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계유산山寺 에서의하룻밤눈씻고, 귀씻고, 마음도씻는다 흔히절로부르는사찰 ( 寺刹 ) 은승려가불상을모시고불도 ( 佛道 ) 를닦으며교법 ( 敎法 ) 을펴는집이다. 도 ( 道 ) 를얻고자수행하는곳이라는의미에서도량 ( 道場 ) 이라고도하고, 승원 가람 ( 승가람마 ) 등수십가지의이름을갖고있다. 서기 4 세기우리땅에처음유입된불교는종교이상의의미를품고있다. 국교로융성했던역사이자전통예술의보고 ( 寶庫 ) 다. 토착신앙, 풍수와만나명산에자리잡은한국의사찰은당대의문화그자체이기도하다. 산중에서주변의지형에따라다양한모습으로자리잡은사찰들이 ' 산사 ( 山寺 ), 한국의산지승원 ' 이라는이름으로유네스코세계유산등재를앞두고있다. 해남대흥사, 양산통도사, 영주부석사, 보은법주사가그주인공들이다. 우리문화의보물단지인사찰이세계의유산으로인정받기를기원하는여행길에나섰다. 글한미희 사진전수영기자 20 201807 201807 21
해남대흥사 고졸한작은마을같은사찰 1 1 새벽예불이시작되는시간대웅보전으로가는침계루앞 3 해탈문에서바라본대흥사마당. 두륜산형세가누워있는부처님모양이다. 오른쪽두륜봉은부처님의머리형상이고, 구름에가린가련봉과고계봉은살짝주먹쥔한손에다른손검지를넣은지권인 ( 智拳印 ) 을꼭닮았다. 2 4 2 대웅보전 3 대웅보전의편액은원교이광사의글씨다. 4 대웅보전왼편백설당에걸린추사김정희의글씨 5 당우에낮은담장을둘러아늑한느낌이다. 땅끝마을, 전라남도해남으로향했다. 서울에서남쪽으로달리는길내내걷히지않는지독한미세먼지로시야는갑갑하고목이따끔거렸다. 대흥사로들어가는두륜산숲길이시작되자마자마법처럼숨이탁트였다. 울창한구림구곡 ( 九林九曲 ) 의숲길을지나며감탄사가절로나온다. 그저장관이다. 사찰의시작점을알리는일주문을지나사찰로들어가는관문인해탈문에서면탁트인대흥사앞마당이한눈에들어온다. 한참을숲길로들어온것을잊을만큼널찍한분지다. 초의선사가만들었다는굴곡있는연못무염지가보이고낮은돌담이당우 ( 堂宇 ) 를둘러싸고있어단정하고소박하게꾸며놓은작은마을같은느낌이다. 꽤나큰사찰인데도산이포근히둘러싸고있어아늑하다. 사찰을지키는사천왕문이없는이유도북쪽의월출산, 남쪽의달마산, 동쪽의천관산, 서쪽의선은산이대흥사를감싸고있는풍수명당이기때문이라한다. 일찍이이터의가치를알아본서산대사는 ' 삼재가미치지못할곳, 만년동안훼손되지않는땅 ' 이라고했다. 묘향산에서입적하며의발 ( 衣鉢, 가사와공양그릇 ) 은해남 대흥사에두라고한이유다. 가람배치 ( 사찰의건물배치 ) 도독특하다. 해탈문을들어서면정면에있어야할대웅전이보이지않는다. 김광수문화유산해설사는손가락으로멀리두륜산봉우리들을가리키며오른쪽에서왼쪽으로이었다. 부처님의머리, 가슴앞에서모은손, 부처님의발이그려진다. 누워있는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이다. 불자들은해탈문앞에서이비로자나와불상을향해참배한다. 왼쪽으로몸을돌려대웅보전으로가는길에서있는느티나무연리근 ( 連理根 ) 은관광객들에게가장인기있는장소다. 가까이자라는나무가만나합쳐지는것을 ' 연리 ' 라고하는데, 가지가만나면연리지, 줄기가만나면연리목, 뿌리가만나면연리근이라한다. 오랜세월함께햇볕과바람을맞으며두몸이하나가된다하여 ' 사랑나무 ' 라일컬으며부부와연인의사랑을기원한다. 당현종과양귀비의사랑을소재로한백거이의시 ' 장한가 ' 에서도 " 땅에서만난다면연리지가되기를원하네 ( 在地願爲連理枝 )" 라는구절에등장한다. 5 22 201807 201807 23
1 1 천불전전경 2 경주의옥석으로조각한천불. 6 년에걸쳐완성한천불을세척의배에싣고해남으로가던중울산진에서한척이풍랑을만나표류하다일본에닿았다. 배를발견한일본인들은옥불을봉안할절을짓기로논의했는데이들의꿈에이불상이나타나 ' 조선해남대둔사 ( 대흥사의옛이름 ) 로가는중 ' 이라고하자어쩔수없이돌려보내며불상에일 ( 日 ) 자를새겨보냈다는설화가전해내려온다. 2 3 5 조선명필의글씨들금당천을건너면대웅보전 ( 大雄寶殿 ) 이다. 대웅보전이사찰의한가운데가아닌북쪽에물러서있는것도, 사찰규모와비교하면대웅보전마당이작은것도여느사찰과는다른점이다. 대웅보전이있는북원에서놓치지말아야할것은조선후기쌍벽을이루는두명필, 원교이광사 (1705 1777) 와추사김정희 (1786 1856) 의글씨다. ' 대웅보전 ' 이이광사의글씨, 왼편요사채인백설당에걸린 ' 무량수각 '( 无量壽閣 ) 이추사의글씨다. 두명필의글씨가나란히걸리게된일화도유명하다. 완도군신지도에유배온이광사는대흥사의대웅보전과침계루, 천불전의편액을썼다. 이광사의 ' 원교체 ' 는 18세기조선의고유서체인 ' 동국진체 ' 를완성한것으로평가받는다. 하지만추사는원교체를무시하고깎아내렸다. 제주도에유배가는길에친구인초의선사가있는대흥사에들른추사는이광사의글씨를보고는 ' 저것도글씨냐, 당장떼어버려라 ' 하고는자신의글씨를대신걸게했다. 8년의유배생활을마치고서울로가는길에다시대흥사에들른추사는과거자신의교만을인정하며원교의편액을다시걸라했다한다. 호남의명필창암이삼만 (1770 1845) 은대흥사한가운데남원의출입문인가허루 ( 駕虛褸 ) 의현판글씨를썼다. 평생을초야에묻혀글씨만쓴창암은유배길에오른추사앞에자신의글씨를내놓는다. 16살이나어린추사는 ' 시골에서밥은먹겠다 ' 며창암을모욕했다. 창암은분노하는제자들을달래며 ' 글씨를아는지는몰라도묵향은모르는사람 ' 이라했다 한다. 유배생활동안깨달은추 4 사는창암을찾아사과하려했으나, 창암이세상을떠난뒤였다. 추사는애통해하며창암의묘비문을남겼다. 6 3 뿌리가이어진느티나무연리근 4 표충사편액. 정조의글씨다. 5 초의선사의순. 대흥사 13 대종사중한사람으로, 다도를중흥시켜다성 ( 茶聖 ) 으로불린다. 6 범종치는스님. 산사의새벽을깨운다. 사찰안의유교사당 ' 표충사 ' 사찰남쪽별원에는서산대사와그의제자인사명대사, 처영대사를기리는유교사당인표충사 ( 表忠祠 ) 가있다. 편액은정조의친필이다. 임진왜란당시 73세의나이로전국승군 5천명을통솔하는팔도도총섭이된서산대사는평양성을탈환하는데큰공을세우고, 왕이환도한뒤묘향산으로돌아가임진왜란이끝나고 6년뒤입적했다. 서산대사의유촉에따라선조가하사한금란가사 ( 법의 ) 와발우 ( 공양그릇 ), 염주를비롯해법라 ( 소라껍데기로만든군악기 ), 호패등의유물이박물관에보관돼있다. 창건시점도정확히알려지지않은대흥사는서산대사의유촉으로주목받은이후 13명의대종사와 13명의대강사를배출한큰절이됐다. 일주문에새긴 ' 선림교해만화도량 '( 禪林敎海滿華道場 참선과가르침이활짝핀도량 ) 이그뜻이다. 일주문을지나자마자보이는부도전에는스님의사리를봉안한탑인부도와비문을새긴탑비 80여기가즐비하다. 이중서산대사의부도는보물로지정돼있다. 정조의왕명으로봉행된서산대제를재현하고있는대흥사는다시찾아온한반도평화분위기를타고올가을묘향산제향을추진하고있다. 24 201807 201807 25
2 1 1 마애여래좌상의천인상. 둔중한체구의본존불과달리날렵하다. 2 북미륵암의마애여래좌상 산사의가장고요한시간사찰을한바퀴둘러보고남원가장위쪽에깔끔하게지어진템플스테이숙소심검당에짐을풀었다. 이른저녁공양을마치고나면산사이로붉은노을이찾아오고땅거미가지는동안잠들기전의새우는소리와종치는소리, 목탁두드리는소리, 나무사이로바람이오가는소리가귀를씻는다. 아무것도하지않아도마음이꽉차는시간이다. 모두가잠이든이른새벽, 산사의적막을깨우는것은목탁소리다. 목탁을치는스님이산사를돌며대중과산천초목을깨우고, 이어종소리가들리면예불이시작된다. 아침공양을마치고두륜산을올랐다. 어느때보다깨끗한산의새벽공기는놓치기아깝다. 산은높지않지만가파른돌산이라초심자라면마음의준비를하는것이좋다. 열심히오르면 40 분, 여유있게오르면 1시간이면북미륵암에도착한다. 샘물로목을축이고가쁜숨을고른뒤용화전으로들어갔다. 암벽에조각된후덕한마애여래좌상 ( 국보제308호 ) 을마주하면이른아침부터땀을흘린수고가보상된다. 불자가아니더라도느껴지는감흥이있다. 0.6km만더가면대흥사가처음시작된곳이라는만일암터에하늘에서쫓겨난천동과천녀가불상을조각하는동안해를매달아놓았다는설화를간직한천년수가있다. 수령 1천년이넘은이느티나무는올해초역사속에 ' 전라도 ' 라는이름이등장한지 1천년이된해를기념하는 ' 천년나무 ' 로지정됐다. 천년나무를보러가는대신부처님손바닥모양같은자연암반위에세워진동삼층석탑을지나널따란바위위에앉았다. 산이바다를이루는광경이내려다보인다. 김경숙템플스테이팀장이안내한명상명당이다. 눈앞에서안개가흐르며바로옆바위를가렸다드러낸다. 새소리를배경음악삼아언제까지고앉아있고싶은곳이다. 3 3 초의선사가머문일지암. 정자는가운데방한칸을두고사면에툇마루를뒀다. 오른쪽에연못에돌을쌓아세운누마루의기둥이보인다. 4 문재인대통령이사법고시를준비한동국선원 7 번선방 4 초의선사와추사김정희이끼낀바위를타고내려와길가에잘익은산딸기를따먹으며일지암으로향했다. 서산대사와함께대흥사를상징하는초의선사가지은암자다. 이곳에서초의선사는차와선은하나라는다선일미 ( 茶禪一味 ) 사상을담은 ' 동다송 '( 東茶頌 ) 을펴냈고, 다산정약용, 추사김정희와차를통해교류했다. 추사는초의에게빨리차를보내달라고조르는편지를자주보냈고, 차에보답하는 ' 명선 '( 茗禪 ) 을써서남겼다. 연못에돌을쌓고기둥을세운누마루나, 가운데방한칸을두고사면에툇마루를두른정자의운치가그만이다. 초의선사가열반에든뒤폐허가됐다가복원한것이다. 초의선사의다도정신을기리는초의문화제가매년열린다. 등산로를다내려오면표충사뒤편호젓한곳에스님들이참선하는선원으로사용되는대광명전구역이다. 대광명전은초의선사가유배중이던추사의방면과축수를위해지은전각이다. 동국선원의편액은추사의글씨다. 이조용한선원을찾는관람객이많아진이유는따로있다. 문재인대통령이사법고시를준비하던곳이기때문이다. 선원은일반인이출입할수없는곳이지만, 문대통령당선이후문의가쇄도하면서안거기간을제외하고개방중이다. 문대통령이묵었던요사채 7번방앞에는아예안내문이붙었다. 문대통령은대흥사에서공부하던시절차를배운이후차를즐긴다고밝힌바있다. 전통방식으로소량생산되는대흥사차는청와대에선물로보내지기도했다. 26 201807 201807 27
양산통도사 부처님진신사리모신불보 ( 佛寶 ) 사찰 28 201807 201807 29
피안교인삼성반월교 일주문 경남양산의통도사로향하는길. 절이름이붙은고속도로나들목 (IC) 을빠져나가면서부터통도사의규모와사세 ( 寺勢 ) 가짐작이간다. 불가의세가지보물중으뜸이라는진신사리를 戒壇 ), ' 적멸보궁 '( 寂滅寶宮 ) 편액이걸려있다. ' 적멸 ' 은수행자의궁극의목표를이르는열반 ( 涅槃 ) 을뜻하는말로, 진신사리를모신전각을적멸보궁이라한다. 1 1 서운암에서관람객을맞이하는공작 2 대웅전과금강계단 3 창건설화를간직한구룡지 4 경내를지나는스님 봉안한사찰에, 수행과교육기관을모두갖춘총림이니능히 금강계단은이사찰에서가장신성한곳으로, 야외임에도신발 그럴만하다고수긍이간다. 일주문기둥좌우의 ' 불지종가 ( 佛 을벗고참배해야한다. 경주지진이후에는사리탑보존을위해 之宗家 ) 국지대찰 ( 國之大刹 )' 이란글귀에서다시한번그위세 참배를규제하고있다. 음력초하루 초삼일, 음력보름, 음력 를확인한다. 18 일 ( 지장재일 ), 음력 24 일 ( 관음재일 ) 등한달에엿새만개방한 다. 개방시간도오전 11 시 오후 2 시로길지않으니참배하려 독을품은용쫓아내고세운금강계단 면여행계획을잘짜야한다. 통도사는부처의진신사리를모신불보 ( 佛寶 ) 사찰로, 팔만대 신라시대경주의황룡사가왕실귀족불교의중심이었다면, 산중 장경을봉안한법보 ( 法寶 ) 사찰해인사, 보조국사이래 16 명의 에자리잡은통도사는수행불교의중심이었다. 현재는국내 8 국사를배출한승보 ( 僧寶 ) 사찰송광사와함께한국의삼보사 대총림 ( 叢林 ) 중한곳이다. 총림은승려와속인들이배우기위 찰 ( 三寶寺刹 ) 로꼽힌다. 해모인것을우거진수풀에비유한말인데, 현재는승려가참선 통도사는신라선덕여왕 15 년 (646 년 ) 에당나라에서유학하던 과수행을하는선원 ( 禪院 ), 경전교육기관인강원 ( 講院 ), 계율 자장율사가석가모니가입었던가사와진신사리를가지고돌아 전문교육기관인율원 ( 律院 ) 등을갖춘종합수행도량을말한다. 와창건한것으로전해진다. 원래통도사터는아홉마리의독 통도사에서는현재진행중인올해하안거에 300 여명의승려가 을품은용이사는큰연못이었는데자장이법력으로이용들과싸워여덟마리를떠나보내고터를지키겠다고맹세한한마리 참여하고있다. 2 3 를위해메우지않고남겨놓은곳이현재의구룡지라는설화가 전해내려온다. 네댓평의작은연못이지만아무리가뭄이들어 도물이마르지않는다고한다. 통도사가람배치의중심은단연부처의사리를봉안한금강계 단 ( 金剛戒壇 ) 이다. 대웅전과함께국보제 290 호로지정돼있다. 계단은본래승려가계를받는곳으로, 금강계단가운데종모양 의부도 ( 사리탑 ) 를세우고진신사리를봉안하고있다. 부처의 사리가있기에바로붙은대웅전에는불상이없다. 대웅전안에 서는금강계단을향해뚫린창으로참배한다. 대웅전사면에는 각각 ' 대웅전 '( 大雄殿 ), ' 대방광전 '( 大方廣殿 ), ' 금강계단 '( 金剛 4 30 201807 201807 31
2 1 마음의소리듣는 ' 템플스테이 ' 때이른폭염이찾아온 6월의어느날, 경남지역의원어민교사 30 명이통도사를찾았다. 단출한개량한복으로제공된수련복으로갈아입고땡볕을가려줄밀짚모자를쓰고사찰을둘러봤다. 학인 ( 학생 ) 스님의영어안내에귀기울이며고개를끄덕였다. 잠시휴식을취한뒤암자들이있는산중턱을향했다. 잘닦인포장길을따라올라막공사를끝낸국제템플스테이관에도착했다. 2층체험관에서는탁트인전망이내려다보이고시원한바람이불어와땀을씻었다. 왼쪽으로는초록빛이짙어진차밭이보인다. 이곳에서원어민교사들을위해특별히마련된다도 ( 茶道 ) 체험프로그램을함께했다. 불가에서는차를마시는것을수행의하나로본다. 차와선이한맛이라는다선일미 ( 茶禪一味 ) 사상이다. 원어민교사들이자리잡고앉자통도사의다례교육기관인선다회의다인 ( 茶人 ) 들이이들앞에노란연둣빛의차와떡이곱게담긴작 1, 2 통도사템플스테이를찾은경남지역원어민교사들 3, 4 다도체험 3 4 32 201807 201807 33
1 2 3 1 직접만든꽃등을들고금강계단으로향한다. 2 금강계단의사리탑을도는참가자들 3 금강계단에서의명상 은쟁반을놓았다. 일부는다인의시범이시작되기도전에냉큼잔을비우고떡을맛보기도했다. 하지만이내차를다려내는팽주와팽주를도와손님에게차를내는시자의다례시범을조용히지켜봤다. 이후에는배운대로왼손으로잔을받치고오른손으로잔을감싸들어올리고색과향을먼저음미한뒤세번에나누어마셨다. 바닥에앉아저린다리를꼼지락거리며인내했던시간이지나자팽주의자리에앉아기념사진을찍고감사의인사를전하는떠들썩한시간도잠시허락됐다. 저녁공양을마치고모여앉은이들은탑돌이에들고갈꽃등을만들기시작했다. 종이컵에빨강, 노랑, 주황연꽃잎을붙인뒤초록색잎으로마무리했다. 학인스님은 ' 사리탑이아무리 영험하다한들, 모든기도가이뤄지는것은아니다. 소원을이루는것은결국자신의노력이다 ' 라는진지한이야기를쉬운영어로재미있게전했다. 외국인청년들은웃음으로답했다. 어둠이내린조용한산사에서컵등을들고줄지어이동한곳은가장신성한곳, 금강계단이다. 각자만든꽃등안에는진짜촛불대신건전지가들어간작은조명을켰다. 국보인이곳에서진짜초를켰다가떨어뜨리는바람에가슴을쓸어내린일이있었다고한다. 신을벗고숨죽인채스님의인도에따라사리탑을돌았다. 한낮의열기를품은따뜻한바닥에앉아눈을감았다. 각자마음의소리를듣는시간이다. 34 201807 201807 35
보은법주사 속리산의 보물창고 36 201807 201807 37
제대찰의위용이상실된공간이었다. 하지만여전히국보 3점과보물 13점에지방유형문화재까지두루간직한보물창고다. 금강문과사천왕문을지나대웅보전까지곧게이어진길에는국보두점이나란히자리한다. 팔상전 ( 국보제55호 ) 은현존하는유일한목탑이자, 탑중에서가장높은건축물이다. 내부벽에부처의일생을여덟장면으로그린팔상도가있다. 창건당시처음지어졌고혜공왕 12년 (776년) 에진표율사가중창했으나정유재란당시불타고조선인조 2년 (1624년) 에복원한것을 1968 년해체수리했다. 팔상전과대웅보전사이의쌍사자석등 ( 국보 5호 ) 은신라성덕왕 (720년) 때조성된것으로추정하고있다. 두마리의사자가가슴을맞대고마주서서뒷발로복련석 ( 연꽃을뒤집어놓은모양 ) 을딛고앞발로앙련석 ( 연꽃이하늘을향해피어있는모양 ) 을받치고있다. 통일신라석등은주로 8각기둥을사용하는데두마리의사자가이를대신한것은매우획기적인시도라는평이다. 같은시기에제작된대웅보전바로앞의사천왕석등 ( 보물제15호 ) 은석등의정형인 8각기둥형태다. 불을밝히는화사석의 8면중 4면은창을내고 4면에불법을수호하는사천왕상을새겼다. 이층으로된대웅보전 ( 보물제915호 ) 은무량사극락전, 화엄사각황전과함께국내 3대불전으로꼽힌다. 팔상전과함께인조 2년에다시지으면서소조삼불좌상 ( 보물제1360호 ) 을조성했다. 앉은키가 5m가넘는법신 ( 法身 ) 비로자나불을가운데두고왼쪽이보신 ( 報身 ) 인노사나불 ( 아 세조에게예를표한정이품소나무를지나법주사로향한다. 사찰을찾는사람들을부처님보다먼저품어주는건숲길이다. 모든사찰의숲길이반갑고, 법주사로향하는오리숲길도그렇다. 나이많은소나무와느티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돌배나무가만든터널을느릿느릿걸으면서즐기지못하고차를타고지나가는것이못내아쉽다. 속리산이품은법주사는부처님의법 ( 法 ) 이머무는 ( 住 ) 절이라는뜻이다. 의신조사가천축 ( 인도 ) 에서흰나귀에불경을싣고돌아와머물렀다하여붙은이름이다. 법주사경내에서가장먼저눈을사로잡는것은단연높이 33m의금동 미륵대불. 법주사를상징하는화려한불상이지만, 1990년대청동불로세운것을 2002년순금으로덧씌웠다. 녹과오염물질을벗겨내고다시금박을입히는개금작업도세차례나있었다. 애초신라시대세워졌던금동불상은구한말경복궁축조자금조성을위해해체됐고, 해방이후에는시멘트로만든불상이같은자리에있었다. 쓸쓸한마음은어쩐지텅빈듯한절마당을보면서다시찾아왔다. 법주사는신라진흥왕 14년 (553년) 의신조사가창건한이후고려와조선왕실의후원을받으며번성해 60여동의건물과 70여개의암자를거느렸던대찰이었다. 그러나임진왜란과정유재란으로두차례나전소하다시피했고, 이후 30여동의건물만이다시지어졌다. 텅빈듯한마당은실 석련지, 금동미륵대불, 대웅보전, 팔상전, 당간지주등법주사의상징이한눈에보인다. 38 201807 201807 39
미타불 ), 오른쪽이화신 ( 化身 ) 인석가모니불이다. 6m 높이의바위에돋을새김으로조각된마애여래의좌상 ( 보물제216 호 ) 은연꽃위에걸터앉아연꽃잎위에발을올려놓은보기드문모습이다. 불상의오른쪽에는의신조사가불경을실어오는모습, 진표율사앞에우는소등창건설화와관련된것으로보이는암각화가남아있다. 돌로만든연못인석련지 ( 국보제64호 ) 와신도 3만명이먹을장국을끓이고임진왜란당시승병이이용했다는직경 2.87m의철솥 ( 보물제 1413호 ), 향로를머리에이고있는희견보살상 ( 보물 1417호 ) 등눈닿는곳마다보물이다. 훼손흔적까지고스란히남은문화재 ' 문화재창고 ' 인이곳에서마음이오래머문곳은따로있다. 성낙원문화관광해설사가안내한마당한쪽구석에는기단석등원형이훼손된유물들이줄지어있었다. 사찰과주변여기저기흩어져있던것들을모아놓은것이라고했다. 일본강점기수많은유물이도난당했고, 미처가져가지못한것들은훼손해놓았다고성해설사는설명했다. 쌍사자석등은사자꼬리가잘려나갔고시커멓게그을리거나대충땜질이된흔적이남았고, 희견보살상의얼굴부분은심각하게파손돼있으며, 1 1 현존하는유일한목탑인팔상전 2 희견보살상 3 사천왕석등 4 쌍사자석등 5 석련지 6 마애여래의좌상 7 템플스테이의밤 7 2 3 4 5 6 우아한석련지상부난간석도일부만남았다. 사찰의상징이지만이제는쉽게찾아볼수없는철당간도남아있는데, 깃대역할을하는당간을받치는지주만고려시대의것이다. 당간은찰 ( 刹 ) 이라고도하는데, 절을사찰이라하는이유가바로이당간, 찰이있어서다. 고려시대에는높이가 16m에달했으나국가재정을마련한다는대원군의명으로사찰의금속물을수거하며파괴됐다. 순종때 22m 높이로복원했고 1972년보수했다. 마애여래의좌상인근의바위에새겨진글씨나현재이당간아래에남아있는글씨는모두당대의돈있는사람, 권력있는사람의이름으로, 귀한문화재와자연을훼손한것이라고성해설사는목소리를높였다. 보리수아닌찰피나무두그루조금은쓸쓸한사찰의마당을멋스럽게채워주는것은대웅보전앞보리수두그루다. 사실이보리수는부처가보리수아래서깨달음을얻었다는그보리수가아니다. 유네스코세계유산등재를추진하며전문가들이조사한결과찰피나무로밝혀졌다. 인도의보리수는뽕나무과무화나무속의활엽수로열대지방에서만자라므로국내에들여올수없었다. 중국과한국에서는보리수와구분이어려울정도로똑닮은피나무아과피나무속의보리자나무나찰피나무, 염주나무로불리는모감주나무등을심고보리수라부르고그열매로염주를만들었다한다. 천왕문앞에서있는 27m 높이의전나무두그루도든든하다. 40 201807 201807 41
INFORMATION 템플스테이 (Temple stay) 세계유산산사의템플스테이 대흥사차의성지인만큼차문화체험을빼놓을수없다. 직접딴여린찻잎을덖어녹차를만드는체험을하려면 4 5월을놓치지말아야한다. 운이좋으면일지암누마루나정자에서차를마시는기회를잡을수도있다. 대학원에서요가를공부하는김경숙템플스테이팀장이이끄는요가명상도인기다. 몸이뻣뻣하다고걱정할필요는없다. 무리한동작을요구하지않기때문이다. 산행을다녀온뒤나오랜이동시간의피로는물론, 평소불편했던몸의구석구석을부드럽게풀어주면눈이맑아지는느낌이다. 황토로지은템플스테이숙소는방마다깔끔한욕실겸화장실, 에어컨을갖추고있어쾌적하다. 템플스테이는 2002 년한일월드컵당시외국인관광객에게한국의전통문화를알리기위해시작한사찰체험프로그램이다. 일시적으로급증한숙박수요를해결하기위한목적도있었다. 이제는외국인은물론 불자가아닌내국인들까지연령과직업을가리지않고다양한문화체험과자연속의휴식을즐기는문화콘텐츠로자리잡았다. 지금까지참가인원은약 200 만명. 전국 120 개사찰에서운영하는템플스테이는조계종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템플스테이공식홈페이지 (www.templestay.com) 에서예약할수있다. 서울조계사앞에있는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홍보관에서도정보를얻을수있다. 체험형은각사찰이제공하는프로그램에따라도량 암자돌아보기, 스님과의차담, 요가명상, 108 배, 연등 염주만들기, 문화유적탐방, 산행이나산책등에참여할수있다. 단체의요청에따라프로그램이마련되기도한다. 휴식형은공양시간만지키면대부분자유롭게휴식할수있다. ' 아생여당 '( 我生如堂 ) 이라는템플스테이브랜드에맞춰사찰의환경과역량에따라특화된프로그램을제 공하기도한다. 위로를주제로한아아 ( 我我 ) 는보은법주사를비롯해김제금산사와영동반야사, 하동쌍계사에서운영한다. 건강을주제로한생생 ( 生生 ) 은동해삼화사, 양평용문사, 구례천은사에서참여할수있다. 비움을주제로한여여 ( 如如 ) 는해남미황사와예산수덕사에서, 꿈을주제로한당당 ( 堂堂 ) 은해남대흥사, 양양낙산사, 인제백담사, 용인법륜사등에서운영한다. 템플스테이참가비용은 1 박에 5 만 7 만원선. 수련복과이불을제공한다. 세면도구는따로준비해야한다. 사찰이주로산에있고주변암자들을둘러보는경우가많으므로운동화나등산화를준비해야한다. 산속에서는기온이많이떨어지니수련복에겹쳐입을옷을가져가는것이좋다. 통도사통도사템플스테이의하이라이트는부처님의진신사리를모신금강계단에서의명상과탑돌이다. 경주지진이후사리탑보존을위해참배날짜와시간을제한하고있기때문에해가진뒤직접만든꽃등을들고사리탑을돌며기도하고명상하는것은체험형템플스테이참가자만누릴수있는특권이다. 참가단체의요청에따라다도체험, 천연염색체험등특별프로그램이마련되기도한다. 절입구부터장관을이루는소나무숲길산책은필수코스다. 템플스테이숙소가현재는설법전지하에있는것이아쉽지만, 최근암자들이있는산중턱에국제템플스테이관을완공해하반기부터이곳으로옮겨진행할예정이다. 기본사찰예절 법주사속리산에서내려와합쳐지는물길사이에오붓하게자리한템플스테이숙소가아늑하다. 밤새나무를때방을데워더욱포근하다. 법주사템플스테이에서는세조길산책은빼놓을수없다. 법주사에서시작해물길을따라세심정까지이어지는 2.62km의평탄한산책길로, 속리산둘레길탐방객의절반이상이몰리는인기코스다. 아침공양뒤이른아침산책을추천하는이유다. 세조가스승인신미대사가있는복천암으로순행왔던역사적사실에서이름을따왔다. 세조가지병인피부병을고쳤다는목욕소가있다. 수원지에는멸종위기 1급인수달과남생이, 삵, 담비가산다. 초여름의숲도좋지만단풍철의화려한아름다움은물론이고비그친후의운치가그만이라고한다. 사진 / 대흥사제공 스님을만나면두손을모으고허리를숙이는합장인사를한다. 법당을출입할때는정문이아닌양옆의문으로출입한다. 발뒤꿈치를들고소리나지않게걸어야한다. 새벽예불이나 108배같은수행프로그램은의무적으로참석해야하는것은아니다. 종교적인이유로절을하기부담스럽다면조용히앉아있어도된다. 산사의새벽을고스란히느낄수있는새벽예불이나건강에좋은 108배는종교와상관없이체험해볼만한것으로권하고있다. 사찰은수행공간이므로흡연, 음주, 고성방가는당연히금지된다. 너무화려하거나노출이심하지않은단정한차림으로예의를지켜야한다. 42 201807 201807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