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발간 - 5권 나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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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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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국 무 형 문 화 유 산 자 원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나 전 장 나전장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도독곡 창극 옹기장 불천위 제례 천일염 시조창 독서성 구들장논 나전장 풍어제 발간등록번호 ISBN
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나전장
3 나전장
4 일러두기 1. 국립무형유산원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무형문화유산 자원파악을 위 한 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2013년에 조사된 나전장 에 대한 현지조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 보고서는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 이 갖는 의미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사례를 수록하여, 유산의 전승현황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개별 사례는 지역별로 기술(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순)하고 해당 지역 내에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여 유산의 전국적 현황을 파악하도록 하였습니다. 3. 이 보고서의 원문(PDF)은 국립무형유산원 홈페이지(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5 발간사 무형문화유산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유네스코는 이를 보 호하고자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 을 제정하고, 협약에 가입한 각 나라들이 자국의 무형문 화유산 목록을 작성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도 협약의 당사국으로서 목록 작 성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보호 협약 체제는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에 대한 인식 체계에도 변화를 가져와 무 형문화유산이 그것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소중한 문화자산이 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문화가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에서 무형문화유산은 자국의 전통문화이면서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문화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환경 변화에 맞춰 국가 목록 작성에 필요한 무형문화유산 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간하는 보고서는 나전장 의 전승 현황 과 사회 문화적 기능, 그리고 전승을 위한 보호조치 등을 수록하여 유산의 현재적인 모습 과 함께 앞으로의 전승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가 우리나라 무형문화유산 국가 목록 작성 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인류 문화 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합니다.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유산의 전승 현 장을 직접 조사하고 기록하여 주신 조사자들과 조사에 응해주신 전승자 분들께 깊은 감사 를 드립니다. 2014년 12월 국립무형유산원 원장
6 목차 Contents
7 나전장 00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041 경기 042 강원 179 충청 186 전라 194 경상 225 Abstract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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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통공예기술 나전장
1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나전장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1. 나전장의 정의 및 소개 나전칠기는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전복껍질 등을 가공한 자개를 아교 및 어교로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 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이중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을 활용한 기술은 이미 청 동기시대까지 연원이 올라가고, 전복껍질의 자개를 이용한 기술은 통일신라시대에 발생하는 등 오 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목기나 목가구 등에 문양을 시문하는 나전일은 고려시대 이래 현재 까지 한 중 일 동아시아 삼국 중 유독 한국에서만 특별히 발전하여 우리의 민족 문화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이자 공예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일은 우리 민족 의 역사와 더불어 성장 발전해왔으며 그 재료에 해당되는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께 전승되어 왔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장인, 즉 나전장은 국가에서 동원하였고, 그들 이 제작하는 제품은 왕실이나 귀족들의 전유물로 사용되었다. 때문에 나전칠기는 그 시대의 미감을 표출하는 문양이 반영되어 당시대의 자연을 다루는 기술이나 우주에 대한 지식이 양식적으로 변천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고려시대에는 불교적 미의식을 반영한 문양을 시문한 나전경함( 經 函 ) 등을 주로 제작하였는데, 이로 인해 자개를 잘게 끊어서 만드는 기법이 크게 성행하였다. 반면
11 나전장 8 9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유교적 미의식을 반영하여 관복함이나 여성용품의 제작이 많으며, 포도문양이 나 십장생과 같이 자손을 다산하고 장수하며 부귀하길 바라는 길상적 성격을 반영한다. 이러한 다종 다양한 문양은 주름질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이렇게 나전칠기에 반영된 문양은 시대에 따른 예술적 미감을 표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을 제작하기 위한 기법의 발전도 도모하였는데, 특히 전복 자개를 어떻게 다루어 문양을 시문하는가에 따라 기술적인 발전 양상이 달라졌다. 곧 고려시대 이래 자잘하고 섬세한 문양은 잘게 끊는 기법으 로 제작하였으며, 칠기 면을 회화적 공간으로 보아 십장생 문양 등을 처리할 때에는 주름질 기법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선적인 처리나 모서리의 강화를 위해 동선이나 은선을 감입하거나 전복 조개에서 찾을 수 없는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 대모껍질을 갈아 복채기법을 사용하거나 부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상어껍질을 펴 바르기도 하는 등 다종다양한 기법이 전승되었다. 고려에서 조선 및 한말 일제시대, 현대로 내려오면서 나전칠기의 사용자는 점차 확산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왕실이나 귀족 계층에 제한되었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사대부가 및 부유한 상인 등이 사 용하다가 한말 이후 현대에는 보다 더 수요가 늘었다. 어쨌든 좌식 생활을 영위하던 전통적인 우리 의 주거 공간에서는 나전칠기는 안방에 의복 등을 넣어둘 장롱이나 반닫이가, 사랑방에 책을 넣어두 던 함궤나 상자 등 각종 수납가구로 애용되어 왔다. 시기가 내려오면서 집의 규모가 커지면서 부피 가 큰 장롱 제작이 성행하는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늘날에는 아파트와 같은 입식구조로 가옥형태가 변화 하면서 장롱 뿐 아니라 화장대와 콘솔 등 다종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도 나전칠기는 전통적인 공예품으로서 나름대로 독특한 한국적인 문양을 지니고 있음을 누구나 인 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관념이 현대에도 이어져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 한국 을 대표하는 전통공예품이자 상징으로 여겨져, 관광상품이나 소형 소품의 문화상품이 대량으로 제 작되는 추세이다. 곧 거울, 명함 케이스, 핸드폰 케이스, 액세서리 등 다종다양한 실생활용품이나 선 물용품이 대량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고 있다. 이렇듯 나전칠기는 필요에 따라 실생활에 필요한 용품 으로 제작되었으며, 향후 또 다른 수요가 생기면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화될 가능성도 무궁무 진하다.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자연 환경이나 생산 방식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 무형문화재로 지 정되는 동안 변화되었으며, 판매구조가 변화하면서 문화유산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추세이다. 무엇보다 먼저, 나전칠기를 만들고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재료인 나무 자개 옻 등의 수집 과 구득의 문제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이후까지는 나전칠기가 조선미술전람회나 세계박람회 에 출품되거나 일부 계층이 선호할 뿐 그다지 수요가 많지 않아서 국내산으로 충당이 가능했다. 그
1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러나 1960~1970년대 근대화 이후 1990년부터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나전칠기의 수요가 늘자 그 것을 생산하는 각종 재료를 해외의 수입품에 의존하게 되었다. 둘째, 나전칠기 작업의 공정마다 사 용하는 시설이나 도구의 현대화와 기계화되는 문제이다. 해방 이후 근대화 이전까지는 인건비가 저 렴하여 소규모 공방에서 수공작업으로 나전칠기 제작의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1990년대부터 수요가 증가되자 인건비가 올라가고 대규모 공방에서 시설이나 도구를 기계화 하여 자개 등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수반되어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작가를 중심 으로 하는 1인 공방의 수공예품과 명인이나 명장 등이 운영하는 대형 공방에서 기계 생산으로 대량 제작하는 생산 방식으로 작업구조가 이원화되었다. 셋째, 나전칠기 제품의 생산과 판매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지방과 서울, 소품과 작품, 가구와 문화상품 등 이분화 되면서 작업 단계가 다양하게 분 화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의복을 담아 수납하기 좋은 가구로 규모가 작으면 함궤, 규모가 크면 가구 등을 생산하였는데, 각 시대마다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이해의 정도 및 사유체계를 표상 화한 문양을 시대 양식으로 발전시켰으며, 최고급 기술로 장식성이 강한 나전칠기의 제작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나전칠기의 수요가 증가하는 조선시대 내내 이것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재료들은 국가의 통제를 받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는 백골에 해당되는 각 종 나무의 종별과 생산지 및 개수를 파악하거나, 전복 조개의 생산지를 확인하거나, 표면을 마감하 는 옻나무의 산지를 국가의 관리 하에 두었다. 그러면서 더 좋은 재료를 수급하려는 자연 지식이 다 양하게 발전하였고, 제작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과학적 방안도 마련되었다. 따라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무형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다. 우선, 나전칠기는 우 리 민족의 고유한 수납가구이자 선물용품으로 기능한 것이다. 다음, 나전칠기는 시대의 미감을 반영 하는 심미적 대상으로서, 자개로 표현하는 문양은 그 시대 사람들의 자연관이나 우주에 대한 지식을 집약시켜 표현한 상징적 표상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개를 자르고 오리고 칠을 발라 완성하 는 제작기술은 나전 장인들의 삶과 체험 속에서 체득되고 응축된 전통적 경험지식으로서 전승되어 왔다고 여겨진다. 2. 유산의 전승지, 전승자와 공동체의 역할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어느 집이나 안방에는 장롱 하나쯤 갖춰져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장롱은 한국인이 의복을 수납하는 중요한 용품으로서 주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전통적으 로 사대부가에서는 여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오동나무를 심고, 그 아이가 자라 시집 갈 나이가 되 면 집안의 경제력을 과시하고자 할 때 혼숫감으로 나전칠기 장롱을 장만해 주었던 기억이 전승되는
13 나전장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나전칠기 장롱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적인 가구이다. 이러한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나무와 자개와 옻칠이다. 이 재료들이 생산되는 지역에 서는 다른 지역보다 해당 제품을 만들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발전하게 되었다. 더욱이 나전 칠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자개나 옻칠 자체를 국가에서 통제할 만큼 국가적으로 긴요한 원자재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소비가 가능한 지역에서도 함께 발전한 것도 특징이다. 때문에 해방 후 국가에서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일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공예기술이라고 여 겨, 이 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1966년 6월 29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으로 지정하였다. 이 것은 전통공예기술 중 갓을 만드는 총모자장 양태장 입자장을 합쳐서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 형문화재 제4호 갓일을 처음으로 지정한 이후 두 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만큼 나전칠기를 제작 하는 기술과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에 대한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 중요성을 국가나 학계가 인지하 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나전칠기와 관련된 일과 이에 종사하는 장인들에 관심 을 갖고 보호하고자 국가를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 게 나전칠기와 관련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과 기능 보유자 중 현존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통영, 끊음질)과 이형만(원주, 주름질),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서울, 옻칠정제) 등 3명이 지정되어 있다. 다음 지방 무형문화재로는 서울특별 시를 비롯하여 지방에 나전장과 칠장 15명이 지정되어 있다. 곧 서울특별시에는 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신중현(생옻칠) 손대현(옻칠) 홍동화(황칠) 정병호(남태칠), 제14호 나전장 정명채가 있다. 경기도에는 무형문화재 제17호 생칠장 송복남, 제24호 나전칠기장 배금용(칠장) 김정렬(나전장)이 다. 강원도에는 무형문화재 제13호 나전칠기장 박귀래, 제12호 칠장 김상수, 제17호 생칠장 이돈호, 제11호 칠정제장 박원동이 있다. 전라북도에는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이의식 김영돌, 옻칠(정 제)장 박강용이 있다. 이렇듯 나전장은 나전일과 칠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만큼 나전칠장 으로 부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무형문화유산으로 나전칠기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본 조사에서는 위와 같은 문화재청의 중요무형문화재 및 지방자치단체의 무형문화재로 제도권에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 나전장은 제외 하고, 그밖에 제도권 밖에서 나전일을 하는 장인들의 전국적인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자 지역을 안 배하여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나전칠기의 생산지역은 크게 서울 지역, 경기도 지역, 충청도와 전라 도 지역,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4개 권역으로 구분되었다. 이들 권역별로 개략적인 전승 양상과 공동체의 역할 및 특징에 차이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 지역은 전통적으로 나전칠기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료의 구득부터 제품의 생산과 판
1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매 등이 고루 갖춰져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나전일에 종사하는 인력의 수급도 용이하며, 일 년에 수 십 차례 열리는 각종 전시회를 통하여 전문가는 물론 일반 소비자와 애호가들이 나전공예를 향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곧 서울은 교통과 소비의 중심지로서 전국에서 생산된 모든 재료가 모이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 많이 분포하여 나전칠기의 중심지가 되어 크고 작은 공방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서울에는 나전칠기의 중심 재료가 되는 자개를 판매하는 상가가 밀집되어 있어 나전일 을 하는 데 유리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서울 지역에서 주목되는 전승지로서는 성동구 왕십리 일대가 있다. 한 때 이곳 왕십리와 화 양리에는 100여 곳에 이르는 자개가게가 있었고, 종사자수는 500여 명에 달했지만, 1990년대를 전 후하여 상가는 화양리에서 본래 자개의 메카였던 왕십리로 많이 옮겨왔다. 그 후에도 전업은 계속 해서 이어졌고 지금은 10여 곳에서만 자개를 취급하고 있다. 곧 평화자개상사를 비롯하여 서울자개, 상아자개 등 여러 곳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재료상가에서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국내산 자개를 비롯하여 필리핀이나 멕시코 등지에서 수입된 다채로운 형태와 색상의 자 개를 공급하고 있다. 게다가 나전칠기를 마감하는 데 필수적인 정제칠 흑칠 채색칠 칠분 등의 재료도 원주 등지의 국내산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하여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이곳에서 는 나전칠기 가구나 제품을 제작하기에 적당한 형태와 크기 및 색상의 다종다양한 자개와 칠을 원 활하게 공급해주고 있어 서울지역이 나전칠기를 전승하기에 적합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고 있다. 서울지역 나전장의 전승현황 지역 전승지 유산명칭 성명 생년 종사기간 산업 주요품목 서울 광진구 중곡3동 크리스탈칠기 김규장 업체 가구, 작품 중곡동 229-5호 경동칠기 최태문 업체 가구 성동구 사근동 이빈공예 최상훈 개인 소품, 작품 성북구 정릉4동 809 개인 공방 김선갑 개인 가구 은평구 역촌동 남해공예사 최태화 업체 가구 강북구 수유5동 고암나전칠기연구소 오왕택 개인 작품 종로구 부암동 공방 목 장민석 개인 목가구 강동구 암사동 디자인 넥서스 조훈상 개인 각종 소품 성동구 도선동 평화자개사 김영배 업체 자개재료상 다음으로 서울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승지로는 강남보다는 강북지역에 편향되어 있다. 여러 지역 중 가장 주목되는 전승지는 광진구의 중곡동, 성북구 정릉동, 은평구 역촌동 등이다. 이 지역은 해방 이후 크고 작은 공방이 산재해 있었던 곳이며, 더욱 활성화된 시기는 1960년대 산업화와 근대
15 나전장 화를 거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겨 판매장이 형성된 이후부터이다. 곧 1960년대 말부터 강북지역에 는 나전칠기 공방이 집중적으로 세워졌음을 알 수 있으며, 지금도 이곳의 나전칠기 공방이나 공장은 같은 곳에서 30~40년 이상 전승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명장을 비롯하여 30~40여 명의 장 인이 나전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지역적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다. 왜냐하면 중곡동 일대가 1970년 부터 면목동에 이어 서울시가 외곽을 개발할 당시의 신도시적 성격이 강한 지역이므로, 이 지역 나 전일은 1980년 이후부터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강북지역에 여전히 공방이 밀집 한 이유는 이곳의 땅값이나 집세가 강남보다 싸고, 무엇보다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있 다. 특히 이곳에서는 서울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가구를 제작하는 경향이 있다. 가구는 문화상품이 나 관광 소품과 달리 부피가 크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만들 때에도 그것을 판매할 때에도 자리를 넓게 차지하므로 강북이 강남보다 유리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가구 제작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은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크리스탈칠기 나 경동칠기, 은평구 역촌동에는 남해공예사 등 대규모 공방이다. 이들 공방을 경영하는 대표들은 대개 60대에서 70대에 해당되는 고령의 장인들로서, 40년 이상 나전칠기 일에 종사하였다. 그들 중 1960대 말부터 활동한 김규일과 1977년에 설립한 크리스탈칠기의 김규장은 형제간이며, 1968년 말 에 남해공예사를 설립한 최태화와 1973년에 입문하여 1980년에 경동칠기를 설립한 최태문 또한 친 형제간이다. 이러한 나전칠기 가구공장에서 주로 생산되는 제품은 장롱과 함께 화장대나 문갑 등 혼 수용 가구 일습을 대량으로 제작하거나 부유층을 위한 맞춤형 가구를 제작하여 공급하는 것이 특징 이다. 이처럼 대형 나전칠기 공방의 활동을 조사한 결과,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현대 나전칠기의 흐 름을 주도했다고 여겨진다. 곧 현대 나전칠기는 1960~1970년의 성장기를 거쳐, 1980~1990년대의 발전기를 지나, 2000년대의 침체기에 이르고 있음을 알게 한다. 게다가 생산방식의 변화도 주도하 여 이들 공장들이 설립될 당시인 1960년 말에서 1970년대 초에는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을 유지하 였는데, 산업화 이후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나전칠기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점차 기계화 방식의 대량 생산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규모가 큰 나전칠기 공장에서 가구를 생산할 때 에 백골은 다른 소목 공장에서 주문해 들여오고, 공방 내에 자개부와 칠부를 분업적으로 운영하며 해당 분야마다 여러 명의 전문 장인을 두는 제작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계화와 분업화 경향은 규모와 형태는 달라도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중곡동 지역이 국내 최대의 나전칠기 전승지로 기능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근처에 나전칠기 를 판매하는 수십여 곳의 대규모 가구 도매상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나전칠기 가구는 부피가 크 고 무거워 제작이 완료된 이후 완제품으로 시장에 내려면 운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도매상이 위치하고 있어 중곡동이 판매에 적격이라는 것이다. 특히 가구 판매장은 장롱, 침대, 화장
1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대, 문갑 등 안방이나 서재 등의 공간을 풀세트로 디스플레이 하고, 여러 회사나 공장의 제품을 비교 하고 구입하기 때문에 공간이 넓어야 한다. 가구를 판매하는 도소매상의 특성상 땅값이나 집세가 저 렴한 땅에 넓은 공간을 차지해야 하는데, 중곡동은 이러한 여러 조건을 가장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고 한다. 근래 광진구 중곡동 다음으로 규모가 있는 곳은 중곡동에서 밀려나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간 광진 구 구의동이나 강동구 천호동이다. 이들 지역 또한 중곡동만큼이나 땅값이 저렴하고 넓은 공간을 확 보할 수 있어 가구 공장이 위치하기에 적합하다. 때문에 가내 수공업이나 1인 기업으로 구석구석마 다 수십 군데에서 여전히 나전칠기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특히 강동구 천호동의 경우 고급 가구 를 소비하는 강남구가 가까이 위치하여 나전칠기를 제작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강북지역에서도 규모가 작은 개인 공방이 여럿 있다. 최상훈의 이빈공예, 김선갑의 개인 공방, 오왕택의 고암나전칠기연구소 등이다. 이들 개인 공방의 전승자들은 무형문화재 제도권 내 보유자 들에게 나전칠기의 오랜 전통을 배웠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곧 김선갑과 오왕택은 중요무형 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에게, 최상훈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칠기장 민 종태 보유자와 관계를 맺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 개인 공방의 전승자들은 처음 나전칠기에 입문할 때부터 보유자와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대규모 공장과 또다른 형태의 전통 나 전칠기의 지식이 전승되고 있었다. 곧 그들의 작업실이나 개인 공방에서도 일부 수입산 재료나 현대 화된 기계식 도구를 사용하지만, 스승에게 배운 대로 전통적인 국산 재료와 수공 도구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문양과 형태를 여전히 고수하는 작업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무 형문화재 보유자의 공방 작업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스승들의 사후 나전칠기 가구의 소비가 활발해 진 1980년대 이후 대규모 공방에서 자개작업만 전담하거나, 독립해서도 여전히 1인 통합형 수공방 식의 전승을 고수하고 있다. 이 또한 이 지역 나전칠기의 또 다른 지역적 특징이다. 한편, 경력 10년 미만의 젊은 장인들이 제도권의 무형문화재 장인들에게 전통 나전칠기 기술을 교육받고, 이것을 현대 가구나 공예와 접목시키는 경향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번 조사 대상자 중 공방 목 의 장민석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경우이고, 디자인 넥서스 의 조훈상은 대학에서 디자 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현대 리바트가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둘다 대학에서 이 분야 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산하 KOUS에서 개설한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보유자에게 소목일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손 대현 보유자에게 나전칠기일을 수강한 것이다. 게다가 조훈상은 그곳에서 전통공예가에게 칠보까지 배웠다. 이렇게 배운 전통적인 작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교육을 하거나 현대적 작품 전시 등
17 나전장 과 접목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전자인 장민석은 소목일에 나전을 부가적으로 가미시켜 동호인들에 게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후자인 조훈상은 나전과 칠보를 결합시켜 소수의 애호가를 위한 소품 을 전시하고 나만의 명품 으로 제작하여 공급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의 공방은 작지만 일반 인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먼지 나고 지저분한 일반 공방과 달리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깔 끔하고 깨끗한 작업환경에서 전승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경기도 지역은 나전칠기의 최대 소비처인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규모가 비교적 작은 전승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경기도는 서울과 가까운데, 1970~1980년대 산업화 이후 도시 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자리잡게 된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는 현재 크고 작은 200여 공방이 밀집해 있는데, 이곳의 대표들은 원래 서울의 외곽에 위치해 있던 나 전칠기 공장에서 일을 배웠던 이들이 독립하면서 이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들 업체에서 제작하는 품목들은 문화상품이나 관광용 소품 등을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지역 나전장의 전승현황 지역 전승지 유산명칭 성명 생년 종사기간 산업 주요품목 하도읍 월산리 설화칠기 김용관 업체 가구 하도읍 녹촌리 동양칠기 김길수 업체 소품 일패동 272 김종민 업체 소품 남양주시 진건읍 진관리 329 최권혁 업체 소품 와부읍 육성리 유창근 업체 소품 지금동 청목공예 김동숙 업체 소품 금곡동 나승덕 업체 소품 경기 일패동 한국칠기 배명주 업체 가구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4 김정열 업체 소품 고읍동 한양수자인A 이봉구 업체 소품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82-1 장춘철 업체 소품 중원구 은행2동 82-1 만정공방 배광우 개인 소품, 작품 광주시 오포읍 고산리 38-2 가야옻칠공예사 성용 업체 가구, 소품 안산시 상록구 비늘치길 41 박미란 개인 소품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 박만순칠기 박만순 업체 가구, 소품 인천 인천시 가좌동 진성옻칠공예 임충휴 업체 소품 우선 경기도에서는 북부 지역에서 나전칠기업이 발달하였는데, 이곳은 광진구 중곡동이나 성동구 왕십리 등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때문에 경기도의 나전칠기 전승지역 중에서도 가장
1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주목되는 곳이 남양주이다. 이곳에서는 관광 상품과 같은 대중적인 나전공예품이 많이 제작되고 있 는데 관련업에 종사하는 장인이 200여 명 정도가 포진하여 있다. 경기도 남양주 공방에서 나전칠기 제작은 분업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곧 이곳에서는 백골을 제작하는 업체가 8곳, 자개를 문양에 따 라 절삭하는 업체가 4곳, 이것들을 가지고 나전칠기를 제작할 때에는 자개부와 칠부의 장인으로 세 분화 전문화되어 있다. 이러한 자개를 유산지에 붙이는 붙임질과 자개의 표면이나 칠을 닦아내는 사 포질 등에는 여성 장인들도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남양주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나전제작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공방 상호간에는 정기적으 로 친목 모임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적게는 한 둘, 많게는 다섯 개 이상의 모임에 참여하 며 상호 정보교환 및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하여 나전공예품이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어 놓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나 제작 도구는 대량 생산에 편리하도록 개량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지 식을 유지하기에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현대적인 개량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된 것이다. 이러한 개량 개선을 통해 재화 만능시대에 당당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 품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전일을 성격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작품을 제작하는 집단과 상품을 제작하는 집단으로 나뉘는 데, 전국 나전칠기 상품의 80%가 남양주에서 제작될 정도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나전칠기 상품은 대부분 나무 대신 MDF 소재를 백골로 사용하며, 옻칠 대신 캐슈를 가공하여 부착하는 형식으로 제 작되는 것이 확인된다. 또 나전칠기 제품의 핵심 재료라 할 수 있는 자개 또한 자연에서 채취된 전복 껍질이나 조개껍데기를 가공한 알자개가 아니고, 일정한 크기의 판에 자개를 붙인 판자개를 사용한 다는 점이다. 더 값싼 제품의 경우에는 자개도 아닌 자개의 문양을 실사로 찍어낸 플라스틱 필름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곳에서 제작되는 나전칠기 제품은 나전칠기의 전통 적인 지식과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남양주에서 주목되는 것은 자개에 그린 문양을 절삭해주는 공장이다. 나전칠기 제품과 소목 제품 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자개로 시문한 문양인데, 전통적으로 나전칠기 공장에서 자개부의 장 인은 톱으로 문양에 따라 자개를 하나씩 주름질하는 일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들 절삭 공장에서 는 주름질 장인이 하나씩 하던 자개 절삭 작업을 작품이건 상품이건 자개로 제작하여 양쪽 장인들 에게 골고루 넘겨준다. 특히 상품용 판자개 100장을 포개어 한번에 같은 문양을 절삭하는 기계와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기계는 다이아몬드 톱날을 장착하고 있으며 가 늘고 얇은 톱날로 100장의 자개를 켜, 나전칠기 제품이 대량 생산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것이 다. 양산이 가능해지고 경제 논리가 반영되면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통 지식에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19 나전장 물론 이와 같은 생산 구조의 개혁은 장인들이 기술로 생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필연적인 수순이라 여겨진다. 예컨대 나전칠기 작가들 중에는 낮과 밤의 작업 형태가 다른 경우가 있다. 곧 낮 에는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기계를 사용하여 대량 생산되는 상품을 제작하고, 밤에는 공모전이나 전 시회 등에 출품하기 위해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으로 작품을 병행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영 세하게 남양주 지역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공방의 장인들은 대부분 50대 후반 이상 60대로서, 서울 강북 지역의 대규모 공방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나전칠기를 제작하던 기능인 출신이 대부분을 차 지하고 있다. 비록 그들의 기능은 전통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고 나름대로 우수하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이어서 궁여지책으로 상품 제작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남양주의 나전칠기 상품 업계는 냉엄한 현실 경제의 도전에 직면해서, 나전칠기 작업의 전통적인 공정을 시각적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 재료나 도구나 공정이 모두 전통에서 멀어져 있다. 자개는 알자개 대신 판자개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인쇄한 플라스틱 소재로 바뀌고, 옻칠은 비슷한 성 분을 지녔으나 냄새가 고약한 캐슈로 바뀐 것이다. 도구는 활비비나 톱과 같은 전통 도구 대신 천공 기[드릴]나 절삭기를 사용해서 100장을 순식간에 절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들 장인은 대부분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인 전통적인 재료나 도구 및 기술과 같은 전통 지식을 고스 란히 간직하고 있으나, 그 중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상당수 변질된 모습의 나전칠기를 생산하고 있 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경기도 지역 중에서도 성남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승지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활동한 진성옻칠공예사 (임충휴)가 있고, 현재는 만정공 방 (배광우)이 있다. 전자를 경영하는 임충휴와 후자의 대표인 배광우는 둘 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인연을 맺고 있다. 곧 임충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의 제자였던 안승권이 운영하던 조안공예사 의 직원이자 제자로서 30여 년간 전통 옻칠기법을 사사받으며 그곳 공방에서 기능을 연마하였다. 이후 1994년 진성옻칠공예사를 세우면서 독립한 장인이다. 반면 배광우는 경기 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나전칠기장 배금용의 아들이다. 때문에 중요무형문화재나 지방자치단체의 무형문화재의 아들을 비롯하여 제자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재료와 도구 및 작품의 제작기술 등에서 전통적인 지식을 전승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충청도와 전라도는 나전칠기의 전승지로서 지역적인 특징이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충청도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나전칠기를 전승하는 기반이 조금 미약한 편이다. 하지만 전라도 지역은 충청도 지방보다는 조금 형편이 나은 편이며, 그중에서 광주시와 전주시는 나전칠기에 대한 전승지 로서 주목할 만하다.
2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충청 전라지역 나전장의 전승현황 지역 전승지 유산명칭 성명 생년 종사기간 산업 주요품목 충청 전라 논산시 은진면 살포재길 21 해송공예 문재필 업체 가구, 소품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 81-4 개인공방 김성호 업체 소품 광주시 남구 양림동 99-7 최씨공방 최석현 개인 소품 북구 오치2동 옻칠연구소 조규열 개인 소품 영암군 군선면 동구림리 오칠로공방 양준형 개인 가구, 소품 익산시 금강동 장산공예사 김창진 개인 가구, 소품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흑단공예 최대규 개인 소품 먼저, 전주와 익산은 나전칠기가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다. 두 지역의 근처에 위치한 남원은 일찍부터 목기와 함께 제기 제작을 위해 칠의 제작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남원 일대에는 칠 을 생산하는 옻나무가 인근 산간에서 재배되므로, 칠의 수급이 용이하여 자연스럽게 자연 유산을 이 용하는 자연지식이 전승되어 번창하였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1970~1980년대 전주 익산 남원 과 그 인근에 나전칠기 종사자들이 500명이 넘었을 정도로 번성하였고, 경제적으로 번창하면서 나 전칠기 가구점이나 재료상들이 즐비하였다. 특히 전주에는 통영, 부산, 서울, 광주 등 전국에서 많은 장인들이 유입되어 나전칠기가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99년, IMF 사태가 발생하 고 국가 경제 위기에 처하면서 대부분의 장인과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이 이직을 하고 판 매처가 사라지면서 재료상과 가구업체 또한 서서히 소멸되었다. 그 당시 활동했던 장인들 중 일부에 해당되는 박강용, 이의식, 김을생, 김영돌 등은 이후로도 계속 전승하여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되 었으며, 여전히 활발하게 우리나라 전통나전칠기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예컨대 전주 흑단공예 의 최대규가 통영 전습소 출신의 박희목이 전주 서학동에 옮겨와 활동할 때 나전칠기 일을 배운 것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전주나 익산에서 나전칠기가 전승되는 이유는 이곳 의 도시 규모가 크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적 여유가 많아 나전칠기 제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1970~1980년대에 이곳 전주와 남원 및 익산 등지에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장인이 500명 가까 이 되었던 것도 이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현재 익산 장산공예사 의 김창진 또한 나전칠기의 활황기 때에는 칠부에 7~8명이, 나전부에 5명을 두었다가 현재는 서너 명으로 축소되었지만 그만큼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나전칠기의 제작이나 전승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광주 지역의 공방들 또한 서울이나 통영 지역의 나전칠기 무형문화재 등과 연계되고 있는 전승지로서 주목된다. 예컨대 광주 옻칠연구소 의 조규열은 나전칠기에 입문한지 2년 뒤, 1986년 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김태희 보유자의 제자인 신봉곤의 문하에서 배웠다. 이후 2008년까지
21 나전장 경기도 남양주시를 왕래하면서 다양한 나전일과 칠일 기능을 배웠다. 이렇게 서울 지역과 경기 지역 의 나전칠기 작업 방식을 수용할 수 있었다. 반면 최씨공방 의 최대규는 입문하고 2년 뒤인 1974년 통영의 장인에게 나전칠기를 배웠으며, 이후 서울에 거주하는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 장 심부길 보유자나 113호 정수화 보유자에게 세부 기술을 익혔다. 이처럼 광주 지역의 장인들은 중 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에게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서 전통 기법으로 제작하는 일을 익힌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통 재료나 무형문화재 보유자들 이 존재하여 전통 기술에 대한 전통 지식을 고스란히 전승하는 지역적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재료적 측면에서 보면 강원도는 나전칠기를 마감할 때 필요한 옻칠의 특산지이며, 경상도는 나전칠 기에 문양을 시문하는 데 필요한 전복껍질이 생산되는 바닷가가 위치하고 자개의 특산지에 해당된 다. 다음으로 강원도와 경상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원주) 보유자와 송방웅(통 영) 보유자가 현존하고 있다. 그밖에 옻칠과 관련된 장인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강원 경상지역 나전장의 전승현황 지역 전승지 유산명칭 성명 생년 종사기간 산업 주요품목 강원 원주시 봉산동 중천공방 설명돌 개인 소품 북신동 2-6 태평공예사 장철영 업체 소품 경남 통영시 도남동 642 대복공예사 박재성 개인 소품, 가구 광도면 용호리 마구촌길 68 통영섭패 이금동 업체 자개 섭패 고성시 고성읍 죽계리 서울자개사 강상용 업체 자개 섭패 진구 초읍동 세흥칠공방 김정중 개인 소품 초읍동 송원칠공방 강정원 개인 소품 부산 연제구 거제2동 菱 花 紙 공방 문철호 개인 하청 소품 연산2동 창강칠화공방 김영필 개인 소품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563 철마공방 이종철 개인 작품 교육 수영구 강암1동 성문공방 김관중 개인 소품 상품 대구 동구 괴전동 125 아름다운공예 이종윤 개인 소품 상품 우선,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본고장은 통영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통영 출신의 장인들이 서울, 부산, 광주 등지를 거점으로 대도시 지역으로 확산되어 어 느 곳에서나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해방 이후 통영에 설립한 나전칠기양성소 혹은 통 영나전학원의 기술력이 우수했음을 나타낸다. 현재 통영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보유자가 있고, 그의 조교나 이수자 등이
2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여럿 있는데 태평공예사의 장철영 또한 그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나전칠기에 종사하는 장 인이 매우 많은데 그중 명장 박재성이 작업하고 있다. 그밖에 통영 출신의 나전칠기 제작 장인이 가 장 많은 곳은 단연 부산지역이다. 통영과 인접해 있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1970~1990년대에 나전 칠기가 가장 성행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전국적으로 통영 출신의 수많은 장인들이 종사하고 있 는데, 대부분 규모가 큰 작업장이나 업체, 유명한 장인은 대다수가 통영 출신이 많다. 다음, 통영 이외의 지역에서 통영 출신 장인이 가장 많은 곳은 부산 지역이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통영에서 이동을 해서 공방을 차려 나전칠기 제품을 제작했고,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여 유가 있어 나전칠기의 소비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지리적 여건, 사회문화적 여건, 환경적 여 건에 의해 특히 많이 분포하는 경우이다. 현재 부산지역에는 통영출신 나전칠기 작가들이 다섯 명 남짓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유산 활동은 통영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년간 발전하여 부산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중 철마공방 이종철이나 송원칠공방 강정원 또한 통영에서 부산으로 거 처를 옮겨, 부산에서 나전칠기 유산의 맥을 지켜가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인 중 하나이다. 성문공방 김관중은 통영 출신 주기태에게 나전칠기 기법을 배웠고, 이성운에게는 끊음질을 배웠다. 이들 장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1970~1990년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구류부터 소품까 지 나전칠기로 제작한 것들을 소장하길 원했고, 서양식 가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때문에 이 들 통영 출신 장인들은 전통적인 장식 재료로 전복껍질을 비롯한 자연유산에 대한 지식을 전승해 왔다. 현재는 통영을 비롯한 앞바다에서 채취하는 전복껍질 이외에 뉴질랜드나 멕시코 및 필리핀 등 지에서 수입되는 얼룩이, 야광패, 색패, 진주패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 자연유산에 대한 전 통지식의 전승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도구의 경우 기계화되거나 개량화되었으며, 기능 이나 기법 또한 현대화되면서 전통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근본을 두고 작업하는 장인은 그다 지 많지 않은 편이다. 이들 장인들은 가구류와 함께 관광상품, 기념품, 공예품, 액자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상품과 작품을 제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편, 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하는 중천공방 설명돌 또한 원래 통영 출신으로 1966년부터 입문했 는데,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봉룡의 제자인 김경일의 공방에서 나 전일을 다시 시작하였다가, 이후 인천, 부천, 제주도, 통영 등지의 작업장을 전전하였다. 14년 전, 현 재의 원주로 이사하면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나전칠기가 활성화된 시기여서 안방가 구류를 주로 제작하였으나, 지금은 통영상이나 생활가구류 및 소품 등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전국의 나전장을 조사한 결과, 현재 전국적으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나전칠기를 제작 하는 공방들은 대략 20~30여 곳이다. 조사에 응하지 않은 장인이나 통계에 누락된 장인들을 감안 하더라도 대략 40여 곳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한 명의 대표가 활동하는 전승공동체의
23 나전장 숫자라고 할 수 있으며, 공방에 소속되어 자개를 다루어 주름질을 하거나 끊음질에 종사하는 전승자 는 적어도 100여 명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실제로 나전칠기 공방은 개인 공방이 가장 많지만 그 밖 에 규모가 큰 공방 내에는 적으면 1~2명, 많으면 7~8명 안팎의 장인들이 피고용인으로 소속되어 끊 음질이나 주름질 및 색칠 작업 등의 부분적인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4호 끊음질장(후일 제10호 나전장으로 통합됨)으로 인정된 심부길 보유자의 경우, 뛰어난 끊음질 솜씨에도 불구하고 김봉용이나 정수화 등이 운영하는 대형 공방을 전전하였던 것에 서 알 수 있다. 현재 30여 곳의 나전칠기 공방이 존재하는 전승양상은 과거와 매우 다르다. 곧 나전칠기 일이 호 황을 누리던 1970~1980년대 서울지역에는 자개를 공급해주는 자개사가 성동구 왕십리 지역에는 100여 곳이 넘었고, 통영지역에서 자개를 가공하는 섭패장인만 300여 명이 넘었다. 통영지역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던 공방은 100여 곳, 전주 지역에만 300여 곳, 부산지역에도 100여 곳 등 엄청난 숫자의 크고 작은 공방이 존재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는 그 전승력이 매우 약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1999년 IMF 경제사태 이후 경제적으로 위축되면서 나전칠기의 수요가 급격하게 축소되 었다. 당시 서울지역의 경우 신혼 부부의 혼수감으로 구입하던 나전칠기 장롱이나 화장대 및 문갑 등의 혼수가구 일습은 위축되었으나, 중년층의 나전칠기 수요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이렇게 다른 지역의 나전칠기 수요가 줄어들던 때에도 서울의 수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2005년 이후 부 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혼수가구는 물론 중장년층의 고급 나전칠기조차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규모가 큰 가구류의 제작은 줄어들었으나, 문화상품이나 관광용품와 같은 소품의 수요는 늘어났다. 이러한 제작 품목의 변화는 나전칠기의 재료나 도구 및 제작기술이나 기법 등 전통 지식 이 엄청나게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나전칠기 재료의 경우 원래는 통영 앞바다 등지에서 자 연산으로 채취하던 전복껍질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양식을 통한 인공산 전복껍질로 바뀌거나 중 국 필리핀 뉴질랜드 멕시코 등지의 외국에서 수입한 야광패 얼룩패 진주패 색패 등 다종다 양한 외국산으로 변화하였다. 둘째, 나전칠기를 제작할 때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요구했던 분야에 사용된 도구들이 대부분 기계화되었다. 예컨대 나전칠기 표면에 문양을 만들고자 자개를 일일이 자 르는 데 사용하던 톱 대신 전동식 절삭기를 사용하고 있다. 톱이 자개를 한 장씩 자르던 데 비해 절 삭기는 다이아몬드 톱날로 만들어져 자개 100장을 순식간에 세밀하게 잘라 시간을 단축하고 노동 력을 줄였다. 이에 주름질에 종사하던 장인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개를 잘라 백골 위에 붙이 고 칠을 할 때 전통적으로 귀얄이나 칠붓 및 칠주걱 등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전동화시켜 핸드피 스나 콤프레서 등으로 바뀌었다. 셋째, 제작과정에서 백골일은 소목장에게 주문해서 들여온 다음, 자개부와 칠부로 구분되어 작업하며, 그 뿐 아니라 도안 작업이나 유산지에 자개를 붙이거나 색분을
2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칠하는 방법 등으로 세분화되어 여러 명의 장인을 동원하여 분업적으로 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규모가 큰 공장이나 업체에서 사용하는 것이고, 중요무형문화재를 비롯하여 그들에게 전승을 받은 장인들은 여전히 1인이 그 모든 작업을 수작업하는 점은 큰 차이이다. 다만 최근 전통 나전칠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전통적인 재료와 문양 및 제작방식 등 을 선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결국 나전칠기의 제작방식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데서부터 최 신의 기술을 도입한 방법까지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과거와 비교할 때 나전칠기의 사회적 수 요가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전통 가구로서 선물용품 등으로서 나전칠기의 필요성은 유지되 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유산의 관련 지식과 기술 전승 역사적으로 나전( 螺 鈿 )이라는 용어는 당대의 옥 보석 대모 상아 등을 병용 장식하는 보전( 寶 鈿 )에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표현법이 당시 삼국으로 도입되어 그 나라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발전되 어 오다가 통일신라로 합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나전이라는 개념과 자 재라는 용어를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자개는 조개를 가공하여 얻 어지는 재료를 말하는 것이고 나전은 기물의 장식 및 회화적인 표현을 목적으로 자개 보석 대모 등을 활용하여 제작한 미술품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나전과 구분되는 한국 나전의 특징은 자개를 포함하여 대모와 보석 및 금속을 병행 하는 것에서 그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지극히 중대한 사안으로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나전 이라는 본래의 개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화각공예 역시 나전문화의 범주에 속 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도 본래 나전 개념이 있었지만 그대로 전 승되어 오고 있는 곳은 현재 한반도뿐이다. 일본의 쇼소인[ 正 倉 院 ]에는 자개 보석 대모 등을 활 용하여 제작한 유물이 많은 수를 점유하고 있다. 모두 당( 唐 )의 유물로 간주하고 있지만 백제 의자 왕이 하사한 바둑판이 한국에서 보전( 寶 鈿 )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고, 오늘날까지 나전의 원 의미대로 제작에 임하고 있는 한국 나전의 역사에서 그 제작의 진위를 다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 다. 즉, 나전은 우리의 비빔밥문화와 상통하고, 한국은 지금도 나전의 나라지만 동아시아 3국 중 중 국과 일본 등은 현재 엄격히 말하면 나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동남아지역에서 나전칠기 작업이 성행하는 베트남의 나전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프랑스의 지배를 받 은 뒤부터 나전칠기기법 대신 칠화( 漆 畵 )기법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말았다. 결국 한국은 지구상에 서 특이하게 천 년 이상의 세월을 초월하여, 나전칠기가 전통 공예기술로 여전히 지속되고 전승되어 문화유산으로 기능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5 나전장 이렇게 천여 년 이상 전승되어온 한국 나전칠기는 목재[ 白 骨 ] 자개 옻칠이라는 핵심재료로 이 뤄지며, 이것을 다루는 장인의 기술에 내재한 전통지식은 크게 4가지 범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나전칠기의 재료인 나무와 자개 및 옻에 대한 지식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전칠기의 형태를 구성하는 백골은 소목장에게 주문을 해서 제작하기에 소목장의 영역이지만, 나전장인은 소목장이 짠 나무 기 물 위에 자개를 붙이고 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를 고르는 고유 지식과 경험 지식을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나전장은 나전칠기 작업의 핵심 재료인 자개나 옻의 성질에 대한 고유한 지식을 가지고 좋은 재료를 고르고 나름대로의 판단기준과 경험지식을 갖추고 있다. 둘째, 나전장이 자개를 오리고 붙이는 과정에서 습득하고 있는 몸에 체득된 신체기술과 관련된 지식이다. 여기에는 자개나 옻을 다 룰 때 손의 연장으로서 몸의 일부처럼 사용되는 도구에 대한 지식도 포함된다. 셋째, 나전장이 자개 로 표현하는 문양은 당대인들의 사상이나 감정이 응집된 경험적 지식이다. 자개의 문양은 시기에 따 라 변천되었는데, 그것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문양내용이 달라진 때문이다. 아울러 이것은 민족에 따른 취향의 차이도 반영되고 있어 우주적 철학적 지식까지 포괄하고 있다. 넷째, 나전칠기 기물을 옻장에 넣어 완성시킬 때 활용되는 자연에 대한 지식이다. 이것은 기물을 형성하는 나무나 문양을 나타낸 자개를 붙이고자 칠한 칠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 상태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고 착된다. 이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으로서의 능력이다. 이처럼 나전장이 나전칠기를 제작 하는 데 필요한 지식들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이 포함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첫째의 재료와 넷째의 온 습도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연에 대한 경험적 지식으로 나전칠기 장인만 의 고유한 영역이다. 반면, 둘째의 도구와 셋째의 문양은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우주에 대한 경험적 지식들로서, 전통공예에 공통되는 영역이다. 천 년 이상 최고의 전통 기술로 자리매김한 나전칠기의 근간은 그것을 제작하는 데 간여한 다양 한 종별의 장인 집단의 경험지식에 의거한다. 이렇게 다양한 종별로 구성된 나전 장인의 작업은 다 음과 같은 8가지 과정으로 전문화되어 있다. 1 목재선별과 백골제작[소목장] : 나전칠기를 만들 기물 형태의 백골 제작 2 패류채취와 원패가공[섭패장] : 원패를 분류하여 자개의 두께 색상 크기별로 가공 3 옻칠의 정제[칠장] :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칠을 정제하거나 색을 넣는 과정 4 칠기 문양 도안[도안사] : 기물에 어울리는 적절한 문양의 선택과 도안을 그리는 과정 5 자개의 선별과 절삭[절삭공] : 문양에 어울리는 자개선별 및 자개의 절삭 6 자개 붙임과 문양 시문[붙임공] : 무늬에 따라 유산지에 자개를 붙이고 문양을 조정 7 칠 도장[칠일] : 칠기용 백골에 묽은 칠과 목재결 나타내기 및 하 중 상칠로 도장
2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8 평탈 마감 : 밑칠 위에 자개를 시문하고 표면을 갈아서 평평한 표면으로 나전 완성 이러한 작업은 크게 백골 제작 작업, 자개 장식 작업, 옻칠 작업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때문에 본 조사에서는 백골을 다루는 소목일, 자개를 제작하고 오리는 자개일, 옻을 채취하고 정제하여 칠하는 옻일 등으로 구분하여 경험지식이 전승되는 것이다. 현재 활동하는 나전장인들의 전통 지식이 어떻 게 전승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중요무형문화재나 시도 무형문화재 및 명장 등 제도권에 속한 장 인 이외에, 나전칠기 일을 전승하는 장인들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다음의 표와 같이 세 분야로 크게 나뉘었다. 백골, 자개, 옻칠 관련 장인의 분야별 전승현황 백골-소품 자개, 절삭 옻 채취, 정제 석일공예 : 백골(함, 쟁반, 상 등) 제작 평화자개 : 자개 판매 평화자개 : 옻 판매 오영길 : 경기 남양주(소품 제작) 이금동 : 통영(통영섭패) 남기만 : 원주(옻칠) 김영성 : 경기 남양주(소품 제작) 강상용 : 고성(서울자개) 김정중 : 원주(칠) 윤경일 : 경기 남양주(장농백골, 소품) 박재홍 : 왕십리(중앙공예) 이현양 : 원주(칠) 임재만 : 경기 용인(소품 겸용) 김용환 : 왕십리(성도공예) 설명돌 : 칠 10kg 구입 하원기 : 경기 용인(소품 작업) 이근우 : 왕십리(현대조각) 이종철 : 중국생칠 20kg 임재만 : 경기 용인 박동순 : 경기 광주(장농백골, 일반가구) 이상배 : 경기 광주(원목작업) 김의용 : 경기 광주(소목장) 김영목 : 경기 광릉 임영율 : 경기 고양 장경춘 : 경기 구리(원목 및 가구 전문작업) 심기조 : 경기 포천(가구전문) 이종관 : 경기 덕소공방 : 갈이류 주문 김관중 : 부산, 소품류의 백골 직접 제작 강정원, 최규열, 이종철 : 건칠 백골 직접 제작 장영균 : 왕십리(형제공예) 김형동 : 왕십리 김영수 : 태릉 이두범 : 중랑구 김남용 : 중랑구 이상식 : 경기 양평 이동근 : 경기 남양주 김동숙 : 남양주(청목공방) 임경철 : 경기 성남 최석현 : 광주 섭패 확보 김창진 : 제주도 전복패 곧 나전칠기일은 목재[백골], 자개, 옻칠과 같은 재료에 대한 경험지식이 전승되는 것이어서, 이 것이 각각 세분화되고 분업적이며 전문적인 과정을 통해 나전칠기가 제작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나전장 혹은 나전칠기장의 나전일은 자개시문과 평탈 작업 등 최종 작업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 밖에 제품을 구성하는 백골일, 원패 가공, 자개 절삭일 등은 외부에 의뢰하고 있
27 나전장 어서, 각각의 전승실태를 파악하여야 나전칠기일의 지속가능성이나 전승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사료된다. 나전장인이 사용하는 백골은 소목장이 애용하는 목재와 다르다. 때문에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장 인들은 칠기용 백골을 제작할 때 가구나 창호 및 목공소품 등을 제작하는 일반 소목장과는 달리 나 전 백골 소목장을 전문적으로 따로 두고 있다. 그와 더불어 나전칠기의 문양을 만드는 패류는 넓은 대양을 끼고 있는 국가에서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패류를 수거하는 현지인을 두고 그 패류를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집단과 이 원패를 사용처에 적합하고 아름다운 광채를 발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섭패공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이렇게 가공된 자개를 선별하여 문양에 따라서 자개를 종류 별로 주름질하는 절삭공, 최종 자개부착 후 공예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마감칠을 하는 칠공의 역할이 나 지식 또한 자못 크다. 때문에 일부 나전칠기 공장에서도 칠부와 자개부를 별도로 두고 그들의 경 험지식과 기술 전승을 도모하고 있다. 백골에 묽은 칠을 하고 목재결을 나타내거나 하중상( 下 中 上 ) 칠을 올려 밑칠을 완성하는 칠부는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별도 존재시켜 그들의 경험지식을 전승하기도 한다. 문양에 어울리는 자개를 정하여 유산지 위에 문양대로 붙임질하거나 유산지의 자개 문양을 백골 위에 올리고 지짐질하는 자 개부 집단도 별도로 존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무엇보다 먼저 나전장은 기물을 설계하고 의도에 맞는 적절한 문양을 도안한 후 백골제작을 의뢰하고 자개절삭과 제반 작업을 수행하여 설계 한 대로 나전작품을 제작한다. 때문에 현재 나전장의 전승 방식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분업화, 전문화되어 있다. 곧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일은 백골 위에 옻칠이 칠해진 기물 위에 계획된 문양대로 자개를 자르고 그것을 붙이고 옻칠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재료와 일이 분업적 작업 방식으로 이어져 있다. 이러한 재료를 백골, 자개, 옻칠로 나눌 때, 백골은 소목장, 자개는 섭패장, 옻칠은 칠장과 상호 관계를 맺으며 제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나전일은 자개를 끊음질하거나 주름질하는 장인만 나전장으로 지정되 어 있어서 그나마 보존이 될 뿐, 그밖에 작업을 함께 해야 할 다른 분야는 장인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아서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현재 나전일을 하는 산업체나 개인 공방 중에서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규모가 큰 크리스탈칠기, 경동칠기, 설화칠기 등에서는 백골을 주 문 제작하지만, 칠일을 하는 칠부와 자개를 붙이는 나전부는 이원화되어 있었으며 여러 장인을 소속 시켜 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물론 1970~1980년대 나전칠기가 활성화되어 제작 물량이 대량 이었을 때에는 도안사를 따로 두고 문양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이래 현재까지 나전칠기의 전과정은 나전장이 혼자서 소화한 것이 아니라 백골, 자개, 옻칠 등을 부분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 와 협업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1) 백골일 나전장이 작품이나 가구 및 소품에 사용하는 백골은 스스로 제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백골업체 에 주문하여 제작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백골의 제작 방식은 주문자인 나전장에게서 도면을 넘 겨받아서 주문 제작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백골업체는 피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자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나전장이 밀집된 경기도 남양주, 서울의 중곡동과 정릉동, 은평구 역촌동, 강원 도 원주시, 경남 통영시 등의 지역을 보면, 나전일과 백골일을 하는 공방이 밀집되어 있다. 곧 백골 제작자는 나전장 근처에 작업장이 있으며, 이곳에서 나전장이 필요로 하는 작업의 종류에 따라 목재 수종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변형되거나 터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제작하는 노하우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백골 제작자를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전일의 뼈대에 해당되는 백골은 완성된 제품에 따라 가구류를 제작하는 곳과 소품 위주로 제작하는 곳으로 나눌 수 있다. 둘째, 백골 제작업체에게 나전장이 주문하는 재료는 크게 원목이나 합성목으로 구분된다. 물론 백골을 주문한 나전장은 자신이 제작하고자 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가 격대가 높거나 내구성을 요구하는 곳에는 원목과 합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저가로 책정된 문 화상품이나 관광용품을 제작할 경우는 저가의 합성목(MDF)을 요구하여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혹 은 대량생산을 위해 물푸레나무로 제작한 갈이틀(로구로)이 백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백골 공방이나 업체도 나전일을 하는 곳과 마찬가지로 1~2인이 종사하는 등 영세하다. 특히 수요 에 비해 백골로 제작할 국내산 원목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것도 이 분야의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작업환경 면에서 보면 백골 작업을 하는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작업해야 한 다. 영세하여 집진 설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작업환경이어서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에서 근무하고 싶 어하는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요인이 된다. 때문에 젊은이들이 이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장인들 의 연령이 노후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나전일의 다른 분야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백골업체는 작업환경 개선이 급선무이고, 주문받는 작업내용이 저가에서 고가까지 골고루 있어 기능이 발전되고 수입적인 면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칠부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으 면 기대할 수 없으므로 어느 한쪽의 보호와 지원으로 나전일의 상황이 개선되는 순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향후 나전일과 짝을 이루는 소목 작업을 포함한 실태조사가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사가 수행될 때에는 안압지 유물에서 발견되는 권태기법이나 얇은 전나무 판재를 활용한 고려 나전 경함과 같은 잊혀진 백골제작기법은 재료의 효율성이 높으므 로 원목의 모손이 많이 발생하는 갈이물 대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전일에 대한 규모와 위상을 밝히려면 백골인 목재를 다루는 공방이나 업체를 조사하고, 이에 대한 종사자까지 파악하여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29 나전장 ) 자개일 한국은 나전칠기의 종주국으로서, 일찍부터 백골 위에 문양을 넣는 자개와 마감을 위한 칠에 대한 지식이 발전되어 왔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자개의 공급이나 생산 능력은 열악하다. 국내산 자개 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줄기 때문이며, 다양한 색상이나 형태를 제공하는 해외산 자개의 활용 방안을 강구하고, 자개를 제작하는 작업 여건을 개량하고 섭패 기능도 보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사에서 섭패일과 관련된 곳도 조사되어 그와 관련된 내용도 함께 수록하였 다. 섭패일과 관련된 곳은 평화자개, 서울자개사, 통영섭패, 청목공방이다. 자개일과 관련하여 조사 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형유산으로서 나전 작업의 활성화는 국산 자개의 공급을 활성화시키는 방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종래에는 통영 지역을 비롯한 남해안에서 자생하던 자연산 전복을 채취하여 크고 빛 깔이 영롱한 자개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복이 생산되는 바다의 자연환경이 변화되고 생태 계가 파괴되면서 전복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방식도 변화되었다. 곧 근래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면 서 자연산 전복이 사라지는 추세이고, 전복의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조절하여 시장 에 출하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에서 채취하던 전복에서 인공적으로 양산한 자개를 나전일의 재료 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연산 전복과 양식 전복을 비교하면 크기나 형태, 무늬 및 빛깔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통영의 섭패장 이금동이 근처 바닷가나 횟집에서 자개를 채취하나 그 양이 많지 않다고 한다. 또 고성의 섭패장인 강상용의 경우 1달에 2주일 정도를 해안가 횟집을 순환적으로 방문하여 전복조개를 수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데, 자연산처럼 크기가 크고 원하는 수량을 충당하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둘째, 근래 국내에 공급되는 전복조개는 90% 이상이 해외 수입품이다. 우리나라보다 바다가 넓고 전복이 많이 잡히는 필리핀과 멕시코 및 호주 등지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외 자개는 국내 의 자개 생산 및 유통 업체가 현장을 방문하고 선별하여 가져오며, 이것을 섭패 장인들에게 보급하 여 용도에 알맞도록 가공한 다음 판매상이나 나전장인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물론 필리핀 등 몇몇 지역은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고 현 장으로 가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깨지기 쉬운 전복의 속성상 파손 없이 원거리를 운반해야 상품성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전복을 수입할 때에는 전복을 잘 아는 전문가가 반드시 현장에서 전복의 빛과 상태를 확인한 다음, 안전하게 운반하는 등 전 과정을 동행해야 하므로 이 또한 몸으로 직접 체득한 노하우가 수반된다. 이것은 금전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므로 이에 대한 실태 조 사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셋째, 전복을 갈고 자르고 가공하는 섭패 기능에 대한 관심이다. 나전일은 섭패일과 떼려야 뗄 수
3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없는 관계에 있다. 나전 장인이 구사하는 디자인에 맞게 자개를 갈고 연마하고 자르는 데 오랜 시간 이 걸리게 된다. 예컨대 나전장과 섭패장은 양자 간에 정해진 약속과 룰이 있었다. 따라서 섭패장은 나전칠기 장인의 작업에 맞춰 전복패를 섭패할 때에 부위별로 용도에 맞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리 사가 쇠고기의 부위별로 요리방법을 달리하는 것처럼, 섭패장은 전복패나 야광패 및 진주패 등을 섭 패할 때 색상이나 두께, 형태 등 작업의 성격에 따라 만드는 것이다. 아( 亞 )자 문양을 끊음질할 때에 는 특정한 부위의 자개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개가 부스러지거나 너무 얇으면 도장 작 업 시 갈려 없어지거나 밑칠이 벗겨져 나와 영롱함이 사라지는 등 완성도가 높은 표현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나전장이 만드는 작품마다 섭패장과 서로 호흡을 맞춰 일정한 두께로 갈고, 특정한 부위를 잘라서 공급하게 마련인 것이다. 넷째, 자개를 다루는 또 하나의 영역은 자개를 절삭하고 문양의 성격에 맞도록 종류별, 색상별로 코디를 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자개장식 작업자가 담당하고, 보유자나 명장 및 작가들은 세부 작업을 혼자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구를 제작하거나 다량의 문화상 품을 제작하여 나전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장인이나 업체를 위해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사 항이다. 예컨대 누구나 알 수 있는 십장생 문양의 경우는 각각의 물상에 따른 조개패를 선별하고, 그 색상을 안배하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에 부합하는 틀이 있으므로 색상이나 형 태 및 두께의 안배가 부적절하면 안되므로 일정한 룰을 지키면서 제작한다. 직함이 없는 장인은 보 유자와 명장의 하청작업 및 자기 작업에서 색상을 고민하면서 앉아 있을 시간이 없으므로 이렇게 분업화 되어 있다. 그래서 독하게 작업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분업화가 아니면 불가능하 고 현대작가처럼 일 년에 한두 점 작업하여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섭패장은 오랜 기간 동안 나전장과 소통하면서 나전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 능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자개의 영롱한 빛은 옻칠과 짝을 이룰 때 더욱 도드라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패의 수입 및 가공업체에서 국내산과 해외산을 어느 정도 사용하는지, 한국식 원패 가공기 술은 어떤 수준인지,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얼마나 제작하여 어디로 공급되고 활용되는지에 대한 실 태파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3) 칠일 옻칠의 경우 옻나무의 재배와 칠의 채취 및 칠의 정제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옻나무는 조선시대 때에는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그 정도로 옻나무는 사회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러한 옻나무는 전통 지식으로 인지되어 문화재청과 산림청이 협업하고, 원주시 등에서 옻나무의 재배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추세이다.
31 나전장 둘째, 옻의 채취이다. 생옻의 채취는 계절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것을 전업으로 하기에는 어려 움이 많다. 현재 원주에 이와 관련된 전승자가 1~2명 있고, 지리산 등지에서도 옻을 채취하는 사람 이 1~2명이 있을 뿐이다. 옻나무의 재배가 늘면서 옻을 채취하는 사람 또한 증가해야 수요에 맞춰 공급을 어느 정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옻칠의 정제이다. 정제가 활성화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 전칠장 김태희 보유자가 옻칠을 정제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기능을 전수 받은 장인으로는 현 정수화 보유자와 김선갑 칠작가가 있다. 이렇듯 옻칠을 정제한 역사는 비교적 짧다. 하지만 짧은 역 사에도 불구하고 정수화 보유자가 중요무형문화재 칠장으로 인정되면서 정제칠에 종사하는 전수자 를 여럿 양성하였다. 때문에 이전보다 여러 곳에서 자력으로 정제칠을 만들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옻칠 정제에 있어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200년 동안 축적한 정 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심 기술은 철저한 기밀을 유지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제칠과 색칠 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옻은 일반 화학도료와 달리 수분이 70~80%, 온도가 25~30 가 되어야 공기 중의 산소와 옻 속의 락카제가 결합되어 고분자 화학반응을 일으켜 고체로 변하므로 일반적인 건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현재 한국에서 칠기 작업을 하는 옻칠 작가를 비롯한 많은 장인들이 일본의 정제칠이나 색칠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나전 장인들의 전승지식이나 기술은 백골일, 자개일, 칠일의 세분화된 범주에서 크게 구분 되었다. 하지만 이들 지식들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어느 한 지식이 잘못되어도 완전한 나전칠기의 생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전칠기에 대 한 제작기술에 포함되어 있는 나전 장인들의 전승지식은 단순하게 자개에 문양을 그리고 절삭하고 붙이는 기술에 국한할 수 없으며 3가지 범주가 각각 개별적이지도 않다. 그들 3범주에 속하는 세분 화된 장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통지식들은 서로 유기적이며 상호 관련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전 장인들이 체득하고 있는 경험적 전승지식들을 종합해보면, 목재나 전복껍질 및 옻칠 등 나전칠기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에 대한 크기 색상 문양 재질 성질 온도 습도 등에 대한 자연과학적 지식 이나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제품의 형태 문양 내용 등에 대한 자연 및 우주에 대한 지식 들이다. 이러한 지식들을 어떻게 습득하고 또 전승하는가에 따라 지역공동체 중심의 전 승지식 이나 개인 차원의 경험적 지식 들로 구분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세부 요소나 대상에 대해 지식을 습득하기까지 축적된 시간의 깊이에 따라 역사가 긴 지식 과 최근에 만들어진 지식 이 서로 중층적으로 결합되기도 한다. 아울러 이렇게 축적된 지식이 적용되거나 활용되는 범위에 따라 나 전 장인들의 일반적 지식 과 특정 장인만이 갖춘 고유한 지식 등도 섞여 있다. 대체로 나전 장인들
3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의 전승지식들은 그들 나름의 경험 속에서 체득된 고유한 생태학적 지식을 포함한 경험과학적 범주 에 포함되는 것이다. 비록 나전 장인들이 자개에 칠을 바르고 이것을 건조장에 넣어 마감할 때 온도 와 습도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측정한 보존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경험에 의하여 어느 정도의 온도와 습도에서 자개가 백골과 옻칠에 의해 견고하게 완성되는지를 알기 때문 이다. 아울러 전복껍질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이나 재료공학적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 복껍질을 어느 정도의 두께나 크기로 자르고 오리고, 그것의 조건에 따라 옻칠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 등도 오랜 경험으로 체득하여 나름대로 지식을 축적하고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전칠기 제작 관련 기술을 종합해보면, 전승지역별로 고유한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전통 적으로 목재 생산이 잘되던 지리산 인근의 전라도 지역, 앞바다에서 채취한 전복껍질의 생산과 공급 이 활성화되어 자개 제작에 강점을 보이던 통영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 옻나무의 특산지로 옻의 공 급이 원활하던 강원도 지역, 인구가 많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나전칠기 제품의 소비가 활발하여 대 규모 공장이 즐비하고 판매가 촉진되었던 서울과 경기지역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전승지역의 특성 에 따라 나전칠기 유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전승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전승 지역에 따른 유산 의 차이도 눈여겨 볼만하다. 4. 유산의 지속 가능성 나전칠기의 제작과 사용을 둘러싼 사회문화는 천여 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되어 왔 다. 전통사회에서 나전칠기는 장롱을 비롯한 수납가구 중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급 제품 이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고 그것으로 장롱을 짜서 시집을 보낼 때에도 혼수감으 로 작은 소품이라도 하나 갖고 싶은 미적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 나전칠기는 가구 류 중 최고로 쳤을 뿐 아니라, 칠기문화권을 형성하는 한중일 삼국 중에서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만 독특하게 발전한 한국의 대표적인 공예기술이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은 대상이었기에 고려시 대 이후 시기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종의 나전칠기가 제작되었고, 중국 등지에 조공품으로 보내거 나 부귀나 신분의 상징으로 널리 소비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한말 일제시대를 거치면서도 나전칠기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해방 이 후 현재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예기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욱이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을 거치고 나서 서구적 교육방식과 생활양식의 도입으로 우리의 전통문화가 급속히 사라지는 데 위 기를 느낀 국가에서 전통문화를 보호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정책을 실시 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예기술 분야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이 지정되 고 나서, 다음해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로 나전장이 지정되었다. 그만큼 나전칠기가 지니고
33 나전장 있는 전통 지식으로서의 의미나 가치를 일찍부터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나전장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1960년대 말부터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면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나 전칠기의 수요는 급증하였다. 이것은 산업화 이전까지 우리의 가옥구조는 대체로 작은 초가집이나 한옥이었는데, 경제성장과 더불어 다층 양옥집이나 아파트로 바뀌면서 가옥 규모가 커지고 내부 공 간도 넓어지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서 집 안 내부를 채울 가구로 나전칠기의 수요가 폭발 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당시 나전칠기의 수요는 무형문화재 나전장으로 지정되어 보유자로 활동하 던 김봉룡이나 송주안 및 심부길 등 장인 개인이 만든 한두 점의 소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숫자였다. 때문에 당시 나전칠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통영의 나전칠기전습소에서 배출한 장인 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배출된 장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엄청난 물량의 나전칠기를 제작 하기에 이른 것이다. 호황기였던 1970~1980년대 통영 시내에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공방이 300 여 곳이 넘었다. 그러다가 통영에서 활동하던 장인들이 나전칠기의 소비가 활발한 서울이나 부산 등 지의 대도시로 이주를 하면서 크고 작은 200~300여 곳의 공방이 운영되었다. 특히 서울 지역의 왕 십리나 중곡동 등지에 위치한 대규모 나전칠기 공장에서는 많은 자본을 들여 백골을 주문하고 자체 공장 내에는 도안사를 따로 두고 자개부와 칠부를 나누어 70~100명 정도의 직인들을 고용하여 절 삭일, 붙임질, 지짐질, 칠일 등을 분업적이고 전문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호황을 누리며 대규모로 확장되던 나전칠기계가 갑자기 위기를 맞은 것은 1999년 IMF 경제 조치에 기인한다. 그때까지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혼수품으로 반드시 장롱과 화장대 및 문갑을 일습으로 갖춰 가는 것이 상례였으나, 급격한 경제적 어려움이 닥 치자 원목가구나 대형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제작한 단품 가구 등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때에 규모가 작은 나전칠기 공방이나 개인 작업자들이 몰락을 하게 되었다. 예컨대 고암나전칠기연구소의 오왕택 장인의 경우 1990년대부터 15년간 생계와 자녀들의 학비를 위해 나전칠기일을 떠나 택배일을 했던 것에서 어려웠던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나전칠 기 공방이 문을 닫은 것은 아니었다. 대규모 공방의 경우 공장의 규모를 줄이고, 직원수를 10명 안팎 으로 줄여서 수요에 대처하였다. 곧 IMF의 경제 위기에서도 강남 등지의 대형 아파트에 거주하거나 부동산을 소유한 계층에서는 아파트 평수를 넓혀 가거나 이사를 하거나 할 때에 나전칠기 가구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최태화와 최태문 형제가 경영하는 남해공예사나 경동칠기, 김규장 명장이 경 영하는 크리스탈칠기나 김용관 명장이 운영하는 설화칠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대형 나전 칠기 공방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주문량이 줄어 규모를 줄였으나 그 수요는 여전하였는데, 2005 년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나전칠기의 수요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3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늘어나고 국민 소득도 1만불 내지 2만불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국민들이 삶의 질에 관심을 갖고 전일제 노동에서 점차 휴가를 즐 기려는 사회의식이 높아져 주5일제 근무가 정착되었다. 그리고 국민들이 국내외의 명소를 관광하는 일도 많아졌다. 아울러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등을 거치 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증가하였다. 관광산업이나 문화산업의 활성화는 곧 나전칠 기 업계에게는 외연을 넓혀 규모가 큰 가구뿐 아니라 문화상품이나 생활 속의 소품을 제작하는 계 기로 작용하였다. 그동안 대규모 나전칠기 공장에 피고용되었던 직인이나 개인적으로 작업하던 장 인들조차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땅값이 비싼 서울을 벗어나 서울 왕십 리나 중곡동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 300여 명의 장인 집단이 형성되어 새로운 전승력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이곳 장인들은 소규모로 한두 명 혹은 두세 명의 장인이 문화상품 이나 관광소품을 제작하는데, 나전칠기의 전통적인 기술을 개량하여 원목 대신 합성목(MDF)을 사 용하고, 알자개 대신 판자개나 플라스틱 필름에 프린팅을 하고, 옻칠 대신 캐슈를 칠하고 있다. 아 울러 전통적으로 자개를 하나씩 자를 때 사용하던 톱 대신 다이아몬드 톱날을 활용한 전동절삭기를 개발하여 자개판 100개 묶음을 절삭하거나, 귀얄로 칠하는 대신 핸드피스나 콤프레서로 대체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전칠기의 사회적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점차 이전까지 전통 나전장인 혼자서 자개를 자르고 붙여서 옻칠을 하던 전 공정을 세분화, 분업화 및 전문화시키고, 수공 작업 대신 노동력을 기 계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변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들의 작 업이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이번에 나전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조사한 결과 세 가지 부류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우선 전통적인 방식으로 원목과 자개와 옻칠로 소량의 나전칠기 소 품을 제작하는 1인 공방의 장인이 있고, 다음으로 원목과 자개와 옻칠을 재료로 하되 도구의 기계화 와 칠부와 나전부의 분업화를 통해 대규모 가구를 제작하는 나전산업체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합성 목의 백골 위에 필름이나 판자개 및 캐슈[에폭시] 등을 활용하여 소품종 다량 생산으로 문화상품이 나 관광상품을 제작하는 업체로 구분되었다. 조사한 결과 중 몇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칠기의 수공예적 제작 방식을 전승하는 사례이다. 전통 나전칠기의 수공예식 제작방식 은 나전칠기를 전통적으로 제작하고 공급하는 방식으로, 제작자는 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 명장, 개 인 작업자들이다. 이들의 작업은 1인이 전과정을 종합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제작체계라 할 수 있다. 전통 재료와 기법을 전승하고 전통적인 수공식 도구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형태나 문양도 고수 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서울의 최성훈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민종태 보유자에게 나전칠 기의 전통적 기능을 전수 받은 장인이었다. 그는 민종태 보유자가 남긴 수백 장의 도면을 아직도 정
35 나전장 리하지 못한 채 가지고 있으며, 민종태가 사용하던 톱과 거도를 사용하여 주름질 및 끊음질하는 전 통 기능을 오롯이 지니고 있었다. 약간의 디자인을 거친 문화상품도 가끔 제작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을 전통 문양과 전통 형태로 제작하고 있어 옻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수공예식 제작 시스템은 그동안 문화재청에서 시행한 무형문화재의 체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전통 기술을 전승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문화유산으로 서 나전일은 전통 기술의 전승에 더하여 형태나 문양까지 고답적으로 답습 반복하여 나전칠기를 현 대적 조형으로 승화할 때에는 제약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현지 조사결과 대부분의 1인 공방체제를 운영하는 장인들의 제작 유형은 첫째 유형인 공예화의 제작체계로 둘째 유형인 예술품 제작을 함께 작업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어쨌든 현재 전통 나전공예가 외형적으로 비칠 때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하나의 형식을 떠 올리게 되는데 그 양상은 조선시대에 형성된 목물의 구조와 용도가 그대로 활용되고 모란문 국화 문 보상화문 등의 정형화된 틀을 유지하면서 자개와 대모 금속선 색칠로 표현되는 스타일이 그 것이다. 고려시대 초기의 통일신라 풍이 계승되고, 조선 초기에 고려 풍이 일정기간 혼재하는 과도 기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와 조선 스타일을 극복하고 한국 스타일을 모색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통작가들에 의하여 시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좀 더 경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보유자이거나 특징 있는 타이틀을 가진 작가 등 소수는 여유 있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 작가는 생계유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양극화는 전통작가들 간에도 심화되어 있어, 검증된 디자인을 확보하여 정책적으로 일감을 주고 심사에 통과한 작품을 구매하여 전시 판매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보호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서울이나 경기도를 제외한 지방의 장인들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장인들은 모두 가내수공업 형 태에서 크게 벗어나서 작업하는 경우는 없었고, 현대식 기계나 문양을 활용하는 장인들도 없어 보였 다. 예컨대 원주 설명돌은 끊음질기법을 중심으로 국화문, 귀갑문, 만자문을 주로 사용하면서 매화 문이나 산수문양을 줄음질하여 작품의 성격이 강한 작업을 하면서 반면에 컵, 쟁반 등 생활용품은 간결한 산수문을 일부 도출하여 장식하고 약 10~20여 점 정도씩 작업하여 원주옻문화센터 상설전 시관에서 온, 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다만 광주 최석현은 옻칠 정제에 있어서는 정제설비를 갖추어 가고 있었고 이외 장인들은 재래식 장비와 도구로 작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조사자가 본 장인들은 1970년대나 현재나 크게 차이점을 느낄 수 없어 보였고, 다만 가구류에서 소품류, 나전액 자류, 문화상품류 등 소비성향에 맞추어 제작 용도만 변화되어 보였다.
3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둘째, 전통 나전칠기를 현대적 예술품으로 제작하는 경향이다. 이것은 현대적 조형교육,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공예나 미술 및 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이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요소, 재료나 기법을 자신 의 작품에 응용하여 예술품화하는 경향이다. 자개의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색채미를 표현하거나 옻 칠의 견고함과 영구성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테크닉을 삼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 공예가나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들이 애호가를 위한 예술 작품을 제작하고, 이것을 현대적으로 응용하여 타 분야와 협업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제작한 소품은 갤러리나 소장가와 직접 거래하거나 옥션 등에서 예술품을 판 매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에 해당되는 사례로 몇 예를 들 수 있다. 우선 서울의 김선갑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김태희 보유자에게 작업 전과정을 배운 전수자로서, 전통적인 칠 정제를 비롯한 나전일 전체를 전승받았다. 그러면서 전통 문양을 현대화시킨 김태희 보유자의 가르침을 따라 나전의 핵심을 문양이나 디자인 의 현대화에 두고, 홍익대를 찾아가 동양화와 서양화를 배워 나전으로 회화적 작품을 구사하게 되었 다. 아울러 전통 좌식가구 대신 입식 가구화하고 그 위에 나전으로 그린 회화작품을 제작하여 호텔 등을 통해 일본에 판매를 하고 있었다. 한편 그와 달리 서울의 조훈상은 원래 현대 리바트 가구의 디자이너로서 대학원 때 소목장(박명 배), 나전장(손대현), 칠보 등을 배웠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디자인그룹 넥서스라는 1인 사 업체를 운영하면서 화장대나 거울과 같은 현대적인 소품 가구에 칠보와 나전을 결합시키는 작품을 제작하여 애호가들의 성원을 얻고 있다. 한편 서울의 장민석은 소목 가구를 배우고 여기에 칠과 나 전을 더하는 작업을 더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하거나 동호인을 교육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전공예 작가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작업하거나 교육을 하더라도 회화나 조각과 같은 조형예술과 달리 작품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기에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곧 화가를 비롯한 조형예 술가들은 물감이나 붓과 같은 표현 재료를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가듯이 나전예술가 도 옻칠 바탕에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는 프로세스를 밟아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화가와 달 리 나전작업은 작업의 속도 면에서 어려움이 내재해 있다. 옻칠은 건조시간이 길고 공정이 복잡하며 건칠 작품 한 점을 제작하는 데 보통 6개월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성을 갖 춘 나전작품을 제작하더라도 작업기간을 단축하고 작업여건을 혁신하지 않으면 작가의 삶을 지속 하기 어렵다. 물론 대학에 적을 둔 교수 작가들은 꾸준한 작품활동을 할 여력이 되나, 현재까지 무수 히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출되었지만 전업작가 몇 명만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나전공예의 장점을 살리고 현실적인 효용가치를 도출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안이 있다. 우선 산업디자인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나전칠기는 소품종 소량생산으로 고부가가치 산업과 친환경 사업과 융복합하는 방식으로 판로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전통장인과 협업하
37 나전장 는 것이다. 장인의 기능적인 노하우와 현대작가의 첨단디자인을 하나로 묶으면 서로 간에 부족한 부 분을 보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나전칠기에 산업적인 대규모 분업 제작 방식을 도입한 사례이다. 1970년대 산업화 추세에 발맞추어 나전칠기가 호황기를 맞이하였다. 이에 나전칠기 업계는 나전칠기의 생산을 활성화하고 전통 공예의 저변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현대화하고 개량하였다. 이러한 산업화에 종사한 이들 중에는 명장으로 활동하는 설화칠기의 김용관, 크리스탈칠기의 김규장 및 경동칠기의 최태문 등이 있다. 이들의 작업은 전통적인 문양과 기법으로 실생활 속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분야이 다. 전통시대에 나전칠기가 기능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삶에 필요한 가구를 비롯한 생활용품을 제 작하거나 관광 문화상품 등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산업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전통적 인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기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다 량의 재료, 기계와 설비 및 도구와 같은 생산체계를 갖추고, 전통적인 형태나 문양의 개선을 추진하 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었다. 서울의 최태화나 김규장의 경우 1980~1990년대에 50명 이상의 직원 을 두고 연간 수백 점의 가구를 제작하였는데, 이때 전통적인 문양이나 기법에 더하여 현대적인 요 소까지 채택하였으며 외국인의 수요에 부합되도록 제작하여 해외 수출까지 했다. 한편, 이러한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재료, 설비, 디자인의 세 부문에서 변화를 수용하였다. 첫째 전 통적인 나전칠기 재료의 다변화와 가격의 저렴화를 의도하여 값비싼 나무, 자개, 옻칠 등을 대신해 값싼 대체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값비싼 원목 대신 합성목을, 국내산 자개 대신 외국산 수입자 개를, 옻 대신 캐슈나 래커, 호마이카 및 에폭시 등을 사용한 것이다. 둘째 작업과정의 효율성 및 시 간 절약을 위해 수공 도구를 기계화 설비로 대체하였다. 전통적인 활비비나 톱 대신 공업용 다이아 몬드를 부착한 천공기나 절삭기 등을 개발하여 자개패를 1개씩 제작하던 것을 100개씩 절삭하여 작 업의 효율성과 능률성을 높였다. 귀얄로 칠하던 옻칠을 콤프레서 등을 사용하여 넓은 면적에 칠을 골고루 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셋째, 전통적인 형태나 디자인을 개선하여 주문자나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현대적으로 디자인화시켰다. 전통 가옥에 어울리던 좌식 가구에서 아파트에 서 필요한 입식 가구를 생산하거나, 그에 따른 형태를 현대적으로 개선하거나, 전통 문양을 현대인 의 취향이나 서양인의 성향에 맞게 개선하는 것이 그것이다. 현대식 가구를 생산하는 최태문의 업체 에는 백골부는 외부에 두고, 디자인부, 칠부, 나전부 등 여러 분야로 분업화되어 문화상품이나 가구 등을 디자인하는 경향으로 전개되었다. 나전산업체에 종사하는 제작자를 조사한 결과, 그들은 전통적인 재료나 기술을 체득한 토대 위에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업도구나 제작방식을 개량하고 개선한 것이 확인되었다. 예컨 대 전주 최대규는 나전 액세서리 작업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제작 재료는 후패 중 황진주, 흑진주,
3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홍진주패 등 수입산 진주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재료를 가지고 물고기, 탈, 얼굴, 한 글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상품 액세서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산 김관중은 부산시 상징 문양, 바다 속 풍경, 을숙도 풍경 등 부산 지역을 상징하는 문양을 토대로 가구류, 액세서리, 문화상품, 그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사용하는 칠은 합성칠인 캐슈칠로 작업하고 있었 고 판매는 개인 전시장을 통하거나 지인을 통한 판매를 하고 있었다. 부산의 이종철은 개인 작품을 많이 하고 있었으나 판매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장인들은 소속되어 있는 협회나 그 룹에서 평균 연 2~3회의 전시를 하고 있었으나 판매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더욱이 이들 분야의 종사자 대부분이 나전칠기 기능올림픽에서 수상을 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기 능적으로 숙련되어 있었다. 다만 나전칠기 가구에 대한 인기가 1990년대 말부터 시들해지면서 이러 한 현대적 나전칠기가 대폭 줄어들고, 근래 기능올림픽에서 나전칠기가 제외되면서 이 분야의 쇠퇴 가 역력한 추세이다. 남양주에서는 나전일과 관련하여 수많은 중소 공방과 업체가 몰려있고 한국에 서 생산되는 나전 관광 상품의 80% 이상이 만들어져 국내의 관광단지와 박물관, 공항 등으로 납품 되고, 해외로도 수출되고 있다. 나전 제작과정의 난해한 기법과 공정을 최소화하고 제작시간을 단축 시켜 관광객이 가격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격대로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일 반 시민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나전은 역시 정형화 되어 있는 나전관광소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 나전칠기는 오늘날 전통적인 수공업 체제, 현대적 예술품 제작, 대규모 분업적 생산 등 다양한 양상으로 분화 발전하고 있으며, 나전칠기와 관련된 기술적인 측면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면 서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기술 지식을 나름대로 고수하고 있는 기능보유자나 조교 및 이수자 등 전승자들조차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변화가 유추된다. 특히 나전칠기 가구처럼 규모가 큰 작품을 제작하려면 자개를 자르고 오리고 끊어내는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문양의 절삭 부분이 대개 기계화로 대체된 것이 두드러진 변화이다. 물론 가구 전면에 귀얄로 칠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호황기에 비해 나전칠기업에 종사하는 인구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기계화 작업으로 사람의 인력을 대신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전승되더라도, 교통과 통신 및 운송수 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그것을 만드는 자개와 옻칠 재료의 지역성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곧 예전에 통영 앞바다에서 나온 전복껍질을 사용하여 섭패일을 했던 데 비해, 이제는 국내산 전복껍질도 자연 산이 아닌 양식산이어서 크기가 작고 색상도 볼품이 없어 전통 지식의 전승대로 제작하기 어려운 형 편이다. 때문에 통영이나 경상도 지역뿐 아니라 서울이나 경기지역 및 강원도나 전라도 지역 등 어 디서나 중국, 필리핀, 뉴질랜드, 멕시코 등 전 세계에서 나는 야광패, 진주패, 색패 등 다종다양한 조
39 나전장 개를 이용하여 문양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여 시문하는 것이다. 칠 또한 원주에서 재배하는 옻나 무 숫자가 제한적이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정된 양으로는 원주 지역의 장인들조차 만족할 수 없 을 지경이다. 이에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옻칠을 우리 기술로 정제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개나 옻칠의 지역성은 거의 사라지고 전 세계의 자개를 수입하여 공급하는 판매망이 잘 갖춰져 있 다. 이러한 결과로 오늘날 나전칠기의 전승지역은 재료의 수급이나 판매의 문제 등 지역적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예전에는 자개의 생산지인 통영을 중심으로 판매와 소비처인 서울을 중심으로 권역을 형성하였 는데, 근래에는 여전히 통영과 부산권역이 강세이고, 서울권역 그리고 새로운 생산지로 떠오르는 경 기권역으로 묶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지역 나전공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개의 본고 장인 통영이 위축되고 대신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중심으로 편제되면서, 인구가 많고 소품류의 생 산단지가 밀집된 경기도 권역으로 축소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전칠기 문화의 전통성이나 지역성이 약화된 것이라고 평가되는 반면,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방식에 적응하면서 전승력을 키워 가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현대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지역성은 약화되는 반면, 나전칠기가 가진 고 유한 전통성을 현대사회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창조되고 계승되는 추세로 여겨진다. 5. 결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에 의하면 나전장인은 두 가지 기준에 적합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첫째, 전통공예기술에 해당되고, 둘째,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의 하나이다. 그중 전통공예 기술의 기준으로 보면 네 가지 범주에서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전통공예기술은 어떤 사회 혹은 공동체에서 자연자원을 이용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 드는 지식, 기술, 솜씨를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면으로 볼 때, 나전칠기는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 중 한국에서만 1000년 이상 독특하게 발전된 전통 지식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남해안 앞바다 에서 채취되는 전복껍질이라는 자연자원을 이용하여 다양한 가구와 물품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이것을 각각의 크기와 색깔과 두께에 맞춰 자르고 오리고 갈고 펴기 위해 다양한 범주의 지식과 기 술 혹은 솜씨들이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나전장인들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것과 관련된 전통공예 기술의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할 만하다. 둘째, 전통공예기술은 어떤 사회나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상적 생존활동에 필요한 단순한 실용적 물건을 만드는 지식, 방법, 기능, 솜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동체 혹은 해당 사회의 전 반적인 문화적 개성을 드러내는 문화현상과 긴밀하게 연결된 지식이나 방법 등을 가리킨다. 이와 관 련해서 한국인들에게 있어 나전칠기는 가구로서 주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개로 표현
4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된 문양에는 한국인 공동체가 소망하거나 희망하는 내용이나 우주에 대한 생각 등이 내재되어 있다. 때문에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나전칠기가 발전하였고, 그 문양에는 한국인 의 공동적 문화 양상이나 양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따라서 나전칠기는 소품이든 가구이든 한국인의 의식을 가늠할 의미 있는 내용을 한국적 공예기술로 표출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전통공예기술은 어떤 사회 또는 공동체의 종교적, 의례적, 축제적, 예술적 표현물의 일부로 서 존재하는 것일 때,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나전칠기는 천 년간 한국 의 의례나 축제의 핵심 물품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나전청동거울과 은평탈청동거울이 제 작된 이래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우리는 나전문화를 향유하여 왔 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나무를 심고, 그 어린아이가 결혼을 할 때 그것을 잘라서 장롱을 만들어 준다. 나전칠기는 바로 이런 한국인의 일생의례를 상징하는 기물이 며, 특히 혼수함이라는 나전칠기는 결혼식이라는 축제를 더욱 값어치 있게 만드는 상징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나전칠기제품은 왕실의 결혼식 때 왕비의 부모에게 보내는 선물 이었고, 중국의 황제나 황후에게 보내는 최고의 예물이기도 했다. 이것은 나전칠기가 한국을 대표하 는 최고의 예술적 표현물이라는 증거에 다름 아니고, 이 때문에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 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전통공예기술은 문화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옛 문화의 가치를 전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지속가능성을 가질 때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한국인으로서 생활을 할 때 가구로서 가장 갖고 싶은 물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래에는 새로운 여러 분야와 융복합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인의 삶 속에 나전칠기는 지금까지 천 년간 한국적 미의식을 대표하였듯이, 앞으로도 계속 젊은 예 술가들에게 정신적 영감을 불러 일으킬 주요한 예술대상인 것이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듯이, 한국인에게 나전칠기 가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다음으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이라는 기준에서 살펴보자. 나전칠기와 그것을 제작하 는 장인의 무형문화유산은 자개나 옻과 같은 자연자원에 대한 채취, 준비, 변형 등에 관한 전통 관습 과 지식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복껍질을 바다에서 채취하여 그것을 갈고 깎고 다듬고 자르고 오려서 가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전복이나 옻에 대한 전통적 경험지식들이 축 적되어온 결과이다. 나전칠기를 만들기 위해 자개와 옻이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 대한 자연과학적 지 식이 경험적으로 인지되어야 하고, 이것을 자르기 위한 도구와 제작기술에는 산업 기술과 과학적 지 식이 결합되기도 한다. 또한 자개를 자르고 오린 문양은 그 시대의 종교와 사상 및 감정 등 사회구성 원의 민속지식과 관습이 내재된 결과인 것이다. 또 현재 나전문화의 근간은 목재선별과 백골제작을
41 나전장 담당하는 백골 소목장, 바다에서 패류를 수거하여 원패를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자개로 가공하는 섭 패공, 자개에 민족 공동체의 사상과 감정에 맞는 문양을 그리는 도안사, 자개를 선별하여 문양에 따 라 줄음질하거나 끊음질하는 절삭공, 이것을 유산지에 붙이는 붙임공, 옻칠 위에 자개를 붙이는 지 짐공, 위에 옻칠을 하는 칠공 등 공동체가 작업을 하면서 한국인의 고유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을 새롭게 전승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나전칠기와 그것을 만드는 나전장들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서 정의 하는 무형문화유산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는 세계적인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중일 삼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발전한 전통공예기술인데, 그것은 나전칠기가 한국인의 감정과 멋과 전통적 색채에 잘 부합되기 때문인 것이다. 게다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개나 옻과 같 은 자연을 이용하고 주생활의 가구로 애용하는 생활 문화 속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장인들은 그 들만의 고유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을 풍부하게 전승하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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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44 경기 가야옻칠공예사 43 경동칠기 49 고암나전칠기연구소 61 김선갑공방 72 남해공예사 83 동양칠기 96 만정공방 104 박만순옻칠공방 111 설화칠기 117 이빈공예 127 진성옻칠공예 138 청목공방 145 크리스탈칠기 151 평화자개 162 한국칠기 172
4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가야옻칠공예사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0일, 9월 5일, 10월 29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고산리 38-2 조사대상자 성용(남, 1960년생, 가야옻칠공예사 대표) 1. 유산명칭 가야옻칠공예사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4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가야옻칠공예사는 나전칠기 유물의 복원을 통하여 입증되는 다양한 정보를 현대작품에 응용하는 복고적인 나전작품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고산리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성용 3) 성별 : 남성 4) 나이 : 54세(1960년생) 5) 출신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장전리 235 6) 입문시기 : 성용은 1985년 아버지가 경영하던 섭패공방을 물려받으면서 나전일에 입문하게 되었 는데, 그의 아버지는 1968년 홀로 상경하여 서울 풍납동에서 자개공장을 차렸다고 한다. 성용은 이 후 섭패일을 하면서 외국에서 원패를 선별하여 직접 수입하고, 칠기 종사자들에게 양질의 자개를 공 급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1985년 자개가게와 섭패공장을 동시에 운영하였다. 공방은 경기도 남양주시 교 문리에 두고 가게는 왕십리에서 화양리로 이동하였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나전칠기 경기가 어 려워지면서 1996년에 섭패공장을 정리하게 되었다. 자개를 이용한 나전칠기 공방은 2000년에 경기 도 광주시 목현동에서 6~8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시작하였다. 이후 작업하기 좋은 곳을 찾다가 지금 의 공방이 위치한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고산리로 옮겨 14년 간 작업하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가야옻칠공예사는 무늬를 표현하는 자개 및 금속선, 대모 등의 재료를 골고루 활용하는 작품을 특 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주 재료인 자개로 주름질과 끊음질은 물론, 타찰법, 시패법, 조패법 등으로 무늬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등 재료의 특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 자개 중에서도 전복껍데기 를 가공해 만든 색패를 즐겨 사용하는데, 그래서 가야옻칠공예사의 작품은 화려하고 영롱한 색깔 작 품이 주류를 이룬다.
4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가야옻칠공예사 성용은 섭패장 출신답게 민물자개와 야광패 뿐만 아니라, 야광패, 수도리패, 고동 패, 색패, 민물패, 양식패, 호주패, 뉴질랜드패, 멕시코패, 레드패, 대만패, 청패, 흑진주패, 진주패, 신 발패 등의 다양한 종류의 자개를 이용하여 작품에 활용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구별조차 쉽지 않다. 이와 같이 다양한 자개를 나전문양에 따라 색상별로 분류하여 화려한 회화 작품처럼 나전칠기를 표 현하고 있다. 현재 가야옻칠공예사는 왕십리에 있는 몇 안 되는 자개가게와 포천에 있는 자개공장과 중국에서 가공해 오는 양질의 알자개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가야옻칠공예사는 경기도 광주시의 교외에 넓은 마당이 있는 지상 2층 반지하 1층의 큰 규모의 주택을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 층별로 60평이므로 총 180평 넓이이며 반 지하 1층은 자개부실 과 옻칠정제실, 절삭기계를 이용한 자개절삭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옻칠작업장(칠장) 2곳과 건조실, 거실, 물일하는 작업실, 성용 대표의 연구실이 있다. 초 칠, 중칠, 상칠의 칠작업은 칠부가 행하며, 매번 칠할 때마다 사포질을 하는데 천사포, 종이사포, 가 루사포, 숫돌을 사용한다. 자개를 부착한 후의 연마공정에는 가루사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 히 성용 대표는 정제기를 갖추고 있으며, 3층에는 작품을 진열하고 방 한 칸에 옻칠 장을 두고 옻칠 연구실로 쓰고 있다. 또한 옥상을 막아 먼지가 나는 기물의 마른사포질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교 끓일 때 쓰는 곤로와 냄비 대신 밥통을 사용하고, 거두로 상사를 자르던 것을 상사기계로 정밀하게 자르고, 지짐질에서 인두를 불에 달구어 쓰던 것을 전기인두, 전기다리미와 겸용으로 사용 한다. 그 외의 자개일의 공정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 수작업에 의존한다. 3) 제작과정 가야옻칠공예사는 4명의 직원과 성용 대표가 직접 모든 일에 관여하지만 서로 분업화하여 작업 을 하면서 효율성과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옻칠정제와 간단한 자개절삭은 성용 대표가 직접한다. 2 명의 자개부에서 붙임질, 끊음질, 지짐질을 하며 풀빼기 작업, 자개 땜 보기까지 해서 칠부에 넘기면 초칠이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칠면과 자개를 손질한다. 초칠, 중칠, 상칠 작업을 행하며, 매번 칠할 때마다 사포질을 한다. 칠 두께를 주기 위한 사포질로 가루사포를 많이 사용한다. 상칠이 끝나면 자 개에 묻은 칠을 제거하고 광내기 작업과 접칠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작품이 완성된다. 뿐만 아 니라 칠부는 백골이 제작되어 오면 자개를 붙이기 직전까지의 일반적인 밑칠 제작공정을 마무리한 후 자개부에서 자개의 시문이 이루어진다. 가야옻칠공예사 갈이물 작업은 작품의 성격에 따라 제작방법을 3가지로 구분하는데, 목기 면에
4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자개를 직접 붙이거나, 기면에 홈을 파고 자개를 끼우는 상감기법, 삼베 바르고 칠을 여러 번 한 후 자개를 시문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특히 성용 대표는 정제기를 갖추고 옻칠 정제에 많은 연구와 관 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옻칠은 직접 정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가야옻칠공예사는 서울지역 나전칠기의 산업사를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 여타의 공방들처 럼 서울에서 출발하여 인근 경기 지역으로 이전하여 활동하는 모습과 초기 섭패공장과 자개가게를 동시에 운영하다가 나전칠기 분야의 경기 침체로 섭패공장을 정리하고 나전칠기 공방만 운영하는 모습은 현대시기 나전칠기 산업사의 전개 과정을 대변한다. 한편, 가야옻칠공예사는 나전칠일 뿐만 아니라 섭패에 대한 지식, 그리고 옻칠정제에 대한 지식까 지 갖추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기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대학원 과정을 통해 나전칠일에 관한 이 론적인 부분까지 갖추어 동 분야의 전문지식을 고루 갖추어 활동하는 곳이라 하겠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가야옻칠공예사는 일찍부터 정제기를 갖추고 옻칠 정제에 많은 연구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공방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옻칠은 직접 정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옻칠의 물성 파악과 정제기술은 나 전장이 갖추어야할 기본 기능이지만, 규모 있는 정제기를 갖추고 작품과 환경에 맞게 옻칠을 정제하 여 활용하는 공방은 흔하지 않다. 가야옻칠공예사는 제작과 판매시스템을 동시에 갖추고, 제작에 있어서는 자개부와 칠부로 나누 어 분업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통나전칠기 제작과정을 지키면서 본(알)자개 위주로 재료를 사용하여 문화상품과 차별화를 하고 있다. 또한, 그 동안의 갈 고 닦은 기능과 학술적 이론을 토대로 고려 나전칠기 등의 유물을 재현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판 매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호텔이나 고급매장을 통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남대문시장에 매장을 두어 일정한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가야옻칠공예사 대표 성용은 늦은 나이에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장인으로서의 지식에 더하 여 나전칠기에 대한 이론과 역사에 대한 부분까지 섭렵하는 등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또한 각종 공 모전을 비롯한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여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경력과 공신력을 다져가고 있다. 이 와 같이 성용은 가야옻칠공예사의 가치를 높이고 아울러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유산보호를 위한
4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한국칠예가협회 한국공예가협회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중앙 공예가회 등 각종 모임 활동을 통해서도 전통공예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현재의 경향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서 미래에 대처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9. 계승방식 가야옻칠공예사 성용에게 현재 확실한 후계자는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자 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전해주려는 노력이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계승방식으로 이해 하고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과 유물복원 과정에서 체득한 전통적인 기법과 기능을 후배들에게 전하여 주고 후배들의 창작활동을 위한 환경 조성으로 전시행사 비용을 찬조하는 등의 도움을 주 고 있다. 그밖에 한국칠예가협회의 활동을 통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통지식을 대외에 알리고 있다. 10.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한국칠예가협회, 한국공예가협회,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중앙공예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 며, 이를 통해 전시회 및 나전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인터뷰 중인 가야옻칠공예사 성용 대표(우측)
5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가야옻칠공예사 도안실 모습 재현한 나전칠기 설명 중 건조 중인 작품 작품보관실 모습 사용 중인 자개 나전주칠장 작품 고려나전경함 복원작품 작업 중인 모습
5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경동칠기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9월 14일, 10월 31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229번지 5호 조사대상자 최태문(남, 1955년생, 경동칠기 대표) 1. 유산명칭 경동칠기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5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께 전승되어 왔다. 경동칠기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 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 가구를 완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업화, 전문화된 제작 방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국내산 자개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거나, 흑칠 대신 백칠을 사용하거나, 기계화 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에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 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경동칠기에서는 서울 지역에서 대량으로 소비되는 장롱과 같 은 혼수용 대형 가구를 제작한다는 면에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229번지 5호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최태문 3) 성별 : 남성 4) 나이 : 59세(1955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남해군 6) 입문시기 : 경동칠기의 대표 최태문은 1955년 남해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서울로 상경 하였다. 그 당시 친형인 최태화는 이미 서울 은평구 기자촌에서 나전칠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는 데, 차츰 일이 잘 되어 성장하고 있는 시기였다. 최태문은 바로 이러한 시기인 1973년부터 형님인 최태화의 공장에 들어가 나전칠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친형이지만 사장님으로서 엄격하고 자상한 형님 덕분에 7년간 나전일을 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그의 나이 24세가 되자 한 사람의 나전장으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그가 근무하던 남해공예사는 친형인 최태화가 경영하던 곳으로서, 직원수가 3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였다. 7) 공방 이동지역 : 최태문은 1980년이 되던 해에 형님의 공방에서 멀지 않은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경동칠기를 설립하면서 자립하였다. 당시 경동칠기는 소규모의 칠방이어서 자립한 이후에는 5년 정 도 형님 공방일의 하청을 하면서 차츰 기반을 닦기 시작하였으니 그는 창업에서부터 지금의 발전까 지 결정적으로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다. 이후 1982년 광진구 자양동에서 30평 규모의 경동칠기를 경영하게 되었다. 당시 5명의 직원을 두 었으며, 생자개를 잘라서 주름질을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했다. 작품을 할 때는 잘 모르지만 요즘 사용하는 판자개보다 20년 전에는 거의 생자개로 주름질을 하였다. 당시 판매가 잘 되어 10여 년 후
5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에는 공장이 좁아 보다 넓고 환경이 좋은 구의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1995년부터 광진구 구의동에 나전칠기 공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경동칠기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경동칠기는 나전칠기가 호황을 이루던 시기여서, 공장 또한 칠부와 나전부 두 분 야로 나누어 공장을 가동하였다. 이곳에서는 백골은 목공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에 주문을 해서 제작 을 해왔으며, 자신들의 공장은 칠부와 나전부를 나누어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곧 최태문의 경동칠 기에 칠부는 40평 규모에 6명의 일꾼을 두었고, 나전부는 30평 규모에 10명의 장인들을 두고 경영 한 것이다. 당시 그의 공장에서 나전일을 하던 10명의 장인들은 모두 끊음질과 주름질을 잘하였다. 당시에 주로 생산한 제품은 12자 장롱과 문갑 2개 및 화장대 1개의 안방용 가구세트였다. 이러한 나 전칠기 제품을 소비하는 계층은 신혼부부들이거나 중산층의 나이 지긋한 분들이며, 당시 나전칠기 세트는 시세로 1,000만원을 호가할 정도였다. 경동칠기의 당시 생산량은 1달에 이러한 것을 10세트 를 제작하여 납품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나전칠기 제품을 그의 공장에 서는 제작만 하였고, 판매는 중곡동 등지의 가구 도매상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그가 도매상에서 납 품할 때의 가격이 1,000만원이었다면, 그것을 실수요자에게 판매할 때는 2~3배를 받았던 것이다. 1990년 중반의 경동칠기에서 칠부의 공장과 나전부의 공장을 각각 별개의 지역에서 운영하다 보 니, 나전칠기 제품을 만들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운송이라고 한다. 곧 외부에서 백골을 짜오고 난 후 나전부에서 작업을 완료하더라도 다시 칠부로 옮겨서 마감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9년 IMF가 터졌는데, 막상 나전칠기의 수요가 급격하게 줄면서 어려워졌다고 한다. 2000년대에 우리나 라 전체의 경기가 좋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했으나, 2007년부터는 2008년까지 나전칠기 시 장은 그다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3~4년간 나전칠기 시장이 바짝 얼어붙었는데, 그 것은 가구시장은 주택시장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이 위축되어 집을 사고파는 사람이 없 어지거나 넓혀가는 사람들이 적어지면 그 여파가 결국 가구시장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여서 2013년 현재 1달에 장롱 3세트 정도를 만들면 2세트를 팔 정도이고, 가격은 20 년 전인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1,000만원이다. 결국 1990년대 호황일 때에 비해 재료비나 인건비 등이 상승했음에도 완성품의 가격은 그대로이므로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경동칠기는 나전칠기 작업 중 백골은 목공소 등에 주문하여 생산하고, 자개일과 칠일 위주로 작업 한다. 따라서 재료는 자개, 칠 그리고 색칠 등이다.
5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첫째, 자개는 질 좋은 전복자개를 사용한다. 자개는 평화자개나 상아자개, 대일자개, 득신자개 등에서 구입하여 사용한다. 1970~1980년대에는 생자개를 사용하여 제작하였지만, 2013년 현재 는 판자개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사용한다. 경동칠기는 대규모 가구를 생산하기 때문에 판자개는 14x24cm 정도 되는 것을 월 500장에서 700장 정도를 사용할 정도이다. 그만큼 가구 전체에 자개 를 촘촘하게 붙이기 때문에 자개의 사용량이 매우 많다. 둘째, 칠이나 아교 등은 구입하여 사용한다. 칠이나 아교는 우일상사에서 중국산을 사고, 윤일자 개에서는 옻을 구입한다. 나전칠기 일을 할 때 가구를 제작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아 교를 구매하여 사용하고, 어교는 값이 비싸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근래 저렴한 가구를 제작할 경우에는 옻칠 대신 캇슈를 섞기도 하고 우레탄 등으로 문화상품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근래에는 나전칠기의 화려한 공예미를 강조하고자 자개에 색을 넣거나 표면의 장식을 강화 하는 원료도 사용한다. 곧 가구의 표면에 꽃이나 새 등에 금분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 는 것은 일본풍의 영향으로 업계에서 칠마티에 혹은 금마키에라고 불리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에 필요한 재료는 평화자개 등에서 따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방법은 일본식이란 것을 알고 있으나 작품을 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하는 데 유용한 기법이어서 이곳뿐 아니라 자개 업 체에서는 많이 사용하는 추세라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경동칠기는 2000년 공장을 현재의 중곡시장 내로 옮겨 규모를 축소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장 상가는 콘크리트 건물의 2층에 위치한 번잡한 지역에 있으나 월세가 월 160만원 정도로 싸고 장소 가 넓으며 드넓은 옥상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더구나 중곡동은 대규모 가구시장과 가까워 운송비 부담도 적어 나전칠공장에 적합하며, 주변에서 인력 공급도 쉽고 교통도 편하고 여러 장점이 많아 공장 입지로는 최고인 것 같다. 경동칠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칠부와 나전부는 별도로 운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는 80평 규모의 공장이 있으며 그곳에는 칠일을 담 당하는 직원 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편 나전일은 광진구 중곡동의 중곡시장 2층에 80평 규모로 운 영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5명의 장인이 근무하고 있다. 곧 그들 중 여성 2명은 그림의 디자인이나 칠화를 그리며, 또 2명은 자개를 주름질하거나 문양에 맞춰서 붙이고 지지는 일을 하고, 나머지 1명 은 자개 위에 마감칠을 하는 일을 담당한다. 시장 상가 2층 전체와 옥상을 쓰고 있는 경동칠기는 80평의 넓은 공간임에도 1층에서 2층으로 콘 크리트 계단을 올라 공장으로 들어가면 대량 생산된 각종 가구들이 켜켜이 재고처럼 쌓여 있어 비
5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좁게 느껴진다.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첫째 방은 사무실 겸 디자인실이다. 이곳에서는 여성 장인 2명 이 색마키에라고 부르는 것처럼 꽃에 채색하는 회화적인 작업을 하는 곳이다. 그곳을 나오면 좌우 벽 가득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가구들이 쌓여있다. 완제품으로 출고를 기다리는 작품도 있고, 백골 이 분해된 채 반가공된 제품도 많다. 장롱이며, 화장대며, 탁자며, 문갑이며 발을 떼고 몸을 움직이 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 사이 공간을 나누어 자개부를 만들고 자개일에 필요한 각종 재료와 도구 가 놓여 있다. 특히 이 공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판자개로 문양 전체를 빈틈없이 조각하는 백 색 가구가 눈에 띈다. 이것을 경동칠기에서는 이조장 혹은 이조가구 라고 부른다. 나전칠기의 칠색 이 대부분 흑칠이나 주칠인 데 비해, 이곳에서는 백칠이 주류를 이루는 것을 수많은 재고품에서 확 인할 수 있다. 한편 공장의 중간 부분은 공간을 약간 정리하여 전시장 비슷하게 꾸며져 있다. 가구 도매상이 아 닌 공장을 직접 찾아 주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혼수 가구 일습[장롱, 화장대, 문갑]을 전시하거나, 중 산층을 위한 고풍스런 일품 가구들을 진열해 두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구 판매장의 전시장에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칠부에 해당되는 공간은 갑자기 공간이 탁 틔어 주문한 백골 위에 남양주에 있는 칠 공장에서 칠 을 해온 가구가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밑칠된 가구 위에 자개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칠을 할 때에는 넓은 공간을 빠른 시간에 골고루 메꾸고자 핸드피스나 콤프레서를 사용하고 있다. 경동칠기에서 나전일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는 수공 도구와 자동화 도구를 동시에 사용한다. 수공 도구는 자개와 관련된 것과 칠일에 필요한 것으로 나뉜다. 자개용으로는 상사를 써는 도구로 거도와 자개를 주름질하는 톱을 사용한다. 칠일에 필요한 도구는 붓, 인두, 귀얄 등을 사용한다. 한편 자동화 도구로는 자개를 대량으로 잘라낼 수 있는 절삭기를 사용한다. 이러한 절삭기는 1985년경에 도입하 였는데, 연습 끝에 2년 만에 숙련되어 자유자재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구를 귀얄로 칠하려면 공간이나 면적이 넓어야 하기 때문에 후끼라고 하는 콤프레서를 사용하여 능률을 올리기도 한다. 3) 제작과정 경동칠기의 대표인 최태문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통적인 기본기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장인 이자 점주에 속한다. 그는 이러한 전통 기법과 동시에 규모가 큰 가구를 제작하기 위해 현대화하는 다양한 방법, 효과적인 제작기법을 도입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곧 그가 나전일을 할 때 주로 주름 질 기법과 끊음질을 사용한다. 그가 하청일을 할 때에는 자개를 톱으로 켜고 유산지 위에 주름질한 자개를 붙여서 보내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러다가 1985년 절삭기계가 나오자 자개 100개 정도를 한 번에 붙여서 주름질하는 것도 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5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다음 중요한 작업으로 백골 위에 베를 바르고 호분을 발라서 자개를 붙이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 의 전통적인 옻칠은 칠한 후 자개를 2~3장을 바르고 칠을 3~4번 칠한다. 그런데 때로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자개를 칠보다 낮게 바르고 문양을 붙인 후 10일마다 칠을 5번 정도 하기도 하는 데 일본에서는 헤이코 라고 부르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경동칠기가 위치한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크고 작은 공장이 밀집해 있으 면서, 아울러 나전칠기로 만든 가구를 판매하는 도매상이 많은 곳이다. 때문에 그가 1973년에 친형 인 최태화가 경영하는 남해공예사에서 일을 배우고 자립한 이후 1982년부터는 광진구 자양동, 1995 년 광진구 구의동, 2000년 광진구 중곡동 등에서 공방을 경영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규모가 작은 소규모 공장이나 개인 공방은 서울 전역에 산재되어 있지만 그래도 큰 규모의 나전공방은 아직도 그가 위치한 광진구가 대표적이다. 결국 광진구 중곡동에는 대규모 가구 제작공장과 도매상이 밀집되어 있어 규모가 큰 나전칠기의 생산과 공급이 한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중곡동 지역에 나전칠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집세가 싸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제적 조건과 함께 나전칠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의 구입과 완제품의 판매를 위해서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곧 나전칠기를 만드는 재료인 자개를 공급하는 곳이 중곡동에서 멀지않은 성동구 왕십리 지역에 많을 때는 100여 곳, 지금도 크고 작은 30~40곳이 있어서이다. 원 하는 형태나 색상 및 크기에 해당되는 원료의 공급이 원활하기 때문에 이곳이 나전칠기 가구를 제 작하기에 서울에서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광진구 중곡동 일대에 대규모 가구 도매상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나전칠기 제작 공방이 많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나전칠기 가구를 제작한 후 완제품으로 시장에 내려면 운송비가 많이 들 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도매상이 위치한 중곡동이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기에도 적격인 것이다. 특 히 가구 판매장은 장롱, 침대, 화장대, 문갑 등 안방이나 서재 등의 공간을 풀세트로 디스플레이 하 고, 여러 회사나 공장의 제품을 비교하고 구입하기 때문에 공간이 넓어야 한다. 이러한 가구 판매상 의 특성상 땅값이나 집세가 저렴한 넓은 공간에 위치해야 하는데, 중곡동이 이러한 여러 조건을 가 장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근래 광진구 중곡동 다음으로 규모가 있는 곳은 중곡동에서 파생되어 옆으로 퍼져나간 광진구 구 의동이나 강동구 천호동이라고 한다. 이들 지역 또한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중곡동만큼이나 땅값이 비교적 저렴하여 가구 공장이 위치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때문에 가내 수공업이나 1인 기업으로 구석구석에 수십 군데에서 여전히 나전칠기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강동구 천호동의 경우 고급 가
5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구를 소비하는 강남구가 가까이 위치하여 나전칠기를 제작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래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공장이 서울에서 벗어나 서울 근교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동하 는 추세이다. 곧 경기도 성남시나 남양주시에 나전칠기 관련 공장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이 유는 첫째, 서울지역의 땅값이 상승하기 때문에 공장이 위치하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둘째, 나 전칠기를 제작하는 작업장의 특성상 나무의 톱밥이나 자개를 절삭할 때 먼지와 가루가 날리고, 칠 등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환경이나 소음 문제가 민감하기 때문이다. 셋 째, 작업에 종사할 장인들의 부족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깨끗한 작업환경에서 컴퓨터 등의 IT 분야에서 종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나전칠기는 작업의 특성상 대도시 젊은이들에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인을 구하기 쉬운 중장년층의 취업 을 유도할 수 있는 근교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경동칠기가 처한 문화유산적 기능은 광 진구 중곡동의 지역 경제에 일부 도움을 주고 그 지역 중장년층의 취업에도 유리하다. 아울러 이 지 역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서울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전일을 하는 장인들이 많이 활동하는 곳은 옛날에는 재료의 생산지와 겹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의 발달로 소비자가 있는 곳에서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 좋은 자개가 많이 나오던 통영과 칠이 생산되던 원주에서 생산이 집 중되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전국의 물화가 교통의 발달로 쉽게 모이고, 소비자가 많 고, 값비싼 나전칠기를 살 수 있는 부유층이 많은 서울이 나전칠기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때문에 서울 지역에서 나전일과 관련되는 장인들이 유난히 많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신중현(생옻칠), 홍동화(황칠), 손대현 (생칠), 정병호(남태칠)가 있고 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장 정명채 등이 그들이다. 경동칠기의 최태문은 나전칠기를 시작할 때부터 남해공예사의 최태화와 더불어 40년 이상을 서 울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장인이다. 경동칠기는 서울 소재의 나전칠기 공방 중에서도 규모가 비 교적 큰 편에 속한다. 그러면서 장롱이나 문갑, 화장대, 탁자 등 비교적 대형 가구를 전문으로 제작 하고 있어 타 공방과는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그는 규모가 큰 작업장을 가지고 있는 대표이 기 때문에 전통적인 나전기술 전체를 소화하면서도, 그의 공장 내에서는 도안사, 자개부와 칠부, 채 색일을 하는 직인들이 각각 분업화, 전문화되어 있다. 가구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나전을 오려서 사 용하지 않고 절삭만을 하는 사람에게 맡겨서 하고, 칠 또한 손쉽게 구입하고 전문적으로 칠하는 사
5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람에게 맡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예전처럼 나전장이라 하면 전 과정을 손수 하던 나전칠기의 종합적인 전통 지식에서 작업과정이 분화되고 개량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동칠기를 비롯한 서울의 대규모 나전칠기 공장은 전통적으로 나전장 개인의 소규모 수공 작업 보다는 전체 작업 공정을 부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인 집단으로 개량되는 추세이다. 때문에 나 전장 1인의 통합적 명칭보다는 작업 과정에 따라 섭패장, 끊음질, 주름질, 칠일, 나전붙이기, 아교장 등으로 분화되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그러면서 경동칠기라는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최태문의 경우 입문 초기에는 전 과정을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지만, 40여 년간 공장을 운영하면 서 작업상 능률을 올리기 위해 나전부와 칠부로 구분하여 일종의 분업작업을 하고 있어 전통 지식 이 개량되어 가는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경동칠기의 대표인 최태문은 나전칠기 작업을 하던 중 느낀 여러 문제점과 보다 깊이 있고 예술 성이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늦은 나이에 명지대학교 산업대학 전통공예학과에 입학하여 2002년에 전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소홀했던 각종 전시회나 공모전에도 출품하여 자신의 작 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3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입상을 계기로 2007년 서울시 지방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 부문에서 금상을, 2008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 부문에서 금상을, 원주옻칠공예대전에서 특상을, 2009년 황실공예대전에서 최우수상을, 2012년 전 주 전통공예전국대전에서 영예의 대상 등을 수상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간의 활동으로 수상도 많이 하였으며 기능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2012년 에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또 2013년에는 명인 인증을 취득하게 된다. 더욱이 그가 나전칠기 에 입문할 당시에는 아직 수공적 방식으로 제작하던 때라 전통적인 나전칠기에 대한 기능도 갖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무관하게 형님의 공방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혔기 때 문에 제도권의 무형문화유산과는 무관한 편이다. 이처럼 경동칠기를 설립할 초기에는 전통적인 제 작 방식으로 제작하였지만, 1980년대 이후 나전칠기가 호황을 이루고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대량 생산의 필요성 때문에 자개를 한꺼번에 절삭하는 기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칠일을 할 때에는 후 끼라고 부르는 콤프레서 등을 도입하여 대량 제작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 다. 비록 그 자신이 전통적인 나전칠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량을 갖고 있지만 그러한 기술을 전승하 기보다는 생업에 치중하여 기계화로 개량되는 추세를 따라간 것이다. 더욱이 경동칠기는 장롱 같은 대형 가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규모가 큰 나전칠기 공장이다. 이 곳에서도 주문에 따라 전통적인 방식의 나전칠기를 제작하기도 하지만, 도소매상에서 주문하는 백
5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색 바탕칠에 자개를 올리는 이조기법 또는 이조장 이란 명칭의 제품을 주로 제작하고 있다. 이 제 품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바탕이 희기 때문에 밝게 보이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나전칠 기 하면 검은 옻칠의 무거운 색상을 연상시키는데, 소위 이조장은 밝고 화사한 첫 인상으로 근래에 와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밝은 색상으로 현대적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 나 이 기법은 경동칠기가 특별히 잘 하고 있을 뿐이지 특허를 낸 것도 아니고, 이 계통에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이렇게 경동칠기가 새롭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개척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외면되던 혼수가구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나전칠기가 고답적인 디자인으로 나이 든 사람의 골동적 취미 에서 젊은이들의 안방가구로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디자인적 요소 도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재료나 도구 및 제작방식의 전통을 전승하는 보호조치와 함께 기존 문양 의 혁신 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9. 계승방식 경동칠기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비롯해 전통장인들에게 전수받은 계보가 없다. 그는 친형이 경 영하는 공방[남해공예사]에서 나전일의 기초부터 하나씩 배우고 터득하여 나전일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승에 대한 책무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는 40여 년간 나전칠일에 종 사하면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자영업을 하며 수십 명의 장인들을 피고용인으로 거느렸는데, 그들 대 부분은 현재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직인으로는 박종준, 박종분, 이일환 등이 있고, 그들 중 현재까지도 활동하는 장인은 강동구 길동의 국성춘을 비롯하여, 홍이남, 이광우 등이 라고 한다. 이렇게 그의 공장에서 월급을 받고 일한 직원으로서 독립하여 자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나전작업의 특성상 공장에서는 자개부나 칠부에 해당되는 일부 기술만 반복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이 라고 한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나전칠기의 전 과정을 터득하겠다는 의지가 없었고, 공장 에서 배우는 일부 기술만으로는 공장을 설립하여 자영하기 어려운 것이 전승을 막은 이유였다. 하지만 경동칠기의 대표 최태문은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자신의 기술을 이어받을 제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제 하는 것 같다. 그러나 10여 년을 투자해도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배우겠다는 젊은이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나전장의 길을 밟으려면 자신이 걸어왔던 방법 즉, 가르쳐 주는 선생의 집에서 기거를 하면서 잡일부터 시작해 하나씩 나전 칠기의 전 과정을 10년 이상 익히고 연마해야 된다고 체험에서 체득한 이야기를 해 준다.
6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관련자료 2012 전주일보에 전국공예대전에서 종합대상 수상에 관한 기사 게재 11. 관련단체 경동칠기의 대표 최태문은 나전일과 관련된 단체 중 한국전통칠공예가협회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공예가협회에도 참여하여 명인 인증도 받은 적이 있다. 이러한 단체 활동을 통해 전시 회 안내, 회원 동향 등의 기초적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한편 근래 나전칠기 분야에서 명인 으로 인 정받은 것은 평생 한 분야에 종사한 데 따른 개인적인 보상이라 할 수 있다. 경동칠기 공장 옥상에서 인터뷰 중인 최태문 경동칠기 공장이 위치한 중곡시장 사무실 및 디자인실, 색칠을 하는 여성 직인들 유산지 위에 칠마키에 작업 중
6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나전자개를 붙이는 모습 화려한 야광패를 붙이는 모습 자개부에서 사용하는 도구 백골 전면에 자개문양을 붙인 장농(흔히 이조장 이라 불린다) 칠일에 필요한 각종 도구 각종 재료와 도구
6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칠부에서 칠일하기 칠한 후 건조장에서 건조하는 모습 칠 작업 중인 가구 칠 작업이 완료된 가구 크고 작은 장롱이 쌓인 모습 공장 내부에 각종 자재가 쌓여있는 모습
6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고암나전칠기연구소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8일, 9월 21일, 11월 3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1동 조사대상자 오왕택(남, 1955년생, 고암나전칠기연구소 대표) 1. 유산명칭 고암나전칠기연구소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한국의 전통공예의 한 갈래이다. 이는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白 骨 )이라 칭하 는 기물을 만들어, 그 위에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토분과 옻칠을 섞은 칠회를 이용해 형태를 잡아준 뒤, 그 바탕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낸 후 또 다시 칠을 올려 완성하는 문화유산이다. 한
6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국 칠기의 시작은 고고학적인 발굴 조사에 의해 선사시대로 알려져 있으며, 나전칠기의 시작은 통일 신라시대 당나라로부터 전해지면서부터이다. 그 이후로 역사의 흐름과 발맞추어 전승이 이루어져 왔으며, 나전칠기의 제작 기능이 전승됨과 동시에 나무나 자개 및 칠 등의 자연재료를 다루는 자연 지식도 함께 전승되어 왔다. 고암나전칠기연구소의 재료조달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목재를 이용하여 제작되는 백골(기물)은 목수의 손을 통해 고암의 디자인을 구현하고, 자개와 칠을 비롯한 각종 재료들 역시 중 간 판매상을 통해 구입한다. 다만 현재 나전칠기 산업계의 퇴보 및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내에 서 조달이 어려워진 재료의 경우, 수입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설이나 도구 등은 여전히 수 공적인 것을 사용하였다. 장인 오왕택은 나전칠기 제작의 모든 공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가내 수공예적 제작 방식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작업의 특성상 부분적으로 기계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 과거에 비 해 발전된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작업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시 강북구 수유1동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오왕택 3) 성별 : 남성 4) 나이 : 59세(1955년생) 5) 출신지 : 광주광역시 6) 입문시기 : 고암나전칠기연구소의 소장인 오왕택은 전남 광주에서 1955년에 태어나 1974년에 상 경했다. 그가 나전칠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73년 광주의 한 나전칠기공장에서였다. 나전칠기장롱 공장에서 기술을 익히고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작품을 하길 원하던 그는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선생이 운영하던 우석 나전칠기 공예연구소 에 입문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 격적으로 그는 스승이 그린 도안을 수정하거나, 도안에 적합하게 나전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다. 이후 1982년까지 84개월간 김태희 나전장의 작업을 도우며 다양한 나전칠기를 접하고, 보다 심 도 있게 배우고 익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공식적인 전수자로 등재되지는 않았다.
6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 공방 이동지역 : 오왕택은 1982년 부인과 결혼하면서 김태희 보유자의 공방에서 독립하였다. 이 후 1982년부터 1994년도까지 12년간 양천구 신월동에 작업실을 두고 그 이름을 고암나전칠기공방 이라 하였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는 수유동 현재 자택으로 공방을 이전했다. 공방을 운영하는 초기 1년간은 스승 김태희 선생의 작품활동을 도왔고, 1984년부터는 신라호텔에 입점해 있는 고려민예에 납품을 시작한다. 고려민예와 일을 하며 일본에 고암 이라는 호를 사용하 여 수출하는 일에 주력한다. 이 시기 도안과 나전의 기술이 절정에 이르렀으나, 나전칠기가 사양길 로 접어들었고, 업계의 어음결제의 관습 등으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졌다. 더 나아가 공방의 유지조차 어려워지자, 함께 일하던 이들을 내보내고 장롱도안을 그리기 시작한 다. 이전의 도안이 작은 소품이나 함에 국한되어 섬세한 그림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장롱도안을 그 리던 이 시기를 통해 도안의 선의 굵기나 선의 느낌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도안을 주로 그리던 사람들은 별도로 도안사 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 또한 그림을 잘 그려 도안사로서 일을 시 작했는데, 그 연도가 1990년 10월이었다. 이후 1995년 6월에 공방을 이전하고 나서도 도안을 계속 그린다. 그러나 도안의 결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적 상황이 어려웠고, 자녀들의 성장에 따라 갈수록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그리하여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 그렇게 천직이라 생각 하던 나전칠기 일을 접게 되었다. 그 후 오왕택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나전일을 쉬었다가, 2009년 1월 아내의 권유로 나전칠기 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처음 돌아와 옛날의 솜씨가 나오지 않아 고생하였으나 밤을 새워 연습하고 감각을 익혀 곧 다시 나전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솜씨가 제 궤도에 오르자 디자인전 문기업 크로스포인트 대표 손혜원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이제까지 보던 나전칠기와는 다르다고 말하며 함께 일하기를 제의한다. 1981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첫 입선을 한 후 끊었던 전시회나 공모전에도 다시 출품하기 시 작하였다. 그리하여 복귀 1년 뒤인 2010년도에 제9회 원주시 한국옻칠공예대전에 출품하여 입선을 하였고, 제1회 나전칠기기능경기대회에서 장려상도 수상했다. 그 다음해인 2011년에 또 다시 제10 회 원주시 한국옻칠공예대전에 출품하였고, 다시 한 번 입선을 한다. 2012년에는 한국공예의 법고 창신 2012 전에 참여하여 소공동 롯데갤러리와 대만 타이페이 남강전람관에서 연이어 전시를 하였 고, 2013년에는 밀라노에서 열린 한국공예 법고창신 2013 전에서 호평을 받고 국내에서도 다시 주 목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언론은 15년 만에 나전계로의 복귀 라고 하여 그를 주목하였고, 2013년 현 재 명인 인증을 받고 활동 중이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6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장의 일차적인 재료는 당연히 자개이다. 자개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전복껍질에서 채취해 내 는 색패, 멕시코패, 뉴질랜드패, 레드패, 청패, 호주패, 대만패가 있고, 소라류에서 채취하는 야광패, 수도리패가 있다. 가공방법에 따라 원패를 그대로 사용하면 후패, 얇게 가공하여 사용하면 박패라 한다. 이 모든 자개는 왕십리에 위치한 평화자개에서 조달하고 있다. 칠도 생칠, 투명정제칠, 흑칠, 색칠 등이 있는데 이레상사에서는 생칠을, 평화자개에서는 정제칠이 나 흑칠, 색칠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백골은 도면을 그려주면 오랜 경험을 가진 목수인 장경춘이나 석일공예의 임영률이 제작해준다. 장석은 경기도에 공방을 가지고 있는 이종범 장석장을 통해 제작 하는데, 이 장석 역시 오왕택 장인이 직접 디자인을 한다. 아교(어교)나 황토, 색깔안료, 사포 등 각종 부자재는 왕십리에 위치한 평화자개나 우일상사에서 구입하는 데, 원자재의 공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고암나전칠기연구소는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한 주택을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나전 칠기판매장 하이핸드코리아 손혜원 대표가 임대해 준 곳이다. 규모는 약 30여 평 정도이고, 이곳에 서 둘째 딸인 오유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실은 디자인과 나전을 하는 나전방과 옻칠건조 장이 있는 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바로 보이는 오른쪽의 큰방이 나전방이고, 왼 쪽에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작은 방은 칠방이다. 자개방의 한쪽에는 백골이나 자개 등의 재료를 쌓아두기 위해 선반을 두었으며, 벽을 따라 기역자 로 나전작업대와 도안데스크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 문과 마주보고 있는 작업대는 두 개가 놓여있는 데 왼쪽의 것이 딸 오유미의 작업대이고, 오른쪽의 것이 오왕택의 작업대이다. 마당을 바라보는 창 가 쪽으로 큰 테이블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오른쪽이 도안테이블, 왼쪽의 조명이 달린 작업대 가 나전을 본뜨거나 도안을 수정하는 데스크이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예전에 줄음질을 하여 유산지 위에 붙여놓은 섬세한 문양의 자개가 상자 가득 들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젊은 시절 그의 솜씨를 가 늠할 수 있다. 그 나전을 보며 예전의 작업과 최근 그의 작업 간 디자인의 차이가 확연하게 눈에 띄 었다. 예전에 줄음질한 작업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단위 문양을 이용하여 화면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 는 형태였다면, 최근 그의 작업은 민화나 화조화 등 조선시대 화원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여백 을 많이 두고 문양은 세밀하고 정교하게 제작하여 회화적으로 작업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고암나전칠기연구소는 다른 나전칠기공방과 달리 다양한 도구를 확보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6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그는 전통적인 것에서부터 현재 개량되고 기계화 된 것까지 마치 도구박물관처럼 구비하고 있다. 그 는 모든 도구들이 옛날부터 각각의 이점이 있어 발명된 것이므로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옳 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전을 위하여 90종 126점의 도구를 보유하고 있다. 디자인 용구는 트레싱페 이퍼, 제도용구, 샤프펜슬이 있다. 나전작업을 위한 도구로는 실톱, 실톱대, 태장대, 상사칼, 조각도, 핀셋, 무쇠인두, 무쇠가위, 사포필통, 찜통, 아교붓, 상사기계, 전동드릴이 있다. 칠 작업용 도구에는 칠주걱, 귀얄, 아대, 칠칼, 송곳, 칠지, 유리판, 구두칼, 칠장, 분무기, 칠그릇, 망치 등이 있다. 3) 제작과정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은 참으로 복잡하고 그 단계마다 정교한 손놀림이 있어야 하며 마치 전자제 품을 만드는 것처럼 초정밀한 눈과 손길이 필요하다. 오늘날 나전칠기의 공정은 30여 가지로 축소 되고 사용되는 도구의 숫자도 많이 줄었지만, 오왕택의 경우 90종 126개의 도구를 사용하여 58가지 의 공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한다고 한다. 오왕택은 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도안, 즉 디자인이라 한다. 그것은 그의 스승인 중요무 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선생의 영향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김태희 보유자는 나전칠기 업 계에 있어서 돌연변이라고 할 정도로 혁신적인 도안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구사했던 분이었다. 그만 큼 김태희 보유자의 디자인은 동시대를 지낸 김봉룡 보유자나 송주안 보유자의 것과 확연하게 차이 가 났다. 따라서 그는 스승인 김태희 보유자의 독창적인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전통을 현대화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도안을 통하여 완성될 작품을 미리 예견할 수 있고 거기에 따른 재료와 도구, 제작공정을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제작과정은 세분하면 50여 단계가 있으나 중요한 과정을 추려보면 다 음과 같다. 첫째, 디자인 작업이다. 트레싱지를 이용해 백골의 전개도를 그리고, 나전 디자인을 한다. 트레싱 지를 이용하는 이유는 레이어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하나의 백골의 사이즈에 여러 가지 디 자인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완성된 도안 중 백골 전개도를 목수에게 보내어 백골을 맞추는 동시에, 장석 도안을 장석장에게 보내어 장석을 제작한다. 둘째, 옻칠 밑작업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한다. 첫 번째 사포질을 한 후, 첫 번째 생칠과 사 포질을 하고 삼베를 재단한다. 풀을 끓여 옻칠과 섞어 옻칠풀을 만든 후 삼베를 바르는 데, 선이 서 로 맞닿지 않게 마주보는 면끼리 붙인다. 면의 분할에 따라 4~5차례에 걸쳐 삼베를 바른 다음 묽은 생칠 2회를 하고 사포질을 한다. 그 위에 토회를 2~3회 바르고 굳힌 후 물사포질을 하고 다시 한 번 때우고 사포질한 후 흑칠을 하고 사포질을 하는 과정을 2회 반복한다.
6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셋째, 나전작업은 다음의 순서로 작업한다. 자개를 선별하고 분류한 다음, 자개의 테두리를 정리 하고 자개 면에 아교 칠을 하여 봉하고, 자개를 쪄서 나전간 밀착되게 만든 후, 문양에 따라 나전 위 에 본을 뜨고, 그 형태대로 톱질한 후 짬을 맞추고 자개를 삶아 아교를 빼내 여러 장을 분리시켜 유 산지 위에 각각의 형태에 맞춰 붙임질한다. 넷째, 마감작업은 다음과 같다. 나전을 준비된 칠바닥에 지짐질을 하고 종이를 떼고, 풀을 뭉개 자 개와 옻칠바닥을 견고히 붙인 뒤 시간이 지나 풀이 굳으면 풀을 빼고 묽은 생칠을 한다. 토회로 긋기 를 2~3회 한 다음, 물사포로 자개를 드러내게 하고, 생칠로 접칠하고 나서 다시 물사포질을 한다. 흑 칠로 초 중 상칠을 하는데 매번 옻칠을 할 때마다 물사포질을 해서 평을 잡아준다. 상칠을 끝내고 나서는 칠을 단단히 굳히고 초벌 광내기를 하고 접칠한 다음 재벌 광내기를 한다. 모든 칠이 끝나면 미리 주문해 놓았던 장석을 붙이는데, 이 과정 중에 칠바닥에 손상이 가지 않도 록 주의해야 하며, 또 장석을 붙이는 과정에서 전체의 형태가 뒤틀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어야 한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고암나전칠기연구소의 소장이자 대표인 오왕택은 전통적으로 선배들에게 내려오는 방법 이외에 도 새로운 공구나 기법을 새로 개발하거나 발견하는 것을 즐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톱날을 갈아 쓰 는 것이다. 기존에 나전을 줄음질을 할 때 #00000(공 다섯개)짜리의 얇은 톱날을 사용했는데 부족함 을 느낀 그는 그 얇은 톱날을 갈아 더 얇은 톱날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현재는 # (공 여덟 개)짜리 톱날을 발견하여 보다 편리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줄음질을 하는 데 있어, 한층 정밀 묘사된 회화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게 일조를 하게 되었다. 또한 고암나전칠기연구소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디자인의 현대화이다. 현재까지 제작된 대부분의 나전칠기들은 기존의 당초문양이나 전통문양을 재현하는 경향이 대부분인데 반해, 그는 비록 조선시대의 전통문양이라도 단순한 재현보다는 현대적인 변형을 추구하거나 자연을 관찰하여 새로운 문양을 발굴하기도 한다. 그는 나전칠기란 선의 예술이라고 단정하며, 수많은 선 중에서 그 대상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으로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힘 주어 말한다. 그래서 직선을 위해서는 끊음질이 적합하고, 곡선을 위해서는 줄음질이 적합하기 때문 에 그 두 가지 방법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제자이자 딸에게 도 자신의 기술과 방법이 온전히 전해지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시키고 있다. 고암나전칠기연구소에서는 법고창신( 法 古 創 新 )을 실천하는 데, 이것은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온 나 전칠기 기술은 고스란히 유지하되[ 法 古 ], 문양이나 도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예술품으로 창작하는
6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것이다[ 創 新 ]. 이 법고창신의 정신은 젊은 시절부터 이어졌는데, 특히 1970~1980년대 나전칠기의 호황기에 줄음질로 명성을 얻을 당시 그의 도안 작업은 전통문양인데도 현대적인 느낌이 존재했다. 이 문양은 유행이 되어 결국 다이아몬드 톱날을 단 기계절삭에 의해 다량생산으로 이어졌고, 그 문 양의 일부는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 당시 그의 도안은 수십 개의 단위 문양을 반복하여 붙여서 화면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는 것이 특징이었다면 15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나전칠기계로 복귀한 이후의 작업은 이전의 공예적 혹은 주생활에 필요한 각종 가구류를 만들 때의 문양 제작방식과 확 연하게 차이가 난다. 곧 그는 자신이 만드는 나전칠기를 일종의 회화작품으로 생각하고 예전 민화나 화조화를 비롯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되, 여백을 많이 두고 문양은 정교하게 제작하는 회화적 나전칠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오왕택의 고암나전칠기연구소는 강북구 수유동에 소재한 자택 겸 작업장에서 백골제작을 제외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딸과 함께 비교적 규모가 작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하이핸 드코리아에 출하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정적인 거래처가 있기 때문에 오왕택은 작품의 도안부터 자 개일, 칠일까지 전념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주특기인 줄음질, 상감기법, 끊음질을 구사하되 선적 인 특성을 강조한 작품을 만들어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작업실은 크로스포인트의 대표 손혜원이 임대료를 대주며, 직원들의 원천징수를 하고, 작품 을 제작하면 하이핸드코리아라는 매장에서 판매를 전담하고 있다. 2011년부터 오왕택은 기량을 인 정받아 하이핸드코리아의 전속작가가 되어 회사의 지원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작품제작에만 전념 하고 있다. 이러한 제작체계는 작가들이 선호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오왕택의 고암나전칠기연구소는 순수한 개인공방이다. 직원을 많이 채용하여 고용창출에 이바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의 끊임없는 개발로 2013년 현재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를 몸소 실천 하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이 딸과 함께 작업하면서 나전칠기의 또 다른 면 즉, 전통기법 위에 자신이 개발한 정교한 기술로 정밀하면서도 예술성이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보람을 느끼며 작품에 창의 성을 가미하고자 한다. 나전칠기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공장도 필요하지만 오왕택 같은 창조 적인 개인공예가가 많이 있어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며, 그 기초를 다지는데 일조하고 있다. 여 기서, 정말 다행한 것은 하이핸드코리아 같은 나전칠기 판매 중개상이 있어 경제적 도움을 받으면서 장인이자 한 사람의 작가로 안정적으로 제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7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오왕택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제작기법은 나전칠기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전통공예 부문에서도 시도해 볼만한 기능으로 새로운 문화융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개인공방에서는 자신이 직 접 자재를 구하고 제작을 전담하며 판로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통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문화단체가 여럿 있어서 전통 장인들을 지원하고 공예작가들에게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현재 고암나전칠기연구소에서는 주로 2층 의걸이장이나 문갑, 함, 소반 같은 중간 크기의 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오왕택은 관광 문화상품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현재 사람들이 말하는 문화상품이란 저렴한 가격이 일차적 조건인데, 가격에 맞추다 보면 제대로 된 나전칠기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상품이란 반드시 일반 관광객들이 푼돈으로 살 정도의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가격이 높더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공예로서 품격과 품질이 가장 우수한 것을 문화상품으로 내 놓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싸구려 문화상품이 한국의 나전칠기의 명성을 흐리게 하고, 이런 세태가 계속되면 외국 인에게 실망감을 주어 외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오왕택은 전시회를 통하여 나전칠 기가 외국에 나가게 되면 더욱 정성을 기울여 세계 최고의 명품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나전칠기의 전통은 현재 보유자들이 옛 전통대로 재현하여 그 맥이 이어지는 것에 대하여는 긍정적이나, 이와 동시에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기법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나전칠기가 출 현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즉, 그는 나전장이면서 한 사람의 공예가이자 장인으로서 나전칠기가 생 활용구이면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다. 9. 계승방식 고암나전칠기연구소의 소장 오왕택은 나전장 보유자였던 스승 김태희에게 입문하여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과 자긍심을 가지고 학습했다. 특히, 스승이 강조한 대로 도안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으 며, 나전칠기의 모든 것은 도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여 작업장에도 제도기를 갖춘 도안실을 마련 하고 있다. 다른 장인과의 교류 대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택한 장인 오왕택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오왕택은 15년간 생계를 위하여 피치 못하게 다른 분야에 종사하다가 근래 다시 나전칠기업에 종 사하면서 대학에서 중국어와 경영을 전공한 딸(오유미, 30세)을 제자로 삼고 있다. 그녀는 3년째 도 안과 줄음질, 칠일을 배우고 익혀 전시회에 출품할 만큼 성장하였다. 이처럼 현재 오왕택은 딸에게 전통 도제식 교육을 베풀고 있으나, 시설이나 교육기관 등 시스템상의 교육여건이 개선되면 더 많은 제자를 양성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7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관련자료 문화일보, <생활고에 나전칠기 접고 15년 퀵서비스 일 해>, 2013년 4월 9일자 세계일보, <생활고에 꺾일 뻔한 장인의 길 다시 걷다>, 2013년 4월 9일자 연합뉴스, <밀라노 한국공예전에 참가한 오왕택 나전칠기 장인>, 2013년 4월 9일자 한국일보, <우리 문화재 대규모 유럽 전시에 맞먹는 한국공예전>, 2013년 4월 9일자 시민일보, <오왕택 나전칠기 장인 복귀>, 2013년 4월 25일자 뉴스천지, <한국공예 법고창신전, 밀라노 감동 잇다>, 2013년 6월 21일자 정책브리핑, <밀라노 한국공예 전시의 감동, 국내에서 다시 만나다>, 2013년 6월 21일자 광주일보, <의재미술관서도 비엔날레 전시열어요>, 2013년 6월 23일자 아시아경제지, <전통공예도 디자인 전쟁, 옛 문양만 고집 말아야>, 2013년 6월 23일자 jungle 매거진, <밀라노를 매료시킨 한국공예>, 2013년 6월 26일자 MBC 이코노미 뉴스, <나전칠기에 천 년의 생명을 담는 오왕택>, 2013년 7월 12일자 11. 관련단체 오왕택은 한국예총의 명인이고, 한국공예예술가협회에 가입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정보를 교 류하고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나머지 공방의 임대료나 작품의 판매 및 전시 홍보 등의 기타 여러 관련 사항은 손혜원이 운영하는 하이핸드 코리아의 전속작가로서 지원을 받고 있다. 고암나전칠기연구소의 외관
7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오왕택과 인터뷰 중인 모습 공방 내부 자개부의 작품 전시모습 자개 주름질 작업대 칠일을 위한 재료 칠방의 내부 모습 건조장 공방 내부 공간 전경 자개를 주름질하는 작업대
7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주름질한 자개를 유산지에 붙인 모습 문양에 따라 자개 위에 그린 모습 각종 자개 문양의 드로잉 유산지 위에 자개 붙인 모습 문양을 드로잉하기 완성된 각종 제품 완성된 작품
7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김선갑공방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9월 6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809 조사대상자 김선갑(남, 1950년생, 김선갑공방 대표) 1. 유산명칭 김선갑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7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께 전승되어 왔다. 김선갑과 같이 개인 장인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 등 재료는 외부에서 구입하면서 장인 혼자 제품 일체를 완성한다는 제작 방식은 과거에 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형태나 문양 등에서 예술적인 방식을 채택하여 과거의 전형적인 제작 방식과 달라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김선갑공방에서는 현대 아 파트 등 입식 가옥에 적합한 가구 형태와 창의적인 문양으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면에서는 서울의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시 성북구 정릉4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김선갑 3) 성별 : 남성 4) 나이 : 64세(1950년생) 5) 출신지 : 광주광역시 6) 입문시기 : 김선갑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전라남도 광주에서 박재경으로부터 나전칠기의 기 본법을 배웠다. 그곳에서 나전일을 하였지만 그다지 일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 고 근대화와 산업화가 추진되면서 모든 일거리가 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서울에 올라온 김선갑은 1986년부터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있던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전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는 스승에 게 1993년까지 도안의 구성, 나전 기법이나 옻칠 도장 및 옻칠 정제 기법을 사사 받았다. 당시 그는 문양을 그리고 나전을 주름질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여 같은 기간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스승이 경영하던 성북구 안암동에서 스승의 개인 작업을 돕는 일도 하게 되었다. 스승의 사후 1991 년에 독립을 하여 2001년까지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1년부터 현재 까지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사하여 개인 공방을 마련하여 나전일과 옻칠을 하며, 그의 기법은 주름질 기법과 끊음질 기법을 적절하게 혼용한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7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때문에 나전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은, 나 무(백골), 자개, 칠(안료), 아교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 재료들 중 백골로 사용하는 나무는 소목장 에게 주문하여 들여오기 때문에 나전장의 사용품은 아니었다. 나전장인은 주로 자개와 칠의 수요에 관심이 많았다. 김선갑에 의하면 국내산 자개와 칠의 수급은 매우 불안정한 편이지만 현재까지 자신 이 필요로 하는 만큼은 공급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첫째, 김선갑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복자개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자개는 장인이 직접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왕십리 근처의 자개상 등에게 구입한다. 그런 그의 신조는 공예품을 제 작하는 기법이란 재료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나전칠기는 소목장에게 의뢰하여 완성시 킨 기물과 나전 자개의 조화가 작품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여기며, 이것이 인간의 삶에 이로운 내용 (철학)까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산을 주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국내산 전복이 인공으 로 양식되면서 크기가 작고 색상도 원하는 것이 잘 안나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1990년 대에 김태희 보유자에게 사사를 받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좋은 자개를 많이 구입해두어 그 자신의 작업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의 작업실 벽을 가득 채운 작은 상자 속에 나전 문양을 오린 자개 중간 산출물들을 넣어 두고 있다. 나비, 학, 꽃, 구름, 만자문, 번개문, 당초문, 원문, 점문 등 수십여 가지 종류의 반복문양들이 오 려진 상태로 쌓여 있다. 근래 새로운 현대적 디자인의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이들 중간산출물에 있는 전통문양 중에서 선택해서 부분적으로 조합하기도 한다. 둘째, 자개 문양을 백골 위에 붙일 때 사용하는 칠이다. 칠은 옻나무에서 생산되는데, 원주나 지리 산 등지에서 산출되는 양이 너무 적다. 그래서 소량만 생산되는 국내산 칠 대신 그는 중국에서 수입 한 칠을 사용하기도 한다. 김선갑에게서 주목할 것은 옻칠을 정제하는 기술이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실 한켠에 칠을 정제 할 때 사용하는 교반기가 놓여 있는데, 이것은 그가 현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 와 함께 김태희 보유자에게 칠을 정제하는 기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2) 시설 및 도구 김선갑 개인 공방은 정릉에 있는 고시원 건물 지하에 70평 내외이고, 1층에는 자신의 스승인 김태 희 보유자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수납하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7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지하 공방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각종 가구를 만들 백골이나 부속자재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어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 공간도 거의 마찬가지 이다. 공방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한쪽은 나전부, 또 한쪽은 칠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공간을 들 어가는 기둥이나 벽마다 작은 선반이 천장까지 빼곡하고, 그 선반마다 작은 서랍이 놓여 있는데 각 종 자잘한 문양을 자개로 오려놓은 것들이 가득 차 있다. 안쪽 나전부는 공간을 둘로 나누어 디자인 공간과 나전 공간으로 되어 있다. 디자인 공간은 가장 앞쪽이고 작업대 위에 작품을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과정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나전 공간은 나전을 절삭하는 기계와 공구가 정리되어 있다. 칠부는 제작 중인 작품이 놓여 있는데, 전통 적인 좌식 가옥에서 입식 아파트로 바뀐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듯 기존 좌식 가구에 다리를 달아 콘솔이나 경대, 장의자 등 다양하다. 칠부 안쪽 가장 깊은 곳에는 건조장이 위치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전통적인 문양을 재해석하고 있었는데, 공방 내 시설에서도 그러한 것을 엿볼 수 있 다. 그는 거칠고 투박하게 크로키를 하듯 끊음질하여 붙이거나 각종 전통 민화 문양을 재해석한 문 양을 사용하여 주름질하는 등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나전일 중 자개일을 하 는 장인이 사용하는 제작도구는 자개를 끊음질하는 도구와 주름질하는 도구 및 공통적인 도구로 나 뉘는데, 그는 이것들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끊음질에는 상사기, 상사칼, 거도 등이 필요하고, 주름질에는 주름질작업대, 실톱대, 실톱날, 태장대, 드릴, 자개조각도 등이 있다. 김 선갑은 끊음질과 함께 주름질을 함께 응용하는 장인이어서 전자나 후자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와 함께 양자에 공통되는 도구인 절삭기, 다이아몬드 연마기, 나전수평기, 줄, 아교붓, 핀셋, 곤로, 인두, 풀솔, 칠칼 등도 제때 활용하고 있다. 나전일을 하는 다른 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김선갑 또한 도구는 그와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작업하려는 것을 돕는 것이 도구로써, 작품에 전통 도구를 쓰면 쓸 수록 자신의 생각과 체취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한편, 나전은 칠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는 옻칠을 정제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교반기를 가지고 있 다. 생칠을 교반기에 넣고 교반과 탈수를 거듭하여 정제하면 투명칠의 색이 더 연하고 투명하게 되 기 때문이다. 이렇게 칠을 정제하여 쓰면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3) 제작과정 김선갑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박재경에게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통적인 기본 기법을 배웠다. 하 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위한 나전칠기를 제대로 배운 것은 1986년 서울에 올라와 중요무형문 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를 만나면서부터이다. 그는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나전칠기에 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전의 전통 문양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응용하거나 현대
7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스승에게서 전통 기법에 의한 제작과정을 고스란히 배우면서, 특히 작품 속에 한국적 미의식이나 정신성을 반영토록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나전칠기 제품을 작품이라고 부르고 자기 자신을 나전칠화가로 부르는 데, 나전과 칠 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적 창작 의지가 강한 김 선갑이 그의 공방에서 나전칠기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는 무엇보다도 작품 의 주제이다. 이렇게 작품으로서, 창작으로서 나전칠기를 제작하기 위해 그는 2000년대에 홍익대학 교 등지에서 수묵화나 유화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화가가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칠하여 작품을 하듯, 그 자신은 백골로 짠 가구 위에 나전과 칠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듯 가위와 실톱으로 오리 고 상사칼로 끊어가면서 자개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작업한 작품은 섬세한 세공과 깔끔 한 마무리로 완성시키는 공예작품의 보편적인 특성과 달리 다소 표면이 거칠게 보이지만, 계산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드로잉하듯 자개를 붙여서 그만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김선갑은 나전일을 할 때 끊음질과 주름질의 어느 한 가지 기법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동시에, 드로잉이나 발상의 성격에 따라 적절하게 취사선택하고 있다. 작품의 문양이나 디자 인 및 내용에 따라 자개의 크기나 두께 및 색상 등을 다양하게 선별하여 사용하는 것이고, 전통 기법 에 더하여 예스럽고 투박한 붓질이나 세밀하고 정교한 새로운 기법을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활용하 고 있다. 전통 기법은 물론 다양한 기법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선택하여 사 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기법이란 재료에서 나온다. 곧 재료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달라지고, 다양한 기법들이 필요하고 또 새로운 기법들도 발현된다. 때문에 김선갑은 주름질 기법과 끊음질 기법을 혼용하되, 나전칠기 또한 시각으로 인지하는 미술품으로 여겨 나전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처음 나전일을 접했을 때에는 기술적으로 부족하여 테크닉을 익히는 데 몰두하였으나, 기법을 완전히 익힌 지금은 소지(백골)를 화선지나 캔버스로 보고 자개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작업 하기 때문에 나전칠기 작품의 주제에 변화를 가져왔다. 결국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김선갑은 자개를 소재로 삼아 어떤 그림의 소재(내용)도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개인 공방을 운영하는 김선갑은 비록 전라남도 광주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나전칠기에 입문했 지만, 본격적으로 나전칠기에 몰입하게 된 것은 서울에 올라와서부터이다. 서울에서 그는 중요무형 문화재 나전장 보유자나 소목장 전수교육조교 및 칠장 보유자 등과 교유하면서 나전칠기에 대한 이 해와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
7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와 함께 강남구 논현동에서 개인 작업과 작품을 도우면서, 나전칠기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나 문화 적 기능까지 체득하게 된 것이다. 생계를 위해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경기도 남양주시로 이주하여 나전칠기 가구를 대량으로 제작해서 판매하기도 했지만, 2001년부터는 다시 서울로 회귀하여 서울 시 성북구 정릉동에서 자기만의 나전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김선갑공방이 위치한 성북구 정릉동 주위에는 나전칠기와 관련된 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있어 사회적 의미가 있다. 곧 그의 공방에서 100m 떨어진 근방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교육조교인 조화신의 공방이 위치하고 있다. 나전칠기 작업은 소목 작업과 공생관계에 있으므 로 소목장과 백골 작업을 비롯한 작업의 방향을 서로 의논하며 작업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선갑의 공방이 위치한 정릉에서 멀지 않은 수유리에는 칠일을 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3 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도 있다. 정수화 보유자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김선갑과 정수화는 둘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다 칠을 정제하는 방법을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 여러 가지를 의논하며 함께 작업을 하는 동반자라고 여기고 있다. 또 김선갑공방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은평구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장 정명채 보 유자도 소재하고 있다. 각자 나전칠기로 제작하는 주제나 작업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는 이 들과 나란히 어깨를 견주며 서로 격려하고 독려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 지역은 나전 작업을 하는 이들도 많고, 나전일이나 소목일이나 칠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 서로 도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나전칠기의 최대 소비처가 서울이기 때문에 나전칠기가 발전하기 위한 기반 또한 이곳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나전칠기의 최대 소비처는 서울이다. 때문에 서울의 나전공방들은 수요자의 요구를 직접 받아 변 화의 진폭도 크다. 유행에 민감한 서울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나전칠기 제품 또한 현대식 가구에 새 로운 디자인을 도입하여 제작되고 판매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나전칠기의 제작이 활성화되었던 통영이나 원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재래식 형태와 고유 문양을 고수하는 경향과 비교된다. 이러한 서울 지역 나전칠기의 현황은 김선갑공방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그 또한 나전칠기에 입문했을 때에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전통적인 작업방식을 배웠지만, 이후 30년의 기간 동안 나전칠 기계에 불어 닥친 변화의 물결을 그대로 수용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김선갑공방에서는 입식 구 조에 맞춰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기존의 형태에 다리를 붙여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 록 개량하거나, 서양식 스툴이나 테이블 및 가구를 디자인하여 제작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 기존 나
8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전칠기에서 사용되었던 문양이라도 정교하게 반복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자 유자재로 변형시켜 창의적인 문양으로 재창출하고 있다. 백골을 바르고 칠한 면을 화폭으로 삼아 자 개로 과감한 드로잉을 전개하거나 자개를 투박하게 뚝뚝 끊어 면을 메꾸기도 하는 등 새로운 시도 를 전개하고 있다. 나전칠기 작품도 비슷비슷한 모양의 공예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보다 하나하나 창작품을 제작한 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비록 똑같은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더라도 거기에 창의적 미감을 반영한다 면 현대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전통을 회고하는 복고적 작품으로 과거의 나전칠 기를 답습하거나 복제하여 시장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신과 미적 창의를 발휘 해서 21세기 창작 나전칠기작품으로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 그의 마음이 소비자들과 통했는지, 2~3년 전부터 김선갑공방에서 제작한 창작 나전작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그는 지난 27년간 서울 시내 힐튼호텔 내 매장에 나전작품을 전 시하고 있는 데, 일본 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의 마니아들이 그의 작품을 꾸준히 구매한다고 한다. 특히 독일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으며, 그들은 새로운 창작 나전작품들을 애호 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시도하길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외교부나 청와대가 주 고객층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곧 있을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을 고르고 도록을 편 집하는 모습을 보며, 장인보다는 작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전에 전시된 나전칠기 작품들은 현대 창작가의 작품이나 디자이너의 원형 디자인처럼 보인다. 8. 유산의 보호조치 김선갑공방에서는 전통의 재료와 기법의 토대 위에 주제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에 주력하 고 있다. 나전칠기로 제작한 작품이 실생활에서 충분히 사용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나전과 옻칠로 그려낸 회화 작품으로 인정 받는 것이다. 김선갑공방에서는 나전칠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3~4명이다. 김선갑을 비롯하여 그들 장인들은 대 부분 나이가 50~60세에 이르렀다. 그의 공방에도 젊은이가 나전칠기를 배운다거나 그 일에 종사하 기 위해 찾고 있지 않다. 때문에 그는 나전칠기가 계속 보존되려면 젊은이가 나전칠기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길 선호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깨끗하고 세련된 작업환경일 것이고, 보다 근 본적인 것은 젊은이에게 기술적 훈련과 함께 조형적 교육을 병행시킬 교육공간일 것이다. 그의 경험 으로 미루어 기술적인 숙련만으로는 비슷한 제품만 양산되며, 여기에 조형교육이 수반되어야 창의 적 작품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나전칠기를 비롯한 전통공예는 예전처럼 개인이 도제식으로 훈련시켜서 되는
8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적 관심을 갖고 보호조치를 강구하길 바라고 있다. 곧 국가에서 나전칠기 를 비롯한 전통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를 양성하는 방안이다. 젊은이가 전통 기술을 익힐 수 있을 때 까지 재료나 교육비를 지원해주어 체계적인 조형교육을 담당하는 것이다. 예전의 산업고등학교와 같은 2~3년제의 직업교육 차원에서 정부에서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렇게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5년째에는 기능자, 10년째에는 기술자, 그 이후 기능올림픽에 참가하고, 매년 공모전에 출품하여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점차 전수자, 이수자, 명장, 명인, 보유자 등으로 성장해가는 방안이다. 공예가로서, 작가로서 현장에서 작품과 인격까지 검증 과정을 거쳐 30년 이 상 활동을 한다면 그 자격에 대해 시비를 걸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한 우물을 파고 명장이나 무형문화재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였다. 이렇게 양성된 인재가 나전일에 종사하면 타 직업과 동등하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을 직업으로 해서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전칠기의 미래는 젊은이에게 있다. 젊은이에게 나전칠기가 매력적으로 여겨져야 나전칠기를 만 들 수 있는 기반이 생기고, 나전칠기 작품도 판매된다. 이를 위해 김선갑 장인 스스로는 나전칠기 작 품을 계속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가적인 홍보가 함께 있었 으면 하는 것 같다. 9. 계승방식 김선갑공방은 1인 공방이다. 때문에 장인 스스로 작품을 제작하고,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현대 작 가들처럼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기술이나 주제 등을 보여주며 다른 사람들과 소 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승인 김태희 보유자의 일을 도우면서 나전칠기일에 입문하고 기술을 배웠다. 2013년 현재 그에게 나전일을 배우는 제자는 1명이고, 나머지 2명은 옻칠을 배운다. 공방의 특성 때문에 도제 작 업처럼 김선갑의 개인 작업을 도와주며 모든 과정을 반복하면서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제자 3명은 그에게 배운 시간이 10년에서 20년씩 된다. 이런 제자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사용하는 재료비나 각종 교육비를 국가에서 지원 받게 되길 그는 희망하고 있다. 그에게 교육을 받은 제자들 은 10년 정도면 독립하여 자신의 작업을 전개한다. 그러나 막상 독립하면 작품의 판로가 막막하기 때문에 계속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젊은 제자들이 활동할 공간이 없고 나전칠기 제작만으로 생계를 유 지하기 어려워 결국 이 일을 포기하는 일이 많다. 때문에 그의 공방에도 젊은 제자보다는 나이 많은 직인들만 있었다. 젊은이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전통공예를 배울 수 있는 여건 마련과 전통 공
8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예품이나 창의적인 작품들을 공동으로 판매할 수 있는 공간 마련 등이 이루어져야 기능 전승이 지 속될 수 있을 것이다. 10. 관련자료 김선갑은 그동안 나전칠기 작품을 제작하여 옻칠공예대전이나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대상을 수상 하는 등 관련 분야의 공모전 경력이 풍부하다. 나전칠기 작품으로 여러 번의 개인전을 하는 등 현대 작가와 마찬가지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여러 권의 도록을 낸 바 있다. 11. 관련단체 김선갑은 나전일과 관련된 단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스승인 김태희 보유자의 제자인 정수화 칠장 보유자나 조화신 전수교육조교 등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교류하거나, 옻칠이나 나전칠 기 관련 분야의 관계자와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이다. 김선갑 개인 공방이 있는 정릉
8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김선갑 장인과 인터뷰 모습 칠분 등 각종 재료 절삭된 상태의 각종 자개 문양을 디자인하는 공간 자개부에서 가구에 자개를 붙이는 모습 칠부에서 자개 일을 하는 모습 각종 칠 재료 각종 문양을 절삭하여 정리한 모습
8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절삭된 자개 문양을 선별하는 작업 공방이 자개부와 칠부로 구분되어 있는 모습 칠부에서 자개 위에 옻칠을 하는 모습 건조장에 작품을 넣은 모습 전시회 준비를 위해 1층 창고에 쌓아둔 작품들 완성된 나전칠기 장롱의 문양 난각, 칠분, 금속선 등 다양한 기법을 응용한 작품
8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남해공예사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8일, 9월 21일, 10월 27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촌동 호 조사대상자 최태화(남, 1948년생, 남해공예사 대표) 1. 유산명칭 남해공예사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8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께 전승되어 왔다. 남해공예사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 가구를 완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업화, 전문화된 제작 방식은 과거에 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국내산 자개나 칠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거나, 기계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 에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 승되고 있지만, 남해공예사에서는 서울 지역이나 해외에서 소비되는 장롱과 같은 대형 가구를 제작 하는 면에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호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최태화 3) 성별 : 남성 4) 나이 : 66세(1948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남해군 6) 입문시기 : 최태화는 남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 때부터 지금까지 46년간 나전칠기를 제 작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1967년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선배 강창수의 공방에서 10여 명의 장인들과 함께 나전작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그가 이곳에서 일할 때 주로 2층장이나 3층장 같은 장 롱을 많이 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장롱과 같은 크기가 큰 가구를 만든 경험은 이후 오늘날까지 이 어지고 있다. 곧 현재도 소품보다는 장롱이나 탁자, 화장대 등 비교적 크기가 큰 가구류를 제작하는 것이 처음 일을 배울 때의 영향 때문이다. 이때 공방에서 칠일을 비롯한 나전일 전반에 대하여 배웠 지만, 특히 나전 자개를 주름질하는 것을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7) 공방 이동지역 : 용산구 보광동의 공방에서 나전일을 시작하다가 1년 뒤인 1968년에 은평구 기자 촌에서 독립하여, 남해공예사 라는 상호를 붙이고 공방을 운영하였다. 창업 초기에는 혼자 일을 하 였으나, 점차 2명이 함께 일할 정도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와서는 30여 명의 장인을 두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들은 백골, 장석, 베 바르기 하는 전문가 외에, 자개 절삭 에 2명, 끊음질에 2명, 주름질에 7~8명, 자개 붙이는 데 10여 명, 칠일을 하는 데 10여 명이나 되었 다. 나전가구의 주문량이 쇄도하여 도안을 그리는 사람을 따로 두었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한 편 이러한 나전가구 제작에 전념하다 보니 동업계의 신망을 받아 1993년부터 2008년까지 18년 동
8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안 서울 경기 옻칠공예가구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장기간 이사장직을 수행 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도 물론이지만 주위와 친화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1999년 IMF 이후 2000년대 들어와 전반적인 경제 여건이 악화되자 수요가 감소되었다. 이에 최태화는 작품의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장인의 고집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규모가 큰 공방을 운 영하는 데서 생기는 피로감을 줄이고자 2008년 지금의 장소,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으로 주소를 옮 겨 축소 운영하고 있다. 현재 직원은 본인 포함 3명이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남해공예사의 최태화는 자개 작업과 칠 작업을 주로 하고, 자개를 붙일 가구의 뼈대가 되는 백골 은 심기조 목수가 전담하여 제작하고 있다. 이렇게 백골 부분은 주문하여 생산하기 때문에 나전장이 직접 작업하는 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전장이 사용하는 재료는 당연히 자개패와 칠이다. 첫째, 자개는 왕십리의 여러 자개상과 평화자개사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미 10여 년 전에 이들 자개상에서 자개패를 대량으로 구입해 두어 수량이 부족하지 않다. 때문에 그때 구입 한 자개패가 아직도 상당수 남아 있어 지금은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그때 구입한 것들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근래 생산되는 자개를 사용하는 다른 장인들과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자개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전복 조개패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전복 조개를 인공으로 양식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크기가 작고 두께도 얇고 색상도 영롱한 빛을 띠 지 않는다. 반면 그는 예전에 자연산의 크기가 크고 두꺼운 패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공방의 작업과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 또한 작품의 성격이나 문양 등의 필요에 따라 외국에서 수입해온 진주패나 야광패 등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이 또한 10여 년 전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크기가 크고 색상이 좋 은 것을 대량으로 구입해 놓은 것을 가지고 있어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고 한다. 이중 진주패는 색상 이 영롱할 뿐 아니라 두껍기 때문에 입체적인 작품을 만들 때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예컨대 날 아가는 새와 같이 도드라진 형태를 만들 때 진주패가 적합하다는 견해이다. 한편 야광패는 평면적인 것을 할 때 사용한다. 그밖에 다종다양한 자개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개의 종류는 시문 할 도안의 특성이나 자개의 성질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은 것을 골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자연산 전복 자개 원패뿐 아니라 100개씩 묶여진 판자개 위에 주름질된 수십 여종의 다종다 양한 문양들을 보유하고 있다. 넓지 않은 작업실의 곳곳에는 새 문양, 나비 문양, 꽃 문양, 십장생 문
8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양 등을 주름질하여 유산지에 올려 놓은 중간 단계의 재료가 산재해 있다. 1990년대 한창 규모가 컸 을 당시 남해공예사에는 도안을 그리는 문양사가 별도로 있었고, 여기에 끊음질하는 장인 2명, 주름 질하는 장인 7~8명, 자개를 유산지에 붙이는 장인 10여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예전의 명성과 작업 규모에 걸맞게 수많은 작업용 재료를 여전히 소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곧 그때 자개 부의 직원들이 당시 유행하던 각종 문양을 100장씩 묶은 판자개 위에 올려서 절삭한 다음, 그것을 다시 유산지의 문양으로 붙여 두었던 것이다. 1980~1990년대 남해공예사의 호황을 이루던 그 시절 을 기억할 수 있는 자개 문양이 여전히 현존하여, 당시의 나전칠기 문양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을 고 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주름질을 할 때 수공 톱이 아니라 전기 톱이 새로 나왔는데, 최태화 자신이 먼저 그것을 익 히고자 2년여의 실패 끝에 방법을 체득하면서, 다른 소규모 공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물량의 자개 문양을 제작하고 가구 등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거에 생산한 자개 문양의 중간 산출물들은 지금도 장롱과 같은 큰 가구를 만들 때 부분적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소품을 제작할 때 응용할 수 있어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칠은 전통 칠을 정제하는 정수화 공방에서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최고로 품질이 좋다고 여기는 원주칠을 비롯한 국내산 칠은 생산되는 양이 많지 않고, 비싸기 때문에 구입이 어렵 다. 이처럼 칠의 양이 많지 않아 남해공예사 또한 한때 가구의 밑일을 하거나 장롱과 같은 큰 작품을 할 때는 칠 대신 호마이카나 카슈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은 재료의 원가 때문이었는데, 예를 들어 카슈는 1관에 3~4만원이지만 옻칠은 1관에 40~50만원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남해공예사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전통에 대한 지식을 전승하기보다는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을 수용하고 있다고 여 겨진다. 그런데 요즘 2만불 시대에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이 천연 소재에 대한 웰빙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러한 시대적 추세에 맞추어 남해공예사에서도 천연 옻칠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원주산 칠은 생산량이 적어 구매가 어렵기 때문에 중국산 칠을 많이 사용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칠을 정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 유자에게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 남해공예사의 최태화는 독특한 색상을 내기 위해 칠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칠분은 10 여 년 전에 같은 나전칠기 업체에 종사하는 금병호 선배가 일본에서 사다준 것을 사용한다. 아울러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에게 은분을 만드는 기법도 함께 배웠기 때문에 이렇 게 터득한 다양한 기술을 작품 곳곳에 적절하게 응용하고 있다. 그밖에 자개의 접착을 위해 아교, 어 교 등의 소소한 재료는 역시 왕십리의 재료상에서 공급받고 있다.
8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 시설 및 도구 남해공예사의 현재 작업장은 주상복합상가 지하 1층에 30평 정도이다. 이곳 공간을 대표인 최태화 혼자 사용하기 때문에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내부는 앞쪽 넓은 공간과 뒤쪽 비닐로 칸막음된 공간으로 구분된다. 앞쪽 공간은 사무실 겸 각종 재료와 도구 등 비품을 보관하고 수납하는 공간이다. 작업공간은 뒤쪽에 비닐을 친 곳이며, 이곳은 다시 2곳을 분리하여, 한쪽은 자개 일을 하는 자개부의 성격을, 나머지 한쪽은 칠일을 하는 곳으로 분리되어 있다. 자개부에서 최태화는 자개 문양을 디자인하거나, 자개를 자르고 오리고, 잘라진 자개를 유산지에 붙이거나 장롱을 지져 붙 이는 작업을 주로 한다. 그런 다음 칠부에서는 자개를 올린 표면에 칠을 하고 건조를 하게 된다. 이곳에서 나전일과 칠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50개 정도이다. 이러한 도구는 전통적인 것 과 개량된 것,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것이 혼재되어 있다. 첫째, 전통적인 도구는 인모붓, 칠주걱, 톱 대, 인두 등이 여러 벌 갖춰져 있다. 둘째, 기계화된 것으로는 상사 기계, 드릴, 그라인드, 기계 톱대 등이 있다. 남해공예사에서 최태화의 작업은 나전일과 칠일을 구분하여 혼자 전 과정을 완성한다. 나전일은 도안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문양에 따라 자개를 가공하거나 자르는 데에는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 다. 이렇게 기계를 사용한 것은 오래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름질을 하는 기계가 나왔을 때는 수 공작업에 익숙해있던 장인들이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였고, 최태화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2년 정도 시행착오를 거쳐 잘 다루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생산성이 좋아져 짧은 시간에 여러 장의 반복 문양을 한꺼번에 제작할 수 있게 된다. 이후 1990년대 그의 공방에서도 수작업만 하던 장인들은 점 차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기계를 잘 다루어 섬세하게 가공하던 장인들만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칠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전통 도구를 이용한 손작업에 의지하고 있다. 그것은 칠은 여러 번 해야 하는데, 자개 위에 칠을 올릴 때마다 칠의 농도나 두께, 붓질의 속도, 방향 등이 작품에 미묘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때 대량으로 가구를 제작할 때 여러 공장에서 칠일을 콤프레서 등 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은 있으나, 본인은 칠일은 직접 수작업에 의해 하고 있다고 한다. 3) 제작과정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도안을 그리는 일이다. 남해공예사의 최태화는 도안이나 디자인을 할 때 한국의 전통 문양을 조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남해공예사의 나 전칠기 작품은 해외에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바이어의 요구조건에 맞춰서 전통 문양 중에서 외 국인들에게 어필할만한 모티브들을 조합하는 데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모티브를 조합하여 도안사가 도안을 그리고 나면 자개를 다루는 장인은 도안을 자개
9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로 만들 수 있을지 확인한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자개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자인이 완성되면 자개를 자를 장인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제한을 시켜 수정한 다음, 그것을 유산지로 옮겨 그리게 된다. 유산지에 그림이 그려진 후 자개 작업 으로 넘어간다. 이제, 결정된 도안에 어울리는 자개를 선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전통시대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복 조개만 사용했기 때문에 색상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국내산 뿐 아니라 다채로운 색상을 엿볼 수 있는 수입산 자개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도안에 어울리는 자개를 고를 때 크기와 함께 색상도 작품마다 어울리는 것을 골라낸다. 이렇게 선별된 자개에 본을 뜨고, 그 림의 모양을 따라 10여 장의 자개를 한꺼번에 붙이고 기계톱으로 한꺼번에 주름질을 하는 것이다. 주름질이 완성되면 유산지 위에 그려진 문양에 따라 여러 장을 한꺼번에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태화는 주름질 기법을 즐겨 사용하되, 특히 유산지 위에 자개를 정확하게 붙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의 제작과정 중 주목되는 것은 가구의 평면에 상감기법으로 자개를 붙이고 난 뒤, 아교와 호분을 개서 칠하고 다시 평면을 매끈하게 갈은 다음 칠하여 새까맣게 된 표면을 칼이 나 크리스탈로 긁어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렇게 자개의 표면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보다 우 툴두툴한 표면을 일일이 긁어서 평평하게 만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완성된 나전칠기의 표면이 매우 매끈하고 광택이 나고, 자개 위로 칠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평면을 반반하게 만드는 방 법 등 전통 기술의 문제점을 개량하기도 하였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남해공예사가 위치한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지역은 나전칠기를 제작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 고 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땅값이 비교적 싸서 작업을 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한 가구 관련 산업이 발전한 서울의 대표적인 나전칠기 전승지역의 하나이다. 최태화의 작업장 주변에는 나전칠 기의 백골을 주문대로 제작해줄 목공소 등이 즐비하다. 특히 홍은동 사거리 즉, 유진상가에서 녹번 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왼편에는 해방 이후부터 크고 작은 목공소가 군집했던 곳인데, 아직도 20여 곳이나 문을 열고 있다. 이곳의 목공소들은 나전장들의 주문에 의해 작품에 필요한 형태의 백골을 짜 주거나 문짝, 소가구, 장식목공 등의 상업적인 일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옻칠문화연구원(원장 김 인섭)도 이곳 목공소 2층에 자리 잡고 있어 2011년 국회 귀빈실 내의 칠작업을 함께 하기도 하는 등, 나전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들리는 곳이다. 이처럼 은평구 역촌동은 광진구 중곡동과 전통 가구산지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최태화의 남해공 예사도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편승하여 1960년대 말부터 은평구에서 나전칠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9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것이다. 강북의 땅값이 저렴하고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어 공방이나 판매장을 마련하기 용이하여 이 두 곳이 중요한 핵심 공간으로 여겨진다. 남해공예사는 나전칠기 업계에서도 제품이 정교하며 특히 매끄러운 표면칠을 가진 고급 가구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인정을 받기까지 순전히 최태화 장인의 노력과 기술에 의지한 바 크다. 그는 특별히 전통 기술의 계보는 이어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말부터 2000년 경까지 중소 기업협동조합 산하 나전칠기협회 이사장직을 18년간이나 수행하면서 사업적 수완을 발휘했다. 당 시는 나전칠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외국에서도 비상한 관심과 인기를 끌어 일본, 영국, 중동, 남아공, 호주 등지에 수출을 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남해공예사에는 도안을 그리는 사람, 자개로 주 름질을 하는 사람, 도안이 그려진 유산지에 붙이는 사람, 백골 위에 붙이고, 칠하는 사람 등 여러 분 야로 분업화되어 직원만 30여 명이 넘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주문량이 폭주하여 10년 전까지만 해 도 남해공예사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번창하여, 30여 명의 장인들을 두고 공장을 운 영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이렇게 1990년대에는 나전칠기를 만들면 외화 획득은 물론 국위 선양에도 도움이 되었고, 국내적으로는 고용 창출도 커서 지역 사회가 경제적인 성장을 하는 데 도움을 준 것 도 사실이다. 그 당시 남해공예사에서 만든 나전칠가구는 여러 대의 컨테이너에 실어 전 세계로 수 출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아랍 등 중동권에서 많이 수입해갔는데, 그것은 자개의 색상이 영롱하고 특이한 기법과 화려한 문양 등으로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전칠기의 수요가 줄어 규모를 많이 축소해서 서너 명이 근무하면서 대중적인 판 매보다는 소수의 마니아를 위한 주문 제작에 의존하는 편이다. 여기에 나이가 들면서 최태화는 자신 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 각종 공모전이나 기능올림픽 등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 결과 자신의 기량 이 뛰어나고 그와 남해공예사가 만든 나전칠기가 최고의 작품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내실을 중시하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틈틈이 연구하여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여 3개의 특허를 가지게 되 었다. 이렇게 그가 40여 년을 남해공예사를 지속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통의 기술을 토 대로 끊임없이 개량하고 개선하는 기술 때문이고, 동종업계에서도 그의 작품은 최고의 품질을 보장 하기 때문이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남해공예사가 위치한 곳은 은평구 역촌동이다. 이들 남가좌동이나 역촌동에는 예전에 자개농방이 많이 소재하고 있었고, 여기서 만든 나전칠기 제품은 인사동의 산호공예사 등에서 판매를 했을 정도 로 수요가 많았다. 더욱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20여 년 간 KOEX에서도 2년마다 가구전시 회를 했고, 해외 수출도 많이 하여 남해공예사의 나전칠기 제품은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
9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있는 제품이다. 일본에서 전시회가 열릴 때에는 나전칠기 가구 등의 물건을 컨테이너로 실어서 대량 으로 수출하기도 했고, 중근동에서 대량으로 주문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나전칠기협회 이사장을 18 년간 역임했던 최태화는 우리나라 현대 나전칠기 가구사의 산 증인이라 할만하다. 최태화에 의하면 나전칠기업은 197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 렸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위축되어 최근 다시 경기가 살아나는 추세라 한다. 호황기였을 당시 나 전공방들은 옥수동, 월곡동, 마장동, 삼양동, 중곡동 등지에 상당수가 존재했다. 각지에 산재되어 있 던 나전칠기 공장들은 1970~1980년대에는 적어도 1공방마다 최소 10명 내외의 직원이 있었다. 그 만큼 나전칠기가 전성기를 이룬 것이다. 근래에 새롭게 떠오르는 곳으로는 중곡동의 이용식 공방 정 도가 있다고 한다. 그가 기억하는 한, 나전칠기의 최극성기는 1990년대이고, 이후 점차 나전칠기업 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가 1990년대와 같은 호황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 작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나전칠기에 대한 호감이 점차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우리 전통공 예에 대한 향수와 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남해공예사는 이처럼 우리나라 현대 나전칠기산업 혹은 나전가구사와 더불어 그 역사를 함께 하 고 있다. 시작할 당시 기세 있게 세를 확장해 나가다가, 최고 10여 년간의 침체기를 거쳐 지금은 생 산능력을 축소하고 규모를 줄여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지 못하 고 있다. 이미 전직한 기술자들을 대신할 인력 충원이 안 되고, 판로도 안정적이지 못하여 섣불리 증 설을 못하고 소수 정품을 고집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많은 가구점이나 호 사가들의 주문이 늘고 있으나 예전처럼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 이유의 하나 로 나전일을 하려면 나전자개를 섬세하게 오리는 기술이나 주름질이 필요하여 시력이 좋아야 하는 데, 나이가 들어 50세가 넘으면 시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작업에 열중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다 행한 것은 예전에 수출한 경험이 있었던 두바이에서 아직도 가끔 주문이 와서 공방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남해공예사는 지금은 규모를 줄여 직원 2명으로 줄고 한 달에 가구류 3~4점 정도 제작하여 개인 고객이나 논현동의 통영칠기 같은 가구전시장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전공방과 달리 최근에 붐을 이루고 있는 소위 문화관광상품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최태화의 고집이기도 하고, 그가 나전일을 배울 때부터 스케일이 큰 장롱, 서랍장, 화장대 등 대작 위주로 작업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칠을 해도 소품보다는 큰 작품, 아예 건축물 같은 초대형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11년에는 국회 내의 영빈관 역할을 하는 한옥 사랑채 를 만드는 현장에 참여해서 나전 작업을 했는데, 그는 이것을 좋은 추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9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러한 공적 건물 내부의 장식에 나전칠장의 참여가 계속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최태화는 40년 넘게 나전칠 분야에서 기술자로, 경영자로 두드러진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산업계의 생산적 활동이었고, 전통 문화에 대한 문화유산적 가치나 보호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예컨대 그가 옻칠가구협동조합 이사장직을 18년간 맡았지만 관련 분야에 대해 문화재적 보호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무형문화재의 제도적 조치는 대부분 소규모 개인 공방에 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는 사람들에 치우쳐 있었고, 전통적인 기술로 대형 공방이나 공장을 운 영한 사람들은 전통공예와 관계가 없는 산업체 종사자로 인식했음을 지적하였다. 근래 이 분야에 오 래 종사한 덕에 명인 칭호를 받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종사한 데 대한 결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근래 예전보다 규모가 줄어든 남해공예사를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지켜가려는 생각 을 하고 있다. 현재 제자 겸 후계자로 직원 2명을 데리고 함께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장기인 자개의 입체조각과 나전에 그림그리기 기법을 전수하고 보급할 여건이 마련되길 바라고 있다. 젊은 이들이 전통 나전칠기일을 배우게 하려면 나전칠 교육을 받기 좋은 쾌적하고 깔끔한 작업 환경이나 교육여건의 마련이 시급하고, 이러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태화는 이 계통에서 40여 년간 일하면서 자신이 연구하고 터득한 여러 가지 나전일에 관 한 결과를 특허로 등록하여 소지하고 있었다. 첫째, 특허 제 호로 건칠 방식을 이용한 장고 몸체 제작장치 및 제조방법 이 있고, 둘째로 특허 제 호로 건칠 방식을 이용한 필 기구 케이스 제작방법 과 셋째로 특허 제 호 건칠 방식을 이용한 목제접시 제조방법 이 있다. 이러한 방식들은 여러 해 작업을 하던 중 터득하고 개발한 것으로 소중하게 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 특허를 받은 기술들을 배타적으로 관리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 이 공개하며 지도해 주기도 한다. 즉, 그는 평생 익히고 발견한 좋은 기법들이 널리 유용되기를 바라 며 이것이 개인의 명예와 이익 보다는 동료들과 제자들이 잘 전승되기를 바라고 있다. 9. 계승방식 최태화는 19세 때 당시 유능한 나전장이었던 강창수에게 동생 최태문과 함께 나전일을 배우기 시 작했다. 그후 삼양동에서 작업을 하던 송기수와 월곡동에 있던 박창수에게 칠을 배웠으며, 탁정모에 게 자개 다루는 법과 칠 등의 여러 기술들을 함께 일하며 배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정식 사제지간은 아니었으나 당시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보유자와 인연을 맺고 일본에 수출하거나 작품을 위해 제작하는 여러 가지 나전일과 칠일을 하는 데 참여하면서 기술을 습득하는 데에 큰 도
9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움을 받았다. 이를 통해 그는 보유자나 선배 등과 함께 일하면서 실전을 통해 나전기술을 하나씩 터 득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이렇게 최태화는 스승에게 배운 솜씨에 더하여 스 스로 터득한 기법 중 주름질과 칠일에 두각을 나타내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최태화는 30여 년간 나전칠기 가구를 판매하고 수출하는 데 몰두하다가 주위의 권유로 2000년대 이후부터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는 차원에서 각종 전시회나 공모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그리하 여 2006년에는 41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나전칠기 부문의 금메달을 받았고, 또 같은 해 서울특별 시 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직종에서 금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2010년에는 제1회 한국나전칠공예 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한국옻칠공예대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에는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공예대전에서 특선을 하게 되었다. 이 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2013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나전칠기 분야의 명인 인증을 취 득했다. 현재 남해공예사에서는 최태화가 나전 작업의 전 공정을 맡아서 작업하고 있다. 그의 공방에는 제 자 겸 직원이기도 한 박명선(남, 55세)과 배재대학교 칠예과를 나온 김지연(여, 27세)이 함께 일하고 있다. 최태화는 전통적 도제교육의 형식은 아니지만 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해왔던 나전일의 전 공 정을 가르쳐주면서 함께 일하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주름질과 칠일을 집중적으로 강조해 익히도록 하고 있다. 그의 전승방식은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그 전통에만 매달리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새롭 고 더 좋은 기법을 찾으라고 독려하고 있다. 또한 모든 과정에서 실기 뿐만 아니라 이론과 연구를 병 행하여 신기술 개발을 요구하고 있으며, 모든 기술은 끊임없는 연마를 통하여 자신의 몸에 배도록 지겨울만큼 반복 작업을 시키고 있다. 작업과 관련해서는 친동생인 최태문(중곡동 경동칠기 대표)과 기술적인 일로 서로 상의하기도 한다. 10. 관련자료 1996년 대한뉴스 잡지, 나전장 최태화 1998년 KBS 방송,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 11. 관련단체 최태화는 전술한 서울 경기 옻칠공예가구협동조합에서 이사장직을 18년간 역임하였고, 현재는 (사)한국옻칠문화원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들 단체를 통해 각종 전시회를 개최해 회원들에게 작 품 발표의 장을 마련해 주고, 나전칠기의 홍보와 저변인구 확산에도 노력했다. 또한 자신도 이들 단
9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체를 통하여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새로운 기법이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단체에 서 주최한 전시회를 통하여 남해공예사의 홍보와 작품의 판매 등에도 일부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은평구에 위치한 지하 1층 남해공예사 공방 내부의 전경, 왼쪽 칠부와 오른쪽 자개부 자개부 쪽에서 칠부의 주칠 자개농을 바라본 모습
9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판자개를 비롯한 각종 재료를 보여주는 장인 1980~1990년대 절삭해 놓은 각종 문양 100장씩 절삭되어 있는 각종 자개 문양 절삭된 자개를 유산지에 문양대로 붙인 모습 알자개를 잘라 부분적인 문양을 만드는 모습
9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지에 붙여진 쌍학흉배문양 쌍학흉배문양으로 완성시킨 자개상 수십 년간 사용해온 각종 도구 작업 중인 주칠장농 칠주걱이나 크리스탈 등 각종 도구를 설명 중 자개 빛이 영롱한 장농
9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동양칠기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20일, 10월 25일, 11월 2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조사대상자 김길수(남, 1961년생, 동양칠기 대표) 1. 유산명칭 동양칠기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9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동양칠기는 나전칠기의 전통공예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문화상품을 주 문제작하고 있는 나전칠기 공방이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나전일, 칠일) 2) 성명 : 김길수 3) 성별 : 남성 4) 나이 : 53세(1961년생) 5) 출신지 : 전북 고창군 신림면 송용리 93번지 6) 입문시기 : 김길수는 1961년 전북 고창에서 6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나, 1975년 친구의 소개로 나전 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1982년 처음으로 자립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에 공방을 설립하고(동 양칠기), 1990년 일본 아서원 복원공사(메구로가조엔)에 참여하여 나전칠기 제작 경험을 풍부하게 쌓 았다. 7) 공방 이동지역 : 1975년 서울시 상봉동 나전칠기 공방에서 칠부 입문 후, 1982년 남양주 퇴계원에 나전칠기 공방을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1998년 금곡동 어룡마을 공방으로 이전, 2008년 현재 위치 한 화도읍 녹촌리 공방으로 정착하여 운영하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동양칠기는 자개를 왕십리 자개상가에서 구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상품용은 판자개를 사용하고 작품용은 본자개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품에 맞는 도안을 절삭일 하는 곳에 보내 패만 정해주면 주 름질하여 보내온다. 작품에 비해 가격이 싼 나전상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자개의 품질을 운운하지 않지만 색상은 협의 한다. 그리고 자개의 광택과 코팅을 위해서 자동차용 코팅제나 투명한 입체감을 줄 때는 에폭시 처 리를 한다. 제품에 따라 MDF 백골과 플라스틱 및 금속 백골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MDF 백골의 제작은 공방과 가까운 표산열 공방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10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2) 시설 및 도구 동양칠기는 남양주시 녹촌리에서 보석함, 탁상시계, USB 메모리 등과 같은 젊은 계층이 선호하는 나전용품을 주문 제작하는 나전칠기 공방이다. 전세로 입주한 공방은 2층으로 70평 정도이고 대표 김길수를 제외하고 칠부 3명과 자개부 2명이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외주로 제작되는 백골의 도색은 화학 칠을 분사로 작업을 하게 되는 데, 그래서 도장실과 물레, 콤프레서, 에어컨, 선풍기, 환풍기 등이 구비되어 있다. 도장이 마무리 되고 판자개를 부착할 때는 쟁반과 핀셋, 희석된 에폭시가 사용된다. 이렇게 자개가 부착되면 마지막 공정으로 코팅을 하는 데 투명도가 높고 건조가 되면 도막이 강 한 자동차용 투명 코팅제를 분사로 도포하여 완료한다. 동양칠기는 에폭시 코팅은 외주로 돌린다 고 한다. 3) 제작과정 동양칠기의 상품 제작과정은 제품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와 기계가 다르고, 설비가 없는 경우는 다 른 업체에 그 과정 작업을 의뢰하여 충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설비가 실크스크린 장 치로 금액이 수 천 만원씩 하기 때문에 영세한 공방에 도입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시계를 비롯하여 작은 USB 메모리 같은 경우 활자가 생명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자동스크린인쇄기 를 반드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실크스크린으로 색칠을 통과시켜 그대로 건조시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스크린에 의해 인쇄된 활자나 문양 위에 형형색색의 칠 가루나 자개 가루를 뿌려 건조가 되면 붙지 않고 남은 가루는 불어내고 고운 사포로 연마한 후 코팅하면 완성이 된다. 상품과 제품의 제작 과정상의 차이는 사용하는 재료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많은 장점을 가진 옻칠의 산업적인 측면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가격을 떠나서 건조시간이다. 반면 화학칠은 일정 한 온도 이상만 되면 쉽게 건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작기간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문화상품업계에서 화학칠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칠은 미묘한 부 분에서 옻칠을 흉내조차 낼 수 없지만 일반인들이 보면 구별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작은 보석함 제작의 경우 바탕칠을 할 때 호분과 아교를 섞어 사용하는데, 옻칠의 경우 토회칠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이와 같은 방법도 생략하는 일이 많다. 곧바로 분사로 도장을 진행하여 일반 가구에 사용하는 우레탄 도장법으로 바탕칠을 만들기도 한다. 하여간 화학칠 마감을 한 후 자개를 붙이고 끊음질한 자개를 칼로 깨면서 효과를 내는 할패법도 모두 수작 업으로 해야 하고, 타발법의 경우도 균열이 간 자개를 보기 좋고 도안에 맞게 정렬하는 과정은 전부 다 칼과 핀셋을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미세한 기법을 구사하는 만큼 보석함의 가격 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기계의 힘을 빌려 작업을 간소화 한다고 하지만 제작과정 곳곳의
10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예기치 않는 복병으로 종종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 전체 작업 공정을 면밀히 검 토하여 실수를 줄이는 것이 상품의 경쟁력이 된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동양칠기 김길수 대표는 친구 소개로 1975년 나전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1982년 처음으로 자립 하여 남양주시 퇴계원에 동양칠기라는 공방을 설립하였다. 1990년 일본 아서원 복원공사(메구로가 조엔)에 참여하여 나전칠기에 관한 많은 제작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 대형 가구 위주로 장롱을 배 우기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소품을 주로 제작하고 있으며, 일본 동경에서 매년 개최되 는 기프트쇼에 문화상품을 가지고 가서 판매도 하고, 일본의 문화상품을 제조하는 도시를 방문하여 상품의 개발 연구에 필요한 참고 자료 수집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1999년 사라져가는 나전칠기를 살리기 위해 남양주공예인협회를 창립하여 전시회를 비롯한 나전 칠기 알리기를 시작하였다. 2010년 나전칠기가 전국기능 올림픽종목에서 폐지됨에 따라 남양주공 예기능인협회에서 민간대회 한국나전칠기기능대회 및 전통공모전 을 유치하게 되었다. 현재 전국 의 나전칠기 기능인들이 남양주시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의 나전칠기 매출의 약 80% 가 이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동양칠기 김길수 대표는 현재 남양주 공예인 협회장직을 수행하는 등 몸으로 뛰면서 나전칠기의 활성화를 실천하고 있다. 전공 관련 대학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각각 대학의 교 수들에게도 대회의 취지를 알려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선수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전력을 쏟았 다. 그리고 나전칠기 공모전과 나전칠기 체험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여 유치원, 초중고 학생들이 자개 시문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다. 또한 전시회를 즐기면서 긴 시간 동안 나전칠기를 느끼고 생 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미래 나전칠기 기능인의 씨를 뿌리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대외 적으로 알려 지면서 언론 매체들도 행사를 앞 다투어 타진하였다. 올해(2013년)의 행사는 남양주시 체육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취재를 다녀간 방송과 언론 매체는 KBS, MBC, SBS, YTN 등이고, 방송과 신문, 외국 신문사, 일간지 등도 있었다. 김길수의 동양칠기는 공방설립 이래 일본 아서원 복원에 참여하면서 기능과 작업경험을 축적하 고 남양주시와 나전칠기 공방을 대표하여 한국 나전칠기 활성화의 일환으로 기능경기대회와 공모 전을 유치하는 등 전국규모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참여로 자연스러운 나전칠기의 홍보 가 이루어지고, 많은 나전칠기인들간의 정보 교류와 소통장이 되면서 동양칠기는 사회 문화적인 기 능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0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7. 유산의 현재 상황 동양칠기가 퇴계원에 공방을 설립한지 20여 년이 경과하면서 나전칠기의 재료와 작업공정은 급 격하게 변화되었다. 동양칠기는 이렇게 변화된 재료와 공정으로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공 방이다. 이 지역 나전일을 성격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작품과 상품을 제작하는 장인 집단으로 나뉘는 데, 전국의 나전칠기 상품의 80%가 남양주에서 제작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이 말하고 있다. 상품 제 작은 대부분 MDF 소재의 백골에 화학칠로 도장하여 자개를 부착하는 형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전 통 나전칠기 제작 방법과는 많이 다르다. 사용하는 자개 또한 본자개가 아니고 대부분 판자개가 사용되고, 자개의 절삭을 대행해 주는 솜씨 좋은 절삭공방이 곳곳에 포진해 작품과 상품을 제작하는 양쪽 장인들에게 골고루 끊음질을 해서 넘 겨준다. 상품용 판자개는 100장을 포개어 한 번에 절삭하는 방법이 세계 최초로 개발되어 대량 양 산이 이루어지는 등 경제논리가 나전칠기의 전통 제작법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렇게 제작된 나전칠 기 상품은 일반 시민들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로 양산 되면서 관광지를 비롯한 공공상업공간의 필수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양칠기 김길수 대표는 일본 기프트쇼 출품과 세계시장으로 나전칠기를 수출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전통 장인들이 기술로 생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필연적인 수순으로 보 인다. 나전칠기 작가들은 자신의 직함을 가지고 이러한 상품을 제작 판매하고, 한편으로 공모전 출 품을 위하여 전통 옻칠나전칠기 제작을 병행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현재 영세하게 상품을 생산하 는 공방의 장인들은 대부분 50대와 60대로 전직 전통 나전칠기 기능인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양칠기 또한 우수한 기능으로 나전칠기 문화상품으로 공방을 운영하면서 전통나전칠기 작 품 활동을 통하여 얻어 지는 수상경력 등으로 작품과 상품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남양주의 나전칠기 상품업계는 냉엄한 현실경제의 도전으로 전통작업 공정을 시각적 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만 남기고 모조리 개선하였다. 그 중심에 있는 동양칠기는 경제적 인 가격대로 일반 고객들과 세계 시장에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한편, 자신의 작가적인 역량을 높이기 위하여 전통기법의 나전칠기 작품 활동을 병행하면서 현실을 타개해 나가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동양칠기 김길수 대표는 한국에서 나전칠기 종사자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남양주 지역의 나 전칠기 활성화를 위하여 남양주공예인협회를 창립하고 시의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나전칠기 기능대회 및 전통공모전 을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나전칠기 체험 프로그램을 동시에
10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진행하여 유치원, 초중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등 시민들에게 나전칠기를 알리고 홍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나전칠기 축제라 할 수 있는 행사기간 동안 남양주지역을 비롯한 인근 수도권에서 많은 나전칠기 장인들의 방문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정보와 기술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 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 지면서 언론 매체가 행사 소식을 전하는 등 올해도 행 사는 남양주시의 체육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남양주에는 현재 문화상품 제작일 종사자가 보조여성을 포함하여 대략 2백여 명에 이른다고 한 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통 나전칠기 장인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숫자가 적다. 사회와 문화의 양극화로 상위 1%가 구매자가 되는 전통 나전칠기와 하위 99%가 구매 대상인 문화상품이 그것이 다. 동양칠기와 남양주의 나전칠기업계는 문화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전기법의 기술혁 신과 새로운 재료를 도입하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인반인들도 손쉽게 나전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나전칠기 문화상품으로 당당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제활동과 기술개발에 힘쓰면서 남양주시의 수입원이자 전통문화 창달의 일익을 담당 하고 있다. 동양칠기는 미래를 위한 문화홍보와 더불어 기술혁신으로 나전칠기 문화를 선도적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9. 계승방식 김길수 대표는 기능인으로 동양칠기를 경영해오면서 전통나전과 문화상품 일을 겸하고 있으며 나전일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남양주시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많은 나전칠기문화 이벤트를 진행 하여 왔다. 나전칠기를 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기능경기대회와 나전칠기 공모전을 비롯한 학생들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기능인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학생과 시민들에게 나전칠 기를 홍보하는 일에 솔선하여 왔다. 이와 같은 일 또한 넓은 의미로 나전칠기 문화계승에 이바지한 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길수 대표의 제자 한 명이 기능을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추구하는 작품과 직장에서 제작하는 상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전통나전칠기 장인으로 일가를 이루는 상황과는 다른 차원이 다. 직장의 상사와 직원 관계로 문화상품 제작을 주업으로 하면서 전통나전칠기 기능을 과외로 전수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칠기에는 선조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정신을 계승하는 전통나전 기능과 극단적으로 분화된 문화상품 나전칠기 기능이 모두 구사된다. 이와 같이 동양칠기를 비롯한 한국의 현재 나전칠기 현장 에는 이 두 형식이 전승발전되어 계승되고 있다.
10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관련자료 SBS뉴스, YTN뉴스, 신문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료 등이 있다. 11. 관련단체 동양칠기 대표 김길수가 회장으로 있는 남양주공예인협회는 남양주 지역의 나전칠기 활성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남양주시로부터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 2010년부터 한국나전칠 기기능대회 및 전통공모전 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유치원,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전칠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나전칠기를 일반에게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행사기간 동안에는 남양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나전칠기 장인들의 방문이 많아 자연스럽게 정보와 기술교류가 이뤄 지고 있다. 동양칠기는 이를 통해서 기술자극을 받고 전통나전칠기와 나전문화상품의 트렌드를 만 들어 가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인터뷰 중인 동양칠기 대표 김길수(좌측)
10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동양칠기 내부 모습 건조 중인 작품 건조 중인 작품 소품 가리개 경첩 부착 중 캐슈 에어 도장실 동양칠기 대표 김길수의 작품 동양칠기 대표 김길수의 작품 동양칠기 대표 김길수의 작품
10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만정공방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8일, 10월 29일, 11월 2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82-1 성남시민속공예전시관 조사대상자 배광우(남, 1977년생, 만정공방 대표) 1. 유산명칭 만정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0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만정공방은 보유자가 대를 이어 기능을 전수받으며 나전칠기 유물의 복원을 통하여 입증되는 다양한 정보를 현대작품에 응용하여 실용적인 작품으로 젊고 감각적인 나전의 세 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82-1 성남시민속공예전시관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배광우 3) 성별 : 남성 4) 나이 : 37세(1977년생) 5) 출신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6) 입문시기 : 배광우 대표는 1977년 부산 기장 태생으로 아버지 배금용(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나 전칠기장)의 작업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청소년 시기에는 아버지의 공방에서 작업을 도우며 틈틈이 작품작업에도 참여하며 나전칠기 공정을 배워가며 일하였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아버지 공 방에서 작업을 도우며 옻칠작업을 꾸준하게 연마하고 있다. 7) 공방 이동지역 : 아버지 배금용은 기장에서 현재의 성남으로 1983년에 이주하여 약 30여 년간 공 방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광우 대표는 현재의 성남시민속공예전시관에 있는 만정공방에서 지속적으로 나전칠기 작품제작과 칠기강좌에 출강하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만정공방은 자개를 왕십리 자개상가에서 구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작품용 본자개를 주로 사용 한 다. 하지만 빛깔이 좋고 넓게 활용할 수 있는 원패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 자개의 품질은 계 속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옻칠은 생칠과 정제칠을 구입하여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정제한 중국산 생칠을 사용한다. 전통나전칠기의 경우 백골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기성품을 구입하는 경우 가 많지만, 만정공방은 직접 디자인하여 공방에서 백골을 제작하여 사용한다. 그래서 기물의 목재를 적재적소에 알맞게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만정공방은 유물 복원 및 응용작품을 많이 제작하고 있
10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는 데, 그래서 황동선과 대모를 자개와 혼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 시설 및 도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82-1번지에 위치한 성남시민속공예전시관은 남한산성 유원지 입 구 왼쪽에 위치한 3층 현대식 건물이다. 1~2층은 나전칠기를 비롯한 공예품 전시 판매장이고 만정 공방은 3층에 위치해 있다. 60평이 넘는 공간을 분할하여 작업 및 작품전시실, 나전칠기 체험실이 갖추어져 있고 전시실 밖은 백골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다. 공방입구를 들어서면 확 트인 넓 은 공간 좌우와 중앙 테이블에 크고 작은 소품들이 가득하다. 조선과 고려의 나전칠기 문양을 활용 한 작품과 기능과 형태가 독특한 작품 등 배광우와 아버지가 제작한 작품이 놓여 있다. 그리고 나전 칠기를 제작할 수 있는 도구와 기계도 완비되어 있다. 옻칠건조장, 절삭기, 상사기 등의 시설을 갖추 고 있으며, 도구로는 귀얄, 상사칼, 끊음질용 칼, 나무주걱 등 나전작업과 칠 작업을 할 수 있는 도구 를 두루 갖추고 있다. 3) 제작과정 제작과정 순서는 먼저 작품의 도안 작업을 하는 일이다. 그러한 다음 자개 본 작업에 들어가는데, 주름질, 붙임질, 지짐질, 끊음질 등을 활용한다. 이러한 기법은 다른 장인들과 차이가 없다. 배광우가 가장 즐겨 쓰는 나전기법은 고려시대 기법에서 주로 쓰인 황동선 상감이다. 금속선 상감기법을 자신 의 많은 작품에 즐겨 표현하면서 기능도 상당히 성숙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고려나전 국화넝쿨 무 늬 경함을 재현하면서 얻은 당시 선조들의 작업 노하우를 바로 현대적인 외관을 가진 기물에 적용 하고 있다. 한편 배광우는 본인이 의도하는 백골을 제작하기 위하여 잘 건조된 목재를 구입해서 원하는 두께 로 대패질을 한다. 그리고 둥근톱과 띠톱으로 목재를 재단한 후 결구법으로 함이나 서랍장 백골을 완성하여 묽은 칠을 한 후 충분히 건조시키고 눈 메우기를 한다. 나전일이나 목칠공예의 공통점은 생칠작업부터 초칠, 중칠, 상칠까지이고, 나전일은 베 바르기, 나전작업 후 칠을 넣기, 칠긁기 작업, 상칠 후 광내기로 완성하는 차이가 있는데, 공정과 재료가 더 추가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처럼 배광우는 소목, 나전(주름질, 끊음질, 조각), 황동선 상감, 옻칠작업 등 모든 공정을 직접 배워서 자신 의 손으로 작업하고 있다. 작업의 노하우는 그저 많은 작품을 만들어서 본인의 몸에 익숙해져 있어야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물을 보고 완성된 작품으로 기술을 평가할 수도 있지만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얼마나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10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배광우 대표는 현재의 성남시민속공예전시관에 있는 만정공방에서 나전칠기 작품제작과 칠기강 좌를 맡고 있다. 젊은 작가로서 전통기법을 계승하면서 표현에 있어서는 현대의 상황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스노우보드 데크, 스케이트보드 데크, 나전옻칠조명, 마우스, 벽걸이, 건칠반지 등 다 양하게 제작을 하여 각종 공모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만정공방 전통나전칠기 작품은 드라마를 비롯한 영화 등의 소품으로의 명성이 높다. 사극에서 나 전칠기가 노출빈도를 높이면서 나전칠기 업계의 홍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배광 우는 스스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나전칠기 공방 소식과 제작과정, 작품 등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나전공예와 다각도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홍보물 제작뿐만 아니라 문양의 도안과 백골의 제작 설계를 하고 있다. 배광우는 군제대 후 다른 학업은 보류하고 좋아하는 나전칠기에 전념하면서 각종 전람회에서 우 수한 성적을 거두고 기능경기대회에 참여하는 등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계발 하고 있다. 나전칠기 강좌를 통한 후학들과의 소통,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활동으로 사회 문화적 기 능에 충실히 임하면서 컴퓨터를 십분 활용하여 나전칠기의 현대적 제작방법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배광우는 아버지 배금용이 이전 선배들에게 배워온 다양한 나전칠기 기술을 배워오고 있다. 그러 면서 아버지의 업적 정리에도 여념이 없다. 그는 2010년 8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나전칠기칠 장 전수조교가 되었지만 그 보다 10여 년 전부터 나전칠기 작업을 시작했다. 1999년 제3회 대한민 국 국제미술대전에서 특선 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크고 작은 전람회에 지속적으로 출품하여 작업의 기능과 조형적 감성을 연마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전시회에 출품하고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 으로 참여하고 있다. 만정공방은 다른 나전칠기 공방과 달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백골제작부터 칠 과 자개일까지 전 공정을 배광우 본인이 직접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버지가 목공일을 병행한 것처럼 배광우는 군대 시절부터 공병대 목공반에서 기능을 연마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일관되게 관철시키고 있다. 그래서 공방의 한쪽에 백골제작을 할 수 있는 도구와 시설을 갖추고 있 기 때문에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즉, 외부 의뢰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만정공방의 또 다른 특징은 컴퓨터의 활용이다. 배광우는 프로그램 활용 자격증을 소지하는 등 컴 퓨터에 능숙하다. 문양과 도면작성 등에 컴퓨터를 활용하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와 상호보완 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공방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11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8. 유산의 보호조치 배광우의 아버지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이다. 따라서 배광우는 전수생의 신분으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무형유산의 기능을 전수받고 있다. 이같은 조치는 배광우의 나전장으로서 유산의 지속 을 위한 가장 강력한 보호조치라 할 수 있다. 한편, 배광우는 공모전의 출품, 문화재 수리기능자, 건 칠 특허, APEC 정상회담 벽화 작업 참여와 같은 대외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자신의 전승활동을 지 속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스노우보드 데크, 스케이트보드 데크, 나전옻칠조명, 마우스, 벽걸이, 건 칠반지 등 젊은 층에게 나전칠기를 알리고자 전통기법을 계승하면서 표현에 있어서는 현대 생활에 사용되는 용품을 실험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그밖에도 나전칠기에 대한 저변확대를 위한 조치로 시 민강좌 를 활용하여 나전칠기에 대한 이해와 홍보를 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다양한 정보 를 알리고 있다. 9. 계승방식 배광우는 아버지 배금용의 작업장에서 작업을 도우면서 청소년시절을 보냈고, 제대 후 본격적으 로 입문하여 옻칠작업을 연마하고 있다. 자개일을 익힌 지 10여 년이 흐른 현재 주름질, 끊음질, 조 각 등 나전작업의 숙련공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옻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배광우 는 현재 경기도 무형문화재 전수생으로 아버지의 보유기능을 전수받고 있다. 직접 공방 책임자의 직 함을 가지고 하루 종일 아버지의 작업 전체를 몸과 언어로 전해받으면서 만정공방을 알리고 나전칠 기 전문 지식을 사회와 나누는 일도 열심이다. 한편 배광우는 시민강좌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전칠기 교육도 겸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만 정공방 배광우는 시민들이 나전칠기를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수요가 늘어나면, 세대 간 의 기능 계승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10. 관련자료 언론보도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80호 환경시대신문 경기문화재단 후원 한권의 나전칠기 출판 편집 MBC 생방송 오늘 아침 나전칠기 시연 출연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 무형문화재 시연으로 출연, SBS 금요컬처클럽 396회분 한국TV경제 직업가이드 출연
11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교통환경타임즈 초대석 11. 관련단체 없음 인터뷰 중인 만정공방 대표 배광우(좌측 끝)
11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만정공방 외부 모습 공방 내 전시작품 작업대 전통공예문화교실 고려시대 문양 함 만정공방 대표 배광우 작품 만정공방 대표 배광우 작품 만정공방 대표 배광우 작품
11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박만순옻칠공방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6일, 9월 14일, 9월 25일, 10월 21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 호 2층 조사대상자 박만순(남, 1958년생, 박만순옻칠공방 대표) 1. 유산명칭 박만순옻칠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1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박만순옻칠공방의 작품은 정교한 작업으로 완성도가 높고 절제된 자개사용 이 특징이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 호 2층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박만순 3) 성별 : 남성 4) 나이 : 56세(1958년생) 5) 출신지 :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대죽리 501번지 6) 입문시기 : 박만순은 1958년 경기 안성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3살 이후부터 서울 왕십리에 서 20대까지 성장했다. 1955년부터 나전일을 시작한 백부 박병억(86세)의 나전칠기 공예사가 확장 되면서,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었던 박만순도 자연스럽게 나전일에 입문하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1978년 박병억의 현대공예(성남시 소재)가 번성하던 시절 큰 작품은 성남에서 제 작했고, 소품은 왕십리 작은 공방에서 생산하면서 박만순은 작은 공방의 책임자로 일했다. 그 후 민 종태가 있던 서울공예사(성남 소재)에서 옻칠로 향합과 차통을 만드는 일을 배우고 싶어 1981년부터 2년간 근무했고, 1983년부터는 심층적으로 옻칠을 배우고자 박왕규가 있던 한올공예(천호동 소재) 에서 일하였다. 이후 일고공예 등을 거쳐 다시 1991년 박병억의 현대공예에서 책임자로 일하였다. 1998년 박병억이 일을 정리하자, 독립하여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에 박만순옻칠공방을 창립하였고, 2007년 부천한국문양공예대전(대상 수상)과 2008년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를 계기로 부천시 의 초빙으로 부천전통공예체험교육관(부천시 춘의동 소재)에 잠시 있다가, 2011년 현재의 공방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주재료인 자개패는 서울 왕십리 일대에 산재한 나전칠기재료상가에서 구입하는데, 나전칠기의 다 양성을 보이고자 동선, 대모, 색칠을 이용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편, 칠
11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은 나전칠기재료상가에서 구입하여, 물성을 실험하면서 직접 색칠을 만들어 활용한다. 칠기작품의 바탕이 되는 백골은 자신이 원하는 기물의 디자인을 정한 후 경기도 포천의 심기조나 고양시 임영 율에게 의뢰한다. 어교는 부레 등을 구입해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일의 효율성을 고려해 주로 나전 칠기재료상가에서 구입한다. 2) 시설 및 도구 박만순옻칠공방은 부천시 상업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 2층에 30평 내외의 규모로 작업공간과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공방에 들어서 첫 번째 공간이 작업공간으로 중앙에 작업 테이블과 소도구 들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중소형가구류와 벽에는 오방색 작품이 걸려있다. 벽과 창가에 붙어 있는 많은 수납장에는 작업 기물과 재료,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오른쪽 창을 끼고 안쪽 공간에는 대표작 과 수상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세밀한 자개일과 정교한 칠일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러 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체 개발한 사포대라는 도구의 역할이 크다. 나전일을 하는 도구 중 전통적인 도구도 구비하고 있으나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근래에는 어느 정 도 개량된 도구를 이용한 수작업을 한다. 끊음질에는 상사기, 상사칼, 거도 등이 필요하고, 주름질에 는 주름질 작업대, 드릴, 실톱대, 실톱날, 태장대, 자개조각도 등이 있다. 박만순은 끊음질과 함께 주 름질을 함께 응용하는 장인이어서 전자나 후자를 고루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양자에 공통되는 도 구인 아교붓, 칠칼 줄, 핀셋, 곤로, 인두, 풀솔 등이 있다. 예전에는 자개 작업도 했지만 현재 박만순 은 자개 절삭작업은 외부에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효율적인 부분도 있지만 자신이 칠일 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전통나전일도 하고 있지만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스타일의 소 반, 함, 티슈케이스 등의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현대 디자인 작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3) 제작과정 박만순옻칠공방의 제작과정은 먼저 작품의 도안 작업을 하고 자개 본 작업에 들어간다. 이때 주름 질, 붙임질, 지짐질, 끊음질 등을 활용하는 데, 이러한 기법은 다른 나전공방과 유사하다. 다만, 이곳 에서 즐겨 사용하는 기법은 주름질이다. 그밖에 평탈기법, 오방색칠과 나전을 결합한 새로운 기법이 연구 중에 있다. 가구나 소품의 도면을 작성하여 백골제작을 의뢰하면 기물에 따라서 다르지만, 만들어 지기까지 짧게는 2주, 길게는 1달 이상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무늬를 도안하여 절삭일 을 의뢰한다. 그리고 백골이 만들어져 오면 칠을 묽게 하여 바르고, 베를 붙이고 칠을 여러 번 반복 하여 칠바탕을 만든다. 그리고 자개의 붙임질과 지짐질을 하는 장인의 도움으로 자개를 칠기에 고루
11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눌러 붙인다. 이렇게 자개 부착하는 공정이 모두 끝나면 마지막으로 골회를 바르고 하칠, 중칠, 상칠 을 한 후 광내어 완성한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박만순옻칠공방의 작업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무늬구성, 정교한 마감과 완성도가 특징이 다. 이를 통해 대표 박만순은 각종 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꾸준하게 얻고 있는데, 2007년 제1회 부 천한국문양공예대전 대상,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장려상 2회 수상, 2012년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 전 대상, 2013년 한국옻칠 공예대전 대상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2008년 부천세계무형문 화유산엑스포 행사 참여를 통해서는 우리의 나전칠기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에 기여하기도 하 였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부천시의 초빙을 받아 부천전통공예체험교육관(부천시 춘의동 소재) 에서 작업하기도 하였다. 박만순옻칠공방은 다량의 저가상품을 제작하기보다는 칠기연구와 새로운 기법개발을 통해서 조 형성을 갖춘 작품위주의 활동을 통해 전통의 현대적 활용에 적극적이라 하겠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박만순옻칠공방에서는 중간 크기의 가구와 소품을 전통 나전칠기 제작공정에 따라 평균 6개월 이 상의 시간을 들여 소량 생산하는 데, 이들 작품은 조형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제작되고 있다. 그밖에 현대적 양식의 소반, 함, 티슈케이스 등의 실생활용품에 대한 개발도 이뤄지고 있는 데, 여기에는 부 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편, 지속적이지는 않지만 대기업의 명품 시제품이나 VIP용 선물 제작 등 의 작업도 하고 있다. 박만순옻칠공방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한국공예문화진흥원 갤러리샵을 통해 판매를 하고 있다. 그 러나 판로가 제대로 갖춰진 상태는 아니어서 판매량이 많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하청일 과 출품에 의존하여 공방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8. 유산의 보호조치 박만순옻칠공방의 지속적인 전승활동을 위해 공방대표인 박만순은 각종 공모전과 기능경기대회 의 출품을 통해 받은 수상금을 활용하여 공방을 운용하고 있다. 박만순에게 있어 수상은 개인의 경 력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방운영을 위한 중요한 수단인 셈이다. 현재 수상 작가들에게 지원되는 격 려금액의 단위가 비교적 크기 때문에 상금을 통하여 작품의 제작기간 동안의 각종 경비를 보상받으 면서 다음 작품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다. 그래서 나전칠기 업계에서는 공모
11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전 출품자의 연령이 대체적으로 높은 경우가 많은 데,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즉, 박만순옻칠공방은 다량의 저가상품보다는 조형성을 고려한 작품 위주의 작업 활동과 이를 위 한 칠기연구와 새로운 기법개발을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유산의 전승을 지속시켜가고 있다. 9. 계승방식 박만순은 백부 박병억의 작업장에서부터 일을 배웠으며, 기술향상을 위하여 민종태를 비롯한 박 왕규, 최호섭, 김태희 등의 장인을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기술을 직간접적으로 습득하였다. 이러한 박만순의 기술을 배우고자 여러 기능인들이 찾아왔었는데, 박만순은 이들에게 작업과정에 직접 참 여를 유도하여 한 과정 한 과정 직접 시연을 하고 요령을 전해주어 직접 따라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전수하였다. 그러나 기능인들이 중요한 기술을 배우고는 퇴사를 반복 하여, 현재 박만순옻칠공방의 계승자는 없는 상태이다. 10. 관련자료 박만순옻칠공방에 관한 기록자료는 없다. 그밖에 2013년 한국옻칠 공예대전 대상, 2012년 한국 문화재기능인작품전 대상, 2007년 한국문양공예대전 대상,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장려상 2회 등의 수상 자료가 있다. 11. 관련단체 관련단체로 한국칠예가회,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한국문화상품디자인협회 등을 들 수 있다. 박 만순은 이들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전시회를 비롯한 학술회의와 교류를 통해 작품을 알리고 업계로부터 프로젝트 제의를 받기도 한다.
11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인터뷰 중인 박만순옻칠공방 대표 박만순(좌측) 작업대 모습 작업중인 함 박만순옻칠공방 전시장 문양을 절삭한 자개 직접 만든 색칠 소반 작품 보상화문합 작품 보석함 작품
11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설화칠기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성웅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유산조사일 2013년 9월 13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조사대상자 김용관(남, 1957년생, 설화칠기 대표) 1. 유산명칭 설화칠기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12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께 전승되어 왔다. 설화칠기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 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 가구를 완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업화, 전문화된 제작 방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국내산 자개나 칠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거나, 기계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에 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승 되고 있지만, 설화칠기에서는 서울 지역이나 해외에서 소비되는 장롱과 같은 대형 가구를 제작하는 면에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김용관 3) 성별 : 남성 4) 나이 : 57세(1957년생) 5) 출신지 : 충청남도 아산시 6) 입문시기 : 설화칠기의 대표인 김용관은 충남 아산 태생으로 16세 때 서울로 올라와 나전일을 배 우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42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셈이다. 그는 1971년 성수동에 있는 임창욱 공 방, 왕십리에 있던 박병옥 공방을 거쳤지만, 1971년 3월 김현옥 공방에서 본격적인 나전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김현옥 공방에는 강상숙이 있었는데, 그에게 주름질(톱질), 후패조각, 후패잔살, 전통 문양 끊음질 등 나전일을 배웠다. 김용관이 나전일을 배울 때 서울에는 수유리와 왕십리 일대에 소 규모의 나전공방들이 많이 있었는데, 작업환경은 열악하고 일이 고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김용관은 휴일도 없이 각종 기법을 배우고 익혀, 5년이 지나자 그 지역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 다고 한다. 7) 공방 이동지역 : 1971년에 입문한 이후 1972년부터 1984년까지 12년간 조안공예사에서 기능공과 반장으로서 패세공과 옻칠을 했다. 그는 1981년 결혼했고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미성공예 사에서 자개부 반장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진성공예사에서 공장장을 지냈 다. 이후 그는 몇 번의 이전 끝에 2004년 드디어 완전 독립해 설화칠기 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대표 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의 장소에 정착한 설화칠기는 100여 평에 달하는 1층과 2층의 작업장과 전 시실에서 직원 5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는 나전일에 관하여 대한민국의 명장임을 잊지 않고 정력
12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적인 활동을 한 결과 수많은 수상과 국가기술 자격취득, 특허취득, 매뉴얼 개발, 왕성한 전시회 출품 등을 통하여 자신의 계발은 물론 한국 나전칠기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즉, 전통과 자신의 기량만 을 맹신하지 않고 새로운 기법 창안이나 혁신을 통하여 작가이면서 나전장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김용관은 우리나라의 전복자개를 주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자개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덕신상사, 평화자개상사에서 구입하고 있으며, 칠은 우일상사와 평화자개상사에서 구입해 쓴다. 나전칠기의 뼈대가 되는 백골은 남양주에 위치한 형제공예에서 제작하고 있으며, 칠일과 나전일은 자신이 설립 한 설화칠기에서 직원들과 함께 작업한다. 또한 아교는 우일상사에서 구입한 것을 사용한다. 이러한 재료들은 주로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에 원자재 구입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데, 항상 품질을 위 하여 최상의 재료들을 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2) 시설 및 도구 설화칠기는 시멘트 건물의 1층과 2층 100여 평의 규모이다.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여느 공방과 마 찬가지로 가구를 만드는 소목 작업은 다른 백골 공장에서 주문을 해서 작업을 한다. 현재 작업실의 1층은 칠부로서 칠일을 하고, 2층은 자개부로서 절삭을 비롯한 나전 작업과 전시장을 겸하고 있다. 나전일을 하는 2층은 전시장, 사무실, 소품실, 디자인실, 절삭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시장은 입 구 30평이며 그동안 설화칠기에서 만든 크고 작은 가구와 소품 샘플을 비롯하여 특허를 받은 다종 다양한 제품까지 진열해 놓고 있다. 사무실에는 전시회나 공모전에 출품하여 받은 상품 및 특허권 등이 걸려 있다. 소품실은 문화상품을 만들기 위한 백골함 수십 종과 가공을 기다리는 반제품 상태 의 물품이 겹겹이 쌓여 있다. 디자인실에는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문양을 고안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절삭실에는 다이아몬드 톱날을 장착한 전동 절삭기와 수많은 판자개 및 유산지를 붙이는 일을 한다. 이렇게 자개일이 끝나면 1층의 칠부에서 칠을 하는 일로 넘어간다. 이처럼 설화칠기의 작업장은 가구와 같이 대형 작품을 만드는 공간이면서, 전시장과 판매장의 기 능도 함께 갖고 있어 관광 명소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한편으로 나전칠기를 체험하고 견학하기에도 적합하여 교육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설화칠기에서 나전일을 하는 전통 도구는 주름질을 위한 톱대 (3개), 조각칼(3개), 핀셋 등이 있다. 무엇보다 설화칠기에는 자동화 도구나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추어 나전일 자동화를 어느 정도 이루
12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었다. 우선 자동 절삭기(3대)의 경우 낱장의 자개를 수작업으로 절삭하던 전통 주름질 대신 기계를 이용하여 한 번에 100장을 작업할 수 있도록 능률을 최대화하였다. 이를 통해 작업시간도 단축하거 나 재료의 낭비를 막을 뿐 아니라 문화상품처럼 대량생산이 필요한 작업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다음 접착제 제거 장치의 경우 수작업으로 접착제를 제거하는 과정을 기계화한 것이다. 한편 스프레이 도 장(칠) 기계는 붓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칠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품질도 일정하지 않던 것을 개선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품질도 개량한 것이다. 또한 자동 조각기(2대)는 진주패 조각을 위한 기계물레는 접시나 반상기 등을 자동으로 연마할 수 있는 기계이다. 또한 광내는 기계는 완성된 작 품이나 제품의 표면을 효과적으로 연마하여 작품에 균질한 광을 낼 수 있는 기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김용관은 전통도구에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편리하고 효율적인 기계화에 앞장 서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 제작과정 설화칠기의 대표인 김용관은 가구의 제작에서 가장 앞선 작업인 백골 제작은 소목작업을 하는 전 문공방에서 해오고 있다. 다만 제작과정에서 가구의 형태를 만드는 백골 디자인, 자개작업 디자인 (도안), 자개 봉하기, 자동절삭(주름질), 칠 작업은 자신이 직접 한다. 김용관은 나전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전 디자인(도안)이라고 한다. 그가 주 로 사용하는 디자인은 화려한 공작이나 봉황 및 모란꽃을 화면에 가득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 선 각종 디자인은 그가 직접 하고 이것을 조개패 위에 주름질해서 사용한다. 그런데 동일한 문양을 조개패에 하나씩 오려내는 대신 자동 절삭기계를 사용해서 100장을 한꺼번에 절삭하게 된다. 이렇 게 그는 주름질을 자동절삭으로 처리하는 기술을 지녔기 때문에 생산성과 품질이 뛰어난 것이다. 그 밖에 그는 복잡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법으로 후패 짬, 후패 조각, 잔살치기 등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설화칠기에서 가장 많이 쓰는 나전기법은 주름질(자동절삭)이다. 12짝 장롱을 비롯한 나전칠기 가 구를 주로 제작하면서 김용관은 전통끊음무늬를 새로 개발하거나 현대화시켰다. 더욱이 자동절삭 특허를 등록했고, 공작꼬리 끊음기법을 자동절삭으로 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42년 이 상 작업하면서 자신이 주로 사용하고 즐겨하는 기법은 주름질(톱질)과 자동절삭 톱질이다. 그는 작 품 위에 도장(칠)을 하는데, 목공예는 귀얄로 칠하는 반면 나전칠기는 삼베와 한지 및 골회를 바른 다음 골회 갈기를 하고나서 칠하는 점이다. 첫째, 주름질 기법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는 얇은 자개를 10장 붙여 각종 도안을 본떠 실톱으로 절삭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용관은 현재 얇은 자개를 100장 붙여 각종 도안을 본떠 기계로 자유자
12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재로 절삭하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여 능숙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둘째, 끊음질 기법은 전통적인 문양으로는 국화문, 만자문 등의 상사선(실선)을 상사칼로 끊어 붙 인다. 그러나 현재에는 자개를 100장씩 붙여서 기계로 상사선(실선)을 한 번에 절삭함으로 능률을 올리고 있다. 셋째, 모자이크 기법은 전통적으로 상사칼로 자개를 끊는 기법이다. 그러나 현재는 고무판 위에 자개(낱장)를 올리고 롤러(roller)를 굴리면서 끊는 기법을 사용해 정밀하면서 효율적인 작업성과를 올리고 있다. 넷째, 조각 기법은 지금까지 손으로 조각도를 잡고 새 동물 식물 등을 조각하던 전통적인 기법 에서 기계 조각기로 조각을 하여 정밀도와 시간단축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개발하여 특허를 낸 것은 다음과 같다. 개발 실적 1 전통문양 기계 절삭 문양 문갑, 서류함, 시문 2 접착제거 기계사용 접착제 제거 시문 후 접착제 제거 3 돌출(입체)문양 얇은 자개 입체문양 제작 벽걸이, 액자 4 장식 걸고리 장식 벽걸이 장식 5 나전문양 및 식기 숟가락 중간 연결 금속 자개문양 숟가락 및 식기류 6 물레기계 개발 활용 자동 연마기계 개발 활용 접시 및 반상기류 7 광내는 기계 개발 활용 제품을 광내는 기계 개발 활용 칠기류 8 자동조각기 개발 활용 진주패 조각을 하기 위한 기계 진주패 조각 9 스프레이 도장(칠) 수공이 아닌 기계로 칠하여 생산성 향상 칠기류 이처럼 칠기에서는 나전칠기의 여러 작업과정을 거쳐 대형 가구류는 매월 10여 개 정도 생산하 고 있다. 하지만 소형의 인장, 명함케이스, 찻잔 등 문화상품은 월 수백 개 정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생산품은 남대문시장과 서울의 몇몇 도매상, 그리고 인터넷으로 판매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남양주 시의 설화칠기 전시장에 직접 방문하는 애호가나 전시회를 통하여도 상당수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경춘가도에 있는 마석은 한국 최대 규모의 마석가구단지 가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1980년경 서울에 있던 가구공장이나 나전공방이 땅값이 오르면서 점차 교외로 빠 져 나가 새로 형성하여 여러 중소 가구공장이 밀집하게 된 것이다. 설화칠기 또한 넓은 공간을 확보
12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하고 대규모 가구작업이 가능하도록 서울에서 이사하였다. 중소 가구업체들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 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곧 남양주 일대에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한 풍부한 인력을 공급받거나, 주변의 목공소에 백골을 의뢰한다거 나, 완성된 나전칠기 작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지역 경제활동에 기여하 고 있다. 한편 설화칠기는 절삭기를 사용하여 빠른 시간에 고품질의 문화상품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1980년대 나전칠일이 산업적으로 발전해온 역사와 일치하는 것이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설화칠기의 김용관은 자신이 지닌 나전칠기의 전승을 위한 노력으로 각종 자격이나 특허, 디자인 등록, 기계 개발 등을 통한 자기 계발에 열심이다. 2002년과 2003년 서울시 지방기능경진대회 나전 칠기 분야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도 나전칠기 분야 금상을 수상 했다. 또한 칠공기능사 자격증(문화재청, 2001), 패세공기능사 자격증(한국산업인력공단, 2003)을 취득 하였다. 그밖에 벽걸이 장식(2009), 자개문양을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끊음을 절삭하는 작업으로 한 제품 (2010), 접착제 제가장치(2010)의 3개 특허를 등록하였고, 진주패를 조각하는 기계와 접시와 반상기 를 자동으로 연마하는 기계, 스프레이로 도장하는 기계, 제품 표면에 광내는 기계 등을 개발하여 제 작 판매하고 있다. 한편, 전통공예대전과 같은 각종 공예 분야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자신의 전승활동을 지 속하고 있다. 더욱이 나전칠기 분야 기능대회의 심사자로서도 활동하면서 나전칠기 분야의 다음 세 대 양성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해외 수출에도 주력하여 2008년부터 보석함 및 명함 집, 손거울 등을 수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설화칠기의 김용관은 다양한 자기 계발을 통한 꾸준한 활 동을 바탕으로 나전칠기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 불황으로 인한 수요의 감소와 또한 생산 인력의 감소라는 나전칠기 분야의 공통된 어려움이 있는데, 이것은 설화칠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향후 유산의 전망에 대해서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설화칠기는 대표인 김용관이 나전일을 하면서 나전칠기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공모대회나 전승 대회 및 관광품 경진대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2002년 서울시 지방기능경기대회에 나가서 나전칠기
12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분야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2003년 4월 22일 서울시 지방기능경기대회의 나전칠기 분야에 서도 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같은 해 2003년 9월 30일 제38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 분야 에서 금상을 수상해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또한 나전과 관련한 자격이나 특허, 실용신 안등록 등도 참여하였다. 아울러 2001년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칠공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 며, 같은 해 11월 25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한 칠기기능사 자격증도 있어 나전칠기를 보호하 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특히 2003년 12월 29일에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한 패세공 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어 그의 기능을 국가에서 인정한 셈이다. 한편 그는 특허청에 3개의 특 허와 실용신안 출원 등을 하고 있다. 첫째, 2009년 1월 6일 벽걸이 장식을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했 고 이것을 판매하고 있다. 둘째, 2010년 4월 5일에는 정밀하고 균일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자개 문양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끊음을 절삭작업으로 한 제품을 특허 등록하였다. 셋째, 2010년 4월 5일 자개 공예판에 사용하는 접착제 제거 장치를 특허로 등록하여 이 분야에서 그의 연구 성과를 과시 하였다. 그 밖에 2002년에는 진주패를 조각하는 기계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다. 2003년에는 접시 와 반상기를 자동으로 연마하는 기계를, 2005년에는 스프레이로 도장하는 기계를, 2008년에는 제 품의 표면을 광내는 기계를 개발하여 제작, 판매하고 있다. 설화칠기의 김용관은 각종 전시회에도 활발하게 작품을 출품하여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와 함 께 김용관은 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각종 기능대회의 심사장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나전칠기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9. 계승방식 김용관은 일찍이 강상숙 선생에게 체계적인 나전일을 전수받았고, 또한 선배, 동료들에게서도 여 러 가지 기술을 배웠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을 연구, 개발한 입지적 인물이다. 그러나 나 전칠기 공방에는 단독으로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대개 2~3명의 인원, 많아야 10명 정도의 직원 들을 데리고 일을 한다. 10여 년 전만해도 나전공방에 직원이 50명 이상 될 때는 배우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가 개인적으 로 지도한 사람으로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여한 조원배, 김동숙, 최태화, 최태문, 이정근, 박종국, 최권혁, 박만기, 김형석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 나전사업이 침체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또 옛날과 같은 도제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며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두 딸 김설화와 김보화가 그의 나전일을 배우고 있다. 특히 맏딸인 김설화는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교 칠예과를 졸업하여 그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둘째 딸은 중국어를 배워 향후 중국으로의 진출에 한몫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12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관련자료 설화칠기의 대표인 김용관은 해당 분야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여 일찍부터 각종 공모전과 전 시회에 출품하여 성과를 거두고, 작업과정을 개선하는 특허도 여러 건 출원한 바 있다. 수십 년간 나 전칠기에 종사하여 명장으로 활동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아 관련자료도 몇 건 있다 : 환경시대신문, 천연제품 옻칠은 하늘이 준 천연의 도류 외 다수 : 명장신문, 나전칠기 기능경기종목 폐지 부당하다 : THE PEOPLE, 40년 장인, 사명감 갖고 전통 계승 11. 관련단체 김용관은 나전일과 관련된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한 바 있다. (사)옻칠문화연구원 이사, (사)한국문 화 미래산업진흥원 자문위원, (사)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 (사)한국문화재기능협회 회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는 몇몇 주최자를 위한 사업을 위주로 하며, 나전산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친목단체라 생각하고, 현재는 이러한 단체 활동보다 작품의 활성화와 해외 수출에 눈을 돌리 고 있다. 전시장에서 인터뷰 중인 김용관
12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남양주에 위치한 설화칠기 1, 2층 공장 공장 안쪽 디자인실 두 딸이 문화상품을 제작하는 디자인실 소라껍질과 판자개 판자개 100장 1묶음 다이아몬드 톱날의 전동 절삭기 시범 100장의 자개에서 문양을 절삭하는 김용관 장인
12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절삭기를 이용하여 판자개에 문양을 다량 절삭 문화상품을 위해 준비된 각종 백골 2층 전시장의 각종 나전칠기 작품 나전칠기 가구와 각종 소품 공작깃을 자개로 형상화한 작품 장롱과 화장대, 문갑 및 테이블 일습 다종다양한 문화상품 각종 문화상품
12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이빈공예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9월 13일, 10월 2일, 10월 18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36-1 조사대상자 최상훈(남, 1954년생, 이빈공예 대표) 1. 유산명칭 이빈공예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13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께 전승되어 왔다. 이빈공예는 최상훈 개인 공방으로서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제작 방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 러나 부분적으로 기계를 사용하거나 현대적인 형태로 제작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승되고 있으며, 이빈공예는 서울 지 역에서 주로 소비되는 장롱과 같은 대형 가구보다 개인적으로 생산하는 소품 위주를 제작하고 있어 작가주의적인 특성을 엿볼 수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최상훈 3) 성별 : 남성 4) 나이 : 60세(1954년생) 5) 출신지 : 서울특별시 성동구 하왕십리동 6) 입문시기 : 이빈공예를 운영하는 최상훈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전 형적인 장인이다. 그가 태어난 하왕십리동은 예로부터 나전칠기 공방과 재료상들이 밀집해있던 곳 으로서, 서울에서 생산되는 나전칠기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울 동북부 지방에 있는 행당동, 금호동, 옥수동, 면목동, 전농동 등에 수백여 곳의 공방들이 번창하고 있었다. 최상훈이 태어나 자라던 1960년 후반 경엔 황학동 일대에 수백여 자개 판매상이 들어서 하나의 관광명소가 되어 옻칠의 나라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기도 했을 정도이다. 1966년 서울 무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인 강구재의 소개로 유영수 나전칠기공방에서 나전칠기 에 입문하였다. 하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나전칠기의 매력에 빠진 것은 1969년 민종태(1996년 서울 시 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 보유자 인정)가 운영하던 공방에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그는 1988년까지 19년간 기능을 전수 받고 1989년 4월경 독립하여 자립하게 되었는데 이름도 없는 개인공방이었다. 그는 민종태 보유자로부터 19년간 사사 받고 거의 모든 기법을 전수 받아, 螺 鈿 (자 개), 漆 (옻칠), 器 (백골) 세 분야를 합친 온전한 나전칠기 장인으로 훈련 받았다. 그리하여 나전일 중 가장 중요한 주름과 끊음질까지 능숙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그는 1969년 스승인 민종태의 공방에서 작업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1980년
13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대 민종태가 수행한 작업 중 삼성 이병철 회장의 중앙일보 등 사옥의 집기를 나전칠기로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가구를 제작하기 위한 백골 공방은 삼성 계열의 중앙개발이었는데, 그 위치는 이병철 회장의 장충동 자택 옆에 있었다. 중앙개발에서 백골을 완성하면, 최상훈은 이태원 근처에 위치한 서울공예사에서 나전작업을 수행했다. 당시 민종태는 이태원공방, 성남공방 등 여러 곳에 하청을 주었고, 당시 나전작업에 동원된 장인만 약 50~60여 명이었을 정도로 작품을 많이 했 다. 당시 작업한 도면이나 각종 도안 수백여 장은 현재 최상훈이 소유하면서, 마치 스승을 대하듯 소 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민종태와 1988년까지 19년간 함께 작업하면서 기능을 전수받고 그해 4월에 독립을 하였다. 1988년 4월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여 개인 공방을 개설한 이후 행당동, 사근동 등지의 이름 없는 개 인공방을 운영하였다. 공방에서는 한두 명의 동료나 제자가 함께 작업한 적도 있지만, 최상훈의 경 우 철저히 개인 작업을 통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자립한 이후로는 25년간 작품 제작을 하여 각종 공모전이나 국내외 전시회에 참가하고, 또는 개인 주문에 의한 유물 재현도 많이 하고 있다. 1990년 부터 출품한 각종 공모전에서 국무총리상,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 특선, 입선 등 60여 회에 걸쳐 입상을 하였으며, 상장이나 상패들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 현재의 이빈공예는 2013년 5월경 사 근동에서 용답동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공방을 설립한지 2달이 안된 시점이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료들은 자개, 칠(안료), 백골, 아교 등이다. 이빈공예는 이러한 재료들의 공급은 현재로선 큰 문제없이 무난하다. 아울러 그간 수 년동안 성동구에 소재한 평화자개상 등과 거래가 있어 서로 상부상조하며 수급에 큰 애로사항은 없다. 기물의 바탕이 되는 백골은 직접 제작 하지만 큰 백골은 외부 목공장에게 주문하여 쓰기도 한다. 한편 칠은 원주옻칠을 사용하며, 자개패 를 붙이는 접착제로는 아교와 어교를 사용한다. 이빈공예의 일차적인 재료는 당연히 자개패이다. 자개의 원활한 공급에는 통영 지역이 대표적이 다. 이곳은 바다의 간만에 차가 완만하고 전복 생식의 온도가 알맞아 그곳에서 나는 전복껍질의 질 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나는 것보다 좋다. 전복껍질은 생산기간에 따라 애기패, 중간패, 노패 등으 로 나누어지는데 이중에 제일 좋은 것은 중간패로서 그 색과 질이 좋아 우랄치(무랄치)라고도 불리 었다. 현재는 전복도 인공양식이 되어 그 색과 질이 원래 통영에서 생산되던 자연산 전복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빈공예에서는 가능한 가장 좋은 중간패를 확보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공방에는 10
13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여 년 전에 자개패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다. 현재 나전 자개는 서울의 평화자개상 등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원래의 전 통 전복에서 나온 알자개가 아닌 조각조각 끊어진 자개를 판에 붙인 판자개가 나와 나전칠기의 질 이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근래에 우레탄이나 캇슈로 제작한 작품들이 문화상품 이라는 너울을 쓰고 한국 전통 나전칠기의 이름으로 인사동이나 전통공예품 매장에서 국내의 관광 객이나 외국 방문객에게 팔려나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스승에게서 엄격한 수련 을 받은 최상훈은 최상의 재료에서 최고의 품질이 나온다는 믿음에서 일체의 저급한 재료는 사용하 지 않고, 옻칠이나 자개패 중에서도 전통적인 최상의 재료를 고집하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이빈공예는 용답동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의 1층으로 옮겨, 공방을 세운지 2달이 지나지 않으며, 규모는 9평 남짓한 크기이다. 작은 규모의 공방은 최상훈 혼자 사용하기 편하게 사방의 벽면까지 효 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입구의 오른쪽 벽면에는 상장이나 전시회 포스터 등이 빼곡하게 붙어 있 고, 좌우 벽의 진열장에는 문화상품이나 디자인특허를 받고자 제작한 작품들이 촘촘히 놓여 있다. 진열장 옆 서랍장은 재료를 담아 두었는데, 하나의 서랍마다 수백여 개의 국내산과 수입산 자개, 아 교 알갱이나 민어부레 말린 것 등이 가득차 있다. 재료서랍장 옆에는 건조장이 있어, 작업 중인 작품 여러 점을 건조하고 있었다. 건조장 위와 재료서랍장 위에는 각종 소반이나 머릿장 등 비교적 소품 을 놓아두어 전시해 두었다. 가장 안쪽 벽면에는 백골에 밑칠을 한 상태의 원반 및 가구 소품들이 쌓 여 있다. 건조장 위 2개의 상자에는 그의 스승인 민종태 보유자가 생시에 작업을 하면서 드로잉한 나전도 안 수백여 장의 원본이 담겨 있다. 초기 드로잉은 트레싱지가 누렇게 바래어 바스라질 정도이다. 스 승의 손때가 묻은 원본 도안을 고스란히 보관해 오늘까지 간직하여 1970~1980년대 나전칠기의 역 사를 복원할 수 있는 자료인 것 같다. 그 옆으로 세면대가 있다. 그의 작업공간은 입구 왼쪽에 마련된 작업대이고, 여기에서 디자인을 하 고 그 뒷벽에는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각종 도구를 놓아두었다. 일반적으로 나전일 중 자개일을 하 는 장인은 끊음질용과 주름질용으로 나뉘는데, 최상훈은 주름질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어서 그와 관련된 도구를 갖추고 있다. 그는 주름질에 필요한 주름질작업대, 실톱대, 실톱날, 태장대, 드릴, 자개조각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자개일을 하는데 필요한 절삭기, 다이아몬드 연마기, 나전수평기, 줄, 아교붓, 핀셋, 곤로, 인두, 풀솔, 칠칼 등이 있었다. 최상훈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도구는 전통 도구와 개량 도구를 고르게 사용
13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하고 있다. 그가 가진 전통 도구 중 특이한 것 중에는 이제는 거의 보기 힘든 활비비, 거도 등을 소장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스승인 민종태가 사용하던 것으로 오랜 세월의 손때가 묻어 있 어 더욱 애착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전통 도구는 비록 옛날 것이지만 손에 익어 쓰기 편해 좋다고 한 다. 다음으로 개량된 것이 있다. 이러한 도구 중 나전 작업을 위해 기계화된 것은 절삭기이다. 이처 럼 절삭기를 사용하면서 전통적인 수공 작업의 제작방식에서는 벗어났다. 이렇게 기계화되면서 나 전 작업의 속도가 빨라져 많은 공방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으로 탈바꿈했지만, 그는 여전히 수 공 작업을 하고 있다. 3) 제작과정 이빈공예의 최상훈은 나전칠기의 많은 기법 중에서도 주름질, 부조, 모조, 자개상감 기법 등을 사 용하고 있다. 주름에도 두 가지 기법이 있는데, 홀겹(사용하기 좋게 두께를 내린 자개)과 겹자개(홀겹 자개를 여러 겹 붙임) 기법이 있다. 이 주름질 기능에 따라 각자 장인의 수준도 정해지지만 제작하는 작품의 품질도 결정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기능이다. 또한 부조기법과 모조기법도 현재는 사용되 지 않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조과정이 기계화되어 장인이 직접 조각도로 부조법을 구사하는 일은 몇몇 장인들에 의해 그 맥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자개 상감기법이란 서로 다른 자개를 사용해 주 름기법으로 파고 박아 입체감을 강조하게 되는데, 고도의 주름기법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 도 사장되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나전일이란 신라 때부터 천 년이 넘게 이어온 기법이므로 자연히 그간의 수많은 장인들이 나름대 로 수많은 기법을 개발하고 연구한 결과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축적된 기법 을 최상훈이 터득하고 있다. 통영 등지의 장인들은 끊음질에 장기를 가져 굵고 가는 직선의 자개( 詳 絲 )를 대각선, 직선, 곡선, 기하학적 연속무늬를 선보에 따라 상사를 끊어가며 시문하는 것을 말한 다. 하지만 최상훈은 서울 등지에서 유행한 주름질에 장기를 가지고 있다. 곧 주름질은 자개를 문양대로 조각칼이나 송곳, 가위, 실톱 등으로 오려내는 기법이다. 그가 관심 을 가진 고려시대의 나전문양은 아주 섬세하고 작은 무늬여서 예리한 송곳이나 뾰족한 칼 끝으로 새김질하여 도려내는 방법으로 제작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900년대에 실톱이 보급되면 서 아주 섬세하고 크고 작은 문양들은 물론 아주 미세한 곡선 등 세밀한 문양까지 새길 수 있다. 때 문에 보다 능률적으로 주름질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최상훈이 사용하는 기법은 타날법, 부식법, 치패법, 타찰법, 조각법, 부조법, 모조법, 할패법( 割 螺 鈿 ), 시패법, 부착기법, 복채법 등 다양하다. 그는 이러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응용하고 있다. 기존의 나전상감은 자개를 백골 위에 올려 밑그림을 그린 후 조각칼과 송곳으로 파낸 뒤 박아 넣었다. 그러
13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나 최상훈은 밑백골을 제작하고 나서 주목재를 얇게 켜내어 밑백골 위에 맞추어 제작하고, 자개의 문양을 오려내어 주목재 위에 올려 구멍을 뚫고 실톱으로 오려내어 자개를 박아 밑의 백골 위에 붙 여나가는 기법을 개발한 바 있다. 이러한 기법은 기존의 상감기법에 비해 더욱 정교하며 시간이 많 이 절약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을 개발해 자신이 사용하고 있지만 특허를 내지는 않았다. 나전칠 기 작품 제작을 혼자 하다 보니 그 생산량은 한 달에 대소 50여 점 밖에 안 된다. 이들 작품은 판매 처에는 내놓지 않고, 전시회 때나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수요자에게만 판매되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최상훈은 스승인 민종태로부터 19년간 이어받은 기능을 바탕으로 자기계발과 계속된 기술연마로 주변으로부터 뛰어난 솜씨를 지닌 기능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0년 공예인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에서 입선을 필두로 17여 회에 걸쳐 입상하였다. 그리고 전국공예품대 전, 한국옻칠공예대전 등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우리의 민족공예라 할 수 있는 나전칠기의 전통을 이어 가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전통나전칠기를 활용한 문화상품 개발에 힘써 전통문양 디자인 개발 을 통해 각종 문화상품전에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등을 수회에 걸쳐 수상하고, 해외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에 참가하여 호평을 받고 나전칠기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일조를 하였다. 이러한 그 의 활동으로 2003년에는 명인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한국옻칠문화원의 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의 기술지도 와 기타 공방의 요청시 방문하여 기술 지도를 하였으며, 노인복지와 관련 봉사활동과 후원을 하고 있다. 본인이 물려받은 나전칠기의 기술을 활용해 칠기의 유물재현과 문화상품의 개발과정을 체계 적으로 적립하여 후진양성에 노력하고 있으며 전성규, 김봉룡, 민종태들로부터 최상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나전칠기의 전통 계승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까지 걸어온 외길 47년의 나전장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최상훈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보다도 그의 스승인 민종태의 의발( 衣 鉢 )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실에는 민종태가 평생 작업한 나전칠기의 밑그림 즉, 도안의 원본이 고스란히 보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종이에 육필로 그려진 수백 장의 원화들은 살아있는 나전장의 기록이자 나전칠기 도안화첩 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오늘날에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교과서 노릇도 할 수 있다. 특히, 삼성가의 고 이병철 회장은 나전칠기 마니아로 민종태에게 자택은 물론 사무실 집기까 지, 또 외국인에게 주는 선물까지 의뢰하여 제작케 하였다. 그때 제작된 상당수의 작품들은 아직도 삼성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며, 당시에 사용된 설계도와 도안까지 최상훈이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최상훈이 민종태 보유자의 직계 전수자임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
13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우 크다. 또한 이들 유품을 통해 민종태의 족적을 찾을 수 있으며, 당시 삼성가의 나전칠기 컬렉션을 알 수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서울의 동쪽에 위치한 성동구 일대는 1970년대부터 나전장들이 모여 살고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공방들이 많았다. 특히, 이 일대는 나전일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나전 재료상들이 밀 집되어 있어 재료 공급이 용이한 탓도 있다. 때문에 현재에도 이곳에서는 많은 숫자의 공방이 소재 하고 있고 다수의 나전장이 활동하고 있다. 이빈공예는 최상훈이 근래에 이름을 붙인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자그마한 공방이다. 이전 까지는 성동구 행당동이나 사근동 등지에서 공방을 운영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칠장이나 공방의 경 영상태가 좋지 않아 약 2개월 전 성동구 용답동(36-1)에 새로운 이빈공예 라는 공방을 마련하였다. 최상훈은 스승인 민종태 외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전일을 배우는 데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전장 보유자로는 원주의 이형만과 통영의 송방웅이 있는데, 그들에게 작품을 제작하면서 많 은 조언을 받고 있다. 또 서울에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칠장) 정수화 보유자가 있는데, 그 는 옻칠 정제로 보유자가 되었지만 나전 작업에도 일가견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서 울시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장 정명채 보유자는 선후배 관계로 많은 정보와 기능을 교환하고 있다. 한편 전 나전장 보유자 김태희의 제자인 김선갑 장인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최상훈처럼 대부분 서 울에 거주하는 장인들은 개인적으로 공방을 자영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 많은 문하생을 가르치며 정성을 들여 작품을 제작하여 국내 각종 전시회나 개인전 및 해외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나전장 명인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빈공예에서는 대다수의 작품이나 문화상품에서 전통적인 형태나 문양을 고집스럽게 계승하면 서, 약간의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옻칠의 컬러화, 약간의 새로운 조형성 추구 등의 변화를 주고 있으며, 개발하고 있는 문화상품에는 과감하게 현대적 감각을 많이 사용한다. 법 고창신( 法 古 創 新 )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전통 공예인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과제라 할 수 있다. 최상훈은 오래 전부터 나전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해 보려고 생각하고, 다양 한 기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이러한 것을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상훈은 그동안 연구, 개발한 나전과 관련한 디자인등록이 7개 있으며 앞으로 등록할 건이 몇 개 더 있다. 그런데 이들 7개의 등록은 일정 기간마다 수수료를 내어야 유지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탓인지 비용이 미납되어 6개는 등록이 취소되었고, 현재는 2007년 출원한 디자인 등록증 (등록 제 ) 하나만이 살아 있다.
13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8. 유산의 보호조치 이빈공예의 대표인 최상훈은 40년 넘게 나전칠기를 제작하고 있지만 20년 이상 작은 규모의 공방 에서 혼자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다. 그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민종태 보유자에게 나전칠기 기능을 전수 받았으나 제도권의 보호조치에서는 벗어나 있다. 최상훈은 한국의 나전공예가 발전하려면 후계자들이 많이 양성되어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음을 피력한다. 또한 지금처럼 나전일로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없 어 문제가 됨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적으로 적절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상훈은 7개의 디자인등록을 냈다. 이러한 디자인등록을 계속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비용을 납부해야 하는데, 개인 장인 입장에서 매번 부담하기 어려워 미납되어 결국 6개는 취소되었 다고 한다. 그는 애써 개발한 특허이지만 개인의 힘만으로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예로써 자신이 개발한 작품과 형태나 디자인 및 문양이 똑같은 작품에 대해 특허 침해를 호소했는데, 색깔 이 일부 바뀌었다고 보아 특허침해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장 인들이 개발한 기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보호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9. 계승방식 이빈공예의 최상훈은 1966년 유영수가 운영하던 나전칠기공방에 입사한 이후 고 민종태에게서 나전일을 전수받고 이후 독립하여 25년간 개인공방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렇 게 수 년간 기능 전수를 받았던 제자들은 이제는 독립하여 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데, 대표적인 인물로 백영달(50세)은 상일동에서 공방을 하고 있으며, 김영규(55세)는 경기도 광주에서 공방을 하 고 있다. 그밖에 대학의 공예과 학생들도 졸업 후 작가를 꿈꾸며 몇 개월씩 그에게 사사 받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수 년간 동고동락하며 기능을 전수 받았던 제자들이나 동료들과는 서로 소통하며 지내 고 있다. 현재 이빈공예는 장소가 협소하고 운영이 영세하여 본격적인 전승활동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현재의 공방은 협소하여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하여 정리가 되면 원하는 학생들을 받아, 스 승이 자신에게 가르친 것처럼 제자들과 작업 현장(공방)에서 함께 작업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전수 시킬 계획이다. 이때 나전기법에 대한 이론 정립과 이를 응용한 자기계발에 힘쓰도록 주력하고 있 다. 그와 함께 최상훈이 생각하는 전승방법은 청소년(고등학교) 때부터 공예에 뜻이 있는 학생을 모 집 교육하고 장학금도 지급하여 우수한 학생을 대학과 연계하여 공예과에 입학시켜 체계적으로 교 육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현재도 각 대학 공예과 학생들의 작품을 공모전 등에서 보면 전통 기능
13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에 목말라하면서, 디자인이나 문양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어 학생들의 감각에 놀라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 나이의 학생에게 이론과 실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그와 함께 현장(공방)에서 터득한 실기가 뛰어난 우수한 장인을 초빙해서 학생들을 교육하여 전통 나전칠기가 전승되길 희망 하고 있다. 10. 관련자료 전국적인 공모전 등에 참여하여 전시회 도록에 등재된 적은 있지만, 개인적인 작업만 하여 언론 등에 노출된 적이 없다. 11. 관련단체 현재 최상훈은 여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한국옻칠문화연구원에 가입하여 현재 기술자문위원이고, 각종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의 기술지도를 하거나 기타 공방의 요 청이 있을 때에 현장을 방문하여 기술 지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노인 복지와 관련 봉사활동과 후 원을 하고 있다. 한국공예예술가협회의 회원이며, 한국전통공예산업진흥협회에도 회원으로 활동하 고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공모전을 주최하거나 국내외의 전시회를 주최하고 회원전에 참여하고, 각 종 정보도 제공받고 있다. 최상훈은 민종태에게 물려받은 나전칠기 기예능의 기술을 활용해 칠기의 유물재현 문화상품의 개발과정을 체계적으로 적립하여 이들 단체 회원과 공유하기를 바라고 있다. 공방 내부 전경에서 인터뷰 중
13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1층 이빈공예 외관 내부의 재료상자, 소품전시, 도구, 건조장 등 재료상자 속에 깔끔하게 정리된 자개패 상자마다 들어있는 다종다양한 종류의 재료 스승 민종태의 유품인 거도로 상사 끊음질하기 가장 안쪽에 백골 상태의 상과 함궤 잘 정리된 각종 도구
13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스승 민종태의 각종 나전 도안 수백여 장 스승의 유품인 나전 도안 앞의 최상훈 장인 잘게 주름질한 자개 꽃무늬 스승의 유품인 활비비로 구멍을 뚫는 모습 자개 위에 글자 새기기 글자를 톱으로 주름질하는 모습 동선을 수동으로 꼬는 모습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한 나전칠기 소품
14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진성옻칠공예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7일, 10월 29일, 11월 1일 유산소재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 조사대상자 임충휴(남, 1949년생, 진성옻칠공예 대표) 1. 유산명칭 진성옻칠공예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4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진성옻칠공예는 대형 장농과 이층장, 화초장 등을 주로 생산하는 나전칠기 공방이다. 3. 유산의 소재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임충휴 3) 성별 : 남성 4) 나이 : 65세(1949년생) 5) 출신지 : 전북 고창군 신림면 송용리 93번지 6) 입문시기 : 임충휴는 1965년에 서울에 상경하여 나전칠기를 하는 지인을 통해 안승권이 운영하는 조안공예사에 입사하면서 나전칠기에 입문하였다. 안승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보유자 김태희의 제자이다. 7) 공방 이동지역 : 안승권의 제자로 30여 년에 걸쳐 전통 옻칠기법을 사사받아 1994년에 독립하였 다. 경기도 성남시에 자개부와 옻칠부를 포함, 직원 4명과 함께 진성옻칠공예를 설립하였다. 진성옻 칠공예는 안승권의 도움을 받으면서 70명까지 직원을 두는 등 발전하다가, 1997년 IMF를 거치면서 나전칠기 수요가 크게 줄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후 공방의 규모를 축소하여 운영하다가, 2013 년 5월 바로크C&F 본사가 있는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으로 옮겨 활동하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진성옻칠공예는 평화자개에서 자개 및 여러 칠기재료들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나전을 표현할 때 자개 외에도 대모, 난각, 상아를 비롯하여 짐승의 뿔과 금속선도 사용한다. 자개 외의 여타 다른 재 료를 활용한 예는 고려나전, 조선나전 작품에도 확인된다. 또 하나의 주재료인 칠은 나전칠기재료상 가에서 구하기도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칠장 정수화로부터 공급받아 타 옻칠과 차별화된 좋은 품 질의 옻칠을 사용한다. 백골제작은 석일공예에 의뢰하는데, 이곳에는 미리 옻칠작업을 한다는 것을 전제하여 사용하는 접착제가 접합부위 밖으로 밀려나오지 않게 가공을 한다. 일반 목공용 본드가 기
14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물에 도포가 되면 목재에 옻칠의 침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칠을 해도 얼룩이 남게 된다. 석일 공예에서 제작한 백골은 칠을 해도 탈이 안생기기 때문에 전국의 나전장들이 백골제작 의뢰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진성옻칠공예는 현재 직원이 6명이다. 작업장의 규모는 80여 평으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시 작품들과 무늬견본을 다량 제작하여 검증의 절차를 밟으면서 경쟁력 있는 상품 개발연구를 하고 있 다. 한편,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는 90여 평의 면적에 대 중 소 가구와 소품에 대한 전시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크C&F 본사 2층에도 테이블과 화장대, 침대 등 나전 및 칠화작품 가구 를 비치하여 홍보용 전시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나전칠기에 쓰이는 전통 도구를 기본으로 사용하나, 근래에는 개량된 도구를 이용한 수작업을 하 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도구의 기계화는 가능하지만 전자동화는 어렵다고 여긴다. 나전칠기 를 위한 설비 중 기계화된 것은 손으로 톱질해 오려내던 문양 부분을 여러 겹 한꺼번에 오리는 절삭 기이다. 절삭 작업 이외는 기계작업 없이 전부 수작업을 행한다. 뿐만 아니라, 진성옻칠공예는 옻칠침금 도장기, 프레스성형 칠기 가공법, 자개상사용 작두 등을 개발하여 품질개선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해 전통방법의 산업화에도 힘쓰고 있다. 3) 제작과정 나전칠기 제작과정 순서는 먼저 작품의 백골이나 나전디자인을 위한 도안작업을 한다. 그러한 다 음 소지목재를 골라 소목장에게 백골제작을 의뢰한다. 백골이 완성되면 사포로 곱게 손질한다. 백골 에 틈새나 홈이 있으면 곡수를 주걱으로 메워 건조시키고, 메운 부분을 사포로 다듬어 바닥 면과 고 르게 맞춘다. 이렇게 백골의 소지가 끝나면 백골을 견고하게 해주고 나뭇결을 메우기 위하여 생칠을 발라 칠장에 넣어 24시간 건조한다. 건조가 끝난 백골에 호칠로 베바르기를 하여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베의 눈매를 메꾸기 위하여 토회칠로 여러 번 반복하여 삼베표면을 평활하게 해준다. 그리고 토회 표면에 생칠을 한다. 자개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연마와 옻칠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 여 자개작업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밑작업을 완벽하게 해준다. 이렇게 밑작업이 완성되면 여러 나 전기법을 이용하여 칠 바탕에 표현해 준다. 나전기법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줄음질, 끊음질, 타찰기 법 등을 활용하는데, 이러한 기법은 다른 장인들과 차이가 없다. 이중 진성옻칠공예 대표 임충휴가 가장 즐겨 쓰는 기법은 줄음질과 끊음질이다.
14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진성옻칠공예 대표 임충휴는 안승권에게서 기술을 배웠는데, 안승권은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 보 유자였던 故 김태희의 제자이다. 그런 점에서 임충휴는 우리나라 근대 나전공예사에서 故 전성규로부 터 故 김봉룡, 故 김태희까지 이어지는 전승계보를 잇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있 어서는 전통적인 방식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현대화, 명품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진성옻칠공예는 바로크C&F라는 기업과 협업하여 기술이나 디자인 개발과 같은 새로 운 방법으로 나전칠기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표 임충휴는 경기옻칠조합 이사장으로 있 으면서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문화를 홍보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진성옻칠공예는 우리나라 나전의 전승계보를 이어가는 한편, 이를 통해 습득된 전통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가구에 응용하 는 시도를 통해 전통기술의 현대적 접목이라는 측면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하겠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진성옻칠공예가 현재 운영하는 전시장 및 홍보관은 서초구 내곡동과 서인천 가구단지에 소재하 고 있는데, 서울 쪽은 강남과 분당 경계의 상권에 위치하고, 서인천은 가구단지 내에 있기 때문에 운 영상 장점이 많은 곳이다. 진성옻칠공예는 나전칠기의 백골이 되는 원목이나 나전칠기에 필요한 재료와 공구들을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더욱이 바로크C&F와 협업으로 현대적인 시설과 설비를 갖추어 작업에 유리한 점이 많은데, 건물 2층을 분할하여 전시장, 옻칠작업장, 그리고 디자인 및 옻칠연구실을 함께 운영 하고 있다. 또한, 전통나전칠기의 현대화 명품화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조형예술가를 초빙 하는 등 전통나전기법 현대화와 산업화 및 친환경 웰빙가구 개발에 힘쓰고 있다. 진성옻칠공예 대표 임충휴는 전국 및 지방 기능경기와 장애인기능경기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나무수저 의 옻칠 자동 도포장치 와 옻칠목기를 이용한 다단식 적층촛대 라는 2건의 실용신안 특허를 보유하 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진성옻칠공예 대표 임충휴는 문화재수리기능자(1995), 칠기기능사(1997), 대한민국 명장(2004) 등 의 관련 자격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나전칠기의 유산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또한 그가 습득한 기술을 이론적으로 접근하고자 명지대학교에서 기능인과정, 연구과정 등을 수료하였다. 또 한 전통적인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산업화와 명품화를 지향하는데, 이를 위 해서 바로크C&F라는 기업과 여러 부분에서 협업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 옻칠정제연
14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구소의 설립은 기본재료라 할 수 있는 칠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 하겠다. 다량의 옻 칠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제된 옻칠의 질이 일정하지 않으면 같은 건조 조건이라도 작품에서 옻칠의 색이 다르게 나오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한편, 옻칠 도장과 연마 의 자동화 시스템 개발과 전통에 기초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의 조형디자인 개발 등은 진성옻칠공예 의 지향점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에 있음을 보여준다. 진성옻칠공예는 전통적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 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통의 산업화를 통해 나전칠기 유산의 지속을 도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9. 계승방식 진성옻칠공예 대표 임충휴는 안승권에게서 기술을 배웠는데, 안승권은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 보 유자였던 김태희의 제자이다. 그런 점에서 임충휴는 우리나라 근대 나전공예사를 이끌어온 전성규 로부터 김봉룡, 김태희까지 이어지는 전승계보를 잇고 있으며, 현재 활동 중인 나전장 보유자 이형 만, 칠장 보유자 정수화와 관계하면서 나전칠기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습득하였다. 임충휴는 나전칠 기를 보다 이론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명지대학교에서 기능인과정, 연구과정 등을 수료하면서 21 세기 신지식인 과정을 익히었다. 그리하여 2004년 명장으로 선정된 후에는 특색 있는 나전칠기 기 법개발에 힘써 왔다. 현재는 바로크C&F와 협업하여 임충휴가 40여 년간 익혀온 화초묘사 기법을 비롯한 다채로운 표현 기법을 현대적으로 개선하여 나전칠기의 세계화를 위하여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진성옻칠공예의 결과물들은 바로크C&F라는 기업의 자산이 되어 기업이 존속하는 한 기 능과 표현 노하우 등 나전칠기에 관한 지식들은 다음 세대에 전승될 것이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재 창조가 이루어질 것이다. 10. 관련자료 월간 오늘의 한국 작품 및 작가 소개 월간 종합대한뉴스 작품 및 작가 소개 환경시대신문 작품 및 작가 소개 정경기술신문 작가초대석 작품 활동 소개(1회)(2회) 조선일보 작가 소개 월요시사 작품 및 작가 소개 양영완 외 4, 고등학교 가구디자인, 서울특별시교육청, 2001 김용훈, 당신의 손은 무엇을 꿈꾸는가, 21세기북스, 2012
14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관련단체 진성옻칠공예는 바로크C&F와 협업으로 새로운 차원의 나전칠기를 연구하는 한편 한국의 옻칠문 화 활성화를 위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한국옻칠문화연구원, 서울특별시 나전칠기 가구공업협동조합, 한국공예산업총연합회, 한국공예예술가협회 등에서 이사 감사 부회장으로 활 약하고 있다. 토회칠 건조 중
14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인터뷰 중인 진성옻칠공예 대표 임충휴 진성옻칠공예 전시장 모습 전시 중인 견본 전시 중인 견본 작업도구와 재료 화문나전함 전시중인 작품 옻칠 내열성 테스트시편
14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청목공방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12일, 10월 29일, 11월 2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번지 조사대상자 김동숙(남, 1963년생, 청목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청목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4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청목공방은 나전칠기 작업 중 절삭기계로 절삭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공방으 로 많은 보유자와 명장들의 작품에 쓰이는 줄음질 자개를 공급하고 있다. 참고로, 나전칠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자개를 가공하는 섭패일도 나전장의 전승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섭패일과 관련된 청목공방도 조사하여 수록하였음을 밝힌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번지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나전일) 2) 성명 : 김동숙 3) 성별 : 남성 4) 나이 : 51세(1963년생) 5) 출신지 : 전북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 385번지 6) 입문시기 : 김동숙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1979년 2월 이모부의 소개로 이상권 공방에 자개부로 일하게 되면서, 나전칠기 일에 입문하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김동숙은 1982년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자개일 하청을 시작하였다. 1983년 서 울 광진구 구의동으로 이사하여 절삭(기계로 자개를 켬)을 배우며 절삭하청을 시작하였다. 1986년 군 입대후 제대하여, 1988년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에 종업원 10여 명을 고용하여 자개공방을 세웠 다. 1990년 구리시 교문동으로 공방을 확장하여 일하다가, 1997년 부도로 공방을 정리하였고, 이후 2010년 남양주시 금곡동에 청목공방을 열고 절삭일을 시작하였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청목공방은 자개 절삭일을 하청받아 납품하는 곳으로, 주 재료는 본자개, 판자개이다. 2) 시설 및 도구 절삭일을 하는 데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김동숙의 절삭 공방은 상대적으로 넓은 편에 속한다. 절삭기 2대를 놓고 일의 성격에 따라서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별도의 집진시설이 없기 때
14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문에 상시적으로 분진이 발생한다. 도구로는 판자개 100장을 붙이기 위해 무거운 쇠붙이가 쓰이고, 톱날 용접에 필요한 알콜램프, 줄, 붕사, 갠노(용재) 등이 있다. 3) 제작과정 절삭작업은 단순하지만 장기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자개를 오리는 과정에서 솜씨를 살려 세련되고 유려한 선이 나오려면 장기간의 기능 연마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나전칠기 작업에 서 자개일의 대부분을 장인들은 절삭전문가에게 맡긴다. 이것이 오히려 작업의 속도도 빠르고 깨끗 하게 주름질 되기 때문이다. 절삭기 취급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이아몬드 톱날의 용접이라 할 수 있는데, 방법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절삭장인들 가운데는 용접된 실톱날을 구입해서 사 용하는 공방도 있다고 한다. 톱날 끝의 단면을 비스듬하게 갈아서 붕사와 갠노를 서로 맞닿는 곳에 붙여서 알콜로 가열하여 붙이면 용접부위가 약간 굵어지는데, 이것을 줄로 갈아내면 완성이 된다. 그리고 100장의 판자개를 한꺼번에 오리기 위해서는 자개를 포개어 붙이는데, 너무 무거운 쇠붙이 로 눌러 붙이면 자개의 절삭 부위 밀도가 높아 톱날이 부러지고 절삭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자개를 포개 붙일 때 적당한 무게로 눌러 판자개와 판자개 사이에 알맞은 틈이 있어야 최적의 절삭이 가능 하고 작업 능률이 향상된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김동숙은 2003년 경기도장애인 기능경기에 참여하여 금상, 동년 전국대회 은상, 2004년 경기도 기능경기 은상, 전국대회 동상을 수상하는 등 나전칠기 기능을 익혀왔다. 그리고 2005년부터 남양 주공고 건축과 기능반 절삭 지도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산이 지니고 있는 기능을 사회의 후학들에 게 교육하는 일을 하여 왔는데, 지도한 장애인 선수들이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매년 우수한 성적 으로 기능경기대회 자격시험에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9년 사라져가는 나전칠기 를 살리기 위해 남양주공예인협회 창립에 참여하여 전시회를 비롯한 나전칠기 알리기를 시작하였 다. 2010년 나전칠기가 전국기능 올림픽종목에서 폐지됨에 따라 남양주공예기능인협회에서 민간대 회 한국나전칠기기능대회 및 전통공모전 유치에 참여하였다. 김동숙은 자개 절삭 교사이면서 남양주시와 한국 나전칠기 활성화의 일환으로 기능경기대회와 공모전 유치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청목공방 김동숙의 경우 작업환경이나 여건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금곡동 남양주 시청 후문
15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에는 작업실과 자신이 디자인하여 주문 제작한 작품과 나전문화상품을 진 열해 놓은 작은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나전일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절삭 자개 공급에 유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나전칠기 제작 공방들이 많은 길목이며, 공방들이 밀집되어 있 으므로 이 일대에는 나전칠기 종사자들이 몰려있다. 종사자들은 크게 가구류를 비롯하여 선물용, 장 신구 등을 만드는 장인과 저렴한 관광기념품 등을 제작해 각지에 공급하는 공방들로 나뉜다. 그래서 청목공방은 이들 공방을 상대로 절삭한 자개를 납품하면서도 다양한 문화상품을 설계하여 나전공 방에 제작 의뢰하여 전시 판매 및 납품을 하고 있다. 청목공방과 같은 절삭일을 하는 장인들의 경우 대부분 절삭기 2대를 놓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에 서 판자개 100장 위에 그려진 복잡한 문양을 다이아몬드 실톱으로 하루 종일 절삭한다. 김동숙은 절삭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안에 그려진 그림의 성격에 따라 자개의 종류와 자개의 색상을 코디 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즉 절삭 기능뿐만 아니라 자개를 그림의 상황에 맞도록 배치하는 일도 오랜 경험으로 얻어지므로 쉽게 취급할 일이 아니다. 한편 청목공방은 나전칠기 활성화를 위하여 남양주공예인협회 회원으로 전시회를 비롯한 나전칠 기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청목공방 대표 김동숙은 2005년부터 남양주공고 건축과 기능반 절삭 지도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산이 지니고 있는 기능은 자개절삭 교육을 통하여 후학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고교생이기 때문에 직업으로 이어질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지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니 기대를 가져본 다. 그리고 작품 문양의 자개를 색상별로 배치하는 지식은 주변 공방의 자개부와 칠부 장인들에게 반복적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일이 경과하면 상대 공방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청목공방의 기능이 학생들에 전해져 기능경기대회를 통하여 갈무리되고 주변 공방들과 팀워크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그 기간 동안 유산은 보호될 것이다. 9. 계승방식 청목공방 대표 김동숙의 나전칠기 전체 기능 계승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지만, 자개 절삭일은 고 교생들에게 전해져 기능경기대회를 통하여 평가되면서 전해지고, 작품 문양의 자개를 색상별로 배 치하는 지식은 주변 공방의 자개부와 칠부 장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15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남양주공예인협회 회원으로 전시회를 비롯한 나전칠기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용접 설명중인 김동숙 대표(좌측)
15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인터뷰 중인 청목공방 대표 김동숙 청목공방 절삭기 다이아몬드 톱날 용접 도구 절삭한 판자개 사용 중인 후패 청목공방 대표 김동숙 작품 청목공방 대표 김동숙 작품 청목공방 대표 김동숙 작품
15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크리스탈칠기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성웅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유산조사일 2013년 9월 14일, 10월 17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3동 조사대상자 김규장(남, 1955년생, 크리스탈칠기 대표) 1. 유산명칭 크리스탈칠기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나전칠기 기법은 비록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태국 등 동아시아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나, 유독 한국의 나전칠기만이 그 기술적 성과나 예술성이 뛰
15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어나고 대중화에도 성공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공예라 아니할 수 없다. 이처럼 한국에서 나전칠 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께 전승되어 왔다. 크리스탈칠기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 가구를 완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업 화, 전문화된 제작 방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국내산 자개나 칠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거 나, 기계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에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전칠기의 전통적 수작업 방식이 후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크리스탈칠기에서는 서울 지역에서 소비되는 장롱 과 같은 대형 가구를 제작하는 등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시 광진구 중곡3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김규장 3) 성별 : 남성 4) 나이 : 59세(1955년생) 5) 출신지 : 충청북도 괴산군 6) 입문시기 : 크리스탈칠기의 대표인 김규장은 1955년 충북 괴산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괴산 의 칠성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연로하신 부친이 작고하자 당시 서울에서 나전칠기공방을 운영하던 형(김규일)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고 낮에는 형의 공방에서 나전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주름질을 비롯하여 옻칠 등 다양한 나전일을 배운 후 1977년 처음으로 자립하 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김규장은 1977년 강동구에 직원 2명을 데리고 칠성공예사 를 설립하였다. 그 후 주문이 많아져 1984년에는 하남시에서 직원 10명을 데리고 공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번성기인 1990년에는 중곡동에서 제법 큰 공방을 운영하였고, 한창 때에는 직원이 50여 명이나 되었다. 그러 나 1999년 IMF로 나전칠기의 주문이 뚝 끊겨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후 2000년에는 중곡동에 크리스탈칠기라는 공방을 개설하고, 4층짜리 주택에 소규모의 공방과 전시실을 겸하고 있 다. 2003년에는 명장으로 선정된 바 있다. 크리스탈칠기의 대표인 김규장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나전일에 관하여는 2000년에 칠기능사 자
15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격취득, 2001년에는 패세공기능사 자격취득 을 하였고, 2003년에는 명장 으로 선정되어 그 기량 을 공인받았다. 그는 각종 전시회에도 열정적으로 출품하여 1995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에서 입 선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동 전시회에서 1등상인 금상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제1회 문화관광 상품개발공모전 에서 우수상, 제14회 대한민국국제미술대전 에서는 공예대상 등을 수상해 그의 기 량에 예술성까지 인정받게 되었다. 김규장은 자신의 업무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왕성한 사회활 동, 봉사활동으로 표창장 6회, 감사장 3회, 공로패 3회나 수여받아 나전장으로 보기 드물게 이 분야 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 밖에 국내외 각종 전시회에 무려 42회나 출품하여 나전장 중에서 가장 많은 전시회 참가 기록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작품 제작에 열중하였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크리스탈칠기에서 제작하는 나전칠기가구의 작품 바탕이 되는 백골은 김규장 자신이 원하는 기 물의 디자인을 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경기도 포천시의 배진근이나 경기도 파주시 임영율에게 의뢰 하여 가구를 제작해 온다. 나전일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개패는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 일대에 산재한 나전칠기 재료상가에 서 구입해 쓴다. 그러나 크리스탈칠기에서는 특수한 재료를 이용해 나전칠기의 영역을 넓히고 아름 다움을 더 하기 위하여 다양한 재료를 나전일에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외국의 특이한 조 개는 물론 상아라든가 대모, 난각, 각종 짐승의 뿔과 껍질 등을 나전과 같이 사용해 효과를 더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금사나 동선 등은 기본이다. 이러한 특수 재료를 얻기 위해 그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외국에도 자주 나간다. 근래에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기 위해 녹색 바탕에 빨간색 줄이 선명한 옥충( 玉 蟲 ) 을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다. 나전칠기에서 또 하나의 주재료가 되는 칠은 나전칠기재료상가에서 구하거나 중요무형문화재 제 113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에게서 공급받아 사용한다. 이것은 칠의 품질에 대한 관심도가 높기 때문 이다. 어교는 자신이 부레 등을 구입해 만들기도 하지만 시간적 효율을 위해 나전칠기재료 상가에서 구입하는 경향이 많다. 2) 시설 및 도구 크리스탈칠기는 중곡동에 위치해 있는 빌라형 벽돌 4층의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계단을 따
15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라 1층으로 내려가면 사무실 겸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공간이 나온다. 지하실은 사무실이 중간에 있고 왼쪽으로 탕비실, 오른쪽으로는 꽤 넓은 공간에 전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로 들 어가자마자 한쪽 벽면 가득 전세계에서 나는 전복껍질, 소라껍질, 조개껍질 등이 원패와 껍질만 가 공한 것이 진열되어 있다. 그 자신이 필리핀이나 뉴질랜드 및 멕시코 등을 여행하면서 나전칠기 작 업에 재료가 되는 껍질을 마련한 것이다. 진열장 위로는 외국에서 수입해 온 거북[대모]이 십여 개 쌓여 있다. 사무실의 탁자와 소파가 있고 그 옆 책꽂이에는 나전일을 하는 데 필요한 문양 사전이나 목공예 및 칠 관련 도록과 서적이 꽂혀 있어 전통 공예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지하 1 층 전시장은 넓고 조명시설도 완비되어 있어 장롱과 탁자 및 문갑 등 가구 일습이 배치되어 있다. 그 공간의 오른쪽 아래 문갑에는 옥충이나 금은, 상어가죽[어피] 등 자개와 함께 사용하면 장식 효과가 있는 고급 재료들이 수장되어 있다. 아울러 이러한 다양한 재료들의 가공이나 활용에 대한 특허 기 록 등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크리스탈칠기의 작업장은 건물의 1층 60평에 해당된다. 이곳은 주로 자개부로서 3명의 장인이 주 문해온 백골 위에 자개 문양을 디자인하고 자개를 오리거나 붙이고 지지고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 다. 규모가 큰 나전칠기 공방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탈칠기 또한 자개부는 서울에, 칠부는 경기도 구 리시에 60평가량의 작업장을 가지고 있다. 서울 자개부에 3명의 장인이 있고, 칠부에도 3명의 장인 이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칠일을 경기도에 두는 이유는 칠을 하면서 나오는 공해 때문에 서울에서 작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그중 구리시가 땅값이 싸고 공간 활용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 두 곳의 작업장에서 큰 것으로는 대형자개장롱이나 탁자 등 가구를 만드는데, 자개일이 워낙 손이 많이 소요 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한 달에 불과 20여 점 내외를 제작할 뿐이다. 과거 크리스탈칠기에서는 문화 상품이나 관광용 소품도 제작하였으며, 이들 작품은 현재의 작업장이자 전시실인 중곡동 자택을 개 인적으로 내방한 방문객에게 선물하거나 외국 바이어의 주문에 의해 팔려나가고 지금은 거의 만들 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곳 공방에서 주로 생산하는 것은 장롱, 탁자, 예물함, 각종 소반, 경대 등 비교적 크고 가격이 비싼 가구류가 주종목이다. 한편 2층과 3층의 공간 또한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방은 안방가구 일습을 여러 벌 놓아 형 태나 문양 및 기법을 비교할 수 있게 마련해 두고 있다. 거실은 거실대로, 작은 방은 작은 방대로, 벽 은 벽대로 다종다양한 가구와 함궤, 상자나 불화 및 예전에 만들었던 소품류까지 제대로 조명을 받 아 오색영롱한 자개빛을 발산하고 있다. 전통적인 국내산 전복 자개뿐 아니라 필리핀이나 뉴질랜드 및 멕시코 산의 각종 자재류를 자유롭게 운용하여 화려한 장식의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계란껍질을 이용한 난각이나 일본산 칠분을 이용하여 꽃이나 동물들에 다채로운 색상을 부여하는 전통을 개량 하여 외국의 새롭고 혁신적인 기법까지 수용하여 나전칠기 기법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5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이렇게 전통 자개 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자개패를 활용하는 크리스탈칠기에서는 그에 걸맞는 다 양한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나전일을 하는 도구 중 활비비, 거도, 실톱 등 전통적인 도 구는 당연히 가지고 있으나 근래에는 어느 정도 개량된 도구를 이용한 수작업을 한다. 그러나 나전 도구의 기계화는 가능하나, 전자동화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전일을 위한 설비 중 기계화된 것은 손으로 톱질해 오려내던 문양 부분을 절삭기로 여러 겹 한꺼번에 오려내는 정도에 불과하다. 칠은 붓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 분무기인 피스 작업으로 공정을 조금 쉽게 하기도 한다. 3) 제작과정 크리스탈칠기의 대표인 김규장이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작업 순서와 일치한다. 무엇보다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전 작품의 도안작업을 하는 일이다. 곧 김규장은 작 품이나 상품을 만들 때 형태나 문양은 전통에 바탕을 두지만 새로운 문양과 기법을 구사하기도 한 다. 가끔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현대적인 디자인을 채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류가 된 적은 없다. 그는 전혀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기 보다는 기존의 기법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재료를 구사한다거나 보다 세련되고 정치한 나전칠기 기법의 궁극적인 표현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러나 서재에 그득한 각종 서적과 자료를 보면 그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 탐구에 게을리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다음 자개본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나전작업에서는 주름질, 붙임질, 지짐질, 끊음질 등 을 활용하는데 이러한 기법은 다른 장인들과 차이가 없다. 이중 김규장 자신이 가장 즐겨 쓰는 나전 기법은 주름질과 타찰끊음질이다. 이중 백골 전체 바탕에 타찰끊음질을 하는 것은 새로 개발하거나 현대화된 기법이다. 특히, 김규장은 타찰끊음질과 살치기에 장기를 발휘하며, 독창적 기법은 아니지 만 금은평탈과 상아, 대모 타찰끊음질을 애용하는 편이다. 김규장은 오랜 세월 나전일을 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작업 능률을 향상 시키며, 품질 향상을 위하여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여러 가지 특허까지 갖게 되었다 즉, 그는 나전일에 대한 새로운 방법과 기술의 향상은 공정을 원활하게 하고 나아가 작품의 질을 높인다는 인식을 하 고 있다. 그가 받은 대표적인 특허에는 자개붙임 전기인두 개발(실용신안특허 제 호), 자개 부착용 자동상사칼 개발(실용신안특허 제 호), 금속선압착기 개발(의장등록특허출원 ) 이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현재 나전칠기의 모든 재료상가는 서울지역 특히, 성동구 왕십리 일대를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
15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아울러 서울시 중곡동 근처에는 대형 가구판매장이 집결되어 있어 나전칠기가구의 판매가 활성화 되어 있다. 이처럼 서울은 나전칠기를 작업하기 위한 재료의 원활한 공급이 활발하고, 기술자가 많 고 수요자가 많아 소비가 유리한 지역적 이점이 있다. 때문에 서울에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시 도 무형문화재, 명장 등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는 등 나전칠기의 사회 문화적 기능이 활발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서울만의 지역적 특성이나 장점은 사라질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기후, 습도, 온도를 능히 조절할 수 있으므로 나전칠기의 경우처럼 전통공예의 지역적 특징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경우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 환경에서 김규장 또한 1977년 서울에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공방을 세워 운영하였 다. 10년이 지나자 한국 나전칠기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의지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 게 되었다. 그는 1989년 도쿄 국제가구박람회 때 공작패를 사용하여 타찰법으로 나전칠기테이블을 제작 출품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후 꾸준히 일본에 작품을 보내 전시와 판매를 하게 되었는데, 2004 년 일본에서 명장 초청전 개막 당일, 그가 출품한 작품 전체가 매진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김규장은 나전칠기작품으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나전칠기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예를 들어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세계정상회담 장소인 누리마루 회의장 입구에 길이 6m가 넘는 초대형 나전칠기작품 <십장생도>를 20명의 나전 장인을 지휘해 6개월에 걸쳐 제작 해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세계 정상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도 이곳을 관람하는 관광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에서는 북에 주는 선물로 김규장이 제작한 대형 <십장생병풍>을 마련하여 김정일에게 주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밖에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궁궐생활상 재현사업으로 경복궁의 강령전과 교태전에 <대모어피상> 을 제작 설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금도 경복궁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나전칠기의 아름 다움을 과시하고 있으며, 해외전시회에서도 한국 나전칠기의 미를 알리는데 공헌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크리스탈칠기의 김규장이 제작한 작품들은 개인의 작품을 넘어 국위선양에도 큰 도움이 되는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크리스탈칠기의 작업장 겸 전시장이 있는 중곡동 큰길, 즉 군자교에서 천호대교로 가는 길 양 편 은 서울에서 가장 큰 가구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 거리의 가구상들은 비교적 고급가구를 취 급하는 곳으로 수입가구상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 가구상 중에는 상당수가 나전칠기 제품을 취 급하는 곳이 많다. 이러한 대형 가구상들이 밀집되어 있으므로 이 일대에는 나전칠기에 종사하는 사 람들과 공방이 몰려있게 마련이다. 김규장의 경우에도 바로 가구상들이 밀집한 중곡동에 1989년부
15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터 크리스탈칠기 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은 나전일에 대한 정보와 작품 공급에 유리한 위치를 차 지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현재 명장을 비롯하여 30~40여 명이 나전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지역적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다. 왜냐하면 중곡동 일대가 1970년부터 면목동에 이어 개발된 당시의 신도 시적 지역이므로, 이 지역 나전일은 1980년 이후부터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탈칠기의 경우 그 작업환경이나 위치는 대단히 양호한 편이다. 중곡동에 있는 그의 4층짜 리 건물에서 지하와 2층의 각방과 거실 및 복도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진열해 놓아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1층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큰 칠작업은 구리에 있는 작업장에서 준비를 한 다. 자신의 연구실과 전시장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은 이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바람인데, 김규 장은 이런 점에서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보여진다. 8. 유산의 보호조치 나전일을 보호한다는 것은 일반 제조업이나 어떤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나 전공예는 한국만의 독창적이고 역사가 깊으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과 독자성을 지닌 하나 의 예술분야이자 문화유산이다. 특히 크리스탈칠기의 대표인 김규장은 특허를 끊임없이 개발한 점 과 명장으로 선정된 점에서 유산의 보호에 기여하고 있다. 우선, 특허와 관련한 점이다. 나전칠기를 작업함에 있어 장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이 있고 새로운 기법의 개발이나 디자인의 창안도 활발한 편이다. 장인들의 특별한 기능과 독창적 기법, 디 자인 등은 특허로 보호되고 있다. 그중 크리스탈칠기의 김규장은 발명특허 2종과 실용신안특허 2종 그리고 의장등록특허 2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김규장은 이러한 특허를 자신과 크리스탈칠기의 전유물로 생각하기보다 좋은 기법을 다른 장인들이 잘 선용하기를 바라는 대승적 아량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허를 함께 공유하려면 장인들과 협업을 하거나 제자들에게 교육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수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장인으로서 나전칠기 작업에 몰두하고, 장인이 취득한 특허 의 활용은 물론 신규 등록, 특허관리와 유지 및 지적재산권 등에 대한 분야는 국가나 관련 단체에서 위탁하거나 대행해주는 방안이 마련되길 요청하고 있었다. 다음, 명장에 선정된 것이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30년 이상을 나전칠기일에 종사하였 는데,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종사하여 쌓은 기량과 기술을 노동부에서 평가를 받고 2003년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자부심을 갖고 공방의 작업 또한 상업적인 것에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곧 나전 일의 세계화, 마케팅, 새로운 기법 개발에 힘쓰고 있다. 명장에 선정된 이후 나전칠기를 해외에 알리 기 위한 전시가 늘었고, 국가적인 작업에 참여하는 일도 느는 등 나전칠기 일에 긍지를 느끼고 있다.
16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9. 계승방식 크리스탈칠기 대표인 김규장의 나전일에 관한 계보는 일찍이 나전일의 대가였던 서울시무형문화 재 민종태에게서 비롯된다. 민종태의 기능은 후계자 백양흠에게 이어지고 또 그의 제자였던 김규일 에게 전승되었다. 김규장은 바로 형이던 김규일에게 1973년 4월부터 나전기법 전체(도안, 본, 주름질, 부침질, 지짐질, 끊음질 등)를 배웠다. 함께 일을 한 동문으로는 김홍기, 김형오, 김영곤, 김광웅 등이 있다. 이처럼 그는 나전칠기와 관련된 역사적 계보를 가지고 있다. 김규장은 기술 향상을 위해 여러 기술자들과 교유할 뿐 아니라 나전칠기에 대한 학구적 성취를 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4호 끊음질장 고 심부길 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 형만 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가 그들이다. 한편 명지대학교 전통문화 대학원 기능인과정을 수료하거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구과정에 등록하여 참여하는 등 21세기 신지 식인으로의 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다. 그는 현재 사업을 축소해 중곡동과 구리에 장인 6명을 데리고 작업을 하고 있다. 직인들은 전문적 인 기능은 있으나 봉급을 받는 직업인으로서 전수를 받기는 어렵다. 그런데 근래 아들(김광융, 1982 년생)이 대학 경영학과를 나왔음에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전수를 받으려고 하였다. 곧 그의 계승방 식은 부자지간의 도제교육을 하고 있다.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나전칠기를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배우는 계승방식은 바람직하다. 부자가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과 일들을 같 이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규장은 10여 년 이상 걸리는 30여 가지에 이르는 나전칠기의 여러 공정 및 자신이 개발하고 특허를 받은 방법까지 가르치려 한다. 더 욱이 김광융은 칠일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에게 전수받는 중이다. 이렇게 김 규장의 나전일은 아들에게 전수를 하고 있다. 10. 관련자료 김규장은 나전칠기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작품으로 말한다 하여 각종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모전에 출품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결과로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아 많은 관련자료를 남기었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 과 같다 : 일간스포츠, 세상의 맨 꼭대기, 누리마루 : 한겨레신문, 겨레의 미 외 다수 : KBS 보도, 가치 대발견, 보물찾기
16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 MBC 보도, 공감, 특별한 세상 : MBC 보도, 생방송 화제집중 : KBS 보도, 세상의 아침, 공방이야기 : MBC 뉴스, 남북정상회담 나전칠기병풍 선물 : 세계일보, 12장생도 나전칠기 장롱 : 동아일보, 1억원짜리 나전칠기 장롱 : 중앙일보, 1% MVG 마케팅 : 중앙일보, 놀라워라 한국 옻칠공예 : 내일신문, 공방이야기 : 재외동포신문, 옻칠의 재발견 : ART NEWS, 온고지신 몸소 실천하는 나전칠기 명장 김규장 : 조선일보, 제1회 전통공예대전 장터 에서 수상 기사 : 서울파이낸스, 제1회 전통공예대전 장터 에서 김규장 대상 수상 기사 : 조선일보, 나전칠기 김규장 명장 : 조선일보, KDB금융그룹 박대통령 취임축하광고에 김규장 작품 이용 11. 관련단체 김규장은 현재 대한민국명장회, 한국칠예가협회 에 초창기부터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를 통하여 나전칠기 관련 정보나 자료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활동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관련단체와의 적극적인 활동과 참여를 통해서 기술적인 발전이나 해외 진출과 같은 대 외활동 분야에서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 같다.
16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중곡동에 위치한 4층 빌라, 크리스탈칠기 지하 1층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김규장 지하 1층 벽면을 장식한 전세계 각종 패류 수입산 비단벌레와 대모 금은선을 활용하여 작업하는 모습 자개패를 이용하여 아이디어를 구상중 1층 자개부 작업실에서 아들의 작업을 살펴보는 김규장 1층 칠부 내 건조장의 모습
16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지하 1층에 마련된 가구 전시장 2층 전시장 내 각종 문화상품 2층 전시장의 장롱과 테이블 2층 전시장의 각종 가구류 지하 1층에 전시된 관광문화상품 3층 전시실의 소품 자개와 칠분 및 금으로 장식한 자개장 자개장의 십장생 문양
16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평화자개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12일, 9월 13일, 10월 29일 유산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도선동 조사대상자 김영배(남, 1951년생, 평화자개 대표) 1. 유산명칭 평화자개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6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평화자개는 섭패공방이나 칠 채취자 등과 협업하여 나전일의 필수 재료 자 개와 원패 옻칠 도구 등을 전국 공방에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참고로, 나전칠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자개를 가공하는 섭패일도 나전장의 전승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섭패일과 관련된 평화자개도 조사하여 수록하였음을 밝힌다. 3. 유산의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도선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나전일) 2) 성명 : 김영배 3) 성별 : 남성 4) 나이 : 63세(1951년생) 5) 출신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 입문시기 : 김영배 대표는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군 제대 후 농협에 근무하던 중 고향 형의 권 유로 1978년 초 섭패공방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입문의 계기가 되었다. 가게 또한 형의 도움으로 1979년 2월 15일 화양리에서 평화자개를 열게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1979년 2월 15일 화양리의 평화자개는 6개월째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하였다. 자 개일을 몰라서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자개를 배워가면서 점차적으로 자개의 매력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개의 수요가 줄기 시작하자 후미진 곳에 위치했던 가게를 목이 좋은 3.5 평 공간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낸 후 1995년 서울의 자개 생산의 중심인 왕십리로 옮겼으며, 이후 2008년 도선동의 3층 건물로 옮겨 와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모든 원패는 바다 환경에 따라 서식지에 층을 이루며 성장속도나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예를 들 어 전복류만 보더라도 수심 10~30m 이상에 서식하고 있으며, 자개로 활용될 수 있는 원패로 성장 하는 기간도 보통 30년 이상 지나야 된다.
16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1) 전복류 색패(Haliotis discus hannai) : 주산지는 한국 북한 중국이며 푸르고 붉은 색깔의 진한 색상 을 띤다. 남해에서 서식하는 전복이 바닥이 평평해서 가공이 용이하고 면적을 넓게 가공할 수 있으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패의 크기는 가로 8.5~14cm 정도이다. 청패(Haliotis discus) : 한국 일본의 남해에 서식하며 청색과 푸른색이 물결모양으로 되어 있 고 은은한 단색이다. 암컷은 둥근모양이며 바닥이 평평하고 두꺼우며, 수컷은 길쭉한 모양이며 바닥 두께가 얇다. 가로 13~16cm, 세로 10~13cm 정도이다. 멕시코패(Haliotis fulgens) : 산지는 멕시코 북서쪽 바하켈리포니아 반도 중부지역이며, 수심 20~30m에 서식하고 있다. 공작새의 깃털처럼 푸르고 영롱한 빛깔과 잔잔한 무늬가 조화를 이 룬다. 원패의 크기에 따라 대패, 중패, 소패로 구분하며 바닥을 입술, 중장, 뒷장, 막장으로 재단 하여 가공한다. 원패의 아래 맨 끝 부분을 옥패라고 하는데, 두껍게 가공하여 입체적으로 사용 하기에 좋다. 뉴질랜드패(Haliotis iris) : 뉴질랜드 남쪽 섬이 주산지이며 패의 크기가 크면 푸르고 보라색이 진하며, 패의 크기가 작으면 금색을 띤다. 패의 뒷면 껍질 쪽으로 좀이 많은 것이 흠이기는 하 나 자개 활용에 있어 기본품목으로 많이 사용한다. 가로 11~15cm, 세로 8~11cm 정도이다. 레드패(Haliotis rufescens) : 미국 서부에서 멕시코 캘리포니아 반도가 주산지이며 수심 30m 이상에서 서식하고 껍질색이 붉은색 계통인 것이 특징인데 전복류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크 다. 얼룩무늬가 은은하며 다채롭다. 산지가 남쪽보다 북쪽인 것이 크고 색상도 좋다. 가로 16~22cm, 세로 13~18cm 정도이다. 호주패(Haliotis laevigata) : 호주 남북쪽이 산지이며 미색 바탕에 연분홍색과 연청색을 띤다. 크 기에 비해 가볍고 단색이며 다른패에 비해 바닥이 고른 편이여서 면적을 넓게 가공할 수 있어 주름질 기법에 많이 이용한다. 대만패(Notohaliotis cracherodii) : 멕시코 북서 켈리포니아 반도가 주산지이며 수심 10m 미만 에 서식한다. 껍질 색깔이 검은색인 것이 특징이고 붉고 푸른색이 강하고 영롱하다. 주산지와 관계없이 대만패라고 불려진 것은 처음 원패를 독점 수입한 사람이 산지를 비밀로 하고자 붙 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가로 11~15cm, 세로 8~11cm 정도이다. 신발패(Haliotis asinina) : 주산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이다. 은은한 청색을 띠며 보는 각도에 따라 명암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원패의 생긴 모양이 신발과 비슷하여 신패 또 는 당나귀 귀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당나귀패라고 불려 지기도 한다. 가로 6~10cm, 세로 3~5cm 정도이다.
16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핑크패(Haliotis corrugata) : 멕시코 캘리포니아 반도가 주산지이며 수심 15~20m에서 서식한 다. 멕시코 패와 비슷한 무늬이지만 핑크 색상을 많이 띠고, 크기에 비해 무겁고 강하다. 멕시 코패 대용으로 많이 이용해 왔다. 가로 11~14cm, 세로 8~10cm 정도이다. (2) 소라류 야광패(Turbo marmoratus) : 주산지는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아, 바나트, 일본 등이다. 나선형이며 산지에 따라 크기와 모양, 색깔이 다르고 붉고 푸른 은은한 빛깔의 조 화가 신비스러워 자개 중에서 최고로 인정되며, 길게 가공할 수 있어 공작새 꼬리같은 긴 문양 에 이용되었고, 작품에서도 포인트에 쓰여진다. 한 장의 무게가 700g~1kg이 가장 적당하며 미 얀마 산을 그 중 최고로 친다. 수도리패(Tectus niloticus) : 주산지는 인도, 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며 흰 바탕에 무지개 빛이 은은하다. 원패의 생긴 모양에 따라 뽈록, 반뽈록, 평면형으로 구분되며 색상도 조금씩 다 르다. 주로 야광패 대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뿔소라패(Turbo cornutus) : 우리나라 남해, 제주도에 서식하는 원패를 주로 가공하는데, 은은 한 붉은색과 청색이 조화된 단색이다. (3) 진주패류 진주패(Pinctada maxima) : 주산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이며, 백색과 황색을 띠고 무지개 빛 보석 진주를 만들어 내는 모패이다. 껍데기를 등갈이 하지만 최대한 두껍게 가공하기 때문에 조각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평면으로 두껍게 켜서 후패로 0.1mm 이하로 내린 박패 는 가장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가로 12~22cm, 세로 13~23cm 정도이다. 흑진주패(Pinctada margaritifera) : 주산지는 인도네시아, 필리핀이며 흑진주 양식을 하는 타이 티산을 많이 이용하는데 필리핀산은 흑색과 노란색이 혼합되어 있지만, 타이티산은 두껍고 색 깔이 단순 검은색이어서 이용가치가 높다. 가로 9~15cm, 세로 10~16cm 정도이다. 홍진주패(Pteria penguin) : 주산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이며 빛깔은 갈색이고 볼록한 모양과 납작한 모양이 대칭이 되어 서식하는데, 납작한 쪽은 색깔은 연하지만 평평해서 쓰임이 용이하 나, 볼록한 쪽이 색깔이 진하고 면적이 커서 주로 많이 이용한다. 진주패, 흑진주패와 함께 조 각하여 입체적 표현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민물패(River shell) : 주산지는 한국과 중국이며 강이나 호수에서 서식하는데, 근래는 진주를 양식하는 데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바닥 쪽은 엷은 주홍과 백색이
16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나 귀 쪽은 갈색 얼룩무늬가 있다. 좌우대칭이며 중국이나 베트남, 미얀마에서 액세서리 또는 장식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4) 원패의 선별 원패는 그 용도에 따라 선별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나전칠기에 활용되는 자개로 가공되는 원패 선별 기준은 대개 모양, 색깔, 상태, 크기로 선별한다. 진주패류 : 근래에는 백색을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백색을 우선으로 하며, 크고 뒷면에 벌 레가 먹지 않은 다시 말해 좀이 없고 깨끗하며 불필요한 딱지가 붙어 무게를 더하지 않는지, 깨 어지거나 건조되는 과정에서 금이 가지 않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전복류 : 전체적으로 원하는 크기대로 일정한지, 파손되거나 금간 곳은 없는지와 색깔이나 모 양을 살펴 선별한다. 소라류 : 야광패인 경우 산지에 따라 크기와 색깔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산지 선택이 중요하 다. 특히 원패의 귀쪽 부분의 생긴 모양에 따라 무게 차이가 크고 안쪽 면을 보아서 나이테 같 은 결이나 좀이 보이면 노패이기 때문에 잘 살펴 선별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특히 가격이 고가인 점을 감안할 때 가격 대비한 선별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얀마산 원패가 가장 색 깔이 좋고 최고품으로 평가된다. 미얀마산의 경우 한 장의 무게가 600~800g이 가장 좋다. 2) 시설 및 도구 평화자개는 경남 통영, 경기, 필리핀 섭패공장 등에 원패를 직접 공급하고 가공된 자개를 전량 되 사는 방법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1995년 왕십리에서 5년 정도 가게를 운영하다가 2008년 지상 3층 지하 1층의 지금의 도선동으로 이전하였다. 층당 면적은 35평이며 지하는 원패창고, 1층은 매장과 사무실, 2층은 공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1층 매장에는 원패와 자개를 전시 판매하고 있지만 나전칠 기 작업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와 생칠 투명칠 색칠 등도 구비되어 있다. 나전칠기를 하는 장인을 비롯하여 배우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방문하는데, 나전일 관련 용품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한국 유일 의 나전칠기 전문매장이다. (1) 섭패공장 시설 섭패공장은 처음 시공단계부터 가공기계의 위치와 설비를 고려하여 건축한다. 기계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콘크리트 벽을 약 1m의 일정한 높이로 떨림이 없도록 튼튼하게 쌓고, 모터를 고정시키기 위 한 긴 볼트를 깊게 박는다. 그리고 벽 두께에 맞추어 완충역할을 하도록 통나무가 부착된다.
16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동력장치에 샤프트를 고정시키고 숫돌을 끼워 모터와 벨트를 연결, 숫돌이 회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한쪽 끝부분에는 팬을 설치해서 재단된 원패의 전면과 뒷면을 깎아내릴 때 생기는 분진을 빨 아들여 집진기로 보내지기 때문에 분진이 외부로 나가지 않는다. (2) 섭패공장 도구 원판톱 : 원패 종류에 따라 두께 0.5~0.8mm(전복류 0.5mm, 야광패 0.8mm)의 다이아몬드 톱으 로 부위별 또는 작업에 적합하게 재단할 때 사용한다. 숫돌 : 폭 3인치, 원지름 약 25cm mesh80을 주로 사용한다. 켜는 기계 : 재단된 패를 일정한 두께로 켜는 기계이다. 자개 펴는 기계 : 자개의 휘어진 각도를 감안하여 물의 온도를 약 60~70 유지시키면서 천천 히 반복하여 눌러 평면으로 편다. 초경날 기계 : 얇은 톱날에 고정된 사각진 쇠를 평면으로 갈아줄 때 사용한다. 원형 우레탄과 고무 : 재단된 원패의 두께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마돌과 간격을 유지시키는 역 할을 한다. 3) 제작과정 수입한 원패를 경남 통영, 경기 등지의 섭패공장에 공급하면, 공장에서는 원패 껍질을 세척하고 선별을 한 후 재단하기, 표면 깎기, 광택내기의 순서로 자개를 가공한다. 전복껍질의 안쪽에서 바깥 으로 나오면서 타원형의 골 모양을 따라 절단하는 것을 재단하기 라고 한다. 전복껍질은 귀패재단, 앞장재단, 상사재단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재단을 한다. 첫째, 귀패재단의 귀패라고 부르는 곳은 너 비 약 1~2cm 정도이며, 전복껍질 절반을 에워싸고 있는 부위이다. 둘째, 앞장재단이다. 앞장이란 전 복껍질의 바닥에 해당되며, 평평한 부위 부분을 모서리에서 안쪽 방향으로 5~7cm 너비로 절단하는 것이다. 셋째, 상사재단이다. 이 부분 전복껍질 중 2~3cm의 너비이며, 앞장재단한 나머지 것을 말 한다. 자개 중 비교적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끊음질의 연귀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부 분이다. 이와 같이 재단공정이 끝나면 연마작업에 들어간다. 부위별로 재단된 패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작업을 표면 깎기 라고 부른다. 표면을 깎는 작업은 다이아몬드 회전 숫돌로 갈아서 작업한 다. 다음으로 패를 고운 숫돌로 광택내기 공정을 거치면 최종 자개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 어진 자개를 평화자개가 전량을 매입 선별하여 전국의 나전공방에 공급하는데, 나전장의 주문에 따라 특수한 자개를 섭패장에게 요청하기도 한다. 즉, 원하는 부위를 몇 mm로 가공하여 몇 장의 자 개를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17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평화자개는 1992년부터 직접 수입하여 섭패를 시작한지 20여 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서로 간에 신뢰가 축적되고, 양질의 자개품질로 나전칠기 장인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다. 원패를 필리핀 현지 로부터 수입하는 과정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현재 상대국의 파트너와 깊은 신뢰를 구 축하게 되었고, 평화자개는 안정적으로 원패를 조달하여 섭패공장에 보내어 최상의 자개를 생산 공 급할 수 있게 되었다. 나전칠기를 제작하려면 기량이 뛰어난 섭패장이 가공한 자개가 있어야 하는 데, 아무리 뛰어난 나전장이 있어도 양질의 자개를 공급받지 못하면 명품 나전칠기는 요원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엄선된 자개와 나전칠기 용품을 두루 갖춘 평화자개는 전통 나전칠기업 종사자를 비롯한 조형 및 건축 작가, 학생들, 일본과 중국의 나전작가, 유럽 등지의 연구소와 박물관에서 자개에 대한 문의와 구입자들로 늘 붐빈다. 이곳에 가면 나전작가와 나전장들의 현재 활약상을 모두 알 수 있다. 그 이유 는 방문자와 물건을 전화로 주문을 해도 단순히 자개와 옻칠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정보 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시나 행사 안내 포스터나 전시화보를 통한 홍보와 소통의 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웹 사이트에 4개 국어로 소통하고 있다. 미주지역 유럽, 중동 등지에 우리 고유의 기술로 만들어진 천 연소재인 자개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고 있으며, 현재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이 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에서까지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지인들이 수십 미터를 잠수하여 상품성이 높은 원패를 모아주었고, 섭패장으로부터 최상의 자 개를 내려 받아 비치하고, 나전칠기관련 용품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평화자개는 한국의 나전칠기 문화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세계에 한국 자개를 알리는 최전선으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평화자개와 한국 나전일과는 밀접한 관계이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조사 연구되지 않았다. 평화자개 는 나전장이 필요로 하는 전통섭패 기술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원패를 공급하여, 통영을 비롯한 경기 권 공장들과 협업하여 양질의 자개를 생산 유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즉, 나전칠기 유산의 지속 적인 전승에 있어서 재료의 공급적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겠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평화자개의 업무는 원패수입, 원패납품, 자개매입, 자개선별, 자개유통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먼 저 원패수입과 납품 및 매입의 경우는 김영배가 정기적으로 현지를 방문, 직접 선별하여 컨테이너 단위로 가져와 창고에 보관하면서, 섭패공장에 가공을 의뢰하여 전량 회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과정마다 많은 노하우가 있지만 현재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에 대해 김영배
17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는 사진과 글로 일의 내용을 기록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평화자개는 자개 전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특히 판자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본자개(알자 개)를 계속해서 취급하고 있다. 이는 전통 나전장인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함인데, 이 렇게 전 품목을 취급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매년 자개의 수요가 줄면서 원패와 자개가 쌓여 가고 있지만, 현지 종사자와 섭패장의 생업이기 때문에 일정한 물량을 정기적으로 구매하여 주고 있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증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8. 유산의 보호조치 평화자개는 섭패가공의 효율성을 높이고 양질의 자개를 생산하기 위해서 현재도 연구를 계속하 고 있으며, 원패 선별의 체계적 수행을 위하여 현지 해양 상황까지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제는 나전장인이 원하는 자개를 섭패장인에게 주문하여 나전칠기 제작에 알맞은 자개를 공급하 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나전과 자개관련 서책과 자료 등에 평화자개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지식과 정 보가 부분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나전칠기관련 전시나 행사 안내 포스터나 전시화보를 통한 홍 보와 크고 작은 행사와 작품전시에 지속적으로 협찬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도 평화자개의 문화 경영 마인드의 발현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일련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평화자개 뿐만 아니 라 자개가 만들어 지기까지의 모든 종사자가 자신의 가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유산의 보호조치로 귀결되고 있다. 한편, 평화자개는 해외로 카탈로그를 배포하고, 홈페이지( 운영하면서 한국 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모든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미주지역 유럽, 중동 등지에 대한 자개 홍 보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에서까지 자개의 주 문을 받고 있다. 비록 적은 수요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한국의 전통 섭패 기술로 탄생한 자개를 공급 하는 것은 유산을 보호 계승하는 적극적인 조치로 이해될 수 있다. 평화자개는 섭패장과 같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양질의 자개 공급 및 홍보와 협 찬에도 힘쓰면서 나전 업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는 한편, 세계시장과 소통하기 위하여 홈 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자신들의 유산을 지속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9. 계승방식 현재 평화자개에는 분명한 계승자가 있지 않은 상황이다. 10년 넘게 함께 일한 직원들이 있지만, 고용관계 이상의 의미부여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자개의 김영배는 자신이 그동안 일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에 대해 사진과 글로 기록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17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관련된 단체로 자개를 많이 사용하는 거래처 정도를 들 수 있다. 나전칠기 관련 보유자나 명장, 신 라대 한남대 배재대 숙명여대와 같은 대학교나 중소문화센터 등이 있다. 원패(레드, 청패, 핑크 등) 인터뷰 중인 평화자개 대표 김영배(우측) 평화자개 외부 모습
17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원패선별(김영배 제공) 선별전 야광패(김영배 제공) 전시 중인 각종 자개 전시 중인 옻칠 및 도구 가공된 판자개 전시 중인 야광 원패
17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한국칠기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9월 14일, 10월 25일, 11월 2일 유산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조사대상자 배명주(남, 1955년생, 한국칠기 대표) 1. 유산명칭 한국칠기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7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한국칠기는 대형장롱을 비롯하여 가정에서 사용하는 소품까지 다양한 종류 의 나전칠기를 제작하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배명주 3) 성별 : 남성 4) 나이 : 59세(1955년생) 5) 출신지 : 전남 여수시 화정면 상화리 149번지 6) 입문시기 : 배명주는 1955년 여수에서 출생하여 10대의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1971년 서울 세검 정 신설동 공방에서 나전칠기에 입문하였다. 이때 칠일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7) 공방 이동지역 : 1971년 처음 일하던 공방은 이원우가 경영하던 곳이었고, 이후 중곡동 공방에서 일하다가 1985년경 수유2동에 40평 정도 되는 공방을 차려 5년쯤 경영하였다. 잠시 논현동 전시장 에서 일하다가 1990년대 중반 일산을 거쳐 2003년 후반부터 남양주 일패동과 녹촌리에 터를 잡고 일을 이어가고 있다. 칠부 출신으로 칠일을 오래 배웠지만, 나전일은 고 홍순태의 사사를 받으며 윤 태성과는 호형호제하며 나전일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능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후로 공방 관계자들 과 서울 경기 지역의 공예인들과 서로 도우며 각자의 장기를 조사하여 나전일에 심도와 완성도를 높여가게 되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자개는 주로 왕십리 자개상가에서 구하며 종종 좋은 자개가 있다고 하면 직접 찾아 가서 구해온 다. 넓고 영롱한 빛깔의 좋은 자개는 매년 계속 감소하고 있다. 기술과 디자인은 진보하여도 상대적 으로 나전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자개의 품질은 계속 떨어지니 결과적으로 천연자개가 갖는 빛 깔은 예전보다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옻칠은 수유리와 왕십리에서 생칠과 정제칠을 구입하여 색칠 등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17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중국산 생칠을 정제한 것도 사용한다. 정제칠은 정수화 칠장에게서 공급받아 주로 사용한다. 전통나전칠기의 경우 백골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비슷한 형식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 서 백골공방에서 일반적인 형식의 함과 소반 등이 제작되어 있으면 바로 구입하여 칠을 하는 경우 가 많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차별적인 디자인으로 하려면 백골을 주문제작 하는데, 이러할 경우 에는 남양주 배진근 백골 장인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나전을 부착하는 접착제의 대부분은 왕십리 재 료상에서 구입하여 사용한다. 2) 시설 및 도구 한국칠기는 남양주시 일패동에 장롱 및 소형가구 등의 나전과 칠 작업을 하는 1층의 50평 정도 넓이의 공방이 있다. 면적 중 10평 정도 내외의 옻칠 건조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2명의 칠부와 2명의 나전부가 사용한다. 건조실은 가습기를 두고 비닐로 벽을 마감하여 사용한다. 작업공간에는 주름질, 부침질, 지짐질, 끊음질을 하기 위한 도구들이 있는데, 자동화된 기구는 없으나 귀얄과 줄, 칼(상사칼과 여타칼 포함) 사포 등은 현대화 되어 전보다 작업효율을 도모하고 있다. 그밖에 끊음을 위한 상사를 다듬는 상사기계와 기존 전통도구, 아교를 녹일 수 있는 난로와 전열기가 있다. 일정 보 온이 필요한 경우 중탕 또는 밥솥을 이용한다. 자개 절삭기는 기존에 수동절삭기가 있었으나 판자개 절삭의 효율을 위해 어룡마을 자개 절삭소에 도안과 판자개를 맡겨 자개 절삭을 부탁하게 된 뒤 지 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전시장이 있는 녹촌리 건물 1층은 50평 정도의 공간으로 운영사무실과 로비, 보석함 등 소품 전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55평 정도의 공간을 2층장 등 소가구류 전시장, 3층은 250평의 공간에 장롱, 침대 등 종합 가구전시장으로 꾸며져 있다. 지하실은 1명의 나전부와 1명의 디렉터가 소품의 나전일과 한지와 자개, 타일과 시멘트 보드를 이용한 소품개발에 사용한다. 현대화된 소품을 만들었 기에 한지를 말릴 건조대와 작은 건조기, 대량 열 건조를 위한 온풍기, 실크스크린으로 칠을 인쇄하 고 그 위에 자개가루를 뿌리는 기법을 위한 실크스크린 판과 밀대 등 인쇄 장비가 있다. 3) 제작과정 한국칠기의 제작과정 순서는 백골 준비, 사비, 창호지 바름(가위발이), 삼베바름 사비(시다지), 사 비갈음(사비독기), 건조 초칠, 필요에 따라 여러 번 칠(주사비), 자개 붙임(인두), 풀뺌 아교제거, 중칠, 종칠, 사포질(상칠), 자개 위 칠 제거(카이무이), 갈아서 광내어 마무리 등이다. 작업을 하면서 익힌 용어들이 일본식 용어들이 많아 이에 대한 적절한 우리식 용어가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대표 배명주가 즐겨 사용하는 나전기법은 주름질, 끊음질, 타발법이고, 실크스크린으로 칠을 도포
17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한 후 분말 자개를 부착시키는 기법도 활용한다. 지짐질과 끊음질은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하고 타발법의 경우도 균열이 간 자개를 보기 좋고 도 안에 맞게 정렬하는 과정은 전부 칼과 핀셋으로 수작업 한다. 칠일의 경우 대형작업은 에어피스로 분사하고 부분적으로 칠붓을 사용한다. 전통방식으로 내부부터 전부 귀얄과 대형칠붓을 사용하여 전통기법대로 만드는 제품도 있다. 용도나 제품의 필요에 따라 제작방식을 달리 사용한다. 분사하는 경우 아무래도 자동화된 부분인지라 작업시간을 단축시켜주므로 생산단가와 효율성에 도움이 된다 고 한다. 그 외 습도조절을 위해서 가습기를 활용하고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는 측정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자개의 절삭은 절삭기를 갖추고 작업을 치밀하게 하는 전문 장인에게 의뢰하여 줄음질을 대부 분 소화한다. 칠 작업이 끝난 후 광택작업을 할 때 역시 연마용 전동도구를 활용하여 효율성을 최대 한 높이고자 하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한국칠기는 남양주 마석 성생가구공단 내 전시장에서 생산량의 70% 정도가 판매되고, 나머지는 마트나 백화점 행사, 그리고 남양주 마석성생가구공단 행사시 전시 판매가 이루어진다. 서울 근교 의 마석가구공단 상권에는 유명 가구업체 브랜드가 즐비한, 현대가구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0여 가구공장과 공장직영 전시장 90여 개가 밀집되어 다양한 제품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지만, 공단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나전칠기업체는 한국칠기뿐으로 전통민속가구라는 콘텐츠로 분류되고 있다. 국민들의 가구에 대한 기호와 수요의 현주소를 마석 가구공단이 잘 보여 주고 있고, 나전칠기 가 처한 현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 나전칠기 제품이 현대 가구에 내몰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칠기 선전이 갖는 사회 문화적 기능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칠기가 소재하고 있는 남양주는 타 지역에 비해 나 전일을 하는 장인집단이 밀집해 있지만, 한국칠기는 마석성생가구공단에 상호를 올리고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업체로 많은 장인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경영을 쇄신하고 지속적으로 기술을 발전시 킨 결과로 볼 수 있다. 현대가구들 틈바구니에서 전통나전칠기의 명맥을 이어가는 한국칠기의 경쟁력은, 제작과 전시장 판매에 안주하지 않고 전국의 행사장을 찾아다니는 등 적극적 판매와 드라마 협찬 등 마케팅에도 힘 쓰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남양주 장인들과의 교류를 통한 지속적인 상품개발에 있다 하겠다.
17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7. 유산의 현재 상황 나전일 기능을 5~6년 연마한 후 개인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오다 현재 의 마석에 50평 규모의 공방과 마석성생가구공단 내 전시장도 운영하면서 나전칠기 외길을 걷고 있 다. 이 전시장에서 생산량의 70% 정도 전시 판매하고, 마트나 백화점 행사에서 나머지를 전시 판매 한다. 그리고 상설전시는 남양주 마석성생가구공단 내에서 다른 전시나 행사에 요청받거나, 참가하 는 형식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참여하고 있다.(킨텍스 홈엔 리빙 페어, 경향 하우징 페어, 남양주 문화센 터 나전칠기 전시, 농협하나로마트, 신세계백화점 행사 등) 마석의 현대가구들 틈바구니에서 전통나전칠기의 명맥을 잇고 있는 한국칠기는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고 나전칠기 감정위원, 방송국 드라마 협찬과 서울시 나전칠기 협동조합으로 부터 옻칠 인정 업체에 이름을 올리는 등 나전칠기 제품의 공신력을 확보하면서 마케팅을 병행하며 적극적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1970~1980년대 대형장롱과 문갑 등 나전칠기가 성행한 이후, 생활환경 변화와 소비자들의 취향 또한 급격하게 바뀌면서 현재는 나전칠기를 판매하는 대형 매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국칠 기는 제품관리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대형 나전칠기 가구를 고집하면서 오히려 틈새시장을 활용 하여 활동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젊은 사람들이 나전칠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좋은데 비싸다는 의견이 많다. 예전에는 나전칠 기가 결혼 필수품이었지만, 요즘은 가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따라서 젊은이들도 노력에 비해 나전칠기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젊은 친구들에게 작은 소품만 보여줘도 예쁘다고 말 하고 있지만, 그런데 그들에게는 더 이상 이것이 생필품은 아닌데, 어떻게 구매력을 이끌어 내느냐 를 한국칠기는 고민하고 있다. 막연하지만 한국칠기라는 브랜드로서 서두르지 말고 점진적으로 홍 보와 미디어 노출을 통한 여론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한국칠기 배명주는 칠기인의 한사람으로 남양주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와 기능경기대회 및 협회활 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하여 자신이 제작하고 있는 나전칠기의 제작방향과 홍보 및 판매의 정보를 취하여 한국칠기의 경쟁력을 높이고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한편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배근혁)의 두뇌가 한국칠기에 더해지면서 제작은 물론 전문적인 마케 팅을 펼치면서 유산 보호에 견실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젊은 세대의 디자인 기호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경제원리에 입각한 거시적인 정책이 시도되면서 한국칠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 고 있다.
17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현재 한국칠기는 극복해야할 과제를 많이 안고 있지만 디자인 강화와 나전칠기의 홍보와 미디어 노출을 높이기 위한 고민은 유산의 보호로 이어질 것이다. 9. 계승방식 현재 한국칠기는 대표 배명주의 아들이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기능과 경영지도를 받고 있으며, 마케팅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기능적인 부분에서는 현재 무늬를 바탕으로 하 는 도안 작업을 전수 받고 있는데, 숙련도를 고려하여 점차 일을 늘려가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명장 반열의 일가를 이룬 가계가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상품의 순수한 경쟁력으로만 승부를 걸어야 하는 냉엄한 경제논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작과 기능을 익히는 것보다 마케팅과 판매에 시 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배명주는 아들에게 건재한 한국칠기 기능과 경영 노하우를 전하고 있으며, 나전칠기 전국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전칠기 업계를 가르치며 상품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10. 관련자료 나전칠기 감정위원, KBS, MBC, SBS 드라마 협찬과 서울시 나전칠기 협동조합으로부터 옻칠 인 정업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나전칠기 마케팅과 홍보를 위하여 MBC 경제야 놀자 나전칠기 전문 위원 자문, 시사매거진, SBS 나전칠기 소개위원, 각종 영화, 드라마 소품 배치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 며, 최근 관상, 구가의서 등에 작품을 협찬하였다. 그리고 취득한 증명서로는 문화재 기능사(칠공), 나전칠기 감정 평가사 등이 있고, 수상 경력으로 는 공예협회 표창,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였다. 11. 관련단체 한국칠기 배명주는 칠기인의 한사람으로 남양주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와 기능경기대회 이사 및 남양주공예인협회와 공예예술가협회 활동을 통하여 나전칠기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8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인터뷰 중인 한국칠기 대표 배명주(우측) 한국칠기 전시장 모습 도안작업 중인 배명주 대표 자개시문 중인 배명주 대표 방송출연 배명주 대표(제보자 사진 제공) 옻칠 건조장 한국칠기 전시장 한국칠기 전시장
181 강원 중천공방 180
18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중천공방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15일 유산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조사대상자 설명돌(남, 1951년생, 중천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중천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옻칠이 된 기물위에 자개를 잘라 붙이거나 끊어 붙여 나전으로 다양한 문양을 표현한 후 그 위에 칠을 발라 완성하는 우리나라 전통공예기술이다. 우리나라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와 전통 을 내포하면서 시대상황에 맞게 변모하며 전승되어 왔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가장 성행했던 공예 종
18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목 중 대표적인 나전칠기는 통영을 기점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대부분의 장인이나 작업장에서 는 백골, 칠일, 나전일 등을 분업화 하고 있으며 백골은 대부분 주문제작 하였다. 분업화는 생산성의 향상과 기술력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과거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수입산 재료의 유입과 기계 화, 계량화된 도구와 설비 사용으로 과거와 변모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중천공방은 통영에 서 출발하여 전국적으로 옮겨 다녔으며, 통영의 전통 끊음질의 지역적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설명돌 3) 성별 : 남성 4) 나이 : 63세(1951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6) 입문시기 : 설명돌은 1966년 통영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후배의 누나 정영희의 나전칠기 작업 장에 우연하게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46년째 나전칠기 제작 일에 종사하고 있다. 7) 공방 이동지역 : 1966년 정영희 작업장에서 나전일을 시작한 설명돌은 가위로 외씨 자르기, 벤지 오리기 등을 2달 반복 작업하면서 나전제작에 흥미를 가져 입문하게 되었다. 정영희의 공방 칠부 상 일 작업자 선배의 권유로 부산으로 이전하였으나 기능교육은 고사하고 보조 작업만 시켜 개인이 만 든 작품을 직접 거래하기로 다짐하고 판매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상품판매의 어려움을 느끼 고 고 김봉룡의 공방에서 작업을 하다 독립한 김경일의 공방에서 나전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년에는 서양화가 이한옥의 공방에 들어가 작업을 하였는데, 당시 진학을 못하고 소질 있는 중학교 학생들 20여 명과 작업하기도 하였다. 2년 뒤 설명돌은 인천, 부천 등지의 작업장과 통영출신 박개 동이 운영하던 작업장 등에서 작업을 하였으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후 통영 도천동 집 앞 공장 에서 6년 정도 일하다 독립하였고 현재 원주에 거주하면서 작업실을 운영한 지는 14년이 지났다. 1960년대 후반에는 안방가구류를 주로 제작하였으며, 통영상과 생활가구류 등을 많이 제작하였다. 설명돌은 여러 지역과 스승들을 거치면서 그만의 나전공예기술을 확립하였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18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유산의 내용 1) 재료 중천공방의 대표 설명돌은 끊음질을 전문으로 작업하는데, 그가 주로 애용하는 자재는 색패, 청 패, 양식패, 뉴질랜드패 등으로 대개 끊음질 자개 구입만 400~500만원어치 구입한다. 박패 이외에 도 진주패류, 야광패도 사용하며, 조각과 줄음질에 후패류를 주로 사용한다. 자개 구입은 평화자개 를 통해서 모두 구입하고 있다. 옻칠은 원주시 옻문화센터에서 원주옻영농조합법인에서 연간 일정량 구입하여 자부담 50%, 지원 50%를 받아 작업자별로 연 사용량만큼 구매하고 있다. 생칠 이외의 정제칠류와 기타 작업에 필요 한 장식재료 역시 일괄 평화자개를 통해 구입한다. 2) 시설 및 도구 중천공방의 작업장은 원주시 봉산동 원주초등학교 맞은편 옻칠문화센터 내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지상 3층의 원주옻문화센터는 중요무형문화재 칠장 이형만, 강원도 옻칠장인 박귀래, 김상수, 설명 돌, 이돈호, 양유전, 오삼록 7명이 운집해 있고 원주시 지원의 공동 작업장이다. 중천공방은 옻문화 센터 2층 첫 번째 작업장으로 구조는 나전장식을 할 수 있는 작업장과 칠을 하는 칠실 두 칸으로 나 뉘어져 있다. 20평 정도의 크기에 벽 한켠에는 자개류를 보관하는 장이 있으며, 칠실 옆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장식실에는 여러 형태의 백골과 하지작업과 도장작업이 진행 중인 기물이 쌓여있다. 또 옻칠실에는 생활용품, 기념품 등이 칠해져 건조장 내에서 건조되고 있다. 중천공방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나무 손잡이 상사칼, 핀셋, 모조도, 가위, 톱대 등 전통 제작 도구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현대 기계장비는 상사기, 핸드피스가 있고 칠일을 하기 위한 작업대와 색칠을 건조하기 위한 선반이 구비되어 있다. 3) 제작과정 중천공방 설명돌은 개인작업을 위주로 한다. 그는 작업에 있어서 형태 디자인과 문양 디자인을 중 요하게 여기며 백골형태가 결정되면 경기도 일산 소재의 석일공예에 의뢰한다. 문양은 끊음질 문양 이 대부분이며 줄음질 문양제작도 직접 잘라 만든다. 상품의 경우 10장 정도의 자개를 아교로 합하 여 여러 장씩 한 번에 잘라 붙인다. 나전 작업에서 자개 색깔은 매우 중요한데, 완성작의 질을 결정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선별한다. 그러나 요즘 가공되어 오는 자개는 전통나 전칠기 제작시기에 사용하던 자개와 그 색상이나 두께 등이 질적으로 뒤처져 있다고 한다. 현재는 가공기술이 뛰어나 조개 하나에서 여러 장을 가공해 내기 때문에 얇아지고 많이 사용해 왔기 때문
18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에 원재료의 부족으로 크기가 많이 작아졌다고 한다. 중천공방 대표 설명돌은 자개와 칠가루를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나전 장식작업이 끝난 후 칠가루 고착작업을 한다. 자개만으로 장식 작업을 하면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현대적 색감을 가미 하기 위해 칠분을 사용한다. 이외에 사용되는 칠기제작 방법이나 칠기 장식기법은 전통제작 기법에 준하여 작업하고 있고 제작과정은 디자인 - 백골제작 - 자개선별 - 문양디자인 - 백골 하지작업 - 하칠작업 - 초칠작업 - 문양장식작업 - 중칠작업 - 상칠작업 - 광내기의 순서이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중천공방은 나전칠기를 제작하기에 적합한 환경과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원주 시에서는 공공 도서관을 5년 전 리모델링하여 원주권역 내 옻칠 장인들에게 공동으로 작업장을 지 원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옻칠교육수강생들을 받아 박귀래, 이돈호, 설명돌 등이 각각 한 개 과정씩을 운영하여 원주 시민에게 장인의 유산을 폭넓게 확산시키고 있다. 설명돌의 수강생들은 매 해 10여 명씩 신청을 하며 설명돌의 기능 교육을 전수받고 원주옻칠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 실적을 올리는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설명돌 개인도 각종 공모전과 통영 출향작가 전시회 등을 통하여 꾸준하게 유산을 발전시키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중천공방의 설명돌은 2년 전 쓰러져 1년간 투병 생활을 하고 1년간 재활하여 현재 다시 재기하여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왕성한 활동은 아니지만 꾸준히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제작해 판매 하고 있으나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현재 중천공방은 소품 위주의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 지만 매장의 판매만으로는 생계유지에 곤란이 있으므로 주변 장인들로부터 끊음질 하청작업을 의 뢰받아 작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중천공방은 원주시의 도움으로 무형문화재 제도권 내 보호는 아니지만 원주시의 경제적 보호를 받고 있다. 작업장의 무상 제공과 일정부분 작업 지원을 통해 재료 구입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 해주고 공예 강좌를 통한 수입 발생과 매장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천공방 대표 설명돌은 46년간 나전일을 하면서 자신이 체득하고 연구한 결과를 발전시켜 그 결 과물로 특허 등록을 하였다. 신발깔창관련 특허(2건)는 옻칠성분이 나타내는 효과를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나전일을 통해 얻은 전통지식을 보호하기 위한 개인적 조치라 할 수 있다.
18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9. 계승방식 중천공방 대표 설명돌은 46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공방을 옮겨 다니면서 그만의 유산을 구축했다. 한때 통영에서 공장을 운영할 당시에는 전국 각지의 공장을 다니면서 얻은 장식기술과 도 면 보는 방법과 재료 배치 등이 바탕이 되어 도안이 서울에서 통영으로 전해오면 문양 도면만 보고 도 통영에서 제일 먼저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실물로 실습하게 하는 도제식 교육을 했지만 공장운영이 여의치 않자 모두 이직하고 자신만이 그 맥을 현재까지 이 어오고 있다. 2007년에서 2013년까지 6년 동안 설명돌은 한남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교 외래 교수로 강의를 나가면서 전통문화와 정신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교육한 후 유산의 전승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외 원주옻문화센터 수강생들을 교육할 때도 현대식 디자인 접목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능 교육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성의 중요성을 우선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10.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설명돌은 사단법인 원주옻칠문화진흥회 회원이다. 원주옻문화센터는 원주 옻의 우수성을 알리는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체로 원주시의 지원도 함께 받고 있는 단체다. 이곳에서는 자체 온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여 매장에 작품과 관광상품 그리고 생활용품 등을 위탁 전시 판매 해주고 있다. 설명돌(우측) 인터뷰
18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중천공방 전경 중천공방 내부 전경 설명돌 작업 모습 옻칠실 전경 작품 건조 모습 설명돌 작품 설명돌 작품 설명돌 작품
188 충청 해송공예 187
18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해송공예 전해운 대구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6일, 10월 29일, 11월 4일 유산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살포재길 21 조사대상자 문재필(남, 1962년생, 해송공예 대표) 1. 유산명칭 해송공예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는 목재 기물에 칠을 먹이고, 그 기물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여 러 번 올린 후 자개를 실톱으로 오려 붙이고 다시 칠로 마무리하는, 천년 이상을 전해져 내려온 한국 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또한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다루는 데에는 자연에 대한 장인
19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해송공예는 1990년대 창업 이래 칠일을 중심으로 하면서 자개일을 그때 그 때의 상황에 맞도록 가미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오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살포재길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문재필 3) 성별 : 남성 4) 나이 : 52세(1962년생) 5) 출신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6) 입문시기 : 1980년 서울 소재 소반을 주로 만들던 삼양공예사에 입문해 5년간 견습과정을 마치고 칠부기술자로 전국을 떠돌며 기능과 나전칠기 문화를 습득하였다. 입문 당시에는 소반만 제작하는 공방이 전국에 1,000여 곳이 넘을 정도로 많이 산재해 있었으며, 각 공방마다 제작방법은 비슷하지 만 특이한 기법을 한두 개씩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능인들이 칠기일에 많이 종사하고 있 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해송공예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서 1991년 창업을 하고, 칠기에 자개를 특색 있게 시문하여 전국에 공급하던 중, 1994년 화재로 모두 소실하고 논산시내의 은진면 시묘리 409번지로 이전하여 공방을 운영해 왔다. 그러던 중 시 도에서 공예체험관 지원사업에 지원하여 국가 보조금을 지원받아, 2002년 은진면 시묘리 680-1번지로 확장,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해송공예는 백골이 완성 후 갈라짐과 터짐이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목재의 수종 선택에서부터 신중을 기한다. 급속건조 방법보다는 자연 건조 후 다시 인공 건조를 거쳐 수분 함수율이 7~8%가 된 목재를 사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옻칠 사용 특성상 습기가 많은 칠 건조장에서 건조시키기 때문 에 처음 칠은 빠르게 건조시킨 후, 따뜻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30일 정도 자연 건조시켜 목재 에 침투된 습기를 제거하고 재칠 작업하는 것이 작품의 하자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의 포인트
19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로 해송공예품의 평생 무상수리 제도와 관련이 깊다. 자개를 고르고 문양에 따라 배색과 종류를 정한 후 반드시 자개를 햇빛에 비추어 보아 빛이 맑고 깨끗한 것을 작품에 쓴다. 너무 늙은 조개껍데기는 탁하고 강도 또한 약하므로 젊은 성체의 조개껍 데기를 활용하여 작품에 맑고 건강한 광채를 유도한다. 나전칠기의 재료 중에 중요한 것은 상급의 옻칠인데 생칠을 감별할 때 딸기향이 나며 맛을 보아 새콤하고 톡 쏘는 맛을 지니고, 저었을 때 갈색이 빨리 돌고 옻기름이 잘 뜨는 것이 상급이라고 한 다. 그리고 이를 잘 분별하여 사용해야 하며 생칠 사용 시와 칠을 정제할 때에도 이와 같은 신선한 옻칠을 사용하면 색칠의 발색이 좋고 건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므로 작업의 능률도 향상된다고 한 다. 원천 재료의 품질을 높이는 것은 작품의 품격을 높이고 작품의 변질과 변형을 미리 막아 주므로 먼 안목에서 보면 꼭 지켜야 할 사안으로 특히 고가의 나전칠기 작품제작의 전제이기도 하다. 옻칠 정제기법은 전통방식과 전열기와 교반틀을 이용한 현대식이 있는데, 해송공예는 양자를 시 기와 계절에 따라 모두 구사한다. 전통방식 교반법은 햇빛과 온도 등 자연에 의지하는 바가 커서 일 기가 좋은 날을 택해서 정제하고, 현대적인 교반법은 일기에 영향을 받지 않아 전천후로 대량 정제 가 용이하다. 2) 시설 및 도구 해송공예는 시와 도의 지원을 받아 공방으로는 최상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문하생 들이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설과 조건을 잘 구비하고 있다. 공방 평수는 120평이지만 건 물 외 농구와 배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과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이 건물을 끼고 정비 되어 있다. 그리고 작품전시실 20평, 창고 40평 등 체험공간도 갖추고 있다. 20평 정도의 전시실은 문갑, 2층장, 사방탁자, 머릿장을 비롯하여 교자상과 같은 중형가구류, 소반, 소품들을 전시하고 있 다. 그리고 이 건물의 뒤편에 작업동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옻칠을 하는 공간, 물일을 하는 공간, 건사포 작업 공간 외 칠 건조장을 갖추고 7명의 장인들이 작업을 분업화하여 진행하고 있다. 옻칠 교반기 2틀, 색칠 교반기 1틀, 수 십 자루의 인모붓, 귀얄, 주걱, 상사칼, 주걱칼, 자개상사선 절단기, 띠톱 등으로 해송공예는 전통적인 도구와 현대적인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공방의 규모가 크고 연간 제작되는 작품 수 또한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옻칠의 사용량도 많아 옻칠 정제 관련 시설과 현대적인 설비를 잘 갖추고 있다. 3) 제작과정 해송공예의 작업에서는 나전 사용은 절제하고 옻칠의 표현에 중심을 둔 작품이 많이 제작된다. 기
19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물의 형태 색칠에 따라 자개사용을 정하는데, 건칠기물에 사용하는 나전은 끊음질 기법이 많고, 목 리가 뚜렷한 기물에 사용하는 자개는 옻칠의 색과 목리가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작업한다. 전승공예란 스승에게서 제자로 수대를 이어온 소중한 예술이다. 스승의 경험과 지혜가 제자에게 전승되고, 그 제자는 스승을 뛰어 넘고자 스승의 기법에 본인의 기법을 더해 새로운 자신만의 기술 을 만들면서 공예일가로 독립하고, 그 제자가 다시 일가를 이루어 내는 수많은 세월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예술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선조들의 전통기법에 스승의 가르침을 더하고 새로운 방식 (6~8)을 추가한 해송공예의 기법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토회칠을 이용한 자개 칠화 표현하기> 1 준비된 판재에 생칠 바르기 2 삼베 바르기 3 토회칠로 눈매 메꾸기 4 흑색칠 하기(2~3회) 번 사포갈기 6 밑그림 그리기 7 생칠이 많이 들어간 토회칠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의 입체감 표현과 자개 시문을 같이함(이 때 토회칠의 점성을 옻칠에 많이 들어간 것이 자개의 접착력을 높이기 때문에 토회칠의 점성에 주의를 기울여야함) 8 토회칠 건조하기(50 C의 고온에서 건조하였을 때 토회칠이 돌덩이 처럼 단단해짐) 9 건조된 토회칠에 묽게 배합된 생칠을 3회 바르고 건조하기 반복 10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 문양 등에 색옻칠하기(색옻칠은 4~5회 반복) 11 사포갈기 순서( ) 이때 사포갈기에 작품의 명암 표현이 좌우 되기 때문에 많은 경험과 주의가 요구됨 12 자개긁기 13 표현이 부족한 곳에 색칠한 후 건조하기 번 사포갈기 또는 연마용 숯을 사용해 거친 면 다듬기 15 광내기(1차 광내고 묽게 배합된 생칠로 접칠하기) 2차, 3차 광내기(원하는 광택을 얻을 때까지 반복 작업) 16 작품 전체가 광택이 나는 유광이므로 무광 빛내기 또는 바위 등 그림에 거친 표현 등을 원할 때 원하는 부위에 접칠을 하고 탄분, 톱밥, 재래식 기와가루 등을 사용해 분 뿌리기를 한다.(탄분 만 들기 : 각종 수종의 톱밥을 냄비에 넣고 원하는 색, 원하는 입자, 질감이 될 때까지 볶듯이 태워준다.)
19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해송공예는 각종 국내외의 전시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전통 나전칠기 문화를 국 내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홍보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홍보는 단순한 홍보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교류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대표 문재필은 미국과의 문화교류 공로를 인정받아 인디애 나주 하워드 카운티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그동안 해송공예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 다, 일본 등지의 해외 전시에 참여한 횟수는 100여 회에 이를 정도이며, 국내의 크고 작은 박람회에 도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전시를 하고 판로를 개척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2000년에 미국으로의 수출을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일본 등지 로 판로를 개척하고 수출영역을 넓혀 나갔다는 점이다. 비록 수출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으나 노하 우가 쌓이면서 국가별로 선호하는 디자인과 품목을 파악하게 되어, 현재는 생산과 판매의 선순환체 계를 이루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1991년 설립 이후 해송공예는 제작품에 많은 변화를 겪는데, 소반을 주로 제작하다가 구매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품목을 다양화하여 가구 및 목기, 발우, 다기 등 생활소품과 중자 가구 정도 의 2층장까지 제작하고 있다. 즉, 단품으로 생산성을 중시해 오던 작업의 형태를 벗어나 분화된 주 거 공간별 용도를 소화할 수 있는 품목을 확대해 구매자가 자신의 가정 곳곳에 해송공예품을 가까 이서 향유할 수 있게 하였다. 해송공예는 전통기법에 기반하여 현대 생활에 쓰일 수 있도록 제품의 다변화와 함께 디자인의 개 선에도 노력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국내외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하여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면 서 디자인기획에서부터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해송공예 대표 문재필은 2013년도에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칠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해송공예는 충청권에 위치한 몇 안 되는 공방이지만 시도의 지원으로 시설과 전시공간을 잘 완비 하여 지역 거점 나전칠기 문화체험의 장으로 활용이 기대된다. 더욱이 해송공예의 문재필이 충청남 도 무형문화재 칠장 보유자로 인정됨에 따라 나전칠기 작업에서 주요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칠과 관 련된 보호와 이를 통한 지원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치들은 해송공예의 나전칠기 작업 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19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9. 계승방식 문재필은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보유자 정수화의 문하생으로 옻칠 정제에 대한 기능을 익히면서, 전통공예의 사제관계가 지닌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즉, 전통공예는 사람 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문화라는 점인데, 그래서 그는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7명의 제 자들(김찬중, 문재권, 문재호, 전영수, 구명수, 선주, 강형옥)에게 기능을 전해주며 작품제작에 임하고 있 다. 제자들에게 교육을 할 때에는 도제교육 방식을 선호한다. 문재필의 도제교육은 1:1 단계별 지도 를 통하여 숙련 정도에 따라 작업을 분업화하고 있는데, 제자의 경력은 20년부터 최근 1년까지 다양 하다. 맞춤식 지도 방식의 특성상 한 번에 많은 제자를 양성하기는 어렵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서 이러한 도제식 교육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10. 관련자료 1998 MBC TV 지역경제를 살립시다 공예산업의 모법사례 30분 방영 1998 MBC TV 토요장터 제품소개 10분 방영 1998 TJB TV 제품제작과정 소개 1998 TJB TV 충남도정소식 16분 방영 1999 TJB TV 대전방송 직장탐방 20분 방영 2005 KBS TV KBS 뉴스광장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장인 2007 MBC 신농가월령가 2009 MBC 이세상 이야기편 옻칠공예가 문재필 60분 다큐 방영 2010 MBC 특집방송 해외로 수출되는 옻칠 방영 11. 관련단체 해송공예 대표 문재필의 활동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칠장 보유자 정수화의 공방이 관련된다. 해송 공예는 정수화의 공방과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회 한옥 옻칠작업과 종묘 조선왕실 의궤 보수작 업 등에 참여하였다.
19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인터뷰 중인 해송공예 대표 문재필(우측) 해송공예 외부 모습 전시장 입구 옻칠 건조장 가구 사포한 모습 옻칠 직전 모습 전시 중인 옻칠상 전시장 모습 전시장 모습
196 전라 옻칠공예연구소 195 장산공예사 202 최씨공방 209 흑단공예 218
19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옻칠공예연구소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3일 유산소재지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무등파크 336-7번지 APT상가 1층 조사대상자 조규열(남, 1959년생,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1. 유산명칭 옻칠공예연구소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지에서 출토된 칠기유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는 예로부터 나전칠기 문 화가 생활 깊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광주광역시는 우리나라 나전칠기가 번성하 였던 대도시 중 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소수의 장인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광주에서 나전칠기
19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업에 종사하고 있는 장인들은 대부분 상업적 성향의 가구류와 소품을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다. 상 업적 성향의 제품들은 개량화된 도구, 재료, 기법들에 의해 제작하고 있다. 이 같은 나전칠기 제작과 정은 과거의 장인 스스로 제품 일체를 완성하던 전통공예지식이 온전하게 전승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개량화된 도구와 개선된 작업공정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장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중에서 도 전통유산의 보존과 계승에 근본을 두고 작업하는 장인이 소수 있다.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조규열 은 예술품 제작을 하고 있으며 일품제작 위주로 광주광역시 나전유산의 특징이 잘 나타나도록 작업 해 오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무등파크 APT상가 1층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조규열 3) 성별 : 남성 4) 나이 : 55세(1959년생) 5) 출신지 :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 6) 입문시기 : 1978년 농성동 청기와 대표 공예사 고( 故 ) 고운석의 문하에 입문하게 되었다. 고운석 은 나전일을 전문으로 하던 장인으로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조규열은 이때 8년간 나전과 칠일을 배 우기 시작하면서 입문하였다. 7) 공방 이동지역 :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조규열은 1959년 7월 광주시 월산동 123번지에서 3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길가에 세워져 있던 나전문짝에서 반사되는 색채에 매료되어 1978년 농 성동 청기와 공예사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1984년에는 광주시 계림동 칠보가구공예사 이정식의 문하에서 칠 기능도 배웠다. 1986년부터 는 고 김태희의 제자 신봉곤의 문하에 입문하여 2008년까지 경기도 남양주시를 왕래하면서 다양한 나전일과 칠일 기능을 배웠다. 2004년 광주광역시 오치동 1005번지 오치주공아파트에 옻칠공예연 구실을 개설하여 2008년까지 운영하다가, 현재는 오치동 무등파크 336-7번지 아파트 상가 1층에 옻칠공예연구소를 계속 운영 중이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19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장식 작업에 있어서 줄음질이나 끊음질기법 모두 자개가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자개가공기 술이 기계화되기 이전에는 평줄과 삼각줄을 이용해서 장인이 직접가공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현재 에는 서울 왕십리 일대에 밀집되어 있는 재료상에서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조규열은 얼룩이(뉴질랜드패)와 야광패를 유일장식과 평화자개에서 주로 구입해서 사용한다. 때에 따라서는 광주 송암공단 자개가공업자에게 특별 주문하기도 한다. 현재는 나전 이외에 메추리알껍질과 오리알껍질, 분패를 사용하고 있으며 동선을 실험적으로 다 양하게 연구, 응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나무로 제작하는 백골은 경기도 석일공예에 주로 주문하고, 요즘 삼베를 이용하는 협저태칠기(건칠)를 많이 만들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옻칠공예연구소는 소형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위치해 있으며, 인적이 드문 편이다. 15평 크기의 작업실은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칸은 작업실과 사무실로 사용하고 다른 한칸은 전시실로 사 용하고 있다. 옻칠공예연구소의 작업장 벽면에는 그동안 조규열이 얼마나 열심히 전승활동을 해 왔 는지 알 수 있는 각종 수상경력 상장들과 심사 위촉장과 기능경기대회 메달들이 진열되어 있다. 작 업장에 들어서면 우선 오른쪽 벽면에 전통칠기 제작공정 프로세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목요연하 게 과정별 기법을 정리하여 판넬에 부착해 벽면에 걸어 두었다. 출입구 옆면에는 옻칠 건조장이 위 치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생활용기에 나전을 장식하여 건조하고 있다. 건조장 옆으로는 각종 옻칠과 옻칠을 담는 사기그릇들이 선반에 쌓여 있다. 다른 한칸은 전시실로 그동안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조 규열의 작업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끊음질, 줄음질, 타찰법, 채화, 색분, 난각, 조패법 등 나 전칠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장식재료와 기법들을 사용하여 다양하게 연구하고 창작한 것이 진 열되어 있다. 제작기물로는 함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귀면문 펜던트, 호문 액자, 산수문 액자, 길 상문 혼수함, 건칠화병 등 기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전칠기 작업에 사용되는 도구는 장식제작도구와 칠기제작도구로 나눈다. 전통장식제작도구로 는 톱대, 톱날, 태장대, 조각칼, 상사칼, 줄, 인두, 핀셋, 드릴, 송곳 등이 있으며, 개량화된 도구로는 상사기, 절삭기, 핸드피스 등이 있다. 그 밖에 칠기제작 도구에는 귀얄, 주걱, 건조장 등이 있다. 3) 제작과정 옻칠공예연구소 조규열은 현재까지 작품을 위주로 작업해 왔다. 제작기법은 전통제작기법을 바탕
20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으로 현대재료와 응용하여 제작하고 있다. 백골주문과 동시에 기물의 형태에 적합한 장식문양을 정 하고 그에 어울리는 장식재료를 선정한다. 자개와 동선의 병용, 나전과 메추리알의 병용, 칠분 등 다 양한 방법의 제작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조규열은 여러 장인의 공방에서 다양한 공정의 제작 기술을 습득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바탕이 되어 현재 다양한 장식 재료의 응용도 가능하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조규열은 고운석으로부터 나전의 기초를 다지고, 김태희의 제자 신봉곤의 문하에서 나전칠기의 성숙기를 이뤘다. 그리고 칠일 기능은 이정식 문하에서 습득하여 나전과 칠일 모두를 두루 섭력하 고 있다. 조규열의 고향 광주는 1970~1980년대에 나전장농과 가구류의 생산이 매우 활발했던 도시 중 하나이다. 광주에서 제작된 나전가구류는 광주는 물론이고 전국으로 판매할 정도로 매우 활성화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광주 송암공단의 자개가공 기술자에게 나전가공을 의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광주시에는 얼마나 나전소모가 많았는지를 짐작 가능케 한다. IMF이전 성행했던 나전가구류 사업이 이후 일순간 판매부진과 소비자의 외면으로 사양의 길을 걸으면서 대부분의 나전일 종사자들이 이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옻칠공예연구소 조규열은 나전과 칠일을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었고 상품이 아닌 개인 작품제작에 열중하면서 그만의 나전예술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작방법과 장식기법은 항상 전통에 기초하면서 나전일변도 만이 아닌 다양 한 재료의 혼용을 모색, 연구하면서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4명 정도 의 나전일 장인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중에서 옻칠공예연구소 조규열은 전통과 현대를 두루 표현 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 장인으로 전통 나전유산의 기술과 재료의 전승에 중점을 두고 작업해 오고 있다. 조규열은 각종 공모전, 기능경기대회, 매스컴 등을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 화유산의 지식과 기술을 알리고 있으며, 이를 기초로 다시금 옛 광주광역시의 나전칠기 활성화를 위 해 노력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IMF 이후 함께 했던 동기나 선후배들이 이직하는 가운데, 조규열은 2004년 옻칠공예연구실을 개 설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15평 규모의 작은 공방으로 직원이나 제자는 없고 모든 작업 을 혼자서 진행하고 있으며 지인들에 의해 극히 소량의 판매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전일 만으로 는 생계의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구두수선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산 보존의 끈을 놓지 않고 작품세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룹전, 기획전, 공모전 등을 통해 나전작품을 계속 알리고 있다. 조규열은 나전일 견습공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공예가에 이르는 수준이다. 여러 선생의 지도를 거
20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치면서 개인의 기법과 기술을 창안해 노력하고 있다. 상품제작보다는 작품제작에 치중하다 보니 생 계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동안 수상한 공모전, 전시회, 사회 봉사 실적물들은 나전일에 열심히 종사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방, 전국 기능경기대회 에서 12회의 수상과 공예 대전, 공예품 대전에서 입 특선 9회, 미술대전에서 입 특선 13회 등 많 은 유산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위치하고 있는 옻칠공예연구소는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작품의 판매나 홍보 가 부진한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조규열은 남는 시간에 구두수선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다. 최근 조규열은 개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나전일을 천 직으로 여기고 번창했던 나전칠기 성행기 때를 회고하며 다시 한 번 유산의 번영을 준비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광주광역시에서 나전일에 종사하고 있는 장인은 4명 남짓으로 이중에서도 예술품 위주로 작업하 는 장인은 조규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규열은 옻칠문화연구원의 회원으로 협회전을 통하 여 자신의 전승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공모전, 전시회, 기능경기대회 등을 통하여 지금까지 구축 된 자신의 나전일 유산영역을 알리고 객관적으로 평가받아 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옻칠공예 연구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전통나전 문화유산 교육을 하기도 하였 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수한 나전유산을 알리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현재 조규열은 자신의 원활한 전승활동의 지속을 위하여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를 신청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9. 계승방식 현재 옻칠공예연구소에는 제자나 직원은 없는 상태이다. 조규열이 배출한 제자로는 황영하, 김정 본 등이 있지만 역시 현재 이직한 상태이며, 매년 광주광역시 장애인 기능경기대회를 즈음하여 출전 자들을 위해서 간헐적으로 기능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옻칠공예연구소 대표 조규열은 모든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으며 그의 작업방식은 대체로 전통제작방법에 기초한 현대 적 디자인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 작업하고 있다. 향후 조규열은 지방무형문화재를 통해 자신이 가 진 기술을 전수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데, 이는 자신이 가진 유산의 계승방식으로 무형문화재라는 보호제도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의해서이다. 10. 관련자료 장애 딛고 세계적 거인의 꿈 도전, 광주일보, 1996년
20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생방송 사람세상, KBS TV, 2001년 생방송 토요마당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KBS TV, 2002년 장애의 아픔 예술로 승화, 광주일보, 2007년 장애를 딛고 일어선 희망공예, 남도일보, 2007년 11. 관련단체 조규열은 나전일과 관련된 단체에 참여한 적이 없다. 조규열(좌측) 인터뷰
20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옻칠공예연구소 전경 옻칠공예연구소 내부 작업공정 판넬 옻칠건조장 및 작업물 조규열의 작업 모습 조규열의 작품 조규열의 작품 조규열의 작품
20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장산공예사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14일 유산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금강동 868-2번지 조사대상자 김창진(남, 1958년생, 장산공예사 대표) 1. 유산명칭 장산공예사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1970~1980년대 나전칠기가 성행하였을 때 전라도 지역에서는 광주광역시, 전주시, 익산시가 가 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익산시에는 당시 수많은 업체들이 나전가구류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의 부진으로 전라도지역의 나전칠기 업체들은 현재 대부분 없어진 상태이고, 거의 모든 장인들
20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은 공방 형식의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전칠기가 성행하였을 당시 익산시의 업체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도구와 재료의 개량화와 함께 작업 공정의 개선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엄밀히 따지면 전통유산의 보존과 계승보다는 활용에 가깝다. 장산공예사는 익산시에 현존하는 유 일한 나전칠기 업체이다. 김창진은 현재까지도 업체와 공방을 함께 운영하면서 최대한 익산시의 나 전유산의 특징이 나타나도록 작업하고 있는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전북 익산시 금강동 868-2번지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김창진 3) 성별 : 남성 4) 나이 : 56세(1958년생) 5) 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6) 입문시기 : 장산공예사 대표 김창진은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17살에 공신가구점 이일현 에게 기술을 전수받기 시작하였다. 이일현은 칠작업 전문가였으나 칠일과 함께 나전일을 배웠다. 이 일현에게 기술을 익힌 김창진은 1985년 27세에 장산공예사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7) 공방 이동지역 : 이일현에게 나전일과 칠일을 익힌 김창진은 27살 때까지 여러 나전칠기 공장을 옮겨 다녔다. 당시는 나전칠기가 호황기였기 때문에 기능의 수준이 뛰어나면 급료가 높았고 의례적 으로 급료가 많은 쪽으로 이동하였다. 여러 작업장에서 각기 특성 있는 작업을 체득한 후 지금의 장 산공예사를 1985년에 설립하여 1995년까지 모현동에서 운영하였다. 1996년에 익산시 특산품단지 지원으로 1997년에 금강동으로 이전하여 16년 동안 작업을 하고 있다. 1980~1990년대에는 칠부에 만 7~8명의 직원이 있었으며, 나전부에는 5명이 있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의 재료는 자개로 옻칠이 칠해진 기물위에 장식할 때 사용하는 우리나라 전통공예재료 이다. 나전칠기에 필요한 재료로는 자개와 칠이 가장 중요하다. 기타 장식재료와 이것들을 붙이기
20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위한 아교, 풀 등의 제작재료가 부수적으로 필요하다. 백골은 대부분 소목장이나 백골 전문 업체에 주문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나전일이나 칠일을 하는 장인이 취급하는 재료는 아니다. 나전과 칠은 전체적인 재료 중에서 그 중요도가 가장 높다. 이 두 가지가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장산공예사 대표 김창진은 예전의 자개와 현재 가공되어 생산되는 자개의 질적 차이가 확연하다 고 한다. 전통가공방식에 의해 가공된 자개는 한 개의 패각에서 한 장의 자개만 가공하기 때문에 두 께, 색상, 자개면의 고르기 등이 최상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가공기술의 발달로 한 개의 패 각에서 얇게는 0.02~0.03mm까지 절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께가 너무 얇아져 사용하기 어렵고 이 로 인해 기물 면에 칠해진 옻칠 바탕색이 비치는 관계로 자개의 원색이 발현하지 못하는 단점을 지 적했다. 김창진은 지인을 통해 제주도 근해와 완도에서 상질의 전복껍질을 제공받아 사용하며 이외에 필 요한 자개는 서울의 평화자개, 우일상사 등에서 구입한다. 칠은 평화자개에서 구입하거나 전주 행촌 칠기 이의식으로부터 구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수록 재료 수급의 문제가 현실화 되어가고 있어 걱 정이라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장산공예사는 120평의 토지에 가건물 구조로 두 동을 설립하였다. 이곳은 전시장, 창고, 사무실, 작업실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장롱, 함, 소반, 테이블, 소품 등의 작품과 상품들이 전 시되어 있고, 자개가공과 관련하여 패의 종류별, 패의 활용별 샘플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나전작업에 사용되는 시설과 도구로는 줄음질 작업대와 톱대, 톱날, 태장대, 각종 줄, 자, 컴퍼 스, 디바이더, 상사칼, 핀셋, 테이프, 인두, 화로 등의 전통 도구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개량된 기계로는 상사기와 절삭기만을 사용하고 있다. 칠실에는 4평 크기의 건조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수 로시설을 갖추어 물을 이용한 작업이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3) 제작과정 장산공예사 대표 김창진은 입문초기 스승 이일현으로부터 칠일을 배웠고 또한 전통 나전일 기능 을 배웠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문양은 산수화 끊음질, 사군자 줄음질, 십장생 문양이고, 장식기법은 원모양의 타찰법을 일부 사용하고 주로 전통나전기법을 사용한다. 제작과정은 디자인 구상 후 백골 도면을 그리고 백골주문을 의뢰한다. 백골 주문이 끝난 후에는 문양을 결정하고 도안을 완성한다. 도안에 맞는 자개를 선별한 후 자개위에 종이를 붙이는데, 자개 선별을 주의해서 한다. 이것은 요즘
20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자개가공이 너무 얇기 때문에 줄음질 작업시 패의 균열이나 깨짐이 많은데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실톱으로 문양을 따라 잘라내고 유산지 위에 문양을 뒤집어 붙인다. 옻칠이 된 기물에 아교를 발라 그 위에 자개 붙은 종이를 붙여 놓고 인두를 열에 달구어 지짐질을 해준다. 물을 종이에 묻혀 종이떼기를 하고 묽은 아교를 이용해 풀매김을 하여 부착된 자개를 완전히 옻칠한 기물 위에 부착시킨다. 뜨거운 물을 부어 자개 외에 묻어 있는 아교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자개를 수정한 후 도 장작업을 하여 광내기 후 완성한다. 김창진의 제작과정은 시작에서 완성까지 전통 나전칠기 제작방법에 의거하고 있다. 문양장식 제 작 중 타찰기법은 원을 이용한 문양에만 국한되어 사용하고 있으며, 본인이 새롭게 디자인하여 새롭 게 시도하는 것으로 젊은 세대에 어필(appeal)되고 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이 외에 목심칠기와 목 심저피칠기의 혼용작품, 유광 칠작품, 무광 칠작품, 도태칠기와 건칠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으며, 부 채의 대나무와 한지에도 옻칠을 하고 나전을 장식하는 등 작품의 영역을 넓히고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장산공예사 대표 김창진은 나전일과 칠일 모두 가능하다. 나전칠기 성행기 당시 인근 전주지역은 나전부와 칠부가 완벽하게 분업화되어 생산성과 기술력 향상을 모색하였으나, 당시 익산에서는 나 전 칠기에 종사하고 있던 장인들이 양쪽 일을 모두 습득했다고 한다. 분업화의 목적은 수요에 맞추 어 공급량을 늘리기 위함도 있었지만 각 공장의 대표들이 직원의 임금을 낮게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1990년 초까지 장산공예사 역시 장롱을 비롯한 안방 가구류 위주의 작업을 한 것을 보면 호 황기를 누렸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IMF이후 익산시에 거주하던 나전칠기 종사자들은 모두 이직한 상태이고 현재 유일하게 익산에서 전통나전유산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김창진은 자신의 유산 활동을 위해 전국공예품대전, 한국옻칠공예대전, 익산 한국공예대전, 기능 경기대회, 대한민국 옻칠공예작품 공모전, 한국공예대전에서 입 특선 등 다수의 수상 실적을 보유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작은 힘이나마 지역사회에 나전칠기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며, 그가 거주하는 지역사회에서 한국 전통공예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전북 익산시 금강동 868-2번지에 위치한 장산공예사는 익산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에 자 리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칠일을 하는 직원이 8명에 이를 정도로 성행하였던 것이 IMF 이후 경제 불황으로 현재 판매가 거의 없는 상태이고 작품은 지인을 통해 한 달에 한 작품 정도만
20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작품의 판매는 지인 외에 전주와 익산의 공예품 전시장에 위탁 판 매하는 것과 개인판매가 전부이다. 위탁판매는 매장 수수료로 인해 판매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주변 지정문화재나 업체로부터 나전일과 칠일 하청을 받아 경제난을 해결하기도 한다. 현재 장산공예사는 익산시에 소재하고 있으나 오히려 전주에서 더 많은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전 주시에서는 매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위하여 김창진에게 나전칠기 교육을 의뢰한다. 김창 진은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기술 전수와 함께 전승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장산공예사는 현재 영세한 공방이나 업체 또는 일반장인들에게 가장 다급한 문제로 유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난 해소를 꼽는다. 무작정의 정부 지원이 아닌 현실 타당한 판로 문제해결이 시 급하다고 여겨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부족한 디자인 감각 판매력 홍보능력 신기술력 활용 등에 관한 보강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김창진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2001년 우석대학교에서 실시한 중소기업 기술혁신교 육을 이수하였고, 전주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융합멘토프로그램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멘토 구성원 은 나전칠기와 관계가 없는 대학교수와 디자인 계통자들로만 구성되어 나전칠기에 대한 기초지식 부재로 인한 실적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그 효과는 적었다고 한다. 장산공예사 김창진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에게 부족한 디자인 개발에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제품과 작품을 개발하여 보다 더 발전적 유산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9. 계승방식 장산공예사 김창진의 제자는 김창윤, 장유, 윤석근, 최종섭, 강성록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장애인 기 능경기대회 출전을 위해 전주시 지원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연을 맺은 제자들이다. 김창진이 40년간 체득한 기술을 4~5개월 주 1회 교육만으로 온전하게 계승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칠일과 나전일의 경기를 위한 요점정리만 해주는 격이 된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매년 장애인 기능경기 개최 4~5개월 전에 교육을 한다. 기능경기대회 교육은 보통 주말에 하루 행하며, 나전일 과 칠일을 교육한다. 나전일은 줄음질, 끊음질, 조패기법 등 전통나전장식기법 위주로 교육한다. 제 자들 중에서 장유는 김창진에게서 5년을 사사 받았다. 그러나 생계문제의 해결방안이 모색되지 않 아 다른 일을 겸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어 완전한 계승자라 하기에는 어렵다.
20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장산공예사 김창진은 익산 한국공예문화재, 옻칠문화연구원, 전북전승공예연구회, 전북기능동우 회의 회원으로 매년 정기적인 유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김창진은 가입단체를 통해 매년 새로운 자신의 창작전승활동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기능경기대회, 장애인 기능 경기대회, 온고을미술대전 운영위원, 전주전통공예, 예맥전라북도 전통공예인 협의회 등 많은 대회와 협회에서 심사위원, 운영 위원, 이사직을 맡아 전라북도 나전칠기 유산의 보호육성과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김창진의 작품
21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장산공예사 전경 김창진(좌측) 인터뷰 장산공예사 사무실 장산공예사 전시실 장산공예사 전통도구 장산공예사 칠실 김창진의 작품 김창진의 작품
21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최씨공방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3일 유산소재지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99-7 조사대상자 최석현(남, 1957년생, 최씨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최씨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지에서는 토기, 칠기, 목기 등이 발굴되었는데 칠기와 목기로 당시의 생활 상을 추정할 수 있고 당시에 나무와 칠을 다루는 공방과 장인이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 한 역사적 배경 아래 IMF 이전 광주광역시의 나전칠기는 전국에서 부산, 서울 등의 대도시와 버금
21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가는 규모의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대표적 한국 전통 나전칠기 공예의 큰 축이었다. 이러한 배경에 는 나전칠기에 필요한 재료인 옻칠, 목재, 나전 등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 이기도 하고, 인적자원 또한 풍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들은 신창동 유적지에서 발굴 된 전통적 자연유산과 공예기술의 전승이라기보다 산업화에 따른 개량된 기술력 아래 나전칠기 제 품을 제작하기 위한 발전된 공예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서 나전일에 종사하고 있 는 장인은 소수이며 이중 최씨공방은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석현은 나전칠기의 전통 과 맥을 계승하고 광주광역시 나전유산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업을 수행 중이며 전통을 지 키며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광주광역시 나전유산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최석현 3) 성별 : 남성 4) 나이 : 57세(1957년생) 5) 출신지 : 전라남도 완도군 6) 입문시기 : 최씨공방 대표 최석현은 16세 되던 1972년에 부산에서 나전칠기공방을 운영하던 먼 친척 최명호 아래로 들어가 나전칠기에 입문하였다. 그곳에서 기초적인 연장다루는 법부터 시작하 여 도안법, 자개선별법, 부착법, 칠일 등을 차례로 익혔다. 7) 공방 이동지역 : 최명호 문하에서 2년여 간 통영에서 옮겨온 장인들에게 나전칠기 제작 기초에 관 한 기술들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부산의 최명호 공방에는 나전일 작업자 5명, 칠일 작업자 4명이 함께 작업하였다. 그 후 나전칠기 호황기를 누리던 광주광역시로 거주지를 옮겨 계림동 김정식의 공 방에서 5년간 작업을 했다. 1980년대에는 덕진공예 박엄균의 나전칠기 업체에서 공장책임자를 맡 을 정도로 기술을 인정받았다. 최석현은 광주에서 나전칠기 작업분야 중 특히 나전일에 흥미를 가져 나전분야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습득하였다. 더불어 그는 단순히 습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내의 가 구공방과 가구점들을 견학하고 서울까지도 오가며 좋은 작품과 기술을 습득하는데 노력하였다. 이 같은 노력으로 최석현은 자신만의 자개 방향 본뜨기, 자개의 외장켜기, 진주패의 색상을 이용한 표현법, 원패조각을 이용한 작품의 포인트 부각법 등을 완성하여 나갔다. 1984년부터는 중요무형
21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문화재 끊음질 기능보유자 심부길과의 교류를 이어나갔으며, 이를 통해 나전기술에 보다 깊은 이해 와 습득을 하였다. 또한 당시 그곳에서 전수교육조교로 있던 현 중요무형문화재 제 113호 칠장 정수 화와의 인연 역시 시작되어, 현재 나전옻칠기법 및 정제기법을 직접 전수받게 된다. 1990년 최석현은 그간의 착실한 준비와 계획으로 광주에 공방을 마련하고 자립을 하여 지금까지 나 전칠기 공방으로 최씨공방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최씨공방의 대표로서 최석현은 현재도 나전칠 기 작품과 문화상품을 제작 중이며,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명인, 명장의 칭호를 받으며 나전칠기의 대표적 장인이 되어가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장의 주요 재료는 자개, 백골, 칠이다. 먼저 자개에 있어 그는 가장 좋은 자개패를 구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가장 색상과 결이 좋은 자개를 수시로 수소문하여 구비하여 놓았다. 현재도 광주광 역시에는 남해안의 근교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자개패를 가공하는 섭패공이 있으며, 용도에 맞 는 자개를 주문 가공하여 공급받아 사용하기도 한다. 1990년 공방을 설립할 당시부터 전국에서 가 장 좋은 자개를 구매한다는 소문으로 질 좋은 자개를 들고 최씨공방을 찾는 섭패공들이 많아 최씨 공방 대표 최석현은 현재도 많은 양의 자개를 보유하고 있다. 기물의 바탕이 되는 백골은 1999년까 지 공방 산하 백골방이 있어 전속으로 제작하였으나, 이후 나전칠기의 쇠락과 함께 개별 소목장들에 게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옻칠 도장 작업은 나전작업보다 먼저 선행되는 과정으로 옻나무에서 채 취한 천연도료를 원료로 사용하며 나전칠기 전반에 사용된다. 옻칠은 중요무형문화제 제113호 칠장 정수화의 것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박강용에게 구입하여 쓰고 있다. 또한 최씨공방 자체적으로 정제를 하기 위한 기술 축적을 하고 있으며, 정제 시설 역시 갖추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최씨공방의 전시실에는 대형 나전 벽걸이류, 소품류, 테이블류, 관광상품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 양한 나전칠기 제품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방 한켠에는 한지와 옻칠을 융합한 실험적 작품들 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뒤편으로는 작은방이 두칸 있는데 하나는 옻칠건조실로 약 3평가량 되고 한 칸은 옻칠정제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정제기 맞은편에는 각종 줄음질된 절삭 문양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쌓여 있다. 최씨공방 대표 최석현은 전통적인 도구와 개량된 도구, 현대화된 기계를 혼용하여 사용한다. 기
21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계류는 정제기를 비롯하여 절삭기와 전동물레를 보유하고 있다. 각 도구는 전통적인 도구의 원리 와 형태를 대부분 유지하나 장인 개인이 사용하면서 장인의 몸에 맞추어 개량한 것도 있다. 그가 주 로 사용하는 도구는 자개를 잘라 상사를 제작하는 상사기와 상사거도, 진주패와 같은 후패( 厚 貝 )에 부조를 할 때 사용하는 자개조각칼, 꽃잎의 줄기나 꽃의 수술 등에 모조할 때 사용하는 살쇠, 상사 패로 끊음질 할 때 선을 끊어 연결하거나 자개를 다듬는 상사칼, 자개에 묻은 칠을 긁거나 칠마감 에 사용하는 칠칼, 주름질할 때 사용하는 채장대(태장대), 톱날, 실톱대, 칠면에 자개를 붙일 때 사용 하는 인두, 쇠줄과 핀셋, 자개를 켤 때 톱날 구멍을 만드는 활비비, 자개작업대(톰박) 등이 있다. 그 리고 칠을 올리는 도구로는 옻칠 전 과정의 기초 작업대인 정반과 귀얄(붓), 칠주걱, 숫돌, 자개긁기 칼 등이 있다. 3) 제작과정 최씨공방 최석현은 나전일을 처음 접할 당시부터 작업 전 과정에 대한 기초지식과 기술을 습득하 였으며, 40여 년 이상을 나전칠기 일에 종사하여 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다. 일단 작품에 대한 구상 과 형태, 내부도안에 대한 구상이 이루어지면 백골을 제작하고 이에 들어갈 자개도안을 직접 그린 다. 제작된 백골은 다듬기 과정을 거치고 곡수를 메우는 등의 밑작업을 마친 후 토회를 바르고 칠을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여 자개붙일 면을 만들어 나간다. 도안된 자개는 줄음질과 끊음질 등의 과정을 거쳐 칠면 위에 부착하고 반복된 칠작업을 거쳐 연마하고 광택을 내어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와 같 은 공정은 긴 시간이 소요되며 수많은 공정을 거친다. 최씨공방 대표 최석현의 작업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상 - 백골( 栢 滑 )제작 - 백골다듬기 - 곡수 메우기 - 생칠 바르기 - 나뭇결 메우기 - 베 바르기 - 베등 생칠하기 - 베눈 메우기 - 초벌토회 바르기 - 토회 갈기 - 재벌토회 바르기 - 토회 갈기 - 초칠하기 - 칠면 틈 메우기 - 칠면 토회 갈기 - 두 번째 초칠하기 - 자개 붙이기(붙임질) - 아교 빼 기(풀빼기) - 자개 손보기 - 자개면 생칠 바르기 - 자개면 토회 메우기(혹은 칠 채우기) - 자개면 토 회 갈기 - 자개면 초칠 및 토회 바르기 - 자개면 초칠 및 토회 갈기 - 중칠 바르기 - 중칠 자개 긁기 - 마무리칠 하기 - 마무리칠 자개 긁기 - 마무리 칠면갈기 - 초벌광내기 - 모조법을 이용한 새김질 하기 - 접칠하기 - 재벌광내기 - 장석달기
21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최씨공방 최석현은 현재 나전일과 옻칠정제와 칠일을 모두 본인이 하고 있다. IMF 이전에는 광주 광역시에서 대표적 나전칠기 가구업체로 손꼽힐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 당시 최석현은 수 익의 일정부분은 꼭 자개, 옻칠, 목재 등의 재료에 재투자하였다. 그만큼 나전칠기 가구류의 수요가 많았으며 상질의 재료를 구비,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장인정신이 투철하였다. 이후 경제적 악 화에 따라 가구 업체는 정리하고 현재 본인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최석현은 여러 공모전에서 국 무총리상, 대상, 우수상 등의 수상실적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국내 외 협회전, 단체전, 기획전 등을 통해 외국과 광주광역시와의 문화적 교류 또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는 광주광역 시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옻칠문화연구원, 공예협동조합 등의 협회에 보 직을 맡아 광주광역시 나전칠기는 물론 공예 전반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최씨공방은 광주광역시 양림동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잘 꾸며진 매장이 주변 상권에서 유일하게 눈에 띌 정도이다. 최씨공방은 작업실과 전시실, 정제실, 건조실 등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최 씨공방 맞은 편에는 50평 가량의 개인 주택이 있고 중요한 자개 재료들은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그 리고 줄음질이나 자개관련 장식작업은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양림동에 자리한지 24년 동안 최 씨공방 최석현은 광주광역시에서 나전칠기 전승활동을 가장 많이 한 장인으로 손꼽힌다. 광주광역 시 시장을 비롯한 각 지방 관공서 등에서 최씨공방을 자주 방문하고 있으며, 언론과 접하는 기회도 상당하다. 또한 광주광역시 공예협동조합이사장으로 많은 전승활동을 하였다. 현재 최석현은 나전칠기에 전념하지만 한편으로는 융합공예를 연구하고 있다. 한지와 옻칠의 융 합, 한지와 자개의 융합 등 다양한 유산의 발전을 생각하고 있다. 최씨공방에는 많은 작품과 상품들 이 전시되어 있다. 그동안 30여 회 이상의 많은 전시회를 통해서 마니아층을 다수 확보하고 있으며, 공예협동조합이사장을 하면서 기프트쇼, 영원한 교류전, 해외전시회 등을 통해서 만난 지인들과 지 속적 소통을 하며 상호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최석현은 현재 위탁판매는 하지 않고 있는데, 매장에 서 월 500만원 내외의 수입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우 리 문화의 고유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여실히 표현하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다. 이것을 보호하며 발 전을 모색할 때 우리 문화의 전통과 고유성을 잃지 않고, 후대에 전승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21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것이다. 최씨공방 대표 최석현은 나전칠기의 보호를 위하여 기법과 표현양식에 있어 지속적인 연구와 변 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의 나전칠기 우수성은 보존하며, 지금 시대에 맞는 생산성은 높이면서도 현 대인의 미적 감각을 충족 시킬만한 디자인적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공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대 중의 곁에 남기 위한 대응이라 하겠다. 실용품이자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나전칠기는 대중에서 분리 되면 그 생명력을 잃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한양종합미술대전, 공예품경진대회, 공예품대전, 관광기념품 공모전, 한국공예대전, 한국옻칠공예대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대상에서부터 입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수상경 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순수미술, 디자인 분야 등과의 협업이나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한발 더 나아가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최씨공방 최석현은 공모전, 전시회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전승활동을 끊임없이 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보호해 나가고 있다. 또한 나전칠기의 매력을 알리기 위한 교육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특히 해마다 이루어지는 미술분야 영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에 매년 참여하여 나전칠기의 멋을 어린 시절부터 알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기 울이고 있다. 9. 계승방식 최씨공방 최석현은 나전과 칠 분야를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중이다. 장인이 갖추어야만 하는 기술, 이것은 완성이라는 것이 없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꾸준히 갈고 닦으며 지속적으로 완숙시켜 나가 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동안 전수받은 무형문화재 분들과 지속적인 만남 을 계속하며, 기능에 대하여 끊임없이 교류를 나누며 자신의 기능을 한 번 더 완숙시켜 나가는 계기 로 삼고 있다. 최석현은 광주지역에서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작업하는 대표적 장인이다. 나전칠기에 대한 재조명 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져 가는 지금 이를 배우고자 하는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실정이다. 모든 공예가 기술습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나전칠기는 특히 그 기술 습득에 많은 시간과 노 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쉽게 접근이 어려우므로 공방 자체적 교육일 때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 지 않는 간단한 소품을 제작하는 정도로 나전칠기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정도의 교육만을 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으로 목칠공예를 전공중인 장남 최신의가 현재 최석현의 가업을 이어 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중이며, 정규 학교교육에서는 나전칠기뿐만 아니라 디자인파트의 공부를 통 해 다른 디자인적 요소를 받아들이도록 하여 최석현의 무형유산을 계승 발전 시키고 있다.
21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관련자료 남도의 색, 옻칠, KBS, 1997년 남도정서 담은 빛깔을 찾아서, 무등일보, 1997년 옻칠 남도의 색을 찾아서, 광남일보, 1997년 전통공예의 멋 세계곳곳에 알릴터, 호남신문, 1999년 최석현 씨, 김애석 교수 각각 국무총리상, 대통령상, 호남신문, 1999년 공예계에 떠오른 혜성, 자개분야 일급 기술자 최석현, 호남인물세계신문, 1999년 문화가 밥이다! 그 역군을 찾아서, 무등일보 기획특집, 2005년 인물탐방 - 우리의 옻칠, 세계의 명품으로, 광주내일신문, 2006년 나전칠기, 천년의 빛깔을 칠하다, KBS, 남도문화, 2007년 전통공예 맥을 잇다, KBS, 현장리포터 사람세상, 2008년 세계가 무대다, 광주내일신문, 2008년 나전칠기의 명인 최석현 씨를 찾아서, 시민의 소리, 2008년 공예인들이 작품에 전념할 환경 조성, 월간 굿뉴스피플, 2008년 우리의 멋을 지키는 나전칠기 최석현공예가, SBS, 고향이 보인다, 2008년 시간을 칠하는 미술사 최석현, 격월간 대동문화, 2009년 광주공예산업발전의 버팀목, 시사투데이, 2010년 신지식인 선정, 시사투데이, 2010년 광주공예산업 지역문화 활성화 버팀목, 스포츠 월드, 2010년 완도수목원 산림박물관 우리옷 입어 한국최대규모 옻칠 한옥건물 태어나다, 대동문화, 2011년 광주 전통공예 전국에 알릴 것, 전남일보 18면 사람들, 2012년 광주양림동 전통공예체험관 개관, 신창동 출토유물 광주 관광산업 복원작업, 전남일보 14면 문화면, 2012년 양림동 전통공예 체험장 광주 첫 개장, 광주공예전통은 미래 성장 동력이다, 대동문화, 2012년 전통옻칠 나전공예 최씨공방, 무등일보, 2012년 통영장인들 광주 공예 배우러 왔다, 무등일보, 2012년 광주 공예산업 발전에 밀알이 되고 싶다, 무등일보, 2013년 11. 관련단체 한국옻칠문화연구원 이사로 활동하면서 시 도지정 무형문화재 및 명장들과의 기술 및 정보 교류
21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등을 활발히 하면서, 지역 기능인들을 위한 교육을 통하여 최석현의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광주공예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광주광역시 공예의 활성화와 육성,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옛 광주광역시 나 전칠기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대내외적으로 많은 전시회와 각종 사업을 구상 중이다. 현재까지의 활 동들이 밑바탕이 되어 광주지역에서는 나전칠기에 대한 관심이 차츰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최석현 작품 및 상품
21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최씨공방 전경 최석현 인터뷰 최씨공방 전시실 나전일 작업장과 건조실 최석현 자개 설명 모습 옻칠 정제기계 시설 최석현 작품 및 상품 최석현 작품 및 상품
22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흑단공예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14일 유산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조사대상자 최대규(남, 1951년생, 흑단공예 대표) 1. 유산명칭 흑단공예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1970~1980년대에는 이리, 전주, 남원과 그 인근에 나전칠기 종사자들이 500명이 넘었을 정도로 번성하였으며 많은 나전칠기 가구점과 재료상들이 있었다. 전주는 인근의 남원에서 목기 및 칠을 수 급하기 용이하였고, 통영, 부산, 서울, 광주 등 전국에서 많은 장인들이 전주로 유입되면서 나전칠기
22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가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IMF 이후 대부분의 장인과 공방, 업체들이 없어지면서 전주시의 나전유산 역시 사라져가고 있다. 현재 전주에서 나전유산 활동을 하고 있는 장인은 최대규가 유일하 다. IMF 이전에 전주에 있었던 많은 장인과 나전칠기 종사자들은 전주만의 나전유산과는 다소 상이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장인과 업체 종사자들은 전통 나전 자연유산의 개량화된 기술력을 받아들여 생산성의 증대에 주력하여 전통유산활동의 전승과 보급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대규는 개량화된 기술, 재료, 도구와 함께 전주의 전통 나전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데 근본을 두고 현재까지 작업하고 있는 장인이다. 3. 유산의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최대규 3) 성별 : 남성 4) 나이 : 63세(1951년생) 5) 출신지 : 전라북도 완주군 6) 입문시기 : 최대규는 1951년생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7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한 관계로 나전칠기 업계에 입문했다. 7) 공방 이동지역 : 최대규의 스승은 통영 전습소 출신의 장인에게 기능을 전수 받은 박희목이다. 박 희목은 1945년생으로 전주에 이주하여 서학동에 중앙 가구점을 설립하였다. 당시 서학동에만 100여 명이 넘는 나전칠기 종사자들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스승으로부터 겹자개 줄음질, 외자재 줄음질, 진주패조각 끊음질(국화, 싸리, 회포, 성틀무늬) 등의 나전기능을 전수받았다. 박희목은 문양을 잘라내 고 남은 자투리 자개를 이용하여 산수문양을 만들었는데, 이에 감탄한 최대규는 스승의 뒤를 이어 기능 정진에 힘 쏟았다. 이외에도 개인이 창안해낸 커텐포문 끊음질 문양도 창안해 내었다. 흑단공 예는 1980년대 최대규가 군 제대 후 설립하였고 1997년까지 전주시 금암동, 진북동, 색장동, 합천동, 노송동 등지로 경제적 여건에 맞추어 작업실을 옮겨 다녔다. 1997년에는 삼천동에 15평 규모로 10여 년간 운영했고, 이후 2007년까지는 대성동으로 옮겼으며 현재는 전주시 한옥마을 인근 동서학동 주 택가 내에 작업실 15평을 포함하여 50평가량의 주택에서 작업과 생활을 하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22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자개이다. 자개는 직접 가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두 재료상에 서 구입한다. 흑단공예 최대규는 모든 종류의 자개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진주흑 패, 노랑원패, 백패, 옥패 등의 후패류는 상감 기법과 패세공 기법을 이용해 액세서리, 나전액자류 제작에 사용하고 있다. 현재 흑단공예 최대규가 주로 자개를 구입하고 있는 곳은 서울소재 상아자개 이며, 일부 옻칠재료는 전주 행촌칠기 이의식과 평화자개를 통해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질이 좋은 자개는 일부 보유자에게 선점을 빼앗겨 원하는 재료를 쉽게 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일 회용 재료나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 및 도구는 전주 일대에서 구입하고 있다. 흑단공예에서는 장식 재료 접착제로 아교와 어교를 사용하는데, 민어부레는 온라인상으로 구입하고 아교는 서울 우일상 사에서 구입한다. 그밖에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기타 장식재료는 동선, 은선, 대모, 사어피 등 다양한 재료가 있다. 백골 제작은 디자인 결정 후 도면을 작성하여 백골장인에게 의뢰를 하는데 전통가구 명장 조석진 에게 의뢰하였다가 그가 타계한 이후로는 전북 완주 구이면에 가구제작 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수 상한 천철석(50세)에게 의뢰하고 있다. 수요가 없다보니 다른 지역보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기타 경 비를 합산하면 비슷하기 때문에 계속 의뢰하고 있다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주택가 중심에 위치한 흑단공예는 슬레이트 지붕에 두 동의 건물로 50평 정도의 크기이다. 한 건물에는 주거와 함께 그동안 제작하였던 작품들과 대표 최대규의 수상 작들이 벽면과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다. 거실 벽면으로는 패세공 기법으로 제작한 어문 열쇠고리와 새우, 열대어, 나비, 장미, 잠자리 모양의 여성용 목걸이가 전시되어 있고, 산수문, 마문, 어류문양 등 의 원형 장식 쟁반들이 선반위에 전시되어 있다. 하회탈 팬던트, 어문 노리개 등이 액자에 전시되어 벽면에 장식되어 있고 패세공 불상 액자가 중앙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생활과 함께 하 청 받은 나전 붙임질 작업이나 끊음질 작업을 주로 하며 최대규의 개인작품 제작 시 문양을 그리고 디자인을 한다. 또 다른 건물은 작업장으로 20평 가량의 크기로 칠을 다루는 책상과 희석제 옻칠 등이 있고, 옆방 에는 줄음질 및 자개관련 장식기법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다. 여기에는 사단 수납공간에 각종 용 도별 붓과 숫돌, 거도, 풀솔, 원패가공용 줄, 인두, 가위, 디바이더, 컴퍼스, 상사칼, 집게, 핀셋, 조각 칼 등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되어 있다. 옆 진열대에는 색패, 뉴질랜드패, 수도리패, 야광패, 청패 등이
22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있으며 어교, 금속선, 동선 등 나전과 함께 장식이 가능한 다양한 기타 장식 재료들이 보관되어 있 다. 구석진 곳에는 책상이 놓여 있고 그곳에는 핸드피스가 놓여 있다. 패세공 작업을 할 때에는 이곳 에서 작업을 한다. 줄음질 작업테이블에는 문고리가 고정되어 그곳에 태장대가 부착되어 있고 톱대, 톱날, 줄, 핀셋, 상사칼, 샤프, 자개가 놓여 있다. 이 도구들은 전통과 근대 도구들로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 사용해오고 있다. 기계 장비와 설비는 없으며 근대 도구를 발전시킨 절삭기, 상사기, 핸드피 스, 컴프레셔를 사용하고 있다. 개량화된 도구들은 있으나 핸드피스만 3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고 전 통기능을 계승하고 전승하기 위해 기타 기계 도구들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3) 제작과정 흑단공예 대표 최대규는 43년째 나전일을 전문으로 하였고 독립하면서 나전일과 칠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먼저 가구류, 소품류, 액세서리류 등 모든 작업물의 디자인을 결정하고 도면을 그 린 후 백골을 주문하는 데에서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칠기제작방법과 기술, 나전장식방법과 기술 모 두 전통제작과정에 준하여 작업한다. 제작과정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도 장식재료와 기법인 데, 가장 좋은 자개 선별을 우선시 한다. 그리고 문양에 어울리는 자개와 기타 재료와의 조화를 중요 시 한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과정을 나열하면, 자개선별 - 자개모양본뜨기 - 자개본뜨기 - 본지붙이기 - 주름질(오리기) - 주름질 올리기 - 기물 어교칠하기 - 자개 어교칠 - 지짐질 - 종이 벗기기 - 어교뭉개기 - 풀빼기 - 때우고 손보기 순서이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전주는 외지 나전칠기 장인들의 유입이 많았던 도시 중 하나다. 최대규의 스승 박희목도 통영 출 신으로 전주로 이주하였다. 전라북도 지역에는 일찍이 양질의 옻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특히 전주와 남원 지역에서는 목기의 발달로 옻칠 작업이 성행하였다. 1918년 전주공고에서 칠공예과를 개설하 여 전문적인 교육을 시행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사회 문화적으로 전주 지역 에서는 나전칠기에 관한 자긍심이 강하였고, 이것이 바탕에 되어 나전칠기 성행기 때 많은 외지 장 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당시 종사한 장인들 중 전주, 남원 등의 장인 이의식, 박강용, 김을생, 김명 돌 등은 현재 지방자치의 보호를 받기 시작하여 나전칠기의 가치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 흑단공예 대표 최대규는 1993년 4월 28일 전라북도기능경기대회(나전칠기) 금상을 수상한 이래, 1995년 금상, 2000년 특선, 2005년 동상, 2006년 장려상, 2012년 은상 등을 수상하였고, 공예품대 전, 관광기념품 공모전 등에서 입선과 장려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유산 활동을 대내외적으로 끊임없이 하고 있다. 최대규는 현재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전유산 활동
22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주의 우수한 나전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다시 활성 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1980년대까지 나전칠기 호황기를 누리던 전주의 수많은 나전 기능인들은 수요부족, 소비자 외 면 등의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자 모두 이직하고 극소수만 남아서 그 맥을 계승하고 있다. 1960~1970년대 나전일을 시작한 장인들이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이고 50대 미만의 종사자와 장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의 개방 교류로 인해 전통나전칠기의 외 면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수차례 작업장을 이전해 가며 흑단공예는 나전일 전승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재 15평 남짓의 작업장에서 연간 3~4점의 소작품 제작과 생계를 위한 다양한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디자인, 붙임질, 전시 등은 주거 공간에서 함께하고 칠일과 나전일은 작업실에서 하고 있다. 흑단공예에서 제작하는 것은 이층장, 상류, 액자 류, 쟁반류, 액세서리류, 컵류 등을 제작하고 있으며 현재는 상을 주로 작업 하고 있다. 상품과 작품을 모두 제작하고 작품은 매해 7월경에 열리는 회원전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초대전에 출품한다. 상품류는 다양한 종류를 작업하고 있으며, 그 중 액자류와 액세서리류는 패세공 기법을 이용한 상품이 많다. 가격은 10만원에서 100만원대까지 다양하며 간혹 지정문화재로부터 나전일을 하청받기도 한다. 작품은 1년에 전북공예협동조합협회전과 전통공예전국대전 추천작가에 출품하고 있으나 상품은 판매가 전무한 실정이다. 상품은 액세서리, 쟁반, 컵 등을 직접 제작하고 있으나 이나마도 여의치 않 은 상태이다. 8. 유산의 보호조치 흑단공예 최대규는 유산을 활용한 예술화, 상품화에 전념하여 자개를 이용한 장신구를 개발하였 고 기술을 보호받기 위해 실용신안을 등록해 제도적으로 유산을 보호하고 있다. 최대규가 가진 나전 유산은 시대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나전일을 할 때 다양한 재료의 활용과 여러 가지 색상의 칠을 함께 사용하여 발전시켜 왔다. 최대 규는 전라북도 전통공예인협회, 전라북도 나전칠기보호협회 등에서 회장을 역임하면서 전주 나전칠 기 문화유산의 저변확대와 각 종목별 융합에 힘 써오고 있다. 타 무형유산과의 활발한 활동과 융합 을 위하여 노력하고 대중에게 자신의 유산을 전승시키고자 하며, 각종 공모전과 전시회에서 대내외 적으로 자신의 유산을 알리고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용신안과 같이 자신의 기술유산을 보호
22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받기 위해 최대규는 전주시 무형문화재를 신청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9. 계승방식 도제식 교육에 의해 나전 일을 배운 흑단공예 대표 최대규는 부산에서 활동 중인 문철호에게는 끊음질 기법을 도제식으로 교육하였고, 전주의 김대룡에게도 같은 방식의 교육을 시킨다. 나전의 선 별방법, 끊음질 숨보뜨는 방법, 줄음질 방법 등을 설명과 함께 자신의 작업에 직접 참여시켜 몸으로 느낄 수 있게 교육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자신이 박희목으로부터 교육 받았을 때와 동일한 것으로 일반강좌 교육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기능의 전수가 가장 명확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입문에서 현재까지 흑단공예 대표 최대규는 43년째 나전칠기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가 입문했을 당시 김용환, 박정자, 조명훈 등이 작 업을 하고 있었다. 1918년경에는 전주공고에 칠예과를 개설하여 정규교육을 시행할 정도로 나전칠 기는 전주에서 문화 경제 면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현재 제자로는 김익태, 이학봉, 하태기, 문철호, 김대룡이 있으나, 대부분 이직하고 문철호는 부산으로 옮겨 30년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 다. 김대룡은 태인공예 대표로 전주 전동에서 나전칠기, 고가구, 수공예품을 판매하다, 2001년부터 최대규의 기능을 전수 받고 있다. 일주일에 1~2회씩 기능을 배우고, 최대규의 작업을 도우면서 기능 연마와 최대규의 작업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10. 관련자료 창작에 도전하는 사람, 월간 한국공예문화, 1993년 소박한 지혜 투박한 슬기 엿볼까, 전라일보, 2007년 천년고도 얼과 전통의 멋 감상하세요, 전민일보, 2008년 현대와 전통공예의 기막힌 어울림, 전북도민일보, 2009년 11. 관련단체 최대규는 전라북도 전통공예인협회, 전라북도 나전칠기보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곳 에서 회장 및 임원직을 지내면서 각 공예 종목간 상호 정보교류와 나전칠기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대규가 가입한 단체 중에서 나전상품이나 작품을 판매하는 곳과 가르치는 곳은 없으며, 전주공예품 전시관에서 전시 활동을 하고 있다.
22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흑단공예 전경 최대규 인터뷰(좌측) 내부 전경 최대규 작업 모습 최대규 자개 설명 모습 흑단공예 전통도구 및 재료 모습 최대규 작품 최대규 작품 최대규 작품
227 경상 대복공예사 226 서울자개사 236 성문공방 246 송원칠공방 253 철마공방 260 청솔공방 268 태평공예사 275 통영섭패 286
22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대복공예사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8일, 10월 21일 유산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도남동 642 조사대상자 박재성(남, 1952년생, 대복공예사 대표) 1. 유산명칭 대복공예사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22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께 전승되어 왔다. 특히 대복공예사가 위치한 통영은 나전칠기의 주재료인 전복조개를 공급하던 곳 이어서 과거부터 이 지역 장인들은 자연지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대복공예사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 작품을 완성하는 제작방 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하지만 근래 전복조개는 자연에서 생산되지 않고 인공적으로 양식하 거나 외국에서 수입하는 등 재료 수급에 있어 과거와 달라진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수공예 방식 으로 제작하던 데서 전통적 수작업은 후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기계화된 도구를 부분적으로 사용하 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도 있다. 전체적으로 대복공예사는 통영지역에서 전승되는 끊음질 기법을 주 로 사용하는 지역적 특징을 갖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도남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나전장) 2) 성명 : 박재성 3) 성별 : 남성 4) 나이 : 62세(1952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6) 입문시기 : 박재성은 통영 진남초등학교를 나오고 16세인 1967년에 집안의 권유로 통영의 자개공 방 중 하나인 동방공예사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장인들의 잔일을 도와주면서 나전칠기에 입문하게 되었다. 당시 공장장은 이상조였는데 그의 밑에서 나전칠기에 관한 모든 일을 13년간 배 웠다. 7) 공방 이동지역 : 박재성은 서른이 넘어 끊음질과 주름질에 있어서 실력을 인정받아 통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충무공예사로 직장을 옮겨 계속 작업하였다. 그러나 1980년 말 나전칠기가 사양화되면서 공방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때 그도 직장을 그만두었다. 1988년 통영시 정양동에 있는 자택에 스스 로 대복공예사 라는 상호를 가진 개인공방을 개설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전칠기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태평동, 북신동으로 공방을 옮겨 다니면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다 2000년대 에 들어와서 조금씩 나전칠기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이제는 나전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 통영시와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박재성도 2008년부터는 시 에서 제공한 통영전통공예관 에 자리를 잡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23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에 필요한 일차적 재료는 전복패이고 그밖에도 소라껍질류, 진주패류를 이용한다. 대복 공예사에서 필요한 자개패는 일차적으로 통영 용호리 마구촌에 있는 통영섭패의 섭패장 이금동으 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박재성은 자연산 전복이 크기나 색깔에서 양식산에 비하여 크기나 색상이 월 등하게 우수한 것을 잘 알고 자연산을 주로 요구하여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양 식산 전복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섭패장이 가공하는 자개패도 예전에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보다 좋 지 못하다고 한다. 그밖에 색채 효과를 내거나 특수한 효과를 내기 위한 자개패는 서울에 있는 평화 자개사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나전칠기의 뼈대를 이루는 백골은 통영에 위치하고 있는 소목장 안원길에게 의뢰하여 제작해서 쓰고 있다. 접착을 위한 아교는 통영전통공예관에서 공 급받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대복공예사는 통영 해양공원이 보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통영전통공예관 내에 자리잡고 있다. 통 영전통공예관은 단층이며 120여 평의 넓은 공간에 아름다운 바닷가에 위치한 흰색 건물이다. 이곳 은 통영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서 나전칠기를 비롯하여 통영에 소재하고 있는 공방이나 공예가들 이 제작하는 전통공예품을 전시와 판매 및 교육을 하는 시설이다. 나전칠기 공방은 전시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박재성 자신이 사용하는 공방은 15평 정도이다. 하지만 공방의 바로 맞은편에 3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장도 있어 제작과정을 시연하고 그것을 교육하고, 완성품을 전시 하는 비교적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공방과 교육장 내부에는 곳곳에 수납장이 있어 작업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나 도구들을 비치할 수 있다. 교통이 편하여 접근성이 좋고 작업에 쾌적한 여건을 갖추 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이 작가의 제작 모습을 보거나 체험을 할 수 있고, 나전칠기를 배우려 는 학생들에게도 쾌적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대복공예사의 박재성은 47년간 사용한 도구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어 옛날 장인들이 쓰던 전통도 구를 모두 갖추고 있다. 상사칼, 구두칼, 후패조각칼, 톱대, 귀얄 등이 그것이다. 그중 몇몇 도구는 현 대적으로 개량된 것도 있다. 둥근 형태의 끊음질을 위해 필요한 컴퍼스나, 구멍을 뚫는 드릴, 자개를 얇게 끊어내는 절삭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들도 그가 작업을 시작하던 1960년대에 전통 장인들이 사용하던 것이어서 그가 살아온 시대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그의 공방
23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은 통영전통공예관 한쪽에 협소하게 위치하고 있어, 이러한 작업환경에 맞추다 보니 공방 내부에서 그가 사용하는 도구들도 크기가 작은 소형의 것이었다. 반면 공방 외부에는 공방 내에 함께 거주하 는 소목장인이 사용하는 각종 도구들이 함께 비치되어 공유하고 있었다. 3) 제작과정 박재성의 작업과정은 전통 끊음질과 일치한다. 무엇보다 먼저 만들고자 하는 기물의 성격에 맞는 도안을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도안은 전통적인 문양 위에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도안 을 가미한다. 곧 전통의 일방적인 모방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 안이 결정되고 나서 제작과정은 일반적인 나전칠기 작업과 대체로 일치한다. 백골을 제작하고, 하지 작업을 하고 도장 작업을 한다. 이제 나전작업을 하는데, 초칠작업을 하고 자개패로 장식작업을 한 후, 중칠작업과 상칠작업을 한 다음 광내기를 한다. 그리고 장석달기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실 제로 나전칠기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세부적으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대략 30여 가지의 공정을 거 쳐 완성되는 것이다. 그는 작업과정에 있어서 옛날에 행해졌던 전통기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통영 나전칠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특히 박재성이 가장 즐겨 쓰는 기법은 정확한 치수에 의한 전통끊음질로 형성한 벽문과 구 문이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통영은 임진왜란이 끝난 17세기부터 통제영이 위치했던 곳이고, 통제영에는 나전칠기장을 비롯 12공방이 있었다. 때문에 통영 나전칠기의 역사는 400년이 되어 통영은 나전칠기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통영에서 활동하는 대복공예사의 박재성은 통영을 지키고 있는 송방웅, 장철영, 정찬복, 이한갑, 김종량, 김성안 등 10여 명과 함께 이 지역 나전칠기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통영 출신의 나전칠기 장인들로서 현재 통영을 떠나 활동하 는 장인은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남양주시 등지에서 여전히 나전칠기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나전칠기인의 숫자를 보더라도 통영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여 통영이 나전칠기의 본 고장이고 뿌리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현재 통영의 나전칠기산업은 서울 이나 경기도 지역에 비해 종사하는 인원이 적고 영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복공예사의 박재성 은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다른 지역의 유산에 비해 전통의 끊음질 기술이나 전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박재성은 47년째 꾸준히 나전칠기 작품을 제작하고, 1991년부터 각종 공
23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모전과 전시회에 출품하여 자신의 기량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나전칠기의 사회 문화적 발달에 기여 하고 있다. 그는 1991년 제21회 경상남도 공예품 경진대회 에서 동상을 받은 이래 전국공예품경진 대회 등에 제30회까지 연속 출품해 금상, 은상 등을 해마다 수상하였다. 2001년 이후 각종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와 경상남도기능경기위원회 등지에서 전 통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후학들을 지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08년에는 경상남도 최고 장인 에 선정되었다. 박재성은 통영 나전칠기를 널리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 2009년부터 서울리빙디자인 페어, 이탈리아 밀라노가구박람회, 연맹예술촌 아트페어, 동경국제선물용품전 등에 계속 참가 하였다. 이밖에 2011년에는 에쎄 담배 케이스를 나전으로 디자인하여 산업계에까지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대복공예사는 통영전통공예관에 입주하고 있어 통영시의 지원과 관심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대 복공예사의 경우 1990년대에는 나전칠기 산업 전체가 불황이어서 나전칠기 제품의 제작과 판매만 으로 생활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 대복공예사는 연간 6,000~7,000만원 정 도 작품을 판매하고 있어, 재료를 구입할 여유도 생기고 작품 제작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 었다. 현재 대복공예사에서는 나전칠기로 규모가 큰 장롱부터 작은 소반까지 다종다양한 나전 가구 류를 제작하고 있으며, 그밖에 각종 기념품 등 관광문화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의 전시와 판매는 주로 통영전통공예관에서 이루어진다. 전통 나전칠기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현지인보다 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애호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품의 관광상품은 관광객들이 다 량으로 구매를 하지만 워낙 가격이 저렴하여 매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근래에는 해외에서도 나전칠기를 애호하여, 박재성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대복공예사는 통영시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통영전통공예관에 입주하고 있어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는 위치에 있다. 그것은 47년간 박재성이 계속 통영에 거주하면서 1994년부 터 20년간 지역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전시회나 공모전에 꾸준히 홍보하였던 노력에서 기인한다. 그 의 표현에 의하면 자개를 오리고 자르는 데 0.1mm 단위의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면서 거기에 맞는 힘을 조절하고 간격을 측량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인의 오랜 경 험과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터득한 기술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3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박재성의 노력과 지역 나전칠기 발전을 위한 일관된 활동으로 인해 유산에 대한 지방자치단체로 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그는 경상남도의 기능발전과 산업발전을 고취하기 위해 2007년에 제정된 경남 최고장인 에 2009년에 선정됨으로 최고장인인증서와 향후 5년간 매년 100만원씩 장려금을 받게 되었다. 연간 100만원이란 지원금은 미미한 지원이지만, 그는 오직 한 분야에 매진한 데 대한 명예로 여기고 있다. 그는 현재 (사)통영나전칠기협회 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013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동 경국제선물용품전 에서 협회 회원들이 21종 70점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현지 바이어에게서 55건 2,500만원의 판매 성과를 내었다. 통영나전의 오색영롱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에 반한 바이어는 고 가의 제품까지 OEM 방식으로 대량수입을 원하고 있어 일본 진출에 청신호가 켜지게 되었다. 이렇 듯 이제는 일본이나 중국 나아가 서구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한 나전칠기는 국내의 좁은 울타리를 벗 어나 세계시장으로의 진입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것은 통영시나 나전칠기 단체의 힘만으로는 한계 가 있다. 우리의 유산을 보호하는데 있어서 장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현재까지의 실태라면,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세계시장으로 나전칠기를 보급하는 것이 더 적극적이고 실효 있는 보호대책 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통영시 지역발전추진단에서 공예품 개발사업 및 전시홍보, 공예인력 의 역량강화 및 저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하여 작품의 유통과 전시, 판매 시스템 구축, 디 자인 개발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미 4,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예전문 홈페이지(www. craft12.co.kr)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하여 박재성은 물론 통영의 나전칠기 종사자들은 400여 년 전 통을 가진 12공방과 나전칠기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다. 이러한 통영 공예인의 염원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통영시는 어떤 지자체 보다 열성적이다. 2013년에만 해도 향토핵심자원사업 으로 행정안전 부 특별교부세 2억원과 시비 2억원 총 4억원을 투입해 나전칠기를 비롯한 통영의 전통공예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지원과 보호정책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박재성 회장을 비롯한 통영의 공예인들 이 염원하고 있다. 9. 계승방식 통영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나전칠기교습소가 존재하여 해방 후 1960년대 초까지 존속하였다. 이곳 교습소 출신들은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시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되거나 나전 칠기 산업이나 교육의 핵심으로 활동하였다. 박재성이 입문할 당시에는 교습소가 존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습소의 교육과정은 배우지 못하였다. 다만 그는 1967년 충무공예사의 공장장이었던 이상 조에게 13년간 전통 나전칠기의 모든 기법, 곧 살치기, 끊음질, 주름질, 칠일, 나전 가공법 등의 기법
23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을 오랜 기간동안 도제관계로 배웠다. 더욱이 이러한 기능은 공장에서 잔심부름부터 하면서 철저히 기본기를 익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렇게 전통 나전칠기 기법의 전 과정을 익히려면 10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세부 단계별로 30여 가지의 공정을 모두 익혀야 한다. 이렇게 익힌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각종 전시회나 공모전에 참여하여 경쟁하였고, 그곳에서 입상하였다. 박재성은 2008년 경남의 최고 장인으로 선정되었고, 이후 통영시는 그에게 통영전통공예관 내 에 공간을 확보하고 전시와 판매 및 제자를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박재성은 이곳에서 나 전일 중 가장 특기로 하는 전통끊음질을 가르치고 있다. 끊음질은 나전칠기 기법 중 하나로 자개패 를 가늘게 잘라 붙이는 것으로 주로 직선으로 나타낸다. 오늘날 나전칠기 산업에서는 절삭기로 자개 를 대량으로 잘라내어 사용하지만, 박재성은 전통 방식대로 작두로 자르고 붙일 때도 손으로 뚝 뚝 떼어 붙인다. 이러한 전통 끊음질 기법을 제자들과 교육생에게도 전수하여 계승하고 있다. 박재성은 10년간 천기영(남, 51세)과 유정희(여, 49세)를 제자로 양성하고 있다. 공방 옆에 위치한 교육장에서는 20여 명의 수강생들을 가르치며 나전칠기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전칠 기 강습은 주 2회이지만,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주 4회 이상 나와서 배우고 있다. 이들의 열기는 대단하여 원래는 시에서 1년 단위의 교육기간을 두었지만 계속 연장하여 배우기도 하고, 매 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수강생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벌써 각종 공모전이나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통영시와 통영전통공예협회의 노력의 결과로 2011년에는 통영나전칠기교실 제1회 수료식이 통영전통공예관에서 열려 이인숙을 비롯한 9명의 수강생들이 수료증을 받았다. 따라서 박 재성에게 교육을 받은 이들이 앞으로 통영 나전칠기의 맥을 이어갈 것이다. 10. 관련자료 박재성은 2009년 경남 최고 장인에 선정되면서 지역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집중 취재하 고 있다. 언론에서는 그가 47년간 통영 토박이로서 이 지역 나전칠기의 발전에 애를 쓴다는 것에 관 심을 갖고 있으며, 담배갑 에쎄의 디자인을 하거나 일본 도쿄나 이탈리아 밀라노 등 해외에 나전칠 기를 널리 알리는 것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한산신문, 통영공예품, 경남공예품대전 휩쓸다 2008년 6월 16일자 hanryeotoday.com, 박재성씨, 경남 최고장인 쾌거 2009년 1월 1일자 한산신문, 통영12공방 브랜드,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 참가 2009년 4월 10일자 한산신문, 통영12공방, 해외시장 개척하다 2009년 4월 17일자
23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한산신문, 통영전통공예품, 서울리빙디자인페어서 대상 2010년 3월 28일자 한산신문, 통영12공방 제품, 인천국제공항에 전시 2010년 5월 17일자 한산신문, 박재성씨 에쎄 골드리프 담배갑 디자인 2011년 1월 21일자 한산신문, 찾아가는 갤러리, 디자인큐브 통영에 둥지 2011년 11월 28일자 한산신문, 동피랑 갤러리 소속작가들, 경주 아트페어 진출 2012년 8월 24일자 한산신문, 에너지 착한 섬 연대도, 주민 모두가 예술가 2012년 11월 16일자 한산신문, 통영12공방, 15만의 이목을 사로잡다 2013년 3월 8일자 hanryeotoday.com, 나전, 바다를 품다 展 2013년 8월 12일자 hanryeotoday.com, 통영 전통공예품 일본에 알린다 2013년 9월 9일자 한산신문, 통영 나전칠기 日 도쿄에서도 빛났다 2013년 9월 9일자 11. 관련단체 박재성은 현재 (사)통영나전칠기협회 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협회에서는 나전칠기 관련 전시 회와 출품, 홍보, 교육 등의 업무를 관리하며 회원에게 각종 관련 정보와 재료의 공급, 판매알선 등 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회를 개최하여 나전칠기의 인력을 양성하고 신인을 발굴하여 나전 인 구의 저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협회에서는 시민들을 상대로 나전손거울이나 열쇠고리 등을 직접 만 들어 보는 체험교실도 몇 해째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지역민에게도 나전칠기에 대한 재인식과 애정을 환기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통영전통공예관 운영위원장과 경남공예협동조 합 이사로서 지역사회 나전칠기의 저변확대와 전시 판매 및 홍보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 고 있다.
23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통영전통공예관 내에 위치한 대복공예사 통영전통공예관 내부 소목 공방 박재성에게 나전칠기를 배우는 제자들 통영전통공예관 내부 전시장 대복공예사의 공방 내부 나전칠기를 위한 각종 도구 나전칠기 작품 디자인을 위한 책상
23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절삭기로 자개를 끊어내는 모습 자개함 위에 컴퍼스로 분할하는 모습 자개를 올리기 전에 밑칠하는 모습 자개로 끊음질을 하는 모습 끊음질로 卍 자를 올리는 모습 현대적으로 상사를 붙인 모습 나전주칠3층장 나전흑칠함 다종다양한 나전칠기작품
23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서울자개사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성웅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8일, 9월 21일 유산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죽계리 조사대상자 강상용(남, 1948년생, 서울자개사 대표) 1. 유산명칭 서울자개사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제 작 기능과 더불어 재료를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께 전승되어 왔다. 서울자개사는 나전칠기를 제작하
23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는 여러 재료 중 특히 전복껍질을 가공하여 나전 작업에 필요한 자개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 문적인 제작 방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국내에서 생산된 전복도 자연산이 점차 줄어들고 크기도 작아져 이제는 양식에 의한 인공산이거나 수입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원패 를 잘라 붙여 판자개로 제작하거나 기계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에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 고 있다. 서울자개사는 고성지역에서 나전칠기의 핵심 재료인 자개를 가공하여 전국 각지에 공급하 고 있어 나전칠기업의 주요 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나전칠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자개를 가공하는 섭패일도 나전장의 전승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섭패일과 관련된 서울자개사도 조사하여 수록하였음을 밝힌다. 3. 유산의 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죽계리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섭패장) 2) 성명 : 강상용 3) 성별 : 남성 4) 나이 : 66세(1948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남해군 6) 입문시기 : 강상용은 경상남도 남해 출신으로 16세 때 통영의 어느 나전칠기 공방에서 전복패로 만들어지는 자개농의 화려함에 감탄했으며, 그 재료가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전복껍질임을 알게 되 었다. 1964년 고성군 이당리에서 자개를 가공하는 공장 주인, 배기열의 권고가 있어서 그때부터 전 복껍질을 보이는 대로 수집해 공방에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20여 년간 전복패, 소라패 등을 구하기 위해 전국 해안을 돌아다니며 수집해서 나전공방에 팔았다. 군 생활기에나 휴가 때에도 전복패를 모아서 통영에 있는 나전공방에 공급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당시 통영의 수많은 나전공방과 섭패공장에서는 항상 원자재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가 전국을 다니면서 질 좋 은 전복패를 모아주어 장인들의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나전칠기에 있어서 원자재의 공급, 가 공, 나전일의 분업화에 일조를 한 셈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나전공방이나 섭패공장에서는 자체적으 로 전복패를 구해 썼으나, 그가 전문수집가로 나서 원자재의 공급에 힘을 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 릴적 섭패공장과의 인연이 결국 그가 섭패 가공일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7) 공방 이동지역 : 강상용은 고성 배기열의 공방에 전복패의 공급을 시작으로 이 일대 섭패공장에
24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전문적으로 전복껍질을 수집하여 배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자신이 가져다 준 울 퉁불퉁한 전복패를 다듬어 얇은 판으로 가공하는 섭패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더욱이 수집한 전 복패를 직접 가공하여 공방에 넘긴다면 부가가치가 클 것이라 판단하고, 수집활동과 동시에 1975년 부터는 통영 동호동에 있는 개인공방에서 섭패가공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섭패가공일을 배울 때 이 미 전복패와 10년 이상 인연이 있었기에 빠르게 가공일을 배울 수 있었다. 5년 후 1980년에는 통영 정량동에 있는 자개공방으로 자리를 옮겨 섭패가공의 완전한 기능인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1년 8월 독립하여 고성 죽동마을에 있는 합동자개공장 안에 서울자개 라는 상호로 섭패가공일 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이 합동자개공장에는 5개의 섭패공장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강상 용의 서울자개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를 제작할 때 필수적인 원자재가 바로 전복패나 조개패 등인데, 그 중 전복패는 통영 일 대에서 생산되는 전복을 으뜸으로 친다. 그 이유는 이곳 앞바다의 온도와 조류의 세기 그리고 전복 의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물론 전 세계 여러 곳의 바닷 가에서 전복껍질이 나오지만 우리의 것처럼 광택과 색채가 우수한 것은 없다. 사울자개사도 보다 크 고 좋은 전복패를 구하기 위해 미국을 다섯 차례나 방문하여 전복패를 구해봤는데, 크기는 커서 양 이 많이 나오지만 우리 남해안의 것처럼 영롱한 색깔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서울자개사의 대표인 강상용은 나전칠기의 원자재인 전복패를 구하기 위해 트럭을 가지고 부인 (백금엽)과 함께 한 달에 보름은 전국을 순회하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동해안과 남해안의 수 산센터, 횟집, 어시장, 전복집 등지를 다니면서 전복껍질을 수집하는 것이다. 현재 그가 상대하는 업 소만 전국에 70여 곳에 이르고 있다. 각 업소에서 모아둔 전복패의 경우 어떤 곳에서는 무상으로 주 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는 약간의 사례비를 요구하여 필요한 만큼 주고 전복껍질을 수거해 온다. 사 실 업소 측에서는 쓰레기를 치워주기 때문에 내심 반기기도 한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전복을 구워 먹는 것이 유행을 하면서 전복패가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강상용은 각 업소에 안내장을 일 일이 배포하여 전복패가 귀중한 자원임을 홍보하고, 구워 먹을 때는 먼저 사용한 껍질을 재사용하도 록 하고 새 껍질은 보관해 주기를 권하고 있다. 서울자개사에서 전국을 다니면서 수집하는 전복패의 양은 대단하다. 경남지역 경우에만도 거제도 에서 600kg, 통영 600kg, 삼천포 500kg, 마산 600kg, 진해 450kg이 수집되어 전국적으로 한 달에
24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평균 5,200kg 정도를 모으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전복패는 암수와 크기, 빛깔, 바닥의 굴곡상태, 이 물질의 접착 정도에 따라 A부터 E까지 5등급으로 분류하고, 용도에 맞게 가공한다. 한편 서울자개 사에서는 전복패 외에도 조개류와 특수한 용도를 위해 수입패까지 섭패의 원재료로 이용하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서울자개사는 경상남도 고성읍 변두리에 위치한 죽동마을에 있는데, 옆에는 큰 하천을 끼고 있는 논밭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공방의 입지조건은 섭패 가공시 발생하는 소음과 분진으로 인한 민원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곳은 원래 5개의 합동자개공장이 있었는데, 불황으로 하나씩 사 라지고 서울자개사만이 남아 그 시설을 인수받아 상당히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작업장과 창고 는 각각 약 30여 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또한 섭패공장으로는 비교적 넓고 큰 것이다. 이곳에서 강상용은 본인을 비롯하여 숙련공 1명과 반숙련공 1명, 모두 3인이 작업하고 있으며, 자개의 수요가 많아 바쁠 때는 부인과 동네 사람들까지 공장에 와서 일을 돕고 있다. 서울자개사에서는 다른 공장에 비하여 비교적 많은 작업도구를 확보하고 있다. 이것은 수요가 많 아 일이 바쁠 때를 대비하기 위하여 최대 10명 정도가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그 도구들의 종별과 수량을 살펴보면 원형빗돌, 삼각줄 대, 평줄 대, 사각줄 대, 톱바, 광택연마기, 다이아몬드 원 형톱, 그라인더, 다이아몬드 톱, 팬이 각각 1개씩 있고 자개가공기계는 11대가 있다. 3) 제작과정 전국에서 수집한 전복패는 일차적으로 물세척을 해야 하는데, 전복살을 발라낸 뒤 최소 5일안에 작업을 해야 전복패가 상하지 않는다. 전복패의 가공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세척 : 종류에 따라 물세척과 기계세척이 이루어지는데, 물세척의 경우 세척수의 온도와 시간 을 잘 조절하여 부패를 방지한다. 섭패 갈기 : 섭패의 앞면과 뒷면을 갈아 이물질과 돌기 등을 제거하며 용도에 맞게 두께를 일정 하게 유지한다. 섭패 절단 : 전복패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절단해야 용도에 적합하고, 로스(패설)를 줄이는가가 관건이다. 여기에는 귀패절단, 바닥패절단, 칼패 절단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패의 품질과 형태 가 결정되므로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마무리 갈기 : 절단된 패는 다시 앞과 뒷면을 갈아 주는데, 그라인더의 회전수에 따른 열발생에 유의하며, 두께가 0.8mm 정도 되게 정확한 두께를 유지시켜야 한다. 광택내기 : 섭패의 아름다운 광택을 얻기 위하여 물에 의한 방법을 이용해 광택을 내주며, 두께
24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도 재조정 한다.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제작과정이 있지만 매 과정마다 최소 10년 이상을 익힌 고도의 감각과 기 술이 필요하다. 절단을 하거나 표면을 갈 때에도 기계의 회전수와 열 발생, 힘의 강약, 기계와의 간 격 등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전신의 감각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그만 차이에도 섭패가 파손되고 찢어지며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자개사의 강상용은 근 50여 년을 자개패와 함께 생활했으므로 일반인들이 알아챌 수 없는 미세한 차이로 기계를 다루며, 한눈에 패의 상태를 판정할 수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서울자개사가 위치한 고성은 섭패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역적 위치이다. 근처에 있는 통영은 조 선시대부터 나전칠기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자개패를 수 집해 가공하던 섭패업이 발달하여 30여 년 전에는 섭패공장이 80여 곳이 넘었다. 그러나 전복패를 가공할 때 먼지와 소음이 심하여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므로, 1990년 이후 청청바다인 통영에서는 섭패공장이 세워지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때문에 통영의 섭패장들은 인근 지역의 고성이나 중국, 필 리핀 등지로 떠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울자개사 또한 통영이 아닌 고성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서울자개사의 대표인 강상용은 섭패 없이는 우리 나라의 나전칠기도 없다 라는 말로 섭패장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1년이면 근 60여 톤에 달하는 전복패를 수집해 가공하여 이를 서울 에 70% 정도, 기타 지역에 30%를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섭패의 최대 소비처인 점을 미루어 이제는 서울이 나전칠기의 최대 생산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 왕십리 일대에 평화자개사를 비롯한 자개 판매상들이 밀접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울자개사에서 가공한 자개들은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 1년에 1,600만원어치나 팔려 나간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건 데, 서울자개는 우리 나라 나전칠기 산업의 근간으로 한국 전통공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던 섭패장 중 일부가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진출하여, 그곳의 값 싼 노동력과 원자재를 이용하여 자개패를 가공하여 국내에 들여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자개사의 섭패 기술은 값싼 동남아시아나 중국산의 것과 차별을 보이며, 우리의 나전칠기 전승 에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서울자개사는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섭패공장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직원은 3명
24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이다. 서울자개사에서는 연간 60여 톤의 전복패를 전국의 전복상이나 횟집 등지에서 수집하고 있는 데, 완도에서 40곳, 목포 30곳, 보길도 5곳, 포항 3곳을 비롯해 대구,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전복껍 질만 나오면 달려가 수집하고 있다. 이를 가지고 세척, 절단, 광택 등의 10여 가지 공정을 거친 후 소 비자에게 공급하는데, 서울 왕십리에 있는 가람자개와 평화자개, 부산의 한양자개 등 대형 재료상 에도 공급하지만, 개인공방으로는 통영의 김종양, 장철영, 송방웅, 장덕균, 김상환, 이환갑, 경기도의 손대권, 서울의 정영복, 최태문 같은 나전장에게 직접 공급하기도 한다. 공급처는 모두 25곳에 달한 다. 연간 총매출은 7~8천만원 정도 된다. 이밖에 일본에도 수출하여 연간 1,6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데, 그래도 섭패공장을 운영하기에는 빠듯한 실정이라 한다. 더욱이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부터 값싼 섭패가 들어와 서울자개사의 활동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한편 전복껍질에서 자개를 만드는 작업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전복껍질을 자르거나 갈 때 사용하는 각종 절삭기와 연마기는 항상 굉음을 내고 미세한 분진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이 작업에 종사하는 장인들은 대개 청각에 장애가 많고 미세 먼지에 의해 건강을 해치게 된다. 또 절단기나 연 마기 같은 기계에 신체를 밀착시켜 작업을 해야 함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한다. 이처럼 환경 유해업소로 여겨져 도심에서 밀려나고 이 일에 종사하려는 사람이 적은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 한 방책으로 섭패장들은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지로 공장을 옮겨, 국내 섭패 산업은 사 라질 위치에 처해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서울자개사의 강상용은 섭패일을 한지 40여 년이 지난 2007년, 노동부에서 실시하는 명장 중 섭 패장 1호로 선정되었고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기능전승자로 선정되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섭 패작업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기능을 제자에게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산업인력 공단의 기능전승자 제도를 통해 전수자에게 섭패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시키고 이를 통해 전승지 원금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섭패장이 되면서 노동부에서 후원하는 명장 전시회에 섭패장의 기능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유산을 홍보하고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곧 명장 전시회에서 섭패장은 완성제품을 전시하는 나전 장과 달리 재료에 해당되는 원패나 중간 산출물인 자개의 제작과정을 전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선 재료를 알리고자 전복조개나 진주조개 등 국내산과 국외산 자개를 비교 전시하여 그 차이를 밝혔다. 그중 국내산의 경우 자연산 전복패와 양식산 전복패를 비교 전시하여 양자의 차이를 알 수 있게 한다. 국외산의 경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는 조개패는 지역적 특성도 확인하게 하고, 그 것들이 국내산보다 크기가 크고 문양이 다채롭고 색상이 화려하여 현대적인 디자인의 나전칠기를
24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제작하는데 참고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국내외산 재료의 차이점을 비교 전시함으로써 전통 나전칠 기가 결국 국내산 자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 다음 전복을 가공해서 자개로 만드는 제작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섭패장이 자개를 제작하는 과정 은 몇 단계로 나뉜다. 첫째 단계는 수집한 전복껍질을 세척하고, 둘째 단계는 형태나 모양 및 색채에 따라 일정한 크기로 절단하고, 셋째 단계는 그것의 표면을 일정한 두께로 갈아내며, 넷째 단계는 자 개의 표면에 광택을 내는 단계이다. 섭패일의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너댓 단계를 정리하여 주름졌던 전복껍질이 얇고 편평한 자개껍질로 만들어져 영롱한 빛깔을 내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 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개를 문양대로 오려, 백골 위에 붙이고 칠을 해서 나전칠기를 완성시키는 과정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복껍질에서 자개를 만드는 섭패 작업을 나전장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노동부의 전시 등을 통해 자개의 종류나 제작과정을 알리게 된 것이 성과이다. 이를 통해 자개를 제작하는 섭 패작업이 유산으로서 보호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9. 계승방식 서울자개사의 강상용은 섭패장의 양성에 관하여 여러 가지 건의를 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전승기능자 인정을 받을 때 5개년 계획으로 섭패의 선별에서 가 공에 이르기까지 연간 60일씩 전승교육을 거쳐 이현옥과 조영민을 양성하였는데, 나이가 48세여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강상용은 완전한 한 사람의 섭패장을 키우기 위하여 도제교육 방식으로 10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우선 재료가 되는 전복껍질의 수집 문제이다. 예전에는 통영 근처의 바닷가에서 쉽게 채취가 가능 했지만 지금은 전복을 사용하는 횟집이나 수산시장 등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들 거래 처의 협조를 받아 일정한 기간마다 그곳을 방문하여 전복껍질을 안정적으로 수집하는 데 어떻게 대 처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료 수집은 오랜 경험과 거래처 상대자와의 관 계에 의한 것이어서 막상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어려운 문제에 해당된다. 다음, 수집된 전복껍질에 대한 선별 문제이다. 어떤 형태의 어느 정도의 두께의 어떤 색상의 전복 껍질이 어떠한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재료 수집과 마찬가지로 말 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더욱이 자연산이든 양식산이든 전복껍질의 종류는 일정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재료를 다루면서 경험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또 그것을 나전장이 작품 을 제작할 때 어떻게 사용하는지 의견을 나누고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체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전복껍질을 자르고 갈고 광내는 단계의 문제이다. 섭패장의 기능 교육이 핵심인데, 이것은
24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각 단계별로 오랜 기간 갈고 닦으면서 알게 된 내용을 실제 작업을 통해 가르치게 된다. 앞선 재료 수집과 선별 문제에는 눈썰미가 작용한다면, 여기에는 손의 섬세한 감각과 함께 고된 훈련을 버틸 인내심이 요구된다. 더욱이 전복껍질을 자르고 가는데 사용되는 절삭기나 연마기가 시끄럽고 먼지 가 많이 발생하는 공해유발산업이어서 이 일을 배우겠다는 전승자가 없고 가업으로 계승하기도 어 려운 실정이다. 10. 관련자료 다움카페, <강상용씨, 노동부 지정 섭패장 1호 선정>, 2007년 11월 29일자 경남매일, <나전칠기 재료 섭패가공 에 여생 바칠 것>, 2007년 12월 26일자 우리공예 디자인소스, <섭패장 강상용>, 2011년 11월 1일자 남해타임스, <영롱한 빛깔이 일군 제1호 섭패기능장 강상용>, 2013년 6월 14일자 11. 관련단체 2007년 노동부의 명장으로 선정되고 산업인력공단의 기능전승자에 선정되어 명장들과 교류하면 서 전시회에 함께 참여했고, 그곳 사이트를 통해 섭패장을 홍보하고 있다. 섭패장 강상용과 인터뷰하는 모습
24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여러 동의 창고와 건물의 서울자개사 전경 섭패 작업용 시설 섭패 가공용 기계 섭패를 위한 작업 공간 왼쪽 자개를 깎고 다듬고 펴는 각종 기계들 강상용이 전복껍질을 자르는 모습 자개패의 표면을 가는 모습
24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전국에서 수집한 각종 자개 재료들 다종다양한 자개를 가공한 모습 자개 가공 중인 강상용 강상용이 직인에게 작업을 가르치는 모습 전복껍질을 갈아낸 상태 갈아낸 자개를 물로 닦은 상태 전복껍질을 자개로 가공 완성한 모습 국내산과 수입산 각종 자개
24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성문공방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1일 유산소재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1동 118-3번지 조사대상자 김관중(남, 1958년생, 성문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성문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본고장은 통영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통영 출신들의 장인들이 현재에도 많이 있다. 통영 출신의 나전장인이 가장 많은 곳은 단연 부산지역이다. 통영과 인접해 있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1970~1980년대에 부산은 나전칠기가 자연스럽게 성행
24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전가구류에서 소모품에 이르기까지 나전칠기류를 소장하기 원 했고 서양식 가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한때 나전칠기인들에 의해 통영과 같은 소도시의 경 제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다. 전통공예기능은 전통 장식 재료의 사용에서부 터 시작되고 이는 자연유산의 활용을 말하며 활용방법은 자연지식에 속한다. 현재는 기계화 개량화 된 도구, 재료의 개발로 자연유산과 지식의 전승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개량화된 기능, 기법 속에서도 부산의 전통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데 근본을 두고 작업하는 장인이 소수 있 다. 성문공방 대표 김관중은 백골, 재료는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최대한 부산의 나전유산 특징 이 나타나도록 작업하는 부산의 장인이다. 3. 유산의 소재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1동 118-3번지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김관중 3) 성별 : 남성 4) 나이 : 56세(1958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거제시 6) 입문시기 : 김관중은 집안에 나전칠기를 하는 친척이 있어 그 친척의 권유로 1973년도에 입문하 게 되었다. 당시 통영출신인 주기태의 문하에서 6년 정도 배웠는데 총책임자에게 패각 기초부터 시 작하여 모든 나전기법을 배웠다. 7) 공방 이동지역 : 1973년 김관중은 주기태의 문하에 입문하여 끊음질, 줄음질, 조패법 등 모든 자개 관련 기능을 고르게 익혔다. 그리고 1980년도에는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친형 김정중(1951년생) 과 6년 동안 동업을 하였다. 당시 부산에는 끊음질로 유명한 이성운이 있었다. 김관중은 형과 동업을 하면서도 이성운의 현대 적 감각의 끊음질에 매료되어 틈틈이 그 기능과 기법을 배웠다. 1993년에 독립하여 현재 수영구에 공방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20년 동안 3번 정도 현 공방 인근에서 작업실을 옮겨 다니다 현재 수영 구 광안동에 있는 작업장에 자리잡은 지 1년 8개월 되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25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유산의 내용 1) 재료 성문공방 대표 김관중은 조패, 줄음질, 끊음질, 타찰, 시회법 등 나전관련 모든 작업을 능숙하게 사 용하는 장인으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단연 자개이다. 그는 자개가 본인에게 있어 보물이라고 할 정도이다. 자개 이외의 재료로는 난각, 칠가루, 금분, 은분 등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들을 자 개와 함께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백골은 부산 소목공방에서 주문제작하기도 하고 간단한 백골은 본인이 직접 제작한다. 칠은 대부 분 카슈칠을 사용하며, 옻칠을 사용할 때에는 옻칠일을 전문으로 하는 친형에게 구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2) 시설 및 도구 현재 작업장은 친한 지인의 3층짜리 건물로 지하 1층에 70평 정도의 작업장에서 전시장, 칠실, 절 삭실, 사무실을 겸해서 사용하고 있다. 수영구 광안동 대로변 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성문공 방이라는 명패가 부착되어 있다. 작업실은 큰 평수에 세 칸으로 나뉘어 있다는 느낌으로 구획이 정해 져 있다. 첫 번째는 사무실을 겸한 전시공간이고 두 번째는 액세서리를 만들고 체험을 할 수 있게 대 형 책상과 많은 의자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 옆으로는 칠실과 건조장이 있고 칠실 옆 한켠으로 성문 공방 대표 김관중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개 가공기계와 자개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 나타난다. 전시실에는 그동안 제작하였던 부산시를 상징하는 문화상품과 관광기념품이 전시되어 있고 부산 누리마루 모형을 패각공예로 만든 조형물도 있다. 이외에 탁자, 머릿장, 문갑류에서부터 다양한 종 류의 함, 나전시계, 명함집 등 소품류도 있으며 나전벽화와 액자류가 다양하게 제작 전시되어 있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개 절삭실은 두 평 정도의 크기로 앵글로된 보관장과 나무로된 보관 장이 사방 벽면에 자리하고 있다. 각 선반에는 굵기별, 자개 종류별 상사들이 분류되어 사포에 하나 씩 보관되어 있고 상자마다 각각의 원패들이 저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나전 장식에 필요한 톱대, 핀 셋, 인두, 자, 컴퍼스, 태장대, 구두칼, 상사칼, 다이아몬드 톱날, 띠톱날, 집게 등 나전장식에 필요한 모든 제작 수공구가 선반에 나열되어 있고 한쪽에는 자신이 사용하는 도안이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다. 김관중은 핸드피스, 절삭기 2대, 상사기, 직소기, 포리셔, 컴프레셔 등의 기계류를 사용하고 있 다. 김관중은 본인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장식작업을 절삭실에서 행하고 있다. 3) 제작과정 김관중의 제작과정은 디자인에서부터 시작된다. 백골형태를 결정하고 도면을 그려 주문을 한 후
25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기물에 적합한 장식문양을 그리고 문양에 적합한 재료를 선정한다. 백골이 완성되기까지 문양장식 에 필요한 작업을 미리 준비하는데 장식재료의 대부분은 자개를 사용한다. 김관중이 특히 신경을 쓰 는 부분은 자개 이음새의 자연스러운 연결로 그만의 독특한 붙임질과 지짐질 제작공정을 창안해 작 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유산지에 자개를 붙이고 이것을 기물에 붙여 인두로 지져 자개를 붙이지 만 김관중은 자개와 자개사이의 이음새를 정확하게 연결하기 위해서 유산지 대신 비닐을 사용한다. 또한 인두로 지짐질하는 방법 대신 자개 붙은 비닐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 기물과 자개를 인두를 사 용하지 않고 부착하는 독창적 제작방법을 창안해 작업하고 있다. 이외 제작과정은 일반적인 나전칠 기제작과 유사하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김관중은 어려서 친척의 권유로 통영출신 주기태의 문하에 들어가서 그곳 총책임자에게 직접 나 전일에 관한 모든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부산에 와서는 당시 끊음질로 유명한 이성운을 만나 보다 진일보된 끊음질 기법과 양식을 접하고 그와 꾸준히 왕래하면서 그만의 끊음질 기법을 확립해 나갔 다. 성문공방 대표 김관중이 거제도에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길 당시인 1980년대, 지금의 부산시 좌 천동 가구거리 1km 정도에 양쪽으로 나전칠기 매장이 운집해 있었고, 뒤편으로도 공방과 재료상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나전칠기가 얼마나 성행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 재는 한두 군데의 나전 가구점이 있을 뿐 모두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현재 부산지역의 나전칠기 장 인들은 많지 않지만 과거 활동하던 장인들이 여러 시도지정 무형문화재 및 명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부산의 나전칠기 기술이 우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는데, 김관중은 이러한 부산지 역 나전칠기 기술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김관중의 작업은 가구류에서부터 소품류, 평면작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 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작품들이 점차 소품화, 소량화, 조형화 되어가고 장식재료들은 자개와 함 께 금속, 각종 분류, 난각 등 다양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김관중은 부산시의 특별 주문에 의한 부산상징 기념품이나 특정 조형물을 제외하고는 백골의 형태는 일반적인 형태의 함에서부터 복주머니 함, 장석모양 함 등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형태를 고수하고 있고, 문양 역시 당초문양에서 부터 청자문양, 조선통신사문양, 포도동자문 등 전통문양과 함께 부산의 상징 이미지를 고집하고 있 다. 그는 43년 동안 작업해 오면서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부산에서 그만의 작업양식을 구축하였는데 제작의 근본은 전통기법에 두고 있으며 문양의 장식은 전통과 현대의 재료와 기법을
25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고루 사용하고 있다. 1980년대 부산 나전칠기 성행기 때에는 나전칠기 가구제작으로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부산의 관공서나 특정인의 주문에 의한 기념품의 제작과 각종 행사에서 판매할 기념품 제작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개인 작품 활동을 위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현재 부산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10여 명의 나전칠기 장인들은 나전칠기 보존협회를 결 성하여 매년 2~4회의 정기전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전도 왕성하게 개최하여 끊임없는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 30~40년 이상의 종사 경력을 가지고 있다. 김관중도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그만의 기술적 노하우와 표현양식 등 유산지식을 구축하고 있다. 자신의 전승활동은 부산과 통영을 중점으로 전국의 많은 행사장과 각종 공모전을 통해 알리고 있다. 김관중은 독창적 제작기법과 장식기법의 개발로 개량된 작업공정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 관광기념품 공모전, 전국 관광기념품대전, 전국공모해운대 미술 대전, KDB전통공예산업대전, 부산 나전칠기 창작 공모전, 대한민국공예품대전 등 전통기능을 활용 한 상업화 공모전에서 많은 수상을 하였고, 공예에 국한되지 않고 순수미술과 창작분야에 이르기까 지 자신의 유산영역을 보다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문공방에서는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나전칠기 유산의 체험행사를 하기도 하고 대학교나 기관의 특강을 통하여 자신의 유산지식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이러한 유산을 제도권 내에서의 보호를 위하여 부산시 무형문화재를 신청하는 등의 다각도의 노력 을 기울이고 있다. 9. 계승방식 김관중은 나전칠기 번성기 때에는 직원이 20여 명에 달할 정도였고, 당시에 4명의 제자가 있었으 나 모두 이직하고 현재는 혼자 유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도 그에게 기능을 배우 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경제적 여건으로 계승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 학이나 기관에 특강을 나가기도 하고 취미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며, 4년 동안 기능경기대회 참가 선수들에게 자신의 기능을 계승, 확산 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김관중은 제도권 내에서 계승이 가장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부산시 무형문화재 신청을 통하 여 자신의 기능 전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5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성문공방 대표 김관중은 부산지역에서 나전일과 관련된 장인들과 결성한 나전칠기보존회 회원으 로 부산시민들이 전통나전칠기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은 전시회와 체험행사를 개최하고, 회 원 상호간 정보의 공유와 유산 활동을 하는 장소로 많은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김관중의 액세서리 작업 모습
25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성문공방 전경 김관중 인터뷰 전시실 및 내부 전경 김관중의 작품 설명 모습 김관중의 자개 절삭 모습 김관중의 작품 김관중의 작품 김관중의 작품
25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송원칠공방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1일 유산소재지 부산광역시 진구 초읍동 조사대상자 강정원(남, 1949년생, 송원칠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송원칠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부산시는 우리나라 나전칠기가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였던 대도시 중 대표적인 곳이다. 지리적 여 건상 재료의 수급이 원활했으며, 인적자원의 풍부함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나전칠기업체와 상 점들 주변에 많은 재료상들이 있었는데, 그만큼 많은 재료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25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자개라는 자연유산이 전통가공기술에 의해 제작되었다. 1980년대 절삭기의 유입과 가공기술의 발 달로 판자개, 염색자개 등 발전된 자연유산물이 개발되었고, 이에 따른 공예기술과 제작공정이 변화 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자개와 비슷한 느낌의 스크린 효과를 내는 대용 자개로 산업화에 가까운 기술에 이르렀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산업의 발달과 소비자의 취향 변화, 생산비 절감 등 의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원재료의 우수함은 현재 생산되는 재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 통공예기술은 전통재료의 사용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인이나 공방에서는 생산비의 절감과 제작기간의 단축 등으로 현재 생산되고 있는 나전관련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개량된 도구, 제작과정, 기법 등 전통공예기술에서 현 재료에 적합한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 다. 송원칠공방 강정원은 끊음질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줄음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장인으로 전통공예기술을 근본으로 공예재료 역시 전통재료를 사용하여 부산시 나전칠기의 특징을 온전히 전승시키고자 하는 장인이다. 3. 유산의 소재지 부산광역시 진구 초읍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강정원 3) 성별 : 남성 4) 나이 : 65세(1949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6) 입문시기 : 강정원은 통영 출신으로 친구의 소개로 도안사라는 직업을 추천 받았다. 1964년에 통 영시 북산동 소재의 구복조(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 고 송주안 선생의 수제자)의 문하에 견습공으로 들 어갔다. 그곳에서는 나전부 견습공으로 시작해서 나전을 접하게 되고, 구복조의 아들 구기옥에게 자 개 다루는 법, 거두로 상사를 자르는 법, 뇌문을 끊음질 하는 법, 진주패 조각하는 법, 아교를 다루는 법 등 전통 나전기법과 줄음질기법을 익히면서 나전일을 시작하게 됐다. 7) 공방 이동지역 : 구복조의 작업실에서 기술을 익힌 후 1967년 당시 통영에 서양화 국전 초대작가 김형근 공방으로 옮긴 후 전통과 근대공예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김형근의 공방에서는 근대문양, 배치, 배색, 대비 등 주로 칠에 관한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1970년 군입대 후 1973년 김형곤의 작업 실에 다시 들어가 작업하던 중 당시 끊음질로 유명했던 이성운을 만난다. 통영에서 스스로의 부족
25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함을 느낀 강정원은 1977년 부산시 진구 연지동 이성운의 작업실로 옮긴다. 이성운의 작업실에서는 야광패와 전복껍질을 얇게 가공한 색패로 곡선 및 산수문양을 끊음질 기법을 익히면서 그만의 나전 관을 확립해 나갔다. 1979년 12월 부산진구 초읍동에 송원칠공방을 설립하여 자립하게 된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은 작품 제작에 있어 완성도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1970~1980년대 나전칠 기가 한창 번창할 때에는 부산 가구거리 뒤편에 재료상 및 자개가공 업체가 많아 재료 수급에 큰 어 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자개를 구하기 힘들다. 송원칠공방은 고성의 서울자개사에서 직접 주문하여 수급하고 있다. 기타 옻칠류와 아교는 서울의 평화자개에서 수급하고 있으며, 백골은 부산의 소목장에게 주문하여 작업하고 있다. 자개이외에 금속선, 염색자 개, 칠분 등의 다양한 재료를 금속재료상 및 여러 곳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2) 시설 및 도구 송원칠공방 작업장은 대지 88평, 건물 10평의 조립식 건물로 1994년에 공장등록을 하였다. 이곳 에는 작업실, 전시실, 세면장의 구조로 되어 있다. 공장 이외에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은 부산시의 지원으로 부산시 충무동 국제시장 맞은편 국제지하도 상가 내 미술의 거리 지하 1층에 10여 평 크 기의 작업실이 있다. 현재는 주로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실 벽면에는 강정원의 홍보 포스 터가 크게 붙어 있고 작업장 양쪽으로는 그동안 작업한 소품류들 및 생활용구들이 쇼윈도 안에 가 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작업실 내부에는 현재 진행 중인 작업물들이 있고, 벽면에는 협회전에 출품 하였던 한글을 이용한 나전칠기 액자들이 걸려 있다. 우측 진열대에는 부채에 나전을 장식한 작품이 진열되어 있고 원목에 옻칠을 한 작품들과 문화상품류, 펜던트 등이 걸려있다. 반대편 진열장에는 각종 패각류들이 있고 뒤편 서랍장속에는 절삭 줄음질 자개와 염색된 상사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보관하고 있었다. 나전 작업에 필요한 도구는 전통이나 근 현대의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은 없다. 장인들은 개 인이 사용하는 작업 도구는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는 상사 칼, 톱대, 핀셋, 톱날, 줄 등이 기본적이다. 이외의 기계화 된 도구로는 거도 대신 상사기를 사용하고, 톱대 대신 절삭기, 조각칼 대신 핸드피스를 사용하고 있다. 옻칠도 귀얄로 칠을 하며 캐슈칠과 같은 합성칠은 경우에 따라서 분무도장을 하기도 한다.
25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3) 제작과정 송원칠공방은 두 가지 형식의 작업을 한다. 끊음질, 줄음질 작업 시 전통은 온전히 전통문양을 고 수하고 현대적 문양은 기하학적 문양이나 한글을 추상화하여 표현하는 등 독특한 장식 디자인을 창 안해 작업하고 있다.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은 스승이던 이성운의 끊음질 기법의 영향으로 금정산 성, 오륙도, 몰운대, 을숙도, 태종대, 범어사의 부산 진경산수무늬와 부산의 민속놀이무늬, 산수무늬 등의 풍경과 산수문양 디자인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송원칠공방의 나전칠기 제작과정은 일반적인 제작과정과 동일하다. 줄음질, 끊음질 기법 모두 전 통장식기법과 제작과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백골의 제작은 은행나무, 소나무 등 고사목을 주로 사용한다. 장식제작기법은 줄음질, 끊음질, 칠화기법, 타발법, 타찰법, 부식법 등 문양제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사한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의 나전입문은 친구가 도안사라는 특정 직업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강정원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여 기본적인 미적 감각은 입문 전에 어느 정도 갖추 었다고 할 수 있다. 첫 스승인 구복조는 송주안의 수제자로 강정원은 이곳에서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있었다. 이에 더해 부족했던 칠기술과 디자인 등은 서양화가 국전 초대작가 김형곤을 만나 나전일, 칠일, 디자인 까지 고루 겸비하였다. 여기에 이성운을 만나 끊음질 기법을 배웠고 이성운의 끊음질 기법을 바탕으 로 강정원식 끊음질 기법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부산에는 당시 몇 백 개의 나전칠기업체가 즐비하게 있었으며 당시 나전칠기 종사자들은 수백 명 에 달할 정도였다. 1990년대부터는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고 대부분의 기능공들과 장인들은 이직 을 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전통을 고집하며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10여 명의 장인들이 협회를 결성 하고 힘든 사정에서도 꾸준히 기능과 나전공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언론매체와 부 산시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 부산시장 공관에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의 진경산수문이 진 열되어 외국 방문객들에게 소개될 정도로 송원칠공방 강정원의 작품은 우리의 전통공예기술을 알 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지체 장애인들이 쉽게 작업에 접할 수 있게 다양한 작업 변화를 연구하여 장애아와 농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여 매년 3명씩 취업을 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은 사회적 약자가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작 업에 있어 극도로 섬세한 부분은 소질이 있는 여성들을 교육하여 기술을 전수하고 전통기법을 접목 한 우수한 작품을 선보여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실적을 나타내어 부산 나전칠기의 맥을 유지하
25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고 위상을 재확인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은 우리나라 나전칠기 부흥기인 1960년대에 입문하였다. 입문기에는 우 리나라 나전칠기 부흥기였으며 1970~1980년대는 전성기였다. 전성기 때의 강정원은 부산에서 송 원칠공방을 설립하여 대표로 있었으며, 직원이 5~6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하였다. IMF이후 직원과 제자들은 모두 이직하였고 현재는 혼자 작업 중이다. 한때 호황기를 누렸으나 현재는 부산시 중구 국제시장 지하로 상가 내 미술의 거리에 11평 크기의 공간에 매장과 작업실을 겸하고 있다. 이곳에 서는 제자 양성과 상품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전접시, 함, 문진, 꽂이통, 인주함 등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월수입은 600~7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가구류나 작품 등의 작업은 초읍동 공장에 서 작업하고 있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송원칠공방 강정원의 입문은 나전장 보유자 고 송주안의 수제자 구복조에서부터 시작하여 당시 끊음질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성운으로 이른다. 당시 이성운은 많은 제자들이 있었으며 직원 으로는 나전부 7~8명, 칠부 4~5명이 있었다. 이성운이 서울 암사동으로 이주 후 그는 송원칠공방을 설립한다.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은 IMF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많은 공모전과 전시회에 참여 하여 자신의 유산을 알리는 데 노력하였다. 1990년대는 부산시장의 공관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여 국내외 귀빈들에게 자신의 유산 홍보는 물론이고 지체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유산교육을 통하여 1년 에 3명씩 취업을 시키기도 하였다. 현재 강정원은 나전칠기보존회 회원으로 매년 2~4회의 전시회와 각종 공모전 등에서 활동 중이 며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하여 자신의 유산을 보호하고 활성화해 나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9. 계승방식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은 구복조의 아들 구기옥으로 부터 자개선별, 거두사용방법, 끊음질, 줄음 질, 장식기법, 조패법 등 나전 전반에 관한 교육을 도제식으로 배웠다. 그에게 부족한 디자인 능력과 칠일 기술은 당시 통영에서 나전칠기 업체를 운영하던 서양화가 국전 초대작가 김형근에게 배웠다. 그리고 당시 끊음질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성운을 만나 현대식 끊음질 기법을 전수받았다. 자 신의 기능을 동일하게 제자들에게 전수하였으나 현재 강정원의 제자들은 대부분 이직하여 없는 상
26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태이다. 남해에 거주하고 있는 김효문(47세, 운암나전칠기 대표)이 유일한 제자이다. 김효문은 남해 창성 출신으로 부산 지방기능경기대회 은상과 전국기능경기대회 은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종합 미술대전 특선 등 다수의 수상경력과 프랑스 파리박람회 등 국내외에서 30여 회 전시회를 가진 왕 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제자이다. 김효문은 기능전수 교육 당시 성실하면서 기능의 습득과 연마가 매우 빠르고 활용 능력이 뛰어났다. 현재는 전통공예기술에 전통과 현대적 디자인을 이용하여 왕성 하게 활동하고 있다. 10. 관련자료 <전통의 맥을 잇는 장인>, KBS 집중탐구, 1990년 11. 관련단체 송원칠공방 대표 강정원은 (사)한국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부산공예협동조합, 한국칠문화협회, 부산국제아트타운 작가회 회원으로 회장과 부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각종 공모전 및 전시회를 통해서 나전칠기 홍보와 문화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으며, 단체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를 소홀히 하 지 않고 있다. 강정원의 작품
26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송원칠공방 전경 강정원 인터뷰 송원칠공방 내부 전경 강정원의 작업 모습 송원칠공방 자개재료 보관 모습 작업장과 건조장 강정원의 작품 강정원의 작품
26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철마공방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2일 유산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563번지 조사대상자 이종철(남, 1954년생, 철마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철마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1980년대까지 부산시에서 나전칠기 산업은 지역 경제에 일조를 할 정도까지 성행했었다. IMF 이 전 부산의 나전칠기는 가구류 위주로 제작되었으나, 이후에는 점차 소품 위주로 제작이 되어지고, 현재는 관광상품류에 이르기까지 소형화, 대량화 작업 형식으로 변모하였다. 이것은 사회, 문화의
26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변화와 소비자의 연령이 변화하면서 시대에 맞게 나전칠기도 변화된 것이다. 나전칠기 업체나 공방 에서는 생산과 소득의 증대를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여 재료, 도구, 기법, 제작과정 등의 개선을 시도하였고, 현재 각 장인의 취향에 맞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유산의 발전과 기 술의 발전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전통공예기술의 온전한 계승은 아니다. 대부분의 장인들은 판매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부산시 나전전승활동을 온전히 지속하고 있는 장인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철마공방 이종철은 통영나전칠기양성소 교육을 전수받은 장인으로 부산지역에서 현재 전통공예기 술에 입각한 나전칠기 개인작품을 하고 있는 장인이다. 3. 유산의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563번지 4.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줄음질, 끊음질, 건칠) 2) 성명 : 이종철 3) 성별 : 남성 4) 나이 : 60세(1954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6) 입문시기 : 이종철은 1954년 12월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에서 1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넉넉하 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를 다니다 도중에 통영 공예학원에 입학하였다. 당시 공예학원에서는 야간 중학교 개념으로 중학교 교과과정을 교육한 것과 동일하게 교육하였다. 7) 공방 이동지역 : 이종철은 1975년 통영나전칠기 양성소 마지막 졸업생이다. 당시 50명의 여러 전 공별 입학생이 입교를 했으며 나전칠기 전공 졸업자는 3명으로 나전부 1명, 칠부 2명으로 이종철은 칠부로 졸업을 했다. 당시 양성소 선생님으로 김용운, 서문갑 등이 나전칠기 교육을 가르치고 있었 는데 졸업 후 이종철은 충청도 출신의 김용운의 공방에 취직해 3년간 작업을 했다. 1977년 김용운 이 서울로 올라 갈 것을 권유하여 거처를 옮기던 중 우연한 기회에 부산에서 친구를 만나 부산으로 거처를 정했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은 1978년 나전칠기 공장에 취업하였으 나 자신의 작업 성향과 공장의 작업 성향이 맞지 않아 퇴사하여 해운대에 작업실을 겸한 주택을 구 입했다. 낮에는 칠을 이용한 개인 작업에 몰두하고 밤에는 지인의 나전 하청 일을 하였다. 그러던 중 선배가 다니던 동창피아노 제작 회사에 입사했다. 당시 그곳에서는 미국 피아노를 제작했으며 함께 작업한 5명의 도장 기술자들이 있었다. 양성소에서 익힌 칠의 특성과 능숙하게 도료를 다루는 장점
26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을 살려 분무도장을 5년간 했으며, 퇴사 년에는 책임자 직까지 맡았다. 피아노 회사의 부도로 1982 년경에 이종철은 전영복의 예림공예사 작업을 한 달 가량 하였다. 그는 고향 선배인 박재경과 함께 15년간 하청과 협업을 같이 해 왔다. 이 당시 전용복의 하청을 하기도 하였으며 다양한 작업을 함께 하면서 박재경의 나전기술을 실제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작업 실은 2012년도에 자신 소유의 부지에 만들었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현 위치에서 약 500미 터 떨어진 주택에서 작업실을 구해 작업하였다고 한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의 주재료는 나전, 칠, 백골이다. 백골은 나무로 제작했는지에 따라서 목심칠기로 나뉘 고 나무에 베를 발랐는지에 따라서 목심저피칠기로 나뉜다. 나무 외에는 삼베를 여러 겹 발라 형태 를 만드는 협저태 칠기가 있고 대나무를 사용한 람태칠기, 도자기를 사용한 도태칠기, 금속을 사용 한 금태칠기, 종이를 사용한 지태칠기, 가죽을 사용한 피태칠기 등 백골의 소지 종류에 따라서 다양 하게 구분한다.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은 다른 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목심, 협저태, 도 태, 지태 등 다양한 소지의 백골을 사용하고 있다. 나무 백골제작은 한때 부산의 지인 목수한테 의뢰 하였으나 현재는 창호제작 목수에게 의뢰하고 있다. 중요하고 정교한 백골은 경기도와 서울지역에 의뢰한다. 또한 컵, 과반 등 원형으로 된 기물은 남원 목기제작 공장에 주문 의뢰한다. 그가 백골전 문 업체가 아닌 창호제작 장인에게 백골을 의뢰하는 이유는 소량 주문시 제작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서울, 경기의 백골업체는 개당 가격은 저렴하나 수량을 대량으로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창호장인에 게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식작업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자개다. 한때 부산에도 수많은 자개가공 업체가 있었으나 현재 부 산에는 나전칠기 관련 재료상 자체가 없다. 철마공방은 현재 고성 강상용으로부터 주문하여 자개를 구입하고 있고, 부산 대부분의 장인들 또한 동일하다고 한다. 강상용으로부터 조달되지 않는 자개는 서울 평화자개에서 구입한다. 옻칠은 중국 정부의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업체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매년 300~400kg씩 약 3천 만원 정도의 양을 수입하고 있다. 수입칠의 종류는 생칠을 가지고 오고 있으며, 부산나전칠기보존협 회 회장 정용태의 작업장에 구비된 정제기계를 이용해 정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생칠의 소비는 서울 유오현의 공방에 나전칠기 수강생이 많아서 직접 옻칠을 보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매달 20kg씩
26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생칠을 사용하기도 한다. 옻칠이 필요한 작업자에게는 중국에서 수입할 때와 같은 구입정가로 판매 하기도 한다. 현재 부산지역에서는 철마공방과 김정중이 옻칠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철마공방의 작업장은 부산 외곽 지역인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에 자리하고 있다. 대지 80평에 작 업실 45평의 비닐하우스가 작업실이다. 작업실은 한여름 정오를 기점으로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환경이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에 나전테이블과 나전액자류, 화장대, 문갑, 대형 건칠화병 등이 전시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소품들이 즐비하다. 작품의 전시대 아래에는 포장재로 꼼꼼하게 포 장된 작품들이 있다. 전시실 뒤쪽 방에는 기역자 모양의 긴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여기서 수 강생들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책상 뒤편으로는 앵글로 만들어진 긴 수납장이 설치되어 있고 각종 장 식 재료들이 쌓여 있다. 각종 끊음질용 상사를 비롯하여 문양을 절삭한 나전, 동선, 칠가루 등 다양 한 장식 재료와 소품백골에 이르기까지 많은 재료가 보관되어 있다. 맞은편 벽면에는 절삭기, 상사 기, 컴프레셔, 핸드피스 등 기계들이 보관되어 있다. 작업장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벽면에는 나전칠 기 장롱의 문짝이 병풍처럼 나열되어 있다. 나전칠기 문짝 뒤편에는 3평 가량의 옻칠실과 2평 가량 의 건조장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도 포장되어 있는 소품이 즐비하다. 3) 제작과정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은 통영나전칠기 양성소 마지막 졸업생으로 통영나전칠기 제작공정을 충실 히 따르고 있다. 판매를 위해 현대적 문양이나 기법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가급적 전통을 고 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입문하였을 때 칠일을 배웠으나 박재경과 15년간 협업을 하면서 그 의 나전기술과 자신의 칠기술을 서로 공유 하면서 두 사람의 작업 성향이 동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끊음질을 하기 위해서는 왼손 검지손톱과 살 사이에 상사를 끼워 넣어 파지하고 작업하는 것이 용 이한데 그는 칠일을 겸하고 있어 손톱을 기를 수 없는 상황이어서 상사 파지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 다. 작업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알루미늄캔을 말아서 손톱 모양의 고리를 끼우고 작업하는 것 이 특징이다. 그의 제작과정은 백골디자인 백골주문 문양디자인 하지작업 초칠작업 장식작 업 중칠작업 상칠작업 광내기 완성의 순이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철마공방이 자리하고 있는 부산 지역은 통영 지역과 함께 나전칠기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여건 들을 지녔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나전칠기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부산의 나전칠기 공예
26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는 지역적으로 볼 때 구성 장인들이 한 지역에 편중되기보다 각 지역에서 부산으로 대거 유입되었 다. 그만큼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수한 인적자원이 풍부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현재 는 극소수의 장인들만이 남아 그 맥을 계승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부산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간 장인들의 현재 활동상을 보면 우리나라 공예문화 발전에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 경기, 강원도에만도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 명장 등 부산을 거쳐 간 많은 장인들이 지정을 받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 역시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장인으로 전통나전칠기 유 산의 계승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상업적 성격의 작업보다 자신의 기능에 충실하고 기본을 철저 히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철마공방은 부산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데, 이종철은 부산시장으로부터 우수기능인 표창을 6번이나 수상하였다. 이렇듯 철마공방은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부산 지역의 나전칠기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은 양성소 졸업 후 다른 장인들에 비해 개인 업체나 공방에 취업했던 경우 가 적은 편이다. 성격상 지시를 받는다거나 강압적 환경을 싫어해서 일수도 있고 개인의 작품 활동 에 더 큰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서 일수도 있다. 현재 기장군 철마면의 철마공방은 매우 조용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종철은 해운대에서 10년 동안 생활하던 주택 겸 작업실을 처분하고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을 찾다가 현재의 장소로 옮겼 다고 한다. 현재는 비닐하우스 작업실이지만 작업실 겸 전시장을 새롭게 건립할 계획도 구상 중에 있다. 현재 전시관 내에는 많은 양의 작품이 있다. 자신의 작품을 생계의 이유로 헐값에 매매하지 않 고 대부분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후일 새롭게 전시장을 건립하면 자신의 작업 변천 성향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전시관을 꾸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종철은 2년 전부터 개인 작업을 위해 대부분의 사회 전승활동을 중지한 상태다. 작품 판매만으로는 생활고 해결이 안 되므로 원목침대, 식탁, 생활용품 등에 목심칠을 하여 많게는 월 천만원에서 적게는 3백만원의 수입으로 작업장과 생 활을 유지해 가고 있다. 그러나 매월 꾸준한 매출이 아니기 때문에 운영의 곤란은 항시 잠재되어 있 다고 한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이종철은 전통공예기술을 고집하면서 기능의 전승과 작품 위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특허나 실용신안 등의 법적 보호나 제도권 내 보호를 받고 있는 나전칠기 유산이 없다. 40년간 체득된 이종
26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철의 나전칠기 기능의 계승 및 전승을 위해 개인적으로 교육생들에게 기능 전승을 하고 있다. 기능 전승을 하면서 부산시 기능경기대회 수상자들을 6년간 매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시켜 은, 동상 의 수상 실적을 내기도 하였으며, 공예활성화를 위해 강좌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부산시는 2013년도에 지방문화재 제도를 도입하면서 신청자를 접수하였는데, 나전칠기 전승자 2 명이 신청을 하였으나 모두 제도권의 보호 내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종철은 2014년도에는 자신의 유산을 보호하고 계승시키기 위해 부산시 무형문화재를 신청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부산시 는 타 지역에 비하여 기능 종목에 관한 지원이 열악한 편이다. 공예품대전 수상자에 한해서 부산시 에서 재료비 지원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종철은 부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인들과 나전칠기 활성화를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는 전시회나 공모전에서 전시, 출품되는 서로의 작품이나 제품을 모방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장인 스스로 상대방의 유산을 보호해 주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9. 계승방식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은 부산시 기장군에 우리나라의 우수한 나전옻칠 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을 피력하여 2012년부터 기장군 자치센터에서 8~10명씩 나전칠기 전승교육을 행하고 있 다. 그리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현 공방에서 화요일 10명, 수요일 6명의 개인 수강생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기능교육에 있어 분업 전문화교육을 강조한다. 개인이 짧은 시간에 칠일, 나전일을 모두 행하는 것은 시간적 소비가 너무 심하고 전문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교육생 상호간 칠일, 나전일 기 능 우수자를 팀으로 구성하여 높은 생산성과 성취도를 고취시켜 주고 있다. 10.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철마공방 대표 이종철은 현재 부산나전칠기보존협회 회원으로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나라 나전 칠기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매해 2~4회 전시회를 개최하여 전승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부산시 기장군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일반 교육생들을 모집하여 기초교육에서부터 심화교육에 이르기까지 체계적 교육을 하고 있으며, 전업 작가나 현재 타 공예 전공자들을 교육하여 나전칠기의 많은 활용 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26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이종철 작업 모습 철마공방 전경 이종철 인터뷰
26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철마공방 전시실 전경 철마공방 작업실 전경 철마공방 기계 및 재료보관 모습 이종철 작품 이종철 작품 이종철 작품
27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청솔공방 이광웅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8월 22일 유산소재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2동 조사대상자 문철호(남, 1961년생, 청솔공방 대표) 1. 유산명칭 청솔공방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장식재료는 자개가 가장 중요하다. 자연유산의 활용으로 자개를 사용하여 왔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재는 판자개, 착색한 자개 등 여러 가지 재료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자연유산으로부터 시작된 자개에서 발전된 장식 재료들은 전국의 장인들이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27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새롭게 만들어진 자개나 대용 재료들은 재료 가공업체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솔공방 문철호는 전통공예기술을 바탕으로 나전칠기를 제작하고, 판자 개는 사용하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자개 대신 옻칠을 자개처럼 만들어 문양을 표현한다. 옻칠을 이 용한 장식재료는 문철호가 직접 창안하여 제작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유산을 활용한 새로운 공예기 술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전통공예기술은 온전하게 계승하면서 자연유산의 또 다른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장인이다. 3. 유산의 소재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2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줄음질, 끊음질, 건칠) 2) 성명 : 문철호 3) 성별 : 남성 4) 나이 : 53세(1961년생) 5) 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6) 입문시기 : 문철호는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고모집에서 사촌형으로부터 나전칠기의 기본을 배웠다. 1980년대에는 절삭기의 출현으로 이후 줄음질 기능인들의 입지가 차츰 좁아지자 줄음질기법에서 끊음질기법으로 다른 장식기능을 모색하였다. 7) 공방 이동지역 : 1961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문철호는 김제 고모댁에 놀 러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1974년에 입문하게 되었다. 고모댁 사촌형으로부터 자개 선별하는 방법, 자 개 봉하는 방법, 톱질, 조각법 등 줄음질기법 기능을 배웠다. 그러던 중 1980년대에 줄음질 작업을 대량으로 하기 위한 절삭기가 나오자 1985년 전주에 있는 최대규 작업실로 거처를 옮기고 끊음질기 법을 배웠다. 절삭기의 출현으로 톱질 기능인의 입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대규에게 끊음질 을 배운 후 자신의 거처를 고민하던 중 친구와 부산에 갔다가 1988년 해운대에 하숙집을 구하고, 박 영만에게 작업을 가져와 하숙집 다락방에서 끊음질 하청을 시작했다. 1990년에 독립하여 현재까지 공방을 운영 중이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27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 제작은 도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백골을 주문해 완성된 백골 위에 칠을 하고 나전 으로 장식하여 다시 칠을 발라 완성하는 것이 전통나전칠기의 공정이다. 이렇듯 나전칠기에 필요한 재료는 크게 백골, 칠, 나전이고, 부수적으로 삼베, 찹쌀가루, 유산지, 아교, 희석제, 광택제 등이 필요 하다.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는 캐슈칠을 사용하기 전에는 아교로 끊음질을 했고, 캐슈칠을 사용하면 서부터는 칠로 끊음질을 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옻칠로만 끊음질을 해오고 있다. 생칠은 남 원의 박강용에게 구입하고, 기타 정제칠이나 유색칠, 장식에 필요한 재료들은 평화자개를 통해서 구 입한다. 백골은 주변에 주문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아무 곳에나 맡기기도 하고 박강용으로부터 제 공 받기도 한다. 청솔공방은 판자개를 사용하지 않는다. 완성 후 자개 컬러의 발색이 좋지 않고 작업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원패는 경상남도 고성의 강상용에게 직접 찾아가 원하는 규격에 맞게 가공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부족분은 평화자개에서 구입해 보충한다. 청솔공방은 현재 끊음질 하청을 주로 하고 있으며, 색칠을 여러 겹 발라 칠판을 만들고 이 판을 상 사기로 상사처럼 잘라 자개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작업을 보면 대부분이 평탈기법으로 작업하 는데, 이것은 후에 자개의 박락을 없게 해주는 최고의 방법이다. 칠판을 이용한 끊음질은 다년간 체 득된 끊음질 노하우에서 발생된 독특한 기법으로 완성 후에는 흡사 채화칠기와도 비슷하면서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느낌을 나타낸다. 2) 시설 및 도구 청솔공방의 작업실은 부산시 연제구 거제2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15평 크기로 두 칸의 방과 두 평 정도의 거실이 있는 구조다. 방 한 칸은 숙식을 하고 또 다른 한 칸은 끊음질과 옻칠을 하는 작 업실이다. 거실 한켠에는 남원 박강용의 옻칠 끊음질 하청 작업을 진행 중인 소반과 쟁반이 있다. 벽 면에는 그동안 자신이 전시회에 출품했던 끊음질 액자류가 여섯 점 걸려 있다. 작업실에는 끊음질을 하기 위한 책상과 의자가 하나 있고 벽면 한쪽에는 장롱을 개조한 옻칠건조장이 있다. 건조장 측면 또 다른 장롱에는 그가 그동안 전시회와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이 이십여 점 포장되어 보관되어 있다. 작업책상 뒤편 서랍장에는 끊음질에 필요한 색패, 뉴질랜드패, 야광패 등의 원패들과 각종 굵기 별, 자개 종류별 상사와 색칠판을 잘라 만든 상사가 분류되어 있다. 청솔공방에서는 실톱대, 줄, 상 사칼, 핀셋, 가위, 드릴 등의 도구들을 사용, 보관하고 있고 개량화된 기계는 상사기가 유일하다. 줄
27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음질에 많이 사용하는 기계장비인 절삭기는 보유하지 않고 있는데, 절삭 줄음질은 서울에 하청을 주 어 작업하고 있다. 거실에는 직접 제작한 좌탁 테이블이 있고 여기에는 전통기법과 현대 칠기장식기 법인 교칠 등을 장식하여 직접 사용하고 있었다. 싱크대에는 수저, 밥그릇, 국그릇, 컵, 접시 등의 생 활용기가 있으며 모두 옻칠 끊음질로 장식되어 있다. 대표 문철호는 자신이 직접 사용해 보고 장점 을 소비자에게 소개한다. 3) 제작과정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는 전북 김제 사촌형에게 나전장식기법의 기초를 익혔다. 1980년대 절삭기 의 출현으로 줄음질 기능공의 대우가 예전 같지 않자 전주에 있는 최대규에게로 옮겨 끊음질 기능 을 익혔다. 독립한 그는 초창기에만 아교를 이용한 끊음질을 구사했으며 캐슈칠을 사용하면서부터 는 캐슈로 끊음질을 했다. 1990년대부터는 옻칠을 이용해 현재까지 작업해 오고 있다. 개인 작품이 나 상품제작은 전통칠기제작 방법에 따라 작업하고 있다. 작업순서는 디자인 백골주문 문양디자 인 하지작업 도장작업(초칠) 장식작업 중도작업(중칠) 상도작업(상칠) 광내기 장석달기 완성의 순서이다. 장식작업에 있어 보편적으로 작업의 용이성 때문에 아교 접착제를 대부분 사용한 다. 그러나 청솔공방에서는 습기나 수분에 의한 아교가 지니는 접착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옻칠 로 끊음질을 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절기 때에는 박강용으로부터 끊음질 하청작업을 주로 하여 기물에 따라 200~5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그 외의 기간에는 기념품이나 상품제작과 개인 작품연구에 매진한다. 옻칠 끊음질은 하루 전 종이에 옻칠을 발라두고 그 위에 상사를 붙여 하루를 건조시킨다. 10시간 가량 종이에 붙여 놓은 옻칠이 발라진 상사는 칠이 건조되면서 생긴 점성 때문에 아교와 같이 점력이 생겨 작업이 용 이하다.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는 옻칠 끊음질 외에 칠판을 만들어 옻칠판을 상사처럼 잘라 붙이거나 칠판을 부셔서 그 조각을 뿌려 자연스러운 옻칠 색깔의 배색과 배열을 꾀하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는 전라북도에서 나전의 기초를 익혔다. 절삭기의 출현으로 나전 장인들이 많이 이직할 당시 전주에 있는 최대규의 문하에서 끊음질 기법을 중점적으로 익혔다. 1988년 부산 으로 거처를 옮긴 문철호는 하청을 받아 아교 접착제를 사용해 끊음질을 하였다. 그러나 습기에 취 약한 아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옻칠을 접착제로 사용하였고, 이를 계기로 옻칠 작업을 배워 직 접 옻칠 작업도 가능하다. 현재 문철호는 한슬공예협회의 회원으로 부산시에서 활동 중인 나전칠기보존협회, 한국칠문화협
27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회처럼 부산시의 나전칠기와 칠공예 문화저변 확대를 위해 작품 전시 및 관광상품 위탁판매 활동을 하고 있다. 문철호는 부산시 공예품대전 및 관광기념품대전에는 꼭 출품하여 자신의 기량과 가치를 평가받고 자신의 전승활동을 알리고 공유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1970~1980년대 통영, 광주, 부산, 서울은 나전칠기의 대표적 생산지였으며 소비처였다. 그러나 IMF 이후 대부분의 공방이나 업체들은 판로, 인구밀집도, 교통편의성, 정보력 등 많은 여건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서울, 경기 인근으로 모두 밀집하였다. 지방의 나전칠기 시장의 형편은 너무나 어렵 고 힘든 실정이다. 한때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가 전주에서 끊음질 기법을 배울 당시 끊음질만 전문 으로 하는 장인만 7명이 있었고 나전부 내에서도 줄음질, 끊음질, 패각부 등으로 세분화시킬 만큼 성황기를 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자신을 돌보기에도 급급한 여건이다. 청솔공방 대표 문 철호는 2001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주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금메달 수상 후 그 는 주택가 내 환기가 원활하지 못한 작업장에서 시너를 사용하여 작업하다 중독 증세를 보여 수년 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현재도 약물치료는 계속되고 있지만 많이 호전된 상태여서 다시 작업에 매 진하고 있다. LH보증공사의 도움으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작업실을 2010년 구해서 현재는 오로지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현재 하청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수입이 없는 상태이며, 한슬공예관 및 시 민회관 등의 아트샵에서 판매되는 판매액은 월 3만원에서 10만원 내외로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하 다고 한다. 8. 유산의 보호조치 청솔공방 문철호는 나전작업을 위주로 하청을 하였다. 끊음질 하청 작업 초기에는 아교를 사용하 여 작업하였다. 그러나 접착력의 단점을 보완하고 자신만의 기술력을 가지기 위해서 옻칠을 이용한 끊음질을 연구하였고, 현재는 옻칠 끊음질 작업만 하고 있다. 문철호는 이러한 전통유산과 전통기능 을 접목한 기술만이 자신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끊음질 재료 로 자개 대신 옻칠편을 이용한 옻칠상사를 개발하여 자개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색상 표현의 단점을 보강하는 등 자신만의 비결로 유산을 보호하고 있었으며, 향후 부산시 무형문화재 신청을 통하여 자 신의 기능을 제도권 내에서 보호받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9. 계승방식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는 수년 간의 병원 생활로 공백 기간이 생겨 제자나 문하생이 많지 않다. 남
27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기만(부산 한양자개 대표)이 2011년부터 그에게 끊음질과 옻칠 기능을 익히고 있다. 남기만은 패세공 전문 기능인으로 문철호와 같이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패세공 기능만으로 부족함을 느낀 남기만은 매일 청솔공방의 작업실을 찾아 끊음질, 옻칠 등 문철호가 가진 기능을 모 두 익히고 있다. 남기만은 한양자개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청솔공방에 와서 옻칠과 옻칠 끊음 질 작업을 돕거나 자신의 작업을 직접 하면서 기능을 배우고 있다. 문철호는 자신의 유산을 숨기지 않고 모두가 함께 공유하면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10. 관련자료 없음 11. 관련단체 청솔공방 대표 문철호는 현재 한슬공예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우리나라 나전 칠기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매해 2~4회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문철호의 작업 모습
27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청솔공방 내부 전경 문철호 인터뷰(좌측) 청솔공방 작업실 제자 남기만 인터뷰 청솔공방 자개재료 보관 모습 문철호의 작품 문철호의 작품 문철호의 작품
27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태평공예사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8일, 9월 21일 유산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북신동 2-6 조사대상자 장철영(남, 1961년생, 태평공예사 대표) 1. 유산명칭 태평공예사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한국에서 나전칠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승이 이루어져 왔다. 곧 나전칠기에 대한 제작 기능과 더불어 나무나 자개 및 칠을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
27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께 전승되어 왔다. 특히 태평공예사가 위치한 통영은 나전칠기의 주재료인 전복조개를 공급하던 곳 이어서 과거부터 이 지역 장인들은 자연지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태평공예사의 경우 목재로 만드는 백골 가구는 외부에 주문을 하고 자개와 칠을 외부에서 구입해서 나전칠기 가구를 완성하는 제작방 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하지만 근래 전복조개는 자연에서 생산되지 않고 인공적으로 양식하 거나 외국에서 수입하는 등 재료 수급에 있어 과거와 달라진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수공예 방식 으로 제작하던 데서 전통적 수작업은 후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기계화된 도구를 부분적으로 사용하 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도 있다. 전체적으로 태평공예사는 통영지역에서 전승되는 끊음질 기법을 주 로 사용하는 지역적 특징을 갖고 있다. 3. 유산의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북신동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도안, 나전일, 칠일) 2) 성명 : 장철영 3) 성별 : 남성 4) 나이 : 53세(1961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6) 입문시기 : 장철영은 나전칠기의 본고장인 통영 출신이다. 그는 16세가 되던 1977년부터 이 고장 최고의 나전장이었던 고 송주안(중요무형문화재 제54호 끊음질 보유자)의 공방에 들어갔고, 송주안의 전수장학생으로 나전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5년간의 도제교육을 받았지만 스승이 작고하자 통영공 예전수교육관에서 그 아들인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보유자)에게 나전칠기에 대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25년간 전수받았다. 그러므로 1977년 이래 35년 8개월째 통영시에서 나전일을 하 고 있는 셈이다. 장철영은 1998년 나전장 이수를 하였고, 2010년에는 문화재 수리복원 칠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2012년 문화재청 주관의 문화재 수리 복원 전문인 과정 을 수료하여 나전 장으로서의 경력과 자격을 모두 구비하였다. 장철영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각종 전시회, 공모전에 출품하여 받은 다수의 수상실적에서도 잘 드 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수상으로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에 제21회부터 38회까지 총 8회 출품해 입 선과 장려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제43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에서 노동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 다. 전시회로는 ICOM 세계박물관대회, 북경공예박물관, 와지마, 베를린, 밀라노 등지의 전시회에도
27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출품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는 부산대학교에 출강하여 대학생들에게 직접 나전일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7) 공방 이동지역 : 현재 장철영은 통영공예전수교육관에서 스승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송방웅 보유자를 도와 작품을 제작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2005년 스승을 돕는 틈틈이, 칠일을 하는(양옥 도) 선배와 함께 태평공예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독립하여 태평공예사의 대표로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나전칠기 작품과 문화상품용 나전칠기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모든 나전의 기법을 잘 구사하지만 근래에는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뛰어난 기술에 매료되어 이를 복원하 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어 천하명품인 고려나전의 재현에 힘쓰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수자인 장철영은 예술적인 작품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한편 태 평공예사 대표로서 그는 공방을 경영하고 경비를 지출하고 생활을 해결하기 위하여 직원 몇 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비교적 저가의 필통, 명함꽂이, 찻잔 등 각종 나전칠기를 상품용으로 개발하여 시장에 내어놓고 있다. 이를 위하여 칠장 1명을 따로 두었고, 자개패를 붙이는 여직원 3명 과 남직원 1명으로 총 5명이다. 자개를 다루는 기술자는 나전기술자 2명과 자개 붙이는 기술자 2명 으로 구분된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장의 일차적인 재료는 당연히 자개패이다. 30여 년 전 통영에서는 자개패를 가공하던 섭패공 장이 10여 곳이 넘었으나 현재는 문을 닫았다. 때문에 태평공예사에서는 고성에 위치한 섭패장 강 상용에게 작품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개를 공급받고 있으며, 때로 특수한 자개를 얻기 위해 서울에 있는 평화자개상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기물의 바탕이 되는 목재의 백골은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교하거나 부피가 큰 것은 같은 통영 내 전통교육전수관에 위치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교육조교 김금철이나 부산의 소목장 제1호 명장 김규영(광안공예), 경기도의 임영률(석일공예)로부터 공급받 고 있다. 칠은 나전칠기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표면의 색과 품질, 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이다. 옻 나무에서 채취한 옻칠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최상의 도료로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사용 되었다. 그러므로 칠은 나전장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도료이기에 매우 신경을 쓴다. 장철영 은 전주의 이의식(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옻칠장 보유자)이나 남원에 위치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옻칠
28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장 보유자인 박강용에게 정제된 옻칠을, 그밖에 나머지는 원주산 옻칠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자개패를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어교는 원래 생선의 부레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는 부산이나 통영의 어시장에서 채취한 민어 부레를 본인이 특허( 부레풀을 이용한 자개 접착제 )를 얻은 기법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재료에 대한 장철영의 집착은 결국 좋은 작품이란 좋 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 란 등급이나 번호가 매겨진 것은 아니나 장 인들의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지혜로 원자재를 보고 좋은 재료임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태평공예사의 작업장은 통영 시내 중심 주택가에 있는 지하 포함 3층 양옥이다. 이곳은 대표 장철 영의 생활터전이기도 한데, 작업장은 지하와 1층 약 70평의 공방에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다. 주된 작업은 좁은 계단을 내려가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지하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작업장에 들어가 면 여느 나전칠기 공장과 마찬가지로 비닐로 공간을 구분한 것이 눈에 띈다. 작업장의 입구는 왼쪽 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자개부와 칠부로 사용하고 있다. 자개부에는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 직인 (원)이 자개를 오리고 잘라 문화상품을 만든다. 칠부에는 2명의 칠공이 위치하여 백골의 밑칠 작업 을 하거나 자개를 붙인 제품 위에 마감칠을 하고 있다. 이들은 통영시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의 일환으 로 공방에 배치한 인원이라고 한다. 왼쪽의 비닐을 친 안쪽은 사무실 겸 디자인실, 장철영의 작업공 간이 위치한다. 장철영의 작업공간 뒤쪽은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독립된 공간으로 문을 막아 칠 건 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구획된 공간은 다시 벽면과 안쪽 작업장으로 구분된다. 곧 벽면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장을 짜넣어 각종 작업용 자개, 채색용 칠분, 구리나 은선 등 자잘한 재 료를 정리해 두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다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각종 도구를 마련해 두고 있다. 지하실에서 계단을 올라와 마당을 지나 1층에 들어가니 백골 보관소 겸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 다. 전통적인 나전칠기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백골 공장에 주문하여 들여온 백골들이 겹겹이 쌓여 있을 뿐 아니라 오래된 자개장롱에서 뜯어낸 자개판들의 부속들이 수집되어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나전칠기 가구가 호황을 이룰 때 사용하다가 버려진 오래된 가구들을 연구하기 위해 혹 은 재활용을 위해 모아둔 것이라고 한다. 1층 왼쪽의 공간은 장철영 자신이 그동안 만든 작품을 전 시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각종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문화상품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정리하여 진열 하고 있다. 이처럼 이곳에서 장철영은 자신의 작품과 판매용 나전칠기를 제작하고 있는데, 작품은 워낙 시간 과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1년에 겨우 3~5점 정도 제작하여 출품과 전시를 주로 하고 있다. 상품용
28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은 1만원대의 찻잔과 받침, 10만원대의 명함집, 30만원대의 찻상 그리고 100만원대의 콘솔 등이 있 다. 이들 제품은 전시회와 기프트점, 인터넷을 통한 해외판매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통영전통공 예관과 국립중앙박물관샵과 서울북촌공예마을에도 진출하고자 협의 중이다. 수량은 다종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히 밝히기 어려우나 한 달에 총 200~300점 정도에 이르고 있다. 장철영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도구는 전통적인 것과 개량된 것, 기계화된 현대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다. 전통적인 도구로는 자개를 가공하는 거도, 거도판, 상사칼, 목자, 활비비, 모조도, 가위, 집게, 송곳, 톰박, 타발망치(자개타발기법에 사용), 톱대, 태장, 줄, 인두, 상사기, 섭패줄 등이 있다. 또 칠과 관련하여 귀얄(붓), 정반, 칠주걱, 갈돌, 옻칠, 염료 등이 있다. 한편 개량되거나 기계화된 것으로는 자개절삭기, 섬세한 절삭을 위한 레이저절삭기, 광을 낼 때 쓰는 전동기와 콤프레셔, 건칠할 때 쓰는 건칠대, 물레, 지통 등이 있다. 그러나 장철영은 전통공예라 해서 전통적 도구 사용만을 요구하는 것 에 대하여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고 한다. 똑같은 효과, 아니 더 좋은 효과와 시간의 단축, 작업의 용 이성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장인들의 현대적 도구개량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보유자 지정에서 전통공예는 전통적 재료와 전통적 도구의 사용을 강조하는데, 현대라는 시점에서 그 기술이 잘 전승되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도구에서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어야 작업의 능률 을 올리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고 여긴다. 3) 제작과정 장철영은 35년간 나전일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제작에 있어 전 과정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먼저 작 품구상이 이루어지면 작품의 골격이 되는 백골을 제작하고 여기에 어울릴 자개의 도안을 직접 그린 다. 다음에 베를 붙이고 칠죽과 기름(기름칠 혹은 묵은 옻칠), 백토 등을 여러 차례 바르고 자개를 가 공하여 시문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만도 몇 차례의 소소한 손질이 요구된다. 그리고 또 몇 번이나 칠작업 끝에 연마하여 광택을 내어 완성시킨다. 그 공정은 수 개월에 걸쳐 수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작품을 구상하고, 백골에 도면을 만든 후 자개로 도안을 그린다. 백골을 제작하고 나서 백골에 곡 수 메우기를 하는 등 손을 보고 나서 생칠을 한다. 대각선으로 베 바르기를 한 후 칠죽[토회칠] 바르 기를 하고 눈매를 메운 다음 2차(1회는 초벌, 2회는 두벌이라고 함)에 걸쳐 칠죽 바르기를 한다. 표면 을 평평하게 간 다음 기름(기름칠)을 칠하기를 1차, 2차에 걸쳐 한 다음 백토를 바른다. 백골에 밑그 림을 그리는 치수 내기를 하고 장철영 자신이 특허를 낸 풀을 사용해서 풀칠을 한다. 이제 자개를 용 도에 따라 색채나 두께를 선별하여 고르기를 한 다음 거도로 상사 자르기를 한다. 상사칼로 끊음질 하고 송곳상사로 회화적인 문양, 즉 사군자 난초잎, 산수화의 언덕, 바위, 나무줄기 등을 끊어가면서
28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시문해 간다. 주름질을 하기 위해 자개를 본뜨고 자개를 오리고 난 후 시문하여 붙인다. 곡선자개 또 한 시문하여 붙이고, 주름질한 자개를 인두질해서 붙인다. 이제 풀빼기를 하고나서 자개를 손본다. 그 위에 생칠을 하고 토회칠을 바르고, 초칠과 중칠 및 상칠을 한 다음 자개를 긁어낸다. 섭칠하기를 한 후 광내기를 하고 홈 메우기를 하고 마감광내기를 한 후 장석을 달아 완성한다. 장철영이 많이 쓰는 나전기법은 직선끊음질, 곡선산수끊음질, 줄음질 등을 병용한다. 이러한 기법 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장철영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면서 근 래에 와서는 고려나전의 비법을 연구하고 그 복원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양화된 나전문양을 복원하고자 했는데, 마엽문이나 삼중귀갑화문 등이 그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보물로 여기던 고려 나전의 철저한 분석과 연구로 기념할 만한 일이다. 또 조선시대 들어와 단절된 백토칠의 복원을 통 해 나전의 빛깔을 더 영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여기에는 끊음질 작업에 숙련된 고도의 기술 이 필요하다. 이렇게 고려와 조선의 뛰어난 나전칠기의 전통과 기술을 복원한다는 것은 향후 나전칠기의 세계 를 풍부하게 해주고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행히 장철영은 전통을 연구하고 복원하려는 학구적 자세에 나전칠기에서 백골제작에서 칠작업, 나전까지 전 과정을 모두 본인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와 같이 장철영의 나전일에 대한 인식은 온고지신 즉, 옛것을 연구하고 익 혀 오늘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있으며, 실제로 고려경함을 재현하는 등 실천을 하고 있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태평공예사는 통영 나전칠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통영의 나전칠기의 계보는 조선시대 통제영 의 장인을 비롯하여 18세기 고선오를 비롯, 일제시대 박정수를 거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송주안과 송방웅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통영의 나전공예는 충무공이 설치한 통제영 12공방에서 비롯되었으며, 18세기에 나전장 고선오는 제자 50여 명을 배출하였다. 12공방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박정수는 1907년 통영 군립공업전수소를 설립하여 근대적인 나전칠기 교육을 하였다. 송주안은 1917년 통영의 경남군립 공업소에 입학하여 박정수한테 지도를 받았고 태천군립칠공예소 의 소장으로 지냈다. 송주안은 해 방 이후 197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4호 끊음장으로 지정되었으며, 그의 사후 가업을 계승한 송방웅 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으로 지정되었다. 장철영은 1977년 이래로 송주안과 송방웅에게 나전칠기 기능을 익히고 있다. 따라서 장철영이 대표로 있는 태평공예사의 나전 전승은 조선시대 통제영 12공방에서 비롯한 통 영 지역의 오랜 전통, 나전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장철영이 나전에 입문하던 1970
28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년대는 나전칠기업의 전성기로서 나전기술자가 2,000여 명이 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나전칠기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지금 통영에는 송방웅을 위시하여 장철영과 함께 박재성, 이한갑, 김종 량 등 몇몇 장인만이 활동하고 있다. 소수의 장인들은 나전칠기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통영시에서 마 련해준 공방에서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 나전칠기는 전국적으로 수요가 부족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타개하 고자 태평공예사에서는 나전칠기의 고장인 통영을 알릴 수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하거나 각종 나전 칠기 전시회를 열거나 체험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태평공예사에는 나이가 많은 장인들이 노 인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자개일이나 칠일을 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에 나전칠기 작업에 종사하였던 기술자들을 재활용하여 노인들의 경제활동을 촉진시키고, 지역 사 회의 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태평공예사는 조선시대 17세기부터 나전칠기의 전통을 이어온 통영지역의 나전칠기 전승을 오늘 날에까지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전반적으로 나전칠기 작품에 대한 수요의 부족과 서 울을 비롯한 원주, 경기도 등지의 전국적인 공방의 난립으로 이 지역에서의 전승 여건은 현저히 어 려워지고 있다. 또한 전국을 석권하던 통영 나전산업도 지역적 특성이 사라지고 전국적 보편화로 지 역 경제에 기여함도 예전만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평공예사는 이 지역 나전장의 계보를 이어가며 어렵게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 으며, 대형 작품 외에 저가의 필통이나 명함꽂이, 찻잔 등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들 문화상품은 크게 경제적 이익은 없으나 공방을 운영하고 기본적 전승활동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 고 있다. 태평공예사는 근래에 와서 판로의 개척에 힘쓰고 있는데, 각종 전시회와 기프트점, 통영전통공예 관, 인터넷망을 통한 판매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나아가 서울의 전통마을이나 박물관 뮤지 엄샵 등의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소규모 공방인 태평공예사로서는 통영 지역 내에서의 자립은 어렵 기 때문에 위와 같은 다양한 판매루트를 발굴함으로서 운영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래도 대표 인 장철영의 인지도와 작품성으로 전시회를 통하여 작품판매도 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작품을 사가기도 하는데, 오히려 태평공예사의 상품 판매량 보다 장철영 개인의 작품 판매가 많다. 태평공예사의 사세는 미약하나마 나전공예를 이 지역의 특화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또 지역문화의 대표주자로서 자긍심을 이끌어내고자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대표인 장철영은 나전칠기 작품으로 해외에 진출하거나 지역의 특산물로 발전시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28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8. 유산의 보호조치 태평공예사의 나전장 전승과 관련하여 먼저 국가의 무형문화재 보호체계를 들 수 있다. 태평공예 사의 대표인 장철영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보유자인 고 송주안과 송방웅으로부터 직접 전수를 받아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 이수자가 되었기에 통영지역 나전장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점은 바로 태평공예사 장철영에게 끼친 보호조치의 하나이며, 이 보호조치로 인하여 전승뿐 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유산을 널리 보급하고 자신의 유산을 계승시키고 있다. 그는 문 화재청의 수리 복원 전문과정을 수료하였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수원의 전통목칠공예 과정을 수료하는 등 나전장에 대한 제도권의 보호조치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태평공예사에서 제작한 작품은 여러 곳에 판매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통영시에서 마련해준 전통 공예전시관이다. 이곳에는 장철영이 제작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 유 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장철영은 크기 가 작은 문화상품을 나전칠기로 제작하기도 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의 뮤지업샵이나 서울북촌공예마 을의 전시장에도 나전칠기 작품을 전시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비록 많은 수량이 판매되 지는 않지만 통영 나전칠기의 전통과 맥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9. 계승방식 태평공예사 대표 장철영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전통적인 도제방식에 의한 교육을 받았다. 고 송주 안과 송방웅에게서 섭패의 가공부터 칠까지 나전일의 모든 것을 밑에서부터 철저하게 익혔지만 끊 음질을 집중적으로 배웠으며, 특히 곡선산수끊음질(곡선으로 끊어 산수의 문양을 표현하는 기술)을 익 혀 지금 그의 장기가 되었다. 현재 그는 이 기법을 활용해 고려나전을 재현하고 있다. 장철영에게 나전칠을 배우겠다고 오는 제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대부분 송방웅 보유자에게 보내 고 있다. 그 자신은 아직 보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장래를 생각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장철영이 거두고 있는 제자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본인이 태평공예사에서 문화상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예전 솜씨를 발휘하고자 소일거리 삼아 와서 작업하거나, 통영시청에 서 실버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나전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 5~6명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 류의 사람들을 제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전일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배우기 위하여는 도 제방식으로 10여 년 이상 숙식을 함께하면서 생활을 해야 터득할 수 있는 직업상 특성이 있기 때문 이다. 그런데 태평공예사의 직원이라 할 수 있는 여자들과 남자 몇 분은 주로 문화상품 제작에 투입 되는 인력들인데, 이들은 칠만을 한다든지 표면을 연마한다든지, 자개를 붙이는 등 조금은 단순하고 비숙련된 분업적인 작업을 하고 봉급을 받는 직업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철영은 이들에게 자
28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신이 알고 있는 기법을 연마케하거나 도구 사용을 능숙하게 하도록 지도는 하고 있다. 장철영에게 개인적으로 배우는 학생은 농사를 지으면서 취미 삼아 배우는 박정칠(34살)과 처남인 이호동이 있다. 그들은 나전일에 대한 솜씨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그들을 가르치고 싶 다고 생각한다. 나전일이란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학교 같은 공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 다. 장철영 자신도 스승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하나하나씩 나전일을 배운 소위, 도제식 교육을 통하 여 배워왔기 때문에 어떤 교육기관을 통한 전수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배워온 도제교육을 통하여 스승의 비법이나 난이도가 높은 거도사용, 곡선끊음질 등을 터득할 수 있 었다고 한다. 즉, 장철영은 나전칠기란 도제식 교육에서 전승이 제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실력 있는 인재가 배출된다고 믿고 있다. 10. 관련자료 태평공예사나 장철영에 관한 자료는 개인적으로 출품한 여러 전시회의 도록에 실린 작품과 소개 자료가 대부분이다. 11. 관련단체 현재 장철영은 통영나전칠기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통영에서 나전 작업을 하는 8~10명이 모여 나전에 관한 전시와 교육을 하는 곳이다. 본인은 이사로서 참여하며, 전시를 기획하 고, 디자인에 대해 조언하고 기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태평공예사의 작품제작이나 판로 에 있어서 다소의 도움을 받으며, 전승활동에도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밖에 통영전통공예관, 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 경남공예협동조합, 한국칠문화협회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단체를 통하여 각종 전시회에 관한 정보와 전승에 관한 활동 및 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끊음질한 상사를 붙이는 장철영
28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통영의 태평공예사 전경(지하와 1층 사용) 지하에 위치한 공방은 디자인부, 칠부, 자개부로 구분됨 옻칠과 각종 재료와 도구 백골이나 소품을 쌓아둔 모습 나전함을 제작하는 장철영 함 위에 상사를 붙이는 모습 자개부에서 소품을 만드는 직인들
28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각종 소품을 위해 주문해온 백골 각종 소품에 자개를 올려 완성한 모습 건조장에서 옻칠을 건조하는 모습 건조장의 모습 1층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 자개로 만든 관광 소품 국내산 자개 백골과 밑칠된 각종 물품
28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통영섭패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유성웅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유산조사일 2013년 7월 18일, 10월 21일 유산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마구촌길 68 조사대상자 이금동(남, 1951년생, 통영섭패 대표) 1. 유산명칭 통영섭패 2. 유산의 영역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공예기술 나전칠기의 제작은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 낸 후 칠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나전칠기 기법은 비록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태국 등 동아시아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나, 유독 한국의 나전칠기만이 그 기술적 성과나 예술성이 뛰
28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어나고 대중화에도 성공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공예라 아니할 수 없다. 이처럼 한국에서 나전칠 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제작 기능과 더불어 재료를 다루는 자연지식도 함께 전승되어 왔다. 통영 섭패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여러 재료 중 특히 전복을 가공하여 나전 작업에 필요한 자개를 제작 하는 일을 하는데, 전문적인 제작 방식은 과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다만 국내에서 생산된 전복도 자 연산이 아닌 양식에 의한 인공산이거나 수입산을 사용하거나, 원패 대신 판자개를 제작하거나 기계 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등에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영섭패는 통영지역에서 나전 칠기의 핵심 재료인 자개를 가공하는 유일한 공급처로서 지역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나전칠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자개를 가공하는 섭패일도 나전장의 전승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섭패일과 관련된 통영섭패도 조사하여 수록하였음을 밝힌다. 3. 유산의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마구촌길 전승자(종사자) 1) 직책(기능) : 대표(섭패장) 2) 성명 : 이금동 3) 성별 : 남성 4) 나이 : 63세(1951년생) 5)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6) 입문시기 : 이금동은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17세가 되던 1967년에 외삼촌의 권 유로 자개를 가공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부산에 위치한 토성고개에 있는 한 자개공장에 취직을 하였고, 그곳에서 박성중과 김상봉에게 자개를 가공하는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공장의 잔일 을 도와주면서 섭패 라는 일을 접하게 되었다. 섭패일의 경우 보통 몇 개월의 조수 노릇은 해야 본 격적으로 기술을 배울 기회가 생기는데, 그는 입문하자마자 섭패일에 재능을 발휘하여 선배들을 제 치고, 1년 뒤에는 그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실력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다른 기술자들은 전복껍질 을 잘게 잘라 자개를 만들었지만 그는 남들보다 폭이 넓고 크게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렇 게 자개를 크고 넓게 만들기 위해 그가 개발한 기술은 울퉁불퉁한 전복껍질을 펴서 절단하는 기술 이었고, 그 방법을 인정받아 금방 다른 곳에 발탁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불과 1,000원의 월급을 받 았으나 그의 기술력이 소문이 나자 월급이 7~8천원으로 오르게 되었으며, 3년이 지나자 월급은 14 만원으로 그 계통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 때가 1970년대 초로 나전칠기의 전성기가
29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시작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7) 공방 이동지역 : 이금동은 처음에 부산에서 섭패일을 배운 뒤, 고성과 통영 등지의 여러 자개공장 을 오가며 섭패장으로 활약을 하였다. 그러다가 1978년 고향인 통영의 용남면 장운리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독립할 당시에 직원 4명을 데리고 일했다. 그 다음해 1979년 현재의 장소인 광도면 용 호리 마구촌에 이전하였다. 당시 나전칠기가 전국에서 붐을 이루면서 이곳의 섭패공장에는 직원 10 명을 고용하기도 하였다. 그때는 전국에서 자개의 주문이 쇄도하여 잠잘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당 시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이름난 장인들은 이금동이 가공한 자개패만을 고집했고, 덩달아 서울 등지 의 나전재료상에서도 많이 보내달라는 독촉을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나전칠기가 쇠 퇴하면서 직원들도 일감이 없어 하나씩 떠나가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값싼 자개패들을 수입하게 되면서 1985년 공장 문을 닫게 되었다. 같이 일하던 섭패공들도 하나씩 떠나 전직을 하고 말았는데, 그들은 다시 섭패일에 복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섭패장을 천직으로 알던 이금동은 자신 의 살림집 2층 10평 정도 되는 작업장을 다시 열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10여 년 의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 조금씩 나전칠기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이제는 섭패 장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8) 대표와의 관계 : 본인 5. 유산의 내용 1) 재료 나전칠기는 나무를 이용하여 백골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자개를 붙여 각종 문양을 나타낸 후 칠 을 발라 완성하는 한국의 전통공예기술이다. 이중 나전의 공예기술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재료가 바 로 자개이다. 나전칠기는 도안의 특성에 맞는 크기와 색상을 가진 좋은 자개를 고르는 데서 시작하 여, 이 자개를 세밀하게 끊거나 오려서 문양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다. 곧 나전칠기는 좋은 자개에 서 시작하여 좋은 자개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전국의 모든 나전장들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좋은 자개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자개를 만드는 1차 원재료는 바다에서 채취한 전복껍질을 비롯하여 소라껍질, 진주조개껍 질 등 패류이다. 통영섭패의 이금동은 이중 통영 앞바다에서 채취되는 전복껍질을 원재료로 사용한 다. 이러한 전복껍질은 자신이 거주하는 통영 바닷가에서 직접 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통영을 비롯하여 남해안의 어시장이나 죽집, 횟집 및 활어 전문 식당 등의 상인들에게 음식으로 먹고 남은 전복껍질을 모아두도록 부탁하여 얻기도 한다. 이렇게 그가 처음 섭패 일을 시작했을 1960~1970년 대 당시에는 부산이나 고성 및 통영 등지의 남해에 자연산 전복이 넘쳐 났다고 한다. 때문에 자개공
291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장에서는 크기가 크고 색상도 영롱한 자연산 전복껍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전복의 수요가 늘자 전복을 양식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인공산이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양식 전복은 크기가 작고 색깔이 영롱하지 못하지 만, 맛은 비슷하여 먹는 데는 문제가 없어 죽집이나 횟집 등에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전복껍질은 자연산이 크기도 크고 두께도 두툼하고 색상도 영롱하여 양식산보다 우수 하지만 현재는 인근 앞바다에서 채취되는 양이 극소수라고 한다. 게다가 근래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 해 우리나라 인근 바닷물의 수온이 예전보다 올라 자연산 뿐 아니라 양식산 전복의 생산량도 극감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섭패장은 전복의 껍질만 보아도 그것이 자연산인지, 양식산인지 어느 바 다에서 나왔는지, 바닷물의 온도가 어떠한지 등을 구별하는 자연에 대한 전통 지식을 가지고 있다. 통영섭패에는 통영과 남해안 일대에서 수집한 전복껍질을 공장으로 사용하는 슬레이트 2층집 옥 상과 집 안 곳곳에 몇 십 가마씩 쌓아두고 있다. 섭패장 이금동은 혼자서 이 전복껍질을 크기별로 선 별하고 세척하여 자개로 쓸만한 것을 다시 골라낸다. 그리고 나전일에 적합한 모양과 크기에 맞춰 1~10cm 너비로 절단하는데, 이것이 바로 나전칠기의 원재료가 되는 것이다. 통영섭패에서는 통영 앞바다에서 채취하거나 양식되는 국내산 전복껍질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근래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장인이 넓은 크기와 화려한 색채를 요구하면 거기에 맞춰서 해외에서 수 입한 각종 조개껍질을 구하여 가공하기도 한다. 그러면 필리핀이나 멕시코 등지에서 나는 진주조개 패, 야광패, 핑크조개패, 청패, 흑패 등등 다종다양한 조개껍질을 구입하여 나전장이 주문하는 대로 크기와 두께 및 색상을 맞추어 특수한 목적으로 가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금동의 표현에 의하면 국내산 전복껍질의 은은하고 영롱한 빛깔이나 색채는 외국산 조개의 강한 색상과 비교된다고 한다. 2) 시설 및 도구 통영섭패는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용호리 마구촌길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통영 시내에서 굽이 굽이 산길을 돌아 말굽형의 작고 잔잔한 앞바다를 끼고 있는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섭패 작업장은 슬레이트로 만든 가정집 2층 옥상에 마련되어 있다. 옥상이나 집 안 곳곳에는 통영과 남해안 일대에 서 수집한 전복껍질이 몇 십 가마나 쌓여 있다. 옥상에 위치한 공장의 크기는 불과 10여 평 남짓한 좁은 작업장이다. 여기에 몇 대의 가공용 시설 을 설치하여 조개를 가공하는 작업을 한다. 이금동에 의하면 전복껍질 200kg을 가공하는데 보름 정 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통영섭패에서 사용하는 가공시설 및 도구는 모두 자동 기계화된 것들이다. 이금동이 처음 자개를 배울 당시에 일부 장인들이 숫돌에 전복껍질을 갈고, 인두로 지져서 전복껍질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292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펴고, 톱으로 문양의 결을 따라 오리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에 나전칠기로 만든 장롱 등 가구가 붐을 이루면서 일일이 수작업을 하던 섭패 과정이 기계를 사용하여 전동화되기 시작하였 다고 한다. 이러한 기계사용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나이 많은 옛날 장인들은 공장에서 밀려났고, 전통 적인 도구 또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섭패 가공을 위해 전복껍질을 자르고, 깎아내고, 펴고, 연마하는 일들은 단계를 나누어 기계의 힘을 빌리게 되면서 대부분의 도구들이 기계화, 전동화 되었다. 전성기에는 전국에 수백 곳의 나전 칠기 공장에 수천여 명의 장인들이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할 자개를 빠르고 정교하게 공급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통영섭패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재단절단기, 다이아몬드 톱, 그라인더, 광택 연마기, 분진 집적기, 팬 등이 있다. 전복껍질을 기계를 사용하여 자르고 깎고 연마할 때마다 기계와 조개패가 부딪치는 소음이 만만치 않다. 때문에 이금동은 항상 귀마개를 하고 있으며, 40년 이상 이 일에 종사하면서 가는귀가 먹을 정도이다. 한편 전복껍질을 자르고 깎고 연마할 때마다 하얀 가루가 먼지처럼 흩날린 다. 이렇게 분진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금동은 항상 방진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처럼 소음이나 분진과 같은 작업 환경으로 인해 작업자들이 기피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섭패공장이 공해산업으 로 인식되어 청정 해역인 통영 앞바다나 도심에 세울 수 없게 되어 나전칠기의 고향인 통영에서조 차 점차 사라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결국 통영섭패는 현재와 같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주택 2층 옥상에 작업실을 차리고 있다. 3) 제작과정 전복껍질을 자개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전복을 떼어 먹고 남은 원패 껍질을 깨끗하게 세척하는 작 업이 선행된다. 그 다음 크기와 빛깔을 살펴 용도에 따라 쓸 만한 것을 선별하는 작업을 한다. 그런 다음 원패를 재단하기, 표면 깎기, 광택내기의 순서로 자개를 가공한다. (1) 원패 재단하기 전복껍질을 살펴보면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오면서 타원형의 골 모양을 이루고 있다. 자개는 이 골 을 따라 자르거나 절단하는 것을 재단하기 라고 한다. 결이 살아있는 자개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섭패장의 기술이다. 더욱이 통영섭패 이금동의 경우 이금동이 고안한 절단기술을 통해 생산량도 늘 릴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10cm 안팎의 전복껍질에서 골을 따라 색채를 계산하여 절단하는 방법은 천부적 감각과 함께 숙련과 경험이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금동은 전복껍질을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절단하고 있다. 첫째, 귀패재단이다. 귀패라고 부르
293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는 곳은 너비 약 1~2cm 정도이며, 전복껍질 절반을 에워싸고 있는 부위이다. 이곳은 다른 부위에 비하여 다듬으면 영롱한 빛이 나는데, 이금동이 가장 즐겨서 절단하는 부위에 해당된다. 둘째, 앞장 재단이다. 앞장이란 전복껍질의 바닥에 해당되며, 바닥의 편평한 부분을 모서리에서 안쪽 방향으로 5~7cm 너비로 절단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좋은 자개를 결정하는 곳으로서 자개 중 비교적 폭이 넓 고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자개는 바로 이 앞장재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셋째, 상 사재단이다. 이 부분은 전복껍질 중 2~3cm의 너비이며, 앞장재단한 나머지 것을 말한다. 자개 중 비교적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나전칠기를 제작할 때에는 꺾음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부분이다. (2) 원패 표면 깎기 재단이 완료된 전복껍질은 그 원재료의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돌기가 있다. 이것을 나전칠기 작업 을 할 때 사용하는 자개로 가공하기 위해 표면을 일정하고 매끈하게 만드는 작업을 표면 깎기 라고 부른다. 표면을 깎는 작업을 위해서는 공업용 다이아몬드[금강석]가 장착된 회전 숫돌에 갈아서 표 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할 때에는 숫돌과 고정판의 간격을 잘 맞추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편차가 생겨서 전복껍질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이 부분의 일 은 전동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하기도 하지만 통영섭패의 이금동은 더 좋은 품질의 자개를 생 산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에서 울어나는 감각에 의한 수작업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것이 섭 패장의 장기가 잘 발휘되는 기술이어서인지, 전복껍질의 부분을 부르는 섭패장만의 고유 언어도 확 인할 수 있다. 전복껍질의 표면은 껍질의 형태에 따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깎아낸다. 첫째, 등면 깎기이다. 전 복껍질의 등면은 섭패장이 사용하는 고유어로는 아라 라고 부른다. 전복껍질의 등면을 보면 거칠고 돌기가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제거하는 일이다. 둘째, 바닥면 깎기이다. 섭패장의 고유 어로는 새아기 라고 부른다. 전복껍질 안면은 얼핏 보기에 편편해 보이지만 잘 보면 굴곡이 있다. 바로 이 굴곡을 없애 평탄하게 하는 작업이다. 셋째, 앞장 깎기이다. 앞장은 새아기 작업이 끝난 후 작업에 사용할 앞면의 미세한 굴곡을 없애는 작업이다. 이 부분은 자개 중 가장 넓고 작업에 사용빈 도가 높으며 상품적 가치가 높은 부분이기 때문에, 작업시 자개에 구멍이 생기거나 찢어지는 것을 막는 섭패장만의 섬세한 손질이 필요한 대목이다. (3) 원패 광택내기 자개를 생산하는 마지막 작업은 중아라 라는 고유 언어로 부른다. 이것은 전복껍질 자체의 원패
294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가 가진 오색영롱한 빛과 색을 살리는 작업으로서, 자개의 완성단계에 섭패장의 실력이 확연하게 드 러나기 마련이다. 이 작업을 위하여 표면 깎기가 된 원재료를 물에 반나절이나 하루를 담가 물기를 머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자개 표면이 축축한 상태여야 패가 부드러워지고, 회전 숫돌을 이용하여 표면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할 때 높은 온도로 자개의 표면이 타는 것을 막아준다. 광택 작업까지 끝나면 자개는 표면에 각종 먼지와 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 때문에 물새아기 라 는 작업을 하게 된다. 완성된 자개의 표면을 물에 담가 가루를 떨궈내는 세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새아기까지 끝나 마무리된 자개는 영롱한 빛깔과 함께 표면의 광택이 찬란하여 나전칠기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자개 로 완성되는 것이다. (4) 판자개 만들기 전복껍질의 원패를 재단하기, 표면 깎기, 광택내기의 순서로 가공하여 자개를 제작하는데 반해, 요즘은 원패 자개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자개를 판에 붙여 판자개라는 것을 만들어 자개상가에 납 품하기도 한다. 판자개라는 것은 원패 자개로 사용하기에 크기나 빛깔이 떨어져 품질이 조금 낮은 것을 골라 세로 24cm, 가로 14cm의 크기로 판을 만들어 접착제를 이용해 붙인 것이다. 판자개를 만드는 것은 원패를 가공하는 1차 과정에 더하여, 파란색 셀로판 테이프를 넓게 펴고 그 위에 자개 를 채워 붙이는 2차 과정으로 제작된다. 때문에 1차 과정까지는 전통 기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 2차 과정은 현대 나전칠기 업계가 요구하는 표준화와 규격화 및 대형화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 여 겨진다. 이러한 판자개는 A4 정도의 크기로 규격화시켜 만들어지기 때문에, 대형의 가구나 대량으로 문화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특히 선호하는 것이다. 판자개를 만드는 작업은 주로 부인이 거들고 있다. 나전칠기 산업이 호황을 이룰 당시에는 A4 1장 크기의 판자개가 15,000원을 받을 정도로 시세가 좋 았는데, 지금은 3,000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사이 판자개의 인기가 좋아지자 통영이나 고성 등지 에서 자개를 생산하던 섭패장들이 중국이나 필리핀 등지로 기술을 유출하여, 그곳에서 싼 인건비와 저렴한 원패 가격으로 제작해 수입해 들여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통영섭패에서 한 달간 만드는 판자개는 평균 500장 정도이다. 이러한 판자개를 만들 때에 도 통영섭패에서는 자개의 결이나 문양을 잘 배치하여 자개 자체의 영롱한 빛깔을 유지하고, 작업하 다 구멍이 생긴 부분을 메꿔주는 등 나름대로 품질 관리를 해준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자개 시장에 서도 나름대로 좋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295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5) 원패 자개 전복껍질이나 진주조개패 등을 자개로 가공하는 전통 지식은 1단계로 원패를 일정한 크기로 재단 하고, 2단계로 원패의 표면을 깎고, 3단계로 자개의 표면에 광택을 내는 순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런데 근래 나전칠기 업계에서는 자개의 원재료인 원패의 물성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주어 자개를 만 드는 과정을 이해하게 하거나 나전칠기 제작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 려는 시도를 동시에 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자개를 가공할 때 원패의 크기를 조그맣게 재단하는 1단계를 생략하고, 2~3단계로 진행하는 것이다. 곧 원패에 부착된 울퉁불퉁한 표면을 매끈하고 말끔하게 깎고, 원패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두께와 결 및 광택을 살려내는 것이다. 이렇게 원패 자개를 가공하는 데에도 섭패장의 전통 지식이 십분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자개를 제 작하는 전통 지식을 토대로 하되, 원패의 형태나 두께 등을 거의 유지하며 가공이나 변형하지 않고 통째로 표면만 매끄럽게 가공하여 빛과 광택을 낸다. 이는 나전작업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장식용이 나 견본품 또는 나전칠기 전시회를 할 때 교육용으로 쓰인다. 6. 유산의 사회 문화적 기능 통영섭패가 소재한 통영은 일찍부터 나전칠기 혹은 자개의 본고장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통 제영이 있던 곳이어서 수군에 소속되어 있던 12공방 중 나전장이 하나로 예속되어, 이곳 앞바다에 서 채취한 전복 껍질을 활용하여 자개패를 가공하거나 나전칠기를 제작하여 전국에 공급할 수 있었 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통영 앞바다가 남해안 청정해역의 최대 어항으로 나전장에게 필수적 원 자재인 질 좋은 자개패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영이 나전칠기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자개패를 수집해 가공하여 나전장들이 작업하기 좋게 원자 재를 제공해 주는 섭패업이 발달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만해도 통영에는 이러한 섭패공장 이 80여 곳이 넘었을 정도로 전국에 자개패를 공급하는 섭패업이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원료 구득의 용이성, 관의 지휘로 통영은 일찍이 나전칠기의 중심지로 발달하였고, 자연히 이에 종사하는 솜씨 좋은 나전장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통영에는 30년 전만해도 섭패공장이 80여 곳에 이르러 전체 인구의 20% 정도가 이 일에 종사했 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나전칠기 산업이 불황에 접어든 데 있다. 그 러면서 자개를 생산하는 섭패에 종사하던 가공 인력들이 크게 줄어 통영의 이금동을 비롯하여 고성 에 4명, 전남 광주에 1명, 서울에 1명, 기타 지역에 3명 정도로 10명 남짓으로 줄었다. 이와 함께 중 국이나 필리핀, 베트남 및 동남아 등지의 값싼 자개패가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국내 섭패산업은 위축되었다.
296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이러한 섭패와 자개를 만드는 섭패장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 언론에서 보도가 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따라서 전복껍질을 자개로 만드는 통영섭패는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전 승에 기본이 되는 주재료의 공급처로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겠다. 7. 유산의 현재 상황 통영섭패는 1980년대 초 1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일을 할 정도로 활발한 전승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나전칠기산업이 대규모 공장화하면서 재료인 전복의 양식이나 자개의 수입 등 으로 변화되어 자개패 가공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현재는 대표 이금동이 부인과 함께 일을 하 고 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나전칠기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 다고 한다. 우선 자연산 전복의 대중화로 인해 전복이 무분별하게 채취되거나 지구 온난화 및 해수 온도의 상승 등 자연 환경의 변화로 자연산 전복의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식하 면서 먹기에 알맞은 일정한 크기의 전복이 범람하면서 작품을 하기에 좋은 크고 두툼한 전복껍질은 더 이상 통영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또한 고속도로의 개통과 같은 교통의 발달과 전복의 소비 가 전국화되면서 통영 현지에서 전복껍질을 공급한다는 지리적 이점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섭패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다음 1980년대부터 전국에 나전칠기의 수요가 늘고 값싼 자개가 수입되면서 통영에서 자개를 가 공하는 섭패업은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곧 1980년 초까지 통영과 인근 고성에 80여 곳에 이르던 섭 패공장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대형 나전칠기 가구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부터 값싼 해외 자개가 대량으로 수입되고, 1980년대 말 통영의 섭패공장들이 한순간에 모 든 공장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이 지역 섭패 제작 장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중국이나 필리핀 등지 로 옮겨가 현지에서 값싼 노동력과 다종다양의 풍부한 조개껍질을 가공하면서 국내 자개 가공업은 사양길에 들게 되었다. 근래에는 자개패를 제작하는 공장이 먼지와 소음 등 공해산업으로 여겨져 공 장 설립이 어려워진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한다. 이처럼 양식 전복의 생산이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좋은 전복껍질을 얻기 어려워진데다가, 동남아 시아나 중국으로부터 값싼 자개패가 수입되어 경쟁하면서 활동의 기반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 다. 더욱이 통영에서 운영되던 나전칠기산업과 그곳의 장인들의 숫자가 크게 줄면서 섭패에 대한 수 요가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영섭패의 이금동은 자개패 없이는 나전칠기는 없다 는 생각으로 처음 섭패업에 종사한 이래 45년간 계속 섭패일에 종사하고 있다.
297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유산의 보호조치 통영섭패는 통영 지역의 특산품인 자개패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곧 통영에서 나전칠기 산업을 육 성하되, 그때 섭패 가공업에 대한 보호도 함께 해야 한다. 2011년부터 <경남일보>, <한산신문> 등 지 역의 유력 일간지들은 몇 년간 섭패를 가공하는 기술 없이 통영 나전칠기의 미래는 없다는 캠패인 성 기사를 계속 내고 있다. 곧 이 지역에서 45년간 섭패일에만 종사하면서 전복껍질 하나에서 4개 이상을 잘라내는 섬세함이나 바닥면의 골을 따라 절단하여 결이 살아있는 영롱한 자개패를 만드는 이금동의 기술을 살려 지역 특화산업인 나전기술까지 살아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통영지역 언 론의 보도로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개패를 생산하는 섭패가공업에 관심을 가지고 전 시를 하거나 교육을 해서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9. 계승방식 섭패일은 그것을 만드는 공장 이외의 곳에서는 배우기 어렵다. 하지만 자개 없는 나전칠기는 생각 할 수조차 없듯이, 예전 소규모 작품을 생산하던 전통 장인들은 나전칠기를 작업할 때 자개패를 만 드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나전칠기의 보유자나 명장의 나전칠기전습소나 해당 공방에서는 도제학 습으로 자개패를 가공하는 일을 부분적으로 전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나전칠기가 대 규모 공장화하면서 자개패를 가공하는 산업도 공장화되어, 이금동도 17세 때 섭패공장에 입사해서 기술자였던 박성준, 김상봉의 잔일을 거들면서 자개패 가공일을 배웠다고 한다. 공장에서 장인이 전 복껍질이나 조개껍질을 직접 다루면서 눈으로 깨닫고 몸으로 느낀 경험을 전통지식으로 갖고 전승 하는 것이다. 자개를 가공하는 일은 공장에서 가르쳐 전승해야 하는데, 섭패공장은 전동기계인 절단기, 연마기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음과 먼지가 심하여 배우려는 사람이 전무하다. 이를 해소하는 방안은 집진 기나 소음제거 등 설비의 개량과 시설 현대화를 통해 작업공간을 개량하는 방안이 무엇보다 시급하 다. 작업환경이 개선되면 이곳에서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섭패일의 전승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섭패일은 직접 공장에서 전복껍질을 다루면서 눈으로 깨닫고 몸으로 느끼는 방법으로 습득할 수 있 는 지식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경험이 가장 소중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섭패일은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작업경험을 통한 기술 전승의 어려움이 큰 것 같다. 10. 관련자료 부산일보뉴스, <오직 섭패 가공 44년, 후계자가 없어요>, 2011년 7월 5일자 굿데이뉴스, <섭패가공의 1인자, 이금동씨>, 2011년 9월 16일자
298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경남사람들, <통영전통 섭패 가공의 1인자를 만나다>, 2011년 9월 18일자 경남도민신문, <통영나전칠기 단순 재료 치부, 안타까워>, 2011년 9월 18일자 경남일보, <섭패 가공기술 없이는 통영 나전칠기도 없다>, 2011년 9월 20일자 한산신문, <훌륭한 섭패없이 통영 나전칠기는 없다>, 2011년 9월 20일자 통영 제182호, <통영 나전칠기의 뿌리>, 2011년 9월 20일자 통영인터넷뉴스, <마지막 통영 전통 섭패기능인을 만나다>, 2012년 7월 5일자 경남일보, <나전칠기 위해 바친 44년, 섭패가공의 1인자>, 2012년 7월 5일자 tynews, <통영나전칠기 섭패기술을 살려라>, 2012년 7월 5일자 통영인터넷뉴스, <마지막 통영 전통 섭패기능인을 만나다, 이금동씨 44년 투혼인생... 지원 희망>, 2013년 3월 8일자 통영인터넷뉴스, <통영나전칠기 섭패기술을 살려라, 지역특화사업에 기술 보존신청>, 2013년 9월 20일자 11. 관련단체 이금동은 현재 통영공예협회 회원으로 있는데, 이곳에서 전시회 정보와 섭패의 공급, 알선 등의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섭패 가공기계 앞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
299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의 전승과 지속 나전장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통영섭패 공장 공장 옥상에 마련된 전복껍질 창고 전복껍질이 가루를 내고 가공되는 모습 전복껍질을 자개로 가공하는 각종 기계 기계의 종류를 설명하는 이금동 전복껍질을 기계로 밀어넣는 모습 전복껍질이 자개로 만들어진 모습
300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공방 한쪽에 쌓여 가공을 기다리는 전복껍질 자개를 가공 작업 중인 이금동 전복껍질을 모양과 크기에 따라 절단하기 갈아낸 자개를 물에 닦기 전복을 갈아 자개로 만든 상태 전복껍질에서 자개로 되는 과정 세계 여러나라에서 수입된 다종다양한 판자개 전복껍질로 판자개를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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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Abstract Abstract In the effect of The UNESCO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he interest towar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has increased throughout the world. Safeguarding and management of ICH is essential to protect the traditional culture of Korea and cultural resources of humanity as well. UNESCO defined the meaning of ICH and has recommended the States Parties to the Convention to safeguard their elements by ICH inventory-making. Korean government has also been safeguarding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with the Korean Cultural Heritage Protection Act from However, the two regulations, i.e. the UNESCO Convention and the Korean Act, show different definitions for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t therefore caused the necessity for ICH resources surveying and inventory making to correspond to the definition regulated by UNESCO. In light of this, the National Intangible Heritage Center initiated the project called the Survey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Resources. It aims to identify the Korea 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resources considering the ICH definition of the Convention and utilize for the national inventory making of Korea. As a part of this project, the center carried out the survey on Najeonjang to confirm the current situation and study the transmission possibilities in the future. This book contains the result including the transmission environment, the social and cultural function, and the safeguarding method of thi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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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한국 무형문화유산 자원 5 나전장 2014년 12월 8일 초판 1쇄 인쇄 2014년 12월 15일 초판 1쇄 발행 기 획 이재필(조사연구기록과장) 연 웅(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장, 전 조사연구기록과장) 원 고 유성웅(한국전통문화연구소) 장경희(한서대학교) 이광웅(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해운(대구대학교) 편 집 양진조(학예연구관) 방소연(학예연구사) 이한승 최성미(연구원) 발 행 국립무형유산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95 TEL 063_280_ _280_ 제 작 나모에디트(주) TEL 02_2268_8013 저작권자 2014 국립무형유산원 이 책의 저작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내용의 일부나 전부를 인용, 발췌하는 것을 금합니다. COPYRIGHT 2014 by Natonal Intangible Heritage Center All rights reserved including the rights of reproduction in whole or in part in any form. Printed in KOREA. 발간등록번호 ISBN Paper 표지 : 매직콤마(220g) 면지 : 매직칼라(밍크색/120g) 내지 : 하이플러스(100g) Color 표지 : 4원색 먹박, 형압 내지 : K 100% 이 책은 국립무형유산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PDF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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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발간등록번호 ISBN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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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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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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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문화재이야기part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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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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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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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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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연합뉴스) 마이더스
106 Midas 2011 06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개최, 고속철도 건설, 2007년 발견된 대형 심해유전 개발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 확충 움직임이 활발하다. 리오데자네이로에 건설 중인 월드컵 경기장. EPA_ 연합뉴스 수요 파급효과가 큰 SOC 시설 확충 움직임이 활발해 우 입 쿼터 할당 등의 수입 규제 강화에도 적극적이다. 리
01정책백서목차(1~18)
발간사 2008년 2월, 발전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출범한 새 정부는 문화정책의 목표를 품격 있는 문화국가 로 설정하고, 그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권한과 책임의 원칙에 따라 지원되고, 효율의 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문화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란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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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40242-000001-08 2013-927 2013 182 2013 182 Contents 02 16 08 10 12 18 53 25 32 63 Summer 2 0 1 3 68 40 51 57 65 72 81 90 97 103 109 94 116 123 130 140 144 148 118 154 158 163 1 2 3 4 5 8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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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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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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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1 2 3 4 5 6 경제적 요구 생산성 경쟁력 고객만족 수익성제고 경제성장 고용증대 외부여건의 변화: 범지구적 환경문제의 심화 국내외 환경규제의 강화 소비자의 의식 변화 환경비용의 증대 환경단체의 압력 환경이미지의 중요성 증대 환경적 요구 자원절약 오염예방 폐기물저감 환경복구 삶의 질 향상 생태계 보전 전통적 경영 경제성과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5월전체 2005.6.9 5: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개 지역지식재산센터 를 통해 발명가와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선진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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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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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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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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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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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2저널(2월호)0327.ok 2013.2.7 8:40 PM 페이지23 서 품질에 혼을 담아 최고의 명품발전소 건설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또한 질의응답 시간에 여수화력 직 DK 한국동서발전 대한민국 동반성장의 새 길을 열다 원들이 효율개선, 정비편의성 향상,
22 2저널(2월호)0327.ok 2013.2.7 8:40 PM 페이지23 서 품질에 혼을 담아 최고의 명품발전소 건설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또한 질의응답 시간에 여수화력 직 DK 한국동서발전 대한민국 동반성장의 새 길을 열다 원들이 효율개선, 정비편의성 향상, 터빈 진동저감 및 IP 1 단 HVOF Coating 등을 설계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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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웹진을 위한 경험 디자인 적용방안 연구
髤 시대 전 기 고 려 고려시대 나전칠기 유물 사용 기법 및 특징 - 자개, 은, 동, 황동 등의 금속선 사 용 - 대모 복채법 : 대모에 주칠, 황칠, 나전대모국 자개를 사용하여 장식 - 박패법, 당초 덩쿨 사용 당초문염주 - 대모 사용은 사라지고 자개 이용 - 나전을 이용한 국화나 모란과 같 은 꽃무늬 배치 - 거북등무늬, 기학학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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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연합뉴스) 마이더스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2012. 04 Vol. 98 Cover Story April 2012 _ Vol. 98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www.yonhapmidas.co.kr Contents... 14 16 20 24 28 32 Hot News 36 Cover Story 46 50 54 56 60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현안과과제_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_150805.hwp
15-27호 2015.08.05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 국민의 절반 동참시 1조 3,100억원의 내수 진작 효과 기대 Executive Summary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개 요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침체된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오는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에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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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IL 완벽입문
누구나 만드는 전자책 SIGIL 을 이용해 전자책을 만들기 EPUB 전자책이 가지는 단점 EPUB이라는 포맷과 제일 많이 비교되는 포맷은 PDF라는 포맷 입니다. EPUB이 나오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전자책 포맷이고, 아직도 많이 사 용되기 때문이기도 한며, 또한 PDF는 종이책 출력을 위해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종이책 VS
트렌드29호가제본용.hwp
- 309 - - 310 - - 311 - - 312 - - 313 - - 314 - 외부적 탐색단계 새로운 정보에 자극받는 외부적 탐 색단계 새로운 광고 메시지에 의하여 소비자가 제품 및 브랜드 평가를 하는 대안의 평가 단계까지의 일련 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림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의 구매태도형성 어느 단계에서도 상품 광고가 미치는 영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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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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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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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더바이어102호 01~09
www.withbuyer.com Highquality news for professionals www..kr Tel. 031)220-8685 2 Contents 01 02 08 17 18 TEL. 064720-1380~87 04 06 08 10 12 14 17 18 www.withbuyer.com 3 20 23 24 26 24 26 28 29 30 3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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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414 415 1 416 417 418 419 420 421 422 423 424 425 426 427 428 429 430 431 432 433 434 435 436 437 438 439 440 441 442 443 444 100년을 그린 1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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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2 / 6 첨부 1. 공급품 목록 및 납기일정 번호 품명 모델명/사양 Vendor 단위 수량 납기 비고 1 (샘플기판) 6Layer, FR-4, 1.6T, 1온스, 2 (샘플기판) 3 (샘플기판) 4 (샘플기판) 5 (샘플기판) FRONT PANEL BOARD 3종 1. 샘플기판은 Board 별 성능시험용 2. 샘플 기판 후 Board 별 육안점검 및
지도학발달06-7/8/9장
3 1 7 17 95101G 421d 221 2 3 4 1971 34 12 1804 1866 1972 31866 4 1 5 33 1866 3 6 31866 3 1803 1877 1804 1866 2 02333 318 4 51 633 3 6 2022 222 31866 1955 1931 3 916 7 1925 1925 10 9 1862 65 8 7 2 1931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소비자문제연구 제41호 2012년 4월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용약관의 약관규제법에 의한19)내용통제 가능성* : Facebook 게시물이용약관의 유효성을 중심으로 이병준 업 요약 업 규 규 논 업 쟁 때 셜 네트워 F b k 물 규 았 7 계 건 됨 규 규 업 객 계 규 므 받 객 드 객 규 7 말 계 률 업 두 않 트 접속 록 트 른징 볼 규 업 내
14년 광주신세계 추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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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경영학회_브로셔 내지
2014 08. 18-08. 20 2 02 03 04 05 05 05 06 07 08 08 08 09 10 11 12 13 16 17 19 22 23 23 23 24 24 25 25 27 28 29 30 30 32 33 34 34 35 35 35 37 37 38 39 39 40 42 43 44 44 44 46 47 49 50 51 3 4 5 6 7 8 9 10
에너지절약_수정
Contents 산업훈장 포장 국무총리표창 삼성토탈주식회사 09 SK하이닉스(주) 93 (주)이건창호 15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00 현대중공업(주) 20 KT 106 두산중공업 주식회사 24 (사)전국주부교실 대구지사부 111 한국전력공사 30 (주)부-스타 36 [단체] (주)터보맥스 115 [단체] 강원도청 119 [단체] 현대오일뱅크(주) 124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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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작물실용화사업단 인식조사 및 실용화 방향 설정 GM작물 인식조사 및 실용화 방향 설정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김욱 박사 1. 조사목적 GM 작물 관련 인식조사는 사회과학자들을 바탕으로 하여 국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GM 작물 관련 인식 추이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탐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2. 조사설계 2.1.
May leaflet_final.pdf
2012.5.7 ~ 6.2 [19-22week // for 4weeks] Love Gift-Giving, Love Tupperware 5week 19 - week 22 / May 683,000 777,400 614,700 94,400 871_ May Flower Set(16) 210,000 441_ 37,600 326_ 28,800 308_ 46,40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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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캠페인 쪽방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기름 값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내 몸 하 나 간신히 누일 전기장판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합니다. 한 달에 열흘정도 겨우 나가는 일용직도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 한 달 방값을 마련하 기 어렵고, 일을 나가지 못하면 밖으로 쫓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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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업중분류, 조직형태 및 동별 사업체수, 종사자수 단위 : 개, 명 금정구 서1동 서2동 서3동 Geumjeong-gu Seo 1(il)-dong Seo 2(i)-dong Seo 3(sam)-dong TT전 산 업 17 763 74 873 537 1 493 859 2 482 495 1 506 15 519 35 740 520 978 815 1 666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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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Art & Technology #5: 3D 프린팅 - Art World | 현대자동차
Art & Technology #5: 3D 프린팅 새로운 기술, 새로운 가능성 미래를 바꿔놓을 기술 이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답은 한 마치 한 쌍(pair)과도 같은 3D 스캐닝-프린팅 산업이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이유입니 가지는 아닐 것이나 그 대표적인 기술로 3D 스캐닝 과 3D 프린팅 을 들 수 있을 것입니 다. 카메라의
쌍백합23호3
4 5 6 7 여행 스테인드글라스 을 노래했던 하느님의 영원한 충만성을 상징하는 불꽃이다. 작품 마르코 수사(떼제공동체) 사진 유백영 가브리엘(가톨릭 사진가회) 빛은 하나의 불꽃으로 형상화하였다. 천사들과 뽑힌 이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며 세 겹의 거룩하심 가 있을 것이다. 빛이 생겨라. 유리화라는 조그만 공간에 표현된 우주적 사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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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 $ 떻 % 합 훨團醫 나전장 일러두기 1. 국립무형유산원은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의보호에관한협약에근거하여우리나라무형문화유산자원따약을위한조사를추진하고있습니다이보고서는 2013년에조사된 나전장 에대한현지조사내용을담고있습니다 2. 보고서는한국의무형문화유산으로서 나전장 이갖는의미와더불어전국적으로전승되고있는사례를수록하여, 유산의전승현황을종합적으로살띠고있습니다 개별사례는지역별로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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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호 5.0 4.0 3.0 2.0 1.0 (%) 2.6 2.8 2.4 1.2 주택매매가격 0.8 주택전세가격 1.6 0.4 0.0-1.0-2.0-0.1-0.6-0.2-0.9 02.1 3 5 7 9 11 03.1 3 5 7 8 160 140 120 100 80 60 40 20 0 (천호) 149 2001년 2002년 2003년 46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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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Industrial Technology 2007:11+12 2007:11+12 Korea Institute of Industrial Technology Theme Contents 04 Biz & Tech 14 People & Tech 30 Fun & Tech 44 06 2007 : 11+12 07 08 2007 : 11+12
지발홍보책_도비라목차_0125
남북교류 접경벨트 서 해 안 동 해 안 내륙벨트 신 산 업 벨 트 에 너 지 관 광 벨 트 남해안 선벨트 Contents Part I. 14 Part II. 36 44 50 56 62 68 86 96 104 110 116 122 128 134 144 152 162 168 178 184 190 196 204 Part I. 218 226 234 240 254 266
표지안 0731
32 33 특집 Ⅰ 공유도시, 공유경제 _ 도시정부와 공유경제 2. 도시정부는 공유경제의 발전에 있어 주요한 역할 수행 도시정부 자체적인 공유경제 서비스 제공의 대표적인 사례 : 공유 자전거 전세계 공유자전거 지도 Bike Share Map 8) < 서울의 공유 자전거 서비스 > 서울특별시 공공자전거 : 여의도, 상암동 일대에서 운영중 - 2010년
1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수일고등학교 윤 상 2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구성고등학교 류 우 3 [2]2018개방실험-학생2기[
1 [1]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3D프린터이해와활용 상현고등학교 2 1 28 유 훈 2 [1]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3D프린터이해와활용 수원고등학교 2 6 24 정 찬 3 [1]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3D프린터이해와활용 수원고등학교 2 8 3 김 헌 4 [1]2018개방실험-학생2기[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내지(교사용) 4-6부
Chapter5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01 02 03 04 05 06 07 08 149 활 / 동 / 지 2 01 즐겨 찾는 사이트와 찾는 이유는? 사이트: 이유: 02 아래는 어느 외국계 사이트의 회원가입 화면이다. 국내의 일반적인 회원가입보다 절차가 간소하거나 기입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 항목이 있다면 무엇인지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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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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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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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당판 20권 21호 2014년 5월 25일 생명순활동상활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 보고는 토요일 오전까지 마쳐주십시오. 보고자 : 김연호 목사 010-9251-5245 보고 : 각 교구 조장님께서 교구 사역자에게 보고해 주세요. 분당판 20권 21호 2014년 5월 25일 생명순활동상황 전도실적은 전도 한 분이 소속한 교구의 생명순에 전도한 인원수를 추가합니다.
경영학회 내지 최종
2014 08. 18-08. 20 2 02 03 04 05 05 05 06 07 08 08 08 09 10 11 12 13 16 17 19 22 23 23 23 24 24 25 25 27 28 29 30 30 32 33 34 34 35 35 35 37 37 38 39 39 40 42 43 44 44 44 46 47 49 50 51 3 4 5 6 7 8 9 10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24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 등을 수행하여 인니전력 이다. 공사(PLN)를 비롯한 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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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 이야기 항공기에 숨어 있는 과학 및 비밀장치 항공기에는 비행 중에 발생하는 현상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과 학이 스며들어 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객실 창문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고, 주 날 개를 보면 뒷전(trailing edge) 부분이 꺾어져 있다. 또 비행기 전체 형 상을 보면 수직꼬리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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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영대학
[ 별표 1] 1. 교육과정의영역구성및이수점표 경 영 농 업 생 명 과 동물생명과 과 ( 부 ) 명 경영 회부 ( 경영전공 ) 교 최소전공필수선택 심화점 7 12 1 18 38 18 27 45 0 45 47 단일전공 27 72 20 경영 회부 0 45 47 7 12 1 18 38 21 24 45 ( 회전공 ) 단일전공 27 72 20 경제 무역부 0 45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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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보증서 품질 보증기간은 구입일로부터 1년간이며, 애프터서비스용 부품의 보증기간은 5년간 입니다. 애프터서비스용 부품이란 외장을 제외한 회로, 기능 부품을 말합니다. (당사 규정에 따른 것임) 제 품 명 모 년 구 입 일 구 입 자 판 매 자 월 일 주소 성명 주소 대리점명 델 명 SERIAL NO. TEL. TEL. 제품보증조건 무상 서비스: 보증기간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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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 아라뱃길의 수향4경으로 대포분수, 아라뱃길 이야기마당 등 시민을 위한 친수 공간과 야생초화류가 만발하는 야생화 테라스 가든을 조성할 예정인 이곳은? (4p 참조) 1 귤현워터프론트 2 시천워터프론트 3 환경교 4 마리나리조트 2011년 8월호 뱃 아라 길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당첨되신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 보내드립니다.(문의 : 042-629-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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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와 열정으로 고객의 행복을 창조하는 선진일류 공기업 3 제35호 2010년 3월 고객을 위한 한결같은 마음의 공기업 중랑구시설관리공단으로 오세요. 소중한 한분 한분에게 행복한 웃음과 건강을 드리고자 유익한 소식과 프로그램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발행처 : 중랑구시설관리공단 편집 : 창의경영추진반 주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도당길 175번지 전화 : 02-3422-4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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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항공우주이야기②(51-74) 14.11.6 10:58 AM 페이지51 DK 항공우주 이야기 미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항공우주박물관 미국의 항공박물관 및 국립항공우주국(NASA)의 방문자센터(Visitor Center)는 미국 전역에 퍼져있어 어떤 지역을 방문해도 방문지 근처에서 항 공우주관련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미국을 방문할 때 도착한 지역 근처의
*부평구_길라잡이_내지칼라
발 간 등 록 번 호 54-3540000-000057-01 2012년도 정비사업 추진 지연에 따른 갈등요인 길라잡이 INCHEON METROPOLITAN CITY BUPYEONG-GU INCHEON METROPOLITAN CITY BUPYEONG-GU 1970년대 부평의 전경 1995년 부평의 전경 2011년 부평의 전경 백운2구역 재개발지역 부평4동 재개발지역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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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 I 3 4 I I 5 6 I TURTLE HOUSE I 7 8 I I 9 10 I I 11 12 I I 13 14 I I 15 16 I 전 면 광 고 2011년 2월 10일(목) 건축문화 건축물의 가치향상, 외장마감의 아름다움 표현 초석건설산업(주)이 최고의 품질과 우수한 시공기술로 실현하겠습니다. 저희 초석건설산업(주)은 차별화된 디자인과 창의성을
5권심층-양화1리-1~172
526 527 528 529 530 531 532 332 333 332 사갑 제례 음식준비 334 335 333 진설 334 사갑제례 335 음복 8시부터 8시 30분 사이에 제사에 참여했던 가족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고인의 부인은 제사에 참여한 이 들에게 제사 음식과 반찬거리(깻잎 등)를 골고루 싸 주었고 마을에 거주하는, 제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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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eyesurfer. All rights reserved.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04면 종합 -9-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내일신문] 17면 산업/무역 - 11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37면 인물 - 16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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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전문용어의국어화 강현화 1. 들어가기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 사용의 전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전문 용어의 사용자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포 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출발점을 시작으로 과연 전문 함 용어의 국어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전문 용어 연구의 쟁점 2.1. 전문 용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