 검열(檢閱), 승정원 주서(注書) 등 왕을 항상 시종하는 신하를 총칭한다. 262) 연대본에는 古耽羅國也 地 가 빠져 있다. - 62 -
납일臘日264) 우리나라 역법은 동지 이후 세 번째 맞는 미일(未日)을 납일로 삼는데, 동방의 성 덕(盛德)이 오행 중 목(木)에 있기 때문이다. 이날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데 1월, 4 월, 7월, 10월의 초하루에 지내는 사맹삭(四孟朔)과 더불어 오대향(五大享)이 된다. 인가에서는 조상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초하루 삭참제(朔叅祭)나 명절에 천신하는 절천제(節薦祭)의 형식과 같다. 내의원(內醫院)과 모든 영문(營門)에서는 납일에 각종 환을 조제하여 공가와 사 가, 서울과 지방 각지에 나누어 준다. 그 중 청심원(淸心元)과 소합원(蘇合元)의 약 효가 제일 좋다. 중국 연경 사람들은 청심원을 죽은 자를 일으키는 신단(神丹)이라 고 여겨 우리나라 사신이 연경에 들어가기만 하면 왕공(王公), 귀인(貴人)들이 모여 들어 달라고 하는 바람에 종종 졸라대는 것을 참지 못하여 제조 방법을 전해주지만 마치 약밥의 예처럼 만들지 못하니 기이한 일이다. 혹자는 연경에 우황이 없어 대 용으로 타황(駞黃)265)을 쓰기 때문에 처방대로 만들어도 영험이 없는 것이라고 한 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다. 납일에 잡은 짐승들은 모두 몸에 좋다. 그중에 특히 참새는 노약자에게 좋아 많 은 인가에서 그물을 길게 쳐 잡는다. 주례 에 그물을 관장하는 나씨(羅氏)는 중춘 (中春)에 춘조(春鳥)를 그물로 잡아 국로(國老)를 보양한다고 하였다. 주나라 중춘은 지금 12월이다. 정씨(鄭氏) 주(注)에서 춘조(春鳥)는 지금 중국 호남성의 참새류라 고 하였다. 國曆用冬至後第三未爲臘 以東方盛德在木也 有事于太廟並四孟爲五大享 人家亦或祭先 如朔叅節薦儀也266) 內醫院及諸營門以臘日造諸種丸劑 公私京鄕無不波及 而淸心元蘇 合元267)最有奇效 燕京人以淸心元爲起死神丹 我使入燕自王公貴人無不聚首來乞 往往 不勝嬲聒而傳方不能成 與藥飯一般亦可異也 或曰燕中無牛黃代用駞黃 故雖依方造成而 服之無靈 未知信否 臘日所獲禽獸皆佳 而黃雀利於老弱 人家多張網捕之 周禮 羅氏中 春羅春鳥以養國老 周之中春今之十二月也 鄭氏注 春鳥今南郡黃雀之屬也 섣달그믐날밤(除夕) 인가에서는 마루, 방, 아래채, 문, 부엌, 변소 등에 모두 밤새도록 등불을 켜고 상 263) 營閫州縣每於歲末~如三營端午扇之例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64) 광문회본은 蠟日로 되어있는데 바로잡았다. 265) 타황(駞黃)은 낙타 쓸개에서 나오는 황이다. 266) 고대본(광문회본)에는 也가 빠져있어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67) 고대본(광문회본), 민박본에는 모두 元 대신 丸으로 나와 있다. - 63 -
하노소가 닭이 울 때까지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아이가 피곤하 여 자려고 하면 야단치면서 오늘 밤 잠자면 두 눈썹이 센다. 고 겁을 준다. 내의원에서 벽온단(辟瘟丹)268)을 제조하여 임금께 올리면 임금은 설날 아침 일찍 심지 하나를 불사른다. 그 처방은 동의보감(東醫寶鑑) 269)에 있는데, 노래에 신성 한 벽온단이 세간에 전해져 설날 심지 하나 태우니 한해 내내 평안하리. 라고 하였 다. 여항에서는 간혹 이것을 빨간 주머니에 넣어 차고 다니기도 한다. 제석 전야에 관상감에서는 대궐 뜰에 귀신을 쫓는 의식인 대나(大儺) 행사를 준 비한다. 악공 중 한사람이 행사를 지휘하는 창수(唱帥)가 되고 몽기(蒙倛)270)로 분 장한 4명은 붉은 옷에 황금사목(黃金四目)의 가면을 쓰고 곰 가죽을 쓰고 창을 잡 는다. 가면을 쓴 군졸 12명은 열두 신 당(幢)271)을 든다. 악공 10명은 도열(桃 茢)272)을 잡고 뒤를 따르며 아동 수십 명은 가면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붉은 건을 쓰고 초란이[侲子] 역을 맡는다. 창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갑작(甲作)은 흉직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胇胃)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雄伯)은 도깨비를 잡아먹고, 등간(騰簡)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저(攬諸)는 허물을 잡아먹고, 백기(伯 寄)는 환상을 잡아먹고, 강량(强梁)과 조명(祖明)은 둘이 함께 책사(磔死)273)에 기생 하는 귀신을 잡아먹고, 위수(委隨)는 관(觀)을 잡아먹고, 착단(錯斷)은 거(巨)를 잡아 먹고, 궁기(窮奇)와 등근(騰根)은 둘이 함께 벌레를 잡아먹는다. 무릇 이 열 두 신 을 시켜 흉악한 것들을 내쫓기 위해 네놈들을 위협하여 몸뚱이를 잡아다가 허리뼈 를 부러뜨리고 네놈들의 살을 찢고 내장을 뽑으려 한다. 네놈들 중 빨리 서두르지 않고 뒤에 가는 놈들은 열 두 귀신의 밥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초란이들은 예 하고 대답하고 엎드려 사죄한다. 모든 악공들은 북을 치고 악기를 불며 흥을 돋 우며 궁문에서 출발하여 성문에 이르러 멈춘다. 국가에서 정한 의전(儀典)에 있는 내용이 이러한데 나는 일찍이 궁에서 수세(守歲)한 일은 있었지만 한번도 이러한 일을 보지 못했다. 단지 각 궁전 근처에서 포를 두어 번 터뜨리고 마는 정도다. 대 개 초라니 나례는 주례 나 한지(漢志) 를 따른 것으로 국초에는 의전에 만들어 두었던 것인데 그 이후 이 일이 바르고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그만두게 한 것이다. 人家軒閤廊廡門竈圊溷皆點燈達夜 上下老幼限鷄鳴不眠謂之守歲 童稚困睡則嚇曰 睡除 夕雙眉白274) 內醫院製辟瘟丹進御 正朝早晨焚一炷 方見東醫寳鑑歌曰 神聖辟瘟丹 留 268) 벽온단(辟瘟丹)은 전염병을 예방한다는 향의 일종이다. 섣달 그믐밤에 이것을 술에 타서 마시면 다음해 일 년 동안 온역(瘟疫)을 피한다는 설이 있다 269) 동의보감 은 광해군 2년(1610)에 허준(許浚)이 지은 의서(醫書)로 전체 25권 25책으로 이루어졌다. 1613 년에 내의원(內醫院)에서 훈련도감의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로 간행하였다. 270) 몽기(蒙倛)란 가로 퍼지고 딱 바라진 괴물이다. 271) 당(幢)이란 꼭대기에 우산 같은 것을 얹은 깃대다. 272) 도열(桃茢)이란 복숭아나무로 만든 귀신 쫓는 부적이다. 273) 책사(磔死)란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무거운 형벌인 책형(磔刑)을 당한 시체다. 274) 고대본(광문회본)에서는 다음 문장과 단락을 나누지 않았다. - 64 -
傳在世間 正元焚一炷 四季保平安 閭巷間或盛絳囊佩之 除夕前夜觀象監設大儺於闕庭 樂工一人爲唱帥 蒙倛四人朱衣假面黃金四目蒙熊皮執戈 假面軍卒執十二神幢 樂工十人 執桃茢從之 兒童數十着假面朱衣朱巾爲侲子 唱帥呼曰甲作食歹匈 胇胃食虎 雄伯食魅 騰 簡食不祥 攬諸食咎 伯奇食夢 强梁祖明共食磔死寄生 委隨食觀 錯斷食巨 窮奇騰根共 食蠱 凡使十二神 追汝凶赫汝軀 拉汝幹節 解汝肌275)肉 抽汝肝腸 汝不急去 後者爲糧 侲子曰喩 叩頭服罪 諸工鼓吹振作自宮門至城門乃止 國朝儀典所載如此 而余嘗守歲于 禁省未見有此事 但就各宮殿近處放火礟數次而止 盖侲儺之法昉於周禮漢志 故國初亦嘗 著爲儀典 而後來謂其事涉不經而罷之歟276) 발(跋)277) 내가 강촌에서 긴 여름을 보내면서 날을 보낼 거리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시강 (侍講) 여대림(呂大臨)278)이 역양(歷陽)에 있을 때 명절을 만나 공부를 쉬고 둘러앉 아 술을 마시며 세시풍속의 일들을 잡다하게 적었던 것을 기억하고 흔연히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윽고 그 뜻을 따라 우리 풍속 중에 보고 들은 것을 생각나 는 대로 차례로 늘어놓으니 80여 가지나 되었다. 비록 우초(虞初)279)나 제해(齊 諧)280)와 같이 속되고 자잘한 것이어서 대아(大雅)가 볼 것은 못되며 기이함을 좋 아하는 양자운(楊子雲)281)이 보면 그 내용에 아전이나 미천한 군졸의 이야기가 없 다고 지적될까 걱정되어 쓴 글을 태우고 싶은 마음이 크나 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두오랑(杜五郞)282)이 편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고 한 것처럼 써놓고도 묻어 버리는 일도 흔할 터인데 굳이 이것을 적어 나의 창피한 면을 알리고자 한다. 기묘년(1819) 유두일(流頭日)에 열양외사(洌陽外史)가 씀. 江村長夏無以遣日 偶記呂侍講在歷陽時遇節日 休學團坐飮酒雜記歲時風俗事 欣然有會 于心 遂倣其義例 就本國謠俗所見聞者 隨憶輒錄標配銓283)次 得八十餘事 雖虞初齊諧 275) 연대본에는 肌가 빠져 있다. 276) 除夕前夜觀象監設大儺於闕庭~而後來謂其事涉不經而罷之歟 은 연대본에서 추가하였다. 277) 연세대본은 발(跋)이 아니라 기(記)로 되어 있다. 278) 여대림(呂大臨, 1040~1092)은 중국 송나라 섬서성 사람으로 향약을 만든 남전여씨(藍田呂氏) 4형제의 한 사람이다. 279) 우초(虞初)는 중국 전한 때 하남 사람으로 속담을 모아 소설을 만들어, 소설이 그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 다. 280) 제해(齊諧)는 괴상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잘 하는 인물, 또는 책으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㳺) 에 나온다. 281) 양자운(楊子雲)은 중국 전한 때 유학자 양웅(楊雄)으로 자운은 그의 호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두루 물 어 방언(方言) 이란 책을 만들었다. 282) 두오랑(杜五郞)은 중국 후한 때 사람인 두안(杜安)이다. 283) 고대본, 연대본, 민박본에는 銓이 詮으로 되어있으나 여기에서는 광문회본을 따랐다. - 65 -
鄙俚叢瑣 不足以備大雅之觀 使好奇284)如楊子雲者見之 鉛槧之摘或不在計吏衛卒下也 然焚棄筆硯殊大不易 比之杜五郞並書不知所在亦太多事矣 書此以識吾媿 己卯流頭日洌 陽外史書 284) 고대본(광문회본)에는 奇가 音으로 되어 있다. - 66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서序 내가 일찍이 설과 보름에 관한 우리의 풍속을 각기 수십 절귀의 시로 간략하게 지은 일이 있었는데, 그 시를 본 사람은 내용이 충실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입을 벌리고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이어 그 다음 절기들도 서술해 가 면 한 나라 세시의 유래와 실제가 갖추어지지 않겠는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 나 그럴 겨를을 찾지 못하고 몇 년을 지내다가 지금에 이르니 몸은 쇠약해지고 게 을러져 필력이 쇠퇴하여 이전처럼 문득 생각나는 대로 적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나의 친구 도애(陶厓) 홍석모(洪錫謨)가 찾아와 책상(丌) 위 에 책 한 편을 뽑아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내가 우리나라 세시를 기록한 것 이다. 중국에는 종름(宗懍 : 중국 북주시대 사람으로 초나라 풍속 36종을 수록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를 지었다.) 이래로 이런 책을 지은 사람이 적지 않지만 우 리나라에는 여태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이번에 마치 못생긴 여자가 미인의 표정을 흉내 내듯이 격에 맞지 않은 시늉을 내어 우리 풍속이 각기 다름을 기록하였다. 그 러나 서문 하나 없이는 믿을 만한 책이 될 수 없으니 나를 위해 서문 하나 부탁한 다. 고 하였다. 내가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책을 끝까지 읽어보니 정월부터 섣달까지 제목이 모 두 23항목이었으며, 그 달에 행해지지만 구체적으로 날짜를 잡을 수 없는 행사는 그 달 끝에다 월내(月內) 로 구별하여 실었고 맨 나중에는 윤달 행사를 붙였다. 가 까이는 서울로부터, 멀리는 궁벽한 시골에 이르기까지 비록 평범한 하나의 행사라 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비속한 것일지라도 그 절기에 해당하면 빠뜨리지 않고 모 두 실었으며 우리나라 풍속 밑에는 반드시 전설이나 기록물 중에서 부합되는 것을 널리 채집하여 그 유래와 출처를 증명하였다. 고증이 풍부하고 내용이 넉넉한데다 가 잘못 빠진 것들을 모두 실은 것이 물줄기를 따라 물의 근원에 이르고 가지로 말 미암아 그 뿌리에 이른 것 같으니, 이는 비단 한 나라의 풍속을 묘사한 것에 그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옛 중국문명과 견주어 유사한 것들을 잘 살려 엄연 히 하나의 통일된 문자를 이룬 것이다. 풍부하다 그의 표현력이여. 반드시 후세에까지 충분한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큰솥에 들어있는 잘게 저민 고기 한 점 맛본 것이니 어찌 그와 더불어 제대로 된 고기 맛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 오호라. 홍군이 젊은 시절만 해도 그에 대해 기대했던 사람들이 그가 아니면 누 가 임금 옆에서 왕명출납을 맡아 수행할 인재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자진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결국 운명에 막혀 쌓아 놓은 재주를 아무도 사지 않아 저 대궐의 풍부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높은 벼슬은 남에게 넘겨주고 말단 관 - 67 -
리로 머물면서 늘그막에는 자포자기하여 오직 사부(辭賦)와 시율(詩律)로서 스스로 무료함을 보내고 적적하고 우울하고 평온치 못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으니 어찌 이 리도 어그러진 일이 있겠는가. 이번에 그의 이 작업도 무료한 가운데 소일거리로 보낸 것의 하나이지만 한 나라 의 풍속을 모두 기술하고 모든 세시의 문헌을 갖추었기 때문에 종름 등 여러 사람 들이 한 것처럼 엉성한 기록과 일방적인 견문에 그친 것보다는 나은 점이 많다. 내가 이 글을 감상하는데 빠져 며칠을 두었으므로 이제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이에 이 글을 적어 보답하는 바이다. 기유년 중양 후 4일(1849년 9월 13일) 곡양만객(縠瀼漫客) 이자유(李子有) 서(序) 余嘗於元朝及上元各賦數十絶句略述土風 見者以爲道得該備至或解頤 擬更逐節有述要 成一國歲時之故實 而因循未遑者今已有年寔緣衰懶筆退不能如前者之有思輒書也 一日 陶厓洪友抽丌上一編書示之曰此所述東國歲時記也 中州則自宗懍以來作此書者不爲不多 而吾東則至今闕如 故聊爾效嚬以誌土風之各異焉 便一信書不可無弁首之文 試爲我裁之 也 余乃受而卒業 自元月訖臘月凡爲目者二十有三 如事在某月而不可繫日者逐朔之末 區別而揭之 最下方附以閏朔之所需 而近自京都遠曁窮陲苟有尋常一事之稱於當節者雖 涉鄙俚無遺悉錄 東俗之下必博采傳記中襯合者以證其所由出 考据旣洽錯落俱載沿流而 溯源由條而達本 是不但爲描寫一國之俗 尙並與中華之舊而觸類長之 儼然爲一統文字 富哉言乎其足徵於來後也必矣 雖然此特全鼎之一臠 烏足與論於嚌胾之眞味也 嗚呼洪 君之少日所期者自謂何如人亦孰不詡之以世掌絲綸之池上鳳毛也 竟乃局於命途蘊而莫售 彼金閨蘭臺之上高文大冊之煥黼黻而被管絃285)者付與他人 棲遲末宦白首濩落惟以辭賦 詩律自遺無聊以瀉其牢騷不平之鳴一何其舛也 若此等所述亦從無聊中消遺者 而盡一國 之謠俗備每歲之文獻 殆有勝於宗氏諸家之粗記一方見聞而止者多矣 耽於玩賞留之屢日 今不可以白還 於是乎書此以復焉 己酉重陽後四日縠瀼漫客李子有序 285) 연세대학교 소장본(앞으로 연대본 이라고 함)에는 弦으로 되어있다. - 68 -
정월正月 원일(元日) 설날이 되면 의정부 대신은 모든 관원을 인솔하고 대궐에 나아가 임금에게 새해 문안을 드리고 새해를 축하하는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올리고286) 정전 앞뜰에 모여 조하(朝賀) 의례를 행한다. 외관직인 전국 팔도의 관찰사, 병사, 수사, 부사, 목사도 전문과 토산물을 진상하며 주, 부, 군, 현의 호장과 아전도 모두 와서 반열 에 참석한다. 동짓날에도 전문을 올리는 의례를 행한다. 서울 풍속에 설날 집안사당에 배알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한다. 남녀 어 린이들은 모두 새 옷으로 단장하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하고, 집안 친척 어 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이날 시절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것 을 세찬(歲饌)이라고 하고 대접하는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 후한시대 사람인 최식(崔寔)의 월령(月令) 에287) 설날 조상에게 깨끗한 제사를 올 리고 산초와 잣을 넣어 빚은 술을 마신다. 고 했고, 또 종름(宗懍)의 (荊楚歲時記) 288)에는 고 하였는데, 형초세시기 설날 길경 등을 넣어 만든 도소주(屠蘇酒)와 엿을 드린다. 이것이 세주와 세찬의 시초다. 부인들은 사돈집에 단장을 한 계집종 을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한다. 조선 영조 때 의 학자인 참봉 이광려(李匡呂)289)의 시에 뉘 집 문안비가 뉘 집으로 문안하려 들 어가는가(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 라는 귀절이 있다. 육조, 한성부 등 서울 각사(各 司)에 속한 서리와 종들, 그리고 각 영문(營門)의 장교와 군졸들은 접은 종이에 자 기 이름을 써서 현직 관원과 퇴직 관원의 집에 바친다. 관원 집에서는 대문 안에 옻칠한 쟁반을 놓아두고 이를 받는데 이것을 세함(歲銜)이라고 한다. 각 지방관청에 서도 그렇게 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 명나라 사람인 왕기(王錡)가 쓴 圃雜記) 290)에 우포잡기(寓 서울 풍속에는 매년 설날이면 주인들은 모두 설을 축하하러 나가고 286) 전문(箋文)은 하례(賀禮)의 내용을 담아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고, 표리(表裏)는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下賜) 하는 포상품 중에 관복(官服)을 만들 겉감과 속감을 말한다. 287) 최식(崔寔)은 중국 후한 때 사람으로 사농공상 사민(四民)의 연중행사를 사민월령(四民月令) 에 담았는데, 예기(禮記) 를 모방한 월령체제로 이들의 생산과 생활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고금사문류취(古今事文類聚) 에 나오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元日進椒柏酒 椒是玉衡星精服之令人身輕能走 柏是仙藥進酒次第以年少者為 先. 288)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는 초나라 풍속 36종을 수록한 세시기(歲時記)다. 중국 육조시대 후베이(湖北) 지 방과 후난(湖南) 지방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6세기 중엽에 양나라 종름(宗懍)이 편찬하였다. 현 존하는 중국 세시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나라 특유의 세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풍속도 기술되어 있다. 289) 이광려(李匡呂)는 조선 영조 때의 사람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월암(月巖), 칠탄(七灘)이다. 학문과 문 장이 뛰어나 천거를 받아 참봉이 되었다. 290) 우포잡기(寓圃雜記) 는 모두 10권으로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에서 정통(正統) 간의 조야(朝野) 사적을 실 었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참조.) 왕기는 중국 명나라 장주(長州) 사람으로 자는 원우(元禹), 별호는 몽소도인(夢蘇道人)이다. - 69 -
다만 백지로 만든 장부와 붓과 벼루만 책상 위에 배치해 두면 하례객이 와서 이름 만 적고 가기 때문에 영접하고 전송하는 일이 없다. 고 하였으니, 이것이 곧 세함 의 시초다.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늘려 만든 가래떡을 흰떡[白餠]이라고 한다. 이것을 얇게 엽전 두께만큼 썰어 장국에다 넣고 끓인 다음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후추가루를 쳐서 조리한 것을 떡국[餠湯]이라고 한다. 이 것은 제사에도 쓰고 손님접대에도 사용하므로 세찬에 빠져서는 아니 될 음식이다. 국에 넣어 삶으므로 옛날에 습면(濕麪)이라고 부르던 것이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저 자거리 가게에서는 이것을 시절음식으로 판다. 세속 언어로 나이 몇 살 먹었다는 것을 떡국 몇 그릇 째 먹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문인인 육방옹(陸放 翁)291)이 쓴 검남시고(劒南詩稿) 권38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 주해에 지방 풍속에 설날에는 반드시 끓인 떡을 쓰는데 이를 동혼돈(冬餛飩)이나 연박탁(年餺飥) 이라고 한다. 고 한 것을 보면 떡국 먹는 것도 아마 옛 풍속인 듯하다. 멥쌀가루를 시루에 찌는 중에 삶은 붉은 팥을 켜로 까는데 멥쌀가루의 두께는 시 루의 크기를 보고 정한다. 혹은 찹쌀가루를 켜로 넣어 찌기도 한다. 이것을 시루떡 [甑餠]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새해에 귀신에게 빌기도 하고, 초하루와 보름 또는 아 무 때나 귀신에게 빌 때도 올린다.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기관인 승정원(承政院)에서는 시종(侍從)과 당하(堂下)의 문관들을 미리 선발하여 일종의 축하시인 연상시(延祥詩)를 지어 올리게 한다.292) 홍문관(弘文館), 예문관(藝文館) 및 규장각(奎章閣)의 제학(提學) 들에게 명하여 오 언(五言)이나 칠언(七言) 율시 절귀를 짓게 하며 그것을 채점해서 등수 안에 든 것 은 대궐 안의 기둥과 문 상방에 붙인다. 입춘날의 춘첩자(春帖子)나 단오날의 단오 첩(端午帖)도 모두 이 예를 따라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사람 온공(溫公), 즉 사 마광(司馬光)293)이 쓴 일록(日錄) 에 한림원 서대조(書待詔)294)가 임금에게 봄맞 이시[春詞]를 청하고 그것을 입춘날 대궐 문가리개[門帳]에 붙인다. 고 했고, 송나라 사람 여희철(呂希哲)295)이 쓴 또한 세시잡기(歲時雜記) 에 학사원(學士院)에서 단오 되기 한 달 전에 궁전 정문에 붙일 단오 첩자를 지어 두었다가 단오날 황제에 게 올린다. 고 하였는데, 대개 이러한 것들이 옛날부터 있던 법규다. 291) 육방옹(陸放翁)은 중국 송나라 산음(山陰) 사람으로, 이름은 유(游)이며, 방옹은 호다. 보장각(寶章閣)의 대 제(待制)를 지냈고 85세를 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292) 시종(侍從)은 옥당(玉堂) 대간(臺諫) 검열(檢閱) 주서(注書) 등 임금 곁에서 일을 보는 관직을 말하며, 당하(堂 下) 문관(文官)은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하의 문관직을 말한다. 연상시(延祥詩)는 상서로움을 맞이하는 시다. 293)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자는 군실(君實), 호는 제물자(齊物子), 시호는 문정 (文正)이다. 저서에 자치통감(資治通鑑), 독락원집(獨樂園集), 서의전가집(書儀傳家集) 등이 있다. 294) 서대조(書待詔)는 중국 당나라 때 만들어진 한림원(翰林院) 관직명으로 문사(文詞)와 경학(經學)에 밝은 선 비가 이 직을 맡아 사방의 표(表), 소(疏), 비답(批答), 문장(文章) 등을 정리하였다. 295) 여희철(呂希哲)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자는 원명(原明)이다. 저서에 여씨잡기(呂氏雜記) 가 있다. 원문은 고금사문류취(古今事文類聚) 를 참조하였다. - 70 -
서화에 관한 임무를 맡고 있는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수성선녀도(壽星仙女圖)와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바치고 또 서로 선물하는데 이것을 세화(歲畵)라고 하며 축하하는 뜻을 나타낸다. 또 금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을 그려 임금에게 바치는데 키가 한 길이 넘는 장군들은 각각 천자의 신임을 상징하는 도끼와 절월(節鉞)296)을 들고 있다. 이 그림을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 배(門排)라고 한다. 또 붉은 도포를 입고 까만 사모를 쓴 화상을 그려 편전의 겹 대 문에 붙이기도 하고, 사악한 귀신을 잡는 종규(鍾馗)297)라는 귀신상을 그려 문에 붙 이기도 하며,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 상방에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사귀와 전염 병을 물리친다. 모든 왕실 내외척들의 문간에도 이런 것들을 붙이며 일반 백성 집 에서도 이를 많이 따라 한다. 금갑옷을 입은 두 장군은 사천왕(四天王)298) 신상이라 고도 하고 혹은 당나라 태종 때의 명장인 울지공(尉遲恭)299)과 진숙보(秦叔寶)300) 라고도 하며, 진홍색 도포를 입은 자는 당나라 때 학자인 위정공(魏鄭公)301)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사람 송민구(宋敏求)302)가 쓴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 에 도가(道家)에서 상소를 올려 천문(天門)을 지키는 금갑옷을 입은 두 사람 중 갈 장군(葛將軍)303)은 기를 잡고 있고 주장군(周將軍)304)은 절월을 잡고 있는 것으로 그린 것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 문배에 나오는 그림은 이 갈 주 두 장군인 듯 하며, 세속에서 괴담소설에 나오는 당나라 태종305) 때의 일이라고 한 것은 억지로 붙여낸 말이다.306) 議政大臣率百官詣闕新歲問安奉箋文表裏朝賀於正殿之庭 八道方伯閫帥州牧進箋文方物 州府郡縣戶長吏亦咸來參班 冬至又行進箋之儀 京都俗歲謁家廟行祭曰茶禮 男女年少卑 296) 절월(節鉞)은 부절(符節)과 부월(斧鉞)로 고대시대에 이것을 장수에게 내려 권력을 더하는 뜻을 나타내었다. 297) 종규(鍾馗)는 역귀(疫鬼)나 마귀를 쫓는다는 중국의 신으로, 이것의 형상을 문에 붙여 악귀를 막는 풍속이 당송(唐宋) 때 성행했다고 한다. 298) 사천왕은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 네 신(神)으로 사방을 진호(鎭護)하는 주신(主神)이다. 299) 울지공(尉遲恭)은 중국 당나라 선양(善陽) 사람으로 울지는 성이고 공은 이름이며 자는 경덕(敬德)이다. 태 종을 도와 전공을 올린 공로로 악국공(鄂國公)에 봉해졌다. 300) 진숙보(秦叔寳)는 중국 당나라 역성(歷城) 사람으로 울지공과 동시대인이며 태종을 도와 전공을 올린 공로 로 익국공(翼國公)에 봉해졌다. 301) 위정공(魏鄭公)은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학자이자 재상인 위징(魏徵)을 말한다. 자는 현성(玄成)이다. 정국 공(鄭國公)에 봉해졌다. 302) 송민구(宋敏求)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로 자는 차도(次道)이다. 당의 무종(武宗) 이후의 실록을 사찬(私撰) 하였고 용도각(龍圖閣) 직학사(直學士)를 지냈다. 유명한 장서가다.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 당대조령집(唐 大詔令集), 장안지(長安志) 등이 있다. 춘명퇴조록 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있다. 303) 갈장군(葛將軍)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모사(謀士)인 제갈량(諸葛亮)을 말한다. 제갈량이 장(杖)과 절(節)을 군문(軍門)에 세워 상대방을 이긴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304) 주장군(周將軍)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서(舒) 지방 사람인 주유(周瑜)를 말한다. 자는 공근(公瑾)이다. 305) 본문의 문황(文皇)은 중국 당나라 태종을 말한다. 306) 문황 때의 괴담이란 당시의 재상 위징(魏徵)이 남해의 용왕에게 해를 가한 이후 용왕이 문황을 자주 괴롭히 자 이를 울지공과 진숙보가 막아주었다는 내용이다. 경도잡지(京都雜志) 원일조(元日條)에 같은 내용이 나온 다. - 71 -
幼者皆着新衣曰歲粧 訪族戚長老曰歲拜 饋以時食曰歲饌 酒曰歲酒 按崔寔月令正日潔 祀祖禰飮椒栢酒 又按宗懍荊楚歲時記元日進屠蘇酒膠牙餳 此卽歲酒歲饌之始 姻親家 婦女相送靚粧少婢問新年平安曰問安婢 李參奉匡呂有詩曰誰家問安婢問安入誰家 各司 胥吏隸各營校卒摺紙列名來呈單子於官員及先生家 門內置髹盤受之曰歲銜 外道衙門亦 然 按王錡寓圃雜記京師風俗每正朝主人皆出賀 惟置白紙簿並筆硯於几 賀客至書其名無 迎送也 此卽歲銜之始 蒸粳米粉置大板上以木杵有棅者 無數擣打引作長股餠名曰白餠 因細切薄如錢和醬水湯熟 調牛雉肉番椒屑名曰餠湯 以供祀接客爲歲饌之不可闕者 入湯 烹之 故古稱濕麪者似是物也 市肆以時食賣之 諺稱添齒者謂吃餠湯第幾椀 按陸放翁歲 首書事詩註鄕俗歲日必用湯餠 謂之冬餛飩年餺飥 盖古俗也 蒸307)粳米粉於甑中以熟赤 豆隔鋪之 隔粉多積視甑大小 或用糯米粉隔甑之名曰甑餠 以歲時禱神 又於朔望及無時 禱神亦如之 承政院預選侍從堂下文臣製進延祥詩 命館閣提學出韻五七言律絶 考第入格 者題貼于闕內各殿柱楹門楣 立春日春帖子端午帖子俱用是例 按溫公日錄翰林書待詔請 春詞以立春日剪貼於禁中門帳 又按呂原明歲時雜記學士院端午前一月 撰閤門帖子及期 進入308) 盖古規也 圖畵署畵壽星仙女圖直日神將圖 獻于公亦相贈遺 名曰歲畵 以寓頌 祝之意 又畵進金甲二將軍像 長丈餘一持斧一持節 揭于闕門兩扇名曰門排 又以絳袍烏 帽像揭重閤門 又畵鍾馗捕鬼貼戶 畵鬼頭貼楣以辟邪瘟 諸宮家戚里門扇亦皆揭之 閭巷 又多效之俗 以金甲者謂四天王神像 或以爲尉遲恭秦叔寶 絳袍者爲魏鄭公 按宋敏求春 明退朝錄道家奏章圖天門守衛金甲人葛將軍掌旌周將軍掌節 今之門排似是葛周二將軍 而世俗乃以傳奇中唐文皇時事傅309)會之爾 서울과 지방의 조관(朝官)310)과 품직을 가진 명부(命婦)311)로서 나이가 70세 이 상 된 사람에게는 새해에 쌀과 물고기, 소금 등을 내리는 것이 관례다. 조관으로서 나이가 80세이거나 일반 선비나 평민으로서 나이가 90세가 되면 각각 한 자( 資)312)를 올려주고, 나이 100세가 되면 특별히 한 품계313)를 뛰어 올려준다. 이렇 게 매년 초에 가자(加資)를 신청한 노인들에게 직급을 올려주기 위해 이를 임금에 게 아뢰어 비답(批答)314)을 내리게 하는 것은 모두 노인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성대 한 의식이다. 307) 연대본에는 鋪, 광문회본에는 餔로 되어있다. 308) 세시잡기(歳時雜記) 의 원문은 學士院端午前一日撰皇帝皇后夫人閤門帖子送後苑用羅帛製造及期進入 이다. 309)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傳으로 되어있다. 310) 조관(朝官)은 조정에 출사(出仕)하는 관원을 말한다. 조신(朝臣)이라고도 한다. 311) 명부(命婦)는 궁중에서 일하는 여관(女官)인 내명부와 종친이나 문무관의 처로 작(爵)을 받은 외명부를 아울 러 일컫는 말이다. 312) 자(資)는 자급(資給)이라고도 하며 관원의 위계를 말한다. 정3품 이상의 품계를 올릴 때 가자(加資)라고 한 다. 313) 품계(品階)는 직품(職品)과 관계(官階)로 정1품에서 종9품까지 18계급이 있다. 314) 비답(批答)은 상소(上疏)에 대한 임금의 하답(下答), 즉 답변을 말한다. - 72 -
일반 백성들은 바람벽에 닭그림과 호랑이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친다. 내 생각에 는 후한시대 학자인 동훈(董勛)의 고 했다.315) 또 생각건대 문례(問禮) 에 세속에 초하룻날 닭을 그린다. 형초세시기 에 정월 초하루에 닭을 그려 창호 위에 붙 인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호랑이를 그리는 것은 인월(寅月), 즉 호랑이달이란 뜻을 취한 듯하다.316) 남녀 모두 나이가 삼재(三災)317)에 든 자는 매 세 마리를 그려 문 상방에 붙인다. 삼재법(三災法)이란 사(巳) 유(酉) 축(丑)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해(亥) 자(子) 축 (丑)이 되는 해에, 신(申) 자(子) 진(辰)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인(寅) 묘(卯) 진(辰) 이 되는 해에, 해(亥) 묘(卯) 미(未)가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사(巳) 오(午) 미(未)가 되는 해에, 인(寅) 오(午) 술(戌)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신(申) 유(酉) 술(戌)이 되는 해에 각각 삼재가 든다는 것이다. 세속에서는 이 복설(卜說)318)을 믿고 매 그림을 사용하여 액을 예방한다. 태어난 해로부터 9년 만에 삼재가 들기 때문에 이 삼재의 해에 해당하는 3년 안에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삼가고 꺼리는 일도 많다. 친구나 젊은이를 만나면 올해는 꼭 급제하시오., 관직에 나아가시오., 득남하 시오., 돈 많이 버시오. 등의 말을 덕담(德談)으로 건네며 서로 축하한다. 꼭두새벽에 거리로 나가 어떤 방향에서 들려오든지 상관없이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의 운세를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 북경 풍속 중에 섣달 그믐밤에 부엌 조왕신 앞에서 방향을 일러달라고 빈 다음 거울을 품에 넣고 문밖으로 나아가 거리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고는 새해의 운세를 점친다고 하 는데, 우리나라 풍속도 그와 같은 것이다. 오행점(五行占)을 던져 새해의 신수를 점쳐 본다. 오행에는 각기 점사(占辭), 즉 점괘가 있다. 나무에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각각 새겨 장기알 같이 만 든다. 그것들을 일시에 던져 자빠지고 엎어진 상태를 보고 점괘를 얻는다. 남녀 모두 일년 동안 머리를 빗으면서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접 안에 넣어 두 었다가 반드시 설날 해질 무렵을 기다려 문밖에서 태우는데 이는 전염병을 물리치 는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의약에 정통했던 당나라 사람 손사 막(孫思邈)319)이 쓴 천금방(千金方) 에 정월 인일(寅日)320)에 백발을 태우면 길하 315) 동훈(董勛)은 중국 후한시대 사람이다. 문례(問禮) 란 한위유서초소록문예속(漢魏遺書鈔所錄問禮俗) 이란 책의 약칭이다. 이 책에 나오는 그가 한 말 중에 설날 도소주(屠蘇酒)를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시게 하는 이 유에 대해서 어린 자는 나이 먹는 일이 축하할 일이지만 늙은 자는 세월을 잃었으므로 벌을 주는 의미라고 하였고, 설 다음날부터 서로 불러 음식을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을 전좌(傳座)라고 하였다. 316) 각 달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계절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맹춘(孟春), 중춘(仲春), 계춘(季春), 맹하(孟夏), 중하(仲夏), 계하(季夏), 맹추(孟秋), 중추(仲秋), 계추(季 秋), 맹동(孟冬), 중동(仲冬), 계동(季冬) 등으로 부른다. 12간지의 동물을 붙인 이칭(異稱)도 있는데, 동지가 들어있는 11월부터 다음해 10월까지 각각 쥐달[子月], 소달[丑月], 호랑이달[寅月], 토끼달[卯月], 용달[辰 月], 뱀달[巳月], 말달[午月], 양달[未月], 잔나비달[申月], 닭달[酉月], 개달[戌月], 돼지달[亥月]로 부른다. 그 밖에도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는 달의 별칭이 있는데, 1월은 원월(元月), 동지가 들어있는 11월은 지월(至 月), 12월은 납월(臘月) 등이 그 예다. 317) 삼재(三災)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말한다. 318) 복설(卜說)은 미래의 운세나 길흉을 알기 위해 치는 점에 관한 설명체계를 말한다. - 73 -
다. 고 하였는데, 설날에 머리카락을 태우는 풍속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속설에 야광(夜光)이란 이름을 가진 귀신이 이 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두루 아이 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으면 곧바로 신고 가버린다고 하며, 그렇게 되 면 신발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신발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루 벽에 달아놓거나 섬돌 사이에 걸어두면 야광이란 귀신이 와도 체의 구멍 수를 세다가 다 세지도 못하고 신발을 신을 생각 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그만 가버린다고 한다. 야광이란 어떤 귀신인지 모르겠 으나 혹 약왕(藥王)321)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교에서 의약을 맡고 있는 부처인 약왕의 형상이 아이들을 두렵게 할 정도로 추하여 이러한 속설이 생긴 것 같다. 중들이 북을 치며 시가를 돌아다니는 것을 법고(法鼓)라고 한다. 혹은 시주(施主) 내용을 적어놓는 모연문(募緣文)을 펴놓고 바라를 치며 염불을 하면 사람들은 다투 어 돈을 던진다. 또는 속세의 떡 두 개를 중의 떡 한 개와 바꾸는데, 풍속에 중 떡 을 얻어 이를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마마, 즉 두종(痘腫)을 잘 넘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정에서 중들을 도성(都城)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성 밖에 서나 이런 풍속이 남아있다. 모든 절간의 상좌 중들이 도성 안 오부(五部)322)로부터 재(齋)에 올릴 쌀을 빌어 가는데, 새벽부터 바랑을 메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문 앞 에서 소리를 지르면 인가에서는 각기 새해에 복을 맞이하는 뜻으로 쌀을 퍼준다. 경상도 경주(慶州) 지방 풍속에 이 날은 서로 경축하며 일월신(日月神)에게 절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제주도 풍속에 산 숲 냇물 못 언덕 분묘 나무 돌 등이 있는 곳에 신사(神祀)를 차려 놓고 매년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무당과 박수가 신장 깃발을 들고 나와 나례굿 [儺戱]을 행하는데, 징과 북을 울리면서 앞을 인도하여 마을 거리를 드나들면 사람 들이 다투어 재물과 곡식을 내놓으며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이것을 화반(花盤)이라 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京外朝官命婦年七十以上 歲首賜米魚鹽以爲例 朝官年八十士庶年九十各加一資 年百 歲特超一品階 每歲首以應資老人授資入政稟下批 皆優老尊年之盛典也 閭巷壁上貼鷄虎 畵以禳之 按董勛問禮俗一日爲鷄 又按荊楚歲時記正月一日畵雞帖戶323) 今俗昉此 畵虎 似取寅月之義也 男女年値三災者畵三鷹貼于門楣 三災法巳酉丑生亥子丑年 申子辰生寅 卯辰年 亥卯未生巳午未年 寅午戌生申酉戌年 俗信卜說用此以禳之 生年隔九而入三災 319) 손사막은 중국 당나라 화원(華原) 사람으로 백가(百家)의 설에 통했으며 특히 의약에 정통했다.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100여 세를 살았다. 천금요방(千金要方), 복록론(福祿論), 섭생진록(攝生眞籙), 은해정미 (銀海精微) 등의 저술이 있다. 320) 인일은 범날이라고도 하며 갑인일(甲寅日), 병인일(丙寅日), 무인일(戊寅日) 등과 같이 일진의 지지(地支)가 인(寅)으로 된 날이다. 321) 약왕이란 약왕보살(藥王菩薩)로 중생들에게 좋은 약을 시여(施與)하여 심신의 병고를 고쳐주는 보살이다. 322) 오부는 중부, 동부, 서부, 남부, 북부의 5개 부를 말한다. 323)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의 원문은 帖畵雞 或斲鏤五采及土雞於戶上 이다. - 74 -
三年之內不干人物多愼忌之事 逢親舊年少以登科進官生男獲財等語爲德談以相賀 曉頭 出街巷間無定向以初聞之聲卜一年休咎謂之聽讖 按燕京俗除夕禱竈前請方向 抱鏡出門 聽市語以卜來年休咎 東俗亦然 擲五行占以卜新年身數 五行各有占辭 木刻金木水火土 如碁子 一時擲之 觀其俯仰而得占 男女一年梳頭貯退髮留梳函中 必待元日黃昏燒於門 外以辟瘟 按孫思邈千金方正月寅日 燒白髮吉 元日燒髮昉於是 俗說鬼名夜光是夜降于 人家徧穿兒鞋 足樣合則輒穿去鞋主不吉 故羣兒畏之 皆藏鞋滅燈而宿 懸篩於廳壁 或階 庭間 謂以夜光神數篩孔不盡仍忘穿鞋 鷄鳴乃去 夜光未知何鬼而或藥王之音轉也 王像醜可令怖兒耳 僧徒負鼓入街市擂動謂之法鼓 或展募緣文叩鈸念佛 人爭擲錢 又用 一餠換俗二餠 俗得僧餠飼小兒以爲善痘 藥 朝禁僧尼不得入都門 故城外有此風 諸寺上佐 乞齋米於五部內 自曉荷帒巡行沿門唱聲人家各出米給之 盖新年徼福之意也 慶州俗是日 相慶拜日月神 見輿地勝覽324) 濟州俗凡於山藪川池邱陵墳衍木石俱設神祀 至上元巫覡擎神纛作儺戱 錚鼓前導出入閭里 每自元日 民人爭捐財穀325)以賽神名曰花盤 見輿地 勝覽326) 입춘(立春) 이날 대궐 안에 춘첩자(春帖子)를 붙인다. 재상집, 양반집, 일반 민가 및 시전에서 도 모두 춘련(春聯)327)을 붙이고 한 해 일이 잘되기를 기원한다. 이것을 춘축(春祝) 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에 입춘날에는 宜春 328)이란 두 자를 문에다 붙인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춘련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상 감(觀象監)329)에서 주사(朱砂)330)로 재앙을 쫓는 벽사문(辟邪文)을 찍어 대궐에 바 치면 그것을 문 상방에 붙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갑작(甲作)은 흉직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胇胃)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雄 伯)은 도깨비를 잡아먹고, 등간(騰簡)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저(攬諸)는 허물을 잡아먹고, 백기(伯寄)는 환상을 잡아먹고, 강량(强梁)과 조명(祖明)은 둘이 함께 책사(磔死)331)에 기생하는 귀신을 잡아먹고, 위수(委隨)는 관(觀)을 잡아먹고, 착단(錯斷)은 거(巨)를 잡아먹고, 궁기(窮奇)와 등근(騰根)은 둘이 함께 벌레를 잡아 32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풍속조(風俗條) 325)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錢으로 되어있다. 32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풍속조(風俗條) 327) 춘련이란 입춘 날에 집 기둥이나 바람벽에 붙이는 시구(詩句)를 말한다. 328) 의춘(宜春)이란 풍우가 고른 봄이라는 뜻이다. 유사한 말로 적춘(適春)이 있다. 329) 관상감은 조선시대에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曆數), 점산(占算), 측후(測候), 각루(刻漏) 등에 관한 사 무를 받아 보던 기관이다. 330) 주사는 모래로 갠 붉은 물감이다. 331) 책사란 죄인을 찢어 죽이는 참형(斬刑)으로 시체는 시정 거리에 버린다. - 75 -
먹는다. 무릇 이 열 두 신을 시켜 흉악한 것들을 내쫓기 위해 네놈들을 위협하여 몸뚱이를 잡아다가 허리뼈를 부러뜨리고 네놈들의 살을 찢고 내장을 뽑으려 한다. 네놈들 중 빨리 서두르지 않고 뒤에 가는 놈들은 열 두 귀신의 밥이 될 테니 율령 을 시행하듯 빨리 나가도록 하라. 이것은 즉 속한서(續漢書) 332) 예의지(禮儀志) 에 있는 내용으로 납일(臘日)333) 전날 대나(大儺)334) 행사 때 역질 귀신을 쫓는 장면에서 진자(侲子), 즉 초라니가 화답하며 부르던 가사다. 초라니란 나이가 열 살에서 열두 살 정도 먹은 남녀 아이 들로서 행사 때 선발되어 악귀 쫓는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 가사를 입춘날 부적으 로 만들고 단오날에도 이것을 붙인다. 정조 임금 때에는 은중경(恩重經) 의 진언 (眞言)을 인쇄하고 반포하여 문 상방에 붙여 액을 물리치도록 했는데 그 진언의 내 용은 다음과 같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 曩謨 三滿多 沒駄喃 喃 言我 言我曩 娑口 縛訶 또 이것으로 단오 부적도 만든다. 문에 붙이는 첩자에는 神荼 鬱壘 라고 네 글 자를 쓴다. 옛 풍속에 설날에 복숭아를 그린 부적[桃符]에다 동해 복판의 도삭산(度 朔山)에서 못 귀신을 다스린다는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두 귀신의 화상을 넣어 문간에다 붙여 흉귀를 막았다. 이 제도는 중국 황제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춘체[春帖]로 사용한다. 또한 연귀(聯句)로 쓰는 것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댓귀어(對 句語)가 있다. o 문신호령 가금불상 (門神戶靈 呵噤不祥 : 집에 깃든 신령이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 o 국태민안 가급인족 (國泰民安 家給人足 :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니 집집마다 넉넉하다.) o 우순풍조 시화연풍 (雨順風調 時和歲豊 : 비바람이 순조로워 시절이 평화롭고 풍년이 오라) 332) 속한서(續漢書) 는 사마표(司馬彪)가 편찬한 것이다. 사마표의 자는 소통(紹統)이며 진(晉)나라 종실(宗室)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전체로 광무(光武)에서 헌제(獻帝)까지 200년간 12세를 80권으로 엮어 속한서 를 편찬하였다. 후에 망실된 것을 후한서(後漢書) 로 복원되면서 십지(十志) 는 팔지(八志) 만 남았다. 그중 두 번째가 예의지 다. 333) 납일(臘日)이란 납향(臘享)하는 날이다. 원래는 동지 후 셋째 술일(戌日)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후에는 셋째 미일(未日)로 정하였다. 334) 대나(大儺)는 고려ㆍ조선조 때 섣달 그믐날 전날 밤에 악귀를 쫓는 뜻으로 궁중에서 베푸는 의식으로 관상 감(觀象監)이 주관한다. 창수(倡首) 1인ㆍ방상시(方相氏) 4인ㆍ지군(持軍) 5인ㆍ판관(判官) 5인ㆍ초라니 2인ㆍ 조왕신(竈王神) 4인ㆍ십이신(十二神) 12인ㆍ악공(樂工) 10여 인 등 40여 명이 궁중 뜰에 서면 창수가 주문을 외면서 십이신을 쫓아내고 초라니는 머리를 짓찧으면서 복죄(伏罪)하며, 여러 사람은 소리 소리쳐서 악귀를 각 방위에 따라 사문(四門) 밖으로 몰아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 76 -
일반 사람들의 집 기둥이나 문 상방에 붙이는 대련(對聯)으로는 다음과 같은 문 귀가 두루 사용된다. o 수여산 부여해 (壽如山 富如海 : 수명은 산 같이 재물은 바다 같이 되라.) o 거천재 래백복 (去千灾 來百福 :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o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 입춘에 대길하고 계절따라 다경하라.) o 요지일월 순지건곤 (堯之日月 舜之乾坤 : 요 임금 세월이고 순 임금 세상이어 라.) o 애군희도태 우국원년풍 (愛君希道泰 憂國願年豊 : 임금을 섬겨 큰 정치 희망하 고 나라를 염려하며 풍년을 기원한다.) o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만대 번영하라.) o 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 천하는 태평한 봄이고 사방에 아무 일 없다.) o 국유풍운경 가무계옥수 (國有風雲慶 家無桂玉愁 : 나라에 풍운의 경사 있고 집 안에 땔거리 먹거리 걱정 없으라.335)) o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灾從春雪消 福逐夏雲興 :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복 은 여름구름처럼 일어나라.) o 북당훤초록 남극수성명 (北堂萱草綠 南極壽星明 : 어머님 근력 푸른 풀처럼 좋 으시고 아버님 오래오래 사시라.) o 천상삼양근 인간오복래 (天上三陽近 人間五福來 : 하늘은 정월 봄이 되었으니 인간세계에 오복이 온다.) o 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 (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灾 : 닭 울음소리에 새해 덕이 들 어오고 개 짖는 소리에 묵은해 재앙이 나간다.) o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 을 열면 만복이 온다.) o 봉명남산월 인유북악풍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 : 봉황은 남산 달 아래서 울고 기린은 북악산 바람을 따라 노닌다.) o 문영춘하추동복 호납동서남북재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 대문으로는 사계절의 복을 맞이하고 방문으로는 사방의 재물을 받아들인다.) o 육오배헌남산수 구룡재수사해진 (六鰲拜獻南山壽 九龍載輸四海珍 : 여섯 마리의 자라는 만수를 바치고 아홉 마리 용은 사해의 재물을 실어 온다.) o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滿家 : 세월이 감에 인간 수명이 더 해지고 봄이 천지에 가득함에 집안에 복이 가득하다.) 방문 상방에는 다음과 같은 단귀의 첩[單貼]을 붙인다. 335) 계옥(桂玉)은 계수나무보다 비싼 장작과 옥보다 귀한 밥이라는 뜻으로, 생활고를 비유한 말이다. - 77 -
o 춘도문전증부귀 (春到門前增富貴 : 봄이 문앞에 오니 부귀가 늘어난다.) o 춘광선도길인가 (春光先到吉人家 : 봄빛은 길한 사람 집에 먼저 온다.) o 상유호조상화명 (上有好鳥相和鳴 :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o 일춘화기만문미 (一春和氣滿門楣 : 봄날의 화기가 문 위에 가득하다.) o 일진고명만제도 (一振高名滿帝都 : 이름을 높이 날려 장안에 가득하라.) 사대부 집에서는 대부분 새로 글을 짓거나 혹은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을 따서 사용한다. 경기도 산골지방 여섯 고을336)에서는 움파[蔥芽] 산겨자[山芥] 승검초[辛甘菜]등 을 임금에게 진상한다. 산겨자는 이른 봄에 눈이 녹을 무렵 산 속에서 자생하는 겨 자다. 더운물에 데쳐 초장에 무쳐 먹으면 맛이 매우 맵기 때문에 고기를 먹은 뒤에 먹어야 좋다. 승검초는 움집에서 키운 당귀(當歸)의 싹인데 은비녀가락같이 맑으며 꿀을 그 사이에 끼워 먹으면 맛이 매우 좋다. 내 생각에는 척유(摭遺) 337)에 동 진(東晋) 사람 이악(李鄂)이 입춘날에 무와 미나리 싹으로 채반(菜盤)을 만들게 하 여 선물로 서로 주고받았다. 고 하였고, 또 척언(摭言) 338)에 송나라 사람 안정군 왕(安定郡王)이 입춘날에 다섯 가지 매운 음식으로 채반을 차렸다. 고 하였고339), 또 두보(杜甫)의 시에 봄날 봄채반에 가는 생나물이라. 고 하였으며340), 소동파(蘇 東坡)의 시에도 퍼런 쑥과 누런 부추가 올라 온 봄채반을 먹어보자. 341)고 한 것 을 보면, 이것들은 모두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속인 것이다. 관북지방342) 풍속에 이 날이 되면 나무소[木牛]를 만들어 관가에서부터 민가 마 을에 이르기까지 두루 길에다 내놓는다. 대개 이것은 토우(土牛)를 만들어 내보내는 제도를 본뜬 것으로,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다. 大內貼春帖子 卿士庶民家及市廛皆貼春聯頌禱 名曰春祝 按荊楚歲時記立春日貼宜春 336) 여기서 여섯 고을이란 산이 많은 동북부 지역의 포천(抱川), 연천(漣川), 적성(積城), 양근(楊根), 삭령(朔寧), 마전(麻田) 등지를 말한다. 337) 척유(摭遺) 는 18권으로 되어 있으며, 6책으로 이루어진 남강역사(南疆繹史) 에 있다. 중국 청나라 이요 (李瑤)가 편찬하였다. 이요의 자는 임익(臨翼) 호는 신원(哂園)이며 절강 사람이다. 척유 는 모두 열전(列傳) 으로 왕실부터 간신까지 18 목(目)으로 구성하였다. 338) 척언(摭言) 은 중국 오대 시기 사람인 왕정보(王定保)가 지은 책으로 원래 명칭은 당척언(唐摭言)이다. 339) 다섯 가지 매운 음식이란 자극성 있는 다섯 가지 채소류, 즉 오훈채(五葷菜)로 파(蔥), 달래(小蒜, 茖蔥), 마 늘(大蒜), 염교(薤), 무릇(興渠) 등을 말한다. 도가에서는 부추, 염교, 마늘, 운대, 고수풀 등을 든다. 340) 두보의 입춘(立春) 시다. 두공부시집(杜工部詩集) 권13에 있다. 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梅發時 盤出髙 門行白玉 菜傳纎手送青絲 巫峽寒江那對眼 杜陵逺客不勝悲 此身未知歸定處 呼兒覔紙一題詩. 341) 소식(蘇軾, 1036~1101)은 중국 송나라 때 시인으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동파(東坡)는 그의 호다. 시 제목은 송범덕유(送范徳孺) 로 동파전집(東坡全集) 권29에 있다. 漸覺東風料峭寒 青蒿黄韭試春盤 遙想 慶州千嶂裏 暮雲衰草雪漫漫. 342) 관북지방은 마천령(摩天嶺) 북쪽에 있는 지방으로 함경남 북도를 총칭하는 말이다. - 78 -
二343)字于門 今之春聯昉此 胃食虎 雄伯食魅 觀象監朱砂搨辟邪文進于大內貼門楣 其文曰甲作食歹匈 胇 騰簡344)食不祥 攬諸食咎 伯寄食夢 强梁祖345)明共食磔346)死寄生 委隨食觀 錯斷食巨 窮奇騰根共食蟲 凡使十二神追惡凶 嚇汝軀 拉汝幹節 解汝肌肉 抽 汝肺腸 汝不急去後者爲糧 急急如律令 此卽續漢書禮樂志先臘一日大儺逐疫侲子所和之 詞而今作立春符端午日亦貼之 健陵印頒恩重經眞言貼楣禳之 其文曰 曩謨 三滿多 沒駄 喃 唵誐誐曩 娑嚩訶 亦作端午符門帖有神荼347)鬱壘四字 古俗元日桃符畵神荼鬱壘像置 之門戶以禦凶鬼 其制自黃帝始 今用於春帖 又有門神戶靈 呵噤不祥 國泰民安 家給人 足 雨順風調 時和歲豊 等對語 閭巷柱楣通用對聯 壽如山 富如海 去千灾 來百福 立春 大吉 建陽多慶 堯之日月 舜之乾坤 愛君希道泰 憂國願年豊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國有風雲慶 家無桂玉愁 灾從春雪消 福逐夏雲興 北堂萱草綠 南極壽星明 天上三陽近 人間五福來 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灾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六鰲拜獻南山壽 九龍載輸四 海珍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滿家 戶楣單貼 春到門前增富貴 春光先到吉人家 上 有好鳥相和鳴 一春和氣滿門楣 一振高名滿帝都 士夫多用新製或揀古人佳語 畿峽六邑 進蔥芽山芥辛甘菜 山芥者初春雪消時山中自生之芥也 熱水淹之調醋醬味極辛烈 宜於食 肉之餘 辛甘菜者窨養當歸芽也 淨如銀釵股夾蜂蜜噉之甚佳 按摭遺東晋李鄂立春日命以 蘆菔芹芽爲菜盤相饋貺 又按摭言安定郡王立春日作五辛盤 又按杜詩春日春盤細生菜 東 坡詩靑蒿黃韭試春盤 盖遺俗也 關北俗是日作木牛 自官府達于閭里遍出于路 盖倣出土 牛之制而所以示勸農祈年之意也 인일(人日) 정월 초이렛날인 인일에 임금은 각신(閣臣)들에게 동인승(銅人勝)을 나누어 준다. 이것은 작고 둥근 거울 같은 것으로 자루가 달려있고 신선을 새겨 넣었다. 내 생각 에는 세시기 348)에 수나라 유진(劉臻)349)의 아내 진(陳)씨가 인일에 인승을 올리 는데 혹은 비단을 끊어 만든 것도 있고 혹은 금박을 새겨 만든 것도 있다. 고 하였 는데, 우리나라 인승도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343) 연대본에는 二가 빠져있다. 344) 연대본에는 簡이 間으로 되어있다. 345) 연대본에는 祖가 粗로 되어있다. 346) 연대본에는 磔이 桀로 되어있다. 347) 연대본, 광문회본에 신다(神茶)로 표기되어 있으나 잘못된 표기이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에 繪二神貼 户左右 左神荼 右鬱壘 俗謂之門神 라고 하여 신도(神荼)라 하였다. 348) 여기서 세시기 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를 말한다. 그러나 7일에 인승을 올린다(七日上人勝于人). 는 글은 유진의 처 진씨의 진견의 (進見儀)에 나오고, 혹은 비단을 오려 만든 것도 있고 혹은 금박을 새겨 만 든 것도 있다(或剪綵或鏤金箔爲之). 는 글은 동훈의 문예속(問禮俗) 에 나온다. 349) 유진(劉臻)은 중국 수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선지(宣摯)다. 그의 처 진씨는 총명하고 문장이 뛰어나 정월 초하루와 동지에 진견의 를 지었는데, 이것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 79 -
임금은 제학(提學)들에게 명하여 과거를 실시하게 하는데 이를 인일제시(人日製 試) 라고 한다. 성균관에서는 유생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식당에 갈 때마다 원점(圓 點) 1점을 찍어주는데, 30일을 꼬박 원점을 받으면 비로소 과거를 보게 한다. 시험 과목으로는 시(詩) 부(賦) 표(表) 책(策) 잠(箴) 명(銘) 송(頌) 율(律) 부(賦) 배율(排律) 등 각 문체별로 마음대로 제목을 선택하게 하여 시험을 보이고 그것을 심사하여 장원 을 한 자에게는 과거에 정식으로 급제한 사람과 똑같은 자격을 내리고 그밖에 시험 을 잘 본 자에게도 초시(初試) 합격자격을 주거나 상을 내리는 등 차등을 두었다. 시험은 성균관에서 시행하는데 혹 대궐 안에서 임금이 친히 임한 가운데 보이기도 하며 또 혹 지방 유생들도 칠 수 있게 자격을 개방하기도 한다. 명절날 선비들을 시험을 치게 하는 것은 인일로부터 시작하여 3월 삼짇날, 7월 칠석, 9월 중양절에 행하는데 모두 인일제시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이런 것들을 절제(節製)라고 한다. 頒銅人勝于閣臣如小圓鏡有柄鏤仙人 按歲時記隋劉臻妻陳氏人日上人勝 或剪綵或鏤金 薄爲之 人勝倣此 命招提學設科曰人日製試 太學圓點儒生參食堂滿三十日爲圓點始許赴 試 以詩賦表策箴銘頌律賦排律等各體隨意命題考取 居魁者或賜第發解施賞有差 設行於 泮宮 或親試於闕內 又或通方外儒生 節日試士自人日始三日七夕九日皆倣此曰節製 상해일 상자일(上亥上子日) 정월의 첫 번째 해(亥) 자가 들어가는 날은 돼지날이라고 하고 첫 번째 자(子) 자 가 들어가는 날은 쥐날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의 오랜 행사로서 궁중에서 낮은 지위 의 젊은 관리들 수백 명이 잇달아 횃불을 땅에 끌면서 돼지 그슬리자, 쥐를 그슬 리자. 하고 외치며 돌아다녔다. 임금은 태운 곡식을 주머니에 넣어 이것을 재상들 과 근시들에게 나누어 주며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표시하였는데, 이 이후로 돼지주 머니(亥囊)나 쥐주머니(子囊)라는 말이 생겼다. 이 주머니들은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돼지주머니는 둥글었고 쥐주머니는 길었다. 정조 임금이 등극하자 이 옛날 제도를 복구하여 주머니를 하사하였다. 쥐날에 여항에서는 또한 콩을 볶으면서 주문을 외 는데 쥐주둥이 지진다. 쥐주둥이 지진다. 고 주문 외우듯이 한다. 호서지방 풍속에 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횃불을 사르는데 이를 쥐태우는 불[燻鼠火]이라고 한다. 돼 지날에 콩가루로 얼굴을 씻으면 얼굴색이 희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돼지 빛깔이 검기 때문에 그 반대의 뜻을 취한 것이다. 上亥爲豕日上子爲鼠日 國朝故事宮中小䆠數百聯炬曳地呼爋豕爋鼠 燒穀種盛于囊頒賜 宰執近侍以眎祈年之意 始有亥囊子囊之稱 用錦製亥囊圓子囊長 及健陵御極復古制頒囊 上子日 閭巷亦炒豆呪云鼠嘴焦鼠嘴焦 湖西俗燃炬成羣謂之燻鼠火 上亥日作豆屑澡面黑 者漸白 豕色黑 故反取其義也 묘일 사일(卯日巳日) - 80 -
묘일을 토끼날이라고 한다. 이 날 뽑은 무명실을 토사(兎絲)라고 하며 이 실을 차 고 다니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 날에는 외부사람과 나무로 만든 물건 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여자가 집에 먼저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사일에 이발하지 않는 것은 뱀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卯日爲兎日 繅綿絲謂之兎絲 佩而禳灾 不納人口木物忌女先入 巳日不理髮忌蛇入宅 보름날(上元) 이 날은 찰밥을 짓는데, 대추 밤 기름 꿀 간장 등을 섞어 다시 쪄서 잣과 버무린 것 을 약밥[藥飯]이라고 하여 보름날의 좋은 음식으로 여기며 이것으로 제사를 지낸 다. 대개 이것은 신라의 풍속이다. 내 생각에는 신라 때 서울인 경주의 지리와 풍속 을 적은 책 동경잡기(東京雜記) 350)에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천 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 왕을 일깨워주어 그 덕에 왕이 화를 면 하게 된 일이 있었으므로 우리나라 풍속에 보름날을 까마귀 제사날로 삼아 찰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제사지냄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지금 풍속에 찰밥이 시절음식으로 된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보름 하루 전날에 짚을 군대깃발인 둑기[纛旗] 모양으로 묶고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를 그 장대 끝에 매달아 집 곁에 세우고 새끼를 사방으로 벌려 고정시킨다. 이것을 벼 낟가리[禾積]라고 하며 이것으로 풍 년을 기원한다. 산골 풍속에는 가지가 많은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우고 곡식 이삭 과 목화를 걸어두면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해가 뜰 때까지 나무 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풍년을 기원한다. 조선시대 옛 행사 중에는 風) 칠월(七月)351)에 시경(詩經) 빈풍(豳 나오는 내용인 경작하고 수확하는 형상을 본 따 정월 보름날 대궐 안에서 좌우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었다. 이것도 아마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항간에 볏가릿대[禾竿]를 세우는 일도 바로 이와 같은 행사의 일종인 것이다. 남녀의 나이가 사람의 운수를 맡고 있다는 나후직성(羅睺直星)352)을 만나면 풀로 만든 허수아비인 추령(芻靈)을 만든다. 이것을 방언으로 제웅[處容]이라고 한다. 제 웅의 머리통에 동전을 집어넣고 보름날 하루 전, 즉 14일 초저녁에 길에다 버려 액 막이를 한다. 이때 아이들은 두루 집집마다 몰려다니면서 문밖에서 제웅을 달라고 350) 동경잡기 는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의 지지(地誌)다. 작자미상으로 전해오던 동경지(東京誌) 를 1669년 민주면(閔周冕) 등이 향중인사와 함께 편집, 보완하여 동경잡기(東京雜記) 라고 개칭, 간행하였다. 이후 1711 년 첨보(添補)하여 재간하였다. 351) 시경 빈풍 은 8권에 있으며 7월편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시(天時)를 따라 민사(民事)가 주어진 다는 내용이다. 352) 나후직성(羅睺直星)이란 제웅직성이라고도 하며 나이에 따라 그 해의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직성, 즉 일요 (日曜), 월요(月曜), 화요(火曜), 수요(水曜), 목요(木曜), 금요(金曜), 토요(土曜), 나후(羅睺), 계도(計都)의 구요 (九曜) 중 하나다. 이중 나후와 계도의 운행이 다른 것들과 역행하여 교차의 정도가 심하면 일식이나 월식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각기 1주에 18년이 걸리며 개인에게는 9년마다 한 번 씩 이 직성에 걸리는 데 남자는 10세 때, 여자는 11세 때 처음 든다고 한다. - 81 -
외치고 그것을 얻게 되면 즉시 머리통을 파헤쳐 다투어 돈을 꺼낸 다음 제웅을 길 바닥에 끌고 다니면서 두들기는데, 이것을 제웅치기놀이[打芻戱]라고 한다. 처용이 란 말은 신라 헌강왕 때 동해 바다 용왕의 아들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장악 원(掌樂院)의 향악부(鄕樂部)에서 하는 처용무(處容舞)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추령을 제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처용이란 말에서 빌은 듯하다. 세속에서는 점쟁 이 말을 믿어 나이가 일월직성(日月直星)을 만난 사람은 종이로 해와 달 모양을 만 들어 나무막대기에 끼워 지붕 용마루에 꽂아 두었다가 달이 뜰 때 횃불을 밝혀 그 것을 맞이한다. 나이가 수직성(水直星)을 만난 사람은 종이에 밥을 싸서 밤중에 우 물 속에 던져 액막이를 한다. 세속에서는 처용직성을 가장 꺼린다. 남녀 어린이들은 겨울부터 작은 나무 조롱박 세 개를 차고 다닌다. 그 빛깔은 푸 른 색 붉은 색 누런 색 등으로 모양은 마치 콩알 같은데, 이것에다 비단실로 수를 달 아 차고 다니다가 보름 전날 밤중에 몰래 길에다 버린다. 이것 역시 액막이가 된다 고 한다. 정월 보름 전에 붉은 팥죽을 쑤어 먹는다. 내 생각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에 마을 풍속에 정월 보름날 문에 제사를 지내는데 먼저 버들가지를 문에 꽂은 후 팥죽에 숟가락을 꽂아 놓고 제사지낸다."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 팥죽을 차리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울 도성의 북문을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는데 문은 항상 닫아두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곳은 물과 계곡이 무척 맑고 그윽하여 보름 전에 여염집 부녀들이 이곳 에서 세 번 놀고 가면 액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꼭두새벽에 종각 네거리에서 흙을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뿌려 묻거나 부뚜막에 바르는데, 부자 되기를 구하는 것이다.353) 炊糯米拌棗栗油蜜醬再354)蒸調海松子名曰藥飯 爲上元佳饌用以供祀 盖新羅舊俗也 按 東京雜記新羅炤智王十年正月十五日 幸天泉亭有飛烏警告于王 國俗以上元日爲烏忌之 日 作糯飯祭烏報賽 今俗因爲時食 鄕里人家以上元前日 束藁如纛狀包禾黍稷粟之穗 又 懸木綿花冒於長竿之首建屋傍張索把定 稱禾積以祈豊 峽俗立多枝木於牛宮之後 掛穀穗 綿花 小兒曉起繞樹而行歌以祝之至日出 國朝故事正月望日大內象豳風七月耕穫狀分左 右各勝 盖亦祈年之意 而閭巷禾竿卽其一事爾 男女年値羅睺直星者造芻靈 方言謂之處 容 齎銅錢於顱中 上元前夜初昏棄于塗以消厄 羣童遍向門外呼出處容 得便破顱爭錢徇 路以打擊之 謂之打芻戱 處容之稱出於新羅憲康王時東海龍子之名 今掌樂院鄕樂部有處 容舞是也 以芻靈謂處容盖假此也 俗信卜說年値日月直星者 剪紙象日月鉗以木揷屋脊 月出時或燃炬迎之 水直星者 以紙囊飯夜半投井中禳之 俗最忌處容直星 男女幼少者自 冬佩小木葫蘆靑紅黃三枚 如荳狀用綵絲爲綬 上元前夜半潛捐于道 亦謂消厄 望前煮赤 小豆粥食之 按荊楚歲時記州里風俗正月望日祭門 先以柳枝揷門仍以豆粥揷箸而祭之355) 353) 이것은 재력가들이 밟고 다니는 시전거리 흙을 옮겨옴으로써 재복도 함께 옮겨지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뜻 이 담겨있다. 354) 광문회본에는 再가 幷으로 되어있다. - 82 -
今俗設食似沿于此 都城北門曰肅淸 恒閉而不用 澗壑淸幽 上元前閭巷婦女三遊此門 謂 之度厄 曉頭掘取鍾閣十字街上土散埋家中四隅又傅竈以求財聚 보름날 이른 아침에 날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깨물면서, 일 년 열두 달 동안 아 무 탈 없이 평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축원한다. 이를 부럼 깨물기[嚼癤]라고 한다. 혹자는 이것이 이를 튼튼히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도 한다. 평안도 의주(義州) 지방 풍속에 어린 남녀들이 이른 아침에 엿을 깨무는데 이를 이 빨겨루기[齒較]라고 한다. 청주(淸酒)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는데 이 술을 귀밝이술[牖聾酒]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사람 섭정규(葉 廷珪)356)가 쓴 해록쇄사(海錄碎事) 에 사일(社日)357)에 귓병을 낫게 하는 치롱술 을 마신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는 이를 보름날이라 한다. 박 오이 버섯 등 각종 채소 말린 것과 콩, 호박 및 순무 등 각종 무를 저장해 둔 것을 묵은 나물[陳菜]이라고 하며, 이 날 반드시 이 나물들을 만들어 먹는다. 오이 꼭지 가지껍질 무잎 등도 모두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다가 삶아서 먹는데, 이렇게 하 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채소 잎이나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데 이것 을 복쌈[福裹]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에 인일(人日)에 일곱 가지 채소로 국을 끓인다. 고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 풍속에는 정월 보름날로 옮겨졌으며 또한 시경 패풍(邶風) 에 좋은 채소를 모아 저장하는 것은 겨울철 에 먹을 채소가 없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358) 라는 뜻과 통하는 것이다. 이 날 오곡밥을 지어먹고 또 서로 나누어 먹는다. 영남 지방의 풍속이 또한 이러 하다. 종일 이 오곡밥을 먹는데, 이는 제삿밥을 서로 나누어 먹던 옛 풍습을 답습한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람을 보면 갑자기 상대방을 불러보고 상대방이 대답을 하 면 곧 내 더위 사라. 고 하는데, 이것을 더위팔기[賣暑]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더 위를 팔면 그 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이것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서로 즐겁게 놀게 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사람 석호(石湖) 범성대(范成大)의 매치애(賣癡獃) 라는 시에 섣달 그믐날 밤이 늦도록 사람들이 자지 않고 나의 어리석고 못생긴 점 을 사가라고 남을 부른다. 고 하였고,359) 또 생각건대 육방옹(陸放翁)의 세수서사 355)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의 원문은 正月十五日作豆糜加油膏其上以祠門戶 按齊諧記曰正月半有神降陳氏之宅 云是蠶室 若能見祭當令蠶桑百倍 疑非其事 祭門備之七祠 今州里風俗 是一作望日祠門戶 其法先以楊枝插於左右 門上 隨楊枝所指 乃以酒脯飲食及豆粥餻糜插箸而祭之 이다. 356) 섭정규(葉廷珪)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사충(嗣忠)이다. 357) 사일(社日)은 입춘이 지난 뒤 다섯 번째 오는 무일(戊日)이다. 358) 이것은 시경(詩經) 권2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나오는 내용으로, 본문에는 御冬之旨畜 으로 나와 있 으나 원문은 我有旨畜 亦以御冬 이다. 359) 범성대(范成大)의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거사(石湖居士)다. 석호집(石湖集), 남비록(攬轡錄) 등의 저 서가 있다. 매치애사(賣癡獃詞) 는 더위를 팔 듯 멍청함을 사가라는 당시의 풍속을 읊은 시다. 매치애(賣癡 獃)란 너의 어리석음과 못생김을 팔아라(賣汝癡賣汝獃) 란 뜻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오(吳)나라에 못생긴 사 - 83 -
시(歲首書事詩) 에 정원에서 주사위 놀고 떠들며 새해맞이가 한창인데 춘곤(春困) 파는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난다. 고 하였는데, 그 시의 주석에 입춘날 새벽에 서 로 불러 춘곤을 판다. 고 한 것을 볼 때, 지금 풍속인 정월 보름날의 더위팔기도 이 런 종류인 것 같다. 봄이 올 때마다 봄을 타느라 얼굴빛이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미리 정월 보름날 남의 집 밥을 백 군데에서 빌어다가 절구를 타고 개와 마주앉아 개에게 한 술 먹이 고 자기도 한 술 번갈아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개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파리가 많이 끓어 야위 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속담에 우스갯소리로 굶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 고 한다. 과일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면 과일이 많이 열리는데 이것을 과일나무 시집보내기[嫁樹]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명나라 사람 서광계(徐光啓)360)가 쓴 정전서(農政全書) 本)은 361)에 종수서(種樹書) 오얏나무에만 이 방법을 쓴다고 하였고, 또한 유종본(兪宗 362) 종과(種果) 항목에 대한 세부 설명에서 오얏나무 시집 보내는 시기는 정월 초하루 또는 보름이라고 하였으며, 또 진호(陳淏)의 (花曆新栽) 363)에 농 화력신재 오얏나무를 시집보내는 방법으로 섣달 그믐날 오경(五更)에 장대 로 오얏나무 가지를 두들기면 결실이 많다고 하고, 또 석류나무를 시집보내는 방법 은 설날에 돌멩이를 갈라진 가지 사이에 얹어두면 열매가 크게 열리며 혹 섣달 그 믐날 밤에 해도 좋다고 하였는데,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는 섣달 그믐밤, 설날, 그리 고 정월 보름날 중 아무 때나 좋으며, 지금의 우리 풍속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들이 집안식구대로 生 身厄消滅 ( 은 성명, 은 干支, 즉 누구의 몸에 있는 액운이 소멸되라는 뜻)이라는 문귀를 연 등에 써서 연이 날아 가는 데까지 띄우다가 해질 무렵에 액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날라 가게 놓아버린다. 연을 만드는 방법은 대나무 살에 종이를 발라 마치 키 모양처럼 만든 다음 오색으로 칠하면 된다. 연 바탕에는 다양한 종류의 무늬를 넣는데 그 무 늬에 따라 바둑판 무늬를 넣은 기반연(棊斑鳶), 이마 부분에 검은 칠을 한 묵액연 (墨額鳶), 접시처럼 둥근 모양의 쟁반연(錚盤鳶), 방패 모양의 방혁연(方革鳶), 고양 이 눈을 그린 묘안연(猫眼鳶), 까치날개 모양의 작령연(鵲翎鳶), 물고기비늘 모양의 어린연(魚鱗鳶), 용꼬리 모양의 용미연(龍尾鳶) 등으로 연 이름을 붙인다. 또 얼레 람들이 많아 아이들이 이를 꺼려 팔려고 하였다고 한다. 360) 서광계(徐光啓)는 중국 명나라 때의 학자로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다. 마테오릿치로부터 천체에 관한 지식을 배웠으며 역법에 정통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1639년에 간행된 농정전서(農政全書) 가 있는데, 이 책에 실린 수리시설에 관한 지식은 조선 정조 때 화성 경영에 적용된 바 있다. 361) 농정전서 는 1639년에 간행된 서광계의 저서로 전 60권이다. 한나라 이후로 발달해 온 농가의 설을 총괄 하고 수력학과 지리학을 참조한 중국 최고의 농정서(農政書)다. 362) 유종본(兪宗本)은 당나라 사람으로 종수서(種樹書) 를 지었다. 그의 생몰년이나 출신지 등은 미상이다. 363) 화력신재(花曆新栽) 는 중국 청대에 주요 화훼식물을 소개한 책이다. 작자 진호(陳淏)는 절강(浙江) 항현 (杭縣) 사람으로 자호는 서호화은옹(西湖花隱翁)이다. 1612년에 태어났으며 70세가 넘은 나이에 책을 냈다. 화력신재 는 그의 전서(全書) 6권 중 1권으로 월별로 꽃의 종류를 소개하였다. - 84 -
[絲車]를 만들어 연줄을 붙들어 맨 다음 공중에 띄워 바람 부는 대로 날리며 노는 것을 연날리기[風錚]라고 한다. 중국에서 만드는 연의 모양은 기이하고 정교하다. 중국 사람들은 연날리기를 겨울에 시작하여 늦봄까지 즐긴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 부터 연날리기를 시작하지만 정월 보름까지만 한다. 연은 직접 만들지만 시장에서 사기도 한다. 고려 말에 최영(崔瑩) 장군이 탐라(제주도)를 정벌할 때 연을 이용하 여 사방이 절벽인 섬에 상륙했다는 전설이 있어 이때 연날리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계속 행하고 있다. 연줄을 만들 때는 실을 겹친 다음 아교를 먹여 흰말의 말총같이 말쑥하게 한다. 혹은 노랗게 치잣물을 들이기도 한다. 연이 정처 없이 이리저리 날다 보면 다른 연과 서로 교차하여 어느 한 쪽 연줄이 끊어지게 되 는데 남의 연줄을 많이 끊을수록 더 통쾌하게 여긴다. 바람을 타고 윙윙 소리를 내 는 연줄이 남의 연줄을 잘 끊는다. 심지어는 남의 연줄을 잘 끊을 수 있고 반대로 자기 것은 잘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금파리 가루나 구리 가루를 연줄에 바르 기도 한다. 그러나 연줄에다 교차시키는 방법이 능숙한 가에 따라 승부가 좌우된다. 서울의 젊은이들 중에는 연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자들이 있어 가끔 부잣집이나 지 체가 높은 집에서 이들을 초대하여 연 날리는 재주를 구경한다. 매년 정월 보름 한 이틀 동안은 수표교(手標橋)364) 개울 위 아래로 연싸움을 구경 온 사람들이 담을 쌓은 듯이 빽빽이 늘어선다.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끊어진 연줄을 쫓아 하늘만 쳐 다보고 물결처럼 분주히 달리다 보면 담장을 뛰어 넘고 지붕 위를 마구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세를 막을 수 없으며 이를 보고 겁을 내고 놀래는 사람들도 많 다. 보름날이 지나면 다시는 연을 날리지 않는다. 댓가지에 풀로 오색 종이를 붙이는데 종이 모양은 모가 지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 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여 일정하지 않다. 자루를 그 한 가운데에 꽂아 이를 아 이들이 들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거슬러서 달리면 종이가 돌아간다. 이것의 이 름을 바람개비[回回兒]라고 한다. 시장에서도 많이 판다. 아이들이 한 가닥 풋솜 실로 거위의 털을 붙들어 매어 바람에 날리는 것을 꼬꼬 매[姑姑妹]라고 한다. 이 말은 몽고어로 봉황이란 뜻이다. 연을 띄우다 남은 연줄에 돌멩이를 붙들어 매고 서로 걸어서 세게 잡아당기는 놀 이도 한다. 줄이 끊어지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땅을 파서 구멍을 만들어 놓고 어른이나 아이들이 편을 갈라 동전을 던져 그 구 멍을 맞힌 다음 그 중의 하나를 정하여 큰 동전을 던져 맞춘 사람이 돈을 갖고 이 긴다. 만일 잘못 맞추었거나 맞추지 못한 사람은 지는 것이다. 정월 보름날에 이 놀 이가 더욱 성하다. 아이들은 혹 사금파리를 동전으로 삼아 이와 같은 놀이를 한다. 淸晨嚼生栗胡桃銀杏皮栢子蔓菁根之屬祝曰 一年十二朔無事太平不生癰癤謂之嚼癤 或 云固齒之方 義州俗年少男女淸晨嚼飴糖謂之齒較 飮淸酒一盞不溫令人耳聰 謂之牖聾酒 按葉廷珪海錄碎事社日飮治聾酒 今俗於上元行之 畜匏瓜蔈蕈諸乾物及大豆黃卷蔓菁蘿 364) 수표교(手標橋)는 조선 세종 23년(1441)에 물의 깊이를 재는 수표(手標)가 서울 중심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개천의 마전교(馬廛橋) 서쪽(현재의 청계천 2가)에 세워진 후 수표와 관련하여 붙여진 돌로 만든 다 리 이름이다.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현 위치인 장충동 장충공원 입구로 옮겼다. - 85 -
葍謂之陳菜 必於是日作菜食之 凡瓜顱茄皮蔓菁葉皆不棄曬乾亦爲烹食謂之不病暑 以菜 葉海衣裹飯啗之謂之福裹 按荊楚歲時記人日採七種採作羹365) 今俗移於上元 而抑亦邶 風366)御冬之旨畜也 作五穀雜飯食之亦以相遺 嶺南俗亦然 終日食之盖襲社飯相饋之古 風也 早起見人猝然呼之有應者輒曰買吾暑謂之賣暑 賣之則謂無暑病 百計呼之故不應以 爲謔 按范石湖賣癡獃詞除夕更闌人不睡云有癡獃召人買367) 又按陸放翁詩呼盧院落譁新 歲買困兒童起五更註立春未明相呼賣春困 今俗上元賣暑卽此類也 小兒春病黧瘠者乞上 元百家飯 騎臼對犬而坐與犬一匙自噉一匙 不復病 是日不飼犬 飼之則多蠅而瘦故也 俗 戱餓者比之上元犬 果樹歧枝閣石子則果繁謂之嫁樹 按徐光啓農政全書惟李樹用此法 又 按兪宗本種果疏嫁李法正月一日或十五日 又按陳淏花曆新栽嫁李除夕日五更以長竿打李 樹椏則結實多 又云嫁石榴元朝以石塊安榴椏枝間則結實大 除夜亦可 盖嫁果之法除夜元 朝上元無不宜焉 今俗沿此 兒童列書家口某生身厄消滅字於紙鳶之背任其所飛日暮斷其 線而放之 鳶制竹骨糊紙徵368)似箕狀五色 或棊斑墨額錚盤方革猫眼鵲翎魚鱗龍尾名色特 繁 作絲車繫絲而運投之空中隨風戱之謂之風錚 中國則製樣奇巧自冬而始爲晩春之戱 東 俗亦自冬天市上賣之至于上元 諺傳昉自崔瑩伐耽羅之役國俗至今行之 合絲淬膠淨如白 馬尾或染梔黃 飛無定處縱橫掃盪與他相交以多割爲快 凌風而呌者最善割甚者傅以磁末 銅屑然在交法之能否 都下年少有以善交鳶噪名者豪貴家往往廷致觀之 每上元前一兩日 手標橋沿河上下觀交鳶者簇如堵墻 羣童候斷搶絲或追敗鳶睨空奔波踰垣越屋勢莫可遏 人多怖駭過上元不復飛鳶 糊貼五色紙於竹骨左右方圓大小制樣不一以柄中揷小兒弄之當 風而轉號曰回回兒 市多賣之 用獨繭絲繫鵞毳小兒順風而颺之號曰姑姑妹蒙古語鳳凰也 以放鳶之餘絲兒童繫石相對交絲牽369)引以爲戱被斷者負 穴地爲窩壯幼分隊擲錢以中窩 後擲王大錢中其賭中者收其錢以爲勝 誤中與不中者爲負 上元日此戱尤盛 小兒輩或用破 陶爲錢而擲之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달맞이[迎月]라고 하며 남보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재수가 있다고 한다. 나아가 달빛으로 한 해의 기후 상태를 예측하는데, 달빛이 붉으면 그 해에 가뭄이 들 징조이고 희면 비가 많이 올 징조라 고 한다. 또 달이 뜰 때의 모양, 크기, 출렁거림, 뜨는 위치의 높고 낮음 등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한다. 달의 윤곽과 네 방향의 두께를 보고 각각 그 방향에 해당하는 지방의 일년 농사를 점치기도 하는데, 그 둘레가 두터우면 풍년이 들고 엷으면 흉 년이 들 징조라고 하며 이러한 예측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순라(巡邏)370)를 맡고 있는 군문(軍門)에서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한다. 내 365)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의 원문은 正月七日為人日以七種菜為羹 이다. 366) 연대본에는 衛風 이라고 되어있으나 시경(詩經) 의 내용이므로 邶風 으로 하였다. 367) 매치애사(賣癡獃詞) 의 원문은 除夕更闌 人不睡 厭禳鈍滯 迎新歲 小兒呼呌 走長街 云有癡獃 召人買 이다. 368) 연대본에는 微으로 되어있다. 369) 광문회본에는 牢로 되어있다. 370) 순라란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밤에 통행금지 시간을 정하고 궁중과 도성 둘레를 순시하는 것 - 86 -
생각에는 당나라 사람 위술(韋述)371)이 쓴 서도잡기(西都雜記) 에 정월 보름날 밤 에 의금부에서 황제의 명을 받아 보름날 전후로 각 하루씩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하 였는데 이것을 방야(放夜)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제도도 이를 본 뜬 것 이다. 이 날 밤 서울 장안의 주민들은 신분이나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몰려 나와 열운가 (閱雲街)372)의 종각(鍾閣)에서 저녁 종소리를 들은 후 흩어져 여러 곳의 다리로 가 서 왕래하는데 밤이 새도록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다리밟기[踏橋]라고 한다.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교(橋)와 각(脚)이 우리나라 뜻 새김으로 발음이 같기 때문에 속담에 다리[橋]를 밟으면 일 년 내내 다리병[脚疾]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리밟기는 주로 대 소광통교373) 및 수표교에서 가장 성했으며 인산인해를 이룬 군 중은 퉁소를 불고 북을 쳐 일대가 굉장히 소란하였다. 374)에 옹락영이록(雍洛靈異錄) 당나라 조정에서는 정월 보름날 밤에 한하여 삼경(三更), 즉 자정 전후의 늦은 밤에도 통행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남녀가 모두 거리에 나와 수레와 말로 거리 가 막힐 정도였다. 고 했다. 육계굉(陸啓浤)의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 375)에는 정월 보름날 밤 부녀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다리로 달려간다. 고 했다. 또 명나 라 사람 우혁정(于奕正)이 쓴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 376)에는 정월 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서로 이끌고 나와 돌아다니면서 질병을 없앤다고 하는데 이것을 백병쫓 기[走百病]라고 한다. 고 했다. 심방(沈榜)의 완서잡기(宛署雜記) 377)에는 정월 16일 밤에 부녀자들이 떼를 지어 놀았으며 대개 다리가 있는 곳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리를 건너갔는데, 이것을 액을 건넜다[度厄]. 고 한다. 고 했다. 내 생 각에는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다리밟기 풍속의 유래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이수 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378)에는 정월 보름날 밤 다리밟기는 고려 때부 을 말한다. 371) 위술은 중국 당나라 때 사람으로 국사(國史)를 40년간 관장하고 20년간 사관(史官)을 맡았다. 372) 운종가로 현 보신각이 있는 곳에서부터 종로 3가까지의 길을 말한다. 373) 대소 광통교는 대광통교(大廣通橋)와 소광통교(小廣通橋)로 현재 서울의 광교 부근 청계천에 설치된 다리가 대광통교이고 아래로 을지로 쪽에 설치된 다리가 소광통교다. 374) 옹주(雍州)와 낙주(洛州)에서 일어났던 영이(靈異)한 일들을 기록한 책으로 옹주와 낙주를 포함한 9개 대주 (大州)의 일들이 10권으로 된 영이록(靈異錄) 에 들어있다. 375) 북경세화기 는 중국 청대에 우씨(尤氏)가 서문을 쓴 예문지(藝文志) 안에 수록되어 있으나 작자와 출처 는 미상이다. 376) 제경경물략 은 유동(劉侗)과 우혁정(于奕正)이 편찬하였다. 유동은 명나라 마성(麻城) 사람으로 장관을 지 냈다. 우혁정은 명나라 완평(宛平) 사람으로 초명은 계로(繼魯), 자는 사직(司直)이다. 효심과 우애가 있어 부 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제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시골에 거하면서 종일 독서하고 시 짓고 명산을 유람하였 다. 남긴 책으로는 금석지(金石志),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 등이 있다. 377) 심방(沈榜)은 중국 명나라 때 사람이다. 완서잡기 는 20권으로 된 책이다. 378) 지봉유설 은 이수광의 학문세계가 집약된 저술로서 20권 10책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주로 고서와 고문에서 뽑은 기사일문집(奇事逸聞集)이면서 유서(類書)의 성격을 지닌다. 수록된 주요 내용은 총 25 분야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문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 87 -
터 내려오는 풍속인데 매우 성행하여 남녀들이 길거리를 메워 밤새도록 왕래가 그 치지 않았다. 그래서 법관이 이를 금지하고 체포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 하 였다. 지금 풍속에는 부녀자들이 다시는 다리밟기하는 일이 없어졌다. 삼문(三門)379) 밖의 주민들과 아현(阿峴) 주민들이 떼를 이루어 편을 가른 다음 몽둥이를 들거나 돌을 던지며 고함을 치면서 달려들어 만리동 고개 위에서 접전하 는 모양을 하는데, 이것을 편싸움[邊戰]이라고 하며 변두리로 도망가는 편이 싸움 에서 지는 것이다. 속설에 삼문 밖 편이 이기면 경기 일대에 풍년이 들고 아현 편 이 이기면 팔도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용산과 마포에 사는 불량소년들 중에는 패 를 지어 와서 아현 편을 돕는다. 바야흐로 싸움이 한창 심해지면 고함소리가 땅을 흔들 정도가 되며 머리를 싸매고 서로 공격하는데 이마가 터지고 팔이 부러져 피를 보고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죽거나 상처가 나도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 명을 보상하는 법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돌이 무서워 피하고 금지시켜야 하 는 관에서 특별히 이를 금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고질적인 악습이 되어 제대로 고쳐 지지 않는다. 성안의 아이들도 이를 본받아 종각 거리나 지금의 종로 3가에 있던 비파정(琵琶亭) 부근에서 편싸움을 하였고 성 밖에서는 만리현과 우수현(雨水峴)380) 에서 주로 편싸움을 하였다. 경상도 안동 지방의 풍속 중에는 매년 정월 16일에 주 민들이 읍내 복판을 흐르는 시내를 경계로 삼아 좌우로 나뉘어 서로 돌팔매질하며 싸워 승부를 결정했다.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의 풍속에도 정월 보름날 돌팔매질하 는 놀이가 있다. 내 생각에는 당서(唐書) 고려전(高麗傳) 381)에 매년 정초에 군 중들이 패수(浿水) 가로 모여 노는데 물과 돌을 서로 끼얹고 던지며 밀고 밀리기를 두세 번 하다가 그친다. 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돌팔매싸움[石戰] 풍속이 시 작되었다. 이 날 온 집안에 밤새도록 기름불을 켜 놓는데 마치 섣달 그믐날 밤 수세(守歲) 하는 것과 같다. 장님을 보름날 전부터 불러다가 안택경(安宅經) 을 읽히며 밤을 지새운다. 이는 액을 막고 복을 빌기 위한 것이며 정월 안에 이러한 일을 다 한다. 한 자가 되는 나무를 뜰 가운데다 세워놓고 자정에 그 나무에 비치는 달빛 그림 자의 길이로써 그 해에 풍년이 들것인가 흉년이 들것인가를 점친다. 그 그림자 길 이가 여덟 치면 바람과 비가 성하고, 일곱 치나 여섯 치면 모두 길하며, 다섯 치면 불길하고, 네 치면 수해와 병충해가 있으며, 세 치면 곡식이 여물지 않는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이 법은 중국 전한 때의 사람인 동방삭(東方朔)382)에게서 나온 것이고, 379) 여기서 삼문은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및 그 중간의 소의문(昭義門, 서소문)을 말 한다. 380) 우수현(雨水峴)은 현재의 남대문 밖 도동 부근이다. 381) 신당서(新唐書) 는 전체 225권으로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송기(宋祁) 등이 편찬한 것이다. 이중 권210 열전(列傳) 145에 고려전(高麗傳) 이 있다. 382) 동박삭(東方朔)은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사람으로 자는 만천(曼倩)이고 시중(侍中) 벼슬에 올랐다가 장수하였 다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삼천갑자 동방삭 의 주인공이다. - 88 -
또 생각건대 진호(陳淏)의 화력신재(花曆新栽) 에 정월 보름날 밤에 한 길이 되는 장대를 세워놓고 자정에 생긴 달그림자를 보아 6~7자가 되면 풍년이 들고, 8~9자 면 수해가 나며, 3~5자면 반드시 가뭄이 든다. 고 했으므로, 보름날 밤 그림자를 재는 것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밤중에 재를 주발에 담아 지붕 위에 올려놓는데, 이것은 어떠한 곡식 씨가 하늘 로부터 떨어지는가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그 주발 안에 떨어진 곡 식 씨를 보고 그 해 어떤 곡식이 풍작이 될 지를 점친다. 初昏持炬登高謂之迎月以先見月者爲吉 仍占候月色赤徵旱白徵水 又占月出時形體大小 湧浮高低 又以輪郭四方厚薄占四方年事 厚則徵豊薄則徵凶無少差忒 巡邏軍門弛夜禁 按唐韋述西都雜記正月十五夜勅許金吾弛禁前後各一日謂之放夜383) 國制倣此 都人士女 傾城而出廳夕鍾於閱雲街鍾閣散至諸橋往來達夜不絶謂之踏橋 或云橋方言與脚同釋音 俗說如是則終年無脚疾 大小廣通橋及手標橋最盛人海人城簫鼓喧轟 按雍洛靈異錄唐朝 正月十五夜許三夜夜行士女無不夜遊車馬塞路384) 又按陸啓浤北京歲華記正月十五夜婦 女俱出門走橋 于奕正帝京景物略元夕婦女相率宵行以消疾病曰走百病 沈榜宛暑雜記十 六夜婦女羣遊 凡有橋處三五相率以過謂之度厄 此卽東俗踏橋所沿也 李睟385)光芝峯類 說云上元踏橋之戱始自前朝在平時甚盛士女騈闐達夜不止法官至於禁捕今俗婦女無復踏 橋者矣386) 三門外及阿峴人成羣分隊或持棒或投石喊聲趕逐爲接戰狀於萬里峴上謂之邊 戰 以退走邊爲負 俗云三門外勝則畿內豊阿峴勝則諸路豊 龍山麻浦惡少結黨救阿峴方 其酣鬪呼聲動地纏頭相攻破額折臂見血不止 雖至死傷而不悔 亦無償命之法 人皆畏石回 避掌禁該司另行禁戢而痼習無以全革 城內童竪亦效而爲之於鍾街琵琶亭等處 城外則萬 里峴雨水峴爲邊戰之所 安東俗每年正月十六日府內居民以中溪分爲左右投石相戰以決勝 負 兩西俗上元亦有石戰之戱 按唐書高麗傳每年初聚戱浿水之上以水石相濺擲 馳逐再三 而止 此爲東俗石戰之始 渾舍張油燈達夜如除夕守歲之例 邀瞽者自上元前誦安宅經達夜 以度厄祈福限月盡行之 立尺木於庭中月色當午以其木影占年穀豊凶 影八寸風雨榮七寸 六寸俱吉五寸不吉四寸水蟲行三寸穀不實 按此法出於東方朔 又按花曆新栽云上元夜竪 一丈竿 候月午影六七尺稔若八九尺主水三五尺必旱 元宵測影有自來矣 夜半鋪灰於盂置 之屋上以驗穀種之自隕 明朝視之以所隕之種占其豊熟 꼭두새벽에 첫닭이 몇 번 우는 지 세어보아 열 번 이상 울면 그 해 풍년이 든다 383) 서도잡기(西都雜記) 의 원문은 西都京城街衢有金吾曉暝傳呼以禁夜行 惟正月十五日夜敕許金吾弛禁前後各一 日 이다. 384) 옹락영이록(雍洛靈異錄) 의 본래 서명은 옹락영이소록(雍洛靈異小錄) 으로 원문은 唐朝正月十五夜 許三 夜夜行 其寺觀街巷 燈明若畫 山棚高百餘尺 神龍以後 復加嚴飾 士女無不夜遊 車馬塞路 有足不躡地 浮行數十步 者 이다. 385) 연대본, 광문회본에 晬로 되어있다. 386) 지봉유설 권1 시령부 절서(節序)에 실린 원문은 俗以上元月出 占歲豐稔 又是夜爲踏橋之戱 始自前朝 在平時甚盛 士女騈闐 達夜不止 法官至於禁捕 이다. - 89 -
고 점치는데, 이것은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풍속이다. 황해도와 평안도 풍속에 정월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표주 박을 들고 앞다투어 정화수를 길어오는데 이를 용알건지기[撈龍卵]라고 한다. 물을 맨 먼저 긷는 사람이 그 해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고 한다. 또 콩 열 두 개에다 각 각 열 두 달을 표시하여 수수깡 속에다 넣고 묶어 우물 속에 빠뜨린다. 이것은 달 불이[月滋]라고 하는 것으로 이튿날인 보름날 새벽에 그것을 꺼내 보아 콩이 물에 불어있는 정도에 따라 해당하는 달에 홍수 피해가 있을 지 가뭄 피해가 있을 지를 점쳐 보는데 예측이 잘 맞는다고 한다. 또 동네의 홋수만큼의 콩을 골라 그 각 콩 에다 호주를 구별할 수 있게 표시를 해놓고 짚으로 묶어 우물에 빠뜨린다. 이것은 집불이[戶滋]라고 하는데 다음날 아침 꺼내어 콩이 불은 상태를 보고 해당하는 콩 의 집이 그 해에 풍년이 들어 잘 살 수 있을 지를 점쳐 본다. 충청도 풍속에는 횃불싸움[炬戰]이 있다. 또 편을 둘로 갈라 마주서서 동아줄을 서로 잡아당기게 하여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고 끌어당겨 이긴 편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이는 곧 옛날의 결하희(絜河戱)387)와 같은 것이다. 경기지방에도 이러한 풍속이 있으며 중들도 이러한 놀이를 한다. 강원도 산간지방 풍속 중에는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일제히 온갖 새 이름을 부르 면서 새 쫓는 시늉을 하는데 여기에도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춘천 지방 풍속에 수레싸움[車戰]이 있다. 외바퀴 수레를 만들어 이것을 동리별 로 편을 나누어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서로 싸우는 것으로, 승패의 결과로써 그 해 의 일을 점치는 바 패하여 쫓기는 편이 흉하다. 가평 지방 풍속에도 이러한 것이 있다. 영남 지방 풍속에 칡으로 하는 줄다리기[葛戰]가 있다. 칡으로 동아줄을 만드는 데 굵기가 크게는 40~50줌 된다. 이것을 편을 갈라 서로 당겨 승부를 결정짓는데 이를 점풍(占豊), 즉 풍년을 점친다고 한다. 안동 지방 풍속에는 동네 여자들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밤에 떼를 지어 성밖으로 나간다. 이들은 물고기를 꿰어놓은 모양으로 줄을 서서 엎드려 가는데, 뒷 사람이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서로 끊임없이 잇대어 나간다. 그리고는 어린 계집아 이 한 명을 엎드린 여자들의 등위로 걸어가게 하고 좌우에서는 그 아이를 부축하는 데,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그 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치 다리밟기를 하는 것 같다. 위에 있는 어린 계집아이가 이것이 무슨 다리지. 하고 선창(先唱)하면 엎드려 있는 여자들이 청계산 놋다리[銅橋]지. 라고 화답한다. 큰길을 따라 혹은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밤이 샌 뒤에야 그친다. 풍기 지방 풍속에 정월 보름날 고을의 수리(首吏)가 검은 소를 거꾸로 타고 거문 고를 안고 동헌에 들어가 원님에게 절을 한 다음 일산(日傘)을 받쳐 들고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으나 필시 복을 비는 행사의 하나일 것이다. 曉頭候雞初鳴算其鳴數過十鳴卽占歲豊卽鄕里之俗也 兩西俗上元前夜待鷄鳴家家持瓢爭 387) 결하희(絜河戱)란 줄다리기를 말한다. 결하는 중국 창주(滄州) 남피현(南皮縣)에 있는 하천 이름이다. - 90 -
先汲井華水謂之撈龍卵 先汲者占其農功 又以大豆十二枚爲十二月標納于(禾+蜀)稈以綯 束之沈於井中謂之月滋 晨出驗之以其滋不滋徵其月之水旱而不忒 又以里中戶數用大豆 幾枚各爲戶主之標納稈沈井謂之戶滋 厥明驗之滋者其戶年內豊足 湖西俗有炬戰又以綯 索分隊把持相牽引不被引者爲勝以占豊卽古之絜河戱也 畿俗亦然緇徒又有此戱 關東峽 俗羣童齊唱百鳥之名作驅逐之狀亦是祈穀之意也 春川俗有車戰以獨輪車各里分隊前驅相 戰以占年事 逐北者爲凶 加平俗亦然 嶺南俗有葛戰以葛作索 大可四五十把分隊相引以 決勝謂之占豊 安東俗村女老弱成羣夜出城外魚貫伏行後前相續連亘不絶令一幼女子步行 其上左右扶掖唱喏來往若踏橋狀 女兒先唱曰是何橋 伏者齊應曰淸溪山銅橋 遵大路而或 東或西達宵而止 豊基俗上元日邑首吏倒騎黑牛抱琴而入衙庭拜于官擎日傘而出未知何意 而必是祈福之事也 기타 정월 행사(月內) 관의 인가를 받은 상설점포인 시전(市廛)들은 설날 이후의 휴업을 마치고 좋은 날 을 택하여 새해 첫 가게문을 여는데 반드시 털짐승과 관련된 날[毛蟲日]에 연다. 그 이유는 짐승들의 솜털같이 장사가 잘 되라는 상징적인 뜻을 취했기 때문이며, 그 중에서도 범날[寅日]을 최고로 여긴다. 성균관인 태학(太學)과 서울 동 서 남 북의 사학(四學)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는 유생 [居齋儒生]들은 식당에 밥 먹으러 갈 때마다 출석부에 기록하는데 이것을 식당도 기(食堂到記) 라고 한다. 이 출석부를 회수하여 그것에 기록된 수가 규정에 이른 유 생들을 대상으로 임금이 친히 과거를 보인다. 시험과목은 경전을 소리 내어 외우는 강(講)과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작문을 하는 제술(製述)로서, 강 시험은 삼경(三 經)388) 중 하나를 외우게 하고 제술 시험은 명절 때 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한 다. 강과 제술에서 장원을 한 자에게는 모두 급제(及第)를 내리는데 이때의 과거를 춘도기과(春到記科)라고 하며 가을철에도 이렇게 하는데 이 과거를 추도기과(秋到記 科)라고 한다. 경주 지방 풍속에 정월의 첫 쥐날, 첫 용날, 첫 말날, 첫 돼지날 등의 날에는 온 갖 일을 꺼리고 삼가며 감히 함부로 움직이거나 만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날들 을 신일(愼日), 즉 조심하는 날로 여기기 때문이다. 대개 그 기원을 보면 신라 소지 왕(炤智王) 10년(488) 정월 보름에 까마귀 쥐 용 말 돼지 등이 이상한 조짐을 보여 왕이 금갑(琴匣), 즉 거문고를 넣어두는 갑 속에 숨어 궁녀와 간통하는 중을 죽여 화를 면했으므로 나라 백성들이 위의 날들을 신일이라고 한데서 나온 것이다. 속담 에 달도(怛忉)라는 말은 슬프고 근심스러워 금하여 꺼린다는 뜻이다. 김종직(金宗 直, 1431~1492)의 달도가(怛忉歌)가 있다. 조. 388)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이다. - 91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
16일은 시골 풍속에 대부분 활동하지 아니하고 나무로 만든 물건을 집안에 들이 지 않는 등 기일(忌日)로 여긴다. 이것도 아마 경주 지방의 옛날 풍습을 답습한 듯 하다. 24일은 해마다 날씨가 흐리고 음산하다. 이는 임진왜란 때 왜병에게 서울이 함락 된 이후 명나라 군사가 왜병을 격파하고 그 승세를 타서 서울을 점령하고 있던 왜 적들을 압박하자 이들이 놀라 밤중에 도망하면서 불을 지르고 노략질과 살육을 하 는 등 만행을 감행하여 온 성안의 누구도 화를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날이 되면 원한에 찬 기운으로 인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8일을 잘못 발음하여 패일(敗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팔(八)과 패(敗)의 중국 발 음이 배 로 같기 때문이다. 이 날 남자들은 외출하지 않아 민속에서는 기일(忌日)로 여긴다. 내 생각에는 고려시대 풍속에 매월 8일에 부녀들이 성 안팎으로 나가 놀기 때문에 남자들이 집에 있으면서 나가지 못했던 것인데 이 풍속이 잘못 전해져 지금 은 남자들이 나가서는 안 되는 날로 여기게 된 것 같다. 상현일(上弦日)과 하현일(下弦日)을 조금[潮減日]이라고 한다. 매달 인가에서 꺼 리거나 궂은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이 날이 지나고 나서 서로 내왕하며 꺼리는 일 이 있는 사람과도 이 날을 지나서야 만난다. 5일 14일 23일을 삼패일(三敗日)이라고 한다. 매달 이 날에는 모든 일을 꺼려서 감히 행동하지 않고 밖에 나가는 것도 안 되는 것으로 안다. 이는 고려시대 이래로 풍속에 이 세 날을 임금이 사용하는 날로 삼았으므로 신하와 백성들이 이 날을 사 용하지 않고 기일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므로 본래가 패일은 아닌 것이다. 市廛擇日開市必用毛蟲日取其繁氄而寅日爲最 收太學四學居齋儒生食堂到記親試講製 講則三經中一經 製則如節製之例 講製居首並賜第曰春到記科秋節又行之曰秋到記科 慶 州俗正月上子上辰上午上亥等日忌愼百事不敢動作以爲愼日 盖新羅炤智王十年正月十五 日有烏鼠龍馬猪之異王免琴匣之禍 國人以子辰午亥日爲愼日 俚言怛忉言悲愁而禁忌也 金宗直有怛忉歌 見輿地勝覽389) 十六日鄕俗多不動作不納木物爲忌日似襲慶州之遺風 也 二十四日每年陰曀 盖倭亂時倭兵陷京城天兵乘勝進逼倭賊驚遁半夜焚蕩盡屠一城百 無一脫 乃是日而怨氣使然也 八日謬稱敗日 八與敗華音同也 是日男子不出門爲俗忌日 按高麗俗以每月八日婦女出遊城內外故男子在家不出 此風訛傳今俗作不宜出行日 上弦 下弦日稱潮減日每月人家有拘忌事必過是日始相通涉人物之有所忌者亦過是日而接之 初 五十四二十三日稱三敗日 每月忌百事不敢動作不宜出行 盖自麗俗以此三日卽君上所用 之日故臣民不用爲忌日云 本非敗日也 2월二月 초하루[朔日] 389)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제영조(題詠條) - 92 -
임금이 재상들과 옆에서 모시는 시종(侍從)들에게 중화척(中和尺)이라고 부르는 자를 내리는데, 이 자는 점이 박힌 대나무[斑竹]나 향나무[赤木]로 만든다. 이 제도 는 정조 20년(1796)에 세운 것으로 중국 당나라 때의 옛 중화절(中和節) 행사를 본 뜬 것이다. 내 생각에는 당나라 이필(李泌)390)이 올린 정월 상소에 "그믐날을 명절 로 삼은 것은 옳지 않으니 청컨대 2월 초하루를 중화절로 삼아 백관들로 하여금 농 사를 권장하는 글이나 책을 올리게 함으로써 힘써야 할 근본이 농사임을 나타내게 하십시오." 하였는데, 자를 내리는 것도 이런 뜻에서다. 정월 보름날 세워 두었던 볏가릿대[禾竿]에서 벼이삭을 떨어서 흰떡을 만드는데, 크기는 큰 것은 손바닥만 하게, 작은 것은 계란만 하게하며 모두 반달 옥 같은 모 양을 낸다. 콩을 불려 만든 떡소[饀]를 떡 안에 넣고 그것들 사이에 솔잎을 겹겹이 켜를 지어 넣어 시루에 찐다. 푹 익으면 꺼내어 물로 씻은 다음 참기름을 바른다. 이것을 송편[松餠]이라고 한다. 이 송편을 노비들에게 나이 수대로 먹인다. 그래서 이 날을 속칭 노비날[奴婢日]이라고 한다. 농사일이 이때391)부터 시작되므로 이렇 게 노비들을 먹이는 것이라고 한다. 떡집에서는 팥 검은 콩 푸른 콩을 떡소로 넣거나 혹은 거기에 꿀을 버무려 만들기도 하고, 혹은 찐 대추나 삶은 미나리를 떡소로 넣 어 떡을 만들기도 한다. 이 달로부터 이 떡을 시절음식으로 친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종이를 잘라 香娘閣氏速去千里 392)라고 여덟 자를 써서 서까래 끝에 붙인다. 각씨라는 말은 우리말에 여자라는 뜻이며 향랑각시 라고 하는 것은 노래기라는 벌레를 예쁘게 불러주는 것이나 실은 노래기가 싫어서 물리치려는 말이다. 영남지방 풍속에 집집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그 신을 영등신(靈登神) 이라 고 한다. 신이 내렸다고 하면서 무당이 동네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다투어가 며 불러들여 즐겁게 해 준다. 그리고는 이 달 초하루부터 사람을 꺼려 만나지 않는 데 이것이 보름 혹은 20일까지 간다. 제주도 풍속에 2월 초하룻날 제주도 북쪽 해안지대인 귀덕(歸德), 김녕(金寧) 등 지역에서 나무장대 12개를 세워놓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낸다. 동쪽 해안의 애 월(涯月)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떼나무 중에서 말머리 모양을 골라 비단으로 장식 하여 말놀이[躍馬戱]를 하면서 신을 즐겁게 해주다가 보름날에 이르러 그만 두는데 이것을 연등(然燈) 이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頒中和尺于宰執侍從 尺用斑竹赤木制之 健陵丙辰盖修唐中和節故事也 按李泌正月奏曰 以晦爲節非也 請以二月朔爲中和節 令百官進農書以示務本 頒尺用此意也 卸下上元禾 竿穀作白餠 大者如掌小者如卵皆作半璧樣 蒸豆爲饀隔鋪松葉於甑內蒸熟而出 洗以水塗 以香油名曰松餠 饋奴婢如齒數 俗稱是日爲奴婢日 東393)作伊始故饗此屬云 賣餠家用赤 390) 이필(李泌)은 중국 당나라 덕종 때 사람으로 자는 장원(長遠)이다. 391) 봄을 의미한다. 392) 향랑각시야. 속히 천리 밖으로 가라. 는 뜻이다. 향랑각시는 노린 냄새가 나는 노래기를 미화하여 지은 말 이다. 노래기는 음습한 곳에 산다. - 93 -
豆黑豆靑豆爲饀 或和蜜包之 或以蒸棗熟芹爲饀自是月以爲時食 灑掃堂宇剪紙書香娘閣 氏速去千里八字貼於椽上 閣氏者東語女子也 香娘閣氏盖指馬陸也 惡而辟之之辭也 嶺 南俗家家祭神名曰靈登神 降于巫 出遊 村閭人爭迎之而樂之 自是月朔日忌人物不接之 至十五日或二十日 濟州俗二月朔日歸德金寧等地立木竿十二迎神祭之 涯月居人得槎形 如馬頭者飾394)以彩帛作躍馬戱以娛神至望日乃止謂之然燈 見輿地勝覽395) 기타 2월 행사(月內) 삼성(參星)은 하늘 서쪽에 떠있는 별 세 개를 말하는데 초저녁에 이것이 달 앞에 서 고삐를 끄는 것 같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해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최식(崔寔)이 쓴 농가언(農家諺) 396)에 2월 저녁은 곧 삼성 저녁(二月昏 參星夕) 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인 것 같다.397) 태조의 묘에 얼음을 바친다. 내 생각에는 예기(禮記) 398) 월령(月令) 에 2월에 천자가 빙고를 열고 먼저 종묘에 얼음을 바친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제도도 역 시 그러하다. 이 달 20일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 징조이며 날이 흐려도 좋다고 한다. 제주도 풍속에 이 달에는 배타는 것을 금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初昏見參星在月前如牽轡 遠則徵豊 按崔寔農家諺二月昏參星夕是也 薦氷于太廟 按 禮記月令 仲春之月 天子乃開氷先薦寢廟399) 國制亦然 二十日雨占豊 徵400)陰亦吉 濟 州俗是月禁乘船 見輿地勝覽401) 3월三月 삼짇날[三日] 393) 東은 봄을 의미한다. 394) 연대본에는 餙라고 되어있으나 여기에서는 광문회본의 飾을 따랐다. 39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풍속조(風俗條) 396) 농가언(農家諺) 은 농가에서 쓰는 속담을 모은 책이다. 저자 최식은 중국 후한 때 사람으로 사민월령(四 民月令) 을 지었다. 397) 본문은 二月昏 參星夕 杏花盛 桑葉白. 이다. 398) 예기 는 주나라 말기 이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정비한 책이다. 399) 예기(禮記) 의 원문은 天子乃鮮羔開氷 先薦寢廟 이다. 400)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徵이 微로 되어있다. 40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풍속조(風俗條) - 94 -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갈라 붙여 둥근 떡을 만든 다음 참기름에 지진 것 을 화전(花煎)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옛날의 지짐이 떡[熬餠], 또는 기름에 지진 중국 음식의 하나인 한구(寒具) 같은 것이다.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 늘게 썰어 오미자 물에 띄우고 꿀을 넣고 잣을 곁들인 것을 화면(花麵)이라고 한다. 혹은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와 섞어 만들기도 한다.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들기도 하고 이것을 붉게 물들인 다음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水麵)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시절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충청도 진천(鎭川) 지방 풍속에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여자들이 무당을 데리 고 우담(牛潭)이라는 연못가에 있는 동(東) 서(西) 용왕당(龍王堂)과 삼신당(三神堂) 에 가서 아들을 점지해 해 달라고 비는데 그 행렬이 끊어지지 않고 사방의 여인들 이 모두 와서 기도하므로 마치 장을 이룬 것 같다. 해마다 이러한 일이 늘 벌어진 다. 採杜鵑花拌糯米粉作圓餻以香油煮之名曰花煎卽古之熬餠寒具也 又拌菉豆粉熟而細切澆 五味子水和蜜調海松子名曰花麵 或二杜鵑花拌菉豆屑爲之 又造菉豆麵或染紅色澆蜜水 名曰水麵幷以時食供祀 鎭川俗自三月三日至四月八日女人率巫祈子於牛潭上東西龍王堂 及三神堂 絡續不絶四方女人亦皆來禱而觀者如市 歲以爲常 청명(淸明) 이 날 임금은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불을 일으켜 각 관사에 하사한다. 이는 곧 주례(周禮) 402)에 하관(夏官)이 했다는 출화(出火)나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사 화(賜火) 등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제도다. 농가에서는 이 날부터 봄갈이[春耕]를 시작한다. 取楡柳之火頒賜各司卽周官出火唐宋賜火之遺制也 農家始春耕 한식(寒食) 서울 풍속에 이 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네 명절에 술 과일 포 젓 떡 면 탕 지짐이 등의 음식으로 지내는 제사를 절사(節祀)라고 하 는데, 선대로부터의 전통과 집안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식과 추석에 가장 성하다. 이 때는 사방 교외에 남녀들의 행렬이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을 정도다. 내 생각에는 중국 당나라 사람 정정칙(鄭正則)의 사향의(祠享儀) 403)에 옛날에는 산소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없었는데 공자께서 절기를 따라 묘를 보고 망제 402) 주례 는 주나라 때 작성되고 후대에 증보한 중국 최고(最古)의 법전으로 당대 이후부터 이렇게 불렸다. 403) 정정칙(鄭正則)은 당나라 시어사(侍御史)로 사향의 1권을 지었다. 본문은 고금사문류취(古今事文類聚) 의 묘제지시(墓祭之始) 에 나온다. - 95 -
(望祭)하는 것을 허락했다. 고 나오므로 묘제(墓祭)는 대체로 이로부터 시작된 듯하 다. 또 생각건대 당나라 현종(玄宗, 재위기간: 713~741) 때에 칙명을 내려 한식날 성묘하는 것을 허락했고 그 전 시대인 오대(五代) 때 후주(後周)에서는 한식날 야외 에서 제사를 지내고 지전(紙錢)을 살랐다고 한 것을 보면 한식날 묘제 지내는 풍속 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들은 이 날을 냉절(冷 節) 이라고 불렀고 혹은 이 날 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음식을 미리 익힌다는 뜻으 로 숙식(熟食) 이라고도 하였으니 이는 그 당시 개자추(介子推)404)가 이 날 불에 타서 죽은 것을 가엾게 여기고 마음 아파하여 불 사용을 금하던 유속(遺俗)인 것이 다. 지금 한식이 설, 단오 및 추석과 함께 네 명절로 된 것은 우리나라의 풍속이다. 관가나 궁에서는 여기에 동지를 더하여 다섯 명절로 제향을 거행한다. 농가에서는 이 날을 기해 밭에 씨를 뿌린다. 都俗上墓澆奠用正朝寒食端午秋夕四名節以酒果脯醢餠麵臛炙之羞祭之曰節祀 有從先稱 家之異而寒食秋夕最盛 四郊士女綿絡不絶 按唐鄭正則祠享儀云古者無墓祭之文孔子許 望墓以時祭祀 墓祭盖出於此 又按唐開元勅許寒食上墓五代後周寒食野祭而焚紙錢 寒食 墓祭自唐而始也 齊人呼爲冷節 又曰熟食盖以子推焚死傷憐禁405)火之遺俗也 今之與正 朝端午秋夕爲四節祀卽東俗也 朝家則幷冬至爲五節享 農家以是日下田圃種子 기타 3월 행사(月內) 녹두묵[菉豆泡]을 만들어 잘게 썰고 여기에 돼지고기, 미나리, 김 등을 넣고 초장 을 쳐 양념하면 매우 시원한 것이 늦은 봄날 먹을 만한데 이것을 탕평채(蕩平菜)라 고 한다. 계란을 깨서 끓는 물에 넣어 반숙이 되게 한 다음 초장을 친 것을 수란(水 卵)이라고 한다. 황조개[黃苧蛤]와 조기[石首魚]로 국을 끓여서 이것을 먹기도 한 다. 밴댕이[蘇魚]는 경기도 안산 지역의 안쪽바다에서 나고 웅어[鮆魚]는 속명으로 는 위어(葦魚)라고 하는데 한강 하류인 고양군 행주에서 잡힌다. 늦은 봄이 되면 대 궐 음식을 준비하는 사옹원(司饔院)의 관리들은 그물을 던져 이것을 잡아다가 임금 에게 진상하며 생선장수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횟감 사라고 소리치며 이것을 판 다. 복사꽃이 떨어지기 전에 복어[河豚]에 미나리, 기름, 간장을 넣어 국을 끓이면 그 맛이 매우 좋은데 복어 중에는 노호(露湖)라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 제일 먼저 시장에 들어온다. 복어의 독을 꺼리는 사람은 도미[禿尾魚]로 대신 끓이는데 이 도 미 역시 시절생선으로서 가품(佳品)이다. 마[薯蕷]를 캐다가 쪄서 먹기도 하고 혹은 이것에 꿀을 발라 썰어 먹기도 한다. 술집에서는 과하주(過夏酒)를 빚어 판다. 술 이름으로는 소국주(小麴酒), 두견주(杜鵑酒), 도화주(桃花酒), 송순주(松荀酒) 등이 있는데 모두 봄에 빚는 좋은 술들이다. 소주(燒酒)로는 서울 마포 공덕동에서 대흥 404) 개자추(介子推)는 중국 춘추시대 은사(隱士)로, 진나라 문공을 19년 모셨는데 봉록을 받지 못해 산에 숨었 는데 문공이 뒤늦게 이를 깨닫고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타죽었다. 405)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焚으로 되어있다. - 96 -
동 사이에 있는 독막[甕幕]406)주변에서 만드는 삼해주(三亥酒)407)가 최고 좋은데 수천, 수백 독을 빚어낸다. 평안도 지방에서 쳐주는 술로는 감홍로(甘紅露)와 벽향 주(碧香酒)가 있고, 황해도 지방에서는 이강고(梨薑膏), 호남 지방에서는 죽력고(竹 瀝膏)와 계당주(桂當酒), 충청도 지방에는 노산춘(魯山春) 등을 각각 가장 좋은 술 로 여기며 이것 역시 선물용으로 서울에 올라온다. 떡집에서는 멥쌀가루를 반죽하 여 방울 모양의 희고 작은 떡 조각을 만들어 그 속에 콩으로 소를 넣고 머리 쪽을 오므린 다음 오색 물감을 들여 다섯 개를 구슬을 꿴 것처럼 붙여놓는다. 혹은 청백 색으로 반원형의 떡을 만들어서 작은 것은 다섯 개를, 큰 것은 두세 개를 이어 붙 인다. 이것들을 총칭하여 산병(散餠)이라고 하고 속칭 꼽장떡이라고 한다. 또 오색 을 넣어 둥근 떡을 만들기도 하고 소나무 껍질과 쑥을 섞어 둥근 떡을 만들기도 하 는데 이것들을 고리떡[環餠]이라고 하고 이 중 큰 것을 말굽떡[馬蹄餠]이라고 한 다. 찹쌀에 씨를 뺀 대추를 섞어 찐 것을 시루떡[甑餠]이라고 한다. 이상의 것들은 모두 봄철에 먹는 시절음식이다. 내 생각에는 여희철(呂希哲)의 세시잡기 에 두 사일(兩社日, 즉 춘사일春社日과 추사일秋社日)에 떡 먹기를 좋아하며 떡에 대추를 꼭 넣는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우리나라 풍속도 그러하다. 서울 남산 아래에서는 술을 잘 빚고 북부에서는 맛좋은 떡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서울 속담에 남주북병 (南酒北餠) 이란 말이 생겼다. 네 번의 오일(午日)을 이용하여 술을 거듭 빚으면 봄이 지나야 익게 되는데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술을 사마주(四馬酒)라고 한다. 동악(東岳) 이안눌(李 安訥)408)이 남궁적(南宮績)이 준 사마주를 마시고 지은 음남궁적사마주(飮南宮績四 馬酒) 라는 시에 그대 집의 이름난 술은 해를 지나도 변하지 않으니 응당 옥해주 (玉薤酒)409) 빚는 법을 따랐나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농가에서는 이 달부터 뽕을 따다가 누에를 친다. 채소를 파는 남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햇배추를 지고 다니면서 채소 사라고 외치 는데 이들을 무장수[靑根商]라고 한다. 이들은 순무[蔓菁]가 새로 나오면 역시 소 리치며 판다. 이것도 시절음식이 된다. 造菉豆泡縷切和猪肉芹苗海衣用醋醬衝之極凉春晩可食名曰蕩平菜 入鷄子於滾湯半熟和 醋醬名曰水卵 以黃苧蛤石首魚作湯食之 蘇魚産安山內洋鮆魚俗名葦魚産漢江下流高陽 幸洲 春末司饔院官網捕進供 漁商遍街呼賣以爲膾材 桃花未落以河豚和靑芹油醬爲羹 味甚珍米 産於露湖者最先入市 憚其毒者代以禿尾魚 蒸禿尾亦時鮮之佳品 採薯蕷蒸食 或和蜜作片食之 賣酒家造過夏酒以賣 酒名小麴杜鵑桃花松荀皆春釀之佳者 燒酒則孔德 甕幕之間三亥酒 甕釀千百 最有名稱關西甘紅露碧香酒海西梨薑膏湖南竹瀝膏桂當酒湖 406) 독막[甕幕]을 동막 이라고 발음하여 동막(東幕)으로까지 변하였다. 407) 정월 상해일(上亥日), 중해일(中亥日), 그리고 하해일(下亥日)의 3해일에 단계적으로 빚어 익힌 술 이름이다. 408)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은 덕수 이씨로 자는 자민(子敏)이고 동악은 호다. 60세가 넘어 말년까지도 줄 곧 외직으로 전국을 다니다시피 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세시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기마다 표현하고 있어서 이를 모은 문집 동악집 27권의 자료 가치가 높다. 409) 옥해주(玉薤酒)는 중국 수나라 양제(煬帝)가 만들었다는 술이다. - 97 -
西魯山春皆佳品亦有餉到者 賣餠家造粳米白小餠如鈴形入豆饀捻頭粘五色於鈴上連五枚 如聯珠或造靑白半圓餠小者連五枚大者連二三枚摠名曰饊餠 又造五色圓餠松皮靑蒿圓餠 名曰環餠大者稱馬蹄餠 又以糯米和棗肉造甑餠皆春節時食也 按歲時雜記二社尙食糕以 棗爲之410) 今俗亦然 南山下善釀酒北部多佳餠都俗稱南酒北餠 用四午日重釀酒經春乃 熟 周歲不敗 名曰四馬酒 李東岳安訥飮南宮績四馬酒詩曰君家名酒 貯經年 釀法應從 玉薤傳 人家伐桑養蠶 賣菜漢負菘根新芽成羣呌賣謂之靑根商 蔓菁新出又呌賣以爲時食 서울 풍속에 산언덕 물굽이를 찾아 놀러 다니는 것을 화류(花柳)놀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 삼짇날 답청(踏靑), 즉 처음 돋은 풀을 밟는다는 풍속에서 유래한 것이 다. 필운대(弼雲臺)411)의 살구꽃, 북둔(北屯)412)의 복사꽃, 흥인문 밖의 버들 등이 경치가 가장 좋은 곳으로 화류놀이꾼들이 주로 여기에 모인다. 서울과 지방의 무사들 및 동리사람들이 모여 과녁을 세우고 편을 나누어 활쏘기 대회를 열어 승부를 겨룬다. 그런 다음 술을 마시며 즐기는데 가을철에도 똑같이 한다. 어린 처녀들은 풀을 뜯어 한 줌 되면 이것을 가지고 쪽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그 것에 붙인 다음 붉은 치마를 입히는데 이것을 각시(閣氏)라고 한다. 이들은 이부자 리, 베개, 머리병풍 등을 차려놓고 각시놀음 을 한다. 아이들이 버들가지를 꺾어서 피리를 만들어 분다. 그 피리를 버들피리[柳笙]라고 한다. 강원도 강릉 지방 풍속에 노인을 공경하는 뜻으로 매년 좋은 절기를 잡아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청하여 명승지로 모셔다가 위로한다. 이를 청춘경로회 라고 한 다. 비록 종이나 하인 같은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일흔이 넘으면 모두 모임에 나 오도록 허락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경상도 경주 지방 풍속에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 따라 돌아다니며 노는 곳을 사절 유택(四節遊宅)이라고 하는데 봄에는 동야택(東野宅), 여름에는 곡양택(谷良宅), 가 을에는 구지택(仇知宅), 겨울에는 가이택(加伊宅)이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 輿地勝覽) 참조. 전라도 남원 지방 풍속에는 고을 사람들이 봄철을 맞이하여 부근 지역인 진안의 용담(龍潭)이나 광한루 남쪽의 율림(栗林)에 모여 술을 마시며 활쏘기대회 하는 것 을 예(禮)로 삼았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전라도 익산 지방의 용안(龍安) 지역 풍속에 읍내 사람들은 봄철을 맞이하여 절 차를 갖추어 향음주례(鄕飮酒禮)413)를 행한다. 나이가 80~90세 된 분을 한자리에, 410) 연감류함(淵鑑類函) 의 원문은 二社重陽尚食糕而重陽為盛大 이다. 411) 필운대(弼雲臺)는 현재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중고 뒤편에 있다. 선조 때 이항복이 장인 권율 집에 있을 때 그곳 석벽에 새긴 글씨이기도 하다. 412) 북둔(北屯)은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마을로 과거 어영청(御營廳)의 북둔이 있었다. 413) 향음주례(鄕飮酒禮)는 고을 유림들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는 군현단위 의례의 하나다. - 98 -
60~70세 된 분을 다른 한 자리에, 50세 이하 된 자들을 또 한 자리에 나이대로 앉 힌 다음 한 사람을 시켜 다음과 같은 맹세문[誓文]을 낭독하게 한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내쫓으며 형제간에 화목하지 않은 자도 내쫓으며 친구에게 신의가 없는 자도 내쫓으며 나라 정책을 비방하는 자를 내쫓으며 수령을 훼방하는 자를 물리친다. 첫째, 덕행으로 서로 권면하고 둘째, 잘못을 서로 바로 잡으며 셋째, 예속을 서로 도와 이루고 넷째, 환란에 서로 구제할 것인 바, 무릇 같은 고을 사람들은 각각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의를 극진히 하여 모두 후덕한 풍속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이렇게 맹세문 낭독이 끝나면 모두 두 번씩 절을 한 다음 술을 마시며 활쏘기 의 식을 행한다. 가을철에도 이와 같이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제주도 풍속에는 매년 봄철에 남녀가 무리지어 광양당(廣壤堂)과 차귀당(遮歸堂) 에 모여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또 그 지방에는 뱀, 독사, 지네 등이 많은데 만일 회색 뱀을 보게 되면 그것을 차귀당의 신으로 여겨 죽이지 못하 게 한다. 가을철에도 이와 같이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충청도 청안(淸安)414) 지방 풍속에는 3월 초가 되면 그 고을의 우두머리 아전이 읍내 사람들을 이끌고 동면(東面)에 있는 장압산(長鴨山) 위의 큰 나무로부터 국사 신(國師神) 부부를 맞이하여 읍내로 들어와서 무당들을 시켜 술과 밥을 갖추어 놓 고 징과 북을 요란하게 치면서 동헌과 각 청사에서 제사를 행한다. 그런 후 20여 일 후에 그 신을 본래의 나무로 도로 돌려보내는데 이런 행사를 2년 만에 한 번씩 행한다. 都俗出遊於山阿水曲謂之花柳卽上巳踏靑之遺俗也 弼雲臺杏花北屯桃花興仁門外楊柳其 最勝處多集于此 京外武士及里民張侯分耦爲射會以賭勝負飮酒爲樂 秋節亦然 女娘採取 靑草盈把者作髻削木而加之着以紅裳謂之閣氏 設褥席枕屛以爲戱 兒童折柳枝作竹+觱 篥以吹之 謂之柳笙 江陵俗敬老每値良辰請年七十以上會于勝地以慰之 名曰靑春敬老會 雖僕隸之賤 登七旬者皆許赴會 見輿地勝覽415) 慶州俗自春以四時遊賞之地爲四節遊 宅春東野宅夏谷良宅秋仇知宅冬加伊宅 見輿地勝覽416) 南原俗州人當春會于龍潭若栗 林飮酒射侯以爲禮 見輿地勝覽417) 龍安俗邑人當春節辦具爲鄕飮酒禮年八九十者一位 六七十者一位五十以下一位序以齒 令人讀誓文曰父母不孝者黜 兄弟不和者黜 朋友不信 414) 청안(淸安)은 과거에 현이었으나 지금은 충청북도 괴산군 소속 면이다. 41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강원도(江原道)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풍속조(風俗條) 41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고적조(古跡條) 417)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 풍속조(風俗條) - 99 -
者黜 謗訕朝政者黜 非毁守令者黜 一曰德業相勸 二曰過失相規 三曰禮俗相交418) 四曰 患難相恤 凡同鄕之人各盡孝友忠信咸歸于厚 讀訖俱再拜以行飮射之禮 見輿地勝覽419) 濟州俗每於春節男女羣聚廣壤堂遮歸堂具酒肉祭神 若見灰色蛇則以爲遮歸之神禁不殺 秋節又如之 又地多蛇虺蜈蚣 秋亦如之 見輿地勝覽420) 淸安俗三月初縣首吏率 邑人迎國師神夫婦於東面長鴨山上大樹 入于邑內用巫覡具酒食錚鼓喧轟行神祀於縣衙及 各廳 至卄餘日後還其神於樹而間二年行之 4월四月 초파일(八日) 8일은 곧 욕불일(浴佛日)421)로 석가가 탄생한 날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이 날 등 불을 켜기 때문에 등석(燈夕)이라고 한다. 수 일 전부터 각 가정에서는 각기 등장대 [燈竿]를 세우는데, 맨 위에 꿩장목을 세우고 색을 넣은 비단으로 만든 깃발을 매 단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는 장대 꼭대기에 대개 오래된 솔가지를 맨다. 각 집에서는 자녀 숫자대로 등을 달아 주위를 밝히면 길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9일이 되어서야 그만둔다. 사치를 부리는 집에서는 큰 대나무 수십 개를 묶어 세우 기도 하고 한강까지 가서 말짐으로 돛대를 실어다가 시렁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혹은 해와 달 모양을 한 일월권(日月圈)을 장대에 꽂아 바람을 받아 현란하게 돌아 가게 하며 혹은 빙빙 도는 전등(轉燈)을 매달아 마치 탄알이 날라 가는 것처럼 불 빛이 왔다갔다 하게 한다. 혹은 화약을 종이에 싸서 새끼줄에 매어 승기전(乘機 箭)422)처럼 쏘아 올리는데, 이렇게 하면 불줄기가 마치 비처럼 흩어져 내린다. 혹은 장대 끝에 수십 줌 되는 긴 종이쪽들을 매달아 용 모양으로 펄럭이게 하며, 혹은 광주리를 매달기도 하고, 혹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바지저고리를 입혀 새끼줄을 매 어 놀리기도 한다. 줄지어 늘어선 시렁들은 높게 보이도록 각각 새끼줄 수십 가닥 을 벌려 끌어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만드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시렁이 낮고 작으면 사람들이 모두 빈정거리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고려사(高麗史) 에 왕궁 이 있는 서울(송도)로부터 시골에 이르기까지 정월 보름에 이틀 밤씩 등불을 켜는 데 최이(崔怡,? ~ 1249)는 4월 8일에 등불을 켰다. 고 하였는데, 정월 보름의 연 등행사는 원래 중국의 제도이며 고려 때까지 있었던 이 풍속도 이제는 없어졌다. 418) 연대본, 광문회본에 禮俗相成으로 되어있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네 가지는 향약(鄕約)의 4가지 덕목으로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鄕約)의 4조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소학(小學) 권6 선행조(善行條)에도 4덕목이 나와있다. 419)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용안현(龍安縣) 풍속조(風俗條) 420)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풍속조(風俗條) 421) 욕불일(浴佛日)은 불상에 향수를 뿌리며 관불 의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422) 승기전(乘機箭)은 화살에 불을 붙여 당기는 병기(兵器)이다. - 100 -
또 생각건대 고려사 에 우리나라 풍속은 4월 8일이 석가탄신일이라고 하여 집집 마다 등불을 켠다. 이보다 수십일 전부터 아이들은 종이를 잘라 깃발처럼 장대에 매달아 서울 거리를 외치고 돌아다니면서 쌀과 포목을 얻어 그날 비용으로 쓰는데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 등 장대에 깃발을 다는 것은 과거 호기의 유습이며 이것을 반드시 4월 8일에 행하는 것은 최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등의 이름에는 수박등 마늘등 연꽃등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 공등[毬燈] 배등[船 燈] 종등 북등[鼓燈] 누각등 난간등 화분등 가마등 머루등 병등 항아리등 방울등 알등 용 등 봉등 학등 잉어등 거북등 자라등과 수복(壽福) 태평(太平) 만세(萬歲) 남산(南山) 등의 글자를 넣은 등이 있는데 모두 그 모양을 종이로 만들어 등에 바른다. 혹은 붉고 푸른 갑사에 운모(雲母)를 박아 날아가는 신선이나 꽃, 또는 새를 장식하며 등의 면 과 모마다 삼색 종이를 길게 오려붙여 바람에 너울너울 나부끼게 한다. 북등[鼓燈] 에는 주로 말 탄 장군이나 삼국지(三國志) 의 내용을 그렸다. 또 그림자등[影燈]이 있는데 안에다 회전하는 기구[鏇機]를 장치해 놓고 말을 타고 매와 개를 데리고 호 랑이 이리 사슴 노루 꿩 토끼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종이에 그려 오린 다음 그 기구에 붙인다. 그러면 바람결에 그 기구가 돌면서 바깥으로는 이것들의 그림자가 비쳐 나 오게 된다. 내 생각에는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 423) 에 영등을 아직껏 보지 못했으나 그것을 보는 것보다는 삼국지를 한 번 읽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으니 이것은 곧 삼국지 의 고사로 그림자를 만들었음을 지적한 것 이다. 또 생각건대 중국 송나라 시인 석호(石湖) 범성대(范成大)의 상원기오중절배 해체(上元紀吳中節俳諧體) 시에 그림자가 돌아가니 말을 타고 종횡으로 달린다. 라고 하고 그 주석에 이것을 마기등(馬騎燈)이라고 한 것을 보면 송나라 때부터 이 런 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시내 저자거리에서 파는 등은 천태만상으로 오색찬란하 고 값이 비싸며 기이함을 자랑한다. 종로 거리에는 이 등불을 보려고 구경꾼들이 담장처럼 둘러선다. 또 난새[鸞鳥]424) 학 사자 호랑이 거북 사슴 잉어 자라 등에 신선들 이 올라 탄 형상을 인형으로 만들어 팔면 아이들은 다투어 구입하여 장난감으로 가 지고 논다. 영등 행사가 있는 날 저녁에는 으레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때문에 온 장안의 남녀들은 초저녁부터 남산과 북악의 산기슭에 올라가 등을 달아 놓은 시 내 광경을 구경한다. 혹 어떤 이들은 퉁소나 거문고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논 다. 그리하여 서울 장안은 사람으로 바다를 이루고 불야성이 된다. 그렇게 떠들기를 밤새도록 한다. 장안 밖의 시골 노파들까지도 서로 이끌고 와서는 반드시 잠두봉(蠶 頭峯)425)에 올라가 이 장관을 구경하고야 만다. 아이들은 각각 등 대 밑에 석남(石 楠)426) 잎을 넣은 시루떡과 삶은 검정콩, 그리고 삶은 미나리 등의 음식을 차려 놓 는데, 이것은 석가탄신일을 맞아 간소한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해 즐기는 뜻이라고 423)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 는 소동파의 시 제목이나 출처는 미상이다. 424) 난새[鸞鳥]는 봉황의 일종이다. 425) 남산 서쪽에 있는 봉우리로 누에머리처럼 생긴 바위다. 426) 석남(石楠)은 상록활엽관목으로 녹나무로 부른다. - 101 -
한다. 또 물동이에다 바가지를 엎어놓고 빗자루로 두드리면서 진솔한 소리를 내는 데, 이것을 물장구놀이[水缶戱]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 송나라 때 장원(張 遠)427)이 쓴 오지(隩志) 에 서울 풍속에 염불하는 사람들은 염불할 때마다 콩으 로 그 횟수를 헤아리며, 4월 8일 석가탄신일에 이르러 그 콩을 볶아 소금을 약간 쳐서 길가는 사람을 맞이해 다 먹기를 권하여 인연을 맺는다. 고 하였는데, 지금 우 리 나라 풍속에 콩을 볶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 생각건대 제경경물 략 에 정월 보름밤에 아이들이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북을 치며 노는 것을 태 평고(太平鼓)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 물장구[水缶]는 태평고의 뜻과 유사한 바가 있고 부처의 탄일에 연등 행사를 하므로 결국 정월 보름에 하던 것을 4월 8일로 옮겨 하는 것이다. 八日卽浴佛日東俗以是日燃燈謂之燈夕 前數日人家各竪燈竿頭建雉尾色帛爲旗 小戶則 竿頭多結老松計家內子女人口懸燈以明亮爲吉 至九日乃止 侈者縛大竹累十 又駄致五江 檣桅而成棚 或揷日月圈隨風眩轉或懸轉燈往來如走丸或紙包火藥而繫於索衝上如乘機箭 火脚散下如雨或繫紙片幾十把飄揚如龍形或懸筐筥或作傀儡被以衣裳繫索而弄之 列㕓之 棚務勝競高張數十索邪許引起矮小者人皆嗤之 按高麗史王宮國都以及鄕邑正月望燃燈二 夜 崔怡於四月八日燃燈 上元燃燈本是中國之制而麗俗今已廢矣 又按高麗史國俗以四月 八日是釋迦生日家家燃燈前期數旬羣童剪紙注竿爲旗 周呼城中街里求米布爲其費謂之呼 旗 今俗燈竿揭旗者呼旗之遺也 必以八日肇自崔怡也 燈名西苽蒜子蓮花七星五行日月毬 船鍾鼓樓閣欄干花盆轎子山樏甁缸鈴卵龍鳳鶴鯉龜鼈壽福太平萬歲南山等字燈皆象形紙 塗 或用紅碧紗嵌雲母飾428)飛仙花鳥面面稜稜皆粘三色卷紙片紙旖旎聯翩 鼓燈多畵將軍 騎馬三國故事 又有影燈裏設旋機剪紙作獵騎鷹犬虎狼鹿獐雉兎狀傅於機爲風炎所轉外看 其影 按東坡與吳君采書云影燈未嘗見與其見此何如一閱三國志耶 此必以三國故事作影 也 又按范石湖上元吳下節物俳體詩轉影騎縱橫註云馬騎燈 盖自宋時已有此制也 市燈所 賣千形百狀五彩絢爛重價衒奇鍾街上觀者如堵 又造鸞鶴獅虎龜鹿鯉鼈仙官仙女跨騎之狀 羣童競買而弄玩至燃燈之夕例弛夜禁士女傾城初昏遍登南北麓觀懸燈或携管絃沿街而遊 人海火城達夜喧闐鄕外村婆提挈爭來必登蠶頭觀之 兒童各於燈竿下設石楠葉甑餠蒸黑豆 烹芹菜云是佛辰茹素廷客而樂 又泛瓢於盆水用帚柄叩而爲眞率之音謂之水缶戱 按張遠 隩志京師俗念佛號者輒以豆識其數至四月八日佛誕生之辰煮豆徵429)撤以鹽邀人于路請食 之以爲結緣夜 今俗煮豆盖昉於此 又按帝京景物略元夕童子撾鼓旁夕向曉曰太平鼓 今俗 水缶似是太平鼓之意而以佛日爲燈夕故移用之也 기타 4월 행사(月內) 427) 장원(張遠)은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행지(行之)이며 산에 은거하였다. 428) 연대본에는 飾이 餙로 되어있다. 429)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徵이 微로 되어있다. - 102 -
떡집에서는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납작하게 뗀 조각들을 여러 번 발효시켜 방울모 양으로 만든 다음 술을 넣어 찌고 삶은 콩에 꿀을 버무려 소를 만들어 그 안에 넣 는다. 그리고 그 위에 씨 바른 대추를 붙여 찌면 시루떡이 된다. 푸른 것과 흰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푸른 것은 당귀(當歸) 잎 가루를 섞은 것이다. 내 생각에는 원자황(藝苑雌黃) 430)이란 예 중국 책에 한식날 밀가루로 시루떡을 만들어 그 위에 대추를 붙인 것을 대추떡[棗餻]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풍속이 여기에서 나 온 것이다. 또는 방울같이 부풀어 오르지 않게 쪄서 먹기도 하고 누런 장미꽃을 따 다가 떡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 먹기도 하는데 마치 3월 3일 삼짇날 해먹는 화전(花 煎)과 같다. 생선을 가늘게 썰어 익힐 때 고미나물 국화잎 움파 석이버섯 익힌 전복 계 란 등을 섞은 것을 어채(魚菜)라고 한다. 또 생선을 두껍고 넓게 썰어 조각을 만들 어 고기 소를 넣고 익힌 것을 생선만두라고 하여 초장에 찍어 먹으며, 데친 미나리 에 파를 넣고 회를 만들어 후추가루를 탄 간장으로 양념하여 술안주로 먹는데 이것 들이 모두 첫여름의 시절음식이다. 처녀들과 어린아이들은 모두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을 섞어 짓찧어 손톱을 물들인 다. 경상도 웅천 지방 풍속에 그 지역 사람들이 매년 4월에 웅산신당(熊山神堂)으로 부터 신을 영접하여 내려와 풍악을 벌리고 온갖 놀이를 하는데, 이때가 되면 먼 곳 가까운 곳 할 것 없이 다투어 와서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10월에도 똑같이 이렇게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賣餠家用糯米粉打成一片累累起酵如鈴形以酒蒸溲豆饀和蜜入於鈴內粘棗肉於鈴上名蒸 餠有靑白兩色靑者用當歸葉屑也 按藝苑雌黃寒食以麵爲蒸餠樣團棗附之名曰棗餻 今俗 沿于是 又不起鈴而蒸片食之 採黃薔薇花作餻油煎以食如三日花煎 以魚鮮細切熟之雜苽 菜菊葉葱芽石耳熟鰒鷄卵名曰魚菜 又厚切作片包肉饀而熟之名曰魚饅頭 幷和醋醬食之 以烹芹和葱作膾調椒醬爲酒肴食之 皆初夏時食也 女娘及小童皆以鳳仙花調白礬染指甲 熊川俗熊山神堂土人每四月迎神下山陳鍾鼓雜戱遠近爭來祭之 十月又如之以爲常 見輿 地勝覽 5월五月 단오(端午) 5월 5일 단오에 임금은 규장각(奎章閣) 신하들에게 쑥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든 애호(艾虎)를 하사한다. 애호는 짧은 지푸라기와 비단 조각으로 꽃을 만들어 갈대 이삭처럼 주렁주렁 감아 묶은 것이다. 내 생각에는 세시기 431)에 단오에 쑥으로 430) 예원자황(藝苑雌黃) 은 20권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 에 의하면 한나라 헌제(獻帝) 때 그릇되고 거짓된 지식들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만든 책으로 20개 목(目)에 각 20조(條)씩 400조로 이루어졌다. - 103 -
호랑이 모양을 만들거나 혹은 비단을 오려 작은 호랑이를 만들고 쑥잎을 붙여서 머 리에 인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제도도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공조(工曹)에서 단오부채를 만들어 바치면 임금은 이것을 궁중의 재상들과 시종 들에게 하사한다. 부채 중에 매우 큰 것은 대나무로 된 흰 살이 40개 내지 50개나 된다. 이것을 백첩선(白貼扇)이라고 하고 옻칠을 한 것을 칠첩선(漆貼扇)이라고 한 다. 이것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금강산 1만 2천봉을 그린다. 혹 광대나 무당들이 이것을 갖는 경우도 있다. 근래에는 부채에다 꺾은 가지 복사꽃 연꽃 나비 은붕어 해오 라기 등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에는 중국 명나라 사람 이후(李 詡)가 쓴 계암만필(戒菴漫筆) 432)에 단오에 임금이 서울 관리들에게 궁중 부채를 하사하는데 그 부채는 대나무 살에 종이를 바르고 새나 짐승을 그리며 오색 천으로 애호를 감는다. 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두 도의 감사와 통제사 는 임금에게 명절부채[節扇]를 진상하고 예에 따라 조정의 대신들과 친척, 친우들 에게 선사하며, 부채를 만드는 고을의 수령들도 역시 임금에게 진상하고 친우들에 게 선사한다. 부채는 전라도 전주와 남평433) 지방에서 만든 것이 가장 좋다. 부채 의 종류로는 승두선(僧頭扇) 어두선(魚頭扇) 사두선(蛇頭扇) 합죽선(合竹扇) 반죽선(斑 竹扇) 외각선(外角扇) 내각선(內角扇) 삼대선(三臺扇) 이대선(二臺扇) 죽절선(竹節扇) 단 목선(丹木扇) 채각선(彩角扇) 소각선(素角扇) 광변선(廣邊扇) 협변선(狹邊扇) 유환선(有 環扇) 무환선(無環扇) 등 만든 모양이 각기 다르고 오색 외에도 자색 녹색 검푸른색 운암색 석린색 등 없는 색이 없이 모든 빛깔의 부채가 갖추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는 백색과 흑색의 두 빛깔과 황칠 또는 흑칠을 한 것, 그리고 기름 바른 것을 좋아한다. 청색 부채는 신랑을 위한 것이고 백색 부채는 상제를 위한 것이며 기타 여러 빛깔로 된 것은 부인들과 아이들이 갖는다. 단선(團扇 : 방구 부채)에도 오색이 있고 또 오색을 섞어 붙인 알록달록한 아롱 부채도 있는데 그 모양에 따라 오동잎 연잎 연꽃 파초잎 등과 비슷하다. 혹은 기름을 바르기도 하고 혹은 누런 칠이 나 검은 칠을 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집에 있을 때 부채를 부치며 색을 넣은 단선 은 부녀자나 아이들이 갖는다. 또 대나무 살에 색종이를 발라 넓고 큰 둥근 부채, 즉 윤선[輪扇]을 만드는데 자루를 달아 이것을 펼쳐 들면 마치 일산과 같아서 아이 들을 위한 볕가리개[遮陽之具]로 사용한다. 또 자루가 길고 큰 윤선은 잠자리에서 파리나 모기를 쫒는 도구로 사용한다. 혹은 반죽 껍질을 살에 붙이고 생초 비단을 바르고 구슬과 자개로 장식하여 시집가는 신부들의 얼굴가리개로 사용한다. 혹은 큰 파초잎 모양으로 만든 것도 있는데 이것은 대신들의 차림새에도 필요한 의식(儀 飾)이다. 장사꾼들이 만들어 파는 부채는 정밀하게 만든 것, 엉성하게 만든 것, 교 묘하게 만든 것, 질박하게 만든 것 등 그 만듦새가 똑같지 않다. 중국 사람들이 고 431) 본문은 세시잡기(歲時雜記) 에서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고, 사문류취(事文類聚) 등에는 단지 작자 미상 의 세시기(歲時記) 로 표기되어 있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432) 계암만필(戒菴漫筆) 은 8권이다. 저자 이후의 자는 후덕(厚徳), 호는 계암노인(戒菴老人)이다. 강음(江隂) 사람으로 생활이 어려워 과거에 나가지 못하고 80여 세를 살다가 죽었다. 433) 남평은 과거 전라도 현 이름으로, 현재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이다. - 104 -
려 사람은 겨울에도 부채를 쥔다. 고 한 것은 부채와 관련된 풍속이 많고 다양함을 기록한 것이다. 관상감(觀象監)에서 주사(朱砂)로 천중절, 즉 단오절 부적을 만들어 대궐에 바치 면 대궐에서는 그것을 문 위에 붙여 좋지 못한 귀신들을 물리친다. 양반 집에서도 이것을 붙인다. 그 부적의 내용을 보면 5월 5일 천중절에 위로는 하늘의 녹을 받 고 아래로는 땅의 복을 받아라. 치우(蚩尤)434)의 신은 구리 머리에 쇠 이마에 붉은 입과 붉은 혀를 가졌다. 404 가지의 병을 일시에 없앨 것이니 율령을 시행하듯 빨 리빨리 행하라.(五月五日 天中之節 上得天祿 下得地福 蚩尤之神 銅頭鐵額 赤口赤舌 四百四病 一時消滅 急急如律令) 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한나라 제도에 복숭아인장 [桃印]으로 악한 기운을 멈추게 한다고 하였으며, 포박자(抱朴子) 435)에는 적령부 (赤靈符)를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모두 단오의 옛 제도요 지금의 부적 제도 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임금의 약을 관리하는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여러 약초가루를 꿀에 넣어 끓인 제 호탕(醍醐湯)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며 또 구급약인 옥추단(玉樞丹)을 만들어 금박 을 입혀 바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오색실에 꿰어차고 다님으로써 액을 제거하 며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에게도 나누어준다. 내 생각에는 중국 한나라 말엽의 책인 응소(應劭)의 풍속통(風俗通) 436)에 5월 5일 단오 때 오색 명주실을 팔에 매는 것은 귀신과 난리를 물리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장명루(長命縷)라고 하 고 일명 속명루(續命縷), 또는 벽병증(辟兵繒)이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 에 옥추단을 차는 것도 이런 종류일 것이다. 남녀 아이들은 창포를 끓인 물로 얼굴을 씻고 모두 붉은 색과 녹색의 새 옷을 입 는다. 부녀자들은 창포 뿌리를 깎아서 비녀를 만들고 혹은 그 끝에 연지로 수(壽) 자나 복(福) 자를 새겨 쪽에 꽂아 전염병을 예방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단오 치장 [端午粧]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 한나라 사람 대덕(戴德)이 편찬한 대대례 기(大戴禮記) 에 5월 5일에 난초 우린 물[蓄蘭]로 목욕한다 437)고 했고, 또 세 시잡기 에 단오에 창포와 쑥 뿌리를 다듬어 작은 인형이나 조롱박 모양으로 만들 어 몸에 참으로써 액을 물리친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 창포로 목욕하고 창포 뿌리를 꽂는 것이 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생각건대 심방의 완서잡기 에 중국 연경에서는 5월 1일부터 5일까지 사이에 규중 처녀들을 매우 곱고 맵시 있 게 꾸며주며 이미 출가한 여자들도 각기 친정으로 근친(覲親)을 가는 풍속이 있어 434) 치우(蚩尤)는 고대 중국 황제시대의 제후로 신농씨 때 난을 일으켰으나 패전하였다. 435) 포박자(抱朴子) 는 신선의 법을 설명하고 도덕과 정치를 논한 책 이름이며, 이 책을 지은 중국 진나라 도 가(道家) 갈홍(葛洪)의 호이기도 하다. 436) 풍속통 은 중국 한말에 국자박사지례의(國子博士知禮儀)로 있던 양(梁)나라 무강(武康) 사람 심문아(沈文 阿) 등이 황제의 지시로 지은 풍속에 관한 책이다. 437) 이 내용은 대대례기 전 13권 중 제2권 하소정(夏小正) 에 있다. 편저자인 대덕의 자는 연군(延君)이다. 예기(禮記) 214편을 줄여 대대례기(大戴禮記) 85편을 구성하였다. 청나라는 기존의 13경(經) 외에 대대 례기(大戴禮記) 를 비롯하여 국어(國語) 사기(史記) 한서(漢書) 자치통감(資治通鑑) 설문해자(說文解字) 구장산술(九章算術) 주비산경(周髀算經) 등 8책을 추가하여 21경(經)이라고 하였다. - 105 -
이 날을 여아절(女兒節)이라고 부른다. 고 했다. 우리나라 풍속도 북경과 서로 비슷 하므로 여자들이 몸을 꾸미는 것도 북경의 풍속을 답습한 것으로 여겨진다. 항간에서는 남녀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 내 생각에는 圖) 438)를 고금예술도(古今藝術 보면 북방 오랑캐들이 한식날 그네뛰기를 하며 가볍게 뛰어오르는 연습 을 하는 그림이 있어 후에 중국여자들이 그것을 배운 것 같으며, 또 생각건대 보유사(天寶遺事) 439)에 천 궁중에서 한식 때가 되면 다투어 그네를 매는데 이것을 반선놀이[半仙之戱]라고 한다. 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단오로 옮겨졌다. 이 날 청장년들은 서울 남산의 왜장(倭場)이나 북악산의 신무문(神武門) 뒤에 모 여 씨름을 하여 승부를 겨룬다. 그 방법은 두 사람이 맞붙어 무릎을 꿇고 각자 오 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왼손으로 상대편의 오른편 넙적다리를 잡은 다음 일시에 일어나면서 상대를 들어 메치는데 넘어지는 자가 지는 것이다. 씨름 기술에 는 안걸이, 밭거리, 둘러치기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중에 힘이 세고 솜씨가 민 첩하여 여러 번 내기하여 자주 이기는 사람을 판막음[都結局]이라고 한다. 중국인 들이 이를 본받아 고려기(高麗技)라고 하기도 하고 요교(撩跤)라고 하기도 한다. 이 경기는 단오 때 제일 많이 하며 서울과 지방이 차이가 없다. 내 생각에는 예기 월령 에 초겨울이 되는 달에 장수들에게 명하여 군사훈련을 시킬 때 활쏘기, 말달 리기, 힘겨루기(角力) 등을 연습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씨름이 바로 이 힘겨루 기로 곧 군사들의 힘내기인 것이다. 또 생각건대 중국 동한시대 사람인 장평자(張平 子)의 서경부(西京賦) 440)에 각저(角觝)의 묘기를 드러냈다. 고 했다. 그러므로 한 나라 때도 이런 것이 있었으니 오늘날의 씨름과 비슷한 것이다. 頒艾虎于閣臣用小稈纏束綵花蔌蔌如蓼穗 按歲時雜記端午以艾爲虎形或剪綵爲小虎粘艾 葉以戴之 國制昉於此 工曹造進端午扇 頒于宮掖宰執侍從 扇之絶大者竹幅白矢滿五十 四十名曰白貼 着漆者名曰漆貼 得此者多畵金剛一萬二千峯 或爲倡巫所把 近俗喜寫折 枝桃花芙蓉虎蝶銀鯽鷺鷥 按戎菴漫筆端午賜京官宮扇 竹骨紙面俱畵翎毛五色綿纏繞艾 虎者是也 湖南嶺南兩道伯及統閫進上節扇例送於朝紳曁親知間 造扇邑守令亦有進上贈 遺 全州南平之制爲佳 僧頭魚頭蛇頭合竹斑竹外角內角三臺二臺竹節丹木彩角素角廣邊 狹邊有環無環 製樣各殊五色及紫綠鴉靑雲暗石磷等諸色無不備焉 俗尙白黑二色黃漆黑 漆兩貼及着油者 靑爲新郞素爲喪人諸色爲婦人小兒所把 團扇有五色 又有五色交貼斑斕 者有似桐葉蓮葉蓮花蕉葉者 或着油或黃黑漆 男子在家而搖 色扇爲婦女兒童所持 又有 色紙竹幅闊大爲輪扇有柄張之如傘作小兒遮陽之具 又有長柄大團扇作枕蕈揮蠅蚊之具 又以斑竹皮色綃紗飾珠貝爲新婦遮面之具 或倣大蕉葉形亦爲大臣儀飾之物 又有商賈扇 賣買者精麁巧樸不一其制 中國人稱高麗人冬執扇記其俗也 觀象監朱砂榻天中赤符進于 438) 고금예술도(古今藝術圖) 는 역대 명화를 모아 그리고 그림과 관련한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50권이다. 수 (隋)나라 양제(煬帝)가 찬(撰)하였다. 439) 천보유사(天寶遺事) 는 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기록으로 당시의 특별한 일이나 기이한 소문 등을 기록하였 다. 440) 장평자(張平子)는 후한 때 학자 장형(張衡)이다. 평자(平子)는 그의 자다. 저서 중에 사치한 세상을 풍자한 이경부(二京賦) 가 유명하다. 서경부 는 전한 때 서울 장안을 읊은 글이다. - 106 -
大內貼門楣以除弗祥 卿士家亦貼之 其文曰五月五日天中之節上得天祿下得地福蚩尤之 神銅頭鐵額赤口赤舌四百四病一時消滅急急如律令 按漢制有桃印以止惡氣 抱朴子作赤 靈符 皆端午舊制 而今之符制盖出於此 內醫院造醍醐湯進供 又製玉樞丹塗金箔以進穿 五色絲佩之禳灾頒賜近侍 按風俗通五月五日以五綵絲繫臂者辟鬼及兵名長命縷一名續命 縷一名辟兵繒 今俗之佩丹盖此類也 男女兒童取菖蒲湯頮面皆着紅綠新衣削菖蒲根作簪 或爲壽福字塗臙脂於其耑遍揷頭髻以辟瘟號端午粧 按大戴禮五月五日蓄蘭爲沐浴 又按 歲時雜記端午刻菖艾爲小人或葫蘆形帶之辟邪441) 今俗之浴蒲揷菖盖昉於是 又按宛署雜 記燕都自五月初一日至五日飾小閨女盡態極姸 已出嫁之女亦各歸寧號是日爲女兒節442) 東俗與燕相近其靚粧似襲燕風也 閭巷男女盛爲鞦韆戱 按古今藝術圖北方戎狄至寒食爲 鞦韆戱以習輕趫後中國女子學之 又按天寶遺事宮中至寒食節競築鞦韆呼爲半仙之戱 今 俗移於端午 丁壯年少者會於南山之倭場北山之神武門後爲角力之戱以賭勝負 其法兩人 對跪各用右手挐對者之腰 又各用左手挐對者之右股 一時起立互擧而抨之 倒臥者爲負 有內局外局輪起諸勢就中力大手快屢賭屢捷者謂之都結局 中國人效之號爲高麗技 又曰 撩跤 端午日此戱甚盛 京外多爲之 按禮記月令孟冬之月乃命將帥講武習射御角力 今之 角戱卽此而乃兵勢也 又按張平子西京賦呈角觝之妙戱 在漢時亦有之 與此相類 단오를 속칭하여 수리날[戌衣日]이라고도 하는데 수리 란 우리 나라 말로 수레 [車]다. 이 날 쑥을 뜯어 짓찌어서 멥쌀가루에 넣고 초록색이 나도록 반죽을 하여 수레바퀴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그래서 이 날을 수리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떡집에서는 이것을 시절음식으로 판다. 이 쑥을 본초강목(本草綱目) 443)에서는 천 년애(千年艾)라고 나오고 중국사람들은 구설초(狗舌草)라고 한다. 쑥잎 중 겉이 흰 것을 볕에 바짝 말려 비벼서 부싯깃[火絨]을 만드는데 이것을 수리치[戌衣草]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의 무규(武珪)라는 사람이 쓴 연북잡록(燕北雜錄) 444)에 요(遼) 지방 풍속에 5월 5일 발해(渤海)의 주방에서 쑥떡을 올린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풍속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날 오시(午時 : 오전 11시~오후 1시)에 익모초(益母草)와 진득찰[豨薟]을 뜯 어다가 볕에 말려 약으로 쓴다. 또 대추나무를 시집보낸다. 내 생각에는 진호의 화 력신재 에 대추나무 시집보내는 것은 단오날 오시가 좋다. 또한 단오날 오고(五鼓 =五更), 즉 날이 밝을 무렵에 도끼로 과일나무를 여러 번 쳐 두면 과일이 많이 달 린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풍속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해 지방 풍속에 매년 4월 초파일부터 아이들이 성 남쪽에 모여들어 돌팔매싸움 [石戰]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단오날이 되면 장정들까지 모두 모여 좌우로 편을 갈 441) 사문류취(事文類聚) 의 원문은 端午刻菖艾為小人子或葫蘆形帶之辟邪. 로 小人과 或 사이에 子가 있다. 442) 원명사류초(元明事類抄) 의 원문은 各歸寧俗呼是日為女兒節 로 寧과 是 사이에 俗呼가 있다. 443) 본초강목(本草綱目) 은 중국 책으로 약물(藥物)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7개 항목으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444) 본문은 연북잡기(燕北雜記) 로 되어 있는데 연북잡록(燕北雜錄) 으로 바로 잡는다. 연북잡록 은 사경(思 卿) 무규(武珪)의 기록이다. 송나라 인종 때인 1061년에 무규가 거란에서 도망하여 돌아온 사실이 있어 이 책 을 지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 107 -
라 깃 발을 세우고 북을 울리고 고함을 치고 날뛰면서 마치 비가 오듯 돌을 던지다 가 승부가 난 뒤에야 끝난다. 이 때 비록 죽거나 다친 자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며 고을 수령도 이를 막지 못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충청도 금산 지방 풍속에 단오날이 되면 소년 무리들이 직지사(直指寺)로 모여 씨름대회를 갖는다. 이 때 원근 사람들이 모두 모여 누가 이기는지 내기를 건다. 이 소문을 듣고 구경나온 사람이 수천 수백을 헤아리며 해마다 이렇게 한다. 경상도 군위 지방 풍속에 효령현(孝靈縣)의 서쪽 산에 김유신사당(金庾信祠堂)이 있는데 속칭 삼장군당(三將軍堂)이라고 한다. 매년 단오날에 그 고을의 우두머리 아 전인 이방이 읍내 사람들을 인솔하여 역마를 타고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며 사당으로 올라가서 신을 모시고 내려와 마을 거리에서 논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강원도 삼척 지방 풍속에 읍내 사람들이 오금(烏金)으로 만든 비녀를 조그만 함 에 담아 관아의 동쪽 모퉁이에 있는 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다가 매년 단오에 아전 과 읍민들이 함께 그것을 꺼내어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도로 가져다가 감추어 둔 다. 속설에 그 오금비녀는 고려 태조 때의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제사지내는 까닭은 알지 못하고 그냥 전래 행사가 되어버려 관에서도 이를 금하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함경도 안변(安邊) 지방 풍속에 상음신사(霜陰神祠 : 상음현에 있는 신사 이름)가 있는데 속설에 선위대왕(宣威大王 : 안변도호부의 성황신)의 부인을 모시는 사당이 라고 한다. 매년 단오날이 되면 성황사의 선위대왕신을 이 신사로 모셔 부부를 함 께 제사지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端午俗名戌衣日 戌衣者東語車也 是日採艾葉爛搗入粳米粉發綠色打而作餻 象車輪形食 之故謂之戌衣日 賣餠家以時食賣之 本草千年艾華人呼作狗舌草是也 艾葉之背白者曝乾 碎作 火絨亦號戌衣草 按武珪燕北雜錄445)遼俗五月五日渤海446)廚子進艾餻 東俗似沿 於是 午時採益母草豨薟曬爲藥用 又嫁棗樹 按花曆新栽嫁棗宜於端午日午時 又端午五 鼓以斧斫諸果木數下結實多 今俗昉此 金海俗每歲自四月八日兒童羣聚習石戰于城南至 端午日丁壯畢會分左右竪旗鳴鼓呌呼踊躍投石如雨 決勝負乃已 雖至死傷無悔 守令不能 禁 見輿地勝覽 447) 金山俗端午日羣少會於直指寺爲角力戱 遠近咸聚以賭勝負 聞風 而觀光者以千百計 歲以爲常 軍威俗孝靈西岳金庾信祠俗稱三將軍堂 每歲端午縣首吏率 邑人以驛騎旗鼓迎神遊於村巷 見輿地勝覽448) 三陟俗邑人盛烏金簪小函藏於治所東隅 樹下 每遇端午吏民449)取出奠而祭之 翌日還藏 諺傳高麗太祖時物 然未審其所以祭之之 意遂成故事 官亦不禁 見輿地勝覽450) 安邊俗霜陰神祠 諺傳宣威大王之夫人每以端午 445)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연북잡지(燕北雜志) 로 되어 있으나 연북잡록(燕北雜錄) 이 맞다. 446)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渤海가 勃海로 되어 있다. 447)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풍속조(風俗條) 448)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군위현(軍威縣) 사묘조(祠廟條) 449) 연대본, 광문회본에는 民이 人으로 되어 있다. - 108 -
迎宣威並祭之 見輿地勝覽451) 기타 5월 행사(月內) 이 달 초열흘날은 태종 임금의 제삿날이다. 매년 이 날에 반드시 비가 오므로 이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한다. 태종이 운명할 때 아들 세종에게 말하기를 지금 가 뭄이 바야흐로 심하니 내가 죽어도 이를 안다면 반드시 이 날 비를 내리게 하겠 다. 고 하였다. 그 후 과연 이 날이면 비가 왔다. 임금은 보리 밀 고미(菰米)로써 종묘에 천신 제사를 지내며 재상집과 양반집에서도 이를 행한다. 내 생각에는 예기 월령 에 초여름에 농가에서 천자에게 보리를 올리면 천자는 (고기보다는) 보리를 먼저 맛보시며, 시식하기 전에 종묘에 천신한 다. 고 했고, 또 최식(崔寔)의 월령 에 초복에 보리와 고미를 조상의 사당에 천신 한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제도도 마찬가지다. 서울 풍속에 콩을 삶아 소금 간을 맞추어 항아리에 장을 담가 겨울을 날 계획을 세운다. 온갖 꺼리는 날 중에 신일(辛日)이 있는데 신 이라는 발음이 맛이 시다는 것을 연상시키므로 장 담그는데 맞지 않다고 하여 이 날을 피해 장을 담근다. 初十日太宗忌辰 每年必雨謂之太宗雨 太宗臨薨敎世宗曰旱災方甚 死若有知必使是日得 雨 後果然 薦大小麥苽子于太廟 卿士家亦行之 按禮記月令孟夏之月農乃登麥天子嘗麥 先薦寢廟452)又按崔寔月令初伏薦麥苽于祖禰 國制亦然 都俗以燻豆調鹽沈醬于陶甕爲過 冬之計 百忌日辛不合醬忌辛日 6월六月 유두(流頭) 이 달 15일을 우리 나라 풍속에서는 유두날[流頭日]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고 려 명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가 쓴 문집(文集)453) 중에 경주의 옛 풍속에 6 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들을 씻어 버리고, 그 자리 에서 재앙을 물리치는 제를 지내고 술을 마시는데 이것을 유두잔치[流頭宴]라고 한 다. 고 하였는데, 지금 조선 풍속에서도 이것을 이어받아 속절(俗節)로 삼고 있다. 경주에는 아직도 이런 풍속이 남아 있다. 이 날은 멥쌀가루를 쪄서 둥글고 긴 가래 450)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강원도(江原道)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풍속조(風俗條) 45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함경도(咸鏡道)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사묘조(祠廟條) 452) 예기(禮記) 의 원문은 農乃登麥 天子乃以彘嘗麥 先薦寢廟 이다. 453) 문집은 김거사집(金居士集) 을 말한다. - 109 -
떡을 만든 다음 그것을 구슬같이 잘게 썰어 꿀물에 담갔다가 얼음을 채워 먹으며 제사에도 쓴다. 이것을 수단(水團)이라고 한다. 또 건단(乾團)이라는 것도 있는데 수 단같이 만들지만 물에 넣지 않은 것으로 곧 냉도(冷食匋 : 찬 경단)와 같은 종류다. 혹 찹쌀가루로 만들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천보유사 책에 의하면 궁중에서 매 년 단오에 분단과 각서(角黍 : 고미잎에 기장쌀 가루를 싸서 찐 떡)를 만들어 금쟁 반 가운데에 친 못에 고정시켜 놓고 작은 활로 쏘아 그 분단을 맞힌 사람이 그것을 먹는다. 고 했고, 또 세시잡기 에 단오 때 수단을 만드는데 다른 말로 백단이라고 도 하며, 가장 정밀하게 만든 것을 적분단(滴粉團)이라고 한다. 고 하였으며, 중국 북송시대 사람 문잠(文潛) 장뢰(張耒)454)의 시에 수단을 얼음물에 넣고 사탕으로 싼다. 라고 하는 등 옛사람들은 각서나 [粽]같은 떡을 단오절 음식으로 삼아 서로 주고받고 하였다는데, 모두 이런 종류인 듯하며 다만 모양이 모나고 둥근 것이 서 로 다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풍속이 유두날로 옮겨진 것도 다른 점이다. 또 밀가루를 반죽하여 꿀에 버무린 콩이나 깨를 그 속에 넣어 찐 것을 상화병(霜花餠) 이라고 하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다음 고미로 만든 소를 넣거나 콩과 깨에 꿀을 섞은 소를 넣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므려 만든 것을 연병(連餠)이라고 하며, 또 나뭇잎 모양으로 주름을 잡아 고미로 만든 소를 넣고 채롱에 쪄서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이것들이 모두 유두날의 시절음식으로 제사에 쓰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육방옹(陸放翁)의 시에 쟁반을 씻고 연전(連展)을 쌓아놓는다. 는 구절이 있는데 그 주석에 회수 지방 사람들은 보리떡을 연전이라고 한다. 고 했으니 그것 이 바로 연병 같은 것인 듯하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 모양의 누룩을 만드는데 이것을 유두 누룩[流頭麯]이라 고 한다. 거기에다 오색 물감을 들여 세 개를 이어서 색실로 꿰어 차고 다니며, 혹 문 위에 걸어 액을 막기도 한다. 十五日東俗稱流頭日 按金克己集東都遺俗六月望日浴髮於東流水 祓除不祥因爲禊飮謂 之流頭宴 國俗因之爲俗節 慶州尙有此風焉 蒸粳未粉打成長股團餠細切如珠 澆以蜜水 照氷食之以供祀名曰水團 又有乾團不入水者卽冷飠匋之類 或用糯米粉爲之 按天寶遺事 宮中每端午造粉團角黍釘金盤中以小小角弓架箭射中粉團者得食 又按歲時雜記端午作水 團又名白團最精者名滴粉團455) 又按張文潜詩云水團氷浸砂糖裹456) 古人以角黍粽爲端 午節物相餽送 盖此類而角與團異形也 今俗移於流頭以小麥麵溲而包豆荏和蜜蒸之曰霜 花餠 又碾麵而油煮包苽饀或包豆荏和蜜爲饀卷摺異形名曰連餠 又皺作葉形包苽饀籠蒸 浸醋醬以食之並以時食亦供祀 按放翁詩拭盤堆連展註淮人以麥餌謂連展似此類也 用小 麥麵造麯457)如珠形名曰流頭麯 染五色聯三枚以色絲穿而佩之或掛於門楣以禳之 454) 장뢰(張耒, 1054~1114)의 자는 문잠(文潛), 호는 가산(柯山)이다. 강소(江蘇) 청강(清江) 출신으로 시인(詩 人)이며, 소동파에게 배웠다. 455) 사문류취(事文類聚) 의 원문은 端午作水團又名白團或雜五色人獸花果之狀最精者名滴粉團 이다. 456) 사문류취(事文類聚) 의 원문은 水團冰浸砂糖裹 透明角黍崧兒和 이다. 457) 광문회본에는 麯이 빠져 있다. - 110 -
삼복(三伏) 개고기를 파와 함께 푹 삶은 것을 개장[狗醬]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닭고기와 죽 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을 만들어서 산초가루를 치고 흰밥을 말면 시절 음식이 된다. 그것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도 물리치고 보신도 된다. 저자에서도 이것을 많이 판다. 내 생각에는 사기(史記) 에 진나라 덕공(德公) 2년에 처음으로 복 제사를 지내는 사당[伏祠]을 짓고 사대문에서 개를 찢어 죽임으로써 충재(蟲災) 를 예방했다. 458)고 한 것을 보면, 개를 잡는 일이 곧 옛날 복날의 행사이며 지금 풍속에도 이것으로 인해 삼복 더위 때 좋은 음식이 된 것이다.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는데 삼복, 즉 초복 중복 말복에 다 그렇게 한다. 烹狗和葱爛蒸名曰狗醬 入雞笋更佳 又作羹調番椒屑澆白飯爲時食 發汗可以祛暑補虛 市上亦多賣之 按史記秦德公二年初作伏祠磔狗四門以禦蟲災 磔狗卽伏日故事而今俗因 爲三伏佳饌 煮赤小豆粥以爲食 三伏皆如之 기타 6월 행사(月內) 이 달에 피 기장 조 벼 등 햇곡식으로 종묘에 천신 제사를 지낸다. 내 생각에는 예기 월령(月令) 에 5월에 농가에서 천자에게 기장을 올리면 천자는 (꿩고기보 다는) 기장을 먼저 맛보시며 시식하기 전에 종묘에 천신 제사를 올리고, 7월에 농 가에서 햇곡식을 올리면 천자께서 새 곡식을 맛보시는데 먼저 종묘에 올린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제도도 마찬가지다. 임금은 얼음을 각 관서에 나누어주는데, 나무로 패(牌)를 만들어 주어 얼음 창고 에서 받아가도록 한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거기에 오이와 닭고기를 넣어 가지고 어저귀국[白麻子 湯]에 말아먹으며, 또 미역국을 사용하여 닭고기를 조리한 다음 면을 넣고 물을 약 간 따라 넣어 익혀 먹는다. 또 호박과 돼지고기를 섞은 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삶기도 하고, 혹은 거기다가 굴비 대가리를 넣어 함께 삶기도 한다. 또 호박을 썰어 밀가루에 반죽하여 기름에 부치기도 한다. 이것들이 모두 여름철의 시절음식으로서 계절에 맞는 좋은 반찬들이다. 참외와 수박은 더위를 씻는 먹을거리다. 서울 동부 (東部)인 동대문 부근의 채소와 과일, 그리고 서부(西部)인 남대문 밖 칠패(七牌)의 생선은 이때가 한창이다. 서울 서대문 밖 천연동에 있는 천연정(天然亭)의 연꽃과 삼청동의 탕춘대(蕩春臺) 와 정릉의 수석(水石)에는 술과 문학을 즐기는 자들이 많이 모여들어 옛날 중국 하 삭(河朔)459) 지방에서 했다는 식으로 술을 마시며 피서를 한다. 서울 풍속에는 또 458) 이것은 사기(史記) 권28에 나오는 내용으로 원문은 磔狗邑四門以禦蠱菑 로 묵힌 밭의 해충인 고치(蠱菑) 를 예방하였다고 하였다. 사기 는 중국 한나라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이 찬(撰)하였다. - 111 -
남산과 북악 골짜기에 흐르는 물에 발담그기[濯足]를 하는 놀이가 있다. 경상도 진주 지방 풍속에 이 달 그믐날에는 남녀들이 강가로 나가 함성불제(陷城 祓除), 즉 성이 함락 당한 데 대한 상서롭지 못한 것을 씻어버리는 행사를 한다. 이 때 원근사람들이 모여들어 보느라고 구경꾼들로 시장을 이룬다. 이는 옛날 임진왜 란 때 이 날 성이 함락되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해마다 한다. 薦稷黍粟稻于太廟 按禮記月令仲夏之月農乃登黍天子嘗黍先薦寢廟460)孟秋之月農乃登 穀天子嘗新先薦寢廟 國制亦然 頒氷于各司造木牌 俾受去於凌室 以小麥造麵調靑苽鷄 肉澆白麻子湯 又用甘藿湯調鷄肉以麵點水熟而食之 又以南苽同猪肉切白餠爛煮或入乾 鮸魚頭同煮 又以小麥麵拌南苽切片油煮皆爲夏月時食眞率之饌 甜苽西苽爲滌暑之需 東部菜果七牌魚鮮是時最盛 天然亭荷花三淸洞蕩春臺貞陵水石觴詠者多集于此以倣河朔 之飮 都俗又於南北溪澗爲濯足之遊 晋州俗十月晦日士女出江邊爲陷城祓除 遠近來會 觀者如市 盖昔倭亂以是日陷城故也 歲以爲常 7월七月 칠석(七夕) 이 날 인가에서는 옷가지를 밖으로 내어 햇볕을 쪼이는데, 이는 옛날부터 내려오 는 풍속이다. 人家曬衣裳盖古俗也 중원(中元) 이 달 15일은 우리나라 풍속에 백중날[百種日]이라고 하여 중들은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며 큰 명절로 여긴다. 내 생각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에 중원일 에는 중, 도사, 세속인 모두 우란분을 차려 제각기 절에 공양한다. 고 했고, 또 생각 건대 우란분경(盂蘭盆經) 461)에 부처 제자인 목련(目連)이란 비구가 각종 음식과 백가지 과일을 구비하여 쟁반에 담아서 시방대덕[十方大德]462)에게 공양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말하는 백중날이라는 것은 이 백가지 과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 고 려시대에는 부처를 숭상하여 해마다 이 날이면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었는데 지 금 재(齋)를 여는 풍속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이 날로 망혼일(亡魂日)을 삼는데 대개 항간의 백성들이 이 날 459) 하삭은 황하 북쪽으로 후한 말기에 유송(劉松)이 원소(袁紹)의 자제들과 술을 마시며 피서했다는 고사가 있 다. 460) 예기(禮記) 의 원문은 農乃登黍 天子乃以雛嘗黍 羞以含桃 先薦寢廟 으로 되어있다. 461) 우란분경(盂蘭盆經) 은 옛날 목련(目連)의 어머니가 죄를 짓고 죽어 아귀도에 떨어져 있을 때 목련존자가 석가의 도움으로 시방대덕에게 공양을 올려 어머니 영혼을 구제한 일을 담은 불경이다. 462) 시방대덕[十方大德]이란 각 방위의 높은 덕을 가진 중들을 말한다. - 112 -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 등을 차려놓고 죽은 어버이의 혼을 불러 모신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의 시에 시장에 채소와 과일이 많은 것을 보니 도성 사람들이 오늘 도처에서 죽은 혼을 위해 제사지내겠구나. 라고 하였다. 충청도 풍속에 이 날 노소를 막론하고 저자에 나아가 마시고 먹는 것을 즐긴다. 또 씨름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十五日東俗稱百種日僧徒設齋供佛爲大名節 按荊楚歲時記中元日僧尼道俗悉營盆供諸寺 院 又按盂蘭盆經目連比邱五味百果以著盆中供養十方大德 今所云百種日似指百果也 高 麗崇佛是日每爲盂蘭盆會 今俗設齋是也 國俗以中元爲亡魂日 盖以閭閻小民是几463)月 夕備蔬果酒飯招其亡親之魂也 李東岳安訥有詩云 記得市廛蔬果賤 都人隨處薦亡魂 湖 西俗以十五日老少出市飮食爲樂 又爲角力之戱 見輿地勝覽464) 기타 7월 행사月內 재상과 양반 집에서는 이 달에 올벼로 제사를 지내는데 대부분 초하루와 보름에 지낸다. 卿士家薦早稻多因朔望行之 8월八月 추석秋夕 이 달 15일을 우리 나라 풍속에서 추석 또는 가위[嘉俳]라고 한다. 신라 때부터 있던 풍속으로 시골 농촌에서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삼는데 그것은 새 곡 식이 이미 익었고 가을 농작물을 추수할 때가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날 사람들 은 닭을 잡고 술을 빚어 온 동네가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즐긴다. 경주 지방 풍속에 신라 유리왕 때 여섯 부(部)를 둘로 똑같이 나누어 두 편을 만 들고 왕녀(王女) 두 사람을 시켜 각각 부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갈라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여 밤 을야(乙夜 : 이 경)가 되어 파했다. 이렇게 8월 보름까지 하여 그 간의 길쌈한 공의 많고 적음을 보아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했다. 이 때 노래와 춤 등 온갖 놀이를 다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가위라고 했다. 이 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 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우아하여 뒷 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지었는데 그 노래를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한 463) 연대본에 几으로 되어있으나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46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여산군(礪山郡) 산천조(山川條) - 113 -
다. 우리나라 풍속에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제주도 풍속에 매년 8월 보름날에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좌 우로 편을 갈라 커다란 동아줄의 양쪽을 서로 잡아당겨 승부를 겨룬다. 이 때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져서 양편이 모두 땅에 엎어지면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줄다리기[照里之戱]라고 한다. 이 날 또한 그네도 뛰고 닭잡기놀이[捕鷄之戱]도 한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十五日東俗稱秋夕 又曰嘉俳 肇自羅俗 鄕里田家爲一年最重之名節以其新穀已登西成不 遠 黃鷄白酒四隣醉飽以樂之 慶州俗新羅儒理王時中分六部爲二 使王女二人各率部內女 子分朋 秋七月旣望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乙夜而罷 至八月望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 食以謝勝者 於是歌舞百戱皆作謂之嘉俳 人因其聲而作歌名會蘇曲 是時負家一女起舞歎曰會蘇會蘇 其音哀雅 後 國俗至今行之 見輿地勝覽465) 濟州俗每歲八月望日男女共 聚歌舞分作左右隊曳大索兩端以決勝負 索若中絶兩隊仆地則觀者大笑以爲照里之戱 是 日又作鞦韆及捕鷄之戱 見輿地勝覽466) 기타 8월 행사月內 충청도 시골 풍속에 이 달 16일에 씨름을 하고 술과 음식을 차려 먹고 즐겁게 노 는데, 이는 농사가 끝나 농민들이 피로를 푸느라고 하는 것으로 매년 그렇게 한다. 술집에서는 햅쌀 술을 빚어 팔며 떡집에서는 햅쌀 송편과 무와 호박을 넣은 시루 떡을 만든다. 또 찹쌀가루를 찐 다음 그것을 쳐서 떡을 만들고 거기에 볶은 검은 콩가루나 누런 콩가루 혹은 참깨가루를 묻혀서 파는데 이것을 인절미[引餠]라고 한 다. 이것은 즉 옛날의 자고(粢餻)나 한나라 때의 마병(麻餠)과 같은 종류다. 또 찹쌀 가루를 쪄서 계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거기에 꿀에 버무린 삶은 밤을 붙인 것을 밤단자[栗團子]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세시잡기 에 봄 가을의 두 사일(社日)과 중양(重陽 : 9월 9일)에 밤으로 떡을 만든다. 라고 하였는데,467) 지금의 풍속이 여 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토란단자라는 것도 있어 밤단자 만드는 법과 똑같이 만 든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가을철의 시절음식이다. 十六日湖西鄕俗以角力戱設酒食爲樂 盖因農歇息力而然也 每年如之 賣酒家造新稻酒 賣餠家造早稻松餠菁根南苽甑餠 又蒸糯米粉 打爲餻以熟黑豆黃豆芝麻粉粘之名曰引餠 以賣之 卽古之粢餻 漢時麻餠之類也 蒸糯米粉成團餠如卵 用熟栗肉和蜜附之名曰栗團 子 按歲時雜記二社重陽以栗爲餻468) 今俗昉于此 又有土蓮團子如栗團子之法 皆秋節時 食也 46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풍속조(風俗條) 46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풍속조(風俗條) 467) 이 내용은 앞의 3월 월내(月內)에 인용된 것과 같다. 468) 세시잡기(歲時雜記) 의 원문은 二社重陽尚食糕而重陽為盛大 率以棗為之 或加以栗亦有用肉者 이다. - 114 -
9월九月 중양절九日 이 날 노란 국화 꽃잎을 따다가 국화 찹쌀떡을 만드는데 방법은 3월 삼짇날의 진 달래 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다. 또 이름도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중 국 양나라 사람 오균(吳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 469)에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이(餌) 떡을 먹었다. 고 하였는데, 방언에 이는 경단[餻]떡을 말하는 것이다. 또 생각건대 송나라 사람 맹원로(孟元老)의 록(東京夢華錄) 470)에 동경몽화 도시 사람들이 중구(重九 : 9월 9일)에 가루로 떡을 쪄서 서 로 선물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국화떡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와 석류(石榴)와 잣 등을 꿀물에 탄 것을 화채(花菜)라고 하는데 이것들 모두 시절음식으로 제사에 쓴다. 서울 풍속에 이 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노는데 이것 은 등고(登高)하는 중국의 옛 풍습을 따른 것이다. 청풍계(靑楓溪) 후조당(後凋堂) 남 한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 여러 곳에 단풍놀이를 할 만한 좋은 경치가 있다. 採黃菊花爲糯米餻 與三日鵑花餻同亦曰花煎 按西京雜記漢武帝宮人賈佩蘭九日食餌 方 言餌謂之餻 又按孟元老東京夢華錄都人重九以粉麵蒸餻相遺 今之菊餻盖沿于此 細切生 梨柚子與石榴海松子澆以蜜水名曰花菜 並以時食供祀 都俗登南北山飮食以爲樂 盖襲登 高之古俗也 靑楓溪後凋堂南北漢道峯水落山有賞楓之勝 10월十月 오일午日 십이지의 하나인 오(午)가 들어가 있는 오일(午日)을 속칭하여 말날[馬日]이라고 한다. 팥을 넣어 만든 시루떡을 마굿간에 차려 놓고 신에게 말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러나 병오일(丙午日)은 이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丙 자와 病 자의 발음이 같으므로 말에 병이 날까 꺼리기 때문이다. 무오일(戊午日)을 가장 좋게 여긴다. 午日俗稱馬日 作赤豆甑餠 設廐中以禱神祝其馬健 丙午日則不用 丙與病音相似忌馬病 也 以戊午日爲貴 469) 서경잡기(西京雜記) 는 양나라 오균이 한 무제 전후에 이어났던 놀랍고 기이한 일들을 기록한 책으로 6권 이다. 470)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의 작자 맹원로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이다. 금의 침입으로 남송으로 온 후 북송 의 수도인 변경(汴京)의 문물과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10권으로 구성되었다. - 115 -
기타 10월 행사月內 내의원(內醫院)에서는 10월 초하루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발효우유를 만들어 임금 에게 바친다. 또 기로소(耆老所)471)에서도 발효우유를 만들어 여러 기로소 신하들 을 봉양하다가 정월 보름에 가서 그친다. 인가에서는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하여 무당을 불러다가 성주신[成造神]472) 을 맞이하여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원한다. 이 달 20일에는 해마다 큰바람이 불고 추운데 그것을 손돌바람[孫石風]이라고 한다. 고려의 왕이 바닷길로 강화도에 갈 때 뱃사공 손돌[孫石]이 배를 저어 가다 가 어떤 험한 구석으로 몰고 가자 왕이 그의 행위를 의심하여 노해서 명령을 내려 그의 목을 베어 죽였고, 잠시 후에 위험에서 벗어난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곳을 손 돌목[孫石項]이라고 한다. 손돌이 죽임을 당한 날이 바로 이 날이므로 그의 원한에 찬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석쇠[燔鐵]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 름 간장 계란 파 마늘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는데, 이것을 난로회(煖爐會)라고 한다. 숯불구이는 추위를 막는 시절음식으로 이 달부터 볼 수 있으며, 난로회는 곧 옛날의 난난회(煖暖會)와 같은 것이다. 또 쇠고기나 돼 지고기에 무 오이 채소 나물 등 푸성귀와 계란을 섞어 장국을 만들어 먹는데 이것을 열구자탕(悅口子湯), 또는 신선로(神仙爐)라고 부른다. 내 생각에는 세시잡기 473) 에 서울 사람들은 10월 초하룻날에 술을 준비해 놓고 저민 고깃점을 화로 안에 구우면서 둘러 앉아 마시며 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고 한다. 고 했고, 또 동경 몽화록 에 10월 초하루에 유사(有司)들이 난로에 피울 숯을 대궐에 올리고 민간에 서는 모두 술을 가져다 놓고 난로회를 갖는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풍속도 그러한 것이다. 메밀가루로 만두를 만드는데 채소 파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두부 등으로 소를 만 들어 넣어 장국에 익혀먹는다. 또 밀가루로 세모 모양을 만든 것을 변씨만두(卞氏饅 頭)라고 한다. 아마 변씨가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긴 것 같다. 내 생 각에는 중국 북송시대 고승(高承)이 지은 사물기원(事物記原) 474)에 제갈공명이 맹획(孟獲)475)을 정벌할 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랑캐의 풍속은 반드시 사람을 죽여 그 머리로써 제사를 지내면 신이 이를 흠향하고 음병(陰兵)을 보내준다. 고 했 471) 기로소(耆老所)는 조선조 때 나이가 많은 임금이나 실직(實職)에 있는 70세가 넘는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禮遇)하기 위하여 마련한 처소다. 472) 성주신[成造神]은 집안의 으뜸 되는 신으로 집을 완성한 다음 마루에 설치한다. 성조신(成造神)으로 표기한 다. 473) 여기서 세시잡기 는 여원명의 세시잡기 이다. 474) 사물기원(事物記原) 은 20권으로 북송시대 개봉국(開封國) 사람 고승(高承)이 지었다. 처음에는 270가지 일을 10여 권에 기술하였는데 후에 20권으로 늘었다. 475) 맹획(孟獲)은 중국 삼국시대 남주 종족의 추장이다. - 116 -
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그의 말을 좇지 않고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밀가루로 싸서 사람 머리모양으로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신이 역시 흠향하 고 군사를 내보내 주었다. 뒤에 사람들이 이로 말미암아 만두라고 한다. 고 하였는 데, 만두는 소쿠리에 넣어 찌므로 증병(蒸餠) 또는 농병(籠餠)이라고도 하며 당나라 예천 사람 후사지(侯思止)가 반드시 파를 줄이고 고기를 더 넣어 먹었다는 것도 바 로 이것이다. 또 멥쌀떡 만두, 꿩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이 있는데 그 중 김치만두가 가장 수수한 시절음식이다. 그 근원을 살피면 제갈공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지금은 음식 중 훌륭한 것으로 친다. 두부를 얇게 썰어 꼬챙이에 꿰어 꼬치를 만들 어서 기름에 부친 다음 닭고기를 넣어 끓인 국을 연포(軟泡)라고 한다. 여기서 포 란 두부를 말하며 이는 중국 한나라 고조(高祖)의 손자인 회남왕(淮南王)476)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내 생각에는 육방옹(陸放翁)의 시에 가마솥을 닦고 여기(黎祁)를 지진다. 는 대목이 있는데, 그의 주에 촉(蜀)나라 사람은 두부를 여기라고 한다. 고 하였으니 지금의 연포라는 것이 곧 이것이다. 겨울 쑥의 연한 싹을 뜯어다가 쇠고 기와 계란을 넣고 끓인 국을 쑥국[艾湯]이라고 한다. 또 쑥의 연한 싹을 찌어 찹쌀 가루에 섞어 동그란 떡을 만든 다음 삶은 콩가루와 꿀을 바른 것을 쑥단자[艾團子] 라고 한다. 또 찹쌀가루로 동그란 떡을 만들어서 삶은 콩과 꿀을 이용하여 붉은 빛 이 나게 한 것을 밀단고(蜜團餻)라고 하는데, 이것들 모두 초겨울의 시절음식이다. 찹쌀가루를 술에 반죽하여 크고 작게 썰어 햇볕에 말렸다가 기름에 튀기면 고치 같이 부풀어 오르는데 속은 비게 된다. 이것에 흰 깨 검정 깨 누런 콩가루 파란 콩가 루 등을 물엿을 이용하여 붙인 것을 강정[乾飣]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남전(藍田) 사람 여씨(呂氏)477)의 집 식품 이름에 원양견(元陽繭)이라고 한 것이 바 로 이것이다. 또 생각건대 병이한담(餅餌閒談) 478)이란 책에 수병(䭉餅)은 콩가루 에 엿을 섞어 만들고 또 이것에 참깨를 묻히는데 그 이름을 호병(胡餅), 혹는 마병 (麻餠)이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이런 종류다. 강정은 이 달부터 시절음 식으로 시장에서 많이 판다. 또 오색을 넣은 강정도 있으며, 또 잣을 박거나 잣가루 를 묻힌 잣강정[松子乾飣]이 있으며 찰벼를 볶아 꽃 모양으로 튀겨서 엿을 묻힌 매 화강정이라는 것도 있는데 홍색과 백색 두 가지다. 이것들은 이듬해 설과 봄철에 이르도록 일반 민가의 제수물품으로 과일 줄에 같이 들어가며, 또한 설음식[歲饌] 으로 손님을 대접할 때도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 되었다. 서울 풍속에 무 배추 마늘 고추 소금 등으로 장독에 김치를 담근다. 여름의 장담그 기[夏醬]와 겨울의 김장[冬菹]은 민가에서 일년을 보내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충청도 보은 지방 풍속에 속리산 정상에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라는 사당이 476) 회남왕(淮南王)의 이름은 유안(劉安)이다. 아버지를 이어 회남왕이 되었다. 회남자(淮南子) 라는 신선 도술 에 관한 책을 지었다. 477) 여씨 이름은 대림(大臨)으로 정호, 정이 형제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478) 병이한담(餅餌閒談) 은 연감류함(淵鑑類函) 에 병(餠) 항목에 인용된 책이나 저자나 시대 등은 미상이다. - 117 -
있어 그 신이 매년 10월의 인일(寅日)에 법주사(法住寺)로 내려온다고 하여 산중에 사는 사람들이 음악을 베풀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신은 45일간 머물다 가 사당으로 돌아간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內醫院造牛乳酪以進自十月朔日至正月 又自耆老所造酪以養諸耆臣至正月上元而止 人 家以十月爲上月 邀巫迎成造之神 設餠果祈禱以安宅兆 二十日每年有大風寒謂之孫石風 盖麗王由海路入江華 船人孫石進舟入一險口 麗王疑怒命斬之 未幾脫險 至今稱其處曰 孫石項 孫石之被害卽是日而怨氣使然也 都俗熾炭於爐中置煎鐵炙牛肉調油醬鷄卵葱蒜 番椒屑圍爐㗖之稱煖爐會 自是月爲禦寒之時食卽古之煖暖會也 又以牛猪肉雜菁苽葷菜 鷄卵作醬湯有悅口子神仙爐之稱 按歲時雜記京人十月朔沃酒乃炙臠肉於爐中團坐飮㗖謂 之煖爐 又按東京夢華錄十月朔有司進煖爐炭民間皆置酒作煖爐會479) 今俗亦然 用蕎麥 麵造饅頭包以蔬葱鷄猪牛肉豆腐爲饀醬湯熟食 又以小麥麵作三稜樣稱卞氏饅頭 盖始於 卞氏而得名也 按事物記原 諸葛公之征孟獲 人曰蠻俗必殺人以其首祭則神享爲出陰兵 公不從因雜用羊豕之肉 而包之以麵象人頭以祀 神亦享焉而爲出兵 後人由此爲饅頭入籠 而蒸 故亦曰蒸餠籠餠 侯思正所食必令縮葱加肉者是物也 又有粳餠雉肉菹菜饅頭而菹菜 最爲眞率之時食 究其原則肇自武侯而今爲饌饍佳品用 豆腐細切成串油煮調鷄肉作羹曰 軟泡 泡是豆腐而始自淮南王也 按放翁詩洗甗煮黎祁註蜀人以豆腐謂黎祁480) 今之軟泡 卽此 採冬艾嫩芽調牛肉鷄卵作羹曰艾湯 又搗入糯米粉作團餻以熟豆粉和蜜粘之曰艾團 子 又糯粉成團餻用熟豆和蜜發紅色曰蜜團餻 皆自初冬爲時食也 用糯米粉酒拌切片有大 小晒乾煮油起酵如繭形中虛以炒白麻子黑麻子黃豆靑豆粉用飴粘之名曰乾飣 按藍田呂氏 家品名元陽繭者卽是物也 又按餅餌閒談䭉餅以豆屑雜糖爲之 又以胡麻着之名胡餅麻餠 亦類此也 自是月爲時食 市上多賣之 又有五色乾飣 又以海松子粘附松子屑塗粘曰松子 乾飣 炒糯稻起作花樣飴粘曰梅花乾飣 有紅白兩色至于正朝春節人家祭品參用果列亦以 歲饌供客而爲不可廢之需 都俗以蔓菁菘蒜椒塩沈菹于陶甕 夏醬冬菹卽人家一年之大計 也 報恩俗俗離山頂有大自在天王祠 其神每年十月寅日下降于法住寺 山中人設樂迎神以 祠之 留四十五日而還 見輿地勝覽481) 11월 동지(冬至) 동짓날을 작은 설[亞歲]이라고 하여 팥죽을 쑤며 찹쌀가루를 쪄서 새알 모양으로 479) 송나라 맹원로가 찬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録) 권9 十月一日 條에 수록된 원문은 十月一日宰臣已下受 衣著錦襖 三日士庶皆出城饗墳 禁中車馬出道者院及西京朝陵 宗室車馬 亦如寒食節 有司進煖爐炭 民間皆置酒作 煖爐㑹也 이다. 480) 육방옹(陸放翁)의 시(詩) 원문은 拭盤堆連展洗釡煮黎祁自註連展淮人以名麥餅黎祁 蜀名豆腐 으로 연대본, 광문회본에 黎祈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黎祁의 오기인 듯하다. 48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충청도(忠淸道) 보은현(報恩縣) 사묘조(祠廟條) - 118 -
만든 떡을 그 죽 속에 넣어 심(心)을 삼는다. 이것에 꿀을 타서 시절음식으로 먹으 며 제사에도 쓴다. 팥죽 국물을 문짝에 뿌려 액을 막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형초 세시기(荊楚歲時記) 에 공공씨(共工氏)482)에게 바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 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 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치는 것이다. 고 하였고, 중국 송나라 사람 유자휘(劉子 翬)483)의 동짓날에 관한 시에 팥죽으로 귀신을 눌러 형(荊) 나라 풍속을 생각한 다. 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도 또한 그러하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임금에게 역서(曆書)를 올린다. 그러면 임금은 모든 관원들 에게 황색표지를 한 황장력(黃粧曆)과 백색표지를 한 백장력(白粧曆)을 반포하는데 동문지보(同文之寶)484) 란 네 자가 새겨진 옥새(御璽)를 찍는다. 각 관서에서도 모 두 분배받는 몫[分兒]이 있다. 이 날은 각 관서의 아전들이 각기 친한 사람을 두루 문안하는 것이 관례다. 이조(吏曹)의 아전들 중에는 각기 벼슬을 많이 하는 집안과 단골 관계를 맺어 관리임명장인 告身 (고신)을 써 주는데, 그 집안에서 지방 수령 으로 나가는 자가 있으면 고신을 써 준 아전에게 당참전(堂參錢)485)을 준다. 그러면 그 아전은 관례에 따라 청색표지를 한 청장력(靑粧曆) 한 권을 그 사람에게 바친다. 대개 서울의 옛 풍속에 단오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짓날의 달력 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고 하여 이것을 하선동력(夏扇冬曆) 이라고 하며 이러한 선물 관행이 고향의 친지와 묘지기 마을, 그리고 농장의 농민들에게까지 파급된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계피 산초 엿 꿀 등을 쇠가죽에 싸서 응고 상태를 만든다. 이 것을 전약(煎藥)이라고 하여 임금에게 진상하며, 각 관서에서도 이것을 만들어 나누 어 가진다. 冬至日稱亞歲 煮赤豆粥用糯米粉作鳥卵狀投其中爲心和蜜以時食供祀 灑豆汁於門板以 除不祥 按荊楚歲時記共工氏有不才子以冬至死爲疫鬼畏赤小豆 故冬至日作粥以禳之 劉 子翬至日詩云豆糜厭勝憐荊俗 今俗亦然 觀象監進曆書 頒黃粧白粧于百官安同文之寶 諸司皆有分兒 各司吏胥又有遍問所親家486)之例 吏曹吏各於仕宦家有句管掌寫告身者若 出宰則給堂參錢 故例獻靑粧一卷 盖都下舊俗端午之扇官分于吏冬至之曆吏獻于官是謂 夏扇冬曆波及鄕曲親知墓村農庄 內醫院以桂椒糖蜜用牛皮煮成凝膏名曰煎藥以進 各司 亦有造出分供者 기타 11월 행사(月內) 482) 공공씨(共工氏)는 요순시대에 형벌을 맡았던 관명에서 비롯한 성씨다. 483) 유자휘(劉子翬)의 자는 언충(彦冲)으로 음사로 벼슬에 올랐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무이산으로 들어가 학문 에 전념하였다. 주희(朱熹)의 아버지가 그에게 아들을 맡겨 주희의 은사가 되었다. 484) 동문지보(同文之寶) 의 동문(同文)는 중용에 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 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485) 당참전(堂參錢)은 새로 벼슬을 얻어 부임할 때 수고한 서리에게 주는 인정전이다. 486) 광문회본에는 家가 빠져 있다. - 119 -
이 달에 임금은 청어를 종묘에 천신한다. 재상집과 양반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천 신제를 행한다. 내 생각에는 예기 월령 에 늦겨울에 천자가 친히 왕림하여 물 고기를 맛보시는데 먼저 종묘에 천신한다. 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제도도 그와 같 다. 청어 출산지로 통영(統營) 지방과 해주(海州) 지방을 드는데 이 두 곳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 청어는 겨울과 봄에 진상한다. 고기를 실은 배가 한강에 와서 정박하 면 청어는 즉시 온 시내에 두루 퍼지며 생선장수들은 거리를 따라 청어 사라고 소 리친다. 통영에서는 껍질이 단단한 전복[甲生鰒]과 대구[大口魚]가 잡히는데 이것 도 역시 진상한다. 진상하고 남은 것은 으레 재상들에게 선물로 보내진다. 제주도에서는 귤 유자 감귤 등을 진상한다. 그러면 임금은 이것을 종묘에 진상하고 궁중의 가까운 신하들에게 하사한다. 옛날에 탐라의 성주(星主)가 이것들을 바칠 때 면 이를 치하하기 위해 과거 시험을 보이는 일이 있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이 제 도를 따라 태학과 사학의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이고 감귤을 나누어주었는데 그 과 거 이름을 감제(柑製)라고 하였으며, 시험을 치는 방법은 절일제(節日製)의 그것과 같다. 장원으로 합격한 자에게는 반드시 급제(及第)를 내려준다. 충청도 홍주 지방의 합덕지(合德池)라는 곳에서는 매년 겨울마다 용이 땅을 가는 [龍耕] 듯이 언 못이 갈라지면서 그 위로 긴 금이 생기는 기이한 현상이 있다. 그 금이 남쪽으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세로로 언덕 부근까지 나면 다음 해는 풍년이 들 고, 서쪽으로부터 동쪽 방향으로 복판을 횡단하여 나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혹 동 서남북 이리저리 종횡으로 가지런하지 않게 나면 흉년과 풍년이 반반이라고 한다. 농사꾼들은 이것으로 이듬해의 농사를 추측하는데 잘 맞는다고 한다. 경상도 밀양 지방의 남지(南池)에도 용이 땅을 가는 듯한 얼음 갈라지는 현상이 있어 이듬해 농 사일을 예측한다.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 다. 또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썰어 넣고 기름간장을 쳐서 메밀국수에 비빈 것을 골동면(骨董麵 : 비빔냉면)이라고 한다. 평안도 냉면이 제일이다. 내 생각 에는 소동파가 쓴 구지필기(仇池筆記) 487)에 나부(羅浮)의 영노(潁老)가 여러 가 지 음식을 얻은 다음 모두 섞어서 끓여 먹었는데, 이것을 골동갱(骨董羹)이라고 불 렀다. 고 한 것을 보면 골동 이란 여러 가지를 섞는다는 뜻으로 지금의 비빔냉면과 같다. 중국의 강남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드는데, 이것은 젓갈 포 회 구운 고기 등 없는 것 없이 밥 속에 넣은 것으로 곧 밥의 골동이며 옛날부터 이런 음식이 있었던 것이다. 작은 무로 김치를 담근 것을 동치미[冬沈]라고 한다. 곶감을 넣어 끓인 물에 생강과 잣을 넣은 것을 수정과(水正果)라고 한다. 모두 겨울 철의 시절음식이다. 새우젓국을 깔아 앉힌 후에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 전복 소 라 굴 조기 소금 등을 버무려 독에 넣고 묻어 한 겨울을 지내면 그 맛이 얼큰하게 매 워 먹음직하다. 또 무 배추 미나리 생강 고추 등을 장에 절여 김치를 담가 먹는다. 487) 구지필기(仇池筆記) 는 송나라 소식(蘇軾, 1037~1101)이 지은 책으로 2권이며 동파지림(東坡志林) 의 자 매편이다. 내용은 당대 인물에 관한 기사와 개인생활에 대한 기록 등이다. - 120 -
薦靑魚于太廟 卿士家亦行之 按禮記月令季冬之月天子嘗魚先薦寢廟488) 國制亦然 有靑 魚之産統營海州最盛 冬春進供 魚舡來泊京江 卽遍市上漁商沿街呌賣 統營則有甲生鰒 大口魚亦爲進上並以封餘例饋卿宰 濟州牧進貢橘柚柑子 薦于太廟頒宮掖近侍之臣 昔耽 羅星主貢獻時稱賀設科 本朝因之試太學四學儒生頒柑科名曰柑製 考取如節製之例 居魁 者必賜第 湖西洪州合德池每年冬有龍耕之異 自南而北縱而薄岸則歲穰自西而東徑斷其 腹則荒 或西或東或南或北橫縱不整則荒穰半 農人推之來歲輒驗 嶺南蜜密陽南池亦有龍 耕以驗年事 用蕎麥麵沈菁菹菘菹和猪肉名曰冷麵 又和雜菜梨栗牛猪切肉油醬於麵名曰 骨董麵489) 關西之麵最良 按羅浮潁老取諸飮食雜烹之名曰骨董羹 骨董雜之義也 今之 雜麵類此 江南人好作盤遊飯鮓脯膾炙無不埋在飯下 此卽飯之骨董490)而自古已有此食品 也 取蔓菁根小者作菹名曰冬沈 以乾柿沈熟水和生薑海松子名曰水正果 皆冬節時食也 用蝦鹽汁候淸沈蔓菁菘蒜薑椒靑角鰒螺石花石首魚鹽作雜菹 儲陶甕和淹經冬辛烈可食 又以蔓菁菘芹薑椒沈醬菹食之 12월(十二月) 납일[臘] 납일(臘日)은 원래 동지 후 세 번 째 오는 술일(戌日)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 와 동지 후 세 번 째 미일(未日)로 정하여 종묘와 사직에 큰제사를 지낸다. 내 생각 에는 지봉유설 에 중국 후한 사람인 채옹(蔡邕)491)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靑帝)는 미일(未日)로 납일을 정하고, 적제(赤帝)는 술일(戌日)로, 백제(白帝)는 축일(丑日)로, 흑제(黑帝)는 진일(辰日)로 각각 납일을 정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납일을 미일로 한 것은 대개 동방이 목(木)에 속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 날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각종 환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린다. 이것을 납약 (臘藥)이라고 하며 임금은 그것을 측근 신하와 지밀나인(至密內人) 등에게 나누어 하사한다. 청심원(淸心元)은 근심이 많고 소화가 안될 때 잘 듣고, 안신원(安神元)은 신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으며, 소합원(蘇合元)은 곽란을 치료하는 데 주효하여 이 세 가지 환약을 가장 요긴하게 여긴다. 정조 임금 때인 경술년(1790년)에 새로 제조한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 두 종류의 환약은 실로 백성에 대한 임금 의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소합원보다 효력이 더욱 빠르다. 그것들을 모든 영 문(營門)에 나누어주어 군졸들을 치료하는 데 쓰도록 했다. 또 기로소(耆老所)에서 도 납약을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주고 각 관서에서도 납약을 많이 488) 예기(禮記) 의 원문은 命漁師始漁 天子親往嘗魚 先薦寢廟 이다. 489) 연대본에는 骨이 滑로 되어있다. 490) 연대본에는 骨이 滑로 되어있다. 491) 채옹(蔡邕, 133~192)은 중국 후한 때 학자로 자는 백개(伯喈)다. 저서로 채중랑집(蔡中郞集) 등이 있다. - 121 -
만들어 나누어주며 또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납일 제사에 쓰는 고기로 멧돼지와 산토끼를 쓴다. 경기도 내에 산간 고을에서는 예로부터 납일 제사에 쓰는 돼지를 바치기 위해 그 지방 백성들을 동원하여 멧돼지 를 수색하여 잡았으나 정조 임금의 특명으로 이를 폐지하고 서울 장안의 포수를 시 켜 용문산(龍門山), 축령산(祝靈山) 등 여러 산에서 사냥하여 바치도록 했다. 또 이 날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를 먹이면 마마를 잘 넘어갈 수 있다고 하여 항간에서는 그물을 치거나 활을 쏘아 잡았으며 나라에서도 총을 쏘아 잡는 것을 허락하였다. 납일에 내린 눈을 녹인 물은 약으로 쓰이며, 그 물에 물건을 적셔 두면 좀이 슬 지 않는다. 本朝用冬至後第三未日置臘 行廟社大享 按芝峯類說引蔡邕之說靑帝以未臘赤帝以戌臘 白帝以丑臘黑帝以辰臘 我國臘用未 皆以東方屬木云 內醫院造丸劑各種以進名曰臘藥 頒賜近密 淸心元主憫塞 安神元主熱 蘇合元主癨 三種爲最要 健陵庚戌新製濟衆丹廣濟 丸二種寔出睿思 比蘇合元效尤速 頒示諸營門俾爲軍卒救療 又自耆老所造臘劑分諸耆臣 各司亦多造出分供又相送遺 臘肉用猪用兎 畿內山郡舊貢臘猪發民搜捕 健陵特罷之以京 砲手獵龍門祝靈諸山以進 又捕黃雀飼小兒善痘 閭巷間是日張羅挾彈 又許放銃以捕之 臘雪取水爲藥 用漬物則不生蛀 섣달그믐날밤[除夕] 조정에 나가는 신하로서 2품 이상과 시종(侍從)들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 을 드린다. 양반들의 집에서는 사당에 배알한다. 연소자들은 친척 어른들을 두루 방 문한다. 이러한 것들을 묵은세배[拜舊歲]라고 하며 이것을 하느라고 이 날은 초저 녁부터 밤중까지 골목마다 등불이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는다. 대궐 안에서는 섣달 그믐 전날부터 대포를 발사하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고 한다. 불화살[火箭]을 쏘고 바라와 북을 치는 것은 곧 옛날에 대나(大儺)를 열어 역 질귀신[疫鬼 :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쫓던 제도의 흔적이며 또한 섣달 그믐밤 과 설날 아침에 폭죽을 터뜨려 귀신을 놀라게 하던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중국 북 경 풍속은 세밑부터 치고 두드리는 소리로 떠들썩하다가 관등절(觀燈節) 정월 보 름 을 지낸 후에야 그치는데 이것을 연라고(年鑼鼓)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북경의 풍속은 도시 시민들의 풍속을 기록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궁중 안에서만 이를 행한다. 섣달 그믐 하루 이틀 전부터는 우금(牛禁)492)을 완화한다. 형조와 한성부 등 이를 담당하는 관서에서는 단속관리가 차고 다니는 우금패(牛禁牌) 를 회수하여 두었다 가 설날이 되면 내준다. 이는 서울 사람들에게 이 때 한 번 설고기[歲肉]를 실컷 먹는 기회를 준다는 뜻으로 시행하는 것이지만 간혹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다. 492) 우금(牛禁)은 고기를 먹을 목적으로 소를 잡는 일을 못하게 하던 제도다. - 122 -
인가에서는 섣달 그믐밤에 집집마다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모두 기름 등잔을 켜놓는 다. 등잔은 흰 사기접시에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든 것이다. 이것을 외양간과 변소에까지 대낮같이 환하게 켜 놓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守歲)라고 하며 이는 곧 경신일을 지키는 옛 풍속이다[守庚申]493). 사람 온혁(溫革)494)의 내 생각에는 중국 송나라 쇄쇄록(瑣碎錄) 에 섣달 그믐밤에 신당과 불상 앞 및 마루, 방, 변소 등에 모두 등불을 켜서 새벽까지 온 집안을 환히 밝힌다. 고 하였고, 또 동경몽화록 에 도성 사람들은 섣달 그믐밤에 부엌에 불을 켜놓는 것을 조허모(照 虛耗)라고 하며 양반 집이나 일반 백성 집에서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아침이 되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라고 한다. 495) 고 하였으며, 또 소동파가 촉나라 풍속을 기록하면서 술과 음식으로 서로 초청하는 것을 묵은해를 전별한다는 뜻으로 별세 (別歲)라고 하고 섣달 그믐에 날을 세는 것을 수세라고 한다. 고 하였으니 지금 우 리의 풍속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에 섣달 그믐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센다고 하여 어린 아이들은 대개 이 말에 속아 잠을 자지 않는다. 혹 자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 가 분가루를 자는 아이 눈썹에 발라놓고 다음날 거울을 보게 하여 놀려주고 웃는 다.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각각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든 것을 윷[柶]이라고 한다. 길이는 세 치 가량(약 9cm)인데 혹 콩윷이라고 하여 콩같이 작게 만들기도 한다. 윷을 던져 내기하는 놀이를 윷놀이[柶戱]라고 한다. 윷을 던져서 네 쪽이 다 엎어지면 모(牟), 네 쪽이 다 잦혀지면 윷[流], 세 쪽이 엎어지고 한 쪽이 잦혀지면 도(徒), 두 쪽이 엎어지고 두 쪽이 잦혀지면 개(開), 한 쪽이 엎어지고 세 쪽이 잦혀 지면 걸(杰)이라고 한다. 윷판에는 29개의 동그라미 점을 그린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던지는데 각각 말 네 개씩 쓴다. 도는 한 밭씩 가고, 개는 두 밭, 걸은 세 밭, 윷은 네 밭, 모는 다섯 밭씩 각각 간다. 밭 중에는 돌아가는 길과 질러가는 길이 있 어 말이 빨리 가는가 늦게 가는가에 따라 내기를 결정한다. 이 놀이는 정초에 가장 성행한다. 내 생각에는 설문(說文) 496)에 사(柶)는 비(匕)라고 하였는데, 특히 네 개의 나무라는 뜻을 취하여 柶 라고 했다. 또 생각건대 지봉유설 에서는 윷은 내 기놀음[攤戱]이니 즉 저포(樗蒲 : 백제 때 나무로 주사위를 만들어 놀던 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윷놀이는 즉 저포의 일종이다. 세속에 섣달 그믐과 정초에 윷을 던 져 얻은 괘(掛)로 새해의 길흉을 점치는데 그 방법은 윷사위로 64괘 중의 하나를 정해 그 괘에 해당하는 주사(繇辭 : 점괘를 설명하는 말)로써 앞날을 풀이한다. 대 493) 수경신(守庚申)은 경신수야(庚申守夜)라고 하며 60일마다 한 번 오는 경신일(庚申日)에 밤을 세는 민간도교 신앙의 하나다. 494) 온혁은 중국 송나라 혜안(惠安) 사람으로 자는 숙피(叔皮)다. 쇄쇄록 은 그의 저서다. 495) 동경몽화록 10권 十二月 條에 나오는 내용으로 원문은 都人至夜請僧道看經 備酒果送神 燒合家替代 錢紙帖 竈馬於竈上 以酒糟塗抹竈門 謂之醉司命 夜於牀底㸃燈 謂之照虛耗. 로 상 밑에 점등하는 것을 조 허모 라고 하였다. 496) 설문 은 중국 후한시대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 를 말한다. - 123 -
개 세 번 던져서 어린아이가 젖을 얻는 괘 나 쥐가 창고에 들어가는 괘 가 나오 면 길하다. 어떤 이는 세 번 던지는 중에 첫 번째 던지는 괘로 지난해의 운수를 보 고 새해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연이어 윷을 놀아 얻은 점괘로 올해의 운세를 본 다. 항간의 부녀들은 색칠하지 않은 맨 널빤지를 짚단 위에 횡으로 올려놓고 그 양 끝에 마주 올라서서 서로 오르내리면서 몇 자씩 뛰는데 힘이 빠져 지칠 때까지 하 며 즐긴다. 이 놀이를 널뛰기[跳板戱]라고 하며 정월 초까지 이 놀이를 한다. 내 생 각에는 중국 청나라 사람 주황(周煌)497)의 유구국기략(琉球國記略) 에 그 나라 부인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판무(板舞)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이 풍속과 서로 비슷하다. 함경도 풍속에는 이 날 빙등(氷燈)을 설치하는 것이 있는데 아름드리 기둥 같은 초롱 속에 기름 심지를 안전하게 놓고 불을 켠 채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팔 을 불면서 나례굿[儺戱]을 한다. 이를 청단(靑壇)이라고 한다. 평안도 풍속에서도 빙등을 설치하며 각 도의 고을에서도 각기 그 고유 풍속대로 한 해를 마치는 놀이 를 행한다. 의주(義州) 지방 풍속에는 각 마을에서 딱총[紙砲]을 놓는데 중국 북경의 풍속을 모방한 것이다. 朝官二品以上及侍從之臣詣 闕舊歲問安 士夫家謁廟年少者歷訪姻親長老曰拜舊歲 自昏 至夜街巷行燈相續不絶 闕內自除夕前日發大砲號年終砲 放火箭鳴鑼鼓卽大儺驅疫之遺 制 又倣除夕元朝爆竹驚鬼之制也 按燕京俗年底喧闐至燈節 上元日 後方止曰年鑼鼓 燕俗記都下之風而我國只於禁中行之 自除夕前一二日弛牛禁 諸法司藏牌至正朝而止爲 都民歲肉一飽之意而或不行 人家樓廳房廚皆張油燈白磁一盞紮絮爲心以至廐溷 晃如白 晝達夜不睡曰守歲卽守庚申之遺俗也 按溫革瑣碎錄498)除夜神佛前及廳堂房溷皆明燈至 曉主家室光明 又按東京夢華錄都人至年夜竈裏點燈謂之照虛耗499) 士庶之家圍爐團坐達 朝不寐謂之守歲 又按東坡記蜀俗云酒食相邀呼爲別歲除夜不眠爲守歲 今俗昉於此 諺傳 除夜睡兩眉皆白小兒多見瞞不睡 或有睡者他兒以粉抹其眉攪使對鏡以爲戱笑 赤荊二條 剖作四隻名曰柶 長可三寸許 或小如菽 擲而賭之 號爲柶戱 四俯曰牟四仰曰流三俯一仰 曰徒二俯二仰曰開一俯三仰曰杰 局畵二十九圈 二人對擲各用四馬 徒行一圈 開行二圈 杰行三圈 流行四圈 牟行五圈 圈有迂捷 馬有疾徐以決輸嬴 歲時此戱最盛 按柶說文云 匕500)也 特取四木之義謂之柶 又按芝峯類說以爲儺戱卽樗蒲也 柶戱者便是樗蒲之類也 世俗除夜元朝以柶擲卦占新歲休咎 占法配以六十四卦 各有繇辭 凡三擲如兒得乳鼠入倉 497) 주황(周煌)은 중국 청나라 부주(涪州) 사람으로 자는 경원(景垣), 호는 해산(海山)이다. 유구부사(琉球副使) 를 지낸 바 있다. 498) 연대본, 광문회본에 쇄쇄록(碎瑣錄) 으로 쓰고 있으나 문헌통고(文獻通考) 에 쇄쇄록(瑣碎錄) 으로 되어 있다. 499)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録) 원문에는 二十四日交年 都人至夜請僧道看經 備酒果送神 燒合家替代錢紙 帖竈馬 於竈上 以酒糟塗抹竈門 謂之醉司命 夜於牀底㸃燈 謂之照虛耗 이라고 하였다. 500) 설문해자(說文解字) 의 원문은 柶凡匕之屬 皆从匕 이다. - 124 -
之類則吉 或云三擲內初擲觀舊歲至歲初上元連擲柶卦觀之 閭巷婦女用白板橫置藁枕上 對踏兩端相升降而跳數尺許以困頓爲樂謂之跳板戱 至歲初如之 按周煌琉球國記略其婦 舞於板上曰板舞 與此俗相類 關北俗設氷燈如圍柱中安油炷以達夜鳴鉦鼓吹喇叭設儺戱 號靑壇 關西俗亦設氷燈 諸道州邑皆以其俗行年終之戱 義州俗閭里放紙砲 效燕京之俗 也 기타 12월 행사[月內] 이 달 초하룻날 이조에서 조정 관리 중에 파면되었거나 품직이 강등되었던 사람 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것을 세초(歲抄)라고 한다. 임금이 세초의 관리명단 아래에다 점을 찍으면 해당자는 서용(敍用), 즉 다시 기용되거나 감등(減 等), 즉 벌이 감해진다. 6월 초하루에도 그렇게 하는데 시기를 이렇게 정하는 것은 대체로 이와 같이 관리를 평가하는 대정(大政)501) 행사를 6월과 12월에 하기 때문 이다. 나라에 경사가 있어서 사면을 하게 될 때는 별도의 세초를 작성하여 바치는 데, 이러한 것들은 대개 임금이 관대한 정치를 하고자 은전을 베푸는 데서 나온 것 이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두 절도사(節度使)는 으레 조정의 벼슬아치와 친지의 집에 세 찬(歲饌)을 보내며 각 도의 감사 병사들과 군 현의 수령들도 세궤(歲饋)의 예에 따라 세찬을 보낸다. 이 때 편지 봉투 안에다 각종 토산물의 목록을 열거한 작은 별지(別 紙)를 접어 넣는데 이 별지를 총명지(聰明紙) 라고 한다. 각 관서의 아전들도 살아 있는 꿩이나 곶감 등을 자기와 친한 집에 선물하며 문안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 진 (晉)나라 때 사람인 주처(周處)502)의 풍토기(風土記) 에 촉나라 지방 풍속 중 연 말에 서로 선물하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饋歲)라고 한다. 고 하였고, 또 소동파의 시에 상을 차리니 큰 잉어가 가로로 놓이고, 소쿠리를 여니 토끼 두 마리가 누워 있네. 503) 라고 한 것을 보면 이 풍속은 옛날부터 그러했던 것이다. 장년 또는 그보다 어린아이들은 제기차기[蹴鞠] 놀이를 한다. 제기 모양은 큰 탄 환 같은데 그 위에 꿩 깃을 꽂아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다리 힘을 겨루는 것이며,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많이 차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인 유향(劉向)504)의 별록(別錄) 에 한식날 차는 제기는 황제 501) 대정(大政)은 해마다 음력 12월에 행하는 도목정사(都目政事)를 말한다. 도목정사란 관원을 성적에 따라 강 등 혹은 승진시키는 일로 6월과 12월에 두 차례 행하는데 12월의 정사가 규모가 크며, 대대적으로 행하기 때 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502) 주처(周處)는 중국 진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자은(子隱)이다. 오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진나라에 다시 와서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공을 세웠다. 503) 이 대목은 소동파시집 권3 세만삼시기자유(歲晩三詩寄子由) 중에 궤세(饋歲)란 시 일부를 인용한 것이 다. 504) 유향(劉向)은 중국 전한시대 학자로 자는 자정(子政)이다. 설원(說苑), 신서(新序), 열녀전(烈女傳) 등 이 있다. - 125 -
가 만든 것이다. 라고 하였고, 혹 어떤 이는 제기차기는 전국시대에 시작되었는데 곧 군대의 힘이 되었으며 다른 말로는 백타(白打)라고도 한다. 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의 풍속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겨울부터 시작되며 새해가 되어서는 더 많이 찬다. 강원도 동북부에 위치한 고성(高城) 지방 풍속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해당 관가에서 군사당(郡祀堂)에 제사를 지내는데, 비단으로 신의 탈을 만들어 사당 안에 보관해 두었다가 이 달 20일이 지나 그 신이 고을로 내려오면 고을 사람들은 그 탈을 쓰고 춤을 추며 관아 안과 읍내와 촌을 돌아다니며 논다. 그러면 각 집에서는 그 신을 맞이하여 즐겁게 놀린다. 그러다가 이듬해 정월 보름날 이전에 그 신은 사 당 안으로 돌아간다. 이 풍속은 해마다 행해지며 대체로 나신(儺神)505)의 일종인 것 이다. 朔日自選部抄啓朝官中罷削人名曰歲抄 點下者敍用或減等 六月朔亦然 盖因大政在於六 臘故也 因有慶赦別歲抄入啓 盖出䟽蕩之典也 關西海西兩節度例送歲饌於朝紳曁親知家 各道藩閫守令亦歲饋之例 書緘中另具小搨紙列錄土産諸種謂之聰明紙 各司胥隸亦有506) 以生雉乾柿等物饋問於所親家 按周處風土記蜀俗晩歲相饋問謂之饋歲 又按東坡詩寘507) 盤巨鯉橫發籠雙兎臥 此風自古而然矣 丁壯年少者以蹴鞠爲戱 鞠508)如大彈丸 上揷雉羽 兩人對立脚勢相交以連蹴不墜爲善技 按劉向別錄寒食蹋蹴黃帝所造 或云起於戰國之時 乃兵勢也一曰白打 今俗沿于此 而自冬爲始至歲時尤盛 高城俗郡祀堂每月朔望自官祭之 以錦緞作神 假面藏置堂中 自臘月念後 其神下降於邑人 着其假面蹈舞出遊於衙內及邑 村 家家迎而樂之 至正月望前神還于堂 歲以爲常 盖儺神之類也 윤달[閏月] 세속의 관념에는 윤달에는 장가가고 시집가기에 좋다고 하고, 또 죽은 자에게 입 히는 수의(壽衣)를 만들기에도 좋다고 하는 등 모든 일에 꺼리는 것이 없다.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는 봉은사(奉恩寺 : 현재 위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는 매번 윤달을 만날 때마다 장안의 여인들이 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며 부처 앞 에 돈을 놓는다. 이러한 일은 윤달 한달 내내 끊이지 않고 계속되며, 이렇게 하면 극락세계로 간다고 하면서 사방의 노파들이 물밀 듯이 분주히 달려와 다투어 모인 다. 서울과 지방의 대부분의 절에서 이런 풍속을 볼 수 있다. 俗宜嫁娶 又宜裁壽衣 百事不忌 廣州奉恩寺每當閏月 都下女人爭來供佛置錢榻前 竟月 絡續 謂如是則歸極樂世界 四方婆媼奔波競集 京外諸刹多有此風 505) 나신은 나례(儺禮) 때 모시는 신이다. 506) 연대본에는 有 빠져있으나 광문회본에는 있다. 507) 광문회본에는 置로 되어 있다. 508) 광문회본에는 鞠이 빠져 있다. - 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