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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 유의점 m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낱말이 있으므로 자세히 설명해주도록 한다. m 버튼을 무리하게 조작하면 고장이 날 위험이 있으므로 수업 시작 부분에서 주의를 준다. m 활동지를 보고 어려워하는 학생에게는 영상자료를 접속하도록 안내한다. 평가 평가 유형 자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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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삶과 우리말 우리말 부라퀴가 되리라 고정욱 소설가 아동문학가 1 작년에 나는 300번이 넘는 강연을 하기 위해 전국으로 불려 다녔다. 한 사람이 300번 넘게 강연을 다닌다는 것은 공휴일 빼고 거의 하루에 두 번씩 강연을 했다는 의미이다. 내가 이렇게 강사가 되어 버린 이유는 수많은 내 작품들이 전국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인기 작품이 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유 치원에서는 내가 쓴 그림책을 읽고, 초등학교에서는 내가 쓴 동화를, 그리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나의 청소년 소설을 탐독하다 보니 그들 은 나의 댕돌 같은 고정 팬이 되었다. 독자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 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할 때 나를 불러 달라고 간청(?)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쑥스럽지만 전국에서 불러 주는 인기 있는, 연예 인 아닌 연예인이 되고 말았다. 특히 청소년들은 나의 작품인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까칠한 재석이가 돌 아왔다, 까칠한 재석이가 열 받았다 3권)에 열광한다. 어디 그뿐 인가?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 실이 그리고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인기 있는 작품들이 104 새국어생활 제25권 제1호(2015년 봄)

제법 많아 본의 아니게 자랑 아닌 자랑처럼 되었다. 작가와의 만남 강연이 끝나면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를 읽은 학생들 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등장인물 부라퀴 에 대한 것이다. 선생님, 부라퀴는 선생님이 모델이시지요? 응. 내가 부라퀴에게 빙의되었지. 부라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까칠한 재 석이는 이른바 학교에서 주먹깨나 쓰는 일진 껄렁패 녀석이다. 그러던 재석이가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복지관에 갔다가 회심을 하여 모범생 으로 거듭나게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부라퀴이다. 물론 본명이 부라퀴는 아니다. 하도 하는 짓이 지독하고 깐깐하기 때문에 주 인공인 재석이가 붙인 별명이다. 부라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야물고 암팡스러운 사람 이란 뜻이 다. 순우리말인 부라퀴를 별명으로 쓰게 된 것은 이 멘토에게 붙여 줄 마땅한 호칭이 없을까 생각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 별명이 쉽게 지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가장 먼저 후보로 올라갔던 별명 중 하나가 구나방 이었다. 구나방 은 그러나 의미가 조금은 부정적이었다. 말이나 행동이 거칠고 사나운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인 문제아 재석이를 거칠고 강 하게 다루긴 해야 하지만 또 한편에는 그 행동에 애정이 담겨 있어야 하 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쓸 만한 것이 뭐가 있나 찾아보니 분대꾼 이 있었다. 분 대꾼은 소란스러운 짓으로 남을 괴롭히는 사람을 뜻한다. 이것 역시 부 정적인 의미가 강해 최종적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삶과 우리말 105

가납사니: 쓸데없는 말을 잘하는 사람 모주망태: 술을 늘 대중없이 많이 먹는 사람 말재기: 쓸데없는 말을 꾸며내는 사람 새퉁이: 밉살스럽고 경망한 짓. 또는 그런 사람 불뚱이: 걸핏하면 불끈 성을 내는 성질. 또는 그런 사람 이렇게 수없이 많은 우리말 가운데서 고르고 고르다가 결정된 것이 바로 부라퀴 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흥행작이었다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나오는 이무기의 이름 도 부라퀴였다고 한다. 심형래 감독도 아마 적당한 이름을 찾기 위해 국어사전깨나 뒤졌던 모양이다. 부라퀴에 대한 대답을 해 주니 아이들은 또 다른 연쇄 질문을 한다. 선생님, 왜 가끔 선생님 작품에는 어려운 말이 나와요? 또 좋은 질문이다. 왜 나는 사전을 찾아야만 뜻을 알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들을 작품에 집어넣는 것일까? 그것은 일종의 창작 원칙이다. 동화가 되었건 소설이 되었건 나는 가 급적이면 그 작품 안에 우리말을 한두 개 씩 소개하려 애쓴다. 뜻을 직접 적으로 소개하지는 않더라도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도록 배 려한 셈이다. 이렇게 된 사연을 알려면 잠시 나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나는 아무 목적 없이 책읽기를 즐겼 다. 청소년기에도 밤늦게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진 적도 있었고, 독서 량도 또래의 청소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랬던 나는 진로를 이과로 정해 의대나 공대에 진학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것은 사회 현실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106 새국어생활 제25권 제1호(2015년 봄)

선택이었다. 대학 입시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나 같은 장애인은 이공계 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공계 대부분의 학과가 신체검사를 통해 장애를 가진 지원자를 탈락시킨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뒤 각다분해진 나의 실망과 좌절은 엄청난 것이었다. 가뜩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어 20점이나 배점되는 체력장에서도 불리한데 학과조차 원하 는 곳을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렌 켈러의 말대로 신은 인간의 문을 닫으면 창문을 열어 주 는 것 같았다. 주위의 권유로 나는 이과 전공의 꿈을 포기하고 급작스 럽게 문과로 방향을 바꿔 진학하기로 했다. 그 결과 들어가게 된 학과 가 국어국문학과였다. 국어학과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과에 진학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꿔 본 적이 없었지만 운명은 그렇게 나를 엉뚱한 방향 으로 이끌어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재학생으로 만들고 말았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은 해야 하니 대학을 다니게는 되었지만 초기의 1, 2년간은 준비하지 않은 전혀 다른 학문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흔들려 야만 했다. 국문학과의 전공과목은 수업 시간에 소설책을 소리 내어 읽 고, 그 작품의 문학성을 논하는 것이었다. 수치로 증명되는 것도 아니 고,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언어의 잔치라고 느낄 만큼 이과와 문과의 학문 세계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희망도 보였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문학 작품을 많이 읽었던 것이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학년쯤 되어 문학 공부의 맛을 알게 되자 마치 운명이 나를 이 길로 이끈 것만 같았다. 문 학 공부가 반드시 나의 갈 길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문학을 공부하 던 그 시절 학과 교수님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문학을 공부하는 작가들이야말로 그 시대 지식인들의 대표이자 선 두 주자야. 그렇기에 작가에게는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며 개발해야 할 삶과 우리말 107

의무가 있다. 누가 한 말인지, 누가 이렇게 거창한 사명을 내 안에 심어 줬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니, 어쩌면 이 명제는 내가 스스로 사유에 의해 에디톨 로지적으로 편집해 만든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구 하나는 그 뒤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아니, 작가가 되는 여정에서 놓 을 수 없는 화두였다. 작가의 꿈을 갖게 된 뒤 읽은 수많은 문학 작품들도 그 의무를 충실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작가들이 정말 열심히 우리말을 찾고 개발하 여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수한 자신의 고향 충 청도 방언을 살려낸 이문구나, 작품 자체가 그대로 우리말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김주영, 홍명희, 천승세 등의 작품들이 나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나는 마치 영어 공부를 하듯 그들의 작품에 나오는 어려운 우리말들 을 찾아 국어사전을 뒤적였고, 그렇게 알게 된 단어들을 노박이로 공책 에 옮겨 적어 단어장을 만들었다. 영어는 열심히 단어장을 만들면서, 우리말은 만들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깨닫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래에 그때 선배 작가들로부터 얻은 단어들 일부 를 소개해 본다. 뱃구레: 사람이나 짐승의 배의 통 껍죽거리다: 신이 나서 경망스럽게 까불거리다 씨루다: 서로 버티어 겨루다 조막손: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펴지 못하는 손 꿍수: 보기와는 딴판으로 속으로 은근히 품고 있는 야심 오방지다: 옹골지다 -김주영, <도둑견습> 중에서 108 새국어생활 제25권 제1호(2015년 봄)

무삶이: 물을 대어 논을 삶는 일 칠석물: 칠석 무렵에 오는 비 지청구: 아무 이유 없이 남을 원망하고 탓하는 일 목새: 물에 밀려 모인 부드러운 모래 된비알 : 험상궂은 비탈 -이문구, <우리동네 김씨> 중에서 그렇게 정리한 노트는 권수가 한 권 두 권 늘어나게 되었고, 나는 많 은 문학 스승들을 통해 우리말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문장 한 줄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며, 머 리를 싸매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뒤 나는 우리말 단어를 익히는 것이 영어 단어 수백 개 익히는 것보다 더욱더 숭고하고 보람되며 아름다운 일이라는 자기 세뇌를 끊임없이 했다. 나의 그러한 우리말 어휘에 대한 욕심과 수집욕은 끊임없이 이어졌 고, 마침내 10여 년 뒤 살려 쓸 우리말 사전 이라는 책으로 발간되 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 등단을 하게 되었으며, 고맙게도 지금까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작품 속에 이러한 순우리말을 넣는 일은 현실적인 벽에 많이 부 딪히는 것이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찾아 넣은 말들은 간혹 편집자들이 나 독자들의 불평을 샀다. 왜 굳이 잘 모르는 말을 써서 자신들이 독서 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지나치게 어려운 말을 구사함으로써 몰입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 이 잘못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우리말을 몇 개씩이라도 써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사전 속에 있는 그 많은 말들은 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시나브로 사어가 되어 영원히 잊힌다면 너무나 안 삶과 우리말 109

타깝지 않은가. 우리말과 얼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눈 뜨고 볼 수는 없 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과하지 않게, 그러나 결코 빼놓지 않고 내 작 품 안에 우리말들을 적당히 집어넣으려 애를 쓴다. 언젠가 제자가 해 준 웃지 못 할 이야기가 기억난다. 누군가 보내온 편지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 하나를 알지 못해 편지의 주인은 옆집에 가 서 우리말 사전이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영어 사전은 있지만 우리 말 사전은 없다는 대답에 그 옆에 있는 대학교수 집에 찾아갔다고 한다. 유수한 대학의 교수라는 그 역시 여러 권의 영어, 불어 등 외국어 사전 은 다 갖추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말 사전이 없었다. 결국 온 동네를 다 뒤져도 우리말 사전이 하나 없었는데 마침 학교 갔다 돌아오는 초등학 생의 가방 속에서 나와 그걸 보고 말뜻을 알았다는 거다.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글로벌 인재를 개발한다거나 해외 시장을 개척 한다는 것이 화두가 될 정도로, 우리의 모든 관심은 외부에 쏠려 있다. 세계가 그렇게 변한다면 따라가야만 하리라.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면 거부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얼과 우리말만은 붙들고 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말과 얼도 내다 팔아 버린다면 결국 우리가 돌아와서 몸담을 곳 은 어디란 말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되는가? 온 동네에 우리말 사 전 하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선 안 되리라. 백두산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연변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길 중간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했다. 그때 덩치가 커 다란 잡상인들이 우리 일행에게 달라붙어 뭔가를 사라고 강요했다. 그 들이 내미는 건 정체불명의 산삼. 가이드는 그들과 말도 섞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생김새나 말투가 여느 중국인들과 달랐다. 버스가 떠난 뒤에야 가이드는 저들이 한족이 아니라 과거 만주족의 후예들이라는 110 새국어생활 제25권 제1호(2015년 봄)

말을 해 주었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여진족이라든가 말갈족, 오랑캐 등의 북방 민족 이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이었다. 언어를 잃어버리니 자연스럽 게 민족의 혼이나 정기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작품을 쓸 때면 그 안에 우리말들을 약간씩 끼워 넣으려 애를 쓰고 있다. 그건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거창한 명분을 위해 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내 것을 지키려는, 소박한 안간힘이다. 이 글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집어넣은 그 말들이 작품 속에 실려서 독자들의 뇌리에 박혀 조 금이라도 생명력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모르게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부라퀴가 되어 가고 있다. 당신도 우리말 지킴의 부라퀴가 될 마음은 없는가. 삶과 우리말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