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강석승 * 1. 서언 2. 남북한문화교류관및정책의비교 3. 남북한문화교류의추진현황 4. 남북한문화교류의동질성회복방안 5. 결언 요약문 동족인남북한간의상이한정치제도와이념은남북사회구성원의행동양식과규범 사고방식 역사해석 삶의가치 일상생활에이르기까지광범위하게이질성을심화시켜왔다. 이런과정에서 80 년대말 남북교류협력법 이채택되고, 2000 년의남북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을채택함에따라남북간사회문화부문 * 姜錫勝, 통일부
112 _ 국학연구제 10 집 의교류 - 협력은과거와는양적으로는물론이고질적으로도괄목할만한변화를가져오게되었다. 그러나이런남북한간의교류협력과정에서는여러가지문제점이발생하게되었는바, 이중에서도일부계층에서나타나는 한건주의 식의과도한망상을가지고행하는교류협력은자제해야할것이다. 결국남북간의문화부문의접촉과교류, 협력을증대시키기위해서는보다장기적인관점에서 민족공동체 를건설해나가는방향으로남북간이질성을발생시킨요소들을되짚어보면서남북한문화의 다름과차이 를인정하는가운데서로를이해하고동질성을회복해나가는자세를가지는것이필요할것이다. 주제어 : 문화교류관, 문화정책, 문화예술 ( 혁명 ), 이데올로기문화, 목적문화, 조화와상생 1. 서언 동족인남북한의상이한정치체제와경제제도는그들사회구성원의행동양식과행동규범 사고방식 역사해석 삶의가치 일상생활에이르기까지광범위하게이질성을심화시켜왔으며, 이런이질적인특성은문화교류부문에도거의그대로투영되어통일과정에큰장애요인으로작용해왔다. 즉남북한은이런분단상태에서상이相異한정치체계와이념속에서 공존아닌공존 을해온지도어언반세기가훨씬경과하고있다. 이러한과정에서지난 1985 년 9월에성사되었던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단및예술공연단교환방문 은남북간에실질적으로있었던첫번째문화예술교류라는상징적의미를갖게되었고, 바로이를시발점으로하여크고작은행사가 교류 라는이름으로남한과북한땅혹은제3국에서간헐적으로이어져왔다. 그러나이들교류의대부분은남북의성원들이공동으로참여하는학술세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13 미나나혹은합동조사단구성같은형태를제외하고는엄밀한의미에서쌍방이주고받는의미의교류라고하기보다는일방적으로접촉하는 짝사랑의형태 였다고보아야할것이다. 특히남북한의통합과정을각분야에서이루어지는남북의제도적통일과내적 심리적통합을포함한다고볼때, 문화분야의교류는분단체제로인해형성된제도적차이와이질적특성을이해하고민족공존의식을확대시키는데결정적으로기여하는것이라할수있다. 다행히남북한은정상회담에서의공동선언 (2000. 6. 15) 을계기로당국간남북교류의활성화가이루어지고있는가운데무엇보다도북측이예전에비해매우전향적前向的인자세로나오고있기때문에남북한간문화교류와협력은가시화되고있다. 본고에서는이런남북관계의현실과관련하여그동안이루어져왔던남북문화분야의교류실상과문제점및동질성회복방안을모색해보기로한다. 2. 남북한문화교류관및정책의비교 1) 한국의문화교류관및정책개관우리사회는지식기반사회로이행하면서지식창조형문화산업분야가핵심적지식산업으로부상하고있으며, 특히문화부문이창의성과유연성의원천으로인정되면서세계화와정보통신기술의발달에따라세계각국및문화권간의문화교류는더욱촉진되고있는것이작금의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문화정책의대상이되는문화 1) 는순수문화예술과문화산 1) 우리나라의문화정책에있어서문화에대한정의는 문화예술진흥법 제 2 조에 문화예술이라함은문학, 미술 ( 응용미술을포함 ),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
114 _ 국학연구제 10 집 업 방송 광고 멀티미디어콘텐츠관련산업까지포함하는, 말하자면예술과문화산업을지원하고관리하는정책을펴고있다. 이중문화분야는음악 연극 무용등의문화예술활동과박물관 미술관등각종문화시설, 전통사찰과향교, 국가적 세계적유산가치가있는문화재관련부문이다. 또한문화산업관련분야는영화, 음반 비디오및게임, 출판등의분야이고, 언론 방송분야는신문 잡지 통신등의정기간행물과방송분야이며, 관광분야는관광사업 관광진흥 관광시설등이다. 잘알려져있다시피우리나라의문화에대한국가정책은 1948 년 대한민국 정부가수립되면서부터약 50 여년의역사를갖고있다. 1950 년대의문화정책은전쟁의소용돌이와이후전후복구사업과반공주의反共主義속에서어떤구체적이고생산적인형태를지니지못하였으며, 이런가운데문화정책의이념과내용은뚜렷한정책이나법적 제도적장치도존재하지않았다. 이런가운데 1970년대초까지정책의대상이나영역은전통문화유산의보존관리 문예진흥이라는역할에제한되었으며, 문화와문화유산에대한현대적개념이정립된것은 1970년대중반에이르러 제1차문예중흥계획 (1974~1978) 이시행되면서부터이다. 이때까지문화예술을담당하는부서는공보처, 문교부, 공보부를거쳐 1968 년발족한문화공보부에서주로담당하였다. 1980 년대의제5공화국은문화진흥의의무를헌법에명기하면서문화에대한적극적인진흥정책을수립하는가운데 제6차경제사회발전 5개년문화부문계획 을통해문화를국가발전의원동력으로삼기위해서문화복지, 문화적주체성확립, 문화창조능력활성화, 문화의국제화를추진하였다. 이후의 문민정부 는세계화속에서문화창조력의제고와문화환경개선, 문화산업의개발에중점을두어추진하였다. 문및출판 " 을포함하고있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15 이러한문화정책은문화재중심의행정기 2) ( 제3, 4공화국 ), 예술진흥의행정기 ( 제5, 6공화국 ), 문화산업중심행정기 3) ( 문민정부 ) 를거쳐왔다. 그리고 국민의정부 를거쳐현재의 참여정부 에이르러문화정책의방향은문화관광부관련정책의과제로제시된 수준높고다양한문화욕구충족 이라는항목에나타난내용들을통해잘나타나고있다. 즉이곳에서의문화관광정책이란 지원은하되간섭은않는다. 는원칙하에 문화의힘 으로 문화가중심가치 가되는지식정보사회를추구하며, 문화주의를통한 성숙한민족공동체 를형성하고, 문화정체성과보편성의조화로 열린문화 를구현한다는지향점에서도잘드러난다. 한편문화산업에대한제도적 재정적지원을강화하고문화활동에장애가되거나국민생활의불편을주는각종규제를과감하게철폐하는등대폭적인규제개혁이추진되었다. 특히공공부문의구조조정과정에서문화관광부및소속기관과산하단체들도변화하는문화환경에적응하기위한유연하고효율적인조직을만들어장기적인문화발전을위한초석을닦아놓았다. 2) 북한의문화교류관및정책개관북한에서 문화예술 4) 이라는용어는문학을비롯하여음악 미술 공연예술등모든예술장르를포괄하는용어로서, 북한은이문화예술을 근로대중을정치 사상적으로교화하는수단 이자 온사회를혁명화 노동계급화하 2) 제 3, 4 공화국의문화정책의이념지향은 근대화 라불리는경제발전을꾀하던시기였다. 모든분야가경제발전을위한도구로간주되던시기였던만큼문화에대한인식역시미약하였다. 3) 문민정부의문화정책기조는문화발전을국가발전의두축의하나로인식하고문화창달을통해질적으로풍요로운신한국건설에두었다. 4) 북한에서는이용어를 문학예술 로표현하고있는바, 본고에서는용어의통일성을기하기위하여이후부터는 문화예술 로통일화하여표현하였다.
116 _ 국학연구제 10 집 는데복무하는수단 으로규정함으로써기본적으로목적주의예술관을가지고있다. 이러한문화관에입각하여북한에서는문화의본질적특성과이념을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으로보고있는데, 원래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은마르크스-레닌의문예관으로부터비롯된예술의기본이념이지만, 북한에서는주체사상이대두된이후사회주의적사실주의를주체문예이론으로대체하고그내용을변형하여문예정책의기본으로삼고있다. 북한의문화에서 당성 이란 당에대한끝없는충실성 5) 을의미하는것으로당성의이념에따라문화는 당의노선과결정을관철하기위하여모든것을다바쳐투쟁 6) 하는모습을보여준다. 그러나북한에서는문화의세가지본질중에서 당성 을 로동계급성의가장철저한표현이며인민성의가장높은형태 로규정하여당성을노동계급성이나인민성보다우위에놓고당성을 당과수령에대한충실성, 당과수령의혁명위업에대한철저한복무성 으로규정함으로써종국적으로는김일성유일사상체계로모든문화를수렴하고있다. 이러한북한의문화분야는다른분야에서와마찬가지로많은변화과정을거치면서북한식으로형성되어왔다. 즉 1945년해방직후부터 1960년초반에걸친 격동기 와 6 25 전쟁, 그리고전후의복구사업, 김일성의우상화및신격화, 최근의김정일우상화등으로이어지면서일련의변화과정을거쳐왔는데이러한과정은북한의사회상을그대로나타낸것임에틀림없다. 이후인 1956 년 8월에는친소세력과추종세력을숙청 제거하면서북한은김일성의 1인독재체제를강화함에있어작가들을통제하고활용하여야할필요성에따라문화분야의새로운통일조직을만들기에이르렀는데, 1961 년 5) 김일성저작집 35 권, 조선로동당출판사, 1987, 378 쪽. 6) 앞의책, 1987, 378 쪽.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17 3월 2일 조선문화예술총동맹 ( 이하문예총 ) 이바로그것이다. 이때부터북한의문예정책은작품창작에있어 사회주의 사실주의창작방법의준수, 당성 계급성 인민성원칙의관철, 당의노선과정책에철저히의거 하여야한다는것을절대적조건으로하고있었다. 1970년대에들어김일성 김정일의세습체제의확립문제가대두되자, 북한은김일성가족들을우상화하는작품의생산을최우선적인과제로제기하였다. 한편주체사상의형성과정을김정일이주도했듯이주체문예이론역시김정일에의해형성된문예이론인데, 이는기본적으로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문예관, 기본이념, 창작방법등을바탕으로하고있으면서종국적으로는모든문화의기본원리를 김일성유일사상 으로종속시키고자하는이론이라할수있다. 따라서주체문예이론은 문화예술사업에대한수령의유일적령도를철저히실현 하고 당의문예정책관철과당의유일사상이정확히구현된문화예술작품을만들어낼것 7) 을기본적인목표로삼고있다. 주체문예이론은주체사상의기본원리인 공산주의적인간학 을기초로하고사회주의적사실주의의기본이념인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 을김일성유일사상으로종속시키고있으며이를바탕으로전형화론 8), 종자론 9), 속도전 10) 등을기본이론으로내세우고있다. 한편북한이문예활동에크게관심을나타내게된것은김정일의등장 7) 주체사상에기초한문예리론, 사회과학출판사, 1975, 20 쪽. 8) 전형화론이란공산주의적인간을기본주인공으로중심에내세우고그의사상성과생활을형상화하는것을말하는데공산주의적인간이란 당과수령에대한끝없는충성심 을지니고 주체의혁명위업의승리를위하여모든것을다바쳐투쟁하는주체형의인물 을말한다. 9) 종자론은 1970 년대부터도입된이론으로서, 종자란 소재와주제, 사상을유기적인연관속에서하나로통일시키는작품의기초이며핵 으로규정하고있다. 10) 속도전이란예술창작에서 모든력량을총동원하여창작사업을최대한으로빨리밀고나가면서작품의사상예술적질을가장높은수준에서보장하는것 이다.
118 _ 국학연구제 10 집 시기부터로간주되고있는데, 실제로문화예술혁명에관련된사업을실천하기위한많은작업이김정일의직접적인지도하에진행되었다. 그리고이시기를전후해서노동신문에서는 깊은통찰력으로문화예술혁명을일으키는데대한방침을제시하고그것을현명하게이끌어주는영도자 로서김정일을치하하고있다. 11) 이와같이북한의문화예술은김정일의비상한관심아래오늘날까지통제되고있다. 북한의문예정책에있어달라진것을굳이지적한다면, 당에의해철저하게통제되어왔던북한의문화예술이김정일에의해보다기대치가높아져가고있는것이아닌가보여진다. 12) 3) 남북한문화관및정책의이동점비교남북한사회는제각기특유한문화목표와함께그목표를달성하는제도적수단을가지고있는가운데문화의향유방법등에서엄청난변화를가져왔다. 즉우리나라는인간의이성 자유 평등그리고복지의실현을위한사회개방적문화목표위에인본주의를바탕으로기본적인가치체계의확립을추구해온반면, 북한은유물사관과주체사관의전제하에물질주의를바탕으로하는가치체계를추구하면서실제로는김일성및김정일이라는특정개인에대한 11) 김정일은 1993 년 4 월 30 일문화예술관계자와의좌담회장에서 우리혁명의요구와시대정신을반영한훌륭한작품을더많이창작하는것이문화예술부문창작가 예술인들앞에나서는중요한임무 라고강조하며, 문화예술의모든분야가보다새롭고높은단계로발전해나가는데있어지침이되는과업과방도를제시한바있다. 신동아, 1995 년 1 월호별책부록, 329 쪽이하참조. 12) 김정일이특히관심을나타내고있는분야는영화이다. 그것은 1978 년신상옥과최은희를납치한사건으로부터쉽게짐작할수있겠지만, 그자신이 영화예술론 이라는저서를집필하여영화의이론화에힘썼다는것, 그리고 1 만 5 천여편의영화필름을보유하고있는등영화에대해서는북한에서제 1 인자인것이며, 이에대해서거의광적인취미를가지고있다고한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19 충성을절대가치로강요해옴으로써문화목표와정책, 수단및향유방법에서대조적인양상을띠게되었다. 즉북한의모든문화활동은당정책의구현, 공산주의인간개조, 노동의욕제고등에목표를두고내용과기본방향을사회주의적리얼리즘의구현과사상 문화혁명수행에중점을두고있는것이다. 이와같이북한의문화는공산체제와당정책을정당화 합리화하는수단이됨으로써이데올로기문화 목적문화 정치문화로표현되고있으며, 이것은문예창작활동이당의통제하에계획적으로이루어지고있다는사실뿐만아니라, 집단적창작활동과주제별작품제작이할당책임하에이루어지고있다는사실에서도나타나고있다. 그러나이러한이질화과정에도불구하고남북한주민의가치관과습성에는 5천년동안내려온한민족만의특유한기층문화가있기때문에그밑바탕에서공통점과동질성을어느정도유지하고있는점을간과해서는안될것이다. 이는서로유기적이고발전적인공존의가능성을보여주는희망적인단초라하겠는데, 인류의보편타당한가치와인간본성에배치되는정치교화를통한사상혁명은일정한한계를지닐수밖에없다. 3. 남북한문화교류의추진현황 1) 시대구분의필요성남북의문화분야교류는 7.7 특별선언 과그후속조치인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이마련되고, 1990 년에는 남북문화교류 5원칙 발표,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과 남북협력기금법 이제정됨으로써획기적전기가마련되었다. 이후인 1991 년에는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 가채택되고, 1992
120 _ 국학연구제 10 집 년에는 남북교류 협력공동위원회구성운영에관한합의서 에의거, 남북교류 협력공동위원회 가발족되었으며, 이어서 부속합의서 가채택 13) 됨으로써남북교류에대한기대를갖게하였다. 남북한문화교류가본격적으로활성화되기시작한것은 1998 년 국민의정부 가출범하면서부터라고할수있는데, 노무현대통령하의 참여정부 하에서도대북포용정책 ( 햇볕정책 ) 에바탕을둔 평화번영정책 을추진하고있다. 이러한평화번영정책은반세기이상의대결과반목을거듭해온남북관계를고려하여성급하게조속한통일을추구하기보다는평화정착의기반위에서남북간의화해도모와협력을증진하는데주력하는것이보다합리적이라는인식에바탕을두고있다. 특히지난 2000 년 6월의남북정상회담은우리민족의번영과민족문화의발전에장애가되었던분단구조를청산하고평화통일을향한새로운시대를열어가는민족사의대전환점의계기가되었다. 14) 이정상회담을계기로정부당국이대규모교류 협력사업에직접당사자로나서고있어, 여러가지정황으로볼때북한은북한대로문화교류 협력의확 13)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은 협력사업 의범위에문화 체육 학술 경제등을포함시키고있으며 ( 제 2 조 ), 1997 년제정된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처리에관한규정 은 사회 문화분야협력사업 을 남한과북한의주민이합의또는계약에의하여공동으로행하는문화, 체육, 학술등에관한제반활동으로서, 민족의동일성회복과사회 문화공동체의형성을위해남한 북한또는제 3 국에서기획 실시및사후처리하는일련의행위 라고규정 ( 제 3 조 ) 하고있다. 그러나이러한성과에도불구하고, 남북간정치 군사적인경색과까다로운절차 요건등으로인해남북문화교류 협력은기대만큼활성화되지못하였다. 14) 정상회담이후의모든남북문화예술교류는정상간의 남북공동선언 과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성실히살려가는데기본을두고진행될것으로예견된다. 남북문화교류의당위성과기본방향은이미기본합의서제 16 조 남과북은과학, 기술, 교육, 문화, 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신문, 라디오, 텔레비전및출판물을비롯한출판, 보도등여러분야에서교류와협력을실시한다 와제 22 조 남과북은국제무대에서경제와문화등여러분야에서서로협력하여대외에공동으로진출한다 에서제시된바있으며, 남북정상의공동선언문네번째항목에서도문화교류와협력을활성화하기위한남북공동의의지가확인되고있다. 일단남북간의이러한약속을통해문화예술교류의투명성과국민적공감대를확산하고지속성과호혜성을담보함으로써통일순기능적역할을강화해나갈수있는길이마련된셈이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21 대를적극수용하고있는것으로보인다. 15) 즉이에따른귀결로서이제정부에서사회문화단체에이르기까지, 대학에서부터유통업체나개인에이르기까지북한과의문화교류 협력사업을추진하고있는것이다. 이러한측면에서볼때그동안이루어졌던남북한간사회문화교류는남북정상회담을기점으로나누어그현황을살펴볼수있다. 2) 정상회담이전의교류현황 실제로 1985 년 9월, 분단이후최초의남북간예술교류 ( 제1차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및예술공연단교환방문 ) 와 90 년 10 월과 12 월남북정부당국간합의에의한민간차원의교류 ( 범민족통일음악회, 90 송년통일전통음악회 ) 등이이루어진이래, 엄격한의미에서남북을왕래하는형태의예술교류는 1998 년 5월 ( 리틀엔젤스예술단평양공연 ) 까지거의이루어지지않았다. 그러나 국민의정부 출범이래대북포용정책의영향으로남북한간문화교류협력의규모는큰폭으로확대되고있으며, 참여정부 출범이후에도이런성향은예외없이계속되고있다. 즉지난 1989년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제정이래지난 2000년 6월말까지의북한을방문한인원수는 7천여명으로 ( 금강산관광객 20만여명제외 ) 나타났으며, 이는 국민의정부 가출범하기직전인 1989 년부터 1997 년까지총방북인원 2,405 명을고려한다면아주짧은기간내에급증한수치이다. 이중 1989 년이후정상회담개최직전인 2000 년 6월까지문화관련주요분야별로북한을방문한건수및인원수는문화예술분야 26 건 (368명), 체육 91건 (846명), 종교 39 건 (187명), 언론출판 35 건 (274명), 관광 1,008 건 (8,172명) 등으로관광 15) 현재의남 북한과는비교할수없을정도로교류가잦았던구동 서독에있어서도 170 년첫정상회담은양독간인적 물적교류확대의기폭제가된바있다.
122 _ 국학연구제 10 집 분야가가장많은것으로나타나고있다. 한편문화관련주요분야별북한주민접촉현황을살펴보면, 1989 년이후 2000 년 6월까지총 6,934 건에 14,691 명에이르며, 이를주요분야별로살펴보면문화예술 99 건 (352명), 체육 47 건 (508 명 ), 종교 84 건 (496명 ), 언론출판 86 건 (309명 ), 관광 12건 (61명) 등이다. 민간차원의문화예술교류가활성화될기미를보이기시작한것도현정부가들어선이후의일이다. 즉대북포용정책의영향으로남북교류 협력규모가큰폭으로확대되어사회문화분야협력사업의경우, 관련법法이제정된이후 국민의정부 출범직전까지 7년 7개월 ( 90. 8. 1~ 98. 2. 24) 동안에는협력사업자와협력사업에대한승인이각각 4건 ( 그중 1건만이문화예술분야 ) 에불과했으나, 국민의정부 출범이후 1년 10개월 ( 98. 2. 25~ 99. 12. 31) 동안의승인건수는협력사업자 13 건 ( 문화예술분야 10 건 ), 협력사업 11건 ( 문화예술분야 7건 ) 에이른다. 특히 국민의정부 출범이후에는제3국에서의접촉위주로이루어지던사회문화교류가이후에는평양 서울등한반도내에서직접이루어지기시작했다. 이를좀더구체적으로살펴본다면, 1999 년한해동안의사회문화분야방북은신청 45 건 (384명), 승인 42 건 (367명), 성사 37 건 (329명) 의실적을나타냈다. 특히 1999 년에는금강산국제그룹이주관하는 제1차원로화가북녘산하기행 을통해우리화가 10 명이평양 묘향산 백두산을방문하였고, 남북대중가수합동공연인 2000년평화 친선음악회 평양공연과 민족통일음악회 평양공연이개최되어우리대중음악인들이북한을다녀왔다. 또한 민주노총 과 조선직업총동맹 이 남북노동자축구대회 평양경기를, 현대와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 약칭아 태 ) 가 제1차통일농구경기대회 평양경기를개최하여우리측관련인사들의방북이성사되는등문화예술 체육등각분야에서의북한방문이지속적으로이루어졌다. 문화예술분야의주요접촉사례로는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의북한아리랑음반제작협의 (1999. 7. 13, 동경 ), 비엔날레조직위원회 2000년광주비엔날레북한특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23 별전추진을위한협의 (1999. 10. 23~26, 북경 ) 등이있다. 2000 년도에접어들어남북한간사회문화교류 협력은상징성이큰대형이벤트를중심으로활성화되는추세를보였으며남북한주민들의왕래를수반하는행사들이잇따라성사되었고, 그동안중단되었던북한주민의남한방문도재개되어문화예술공연단의초청행사가활발히이루어졌다. 2000년도북한주민의남한방문은총 706명으로 1999년에비해큰증가세를보였는데, 이는 1999 년 제2차통일농구경기대회 를위한서울방문단 62 명의 10 배에달하는수치이다. 이중평양학생소년예술단 (102명), 평양교예단 (102명), 북한교향악단 (132명) 등문화예술분야에서의남한방문인원은 336 명으로이산가족분야의 287명, 남북회담의 83 명보다많았다. 16) 2000년 10월말기준으로분야별주민접촉을보면, 언론 출판 49 건 (233명), 문화예술 26 건 (108명), 종교 15 건 (101 명 ), 체육 11 건 (38명), 과학 환경 11 건 (22명), 교육 학술 11건 (20명) 으로집계되어교육 학술, 종교, 문화예술의비중이컸던예년과달리 2000 년에는체육과언론 출판분야의남북한교류 협력이크게증가했다. 한편 2000 년도예술공연분야에서의남북교류 협력은북한공연단의남한방문으로특징지워지는데, 주목할점은평양학생소년예술단서울공연 (5. 24~27) 과평양교예단서울공연 (5. 27~6. 11) 이성사된것이다. 또한북한의교향악단이서울을방문 (8. 18~24) 하여북한의고급문화를남한대중들에게선보였으며, 남북교향악단합동연주회에도참가하였다. 1985 년이후남북정상회담이전의남북한간의문화예술과관련한주요교류및협의내용을정리해보면 < 표 1> 과같다. 16) 2000 년도방북인원은 7,280 명으로 1999 년 5,599 명에비해 30.0% 증가하였다. 이는전반적인남북관계개선에따른현상으로 1989 년부터 2000 년 12 월 31 일까지방북인원 18,601 명중국민의정부출범이후 (1998~2000) 방북인원이 16,196 명으로총방북인원의 87.0% 에달하고있다. 2000 년의경우사회문화분야의방북은 1999 년 329 명에서 2000 년 674 명으로큰폭의증가율을보이고있다.
124 _ 국학연구제 10 집 < 표 1> 1985 년 ~ 정상회담이전문화예술관련주요교류및협의내용 1985. 9. 21~22 1990. 8. 1 1990. 9. 4 1990. 10. 9~13 1990. 10. 14~24 1990. 10. 21~25 1990. 12. 8~13 1991. 4. 24~ 5. 6 1991. 6. 4~ 6. 30 1992. 2. 19 1993. 1. 29 1998. 5. 2~12 1998. 9. 3 1998. 10. 31~11. 7 1998. 11. 18 1999. 8. 9~ 8. 14 1999. 9. 27~10. 1 1999. 10. 22 1999. 12. 5 1999. 12. 20 1999. 12. 22~25 2000. 3. 10 2000. 5. 26~28 2000. 6. 4~10 2000. 6. 13~15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및예술공연단교환방문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제정 시행남북고위급회담개최 ( 서울 ) 남북통일축구대회개최 ( 평양 ) 범민족통일음악회개최 ( 평양 ) 남북통일축구대회개최 ( 서울 ) 남북송년음악회개최 ( 서울 ) 제 41 회세계탁구선수권대회단일팀구성참가 ( 일본지바현 ) 제 6 회세계청소년축구대회단일팀구성참가 ( 포르투갈리스본 )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남북기본합의서 의 제 3 장남북교류 협력의이행과준수를위한부속합의서 발효 (2. 19) 남북교류 협력공동위원회구성 운영에관한합의서 발효 (5. 7) 북, 모든남북당국사이의대화를재개할의사가없음을선언리틀엔젤스공연 ( 평양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결성 윤이상통일음악회 개최 ( 평양 ) 금강산관광개시 ( 동해 장전 ) 민주노총축구단, 남북노동자축구대회참가 ( 평양 ) 현대농구대표단남북통일농구대회참가 ( 평양 ) 통일부, 북한위성 TV 방송시청허용 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에서시청가능 2000 년평화친선음악회 개최 ( 평양 ) 로저클린턴과한국가수참여 민족통일음악회개최 ( 평양 ) 남북예술인공연및녹화중계아 태평화위농구대표단방문 ( 서울 ) 평양교예단공연병행 (2000. 12. 23) 김대중대통령, 베를린선언 ( 독일베를린 )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공연 ( 서울 ) 평양교예단공연 ( 서울 ) 남북정상회담 ( 평양 ) 남북공동선언 발표 (6. 15)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25 3) 정상회담이후의교류현황남북정상회담이후 6년여가흐른지난 9월말까지의남북한간인적왕래역시급증하여, 금강산관광객을제외하고도 23만여명이남북을왕래하였다. 이는인적교류가시작된 89 년부터 2007 년 4월말까지 17 여년간총왕래인원 313,399명 ( 북한방문 : 307,076명, 남한방문 : 6,323명 ) 가운데지난 4년동안왕래인원이 80% 를성회하고있을정도로급증하였다. 그중남북한간주요교류현황을보면, 먼저 2000 년 7월 22 일북한영화로서는최초로 불가사리 가국내에서개봉되어북한영화에대한국민들의관심을불러일으켰다. 2000 년 7월에는제1차남북장관급회담에이어 2000 년 8월 5일부터 8일간에걸쳐국내주요언론사사장단이방북, 남북언론교류에관한합의서를채택하는성과를거두었으며, 대중가수의방북공연, 백두산 한라산교차관광을북측에제의하기도하였다. 이어 2000 년 8월 29일 ~9월 1일까지평양에서개최된제2 차남북장관급회담에서백두산 한라산관광단교환에합의함으로써, 우리측인사 100여명이 2000 년 9월 27일부터 4일간에걸쳐백두산을관광하였다. 2001 년 3월에는김한길문화관광부장관이방북하여남북문화장관회담을갖고, 개성 금강산관광특구지정및제46 회세계탁구대회단일팀을구성하여참가 ( 세계탁구대회단일팀구성, 참가는북측사정으로실현되지않음 ) 하기로하였으며, 2000년 9월에는시드니올림픽개회식에남북이공동입장하여한민족으로서의화합된모습을전세계에과시하기도하였다. 2001년에는방북공연이주로이루어졌으며, 이전까지문화예술교류가주로음악 공연에국한되었던것에비해미술 가극 패션쇼등다양한분야의교류가성사되었다. 춘향문화선양회 ( 01. 1. 12, 협력사업 ( 자 ) 승인 ) 는 춘향전 남북합동공연을개최 ( 01. 2. 1, 평양봉화예술극장 ) 하는한편남원시립창극단의창무극 춘향전 공연과
126 _ 국학연구제 10 집 북측민족예술단의민족가극 춘향전 공연 ( 01. 2. 2) 이이루어졌다. ( 주 ) 하나로통신 ( 01. 3. 23 협력사업 ( 자 ) 승인 ) 은북측의삼천리총회사와애니메이션 게으른고양이딩가 공동제작을추진했으며, 메종드이영희 는평양의청년중앙회관에서한복패션쇼 2회및한복전시회를개최 ( 01. 6. 2~6. 9) 하였다. 또한동해대학교남북교육문화교류연구소 ( 01. 6. 7 협력사업 ( 자 ) 승인 ) 는남북공동사진전 백두에서한라까지 를개최, 백두대간과독도등의사진 100 점 ( 남북각 50점 ) 을전시 ( 01. 6. 14~24 평양인민대학습당및 01. 8. 14~23 서울세종문화회관 ) 하였는데, 평양전시회에는홍희표등 8명이참가하였다. 이밖에도제주도민 (255명, 2002. 5. 10~5. 15), 박근혜의원 (2002. 5. 11~5. 14), 민화협 및 통일연대 를비롯한 7개종단대표 (211명, 6. 14~15, 금강산 ), KT-SK 텔레콤 - 삼성전자등통신업체대표단 (2002. 6. 4~6. 8), 한민족복지재단 (300명, 2002. 6. 14~6. 18), 남측태권도시범단 (2002. 9. 14~9. 17), KBS 교향악단 (2002. 9. 16~9. 22), MBC 공연단 (181명, 2002. 9. 25~9. 30), 단군학회 (2002. 9. 18~9. 21), 개천절기념남북공동행사남측대표단 (2002. 10~10. 5) 등의방북, 제14 회아시안게임에의대규모북한선수 -응원단의참가 (668명, 2002. 9. 23~10. 14), 남북통일축구경기 (2002. 9. 7) 등이개최되는등남북정상회담이후의남북한간의문화예술관련주요교류및협의내용은이루다예거例擧하기가힘들정도로많은데이를개관한것이 < 표 2> 이다. < 표 2> 정상회담이후 2002 년까지의문화예술관련주요교류및협의내용 2000. 5. 24~30 2000. 5. 29~ 6. 11 평양학생소년예술단방한공연 ( 서울 ) 98 년 리틀엔젤스평양공연 의답방으로평화자동차 ( 사장 : 박상권 ) 주관 최휘 (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비서 ) 단장등 102 명이방한, 예술의전당에서 5 회공연, 매회 2,200 명이관람평양교예단방한공연 ( 서울 ) NS21( 회장 : 김보애 ) 과北 아태평화위 간합의에따라개최 김유식 ( 평양교예단예술부단장 ) 단장등 102 명이방한, 잠실체육관에서 11 회공연, 평균 1,2000 명이관람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27 2000. 7. 22 2000. 7. 26~30 2000. 7. 29~31 2000. 8. 15~18 2000. 8. 18~24 2000. 8. 20~22 2000. 8. 29~ 9. 1 2000. 8. 5~12 2000. 9. 12 2000. 9. 15~30 2000. 9. 22~28 2000. 9. 27~30 2000. 11. 11~18 2000. 12. 11~21 2000. 12. 12~16 북한영화 불가사리 영화관최초개봉통일탁구대회개최 ( 삼성탁구단, 평양 ) 제1차남북장관급회담 ( 서울 ) 남북이산가족상봉 ( 서울 평양 ) 남북교향악단합동연주회 ( 서울 ) KBS( 사장 : 박권상 ) 와北 아태평화위 간합의에따라개최 허이복 ( 조선국립교향악단단장 ) 단장등 132 명이방한, KBS 홀및예술의전당에서 4회공연 ( 북측단독 2회, 남북합동 2회 ), 대통령께서임석하신외총 7,400 여명이관람조선국립교향악단공연 ( 서울 ) 제2차남북장관급회담 ( 평양 ) 백두산 한라산관광단교환합의 남북문화장관회담개최, 개성 금강산관광특구지정및 46 회세계탁구선수권대회단일팀구성참가합의 * 북측, 3. 13 개최예정인제5차장관급회담연기통보언론사사장단방북 ( 평양 ) 남북언론교류에관한합의서를채택- 대중가수방북공연, 백두산 한라산교차관광등제의남북공동생방송방영 (KBS, 백두에서한라까지 ) 시드니올림픽개회식남북공동입장및공동응원 ( 시드니 ) 백두산관광 (109 명, 백두산 묘향산 평양 ) 제3차남북장관급회담 ( 서울 ) - 경평축구대회정례개최, 문화계인사교환방문제의영화인 10명방북 ( 평양 ) 임권택 ( 감독 ), 문성근 ( 배우 ) 등국내영화계인사 10명은북한영화계인물들과남북영화교류문제를협의 조선영화촬영소 만수대창작사등북한영화관련시설방문및묘향산 동명왕릉등관광조총련 금강산가극단 초청공연 ( 서울, 부산 ) 주최 : 한국문화재단 ( 대표 : 박보희 ) 제4차남북장관급회담 태권단시범단교환, 한라산관광단방문논의
128 _ 국학연구제 10 집 2001. 2. 1 2001. 3. 10~14 2001. 3. 23 2001. 3. 28 2001. 4. 7, 11 2001. 6. 15 2001. 6. 2~ 6. 9 2001. 6. 7 2001. 6. 7~ 9 2001. 9. 15~ 9. 18 2002. 5. 15~25 ( 사 ) 춘향문화선양회 춘향전 공연 ( 평양 ) 2001. 1. 12. 춘향문화선양회는협력사업 ( 자 ) 승인을받고 춘향전 남북합동공연을개최하였다. 평양봉화예술극장에서 01. 2. 1 남원시립창극단의창무극 춘향전 공연과 01. 2. 2 북측민족예술단의민족가극 춘향전 공연이이루어졌다. 주최 : 남원시, 춘향문화선양회문화관광부장관방북남북최초합작애니메이션 게으른고양이딩가 가 ( 주 ) 하나로통신 이협력사업 ( 자 ) 승인을받고북측의삼천리총회사와공동제작을추진, 2001. 5. 5 어린이날첫선을보였다. 본래계약은본작 1편부터공동제작한작품을출시하는것이었지만작업환경문제등여러해결과제들이생겨국내에서제작한작품 14 편을먼저선보였다. 그후 17 편부터 33 편까지북과합동작업에들어갔다. 올 1월부터하나로통신하나넷에서방영하고있다. 북측탁구협회, 단일팀참가불가통보가수김연자, 북한공연 7 일평양, 11일함흥 ( 김정일위원장관람 ) 민족대토론회개최 ( 금강산 ) 남측 : 민화협, 7대종 메종드이영희 는평양청년중앙회관에서한복패션쇼 2회및한복전시회를개최하였다. 동해대학교남북교육문화교류연구소는협력사업 ( 자 ) 승인을받고남북공동사진전 백두에서한라까지 를개최, 백두대간과독도등의사진 100 점 ( 남북각 50 점 ) 을전시함. 동전시회는 01. 6. 14~24 평양인민대학습당, 01. 8. 14~23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이루어졌으며평양전시회에는홍희표등 8명이참석하였다. 한복디자이너이영희패션쇼개최 ( 평양 ) 제5차남북장관급회담 : 금강산관광활성화문제에관해추후협의, 남북태권도시범단상호교환 2002 남북평화미술축전 한국미술협회주최로세종문화회관에서개막된이축전에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29 2002. 5. 15~25 2002. 8. 2 2002. 8. 15~16 2002. 8. 16 22 2002. 9. 20~21 2002. 9. 23 2002. 9. 25~30 2002. 9. 29~10. 14 2002. 10. 13~14 2002. 10. 16~17 2002. 10. 23~26 2002. 10. 26~11. 3 2002. 12. 12 2002. 9. 20~21 는북한의최고조선화가정영만의수묵화 금강산, 강선의노을, 백두산의해돋이 등대작 12 점이특별출품되었다. 김흥수, 권옥연, 곽석손등의남한작가와정창모, 선우영등의북한예술가 120 여명의작품이출품되었다. 남북나운규 아리랑 기념사업협력합의 아리랑 을감독한춘사나운규탄생 100 주년 (10. 17) 을앞두고북측 대외초청영접위원회 와공동으로 아리랑주제다큐멘터리평양국제영화축전출품및유현목감독작 아리랑 상영세미나개최 춘사어록비건립및전집발행 한민족아리랑대전 편찬 집단체조 ( 매스게임 ) 아리랑 공연정례화등문화. 예술분야민간교류사업을추진하기로부분합의함. 8.15 민족통일대회 예술인 43 명포함. 민족단합대회, 놀이마당, 남북합동예술공연, 사진미술전람회, 북쪽공연예술단의공연등진행.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주최한인민예술가정창모개인전 ( 서울경인미술관, 만수기획주관 ) 이무산되었다. 정창모개인전은 7 80 년대에그린화조화 풍경화 50 점과정창모의아들성혁 ( 조선화가, 만수대창작사소속 ) 의작품 5 점등모두 55 점이전시될예정이었으나위작시비로현재경위를조사중이다. KBS 교향악단평양공연 ( 평양 ) KBS 교양악단이평양봉화극장에서단독연주회와조선국립교향악단과합동연주회를가질예정. 이를위해 KBS 교향악단, 방송관계자, 참관단등 200 명이평양을방문함. 남북개천절공동행사개최 ( 평양단군릉 ) MBC 평양특별공연 ( 이미자, 최진희등 181 명방북 ) 제 14 회부산아시안게임에북측응원단및선수단 668 명참가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개최 ( 금강산 ) 남북여성통일대회개최 ( 금강산 ) 북측태권도시범단 41 명서울공연북측경제시찰단 18 명한국방문금강산육로관광을위한동해선임시도로완공 KBS 교향악단평양공연 ( 평양 )
130 _ 국학연구제 10 집 한편 2003 년에들어서도남북한은각종문화예술교류를실시하였는데, 그대표적인것으로는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의북측응원단및선수단파견 (8. 20~31, 520명 ), 제3차제주도민북한방문 (8. 25~30, 256명 ), KBS 전국노래자랑팀의방북공연 (8. 5~11, 평양 ), 9월중순부터 20 회 (2,000명) 에걸쳐이루어진 평화항공여행사 주최의평양관광, 우리역사에나타난민족공동체의식 을주제로한남북공동학술회의 (10. 20~27), 금강산육로관광개시 (9. 1~), 국호영문표기문제남북학술토론회 (9. 18~26), 제8차이산가족상봉 (9. 20~25, 금강산 ), 개천절민족공동행사 (10. 3~4), 남북청년학생들의북한방문 (9. 22~26, 200여명 ), 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개관식행사에의대규모대표단참가및남북통일농구대회 (10. 6~9), 제주도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10. 23~27) 등을꼽을수있을것이다. 특히지난 2005 년의경우 6.15, 8.15 기념남북공동행사를비롯하여체육 종교 문화예술 학술 출판등다양한분야에서의사회문화교류가활성화되어상호접촉과왕래의확산에따른남북관계발전에크게기여하였다. 즉 2005 년중사회문화교류를위해남북을왕래한인원은 2004 년 3,557 명의 3배에달하는 10,777 명으로증가하였으며, 사회문화협력사업승인건수도 47건으로전년인 2004 년의 17건에비해크게증가하였다. 더욱이 9월과 10월에는 7,300 여명의우리주민이평양문화유적답사를위해평양을방문하는기록을세우기도하였다. 한편광복 60주년을기념하여북관대첩비반환사업, 안중근의사유해발굴 봉환사업등남북간에민족사적의미가큰사업들이추진되었고, 남북당국도이를적극적으로지원하기로합의하였다. 2006 년에는북한수해피해및북핵실험으로인해하반기에예정되었던 8 15 남북공동행사와아리랑축전등대규모왕래행사가취소됨에따라전체적인교류규모가감소하였다. 그러나남북관계가다소소강국면을맞고있는상황에서도민간교류가지속적으로이어짐으로써, 민간사회문화교류가남북관계발전을위한완충역할을하고있는것으로평가된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31 2006년에는 4,324명 (2005년도 10,777명 ) 의남한주민이북한을방문하였으며 293명 (2005년도 675명 ) 의북한주민이남한을방문하였다. 특히, 북관대첩비환수및북한으로의반환, 안중근의사유해발굴을위한남북공동현지조사,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등은민간의전문성과정부의지원, 남북당국의지원합의가상호견인역할을한좋은사례로앞으로의민관협력의발전적모델을제시했다는점에서의의가있다. 이렇듯민간단체를중심으로각계각층에서다양하게추진되고있는사회문화교류는서로다른가치관과문화양식을가지고살고있는남북한주민들이이질감을해소하고상호공감대를형성해가는과정으로적지않게기여하였다. 이런교류실상을이곳에서는남북간문화교류의부문별교류가전반적으로이루어졌던대표적해인 2005년을중심으로하여간략히살펴보기로한다. 가 ) 남북공동행사 1 6 15 통일대축전 2005년은 6 15 공동선언 5주년, 광복 60 주년이되는뜻깊은해로서, 시민사회단체는 6 15 통일대축전행사 를성대하게치름으로써 2004 년하반기이후경색된남북관계를개선시키는데주력하였다. 즉남 북 해외 3자는 3월 3일에서 5일까지금강산에서 6 15 공동선언실천을위한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 ( 이하 6 15 공동위원회 ) 를결성하였으며, 이공동위원회는 6 15 5주년을기념하기위한 6 15 통일대축전 (6. 14~17) 을평양에서개최하였다. 특히이행사에는남북당국이처음으로참여하여당국과민간이함께참여하는남북교류의새로운모델을정립하였는데, 6월 15 일에개최된민족통일대회에서는 6 15 공동선언발표기념일 제정과동족사이의공조강화, 핵전쟁의위험제거, 6 15 공동위원회강화등의내용을담은 민족통일선언 을발표하였다.
132 _ 국학연구제 10 집 그밖의주요행사로는개 폐막식, 노동 농민 교육 종교 여성 청년학생등부문별상봉행사, 체육유희경기등을개최하였으며, 문화예술공연으로는남한측은가극 금강 을공연하였으며, 북한측은 춘향전 을공연하였다. 한편, 행사기간중남한정동영단장은노무현대통령특사자격으로북한김정일국방위원장을방문하여 6월 17일 2시간 30분간단독면담하였는데, 이는남북간상호신뢰증진과남북관계도약의발판마련에있어큰역할을하게된의미있는자리였다. 2 8 15 민족대축전 6 15 통일대축전 을성공적으로개최하여남북관계개선에큰기여를한 6 15 공동위원회는광복 60 주년을기념하기위한 8 15 민족대축전 (8. 14~17) 을서울에서개최하였다. 이행사에도 6 15 통일대축전 행사와마찬가지로남 북 해외의민간뿐만아니라남북당국도참여하였는데, 북한에서는김기남조국평화통일위원회부위원장을단장으로한당국대표 17 명, 안경호 6 15 공동위원회공동위원장등민간대표 100 명, 남녀축구선수단 65 명이참여하였다. 8월 15 일장충체육관에서개최된 8 15 민족대회에서남 북 해외참가자들은 온겨레의힘과뜻을모아 6 15 선언으로부터시작된민족사의대장정을중단없이이어나갈것 을촉구하면서, 우리민족끼리힘을합쳐자주적통일과분단시대의낡은제도와관념개혁, 전쟁위협과군사적대결종식 항구적평화실현, 민족공동의발전과번영을향한다방면적인협력증진등을위해노력하기로하였다. 이밖에도서대문형무소참관, 개 폐막식, 부문별상봉행사, 문화예술공연관람 ( 무애지무 ) 등의행사를진행하였으며, 8 15 민족대축전 개 폐막식에 8 15 남북통일축구경기를개최하는등보다많은일반시민들을행사에참여시킴으로써민족전체의축제로승화시키는데노력하였다. 특히행사기간중북한대표단은분단이후최초로국립현충원현충탑에참배하고국회를방문하는등의미있는행보를보여주었으며, 입원치료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33 중인김대중전대통령을문안, 김정일위원장의평양방문초청의사를전달하고, 노무현대통령을예방하였다. 나 ) 지방자치단체간교류지방자치단체의대북교류는교류사업추진중에다양한남북지방주민들을참여시킴으로써서로에대한이해와공감대를형성하는데크게기여하였다. 즉인천시대표단은평양을방문 (5. 30~6. 2) 하여인천시의대북교류사업을협의하였으며, 인천에서개최된제16 회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9. 1~4) 에북한선수단 20여명과응원단 124 명을초청하기도하였다. 강원도는금강산병해충방제사업, 연어부화장지원사업등기존의협력사업을심화 발전시켜추진하는한편, 인적왕래및문화분야의교류협력사업을추진하여금강산에서남북강원도민속문화축전 (9. 27~29) 을개최하는성과를거두었다. 경기도는북한민족화해협의회측과공동으로평양시용성구역에 3ha 규모의시범농장을건설하였으며, 경상남도는평양시강남군과의농업협력사업을실시하기로합의하였고, 전라북도는황남신천군농기계지원및농기계수리공장건설지원사업을 2004 년에이어지속적으로추진하였다. 이밖에도제주도는 1998년부터매년추진하여왔던감귤등농산물보내기사업을 2005년에도실시하여감귤 3,000톤, 당근 7,000톤등제주산농산물 10,000 톤을북한주민에게전달하였으며, 서울시는경평축구부활사업, 부산시는부산국제영화제에북한영화상영, 울산시는전국체전시북한지역선수단참가, 경상북도는농업협력사업등을추진하였으나성과는거두지못하였다. 다 ) 부문별교류 1 체육교류 2005 년은남북체육교류가축구, 권투, 육상, 마라톤, 골프등다양한분야로
134 _ 국학연구제 10 집 확산되고북한선수단이남한에서개최된동아시아축구대회, 8 15 통일축구대회, 인천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참가하여활발한남북한체육교류가이루어진한해라고할수있다. 2006년독일월드컵동반진출이기대되던축구는북한의탈락으로아쉬움을남겼으나지방 3개도시에서분산개최된동아시아축구대회 (7. 29~8. 7) 에북한의남녀팀이출전하고, 이어서 8 15 남북공동행사기간중에개최된남북통일축구대회에또한남녀팀이동반참가하여분위기를한껏고조시키기도했다. 2004 년 10 월중국심양대회부터시작된남북간의권투교류협력은한국권투위원회의주관으로 3월 ( 중국심양 ), 6월 ( 평양 1차 ), 10월 ( 평양 2차 ) 대회가연이어개최됨으로써매분기마다정례화되고있다. 특히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개최된두차례의평양대회에는각각 1만명이넘는관중이운집한가운데미국선수가참가하여최초로미국기가게양되었고한국권투위원회의지원과경기주선에힘입어북한의여자선수 3명이세계여자권투평의회 (WBCF) 챔피언이되는성과를거두었다. 8월말에는평양에서한국여자프로골프대회가개최되었고분단이래최초로평양에서개최된남북공동마라톤대회는남북선수가함께달리는의미있는대회가되었다. 이밖에도 9월 8일중국광저우에서개최된아시아올림픽평의회시에는남북올림픽위원장간의접촉에서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 와 2008 북경올림픽대회 에서남북이단일팀을구성하자는데원칙적으로합의하였다. 이밖에도남북공동입장이이루어진동아시아대회 (10. 29~11. 6, 마카오 ) 기간중에는남북대표단간단일팀실무접촉이이루어져차기회담개최에합의하였고, 이에따라 12 월초개성에서남북단일팀체육회담을개최하였다. 2 종교교류남북종교간교류는 2005 년을 6 15 선언 이후가장가시적인성과를거둔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35 해로평가할수있는바, 불교계교류는천태종이지난 2003 년 8월북한영통사복원위원회와개성영통사복원을남북이협력사업으로추진키로합의한후, 2년여에걸쳐복원에필요한기와, 단청안료등자재를 20여차례에걸쳐지원을하면서 300 여명의스님과불자들이방북, 남북간인적교류에크게기여하였다. 2005 년 10 월 31일에는영통사낙성식및천태학술회의를남북의불자 500 여명이참석한가운데성대히거행하여남북이협력하여종교시설을건립한최초의기록을남겼다. 조계종에서도 2004 년부터추진해온금강산신계사 2단계복원사업을지속적으로추진, 2004 년대웅전낙성식에이어, 만세루, 요사채, 산신각, 3층석탑등을복원하였다. 신계사복원사업은 2007 년까지 12개동의사찰을복원할계획이다. 이어 한일불교복지협회 에서는일본야스쿠니신사에방치된임진왜란시의병장정문부장군의승전기록이담긴북관대첩비반환사업을북한조선불교도연맹과함께추진, 2005 년 10월 20일일본으로부터반환받았으며, 2006 년에비의원소재지인함북길주에복원하였다. 이어기독교교류는장로교측에서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평양대동강구역에온실과관리사무소건축에필요한자재등을지원하고관리동 2층에평양제일교회를설립, 지역교민들의예배처소로활용토록하였으며, 동북아복지선교회 에서는평양봉수빵공장에냉동설비를지원 설치토록하여북한교인들에게제공될빵생산량을늘려식량지원을통한대북선교확대를모색하고있다. 한민족남북한선교회 에서는봉수농장에왜성사과과수원을조성해주기위해사과묘목, 지주, 울타리시설자재등을지원하였으며, 예장통합남선교회원으로구성된 ( 사 ) 기쁜소식 에서는낙후된평양봉수교회를전면적으로재건축하기위해기존건물을헐어버리고새로운예배당을건축하기위한협력사업을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합의, 소요자재등을지원하였으며, 2006년
136 _ 국학연구제 10 집 말준공예배를가질계획이다. 또한기독교선교단체인 조국통일기도동지회 에서는 2005 년 10 월평양칠골교회에서남북의교인 200 여명이참석한가운데합동기도회를개최하였으며, 감리교서부연회 에서는 2001 년이래추진해온평양신학원운영지원사업을지속적으로추진하면서정기적인방북등으로남북기독교인의인적교류를확대시키면서남북기독교교류를안정적으로추진하고있다. 이밖에도 기독교장로회 에서는 2005 년 5월금강산문화회관에서우리측 200 여명과북측 10여명이참석한남북공동기도회와성가제를개최하였으며, 천주교 원불교및기타종단에서도대북인도적지원을지속적으로하면서각종단차원의교류확대를위해노력하고있다. 3 문화예술교류남북역사학자협의회남측및북측위원회는공동으로 고구려유물전시회 를개최하기로합의, 북측소장유물에대해서울에서전시회를개최하였다. 특히북한소재고구려유물전시는 2002 년도부터지속적으로남북간문화교류아이템으로진행되어왔다. ( 사 ) 민족문학작가회의 는 2005 년 7월 6 15 공동선언실천을위한민족작가대회 를평양 백두산 묘향산등지에서개최하였는바, 분단이후남북문학인들의첫만남이었던이대회에는남측에서 113 명, 북측에서 100 여명의문인들이참석하였으며, 6 15 민족문학인협회결성및 6 15 통일문학상제정, 남북공동문학지발간등을합의하는성과를거두었다. 이어 2005년에는평양방문공연과관련한남북교류가활발히추진되었는데, 6 15 통일대축전 문화행사로가극 금강 평양공연과가수조용필평양공연 (8. 23) 및뉴서울오페라단의창작오페라 아, 고구려고구려-광개토호태왕 평양공연 (9. 7) 이성공리에개최되었다. 또한평양에서개최된 제24 회평양윤이상음악제 (10. 25~29) 에우리측관계자가참가하는교류도진행되어 2004년도에부진했던공연분야남북교류가원활히추진되는성과를거두었으며, 분단사상최초로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37 북한의무용수가남한의모델과함께 TV 광고모델로출연하여대중적인주목을받기도했다. 4 학술교류 2005년도의남북간학술교류는중국의동북공정에대응한고구려문화유적발굴 보존관련학술회의가성과를거두는가운데일본의군국주의정책을규탄하는전시회등도의미있게진행되었다. 아울러학술용어집공동개발사업등남북이공동으로하는학술협력사업도일정부분진전을이루었다. 2월러시아의블라디보스톡에서남 북 러학자들이 3국공동학술회의를개최, 그간의고구려 발해역사에대한연구성과를발표한데이어 7월에는고구려유적평양공동답사를추진하기도하였다. 또한남북한은을사조약 100 주년을맞아일본의군국주의를규탄하는사진전시회를 2005 년 11월서울과평양에서공동개최하고강점기일본에의한우리민족수탈사를폭로하였다. 한편, 제15차남북장관급회담에서안중근의사유해발굴사업을공동으로추진하기로합의함에따라남북양측은안중근의사유해공동발굴사업추진을위한남북실무접촉을하였으며, 당국차원의유해발굴및봉환사업과병행하여민간차원의기념사업도지원하기로하였다. 즉남북양측은 9월 14일안중근의사유해발굴및봉환사업에대한남북합의서를판문점을통해교환하였으며, 11 월 20 일 2차실무접촉에서는안중근의사유해위치에대한추가자료조사와연구를지속해나가면서필요시현지답사를통해안중근의사순국기념일인 2006 년 3월 26일을계기로유해발굴사업을시작할수있도록적극노력해나가기로하였다. 5 출판 언론교류남북한출판교류는남북한공동편찬, 저작권교류및북한저작물의국내출판, 남북문인들의만남등다양한분야에서활발하게추진되었다.
138 _ 국학연구제 10 집 평화문제연구소 는북한의과학백과사전출판사와공동편찬한조선향토대백과 20권을 2005년 4월완간하였으며, ( 사 ) 통일맞이 의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2005 년 2월금강산에서열린남북공동편찬위원회결성식을시작으로본격적으로추진되기시작하였다. 남북은 7월평양, 8월서울, 11 월개성에서편찬위원회전체회의를개최하여사전편찬요강을합의하였으며, 8 15 민족대축전 시백범기념관에서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보고대회 를개최하였다. ( 사 )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은 2005 년 3월북한으로부터북한도서 3종과노래 2종의저작권침해보상합의와관리에대한위임을받고관련활동을진행하여남한에서출판된월북작가홍명희의대하소설임꺽정에대한저작권료를북한에전달하였다. 12 월에는북한저작물의저작권대리업관련합의서를체결하였고, 이를통해북한저작권자의위임을받아온소설및동화 47편이국내출판사를통해출판될예정이다. 이어 도서출판보리 는북한사회과학원학자들이우리고전을국역한조선고전문학선집을겨레고전문학선집으로편집하여출간하였으며, 현재까지박지원의열하일기를비롯하여총 11권을출간하였다. 이밖에도 예맥출판사 는북한전통건축물조사 실측보고서발간사업을추진하고있으며, 2005년 7월부터 9월에는 ( 사 ) 한국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및 ( 사 ) 한국옻칠문화연구원과함께덕수궁석조전에서제1 회남북전통공예교류전을개최하였다. 한편남북한언론교류는 방송위원회 가주관하는교류사업및지상파방송사별방북취재등이진행되었으며, 2004 년의아테네올림픽중계지원에이어 2005 년 7월에서 8월에개최된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도전경기장면을북한에중계하였다. 그런가하면 2005 년 9월에는방송위원회가주관한제2회남북방송인토론회가금강산에서개최하였으며, 11월에역시금강산에서열린방송영상물소개모임에서남한방송사들은북한영상물 114 편을구매하였고, 북한은남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39 한방송사들의영상물 22편을구매하였다. 또한방송위원회는북한에방송중계차를제공하는등방송기자재지원및방송기술교류사업도추진하고있으며, KBS 는역사극 사육신 주문제작사업을추진하고있으며, MBC 는 2005년 2월개성공업지구현황, 개성시내설맞이모습, 개성지구역사유적등을취재하여뉴스데스크및 PD 수첩에서방영하였다. 이밖에도 SBS 는 2005 년 8월 23일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평양주민 7천여명이운집한가운데 광복 60 주년특집조용필평양 2005 공연을개최하였고, 월간민족21 은통일신보및조선신보의기사를반입하여게재하였고 ( 주 ) 판도라 TV 는북한뉴스, 음악영상물등을인터넷동영상으로서비스하고있다. 4. 남북한문화교류의동질성회복방안 1) 당면과제현정부가 국민의정부 하의대북포용정책과맥脈을같이하는 평화번영정책 을추진함에따라남북문화교류 협력사업도한동안크게증가되었으나, 북한의미사일발사 (7. 5) 및핵실험강행 (10. 9) 등전세계적평화와안전을위협하는행태로남북관계전반은물론이고사회문화교류에도매우큰파장을미친바있다. 다행히북한이뒤늦게나마국제사회의책임있는일원으로북핵문제해결을위한대화의광장에나와 2007 년 2 13 합의 를도출하고, 그후속조치이행에임할것을약속하는등이전과다른행태를나타내고있기는하다. 그러나매우원론적인지적으로그동안의북한과의협상과정에서발생한민간단체간과당경쟁이나북측의합의사항불이행등여러가지잡음과숱한
140 _ 국학연구제 10 집 시행착오가제대로해결되지않고, 특히이러한문제점에관하여당사자간해결이불가능할경우남북정부당국이개입하여중재-해결할수있는제도적방안이마련되어야할것이다. 이를위해서는무엇보다도먼저대북및문화정책당국이그해결방안을사전에치밀하게강구하고대책을마련할필요가있는데, 이하에서는남북정상회담이후발생한여러가지의문제점을중심으로하여그당면과제를살펴보고자한다. 첫째, 당국간회담에따른우리측기본전략은 92 년에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의복원에기반을둔것이어야한다. 즉 남북기본합의서 와 부속합의서 에는 6 15 공동선언 을통해합의된내용을구현하는구체적방안이제시되어있기때문에, 합의서이행체제로의복원추진은명분과실리를모두갖춘가장효과적인전략중하나이기때문에이를근거로해야할것이다. 둘째, 남북문화교류기금 ( 가칭 ) 의설치 운영이필요하다는점을강조하고싶다. 남북한간교류협력과민족공동체회복에이바지할목적으로설치된 남북협력기금 은 91 년이래매년정부출연금 5천억원을비롯하여 1조원정도가조성되어이중 50여 % 가집행되고있다. 그러나문제는이남북협력기금의 10% 미만이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지원분으로충당될뿐거의대부분은대북경협자금으로전용專用되다시피하고있기때문에보다많은기금이남북간문화동질성회복을위한교류사업에배정되어야할것이다. 셋째, 앞에서도잠시지적한것처럼북한과의사회문화사업을추진하고있는민간단체나관련기획사간의과당경쟁과과잉투자를정부차원에서조정 규제하는방안을마련해야한다. 즉 평양교예단 을유치하기위해북측에접촉한국내단체가 10 여개단체로알려져있듯이, 현재북한의인기공연단체에대한초청사업은어떤점에서는과열양상을보이고있다고해도결코과언이아닐정도이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41 물론자본주의사회에서이런경쟁은어쩌면당연한것이겠으나최근의상황으로볼때, 과당경쟁이과잉투쟁을낳는악순환이계속되면서앞으로그정도가점점더심해지지않을까우려된다. 이러한사태가발생하는이유는북측협력기관이 대가보장代價保障 을최우선시하는등북한측요인도무시할수없으나피해는언제나남한측민간업체가보기때문에이에대한정부차원의대책마련이시급한실정이다. 넷째, 문화사업성사에대해사후보장하는제도적장치가필요하다. 즉 ( 주 ) 계명프로덕션의평양교예단초청, 도서출판삼성당의북한저작물출판권인수및공동출판사업, 2000 평화를위한국제음악회 등북측과 사업합의서 를교환하고도사업이무산된전례前例에서입증되듯이그근본원인은북측협상창구는정부공식기관으로일원화되어있는반면, 남측은통일된창구가없어민간단체와기업이과도한경쟁에휘말림으로써북측에사업무산의빌미를제공하고있기때문이다. 따라서이를더이상방치하고만있을것이아니라남북당국간실무회담등을통해무산된사업에대한사후배상절차의제도화에관해북측과협상해야할것이다. 다섯째, 저작권문제해결을위한대책이마련돼야한다는것이다. 즉북한영화의 TV 방영을둘러싸고판권시비가자주발생하고있는데, 지난 98 년의경우만해도 KBS 가 림꺽정 방영금지가처분신청을, SBS 온달전 에대해손해배상청구소송을당한바있고, MBC 도북한영화 불가사리 에대해제작자인신상옥감독으로부터판권과관련된이의를제기받은바있다. 이와같은판권시비는북한이다양한채널을통해국내업체들에게영화를판매하고있는데서그원인을찾아볼수있는데, 사실상조선음악가동맹중앙위원회는 99 년 7월 5일자성명에서납 월북예술인들이만들거나부른노래 1천여곡에대한저작권을주장하고나섬으로써저작권문제에대한정부차원의대처가시급함을드러내기도하였다.
142 _ 국학연구제 10 집 현재북한은 베른협약 이나 저작권에관한국제협약 (UCC) 등에가입하지않은데다가남북간에쌍무협정도맺지않은상황이기때문에저작권문제는정상회담후속조치로서의실무차원의협의가추진될경우구체적인해결책이필요한과제중하나로꼽힌다. 이밖에도북한의국영미술품판매회사인 옥류민예사 같은경우처럼좋은작품을대량으로모사해서인민이함께감상하거나해외에수출해외화를벌어들이고있으며, 조선중앙역사박물관 등도문화제모조품을제작해해외에수출하고있는점등북한내부의문제는남북간신뢰를떨어뜨리는요인이자장기적으로는문화교류의활성화및동질성회복을저해하는요인으로꼽을수있을것이다. 2) 동질성회복방안앞으로의중요한통일문화의정책적과제는남북한문화의갈등요소들을부정적이고상충적인것으로서가아니라풍요로운통일문화형성의생산적인기반으로전환시키는것이될것인바, 이를위해서는상이한가치들이상호공존하고어우러지는상생相生과관용寬容의문화이념이추구되어야한다. 즉 조화와상생 이라는우리의전통적인가치지향은남북문화의대립적인요소들이서로지양되어통일시대의새로운형의다문화적민족문화발전의토대가되게할것이므로먼저민족사의획기적인전환점에서북한의문화를 공존과화해 의대상으로적극인정하면서다양한문화교류프로그램을공동으로개발하고실천해나가는것이중요하다. 독일과같은나라의경우동 서독정상회담이후문화-경제- 정치교류의순으로통합을이룬반면우리는경제와정치가앞서고문화가뒤지는경향을띠고있는데, 바로이런시점에서남북한간문화교류방안을다각도로모색하여이를제도화내지정착화하는것이필요하다고보여진다. 그러나이경우에도우후죽순격으로 너나할것없이 경쟁적으로나서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43 보면과거 남북합동음악회 가무산된사례와같은불미스러운일이재연될수있다. 이런점을고려할첫째는지금까지처럼북한주도의 일방통행一方通行식 은진정한교류라고보기가어렵기때문에상호교류가되어야한다. 둘째, 서두르지말고점진적으로물꼬를터가는자세가중요하다고생각되는데, 남보다먼저계획을성사시키겠다는조급증이나한건위주의 이벤트 를추진하려는과욕이화근이된예를결코간과해서는안될것이다. 셋째, 교류의순서를정해완급을조정하는유연성인바, 남북한의문화교류는정치체제가다른만큼이나이념이나방법론이다르기때문에작품부터교류하다보면서로의이질감만증폭시킬우려가있기때문에초기에는예술가나학자등의인적교류를우선적으로추진하고, 분위기가조성된이후남북한간합동연수나공동창작을시도하는등서로간의이해와신뢰의폭을넓히는가운데작품교류를할수있는방안도적극모색해야할것이다. 넷째, 이러한방법론을적용하기이전에남과북의문화인들이서로에대한선입관이나고정관념에서벗어나는일이무엇보다중요하다고생각된다. 즉남북한간문화교류의목적이서로다른체제에서골이깊어진이질감을해소하고정서통합에있는만큼인식의변화나이해가없는교류는공허하기때문에과거처럼체제의우위를과시하거나상대를설득시키는문화교류는배격해야한다. 특히최근남북한간교류논의를보면북한의문화를선입견없이있는그대로보자는주장이적지않으며, 북한을다녀온일부인사들은북한문화의장점만을극대화하여 인상기印象記 형식으로열거하기도한다. 그러나북한문화는아직까지역사적보편성이나타당성, 객관성을부여하기가힘들므로 중구난방衆口難防식 의문화교류논의는부작용을일으킬소지도없지않은만큼차제에이에따른다각적인문제들을짚어주고정리해주는민간차원의위원회나자문기구를구성할필요가있다. 바로이러한원칙하에서남북한간의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은
144 _ 국학연구제 10 집 다음과같은 3가지로대별할수있을것이다. 첫째, 21 세기통일한국에있어바람직한민족문화를상정想定하기위한교류 협력추진의기본자세로써미래지향적인동질성추구의자세가요구된다. 현정부의평화번영정책과북한의자세변화에힘입어정치 군사적상황과무관하게남북문화교류가그나마지속되어온사실은매우바람직한일이아닐수없다. 한민족문화공동체 건설이라는진정한민족화합을위한길목에서체제와이념을달리하는북한과문화교류를지속해나가는가운데동질성을회복하기위해서는문화우선주의에입각한교류정책이우선적으로추진되어야한다. 다만유의해야할점은문화다원주의입장에서교류정책을추진하여야한다는것인데, 문화는원래다원성을특징으로하며, 다원성이강할수록사회문화적인위기상황에대해보다유연하고탄력성있게대응하는능력을갖게되기때문이다. 이와함께남북한간의문화동질화를꾀하는미래지향적인교류자세가필요한데, 이는과거회귀적인동질성회복은바람직하지도, 또현실적으로가능하지도않기때문이다. 둘째, 문화교류 협력프로그램의구성이필요하다. 우선교류프로그램은체제우월성을드러내지않는다원적 보편적내용이어야하며, 무엇보다도도덕성시비의대상이되지않아야한다. 북한이최근에들어남한의대중예술공연을자주허용하고는있으나, 그동안가장크게비난해온것이바로 남조선문화예술의반동성과퇴폐성, 그리고예술성없음 이라는사실을상기할필요가있다. 다음으로, 가능한한민족고유의정서를풍부하게담고있고, 일반대중에게호소력이높은부문을중심으로교류의비중을높이는것이동질성회복에큰도움을준다는점을인식하여야할것이다. 즉북한지역에서는양반문화兩班文化적요소때문에사라졌으나민족고유의정서가풍부하게담긴전통종목을정선精選하여교류하는것이필요하며,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45 이와함께민족통합을주제로한남북한집체창작의대작물大作物을고려할수있을것이다. 이런대작大作의제작과정을통해남북상호간상대편문화에대한이해가깊어지고 5천여년에이르는우리민족고유의역사나전통, 미풍양속을오늘에되살릴수있는계기가될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 셋째, 북한의교류 협력프로그램을수용할수있는자세가필요하다. 북한이자랑하는문화분야성과작들은대부분정치선전이나김일성 -김정일부자의우상화-신격화성향이나이데올로기성이매우강하며, 특히북한은과거문화교류협상과정에서문화예술의선전 선동성을대남전략에이용하려는정치적성향을강하게보여왔기때문에이를지양하는부문을중심으로하여교류와협력을하는것이동질성회복에도움을줄수있을것이다. 물론이런부문을선정하는것이현실적으로매우어려운일이겠지만, 관련기관이나단체, 전문가들이 머리를맞대고 협의한다면현실적대안을마련할수있을것이며, 앞으로정부당국간교류협상이재개될경우이러한문제를협의할수도있을것이다. 이런방안을고려할때남북한간문화예술교류, 특히공연예술의경우초기단계에있어서는전통예술을중심으로진행되는것이바람직하다. 북한에있어서문화, 예술은비정치분야가아니며오히려가장고도로정치화된부문이기때문이다. 왜냐하면적어도북한에있어서의문화, 예술은개인의소산이나소유가아니며집단적창작품, 말하자면군중적 사회적소산이라는특성을지니고있고, 바로이점에서남한사회의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특성과극단적대조를이루기때문이다. 이러한현실적제약과한계를극복하고남한예술이북한에진출하기위해서현재까지는주로경제적대가에의존하는방법을사용하였으나, 이러한관행이앞으로더이상지속될수는없다.
146 _ 국학연구제 10 집 따라서문화에있어서도남한사회가납득할수있는보편적관행의도입이반드시필요하며, 이런의미에서교류 협력을이끌어낼수있는논리와협상술의개발이시급하다. 남북교류의많은난점에도불구하고문화, 예술, 학문의교류가가능할수있다고보는것은민족문화의공통성, 전통문화의상호이해라는공통의기반이아직까지존재하기때문이다. 남북한문화의이질화의정도는사람에따라그판단의차이가있으나이것이상호간의의사소통을불가능하게할정도는전혀아니며첨예한현실정치적안건이아닐때에학문 예술의교류에큰지장이없다고보여지기때문이다. 즉남북한이비록분단되어서로다른정치이념과체제의틀속에서반세기이상서로간에오해와불신, 갈등과반목을쌓아왔지만이질화의정도는결코상호문화의이해를불가능하게할정도는아니라고보여지는것이다. 그러나현재중국에서불고있는이른바 한류 와같은문화, 공연예술의형태가북한에진출하기는현재상태에서는여전히불가능하므로최소한의공통기반을가진전통문화위주의문화교류를꾸준히진작시키는것이필요하다고여겨진다. 또한북한인이그들의사회교육에서체득하고있는개인주의의배격과공동체우선주의, 권위주의적온정주의, 민족적자부심의강조등은남한인의정서에있어서결코낯설지않은심리적요소들이다. 바로이런점에서볼때남북한의문화교류는앞에서지적한몇가지원칙들과접근방안들을적절히수용한다면남북한간의동질성을함양하고, 이질성을극복해나갈수있는, 그래서평화통일의진정한문을여는견인차적소임을잘할수있을것으로보기때문에그전망이그리어둡지만은않다고보인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47 5. 결언 이상에서살펴본바와같이남북한은서로다른정치이념과체제의차이속에서도, 특히지난 2000 년의남북정상회담의개최이래남북한간의문화분야의교류협력은다른어떤부문에비해한단계승화- 발전되어왔다고볼수있다. 그러나남북관계가 민족공동체의길 로나아가기위해서는일부계층에서나타나는바와같은 한건주의 식의과도한망상을갖고행하는졸속한대북진출은지금시점에서자제해야할것이며, 북한과의교류나거래역시이것이비록민족내부적사안이라하더라도보편적관행과원칙및남북관계의특수성을충분히감안하여행해야할것이다. 또한남북각각은민족복리를위해서, 특히극히제한된문화예술분야전문가양성을극복하기위해서도전문교육기관확충에따른전문가양성을시급히이룩하여네트워크를형성해야할것이며, 이를위해정부는교육계에새로운지침을내리고관장하고있는북한자료들을전문가들에게공개해야할것이다. 가칭 남북사회문화예술공동위원회 와같은구성이가능할수있도록이분야의전문가들이전진배치되어야할것인바, 여기에서는남북각각의문화예술현상연구곧국제화방안, 통일정서프로그램개발, 전통공연예술진흥방안, 교육방안, 방송매체에서의민족문화예술발전방안등남북통일발전계획이수립될수있을것이다. 그리고이산하에남북통일음악위원회, 남북통일미술위원회, 남북통일문학위원회, 남북통일무용위원회, 남북통일연극위원회등을구성할수있는방안을협의하는것도필요하다. 결국남북한간의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으로가장중요한것은 남북이원래한민족이었고같은역사와전통을가진문화를공유해왔다 는점을재인식하는일이며, 바로이런면에서우리의전통문화를통한교류
148 _ 국학연구제 10 집 사업으로우리의역사를되짚어보고과거에서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문화적이질성을발생시킨요소들을되짚어보면서서로를이해하고동질감을회복하는일이매우중요하다고하겠다. 말하자면남북한문화의 다름과차이 를인정하는이른바 똘레랑스 의차원에서지속적인문화교류를하는것이야말로분단으로인해직 간접적으로파생한이질성을극복하고동질성을회복하는첩경이될것이다. 요컨대, 민족동질성함양및평화통일의토대구축을위해다양한교류가필요하겠지만우선적으로민족전통과그바탕에창조적으로이끈창작품을먼저고려하여이의확충교류가이루어져야할것이며, 이런가운데상대의미적명분에반하는분야나상업적논리로교류되는것은적극지양해야할것이다.
특집 / 문화교류를통한동질성회복방안 _ 149 참고문헌 김일성저작집 35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7) 주체사상에기초한문예리론 ( 평양 : 사회과학출판사, 1975) 강석승, 북한학개론 ( 법문사, 1999) 외, 북한대사전 ( 북한연구소, 2002) 외, 국제사회와북한 ( 홍익재, 2005) 북한연구소, 북한총람 ( 북한연구소, 2003) 유영옥, 유교수의북한교실 ( 학문사, 2003) 연합통신, 북한 50년 (1995) 통일부, 2004 북한개요 (2005), 남북경제협력사업실무안내 (2006), 남북교류협력동향 ( 월간, 2006)
150 _ 국학연구제 10 집 A Study on the Recoverable Alternatives for Homogeneity through Cultural Exchange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Kang Seok-seung (Ministry of Unification) The different political systems and ideologies between Korean race have deepened the heterogeneity widely from the manners and models of behavior, ways of thinking, definitions of history and values of life to daily routines. In these processes, since Law Regarding the Exchange and Cooperation of inter-korean Relations in the late eighties and The June 15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in the inter-korean summit which was held in June 2000 were adopted, there have been marked changes in the field of social and cultural exchange-cooperation. However, in these courses, lots of problems began to show. Among others cooperation businesses for dreaming of making a fortune at one stroke should be self-controlled. In the last analysis, for the expansion of inter-korean contract, exchange and cooperation it needs to make efforts to construct National Community in the long time. Firstly, for this, we have to think over factors which have introduced the heterogeneity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Abstracts _ 151 Secondly, we should acknowledge the difference and individuality of two systems. And lastly, we need the attitude to establish cooperative bilateral relations based on mutual understanding for recovering ethnic identities. Key Words: Standpoints on Cultural Exchanges, Policies on Culture, Cultural Art Revolution, Ideologic Culture, Purposeoriented Culture, Harmony and Un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