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AABBE7B9CEBCD3C7D E687770>

Similar documents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Ⅰ. 머리말 21세기는 문화의시대 라고한다. 문화의개념도협의의예술및정신적산물에서부터광의의상징체계혹은생활양식으로까지확대인식되고있다. 더욱이정보통신의급속한발달은세계각국의문화를접촉할수있는기회를확산시켰고, 이를빠르게수용하면서다양한문화적욕구와소비가가속화되었다. 이러한시대적맥락속

~

152*220

10월추천dvd

愿묒쭊援??섏젙諛깆꽌?댁?0907

1

178È£pdf

º´¹«Ã»Ã¥-»ç³ªÀÌ·Î

•••••1301(•••).pdf

(연합뉴스) 마이더스

연구노트

µ¿¼�Çѹ溴¿øb60Ü¿ïÈ£š

82-대한신경학0201

2015년9월도서관웹용

* pb61۲õðÀÚÀ̳ʸ

할렐루야10월호.ps, page Normalize ( 할 437호 )


문화재이야기part2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4-Ç×°ø¿ìÁÖÀ̾߱â¨ç(30-39)

내지 뒷

글청봉3기 PDF용

01정책백서목차(1~18)

CONTENTS 2011 SPRG Vol

내지-교회에관한교리

30

77

융합인재교육 ( S T E A M ) 프로그램 2


Ä¡¿ì_44p °¡À» 89È£

0.筌≪럩??袁ⓓ?紐껋젾 筌

기본소득문답2

금강인쇄-내지-세대주의재고찰

_¸ñÂ÷(02¿ù)

ÆÞ¹÷-Æîħ¸é.PDF

hwp

Jkafm093.hwp


미술00부속(001~007)2ee

광주시향 최종22

레이아웃 1

ITFGc03ÖÁ¾š

2003report hwp


2016년 신호등 3월호 내지A.indd

#7단원 1(252~269)교

쌍백합23호3

2019달력-대(판형키워)

DocHdl2OnPREPRESStmpTarget


(001~010)206교과-앞부속(수정)

2002report hwp

< B3E220C1A631C8B820B0A1B1B8BCB3B0E8C1A6B5B5BBE720C7CAB1E22042C7FC28C0CEBCE2292E687770>


Microsoft PowerPoint - MonthlyInsighT-2018_9월%20v1[1]

<C3E6B3B2B1B3C0B 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아이콘의 정의 본 사용자 설명서에서는 다음 아이콘을 사용합니다. 참고 참고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거나 다른 기능과 함께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제공합니다. 상표 Brother 로고는 Brother Industries, Ltd.의 등록 상

bm hwp

Xcrypt 내장형 X211SCI 수신기 KBS World 채널 설정법

<C6C8B5B5C0E5C5CD20B8AEC7C3B7BF2E696E6464>

내지(교사용) 4-6부

ÃÊ2)03È£³ëº§»óiÇؼ³ÇÊ

View Licenses and Services (customer)

¿©¼ºÀαÇ24È£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와플-4년-2호-본문-15.ps

CC hwp

¾ÈÀü°ü¸®¸Å´º¾óÃÖÁ¾Ãâ·Âµ¥ÀÌŸ


À¯¾ÆâÀÇ°úÇмÒÃ¥ÀÚ.PDF

2014 경영학회_브로셔 내지

<34BFF9C8A320B4DCB8E9B0EDC7D8BBF32E706466>

IKC43_06.hwp

지도학발달06-7/8/9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pages

1 난 이 그림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것 준비물:잡지에서 잘라 낸 그림(모든 참가자가 쓰기에 충분한 정도), 작은 테이 블 하나, 참가자 수만큼의 의자(선택사항), 부드러운 배경음악(선택사항) 자기상 개발하기 자신을 소개하는 능력 향상하기 게임방식:의자를 원으로 배열하

!aT내지 12월호

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È޴ϵåA4±â¼Û

<B1B9C8B8C0D4B9FDC1B6BBE7C3B3BAB85F BB0DCBFEFC8A35B315D2E706466>

아침 송(頌) 유자효 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 보라 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 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Print

* ** *** ****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 2 -

레이아웃 1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해피메이커 표지.indd

<3635B1E8C1F8C7D02E485750>

Untitled-1

ÃѼŁ1-ÃÖÁ¾Ãâ·Â¿ë2

경영학회 내지 최종

1809_2018-BESPINGLOBAL_Design Guidelines_out

<BFA9C8A3BFCDB4C2C0A7B4EBC7CFB4D9284A2E522E >


2016년 신호등 10월호 내지.indd

Transcription:

일반논문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 ** 이민주 ** 성균관대학교연구원 1. 머리말 2. 외국인이본우리의신체조건 3. 파란눈에비친복식문화 4. 외국인이잘못본우리옷 5. 맺음말

26) [ 국문요약 ] 이연구는개항기우리나라를방문한외국인들의기록과삽화를통해우리나라사람들의신체조건과복식문화에대한외국인들의인식을살펴보고, 우리의복식문화가갖는아름다움을재발견하고자하는데연구목적이있다. 또한그과정에서외국인이기때문에잘못판단한우리의복식문화가무엇인지찾아내어, 올바르게알릴수있는계기가될것으로기대한다. 개항기우리나라복식문화에대한최초의기록은 1816년의맥레오드와바질홀의항해기이다. 이후조선을방문한외국인은스페인을비롯하여네덜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헝가리등이며이들의직업은외교관, 학자, 여행가, 의사, 군인, 화가, 선교사등다양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이들이아름답다고느낀우리의복식문화는크게모자와흰옷, 그리고색동으로대별된다. 첫째, 개항기우리나라를방문한외국인들은우리나라를 모자의나라 라고하였다. 이는남자의갓과갈모는물론여자들의모자에있어서도감탄을금치못하며조선에서가장가지고가고싶은품목으로조바위, 아얌, 남바위를꼽았다. 둘째, 개항기우리나라를방문한외국인들은우리의복색을 흰옷의물결 이라고하였다. 흰색에대한감정은직물과다듬이질, 세탁의정도에따라백옥같이밝은흰색에서거칠고투박한흰색까지마치음색의향연과도같다고하였다. 셋째, 개항기우리나라를방문한외국인들은우리의복식문화를 색동의축제 라고하였다. 특히흰색과어우러지는여러가지색깔의색동과허리띠, 고름, 주머니등은단조롭고무미건조할수있는우리의복식에활기를주고축제같은느낌을준다고하였다. 더욱이개항기외국인들은우리의복식문화가갖는특징인높은모자가흰옷과어울려키를더욱커보이게하였으며, 여자들의모자에달린술장식과끈, 색동등은단순한복식구조를느끼지못할정도로화사함과활력을불어넣어우리나라사람들의신체조건을극복할수있도록하여, 중국이나일본에비해우리나라사람들을더욱매력적으로보이게했다고평가하였다. 그러나외국인이기때문에잘못판단한우리의복식문화또한간과할수없다. 우리의흰옷을喪服으로인식한점, 우리옷의구성에대한이해가부족했던점, 발목이높은신발의유래를오해한점등은앞으로우리복식을세계에알리고자하는노력과함께새롭게인식시켜야할부분이다. * 이논문은 2007 년 8 월 18~19 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공동으로개최한 옛사람들의관광과여행의문화사 학술대회에서발표되었던논문은수정 보완하였다. 206 역사민속학제 27 호

1. 머리말 개항기우리나라를방문한최초의서양인은 1593년의스페인신부세스페데스이다. 그러나그는조선에대한기록을남기지않았으므로, 조선에대한최초의외국인기록은 1668년의 ꡔ하멜표류기ꡕ 이다. 그러나여기에서도한국인의복식문화를살필수는없다. 이후조선에대한본격적인묘사는 1816년백령도를탐사하러온영국함대알세스트호의군의인맥레오드와라이라호의함장바질홀의항해기에등장한다. 1) 여기에서그들은조선의초가집이나조선인이착용하고있는흰색의옷과넓은모자등특징적인모습을세밀하게그리고있어조선인의모습을담은삽화들은당시유럽사회에상당한영향을미쳤다. 그후 1876년강화도조약을계기로조선인들의모습이본격적으로전세계에알려지기시작하는계기가되었다. 조선을방문한외국인은스페인을비롯하여네덜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헝가리인등이며, 이들의직업은외교관, 학자, 여행가, 의사, 군인, 화가, 선교사등국적만큼이나다양하다. 따라서조선에대한그들의관심과조선을바라보는시각은개인에따라차이가있으나, 그들이남긴다양한기록들은우리의문화를보다객관적으로평가해볼수있는기회이기도하다. 특히 21세기는문화의시대이다. 문화의개념도협의의예술및정신적산물에서부터광의의상징체계혹은생활양식으로까지확대인식되고있다. 더욱이정보통신의급속한발달은세계각국의문화를접촉할수있는기회를확산시켰고이를빠르게수용하면서다양한문화적욕구와소비가가속화되고있다. 이러한시대적맥락속에서각나라의고유한전통은문화산업의기본이되는문화유산으로새로운문화창조의중추적인역할을담당하고있다. 2) 따라서본연구에서는개항기우리나라의복식문화에높은관심을가진외 1) 백성현 이한우, ꡔ 파란눈에비친하얀조선 ꡕ, 새날, 2006, 52~107 쪽. 2) 이민주, 외국인의눈에비친개항기복식문화, ꡔ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ꡕ 제 7 권 1 호, 2005, 101~102 쪽.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07

국인들의기록과삽화를통해우리의복식문화가그들의눈에어떻게비쳐졌는지를살펴보고자한다. 이는현대의우리에게그들의눈을통해우리의복식문화를재인식하고우리복식의아름다움을재발견할수있는기회를제공하는동시에세계에잘못알려진우리의복식문화가무엇인지도파악할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 2. 외국인이본우리의신체조건 각나라의복식은복식자체가갖는형태, 색깔, 무늬등의외형적인요소만으로그나라의복식문화를이해할수는없다. 그것은복식이갖는특수성에기인하는것으로복식자체가갖는특수성도있지만그것을착용하고있는사람이가장큰영향을주기때문이다. 거기에오랜세월그복식을만들어낸기후, 지리적조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배경등이그나라의복식을만드는중요한요인이되어한나라의복식문화를형성하게된다. 여기에서는개항기외국인이바라본우리의복식문화중가장중요한역할을한한국인들의모습에서발견되는특징이복식에어떠한영향을미치는지살펴보고자한다. 헝가리의민속학자버라토시벌로그베네데크는 ꡔ코리아, 조용한아침의나라ꡕ에서 한국에서는사람들이똑같이생긴옷을입고다닌다. 3) 고할정도로외국인은우리옷을구별하지못했다. 그러나이사벨라버드비숍은똑같은옷을입고있는한국인들을구별할수있는요인이바로그사람의키, 얼굴생김새, 피부색, 눈동자색, 머리색깔등의뚜렷한차이에있으며, 이로써한국인들의복식은더욱눈에잘뜨인다고하였다. 4) 3) 버라토시벌로그베네데크, 초머모세역저, ꡔ 코리아, 조용한아침의나라 ꡕ, 집문당, 2005, 44 쪽. 4) 이사벨라버드비솝, 이인화옮김, ꡔ 한국과그이웃나라들 ꡕ, 살림출판사, 2007, 18 쪽. 208 역사민속학제 27 호

한국인들의얼굴색은거무스름한올리브색에서아주옅은갈색에이르기까지아주다양하게변화한다. 머리카락은어두운색이지만대부분은두드러진황갈색이고, 머리칼의질감은뻣뻣한돼지털같은것부터비단결같은것까지다양하게변화한다. 눈은어두운색이지만역시암갈색에서적갈색에이르기까지다양하며, 광대뼈는두드러지고, 이마는고상하고지적으로보인다. 또코는매부리코가있을뿐만아니라넓은콧구멍의펑퍼짐한들창코도있다. 입이크고입술이두툼한것에서부터입이작고얇은편인사람까지아주다채롭다. 또한이태리의외교관인까를로로제티는한국인들의체형조건을일본인이나중국인과비교하면서평균이상의신장과힘든일에견딜수있는튼튼한체력을지닌한국인들은우수한종족임에틀림없다고확신하였다. 5) 한국인들은단두이다. 즉그들의머리는짧다. 앞이마에서뒤통수까지의평균직경은 177mm이며, 측면의평균직경은 148mm 이다. 피부색깔은비록하층민들은거무스름하지만대체로어두운흰색으로가까이에서보면일본인들의피부색을방불케하며여인들의피부는계층에관계없이대단히희다. 눈동자는대개가검은색이며, 다소눈꼬리가경사져있기는하나중국인이나일본인보다는상당히덜하고완전하게수평을이루고있는경우도있다. 코는평균너비가 36mm 이고길이가 49mm 로펑퍼짐한납작코가대부분이지만곧고가지런한코도있고때로매부리코도발견된다. 머리카락은대개곧고굵으며검은색이고수염은일본인들보다더조밀하며, 머리카락색깔보다더진하다. 이는영국화가인엘리자베스키스의 ꡔ코리아 ꡕ에서 한국의남자들은몸매가날렵하고행동거지가우아하고표정은침착했다. 고 6) 밝히고있는것과대체로일치하며, 이사벨라버드비숍도 ꡔ한국과그이웃나라들 ꡕ에서 한국인들 5) 까를로로제티, 서울학연구소역, ꡔ 꼬레아꼬레아니 ꡕ, 숲과나무, 1996, 9 쪽. 6) 엘리자베스키스 엘스펫 K. 로버트슨스콧, 송영달옮김, ꡔ 코리아 1920~1940ꡕ, 책과함께, 2007, 37 쪽.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09

은확실히잘생긴종족이며, 체격도좋은편이다. 7) 라고기록하고있어한국을방문한외국인들은국적이나남녀를불문하고대체로한국남성에대한좋은인상을갖고있었다. 이에반해서여자들의체형은 땅딸막하고펑퍼짐하며, 손과발은성별과계층을불문하고매우작고희며, 절묘한형태이다. 또뾰족한아몬드형의손톱은주의깊게다듬어져있다. 라고이사벨라버드비숍은한국여성의신체조건이남성에비해다소떨어진다고하였다. 그러나새비지랜도어는 고대로마의조각에나타난아름다움을볼만큼보았지만한국여성의복식이보여주고있는것에비하면그아름다움은비교가되지않는다. 고하였으며, 비너스의곡선미도한국여성의의상이보여주고있는아름다움을따라가지못한다. 8) 고한것으로한국여성의체형이비록볼품없다할지라도여성들이착용한한국복식의아름다움은체형을극복하고도남음이있음을시사해준다. 3. 파란눈에비친복식문화 외국관광객이본우리나라의복식문화중가장눈에띄는것은단연모자와흰옷, 그리고아이들의색동옷이다. 외국관광객들은이들복식이한국인의키를커보이게하고우아한맵시를드러내는동시에하얀옷이조선인들에게동심처럼밝은마음이깃들게해준다는것을파악하는데에는그리오랜시간이걸리지않았다. 1) 모자의나라 개항기외국인들은조선을 모자의나라 라고표현하였다. 1888년부터남한내륙을횡단했던프랑스민속학자샤를르바라역시 한국은모자왕국이다. 7) 이사벨라버드비솝, 이인화옮김, ꡔ 한국과그이웃나라들 ꡕ, 도서출판살림, 2007, 19 쪽. 8) 새비지랜도어, A.H., 신복룡역주, ꡔ 고요한아침의나라, 조선 ꡕ, 집문당, 1999, 57 쪽. 210 역사민속학제 27 호

세계어디에서도이렇게다양한모자를지니고있는나라를본적이없다. 여러용도에따라제조되는한국의모자패션은파리인들이꼭알아둘필요가있겠다. 고하였으며, 파리세계박람회의한국참가를지원했던한국학의대가모리스꾸랑도 한국은아주다양하고독특한모자를지니고있는모자발명국으로그들의민속품은프랑스인들의신상품개발에도도움이될것이다. 9) 라고하였다. 이처럼당시의패션을리드하고있던프랑스인들조차도조선의다양한모자를벤치마킹하고싶어하였음을알수있다. (1) 갓외국인들이말하는모자중의모자는단연갓이다. 갓은성인남자가계절과장소에관계없이착용하는대표적인형태이다. 퍼시벌로웰은 집안에들어가기전에신발은밖에벗어두지만갓은사람과함께안으로들어가며, 식사때도외투는벗어도갓은그대로머리위에머문다고지적한바와같이조선에서의갓은평생을통해붙어다니는영원한후광이다. 라고하였다. 10) 모자의유래는고조선시대모든백성에게도자기로만든거대하고깨지기쉬운모자를쓰도록하여사사로운싸움을금지하고자한데서유래하였다고한다. 즉가벼운싸움이라도두싸움꾼이충돌하면부서지거나흠이나는모자때문에즉시발각되므로호전적인한국인들의성향을진정시킬수있었다는것이다. 그후그때의도자기모자는시간이흘러다소변화하기는하였으나아직도옛날거대한형태그대로남아있어오늘날이땅을방문하는이방인들에게놀라움을주고있다는것이다. 11) 과연많은외국인들이놀란모자의크기는어느정도였을까? 그리피스는조선의모자는지붕또는적어도우산이라고불러도좋을만큼확실히큰모자를쓰는나라라고하였다. 9) 국립민속박물관, ꡔ 코리아스케치 ꡕ, 2002, 192~193 쪽. 10) 퍼시벌로웰, 조경철옮김, ꡔ 내기억속의조선, 조선사람들 ꡕ, 예담, 2001, 270 쪽. 11) 까를로로제티, 서울학연구소역, ꡔ 꼬레아꼬레아니 ꡕ, 숲과나무, 1996, 18~19 쪽.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11

갓의모양은둥근탁자위에놓인꽃병같기도하고중국의징위에큰컵을올려놓은것같기도하다. 그지름은보통 2피트 12) 정도이니만큼원주위는 6피트가된다. 9인치높이의원통은그윗부분의폭이 3인치밖에안된다. 굴뚝처럼생긴이윗부분은머리를씌우기위해있는것이아니라장식과통풍의구실을한다. 13) 그런데외국인들이놀란것은모자의크기에도놀랐지만모자의무게가 15 그램을초과하지않는그가벼움에또한번놀랐다. 14) 갓은질이좋은대나무를아주가늘게쪼개실올처럼가늘고길게다듬어서양태와모자를만들어붙인다음옻칠을하여완성한다. 외국의관광객들에게놀라움을주었던조선의갓은일찍부터 < 도 1> 과같이분업화 전문화되어있었으며, 대체로세공정을거친다. 첫째, 세죽사나말총으로갓모자를만드는일둘째, 머리카락같이가는대로양태를엮는일셋째, 갓모자와양태를서로모아갓을완성하는일이분업화되어만들어지면, 갓방에서이를한데모아양태가아래로우긋하게곡선을이루도록모양을만든다. 이과정을 버렁잡는다 고하는데가장숙련을요하는공정이다. 제주도의총모자와거제도의양태가가장유명하다 (< 도 2>). < 도 1> 김준근, ꡔ 갓방 ꡕ, 기산풍속도첩 < 도 2> 흑립,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소장 12) 1 피트는 12 인치이고 30.48cm 이므로 2 피트는 60.96cm 이다. 13) W.E. 그리피스, 신복룡역주, ꡔ 은자의나라한국 ꡕ, 집문당, 1999, 354 쪽. 14) 까를로로제티, 앞의책, 19 쪽. 212 역사민속학제 27 호

<도 3> 신윤복, ꡔ聽琴賞蓮ꡕ, 종이에 <도 4> 신윤복, ꡔ聽琴賞蓮ꡕ, 종 <도 5> 맥레오드, ꡔNarrative of a 채색, 35.6 28.2cm,간송미술관 이에 채색, 35.6 28.2cm,간 Voyageꡕ, 1876. 송미술관 한편 갓을 한층 더 멋지게 만드는 것은 단연 갓끈이다. 갓끈은 원래 갓을 머 리 위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턱 밑에 매는 실용적 구실을 하던 부분인데, 차츰 재료가 다양해지면서 장식적인 구실도 겸하였다. 헝겊으로 만든 布帛纓과 옥 마노 호박 산호 금패 밀화 수정 등으로 만든 珠纓 및 대로 만든 竹 纓이 있다. 갓끈은 갓을 쓰면 일단 턱 밑에서 고정시킨 뒤 내려뜨리지만, 주영 죽영은 장식의 목적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길게 가슴 밑까지 내려뜨린다(<도 3>). 이 때 가슴 밑으로 늘어뜨린 패영을 귀 곁에 말아 걸기도 하는데(<도 4>), 외국 인도 이 모습을 흥미롭게 봤는지 맥레오드의 항해기에서 이 모습이 보인다 (<도 5>). 또한 갓을 멋지게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길모어 는 조선 사람들은 이 상투를 알 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상투의 크기가 계란보 다 크지 않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상투를 계란 크기 정도로 만 들기 위한 노력이 언더우드와 카르네프에 의해 포착되었다.15) 15) L.H.언더우드, 신복룡 최수근 역주, ꡔ상투의 나라ꡕ, 1999, 201쪽; 카르네프외 4인, 김정화 옮김, ꡔ러시아 장교 조선이야기, 내가 본 조선 조선 사람들ꡕ, 가야넷, 2003, 69쪽.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213

소녀의머리처럼갈래로땋아서길게드리운머리카락을전통적인형태로빗질 하여위로올려면도된지점위로단단하게묶으며, 크기는높이가 2~3 인치, 직경 약 1 인치가되도록상투를튼다. 이때정수리부분을면도하는것은상투의크기를알보다크지않게하기위한노력이며, 특히서울의멋쟁이들은기성에대한저항적인용서와함께자기의개인적인매력을돋보이도록하기위해서상투의크기를절대계란보다크지않게치장하였다고한다. 한편머리손질을마무리하는것은상투를튼후이마에두르는망건이다 (< 도 6>). 망건은서양의헤어밴드와같이머리카락이흘러내리는것을막기위해말총으로만들며, 뒤머리털을잘가다듬기위하여갓바로밑의이마에밀착되도록단단하게묶어두통을일으키는원인이되기도하였다. 16) 망건은띠의일종으로 1.5인치정도나비의말머리털로만들어이마의중간쯤까지내려서머리주위에동인다음머리주위를돌려서뒤로단단하게묶기때문에매우아프고이마주위에깊이자국이남는데한계절이지나면영원히자국이남거나혹은거의머리주위에 1/8인치정고깊이로패여서자국이남는다. 17) 새비지랜도어는이때사용하는것이살쩍밀이라고하였다 (< 도 7>). 이는작은뼈나조개껍질로만든칼과같이생겼으며, 원래몸단장용구로머리가흐트러졌거나삐쳐나왔을때머리칼을밀어넣어머리털을제자리에있게하려는용도이다. 그러나이것을가지고망건을살짝들어올리면망건이조이는것을완화시켜아픔을덜어주었다. 이렇게고통스러운망건도한달쯤쓰게되면아픔도가시고멋진갓을쓸수있는머리장식이된다. 이외에도망건앞에는풍잠을다는데이것은갓이떨어지지않도록고정시키는역할을한다 (< 도 8>). 16) 이민주, 앞의논문, 104 쪽. 17) G.W. 길모어, 신복룡역주, ꡔ 서울풍물지 ꡕ, 집문당, 1999, 104 쪽. 214 역사민속학제 27 호

<도 6> 망건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 7> 살쩍밀이-석 <도 8> 풍잠-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이와 같이 상투를 틀고 망건을 친 후 비로소 가볍고 섬세하게 짜진 갓을 쓰 는데, 갓은 머리에 눌러 쓰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살짝 얹어 놓는다. 차양 위 에 내리쬐는 햇빛이 얼굴에 엷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은근한 아름다움을 표출 하게 된다. 바로 이 갓이 외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내었던 조선의 모자다. 이 모 자를 개항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는 인류가 고안해 낸 관모 중 제일 화사한 관모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18) (2) 갈모 외국인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 인 모자는 일명 비모자라고 하는 갈모이 다(<도 9>). 이는 갓 위에 쓴다하여 笠帽 또는 雨帽 등으로 불렀으며, 펼치면 원추 형이 되고 접으면 쥘부채 모양이 된다. 環 紙라고도 부르는 기름먹인 갈모지에 몇 개의 가는 대오리를 붙여 만들며, 안의 중 <도 9> 갈모-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간쯤에 실끈을 달아매게 되어 있다.19) 이 갈모는 갓을 쓰는 조선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휴대하고 다녀야 하는 필수 품이다.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언제 어느 때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모르는 시대 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갓. 19) 온양민속박물관, ꡔ조선시대의 관모ꡕ, 1988, 95쪽.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215

에조선인들의생명과도같은갓이어떻게관리되고보호되었을까하는의문을새비지랜도어가해결해준다. 눈이막내리기시작하자허리띠안에착용하고있던부채와흡사한모양의갈색 기름종이로만든삼각형의물체가원추꼴로변하고이것을모자위에씌우자속이 비치는갓의모양이변하였다. 20) 갈모를휴대할수있는곳이허리춤만은아니었다. 이사벨라버드비숍은 갓은비에젖으면망가지기때문에도포의소매안에비올때갓을씌울수있는방수모자를넣지않고서는감히밖에나갈생각을하지도않았다. 21) 고하였다. 이와는달리 W.E. 그리피스는갈모의역할이갓을보호하기보다는옷이젖는것을막는용도였다고하였다. 갓의올에는칠을하여햇볕이나비를맞아도완전히견딜수있도록되어있지만바람에는견딜수가없다. 조선사람들이흔히입는면직물은쉽게비에젖기때문에어깨와등이비에젖지않도록해주어야하는데우산처럼생긴이갓이그역할을한다. 비가많이올때에는유지로만든 갈모 라는깔대기모양의덧모자를갓위에꼭끼게씌운다. 22) < 도 10> 쥘베른의 Le Tour Du Monde 에도 조선관리의가마를호위하고있는사람들이비를막기위해쓰고있는묘하게생긴모자를보고절로터져나오는웃음을참을수없었다. 이것은기름종이로만들어진아래가넓은고깔형모자로머리가완전히덮이도록만들어졌다. 23) 고한것으로갈모가갓 20) 새비지랜도어, A.H., 신복룡역주, ꡔ 고요한아침의나라, 조선 ꡕ, 집문당, 1999, 59~60 쪽. 21) 이사벨라버드비솝, 이인화옮김, ꡔ 한국과그이웃나라들 ꡕ, 도서출판살림, 2007, 246 쪽. 22) W.E. 그리피스, 신복룡역주, ꡔ 은자의나라한국 ꡕ, 집문당, 1990, 354 쪽. 23) 국립민속박물관, ꡔ 코리아스케치 ꡕ, 2002, 120 쪽. 216 역사민속학제 27 호

만을보호하기위한목적은아니었다. 이처럼갓을보호하기위한것이든, 옷을젖지않도록하고자하는목적이었든간에갈모는비나눈이올때갓위에쓰는것으로우산을들고다녀야하는번거로움을없애고허리춤이나소매속에넣고다님 < 도 10> 갈모 -<Le Tour Du Monde> 으로써생활을안전하고평화롭게해주었음에틀림없다. 이갈모의독창성과실용성은어느나라에서도찾아볼수없는것으로영국의화가엘리자베스키스는 우산용모자가지닌기발한아이디어는한국이외에어느나라에서도찾아볼수없다. 비가내릴때도주위를자유롭게바라보면서여유있는시간을보낼수있는기막힌명품이다. 라며감탄했다. (3) 아얌 조바위 남바위조선을 모자의나라 라고말한외국인들의이야기가꼭남자에국한된것은아니다. 여자들의모자역시형태나기능에있어다양하고, 외국인들의마음을사로잡기에부족함이없었던듯하다. 그들은여인들의머리장식에대하여남자들의모자를뛰어넘는아름다움을간직하고있으며, 가장돋보이는것으로단연아얌, 조바위, 남바위등을꼽았다. 이들모자들의공통된특징은정수리부분이터져있고, 그위를산호구슬을꿴줄이늘어져있고, 다시그줄은옥판이나옥나비와함께앞이마와뒤통수에달린술장식과연결되어있다. 따라서움직일때마다산호줄과술장식이좌우로찰랑거리며, 시선을집중시킨다. 그중에서도새비지랜도어는아얌에대한각별한애정을표현하였다. < 도 11> 의아얌은윗부분이비단으로덮여있는것에반해중간이하의부분은모자를쓸때거의땅에까지닿을정도로뒤에달려있는두개의긴비단리본으로장식되어있고모자의윗부분은신기할정도로넓게트여있으며, 이렇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17

< 도 11> 아얌 < 고요한아침의나라조선 >- 정장한여인 게만들어진구멍의양쪽에는대개붉거나검은색의두개의비단술이달려있어단정하게쓰면이모자는잘어울린다고하였다. 24) 또한칼스는여성의모자중조바위를가장매력적이며한국적인것으로꼽고있다. 그는한국에서가장가져가고싶은것이조바위라고할정도로조바위의매력에푹빠져있었던것같다. < 도 12> 는정월초하루나들이장면이다. 엄마와함께나들이나온두딸이남바위에볼끼가붙은풍차를쓰고, 손목에는토시를하고있다. 남바위의턱밑에묶은끈의색과여러가지색깔의술장식, 댕기등의끈이옷색과함께한층밝은모습으로표현되고있다. 조르주뒤크로역시우리의남바위가중국이나일본의수예품과는견줄수없다고하며, 털로테두리를두르고붉은술을단아기자기한남바위를극찬하였다. 25) 이와같이여인들의모자는단조로운옷에화사함을주기도하고털장식으로풍요로움을자아내기도하는등고급스러움을느끼게한다. < 도 12> 남바위와토시 -< 코리아 >, 정월초하루나들이, 채색목판화, 15 1/2 11 1/4 24) 새비지랜도어, 신복룡 장우영역주, ꡔ 고요한아침의나라조선 ꡕ, 집문당, 1999, 63 쪽. 25) 조르주뒤크로, 최미경옮김, ꡔ 가련하고정다운나라 ꡕ, 눈빛, 2001, 86 쪽. 218 역사민속학제 27 호

2) 흰옷의 물결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흰옷의 물결은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색이 흰색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백의에 대한 금지령은 계속되었다. 흰색을 금지하게 된 이유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검은 빛깔과 푸른 빛깔을 숭 상해야 알맞다는 말이 도선으로부터 나왔으며, 충렬왕 원년(1275)에 태사국에서 동방은 木位이므로 푸른 빛깔을 숭상해야 알맞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흰모시 로 등거리를 많이 해 입는 것은 金에 해당하며, 이는 木이 金에게 절제를 받는 상징이므로 이 흰 빛깔을 금하도록 하소서 라고 한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익의 ꡔ성호사설ꡕ에는 經에 이르기를, 樂은 제대로 삶을 즐겁게 여기는 것이고 禮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여 흰옷을 즐기고 오 랜 세월 흰옷을 입는 풍속은 예와 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백의 금지령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가 없으며, 단지 木幹이란 말은 후인들이 모아서 만든 말로 의미가 없으므로 백의 착용 금지령은 잘못 되었으며, 백의를 입는 풍속을 고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기자가 흰 빛깔을 숭상하면서도 500년을 누렸고 우리나라 풍속도 천년이 넘도록 향국하였는데, 이것으로 본다면 목이 금에 절제 받는다는 이치가 어디에 있냐고 반 문하였다. 또한 만일 도선이 흰 빛을 금하라고 하였다면 마땅히 중들부터 먼저 따 르게 되었을 것인데 저 중들이 쓰는 흰 장삼과 백건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으 므로 우리나라에서 백의를 입는 풍속은 고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금한다 는 것도 타당치 않다고 하였다.26) 그렇다면 오랫동안 착용해 온 우리의 흰옷을 과연 외국인들은 어떻게 이해 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먼저 알렌은 우리의 옷을 喪服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26) 李瀷, ꡔ星湖僿說ꡕ, 經史門, 白衣. (中略) 爲木幹之說後人見其尙白傳會而爲之也果 如其言白色尙禁器什銅鐵必將並禁而後方可耳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219

개인적으로 상복을 입는 기간이 길며, 국상이 난 경우에는 전 국민이 흰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흰색은 조선의 國色인 동시에 조선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 하고 있는 상주들이 입는 옷의 색깔로 이해하였다. 흰색은 상복의 색깔이며 상복을 입는 기간은 3년이기 때문에 인간의 보통 수명 으로 어느 일정기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상주가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또한 왕실의 누군가 사망하면 전 국민이 3년 상복을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빈번히 닥쳐오는 이런 날에 대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아예 흰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27) 그런데 길모어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조선의 의류 종류는 보통 표백을 안 한 무명과 표백된 모슬린 비단 초의이며 모직물은 없다. 즉 한국인이 주로 착용한 직물은 무명이나 비단종류이며, 주류를 이루는 색상은 그들의 성향이 라 할 수 있는 백색이라고 하였다.28) 특히 조선의 면포는 탁월하였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일본에 수출하는 중요 품목 중 하나였다. 조선에서는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면포의 사용이 절대적이 었으므로 중종 대에는 면포의 대일무역 통제를 여러 차례 단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유황 소목 금은 등을 바치면서까지 끊임없이 면포의 수출을 요구하였던 것으로도 입증된다.29) 무명을 표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우리의 세탁법을 언급하고 있다. 방망이 질을 하는 것은 우리의 비벼 빠는 방식보다 옷감을 덜 손상시킨다.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표백을 위한 세탁방법으로서는 이보다 더 탁월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30) 27) 28) 29) 30) 220 H.N알렌, 신복룡 역주, ꡔ조선 견문기ꡕ, 집문당, 1999, 75쪽. G.W. 길모어, 신복룡 역주, ꡔ서울 풍물지ꡕ, 집문당, 1999, 103쪽. 국사편찬위원회편, ꡔ옷차림과 치장의 변천ꡕ, 두산동아, 2006, 103쪽. G.W. 길모어, 신복룡 역주, 앞의 책, 118쪽. 역사민속학 제27 호

여기에서 흰 옷은 무명옷을 일컬으며, 흰색은 무명 자체의 색깔을 의미한다. 이는 흰색이라기보다는 素色이라고 하여야 옳을 터인데 이것이 세탁과정을 통해 하얗게 탈색이 되는 것이다. 외국인들 중에는 우리나라 여인들의 가장 고단한 일과 중 하나로 세탁을 들고 있으며, 한국의 여인은 빨래의 노예 라고 까지 하였다. 그만큼 빨래는 여인들이 감당해야 할 최고의 노동 중 하나였다. 면포를 공단처럼 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든지 빨래를 해야 했으며, 삶고 방망이로 두드리고, 푸새를 하고, 다듬이질이나 홍두깨를 올리는 과정을 통해 거친 무명은 비로소 윤기가 흐르는 공단과 같은 느낌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외국인들에게 빨래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는 것은 당 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빨래 감은 실을 뽑아 다시 꿰매야 하며, 또 어떤 빨래 감은 부뚜막에서 적어 도 세 번은 삶아야 한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나무판에 억척스럽게 문지르거나 판판 한 돌 위에 놓고 무거운 방망이로 힘겹게 두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것들을 들 고 가 빨래 줄에 널어놓는다. 빨래가 다 마르고 난 뒤에는 다시 다듬잇돌에 올려놓 고 둥근 나무 방망이로 두꺼운 공단처럼 광택이 날 때까지 한없이 두드린다.31) 칼스도 옷을 세 번 삶아 잿물로 깨끗이 한 후 흐르는 물에 씻는다고 하였 다.32) 이와 같은 세탁방법은 흰옷을 더욱 희게 하며 여기에 더해지는 다듬이 질이 옷감에 아름다운 윤기를 내고 천에도 아무런 손상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세탁이야말로 우리 옷을 대표적인 무명이 비로소 공단과 같 은 느낌이 나도록 만들 수 있는 가공법이다. 방망이질을 하는 것은 우리의 비벼 빠는 방식보다 옷감을 덜 손상시킨다.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표백을 위한 세탁방법으로서는 이보 다 더 탁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쌀로 빚은 풀은 옷을 뻣뻣하게 하는 데 사용된다. 31) I.B. 비숍, 신복룡 역주, ꡔ한국과 그 이웃나라들ꡕ, 2007, 60쪽. 32) W.R. 칼스, 신복룡 역주, ꡔ조선 풍물지ꡕ, 1999, 46쪽.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221

특히흥미로운것은그들의다림질방법이다. 우선다리미는나무로만들었으며, 밑바닥이평평한대신둥글고잘막한야구방망이처럼생겼다. 다림질판은평평한널빤지대신에지름이약 3인치에서 6인치정도되는나무롤러로되어있으며, 그주위에옷감을문지른다. 33) 이렇게만들어진흰옷은외국인에게는서로다른느낌으로다가왔다. 프랑스인듀크로는조선인들이입는흰색은어린아이들의천진난만한색상으로여기에서창의적정서가생성되어조선인들의심성이어린아이와같이밝고깨끗하다고하였다. 조선인은하얀색을즐겨입는다. 이것은동심어린조선인들에게가장잘어울리는색이다. 서울어디를가나이러한밝은하얀옷으로인해항상축제같은분위기를느끼게하며, 한국인들도이점을너무도잘알고있다. 만약이들에게하얀옷을못입게한다면천진난만한쾌활함도그만큼반감될것이기때문이다. 34) 또드라네지에르는흰색을한국인의색으로인정하였다. 그는조선의흰색을백옥같이밝은흰색에서거칠고투박한흰색까지마치음색의향연같다고하였다. 이는화가다운흰색에대한감정의다양한느낌을표현한것이라고생각한다. 청색이중국의색이라한다면하얀색은한국의색이다. 조선의고유한전통의상에서는생동감이넘치는백옥같은밝은하얀색부터거칠고투박한흰색에이르기까지아주다양한하얀자연색들을만나게된다. 따라서조선의거리어디에서나볼수있는다양한하얀옷물결이만들어내는하모니는마치음색의향연그자체인것이다. 앞으로세계정세속에서어떠한변화가일어나더라도한국인들은영원토록백색왕국으로불리게될것이다. 35) 33) G.W. 길모어, 신복룡역주, 앞의책, 118 쪽. 34) 조르주듀크로, 최미경옮김, ꡔ 가련하고정다운나라조선 ꡕ, 눈빛, 2001, 57 쪽. 222 역사민속학제 27 호

그러나이와는반대로일본의민속학자야나기무네요시는남녀노소모두한결같이흰옷을입는이유를색채결핍과슬픈애상의미에대한표현으로인식하였다. 그들이입고있는의복은아무런색도지니지않는흰빛아닌가. 그렇지않으면가장약한색감을나타내는연한옥색등이아닌가. 남녀노소모두한결같이흰옷을입는다는것은어찌된연유일까. 이세상에는여러민족이있는데이같은기이한현상은어디에서도볼수가없다. 백성은흰옷을입음으로서영원히상을입고있다. 이민족이겪어온고통스럽고의지할데없는역사적경험이그러한의복을오히려어울리게만들어버리지않았는가. 36) 이처럼똑같은흰옷에대한외국인들의감정을볼때, 서양인은우리민족의정서를때묻지않고활기차며다양성과단순성의조화를이룬다고평하였지만, 일본인은우리민족이겪어온역사적경험을의식하며흰색을바라보았기에서로다른평가를내린것으로보인다. 이처럼사물을보고미를평가하는기준은보는사람에따라다르게평가될수있지만한국의흰옷을역사적맥락에서바라본일본인보다는미적감각이풍부한화가나여행가의눈에비친우리민족의흰색이나흰옷에대한평가가보다객관성을갖는다고생각한다. 3) 색동의축제 외국인의눈에비친우리옷에대한또다른느낌은흰색과대비되는여러가지색깔의색동과, 허리띠, 고름, 주머니이다. 이들은단조롭고무미건조할수도있는옷에활기를넣어축제같은느낌을주었다고하였다. 어른들과달리아이들의의상은그디자인에있어서부모나조부모가입는 35) 백성현 이한우, 앞의책, 33 쪽. 36) 백성현, 파란눈에비친조선을넘어서, ꡔ 코리아스케치 ꡕ, 국립민속박물관, 2002, 195 쪽.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23

옷과다를바가별로없으나대신색깔이더다양하다는특징을갖는다. 여자아이들은넓은분홍장미색깔의치마를발목까지내려오게입고어린남자애들도같은색깔의옷을입는다. 조금큰남자아이들의바지는어른들과마찬가지로통이넓고발목까지내려간다. 갓난아기들의저고리에는색동소매가달려있다. 파란하늘, 회색돌, 혹은빛바랜담을배경으로해서볼때이런색동옷들은아름다운조화를이룬다. 37) 와그너역시남녀를가릴것없이어린이들의옷은매우화사하며, 파랑, 초록, 노랑, 빨강, 자주등무지개색깔이그들의저고리에놀라울만큼조화를이루며채색된다고하였다. 38) 새비지랜도어는직선재단인우리옷은체형을드러내지않을뿐만아니라돋보이게만들어야할체형을오히려볼품없게만드는경향이있다고하였다. 그러나조선사람들은단추의간편함대신에고리장식이나리본을이용해서단순한형태의의복을멋지게표현하였으며, 저고리와조화를이루는옷고름의색상과그구성비율은옷에활기를주었다고평가하였다. 또한로웰도한쪽통으로사람의몸전체가들어갈정도의길고넓은볼품없는바지에화려한색의이술이없었다면한복바지는그저밋밋한통바지가돼버려서그드리워진선의참맛을찾아보기힘들었을것이라고하였다. 헐렁한바지에또하나의활력은대님이다. 이는풍성하고바랑처럼생긴흰색의바지를입고발목에좁고도밝은색깔의대님을쳐서깔끔하게집어넣는다고하였다. 39) 매우넓고단아하게주름져턱밑에서발끝까지이르는바지를입을때에는우선 37) 엘리자베스키스 엘스펫 K 로버트슨스콧, 송영달옮김, ꡔ 영국화가엘리자베스키스의코리아 1920~1940ꡕ, 책과함께, 2007, 41~48 쪽. 38) E. 와그너, 신복룡역주, ꡔ 한국의아동생활 ꡕ, 집문당, 1999, 22 쪽. 39) E. 와그너, 신복룡역주, 앞의책, 22 쪽. 224 역사민속학제 27 호

이빨로그것을문다음술이달린예쁘고긴명주허리띠로허리둘레나그주변에동여매어입는데허리띠는보통오른쪽으로우아하고길게늘어뜨린다. 이과정이끝나면걸어다닐때그물건이바지뒤로처지는것을방지하기위해그부분을걷어올린다. 40) 이외에바지의단조로움을없애주는것으로는주머니가있다. 원래우리옷에는옷에딸린주머니가없다. 그러나로웰은우리의복의특징중별도의주머니가없어도불편할것이없는이유를다음과같이밝히고있다. 너비가약 2피트나되는소매는가히여행가방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고하면서이주머니아닌주머니에상인들은오만가지상품을, 학자들은책과서류를, 관료들은부채따위를넣고다닌점에관심을보이지만별도의작은주머니가담배를피우는사람들에게얼마나유용한지를알려준다. 그것은담배라는것이순간순간갑자기피우고싶은욕망을일으키는요물인데소매속에넣어두면여러가지물건들과뒤섞여찾는데많은시간이걸리기때문에담배만은별도의주머니를착용한다. 41) 대신돈과담배따위는별도의작은주머니를차는데, 이것의색상은보통오렌지색이나파란색이다. 이것이흰색인우리의의상에활기를넣어준다는것이다. 여자들의한복도남자들보다는다양한색상의치마저고리를착용하지만그 < 도 13> 색동, 끝동, 댕기-ꡔ 코리아 ꡕ, 연날리기역시은은한색이다. 여기에옷고름이나끝동, 그리고머리에묶은댕기의빨간색이시선을집중시키며, 저고리와치마 40) 새비지랜도어, 신복룡 장우영역주, 위의책, 60 쪽. 41) 퍼시벌로웰, 조경철옮김, ꡔ 내기억속의조선, 조선사람들 ꡕ, 예닮, 2001, 265~270 쪽.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25

의 단조로운 구성을 바꾸어 놓는다(<도 13>). 4. 외국인이 잘못 본 우리 옷 우리의 복식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기록은 상당히 자세하고 우리 복식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였다. 따라서 우리도 모르고 있었던 우 리 복식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나름의 해석에 수긍이 가는 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외관상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옷의 이미지만을 기록하거나 그 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옷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 서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우리 옷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세계 속에 우리 옷을 제대로 알리는 길이 될 것이다. 다음은 외국인들의 기록 중 우리 옷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삽화가 무엇인 지 파악하여 우리 옷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이해를 갖고자 한다. 1) 흰옷의 진실 우리나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로웰이나 야나기 무네요시 조차도 우리의 흰옷을 상복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喪服은 보통 삼베로 만드는 것으로 그것의 색깔은 흰색이 아니라 옅은 갈색이다. 흔히 상복이라고 하는 것은 삼베로 만들며 상의 경중에 따라 바느질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상복은 세탁을 하는 옷이 아니므로 그것이 흰색으로 보일 수는 없다. 우리 가 흔히 입고 있는 흰옷은 무명으로 처음에는 아주 옅은 갈색이었으나 잦은 세탁으로 인해 흰색으로 탈색이 되고 특히 잿물을 이용해 삶는 과정에서 더욱 희게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의 흰색은 별도의 가공없이 자연스러운 직물 본 래의 색이며 그것을 착용하는 과정에서 세탁을 통해 하얗게 되는 것이다. 외 226 역사민속학 제27 호

국인이바라본흰옷의물결역시가까이에서보면옅은갈색에서백옥같이하얀색에이르기까지농담을달리하며흰색이조선의복색으로자리하고있다고기록한바와같이우리의흰옷은상복과는다른기원을갖고있으므로, 흰옷이상복에서유래하였다는기록은수정되어야한다. 2) 저고리의구성 우리의복식문화에대한외국인들의기록중가장대표적인것은 모자의나라 라고부를만큼다양한남성들의관모와흰색의물결을이루는우리옷의색상에대한관심이었다. 반면에여성의복식에대해서는많은언급을하고있지않으며, 그구성에대해서는거의언급이없다. 다만삽화를통해우리옷의구성을살펴볼수있는데거기에서우리옷에대한많은오류를발견할수있다. 그들은우리옷에대한구성상의아름다움까지는제대로파악하지못하였다. 가장대표적인것은우리옷의상의인저고리이다. 여인들의저고리는길 ( 몸판 ), 소매, 깃, 섶, 끝동, 고름, 동정으로구성된다. 여기에깃과고름, 끝동의색을달리하면단조로운색상에변화가생기고활력을느끼게한다. 또한섶과깃, 소매, 끝동에절개선을넣어구성상의비례를달리함으로써리듬감을주는장점을갖는다. 그런데 < 도 14> 동씨의초상화를보면별도의섶을달지않고다만길의품만늘이다보니저고리의모습이어색하고안정성이없어보인다. < 도 15> 는깃과고름의색을달리하여단순한저고리구성에변화를주고있음이확인된다. 그러나소맷부리부분에퍼프를집어넣어서양의블라우스같은느낌이들게표현하였다. 이는보기에따라서는소매를접어입어주름이생긴것과같은표현이라 < 도 14> 저고리의구성 -ꡔ 코리아 ꡕ, 컬러에칭, 11 1/2 15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27

고 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옷은 직선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서양의 블라우스와 같이 동그스름한 주름 은 생기지 않는다. 만약 접어 입은 것이라면 그 길 이 상 소매 끝을 한 번 걷어 올린 것으로 당시의 소 매통이 좁은 것을 감안할 때 퍼프와 같은 느낌보다 는 좀 더 직선적인 형태의 주름으로 표현해야 균형 잡힌 저고리 모양이 나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우리의 한복이 볼품없고 단조 로운 구성이라고 기록한 것은 우리옷의 구성상의 특 <도 15> 저고리의 구성 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3) 신발에 대한 오해 외국인들의 신발에 대한 기록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마도 관리들이 궁 안에서 신었던 靴에 대한 기록이다. 길모어는 관리들이 등청할 때 왜 어두운 색깔의 화를 신는지 궁금해 했다. 로웰은 고종을 알현하기 위해 궁을 방문하 고 난 후 장화를 신는 이유를 옷에 빗물이 튀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 라고 하였다. 포장이 안된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진흙투성이였는데 그런 진흙투성이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목이 긴 구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발목이 없는 혜 를 신었을 경우에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흙탕물이 튀겨 관복의 경건함을 흐트려 놓 았을 것이라고 하였다.42) 로웰의 견해는 약간의 일리는 있으나 화의 유래를 살펴보면 꼭 거기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화는 장화와 같이 신목이 높이 달린 신을 말한다. 이는 防寒 42) 퍼시벌 로웰, 조경철 옮김, 앞의 책, 예닮, 2001, 131~133쪽. 228 역사민속학 제27 호

과 防浸에 적당한 북방계의 신발로 삼국시대부터 신었던 우리 고유의 신발이 다. 이는 재료와 형태에 따라서 그 명칭을 달리한다. 조선시대에는 흑피화, 목 화, 협금화, 수화자, 백피화, 초록화, 기자화, 오피화 등이 있어 신분이나 경우 에 따라 구분하여 신었다.43) 따라서 화는 북방 기마민족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사냥을 하거나 말을 탈 때 신체를 보호하고 넓은 바지부리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발목이 높 은 화 속에 바지부리를 집어넣음으로써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수단에서 출발하였다. 이처럼 화는 관리들의 常服에 착용하여 활동성을 높여, 일의 능 률을 올리려고 하는 데 보다 더 큰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화의 착용을 젖은 땅의 문제라기보다는 몸을 간편하게 하여 활동성을 갖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 하였음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 5. 맺음말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복식문화에 높은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기록과 삽 화를 통해 우리의 복식문화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눈을 통 해 우리복식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복식문화를 세계화시 키기 위한 객관성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개항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은 교육자, 외교관, 학자, 선교사 및 화가 등으로 다양한 직업을 갖은 인물들로 그들이 바라 본 우리의 복식문 화 역시 그들의 경험과 미의식 등에 따라 때로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 고, 때로는 동일한 감정으로 우리 옷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이는 현대의 우리에게 그들의 눈을 통해 우리의 복식문화를 재인식하고 우 리복식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 옷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있었음도 확인된다. 43) 김영숙, ꡔ한국복식문화사전ꡕ, 미술문화, 2004, 412~413쪽.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229

개항기우리나라를방문한외국인들의눈에비친우리나라사람들의모습은일본이나중국에비해좋은체격조건을가진사람들로인식되었다. 거기에크고높은모자를쓰고아래위로길게입은포나바지저고리의흰색은우리나라사람들의키를더커보이게하고훨씬더매력적으로보이게했다. 거기에흰색과대비되는여러가지색깔의고름, 허리띠, 대님, 주머니, 술장식등은흰색의물결에포인트를주어활기차고축제와같은분위기를느끼게하는데전혀손색이없었다. 그러나우리민족의복색이라고할수있는흰색을상복이라고인식했던점은우리옷에대한오해라고생각한다. 이는보는사람에따라흰색이슬픈애상의미를나타내기도하였지만흰색이갖는밝고화려한느낌은오히려유럽인들에게는축제와같은느낌을주기도하였을뿐만아니라상복의소색과우리옷의흰색은그기원을달리하고있기때문이다. 또한그들은겉으로보이는이미지에만치중하였을뿐우리옷의구성이갖는특수성에대해서는제대로이해하지못하였다. 특히저고리는깃, 섶, 고름, 소매등이구성상의비례를표시하기도하고색상을달리하기도하면서신체의아름다움을표현하고있지만, 그러한구성성분에대한올바른인식이부족하였다고생각한다. 또한외국인들이우리복식의유래에대해깊이있는연구를하지못한상태에서기록한몇몇의기록이나삽화는혼선을초래하기도한다. 따라서앞으로우리의복식을세계에알리고우리복식문화를더욱발전시키기위해서는외국인의눈에비친아름다움뿐아니라우리복식이갖는특징을제대로파악하는것이우선되어야하며, 이를바탕으로폭넓은활용이이루어지길기대한다. [ 주제어 ] 개항기, 외국인, 갓, 갈모, 아얌, 조바위, 남바위, 흰옷, 색동 230 역사민속학제 27 호

참고문헌 1. 자료 李瀷, ꡔ星湖僿說ꡕ. 2. 저서 및 논문 E.와그너, 신복룡 역주, ꡔ한국의 아동생활ꡕ, 집문당, 1999. G.W. 길모어, 신복룡 역주, ꡔ서울 풍물지ꡕ, 집문당, 1999. H.N알렌, 신복룡 역주, ꡔ조선 견문기ꡕ. 집문당, 1999. L.H.언더우드, 신복룡 최수근 역주, ꡔ상투의 나라ꡕ, 1999. W.E.그리피스, 신복룡 역주, ꡔ은자의 나라 한국ꡕ, 집문당, 1999. W.R. 칼스, 신복룡 역주, ꡔ조선 풍물지ꡕ, 1999. 국립민속박물관, ꡔ코리아 스케치ꡕ, 2002. 국사편찬위원회편, ꡔ옷차림과 치장의 변천ꡕ, 두산동아, 2006. 김영숙, ꡔ한국복식문화사전ꡕ, 미술문화, 2004. 까를로 로제티, 서울학연구소 역, ꡔ꼬레아 꼬레아니ꡕ, 숲과 나무, 1996. 백성현, 파란 눈에 비친 조선을 넘어서, ꡔ코리아 스케치ꡕ, 국립민속박물관, 2002. 백성현 이한우, ꡔ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ꡕ, 새날, 2006. 버라토시 벌로그 베네데크, 초머 모세 역저, ꡔ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ꡕ, 집문당, 2005. 새비지 랜도어, A.H., 신복룡 역주, ꡔ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ꡕ, 집문당, 1999. 엘리자베스 키스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송영달 옮김, ꡔ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 아 1920~1940ꡕ, 책과 함께, 2007. 온양민속박물관, ꡔ조선시대의 관모ꡕ, 1988. 이민주, 외국인의 눈에 비친 개항기 복식문화, ꡔ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ꡕ 제7권 1호, 2005. 이사벨라 버드 비솝, 이인화 옮김, ꡔ한국과 그 이웃나라들ꡕ, 살림출판사, 2007. 조르주 뒤크로, 최미경 옮김, ꡔ가련하고 정다운 나라ꡕ, 눈빛, 2001. 카르네프외 4인, 김정화 옮김, ꡔ러시아 장교 조선이야기, 내가 본 조선 조선 사람들ꡕ, 가야넷,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231

2003. 퍼시벌로웰, 조경철옮김, ꡔ 내기억속의조선, 조선사람들 ꡕ, 예담, 2001. 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ꡕ 232 역사민속학제 27 호

Our Costume Culture seen by the Foreign Record and Illustration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Lee, Min-Joo (Researcher of SungKyunKwan University) This paper aims at observing the foreign cognition of the Korean physical condition and clothing & ornamental culture through the foreign record and illustration who have visited Korea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and rediscovering the beauty of our clothing & ornamental culture. Also, it is expected to find what is our clothing and ornamental culture which was misjudged by the foreigners in that course, and to be the motive informing it correctly. The initial record of our clothing & ornamental culture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is the navigating time of the MacLeord and of Basil in 1816. Later, the foreigner which have the visited Joseon visited Netherland, England, U.S.A., France, Russia, Republic of Hungary, including Spain, and their profession is varied of diplomatic, scholar, traveler, doctor, soldier, painter, missioner, etc. Nevertheless, our clothing and ornamental culture which they felt beautiful greatly made a general classification of hat and white dress, and cloth with stripes of many colors. First, the foreigners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called Korea the country of hat. This means that they didn t stop to exclaim of the men s traditional cylindrical Korean hat (gat)and rain cover for a hat(galmo) but also the women s hat, and to mention the hat(chobawui), the long silk tail attached to a women s cap(ayam) and fur-lined hood (nambawul) as to have in Joseon. Second, the foreigners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called our dress the white 개항기외국인의기록과삽화를통해본우리의복식문화 233

wave. The feeling of white color is said the same as the banquet of timber according to the extent of textile and fulling cloth by pounding, laundry from the bright white color as white gem to crude white color. Third, the foreigners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called our clothing & ornamental culture festival of cloth with stripes of many colors(sackdong). Specially, cloth with stripes of many colors and belting, breast-tie, and pocket which is of vary color in harmony with white color, and is monotonous & insipid is said to give our dress the vigor and the same feeling as festival. Besides, the foreigners in the opening time of a port evaluated that the hat made the height bigger in harmony with the high hat, the characteristics of which our clothing and ornamental culture have, and it made the Koreans more attractive than the Chinese and Japanese overcoming the physical condition of Koreans with luxury and vigor so that tassel & cloth with stripes of many colors which decorated women s hat are not felt the clothing frame. However our clothing and ornamental culture can be overlooked the foreigner has misjudged. The wanting part to recognize newly with the effort that informs the world our dress is the point of which are our white clothing are recognized mourning clothes was wanting the understanding of frame of our clothing; and was misunderstood the origin of high boots. [Key Words] opening time of a port, clothing and ornamental culture, record and illustration, hat, white clothes 논문투고일 : 2008 년 5 월 10 일 / 논문수정일 : 2008 년 7 월 5 일 / 게재확정일 : 2008 년 7 월 22 일 234 역사민속학제 27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