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근현대미술 연구 송영방의 회화 이재영 6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김예진 18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마동은 35 Ⅱ. 미술관학 연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Journal of the National M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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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흔 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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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2014 제6집
2 목 차 Ⅰ. 근현대미술 연구 송영방의 회화 이재영 6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김예진 18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마동은 35 Ⅱ. 미술관학 연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Journal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Vol. 6 발행일 2014년 12월 31일 발행처 국립현대미술관 발행인 윤남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박미화 50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 해석 김은진 70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최유진 88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박덕선 101 기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2실 진행 및 편집 박지혜 편집 디자인 한미저(주) 박수미 국립현대미술관 ( )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전화 팩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필자 및 국립현대미술관의 동의 없이 무단전재할 수 없습니다. C 2014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Gwangmyeong-ro, Gwacheon-si, Gyeonggi-do, Korea Ⅲ 미술연구센터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정단일 116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류한승 139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이건용, 성능경, 윤진섭, 류한승 154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와 칸딘스키 도서관 자료를 통해 안휘경 173 All rights reserved. No parts of the book may be reproduced or utilized in any forms or by any means without permission from writers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ISSN
3 Ⅰ. 근현대미술 연구
4 송영방의 회화 Ⅱ. 본문 이 재 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본문 1. 화가, 송영방 2. 송영방의 작품세계 3. 송영방 회화의 특징 Ⅲ. 맺음말 Ⅰ. 머리말 우현( 牛 玄 ) 송영방( 宋 榮 邦, 1936~)은 다양한 화목( 畵 目 )을 통해 폭넓은 소재를 소화하여 특유한 미감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한국화가이다. 그는 전통화법을 바탕으로 한 산수, 인물, 화조, 문인화에서부터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한 작품, 그리고 실험성 짙은 추상작품까지 각종 소재와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창작해왔다. 전통적인 동양예술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인화적 정신성을 현대적으로 조형하여 담박( 淡 泊 )한 수묵( 水 墨 )의 세계를 이룩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최첨단 현대사회에서 전통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우리의 것 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당면한 시대성을 읽어내려 노력하는 작가이다. 본 논문에서는 송영방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되, 송영방 작품의 특징을 장르별로 분석하고 그 사상적 배경이 되는 작가의 창작의도 및 예술이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송영방은 법고창신( 法 古 創 新 ) 을 기조로 삼아 전통적인 화법을 토대로 현대적인 한국적 양식을 모색하며 미래 한국화단의 새로운 동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대표적 한국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송영방 작가의 화업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그 미술사적 의의와 가치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 화가, 송영방 우현 송영방은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1936년 10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해 동양화과를 선택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당시 동양화과 교수였던 심산 노수현과 월전 장우성, 산정 서세옥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은 송영방은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60년 국전( 國 展 )에 출품하여 1) 특선을 차지하면서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수많은 초대전과 단체전에 꾸준히 출품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957년 전후 한국화 영역에도 서양화의 추상표현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는 조형실험이 등장하였다. 그 일환으로 1957년에 발족된 백양회( 白 陽 會 )는 중견 화가들로 구성된 데에 반하여, 묵림회( 墨 林 會 )는 젊은 세대들로 구성되었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였다. 1960년 4월에 발족된 묵림회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한국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한 단체로 한국회화의 전통정신을 견지하며 새로운 실험과 현대적 양식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묵림회 해체 후 회원의 일부는 1967년 창립된 한국화회( 韓 國 畵 會 )의 멤버로 흡수되어 1970~80년대 수묵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하였다. 당시 작품활동이 활발한 화단의 신진 세력으로 구성된 한국화회는 한국회화의 정통성 정립을 모색하였던 새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송영방은 1960년대 초반 묵림회에 참가하면서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고, 이후 한국화회의 멤버로서 임송희, 신영상, 정탁영 등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다. 당시 그는 전통을 존중하면서 재기( 才 氣 )있는 필묵의 구사와 뛰어난 여백미의 표현으로 신선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한편 1980년대 초반 한국화단에서 가장 두드러진 양상으로 수묵화운동을 들 수 있는데, 송영방 또한 1990년대 수묵화를 활성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송영방의 호( 號 )인 우현( 牛 玄 ) 은 불교와 도교적 색채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자신이 직접 짓고 또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불교에서 우( 牛 : 소) 는 위엄과 장중함, 덕행을 지니고 있는 매우 고귀한 동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 玄 ) 은 1) 제9회 국전 특선작(동양화 부문) 송영방의 <곁두리> 작품, 경향신문 참조 도판 1. 송영방 작가 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송영방의 회화 7
5 노자 의 玄 之 又 玄, 衆 妙 之 門. 2), 즉 도가에서 도( 道 ) 의 현묘함을 형용하는 말로 매우 현묘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의 호가 말해주듯이 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히 현묘( 玄 妙 )한 경지를 추구하며 걸어가는 예술가가 바로 송영방이다.(도판 1) 그의 소박한 차림새와 넉넉한 품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고고한 지조를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온 옛 선비의 점잖은 풍모를 지녔다. 한마디로 이 시대 투철한 선비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예술가인 듯하다. 2. 송영방의 작품세계 다양한 소재로 격조 있는 작품세계를 추구해온 우현은 그의 성격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분위기와 맑은 필묵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문인화적 정신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구현하고 있다. 특히 산수, 인물, 화조, 동물 등 다양한 화목( 畵 目 )을 아우름과 동시에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소재를 통해 끊임없이 동양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각종 화목을 두루 섭렵한 송영방의 작품 세계를 60, 70년대의 추상실험 작품을 비롯하여 산수, 인물, 화조 그리고 문인화 등 장르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몰두했던 추상적 실험기법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천주지골 ( 天 柱 地 骨 )>(1967)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시기, 1960년대 한국화단의 실험적 태도의 한 국면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화 분야의 실험적 추상화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도판 2) 실재하는 우리의 산천을 직접 답사하면서 그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실경산수화( 實 景 山 水 畵 ) 도판 3. <화양구곡( 華 陽 九 曲 )>(부분), ) 노자 제1장: 玄 之 又 玄, 衆 妙 之 門. 도판 2. <천주지골( 天 柱 地 骨 )>, 1967,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는 조선후기 유행했던 화풍이다. 송영방은 이러한 실경산수화의 전통화법을 토대로 한국의 실경을 구현했는데, 1970년대부터 북한산, 설악산, 금강산, 경주 남산 등지의 사생( 寫 生 )을 통하여 한국 산천을 새롭게 조형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예로 <화양구곡( 華 陽 九 曲 )>(1999)과 같은 작품은 섬세하고 경쾌한 필치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조형양식과 잔잔한 기운이 드러나는 실경산수 양식을 창출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도판 3) 이 작품은 충청도 화양동 구곡( 九 曲 )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전경의 노송( 老 松 )과 기암괴석의 사실적 묘사는 깔끔한 담채와 선염( 渲 染 )으로 문기( 文 氣 ) 어린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서 언급한 실경산수와 대조적으로 산수의 구체적 묘사를 생략하고 내재한 이념을 형상화한 산수화 양식으로는 80년대 후반의 <산과 구름>을 비롯한 <춤추는 산과 물> 시리즈가 있다. 그 가운데 <계산무진( 溪 山 無 盡 )>은 끝없이 펼쳐지는 강산의 모습을 춤을 추는 듯 율동감 있게 표현하여 독특한 미감을 살린 작품이다.(도판 4)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최근에 제작한 <만학천봉( 萬 壑 千 峰 )>(2014)은 직접 본 금강산 등 한국의 실경에 기반을 두고 이상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재구성한 산수화이다. 사생풍의 산수에 사의적( 寫 意 的 ) 표현을 접목한 이 작품은 이상적으로 자리 잡은 중경의 산사( 山 舍 ), 전반적으로 감싸 안은 구름과 가물거리는 먼 산의 표현 등 작가의 고유한 이상산수( 理 想 山 水 )를 잘 표현하고 있다. 구름 위에서 본 산을 그린 것 같은 이러한 산수의 조형은 아름다운 우리 산천을 현대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동양 회화에서 창작의 기본요건이 되는 전신( 傳 神 ), 즉 대상의 요체를 파악하여 그려내는 것은 인물화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뛰어난 데생 능력을 갖춘 송영방은 특히 인물에 뛰어나다. 주요 작품 <완당선생 적거도( 阮 堂 先 生 謫 居 圖 )>, <사미승( 沙 彌 僧 )>, <승무도( 僧 舞 圖 )> 등에서 보이는 능숙한 필선에 의한 인물 묘사는 소박하면서도 격조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몰골법으로 인물 군상을 묘사한 <사람들>은 정감어린 인물들의 표현을 통해 우리 민족의 구수한 모습과 기질을 담아내고자 한 흔적을 볼 수 있다.(도판 5) 한편 <이차돈영정>(1983)은 이차돈( 異 次 頓 )의 영정( 影 幀 )으로 단아한 청년 이차돈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을 따르고 있으며 비단 뒷면에 채색하는 배채법( 背 彩 法 )을 써서 은은한 효과를 낸 작품이다. 차가운 서리와 눈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 향기를 내는 매화는 누추하고 속된 세상과 압력에 굽히지 않는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매화는 중국과는 달리 꽃송이를 많이 그리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완벽함과 기교를 구하지 않는 한국인의 소박한 미감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도판 4. <계산무진( 溪 山 無 盡 )>, 2000, 97 7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도판 5. <사람들>, 1978, cm, 한지에 수묵담채 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송영방의 회화 9
6 있다. 사군자( 四 君 子 ) 가운데 매화는 예로부터 격조 있게 그리기가 어려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송영방은 오히려 현대감각을 살려 매화 그리기에 열중이다. 집 마당에 매화를 심어 놓고 세심한 관찰과 사생을 통해 제작한 작품 중 하나인 <청매( 靑 梅 )>(2014)는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매화를 시원스러운 여백의 운용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그려내어 맑고 겸허한 정신성이 은은히 배어난다.(도판 6) 유연하면서도 강한 필력이 느껴지는 나뭇가지와 작은 꽃봉우리의 표현, 오랜 시간 매화와 함께 자라난 생명체처럼 우뚝 서있는 괴석의 묘사는 마치 담담하게 흐르는 물과 같은 수묵( 水 墨 )과 운필의 미감을 보여준다. 도판 6. <청매( 靑 梅 )>, 2014, cm, 한지에 수묵담채 매화와 함께 연꽃은 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다뤄온 소재로 <연( 蓮 )>(2014)은 연꽃과 갈대를 같이 그린 10폭의 대작이다. 화제에서 보듯이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표현을 통해 고상한 기품을 지닌 성인의 모습을 지향하는 작가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평담하기 그지없지만 화면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운율감은 여운( 餘 韻 )을 전해준다. <오리 일곱 마리>는 제1회 개인전(1985)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맑고 투명한 필묵의 운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도판 7) 몰골법으로 표현된 오리들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붓끝으로 휙휙 경쾌한 느낌의 갈대 표현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시적인 분위기, 즉 시의( 詩 意 )가 충만한 생동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외에도 고고한 학의 자태에서 고상한 선비를 상상하여 그린 학 그림과 더불어 황새도 많이 그렸는데, 긴장감 있는 다리의 묘사 등 대상이 가진 묘한 특질을 충분히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다양한 동물 그림 가운데 호랑이를 그린 작품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민화에서 보아왔던 호랑이의 바보스러우면서도 푸근한 이미지에 일종의 한국인의 심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수한 맛이 우러나는 그의 호랑이 그림은 민화적인 소재를 새롭게 해석하여 그만의 스타일로 한국 호랑이를 도판 7. <오리 일곱 마리>, 1984, cm 그리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외에도 개, 고양이, 말 등 각종 동물의 형상을 그 조형적 특징을 예리하게 집어내어 묘사한 동물화는 대상의 다양성 때문인지 많은 소재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듯이 보인다. 옛 기물뿐만 아니라 빼어난 돌에 일가견을 가지고 감상하기를 즐기는 송영방에 대하여 김종학은 우현은 석물( 石 物 )박사 라고 할 정도로, 그는 괴석( 怪 石 )에 남다른 안목을 지녔으며 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있다. 그 가운데 <운근( 雲 根 )>은 3) 독특한 운필의 미감을 잘 보여준다.(도판 8) 형태와 공간의 조형미를 극대화하여 사의적( 寫 意 的 ) 표현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무심한 듯 늠름하게 서 있는 돌의 모습이 마치 피어오르는 구름의 모습과 닮았다. 최소한의 붓질로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감필( 減 筆 )과 여백의 운용 등 문인화가 지향하는 격조의 세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괴석을 매화, 수선( 水 仙 ), 대나무 등의 소재와 함께 그린 예도 있다. 이외에도 누드화, 삽화 그리고 도석인물화 계열의 <보살도( 菩 薩 圖 )> 등 불교적 향취의 작품들도 제작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송영방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맑은 먹빛과 소박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화면 구성, 특유의 담담한 수묵담채 기법과 부드러운 운필의 미감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작품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문인화적인 정신세계의 표현이다. 문인화는 예로부터 학문과 교양을 갖춘 문인들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그림으로 시서화일체( 詩 書 畵 一 體 ), 문자향( 文 字 香 ), 서권기( 書 卷 氣 ) 등의 특징을 지닌다. 송영방은 이같은 전통적인 문인정신의 깊이와 가치뿐만 아니라 진정한 문인화의 경지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조형화하고 있다. 3. 송영방 회화의 특징 송영방의 작품에 나타난 다양한 양식적 특징을 통해 그의 작품창작에 대한 태도와 관점,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중요한 예술이념을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고찰해볼 수 있다. 3) 운근( 雲 根 ): 산석( 山 石 ) 도판 8. <운근( 雲 根 )>, 1969, 90 69cm, 한지에 수묵담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송영방의 회화 11
7 1) 폭넓은 소재의 섭렵과 해석 송영방이 어느 화가보다도 폭넓은 소재를 다뤄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작가라면 모든 그림에 능해야 한다 며 사생( 寫 生 )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로 생활 속에서 그때그때 눈에 띄는 소재를 기억하거나 스케치를 해두었다가 작품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소묘 또는 밑그림에 열심인 작업방식을 고수해온 송영방은 어떠한 소재를 그리더라도 작품에서 그다운 독특한 미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이는 바로 탄탄한 조형능력이 그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의 소묘에 반해 평생 지우( 知 友 )로 인연을 맺었다는 한창기(1936~1997)는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묘사하는 송영방의 데생 솜씨를 극구 칭찬한 바 있다. 4) 진정한 사생력은 대상의 형태에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구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송영방의 작품이 산수는 산수대로 문인화는 문인화대로 각기 독특한 선과 조형감각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생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형상화 평소 자연의 다양한 사물을 관찰하면서 정확한 안목을 키워온 송영방은 회화 창작에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한 사의( 寫 意 ) 또는 상외( 象 外 ) 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이다. 중국 송대의 문인화가 소식( 蘇 軾, 1037~1101)은 일찍이 형사( 形 似 )를 지나치게 추구하면 내면의 감정이 제대로 발현되기 어렵다고 하여, 문인화는 자연계에 내재한 천태만상 너머의 섭리( 理 )를 표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5) 송영방 역시 화가는 자연의 조화, 즉 자연의 객관 사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이치를 깨달아 형상으로 표현해야 하고, 그 사물의 본질적 특성, 생명의 의의를 그려낼 때 거기에 정감이 어리고 그 감정이 전달된다 6) 고 하여 회화 창작의 핵심이 되는 원리를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작품의 화두가 자연의 조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것 이라고 한 바, 그의 작업은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 또는 그 질서와 원리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만물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관찰의 반복적 훈련을 통한 일상화, 생활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뜻 보기에 무심한 듯 심심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지는 잔잔한 생명의 파동을 4) 김형국, 知 音 삼인의 놀이판, 知 友 知 藝 展 도록, 2001, p.12. 5) 소식( 蘇 軾 )은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외형적 특징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의( 意 )를 그려내야 하는데, 이는 곧 물리( 物 理 )를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하였다. 한편 그는 정인원화기( 淨 因 院 畵 記 ) 에서 이른바 뛰어난 화가는 이( 理 ) 를 터득한다는 점을 들어 화가와 장인( 匠 人 )의 차별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이( 理 ) 는 자연만물(또는 사회생활)에 내재된 천태만상의 본질적인 규율을 뜻한다. 6) 이건수, 혼( 魂 )을 구하다, 컬처북스, 2010, p.157.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치를 몸소 체득한 결과일 것이다. 뿜어내는 생명력이 강할수록 그 예술적 표현은 도리어 가냘프고 절제되어 안으로 응집( 凝 集 ), 수렴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원리를 보여준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이 언급했듯이, 송영방은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선비정신으로써 표현을 아끼고 욕망을 누르고 자신이 마지막에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의 의지를 강하게 주장한다. 7) 3) 자연의 소박한 표현 그의 성격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맑은 필묵의 작품은 현대적인 미감을 보여주면서도 동양의 전통적인 회화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화법( 畵 法 ) 면에서도 상당 부분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 송영방은 동양의 전통적인 회화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맑은 필묵과 담채를 사용한 순수한 작품세계로 인정받아 왔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보이는 천진난만함과 순박함은 기교적 멋스러움을 제거하고 온전한 순수함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강한 예술적 의지를 보여준다. 미술사학자 김원룡( 金 元 龍, 1922~1993)은 한국 고( 古 )미술에 대하여 한국적 양식으로 자연주의 8) 를 내세운 바 있다. 곧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평화롭고 인간미( 人 間 味 )가 있으면서 가식이 없다. 또 원만하고 따뜻하고 겸손하고 정직하다. 소탈하고 소박하다는 것도 같은 경지 라고 하였다. 9) 이는 바로 송영방이 추구하는 예술이념으로 각종 장르와 소재의 작품들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의 가치 혹은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적 이념에서 보면, 송영방은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로 자연에 가장 가까운 길을 걷고 있는 화가라 할 수 있다. 고유한 우리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바탕으로 묵묵히 우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송영방, 그의 삶과 예술은 한마디로 자연 으로 귀착된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감동과 애착에서 비롯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소박한 심성과 태도에 기반한 대상의 관찰, 뛰어난 사생력을 바탕으로 한 대상의 정수( 精 髓 )의 표현, 그리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화면 구성 등의 특징을 지닌다. (1) 천진난만 화려하지 않은 담담한 소박미가 돋보이는 송영방 특유의 화격( 畵 格 )을 갖추게 된 것은 분명 작가 자신이 지향하는 천진난만( 天 眞 爛 漫 ) 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천진은 단순함을, 난만은 자연스러운 것을 뜻하는 것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솔직하고 단순한 것을 말한다. 7) 이경성, 우정이 깃들어 있는 美 의 향연, 知 友 知 藝 展, 2001, p.6. 8) 여기서의 자연주의 는 서양의 naturalism 과는 다르며, 자연과 잘 부합하는 것, 인공( 人 工 )을 최소화한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 등을 뜻한다. 안휘준 이광표, 한국미술의 美, 효형출판, 2008, p.40. 9) 김원룡, 韓 國 美 術 小 史, 삼성미술문화재단, 1985,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송영방의 회화 13
8 고담한 선비의 정신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딘가 어리숙하면서도 진실해보이는 어린아이 같은 심성 또한 훌륭한 화가가 지니고 있는 일종의 천품( 天 稟 )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순수한 내면을 간직한 송영방은 실제로 예술창작의 가장 높은 경지는 천진무구 함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심성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대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시각에 직접 반영되어 작품을 통해 조형화된다. 동양회화에서 화가의 인격과 그가 그린 그림의 화격( 畵 格 )을 동일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2) 고요한 아름다움 동양회화의 기본이 되는 필묵의 운용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만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김영태( 金 榮 泰, 1936~2007) 시인은 일찍이 송영방의 담채는 금욕적이기까지 하다 10) 라고 하였듯이 우현은 먹과 채색을 아껴 맑고 담담하게 써서 화면에서 먹색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담박( 淡 泊 )한 수묵의 세계는 마치 조선시대의 깔끔하고 맑은 백자를 보는 것처럼 맑고 투명한 기운이 감돈다. 고대 중국 회화이론에서 화면이 평담( 平 淡 )하면서 고요한 기운이 가득한 경지인 정기( 靜 氣 ) 11) 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경지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오로지 철저한 훈련을 통해 최소화된 묘사와 채색으로 속기( 俗 氣 )와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한 격조 있는 표현에서 가능한 것이다. 사의( 寫 意 )의 묘한 경지에 이르면 어떠한 흔적도 없이 기세와 기운만이 충만한 화면으로 드러난다. 간혹 너무 평담하고 고요하다 못해 그 평담함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마치 옛 화가가 논한 바, 운필이 매우 자연스러워서 그 시종( 始 終 )과 행적을 알 수 없다고 한 것과 같다. 어찌 보면 송영방 작품의 이와 같은 경지는 대단한 기술의 결정체 또는 기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기술이나 기교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미 그것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인 고유섭( 高 裕 燮, 1905~1944)이 말한 우리 미술의 특징인 무기교( 無 技 巧 )의 기교 에 비유된다. 12) (3)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묘미( 妙 味 ) 중국 청대 서화가 달중광( 笪 重 光, 1623~1692)은 그의 화론에서 허( 虛 )와 실( 實 )이 상생( 相 生 )하니,그려지지 않은 곳이 모두 묘경( 妙 境 )이다 13 라고 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동양회화에서 여백의 운용에 관한 핵심을 논한 구절이다. 동양회화는 특성상 그림을 그림과 10) 김영태, 牛 玄 宋 榮 邦 畵 家 의 금욕적 淡 彩, 경향신문, ) 정기( 靜 氣 ) 는 회화작품에서 평담하고 천진난만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말한다. 중국 청대 화가 왕휘와 운수평은 달중광의 화전( 畵 筌 ) 에서, 그리고 고병( 高 秉 )은 지두화설( 指 頭 畵 說 ) 에서 회화작품에서의 정기( 靜 氣 ) 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 笪 重 光 畵 筌 : 畵 至 神 妙 處, 必 有 靜 氣, 蓋 掃 盡 縱 橫 餘 習, 無 斧 鑿 痕, 方 於 紙 墨 間, 靜 氣 凝 結. 靜 氣 今 人 所 不 講 也, 畵 至 於 靜 其 登 峰 矣 乎, 高 秉 指 頭 畵 說 : 書 畵 至 於 成 就, 必 有 靜 氣, 方 爲 神 品. ) 12) 오광수, 문인화적( 文 人 畵 的 ) 정신과 현대적 조형, 우현 송영방, 열화당, 2011, p.8. 13) 달중광( 笪 重 光 ), 화전( 畵 筌 ), 虛 實 相 生, 無 畵 處 皆 成 妙 境. 동시에 그려지지 않는 부분 또한 모두 그림이 되는 만큼 여백의 운용은 매우 중요하다. 송영방은 이러한 여백의 미를 잘 살리는 화가이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여운( 餘 韻 )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동양회화에서 사의적( 寫 意 的 ) 표현의 의미뿐만 아니라, 닮지 않은 듯 닮게 ( 不 似 之 似 ) 그리는 것 사이에 그림의 진정한 묘미가 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화가인 듯하다. Ⅲ. 맺음말 송영방은 꾸밈없는 표현의 소박한 자연주의적 화격( 畵 格 )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하였다. 동양예술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특히 전통적인 문인화적 정신성을 견지하고 있는 송영방은 오늘날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면서도 당면한 시대정신을 읽어내고자 묵묵히 고심하는 작가이다. 한편 작가라면 모든 그림에 능해야 한다 는 그의 말처럼 우현은 산수화를 비롯하여 인물, 화조화와 사군자 등 다양한 화목과 소재를 아울러서 다뤄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탁월한 조형능력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함과 동시에 그 결과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자연의 각종 대상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경지와 폭은 확실히 남다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같은 관찰 태도와 시각을 통해 자연의 진상( 眞 相 )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형상 너머의 본질을 체득하게 되면서 예술창작에 있어서의 중요한 요소인 순정( 純 淨 ) 또는 천진난만( 天 眞 爛 漫 ) 의 경지, 즉 자연과 가장 닮은 표현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송영방 특유의 맑은 필묵의 순수한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작가 본연의 심성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각종 소재와 화목을 망라하는 작업의 경향에 따른 대상에 대한 인식 태도 혹은 방법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문인화의 대가 팔대산인( 八 大 山 人, 1626~1705), 제백석( 齊 白 石, 1864~1957) 등의 영향을 받고, 그의 직접적인 스승이자 문인화 계열의 대표적 화가인 근원( 近 園 ) 김용준( 金 瑢 俊, 1904~1967), 월전( 月 田 ) 장우성( 張 遇 聖, 1912~2005), 산정( 山 丁 ) 서세옥( 徐 世 鈺, 1929~) 으로 이어지는 화맥을 이어 가고 있는 송영방은 전통적인 문인화적 정신세계를 현대적인 한국적 양식으로 끊임없이 창출하고 있다. 문인화의 전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 화단에서 온고지신( 溫 故 知 新 ), 법고창신( 法 古 創 新 ) 의 정신을 견지하며 여전히 지속되는 그의 행보와 화업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송영방의 문인화적 발상과 담담하고 소박한 조형세계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자연주의적인 한국적 미감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미래 한국화가 나아가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을 시사해주고 있다는 데에 중요한 의의와 가치가 있다. 1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송영방의 회화 15
9 참고문헌 Abstract 김원룡, 한국미술소사, 삼성미술문화재단, 송영방, 南 宗 畵 의 淵 源 과 李 朝 文 人 畵 精 神 에 관한 小 考, 彩 硏, 안휘준, 이광표, 한국미술의 美, 효형출판, 오광수, 붓 맛과 먹의 기운: 송영방, 월간미술 제323호, 2011., 우리 시대의 미술가들, 시공사, 2011., 우현 송영방 초대전, 현대화랑, 1985., 문인화적 정신과 현대적 조형, 우현 송영방, 열화당, 이건수, 혼( 魂 )을 구하다, 컬처북스, 2010., 토착과 자생, 월간미술, 이경성, 우정이 깃들어 있는 美 의 향연, 知 友 知 藝 展, 예나르, 정영목, 사불산 윤필암, 학고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編, 성북동-잊혀져가는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 2, 성북구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編, 20세기 한국 서화전통의 변모와 현대화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編, 한국미술의 미의식, 고려원, 范 景 中, 中 華 竹 韻, 中 國 美 術 學 院 出 版 社, 兪 劍 華, 中 國 古 代 畵 論 類 編, 人 民 美 術 出 版 社, Paintings of Song Youngbang Lee Jaeyoung Assistant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Uhyeon( 牛 玄 ) Song Youngbang( 宋 榮 邦, 1936~ ) is a Korean painter who formed an independent oeuvre with his austere expressions in naturalistic style of painting. Song especially adheres to the zest of traditional literary painting based on the spirit of Oriental art and continues on with his creative works by reflecting upon the contemporary era while guarding the traditional culture. Like his saying, Artists should be skilled in every painting, it is quite noteworthy that he has covered various styles of painting and materials from landscape paintings, portraiture, bird and flower and the Four Gracious Plants paintings. This is where his superb formative ability lies and a result at the same time. In this stance, it is possible to infer that his perspective and breath of examining all kinds of natural subject would be extraordinary. It is with such attitude of examination and point of view that Song completely perceives the actuality of nature and acquires the essence beyond figuration. And through this, the most important elements and the utmost purpose in the artistic creation, the acme of purity and naivety are revealed in the closest expression of nature. Song Youngbang s peculiar style of pure brush stroke may stem from his innate personality, though it has to be carefully examined that it is also relevant to the method or recognition attitude on the subject according to the inclination of work that ranges from diverse media and styles. On the other hand, his persistent move and painting style of keeping the spirit of Beopgochangshin ( 法 古 創 新 : Creating novelty by emulating the old) and Ongojishin ( 溫 故 知 新 : finding guidance to future by taking lessons from the past) are quite valuable in that the literary painting tradition is gradually fading away in the Korean school of painting today. Likewise, Song Youngbang s conception as a literary painter and the serene, plain world of art works, carry exceptional significance and value in that he suggests another direction for the future Korean painters and simultaneously enlightens the naturalistic Korean aesthetics in the transilient contemporary society. 1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송영방의 회화 17
10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Ⅱ. 한국적 주제의 탐색과 추상양식의 연마 김 예 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한국적 주제의 탐색과 추상양식의 연마 1. 국제미술제 활동의 성과와 과제 2. 옵티컬 아트의 수용과 한국미의 완성 Ⅲ. 형식과 내용의 통합을 향한 수행 1. 형식의 천착: 전기 적멸 연작 2. 일탈을 통한 완성: 후기 적멸 연작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정영렬(1934~1988)은 1978년경부터 그의 생애 말기 약 십 년간 적멸( 寂 滅 ) 을 주제로 한 연작을 선보였다. 적멸 연작은 정영렬의 작품 활동기간 30년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주제라는 점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선보인 작품의 성과들이 적멸 연작에 용해되어 있다는 점에서 화가 정영렬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 정영렬은 1988년 타계한 이후 화단에서는 한동안 잊혀진 화가였다. 그의 타계 이후 화단의 유행이 급변하면서 그의 작품이 조명될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생전에 작품의 매매에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작가의 태도로 인해 대부분의 작품이 유족소장으로 묻혀 있었으며, 1970~80년대 모노크롬 회화와 같은 시대양식에서도 조금 빗겨나 있었기 때문에 연구자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무거움 이 정영렬의 작품에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정영렬의 작업 태도와 주제 의식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적멸 연작의 형성 과정과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정영렬의 작품이 동시기 한국 화단에서 점하고 있는 위상과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1. 국제미술제 활동의 성과와 과제 정영렬은 1958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59년부터 조선일보 에서 주최하는 현대작가초대전 에 참여하면서 추상화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정영렬은 젊은 시절 자신이 서구의 추상미술에 휩쓸렸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내가 성장한 시기와 환경은 상당히 한국적 이었음에도 그것을 상쇄시키는 서구적인 새로운 물결에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나는 커 왔다. 내가 자란 고장 남도( 南 道 )는 우리 옛 가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챙길 줄 아는 독특한 풍토의 문화향기가 그득한 고장이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나는 그것을 수용할 입장이 못 되었고, 그러한 구속력 밖에 서기를 원했다. 내가 서양화를 택한 이유도, 그리고 20대에 전위미술이라는 이질적인 미지의 미술대열에 낀 이유도 그 점에 있었던 것이다. 1) 남달리 예민하고 탐구정신이 강했던 정영렬은 전통미술보다 새로운 미술에 끌렸고, 전통의 구속력 너머에 있는 새로운 물결, 특히 앵포르멜 미술에 경도되었다. 당시에는 국전을 중심으로 한 관학파 미술에 반발하여 1957년 창설된 현대미술가협회 와 뒤이어 결성된 60년미술협회 를 중심으로 앵포르멜이 유행하고 있었다. 1962년 두 단체가 연합하여 악뛰엘 을 창립하자 정영렬은 1964년 제2회 악뛰엘전 에 가담하면서 이 단체의 총무직도 맡았다. 1962년부터 정영렬은 서라벌예술대학교에 재직하게 되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때부터 한국미술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화단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하였다. 당시 화단에는 앵포르멜을 필두로 한 새로운 미술이 식민지시대의 청산과 개혁정치를 표방한 군사정권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1961년 김형대의 환원 B 가 국전에서 최고회의장상을 수상하면서 앵포르멜이 제도권에 진입하고 한국미협이 국제진출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앵포르멜은 국제적 이고 현대적 인 미술양식으로 인식되었고 악뛰엘 중심의 작가들이 파리 비엔날레나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미술제의 참가 기회를 선점하고 있었다. 2) 정영렬은 당시 추상화가들의 활동무대였던 한국현대작가초대전 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는 한편, 3) 국제자유초대전 (1962, 도쿄), 현대한국작가전 (1963, 뉴욕), 파리 비엔날레 1) 정영렬, 적멸( 寂 滅 )의 변( 辯 ), 창론 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예술연구소, ) 김미정, 한국 앵포르멜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4, pp.304~311. 3) 조선일보 가 주최한 현대작가초대전 은 구상미술 중심의 국전에 대비되는 추상미술 중심의 전람회였다. 정영렬은 1959년 현대작가초대전 으로 화단에 데뷔한 뒤 1968년까지 이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1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19
11 도판 1. 작품 67-5, 1967, cm, 캔버스에 유채, 유족 소장 (1965년, 파리), 한국작가 말레이시아전 (1966, 쿠알라 룸푸르), 극동현대작가전 (1966, 뉴욕), 상파울루 비엔날레 (1967, 상파울루) 등 국제전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특히 파리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의 비엔날레 참여는 정영렬이 화풍에 변화를 모색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정영렬은 비엔날레에 출품된 해외 작품들을 통해 국제적인 추상미술의 경향을 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흡수하였다. 4) 국제무대를 거치며 정영렬은 훨씬 가볍고 대담해진 색채들과 기하학적 형태들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도판 1) 그리고 팝아트에서 보이는 소비사회의 대중적인 요소나 해프닝, 퍼포먼스와 같은 탈회화 양상을 접하게 되면서 회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5) 정영렬은 1968년 문예상 수상, 1969년 미협 임원 역임 등을 거치며 화단에서의 입지를 구축하였지만, 1960년대 후반 앵포르멜 열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그의 작품은 답보상태에 머물게 된다. 다양한 실험미술이 유입되던 이 시기를 거친 뒤 정영렬의 미술은 이후 회화 에 대한 탐구와 한국성 에 대한 탐구로 그 방향이 모아지게 되었다. 국제적 양식의 수용을 넘어 한국성 을 담보한 추상양식을 만드는 것은, 정영렬을 포함한 이 시기 추상미술가들의 과제가 되었다. 고려청자, 토기 등과 같은 한국의 전통 기물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등장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까지의 거친 붓질와 두터운 안료층이 완전히 사라지고 롤러와 스프레이를 이용한 채색기법으로 평면에 가까운 화면을 구축하였다는 도판 2. 작품 70-20, 1970, cm, 캔버스에 유채, 유족 소장 점이다. 첫 번째 변화는 한국적 미술의 창안에 고심하였던 당시 화단의 경향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두 번째 변화는 해프닝, 퍼포먼스, 대지미술, 설치미술 등 다양한 실험미술이 유입되는 화단의 혼란스러운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정영렬은 한국적인 주제를 회화 형식에 담아내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게 되었다. 1979년 윤명로의 글에는 정영렬에 대한 회고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오십 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 운동에 뜻을 같이 했으면서도 새로운 미술의 흐름에 비교적 초연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었다. 내가 초연한 태도라고 말하는 뜻은 자칫하면 그림이 이념이나 관념 따위의 작위로 끝나버리기 쉬운 이른바 실험적인 것으로부터 나를 도사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이란 결국 그림 그 이상일 수도 없고 그 이하일 수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6) 2. 옵티컬 아트의 수용과 한국미의 완성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을 기점으로 밝은 채색의 기하학적인 추상을 선보이기 시작한 정영렬은 이어 1970년경부터는 불상과 고서( 古 書 ) 등 옛 기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기하학적 추상을 선보였다. 1970년작 작품 (도판 2)에서 보듯이 이 시기 정영렬의 작품에 나타나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불상, 고서, 4) 정영렬의 유품 가운데 비엔날레 리플릿의 복사본이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리플릿들은 그가 국제미술의 경향을 접하는 통로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미술계에 대한 정영렬의 태도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이러한 관심은 1970년대 카뉴국제회화제, 1980년대 국제임팩트미술제 등으로 지속되었다. 5) 1965년 파리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한국 화단에서 새로운 조류의 분기점이 되었다. 낙후된 농업사회에서 이제 막 산업화의 첫발을 내딛은 한국의 미술가들에게 1960년대 중반 서구미술이 준 충격은 컸다. 박서보는 일종의 벽에 부딪혀 멍해 진 느낌이라고 했으며, 김창열은 뉴욕에서 팝미술을 대면했을 때의 절망감을 전쟁 때보다도 더 힘든 죽음과도 같은 시간 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영주 박서보, 추상운동 10년. 그 유산과 전망, 공간, , p.89. (김미정, 1960년대 한국미술에 나타난 민속과 무속모티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6, p.191에서 재인용) 이 글은 당시 정영렬이 이미 전위적인 실험미술과 거리를 두면서 보수적인 회화로 기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림이란 결국 그림 그 이상일 수도 없고 그 이하일 수도 없다 는 생각은 회화의 평면성 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판화적인 기법에 대한 다양한 모색과 실험을 통해 전개되었다. 7) 한국적 미술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점차 고조되기 시작하는 민족주의에 부응하여 나타났다. 당시 기하학적인 추상이나 해프닝, 퍼포먼스 등 당시 우리의 문화적 환경에 낯선 외래의 신종 양식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미술가들은 민속과 무속이라는 전통의 틀을 차용하여 이를 우리식으로 해석하고 수용하였다. 기하학적 추상은 민예품의 다채로운 색채나 패턴과 결합되기도 하였고, 해프닝이나 퍼포먼스는 굿거리와 같은 무속 연행과 연관지어 6) 윤명로, 정영렬의 그림, 뿌리깊은 나무 36호, 한국브리태니커 회사, ) 정영렬은 불상 형상을 오려낸 종이 위에 스프레이로 안료를 뿌리거나, 물결 문양의 종이띠 위에 롤러를 문질러 채색을 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지판화나 공판화와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고충환, 정영렬의 종이 작업이 갖는 미학적 특질과 의의, 적멸의 화가-정영렬, 국립현대미술관, 2014,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21
12 이해되기도 하였다. 일례로 기하학적 추상양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하종현이 1966년에 발표한 탄생 A 와 탄생 B 는 전통적인 민예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었으며, 같은 해 전성우가 발표한 색동만다라 는 한국의 색동이나 단청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8) 1968년 색동저고리의 색상을 테마로 하여 기하학적 추상화 유전질 No.2-68 을 선보인 박서보의 고백은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옵아트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들이 양복을 입으니까 나도 한번 양복을 입어보자는 심정으로 (기하추상) 작업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하기는 싫었고, 그래서 내가 그 무렵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전통적인 맛을 접목시켜내려고 시도한 작품입니다. 당시 비원이나 궁궐에 가면 새롭게 가로등을 정비해서, 무슨 청사초롱을 달아놓은 것 같은 가로등들이 세워졌죠. 그 색깔들. 고궁의 단청, 색동저고리, 또는 색동 포장지들의 색감들이 내 시선을 붙잡았고, 이러한 색깔들을 작품에 실험하였습니다. 9) 정영렬의 작품 은 한국적 추상화를 모색하던 당시 화가들의 경향에 동조하면서 도출된 표현양식으로 이해된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수립 이후 한국사회에는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시대이념이 대두하였고, 국가의 개입 하에 민족주의가 고무되면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처음에는 민속적인 것, 기층적인 것에서 시작된 관심은 점차 세련된 왕실문화와 미술품과 같은 고급문화에 모아졌다. 그리고 국가 주도로 왕릉발굴 사업, 민족기록화 사업, 표준영정 사업, 위인동상건립 사업 등이 진행되었다. 10) 정영렬은 박정희 정권의 민족기록화 제작에 여러 차례 가담하였기 때문에, 11) 그가 당시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전통에 관심을 갖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특히 석굴암의 본존불상이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같은 국보급 유물은 유구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소재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영렬은 불상과 같은 유물의 이미지는 단지 조형적 요소로서 도입되었을 뿐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현대회화는 한국적이 아니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리고 어렵다는 얘기도 곧잘 듣는다. 적어도 현대회화가 국내에서 발생된 형태의 것이 아닌 만큼 한국적이 아니라는 견해에 나도 일리 있음을 인정한다. 또 재래의 인습화( 因 習 化 ) 관념화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작업이 아니니까 8) 김미정(2006), 앞의 논문, pp.190~200. 9) 박계리, 1970년대 한국모노크롬의 기원과 전통성, 미술사논단 15, 한국미술연구소, 2002, p.312에서 재인용. 10) 김미정(2006), 앞의 논문, p ) 여기에는 윤형근을 제외한 한국 모노크롬 화가들 대부분이 참여하였다. 정영렬은 1967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공보부에서 주관하는 민족기록화전 에 참여하였다. 어렵다는 견해에도 수긍이 간다. 내 경우는 현대회화운동에 가담한지 이미 오래다. 그동안에 앞서의 얘기들은 내게도 상당한 과제가 됐다. 근래 나는 작품 속에서 우리 고대( 古 代 ), 특히 신라 미술을 소화시키는 점에 마음을 써왔다. 그리고 우리의 독특한 색채를 탐구해서 표현하는 작업도 여기에 포함했다. 작품 은 그러한 과정에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정물화를 그렸던 많은 화가들이 사과나 복숭아가 꼭 아름다워서 소재로 선택했던 것이 아니듯이 작품 속의 불상도 종교의 심벌 이라거나 독립된 형상미( 形 象 美 )로서가 아니라 작품상 조형의 일부일 뿐이다. 12)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이 되면 미술가들이 이질적인 외래미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전통미술을 조형적 요소로 도입하던 데에서 나아가, 점차 동양사상과 철학으로까지 관심을 넓혀나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등장한 모노크롬 미술은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을 노장사상, 음양론과 같은 동양적인 철학담론으로까지 확대해나갔다. 모노크롬 화가들은 모노크롬 혹은 단색 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화법을 구사하였지만, 그들의 작품은 화면에서 형상을 제거하고 평면으로 환원된다는 점,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도달하는 무아의 경지, 자연과의 합일에 이르는 동양적 자연관을 지향한다는 점, 그리고 중성적인 단일한 색채, 특히 신라 토기, 조선 백자 등 전통적인 색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었다. 13) 모노크롬 화가들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은 1975년에 창립된 에꼴 드 서울 이었다. 14) 1970년을 전후하여 기하학추상을 잠시 선보이다 잠시 침체기에 빠져 있었던 정영렬은 1975년부터 에꼴 드 서울 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화단의 변화에 동참하였다. 1975년 2월 제3회 인도 트리엔날레 에 작품 75-D (도판 3), 작품 75-E 와 같이 흰 단색조의 회화를 발표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12) 정영렬, 나의 신작-정영렬, 주간경향, ) 김영나, 20세기의 한국미술 2, 예경, 2010, pp.276~ ) 김영나, 앞의 책, p.275. 도판 3. 작품 75-D, 1975, cm, 캔버스에 유채, 유족 소장 도판 4. 작품 75-F, 1975, cm, 캔버스에 유채, 유족 소장 2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23
13 도판 5. 작품 77-17, 1977, cm, 캔버스에 유채, 유족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서울현대미술제 에 작품 75-F (도판 4)를 출품한 것에서 보듯이, 이 무렵 정영렬은 이미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15) 1975년은 정영렬의 작가 생활에 분기점이 되었던 해로, 이 해 정영렬은 카뉴국제회화제 한국대표로 참가한 후 유럽을 여행하며 서양미술을 경험하면서 우리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리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16) 정영렬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작품 연작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 작품 연작에서는 1970년을 전후한 작품에서 등장하였던 불상, 토기, 고서 등의 구체적인 형상들이 제거되었고, 그 자리는 무한히 반복되는 물결무늬와 연녹색에서 푸른색에 이르는 파장이 차지하였다.(도판 5) 또 그는 붓을 버리고 롤러를 사용하여 안료를 엷게 펴서 색을 입힘으로써 회화의 평면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물결무늬의 종이 띠를 일정한 간격으로 옆으로 옮겨가면서 롤러로 색을 입힌 화면에는 횡으로 퍼져나가는 빛의 파장과도 같은 물결이 가득 채워지게 된다. 구체적인 형상의 재현을 버린 평면적인 화면, 맑고 투명한 색채에 의한 명상적인 분위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작업과정, 푸른빛의 단일한 화면 등은 모노크롬 미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멸 연작에서 가는 띠 형상의 채색을 입혀나가는 반복 행위는 어느 순간 주체가 소멸되고 대상과 합일되는 물아일체의 상태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는 다른 모노크롬 화가들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점이다. 하지만 형상의 재현은 아니더라도 고려청자에서 파생되는 광학적 빛깔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상의 재현을 거부한 모노크롬 도판 6. 작품 78, 1978, 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회화와 구별되는 정영렬의 개성을 찾아볼 수 있다. 17)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정영렬은 화강석의 거친 재질감을 재현한 바탕칠을 도입함으로써 옵티컬 아트로부터 이탈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층적인 채색기법으로 깊이감을 부여함으로써 모노크롬으로부터도 한걸음 빗겨나 독자적인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도판 6) Ⅲ. 형식과 내용의 통합을 향한 수행 1. 형식의 천착: 전기 적멸 연작 정영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적멸 연작이 앞서서 자신이 이룬 회화적 형식과 이념을 부정한 데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1970년대 후반 모노크롬 회화가 화단을 지배해나가는 가운데, 정영렬은 작품 연작에서 맑은 단색조 화면의 명상적이고 선적( 禪 的 )인 회화 세계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적멸 연작을 새롭게 시도하면서, 모노크롬 화가들의 행로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회화 형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현존하는 유작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정영렬이 적멸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1978년부터로 보인다. 이때는 정영렬이 푸른 청자빛의 작품 연작을 완성한 후, 바탕칠 작업을 도입하여 재질감과 깊이감이 있는 새로운 화면을 모색하던 시기이다.(도판 6) 바로 이 시기에 적멸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 것은 작가가 체질적으로 하나의 양식에 안주하거나 반복된 답습을 싫어하는 성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적멸 은 불교사상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적멸 연작은 하나의 주제에 깊이 천착( 穿 鑿 )하는 작가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나는 별다른 신앙이나 종교관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 의식을 살찌게 한 원천 가운데 불교가 차지하는 몫이 가장 컸다고 자부하여 온 터였다. 산사에 찾아들었을 대 느꼈던 갑작스런 적료( 寂 廖 ). 불타의 미소 가운데 갖춰진 그 정일한 평화로움. 온갖 번뇌를 초극( 超 克 )한 열반( 涅 槃 )의 세계까지는 못들어간다 하더라도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 나는 불타에 기대고 싶다. 거듭 말해서 나는 불교에서 일컫는 무아( 無 我 ) 공( 空 )의 법신( 法 身 )의 경지를 동경하며 적요를 머금으며 자랐듯 성인( 成 人 )이 된 나는 지금 만물의 연기( 緣 起 )하는 허허로운 침묵의 바다에 서서 나를 잊고 싶은 것이다. 15) 서성록은 모노크롬의 시점을 정영렬, 박서보, 이동엽의 작업에 비추어 이 작품의 제작연도를 1972~73년경으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정영렬은 1973년경부터 작품 73-B, 작품 74-E 등 백색조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성록, 한국 현대회화의 발자취, 문예출판사, 2006, p.462 참조. 16) 명화의 산실-시각적 볼륨 확대, 서양화가 정영렬씨, 후생일보, ) 정영렬은 이 시기 자신이 고려청자의 비색에 심취 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이 가을에 결실을-문화예술인 작업현장을 찾아. 서양화가 정영렬씨, 서울신문,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25
14 적멸( 寂 滅 ), 미망( 迷 妄 )을 자르는 칼날. 그래서 얻고 싶은 영원한 정신의 안식처. 이것이 내 작품의 주제이며 작업의 과정이다. 적( 寂 )과 멸( 滅 ). 이것이 모든 불교사상의 근저를 이루는지 어쩐지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단어가 통일을 이루는 관계 속에서 즉 두 개 낱말의 상호교섭과 연관 속에서 고통없는 영원한 정신적 안식처가 기약되리라 믿으며 나는 나의 작품( 作 品 )을 적멸( 寂 滅 ) 이라 제( 題 )해본다. 18) 이 글에서 정영렬이 언급하는 적멸 은 불교에서의 온갖 번뇌를 초극( 超 克 )한 해탈의 상태나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기보다는, 산사에 찾아들었을 때의 평화로움이나 정신의 안식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1980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의 개인전을 앞둔 인터뷰에서도 정영렬은 스스로 불생불멸( 不 生 不 滅 ) 이라는 법( 法 )을 터득한 경지인 열반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동안 마음 가져온 무작위적( 無 作 爲 的 ) 관조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19) 정영렬은 서양의 미술사조를 직접 접하면서 문화적 전통과 뿌리가 없는 미술의 왜소함을 통감하고 한국적 내면의 세계를 구현하는 조형언어 를 연구하고자 하였고, 동양의 보편적인 사상으로서 불교의 열반, 즉 적멸 이라는 주제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해한 적멸 은 불가( 佛 家 )의 법( 法 )을 터득한 경지라기보다, 복잡한 세속을 잊고 마음을 관조하는 고요한 정신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에 가까웠다. 정영렬이 특별히 적멸 이라는 불교적 용어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으로 여러 가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먼저 작가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의한 것으로서 유년시절 남도의 명찰들을 답사하면서 경험한 갑자기 산사에 들어섰을 때 의 고요함과 적막함을 후일의 작품 주제와 연관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한국의 고미술을 탐구하는 작업을 거치며 도달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기하학추상을 하면서 불상을 모티프로 한 이래, 평론가들로부터 불교적인 요소가 보인다는 평가를 자주 듣게 되면서 작가 스스로 불교적 주제를 심화시키게 되었고 마침내 이것이 불교사상의 적멸 로 귀착된 것으로 보인다. 20) 정영렬에게 적멸 의 이미지는 유년시절 산사에서 느낀 고요한 떨림 의 이미지로 형상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도판 7) 적멸 연작은 바탕칠을 하고 그 위에 종이 띠와 롤러를 이용하여 반복적인 무늬를 형상화하는 작업방식을 통해 볼 때 작품 연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모듈이 되는 원형이나 사각형에 도판 7. 적멸 78-8, 1978, 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입체감을 표현하여 화면에 요철감( 凹 凸 感 )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회화의 평면성에 집착하였던 이전의 작업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큰 변화이다. 이에 대하여 신항섭은 이른바 모노크로미즘(단색주의)으로 불리는 한국현대미술의 전반적인 흐름과 궤를 달리하는 독자적인 일루전(착시, 환각)의 세계로 진입 하고 선( 禪 )사상에 근거한 조형공간은 이미지의 반복 중첩 연속이라는 방법론을 기조로 전면( 全 面 )회화 형식에 도달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21) 그러나 적멸 에 대한 정영렬의 이해는 피상적인 것이었으며, 따라서 정영렬이 회화적으로 구현한 세계는 파장과 진동으로 가득 찬 추상화면으로 작품 연작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품 연작이 전통미술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것이었던 데 반해, 적멸 연작은 전통미술의 기저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적인 측면을 주제로 하였다는 점, 그리고 전통적인 이미지를 추상미술의 형식 속에 그대로 재현하는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주제와 형식이 통합된 추상화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도판 8) 적멸 연작은 앵포르멜 이후 정영렬이 집요하게 추구하였던 회화 형식에의 탐구, 조형적 실험이 완결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특히 적멸 연작에서 보여주는 묵직한 조형감은 한국미술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부단한 작업을 거쳐 완성된 것이었다. 이는 정영렬 회화세계의 완성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독자적인 일루전의 세계 는 이후 정영렬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도판 8. 적멸 79-11, 1979, 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 일탈을 통한 완성: 후기 적멸 연작 편의상 후기 적멸 연작으로 불리는 종이 작업은 실제로는 전기 적멸 연작이 시작되는 18) 정영렬, 적멸( 寂 滅 )의 변( 辯 ), 창론 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예술연구소, ) 이 가을에 결실을-문화예술인 작업현장을 찾아. 서양화가 정영렬씨, 서울신문, ) 신항섭, 정영렬론, 현대미술의 위상, 화성문화사, 1982, p ) 신항섭, 한국적 정서 살린 일루전 시도-정영렬 유작전을 보고, 경향신문, 윤우학 역시 1970년대 탈일루전 의 물결 속에서 정영렬이 보여준 착시적인 일루저니즘 에서 그의 독자적 개성을 찾아내었다. 윤우학, 정영렬론, 적멸의 화가-정영렬, 국립현대미술관, 2014, pp.2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27
15 1978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22) 정영렬은 1978년 견지화랑에서 열린 Works on Paper 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종이 작업을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두 번째 전시의 서문을 쓴 이일이 종이 위의 작업 이 갖는 새로운 의미는 바로 그 작업이 작품의 방법론과 일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종이 라고 하는 받침-메디아(Support média) 와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이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는다는 뜻에서이다 라고 밝혔듯이, 종이가 회화의 지지대를 넘어 적극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은 당시 종이 작업을 시도한 작가들에게 공통된 사항이었다. 23) 정영렬이 화가로 데뷔한 이래 줄곧 붓과 캔버스를 고수하며 보수성을 지켜 왔음에도, 24) 돌연 종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당시 화단의 새로운 경향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지를 이용한 추상작업은 1962년 권영우의 작업을 시작으로 민경갑, 서세옥, 정탁영 등의 한국화가들의 추상미술운동에서 시작되어, 정창섭, 정영렬 등의 서양화가들의 작업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25) 도판 9. 적멸, 1979, 55 85cm, 한지에 아크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도판 10. 적멸 79-P8, 1979, cm, 한지에 혼합기법,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종이가 그림의 지지대로서의 영역에 머물기를 거부한 다른 작가들의 작업에서처럼, 정영렬의 종이 작업에서도 종이는 재료와 기법으로서의 기능을 넘어선 것이었다. 초기의 종이 작업은 기성 한지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물결 모양을 그린 그림에서 시작하였지만,(도판 9) 곧 종이를 긁고 찢고 붙이는 등의 콜라주 작업을 거쳐,(도판 10) 인조 대리석판이나 나무판으로 만든 틀을 이용 하여 직접 한지를 떠내는 한지 주조 작업으로 발전하였다.(도판 11) 1980년대 이후에는 한지로 22) 적멸 연작은 70년대 후반 작품 연작에서 보였던 옵티컬 일루저니즘 의 잔상이 남아 있는 전기 연작 과 회화작업의 평면성을 극복한 종이작품 연작인 후기 연작 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일, 적멸에로의 길, 정영렬 유작전, 워커힐미술관, 1995 참조. 23) 이일, 종이위의 작업( 作 業 )에 부쳐, Work on Paper 展, 진화랑, ) 신항섭(1982), 앞의 책, p ) 김정희는 정창섭과 정영렬이 서구적 앵포르멜 양식을 동양적 미의식의 논리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지를 매체로 택하였다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는 이미 앵포르멜이 화가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시기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보다 세밀한 고찰이 필요해보인다. 김정희, 한지( 韓 紙 )-종이의 한국 미학화, 현대미술사연구 19, 현대미술사학회, 2006, pp.207~211. 도판 11. 적멸, 1983, cm, 한지주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업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한지의 사용방식도 다양하였고, 정영렬을 비롯하여 정창섭, 한영섭, 심문섭 등 일부 작가들은 한지 제조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한지를 직접 캐스팅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김정희와 심문섭의 인터뷰에 의하면 정영렬이 한지 공장을 방문한 것은 1980년이며, 현존작들을 미루어볼 때 1982년경부터 한지 주조 작업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정영렬이 한지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1980년대 초 화단의 한지 열풍이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6) 정영렬은 제3회 국제임팩트전 에 한지 작업을 출품하였고, 이 작품을 본 일본 교토의 료화랑( 梁 畵 廊 )이 초대전을 결정함에 따라 1982년 한지 작업 2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27) 그리고 이듬해 동산방화랑에서 종이 작업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정영렬은 종이 작업을 더욱 본격화하였다. 이 시기 정영렬의 종이 작업은 평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부조로 진화하였고, 틀로 찍어낸 종이부조의 표면을 쇠솔로 긁어서 거친 질감을 내는 등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한지 작업은 국내의 한지 열풍과 맞물려 제작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화단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1970년대 일본화단에 의해 한국의 단색회화가 발견 된 이래 한지 작업의 유행까지 한국과 일본의 화단은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28) 1968년의 한국현대회화전, 1977년의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과 같은 전시를 통해 일본에 한국미술이 26) 현대종이의 조형-한국과 일본 전을 소개한 1983년 2월 16일 KBS 라디오에서 한명희 아나운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영렬은 이전까지는 한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 종이 작업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뒤늦게 관심을 가져보게 된 것이라 부끄럽다고 고백하였다. 정확한 프로그램명은 확인할 수 없으며 유족이 보관하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였다. 인터뷰 자료를 제공해준 유족에게 감사드린다. 27) 서양화가 정영렬씨 일( 日 ) 경도( 京 都 )서 개인전, 동아일보, ) 1975년 5월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 이후 흰 단색조의 한국회화들이 같이 묶여 일본에서 전시되는 일이 빈번해졌고 이후 국내에서도 모노크롬화가 집단적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한국 모노크롬의 특징으로 지목된 흰색 은 일본의 평론가들과 화상들에 의해 발견되고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진이, 한국모노크롬 회화의 맥락 읽기, 현대미술학 13, 현대미술학회, 2009, pp.88~89 참조. 2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29
16 소개된 이래, 1981년부터는 한 일 양국 간의 현대미술교류전이 기획되어 70년대 일본미술의 동향 이 1981년 한국에서 개최되고 이듬해 한국현대미술전 이 일본 5개 지역을 순회하는 등 미술교류가 활발해졌다. 29) 1982년에는 일본 교토시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의 위상 이 열려 정영렬, 이세득, 김창렬, 이우환 등 34명의 한국작가가 소개되었다. 이 전시의 개막식에 참석한 당시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양국 간의 종이 작업 교류전을 논의하였고, 현대 종이의 조형-한국과 일본 전시가 한국과 일본 양국을 순회하면서 종이 작업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30) 일본에서는 국제미술제를 개최하면서 종이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었고, 일본에서 한국의 종이 작업에 관심을 가짐에 따라 많은 화가들이 종이 작업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정영렬 역시 1982년과 1985년 일본에서 한지 작업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정영렬은 당시 화단의 흐름 속에서 종이 작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화업 속에서 종이 작업의 독자적 양식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아직 수공조차 가해지지 않는 가장 기초적인 그 질료가 사유( 思 惟 )의 기하학적 병렬( 竝 列 )과 무수한 반복을 통하여 하나의 통일된 질서로 승화되는 과정이야말로 내가 내 건강을 돌보지 않고 작품에 탐닉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종이 조형 작업 이전부터 나는 적멸 시리즈를 계속해왔고 그러한 관조적 세계를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려 시도해 왔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바로 한국적 조형미, 한국적 형상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조형미와 형상미의 근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적 조형과 색채로 손꼽히는 청자의 정신적 근원은 무엇인가, 그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 가시적인 외형보다 먼저 추구돼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 것이다. 31) 이 글은 정영렬이 1985년 간암을 선고받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한지 작업에만 전념하던 시기에 남긴 것이다. 정영렬이 한지 라는 질료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으려 한 것은 당시 한지 작업에 몰두한 화가들 대부분에게서 발견되는 태도이다. 32) 그러나 한지를 직접 떠내는 작업 과정과 무수한 점의 반복적 형상에서 동양적 사유 를 시도하고 이를 통일된 질서 로 승화시키고자 한 데에서는 다른 화가들보다 적극적인 태도와 주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29) 경향별로 고루 출품-한일현대미술교류전 출품작가 발표, 동아일보, ; 한국 현대미술전 내년 일( 日 )서 열린다 동경 대판 등 5개 지역서 7개월 동안, 경향신문, ) 이경성 현대미술관장 일( 日 ) 한국현대위상전 참석, 경향신문, ; 오광수, 종이 통해 조형언어 형상화, 경향신문, ) 정영렬, 죽음보다 더한 아픔, 사사연, 1988, p ) 김정희, 앞의 논문, pp.211~212. 도판 12. 무제, 1985, 혼합기법, cm, 유족 소장 도판 13. 적멸 85-P26, 1985, 수제한지에 혼합기법, 유족 소장 한지 작업은 정영렬이 꽉 짜인 조형의 평면회화에서 벗어나 종이의 물성 자체에 관심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지의 물성과 요철을 이용하는 작업은 한지 작업을 처음 선보인 권영우가 이미 시도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권영우가 한지에 구멍을 뚫는 작업의 반복 과정을 통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었던 반면, 33) 정영렬은 전기 적멸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일루전적 공간 과 판화적 기법 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즉 전기 적멸 연작에서는 평면 위에 착시적 공간을 시각화하였다면, 한지 작업에서는 본격적으로 판을 이용한 판화기법을 통해 이를 입체적 요철로 체현( 體 現 )하였고, 그 결과 정영렬이 줄곧 탐구해왔던 회화 의 평면성을 극복하였다. 이 시기 정영렬의 판화기법에 대한 관심은 매우 구체화되어 석판화와 에칭기법으로 작업한 판화도 제작하였다.(도판 12) 정영렬은 1960년대 말부터 실험미술과 거리를 두고 회화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였는데, 이는 주로 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탐구에 집중되었고 그 과정에서 판화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완성된 한지작업은 한지의 원시적 질료와 수작업을 통해 평면회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이는 형상 너머의 통일된 질서로 승화하는 적멸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도판 13) Ⅳ. 맺음말 일찌감치 국제미술계를 경험한 정영렬은 화단의 변화를 매우 예민하게 감지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작품세계를 변모시켜 나간 화가이다. 하지만 1970년대 작품 연작을 통해 단색의 추상회화를 앞서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노크롬이 화단을 휩쓸 때에는 이로부터 33) 박계리, 앞의 논문,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31
17 이탈하여 독자적인 길을 모색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시대양식에 휩쓸리지 않고 작가적 개성을 고수한 화가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한국화단은 한국성 을 구현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고, 정영렬 역시 한국적인 추상화 라는 일관된 목표를 향해 정진하여 적멸 연작을 완성하였다. 적멸 연작이 시대양식과 독자양식의 사이, 불교적 주제의식과 창조적 회화양식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모색한 끝에 얻어진 결과였다는 점에서, 1970~80년대 화단에서의 정영렬을 경계 의 화가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 추상화단의 자취 속에서 정영렬의 위상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논의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경향별로 고루 출품-한일현대미술교류전 출품작가 발표, 동아일보, 나의 신작-정영렬, 주간경향, 명화의 산실-시각적 볼륨 확대, 서양화가 정영렬씨, 후생일보, 서양화가 정영렬씨 일( 日 ) 경도( 京 都 )서 개인전, 동아일보, 이경성 현대미술관장 일( 日 ) 한국현대위상전 참석, 경향신문, 이 가을에 결실을-문화예술인 작업현장을 찾아. 서양화가 정영렬씨, 서울신문, 종이 통해 조형언어 형상화, 경향신문, 한국적 정서 살린 일루전 시도-정영렬 유작전을 보고, 경향신문, 한국 현대미술전 내년 일( 日 )서 열린다 동경 대판 등 5개 지역서 7개월 동안, 경향신문, 강태희, 이우환과 70년대 단색회화, 한국현대미술 , 학연문화사, 고충환, 정영렬의 종이작업이 갖는 미학적 특질과 의의, 기증작가특별전: 적멸의 화가, 정영렬, 국립현대미술관, 김미정, 한국 앵포르멜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4., 1960년대 한국미술에 나타난 민속과 무속모티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6, 한국근현대 미술사학회, 김영나, 20세기의 한국미술 2, 예경, 김영호, 적멸( 寂 滅 )의 세계를 찾아서Ⅱ, 기증작가특별전: 적멸의 화가, 정영렬, 국립현대미술관, 김정희, 한지( 韓 紙 ): 종이의 한국 미학화, 현대미술사연구 19, 현대미술사학회, 박계리, 1970년대 한국모노크롬의 기원과 전통성, 미술사논단 15, 한국미술연구소, 서성록, 한국 현대회화의 발자취, 문예출판사, 신항섭, 현대미술의 위상, 화성문화사, 윤명로, 정영렬의 그림, 뿌리깊은 나무 36호,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윤우학, 정영렬론, 기증작가특별전: 적멸의 화가, 정영렬, 국립현대미술관, 윤진이,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맥락읽기, 현대미술학회논문집 13, 현대미술학회, 이일, 종이위의 작업( 作 業 )에 부쳐, Work on Paper 展, 진화랑, 정영렬, 죽음보다 더한 아픔, 사사연, 1988., 적멸( 寂 滅 )의 변( 辯 ), 창론 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예술연구소, 한지희, 정영렬의 작품 연구, 전남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경계( 境 界 )의 회화: 정영렬의 적멸 연작 연구 33
18 Abstract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1) Paintings of the Boundary( 境 界 ): Study on the Nirvana series of Jung Yung-Yul Kim Yejin Assistant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Jung Yung-Yul(1934~1988) debuted through the 1960 s informel painting and he pioneered in the advancement of Korean Abstract art by adopting geometrical abstraction, monochrome painting, works on paper and various styles of abstract art. From the early period, Jung had strongly felt the importance of cultural roots as he experienced international exhibitions such as the Paris Biennale and São Paulo Bienal, and thus sought an individual abstract style within Korean tradition and thoughts. He conducted diverse experiments on the subject of color, texture and form of traditional objects including the statue of Buddha, celadon porcelain and ancient books in the Work series of the 1970 s, which was inspired by nationalism, predominant during the 1960 s-1970 s Korean society. After 1978, he exhibited Nirvana to seek an independent ouevre, concentrating on Buddhist philosophy as a general philosophy of the East. Jung Yung-Yul s Nirvana series were developed in relation to the monochrome art that caught on with Korean school of painting in 1970 s-1980 s and the Japanese school of painting that affected the general Korean art scene as well. However, he has developed his own world through the concrete and coherent thematic consciousness, method of reenacting the space of optical illusion and acceptance of print technique. The works with Korean traditional paper during his last days were especially momentous that they overcame the flatness of painting and actively personified the theme of Nirvana. 마 동 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본문 1. 트램 네트워크의 구조 및 운영 시스템 2. 트램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및 전시 컨텐츠 분석 3. 트램 네트워크의 진화, 택시 트램과 란도 트램 4. 트램 네트워크의 벤치마킹을 통한 제안 Ⅲ. 맺음말 Ⅰ. 머리말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문화예술의 나라라고 불리는 프랑스 역시 수도인 파리를 중심으로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포진되어 있다. 프랑스의 트램 네트워크(Tram Réseau)는 이러한 수도 중심적인 발전 양상에서 벗어나 파리 외곽지역의 현대미술 생산과 확산을 위해 만들어진 지역연합미술협회이다. 1981년에 일 드 프랑스(Ile-de-France)의 7개 예술단체장들이 모여 처음 창설한 트램 네트워크는 현재 국 공립 및 사립미술관을 비롯해 미술센터, 미술학교, 예술인 연합회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예술재단 등 총 32개의 비영리 현대미술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트램 네트워크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단체의 대표 키워드는 트램(전동차)이다. 트램은 1960년대 말 자동차의 확산으로 이제는 더 이상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전차와 비슷한 것으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이 트램을 1) 본 연구논문은 트램 네트워크(Tram- Réseau) 공식 사이트의 공개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35
19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로 이용하고 있다. 트램 네트워크는 이러한 트램의 기동성을 이용해 파리 중심지와 외곽지역을 연결하여 이미 미술센터가 위치한 곳에는 접근이 용이하도록 트램 정차역을 설치하였고, 트램이 지나가는 길목에 특별히 미술센터가 없는 경우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을 통해 미술관을 건립하여 관람객이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이는 트램 네트워크의 중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수도인 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빈약한 외곽 지역의 예술환경, 특히 지역현대미술을 활성화하고자 조직되었다. 따라서 트램 네트워크의 가장 큰 목적은 현대미술을 주축으로 수도권 인근 지역주민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확대시키는데 있다. 본 연구논문은 트램 네트워크의 구조 및 운영시스템과 이 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사례들을 분석하여 경쟁이 치열한 프랑스의 문화예술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트램 네트워크의 양태를 연구하고, 나아가 이 시스템의 한국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Ⅱ. 본문 1. 트램 네트워크의 구조 및 운영 시스템 1) 32개 소속기관 소개와 전시 컨텐츠 트램 네트워크는 일 드 프랑스 지역 주민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프랑스 현대미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 시스템은 트램이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물리적인 접근의 용이함을 추구하고, 동시대 미술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매체와 혼합재료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 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예술기관들은 각각 진행하고 있는 현대미술 프로젝트, 제반 지식과 경험 그리고 관련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또한 트램 네트워크는 일 드 프랑스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미술특구로서의 발전을 꾀하는 CIPAC 2) 이라는 현대미술전문가 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트램 네트워크는 현대미술가들을 주축으로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작품수집가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으며 레지던스, 교육, 홍보물 발행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 CIPAC은 현대미술전문가연맹으로 현대미술의 창조적 생산과 확산을 위해 18개의 예술전문기관들로 조직된 협회의 일종이다. CIPAC은 미술센터, 현대미술재단, 미술전문도서관, 미술학교와 산하도서관, 예술가 레지던스, 현대사진술협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CIPAC은 1996년 예술, 공공의 관심 이란 주제로 투르(Tours)에서 열렸던 첫 학회를 시작으로 정기적인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예술의 불가피성 이라는 주제로 2013년 11월에 리옹(Lyon)에서 학회가 열린 바 있다. 도판 1. 트램 네트워크 홍보 포스터 Tram Réseau 트램 네트워크에 소속된 기관들은 매년 총 200회 이상의 전시를 열어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맞고 있으며 2,000여 건의 연계교육 및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있다. 32개 기관들의 연합활동은 수치상의 결과를 넘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축적된 독자적이고 지역특화적인 경험이 얼마나 큰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현대미술에 대한 트램 네트워크의 모든 활동은 면밀하게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으며, 각 기관들은 관람객들과 매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노력한다. 트램 네트워크의 마케팅 대상은 대학교, 대중교통, 지역협회, 병원, 교도소, 심지어 인터넷이 가능한 프랑스령의 주변국가까지를 아우르며 현대미술의 전파 범위를 확장해나가고자 한다. 2) 트램 네트워크의 구조적 쟁점과 주요 관건 32개의 트램 네트워크 소속 기관들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트램 노선망에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파리 시내와 외곽지역을 편리하게 잇는 교통망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발전성도 함께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트램 네트워크는 트램이라는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으로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이로 인해 수도인 파리의 문화예술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시스템 구축이 약한 파리 외곽지역에 영향을 미쳐 오히려 각 지역의 지역적 특징에 맞는 개성있는 예술 스타일과 참신한 분위기가 약화되는 조짐이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파리 중심지에 위치한 트램 네트워크 소속 기관들의 추진사업과 고도의 전략을 내포한 여러 시도들이, 다양한 층위의 현대미술창작을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지역특성화 미션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해서 주목받는 이슈를 창출해내고 있는 파리 소재 예술기관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최소한의 관람객 수를 유지하고자 파리 중심부와 외곽지역이 연맹을 맺은 트램 네트워크의 역풍은 현재 프랑스 현대미술계에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 부분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바라보는 것도 트램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3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37
20 3) 장기적 전망 트램 네트워크는 각 지역의 예술기관과 관람객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매우 효과적인 민관 공조시스템 중 하나이다. 이 시스템은 국가정책에 근거해 계속해서 일자리를 창출해내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직제와 담당 부처의 증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시스템은 소속기관이 위치한 해당 지역구의 문화예술적 발전에 필수적인 창구이며 그 지속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도 활용될 수 있다. 우리는 각 소속 기관들을 표기한 트램 네트워크의 분포도를 통해 각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현황을 읽을 수 있으며, 이 시스템은 프랑스령에서 발생되는 예술창작의 유포를 지리학적 관점에서 확산시키는 주체로 볼 수 있다. 또한 각 지역간의 근접성을 용이하게 하면서 지역 간의 격차와 대립을 완화시키고 수도권으로부터 시작된 예술특구 조직망 결성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2. 트램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및 전시 콘텐츠 분석 1) 32개 소속기관 소개와 전시 콘텐츠 2014년을 기준으로 현재 32개의 예술관련 기관들이 트램 네트워크의 멤버로 소속되어 있으며 지도와 같이 각각의 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고유번호를 부여 받는다.(도판 2) 트램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 파리 외곽지역의 예술기관들은 각각 그 태생과 역사가 다르다. 중세 문화유적지로 더 어울릴법한 곳에서부터 최근에 합류한 대형글로벌 그룹 산하의 문화센터까지 층위가 매우 다양한 공간에서 현대미술이라는 공통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각각의 기관들은 자신들이 위치한 지역의 특성과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고, 항상 이 부분을 염두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선정한다. 트램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대적으로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몇몇 기관들을 사례로 들어 트램 네트워크의 전시 콘텐츠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앞으로 트램 네트워크와 같이 국지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활동 범주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구조적 평가는 필수적일 것으로 보이며, 앞서 언급한 트램 네트워크의 구조적 쟁점이 인식된 이상 대도시화된 수도에서 시작하여 지방으로 확산되는 문화, 예술의 수직적 운영 방식이 지양될 것으로 기대한다. (1) 모뷔송 수도원(Abbaye de Maubuisson) 공식사이트: 개관시간: 주6일(목요일 제외): 13시~18시 / 주말 및 공휴일: 14시~18시 소개: 모뷔송 수도원은 1241년에 블랑슈 드 카스티유(Blanche de Castille) 왕비가 세운 왕립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백년전쟁과 프랑스대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보전한 건물로, 2000년부터 현대미술센터로 탈바꿈하여 조형예술과 비주얼아트를 소개하고 있다. 근래에는 설치, 비디오, 사진,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등 동시대 미술을 선보이고 있다. 도판 3. <같은 시간, 같은 장소(Même heure, même endroit)> ~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브누아 브루아자르(Benoit Broisart), 카를로스 카스틸로(Carlos Castillo), 파스칼 콩베르(Pascal Convert), 올가 키셀르바(Olga Kisseleva), 쉘기 리(Seulgi Lee), 그라스 디리투(Grace Ndiritu)가 참여한 그룹전 이 대지에 발을 딛고 뿌리를 내리며 살기 위해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비디오, 조각, 환경미술, 사진, 오브제, 회화 등의 기법을 이용해 다양한 국적을 가진 6명의 작가들이 협업을 통해 구성한 그룹전이다. 도판 2. 트램 네트워크 소속기관 분포 지도 Tram Réseau 3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39
21 (2) 카미유 랑베르 현대미술공간(Espace d art contemporain Camille Lambert) 공식사이트: 개관시간: 화요일~토요일, 14시~18시 예약 필요 소개: 카미유 랑베르 현대미술공간은 동시대 미술의 역동적이고 인터렉티브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예술대안학교이자 실험공간이다. 퍼포먼스, 복합미디어아트 등 예술적 표현방식의 다양함을 발전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이곳은, 난해한 개념의 현대미술이 보다 친숙하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도판 5. <공동체 프로젝트(Projet phalanstère)> ~ 퍼포먼스 프로젝트 프란츠 고람(Prinze Gholam), 마티유 르아뇌르(Mathieu Lehanneur), 한스 발터 뮐러(Hans Walter Müller)가 참여한 그룹전 전시장 내부, 사무공간, 실외 등 세 곳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프로젝트이다. 공동체생활을 주제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자연 그 자체의 공간과 과학과 건축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도시적 공간의 양면성을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하였다. 이 작업은 브레티니 지역의 탱보기술고등학교 학생들과 협업한 작품이기도 하다. 도판 4. <날 사랑하는 너(Toi m aime)> ~ 설치미술 프랑수아 데로(François Daireaux), 가스통 다마그(Gaston Damag), 엘렌 델프라(Hélène Delprat), 에릭 퐁트노(Eric Fonteneau), 미셸 구에리(Michel Gouery), 피에르 프티(Pierre petit), 카미유 생-자크(Camille Saint-Jacques), 와드 상데르(Wade Saunders)가 참여한 그룹전 미술평론가 카림 가답(Karim Ghaddab)이 진행한 전시로, 오늘날 파리는 더이상 예술의 중심지가 아니라는 자조와 각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전시다. 또한 미술사적으로 파리의 역할과 잠재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고민하게 한다. (3) 브레티니 현대미술센터(Centre d art contemporain de Bretigny) 공식사이트: (4) 샤마랑드 도립 영지(Domaine départemental de Chamarande) 공식사이트: 개관시간: 화요일~토요일, 11시~18시 소개: 샤마랑드 도립 영지는 1654년에 건축가 니콜라 드 레스핀(Nicolas de l'espine)이 계획한 건축공간으로, 파리 외곽지역에 위치한 성채(성과 숲으로 구성된 영지) 중 하나이다. 이 성은 루이 13세 시대의 검소하고 소박한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건물로 현재는 유토피아와 자연, 관객참여적 미술,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세 가지 미션 아래 현대미술작품을 소개하는 문화예술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성은 울창한 숲과 유구한 역사가 있는 건축물의 조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주로 공간의 구조적 특성 및 건축술과 관계된 퍼포먼스나 설치작품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개관시간: 화요일~토요일, 14시~18시 소개: 브레티니 현대미술센터는 브레티니 극장과 함께 융복합 현대미술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2000년부터 프랑스 문화성과 협약을 맺어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브레티니 현대미술센터는 지역주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아티스트와 각계각층의 전문가, 문화예술계 조력자와 경제인들의 협력을 중재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 분야의 사람들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발생시키며 상생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술센터가 단순히 예술작품이 소개되는 곳이 아닌 사회,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창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판 6. <모빌 키친(La cuisine mobile)> ~ 설치, 뉴미디어, 조각 엘로디 두캉(Elodie Doukhan), 니콜라 뮈슈(Nicolas Musche)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동시대 문화, 예술 사회를 관망하고 경험하는 태도와 예술에 대한 진보적인 성향을 미각체험 연구소 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에코지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숲속에 임시구조물을 세우고 그 안에 색소첨가식품, 다이어트 식품, 정크 푸드, 웰빙 식품 등을 한데 섞어 진열함으로써 이들의 이중적 특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전시이다. (5) 뷔송 농지의 현대미술센터(Centre d art contemporain de la Ferme du Buisson) 공식사이트: 개관시간: 월요일~일요일, 14시~19시 소개: 뷔송 농지의 현대미술센터는 파리 외곽 마른 라 발레(Marne la Vallée) 지역의 4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41
22 국립공연예술센터로 19세기 말 농업기술의 혁명과 더불어 초콜릿과 제약품을 생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공장 건물이다. 이곳은 현대미술, 복합예술공연, 실험영화, 음악 등 역동적인 예술을 창출해내며 이것들을 계속해서 발전, 확산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MMS 전송보다 수기로 작성된 편지가 여전히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며 이론을 정리하고 확립해나가는 활동은 비단 미술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트램 네트워크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한 방식의 학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아래의 표를 참고하기 바란다.(표 1) 도판 7. <C2M1> DATA+퍼포먼스 지그프리드 캉토(Siegfried Canto), 마갈리 데스바제이(Magali Desbazeille) C2M1은 코드와 문자, SMS 소통을 활용하여 영상으로 출력하는 미디어-퍼포먼스이다. C2M1은 언어의 신기술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여 공연, 무용, 비디오, 웹아트 등을 통해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명칭 진행방식 비고 라 주르네(la journée) 09:00~18:00까지 하루 종일 릴레이로 진행 참여 예약 필수 학계 연계 세미나 대학의 교수 및 석사 이상 학생들과 연계 진행 관계자만 참여 카페-필로(café-philo) 12:00~18:00까지 카페를 빌려 차와 과자를 나누며 진행 관계자만 참여 정기 학술회 매달 1회~2회 이상, 약 4시간 가량의 정기 학술회 진행 일반인 참여 가능 컨퍼런스 매달 1회~2회, 특정 주제를 가지고 발의자가 약 1시간 가량 발표 일반인 참여 가능 비평 토론회 매달 2회 이상, 전시 공연 주제 및 진행과 관련한 토론회 관계자만 참여 작가 콜로키움 전시. 공연 참여 아티스트들이 주축으로 이끌어나가는 소규모 세미나 일반인 참여 가능 서면의 제한으로 32개의 트램 네트워크 소속 기관들을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일련의 예시로 언급한 위의 소속 기관 이외에도 시네스테지(Synesthésie), 르 크레닥(Le Crédac), 막/발(MAC/VAL), 르 플라토(Le Plateau) 등 이미 많이 알려진 미술센터들도 트램 주말 세미나 격주 주말(토,일)에 개최되는 소규모 세미나로 보통 18:00~20:00까지 하나의 주제로 진행 표 1. 트램 네트워크 학술 프로그램 관계자만 참여 네트워크의 원활한 운영과 긴밀한 결속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트램 네트워크 기관들의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들을 보면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용기 이다. 어느 정도의 규모와 시스템을 갖춘 예술기관일수록 새로운 시도를 실험할 때 수반될 수 있는 작품구현의 미완성적인 부분은 기피하고, 다소 답습적이고 상투적일지라도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작품을 선호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트램 네트워크의 연계 학술회는 보통 위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대부분 참여 작가나 기획관계자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가 가능하다. 또한 다년간의 노력과 꾸준한 시도로 매우 빈번한 횟수의 학술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참여하고 본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더불어 참여자들의 이러한 능동적인 태도는 양질의 토론의 장을 구축하고 있으며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유는 예술계에서의 평판과 전문가의 비평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램 네트워크의 많은 기관들은 이러한 목소리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예컨대 실험미술을 지향하는 것이 그 기관의 설립 목적이라면 혹자에게 어설프고 매끄럽지 않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더라도 그 작품을 관람객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램 네트워크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이유는 창작실험에 대한 이러한 용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3) 레지던스 운영 레지던스 운영은 전시 콘텐츠와 연계 학술 프로그램 다음으로 트램 네트워크 운영의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현재 32개의 트램 네트워크 기관 중, 11개 기관이 아티스트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파리 외곽 지역인 누아지-르-섹(Noisy-le-Sec)시가 1999년에 구 시청사에 건립한 현대미술센터는 활발한 전시 및 레지던스 프로그램 운영으로 기관평가에서 2) 전시 연계 학술 세미나 앞서 언급한 트램 네트워크 운영의 주요 원동력인 전시 콘텐츠 이외에 이 시스템을 지탱하는 원동력의 또 다른 사례를 든다면 전시 공연 연계 학술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10명 이하의 콜로키움, 학계와 연계한 세미나, 크고 작은 토론회, 다양한 구성의 컨퍼런스 등 연간 30회 이상의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는 트램 네트워크는 아카이브 축적과 보존의 중요성을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누아지-르-섹 현대미술센터(Centre d'art contemporain de Noisy-le-Sec)의 레지던스 운영시스템을 한 사례로 들고자 한다. 누아지-르-섹 현대미술센터는 2005년부터 매년 1명씩 레지던스 입주 아티스트를 공모로 선정하고 있으며, 당선된 작가는 9개월간 현대미술센터 옆 레지던스에 입주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장해나간다. 입주작가는 주거와 작업이 가능한 방, 거실, 부엌, 욕실, 작업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프랑스 특유의 문화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 그리고 작품 보관창고 등의 구조로 되어 있는 65m 2 크기의 아틀리에 머무르게 된다. 또한 글을 남기기보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목소리를 내어 토론하고, 이동통신기기를 통한 문자나 아틀리에 사용에 들어가는 제반비용(전기세, 가스비, 전화비)을 포함해 인터넷 사용료, 작품 4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43
23 활동에 필요한 여행경비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5,000유로(한화 약 750만원)의 아티스트 지원비와 5,000유로의 작품제작비 등 총 10,000유로(한화 약 1,500만원)의 지원비를 받는다. 입주작가는 레지던스 입주기간 안에 2회의 전시를 개최하며 전시작품과 관련된 컨퍼런스,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에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위와 같은 누아지-르-섹 현대미술센터의 조건 및 진행사항이 트램 네트워크 소속 기관들의 대표적인 레지던스 운영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타 기관의 레지던스 시스템과 차별점이 있다면 1~2명 정도의 소수 인원을 입주작가로 선정하여 작품활동을 지원해주고 프로모션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영시스템이 거시적으로 봤을 때 과연 효과적인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위와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점차 많은 기관들이 아티스트 레지던스 운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예산 및 부지 확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해당 기관의 레지던스 출신 아티스트들이 향후 전시를 개최할 때 긴밀한 사후 컨텍을 통해 직 간접적인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3. 트램 네트워크의 진화, 택시 트램과 란도 트램 1) 택시 트램, 란도 트램 택시 트램(Taxis Tram)이란 트램 네트워크에서 파생되어 발전한 것으로 2005년 9월부터 택시와 함께 시행한 또 다른 대중교통 이용 시스템이다.(도판 8) 택시 트램은 한 달에 한 번 트램 네트워크의 소속 기관 중, 일 드 프랑스의 현대미술센터 세 곳을 선정하여 패키지로 관람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사전 신청자에 한해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아티스트의 작업실 방문, 전시기획자 혹은 전시 공연기술팀과의 만남도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가족단위로 미술센터를 방문하는 관람객이나 장년층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더불어 2014년 봄부터 시행되고 있는 란도 트램(Rando Tram)이라는 도보여행 프로그램이 있다. 이 시스템은 신청자가 트램 네트워크 소속 기관을 안내하는 가이드와 함께 도보로 미술센터를 방문하는 것으로, 특히 숲, 호수 또는 역사적 유적물 등이 있는 사유지내에 위치한 예술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이 프로그램은 젊은 커플이나 학생들 또는 도판 8. 택시 트램 홍보 포스터 Tram Réseau 외국 여행객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점차 시스템을 안정시켜나가고 있다. 2) 이용 정보 2014년 1월부터 4월까지 시행한 택시 트램, 란도 트램의 일정 및 이용 정보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택시 트램의 기본 이용료는 7유로(학생 및 무직자 4유로)이고, 란도 트램의 이용료는 3유로이다. 루브르나 오르세이 같은 대형 미술관의 입장료가 최소 10유로 이상인 도판 9. 택시 트램 및 란도 트램 일정표 예시 Tram Réseau 것을 감안했을 때, 택시 트램과 란도 트램의 이용료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다. 트램 네트워크는 트램과 택시 그리고 도보를 이용한 파리 외곽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지금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앞으로 통일된 방향 설정과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대한 명확한 인식 공유를 통해, 대중교통수단을 대표이미지로 내세운 시스템에 대한 표본으로 향후 아트 마케팅 분야에서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4. 트램 네트워크의 벤치마킹을 통한 제안 필자가 본 연구논문의 중심소재를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으로 선정한 이유는 불현듯 국립현대미술관 3관을 이어주는 아트 버스 와의 연관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트 버스는 현재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4회씩(10시, 12시, 14시, 16시) 운영하고 있다. 서울 도심과 경기도 과천을 잇는 아트 버스는 트램 네트워크의 트램과 마찬가지로 관람객의 발이 되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동시대 예술을 다루고 있는 트램 네트워크는 근 현대 미술을 고루 소개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방향성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트램 네트워크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 문화예술 향유권 확대와 지역 경제성장 활성화를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필자는 트램 네트워크가 담당하고 있는 이러한 역할이 한국미술계에서도 현대미술의 저변확대와 활성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한국 역시 수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교육, 경제, 문화, 예술이 발전되어 왔다. 때문에 정부와 자치단체장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지역안배를 고려한 발전을 꾀하며 여러 정책들을 고안해내고 있다. 수도는 그것이 형성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지속적인 사회활동과 함께 성장과 변화를 통해 구축된 사회발전의 한 모습을 대표하고 그 사회를 표상하고 있는 총체적인 이미지이자 구성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 4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45
24 성장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성장의 중심축을 옮기거나 주변으로 확산시키며 새로운 도시의 형성과 발전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성질은 문화, 예술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문화, 예술의 지역적 확산을 통해 새로운 인프라와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으며, 이러한 무형의 가치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제반 관광산업의 성장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필자는 트램 네트워크와 같은 시스템이 한국에서도 실현가능한 것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름의 방안을 모색해보았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 학술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미술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의미있는 담론의 장을 구축해나가기 위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련 기관들과 연계하여 학회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면, 문화 예술계의 발전을 선도하는 미술관의 역할 확대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실험적인 미술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과 과감한 전시 콘텐츠 생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도심의 영향력 있는 한국 국 공립, 사립미술관들이 동시대 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밀도있는 전시 혹은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충분한 연구기간과 다각도의 분석력이 요구된다. 또한 퍼포먼스와 같은 무형의 작품이 늘어나고 있고, 작품의 제작과정 자체가 결과물이 되고 있는 동시대미술의 경우, 지금까지 우리가 기대하고 목도했던 수준의 완성도와 다르다 할지라도 관람객에게 그것을 대범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트램 네트워크 전시 콘텐츠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리허설 같은 본 공연, 여전히 설치 중인 것 같은 전시 작품 등 현대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고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해서 노출할 때 조금 더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머지않아 현대미술에 대한 관람객들의 신뢰와 기대를 끌어낼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낼 것이다. 3) 아트 버스의 활용 치밀한 계산과 연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을 잇는 아트 버스의 활용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한국 역시 서울과 경기도권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확산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하철 및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기관의 자문을 얻어 진행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3관만을 다니는 아트 버스를 주변의 국립기관들과 연계하여 함께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제안해본다. 예컨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주변에는 융복합 과학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국립과천과학관이 있고, 서울관 주변에는 고궁박물관, 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이 있으며, 덕수궁관 주변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국 공립 관련 기관들과 협약을 맺고 전시, 공연 및 학술 프로그램 패키지를 만들어 그 일정에 따라 아트 버스를 운영한다면 트램 네트워크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문턱이 낮은 학술 프로그램 운영 세미나, 학술회, 컨퍼런스, 토론회 등의 명칭은 이론 발표와 의견 교환의 장이라는 공통의 역할을 그 규모와 운영방식에 따라 나눈 것이다. 수많은 학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들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트램 네트워크는 10명 이하의 소수 인원이 모여도 학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도심 곳곳에 미술관과 대형 갤러리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관들은 최소 한 분기마다 전시와 연계한 학술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그러나 전시, 공연 관람에 비해 이들 기관의 학술 프로그램에 오는 관람객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른 원인은 간단하게 말해 그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데 프로그램 주제가 어려울 수 있고, 홍보가 미비할 수도 있으며, 참석자의 자격에 제한이 있을 수도 있다. 청소년부터 중장년층까지, 전문가부터 대다수의 비전문가까지 학술 프로그램을 향유할 수 있는 대상자들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절실한 이유다. 특히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현대미술작품의 경우 더더욱 많은 관람객들을 학술회의 장으로 이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양질의 전시를 기획하는 것 못지않게 Ⅲ. 맺음말 트램 네트워크는 문화예술의 지역안배를 목적으로 파리 외곽지역의 현대미술 확산과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그 태생적 성격이 한국의 상황과 다소 다를 수 있다. 프랑스는 버스 노선보다 지하철 노선이 많고 따라서 지하철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동차가 현대미술 확산의 주요 도구로 선택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프랑스와는 반대로 지하철 노선에 비해 버스 노선이 매우 많으며, 마을버스 등의 이용까지 생각한다면 일반 시민들의 버스에 대한 친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트 버스는 관람객들의 호응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요소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트램 네트워크의 시스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으며 한국의 상황에 맞게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범 운영을 해보는 것도 한국현대미술의 발전과 확산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트램 네트워크 시스템 및 콘텐츠 연구 47
25 Abstract Study on Tram Network System and Exhibition Contents Dong Eun Ma Assistant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ram network is a contemporary art federation of Ile-de-France, established in 1981 and it refers to the system that connects the mobility of trains to the movement of the audience. Tram Network, designated as the Formative Arts Information Center of Il-de-France, is currently composed of 32 non-profit contemporary art organizations and it exists through the close cooperation between private art institutions and the government s arts policy. Every year Tram Network holds various academic events and relative meetings to allocate communal projects according to each institutions characteristics. And through this, it continuously strives to reduce differentials among diverse regions s enjoyment of arts and culture, thereby promoting an even economic progression. The integral mission and motto of this system are to bridge the gap between artists and audience through repetitive, everyday approach method leading to the discovery and expansion of contemporary art, revitalization of education and collection, and the mandatory theoretical study and archival accumulation. Furthermore, this network which initiated from the electric train system of Tram, is gradually expanding into the system of taxis and high speed trains(rer). This network is acclaimed in France and vicinity european arts sphere for its system operation as it presents the historicity of each distinctive contemporary art institutions, receiving attention with exhibition contents that incorporate experimental and individual works.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operation system of Tram Network and intriguing exhibition contents, hence to introduce a minor current of the international art sphere.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urrently operates an art bus system connecting the three branches of Gwacheon, Seoul and Deoksugung. Detecting a common link between the tram of Ile-de-France and the art bus system of MMCA, Korea, this study will measure the possibility of the Korean art bus network establishment based on the fundamental information of Tram Network. Ⅱ. 미술관학 연구 4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26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기록관리는 일정한 기록내용과 형식을 갖춘 체계화된 기술지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분류체계에 대한 재정비와 기술지침의 체계화에 대한 기초안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소장품의 기록내용과 관리 형식을 수정하는 것이 다음 과제이며, 이후 수정 과정에서 단점을 보완하여 최종적인 기술지침을 완성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소장품을 대상으로 수정 실무 전까지인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고자 한다. 박 미 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Ⅱ. 본문 Ⅰ. 머리말 Ⅱ. 본문 1. 분류체계의 재정비 2. 소장품의 기록체계 정비 Ⅲ. 맺음말 Ⅰ. 머리말 미술관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1) 소장품은 미술관의 특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외 근현대미술사 중심의 주요작품 약 7,40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기탁작품과 자료를 포함하면 약 10,000점에 이른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1971년부터 작품을 수집하여 기록관리하고 있으며, 초기 정착과정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품기록 및 관리체계에 많은 변화과정을 겪으면서 작품에 대한 조사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기관인 만큼 특정한 부문으로 특성화된 수집보다는 한국미술사 정립을 위한 전반적인 주요작품들을 모두 수집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소장품의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하여 오늘날 미술경향에 적합하도록 분류체계를 재정비하고 이에 알맞은 기술 지침서를 마련하고자 한다. 분류체계는 다양한 현대미술의 경향에 따라 재정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1)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소장품 혹은 소장작품 이라 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술자료의 가장 큰 묶음을 나타내는 단위명으로서의 컬렉션 용어와는 구분된다. 오늘날 영어와 혼용하여 소장품을 '컬렉션'이라고도 표기하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영어표기인 '컬렉션'을 배제하고 '소장품'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1. 분류체계의 재정비 1) 배경 및 필요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분류체계는 1971년 수집 초기부터 많은 변화를 갖는다. 1969년 경복궁에 설립된 국립현대미술관은 1971년부터 작품 수집을 시작했는데 이때 소장품의 분류체계는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서예 5개 부문으로 국전 부문을 따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류체계는 덕수궁으로 이전 2) 한 이후 1979년부터 사진과 건축을 추가해서 총 7개 부문으로 나뉘어져 199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었다. 3) 7개 부문은 90년대 중반에 다시 회화 Ⅰ, 회화 Ⅱ, 조각, 공예, 서예, 사진, 건축 등으로 용어 정비를 하였으나, 문서상 기록에만 한정되어 있고 실제로는 여전히 한국화와 양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류는 2000년에 본 필자의 담당으로 다시 한번 전체를 정비하여 한국화(KO), 회화(PA), 판화 드로잉 4) (DP), 조각(SC), 뉴미디어(NM) 5), 공예(CR), 사진(PH), 서예(CA), 건축(AR), 디자인(DE) 총 10개 부문으로 나뉘게 된다. 또한 소장품의 관리번호 체계도 재정비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반입순서에 따라 전체 연번과 부문별 연번으로 두 가지를 병행하여 혼란이 있었던 방식에서 전체 연번 한 가지만으로 부문별 용어의 영문 이니셜 두 글자를 붙여 쓰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분류방식으로 14년 동안 사용하였으나, 용어상의 문제 등 국립현대미술관의 분류체계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제시됨에 따라 분류체계의 재정비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었다. 즉 한국화도 2) 1976년 덕수궁으로 이전하였음. 3) 7개 부문 중 동양화 는 한국화 로 서양화는 양화 로 각각 용어가 수정되었는데 변경된 시기는 아마도 대한민국전람회 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으로 바뀌면서 사용된 용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1982년경으로 짐작된다. 4) 드로잉과 판화를 같이 묶는 이유는 소장품 분류체계는 관리가 우선인 만큼 두 부분의 바탕재가 거의 종이 라는 공통점에 따라 묶은 것임. 5) 뉴미디어는 특정한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비디오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의 작품들을 묶기 위한 방법으로 향후 뉴미디어 작품 중 다수를 차지하여 하나로 묶어서 관리가 필요한 경우 별도의 용어와 함께 분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음. 5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51
27 회화라는 점 6), 판화와 드로잉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 뉴미디어에 대한 개념 정의 등이 그것이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2실의 연구직 및 관련 직원들과 수차례의 논의 과정을 거쳐 아래와 같이 분류체계를 정비하게 되었다. 향후 업무상 또다시 혼란에 빠질 우려 7) 가 있기 때문에 소장품 분류가 세분화되는 것은 필자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지만, 다수의 의견에 따라 11개 부문으로 분류체계를 정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 ~ ~2014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서예 동양화 Korean Painting 한국화 *회화 I 서양화 Western-style Painting 양화 *회화 II 조각 Sculpture 표 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분류체계 변화과정 공예 Craft 서예 Calligraphy 사진 Photography 건축 Architecture 조각 공예 서예 사진 건축 한국화 회화 조각 공예 서예 사진 건축 판화 드로잉 뉴미디어 디자인 *판화는 서양화에 포함 *판화는 양화에 포함 2015 회화I 회화II 조각 공예 서예 사진 건축 판화 드로잉 뉴미디어 디자인 * 동양화를 한국화로 변경하는 시점은 불분명하나 대전의 부문명이 한국화와 양화로 쓰여진 연도를 추정한 것임. 2) 분류체계의 내용 11개의 부문으로 수정 정비된 분류체계는 회화I(KO), 회화II(PA), 판화(PR), 드로잉(DR), 조각(SC), 뉴미디어(NM), 공예(CR), 사진(PH), 서예(CA), 건축(AR), 디자인(DE)이다. <표 2>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10개 부문이 판화와 드로잉을 분리함으로써 11개 부문으로 조정되었으며 용어 한국화 는 다시 회화 I 로 회귀하였다. 2000년 당시 필자는 기존의 회화 I 과 회화 II 의 분류가 실제 소장품 관리업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점 8) 을 감안하여 실용적인 측면에서 많이 쓰고 있는 용어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비록 당시 분류체계를 개편하면서 미술학계의 의견을 듣고자 개최하였던 공청회에서는 일부 한국화 라는 용어 사용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굳이 한국화 라는 용어의 타당성을 더 주장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실제 업무 속에서 활용되는 용어를 받아들여 업무의 효율성을 갖자는 입장이었으며 이것이 결코 미술계 힘의 헤게모니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분류체계는 효과적인 작품관리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국화와 회화라는 분류로 14년 동안 소장품 관리가 이루어졌고 이 분류체계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다른 국공립미술관에서 문제점을 제기해왔던 것이다. 부문별 개념 정리도 이루어져 <표 2>에서 볼 수 있다. 기존의 개념을 검토하고 현대미술 개념을 포괄할 수 있도록 11개 부문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몇 가지가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서예 부문이다. 더 이상 작품이 수집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 소장품 때문에 부문을 지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집하지는 않더라도 서예 부문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두 번째는 디자인 부문이다. 디자인은 공예와 많은 점에서 중복되기 때문에 구별 기준점에 대한 정의가 매우 모호하다. 한국현대미술사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근대기의 공예는 상당부분 디자인과 중복되며 경우에 따라 디자인 부문이 더 적합한 부문일 수 있는 작품도 있어 작품에 대한 점검까지 필요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뉴 미디어 에 관한 것으로 많은 연구직들이 이 용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본 필자의 의견으로는 아직은 영상 이나 비디오 라는 용어로 세분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향후 어떠한 다른 작품이 더 나올지 예측할 수 없고, 현재에도 작품 수는 적지만 영상 외에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문으로 세분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그러나 뉴미디어 라는 용어의 부적절성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계속 지적을 받게될 것이다. 표 년 재정비에 따른 소장품 분류체계 및 개념 정의 부문 코드명 개 념 회화 I Painting I 회화 II Painting II 판화 Print KO PA PR - 어떤 지지대나 장소 위에 각종 안료를 써서 형상을 표현한 예술 - 근대 이후 한국에서 발달한 동양화 -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양식에 의해 다루어진 평면 회화 예) 수묵화, 수묵채색화, 채색화, 수묵담채, 산수화, 인물화, 정물화 등 평면회화 - 어떤 지지재나 장소 위에 각종 안료를 써서 형상을 표현한 예술 예) 유채, 아크릴, 혼합재료 등 각종 재료에 의한 평면 회화 - 나무, 금속, 돌 등의 평면 위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거기에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해 종이나 천 따위에 인쇄하는 것 - 에디션, 작품명, 작가 서명 등으로 판화의 형식을 갖춘 것 예) 볼록(목판, 고무판), 오목(드라이포인트 등), 평판화(석판), 공판화(실크스크린 등) 6) 물론 2000년 당시에도 이러한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하나의 부문으로 통합하기에는 소장품 수가 너무 많았고 종이 와 먹 을 이용한 작품이 수백 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하나의 부문을 형성하는 것은 마땅히 필요한 작업이었음. 7) 분류를 지나치게 세분화하면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분류가 모호한 새로운 작품을 수용할 수 없어 또다시 새로운 부문을 생성해야 함. 8) 분류는 회화 I, 회화 II 로 구분하였으나, 실제 업무를 담당한 직원과 학예연구직들은 한국화 라는 말로 서로 통용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드로잉 Drawing 조각 Sculpture DR SC - 일반적으로 선적인 표현의 평면 회화. 평면회화의 기초단계에 속하기도 함 - 색을 쓰더라도 옅은 채색의 선적 표현 회화 - 공간 속에서 입체성을 표현하는 시각입체예술 -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공간 속에 입체성을 표현한 작품 - 혼합재료 등으로 공간 속에 입체성을 표현한 작품 예) 석조, 목조, 소조(청동, 합성수지, 철 등), 용접 등 5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53
28 뉴미디어 New Media NM - 현대의 대중매체(텔레비전, 영화, 비디오, 컴퓨터, 오디오, 네온 등)를 이용하여 제작된 작품 예) 비디오아트, 컴퓨터아트, 웹아트, 비디오 설치, 멀티미디어아트, 디지털아트, 사운드아트 등 기술요소 작가관리번호 표 3. 작가 관련 기술지침 기술지침 및 예시 공예 Craft 사진 Photography CR PH - 실용적인 물건에 순수 예술적 가치를 부가한 미술, 전통적인 분류 범위를 가지고 있는 작품 예) 목공예, 칠기, 금속공예, 유리공예, 가죽공예, 염색, 도자, 도자 설치 등 - 카메라를 사용해 사물과 실제의 현실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 예) 기록사진, 풍경사진, 인물사진 등 작가명 국문 - 한국작가(한국계 포함)의 경우 성, 이름 순으로 띄어 쓰지 않고 기술한다. 예) 홍길동, 김기창, 이상범 - 외국작가의 경우 자국의 발음을 국문으로 기술(국어연구원 규칙기준)하고 성과 이름은 띄어쓰기 한다. 단 중국작가의 경우 성과 이름을 띄어 쓰지 않는다. 예) 로랑 그라소, 자비에르 베이앙, 오노 타다시, 팡리준, 첸웬링 서예 Calligraphy CA - 문자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 예) 전각, 붓글씨 등 - 영문명이 약자로 표기된 경우 본명을 찾아 기술하며, 가운데 이름이 약자인 경우 생략할 수 있다. 예) R.C. Gorman 루돌프 칼 고르만, Manuel D. Baldemor 마누엘 발데모르 디자인 Design DE - 주어진 실용적인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한 것 - 사용목적에 따라 조형작품이나 제품의 형태, 색상, 장식 등에 대해 계획 또는 도안하는 것 예) 도안을 위한 드로잉, 도안을 위한 사진 비디오, 도안을 기초로 만든 오브제 작품 등 한문 - 한국작가의 경우 한자는 성, 이름 순으로 띄우지 않고 기술한다. 예) 金 基 昶, 宋 秀 南 건축 Architecture AR - 건물을 그 목적에 맞게 설계하고 구성하며 나아가 예술성을 갖도록 하기 위한 예술과 과학을 말함 - 건축가의 드로잉(설계도면, 사진, 비디오 등), 오브제(마케트) 등 영문 - 한국작가(한국계 포함)의 경우, 성은 모두 대문자로 이름은 시작 글자만 대문자로 쓰며 발음상 혼돈이 있는 경우 - 를 넣을 수 있으며 성과 이름은 띄어 쓴다. 단, 작가가 원하는 기술방식을 가장 우선으로 기술한다. 예) HONG Gildong, KIM Hong-ik, KIM Soo, Yeesookyung, Nanda, Baak Je, Komelia HONGJA-OKIM 이와 더불어 작품관리번호체계도 기존의 연번체제에서 한 가지 방식을 더 수용하여 - 외국작가의 경우 자국어의 표기순서와 방식을 따르되, 성은 모두 대문자로 이름은 시작 글자만 대문자로 기술한다. 예) Xavier VEILHAN, ONO Tadashi, FANG Lijun, CHEN Wenling 관리번호에서 작품수집연도를 알려주는 연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하였다. 즉 도서관식 번호 표기방식을 따랐다. 예를 들면 2010년도에 수집된 35번째 작품일 경우 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한 실행여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자국어 기타 - 자국 언어와 규칙에 따라 기술한다. 예) 小 野 規, 陳 文 令, Valérie BELIN - 닉네임, 가명, 본명 등 특이사항을 기술한다. 예) 김아타의 본명은 김석중( 金 石 中 )이며 1999년부터 김아타를, 2000년 이후 아타 를 사용 난다의 본명은 김영란 金 永 蘭 KIM Youngran임 2. 소장품의 기록체계 정비 1) 작가관련 기술지침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기술지침에 앞서 작가관련 기술지침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하였다. - 호는 국문(한문) 형식으로 쓴 후, 특이사항을 기술한다. 예) 남천( 南 天 )은 송수남의 호로서 원래는 완산( 完 山 )이었으나, 남쪽의 하늘 이라는 뜻의 호를 지인의 추천으로 사용하게 되었음 - 가운데 이름이 생략된 경우 혹은 약자의 경우 원명의 스펠을 기술한다. 예) 루돌프 칼 고르만Rudolph Carl Gorman 작가는 작품관련 서지정보 입력시 가장 먼저 기술되는 요소이다. 9) 또한 다른 미술관련 자료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도서자료실에서 작가등록 및 기타 업데이트 등을 관리해왔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의 신설과 더불어 도서를 제외한 미술관련 자료는 도서자료실과 생몰연도 생몰연도 - 생년.월.일. 사망연.월.일.을 8자리로 쓴 후 ~ 를 한다.(생존작가 개인정보수집동의) 예) ~ ~ 개인정보수집동의가 없는 경우 출생연도만 기술한다. 예) ~ 분리되어 미술연구센터로 이전되었다. 동시에 작가에 대한 기술지침도 마련하여 그동안 대두되었던 문제점을 보완하였다. <표 3>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와 관련한 기술요소는 작가명, - 생몰연월일이 불분명한 경우? 로 표시한다. 예)? ~ , ~? 생몰연도, 국적, 성별, 학력, 주소 등으로 개인정보수집동의서도 요구되었다. 9) 본고에서 제시하는 기술지침 순서는 일반적인 작품의 서지정보 나열 순에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작품에 제시되는 캡션은 작가명, 작품명, 제작연도, 재료및기법, 규격 순이며 저작권을 비롯한 작품관리번호 등의 정보는 미술관마다 상이하였다. 기타 -법적인 생몰연월일과 차이가 있거나 추측되는 사항이 있는 경우 등 필요한 사항을 기술한다. 예) 1930년대에 출생되었다고 전해짐 한국전쟁때 월북하였으며 1970년대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서류상으로 1956년이나, 실제는 1954년생으로 알려짐 본 생년월일은 음력임 5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55
29 국적 국적 - 국문으로 국가명을 기술한다. 예) 한국, 미국, 일본 기술요소 표 4. 작품명 관련 기술지침 기술지침 및 예시 출생지 기타 성별 성별 남, 여, 기타 학력 *개인정보 수집동의서 주소 및 연락처 *개인정보 수집동의서 개인정보 수집동의서 학력 기타 주소 (작업실등) 연락처 1,2,3 2) 작품명관련 기술지침 - 한국국적의 경우 출생지를 가능한 시, 군, 리 단위까지 기술하고, 행정명이 변경된 경우 괄호 안에 현재의 지명을 기술한다. 예) 김복진: 충북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 이건용: 황해도(현, 황해북도) 사리원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 전라북도 이리시(현,익산시), 경상북도 영풍군(현, 영주시) - 위의 예시로 설명되지 않거나, 기타 국적 및 출생국(지) 관련 특이사항을 기술한다. 예)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계이나, 1990년 미국 국적으로 바꾸었음 - 국적과 출생국이 다를 경우 괄호 안에 출생국명을 기술, 국적과 출생국이 동일하지만 조국이 다른 경우 괄호 안에 ~계 를 기술한다. 예) 백남준: 미국(한국), 곽덕준: 일본(한국계) - 국내 대학의 경우 1학교명 2과명 혹은 전공명을 기술하고, 졸업이 아닌 경우 3수학정도(중퇴, 수료, 과정, 재학 중 등)를 기술한다. 예) 서울대학교 조소과 서울대학교 조소과 석사 서울대학교 조소과 박사 홍익대학교 조소과 중퇴 홍익대학교 석사 수료, 혹은 박사 수료 홍익대학교 조소과 박사 중퇴 - 외국대학의 경우, 영문으로 기술하며 1학교명 2전공분야 3학위명을 기술한다. 예) University of Washington, Video Art, B.A. Yale University, Media Art, M.F.A. - 대학력이 없는 경우 최종학교명 및 학력 관련사항을 기술한다. 예) 이응노에게 사사받았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봄 - 학력관련 기타 특이사항을 기술한다. - 한국거주 작가는 국문으로, 국외거주 작가는 영문으로 주소를 기술한다. - 작업실전화번호, 휴대전화번호, 자택전화번호 홈페이지 예) mmca.go.kr 이메일 예) [email protected] 가, 부 작가관련 기술지침 다음으로 모든 부문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작품명에 관한 것이다. 작품명은 국문, 영문, 자국어, 한자, 기타 등으로 구분하여 세부적이고 통일된 지침을 마련하였다. 실무에서는 주어진 예시가 보다 정확한 안내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기술지침에 예시를 명시하였다. 관리번호 - 두 가지를 병행하여 기술한다. 예) PA00000, 작품명 국문 - 작가가 정한 작품명을 기본으로 기술한다. - 맞춤법 및 띄어쓰기는 현재의 표준어 규칙을 따른다. 예) 잔듸( ), 잔디( ) 영문 자국어 한자 기타 - 영문명만 있는 경우 작가에게 국문 작품명을 확인하여 기술하되, 작가가 국문명을 굳이 원하지 않는 경우 작가의 의견에 따라 기술한다. 예) I Am Sorry - 외국작품의 경우 국문으로 번역하여 기술한다. 예) 빌 비올라의 <의식> - 영문 약자, 소문자, 숫자 등 약호로 이루어진 작품명은 그대로 쓴다. 예) 김도균의 <b.cur.rmnc-01> - 작가가 정한 국문 작품명이 불확실한 경우, 반입시 기록과 현재 통용되는 것 등을 고려하여 기술할 수 있다. 예) 박현기의 <스케치북> - 작품명이 없는 경우 제목미상 으로 기술한다. - 작가가 지정한 영문 작품명을 기본으로 기술한다. - 영문 작품명은 영어 문법과 표기법에 따르며 이탤릭체로 기술한다. (작품명 첫 단어의 알파벳과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은 대문자로, 접속사, 전치사, 관사는 소문자로, 문장형 작품명은 마침표를 하지 않음) 예) Moon Is the Oldest Television Still-Life with a Doll From Four Directions A Flower( ), Flowers( ), Flower( ) - 작가가 정한 영문 작품명이 없는 경우, 관련 자료를 조사하여 기술하거나 번역하여 기술할 수 있다. 예) Still-Life with Apples - 국문 고유명사를 발음대로 쓸 경우, 국어연구원의 규칙에 따른다. 예) 도상봉의 <명륜당> Myeongryundang - 제목미상 은 Title unknown 으로 기술한다. - 필요한 경우 작가의 자국어로 기술한다. - 필요한 경우 기술한다. 예) 人 形 있는 靜 物 - 작품명의 유래, 의미 등을 기술한다. 1 작가가 정한 작품명의 배경과 의미 설명이 필요한 경우 예) 김도균의 <b.cur.rmnc-01>에서 cur 은 curtain, rmnc 은 호텔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르메르디앙 호텔명에서 유래된 것임 2 작가가 정하지 않은 작품명의 경우 언제, 누구에 의해 명명되었는지 기술 예) 박현기의 <스케치북>은 수집하여 반입될 때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에 의해 명명되었음 이쾌대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자화상>은 2000년대 초반 미술평론가 *** 에 의해 명명되어 통용되고 있음 3 국문 영문 번역은 정보가 있을 경우 언제, 누구에 의한 것인지 기술 예) Still-Life with a Doll은 1999년 소장품 기록정비시 *** 에 의해 번역되었음 - 기타 작품명 관련 특이사항은 서술식으로 기술한다. 5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57
30 3) 제작연도관련 기술지침 작품의 제작연도는 부문별로 공통된 영역에 대해 먼저 명시한 후 부문별 특별한 기술지침이 필요한 경우 지침을 마련하였다. 4) 재료및기법관련 기술지침 재료및기법 은 재료 로 수정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재료와 함께 기법까지 함께 기술되어 있는 소장품 10) 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굳이 기록된 것을 삭제하는 기술요소 표 5. 제작연도관련 기술지침 기술지침 및 예시 기술요소 표 6. 회화Ⅰ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기술지침 및 예시 제작연도 공통 - 반입시 작가 혹은 자료에 의해 확인된 연도를 기준으로 한다. - 제작연도가 불분명한 경우 연도미상 으로 기술하며 최초 발표연도가 확인되는 경우 최초 발표연도를 제작연도로 기술할 수 있다. 회화 조각 사진 판화 기타 - 일정 기간 동안 제작된 경우 필요에 따라 기간을 기술한다. 예) 김용익의 <가까이, 더 가까이> 추정되거나 대략적인 제작연도는 년, 년경, 년대, 초반, 중반, 후반, 이후, 이전, 또는 등을 사용하여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한다. 예) 1990년대, 1999년경, 1970년대 초반(중반, 후반), 1975년 이전, 1975년 이후, 1983 또는 가필한 경우 가필전의 연도를 쓴 후 경위를 기타에 기술한다. 예) 류경채의 <폐림지 근방> 작품명 혹은 작가 서명을 통해 알 수 있는 경우 년경 으로 제작연도를 쓰고 기타에 근거를 기술한다. 예) 정영렬의 <적멸89> 1989년경 - 최초 제작연도와 재제작, 주조, 복원, 에디션별 제작연도 등이 다른 경우 최초 제작연도를 기술하고 괄호 안에 재제작, 주조, 복원, 에디션별 제작 연도 등을 기술한다. 구체적인 경위는 기타에 기술한다. 제제작: 원 작품이 파손되어 작가에 의해 다시 제작된 작품 예) 김구림의 <매개항> 1980(1997 재제작) 주조: 최초의 틀이 없거나 조각작품의 틀을 만들어 작가가 주조한 작품 예) 김세중의 <토르소> 1961(1980년대 주조) 윤승욱의 <피리 부는 소녀> 1936(1972 주조) 복원: 원 작품의 부분이 50% 이상 남아 있어서 복원한 경우(복원자명 기술) 예) 윤승욱의 <피리 부는 소녀> 1936(1972 복원) 제작: 최초의 틀이 있거나 제작 매뉴얼로 필요시 에디션을 생산하는 경우의 작품 예) 김기라 경우 2007(2014 제작) - 촬영연도와 인화연도가 다를 경우 촬영연도를 제작연도로 쓰고 괄호 안에 인화연도를 기술한다. 예) 육명심의 <예술가 시리즈-중광> 1978(2007 인화) - 작가에 의해 재판한 경우, 원판의 제작연도를 기술하고 괄호 안에 재판한 연도를 기술한다. 예) 오세영 <숲속의 이야기> 1970(1982 재판) - 가필, 복원 등 제작연도와 관련된 특이사항을 기술한다. 예) 1989(2000 가필) 윤승욱, <피리부는 소녀>, 1936, 석고에 채색 본 작품은 남아있는 석고조각 파편으로 조각가 최의순(서울대교수)에 의해 복원된 뒤 1972년 9월 21일에 미술관으로 반입되었음 윤승욱, <피리부는 소녀>, 1936, 청동에 채색 복원된 <피리부는 소녀>, 석고 작품의 형을 떠 청동으로 주조된 작품이 1972년 10월 6일에 수집되었음 류경채의 <폐림지 근방> 1949 본 작품은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한국전쟁 중에 파손되었으나, 이후 작가가 복원하여 1987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관리전환되었음 정영렬의 <적멸89> 1989년경: 작품명에서 유추된 제작연도임 재료및 기법 회화Ⅰ 기타 - 1 지지대/바탕재와 2 색 재료를 구별하여 기술하며 1과 2를 ~에 로 연결한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는 경우 따를 수 있다. - 종이에 먹으로만 제작된 작품에서 바탕재는 한지, 장지, 순지, 닥지 등 특수한 재료명을 기술할 수 있으나 화선지와 같은 일반 종이는 종이 로 먹은 수묵 으로 통일하여 기술한다. 영문은 Ink on paper 로 통일하여 기술한다. 예) 종이에 수묵( ), 한지에 수묵( ), 장지에 수묵( ) 등 Ink on paper 종이에 먹( ), 화선지에 수묵( ) 등 *일반종이: 화선지, 특수지: 한지, 순지, 장지, 닥지 등 - 먹 위주의 채색 작품은 수묵담채 로 기술한다. 영문은 Ink and color on paper 로 통일하여 기술한다. 예) 종이에 수묵담채( ), 한지에 수묵담채( ) 등 Ink and color on paper 종이에 수묵 담채( ), 종이에 먹, 채색( ), 종이에 수묵채색( ) 등 - 채색 위주의 작품은 채색 으로 기술하며 채색 정도에 대한 세부설명은 기타에 기술한다. 영문은 Color on paper 로 통일하여 기술한다. 예) 종이에 채색( ), 한지에 채색( ), 장지에 채색( ) 등 Color on paper 종이에 먹, 채색( ), 종이에 암채( ), 장지에 석채, 호분( ) 등 기타: 주묵, 석채, 분채, 수간안료 등 - 지지대 혹은 바탕재가 두 개 이상인 경우, 로 기술한다. 영문은 on 으로 연결 기술한다. 예) 캔버스, 종이에 수묵( ), 패널, 종이에 채색( ) Ink on paper on canvas( ), Ink on paper on panel( ) Ink on paper mounted on canvas( ), Ink on paper, canvas( ) 이외의 다양한 재료및기법은 아래의 예시와 기본지침을 참조하여 기술한다. 캔버스, 종이에 주묵 한지에 수묵, 실크스크린 종이에 수묵, 종이 콜라주 캔버스에 먹, 아크릴릭 종이에 혼합재료 패널, 닥판에 아크릴릭 패널에 닥지 캔버스에 닥 면천에 닥 천에 먹, 채색, 돗자리 Red ink on paper on canvas Silkscreen and ink on paper Paper collage, ink on paper Acrylic and ink on canvas Mixed media on paper Acrylic on paper on panel Paper on panel Paper on canvas Paper on raw canvas Korean rug, color and ink on fabric -병풍, 족자, 화첩 등의 경우 지지대와 채색명 기술 후 ; 로 표시한 후 기술한다. 비단에 수묵; 2곡 병풍 종이에 채색; 6곡 병풍 종이에 수묵; 10곡 병풍 종이에 수묵; 족자 종이에 수묵; 대련 종이에 채색; 화첩 -혼합재료 등 특이사항을 기술한다. Ink on silk; two-panel folding screen Color on paper; six-panel folding screen Ink on paper; ten-panel folding screen Ink on paper; hanging scroll Ink on paper; two-hanging scroll Color on paper; handscroll 10) 캔버스에 종이 콜라주 등 5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59
31 것보다는 기존의 정보를 수용하여 실무에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소장품의 표 8. 조각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기술지침은 뉴욕의 현대미술관, 영국의 테이트, 프랑스의 퐁피두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의 방식을 참조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국제적인 관례와 방식 등이 체계성을 가진 부분도 많으나 종국에는 그 미술관 자체의 효율성이 가장 중요함을 인지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소장품의 특성에 따라 기술지침을 마련하였다. 재료 및 기법 조각 - 재료명을 기술하고, 채색이 된 경우 ~에 로 연결하여 채색 으로 기술한다. - 대좌는 괄호 안에 (대좌:재료명)을 기술한다. 대좌의 영문은 on 으로 연결 기술한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는 경우 따를 수 있다. 예) 돌(대좌: 아크릴) Stone on acrylic base 동합금(대좌: 나무) Copper alloy on wood base 철 Iron 혹은 Steel 재료 및 기법 회화 Ⅱ 표 7. 회화 Ⅱ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 1 지지대/바탕재와 2 색 재료를 구별하여 기술하며 1과 2를 ~에 로 연결한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는 경우 따를 수 있다. - 재료가 두 가지 이상일 경우, 로 나열하여 기술한다. - 영문은, 로 나열하여 기술하고 마지막은 and 로 연결한다. 예) 돌, 철판 Stone and steel plate 나무, 종이, 동합금 Wood, paper, and copper alloy - 바탕재가 두 가지 이상일 때, 로 기술하며 영문은 on 으로 쓴 후 기술한다. 예) 패널, 천에 유채 Oil on raw canvas on panel - 필요시 기법을 포함하여 기술할 수 있다. - 기타: 혼합재료 및 필요한 경우 상세기술한다. - 아래의 예시와 기본지침을 참조하여 기술한다. - 아래의 예시와 기본지침을 참조하여 기술한다.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석조, 목조, 금속조각의 경우 정확한 재료명을 기술하고 부정확하거나 정확한 재료명이 무의미한 경우 돌, 나무, 합성수지 등 상위개념으로 기술한다. 캔버스에 혼합재료 Mixed media on canvas 캔버스, 나무에 유채 Oil on wood laid down on canvas 나무,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on wood 면천에 닥지 Paper on canvas 면천에 닥지 Dak on raw canvas 캔버스에 유성안료 Oil on canvas 캔버스에 안료 Pigment on canvas 나무판에 유채 Oil on panel 패널에 유채 Oil on panel 돌(대좌: 아크릴) 대리석, 마천석, 화강석, 오석 등 나무 소나무, 장미목 등 나무에 채색(소나무 등) Stone on acrylic base Marble, Granite, Obsidian Wood Pine, Rosales Painted wood(pine etc.) 경대, 유채 경대, 유채 A dressing table and oil 캔버스, 종이에 먹 India ink on paper laid down on canvas 캔버스, 종이에 먹 Ink on paper on canvas 천에 염색 천에 염색 Dyed cloth 한지에 먹, 판화잉크 Indian ink on Korean paper 한지에 먹, 판화잉크 금속 철, 동합금, 알루미늄 동합금, 나무 동합금에 채색 석고 석고에 채색 Steel, Copper alloy, Aluminum Copper alloy on wood base Painted copper alloy Plaster Painted plaster 나무에 종이, 유채, 오브제 회화 Oil on wood 면천에 아크릴릭 Acrylic on raw canvas 사진인쇄물 Prints 종이 콜라주, 잉크 Oil on paper on canvas 대나무 용기, 실 Mixed media 혼합재료, 오브제 회화 Mixed media 캔버스에 유채, 오브제 부착 Objects, oil on canvas 베니어판에 아크릴릭, 종이 콜라주 Paper collage and acrylic on panel 천에 유채 Oil on fabric, oil on raw canvas 천에 북한 손자수 Embroidering on fabric 종이에 수채 Watercolor on paper * 회화 Ⅱ 의 경우 재료및기법의 다양성이 매우 광범위하여 제시되는 예시 또한 많이 요구되므로 캔버스에 유채,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탕재와 재료를 구분하여 기술해야 한다. 합성수지 합성수지 폴리우레탄 폴리에폭시 비누(대좌: 나무) 테라코타 혼합재료 Resin FRP Polyurethane Polyepoxy Soap on wood base Terra-cotta on acrylic base Mixed media - 기타: 혼합재료, 기법 등을 필요시 기술한다. 예) 동합금 용접, 철 용접 등 Welded copper alloy, welded steel 철판 두들기기 Hammered steel 6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61
32 표 9. 드로잉, 판화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표 10. 뉴미디어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재료 및 기법 드로잉 - 1 바탕재와 2 드로잉 재료를 구별하여 기술하며 1과 2를 ~에 로 연결한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는 경우 따를 수 있다. 재료 및 기법 뉴미디어 - 뉴미디어 작품은 비디오/비디오 오디오 라이트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 비디오 작품의 경우 1 채널수 2 색상과 음향 정보를 기본으로 기술하며 방식은 다음과 같다. - 바탕재의 정확한 종이명이 확인되는 경우 종이명을 기술하며 부정확한 경우 종이 로 기술한다. - 기타: 혼합재료 및 필요한 경우에 상세한 기술을 한다. 예) 사진 인쇄물 위에 종이를 오려서 콜라주 함 두꺼운 마분지 표면을 칼로 자국을 낸 후 얇게 층을 벗겨냄 1 채널수는 아라비아 숫자로 채널 비디오 앞에 기술한다. 2 색상은 컬러color 와 흑백black & white, 음향은 사운드sound 와 무음silent 으로 구분하며 괄호 안에 모노, 스테레오, 서라운드 등 음향방식을 기술할 수 있다. 예) 단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스테레오) Single-channel video, black & white, sound(stereo) 단채널 비디오, 흑백, 컬러, 사운드 Single-channel video, B&W, color, sound - 아래의 예시와 기본지침을 참조하여 기술한다. 4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Four-channel video, color, silent 종이에 연필 Pencil on paper 종이에 목탄 종이에 파스텔 종이에 펜 사진 인쇄물, 종이 콜라주 카드보드에 수성펜 종이에 은박지, 비닐테잎 종이에 한지, 안료 마분지 Charcoal on paper Pastel on paper Pen on paper Paper collage on printed paper Pen on cardboard Tape and foil on paper Paper and pigment on paper Cardboard - 비디오설치 작품의 경우 1 비디오설치 2 채널수 3 색상과 음향 정보를 기본적으로 기술하고 필요시 장비와 오브제는 ; 로 표시한 다음 4 장비 및 오브제를 기술하며 장비는 디스플레이, 재생, 사운드 장비,오브제 순서로 기술한다. 단 요소들의 중요도에 따라 추가 혹은 생략 기술할 수 있다. 예) 비디오설치,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프로젝터 3대, 맥미니, 스피커, 앰프, 나무상자 Video installation, three-channel video, color, sound; 3projections, mac minis, speakers, amplifiers, wooden boxes 비디오설치, 실시간 상영, 컬러, 무음; 혼합재료 Video installation, real time, color, silent; mixed media 판화 종이에 색연필, 수채 혼합재료 Color pencil and watercolor on paper Mixed media - 1 바탕재와 2 판화의 기법을 구별하여 기술하며 1과 2를 ~에 로 연결한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는 경우 따를 수 있다. - 일반매체명은 기술하지 않으나, 일반적인 플레이어로 재생되지 않거나 고해상도의 디스플레이 장비 등이 요구되는 특수매체는 기술할 수 있다. 예) 단채널 비디오, 디지베타 테이프(비디오로 재생), 컬러, 사운드(모노) Single-channel video, digibeta tape(shown as video), color, sound(mono) - 비디오/비디오 설치작품의 기술은 아래의 예시와 기본방침을 참조하여 기술한다. - 판화의 기법은 가능한 가장 세부적인 표현으로 기술하며 중복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예) 종이에 동판화, 드라이포인트( ), 종이에 드라이포인트 1) 독립적인 비디오 영상들이 구성된 경우 예) 비디오 4점, 컬러, 사운드 Four videos, color, sound - 두 개 이상의 기법이 혼용된 경우 나열식으로 기술한다. 예) 종이에 드라이포인트, 에칭, 아쿼틴트 Drypoint, etching and aquatint on paper - 기타: 혼합재료 및 필요한 경우 상세한 기술을 한다. 2) 채널 하나에 영상이 여러 개인 경우: 단채널 비디오 예)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영상 개수와 모니터 혹은 프로젝션의 개수가 다른 경우: 영상개수를 기준 채널이 싱크되지는 않지만 영상의 개수가 중요한 경우: 필요에 따라 기술 - 아래의 예시와 기본지침을 참조하여 기술한다. 3) 다채널이 단채널 비디오로 재편집된 경우 예)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Single-channel, color, sound 종이에 목판, 리놀륨 Woodcut and linoleum on paper 종이에 동판(메조틴트, 아쿼틴트, 에칭 ) Mezzotint on paper 종이에 실크스크린, 스텐실 Screen print on paper 종이에 석판 Lithograph on paper 종이에 목판화( ) 종이에 목판( ) 종이에 채색목판( ) 종이에 목판( ) 아쿼틴트( ) 종이에 아쿼틴트( ) 종이, 목판에 채색( ) 종이에 목판( ) 종이에 동판화, 에칭, 드라이포인트, 스크린 프린팅, 목판기법( ) 종이에 에칭, 드라이포인트, 스크린프린트, 목판( ) 종이에 컴퓨터그래픽 종이에 동판화, 메조틴트, 드라이포인트( ) 종이에 메조틴트, 드라이포인트( ) 종이 탁본( ) 종이에 탁본( ) Takbon on paper - 기타: 작가의 퍼포먼스가 강조된 경우, 디지털(컴퓨터), 아날로그, 인터렉티브 등 필요한 상세 기술을 할 수 있지만 별도의 양식이 있으므로 가능한 중복 기술은 피한다. 예) 인터렉티브, 단채널 비디오, 흑백, 무음 Interactive, single-channel video, B&W, silent 퍼포먼스,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Performance,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 사운드 설치의 경우 1 트랙 수 2 음향방식(모노, 스테레오, 서라운드 등)을 기록하며 장비는 ; 를 쓴 후 기술한다. 예) 3 트랙, 서라운드(5.1); 스피커, 앰프, 믹서 Three tracks, surround(5.1); speakers, amplifiers, mixer 6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63
33 표 11. 공예, 사진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표 12. 사진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재료 및 기법 공예 - 주재료 및 기법을 중심으로 기술하며 공예 분야에서 일반화된 용어 및 형식과 작가가 원하는 기술방식을 따를 수 있다. 재료 및 기법 사진 - 1 바탕재(필름베이스, 유리판, 종이 등)와 2 인화방식 및 인화재료에 따른 프린트 종류를 구별하여 기술하며 1과 2를 ~에 로 연결하여 기술한다. 바탕재는 일반적인 종이(인화지)일 경우 생략할 수 있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을 경우 따를 수 있다. - 필요한 경우 오브제의 사용용도만 기술하거나, 용도 기술 후 재료를 나열하여 기술할 수 있다. 예) 태피스트리; 모사 Tapestry; wool( ) 태피스트리Tapestry( ) 브로치; 금, 은, 석고 Brooch; gold, silver, plaster( ) 예)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혹은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or Archival pigment print 인화지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 혹은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or Gelatin silver print 라이트 박스에 사진 Photograph on light box 도자: 도기와 자기를 합한 용어로 토기, 도기 Earthenware, 석기 Stoneware, 자기 Porcelain로 구분한다. 예) 도기에 유약 Glazed earthenware 석기에 유약 Glazed stoneware 도기에 금속유약 Metalic-glazed earthenware 석기에 청동유약 Bronze-glazed stoneware 도기에 유약, 대나무 Glazed earthen ware and bamboo 석기에 유약, 채색 Painted and glazed stoneware 자기에 유약, 장식 Decorated and glazed porcelain 테라코타 Terra-cotta 도기 설치 Installation; earthenware 유리: 유리 Glass 로 기술하며 필요시 기법을 기술할 수 있다. 예) 유리 Glass * Molded glass, Blown glass, Cut glass 금속: 금속명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예) 은 Silver, 금 Gold, 정은 Silver, 금도금 Gold-plated, 3D 프린팅 3D printing 목: 정확한 나무명을 기술하며 부정확할 때 나무 라고 쓸 수 있다. 예) 나무, 자개 Wood, Mother-of-pearl( ) 너도밤나무 Beech( ) 월넛 Walnut( ) 오동나무 Paulownia( ) 칠: 1 틀명 2 옻칠 기법을 ~에 로 연결 기술하며 2번 항목만으로 기술할 수 있다. 예) 나무, 삼베에 옻칠 Lacquer on hemp on wood( ) 옻칠 Lacquer( ) 건칠 Lacquer( ) 섬유 염색: 1 섬유명 2 염색기법을 기술한다. 예) 면천에 염색 Dyed cotton 비단에 염료 Airbrush on silk 폴리에스테르에 전사염 Transfer dyeing on polyester 종이에 잉크 Ink on paper - 프린트 방식 외에 재료가 사용되었을 경우, 로 나열하며 기술한다. 예) 종이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 실 Threads,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종이에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콜라주 Collage, chromogenic color print on paper - 특별한 프레임 처리를 하였을 경우 필요시, 로 나열하여 기술할 수 있다. 예) 종이에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디아섹 Digital chromogenic color print on paper, diasec 종이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디아섹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diasec - 아래의 사진용어 및 기술 예시, 기본 기술지침에 의거하여 기술한다. 아날로그 은염방식(흑백,네가) 젤라틴 실버 프린트, 흑백사진, 은염인화 Gelatin silver print 인화지에 사진, 흑백사진, 은염인화 젤라틴 실버 프린트 아날로그 은염방식(컬러,네가)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C-프린트 Chromogenic color print 아날로그 은염방식 프린트(컬러, 포저) 시바크롬 프린트 Cibachrome print 크리스탈 프린트 Crystal print 아날로그 특수은염방식 프린트 프레송 프린트 Fresson print 프레송 인화 프레송 프린트 태피스트리: 태피스트리 를 기술한 후 ; 다음 직조하는 섬유의 종류를 기술한다. 예) 태피스트리; 아크릴사 Tapestry; acrylic 자수: 바탕 섬유명을 쓰고 자수를 쓴다. 예) 비단에 자수 Embroidered silk, 무명에 자수 Embroidered cotton cloth 디지털 은염방식 프린트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Digital chromogenic color print 람다 프린트 Lamda print 라이트젯 프린트 Lightjet print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Digital chromogenic color print 로 통일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Digital inkjet print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Digital pigment print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 가죽공예, 석공예, 칠보공예 등 재료명 위주의 기술을 한다. 예) 가죽에 염색 Dyed leather, 흑요석 Obsidian, 칠보 Enamel - 기타: 필요한 재료 및 기법을 추가적으로 기술한다. 예) 김지희 <초연>: 유선칠보로서 동판위에 유선 칸막이를 한 후 유약을 발라 구움 제로그라프(흑백)( ) 제로그라프 Xerograph( ) 레이저크롬 프린트, 디아섹 Laserchrome print, diasec 병풍형 틀, 사진인쇄물( ) 사진인쇄물; 병풍 Printed paper; folding screen 사진 두루마리 Photograph scroll - 기타: 혼합재료 및 설치 등 필요한 경우 상세기술을 한다. 6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65
34 표 13. 건축, 서예, 디자인 의 재료및기법 기술지침 5) 규격 및 에디션관련 기술지침 재료 및 기법 건축 - 건축은 프로젝트별로 기술한다. 예) 정기용, <무주 프로젝트>, 비디오, 드로잉, 사진, 모델 기술요소 표 14. 규격 및 에디션 의 기술지침 기술지침 및 예시 서예 - 건축은 사진, 비디오, 모델, 드로잉 등을 포함할 수 있으며 각각의 요소들을 소장품 부문의 기술체계를 따른다. 단 작가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을 경우 따를 수 있다. 사진의 경우 1 바탕재와 2 프린트 방식을 기술한다. 예)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Digital chromogenic color print 비디오의 경우 1 비디오와 2 컬러/흑백, 사운드/무음을 기술한다. 예) 비디오, 컬러, 사운드 Video, color, sound 디지털 비디오, 컬러, 무음 Digital video, color, silent 모델의 경우 재료명을 나열 기술한다. 예) 나무, 아크릴릭, 유리 Wood, acrylic, and glass 드로잉의 경우 1 바탕재와 2 드로잉 재료를 ~에 로 연결하여 기술한다. 예) 종이에 연필 Pencil on paper - 기타: 필요한 관련정보를 추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 1 바탕재와 2 글씨재료를 구별하여 ~에 로 연결하여 기술하며 기본적인 사항은 회화I의 기술지침에 따른다. 예) 화선지에 수묵( ) 종이에 먹 Ink on paper( ) 나무위에 목각( ) 목각 Carved wood( ) 석각 Carved stone( ) 종이에 먹, 십이지신상, 탁본( ) 종이에 먹, 탁본 Takbon, ink on paper( ) 규격 (cm) 작품 - 단위는 cm로 한다. - 기술순서 평면: 세로 가로, 입체: 높이 폭 깊이 입체작품은 높이, 폭, 깊이에서 가장 넓은 부분을 기준으로 실측한다. 필요한 경우 입체작품은 무게를 기술하며 단위는 kg, ton으로 기술한다. - 여러 개가 하나의 평면작품이 되는 경우 세로, 가로 다음 괄호 안에 수를 기술하며 별도로 전체 설치시 규격도 기술한다. 규격이 각각 상이한 경우 각각 실측 기술한다. 예) 권여현의 <얼굴>: (16)cm, 162 2,080cm 김용익의 <가까이, 더 가까이>: (2)cm, cm, cm - 족자(대련): 이미지와 족자 크기 기술 예) 이미지: 60 45cm, 족자: 80 50cm - 병풍: 이미지(괄호 안에 개수)와 병풍 크기(펼쳤을 때) 기술 예) 이미지: (8)cm, 병풍: cm - 판화: 이미지 크기, 종이 크기(액자 없을 경우) 예) 이미지: 20 35cm, 종이: 35 45cm - 사진: 이미지 크기, 인화지 크기(액자가 없을 경우) 예) 이미지: 20 35cm, 종이: 35 45cm - 드로잉: 종이 크기 - 조각: 작품과 좌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 좌대까지 포함한 크기 기술 예) 백문기의 <나상>, 윤효중의 <현명> - 뉴미디어: 비디오설치 작품은 오브제의 크기와 지속시간 모두 기술 - 설치작품은 설치했을 경우와 각각의 오브제 규격 모두를 기술한다. 예) 김신일의 <실체 변화>, 설치: cm, 스크린: (8)cm 디자인 - 병풍, 족자, 화첩 등의 경우 지지대와 채색명 기술후 ; 로 표시한 후 기술한다. 예) 종이에 먹; 2폭 병풍 Ink on paper; two-panel folding screen 종이에 먹; 족자 Ink on paper; hanging scroll 종이에 먹; 가리개 Ink on paper; two-panel folding screen - 기타: 필요한 관련정보를 추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 디자인은 오브제, 그래픽 디자인, 비디오 등을 포함할 수 있으며 각각의 요소들을 소장품 부문의 기술체계에 따른다. 단, 작가 별도로 원하는 기술방식이 있을 경우 따를 수 있다. 오브제의 경우: 재료명을 나열 기술한다. 예) 스텐레스스틸, 플라스틱 Stainless steel, plastic 스텐레스스틸에 채색 Painted stainless steel 그래픽 디자인의 경우 1 바탕재와 2 색재료명을 기술하며 기타 소장품 부문의 기술 체계에 따른다. 예) 종이에 석판 Lithograph on paper 종이에 옵셋 인쇄 Offset print on paper 종이에 포스터물감 Poster color on paper 종이에 수채 Watercolor on paper 비디오의 경우 1 비디오와 2 컬러/흑백, 사운드/무음을 기술한다. 예) 비디오, 컬러, 사운드 Video, color and sound 디지털 비디오, 컬러, 무음 Digital video, color silent 에디션 액자 좌대 지속 시간 기타 - 액자가 되어 있는 작품은 액자를 포함한 규격을 기술하며 실측범위는 세로, 가로, 두께까지 포함한다. 예) cm - 조각의 작품과 좌대가 분리될 경우 작품의 규격과 좌대의 규격을 각각 기술한다. 예) 한기석의 <고양이> 작품: cm, 좌대: cm - 분과 초로 기록하며 분은 로 초는 로 기술한다. 예) 작품규격과 관련한 특이사항을 서술식으로 기술한다. 예) 병풍을 접었을 경우 cm임. 가변적 설치작품의 경우: 설치된 장소를 기준으로 공간 설명 - 에디션은 조각, 판화, 사진, 디자인 등에 기술한다. - 소장품이 에디션 순서가 있는 경우 분수로 기술한 후, 괄호 안에 A.P.도 기술한다. 예) edition에디션 2/3(A.P. 2) - 소장품이 A.P.인 경우 괄호 안에 에디션을 기술한다. 예) A.P.1/2(ed. 4) - 소장품이 에디션 순서를 갖지 않고 있는 경우 에디션과 A.P.만 기술한다. 예) ed. 4, A.P.2 반드시 작가에게 A.P. 확인 후 기술하며 A.P.가 없는 경우 에디션만 기술하고 기타에 A.P.없음 으로 기술한다. - 에디션이 없는 경우 유일본 이라고 기술한다. 예) 유일본 혹은 Unique - 기타: 필요한 관련정보를 추가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기타 - 에디션 관련 특이사항을 서술식으로 기술한다. 예) 30 40cm 규격의 에디션은 5, 20 30cm 규격의 에디션은 10임 6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67
35 Ⅲ. 맺음말 Abstract 이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에 대한 재정비와 기술지침에 대한 대략적인 소고를 마무리하였다. 더 추가되어야 할 이차적인 정보는 좀 더 보완 수정과정이 필요하여 본고에 싣지 않았다. 오랫동안 필요성만 제기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이렇게 거칠지만 마무리를 짓고 나니 심리적인 위안이 드는 것도 잠깐인 듯싶다. 왜냐하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멀기 때문이다. 현재 약 7,400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기술지침을 마탕으로 점검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기면서 그 과정에서 다시 수정 보완한 기술지침이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Study on the Readjustment of Classification System and Description Guideline for MMCA Collection Park Mihwa Associate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he trend of Contemporary art is in close relationship with the collection classification of a museum.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has reflected the trend and refurbished its seven collection sectors to ten sectors; including Korean painting, Painting, Sculpture, Crafts, Calligraphy, Photography, Architecture, Print & Drawings, New Media and Design. The purpose of such re-classification then was to replenish the shortcomings where numerous video works were classified as sculptures, painting I and painting II only in documents, but was not applicable in practical terms. These ten sectors, classified through such process were discussed again as several researchers within the museum and the academic community proposed objection regarding the irrationality of classifying Korean Painting and Painting, the batching of Prints and Drawing and etc. Following the case, the concept on each sectors were re-established into eleven sectors with Painting I, Painting II, Prints and Drawing. Additionally, as the description method of the collection has not been systemized yet and the consistency of information solely depended on different people who recorded the works, the precise description guidelines for each eleven sectors within the collection have been arranged. The description elements and guidelines were arranged in three-dimensional approach from artist-related items to special items according to each sector with multiple examples to minimize confusion during the hands-on experience. Such description guidelines would reduce the differences among each recorder and work in an effort to maintain consistent research and study and hereby anticipate to enhance the effectiveness of record management in the future museum collection. 6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 69
36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 해석 단순히 부러진 것을 붙이고 더러워진 것을 닦아내는 기능적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여러 가지 보존처리의 대안들이 작가,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등 전문가들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본 글에서는 현대미술이 과거의 미술품 보존과 다른 접근 방법을 요구하고 있는 요인을 찾아보고 그 당위성과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과 권리에 대한 문제를 보존처리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김 은 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본문 1. 왜 보존하는가? 2. 무엇을 보존하는가? 3. 작가의 의도 해석하기 4. 작가의 권리 5. 사례연구 Ⅲ. 맺음말 Ⅰ. 머리말 미술관의 작품 보존 기능은 아주 기본적이며 당연한 역할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미술 매체인 회화와 조각을 비롯하여 사진, 시간기반 미디어작품,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영역은 무한하며, 이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은 무엇이 보존해야 할 대상이며 어디까지 변화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사진은 애써 보존해야 할 노력의 대상일까? 부패하는 음식물을 사용한 설치는? 더 이상 구할 수도 고칠 수도 없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사용한 작품은 어떻게 전시해야 할까? 최근 현대미술의 보존을 이야기할 때 지침처럼 삼고 의지하려고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작가의 의도 이다. 판단을 내리기 모호한 지점에서 작가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보존처리의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작품을 보존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은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고 나면 이를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 놓이게 되고 단순히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는 미술작품의 보존처리라는 것이 Ⅱ. 본문 1. 왜 보존하는가? 우리가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공공의 자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예술작품이다. 단순히 예술, 미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잘 보존하여 후대까지 물려주어야 할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적 노화와 반달리즘, 자연재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예술품이 수세기 동안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이를 지키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이를 지금의 현대미술에도 적용하여 보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들의 치명적인 약점인 단명성은 불꺼진 미술관을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품의 물리적인 안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보존처리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대미술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재료의 다양함과 물질적 불안정함이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작가들은 전통적인 회화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안료와 메디움(médium)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물감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동식물을 사용하기도 하며, 전통적인 개념의 캔버스 천을 벗어나 모든 것이 그림을 그리는 바탕이 되었다. 혹은 처음부터 사라질 것을 전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한 피조물이 탄생하는 과정 역시 단순히 작가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또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작품,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도 등장하였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미술품이 더 이상 영속성이 보장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의미한다. 둘째, 작가의 등장이다. 생존 작가의 경우 미술관의 소장품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작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며 보존처리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의 사후 유족들의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라 할지라도 작품에 대한 법적 권리와 함께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현대미술가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술작품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기준점으로 작가의 의도 가 종종 거론된다. 이는 작품의 형태와 색으로 표현되는 완성된 이미지는 물론이고 작품의 전시장소와 환경에 대한 작가의 생각, 작품의 7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71
37 노화에 따른 변화, 관람객들과의 소통방법 등을 포함할 수 있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어떻게 공식화하여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다. 또한 다양한 방법, 예를 들어 작가와의 인터뷰, 설문지 작성 등으로 수집된 정보를 작품의 보존처리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술작품의 보존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이다. 현대 보존이론에서 말하는 가역성(reversibility)과 최소한의 개입(minium intervention)은 실제 보존처리에서 철저한 보존윤리에 기반한 철학적 사고를 강조하게 되었다. 또한 무조건적인 원형회복의 목적보다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시간성을 중요시한다. 이탈리아 시스틴 성당의 천장벽화는 정말 깨끗하게 클리닝 되었지만, 너무 깨끗하게 나타난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처리에 대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 보존처리 기술과 재료의 발달, 미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다양한 해석과 수용은 지금의 보존처리가 결코 최고 또는 최후의 선택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 가지의 균형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극단적으로 단순화되어 있어 세부 작업들이 가질 수 있는 복합적인 기능, 예를 들어, 클리닝 과정에서 숨겨진 정보를 찾아내고 클리닝이 결과적으로 예방보존에 도움이 되는 효과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예술품의 보존과 고고유물의 보존은 목적에 따라 RIP 모델에서의 위치가 상이하며, 기능성이 강조되는 작품 또한 위치가 다름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광역의 의미 안에서도 보존처리의 세부 작업과 조사 행위들은 극단적인 위치에 자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현대미술의 보존은 예방과 기록의 목적이 훨씬 강조된 영역으로의 이동이 필요하다. 또한 물질의 시간적 변화에 대한 수용적 태도와 작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이들의 과학적 조사에 대한 영역의 축소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 데이터라는 것은 인문학적인 접근 없이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개념과 아이디어, 생각이라는 비물질적 요소에 대한 존중을 필요로 하는 현대미술 보존에서 목적성을 찾기 힘들 수 있다. 맹목적인 페티시즘의 조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존처리와 예방보존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도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2. 무엇을 보존하는가? 보존의 기본 원칙 중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작품의 원형(original form) 회복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원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확실해야 한다. 그것이 작품을 되돌리는 시점, 되돌리고자 노력하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원형은 단순히 물리적인 형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물질이든 영원한 물리적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이를 고집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 속에서 공존하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다양한 원인과 도판 1. 케이플이 보존의 목적으로 설명하는 RIP 삼각형 모델에 현대미술의 보존 영역을 표시해보았다. 영국 더람 대학의 교수 케이플(Chris Caple)은 보존의 목적을 RIP 모델로 정리하였는데, 발견(Revelation), 조사(Investigation), 예방보존(Preservation)이 그 세 가지이다. 2) 발견은 가장 중요한 본질(true nature) 적 요소, 즉 원형의 한 지점이 클리닝, 색맞춤 등의 복원 행위로 인하여 다시 드러남을 의미하는 것이고, 조사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이며, 예방보존은 더 이상의 손상 없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보존처리의 과정은 이 목적에 의해 작품은 변화하고, 제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보존처리가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처음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그런 것 같이 보이게 할 뿐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보존이론에서는 원형의 개념이 외형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가변성을 가진 작품의 원형에 대한 이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이 가지게 된 역사의 흔적까지 포괄하는 작품의 진정성(authenticity)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작가의 의도는 쉽게 또는 어렵게 관람객에게 전달되며, 이를 보존하는 것이 보존처리가의 역할이 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강구하여 기록하고 전달하는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쪽의 1) James Beck, Art Restoration, The Culture, The Business, and the Scandal, W.W. Norton & Company, 1996, pp.63~122. 2) Chris Caple, Conservation Skills, Judgement, Method and Decision Making, London and Newyork: Routledge, 2000, pp.33~35. 희생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문제 역시 남아 있게 된다. 7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73
38 가장 합리적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너무나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현대미술의 보존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무엇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작가의 의도, 원형의 보존이라는 기본적인 고려사항은 물론이고 대상물의 미적, 역사적 가치와 기능적인 구현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도판 2. 작품의 원형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에 의한 원형의 변화, 그리고 보존처리를 통해 재현되는 원형은 처음의 원형과 같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3. 작가의 의도 해석하기 보존의 당위성과 보존의 대상, 되돌리고자 하는 원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가 생존해있는 경우에는 작가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으며, 이것이 어려울 때에는 문헌조사,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며 이를 작품의 보존에 활용할 수 있다. 작품이 작가의 손에 의해 완성되어 세상에 보여지는 순간, 그 시점을 원형(original form) 이라고 하자. 시간이 흘러 자연적인 노화와 손상을 입고 그 원형은 변화(changed form)될 것이다. 그리고 변화된 원형을 다시 되돌리고자 하는 보존처리와 같은 노력에 의해 원형은 회복(restored form)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회복된 원형은 원래의 원형과 같은 것일까? 이론적으로는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절대 같을 수 없는 요인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원형은 머물러 있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작품을 통해 바라보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이미지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일단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19세기 그림의 오래된 바니쉬를 제거하고 새로운 바니쉬를 칠하는 것은 그림의 처음 모습 그대로 되돌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림이 가지고 있었던 현재의 고유함을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이미지는 19세기 작가의 손을 떠났을 때의 생생한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 황변되어 고색 창연함을 띄고 있는 그림으로, 이것을 완전히 제거한 밝은 이미지는 생소한 새로운 원형의 주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손상에 대한 판단은 어렵지 않지만, 현대미술의 재료적 결함과 작가의 의도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복잡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와 다른 변화라는 단순한 이유로 손상이라고 규정하기도 힘들고, 작가가 의도한 변화라는 이유로 손상이 아니라고 정의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작품의 개별적인 특징을 물리 화학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미학적, 역사학적, 예술사적, 보존윤리적 접근에서 바라보고 의견을 모아, 어떤 지점의 원형으로 되돌리는 것이 1) 문헌조사 작가의 전시도록, 작가노트, 보존처리기록 등 문서로 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한 조사이다. 모호함을 가장 확실하게 정리해줄 수 있는 정보는 작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빌 비올라(Bill Viola, 1951~)는 자신의 비디오 설치 작품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artist kits, archival box 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한다. 반면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은 자신의 작품을 재설치할 때 큐레이터의 해석과 권한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고 한다. 3) 이러한 정보는 작품을 취득하고 전시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기록으로 남겨지고 잘 보관 활용되는 것이 중요하다. 도판 3. 작가 김형구가 남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제작과 보관, 보수에 대한 보고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인 김형구(1922~)의 <하루의 정오>와 관련된 작가의 노트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그림의 제작 동기, 준비 과정, 사용한 재료와 기법, 이후 수정한 이유와 방법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작품을 완성한 이후 작가가 직접 보수하고 덧칠한 부분에 관해서도 기술되어 있어 작품의 보존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황인기(1951~)의 작품 <몽유몽유>는 검정과 노랑의 작은 레고 조각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친절하게도 3) Glen Wharton, Harvey Molotch, The Challenge of Installation Art, Conservation Principles, Dilemmas and Uncomfortable Truths, Butterworth-Heinmann,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75
39 포함하는 것이 좋으며,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에 대한 광범위한 질문보다는 하나의 작품 또는 일련의 작업들, 특정 시기의 작업에 대해 한정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다. 표 1. 작품의 보존과 관련된 작가 인터뷰 내용 제안 재료에 대한 정보 - 사용된 재료의 이름, 제조사, 공급처 등 - 작업 방법, 함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 사용한 재료와 기법 - 재료와 기법을 선택한 이유와 작품에서 가지는 의미 도판 4. 황인기 작가가 만들어 제공한 작품의 도면 일부 도판 5. 황인기 <몽유몽유> 작품의 일부 손실된 부분을 처리하고 있는 모습 - 재료의 샘플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 재료와 기법에 대한 작가의 기록에 대한 정보 180페이지에 달하는 도면과 사용된 레고 부품을 미술관에 제공해주었다. 실제로 여러 번의 전시와 운송 과정에서 일부분이 손실되었고, 우리는 정확한 도면을 참고하여 작품을 되돌릴 수 있었다. 2) 작가 인터뷰 작가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작품의 재료와 제작기법은 물론이고, 액자의 형태나 설치장소의 특성 등 아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중요한 예방 보존 작품의 변형 - 설치, 전시, 유지관리, 보관, 운송에 대한 의견 - 액자, 유리, 아크릴 덮개 등 예방 보존 형태의 조치에 대한 의견 - 노화 또는 변형으로 의도한 부분은 없는지 - 수긍할 수 있는 작품 변형의 정도 - 물리적인 상태에 대한 작품의 의존성은 어느 정도인지 - 미적인 고려(Aesthetic consideration) - 진정성(Authenticity) (작품의 의미 전달에서 꼭 오리지널로 남아 있어야 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뷰는 작품이 완성된 이후 한참 뒤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작가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신뢰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또한 구체적인 재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므로 작가의 의견과 정보에 대한 질문을 의도하여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1999년의 유럽의 보존처리가들은 INCCA(International Network for the Conservation of Contemporary Art) 4) 라는 협력망을 조직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에서는 2001년 작가 인터뷰를 잘하는 법(Guide to Good Practice: Artists Interviews) 이라는 내부 보고서가 작성되어 꾸준히 작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왔고, 이를 아카이브 데이터로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다. 인터뷰가 단순히 보존의 목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얻어진 정보는 필요할 때 쉽게 열람이 가능한 형태로 저장되어 기관 차원에서 공유되고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작가가 생존해있지 않을 경우에는 작가의 조수나 동료, 유족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를 진행하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지만 작가의 의견만큼 신뢰성을 갖지는 못한다. 작가 인터뷰 시 작품의 보존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보존에 대한 의견 인터뷰에 대한 의견 3) 전문가 인터뷰 - 역사성(Historicity) - 기능성(Functionality) (작품의 의미전달에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교체가 허용되는 부분은 어디인지) - 가치의 보존(경제적 측면에서) - 이전의 보존처리에 대한 정보 - 지금 인터뷰 정보의 공유에 대한 의견 미술사가, 보존처리전문가 등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작가 연구를 진행한 학자, 전시를 진행한 학예사는 작품의 역사적인 의미와 해석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견해를 제공해줄 수 있다. 또 이전에 그 작가의 작품을 보존처리한 경험이 있는 보존처리가는 작품의 원형회복을 위해 필요한 재료와 기술에 대한 의견을 줄 수 있다. 작품을 제작할 때 함께 참여한 조수, 제자 등 작품과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인터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들에게서 작가의 의도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4) 7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77
40 4) 한계와 문제점 런던의 테이트미술관에서는 소장작품 작가들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통하여 작품에 대한 정보, 재료와 기술, 보존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집하고 있으며, 미국의 델라웨어 대학의 랄프 마이어 센터(Ralph Mayer Center for Artists Techniques)에서는 작가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재료와 보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보존처리가들에게 아주 소중한 정보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작품의 의미해석과 보존처리의 기준으로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해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늘 명확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한다. 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견, 작품의 노화와 보존에 대한 견해가 생기는 시점이 작가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인지도가 있을 때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것도 기준을 만드는 것에 어려움을 준다. 작품 한점 한점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작가가 모두 기억하고 있기도 쉽지 않으며, 구체적인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작가들의 의견은 상당히 즉흥적인 감정과 주관적인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많아 객관적 기준을 만들기에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가 항상 고려되어야 하고 이러한 의도를 보존한다는 것은 관리자에게 큰 도전일 수 있다. 이는 보존이 작가에 대한 의무인지 작품에 대한 책임감인지 스스로의 역할 해석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생존 작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일 수 있으나 의사결정 과정은 다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며,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라별로 조금씩 다른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작품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삭제한다면 저작자의 인격을 훼손한 것과 같으므로 반드시 저작자가 직접하거나 아니면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다. 따라서 작가가 직접 작품을 보존처리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존중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으로 인해 현대미술의 보존처리에서는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복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작가는 보존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원칙과 보존윤리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작품의 손상된 부분을 되살리는 작업은 또 다른 창조 작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존처리가는 작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자신이 전문가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보존처리를 하게 될 경우, 작업에 대한 기본 원칙과 소장가의 입장을 확실히 전달하고, 필요하다면 문서를 작성하여 각자의 임무와 역할에 대하여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서로간에 되돌리고자 하는 원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작가의 보존처리는 새로운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작가는 작품의 노화가 태생적인 것으로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작품의 복원과 보존노력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여러 이해관계 속에 놓이게 되면, 단순히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작품의 소유자나 보존처리가는 작품의 물리적인 보존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이상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작품의 보존이 우선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작가의 권리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존중하여 보존에 반영하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가진 천부적 권리에 기인한다. 따라서 작품의 보존과 관련된 작가의 개입은 대부분 도덕적인 권리, 저작인격권에 관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작가와 작품 사이의 관계에 대한 존중이다. 이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시작되어 1886년 베른조약을 통해 세계적으로 저작재산권의 보호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1928년에 저작인격권에 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저작권을 원저작자성(Authorship)으로 보며 저작자의 재산상 이익뿐 아니라 인격적 이익의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저작권을 복제권(Copyright)을 보호하는 권리, 복제할 수 있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로서 저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5) 5) 캐슬린 김, 예술법, 학고재, 2013, pp.51~ 사례연구 1) 불안정한 재료, 노화와 파괴의 작가 의도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매체 속성 중 보존의 관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재료의 불안정함이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는 상어를 잡아 포름알데하이드 용액에 넣고 작품이라 하였고, 상어가 부패하자 다른 상어로 바꾸면 된다고 하였다. 특정한 상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컨셉 에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의 변형에 대한 미술사가 혹은 비평가들의 비판을 무색케 하였다. 네덜란드의 작가 구드문순(Sigurdur Gudmundsson, 1942~)은 1976년 작품 <톰보이(Wildzang)>를 설치하면서 암스테르담 시의회와 합의하여 1,894개의 나무 막대기로 만들어진 자신의 작품을 더 이상 유지보수하지 않고 썩어가도록 하였다. 지금은 작품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도판 6, 7) 이처럼 작품의 재료적 불안정함이 걱정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로 이해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의 손상에 대한 정의와 보존의 대상에 대한 정립을 다시 해야 7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79
41 수 없고 단지 꺼져가는 모니터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미디어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이 미디어를 예술에 도입하면서 일으킨 혁신은 바로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유일한 사물이어야 한다는 엄격한 개념을 벗어난 것이다. 그의 작품이 다양한 버전, 변이와 복제를 통해서 배포되었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전통미술의 유일함과 독특함은 다양한 버전으로 이루어진 물체의 다중적인 성격에 자리를 내어주고, 이러한 과정에서 작품의 보존 역시 작품에 내재한 유동성을 보장하는 과정이 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7) 도판 6. 구드문순의 작품 <톰보이>가 설치되었을 때 모습, 사진 출처: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물리화학적으로 불안한 재료를 사용한 작품은 그만큼 섬세한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작품이 언제, 어떻게 될지 작가가 미리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견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책임은 늘 작가에게 돌아가는 편으로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라면 꼭 서면으로 명시하여 전달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미술관의 경우는 다르다. 미술관은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작품의 유지와 보수는 중요한 역할이 된다. 자연적인 파괴가 작가의 의도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작품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시점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어떠한 방법으로 그 소멸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도판 7. 구드문순의 작품이 심하게 손상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 사진 출처: 조각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의 경우처럼 절대 바뀌어서는 안되는 부분은 최대한의 유지보수로 끝까지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되, 무엇이 작품에서 필수적인 요소인가를 판단하여 교체가 가능한 부분은 소모품의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꺼져가는 모니터를 잡고 이것이 작가의 의도이니 끝까지 지키겠노라 선언하는 것은 무의미한 고집이 될지도 모른다. 미디어 작품의 경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작품도 함께 진화해가는 것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철학적 이론적 사고의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 보존처리가의 역할일 것이다. 최근 미술관에서는 행위(performance)에 기반한 작품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행위적 작품수집(Collecting the Performative)이라는 연구네트워크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을 미술관 내부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전시,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8) 행위를 다시 재현할 때 필요한 물리적 도구뿐만 아니라, 춤, 음악, 기타 의도된 행동들에 대한 지침, 이를 감독하고 연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기록이 필요한 것이다. 2) 시간기반 미디어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 시간기반 미디어라는 용어는 시간 이 매체로 사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벽에 걸린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움직임이 있는 작품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 전자기술을 이용한 미디어아트는 물론이고 설치, 퍼포먼스, 넷아트 등 다양한 예술 형태를 포함한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의 속성처럼 저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저장의 수단을 이용해서는 가능하지만 말이다.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은 1,000여 개의 TV모니터를 탑 모양으로 쌓아 올려 제작한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상징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제작 당시에 사용한 CRT모니터는 생산되지 않고, 이후 일괄 교체된 평면 모니터도 더 이상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김형진은 그의 책에서 저작권법에 따라 작가가 동일성유지권을 가지기 때문에 작품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고 오직 작가만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꺼져가는 모니터를 임의로 교체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6)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할 6) 김형진, 미술법 이야기, 메이문화, 2012, pp.157~160. 3)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과 작가의 의도 현대미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특정 장소에 설치될 작품을 작가와 협의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대부분이 대형 공간에 일시적으로 전시되는 특징을 가지며,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에 대한 공간적 특징과 의미가 함께 한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에 맞추어 진행된 서도호 작가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도 이러한 예로, 작가는 그 공간의 역사성과 물리적인 조건에 대한 세심한 검토를 통해 작품을 제안하고 설치하였다. 반복되는 집 은 파란색 실로 만들어진 한옥, 양옥, 그리고 작품이 놓여진 서울박스, 서울관, 서울이라는 형태로 확장 (또는 수렴)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9) 이 작품은 작가의 집 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표현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이 특정한 공간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작품으로 다른 곳에서 다시 전시가 된다면, 작가의 처음 의도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7) 한나 휠링, 보존에 있어서의 백남준과 멀티미디어, 백남준아트센터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2012, pp.22~29. 8) 핍 로렌슨, 시간기반 매체 작품의 보존을 위한 최근의 사례와 전문성 개념, 다다익선 보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 학술행사 자료집, 2012, pp.41~59. 9) 이추영,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추진 전략과 실행,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5집, 2013, pp.67~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81
42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9~)는 1981년 뉴욕시의 주관으로 <기울어진 호(Titled Arch)>라는 작품을 뉴욕 맨하튼 중심가에 설치하였다. 3.5m 높이의 철 조형물로 된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녹슬고 음침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여론으로 1989년 철거되어 창고로 옮겨졌다. 작가는 자신의 저작인격권을 주장하며 철거에 반대하였지만, 판결에서는 그의 조각이 어느 특정 장소에 의미 있는 벽화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누군가에 의해 그림은 회색으로 덮이고 다른 이들의 낙서가 난무하게 되었다. 물론 이후에 장벽이 무너지면서 지금은 사진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12) 이와 같은 사례들은 작품이 설치된 장소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생각되어 중요한 의미를 더하게 되는 예를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치 장소에 대한 공공성 또는 개인적 권리, 작품의 설치를 제안한 기관 등의 상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되고 누구의 권리와 의무가 우선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힘들다. 얼마의 기간 동안 전시되기를 희망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매조건에 명시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미국의 법이 민주적 표현의 권리보다 자본주의 소유권을 우선시한다고 개탄하였다. 10) 그는 그 작품이 다른 곳에 전시되는 것은 원하지 않고 있어 우리가 다시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도판 8. 리차드 세라, <기울어진 호>, 1981, 스틸, Photo by Anne Chauvet 사진 출처: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네덜란드의 작가 반 소스(Pierre van Soest, 1930~2001)는 1989년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 세로 6m, 가로 15m의 그림을 설치하였다. 이후 건물 공사과정에서 작가의 동의 없이 작품의 위치가 바뀌게 되었는데, 작가는 이것이 자신의 의도를 왜곡시켰다고 주장하였다. 네덜란드의 법정에서는 작품은 만들어지고 보여지는 공간에서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고 볼 수 있다 며 작가의 손을 들어 주었고, 작품은 4) 작가의 보존처리 존배(John Pai, 1928~)는 가느다란 철사를 용접으로 이어 붙여 3차원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이다. 작업의 형태는 견고하고 재료의 물성은 안정적인 편이지만, 외부의 충격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잘 휘어지고 끊어지는 손상이 발생한다. 일단 구조의 견고함이 깨지면 다시 용접을 통해 접합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구조적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도판 11. 작가 존배가 자신의 작품을 보존처리하고 있는 모습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11)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은 1986년 베를린 장벽의 일부에 어느 미술관의 제안으로 흔쾌히 벽화를 그렸다. 동독과 서독의 국기 색을 조합하여 두 나라의 화합을 상징하는 그의 1980년작 <작품(Work)>은 미술관에 수집된 이후 여러 번의 이동과 전시가 이루어졌는데, 작가는 2010년 우연한 기회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의 형태가 너무나 변형되어 있어 처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작가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에 도판 9. 키스 해링이 베를린 장벽에 그린 벽화의 일부, 사진 출처: c Heinz J. Kuzdas 도판 10. 키스 해링이 벽화를 완성한 다음날의 벽화 모습, 사진 출처: c Heinz J. Kuzdas 손을 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며 자신이 직접 작업을 하고자 미술관으로 연락을 하였다. 그는 며칠 동안의 복원 작업을 통해 자신이 처음 의도했던, 의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균형과 형태를 만들고 돌아갔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의 작품은 두꺼운 채색층, 주변의 자연에서 채집한 유기물들의 사용으로 인해 민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비교적 오랜 시간의 작업과 상당 기간의 자연적 노화를 거쳐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작가의 생각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그 무엇보다 견고하며, 물감층의 균열과 떨어짐은 이미 제작과정에서 발생하고 예측된 것으로 접착제로 붙이면 된다고 친절히 말했다. 또한 짚, 해바라기 씨, 재 등이 보존상 문제를 일으켜 교체해야 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카이브 목록에서 똑같은 장소에서 수집된 것으로 10) 판례 Richard Serra v. U.S. 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847 F.2d (2d Cir 1988) 11) 판례 Van Soest v. de Meerpaal, Presedent District Court Zwolle 14 April 1989, Imformatierecht/AMI 1989, p ) Jennifer Mundy, Lost Art : Keith Haring, Tate Article, 2012, 8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83
43 찾아 공급하고 있다고 하였다. 13) 미국의 한 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 중 양귀비 씨앗을 채워둔 부분에서 벌레가 발생하여 작가에게 연락했는데, 작가는 이러한 작품의 변화에 대해 오히려 기뻐하였다고 하니 그가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14) 윤리개념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각 작품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작가와 보존처리가, 큐레이터, 미술사가 등의 긴밀한 의견교환을 바탕으로 처리방침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무엇을 왜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지만 미술작품의 보존, 복원과 관련하여 작가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법적 조항은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작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 보존처리의 진행이지만, 작가는 의견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복원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또 키퍼의 경우처럼 종종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주고 재료를 제공하는 작가도 있다. 이처럼 작품의 노화와 변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작가도 있지만 작은 티끌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는 작가도 이것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와 보존처리가의 목적 또는 작가의 의도와 미술관의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보존처리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작품마다 작가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보존에 있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인문학적 접근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있다. 작가가 직접 보존처리에 나서는 많은 경우에 작가는 예전의 작품을 기억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원을 한 시점부터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또한 보존처리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윤리의식이 없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우려가 있으므로 사전에 돌이킬 원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작가는 창조자이지 보존처리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Ⅲ. 맺음말 현대미술의 재료적인 문제는 종종 보존의 측면에서 이야기되지만,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대한 추구가 요사이 나타난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새로운 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는 작가의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창조적인 활동의 속성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문화적인 환경이 변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생긴 균열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지만, 색이 조금 바랜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을 보면 심하게 걱정하고 슬퍼한다. 보존의 문제로 인하여 작가들의 창조정신과 실험정신을 막아서는 안되며 이를 어떻게 보존해나갈 것인지는 이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몫이다. 이러한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작품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제시한다. 작가의 인터뷰나 조사연구를 통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보존처리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작가의 의견 수용은 보존처리의 기본적인 13) Oscar Chintore, Antonio Rava, Conserving Contemporary Art, The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2012, pp.260~ ) Ijsbrand Hummelen, Dionne Sille Ed., Modern Art; Who Cares?, Archetype Publication, 2005, pp.391~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85
44 참고문헌 Abstract 구본진, 미술가의 저작인격권, 경인문화사, 김형진, 미술법 이야기, 메이문화사, 도널드 톰슨, 김민주, 송희령 옮김, 은밀한 갤러리, 리더스 북, 캐슬린 김, 예술법, 학고재, Beck, James, Art Restoration, The Culture, The Business, and the Scandal, W.W. Norton & Company, 1996, pp.63~122. Beunen, Annemarie, Moral rights in Modern Art: An International Survey, Modern Art: Who cares?, Archetype Publication, Caple, Chris, Conservation Skills, Judgement, Method and Decision Making, London and Newyork: Routledge, 2000, pp.33~35. Coddingtons, James, Special Section: Artist s Intent, JAIC 1998, Vol.37, No.3, Article 5, p.314. Dykstra, Steven W., The Artist s Intentions and the Intentional Fallacy in Fine Arts Conservation, 1996, Vol.35, No.3, Article 3, pp.197~218. Gsrfinkle, A.M., Art Conservation and the Legal Obligation to Preserve Artistic Intent, JAIC 1997, Vol.36, No.2, Article 6, pp.165~179. Sloggett, Robyn, Beyond the Material: Idea, Concept, Process and their Function in the Conservation of the Conceptual Art of Mike Parr, JAIC 1998, Vol.37, No.3, Article 6, pp.316~333. Interpreting Artist s Intent in the Conservation of Contemporary Art Eunjin Kim Associate Conserv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It is consider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in conserving contemporary works of art to interpret and respect artists intent. The artist s opinion on preservation and restoration of his work should be used as a guide and sometimes artist himself wants to carry out the conservation treatment. However, artist s intention is not always evident, preserving intent often presents an enormous challenge to the custodians of the works of art. We have to remember that works of art are historical evidence of the past, the artist does not always see the work as it is, but he makes a new one. In other words, when an artist performs a restoration he will often come up with something new so the work s original has to be reset. Contemporary art brings with it controversial ideas as it is based on subjective values. Conservators need to understand the critical role in creating a strategy to preserve artworks for physical appearance, functionality and historicity. Another important role of conservator is to gather various perspectives to support the decision making process in preserving artwork s underlying message or philosophy. Interpreting artist s intent is not only for conservator but also curators, art historian and technicians and other relevant individuals. Furthermore, any modification, distortion or changes in the work of art must satisfy a strict code of ethics enacted in the museum s policy, even it is done by artist himself. 8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현대미술의 보존과 작가의 의도해석 87
45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검토해보고자 한다. 둘째로, 미술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 운영의 우수 사례들을 살펴봄 으로써 우리가 미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과 거시적으로 추진해볼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하고 서울관의 독자적 브랜딩 디자인 구축을 위한 실천적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최 유 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디자이너 Ⅰ. 머리말 Ⅱ. 본문 1. 서울관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운영 현황 2. 서울관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개선 방향 Ⅲ. 맺음말 Ⅰ. 머리말 새로운 브랜드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지속적인 투자 끝에 분명한 철학과 지향점을 가지고 탄생한다. 그 가치가 설득력을 얻고 꾸준한 생명력을 유지하지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일관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통한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 요구된다. 다양한 컨텐츠의 방향성으로 인해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고, 내부 구성원들로 하여금 브랜드 가치 기준 판단의 근거가 되도록 하며, 소비자들에게 보다 명확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여 이해를 돕고 경험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 궁극적으로는 브랜드의 가치 제고를 위해 존재하며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필요로 한다. 미술관에서 사용하는 MI(Museum Identity) 는 말 그대로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통일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을 통하여 기관 고유의 독자성과 타 기관과의 차별성이 두드러지도록 만드는 시각적 수단이다. 이를 잘 활용함으로써 브랜드는 경쟁력이 길러지고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의 꾸준한 유지 관리와 체계적인 운영방침 없이 대중에게 새로운 브랜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연구에서는 서울관 개관 후 일 년을 되짚어보면서, 첫째로, 서울관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관리되어 왔는지 MI 디자인 운영현황을 살펴보고,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혹은 유지관리에 미진한 부분은 없는지를 Ⅱ. 본문 1. 서울관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운영 현황 1) 운영 배경 1986년부터 사용했던 기존의 국립현대미술관 MI는 형태와 색상에서 느껴지는 중후함과 고급스러움이 돋보이나, 서체가 주는 이미지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있었다. 더구나 아날로그 방식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디지털 데이터로 관리되지 못했고, 따라서 명확한 규정이 공유될 수 없었으며 이것은 통합적 유지 관리의 부재를 유발하였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영역의 통합 관리 부재는 브랜드가 비전문적이고 낙후된 인상을 준다. 이를 개선하고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개관을 약 5개월 앞둔 2013년 5월 23일, 1986년부터 30여 년 가까이 사용해온 MI를 폐하고 4관 체제에 맞추어 새롭게 마련한 신규 통합 MI를 공표하였다. 새로운 MI MMCA(The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체 브랜드를 통합하면서도 각 기관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MMCA라는 미술관의 약자를 사용한 심벌과 로고 및 전용서체, 그리고 소통의 효율성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응용안은 영문 명칭 조합의 검정색 심벌마크를 기본으로 하되 고정되지 않은 각양각색의 이미지들을 투영시켜 진화하는 미래의 창, 문화의 창 으로서의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다. 1) 또한 각 기관마다 전용색상을 부여하여 기본 심벌로고와 함께 관별 고유 색상과 명칭을 함께 병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하나로 통합된 양상을 띄도록 한 것이 신규 MI의 큰 특징이다. 그밖에 각종 사인 시스템 및 사무 양식, 기념품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도 개발되었다. 이에 따라 각 부서에는 규정집 2부(Basic & Application과 Signage)와 디지털 데이터가 담긴 CD가 배포되었고, 필요시에는 언제라도 관리지침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약 1년 반이 흐른 지금, 서울관의 경우 각 부서에서는 규정집이나 데이터 CD를 분실하였거나 규정집의 유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1) 국립현대미술관 신규 통합 MI 발표 보도자료, 국립현대미술관, 2013년 5월 23일. 8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89
46 2) 현황 분석 (1) 사이니지 부문 도판 1. MMCA MI 규정 (MMCA Museum Identity Graphic Standards), 2013년 4월 30일 국립현대미술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홍보성 게시물들에 전용서체 또는 지정서체가 사용되지 않았고, 시설 및 안내에 쓰이는 픽토그램은 매뉴얼과 상이한 타입들이 종종 발견되기도 하였다. 템플릿을 사용하였으나 규정에서 벗어나 오용한 사례도 더러 있었으며, 기 제작된 템플릿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이 까다롭고 조건에 맞지 않아 다시 디자인해야 하는 번거로움 또한 있었다. 시설 면에서도 개관 초와 달라진 동선 계획 때문에 사이니지(Signage)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내구성이 결여된 제작방식으로 인해 이미 파손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MI 디자인 관리 규정집에 따르면 거의 매 페이지마다 형태가 변하지 않도록 적용해서 사용해야 한다, 정비례로 확대, 축소하여 사용하도록 한다, 임의로 변경하여 사용할 수 없다, 기준에 맞추어 정확하게 적용한다, 제작 시 MI 관리부서와 협의한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통일된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등 정확성과 엄격성, 그리고 통일성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발견된 오류들을 잘못된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 또한 적절치 않다. 이는 첫째로, 규정집에 언급된 MI 관리부서 라는 것 자체가 서울관 내에 부재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사용자가 시설 및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타나기 마련인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환경에 안착하기까지 시행착오 기간 동안 발생하는 오류들을 정확히 포착하고, 시범운영을 통해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는 개선의지를 갖는 것이다. 물론 일원화된 창구를 통한 시설과 컨텐츠의 관리감독 강화는 기본 전제조건의 결핍이었으므로 강조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도판 2. MMCA MI 규정(MMCA Museum Identity Graphic Standards), 2013년 4월 30일 국립현대미술관 새로 개발된 MI 디자인은 건물 외부의 대형 기명 사인과 공간을 가르는 유도 사인 및 안내 사인, 그리고 규제나 방법 등을 알리는 정보 사인과 같이 사이니지 영역에 우선 적용한다. 사이니지는 공간과 시각 환경을 통틀어 가장 기초적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영역이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도가 높다. 서울관의 외부 사이니지는 크게 사무동 건물의 메인 파사드와 미술관 마당과 안내데스크로 통하는 출입문에 세워진 명판, 주차장 안내판, 위치 안내판 등이 있다. 사인들의 절제된 규모 덕분에 건물 외관의 간결함과 담백함을 해치지는 않지만, 관람객들은 개방적인 동선에 혼선을 느끼고 자신을 둘러싼 건물들의 영역별 기능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내부 사이니지에 있어서 형식적 구성을 살펴보면, 시설물 안내에 해당하는 90% 이상이 비닐 타입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닐 타입의 시공은 경제적이고 간편한 장점이 있지만, 내구성이 적고 고의적인 훼손의 우려도 있어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사용에 적합하다. 내용면에 있어서는 서울관 내부 동선이 순차적이지 않고 복잡하다는 평이 일반적인데, 이는 서울관의 건축적 개성이라고만 설명하기에 관람객들이 겪는 불편함이 실로 크다. 따라서 내부 약도 및 동선 안내도의 친절함이 요구된다. 그런가 하면 출입이 폐쇄된 구역 주변에 설치된 일부 사이니지의 경우, 당초 계획과 어긋난 이유로 오기가 되어버린 부분이 있으므로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시설 운영 방침에 따른 도판 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외부 사이니지 현황 9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91
47 도판 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외부 현수기 거치 현황 인쇄 유인물은 기관의 기초 홍보자료와 분야별 컨텐츠 홍보자료로 구획 지을 수 있다. 도판 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부 사이니지 현황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MI 규정집에 수록된 많은 사용 범례가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관련 거치시설이 채 마련되지 못하여 설계된 디자인을 현재 환경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인 경우도 더러 있다. 따라서 서울관의 특수성을 고려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의 점진적 개선 계획의 수립이 요구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례로 MI 신설에 따른 과천관의 삼거리 명판 사이니지 교체시, 행정시설관리과의 시설관리 주무관이 계획안을 수립하고 전문업체로부터 몇 가지 시안을 받아 제작 시공상의 실효성을 점검하였다. 마련된 디자인 시안들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통합관리 차원에서 통일성과 일관성에 문제되는 점은 없는지 디자인 주무관이 검토하였고, 관내외 선호도 조사를 실시해 최종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등 합리적인 프로세스로 실행한 바 있다. 서울관의 경우는 기존의 낙후된 것이나 일괄 교체해야 할 항목들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정 보완보다는 미처 마련되지 않은 필수 시설물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거시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한 다음, 실현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선순위를 두어 단계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각각의 유인물들은 업무 연관성이 있는 각 분야의 담당자가 직 간접적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전문가는 전용 색상이나 서체의 오용이라던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매우 기초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요소들에 관한 결정에서도 실수를 범할 우려가 있으므로, 전체 디자인 통합 관리의 차원에서 관리 감독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안내데스크에 비치되어있는 수많은 인쇄 유인물들은 비치하는 순서와 방식에 있어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고는 있지만, 발주처가 다양한 관계로 그 규격과 디자인의 개성이 각양각색이라 다소 조화롭지 않은 인상을 준다. 광고와 주의문구의 게시를 위한 이동식 거치대의 활용 면에서도, 거치대의 수량이 제한적이고 용법에 대한 약속이 명확치 않아서 때때로 게시물들의 성격이 뒤섞여 보이기도 한다. 거치대의 전체 수량을 파악하고 사용현황을 관리하며, 삽입되는 내용물에 대한 문구 및 편집을 일관된 창구에서 관할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된다. (2) 홍보물 부문 서울관의 홍보성 컨텐츠들은 크게 기관 정보와 전시, 교육, 영화, 행사 등 분야별 내용 정보로 나눌 수 있다. 형식상으로는 실내 키오스크의 디지털이미지 정보를 제외한 대다수가 인쇄 유인물의 형태를 띄고 있고, 그밖에 미술관 교육동 전면부와 측면부에 게양하는 몇몇 옥외 현수기와 단기간 동안 임시적으로 활용하는 실내 외 엑스배너 등이 있다. 도판 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외부 정보문 거치 현황 9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93
48 2. 서울관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개선 방향 1) 사이니지 부문 국내 외 선진사례와 비교해볼 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관련하여 서울관의 외부 사이니지 시스템에서 보완되어야 할 것은 건물 위치 및 동선 표기 확충과 컨텐츠 홍보 효과 증대를 위한 게양 방식의 개선이다. 군도형 건축의 특성상 서울관은 사방에서 접근 가능하기에 목적지로 향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노선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는 길을 헤매기 쉽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시간적, 심리적 불편을 초래할 수 있고, 미술관에 대한 이미지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관의 심볼과 직관적으로 구별 가능한 기관의 대표 기능 소개는 기관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진입로 주변에는 현위치 및 특정구역의 진입을 위한 방법을 안내하는 동선 안내도와 구역별로 다루고 있는 컨텐츠들의 소개가 가능한 거치대가 마련되는 것이 좋다. 이때 조명 계획이 함께 수반되어야 주 야 구분 없이 야간개장 시간에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내부 시설물의 사이니지 형태는 반영구적인 게시 형태와 임시적 게시 형태가 혼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영구적 형태는 항구적 시설이나 기물의 위치 알림 표식 등에 적용하되 건축적 특징을 반영하거나 일관된 서체, 크기 및 지정 색상을 사용하는 등 MI 디자인 규정을 유지함에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내부 약도의 경우에도 평면도의 도식화를 통한 단순 정보입력보다는 색상의 구분이나 순차적 노출을 통해 공간 안에서 보다 입체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디자인할 수 있다. 장비의 활용이나 조명 연출로 공간을 더욱 입체감 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언어 표기에 있어서 다국어 명기는 이제 과잉이 아닌 필수적 요소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39%나 증가하여 연간 500만 명을 웃도는 것을 볼 때, 2) 이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의 경우처럼 일본어를 포함한 4개 국어 표기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국문과 영문을 기본으로 한 중국어 표기는 고려되어야 할 시점이다. 2) 홍보물 부문 MI 디자인의 인쇄유인물 적용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활용현황의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차이는 디자인의 우수성도 관건이지만 무엇보다 규격의 통일, 톤 앤 매너의 균형, 정돈된 거치 방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관 정보와 전체 컨텐츠 정보로 양분하여 홍보하는 경우, 서로 다른 성격의 정보임을 시각적으로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모든 규격을 통일하는 경우에는 일관성 유지에는 탁월하나 자칫 정보의 성격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 바비칸 센터 테이트 모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전시,영화,무용 등 모든 장르별 인쇄 홍보물들이 일관된 시스템으로 통일성 유지 기능과 목적에 따라 3가지 타입의 규격에 맞추어 분류 기관 홍보와 기획 홍보에 따른 2가지 타입으로 분류 표 1. 뮤지엄 인쇄홍보물의 종별 디자인 사례 도판 7. 뮤지엄의 외부 사이니지 사례 왼쪽부터 모마(MoMA), 프라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In Prague),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re), 팔레 드 도쿄 (Palais de Tokyo) 도판 8. 뮤지엄의 내부 사이니지 사례 왼쪽부터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 막시(MAXXI),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동대문디자인센터 서울관은 다루고 있는 컨텐츠의 양과 종류가 매우 다양한 기관이다. 따라서 컨텐츠의 종류에 따른 몇 가지의 대표 규격을 정하여 통일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관 정보의 경우 이용 안내와 같은 함축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소지한 채 이동이 간편한 판형을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면 전시 정보의 경우 내용이 보다 자세하고 설명적이므로, 다양한 방식의 접지를 활용하되 판형은 통일시킨다면, 일관된 규격이 유지됨과 동시에 비치하는 방식 면에서도 합리적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향후 전시, 교육, 영화, 행사 등 카테고리별 특성이 부각될 필요성이 대두된다면, 현 체계에서 좀 더 심화된 구분 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일 프로젝트별 가장 많은 종류의 유인물이 생성되는 주요 컨텐츠인 전시홍보물의 경우, 정확한 규격이 상용되어야만 2) 문체부, 스마트관광 전문가 포럼 개최 한다, 시사위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95
49 굳이 일원화된 창구를 통하지 않더라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의 편의성과 제작의 경제성을 고려한 서울관 전시 홍보물의 종별 디자인 규격은 다음과 같다. 분류 항목 사이즈(mm) 수량(개) 비고 인쇄 및 출판 온 오프라인 광고 초청장 초대권 관내 관외 포스터 A1 200 초청장 A5 이내 1,500 봉투 A5 1,500 초대권 봉투 서울관 전시 통합권 연중 제작 브로슈어 A5 (접지 후) 20,000 접지방식 자율 도록 가변적 500 옥외 현수기 가로수 현수기 지면 광고 온라인 배너 교육동 전면 3,000 8,950 1 교육동 측면 3,000 4,950 1 가변적(관할지역에 따라 조정) 가변적(매체에 따라 조정) 가변적(매체에 따라 조정) 표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홍보물의 종별 디자인 규격 과천관 기획총괄과 협조 이밖에 전시실 내 외부에 쓰이는 안내문 게시 방식의 경우, 내용면에 있어서 기존 MI 디자인 템플릿이 서울관 운영 환경에 적합하도록 일부 개선되어 개관 초에 비해 훨씬 안정감을 주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간혹 거치대의 수급이 여의치 않거나 용도에 부적합한 경우가 있어, 관람 안내문 및 브로슈어 비치를 위한 전용 거치대를 제작하여 시범 사용한 바 있다. 사무실 내 기기로도 쉽게 수정과 출력이 가능한 A3 사이즈의 정보지 삽입 부분과 A5 브로슈어를 비치할 수 있는 T자 형태 포켓이 겸비된 형태로 자석을 이용하여 브로슈어 거치부가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고안하였는데, 활용도와 편의성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기능과 목적에 따른 게시물 및 게시대의 명확한 사용지침과 관리가 뒷받침될 때 정보는 즉각적이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늘 붐빈다. 경복궁을 방문하는 관광객만 연간 300만 명에 달할 뿐 아니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같은 국립기관 및 유명 갤러리들이 즐비한 미술관 특구이기도 하다. 이는 서울관으로의 자연스러운 관람객 유입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자칫 외면당하기 쉬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서울관의 철학과 지향점이 드러나는 기관의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하게 확립되려면 새로운 컨텐츠의 생산에 몰두하는 것 이상으로 이미 개발된 아이템의 유지와 관리에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것은 체계적인 전략 개발을 통해 파급력 있게 진화되어야만 한다. 이에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영역의 실천적 개선방향에 대한 제언은 미술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해야만 하는 중요 사안이며 디자인의 전문성이 각별히 요구된다. 게다가 디자인 관련 사안에 대한 결정은 심미적, 기능적, 경제적 가치 판단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특수 분야이기 때문에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의사 결정의 프로세스를 따르기 어렵다. 디자인 분야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관련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되 소수의 검증된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의사결정의 결과는 경영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때로는 자문가 집단을 통한 면밀한 검토도 요구된다. 3) 검증된 디자이너의 확충으로 조직력과 추진력을 높일 수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시스템의 통합관리 및 연구개발은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운영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대한 전문가적 이해와 전략이 수반될 때 비로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만의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개관 일 주년을 맞이한 현 시점을 점검하며 서울관 브랜드 이미지 확립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영역의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기대한다. Ⅲ. 맺음말 서울관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비교해보아도 손색이 없는 다양한 전시공간과 영화관, 멀티프로젝트홀 등의 공연 시설 및 교육정보서비스가 가능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지리적 입지 또한 서울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어 주변 거리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3) 장영중, 기업 디자인 의사결정의 특성과 전략, 서울대학교, pp.209~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97
50 참고문헌 Abstract 강소은, 공간 정보 디자인에서의 박물관 브랜드 이미지 표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류지연, 21세기 미술관 이미지의 새로운 정립, 현대미술관연구, 제16집, 2005, pp.49~60. 서자은, 국내외 미술관 변화에 따른 아이덴티티 마크의 표현 유형과 형태 및 색채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장영중, 기업 디자인 의사결정의 특성과 전략, 서울대학교, 조주은,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접목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Communication Design for the Brand Image Cultiva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MMCA, Seoul) Choi Youjin Exhibition Designe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he Museum Identity (MI) used in museums plainly reveals the museum identity as it is. It is also a visual method, which emphasizes the institution s unique vision and its distinctions from other organizations through its use of a unified system in communication design. The higher aim of this system is to ensure the strength of the brand in the competitive, aesthetically aware art world, whilst building value among the public. However, without steady maintenance and a systematic operation policy of the communication design system, it is difficult to impress the public with a new image of a brand. Following the case, this study will hereby review the first year of MMCA, Seoul since its inauguration by examining the current condition of MI design operation policy, method and usage of the new design communication system of MMCA, Seoul. It will also inquest the possibility of biased parts or loose ends of the maintenance control. Moreover, by studying the successful cases of museum communication design system operations, this research will seek the cases of microscopic appliances and methods of macroscopic promotions. This process will lead to the pursuit of practical direction of improvement for the construction of the individual branding design of MMCA, Seoul. The proposal for practical direction of improvement in the realm of communication design is a crucial issue, which must be approached strategically as it requires a certain professionalism in design. The decisions which pertain to the issues of design must be simultaneously assessed through the lens of aesthetical, functional, and economical values, thereby creating its own mode of ethics in the decision making process. Henceforth, decisions related to the design 9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서울관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99
51 system should be addressed and presented by a small number of qualified professionals. Input and additional ideas from other staff members, in regards to the communication design system, shall also be taken into consideration. The result of these decisions may have an effect on the entire management as it often demands meticulous review by a consultative collective. The total control and research development of the communication design system would be operated in a more effective method with the expansion of qualified designers.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would maintain its distinctive identity and thus broaden its influence only with the accompaniment of professional insight and strategic brand management and development. From the inspection of MMCA, Seoul till this point, an extended developing study and investment in the realm of communication design is highly anticipated for the firm establishment of museum brand image.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박 덕 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본문 1. 사회 공헌적 가치의 구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2. 과거를 딛고 미래를 보다: LACMA의 아트+테크놀로지 랩 3. 미술관의 미디어랩 발전 방향에 대한 제언 Ⅲ. 맺음말 Ⅰ. 머리말 2013년 11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독립적인 8개의 전시실 외에도 멀티프로젝트홀, 영화관, 디지털정보실, 미디어랩 등과 같은 복합적이면서 상호 유기적인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설립 목적에 맞게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다른 시설들과는 달리, 현재 미디어랩의 경우 미디어랩 이라는 명칭의 공간을 갖추고 있지만 미디어아트와 관련된 전시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으로만 활용되고 있어 그 역할이 비교적 제한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첨단 과학기술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미디어아트의 수용성 및 관객과 소통하는 상호작용성을 인정하여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미디어랩 공간을 확보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미디어랩의 구색을 갖춘다는 명목으로 체계적인 사전 조사, 연구 및 방향성 설정을 동반하지 않은 채 3D 프린터나 CNC 커팅기와 같은 하드웨어의 역할을 수행하는 설비만 갖추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세계적인 미술관이자 미래형 미술관으로 확장해나감에 있어서 비중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미디어랩의 운영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그 예비 단계로 해외 기관의 우수한 운영 사례를 연구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미디어아트센터 구축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표본으로 손꼽히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미디어아트센터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Center, 이하 AEC)와 로스엔젤레스 카운티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이하 LACMA)에서 2014년 상반기에 다시 10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01
52 첫걸음을 내딛은 아트+테크놀로지 랩(Art+Technology Lab, 이하 A&T 랩)의 운영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현재 우리미술관의 실정에 맞게 수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국립현대미술관 미디어랩의 현실적인 운영 방향을 모색하기로 한다. of the Future) 4) 으로 시민에게 예술과 기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사회적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고 그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Ⅱ. 본문 1. 사회 공헌적 가치의 구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1) 설립 목표 미래의 미술관은 미디어-형태발생(media-morphsis) 과정으로부터 진행된 모델로서, 우리시대의 새로운 기본적 요구를 내표하는 사회적 집합체를 위한 추진력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세계의 문화적 결합과 미래의 창조를 위한 원천으로서의 예술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1) AEC는 오스트리아의 공업기반 도시인 린츠(Linz)에 위치하고 있다.(도판 1) AEC는 디지털 바우하우스라 불리는 독일의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technologie), 2) 일본의 인터커뮤니케이션 센터(Inter Communication Center, ICC) 3) 와 함께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미디어아트 전문기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연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79년 9월부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이라는 명칭의 축제가 격년제로 개최되다가, 그 결과물들을 보존하고 전시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1996년에 린츠시의 후원을 받아 공식적인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 대규모 확장공사를 통해 총면적 4,000m 2 의 대지에 연면적 6,500m 2 의 5층 건물로 미래적인 외관이 인상적인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였다. 그 설립에 있어 총 2,970만 유로의 예산이 투자되었으며, 운영 역시 시의 예산으로 이루어지는 비영리기관이다. AEC의 운영 목표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사회가 하나로 접목되는 미래형 미술관(Museum 지금의 AEC를 있게 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첫 번째 주제는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축제(Festival for Art, Technology and 도판 1.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 전경 caec Society) 로 AEC의 운영목표와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AEC의 전시 공간에서는 단순히 작가의 작업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의 제작과정 역시 관객과 공유한다. 이러한 AEC의 방향성과 이를 장기적으로 유지해온 지속성은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AEC만의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까지는 철강과 화학 산업 중심의 산업도시였던 린츠는 AEC의 설립으로 인하여 IT와 문화중심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5) 2) 운영 개요 (1)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축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AEC의 설립 원동력이 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은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축제 라는 주제로 1979년 처음 시작되었다. 1983년까지는 격년제로 개최되다가 그 인지도와 파급력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매년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이 페스티벌은 매년 9월에 일주일간 열리며 이 기간 동안 각국에서 온 세계적인 아티스트, 공학자, 신진 기업가 등이 린츠시를 방문한다. 과학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공연과 심포지엄, 전시와 같은 수많은 연계행사들이 AEC의 내부뿐만 아니라 린츠시 곳곳에서 일어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방문객으로 인하여 매년 성황리에 행사가 개최된다. 2014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총 579명의 참가자와 85,000명의 방문객이 린츠를 찾았다. 6)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새로운 기술이 초래하는 문화적 충격에 도전하고 사회현상을 탐구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축제로서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주제를 매년 선정한다. 7) (표 1) 1) 1996년 AEC가 공식 개관하였을 당시, 소장이었던 게르프리트 슈토커(Gerfried Stocker)의 취임 연설, 송남실, 미술관을 통해 살펴본 미디어아트의 소통의식-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미술관(ZKM)을 중심으로,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18집, 2002, p ) 독일 칼스루에(Karlsruhe)시에 위치하고 있는 ZKM은 원래 2차 세계대전 이후 방치된 탄약 공장을 미디어아트센터로 개조하여 1997년에 개관한 곳으로 미디어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통합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3) 인터커뮤니케이션 센터는 일본의 전신 전화 주식회사인 NTT(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Corporation)가 1997년 21세기형 미술관 을 지향하며 설립하였다. 약 8년의 설립 준비기간 동안 예술과 과학에 대한 행사 및 정기적인 학술지 발행을 통해 탄탄한 준비 단계를 거쳤다. 4)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 5) 린츠는 2009년에 유럽연합(EU)이 매년 선정하는 유럽 문화의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 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2009년 AEC의 설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같은 해 일주일 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72,000여 명이 린츠를 방문하였다. 6)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 7) 게르프리트 슈토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네트워크, 제1회 IDAF 국제 콘퍼런스, 2000,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03
53 개최 년도 페스티벌 주제 개최 년도 페스티벌 주제 1979 ~ 1986 Festival for Art, Technology and Society Free Sound 2002 Takeover - Who s Doing the Art of Tomorrow Unplugged - Art as the Scene of Global Conflicts 1988 The Art of Scene 2003 Code - The Language of Out Time 1989 In the Network of Systems 2004 Timeshift - The World in 25 Years 1990 Digital Dreams - Virtual Worlds 2005 Hybrid - Living in a Paradox 1991 Out of Control 2006 Simplicity - The Art of Complexity 1992 Endo & Nano - The World From Within Genetic Art - Artificial Life 2008 Goodbye Privacy Welcome to the Brave New A New Cultural Economy The Limits of Intellectual Property 1994 Intelligent Environment 2009 HUMAN NATURE - The Anthropocene 1995 Welcome to the Wired World - Mythos Information 2010 REPAIR - Ready to Pull the Lifeline 1996 Memesis - The Future of Evolution 2011 Origin - How It All Begins 1997 Flesh Factor - Informationsmaschine Mensch 2012 THE BIG PICTURE 1998 Infowar - Information.Macht.Krieg 2013 Total Recall 1999 LifeScience 2014 C What It Takes to Change 표 1.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개최 연도별 주제 (2) 국제 미디어 아트 경연대회,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 페스티벌 기간 동안 AEC가 개최하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경연대회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의 시상식도 함께 진행되는데, 이는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분야를 육성하고 지속적으로 아티스트를 발굴하기 위함이다.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공모전의 형식으로 미디어아트라는 장르 안에서도 컴퓨터 애니메이션, 필름, 인터랙티브 아트, 사운드아트, 하이브리드아트 등 분야를 매우 세분화하여 수상자를 선정한다. 대상에게는 미디어 아트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골든 니카(Golden Nica) 상이 수여되고 10,000유로의 상금이 주어진다. 이 시상식이 현재까지 세계적인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은 국제적으로 지명도 있는 심사위원을 유치하고 이들의 경력과 심사평을 온라인상에 공개함으로써 권위와 공정함을 확고히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연대회를 통해 사람들은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미디어아트는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이 경연대회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혹은 발명가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에게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와 작품 창작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3) 미술관 과학관으로서의 AEC 교육적인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술관의 경우, 일반 관객을 위한 전시공간을 갖추었으며, 미래형 미술관(Museum of the Future) 이라는 설립 미션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곳으로, 분할된 주제에 맞게 관객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공간을 구분 짓는 바이오 랩(Bio Lab), 브레인 랩(Brain Lab), 팹 랩(Fabrication Lab), 로보 랩(Robo Lab) 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시공간은 생명과학, 유전공학, 신경과학과 같은 과학의 영역이 예술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8) 전시공간별 주제에 맞는 세계 각국의 작가들의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고 각 공간마다 1~2명의 연구원이 상주하면서 관람객에게 친절한 작품 설명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팹 랩의 경우, 3D 프린터, 레이저 커팅기 등과 같은 첨단 설비가 갖추어져 관람객이 직접 입체조형물을 제작해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센터에 실제 방문한 사람들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과학 실험실을 방문한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보다는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진 작품들을 중심으로 예술과 과학에 대한 비교적 직관적인 이해와 설명을 제공한다. (4) 서로 다른 학제간의 R&D 연구기관, 퓨처 랩 AEC는 일반 관람객을 위한 전시공간 이외에도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한 산하연구 기관인 퓨처 랩(Future Lab)을 운영하고 있다. 퓨처 랩은 1996년 미술관 개관 당시 함께 설립되었으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예술적 역량을 학계와 기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전달 기구이다. 9) 이곳에서는 AEC를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기업과의 융합 연구, 미래 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매우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연구진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 없던 결과물을 탄생시키는데 상당한 도판 2.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 내부 구조 caec 8) 게르프리트 슈토커, 사회의 변화에 촉매자로서 기능하는 예술, 2013 아시아문화전당 국제 콘퍼런스 자료집, 2013, p.65. 9) 게르프리트 슈토커, 앞의 논문, 2013,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05
54 기술력과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퓨처 랩의 결과물들은 창의적인 생산물로 이중 2010년에 개발한 스팍셀즈(Spaxels)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 새로운 결과물을 낳은 좋은 예이다. 스팍셀즈는 LED 조명을 활용해 3D 입체 공연을 펼치기 위해 특별히 개발한 쿼드콥터(quad copter)로 여러 대의 드론(drone)들이 LED 조명을 달고 프로그래밍된 움직임을 따라 밤하늘에서 3D 입체형상을 그리는 기술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의 연구진들은 서로 긍정적인 자극을 주며 통합적인 연구를 수행해나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AEC는 퓨처 랩을 통해 공공미술기관의 역할뿐만 아니라 과학과 비즈니스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 (5) 그밖에 주목해야 할 연계 행사 이밖에도 크고 작은 세미나가 기획되는데, 2014년에 처음 개최한 Future Innovators Summit 의 진행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이 세미나는 페스티벌 기간 중 3일 동안 진행된 일종의 콘퍼런스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배경의 지원자가 온라인을 통해 선별되었다. 대개는 예술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사회학자, 신진 기업가들이다. 지원자들은 4명씩 6팀으로 구성되어 콘퍼런스 기간 동안 토론을 진행한다. 진행 방식이 해카톤(Hackathon)과 유사한데, 10) 행사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함께 아침식사와 티타임을 가지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 올해의 경우에는 2014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의 주제와 동일하게 변화를 주는 요소들(What takes to change) 이란 주제로 이에 대한 의견과 작업들을 서로 공유하였다. 이 세미나가 일반적인 학회와 가장 차별되는 점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이 모든 과정 자체를 관람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또한 각 팀은 골란 래빈(Golan Levin, 1972~)과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의 조언을 얻을 수도 있다. 행사기간 동안 참가자들의 토론 과정과 현장의 모습은 온라인 세계, 그리고 고대에서 현재까지의 전시대를 포함하는 12만개 이상의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 서부지역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많은 양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lacma.org)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장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전시 및 장기적인 확장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국제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LACMA는 2014년에 새롭게 A&T 랩 을 설립하였다. 예술과 기술 융합의 장 역할을 하게 되는 이곳은 LACMA의 큐레이터 모리스 터크먼(Maurice Tuchman)이 1967년부터 1971년에 기획하여 진행하였던 LACMA의 Art and Technology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는 세계적인 거장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로버트 어윈(Robert Irwin, 1928~)이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 IBM, 디즈니(Disney), 콜스 커뮤니케이션(Cowles Communication) 11) 같은 기업들과 협업하도록 하여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와 1971년 LACMA의 전시에 참여시켰다. 12) 당시 작업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 않았던 참가자들로 인하여 새로운 시도였던 예술과 산업의 협업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이것이 서로 다른 두 영역간의 융합 및 협업에 대한 가능성과 영감을 제공하는 시도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LACMA의 역사적인 배경을 안고 새롭게 단장한 A&T 랩은, 이전에 비해 예술과 기술, 산업의 경계가 훨씬 모호해진 상황과 과학적 기술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응용하는 태도를 가진 예술가들로 인해, 과거 60년대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과거를 밑거름 삼아 예술적 결과물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험정신과 진행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함께 소통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13) 스트리밍을 통해 전 세계에 공유되며 모든 내용들은 자동적으로 디지털아카이브가 된다. 이와 같이 연계 행사의 주제나 진행 방식 역시 AEC가 지향하는 미션과 직결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미디어아트 를 매개로 대중을 이끌고 공공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점이, AEC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미디어 전문기관으로 굳건한 입지를 다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2. 과거를 딛고 미래를 보다: LACMA의 아트+테크놀로지 랩 1) 설립 배경 1965년 개관 이래로, LACMA는 LA 특유의 다양한 인종 이외에도 역사와 지리학을 2) 운영개요 A&T 랩은 로스앤젤레스 시의 후원을 받아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새로 개관하였다. A&T는 크게 두 가지 운영 목표를 가지고 운영된다. 첫 번째는 온라인을 통하여 세계 각국에서 지원자를 받아 예술과 과학에 대해 새로운 실험과 탐구를 모색하는 개인 혹은 팀을 선발하여 지원금과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운영되었던 A&T 프로그램에서는 큐레이터가 직접 작가를 선정했었지만 현재는 작가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소속위원과 내부 큐레이터들이 함께 지원서를 검토하여 소수의 아티스트를 선발한다. 그리고 그들이 일 년 동안 작업할 수 있는 포괄하는 예술작품들을 수집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현재의 LACMA는 지리적으로는 전 10) 해카톤(Hackathon)은 Hacker 와 Marathon 의 줄임말로 SW 개발자, UI 전문가 등이 모여 하루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대회를 뜻한다. 11) 1935년에서 1998년까지 간행되었던 미국의 신문, 잡지 출판사 12) Tuchman, Maurice, A Report on the Art and Technology Program of the LACMA , New York: Viking, 1971, pp.9~29. 13) LACMA의 A&T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07
55 공간과 50,000 달러의 지원금 및 기술적인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구글(Google), 미국의 로켓 개발 전문 민간기업인 Space X와 같은 산업체와의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이와 동시에 창작과정에 있어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다. 새롭게 개관한 2014년에는 최종으로 다섯 팀을 선발하였고, 그중에는 한국 미디어아트 의무가 있다. 미술관의 미디어랩은 이러한 미술관의 필수적인 의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아트라는 분야의 특성인 확장성을 가지고 관객의 체험 및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커리큘럼의 교육적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개최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랩의 제반 시설 구축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미디어랩이라고 하면 최첨단 작가인 최태윤과 강이룬이 포함되었다. 14) 이들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유롭게 자신의 컴퓨터와 장비들이 들어있는 실험실이 먼저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는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으며, 작품을 반드시 완성하거나 전시에 출품해야 할 의무는 없다. 목적이 있는 도전이라면 실패 역시도 한 가지 선택사항이 될 만큼 창작의 자율성이 보장된다. 결과 중심이 아닌 새로운 실험과 도전정신을 더 중요시 여기는 과정 중심적인 접근 태도가 매우 인상 깊다. 두 번째 운영 목표는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창의적 워크숍의 형태로 대중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작가와 엔지니어와의 대화, 강의, 스크리닝, 대중들이 직접 손으로 창작물을 제작해 볼 수 있는 워크숍(Hands-on workshop)과 같이 학생과 가족 단위를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그램들이 개최된다. 국립과천과학관의 무한상상실 15) 이나 팹 랩 서울 16) 과 같은 기관이 레이저 커터, CNC, 3D 프린터 등 디지털 제작장비를 갖추고 사용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장소와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기반 설비를 이미 갖추고 있는 기관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아티스트가 디지털 제작과 피지컬 컴퓨팅, 금속 가공 등과 같은 제작 기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미술관의 미디어랩을 그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주는 장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결과물은 완성된 작품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토타입(Prototype)이나 프리젠테이션이 될 수도 있다. 설비를 갖추기에 연연하기보다는 호환성과 확장성을 고려한 최소한의 시스템만 구축하여도 미디어랩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은 미디어 아티스트의 발굴과 장기적인 지원이다. 3. 미술관의 미디어랩 발전 방향에 대한 제언 이번 조사를 통해 한국의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세계의 유수 기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AEC의 경우 예술 기술 사회를 위한 미래형 미술관 이라는 설립 목표와 방향성을 확고히 펼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17)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런 신진 아티스트들을 국내에서 먼저 하고 그 미션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옴으로써 세계적으로도 확고한 입지를 다졌고, A&T 랩은 미술사에서도 중요하게 기록된 1960년대의 예술과 산업의 협업 시도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다시 첫걸음을 내딛었다. 두 기관의 설립 배경 및 운영사례 조사를 통하여 기관만의 고유한 운영방향 설정, 다른 분야와의 네트워크 구축, 교육적 공헌, 인재양성과 같은 공통분모를 발굴하고 원활한 창작활동을 도울 수 있는 재정적 지원과 국제적인 네트워크 및 기업과의 연계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상당히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기술에만 사로잡혀 그 장치가 허용하는 일에만 얽매여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뉴미디어아트 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과제는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어떻게 장치를 사용하면서 장치를 뛰어넘느냐 하는 것이라 하였듯이 18) 미술관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미디어랩은 서울관 설계 당시부터 높이 7.4m, 125m2(약 38평) 미디어랩은 작가에게 미학적 영감을 제공하고 담론을 형성하는 장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규모의 공간 조성을 마쳤다. 본격적인 운영 및 예산 확보에 앞서 향후 1~2년간은 미디어랩을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시 및 워크숍 공간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미디어랩 운영의 노선 다지기의 예비 단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전시를 통하여 국내 외 미디어 아티스트 및 전문가들과 상호보완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외부기관의 철저한 사례 조사와 자료 수집을 통하여 미디어랩의 운영 방향성을 설정해나가야 할 것이다. 전시와 연계한 학술 심포지엄 개최를 통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미술관은 전시분야의 학술적 공헌과 관객에게 다양한 교육적 기회를 제공해야 할 14) 최태윤과 강이룬은 존재의 본질, 그리고 현대 기술과 현상의 관계를 프로토타입(Prototype), 퍼포먼스, 워크숍 등을 통해 탐구한다 ) 무한상상실 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도록 3D 프린터와 같은 다양한 디지털 제작장비를 갖춘 공간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여러 부처가 협력해 2013년 8월 국립과천과학관에 첫 번째로 개관하였으며, 전국 과학관과 도서관 등에도 설립이 확대되고 있다. 16) 17) 2014년 AEC에는 한국인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인 신승백, 김용훈의 2인 협업팀과 배재혁 작가의 작업이 초청되었으며, 최태윤과 강이룬은 LACMA의 A&T랩이 선정한 아티스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8) 진중권, 과학과 예술의 쟁점들, 프로젝트 대전 2012 에네르기 국제 학술 심포지엄,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09
56 Ⅲ. 맺음말 참고문헌 AEC와 LACMA의 A&T 랩의 예를 중심으로 해외기관의 미디어랩 운영 사례를 살펴보았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예전에 없던 창의적인 결과물을 낳고,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1920~1991)의 말처럼 디지털시대에 인간은 상상을 기술로 실현한다. 특히 예술가는 과학적 기술의 수용을 통해 본인의 영감을 발화시킴으로써 미디어아트라는 분야를 탄생시켰고 대중과 사회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미디어아트의 창작 기반이 되고 작가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은 꾸준히 요구되고 있다. 그 역할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미디어랩이 맡아 신선한 자극과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그만의 독창적인 성격과 전략을 모색하여 국립 미술관 미디어랩만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바란다. 게르프리트 슈토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네트워크, 제1회 IDAF 국제 콘퍼런스, 인천 국제 디지털아트 페스티벌, 2000., 사회의 변화에 촉매자로서 기능하는 예술, 2013 아시아문화전당 국제 콘퍼런스,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 2013, pp.62~71. 송남실, 미술관을 통해 살펴본 미디어아트의 소통의식-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미술관 (ZKM)을 중심으로,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18집, 이원곤, 영상미디어예술센터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기초 사례 조사,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이추영, 미 서부의 새로운 미술 중심: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연구논문, 제3집, 2011, pp.99~117. 오명하, 조이수, 김형기, 2010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를 통해 바라본 사회 참여적 미디어아트 발전 방향, 한국지디털디자인학회지, 2010, pp.431~450. 진중권, 과학과 예술의 쟁점들, 프로젝트 대전 2012 에네르기 국제 학술 심포지엄, 대전시립미술관, Stocker, G., Leopoldseder, H. & Schopf,C., The Network for Art Technology And Society, The First 30 Years Ars Electronica , Ostfildern: Hatje Cantz, Tuchman, Maurice, A Report on the Art and Technology Program of the LACMA , New York: Viking,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11
57 Abstract Fundamental Study on the Operation of the Museum's Media Lab Park Deoksun Assistant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ontemporary art is actively engaging with the audience and this is by far an unprecedented phenomenon in the history of art. It also displays the most flexible attitude in collaboration and fusion with multiple interdisciplinary fields. Art is endlessly expanding its capability of expression by generating novel artistic results with different possibility and potential, based on cooperation with other realms like science and humanities. In such processes, the border line between art and science is especially becoming obscure with the birth of media art. As media art utilizes myriad of science technology as tools of artistic expression, it continuously creates a completely new method of expression in correspondence to the progression of science technology. Besides, it is easy to witness the creation of nonexistent creative production as media art also aspires the development of industry. Furthermore, media art is leading an active participation from the audience, thus making it an important part in the completion of a work, which is very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method of appreciating art. In other words, it embodies an interactive quality, exchanging with the audience. Internationally, professional media art centers and exhibition spaces are constantly established and operated in order for such features of media art to make connections with the development of culture and industry. In the case of Europe and Japan, each established institutions have built firm grounds by demonstrating sustainable social participatory influence and the effect of creative education and industry development through media art with their own solid direction.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has equipped spatial composition of a media lab from the inauguration, and this space is still well exercised into media art exhibition space. Through media lab, it is necessary to conduct a firm preliminary investigation, research, and especially look into the positive cases of international institutions management in order to construct an environment for Korean artists to ignite experimentalism and creativity, thereby grow into a venue for leading interdisciplinary exchange. From the case study on Art+Technology Lab management, which initiated in 2014 by Ars Electronica, considered to be one of the best media art centers and research institutions and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it is intended to grasp different areas, which could be realistically applied to the current state of MMCA, Seoul and utilize as the foundational source for the management of Media Lab. Following the case study on the two institutions, it is greatly anticipated for MMCA, Seoul's Media Lab to gain recognition of its own existence value by seeking distinct characteristics and strategy along with the conduct of the essential tasks including social participatory effect, network construction and continuous cultivation of the personnel. By implementing Media Lab, constructing an environment of unlimited experimentations and creativity for Korean media artists and leading the interdisciplinary exchange,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will play an integral role in expanding itself into an international as well as a futuristic museum of art. 11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미술관의 미디어랩 운영을 위한 기초 연구 113
58 Ⅲ 미술연구센터
59 1. 작품 1) 일제강점기 출품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 <1950년(월북) 이전 작품 목록>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정 단 일 청계 정종여 손자 1 적취 1935 제14회 서화협회전 출품 2 추교 ( 秋 郊 ) (흑백) 1936 산수 제15회 선전 입선 3 산촌수성 ( 山 村 水 聲 ) (흑백) 1938 산수 제17회 선전 입선 4 빈 ( 濱 ) (흑백) 1938 인물 제17회 선전 입선 5 6 가야산해인사 ( 伽 耶 山 海 印 寺 ) 홍류동의 봄 ( 紅 流 洞 의 春 ) (흑백) 1939 산수 제18회 선전 입선 (흑백) 1939 산수 제18회 선전 입선 7 삼월의 눈 (흑백) 1939 화조 제18회 선전 특선 8 월영 ( 月 影 ) (흑백) 1940 산수 제19회 선전 입선 9 석굴암의 아침 (흑백) 1940 정물 제19회 선전 무감사 특선 10 산촌만춘 ( 山 村 晩 春 ) 1941 제20회 선전 입선 11 설정 ( 雪 庭 ) 1941 제20회 선전 무감사입선 12 낙화담 ( 落 花 潭 ) 1942 제21회 선전 입선 13 호국금강공명왕 1943 제22회 선전 입선 14 수송선을 기다리며 1944 제23회 선전 입선 15 상재전장 ( 常 在 戰 場 ) 1944 결전미술전람회 특선 16 감투지하삼천척 1945 결전미술전람회 특선 *선전: 조선미술전람회 1) 이 자료 목록은 청계 정종여( 靑 谿 鄭 鍾 汝, 1914~198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에서 발표된 것이다. 2) 1948년 제1회 개인전 팸플릿 수록 작품 (참고: 청계 정종여의 작품세계 연구, 이은주 저, 2005)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비고 1 흡선한산 ( 恰 仙 寒 山 ) 2 걸인 ( 乞 人 ) 3 돌아온 사람들 1948 조선력대미술가편람 에서 언급 4 서울의 밤거리 5 O소 (O 巢 ) 6 한촌 ( 寒 村 ) 7 연극 지옥과 인생에서 ( 演 劇 지옥과 人 生 에서) 8 폭양 ( 暴 兩 ) 9 위O ( 威 O) 10 기축도 ( 己 丑 圖 ) (흑백) 주간서울 면에 수록 11 OO 12 설전 ( 雪 戰 ) 13 청람 ( 晴 嵐 ) 14 외금강 ( 外 金 剛 ) 15 삼월의 서울 아침 (어O산, 於 O 山 ) 16 해 지는 마을 17 이별의 추억 ( 離 別 의 追 憶 ) 18 칠성국도 ( 七 星 國 圖 ) 2회 개인전에 동명 작품 19 전유모색 ( 傳 惟 暮 色 ) 20 파초월명 ( 芭 蕉 月 明 ) 21 석굴암전경 ( 石 窟 菴 全 景 ) 22 아츰의 보살 像 2회 개인전에 동명 작품 23 O 24 밤의 관음상 ( 觀 音 像 ) 25 박모 ( 博 暮 ) 1 26 O 2 27 O유 (O 有 ) 28 강봉풍O ( 江 峯 風 O) 29 조춘부두 ( 早 春 埠 頭 ) 30 섬진강설 ( 蟾 津 江 雪 ) (하래 河 來 ) 31 산사모색 ( 山 寺 暮 色 ) 32 촉석루월 ( 矗 石 樓 月 ) (진주) 33 성지 ( 城 趾 ) 2회 개인전에 동명 작품 34 피아니스트 2회 개인전에 동명 작품 35 모옥 ( 矛 屋 ) 36 소낙비 37 인수봉 ( 仁 壽 峰 ) 38 백운합에서 ( 百 雲 合 에서) 2회 개인전에 동명 작품 39 봄마을 40 훈풍 ( 薰 風 ) 41 한강추청 ( 漢 江 秋 晴 ) 11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17
60 3) 1949년 제2회 개인전 팜플렛 수록 작품 (청계 정종여의 작품세계 연구, 이은주 저, 2005)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비고 1 수련춘 ( 水 蓮 春 ) 2 화춘 ( 和 春 ) 3 산사모색 ( 山 寺 暮 色 ) 4) 불화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비고 1 괘불도 (석가여래좌상) 1938 진주 의곡사 2 선덕부인 초상 (흑백사진) 소실 (흑백) 1941 대구 팔공산 부인사 3 불화 (흑백 사진) 미상 (흑백) 사진 속 장소 미상 4 해인사계곡 ( 海 印 寺 溪 谷 ) 1937? 조선력대미술가편람 에서 언급 5 우후남산 ( 雨 後 南 山 ) (해인사) 6 산사모색 ( 山 寺 暮 色 ) 7 파초월명 ( 芭 蕉 月 明 ) 8 성지월색 ( 城 趾 月 色 ) 9 고향 ( 故 鄕 ) 1949 조선력대미술가편람 에서 언급 10 해지는 마을 11 강변연풍 ( 江 邊 軟 風 ) 12 선은사 ( 仙 隱 寺 )의 봄 13 춘향전-광한루 ( 廣 寒 樓 )의 도령 ( 道 令 ) 1989년 청계 정종여 전 출품 14 춘향전-그네 뛰는 춘향 ( 春 香 ) 15 춘향전-나귀 탄 도령 16 춘향전-상사 ( 想 思 )-지매 ( 枝 梅 ) 17 춘향전-야방도령 ( 夜 訪 道 令 ) 18 춘향전-방자 ( 房 子 )와 춘향 ( 春 香 ) 19 산촌 ( 山 村 ) 20 추강 ( 秋 江 ) 21 촉석루월 ( 矗 石 樓 月 ) 22 백양 ( 百 兩 ) 23 차중 ( 車 中 )서 본 풍경 ( 風 景 ) 24 소낙비 25 바다와 사는 여인 26 강 가까운 마을 경남도민일보 인터넷 기사 ( 김훤주 기자) 5) 인물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비고 1 시하연 (잔칫날) ( 枾 下 宴 ) 병석의 윤희순 선생 경인 아기 돌잔치 (돌잔치의 畵 友 들) 유족 소장 1989년 청계 정종여 展 2013년 OCI미술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展 1989년 청계 정종여 展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광복60주년 기념 한국미술100년 展 년 3월 월간미술 에 소개 4 자당 진상 ( 慈 堂 鎭 像 ) 년 청계 정종여 展 5 위창 선생 85세상 ( 葦 滄 先 生 八 十 五 歲 像 ) 194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6 위창선생옥조 ( 玉 照 ) 춘향도 12폭 병풍 KBS 8회 진품명품 옥션단 경매 출품 KBS 진품명품 옥션단 11회 경매 출품 8 청풍명월? ( 淸 風 明 月?) 미상 옥션단 5회 경매 출품 9 송하탄금 ( 松 下 彈 琴 ) 서울옥션 126회 경매 출품 10 죽림칠현 케이옥션 경매에서 유족 구입 인정정선조존장혜존 ( 仁 亭 鄭 善 朝 尊 長 惠 存 ) The Album of Korean Beauties (김기창과 합작) 아이옥션 15회 경매 출품 아이옥션 장터경매 마이아트옥션 10회 경매 출품 13 나한도 ( 羅 漢 圖 ) 코베이(KOBAY) 104회 경매 14 행렬도 1950 유족 소장 27 산색중창 ( 山 色 重 蒼 ) 28 풍우도 ( 風 雨 圖 ) 29 지리산쌍계동천 ( 智 異 山 雙 溪 洞 天 ) 30 우후금강 ( 雨 後 金 剛 ) 6) 산수화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비고 31 항도부산 ( 港 都 釜 山 ) 32 오후의 해녀들 1 지리산 풍경 1938~1940 추정 유족 소장 1989년 청계 정종여 展 출품 33 해변정물 ( 海 邊 靜 物 ) 34 뻐꾹새 우는 마을 35 해지는 해변 2 사계산수 ( 四 季 山 水 ) 1930년대 말 3 가야산하 ( 伽 耶 山 下 ) 194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1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19
61 4 5 어경포대 망만이천봉 ( 於 鏡 浦 臺 望 萬 二 千 峰 ) (경포대, 금강산 전망) 지리산 조운도 ( 智 異 山 朝 雲 圖 ) 194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근대미술: 수묵 채색화- 근대를 보는 눈 展 출품 6 사계산수 ( 四 季 山 水 ) II 한강낙조 194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부산공간화랑 신옥진씨 기증) 2013년 OCI미술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展 출품 8 섬호추월 ( 蟾 湖 秋 月 ) KBS 진품명품 출연 9 산수풍경 I 미상 10 산수풍경 II 미상 11 산수풍경 III 미상 12 산수풍경 IV 미상 13 진주촉석루 미상 1989년 청계 정종여 展 출품 14 적벽월야 ( 赤 壁 月 夜 ) 1950 학고재갤러리 소장 15 흑죽 ( 黑 竹 ) 미상 1990년 9월 월간미술 에 소개 6 매조도 (결혼 축하) 1948 유족 소장 1989년 청계 정종여 展 7 설적강사 ( 雪 積 江 沙 ) 미상 2013년 유족이 소장자에게 구입 8 원앙 9 화조도 (5인 합작) 10 독수리 1940년대 초반 KBS 진품명품 출연 옥션단 8회 경매 출품 일관 이석호, 취당 장덕, 운보 김기창, 설파 허민 2013년 토성초등학교에서 발견 부산박물관 소장 11 비파도 1950 충북 옥천 정지용 생가 소장 12 모란이 피기까지는 파초입하 ( 芭 蕉 立 夏 ) 1950 거제 청마 유치환 기념관 소장 14 독수리 (흑백 사진) 배재고 강당 사진 8) 동물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6 지리산 1940년대 말 17 청산벽계 ( 靑 山 碧 溪 ) 년 토성초등학교에서 발견 부산박물관 소장 KBS 진품명품 출연 2013년 유족이 구입하여 소장 중 1 노룡득운 ( 老 龍 得 運 ) 미상 동물 유족 지인 소장 9) 북한 자료에 언급된 작품 18 보덕굴 ( 普 德 窟 ) 옥션단 4회 경매 출품 19 우경산수 ( 雨 景 山 水 ) 1940년대 옥션단 7회 경매 출품 20 청강어락 ( 淸 江 漁 樂 ) 미상 옥션단 11회 경매 출품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5월의 데모 병든 서울 수락석출 ( 水 落 石 出 ) 미상 옥션단 14회 경매 출품 22 기봉산하 ( 奇 峰 山 下 ) 미상 서울옥션 88회 경매 출품 23 산수도 ( 山 水 圖 ) 미상 서울옥션108회 경매 출품 3 산 사람들 해녀 금강산 설로 1949 조선력대미술가편람 (1999) 24 노송도 ( 老 松 圖 ) 미상 아이옥션 22회 경매 출품 케이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유족이 구입 6 금강산 초여름 가을 교외 산촌의 물소리 ) 화조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비고 1 화조도 (4인 합작) 닭과 병아리 1945 故 원곡 김기승 소장 9 눈 내린 뜰 기다리는 사람들 분노한 인민 운명의 선택3 (평양출판사, 2012) 3 매조도 1945 추정 故 원곡 김기승 소장 1989년 청계 정종여 展 2009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원곡 김기승 탄생 100주년 유묵전 4 화조도 1948 연세대 박물관 소장( 故 원곡 김기승 기증) 5 독수리 6첩 병풍 년 청계 정종여 展 12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21
62 <1950년(월북) 이후 작품 목록> 1) 북한 자료에 언급되었지만 이미지는 확보되지 않은 작품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비고 1 미제에 죽음을 주라 농민들 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1961) 1961 인물 8 아침 (농촌의 아침) O 1959 화조 9 복숭아 (참새와 복숭아) 1964 화조 주체미술교육의 빛나는 50년 도록 조선미술박물관 도록( ) 조선대백과사전 17권 조선화보 1987년 8월호(일본) 조선대백과사전 17권 조선화보 1987년 8월호(일본) 3 현물세를 제때에 바치자 4 2차로 서울을 해방한 인민군 진격 바다가 보인다 전선수송 습격조 9 야간춘경 10 빨찌산 11 까치의 습격 천리마 금강산 전도 만경대설경 1970 조선력대미술가편람 (1999) 10 잉어 1963 동물 조선화보 1987년 8월호(일본) 11 용해공 (흑백, 부분) (흑백) 1965 인물 조선미술 호 표지 12 양어장의 봄 1977 동물 조선미술박물관 (일본조선화보사 1980년) 13 모란꽃 (1976) 1976 화조 현대조선미술명품전 (1983) 도록(일본) 조선미술박물관 (일본조선화보사 1980년) 14 파초와 참새 1977 화조 조선미술박물관 도록( ) 15 모란 1983 화조 조선미술박물관 도록( ) 16 비파와 밀화부리 1979 화조 3) 조선대백과사전 에 이미지가 수록된 작품 조선미술사 - 리재현 저 2013 제화춘추 조선전쟁승리기념 특별전 도록(중국) 15 청봉의 아침 모란꽃과 병아리 쏘가리 (1978) 모란꽃 (1979) 무궁화 (1980) 쏘가리 (1977) 1977 운명의 선택3 (평양출판사, 2012) 21 무궁화 (1981) 농민과 함께 1951 조선화보 1987년 8월호(일본)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만경대의 새아침 산수 2 잉어와 송사리떼 1977 동물 3 풍어 1966 인물 4 독수리 화조 5 병아리와 개구리 1970 동물 6 쏘가리 (1961) 1961 동물 7 목련과 밀화부리 화조 2) 북한 및 해외에서 발행된 도록, 잡지에 이미지가 수록된 작품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금강산 1954 산수 주체미술교육의 빛나는 50년 도록 2 굴진 (흑백) (흑백) 1955 인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창건 10주년 미술작품집 (조선미술사, 1958) 3 비둘기 (흑백) 화조 잡지 미술 호 속표지 4 싸움 (흑백) 1957 화조 조선미술 호 5 5월의 농촌 1956 화조 6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1958) 1958 인물 주체미술교육의 빛나는 50년 도록 현대조선미술명품전 (1983) 도록(일본) 조선화보 1987년 8월(일본) 조선미술박물관 (일본조선화보사, 1980) 조선미술박물관 표지 (외국문출판사, 2008) 민족의 자랑 조선화 정창모 저 조선화보 1987년 8월(일본) 조선대백과사전 17권 8 봄을 노래하는 밀화부리들 1981 화조 9 용광로의 불길 1957 인물 10 갈밭의 게 1964 동물 11 한쌍의 새 1957 화조 12 찔광이와 국화 1965 화조 13 물고기와 알 1957 정물 14 련꽃과 새 화조 15 꽃과 새 화조 16 석류와 팔가새 화조 17 까치와 참새 화조 18 가을의 티티새 화조 19 고양이 1979 동물 20 게 동물 조선대백과사전 17권 12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23
63 4) 재일동포가 소장하거나 기증한 작품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산고수장 ( 山 高 水 長 ) 려수어 ( 麗 水 魚 ) 죽매쌍작 ( 竹 梅 双 雀 ) 노백매 ( 老 白 梅 ) 폭포 옆 현애송 ( 滝 の 懸 崖 松 ) 죽매전작 ( 竹 梅 囀 雀 ) 병아리 (추 雛 ) 봄새 ( 竹 梅 双 雀 牡 丹 ) 모란 (1983) 모란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故 여성근씨가 소장했던 작품들 현재는 여성근 씨 유족이 소장 일본에서 출판된 현대조선미술명품전 (1983) 도록에 수록 36 계림 장강향계의 풍경 참새 풍경 ) 서울 밀알미술관 소장 작품 전남 영암군립하미술관 소장 재일동포 화가 故 이창강 씨가 기증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참새 (1976) 1976 화조 2 참새 (1982) 1982 화조 3 모란 (칠순 축하) 1979 화조 구보 박태원 선생 칠순 축하 11 모란2 (훈풍) 모란 비파와 밀화부리 비파와 밀화부리2 15 참새 참새2 17 참새3 18 참새4 19 목련과 밀화부리 목련과 밀화부리2 21 나무 위의 새 나무 위의 새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화가 한동휘 씨가 정종여에게 받은 작품들 남한의 정종여 유족에게 기증함 6) 한국에서 출판된 서적에 소개된 작품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2 양시의 봄 병아리 춘설 화조 화조 제러동포 화가 故 변월룡 씨가 정종여에게 받은 작품 현재는 故 변월룡 씨 유족이 소장 3 달과 용 동물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문영대 저)에 소개 4 참새 화조 5 제비 1976 화조 재일동포 현순혜 씨가 정종여에게 받은 작품 내 조국은 세계입니다 (현순혜 저)에 소개 청계 정종여의 작품세계 연구 (이은주 저) 원출처 미상 23 밀화부리 제비와 매화 25 닭과 병아리 나무 위의 다람쥐 바구니를 빠져 나온 게 스케치 1) 인물 <1950년(월북) 이전 스케치 목록> 28 대나무 대나무와 참새 1979 정종여의 오사카미술학교 동문 재일동포 화가 故 송영옥 씨가 정종여에게 받은 작품 남한의 정종여 유족에게 기증함 30 석류와 새 1981 재일동포 故 김한문 씨가 정종여 에게 받은 작품들 31 향산 수성 ( 香 山 水 聲 ) 1980 현재 도쿄 조선대학교에 보관 중 32 닭과 병아리 백두산 설경 산수 풍경 35 참새 (강의용 작품) 1980 북한에서 도쿄 조선대학교에 기증한 작품들 현재 도쿄 조선대학교에 보관 중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1 나무 밑 선인 11 미완성 인물1 21 양반 노인 1인 2 겨울 여인 12 기생들 22 양반 노인 3인 옆모습 3 배에 탄 사람들1 13 춤추는 기생 23 여인1 4 합창단1 14 피리 부는 사람 24 여인2 5 합창단2 15 제례의복 4인 25 무녀와 여인 6 전기줄을 만지는 사람 16 제례의복 2인 26 신여성 7 머리를 감싸고 있는 사람들 17 제례의복 1인 27 교실 여학생들 8 시장 사람들 18 제례의복 사람들 28 미완성 인물2 9 산마을 19 양반 노인 2인 29 농악 2인 10 우물가 사람들 20 양반 노인 3인 30 농악 3인 12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25
64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31 마을 사람들 70 동자승 109 춘향전2 32 아들 71 양반 노인1 110 춘향전3 33 여인들과 여자아이 72 노인 초상1 111 춘향전4 34 학생1 73 노인 초상2 112 춘향전5 35 학생2 74 노인 초상3 113 춘향전6 36 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 75 양반 노인과 신여성 114 춘향전7 37 여인들과 아이 76 전통의복1 115 춘향전8 38 군인들 77 전통의복2 116 춘향전9 39 학생3 78 전통의복3 117 춘향전10 40 미완성 인물3 79 전통의복4 118 춘향전11 41 미완성 인물4 80 전통의복5 119 춘향전12 42 남자 81 전통의복6 120 춘향전13 43 민속 춤1 82 전통의복7 121 춘향전14 44 민속 춤2 83 부부 122 춘향전15 45 민속 춤3 84 여노인1 123 춘향전16 46 민속 춤4 85 여노인2 124 춘향전17 47 민속 춤5 86 여노인3 125 춘향전18 48 민속 춤6 87 여노인4 126 춘향전19 49 단가무1 88 소풍1 127 춘향전20 50 단가무2 89 소풍2 128 춘향전21 51 민속 춤7 90 학생들 129 춘향전22 52 민속 춤8 91 눈길 130 춘향전23 53 민속 춤9 92 배에 탄 사람들2 131 춘향전24 54 민속 춤10 93 태극기 아래 모인 사람들 132 춘향전25 55 민속 춤11 94 선녀 133 춘향전26 56 민속 춤12 95 고인 134 춘향전27 57 민속 춤13 96 장기를 두는 노인들 135 춘향전28 58 민속 춤14 97 일하는 모자 136 춘향전29 59 민속 춤15 98 아기를 업고 일하는 여인 137 춘향전30 2) 산수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1 산과 바다1 23 산 풍경12 45 산과 집5 2 산과 바다2 24 밭을 가는 소 46 산과 집6 3 산과 바다3 25 배1 47 산풍경15 4 산과 바다4 26 배2 48 산풍경16 5 바다 풍경 27 산 풍경13 49 산풍경17 6 나무들 28 산 풍경14 50 산풍경18 7 계곡1 29 배3 51 산풍경19 8 산과 집1 30 산과 바다6 52 계곡2 9 산과 집2 31 산과 바다7 53 폭포1 10 산과 집3 32 바닷가 마을1 54 폭포2 11 산 풍경1 33 바닷가 마을2 55 폭포3 12 산 풍경2 34 배4 56 산풍경20 13 산 풍경3 35 배5 57 논1 14 산 풍경4 36 산과 강1 58 논2 15 산 풍경5 37 산과 강2 59 정자 16 산 풍경6 38 산과 강3 60 나무와 집 17 산 풍경7 39 산과 강4 61 폭포4 18 산 풍경8 40 산과 나무1 62 산풍경21 19 산 풍경9 41 산과 나무2 63 해지는 들판 20 산 풍경10 42 산과 논1 64 산풍경22 21 산 풍경11 43 산과 논2 22 산과 바다5 44 산과 집4 3) 마을, 풍경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1 고궁 5 강화도 9 기와집 2 마을 풍경1 6 마을 풍경4 10 마을 풍경7 3 마을 풍경2 7 마을 풍경5 4 마을 풍경3 8 마을 풍경6 60 민속 춤16 99 일하는 여인 138 춘향전31 61 민속 춤 미완성 인물5 139 춘향전32 62 민속 춤 나무 위의 아이 140 춘향전33 63 민속 춤 농사짓는 사람 141 춘향전34 64 민속 춤 가족 142 춘향전35 65 일하는 사람들1 104 들길을 걷는 사람 143 춘향전36 66 일하는 사람들2 105 들길의 남녀 144 춘향전37 67 사냥하는 사람들 106 들길을 걷는 어른과 아이 145 춘향전38 68 어머니와 아들1 107 들 위의 여인 146 춘향전39 69 어머니와 아들2 108 춘향전1 147 춘향전40 4) 화조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1 뻐꾹새와 나무 8 화초2 15 복숭아3 2 나무1 9 화초3 16 복숭아4 3 포도 10 화초4 17 복숭아5 4 닭1 11 풀잎 18 복숭아6 5 옥수수 잎 12 연꽃 19 복숭아7 6 닭2 13 복숭아1 20 복숭아8 7 화초1 14 복숭아2 21 복숭아9 12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27
65 22 복숭아10 32 화초5 42 새1 23 복숭아11 33 화초6 43 부엉이 24 열매와 새1 34 나무2 44 새2 25 열매와 새2 35 나무3 45 새3 26 열매와 새3 36 나무4 46 벚꽃2 27 모란1 37 나무5 47 새4 28 모란2 38 나무6 48 나뭇잎2 29 모란3 39 대찔레꽃 49 나뭇잎3 30 모란4 40 벚꽃1 50 석류 31 모란5 41 나뭇잎1 2) 삽화 번호 제목 이미지 발간일자 출판사 비고 1 남해오월점철1. 기차( 汽 車 ) 남해오월점철2 보리 남해오월점철3 부산( 釜 山 ) 남해오월점철4 부산( 釜 山 ) 남해오월점철5 부산( 釜 山 ) 남해오월점철6 부산( 釜 山 ) 남해오월점철7 부산( 釜 山 ) 남해오월점철8 통영( 統 營 ) ) 동물 9 남해오월점철9 통영( 統 營 ) 남해오월점철10 통영( 統 營 ) 국도신문 정지용 글 정종여 그림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11 남해오월점철11 통영( 統 營 ) 고양이1 3 고양이2 5 고양이4 12 남해오월점철12 통영( 統 營 ) 학 4 고양이3 6 낙타 13 남해오월점철13 통영( 統 營 ) 남해오월점철14 진주( 晋 州 ) ) 기타 번호 제목 번호 제목 번호 제목 1 거북선 4 뇌 해부도2 7 미완성 작품1 2 물길 5 연습1 8 미완성 작품2 15 남해오월점철15 진주( 晋 州 ) 남해오월점철16 진주( 晋 州 ) 남해오월점철17 진주( 晋 州 ) 남해오월점철18 진주( 晋 州 ) 뇌 해부도1 6 연습2 3. 출판 미술 <1950년(월북) 이전 출판 미술자료 목록> 1) 삽화 <1950년(월북) 이후 출판 미술자료 목록> 1) 정종여 장정 서적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출판사 저자 1 고시가주해 ( 古 詩 歌 註 解 ) 1949 삼중당서점 2 노원장 ( 老 院 長 ) 1948 지문각 백제현 저 3 일본기행 ( 日 本 紀 行 ) 1948 수도문화사 설국환 저 4 춘추 ( 春 秋 ) 1942년 9월호 1942 조선춘추사 5 진학 ( 進 學 ) 1946년 3월호 1946 학생사 홍웅선, 박노천 공편저. 책의장화 ( 冊 衣 裝 畵 ) 정종여 ( 鄭 鍾 汝 ), 책의제자 ( 冊 衣 題 字 ) 이기우 ( 李 基 雨 ), 책내제자 ( 冊 內 題 字 ) 김충현 ( 金 忠 顯 ) 정종여 제화 ( 題 畵 ), 제자 ( 題 字 ) 내지에 정종여의 표지 해설 有 6 진학 ( 進 學 ) 1946년 4월호 1946 학생사 정종여 제화 ( 題 畵 ), 제자 ( 題 字 ) 7 여학원 1946년 1월호 1946 학생사 8 부인 (2-5) 통10호 1947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분류 비고 1 리뻥묘 산수 2 무한강철공장에서 인물 3 굴원의 고향 산수 조선미술 호 중국을 다녀와서 에 수록 4 중경 풍경 산수 5 화가 장한삼의 초상 인물 6 바람 부는 석양 1959 산수 7 차 중에서 ~ 1960 산수 8 나무 많은 북경 교외 산수 9 향계에서 산수 조선미술 호 중국을 다녀와서(2) 에 수록 10 조릉에서 산수 11 광주 교외에서 산수 12 광주 주강에서 산수 12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29
66 4. 사진 <1950년(월북) 이전 사진자료 목록> 1)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정종여 관련 사진 번호 제목 현존 연도 비고 1 거창공립보통학교 졸업1 2 거창공립보통학교 졸업2 3 정종여 학창 시절1 4 정종여 학창 시절2 5 정종여 학창 시절 동경 6 오사카미술학교 동문들 7 오사카미술학교 단체 사진 8 정종여 학창 시절4 9 정종여 학창 시절5 10 정종여와 학생들1 창경원 식물원 앞 11 정종여와 학생들2 12 김기창과 함께1 (총독부 미술관) 조선총독부미술관 앞 13 김기창과 함께2 (박물관) 개성부립박물관 14 김기창과 함께3 (박물관) 개성부립박물관 15 김기창과 함께4 (선죽교) 개성 선죽교 16 김기창과 함께5 (덕수궁) 덕수궁 석조전 17 김기창과 함께6 (덕수궁) 덕수궁 석조전 18 김기창과 함께7 (덕수궁) 덕수궁 석조전 19 김기창과 함께8 20 김기창 독사진 21 김기창, 박래현 결혼식1 (들러리) 1946 남산 국립민족박물관 22 김기창, 박래현 결혼식2 (단체) 1946 남산 국립민족박물관 23 김기창, 박래현 결혼식3 24 원곡 김기승씨와 함께 25 니코 ( 日 光 ) 게곤노다키 ( 華 嚴 瀧 )에서 이유태, 정종여 26 니코 ( 日 光 ) 게곤노다키 ( 華 嚴 瀧 )에서 김기창, 이유태, 정종여 27 니코 ( 日 光 ) 게곤노다키 ( 華 嚴 瀧 )에서 정종여, 김기창, 이유태, 장우성, 김은호, 호정환 28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에서1 네거티브 이미지 29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에서2 30 지인과 함께 스케치하는 정종여 31 폭포에서 지인들과 함께 32 지인들과 함께 디딤방아 33 어느 외국인과 함께 34 정종여와 외국인들 35 바닷가 바위에서 36 지인들과 함께1 37 지인들과 함께2 38 지인들과 함께3 39 지인들과 함께4 40 지인과 함께 어느 한옥에서1 41 지인과 함께 어느 한옥에서2 42 청전화숙 총독부 미술관 앞 43 청전화숙 미술전1 44 청전화숙 미술전2 45 지인과 함께 호수를 바라보며 46 지인과 함께 대화 47 풍경을 바라보는 정종여1 48 풍경을 바라보는 정종여2 49 덕수궁에서 스케치하는 정종여 50 청년기의 정종여 51 정종여의 옆모습 52 사진관에서 촬영한 정종여 진주 조일사진관 53 기타 치는 정종여 54 웃고 있는 정종여 55 보안여관 앞의 정종여 56 모자를 쓴 정종여 57 정종여 인물 사진 58 학창시절의 정종여 59 선죽교에서 개성 선죽교 60 호수를 바라보는 정종여 61 안교희 여사와 함께1 62 안교희 여사와 함께2 63 안교희 여사와 함께3 64 안교희 여사와 함께4 덕수궁, 고궁 65 안교희 여사와 함께5 66 안교희 여사와 함께6 67 안교희 여사와 함께7 68 안교희 여사와 함께8 69 맏딸 수혜와 함께1 70 맏딸 수혜와 함께2 71 자녀들 사진1 상진, 혜옥 72 자녀들 사진2 수혜, 상진, 혜옥 73 정종여와 아이들 74 부인사 선덕여왕 초상 대구 팔공산 부인사 75 불화 작품 장소 미상 76 독수리 작품 배재고 강당 77 석굴암의 아침을 바라보는 정종여 78 강화 장유 양조장 개업기념1 79 강화 장유 양조장 개업기념2 80 정종여 안교희 결혼 사진 13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31
67 2) 디지털 이미지로 남아있는 사진 7 술을 주고 받는 한동휘와 정종여2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비고 1 친구들과 함께 덕수궁 석조전 2 하늘을 바라보는 정종여 덕수궁 석조전 3 안교희 여사와 함께 8 대화를 나누는 한동휘와 정종여1 9 대화를 나누는 한동휘와 정종여2 10 한동휘와 정종여 부부 내외 11 작업 중인 정종여1 12 작업 중인 정종여 한동휘 씨가 평양 정종여 자택을 방문하였을 때 촬영한 사진 3) 故 윤재우 화가 소장 13 작업 중인 정종여3 14 정종여, 평양 자택에서1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비고 15 정종여, 평양 자택에서2 1 오사카 미술학교에서 故 윤재우 화가 소장 16 정종여와 손주들1 17 정종여와 손주들 평양 대동강변 1) 각종 자료에 수록된 사진 <1950년(월북) 이후 사진자료 목록>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비고 1 장년기의 정종여 조선력대미술가편람 조선화보 월호 (일본) 조선대백과사전 17권 2 창작중인 정종여 1963 조선화보 월호 (일본) 3 노년기의 정종여 현대 고려청자/회화 명작전 도록 (일본, 1984) 4 중국을 방문한 정종여 1960 제화춘추 조선전쟁승리기념특별전 도록 (중국, 2013) 5 화가 정종여와 함께 1970년대 북한지역정보넷 자료( 함께 있는 지인은 미상 3) 북한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모습 사진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비고 1 정종여 인물 소개 판넬 2 <국화 (찔광이와 국화)> 전시 모습 3 <잉어와 송사리> 전시 모습 4 <농촌의 아침> 전시 모습 5 <고양이> 전시 모습 6 7 <봄 (봄을 노래하는 밀화부리들)> 전시 모습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전시 모습 유족의 지인이 방북했을 때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 조선미술박물관 소개 북한 책자 8 <5월의 농촌> 전시 모습 정유석 씨(정현웅의 장남) 평양 방문 당시 촬영 사진 6 장년기의 정종여 광명백과사전 (북한) 7 소설가 이기영과 함께 8 <평양도> 대화폭을 제작하고 있는 화가 정종여 선생은 後 代 를 위해 써야 할 글이 아직 남았습니다, 월간중앙 2000년 10월호 (김홍균 기자) 1960 조선미술 1960년 8월호 p 저술 <1950년(월북) 이전 저술자료 목록> 2) 재일동포 화가 한동휘 씨 기증 사진 번호 제목 이미지 연도 비고 1 정종여에게 수업을 받는 한동휘 한동휘와 정종여1 재일동포 화가 한동휘씨가 전습을 받기 위해 정종여를 방문 번호 제목 이미지 발간일자 수록처 분류 비고 1 술과 나 (1) 새한민보 수필 2 술과 나 (2) 새한민보 수필 3 예술건전성 조선주보 회화시평 박래현 개인전평 4 묵로 개인전평 서울신문 개인전평 5 김영기 개인전평 경향신문 개인전평 3 한동휘와 정종여2 4 한동휘와 정종여 한동휘 씨가 평양 정종여 자택을 방문하였을 때 촬영한 사진 6 잡지 <진학> 표지해설 진학 해설 7 나의 그림 예술부락 4호 시 5 한동휘와 정종여4 6 술을 주고 받는 한동휘와 정종여1 13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33
68 <1950년(월북) 이후 저술자료 목록> 번호 제목 서명 원문 발간일자 비고 1 조선화기법 미술써클원수첩 채색화에 대하여 교수 요강 3 묵화에 대하여 교수 요강 4 채묵화에 대하여 교수 요강 5 조선화 재료에 대한 사용법 교수 요강 6 수기 조선미술 호 조선력대 미술가편람 에서 언급 7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창작 경험 조선미술 호 목차만 확보 6. 간행물 <1950년(월북) 이전 간행물 자료 목록> 1) 경향신문 번호 제목 원문 발간일자 비고 1 조미동맹1회전 입선자 결정 발표 동양화 동인전 동양화연구소 5일부터 개강 청계 정종여 씨 전 김영기 개인전평 동양화 신작전 중국을 다녀와서 조선미술 호 중국을 다녀와서(2) 조선미술 호 리형에게 드리는 편지 조선미술 호 조선화 분야에서 채색화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의견 제7차 국가미술전람회 현대성 구현에서 커다란 성과 조선미술 호 조선미술 호 혁명적인 채색화를 힘차게 발전시키자 조선미술 호 화가들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무장하기 위하여 더욱 분발하자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우리의 미술을 조선화를 토대로 발전시키는 길에서. 김일성 동지의 교시 15주년에 즈음하여 조선미술 호 첫 번째 필자 조선예술 호 단원 김홍도에 관한 글 문학신문 부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영광을 지닌 미술가들의 충성의 결의. 이 영예를 지니시고 조선예술 호 몰골법(1) 몰골법의 몇 가지 특징 조선예술 호 몰골법(2) 운필련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예술 호 몰골법(3) 꽃과 새 그리기 조선예술 호 몰골법(4) 꽃과 새 그리기 조선예술 호 몰골법(5) 풍경 그리기 조선예술 호 몰골법(6)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조선예술 호 ) 동아일보 번호 제목 원문 발간일자 비고 1 협전을 보고 청구 초특선화가순방기 조간 3 초특선화가순방기 석간 4 제18회조선미전인상기 김기영 한재의연금답지 미술특선작 발표 ) 자유신문 번호 제목 원문 발간일자 비고 1 동양자수의 묘미 발휘 윤봉숙 자수전 인천서 1주간 조선미술동맹 발족 미협춘계전 준비 동양화 7인전 서울 동양화연구소 개설 정종여 회화전 정종여 동양화 개인전을 보고 ) 조선일보 번호 제목 원문 발간일자 비고 1 새로운 남화가 초특선 정종여 씨 감격 한해구제비로 작품을 제공 화가 정종여군 특지 정종여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35
69 5) 매일신보 번호 제목 원문 발간일자 비고 7. 유품 <유품 자료 목록> 1 23일부터 개막될 조선서화협회전 적취( 滴 翠 ) 출품 2 미술의 용문에 올은 신인들의 깃붐은 정종여 인터뷰 3 미전의 인상2- 윤희순 정종여 추교( 秋 郊 ) 4 정종여군의 말 주옥! 263점 신인 80명 등용 동양화 82점 초입선은 21점 초특선의 군상 선전최고의 영예 창덕궁사상과 총독상 선전특선상 수여식 거행 정종여 화백 한해의연금 대신 역작 사점을 기탁 근래에 희유한 엄선 선전입선작품 발표 동양화가를 망라 19일부터 부민관서 신작전 개최 불상한 이들에게 손을 펴자 내여밀라 동정의 손 세민구제서화전 진지한 역작 343점 전총독남대장에게 조선산수화증정 재동경조선장학회서 제촌마다 결전양상 관음불상 1천매 기증 정종여 화백이 입영자에게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결성 ) 소품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시기 비고 1 정종여 도장 개 모양의 조각 2 도장1 지용 3 도장2 미상 4 정종여 사용 벼루 5 정종여 사용 물감통 여러 점 훼손 가능성 6 정종여 사용 붓 여러 점 훼손 가능성 7 박생광 화가 붓 8 17회 선전 입선작 <빈 ( 濱 )> 엽서 편지 내용 有 9 18회 선전 입선작 <홍류동의 봄> 엽서 10 안교희 여사에게 보낸 지리산 그림 엽서 우표 훼손 11 월거현의 ( 月 居 玄 衣 ) <초동보 ( 初 冬 譜 )> 엽서 8회 오사카미술학교전람회 12 시야교촌 ( 矢 野 橋 村 ) <순 ( 鶉 )> 엽서 오사카 미술일보사 주최 13 송원청계 ( 松 原 靑 溪 ) <우시 ( 牛 市 )> 엽서 무명전 제24회 전람회 출품 14 메모 15 제1회 정종여 개인전 팸플릿 미상 제2회 정종여 개인전 팸플릿 미상 1949 樹 欲 靜 而 風 不 止 子 欲 養 而 親 不 待 17 정종여가 변월룡에게 보낸 편지 195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18 정종여의 단소 6) 정기 간행물 19 정종여가 보관하였던 기왓장 번호 제목 원문 수록처 발간일자 비고 1 미전의 걸작, 제19회의 작품평 구본웅 삼천리 12권 7호 회화 예술에 있어 대중성 문제 이수형 삼천리 1949년 3월호 3 기축도 이수형 주간서울 ) 증명서, 상장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시기 비고 1 제적 등본 복사본 2 오사카미술학교 졸업증서 제18회 선전 특선 상장 <3월의 눈> 4 제19회 선전 특선 상장 <석굴암의 아침> 5 결전미술전람회 특선 상장 <상재전장> 6 결전미술전람회 출품 상장 <감투지하삼천척> 7 결전미술전람회 특선 상장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청계 정종여 관련 자료 목록 137
70 3) 서예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시기 비고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 정종여 서예첩 (37장) 앞부분 몇 장은 뜯어짐 2 청산벽계 ( 靑 山 碧 谿 ) 위창 오세창 1944 겨울 정군 ( 鄭 君 ) 종여 ( 鍾 如 ) 제액 ( 題 頟 ) 3 청계 ( 靑 溪 ) 위창 오세창 1941 겨울 정화사소년 ( 鄭 畵 㕜 少 年 ) 4 청계산위 ( 靑 溪 山 爲 )1 성파 하동주 5 청계산위 ( 靑 溪 山 爲 )2 성파 하동주 성파 ( 星 坡 ) 6 청계아취 ( 靑 谿 雅 趣 ) 석정 안종원 1946 석정 종원 ( 石 丁 鍾 元 ) 7 수촌 ( 壽 邨 ) 서경보 (추정) 작품1 靑 谿 作 壽 邨 書 (청계작 수촌서) 양각은 壽 邨 (수촌) 8 수촌 ( 壽 邨 ) 서경보 (추정) 작품2 음각은 徐 (서)OO 9 회산 ( 晦 山 ) 박기돈 (추정) 작품1 10 회산 ( 晦 山 ) 박기돈 (추정) 작품2 11 일본인 중교덕오랑 작품 12 작자 미상 서예 작품1 13 작자 미상 서예 작품2 14 작자 미상 서예 작품3 15 작자 미상 서예 작품4 4) 미술 작품 번호 제목 현존 이미지 시기 비고 1 일본 산수화 작품 O O 일본화가 고수백운 ( 高 須 白 雲 ) 작품 2 작자미상 일본화 작품 O O 3 석수만년 ( 石 壽 萬 年 ) - 김기창 O O 1976 안교희 여사 환갑 축하 4 주선지노O ( 酒 仙 之 老 O) - 김기창 O O 5 부귀도 ( 富 貴 圖 ) 김기창 O O 1976 정종여 셋째 딸 결혼 축하 류 한 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건용은 소위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 작가이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설치, 이벤트, 개념미술 등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선보이며 한국의 전위미술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Space and Time 과 아방가르드협회 의 회원으로서 전시를 통해 혁신적인 작업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이론을 연구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분석철학, 현상학, 노장사상에 조예가 깊었던 이건용은 초창기 나무, 돌, 흙 등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작품을 만들었는데, 1973년 파리 비엔날레의 참여를 계기로 이벤트(퍼포먼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1975년 4월 <동일면적>과 <실내측정>이라는 첫 이벤트를 진행한 그는 이후 신체, 언어, 사물, 장소, 관계 등과 관련된 독창적인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이건용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5년간 ST전, AG전, 대구현대미술제 등 전위미술전시에 참여하거나 혹은 동료작가들(김용민, 장석원, 성능경, 윤진섭)과 이벤트 전시를 개최하면서 50여 개의 이벤트를 발표한다. 이는 당시 다른 실험미술작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이다. 이처럼 그는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당대 최고의 퍼포먼스 아티스트였다. 1970년대 이건용의 이벤트를 살펴본다는 것은, 단지 한 작가의 작업세계를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도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당시 이건용이 행했던 이벤트가 모두 잘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서 시청각자료가 충분하게 남아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는 남겨진 사진과 텍스트 그리고 작가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정된 자료와 기록 속에서 작가의 기억력마저 희미해져간다면, 한국현대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자산은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사실 다른 작가의 경우 이미 상당수의 작업은 자료의 소실과 작가의 작고로 인해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그의 이벤트를 조사하여 이벤트의 진행상황과 작가가 의도했던 바를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13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39
71 본고는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퍼포먼스)를 다루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건용은 70년대에 50여 개의 이벤트를 발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벤트가 영상으로 촬영 되었더라면 보다 정확하게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비록 영상 촬영을 하지 못했어도, 이건용은 이벤트를 할 때마다 가급적 사진을 많이 찍었으며 이벤트에 관련된 육필원고와 스케치도 많이 남겼다. 당시의 열악한 사정을 고려하면 그래도 이건용과 관련된 사진과 기록은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부 작업은 기록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는 70년대 이건용 이벤트의 복원을 목표로 그의 작가노트, 전시 브로슈어, 사진, 잡지기사 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만은 충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은 작가에게 질문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내용이 명확한 41개의 퍼포먼스를 추려낼 수 있었고, 이번 기회에 그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건용의 퍼포먼스를 소개함에 있어 필자는 가급적 초연 당시의 진행상황을 기술하고자 하였다. 사실 이건용은 하나의 퍼포먼스를 한 번만 공연하지는 않고 장소를 달리하며 여러 번 공연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내용이 다소 수정되거나 제목이 바뀌기도 하였다. 더불어 필자는 이건용이 발표한 퍼포먼스의 초연 날짜와 장소, 전시명, 퍼포먼스의 진행상황, 작가의 의도 등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기술하고자 했지만, 과거의 행적을 추적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이 매우 안타깝지만 이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 두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2. <실내측정> (원제: <테이프 방 재기>, <테이프와 측정> 등) 초연일: 1975년 4월 19일, 초연장소: 백록화랑, 전시명: 오늘의 방법전 백록화랑은 오각형의 형태를 띠는데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르다. 작가는 둘둘 말린 노란 테이프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고 전시장의 한쪽 모서리에서 다른 쪽 모서리까지 사선으로 노란 테이프를 푼다. 그런데 노란 테이프가 다소 짧아서 모서리와 모서리를 잇지 못한다. 이후 작가는 노란 테이프를 집어 들고 전시장에서 가장 긴 변의 길이를 노란 테이프로 재고, 그 길이만큼을 가위로 자른다. 그 자른 테이프로 두 번째로 긴 변을 재고, 그만큼을 다시 자른다. 그렇게 다섯 변을 모두 재고 자른다. 그러면 잘려진 노란 테이프가 6개가 된다. 작가는 그 테이프 조각을 띄엄띄엄 놓아서 (처음에 테이프로 잇는 것에 실패한) 모서리와 모서리를 연결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시장을 관객이 테이프를 통해 확실하게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게 한다. 3. <테이프 자르고 잇기> (원제: <테이프 자르기>, <테이프> 등) 초연일: 1975년 8월 27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공간대상전 작가는 초록색 테이프(약 2m)를 마치 6등분 하듯이 가위로 5번 자른다. 이후 빨간색 테이프를 이용하여 잘려진 초록색 테이프를 모두 잇는다. 그러면 초록색 테이프 위에 빨간색 테이프가 붙게 된다. 다시 초록색 테이프를 자르고, 다시 빨간색 테이프로 잘려진 부분을 잇는다. 이런 행위가 계속되면서 초록색 테이프는 점차 없어지고 빨간색 테이프만 남는다. 자르는 행위와 붙이는 행위는 서로 반대되는 행위이다. 그런데 두 행위가 반복될수록 테이프의 색깔은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한다. 즉 자르는 행위와 붙이는 행위를 했을 뿐인데 현상은 달라진다. 1. <동일면적> (원제: <종이조각 쓸기>, <비질> 등) 초연일: 1975년 4월 19일, 초연장소: 백록화랑, 전시명: 오늘의 방법전 이벤트를 실행하기 전 작가는 화선지 1장을 세탁소에 맡겨 다림질을 한다. 화선지를 반으로 접어 다림질한 후 다시 화선지를 반으로 접어 다림질한다.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질 때까지 접고 다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작가는 호주머니에 화선지를 넣어 화랑으로 간다. 화랑 구석에 서 있다가 호주머니에서 화선지를 꺼내 계속해서 편다. 화선지를 다 편 후 한쪽 바닥에 놓고 화선지의 윤곽선을 백묵으로 긋는다. 화선지를 집어 들고 슬며시 돌아다니며 화선지를 잘게 찢어서 윤곽선 바깥에 듬성듬성 놓는다. 빗자루로 화선지 조각을 쓸어 모아 윤곽선 안에 모두 넣는다. 동어반복의 변형이다. 같은 면적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언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용법과 의미는 다양해질 수 있다. 4. <다섯 걸음> (원제: <걷기와 금 긋기>, <금 긋기> 등) 초연일: 1975년 10월 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ST 4회전 작가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을 외치며 다섯 걸음을 걷는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백묵 하나를 꺼내서 허리를 굽히고 신발 앞에다 선을 긋는다. 작가는 의자로 돌아가 앉는다. 다시 슬며시 일어나 하나, 둘, 셋, 넷, 다섯 을 외치며 다섯 걸음을 걸은 후, 백묵으로 선을 긋는다. 작가는 평소 걷는 대로 걷지만 조금씩 차이가 생겨서 선이 그어지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4번을 반복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에서는 숫자를 외치면서 가장 큰 폭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큰 폭으로 걷다보니 관객이 모여있는 곳을 뚫고 지나가게 된다. 작가는 그곳에 엉뚱한 선을 하나 긋고 유유히 사라진다. 공간 안에서의 언어와 행위의 문제를 다루며, 행위 여하에 따라 생겨나는 차이를 보여준다. 14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41
72 5. <건빵 먹기> (원제: <과자 집어먹기>, <팔과 건빵> 등) 초연일: 1975년 10월 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ST 4회전 작가는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놓인 건빵을 집어 먹는다. 이후 옆에 있는 사람이 작가의 팔목에 각목을 대고 붕대로 감는다. 그리고 작가는 건빵을 집어먹는다. 처음보다는 먹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다시 옆에 있는 사람이 작가의 팔꿈치 부근에 각목을 대고 붕대로 감는다. 팔을 제대로 구부릴 수 없기 때문에 건빵을 입에 넣기가 어려워진다. 작가는 얼굴 위에서 건빵을 떨어뜨려 입으로 받아먹는데, 이때 대부분의 건빵은 얼굴을 맞고 튀어나간다. 또다시 옆에 있는 사람이 작가의 어깨 부근에 각목을 대고 붕대로 감는다. 작가는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서 건빵을 줍고, 얼굴 위에서 건빵을 떨어뜨려 입으로 받아먹는다. 이때도 대부분의 건빵은 얼굴을 맞고 튀어나간다. 먹는다는 일상적 행위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행위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6. <10번 왕복> (원제: <녹음기와 달리기>) 초연일: 1975년 10월 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ST 4회전 작가는 의자에 앉아 있고, 반대편에는 녹음기가 놓여있다. 작가는 녹음기 앞으로 걸어가서 한 번 을 외친 후 의자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녹음기 앞에 가서 두 번 을 말하고 되돌아온다. 그런 방식으로 총 10번을 왕복한다. 즉 이때 외치는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등이 녹음기에 차례로 녹음된다. 작가는 녹음한 것을 되감아 튼 후, 전속력으로 녹음기 앞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한 번 이라고 말하면 녹음기에서 한 번 이란 소리가 나온다. 계속해서 의자로 돌아갔다가 다시 녹음기 앞으로 뛰어가서 두 번 이라고 외치면 녹음기에서 두 번 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10번을 반복한다. 작가는 같은 거리를 왕복한다. 하지만 걷거나 뛰는 속도에 따라 공간 안에서 시차가 발생한다. 8. <5번의 만남> (원제: <두 사람의 왕복>, <타격> 등) 초연일: 1975년 10월 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ST 4회전 작가와 퍼포머가 각각 전시장의 양쪽 끝에 있다가 서로를 향해 걸어간다. 둘은 전시장 가운데에서 만나 서로 쳐다보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전시장 가운데서 만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세 번을 똑같이 행동한다. 그런데 네 번째로 만났을 때 작가가 퍼포머의 뺨을 때린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계속해서 다섯 번째로 만나는데, 이때 작가는 두 손으로 퍼포머의 양쪽 얼굴을 쓰다듬은 후 어깨와 양팔을 만진다. 일정한 공간 안에서의 만남을 의미한다. 또한 어떤 예측불허의 행동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자문하게끔 한다. 9. <내가 보이느냐> (원제: <보이느냐> 등) 초연일: 1975년 11월 2일, 초연장소: 계명대 전시실, 전시명: 2회 대구현대미술제 덩치가 큰 퍼포머가 내가 보이느냐 라고 하면, 작가는 얼굴을 찡그리고 그를 바라본다. 또 퍼포머가 내가 보이느냐 라고 하면, 작가는 다른 표정을 짓고 그를 쳐다본다. 또 퍼포머가 내가 보이느냐 라고 하면, 작가는 돌아서서 가랑이 사이로 그를 쳐다본다.(작가는 상대방을 약 올리는 행동을 함) 권위주의 시대에 있어 권력자를 조롱하는 이벤트이다. 10. <이리 오너라> (원제: <이리 오라> 등) 초연일: 1975년 11월 2일, 초연장소: 계명대 전시실, 전시명: 2회 대구현대미술제 퍼포머가 이리 오너라 라고 하면, 작가가 부딪힐 정도로 재빨리 퍼포머에게 다가간다. 원위치로 돌아간 후, 다시 퍼포머가 이리 오너라 라고 하면, 작가가 깽깽이로 다가간다. 같은 방식으로 퍼포머가 이리 오너라 고 하면, 작가는 무릎으로 기어가기도 하고, 엎드려 배를 깔고 기어가기도 7. <나이 세기> (원제: <셈 세기>, <녹음기와 나이 세기> 등) 초연일: 1975년 10월 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ST 4회전 작가가 의자에 앉거나 서서 하나, 둘, 셋, 넷 등을 외치며 숫자를 센다. 동시에 녹음기로 그 소리를 녹음한다. 작가는 자신의 나이인 서른셋까지 심각하게 숫자를 센 후, 관객들에게 지금 내가 내 나이를 셌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녹음한 것을 되감아 틀고,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나이를 다시 센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나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한다. (작가는 명령한 사람에게 온갖 모욕을 주면서 그에게 다가감) 권위주의 시대에 있어 권력자를 조롱하는 이벤트이다. 11. <물 마시기> 초연일: 1975년 11월 2일, 초연장소: 계명대 전시실, 전시명: 2회 대구현대미술제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조명을 낮춘 후 작가는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그러다가 잔을 탁자에 내려 놓으면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통해 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잔에 남은 물을 관객에게 뿌린다. 관객은 물을 맞으면서 현장에서 물 이란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14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43
73 12. <성냥 켜기> 초연일: 1975년 11월 2일, 초연장소: 계명대 전시실, 전시명: 2회 대구현대미술제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조명을 낮춘 다음에 작가는 성냥통에서 성냥을 하나 꺼내 불을 켠다. 성냥이 어느 정도 타면 성냥을 떨어뜨린다. 그와 동시에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통해 성냥으로 불을 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작가는 성냥통에서 성냥 하나를 더 꺼내서 불을 켠 후 성냥을 성냥통에 넣는다. 그러면 불길이 천정에 닿을 정도로 확 올라온다. 관객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냥의 화력과 화학작용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16. <손수건> (원제: <숨쉬기>, <손수건과 숨쉬기>) 이후 <손의 논리 4>로 변경 초연일: 1975년 12월 1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AG 4회전 작가는 쪼그리고 앉아서 앞에 있는 손수건을 보고 코를 꽉 막는다. 그리고 손수건을 집어서 코를 막고서 바닥을 또 바라본다.(보통 손수건은 코를 풀거나 냄새를 막을 때 사용한다. 손수건을 보면서 코를 막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냄새 나는 손수건을 놓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바닥을 바라본다. 결국 코에 손수건을 대었든 맨손을 대었든, 13. <물 붓기> (원제: <물 뒤집어쓰기>) 초연일: 1975년 11월 2일, 초연장소: 계명대 전시실, 전시명: 2회 대구현대미술제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조명을 낮춘 상태에서 이벤트를 진행한다. 작가는 컵을 쥐고 있다가 컵에 든 물을 바닥에 놓인 물통에 붓는다. 그러다가 붓던 컵을 탁자에 놓는데, 그 순간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통해 통에 물 붓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작가는 물통을 들고 머리 위에서 붓는다. 작가는 관객에게 반전과 쾌감을 주고자 한다. 관객과의 소통을 고려한 행위이다. 14. <장소의 논리> (원제: <장소(장소와 언어)>, <장소 A> 등) 초연일: 1975년 12월 1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AG 4회전 작가는 백묵으로 원을 긋고 백묵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원의 내부를 향해 저기 라고 외치고, 원 안에 들어가서 원의 내부를 가리키며 여기 라고 말한다. 곧이어 원을 빠져나가서 뒤에 있는 원을 향해 거기 라고 말한다. 이후 작가는 돌아서서 다시 원을 향해 저기 라고 하고, 원에 들어가서 여기 라고 하고, 원에서 나와서 거기 라고 한다. 계속해서 원을 밟고 한 바퀴 반 정도 돌면서 어디, 어디, 어디 를 외친다. 이후 작가는 관객 사이로 사라지고, 작가가 손짓하면 어떤 사람이 이건용의 이벤트가 끝났습니다 라고 말한다. 단지 코를 쥐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고정관념을 다룬 이벤트이다. 17. <바늘구멍 잇기> (원제: <바늘과 실>) 초연일: 1975년 12월 1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AG 4회전 작가는 미리 전시장 네 모서리에 바늘을 꽂아놓는다.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작가는 의자에 올라가서 바늘귀에 실을 끼운다. 그리고 실을 잡아당기고, 의자를 들고 다른 귀퉁이로 간다. 거기서 의자에 올라가 다시 바늘에 실을 끼운다. 또 실을 잡아당기고 다른 귀퉁이로 간다. 그렇게 해서 4개의 바늘에 모두 실을 끼운다. 바늘에 실을 끼워 연결함으로써 전시장의 면적을 확인해주고자 한다.(당시 전시장의 면적은 약 100평) 18. <좌선과 손> 이후 <손의 논리 1>과 <손의 논리 3>으로 변경 1) 초연일: 1975년 12월 1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AG 4회전 작가는 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양손을 쫙 펼치고, 양 엄지손가락 끝이 맞닿게 한다.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장소의 명칭이 달라지는 것을 나타내며, 장소와 신체의 관계를 부각시킨다. 또한 어디 라고 외침으로써 장소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고자 한다. 15. <태권> 초연일: 1975년 12월 16일, 초연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AG 4회전 작가가 앉아있으면 퍼포머가 뒤에서 대나무로 한쪽 어깨를 내리친다. 그러면 요란한 소리가 난다. 그리고 다른 어깨를 또 내려친다. 곧이어 작가는 일어서서 이얏, 이얏 하면서 태권도의 기본자세를 취한다.(주먹을 앞으로 뻗는 동작) 일상에서(특히 태권도장에서) 볼 수 있는 태권도의 기본 동작을 예술가가 수행함으로써 예술과 1) <좌선( 坐 禪 )과 손>은 1975년 12월 AG 4회전 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크게 두 가지 행위(손가락을 펴고 구부리는 행위와 손으로 신체를 쥐는 행위)로 구성되었다. 이후 <좌선과 손>은 3인의 이벤트 ( , 그로리치화랑), 이건용 개인전 ( , 다사랑)에서 <좌선과 손>이란 제목으로 재연되었다. 한편 이건용이 작성한 작가노트(1970년대 중반 작성)를 보면, 그는 Event Logical ( , 신문회관) 전시를 준비 하면서 <손의 논리>를 구상한다. 이 <손의 논리>는 바닥으로부터 주먹을 쌓아 올리는 행위를 비롯하여 손을 사용한 5개의 행위로 구성된다. 그런데 Event Logical 전시 브로슈어에는 <좌선과 손>의 이미지가 있지만, 제목은 <손의 논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작가는 Event Logical 을 준비하는 기간에 <좌선과 손>의 제목을 <손의 논리>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닥으로부터 주먹을 쌓아올리는 <손의 논리>를 <손의 논리 2>으로 지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좌선과 손>은 <손의 논리>로 변경된 후, 손가락을 펴고 구부리는 행위는 <손의 논리 1>로, 손으로 신체를 쥐는 행위는 <손의 논리 3>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손수건>은 <손의 논리 4>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14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45
74 엄지손가락 전체가 맞닿게 한다.(그러면 양손의 거리가 가까워짐) 이후 손을 뒤집어 양손의 검지 끝이 만나게 한다.(양 엄지손가락이 멀어짐) 곧이어 손가락을 구부려 두 주먹이 만나게 한다. 이때 엄지는 쭉 편다.(양 엄지손가락이 가까워짐) 계속해서 작가는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쥔다. 그리고 코, 입, 목을 차례로 쥔다. 두 손을 펴고 구부리는 것을 통해 손가락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즉 간단한 행위를 통해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당시 분열된 우리 사회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몸을 쥐는 행위는 손이 무언가를 쥘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일종의 토톨로지(Tautologie)이다. 기존의 시설물을 이용하여 2차원 공간과 3차원 공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킨다. 또한 계량기 뚜껑이 바바리를 물고 있는 물리적인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22. <고무줄 감기> (원제: <고무줄 팔뚝에 감기>) 이후 <이어진 삶 79-1>로 변경 초연일: 1976년 4월 4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4인의 이벤트 작가는 2m 정도의 고무줄을 팔뚝에 감는다. 그리고 그 고무줄을 자르고, 잘라진 고무줄을 매듭지어서 묶는다. 곧이어 다시 그 고무줄을 팔뚝에 감는다. 그 고무줄을 다시 자른다. 그렇게 계속 자르고 묶다보면 고무줄은 짧아지고 매듭투성이가 된다. 이후 그것을 핀으로 벽에 꽂는다. 고무줄을 자르지만 매듭 때문에 그 줄은 더 강해진다. 이는 한국의 역사와 같은 것이다. 19. <고무줄과 끈> (원제: <로프와 고무줄>) 초연일: 1976년 4월 4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4인의 이벤트 작가는 하얀 고무줄과 하얀 끈을 벽에 묶고, 두 줄을 같은 길이로 자른다. 그리고 두 줄을 잡아당기는데, 고무줄만 늘어난다. 그러다 두 줄을 놓아버리면 고무줄은 벽에 부딪히고, 끈은 그냥 바닥에 떨어진다. 다시 두 줄을 당긴다.(끈은 당기려 해도 당겨지지 않음) 그렇게 고무줄을 당겨서 맞은 편 벽에 있는 못에 묶는다. 전시장을 가로질러 고무줄을 묶음으로써 공간이 구획된다. 즉 고무줄로 인해 이쪽에 있는 사람과 23. <손의 논리 2> (원제: <손의 논리> 2 ) 초연일: 1976년 7월 3일, 초연장소: 신문회관, 전시명: Event-Logical (추정) 작가는 앉아서 바닥으로부터 오른 주먹과 왼 주먹을 차례로 쌓아올린다. 주먹을 쌓다가 일어나며, 손을 위로 뻗을 수 있는 만큼 주먹을 쌓아올린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으면 반대로 주먹을 쌓아서 바닥까지 내려온다. 일종의 쌓는 행위에 의해 몸 전체가 움직인다. 저쪽에 있는 사람이 구분된다. 또한 끈과 고무줄이 가진 성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20. <로프와 두 사람> (원제: <만남>) 초연일: 1976년 4월 4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4인의 이벤트 작가와 퍼포머(김용민)가 서로 떨어져 로프를 붙들고 있다. 퍼포머를 중심으로 작가가 빙빙 돈다. 그러면 로프가 감기면서 퍼포머와 작가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나중에는 몸과 몸이 만난다. 그러면 서로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다시 빙글빙글 돌아서 처음으로 돌아간다. 작가가 놔 라고 외치면 두 사람이 로프를 놓는다. 끈이 가진 물리적인 원리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다. 24. <신체드로잉 76-1> (원제: <현신 >, <현신 B> 등)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작가는 자신의 키보다 큰 나무판을 세운다. 세로길이가 170cm가 되도록 톱으로 나무판을 자른다. 작가는 나무판 뒤로 간 후, 팔을 나무판 앞으로 넘겨서 선을 그을 수 있을 만큼 긋는다. 작가는 좌우로 이동하며 선을 위아래로 긋는다. 그리고 선이 그어진 부분을 톱으로 자른다. 자른 나무판은 벽에 고정시킨다.(벽 아래 부분에 고정) 다시 나무판 뒤로 가고, 팔을 넘겨서 선을 그을 수 있을 만큼 긋는다. 잘려진 부분이 있기에 손이 더 많이 내려가며, 역시 좌우로 이동하며 선을 위아래로 긋는다. 선이 그어진 부분을 톱으로 자른다. 자른 나무판을 이미 고정시킨 나무판 위에 고정시킨다. 다시 나무판 뒤로 가고, 허리를 숙이고 팔을 넘겨서 선을 긋는다. 선이 그어진 21. <수도계량기 덮개> (원제: <수도계량기 뚜껑 나르기>, <수도계량기> 등) 초연일: 1976년 4월 4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4인의 이벤트 서울화랑 구석에는 수도계량기가 있다. 작가는 수도계량기 쪽으로 가서 계량기의 뚜껑을 열고 계량기를 들여다본다.(뚜껑을 열면 깊이가 있는 공간이 나옴) 그리고 작가는 바바리를 벗어서 계량기를 바바리로 가린다. 이후 바바리가 덮인 상태에서 뚜껑을 닫는다. 그러면 바바리가 계량기 뚜껑에 끼게 된다. 작가는 그 바바리를 잡아당긴다. 바바리는 갈기갈기 찢어진다. 부분을 톱으로 자른다. 자른 나무판을 이미 고정시킨 나무판 위에 고정시킨다. 다시 나무판 뒤로 2) 이건용이 작성한 작가노트(1970년대 중반 작성) 중 Event Logical ( , 신문회관)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손의 논리>는 크게 5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조용히 앉아서 (바닥) 주먹을 쌓아올림. 쌓아올려짐에 따라 몸 전체를 일어서서 수직으로 펴게 되고 다시 두 주먹을 쌓아내려 끝남 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훗날 <손의 논리 2>로 불리는 작업이다. 또한 나머지 4개의 행위도 모두 손과 관련된 것인데, 이 행위들도 Event Logical 에서 발표된 듯 보이지만, 그 이후에는 재연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건용은 첫 번째 행위만 <손의 논리 2>로 명명한다. 14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47
75 가고, 앉아서 잘려진 작은 나무판에 선을 긋는다. 선을 그은 나무판을 이미 고정된 나무판 위에 위해 손목과 팔뚝을 제한한 것이다. 고정시킨다. 작가의 신체적 조건을 활용하여 선 긋기를 시도한다. 즉 어떤 조건에서 신체와 평면이 만나 필연적인 선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25. <신체드로잉 76-2> (원제: <현신 >, <현신 A> 등)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나무판을 뒤에 세워놓고 작가는 앞을 바라본다. 붓에 물감을 묻혀 나무판에 물감을 칠한다. 먼저 오른팔을 위와 옆으로 최대한 뻗은 지점부터 몸통 부근까지 오른손으로 칠하고, 이어서 왼팔을 위와 옆으로 최대한 뻗은 지점부터 몸통 부근까지 왼손으로 칠한다.(단 어깨 옆 부근은 팔이 닿지 않아 물감을 칠하지 못함)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오른손으로 두 다리 사이를 칠한다. 계속해서 오른팔을 옆과 아래로 최대한 뻗은 지점부터 몸통 부근까지 (허리를 숙여) 오른손으로 칠하고, 왼손을 옆과 아래로 최대한 뻗은 지점부터 몸통 부근까지 (허리를 숙여) 왼손으로 칠한다. 신체조건과 평면이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드로잉이다. 그림을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체로 그린다는 것이다. 26. <신체드로잉 76-3>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작가는 오른쪽을 바라본 채 벽 옆에 선다. 오른손을 뻗어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선을 반복적으로 긋는다.(곡선이 생김) 작가는 방향을 바꿔 왼쪽을 바라보며 벽 옆에 선다. 왼손을 뻗어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선을 반복적으로 긋는다. 하트 모양이 만들어진다. 신체의 조건으로 만들어낸 드로잉이다. 27. <신체드로잉 76-4> (원제: <현신 >, <현신 C> 등)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작가는 손목과 팔뚝에 각각 막대를 대고 붕대를 감는다. 작가는 그 상태로 의자에 앉는다. 바로 앞에는 책상이 있고, 그 위에는 종이가 있다. 작가는 팔을 최대한 뻗어 부채꼴 모양으로 움직이며 위아래로 선을 긋는다.(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그리고 손목의 붕대를 풀고 다시 부채꼴 모양으로 움직이며 위아래로 선을 긋는다.(이전보다는 선을 길게 그을 수 있음) 이어서 팔목의 붕대를 풀고 다시 부채꼴 모양으로 움직이며 위아래로 선을 긋는다.(이전보다 더 선을 길게 그을 수 있음)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손과 팔의 마디마디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28. <신체드로잉 76-5> (원제: <현신 >, <현신 F> 등)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작가는 다리를 벌리고 그 밑에 종이를 놓는다. 허리를 숙이고 종이 가운데에서 선을 세로로 그으며 나는 직선을 긋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때 팔을 쭉 펴서 가랑이 사이로 선을 긋는다. 계속해서 오른쪽 외곽으로 선을 긋는데, 외곽으로 가면서 선이 휘어진다. 휘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곧은 선을 그을 거야 라고 외친다. 그렇게 종이 끝까지 선을 그으면, 가운데부터 왼쪽으로 선을 긋는다. 역시 외곽으로 가면서 선이 휘어진다. 선을 긋는 축이 가운데이기 때문에 가장자리로 갈수록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신체의 조건으로 만들어낸 드로잉이다. 29. <현신 > (원제: <현신 E> 등)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작가는 벽을 바라보고 선다. 두 팔을 위로 뻗어 두 손이 머리 위에서 만나게 한다. 그리고 양팔을 뻗은 채 아래로 내리면서 선을 긋는다. 그러면 배 부근에서 두 손이 만난다. 그렇게 양손을 반복적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며 선을 긋는다. 원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신체의 조건으로 만들어낸 드로잉이다. 30. <신체드로잉 76-7> (원제: <현신 D> 등) 초연일: 1976년 11월 22일~27일 중, 초연장소: 출판문화회관, 전시명: ST 5회전 작가는 종이를 바닥에 놓고 오른 무릎을 꿇고 앉는다. 오른 무릎은 종이와 바닥에 걸쳐 놓는다. 몸을 고정시킨 후, (어깨를 축으로) 오른손으로 반원의 선을 좌우로 계속 긋는다. 신체의 조건으로 만들어낸 드로잉이다. 31. <이어진 삶-77> (원제: <나무 잇기>) 초연일: 1977년 9월 17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2인의 이벤트 작가는 화랑 안에서 1.2~1.5m의 나뭇가지를 끈으로 묶어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에 다른 나뭇가지를 끈으로 묶어 고정시킨다. 이 행위를 반복한다.(나뭇가지의 길이가 길어짐) 작가는 화랑 출입문을 열어 놓고 이어진 나뭇가지를 밖으로 계속 내보낸다. (당시 교통경찰이 화랑 안에 들어와 나뭇가지가 안국동 로터리의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고 하여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뭇가지를 잇는 행위, 즉 일종의 쓸모없는 행위가 실생활에 영향을 준 것이다. 14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49
76 32. <화랑속의 울타리> (원제: <울타리 만들기>) 초연일: 1977년 9월 17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2인의 이벤트 작가는 화랑 구석에서 나뭇가지를 끈으로 묶어 연결한다. 연결된 나뭇가지를 세워서 바닥과 천정에 닿게 한다. 같은 방법으로 여러 개를 세운다. 그러면 마치 작가가 울타리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울타리 안에 갇혔고, 관객은 울타리 바깥에 위치한다. 울타리를 통해 안과 밖이 생성된다. 36. <울타리와 탈출> 초연일: 1978년 9월 23일~30일 중, 초연장소: 냉천, 전시명: 4회 대구현대미술제 나뭇가지를 가로와 세로로 이어서 울타리를 만든다. 이어서 작가는 울타리 안에서 나뭇가지를 계속 이어 붙인다. 울타리 옆에 시냇물이 있다. 작가는 이어붙인 나뭇가지를 시냇물 쪽으로 보낸다. 나뭇가지가 시냇물을 넘어 건너편까지 연결되면 작가는 울타리를 빠져나와 나뭇가지를 잡고 시냇물을 건넌다. 안과 밖의 개념을 보여주는 이벤트이다. 33. <색종이와 분신> (원제: <분신>) 초연일: 1977년 9월 17일, 초연장소: 서울화랑, 전시명: 2인의 이벤트 작가는 (마치 광야를 거니는 예언자나 순례자와 같이) 바지를 걷고 맨발로 막대를 짚으며 전시장을 배회한다. 그러다가 작가는 배가 위로 향하게 누워서 분필로 자신의 신체 윤곽선을 바닥에 그린다.(막대기의 윤곽선도 분필로 그림) 형체를 바닥에 다 그린 후, 색종이를 찢어서 팔, 가슴 부근에 일렬로 늘어놓는다. 그리고 일어나서 막대기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막대기를 다른 곳에 놓고 온다. 신체 윤곽선이 그려진 곳에 엎드려 다리(bridge) 모양의 자세를 취한다. 곧이어 몸을 바닥에 붙이고 손을 위로 쭉 뻗는다. 사람이 자라나는 것, 즉 신장을 보여주는 이벤트이다. 또한 축제적인 요소와 주술적인 요소도 있다. 37. <달팽이 걸음> 초연일: 1979년 6월 10일, 초연장소: 남계화랑, 전시명: 이건용 개인전 작가는 쪼그리고 앉아서 백묵을 바닥에 좌우로 그으면서 정해진 거리만큼 전진한다. 백묵이 부러지면 새로운 백묵을 사용한다. 그리는 것과 지우는 행위가 동시에 일어난다. 38. <이어진 삶 79-2> (원제: <선 잇기>) 초연일: 1979년 6월 10일, 초연장소: 남계화랑, 전시명: 이건용 개인전 작가는 신발을 벗는다. 두 짝의 신발이 일직선이 되게 바닥에 배치한다. 그리고 양말을 벗어서 신발과 일직선이 되게 놓는다. 계속해서 소지품(시계, 손수건, 돈 등)을 바닥에 놓아서 일직선을 34. <얼음과 백묵은 발신하라> (원제: <얼음과 백묵>) 초연일: 1977년 10월 30일, 초연장소: 견지화랑, 전시명: ST 6회전 작가는 얼음 덩어리 2개를 바닥에 놓는다. 그리고 작가는 조용히 앉아서 백묵으로 얼음과 백묵은 발신하라 라고 글을 계속 쓴다. 백묵이 다 달아서 없어질 때까지 쓴 후 녹음기를 튼다. 그러면 녹음기에서 얼음과 백묵은 발신하라 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작가는 의자에 능청맞게 앉아 있다. 얼음이 다 녹아서 물이 되면 이벤트가 끝난다. 만든다. 그러다가 허리띠를 풀고 허리띠를 바닥에 놓은 다음에 허리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린다. 미소를 짓고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채운 후, 바닥에 놓인 허리띠 끝에 발을 위치시키고 엎드려 눕는다. 이때 팔을 머리 위로 쭉 펴서 일직선을 만든다. 한참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서서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회수한다. 허리띠를 매고, 시계를 차고, 양말을 신는다. 마지막에 신발을 신고 가만히 서 있다. 작가의 소지품(주민등록증, 여권 등)은 작가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묵으로 바닥에 글을 쓰면서 백묵의 본래 형태가 없어지고, 얼음도 녹으면서 형태가 없어진다. 즉 소멸을 다룬 것이다. 35. <울타리> (별칭: <색채 이벤트>) 초연일: 1977년 10월 30일, 초연장소: 견지화랑, 전시명: ST 6회전 작가는 색종이를 바닥에 둥글게 놓아 울타리를 만든다.(추정) 한정하는 것과 확장하는 것을 보여준다. 39. <이건용은 발신하라 오버> (원제: <기계인간>) 초연일: 1979년 6월 16일, 초연장소: 남계화랑, 전시명: 이건용 개인전 화랑 밖에서 작가는 온 몸을 휴지로 감는다. 배 부근에는 녹음기를 안에 넣고 휴지를 감는다. 그런 상태에서 작가는 들것에 누워 있다. 두 명이 들것을 들고 화랑 안으로 들어와 들것을 내려놓는다. 작가가 녹음기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녹음기에서는 이건용은 발신하라 오버 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 신체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신체가 공간에 들어옴으로써 그 공간은 변화한다. 즉 신체와 공간이 15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51
77 어떤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면서 신체는 공간과 교신하기 시작한다. Abstract 40. <횟가루와 끈> 초연일: 1979년 6월 16일, 초연장소: 남계화랑, 전시명: 이건용 개인전 70 s Event of Lee Kun-Yong 작가는 전시장 구석에 못을 박고, 그 못에 끈을 연결해서 늘어뜨린다. 또한 작가는 시멘트 자루를 풀어서 흰 시멘트 가루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수북이 쌓일 정도로 시멘트 가루를 끈 위에 붓는다. 그리고 작가는 끈을 잡고 휘젓는다. 수북이 쌓여있던 시멘트 가루가 사방으로 날린다. 물질감과 부피를 가진 사물(분말의 형태)을 끈으로 휘저어 그 물질감과 부피를 변형시킨다. 그 물리적 현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41. <여기, 저기> (원제: <강가의 이벤트>) 초연일: 1979년 7월 8일, 초연장소: 강정, 전시명: 5회 대구현대미술제 작가는 말뚝 하나를 물웅덩이 근처에 박는다. 작가는 약 1m 길이의 자를 바닥에 놓는다. 이때 자의 한쪽 끝이 말뚝에 닿게 한다. 자보다 긴 거리를 잴 때 자를 움직이며 길이를 재듯이, 말뚝으로부터 강가(물웅덩이)까지 자로 거리를 재며 이동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거리만큼의 끈을 말뚝에 연결한다. 작가는 말뚝 옆에 자를 내려놓고, 말뚝을 중심으로 돌면서 자로 모래를 밀어낸다.(모래바닥을 평평하게 다짐) 이후 작가는 끈을 팔뚝에 묶고 자로 잰 거리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며 말뚝을 중심으로 빙빙 돈다. 돌다보면 물웅덩이가 있는데, 작가는 옷 입은 채로 물웅덩이를 통과한다. 물의 깊이는 발목 정도. 그렇게 50여 번을 돈다. 물웅덩이에 계속 들어갔다가 나오기 때문에 물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원의 형태가 생긴다. 곧이어 작가는 가운데 서서 말뚝을 향해 여기 를 외치고, 하늘을 향해 저기 를 외치고, 원을 벗어나서 거기 를 외친다. 제한된 행동 범위를 통해 원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장소의 논리>를 구현한다. Ryu Han Seung Associate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Lee Kun-Yong is a representative artist of Korean experimental art. He had led the avant-garde art movement of Korea by demonstrating novel forms of art from installation, event, conceptual art and etc. from the early 1970 s. He was especially active in presenting innovative works as a member of Space and Time and Avant-garde Association and also took the role in introducing and studying art theories. Lee began his interest in event as he participated in the 1973 Paris Biennale and he continuously showed unique event in relation to body, language, object, place, relationship and etc. From 1975 to 1979, Lee presented about 50 events in different exhibitions. This outstanding number exceeds other experimental artists of the time, proving that Lee was an excellent performance artist of the generation in both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terms. This article is to introduce the 70 s event of Lee Kun-Yong. Unfortunately, these events performed by Lee had not been well recorded as cameras and video cameras were extremely valuable then and not enough audio visual data are to be found. Through photographs, texts and artist interview, it was able to sort out 41 events with relatively clear context from his past performances, and this opportunity will thus organize the detailed process of these events and the purpose of the artist as well. 15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70년대 이벤트 153
78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일시: 2014년 9월 17일(목) 15:00~17:00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미술연구센터 패널: 이건용, 성능경, 윤진섭, 류한승 1. 류한승(이하 류): 선생님들께서 특별히 퍼포먼스(이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건용(이하 이): 사실 70년대라고 하면, 사회상으로나 정치체제라든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꼭 예술가만이 아니라, 제가 미술학원을 하던 곳이 4층이었는데, 1층 구둣방 주인도 예술이 무엇인가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웃음) 어느 날 이 친구가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올라왔어요. 중국집에서 만날 때가 많았는데, 나는 자장면을 먹는데 그 친구는 좋은 음식을 먹어서 나를 화가라고 우습게 봤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원장님, 원장님! 피카소가 공산주의자입니까? 하면서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왜 그러냐? 너는 구두나 잘 팔면 되지, 피카소가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알아서 뭐하냐? 그랬더니, 나 끌려가서 혼나고 오는 겁니다. 그래서 왜 혼났냐? 너는 구두나 팔면 되지. 그랬더니 피카소가 공산주의자라면서요? 하더라고. 생각해보니 양화점 이름이 피카소 양화점 이에요. 이렇게 양화점 주인도 피카소를 생각할 정도로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여튼 분위기가 그렇게 으스스했다는 정도만 얘기하고 그치겠습니다. 성능경(이하 성): 퍼포먼스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는 없고요. 좀 으스스하고 스산했던 그 당시에 내가 할 일이 뭔가를 생각해보니까 신문을 오리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신문을 오렸는데요. 그게 제 퍼포먼스의 시초가 된 것 같습니다. 류: 윤진섭 선생님은 이건용 선생님을 만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저는 다행히 두 분 선배님들을 만나서 아주 즐겁게 지낸 것 같습니다. 만남의 일화가 있죠. 제가 75년도에 1년을 쉬고 다시 대학을 들어갔어요. 지금 파리에 여행가시면 윤제명이라는 초창기 관광회사를 운영하던 전설적인 사람 얘기를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둘이 모래내 독신자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윤약국 2층에 세를 얻어 화실을 냈어요. 하루는 이 친구가 자기가 다니던 동양미술학원 은사님이신 이건용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벤트를 하는데 자기가 보조요원이라 거길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대신 가르쳤죠. 가서 뭐했냐 그랬더니 따귀만 신나게 맞고 왔다고 해요. 따귀 맞는 역할이라 따귀만 맞아서 얼얼하다면서 돌아왔어요. 1) 한번은 이대 밑 대흥극장 맞은편에 있던 동양미술학원으로 윤제명을 찾으러 갔는데,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었더니 마침 이 선생님이 딱 앉아계신 거예요. 그래서 윤제명 있습니까? 난 도판 1. 포-주황, 녹, 청, 1974, 천에 유채, cm, cm, cm 굉장히 수줍었고 숫기도 없었어요. 없다 그래요. 그래서 그냥 뚜벅뚜벅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이건용 선생님이 윤제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데 우리 화실을 좀 쓰겠다고 하셔서 그러시라고 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이건용 선생님 전시를 보면 천 그림이 있습니다. 빨강, 주황색 천이 있는 그 작품입니다.(도판 1) 그 작품을 제작할 때 고등학교 3학년 정도 된 학생 한 명을 조수로 데리고 오셨어요. 그 학생의 역할은 수동으로 펌프질을 해서 스프레이가 분사되게끔 하는 것이에요. 그것을 들게 해놓고 제작하시는 걸 제가 봤어요. 주름을 천 위에다 하얗게 칠해놓으니까 딱 펴면 그게 주름, 시각적 일루전이 보이게끔 흰색 물감으로 조작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선생님 작업이 뭐냐?, 이벤트라고 한다, 그래서 이벤트가 뭐냐?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벤트는 이벤트인데 로지컬(logical) 이벤트다, logical 이 논리적이라는 뜻인데, 이벤트가 논리적인 건 또 뭐냐? 펌프질 하다보니 점심 때가 되어서 저도 중국집에 따라 갔어요. 중국집 회벽에 의자를 이렇게 하니까 긁히잖아요. 그걸 설명하시는 거예요. 왜 논리적이냐?, 의자 때문에 벽이 긁혔으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벽에 의자가 부딪혀서 긁혀진 것이다. 아래만 이렇게 긁혀 있고 위로는 없지 않냐? 이게 논리적 사건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는 별 논리적 윤진섭(이하 윤): 인연이라는 게 중요하죠. 백남준 선생님도 오늘이 있기까지는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와 존 케이지(John Cage)가 있었어요. 여러분들도 각자 인생을 살아오면서 1) 이때 이건용이 행한 이벤트는 1975년 10월 6일 ST 4회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표된 <5번의 만남>으로 추정된다. 15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55
79 사건이 다 있네 하고 생각했지만 숫기가 없어서 뭐라고 얘기도 못했어요. 그런데 상상력도 없고 도대체가 밋밋한 거예요. 그때는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개념미술이 70년대 한창 유행을 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상상력이 뭐니 하면 굉장히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작품이 재미가 없지. 개념미술이니까요. 당시 홍대에 참고열람실이 건물 4층에 있었는데 개가식이라 누구나 빼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 책을 많이 봤죠. 그때 저희가 보는 책이라는 것이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아트 뉴스(Art News), 미술수첩( 美 術 手 帖 ), 미즈에(みづゑ) 이런 거예요. 그걸 보니 개념적인 미술 경향, 미니멀리즘, 이런 것이 계속 소개되는 거예요. 일본 미술수첩 에는 스가 기시오( 菅 木 志 雄 ), 이우환, 세키네 노부오( 關 根 神 夫 ) 이런 모노하 작가들이 빈번하게 나왔습니다. 그때 유행한 거예요. 아트 뉴스 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잘 안 봤고. 미술수첩 이나 아트 인 아메리카, 아트 포럼(Art Forum) 이 굉장히 최신 정보를 줬는데,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등의 작품이 많이 나오는 분위기였습니다. 개념미술이 굉장히 유행해서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개념미술이었어요. 2. 류: 그 당시에 이벤트를 하실 때 어떻게 준비를 하셨고, 동료 작가들에게 어떻게 보여주셨나요? 또 서로 대화와 피드백도 있었나요? 이: 70년대는 세계적으로 미술을 매체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그런 관점을 가졌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사상적, 미학적 측면의 텍스트가 구체적으로 ST를 통해서 나옵니다. 69년도에 이일 선생님이 정릉에 사실 때 ST에서 이우환 씨의 만남의 현상학 서설 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번역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때는 복사하는 기계가 없고 인쇄기밖에 없었는데 인쇄기는 비싸고 등사기가 있었어요. 가리방을 긁어가지고 그것을 복사해서 쓰는 그런 텍스트죠. 그래서 만남의 현상학 서설 을 가지고 69년도에 ST회원들이 정릉 이일 선생님 댁에서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70년대 초에는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의 철학 이후의 미술(Art after Philosophy) 을 텍스트로 해서 좌담도 하고 그랬습니다. 특히 74년에 ST전을 명동화랑에서 열려고 했는데 그때 유준상 선생님한테 그걸 드렸어요. 그것도 가리방을 통해서 나온 텍스트죠. 우리는 전시 3주 전에 드렸는데 1주가 지난 다음에 전화가 왔어요. 나 이거 못한다, 아니 평론가이신데 그걸 왜 못합니까? 이일 선생님이 사회를 보고 우리 ST멤버들하고 그룹전 오프닝 때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하려고 그랬는데 분석철학이 골치 아파서 못하겠다는 거예요. 우리 ST멤버들 전부 다 웃었죠. 유준상 선생님이 무식했다는 게 아니라 사실 그 텍스트 자체가 골치 아픈 겁니다. 왜냐하면 분석철학 이론들이 전부 짜깁기되어 있어요. 장화진 선생이 그때 그걸 번역했거든요. 같이 서강대학교 철학교수를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어느 철학과 나오신 분들입니까? 그러더라고. 우리가 미술을 한다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미술하고 언어학하고 어떤 관련이 있냐? 그래서 우리가 얘기를 하니까 놀라는 거예요. 아 현대미술이 대단하구나. 70년대 중반 이후 나카하라 유스케( 中 原 佑 介 )가 쓴 개념미술 이라는 일본어 책이 있었습니다. 최일재 선생이 그걸 번역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 영어 텍스트를 번역하고, 불어로 된 것이 있으면 또 그렇게 하고. 일어로 된 것은 이일 선생님한테 부탁하고. 그런 식으로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구체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공부했고, 또 그것을 한 장소에 모여서 우리끼리만 한 것이 아니라 항상 공개적으로 했어요. 거기에는 공장 사장님도 오셨고 미술교사도 왔고, 우리 ST전에 성찬경 선생님을 대표로 해서 여러 당대의 시인들이 왔고, 박완서 소설가도 오고, 어떨 때는 스님도 왔고, 특히 고등학교 애들이 많이 왔습니다. ST 오프닝 사진들을 보면 고등학생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정도로 문화에 대한 어떤 내적 욕구가 있었어요. 오늘날 고등학생들이 입시공부하느라고 전위예술하는 곳에 오겠어요? 그렇게 문화에 대한 욕구가, 그리움이 중고등학교 애들 속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배재중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논리학 시간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고등학교에 갔어요. 제가 졸업한지 50주년이 된 해입니다. 가서 제 작품도 기증했지만, 먼저 교장실에 들어가서 고등학교 1학년에 논리학 시간이 있습니까? 그것부터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전부 다 어리둥절해하는 거야. 같이 갔던 친구들도 야 인마 그거 왜 물어봐? 이러는 거예요. 나는 논리학 시간을 통해 서양의 철학을 공부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에 미쳐있었고, 또 촘스키(Noam Chomsky),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어요. 60년대, 70년대에는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갓 쓴 사람들이 3~4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갓 쓰고 지나가는데 아저씨! 장자의 재물론( 齎 物 論 )에 나오는 도추( 道 樞 ) 라는 개념이 뭡니까? 그러면 어? 놀래가지고. 왜냐하면 근대화를 위해서 우리의 동양사상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다 제거해버려야 했고 갓 쓴 자기도 살아야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중학교 2학년 녀석이 그 질문을 하니까 내가 이놈을 데려다가 제자로 삼아야겠구나 하고 끌고 가서 밤새도록 얘기를 해서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어머니한테 혼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그 얘기는 성능경이랑 나는 이미 노자, 장자, 즉 무위자연의 철학을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또는 중학교, 초등학교 때 이미 다 터득하고 있었다는 거죠. 서양의 철학사상이나 새로운 조류는 또 그 나름대로 배워서 알고 있었고. 그러니까 동서양을 다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공민시간이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서 제일 핵심은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거예요.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을 다 배웠어요.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간을 단축해서 근대화를 빨리 이룩하고 발전하기 위해 독재적인 체제를 사용했는데, 항상 우민정책을 써서 국민을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하다못해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다 그러면 고등학생 녀석이 까만 교복 입고 등사기에다 주장하는 것을 써서 명동 거리에서 나눠주고 그걸 주장을 하고 그랬어요. 4.19때 죽다 살아났고. 그후 76년도 군사정권 시절에는 안기부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구둣발로 무릎을 밟혀서 내가 10년 동안 고생을 했고. 그러나 그것은 그때 같이 겪어야 했던 우리의 불행한 과거이자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 그걸 억울하게 15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57
80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73년도 파리 비엔날레에 참석하려고 오를리 공항에 내렸는데. 고아 둘을 북구라파 오슬로, 스톡홀름에 데려다주고 도착한 것이 밤 11시 반이었어요. 나가려고 밖을 보니까 깜깜해요. 난 길을 모르는데 통행금지는 점점 가까워지고. 이국에서 내가 큰일을 해야 하는데 도판 2. 지각의 오차 , 1971~2014, 나무상자, 가변크기 통행금지 때문에 다른 나라에 와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 온몸에 마비현상이 와서 내 몸을 막 두들겨서 몸을 풀고 그랬어요. 그런데 12시 가까이 되니까 프랑스 청년이 자기 가족을 데리고 들어오더라고요. 밑으로 가더니 얼굴 닦고 이 닦고 긴 의자에 누워서 잠을 자요. 아, 여긴 통행금지가 없구나, 체제라는 건 그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우리가 현재 자본에 완전히 매도당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데, 자본이 우리의 신체와 패션, 우리의 사유와 생각, 이 모든 것들을 뒤덮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는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던 겁니다. 그게 사무쳐서 그걸 빼놓고 얘기가 될까봐 하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그림만 보고 외부를 따라간 게 아니라는 것. 우리가 텍스트를 먼저 번역해서 그것을 토론하고 그 근거가 되는 철학들을 연구했어요. 지각의 오차 라는 작품이 있잖아요.(도판 2) 70년대 초에 내가 발상했던 건데 그것은 현상학을 더 깊이 있게, 메를로퐁티를 연구하면서, 지각이라는 것도 오차가 생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러면서 내가 내 텍스트 옆에다가 드로잉했던 것을 칠한 겁니다. 우리는 그때 평론가들한테 불만이 많았습니다. 나는 이런 걸 가지고 작품을 했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입 다물래요. 이미 알고 있대. 어떻게 압니까?,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얘기를 하는 거지, 말로 하는 게 아니야, 평론가는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십시오, 야, 왜 사진기를 가지고 다녀? 그거는 사진사가 찍는 거지, 아닙니다. 본인이 찍어야 됩니다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자기가 찍어서 오밤중에라도 슬라이드로 만들어서 그걸 비춰보고 다시 한번 복습하고 연구해야 됩니다 내가 대응논리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그랬어요. 일본의 미네무라( 峯 村 敏 明 ) 상만 해도 자기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한 움큼 찍어요. 그걸 왜 찍냐?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런 질문 왜 하냐? 그래요. 그게 보통이에요. 사진기 안 가지고 다니시죠? (웃음) 만약 우리가 70년대부터 얘기하고 떠들었던 것을 당대의 평론가들이 전부 다 메모해놨으면 지적으로 얼마나 축적이 됐겠습니까? 하다못해 당대의 예술가들이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자꾸만 보고 그렇게 했어도 그 오역이 엄청난 우리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역이라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물론 서로 영향도 받지만. 그런데 당시 평론가들은 불어를 아는 사람은 불어로 이미 책을 봤고, 일어는 일어로 봤고, 영어는 영어로 다 봤는데, 너희들은 그거 흉내 내는 거니까, 내가 이 콘텍스트를 보고 들어가니까 입 다물어라 이거야. 그 이상 들을 얘기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3. 류: 성능경 선생님이 보셨던 그 당시 미술계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 제가 좀 군대를 늦게 갔어요. 70년에 가서 73년에 제대를 했어요. 만 3년을 군대생활을 하는데 71년인가? 신문을 보니까 이상한 사진이 하나 실렸어요. 그게 무슨 사진인가 하니 옛날에 연탄난로를 떼면 철망이 있죠? 그 철망같이 생긴 데에다가 흰 천을 뒤집어 씌워놓고 신체항 이라나, 관계항 이라나 이상한 명제를 달아놓은 거예요. 그게 이건용 작업이에요. 사람이 군대 가서 열나게 국가에 충성하고 있는데 관계항이 사람을 스트레스 주잖아요. 관계항이 뭔지 정말 몰랐어요. 그렇게 무식했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완전히 바보가 됐는데, 이건용 씨는 이미 근접할 수 없는 화단의 스타가 돼있었어요. H대라는 데가 인원수도 많고 해서 좀 혼잡스러워요. H대를 들어가서 졸업할 때가 되면, 같이 입학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교수급이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1학년 수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까 이 선생은 교수급, 나는 어떻게 얘기할 재간이 없는 거예요. 이건용이 신체항, 관계항 얘기를 하고, 만남의 현상학 서설 을 주고 공부하라 그러고, 조셉 코수스의 철학 이후의 미술 을 공부하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그게 머릿속에 들어오겠습니까? 하여튼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줬어요. 그 스트레스, 말하자면 콤플렉스죠. 그 콤플렉스가 평생 간 거예요. 그 콤플렉스에서 헤어나보자고 에너지를 투입한 걸 계산하면 아마 엄청날 거예요. 그 에너지를 다른 데 썼으면 굉장히 생산적이었을 텐데 (웃음) 그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썼어요. 그래서 제가 마흔이 넘어서 그림을 포기하자. 미술로서의 내 인생은 끝났다 그랬어요. 그 콤플렉스를 넘어설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통도 오고 가슴속에 항상 돌멩이가 꽉 차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거예요.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줬어요. 그런데 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잖아요. 그때 돌멩이가 사라진 거예요. 가슴에서 돌멩이가 정말 없어졌구나 했는데 여전히 돌멩이 같은 게 또 하나 있는 거예요. (웃음) 그러니까 돌멩이가 두 개가 있었던 거야. 하나는 박 씨가 돌아가서 빠졌는데 하나가 무엇인지 규명을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마흔 한 살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약간 공황장애 증세 같은 게 왔었어요. 그때 아, 돌멩이가 그거로구나. 그러니까 미술에서 내 인생은 끝났구나. 내 인생은 이걸로 끝이다. 말하자면 절망감 같은 것이 나를 괴롭혔는데, 그때 아프면서 그걸 그냥 던져버렸어요. 포기하자, 화가고 예술가고 난 다 필요 없다. 난 내가 사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고 나니까 돌멩이가 사라져서 이날 이때까지 도판 3.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왼쪽부터 류한승, 성능경, 이건용, 윤진섭 15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59
81 그냥 열심히 잘 살고 있고요. 어쨌든 그 원인은 이 사람이에요. (웃음) 그 당시의 이건용은 정말 해박하고 명석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서 상의를 하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주는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또 하나 스트레스 준 게 있었어요. 제대를 하고 나니 입체미술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또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는 거예요. 입체미술이 도대체 뭔지 알 재간이 없었어요. 그 출처가 어디고 그걸 왜 우리가 해야 되는지. 입체미술 같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 그 당시 제대하고 나니까 입체미술이 최전성기에서 약간 수그러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역사하는 분들이 글을 잘 쓰셔야겠지만, 입체미술이 약간 수그러들기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허연 미술들이 벽에 걸리기 시작하던 시기가 73년 전후가 아닌가.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이 스트레스를 주는 거죠. 그런데 이건용 선생은 우리에게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를 조금 제공해주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느낌을 조금 받았습니다. 이건용 선생이 다른 사람에 비해 스타가 될 수 있었고 또 해결사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 그 당시에 이 선생이 가지고 있었던 감성 같은 것, 그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4. 류: 오늘 저는 이론가 윤진섭 선생님이 아니라 퍼포먼스를 하셨던 윤진섭 선생님이 궁금하거든요. 그런데 이미 이건용 선생님, 성능경 선생님은 그 당시에 퍼포먼스를 많이 하셨습니다. 윤진섭 선생님은 나이도 많이 어리시고 신입으로서 선배 작가들과 차별성이 있으셔야 했을 것 같은데, 어떤 생각과 전략으로 퍼포먼스를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윤: 아까 얘기를 좀 하다가 중단했는데 이어서 말씀드릴게요. 제가 76년도에 매개항 이라고 얼음을 끈으로 묶어서 얼음이 녹는 과정을 사진으로 5~6장 정도 찍어서 시리즈로 했어요. 그것을 작업실에서 성능경 선생님이 찍어주셨어요. 그 일화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대개 그렇듯 저도 과학적인 사고가 안돼요. 얼음가게에서 엄청 큰 얼음을 사다가 홍대 교정 앞에 유리로 돼있는 맨홀에다 녹이려고 했는데, 여름인데도 이게 안 녹는 거예요. 며칠을 해야 완전히 얼음이 증발되고 물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건용 선생님이 멘토시니까 가서 보여드렸더니 이게 아니래요. 얼음이 녹는 것을 개념적으로 보여줘야 되는데 왜 맨홀에다가 그걸 올려놔서 분산시키느냐는 거예요. 그런 데로 시선이 쏠리면 안 된다는 거야. 맞는 얘기 같았어요. 성능경 선생님이 학생들 가르치는 녹번동 작업실에 가서 머리를 썼죠. 작은 얼음을 사서 구두끈으로 가운데를 딱 묶었어요. 여기 발표된 게 그 얼음인데 이것도 안 녹는 거예요. 그래서 둘이 서로 돌려가면서 얼음을 시멘트 바닥에다 갈고 별 쇼를 다하면서 찍었어요. 그래서 76년도 한국미술대상전 에 입선이 되었죠. 성: 그게 공모전에 사진으로 입선된 최초에요. 윤: 이건용 선생님도 천 작업을 같이 내러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접수하러 갔어요. 선생님은 너무 전위적이라 떨어지고 나는 그 사진 작품이 입선된 거예요. 평생 처음으로 대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에 제 이름이 나왔어요. 그리고 나서 다음에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저도 노자, 장자 많이 읽었어요. 그때 서광사라는 출판사에서 사진본으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어요.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가 제목이고 독일어, 영어로 돼있었는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리고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 가 도서관에 독일어와 영어 원서로 있었어요. 그때 대출기간이 한 달이니까 넣었다가 다시 꺼내고, 넣었다가 다시 꺼내고. 그걸 복사할 생각도 못하고 한 2년간을 넣었다가 뺐다가 그렇게 봤습니다. 홍대 도서관에 지금도 있다면 아카이브로 삼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용 선생님하고 맨날 작업 구상을 했습니다. 그때 이건용 선생님은 파리 비엔날레에 갔다 오셔서 신체항 으로 스타작가였습니다. 함께 이벤트를 하자고 해서 한 것이 노란 구두 입니다.(도판 4) 그러니까 노란색이에요. 노란 서류봉투, 비닐봉투에다가 노란 국화꽃, 노란 자갈, 노란 크레용, 노란 고무줄, 노란 색지. 전부 노란색이잖아요. 국화 꽃잎을 따고 한참 조작을 합니다. 흰 자갈에 노란 크레용을 칠하고, 또 그걸 노란 고무줄로 감고 뭐 이런 걸 보여주다가 다시 서류봉투 속에 닫히도록. 그러고서 나중에 매직으로 겉봉에 신촌을 지나가는 여자의 구두색이다. 이렇게 쓴 거예요. 왜 신촌을 지나는 여자의 구두색이냐? 노란색을 노랗다고 해야 노란색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이게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불립문자. 지금쯤 신촌을 지나가는 어떤 여자가 신은 구두색. 노란색이라고 쓴 게 아니라 구두색이라는 말이에요. 가상의 어떤 구두색. 그게 노란색이다. 그때 굉장히 개념적으로 노장사상을 도서관에서 읽었으니까. 그런데 왜 도서관에 가게 됐나?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 앞에만 앉으면 그렇게 졸리고 하품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보기 시작했고 선배님들 만나면 맨날 이론, 철학 얘기만 하니까. 그때 이건용 선생님 작업실 겸 미술학원에 갔더니 책꽂이에 노암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의 이론(Syntactic Structures) 이 있었어요. 그 책을 내가 갖고 있던 아트 인 아메리카 최신호랑 바꿔서 뜻도 모르고 봤어요. 졸업논문 제목이 무엇에 대한 언어철학적 고찰이었어요. 미대생이 이런 내용을 쓴 거예요. 그랬더니 지도교수였던 하종현 선생님이 B학점을 주셨어요. 아니 미술 대학생이 왜 언어를? 그랬나 봐요. 얼마 전에 정리하다보니 그때 썼던 200자 원고지 원고가 딱 한 장 나온 게 있어요. 아까 그 얼음 녹는 작품이 매개항 이에요. 이론하시는 분들은 그런 걸 알아야 돼요. 왜 매개항이냐? 이게 다 모노하에서 오는 거예요. 관계항, 매개항. 이 항(term) 이라고 하는 것이 거기서 많이 넘어왔죠. 저도 보고 듣는 게 맨날 그런 거니까 멋 좀 낸다고 매개항 이라고 한 거예요. 그게 왜 매개항이냐? 도판 4. 윤진섭, 노란 구두, 1977년 9월 17일, 2인의 이벤트, 서울화랑 16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61
82 구두끈으로 묶어서 그런지 아무튼 매개항이야. (웃음) 제목들이 다 그렇습니다. 관계, relatum, 매개항. 김구림 선생님 작품 제목도 잘 보면 항 자 들어간 게 꽤 있어요. 그게 유행이었어요. 그리고 이벤트를 같이 하자고 해서 이건용 선생님하고 한 것이 2인의 이벤트 조용한 미소 입니다. 그렇게 제가 3개를 발표합니다. 2) (도판 5) ( 2인의 이벤트 (1977) 브로슈어를 가리키며) 돌과 반죽 이 여기서 출현하는데, 사실 조용한 미소 라는 제목은 이건용 선생님이 짓고, 저 위에 양 그림 글씨는 제가 한 거예요. 잘 썼죠? 근데 여기 이벤트에 N 자가 조금 이상하죠? 제가 왼손잡이라 가끔 개념이 없어서 N 자가 뒤집어졌어요. 잘 봐야 됩니다. 아까도 성능경 선생님이 말했듯이 이건용 선생님이 스타였는데, 경력 하나도 없는 무명의 작가, 경력이 76년의 매개항 밖에 없었는데, 요거 하나 달랑 만들고 제가 3개를 발표하죠. 같은 해에 ST전이 지금의 조계사 맞은편에 있던 견지화랑에서 열립니다. 그때 당시에는 시설이 아주 좋은 화랑에 속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나라 화랑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김문호 사장님이 명동화랑을 했는데 골동품에도 손을 대셨고, 이분이 현대적인 작품 전시회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사업이 도산해서 견지화랑에 들어갔어요. 자수 인간문화재이신 한상수 선생이 자본을 좀 댔어요. 그래서 들어가는 입구에 자수 가게가 있었죠. 거기서 제가 서로가 사랑하는 우리들 이라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조그만 달구지를 만들어서 노란색을 칠하고 거기다가 색지, 자갈 이런 걸로 해서 나뭇가지로 집도 만들고. 그때 당시로는 굉장히 관객 참여적이고 놀이적인 성격의 퍼포먼스, 이벤트였죠. 그것이 두 분 선생님들의 것과 차별화되는 점이에요. 말하자면 제가 좀 신세대적인 감각을 더해준 거죠. 놀이, 관객참여 이런 걸 통해서 그런 게 기억이 납니다. 5. 류: 그리고 이건용 선생님과 함께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 김용민 선생님이신데요. 김용민 선생님 작업, 이벤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우리 동기 삼총사가 성능경, 김용민, 이건용이었어요.(도판 6) 김용민 씨는 나중에 시골 고등학교 미술교사를 했었는데 이벤트로 장학관 수업을 할 정도로 아주 열정적이었던 사람입니다. 아버님은 굉장한 불교 이론가였고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상당히 내성적이고, 2) 윤진섭은 2인의 이벤트 에서 <노란 구두>, <종이와 물>, <돌과 반죽>을 발표하였다. 도판 5. 윤진섭, 이건용, 2인의 이벤트 초대장, 1977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도판 6. 왼쪽 사진: 왼쪽부터 이건용, 김용민, 성능경 불어도 영어도 참 잘했던 사람입니다. 작품도 상당히 깊이가 있었어요. 한때는 강남에서 학원도 했어요. 착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거느리고 했었는데 운영상 갈등이 있었나 봐요.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주장했지만, 김용민 씨는 이익이 떨어져도 그만이고 안 떨어져도 그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심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떨 때는 본인이 컴퍼스로 원을 가지고 뭘 했는데, 내가 원 작업을 하면 와서 야, 내가 먼저 원 작업을 했는데 왜 하느냐? 그렇게 물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젊은 작가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ST때 아이디어를 공유했습니다. 그래서 내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실현된 것을 내 작품이라고 절대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서 그 사람이 작품을 했을 때에는 끝까지 나는 그것을 지지하고 응원해요. 우리 선배도 내 아이디어를 가지고 조각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아까 매개항 이라는 말씀드렸는데, 예술은 소통하기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소통을 통해서 공유하고 시대를 같이 감지하고, 그리고 그것이 힘이 돼서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이 이 사회 안에 실존적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절대로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예술의 힘 이라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커다란 캔버스를 가져다가 운동장에 놓고 죽방망이에 물감을 묻혀서 예술의 힘을 봐라! 내가 근무하는 대학 마당에서 했는데 물리대나 이공대 교수들이 보고 저거 미친 교수 아니냐 하고. (웃음) 나와라! 나와라! 그래서 나온 젊은 사람들 몇 있고 나중에 많이 이해를 하고 그랬죠. 두들기면서 예술의 힘! 예술의 힘! 지금 현재도 예술의 힘은 약합니다. 이것이 정신적인 힘으로 사회를 물들일 수 있고, 한 시대를 물들여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CEO 회의나 CEO들이 몇 달에 한 번씩 성능경이나 이건용, 윤진섭을 불러서 같이 한 시간씩 놀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 기업이 커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위는 삼성맨인데 나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습니다. 야, 너네 CEO들은 나를 세 달에 한 번씩은 꼭 불러서 한 시간 동안 나하고 놀아야 한다. 그럼 회사가 달라진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출발했던 시대, 앵포르멜이 수그러들고 옵아트, 팝아트가 나오고, 끊임없이 팝아트에 대해서 내가 이해하려고 해도 당대에는 주간지가 나왔을 정도지, 공장이 가동되고 대중적인 16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63
83 매스미디어가 부재했던 시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팝아트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매스미디어, 대량생산품들이 사회전반을 물들여서 풍요롭고, 그것이 예술에 그대로 투입이 되고 그런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제4집단 은 60년대 중반 이후로 끊임없이 당국에 의해서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김구림 씨는 장자의 체제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국전이라든가 그 당대의 문화에 대해서 비판하고 장례를 지내야 된다며 관을 들고 지나다니다가 교통위반으로 끌려들어가고 그랬던 시절입니다. 제4문화 가 위축되고 70년대 이건용이 이벤트 로지컬 을 가지고 나오기까지 행위예술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그것은 당국에 의해서 그렇게 됐고요. 저는 75년도에 이리 오너라, 내가 보이느냐 라는 체제 비판적인 퍼포먼스를 했었는데, 그해 12월에 국립현대미술관이 해프닝 이벤트는 사이비 전위예술로 당 관에서는 발표할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아무개 라고 정식으로 공문을 보냈어요. 지금 같았으면 그걸 복사해서 원본을 내가 보관하고 복사본을 젊은 작가들 앞에서 태웠어야 했는데 순진하게도 원본을 태워버렸어요. 부끄러워서 태워버렸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말은 항상 앞뒤가 틀리고, 저녁 6시가 넘어 해가 질 무렵이면 골목마다 싸우는 사람 투성이었어요. 2~3초만 상대방을 쳐다봐도 뭘 꼬나봐? 이러면서 싸움이 나는 거예요. 뭐든지 논리적이지 않고 말한 대로 실행되지도 않고, 항상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분노가 있었고, 아까 돌덩어리가 들어 있었다고 그랬는데, 분노가 활활 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읽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논리논고 라는 책 후반부를 보면 말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침묵하라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그것은 온전하지 않은 언어입니다. 비엔나 학파에서는 인공언어까지 만들라고 했었고, 카르납(Rudolf Carnap)은 그렇게까지는 안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당대의 형이상학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 언어폭력적인 것, 이념을 하나 설정해서 논리적이지도 않은 걸 전개시키라고 하는, 아주 골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철학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현실이 그랬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그 말에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또 메를로퐁티가 현실에 대해서, 장( 場 )과 실체에 대해 얘기한 것, 그것은 철학이 당대의 현실 안에 들어가 인식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지각을 통해서 혹은 직접 만나는 메시지를 통해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열광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서울신학대학 학장도 하셨던 신학자 윤성범 선생이 기독교의 토착화에 대해서 논문을 발표한다고 하면 그 현장에 가있었어요. 토착화라는 문제 때문에. 그땐 주체성을 하도 많이 얘기하고 우리 것이 아닌 것을 거부하고, 또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근대화를 일으켜서 물질을 부강하게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던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들이 저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신학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 현장에 앉아있었어요. 우리 아버님이 목사인데 왔다가 고등학교에서 수업 듣고 있을 놈이 거기 앉아있는 걸 보고 놀란 거예요. 그래서 야 빡빡머리, 네가 왜 여기 와 있냐?,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하긴, 빨리 학교가라, 저는 이 토착화라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을 믿었고 이 내용을 확실하게 아는데, 샤머니즘이 장성하고 유교가 장성한 이 한국사회 속에 어떻게 토착화 됐는가? 저의 과제 아닙니까?, 어? 넌 그렇게 생각하냐? 그래 그럼 가서 다시 들어라 그 정도였어요. 나는 논리에 포로가 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속한 당대 사회가 그걸 벗어나서 항상 끊임없이 속이고 도판 7. 세미나 이건용의 이벤트 에서 손의 논리 1 을 시연하고 있는 이건용 있기 때문에, 그걸 잠시 하나의 수단으로, 내 무기로 썼던 것에 불과합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쟤 논리주의자다 그러는데, 천만에요. ( 손의 논리 1 을 시연)(도판 7) 어떤 사람이 이걸 보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대요. 그래요? 그럼 공유합시다. 내가 방금 보여준 그 퍼포먼스가 왜 감동을 줬습니까? 불교이론, 부처의 이야기, 동양의 철학 얘기 같은 나도 모르는 얘기를 한참하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그래요. 그것은 당신 것이니까 고이 간직하고 가지고 가세요. 그건 뭡니까? 보세요. 저는 예술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통해서 소통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소통하려면 방법론을 아셔야 합니다. 자 엄지손가락이 멀어졌습니다. 서로 부딪히면서. 네 개의 손이 구부러짐으로써 가까워졌습니다. 손을 있는 대로 폈습니다. 엄지손가락 하나를 구부립니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겁니다. 전시장에 삼각형으로 나무를 서로 연결시켜준 작품이 있습니다.(도판 8) 70년대에 국론이 엄청나게 분열되고 이익집단들에 의해서 모나고 있었을 때에요. 꼭 그것 때문이라기보다 저는 예술, 퍼포먼스라는 수단을 통해서 한 사인을 보내고 싶었던 거예요. 누가 물어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심전심이 강하기 때문에 묻는 사람이 없고, 평론가는 물어주지도 않는데 오직 그 한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감동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어마어마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바로 그겁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최근에 머리가 무지하게 복잡하고 골치가 아프고 그랬는데 머리가 시원해졌다 그래요.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철학입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도 후기에 가게 되면 그걸 인정합니다. 서울화랑에서 2인의 이벤트 가 있었는데, 어떤 친구들은 야 이건용이 왜 저런 애송이하고 둘이만 퍼포먼스를 하냐. 저거 보기 싫어죽겠다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윤진섭의 퍼포먼스를 감동적으로 보고 있었어요. 이대입구를 지나가는 여인의 구두 색깔, 노란 구두 색깔이라는 말. 이 말은 사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형이상학이 있는 게 아니라, 걸어가고 있는 그 노란색이 쓰이고 있는 그 현장의 언어.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용법을 가져다가 나중에 많이 얘기하고, 그 다음에 촘스키의 변형용법 등 이런 게 나오게 되는데, 그걸 유연하게 20대의 윤진섭이 멋있게 하는 거야. 이 친구가 16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65
84 도판 8. 이건용, 배려 , 1978~2014, 나무상자, 나뭇가지, 끈, 가변 크기 20대에도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그런 가난한 시대에 우리 멤버 중에 유일하게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던 건 성능경! 그래서 기록을 많이 해줬어요. 그 외에 사진으로 도와줬던 사람이 김장섭, 이완호. 이완호는 들여다보고 찍는 아주 멋있고 고급스러운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가 오늘날 사진기 가지고 자랑하고 사진기에 대해 얘기한다고 하면, 말하자면 다 입을 가지고 있는데 입 가지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 시대였어요. 성: 김용민 선생이 당시에 어떤 작업을 했었는지 연도와 관계없이 제가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퍼포먼스로는 물걸레 가 있습니다. 물걸레를 하나 가지고 나와서 걸레를 짜고 그 짠 걸레로 바닥을 훔치고 다시 걸레를 짜고 다시 바닥을 훔치고 하는 행위의 반복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당시에 한참 유행했었던 동양적인 노자, 장자의 사유법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요. 그 다음에 생각나는 게 광목천을 약 30 30cm 정도 잘라서 한 3,000장 정도 쌓아놓고 거기다가 다리미를 올려놓게 됩니다. 그렇게 다리미의 열에 의해서 광목천이 타들어가는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겁니다. 전시할 때는 그걸 재봉질해서 그 당시에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데,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다 닿는 (사진을 찍어서 보니까 폭이 좀 넓은데도 폭은 좁게 나오고 높이가 높게 나오는 그런 사진 오류도 있었지만) 굉장히 큰 작업이었고요. 3) 윤진섭 선생도 당시에 색실 같은 것을 썼습니다. 그때 견지화랑에서 색실로 퍼포먼스를 했었는데요. 김용민도 코발트 블루 안료를 사서 사방 2 2m정도로 한 10cm 정도 높이로 깔아놓는 작업을 한다든지, 4) 대장간에 가서 못을 펴서 못으로 박아놓는다든지 상당히 많은데요. 나는 애기로만 들었는데, 상파울루 비엔날레 나가서는 꽃을 엄청나게 사다가 꽃으로 염료를 발라나가는 작업. 그러니까 꽃의 염료가 하얀 벽에 묻어나가는 그런 작업도 했었고, 또 울타리 라는 작업이 있어요. 5) 그 당시에는 건축 비계가 소나무 기둥이었어요. 한 10m 정도 되는 비계를 연결해서 건축을 하고 그랬었죠. 그런데 그걸 사다가 무작위로 막 잘라서 위를 맞추는 겁니다. 위를 맞추고 아래가 뻥 뚫려있으면 짧은 것도 있고 제일 긴 것만 닿고 나머지는 3) 이 작품은 ST 3회전 (1974) 혹은 ST 4회전 (1975)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추정된다. 4) 이 작품은 1977년 10월 29일 ST 6회전 에서 발표된 이벤트 <무제>로 추정된다. 5) 이 작품은 1976년 7월 3일부터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4회 앙데팡당전 에 출품된 <울타리>로 추정된다. 공중에 붕 뜨게 되죠. 그것을 벽돌로 괴어놓는 작업. 또 시골에 있는 툇마루를 연출하는 작업 등 상당히 많아요.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 반드시 미술사에 한번은 꼭 재조명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한테 스트레스를 줬던 사람이 이 사람하고 그 사람입니다. (웃음) 나한테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 탈출구, 비상구 역할을 해준 사람이라고 저는 김용민과 이건용을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술사를 하시는 여러분들이 그런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병행한다면, 우리 자신이 무명으로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무명으로 돌아가도 괜찮지만 우리 미술사는 좀 빛을 내야죠. 이: 그 사람 외에 나랑 동갑인 성종기도 중간에 사라졌어요. 그 사람은 화학풀을 이용해서 마치 낙엽처럼 얇은 천처럼 일부러 낙엽이랑 의자를 만들고, 소주병을 만드는 그런 작품을 했는데, 그 사람도 중간에 갑자기 화단에서 사라져버렸어요. 김용민 씨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병원을 왔다갔다하고 지금은 더 심해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80년대 초에 만나보려고 전화도 했는데 왜 만나는데?, 친구니까 만나지 왜 만나냐?, 이유 없이는 못 만나 할 정도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사실 개인사적인 것 같지만 시대가 만든 우울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저는 60년대 중반쯤 제4문화가 사라지고 그 다음에 나온 행위예술, 개념적인 경향들, 이런 것들이 세계미술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의 미술도 지금 젊은 작가들에게까지 감각이라든가 매체 등에 영향을 주고. 그리고 자본을 잉여로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 밑에 깔려있는 것은 상당히 개념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측면에서, 시대는 불행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그 당대를 지금 성능경이나 윤진섭이나 나나 만끽하고 지내온 것이 아닌가. 그리고 중요한 시기에 활동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류: 이제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6. 질문자: 이벤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난 것 서양미술사 흐름 안에서는 플럭서스 (Fluxus)의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거든요. 사실 퍼포먼스라는 용어는 훨씬 더 뒤에 많이 썼고 조지 마키우나스 같은 경우에 항상 이벤트라는 용어를 썼는데, 그 이벤트 안에는 우연성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두 가지 질문입니다. 하나는 당시 조지 마키우나스나 플럭서스에 대한 것들도 잘 알고 계셨는지, 그 정보를 공유하셨는지. 또 하나는 거기에서 말하는 이벤트는 훨씬 더 우연성이 강조된 것인데, 굳이 이건용 선생님이 logical 이라는 용어를 쓰신 것은 그걸 또 다시 역전시키려는 의도가 있어서 만들어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서로 어울리지 않는 logical과 이벤트를 붙여서 이벤트 로지컬 이란 용어를 쓰신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6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67
85 이: 이벤트라는 말은 존 케이지가 얘기했던 지금 하는 행위를 정확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얘기와 더불어 저한테 흥밋거리로 다가온 단어구요. 말씀하신 대로 이벤트라는 단어와 logic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상반된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 라는 말을 포스트모던에서 많이 쓰는데, 이벤트 로지컬 이라는 말은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모던을 훌쩍 뛰어넘는 언어입니다. 그 언어의 조합이 갖는 바를 이미 질문자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고, 또 그걸 충분히 알면서 질문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건용의 퍼포먼스가 우연이나 실수나 그외의 딴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 회화를 보면 과정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회화로서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을 거의 받지 않을 정도로 진행형으로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삶에서 뭔가 계획하고 구체적으로 그 계획을 실현하려고 했을 때 내가 전혀 그것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물며 인생이 그런데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사전에 어떤 개념과 관념을 가졌다 하더라도, 상당히 발생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힘이 있고, 발생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유일한 것이고, 발생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끝없이 다시 해야 될 이유가 있는 것이고, 발생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또 이야기하는 겁니다. 7. 질문자: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계속 (그때는 이벤트였지만 지금은 퍼포먼스 형태로 불리고 있는데요)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셔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퍼포먼스 형태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때와 다르게 지금 퍼포먼스 작가들이 가져야 할 소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실 그점을 참 얘기하고 싶었어요. 서양적 동양적이라는 구분, 지역적 구분, 또 인맥적 으로, 인종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저는 원칙적으로 싫어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벤트 로지컬은 아까 윤진섭 선생하고 했던 퍼포먼스 조용한 미소 처럼 아주 작은 것, 그러면서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 그것을 통해서 뭔가 더 깊이 사유하고 느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자 미디어나 기타 여러 가지를 사용해서 너무 스펙터클하게 공연하고, 때로는 엄청난 입장료까지 받아가면서 소개되는 퍼포먼스에는 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2012년도 여름에 타임스 스퀘어 앞에서 달팽이 걸음 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자꾸 설사하고 아픈 거예요. 40도가 될 정도로 체온이 막 올라가는데 거의 죽겠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사람을 살리느냐, 타임스 스퀘어 앞에서 정말 센세이셔널하게 백묵을 30m 그어서 퍼포먼스를 하느냐 생각하다가 생명이 중요하다. 나는 생명에 기생한 예술가다. 나는 자연에 기생한 예술가다. 나는 어느 한 군데 기생하는 예술가다. 나는 현상학에 기생한 예술가다. 나는 아내에게 기생한 예술가다. 나는 내 자식에게 기생한 예술가다. 나는 내 조국에 기생한 예술가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생한 예술가다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짐 싸가지고 나왔어요. 돈을 무지하게 들여서 나를 데려간 사람은 황당하고 기가 막혔겠죠. 앞으로 내가 퍼포먼스로 열망하고 있는 게 딱 하나 있는데, 인간이 완전하고 세상의 왕이라는 것에 대한 지독한 저항을 가지고 퍼포먼스하려고 해요. 그것은 막대기와 케이블을 가지고 하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물을 다 천장에다 올려서 받쳐놓고 그 사이에서 홀딱 벗고 일주일을 지내는 거예요. 거기서 밥을 먹고 용기를 갖다 놓고 오줌 싸고 똥 싸고. 그리고 인간이 완전하다는 것에 대한 끝없는 저항을 하고 싶어요.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서 저항하는 사람들, 정치적인 목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 그리고 단식하는 사람들. 난 참 싫어요.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지금 위기에 와있어요. 역사라는 것은 그냥 건너가는 게 없어요. 반드시 드러나게 돼있습니다. 지금 현재 본격적으로 자꾸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퍼포먼스를 하고 싶고, 또 한 가지는 의자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요. 본인들이 쓰는 의자를 가져오면 같이 사진 찍어주고, 그 사람의 이름을 뒤에다 붙여주고 거기다가 내가 사인을 하고. 내가 전시하는 근방의 업소들, 제주도 사람, 해외에 있는 동포, 의자 하나를 가지고 오기는 쉽죠. 승용차에 싣고만 오면 됩니다. 원래 김경운 학예사한테 그거 하고 싶다고 그랬는데, 학예사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본 결과 좀 자제하라고 해서 안했어요. 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가져온 의자 때문에 마비현상이 오길 바랐습니다. 그것은 참여예술입니다. 의자 하나로 참여해서 거기서 파생되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어요. 대충 이렇게 얘기하니까 저놈이 무슨 성향의 퍼포먼스를 원하고 있고 너무 스펙터클한 퍼포먼스를 싫어한다는 것을 아시겠죠? 성: 제가 질문 하나 할까요? 아까 분명히 완전에 대해 저항하는 마지막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단식하는 거는 싫다. 단식도 저항입니다. 그 말에 괴리가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 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물론 간디는 영국의 권력과 체제가 인도의 의식과 신체와 사회 전반을 지배해가는 것에 대해 무저항으로 저항했습니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오늘날 이 저항이 목적, 수단이 돼서 정치적이고 개인의 또는 어떤 집단의 이익을 위하기 전에, 자기 생활 속에서 뭐가 틀렸나 하는 것을 반성하시고.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한테 반성하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도 반성을 하고, 내가 그렇기 때문에 5공 때 두들겨 맞은 것에 대해서 하나도 분노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같이 산 것이고 실감나게 피부로 느끼면서 산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내 단식과 저항은 옳고 남의 것은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정치적 쇼로 시위를 하면서 맨날 이랬다저랬다 입장을 바꾸는 것, 난 그런 건 참 싫습니다. 16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69
86 8. 류: 윤진섭 선생님께서는 70년대에 이벤트를 하셨는데, 평론가로서 70년대 퍼포먼스가 그 이후 퍼포먼스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있단 말이에요.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다 는 표현을 하는데, 상당히 독특한 우리만의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잘 보존돼야 하고. 윤: 70년대의 이벤트는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60년대에도 마찬가지고요. 60년대에는 해프닝이라고 했죠. 우리나라에 해프닝이 도입된 것이 1967년. 그래서 제4집단 이 기성문화를 장례 지내자. 기성문화 장례식이 8월 15일에 사직공원에서 열렸거든요. 6) 이 시위에서 관과 백기를 들고 앞서가던 사람이 정강자, 김구림, 정찬승, 고호(연극배우), 손일광(디자이너). 그날 장례식 해프닝 때문에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끌려들어갔어요. 그후 4년간 해프닝은 횟수도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구요. 이벤트도 장석원 선생과의 4인전, 7) (도판 9) 그리고 나중에 제가 77년 가담하고 또 장경호 씨, 강용대 씨 등 몇 명 안 됩니다. 그러다 70년대 말에 이건용 선생님이 대전 목원대에 좀 계셨죠. 대구 현대미술제에서 이강소, 박현기, 황현욱 등 이런 분들이 하구요. 대구는 굉장히 현대미술이 발달한 도시였고, 섬유산업 때문에 돈이 많이 몰려있어서 컬렉터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퍼포먼스 또는 행위예술이라는 말이 쓰이면서 확산되기 시작하죠. 그때부터 각 장르의 퍼포먼스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협업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70년대가 어떤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냐 하면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 개념미술이 들어왔어요. 이벤트는 예술에 있어서 사변적인 지적 훈련이고 개념주의와 맞물려 있는 거예요. 70년대 이벤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해프닝이 그냥 발산하는 것이었다고 하면, 70년대에는 이건용 선생님하고 성능경 선생님, 다들 명상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런 독특한 걸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행위예술을 보면, 외국하고 다른 독특하게 우리다운 것이 있어요. 농담 삼아서 얘기를 좀 하자면, 해프닝을 다룬 영어책이 막 들어오는데 영어를 해석하고 이론적으로 책을 읽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죠. 그러다 보니 도판을 보고 이미지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해프닝이 이런 것이구나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해프닝도 그렇고 도판 9. 4인의 이벤트 포스터, 이벤트도 그렇고 굉장히 독자적인 데가 김용민, 성능경, 이건용, 장석원 참가, 1976년, 서울화랑 6) 제4집단은 1970년 8월 15일 11시 <기성문화의 장례식>을 사직공원에서 태평로까지 진행 7) 김용민, 성능경, 이건용, 장석원은 1976년 4월 4일 서울화랑에서 4인의 이벤트 를 개최 이: 이번 전시를 통해 뉴욕에서 온 분, 모노크롬 회화를 미국에서 전시하신 분, 또 영국에서 박사과정 중이신 분 등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한결 같은 얘기가 한국 현대미술 자료를 해외에서 얻기 힘들다는 겁니다. 제가 이미 김복영 선생을 통해서 많이 얘기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논리가 있어서, 그것이 영어로 번역이 될 때 해외 이론가나 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나 모든 이런 것들이 구조화가 돼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역사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가령 우리나라 평론가들이 쓴 글은 전부 자기들 개똥철학만 얘기하는 거예요. 제목만 가져다가 자기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해외에서 공부하려고 그런 걸 읽어봤자 이게 무슨 얘기인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외국어 실력이 있고, 또 외국어 실력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이것을 가져다 국제적으로 언어화시키고, 하루 빨리 보다 더 조리 있게 정보화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겠다는 걸 또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오늘 이상하게 얘기가 굉장히 잘 전개가 되어서 상당히 뿌듯합니다. 대충 토론 좀 하고 나면 기분이 나빠져서 며칠 동안 우울증에 빠지는데, 오늘은 현장에 대한 얘기가 됐다는 거예요. 뭐냐 하면 소 라는 것을 떠올리면 미술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이나 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가보지도 않았고 자기가 보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열망을 갖게 하는 접근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평론가들이 다 자기 개똥철학만 얘기했기 때문에 본인도 몇 년 지나서 읽어보면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고, 미술가도 모르고, 했던 놈도, 알려는 놈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 역사적이고 현상적으로 기술을 하고 그것에 쉽게 접근해서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이해되도록 쓰라는 말이에요. 그게 안 되어 있으니까 계속 책을 많이 만들고 번역해도 무슨 얘긴지 모른다는 거예요. 제가 여러 권 번역된 것을 가지고 나가서 알만한 외국 사람한테 빌려주고 좀 읽어보니까 어떠냐? 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요.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거예요. 성능경 퍼포먼스가 있다고 하면, 연구를 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써요. 포스트모던적인 무슨 이벤트였는데 어쩌고저쩌고 그 정도 얘기는 누가 못해? 구체적으로 성능경의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그걸 어떻게 했으며 뭣 때문에 그것이 중요한 지를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에 도판 10. 이건용의 이벤트 죄담회 기념 사진, 왼쪽부터 윤진섭, 이건용, 성능경 17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이건용의 이벤트 좌담회 171
87 얘기하는 것도 그거예요. 이건용의 이벤트를 수록하려면 그걸 사전에 어떻게 찍어야 되는지 콘티를 짜야 한다. 그리고 찍는 놈하고 나하고 대화를 시켜라. 내가 하는 행위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포인트를 알아야 찍을 거 아니냐? 내가 친구지만 성능경한테 신체드로잉 찍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되는지를 무지하게 얘기한 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우린 그게 없어요. 그래도 오늘은 이건용이 살았던 시대의 희미한 얘기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것처럼 들려줬기 때문에, 최소한 여기 온 분들은 나중에 나이가 들더라도, 내일이라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거야. 우리는 분위기가 없어요. 평론가가 아니라 큐레이터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화랑주가 만들어야 되고, 꾼들이 만들어야 되고 그런데 그런 게 없잖아요. 중간 단계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작가는 꼭대기에 앉아서 빼빼 말라가고 노랗게 황달 걸리고, 한국화단에 다른 패션이 등장하잖아요? 맥락도 없이 우르르 몰려가요. 류: 마지막에 좋은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계신 미술연구센터의 설립목적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그것들을 연구자 분들에게 제공해서 좋은 연구가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희 미술연구센터에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요. 저희가 특히 최근 4~5년 동안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것이 한국의 60년대 말, 70년대의 실험미술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선생님들을 더 괴롭히면서 자료를 좀 더 수집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귀중한 시간내주셔서 감사하고, 선생님들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와 칸딘스키 도서관 자료를 통해 1) 안 휘 경 코톨드 인스티튜드 오브 아트, 런던대학교 파리 비엔날레는 베니스, 상파울루와 함께 1960~70년대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국제적 무대였다. 참가자를 20~35세 작가로 제한한다는 규정 때문에 종종 청년 비엔날레 (Biennale des jeunes) 로 불리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청년 미술가의 올림픽, 전위 미술가의 올림픽 으로 알려지기도 한 파리 비엔날레가 1959년 프랑스 5공화국 문화부에 의해 창설된 것은 사실 청년과 젊음 을 홍보하여 전후 재건을 위한 민족주의 정책을 문화적으로 보완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동시에 프랑스는 뉴욕의 위협에 맞서 예술의 중심지 라는 위상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시각예술을 활용했다. 2) 따라서 동유럽과 공산주의 국가, 아프리카 국가 등을 초청했던 파리 비엔날레의 의도적인 국제성은 포괄적인 동시에 반(anti)-미국적인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건이 미국과 소련의 헤게모니에 직면한 드 골 (Charles de Gaulle)대통령이 제3의 전략(Third Way) 을 표방하며 1966년 프랑스의 NATO 탈퇴를 감행한 녹취 및 정리: 박지혜, 조은애 것이다. 3) 소설가이자 예술계 유명인사였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최초의 문화부 장관으로 선봉에 섰던 파리 비엔날레는 유럽과 미국에서 전후 냉전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폭넓은 탐색을 구현한 것이었다.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한 한국 작가들에 대한 이 논문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렌느(Rennes)에 위치한 예술비평 아카이브(Archives de la critique d art)의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와 파리 퐁피두센터의 칸딘스키 도서관(Bibliothèque Kandinsky)이 보유한 자료를 1) 이 글은 2014년 12월 4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 한국 작가들의 해외 비엔날레 활동: 1960년대 이후 파리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에서 발표된 것이다. 2) Richard Ivan Jobs, Riding the New Wave: Youth and the Rejuvenation of France after the Second World War,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7, p.24; Janine Mossuz-Lavau, André Malraux ministère: une nouvelle vision de la France, une idée certaine de la culture, in Ministère de la Culture, Les Affaires Culturelles au Temps d André Malraux, , Paris: La documentation Française, 1989, p.28. 3) Ton van der Eyden, Public Management of Society: Rediscovering French institutional engineering in the European context, vol.1, Amsterdam: Ios Pr Inc, 2003,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73
88 소개하는 것이다.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는 연도별, 국가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한국 전시 작가와 작품의 목록 및 사진, 그리고 미협과 문교부, 서울 주재 프랑스대사관과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 파리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등이 주고 받은 서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서신은 운송관련 업무부터 작가나 커미셔너 확인 편지까지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칸딘스키 도서관에는 파리 비엔날레와 관련된 보도자료가 소장돼 있다.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 관련된 다수의 자료는 개인 혹은 기관에서 도서관에 기증한 서류들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이외에도 칸딘스키 도서관은 당시 파리에서 활동했지만 비엔날레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남관과 이응노 같은 한국 작가 개인에 대한 자료도 보유하고 있다. 두 번째, 본 논문은 글로벌 시대가 시작되는 전후 시기 파리라는 무대에서 전시된 한국 미술과 작가들을 글로벌 맥락에서 고찰하고, 멀티 텍스트적인 미술사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와 칸딘스키 도서관 아카이브 자료는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 미술계의 입장에서 작성된 미술사 서술, 그리고 누가, 무엇을 이라는 이슈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본 논문은 연대순서를 따르며, 한국이 최초로 참가한 1961년부터 분석을 시작한다. 전시는 세 시기, 즉 1961~63년, 1965~69년, 1971~75년으로 분류했다. 한국 작가들은 파리 비엔날레가 파산으로 1985년 폐지되기 전까지 참여했지만, 이 논문에서는 저자의 박사논문에서 주목한 기간이었던 1975년 제9회 비엔날레까지 다룰 것이다 ~ 년에 개막한 제1회 파리 비엔날레에는 40개국에서 600점 이상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나 한국 작가들이 초청된 것은 1961년 제2회 비엔날레부터였다. 4) 제2회 비엔날레와 1963년 제3회 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들은 전후 한국의 젊은 화가들 사이에서 각광받던 추상미술을 향한 강한 지향성을 드러냈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비구상미술의 대두로 자리잡은 현대미술가협회 와 60년대 미술가협회 의 현 회원 또는 전 회원이었다. 첫 전시회의 실행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박서보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유네스코의 초청을 받아 세계청년미술가대회 에 참가하기 위해 1961년 1월부터 11월까지 파리에 체류하였고, 그 당시 문교부가 비엔날레 참가 마감시한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참가를 위해 직접 나섰다고 한다. 그는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미술비평가 이일을 만나고, 당시 한국 미술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일은 전시 서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아카이브의 편지들은 이 전시회를 둘러싼 어려운 상황들을 입증한다. 서울 주재 프랑스대사가 4) 파리 비엔날레의 정확한 개최기간과 장소는 참고할 것 비엔날레 측에 보낸 1961년 1월 23일자 편지를 보면, 한국이 제2회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 이후, 비엔날레 개막 석 달 전이었던 6월 29일자 편지에서 파리 비엔날레의 대표이사 레이몽 코니아(Raymond Cogniat)는 한국정부가 참가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외무부에 알렸다. 1961년 커미셔너인 김병기가 선정한 김창열, 장성순, 정창섭, 조용익의 작품들은 추상계열의 작품들이었고 문교부가 비엔날레측에 보낸 사진들 뒷면에는 치수, 설치 관련내용, 제목 등이 기록돼 있다. 그 다음 비엔날레는 1961년 참가했던 김창열이 커미셔너였으며 박서보, 윤명로, 최기원, 김봉태를 참여 작가로 선정했다. 작품 사진들을 비롯해 1963년 6월 20일에 이일이 서명한 서류에는 보험가액을 비롯하여 참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부사항이 나와 있다. 한국 추상미술이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동시에 도입되었음에도 이 두 비엔날레에 선정된 작품들은 제스처 또는 액션 위주인 뉴욕 추상표현주의나, 1950년대 말 일본에서 기모노를 입고 회화 퍼포먼스를 한 조지 매튜(Georges Mathieu)의 서정적 추상화(lyrical abstraction)보다는 오히려 전후 프랑스의 파멸과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시작된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나 볼프강 볼스(Wolfgang Wols)의 앵포르멜 미술과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일이 작성한 서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권위적인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전적인 불신, 바로 이것이 우리 세대를 가장 특징짓고 있는 표식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경향을 단순히 유행 이라는 말로서 정의짓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리라. 그것은 분명히 박해당한, 그러나 굽힐줄 모르는 한 의지의 귀결이요 자연스러운 개화인 것이다. 그렇다. 이 의지 우리들 세대의 피흘리고 출구없는 사춘기가 그 혼 속에 지워버릴 수 없는 낙인을 간직하고 있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로 인하여 그만큼 힘차게 표명되고 있는 이 의지의 개화요 몰이해와 무지가 군림하고 있던 세계의 한 구석에서 마침내 구제의 길을 찾아보게 된 이 의지의 개화인 것이다. 5) 이 글은 전쟁경험과 존재의 조건에 의해 이 젊은 작가들의 추상미술을 분류하며 프랑스 비평가 미셸 타피에(Michel Tapié)가 공식화했던 앵포르멜과 한국어로는 또하나의 미학 으로 알려진 Un Art Autre 를 구체적으로 연상시킨다. 1951~2년에 타피에가 파리에서 기획한 일련의 전시회를 통해 발전된 앵포르멜과 또 하나의 미학 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전후 실존주의 철학과 휴머니즘으로 나타난 전후 주지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6)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넘어서 기존의 토폴로지(topology)에서 구별된 진부한 개념을 넘어서는 차이의 5) 이일, 제2회 파리 비엔날레 참가 서문, 전위 미술가들의 올림픽, 동아일보, ) Vehémences Confrontées, Galerie Nina Dausset, Paris (March 1951); Les Signifiants de l Informel I & II, Studio Paul Facchetti, Paris (November 1951; June 1952 ); Un Art Autre, Studio Paul Facchetti, Paris (December 1952) 17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75
89 도판 1. 박서보의 <원형질 1-62>(1962)가 소개된 기사, 피에르 포슈, 생존하는 미술의 함성, 레 자르(Les Arts), Centre Pompidou-Mnam-Bibliothèque Kandinsky 공간 을 나타내며, 그러므로 새로 영감을 받은 혹은 새롭게 시작되다 라는 사고를 표명했다. 7) 한국작가의 참가를 보도한 신문기사 스크랩은 많지 않지만, 몇몇 기사는 이들 작품이 세계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칸딘스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비엔날레 전시장을 설계한 피에르 포슈(Pierre Faucheux)의 생존하는 미술의 함성(Le cri d art vital) 이라는 기사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도판 1) 포슈는 1963년 비엔날레에 참가한 신진작가와 조각가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원자력 시대의 이미지 를 칭송하고 인류 전체를 위한 외침 을 확인한다. 8) 특히 그는 일본, 독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프랑스와 한국을 희생 국가 로 지적하고 그들의 미술을 환영한다. 다음 장에는 박서보의 <원형질 1-62> (1962)의 이미지가 인간의 상징적인 이미지(image symbolique de l homme) 라는 캡션과 함께 나온다. 박서보와 윤명로는 포슈의 국가별 서문에서 신비로운(magiques) 과 강렬한(chargées) 작품들로 표현된다. 이 두 화가의 놀라운 그림 석 점은 인간 을 나타낸다. 박서보가 그린 떨리고 있는 검은 살에는 <원형질 no.1>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이 붙어있다. 윤명로의 다른 두 작품은 <회화 M >과 <회화 M >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선포되기 위해 진실은 그에게 제공된 길을 빌린다. 이 두 메시지는 신성한 보물인 인간들을 증명한다. 9) 신성한 보물 이라고 간주한 것은 인간 존재 조건의 재현이 분명하며 인간(l homme) 이라는 단어 역시 실존주의 철학과 휴머니즘과 앵포르멜 미학이 등장했던 전후 맥락에서 풀이되어야 한다. 10) 이 기사에서 박서보의 <원형질>은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형상을 상기시키게끔 위아래가 뒤집어 게재되었다. 타피에의 앵포르멜이 의미하는 것(Signifiants de l Informel) 전과 또 하나의 미학(Un Art Autre) 전에 전시된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권력에의 의지(Volonté 7) Michel Tapié, Observations, Paul Jenkins; Esther Jenkins(trans.), New York: G. Wittenborn, 1956, p ) Pierre Faucheux, Le cri d art vital, Les Arts, ~15. 9) Pierre Faucheux, 앞의 글. 비엔날레 도록은 박서보의 작품을 원형질 no.1 으로 소개했다. 10) Sarah Wilson, Paris Post War, in Frances Morris(ed.), Paris Post War. Art and Existentialism 1945~55, exh. cat., London: Tate Gallery, 1993, pp.25~52. de puissance)>(1948)가 떠오른다. 뒤뷔페의 그림에는 구상적인 요소들이 포함돼 있지만, 벌거벗은 인간의 본질적인 형상은 박서보의 해골 같은 생명체 묘사에서 반복된다. 포슈와 프랑스 관객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 냉전의 맥락에서 추상미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1958년과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유럽은 동질적인 유럽예술과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앵포르멜을 홍보했다. 이는 1955년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가 문화적 단일체 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한 Idea of Europe 캠페인에 대한 응답이었다. 문화는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이 미국에 넘어간 전후 세계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다. 11) 이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명백했다. 사르트르와 그의 실존주의 철학이 1960년 전시회를 압도했고,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는 1962년에 대상을 받았다. 이러한 활동들은 미국의 문화외교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공유된 수사학으로 실존주의에 의존했다는 사실에 의해 한층 더 복잡해진다. 12) 공산주의 국가에서 선전한 제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에 대한 반대로 미국 정부가 추상표현주의와 그것의 행위적, 표현적인 특성을 자유에 기반한 미국적 경험의 특사로 채택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13) CIA가 운영한 미국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이라는 명칭으로 해외에서 활동한 미국정보국(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은, 냉전시대에 문화외교를 통해 서유럽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올 목적으로 추상미술이라는 공유된 시각언어의 사용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 또한 미국의 헤게모니에 반응하는 유럽의 저항적인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협력을 보여주기 위해 일련의 추상미술 중심의 교류전들이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추상미술의 역할은 더 복잡해진다. 15) 이와 동시에 파리에서는 에콜 드 파리(École de Paris)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앵포르멜의 수용을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비구상회화와 신진작가들은 에콜 드 파리의 정체성 회복과 11) Nancy Jachec, Politics and Painting at the Venice Biennale, : Italy and the Idea of Europe,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7, p ) Nancy Jachec, 앞의 글, pp.116~ ) Serge Guilbault, How New York Stole the Idea of Modern Ar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5; Joan Marter (ed.) Abstract Expressionism: The International Context, New Brunswick, New Jersey: Rutgers University Press, 2007; David and Cecile Shapiro(eds.), Abstract Expressionism: A Critical Recor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Nancy Jachec, The Philosophy and Politics of Abstract Expressionism, 1940~196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 Natalie Adamson, Painting, Politics and the Struggle for the École De Paris, , Farnham, Surrey, and Burlington, VT: Ashgate Publishing Ltd, 2009, p.221. 나탈리 아담스는 세계문화자유회의(Congress for Cultural Freedom)의 후원으로 1955년에 독일, 영국,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의 주요 국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로마와 브뤼셀, 파리에서 선보인 젊은 화가들의 국제전(Exposition Internationale de Jeune Peinture) 을 그 예로 언급한다. 17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77
90 자유의 이상을 목표로 삼았고 추상미술 홍보는 구상적, 자연주의적 회화를 포함한 절충주의를 전시정책으로 삼았던 정부와 충돌했다. 16) 샤르팡티에 갤러리(Galerie Charpentier)에서 1954년에 시작된 에콜 드 파리 살롱(Salon de l École de Paris)에서는 휴머니즘 가치로 뭉친 여러 화가 공동체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절충주의를 그것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옹호했다. 17) 이러한 배경 아래 문화부 장관 말로가 파리 비엔날레에서 초기 추상미술에 주목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전후 현대미술계에서 파리의 퇴보한 위상에 대한 소문에 반박할 수 있도록 하였고, 뉴욕이 아닌 파리가 미술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되찾을 수 있게끔 하였다. 그것을 관리하려는 포괄적 시도로 외국에 물리적으로 침투했던 USIS와 달리, 말로는 미국의 주도권 장악을 거부하면서 다른 국가들을 의도적으로 유인했다. 트리뷴 드 로잔(Tribune de Lausanne) 은 한국, 소련, 세네갈, 헝가리의 참여를 언급하며 철의 장막이 거두어진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18)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는 1963년 11월자 서신들은 프랑스가 국가 소장품으로 최기원의 조각 <작품 >(카탈로그의 no.6)와 김봉태의 <작품 no.2>(카탈로그의 no.9)를 각각 1,500프랑과 250프랑에 구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도판 2, 3, 4) 이러한 국가 차원의 작품 매입은 한국 작가들이 추상미술이라는 국제적인 언어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는 점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 그림들의 앵포르멜적 요소들은 전후 세계질서 속에서 파리 비엔날레가 파리 위상의 회복에 성공했음을 확인하는 데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도판 5. 랑베르 화랑에서 열린 젊은 한국 화가들 전시 소개문, 제3회 파리비엔날레 전시 도록, 1963, 저자 소장 이런 면에서 포슈가 한국을 다른 희생 국가 인 일본, 독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프랑스와 나란히 놓은 것은 미학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서독과 남한은 냉전의 고통을 상징했고,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비에트 압제의 상징이었다.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1959) 같은 영화 속에서 보여졌던 일본은 미국 원자폭탄 투하의 희생자였지만 전후 희망적인 재건의 상징이기도 했다.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억압적인 정권은 소비에트 연방과 대치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상업화랑인 랑베르 갤러리는 1963년에 비엔날레와 협력해 윤권옥, 박서보, 정상화, 김종학이 참여하는 젊은 한국 화가들(Les jeunes peintres coréens) 전을 개최했다. 앵포르멜의 동양 과 선(zen) 의 유산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이며 카탈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앵포르멜 회화는 상당한 정도로 분명하게 극동의 혈통을 드러낸다. 그러면 동방의 앵포르멜 화가들은 어떤가? 한국 젊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흥미로워 보인다. 이들은 전쟁의 영향을 받았던 세대이며 서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들의 작품이 이 (추상) 화파의 보편성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어떤 특성을 보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19) (도판 5) 앵포르멜의 동방 의 기원에 대한 관심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화가 앙리 미쇼 (Henri Michaux)나 파리에 거주하는 미국 작가 마크 토비(Mark Tobey) 같이 아시아를 직접 여행한 화가들은 서예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이미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당시 파리에 살던 아시아 화가들도 이런 분위기를 조장했다. 예를 들어 칸딘스키 도서관에 있는 이응노에 관한 자료에는 파리에서 그가 운영한 인기 있는 동양화 학원의 등록양식 및 홍보책자 등이 포함돼 있다.(도판 6) 도판 2. 최기원 <작품 no >, 청동, cm, 사진. Fonds Biennale de Paris. Collection INHA-Archives de la critique d'art, BIENN. 63Y0024/7 도판 3. 김봉태 <작품 no.2>, 아연, 40 55cm, 사진. Fonds Biennale de Paris. Collection INHA-Archives de la critique d'art, BIENN.63Y0024/3 16) Natalie Adamson, 앞의 글, p ) Natalie Adamson, 앞의 글, pp.233~ ) Biennale de la jeunesse, Tribune de Lausanne, 도판 4. 이일이 파리 비엔날레 측에 보낸 편 지, Fonds Biennale de Paris. Collection INHA-Archives de la critique d'art 이일도 카탈로그 서문에서 이러한 계보를 주장을 한다.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추상예술로의 전환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동양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추상예술의 정신이 예전부터 은밀히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조형감각은 서예훈련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으며 공간감각은 분명히 자연-가장 19) Les Jeunre Peintres Coréens, Troisième Biennale de Paris, Paris: Biennale de Paris, 1963,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79
91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연-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오늘의 한국미술은 비록 서양미술을 받아들이고 있을 망정 이 예술관은 그 류를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20) 한국의 추상미술의 내재적 발전에 대한 주장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즉 추상미술이 동시대 한국미술 을 대표할 수 있는지 의심했던 동양화 화가들의 소란을 잠재우고, 비엔날레 관객들에게 이러한 그림들이 한국적 가치와 유산을 구현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랑베르 갤러리 전시에 대한 유일한 비평에서는 전시가 지나치게 서구적인 기법과 영향을 드러낸다 라고 판정하며 상당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21) ~ 년대 후반, 파리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추종자를 양산했던 옵아트와 키네틱아트가 지배했다. 한국 작가들은 예술의 전통적인 범주 사이의 경계가 파괴되는 이러한 경향에 대한 인식이 보이지 않았고, 1965년, 1967년, 1969년의 한국 전시는 주목받지 못했다. 1965년 전시회 서신들은 주로 앞선 두 비엔날레에 전시된 작품의 반송비용 지연에 관련된 것으로, 이 사안은 다음 번 비엔날레 출품에 문제를 가져왔다. 주한 프랑스 대사 로제 샹바르 (Roger Chambard)는 1965년 7월 13일자 파리 비엔날레의 대표이사 레이몽 코니아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6월에 이미 보낸 한국 작품들이 전시되기 위해서는 앞선 두 비엔날레 반송 비용 정산이 먼저라는 조건을 단호하게 붙였다. 22) 우여곡절 끝에 결국 김종학, 박종배, 이양노, 정영렬은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미협이 제출한 사진에서 확인되듯 이들의 작품은 대개 추상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뉴욕의 전시에서의 회화(Pictures on Exhibition) 지에서 합격점을 받긴 했지만,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와 패트릭 콜필드(Patrick Caulfield)처럼 옵아트와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싼 열광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23) 도판 6. 이응노의 파리 동양학원 팸플릿 Centre Pompidou-Mnam-Bibliothèque Kandinsky, Lee Ung-No, Dossier, AP LEE. 1965년 9월 17일 르 몽드(Le Monde) 지에 게재된 파리 비엔날레 미술의 종합 은 이러한 경향을 예측했다. 현재 우리는 어떤 무대에 서 있는가? 오늘의 미술은 불확정의 시대에 있다. 추상미술은 매우 불확실하다.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 네오리얼리즘을 향하고 있다. 팝아트 - 이 신선함을 보라, 우리는 확고한 방향을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 그것은 추상적 경험과 확실한 구상적 비전을 조화시키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부정이다. 또 다른 양식은 기술적이면서 본능적이기보다 이지적이다. 그것은 바로 옵아트다. 24) 1967년 비엔날레에서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이어졌다.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에서 발견되는 비평들은 프랑스 작가 세자르(César)의 기념비적 작품, 미국의 프랭크 포퍼(Frank Popper)와 이탈리아의 마리아노 카레라(Mariano Carrera)의 키네틱 작품 등으로 특징되는 이 변화의 경향을 입증한다. 누벨 리테레르(Nouvelles Litteraires) 의 증기를 내뿜는 환상적 기계(Une fantastique machine à défouler) 에서 프랑스 비평가 장 자크 레베크(Jean-Jacques Lévêque)는 이 전시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전기회로, 네온이 광적인 혼란에 의해 흔들리는 형태 주위에서 뛰고 있다. 활기 넘치는 윤곽선이 우리의 감각들을 공격하고, 낯선 소리가 정체 모를 형태에서 빠져 나오며, 사물들은 사방으로 움직인다. 요즘 모든 것이 작가들로 하여금 복제와 증식의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손을 대도록 만든다. 25) 한해 전 열린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브라질 작가 훌리오 르 파크(Julio Le Parc)의 대상 수상은 이를 정확하게 예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967년 커미셔너 조용익이 선정한 김차섭, 최명영, 임상진, 전성우의 작품들과 최만린과 박석원의 조각에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앵포르멜은 비엔날레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새로운 매체의 지배는 1969년 비엔날레에서도 계속되었다. 칸딘스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의 비평은 올해 관람자들은 시각과 소리의 폭격을 받았다 라고 언급했다. 26) 그러나 1969년 비엔날레의 한국관에 관한 아카이브는 사실상 비어있고, 서승원과 윤명로, 이승택 작품의 세부사항이 기록된 참가신청서만 있다. 27) 20) 이일, 파리 비엔날 참가서문, 조선일보, ) Ⅲe Biennale de Paris et les manifestations annexes, Le jardin des arts, ) 주한프랑스대사 샹바르가 레이몽 코니아에게 보낸 편지, , Collection INHA-Archives de la critique d art, BIENN.65X010/24; 문교부장관 윤천주가 주한프랑스대사에게 보낸 편지, , Collection INHA-Archives de la critique d art, BIENN.65X010/6. 23) Barnett D. Conlan, Report from Paris, Pictures on Exhibit, ) Jacques Michel, Une synthèse des arts à la Biennale de Paris, Le Monde, ) Jean-Jacques Lévêque, Une fantastique machine à défouler, Nouvelles Litteraire, ) Pierre Schneider, Mutation marks trend at Paris Biennial, New York Times, ) 1969년 제6회 파리 비엔날레 출품작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의 유강열 컬렉션 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81
92 ~1975 제7회 파리 비엔날레는 1971년 9월 24일에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파리의 파크 드 플로랄(Parc de Floral)의 새 전시관에서 개최되었다. 1957년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주제를 하이퍼리얼리즘 (hyperrealism), 개념 (concept), 개입 (intervention)으로 제한했고, 그 결과 전시회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다니엘 뷔랭(Daniel Buren),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같은 중요한 국제적인 작가들이 참가하면서 통합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네 번째 섹션인 옵션 4 는 미술의 전통적인 매체들에 충실한 작품을 전시했다. 주제별 통합은 미술의 국제화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조치였고, 1968년 5월 전통적 가치, 질서, 제도에 대항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프랑스에서는 변화의 열망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이는 곧이어 1973년 국가별 커미셔너 시스템의 폐지로 완성되었다. 1971년, 1973년, 1975년 파리 비엔날레의 한국관 전시는 과거의 전시와 극적으로 결별했다. 1971년 전시 아카이브에는 프랑스 한국대사관의 한국문화담당관과 한국 주재 비평가 미네무라 토시아키가 이우환에게 일본으로 국적을 바꾸면 대상을 수상할 수 있다고 귀화를 권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30) 불과 한해 전에 일본 교육부는 이우환을 1970년 구겐하임 미술관의 현대일본미술전 에 참가시키려는 미술관의 반복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모노하 동료화가들과 이우환이 함께 전시하는 것을 막았었다. 31) 반면 비엔날레 조직위원들에게 한국과 일본의 구분은 불분명했고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다. 1971년 7월 8일에 최만린이 파리 비엔날레 사무총장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일본에 살고 있는 이우환이 파리로 올 수 있도록 한국 여권 발급을 위한 공식초청을 요청했다. 이에 비엔날레측 도판 7. 조르주 부다유가 이우환에게 보낸 편지, Fonds Biennale de Paris. Collection INHA- Archives de la critique d'art 프랑스 대사 프레데릭 막스(Frédéric Max), 그리고 프랑스 외무부가 한국 참가를 확인하며 주고 받은 일련의 편지들이 있다. 거기에는 개별 작가의 증명사진, 이력서, 작품 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전시회에 김한과 심문섭, 송번수가 선정되었고 김구림과 하종현, 그리고 당시 도쿄에 거주하면서 일본 모노하그룹의 중요한 철학적 지주였던 이우환은 단체 관계항(Terme Relationnel) 으로 전시했다. 김구림의 <상황>(1971)과 이우환의 세 작품은 통일된 미학적 모습을 보였다. 28) 김한의 <상황>(1971)과 송번수의 <판토마임>(1971)은 둘 다 하이퍼리얼리즘 경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옵션 4 섹션에 포함되었다. 심문섭은 개입 섹션에 조각 세 점을 전시했다. 전시도록 서문의 저자는 커미셔너였던 최만린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공간 에 실린 국문 버전은 이우환을 저자로 밝히고 있으며, 이 글에는 모노하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저서이며, 70년 초반 한국 실험미술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만남을 찾아서 에 표현된 사상들이 반복되고 있다. 29) 그해 대상 후보로 지명되었던 이우환은 국적, 정체성에 관한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 도쿄 비엔날레 큐레이터였고 도쿄에서부터 이우환을 알았던 대표이사인 조르주 부다유(Georges Boudaille)가 보낸 편지를 보면, 이우환을 비엔날레의 일본측 참가작가로 혼동하며 이번 파리 비엔날레 일본 섹션의 참가작가로 모실 수 있어 기쁩니다 라고 쓰고 있다. (도판 7) 모노하 작가들이 그해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했다는 점과 1970년 제10회 도쿄 비엔날레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도쿄 비엔날레에서 코시미즈 스스무나, 노무라 히토시 같은 모노하 작가를 포함한 13명의 일본 작가와 칼 앙드레(Carl André), 한스 하케(Hans Haacke) 등을 포함한 27명의 외국 작가들이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선보였다. 나카하라 유스케와 미네무라가 기획한 이 전시회는 1971년 파리 비엔날레와 1968년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 전과 작가 명단을 공유했고 1972년 제5회 카셀 도큐멘타의 방향을 예고했다. 32) 이러한 전시회들은 새로운 시각언어인 개념미술과 미니멀미술을 소개하며 세계 미술의 축과 중심의 지리적 확장과 변경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예측한 지구촌(Global Village) 개념에 있어서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일본의 핵심적인 위치를 확신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유치한 만국박람회였던 1970년의 오사카 엑스포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28) 동아일보는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이우환이 작품 두 점을 전시했다고 보도했지만,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이우환 개인전 도록에서는 <관계항(Relatum, formerly Phenomena and Perception B) (1968/9), <관계항(Relatum, formerly Phenomena and Perception A)>(1971), <관계항(Relatum, formerly Situation)>(1971), 이 세 작품을 전시작으로 보고 있다. 장행훈, 파리 비엔날레 한국 작품 미착 지난 24일 개막, 문공부 수송등한으로, 동아일보, ; Alexandra Munroe(ed.), LeeUfan: Marking Infinity, exh. cat., New York: Solomon R. Guggenheim Museum, 2011, p ) 이우환, 파리 비엔날레 서문, 공간, , p ) 일본서 활기띤 우리 전위작가들, 조선일보, ) Alexandra Munroe, Stand Still a Moment, in Munroe(ed.), 앞의 글, p ) Live in Your Head: When Attitudes Become Form, Kunsthalle, Bern( ~4.27.) and Institute of Contemproary Art, London( ~10.27.); 10 th Tokyo Biennale: Between Man and Matter, Tokyo Metropolitan Art Museum, Tokyo( ~30.); 5 th Kassel Documenta: Questioning Reality Pictorial Worlds Today, Kassel( ~10.8.) 18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83
93 77개국이 참여한 이 박람회는 6천만 명 이상이 방문한 역사상 최대 참여 엑스포 중 하나였다. 33) 이러한 배경은 한국 현대미술작가의 미술이 파리 비엔날레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이우환과 1970년대 초 국제무대에서 재빨리 두각을 나타냈던 모노하 작가들의 연관성은 이 시기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객들의 견해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971년 전시에 관한 아카이브의 언론 자료들은 한국 섹션을 언급하지 않지만 1971년 9월 17일에 르 피가로 리테레르(Le Figaro Litteraire) 에 게재된 이우환에 관한 기사를 보도한 동아일보 는 프랑스 언론이 이우환의 작품을 일본 전통의 일부로 착각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작가에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쓰고 있다. 34) 1973년 제8회 파리 비엔날레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별 커미셔너 체제가 폐지되고 작품 선정을 담당할 국제적인 심사위원회가 창설되었다. 이우환은 파리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전시할 작품들을 선정하기 위해 1972년 미협이 창설한 첫 앙데팡당 전의 단독 심사위원이 되었고 그해 파리 비엔날레에 이건용과 심문섭을 선정했다. 이건용은 1971년 제8회 한국미술협회전 에 처음으로 선보였고, 그 이후 1972년 12월에 제3회 A.G 전에 전시되었던 <신체항>(1972)과 동일한 제목의 다른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심문섭은 <관계-장소>(1972)와 종이, 나무, 흙, 시멘트 등을 이용한 네 점의 다른 작품을 전시했다. 이건용의 작품 이미지가 실린 1973년 9/10월호 아트 프레스(Art Press) 를 비롯해 비엔날레 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언론 자료 스크랩에는 이건용과 심문섭이 이전의 다른 출신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창조적 연구가 연관되어 있다. 두 미술관의 거대한 전시실을 둘러보면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회화가 없다는 점이다. 37) 이와 유사한 관점은 1973년 10월 29일자 파리 노르망디(Paris Normandie) 기사에서도 발견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세계의 개방에서 찾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외국의 성향들을 보는 편안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아시아 작가들은 호기심이 풍부하다. 이건용의 <신체항>은 나무의 잘린 둥치를 흙과 뿌리와 함께 보여준다. 거꾸로 된 생태계. 카와구치 타츠오(Tatsuo Kawaguchi)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전기력의 비논리적인 이용을 준비했다. 그는 수많은 다양한 전도체를 가지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여정을 상상한다. 38) 이 비엔날레에서 한국과 일본 작가들은 동양적 감수성이라는 일반적인 항목 아래에 묶여 같이 인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커미셔너 중 한 명이었던 다니엘 아바디(Daniel Abadie)는 뢰유 (L Oeil) 지에 이렇게 썼다.(도판 8) 비평가 미네무라가 국제 심사위원들에게 제안한 일본과 한국 조각가들이 유일하게 동질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극동의 전통미술과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의 경험을 혼합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벗겨진 그들의 미술에는 단순한 차원의 드로잉이나 다이어그램에서 출발한 산업 생산 작품의 건조함이 전혀 없다. 사실 그것은 언제나 자연의 재료와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들 중에서 이건용, 이누마키 겐지(Kenji Inumaki), 심문섭, 스가 키시오(Kishio Suga), 타카야마 노보루(Noboru Takayama)를 우선 기억해야 한다. 39) 한국 전시보다 해외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았음을 보여준다. 많은 경우 설치와 개념미술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근거로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아트 인터내셔널(Art International) 은 이 비엔날레에 대해 작품은 일본과 한국의 주목할 만한 기여와 더불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왔다. 그 이전에 왔던 어떤 것에도 빚지지 않은 표현형태를 향한 거대한 이동에 비교하면 다소 지속되는 민족적이거나 지역적 취향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35) 1973년 9월 14일 르 프로그레 수와(Le Progrès Soir) 에는 나무둥치와 날고 있는 카펫, 새로운 미술표현 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이건용의 <신체항>이 실렸다. 36) 1973년 9월 17일자 신문 유니온(L Union) 은 현대 전위미술에서 동질성 을 강조하며 본 비엔날레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들이 한국이나 아이슬란드, 오스트레일리아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나 미국 도판 8. 이건용, <신체항>(1971)과 <신체항>(1972). 다니엘 아바디, 파리 비엔날레의 두 번째 바람, 뢰유, no ) 1970 World Exposition, Osaka( ~9.13.) 34) 장행훈, 앞의 글. 35) Michael Peppiatt, Paris, Art International, no. XVII/9, ) Jean Cherpin, A la Biennale de Paris qui s est ouverte aujourd hui. Tronc d arbre et tapis volant, Le Progrès Soir, ) Paris Premières. Le bric à brac de la Biennale, L Union, ) A. Lebaube, Les jeunes artistes explosent dans un grand tohu-bohu, Paris Normandie, ) Daniel Abadie, Le Deuxième Souffle de la Biennale de Paris, L oeil, no ,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85
94 이 기사에는 이건용의 두 작품이 실렸는데, 각각에 대한 설명은 대자연과의 친밀함, 그리고 순수함이 수반된 문명화 이전의 모든 흔적들과 동일시하는 오리엔탈리즘적 태도를 시사했다. 예를 들어, <신체항>(1971)은 형태는 단순하고 산업화된 세계의 기하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태에 대한 명상에서 비롯되었다 라고 묘사되었다. 반면 나무 덩어리에 묶인 줄로 구성된 <신체항>(1972)은 현대미술에서 전통의 감정적인 힘을 재발견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40) 이러한 해석은 이건용이 나무라는 재료를 통해 그 자신의 특별한 정체성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놓쳤다. 1979년 7월호 공간 에 게재한 오늘의 창작과 한국적인 것의 의미 에서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할 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파리 비엔날레 측에서 파리의 한 공원의 나무를 제공했지만 작가의 마음에 들기에는 나무가 너무 곧았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그는 나무가 기후와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도 그의 인류학적 특이성, 인종적 조건, 과거의 모든 체험들 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41) 그러나 유럽의 관객에게 그러한 특이성은 무시되었고 대신 일반화된 오리엔탈리즘적 해석들이 이 작가들에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해석은 1973년 10월 23일자 벨기에 신문 주르날 드 유럽(Journal d Europe) 의 선(zen) 을 참고로 한 심문섭 작업 소개에 반영된다. 도판 9. 심문섭, <관계-장소> (1972). 청년 미술비엔날레, 아티스, Fonds Biennale de Paris. Collection INHA- Archives de la critique d'art 이 작품은 벽에 테이프로 붙이고 찢긴 이후 돌 세 개로 바닥에 고정된 종이 한 장으로 구성된다. 바로 그것이다. 그뿐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멍청한 짓이다.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더 드물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은 현실 그 자체이다. 내부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가난의 예술(art pauvre) 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토론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이 작품은 선 에 영감을 받았다. 작가가 서울에서 살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흰 해변의 돌 세 개는 텅 빈 동시에 가득 찬, 동양철학과 일본의 바다(oceanic) 정원을 약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종이 두 조각 사이의 간격(물론 벽의 존재 와 더불어)뿐 아니라 벽 근처에 남아 있는 찢어진 조각은, 시각언어의 본질적인 빈곤에 관여하려는 의향을 보여주는 주된 기능으로 돌아간다. 42) 40) Abadie, 앞의 글, p ) 이건용, 한국적인 것과 나의 작품: 오늘의 창작과 한국적인 것의 의미, 공간, , p ) Untitled, Journal d Europe, 선 이라는 용어는 독일 잡지 아티스(Artis) 에 다시 한번 등장했다. 이 잡지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심문섭의 배열을 이해하려면 선을 공부해야 한다 고 충고했다. 43) (도판 9) 라 가제트 메디칼(La Gazette Medicale) 에도 비슷한 감정이 표현되었다. 이 특별히 동양적인 게임 앞에서 우리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혼란스러운 실수를 보여주고 있다. 지적 고양을 향한 그들의 한심한 시도들과 비교하면, 2~3명의 아시아 작가들은 이들의 조잡한 작품들을 쉽게 능가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작가는 한국의 심문섭이다. 44) 선에 대한 주목은 당시 플럭서스(Fluxus) 그룹이나 미국의 비트(Beat) 작가들의 선불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만, 서양의 계산된 진보와 지성주의에 대한 반대를 강조함으로써 동양 을 과거와 후진성에 가둬버리는 오리엔탈리즘의 메커니즘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1975년 제9회 비엔날레에 전시되었던 이강소의 <무제 75031>(1972)을 살펴보며 이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이 작품을 위해 이강소는 3일 동안 전시회의 모래가 덮인 바닥에 옭아맨 살아있는 닭이 움직인 흔적들을 남겼다. 이 작품에 사용된 닭은 현지 농장에서 빌렸고,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3일간 사진을 찍은 후에 돌려줬다. 최종 작품은 사진 9장과 닭이 남긴 흔적들로 구성되었다. 45) 원래 이 작품은 1972년 제3회 AG전 에 무제의 두 작품과 함께 처음 전시되었다. 하나는 흰색으로 칠한 박제한 꿩과 역시 흰색으로 칠한 전시장 바닥에 찍힌 꿩의 발자국으로 구성되었고, 다른 하나는 조기 10마리를 걸어놓은 나무 판자를 벽에 기대 놓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무제 75031>의 인기는 전시회에 살아 있는 동물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46) 르 프로그레 수와 에는 한국인 이강소. 살아있는 작품을 전시하다 라는 기사가 실렸고, 프랑스 수와(France 도판 10. 이강소 폴 베르무스(Paul Wermus), 한국인은 닭, 일본인은 실내화를 가져왔다, 프랑스 수와, Fonds Biennale de Paris. Collection INHA-Archives de la critique d'art 43) Biennale junger Kunst, Artis, ) Pierre Léonard, Biennale en mineur, La Gazette Medicale de France, ) 오상길, 이강소 인터뷰, 한국 현대미술다시 읽기 Ⅱ, ICAS, 2001, p ) 비엔날레 출품한 이강소씨 작품 호평, 동아일보, 이 기사는 프랑스 수아 의 유명한 프랑스 미술비평가 필립 부바르(Philippe Bouvard)가 이강소의 작품을 언급했고, 작가가 프랑스 채널과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다고 보도했다. 18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87
95 Soir) 의 한국인은 닭, 일본인은 실내화를 가지고 왔다 라는 기사에는 같은 비엔날레에 중국 샹시 지역의 농민화가협회가 전시한 사실주의 양식으로 그려진 중국의 농민 회화를 같이 소개했다. 47) (도판 10) 세 나라가 각각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근대화와 근대성에 대한 그들의 다양한 경험들은 무시되고 동양의 기이한 미술 소개처럼 읽혀진다. 이러한 태도는 이강소와 함께 전시했던 심문섭의 회화에 언론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Abstract Contemporary Korean Art at the Paris Biennial( ): An Archival Expedition 이강소는 원래 <선술집>(1973)을 이 비엔날레에 전시하려고 했지만, 전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마지막 순간에 작품을 바꾸었다고 한다. 48) 카탈로그에는 작품제목이 Bar in Art Hui Kyung An Museum 으로 올라가 있다. 1973년 서울의 명동갤러리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 작품은 미술관에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어울리게 하고 사람들이 떠나면 바와 모든 대화와 경험도 역시 소멸되는 실험이었다. 말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시대의 컨텍스트에서 등장한 이 작품이 만약 파리 비엔날레에 실현되었다면, 관객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으로써, 독재정치하의 한국의 현실과 68년 5월 혁명 이후 자유로운 파리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정치적인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강소 작품은 다시 읽기의 중요성을 권장한다. 동시성과 투명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세계화된 미술계에서, 우리는 물려받은 미술사적 서술들이 종종 깨진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멀티 텍스트적이고 멀티 내러티브적인 분야인 미술사를 계속해서 확장시키고 그것에 도전하는 한, 파리 비엔날레 아카이브나 칸딘스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처럼 아직 주목받지 못한 외국에 있는 한국작가 관련자료를 살펴보는 일은, 대화를 장려함으로써 이를 개선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7) Les surprises de l art modernes. Le Coréen Lee Kang So expose à la Biennale une oeuvre vivante, Le Progrès Soir, ; Paul Wermus, Le Coréen est venu avec sa poule et le Japonais avec ses pantoufles, France Soir, ) 오상길, 앞의 글. Courtauld Institute of Art, University of London This paper on the Korean artists participation in the Paris Biennial harbours two aims. Firstly, it hopes to introduce materials held at the archives of the Paris Biennial at the Archives Internationale de la critique d art(aica) in Rennes and at the Bilbiothèque Kandinsky at the Centre Pompidou in Paris. Together with Venice and São Paulo, the Paris Biennial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international platforms for contemporary art throughout the 1960s and the 1970s, and maintains a significant position in the history of contemporary Korean art as the first to invite artists from the Democratic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in the aftermath of the Korean War( ). While there have been successful research into archival materials available in Korea on the Korean exhibition at the Paris Biennial, large amounts of those held outside the country still remain unknown. The letters of correspondence between artists, embassies and government ministries, photographs, and press clippings introduced in this paper highlight the virtue and necessity of a continued commitment to archival research. For this purpose, this paper follows a chronological format and begins at the year of Korea s first participation in The exhibitions are grouped into three instalments: , , and While Korean artists continued to participate until the closure of the Paris Biennial in 1985, the paper ends with the 8 th biennial in 1975 as this was the focus timeframe for the author s PhD thesis. Secondly, the archives encourage us to take a step back from the art historical narrative authore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exhibiting Korean art world - more often than not dominated by issues of who and what - allowing room to consider the art and the artists, their reception and critical positions, in a broader global context. The materials enable a history that is multi-textual for this postwar period at the cusp of globalisation and 18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파리 비엔날레 한국전(1961~1975) 고찰 189
96 suggest a new framework within which we can re-situate phenomena such as the informel (engporeumel) or experimental art (silheommisul) that occupy crucial positions in contemporary Korean art history. The challenge in doing so is to re-read and probe beyond the given in order to break through the roadblocks that hinder possibilities of dialogue in the narratives of art history. 19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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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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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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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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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년대 1960 년 35 1960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36 37 1960 년 [ è ] 1851 1 [ ] 1 é é é 1851 É 1960 년 2 1 2 11 1952 22 38 1961년 1961년 39 1961 년 3 월 14 일, 한국일보 4 면, 2 3 2 3 40 1962년 1962년 41 1962 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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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01정책백서목차(1~18)
발간사 2008년 2월, 발전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출범한 새 정부는 문화정책의 목표를 품격 있는 문화국가 로 설정하고, 그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권한과 책임의 원칙에 따라 지원되고, 효율의 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문화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란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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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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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IOM 인신매매 방지 교육 지침서 시리즈는 인신매매 피해자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 에 대한 지원 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개발 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인신매매 방지 되었다. IOM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실무자에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비정부기구, 정 게 도움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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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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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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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220심미안창27호본문 1904.1.29 4:51 페이지3 CTP175아트지 3인3색 문화이야기 광주브랜드 브랜드: 이것은 주문呪文이 아니다 이향준_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 재단 운영위원 도시 브랜드 는 시민생활의 총체적 이미지에서 힘을 얻는다 도시의 트랜드 -옛길의 향기와 문화, 예술 조덕진_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편집장,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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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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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이야기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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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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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82-대한신경학0201
www.neuro.or.kr 2010 1 Vol. 82 www.neuro.or.kr 01 5 January 2010 2007 Newsletter of THE KOREAN NEUROLOGICAL ASSOCIATION 2010 NO.82 2010.JANUARY C o n t e n t s 04 05 06 10 13 17 18 20 22 25 28 32 3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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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CONTENTS 03 04 06 14 21 27 34 40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17 Historical Dictionary of North Korea Auf den Spuren der Ostbarbaren Czech-Korean Dictionary 18 19 Transforming Korean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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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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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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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Global 한국 팝음악, 즉 K-POP이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선봉에 나섰다. 인기 걸그룹 카라가 도쿄 아카사카의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데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_ 이태문 통신원 또다시 열도 뒤흔드는 한류 이번엔 K-POP 인베이전 아이돌 그룹 대활약 일본인의 일상에 뿌리내린 실세 한류 일 본에서 한류 열풍이 다시 뜨겁게
더바이어102호 01~09
www.withbuyer.com Highquality news for professionals www..kr Tel. 031)220-8685 2 Contents 01 02 08 17 18 TEL. 064720-1380~87 04 06 08 10 12 14 17 18 www.withbuyer.com 3 20 23 24 26 24 26 28 29 30 32 33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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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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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009. CONTENTS 014 016 018 021 026 048 062 080 100 102 105 108 110 120 122 125 CHINA Neimenggu CHINA Sichuan INDIA Chennai 02 014 015 016 017 018 019 020 > 022 023 wh a t makes YOU HAPPY?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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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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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 Vol. SUMMER Vol. WINTER 2015. vol 53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4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5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프로그램 세계문화유산 걷기대회 Walk Together 탐방길곳곳에서기다리고있는조별미션활동! 남한산성 탐방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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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s p x f p (x) f (x) VOL. 46 NO. 12 2013. 12 43 p j (x) r j n c f max f min v max, j j c j (x) j f (x) v j (x) f (x) v(x) f d (x) f (x) f (x) v(x) v(x) r f 44 r f X(x) Y (x) (x, y) (x, y) f (x, y) VOL.
The mission minded church - Strategies in building a multicultural ministry – Die missions-bereite Kirche - Strategien zum Aufbau multikultureller Ge
도여베르트의선험적비판 Dooyeweerd s transcendental critique Session One: What is the transcendental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이론적사고의선험적비판이란무엇인가? Session Two: Transcendental critique as a thought and cul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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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교육자를 위한 디자인사고 / 교육자를 위한 디자인사고 / 4 5 어떻게 하면 나의 교실이 학생들의 니즈를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학교에서 21세기형 학습경험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뉴욕에서 2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Michael Schurr)은 자신이 한번도 아이들에게 무엇이 그들을 교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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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심미안창30호본문 1976.4.7 12:24 AM 페이지3 CTP175 특집기획 광주비엔날레의 혁신과 과제 스무 살의 광주비엔날레, 어디로 가야하나 조덕진_ 아트플러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담론의 새로운 정립을 통한 혁신 과제 김옥조_ 미술평론가, 편집국장 광주비엔날레와 문화사대주의 정인서_ 서구문화원장,
정부3.0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과 참여로 정책을 함께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책 개선안을 도출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각 기관별 정부3.0 과제에 적용하여 국민 관점의 서비스 설계, 정책고객 확대 등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유도하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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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6 9 2 40 4 9 1 15 2 13 3 1 1 22 113 1960 2 12 40 1987 1960 1 114 3 4 5 2 6 1. 1962년 작 집 2. 1938년 작 언덕 위의 파밭 3. 2000년 작 연못 4. 1992년 작 연못 5. 2000년 작 설경색 6. 1972년 작 산 문화예술 이천삼년 사월호 115 1921 5 17 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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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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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프로그램 선택은 다단계적인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본 연 구는 TV시청을 일상 여가행위의 연장선상에 놓고, 여러 다양한 여가행위의 대안으로서 TV시청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TV를 시청하기로 결정할 경우 프로그램 선택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지 밝히고자 했다. 27) 연구 결과, TV시청
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vii 요 약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며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변 동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정책은 기존의 정책 방향과 내용을 유지 변화시키면서 정책을 계승 완료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 변화 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조직,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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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방송 콘텐츠는 TV라는 대중매체가 지닌 즉각적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다 양한 수익 창출이라는 부분에서 영화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 이 엄청난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해 내 면서 방송 콘텐츠의 수익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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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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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히 묻고 가까이 실천하는 선진 산림과학 3.0 시대를 열겠습니다! 01 03 05 05 06 07 08 08 10 10 11 임업인에게는 희망을, 국민에게는 행복을 带 NIFoS 1 중국 닝샤회족자치구() 중국 무슬림 인구 주요 분포도 중국 닝샤의 회족 자치구 3 중국 무슬림 인구 Top 11 지역 순위 지역( 省 ) 인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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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eyesurfer. All rights reserved.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04면 종합 -9-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내일신문] 17면 산업/무역 - 11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37면 인물 - 16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동아일보]
평생교육원 모집안내-2013학년도
Sunlin College Life Long Education Center 선린대학교평생교육원 Sunlin College Life Long Education Center 일반 교양과정 문예창작 성공하는 여성의 삶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 문예창작에 대한 기초적인 창작이론 및 실제를 통하여 창작 력을 배양하며, 문단에 등단할 수 있도록 하여 창작활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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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스키 점프의 생체역학적 연구
연구 대상자 연령(세) 신장(cm) 체중(kg) 운동경력(년) 스키 플레이트 특성 길이(cm) 무게(kg) A(CYJ) 21 162.0 53 12 237 3.56 B(KCK) 19 173.0 55 8 253 3.80 C(KHK) 20 175.0 62 12 256 3.80 선행 연구 변인 조사 ꀻ 실험 계획 및 설계 ꀻ 촬 영 ꀻ 디지타이징 위치 좌표 계산 운동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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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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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화보 끝없는,, 끝나지 끝나지 않는 않는 즐거움 끝없는 얼음벌판 인제빙어축제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지류와 내린천의 관문인 소양호, 눈 덮인 내설악의 환상적인 경관을 배경으로 은빛 빙어를 주제로 펼쳐 지는 축제가 있다. 바로 인제빙어축제이다. 인제빙어축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 민국 대표축제이다. 10회 축제기간 동안 방문객 100만 명 돌파(2007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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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1 2 3 4 5 6 경제적 요구 생산성 경쟁력 고객만족 수익성제고 경제성장 고용증대 외부여건의 변화: 범지구적 환경문제의 심화 국내외 환경규제의 강화 소비자의 의식 변화 환경비용의 증대 환경단체의 압력 환경이미지의 중요성 증대 환경적 요구 자원절약 오염예방 폐기물저감 환경복구 삶의 질 향상 생태계 보전 전통적 경영 경제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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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5월전체 2005.6.9 5: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개 지역지식재산센터 를 통해 발명가와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선진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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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 제정과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에 관한 연구 - 거버넌스 관점과 여성단체의 역할을 중심으로 오 혜 란 * 1) 초 록 주요용어:성매매방지법, 성매매, 여성관련 법률, 여성단체, 여성정책, 입법과정, 젠더, 거버넌스, 젠더 거버넌스, NGO I. 들어가는 말 II. 이론적 배경 여성정책과 거버넌스 거버넌스의 의미 거버넌스의 유형 1) 국가(정부)주도형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가을은 독서의 계절?! 16
특집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가을은 독서의 계절?! 16 특집 : 독서관련 단체의 독서축제 가을독서문화축제, 부산으로 가다 17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부산 가을독서문화축제의 이모저모 18 특집 : 독서관련 단체의 독서축제 19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20 특집 : 독서관련 단체의 독서축제
지도학발달06-7/8/9장
3 1 7 17 95101G 421d 221 2 3 4 1971 34 12 1804 1866 1972 31866 4 1 5 33 1866 3 6 31866 3 1803 1877 1804 1866 2 02333 318 4 51 633 3 6 2022 222 31866 1955 1931 3 916 7 1925 1925 10 9 1862 65 8 7 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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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상징물 1. 광진구 마크 녹음이 가득한 아차산과 한강에 비친 아차산의 음영을 나타내는 두 삼각형, 광진 나루를 보여주는 돛단배로 이루어져 있다. 광진구의 유구한 역사와 미래를 나타내 는 백색과 한강의 깨끗한 환경을 상징하는 청색을 바탕으로 광진구의 힘찬 도약과 화합을 상징한다. 2. 새 - 까치 3. 나무 - 느티나무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모양이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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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40242-000001-08 2013-927 2013 182 2013 182 Contents 02 16 08 10 12 18 53 25 32 63 Summer 2 0 1 3 68 40 51 57 65 72 81 90 97 103 109 94 116 123 130 140 144 148 118 154 158 163 1 2 3 4 5 8 SUMMER
(연합뉴스) 마이더스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2012. 04 Vol. 98 Cover Story April 2012 _ Vol. 98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www.yonhapmidas.co.kr Contents... 14 16 20 24 28 32 Hot News 36 Cover Story 46 50 54 56 60
감사회보 5월
content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동정 및 안내 상장회사감사회 제173차 조찬강연 개최 상장회사감사회 제174차 조찬강연 개최 및 참가 안내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조직의 역 량과 경영리더의 역할의 중요성 등 장수기업의 변화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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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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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VOL.13 No.4 2011 08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CONTENTS XXXXXX XXXXXX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3 XXXXXXXXXXXXXXX XXXXXXXXXXXXXX 4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5 6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2014 경영학회_브로셔 내지
2014 08. 18-08. 20 2 02 03 04 05 05 05 06 07 08 08 08 09 10 11 12 13 16 17 19 22 23 23 23 24 24 25 25 27 28 29 30 30 32 33 34 34 35 35 35 37 37 38 39 39 40 42 43 44 44 44 46 47 49 50 51 3 4 5 6 7 8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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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읽는 우리 과학 교사용 지도서 자연 6-1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Ⅱ) STS 프로그램이 중학생 과학에 관련된 태도에 미치는 효과 관찰 분류 측정훈련이 초등학생의 과학 탐구 능력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 국민학교 아동의 과학 탐구능력과 태도 향상을 위한 실 험자료의 적용 과학사 신론 중 고등학생의 과학에 대한 태도 연구 과학사를 이용한 수업이 중학생의 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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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저널 한국방송기자클럽 발행인 양영철 편집인 박노흥 월간 발행처 2015 8August 1990년 6월 20일 창간 서울시 양천구 목동동로 233(목동) 방송회관12층 TEL. 02) 782-0002,1881 FAX. 02) 761-8283 www.kbjc.net 제197호 Contents 02~03 방송이슈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33편 개인상 24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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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술 교 육 논 총 Art Education Research Review 2012 제26권 1호 1-28 미술가의 창의적 사고와 미술문화 진화의 관계성 탐구 - 창의성의 구성요소와 전통미술을 중심으로- 1)김 혜 숙* < 요 약 > 창의성의 구성요소인 영역, 장, 개인의 관계를 조선시대 미술가, 미술계, 미술문화 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미술가의 창의적 사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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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2. 9. 13. Story 1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2 STORY STORY 12 호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2 Korean Wave Story 2012 (2012년 1/4분기) 12 호 12 호 2012. 4. 9. 2 3 4 5 轩 辕 剑 之 天 之 痕 我 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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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sem.kedi.re.kr CONTENTS 01 연속기획① : 협업기관에 가다! 예술 체육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에 가다! 02 협업기관을 찾아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폴리텍대학 03 자유학기제 자율과정 자료집 소개 04 알림 교육부 자유학기제지원센터, 협업기관 소식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자유학기제 Newsletter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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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와 열정으로 고객의 행복을 창조하는 선진일류 공기업 3 제35호 2010년 3월 고객을 위한 한결같은 마음의 공기업 중랑구시설관리공단으로 오세요. 소중한 한분 한분에게 행복한 웃음과 건강을 드리고자 유익한 소식과 프로그램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발행처 : 중랑구시설관리공단 편집 : 창의경영추진반 주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도당길 175번지 전화 : 02-3422-4831~4
소규모 비즈니스를 위한 플레이북 여기서 다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YouTube 소개 2. YouTube에서 비즈니스를 위한 채널 만들기 3. 눈길을 끄는 동영상 만들기 4. 고객의 액션 유도하기 5. 비즈니스에 중요한 잠재고객에게 더 많이 도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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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07 08 09 13 14 15 16 19 20 Chapter 02 25 27
www.kfaexpo.kr The 35th Korea Franchise Expo 2015 2015. 9. 3 5 Chapter 01 07 08 09 13 14 15 16 19 20 Chapter 02 25 27 140개 기업, 200여 브랜드, 지금까지 박람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창업박람회입니다! 01 Chapter Chapter
영상문화27호 (보람편집)_수정 (4).hwp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Ballet Russe)에 나타난 종합예술적 특질: 를 중심으로 심정민 / 동덕여자대학교 [국문초록]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1909년 창단한 발레뤼스(Ballet Russe)는 러시 아발레단이란 뜻의 불어명칭으로 발레뤼스의 주요한 예술적 추구는 무용 을 중심으로 문학, 음악, 미술, 패션 등
트렌드29호가제본용.hwp
- 309 - - 310 - - 311 - - 312 - - 313 - - 314 - 외부적 탐색단계 새로운 정보에 자극받는 외부적 탐 색단계 새로운 광고 메시지에 의하여 소비자가 제품 및 브랜드 평가를 하는 대안의 평가 단계까지의 일련 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림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의 구매태도형성 어느 단계에서도 상품 광고가 미치는 영향력이
2010.05 내지 뒷
VISION 2015 R D Global Leader 2 0 1 0 5 163 vol_ 163 KAERI MAGAZINE 2 0 1 0 M A Y C O N T E N T S 2010 +05 KAERI MAGAZINE 04 18 28 42 02 04 06 08 10 11 12 14 16 18 20 22 24 26 28 32 34 36 37 38 40 44 46
A000-008목차
1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및 대도시 낙후지역에 150개의 기숙형공립 고교를 설립하여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겠습니다.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등 낙후지역에 150개의 기숙형공립고교를 설립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고, 기숙사비는 학생의 가정형편을 반영한 맞춤형 장학금으로 지원하여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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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생활 문화 매거진 235 Cover Story ISSN 2005-2820!!2 3! 3 201002 002 !!4 5! 201002 !!6 44 7! 201002 !!8 February 2010 VOLUME 35 Publisher Editor-in-Chief Editor Planning & Advertising Advertising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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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Winter 02 08 10 News 14 Article Report 42 NARS Report 60 NARS Report Review 68 World Report 84 Column 94 Serial 116 2011 Winter 11 www.nars.go.kr 01 02 w w w. n a r s. g o. k r 03 04 01 02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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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Vision Mission 15 174 121881 T 0269004400 F 0269004499 170 5 121140 T 0221264091 F 0221264044 4 112 203 425807 T 0314020442 F 0314020140 899 402061 T
2014 Vol.130 Zoom In People Vision Mission 15 174 121881 T 0269004400 F 0269004499 170 5 121140 T 0221264091 F 0221264044 4 112 203 425807 T 0314020442 F 0314020140 899 402061 T 0324341391 F 0324391391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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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I A M O T O R S V o l _ 1 0 6. 2 0 1 3 01 K I A M O T O R S V o l _ 1 0 6. 2 0 1 3 01 Happy Place + 은빛 추억이 새록새록, 태백산 눈축제 태백산에 하얗게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축제가 시작된다. 태백산 눈축제 는 은빛 으로 옷을 갈아입은 태백의 매력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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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