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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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미 승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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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회칼럼( ) 설교자와 청중 저는 목회자로서 설교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교를 잘 한 다고 할 때 잘하는 기준에 대하여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에 설교를 잘 하는 것이 말을 잘 하거나 웅변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교훈적으 로 담아내는 것이라면 그 일을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 를 잘 한다고 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의 의미를 바 르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설교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 (The ministry of the Word of God)라고 하고, 설교자를 하 나님의 말씀을 봉사하는 자 또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날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지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도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설교를 듣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 다. 또 어떤 사람은 설교가 너무 길어서 지루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 론 제가 생각할 때는 설교자인 제가 쉽게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게 하지 못하 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청중들이 말씀을 원래 이해하는 방식대로 문법적이고, 역사적이며, 문맥과 관련하여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 게 느껴지고 마치 강의를 듣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사 람은 자칭 신자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교회에 앉아서 설교를 들으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지금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1988년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부터 우리 교단의 신학교인 고신 대학교와 신학대학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문제를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알지 못하고 있고, 지극히 주관적이며 인위적으로 이해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실제적으로 성경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신학대학원에는 성경을 수십 번 읽은 사람들이 많 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성도도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데 무려 칠 팔십 번에서 백 번 이상 읽은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 의미를 잘 알 지 못하고 구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교 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능력과 치료와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크고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 되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라고 할 수 없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 출입 은 하고 있으나 영적으로 절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2 경험하고 있는지의 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됨의 결정적 인 표지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실 때 구약시대부터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히1:1)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결국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기록된 문자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그 문자는 설명문 과 논리적 진술, 역사와 시와 비유와 상징 등의 다양한 건강 사용하여 기록되었 습니다. 그리고 그 문자는 기록된 역사적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법적이며 역사적인 해석은 성경을 이해하는 기본 가운데 기본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데 이해를 못 하겠다면 그가 신자가 아니든지, 스스로 신자 됨을 포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설교를 듣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절대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 다. 물론 설교자도 이러한 방식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재미있게 한다 는 미명 아래에 재미있는 예화나 도덕적인 훈화나 교훈적으로만 설교하거나 사 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의 말씀을 왜곡시킨 무서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설교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일에 있어서 오늘날 설교하는 설 교자에게도 문제가 있고, 설교를 듣는 청중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면 그때부터 얼굴색이 변하여 아예 설교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원수를 대하듯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설교자는 갈등하면서 그 사람을 의식하고 성경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듣기 쉽고 편한 말만 하게 되면 결국 성도를 망하게 합니 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쳐야 하고, 청중 은 목회자의 설교를 인간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 다(살전2:13). 만약에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가 귀에 들리지 않거나 들으려 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설교자이며 목회자인 저는 끊임없이 우리 성도 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듣도록 설교를 준비합니다. 진지한 자세로 설교를 들으려고 한다면 그 말씀 자체가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3 목회칼럼( ) 목회 리더십의 어려움 리더십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 습니다만 요즘 함께 만들어가는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사전에 보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성과를 창출하는 능력을 말한다. 지도력은 조직의 문제점을 개 선하고, 조직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며,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등의 기능을 가진다. (wikipedia.org) 사실 리더십의 핵심은 조직이나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목적을 달성해 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정의는 영어로 Leadership이라는 단어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리더(leader)와 배(ship)를 결합한 말로서 공동체인 배 를 이끌고 목적지에 도달해 가는 능력입니다. 항해를 할 때는 폭풍도 지나야 하 고 암초도 지나야 하고 바람이 없는 잔잔한 바다도 지나야 합니다. 하지만 리더십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본성 속에는 온갖 죄악된 요소들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 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1-23)라고 하였습니다. 이 러한 더러운 것들이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다루어야 하는 리더십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리더십에 관한 책을 보더라도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를 인격 과 신뢰성, 능력, 균형감감, 친화력 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한국적인 상황에 서는 이것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조건, 곧 돈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교 회의 경우 교회교인의 수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외적인 조건 은 그의 인격과 능력과 친화력과 관계없이 기능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리더(leader)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들은 좋은 리더의 지도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로 교회에 서 리더로 섬겼습니다. 담임목사로서 리더가 되는 것 말고 중고등부를 하던 시 절부터 학생회장과 대학청년부 회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일반사회에는 초등학 교 5학년 때의 일로 기억이 되는데 반장선거에 한번 떨어지고 난 뒤에 리더가 되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는 학과의 대표도 해 보았고, 극예 술연구회라는 동아리를 이끌어가면서 연기와 연출도 해보고, 기획도 하면서 부 산의 시민회관 대강당을 대관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원에서는 편 집장으로 봉사하며 대학원의 학회지와 신문을 발간하는 일을 책임을 맡아 수행
4 해 본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경험들은 저로 하여금 한 공동체와 그룹을 이끌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여러 가지 로 부족했지만 리더로서 훈련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목회 리더십은 이러한 성격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대전극동방송국에서 매주일 5분 칼럼 을 만 8년을 대개 수요일 아침에 방송하 였습니다. 그런데 간혹 몇 달에 한 번씩 수요일에 후원회 비슷한 모임이 있으면 그 날에는 넓은 주차장에 검은색 중대형 승용차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분들 은 대개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명도 있는 사람이나 큰 교회의 목사들로 구성되 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녹음을 하고 나오는 날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오랫동안 한 방송칼럼을 듣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만나보기를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우리 교회의 교인수 가 몇 명인지 물어보고 난 뒤부터는 말투부터 달라져 거만하게 말하였습니다. 이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러한 질의 사람하고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거나 책망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직접 제가 항해하는 배에 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무 시하거나 책망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의 교인들의 경우는 무시할 수가 없습니 다. 사실 대부분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담임목사인 저를 믿고 존경하고 따릅니 다. 하지만 어느 교회든지 겉으로는 믿고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예 무례하고 막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 알지요. 심지어 어떤 경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설 교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퉁명스럽게 앉아서 설교를 잘 듣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작은 교회에서는 원칙을 깨면 그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목회자의 리더십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여 생명을 얻게 해야 하고, 이 들을 가르치고 세워서 제자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궁극적으로 사람과 세 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사람이 인간 이하의 말과 행동을 해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참고 기다립니다만 얼마나 마음이 쓰린지 모릅니다. 그래 서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목회 리더십의 어려움 입니다. 결국 교회의 리더십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 님이 높여주셔야 합니다. 그럴 때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 이 (수3:7; 4:14) 두려워하고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5 목회칼럼( ) 교리공부의 중요성 우리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생활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교회 중심의 원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원리를 구현하는 방법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이 뿐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뜻 과 이상을 이 땅에 구현해 가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요 에이전트(Agent)로 서 기능해야 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 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가 일반 세상의 공동체와는 다른 윤 리적인 독특성이 있습니다. 그 독특성은 우리 교회가 믿는 교리에 근거해 있습 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교리가 필요없고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 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만 하면 거기에 나타난 핵심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요? 물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신비스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리적인 기초가 없이 성경을 읽으면 인간의 주관이나 사색에 지배되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믿는 자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경향들은 개인의 주관이나 경 험에 근거한 성경해석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신천지(무료성경신학원), 박옥수의 구원파, 안상홍 증인 회 등이 있습니다. 안상홍 증인회는 대전 KBS방송국 앞에 하나님의 교회 세계 복음선교협회 라는 이름으로 큰 교회당을 지어서 포교활동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의외로 이러한 이단들이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 고, 우리 믿음체계를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들 이단들 모두 하 나같이 공통점이 있다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 천지는 성경이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인위적이며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교주 안상홍은 죽었으나 그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의 재림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안식교의 영향을 받아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고 유월절을 지키며, 십자가를 상징물로 사용하는 것은 우상이라고 하고 십자가를 사용하지 않습니 다. 사실 이러한 이단의 세력이 교회 안에 기생하고 양산시킨 데는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영적해석이란 미명 하에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가장 큰 요인이 있습니다. CBS나 CTS에 나오는 설교자나 극동 방송에서 나오는 설교자들은 그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설교하고 한국교회 에 유익하기 때문에 방송국에서 심의하여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6 그 시간을 마치 기업이 광고시간을 구입하듯이 헌금이나 선교비 명목으로 많은 돈을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설교를 분석해 보면 성경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너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진위를 식별하지 못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경우에 과연 성경이 말하 는 은혜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가 바른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성경이 어떤 책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나아가 설교가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인지, 종말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이며, 지금 현재 그리스도 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비평할 수 있는 시각을 주 는데 이 교리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교리가 성경 말씀 위에 있다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항상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한 교리는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그 그림에 묘사된 내용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줍니다. 물론 교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하고 해석하는 일에 중요한 원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약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 리라는 울타리 안에 제한시킴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하고 왜곡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성은 제한되 어 있기 때문에 바른 교리와 신학은 성경의 원리에 따라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 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 교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유명한 교회 역사가 필립 샤프(Philip Schaffer)는 성경의 교훈들을 요약해 주고, 성경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성경을 가르 치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믿음의 일치를 이루게 하며, 거짓된 교훈과 생활 을 막아내는 일에 공적인 표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필립 샤프, 신조학, 12). 교회역사를 보거나 실제로 목회를 해보면 교리는 이러한 역할을 하였고, 또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 스터 표준문서 (신앙고백, 대 교리, 소 교리 문답, 교회정치, 예배 모범)를 공부하 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가족들이 이 교리공부에 관심 을 가지고 교리공부에 참여하여 믿음이 자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 기를 기대합니다. 목회칼럼( )
7 목회칼럼( ) 교훈의 논리적 근거와 신뢰도 얼마 전에 조류독감이 전북과 충남지역에 발생하여 국민의 건강만이 아니라 양계업이나 치킨집을 경영하시는 분들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안겨준 일이 있었습 니다. 그때 신문이나 언론에 몇 년 전에는 한글로 조류독감 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다가 올해는 AI(Avian Influenza)라는 영문 이니셜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 국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모 방송국의 돌발영상 에서 방영되었 습니다. 이때에 모 당의 정책위의장이 조류독감을 에이아이 (AI)라고 발음하지 않고, 에이원 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국회의원도 역시 에 이원 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때 참석했던 기자가 질문하기를 에이아이 가 맞는 지, 에이원 이 맞는지 질문하였을 때 그 분은 에이원 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말 하는 것이 영상으로 방영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류독감으로 인하여 피해에 대 하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 사용하는 전문용어도 모르고, 보좌관이 써준 원고를 검증없이 읽어가는 사람들의 정책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 은 단순히 에이아이 를 에이원 으로 읽었다는 실수가 아니라 그 용어의 의미 와 출처도 모르고 사용한 사람이 그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겠는지에 대한 신 뢰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들은 설교와 신년메시지에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솔개 를 예를 들어 교훈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솔개의 매체로 한 이야기의 내용은 한 경제신문사에 발간한 책에 기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 내 용은 이러한 것입니다.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개는 최고 약 70살의 수명 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살이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 요한 결심을 해야만 합니다. 솔개는 약 40살이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됩니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 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 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 이 있을 뿐입니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 합니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서서 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 나 뽑아냅니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8 모습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광호, 우화경영, 2005년 4월 매일경제신문사) 이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많이 회자( 膾 炙 )되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교훈의 근거와 토대로 삼고 있는 솔개라는 새가 과연 생태학적으로 그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30년을 더 사느냐 하는 것입 니다. 제가 처음 설교와 신년메시지를 들었을 때 아 솔개가 그러한 특성을 가지 고 있구나! 솔개가 참 영물이구나 라고 생각하다가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훈의 근거로 삼은 솔개가 그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물생태학자 경희대 구태회 교수는 새에 서 부리가 다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hani.co.kr 2006/05/09). 그런데 제가 처음 솔개 이야기를 듣고 사전을 찾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하 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설교자들만이 아니라 검찰총장도, 국내 정상급 대형은 행장도, 대형신문사의 주필도, 솔개의 특성 을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솔개처럼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 리 나게 하자 라고 하였고, 정상명 검찰총장도 취임사에서 솔개 70년 장수론 을 펼치며 솔개는 40년을 살고 몸이 무거워지면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가 나게 하고, 그 부리로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뒤, 창공을 차 고 올라가 30년을 더 산다 라고 하며 검찰 간부들에게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되라 고 요구했다고 합니다(hani.co.kr 2006/05/09). 논리학과 수학에서 전제가 잘못되면, 그 전제로부터 유추해낸 모든 주장과 논 리가 와르르 무너지는 법입니다. 자기 갱신과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것 자체 는 문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교훈의 논리적 근거가 잘못되어 있으 면 거기에 근거한 교훈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지금 설교자들만이 아니라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솔개의 생태학적 특성을 근거로 이야기하지만 솔개 는 그러한 생태학적인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강단에서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말씀을 읽지만 그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수단적으로 해석하여 교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 근거가 잘못되면 거기에 근거한 모 든 교훈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교훈의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전파되는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자세 히 공부하고 검토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행17:11). 여기에 진정한 영적인 성 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9 목회칼럼( ) 새벽기도회는 중요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의 성도라면 우리나라의 교회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여 주었으며, 당시의 역사적 상 황에서 복음의 영향력이 무엇이며,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미친 영향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샘교회의 성도라면 역시 한샘교회의 역사와 우리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어떤 분들이 어떤 봉사를 하였고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는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있었던 중요한 순간들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기록하 고, 그때에 있었던 일과 설교를 담은 주보를 한 해가 지나면 책으로 만들어 보 관합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그의 유명한 책 역사란 무 엇인가? 라는 책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것은 현재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의 역사적 상황에서 복음적인 책임을 다하며 더 발전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를 공부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특히 1907년 평양에서 있 었던 대부흥운동에 대하여 자세하게 공부해 보기를 바랍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의의와 역사적 평가에 대하여 여러 교회 사가들이 기록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은 부흥사경회를 통하여 전해진 하나 님의 말씀에 기초한 철저한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회개운동은 단순히 개 인의 영적인 갱신에 그치지 않고 교육열과 금연, 금주, 우상숭배에서 해방, 여성 의 지위향상, 세계관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사회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한 국사회의 악습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일부다처제의 관습과 노름, 조상숭배 등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양 대부흥운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민경 배 교수가 쓴 한국기독교회사 에 보면 길선주 목사가 평양에서 한국 최초로 시작했던 새벽기도회의 뜨거운 열정이 대부흥 운동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연세대학교출판부, 1996., 267). 사실 새벽기도회는 우리나라 교회역사 를 보면 우리나라 교회의 성장의 기초였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 큰 영향을 미 친 유명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박윤선 박사는 한국교회의 부흥은 새벽기도회에 있다고 그가 쓴 논문 가운데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영성신학자인 리차드 포스터 도 그의 책 기도 에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가 교회의 성장과 영적인 변화
10 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서울의 명성교회의 새벽기도회 를 다루고 있습니다(두란노, 1996., 267). 새벽기도회는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 게 된 직접적인 동기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르치고 있는 신학대학원의 목사후보생들은 말할 것도 우 리 교회의 성도들에게 제일 많이 강조한 부분도 새벽기도회입니다. 교회를 개척 하여 섬기면서부터 과거 훌륭한 목회자들이었던 리처드 백스터의 참 목자 상,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와 설교자, 찰스 스펄전의 목회자 후보생들 에게,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 등의 책을 비교적 자세하게 읽었습니다. 그런 데 이 책들 가운데 어떤 책도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 책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교회를 개척하여 섬겨보니 교회 역사 속에서 보여주었던 믿음의 선배들의 경험들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도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하 여 새벽기도회를 강조하였고, 특별새벽기도회 를 분기별로 가져 훈련하기도 하 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누구도 자기 스스로 하루에 몇 시간씩 규칙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계 교회의 역사에서 마틴 루터는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한 것으로 기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 체 속에서 함께 공동생활을 하거나 정해진 시스템 아래에서 규칙적으로 기도함 으로 기도의 능력과 신비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기도와 명상에 관한 중요한 책을 쓴 분들이 대부분이 수도원이나 교회에서 정해진 시스 템 아래에 있으면서 경험했거나 특별한 환경인 선교적 상황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기록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 까요?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의 부흥도 교회공동체 안에서 정해진 시스템이 중 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의 목회방침 가운데 새벽기도회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둘 수밖에 없 고, 새벽기도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다루는 일을 맡길 수밖 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가 영적인 생명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생명은 성령의 역사와 기도로 이식되고 성 장하도록 디자인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도생활을 해보면 존 번연이 아침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그날의 나머지 시간에도 하나님을 발견하기 힘들다 라고 한 말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11 목회칼럼( )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가져라 제가 결혼할 때 기도해 주셨던 목사님께서 한 부부가 회심하게 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 분들이 회심하게 된 데는 이 분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딸과 교회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가정에 특별히 신주단지를 모시면 서까지 우상숭배하며 교회를 다니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모시던 신주단지들이 밤마다 공격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였고, 각종 질병 으로 시달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딸이 믿는 예수를 믿자 모든 귀신들이 물러 가고 몸이 치료가 되기 시작하고 평안해지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일 이후 로 모든 신주단지들과 그와 관련된 모든 기물들을 버리고 옷들과 태웠습니다. 이 사건은 작은 사건처럼 보이지만 복음을 전할 때 사탄의 세력이 믿지 못하도 록 강력하게 역사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하시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항상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 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 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역사에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신학교 1회 졸업 생인 이기풍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원래 평양의 유명한 깡패였 습니다. 그는 사무엘 모페트(Samuel Moffett)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할 때 돌을 던 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목사가 되고 우리나라 최초 의 제주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를 가리켜 사무엘 모페트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6년 전에 평양거리에서 나에게 돌을 던졌던 그가 한국 장 로교회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H. G. Underwood, The Call of Korea, 173) 우리 가 주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때로 남편이 가장 걸림돌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아 내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직장의 동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을 믿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직접 전도지를 집집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접촉점을 찾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함으로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 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 사람이 변하는 것은 돈이나 물질 적인 생활을 도우는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빈민선교에 힘썼던 김진홍 목사님의 신앙간증집인 새벽을 깨우리로다 의 맨 마지막 부분 에 보면 흥미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 람들에게 1차적으로 먹을 것을 주고 자활하여 생활이 안정되어 먹고 살 수 있는
12 환경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돈에 눈이 멀어 돈 때문에 싸우게 되고, 술에 빠져 가정에 큰 고통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까지 의 선교방향을 바꾸고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 죄사함을 얻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물질적인 풍요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 것 때문에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은 오늘 여전히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1차적으로는 복음입니다. 교회가 도덕을 전파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도덕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 변화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각 사람들이 각자 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 기 독교적인 이상이 실현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는 일 에는 많은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도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 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사도 바울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 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탁월한 전도 기술을 가지고 전해도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은 전도의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특 히 사도행전 13:48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라고 하였습 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을 전파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문을 열어주시기도 하고, 또한 특이 한 방법으로 섭리하셔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 것입니다(행14:27). 이것이 복음 을 전파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전하여 제자삼는 일에 열심을 내어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일 확 인하는 구호인 복음은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능력입니다 라는 구호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김으로 사실로 입증되기를 바랍니 다. 목회칼럼( )
13 목회칼럼( ) 기도와 성경공부 글 : A. J. 폴 / 번역 : 박우택 목사 1. 언약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당신을 죄인들에게 계시하 시고, 우리에게 믿음으로 응답하도록 명하시고 있습니다. 믿음은 선포된 말씀으 로부터 오는 것입니다(롬10:17). 성령님께서는 성례(세례와 성찬)를 통하여 우리 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주간은 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 는 신자의 건강한 영적인 생활을 위하여 필수적입니다. 식사시간에 가족들이 둘 러앉아서 성경을 읽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읽은 것의 의 미에 초점을 맞추고, 그 말씀을 여러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항상 가지 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기 위하여 시간을 계속하 여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매일의 삶을 헌신 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이 유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2. 기도 교리문답 주의 날 45-52번째 주일 1) 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교훈 과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 에 관하여 기도해야 할는지에 대하여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주기도문에 나타 난 각각의 기도에 관하여 교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것을 읽으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의 기도에 넓이와 깊이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성경 을 공부하기 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성경을 연구하는 일을 마칠 때 다시 기도함으로 하 나님의 말씀에 응답하십시오. 3. 묵상 성경공부를 계속하는 한 우리는 성경을 단지 읽을 뿐만 아니라 그 성경의 의 미를 묵상해야 한다는 중요성도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 1) 역자 주 : 여기서 주의 날(Lord's Day) 45-52번째 라고 하는 말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문에 나타나는 내용을 말합니다.
14 과 사역에 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위하여 주님이 우 리에게 계시하신 것에 관하여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 의미에 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어떻게 계시하시는지에 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 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시145:5). 그리고 시 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시119:148). 또한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시11:5)라고 하였습니다. 4. 실제적 지침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약간의 도움의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지침들입니다.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다른 면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1.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 자신의 말로 요약하십시오. 여러분은 그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주석성경이나, 성경에 대한 믿을 만한 주석을 사용하는 일은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본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본문이 나타나는 문맥, 장, 그 본문이 속해 있는 성경, 그리고 전체 성경의 조명을 받아 이해하십시오. 이 문제에 대답 하기 위하여 다음의 질문들을 유의해야 합니다. (1) 하나님에 관하여 계시된 것은 무엇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 무엇입니까? 2) (3) 본문과 우리 삶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a.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 b. 어떤 의무나 책임이 있습니까(명령이나 금지, 격려나 권고, 긍정적인 모범이나 부정적인 모범)? c. 우리가 유의해야 할 어떤 경고나 위협이 있는가? 3. 본문에 관하여 생각함으로 여러분이 주님 앞에 무엇을 기도로 아뢸 수 있 습니까? (A. J. Pol, "Prayer and Bible Study", Clarion 제45권, 1호) 2) 역자 주 : 이것은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또는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기 도 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핵심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본문을 읽을 때 그 본문 에서, 특히 구약의 본문일 경우 오실 그리스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 다(눅24:27, 44; 요6:39-40).
15 목회칼럼( )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글 : J. 패커 / 번역 : 박우택 목사 입원 중에 치유를 위해 기도했던 나의 믿지 않는 친구는 지금 건강하게 잘 지 내고 있습니다. 역시 입원 중에 치유를 위해 기도했던 내 그리스도인 친구는 건 강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요? 통 계자료들은 어떤 사람이 어떤 형태의 기도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든 아니든간에 환자들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 미가 있을까요? 일반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곤경에 빠졌을 때 탄원의 기도를 드리려는 본능 역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곳 에서 위기가 닥쳐올 때면 신앙을 가진 자이건 아니든 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게 하시고 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곤경 에 빠진 무신론자는 없다는 격언은 이런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곤란 중 에 기도하는 일은 삶의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환자들이 기도할 때 그들을 돌봐 주고 치료해 주는 하나님에게 무엇이든지 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내적으로 평안을 얻어 실제로 치유함을 얻는 일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참되 신 하나님은 진실로 자비로우시며 관대하시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들이, 그들 의 신앙과 삶이 모든 면에서 불경건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기도대로 건강함을 얻게 되는 일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러한 것에 대한 통계자료를 하나 님의 대한 증거로 이해하는 일도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이보다 더 견고한 기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스도인들은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을 그들의 언약의 주요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 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렇게 믿고 기도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 의 기도는 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하고, 성령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에게 말 한다는 점에서 삼위일체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들의 대속적인 죽음과 아버 지의 자녀와 후사가 됨으로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는 아버지의 약속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언제나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 고 기도합니다. 또한 그들은 만약 그들이 무지와 지혜의 부족으로 인하여 자신 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의 하나님은 그들 에게 참으로 더 좋은 것을 주심으로 그들에게 응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 다. 예를 들어 바울이 자신의 몸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를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서는 그 가시를 그대로 남겨두신 채 그가 자신의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에
16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치유를 위한 간구나 그 밖의 어떤 것도 마술적 주문이 아닙니다. 또 한 기도는 부흥사들이나 일부 목사들이 건강과 부, 부흥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 다. 어떤 경우는 치유를 위한 비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치유됨으로 우리를 놀라 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치유를 비는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음으 로서 우리를 당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할 수도 있고, 당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구하 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라는 말씀은 항상 진리입니다. 또한 그들이 구할 때 하나 님으로부터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길게 본다면 그들에게는 항상 가장 좋은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당시에는 실망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렇 습니다. James Packer, "When Our Prayer Is Not Answered", Christianity Today
17 목회칼럼( ) 목회자로서 비중을 두는 일 1 대개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목회에서 가장 비중을 두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설교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 의 말씀을 전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고 구원(생명)을 얻게 하는 일입 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실 때 이 일을 또한 우리에게 위임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그러 하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일의 대부분은 설교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그의 사역 가운데 제일 중요한 일을 설교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의 커리큘럼 가운데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 설교를 잘 할 수 있도록 교리와 성 경주석 방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 르치는 일이며 이 말씀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믿기에 제일 비중을 둡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많은 시간을 설교를 연구하고 준비하는 일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는 뛰어난 언변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말을 잘한다고 해 서 설교를 잘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부흥의 역사에 보면 설교를 잘 한다 고 할 때 설교를 전달하는 테크닉, 소위 언변이나 제스처(gesture)를 잘 사용한다 고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William Franklin Graham)은 뛰어난 언변도 가지고 있고, 신학적 지식도 함께 갖춘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변에 뛰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학적 지식이 얕고 천박하 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에서 두 분의 잊지 못할 스승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 분들은 화란 개혁교회 목사님으로 닉 호체 스(Nick Gootjes) 교수님이시고, 또 한 분은 존 배토우(John Batteau) 교수님이십니 다. 이 분들은 예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성경적인 원리에 입각한 깊이 있는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위대함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두 분을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1차 대각성 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는 전형적인 원고 설교 자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원고를 작성하여 감정을 섞지 않고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으로 설교하였습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원고를 읽어 내려 갔습니다. 제가 지금의 설교방식에 영향을 받은 주신 분은 호체스 교수님과 존 배토우 교수님, 로이드 존스,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입니다. 특히 저는 설교 원고를 다음 주일에 성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주보에 싣고 있 습니다. 이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18 것은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해 석하는 안목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올바른 성경해석원리 에 따라 의미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개인과 교회와 사회에 적용하는 일이기 때 문입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말에 대하 여 책임을 지기 위함입니다. 오랫동안 강의와 설교를 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준 비된 원고가 없이 말로 한 두 시간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교 를 기록하는 일은 설교의 표현을 다양하게 하고, 너절한 언어사용이나 판에 박 힌 말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바른 설교를 들을 때 믿음이 자라고 구원을 이루어갈 뿐만 아니라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일에 제일 큰 비중을 둡니다. 설교가 귀에 들리려면 성경의 핵심개념과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가끔 TV를 볼 때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습니다. 그때 저는 쟤들이 왜 웃어? 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웃음을 유발하는 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일종의 신호체계인데, 이 신호체계를 모르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학문적인 용어로 바꾸면 선 이해, 선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언어라는 신호체계로 기록되었기 때 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려면 언어를 알아야 하 고, 성경의 기본개념을 확인하고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러한 이유에서 우리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생명의 삶 과정을 반드시 이수하고 통과해야 합니다. 기본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이 열리도록 이 생명의 삶 을 가르치는 일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는 지식과 논리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일을 위하여 몇 시간씩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 다. 이 기도하는 일을 담금질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담금질(quenching) 은 고온에서 만들어진 금속을 물이나 기름에 담가 빨리 식혀서 결정구조가 변형 되지 않게 만들뿐만 아니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과정을 말합니다. 기도는 이와 같은 원리로 설교를 더 단단하고 예리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우 리 교회 성도들이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생명을 얻기도 하고, 죄를 깨 닫고 회개하기도 하고, 우리의 존재와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 설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19 목회칼럼( ) 교회는 일꾼 세우기를 갱신하라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많이 애독하는 목회와 신학 (두란노, 2004, 11월호) 특 집에 교회는 일꾼 세우기를 갱신하라 라는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아마도 각 교 회들마다 11월이 되면 내년에 교회에 봉사할 일꾼 세우는 일에 기도하면서 준비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교회에 일꾼으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그 교회공동 체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서 직분자를 세우는 목적은 교회가 복음전파를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하나 님 나라의 이상에 이 땅에 구현하여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늘날 교회는 직분자를 세워 교회의 본래적 기능을 잘 감당하 려고 세우지만 직분자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거나, 또한 교리적인 기초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유교적 전통과 잘못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교회의 직 분을 수직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은 교회의 직분을 섬김과 봉사의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 때문에 교회의 직분이 왜곡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는 성경적 인 기준과 거기에 따른 합리적인 검증이 무시된 채 일단 직분을 주면 싫던 좋던 그 교회를 떠나지 않게 되고, 일정한 헌금도 하게 되리라는 생각 때문에 직분자 로 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크고 작은 거 침돌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목적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존재가치와 의의를 알고 그 사람을 세운 공동체나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때 로는 교회가 사람을 잘못 세워 조직이나 공동체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 거나 큰 걸림돌이 되어 교회와 목회자에게 큰 시험거리가 되는 사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잘 세워야 조직이 건강해 지고, 그 조직을 통하여 인간 의 연약한 본성도 극복하며 그 조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합니 다.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교회의 조직이 건강해야 하고, 탄력적이어야 합니 다. 조직이 건강하다는 것은 그 일을 하기에 인격적으로나 은사적으로 적절한 사람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이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조직에 적 절한 사람을 더 세울 수도 있고, 또한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만두게 하여
20 다른 사람으로 그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건강 하지도 못하고 비탄력적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교회가 직분자들을 세우는 현 상을 보면 교리적인 기초가 없고, 공적인 예배에 제대로 출석을 하지 않아도 직 분을 주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한번 집사직을 받으면 그때에는 대개 평생 그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 다 니는 사람의 호칭이 집사님 으로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예배 에 제대로 출석을 하지도 않고 봉사생활과 사회생활에 덕을 세우지 못해도 직분 을 그만두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한 부서를 맡아서 봉사할 때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이 전혀 탄력성이 없습니다. 어떤 공동체나 조직이든지 사람을 세우는 일도 어렵지만 어렵게 세운 사람을 그만두게 하는 일 처럼 곤혹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욱 어려운데 교회는 그 직분을 통하여 그 사람을 세워가는 한 과정으로도 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일은 규모가 작은 교회일수록 더욱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섬기는 교회같은 경우에는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들을 집사와 장로로 세우되, 서리집사는 3년 사이클로 세우려고 개척당 시부터 규정을 정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규정조차 제대로 지 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규정을 지키려고 하면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 입니다. 특히 장로는 더 엄격한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교회의 경우 장로 는 교회의 인사권과 재정권과 정책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당회의 회원이 되기 때 문에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예배생활과 교회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에 모범이 되 지 못하면 교회의 가르침에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 의 말씀대로 살 것을 권면하는 일이나 기도하는 일을 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서 직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성경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적용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J. Calvin)은 기독교강요 라는 책에서 교회의 직분자들 을 가리켜 모든 믿는 자들을 한 몸에 연결시키는 신경조직이라고 하였고, 그리 스도를 대신하여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성취할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강한 신경조직을 가지고 교회에 위임된 본연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 하여 좋은 직분자를 세워야 하고, 그 직분자들이 제대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계속 건강해져서 하 나님께서 교회의 정체성을 구현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이 땅에 실현시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 일꾼 세우기는 갱신되어야 합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21 목회칼럼( ) 목회자로서 비중을 두는 일 2 저는 목회자에게 있어서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배우지는 못했습니 다.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에도 목회자가 왜 기도해야 하며, 기도가 목회사 역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큰 교회에 부교 역자로 있을 때에나 한 기관의 지도교역자로 있으면서도 기도에 대한 부담을 가 져 본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없이도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 혹 신학대학원 채플에 설교하러 오시는 목사님들 가운데 기도를 많이 하신다고 알려진 목사님들이 오셔서 설교하면 본문과 관계가 없이 설교하시는 것이 대부 분이었습니다. 이것이 신학의 한계 때문이라면 기도는 이것을 변화시키는 무엇 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기도가 목회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아주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면서 저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이와 함께 여러 가지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고 사랑으로 가르쳤음 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삶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근본적으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우리 믿음의 선진들 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여러 경건서적들을 읽으면 기도에 눈을 뜨기 시작하 였습니다. 특별히 경건생활과 기도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해준 책이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 의 제3권인 20장 기도 편에 기록된 글입니다. 처음 이 책을 영 어판으로 읽었을 때 줄을 그으면서 읽었는데 그 느낌은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 지만 저로 하여금 읽는 순간부터 오랫동안 가슴이 떨리는 감동과 함께 이상한 은혜가 저를 휘감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 책이 4권으로 된 구성 가운데 1권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대하여, 2권이 구속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 으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기록하고 있고, 3권이 그리스도 안에 이 루신 구속의 은혜를 받는 방법에 대한 부분으로 성령사역과 믿음과 말씀순종과 함께 기도를 기록하고 있고, 4권이 구속의 은혜를 전달하는 외적인 방편인 교회 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 다. 칼빈은 이 책에서 기도는 믿음을 실행시켜 현재화하는 주된 방법이며 날마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다 (III. xx. 1.)라고 설명한 말이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사라지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웨슬리 듀엘(Wesley L. Duewel)이 쓴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 라는 책과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의 기도 라는 책이 기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습니 다. 그리고 오래 전에 역시 저에게 감동을 주었던 책이 E. M. 바운즈(E. M.
22 Bounds)의 기도 라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들 외에도 기도에 대한 많은 책들이 기도에 대하여 저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과 더불어 기도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였 던 것은 저의 목회와 강의경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제자로 삼는 일 은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 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영적인 생 명은 성령의 역사와 기도로 이식되고 성장하도록 디자인해 놓으셨기 때문입니 다. 특별히 목회자라는 직업 자체가 일반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하고 어려운 일입니다만 특별한 은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야고보서 5:13-14 에 보면 장로들 을 청하여 기도하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한 말씀을 믿고 성도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대부분의 문 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예배시간에 목회기도 를 할 때 불치병이 치료되기도 하고, 고통이 그 순간 떠나게 된다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어 사람이 변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 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별새벽기도회 를 통하여 예배당 이전과 구입의 문제, 교회 성도들의 질병과 특별한 이슈들이 해결된 것 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성도들의 믿음을 자라게 만들었고 제 자신도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자극을 주었고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의 목회사역에서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을 설교하는 설교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 데 부어주시는 은혜의 중요한 방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사람을 변화 시키는 일입니다. 이 설교는 일반 강의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가리켜 E. M. 바운즈는 기름부으 심 (unction)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없이 기름부으심은 설교자에 게 임하지 않는다 (E. M. Bounds, Power Through Prayer, Zondervan, 1979., 70)라 고 하였습니다. 지금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름부으심은 설교 시에 나타나는 성령의 신비로운 현상으로서 설교와 다른 의사소통 사이를 구별해 주 며 열심이나 열정이나 수사학적인 기술 이상의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Richard Foster, Prayer, Harper Collins, 1992., 115). 이러한 이유에서 저의 목회사 역에 기도에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동역자들에게 바울이 나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엡6:19)라고 기도를 부탁한 것처 럼 기도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습니다. 목회칼럼( )
23 목회칼럼( ) 성화교리의 특성 성경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켜 성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 도 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로 거룩한 무리들 이라는 뜻입니다. 이 성도라는 용 어 자체가 우리 믿는 신자들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자들이고, 또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독특성을 설명하면서 거룩함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거룩한 자들이 고, 또한 거룩해야 한다는 사상은 구약과 신약에 거듭 강조되고 있는 사상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 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고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사도 베드로 는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이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직 너희를 부르 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 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5-16)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그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 이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거룩 이라는 의미가 많이 오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책을 옆에 끼고 특별한 제스처를 사용하면서 목소리까지 이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거나, 때 와 장소도 구별하지 않고 아멘 이나 할렐루야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이러한 사람을 만나면 혐오스럽고 구역질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외형적인 폼은 거룩한 체하고, 신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쓰는 용어가 그의 삶 과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대개 머리속에 쉽게 연상될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행동이 아 니라 혐오스러운 행동입니다. 성경적으로 거룩하다 는 말은 구약성경에는 주로 세속적인 사람이나 사물로 부터 구별하여 주로 제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시편이나 선지서 등에는 의롭게 살고, 진리를 말하며, 정직하게 행동하며,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과 동행 하는 행위가 포함된 윤리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시15:1-2; 미6:8). 신약성 경에 나오는 거룩하다 (hagios)라는 용어도 구원받은 성도에게 적용될 때는 그 리스도와 연합하여 윤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면 이미 거룩하게 되었고, 그 신분에 합당한 거룩한 특성들이 드 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화교리의 특성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프린스턴 대학의 존 머레이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얻어 이미 거
24 룩한 자가 된 것을 가리켜 즉각적인 성화 (Definitive Sanctification)라고 하였고, 계속적으로 완전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 을 가리켜 점진적인 성화 (Progressive Sanctification)이라고 구분하였습니다. 이 구분은 참 중요한데 성화에 대하여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 니다.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인하여 즉각적으로 거룩한 자가 되어 성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생애 전체에 걸쳐서 점 진적이며 계속적으로 성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즉각적 인 성화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며 은혜의 선물이지만 점진적인 성화는 인 간의 책임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 당시 고린 도 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 (고전 1:2)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 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 이 하자 (고전7:1)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서 이미 이루어진 일이고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수동적인 자세 로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인간의 책임적인 요소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이 가능하도록 모든 믿는 자 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중요한 직분을 맡아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그 삶에 변화가 없다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신분적으로 성화가 되었고, 또한 성화 를 이루어가야 할 책임적인 요소가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 오늘날 구원을 받는 것과 성격을 구분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본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여전히 옛사람의 성품을 버젓이 행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도대체 어 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 말대로 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사역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성령을 주신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면 이 미 신분적으로 거룩한 자가 되었고, 동시에 일상생활 속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어 야 할 책임이 있고, 실제로 그 생활에 거룩의 특성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질문해 보아 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성화된 사람이고, 또 한편으로는 계속적 으로 성화를 이루어가야 할 특성을 가진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25 목회칼럼( ) 고통과 하나님의 섭리 우리 신자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문제가 고통의 문제입니다. 신자가 세상에 서 살아갈 때 고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부터는 어려운 문 제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신자가 되면 고통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참된 신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 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고통을 당할 때도 많이 있습니 다. 우리 인간이 가진 이해력으로 그 고통의 문제를 풀기에는 상당히 어렵습니 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인 에뉴마 엘리쉬 (Enuma Elish)에 보면 인간은 악한 신의 피로 만들어진 더럽고 천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들의 안식을 위해 평생 고통하며 노동해야 합니다(Ancient Near Eastern Texts, 68). 만약에 우 리 인간이 이 신화에 나타난 존재라면 고통을 체념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존재적 특성 자체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 경의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복과 안식을 누릴 수 있도 록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선으로 통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믿음과 현실이 마치 괴리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욥과 같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이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이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죄 없 는 사람에게 그렇게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고통이 임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하 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중요한 원리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와 실제로 우리 가 경험하고 있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러한 문제를 이론적으로 풀어보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중 에 한 분이 유명한 C. S. 루이스입니다. 그 분은 고통의 문제 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믿는 교리와 현실을 비 교하면서 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 싶어 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 소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인데 현실적으로 인간은 행복하지 않고 고통이 많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존재이거나 능력이 없는 존재이든지, 아니면 선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39) 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고통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 지 않다는 것이고, 고통에서 자유케 할 능력이 없는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 다. C. S. 루이스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이
26 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고통 과 하나님의 섭리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입니 다. 때로는 인생이 고통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사인 저도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며 갈등하며 때로는 밤을 하얗게 새면서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다룬 논문과 책을 수없이 읽었습니다.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완전한 답은 얻을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에는 우리 인생이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요 소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고통을 조사해보면 인간의 죄 때문에 고통이 오기도하고, 욥 처럼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고통을 주시기도 하고, 우리 인간 개인의 의지작용과 전혀 관계없이 세계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로 인하여 고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오히려 고통을 받을 때 우리는 당황해 하고 고통합니다. 이때에 해결책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모든 것 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에 있어서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확실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문제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방식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유익과 선함과 완전한 나라를 이루시 기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에 비추어볼 때 불합리하게 보여도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 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지혜입니다. 이 경우에 우리 믿음 의 조상들은 우선적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 하고 자세하게 살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더 많이 읽고 기도도 더 많이 하였습 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그들의 죄 때문에 주신 징계라면 회개하는 기회로 삼았고, 하나님이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들의 믿음과 삶의 지위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시켜주시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통치방식의 목표를 믿고 믿음으로 산다면 여러 가지 고통으 로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27 목회칼럼( ) 신앙의 기본을 훈련하라 저는 개인적으로 테니스 경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테니스 선수인 존 매캔로, 보리스 베커, 마이클 창, 피터 샘프라 스, 안드레 아가시,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등의 선수와 여자 선수로는 슈테 피 그라프, 마르티나 힝기스, 마리아 샤라포바 등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테니스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것은 테니스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수년간 테니스를 쉬었다가 지난해부터 몇 몇 목사님들 과 함께 만나다 보니 다시 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테니스를 하자 공 이 잘 맞지 않았고 기본기가 많이 흐트러졌습니다. 치는 공도 회전이 걸리지 않 아 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코트 밖으로 나가거나 네트에 걸리기가 일쑤였습니 다. 그래서 약 2달 정도 과거 테니스 선수 경험이 있는 테니스 코치에게 레슨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전의 구위를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었고, 가장 기본이 되는 스트로크와 서브와 발리가 자리잡혀 갔습니다. 이제 경기가 다시 재미있어 졌고, 테니스를 즐기고 있습니다. 운동도 훈련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로저 페더러 선수가 그의 연습 파트너로 한국인 유 다니엘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가 돈을 내어서라도 배워 야 할 판이었지만 2009년 2월 20일부터 3월 6일까지 2주일간 UAE(아랍에미리트 연합) 두바이에서 페더러의 훈련 파트너를 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고, 항공 비는 물론, 숙식과 체재비까지 전액 페더러가 부담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유 다니 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 테니스 명문 닉 볼레 티에리 아카데미에서 엘리트 훈련을 받은 선수였습니다. 그가 선택된 데는 오른 손잡이인 페더러가 왼손잡이인 나달의 끈질긴 포핸드 공격과 강한 스트로크를 훈련하기 위하여 나달과 같은 유형의 선수이면서도 왼손잡이였기 때문입니다. 유 다니엘 선수는 그의 공을 받으면 라켓이 휙 돌아가고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 더군요. 이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2주일째 되니까 약간 적응이 됐어요. 라고 말했 습니다. 그리고 유 다니엘은 페더러로부터 테니스가 하루아침에 느는 것은 아니 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훈련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라. 라는 위로의 말도 들었 답니다(chosun.com. 2009/03/18). 제가 지금까지 제가 테니스를 다시 시작한 이야기와 페더러가 훈련한 부분을 말한 것은 비단 테니스만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 함입니다. 기본기는 가능한 한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이 좋듯이 좋은 신앙의 지 도자에게 기본을 배우고, 또한 옆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고 배 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생명의 삶 과정에서 기본적인 신앙의 내
28 용을 배우고, 목장에서 기본기가 어느 정도 훈련된 목자, 목녀를 통하여 보고 배 우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지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적으로 이해된 하나 님의 말씀이 생활 속에 나타나도록 철저하게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적 용하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 금식하는 훈련, 다른 사람을 섬기는 훈련,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을 가리켜 경건훈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리 브릿지스는 이 일을 가리켜 그의 경건에 이르는 연습 이 라는 책에서 경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향 한 헌신 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습니다(18). 이 일은 시간이 들고 돈이 드는 일입 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함을 배우게 되고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였다 고 할지라도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책임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인생의 선택적인 요소가 아니라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본질 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에는 다니고 있지만 구원의 은혜를 절대로 경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는 교회생활은 오랫동안 하였지만 신앙의 내용도 모르고 그냥 교회 안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 자신은 하나님을 믿 는 신앙이라고 말은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잘못된 관념이나 경험이 신앙이 되어 버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교 리적인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교리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있고, 그 교리내용을 경험조차 해 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할 때 말씀의 맛을 알고, 감동을 느끼며, 그 말씀을 생활에 실천할 수 있는데 이 말씀을 경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예수님의 비유에 돌밭에 뿌려진 씨나 가시덤불에 떨어 진 씨처럼 결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 알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어떤 직분을 맡겨 봉사하며 은혜를 누리게 하고 싶어도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 틀에 박힌 듯이 신앙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거리가 멀고 추상적이고 막연한 개념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신앙의 기본인 언약과 십자가의 교리를 확 인하는 것은 참 좋습니다. 과거 교회의 역사 가운데 진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난 때는 십자가의 복음을 들었을 때이고, 또한 신앙이 나태해졌을 때에도 회복할 수 있는 힘 역시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이번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을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묵상하고 신앙의 기본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칼럼( )
29 목회칼럼( ) 금식기도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의 심문과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마지막 일주일간의 사건을 기념하면서 고난주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간의 지상생애를 사신 것 그 자체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역사 가운데 예 수님이 지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일 가운데 클라이맥스가 예 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금식하는 아름다운 전통 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우리 믿는 자들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 면서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금식기도는 영적으로 많 은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도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금식하는 기도는 더 분 명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기도와 별개의 문제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금식과 기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도와 금식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미스바에서 사무엘이 온 백성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라고 하였고, 거 기에 모인 백성들은 금식하면서 여호와께 범죄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삼상 7:5-6; 참고. 삼하12:16, 21-23; 대하20:3-5; 스8:21-23; 눅2:37; 행13:2,3 등). 이 후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고 나라가 새롭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이 쓴 유명한 책 기독교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도 금식을 기도와 연관시켜서 말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중대한 문제 에 대하여 기도할 경우 금식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면서 금식은 기도를 더욱 정성스럽게 하며 기도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려는 것 이라고 하였 습니다. 그래서 금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아 주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기 울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금식이 신자의 생활에서 거의 잊혀져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있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원인 이 어디에 있을까요? 첫 번째로는 금식하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 금식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어떤 종류의 음식도 먹지 않는 것을 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하기 싫어하는 경향들이 금식을
30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절박하게 사 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정말로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문 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 성을 절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리차드 포스터가 지적한 것으로 건강에 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Celebration of Discipline, 47-48). 그러나 우리는 금식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금 식기도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진리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성 도들은 금식하는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숙하게 체험하고 있지 못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한가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웨슬리 듀엘(Wesley Deuwel)이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 라는 책에서 아주 적절하게 말하였습니다. 금식은 우리 기도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능력을 더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이다. 만일 우리가 금식의 특권을 이용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만큼 영적으로 더 빈약해 질 것이며 우리의 기도 생활 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104) 금식은 하나님의 은혜 를 깊숙하게 체험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은혜의 방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난주간을 맞아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우리 성도들 이 금식기도를 많이 활용해 보기를 원합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에 금식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는 40일간 두 번이나 금식하였고(신9:9, 18), 다윗은 그의 아들이 병들었을 때에 금식하며 기도하였고(시35:13), 백성들의 죄악 으로 인하여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시69:9-10).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들이 전 쟁터에 나가기 전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대하20:17). 엘리야, 에스라, 느헤미 야, 에스더가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성경 안에 기록된 사람들만이 아니라 교 회 역사를 보면 많은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금식을 하였고 그 가치를 증언하였 습니다. 마틴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등 이 그러하였습니다. 이는 금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방식이었을 뿐만 아 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영혼을 새롭게 하며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입는 방법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 고난주간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 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교 회가족이나 우리 이웃과 민족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금식해 보기를 권합니 다. 이 금식을 통하여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맛보고 구원을 경험하였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구원의 하나님을 더 풍성하게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31 목회칼럼( ) 영적인 슬럼프 사람들에게 누구나 소위 슬럼프 (slump)라는 것이 있습니다. 슬럼프 라는 말 은 원래 지질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지층의 암설( 岩 屑 )이 간헐적으로 아래로 미 끄러져 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용어가 심신의 상태 또는 작 업이나 사업 따위가 일시적으로 부진한 상태에 빠지는 경우에 더 많이 사용합니 다. 예를 들어 지금 일본의 요리우리 자이언츠에서 4번 타자로 맹활약을 하는 이승엽 선수가 일본에 진출한 후에 첫해에 성적이 상당히 부진하였습니다. 이때 에 슬럼프에 빠졌다 라고 하고, 또한 경제적인 불황이나 불경기에 빠진 경우도 슬럼프에 빠졌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슬럼프는 영적인 생활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기독교 에서 이러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영적 침체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영국 이 낳은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C. H. Spurgeon)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자신 의 경험을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지독한 영적 슬럼프로 인하여 많은 고통과 두려움을 겪고 있기에 여러분들 중에는 제가 처한 그러한 극도의 처절함을 겪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소원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당대 에 가장 뛰어난 설교자요 교육자였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늘 가까이 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을 볼 때 그에게도 영적인 슬럼프가 찾아와 고통스럽고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슬럼프는 사람을 차별하여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간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하 여 낙심할 때도 있고, 고통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슬럼프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떤 경우는 외부적 인 환경이 어렵고 힘들 때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 대개 신자들이라면 신 실하신 하나님의 인격과 약속을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해도 계획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풀려지지 않거나 나아가야 할 진로문제가 불투명하고 그 끝이 보이지 아니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회 의를 느끼게 되고, 예배생활과 봉사생활과 기도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또 어떤 경우는 외부적인 환경과 전혀 관계없이 자기 스스로 싫증을 느껴 침 체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금붕어를 키우는 일을 너무 재미있어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붕어의 종류와 특성까지 다 외우면서 관심을 기울였 습니다. 지나가다가 수족관이 있으면 들어가서 새로운 종류의 금붕어가 나왔는 지 보고 자기 집의 금붕어를 보며 어항을 관리하고, 금붕어가 자랄 수 있는 어
32 항 안을 예쁘게 장식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항에 이끼가 끼고 금붕어 에 이상이 생겨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런 이유가 없습 니다. 그냥 싫증이 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이 자기 내부에서 자기도 모 르는 사이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흥미가 떨어지고 의미를 잃어버려 타성에 빠지게 되고 기쁨을 잃어버려 침체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영적 인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침체의 늪이 끝없이 이어져 어 디까지 갈까 염려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 슬럼프 현상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 납니다.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을 많이 합니다. 예배시간이 즐겁지 않고 그 결 과 예배에 빠지는 일을 예사롭게 하며, 매일 성경을 읽지 아니하며,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게 되고 매사에 부정적인 사고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경우에 대개 하 나님을 섬기는 일은 의미가 있는가? 교회를 섬기는 일이 어떤 유익이 있는 가? 기도하는 일은 의미가 있는가?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형태가 길 어지면 어느새 신자로서 품위와 삶을 잃어버리게 되고 삶의 기쁨과 풍요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사실 저도 이러한 영적인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 나 슬럼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영적인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슬럼프를 만날 때 믿음이 표현이 되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이때에 믿음생활에서 이탈하 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유명한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에게 슬럼프를 당할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슬럼프에 빠지면 더 많은 연습을 통해 정상을 되찾곤 합니다. (조영탁, 행복한 경영이야기, 562호)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도 이와 동일합니다. 성경을 연 구해 보면 영적인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는 특별한 묘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슬 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생활에 기본기 에 해당하는 예배생활에 충실하고 있는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생활에 적용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가? 기도생활은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가?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성실하게 최 선을 다하여 섬기고 있는가? 등을 확인하고, 이 일을 계속하여 하는 길 외에 다 른 방법은 없습니다. 성경은 이 외의 다른 방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 로는 갈등을 일으키고 힘들게 한다고 할지라도 인내하며 계속하여 믿음의 기본 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덧 영적인 슬럼프를 극복하고 더 나은 단계 로 믿음이 업그레이드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33 목회칼럼( ) 믿음과 현실 사이의 갭(gap) 제가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며 부르짖은 것 은 내 자신이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믿는 믿음과 나타난 현실 사이의 갭으로 인하여 오는 갈등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신 대로 의로우신 분이시고 또한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의하고 거짓을 말하며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형통하고 심지어 하 나님의 교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강남의 한 유명한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이 건강 한 상식을 가진 자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삶을 살았는데도 형통하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를 각 분야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온 세 상의 주가 머리로 계시는 교회, 하나님이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격과 삶을 유린하고 모해하며 고통스럽게 한 사람이 형통하고 있습 니다. 심지어 직접 흉기로 죽이거나 목을 매달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죽게 한 살인자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살고 있고,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로우시며 교회 안에 임재해 계신다는 믿음과 나타난 현실 사이의 갭으로 인하여 갈등이 있습니다. 믿음과 현실의 갭(gap)에서 오는 갈등은 목회자인 저에게 더 많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인 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과 은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말씀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 기쁨과 희망과 승리에 대한 내용을 설교하므로 위로하고 권면합니다. 하지 만 저의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무한한 능력, 말씀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을 설교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와 기쁨 과 은혜를 설교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공허함과 무력감과 분노와 좌절감, 의심 과 갈등이 있습니다. 때로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 사람들, 특히 유명 목사들의 농담거리로 사용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발판 정도로 사용되는 현실에 분노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 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분명 아름다운 결과와 미래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데 이상하게도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교회에도 역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 아 결과적으로는 목회자인 저를 믿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분노하고 가슴치며 통곡하곤 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때 더욱 그러한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34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가리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 고 단정을 짓고 정죄하곤 합니다. 심지어 제 주변의 목사님들도 제가 이러한 문 제에 분노하고 갈등하는 것을 듣고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훈계(?)하기도 합니 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이라면 이러한 갈등이 없는 것이 비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로 인하여 타락한 순간부터 인간과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부조리( 不 條 理 )한 현상으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감추어진 질서세계인 영적인 세계에서 사탄이 집요하고도 교묘하게 활동하기도 하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들이 자신 안에는 없는 것처럼 스스로 은폐하고 위장하여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말하 지만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일까요?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러한 감정과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도할 때는 언제나 거룩하고 신령하게 보이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바른 경건의 행동일까요? 성경 가운데 언약백성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기술한 시편은 성도의 기쁨과 감사와 정서만이 아니라 탄식과 괴로움과 고통과 분노와 불평, 의심, 두려움, 저 주 등을 여과없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삽은 시편 73:12에 볼지어다 이 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라고 불평하였고, 다윗은 악인들 을 향하여 시편 58:8에 소멸해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 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라고 저주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갈등하며 불평하고 저주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믿음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 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믿음과 현실의 갭(gap)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갈등과 고통이 있다면 이것은 불신앙이나 믿음 없음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시편 저자들의 대부분은 믿음이 없는 행동으로 정죄되어야 합니다. 믿음과 현실에 대 한 갭으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오히려 참된 믿음의 발로라고 보아야 합니다. 왜 냐하면 그러한 갈등이나 고통은 믿음대로 되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인하여 생긴 현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의 아픔과 느끼는 감정을 시편기자들처럼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믿음과 현실의 갭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과 좌절감과 고통, 분 노, 의심 등을 쏟아놓지만 동시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 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73:25-26)라는 성도의 고백처럼 믿음의 줄을 놓지 말고 더 굳게 붙들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은 단순히 갈등이나 불평이 나 분노로 머물지 않고 믿음을 현재화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35 목회칼럼( ) 교회와 교리 1 요즘 우리 한국교회는 교리를 무시하고 인간의 기호를 좇아가는 반 교리적인 경향들이 어느 시대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의 시대적 사조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시대사조는 절대적인 진리를 무시 하고 모든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포스터모더니즘 사상과 여기에 영향을 받은 종 교다원주의, 그리고 통일된 교리가 없이 모든 교파를 두루 만족시켜야 하는 복 음주의가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사조로 인하여 교리는 교회를 분열하는 것처럼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리는 교회를 분열한다 라 고 겁없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아주 교묘 한 사탄의 전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리를 무시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 를 인간의 주관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잘못된 경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며,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적인 교리가 가르쳐지지 않고 체험이 강조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 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담임목사가 건강상의 이 유 때문에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임 목사를 청빙하는 문제에 있어서 교인의 대표라고 하는 사람이 기도하는 가운데 꿈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고 주장하여 공적인 절차를 통하여 소개된 목사님을 청빙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 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교인의 대표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도 하나님의 계 시를 들었는데 나름대로의 후임 목사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가 귀신이 들렸거나 거짓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거나 계시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교회에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쳤다고 한 다면 성경적인 원리와 분명한 정치조례에 의해 결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래서 교회에서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교리가 이처럼 중요한 일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교리가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 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리보다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만 하면 거기에 나타난 핵심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성령 께서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신비스러운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리적인 기초가 없이 성경을 읽으면 인간의 주관이나 사색에 지배되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 은 진리에 대한 이해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신학적 전통과 교리에 따 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교리가 성경 말
36 씀 위에 있다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항상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한 교리는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밑그림을 보여주고, 그 그림에 묘사된 내용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줍니다. 그래서 교리는 참 중요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올바르게 사는 윤리가 필요한 것이지 교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상도 잘못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윤리 적인 행위도 교리적인 기초 위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교리 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올바 른 삶은 항상 바른 교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서 증명해 주 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윤리적인 명령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교리적인 부분을 먼저 말하였습니다. 이 교리가 없이 윤리 적인 부분만 강조하다보면 윤리적인 삶이란 마지못해 행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나타날 수도 있고, 동시에 본성과 반대되는 이중적인 삶을 노출할 수도 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사역, 즉 교리를 알고 난 뒤에 모든 윤리적인 명령들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는 우리를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 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랜 목회경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 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들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기독 교가 한 종교요 삶의 여러 방편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조금 선하게 산다는 것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열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그가 뜨겁게 달구어 진 경험이 없거나, 달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우리 삶의 기초요 우 리의 기본적인 마인드를 바꾸는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이 교리는 항상 실천적으 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교회는 교리를 배우고, 가 르치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37 목회칼럼( )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응답 우리 신자들의 생활에서 기도만큼 중요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은 없다 고 말할 정도로 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기도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의 변두리에 덧붙은 작은 습관 가운데 하나가 절대로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삶의 가장 중심부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 신자의 삶 자체이며 본질에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님과의 만남을 경험하고 말씀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지 식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전지하심, 신실하심, 전능하심, 인도하심 등이 이론적 인 지식이 아니라 실제 우리 생활 가운데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 서 우리는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생활을 변화시키며 창조적인 삶으로 바꾸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은혜로운 기도가 많이 오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과 기도의 상관관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 리는 쉽게 어떤 능력있는 목사님이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목 사님 가운데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 런데도 요즘 교회에 나타난 이상한 현상 가운데 한 가지는 소위 능력있는 목사 님을 초빙하여 기도해 주고 헌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 회에 목사님이 기도해 주면 불치병이 낳는다고 하여 모든 퇴직금을 바치게 하였 는데 병이 낫지 않자 헌금반환을 요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또 요즘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하여 소위 능력있는 목사님(실상은 삯군 목사)을 초 청하여 질병을 위해 기도해 주고 헌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의 상관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육신의 질병으로 곤경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절대자를 찾고 구하 는 것은 그가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인간 모두에게 있는 본능적인 것이고 자연 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할 때 내적으로 평안을 얻어 실제로 치유함을 얻는 일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의 신앙과 삶이 모든 면에서 불경건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기도대로 건강함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 은 참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유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하고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방편도 되기 때문입니다.
38 하지만 기도가 응답되는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 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 어떤 분들을 위해 우리 교회 가족들과 합심하여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분은 나아 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있 지만 낫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우리의 능력이 없어서거나 믿음이 없어서 치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부분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 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치유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고 통을 그대로 지고 가야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 (?)이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치유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 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도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있는 질병을 떠나게 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세 번씩이나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고후12:8-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질병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믿음이 없거 나, 능력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 도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균형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당하게 되는 여러 가지 질병과 고통에 서 건져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우리의 문제들과 질병들을 주님께 다 가져오고, 또한 기도하라고 말씀하 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해결해 주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 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경우는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있다는 배우는 일입니다. 이 사실 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다면 오늘날 교회 안에 기도를 빙자하여 성도를 우롱하 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더 크고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39 목회칼럼( ) 누군가 보고 있다 제가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 전화를 거신 분은 제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에 어떤 차가 접촉사고를 내고 갔는 데 사고를 낸 차로부터 연락이 왔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전화를 받은 바가 없다고 하자 그 분은 저의 차 뒤쪽 범퍼 오른쪽이 원래 긁혔는지를 묻고는 접촉사고를 내고 도망가 버린 차의 번호 중에 일부분만을 기억하고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돌아와서 차를 확인해 보니 많이 긁혀서 보기에 좋지는 않았 지만 운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보험 사에 연락해 보니 자차 보험이 들어 있을 경우에 무상으로 수리해 준다고 하면 서 경찰서에 차량 조회를 하면 가해차량을 알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미관상 좋지 않았고 기분도 좋지 않았지만 저에게 접촉사고를 내고 도망간 사람 을 알려준 사람의 시민정신과 이러한 사람들이 있으므로 서로 조심하고 다른 사 람의 생명과 재산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있기 때문에 많이 생각하다가 경찰서 에 찾아가서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신고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변상하 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하여 도망가는 그 사람의 행위를 그냥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그냥 둔다면 또 다른 사고로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생명에도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을 알 고도 방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을 통하여 저의 차 에 접촉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버린 사람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어도 저에게 가해 차량 번호의 일부분을 알려준 그 분이 보지 못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사를 보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실화를 소재로 쓴 이철환 의 연탄길 이라는 책을 의미있게 읽은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운전자가 길을 가는 행인을 차를 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 행인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 져 있었습니다. 마침 그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그 사람을 병원 으로 옮김으로 생명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가해 운전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여 도망을 쳤지만 차에 치인 그 사람은 사고 당시에 의식이 남아 있어서 자동차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단서가 되어 가해자는 곧 밝혀졌지만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그 뺑소니 운전자 부부는 그 날 자기들이 살 고 있는 빌라에 가스가 폭발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실 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결말에 아주 흥미있는 코멘트를 달 았습니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보면 저런 우연이 있을까 하고 사람들은
40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생각보다 더 많은 우연이 있고, 생각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 그 중에는 단순한 우연도 있지만 우연처럼 보이는 하늘의 섭리도 있다. (중략)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 속으로 기적은 기어이 다가온다. 그리고 사악한 이들의 마음속으로 단죄의 화살은 날아가 박힌다. 기적 이나 단죄의 화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행 복과 불행을 관여하는 하늘의 섭리인 것이다. (22-26) 저자가 하늘의 섭리로 이해 한 것을 우리 신자는 하나님이 다 보시고 있고, 공평하게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누군가가 볼 수 있고, 더구나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귀 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학교의 교훈이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DEO)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이라는 데오(DEO)라는 말과 앞에서 라는 코람(CORAM)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또한 학교에서 발간되는 저널이나 학교를 소개하는 글에서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라는 코람데오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은 우리 신자의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말로서 항상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아야 한 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사실 이 학교를 세웠던 분들 가운데 유명한 한상동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은 그렇게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 만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 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은 하나 님이 우리의 마음의 동기와 사상과 행위 전반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그 앞에 서 항상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또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 시고 도우신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점을 안다면 당연히 정직해야 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믿는 신자들은 누군가 보고 우리 가 믿는 종교를 판단하기도 하고, 우리가 믿는 복음을 믿게 되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행동 전반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 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정직하고 바르게 처신하여 멋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목회칼럼( )
41 목회칼럼( ) 교회와 교리 2 초대교회의 유명한 교부였던 이레니우스(Irenius)는 당시 교회 내의 대표적인 이단인 영지주의를 대적한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185년 경에 이단 논쟁 (Adversus Haereses)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단을 정의하기를 올바른 성경적인 교리표준에서 이탈하는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 회가 신앙의 규칙, 즉 교리를 잘 알고 있을 때 이단의 가르침이나 거짓 선생들 을 분별할 수 있고,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경을 볼 때 이단은 신약교회의 시작인 초대교회부터 있었고, 교회에 위협적인 존재였습 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주변에도 보면 이단이나, 명백히 이단은 아니라고 할지라 도 이단적인 성격을 가진 교회들이 많이 있고, 또한 호텔이나 체육관 등을 빌려 서 대규모 집회를 하기도 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단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교회가 큰 시험에 들거나 영혼들이 실족하게 되는 사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이나 이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교회나 사람들의 주 장을 보면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만이 구원의 참된 지식과 성령의 계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독선과 교만함을 가지고 있다 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구원에 대한 지식이나 성령의 계시는 성경이나 사도들의 전통에서 찾을 수 없고 오직 주관화된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습니 다. 오랜 교회 역사를 통하여 검증되고 확인된 객관적인 교리나 전통이 아니라 주관화된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성도들에 게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리는 우리 삶의 기초요 우 리의 기본적인 마인드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리가 필요없고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만 하면 거기에 나타난 핵심적인 내용을 알 수 있 을까요? 물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신비스러운 일들이 있습니 다. 하지만 교리적인 기초가 없이 성경을 읽으면 인간의 주관이나 사색에 지배 되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의 정 체성을 위협하고 믿는 자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경향들은 개인의 주관 이나 경험에 근거한 성경해석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진리에 대한 이 해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신학적 전통과 교리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교리가 성경 말씀 위에 있다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항상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 만 성경에 근거한 교리는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
42 주고, 그 그림에 묘사된 내용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줍니다. 그래서 교리 는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이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리공부는 초대교회나 종교개혁시대에만 하더라도 믿음의 체계를 세우는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제도 였고, 우리나라의 초대교회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역사 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교리를 배우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 람들(church-goers)은 교회내의 프로그램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그 프로그램을 방 해하고 있는 것이 교리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습니다. 특 히 교리를 무시하고 인간의 기호를 좇아가는 반 교리적인 경향들이 어느 시대보 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의 시대적 사조와 무관하 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시대사조는 절대적인 진리를 무시하고 모든 진리를 상대 화시키는 포스터모더니즘 사상과 여기에 영향을 받은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통 일된 교리가 없이 모든 교파를 두루 만족시켜야 하는 잘못된 복음주의가 그 기 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사조로 인하여 마치 교리는 교회 를 분열하는 것처럼 조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아주 교묘한 사탄의 전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리를 무시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인간의 주관이나 직관, 개인의 경험에 호소하는 잘못된 경 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 어버리게 되며,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부터 교 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교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유명한 교회 역사가 필립 샤프(Philip Schaffer)가 몇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는 신앙고백적인 진술들이 (1) 성경의 교훈들을 요약해 주고, (2) 성경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3)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믿음의 일치 를 이루게 하며, (4) 거짓된 교훈과 생활을 막아내는 일에 공적인 표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필립 샤프, 신조학,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이렇게 볼 때 교회 는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따라 삶 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 하여 이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전극동방송국 5분칼럼 ( )
43 한샘칼럼( ) 그리스도인의 자유사용문제 우리는 자유 라고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유 라고 하는 용어 자체가 매력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유를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정치적 인 의미로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각종 제한과 과거의 잘못된 전 통이나 제도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유를 이해할 때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 고 하는 의미가 자유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는 항상 법이나 질서와 같은 어떤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이해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유도 법이나 질서와 같은 권위를 벗어난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가 신호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달린다든지, 또는 주차할 때 장소를 불문하고 아무데서나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또한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전의 일로 기억됩 니다만 연세대학교 교수였던 마광수 씨는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 나 권 태 등으로 인하여 구속된 바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아무렇 게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는 법이나 질서, 사회적 관념과 같은 어떤 외적인 권위와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자유사용문제를 보면 잘못된 개념으로 이 해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문제 는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하면서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 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율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적용되어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방법이며, 동시에 하 나님과 교제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자유 를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자유와 덕을 세우는 문제의 관계성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 나님의 말씀이 허용하거나 금하지 않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예 를 들면 신자는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담배를 피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신자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면 좋지만 이것이 죄가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6세기
44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아디아포라 (adiaphora)라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중요하지 않는 문제 또는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는 일 (a matters of indifference)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가리켜 양심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왜냐하면 이것은 복음의 본질과 관계없는 비본질적인 것이며, 교리문제가 아 니고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지만 만약에 이 일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실족케 하거나 시험에 들게 된 다면 이 자유는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23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 유를 사용하는 문제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또 다른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 다만 한 그리스도인이 외제 승용차를 사려고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자기 교회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제 승용차를 사지 않고 국산 승용차를 샀습니다. 그 분의 사회적인 지위 나 수입으로 볼 때 비싼 외제 승용차를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이 그 승용차를 산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도 아니고 정당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 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된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당하게 번 돈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의 자유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유사용문제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거나, 믿음이 약한 자 를 실족하게 된다면 그 자유는 덕을 세우기 위하여 제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면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아무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할지라 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융통성없는 행동으 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자유를 우리의 유익을 위 하여 사용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 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45 목회칼럼( ) 헌금하는 일은 중요하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면서 오랫동안 성도들에게 헌금을 드리는 일 이 교회와 성도 개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 러다 지난 2006년에 미국 휴스턴의 서울침례교회에서 있었던 가정교회 세미나 에 참석하여 최영기 목사님의 강의와 그 교회의 목자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헌금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 면 이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전달하는 외적인 방편 가운데 하나가 말씀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의미 가 없다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목자로 봉사하는 분들은 다 십일조헌금을 기본으로 드리고 자신의 돈으로 목원들을 식사로 봉사하는데도 계속 십일조가 늘어나고 하나님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말 3:10-12) 복을 주셨다고 경험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에 저는 우리 교회의 새가족성경공부인 생명의 삶 과정을 할 때 성도가 십일조하는 일과 기타 헌금 으로 봉사하는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며 개인이 복을 받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점을 가르치는 일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교회에서 헌 금이 잘못된 방법으로 강조되어 성도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헌금하는 일은 개인의 삶을 풍성하 게 하는 일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몇 번의 계기가 있었습니 다. 하나의 계기는 어떤 장로님에게 주신 주의 위로 때문입니다. 장로님은 수산 회사에 근무하시다가 그만두시고 수산업과 관련된 회사를 경영해 오셨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어 회사도 같이 어려워져서 많이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달 전에 회사를 정리하면 불과 몇 천만원 정도 겨 우 남을 정도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이미 예전에 살고 있었던 아파트를 선교사 님들을 위해 사용해 주도록 헌금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밀양에 있는 한 교회에 오랫동안 새벽기도회에 나가셨는데 기도하는 중에 때마침 건축하고 있는 그 교회에 헌금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 교회의 의자대금으로 일천만원 을 헌금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주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의 계기는 홍콩에서 목회하고 있는 제 친구 조윤태 목사님의 도전 때 문입니다. 조 목사님은 성도들이 헌금할 때 복을 받고, 헌금을 해야 하나님의 능 력을 체험을 하며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에 목회자는 반드시 헌금을 하도록 가르 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그 성도가 잘 되는 방법이고 교회 역시 잘 되 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헌금을 정직하게 하는 성
46 도들이 신앙이 자라고 복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필리핀 시부의 한 신학교에서 두 주간씩 집중강의를 한 바가 있고, 중국의 여러 신학교에서 역시 한 주간 또는 두 주간씩 여러 차례나 집중 강의를 하면서 필리핀 교회와 중국교회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지역의 교회들이 다 같이 자립할 수 없고 선교사의 주머니에 의존해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 한국인 선 교사가 파송되어 있는 나라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입 니다. 중국국가통계국이 지난해 건국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 년 1인당국민소득이 2,770달러입니다(문화일보, 2009/09/09). 한국통계진흥원이 우 리나라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대한민국을 즐겨라 라는 책에서 필리 핀은 2006년에 1,484달러였습니다(머니투데이, 2008/10/19). 그런데 우리나라가 1960년에 79달러였고, 1977년에 1,000달러였고, 1995년에 1만 달러, 2007년에 2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성장의 요인에 대하여 학자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기독교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믿음의 선배들, 소위 우리 부모님 세대는 겨우 1,000달러 미만이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 하여 십일조 헌금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당 건축을 하는 일을 위하여 힘써 하였 습니다. 저는 현재 필리핀 교회나 중국교회가 복음을 받기만 하고 헌신하고 봉 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백년이 흘러도 이 수준 이상은 안 된다고 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선교사님들이 1890년에 중국 지푸에서 선교하던 존 네비우스(John Nevius, ) 선교사님을 초빙하여 선 교방법에 대한 원칙을 제시받고 적용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 자립선교, 곧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는 것과, 자립 보급, 곧 모든 교회의 건물은 그 교회의 교인들에 의해서 장만되고, 교회가 조직 되면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급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민경배, 한국기 독교회사, ). 이 네비우스 원칙이 우리나라에 적용되면서 한국의 기독교 는 건강하게 자립하면서 성장해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성경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고 봉사하는 일은 일차 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을 전파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그들로 제자삼아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고, 동시에 헌금하 는 자신의 믿음이 자라며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방법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 교회 성도들은 꼭 실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목회칼럼( )
47 목회칼럼( )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우리 교단의 신학대학원이 위치해 있는 천안의 명물 가운데 하나가 호두과자 입니다. 천안에 가면 곳곳에 호두과자 점포가 있습니다. 그 상호의 이름이 각각 다르고 다 원조 호두과자 라고 하지만 실제로 원조는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 입니다. 이 호두과자는 1934년에 지금의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 의 할머니의 부 군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 라 이 호두과자를 사면 그 안에 있는 전도지를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그 전도지 에 호두과자에 대한 소개도 있고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그 내 용이 목사이면서 목사후보생을 가르치는 자로서 볼 때 상당히 호소력이 있고 생 명력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작은 힘이지만 70여년의 세월 동안 학화 호두과자 - 할머니 호두과자 를 개발하여 여러분께 드려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하여 성심껏 제공하여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빵 역시 삶 자체를 풍부하게 하는 생명의 빵 은 아닙니다. 저는 호 두과자보다 더 맛이 있고, 한 번 먹으면 배고프지 않는 생명의 빵 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보시지 않겠습니까? 가까운 교회에 나가십시오. 이전보다 훨씬 복된 나날이 되실 것입니다. 초실 심복순 권사 올림 저는 천안의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의 심복순 권사님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귀한 마음을 닮고 싶고, 우리 교회 성도들도 닮기를 원합니다. 사실 기차역이나 공공장소에서 전도하는 사람을 만날 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보다는 그 행색( 行 色 )이나 전달하는 방법이 복음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호두과 자의 맛이 다른 곳과 비교해 보면 확실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참 친절하기도 하 고, 전도지 내용 역시 품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리고 역시 적극적으로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중 요한 책임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 이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고전15:1-4). 이 복음을 전파할 때 때로는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 낙망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
48 을 전파한 사람이 하나님의 택한 자라면 성령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믿어지게 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행13:48). 그리고 복음의 열매들도 보게 될 것 입니다. 미국의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짧은 생애를 불같이 살았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에 보면 이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행 해야 할 외적인 의무를 양심적으로 이행하였다. 술 마시는 일을 그리고 윤리적 인 규범을 엄격하게 지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인 의무를 이행하 도록 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가르치거나 또한 불필요한 악습을 파헤쳐서 잘못 을 지적해 준 것도 아니었다. 이곳 인디언들에게 설교할 때 역점을 두어 가르친 것은 은혜롭고 특이한 교리였다. 이 교리들은 피조물들로 하여금 겸손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 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 생애와 일기,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3., 199) 여기서 말하는 특이한 교리는 예수님 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을 말합니다. 이 복음을 전파 할 때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달라지면 그 사람들이 속 해 있는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의식구조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미국에서 발행되는 유명한 기독교 저널 Christianity Today의 객원편집장으로 있었던 필립 얀시 박사도 그의 유명한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 혜 (IVP, 2000)에서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도덕이 아니라 은 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의 존재목적은 도덕을 퍼트리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도덕은 무엇입니까? 도 덕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기뻐하 셨다 (고전1:21)라고 하셨고,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4:2)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는 복음을 들은 자들이 구원을 받아 구원받은 자의 신 분에 합당한 삶을 살면서 그가 속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 을 바꾸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목회칼럼( )
49 목회칼럼( ) 성령강림절은 구약의 맥추절이다 우리 기독교회가 구원과 관련하여 꼭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역사절기가 있습 니다. 구약시대에는 유월절과,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킨 초실절과 장 막절이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성탄절과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입니다. 성탄절 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날 을 기념하는 날이고, 부활절은 주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 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며, 성령강림절은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시고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을 보내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구약의 유월절 사건이 예표하던 것이 성취된 사건이고, 성령강 림절은 구약의 맥추절이 의미하고 예표하던 것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한국교회는 이상하게도 성령강림절을 지키고 동시에 7월 첫 번 째 주일에 맥추감사절(?)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성령강림절과 맥추 절을 다른 날로 만드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맥추절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왜곡되어 본래의 의미 와는 관계없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대개의 목회자와 설교자들이 맥추절을 지켜 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출애굽기 23:16에 맥추절을 지키라 라는 구절을 근거 본문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구약시대에 지켜 야 할 절기로 유월절도 나오고 장막절도 나오는데 왜 그 절기들을 지키지 않고 유독 맥추절만 지키고 있을까요? 그것은 맥추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떤 절기일까요? 이 절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 절 기가 성경에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이 이름이 개역한 글판 성경에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나고 있는데 첫 번째로 명칭으로서 맥추절 ( 麥 秋 節 )이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두 번째로는 초실절이라고 불렀고, 세 번째로는 칠칠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유월절 이후 일곱 안식일 이후인 50일 째되는 날에 지켰기 때문입니다(출34:22; 레23:15-21; 신16:9-12). 그래서 이 날을 다른 말로 오순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 맥추절이라는 명칭은 원래 구약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 성경에 나타나는 이름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우리 개역한글판 성경에 나타난 것처럼 맥추의 개념은 전혀 없고 직역 하면 첫 열매의 절기 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교회가 맥추 절이라는 이름으로 붙여지게 된 것은 그 번역을 우리나라의 문화적 상황에 맞추 어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고 한글성경이 번역될 때
50 는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였습니다. 이 당시에 우리나라에 시간적 으로 맨 먼저 추수한 것이 밀과 보리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문자적 으로 첫 열매의 절기 인 초실절을 시간적으로 맨 처음 추수하는 것으로 이해하 여 맥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첫 열매의 절기를 시간적으로 보면 일년 중 맨 처 음 추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첫 열매 사상은 시간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대표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맥추절은 구약시대에 애굽에서 구원해 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일을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드린 절기입니다. 이 절기 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사역을 이루시고, 그 구원의 은혜를 믿는 자들에게 적용하고,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어 주신 성령강림절로 성 취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 교회가 맥추절과 성령강림절을 따로 지킴으로 이 날이 서로 다른 날로 오해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에 무지한 잘 못된 교회의 전통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맥추절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고, 성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절기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항상 성령과 관계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우리의 구원을 성 취하기 위한 구속사 가운데 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의 맥추절이 신약에서 성취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절과 맥추절을 분리하여 지키는 것은 비성경적인 전통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믿는 자 개 인의 삶 속에 적용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으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구약시대에 맥추절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누리게 된 축 복을 기념하여 지키듯이, 성령강림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고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과 구속사의 진전을 제대 로 파악하고 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맥추감사절 이라는 이름 으로 감사의 개념이 강조되는 날로 더 이상 지키지 않아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51 목회칼럼( ) 구원받은 신자의 특징 우리에게 잘 알려진 덴마크의 철학자로, 특히 유신론적인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키에르케고르(S. A. Kierkegaard, )는 당시 교회에 다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많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출석도 하 지 않으면서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라고 물으면 스스로 신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자다운 특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보편화되어 있었던 철 학방법은 연역적(deductive)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일반적인 것으로부터 특 수한 것을 추론하는 방법으로 대개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 이러한 연역적 사고에 따라 자칭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하나님을 아는 특징적인 모습이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하 는데, 그 삶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안다는 특징적인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습 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의 삶, 즉 참된 신자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갈등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역적인 방법으로 질문하지 않고 특수한 것으로부터 일반적인 것을 추론하는 방법으로 질문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 스도가 누구십니까? 교회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등 교리적인 문제로부터 교회의 예배에 출석하십니까?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등의 삶의 문제를 질문하며 접근하였습니다. 이 방법을 철학의 논리학에서 귀납법적인(inductive)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이러한 귀납법적인 방법으로 구원받은 신자에게 마땅히 나타나야 할 특징들을 중심으로 물었더니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특징들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만약에 키에르케고르가 지금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신자에게 당연히 나타 나야 할 특징들을 중심으로 귀납적으로 물었다면 어떤 사실을 확인하였을까요? 저는 요즘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늘 고민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구원받은 신자의 특징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로서 반 드시 나타나야 할 특징으로는 감사와 봉사정신, 올바른 윤리적인 삶 등인데 이 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 고 있다면 이러한 특징들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리스도인 됨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행위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명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1서 2:4에서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을 알고 그와 교제하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
52 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감사와 봉사 정신과 희생정신 등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 목사님들이 그들의 목회현장에서 나타난 여러 임상적인 결 과들을 쓴 책을 읽으면서 목회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뚜렷하게 도덕적으 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지만 말은 그를듯하게 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 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글을 읽고 공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목회경험에서 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얼른 들으면 옳 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둘러대는 궤변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구원받은 자에게 반드시 드러나야 할 특징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까? 만약에 지키지 않거나 자 기 편리주의에 따라 말씀의 의미를 바꾸거나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하나님의 말 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거나 교회에 다 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믿음을 가지 고 있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김으로 감사와 봉사와 희생정신과 윤리적인 삶이 그 특징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목회하면서 겪었던 가장 풀기 어려운 딜레마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키에르케고르가 말로는 신자라고 하면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삶의 특징들 없는 것을 보고 갈등하며 귀납법적인 질문을 던진 것은 참 의미 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나타나야 할 뚜렷한 특징들 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번 열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 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령님은 누구입니까? 교회는 무엇입니까?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십니까? 규칙적으로 기도하십니까? 마땅히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선한 일을 위 하여 희생하십니까? 교회에 특별한 봉사를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기꺼이 도우십 니까?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을 볼 때 기꺼이 동정하십니까? 생활 이 밝고 명랑하십니까?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절바르게 키우십니까? 당신은 매사에 정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십니 까? 만약에 이러한 삶의 특징들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고 있다면 여러분은 구 원받은 믿음을 가진 자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53 목회칼럼( ) 구원받은 증거로 나타나는 윤리 오래 전에 제 친구가 섬기고 있었던 교회의 어떤 집사님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편으로 매 주 한번씩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몇 주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주간 동안 설교를 하면서 제 친구는 그 회사의 직원들이 기꺼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참여하고 있 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는 직원들이 작업하기에 적절 한 환경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사장의 비인격적이고 이중적인 행동 때문이었 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오히려 복음의 이미지를 왜곡시키 고,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목사님이 경영자가 되는 집사님에게 복음과 윤리가 상반되는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 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경영방식을 바꾸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자 연스럽다고 하였더니, 그 말이 기분이 나빠 결국 그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음과 윤리가 상반되는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들러 테니스를 치는 테니스장에 무례하고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거나 상식이 없으며, 같이 테니스를 치는 파트너를 기분 나쁘게 하는 한 사람이 있었 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기독교단체에 갔을 때 그 무례한 사람을 만났습 니다. 저는 왜 그 사람이 거기에 참석하였는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기독교단체의 이사이기 때문에 조찬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무례하고 천박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저를 부끄럽 게 하였습니다. 몇 해 전에 우리에게 새벽을 깨우리로다 의 저자로 잘 알려진 김진홍 목사 님이 광복절 기념집회에서 한국교회가 복음을 받아 이처럼 성장한 것은 큰 축복 이지만 거기에 비례하여 윤리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양반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였 습니다. 가진 것 조금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신자가 되면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덕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 다. 물론 저는 양반과 상인으로 나누는 조선시대의 신분구분을 좋아하지 않습니 다. 하지만 김진홍 목사님이 예수 믿으면 양반이 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는 예수 믿으면 그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어울리는 합당한 삶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54 신자의 삶은 반드시 신자다운 품위가 있고 예의가 있어야 하며, 윤리적인 삶 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상은 많이 강조해 왔습니다. 물론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렇다고 행위가 구원과 관계없는 것은 아닙니다. 행 위는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은 분명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의 삶을 보여주거 나 증명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합 당한 윤리적인 삶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인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회의 역사에서도 오랫동안 신자의 윤리적인 삶을 구 원받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열매로 이해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존재론적인 특성 자체가 윤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로이드 존스(D. M. Lloyd-Jones)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가장 필요한 일 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수, 개개인의 그리스도인의 수가 증가하는 데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에 있어서 거리가 있고 간접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이 러한 지적은 그리스도인의 존재특성 자체가 윤리적인 삶을 구현하고, 또한 그러 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도 적어도 우리나라에 교회자체가 낸 통계로는 전 국민 의 1/4에 해당하는 1천2백만명이 기독교인이며, 갤럽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1/5인 20%가 기독교인이고, 통계청 자료에도 15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전체 1/5 에 해당하는 18.6%가 기독교인(nso.go.kr)인데도 그 삶이 윤리적으로 나타나지 못 하기 때문에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구원받은 자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를 참으 로 답답하게 합니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그 말과 행동이 아름답고 품위가 있고, 가정과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이 시대를 밝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둡고 이상한 시대를 탓하기보다는 내 자신부터 신자의 신분과 품위에 어울리는 윤리 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이며,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향 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55 목회칼럼( ) 믿음생활의 역설 모순이란 두 가지 말이 서로 상충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쪽이 사실이거나 둘 다 사실이 아닐 수는 있지만 둘 다 사실일 수는 없습니다. 논리학에서 모 순 (contradiction)은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모 순이라는 말을 잘 설명해 주는 실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자 문화권에서 모 순 ( 矛 盾 )이라는 말이 유래된 중국의 고사가 그것입니다. 초나라에서 무기를 파 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 상인은 자신의 창을 들어 보이며 그 어떤 방패도 뚫 을 수 있는 창이라고 선전했고, 또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며 그 어떤 창도 막 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러자 구경하던 사람 중 하나가 상인에 게 당신이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창으로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순은 모든 방패를 뚫는 창 과 모든 창을 막는 방패 처럼 동시에 진실이 될 수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모순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역설 (paradox)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학 에서 역설의 목표는 듣는 사람의 흥미를 끌고 신선한 사고를 일으키는 데에 있 습니다. 현대의 비평가들은 시에서 역설이란 시어의 일부를 이루는 기교로써 오 류와 진실 간의 긴장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것은 반드시 전혀 의외의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뿐 아니라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를 계속적으로 미 묘하게 바꾸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란한 침묵, 고독한 군 중, 살아 있는 죽음 등은 두 단어가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둘 다 맞습니다. 이 경우를 가리켜 역설 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 말이 겉으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보면 동 시에 진실인 상태를 가리켜 역설이라고 합니다. 우리 믿음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역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교회가 믿는 중요한 교리내용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교리에 서 역설을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지고 그 뜻대로 행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교리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작정하시 고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예정교리입니다. 이 교리를 믿 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해왔던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이 사실이라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두 번째로는 하나님이 구원하 시기로 작정한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면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 세 번째로는 하 나님이 그 뜻대로 행하시고 주권을 행사하신다면 인간의 자유는 의미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56 전도의 문제에 있어서 선택교리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로 선택한 사람만이 믿는다면 전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곤 합니 다. 만약 선택의 교리가 불변하고 거기에 따라 택한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확실하다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복음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택한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성경은 선택교리만 기록하고 있는 것 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 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 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10:13-14) 라고 하였습니다. 선택은 복음전도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문제 역시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 권을 가지시고 그 계획하신 바에 따라 이루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역시 하나님은 기 도를 들으실 것이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을 시행하신다고 말합 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성취하는 일에 하나님의 언약 파트너인 인간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볼 때 하나님 이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작정하셨다고 할지라도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이 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시고 온 세상을 당신의 뜻대로 통치하신다고 할 때 인간의 자유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하나님께서 그 계획하신 통치하신다고 할 때 인간은 그 계획안에 있는 프로그래밍(programing)된 작은 부속품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을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제럴드 싯처가 하나님의 뜻 (성서유니온선교 회, 2010)이라는 책에서 지적한 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내리는 선택을 통하여 구속을 이루신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시 선하게 회복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 나라를 먼 저 구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향한 그분의 뜻 이 된다. (338).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성을 동일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역설을 믿는 것입니다. 목회칼럼( )
57 목회칼럼( ) 목사는 계급이 있는가?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 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 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딤전 4:11-13)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서 교회에서 어떻게 자기 직무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이 권면은 말씀을 맡은 자가 정당한 권위를 가져서 그의 가르치는 일이나 생활 태도에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나이에 관계없이 업신여김을 받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는 듣는 자들이 가르침을 잘 받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권위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에 긴요 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구원을 얻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의 양떼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입니 다. 특히 하나님께서 교회의 질서를 세우신 목적은 교회의 본질을 수행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을 전파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 얻 은 자들을 가르쳐 제자를 삼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교 회 안에 목사와 장로와 집사라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칼빈은 하 나님은 우리 없이 행할 수 있지만 보잘것없는 우리를 당신의 조력자로 사용하시 고 도구로 쓰신다 (J. Calvin, Commentary on the 1 Corinthians, 3:9)라고 하였습니 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질서를 세워 교회의 본질을 수행하는 일과 연 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각자의 은사에 따라 주신 하 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은 그리스도가 왕, 선지자,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수행하실 때 성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신 모습대로 섬기는 종의 모 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유해무, 개혁교의학 ). 그렇다면 교회의 직 분은 근본적으로 계급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계급이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가져온 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 본래의 직분, 곧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무시하지 않지만 은사에 따라 봉사하는 직분을 회복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교회의 직분 가운데, 특히 목사의 직분에 왜 계급이 존재할까 요? 계급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한 사회나 일정한 조직 내에서의 지위나 관직 따위의 단계에 관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에게 계급
58 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교회 공동체라는 조직 내에서 목사의 지위에 대한 단계 들이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천주교)은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 교, 신부 등의 계급이 있고, 또한 사제와 신자 사이에도 구별이 있습니다. 그러 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로마교회의 계급구조처럼 총회장, 부총회장, 서기, 노회장 등의 계급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목사 상 호 간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에게 계급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아주 중요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계급은 교회의 외적 인 규모, 곧 교인의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선배와 후배 도 없고, 나이의 많고 적음도 관계가 없습니다. 많이 배웠느냐 배우지 않았느냐 의 문제도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교회의 외적인 규모가 목사의 계급을 결정합 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목사들만 계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 가운 데서도 목사가 가진 동일한 기준을 따라 계급을 매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의 외적인 규모에 따른 계급장(?)만 보고 판단하는 교인들 중에 어떤 이 들은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의 설교는 진지하게 듣지도 않고 권위 있게 받 아들이지도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 비정상적인 기준에 따라 매 겨진 계급이 존재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 계급이 말씀전파와 연관되어 있다면 바른 질서가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목회자는 작금의 교회 질서를 탓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이기에, 비록 그들이 목사의 계급을 이등병으로 본다고 할지라 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울이 보여준 목회의 본을 따라 눈물과 기도로 하나 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한 본을 보여야 합니다(행20:31). 이것이 목회자의 길이 고, 하나님은 이러한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 얻는 자들을 더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59 목회칼럼( ) 자기를 위한 감시장치가 필요하다 유명 탤런트 김지수 씨가 음주 운전 및 뺑소니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 습니다. 김지수 씨는 음주상태로 자신의 아우디 승용차를 몰다 택시와 충돌한 후 그대로 도주하였습니다. 이어 하루 뒤에 경찰에 자진출두하여 음주 및 뺑소 니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녀가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음주와 뺑소니 사실을 인정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사건의 정황을 명확히 설명해준 정확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고 택시 내에 부착되어 있었던 블랙박스였습니다. 요즘 시내 택시가운데 강도로 돌변하는 승객들이나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 증인이 없을 경우에 속수무책으로 큰 피해를 당하는 경우 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새롭게 생긴 장치입니다. 김지수 씨의 경우 피해자 측이 택시 내에 설치한 자동차용 블랙박스를 경찰에 제시하여 택시가 정상 운행 중이 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화면에 파란 신호등이 잡혔고, 갑자기 골목길에서 차량 이 튀어나와 택시에 충돌하는 장면이 블랙박스에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스포츠 조선, 2010/10/07). 원래 블랙박스(Black Box)는 항공기 사고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비였 습니다. 이것은 비행기록장치(FDR, Flight Data Recorder), 또는 조종석 음성 기록 장치(CVR, Cockpit Voice Recorder) 등의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비행기가 추락하 면 승무원과 승객이 전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건의 원인 규명 을 위한 단서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재발을 방지하 기 위하여 비행 중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도록 비행 상태, 조정석 안의 목소리 나 교신을 기록하기 위해서 여객기 등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블랙박 스가 요즘 택시나 승용차에도 탑재하여 안전을 사건의 전반을 영상으로 찍어 재 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와 함께 사건이 누구 책임인 지 밝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보면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목격자가 없으면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가 사고를 내고 도망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 없고, 어떤 경우는 한 사람의 일생에 치명적인 손해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량용 블랙박스가 보편화되고 있는 현실은 사건사고의 경위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차량용 블랙박스만이 아니라 곳곳에 CCTV(closed-circuit television) 로 인하여 각종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거나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는 수단으로 사
60 용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방영된 드라마 가운데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로 사람 을 치고 도망을 갔는데 그 사건이 CCTV에 다 찍혀 있었기 때문에 범인을 잡게 되고 그 일로 인하여 그의 모든 악행이 드러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러 한 일은 요즘 심심찮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CCTV가 사생활을 침범 한다고 하여 문제가 되는 요소들도 있으나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고, 또한 범죄자를 찾게 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국회에 우리나라에 총리나 장관, 청장 등의 요직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은 그 직위의 특성상 도덕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사청문회를 통하여 나타난 자료 들만을 가지고 보는데도 세금탈루, 병역기피, 불법과 탈법을 통한 재산증식, 위 장전입, 부동산투기 등이 이 정부의 요직에 앉으려는 사람들의 필수과목이 된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기도 합니다. 이 보도를 접하고는 이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동차용 블랙박스가 있거나 없거나, 감시 카메 라가 있거나 없거나, 인사청문회와 같은 사회적 안전장치와 상관없이 정직하게 진실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생활만이 아 니라 마음의 동기까지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비단 교통질 서나 눈에 보이는 사건사고만이 아니라 생활전체를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 니다. 사실 인간은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적 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제도적 장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은 한편으로 타락한 인간의 연약성을 가능한 한 억제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방 법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동차용 블랙박스나 감시카메라, CCTV, 인사청문회 등은 우리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칼빈주의 신학적 인 기초 위에 세워진 장로교회가 받아들이는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는 인간 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교리 입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자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예수 그리 스도를 믿어 회개하고 중생하였다고 할지라도 타락한 본성은 계속남아 있어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타락한 본성을 억제하는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 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보신다는 신전 의식 ( 神 前 意 識 )은 대단히 중요한 감시장치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추상적으로 흐를 가능성 때문에 인간의 연약함을 제어하는 외적인 감시장치도 필요한 것입니다. 목회칼럼( )
61 한샘칼럼( ) 자기관리 프로그램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7번째 습관이 자기관리입니다. 자기를 관리해야 할 영역으로 신 체적인 차원과 영적인 차원, 정신적 차원, 그리고 사회적/감정적 차원에서 제시 한 바가 있습니다. 자기를 잘 관리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를 관리(self-control)한다는 의미로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 을 말할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만, 적극적인 의미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자신을 통제하고 계발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주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기 위하여 욕망을 억제해야 하지만 동시에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자신을 통제하고 계발하는 장 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시관관리입 니다. 일반적으로 한 해를 시작할 때 사람들은 다이어리를 구입하여 차근차근 적어 서 시간을 잘 활용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만 한 두 달이 지나면 다시 흐지부 지해 집니다. 아마 올해도 처음 시작할 때 다이어리를 구입하여 시작하신 분 가 운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하여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효과적으로 계 획표에 따라 사용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벌써 흐지부지해져 다이어리의 대부분이 흰 여백으로 남아 있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시간을 제대로 관리 하지 못한 분들을 보면 대개가 내일로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해를 시작할 때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다이어리를 구입하여 기록하다가 며칠 빠지면 음력설부터 시작해야 되겠다고 결 심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방학에 실컷 놀다가 개학이 되면 시작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한 해를 보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간관리를 위하여 얼마 전부터 프랭클린 플래너 (Franklin Planner)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있고 자기에게 맞는 자기 관리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프랭클린 다이 어리를 사용하곤 난 뒤부터 내 자신을 더욱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 리에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랭클린 플래너는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 관 의 저자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 박사와 세계적인 시관관리 전문가인 하이럼 스미스가 오랜 연구 끝에 내어놓은 시간관리 도구입니다. 이 도구는 Microsoft의 Outlook을 사용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프로그램과도 제휴되어 시간관리 프 로그램으로 더욱 보편화되었습니다.
62 제가 개인적으로 이 플래너를 사용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고, 이 가치를 지향하기 위하여 나의 일상적인 시간사용에 있어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할 것인지 방향설정을 분명하게 해 준다 는 것입니다. 프랭크린 플래너에는 자신의 가치관과 사명 등을 기입할 수 있는 페이지가 따로 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을 설정하고 이 한 방향목표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기술하도 록 되어 있습니다. 저의 경우의 예를 들면 가치 확인 페이지 가치란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목자가 된다 를 적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분명하고도 자세한 설 명란에 1. 매일 히브리어 성경을 한 절 이상 쓴다. 2. 하루 3시간씩 기도한다. 3. 매일 중요 성경구절을 암송한다. 4. 매일 영어원서 한 챕터(chapter) 이상 읽는다 등을 적어두고 이를 매일의 다이어리에 반영하고 확인합니다. 이렇게 할 때 제 가 추구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저의 계획과 행동을 한 방 향으로 정렬시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 와 이를 실행하기 위한 단기적인 목표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고 확인하기에 좋 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저 개인의 경우입니다만 사람들마다 자기관리 프로그램 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기관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회의 역사를 볼 때 미국의 제1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조나단 에 드워즈 목사님은 20세가 되기 직전에 자신의 평생의 지침으로 70가지를 결심하 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결심문 (Resolution)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든 결심문을 매주 한번씩 읽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결심문 가운데 43번째 결심문에는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어떤 식으로든 내가 나 자신의 것인 양 행동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처신하기로 결심했 다 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의 시간관리는 이러한 결심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 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동시대에 살며 대각성운동을 주도했던 존 웨슬리 역시 자기관리에 철저하였습니다. 그는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일반적인 규칙에 대하 여 1. 행동을 취할 때마다 목적을 반영시켜라. 2. 모든 행동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행하라. 3. 모든 중요한 일은 기도로 시작하라. 4. 그만 두고 싶은 유혹을 받아도 의무를 중단하지 말라 등이 있습니다(바실 밀러, 요 한 웨슬리의 생애, 26). 우리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청교도들은 일기나 다이어 리를 사용함으로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였다는 것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 습니다. 그래서 이미 한 해를 시작한 지가 한 달이 지났다고 할지라도 지금부터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63 한샘칼럼( ) 목회자의 권위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가 실추된 것은 많은 사람의 비판하는 것처럼 교 회행정의 비민주화와 재정의 투명성 문제와 목회자의 비윤리적인 행위와 연관되 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행정이 민주화되고, 재정이 투명하고 목 회자가 윤리적이라면 목회자의 권위가 회복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권위있는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아무리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파한다고 할지라도 교인들이 믿고 순종하는 일이 흔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대학과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저는 교수가 인격과 실력이 겸 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진정으로 교수에게 복종하는 것은 학점 때문이라는 것을 종종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수의 권위에 복종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권위란 사전적인 의미로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말합니 다. 하지만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는 일에 있어서 정당한 근거가 없이 그가 가 지고 있는 지위나 힘이나 배경에 의해 명령하거나 따르기를 요구하는 것은 권위 주의입니다.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권위주 의는 정당한 진리와 질서에 따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지위와 힘과 권력을 가지고 비윤리적이며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강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당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제 선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는 교인의 수가 수천 명이 됩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부교역자들은 그 선배 목사님이 보이지 않 는 곳에서는 비난하지만 보이는 곳에서는 죽는 시늉까지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봉이 깎이고 소위 한직이라고 부르는 어려운 구역(돈이 거의 생 기지 않는 구역)에 좌천되거나 해임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는 목회자의 정당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와 힘과 권력 때문에 복종하는 것 으로, 소위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정당한 권위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딤전3:2-7). 이러한 자격은 세상의 대통령이나 장관, 또는 국회의원, 세상의 일반 대학의 교 수와 학교의 교사들의 자격과 비교할 수 없는 자질과 덕목입니다. 이러한 자격 이 요구되는 것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가르치는 자로서 그의 인 격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64 교회역사에서 성경과 교회가 정한 정상적인 절차(목사가 되는 과정인 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회의 청빙을 받아 노회에서 안수를 받는 절차)에 따라 안수를 받아 목회자가 되었고, 그 지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면 정당한 권위 를 인정하고 단순히 한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정당한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반 권위적인 정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목회자가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합당 한 윤리를 준수하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지만 더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 씀과 그 말씀에 따르는 교훈을 권위 있는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적인 권위를 인 정하게 하여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이고 성경이 요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가르치는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 까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생명과 직결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견해가 자기에게 유익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그것이 나 에게 유익한가? 하는 관점으로 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목회자가 어떤 명령을 하면 그의 소득이나 영향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듣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실제로 목회자의 명령은 눈에 나타나는 현상적으로 볼 때 승진이나 연봉에 영향을 미치거나 생명 과 안위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지 못 합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구체적인 행위로 신앙의 기본인 말씀 순종의 행위인 새벽기도회와 전도와 교회중심의 삶을 강조 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목회자는 세상의 권력자와 같은 구속력(?) 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결국 모세를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위 대하게 보이게 하신 것처럼(출11:3) 하나님께서 권위를 세워주셔야 합니다. 그러 나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그러하였듯이 목회자가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도 듣지 않고 너는 시부렁거려라 나는 나다 (사28:9-10)라고 말하 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예레미야 5:30-31의 말씀이 더욱 생각 이 납니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 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어 찌하려느냐? 목회칼럼( )
65 한샘칼럼( ) 믿음인가 도박인가 벌써 20년도 더 되었습니다만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제가 자랐던 모 교회와 같 은 지역에 참 좋은 교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교회를 참 사 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세한 이유는 모르 겠지만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가시게 되었고, 다른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그 런데 새로 부임한 목사님은 그 교회가 그때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섬겨왔던 그 지역에서 번화한 거리로 이전해야 교회가 발전한다고 하면서 기존의 아름다운 교회예배당을 버리고 다시 건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필요한 재원 은 제한되어 있어서 몇 분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힘에 넘치도록 헌금하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하여 큰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마무리 단계 에 교회의 종탑을 올리는 문제로 당시 거의 수천만원의 돈이 더 들어가는 새로 운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형편이 되면 하자는 의견과 믿음으로 하 면 하나님이 채우시고, 사람들을 보내어 주신다고 하는 의견이 대립되었으나 믿 음으로 하자는 의견 앞에 밀려 다시 은행 융자를 내어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교회당 공사를 시작할 때 차용한 부채와 추가 재원마련을 위한 부 채가 누적되어 결국은 교회가 파산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결국 다른 교회가 부채를 담당하고 새롭게 지은 교회당에 입당하 고 교인들을 합병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었지만, 원래 참 좋았던 교회는 새로 부 임한 목사님의 잘못된 믿음 때문에 교회는 없어지고, 교인들은 큰 상처를 받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우리 주변이나 전국에서 많 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회자나 그 주변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당회원들 이 교회성장이라는 거창한 슬로건 아래에 이미 있는 교회당을 팔거나 다시 헐고 큰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원마련에 대하여 깊이 생 각하지 않고 교인수가 늘게 되면 자연히 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 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논리가 믿음이나 비전이라는 그럴듯한 미명하에 교인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은 돈의 단위가 아주 커져서 작게는 수억원 크게는 수십억원의 은행융자를 내어서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논리로 막 대한 빚을 내어 교회당을 지은 경우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경우로 나타납니다. 하 나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교인들이 수평적으로 이동하여 다행히 교인의 숫자가 많이 느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목사님이나 당회의 리더십이 더 강화되기도 하지만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된 일 들이 마치 믿음으로 된 것이라고 잘못 인식되어 믿음이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오
66 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성장이 둔화되거나 교인들이 감소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어 교회는 그 엄청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여 공중분해되거 나, 법원의 경매에 들어가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당을 짓는 것이 성경적이며, 과연 그들의 주장대 로 믿음으로 하는 행동일까요? 믿음이나 비전 또는 리더십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위장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믿음의 행위이며 교회의 건전한 비전이거나 목회 자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직하게 말하면 믿음이나 비전 또는 리더 십을 빙자한 도박이나 사기가 아닐까요? 믿음과 도박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까요? 물론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인 이해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일들 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인격과 능 력과 속성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 는 사실에 근거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때 암과 같이 현대 의학으로 다 해결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불치의 병이 치유되기도 하고,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실재 (reality)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요 수학자였던 파스칼이 쓴 팡세 라는 그의 신앙명상록에서 하나님을 믿는 일을 도박하듯이 해보면 하나 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보 면 이 경우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편을 선택할 때 이기는 경우와 지는 경우를 상정하고, 만약에 이기면 생명과 행복을 얻을 것이지만, 진다고 할지라도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편에 도박하듯이 선택하라는 것입니다(3. 233). 이 때에 파스칼이 도박을 하듯이 하나님을 믿어보라고 제안할 때도 수학자로서 이미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경험한 그의 신앙의 세계를 바탕으로 손해볼 것이 없다는 확실한 계산에서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 교회에서 교인들이 많이 오게 되어 성장하게 될 것을 담보로 교인들의 집이나 여러 물건( 物 件 )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엄청난 부채를 안고 교회당을 확장하거나 건축하는 것은 믿음이나 비전을 위장한 사기행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당한 절차와 성경의 방법에 따라 성도들의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과 봉사의 기초 위에서 교회를 성장시킬 때 외적인 성장은 더딜는지 모르지만 전체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는 더 큰 유익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건강한 교회상을 만들어 가는 실제적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67 한샘칼럼( ) 사순절과 부활절 날짜계산 부활절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새기고 신자의 생활의 존재의의와 목적을 새롭게 하는 절기 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부활절 전에 일주일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에 계실 때 예루살렘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신 후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 가를 지시고 죽으심을 기념하고, 또한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기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 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토록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사건이고, 이 사건이 여전히 우리가 받은 구원을 풍성하게 누리는 문제와 우리가 어떤 삶 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의 문제, 곧 사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순절을 지켜왔습니 다. 사순절( 四 旬 節, Lent)이란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부활절로 부터 46일 전)을 말합니다. 오순절의 오순 ( 五 旬 )이 50이듯이, 사순절의 사순 은 40을 말합니다. 이 40일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오셔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던 기간에서 따온 것인데, 숫자와 금식의 개념만 가져왔 습니다. 특히 부활절 전에 40일 금식을 하는데, 주일은 금식하지 않기 때문에 부 활절부터 그 전에 40일을 계산하면 주일을 제외하면 46일이 되기 때문에 부활절 6주전 수요일부터 시작합니다. 40일 금식을 시작하는 수요일을 재의 수요 일 (Ash Wednesday)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통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council of Nicea)에서 처음으로 사십일 로 정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주후 330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의 편지와 주후 348년 예루살렘의 시릴 (Cyril)의 교리문답 강의 (Catechetical Lectures)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사순절의 기원을 볼 때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며 금식하면서 그리스도의 고 난의 의미를 새기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순절이 의미가 있는 것은 부활절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활절은 성경에 따르면 유월절 다음날, 니산월 15일이 됩니다. 니산월(아빕월과 동일)은 출애굽한 해를 첫 달로 삼았고(출12:2), 열흘에 어린양을 잡고(출12:3), 열 나흗날까지 간직했다가 해질 때에 잡았습니다(출12:6). 이 날에 하나님께서 애 굽 온 땅을 치시고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집은 넘어가셨습니다(출12:23). 이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이 유월절이고(출12:11), 여기에 기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을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곧 니산월 열다섯째 날에 부활하셨습니다(요20:1). 부활절은 이 날을 기념 하여 지킵니다.
68 하지만 유대인의 니산월은 현대의 3-4월경이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가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주전 46년에 제정한 역법인 태양력인 율리우스력에 따라 사용하였기 때문에 통일이 되지 않 았습니다. 그래서 주후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소집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날에 기념하기로 하였 고, 그 방안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게 되는 춘분을 율리우스력에 따라 3월 21 일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은 천문학적 햇수와 날의 계산에서 작 은 편차가 있습니다. 율리우스력의 한 해의 길이는 정확히 365일 6시간이며, 이 는 천문학적으로 계산한 1년의 길이보다 약 11분 14초가 깁니다. 이 편차가 상 당 기간 누적이 되어 16세기에 이르러서 약 10일이 빠를 정도로 달력에 큰 오차 가 생겼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였으며, 개정한 달력은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으로 부르게 되었고 지금 전 세계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교회는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고정하여 지켰 고,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교회는 니산월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부활절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간 부활절 날짜로 인해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현대 에 와서 지금처럼 통일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지키는 부활 절은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요? 그레고리력에 근거한 부활절은 춘분 다음에 오 는 만월 다음 주일이 부활절 입니다. 춘분은 태양력으로 3월 21일이 정해져 있습 니다. 그런데 만월 ( 滿 月 )은 태음력으로 보름을 의미하는 날이기 때문에 날짜가 바뀝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알기 위해서는 춘분인 3월 21일을 찾고, 춘분 다음 에 오는 음력 15일을 찾고 그 다음에 오는 주일을 찾으면 됩니다. 그래서 올해 의 부활절은 춘분 다음에 오는 음력 15일 보름이 4월 17일이기 때문에 그 다음 에 오는 주일 4월 24일이 됩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인 기독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를 구원하여 주님이 영광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도 주님처럼 부활하게 된다 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주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우리의 영과 육이 새 로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새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그 래서 변화된 존재로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며, 하 나님이 그리신 큰 그림에 따라 세계를 경영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부활한 자로서 합당한 자로 살기 위하여 먼저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부활을 맞으면서 40일 금식을 하지 않더라고 우리 삶의 기초를 다시 확인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우리의 신분에 따른 사명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칼럼( )
69 한샘칼럼( ) 올바른 신앙적인 감정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여러 가지 은혜 를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각 사람에게 어떤 형태든 신앙적인 감 정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감정은 사랑과 기쁨과 감사, 소망, 동정심, 열 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 등으로 나타나게 됩 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기뻐하게 되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알 수 없는 눈물이 나고 이상한 기쁨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 은 집회에 참여하여 경련을 일으킨다든지 까무러치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소 리 지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교회에 와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고 찬송을 하고 금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은혜를 받으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습니 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 신앙의 감정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되 어 나타나지도 않고, 이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지 않고 심지어 어떤 경우는 교회에서 가장 큰 시험거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신앙적인 감정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실제로 저의 경험적으로 볼 때 소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할렐루야, 아멘, 믿음 등과 같은 교회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일 비윤리적이고 상식이 없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면 구토가 날 지경이고 역겹 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말로 겸손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만 하나도 겸손하지 않고 거만하게 구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을 때 오래 전에 보았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을 다 시 읽으며 참된 신앙적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숙고해 보게 되었습니다. 18세기 미국의 제1차 대부흥운동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을 섬기 는 생활에 있어서 이성과 감정의 문제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당시에 신학적 분위기 가운데 두 가지 잘못된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며 이와 관련 된 설교와 책을 썼습니다. 그 두 가지 잘못된 경향 중 하나는 합리주의 영향으 로 신앙적 감정을 무시하고 이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또 하나는 어떤 사람들은 열광적이고 뜨거운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인격과 생 활이 변화되지 않는 경향이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러한 경향을 염두에 두고 참된 신앙적 감정과 거짓된 신앙적 감정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표지가 무엇
70 인지 구별해 줄 필요성을 느끼고 쓴 책이 신앙적 감정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1746)이라는 책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 책에서 왜 거짓된 신앙적 감정이 생겨나는지에 대한 설 명이 흥미로웠습니다. 세상에서 가만히 보면 어떤 것이든 탁월하고 좋은 것일수 록 모조품이 많다고 하면서 금과 은을 예로 들었습니다. 철이나 구리보다 금이 나 은이 모조품이 많은 이유는 금이나 은이 비싸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나 루비 같은 보석도 모조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은보석은 진 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해내는 감정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철이나 돌은 모조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탁월하게 좋으면 좋을수록 그 본질을 모조하여 그 외양을 같게 보이기 위하여 기술이 더 발달하여 더 많은 모조품을 만들게 됩 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은혜받은 결과도 이와 같이 모조품이 많다고 하였습니 다. 그 중에서도 사랑과 겸손은 더욱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 당시에도 그러한 고민이 많이 있었듯이 지금도 여전 히 그러한 모습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스스로는 구원받은 신자요 은혜를 받았다고 하며, 하나님이 기도할 때 말씀을 주셨다고 하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이상하게도 인격과 삶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 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동기가 불순 합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이러한 현상을 경험해보지 않습니까?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현상에 대하여 봄에 개화하는 꽃망울에 비유하면서 봄 에 나무 위에 꽃망울들이 수없이 많이 맺혀 있고, 그것들이 아름답고 소망스러 워 보이지만 이것들 중에 다수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고 만 다고 하면서, 참으로 구원받아 올바른 신앙적인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은 꽃의 아름다운 향기와 냄새가 아니라 그 후에 나타나게 되 는 잘 익은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그 열매는 성품에서 겸손하고 온유하고 유순 하며 화평케 하고 자비로우며 부드러운 인품으로 나타나며, 영적으로 더욱 갈망 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기에 힘쓰는 모습을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뿐 만 아니라 그 삶은 윤리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거룩한 의지 가 생겨나 실제로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연구는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 한국교회의 성도들 이 단순히 꽃망울이 맺히는 것만이 아니라 열매맺는 삶으로 나타나 우리 시대에 새로운 교회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71 한샘칼럼( ) 십일조 헌금과 믿음 저는 교회를 개척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헌금에 대하여 가르치 지 못했고, 특별히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 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면 저절로 할 수 있으 리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책 임지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자라지 않고 오히려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 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교회당 건물을 구입하는 일과 관련하여 큰 시련의 과정을 거친 후부터는 기본적인 성경공부 과정인 생 명의 삶 과정에 넣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목회를 하다보면 십 일조 헌금만큼은 그 사람의 신앙의 바로미터(barometer)이고, 삶의 결과도 뚜렷하 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된 본문은 아브라함이 롯이 그돌라 오멜 연합군에게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사병 318명과 돕는 자들을 데 리고 연합군을 쳐부수고 돌아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일입니다(창 14:17-20). 이것은 아브라함의 승리가 자신의 능력이나 전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후에 야곱이 벧엘에 서 꿈으로 계시를 받은 후에 그대로 이루어주시면 돌아와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한 바가 있습니다(창28:22). 이것은 하나님이 벧엘에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 이 성취하신 일로 간주하겠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령하신 내용은 레위기 27:30에 있 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 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시내산 언 약의 문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에 대하여 레위기 27:34에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 명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고,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그 언약에 내포된 복을 누리는 방법이며 언약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이 시내산 언약 안에 오늘날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지켜야 하 는 십계명(출20:1-17)이 있습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로 성벽을 다 재건하고 난 뒤에 영적인 부흥 이 없이는 성전과 성벽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주로 맹세한 내용 가운데 하나님의 집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면서 십일조 헌금을 드려 서 성전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느10:32-39). 이것은 십일
72 조 헌금을 믿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성전의 궁극적인 목표인 그리스도와 그리 스도 안에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와 멀지 않은 시대에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하여 주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한 것으로 보고 그 중에 규례대로 십 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여 저주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말3:7-12). 특히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중요한 바로미터(barometer)로 이해하였 습니다. 구약의 시내산 언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여 전히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예표하는 제사법을 제 외하고는 새로운 의미가 되었기 때문에 지킬 수 있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바뀌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 과 기타 계명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킬 수 있게 되어 그 법을 지켜 행함으로 약속된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23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 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 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라고 하심으로 십일조 헌금을 인정하셨다는 것은 이 시대는 구약과 신약의 과도기이기 때문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성전이요 신약 시대에는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방법으로 이해 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그것을 마음대로 유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 헌금을 드려야 할 것을 얼마는 자신이 희생하고 섬기듯이 구제하기도 하고, 성도들에게 자신이 쏘는 것처럼 쓰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돈을 자기 마음대로 유 용하고 자기 편리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쓰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매우 위 험한 행동입니다. 이것은 십일조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고 행위입니다. 십일조 헌 금을 교회에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고 주님의 것입니 다 라는 신앙고백의 표현이요, 동시에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 라를 건설하는 중요하고도 위대한 일에 헌신하는 믿음의 표현으로 드리는 것입 니다. 특히 이 일은 과거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실제로 해 보면 인 간의 계산법을 넘어서는 다른 셈법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목회칼럼( )
73 한샘칼럼( ) 작은 교회의 구조적 취약점 교회를 정의할 때 많은 정의가 있지만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54문에 사도신경에서 고백하고 있는 거룩한 공회 (거룩하고 보편적인 기독교회)에 대하 여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세상의 시작에서 마지막 날까지 인류 가운데서 선택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그들을 불러 보호하시되 그 성령과 말씀 안에 서 믿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여 우리를 그 속에서 거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교회 의 산 지체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라고 정의한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설명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로서 성 령과 말씀 안에서 영생을 얻어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의 모임 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위치해 있는 교회당은 믿음 으로 하나가 된 자들이 모여 예배하며 교제하며 교회의 존재특성을 나타내기 위 하여 모이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 교회를 가리켜 오늘날 각 지역에 위치하여 주 께서 교회에 위임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지역 교회(local church)라고 합니다. 이 지역 교회는 규모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선 택받지 못한 사람이 끼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정의를 볼 때 외적인 규모의 크고 작은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세워 제자로 삼고 그 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러나 실제로는 적지 않은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세워 제자로 세우고 그 책임을 이행하게 하는 일에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 지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 하면서, 동시에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작은 교 회는 이 시스템이 취약합니다. 무엇보다도 작은 교회는 인적구성면이나 재정적 인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장점을 극대화하기도 어렵고, 약점을 최소화하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거나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참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칙을 세워가기도 어렵습니다. 이 구조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정한 법과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적용하기가 어려워 교회가 정한 원칙에 따른 직분자를 세우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작은 교회를 섬겨준다고 생각하고 공로의식을 가지고 있습 니다. 과거에 우리 교회는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으로 돕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 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여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일부 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말 그대로 표현하면 목사님이 교회가 작으니까 나를 교 회에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지 사랑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 다. 그러면서 당연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거만하게 행동하기까지 하였습니다.
74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의도적으로 신자의 기본적인 믿음의 표현이며 책임인 십일 조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목사님, 저희 가정이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으면 좀 영향이 미치겠지요? 라고 위협하며(?) 실제로 헌금을 하 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위에 언급한 일들은 어느 정도 구조적으로 안정된 교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구제하고 돕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교회처럼 도운 교회도 흔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비교적 큰 교회에서 교회의 행정 전반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우리 교단의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며 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연구하고 가르 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참고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없으면 교회를 운영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그 영혼이 복음을 듣고 새 사람 이 되어 제자로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일차적으로 있고, 다음으로는 혹 시라도 그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술이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기도한 후에 결단 을 내립니다. 사실 담임목사로서 교회가 외적으로도 부흥되기를 원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동등한 신분의 목사라고 할지라도 목사세계에서 작은 교회의 목사는 정당한 인격적 대우조차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세계에서 비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든지,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유가 많이 제한된다고 할지 라도 그 따위 것들은 다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구조적인 취약 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권위를 무시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 시하는 행위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 새벽마다 저녁마다 갈등하며 하나님 앞에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고, 때로는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앞에 답답함을 호 소합니다. 사실 예전에는 어른들이 답답하여 숨이 막혀가는 것을 뚫어내기 위하 여 가슴을 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회하면서 정말 어떤 때 는 가슴이 답답하여 숨이 막힐 때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비록 작은 교회가 구조적으로 취약하여 사탄의 공 격대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교회 가운데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마18:20).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기도한다면 조만간 주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고, 그리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75 목회칼럼( ) 하나님 말씀의 메커니즘 저는 종종 목회자로 사는 삶에 대하여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주셔야 하지만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며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겸손함과 눈물과 기도로 (행20:19) 섬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사랑이 없다느니, 목사님이 전 도를 하지 않아 부흥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러한 것들은 사실상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만 참으로 목회자인 저의 마음을 아 프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에 따라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목회자이기도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를 사랑으로 돌보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해야 할 책임과 세 딸을 지키고 인도하며, 특별히 자녀들을 교육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일에 역시 많은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나 어떤 경우는 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입니 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직면해 있는 성도들이나 제자들을 볼 때 함께 그 어 려움을 분담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고 묵상해 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때마다 성경을 읽고, 또한 그렇게 권하는 것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 다.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에 성경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 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 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하 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데오-프뉴스토스 (θεο-π νευστος)라는 말로 하나님 이라는 데오스 (θεος)와 호흡하다 또는 숨을 쉬 다 라는 뜻의 프네오 (πνεω)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는 뜻으로 성경은 인간의 말이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배반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부인하는 위선적인 그리스도인(딤후3:1-5), 그리고 얀네와 얌브레와 같은 거짓교사들이 미혹하고(딤후3:6-9), 여러 가지 물리적으로 오는 핍박과 어려움(딤후3:10-13) 등을 이길 수 있는 대안으로 바울이 성경의 기 능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딤후3:14-17).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 로 온전하게 세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인간을 치료하고 변화시키고,
76 힘을 주며, 위로하는 능력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입니다. 지난 학기에 제가 출강하고 있는 신학대학원에 연세대학교 의과대 학의 이성훈 교수님이 오셔서 치유적 목회 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한 일이 있습 니다(2011/05/26). 사람들이 음식물을 섭취하면 항상 배설물이 쌓이게 되고, 사람 마다 그램 정도의 배설물을 가지고 있는데, 이 배설물을 어떻게 내어 보 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서 그 배설물을 길이나 공공장소나 사람 들이 있는데 배설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누구 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 상처를 어떻게 배설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배설을 하지 못하여 자기 혼자 끙끙 앓으면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생기게 되고, 이 배설을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고 상처를 받게 된 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배설하는 것은 치유를 위한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였는데, 복음 속에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 다. 저는 이성훈 교수님의 이 지적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 가운데 화학은 물질의 조성과 구조, 성질 및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어떤 물질도 구조와 성질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다양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성질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치료약을 처방해 주는데, 그 약재 안에는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 는 여러 성분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안에 다 양한 구조와 성질이 있고, 마치 한약재 안에 여러 성분이 있듯이 다양한 성분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부분은 성경 어떤 곳에, 어떤 부분은 어떤 곳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 심지어 어떤 부분이라고 할지라도 다 양한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세계적인 신학자 칼 바르 트(K. Barth)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성경 안에 이상하고 새로운 세계 가 있 다고 하였듯이 이상한 능력이 내재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 씀의 메커니즘(mechanism) 안에는 이상한 능력이 있어 능히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우리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 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보이지만 성경을 정직하 게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성경 안에 있는 이상한 세계를 발견하여 자신도 치유하고 다른 사람들도 치유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 니다. 목회칼럼( )
77 한샘칼럼( ) 영적 건강의 위험신호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하나가 당뇨병 (Diabetes Mellitus)입니다. 이 병은 소변 으로 포도당이 배출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병입니다. 그런데 당뇨병에 걸리면 소변으로 포도당이 빠져나가는데, 이때 수분을 같이 끌고 나가기 때문에 소변양 이 늘어나고, 그 결과 몸 안에 수분이 부족하여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또 한 영양분이 몸에서 이용되지 않고 빠져 나가기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고 잘 먹 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감소합니다. 당뇨병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을 삼다 ( 三 多 ) 증상이라고 부르는데, 다음 ( 多 飮, 물을 많이 마심), 다뇨 ( 多 尿, 소변을 많 이 봄), 다식 ( 多 食, 많이 먹음)을 말합니다. 그 외의 당뇨병의 증상으로는 눈이 침침하고, 손발 저림 등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이 병의 원인이 제거되거나 잘 관리만 되면 생활에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만 무서운 것은 합병증인데, 동맥경 화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주로 망막(눈의 일부분), 신장, 신경에 문제를 일으켜서 시력 상실, 만성 신부전, 상하지의 감각 저하 및 통증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이러한 이유에서 당뇨병은 조심해야 할 질병입니다. 당뇨병의 예를 들었으나 어떤 질병도 위험하고 그 병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적 절하게 처방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병 들이 위험하고 그 증상들이 나타나듯이 영적인 질병도 위험하고 그 증상들이 나 타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에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 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는 단순히 신체적인 면만을 가 지고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과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 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이 있는 것만으로 평가할 수 없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교회와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었고, 성령이 그 속에 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 미에서 이 기초는 마치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라다가 점차 단단한 식물을 먹으며 자라서 한 사람의 인격자로서 살며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사명을 다 하며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라서 나이가 20대, 30대, 40대가 되어도 부모에게 의존하여 손을 벌리며 의존하여 산다면 그는 정
78 상적인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하나 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봉사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나 미숙아이거나 어딘가 질병이 있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증상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그 이상 증상 들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로는 예배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져있거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배에 빠지기 시작한다는 것 입니다. 두 번째로는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 감사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상입니다. 세 번째 로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지 않으며 말씀에 따라 기도하지 않는 현상 들이 나타납니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성도에게 삶의 활력과 지침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네 번째로는 자신이 교회에서 맡은 일에 크든 작든 그 일에 책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 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일의 중요성과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로 교회를 위해 헌금하지 않습니다.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 를 사랑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그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마6:21). 여섯 번째로 사건 사고가 끝이 없고 하는 일마다 풀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보내시는 위험 신호입니다(암4:1:11). 이 외에도 많은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날 때 위험신호인 것을 감지하고 치료하여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은 복잡하지 않고 아주 단순합니다. 로버트 C. 스프롤이 지은 당신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인가? (프 리셉트, 2009)에 성경공부, 기도, 예배, 섬김,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는 것 등 다섯 가지의 필수 영양소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 영양소를 공급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어느덧 문제가 풀려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중에 어느 하나의 영양소라도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지금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 건강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생활의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명과 미래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79 한샘칼럼( ) 목회자의 영광과 갈등 우리나라에서 목회자들이 주로 애독하는 목회저널로 목회와 신학 (두란노, 2004, 8월호)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호 특집에 목회의 고된 일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라는 주제로 목회자의 어려움과 갈등에 대한 다양한 글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목회는 일반 직장과 달리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정 해져 있지 않지만 항상 긴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전문적인 활동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 신학교였던 평양신학교 교수로서 31년 동안( ) 실천신 학을 가르쳤던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 박사가 쓴 목회학 이라 는 책에 목회를 가리켜 교역자가 복음의 진리를 신자의 생활에 적용하는 일련 의 활동 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목회자는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해야 하고, 교육하고, 심방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진리는 단순히 가 르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복음의 특성상 성령의 도우심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회적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게 되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되어 이 땅에 가장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 볼 때 목회자들은 목회사역 속에서 육신적으로 많이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하고, 실망과 좌절 등으로 탈진의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본질적인 사역인 말씀연구와 기도 하는 일 때문에 탈진한다기보다는 주로 비본질적인 요소인 행정적인 문제와 인 간관계로 인하여 탈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한 선배 목사님 은 훌륭한 설교와 복음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거룩한 열정이 있는 좋은 목회자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회현장에서 당회원 가운데 한 분이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알고 묵인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힘들게 함으로 탈진상태에 빠져 결국은 정상적인 목회를 하지 못하는 안타 까운 현실을 보았습니다. 사실 목회자는 이 문제가 아니라도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매일 새벽기도 회에서 설교하고, 한 주일에 주일예배와 오후예배, 수요밤 예배의 설교만 준비하 더라도 고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폭넓은 독 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설교를 준비하는 일도 힘들지만 중보기도 하는 사역과,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하고 심방을 통하여 돌보는 일 역 시 힘들고 어려운 사역입니다. 특히 이 일에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이 사 랑을 가지고 위로하고, 권면하고, 잘못을 행할 때에는 말씀에 따라 책망하기도
80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목회자는 자신이 설교하고 가르치는 교리와, 목회자가 보여주는 삶이 서로 다르지 않아야 하고, 목회자다운 규모 있는 삶이 전제가 되 어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를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도를 온전 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입니다(엡4:12). 이러한 이유에서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여 이 땅을 변화시키는 제자들이 많아지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큰 기쁨이요 소망이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엡4:13; 살전2:19-20). 하지만 땅 위에 있는 교회는 연약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 로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계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일입니다. 목사는 항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는 없 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신자로 세워가는 일에는 칭찬과 격려도 필요하 지만 책망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망을 하면 현실적으로 목회자와의 관계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주변에서 늘 보고 경험하는 일이지만 관계가 좋을 때는 약간의 실수조차도 용납이 되고 덮어두게 되지만, 관계가 깨어지게 되면 없는 허물까지 만들어가며 대적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목사는 모 든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모든 계층, 모든 신분의 사람들을 동일하게 대하 여야 하지만 그래도 소외된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기울 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적으로 목회에 큰 도움을 주지 못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발언권이 미미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 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가 없는 경우도 많이 있 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사람들로 구성된 땅위에 있는 교회의 한계입니다. 또한 목회자가 감내해야 하는 가장 힘겨운 일은 근거없는 비난과 오해들입니 다. 그 중에서도 인격적인 공격이라고 많은 목회자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근거없 이 목회자를 비난하는 사람은 비록 소수라고 할지라도 교회공동체의 연합을 깨 트리고 목회자를 어렵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이를 부정하거나 드러내 놓고 자신을 변호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똑같이 싸우거나 변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회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믿고 침묵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아픔이요 갈등입니다. 목회자로서 이 러한 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한국교회가 목회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잘 알고 서로 협력하여 건강한 교회를 세워 주님의 뜻 을 이루어드리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81 한샘칼럼( ) 참된 교회의 표지에 대한 편견 편견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사실상의 근거 없이 지니고 있는 생각으로 공정하고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합니다. 이 편견에 대하여 오래 전에 인기 있는 시사만화가 박광수 씨의 광수생각 (조선일보, 2002/08/19) 에 위트(wit)가 넘치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말이 한자를 쓰기 때문에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언어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재미있는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 내 용은 이러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개 이야기 해드릴까요? 녀석은 강 철도 뚫는 이빨과 강인한 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각이 발달하여 멀리 있는 것들 도 금방 냄새로 알아채며, 국가대표선수보다 더 빠른 발을 지녔습니다. 녀석은 말 그대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개랍니다. 장애인을 물고, 없는 사람을 보면 천둥처 럼 짖으며, 전과자는 세상에 발붙일 수 없도록 으르렁거립니다. 반면 녀석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살살 흔들어 대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개. 그 개의 이름은 편견 입니다. 그 개는 언젠가 당신의 뒤꿈치를 물 겁니다. (1345호)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편견이 교회도 있습니다. 참된 교회의 표지인 말씀선포와 성례와 권징이 시행되는지의 여부로 교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규모로 판단하여, 작은 교회의 목회자를 편견을 가지고 대하고 그 성도들 역시 위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에서 3년마다 시행하는 2011년 교육대회 ( 경주 코모도호텔)에 참석하여 우리 교단의 장로인 서강대 교수인 강영안 교 수님의 강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분은 현대 교회가 도전을 받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무신론, 종교다원주의, 자본주의적 성공주의라고 진단한 바가 있습 니다. 그런데 교회가 도전받고 있는 문제 가운데 세 번째인 자본주의적인 성공주 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흥미 있는 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강 교수님의 강의에는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나 강의가 끝난 뒤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가끔 있는데 이때에 어느 교회 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 고 물으면 멈칫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물으면 동네 교회에 나갑니다 라고 말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기를 나가는 교회가 장로교회냐, 감리교냐, 장로교 라면 통합 측이냐 합동 측이냐 고신 측이냐를 물었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 들은 답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파나 신학구분이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이 생기기도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에 있습니다. 학생들 가운 데 사랑의 교회 나 소망교회 나 온누리교회 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사랑의 교회에 다녀요, 소망교회에 다녀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동네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82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위축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를 위시한 이름 있는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마치 쇼핑을 하고 자신이 구입한 물건 이 무엇이든 롯데 백화점이나 현대, 신세계 등의 고급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처 럼 있어 보이지만, 동네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오는 것 같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그 교회에 다니는 것이 고급 유명 백화점에 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 백화점의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작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 을 설교하기보다는 좋은 상품을 선전하고 고객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엔터테이너 가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저도 주변에서 이러한 현상을 많이 경험하고 갈등하 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교회를 자본주의적인 성공구 도 안에서 이해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대하 여 자부심을 가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의 수도 적고, 특별히 또래 집단이 적음으로 같이 교제하며 대화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찬송을 흥이 나서 불러야 하는데 수가 적다보니 흥이 그렇게 나지 않는 것도 사 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처럼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기 선 교 나 비전 트립 (vision trip)이라는 이름으로 돈 많은 부자들만이 가는 해외여 행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성례를 규칙적으로 시 행하고, 분기별로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는 것 외에 달리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특별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적인 자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사역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 게 전파하고 있고, 교역자들과 목자들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작은 교회라고 동네교 회에 다닌다 라고 말하지 말고 개혁주의 신학에 토대를 둔 한샘교회에 출석하 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된 교회의 표 지는 외적인 규모나 얼마나 큰 사업을 하느냐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교회에 위임해 주신 본질적인 사역을 바르게 수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 으로 식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83 한샘칼럼( ) 다원주의 상황에서의 복음전파 우리는 지금 싫든 좋든 간에 다원주의(pluralism) 사회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다원주의란 말은 하나 만 있 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 그리고 여럿 이 있다는 것으로 분야에 따라 인식론 적 다원주의, 윤리적 다원주의, 종교 다원주의, 사회적 다원주의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다원주의에서 윤리 체계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있다고 보면 윤리적 다원주의라 할 수 있고, 구원을 받는 종교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있다면 종교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원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철 학에 바탕을 둔 것으로 공통적인 가치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상대주의적인 특징 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 상대주의는 진리의 상대적 국면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적인 권위라든지, 이성의 법칙이든지 절대성을 표방하는 것 을 모두 배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가치와 도덕을 무너뜨리고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의 존재가 부 정될 때 남는 것은 의견 뿐입니다. 한 사회나 문화를 지배하는 거대 담론이 사 라지면 상대주의가 활개를 치게 되고, 완전히 규제가 풀린 세계가 됩니다. 거기 에는 단순한 구호와 유행과 피상적인 이미지가 진리와 의미를 대변하게 됩니다 (신국원, 포스트모더니즘, ).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 는 구원을 얻거나 경험하는 유일한 진리가 아니고 하나의 의견이고 입장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가 도전받는 중요한 문제가운데 하나가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 이 아니다 라는 종교 다원주의 사상입니다. 종교 다원주의가 무엇인지에 이러한 예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리산의 천왕봉을 오르는 데는 중산리에 서 올라가는 코스도 있고, 백무동 쪽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인데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 등은 다 같이 구원을 얻는 종교로 봅니다. 단지 오르는 코스가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라는 말씀하신 것을 바꾸어 나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아도 아버지께 올 자가 있다, 곧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를 향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도전을 받고 종교 다원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우리 현 시대의 정치, 사회, 학문적인 분위기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것이 종교에 적용된 데는 기독교가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로서 바르게 기능하지
84 못했다는 것입니다. 소위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자로서 당연 히 나타나야 할 삶의 덕목들인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과 부지런함과 성실함 과 책임감 등이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배타 적이며 독선적인 삶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기독 교의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들의 종교와 삶을 배려하기보다 는 배타적이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0년 10월에 인터넷 동영상으로 유포된 봉은사 땅 밟기 는 우리나라 기독교를 부끄럽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입 니다. 이러한 행사는 단기선교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여 호수아의 인도로 여리고 성을 돌 때 무너진 것에 기원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를 자의적이며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기 때 문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방식으로 가나안을 정복한다면 여리고 성을 제외한 다 른 땅은 그러한 방식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이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불교와의 갈등을 빚게 되자 봉은사 주지 스님에게 사과하기 하였습니다 (ohmunews.com 2010/10/2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 때 불교 신자와 이슬람, 혹은 무교 신자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 면 다원적 사회구조와 상황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 다고 해서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서만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타종교 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복음을 전하는 일 에 무례함과 배타성의 극치를 드러내는 방법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지만 베드로전서 3:15-16에 너 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 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 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 우선적으로 우리의 삶이 우선적으로 거룩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온유와 두려 움으로 하되 우리가 믿는 진리에 대하여 너희의 소망을 두고 있는 것에 관한 이유 (logon peri tes en humin elpidos)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 (apologia)할 것을 항상 예비해야 합니다(벧전3:15-16). 특별히 이들에게 우리가 믿는 말씀 (logos) 을 논리적으로 (logically)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원화된 사회적 상황에서 복 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85 한샘칼럼( ) 교회생활은 생명선이다 며칠 전에 노회의 일로 몇 몇 목사님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목사님께서 그 교 회의 장로로 있었던 분이 임종한 소식을 전해주면서 그 분의 삶과 가정에 대하 여 듣기에 참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분이 그 교회의 장로로 있 으면서 목회자를 괴롭게 하고, 성도들과 갈등하며 온 교회를 힘들게 한 분으로 교회에서 덕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회와 교회봉사로부터 자유롭 기 위하여 섬기는 교회에서 멀리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 많던 땅 과 재산도 점점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결국 오랫동안 장로로 섬기던 교회를 떠나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임종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목사님이 몇 해 전에 그 분의 딸이 결혼하여 자신이 봉사하는 교회에 출석하여 성경공부 시간에 간증한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딸은 결혼하여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아버지가 교회의 장로인데도 계속하여 담임목사님과 여러 성도들을 비난하고 불평하고 욕하는 것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렇게 비난하고 욕하는 교회에 나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러다가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나 그 딸마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일로 인 하여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며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만 듣는다면 마치 교회생활을 할 때 아무런 비판 없이 목회자 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 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의 경우는 교회의 헌금을 관리하면서 오랫동 안 그 헌금으로 사채놀이를 하고, 목회자를 괴롭게 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 하고 무거운 짐만 되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부유하게 아무런 염려 없이 사는 정말 사악한 사람들도 있습니 다. 성경의 전도자가 갈등한 것처럼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 하므로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악을 백번이나 행 하고도 장수하는 (전8:11-12) 현상을 보기도 합니다. 이 점이 우리를 믿음으로 사 는 일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에게 있어서 교회생활은 생명선이고 형통하는 비결입 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누릴 수 있도 록 주신 아주 중요한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장성한 분 량에 이르게 되는 일은 복음을 믿는 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말씀의 사역자들(목회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86 다른 믿음의 가족들과 교제함으로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성장하여 자 기 위치에 맞는 역할을 감당하려면 자기 혼자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도록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창2:8). 사람은 사회라 는 울타리 안에 거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가지며 성장하게 되어 있 습니다. 창조 당시에는 서로의 봉사와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과 서로 교제하 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이 풍성해지고 그들이 교회 본연의 존재목적을 달성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 기독교강요 4권에서 그리스도 안 에서 구원하신 모든 결과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고 교회 를 가리켜 은혜의 방편 (means of grace)으로 이해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우리 성도 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생활의 중심입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 중심, 성 경 중심, 교회 중심 의 생활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교회중심의 생 활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구현하는 중요한 도구역 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교회를 섬기는 일을 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고, 삶의 궤적을 교회와 함께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생활은 신자의 생명과 직 결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교회생활을 하면서 목회자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길만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생활이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만들며,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교회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전파한 하나님 의 말씀을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그러한가 살펴보고(행17:11), 목회자가 그 인격과 삶에 중대한 결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 을 바르게 증거하고 가르치고 있다면 믿고 순종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히브 리서 13:17-18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 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하신 말씀처럼 목회자들에게 순 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87 크리스챤 한국신문 시론( ) 잘못된 신앙간증의 위험성 얼마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목사님 한 분이 전 모 신학대학원 교수와 원장 으로 계셨고, 유명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계셨던 모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하면 서 그 분의 이력이 그의 간증을 신빙성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 구가 되기 때문에 참고하라고 권한 바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분이 어떤 내용을 간증하였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듣고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 는 그 분의 이력과 위치 때문에 좀 더 조심스럽게 간증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분별력이 없는 목회자나 일반 평신도들은 은혜를 받고 전도에 열심을 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나중에는 교회의 신앙 생활을 혼란스럽게 하고 말씀을 버리고 이상한 신비주의를 찾게 되어 결국은 교 회의 믿음을 무너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의 간증에 구원의 열두 반 열이 있는데 자신은 원래 5반열에 속해야 하는데 내가 본 지옥과 천국 이라 는 책을 써서 전도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3번 반열에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습 니다. 하지만 오히려 교회에 해를 끼쳤기 때문에 만약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 다면 그 반열이 더 강등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천국의 반열 구분은 마치 세상에서의 삶의 결과로 천국에서 반열이 나누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 니다. 그리고 5번 반열에 아프리카의 성자로 알려진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보았 다고 하였습니다. 정규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부가 인정하는 신학대학원에서 신 학과정(M. Div.)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슈바이처의 신학을 다루게 됩니다. 그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1906)라는 책에서 메 시아로서 공적으로 나타나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선포하고, 지상에 하늘나라를 설립하고 자신의 사역을 죽음으로 성별시킨 나사렛 예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 다. 그는 합리주의에 의해 설계되고, 자유주의에 의해 생명이 부여되고, 현대신 학에 의해 역사적 옷을 입은 인물이다 (398)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대 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 활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슈바 이처를 보았다고 하였는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천국 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 분이 보았다는 지옥이나 천국이 그러한 층과 반열로 나누어져 있는지 인간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알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지옥과 천국에 대하여 자세한 구조를 설명해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이 세상에서도 경 험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주께서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 아 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신앙간증이 일시
88 적으로 유익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현혹되지 말고 성경과 대조하며 꼼꼼하게 살 펴야 합니다. 특히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우리는 지옥과 천국에 갔다 온 사람들 의 말 때문에 그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간증을 들었습니다만 그 분의 간증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고 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오히려 거부반응이 느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앙간증이나 체험, 나 타난 현상을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문적으로 전국교회를 순회하며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을 교회의 부흥에 이용하는 눈먼 목회자 들도 기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간증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정한 규칙인 예배생활과 성경공부, 기도와 봉사생활과 청지기로서 책임있는 삶 을 살 때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그리고 인도하심 등을 경험할 수 있습 니다. 이 점은 분명 우리의 신앙생활에 활력을 주고, 우리가 믿는 진리의 말씀이 사실이며 동시에 미래에 들어가게 될 나라에 대하여 확신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신앙간증을 듣는 청중들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은 아니지 만 다른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사모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 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증이, 심지어 외적으로 아무리 좋은 스펙 (spec)을 가진 분의 간증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확인 하고 살피지 않으면 오히려 그 신앙간증은 자신과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 아 니라 치명적인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크리스챤 한국신문 시론( )
89 한샘칼럼( ) 교회의 생명력은 하나님의 은혜다 박우택 목사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얻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제자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과 세상에 적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먼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거나 성도들이 전도해 온 사 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는 생명의 삶 과정을 통하여 복음 을 자세히 설명하고 신자가 어떤 사람이며,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구 원을 얻게 되며,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교회는 왜 존재하며 무엇을 하고, 성경은 어떤 책 이며, 기도는 어떻게 하는지 가르칩니다. 그래서 본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하여 살기를 원하고,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기를 원하 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이 과정만을 거친다 고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여 늘 기도합니다. 이 일은 일반 학교교육과는 달리 지식 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들의 삶에 너무 간섭하면 위축되거 나 그 삶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피며, 그들 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목회자인 제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교회가 외적으로 잘 성장하지 않습니다. 성장 문제로 인하여 목회자인 저는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아버지 로서 힘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자괴감( 自 愧 感 )이 들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우리 교회 성도들은 정말 힘들겠다 라는 말을 하면서 저에게 성도들을 이해하 고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사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어머니를 부끄 럽게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내 부모님은 왜 이렇 게 어렵게 사실까? 어머니는 왜 도시락 하나도 제대로 싸주시지 못할까? 하 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좋은 교회당을 구비하고,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즐겁게 해주는 교회와 그러한 능력이 있는 목사님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렇게 생각하니 예전에 저의 어머니나 TV 드라마에서 부모 잘못 만나서 네가 고생한다 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90 사실 교회의 외적인 규모가 작을 때 발생하는 위험들도 의외로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물고기 비유를 들어 이러한 말을 하였 습니다. 물이 많은 곳에는 작은 물고기도 있지만 큰 물고기도 있고 그 물고기들 이 자유롭게 노닐지만 물이 얕거나 없는 곳에는 물고기가 있어도 작은 고기만 있고, 그 고기들조차도 서로 부딪히다가 물이 더 마르면 각종 새가 물고기를 채 어 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교회는 서로 힘을 보태도 어려 운데 열 명이 함께 들어야 것을 두세 명이 든다면 훨씬 더 힘이 들 것이고, 그 가운데 갈등이 빚어지고 여러 가지 시험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요즘 중대형 교회의 전도지는 자신들의 교회의 우월성과 그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에 사용하던 전도지는 복음과 기독교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 당히 다릅니다. 이것은 전도지가 불신자를 대상으로 전도하는 내용보다는 기존 의 신자를 유치하기 위한 홍보지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자 녀 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전개되는 전도활동은 교인들 의 수평 이동을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저와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큰 교회나 작은 교회에 동일하게 주어진 본질적인 사 역인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초 위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합니다. 종교개혁시대의 중요한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오직 은혜로 (sola gratia)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식상하고 구태의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여전히 중요하고,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말입니 다. 교회의 생명력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규모가 큰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수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제가 강도사 시절에 섬기던 교회 앞에 큰 교회가 매 주일 각목을 휘두르고 심지어 소방차가 와서 물을 뿌려 말리는 것을 보았고, 그 교회의 성도들이 폭력적으로 바뀌거나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단들이 그들을 낚아채 가는 것을 보 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외적인 규모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 나님의 은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임하는 것은 일차 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겸손하게 기도하는 일입니다. 목회칼럼( )
91 한샘칼럼( ) 신앙의 표현이 주는 의미 종교를 이해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눈에 볼 수 없 는 비가시적인 경험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관계를 기초로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다양한 종교경험들을 할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종교경험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한계가 있습니 다. 거룩한 존재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분명 신의 존재가 실 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거나 경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와 믿음의 세계는 믿는 사람에게는 실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닫 혀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나타나는 종교현상을 보면 이러한 종교경험 을 통하여 다양한 섬김과 예배의 표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교이든지 신앙의 표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표현 은 예배하는 방식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어 나는 일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역도 있고, 대화하다보면 더 이상의 의사소 통이 불가능한 경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경험한 자신도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기에 어려운 경험영역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감지하거 나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만 주어진 특별한 영역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의 세계를 경험 하거나 심청전 에서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과 같은 특별한 세계를 경험하기 도 합니다. 이것을 종교경험이라고 합니다. 종교적 경험에 대한 특별히 연구한 학자들이 많은데, 그 중에 프리드리히 폰 휘겔의 종교의 신비적 요소 (The Mystical Element of Religion)라는 책에서 어떤 종교든지 신비적인 부분을 포함하 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종교경험은 객관적인 대상 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험은 언어나 상징 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종교체험을 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인 존 로크나 데이비드 흄 등은 경험은 본질적으로 이 성이 아니라 감각을 통하여 세계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있 어서 감각은 논리와 수학의 영역이 이성과 대비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 들이 이해하고 있는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종교경험 역시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하여 느껴지고 이해되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고
92 실제로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만나고 경험합니다. 이것이 우 리가 믿는 기독교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만남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신 앙의 모습이 표현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배형태만 가지고 섣 불리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대단히 주관적인 부분이긴 하 지만 그가 믿는 종교의 의미를 온 몸으로 느끼고 아는 요소가 있습니다. 이 요 소를 가리켜 종교경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 적용하여 설명한다 면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지식이나 교리를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종교경험은 타종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 습니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나 경험을 총체적으로 종교경험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주의 무한성과 신성에서 오는 경외감, 신 비감 두려움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병 고침과 여러 능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신에게 예배하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 앙을 표현하는 방식이 때로는 비이성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 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신앙형태와 예배형태가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기 독교예배와는 다른 인상을 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발생한 일에 이라크에서 납치된 목사님들과 그 교회성도들이 예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TV화면에 비추어졌는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전통적인 예배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전에 서울의 만민성결교회와 영생교의 기도모습이 방영되었 을 때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교파의 목사님들인 지 관심을 기울이고 보았는데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 이라는 소속이었습니 다. 저는 단순히 TV에 비쳐진 모습만 보고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만 우리가 믿는 종교의 예배와 기도형태가 이상한 모습을 비추어지는 것은 바람 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인 기독교 역시 초월적이며 비이성 적이며, 인간의 지식이나 감성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습니다. 그래 서 넓은 의미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예배나 기도방식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의 예배는 성경의 원리와 전통적으로 이어온 교회의 예전( 禮 典 )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입각한 건전한 신앙의 표현은 복음의 본질과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늠자가 되기 때 문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표현이 절제된 아름다움과 경외심과 윤리성을 가지 고 나타날 때 긍정적인 의미를 줄 수 있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유익하기 때문 입니다. 대전 극동방송국 5분 칼럼 ( )
93 한샘칼럼( ) 주일성수와 믿음 오래 전에 우리나라 기독교회에서 사용되던 믿음의 중요한 표현 가운데 하나 가 주일성수 ( 主 日 聖 守 )였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 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의 예 배모범 에는 주일성수는 인류의 당연한 의무이다. 이 날은 일체의 육신적 사업 을 중지하고 성경의 교훈에 따라 거룩히 지켜야 한다. 주일을 예배와 안식에 방 해되는 개인의 유익을 추구하는 경제 행위를 금하며 세상 염려와 저속하거나 세 속적 행위나 연회나 쾌락적 행동을 삼가야 한다. (제2장, 제3조)라고 규정하고 있 습니다. 헌법은 성도로서 권리와 의무를 잘 수행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 을 수 있도록 성경의 교훈에 따라 교회가 지혜를 모아 만든 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헌법이 성경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것도 아 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성경의 교훈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성경의 내 용을 삶에 적용하는 일을 돕는 일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헌법 에 규정하고 있는 주일성수에 대한 설명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서부터 주일을 경시하는 풍조가 일어나 성도들에게서 주일에 대한 개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일에 대한 개념 이 없기 때문에 이 날을 세속적인 휴일 개념인 일요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 아주 인기 있는 말 가운데 주말 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를 사용 함으로 일요일은 더 이상 주의 날 이 아니라 주말 의 한 부분이 되어 주일개 념이 더욱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일을 범하고 이 날을 자신 의 이익을 증진하고 쾌락을 즐기는데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점차 힘을 잃 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미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주 5일 근무제 로 인하여 주일의 개 념이 더욱 희박해 지고 있다고 교계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주 5일 근무제 자체 가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타락한 인간은 주 5일 근무제 가 되면 실제로 주말을 여가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취미생활과 여행 등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자연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에 영향을 미치며 향락문화가 확산될 개연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 제로 현재 주일을 가볍게 생각하고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여행을 가거나 오전 예배만 드린 후에 주일의 나머지 시간을 주간의 다른 날처럼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음의 본질적
94 인 문제입니다. 출애굽기 31:16-17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더 이상 구약의 안식일을 문자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 의 구속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영적인 안식을 지향하는 모형과 그림자가 되기 때 문에 주간의 칠일 가운데 하루를 쉬는 안식제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구 원을 완성하시는 날까지 존속될 것이고, 또한 존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역사적 으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날을 주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주일은 즐겁고 기쁜 날 이었습니다. 이 날을 기다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만 가장 중 요한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날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날을 지킴으로 죄로 말미암아 안식을 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안식(하나님 나라)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 도의 재림으로 오게 될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날을 구별하여 주의 날로 삼아 지킬 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비한 기쁨을 경험 합니다. 그리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안식의 기쁨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가족들이 함 께 만나 교제하므로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은 믿음을 자라게 하고 경건을 증진시키는 일 에도 아주 중요합니다.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인 찰스 핫지(Charles Hodge)는 주일성수는 종교적 지식과 경건을 증진시키며, 주일성수가 무시될 때 이교사상 이 팽창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려해 볼 때 오늘날 주일을 거룩 하게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 게 지키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표현이요,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외적인 표징이며, 나아가 믿음의 증진시키는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 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과 함께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약속하신 모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축 복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이 은혜도 경험 해 보기를 바랍니다. 목회칼럼( )
95 한샘칼럼( ) 우리 정서와 문화로 표현된 찬송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에 있는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베이징이나 정주에 있는 유명한 교회들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만 특히 그들이 부르는 찬송이 중국적인 리듬과 가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 이 가진 찬송가에 수록된 내용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누가 들어도 중국의 가락 이고 그들만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지도 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휴식 시간이 지나고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그들 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게 하고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만국 공통언어 가운 데 하나인 찬송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우리 정서와 가락(melody)이 담긴 곡들을 중국교회들 처럼 많이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찬송가가 편찬된 때 는 선교사가 입국한 지 8년이 지난 1892년이었습니다. 그것은 감리교의 존스(G. A. Jones)와 로드와일러(L. C. Rothweiler)가 편집한 27곡으로 된 찬미가 였습 니다. 2년 후인 1894년에는 장로교의 언더우드에 의해 117곡으로 편집된 찬양 가 가 출판되었는데, 이 찬송가 상단부에는 사성부( 四 聲 部 ) 악보가 그려져 있고 하단부에는 가사를 기록한 형태였습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서양식 악보가 인쇄 된 최초의 음악책이었습니다(이상규, 초기 한국교회의 찬송가, 국민일보, 2011/07/28). 그런데 이 찬미가 의 증보판 서문에 번역 찬송보다 한국인 창작 자를 세우실 때까지 개척자로서 다리의 역할을 할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의 찬송가가 발간된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한국인 창작자를 세우실 때까지 다리 역할을 하리라 한 서양식 찬송만이 경건한(?) 찬송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이 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SBS에서 미시간에 있는 그랜드래피즈(Grand Rapids)에 있는 한 교 회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찬송을 부르는 것이 방영되었는데, 아리랑 가락에 맞춘 찬송이 미국의 찬송가 229장에 수록 되어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찬송이 찬송가에 수록되어 미국과 캐나다에서 부르 게 된 데는 칼빈대학 음악학 교수인 버트 폴먼이 기여하였습니다. 당시 폴먼은 미국찬송가 편찬위원으로 아리랑 가락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사를 만들어 찬송가 위원회에 제출하였는데, 찬송가에 수록할 3000여곡의 후보 곡들 가운데 만장일 치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리랑 가락에 맞춘 찬송이 수록된 것은 멜로디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습니다(sbs.co.kr 2010/09/13).
96 지금 새 찬송가에 수록된 찬송가를 보면 한국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 모 두 128곡이 있습니다. 이 숫자는 지난 번 찬송가의 17곡에 비하면 많습니다. 이 곡들 가운데 우리의 정서가 담겨 있는 아름다운 곡들과 성경의 메시지를 잘 표 현한 찬송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이 찬송가 가운데 작사자와 작곡가를 알고 어떤 배경에서 쓴 것인지 알게 되면 그 의미는 다르게 다가오게 됩니다. 예를 들면 주기철( 朱 基 徹, ) 목사님이 작사하고 김남수가 작곡한 서쪽 하 늘 붉은 노을 (158장)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곡은 원래 한국 최초의 성악가요 비련의 주인공인 윤심덕( 尹 心 悳, )이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바 노비치(Ivanovich, Iosif, c )가 작곡한 도나우강의 잔물결 (Donauwellen Walzer)이라는 곡을 편곡하여 사의 찬미 란 가사를 붙여 레코드에 취입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입니다. 주 목사님은 이 애절한 곡조 전반부 절에 맞 춰 영문 밖의 길 이라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가사를 써서, 전국 각 교회 에서 오래 동안 불렀습니다. 이번에 새 찬송가에 수록될 때에는 가사가 우리 운 율로 작사되어 있고 곡조도 한국음계인 5음계로 작곡되었습니다. 그리고 윤이상 선생으로부터 작곡을 공부할 때 한국 사람이 한국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라고 가르침을 받은 한태근이 작곡한 주님 가신 길을 따라 (448장), 전낙표가 작곡 한 나의 기쁨은 사랑의 주님께 (409장) 등은 우리의 정서가 잘 녹아 있습니 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우리 가락으로 된 찬송을 한( 限 )의 정 서가 묻어 있는 곡으로 비하시키거나, 경건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의 정서가 담긴 가락으로 된 찬송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복음을 받은 우리는 우리 정서와 문화로 우리가 받은 복음과 믿음을 표현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불경건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의 믿음이나 성경의 메시지가 잘못된 문화에 동화되거나 저속한 방식으로 표현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의 문화와 정서가 성경과 반대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찬송이나 성경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작품들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신앙의 행동으로 보아야 합니다. 목회칼럼( )
97 목회칼럼( ) 사고와 하나님의 뜻 사이의 갈등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눈이 많이 오기도 하였고, 다른 급한 일도 있어서 집 으로 가지 못하고 잠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천안에서 스 타렉스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던 시외버스와 충 돌하여 이 차에 타고 있던 분 6명이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보았습 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 업체의 건설현장 하청업체 소속의 일용직 근로자라는 것입니다(osen.mt.co.kr, 2013/11/27).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생활고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일용직 근로자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들일 텐데 왜 하필 그들입니까? 그렇다고 대신 다른 사람이 대신 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나쁜 사람들, 그것도 겉으로는 매우 있어 보이고 선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득 차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왜 그들인가 하는 생각이 더욱 아프게 합니다. 나는 지난 해(2012/12/07)에 눈이 오는 날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미끄러져 난간을 들이박은 사건으로 아내와 함께 큰 사고를 당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사건이 지금도 생생하여 눈이 오는 날에는 차를 운전하지 않습니다. 그 리고 약 20년 전에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영동으로 차를 타고 가다가 눈길에 미 끄러져 승합차의 뒤 창문을 깨고 도로 가운데도 떨어진 일도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사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선하다거나 목 사이기 때문도 아니고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합니 다. 지금도 이 사건을 생각하면 슬로우 비디오로 재생하며 보는 것처럼 생생하 게 재생됩니다. 눈길에서는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 하 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생각하며 그 승합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왜 눈길에 미끄러져 다른 차와 충돌하여 죽었는가? 이 생각이 그 밤만 아니라 다음 날에도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이때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가 쓴 죽은 신을 위하 여 (김정아 역, 길, 2007)에 나오는 대목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에는 나찌의 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공판을 하는 중에 신이 전능하다면 분명 고통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막을 수 없었다면 무능한 것은 아닐까 하 는 논리로 전개합니다. 만약에 고통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않았 다면 신은 괴물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러한 치열한 재판과정으로 통하여 신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받아들 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론입니다.
98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다 할지라도 이 일은 매우 고통스럽 고 난감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사고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 사 람의 입장에서 갈등하며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은 제럴드 싯처가 지은 하나님 의 뜻 (윤종석 역, 성서유니온선교회, 2010)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갑 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장모님을 잃고 아들은 큰 중상을 입 는 사고를 당한 일이 한 가지 동기가 되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갈등하는 가운 데 썼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 고통에 대하여 오랫동안 고민했던 질문이 과연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뜻하신 일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고와 사고로 인한 고통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가학적인 깡패처럼 비 열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비열한 하나님이라면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해 주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분인가 하는 의문이 싹이 트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15-32).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믿음생활을 할 때 이러한 생각을 해보지 않습니까? 사실 이러한 질문이 언제든 일어나고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는 우리 인간의 시야에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감추어진 세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경 우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로 인하여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 런데 어떤 경우는 명백하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이라고 보았기에 결정하고 행 동으로 옮겼는데, 처음에는 그 일에 기쁨이 있고 은혜가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 나 일정 기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낙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예기치 않는 사고와 부조리한 현실로 인하여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타나 크게 고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하나님의 뜻에 대 하여 갈등하며 질문할 수 있습니다. 때로 이 고통스러운 상황이 영적인 생활에 치명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여 믿음의 시야를 가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상황 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 나님을 신뢰하고 성경을 더 가까이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도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헌신해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생활 은 미스터리투성이지만 여기에 신비스럽고 이상한 세계도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99 목회칼럼( )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으로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KBS 2TV 매주 토요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되는 인간의 조건 에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을 다루었습니다. 그 중에 쓰레기 없이 살기, 휴대전화 없이 살기, 물 없이 살기, 이웃의 도움으로만 살기 등 다양한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인 물, 전기, 휴대전화, 돈, 자동차, 음식, 친구 등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여섯 명의 개그맨이 체험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상당히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으로 진짜 친구 찾기 라는 주제를 의미있게 보았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 가운데 필수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가 친구라고 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를 보고 있다가 저 조건에 맞는 친구가 과연 나에게 있 는가? 라고 질문해 보았는데 불행하게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스스로 자신이 친구라고 하는 사람이 보낸 카톡 메시지를 읽다가 좋은 친구는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과 함께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보내어왔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 다는 것은 수명을 연장시켜주고 노화를 늦추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함께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 풀리 고, 면역력을 높여주고, 큰 병에서 회복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두뇌건강 에도 좋아서 교우 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 다는 것입니다(health.chosun.com. 2012/08/02). 그런데 참 좋은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요? 친구가 보내어 준 메시지는 이미 인 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이렇습니다. 친구란 환경이 좋던 나쁘던 늘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친구란 제반 문제가 생겼을 때 저절로 상담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친구란 좋은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란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일도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란 쓰러져 있을 때 곁에서 무릎 꿇어 일으켜 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슬플 때 기대어서 울 수 있는 어깨를 가진 사람이다. 친구란 내가 실수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는 사람이다. 친구란 필요에 따라서 언제나 진실한 충고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나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들어 주는 사람이다.
100 친구란 갖고 있는 작은 물건이라도 즐겁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이러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삶이 재미가 있을 것이고, 역경 을 만나도 이겨내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견디어 내게 만드는 힘을 주고, 삶의 무게를 함께 지고 가니 훨씬 수월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에도 친구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 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을 이어 다윗이 왕 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삼상2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 을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사랑하였습니다(삼상20:17). 이 일로 인하여 그의 아 버지로부터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삼상20:30)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친구 다윗을 보호하고 지켜주었습니다. 요나단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 씀에 순종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윗과의 우정 역시 중요한 요인이었다 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울타리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특히 목사들은 친구의 우 정에 대하여 설교할 때나 가르칠 때 친구에 대한 좋은 말들을 인용하기도 하고, 다윗과 요나단의 사례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좋은 글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을 위한 생업의 도구일 뿐이라 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 앞에서 갈등하며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존재가 이 정도의 친구도 못되는가? 라고 하면서 질문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 친구를 통하여 어떤 유익을 얻을지를 계산하기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고, 희생할 일이 있으면 요나단과 같이 함께 짐을 져주고 희생에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요? 목회칼럼( )
101 목회칼럼( ) 신자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지난 2013년 12월 27일에 방송된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 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는 훈제 연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지금까지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훈제 연어의 대부부이 소위 훈제액에 연어를 담그거나, 인젝션(주입) 방식을 사용하여 염지시간을 줄여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간혹 연어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먹으면 연어가 쉽게 부수어지고 물기가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연어를 인젝션 방식으 로 가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제품의 공정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만들 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전통 방식으로 가공한 연어와 인젝션 방식으 로 가공한 연어의 맛을 무작위적으로 길거리에서 시식해 보고 어떤 것이 더 맛 이 있는지 비교해 보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인젝션 방식으로 가공된 연어가 더 맛이 낫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가공한 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어는 원래 익혀서 먹는 것이 아니라 참나 무 연기로 만든 향을 입혀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제대로 가공하지 않으면 기 생충이나 리스테리아균 및 대장균에 쉽게 노출되어 감염되기 쉽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연어는 가공과정에서 인공적으로 훈연 향을 내는 스모크 향 분말과 MSG도 첨가된다고 하니 별로 기분은 좋지 않 습니다. 그리고 이 날 방송이 된 한 하나의 먹거리인 감귤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 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국민 과일로 알려진 감귤 표 면이 윤이 나는 이유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귤의 표면 에 윤이 나도록 코팅을 입혀주는 광택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감귤 을 며칠 두면 쉽게 상하게 되는 것은 이 광택제가 여러 화학물이 섞여 있기 때 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이 음식을 이러한 방식으로 가공하고 유통하는 일은 인체에 큰 해가 없다고 할지라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연어를 인젝션 방식으로 가공하여 향을 입히는 일이나 감귤에 광택제를 사용하는 일은 결국 더 많은 이 윤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윤이 많이 남고 판매가 더 잘된다 할지라도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프로를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 속받은 신자가 만약 연어를 가공하여 판매한다면, 그리고 감귤을 판매하는 자라
102 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신자라면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 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 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 나님 여호와이니라 (레19:35-36)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는 구속받아 하나님의 성 전에 예배하는 자로서 합당한 삶인 거룩한 삶의 내용들을 설명하는 문맥 가운데 있는 내용인데,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단순히 양이나 무게만을 말하기보다는 제품의 규격과 질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신자가 제품 하나하나에 이러한 방식으로 적 용한다면 이 땅에 참으로 구속받은 신자가 한 명이라도 늘어나 이러한 식품업에 종사하는 자라면 적어도 이 부분부터 변화되어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국가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 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신자는 어두운 세상을 진리의 말씀으로 밝히는 일 을 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구속을 받아 새 사람 이 되었고, 새 사람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간혹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러한 일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적용하고 실천 할 때 세상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 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작은 일 하나부터 시작되 기 때문입니다. 목회칼럼( )
103 크리스챤 한국신문 시론( ) 이단의 온상은 교회다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이 L 목사를 알고 있는지를 물으면서, 이 분은 종말론 강의로 유명한 분으로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속한 교단의 교회 목사님들조차 그 분의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쓴 많은 책들 가운데 성경해석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도 록 권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빌려 읽다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성경을 해 석하는 기본원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5:4)라는 말씀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여기에 깊은 물 은 깊은 말씀 을 상징하는 것으 로, 그물을 내리는 일 은 목회사역 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리 고 물 이 말씀 이라는 근거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엡5:26)라는 말씀을 끌어들였습니다. 본문을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주관적 인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도구, 즉 계시전달방식이 상징이나 비 유가 아니라면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상징적이고 인위적인 해석은 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신천지의 비유해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천지에서 나온 책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사복음서 강해 에 나오는 마태복음 22:1-14의 혼인잔치의 비 유 의 내용을 보면 이 비유를 극히 잘못된 알레고리적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그 들은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은 하나님으로, 아들은 예수님으로, 초대받은 사람들 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로, 잔치를 위해 잡은 소는 배도한 목자들, 살진 짐승은 거짓 목자들, 소를 산 것은 새 사명자를 불러온 것, 밭은 산 것과 장가든 것은 새 심령을 전도한 것,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은 마음이 부유한 목자들, 나중에 초 대받은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신앙에 병이 든 성도들을 가리키 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소를 배도한 목자들로 연결시키기 위하여 소와 밭이 나오는 고린도전서 9:9-10과 요한계시록 13:1-2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 ). 이러한 비교점들(points of comparison)을 상식적인 문장이해방식으로 보면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석원리인 문법적 해석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고든 D. 피(Gordon D. Fee)와 더글라스 스튜어트(Douglas Staurt) 가 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책에 보면 잘못된 해석을 바르게 잡 고 조절할 수 있는 해석학적 기술 가운데 하나인 일반 상식(common sense)을 가 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0). 여기서 일반상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104 사용하는 언어로 기록하셨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는 상식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일반 상식을 사용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글을 읽을 때 어떤 비유법(직유, 은유, 알레고리)과 상징 등을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 주제를 어떤 논리구조를 가지고 전개하고 있는지를 찾는 것은 일반 상식입니다. 성경도 인간 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는 일반상식을 무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L 목사의 경우나 신천지의 해석은 이러한 일반상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본문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알레고리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이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때문에 성도들 은 성경에 무지하게 되어 우민화( 愚 民 化 )되어 갑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나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이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조절 할 수 있는 일반 상식을 사용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목회자 가 일반상식에 해당하는 방법대로 본문을 읽고 설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 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적인 의미라는 미명 하에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설교자 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설교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단의 해석과 교회의 해석에 대한 분별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단의 온상은 교회이고, 이단들이 기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데는 목회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한국신문 시론( )
105 코람데오닷컴 신앙의 정통과 우리의 현실 누구든지 우리 교단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이라 는 표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교단의 목회자라면 당연히 신학대 학원에서 경건회 시간이나 강의시간에 셀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이고 당연히 목회현장에서 이 말을 계속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의 정통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 모호해 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앙의 정통 을 많이 말하는 사람일수록 그 삶이 신앙의 정통의 가치와 중요성을 입증해 줄 정도로 모범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분들이 그 말을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 모호하고, 그것을 알고 지켜야 할 중요성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신앙의 정통 이라는 표현은 우리 교단의 전유물은 아 니다. 신앙의 정통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어떤 교단이나 공동체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할 수 있다. 실제로 타 교단에서도 이 표현 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톨릭교회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정통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이 개념이 우리의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1. 신앙의 정통 의 개념과 그 의미 정통 (orthodoxy)이라는 용어는 어원적으로 헬라어 올바르다 는 의미의 ortho 와 견해, 설, 종교적 견해, 교리 등의 뜻을 가진 doxy와 결합되어 있다. 문자적으로는 올바른 종교적 견해 또는 올바른 교리 라는 뜻이다. 그래서 용 어의 개념으로 볼 때 비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어떤 일관된 의견 체제나 학문 영 역에서 널리 인정된 견해를 정통이라고 할 수 있고,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올바 른 교리, 또는 종교적 입장이라고 쓸 수 있다. 특히 신앙의 정통을 가지고 있다 고 할 때 우리가 믿는 믿음의 바른 교리적 표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의 정통 이라고 부르는 교리적 표준은 무엇인가? 우리 교 단이 2011년 제61회 총회에서 헌법개정안이 통과되고 노회에서 수의를 거쳐 확 정된 새 헌법에 보면 구 헌법에는 없었지만 전통적으로 선배들로부터 전해오던 내용을 명문화한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은 고신총회 헌법전문 인 데, 이 헌법전문에 신앙과 교리 를 진술한 내용 가운데 5항부터 7항에 우리가
106 말하는 신앙의 정통 의 개념이 무엇인지 잘 표현하고 있다. 5항의 내용은 이러 하다. 우리는 특별히 역사적인 교회의 전통을 따른다. 이 전통은 마틴 루터로부 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소산들을 사상적으로 체계화하고, 그 가르침을 성경적으 로 더 철저하게 발전시킨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의미하며,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 교리문답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수되었다. 이 신조들은 성경 말씀을 따라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하여 믿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6항에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 참배 강요와 핍박의 위협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 개혁주의 신앙 을 지켰다 라고 하였고, 7항에서는 그런 신앙인들의 후예는 이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파수하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를 갈망하며, 그런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라 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전문에 나타난 것은 매우 중요하고 신학대학원 에서 핵심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다. 이 헌법 전문에 있는 바와 같이 신앙의 정 통이라는 것은 종교개혁의 소산들을 성경적으로 더 철저하게 발전시킨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의미하고, 나아가 이 입장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 교리문답서를 통하여 전수된 것이며, 이 신앙을 개혁주의 신앙 이라고 개념을 정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헌법 전문에 명시한 바와 같이 칼빈의 신학적 입장 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 교리문답서는 작성 당시에 충분하지 못했 던 성경주해 방법이 반영되지 못한 약점과 시대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한 약점이 다소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성경의 교훈을 잘 표현하고 있고, 우리 신학의 색 깔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교리표준은 성경, 하나님, 인간, 그리 스도, 구원, 성령, 세상, 교회, 종말 등에 대한 관점을 결정하기 때문에 신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과 방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교리적 표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교리적 표준이 성경 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혁주의 신앙이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전통이라 할지라도 성경말씀에 위배되는 점이 발견된다면 정당하 고 공개적인 토론과 연구를 통하여 바로잡아야 할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교리 적 표준을 바르게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해 원리와 방법론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자의 전통을 따라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 경으로 라는 신앙의 유산을 받았다. 이 유산은 은혜와 믿음의 실체가 단순히 교 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적 기초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 을 위하여 역사 가운데 행하신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언약의 기초 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동역하며 주 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교회는 이 기초 위에서 첫 번째로는 문법적인 해 석원리, 1) 두 번째로는 역사적인 해석원리, 세 번째로는 신학적인 해석원리를 중
107 요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2) 문법적 해석은 성경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계시되었고,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에 계시가 기록된 문학 장르가 무엇이며, 저자가 어떤 관점과 목적으로 책을 기록하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지 내용구조와 문맥을 고려하고, 단어와 구문, 비 유, 상징 등의 의미를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 해석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역사 속에 나타내시고,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께서 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역사적 본문은 사실 그대로 받아 들어야 하고, 당시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상을 고려하며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 황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적 해석은 성경 66권이 표면적으로 볼 때는 각 각의 저자가 있고,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지만(히1:1) 그리스도 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 의 본문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와 어떤 연관성이 있 는지를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경을 읽을 때 가슴을 뜨겁 게 달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명과 책임의식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 어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만드는 동력을 지니 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이 신앙의 정통 을 교단의 핵심적인 가치로 인식하고 있 다는 것은 종교개혁의 유산들을 사상적으로 체계화하고, 그 가르침을 성경적으 로 더 발전시킨 칼빈의 신학적 입장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 교리 문답서를 통하여 전수된 올바른 교리 표준을 가지고 있고, 또한 올바른 교리 표 준을 바르게 세우거나 바로 잡을 수 있는 성경 주해에 대한 바른 원리와 방법론 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기초라고 믿는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이 성경 위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는다고 할 때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않든지 간에 나름대 로의 렌즈(lens)로 성경을 읽는다. 이 렌즈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다. 이 렌즈를 가리켜 신학 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신학이 올가미가 되어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하 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렌 즈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신학이 때로는 성경해석의 방향을 미 리 결정함으로 본문을 잘못 이해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 도 성경 전체에 대한 중요한 가이드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설사 잘못 해석했 다고 할지라도 교리적으로 이탈할 수 있는 점을 예방하는 울타리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문제에 대하 여 잘못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리를 버릴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교회가 고백하는 개혁주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교리가 다르고, 로마 가톨릭(천주교),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복음주의, 그리고 이단 교리 등이 동
108 일한 성경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교리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다. 그리고 교리적 표준의 차이에 따라 성경,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구원, 성 령, 세상, 교회, 종말 등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종교개혁자들로부터 받은 유산인 교리 표준과 해석원리와 방법이 중요한 것이 고, 이 신앙의 정통을 선배들로부터 유산으로 받았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2. 신앙의 정통 과 우리의 현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의 정통 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에 따라 말씀을 규칙적으로 읽고 가르친다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고 그 말씀 안에 있는 회개케 하는 능력과 변화시키는 능력과 치유하는 능력이 나 타나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질서 속에 있는 부분도 있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 번째 로는 신앙의 정통이라고 말은 하지만 교회에서 신앙의 정통인 교리 표준인 웨스 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 대 소 교리문답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교파의 교리나 이 단의 교리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교 리 표준에 따라 성경에 대한 관점, 하나님에 대한 교리(신론), 인간에 대한 교리 (인간론),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기독론), 구원에 대한 교리(구원론), 성령에 대한 교리(성령론), 교회에 대한 교리(교회론), 종말에 대한 교리(종말론), 사회에 대한 관점, 바른 윤리 등에 대한 기준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빈야드나 알파코스 등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것은 신앙의 정통을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 로 교회가 모르고 있고, 또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지금의 시대가 교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반 교리적인 정서가 강한 것 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리 표준을 배우고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교회사가 필립 샤프(Philip Schaffer)는 교리 표준이 가지 는 중요성에 대하여 몇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교 리 표준이 (1) 성경의 교훈들을 요약해 주고, (2) 성경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3)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믿음의 일치를 이루게 하며, (4) 거짓된 교훈과 생활을 막아내는 일에 공적인 표준이 된다고 하였다. 3)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정통이라고 부르는 교리 표준,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받은 개혁주 의 신학에 근거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 문제는 소위 신앙의 정통을 주장하는 자들이 과거 개혁주의 학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자세히 연구하는 전통은
109 물려받았으나 그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개혁주의 신학을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계산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 을 순종하지 못한 그 점에 대하여 자신이 배운 개혁주의 신학(?)으로 변명하고 합리화하며 자신을 포장하는 기술에 능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개혁주의 신학의 잣대를 대지만 그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수 단일 뿐이다. 그래서 신앙의 정통 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입에 올 리기는 하지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능력은커녕 오히려 그 사람이 개 혁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오히려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경험이 아닌 순수한 사고나 이성만으로 인식에 도달하려고 하는 사변( 思 辨 ) 에 능하고, 또한 형식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이용해서 거짓인 자신의 주 장을 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궤변( 詭 辯 )에도 능하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고백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전달하는 외적인 방편으로 능력있게 역사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태도로 말씀을 대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하게 믿는 믿음의 야성( 野 性 )을 회복해야 한다. 야성 이라 함은 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을 말한다. 그래서 야성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인간의 지식으로 포장하고 가공하지 않은 본래 그 대로의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영성신학자 리차드 포스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순종하는 삶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은 통로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4) 세 번째 현실적인 문제는 교리 표준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이 성경을 더 잘 알고 경건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교회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올바른 교리 표준이 잘 못된 교리를 분별해 내는 일에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에 기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앙이 율법적이며 기계적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요인 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 교리는 결코 율법적이거나 윤리적인 진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의미와 가치를 항상 하나님이 우리 위하여 행하신 구속사역과 함께 설명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토대를 두고 율 법을 가르칠 때 그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방법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교리를 율법화하고, 이것은 할 수 없고, 저것은 할 수 있다는 식을 가르쳐 온 부분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 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110 하는 명령적인 부분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일을 하셨 는지를 먼저 말하고 있다.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는 하나님께서 행 하신 일을 직설법(indicative)이라고 표현하였고, 우리 인간이 행해야 하는 책임적 인 부분을 가리켜서 명령법(imperative)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순서는 매우 중요 하다. 명령법이 절대로 직설법 앞에 오지 못한다. 명령법은 항상 직설법의 결과 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5) 우리의 교리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 교리문답서가 이 순서로 되어 있다. 직설법을 무시하고 명령법이 강조되면 종교 가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율법적인 삶만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삶은 마지못해 행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나타날 수도 있고, 동시에 본성과 반대되는 이중적인 삶을 노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 의 사역을 들을 때 감동이 있고, 모든 명령법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로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교리는 우리를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은혜를 먼저 강조해야 한 다. 한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우리는 항상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 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원리와 방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여기에 어떻게 말씀의 능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비교적 우리 교단의 신학을 대변할 수 있는 곳인 총회와 신학대학원의 채플에 오시는 유명 목사님들과 대학생대회의 집회에서 설교를 들어보면 과연 설교의 가장 기본 가운데 하나인 문맥을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선택 한 본문을 그 책의 전체 주제와 목적에 따라 다루는 일과 계시전달방법 가운데 하나인 문맥의 흐름과 연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본래의 뜻과 연 관된 내용을 들어보기가 정말 희귀하다. 그러한 설교는 존 스토트가 지적한 것 처럼 문맥(context)을 벗어난 본문(text)은 참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pretext) 일 뿐이다 6) 라는 말을 새겨볼 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겠는지 의구심이 든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역사적으로 기록된 것은 사실 이지만 그 역사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결되는지 규칙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본문에 기록된 사건에 대한 설명(description)을 아무런 논리적 근거없이 규칙(prescription)으로 바꾼다.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의 메커니즘(mechanism) 안에는 이상한 능력이 있어 능히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우리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 는 능력도 갖추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111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일 가운데 하나가 설교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소위 신앙의 정통 을 이야기하는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 다. 다섯 번째 문제는 우리의 믿는 바를 효과있게 만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믿는 바가 정통이라고 해도 그 믿음 을 효과있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테크닉(technique) 이전에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이 일에 대하 여 우리 신학대학원의 박영돈 교수님이 기도는 감사의 표현과 은혜의 방편일 뿐 아니라 사역의 방편이기도 하다고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는 다른 모든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기도는 이 땅의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방편이다. 신약성경은 기도가 귀신의 세력 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밝 히 증거하고 있다 라고 하면서 중요한 성경의 증거들을 논증하고 있다. 7)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의 교리를 교회와 세상에 적용하여 하나님 나 라를 세우는 일을 위하여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엡6:12). 여기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 다고 할 때 자칭 개혁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몇 분 또는 몇 십분, 또는 머릿속에서 깔짝깔짝 자신의 신학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정도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와 신학자는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일반 성도들은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분기별로 또는 동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 죽기 살기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안타까운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의 정통 이 무엇인지 알고 배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의 정 통은 항상 우리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하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점검하는 기능도 있고, 동시에 우리가 어떤 교회를 세워 어떤 인간과 세상을 만 들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 고 신앙의 정통은 이론이 아니라 항상 실천적이어야 한다. 필자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존경하는 스승이신 고재수(Nick Gootjes) 교수님께서 모든 성경의 교리 는 실천적이어야 한다고 한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거기에 부합한 삶이 당연히 나타나야 한다. 신앙의 정통인 개혁주 의 신학을 우리 교단의 모토(motto)라고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그 삶 이 실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 신학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수 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앙에 부합 한 삶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올바른 신앙의 뿌리가 심겨져 있는지 다시 확인해 보아야 하고, 확인해 본 결과 그 뿌리가 확실하게 심겨져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 지 진단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 교단이 진정한 영적인 부흥이 일
112 어날 수 있고, 나아가 우리 교회로 인하여 이 민족이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다 고 믿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 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 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Notes 1) 문법적 해석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고신대학교의 신득일 교수님은 이 용어 대 신에 문헌적 해석 (philological interpretation)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언어 를 이해하는 방법 가운데 어떤 면에서 문법 (grammar)은 일부분이고, 단어 (word) 구 문 (syntax), 문맥 (context), 비유 (parable), 상징 (symbol), 장르 (genre)가 시(poetry)인 지, 이야기(narrative)인지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법 이라는 용어 자 체가 문장을 이해하는 규칙과 질서를 의미하기에 그대로 쓰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이 해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그대로 사용한다. 2) Louis Berkhof,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 필립 샤프, 신조학 박일만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 리차드 포스터, 심플 라이프 (규장, 2003), ) Herman Ridderbos, 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75), ) 존 스토트, 설교자란 무엇인가, 채경락 역 (서울: IVP, 2010), 21. 7) 박영돈,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 (서울: SFC, 2008), 년 6월 25일에 코람데오 닷컴(kscoramdeo.com)에 실린 내용으로 교단설 립 60주년과 관련하여 교단의 중요한 모토(motto)와 관련하여 요청받은 글 이다.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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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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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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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0 spring Contents 4 COVER STORY 6 8 11 14 16 18 20 22 23 24 26 28 30 32 16 28 20-11 042-622-9991 www.jungbu.or.kr 30 49 34 37 38 40 42 44 46 48 51 52 54 Culture 58 60 62 63 4 w i t h w i t h 5 6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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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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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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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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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생활 문화 매거진 235 Cover Story ISSN 2005-2820!!2 3! 3 201002 002 !!4 5! 201002 !!6 44 7! 201002 !!8 February 2010 VOLUME 35 Publisher Editor-in-Chief Editor Planning & Advertising Advertising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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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날을 그리다 안전한 나날을 그리다 01 16 22 28 32 36 40 44 50 54 58 02 62 68 90 94 72 98 76 80 102 84 03 04 106 142 110 114 118 122 126 130 134 148 154 160 166 170 174 138 05 178 182 186 190 194 200 204 208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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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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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288-5854 Print ISSN 2289-0009 online DIGITAL POST KOREA POST MAGAZINE 2016. APRIL VOL. 687 04 DIGITAL POST 2016. 4 AprilVOL. 687 04 08 04 08 10 13 13 14 16 16 28 34 46 22 28 34 38 42 46 50 54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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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Vol.159 www bible ac kr 총장의 편지 소망의 성적표 강우정 총장 매년 1학년과 4학년 상대로 대학생핵심역량진단 (K-CESA)을 실시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진 단은 우리 학우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핵심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었나를 알아보는 진단입니다. 지난번 4학년 진단 결과는 주관처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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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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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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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4 06 08 10 12 13 14 16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현이가 이 곳 태화해뜨는샘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해샘에 처음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남을 의식해 힘들어하고, 사무실내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신경 쓰여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소현이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쌍해서이다 가해하고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 같아서이다 보복이 두려워서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화가 나고 나쁜 아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 따돌리는 친구들을 경계해야겠다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정부3.0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과 참여로 정책을 함께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책 개선안을 도출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각 기관별 정부3.0 과제에 적용하여 국민 관점의 서비스 설계, 정책고객 확대 등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유도하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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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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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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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10월추천dvd
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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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처럼 이렇게 살지 마세요! 제 1부 사무엘상 15:20-30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로 고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억지로 막으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무엘상 8장에서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가기로 고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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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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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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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감사회보 5월
content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동정 및 안내 상장회사감사회 제173차 조찬강연 개최 상장회사감사회 제174차 조찬강연 개최 및 참가 안내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조직의 역 량과 경영리더의 역할의 중요성 등 장수기업의 변화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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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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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ÁÖº¸15.2.15
4 분당판 21권 7호 2015년 2월 15일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 보고는 토요일 오전까지 마쳐주십시오. 보고자 : 김연호 목사 010-9251-5245 보고 : 각 교구 조장님께서 교구 사역자에게 보고해 주세요. 분당판 21권 7호 2015년 2월 15일 생명순활동상황 전도실적은 전도 한 분이 소속한 교구의 생명순에 전도한 인원수를 추가합니다.
제 1 과 제자로 부르시니 1.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에 무엇인가를 버려두고 즉시 순종하였다. 그들이 버린 것은 배와 그물이었는 데, 그것은 곧 생업을 포기한 것이다. 2.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전도나 선교를 의미한다. 1. 따르다 는 제자도의 핵심 동사이
이야기식 소그룹 성경공부 4163087(Leader Guide) 마가복음 : 마가가 전한 예수 제 1 과 제자로 부르시니 1.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에 무엇인가를 버려두고 즉시 순종하였다. 그들이 버린 것은 배와 그물이었는 데, 그것은 곧 생업을 포기한 것이다. 2.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전도나 선교를 의미한다. 1. 따르다 는 제자도의 핵심 동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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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5월전체 2005.6.9 5: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개 지역지식재산센터 를 통해 발명가와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선진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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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캠퍼스 문화 조성을 위하여... 고려대학교 양성평등센터 는 2001년 6월에 제정된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 에 의거하여 같은 해 7월에 설치된 성희롱및성폭력상담소 를 2006년 10월 개칭한 것입니다. 양성평등 센터 로의 개칭은 교내에서 발생하는 성피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과 상담 제공뿐만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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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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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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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캠페인 쪽방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기름 값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내 몸 하 나 간신히 누일 전기장판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합니다. 한 달에 열흘정도 겨우 나가는 일용직도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 한 달 방값을 마련하 기 어렵고, 일을 나가지 못하면 밖으로 쫓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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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2 Verse 2C E 전능 하신나의주하나님은?? j r j 2 0 r. fij fi j R = E2G 능치 Fm9 Cm M9 2C 못하실일전혀없네우리?? r. o R
전능하신나의주하나님 (Full Score) 편곡차유진 Vocal Intro E Cm Fm Piano?.. j > Strings.. 6 KeyBoard j j Horn? Bass() X 2 0 2 0 3 2 0 2 2 1 rums o o fi j j R R 2 Verse 2C E 전능 하신나의주하나님은?? j r j 2 0 r. fij fi j R = E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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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128.491 156.559 12 23 34 45 안녕하십니까? 본 설문은 설악산과 금강산 관광연계 개발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귀하께서 해주신 답변은 학문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다가오는 21세기 한국관광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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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회지 2004;25:721-739 비만은 심혈관 질환, 고혈압 및 당뇨병에 각각 위험요인이고 다양한 내과적, 심리적 장애와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체중감소는 비만한 사람들에 있어 이런 위험을 감소시키고 이들 병발 질환을 호전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호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지지하는 연구들은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ÁÖº¸15.7.26
4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구역예배)활동상황 분당판 21권 30호 2015년 7월 26일 생명순 보고는 토요일 오전까지 마쳐주십시오. 보고자 : 김연호 목사 010-9251-5245 보고 : 각 교구 조장님께서 교구 사역자에게 보고해 주세요. 분당판 21권 30호 2015년 7월 26일 생명순(구역예배)활동상황 전도실적은 전도 한 분이 소속한 교구의 생명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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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병원이왜내지최종본1
아토피 건선 습진 무좀 탈모 등 피부병은 물론 비만 당뇨 변비 고혈압 생리통 관절염 류머티즘 설사 등 속병도 스스로 간단히 치료하는 비법 100평 아파트도 건강을 잃으면 월세방만 못하다. 자녀를 사랑하면 이책을 반드시 읽게 하라 지은사람 99세까지 88하게 살기운동본부 펴낸곳 청 인 저자 회춘 모습 병원검진 생체나이 40대 초반 Contents 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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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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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어: 노무현대통령 참여정부 참여의 확대 갈등의 증폭 통합의 정치 세대.27 *** 이념 -.17 ***.12 *** -.18 *** -.06 * 여야 성향 정치 효능감.24 *** -.32 *** -.33 ***.01 탄핵 찬성여부 대통령 정부 만족도 -.02.19 *** -.35 *** 한나라당 지지 (지역) -.12
SIGIL 완벽입문
누구나 만드는 전자책 SIGIL 을 이용해 전자책을 만들기 EPUB 전자책이 가지는 단점 EPUB이라는 포맷과 제일 많이 비교되는 포맷은 PDF라는 포맷 입니다. EPUB이 나오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전자책 포맷이고, 아직도 많이 사 용되기 때문이기도 한며, 또한 PDF는 종이책 출력을 위해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종이책 VS
www.lig.co.kr Smart Invest 22 만화창업열전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화이팅!코리아 창업주에게 배운다 기업가 정신의 실천적 선각자 두산그룹편 연강 박두병 글 만화 유영수 미래경제 선도하는 바른 뉴스 경제신문 에는 미래가 있습니다. 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성공과 투자의 파트너 언제 어디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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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기념전 시련과 전진 주 최 :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 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중앙일보 후 원 : SK Telecom, (주)부영, 다음 일 정 : 2005.8.14(일) ~ 8.23(일) 장 소 : 대한민국 국회 1. 내용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인용, 발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 주셔야 합니다. 2. 본 자료는 http://www.kdemocracy.or.kr/kdfom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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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쌍백합23호3
4 5 6 7 여행 스테인드글라스 을 노래했던 하느님의 영원한 충만성을 상징하는 불꽃이다. 작품 마르코 수사(떼제공동체) 사진 유백영 가브리엘(가톨릭 사진가회) 빛은 하나의 불꽃으로 형상화하였다. 천사들과 뽑힌 이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며 세 겹의 거룩하심 가 있을 것이다. 빛이 생겨라. 유리화라는 조그만 공간에 표현된 우주적 사건인 셈이다.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학부모신문203호@@
02 05 06 08 11 12 2 203 2008.07.05 2008.07.05 203 3 4 203 2008.07.05 2008.07.05 203 5 6 203 2008.07.05 2008.07.05 203 7 8 지부 지회 이렇게 했어요 203호 2008.07.05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근 2달여를 촛불 들고 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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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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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 문을 여소서 본문: 마가복음 1:9-11 설교: 황권철 목사 날짜: 2012년 4월 15일 인생이 걸어가는 모든 길에는 다 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먼저 주인이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의 문을 열고 친 한 손님에게는 안방 까지도 내어줍니다. 매사에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데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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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CR2006-41.hwp
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쓰리 핸드(삼침) 요일 및 2405 요일 시간, 및 요일 설정 1. 용두를 2의 위치로 당기고 반시계방향으로 돌려 전날로 를 설정합니다. 2. 용두를 시계방향으로 돌려 전날로 요일을 설정합니다. 3. 용두를 3의 위치로 당기고 오늘 와 요일이 표시될 때까지 시계방향으로
한국어 표준 설정안내 서브 초침 시간 및 설정 1. 용두를 2의 위치로 뽑아냅니다. 2. 용두를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돌려(모델에 따라 다름) 를 전날로 설정합니다. 3. 용두를 3의 위치로 당기고 현재 가 표시될 때까지 시계방향으로 돌립니다. 4. 용두를 계속 돌려 정확한 오전/오후 시간을 설정합니다. 5. 용두를 1의 위치로 되돌립니다. 169 쓰리
Microsoft PowerPoint - PresentationK.pptx
#ProximityandAnonymity Prayer Tents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교회와 협력하여, 아직 믿지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체험할 수 있는 통로로서 하나님의 기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채웁니다. 사명: 관심있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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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읽는 우리 과학 교사용 지도서 자연 6-1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Ⅱ) STS 프로그램이 중학생 과학에 관련된 태도에 미치는 효과 관찰 분류 측정훈련이 초등학생의 과학 탐구 능력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 국민학교 아동의 과학 탐구능력과 태도 향상을 위한 실 험자료의 적용 과학사 신론 중 고등학생의 과학에 대한 태도 연구 과학사를 이용한 수업이 중학생의 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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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말씀 Scripture reading 고전 15:1-11 1 Cor. 15:1-11 고전 15:1-11 1 Cor. 15:1-11 1 형제자매여러분, 내가여러분에게전한복음을일깨워드립니다. 여러분은그복음을전해받았으며, 또한그안에서있습니다. 1 Now, brothers, I want to remind you of the gospel I preached to
오랫동안모든죄가운데빠져 성찬경 a ff 4 4 l l k k k k k k k k k k k k a ff 4 l l 오랫동안모든죄가운데빠져 k k k k k k k k k k k k b f f 4 b f f 4 오랫동안모든죄가운데빠져 l l l l l l l l a f
오랫동안모든죄가운데빠져 성찬경 a ff 4 4 l l a ff 4 l l 오랫동안모든죄가운데빠져 b f f 4 b f f 4 오랫동안모든죄가운데빠져 l l l l l l l l a ff 4 4 G =72 m e f 5 b f f 4 4 a ff l 더럽기가한량없던우리들 a ff l 더럽기가한량없던우리들 b f f l l 아무공로없이 b f f l l a ff
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중등용1)1~27
3 01 6 7 02 8 9 01 12 13 14 15 16 02 17 18 19 제헌헌법의제정과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5월 10일: UN 감시 하에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1948년 6월 3일: 헌법 기초 위원 선출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소집. 헌법 기 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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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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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155 Since 1969 2016. 06. 15 www.catholicfound.org www.cmc.or.kr blog.naver.com/cmc_health twitter.com/cmcmedicalnews www.facebook.com/cmcmedicalnews 02 CATHOLIC MEDICAL TIMES Vol.2155 2016.06.15 03
4-Ç×°ø¿ìÁÖÀ̾߱â¨ç(30-39)
항공우주 이야기 항공기에 숨어 있는 과학 및 비밀장치 항공기에는 비행 중에 발생하는 현상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과 학이 스며들어 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객실 창문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고, 주 날 개를 보면 뒷전(trailing edge) 부분이 꺾어져 있다. 또 비행기 전체 형 상을 보면 수직꼬리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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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성은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므로 성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성가치관은 평생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성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성과 건강 단원에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피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성매매와 성폭력의 폐해, 인공임신 중절 수술의 부작용 등을 알아봄으로써 학생 스스로 잘못된 성문화를
CT083001C
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82-대한신경학0201
www.neuro.or.kr 2010 1 Vol. 82 www.neuro.or.kr 01 5 January 2010 2007 Newsletter of THE KOREAN NEUROLOGICAL ASSOCIATION 2010 NO.82 2010.JANUARY C o n t e n t s 04 05 06 10 13 17 18 20 22 25 28 32 3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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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광복60 년 종합학술대회 ( 제6 차)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전국순회 심포지엄 종합자료집 청산하지 못한 역사, 어떻게 할 것인가? 주최 주관 : :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 소속 지역단체 후원 :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1. 내용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인용, 발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 주셔야 합니다.
USC HIPAA AUTHORIZATION FOR
연구 목적의 건강정보 사용을 위한 USC HIPAA 승인 1. 본 양식의 목적: 건강보험 이전과 책임에 관한 법(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HIPAA)이라고 알려진 연방법은 귀하의 건강정보가 이용되는 방법을 보호합니다. HIPAA 는 일반적으로 귀하의 서면 동의 없이 연구를 목적으로 귀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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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교육자를 위한 디자인사고 / 교육자를 위한 디자인사고 / 4 5 어떻게 하면 나의 교실이 학생들의 니즈를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학교에서 21세기형 학습경험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뉴욕에서 2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Michael Schurr)은 자신이 한번도 아이들에게 무엇이 그들을 교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5 291
1 2 3 4 290 5 291 1 1 336 292 340 341 293 1 342 1 294 2 3 3 343 2 295 296 297 298 05 05 10 15 10 15 20 20 25 346 347 299 1 2 1 3 348 3 2 300 301 302 05 05 10 10 15 20 25 350 355 303 304 1 3 2 4 356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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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Telecom Corporate Philanthropy 2003 SK Telecom Corporate Philanthropy 2003 2003 2 SK Telecom SK Telecom Corporate Philanthropy 3 4 SK Telecom 5 6 SK Telecom 7 Visual Identity Concept 8 SK Telecom Primary
2016년 신호등 3월호 내지A.indd
www.koroad.or.kr E-book 03 2016. Vol. 427 54 C o n t e n t s 40 50 24 46 04 20 46? 06,! 24 50 3, 08! BMW,? 28 54 12,! KoROAD 2 30 58 16, 34 60 18? 38 62? 40 64 KoROAD (IBA) 4!,, 2016 CEO!. 427 2016 3 2
Microsoft Word - windows server 2003 수동설치_non pro support_.doc
Windows Server 2003 수동 설치 가이드 INDEX 운영체제 설치 준비과정 1 드라이버를 위한 플로피 디스크 작성 2 드라이버를 위한 USB 메모리 작성 7 운영체제 설치 과정 14 Boot Sequence 변경 14 컨트롤러 드라이버 수동 설치 15 운영체제 설치 17 운영체제 설치 준비 과정 Windows Server 2003 에는 기본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