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죽음앞의인간 우리는어떻게죽는가 2 다섯번째반응, 삶의마무리 죽어가는사람이보여주는다섯번째반응은자신의주변을정리하는삶의마무리과정이다. 죽기전에인간관계상갈등이있다면원만하게화해를하고, 매듭짓지못한문제가있다면잘마무리하는일은죽음을앞둔환자가꼭해야할중요한일이다. 죽음이임박한말기환자대부분의경우죽음에대한아무런준비도없이, 마치자기문제가아닌듯이, 혹은불행한죽음을원하기라도하는양두려움과절망속에서죽어간다. 그러나죽음은삶을가장절실하게마무리지을수있는최고의기회이다. 우리는여간한의지의소유자가아니면, 살아가는동안에는이런삶의정리를쉽게해낼수가없다. 삶을아름답게마무리하는것은죽음이우리에게주는마지막선물이기도하다. 그는임종 12일전부터점점병세가악화되기시작하더니음식을삼키지못하였고, 복수까지차서호흡곤란이오기시작했습니다. 그런와중에도정신이들때마다아내에게항상지혜롭고현명하게살아야한다고일러주고아이들도건강하게키워줄것을당부했습니다. 임종전날 하늘나라가실준비는다되셨어요? 하고내가물으니, 신부님, 아직안됐습니다. 내일쯤이면될것같아요. 아직정리안된게남았어요! 하는것입니다. 그러더니다음날아침, 신부님저오늘하늘나라에갈것같으니기도좀해주세요. 오늘은준비가되셨어요? 네, 준비되었어요. 신부님저손좀잡아주세요. 그리고당신손도이리주고 하면서직접아내의손을끌어다포개어놓았습니다. 신부님! 그동안고마웠어요. 저그곳에가면사랑하는우리가족과꽃마을위해서기도많이할게요. 그동안너무고마웠습니다. 제가보답할게그것밖에없네요. 그리고신부님, 제아내도이곳에서일주일에한번이라도봉사하게해주세요. 우리같이약속하는겁니다. 당신도알았지? 네. 약속할게요. 아내에게마지막으로할말은없으세요? 하고물으니, 그는아내의손을꼬옥잡고, 여보고생시켜정말미안하고당신과사는동안너무행복했었어. 그리고투병생활하는동안 - 1 -
끝까지지켜줘서고마웠고. 처음으로불러본다. 여보! 사랑해. 눈에눈물을글썽이는아내를보면서한손으로머리맡에서뭔가를꺼내더니아내에게꺼내보라 고했습니다. 예쁜시계였습니다. 당신생일선물로준비했어. 이번달에당신생일있는데못챙겨주고갈것같아서친구에게 부탁해서사다놨어. 당신이평소에갖고싶어하던거잖아! 시계예쁘지? 할머니될때까지손목에 차고있어야해? 눈물을펑펑흘리는아내에게그는직접시계를꺼내어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는마지막으로아내와입맞춤을하고싶다고했습니다. 주위사람이지켜보는가운데아내는뼈만앙상하게남은남편의등을끌어안고긴작별의입맞춤을했습니다. 아내는남편을만나행복했었음을고백했고, 남편은죽어서도아내를사랑하겠노라고속삭였습니다. 짧은기간동안유지되는이단계는환자가주위사람과이성적인대화가가능한시기이다. 임종자가주위사람에대해매우협조적이고개방적이기때문에, 환자가품고있는해결못한문제를정리하는 삶의마무리 에적합한시기이다. 예를들어유언을쓰도록권유한다든가, 인간관계에있어서감정적갈등이라든가오해가있다면화해하도록이끈다든가, 또는주변을정리할수있도록돕기에적합한시점이다. 물론모든임종자가이시기에인생을충분히되돌아보고인간관계를차분히정리하는것은아니다. 하지만삶의마무리를잘하는사람일수록평화로운죽음을맞게된다. 여섯번째반응, 수용 자기자신이나가까운사람이불치병에걸리면누구나슬퍼하게마련이다. 하지만그것을부정적으로만볼필요는없다. 어떤상황에서든치유를향한첫걸음은이처럼자기가겪고있는상황을있는그대로인정하는것이다. 죽음에임해슬픔을표출하는것도임박한죽음을인정하겠다는뜻이어느정도는담겨있다. 바람이불면부는방향에따라납작엎드렸다가곧바로일어서자세를바로잡는잡초처럼, 임종자는시간이경과함에따라감정적흔들림을서서히추스르고지금임박한죽음을차분히직시해수용하게된다. 그제서야그는죽음이무엇을의미하는지심사숙고할기회를얻는것이다. 이런단계까지나아갈때비로소우리는앞의다섯가지반응에서벗어나새로운차원, 즉죽음의빗장을활짝열어젖히고인생의진리에순응하는단계에이르게된다. 반대로이단계에와서도죽음에순응하지못하면, 그는죽음으로부터아무것도배우지못한채그간의어리석음을반복하며불행한죽음을맞을뿐이다. - 2 -
죽음이라는상황에순응한다는것은, 그것을어쩔수없이받아들이는수동적인태도만을의미하는것이결코아니다. 위대한도가사상가인노자와장자의철학에무위 ( 無爲 ) 라는용어가있다. 무위 란글자그대로아무것도하지않는다는뜻이아니다. 무위는거짓된행위를하지않고자연의이치에순응해행동한다는의미, 즉수동적적극성의뜻으로이해된다. 우리가죽음을수용하는것도마찬가지의행위이다. 죽음에일방적으로끌려가겠다는것이아니라그것에순응함으로써무언가희망도읽어내겠다는적극적인의지의표현인것이다. 영어에도 Renunciation 이란단어가있다. 이단어는 체념, 포기 의뜻도있지만, 동시에 자유 의의미도가지고있다. 살면서무언가를이루려고아등바등발버둥치다어느순간그것을포기해본경험이있을것이다. 그 순간오히려우리의마음이탁놓이지않았는가. 죽음도마찬가지이다. 우리가죽음을인정하지않으면, 죽어가는과정이나죽은이후에도결코죽음으로부터벗어날수없다. 죽음이남긴침전물이우리존재깊숙이박혀버리기때문이다. 하지만죽음을수용해순응하면죽음을넘어설수있는계기가마련될수있다. 죽음을수용하는시점에서부터죽음은더이상걸림돌이되지않는다. 죽음에순응하는바로그순간부터영혼의치유는시작된다. 아니이미치유되어죽음의공포를넘어섰다고말할수있을지도모른다. 죽음에대해마음을비운사람에게죽음이어떻게두려운존재일수있겠는가. 그래서원효대사도이렇게말했다. 하나의도로써생사를벗어나일체에걸림이없는자유인 ( 一道出生死, 一切無碍人 ) 이되라고. 유방암말기환자옥설희씨 (40세 ) 는대학교수였다. 의료진은먹는항암제를이용해서라도더치료를했으면하는아쉬움이있었는데, 본인이그것을거부하고자진하여호스피스시설을찾은경우였다. 호스피스관계자가그녀를처음만났을때부터단아한기품이느껴졌다. 유방암을발견해수술을한후병원에서시키는대로항암치료를성실하게받았지만, 그후암이재발하고부터는약물치료가무슨소용이있겠느냐면서통증과증상완화를위한치료만을받기로했다는것이다. 담당의사와암센터수간호사도항암치료를받으면어느정도생명연장은가능하다고보았고, 남편도한번더약물치료를해보고자했지만, 그녀가거부했다. 호스피스관계자를처음만났을때그녀는이렇게말했다. 한때고민도많이했지만이제는더이상억지로생명을연장하고싶지않아요. 다행히집에일하는아줌마가 7, 8년동안성심껏도와주는사람이라믿고맡길만하고시어머니도계세요. 남편이지금 42살인데어중간한나이에일을당하는것보다차라리지금일치르는게장래를위해서도좋다는생각이들어요. 아이들이어리니까엄마가옆에서돌보아야하잖아요? 엄마가돌보지를못하고오히려고통스러워하는엄마모습을오래보게되니까아이들도태도가달라졌어요. 남편과아이들을위해가장좋은길이무엇일까모색하던끝에입원하기로했어요. 옥설희씨의아이들은 5 살, 9 살짜리사내아이들이다. 큰아들은엄마가주로키워서유대관계가 있으나, 작은아들은두돌도되기전에엄마가병이나서할머니가데리고자면서키웠더니엄마와 - 3 -
는조금서먹하다고했다. 입원하기이틀전에도숨이차고몹시아파서괴로워하고있었더니, 작은아이가엄마방에들어오려다가무서운듯할머니품에안기면서울음을터뜨리더라는것이다. 집에있으면이런모습을아이들이보게되어엄마에대한부정적인기억만남기게될것같아병원에서마지막을보내는편이좋겠다는생각이들었다고한다.( 중략 ) 임박한죽음에순응하고있는그녀는사랑하는두아들에게마지막편지도쓰고묘지와장례식 에쓸사진까지생각하고있었다. 남편은이렇게말했다. 아내의죽음이기정사실이지만마음이너무아파요. 이젠어찌될지몰라출근도못해요. 집사람 이저보고운다고가라고하면차에내려와있다가다시올라가곤해요. 어젯밤에도히터틀어놓고 차안에서잤어요. 임종하기이틀전에옥설희씨는친지들을다오라고했다. 침대주위에둘러선친지들에게 나는이제죽을거예요 라고말하면서한사람한사람에게마지막인사를했다. 임종하는날에는웨딩드레스를가져오라고해서갈아입었다. 죽은이후관에들어가면서도, 사랑하는남편에게웨딩드레스를입은모습을보여줌으로써아름다운마지막모습으로기억되기를원했다. 그녀는결혼식장에서있는새신부처럼하얀드레스를입고남편과간병인이지켜보는가운데미소를띤채그렇게여행을떠났다. 임종을앞둔사람들중에는마지막까지죽음을거부하거나분노에빠져이와같은수용의단계에가보지도못하는사람들이많다. 피할수없는죽음임에도그것에대한저항이강하면강할수록, 죽음을품위있고평온하게맞이하기가어려워진다. 때로어떤임종자들은어느시점에이르러 난더이상안되겠어 라고말하면서저항을멈추기도한다. 그러나이런기회도갖지못하고죽어가는당사자가끝내죽음에순응하지않으면남아있는가족역시힘들어진다. 임종자가자신의죽음을수용할경우, 육체적통증과정신적고통도점점줄어들게되고차분히자기삶을뒤돌아보면서정리할여유도생기게된다. 죽어야하는자신의운명에대해더이상부정하지도분노하지도않고우울해하지도않는단계로들어간다. 고통이지나가고몸부림이끝나가면서 머나먼여정을떠나기전에취하는마지막휴식의시간 이찾아오는것이다. 이렇게임종자가일종의수용과평안의단계에접어듦에따라그의관심세계는한층좁아진다. 혼자조용히있고싶어하기도하고, 때로는방문객을달가워하지도않으며, 사람이찾아와도대화할기분이나지않는때가많다. 이무렵에는의사소통방식도언어보다는표정이나몸짓등무언의대화로바뀐다. 병실에들어와앉으 라는신호도눈짓이나손짓으로하기도한다. 사랑하는가족이나친지의손을꼬옥잡으면서잠자코곁에 있어달라는신호를하기도한다. 임종자앞에서침착할줄아는사람에게이와같은침묵의순간이야말로 - 4 -
가장뜻깊은대화가이루어지는시간이된다. 죽음을앞둔말기환자에게결코혼자가아니고최후의순간 까지곁에있겠다는믿음을전해주는사랑이요구되는시점이기도하다. 죽어가는사람의아홉가지반응가운데처음다섯가지반응과달리, 여섯번째반응 수용 에서부터는크게차이가난다. 처음다섯가지반응과마지막네가지반응의분기점이바로당사자가임박한죽음을수용하느냐하지않느냐여부에달려있다. 죽어가는사람의모습도그것에따라크게달라진다. 죽음앞에서한없이절망하거나, 죽음을두려워만하거나, 자기가왜죽어야만하느냐며화를내거나, 마지막순간까지슬픔에만젖어있다면, 그는결코죽음을이해하면서편안하게임종했다고말할수없다. 이런식으로죽는사람은삶역시제대로살지못했다고말할수밖에없다. 왜냐하면죽음은바로삶의거울이기때문이다. 죽어가는마지막모습을통해우리는그의생전의삶, 그리고죽음이후의삶까지도상상해볼수있다. 품위있고존엄한죽음을맞을줄아는사람은삶역시가치있게보냈을것이라고믿게된다. 우리사회에는죽음에순응하면서편안한모습으로세상을떠나는사람이많지않다. 여러가지이유가 있겠지만, 평소에죽음준비교육을받을기회가전혀없어서죽음을한번도사려깊게생각해보지못한 것도큰이유라고본다. 일곱번째반응, 희망 인생길이너무막막하고허무하게만느껴진다면당신의인생여행은어느틈엔가목적을잃은것이다. 그런삶은지루하고무의미할뿐이다. 마찬가지로죽음이허무한종결에불과하다면죽음준비도아무런의미없는헛일이되고만다. 하지만죽음에의미가있다면, 다시말해죽음저편에여행의본래목적지가존재한다면, 현재의고난에찬인생길도어떤의미를얻게된다. 죽음이후의삶즉 영원한생명 이란미래에만관련된문제가아니다. 그것은바로지금인생을어떻게사느냐하는것과도밀접한관계가있다. 사후에계속되는세계가있는가없는가, 또는죽음이끝인가아닌가하는문제는실상이세상을살아가는삶의방식을결정하는기준이되는것이다. 기독교에서는죽음은새로운세계로가는희망의문임을강조하고있다. 기독교인들에게죽음은새로운 장을열어주는신세계로의초대이며, 하느님의영원으로들어가는관문이다. 세계적인신학자존크리소 스톰도하느님안에서의죽음에대해이렇게말한다. 죽는다는것은무엇인가? 그것은단지옷을벗는것이다. 육체는영혼의옷이다. 죽음이라는짧 은시간에이것을벗어놓은후우리는보다빛나는옷으로갈아입는것이다. - 5 -
그러기에영성가인헨리나우웬은 죽음은가장큰선물 이라고말했다. 왜냐하면죽음이하느님과의 일치와친교로가는길이될수있기때문이다. 그는죽음은곧하느님나라로가는길임을강조하고 있다. 우리는모두가난하게죽습니다. 최후의시간이이르렀을때우리의목숨을연장해줄수있는것은아무것도없습니다. 아무리돈이많고권력과영향력이커도죽음을막을수는없습니다. 이것이진정한가난입니다. 가난한자는복이있나니하나님의나라가너희것임이요 ( 누가복음 6:20) 라는말씀처럼죽음이라는가난안에는복이감추어져있습니다. 그것은우리를모두같은하나님나라의형제자매로만들어주는복입니다. 그것은우리를영원에서영원까지안전하게운반해주는복입니다. 종교철학자인헬무트틸리케는 죽음이란인간이신이아닌존재임을명심하라는하느님의의지를표현한것 이라고정의했다. 이말은곧인간이자신의죽음 ( 가난함 ) 을인식할때, 더겸손해지고보다낮은곳에자리하는인간이될수있다는것을의미한다. 그리고이런마음의태도는곧세속적인이익에만골몰하는삶의방식이얼마나비천하고허망한것인가에대한깨달음을낳으며, 결국영원한것을추구하는영속적인삶의태도로이어진다. 이렇듯죽음의필연성과죽음의현실을의식할때, 비로소우리는어떤것이영원한삶의태도인지도이해할수있다. 맹목적이고일회적인삶, 이기적인삶을이타적인삶으로바꿀수있게되는것이다. 원래부터우리는가난한존재임을의식함으로써, 더이상가치없는세속일을좇지않고가치있는것만을찾으며, 모든거짓된것과일시적인것을떠나참된것, 영원한것을동경하게된다는것이다. 이것이바로죽음이우리에게주는희망의내용이다. 죽음이후에영원한삶이있다는것을과학적으로증명하기란확실히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죽으면모든게끝임을증명하는것도역시풀기어려운문제이다. 과학은기본적으로살아있는인간의안목으로구성해낸지식체계이고, 죽음은살아있는인간의접근을허용하지않으므로, 죽음을대상으로연구를한다는것자체가불가능하다. 따라서죽음의현상은과학적증명이아닌다른방식으로접근하는것이바람직하다. 사실죽음을연구하는전문가의입장에서보면, 죽음이끝이아니라는것은더이상논란의여지가없다. 하지만사람들에게는이문제가여전히초미의관심사이다. 죽음이후를모두가직접체험해볼수는없으므로어떠한논증이나설득도한계가있을수밖에없는것이다. 코끼리를직접만져본사람과만져보지못한사람이논쟁을벌이면만진적이없는사람이이긴다는우스갯소리도있듯이, 죽음이끝이냐아니냐하는논쟁도접점을찾기가쉽지않다. 그러나분명한것은, 죽음에대한생각이삶에도영향을미친다는점이다. 내강의를듣는어느대학생은리포트에다음과같은이야기를썼다. 중학생때친구가매일같이살기싫다, 죽고싶다고말하더니어느날정말위암으로죽었다. 죽음이든삶이든모두를부정적으로생각하면서살아가는사람은그런방식으로죽게마련이다. 반대로 - 6 -
죽음과죽음이후에관해서무엇인가의미를찾으면서사는사람은죽는순간에도밝은희망을안고서죽게된다. 그렇다면밝은모습으로희망을안고죽는것과어두운표정으로절망하면서죽는것중어떤것이보다인간적인것이겠는가. 죽음이희망인지절망인지, 끝인지아닌지확신을갖는것은쉬운일이아닐것이다. 다만삶을밝게사는것과어둡게사는것중어떤것이바람직한삶인지는누구나알수있으므로, 죽음이후의삶에대해서잘이해가되지않더라도가능한한희망을지닌죽음을준비하는것이현명한삶의지혜가아닐까. 여덟번째반응, 마음의여유와웃음 죽어가는사람들중극소수의사람들은생의얼마남지않은시간들을마음의여유와웃음으로맞이한다. 이런사람들은자신에대한자긍심과자부심이강하여, 죽음에임박해서도마음의평정과여유를지닌채적극적으로죽음에임한다. 이들은매사에긍정적인태도를지니고살기때문에역경에처했을때도정신적충격을덜받는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확실히엿보건대, 평생한두번에불과한어떤희열의순간보다는일상의작은만족감이나마음의여유가훨씬우리삶의질을향상시키는것같다. 그러나이들이삶을이렇게살수있는것은그만큼죽음을충실하게준비해왔기때문임을알아야한다. 죽는마지막순간까지태연함을유지할수있는지혜와배짱이있는사람이라면, 삶에서두려울게어디 있겠는가. 마음의여유, 평정심은죽음의질뿐만아니라삶의질마저도향상시킨다. 죽음앞에서조금도흔들리지않는평정심과마음의여유는쉽게얻을수있는게아니다. 어떻게해야마음에그런여유가생길수있을까. 다른무엇보다도삶과죽음의실상을꿰뚫어보는지혜의눈이필요하다. 동양철학에 허 ( 虛 ), 즉 마음을비운다 는용어가있다. 우리는삶에서이해득실을따지는데급급하다. 죽음에대해서도이러쿵저러쿵헤아려보지만, 제대로수판알을튕기지도못한다. 그런메마른지식, 얕은지혜로는죽음의신비를벗겨낼수없다. 평온한마음으로여유있게죽음을맞이하는것은뛰어난인물만할수있는일은결코아니다. 자기의삶속에서적절하게, 끊임없이노력하기만한다면누구나성취할수있는일이다. 아름다운인생풍경 을그리는박정희할머니 (83세 ) 는예순의나이에수채화가로화단에데뷔해인천화평동에 평안수채화의집 을운영하면서그림을가르쳤다. 할머니는아팠다가도그림만그리면싹낫는다며요즘도세상의모든아름다움을기록으로남기려는듯날마다그림을그린다. 하지만할머니가사람들과나누고싶은것은그림이아니라사랑인듯했다. 30 년넘게운영한화실에는 붕어빵만드는아주머니, 공장노동자, 평범한주부, 학생등적잖은사람들이이곳을거쳐갔다. 지위고 하, 재산유무에상관없이화실에서는모두평등한동호인이었다. 거기에선좋은옷도, 윤기있는얼굴도, - 7 -
세상의값비싼것도빛이나지않는다. 소박함, 진실됨, 따뜻함만이어울린다. 할머니는재능이많아다섯자녀를낳아기르면서도춤, 그림, 글, 요리, 바느질모두전문가뺨치게해내면서팔방미인으로살아왔다. 여든이넘은나이지만아직도활기는여전하다. 지금도그림을그리고글을쓸수있을정도로건강은 적당히괜찮다 고말한다. 남편유영호박사는인천에서이름이난양심적인내과의사였다. 돈버는일보다병을고치는데관심이많아가난한사람들에게돈도받지않고고쳐줄때도많았다. 할머니는그를가리켜 히포크라테스선서를가슴에낙인찍은사람 이라고말했다. 수채화가인맏딸유명애씨는할머니의그림선생이자같은길을가는동호인이다. 우리어머니는인생을연극하듯즐겁게사신분이다. 전혀포기가안되는분이다. 어떤고통이나어려움을당하더라도, 어려움을견딘다거나자신을들볶기는커녕모든상황을즐겼다. 결코고갈되지않는활력을지니고서삶을사신분이다. 할머니는사위가환갑을맞았을때, 30년전딸이사위를만나결혼에이르기까지적은기록을엮어선물하기도했다. 할머니가남긴기록은집안의가보였다. 자녀의이름을딴육아일기는딸들의혼수품 1호였다. 박정희할머니의육아일기 는지금까지도아이를키우는엄마들에게는교과서같은책이다. 죽음이얼마나준엄한순간인데, 그런순간에간호사부르고의사부르고해야하는가. 저이도병원가서호흡기꽂고그러지말라고말하더라. 할머니는담담하게말했다. 머지않아떠날남편에대한아쉬움도, 갈수록사그라져가는자신의육체에대한안타까움도마음에자리하지는않는듯했다. 아버지박두성선생도열이펄펄끓고맥박이 1분에 200번이나뛰는데도손님이찾아오면 아, 괜찮습니다 말하면서여유있게응대를했다. 할머니의아버지와어머니모두깨끗하고아름답게죽음을맞이함으로써자녀들에게고귀한가르침을주고떠났다. 병원문을닫고작년에몸져누운할아버지는약한치매가온데다가장례식을준비할정도로고비를맞기도했지만, 이젠위기를넘겨집에서몸조리를하고있다. 할머니에비해며칠내내잠만자고있는할아버지의건강은다시조금씩나빠지고있다. 남편에게도, 또한자신에게도죽음은머지않아찾아오겠지만, 정작할머니는태연하게말했다. 그림도더그리고싶고, 하고싶은일도많아서걱정이다. 인간의삶이란적당히시들어가는것이다. 남편과내가서로앞서거니뒤서거니죽어가는모습을기록으로잡아놔야겠다. 저양반이가는것도구경거리이고, 나의죽음도구경거리이다. 나는즐겁게살았다. 하느님이언제올지물으신다면, 만사오케이! 지금이최고입니다! 라고말하겠다. 할머니는어떤어려운상황속에서도절망한적이없고, 꿈을잃은적이없고, 기쁨을포기한적이없다. 죽음에임하는마음도마찬가지이다. 할머니의웃는얼굴은그에게가장어울리는표정이다. 할머니는죽 는마지막순간까지도여유있게웃지않을까. 삶을사랑하고즐겼던박정희할머니, 이제자기자신의 - 8 -
죽음뿐만아니라할아버지의죽음마저도즐길준비를하고있다. 할아버지의죽음을할머니가어떤식으 로기록할지기다려진다. 1. 달관 - 현자들의죽음 사는것을죽는것만큼이나소중히여기며일상의행복과의미를제대로음미하고살았던현자들의삶 속엔 죽음마저도여유있게맞이할수있는 삶과죽음에대한도저 ( 到底 ) 한관조와달관의인생철학이 담겨있다. 소크라테스, 장자, 스코트니어링에게서우리는이런모범을볼수있다. 소크라테스의여유, 나는죽음에대해아는게없다. 죽음을이해하는방식에는크게두가지가있다. 현세중심의인생관을통해죽음을무시하는것과내세를중심에두고현세의삶을경시하는것이그것이다. 그러나서양철학의아버지로불리는소크라테스는극단적인두가지해법을모두거부한다. 그는내세또는현세어느한쪽에도치우치지않는균형잡힌생사관을제시해현세의삶을절대시하지도않았고죽음을무시하지도않았다. 변명 을통해나타난그의죽음관은서양철학의창시자답게대단히철학적이다. 어떤종교를믿더라도, 막상죽음에직면하면사람들은대개두려움과공포에질린모습으로죽어간다. 그러나철학자소크라테스는살수있는기회가주어졌음에도당당하게죽음을맞이한다. 그때까지살아왔던철학적인삶을포기하고삶을구걸하는치욕을당하기보다자신의철학을지킴으로써죽음의길을택한것이다. 소크라테스에따르면철학적으로산다는것은재물이나권력, 명예등세속적가치가아닌진리나지혜, 영혼의문제에관심을기울이며사는것을말한다. 세속적인삶의방식은불완전한영혼의상태에서사는것이다. 잠자고있는영혼은자신의무지를자각하지못한다. 철학 이란잠자고있는영혼을깨워무지를자각하게하여, 스스로알고있다는착각에서벗어나게하는역할을한다. 죽음을두려워하는것은지혜롭지않음에도불구하고지혜로운듯이생각하는어리석음그자체이다. 자신이죽음에대해아무것도모르면서안다고착각하기때문이다. 죽음이인간에게올수있는축복가운데가장큰것인지아닌지우리는알지못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사람들은죽음이인간에게닥칠수있는최악인것처럼두려워한다. 이는알지못하면서아는것처럼생각하고있다는점에서가장비난받을만하다. 죽음은그가평생탐구해온정의, 덕, 선, 아름다움의주제와마찬가지로인간이남김없이알수있는 - 9 -
것이아니었다. 사람들은죽음에대해아무것도모르면서, 죽음을절망혹은두려움자체라고간주한다. 죽음이축복인지절망인지우리는충분히알지못한다. 죽음이무엇을의미하는지잘알지못하므로, 우리는죽음을두려워할필요가없다. 두려움을느껴절망한다는것은무지를자각하는철학적삶의포기를뜻한다. 그가죽음의공포를극복하고죽음에임해담담하게죽을수있었던것은, 죽음에대해자기가아무것도알지못한다는무지를자각하고있었기때문이다. 그가자주인용했던그리스델포이신전의경구 너자신을알라 는인간의앎이보잘것없음을, 우리가제대로아는것이없음을있는그대로인정하라는뜻이다. 지금죽어서온갖수고로움으로부터풀려나는것이최선임을명확히알고있다 라고말했던소크라테스는담담하게여행을떠났다. 삶의길이가시밭길이었기에죽음은그에게오히려쉽고도편한길이었다. 철학적삶을살다가그로인해죽음의길로접어든그에게죽음은절망이기는커녕고난의가시밭길로부터벗어나는기회였다. 사람들이삶에애착을갖고죽음을한사코피하려하는것은영혼이잠들어있기때문이다. 깨어있는영혼은삶에만집착하지도않고죽음을절망이라고단정하지도않는다. 죽음은두려운현상도, 절망그자체도, 아무것도없는끝도아니다. 소크라테스가생각한죽음은다만여유있게받아들여야할하나의사건에불과했다. 장자의여유, 죽음앞에서마음을비우다 장자 ( 莊子 ) 사상의핵심은 마음비우기 이다. 마음을비운그가통찰한삶과죽음의실상은과연어떠 할까. 장자 지락 ( 至樂 ) 편에흥미로운일화가실려있다. 어느날장자의아내가죽자혜시가문상을갔더니, 장자는두다리를뻗고술동이를두드리면서노래를부르고있었다. 혜시가힐난했다. 아내와함께살면서자식을같이키우다가늙어서마침내죽게되었으니곡을하지않는것이야그럴수도있겠지만, 술동이를두드리면서까지노래하는짓은좀심하지않은가? 이에장자는답했다. 아내가죽었을당시에야나라고슬퍼하는마음이없었겠는가. 하지만그시원을돌이켜보건대본래삶이란없었다. 단지삶만없었을뿐만아니라원래아무런형체도없었지. 지금또다시변화가일어나서아내는죽게되었으니, 이는춘하추동사계절의운행과마찬가지이네. 아내는지금천지라는커다란방에편안히누워있거늘, 내가구슬프게우는것은명 ( 命 ) 에통하지못한짓이란생각이들어곡을그친것일세. 장자가생각한삶과죽음은자연의변화과정에불과했다. 장자는인간의삶은본래없었지만, 기 ( 氣 ) 가변해서형체가생겨나고형체가변화해서삶이있게된것이며, 또다시이삶이변화를일으켜죽음에이르게되는것이라고보았다. 따라서그에게있어생사란다름아닌 기의변화 에불과한것이다. 기가모여삶이있게되지만흩어지면죽게되므로, 우리의삶에는반드시죽음이따르게되고죽음은삶의 - 10 -
시작이라는것이장자의생사관이었다. 장자는 대종사 ( 大宗師 ) 편에서인간의생사를춘하추동사계절이변화하는것과같이 4단계로나누어제시한바있다. 예컨대자연은나에게형체를실어주고 ( 봄 ), 삶을얻음에일을하게되고 ( 여름 ), 나이들어편안하게지내고 ( 가을 ), 마침내늙어죽음을맞게된다 ( 겨울 ). 이와같이인간의생사란계절의순환과조금도다름이없으므로, 가을이겨울로바뀌는것처럼죽음을자연스럽게당연한자연의변화로수용하면된다는것이장자의생사관의핵심이다. 또한우리의삶은삶만을의미하는것이아니고죽음역시죽음만을뜻하는것이결코아니다. 왜냐하면겨울로부터봄으로이어져서여름과가을을거쳐다시겨울이찾아오는것처럼, 죽음으로부터변화가일어나삶이있게되고삶이또다시변해서죽음으로돌아가기때문이다. 세상에태어난만물은이처럼죽음으로부터변화되어나온것이요, 또한죽음으로다시돌아가게된다. 사계절의순환이이어지듯, 인간의삶이죽음으로이어지고죽음이다시삶으로연결되는것은자연스런흐름이아닐수없다. 죽음이이렇게자연스런과정이라면, 죽음을희로애락의감정으로대하기보다는마음을비워자연에맡기는것이현명한일일것이다. 장자는자신의임종에직면해서제자들이후하게장례를지내려하자, 나는천지를관곽 ( 棺槨 ) 으로삼고일월을한쌍의옥으로삼고만물을예물로간주하기에내장례식에는이처럼갖추어졌거늘무엇을덧붙이려하느냐! 고일갈했다. 제자들이그렇게장례를지내면짐승들이시신을파먹을까걱정된다고말하자장자는 땅위에두면까마귀나소리개의먹이가되고땅속에묻히면땅강아지나개미의밥이된다 고답했다. 장자는이처럼인간의죽음을철두철미하게자연의변화로이해했기때문에인간과자연사이에추호의간격도인정하지않았다. 그래서자연으로부터물려받은육신이죽음을당할경우조금의주저함도없이자연에로되돌려주는것이당연한처사라고보았다. 이런생각을가졌기에장자는자신의장례를올릴때조차도산천초목과더불어자연의품에서안식을취하겠다고말한것이다. 그러나사람들은 제물론 ( 齊物論 ) 편의여희 ( 麗姬 ) 처럼삶을기뻐하는것이미혹인줄모르고, 죽음을싫어하는것이어려서고향을떠난채돌아갈길을잃어버린것과같은일인지를모른다. 사람들은생사를한사코둘로나누어삶을좋아하고죽음을꺼려하는식으로삶에만치우친감정에빠져자기자신을해친다. 그러나장자는죽음이란자연의어쩔수없는흐름에임해마음을철저하게비우자고말했다. 장자처럼자연의변화에편안히자신의존재를의탁하는것은운명론이나숙명론이결코아니다. 그것은오히려안명론 ( 安命論 ) 이자달명론 ( 達命論 ) 이라부를수있는것으로서, 자연의흐름으로부터벗어날수없음을철저하게깨달은자의태도이다. 마음을비우라. 그러면죽음과삶모두에서여유를얻게된다. -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