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보고 고장난정치, 분노한민심 노효동 연합뉴스워싱턴특파원 중앙대영문학과졸업 미조지타운대연구원객원 연합뉴스사회부 경제부 정치부정치부차장국제부부장대우 연합뉴스 TV 정치부파견 눈폭풍도막지못한 아웃사이더열풍 싱턴은고장났다. 너무나비대하고너무나썩었다. 워거센눈보라를헤치며맨체스터도심에들어서자가장먼저눈 젭부시의 워싱턴은고장났다. 너무나비대하고너무나썩었다 광고사진. 136 관훈저널 봄호
에들어온슬로건이었다. 공화당대선주자인젭부시가눈에잘띄는대형빌딩외벽에붙인캠페인문구였다. 꽤도발적이고강렬한구호이긴하지만어딘지어색해보였다. 중앙정치무대에선적은없지만젭부시는어디까지나부자 ( 父子 ) 대통령을배출한최고정치명문부시가 ( 家 ) 의후광을업고있는데다공화당주류가전폭적으로미는후보가아닌가. 그런젭부시가주류정치에맞서온 투사 처럼말하는것은몸에맞지않는옷을걸친듯했다. 그러나이문구가바로올해대선판을관통하는 코드 라는것을이내깨달았다. 버니! 버니! 버니! 길건너편팰리스극장은록스타의공연이라도열린듯용광로같은열기를뿜어댔다. 75세의노 ( 老 ) 정객인버니샌더스가모습을드러내자객석을꽉메운 1,000 여명이우레와같은환호성을터뜨리며그의이름을연호했다. 1960년대히피풍의노숙자에서부터빚더미학자금에허덕이는대학생, 푸드뱅크식권으로근근이살아간다는중년가정주부, 생활비를낼여력이없다는 60대전직교사에이르기까지미국사회의기층을형성하는다양한군상이자칭 사회주의자 에열광하고있었다. 그들은분명분노하고있었다. 그리고 선동가 인샌더스는그들의분노를정치적에너지로바꿔나가고있었다. 연단에선샌더스는단몇마디로 맨체스터도심에서공화당도널드트럼프의유세. 고장난정치, 분노한민심 137
군중을흥분시켰다. 나는화가난다. 미국인모두가화가난다. 보라, 워싱턴의주류정치, 그리고주류언론이우리삶과얼마나멀어져있는지를. 월가와거대기업에막대한세금을물려전국민의료보험과대학등록금을무료로만들겠다는 혁명적공약 에기립박수가터져나왔다. 눈보라가이내눈폭풍으로뒤바뀐저녁, 맨체스터도심은또다른 워싱턴때리기 로후끈달아올랐다. 한낮의한파를녹인 샌더스열풍 을능가하는폭발적인열기였 민주당버니샌더스후보. 다. 바로부동산재벌인공화당도널드트럼프의유세였다. 트럼프! 트럼프! 트럼프! 영하 7도를밑도는맹추위를뚫고트럼프를보러온 6,000 여명의군중은초대형체육관인버라이즌와이어리스아레나를꽉채웠다. 엔터테이너 인트럼프는기대를충족하고도남을만큼의 화려한원맨쇼 를폈다. 막말과조롱, 야유, 심지어성적비속어가난무하는와중에도군중은환호했다. 그들역시분노하고있었다. 그리고트럼프는분노한그들이듣고싶어하는말을 속시원하게 하고있었다. 트럼프는 나는당신들의 분노의망토 를받아들겠다. 나라가끔찍한방향으로가면서지금국민모두가화가나있다 고군중의마음을뒤흔들었다. 이어멕시코불법이민자들이넘어오지못하도록국경에벽을세우고중국에빼앗긴공장과일자리를되찾아오겠다고공약하자장내는떠나갈듯한환호와박수로출렁였다. 트럼프는심지어언론까지주류정치와한묶음으로비난하며군중의저항심리를자극했다. 그가취재진을손가락으로가리키며 엄청나게부정직한집단 이라고비난하자군중은일제히 우! 하고야유를보내며호응했다. 뉴햄프셔를집어삼킨 아웃사이더돌풍 은이튿날인 2월 9일 ( 미국동부시 138 관훈저널 봄호
간 ) 프라이머리를통해그두려운실체를드러냈다. 60.40% 대 37.95%. 9개월전만해도무명이었던샌더스가민주당거물정치인인힐러리클린턴을무려 22.45% 포인트격차로꺾은것이다. 역시 7개월전출사표를던지기전까지 정치문외한 이었던공화당의트럼프역시 35.34% 를얻어 15.81% 에그친존케이식후보를 19.53% 포인트차이로누르는압승을거뒀다. 워싱턴으로대변되는기성정치에대한유권자들의분노가, 좌우양쪽의정치공간에서, 샌더스와트럼프라는촉매제를통해폭발한것이다. 반대로민주 공화양당의주류를대변하는주자들은쓰디쓴고배의잔을들었다. 영부인과상원의원, 국무장관을지내며중앙정치한복판에머물러온클린턴이나공화당주류의 총아 로기대를모아온마르코루비오의참패는예고된결과였다. 고장난정치대분노한민심. 빛나는양당제전통에선진민주주의를자랑해온미국대선판에이런식의후진국형선거프레임이압도할것이라곤미처예상치못했다. 특히미국민심의축소판으로불리는뉴햄프셔프라이머리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 식의구호가유권자들에게먹혀든이유는과연무엇일까? 자존심으로뭉친 깐깐한 유권자들 백인들왜분노하나 뉴잉글랜드지역북부인뉴햄프셔는전형적인변방의소주 ( 小州 ) 그자체였다. 그러나속살을들여다보니어느주보다도자존심강하고정치적이라는느낌을받았다. 시간을거슬러프라이머리전날인 2월 10일낮 12시께맨체스터공항안내소. 60대로보이는여직원엘리스데이비스는지도책을건네며 취재하러오셨죠? 미국정치의홈타운에오신것을환영합니다 라며웃어보였다. 의례적인인사치레만은아니었다. 고장난정치, 분노한민심 139
각캠프의피켓. 공항에서맨체스터도심으로향하는길가곳곳에각캠프의피켓들이눈꽃처럼반짝거리며미국각지에서온방문객을환영하고있었다. 도심에들어서자거리어느곳을가도캠페인간판과광고가마치구역표시를하는 야드사인 처럼서있었다. 더욱인상적인것은일반주택가에까지 샌더스 나 힐러리, 트럼프 라고적힌입간판이즐비한점이었다. 노리스터 (Nor easter) 라는해안성눈폭풍의북상으로손이오그라들정도의맹추위였지만유권자들의경선참여열기는한파를녹이고도남았다. 곳곳의유세장에는각후보의지지자나자원봉사자뿐만아니라후보를정하지못한채 쇼핑 을하러다니는부동층유권자들로북적였다. 프라이머리당일투표소현장에서만난유권자들은미국전역에서가장먼저프라이머리를치른다는자부심이대단했다. 첫경선인아이오와코커스 ( 당원대회 2월 1일실시 ) 와비교되는것자체를불쾌하게여길정도였다. 50여년간프라이머리를지켜봤다는짐켈리 (70세) 는외신기자들앞에서 아이오와는옥수수 ( 아이오와주의대표농작물 ) 를뽑지만우리는대통령을뽑는다 고스스럼없이말했다. 자신들이뽑는후보가양당대선후보로지명되고, 그가운데대통령이나올것이란자신감에서였다. 140 관훈저널 봄호
웹스터초등학교에마련된투표소에서만난주 ( 州 ) 선관위직원주디바이텔리는 깐깐한유권자 라는평을내놨다. 그는 이곳유권자들은타운홀미팅이나유세장에참석해후보들에게꼼꼼히질문해본뒤선택을한다 며 동전을던지는일따위는없다 고말했다. 아이오와코커스의일부선거구에서 동전던지기 로최종승부를가렸던해프닝을꼬집은것이다. 특기할대목은뉴햄프셔유권자의 93% 가와스프 (WASP 앵글로색슨계백인청교도 ) 가주축이된유럽계백인이라는점이다. 미국정치의근간인 백인표심 을가장표준적으로보여주고있다는평가다. 이처럼자존심이강한뉴햄프셔유권자들이이번프라이머리에서보여준투표율은 62.3%. 전체유권자 88만 2,959 명가운데 55만명이나표를던졌다. 역대최고투표율이었던 1992년의 61% 를갈아치운것이다. 맨체스터남쪽메리맥지역에서는퇴근길투표행렬이몰리면서일대교통이수시간마비되기도했다. 미국사회주류에속한백인들이왜워싱턴에분노하고, 어째서 아웃사이더 인샌더스와트럼프에게압도적으로표를몰아줬을까? 위기의 워싱턴정치 민심과의소통회복할까 열쇠는경제에있었다. 외견상지표는완연한회복세를가리키고있지만뉴햄프셔유권자들의프리즘으로본미국경제는 중증 이었다. 중산층이무너지고근로빈곤층이급증한가운데소득불평등과빈부격차가커지고있었다. 물가는오르는데최저임금은 9년째시간당 7.25달러로묶여저소득층은허리가휘는생활고를겪고있었다. 한 40대백인여성은 투잡스이지만최저임금밖에받지못해날아오는청구서를감당하지못한다 며 아이들에게선물을사주지못할지경 이라고말했다. 노숙자는물론이고집없는가정이미국에서가장빠른속도로늘어나는주가뉴햄프셔라고한자원봉사자는전했다. 특히뉴햄프셔남부최대도시인맨체스터에서조차 고장난정치, 분노한민심 141
어린이 5명중 1명이 푸드뱅크 ( 소외계층에식품을지원하는복지제도 ) 에의존하고있다는통계도소개했다. 지역경제침체는크게볼때경제구조변화때문이었다. 좋은일자리를제공하던기업들이비용상의이유로중국과멕시코, 캐나다등지로공장을이전하거나사업을넘겼다. 뉴햄프셔대학에서경영학석사과정을전공한한 30대유권자는 다니던 IT( 정보기술 ) 회사가중국에넘어가면서지금은버스운전을하고있다 고말했다. 이런상황에서정책수단과재정권을쥔행정부와의회가보여주는무능과무기력, 비효율은유권자들의 분노 를자아내기에충분했다. 특히 2013년 10월연방정부셧다운 ( 부분업무중지 ) 으로이어진정쟁은분노한민심에기름을끼얹었다. 유세장에서만난유권자들은 워싱턴이라면이제지긋지긋하다 고입을모았다. 주목할대목은샌더스와트럼프가 극과극 의처방을내놓고유권자들의폭발적지지를끌어내고있는점이다. 샌더스를지지하는진보유권자들은월가와거대기업이독식한부를저소득층에게재분배하자는 혁명적공약 에열광했다. 가내수공업을하는한 50대남성은 대기업에공평한과세를해야한다는주장은 100% 맞다 며 샌더스가사회주의자냐아니냐가뭐가중요하냐 고말했다. 한자원봉사자는 더이상돈이워싱턴을주무르게해선안된다 고거들었다. 특히취업난속에서 아메리칸드림 이실종된대학생과젊은이들은샌더스에게아예 몰표 를던졌다. 반면트럼프를지지하는보수유권자들은중국과멕시코등지에빼앗긴공장과일자리를되찾아오겠다는공약에환호했다. 이는경제적차원에그치지않고미국을 제자리 에돌려놓는다는상징적의미로다가서는듯했다. 한 60대지지자는 경제보다도나라전체가잘못가고있다 며 다시미국을위대하게만들어야한다 고주장했다. 여기에는오바마케어와이민개혁, 총기규제등 8년가까이버락오바마행정부가추구해온진보적어젠다를바라보는백인보수층의 울분 이담겨있었다. 트럼프는바로이들백인보수층이내심굴뚝같이하고싶어한말이나공개로하기어려웠던 142 관훈저널 봄호
말을대신해주면서정치적에너지를충전하고있었다. 트럼프와똑같은헤어스타일과복장을한에릭잭맨 (26세) 은 트럼프는우리가진정으로원하는게뭔지정확히안다 고말했다. 기득권에물든공화당주류와달리트럼프는후원자들의눈치를보지않고로비스트들의영향력에서벗어나 보수개혁 을추진할수있다는게이들유권자의기대다. 뉴햄프셔의선택은전체경선과정으로볼때 착시현상 에그칠수도있다. 샌더스와트럼프열풍이유권자구성과지지성향이판이한남부주 ( 州 ) 경선과 슈퍼화요일 경선을거치면서 미풍 으로쇠잔해질공산이적지않다. 양당주류가조직력을바탕으로쌓아놓은 방화벽 이만만찮고, 두후보가내건공약은현실적검증의문턱을넘어서야한다. 그럼에도주목해야할것은 워싱턴정치 가분명전례없는위기에봉착한점이다. 워싱턴 D.C. 가물리적으로순환도로인 벨트웨이 에포위된모양새처럼, 지금미국의주류정치는민심과의소통이끊어진채파워엘리트끼리이권다툼을벌이는 권력의원형경기장 으로전락한느낌이다. 이는내부적으로국가경영에대한자신감을잃어가고, 외부적으로는국제사회에서누려온지도자적영향력을상실하고있는미국전체의위기이기도하다. 민주주의전통을이끌어온워싱턴이과연분노한민의를겸허히받아들여 신뢰의정치 를회복할수있을것인가. 역시 그들만의리그 라는비판에휩싸인한국정치에도던져질법한물음이다. 고장난정치, 분노한민심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