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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론및기획 전문석사학위논문 5 18기념행사 활성화 방안 연구 - 전야제를 중심으로 - 전 남 대 학 교 문 화 전 문 대 학 원 문 화 예 술 이 론 및 기 획 전 공 김 지 혜 2014년 2월
5 18기념행사 활성화 방안 연구 - 전야제를 중심으로 - 논문을 문화예술이론및기획 전문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문화예술이론및기획전공 김 지 혜 지도교수 정 경 운 김지혜의 문화예술이론및기획전문석사의 학위논문을 인준함 2014년 2월
목 차 국문초록 Ⅰ. 서론 1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1 2. 연구의 방법 및 내용 3 3. 선행연구 검토 4 Ⅱ. 기억의 방식과 기념행사(전야제)의 성격 8 1. 기억과 전승 8 2. 5 18의 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성격 12 Ⅲ.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전개와 의미 17 1.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전개 17 가.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시기별 변화과정 17 1) 기념행사의 시기별 변화과정 17 2) 전야제의 시기별 변화과정 34 나. 5 18기념행사의 운영체계 68 1) 조직 68 2) 프로그램 구성 71 3) 예산 75 2. 전야제의 의미와 한계 81 가. 전야제의 의미 81 나. 전야제의 한계 85 Ⅳ. 5 18 전야제 활성화 방안 92 - i -
1. 5 18행사위원회의 상설 조직화 92 2. 소통과 협력에 기반 한 5 18네트워크 구축 96 3. 주체적 시민참여 실현 100 4. 5 18자원봉사 시스템 연계 104 5. 시민이 만들어 가는 홍보 마케팅 107 Ⅴ. 결론 111 참고문헌 115 Abstract 121 - ii -
<표 차례> [표 1] 1987~1992년 기념행사 프로그램 21 [표 2] 1993~2000년 기념행사 프로그램 23 [표 3] 5 18 제14주기 5 18시민 놀이마당 24 [표 4] 1998~2013년 5 18기념행사 주제 26 [표 5] 2001~2013년 기념행사 프로그램 33 [표 6] 1997년 전야제 프로그램 45 [표 7] 1998년 전야제 프로그램 47 [표 8] 1999년 전야제 프로그램 48 [표 9] 2000년 전야제 프로그램 49 [표 10] 2001년 전야제 프로그램 52 [표 11] 2002년 전야제 프로그램 53 [표 12] 2003년 전야제 프로그램 55 [표 13] 2004년 전야제 프로그램 57 [표 14] 2006년 전야제 프로그램 58 [표 15] 2007년 전야제 프로그램 59 [표 16] 2008년 전야제 프로그램 60 [표 17] 2009년 전야제 프로그램 61 [표 18] 2010년 전야제 프로그램 62 [표 19] 2011년 전야제 프로그램 64 [표 20] 2012년 전야제 프로그램 66 [표 21] 2013년 전야제 프로그램 67 [표 22] 타 지역 및 전남 시 군별 기념행사 개최수의 변화 72 [표 23] 1993년~1999년 5 18기념행사 예산 75 [표 24] 2000년~2013년 5 18기념행사 예산 76 - iii -
[표 25] 2000~2013년 전야제 예산 79 [표 26] 광주광역시 지역축제 예산현황 80 - iv -
<그림 차례> [그림 1] 1999년 5 18로고 공모 당선작 28 [그림 2] 5 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엠블럼 및 로고 28 [그림 3] 9, 11, 12주년 전야제 행사 38 [그림 4] 13주년 전야제 행사 41 [그림 5] 14주년 전야제 행사 41 [그림 6] 16주년 전야제 행사 43 [그림 7] 15주년 전야제 46 [그림 8] 17주년 전야제 46 [그림 9] 22주년 전야제 재현극 54 [그림 10] 22주년 전야제 대동놀이 54 [그림 11] 23주년 전야제 체험 마당 56 - v -
5 18기념행사 활성화 방안 연구 -전야제를 중심으로- 김 지 혜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문화예술이론및기획전공 (지도교수 : 정경운) (국문초록) 5월의 의미와 가치를 보존하고 이를 전승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5 18기념사 업은 5월운동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현재는 그 범위가 다양한 분야로 확대 되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5월행사는 5월 의례운동의 일환으로 여전히 시민사회 속에서 그 의미와 상징성을 담지한 채 연 행되어지고 있으며, 5월의 기억을 다양한 문화적 구현 방법을 통해 전승하고 있 다. 하지만 현재 5 18에 대한 역사왜곡의 문제가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5 18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 가치가 훼손 및 격하되어 감에 따라, 올바른 5월 의 기억을 형성하고 전승하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 다. 본 연구는 이 같은 맥락 속에서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가 5월의 집합적 기억 을 재생산하는 장이자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보고, 전야제 행사의 활성화를 통해 5월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이를 위해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 -hs)의 집단기억 이론으로 5 18기념행사의 집단기억 형성의 특성을 고찰하고, 이어 아스만 부부(Jan Assmann, Aleida Assmann)의 문화적 기억 이론을 바탕 으로 전야제의 기억 전승의 매체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기억의 특성은 본 연구의 대상인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가 가지는 성 - vi -
격과 밀접한 연관을 이루는데, 의례적 투쟁적 문화 예술적 성격을 수반하는 전야 제는 본질적으로 5월 영령을 기리고 그들의 민주정신과 투쟁정신을 기억하고 전 승하기 위해 진행되는 것으로, 문화 예술적 매체를 활용하여 이를 시민사회에 지 속적으로 전달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5월을 기억하는 방식과 그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5 월투쟁의 과정 속에서 성장해온 기념행사와 전야제의 역사적 전개과정 및 운영 체계를 정리 분석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전야제 행사에 참여한 주체자들의 인터 뷰를 통해 전야제가 지니는 의미와 한계를 도출하였다. 먼저,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는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 및 재야단체, 5월관련 단체들의 참여에 의해 연행되어오면서 공동체 시민사회의 이상적 지향점을 제시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와 더불어 지역 내 다양한 문예단체들의 참여를 통한 5월문화 창작활동은 광주만의 독특한 5월문화를 형성하고 지역정체성을 확립하 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민주축제이자 공론장으로 자리하여 5월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 기념공동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반면, 여러 단체들이 결합해 임시적으로 조직되는 행사위원회의 조직적 특성은 행사준비 시간의 부족, 예산 확보의 어려움, 전문 인력 및 운영인력 미확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수반하고 있으며, 이는 전야제의 문제와 직결됨을 알 수 있었 다. 이에 따라 전야제 및 문예행사를 이끄는 예술단체들의 창작활동에 제약을 가 져오고, 기존에 형성된 참여 연대에 따라 다른 문예단체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결 과를 가져왔으며, 홍보 및 시민참여 방안의 부재와 더불어 지역적 행사로의 고립 과 같은 문제가 추가적으로 제기되었다. 위의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시민사회 속에서 5월의 문화적 기억을 형성하는 전야제 행사의 발전을 위한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5월행사를 이 끌어가는 행사위원회는 5 18기념재단과의 협력과 연대를 기반하여 상시적 운영 이 가능한 상설조직을 형성하여야하며, 둘째, 지역 내 유관기관 및 예술단체, 학 술 기관 등과 5월 문화의 창작과 교류를 가능하게 할 5 18네트워크를 구축할 필 요가 제기된다. 셋째, 5월행사로의 전문 기획자 및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그 - vii -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요구되며, 넷째, 5 18기념재단의 자원봉사 시스템을 5월행사 및 전야제로 연계 운영하여 부족한 인력을 확충하고, 다섯째, '인권 패 스포트(passport)'제 시행 및 즉석 자원봉사자 모집 이벤트 와 같은 체험을 통해 시민이 만들어가는 홍보 마케팅 방안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전야제 행사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인식하고 이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분석의 범 위가 운영상의 시스템적 문제로만 귀결되어 있어 방안 제시에 제한적이라는데 그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를 바탕으로 향후 전야제 및 5월행사에 대한 보 다 심층적인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다양한 방안 들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제어 : 5 18전야제, 5 18기념행사, 기념행사 활성화, 문화적 기억, 기억의 전 승, 기념공동체 - viii -
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오늘날 다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기억의 문제는 20세기 지구촌 곳곳에서 벌 어져온 전쟁 및 학살 등과 같은 반인륜적 행위로부터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권력집단에 의해 통제되고 기록된 역사는 기억의 이데올로기화에 따라 그 객관성을 상실하였으며, 이로 인 해 이제는 구술사를 중심으로 한 개인의 경험에 대한 기억 이 사회적 주요 담론 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기억의 문제와 더불어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고 기리는 사회적 의식 인 기념 행위에 대한 관심 역시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기념하는 행위는 현재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 사건이나 인물을 기려 공동체 구성원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다음 세대로 기억을 전달하 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한국 민주화운동의 큰 흐름인 5 18민중항쟁을 기념하는 추모의례는 국가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조작된 5 18광 주항쟁의 진상을 밝히고 진실을 기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저항적 실천 행위라 할 수 있다. 1) 이처럼 행사 는 한 사회의 어떤 사건과 대상에 대한 과거관이나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사건의 직접 경험자가 아닌 후대의 시민들에게 당시를 되 살리고 기억하며 교육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2) 특히 전야제는 5월의 의미와 가치를 보존하고 이를 전승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5 18기념사업의 일 환으로, 시민들의 의식 속에서 5 18기념행사를 대표하는 행사 3) 로 인식되며 독 1) (2011), 5 18기념의례의 재현과 세대계승:5 18청소년문화제Red Festa를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p.1, 11 참조. 2) 김영범(1999),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기억사회학 연구, 사회과학연구 제6권 3호, 대구대 학교 사회과학연구소, p.558 ; 민형배(2004), 5 18기념공간의 형성과 지역정체성: 1990년대 이후 쟁점 과 과제, 한국동북아논총 제31집. 한국동북아학회, pp.290-291. 3) 30주년 5 18민중항쟁기념행사 평가 및 5 18민중항쟁 국민인식조사 결과보고서 (5 18민중항쟁기념행사 위원회, 2010)에 따르면, 5 18기념행사의 대표행사로 기념식과 전야제가 각각 1, 2위로 선정되었다. 하지 만 전국적 이해와 광주시민의 이해에는 큰 편차가 드러나는데 광주시민에게 전야제가 30.8%로 높은 비중 을 차지한 반면, 전국적 인지에서 전야제는(8.4%)로 인지도가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전야제의 연행 장소가 광주지역으로 한정되어 있음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 1 -
보적인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광주지역 내로만 귀착됨 에 따라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전야제의 상징성 을 보다 확대 발전하여 넓은 범위의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5월 항쟁의 의미와 기억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 매체의 발달에 따라 기억의 개인화 및 사유화가 가 속화 되어가면서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법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가운 데, 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 전역으로 확산된 5 18역사왜곡과 관련한 사 건은 올바른 기억 형성과 전승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특 히 5 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5월의 역사적 사실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나 가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 연구는 이 같은 맥락 속에서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가 5월의 집합적 기억 을 재생산하는 장이자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보고, 전야제 행사의 활성화를 통해 5월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현재 전야제 및 5월행사의 활성화 방 안을 논하기 앞서 선결되어야 할 고질적인 문제가 존재하는데, 이는 5월행사를 이끌어가는 행사위원회 의 상설조직화 문제이다. 시민사회의 개별 단체들이 임시 적으로 결합해 운영되는 행사위의 조직 형태는 상설 운영이 시행되지 않음에 따 라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전야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와 직 결되기 때문에 행사 조직의 상설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에는 5월행사 및 전 야제의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지 못한다는 의견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행사위원회의 상설조직화가 문제 해결의 실질적 대안이라 볼 수 있 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최근 5 18기념재단과 행사위원회는 행사위 조직의 상설 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간 바 있어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현 재 행사위의 상설화에 앞서 상설 조직의 구성 및 현실적인 운영방안을 구축함과 동시에 5월행사 및 전야제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럼으로 현재 전야제의 전개과정에 따른 의미와 한계를 짚어 보는 것은, 앞으로 전야제행사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며, 전야제 행사를 비롯한 5월 행사의 활성화를 이끌어 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 2 -
따라서 본 연구는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연행과정과 운영체계를 분석하여 전야제가 시민사회 속에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성장해 왔으며, 어떠한 의미를 지 니고 있는지 그 역사적 행보를 정리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전야제의 활성화 방 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의 방법 및 내용 본 연구는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전개과정과 운영체계를 분석하여 전야제 의 특성을 파악한 후, 5 18전야제의 활성화 방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첫째, 국내 문헌 및 선행연구 자료를 검토하여 전반 적인 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흐름과 진행과정을 파악하였고, 5 18기념행사 결과 보고서 및 보도자료, 운영조직의 내부 자료들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검토 하였다. 둘째로 현장 참여 조사 및 인터뷰를 통해 행사 운영진과 참여시민들이 생각하는 전야제의 의미와 문제점을 도출하였다. 관계자 인터뷰는 행사구성 및 문제점, 발전방안 등의 내용으로 예술감독, 참여단체, 운영실무자 등을 대상으로 시행하였다. 본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5 18전야제 연구의 배경 및 목적을 제시하고, 연구의 방법과 내용 을 소개한 후 선행연구를 검토한다. 2장에서는 기억의 방식과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성격을 파악하여 전야제 및 5월행사가 지니고 있는 기억 전승의 매체적 성격을 확인해 본다. 3장에서는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전개과정을 시기별로 분석하고 운영체계 를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야제가 시민사회에 어떠한 영향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4장에서는 앞서 분석한 내용과 참여주체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전야제의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연구내용을 요약하고 연구의 한계를 제시한다. - 3 -
3. 선행연구 검토 5 18기념행사에 대한 연구는 기억투쟁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1997년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5월행사에 대한 연구는 정치 사회적 변화에 맞추어 5 월행사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수립해야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일정한 시기구분을 전제로 각 시기별 활 동 내용을 정리하고, 각각의 특성을 고찰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4) 인류학적 관점에 입각해 5월행사를 일종의 의례로 파악한 정문영(1999) 5) 은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문화 예술 축제로 정립 되어가는 5월행사의 전개과정 을 탐구하여 이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따라 5월 행사의 시기구분을 1980~1987년( 숨겨진 사본 에서 공개적으로 선언된 저 항 으로), 1988~1995년(범시민적 의례로의 정착: 5월의 카니발화, 1996년 이후( 의례 와 반란 의 사이: 5월의 급진화)로 나누어 정리 분석하였다. 정문영 은 1987년까지의 시기를 추모 행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공개화된 5월 투 쟁 의 모습으로 전개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1995년까지는 5월행사가 범시민 적 의례 로 자리잡아 시민들이 일종의 코뮤니타스(communitas)의 상태를 경 험하여 공통체 시민사회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시위투쟁이 진 행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이를 일종의 놀이 로 즐기며 동참하는 양상을 보 여주고 있어 5월행사의 투쟁적 양상이 점차 카오스(chaotic)적인 카니발의 양 태를 보여주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1996년 이후부터 제도화의 과정 에 접어든 5월행사가 정부로부터 군중통제의 기능을 담당하는 안전장치 로 활용될 수 있었음을 설명하며 5월 투쟁과 정치적 헤게모니 사이의 복잡한 관 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뿐만 아니라 5월행사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서로 다른 집단과 세력간 및 5월 당사자들 간의 갈등과 대립 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문화적 발전 전략 에 따른 5월축제 의 형성 배경도 함께 고찰되었다. 4) (2004), 5월행사와 주체로 본 5월운동 연구:연구 현황, 한계 그리고 방향, 민주주의와 인권 제4권 2호, 전남대학교 5 18연구소, p.203. 5) 정문영(1998), 광주 오월행사 의 사회적 기원 - 의례를 통한 지방의 역사 읽기,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pp.5-116 참조. - 4 -
이처럼 5월행사가 문화화 되고 축제화 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정근식 (1999) 6) 은 5월행사의 의례화에 대한 한계를 제시하며 5월의례를 전국적인 축제로 전환시켜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으로 그는,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전략에 따른 지역 축제의 개발이 요구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환인 대규모 집회와 시위 등의 투쟁 운동이 2000년 이후에는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기존의 투쟁적 성격이 평화적 시위 투쟁의 형태로 변환되어 나타나고 있기에 5월행사의 축제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정근식은 5월행사가 본래 지니고 있던 투쟁적 축제의 성격이 점차 의례화 되어감에 따라 축제성을 상 실해가고 있다 고 강조하며 이의 회복을 통한 5월행사의 축제로의 전환 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5월행사의 축제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사에 대한 기술 력과 기획력 뿐만 아니라 분단 극복 을 향한 민중적 연대의식이 5월행사를 통해 통합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윤기봉(2000) 7) 역시 5월행사를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보고 5월행사의 축제화를 주장하였다. 그는 5 18기념행사가 광주의 정체성으 로서 가지는 의미와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5 18기념행사가 정례화 공식화 되어 가는 과정을 시기적으로 분류해 정리하였다. 먼저, 1981년~1984년을 억압기, 1985년~1987년을 전환기, 1988년~1996년을 투쟁기, 마지막으 로 1997년부터를 개화기 로 설정하여 매 시기별 기념행사가 가지는 정치 사 회적 의미와 특성을 분석하였다. 윤기봉은 5월행사가 민중항쟁의 투쟁정신을 기억하게 만들어 대중행동의 주요 동력으로 기능하는데 기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방향성을 제시하여 지역민의 동질성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 었다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5월문화 를 형성하여 문화화의 한 축을 이루는데 기여하였으며, 광주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써 지역 발전의 전략으로 인식되어 문화화 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정 치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5월행사가 보다 발전되기 위해서는 행사 추진 6) (1999), 사회 운동과 5월 의례, 그리고 5월 축제, 축제, 민주주의, 지역활성화, 새길, pp.79-105 참조. 7) 윤기봉(2000), 5 18기념사업의 발전방안과 문제점,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pp.3-117 참조. - 5 -
주체의 상설화 및 행사위원회의 전문성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기념재단의 안 정적인 기금을 마련하여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행사의 추 진 주체가 5 18기념재단이었기에 제기되었던 것이며, 2001년부터는 시민사회 가 주축이 된 행사위원회가 마련되어 5월행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기에 이에 따른 새로운 대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5월행사의 문화화의 과정에 대해 다룬 또 다른 연구는 김기곤(2009) 8) 이 있 다. 그는 5 18이 그동안 정치 사회적 입장에 입각해 분석되었다면, 2003년 아 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조성사업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5 18을 문화적 실체 로 재규정해야할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5월행사의 형성 과 그 진행과정을 살펴보며 현재 지역사회가 문화 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 과 5 18의 위상을 점검하고, 5월행사 갖는 축제성의 의미와 한계를 분석하여 새로운 정치에 대한 이념적 자원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원리 를 찾고자 하 였다. 그는 그동안 5월행사의 문화화가 과거의 정치성과 저항성을 상실한 채 문화행사 중심의 관광 상품으로 치중되어 감을 비판하며, 5월행사로의 정치성 을 다시 확보하여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문화 와 정치 가 적절히 융합 되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으 로 기능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연구들은 정치 사회적 변화과정에 입각해 5월행사의 전반적인 진행과정을 다룬 연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해, 전체 5월행사 중 전 야제를 중점으로 다룬 연구는 정근식(2005)이 유일하다. 그는 5월행사를 하 나의 의례체제로 보고 5월행사 속에 5 18의 기억이 어떻게 재현되어 나타나 고 있는지 분석한다. 특히 2000년과 2004년에 연행된 전야제를 전야제의 전 형 모델로 선정하여 그 연행 형태를 비교 분석하였다. 2000년의 전야제는 대 본에 의해 하나의 유기체적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었으며 5월항쟁의 특정 사 건이 상징적 행위로 재구성되었음을 설명한다. 또한 2000년의 전야제에서 관 객들은 재현의 과정을 관람하는 단순한 관람객 의 위치에 놓여있었다면, 2004년의 전야제에서 관객들은 신체적 체험 을 통해 5월 항쟁을 직접 경험 8) (2009), 5월행사의 의미변화와 5 18의 문화화, 지역사회학 제11권 1호, 한국지역사회학회, pp.171-199 참조. - 6 -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음을 파악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무대 공 연뿐만 아니라 거리에 각종 소규모 이벤트를 배치하여 전야제로 시민들의 참 여를 유도하기 위한 시도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9) 정근식은 전야제의 연행구 조를 하나의 텍스트로 분석하여 그 변화의 원인을 밝히고 성격을 규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연구의 범위가 특정 시기의 전야제에 대한 재현 방식의 분 석으로만 한정되었다는데 한계를 가진다. 지금까지 진행된 5월행사의 연구에 따르면, 5월행사가 진행되어온 전체의 과정을 분석하여 이의 의미와 지향점을 제시하는데 머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전야제를 중점으로 한 연구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그 수가 많지 않고 범위 또한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기념행사의 대표행사로 인식되고 있는 전야제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9) (2005), 항쟁기억의 의례적 재현 : 5월행사 와 전야제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제5권 1 호, 전남대 5 18연구소, pp.21-30 참조. - 7 -
Ⅱ. 기억의 방식과 기념행사(전야제)의 성격 1. 기억과 전승 기억 은 정신영역 내에서 벌어지는 개인적 회상 행위로, 개인이 자신의 과거를 현재화하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다. 지극히 개인의 내면 혹은 해부학적 문제로 여겨져 심리학, 철학, 신경과학 등의 연구 분야로만 인식되어온 기억 의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역사학, 문화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주된 관심사로 등 장하게 되었다. 10) 오늘날 기억의 문제가 다시 새롭게 조명된 것은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자기성 찰과 관련이 있다. 서구 근대문명이 추구하는 객관성, 합리성, 독창성, 혁신성 등 의 제반가치들이 과거로 고착되어 있는 역사성 의 가치와 대립됨에 따라 역사의 상실 을 야기하게 되었다. 또한 부분 을 전체 로 내세우는 선택적 기억을 유발하 고, 주관적 의식의 개입으로 객관성 상실의 문제를 야기하는 등 역사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크게 평가 절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소멸은 역설적으로 기 억의 강세를 촉진시키는 근원으로 작용하였다. 11) 기억은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개인의 체험에 의미를 부여하여 재현을 통해 과 거를 현재로 이행시킨다. 하지만 개인적 기억은 사회적 기억에 수렴되지 않음으 로 주관적인 개인의 기억 보다는 개인이 속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동체 경험을 통해 형성된 기억의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이는 20세기 1, 2차 세계대전 및 나 치의 유대인 학살 등 타자화 에 의한 반인륜적 행위가 자행되면서, 서구적 근대 성의 모순을 폭로 하는 기억담론 12) 이 사회적 관심과 주요 담론으로 떠오르며 증폭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기억의 대표적 연구가인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사람들이 기억을 습득하거나 회상하고 인식하는 것이 사회 안 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특정 공동체의 기억을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이라고 정의하였다. 13) 알박스가 제시한 기억이론 10) (2006),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휴머니스트, p.39 참조. 11) 위의 책, pp.17-48 참조. 12) 위의 책, pp.39-44 참조. - 8 -
의 핵심은, 기억은 특정 사회적 틀 안에서 형성되어 고유의 기억 그 자체로 존재 하지만 그 사회를 둘러싸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 재생된다는 것이다. 즉, 특정 사회집단 내에서 형성된 집단기억은 다 른 집단과는 공유할 수 없는 그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지만 소통 과정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수반한다. 알박스는 이러한 집단기억이 영웅적 행위자들에 대한 각종 추념의례와 경축행 사, 무훈시, 영웅담 등을 통해 계속 상기되고 유지 14) 되면서 한 사회의 집단기억 으로 지속적으로 남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그 사회적 공간과 기억을 형성시 키는 전승 매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집단기억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도 한다. 이러한 알박스의 주장은 집단기억을 일종의 매개변수로 설정하여 그것 이 기념의례들에 의해 강화될 뿐만 아니라 과거사를 추념하게끔 해준다 15) 고 본 것과 같은데, 이러한 그의 주장에 기대자면 5 18광주민중항쟁 역시 집단기억으 로서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민주열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 행위 등은 의례, 예술행위, 학술회 등 다양한 기념매체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집 단기억을 형성하여 그 기억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박스가 제시하는 집단기억이론은 특정한 사회적 공간이라는 틀 안에 서만 집단기억을 형성한다는 한정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의 의미를 사회적 현상 으로 한정시켜 개인의 기억을 간과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 서 보다 열린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확장된 개념의 기억이론을 적용할 필요 가 제기된다. 알박스가 사회학적 관점을 통해 기억을 바라보았다면, 문화학적 관점으로 기억 의 문제에 접근한 학자로는 아스만 부부(Jan Assmann, Aleida Assmann)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알박스의 집단기억 이론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개인적 기억 을 수용하여 특정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보다 열린 차원의 문화적 기억 이라는 개념 을 내세웠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경험적인 기억과 구분되는 매체상의 기억을 의미하는 것 16) 으로, 사회 를 강조한 알박스의 13) (2011),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문화역사지리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 리학회, p.156. 14) 김영범(1999), 앞의 논문, pp.572-590 참조. 15) 위의 논문, pp.572-590 재인용. - 9 -
이론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미리 주어진 의미 에 초점을 둔 것에서 그 차이가 있 다. 아스만은 기억을 총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는데, 첫 번째 유형으로 인간의 보편적 사회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학습기억을 모방적 기억 으로 보 았고, 두 번째 유형으로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보유하는 기억의 잔상을 집과 마을 등 특정한 물체를 통해 회상하는 사물의 기억 을 말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소통적 기억 으로 한 대가 당대의 과거에 대하여 보유하는 기억 이고, 마지막 유형이 문화적 기억 으로 앞의 세 가지 유형이 문화적 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 는 것들인데 이 전환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의미 이다. 즉 앞의 기억의 대상들이 특정 매체를 통해 기억의 상징으로 제도화 될 때,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기억은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 으로 전환되게 된다는 것이다. 17) 한 사회 집단은 자신들이 실제 체험한 가까운 과거를 기억할 때는 일상적 소 통을 통해 그것을 현재화하고 구체적 정체성을 획득하지만, 그것이 생생한 기 억 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서나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은 인위적이고 문화적인 기억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18) 하지만 문화적 기억으로의 변환은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제나 의례와 같이 사회적 소통의 형식을 갖춘 객관화된 매체를 통해 변환된다는 특징을 수반한다. 19) 이러한 기억이 문화적인 이유는 오직 제도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이 기억인 이유는, 개인적 기억이 의식과의 관련 속에 서 기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억이 사회적 소통과 관련해서 기능하기 때문이 다.(Jan Assmann) 20) 아스만이 자신의 저서인 문화적 기억 에서 기술한 위의 내용에 따라 문화 16) (2012), 앞의 논문, p.157 재인용. 17) 장희정(2011), 5 18의 문화적 기억을 위한 연구- 옛 도청 별관 담론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논 문, pp.15-16 참조. 18) 양호환(2009), 집단기억, 역사의식, 역사교육, 역사교육 제109권, 역사연구회, p.5. 19) 최문규 외(2003), 기억과 망각-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 책세상, p.58 참조. 20) 위의 책, p.58 재인용. - 10 -
적 기억을 정의하자면, 문화적 기억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사회적 소통과정의 일부이며 지속적인 반복의 과정을 통해 현재화된 제도적 기 억을 통칭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 야 할 것은, 그가 문화적 기억이 인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고 언급한 점이다. 이는 문화적 기억이 정치 사회적 개입에 노출되어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헤게모니를 장악한 집단은 자기 집단의 제한된 기억에 대한 보편적 정체성 확보를 위해 먼 기억으로 소급해 감으로써 그들이 지닌 배 타성을 은폐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편성이란 이름으로 재구성되는 문화기억의 내 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1) 아스만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 의 비판, 성찰, 토론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22) 80년대 군사정권은 기억의 왜곡과 망각을 통해 집단기억을 지배하여 5월의 진 실을 은폐하려 하였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형성된 뚜렷한 투쟁의 기억과 상흔은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였고, 오히려 저항 공동체에 의한 전국적인 사회운동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다. 23) 이처럼 기억은 진실을 거짓으로 교체하는데 사용되어질 수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잘못된 거짓의 진실 을 밝힐 수 있는 힘 24) 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공동체의 집단 기억은 특정 집단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문화 매체 및 기념행사 등을 통해 개개인에게 전파되어 5월의 문화적 기억을 형성하 였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집회와 시위가 계속 되는 과정에서, 5월항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시민들도 집합적 기억의 지평으로 흡입되었고,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사건들의 상징성과 위상은 더욱 확 고해졌다. 25) 이처럼 집단의 기억은 지속적인 재생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개개인 의 문화적 기억으로 유지되고 전승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21) 김희(2010), 문화기억의 철학적 성찰과 문화콘텐츠 연구: 한국 근대의 시간과 공간을 중심으 로, 인문과학 제45권,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p.199 재인용. 22) 알라이다 아스만(2011),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변학수 최연숙 역, 그린비, p.15 참조. 23) 정호기(2004),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정치 사회적 과정과 자원 동원, 한국사회학 제38권 2호, 한국사회학회, pp.231-232 참조. 24) 위의 논문, pp.231-232. 25) 위의 논문, p.230. - 11 -
2.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성격 문화적 기억은 죽은 자 를 추모하는데 그 인간학적 본질이 있다. 그러므로 그 들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것은 후손들의 오랜 의무로 여겨져 왔다. 죽은 자 에 대 한 기억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으로, 경건함 이라는 단어로 표현 할 수 있는데, 이는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으로 그들을 기리며 추모하려는 의식을 말한다. 26) 이러한 추모의식은 일반적으로 제사( 祭 祀 ) 나 의례( 儀 禮 )등의 형태를 가지며, 망자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특 정 단체 및 소규모 공동체에 의해 집도된다. 추모의례가 주기적으로 과거의 기억 을 불러내 현재의 공간으로 재생산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는 집합적 행위라면, 그 것은 대체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27)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도 근 현대의 사건을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례들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 5월행사 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5월항쟁 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추모의례에서 시작된 5월행사는, 국가권 력에 의해 왜곡된 5월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밝히기 위한 사회운동의 형태로 발전되었으며, 이후 문화적 성격이 가미된 공동체 기념의례로 성장하여 현대 우리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연행되고 있다. 사회 정치적 상황이나 추진 주체의 변동에 따라 행사의 전달방식 및 세부 내용 에변화는 있지만 희생자들의 추모 와 기억 이라는 의식을 기반으로 주기적으로 연행되고 있는 5월행사는, 참여 성원들에게 80년 5월이라는 공통된 공유 가치와 관념을 제공하여 집단의식 및 연대의식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의례 행위를 사회적 과정으로 인식한 뒤르켐(D. E. Durkeim)은 의례를 통해 사람들이 한데 모여 집합의식을 형성하고 감정을 전이 증폭시켜 열광상태에 빠지게 하며, 집합의식을 주기적으로 확인시켜 사회통합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 면서 의례의 사회 통합적 기능을 강조한 바 28) 있다. 그는 의례의 보편적 기능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유하는 가치들을 강도 높게 체험하고, 부흥된 가치 26) 아스만(2011), 앞의 책, pp.39-40 참조. 27) 정근식(2003), 앞의 논문, p.7 참조. 28) 이희정(1999), 뒤르켐의 의례이론을 통해 본 스크린쿼터제 공방과정, 이화사회학 제2권, 이화여 자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p.173. - 12 -
를 중심으로 서로의 정체감과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데 있다 29) 고 보았다. 또한 터너(V. Turner)는 리미널리티(liminality) 30) 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거의 모든 사회에서는 집단적인 리미널리티 를 획득하는 명료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가 정의하는 리미널리티 란 현실적이고 직설법적인 구조에 대해서 반 격하는 가정법적인 시간과 공간이며,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또는 그 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Communitas) 라 칭하였다. 터너의 이러한 논의는 뒤르켐의 의례 이론에서의 사회갈등을 표출시키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기능을 중시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31) 뒤르켐과 터너에 따르자면, 5월항쟁 이후 시민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5월행사 및 전야제는 단순한 종교적 의례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매체를 매개하여 5월 의 기억과 공통의 신념을 시민에게 전승하여 의례의 의미를 내재화하는 과정이 라 할 수 있다. 의례를 통해 축적된 공통의 기억은 단일한 5월 공동체를 형성하 는데 기능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5월문화의 외연의 확장은 지역사회의 정 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의미를 기리는 5월행사 및 전야제는 제의 의례적 성격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자유롭게 발설하고 제시할 수 있는 사회 투쟁적 성격을 수반한다. 5 18 진상규명시기의 5월행사는 시위와 집회 등 투쟁의 과정을 통해 대규모 군중을 형성하고 거리를 점거하여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과 풍자 행위를 통해 저항의식을 표출하였다. 이는 5월행 29) (2007), 의례와 사회운동:6월항쟁의 연행, 집합열광과 연대, 한국사회학 제41권 1호, 한국 사회학회, pp.32-33 참조. 30)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개념은 의례가 가진 속성 중 하나로 말 그대로 문턱(threshold)에 있음 을 나타내는 말로, 법 관습 전통에 의해 위상 지워진 지위들 사이의 상태, 즉 중간 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벨기에 민속학자인 판 헤프트(Gennep)는 모든 문화에서 어떤 사회 문화적인 상태 나 지위에서 다른 상태나 지위로 옮겨갈 때 그 지표 및 매개로서 통과의례 가 나타난다며 이를 1일상생 활로부터의 분리(seperation)', 2이전의 생활양식과 이후 생활양식의 중간 상태에 빠지는 주변(margin) 혹은(limen), 3다시 의례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더 높은 상태로 세속적인 집단으로 되돌아오는 재통합 (reaggregation)의 3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리미날리티 는 이중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이 시간은 현실적이고 직설법적인 구조에 대해서 반격하는 가정법적인 시간, 공간 이다. 터너에 의해 반( 反 )구조적 이라고 규정된 이 시기의 사회적 유형들은, 따라서 정상적인 유형들과는 다르며, 때로는 역할 및 지위 전 도를 포함하기도 한다. 사회관계의 내용 또한 더 이상 규범적이고 위계적이거나 소원하지 않고 아주 긴밀 하고 평등한 코뮤니타스(communitas) -이때 사람들은 역할 수행자로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개별 인간으로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느낀다-상태가 된다.(고영석 외(2003), 축제와 문화, 연세대학교 출판부, p.45.) 31) 이경은(2010), 고창모양성제와 지역공동체 활성화: 뒤르켐의 의례이론을 중심으로, 지방자치연구 제14권, 전북대학교 지방자치연구소, p.93. - 13 -
사, 특히 전야제 행사가 일종의 카니발(carnival)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니발의 개념과 관련하여 바흐친은 해방된 삶 과 거꾸로 된 삶 이라고 간단 히 요약한 바 있다. 카니발의 거꾸로 된 세상은 극적으로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 을 말해주는데, 카니발과 닿아있는 시간적 특성이 연중 가장 험난한 사순절과 접 경하고 있음을 볼 때, 카니발이 보여 주는 분방함의 극치에는 곧이어 시작될 사 순절 의 참회와 극기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2) 따라서 카니발은 긍정과 부정의 사이를 접맥하는 경계에 위치해 규범과 질서를 해체하고 변화시키는 역 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복을 꿈꾸는 모든 사람이 카니발을 만들고, 현실적인 부조리로부터 벗어나 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카니발 그 자체 33) 이기에, 카니발은 누구나 참여하고 변 화를 꾀할 수 있는 갱생의 축제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5월행 사는 보다 문화화된 형상으로 변모된 카니발적 성격을 수반하고 있다 할 수 있 다. 특히 전야제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참여해 정치 사회적 문제를 발설하고 문 화 예술적 투쟁의 방법으로 민주시민의 의식과 권리를 공유하고자 할 뿐만 아니 라 일상과의 단절을 통해 시민들로 하여금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다. 이러한 점에서 전야제 및 5월행사는 현대 우리사회 속에서 카니발적 축제성 을 제공하는 시민들의 공론장 34) 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했을 때, 전야제가 연행되는 구 도청 앞 민주광장 은 죽은 자 와 산 자 가 만나는 열린 화합의 공간이자 제의의 공간으로, 5월의 역 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의 장소로 기능한다. 뿐만 아니라 5월 항 쟁의 문화적 재현을 통해 5월의 기억과 기념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일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상과 단절된 의례공간은 시민들을 성스러운 공간 속으로 진입하게 하여 참여자의 일체감을 강화시켜 지속적인 공동체 사회 32) (2013), 축제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pp.73-74 참조. 33) 박승규(2010), 앞의 논문, p.65. 34) 공론장(public sphere)은 국가와 시민사회 양자를 매개하면서 공론과 여론이 형성되는 사회적 공간으로 하버마스(Habermas)에 의해 제시되었다.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자 정보와 관점이 소통되는 소통행위의 네트워크 또는 사회공간으로서 시민사회의 조합적 네트워크에 의해 생활세계에 뿌리내린 것이다.(주선미(2010), 공론장 이론을 통한 시민성 연구, 사회교육 제49권 2호,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p.172 참조.) - 14 -
를 형성하고 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5 18기념행사위원회는 5월정신의 확대 및 시민사회가 제기하고 문제화 삼는 정치 사회적 의제에 대한 사회전반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5월행 사의 편성을 학술 포럼, 시민체험, 청소년, 지역행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였 다. 특히 문화 예술 행사를 아우르는 문예활동은 정치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 라 변모하면서 그 성격과 위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기념행사 및 전야제에서 드러나는 문화 예술적 성격은 기억투쟁 을 펼치던 1980년대부터 문화운동 35) 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시민들을 결집하고 선동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5월운동의 핵심 과제인 진실규명 및 책 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운동은 역사적 기억을 문화 예술 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국가권력에 저항할 수 있었으며, 5월을 체험하지 못한 시 민들에게 5월 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매개체로 기능하였다. 5 18이 국가의 공식적 기념일로 지정되고, 5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됨에 따 라 5월행사의 주된 목적은 5월의 기억을 전승하고 현재화 하는데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따라서 5월행사의 운동적 성격은 축소되고, 시민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문화적 성격이 강조되면서 5월행사는 본격적인 문화화의 국면으로 접어들 게 되었다. 5월정신의 문화적 형상화를 통해 과거의 5월과 현재의 5월을 문화 예술적 매체를 통해 제시하면서, 그 역할과 비중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이처럼 5월행사는 5월을 경험하지 못한 시민들에게 5 18의 기억을 문화 예술 적 재현을 통해 제공하여 참여자로 하여금 5월의 기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억형성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5월행 사 및 전야제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계승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5월의 이미지와 의미를 총체적 의례 형태로 구성하여 정치 사회적 의제를 문화예술을 통해 함축 적으로 나타내는 독특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5 18기념행사 및 전 35)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 체계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의식적 행위 로 정의할 수 있으며, 문 화라는 기능 매체를 통해 인간의 정서적 측면에 접근하여, 인간을 변화시키는 한편, 사회전체의 구조에 변화 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존문화에 대항하는 싸움 으로, 이를 위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기존문화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기존의 문화만을 강조하는 지배권력의 정책에 대항하는 싸움 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기존문화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기존 의 문화만을 강조하는 지배권력의 정책에 대항하여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문화적 권리 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인 것이다.(임진호(2013), 문화운동으로서의 축제 연구: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사례를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p.9 재인용.) - 15 -
야제는 공동의 언어와 몸짓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5월의 역사 가 깃든 문화적 공간에서 그 의미를 생산하고 전승하는 시민공간으로 자리하며, 과거의 기억과 의미를 현재적 지평에서 재생산하고 생산된 의미를 공유 36) 하는 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6) (2003), 앞의 논문, p.9. - 16 -
Ⅲ.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전개와 의미 1.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전개 가. 5 18기념행사 및 전야제의 시기별 변화과정 본 장에서는 80년 5월 이후 진상규명 투쟁과 함께 성장해온 5 18기념행사와 전야제를 각 시기별 특성에 따라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먼저 기념행사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본 후 전야제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1) 5 18기념행사의 시기별 변화과정 매년 5월 한 달간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5 18기념행사(이하 5월행 사 37) )는 1981년부터 시민사회 구성원에 의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가적 기념 의례이다. 기억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5월행사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 따 라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발 현의 형태는 5월행사의 변화에 중요한 매개체로 역할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 에서는 기존의 선행 연구 38) 를 바탕으로, 5월행사의 변화과정을 정치 사회적 상 황과 문화적 형태의 변화를 중심으로 분류하여 총 4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1단계는 추모의례에서 추모투쟁으로 (1981~1986년), 2단계는 투쟁 과 문화 의 만남(1987~1992년), 3단계는 제도권 속 의례로 정착된 문화행 사 (1993~2000년), 4단계는 기념 의례의 문화축제화 (2001~2013년)로 분류하 였으며, 이를 통해 기념행사의 한 축인 전야제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 고자 한다. 37) 5 18 5 18기념재단이 1년 연중 진행하는 사업과, 5월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5 18기 념행사위원회가 5월에 한정하여 집행하는 행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인 전야제와 기 념행사는 후자에 포함되므로, 매년 5월에 개최되는 5 18기념행사 를 기념행사 및 5월행사 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38) 정문영(1998), 윤기봉(2000)의 시기 구분은 기념행사에서 나타나는 문화 예술적 관점보다는 정치 사회적 투쟁의 과정에 중점을 두고 분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17 -
(1) 1981~1986년 5 18기념행사 : 추모의례 에서 추모투쟁 으로 초기의 5 18기념행사는 5 18항쟁의 유가족들이 모여 희생자들의 제례를 지내기 위한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유족들은 80년 5월, 희생자들의 삼우제 뒤 망월 묘역 에 모여 유족회를 결성하였고, 다음해에 1주기 위령제를 갖기로 하였으나 5공정 권의 강력한 탄압과 압력에 의해 제대로 된 제례조차 치를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족회는 정부의 갖은 획책에 따른 내부적 갈등으로 인해 유족회 결성 1 주년 만에 선 보상 후 진상규명 을 주장한 5 18광주의거 유족회 와 선 진상규 명과 후 명예회복 을 주장한 5 18광주민중항쟁유족회 로 양분되어 추모투쟁을 진행하였다. 39) 5 18추모행사는 억압적 상황에 따라 1983년에 이르기까지 유족과 대학생들의 소규모 시위나 투쟁으로만 진행되었으며, 일부 종교단체의 위령제 및 추모 집회 를 통해 소극적이나마 5월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다. 40) 5공정권의 철저한 감시 속에 광주지역 내에서만 산발적인 형태로 진행되어져 온 추모행사는, 1984년 이후 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참배행사의 형태로 확대되었다. 특히 전국해직교수협의회 성원들의 망월동 참배 및 교황의 광주 방문은 추모행사의 확대에 영향을 미쳤으며, 전국 각 대학의 운 동권역에서도 5 18진상규명 및 희생자 추모비 건립 등을 외치며 시위와 농성을 벌이며 5월투쟁에 합세하였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5월 문제는 5 18유가족과 광 주지역민들만의 싸움에서 전국적인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점차 확산되어가기 시 작했으며, 5주기 기념행사부터는 5월행사를 주도하는 5 18광주민중혁명기념사업 및 위령탑건립추진위원회(이하 5추위) 가 조직되어 체계적인 행사 준비를 가능하 게 하였다. 41) 1986년의 5 18추모제부터는 점차 행사의 형식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총 2부로 구성된 추모행사는 각각 유족회와 5추위 주최로, 1부에서는 5월 영령들 에 대한 분향과 제사 로, 2부에서는 추모제 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행사 이후 39) (2000), 앞의 논문, p.30 참조. 40) 광주 천여명 금남로서 시위, 동아일보, 1984.5.19 참조. 41) 정문영(1998), 앞의 논문, p.38 참조. - 18 -
에는 광주의거 진상규명 을 요구하는 시위와 집회로 이어졌다. 제의적 행사 및 투쟁 시위가 병합되어 나타난 6주년 기념행사는 추모 의례적 성격과 정치 투쟁적 양상이 기념행사에 공존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특징은 정치 사 회적 문제를 기념행사의 기조에 담아 시민사회에 전달하고 있는 현재의 5월행사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 1987~1993년 5 18기념행사 : 투쟁 과 문화 의 만남 박종철군의 사망사건 42) 을 매개로 민주화의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 한 1987년의 기념행사는 단순히 5월 영령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아닌 전면적인 정치 투쟁의 장 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기존에 진행되어온 시위와 투쟁의 양상이 더욱 공격적인 형태로 발전되면서 17일간의 대규모 추모집회로 확대되어 나타났 다. 43) 이 시기의 가장 특징적인 양상으로는 집회 및 투쟁적 성격의 기념행사에 문화행사가 가미되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는데, 5월제, 전시, 시극, 마당극, 5 18관련 영상 상영 등 기존의 시위와 집회로만 한정되었던 정치 투쟁의 행사에서 벗어나 문화 행사를 확대 편성하여 시민사회의 참여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운동 으로서의 문화행사는 단순한 예술적 재현으로 사건을 표현하는 것으 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적 가치에 반대하며 대항하고자 하는 저항운 동 으로서 민중 선동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 특징을 수반한다. 44) 따라서 당시 5월행사에 편성된 문화행사는 예술적 가치와 발전을 지향하기보다는, 사회운동 의 일부로 기능하여 시민들에게 군사정권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에 대항하는 투 쟁에 함께 동참해 달라는 대중 선동적 목적을 가지고 연행되었다 할 수 있다. 1988년, 그동안 광주사태 로 폄하되고 왜곡되어왔던 5 18민중항쟁은 국가로부 터 민주화 투쟁 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념행사의 성격에도 변화 를 가져왔다. 5 18민주화 운동으로 승인받은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제8주년 5월 42) 1987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 폭행 등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경찰은 이를 단순한 쇼크사로 발표하였으나, 부검을 통해 사건을 은폐 조작한 진상이 알려지면 서 전국적인 규탄의 대상이 되어 민주화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출처: 두산백과) 43) 윤기봉(2000), 앞의 논문, p.38 참조. 44) 강영석(2005), 한국 문화운동의 변화 : 부문운동에서 시민문화운동으로, 성공회대 석사논문, p.23 참 조. - 19 -
행사는 5월 민중항쟁 계승과 진상규명을 위한 범 민주세력 공동투쟁위원회(약칭 5공투위) 의 주최 하에 치러졌으며, 5월 17일 광주 구동실내체육관에서는 최초의 전야제가 열렸다. 당시 전야제에 모인 군중과 거리의 군중이 합세하여 도청 앞 광장이 일시적으로 점유되는 상황이 발생하였으며, 5월 18일에는 처음으로 도청 앞 광장에서 기념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도청 앞 광장은 민주광장 으 로 이름 붙여지면서 전야제 및 추모제 등 다양한 5월행사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45) 1989년에는 광주정신의 전 국민적 공감대 형성 을 목적으로 5월문화제 가 광 주시내 곳곳에서 난장의 형태로 열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념행사의 문화 행사 화 에 대한 의견에 일부 단체의 반발이 제기되어 문화 행사적 성격을 가진 단체 와 추모 투쟁적 성격을 지닌 단체의 행사로 양분화 되어 치러졌다. 추모 투쟁적 행사를 추진한 단체는 5월 관련단체 및 재야, 대학, 시민운동단체 등으로 이들은 5월 항쟁 계승 및 노태우 퇴진 공동투쟁본부(약칭 5투본) 를 별도로 결성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 는 목표를 내세워 범시민 궐기대회 및 민주기사의 날 등 대중 집회 중심의 행사를 별도로 구성하였다. 이념의 차이로 일부 갈등구조가 형성되기는 하였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문화행사의 접목이라는 목표로 구성된 5월 문화제는 이후 5월행사의 형태와 방 향성을 제시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46) 기념행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있어 투쟁 적 재현과 문화 예술로의 승화 라 는 대립적 구도가 1990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지만, 투쟁적 성격의 행사를 가급적 지양하고 5 18의 역사성을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키자 는 내부 의견의 합의를 통해 제2회 문화제가 연행되었다. 다음 [표 1]을 통해 10주기 기념행사 의 문화제에는 다양한 문화 예술 학술 행사들이 예년의 기념행사보다 더욱 확대 되어 편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5월행사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편성해 보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었으며, 전체 행사 기간 중 시위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의 편성이 예년에 비해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점차 투쟁적 성격이 약해져가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문화적 색 45) (1998), 앞의 논문, p.44 참조. 46) 윤기봉(2000), 앞의 논문, p.44 참조. - 20 -
을 입은 5월행사로의 높은 참여율을 보였던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당시 시민사 회의 요구가 투쟁 이 아닌 5월 정신의 계승 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행사수 행사내용 1987 15 문화행사: 5개, 추모 종교 행사: 4개, 기타(토론, 집회): 6개 1988 16개 추모 종교 행사: 7개, 정신계승:1개, 기타(토론, 집회): 8개 (*전야제 시작) 1989 20개 문화행사:12개, 추모행사: 3개, 기타(토론, 집회): 5개 1990 28개 문화행사:21개, 추모행사:3개, 학술 및 토론:1개, 기타(토론, 집회):4개 1991 21개 문화행사:6개, 추모 종교 행사: 6개, 정신계승:2개, 기타(집회): 7개 1992 18개 문화행사:8개, 추모 종교 행사: 5개, 정신계승:2개, 기타(집회):3개 [표 1] 1987~1992년 기념행사 프로그램 47) 1991년부터 1992년의 기념행사는 시위 일변도의 행사를 지양하고 모든 시민 들이 5 18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거리굿, 백일장 등 문화 중심의 행사로 치루자 는 기본 방침 하에 5월 18일을 전후로 하여 6일간의 5 18주간 을 지정하였 다. 48) 광주라는 지역 중심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행 사를 개최한다는 취지하에 각각의 문화단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금 남로 및 망월동 일대에서 문화행사와 나눔 행사를 가졌다. 49) 하지만 잇따른 분 식시국 및 각종 부상과 구타사건이 자행되면서 사회적 분위기는 점차 시위 투쟁 적 양상으로 과격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등 당시의 5월행사는 문화행사와 시위투쟁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50) (3) 1993~2000년 5 18기념행사 : 제도권 속 의례로 정착된 문화행사 1990년대 초까지 정부의 엄격한 감시와 규제 속에서 치러져온 5월행사는 각 47) 논문, 1987~1993년 행사일정 재구성. 48) 위의 논문, p.56 참조. 49) 5월항쟁 11돌행사 다양, 한겨레, 1991.5.16. 50) 다시 긴장 감도는 光 州, 경향신문, 1991.5.25 참조. - 21 -
종 기부 및 모금, 후원 등을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5월 관련단체 및 시민사회의 주도하에 진행되어져 왔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부터 5 18이 국가 의 공식적 인정을 얻으면서 기념행사로서 관의 참여와 지원이 시작되었다. 처음 으로 민과 관이 단합해 행사를 진행하면서 전반적으로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치러졌지만,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 5월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끝나지 않는 외침 이라는 주제로 총 22일간 진행 된 제13회 5 18기념행사는 5 18광주민중항쟁 이라는 명칭을 5 18민중항쟁 으로 변경하여 5 18을 지역적 차원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전 국민의 범위로 확장 하여 진정한 5월 문제의 해결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5월행사의 프로그램 구성을 거리굿, 시민의 노래, 걸개 그림전, 광주시민 5월 놀이 한마당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로 편성하여 시민 단합을 이룩할 수 있는 매개의 역할을 할 수 있도 록 하였다. 51) 5월행사의 문화화 는 행사 추진체의 내부적 요구 및 정치 사회적 환경의 변화 에 의해 진행되었다. 먼저 내부적 필요성에 따른 문화화의 원인으로 기념행사와 함께 진행되어왔던 시위와 투쟁을 들 수 있다. 그동안 5월행사를 통해 지속적으 로 확산된 시위와 투쟁은 시민들로 하여금 5 18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인 식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시위로 점철된 5월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 심과 참여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5월 단체 및 재야단체는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문화행사의 활용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문화 예술 활동이 내포하는 부드러운 힘과 유희성, 메시지 전달의 효과성 등이 시민들의 관심과 참 여를 유도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 대를 통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광주만의 문제라고 여겨졌던 5 18이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를 위 한 투쟁 으로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되고, 광주 문제 해결의 일환인 기념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정치 상황의 변화 역시 5월행사의 문화화에 51) (2000), 앞의 논문, p.62 <표 9> 참조. - 22 -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에 힘입어 5월행사를 준비하는 행사위원회는 5월 정신의 전국화, 세계화를 목표 로 하여 이를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그동안 5월행사에서 드러났던 투쟁 저항의 의지가 점차 감소되기 시작 하면서, 문화 예술행사의 문화 운동적 성격도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5 월행사는 문화적 재현을 통한 5월 정신의 계승 및 추모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민 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3년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 담화 발표가 있 은 후, 5 18기념사업을 담당할 5 18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 )의 설립이 가시화되 자 제14주기 5 18기념행사준비위원회의 선점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단체들 간의 세력싸움이 발생하는 등 내부적 갈등이 대외적으로 표출되면서 시민여론에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52) 제14주기 기념행사에서는 이러한 갈등구조를 뒤로한 채 5월정신의 전국화 국 제화의 취지에 따라 폭넓은 시민참여를 유도하는 데 주안을 두고 다양한 문화행 사를 편성하였다. 다음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1993년에 비해 문화행사의 수 가 대폭 증가되었으며, 특히 5 18시민놀이마당 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노래, 마당극, 집체극 등의 예술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마련 하여 시민 화합과 참여를 유도하였다. [표 3]은 5 18시민 놀이마당의 프로그램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진행된 춤 경연, 민요 발표회와 같은 행사는 단순한 관람의 형태로만 진행되던 예년의 행사들과는 달리, 시민들이 직접 공연에 참여하여 행 사를 이끌어나가고 즐길 수 있는 시민 참여의 형태를 띠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고 할 수 있다. 행사수 행사내용 1993 27 문화행사: 5개, 시민참여: 3, 추모 종교 행사: 8개, 기념행사: 4개, 학술 및 토 론: 1개, 정신계승: 3개, 정치행사: 3개 1994 30개 문화행사:13개, 추모 종교 행사: 4개, 정신계승:2개, 학술 및 토론: 1개, 정 치: 1, 시민참여: 2 1995 28개 문화행사:10개, 추모 종교 행사: 8개, 기념행사: 3개, 정신계승:3개, 학술 및 52) 오늘 없는 광주, 5 18희생자는 온국민, 한겨레, 1994.5.20 참조. - 23 -
1996 32개 1997 41개 1998 41개 1999 47개 2000 64개 토론: 1개, 정치: 1, 시민참여행사: 2 문화행사:10개, 추모 종교행사:4개, 기념행사:3개, 정신계승: 6개, 시민참여:5 개, 학술 및 토론:4개 기본행사: 4개, 기획행사:5개, 추모행사:4개, 학술행사: 6개, 시민참여행사:4개, 청소년행사:2개, 종교행사:11개, 부문행사:5개 문화행사:13개, 추모 종교행사:9개, 학술 및 토론: 6개, 시민참여행사:6개, 기념행사:3개, 계승행사:4개 문화행사:17개, 추모 종교행사:7개, 학술 및 토론:8 개, 시민참여행사:7개, 기념행사:2개, 계승행사:4개, 정치: 2개 기본행사:3개, 전국화사업:5개, 국제행사:5개, 계승행사:2개, 단체행사:12개, 5 18단체주관행사:6개, 종교행사:6개, 민중문화예술제: 16개 [표 2] 1993~2000년 기념행사 프로그램 53) 이 뿐만 아니라 기존의 행사 연행 장소는 도청 앞 광장 및 망월동 묘지 등 특 정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중심으로 자리하였지만, 그 공간의 범위가 처음으로 광 주우체국 앞, 금남지하상가, 만남의 광장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시민 들의 활동 공간 속으로 침투해 5월행사로의 시민참여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시 행사 내용 및 주관 단체 장 소 5 12일 18:30 노래공연(광주노동자 노래패 연대회의 노래단) 광주 우체국 앞 5월 13일 18:00 5월 14일 18:00 5월 15일 18:00 5월 16일 18:00 5월 22일 18:00 5월 23일 18:00 5월 24일 18:00 노래 시낭송(해태제과 노조) 마당극(조선대 공대 문예패) 춤 경연(광주 전남탈패연합회) 노래공연(광주노동자 노래패 연대회의) 거리음악제(겨례사랑 고등학생 모두모임) 마당굿(광주청년노동자회) 노래공연(카톨릭청년연합회 문예패) 춤극(광주대 문예패) 민요발표회(광주노동자민요교실) 집체극(광주노동자문예운동연합) 금남지하상가 만남의 광장 (이하 위와 동일) [표 3] 5 18 제14주기 5 18시민 놀이마당 54)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투쟁의 형태가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5 53) (2000), 앞의 논문, 1993-2000년 행사일정 요약. 54) 위의 논문, p.66 <표 11> 재구성. - 24 -
월행사에서는 시위 및 무력 투쟁을 통해 정치적 저항성을 표출했지만, 5 18관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고소, 고발 등 합법적 방식을 통한 투쟁 의식 의 발현은 시민사회의 거부감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자 5 18의 역사적 의의를 퇴색시키지 않으려는 선택 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제도권 속으로 접어든 5월행사의 투쟁성이 점차 약화되고 평화적인 저항 방식으로 변화 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4주년 기념행사가 치러진 이후 같은 해 8월, 5월행사 및 5월정신 계승사업을 추진할 5 18기념재단이 설립되었다. 기념재단의 설립 직후인 1995년의 5월행사 부터 기념재단을 중심으로, 광주광역시와 기존에 5월행사에 참여해 왔던 지역 내 시민사회운동단체들과 함께 행사위원회 를 조직하여 보다 체계적인 조직체를 갖추게 되었으며, 5 18기념재단은 이들 단체의 중심 주체로 자리하면서 다양한 성격의 시민사회단체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법인화된 기념재단 설립, 광주시 등 국가기관의 기념행사로의 참여는 행사의 성격에 변화를 가져왔다.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자 하는 행사의 목 표는 변함이 없었으나, 과거와 같은 폭력투쟁으로 행사장을 정치 집회장화 하지 않고, 평화적인 행사를 지향하였다. 시민참여 강조 및 평화적 행사의 실행은 5월 행사를 문화행사로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말 5 18특별법 제정 및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그 동안 광주문제 해결 5원칙 의 주요 쟁점이 해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55) 이러 한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각종 문화행사 중심의 순화된 의례 행사의 형태로 연행된 제16주년 5 18기념행사는 전국적 세계적 이목을 끌었으며, 5월행사의 현 장을 전국의 지역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로 생중계 하여 5 18의 역사적 사 건과 의미를 알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1997년 5 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5 18기념행사는 국가적 수준의 의례 로 승격되었고, 이와 동시에 기념행사가 내포하고 있던 운동 성은 퇴장하게 되었다. 56) 정치적 투쟁성을 상실한 기념행사는 지방자치제 시행 55) (2009), 앞의 논문, p.177. 56) 제17주년 기념행사 위원장은 올해 5 18기념행사의 의미와 방향 및 규모에 대한 인터뷰 질문에 대해 장 소와 주체 등 기념식의 전반적인 상황이 크게 바뀐 만큼 이제는 이 지역의 정서와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광주의 이미지는 대외적으로 투쟁 강경 일변도로 비쳐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행사는 이런 이미 - 25 -
의 흐름에 맞추어 문화행사 위주의 문화 축제화 담론에 의해 전개되었다. 57) 제 18주년 기념행사위원회는 5 18이 단순히 광주항쟁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나아가 그 때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을 미래지향적으로 남기기 위한 전국적 축제가 돼야 한다. 58) 고 말하며 5월행사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였다. 다음 [표 4]는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연행된 기념행사의 주제를 보여주는 데, 1998년 이후 기념행사의 전반적인 주제 및 목표에서도 투쟁적 가치를 지향 하는 대신 인권, 평화, 통일 등 공동체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기념행사에 드러난 새로운 5월행사의 가치로서 인권, 평화, 통일 의 이념은 사회운동권역의 사회변혁의 과제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운동사회에서 민 주화 는 해방, 자유, 통일 을 위한 선결 과제임으로, 5월 투쟁을 통해 이룩한 민주화 는 사회운동이 지향하는 최종의 목표를 이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사회는 5월 광주의 진실을 외부의 관객과 소 통하기 위해 혁명 과 사회주의 대신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는데, 인권 과 평화 라는 텍스트는 광주지역 이외의 시민들과 교감할 수 있는 새로운 담론으로 등장 하게 되었다. 도 주 제 1998 평화, 화합의 미래로 1999 민족과 함께, 다시서는 5 18 2000 천년의 빛 5 18:평화 인권 통일의 세상으로 2001 5월로 한마음! 통일로 한겨례!! 2002 반전 평화, 자주와 통일로! 2003 평화와 통일로: 우리 아이들의 눈망울에 평화의 미소를 2004 평화와 연대:5월! 인류는 평화를 꿈꾼다 바꾸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과거 전야제에서는 운동권 대학생들이 투쟁내용을 담은 노 래만 주로 불렀는데 이번에는 어린이 합창단, 교회합창단 등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라고 답변하였다. 5 18 의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5 18기념행사위원회는 기존의 투쟁 운동적 성격의 기념행사를 평화 및 화합의 이미지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57) 지방자치제는 1995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된 후 본격화 되었다. 80년대 국가 정책의 일환으 로 지역 축제들이 연행되어온 흐름과 함께, 90년대에 들어 시행된 지방자치제는 지역경제의 활성화 전략 의 일환으로 지역축제의 개발을 내세웠다. 광주시 역시 지역 생존을 위해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축제 (festival)나 행사(event)를 개발 하려는 정책을 내세웠으며, 광주만이 가지고 있는 것 들 중 하나인 5월 행사 는 지방정부에게 역사 문화 관광자원 의 하나로 부각되었다.(정문영(1998), 앞의 논문, pp.113-114 참조.) 58) 광주항쟁 18주년 빛고을에 바치는 록정신 자유 평화, 한겨례, 1994.4.24. - 26 -
2005, 평화 그리고 연대 2006 오월에서 통일로 2007 참여해요 5 18, 함께해요 6.10 2008 오월의 희망으로 세상을 보라! 2009 민중의 뜻대로! 다시 오월이다 2010 들리는가! 오월의 함성, 보이는가! 민중의 횃불 2011 다시 세상의 빛으로! 함께 역사의 중심으로 2012 오월의 바람아, 다시 세상을 깨워라! 2013 오월광주, 다시 평화와 통일로! [표 4] 1998~2013년 5 18기념행사 주제 59) 이처럼 새로운 5월의 가치와 지향성을 안고 연행된 제19주년 기념행사에서는, 5월항쟁 당시 가해자였던 현역 공수부대원 등이 5 18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등,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민화합의 장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또한 5 18기념행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국민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전국적 차 원의 행사로 만들기 위해 5 18기념행사 홈페이지 개설, 5 18민중항쟁 로고와 캐 릭터, 엠블럼 제작 60) 등 5 18정신의 국민적 공감대 확산 을 위한 체계화 전략 을 펼쳐나갔다. 59) 5 18 기념행사위원회(2000), 20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 념행사위원회(2001), 21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2002), 22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03), 23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04), 24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 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05), 25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 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06), 26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07), 27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2008), 28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09), 29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10), 30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 보고 자료집 참조; 5 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2012), 32주년 5 18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 조. 60) 5 18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518.org) 구축작업은 5 18행사위원회가 제17주기 기념행사를 맞이하 여 전국화 세계화를 목적으로 빛고을 정보공동체 Bit-Sig와 협력해 개설하였다. 8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개설한 이 홈페이지는 (주)멀티정보에서 5 18국가기념일 제정 및 기념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홈페이지 개설 비용 백만원과 유지비용 약 40만원을 받지 않고 매달 무료로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잠시 폐지되었다가 다음 해인 1998년 5월 10일, 18주기 기념행사의 홍보 및 전국화 세계화의 실현을 위해 다시 개설되었다.( 5 18인터넷 홈페이지 계속 유지 어려울듯, 연합뉴스, 1997.5.29.) 1998년에 제작하는 엠블렘은 해당 년의 행사로만 한정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때 제작한 엠블렘은 6개의 선에서 3개로 다시 하나가 되는 사람의 형태로 5 18을 과거의 고통스런 역사적 의미에서 벗어나 그 정신을 평화와 화합의 정신으로 승화시키려는 모습을 나타냈다. (윤기봉(2000), 앞의 논문, p.84 재인용.) - 27 -
[ 1] 1999년 5 18로고 [그림 2] 5 18민중항쟁기념 공모 당선작 행사위원회 엠블럼 및 로고 61)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된 제20주년 기념행사는 처음으로 국가의 예 산을 지원 받아 진행되었으며, 대형 이벤트 화 된 문화행사의 모습을 보였다. 62) 또한 지난 20년간의 한국 민주화 과정을 함축 한 중간 결산의 장 으로 기능하고 자 처음으로 전야제 총감독 선임, 국제음악제 및 락 페스티벌 개최, 5 18다큐멘 터리 제작 등 20주년에 걸맞은 전문성과 규모를 갖추고자 하였으며, 기념행사의 문화산업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63) 하지만 추진 단체의 이념적 대 립으로 인해 동일한 성격의 일부 행사가 같은 장소에서 양분화 되어 진행되는 등 내부적 갈등이 빚어진바 있어 5월행사의 문화화에 대한 입장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상충되어 나타난 것으로 드러난다. 64) 61) [ 2]는 현재 기념행사위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엠블럼(emblem)과 로고(logo)로, 엠블렘의 형상은 정신계승운동의 현재와 미래주체를 의미하며, 완성되지 않은 오월은 총을 든 시민군의 형상으로 표현되었 다. 분수대는 80년의 공담대를 확장시켜 낼 광장을 모티브로 하였으며, 그 위의 불꽃은 민중의 생명력으 로 승화하는 오월영령의 넋을 표현하였다. 진달래색은 민중의 생명력, 생성과 승화의이미지를 표현하고 검 정과 흰색은 추모, 저항, 단결의 의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행사위원회의 엠블렘과 로고는 1999주년 공식 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5 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홈페이지(www.518gj.org) 참조.) 62) 총 64개의 행사 중, 16개의 행사가 민중문화예술제 란 이름으로 5 18묘지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연 행되었다. 행사의 내용은 주로, 음악회, 마당극, 풍물굿, 춤 등으로 5월항쟁을 재현한 상황극이나, 5월 희 생자를 추모하고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5 18민중항쟁 제20주년 기념행사위원회(2000), 5 18민중항 쟁 제20주년 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63) 제20주년 기념행사 평가내용에서 기본행사를 제외한 특별 기획 행사를 대형 이벤트화하고, 이를 통해 5 18기념행사의 전형을 마련하고 문화관광상품의 개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는 제안과, 행사를 전국에 산재 하는 것보다 광주에서 집중적인 행사를 개최하여 전국에서, 혹은 세계에서 광주를 찾아오는 행사로 발전 시키는 전국화 전략이 필요하다 는 의견이 도출되었다. 이를 통해 기념행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투쟁의 장 이 아닌 문화 관광 상품과 연계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4) 20주기 기념행사는 5 18기념재단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20주기 행사위원회가 주최한 행사와 민주 주의 민족통일 광주 전남연합과 민주노총, 전농, 민주노동당, 남총련 등 광주 전남지역 사회단체들이 참여 한 민족민주행사위원회가 주최한 행사로 양분되었다.(은우근(2002), 5 18기념사업에 대한 하나의 반성, - 28 -
(4) 2001~2013년 5 18기념행사 : 기념의례의 문화축제화 제21주년 기념행사는 추진 주체에 변화가 있었다. 1995년 5 18기념재단 출범 이후, 재단을 중심으로 연행되던 기념행사는 재단중심의 관제화된 행사위원회의 구성으로 시민사회단체와 갈등구조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21주년 기념행사를 앞 두고 재단과의 합의를 통해, 지역 내 제야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5월관련단체가 공동으로 결집한 행사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또한 행사의 집중성을 강화하기 위해 80년 5월항쟁 당시 주요한 투쟁의 흐름을 중심으로 행사를 기획 및 편성하 여 전체적인 행사 구조의 틀을 마련하였다. 65) 제22주년 기념행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반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 는데, 이는 미국 대통령 부시가 2002년을 전쟁의 해 로 규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 중 하나로 언급 하면서 전 국민적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제22주년 기념행사는 미국의 전쟁위협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의 이룩 을 위해, 반전 평화, 자주와 통일로! 라는 주제가 선정되 었다. 또한 반전과 민족의 평화통일, 역사의 재정립, 민중생존권 옹호, 국제 연대, 인권과 미완의 역사적 과제 해결과 민주주의의 실현 등 다섯 가지의 과 제를 설정하여 행사위원회가 지향하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표출하였다. 기본행사, 문화행사, 계승행사, 학술행사, 시민참여행사 등 총 52개의 행사로 구성된 기념행사는 기존의 공모방식을 통해 행사를 선정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행사위원회에서 직접 행사를 기획 및 추진하였다. 특히 행사를 편성하는 데 있어 정신계승과 시민참여에 주안을 두고, 17일 추모제 전야제, 18일 기념행사 시도민 대동한마당, 19일 정신계승 국민대회, 27일 부활제를 기본행사로 선정하였으며, 이를 기준으로 하여 개별 행사를 집중적으로 편성하였다. 또한 전년에 비해 삭감 된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지역 기업체의 후원을 유도하는 등 재정확보를 위한 노력을 단행하였으며, 보다 발전적인 행사의 마련을 위해 최초로 행사의 모니터 역사비평 63호, 역사문제연구소, p.110.) 65) 21주년 기념행사는 17일 전야제, 18일 계승대회, 20일 국민대회, 26일 부활제를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 하였고, 80년 당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한 행사 편성은 서사적 구조를 이루는 현재 기념행사의 전형이 되었다. - 29 -
링을 시행하였다. 제23주년 기념행사는 5월정신의 현재적 가치 를 중심으로 한 기조를 설정하 여, 현 시기 민족의 문제, 민중생존의 문제를 중 장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향 으로 삼았다. 이러한 방향 아래, 평화와 통일 이라는 주제를 제시한 행사위원회 는 전년도 행사기획단에서 행사를 기획, 운영했던 방법과는 달리, 예년과 같이 공모를 통해 행사를 모집하였다. 공모된 행사는 행사위원회의 심의 후 기획 추진 하는 방향으로 설정하였으며, 행사 선정에 있어서는, 행사의 방만함을 배제하고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중복행사 및 의미를 상실한 행사를 축소 및 통 폐 합한다는 등의 행사편성 원칙을 세워 선정하였다. 또한 행사의 향후 발전을 위해 전년도와 같이 행사 모니터링을 시행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기념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66) 뿐만 아니라 시민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한 대안으로 각 구별 행사 를 진행해 시민들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5월행사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시행하였다. 제24주년 기념행사에서는 기존에 제기되었던 행사위원회 상설기획단 운영에 대한 실천적 활동을 위해, 2003년 9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자체 세미나 및 회 의를 진행하며 행사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고, 타 지역의 기념행사에 대 한 조사활동을 펼치는 등 5월행사의 전형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또 한 전년도에 진행되었던 설문조사를 지속적으로 실행해 5월행사에 대한 시민들 의 의견을 수렴하여 행사의 발전을 꾀하고자 하였다. 제25주년 기념행사는 25년간 광주민중항쟁의 진실규명이 미완의 상태에 머물 러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 간 대결과 갈등 양상이 평화를 향한 강력한 연대 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 하여 진실, 평화 그리고 연대 를 주제로 시민 참여형 행사와 함께 5 18의 전국화와 국제화를 위한 행사를 확대하고 강화하였 다. 특히 학생과 주부, 직장인 등이 행사 기획과정부터 직접 참여하여 5 18마라 톤대회 및 대동 한마당 등의 행사를 직접 기획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시민참여 를 실현시켰으며, 자원봉사 조직의 참여를 유도하여 보다 다양한 범위의 시민참 66) 5 18 제23주년 기념행사위원회(2003), 5 18민중항쟁 제 23주년 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 30 -
여를 실현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67) 오월에서 통일로!! 라는 주제로 연행된 제26주년 기념행사는 80년 오월을 다 시 한 번 재현하고 시민들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의 내용을 양식화, 확대 한다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후세대간의 격차를 줄이고 5월의 정신과 역 사를 전승해 미래를 위한 삶의 에너지 로 재구성하여, 당시의 감동을 되살려 전 투적 신명을 나누어 갖는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제27주년 기념행사는 시민참여를 활성화하고 시민들의 공감대 속에서 5 18행 사를 개최한다는 의미에서 슬로건을 공모 받아 행사의 주제로 선정하였다. 공모 를 통해 선정된 슬로건은 참여해요 5 18 함께해요 6 10 으로 제20주년을 맞은 6월항쟁의 시기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선출되었다. 따라서 27주년 기념 행사는 5월항쟁과 6월항쟁에 이르는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 며, 전년과 같이 시민참여 및 전국화 세계화에 주안을 두고 행사를 추진하였 다. 68) 제28주년 기념행사는 현실사회의 모순과 시대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5월 정신을 현재적 실천으로 계승하고자하는 방향과 목표를 내세웠다. 기념행사 의 기조 및 방향성을 반영한 전야제 행사는 80년의 상황을 시민들이 직접 체험 하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이 함께 공감하는 장을 형성한다는 목적을 설정했 다. 제29주년 기념행사는 민중의 뜻대로! 다시 오월이다 라는 슬로건으로 저항 (Resistance)과 공감(Sympathy)이라는 주제어를 내세웠다. 여기에는 저항을 통 해 지켜낸 민주주의와 민주열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공감하여 현실 문제를 이 겨나가자는 의지가 담겨있다. 69) 제30주년 기념행사는 5월 민주항쟁 이후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 현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행사의 기조로 세우고자 하는 의도로 슬로건 공모를 하였다. 총 240개의 공모작 중 들리는가! 민중의 함성 보 67) 25주년 맞은 5 18행사, 진실 평화 연대로 주제 확정, 노컷뉴스, 2005.4.18. 68) 5 18민중항쟁 제27주년 기념행사위원회(2007), 5 18민중항쟁 제 27주년 기념행사 결과보고 자료집 참조. 69) 제29주년 5 18 행사준비위원회는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지나치게 현실 문제가 개입돼 5 18기념 행사 자체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있도록 행사 내용을 조율했다 고 밝혔다.( 올해 5 18기 념행사 차질 없이 치러질까, 연합뉴스, 2009.4.23.) - 31 -
이는가! 민중의 횃불 이 당선되어 30주년 슬로건으로 사용되었다. 시민이 함께 기획하고 참여하는 5 18 이라는 행사 기조에 따라 시민주체의 공모사업에서는 시 민 스스로가 행사의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진행하는 등 주민과 함께 하는 기념 행사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제31주년 기념행사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무 관심까지 고조되고 있는 현실에서 5 18기념행사가 다시 한 번 역사와 세상에 대 한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 가 되고자 관심(Interest) 이라는 주제를 선정하였다. 5 월 항쟁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촉발되었으며, 당시 광주 시민은 세상의 불의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는 것을 강조하며, 민주주 의 가치회복과 따뜻한 공동체를 기조로 삼아 다시 한 번 5월 항쟁의 대동 세상 을 열어가 보자는 의미에서 공동체의식을 회복하여 주변의 이웃을 되돌아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70) 제32주년 기념행사는 민주주의의 위기, 민중 생존권의 위기, 생태환경의 위 기, 평화의 위기 등 총체적 위기 를 겪고 있는 현 시대를 극복하고자 참여와 연 대의 5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사회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는 행 사를 만들고자 하였다. 공식적 행사의 슬로건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를 통해 오월의 바람아, 다시 세상을 깨워라! 로 선정되었다. 시민참여 활성화를 위 해 헌혈릴레이 행사와 주먹밥 나눔을 진행하여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마 련하였으며, 특히 젊은이들의 현실 참여의식을 고취하고 5월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행사의 내실화에 주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찾아오는 행사가 아닌 시민들의 품속으로 찾아가는 시민 밀착형 행사 를 강화하 여 이동 거리공연이나, 마을로 찾아가 시민들이 삶 속에서 5 18을 직접 경험 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71) 제33주년 기념행사는 2013 오월 광주, 다시 평화와 통일로 라는 주제로 진행 되었으며, 최근 극한 대립의 상황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개선의 요구와 더불어 자본의 횡포와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소외당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의미 를 담고 있다. 특히 33주년 기념행사는 수도권, 대구 경북권, 부산 울 70) 5 18민중항쟁 31주년 행사위 출범, 뉴스천지, 2011.4.19 참조. 71) 5 18 32주년 행사는 참여와 연대 로, 노컷뉴스, 2012.4.18 참조. - 32 -
산 경남권, 대전 충남북권 등 4대 권역별 기념행사 추진 협의체가 적극 결합할 수 있는 통합형 행사위원회로 운영하여 5월행사의 전국화에 대한 운영 체계를 마련하는 기반이 되었다. 특히 5 18문예기획단을 상설 운영하여 예산을 확대 배 정하고 지역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문예행사 및 전야제 행사를 준비하는데 있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틀을 마 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금남로로 집중되었던 5월행사를 지양하고 동네 및 지역민들에게 찾아가는 동네 5 18을 활성화 하여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5월 의 참된 의미를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72) 이처럼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연행되어 온 기념행사는 5월행사로의 시민들 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을 실현해 오면서 다양한 문화행사 및 문화매체를 5월행사에 도입하였으며, 연례적으로 행사가 연행되는 과정 속에서 5월행사는 시민들의 민주축제로 인식되어져 왔다. [표 5]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의 행사수와 내용을 보여주는데, 전체적인 행사의 수는 평균적으로 40~50여개로, 해당 년도에 따라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 고 있으며, 이는 예산의 규모와 해당년도의 추진주체 및 참여단체에 따라 변동되 는 것으로 주기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며, 행사의 내용 역시 대부 분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흘러옴에 따라 행사의 양적인 증가는 가져왔지만, 이것이 5월정신의 확산을 통해 가져온 변화인지 아니면 단순한 수적인 확대인 것인지, 그 내용이나 질에 있어 진정한 5월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지 면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행사수 2001 54 2002 52개 2003 43개 2004 45개 행사내용 기본행사:5개, 국제 및 학술:5개, 청소년행사:8개, 계승행사:17개,문화행사:13 개, 종교행사:5개, 지역행사:7개 기본행사:6개, 문화행사: 15개, 계승행사: 7개, 학술행사:4개, 부문행사:6개, 종교행사:3개, 시민참여행사: 5개, 지역행사:6개 기본행사: 7개, 문화행사:8개, 지역행사:5개, 계승행사: 5개, 시민참여행사:13 개(동네행사:5,청소년:6,기타:3),학술 및 토론:5개 기념행사:3개, 정신계승:3개, 시민참여:6개, 청소년:5개, 문화행사:7개, 국제연 대:2개, 타지역:5개, 기타:6개 72) 5 18 33주년 슬로건 오월 광주 다시 평화와 통일로, 노컷뉴스, 2013.4.11 참조. - 33 -
2005 44 2006 40개 2007 48개 2008 58개 2009 43개 2010 62개 2011 62개 2012 49개 2013 81개 계승행사:6개, 시민참여:6개, 특별행사:2개, 청소년:3개, 문화행사:5개, 국제연 대:2개, 학술:4개, 타지역행사:5개, 기타:11개 추모 및 기념:4개, 정신계승:5개, 문화행사:14개, 학술행사:3개, 시민참여행사: 1개, 국제연대행사:2개, 전국행사:7개, 청소년:1개, 나눔: 2개, 기타:1개 기본행사:3개, 정신계승:9개, 문화행사:10개, 학술행사:2개, 시민참여행사: 7 개, 국제연대행사:4개, 전남행사:4개, 전국행사:8개, 청소년:2개, 종교행사:4개, 기타:1개 추모 및 기념:10개, 문화행사:12개, 시민참여:10개, 학술행사:4개, 전남행사:4 개, 전국행사:6개, 나눔:5개, 청소년:3개, 기타:4개 추모 및 기념: 5개, 정신계승: 6개, 문화 예술:10개, 나눔:2개, 학술:4개, 시민참여행사:4개(어린이 청소년:3,체험:1), 전남행사: 4개, 타 시도행사:8개 추모 및 기념: 5개, 정신계승: 12개, 문화 예술:11개, 나눔:2개, 학술:5개, 시민참여행사: 3개, 전남행사: 7개, 타 시도행사:11개, 동네행사: 3 개, 국제행사: 3개 추모 및 기념: 12개, 정신계승: 9개, 문화 예술:23개, 나눔:3개, 학술:6개, 시 민참여행사: 5개, 국제행사: 1개, 종교행사: 2개, 학생:1개 추모 및 기념:8개, 정신계승:13개, 문화 예술:17개, 나눔:5개, 학술:6개, 청소 년 어린이:3개, 구별행사:5개, 종교:5개 추모 및 기념:12개, 정신계승: 10개, 문화 예술:20개, 나눔:2개, 학술:8개, 종 교:6개, 동네행사:5개, 전남행사:11개, 타 시도행사:4개, 국제행사: 1개 [표 5] 2001~2013년 기념행사 프로그램 2) 전야제의 시기별 변화과정 전야제는 기억투쟁의 일환으로 기념행사의 발달과정과 그 궤도를 같이 하지만, 기념행사의 일부 편성 행사로 연행 시기 및 행사 구성 내용에 차이가 있기에, 본 장에서는 전야제의 연행과정을 세부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전야제의 전개과정을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정치 사회적 투쟁 단계인 1987년~2000년과 제도화 이후 단계인 2001~2013년으로 분류하였다. 제도화 이전 단계에서는 1987~1992년을 투쟁 단계, 1993~1995년을 문화행사 도입 단 계, 1996~2000년을 관 중심의 문화행사 단계로 보았으며, 시민사회 중심의 행 사위원회가 5 18기념행사를 주최하기 시작한 2001년부터는 전야제가 문화적 의 례행사로 정착되어가는 과정에 따라 2001년부터 2003년을 5월정신의 구체적 표 - 34 -
현 단계, 2004~2008년을 참여를 통한 5월정신의 계승 단계, 2009~2013년을 5 월정신의 현재화 단계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1) 1987~2000년 시기의 전야제 1 1987~1992년 : 투쟁 단계 전야제( 前 夜 祭 )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사에 앞서 그 전날 밤에 베푸는 축제 이다. 5월행사에 전야제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제7주기 기념행사부 터이다. 1987년의 5월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집회와 시위가 전국 대학권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광주에서도 전남 대학교를 중심으로 반정부시위가 거세게 일었으며, 전남대생 1천여 명은 1987년 5월 11일 오후8시, 전남대학교 강당 앞에서 제7주기 기념행사 선포식을 갖고 전 야제 행사를 벌였다. 당시의 전야제 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리기 전 행하는 축제가 아닌, 5월 투쟁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시위의 연장으 로 기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73) 하지만 사전의식(허수아비 화형식)-거리굿(교내 순례 및 시위)-문화행사(노래 등)의 순서로 치러진 전야제의 형태는, 현재 전야 제의 연행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을 일부 지니고 있기에 그 의의를 지닌 다. 74) 본격적인 전야제의 의미와 형식을 갖추고 진행된 것은 1988년 5월17일, 광주 구동 실내체육관에서 연행된 전야제 행사로 볼 수 있다. 당시 전야제 행사는 판 소리, 진혼굿, 노래극, 연극 등의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편성되었으며, 시민들의 참여와 호응이 높았다. 75) 전야제 행사 이후에는 체육관에 모인 군중이 도청 앞 73) 학생들은 아메리카제국주의 등 개의 허수아비 화형식을 가진 다음 3백여 개의 횃불을 들고 대강 당 앞-5 18광장-문리대-사회관-본부-후문을 한 바퀴 돌며 시위를 벌인 다음 축제행사에 들어가 노래 등 을 부르다 밤 9시 45분경 해산했다. ( 全 南 大 5 月 祭 전야제, 동아일보, 1987.5.12.) 74) 1989년 5월 투쟁선포식 을 마친 대학생과 광주공원에서 5월대동제 행사를 마무리한 시민, 학생 등 2만 여명은 전남대 병원 앞에 집결, 노동청-시외버스공용정류장-금남로-도청앞 광장으로 횃불행진을 벌였으 며, 6천3백여 명의 경찰이 배치 되 시위행렬을 저지했다. 당시 전야제 행사에서 나타난 순례 형식의 가두 시위는, 80년 당시 계엄령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였던 횃불시위를 바탕으로 연행되었다. 1988년 전 야제 행사에서는 광주구동실내체육관에서 연행된 전야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전남도청 앞 광장까지 시위행 진을 벌여 공간적으로 확대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시위 투쟁으로 시작된 가두행진은 현재 전야제에의 시 작을 알리는 풍물굿 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75) 정문영(1998), 앞의 논문, p.45. - 35 -
광장으로 행진하면서 거리의 군중과 합세하여 가두행진과 시위를 벌였으며, 이들 에 의해 도청 앞 광장이 일시적으로 점유되기도 하였다. 76) 이날 이후 전남 도청 앞 광장은 매년 전야제 및 각종 5월행사를 연행하는 장소이자 시민들로 하여금 코뮤니타스(communitas) 를 경험하는 의례공간으로 자리 하게 되었다. 1989년의 전야제 행사는 80년 이후 처음으로 경찰의 집회 허가 속에서 치러 졌다. 광주 전남지역 8개 대학과 시민 등, 10만여명의 대군중이 도청 앞 광장에 운집하여 5 18민중항쟁계승을 위한 5월투쟁선포식 을 가졌다. 전야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5 18을 기념하고 광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등을 요구하였다. 77) 1990년부터 1991년의 기념행사는 5월 문화제 의 명칭으로 개최하여 보다 다 양한 문화 예술 학술 행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5추위 의 주도로 진행된 제11주기 기념행사는 5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문화행사 로 구성한다는 방침 하에, 50여개의 집회성 행사 및 문화 행사들로 구성되었던 예 년에 비해 조용하고 엄숙한 행사로 연행되었다. 하지만 명지대생 강경대 군의 구 타치사사건 및 전남대생 박승희양의 분신 사건을 통해 광주를 비롯한 전국적으 로 최대 규모의 군중집회 및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따른 경찰과 정부의 엄격한 단속 속에 17일 오후 6시, 전남대 병원 앞에서 열린 전야제는 광주 전남 민주연 합회의 주최로 5 18전야 광주시민대동 한마당 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민주 연합 소속 각 단체의 문화패들이 준비한 다양한 공연이 이어진 가운데, 6공화국 의 폭력성과 비리를 5월항쟁의 상황에 비춘 총체극 공연은 2만여 명의 시민들 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전야제 행사를 마친 뒤 5월항쟁의 정신을 계승해 폭 력정권 퇴진에 앞장설 것 을 다짐하며 노태우 대통령의 화형식과 횃불행진을 거 행하는 등 늦은 밤까지 시위가 계속되었다. 78) 1992년 기념행사에는 시 의회가 기념행사위원회의 공동 주최자로 참여하였다. 또한 각각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기존에 5월 관련단체를 76) 도청의 점유 는 다양한 정치 사회적 배경에 의해 가능했다. 전국적으로 확대된 5월투쟁으로 당 정부는 5 18을 민주화 운동의 일환 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들의 거센 시위는 도청 점유에 대한 당국의 암묵적인 용인 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당국의 이러한 결정은 투쟁의 확대를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 로 5월행사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것이기도 하다. (위의 논문, p.44 참조.) 77) 광주 5 18 9돌, 동아일보, 1989.5.18.; 윤기봉(2000), 앞의 논문, p.46. 78) 광주 대규모 전야제행사, 한겨레, 1991.5.18 참조. - 36 -
중심으로 한 재야단체의 행사에서 벗어나 범시민적 5월행사로 발돋움하는 계기 가 되었다. 79) 전야제는 모든 시민들이 5 18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문화중심의 행사로 치루자 는 제12주년 기념행사의 기본방침에 따라, 17일 오후 6시 전남도 청 앞 금남로 거리에서 종합 문화제 의 형식으로 치러졌다. 80) 항쟁의 도시 라는 주제로 광주항쟁의 전개 과정과 5월의 정신을 전달하고 자 한 제12주년 전야제행사는, 1부 기념식, 2부 음악제, 3부 집체극과 등불행진 등 5월항쟁의 모습을 예술적 형식으로 형상화하여 2만여 명의 시민과 5백여 명 의 출연진이 함께 어우러진 공동체 화합의 한마당을 만들어내었다. 81) 최초의 문화제 형식을 따른 제12주년 전야제의 특징으로는, 전체 행사의 주제 를 설정하여 성격을 규정하고, 이에 맞는 문화행사를 연행 형태별로 분류하여 행 사의 체계와 흐름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문화운동적 성격의 행사에서 문화시민운동의 행사로 이행하는 시기적 접점에서, 5월정신의 문화 예술적 형상 화를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시대 정치적 의제를 표출하여 사회 변혁을 꾀할 수 있는 매개의 역할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전야제의 역할과 기능은 전야제 행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올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 [그림 3]은 9, 11, 12주년 전야제 행사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도청 앞 광장 분수 대를 무대삼아 치러지던 전야제는 11주년에 들어서는 무대가 세워지고, 다양한 문화공연들이 펼쳐졌으며, 그 다음 해에는 행사장 주변 곳곳에 대형 스크린이 설 치되어 점차 행사화 되어가는 외형을 보여주고 있다. 79) (2000), 앞의 논문, p.55. 80) 제12주년 기념행사는, 화합과 안정을 바라는 지역 여론과 주최측의 평화집회 약속에 따라 도청 앞 분 수대 광장을 제외한 금남로1~3가 4차선도로 3백여 미터의 구간에서 연행되었다. 전야제와 계승 국민대회 와 같은 문화행사는 허가하였으나, 일부 집회적 성격의 행사(민주정부수립 범국민대회)는 허가되지 않았 다. 81) 특히 집체극에서는 제주도 놀이패 한라산, 부산 춤패 춤누리 등이 광주의 문화패들과 어울려 4.3항쟁과 부마 및 광주항쟁이 쟁취하려 했던 민주세상 실현의 열망을 표현함으로써 일부에서 지역차원의 저항 으로 축소하려 하고 있는 항쟁의 정신이 보편적인 공동체의식이자 압제에 맞선 항거였음을 보여주었다. 신전식 후 행사로 펼쳐진 재현 거리극 에서도 당시 상황의 절박성과 항쟁의 정당성 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민 주정부 수립과 조국통일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시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5 18 전야제 광주 표정, 한겨례, 1992.5.19.) - 37 -
[ 3] 9, 11, 12주년 전야제 ② 1993~1995년 : 합법화 단계 군사정권 퇴출 이후 문민정부에서 처음 맞이한 제13주년 기념행사는, 5추위와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 전남연합(이하 광주 전남연합 ), 광주시의회, 5민련이 중심 이 되어 결성된 제13주기 기념행사추진위원회의 주도하에 펼쳐졌다.82) 끝나지 않은 외침 이란 주제로 연행된 제13주기 기념행사에는 처음으로 광주 시의 예산이 지원되는 등 민 관의 합동 행사로 치러졌다. 17일 금남로 거리에서 는 전야제 행사 이외에 다양한 문화행사들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도청 앞 광장과 광주은행 앞까지의 금남로거리를 차 없는 거리 로 지정하여 사진전시회 및 거리 재현극 이 진행되었다. 오후 6시, 도청 앞 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본격적인 전야제 행사 83)를 갖은 후, 모든 시민이 참여하여 노래, 놀이, 연주, 촌극, 민담 등 장기자랑을 벌이는 시민 5월 놀이한마당 이 펼쳐졌다.84) 이날 집회를 허가한 82) 5 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5월 문제의 진상을 밝히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표명한 행사위원회는, 수 차례 내부 논의와 토론을 거쳐 행사전반의 세부적인 계획과 원칙을 수립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3가지 입장과 원칙을 정했다. 첫째, 5월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그 진상을 밝히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다. 둘째, 김영삼 정권에 5원칙 15개항에 입각한 5월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셋째, 5 18기념행사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광주시민의 공론화된 5월 문제 해결의 원칙과 내용에 대한 의견 수렵 과 그 확인 작업을 계속 진행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한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시민사회로 하여금 5월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을 고조시켰으나,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문민정부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83) 전야제 특설무대에는 촛불을 꽂은 2백 개의 항아리로 장식된 철제가 마련됐고, 끝나지 않은 외침 이라 적힌 대형 애드벌룬 2개가 띄워지는 등 장엄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행사 끝부분에 말하라 오월이여 의 노 래 집체극이 이어졌으며 가수 신형원, 탤런트 정한용씨 등 연예인도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또한, 이날 전 야제 행사에 참여한 시민, 학생들은 도청 앞에서 광주역에 이르는 4km의 거리를 횃불을 들고 평화롭게 행진, 한결 성숙된 시위를 벌였다. ( 5 18 13돌, 경향신문, 1993.5.18; 새롭게 다가온 5 18 광주는 숙연하다, 동아일보, 1993.5.18.) 84) 전야제의 본 행사에 앞서 광주 전남 지역 총학생회연합회(이하 남총련) 소속 대학생 2천여 명은 각 대 학별로 교내에서 전야제 출정식 을 가진 뒤, 광주 시내에서 전두환, 노태우 체포결사대 발대식 을 갖고 - 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