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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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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2013 년 7월 15 일 발행 통권 제 116 호 116 발행인:李圭衡 / 편집인:金尙勳 / 주간:金泰詢 / 社 )退溪學釜山硏究院 (우 614-743) 釜山市釜山鎭區田浦洞 608-1 819-8587/F.817-4013 <卷頭辭>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다시 보며 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며 부모는 어린 자 남편 녀를 보호 양육하고 성숙한 자녀는 노쇠한 부모를 봉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가정의 행복이다. 성숙한 남자와 여자는 제 자리를 찾아 가정을 이루고 각기 할 일이 있으며, 노인은 젊은이를 아끼고 젊 은이는 노인을 공경하며, 벗은 서로 신뢰하고 이웃끼리 서로 화목하 며, 노약자와 불구자는 각기 보호받을 곳이 있는 것은 사회의 평화이 다. 내가 생각건대 이는 朱子가 小學 의 내용을 立敎와 明倫과 敬身 의 세 항목으로 구성하고, 퇴계선생이 聖學十圖 에 小學圖 를 넣은 鄭 景 柱 문학박사 경성대 교수 이유일 것이다. 사람마다 제 직분에 근면하고 산업이 융성하여 기근과 질병과 천재지 변에 대처할 방도가 있고, 풍속이 아름답고 질서가 반듯하여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처지와 분수에 만족하고 서로를 존중하여, 폭력이 사라지고 도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문명의 융성함이다. 내가 생각건대 이는 퇴계선생이 성학십도 에 白鹿洞規圖 를 넣은 이 유일 것이다. 국가 조직과 권력이 덕망을 갖춘 사람에 의하여 공정하게 운영되고, 도덕의 표준을 세우고 정 의를 실천하며 복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한 사람은 존중 받고, 감히 불측한 마음을 품고 민심 을 선동하여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거나 아름다운 풍속을 흐리게 하는 무리가 사라져서, 안으로 국민들이 국가를 든든하고 자랑스럽게 여겨 서로 지키고자 하고, 밖으로 강포한 적이 감히 침범 하여 모욕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의 안정이다. 이는 大學 에 三綱八條의 조목을 나열하고, 퇴계 선생이 성학십도 에 大學圖 를 넣은 이유일 것이다. 퇴계선생의 聖學十圖 는 성숙한 인격 수양을 바탕으로 인륜 도덕이 바로 잡힌 이상사회를 건 설하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성학십도 의 前五圖는 우주의 원리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설파한 太極圖 와 영銘圖, 그리고 학문과 도덕의 조목을 설명한 小學圖, 大學圖, 白鹿洞規圖 로 이루어져 있고, 後五圖는 마음 수양의 이치를 설명한 心統性情圖, 仁說圖, 心學圖 와 개개인 의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의 미덕을 환기하고 실천 도야하는 방법을 설명한 敬齋箴圖, 夙興夜 寐箴圖 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은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그 주어진 역할과 기능을 충실하게 행하는 것이 인간다운 가치임 을 설명한 것이 태극도 와 서명 이라면, 인간의 인간다운 가치는 인간관계를 통하여 실현되며,

116 호 _2 각자가 가진 仁義禮智의 미덕을 계발하여 확충함으로써 修齊治平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신 념을 설명한 것이 소학도 와 대학도 와 백록동규도 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인간이 자신이 가 진 미덕을 계발하고 확충하여 우주 만물에 파급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의 도덕적 자각과 실천의지를 기반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인간 심성의 이치와 일상생활에서 그 미덕을 실천하는 방법을 예시한 것으로 보인다. 孔子 孟子 이래 동양의 지식인들은 부부의 사랑과 부모 자식의 친분에 근거한 인륜을 바탕으 로 유지되는 가정의 행복과, 군신의 의리와 장유의 질서와 붕우간의 신의의 미덕을 근간으로 지 탱되는 사회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희망하였다. 이러한 사회 국가의 평화와 안녕은 개개인이 제 각기 소속된 인간관계 속에서 각자가 가진 미덕을 발휘하여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서 행 복을 찾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부부의 사랑이 지속되어야 버림받는 남녀가 없어지고, 부모 자식의 친분이 담보되어야 버림받는 고아와 노인이 없어지며, 장유의 질서와 붕우의 신뢰가 담보되어야 소속 집단과 이웃이 서로 돕고 의지하여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이 인간관계 속에서 각자의 미덕을 발휘함으로써 그 존재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한 행복한 일이지 만, 무슨 이유로든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박탈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며, 사람들이 각자 에게 주어진 직분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는 물론 가정 도 지탱될 수 없고, 개인의 행복도 보장할 수 없다. 이것이 젊은 나이로 국왕의 지위에 오른 선 조에게 일흔에 가까운 나이의 퇴계선생이 그 평생 동안 종사한 학문의 요점을 간추려 성학십도 를 그려 올린 이유일 것이다. 공자는 이르기를 齊나라가 한 번 변하면 魯나라와 같아질 것이고,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道에 가까워질 것이라 하였다. 후진국이 변하여 중진국이 되고 중진국이 변하여 선진국이 된다고 하는 데, 선진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혹자는 국민소득 등 경제 수준으로 선진국을 가늠하는 잣대로 삼기도 하지만, 경제 수준이 행복의 수준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먹고 살만하면 예절을 안다고 하 지만, 풍요하면 할수록 사치와 교만과 방종과 안일이 팽배하고 그에 비례하여 요행과 태만의 악 습과 분쟁과 질시의 갈등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퇴계선생이 성학십도 에서 인간관 계의 도리 실천과 심성의 도덕 함양을 통하여 구현할 수 있다고 진언하였던 개인의 행복과 사회 의 이상은, 선진국의 정신적 풍요를 증진시키는 한국적 도덕 문명의 지침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할 것이다. <題字 : 鶴陰 李 燮> 차례 <卷頭辭> 聖學十圖 를 다시 보며 鄭景柱 (01) <連載> 三國史記 인물(14) 백제 개로왕과 첩자 도림 兪英玉 (15) 退溪先生 言行錄 門人錄 編輯室 (03) <詩苑> 바위, 고요 낚시, 동전 한 닢, 고백 柳致環 外 (21) <國學講演 要旨> 日本을 이겨야 統一이 보인다 許文道 (05) <退 陶 先生의 興 趣를 찾아서>(2) 벗과의 사귐 孫有珍 (22) 子孫들과 함께(19) 나갈때는 반드시 아뢰고 編輯室 (06) <이런 詩> 崔致遠 의 泛海秋夜雨中 編輯室 (25) 古典의 숲을 거닐며 (6) 常山蛇勢 許宗烈 (07) <短隨筆> 동그라미 그리기 李炳壽 (26) <問 辨> 이성(利成)이라고 고하는 의미는 趙昌奎 (08) <漢文文法(23)> 也 의 用法에 대하여 趙柄悟 (27) <詩中有畵 畵中有詩>(2) 高士觀水圖 李聖惠 (09) 硏究院 消息 (29) <先蹟紀行>道學忠義가 山처럼 江처럼 朴判基 (12) 編輯長이 드리는 말씀 (28)

116 호 _3 退溪先生言行錄 이와기를논함 [ 論理氣 ] 묻기를, 솔개가날고물고기가뛰논다 는것이, 노력하되기대하지말며, 잊어버리지도말고, 조장 ( 助長 ) 하지도말라 는것과같은뜻이라는것은무슨말입니까? 하니, 선생이말씀하기를, 솔개가날고물고기가뛰논다는것은화육 ( 化育 ) 이유행( 流行 ) 하여위와아래에드러나보이는것이모두이( 理 ) 의묘용( 妙用 ) 이라는것을상징한말이다. 하늘은욕심이없기때문에이기 ( 理氣 ) 가유행하되, 자연한순간도중단하는일이없다. 사람도노력하되기대함이없이서둘러조장하려는생각의병을버린다면, 본체( 本體 ) 가드러나고묘용( 妙用 ) 이유행하면서도한순간도중단함이없을것이다. 그모습이이와같은것이다. 하였다. - 김성일 ( 金誠一 ) - 問鳶飛魚躍與有事勿正勿忘勿助之義同者何也先生曰鳶飛魚躍狀化育流行上下昭著莫非此理之用天惟無欲故理氣流行自然無一息間斷人亦必有所事而無期待去念助長之病則本體呈露妙用顯行亦無一息之間其象乃如此 [ 金誠一 ] 일찍이말씀하기를, 자사( 子思 ) 가말한, 솔개가날고물고기가뛰논다 는말의뜻을명도( 明道 ) 는 반드시노력하되기대를하지말라 는말과같은뜻이라고하였다. 이것을알아야만천연( 天淵 ) 1) 의오묘함을알수있다. 하였다. - 김수( 金睟 ) - 嘗曰子思鳶飛魚躍之旨明道以爲與必有事焉而勿正之意同如此然後可知天淵之妙 [ 金睟 ] 묻기를, 사람들이다같이일원지기 ( 一元之氣 ) 를받았는데, 기질이서로같지않은것은무엇때문입니까? 하니, 선생이말씀하기를, 사람이태어난것이비록일원지기를받았다고하지만, 그일원지기라는것이본래그자체로균일( 均一 ) 한것이아니다. 그일원( 一元 ) 에서음( 陰 ) 과양( 陽 ) 이나누어지니그기( 氣 ) 에본래청( 淸 ) 과탁( 濁 ) 의구분이있었던것이며, 음양이다시나누어져서오행( 五行 ) 이되니, 그기( 氣 ) 가상생( 相生 ) 하기도하고상극( 相克 ) 하기도하며, 순응[ 順 ] 하기도하고반역 [ 逆 ] 하기도하며, 올라가기도하고내려오기도하며, 가버리기도하고돌아오기도하며, 찾아오기도하고떠나가기도하며, 열리기도하고닫히기도하며, 왕성하기도하고쇠퇴하기도한다. 어지러이서로부딪치면서뒤집어지기도하고뒤섞이기도하여진[ 淳 ] 하기도하고묽 [ 漓 ] 기도하며, 맑기도하고탁하기도해서가지가지서로같은것들이없다. 사람이바로이러한기( 氣 ) 를타고났으니, 기질이서로다르다는것이무엇이이상한가? 선유( 先儒 ) 의이른바, 솟아오르고가라앉고하면서오늘에까지이르렀다 는것이, 바로음양오행의불균일( 不均一 ) 함을지적하여한말이다. 하였다. - 김성일 ( 金誠一 ) - 1) 천연( 天淵 ) : 연비여천어약우연( 鳶飛戾天魚躍于淵 ) 에서천( 天 ) 자와연( 淵 ) 자를딴말. 도산서원앞에천연대( 天淵臺 ) 가있다.

116 호 _4 問人同稟一元之氣而氣質之不同何也先生曰人之生也雖曰同稟一元之氣而一元之氣亦自不齊蓋自一元而分爲陰陽則其氣故有淸濁之分陰陽又分爲五行則其爲氣也或生或克或順或逆或升或降或往或復或來或去或闢或 闔或旺或衰紛綸交盪顚倒錯綜淳灕淸濁有萬不齊人稟是氣而生則其氣質之不同何足怪乎先儒所謂騰倒到今日者正指二五不齊處言也 [ 金誠一 ] 退溪門人錄 丹厓李敬中 朝鮮宣祖때의文臣인李敬中의자는公直이고호는丹厓이며본관이전주로壬亂때戶曹判書를역임한完昌 院君李誠中의아우이다. 中宗 36 년 (1542 년) 서울에서출생한단애는아우인西川李養中과함께당시전국적인大學者로추앙을받고있던退溪先生문하에들어가薰陶를받았으며司馬試를거쳐文科에오른후에는藝文館, 弘文館, 司諫院의여러관직을거쳐선조 22 년에는吏曹正郞을역임하였다. 이때전주출신으로진안竹島에서모반을주동하여己丑獄死가일어나게했던鄭汝立사건을막아내는데공을세웠으며이때의공적으로사후동문인柳西厓의천거로증직과文 敬公의시호가내렸다. 정여립의모반사건이있은후당쟁을주동한대북파의우두머리鄭仁弘이모함하려하였을때에도柳西厓의변호로화를면할정도로西厓선생과친교가두터웠으며坡谷을위시한이들삼형제가서울에거주하고있었으면서영남 陶山의퇴계선생문하에들어가학문을닦고모두가文科에급제하여관계에진출하고, 형제가시호를받았다는것은놀라운사실이다. 아우인서천이양중도도산에서훈자를받은후문과에급제하여관직이承旨에이르렀으며형인坡谷은사후領議政의증직과忠簡 公의시호를받았다. 松澗李庭檜 公의자는景直이고호는松澗이며본관이眞城으로松安君의 8 代孫이고, 善山都護 使를지낸李禎公의嗣孫이다. 中宗 36 년(1542 년) 안동周村에서출생하여어려서는조부인慶流亭訓導公演에게서글공부를하다가소년시절부터再從曾祖인퇴계선생문하에들어가훈도를받은송간은司馬試에합격하여進士가된후에도학문에정진하였다. 學行이뛰어나 30 세이후柳西厓, 鄭藥圃, 具柏潭등동료문인들의천거로通 5 院引儀에등용되면서관직에나가게되었으며그후副尉를역임하고再知縣監으로외직에나아가덕을쌓았다. 성품이후덕하고인자하여존경을받았던송간은 46세때인宣祖 20 년(1587 년) 에는參正으로발탁되어陣慰使를수행하여入京하였고이때의공으로宗系錄에光國原從功勳으로훈록되었다. 그후곧귀향하여祖先事業을주관하면서퇴계선생의문집과연보발간에참여하였으며선조 35 년에는선생의손자東巖公과함께先鄕인眞寶에우거하면서鳳覽書院을창건하여선생의위패를봉안하고향사를올렸다. 祖先의遺業을받들기위하여鵲山精舍중건에진력한송간은사후松安公신위가봉안 된鵲山祠에종향되었다.

116 호 _5 < 國學講演 要旨 > 日本을 이겨야 統一이 보인다 일류국가의 길, 초인 朴正熙가 열었다 許 文 道 (전 통일부 장관) 한국과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선진학문을 배워 새로운 지도이념을 수립하는 매우 가깝다. 부산에는 영도에 있는 봉래산이 밑거름을 마련했다. 특히 우리 민족의 스승이 나 태종대, 황령산 등 일본 대마도를 조망할 라 할 퇴계 이황의 퇴계집 등은 일본 문화 수 있는 곳이 많 의 발전에 크게 다. 구주까지 섬 기여 하였다. 들이 징검다리 같 퇴계의 敬 철학 이 연결되어 대륙 은 일본에도 큰 의 문명이 2000 영향을 끼쳐 메이 년 전부터 반도로 지 시대 교육이념 부터 전달되었다. 의 기본정신을 형 일본 열도의 역사 성하였다. 퇴계는 적 운명이 필리핀 이 敬을 70생애를 열도와 달라지는 통하여 실천한 분 결정적 계기는 일 이다. 敬의 중심내 본이 부산에서 보일만큼 우리나라 반도에 가 용인 主一無適 을 요새 말 로 하면 집중을 깝다는데 있다. 말하고, 영어로는 concentration 이다. 천재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망하여 나라를 잃고 둔재의 차이는 결국 집중력이라 할 수 있다. 부흥운동에 실패하자 유민들이 대거 일본으로 일본은 실천윤리로서 퇴계선생의 敬을 이미 건너가 일본 사람이 되었다. 신라를 원망하게 막부시대에 배워, 세상사는 방식으로서 거기에 되었고 적대감을 갖게 되어 왜구의 빈번한 출 만 매달렸고 서민들까지 생활화하여 3, 4백년 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일본은 풍신 지나고 보니, 2차대전이 끝나고 요새와서 우 수길이 오랫동안 지속되던 전국시대를 통 리와는 달리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 나왔 일하여 무장집단의 힘을 깎아내고 국민을 하 다. 우리가 일찍이 받았던 敬의 가르침의 유산 나로 묶기 위한 방책으로 조선 침략을 했다 을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할 하고있다. 것이다. 이때에 포로로 끌고 간 벼슬아치인 강항(姜 아기도 잘 안낳고, 향락주의로 흐르는 시대 沆) 등 성리학자들로부터 일본은 결국 조선의 풍조를 보면, 열심히 등산하던 사람들이 산중

116 호 _6 턱에서, 거기도경치좋다고오르는것집어치우고퍼질고앉아도시락까는형국이다. 일본이출산율이줄기시작한것은 4만불의고지에오르고나서다. 삼성전자의전자제품매출액이일본기업의전자제품매출액을넘어섰다하여만족할일이아니다. 삼성전자등제조업의기반은일본산부품에의존하는실정이다. 핵이라는북한리스크와대일기술의존구조와인구의고령화현상은우리가반드시극복해야할과제이다. 일본을이기는극일을위해서는신혼부부에게아이는적어도셋은가지라고주문하고싶다. 한국사회가급속도로고령화, 노인사회가되고있다는얘기는젊은이들이급속도로아기를적게낳고있다는얘기다. 출산율이일본보다더낮아지고있는것이다. 이대로라면미구에인구도줄어들기시작할것이다. 출산율이줄어들면성장률도내리막길이다. 또한퇴계선생의敬사상을가르치라고강하게권하고싶다. 어느사회든선행세대가후계세대를자신을갖고가르쳐야하고전통과가치관전수가단절되어서는아니된다. 지금의노령세대가산업화과정에바빠, 이일을등한히한점을한번되돌아봐야할것이다. 일본을이기는극일의기지로는부산이최적지이다. 해운대관광지역에일본인들의부동산투자가일고있고관광입국도늘고있는추세이다. 일본인들이가둬놓고있는개인자산 1500 조 을부산이선두에서서숨통을터야한다. 그것이부산이사는길이고일본이사는길이다. 일본은국민소득이 4 만 $ 인데비하여우리는그절반수준이다. 앞으로 5~ 10 년사이통일의전망이내다보인다. 그럴수록경제의내실을다져야할것이다. 북한인구 2,500만명을먹여살릴채비가있어야하는것이다. 세계의최빈국의하나였던한국을오늘의선진국대열의나라로일으켜세운박정희대통령은언제든지자기를던질각오가되어있던초인이었다. 박정희의교육헌장에있던 < 민족중흥의역사적사명> 은민족통일로서만완수되는것임을오늘우리모두가다시한번다짐할필요가있다. 매사에집중력발휘를요구하는퇴계의敬사상을생활화하고, 지금보다아기하나더낳기를실천한다면 2025년에국민소득이 5만 $ 이되고그렇게염원하던통일의문도활짝열리리라확신해마지않는다. (19) 나갈때는반드시아뢰고돌아와서도보고드려야 父母乎我 / 父母之命 / 父母有病 / 若告영適 / 出必告之 / 立則視足 / 부모가나를부르시거든부모님의명령은부모가병환이있으시거든서쪽으로간다고말씀드리고서나갈때는반드시아뢰고서서는반드시그발을보고 唯而趨之 / 곧대답하고달려갈지니라. 勿逆勿怠 / 거스르지도말고게을리도말라. 憂而謀療 / 근심하여치료할것을꾀하여라. 不復東性 / 동쪽으로는가지말라. 返必拜謁 / 돌아와서도반드시절하고아뢰라. 坐則視膝 / 앉아서는반드시그무릎을보라. < 四字小學 > 에서

116 호 _7 (6) 常山蛇勢 ( 상산사세 : 어떤일을당하여前後左右가서로잘호응하여서로돕는모습, 또는문장의머리와끝이잘맞는좋은글을뜻함 ) 許宗烈 ( 회원, 敬化書院講伯 ) 솔연( 率然 ) 이란常山에사는전설속의큰뱀으로, 행동이몹시민첩하여사람들이두려워했다고한다. 전투를잘하는장수는마치상산의솔연과같이작전을편다. 솔연은그머리를치면꼬리가덤비고, 그꼬리를치면머리가덤벼들며, 그중간을치면머리와꼬리가한꺼번에덤벼든다고한다. 그러면군대를움직이는데도이솔연과같이부릴수가있는가? 물론할수있다. 吳나라사람과越나라사람은평소에는원수지간으로몹시서로미워하지만, 일단같은배를타고강물을건널때풍랑을만나면, 평소의미움과반감은사라지고, 마치한사람의두손과같이서로일치협력하여배가뒤집히는것을막게되는것이다.( 吳越同舟 ) 평소의원수지간인오나라사람과월나라사람에있어서도이러하거늘, 하물며같은장수밑에서뜻을같이하고있는아군의군대를움직임에있어서야, 항상머리와꼬리가상응하여능히적군을공격할수있는것이다. 이이야기는 孫子兵法九地篇吳越同舟章 에나오는이야기다. 공공기관이나기업에있어서도각부서사이에긴밀한유대관계를맺고있어야한다. 동일한상품을만들어내는경쟁회사사이에도, 경우에따라서는힘을합쳐위기를극복하기도하는데, 일심동체라고말할수있는같은회사사원들사이에서야, 한쪽이약하면다른파트에서이를도와총력을기우린다면, 아무리어려운역경이라도능히극복할수있는것이다. 勞使간의갈등도서로의요구하는바가확연히달라서더러싸우는바가있더라도회사의存廢에관한일이생기면한목소리를내어서회사부터살려놓고보아야한다. 周易의천화동인괘 ( 天火同人卦 ) 에보면이런말이있다. 두사람이마음을같이하면그예리하기가쇠붙이라도끊을수있고, 두사람이뜻이맞아한목소리를내면그말은마치난초같은향기가난다. 고했다. ( 二人同心하니其利斷金이요同心之言은其臭如蘭이라 ) 南北이국가이념과체제가달라서로대결할때하더라도 UN 등국제무대에나가서는한목소리를내어성숙한민족의식을보여준다면얼마나좋으랴! 정치권에서도與野가평소에는극단적정책대결을하다가도타협과양보를통하여합의점을도출해내는것이성숙한議會民主主義의자세이며, 또그래야그정책의실현이국민의호응을얻어힘을받게되는것이다. 한편나라가백척간두( 百尺竿頭 ) 의위기를당할때나, 국제간의첨예한이해관계가걸려있는이때에정치권이한목소리를내어도오히려부족할판에지나간잘잘못

116 호 _8 을놓고허구한날이전투구 ( 泥田鬪狗 ) 를일삼기만한다면어느국민이이러한정치권을바로보겠는가? 난초같은향기를내지못할망정혐오스러운냄새를풍기지는말일이다. < 類似表現 > 常山之蛇, 首尾相應, 首尾相救 < 出典 > 率然者는常山之蛇也니擊其首하면則尾至하고擊其尾하면則首至하며擊其中하면則首尾俱至니라. 敢問하되兵可使如率然乎아. 曰可니라. 吳人與越人은相惡이나當其同舟而濟에遇風이면其相救也는如左右手니라. ( 孫子兵法九地篇吳越同舟章 ) 問辨 (25) 제사를마칠때 이성( 利成 ) 이라고하는데그의미가무엇입니까? 제사를잘마쳤음을알리는절차입니다. ( 동래구수안동김아무개) 주자의 가례( 家 5) 에따르면, 제사에서이성( 利成 ) 을고하는절차는흔히음복 ( 飮福 ) 이라고알려져있는 수조 ( 受胙 ) 1) 의절차에포함된것입니다. 음복을마치고나면축( 祝官 ) 은서쪽에서동쪽을향해서서 이성( 利成 ) 이라고주인에게아룁니다 2). 기제( 忌祭 ) 의경우라면, 이뒤로는사신( 辭神 ), 납주( 納主 ), 철상( 撤床 ) 의절차만남게되므로실질적으로제사가거의끝났음을알리는절차라고보아도되겠습니다. 이성( 利成 ) 이라는말에서 이( 利 ) 는 양( 養 : 봉양함) 의뜻이고, 성( 成 ) 은 필( 畢 : 마침 ) 의뜻으로곧 신을봉양하는예를마쳤다. 는의미가됩니다.( 의례, 사우례 ) 고대에는신주( 神主 ) 나지방( 紙榜 ) 이아닌살아있는사람을제사상에앉혀서신을대신하게하였는데, 이를 시( 尸 ) 라고불렀습니다. 제사가끝나면신을보내드려야하는데, 이성을고하면시( 尸 ) 가이말을듣고자리에서물러 남으로써사신의절차가진행되게됩니다. 하지만후대에는제사에시( 尸 ) 가없었기때문에이성을고하는절차를폐지했습니다. ( 예기집설 ) 조선조저명한예학자인김장생의 의례문해에 후세에이미시를쓰지않으니행할필요가없을듯하다. 고한것도이때문입니다. 그러나그는한편으로주자의 가례 에는이절차가기록되어있으므로이를준용하여이성을고하는것도합당할듯하다고하였습니다. 예의절차가운데는이성을고하는절차처럼생략해도될듯한절차가더러있습니다. 생략의여부를결정하는것은전적으로예를행하는사람들의몫입니다. 하지만만일생략해도되고생략하지않아도크게문제가없는절차라면, 굳이생략하는것보다는지키는것이선대의예를존중하는태도라는점에서예의정신에부합되는것이아닐까생각해 봅니다. 趙昌奎 ( 경성대한문학과조교수 ) 1) 수조 ( 受胙 ) 는祭餘肉 ( 제지낸고기) 을받는다는飮福行爲. 2) 축이동향하는경우는시제( 時祭 ) 나기제( 忌祭 ) 와같은길례( 吉 5 ) 의경우이며, 흉례( 凶 5 ) 인우제( 虞祭등에는서향하므로주의해야한다.

116 호 _9 (2)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李 聖 惠 (부산대 한문학과 강의교수) 깎아지른 절벽아래 바위에 한 선비가 두 팔로 턱을 괴고 엎드린 자세로 기대어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절벽 위에서 흘러내린 넝쿨이 드리워져있고, 물에는 갈대가 우 거져있다. 이 그림은 조선전기 문인이자 시서화 삼절(三絶)에 뛰어났던 화가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대표작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이다.1) 곧, 물을 보는 사람은 고사(高士)이다. 조선후기 화가 김 명국(金明國)이 그린 의목관수도(倚木觀水圖) 역시 가로 로 뻗은 고목의 가지에 한 선비가 기대어 물을 보는 그림 이다. 물을 바라보는 동양인의 태도는 특별하다. 중국 태고적 전설상의 천자(天子)인 반고(盤古)가 죽자 그 눈은 해와 달이 되었고, 피는 강과 바다가 되었으며, 뼈는 언덕과 산 이 되었다(至盤古死, 而目爲日月, 血爲江河, 骨爲丘山)고 한다. 반고의 피로 만들어진 물, 이는 우주 생명체의 원천 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북송(北宋) 때의 화가 곽희(郭熙) 는 물은 산의 혈맥이며, 물은 산으로 얼굴을 삼는다(山以 水爲血脈, 水以山爲面. 林泉高致 ) 라고 했다. 한편 노자 (老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라고 하여 물 (姜希顔, 高士觀水圖, 國立中央博物館 ) 을 도(道)의 최고 경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지만 남과 지위를 다투는 일이 없어서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존재 한다.(水善理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세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 역시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그러 므로 선비라면 누구나 이 물의 성품을 닮고자 하며, 물의 도를 배우고자 했다. 그래서 공자는 어 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智者樂水) 라고 한 것이다. 동양에서 관수(觀水) 는 바로 이런 물이 갖는 품성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며, 관수도(觀水圖) 는 1) 이 그림은 강희안의 작품이 아니라 16세기 전반 신원 미상의 조선 사대부 화가에 의한 것 이라는 주장이 2009년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에 의해서 제기된 적이 있으나 학계에 공인되지는 않았다.

116 호 _10 그러한 선비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관폭(觀瀑) 역시 관수(觀水) 의 일환이다. 윤덕희(尹德熙, 1685~1766) 의 관폭도 는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증점(曾點) 의 무우고사(舞雩故事)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증 점은 너를 알아주면 어찌하겠느냐?(如或知爾 則何以 哉) 는 스승 공자의 질문을 받고 자로와 염유, 공서화 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였다. 그는 저문 봄에 봄옷 이 이루어지면 관을 한 자 오륙 인과 동자 육칠 인으 로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 고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겠다 라고 했다. 증점의 이 대답은 속세의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하늘 이치의 유연함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윤덕희의 그림을 보자. 화면 오른쪽 약간 위쪽 벼랑 에서 하얀 비단 같은 폭포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와 대각선을 이룬 왼쪽 하단 너럭바위에 키 큰 고목이 두 어 그루 서있고, 나무 아래 너럭바위에 관을 쓴 선비 와 관을 쓰지 않은 네 사람의 선비가 있다. 선비 옆에 있는 키 작은 이는 동자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 뒤에 역시 동자로 보이는 여섯 명이 있다. 이는 관을 한 자 오륙 인과 동자 육칠 이라는 증점의 고사와 맞아떨어 (尹德熙, 觀瀑圖, 國立光州博物館 ) 진다. 이들은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물론 제화(題畵)가 없어서 화가의 정확한 의도를 알기는 어렵다.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는 선면(扇面)에 좌우 대각선으로 암반 (巖盤)과 암애(巖崖)를 배치하고, 암반에 뿌리내린 노송(老松)이 용소(龍沼)를 향해 구부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암반과 암애를 연결하고 있는 구도이다. 폭포는 화면 한 가운데, 그러니까 암반과 암 애 사이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화면 좌측으로 치우쳐서 단정히 홀로 앉은 한 사람이 폭포를 바라 보고 있다. 관폭하는 사람의 등 뒤에는 이런 제화(題畵)가 있다. 폭포는 문득 창밖의 발을 이루고 瀑忽成窓外簾 떠도는 구름 한 낮에 그늘을 만들려 하네. 浮雲欲張日邊陰 떠도는 구름이 한 낮에 그늘을 만들려 한다는 것은 골짜기가 깊다는 뜻이다. 단정히 앉아 관폭 하는 이 사람은 틀림없이 도인(道人)으로, 그는 지금 탈속(脫俗)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있는 것이다. 기품 있게 휘어진 노송, 바위, 구름, 폭포는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선경(仙景)을 묘사한 다. 그러나 폭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망여산폭 포(望廬山瀑布) 이다.

116 호 해 비친 향로에 붉은 연기 피어나고 日照香爐生紫烟 아득히 보이는 폭포는 긴 내를 걸었구나. 遙看瀑布掛長川 날아 곧바로 삼천 길을 흘러내리니 飛流直下三千尺 아마도 은하가 구천에 떨어지는 것이리라. 疑是銀河落九天 _11 이백이 이 시에서 여산폭포의 아름다움을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 라고 노래한 이 후 은하락구천(銀河落九天) 은 폭포미의 전형(典型)이 되었다. 조선중기의 시인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은 박연폭포를 이렇게 노래했다. 물줄기 하나 연이어 못으로 떨어지고 一水相連上下淵 허공에 나는 포말 세상 티끌 쓸어내네. 半空飛沫灑風烟 산신령이 앞 왕조의 한을 씻으려고 山靈欲洗前朝恨 짐짓 긴 물줄기 보내어 동천에 걸었구나. 故遣長川掛洞天 朴淵 村隱集 유희경은 박연폭포를 관념적으로 바라본다. 허공에 나는 포말이 세상 티끌을 쓸어 내고, 고려 왕조의 한마저 씻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긴 물줄기를 동천에 걸었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시원한 폭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시인 강은교는 우리가 물이 되어 라는 시에서 물이 갖는 조화와 화합, 용서와 관용을 노래 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그러나 우리는 지금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하략) 강은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의 남과 북은 불로 만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물로 만날 것인가? 누가 먼저 물이 되어 서로를 적실 것인가?

116 호 _12 < 先蹟紀行 > 道學忠義가 山처럼 江처럼 達城宜寧 地域 遺蹟를 찾아서 朴 判 基 (회원 부산담수회 부회장) 녹음이 짙어가는 오월 스무날 宏弼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지금도 보는 듯 퇴계학부산연구원, 부산 담수회, 박약회 부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산지회 세 유림단체회원 일동은 2대의 관광버 도동서원은 김굉필(1454~1504)의 독학篤學과 스에 분승하여 선적先蹟 순례의 길에 올랐다. 덕행을 숭앙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현재 대 우리 일행은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머리에 새 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에 있다. 기며 첫 방문지인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길 양 원래는 1568년에 현풍비슬산 쌍계동에 건립 안에 펼쳐지는 오월의 푸르름은 녹음방초승화 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 1605년 시綠陰芳草勝花時를 노래한 선인先人들의 마 (선조 38년) 지금의 자리에 보로동서원으로 이 음을 짐작케 한다. 름을 바꾸어 중건되었다. 2년 후 1607년에 退 차가 어느덧 대구 溪先生과, 한훤당의 외증손자인 한강 정구寒岡 광역시 달성군 현 鄭逑의 주도로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풍면 사무소에서 1678년(숙종 4년)에 정구를 추가 배향하였다. 낙동강을 오른편 이황李滉은 김굉필을 가리켜 동방도학지종 에 끼고 약 4km 東方道學之宗이라 칭송했는데 도동서원은 낙 가니 도道가 동쪽 동강을 앞으로 굽어보는 구릉 위에 동북향을 으로 옮겨왔다는 향하여 자리잡았다. 서원 앞에는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道東書 심었다는 수령 400여년의 은행나무가 세월의 院의 들머리인 노 흐름을 혼자 아는 듯 묵묵히 서 있어 감회를 방송路傍松 詩石 자아내게 한다. 이 있는 다람재에 닿았다. 빼어난 풍광에 가던 도동서원은 건립할 당시 안동에서 나는 귀 길 멈추고 우뚝 선 정자에 오르니 시야는 일 한 목재를 낙동강에 띄어 와 지을 정도로 정 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발 아래는 낙동 성을 쏟았으며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위해 북향 강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고 서원의 전경이 을 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도동서원의 사당 한 눈에 들어온다. 강 넘어 고령 땅 개진들이 과 중정당, 토담은 보물 350호로 지정됐다. 넓게 펼쳐져 강과 들, 산과 서원이 함께 어울 서원은 강 건너 개진들이 펼쳐지고 뒤로 대니 리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듯하다. 서 산戴尼山 기슭 끝자리 경사가 비교적 급한 지 원에 들어서는 순간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 형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서원을 구성하는 건

116 호 _13 물들은반듯하게설정된중심축을따라수월루水月樓, 환주문喚主門, 중정당中正堂, 내삼문, 사당이차례로배열되어있을뿐만아니라중심축에는이를명확하게나타내기위한통로와계단이자리하고있다. 이는성리학을집대성한주자朱子가말한추뉴樞紐, 즉만물의축과중심성을나타낸것으로해석된다. 이와같이도동서원의전체적인건축구성과배치형식은우리나라서원건축중가장규범적이고전형적이며건축적완성도와구성이우수하다는평판이다. 특히 1600년대에건립된강당과사당동건축들은당시서원과사묘건축을대표할만큼매우훌륭한짜임새와수법을보이고있다. 문루인수월루水月樓는청운靑雲의꿈을안고공부하는유생儒生들의답답한마음을풀던곳이고, 내심성心性의주 主가되는근본을찾아부른다는문인서원정문인환주문喚主門, 그뒤로강당인중정당 中正堂앞마당에닿는다. 음양이조화를이룬다는중정당中正堂, 중용의상태를말한다. 강당좌우에는동재東齋인거인재居仁齋와서재西齋인거의재居義齋가마주보고있다. 중정당이북향하고있어 서재 가동쪽에있고 동재 가서쪽에있다는점이남다르다. 유생들의기숙사, 거인居仁과거의居義는맹자이루장구離婁章句上에 자신이인仁에머물러의義를행할수없다고말하는것은스스로버리는것이다. 吾身, 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에서나온것이다. 양반자제가머무는거인재는정면 3칸측면 1칸으로지붕을받치는기둥이원기둥이다. 쪽마루가있고바람이잘통하도록벽에판문을두었고아궁이를건물뒤쪽에뒀다. 하지만평민자제가머무르는거의재는둥근기둥인원주를함부로쓸수없는당시규정에따라사각기둥으로 지붕을받쳤으며민도리형식건물이다. 이렇게건물하나에도차이를두었다. 중정당왼편의미닫이문은북향한도동서원에서만보이는독특한판문板門인데, 여름철따가운햇살을조금이나마막아보고자했던조상의지혜가엿보인다. 강당왼쪽인북쪽에생단牲壇이있고강당뒤가파른계단위에내삼문이서있고그위에사당이있다. 사당뒤에는김굉필을주벽主壁으로하여한강정구의위패位牌가봉안奉安되어있다. 한훤당김굉필은사장詞章보다는경학經學에, 치인治人보다는수기修己에중점을두었다. 소학에입각한처신處身과한훤당의가범家範이숭상되었으며, 아산의인산서원仁山書院, 희천의상현서원象賢書院, 순천順天의옥천서원玉川書院, 달성의도동서원道東書 院등에제향되었다. 우리일행은대학자를모셔놓은도동서원에참배를올리고경남의령군부림면에소재한백산白山안희제安熙濟 (1885~1943) 선생의생가生家를찾았다. 안채, 사랑채 2동으로되어있고안채는앞면 6 칸, 옆면 2 칸, 지붕은팔八자모양의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4칸규모의초가건물로조선후기의주택특징이잘나타나있다. 선생은양정의숙養正義塾경제과졸업후 1907 년부산구포에구명학교, 의령군에의신학교宜新學校, 창남학교刱南學校를창설하였

116 호 _14 다. 1909년 10 월윤세복, 박중화등과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을조직하여국권회복운동을전개하였고, 1911년만주와시베리아를유랑하며독립운동가들과접촉, 1914년부산에서백산상회白山商會를경영하며국내외독립운동단체의연락처를제공하고 3.1 운동때는고향에서독립선언서를배포하여군민들의봉기를촉구하였다. 백산무역주식회사는상해임시정부의독립운동자금조달기관으로활동하고, 11 월에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조직하여청소년들의해외유학을추진하며많은독립운동가와인재를배출하였다. 일제강점기를전후하여국권회복과육영사업에지대한공적을남긴백산안희제영전靈前에삼가묵념을올리고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 ( 1552~1617) 의병장생가로발길을옮겼다. 郭義兵將생가는 2005 년복원되었으며, 경상남도의령군유곡면세간리에있다. 조선중기의전형적인사대부가옥형태로꾸며졌으며, 안채 사랑채 별당 대문간채 중문간채 대곳간채 소곳간채등 7개의건물로구성되어있다. 곽재우장군은황해도관찰사를지낸곽월郭越공의셋째아들로남명조식南冥曺植선생의외손서外孫壻이다. 1592년임진왜란때최초로의병을일으켜나라를지켰던망우당곽재우장군과그휘하 17장수및무명의병들의위패를모시고있는 사당인충익사忠翼祠에이르렀다. 의병탑의 백색고리는망우당이하 17 장령을, 양쪽기 둥은횃불을상징하고있다. 의병탑이라쓰여 진글자는박정희朴正熙대통령친필이라하 니반갑기그지없다. 충의각, 기념관, 사당을 둘러보았다. 난세를당하여곽재우장군은책과붓을던 지고현고수懸鼓樹 ( 수령520 년) 에북을울려의병을모아곡창호남으로진격하는왜병을의령, 기강진, 정암진, 현풍, 창녕, 영산, 진주등지에서섬멸하였으니이것이우리나라의병의효시다. 임진왜란이일어난지수백년이지났건만수만數萬군마軍馬를호령하던홍의장군紅衣將軍의기개가선연鮮然하고그호령이들리는듯하다. 우리일행은마지막순례지덕곡德谷서원을참배하고안내자의설명을들었다.1655 년( 효종 7년) 지방유림의공의로퇴계이황退溪李滉선생의학문과덕행을추모하기위해창건위패를모셨다. 1669( 헌종 1년) 년덕곡이라는사액을받아사액서원으로승격되고선현배향 配享과지방교육의일익을담당하여왔다. 선적순례를마치고귀가길에함안월촌면월촌추어탕집에서저녁을먹으니하루의심신心身이다풀리는듯하고추어탕식도락가의찬사가자자하다. 귀가길에오른차중의자유방담은오늘하루의기분을한층돋우게한다. 하루의일정을돌이켜보건대, 그시대는조금씩다를지언정나라안의우환이나임진왜란, 일제강점기등의난세亂世를맞아그뜻을조금도굽히지않고심신心身과막대한자산을오롯이구국의의지에불태운선인들의의로운행적에우리후인들은더욱기운을북돋았다. 오후 5시 40분출발지서면에도착하여하루의회포를떠올리며각자집으로향했다.

116 호 _15 (14) 백제개로왕( 蓋鹵王 ) 과첩자도림( 道琳 ) 兪英玉 ( 동아대연구교수, 문학박사) 백제근초고왕 과고구려광개토대왕은삼국시대걸출한정복군주들이다. 小國에서출발한삼국은각각철기문명을바탕으로정복전쟁을활발히수행하여명실상 부한고대국가로성장한다. 고구려는만주卒本에서시작하여곧인근의國內城으로천도했고, 백제는한강유역의漢城에서, 신라는천년고도慶州에서출발했기에, 삼국은한동안서로충돌하지않고주변국들을잠식하면서독립적으로성장할수있었다. 그러나백제 13대近肖古王이즉위해서는동서남북으로국세를뻗치는과정에서 371년 10월고구려 16 대故國原王을전사시켰다. 이는삼국이서로쟁패하다가국왕이훙서한첫사례이다. 그로인해고국원왕의아들 17 대小獸林王은잠시영역확대를중단하고, 律令반포, 太學설립, 불교公認등內治에진력하여고구려의고대국가체제를완성하였다. 소수림왕의內治는고구려가다시금국외로뻗어나갈귀한동력이되어, 조카 19 대廣開土王은백제를맹공격해연전연승을거두는등탁월한정복전쟁을통해광활한영토를개척하였다. 하지만광개토대왕은남쪽으로임진강까지만진출하여, 한강이남으로의南下는그의아들 20 대長壽王의숙원사업으로남았다. 고구려장수왕은 427 년수도를평양으로옮겨남하정책의발판을마련한뒤, 오랜준비기간을거쳐마침내 475 년백제의수도한성을공략해개로왕을죽이고한강유역을차지하였다. 이로인해개로왕은당대까지의백제역사상가장어리석고수치스러운임금으로낙인찍히고말았다. 백제 21 대蓋鹵王 ( 개로왕)[ 혹은近蓋婁 ] 은 삼천궁녀 의의자왕과마찬가지로亡城亡國을초래한군주이기때문에그동안역사적평가가더욱가혹하였 다. 삼국사기 < 백제본기 > 에기록된개로왕대기사는몇가지밖에안된다. ᄀ20 대毘有王의맏아들인개로왕즉위, ᄂ14년 10월 1 일일식, ᄃ15년 8월장수를파견해고구려의남쪽변경침공, ᄅ 10 월雙峴城 [ 위치미정] 을수축하고青木嶺 [ 개성북쪽의송악산또는청석동] 에큰木柵을설치한뒤북한산성의병졸들을나누어수비하게함, ᄆ18 년北魏에사신을보내고구려정벌을요청했으나북위가듣지않자조공을중단함, ᄇ21년 9월고구려의공격으로한성이함락했다는기사가전부이다. 하지만백제연구자들은 삼국사기 외에중국측사료등을이용하여, 개로왕이말년에비록失政했지만재위 21년동안전제왕권을지향하며고구려와적극적으로경쟁했던활동적인군주로재평가하고있다. 413년광개토왕훙서이후고구려와백제는잠시대결을멈추고대략 50여년간소강상태를

116 호 _16 유지하였다. 고구려는중국이나북방세력을견제하고또평양천도라는大事를수행한뒤內政에주력하느라바빴으며, 백제는解氏 ( 해씨) 귀족세력이정권을장악해유화정책을펼쳤기때문이다. 하지만 455 년개로왕이즉위하면서부터상황은변하기시작했다. 개로왕도집권전반기에는국정운영을쇄신하여해씨세력을위축시키고왕족중심으로왕권을강화했으며전쟁을일으키지않아민생을안정시켰다. 그러나 468년고구려가신라를공격하자개로왕은위기를느끼며고구려에공세적자세를취한다. 해씨정권은對고구려유화정책을펼쳤지만, 親政체제를구축한집권후반의개로왕은對고구려강경정책으로방향을선회했다. 그가재위 15년에고구려를공격하고쌍현성을수축했다는 < 백제본기 > 의기록은이러한정책변화를반영한다. 개로왕이강경대응으로방향을전환한데는정권교체에서야기된불안정한정국을타개해보려는정치적의도도내포되었지만, 그보다는고구려장수왕의압박이점점거세지면서유화정책에대한내부의불만이고조되었기때문이다. 백제는 20대비유왕이이미 433 년신라와나제동맹을결성했는데, 개로왕은고구려의신라공격에즉각대응하여신라와의실질적인협력관계를공고히했다. 그보다앞서개로왕이 461년왕족昆支를倭에보내왜국의군사적지원을모색하자, 고구려는 462년당시중원을차지하고있던北魏에조공하여 20 여년전중단했던북위와의교류를재개했다. 이에맞서개로왕도 472년북위에사신을파견하여조공을바치면서고구려정벌을요청하였다. 이처럼고구려와백제는외교전또한치열하게전개했는데, 그정점에서백제는그만진득하니버티지를못했다. 백제는북위가고구려정벌에미온적인태도를보이자이를원망해조공을끊고관계를단절하여, 한성공격을한달앞둔시점까지도북위에사신을파견했던고구려와는다른길을걸었다. 이는對중국외교전에서백제가패배했다는뜻이며, 그결과는王都함락이라는치욕으로연결되었다. 원인이있고, 그허물은반드시국왕에게제패망에는반드시일크게귀속된다. 그래서 삼국사기 < 백제본기> 에적힌한성함락대목은간첩에게속아국고를파탄내고백성을혹사시킨개로왕의우매함으로점철되어있다. 외교적실패는사소한허물에불과할뿐, 치욕의궁극적인원인은바로장기와바둑같은작은기예를즐기다가적국에게농락당한개로왕의어리석음에초점이맞춰져있는것이다. 그로인해개로왕이비록왕권을강화하여국정을주도하고신라와가야및왜국은물론북위까지끌어들여고구려포위전략을주도했지만, 수도함락과패전의책임은고스란히개로왕한사람의몫으로돌아가, 과거의여러노력과업적은모두상쇄되고말았다. < 백제본기> 개로왕 21 년조기사를요약하면다음과같다. 1 21년秋 9 월고구려왕거련( 巨璉 : 장수왕) 이군사 3만을거느리고와서王都漢城을포위했다. 왕은성문을닫은채나가싸우지못했다. 고구려가군사를네방면으로나누어협공하고, 또바람을타고불을질러성문을태우니, 人心이危懼하여항복하려는자들도나왔다. 상황이어렵게되자, 왕은어찌할바를몰라수십기병만거느리고성문을나가서쪽으로

116 호 _17 달아났는데, 고구려군사가추격하여왕을해쳤다. 2 이보다앞서고구려장수왕이은밀히백제를치기위해그곳에서첩자노릇할만한자를구했다. 승려도림( 道琳 ) 이여기에응모하니, 장수왕이기뻐하여비밀리에그를보내백제를속이게했다. 이에도림은거짓으로죄를지어도망가는체하고백제로들어왔다. 3 당시개로왕은장기와바둑을좋아했다. 도림이대궐로찾아가자신이바둑을잘둔다고하자, 개로왕이불러들여대국해보니과연國手였다. 왕은마침내그를上客으로높이고매우친근히여겨늦게만난것을한탄하였다. 4 도림이하루는왕에게 大王의나라는사방이모두산, 언덕, 강, 바다로둘러싸여천연의요새이니, 이웃나라들이감히엿볼마음을갖지못하고받들어섬기기만원하고있습니다. 그런즉왕께서는의당숭고한위세와 有한사업으로남의이목을놀라게해야하는데, 성곽과궁실은수리되지않았고, 先王의해골은들판에임시로매장되어있으며, 백성들의가옥은자주강물에허물어지니, 이는대왕이취할바가아니라고생각합니다 하자, 왕이장차그렇게하겠노라고허락하였다. 5 國人을모조리징발하여흙을쪄서성을쌓고, 그안에궁실과누각과臺榭를지으니壯麗하지않음이없었다. 또큰돌을캐다가곽( 槨 ) 을만들어아버지의해골을장사하고, 사성 ( 蛇城 : 위치미정) 동쪽으로부터崇山 [ 경기도하남시검단산추정 ] 북쪽까지강을따라제방을쌓았다. 이로써창고가텅비고백성들이곤궁해져나라의위태로움은累卵의위기보다심하였다. 이에도림은도망쳐고구려로돌아가보고하니, 장수왕이기뻐하여장차백제를치려고장수들에게군사를내주었다. 6 개로왕이이를듣고아들文周에게 내가어리석고밝지못하여姦人의말을믿고썼다가이지경에이르렀다. 백성은쇠잔하고군대는약하니, 위태로운일이있더라도누가기꺼이나를위해힘써싸우겠는가? 나는마땅히社稷을위해죽겠지만, 네가이곳에서함께죽는것은無益하니, 난을피하여왕통을잇도록하라 하였다. 문주는이에목협만치 ( 木劦滿致 ) 와조미걸취 ( 祖彌桀取 ) 를데리고남쪽으로갔다.[< 백제본기> 22 대文周王조: 개로왕재위 21 년고구려가침입하여한성을포위했다. 개로왕이성을막고굳게지키면서문주를신라에보내구원병을요청했다. 문주가구원병 1 만을얻어돌아오니, 고구려군사는물러갔지만, 성이파괴되고왕이사망하여문주가마침내즉위하였다.] 7 이때고구려의對盧 [ 首相격] 齊于와재증걸루 ( 再曾桀婁 ) 고이만년( 古尒萬年 ) 등이군사를이끌고와서北城 [ 서울송파구풍납토성] 을공격하여 7 일만에함락시키고, 남성 [ 서울올림픽공원몽촌토성] 으로옮겨공격하자왕이성밖으로도망쳤다. 걸루와만년은원래백제사람으로서죄를짓고고구려로도망했었다. 걸루등이왕을보고는말에서내려절한다음, 왕의얼굴을향해 3 번침을뱉고죄목을따진뒤, 묶어서阿且城 [ 서울광진구중곡동아차산성 ] 아래로보내어죽였다. 유추컨대, 개로왕은국력을결집하여고구려에맞섰지만점차역부족으로여러난관에봉착했

116 호 _18 다. 왕권은위축되고귀족세력의도전은다시거세었으며국력은쇠퇴하고민생은피폐하여원망과불만이곳곳에서표출되자, 개로왕은약화된왕권의위세를높이고싶은마음에그만고구려첩자의계책에솔깃해대규모토목공사를무리하게진행한것으로보인다. 오늘날의국제사회와마찬가지로예전삼국시대에도간간히간첩들이활동하였다. 현명한지도자는그들을제압하고몽매한위정자는그들에게휘둘린다. 고구려장수왕의밀사로 470년경백제로파견된간첩승도림은뛰어난博奕 ( 장기 바둑) 솜씨로개로왕을현혹했다. 개로왕은도림의간사한말을분변하지못하고그저믿어서, 대대적인토목공사로국고를탕진하고백성들을곤궁에빠뜨렸으며, 그자신은罪人이자舊臣이었던자들의손에서욕된죽음을맞았다. 김부식은史論에서한때자신들이섬겼던개로왕을시해한재증걸루와고이만년의不義만규탄할뿐개로왕에대해서는전혀언급하지않았다. 그렇다고해서김부식이개로왕을탓하지않은것은아니다. 다만본론속에서이미그의잘못이충분히드러났기때문에굳이사론에서까지덧붙일필요가없었을뿐이다. 또김부식은 < 백제본기> 문주왕조에서는개로왕이굳게守成하며아들을신라에보내구원을요청하는등고구려공격에최선을다하는모습으로그를그렸지만, 정작개로왕 21 년조에서는어리석음을자백하고사태를후회하며위기를수습할방안이없다고지레포기하는나약한군주로만표현하였다. 김부식의이와같은상반된서술은아마도개로왕이국난에성심껏노력했더라도결국책임은그에게귀결됨을허물하기위해서가아닐까한다. 사대부들의잣대는더욱엄혹하여, 조선전기 동국통감 은사론에서 개로왕은區조선시대區한작은재주를좋아하다가心志가미혹되어, 드디어敵國의먹이가되고늙은중에게농락당해, 재주꾼의손에든꼭두각시처럼오직그가시키는대로하여, 궁실을높이고臺榭를장식하게하면그대로따르고, 石槨을만들고강둑에제방을쌓게하면그대로따라, 창고는텅비고民力은지쳐, 마침내國事는사라지고敵兵이갑자기닥쳤으니, 비록후회한들미치겠습니까? 자신은적의칼날에죽고후세에비웃음까지사게되었으니, 이것이누구의허물이겠습니까? 라고혹평하였다. 또 동국통감 은 660 년백제가멸망했을때총평으로붙인사론에서도개로왕을교만하고사치하며혼미하다면서亡身亡城의책임을전적으로개로왕에게돌렸다. 조선후기안정복의 동사강목 역시 동국통감 의사론을축약해 人主가반드시잡힐만한틈이있은뒤에야남이그틈을엿보고적도거기에서이간한다. 개로는구구한小技를즐기다가心志가미혹되어마침내적국의먹이가되었으니 나라는반드시스스로를공격한뒤에남이그를공격한다[ 國必自伐而後人伐之 ] 는말은개로를일컫는것이라하겠다고폄훼하였다. 개로왕에대한평가절하는都彌설화와연관지으면더욱짙어진다. 백제개루왕은개로왕과名號가비슷하여혼동되는인물이다. 삼국사기 열전 제8 < 도미 > 에서蓋婁王은不義로도미부인을취하고자패려 ( 悖戾 )( 도리에어그러짐) 한행동을계속한다. 그런데학계에서는대개도미의일이 4대개루왕이아니라 21 대개로왕때의일일것이라고판단한다. 열전 < 도미> 를축약하면다음과같다. 1 백제인도미는비록編戸 ( 호적에편입된) 의小民 [ 평민] 이지만자못義理를알았다. 그아내는

116 호 _19 2 아름답고節行이있어사람들이칭찬하였다. 개루왕이이를듣고도미를불러 人의徳은貞㓗을앞세우지만, 만약아무도없는어두운곳에서교묘한말로유혹하면마음을움직이지않을자가드물다고하자, 도미가 사람의情은헤아릴수없으나제아내는죽더라도두마음이없을것입니다 하였다. 충남보령시貞節祠 3 왕이그녀를시험하려고도미를머물게하고는, 近臣한사람을왕으로꾸며그녀에게보냈다. 그가부인에게 도미와장기를두어이겼으니이제부터네몸은내것이다 하고는그녀를간음하려하자, 부인이 大王께서먼저방에들어가시면옷을갈아입고들어가겠습니다 해놓고계집종을치장해잠자리에들였다. 4 왕이뒤에속았음을알고크게노하여, 도미를誣告 ( 무고) 해죄를주어두눈을멀게하고작은배에태워강물에띄워보냈다. 그리고는부인을끌고와서강간하려고하니, 부인이 어찌감히어기겠습니까마는, 지금은月經중이라몸이더러우니뒷날향기롭게목욕한후에오겠습니다 하자, 왕이그말을믿고허락하였다. 5 부인은곧도망쳐강어귀에이르렀으나건널수가없자, 하늘을부르며통곡하니홀연히孤舟가흘러오기에, 그것을타고서泉城島 [ 위치미정] 에이르러아직살아있는남편을만났다. 풀뿌리를캐먹다가함께배를타고고구려산산( 䔉山 : 함경도원산) 아래에이르니, 고구려사람들이불쌍히여겨옷과음식을주었다. 마침내구차히살다가객지에서일생을마쳤다. 을빼고도미부인을강제로욕보이려했던자가개루왕이아닌개로왕이라도미의눈고보는근거는크게다섯가지이다. 첫째 개루왕 과 개로왕[ 근개루] 의이름이유사하거나동일하다는점이다. 둘째도미가編戶된백성이라는점이다. 편호 는국가의호적에편입되었다는말이다. 즉국가가백성들에게세금을매기고役을부과하기위해집집마다[ 戶 ] 호적에편입하여일괄적으로파악했다는뜻인데, 이러한일은중앙집권적국가에서나가능한일이므로, 백제초창기인개루왕때는편호가불가능하다는추측이다. 셋째개루왕이 大王 이라불리고또그가도미부부에게무자비한권력을행사할만큼왕권이專制的이었다는점이다. 건국초기인개루왕때는전제왕권이수립되기어려운반면, 개로왕은즉위이후해씨귀족세력을밀어내고왕권의절대적위상을확보하고자노력했기때문에이러한상황에적절히부합한다. 넷째천성도에서재회한도미부부는고구려로건너가구차히생활했는데, 개루왕때는고구려와백제사이에낙랑이있어백제에서곧장고구려로바로갈수없다. 다섯째 < 도미> 에나오는국왕과 4대개루왕의성격이매우이질적이라는점이

116 호 _20 다.< 도미> 의국왕은淫荒無道 ( 음황무도) 하지만, 개루왕은 < 백제본기> 에 성품이恭順하고품행이단정했다 고기록되어있다. 도미설화는전적으로사실이기보다王都를잃고자신도敗死당한개로왕에대한백성들의원망과한탄이빚어낸창작일가능성이높다. 그렇지만이이야기에서도미부부의信과烈이빛날수록그들을괴롭힌폭군의패악은두드러져, 도미도미와부인의묘소는본래경남진해에있었는데, 진해시의설화는개로왕의불편한이미지를한층토지개발계획에따라경북포항시성주도씨 2세조묘소더업그레이드시킨다. 개로왕에게는억앞으로이장했다가, 2003년 6월충남보령시오천면소성리도미부인사당옆으로이장되었다. 울할법하니그에게서이제폭군의이미지는걷어낼필요가있다. 사실도림이제시한役事의명분도꽤나그럴듯했다. 왕실의권위를세우고, 아마도정변에희생되어喪 5도제대로치르지못했을법한부친의유골을격에맞게수습하며, 백성을위해제방을수축하는일은왕권강화나對民정책에매우유익한사업이다. 하지만정책이아무리좋더라도시행하는시기와방법및정도에있어서는매우신중한고려가필요하다. 재원은어디서마련할것이며, 언제쯤시작하여언제쯤끝낼것이며, 어느수준에서그쳐야苦役이되지않을것인가등등. 그러한계산이분명치않다면도리어백성들의무거운짐이되고만다. 이시기백제의대토목공사는바로그러한無계산의공법에지나지않는다. 한성이함락되기 3년전백제가북위에고구려정벌을요청하며보낸表文을보면, 개로왕스스로 재정은탕진되고힘은고갈되어나라가점점쇠잔하고위축되었습니다 라고토로했듯이, 고구려와의대치국면에서백제의재정은그때이미거의파탄나있었다. 그러므로비록국가를위하고백성을위해서였다하더라도개로왕집권말기의무리한役事는망국의크나큰폐단으로작용했을법하다. 국력의피폐와민심의이반, 그것이바로성패를가르는개로왕의결정적인실책이었던것이다. 혹자는개로왕말기의대토목공사기록을그대로믿지않고, 시기를올려개로왕집권초반전제왕권구축의필요성차원에서단행한일로보고긍정하며, 간첩승도림이개로왕을속이는대목도허구적설화로단정한다. 도림은어쩌면간첩이아니라그냥姦臣일수도있겠지만, 결정적인증거가나오지않는이상正史 삼국사기 에적힌말기의役事까지그렇게과감하게믿지않을수는없겠다. 다만개로왕을조선시대史書가혹평하듯그토록우매하고황탄 ( 荒誕 )( 언행이호들갑스럽고허황함 ) 한인물로만인식하거나도미부부와연계하여황음무도한군주로만생각해서는안될것이다. 國益을위해노력했던그의과거는그자체로인정받아야한다. 더불어성패는하늘에달렸지만끝까지삼가는노력은인간의몫임도개로왕의사적에서기억해야할일이다.

116 호 _21 바위 유치환 ( 柳致環 ) 내죽으면한개바위가되리라. 아예애련( 愛憐 ) 에물들지않고희로( 喜怒 ) 에움직이지않고비와바람에깎이는대로억년( 億年 ) 비정( 悲情 ) 의함묵 ( 緘默 ) 에안으로안으로만채찍질하여드디어생명도망각하고흐르는구름머언원뢰 ( 遠雷 ) 꿈꾸어도노래하지않고두쪽으로깨뜨려져도소리하지않는바위가되리라. 아호靑馬. 경남통영生 (1908 1967). 부산에덴공원에詩碑 고요낚시 봄눈녹는내의식의양지바른연못하나생각의잎을치고, 기억의가지를친다그물결사라진빈터낚싯줄을드리워본다. 시간이끊어진바닥그닿을수없는심층深層몇발의실을풀어야자유의닻에닿으랴몇겹의고요를더견뎌야터지는전율戰慄을보랴. 김용태 ( 金龍泰 ) 경북영덕生 (1946~). 국문학박사. 1987 년성파시조문학상수상. 동전한닢 허형만 ( 許炯萬 ) 학교에서돌아오는길길바닥에버려진동전한닢조심스럽게주워들었습니다. 흙속에묻혀삭아들지않고발바닥에밟혀누그러들지않고차바퀴에깔려오그라들지않고 길바닥에버려진동전한닢정성껏닦고닦아빛을냈습니다. 따스한손바닥에꼭쥐고밟히고깔려멍이들었을아픔을감싸주었습니다. 전남순천生 (1945~). 목포대국문과교수. 2011 년한남문인상수상. 결국꽃들이만발하였다. 우리는언제쯤사랑을고백할것인가 고백 시인. 성남서고등학교교사 ( 담당: 국어교과및진로상담) 강건늘

116 호 _22 (2) 벗과의 사귐 孫 有 珍 (경북대 강사)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혼자서 살아온 적이 없다. 원시나 고대, 혹은 중세나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해 왔다. 사귐 은 그러한 관계 맺기의 한 형태로 여기에는 서로 얼굴을 알고 가까이 지냄 이라는 뜻 이 담겨 있다. 곧 누군가와 아는 사이가 되고, 그와 가까운 사이가 되며, 가까운 사이가 지속될 때, 비로소 사귀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퇴계 선생 또한 그의 시대에 당대의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갔던 자취를, 선생이 남긴 시문을 통 해 읽어낼 수 있다. 그 사귐의 대상이 누구이며, 그 대상과의 사귐이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주목함 으로써 사귐의 가치와 의미 또한 달라질 것이다. 선생은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사귀어 갔던 것일 까, 그 사귐에 주목해 보자. 孔門의會友 공자의 문하에서 벗과의 만남을 논하였으니 以文仍輔仁 글로써 만나고 인을 돕는다고 하였네. 非如市道交 저잣거리 길에서 사귀는 것과는 다르니, 利盡成路人 이로움 다하면 길에서 만난 사람이 된다오. 위의 시는 퇴계 선생이 김부의(金 儀, 1525-?)의 읍청정(挹淸亭)을 12수로 읊은 김신중읍청정십이영 (金愼仲挹淸亭十二詠) 중 여섯째 수 회우(會友) 의 전문이다. 여기서 퇴 계는 논어(論語) 안연(顔淵) 편 에서 증자(曾子)가 말한 군자는 문 [學文]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 써 인을 돕는다[君子以文會友 以友 輔仁]. 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벗과 의 만남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유 가(儒家)에서 일찍부터 추구해 온 퇴계선생문집 권 5. 사귐으로, 그 방법으로는 문(文) 이

116호 _23 통할 것을, 그 목적은 인(仁) 을 이룰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귐은 오며가며 시도(市道)에 서 만나 사귀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이로움이 되는 가를 따져 이합집산(離合集散) 하는 무리들과는, 애초에 그 지향점이 달랐다. 어떤 벗을 사귈 것인가, 어떻게 사귈 것인가 하는 점은 퇴계 선생 이전의 성현들로부터 곧잘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아래의 문답을 들어보자. 萬章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감히 벗을 사귐에 대해 여쭙고자 합니다. 라 하니, 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이 많은 것을 挾勢(협세, 남의 위세를 믿고 뽐냄)하지 않으며, 존귀한 것을 挾勢하지 않으며, 형제 많은 것을 挾勢하지 않나니, 벗을 사귐이란 것은 그 德을 벗 삼는 것이니 挾勢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느니라. 1)라 하셨다. 맹자의 이 말에는 어떤 벗을 사귀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덕(德)이 있는 벗과 학문 [文]을 통해 사귀며, 이 벗들과 함께 인(仁)을 돋우어 가는 사귐! 이러한 사귐이 얼마나 가치 있 는 것인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여러 관계의 필요에 의해 맺고 끊어 온 소모적인 사귐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던가를 반성할 때 더욱 선명히 부각될 것이다. 특히 학자 퇴계에게 벗이 란, 끊임없이 교학상장(敎學相長)할 수 있는 존재이고자 했을 것이다. 臥雲庵裏存心法 와운암에서 마음 보존하는 법 배웠다면 觀善齋中日用功 관선재에서는 일용사물을 공부하였다네. 要識講明歸宿處 밝게 이야기 한 결론을 알려고 한다면 請將踐履驗吾躬 부디 실천하여 내 몸으로 징험해 보기를. 퇴계 선생이 지어 벗들에게 보인 여러 벗들에게 보이다(示諸友) 라는 제목의 시이다. 1-2구에 보이는 와운암과 관선재는 각각 주자어류(朱子語類) 와 武夷精舍 시에 보이는 주자의 강학처 로서, 주자가 제자들에게 존심(存心)의 법과 일용(日用)의 공부를 권면한 곳이다. 퇴계 역시 주자 의 말을 빌려 벗들에게 존심과 일용을 강조하며, 이를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소 징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학문의 중요성은 물론이거니와, 이러한 지식을 궁행(躬 行)하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궁극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퇴계가 벗이나 제자들과 주고받은 글에 서는 끊임없이 학문의 완성을 독려하고, 함께 정진해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 대목이 자주 보인다. 바로 문으로써 벗을 만나고자[以文會友] 한 퇴계 선생의 의취(意趣)가 엿보인다. 此日陶山猶阻我 이날은 도산이 오히려 나를 막았으니 他年泗水幾思君 훗날 사수 곁으로 내 마음 내달아 그대 몇 번이나 생각할런지. 好歸努力崇明德 잘 돌아가 힘써 밝은 덕 높이게나 只在躬行不在文 다만 몸소 실천함에 있지 글에 있지 않다네. 1) 孟子, 萬章, 萬章問曰 敢問友. 孟子曰 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 以有挾也.

116 호 _24 오랜 벗인 이정(李楨, 1512-1571)이 큰물을 무릅쓰고 퇴계를 찾아 도산으로 내방하자, 그가 돌아가는 길에 써서 부쳐준 시 경주부윤 이정에게 드림(贈慶州 尹李剛而) 중 두 번째 수이다. 먼 길 돌아가는 벗에게 퇴계가 당부하는 것은, 명덕(明德)을 높일 것과 궁행할 것이다. 명덕의 길 이 글에 있지 않다는 것은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퇴계가 벗을 만남에 추구하였던 학문이란 지행이 합일된 경지를 일컬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퇴계 였기에 유람 차 나선 길에서도 경물을 완상하고 유흥(遊興)을 만끽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江亭昔望蕓藏岳 강의 정자에서 예전에 바라보았을 때는 구름이 큰 산 감추고 있었는데 山寺今登岳出蕓 산의 절 지금 올라보니 큰 산 구름 위로 솟아 있네. 眼豁天低山共遠 시계 탁 트이어 하늘 낮게 보이니 산도 더불어 멀리 보이고 秋高野曠水平分 가을 높고 들 너르니 물 평평하게 나누이네. 閒開靜室思의易 한가로이 조용한 집 열고 주역 논하고 싶고 健倒淸尊欲討文 씩씩하게 맑은 술잔 기울이며 문장 논하고 싶네. 落日丹楓吟更好 지는 해 단풍이라 읊조리기 더욱 좋고 歸時林影月紛紛 돌아올 땐 숲 그림자에 달빛이 어른거리네. 1565년 8월 퇴계가 여러 제자 들과 함께 역동서원(易東書院)건 립을 논의하기 위해 운암사를 찾 았다가 지은 시 운암사에서 노 닐고 김부필과 부의부륜, 금응협 과 응훈, 조목 등 여러 사람에게 보이다(遊雲巖寺示金彦遇愼仲惇 敍琴夾之壎之趙士敬諸人) 이다. 운암사의 원경과 근경을 제시하 고, 산에 올라 바라본 광활한 시 계(視界)를 읊은 후, 퇴계는 이곳 운암사 전경 [한국지역인터넷신문 2010.05.03] 에 정사(精舍)를 마련하여 주역 을 논하고, 문장을 토론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었다. 그 노닒 또한 단순히 즐기고 노는 데만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학문의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자 퇴계의 사귐이란, 그 누구와도 학문을 강마(講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으리라. 퇴계 선생이 벗들과 사귀는 자취를 보며 오늘 필자의 사귐을 되돌아본다. 나는 벗들에게 어떤 벗이 되었던가, 우리는 서로에게 일신(日新)하는 벗으로 존재 하는가를.

116호 _25 泛 海(범해) 최 치 원(崔致遠) (괘석부창해)掛席浮滄海 배를 푸른 바다에 띄우니 (장풍만리통)長風萬里천 긴 바람 만리를 통하네 (승사사한사)乘槎思漢使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이 생각나고 (채약억진동)採藥憶秦童 불사약 구하던 진나라 동자가 생각나네 (일월무하외)日月無何外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건곤태극중)乾坤太極中 하늘과 땅은 태극의 가운데이네 (봉래간지척)蓬萊看咫尺 봉래산이 지척인 듯 (오차방선옹)吾且訪仙翁 내 다시 신선을 찾아보리라 지난 6월 27일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 인민 대회당 에서의 韓 中정상회담때, 시주석이 한 중 관계가 아주 돈독하다는 것을 통일신라시대 학자 최치 원의 詩 泛海 를 인용하면서 강조했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다. 당나라시대 최치원 선 생은 중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가셨을 때, 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 이라 시를 쓰셨다 고 말 하여 泛海 詩가 널리 알려졌다. 中國史에서 가장 우뚝한 세계국가였던 唐나라로 배 타고 유학 온 우리나라 최초의 大學者요 詩人이었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의 시를 인용한 시진핑 주석의 배려가 돋보였고 한 중 관계가 한 단계 더 밝아진 듯하다. 최치원의 많은 詩중에서 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는 代表作이라 할 만한 秋夜雨中 을 덧붙여 소개드린다. 秋夜雨中(추야우중) (추풍유고음)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홀로 괴로이 읇조리나니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 세상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없구나 (창외삼경우)窓外三更雨 창밖에는 밤늦도록 비가 내리고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 등잔 앞의 내마음은 만리밖에 있네 이 한시는 신라말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의 오언 절구(五言絶句)로서 세상에 자신을 알아 줄 지기(知己)가 없다는 절대 고독감을 표현하고 있다. 고도 하고, 귀국하기 전 만리타국(萬里他國) 당(唐)나라에서 고국 신라(故國 新羅)와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읊었다고 한다. 후세에 전해지는 100여 편의 시 중에서 이 시는 심상의 전개나 구조적인 긴밀성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손꼽 히는 고운 최치원의 대표작품이라 일컬어진다. <편집실>

116 호 _26 < 短隨筆 > 동그라미그리기 李炳壽 ( 수필가, 본원이사) 아침시작한지도 6 시, 오늘도나는운동장에동그라미를그리러간다. 내가운동장에동그라미를그리기 20 년이되었다. 그전에는아침등산을했었다. 고희를넘고보니등산보다는운동장돌기가더마음에들고노령에게는적격이라생각되어서이다. 운동장돌기는원을그리는일이다. 원의의미는다양하다. 원에는끝이없다. 아무리돌고돌아도끝날줄을모른다. 원은무한하다. 그러기에동그라미그리기는매력이있다. 인생이무상하기때문일까? 동그라미그리기는싫증을느끼지않는다. 심오한의미가있기때문일까? 돌아도돌아도끝을모르니더매력을느낀다. 우리집에는어머니께서 50 년전에성철스님께받아온원상( 圓相 ) 이있다. 스님께서한지( 조선종이) 에먹물로그냥원을그린원상이다. 스님께서말씀하셨다. 보살님! 아침마다원상앞에서참회문 ( 불경 ) 을외면서절을해보십시오. 그러면무엇인가떠오르는생각이있고, 얻는것이있을것입니다. 하고. 어머니께서는스님말씀대로아침, 점심, 저녁마다거르지않고참회문을외고 108 배절을올렸다. 그일을계속하기를 50년을하시다가 92세로생을마감하셨다. 어머님은원상참배와참회문외기를일과로삼고삶의낙으로살다영면하셨다. 삶이참되 고순진무구하시어때로는어린애같았다. 원상에 끝없는애착을가지셨다. 내가동그라미그리는일을즐거워하는까닭이여기에있다. 어머니께서는매일세번의예불을드리는것이즐거움이고생활의모든것이었다. 종전에는체질이약하시어잔병이많았는데 50세무렵 108 배를매일계속함으로써건강이좋아지셨다. 정신력이맑아지시고육체적건강이매우좋아지셨다. 성철스님말씀대로달라지는것이있었다. 나의운동장에서의동그라미그리기는중단하지않고계속할것이다. 염라대왕호출장받고갈 때, 그때에종지부를찍을작정이다.

116 호 _27 < 연재 26> 漢文文法 (23) 1. 趙柄悟 ( 釜山大外來敎授, 編輯委員 ) - 也 의用法에대하여 - 也 의用法은크게 종결어기사, 전성후치사, 부사성접미사, 어기사와종결사의결합 의 4가지로분류될수있다. 각용법들을예문의제시와함께분석해보면다음과같다. 종결어기사 종결어기사란문장이나절이끝남을나타내는품사를말하는데, 也 는단정, 의문, 감탄을나타내는종결어기사로쓰인다. 1 단정 :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 大學 ] ( 자식기르는법을배운뒤에시집가는사람은아직까지있지않다.) 也 는 단정을나타내는종결사 임. 2 의문 : 是可忍也孰不可忍也 [ 論語, 八佾 ] ( 이것을차마할수있다면무슨짓인들차마할수없겠는가?)- 앞의 也 는 정돈( 잠시정지시키는기능, 즉쉼표역할) 을나타내고, 뒤의 也 는 의문종결사로 쓰임. 3 감탄 : 異哉此人之敎子也 [ 顔氏家訓, 敎子 ] ( 다르구나! 이사람이자식을가르치는방법이여!)- 也 는감탄종결사임. 2. 전성후치사( 轉成後置詞 ) 전성후치사란다른품사에서전성된후치사로, 체언이나체언구뒤에붙어서주로윗말을주어로만들어주기도하고뜻을돕기도한다. 여기서의 也 는제시나정돈( 잠시정지시키는기능, 즉쉼표역할 ) 을나타내며, 강조를위하여쓰인다. 즉, 也 는제시보다는강조의기능이강하다. 對曰賜也何敢望回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 [ 論語, 公冶長 ] ( 대답하기를 제가어떻게감 3. 히안회를바랄수있겠습니까? 안회는하나를들으면열을아는데저는하나를들으면 ( 겨우) 둘을알 ( 뿐입) 니다. 라고하였다.) 其聞道也固先乎吾吾從而師之 [ 韓愈, 師說 ] ( 그가도를들은것이진실로나보다앞서면내가따라서그를스승으로삼는다.) 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 論語, 泰伯 ] ( 새가죽으려할때그울음소리가슬프고사람이죽으려할때그말이착하다.) 始吾於人也聽其言而信其行今吾於人也聽其言而觀 其行 [ 論語, 公冶長 ] ( 처음에나는다른사람에게그의말을들으면그의행동을믿었으나지금나는다른사람에게그의말을들으면그의행동을관찰한다.)- 여기서의 也 는정돈 ( 잠시정지시키는기능, 즉쉼표역할으로만쓰임 ). * 也 도 者 처럼제시와정돈의기능이있으나, 者 와는달리주어가처음나올때가아니라이미알고있는어떤것을제시하거나정돈할때쓴다. 也 는제시보다는강조의기능이강하다. 부사성접미사 여기서의부사성접미사란시간명사나시간부사( 혹은부사구나부사절) 뒤에붙어서정돈의역할을하며부사구를만들어주는접미사를말한다. 今也亡 ( 이제야망했다.) 吾少也 ( 나는젊었을적에) 4. 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 [ 大學, 傳四章 ] ( 송사를들어서처결하는것은나도남과같으나반드시송사를제기함이없도록할것이로다!) 어기사와종결사의결합 다른어기사와종결사가 2字내지 3字가결합되어쓰이는경우는대개文意를강조하기위해서이다. 그러나중점이되는것은대부분의경우마지막글자에달려있다. 즉, 也 ( 감탄), 也與 ( 추측이나의문), 也哉 ( 감탄이나의문), 也與哉 ( 의문과반문의강조), 也已矣 ( 단

116 호 _28 정) 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 한 사람과] 함께 군주를 섬길 수 있겠는가?) 子曰 莫我知也 [論語, 憲問] (공자께서 말씀하시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論語, 子罕] 기를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라고 하셨다.) (기뻐만 하고 (그 실마리를) 찾지 않으며, 따르기 季康子問 仲由 可使從政也與[論語, 雍也] (계강자 만 하고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그런 가 묻기를 중유(子路의 이름)는 정사에 종사하게 사람을 어찌 할 수가 없다.) [대부가 되게] 할 만합니까? 라고 하였다.) * 어기사와 종결사가 2字 내지 3字가 결합되어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論語, 陽貨] (내가 어 쓰이는 경우는 대부분 마지막 글자에 중점이 찌 박이겠느냐? 어찌 (능히) 한 곳에 매달려서 먹 놓이나, 간혹 也已 와 같이 단정을 나타내는 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예외도 있다.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論 * 匏(박 포)瓜(오이 과) : 박, 바가지. 語, 爲政] (異端(의 학문)을 專攻하면 害가 鄙 可與事君也與哉[論語, 陽貨] (비부와[비열 된다.) 編輯長이 드리는 말씀 壬辰倭亂, 丙子胡亂 등 처절한 外侵을 겪고도 國防力을 가다듬지 않고, 民族精氣를 바로 세우지 못한 채 집권층의 私慾과 虛妄으로 바다 건너 섬나라에 국권을 喪失했다. 光復을 맞고서도 國土는 兩分되고 未曾有의 同族相殘은 失國時代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火旺山 진달래 꽃불처럼 핀 民主時代를 살고 있건만, 北은 이 밝은 21세기에 전제군주시대의 三代 世襲이 이어지고 아아, 지구상에 하나 남은 分斷國인 우리는 언제 國의을 하나로 모아 完全한 自由統一을 이룩할지 脫法 非理 막말의 名手들, 修身도 안된 者가 治國을 하겠다는가? 鄭景柱박사님의 권두사 聖學十圖를 다시 보며 를 味讀하면서 계층간, 세대간, 이념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론을 통일하여 국제 경쟁에서 先進 道德國家-- 文化强國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라 는 마음이 한결 간절합니다. 지도층 제현들이여, 退溪先生께서 小學圖 大學圖 夙興夜寐 箴圖 를 갖춰 젊은 宣祖임금께 올린 뜻을 헤아릴진저! 지난 號에 지면 사정으로 말씀을 못 드렸으나, 兪英玉敎授의 于山國을 복속한 異斯夫의 나 무사자 이야기는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다시 읽어도 兪박사의 글이 끝을 찾아 다 읽게 하는 名文입니다그려. 오늘 우리의 民族對立, 國土分斷의 元兇인 日本, 우리 民族相殘으로 世界大戰 뒤 획기적 경제부흥을 이루고도, 그 옛날 新羅 이사부장군이 복속한 于山國 獨島를 약탈하려는 凶惡 罔測을 그치지 않으니 우리끼리 서로 증오하고 저주하는 어리석음을 하루 빨리 씻어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호 유박사의 글 백제 개로왕과 첩자 도림 도 우리를 가슴 시리도록 反省하 게 합니다. 또한 美女부인을 둔 죄 아닌 죄로 두 눈을 빼인 都彌설화와 貞烈을 새삼 되새겨 봅니 다. 국가의 敗亡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군요. 아울러 李聖惠박사와 孫有珍교수의 글도 무르익어 갑 니다. 또 처음으로 우리 원보에 좋은 글 先蹟紀行文을 쓰신 朴判基선생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번호 이런 詩 는 韓 中頂上會談에서 시진핑(習近平) 中國 主席이 저 옛날 唐나라에 留學 왔던 新羅의 젊은 學者 孤雲 崔致遠 先生의 泛海 라는 詩로서, 우리 朴槿惠대통령을 맞아 兩國領 袖간의 올熟과 和協이 넘쳐보입니다. 習主席의 襟度가 돋뵈는군요. 原詩 중 日月無何外 의 해석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雪鄕]

116호 _29 硏究院 消息 國學講演會 開催 (전 부산디지털대 총장)회원과 金秉權(부산대 교수)회원을 신임이사로 선임하였으며, 裵晟喆 감사는 유임 결의되었다. 또한 國學講演會는 예년과 같이 6월 하순경 에 부산일보사에서 개최하되 연사는 많은 논 의 끝에 이문열 작가를 초빙하기로 하되 만약 여의치 않으면 이사장에게 연사 선임에 대한 권한을 위임하기로 하였다. 이어 금년 10월 19일 일본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에는 김병권 교수(부산대)가 한국 금년도 국학강연회가 지난 6월 19일 부산일 측 발표자로 추가 선임되었으며 여행일정에 보사 대강당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대하여는 다음번 이사회에서 본격 논의키로 許文道 前 統一部 長官을 연사로 초빙하여 의견을 모았다. 日本을 이겨야 통일이 보인다 는 주제의 강연회를 가졌다.(6~7쪽 요지 참조) 第 28 次 先蹟巡禮 運營委員會會議 2013년도 첫 운영위원회 회의가 지난 4월 25일 풍미초밥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2013년도 선적순례는 5월 20일 하루일정으로 경북 달성군과 경남 의령 군 내의 선적지를 돌아보기로 의결하였고, 辭 意를 표한 鄭瀚永 운영위원장 후임에는 琴鏞 斗 운영위원이 만장일치로 2년 임기의 운영위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제28차 선적순례 행사가 본원과 부산담수 회, 박약회부산지회 합동으로 개최되었다. 지난 5월 20일 하루일정으로 마련된 이날 第 124 次 理事會 행사는 먼저 경북 달성군 현풍면 소재 道東書 - 金玟植, 金秉權 회원 新任理事로 영입 - 憂堂 郭再祐 의병장 생가와 독립운동에 남다 제124차 이사회가 지난 5월 10일 본원 회 관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尹炳琸 외 16人에 대한 신 입회원 승인이 있었고, 임원개선에서는 金玟植 院 謁廟를 시작으로 경남 의령군 부림면의 忘 른 열정을 쏟았던 白山 安熙濟 선생 생가를 尋訪하고, 退溪선생을 모시고 있는 德谷書院과 곽망우당을 비롯한 壬亂義兵을 모신 忠翼祠를 참배하였다.

116 호 _30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金 玟 植 (瑞瑩) 貫鄕 : 慶州 이병수 이사가 지난 7월 12일 동국대학교 1944년생, 경북 경주 출신 부산대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대학원 화학과 석. 박사 학위취득 대웅제약 연구주임 동아고등학교 화학 교사 경남전문대학 교수 경남전문대학 학생과장 부산디지털대학교 총장 경남정보대학 명예교수(현) 경주캠퍼스에서 개막된 제13회 수필의 날 행 사에서 올해의 수필인 상 을 받았다. 40년 교직생활을 마친 후 수필 쓰기에 전념 하면서 <수필집 10권>이란 인생 낙수(落穗)는 이모작 인생의 수확이며 일모작 인생은 교육을 위해, 이모작 인생은 문학을 위해 산 셈인데, 수필문학은 내 인생을 윤택하게 하고 이모작 삶의 보람까지 안겨 주었으니 감사할 따름 이 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新任 理事 略歷 鄭 相 俊 (華山) 貫鄕 : 晋州 1936년생, 경남 진주 출신 부산대학교 졸업 초량시멘트공업사 창업 부산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부산 대화라이온스클럽 회장 역임 부산시 시멘트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역임 주식회사 대왕콘크리트 명예회장 주식회사 대왕레미콘 명예회장 사단법인 북구장학회 이사 부산대학교 총동창회 자문위원 진주정씨 지후공파 대종회(전국) 회장 金 秉 權 (林齋) 貫鄕 : 金海 1952년생, 경남 김해 출신 부산대학교 졸업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 박사 학위 취득 부산대학교 입학관리본부장 역임 국어교과교육학회 회장 역임 부산대학교 교수(현) 저서 / 장풍운전과 문화관습 외 논문 / 작명으로 본 유충렬전의 인물연구 퇴계의 자통해 학습 외 다수 新任 運營委員長 略歷 琴 鏞 斗 (三松) 貫鄕 : 奉化 1948년생, 경북 청송 출신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수료 퇴계학부산연구원 운영위원 동서대 사회교육원, 인제대 평생교육원 강사 한국 한자급수자격평가원 부산남부지회장 한국 한시협회 회원 퇴계학부산연구원 부설 상덕문화대학 전임교수 고산한문서당 원장

116 호 新入會員 紹介 _31 田 洪 泰 (靑園) 貫鄕 : 延安, 1953年生(癸巳) 尹 炳 琸 (棟顥) 原籍 : 부산시 중구 보수동 貫鄕 : 坡平, 1932년생(壬申) 原籍 : 경북 영천시 금호읍 호남동 205 住所 :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2동 139-10번지 住所 :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 011-9040-5237 051-866-1363, 016-561-1363 貫鄕 : 陽川, 1955년생(乙未) 許禧範 貫鄕 : 陽川, 1933년생(癸酉) 原籍 : 경남 밀양시 내일동 住所 : 부산시 연제구 거제1 법원북로 34, 102-2101(현대홈타운) 500-1 우성아파트 5-1006 許 鋧 (孤庭) 原籍 : 경남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住所 : 부산시 남구 대연6동 1272-2 동원로얄듀크 201-1606 051-632-2916, 011-596-3121 書道民展 特選 - 金瀅大 委員 010-9441-5985 鄭 永 煥 (素軒) 貫鄕 : 진주, 1940년생(庚辰) 原籍 : 경남 진양군 진성면 중촌리 住所 : 부산시 북구 만덕2동 주공아파트 3단지 109-1004 051-334-2211 金瀅大 運營委員이 지난 5월 25일 ~ 29일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제33회 全國 書道民展에서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은 고려때 진화 (陳澕)의 月溪寺晩眺 이다. 진화의 호는 梅湖 이며 李正言 陳翰林 金 吉 (德村) 雙 韻走筆 의 주필로 貫鄕 : 金海, 1943년생(癸未) 原籍 : 경남 김해시 장유면 내덕리 住所 :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 신동양 아파트 1-303 이름난 시인이었다. 小樓高倚碧孱顔 雨後登臨物色閒 051-292-5386, 017-854-5386 帆帶綠烟歸遠浦 許 性 洛 (湖亭) 潮穿黃葦到前灣 貫鄕 : 陽川, 1947년생(丁亥) 水分天上眞身月 原籍 : 경남 고성군 거류면 송산리 雲漏江邊本色山 住所 :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507 트럼프월드센텀2 B동 3202 051-746-4263, 010-3553-4263 客路幾人閒似我 曉來吟到晩鴉還

發 展 社 ) 退溪學釜山硏究院의무궁한發展을祈願합니다. 奉化琴氏釜山地域宗親會 名譽會長 琴昌介 顧 問 琴億淵, 琴永東, 琴秉大, 琴基洪, 琴鏞斗 會長琴明煥副會長總務琴漢燮財務監事琴雲燮推進委員長 琴完燮 琴仲洛 琴炳祚 運營委員 琴桐淵, 琴振碩, 琴鳳日, 琴東根, 琴德龍, 琴相憲, 琴京模, 琴東日, 琴海燮, 琴渭澤, 琴錫九, 琴錫柱, 琴鏞和, 琴斗昌, 琴宗喆, 琴東默 연락처 : 총무 / 011-837-6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