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총부터 길재까지 고려시대 산문 읽기 (원주용 지음/한국학술정보/2008년 4월/243쪽/16,000원)
고려시대 산문 읽기 (원주용 지음/한국학술정보/2008년 4월/243쪽/16,000원) 책 소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대표적인 유학자인 설총과 고려시대 대표적 유학자 길재 등 열네 사람의 산 문작품 61편을 모아서 주석을 달고 국역과 감상을 적은 것이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산문사 에서 산문 창작이 지위를 공고히 하는 과정을 이해하면서, 작품의 구조와 문맥상의 흐름까지 간파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내용파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임의대로 문단을 나누었으며, 가능한 한 의역보다는 직역을 위조로 하였고, 좀 더 깊은 이해를 요하는 독자를 위해 참조가 될 만한 논문이나 책을 간략히 제시했다. 저자 원주용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문학박사)를 졸업하고, 안동대학교, 원광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성 균관대학교와 한림대학교 강사, 성균관대 동아시아지역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牧 隱 李 穡 의 碑 誌 文 에 관한 고찰 陶 隱 散 文 의 문예적 특징 鄭 道 傳 散 文 에 관한 일고찰 이 있 으며 주요 저서로는 한국 한문학의 이론, 산문 (공저) 목은 이색 산문 연구 외 다수가 있다. 차례 머리말 1. 花 王 誡 薛 聰 2. 鸞 郞 碑 序 崔 致 遠 3. 檄 黃 巢 書 崔 致 遠 4. 進 三 國 史 記 表 金 富 軾 5. 上 李 學 士 書 林 椿 6. 畵 鴈 記 林 椿 7. 與 皇 甫 若 水 書 林 椿 8. 與 眉 叟 論 東 坡 文 書 林 椿 9. 雙 明 齋 詩 集 序 李 仁 老 10. 臥 陶 軒 記 李 仁 老 11. 答 全 履 之 論 文 書 李 奎 報 12. 論 詩 中 微 旨 略 言 李 奎 報 13. 屈 原 不 宜 死 論 李 奎 報 14. 驅 詩 魔 文 李 奎 報 15. 白 雲 居 士 傳 李 奎 報 16. 麴 醇 傳 李 奎 報 17. 四 輪 亭 記 李 奎 報 18. 鏡 說 李 奎 報 19. 舟 賂 說 李 奎 報 20. 虱 犬 說 李 奎 報 21. 忌 名 說 李 奎 報 22. 東 明 王 篇 幷 序 李 奎 報 - 2 -
23. 東 人 之 文 序 崔 瀣 24. 東 人 四 六 序 崔 瀣 25. 猊 山 隱 者 傳 崔 瀣 26. 櫟 翁 稗 設 前 序 李 齊 賢 27. 櫟 翁 稗 設 後 李 齊 賢 28. 送 辛 員 外 北 上 序 李 齊 賢 29. 雲 錦 樓 記 李 齊 賢 30. 范 增 論 李 齊 賢 31. 原 水 旱 李 穀 32. 趙 苞 忠 孝 論 李 穀 33. 小 圃 記 李 穀 34. 杯 羹 說 李 穀 35. 借 馬 說 李 穀 36. 市 肆 說 李 穀 37. 愛 惡 箴 李 達 衷 38. 雪 谷 詩 藁 序 李 穡 39. 及 菴 詩 集 序 李 穡 40. 選 粹 集 序 李 穡 41. 西 京 風 月 樓 記 李 穡 42. 遁 村 記 李 穡 43. 陽 村 記 李 穡 44. 六 友 堂 記 李 穡 45. 寂 菴 記 李 穡 46. 澄 泉 軒 記 李 穡 47. 可 明 說 李 穡 48. 之 顯 說 李 穡 49. 浩 然 說 李 穡 50. 觀 魚 臺 小 賦 李 穡 51. 辭 辨 李 穡 52. 答 問 李 穡 53. 答 田 父 鄭 道 傳 54. 上 鄭 達 可 書 鄭 道 傳 55. 若 齋 遺 藁 序 鄭 道 傳 56. 陶 隱 文 集 序 鄭 道 傳 57. 錦 南 野 人 鄭 道 傳 58. 陶 隱 先 生 文 集 序 權 近 59. 恩 門 牧 隱 先 生 文 集 序 權 近 60. 漁 村 記 權 近 61. 後 山 家 序 吉 再 - 3 -
고려시대의 산문 읽기 花 王 誡 薛 聰 설총은 신라10현의 한 사람이며, 자는 총지, 아버지는 원효이고 어머니는 요석공주이다, 태종무열왕 때 인 654~66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설총은 육두품 출신으로서 자신의 학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왕의 총애와 신임을 얻음으로써 신분적 한계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진출을 이루었다. 왕이 5월에 궁궐에 있다가 문신인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오늘 장맛비가 막 개어 훈훈한 바람이 조금 서늘한데, 비록 맛있는 음식과 슬픈 음악이 있어도 고상한 이야기와 재미있는 농담으로 울적함을 펴는 것만 못하다. 그대는 반드시 특이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니, 혹시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겠는 가? 라고 하니, 설총이 말하기를, 생각건대 제가 듣기로, 옛날 화왕이 처음 올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 어 푸른 장막으로 보호했습니다. 늦봄이 되어 곱게 꽃이 피자, 온갖 꽃 가운데 유독 빼어났습니다. 그 러자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고운 정령과 예쁜 꽃들이 달려와서 화왕을 뵙는데, 오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갑자기 이름이 장미라고 하는 한 미인이 붉은 입술에 하얀 이에 곱게 화장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서 사뿐사뿐 걸어와서 얌전히 앞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저는 눈처럼 하얀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마주하고서 봄비에 목욕하고서 때를 씻고 맑은 바람에 상쾌해져 마 음 가는 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망을 듣고 향기 나는 장막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오니, 왕께서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라 하였습니다. 또 이름이 백두옹이라는 한 장부가 베옷에 가 죽 띠를 띠고 흰 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등을 굽혀 허리를 구부리고 걸어와서 아뢰기를, 저는 서울 밖 큰길가에 살고 있습니다. 아래로는 아득한 들 경치를 굽어보고 위로는 우뚝한 산색에 의지하고 있습니 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좌우에서 공급해 주는 것이 비록 넉넉하여 기름진 곡식으로 배를 채우더라도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해야 하고, 상자에 저장한 것 가운데 모름지기 좋은 약으로 기운을 보충하기는 하더라도 돌침으로 독을 제거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비록 실과 삼이 있더라도 띠풀을 버리지 말라. 무릇 모든 군자는 부족할 때 대응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이런 뜻이 있 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사람이 왔으니,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라고 아뢰니, 화왕이 말하기를, 장부의 말도 도리는 있지만, 미인은 얻기 어려우니 장차 어찌할까? 하니, 장부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 기를, 저는 왕께서 총명하시고 의리를 아신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여기에 왔는데, 지금 보니 아닙니다. 대개 임금이 된 분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은 이가 드물었기 때문에, 맹가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풍당은 겨우 郞 이란 벼슬로 머리가 희어졌습니다. 예로부터 이 러하니 저라고 어찌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화왕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라고 사죄했다고 합 니다. 라고 말하니, 이에 왕이 수심에 잠겼다가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대의 우언은 진실로 깊은 뜻이 있으니, 그것을 써서 王 者 의 경계로 삼고자 한다. 하였다. 四 輪 亭 記 李 奎 報 승안 4년(1199,신종 2)에 내가 처음으로 설계를 하여 사륜정을 동산 위에 세우려 하였는데, 갑자기 전 주로 부임하라는 명이 있어서 이룩하지 못하였다. 그 뒤 신유년에 전주로부터 서울에 와서 한가하게 지 내던 중에 바야흐로 지으려는 뜻이 있었으나, 또 어머니의 병환으로 성취하지 못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곧 성취하지 못하고 또 설계한 계획을 잃을까 염려하여, 드디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대저 사륜정이 - 4 -
라 한 것은 농서자가 그 계획을 설계하고 아직 짓지는 못한 것이다. 여름날 손님과 함께 동산에다 자리 를 깔고 누워서 자기도 하고, 앉아서 술잔을 마시기도 하고, 바둑도 두고 거문고도 타며, 뜻에 맞는 대 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한다.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볕을 피하여 그늘로 옮기면 서 여러 번 그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거문고 책 베개 대자리 술병 바둑판이 사람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지므로 혹시 실수하고 잘못하여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그래서 비로소 설계하여 사륜정을 세 우려고 한다. 아이 종으로 하여금 이것을 끌어 그늘진 곳으로 나아가게 하면, 사람과 바둑판 술병 베개 자리가 모두 한 정자를 따라서 동서로 이동하게 되리니, 어찌 옮기는 것을 꺼려하랴? 지금은 비 록 성취하지 못했으나 뒤에 꼭 지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그 형상을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미 정자의 평방이 6척이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을 계산한 뜻은 깨닫기 어려울 것이 없으나, 무엇 때문에 자세히 계산하여 바둑판 정간으로 비유를 삼아 사람이 천박해지기를 바라는 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난 것은 사람이 모두 아는 것이지마는, 음양을 말하는 자가 일산과 수레로 비유를 하니, 심지어 세로 가로의 보 척까지 모두 들어 말한 것은 만물이 모나고 둥근 데 들어가는 것이 모두 형태가 있는 물건의 모양에 응한다는 것을 논하려 함이다. 지금 이 정자에 사람을 계산하여 앉히는 데 있어, 심지어 구석이나 틈, 중간이나 가를 빠뜨림 없이 모두 쓰임에 맞도록 하자면 자세한 계산이 아니고서 어떻게 하겠는가? 바둑판 정간으로 비유한 것은 바야흐로 설계할 처음 에 혼자서 표를 만들어서 현혹되지 않게 하자는 것이요, 남을 자세히 가르쳐 주려는 것은 아니다. 하 였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정자를 짓는데 그 아래에 바퀴를 다는 것이 옛날에도 있었는가? 하기에 이 렇게 대답하였다. 알맞음을 취할 뿐이지, 어찌 반드시 옛것이어야 하겠는가? 옛날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으나 편안히 살 수 없으므로, 비로소 기둥 있는 집을 세워 풍우를 막았는데, 후세에 와서 점 점 제도를 증가하여 판을 대어 높이 쌓은 것을 대라 하고, 난간을 겹으로 한 것을 사라 하고, 집 위에 집을 지은 것을 누라 하고, 넓게 툭 튀게 지은 것을 정이라 하였으니, 모두 시기에 임하여 참작해서 알 맞음을 취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자에 말미암아 밑에다 바퀴를 달아서 굴려 옮기는 것을 대비하는 것 이 무엇이 불가한가? 비록 알맞음을 취한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말할 것이 없겠는가? 밑은 바퀴로 하 고 위는 정자로 한 것은 바퀴로 굴러가게 하고 정자로 멈추게 한 것이니, 갈 때가 되면 가고 그칠 때가 되면 그치는 뜻이다. 바퀴를 넷으로 한 것은 사시를 상징한 것이고, 정자를 6척으로 한 것은 6기를 상 징한 것이며, 두 들보와 네 기둥을 한 것은 임금을 보좌하여 정사를 도와 사방에 기둥이 된다는 뜻이다. 아! 정자가 이루어진 뒤에는 마땅히 동지들을 맞아서 낙성식을 행하고, 각자 시를 지어 그 자세한 것을 기록하게 해야겠지만, 이제 대략만을 취해서 먼저 친구에게 자랑하여 머리를 들고 성취되기를 기다리게 하는 바이다. 猊 山 隱 者 傳 崔 瀣 은자의 이름은 하계, 혹은 하체라 하며 창괴는 그의 성으로, 대대로 용백국의 사람이다. 본래 두 자의 성이 아닌데, 은자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음이 느리기 때문에 그 이름과 함께 이렇게 바꾸었다. 은자는 어릴 적에 이미 하늘의 이치를 아는 듯하였으며, 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한 방면에만 얽매어 있지 아니하였으며, 겨우 뜻만을 아는 정도에 그치고, 한 가지도 공부를 완전히 마친 것이 없었으니, 그것은 넓게 보기만 하고 깊이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츰 자라나게 되자, 비장한 각오로 출세하는 데 뜻을 두었으나, 세상에서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성격이 잘 받들지 못하고, 또 술을 좋 - 5 -
아하여 두어 잔만 마시면 남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얘기하기를 좋아하여, 무릇 귀로 들은 것이면 입이 그것을 간직할 줄을 몰랐다. 그러므로 남에게 아끼며 소중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다. 벼슬을 할 뻔하다 가는 곧 배척을 당하여 쫓겨나게 되었다. 비록 친구들이 애석히 여겨서 그의 성격을 고쳐주려 하여, 더 러 권하기도 하며 더러 책망도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중년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스스로 뉘우 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그는 얽매어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대우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쓰이지 못하 였다. 은자도 또한 이 세상에 다시 뜻을 두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왕래하던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인정받지 못 한 사람이 많았으니, 여러 사람에게 미더움을 얻기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였다. 이것은 그의 단점인 동시에 그의 장점도 되는 것이다. 늦게 사자갑사의 중을 따라가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농원을 개척하여 취족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예산농은이라고 호를 지었다. 그의 좌우명에 이르기를, 너 의 땅과 너의 농원은 삼보로부터 받은 무거운 은혜로다. 넉넉함을 취한 것은 어디서 온 것이냐? 삼가 잊지 말지어다. 하였는데, 은자는 평소에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마침내 그들의 소작인이 되었으 므로, 대저 평소의 뜻이 어그러진 것을 하소연하며 스스로를 조롱한 것이다. 小 圃 記 李 穀 경사의 복전방에서 빌린 집에 빈 터가 있어 고쳐서 작은 채소밭으로 만들었는데, 세로 길이는 두 길 반 이고 가로 길이는 3분의 1이어서 가로와 세로 8 9휴로 만들어, 채소 몇 가지를 맛보려고 계절의 선후 에 따라 번갈아 심으니, 부족한 겉절이를 보충할 만하였다. 첫 해에는 비오고 볕 나는 것이 제때에 맞 아서 아침에 떡잎이 나면 저녁에 새잎이 나오고 잎이 윤택하고 뿌리가 기름져서 아침마다 캐어도 다하 지 않으므로 나머지를 이웃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태 되는 해에는 봄과 여름에 점점 가물어서 항 아리로 물을 길어다가 부어 주어도 마치 타는 불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심어도 싹이 트지 않 고 싹이 터도 잎사귀가 나오지 못하고 잎이 나도 피어나지 못하여 벌레가 다 먹어 버렸으니, 감히 뿌리 를 바랄 수가 있겠는가? 얼마 뒤에 장마가 져서 가을 늦게야 겨우 개어, 흙탕물에 빠지고 진흙 모래를 뒤집어쓰고 담 밑에 있는 땅은 모두 무너져 눌려서, 지난해에 먹은 것에 비교하면 겨우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삼 년 되는 해에는 이른 가뭄과 늦은 비가 모두 심하여, 먹은 것이 또 지난해의 반의반이었다. 내가 일찍이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헤아리고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추측하여, 천하의 이익이 마땅히 그 태만은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가을에 과연 익지 않아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서 하남 하북의 백성들이 옮겨 가는 자가 많고, 도적들이 몰래 일어나서 군사를 출동시켜 잡아 베었으나 종식시킬 수가 없었다. 봄이 되어 주린 백성들이 경사에 구름처럼 모여 도성 안팎에서 울부짖으며 구걸하느라 넘어져 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가 깔고 벨 정도로 많았다. 조정에서는 근심하고 노력하며 유사들은 이리저리 분 주하여, 베풀어 구제하여 살리는 것이 이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창고를 열어 진휼하고 죽을 쑤어 먹이 기까지 하였으나, 죽는 자가 이미 반이 넘었다. 이 때문에 물가가 뛰어서 쌀 1말에 8 9천 냥이나 되 었다. 지금 또 늦은 봄부터 하지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아서 심은 채소를 보면 지난해와 같으니, 이제부 터라도 비가 오려는지 알 수 없다. 풍문을 듣자니, 재상이 친히 절이나 道 觀 에 나아가서 비오기를 빈다 니, 생각하건대 반드시 비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작은 채소밭은 역시 이미 늦었다. 문과 뜰에 나 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이 말이 참으로 거짓말이 아니로다. - 6 -
辭 辨 李 穡 부는 근세에 나오긴 했지만 그것도 삼위에 근원하니, 삼위가 변하여 소가 되고, 소가 나온 이후에 부가 출현했다. 사는 공씨에서 나왔는데, 주역( 周 易 ) 을 해설한 十 翼 이 그것이다. 지금 그 글을 읽어보면, 운자에 맞는 말이 매우 많은데, 아마 역시 갱재에 근본하였는 듯하다. 초나라 굴원이 지은 소도 변아에 서 흘러나온 것인데, 송옥 경차 가의가 잇달아 일어나 부를 지음으로써 본원과 지류가 여기에서 갖 추어지게 되었다 漢 나라가 일어나자 무제가 추풍사 를 지었는데, 대게 소에 근본한 것으로 말이 더욱 簡 朴 하고 古 雅 하다. 그리고 晉 나라 처사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 는 약간 문자를 치달린 면이 있지만, 부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간략하다. 반고( 班 固 )와 사마상여( 司 馬 相 如 )가 출현하여 (모든 문체를) 남김없 이 포괄하였기 때문에, 심지어 1편을 10년 만에 이루었다는 말까지 있으니, 아! 성대하기도 하나 그 또 한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유독 문장뿐만 아니다. 외면을 꾸미는 것이 날로 더해 가면서 내면에 쌓 인 것은 날로 깎여 나가서, 지엽만 무성하면서 근본이 쇠약해지고 말았으니, 매우 괴이한 일이다. 가령 근본이 진실로 굳건해지기만 한다면 지엽이 무성해진들 또한 무엇이 해롭겠는가? 答 問 李 穡 (어떤 사람이) 문장을 짓는 법을 묻자, 선생이 이르기를, 반드시 말해야 할 것만 반드시 말하고, 반드 시 써야 할 것만 쓰면 된다. 하였다. 그 다음을 묻자, 말이 심원하면 더러 비근한 것으로 보충하고, 쓰 는 것이 현실과 거리가 멀면 더러 바른 것으로 비슷하게 하라. 하였다. 또 그 다음을 묻자, 반드시 말 할 것이 아닌데도 말을 하거나 반드시 쓸 것이 아닌데도 쓴다면, 또한 뒤바뀐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 다. 또 마땅히 무엇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묻자, 스승은 사람에게 있지 않으며, 책에도 있지 않 으니, 스스로 터득할 뿐이다.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이야말로 요순 이래로 바뀐 적이 없었다. 하였다. 이미 10여 년이 지나서 물은 자가 감사하며 말하기를, 선생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 말을 실행할까 합니다. 하였다. 동자가 곁에 있다가 그 까닭을 묻기에, 이것을 기록하고서 답문 이라 하였다. 陶 隱 先 生 文 集 序 權 近 문장은 세도에 따라 오르고 내리니, 이것은 대개 기운의 성과 쇠에 관계되는 것이어서 그것과 더불어 서로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왕왕 특이하게 뛰어난 재주로 세상을 따라 휩쓸려 넘어가 지 않고 예전 사람의 빛을 덮어 독보적인 사람이 있다. 옛적에 굴원은 초나라에서 도연명은 진나라에서 비록 그 나라의 운수가 쇠퇴해 가는 때에도 그 문장은 더욱더 떨치고 일어서서 환히 광채가 있었다. 게 다가 그 절의의 늠름함은 바로 가을 하늘과 높이를 다투어서 만세토록 신하된 사람의 존경하여 복종하 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만하고 인륜과 세교에 대한 공이 몹시 크니, 단지 문장만을 숭배할 것이겠는가? 성산 도은 이 선생은 고려 말에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학문이 정미하고 풍부하였으며 염 락의 성리의 학설을 바탕으로 하여 경 사 자 집과 백가의 글에 널리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조 예가 이미 깊고 식견이 몹시 높아 뚜렷이 정대한 위치에 섰으며, 부처와 노장의 말까지도 그 옳고 그른 것을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 펴서 문장을 지음에 고고하고 아결하며 탁월하고 정치하였으며, 고율과 변려까지도 모두 절묘한 지경에 이르러 정연한 법도가 있었다. 한산 목은 이문정공( 李 穡 )이 매양 경탄 하기를, 이분의 문장은 중국에서 찾아보아도 어느 세대고 많이 얻지는 못하며, 우리나라에서 글하는 선비가 있은 뒤로 그와 비교할 사람이 드물다. 하였다. 일찍이 사명을 받들고 두 차례나 중국에 갔었 - 7 -
는데, 중국 사대부들이 그의 저술을 보고 그의 말씨를 접해본 사람이면 탄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 래서 예장 사람 주탁과 오흥 사람 장부와 가흥 사람 고손지 같은 이가 서와 발을 지어 그 문장의 아름 다움을 칭송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단지 한 나라에서만 중하게 여기고, 한때에만 울리고 말 뿐이겠는 가? 참으로 예전 사람의 빛을 덮어 독보적인 사람이라 할 만하다. 고려가 생긴 지 5백 년에 백성을 잘 기르고 은덕이 이루어져 많은 인재와 아름다운 문헌이 거의 중화 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세상에 이름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목은의 풍부한 것과 도은의 아담한 것이 있을 뿐이다. 쇠해 가는 말엽에 와서 그 문장이 더욱 떨치고 나타났으니, 이것은 반드시 수백 년 동안 잘 길 러온 은택이 결국 여기서 뭉쳐 끝을 맺은 것인가? 우리 조선에 와서 왕업이 한창 잘되어 나가는데 선 생이 시골로 물러가 있으니, 우리 태상왕이 천명을 받은 뒤에 그 재주를 사랑하여 장차 불러 쓰려 하는 데, 선생이 이에 졸하였으니, 아! 애석하도다. 선생이 일찍이 성균관의 시관( 試 官 )을 맡았는데, 지금 우 리 주상전하가 잠저에 있을 때 그 과거에 뽑혔다. 임금이 된 뒤에 늘 경연에 나오기만 하면 감반의 예 전 정을 애통히 생각하여 다시 벼슬을 추증하고, 그 두 아들에게 벼슬을 주어 현달한 지위에 두었으며, 또 그 유고를 발간하여 그 이름이 썩지 않게 하였으니, 그 선생님을 높이 예우하고 문헌을 존중히 여기 며 절의를 포장함이 지극하다. 이 한 가지 일에도 몇 가지 훌륭한 일이 함께 드러나니, 우리 전하께서 여기에 정성을 다함이 마땅하다 하겠다. 신 권근이 명령을 받고 감히 사양할 수 없어, 대강 이 말을 써 서 서로 삼는다. 영락 4년(태종6, 1406) 10월 하순 後 山 家 序 吉 再 하늘이 사람을 낳을 때 후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어떤 이는 군자가 되어 귀해지고 어떤 이는 소 인이 되어 천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귀하다가 더욱 귀해지고 천하다가 더욱 천해지는 것은 이치 가 떳떳한 것이지만, 어떤 이는 귀하다가 천해지고 어떤 이는 천하다가 귀해지는 것은 천명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예부터 공경의 자식들은 부귀 속에서 생장하여 수레와 말이 달리고 걷는 수고로움을 대신 해 주고 하인들이 사지의 노동을 덜어주며, 봉양함에 진귀한 음식이 있고 입는데 춥고 더운 알맞음이 있다. 태어나자 임금이 그들을 알고 성장하자 임금이 그들을 임명하니, 두터운 봉록과 벼슬은 바라지 않아도 이르고 귀한 관작은 저절로 올라간다. 임금이 그들을 알아주는 것이 이처럼 정말 쉽고 임금이 그들을 귀하게 해주는 것이 이처럼 정말 넉넉한 것은 다른 까닭이 없다. 선조 때부터 쌓아온 공훈과 미 리 길러온 은혜 때문이다. 서민의 자식들은 들에서 나고 자라 몸을 적시고 발에 흙을 묻혀도 옷은 그 몸을 가릴 수 없고 음식은 그 몸을 봉양할 수도 없어 추위가 닥쳐오면 굶어 죽을 지경이다. 정신은 극 도로 써서 피로하고 마음은 애를 써서 견디다 그 공적이 드러난 이후에 관리가 알아주고, 관리가 알아 준 이후에야 조정이 듣고, 조정이 들은 이후에 임금이 그를 등용하니, 임금이 그들을 알아주는 것이 이 처럼 정말 어렵고 임금이 그들을 출세시키는 것이 이처럼 정말 더딘 것은 다른 까닭이 없다. 공업이 자 기 한 몸에서 시작되었을 뿐 점차 쌓아오고 미리 길러온 은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농촌에서 나고 자라서 천하여 더 천할 수도 없고 미미하여 더 미미할 수도 없다. 나이 겨 우 8 9세에 나무하고 양을 길렀고, 성장하여서야 아침에는 밭을 가고 밤에는 글을 읽어 螢 雪 之 功 한 지 10년 만에 추운 옷에 채식하기를 태연하게 하였고, 논밭에서 김매어 몸을 적시고 발에 흙을 묻혀도 또한 태연하였다. 다만 힘을 다해 밭을 갈고 애써 학문을 닦음으로써 아래로는 부모를 섬기고 위로는 임금을 섬기니, 부모를 섬기면 그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임금을 섬기면 그 임금을 요순이 되게 하여, 요 순시대 백성을 만들고 삼대( 夏 殷 周 )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내가 평소 뜻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 - 8 -
금 불행히도 하늘이 무너지는 근심을 만나 10년의 공이 사라져버렸다(고려의 멸망을 말함).아! 하늘이 실로 이렇게 하였으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래서 방황하며 슬퍼하다가 마음을 바꾸어, 숨어 스스로 자취를 감추고 여라 사이의 달에 갓을 걸어두고 맑은 바람에 시를 읊조리며 천지를 우러러보고 굽어보 며 한 세상을 소요하며 당시의 책임을 받지 않고 길이 바른 성명을 보존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겼 다. 이렇게 하면 하늘을 넘어 우주의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수천 마리의 말과 만종의 부귀 를 부러워하겠는가?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