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카가야가 그린 밤하늘 판타지 4 지난 20여 년간 환상적인 우주를 그려온 카가야 유타가의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 가 7월 18일부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함께 전시회를 맞아 방한한 카가야를 만나보자.
오늘도 온 나라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밤의 장막을 걷어 올리면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는 매일 호숫가에서 몸을 정결히 씻고 신께 이처럼 기도했다. 그러나 어머니인 왕비 카시오페이아가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왕 케페 우스는 신탁에 따라 딸 안드로메다를 쇠사슬에 묶어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괴물에게 재물로 바쳤다. 마침 괴물 메두사를 죽이고 돌아오던 페르세우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바다괴물과 싸워 안 드로메다를 구해냈고 둘은 부부가 됐다. 가을 밤하늘을 보면 페르세우스자리와 나란히 놓여 있는 안드로메다자리를 찾을 수 있다. 별들을 잇다 보면 쇠사슬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를 1 구하러 달려가는 페르세우스가 모습을 드 러낸다. 두 별자리를 바라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안드로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메두 사와 사투를 벌인 페르세우스가 또 목숨을 걸었을까. 일본의 천문 일러스트레이터인 카가야가 그린, 새벽 호숫가에 나와 있는 안 드로메다의 모습은 별자리 이야기에서 영 감을 얻은 판타지를 완벽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날은 맑지만 바람은 꽤 부는지 안드로 메다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풀들도 한쪽 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다. 오른손으로 귓가 의 머리를 쓸며 한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 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닥칠 시련조차 또 다 른 행복의 길로 이끄는 계기에 불과함을 예 감하는 듯하다. 2 ➊ 호숫가에 나와 있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그린 일러스트. 안드로메다자리가 오버랩돼 있으며, 중앙 상단부에는 안드로메다은하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➋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달빛에 오버랩된 활을 힘차게 잡아당기고 있다. 왼쪽 아래 그녀가 모르고 쏴 죽인 연인 오리온의 별자리가 빛나고 있다. ➌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쳤을 때 흘러나온 피에서 탄생했다는 천마(天馬) 페가수스의 우아한 자태. 몸통을 이루는 페가수스 사각형 은 가을철의 대표적인 길잡이 별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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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에게 버림받은 사자의 운명 왜 저를 내치셨나요? 그리스의 네메아 골짜기에 살며 사람들을 괴롭힌 괴물 네메아의 사자 는 원래 달의 여신 셀 레네의 애완동물이었다. 경주용 말보다도 커다란 몸집을 지탱하고 있는 쭉 뻗은 뒷다리가 늠름하지만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다. 매혹적인 셀레네는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 사자의 털을 쓰다듬고 있다. 사자의 눈은 먼 하늘을 응시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어깨 에 머리를 기댄 여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다가올 운명에 대한 예감에 떨리고 있다. 셀레네한테 버림받은 뒤 네메아에서 행패를 부리던 사자는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 하고 가죽은 벗겨져 헤라클레스의 갑옷으로 만들어졌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아들 헤라클 레스의 업적을 기려 사자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에 오버랩돼 있는 별자리 역시 앞다 리를 웅크린 사자가 달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카가야가 1999년 발표한 황도12궁(the Zodiac-12) 은 그의 대표작으로 천구에서 태양이 지 나가는 길(황도)에 걸쳐 있는 별자리 12개를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사자자리는 봄철 밤하늘 에서 관측하기 좋지만 점성술에서는 7월 2일~8월 22일을 사자자리로 정했다. 과거에는 이 무렵 태양이 사자자리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4 2 ➊ 사자에 기댄 셀레네의 등 뒤에서 빛나는 파란 별 레굴루스는 사자자리의 알파별로 밤하늘에서 22번째로 밝은 별이다. 사자자리에서는 사자 심장에 위치한다. ➋ 흰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 유로파를 유혹해 달아나고 있다. 황소자리는 황도12궁의 두 번째 별자리로 이들이 도피한 곳이 유럽으로 불린다. ➌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 주변에 자리한 별자리 황도12궁 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작품. 오른쪽부터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자리. ➍ 정의의 여신 디케는 신들에게 버림받은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하늘에 올라가 천칭자리가 됐다. 그녀는 여전히 옳음과 그름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7
푸른 달빛을 머금은 용담꽃 집을 나왔다 나를 쫓아서 달의 아이가 달려가는 어디까지라도 어디까지라도 madonna blue ( )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는 들판에 용담꽃밭이 펼쳐져 있다. 꽃들은 저마다 꽃대를 곧추세워 푸른 달빛을 흠뻑 마시고 있 고 그 보답으로 꽃가루를 하늘로 보내고 있다. 이 빛나는 꽃 가루가 하늘의 별이 되는 걸까. 일본에서 별빛이 가장 투명하게 보인다는 조도다이라를 고 등학생 때부터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천문대를 가다가 달빛을 받아 환상적으로 빛나는 용담꽃 무리를 발견했죠. 제 기억의 캔버스에 흠뻑 칠한 마돈나 블 루(madonna blue) 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마돈나 블루란 성모 마리아가 입은 푸른색 의상의 빛깔이 다. 카가야가 마돈나 블루(madonna blue) 로 이름지은 이 작품은 밤하늘과 자연의 신성함에 대한 그의 깊은 감동을 그 대로 드러내고 있다. 카가야의 지인인 시인 미호는 이 작품 을 보고 같은 제목으로 앞의 시를 쓰기도 했다. 카가야는 마돈나 블루를 비롯해 일본의 사계(四季)를 배경 으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그린 작품집 고요한 별밤(Tranquil Night of Stars) 을 2002년 발표했다. 이 작품집에는 간이역 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들의 정 경이 애틋한 향수를 자아내는 작품도 돋보인다. 1968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카가야는 어릴 적부터 밤하늘의 별을 좋아해 그림을 그리고 혼자 천문학을 공부하 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중년의 초엽에 들어섰지만 그의 마 음속에는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 소년 의 감수성이 흐르고 1 있다. 카가야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 는 8월 16일까지 국립 2 과천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며 과학관 관람객에 한해 무료입장할 수 있다. 1 글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8
4 5 ➊ 푸른 달빛을 받아 활짝 피어난 용담꽃을 그린 작품 마돈나 블루. 작가가 일본 최고의 별 관측지인 조도다이라를 방문했을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➋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는 소녀들의 바람이 들릴 듯한 작품 억새와 기차역. 기다리던 기차가 들어서고 있는 게 오히려 아쉽다. ➌ 벚꽃이 활짝 핀 봄 밤하늘을 그린 작품 별과 벚꽃. 떨어지는 꽃잎과 별빛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➍ ➎ 도시의 인공조명은 별빛을 잠재웠다. 6등성까지 보이는 교외의 밤하늘(➍)과 2등성까지밖에 보이지 않는 도심의 밤하늘(➎). 9
40 카가야 유타카 독점 인터뷰 일본 최고의 천문 일러스트레이터 고승범 1
7월 18일부터국립과천과학관특별전시관에서열리는 카가야천문일러스트전시회 에맞춰하루전방한한카가야유타카를만났다. 디테일이살아있는작품을만든작가답게과학동아에실을이미지파일을담은 CD를건네주면서색을조정할때참고하라며컬러프린트를챙겨주는세심함이인상적이었다. 2 c c ➊ 전시회를하루앞두고방한한카가야. 판타지뿐아니라과학서적에실리는사실적인일러스트작업도활발히하고있다. ➋ 200 년남극을찾은카가야. 이때본개기일식이가장인상적인천문관측이었다고. ➌ 카가야는컴퓨터를이용해일러스트작업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