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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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속을 거닐며 머털

2 소개글 내가 살아온 흔적이다. 아픔도 있었지만 세월지나 뒤돌아보니 그것은 행복이었다. 그 작은 행복들을 이제 풀어본다.

3 목차 1 장군 4 2 역마살( ) 10 3 자비와 덕담 13 4 마누라의 생일 16 5 편도선 수술 20 6 함께한 산행 25 7 가장 소중한 선물 28 8 외도 가는 날( ) 32 9 회초리 고추 꿰매기( ) 눈물의 이사 준비( ) 나를 향기 나게 하는 여자( ) 마누라의 반말( ) 마누라의 변신( ) 47

4 장군 :19 장군( ) 살면서 아버지가 장군으로 보인 적이 있을까?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내가 5살 때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단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생각나는 것은 아버지 수염 때문에 입맞춤을 하기 싫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과 돌아가신 날 기억은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더 이상 살 가망성이 없다하여 대구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신 날 살을 에는 섣달 바람 소리는 우리 집의 슬픔을 함께 하는 듯 했다. 어머니는 1달 보름 된 막내 동생을 안고 하염없이 우셨다. 장군 4

5 난 그런 슬픔을 멀리한 채 병원에서 가지고 온 황도 통조림 먹기에 급급했다. 슬픔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참 내가 너무 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씩 머리를 쳐들곤 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의 기억이 전부인 나로서 자세한 사항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누님들한테 들어 알고 있다. 상여 떠나는 날 세상은 모든 것을 덮어버릴 양 많은 눈이 내려 결국은 장례를 옳게 치루지 못하고 가매장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날씨가 풀려 봄에 다시 묘를 안장했다고 들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어도 돌아가셨기에 어머니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자랐다. 사람들은 모두가 어머니를 여장부라고 이야기 했다. 그것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 여자이면서도 8남매를 억척같이 생활하면서 모두 잘 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 가슴속에 항상 여장부로, 여장군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제 지천명을 향해가고 있는 나는 세월에 떠밀려 한 가정의 아버지로 자리하고 있다. 세월이 밀어주는 힘 때문에 아버지로 자리 잡았지만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이제껏 돌아본 적이 없다. 내 아버지의 수염 기억은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기억되고 있는데 나는 어떤가? 자식들에게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답을 매기지 못했다. 엄격하지만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는 자평을 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장군 5

6 며칠 전 집에 돌아온 나는 마누라의 잔소리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둘째 녀석이 문창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입학금이 많이 들어가는 지 영수증을 내밀면서 나보고 살아보라고 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차 돈 없다고 하는 사람이 둘째 녀석 휴대폰 사 준 것을 가지고 화를 냈다. 아니! 이 사람아! 돈 없는 사람이 휴대폰 사줄 돈은 어디 있나? 그렇게 내가 큰소리치는 것을 둘째 녀석은 모두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난 괘의치 않았다. 하지만 화가 풀리고 난 뒤 반성을 많이 했다. 요즘 모든 애들이 다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지만 둘째와 셋째 녀석은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가면 해주기로 약속을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해줄 줄은 몰랐다. 아무리 배치고사 시험에서 특반에 들어 30만원 장학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나한테 물어보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모임이 있어 술을 한잔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장군! 언능 들어오시오. 엄마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답장을 주었다. 좀 이따 간다. 엄마 괜찮나? 그러자 다시 메시지가 왔다. 예 괜찮아요. 언능 들어오시오. 마누라한테 술 먹는데 전화를 하지 마라했더니 아들 시켜 독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날 마누라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 원종이가 휴대폰에 장군이라 저장해놓았던데 뭐 땜에 그런지 알고 있나? 난 그냥 아버지가 목소리가 크니 장군 이라 저장했겠지 그래 생각 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마누라가 다시 이야기 했다. 원종이한테 왜 아버지를 장군 이라 저장했냐고 물었다고 했다. 장군 6

7 그러자 원종이가 하는 말을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다름 아닌 독불장군( 獨 不 將 軍 ) 앞에 두자를 빼고 이름을 지은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충격에 빠졌다. 잠시 동안 멍해졌다. 장군이란 호칭은 아버지의 위대함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아버지를 보고 느낀 것을 가지고 이름을 지은 것이었다. 당당하고, 절도 있고 배울 점이 많아 장군이라 지었겠지 생각했던 나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아버지로서 내 모습은 독단적인 독불장군으로 비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난 화가 나지 않았다. 아하 내가 이렇게 독불장군처럼 비쳐지고 있었구나. 그럼 내가 독불장군처럼 느껴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내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이렇게 해. 그래 하지 마. 똑바로 해. 그것도 못하나 나만의 방식으로 애들 의견에 아랑곳없이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독불장군처럼 비춰진 것이다. 사람의 바탕, 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다. 천성이 그렇다면 더더욱 바꾸기가 힘들다. 아마도 내가 그런 식으로 자식들에게 해 왔다면 아마 알게 모르게 내 자식들에게도 내가 했던 행동거지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당당함과 꼿꼿함으로 사는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 그것이 자연스레 나타날 것이다. 나의 자식들이 아버지로 되어 있을 때 내 자식들이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장군 7

8 바로 나의 잘못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입맞춤 하는 자상한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는데 어머니는 당당함과 꼿꼿함으로 여장부, 여장군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나는 내 아들에게 독불장군의 아버지로 기억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성격인데 걱정이 많이 된다. 어떻게 하면 점수를 많이 따는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술 먹고 들어오면 자상한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맨 날 술 먹고 들어올 수도 없으니... 참 어렵다. 아버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러나 되던 안 되던 노력을 해볼 것이다. 앞으로 환골탈퇴( 換 骨 奪 胎 ) 할 수 있도록 독불장군 에서 진짜 장군 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당부해본다. 아버지가 아무리 독불장군이었다 하더라도 아버지 마음은 항상 너희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표현 못하고 서툰 것이 죄일 뿐 너희들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알았으면 한다. 너희들이 슬프면 아버지는 더 슬프고 너희들이 아프면 아버지는 더 아프다. 다만 아버지로서 너희에게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기 때문에 당당함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아버지의 겉모습이 그럴 뿐 속마음은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알아주었으면 한다. 단지 아버지는 무게감 때문에 너희들 앞에서 눈물 흘릴 수도 없고 장군 8

9 힘들어하는 표정도 지을 수 없고 그래서 일부러 당당함 때문에 독단적으로 흘렀다는 것 인정해 주길 바란다. 아버지도 사람이다. 슬프면 울고 싶은 사람이다. 너희들이 아프면 더 아픈 사람이다. 아버지로서 자격이 부족하다 싶을 때 술 먹고 혼자 우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화를 내고 하는 것에 조그마한 어떤 감정도 없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너희들을 위한 사랑은 절대불변이다.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내 마음을 알아줄 때가 오기를 다만 기다릴 뿐이다. 네 할머니가 가르쳐 준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오늘을 꿋꿋이 사는 것처럼 너희들도 언제가 그때가 오리라 믿는다. 글 마무리 하고 있는 중간에 둘째 녀석한테 메시지가 날아들었었다. 장군님 감사합니당 ㅋㅋ 진짜로요 늦는다고 하는 전화에 허락 해주었다고 해서... 장군 9

10 역마살( ) :53 역마살( ) 지금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운명의 기로에 있다.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선택의 결정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날들 동안 고민 고민하며 결정한 결과물이다.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한다.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닥칠 불안감과 싸워야 한다.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고독감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모두가 주저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이기에 그들과 똑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난 그들과 약간의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역마살( ) 10

11 현실에 안주하는 그런 삶보다는 나그네의 삶을 즐기고 싶다. 떠나는 두려움을 즐거움으로, 미지에 대한 불안을 궁금증으로 승화시켜 365일 동안 문경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것을 즐기고 싶다. 당장 내일부터 낯선 환경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 환경이 주는 것을 나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모두가 아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사라지고 난 뒤 혼자인 고독감을 감수해야 하고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누구보다 강한 잡초 같은 생명력이 있다. 이제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포기하려한 적은 없다. 힘들 때면 인생에서 삶의 지표가 되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살아왔다. 나는 남자인데... 내가 주저앉을 수는 없지. 우리 어머니도 했는데...내가 왜 못하겠 어. 그래서 지금 가는 이 길은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갈 것이다. 슬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기분 좋게 당당히 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당당한 아들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제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된지 2년이 넘었다. 40년을 어머니로 41년을 아버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가셨 다. 어머니는 힘들 때 우셨다. 아버지의 역할이 힘들 때면 여자로 돌아와서 우셨다. 나는 어머니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울었다. 그래서 세상은 울지 말고 살아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은 눈물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역마살( ) 11

12 41년의 아버지였던 어머니는 내가 강한 아들이 되기를 바랐다. 지금의 나 중학교 졸업하면서 인생에 낀 역마살을 쫓으며 살아왔다. 역마살( 驛 馬 煞 ) :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 그런 액운 때문인지 고등학교 시절은 서울, 그리고 울산, 부산서 보냈고 89년도에 고향으로, 다시 서울,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10년 주기로 역마살이 찾아오는 것 같다. 이번에 자리를 옮기는 것도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어쩌면 내 운명 속에 미리 자리 잡고 있었던 역마살인 것 같다. 어차피 때워야 액운이라면 확실하게 액운을 몰아내자. 내일은 바로 액운을 몰아내는 첫날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당당히 출근하자. 그 운명에 거슬리지 않고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러면 액운은 내게서 떨어져 깊이 있는 인생의 두께를 더해 줄 것이다. 역마살( ) 12

13 자비와 덕담 :16 자비와 덕담( ) 그렇게 추웠던 겨울도 시간이 되니 비켜준다. 넉넉한 햇살에 강도를 더해 쏟아주니 양지 바른 쪽엔 푸른색이 가득하다. 세월은 저렇게 똑 같이 반복되는데 인생은 반복이 없다. 인생은 반복이 아닌 하나뿐인 마지막 종점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남은 인생이 충분하여 나의 욕심을 다 채울 수 있을까? 남은 인생동안 얼마나 많은 슬픔과 기쁨이 또 교차될까? 버림을 깨우치지 못하고 가는 인생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할까?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자비와 덕담 13

14 무소유의 정신으로 생을 사신 거룩하신 분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추앙받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법정스님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본다. 풍족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무 탈 없이 걱정 없이 사는 것을 일상의 행복으로 느끼고 있다. 가멸차지 않아도 내 곁에 마음씨 고운 마누라가 있고 애교 만점이 공주가 있고 때로 막걸리 친구가 되어주는 두 아들이 있다. 수행자의 길을 걷지 않아도 일상에서 수행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마누라 때문에 많은 것을 깨우치기도 한다. 때로 자비를 무한히 내려주고 때로 덕담을 가득 내려준다. 사랑해 이런 자비야 말로 많이 받을수록 좋지 않은가? 그러나 마누라는 항상 똑 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몸 생각해서 술 좀 작작 드시지 하며 덕담을 던지고 때로 집에 좀 일찍 오면 뭐가 덧나나 이런 덕담을 자주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자비를 받을 때 어째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자비의 심오함 때문일까? 아님은 자비를 받아보지 못한데서 오는 감동일까? 좌우지간 자비는 좀 이상하다. 그러나 덕담을 들을 때는 왠지 담담하다. 덕담은 나를 위한 것이다. 자꾸 반복되는 횟수에 고막엔 딱지가 앉은 듯 하다. 그럴수록 소리의 강도는 날카로워지고 음은 점점 더 높아진다.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하다 그랬는가? 나의 고막은 철을 닮은 것 같다. 단단하다.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푸근하고 나지막한 소리는 잘도 들린다. 같이 산다는 것은 때로 자비와 덕담이 어울려 함께 사는 것인가 보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아마도 자비와 덕담은 없었을 것이다. 자비와 덕담이 없다면 얼마나 무료할까? 하루하루 나날이 발전하는 덕담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비와 덕담 14

15 혼자가 외로워 둘이라는데 두 손 꼭 잡고 걸어본 기억이 드물다. 길을 갈 때도 내가 먼저 저 만치 앞서가든지 아니면 두 발짝 뒤로 물러나 걸었다. 어쩌다 마누라가 다가와 팔짱을 끼면 몸이 갑자기 굳어진다. 또 모두의 눈을 의식해야 하니 또 걸음도 이상해진다. 그래서일까? 인생이 황혼으로 점점 더 다가갈수록 마누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본다. 덕담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리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바로 오늘부터 마누라와 가까워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번엔 내가 자비를 내려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혹시 마누라가 나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잠시 눈 돌렸던 의식을 차려본다. 봄빛 가득한 곳에 쑥들이 가득하고 개울 가장자리엔 돌미나리가 파랗게 키움 질 하고 있다. 오늘은 혼자. 햇빛 좋은 내일을 기대해본다. 팔짱을 나란히 끼고 마누라의 몸에 좋다는 쑥을 뜯으로 가야겠다. 그러면 아마 나의 자비에 마누라도 자비를 내려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짱짱한 자비를... 자비와 덕담 15

16 마누라의 생일 :26 마누라 생일( ) 점점 더 힘들어진다. 살아가면서 인생이 더 편안하고 즐거울 줄 알았는데 어째 아닌 것 같다. 안 할 짓 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나이가 먹을수록 설자리가 약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어째 마누라는 점점 더 많은 남성 호르몬이 나오는 것 같다. 반면에 난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나와 남자의 위엄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눈치로 살고 있는 느낌이다. 마누라의 심기가 좋은지? 얼굴 안색이 좋은지? 살피는 것이 일과처럼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하늘과 땅이 뒤바뀌어 거꾸로 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마누라 생일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생일 이벤트를 했다. 마누라는 나의 이벤트에 고마워했겠지만 그것을 해야 했던 나는 참 힘들었다.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줄 알았는데 선잠이 되었다. 거실로 나와 TV를 켜놓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잘 오지 않았다. 마누라의 생일 16

17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애들 떠드는 소리에 눈을 뜨니 7시 20분이다. 내일이 엄마 생일이라고 일찍 오라는 공주님의 말도 무시하고 어제 나는 나대로의 술 문화를 즐겼다. 집에 돌아오니 12시 30분이었다. 오랜만에 술도 먹었기에 그 정도는 마누라가 너그러이 용서를 할 줄 알았는데 어째 표정이 영 아니다. 그래도 생일이기에 어제 공주가 사온 케익으로 축하를 하자고 공주한테 이야기 하니 마누라는 화가 난 듯이 하지 말란다. 오늘 아침이 아니면 케익 자르기도 힘든데 할 수 없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하기야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삶의 길이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인데 무얼 그리 좋아서 케익을 자르겠는가? 출근을 하여 하루 바쁜 일과 속에 마누라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메시지라도 보냈어야 했는데 그마저 못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선물을 살까 싶었지만 무엇을 사줘야 할지 정하지를 못했다. 비도 추절추절 내리는 데 괜히 마누라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삐진 마누라한테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래서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머리를 썼다. 상품권을 하나 만들자. 진짜 상품권을 주기는 그렇고 급조한 상품권을 만들었다. 상품권의 제목은 행복 구입권 으로 정했다. 금액은 100,000원으로 정했고 사용기한과 발행인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흰 봉투 겉면에 임인숙 親 展 이라 썼고 비 오는 날 당신의 가슴에 행복이 가득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를 썼다. 그리고 행복구입권을 봉투에 넣고 내가 사용하고 있는 BC카드를 같이 넣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 7시를 넘었고 부랴부랴 집으로 퇴근하려는데 마누라한테 메시지가 왔다. 기다리다 시간이 다 되서 나갑니다. 저녁 드십시오. 메시지를 받고 보니 어 목적지와 용무가 없네.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없기에 집으로 돌아가니 아들 두 녀석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배도 고픈 차 탁자에 앉으니 마누라 생일상 차림이 초라하다. 다만 가스렌지에 끊여 놓은 미역국만 있는 것이다. 저녁상은 평상시와 같은 차림이다. 마누라의 생일 17

18 마누라 생일이지만 생일상을 기대했는데 이건 영 아니다. 그러나 어쩌나. 내가 잘못한 죄도 있는데 탓할 여건이 아니다. 밤 11시가 되어 학교를 마친 공주를 데리고 왔는데도 마누라는 집에 오지 않았다. 벌써 아들 두 놈은 자고 있는데 오늘도 케익 자르기는 그런 것 같다. 이제나 저제나 오기를 기다리다 오지 않기에 11시 30분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마누라가 정말 많이 삐졌나? 좀 통이 컸으면 좋은데 혹시나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릴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오지 않는 사람 계속해서 기다릴 수도 없기에 할 수 없이 가계부 속에 몰래 넣어둔 이벤트 행복 구입권 을 가계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마도 12시 넘어서 마누라가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친구들과 찜질 방에서 자고 올 줄 알았는데 늦게나마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내가 준비한 이벤트를 볼 줄 알았는데 말없이 그냥 자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아침을 준비하러 나간 사이 나는 어제 준비한 이벤트 봉투를 마누라 베게 밑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나는 이불을 개지 않고 그냥 두었다. 마누라는 모두가 출근하고 난 뒤 이불을 당연히 갤 것이기에 때문에. 출근을 하여 오전이 지났는데도 영 소식이 없다. 어! 이상하다. 마누라가 이불을 안 갤리 없는데...아직도 자나? 그렇게 오전이 지나갔고 오후 5시가 가까워질 무렵 마누라한테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깜직한 이벤트도 할 줄 아시고 마이 발전했네. 그랴 고맙고 따랑해. 이제야 답이 오네. 그래도 기분은 괜찮았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어째 좀 아니다. 이제껏 못했으니 당연히 좀 그런 것 좀 하라는 투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마누라의 안색이 확실히 풀렸다. 다행이다. 이벤트 덕분에 술 먹고 늦게 들어온 죄 값을 이제야 치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내년 마누라의 생일을 생각해본다. 올해 보다 더 큰 이벤트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마누라의 생일 18

19 이런 생활이 계속 지속된다면 나는 점점 더 구속되고 자유가 없어질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도 구속됨 없이 가야할 곳이 있으면 가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의 삶은 그렇게 탐탁지 않다. 그래도 사랑 배인 구속이라면 구속당하는 것도 한편으로 좋을 듯 싶다. 어쩌나? 인생이 다 그러한 걸. 마누라의 가슴 속에서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행복"인 걸. 마누라의 생일 19

20 편도선 수술 :51 편도선 수술( ) 살면서 완벽한 행복은 없다. 행복은 하나씩 아픔이 있을 때마다 더욱 귀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더 강하게 더 진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지금 현재 일상에서 아픔이 없다면 지금 나는 행복 속에 있다고 봐도 틀린 것은 아닐 편도선 수술 20

21 것이다. 며칠 전 침을 맞으러 갔다가 둘째 놈의 편도선을 빨리 수술해주라는 소리를 들었다. 무심했던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둘째 놈은 편도선이 목구멍 양쪽에 매우 비정상적으로 크다. 그러다 보니 편도선에 염증이 생겨 가끔씩 고열이 나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수술을 해주려고 했지만 성장하면 작아질 수도 있다는 소리에 그냥 두었었다. 둘째 놈은 올해 점촌중학교 3학년이다. 그런데도 편도선은 작아지지 않았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좀 힘들게 먹는 듯 했다. 할 수 없이 더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싶어 마누라와 의논하여 수술하기로 결정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은 중소도시이다 보니 수술을 할 전문 병원이 없었다. 먼저 이 분야에 전문기술을 가진 이름난 병원을 찾아야 했기에 전문병원 추천을 받았다. 서울 서울대 부근에 있는 관악이비인후과 소개를 받았다. 마누라는 전화로 수술 날짜를 이틀 전에 잡았다.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검사를 해야 하니 2.26(금) 오전 11시에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막상 수술 날짜를 잡으니 걱정이 되었다. 피를 많이 흘리면 어쩌나. 수술할 시간 동안 애가 잘 견뎌줄까 등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아침 8시에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집을 출발해 첫 신호등이 파란 색이다. 그래! 오늘 모든 것이 잘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며 차를 몰았다. 하지만 어제 낫게 먹은 술 때문에 잠이 몰려왔다. 할 수 없이 충주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서울로 갔다. 내비게이선이 안내하는 데로 갔더니 4층 건물에 관악이비인후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이제 병원은 찾았으니 주차만 하면 되는데... 서울 오면 가장 큰 걱정이 주차하는 것인데 주차를 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웬걸 오래 찾지도 않았는데 동양증권 건물 앞에 차가 한 대 빠져 나왔다. 옳거니! 잽싸게 차를 주차시켰다. 편도선 수술 21

22 내리면서 혹시나 주차를 못하게 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주차 안내원도 보이지 않았다. 수술을 하려면 장기 주차일 수밖에 없기에 호출되면 이동 주차하리라 마음먹고 병원으로 올랐다. 병원에 들어가니 유원종 수진 챠트 가 있었다. 아니 언제 보냈기에 저게 벌써 와 있지? 좀 있으니 간호원 아가씨가 안내하는 입원실로 갔다. 입원실 정문 옆에는 유원종님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간호원의 호출에 따라 초음파 등 간단한 검사를 했다. 애를 데리고 갔던 마누라는 입원실에 들어오면서 걱정을 한다. 한쪽은 편도선 수술하기가 괜찮은데 다른 한쪽은 편도선이 안쪽으로 좀 들어가 있어 수술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룻밤을 묵어야 된다고 했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오늘 일진도 괜찮았는데. 전신마취 수술까지 하면 어떻게 하나? 이 궁리 저 궁리하고 있는데 의사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그래서 데리고 갔더니 수술부위를 한번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할 부위를 자세히 보더니만 국부 마취를 하면 되고 오후 4시쯤 퇴원하면 된다고 했다. 다소 위안이 되었다. 마취를 하고 온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침을 뱉어냈다. 아무래도 주사위로 찔렀던 부위가 피가 나고 아팠던 가 보다. 옆에 있던 마누라도 덩달아 눈물을 찍어내며 애를 달래며 울었다. 원종아! 울지마. 우리 아들 잘 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안 하면 더 고생한다고 하니 해야지. 아프단 말이야. 둘이 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괜히 내 마음도 울먹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편도선 수술 22

23 잘 되어야 할 텐데... 입원실 문이 열렸다. 수술하러가니 나오라고 했다. 애를 데리고 수술실 앞에 가니 보호자는 입원실에 가있으라고 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애를 보니 괜히 수술하는 것 아닌가 후회가 되었다. 문이 닫기고 잠시 멍하니 닫힌 수술실 문을 바라보았다. 입원실에 돌아와 가만있자니 불안했다. 마누라는 걱정이 되어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찍어냈다. 나까지 그러면 안 되기에 밴쿠버 동계올림픽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을 보며 있었다. 수술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금메달을 따는 순간을 입원실에서 지켜보며 누워있는데 문이 열렸다. 수술을 다했다면서 의사선생님이 원종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수술로 잘라낸 편도선을 보여주는데 엄지손가락만 했다. 이렇게 빨리 할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레이저로 수술을 한 것이다. 그러니 피가 나올 리 없었고 수술도 깔끔하게 잘 되었다고 했다. 20분 지나면 찬물을 먹으라고 했다. 애가 아픈 표정이 심하지 않았기에 걱정했던 마음이 다소 놓였다. 맏이 지연이도 걱정이 되는지 메시지가 왔다. 답장을 해주면서 마누라는 막내 놈은 연락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2시가 되자 죽이 나왔다. 앞으로 편도선 수술 부위가 나을 동안 아이스크림, 찬물, 얼음을 먹는 것이 좋고 죽을 먹으라고 했다. 4시가 되어 30만원 좀 넘게 나온 병원비를 내고 집으로 왔다. 가슴 졸였던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래된 내 자동차도 더 힘차게 달리는 듯 했다. 옆에 앉은 마누라를 보고 피곤하니 한숨 자라고 이야기 했다. 편도선 수술 23

24 마누라는 눈이 휑하니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하면서 수술 날짜 잡아놓고 며칠 째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낳고 안 낳고의 차이인가? 아니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난 수술 당일 날 걱정을 좀 했지 별로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떨쳐버렸기에 어서 빨리 아들이 회복되었으면 한다. 쏟아졌던 봄빛이 저녁노을을 만드는 시간 차 안에 행복이 가득 찬 느낌이다. 행복 실은 차는 경쾌한 소음을 내며 행복을 세상 밖으로 전했다. 올 때 실고 왔던 불안감은 떨쳐버렸고 이제는 행복을 실고 달렸다. 아침의 피곤했던 모습도 서울 바닥에 내려놓고 오늘 밤 따뜻한 꿈을 기대하며 힘차게 내려왔다. 아마 편도선이 아물 때까지 많이 아프겠지만 앞으로는 편도선이 곪아 오열로 고생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음식을 삼킬 때마다 고생을 했던 우리 아들 이제는 아무리 큰 음식도 잘 먹을 수 있으리라. 걱정 하나를 들어낸 지금, 행복의 두께가 더 커진 느낌이다. 편도선 수술 24

25 함께한 산행 :32 함께한 산행 ( ) 매주 주말만 되면 혼자 산으로 가는 것이 일과의 하나다. 혼자서 집을 지키노라면 허전함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어머니 없는 빈 공간에 허전함이 채워지면 결국 눈물만 익기에 이를 잊기 위해 길을 나선다. 허전함도 잊고 건강도 챙길 겸 배낭에 도시락을 넣어가지고 산으로 향한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산에 가면 버섯도 있고 약초도 있다. 부지런히 움직인 내 발품에 따라 먹을거리가 생긴다. 더덕도 내 놓고 약초 물도 먹게 하고 능이버섯을 같이 먹으며 인스턴트 음식이 주는 인공 맛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산에서 가지고 온 것을 애들에게 먹어보라 재촉하며 자연에 입맛을 들이게 한다. 그것이 내 즐거움이다. 함께한 산행 25

26 혼자만의 산행으로 즐거워 주말은 쉽게 간다. 혼자 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애들을 데리고 1년에 한두 번 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다. 쉬고 싶다는 말과 뱀이 무섭다고 꼬리를 빼는 마누라를 꼬셨다. 날이 가물어 버섯은 흔적도 없기에 오늘은 더덕이나 캐자고 하면서 농암 고향에 있는 비쩍골 쪽으로 길을 나섰다. 갑작스레 나서는 바람에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김밥을 세줄 샀다. 산을 오르는 길 비탈진 산을 조금 올랐는데 마누라의 거친 호흡에 장단을 맞추는 넋두리가 쏟아진다. 하이고 다리야! 당신은 혼자 댕기면 안 무섭나? 난 무서워 죽겠는데 이 산은 내가 많이 다녀 본 산이다 라고 하면서 더덕이 있을 만한 곳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처럼 더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있을만한 산 계곡 비탈을 따라 계속 오르다 보니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더덕을 못 캐면 밤이라도 주워야한다는 생각에 밤을 주워 담았다. 밤을 줍고 난 뒤 산비탈을 살피며 이따금 보이는 더덕을 캤다. 난 더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던 마누라는 가르쳐주지 말자 나보다 더 더덕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산으로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산 계곡에 알맹이가 작은 수없이 떨어진 도토리를 발견했다. 장모님이 도토리를 주워났다는 말에 이것을 주워가면 도토리묵을 만들 양이 될 것 같아 줍기 시작했다. 마누라와 나는 쪼그려 앉아서 도토리를 주웠지만 알이 작은 탓에 쉽게 붇지 않았다. 한참을 줍고 있는데 갑자기 마누라가 말을 꺼냈다. 여보! 당신 퇴직하면 맨날 이런데로 날 델고 다닐꺼지?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퇴직하면 할 게 뭐 있나? 이런거나 하면서 소일하면 되지. 둘이 댕기면 좋자나? 안 좋나? 마누라는 내 말을 예상이나 한 듯 작은 웃음을 보였다. 세월이 흐른다. 내 삶도 흘러가는데 나이가 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난 퇴직하면 흙집 지어놓고 혼자 살겠다는 말을 마누라한테 자주 했었는데 마누라는 싫다고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 생각에 동조하는 듯한 투다. 그런 곳에 못산다고 하더니만 오늘은 나를 이해해주는 듯해 고마웠다. 세월이 흘러 남는 것은 나와 마누라 둘 뿐인걸. 이제부터 둘만의 여행을 준비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자식이 떠나고 난 자리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우겠는가. 높은 산 오를 때 힘든 것처럼 두 손 마주잡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때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같이 울고 하면서 세월 속의 아픔을 삭여야 하지 않겠는가? 함께한 산행 26

27 오늘 하루 산행에서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안 날이다. 땀에 젖어 내려오는 길 몸에서 인생의 향내가 나는 것 같았다. 함께한 산행 27

28 가장 소중한 선물 :18 가장 소중한 선물( )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 마누라, 아이들, 어머니, 가정의 행복 등 모두가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마누라의 인생에서 가장 큰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 바로 신랑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 한다. 마누라는 평소에도 나에게 애정을 많이 표현한다. 이에 비해 나는 왠지 어색해서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다. 평소에 다정다감하게 이야기 해주고 애정표현도 잘 해줘야 되는데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성격이나 좋은가? 성격은 불 같이 급하고 집에 오면 닫아 버리는 입 땜에 마누라는 항상 불만이다. 밖에서는 잘하면서 집에서는 왜 그러냐고 똑같이 집에서도 해보라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선물 28

29 이 일도 나의 성격 땜에 벌어진 일이다. 농암 어머니 댁에 가려고 집을 나왔다. 시내를 지날 쯤 마누라가 수박을 한대 사가지고 가겠다고 마트에 들리자고 했다. 날씨도 더운 차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건체 기다리고 있었다. 수박 한대 사러 갔으니 금방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10분이 지났다. 이제 슬슬 머리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면서 마트 입구를 들여다봐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마트로 들어가려고 하니 마누라가 나왔다. 화가 끝까지 받혀 있던 차 마누라에게 소리쳤다. 아이 뭐하나? 뭐하는데. 그러자 마누라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무시하고 차에 타니 마누라가 수박 2개를 들고 두유 밀을 들고 차에 탔다. 사람이 뭐 그래! 수박 좀 들어 달려고 하는데 그게 뭐야 다그치며 따졌다. 아니! 수박만 사면 되지 수박 1대 사는데 뭐가 그리 오래 걸리는데. 하며 맞받아쳤다. 농암으로 가는 길 마누라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슬쩍 돌아보니 마누라는 울고 있었다. 어이구 참내! 그기 뭐 그리 서운하다고 우나. 속은 좁아터져가지고. 어휴 참내 죽겠네. 농암 차에서 내려서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니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괜히 어머니한테 무슨 소리 들을까 걱정을 했지만 어머니는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래도 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농암에서 일을 보고 점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점촌 가까워질 무렵 마누라가 창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야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막 우는 것이었다. 난 깜작 놀랐다. 한편으로 화도 났지만 미안한 감이 들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마누라는 화가 풀리고 오늘 내가 화낸 것에 대해 모두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일요일. 집에 돌아오니 마누라는 없었다. 애들한테 엄마 어디 갔냐고 물으니 불정에 친구들이랑 갔다고 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질 무렵 전화가 왔다. 모전동에 사는 선재형 부인이 마누라 잘 위로해주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가보라는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니 이게 웬걸 마누라는 몸도 억지로 가누면서 있는 것이다. 집으로 들어 온 마누라는 안방에 들어가며 문을 잠그는 것이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술이 취해 자려는가 해서 TV를 보고 있는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선물 29

30 처음에는 그래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고함을 계속해서 치는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섰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니 문이 잠겼다. 속이 더 끓었다. 문열어! 안 열면 다 뿌셔치울테니 빨리 열어 하며 소리를 질렀으나 열어주지 않았다. 성질이 하늘 끝까지 받혔는데 그냥 있을 수 없어 발로 문을 찼다. 그제서야 문을 열어 주었다. 아니! 그게 뭐가 잘못된나? 내가 미안하다고 했으면 되찌. 이기 뭐야. 동네 사람들 다 듣게. 술 취한 마누라는 내가 워낙 화가 나있으니 미안하다고 했다.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아 집을 나갔다. 그날 저녁 조카랑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에서 잤다. 새벽이 되자 왜 그리 추운지 트렁크에 있는 산불 진화복을 입고 잠을 잤다. 불편 한 잠자리,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인기척 속에 눈을 뜨니 5시 30분 이었다. 차안에서 뒤척이다가 6시에 집으로 들어갔다. 마누라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속으로는 안됐지만 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기에 마누라에게 역정을 내면서 옷을 입고 출근을 하였다. 일찍 출근하였으니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했다. 할 수 없이 주차장에서 눈을 부치다가 7시 30분쯤 사무실에 들어갔다. 아침도 굶었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바람에 많이 피곤했다. 의자에 기대어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마누라한테 너무 한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마누라 울린 생각에 자신을 나무랐다. 9시쯤 되었을까? 휴대폰으로 마누라의 메시지가 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정말로 미안해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화 풀고 밥 잘 챙겨 드세요. 메시지를 보니 더더욱 내가 너무 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나를 너무 챙겨주는데 나는 뭐 했는가? 삐진 마누라 맘도 모르고 속을 풀어주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큰소리치며 당당한 자신을 보니 한심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여보! 술 먹고 그러지마 애들 앞에서. 참다 참다 화를 낸는데 미안해. 오후 3시쯤 다시 마누라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원종이랑 수종이가 엄마 아프다고 스프 끓여서 왔데. 부럽지. 메시지를 읽는 순간 가슴이 멍했다. 마누라 속 아프다는 소리를 난 무시해버렸는데 자식들은 그것을 가슴에 새기고 엄마를 위해 스프를 끓여 간 것이다. 거리가 얼마인가? 집에서 시내 중앙시장까지 가려면 족히 10분이 넘게 걸리는데 스프를 끓여서 들고 아들 두 녀석이 가장 소중한 선물 30

31 들고 간 것이다. 이런 것을 시켜도 잘 하지 않을 나이인데 큰 놈이 6학년, 작은 놈이 4학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견스러웠다. 용돈으로 스프를 사서 그것을 끓여서 들고 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프를 들고 온 아들을 보았을 때 마누라는 어땠을까? 아픔을 느끼면서 낳은 자식이지만 정말로 대단한 선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상이나 했을까? 중학생인 딸애가 그랬다면 그럴 수 도 있겠지 하겠지만 초등학생인 아들의 행동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내가 가르친 것도 아니다. 시킨 것도 아니다.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자랐을까 정말 고마웠다. 잘 자라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 같다. 어머니를 아끼는 마음, 큰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들! 고맙고 눈물이 난다. 나는 소중한 선물을 가진 행복한 아버지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다. 가장 소중한 선물 31

32 외도 가는 날( ) :18 며칠 전부터 셈틀 동아리에서 가족 전체 외도를 간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야구대회가 있어서 야구대회를 참석하느냐 외도를 갈 것이냐 선택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술 먹고 집에 들어가 술기운에 마누라한테 수다를 떨고 말았다. 수다 떤 것이 죄이랄까 그 날 마누라한테 외도 가는 계획을 말하고 말았다. 마누라는 아주 좋아했으며 내가 한 말을 애들에게 하고야 말았다. 애들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았던지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고 다녀 온 동네에 소문이 났었다. 허 참!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데 정말 곤란하게 되었다. 나는 직장 새재 야구회에 가입되어 있다. 포지션은 투수로서 작은 덩치에 비해 그래도 쓸만한 좌완 투수이다. 아주 잘 던지지는 못하지만 패전처리, 중간계투 투수를 맡고 있다. 그래서 야구대회에 꼭 참석을 해야 한다. 그 날 게임에 중간 계투진에 문제가 생긴다면 승패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로 인하여 게임에서 진다면 야구 회원들에게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평소에 아버지로서 자격미달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야구대회 참석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외도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갈 준비를 하였다. 외도 가는 날은 토요일 이른 아침이기 때문에 애들 학교는 체험학습 보고로 학교 가는 것을 해결하였다. 출발 전 금요일 밤, 친구들의 약속을 미루고 다른 날보다 아주 일찍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누라가 눈을 자꾸만 훔치고 있길래 쳐다보니 한쪽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있었다. 어! 눈이 왜 그런데? 눈병 같은데. 마누라 하는 말 아이 씨! 눈병이 아니면 좋겠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하이고! 이제 외도는 다 갔다. 그래도 가면 안 될까? 야! 이 사람아! 다른 사람들한테 옮기면 어떡하려구? 그리고 어린 애들도 따라 온다는데... 하이고 참내!... 결국 외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혼자서 허허 웃었다. 복도 지지리도 없는 마누라라고. 외도 간다고 눈 꼽아 기다리다가 결국은 눈꼽이 끼서 못 가게 되었으니... 결혼 10주년 기념도 할 겸 특별히 외도 가기로 날을 내었는데 이게 무슨 변괴인고... 하지만 나는 야구대회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자고 있는 애들이 내일 아침 외도를 안 간다고 하면 뭐라 말할지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외도를 못 가게 된 것을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서 아빠가 비상 근무하게 되어서 못 가게 되었다고 핑계대기로 마누라와 말을 맞추었다. 외도 가는 날( ) 32

33 사실 오늘 직원들은 1시간 내에 출근할 수 있는 정 위치에게 있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과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가기로 되었는데 마누라의 눈병 때문에 못 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침 7시 20분쯤 되니 다른 어느 날보다 애들이 일찍 일어났다. 외도를 간다고 일찍 일어난 것이다. 애들도 저 엄마를 쳐다보았다. 마누라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으면서 떡 들어붙어 있었다. 사실 어젯밤 잠들면서 눈병이 아니기를 많이 고대했었는데... 애들은 엄마를 보고 엄마 눈이 왜 그래? 하면서 다가가니 엄마한테 오지마. 눈병 올라 애들은 그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외도에 몇 시에 가냐고 물었다. 아! 오늘 시민문화회관에 08:30분까지 가기로 했는데 아버지가 오늘 미국하고 이라크 전쟁 때문에 비상 근무라서 외도 못간다. 그러자 첫째 지연이가 아주 큰 기대를 했던지 못 간다고 서러워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빠! 외도 가요. 며칠 전에 가기로 했잖아요 울면서 조르니 옆에서 퉁퉁 분 눈으로 쳐다보던 마누라의 처량한 눈빛이 정말 가관이다. 지연이가 울자 덩달아 일어난 둘째, 셋째 놈도 같이 우는 것이다. 아침부터 애들 우는 소리에 집이 울렸다. 야! 이누무시끼들 아버지가 비상근무라서 못 간다는데 왜 아침부터 울고 야단이라. 뚝 안해. 내 목소리가 커지자 애들은 지레 겁을 먹고 훌쩍이면서 조용해 졌다. 그런데 가만히 있자니 은근히 내가 화가 났다. 마누라 잘못 만나서 외도도 못 가고 애들한테 점수 따려다가 도리어 원망을 사게 되었으니... 자기라도 가지? 마누라는 눈병 때문에 못가게 된 것을 안타까웠던지 나보고 혼자서 외도가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 혼자 가서 무슨 재미로 가겠는가? 이래서 우리 가족의 외도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은 외도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기회를 놓치게 되었으니... 세월이 흘러 가족이 함께 갈 수 있을는지? 머리가 굵으면 애들은 어른들을 안 따라 다니려고 한다는데... 언제 이 기회가 다시 올지 아마 힘들 것이다. 나의 게으른 습성 때문에 외도 가는 날( ) 33

34 회초리 :29 요즘 들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마누라는 늙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흘러 보내지만 머리가 백발에 가까운 나를 되짚어 본다. 오늘도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화장실을 보고 와 다시 잠자리에 몸을 누이며 옆에 잠들어 있는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았다. 화장을 지운 마누라의 얼굴. 지난 밤 술에 취해 잠드는 바람에 얼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마누라 얼굴을 보니 오늘 따라 예뻐 보이는 것은 아직도 덜 깬 술기운 때문은 아닌지. 여자의 얼굴은 주량에 비례한다는데... 그래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마누라를 쳐다보니 사랑 섞인 안타까운 마음이 소리 없이 일어선다. 아침이면 애들 학교 때문에 일어나라, 학교 빨리 가라하고 저녁이 되면 숙제 다 했나, 어서 자라하면서 쉴 새 없이 소리를 치는 모습을 떠올리니 마누라의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마누라의 고함치는 소리는 우렁차다. 회초리 34

35 내 목소리 보다 훨씬 크다. 시집 올 때만 해도 다소곳하고 목소리 낮은 여자였는데 이제는 씩씩한 여자로 바뀌어 있다. 역시 대단하다. 다윈의 진화론이 새삼 맞다는 산 증거이다. 오늘은 휴일. 휴일이지만 아침 시간은 벌써 7:30분을 넘기고 있다. 평상시 일어나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나 마누라는 일주일 동안 쌓인 잠을 오늘 모아서 자는 듯하다.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책을 보기로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애들 방에서 장난치는 소리가 났다. 머시마인 두 놈의 장난은 보통이 아니다. 항상 알고 있지만 장난은 싸움으로 바뀐다. 아니나 다를까 형은 동생을 탓하고 동생은 형을 탓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치고 박으며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평소 때 싸우는 소리와 좀 달랐기에 순간적으로 화가 굉장히 많이 났다. 이놈들,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일렀건만 식전 아침부터 싸워 누워서 책을 보다 말고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야! 너 둘 다 일로 와! 빨리 와! 그러면서 나는 장롱 위에 올려놓은 회초리를 찾았다. 애들이 안방으로 건너오자 나는 회초리를 들었다. 아니! 내가 뭐라캐써? 싸우지 말라고 했지. 근데 왜 싸워? 얼마나 화가 났는지 회초리로 종아리 3대를 때렸고 손을 들게 했다. 그러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꿇고 앉아 있는 애들 발바닥을 두 대 때렸다. 막내는 얼마나 겁이 났는지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있는데 벌벌 떨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내 마음이 이상해졌다. 너무 심하게 애들을 대한 것은 아닌지... 내 기억에서 가장 세게 애들한테 매를 댄 날이었다. 불현듯 과거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형은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형이 나뭇지게 짐도 대신 지어주었다. 장날마다 10리나 되는 길 힘든 리어카도 대신 끌어주었다. 또 중학교 때는 자전거도 나에게 양보하고 10리를 걸어갔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고마움도 모르고 싫으면 형한테 달려들었다. 싸움은 힘으로나 덩치로나 형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일방적인 싸움의 결과는 어머니가 아는 법. 행상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신 어머니로부터 형과 내가 싸웠다고 혼이 났었다. 어쩌면 지금 나의 애들이 싸우는 것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같음에 전율을 느낀다. 회초리 35

36 대물림 같은 느낌이 자리를 잡는다. 어머니한테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집 애들은 매를 안 들어도 말을 잘 듣는다고 하는데... 내 자신의 사고방식을 나무라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머니로부터 호된 단련은 인생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과 마음이 서로 맞지 않을 때도 남을 먼저 이해하고 포용하는 편이다. 나는 애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버지가 매를 드는 것은 아버지로서 너무 엄해서만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아마도 남들보다 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너희들의 행복한 삶이 곧 아버지의 행복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힘 있을 때 때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늙고 힘들면 그때 너희들을 때릴 수도 없지만 맞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매를 들 때에도 모든 것이 아버지가 틀렸다고 할 것이다. 세월의 물결 앞에 당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의 시간이 짧아 내가 죽음의 사선에 가까워 질 때 너희들은 나와 같이 아버지의 모습으로 세월과 마주할 것이다. 그때 네 자식들을 때리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미워하지 않고 가슴 아리도록 사랑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아버지가 너희들을 때린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월이 실어다 주는 늦은 사랑의 깨달음이다. 자식을 때려 놓고 즐거워할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너희들 몸에 회초리의 자국이 남아있다면 아버지의 마음에는 너희들 멍든 자국보다 더 큰 회초리의 자국이 남아 있으며 맞을 때 너희는 순간의 아픔을 느끼겠지만 아버지는 몇 날 아니 눈을 감을 때까지 그 때의 아픔을 계속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애를 심하게 때렸다고 마누라가 나무란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아픈데. 바가지 긁는 소리가 높아질수록 아버지인 나의 설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다. 가족으로부터의 외면 같은 물결이 밀려온다. 갑자기 부쩍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잘못하면 때려야겠지. 회초리 36

37 고추 꿰매기( ) :25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 옐리뇨 현상 때문에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것이 좋다. 집 떠나 온 사람으로서 겨울이 따뜻하다면 가슴이 덜 시리기 때문이다. 이제 1년 과정의 교육을 마무리 해가는 시점이다. 한해 마무리가 되는 시점에서 지난 1년은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집을 떠나 대구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매우 좋은 기회였다. 매일 한번씩 집에 있는 아이들과 통화를 해야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때로 술 먹느라고 까먹은 적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얼마 전 함께 교육을 받았던 모임이 만들어져 나는 총무가 되었다. 단체용 통장을 개설하려고 하니 교육 때문에 시간이 잘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마누라보고 통장을 개설해 달라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수없이 하는 통화지만 늘 상의 말투. 뭐 하나? 뭐하긴? 꼬추 꾸매여. 고추 꿰매기( ) 37

38 아니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누가 고추가 떨어졌나? 아니면 고추 푸대를 꿰맨다는 소린가? 아니! 뭔 꼬추를 꾸맨다고? 부업으로 하는 것인데 한 개에 17원인데. 그제야 마누라가 부업으로 고추를 꿰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솜을 넣은 작고 빨간 고추를 꿰매는 일이였다. 가계 살림이 빠듯하니 혹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일을 시작한 것 같았다. 전에도 전자제품 코일 감는 것을 여러 달 한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신찬은 몸. 부업을 하고 난 뒤 마누라의 앓는 소리는 더 커졌고 그 소리는 정말 듣기 싫었다. 가멸차지 못한 신랑 만나 마누라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마누라의 앓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나의 자격지심에 대한 초라함은 커져만 가는 느낌. 남자로서 느끼는 서글픈 비애였다. 그래서 부업을 하지마라고 이야기 했고 마누라는 부업을 그만 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랑이 교육을 받느라고 대구 가 있고 간섭할 사람이 없으니 오죽 좋겠는가? 아니! 내가 하지마라고 그랬는데 또 한다고? 어이구 참 내! 하루에 몇 개하는데? 틈틈이 열심히 하면 하루에 100개정도 하는데 그래 하루 종일 해서 1700원이면 30일 해도 5만1000원 밖에 안 되는데 그거 뭐 할라고 해여? 애만 먹지." 그래도... 마누라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꼬추를 실컷 만지니 힘은 안 들겠네. 그 소리에 마누라는 깔깔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한참 동안 생각을 해 보았다.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다. 작은 아파트에 들어와서 아이가 셋으로 늘어났다. 내가 부지런히 돈을 벌어 온 것 같았는데 돈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이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애들한테 다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11년이란 세월에 TV도 낡아서 여러 번 수리를 받았다. 혹 남의 집에서 큰 TV를 보다가 우리 집 TV를 볼 때면 왜 그리 작아 보이고 답답해 보이는지. TV만 그런가. 세탁기도 힘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고. 게다가 혼수품으로 해 온 장롱문은 한 쪽이 떨어져서 속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창피한 생각이 들어 장롱 안을 흰 천으로 좀 가리라고 했지만 마누라는 가구점에 이야기했는데 안 온다고 핑계를 돌렸다. 전만해도 우리 집이 작든 말든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장롱문이 떨어지니 이제는 창피한 느낌이 든다. 전에는 술만 먹으면 우리 집으로 술친구들을 끌어들였는데 지금은 용기가 나지 않는다. 확실히 살림이 궁하니 힘이 떨어지는 것 같다. 마누라는 고추를 꿰매서 돈을 버는데 돈을 축내는 고추가 셋이다. 큰 놈은 술에 절여 돈을 축내고 아들 둘은 군것질로 돈을 축낸다. 그래도 고추 꿰매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고추를 많이 꿰맬 때마다 재산이 쑥쑥 불었으면 좋겠다. 고추 꿰매기( ) 38

39 그러려면 고추 값이 떨어지면 안 될 것 같다. 고추 값이 한 개에 20원으로 올랐다고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아무래도 마누라는 고추를 더 열심히 꿰매야 할 것 같다. 그래야지 하루 빨리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으니. 여보 마누라! 아파도 괜찮으니 열심히 고추를 꿰매주세요. 나도 한 번 좋은 집에서 살아봐야겠소. 고추 꿰매기( ) 39

40 눈물의 이사 준비( ) :22 출근하는 아침 나의 기분을 하늘이 아는 듯 날씨가 깜깜했다. 매일 뛰 따라 나오던 마누라는 감정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지난 밤 마누라와 다툼 때문에 기분이 착 가라앉아 있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마다 포옹을 했었는데 막상 하지 않으니 그 역시도 이상했지만 가라앉은 기분 때문에 그냥 나섰다. 하늘은 내 맘을 아는 것일까? 이제껏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듯 초봄이지만 소나기를 마구 퍼부었다. 차 앞 브러시는 깊은 숨을 몰아쉬며 왔다 갔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가는 길이 힘들었다. 오늘 날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나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수일 전 갑자기 난 집이 있어 계약을 하였다. 나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원했지만 마누라는 아파트 쪽을 원했다. 신랑이 없을 때 도둑이 무섭고 여자들이 생활하기에는 아파트가 편하기 때문이라 했다. 내 욕심도 중요하지만 자식 3명 나주고 잘 길러 주는 마누라가 예뻐 보여 내 욕심을 버리고 마누라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마침 30평짜리 연립이 났고 마누라는 당장 집을 보고 와서는 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가멸차지 못한 살림 만만찮은 주택자금은 나를 압박하였다. 있는 돈 다 긁어모으고 몸을 담보로 4천만원의 자금을 대출하니 겨우 매매대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비용, 이전비용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1천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야 될 것 같았다. 마침 내 놓은 집은 계약이 성사되어 자금의 여유가 있게 되었다. 나는 대출받은 자금을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상이몽이라 할까? 마누라는 13년 만에 마련하는 집이라서 그런지 애착이 많았고 집 판돈을 새집 꾸미는데 대부분을 쓰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마누라는 낮 동안 도배, 장판, 싱크대 비용을 나름대로 알아보고 난 후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가져온 장롱은 버리고 새집에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싱크대, 조명 등 내부일체를 교체해주는데 800만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순간 가슴 속으로 마누라에 대한 실망이 가득 찼다. 아니! 이 사람이 깔린 빚이 얼만데 빚부터 갚을 생각 안하고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어? 마누라의 말이 끝나자 한마디 했다. 야! 이 사람아. 깔린 빚이 얼마나 많은데. 아니! 800만원이 그렇게 벌기 쉬운 줄 아나? 니 나가서 한번 벌어봐라. 돈 쓰기는 쉬워도 막상 모르려고 하면 등골이 빠진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자 마누라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문을 막았다. 시간이 흘러 애들이 잠에 든 시간 마누라는 TV를 보고 있는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나한테 말 할 용기가 나지 않아 설거지 하면서 매실 술을 두 잔 먹었다고 했다. 눈물의 이사 준비( ) 40

41 부부는 이야기 할 때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해야 된다고 하면서 얼굴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여보! 여자들은 자기 집을 남한테 잘 보이고 싶고 또 지금 이사 가면 어차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잖아. 그리고 살다가 중간에 수리하기도 힘드니 한 번에 하려고 한 건데 그게 뭐 나빠? 마누라 얼굴을 보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당신 말도 맞아.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럴 여건이 되나 이거지. 한 번 봐라. 애들 내년부터 중학교 들어가지. 그러다 좀 있으면 고등학교. 대학교 가는데 지금 우리 수중에 뭐가 있나? 이 빚 갚다보면 세월 다 가는데 앞길은 생각 안하나? 남한테 잘 보여 주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나? 결국은 싸움은 내가 이겼고 마누라는 내 뜻을 알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물러났다. 싸움은 끝났지만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서로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싸움을 하고 난 뒤 잠은 선잠이 되었다. 새벽녘 아직도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한 참 남았는데 마누라도 선잠을 잤는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내가 마누라한테 너무 한 것은 아닌지 생각을 많이 했다. 빚을 좀 지더라도 저질러 볼까. 아침이 되어 밥을 먹으면서 마누라 얼굴을 보니 눈이 뚱뚱 부어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출근하여 근무하고 있는데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왔다. 도배하는 것 때문에 이사할 집에 있으니 나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이사할 집에 가니 친정 오빠가 소개 시켜준 업체에서 견적을 뽑고 있었다. 결국은 싱크대, 도배하는 것을 450만원에 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거 봐라! 이렇게 하니 돈을 350만원 아끼지 않았나. 내하는 대로 하면 뭐든 잘 될 것이니 앞으로 내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러면서도 마누라의 의견을 못 따라 준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퇴근 후 술 약속이 있어서 술을 먹고 있는데 마누라 전화가 왔다. 컴퓨터 책상을 어디에 둘 지 물으면서 책상하고 다 설치하는데 700만원이면 된다고 하였다. 술이 약인지 마음이 바뀌었다. 아침에 눈이 부어 있던 마누라 생각도 나고 해서 마누라 의견을 따라 주기로 했다. 아이고 모르겠다. 당신 맘대로 해. 애들 책상도 해주고 붙박이장도 하고. 뭐가 되겠지. 그러나 마누라는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줄 알고 진짜냐고 물었다. 진짜라고 이야기 하면서 인테리어 업체에 연락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집에 들어오니 마누라가 말했다. 당신은 키는 작지만 하는 일이 똑 부러지고 나한테는 큰 바람막이야. 당신을 만나서 나는 행복해.... 허허! 이 사람이 별 소리를 다하는구먼. 눈물의 이사 준비( ) 41

42 나를 향기 나게 하는 여자( ) :17 내일이 마누라 생일이다. 미역국을 손수 끓여줘야 하는데 일찍 들어가긴 힘들 것 같다.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나가는 길 소주 딱 1병으로 약속하고 술을 먹으로 갔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면 대화거리도 많은 법 술자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12시가 가까워질수록 취기는 오르는데 마누라의 재촉은 높아만 갔다. 뭐해 빨리 안 오고. 시간이 몇 신줄 알아? 아! 알았어. 조금만 있다 갈게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집에 들어간 시간이 2시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시가 넘었으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한 것 같았다. 집 입구에 들어서니 계단 발자국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주었다. 나를 향기 나게 하는 여자( ) 42

43 마누라는 소리에 민감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차 소리를 듣고 신랑 차인걸 알아차린다. 그런 마누라를 아파트 이웃은 매우 신통하게 생각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에 나오는 마누라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미안했지만 늦도록 자지 않고 기다린 마누라를 보니 흐뭇했다. 그러나 바로 오늘이 마누라 생일 아닌가? 여보! 생일 축하해. 일로 와봐.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마누라 옆으로 가자 마누라는 빨리 씻고 자라고 한다. 마누라! 오늘 생일이지? 내가 미역국 끓여 줄게. 미역 어디 있어? 하이고! 무슨 미역국 얼른 잠이나 자시오. 지금 몇 신줄 알아? 마누라는 미역국을 끓이지 못하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7시 30분이 넘었다. 늦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잠들기 전 미역국을 끓여 주겠노라 스스로 약속 했었는데 술에 취해 늦게 일어나게 되었으니. 벌써 마누라는 일어나서 아침을 하고 있었다. 밥솥에 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역국은 없었다. 밥상에 오른 육개장 국을 보며 마누라 미역국 끓여주지 못한 것이 내내 안타까웠다. 잔소리가 쏟아진다. 내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잠을 설치다가 3시쯤 잠이 들었다고 했다. 겨우 4시간 자고 아침 준비하려 일어났으니 불만 있는 것이 당연한 법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가면서 마누라한테 말했다. 여보! 생일 축하해. 그러면서 마누라를 끌어안고 뽀뽀를 해 주었다. 어제 지은 죄 때문에 한 번으로 부족한 것 같아 다시 뽀뽀를 해주었다. 출근하는 길 마누라에게 너무 미안했다. 불현듯 마누라의 여러 장면들이 스쳐갔다. 마누라는 속옷이 떨어져도 옷 하나 잘 사 입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신랑 양복을 선뜻 사주었다. 나는 옷 필요 없다고 버텼지만 신랑 초라해 보이는 것 보기 싫다고 양복을 사 주었다. 내가 입는 옷들은 싸구려 옷은 아니다. 메이커 입는 옷을 입고 있다. 모든 옷들이 내가 고른 옷은 거의 없다. 마누라가 사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그러면서도 애들은 좋은 옷을 입히지 않는다. 재래시장 가서 싼 것을 사 입힌다. 그것도 몸에 딱 맞는 옷은 절대 사지 않는다. 나를 향기 나게 하는 여자( ) 43

44 바지를 둘둘 말아 올리는 그런 옷을 입힌다. 그런 것을 볼 때 옷 잘 입은 내가 미안했다. 얼마 전 다 떨어진 마누라 속옷을 보고 마누라를 나무랐다. 야아 이 사람아! 옷이 거기 뭐라? 옷 좀 사 입어라. 아니 돈이 없나? 거기 몇 푼 든다고. 다 떨어진 옷 버릴 만도 한데 아직까지 그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마누라가 사준 좋은 옷으로 내 몸에서는 향기가 난다. 오늘은 마누라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쑥스러워 쉽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들 둘 낳아주었다고 큰 소리 치는 마누라 행여 화난 신랑 얼굴 붉히지 않도록 조용히 숨죽이는 마누라 마음 여려 심심하면 눈물 보이는 마누라 오늘 분명 마누라 몸에서 향기 나도록 해 보겠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술 한 잔 먹고 가야 될 것 같다. 저 어! 여자 팬티 하나 주세요. 큰 걸로요. 그리고 마개도 한개 주세요. C컵으로요. 나를 향기 나게 하는 여자( ) 44

45 마누라의 반말( ) :47 결혼 초 마누라는 말했다. 내가 난 하늘 하면, 마누라는 나는 땅 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연애결혼이 아니라 중매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첫애가 울면서부터 마누라는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화의 시초였다. 존대어는 사라지고 가끔씩 전화상에서 경어를 사용했고 일상은 평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랑인 나를 언제 공경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 존댓말을 바래서 뭐하노? 바라는 내가 바보지. 대신 나한테 잘만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누라는 초기 진화를 벗어나 점점 더 진화의 속도를 높였다. 애들이 3명이 되고 나서는 진화의 속도는 최고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누라가 평어만 사용해주어도 나는 기쁨이다. 진화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지금은 잔소리까지 하기 시작했다. 야아 이러다간 자식들 앞에서 체면 다 깨지겠는데 할 수 없이 진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지연제를 사용했다. 지연제를 뿌리는 순간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웬걸 방역차 흰 연기에 취해 비실거리다 다시 살아나는 모기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젠 약발도 안받을 정도로 진화되어 있어. 그에 맞는 방어책을 연구해야 돼. 마누라의 반말( ) 45

46 이것이 이제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효과가 높고 지속력이 있는 지연제를 개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원시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일상의 연구 방어책을 만들기는 매우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리는 어느새 반백이 되었다. 내 머리가 점점 하얗게 될 때마다 마누라의 얼굴은 득의양양하다. 아무리 지연제 써 봤자 별 소용이 없으니 잘하라는 표정이다. 요즘 진화 상태를 보면 가관이다. 내가 죽을 지경이다. 이제는 술도 먹고 밤늦게 들어온다. 들어오면 그냥 안 잔다. 야아! 유시일이! 니 임마 그래면 안되여. 야아! 마누라가 안 들어왔는데 자여? 똑바로 해 임마. 그리고 누가 딸 놓고 아들 둘 낳아 주나? 그러니 마누라한테 잘해 임마. 알아써? 정말로 죽을 맛이다. 이제는 지연제 연구도 벅차다.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괜히 뿌렸다가 나만 터지게 생겼다. 머리를 조아리고 몰래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어둡다. 진화의 속도로 봐서는 나는 결국은 실패한 백수의 과학자로 남을 듯 하다. 그렇다면 내가 있을 장소는? 아마도 그곳이 아닐까? 늙으면 내가 있을 곳 옛정을 고려한다면 우리 집의 방 한 구석,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이 아닐까? 이만한 배려도 마누라의 큰 마음씨 때문이라고 고맙게 생각해야 될지 모른다. 어둡다. 깜깜하다. 이제는 지연제 개발하기 보다는 조아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지연제를 뿌릴 때마다 강해지는 마누라. 이제는 방법이 없다. 나의 연구는 끝이다. 이제는 내가 마누라의 뜻에 맞게 진화할 때인 것 같다. 진화하기 싫은데... 진화를 거부하다간 마지막 남은 나의 자리마저 없어질 것 같다. 그러면... 생각하기 싫다. 겁이 난다. 두려움이 앞선다.... 음! 진화를 해야지. 아! 그때가 그립다. 신랑은 하늘 마누라는 땅 마누라의 반말( ) 46

47 마누라의 변신( ) :43 요즘 마누라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고, 취미생활로 소일하던 마누라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컴퓨터를 멀리하더니만 이제는 하루에 꼭 1~2시간씩 앉아 있곤 한다. 내가 보기에 대단하다. 채팅을 위해서 한다면 아마도 내가 말리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할매 라고 부르는 정원이 엄마가 약국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급식을 위해 취직을 했었는데 신랑 친구의 소개로 약국에 취직했다고 했다. 한달 벌이가 80만원 정도라고 했다. 이런 중소도시에서 하루 8시간 일하고 80만원 수입이라면 가정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마누라는 여기에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약국을 가던, 파트타임을 하던 워드나 엑셀은 기본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하나 마누라는 컴맹이었다. 어느날 집에 낯선 책 한권이 돌아다녔다. 엑셀 교본이었다. 마누라가 엑셀을 배우나? 애들이 배우려고 그런가? 궁금하여 책을 펼쳐보니 마누라의 흔적이 책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기록한 흔적이 예사롭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나? 할 수 없이 궁금하여 물었다. 마누라의 변신( ) 47

48 엑셀 배우는가 보지. 뭐하려고 배우는데? 나도 돈 벌거야. 친구 학원에서 엑셀 배우고 있어. 어휴! 혼자 공부해도 되는데 무슨 학원을. 돈이 어디 쏟아지나. 돈이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컴활 시험치려고? 응! 2급 시험 칠거야. 아니! 어렵게 할게 뭐 있어. 쉽게 하면 되지. 뭐하려고 3급을 하나? 마누라는 적어도 2급은 되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래! 열심히 해봐라. 저러다 말겠지. 그러나 내 생각은 자꾸 비껴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또 책 한 권이 생겼다. 실전 실기 기출문제 같았다. 며칠하다 말 것 같은 진도는 하루 1~2시간씩 꾸준히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마누라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누라를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일찍 들어온 날 나는 책을 읽고 있는데 마누라는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도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그래서 마누라 기 살리려고 한 마디 했다. 야아! 당신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죽인다 죽여. 열심히 해 그러자 마누라가 나를 돌아보면서 하는 말 내가 엑셀 배워 돈 벌어서 용돈도 푸짐하게 주고 책도 사줄게 기다려 봐. 내 몸이 부서져도 돈 벌꺼야. 말하는 투가 며칠 전 나에게 했던 말이 맘에 걸리는 듯한 말투였다. 요즘 쏟아지는 부조금 때문에 나의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손을 내밀었고, 책도 다 읽었기에 책도 사달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금고냐고 탓했고 부조를 아무나 하냐고 나무랐었다. 마누라의 목소리는 칼이었다. 가슴을 찌르고 들어 왔다. 그럴수록 나는 힘을 잃어 가고 설자리 찾기도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누라가 한 말을 보면 본심이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마누라의 달라지는 모습 너무 놀랍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다. 허허! 그래 얼른 배워 돈벌어 나도 좀 살자. 맘껏 한번 써보자. 대궐 같은 집에서 나도 한번 살아보자. 그러나 막상 마누라가 컴활 2급을 따는 날 취직을 하게 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막둥이가 울먹이며 엄마 돈벌러 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누라의 변신( ) 48

49 마음속을 거닐며 블로그 저자 영그렁 머털 발행일 :17:25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와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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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¹«Ã»Ã¥-»ç³ªÀÌ·Î 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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