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1) 강문근 1709~1804년사이에이루어진알렉산더훔볼트의적도부근남미탐사나, 체게바라의모터사이클다이어리등은지리학도에게로망이다. 하지만, 로망은로망이고현실은현실이다. 제목처럼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을한것은아니고, 도시를위주로가보지않은곳을다녔는데, 여행을마치고나서지나고보니남회귀선을기준으로거의위도 10도안쪽에방문도시들이속해있다. 고도차는약 5천미터. 여행은남반구의여름인 12~2월사이에이루어졌는데, 높은고도때문에리우데자네이루를제외하곤더위를크게느끼지못하였다. 여행기간은 45일이었고, 신혼여행이었다. 여러곳을방문했지만 20개의지명만을뽑아간략한 남미횡단경로 1) 전체여행기 http://welovetravel.net/a/2008/dp-honeymoon/hmoon-main.htm 웹진트랜스라틴 http://translatin.snu.ac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 (SNUILAS)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77 지역소개하고주로느낌위주로글을작성한다. 수많은한국사람들이라틴아메리카를다녀왔지만아직물리적으로나심리적으로여전히먼곳이다. 조금더다녀온사람이많아지고파편적인정보라도계속사람들에게노출되면좀더우리가라틴아메리카를더잘이해할수있으리라생각한다. 미리다녀온사람으로서뒤에가는사람들에게로망을선사하기위해짧은글을작성한다. 1) 산티아고 (Santiago) - 남위 33 도 30 분 /650 미터 에어캐나다를타고서울 밴쿠버 토론토 산티아고까지갈아타는시간을포함하여 30시간반이걸렸다. 정말먼곳이다. 아는사람이있어부탁한물건을잔뜩가져갔는데, 음식물들은바코드가있는봉투에넣어모두밀봉을하였다. 빼앗기지않고모두세관을통과했다. 공산물과농산물의차이는어디까지인지궁금하다. 비자면제협정을맺은국가의국민들은쉽게입국을하지만, 그렇지않는나라의국민들에대해서는꽤큰금액을내고입국비자를공항에서받게한다. 호혜평등이란말이실감난다. 2) 안토파가스타 (Antofagasta) - 남위 23 도 40 분 /0 미터 칠레에서아타가마사막을가기위해일단태평양의항구도시인안토파가스타까지가장좋은버스표를구입했다. 1,371km를태평양을따라북쪽으로가며, 18시간 30분이걸린다. 차비는우리돈으로약 84,000원정도이다. 우리나라백두산에서한라산까
78 지의거리보다더먼거리다. 칠레는 76만평방킬로미터에약 1,600만명의사람이살아, 인구밀도가평당킬로미터당 22명이다. 사람이없으니까당연히휴게소가존재할수가없다. 그래서인지버스에서마치비행기의기내식처럼식사가제공된다. 안토파가스타는원래볼리바이의항구였다. 칠레는지하자원이풍부한아타카마사막에대해보다많은영토를요구하였고, 1866년칠레와볼리비아는남위 24도와평행한선을국경으로정하는협정에서명하였다. 더불어남위 23도와 25도사이의땅에서나온초석을나누는것에동의하였다. 하지만볼리비아가수익에대한협정을철회하려고하자태평양전쟁 (1879~1883) 이발발하였다. 전쟁중칠레는볼리비아의해안과안토파가스타 (Antofagasta), 메히요네스 (Mejillones), 토코피야 (Tocopilla) 항구를점령했다. 또한페루가볼리비아를지지하며전쟁에참전했을때칠레는페루의태평양연안과아리카 (Arica) 와이키케 (Iquique) 를비롯한몇몇항구도점령했다. 결과적으로칠레와페루의국경선은아리카의바로북쪽으로변경되었고, 볼리비아는내륙국이되었다. 3) 칼라마 (Calama) - 남위 22 도 30 분 /2260 미터 안토파가스타에서북동쪽내륙으로버스를 3시간타고가면 (212km) 세계적인노천광인추키카마타구리광산이있는칼라마에도착하게된다. 태평양바다에서단숨에해발고도가 2,260미터로높아진다. 추키카마타구리광산은영화 < 모터사이클다이어리 > 에나왔던곳으로, 1952년체게바라는이곳을잠깐둘러봤다. 1915년부터채굴을시작하였으며, 애초에는미국회사가경영하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79 였으나 1970년대칠레로소유권이넘어왔다. 최근에광부구출사건이벌어진산호세광산은안토파카스타와산티아고사이에위치한코피아포부근에있는광산이다. 4) 산페드로데아타카마 (San Pedro de Atacama) - 남위 22 도 55분 /2430미터 산페드로는아타카마사막한복판에있는오아시스도시로, 현재는관광도시로유명하다. 달의표면을연상시키는황량한지형으로유명한곳이며, 모험여행을좋아하는사람들이볼리비아의우유니를향해출발하는전 산페드로데아타카마 초기지역할을하는곳이기도하다. 안토파가스타에서 4시간 40 분만에해발고도를 2,430미터올렸더니고소증이와서엄청고생했다. 5천미터를넘어야하는우유니로바로가는길은포기했다. 올라갔다가내려오는것은괜찮은데, 올라가서머문다면견딜수가없다. 스페인정복자들은고소증을겪지않았을까? 1550 년대그들은벌써이곳까지진출해서교회를지었다. 5) 안데스하마고개 (Paso de Jama) - 남위 23 도 14 분 /4255 미터 산페드로에서아르헨티나로가는길은하마 (Jama, 160km) 와
80 시코 (Sico, 203km) 두군데국경포인트가있다. 그리고산페드로에서하마를경유하여아르헨티나의살타까지일주일에 3번국제버스도있다. 승합차로세계일주중인후배를만나하마를통해안데스를넘었다. 칠레이민국은산페드로에있다. 거기서 2시간반을가면국경이고그곳에아르헨티나이민국과세관이있다. 아르헨티나이민국은해발고도 4,320미터에위치하고있다. 오토바이를타고국경을넘는아르헨티나사람들이꽤많다. 모터사이클다이어리는계속되고있었다. 국경을통과한지두시간만에호텔하나와식당이있는곳으로주유소를만났다. 하지만마을은보이지않았다. 아직 3,675미터이다. 여기서부터서서히주변경관이반건조의스텝지역으로변하기시작했다. 6) 틸카라 (Tilcara) - 남위 23 도 34 분 /2478 미터 틸카라는아르헨티나북서쪽에있는후후이 (Jujuy) 주에있는작은도시이다. 잉카유적지가있으며, 넓은계곡사이를흐르는리오그란데강의단구층에자리잡고있다. 많은아르헨티나젊은이들이안데스동쪽사면에위치한코르도바, 투구만, 살타를따라북상한후, 물가가저렴한볼리비아를거쳐페루의마추픽추까지배낭여행을하면서틸카라를비롯한작은도시들을거친다. 틸카라의버스터미널엔북행이나남행차가도착하면배낭을짊어진젊은이들로우르르내리고, 또우르르차에오른다. 여행객을대상으로하는식당들도많다. 아르헨티나에입국했으니까스테이크를먹어야지! 역시스테이크의두께가장난이아니다. 그래서인지안쪽은거의육회수준이다. 틸카라에서이틀자면서고도적응을한후다음목적지를해발 2900미터의우마와카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81 (Humahuaca) 로정했다. 하지만정오무렵에도착했는데도, 많은여행객때문에숙소잡기가쉽지않아바로국경도시라키아카 (La Quiaca) 로향한다. 여긴해발고도가 3,422미터이다. 어쩌다보니하루에 1천미터나고도가높아졌다. 7) 비야손 (Villazoń) - 남위 22 도 05 분 /3456 미터 볼리비아의도시비야손과라키아카는작은개울을사이에두고서로마주보고있다. 오후늦게라키아카에도착했다. 물가가비싼아르헨티나에서잘필요가없을것같아, 볼리비아국경을넘었다. 아! 물가는저렴한데, 시설은확실히열악하다. 식당에갔더니대부분의사람들이통닭을먹는다. 스테이크와통닭. 아르헨티나와볼리비아의경제적차이가느껴진다. 8) 투피사 (Tupiza) - 남위 21 도 30 분 /2964 미터 투피사는볼리비아남부에있는교통의요지이다. 고도가높아서인지주변은황량함그자체이고강을따라오아시스들이쭉연결되어있다. 많은여행객들이우유니와칠레의산페드로데아타카마사이에있는안데스산지를여행한다. 하지만볼리비아에서만여행을하는경우에는그출발점과종착점이우유니또는투피사가된다. 관광붐타운이기도하지만, 주변오지마을사람들이바깥세계와접촉하는중요한장터이기도하다.
82 우유니의어린이들. 2008 년 1 월 9) 우유니 (Uyuni) - 남위 20 도 27 분 /3672 미터 투피사에서 3박 4일안데스투어에참가했다. 4천 ~5천미터사이의고원지대초원을지프로달리면서주변경치를구경하는프로그램이다. 그리고마지막날우유니소금사막을구경하는것으로투어가종료된다. 결국두번째날 5천미터고개를넘으면서본격적인고소증이시작되었다. 두대의지프에 10명의외국인이참가했는데, 나혼자고소증이왔다. 나의토사물로아름다운자연을더럽혔다. 우유니소금사막에는리튬이묻혀있어현재자원외교의중심지가되고있다.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83 10) 포토시 (Potosí) - 남위 19 도 34 분 /4,214 미터 우유니에서포토시로가는버스안에서사진기, 렌즈, 컴퓨터가든가방을도난당했다. 볼리비아경제에엄청나게큰기여를했다. 신혼여행액땜. 몸다치지않은것에감사하자. 다행히찍었던사진파일은백업하드에저장해두어서사진은건졌다. 남는것은사진뿐이라고하더라! 해발고도가 4천미터여서역시걱정했는데, 3천 ~5천미터를오가며, 두번이나고소증을겪어서그런지이번에는끄떡없다. 인간은역시자연에적응한다. 스페인정복자들에게볼리비아의해발고도와농업자원은그렇게매력적이지않았지만 1545년거대한은광이포토시에서발견되었다. 은은리마까지노새로옮겨진후파나마를거쳐유럽으로갔다. 지역의부는계속엄청나게수출되었지만, 현지주민들은여전히가난했다. 가난은재화와서비스의수요를창출하지않았다. 하지만이때부를바탕으로식민지풍의건물들이들어섰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되어높은해발고도에도불구하고여행자들을끌어모으고있다. 은광은현재도채굴되고있으며, 은광체험여행도가능하다. 11) 수크레 (Sucre) - 남위 19 도 02 분 /2740 미터 우유니-포토시구간은비포장도로였으나, 포토시-수크레는포장도로인데다가합승택시를탔기때문에아주편안하게여행을했다. 볼리비아의인구는약 1천만명정도이며, 반이상이알티플라노와시에라의산지에살고있다. 약 1백만명에조금미치지못하는사람이살고있는라파스는오리엔테에있는산타크루스
84 (150만명 ) 에게최대도시의영예를빼앗겼다. 인구가집중되어있는위성주거지역엘알토 (El Alto, 90만명 ) 와더불어라파스에는행정부와정치권력이남아있다. 2,740미터에위치한수크레에는대법원이있으며 25만명의사람들이살고있다. 대법원이있어서그런지, 역시콜로니얼풍의건물들이많고, 주민들도백인이많다. 어제부터하루세시간씩스페인어를공부하기시작한독일함부르크에서온처자와숙소에서잠깐이야기를나눈다. 3주동안스페인어를배운후, 한달동안볼리비아에서봉사활동하고, 다시한달동안볼리비아와페루를여행할예정이란다. 세달이면스페인어 + 봉사활동 + 여행을모두마칠수있을것같다. 과테말라의안티구아, 에콰도르의키토와더불어수크레도스페인어단기교습지로인기가있나보다. 수크레의비포장도로를달리는버스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85 12) 사마이파타 (Samaipata) - 남위 18 도 10 분 /1600 미터 원래는비야손으로돌아간후살타 - 멘도사등을거쳐부에노스아이레스로갈예정이었다. 하지만버스표구하기가쉽지않은터에마침산타크루스로가는비행기표자리를구하게되었다. 거기가서파라과이또는브라질로가는여정으로급선회. 산타크루스근처에서무엇을할수있나찾아보니, 체게바라가마지막게릴라활동을했던지역근처에잉카유적지가있는사마이파타라는산골소도시가있다. 또한국립공원정글탐사도가능하다. 수크레에서비행기를타니단 30분만에산타크루스에도착이다. 하늘에서보니꼬불꼬불한계곡과길들이보인다. 버스로가면 18시간정도걸리는거리다. 산타크루스는평원에있다. 공항에도착하니마이애미로가는아메리칸에어라인직항편이있다. 그리고시내에들어오니각종대형마트등완전히안데스쪽도시들과는별천지다. 나중에안사실이지만석유를기반으로성장한오리엔테지역의중심지산타크루스는현재볼리비아의최대도시이다. 아마이곳에와보지않았다면, 볼리비아는산만있는나라라고우겼을것이다. 사마이파타는해발 1,600미터에도착한시원한고원도시여서산타크루스의시민들이주말을이용하여, 더위를피해많이오는곳이다. 그리고주변은열대밀림으로둘러싸여있다. 잉카와오리엔테지역의주민들이교역하는잉카영역의동쪽끝에해당하는지역이었다고한다.
86 13) 산타크루스 (Santa Cruz) - 남위 17 도 50 분 /420 미터 인구 150만명의볼리비아최대도시답게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 (Santa Cruz de la Sierra) 버스터미널은붐볐다. 볼리비아국내로가는버스들은물론, 페루의리마, 아르헨티나의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의상파울로, 파라과이의아순시온등라틴아메리카각지로가는국제버스들도많았다. 우리의선택은파라과이의아순시온. 가는길에열대사바나지역인그란차코를관통한다. 산타크루스는열대지역에속한곳인데다가내륙이고고도가낮아무지하게후덥지근했다. 그리고머무는이틀동안계속비가내렸다. 그나마위안이된것은중국음식점들이많아서따뜻한국물을먹을수있었다는것이다. 건물이나날씨가모두뉴올리언스느낌이나는곳이었다. 14) 그란차코 (Gran Chaco) - 남위 18~23 도 /200~400 미터 그란차코는열대사바나지역으로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걸쳐있으며, 면적은약 70만평방킬로미터이다. 가도가도끝이없이관목림만계속되는곳이지만, 지리시간에가르치는곳이기때문에한번지나쳐보고싶어이지루한길을선택하였다. 20시간소요. 요금은 1인당 55달러. 무인지경을달리기때문에요금에는 4끼식사가포함되어있다. 저녁 7시산타크루스출발. 다음날오후 4시아순시온도착이다. 새벽 4시에볼리비아이민국을통과했다. 이후그냥사람은하나도보이지않는사바나경관이계속되다가오전 10시에드디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87 어파라과이첫마을이나타나고이민국을통과했다. 차로 6시간이나달리는거리가무인지경인셈이다. 태평양전쟁의결과내륙국인된볼리비아는파라과이강을통해대서양으로진출하려고파라과이와그란차코 (1932~1935) 전쟁을치렀다. 하지만전쟁에서패배했고, 파라과이는그란차코의많은지역을그들의수중에넣었다. 15) 아순시온 (Asuncioń) - 남위 25 도 17 분 /100 미터 파라과이의수도인아순시온은나에게로망이었다. 1993년남미를여행할때론리플래닛가이드북의아순시온숙소부분에는한국인들이운영하는저렴한숙소들이줄줄이나와있었기때문이다. 지구의반대쪽에서온배낭여행자가어느날불쑥숙소로들어가모국어로 빈방있습니까? 하고물어보면상당히극적일것같았다. 하지만 2008년의가이드북에는한국인이경영하는숙소는한군데도리스트에나와있지않았다. 그래도혹시나하는희망에한국인이경영하는상점이많은거리에가보았다. 정말노스탤지어를자극하는 1970년대를연상시키는그런입간판이자리잡고있었다. 이번여행에서는경비를주로 ATM을통해현금서비스를받았다. 하지만아순시온에서는환전을했다. ATM으로현금서비스를받으면이용료가무려 5달러를넘었다. 아순시온에는은행보다환전소가더많아보였다. 달러, 유로는물론이고중남미국가의화폐등아주다양한종류의돈을환전해줬다. 이유가뭘까?
88 아순시온 16)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 남위 34 도 36 분 /0 미터 남미의파리, 실감할수있었다. 정말멋진곳이다. 5박 6일을그냥널널하게지냈다. 이렇게여유를가졌던중요한이유중에하나는저렴한물가때문이었다. 1달러에 3페소 ( 여행당시원화강세라 1달러에 960원이었다 ). 동네식당에서스테이크정식이 3,600원정도였다. 지하철은 600원정도. 나라가크니까장거리버스가잘발달되어있으며, 그중심지인부에노스아이레스의버스터미널크기는어마어마하다. 국내여행뿐만아니라세계적인여행지이다보니숙소잡기가만만치않았다. 터미널에내리니소위삐끼가있었다. 호스텔을소개해주는데, 가이드북에는나와있지않은곳이라가지않았다. 아! 지도라도받아둘것. 정말숙소를찾아다니느라한나절을보냈다.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89 17) 몬테비데오 (Montevideo) - 남위 34도 53분 /0미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우루과이의수도몬테비데오에당일로다녀왔다. 몬테비데오를가게된것은내가지리를가르치기때문이다. 서울의대척점은우루과이수도몬테비데오앞바다해상 200km 지점이라고가르친다. 바다로나갈수는없어도적어도몬테비데오에는가봐야할것같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몬 부에노스아이레스의거리에서 테비데오를연결하는직통고속선도있지만가격에부담이있어페리를타고라플라타강을건너콜로니아라는우루과이도시에간다음다시거기서버스를타고몬테비데오에갔다. 도착하자마자걸어서바다와면해있는해안도로까지갔다. 그러다가물건을사러가게에들렀는데, 오가는젊은이들이나를바라보는눈초리가심상치않다. 가게주인이밖으로나가면바로강도를당할것이라고주의를줬다. 그냥평화롭게보이는해안가동네가빈민지역으로우범지대인것인것을몰랐던것이다. 가게주인의도움으로콜택시를불러잽싸게동네를탈출. 시간과계절이반대인지구반대쪽에있는대척점의기억하면조금으스스해진다.
90 18) 푸에르토이과수 (Puerto Iguazu) - 남위 25도 35분 /195미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푸에르토이과수까지는특급침대차로 17시간이걸린다. 버스가격은 80달러정도. 역시칠레처럼인구가희박하여아르헨티나에서도버스에서식사를제공하며, 두명의운전사가교대로운전하여거의무정차로달린다. 이과수폭포는아르헨티나와브라질양쪽에있다. 푸에르토이과수가포즈도이과수가각각나라의도시이며, 파라과이의시우다드델에스테도포즈도이과수와다리하나를두고국경을마주하고있다. 아르헨티나에서파라과이는페리로건너갈수있다. 이렇게세도시가붙어있다보니세도시를오가는버스와페리가있다. 그런데요금체계가조금이상하다. 예를들어푸에르토이과수와포즈도이과수를오가는버스는요금이 3페소또는 3헤알이다. 브라질돈인헤알의환율은 1달러에 1.70, 아르헨티나페소는 1달러에 3.05페소이다. 헤알로내면차비를거의두배나내어야하는셈이다. 이런환율에의한물가차이때문에금요일오후가되면푸에르토이과수의주유소엔브라질번호판을단차들이엄청나게긴줄을선다. 석유가격이아르헨티나가월등하게싸기때문이다. 만약상파울루나리우데자네이루로가는장거리버스도아르헨티나에서표를구입하는것이훨씬싸다. 아마두나라가같은화폐를사용한다면아르헨티나사람들은상당한물가고를겪을것이다. 메르코수르 ( 남미공동시장 ) 의가입국인두나라국민들은그냥버스를타고국경을오가지만, 출발한나라로다시돌아오지않을외국인들은국경을통과할때이민국을찾아가신고를해야한다. 입국자들을막지않는나라는드문데, 여기서는그렇게한다.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91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008 년 2 월 19) 리우데자네이루 (Rio de Janeiro) - 남위 22 도 55 분 /0 미터 이과수폭포가남위 25도정도에있고, 리우데자네이루는남위 23도정도에위치한다. 그러니까거의남회귀선을따라서경 55도에서서경 43도까지동쪽으로브라질남부지역을횡단하였다. 소요시간은 22시간. 남미에와서벌써남회귀선을다섯번째통과한다. 의도는하지않았지만왔다갔다하다보니그렇게됐다. 남회귀선은칠레-아르헨티나-파라과이-브라질을지나고적도는에콰도르-페루-콜롬비아-브라질을지난다. 리우카니발기간에맞춰서리우를방문했다. 모든물가가공식적으로인상되며, 방을구하기는하늘에별따기다. 가격뿐만아니라 1주일단위로예약을해야되기때문에단기여행자들은카니발을즐기기가쉽지않다. 다행히미국에유학중인한한국
92 인청년이코파카바나해변에있는아파트를 10일동안통째로빌렸다. 그런후사이월드를통해사람을모아서 n분의 1로나누어머무는날수만큼방값을내도록했다. 며칠머무는것에상관없이 1인당하루에 44달러를내면되었다. 워낙사건사고가많이나는카니발이라안전상조금위축되기도했지만, 한국사람들끼리함께다닐수있었기때문에그런측면에서많은도움이되었다. 밤에삼보드로모에함께가서암표를구하기도하고, 밤새이야기도나누고. 하지만진짜카니발은퍼레이드를벌이는삼보드로모가아니라거리에있다는느낌을받았다. 트럭을개조하여밴드가트럭위에서연주를하면, 사람들이그트럭을따라가면서길거리에서계속춤을추면서돌아다니는데, 정말보는축제가아니라즐기는축제라는느낌을받았다. 사람들이움직이며, 맥주나음료수를파는장사들도함께따라서움직이다. 가장곤혹스러운부분은화장실. 20) 상파울루 (San Paulo) - 남위 23 도 33 분 / 800 미터 2008년카니발의주제는일본인들의브라질이민 100주년을기념하는것이었다. 카니발은리우에서만펼쳐지는것이아니라브라질전역의각도시에서진행된다. 상파울루에서는일본인타운에숙소를잡았고, 일본인식당에서라면을먹고, 일본인이경영하는슈퍼마켓에서도시락을사먹었다. 하지만후식은메로나아이스크림. 한글로상품명이쓰여진우리나라아이스크림을브라질에서먹을수있다는것이정말신기했다. 글로벌시대가실감났다.
남회귀선을따라남미횡단 93 브라질은룰라대통령집권이후경제사정이아주좋아졌다. 그결과통화인헤알이엄청나게강세였다. 원화가강세임에도불구하고, 헤알은더강세였기때문에아르헨티나와비교할때여행경비때문에압박을꽤느꼈다. 볼리비아의우유니에서함께투어에참가했던브라질젊은이들의말이기억났다. 브라질은비싸기때문에국내여행을못하고물가가저렴한볼리비아를여행하러왔다. 마지막으로상파울루시내에서공항버스가출발하는곳까지의전철비와버스요금만빼고모든돈을탈탈털어썼다. 전철표를끊고승강장으로들어갔는데, 퇴근시간이라사람이너무많아서짐을가지고지하철을도저히탈수가없었다. 아! 다시밖으로나와서, 택시운전사와협상을한후그가원하는만큼의금액만다시 ATM에가서현금서비스를받아서공항으로향했다. 공항검색대에서치약과썬크림을빼앗겼다. 용기속에들어있는액체는모두비행기에들고탈수가없다. 에필로그 남아공출신마이크혼 (1966년생) 은 1999년가봉에서서쪽으로출발하여적도를따라지구를한바퀴도는여행을시도하였다. 17개월, 정확히 514일만에그는다시출발점으로돌아왔다. 이후그는그경험을적은 적도일주 ( 터치아트, 2007) 라는책을출간하였다. 그가정한규칙은적도에서남북으로 40킬로미터를벗어나지않고전진해서출발지점으로되돌아오는것이었다. 남미구간의경우그는자전거, 카누, 도보로적도를따라 3 천 6백킬로미터를횡단하였다. 식사는현지에서직접조달. 올무
94 로악어, 원숭이등을잡아조리해서먹었고, 중간에인디오보호구역이있어약간지그재그로움직였다. 특히어려웠던구간은코카인카르텔이점령하고있는콜롬비아지역이었다고한다. 1993년 1년예정으로미국의샌디에이고를출발하여리우카니발을목표로남쪽으로내려간적이있다. 페루티티카카호의푸노 (Puno) 에서여행을멈추고다시북쪽으로발길을돌렸다. 일단볼리비아와칠레비자를받지못해육로로더이상이동을할수없었고, 항공편으로들어가려던브라질의비자발급도거절당했기때문이다. 이번여행에서는볼리비아만비자가필요했다. 정말우리의국력을실감할수있었다. 17년전에중남미여행에서나를가장괴롭히던문제는비자였다. 2년예정으로전가족이세계일주를떠났던후배는결국첫대륙이었던북미와남미만 1년여행하고아르헨티나에서민박집을열었다. 멕시코에서구입한차를끌고멕시코번호판을달고중남미를거쳐서아르헨티나에입국했다. 그리고그곳에서세를얻어사업을시작하고, 아이도하나더나았으며, 큰아이는유치원에보내고있다. 나에게는아르헨티나의경제적개방도와유연성이놀랍기만하다. 우리나라에서도가능할까? 국제화, 세계화란과연무엇일까? 지구촌모두가함께잘사는길은어떤길일까? 밖에나가서보면의외로우리가가진문제를해결할수있는방법이많이보인다. 남미는멀지만, 아무튼많은사람들이좀더자주가게되어함께이야기를나눌수있는사람들이많아졌으면좋겠다. 강문근 - 민족사관고등학교지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