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김건수 * 목차 Ⅰ. 머리말 Ⅱ. 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유적 1. 내륙권 2. 해안권 Ⅲ. 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편년 1. 즐문토기로본유적의편년 2. 시기별입지변화 Ⅳ.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1. 자연유물로본신석기시대생업 2. 해수면변동과하구역패총 Ⅴ. 맺음말 요약섬진강유역에는 12개소의신석기시대유적이분포하고있는데이를입지역에따라나누면내륙권에 9개소, 해안권에는 3개소가분포하고있다. 신석기시대전기에는목도패총과사평패총이속하는데강의하구역에입지한다. 중기로볼수있는유적은죽산리유적뿐인데섬진강의지류인동복천의충적평지에입지한다. 후기에들면섬진강최상류인진안좌포리유적에서하구역인목도패총에이르기까지폭넓게위치한다. 말기에는중류역인남원대곡리유적, 순천대곡리도롱유적이있고, 하구역에광양돈탁패총이입지한다. 섬진강수계의신석기시대유적은전기에서부터말기까지남해안지방의신석기시대토기와동일한양상을보이나전기의생업에있어서는차이가보인다. 남해안지방에서는전기에현재보다해수면이높았고, 해안에서외양성어업이성행하였으나섬진강유역에서는조간대부근에서내만성어업과수렵 채집을하였다. 중기에는보성강유역에서한정되어유적이분포하므로수렵 채집을하였을것이다. 후기에들면내륙에서는수렵 채집에그물을이용한내수면어업을행하였고, 해안가에서는수렵 채집에내만성어업을실시하였다. 또운정리유적에서는능형문을시문한금강식토기가보여금강유역과의교류를볼수있다. 말기에는조간대부근에서내만성어업과수렵 채집을하였다. 주제어 섬진강, 신석기시대, 생업, 해수면 * 목포대학교고고학과, 전자우편 ksg7969@mokpo.ac.kr
32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Ⅰ. 머리말 섬진강은전라북도진안군과장수군의경계인팔공산에서발원하여진안군백운면, 마령면에충적지를만들고, 임실군운암면에서갈담저수지로흘러든다. 곡성읍북쪽에서남원시를지나흐르는요천과합류한후남동으로흐르다압록에서보성강과합류한다. 이후지리산남부의협곡을지나전라남도광양과경상남도하동의도계를이루며광양만으로흘러남해에들어간다. 총길이는 212.3km, 유역면적은 4896.5km2이다. 섬진강수계에는잉어, 갈겨니를비롯한다양한담수어종과은어, 뱀장어와같은회유어가서식하고있다. 패류는다슬기, 재첩류, 갓굴 ( 벗굴 ) 등이서식하고있다. 최근에는온난화에따른해수면의상승으로참굴의서식역이확대되고있다. 현재까지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유적은그림1에보이는것처럼 12개소가확인되고있다. 대부분은지표조사조사중에즐문토기편이확인되는정도이고원촌유적, 목도패총, 돈탁패총이발굴조사되었다. 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유적의존재는 1983년이영문에의해서광양의돈탁패총이알려지면서부터이다 ( 이영문 1983). 이는호남고고학에서존재가불투명하였던신석기시대를세상에알린중요한조사였다. 이후장명수는섬진강하류의목도패총과돈탁패총의지표조사에서수습된유물을중심으로섬진강하류역의패총문화를서술하고있다 ( 장명수 1989). 당시의연구로는드물게섬진강유역의자연환경, 유적들의편년등을서술하고있으며, 무엇보다도중요한것은섬진강하구역에서신석기시대유적의실체를확인한것이다. 이후주암댐수몰지구발굴조사에서보성죽산리 ( 이영문 1988), 대곡리도롱 한실 ( 서성훈 성낙준 1989) 에서즐문토기가확인되어신석기시대유적의존재가섬진강중류로확대되어갔다. 이후곡성유정리에서도즐문토기편이출토되었으나유구는확인되지않았다 ( 윤덕향 1997). 한편경상남도하동군의목도패총의발굴조사가 1996년진주박물관에의해실시되어비로소그실체가파악되게되었다 ( 국립진주박물관 1999). 목도패총에서는전기와후기의즐문토기가확인되고있으며어로구는출토되지않았다. 최상류의순창원촌유적에서는 6기의수혈유구와 4기의적석노지가, 진안좌포리등에서도확인되었다. 한편섬진강내륙의신석기시대는송은숙이호남내륙지방의신석기시대를정리하는가운데일부연구되었는데결과가흥미롭다 ( 송은숙 1998). 연구당시에호남내륙에는남해안지방의신석기시대문화가점차내륙으로들어오고생업또한수렵 채집 농경이일어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33 났다고보고있다. 필자는섬진강전유역에걸쳐시기 지역별차이를살펴보고섬진강수계전반의신석기문화를명확히하는데목적이있다. 이를위해서지표조사와발굴조사의성과를종합하여입지로서유적의분포, 출토된토기로서시기적인차이를검토한다. 또한세부적으로이들의생업은어떠했는지검토해간다. Ⅱ. 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유적 섬진강유역에는그림 1 에보이는것처럼 12 개소의신석기시대유적이분포하고있는데 이를바다의영향을받았는지여부를기준으로내륙권과해안권으로구별하였다. 내륙권에 는 9 개소 1), 해안권에는 3 개소가분포하고있다. < 그림 1> 섬진강유역신석기시대유적분포도 1) 조선대학교박물관의임실하가유적발굴조사에서도이중구연토기편이확인되고있음을알려둔다.
34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1. 내륙권 1) 진안좌포리유적 (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2004) 진안좌포리유적은전북진안군성수면좌포리봉좌마을에위치하고있으며, 섬진강상류에해당하며, 현재는마치모래섬처럼동서로흐르는강물이남쪽과북쪽으로나뉘어만들어진하상충적지를이루고있다. 이곳에서는청동기시대문화층이확인되었으며, 교란층에서는빗살무늬토기편이일부수습되었다. 토기편은침선문계의사선문, 사격자문, 세침선사격자문, 조우문이시문되어있다 ( 그림2). 발굴당시조사지역에서신석기시대문화층은확인되지않았으나유적의주변환경과입지를고려해볼때발굴조사지역외주변지역에서신석기시대의유적이존재할가능성은높다고판단된다. 신석기시대후기로보인다. < 그림 2> 진안좌포리유적 2) 임실운정리유적 ( 국립전주박물관 1999) 임실운정리유적은섬진강댐의수몰지구인전북임실군운암면운정리장자골남동쪽에자리하고있다. 이일대는 장자골 에서남쪽으로길게뻗어내려오는능선과지금은섬이된 점등 이하나의능선으로길게이어져말안장처럼가운데부분이움푹들어간지형으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의유구가골고루분포되어있다. 운정리장자골유적에서는신석기시대의토기편과석부가채집되었다. 기형을알수있는토기는심발형과호형이있고, 구연아래에자돌문, 압인문등이시문되어있다. 문양은집선문, 격자문, 단사선문, 점열문등이있다 ( 그림3). 석부는비교적대형으로한점은거의전면을타격하여만들었다.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35 3) 남원대곡리유적 ( 김승옥 이민석 2003) 남원대곡리유적은섬진강의상류역에위치하며, 이곳에서는신석기시대의유물산포지, 삼국시대의자연수로와주거지, 고려시대의건물지등이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유물이집중출토된유물산포지에서는이중구연을중심으로하는빗살무늬토기편 22점, 마제석착을비롯한석기류등이출토되었다. 토기에는자돌과압인에의한단사선문, 장사선문, 사격자문등이시문되어있다 ( 그림4). < 그림 3> 임실운정리유적 < 그림 4> 남원대곡리유적
36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4) 순창원촌유적 ( 한수영 이영덕 신원재 2005) 순창원촌유적은전북순창군적성면고원리섬진강중류역인곡류천변의넓은충적대지에형성되어있다. 원촌유적에서는신석기시대에속하는 6기의수혈유구와 4기의적석노지, 구등이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유구이외에청동기시대주거지와고려시대수혈등이확인되었다. 원촌유적에서출토된대부분의신석기시대유물은퇴적층과수혈유구내부에서출토되었으며, 수혈유구에서출토된유물은토기편과함께 20g 내외의소형석제어망추를비롯한갈돌, 굴지구등이있다. 토기기형은발형이고, 문양은압인, 자돌, 압날에의한사격자문, 점열문, 퇴화된능형집선문, 장사선문, 조우문, 지자문등의빗살무늬토기편과이중구연토기편이 1점출토되었다 ( 그림5). 토기의문양대는구순아래에일정간격의공백을남기고동체부상단에만시문하였으며, 단일문양으로만기면을장식하였다. < 그림 5> 순창원촌유적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37 5) 곡성유정리유평유적 ( 윤덕향 1997) 유평유적은섬진강중류역인전라남도곡성군석곡면유정리유평마을에위치하며, 이곳에서는고인돌과집자리로추정되는유구등이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유물은집자리, 폐기장, 지표채집에서다수의빗살무늬토기편과어망추가출토되었다. 출토된토기의구연부편은구연에서약간의공백을남기고, 압인과침선에의해평행집선문, 능형집선문, 평행단선문, 사격자문, 조우문등의비교적다양한형태가시문되어있다 ( 그림6). 한편력석추는납작한자갈돌을이용하여양측면에타격을가해홈을낸것으로, 크기는 5cm 이하의소형들이출토되었다. < 그림 6> 곡성유평유적 6) 순천대치리유적 ( 임영진 1991) 대치리유적은섬진강의지류인황전천유역으로전남순천시 ( 옛승주군 ) 황전면대치리
38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의계곡평지에있다. 이곳에서는고인돌과석곽이확인되었으며고인돌조사시석곽주변 과지표채집에서빗살무늬토기편이수습되었다. 수습된토기편은사격자문과장사선문이 시문된동체부 2 점이다 ( 그림 7). 7) 순천오봉리유적 ( 윤덕향 1987) 오봉리유적은섬진강중류역으로순천시송광면오봉리신월마을에위치하며, 고인돌군중에서 다 군고인돌은오봉리신월마을에서북쪽으로 1.5km정도지점에있다. 신석기시대유물은이 다 군고인돌조사중출토되었다. 빗살무늬토기편이 3점확인되었는데, 1점은무문이고, 1점은단사선문이시문되어있으며 1점은압날문이조문의형태로시문되어있다 ( 그림8). < 그림 7> 순천대치리유적 < 그림 8> 순천오봉리유적 8) 순천대곡리도롱 한실유적 ( 전남대학교박물관 1989, 이명희외 1990). 이유적은주암댐수몰지구내인전남순천시송광면대곡리의두곳에위치하는데보성강을사이에두고도롱지구와한실지구로구분된다. 대곡리도롱유적에서는 87년트렌치에서이중구연토기 1점이수습되었다. 이중구연토기에는단사선문이시문되어있다 ( 그림9). 고인돌과집터유적인대곡리한실유적에서도유물산포지의트렌치와지표채집에서빗살무늬토기편이 4점수습되었다. 토기편의문양은구연아래공백을두고사격자문, 장사선문이시문되어있다 ( 그림9). 9) 보성죽산리하죽유적 ( 이영문, 1988) 보성죽산리유적은동복천이보성강과합쳐지는충적대지에서발견된유물산포지로, 보성군문덕면죽산리하죽마을에있다. 이곳에서는빗살무늬토기, 무문토기, 철기시대토기등다량의토기류와석기류가수습되었고주변에지석묘수십기가분포하고있다.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39 빗살무늬토기편은주거지로추정되는곳으로동복천변의모래채취를위해삭토된지점에서수습되었다. 토기편의시문은구연에서약간의공백을남기고그아래로부터문양이시문되어있으며, 침선 압인 자돌문계의시문법으로문양은장사선문, 삼각집선문, 능형집선문, 평행점열문, 뇌문등이있다. 이중에서능형집선문은시작과종결점에둥근홈을깊게남긴태선침선문토기시문의전형적인기법을보이고있다 ( 그림10). 한편어망추는자갈돌의양끝에타격을가해홈을낸것으로, 크기는 5cm 안팎의소형이다. < 그림 9> 순천대곡리도롱ㆍ한실유적 ( 한실유적 1~4, 도롱유적 5) < 그림 10> 보성죽산리유적
40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2. 해안권 10) 하동목도패총 ( 국립진주박물관 1999) 목도패총은섬진강하구역으로경남하동군하동읍목도리의구릉경사면말단부에위치한다. 패총은해안으로부터 10km 떨어진섬진강의우안에형성된충적지에위치한다. 패총은참굴을주체로하여형성되어있으며, 패총의층위는크게경작층을제외하면 4개층으로구분된다. Ⅱ층에서는구연부가외반하고, 구연부에서약간의공백을보이는봉계리식토기가출토되어후기에속하고, Ⅲ~Ⅴ층은자돌, 압인, 조압등의시문방법을보이는영선동식토기가출토되어전기로속한다. 또최하층에서는융기문토기가출토되었다. 토기는기형이발형, 호형, 완형이있으며, 석기는인부마연석부와굴지구가대부분이다 ( 그림11). 11) 광양오사리돈탁패총 ( 김건수외 2012) 유적은전남광양시진월면오사리돈탁마을뒤편의구릉과마을의민가가위치한대지일대로섬진강변에형성된작은계곡사면에위치한다. 패총이형성된곳의해발고도는 5~15m 내외이며, 조사된지역은총 3개층으로이루어져있다. Ⅲ층은갓굴위주의순수패각으로이루어진층으로꼬막과피뿔고둥, 백합이소량포함되어있고, Ⅱ층에서는토기편과석기, 골각기등이출토되었다. 토기는거의대부분이무문토기이며, 토기의기형은거의대부분이발형또는심발형의토기로추정된다. 이외에고배형토기와옹형, 호형이극소량출토되었다. 이중고배형토기는총 4점이확인되었는데, 사천구평리에서출토된유물과유사한것으로보여진다. 토기의문양은거치문 + 단사선문을제외하고는거의대부분이단독문양으로퇴화단사선문, 사격자문, 단사집선문, 격자문, 사선문, 점열문, 조형문, 삼각집선문, 태선침선문계등이확인된다. 그리고이중구연토기의경우는사격자문, 단사선문등이시문되어있다. 석기는굴지구, 갈돌, 갈판, 지석, 삼각형석도등이출토되었고, 골각기는시문구와삿바늘, 작살이출토되었다 ( 그림12). 돈탁패총은지표조사를통해그동안신석기시대후기에해당하는유적으로알려져있었으나봉계리식토기, 남해안신석기시대의대표적유물인이중구연토기와퇴화단사선문이시문된토기가다량으로출토된것으로미루어보아신석기시대후기 ~ 말기에이르는시기에형성된유적으로추정된다. 또한태선침선문계의토기편이 1점확인되었는데조사지역이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41 극히일부분에서만이루어졌다는것을감안하면앞으로중기까지연대가소급되어질가능 성도있다. < 그림 11> 하동목도패총
42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 그림 12> 광양돈탁패총 12) 광양사평패총 2) 유적은전남광양시진월면오사리사평마을에서돈탁마을로가는산사면에조성된매실나무과수원에위치한다. 유적의정면으로는섬진강을바라보고있으며뒤편의구릉과마을의민가가위치한대지일대로섬진강변에형성된작은계곡사면에위치한다. 패총은참 2) 이유적은마한문화재연구원의조근우선생의가르침에의해확인한유적이다.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43 굴을주체로하여형성되어있으며해발고도는 5~10m 내외이다. 유적은발굴조사가이루어지지않아정확한것은알수없지만지표채집에의해서많은토기편과석기가수습되었다. 토기는융기문토기를포함하여무문양토기가주를차지하며, 토기내면에는패각조흔문이시문되어있다. 석기는인부마연석부와굴지구가확인된다 ( 그림13). < 그림 13> 광양사평패총
44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Ⅲ. 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편년 1. 즐문토기로본유적의편년 섬진강유역에서확인된신석기시대유적은 12개소이고, 이곳에서출토되는즐문토기를통하여각유적의편년을고찰한다. 이곳에서확인된즐문토기는남해안지방과동일한양상을보이므로편년은하인수의남부지방즐문토기편년을따른다 ( 하인수 2006). 목도패총 Ⅲ~Ⅴ층과사평패총에서는그림13-4 5에서와같이일부융기문토기가확인되며, 대부분은무문양토기가주를이루며일부는외면에압날, 자돌, 조압등에의한시문이되어있고, 내면에는패각조흔문이시문되어전형적인영선동식토기로신석기시대전기에속한다고볼수있다. 석기는인부마연석부와굴지구가확인되었다. 보성죽산리하죽유적에서는구연에서부터태선문이시문되는수가리식과구연부가외반되면서간격을두고동체부에문양이시문되는봉계리식의특징을보이는것이있다. 즉정확한발굴조사가이루어지지않아이것들이중 후기동시에사용된것인지아니면중기혹은후기어느시기에때를달리해서사용되었는지판단할수는없지만중기 ~ 후기의어느단계에들어갈것으로보인다. 진안좌포리유적, 순창원촌유적, 곡성유정리유평유적봉계리식-후기, 순천대치리유적, 오봉리유적, 대곡리한실유적-봉계리식, 하동목도패총에서는구연부가외반하면서동체부일부까지공백이남는봉계리식이중심을보인다. 기형은발형과호형이확인되며, 문양은압인, 자돌, 압날에의한격자문, 조우문, 점열문, 지자문, 능형조대문등다양한양상을보이고있다. 한편임실운정리유적에서는봉계리식이주를이루고있으나그림에서 3-6에서처럼구연약간아래에서연속압날로능형문을시문한금강식토기가보인다. 이것은신종환의분류에의하면편구형의동체를갖고있고, 문양은구연선단바로아래부터시문된다는점에서는금강식 Ⅰ Ⅱ형식에가까우나세부적으로보면구연부가직립하지않고내경하는점에서는약간의차이가보인다 ( 신종환 1995, 4쪽 ). 남해안지방말기의표식적토기인이중구연토기는남원대곡리유적, 순천대곡리도롱, 광양오사리돈탁패총에서확인되고있다. 이들유적에서는이중구연토기와더불어구연부에자돌문이시문되는토기도있으며, 돈탁패총에서는고배형토기가확인된다. 이것을시기별로도식화하면그림2와같은양상을보인다. 섬진강수계의신석기시대유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45 적은전기에서부터말기까지남해안지방의신석기문화와동일한양상을보인다. 후기에속하는임실운정리유적에서는봉계리식토기가주를이루고있지만그림 3-6과같은금강식토기가출토되어주변지역과교류가있었던것을알수있다. 가까이에서금강식토기가출토되는유적은진안용평리유적, 갈머리유적에서확인되고있다. < 표 1> 섬진강유역신석기시대편년표 시기유적명도면 전기 하동목도패총 광양사평패총 중기 (?) 보성죽산리하죽유적 진안좌포리 임실운정리 순창원촌 후기 곡성유정리 순천대치리 순천오봉리 순천대곡리한실 하동목도패총
46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시기유적명도면 남원대곡리유적 말기 순천대곡리도롱 광양돈탁패총 2. 시기별입지변화 각유적에서출토된유물을통하여유적의시기를검토할수있었다. 이를바탕으로섬진강유역에서신석기시대유적의시기별입지역은그림14에보이는것처럼시기별로차이가보인다. 신석기시대전기에는목도패총과사평패총이속하는데강의하구역에입지한다. 이시기남해안지방의다른유적에서는결합식낚시와작살을이용하여참돔, 다랑어등의어류와돌고래등의어로가성행하는데목도패총에서는대구만이확인되고있어, 여러가지를요인을생각할수있을것이다. 즉참돔은여름에우리나라연근해를회유하는어류인데전혀보이지않고대구만이검출되고있으므로겨울일가능성이있다. 또겨울철에안정적인식료자원인참굴을구해목도패총인들의계절적인이주를했을가능성도있다. 중기로볼수있는유적은죽산리유적뿐인데섬진강의지류인동복천의충적평지에입지한다. 중기유적이호남지방에서확인되지않는것과궤를같이하여섬진강유역에서도 1 개소만이확인되고있어왜중기유적은남해안서부지방에서는거의확인되지않는지다시한번생각해볼필요가있다. 후기에들면섬진강최상류인진안좌포리유적에서하구역인목도패총에이르기까지폭넓게위치한다. 말기에는중류역인남원대곡리유적, 순천대곡리도롱유적에서하구역에서광양돈탁패총이입지한다. 후기에서말기의사람들은내륙에서의수렵 채집과해안에서의어로활동을활발히행하였음을보여준다. 호남내륙지역에서는신석기시대유적들이본류보다는지류의충적지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47 에많이입지한다는사실을송은숙은일찍이지적하였고, 강하구는외해보다는안정적인생계자원의획득이불리한조건이므로내륙으로갔다고보고있다 ( 송은숙 1998, 14쪽 ). 또생업이어업에서야생종을길들이는단계의초기농업으로변화하였다고본다. 이에대하여필자는후기부분에있어서는공감하지만전기에하구역의입지는낚시와작살을가지고어로활동을하지않고도안정된식생활이있기에입지한것이아닐지의문스럽다. < 그림 14> 섬진강유역의시기별입지분포도 Ⅳ.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1. 자연유물로본신석기시대생업 섬진강유역의신석기시대생업을파악하기위하여대상으로서자연유물을검토하고, 인공유물과결합시켜당시의생업을살펴본다. 현재까지발굴조사된유적은목도패총, 원촌유적, 돈탁패총 3곳에불과하여전부를볼수없을것이나그시발점은될수잇을것이다. 목도패총의자연유물은극히일부분만보고되어있는데그내용을보면어류는대구척추약간, 조류는오리류약간, 그리고수류는소형내지는중소형의개, 멧돼지 2점, 사슴류가대부분이다. 그리고물소와돌고래류가파악되고있다 ( 金子浩昌외 2000). 정작패총을형성한패류가무엇인지보고되어있지않아정확한것은알수없지만필자가답사하였을때패총을형성한주된패류는참굴이였다. 생업과관련지어서생각할수있는도구는인부
48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마연석부와굴지구이다. 돈탁패총은종별로는참굴이 31.7%, 갓굴 19.4%, 백합이 16.1% 로참굴과갓굴, 백합은조간대아래에서서식하는내만성패류인데, 특히갓굴은조간대염분이적은수로의진흙바닥등에서서식한다. 이로보아돈탁패총의패류채취활동범위는유적근처인섬진강하구에서채취한것으로판단된다. 특히흥미로운것은섬진강유역에가장흔한패류는재첩인데무슨까닭인지돈탁패총에서는확인되지않는점이다. 돈탁패총에서참굴, 갓굴, 백합이주를이루는것을보면육량이많은패류에관심이집중되었음을알수있다. 즉효율적인경제성을취한것같다. 어류는감성돔의전상악골과치골, 대구科의척추가확인되었다. 돈탁패총에서출토된포유류는개, 사슴, 멧돼지가확인된다. 한편어로와관련된도구는작살이 1점이확인되었다. 이작살은회전식으로단면은거의원형을이루며선단부를삼각형태로뾰족하게처리하였다. 이러한형태의작살은이른시기의욕지도패총에서도확인된다. 생업과관련된석기는갈돌 3점과갈판 1점, 석도편 1점, 굴지구 3점이있다. 원촌유적에서는자연유물은확인되지않았고도구인굴지구와력석추가확인되었다. 력석추를들어모두어망추로해석하여주변의하천에서어망어업을생각할수도있지만필자는쉽게동의할수없다. 왜냐하면 2호와 4호수혈에서는각각 4점이출토되었는데 4점으로어망으로구성할수있는지가문제이다. 또 4호수혈에서 17점이출토되었는데만약주거지에서출토된것이였다면이도반대했을것이다. 그러나수혈유구였기에어망추의가능성을열어둔다. 주거지내부에서어망추가출토되기어려운것은오늘날의그물을상정해보면쉽다. 즉그물을한번사용하면악취가굉장히심한데신석기시대사람들은이냄새를감내하고주거지내부에두었을까라는의문점에서부터이다. 섬진강유역의생업을단계별로보면전기에는조간대부근에서내만성어업과수렵 채집을하였으며, 중기에는보성강유역에서한정되어유적이분포하므로수렵 채집을하였을것이다. 후기에들면내륙에서는수렵 채집에그물을이용한내수면어업을행하였고, 해안가에서는수렵 채집에내만성어업을실시하였다. 말기에는조간대부근에서내만성어업과수렵 채집을하였다.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49 2. 해수면변동과하구역패총 필자는한국의어로문화를살펴보는가운데해수면변동을언급한적이있다 ( 김건수 1998). 우리나라의신석기시대해수면변동은국내에서는조화룡 (1980) 이동해남부지방을검토하여 10000~6000B.P. 까지는충적층의입도조성이규조화석이많이산출되고, 6000B. P. 이후에는니탄층의초본화분의조성변화로추정하여해수준미변동의복원시도하고있다. 그결과는 B.C.4000~3000년경에는고해수준, B.C.2000년경은저하, B.C.1000년경에는해수면의상승, B.C.300년경에는해수면저하, A.D.200년경약간의해수면상승과그후현해수면에서정체하는것이다. 특히 B.C.4000~3000년경의고해수준은일본에서繩文海進으로불리어지는시기이다. 해안선변화의연구와함께화분분석의검토를통해한반도동남해안지방의식생에관해다음과같은결과를서술하고있다 ( 조화룡 1987). Ⅰ: Quercus stage(10000~6000년 B.P.) 온난화 Ⅱ:Pinus - Quercus stage(6000년 B.P.~ 현재 ) Ⅱa: Lower pinus substage(6000년 B.P.~ 약 4000-3000 B.P.) 냉량화 Ⅱb: Pinus - Quercus substage( 약 4000-3000 B.P.~2000 B.P.) 온난화 Ⅱc: Upper pinus substage(2000 B.P.~ 현재 ) 냉량화이연구를통해보면신석기시대전기에는참나무과의나무가번성한온난화단계였음을알수있고, 중기와후기의어느정도까지는소나무과나무가번성하는냉량화, 그리고말기에는다시참나무과의나무가번성하는온난화단계였음을알수있다. 한편우리나라와인접하고있는일본구주지방의해수면변화에관한연구는遠賀川유역을중심으로이루어지는데, 연구결과를보면후쿠오카지역의승문해진에수반되는고해수면의시기는약 6000년전부터 4000년전까지로추정된다 ( 下山正一 1988). 패총출토패각의정량분석에의해해수면변동을살펴본연구는新廷貝塚의패각조성에도보인다 ( 木村幾太郞 1980). Ⅰ문화층에서는재첩류중심이고, Ⅱ문화층은재첩류보다는참굴의양이많다. 그후해퇴현상에의해서재첩류가중심이되는 Ⅲ문화층이다. 여기서 Ⅱ문화층은승문시대전기말경이다. 이런연구들을참고하면서섬진강하구역의해수면변동을유추해볼수있다. 현재섬진강하구역에는발굴조사된목도패총, 돈탁패총이있고, 최근에지표조사로알려진사평패총이있다. 영선동식토기가출토되는목도패총과사평패총의주체를점하고있는패류는참
50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굴, 피뿔고둥, 꼬막등이중심을이룬다. 이들참굴, 피뿔고둥, 꼬막등의패류는완전히해수에서식하는패류로현재의유적주변의하구역에서는볼수없는종이다. 이들유적주변에서확인할수있는패류는재첩류와갓굴이있다. 즉목도패총과사평패총이형성되었던전기에는당시의해수면이지금보다높아양패총주변에는참굴이서식하고있었고, 이를포획하여식용으로이용하였던결과참굴중심의패총이형성되게된것이다. 이와같은신석기시대전기의해수면변동은섬진강유역에서만확인되는것이아니고, 내륙인창녕비봉리패총에서도확인할수있다. 비봉리패총에서확인되는자연유물은패류는재첩과참굴이주를이루고말조개, 다슬기등이확인된다. 어류는해수어인가숭어, 숭어, 농어, 감성돔등이있고, 담수어는잉어가확인되고있다 ( 金子浩昌 2008). 말기의돈탁패총에서는참굴, 갓굴 ( 벚굴 ), 백합이주를이루고있어오늘날의패류서식역과비슷한양상을보이고있다. 따라서말기의해수면은지금의해수면과큰차이가없는것으로보인다. Ⅴ. 맺음말 위에서살펴본것들을종합하면서우리가앞으로풀어야할과제들을서술하는것으로이글을맺고자한다. 섬진강유역에서확인되는신석기시대토기는남해안계통의것이주를이루고있어신석기시대사람들은해수면이지금보다높았던전기에는하구역부근에서어로활동을하였던결과목도패총과사평패총을남겼고, 이후시기가지나면서점차강의상류쪽으로전진하면서확산하였음을알수있다. 후기에들면운정리유적에서금강식토기가보이는데이는남해안신석기인과금강유역의신석기인들사이에접촉이일어났음을알수있다. 한편중기에해당하는유적은죽산리유적뿐으로왜섬진강유역에는경남서부내륙지역에보이는중기유적이소수입지하는가는장래우리가해결하려야할과제이다. 생업은전기와후기 말기에패총이형성되는것으로보아어로활동을추측할수있는데패류이외의어골은극히소량확인되어적극적인어로활동으로는보기어렵다. 특히남해안전역에서는전기에참돔, 다랑어등의어류와강치, 돌고래등의해서포유류포획이적극적으로이루어지는데이곳에서만이러한어로활동이소극적이였는지는장래우리가풀어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51 야할과제이다. 후기이후로는섬진강유역전역에유적이위치하는데이들의생업활동은수렵 채집이외에무엇이있었을까? 원시농경이이루어졌다면어떤작물이재배되었는지우리가생각해보아야할과제는산적해있다고보아야할것이다. _ 투고일 : 2012 년 7 월 26 일 _ 심사완료일 : 2012 년 8 월 31 일 _ 게재확정일 : 2012 년 9 월 12 일
52 湖南考古學報 42 輯 (2012) 참고문헌 국립진주박물관, 1999, 牧島貝塚. 국립전주박물관, 1999, 부안해안일대유적지표조사보고. 김건수 김영훈 이지영 백명선, 2012, 광양오사리돈탁패총, 목포대학교박물관. 김승옥 이민석, 2003, 남원대곡리유적, 전북대학교박물관. 金子浩昌 徐姈南 金良美, 2000, 牧島貝塚出土脊椎動物遺體 考古學誌 11, 한국고고미술연구소. 金子浩昌, 2008, 昌寧飛鳳里遺蹟出土動物遺體 飛鳳里, 국립김해박물관. 송은숙, 1998, 호남내륙지역신석기문화에대한고찰 호남고고학보 7, 호남고고학회. 신종환, 1995, 新石器時代錦江式土器에對한小考 영남고고학보 17, 영남고고학회. 원광대학교마한 백제문화연구소, 2004, 鎭安佐逋里遺蹟. 윤덕향, 1997, 곡성유정리유평유적 호남고속도로확장구간( 고서-순천 ) 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 전남대학교박물관. 윤덕향, 1987, 오봉리 다 군지석묘 주암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Ⅰ, 전남대학교박물관. 이영문, 1983, 광양군선사유적보고 광양군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 전남지역개발협의회. 이영문, 1988, 보성죽산리유적의성격 박물관기요 4, 단국대학교중앙박물관. 임영진, 1991, 승주대치리지석묘군, 전남대학교박물관. 이명희 성낙준 손명조, 1990, 대곡리한실주거지 주암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 Ⅶ, 전남대학교박물관. 장명수, 1989, 섬진강하류의패총문화 고문화 34,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전남대학교박물관, 1989, 대곡리도롱 한실주거지 주암댐수몰지구발굴조사보고서 VI. 조화룡, 1980, 韓國東海岸における完新世の海水準變動 地理學評論, 53-5, 東京. 조화룡, 1987, 한국의충적평야, 교학사. 하인수, 2006, 南部地域櫛文土器硏究, 민족문화. 한수영 이영덕 신원재, 2005, 순창원촌 관평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 木村幾太郞, 1980, 新廷貝塚, 鞍手町. 下山正一, 1988, 楠橋貝塚, 北九州市.
김건수 섬진강유역의신석기문화 53 abstract Sumjin River valley of Neolithic culture Kim, Geon-su (Mokpo National University) 12 Neolithic sites are distributed near Sumijin River valley, and they can be grouped by location 9 are in inland, and 3 are on the shore. In early period of Neolith, Mokodo shell mound and Sapyeong shell mound are involved and they are located in the mouth of the river. The only site that can be involved in middle period is Juksanri site, and they located in Dongbok stream which is a tributary of Sumjin River. When latted period comes, sites are located wide from Jinan Jwapori site which is upper stream of Sumjin River through Mokdo shell mound which is estuary. In the last years, Namwon daigokri site which is at midstream, Dontag shell mound which is in a river mouth, and Suncheon daigokri site which is between of them are located. The sites of Neolithic located in Sumjin River have identical aspect with pottery of South Sea in Neolithic from early period through the last years, but there is a gap when it comes to livelihood of early period. At South Sea, the surface of sea water was higher than now and open sea fisheries prevailed on the shore in early period. However, near Sumjin River, people did back bay fisheries, hunted and gathered nuts, bulbs, etc. near intertidal zone. In middle period, the sites are distributed limited near Boseong River. Therefore, people may hunted and gathered nuts, bulbs, etc. When latter period comes, people in inland did inland fisheries by net, hunted, and gathered nuts, bulbs, etc. Also, people near sea shore did back bay fisheries,hunted and gathered nuts, bulbs, etc. Moreover, we can see Kumkang type pottery that was made up pattern of a lozenge in Unjeongri site, so we can know there was trading between Kum River and them. In the last years, people did back bay fisheries, hunted and gathered nuts, bulbs, etc. near intertidal zone. keywords Sumjin River, Neolithic, livelihood, surface of sea 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