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더불어, 기록으로서의 출판은 상대적으로 많은 요인들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전시라는 관행에 비해 단순하고,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분야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론과 함께 동시대 시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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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 1 - 김윤경(독립기획자) 북페어? 2013년 여름, 홍대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던 KT&G상상마당 갤러리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기이한 출판물들이 전시인 듯, 전시 아닌, 전시 같은 방식으로 KT&G상상마당 갤러리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젊은 관람객들은 곳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자유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어바웃북스. 2010년에 처음 시작되어 올해 5회를 맞은 이 행사는 판형과 유통, 콘텐츠 등에서 기존의 출판 시스템과는 차별화된 자유로운 시도를 보여 주는 독립출판물을 모아 전시하고 판매함으로써, 출판인들에게 새로운 독자를 만날 기회를 제공 하고 관람객들에게는 현재 출판물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 됐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행사였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새로운 독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독립출판인들과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책? 책! 책을 하나의 독립적인 매체로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주요 활동 분야가 전시를 기획하는 일에 한정되어 있던 나에게 책이라는 매체는 전시를 보완하는, 혹은 기록하는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수단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작가들이 생산해 낸 미학적 결과물들을 특정 기간 동안, 특정 장소에서 보여 주는 전시가 미술 생산 시스템에서 가장 일반적인 관행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과는 달리, 미술에 있어서 책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작품, 혹은 전시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전시 기획을 주업무로 삼아 왔던 나에게는 그랬다. 작가의 생산물을 실제로 대면한다는 점에서 전시는 미술의 관행 중에서 최우선의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반면, 전시를 통해 실제로 마주했던 작품들이 남긴 흔적들을 뒤따라가는 방식으로, 일시적으로 일정 시간과 장소를 점유했던 사건을 기록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책 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매우 개인적인 이유에서이긴 하지만, 전시라는 관행이 작가가 아닌 기획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고, 그 결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타협 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장( 場 )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 2 - 더불어, 기록으로서의 출판은 상대적으로 많은 요인들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전시라는 관행에 비해 단순하고,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분야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론과 함께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드러나는 다양하고 개별적인 목소리와 요구를 실천적으로 파악해내기 위해서는 독립적 이라는 장점이 가장 절실한 것으로 다가왔고, 이것은 다시 소수에게라도 유의미하게 읽힐 수 있는 책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결국, 나만의 1인 출판사가 설립되었고, 나의 기록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렇게 나의 관심 분야는 전시라는 관행에서 출판이라는 미지의 분야로 옮겨가고 있었다. 독립서점, 소규모서점, 전문서점 언젠가부터 도심에서 서점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사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더불어 매우 일반적인 풍경이 되었다. 인터넷은 문화와 상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메일, 인터넷 메신저, 화상통화뿐 아니라,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 온라인쇼핑을 아우르는 인터넷 세상은 당연히 미술과 출판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것은 미술과 관련된 출판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출간물들이 거대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 유통되는 상황에서 독립출판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유통의 문제이다. 거대 자본과는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생산과 유통을 진행하게 되는 독립출판의 경우, 독립서점의 존재는 무엇보다도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삼아 운영되는 전문서점은 텍스트만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 미술관련 출판의 지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의 경우,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술관련 서적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들이 존재한다. 모마(Museum of Modern Art)나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과 같은 뉴욕의 대표적인 미술관은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련 서적들을 보유하고 있는 서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 서점들은 반스앤노블(www.barnesandnoble.com)이나 아마존 (www.amazon.com)과 같은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 유통되는 대규모 미술전문 출판사의 출간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나 구겐하임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등 대부분의 유명 미술관들 역시 자체적으로 서점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다루고 있는 출간물들은 모마나 메트로 폴리탄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출판사들의 서적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마저도 온라인 서점에 밀려 도심에서 서점들이 자취를 감춰가듯이, 그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들 미술관의 서점과는 조금 방향을 달리하는 곳이 바로 뉴뮤지엄(New Museum)의 서점이라고

- 3 - 볼 수 있는데, 예전부터 독립출판물들과 예술가들이 소량으로 제작한 한정판 출간물을 꾸준히 소개해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2007년 현재의 위치로 미술관이 이전하면서 미술관 서점의 규모가 다소 작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른 유명 미술관과는 차별화된 출판물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뉴욕의 대표적인 미술전문 독립서점인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 Inc.)와 더불어 독립출판물을 유통시키는 중요한 서점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상 뉴욕에는 스트랜드 북스토어(Strand Book Store)라는 강력한 미술전문서점이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그 위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 역시 독립출판물의 유통과 크게 관련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사정은 기대를 품고 힘들게 찾아 방문했던 소규모 독립서점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많은 독립서점들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북북(bookbook), 크래포드 도일 북셀러스(Crawford Doyle Booksellers), 맥널리 잭슨 북스(McNally Jackson Books),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카페(Housing Works Bookstore Café), 워드(WORD Brooklyn)와 같은 서점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고수하며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는 있으나, 이 서점들은 미술 분야에 한정되어 있는 것도,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것도 아니라 다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반면, 대시우드 북스(Dashwood Books)는 사진과 관련된 서적만 다루고 있는 특화된 성격으로, 스푼빌 앤 슈가타운 북셀러스(Spoonbill & Sugartown, Booksellers)는 과거에 출간된 미술관련 중고 희귀본을 따로 분류해서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서점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대시우드 북스의 경우,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에서 일했던 경력을 가진 주인이 선별한 사진관련 서적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데, 사진 분야만큼은 미술과 관련된 모든 책을 가지고 있다는 스트랜드 북스토어보다도 훨씬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신간뿐 아니라, 중고책은 물론 구하기 어려운 희귀 서적까지도 사진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대시우드 북스 라고 할 정도로, 특정 분야에 관한 전문서점으로서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스푼빌 앤 슈가타운 북셀러스의 경우, 대시우드 북스에 비견될 정도로 특정 전문분야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60~70년대에 출간된 개인전 카탈로그, 특히 미니멀아트(Minimal Art)나 프로세스아트(Process Art) 선구자들의 초기 전시 카탈로그와 같은 희귀본들을 따로 분류하여 보유하고 있는 서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프린티드 매터. 미술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값진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 뉴욕에는 존재한다. 스트랜드 북스토어가 대규모로 출판되는 미술전문 서적들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유통시키고 있다면, 프린티드 매터는 소규모로 출간되는, 각양각색의 취향과 관심사가 반영된 다양한 미술관련 출판물들을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유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프린티드 매터는 1976년 솔 르윗(Sol Lewitt)과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를 비롯한 작가와

- 4 - 미술관계자들이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독립출판물, 특히 작가들의 저작물을 유통, 보급하는 활동을 통해 대중의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2005년부터 뉴욕 아트북 페어(The NY Art Book Fair)를 설립,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미술관련 출판물과 독립출판물의 저변을 급속도로 확장해가고 있다. 자가출판 독립출판의 경우, 소량의 책을 인쇄하고 유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출판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판매가격을 한없이 낮출 수 없다. 출판 단가를 낮추려는 욕심에 출판 물량을 늘리는 것도 재고 관리의 여건상 여의치 않다. 독립출판사 혹은 소규모 1인 출판사가 처해 있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뉴욕에서 독립서점, 소규모서점, 전문서점을 조사, 탐방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다. 맥널리 잭슨 출판 서비스(Publishing Services at McNally Jackson)의 에스프레소 북 머신(Espresso Book Machine). 소호(SoHo)에 위치한 맥널리 잭슨 북스 매장의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이 특별한 기계는 소규모 1인 출판사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일말의 대안을 제공해준다. 주문형 도서 서비스(Book on demand). 일정 물량을 미리 인쇄하고, 그 물량이 모두 판매, 소진될 때까지 창고에 가득 쌓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책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에스프레소 북 머신이라는 자가출판 기계를 이용하면, 누구든, 원하는 수량만큼 자신만의 책을 제작할 수 있다. PDF 파일로 준비된 원고를 인쇄하고 제본한 후재단하는 과정이 이 하나의 기계를 통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제작된 책은 맥널리 잭슨 북스의 자가출판 서비스를 통해 판매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원하는 수량의 책을 제작하고, 이것을 다시 유통시키는 출판 시스템을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가들이 특별한 목적과 효과를 위해 한정판으로 제작하는 책의 경우에는 그 적용 정도에 일정 부분 제약이 따르겠지만, 텍스트를 위주로 하는 책의 경우에는 고려해 봄직한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트북 페어, 세상의 모든 책, 미술과 관련된 모든 책이 모이는 곳 지난 9월 말, 뉴욕 퀸즈(Queens)에 위치한 모마 PS1(MoMA PS1)에서 열렸던 뉴욕 아트북 페어는 예술가들과 독립출판사들이 만든 책을 광범위하게 보급하는데 앞장서 온 비영리기관 프린티드 매터가 2005년 이래 매년 개최해 온 행사이다. 크고 작은 출판사 70여 팀이 참여했던 첫 번째 행사 이후, 뉴욕 아트북 페어는 독립출판을 둘러싼 국제적인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확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9회를 맞은 올해의 행사는 9월 25일 프리뷰를 포함하여 나흘 동안 350개의 출판사와 기관, 개인 등이 참여하고, 27,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의 엄청난

- 5 - 규모를 갖췄다. 행사를 주관하는 프린티드 매터를 비롯하여 MIT프레스(The MIT Press), 파이돈(Phaidon), 스턴버그프레스(Sternberg Press) 등과 같은 주요 미술전문 출판사가 출간한 수많은 미술전문서에서부터 미술전문 정기간행물, 예술가 개인이 소규모로 발행한 아티스트북에 이르기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출판사에서부터 유럽과 아시아의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발간된 신간에서부터 수십 년 전에 발간된 희귀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주제, 관심사를 담아낸, 미술과 관련된 세상의 모든 책들이 모인 듯했다.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과거, 미술 작품의 상업적 유통을 주로 담당해 왔던 주요 상업갤러리들이 출판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데이빗즈워너갤러리(David Zwirner Gallery), 매튜막스갤러리(Matthew Marks Gallery), 폴라쿠퍼갤러리(Paula Cooper Gallery)와 같은 첼시(Chelsea)에 자리잡은 주요 갤러리들이 전속작가의 홍보를 위한 카탈로그 이상의 본격적인 전문 서적을 출판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특히, 짧은 기간 동안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로 급부상한 데이빗즈워너갤러리의 경우, 다른 갤러리들과는 달리 아예 데이빗즈워너북스(David Zwirner Books)라는 출판사를 따로 운영하며 갤러리 전속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전문적으로 조망하는 서적을 본격적으로 출판, 유통하고 있음을 이번 아트북 페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출판사들이 각자의 부스에서 출판물을 선보이는 주행사장 이외에 Xe(rox) & Paper + Scissors, The Dome, 8 Ball Zines 와 같은 특별 부스가 꾸려졌고, 주행사장 내에서도 Norway Focus 나 Friendly Fire 와 같은 특별 부스가 마련되었다. 이와 더불어 행사기간 내내 매 시간마다 The Classroom 이라는 이름으로 예술가/작가가 진행하는 퍼포먼스/렉처가 진행되었고, Contemporary Artist s Book Conference 라는 세미나 세션도 따로 마련되어 다양한 분야의 출판과 그와 관련된 활동들에 대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펼쳐졌다. 주로 미술 분야와 관련된 출판물을 선보이는 주행사장의 전시물들과는 달리, 특별 부스나 부대행사를 통해 소개된 활동들은 특히 흥미로웠는데, 하위문화(subculture)를 지향하는 다양한 관심사를 잡지(zine)나 만화(comics)와 같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다양하게 소통하는 출판물들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출판인들에게는 새로운 독자를 직접 만나고 그들의 반응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이고, 관람객들에게는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책들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는 기회였다. 더불어, 연구자들에게는 오래전 희귀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고, 특정한 이슈를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리이기도 했다.

- 6 -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이 뉴욕 아트북 페어는 다양한 관심사를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출판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동시에, 출판에 있어서의 독립 의 중요성을, 나아가 독립출판 이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문화적 파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충격적인 기회이기도 했다. 다시 서울로 지난 11월 1일과 2일, 이태원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열렸던 행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엄청난 관심과 화제를 불러 모았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소규모로 제작되는 책과 잡지, 음반, 문구의 시장 으로 마련되어 전시의 형태를 거부하고 책을 둘러싼 관계와 이야기, 홍보와 판매에 주력 하며 직접 판매 부스를 통하여 일대일의 시장을 형성 할 것을 목적으로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올해까지 벌써 여섯 번의 행사를 치러냈다고 한다. 2009년 행사 첫해에 900명의 방문객과 900권의 판매를 기록했던 이 행사는 확장, 진화를 거듭했고, 올해 역시 성장세에 걸맞게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주최 측의 발표에 따르면, 108개의 팀이 참여한 제6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단 이틀동안 8,000명의 방문객을 불러 모았고 총 18,000권(포스터, 엽서, 가방, 음반, 문구, 기타 제품 포함)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기대를 넘어서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행사였지만, 뉴욕 아트북 페어와 비교해볼 때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급증하는 참여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국내에 한정된 이 행사는 책이라는 매체에 기대했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는 교류의 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세상의 모든 책이 다 모인 것처럼 보였던 뉴욕 아트북 페어에서 한국미술과 관련된 단 한 권의 출판물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에서도 남아 있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유통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번 리서치는 해결책을 발견하기보다는 사실상 더 큰 질문만을 남기며 이렇게 아쉽게 일단락되었다. 글. 김윤경 김윤경은 서울과 뉴욕에서 잠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작가를 만나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몽인아트센터에서 디렉터(2007~2011)로, 아트선재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에서 큐레이터(1997~2000)로 일했고,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3), 비엔날레 지오바니 몬차(2011), 국제작가포럼(2007) 등의 기획에 참여했으며, <인터페이스: 나의, 나만의 공공예술>(4회 APAP, 2013), (몽인아트센터, 2010), (갤러리코리아, 뉴욕한국문화원, 2006) 등을 기획했다. 동료작가들과의 오랜 대화를 기록한 합의, 일시적인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마르스프레스, 2012)을 출간했다. 본고는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진출과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해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가 지원한 개인리서치에 대한 결과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 7 - 본 기사에 수록된 사진 및 글의 저작권은 필자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 있습니다. 사진과 텍스트를 사용하시려면 미리 저작권자의 사용 허락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