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모든 예지와 철학 이상으로 우리에게 계시를 준다.(베토벤) 2015. 4. 23.(목) 전남도립도서관 제 57 회 주 제 대중음악에서 찾는 삶의 지혜 강 사 임 진 모 ㆍ학력 경력) 고려대학교 졸, 영상물 등급위 공연 심의위원 경향신문사 내외경제신문사 기자 등 ㆍ현) 음악 평론가 방송인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5개 프로 고정 출연 ㆍ수상) 제5회 다산 대상 문화예술부문 대상 ㆍ저서) 팝, 경제를 노래하다 / 가수를 말하다 /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 등 전 라 남 도 도 립 도 서 관 JEOLLANAMDO PROVINCIAL LIBRARY
대중음악에서 찾는 삶의 지혜 1. 아이돌 음악의 역사 마음에 들든 아니든 아이돌 가수와 그룹이 없는 가요계를 상상하긴 어 렵다. 2012년 싸이, 올해 조용필이라는 복병이 있었지만 엄연히 음원시 장은 그들의 것이고 방송 예능프로에서도 시청률을 위해 반드시 모셔 와 야 할 섭외 1순위가 됐다. 아이돌 음악 판을 주도하는 SM, YG, JYP 이 른바 3대 기획사 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영향력은 언터처블 이 다. 아이돌 음악시장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가공할 성장세를 기록해왔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아이돌의 시작은 1996년의 에쵸티(H.O.T.)다. 서 태지와 아이돌을 통해 10대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한 기획자 이수만은 거기에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도입해 최적화된 아이돌 가수를 기획했고, 그 결과 등장한 H.O.T.는 아이돌의 선구자로 역사에 기록된다. 철저하게 중고생들의 구미에 맞춰 멤버를 뽑은 뒤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시킨 H.O.T.는 전사의 후예, Candy 등을 통해 음악시장의 주체를 완벽히 10대로 바꾸어 놓았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본격적인 아이돌 1세대 들의 전쟁이 벌어졌 다. 당시 대성기획이었던 DSP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젝스키스는 H.O.T. 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역시 SM과 DSP의 경쟁이었던 걸 그룹 S.E.S와 핑클은 10대 남자들까지 소비자로 끌어들였다. S.E.S는 1998년 경에는 전국 각 대학 축제연예인 섭외대상 1위에 오를 정도로 20대와 대학생들에게도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핑클은 나중 2000년대에 톱스타 가 된 이효리를 배출했다. - 1 -
그밖에 태사자, 베이비복스, 클레오 등도 눈길을 끌었지만, H.O.T. 의 인기 아성에 가장 근접했던 아이돌 그룹은 지오디 였다. 박진영의 JYP 사단 1호 가수로 화제를 모은 이들은 지지층이 다소 국지적이었던 기존의 그룹들과는 달리 기성세대의 호감을 사면서 국민 아이돌로 승승 장구했다. 그렇다고 아이돌 신이 마냥 황금기를 보내왔던 것은 아니었다. 최장수 그룹이 된 신화 에 이어 해외진출에 공을 들였던 보아의 성공을 마지막으로 SM은 2000년대 초반 잠시 침체기를 겪게 된다. 밀크, 블 랙비트, 이삭앤지연 등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팀들이 잇달아 실패했다. 이 시점에 YG의 독자노선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원타임 이후 거미, 휘성, 빅마마 등의 비( 非 )아이돌 가수들을 성공시키면서 음악이 우선인 기획사 라는 좋은 이미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이 이미지는 나중 빅뱅 에게도 고스란히 계승되었고 그들은 직접 곡을 만드는 실력 있는 아이돌로서의 위상을 구축했다. 하지만 늘 SM은 강했고 2004년 Hug 로 데뷔한 SM의 동방신기는 2010년 멤버 셋이 JYJ 로 갈라서기 전까지 전 대의 H.O.T.에 버금가는 절대적 인기를 누렸다. 아이돌 2세대 시점은 아 이돌은 춤꾼들이지 가수가 아니라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음악완성 도에 있어서 심혈을 기울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처럼 보이그룹 중심이었던 헤게모니에 반전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JYP 소속의 원더걸스 였다. 중독적인 후크와 안무를 내세운 2007년 Tell me 는 순식간에 국민 히트곡 반열에 올랐고 걸 그룹 전성 기의 도래를 알렸다. 소녀시대 와 투애니원 은 막강한 국내외 팬덤을 구 축했고 카라 는 일본을 강타했다. 여기에 슈퍼주니어 의 동남아시아 정 복이 더해지며 완연한 케이팝 한류시대가 펼쳐졌다. 내수시장에선 포미 닛, 애프터스쿨, 티아라, 미스에이, 시크릿, 씨스타 등 걸 그룹의 막강 행진이 계속되었다. 시장이 커지면서 가요기획사들은 일제히 아이돌 제작에 뛰어들었고 지 - 2 -
금은 비스트, 인피니트, 블락비, B1A4, B.A.P., 빅스 그리고 최근 상승세가 두드러진 엑소(EXO) 등 춘추전국의 양상을 보인다. 아이돌 음악은 어느새 범세계적인 한류가 되어 국가브랜드로까지 격상했다. 세 계를 홀린 퍼포먼스를 자랑하면서 스마트폰과 함께 한국의 대표수출상품 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오늘날 케이팝은 아이돌 음악이 주체임은 누구 도 부정할 수 없다. 케이팝과 아이돌 음악은 동의어다. 2. 가슴에 남지 않는 노랫말 대중가요에서 작사와 작곡 가운데 어느 쪽 하기가 더 힘들까. 곡을 쓰 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상당수가 가사 짓기가 더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 때 그 사람 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다수의 트로트 명작을 자작 한 심수봉은 언젠가 선율은 상대적으로 쉽게 써냈는데 적합한 노랫말이 안 나와 완성을 못한 곡이 부지기수 라고 작사의 고통을 호소한 적이 있 다. 흔히 음악가를 평가할 때 작사보다 작곡을 비교우위에 놓는 경향이 있지만 쥐어짜내는 처절한 어려움은 사실 작사 쪽이다. 광화문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등 이문세의 무 수한 히트곡을 주조해낸 고 이영훈은 하루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 네 갑을 피우며 곡을 썼다고 한다. 그의 팝 발라드가 이전 가요와 구별된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가사였다. 생전에 그는 한숨을 지으며 이렇게 토로 한 바 있다. 가사 쓰기가 선율 만들어내는 것보다 한 50배는 어려워요. 멜로디는 못써도 하루에 다섯 곡을 쓰지만 가사는 한 달에 하나를 쓰기 가 벅차고 슬픈 사랑의 노래 처럼 10년 만에 하나 나온 경우도 있습니 다. 가사 때문에라도 곡을 조금밖에 쓸 수가 없었죠. 흐르는 강물을 관 조하며 낭만적인 가사를 한번 쓰려고 한강 둔치에 나갔던 1990년대 어 떤 음반 프로듀서의 일화가 있다. 그는 하나만 제대로 써도 초대형 대박 인 노랫말의 파괴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단 한 줄도 못쓴 채 맥주 빈 - 3 -
캔과 숙취만을 가지고 돌아왔다 고 한다. 그의 참담한 경험담을 그냥 웃 어넘길 일은 아니다. 우리는 대중가요의 리듬과 멜로디에 빨려 들어가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남겨두는 것은 공감하는 노랫말이다. 때문에 세월을 관통하는 긴 생명력 의 노래, 즉 명곡을 목표한다면 무엇보다 가사를 잘 써야 한다. 그렇다면 요즘 일주일이 멀다하고 음원차트 1위곡이 바뀌는 어지러운 인기급변의 행태는 가슴에 남지 않는 가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단지 아이돌 댄스곡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이다. 댄스음악이라도 얼마든지 깊고 진중한 노랫말은 가능하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씨씨알) 하면 프라우드 메리, 헤이 투나잇 등 1970년대 고고시대의 명곡으로 기억되는 전설의 록밴드다. 그들의 댄 스음악에 전 세계인들이 열광적으로 춤을 춰댔지만 현실을 반영한 그들 의 노래는 지금도 전파를 탄다. 리더 존 포거티는 우리 음악은 먼저 사 람들로 하여금 일어나 춤을 추게 하고, 그 뒤 가사를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고 말한 바 있다. 신나서 마구 몸을 흔들다가 나중 노랫말에 공감하게 되면 그 곡은 쉬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근래 단숨에 주목받은 크레용팝 의 노래 빠빠빠 는 날따라 해/ 엄마 도 파파도 같이 고 빠빠빠빠 빠빠빠빠/... 점핑 예 점핑 예 에브리바디 점핑 예 점핑 다 같이 뛰어 뛰어... 가 거의 가사의 전부다. 아이돌의 대 세라는 엑소(EXO) 의 히트곡 으르렁 은 그녀 곁에서 모두 다 물러나/ 이젠 조금씩 사나워진다/...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너 물러서지 않 으면 다쳐도 몰라... 하는 노랫말로 되어있다. 근래의 후크 송 트렌드 속에서 가사쓰기에 애를 먹는다는 것을 이해하 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의성과 말장난에 기대는 패턴의 가사가 주 고객인 10대들마저 장기간 기억에 담아둘지 심히 의심스럽다. 우리의 주류가요가 감동 아닌 감각에, 저장 아닌 소비로 쏠려가고 있음의 명백 - 4 -
한 증명이다. 키드들에게 어필하고 순간 재미와 재롱을 피우면 그만이지, 오래 기억될 노래 만들기는 솔직히 뒷전인 것이다. 이것은 아이돌 댄스 가 떠받치고 있는 글로벌 K팝의 미래에도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장르다 양성 확보도 시급하지만 그 못지않게 정제된 가사를 써내는 것에 집중해 야 한다. 당장은 글로벌 팬들의 포용이라는 선물을 받고 있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면 배제라는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 포용과 배제는 맞닿아있다. 3. 섹시 풍조, 이제는 식상하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인 1985년에 가수 김완선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머리끈을 풀고, 출렁이며 춤을 추고 종횡으로 무대를 누비 는 와일드함에 한국에도 이런 가수가 있었어? 하며 넋을 잃었다. 너무나 새로웠던 춤 자체만으로 충분했지만 김완선의 섹시 댄스는 그것으로 끝 나지 않았다. 점잖은 게 당연하고 엄숙을 지고로 여기던 시절에 대한 조 롱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사회적 맥락의 의미망이 더해졌다. 관습 흔들기, 판 뒤엎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김완선은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 를 장식하게 됐다. 김완선 이전에 빙글빙글 의 나미,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69년의 김추 자 역시 마찬가지다. 김추자의 경우는 경제개발계획이 한창이던 시절, 가 당찮게 여가수 최초로 무대에서 엉덩이를 흔드는 파격을 시범했다. 이런 원조들과 김완선을 거쳐 섹시 여가수의 계보는 엄정화 이효리 등으로 이 어지게 된다. 이들의 존재가 역사에 기억되는 이유는 춤을 통한 아름다움의 구현도 있지만 성( 成 )이란 측면에서 기성과 다른 참신함 혹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댄스에다 섹슈얼리티가 더해진 이른 바 섹시 콘셉트가 여기서 폭발력을 갖는다. 이 부문의 세계적인 인물은 마돈나다. 마돈나는 오랫동안 눌려왔던 여성들의 자기표현과 자기결정력 - 5 -
을 과감한 노출과 관능이라는 섹슈얼리티 수법으로 이끌어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대표작인 처녀처럼(Like a virgin) 과 아빠 설교 하지 마세요(Papa don't preach) 는 결코 대중적 파괴력을 발하지 못했 을 것이다. 마구 벗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당대의 관습에 덤벼드는 문제의 식과 오버랩 시켰기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마돈나의 노래 는 답답한 현실에 눌린 10대와 20대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선언 같 은 것이었고 실제로 언론으로부터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요즘 걸 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주류 음악계 여가수를 보자. 몇몇을 빼 놓고는 마치 누가 더 센가? 겨루듯 질펀하게 섹시 콩쿠르, 관능성 높이 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너무 아찔하고 자극적이다. 아슬아슬한 자태와 야 릇한 퍼포먼스는 기본이고 언어도 거침이 없다. 인기 최고의 걸그룹 씨스 타 는 터치 마이 바디 란 노래에서 내 입술이 좋아 아님 내 바디가 좋아/ 솔직히 말해 여기 여기 여기 아님 저기 저기 저기... 라고 유혹한다. 대놓고 100% 섹시를 표방하는 걸 그룹 포미닛 출신의 현아가 얼마 전 히트시킨 곡 빨개요 는 정말 사람들의 얼굴을 빨갛게 만든다. 다 그 만해 따끔하게 혼내 줄 테니까 엉덩이 대/ 감당 안 돼 밤마다.. /죽이는 댄스 무대 위 킬러 콧대는 하늘을 찔러.. 근래 댄스곡의 대세는 스스로 에게 권좌를 부여하는 이러한 식의 자화자찬이다. 이런 내용의 가사가 야릇한 춤과 자태의 영상과 결합하니 더 요란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충격이어야 할 이러한 섹시 펀치가 순간 눈을 때릴지는 몰라도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과감한 춤과 언어에 설득되거나 용기를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제는 청소년들마저 대체 이게 뭐야? 라며 실소한다. 1980년대에 서구의 10대들이 마돈나로부터 여성 존재감 상승을 수혈 받 은 사례는 남의 나라 얘기고 오래전 일일 뿐이다. - 6 -
그룹마다 가수마다 개성을 강조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조금 떨어져서 보면 비슷비슷 그게 그거다. 음악도 유명 작곡가 팀에 몰리다보니 타자 와의 명백한 차별화를 기하기가 어렵다. 사실 춤도, 섹시 콘셉트도 음악 의 질과 맞물려야 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우리 여가수 섹시 풍조에는 음 악이 없다. 문제는 트렌드에 대한 압박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망한 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처다 본다 는 식의 사고로는 나른한 반응 의 현 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패턴화를 거부하는 반작용과 역공의 묘가 필요하다. 실제로 순수를 내 세워 성공한 걸 그룹도 있다. 개체의 특성을 살린 음악실험과 기성의 패 턴을 박차는 도전의식을 묶어야 솟구쳐 오른다. 우리 여가수들의 섹시 풍조는 너무 빤하고 식상하다. 4. 싸이와 조용필 싸이는 세계 속에서 논다. 본인 표현대로 국제 가수든 월드 스타든 분명히 한국만의 가수는 아니다. 언론이 온통 유투브 조회 수를 챙기고 빌보드 차트 순위에 매달리는 것도 그가 이제 로컬 가수가 아니라 글 로벌 엔터테이너라는 것의 반증이다. 그것을 두고 일각에서 국가주의 라는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영리하고 생각 많은 그가 신작 싱글 젠틀맨 을 단독 공연무대 해프닝 을 통해 공개하면서 본격적인 월드 마케팅에 나선 것은 어쩌면 집 나간 자식 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콘서 트 현장에서 미친 듯 열광한 관객들을 비롯한 국민들은 싸이의 해외중심 활동을 관용의 수준이 아닌 대환영의 심정으로 응원한다. 나가면 어때? 집 잘되게만 하면 좋은 거지! 싸이 자신도 집을 나갔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젠틀맨 은 국내용이 아니라 누가 봐도 수출용, 해외용이다.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 7 -
미국문화의 경험을 가진 그는 미국을 비롯해 외국 사람들이 한국과 같은 동양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강남스타일 도 그렇지만 정장과 선글라스 차림이어도 어딘가 덜 떨어진 것 같고 우스꽝스럽고 망 가진 자신 옆에는 언제나 과감한 포즈를 취하는 미모에다 섹시한 여성들 이 우글거린다. 외국인들 상당수가 오리엔탈 신비로만 여겼던 한국 여성이 너무 아름 답고 섹슈얼한 것에 놀라고 감탄한다. 싸이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한국 여성의 매력을 제대로 외국에게 알리고 있다! 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아 마 앞으로도 그는 자신의 영상에 늘씬하고 매혹적인 다수의 여성들을 배 치할 것이다. 외국인들은 강남스타일 과 젠틀맨 을 통해 싸이의 춤도 따 라하지만 아름다운 코리안 걸도 열심히 본다. 싸이의 전략이다. 언어는 말할 것도 없다. 철저히 해외용 접근이라는 게 여기서도 나타 난다. 그는 강남스타일 을 하면서 여전히 생소한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 들의 폭발적 관심을 목격했다. 우리는 알랑가 몰라, 아리까리하면 까리 해, 용기 패기 똘기 같은 표현이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은 알 리가 없다. 젠틀맨 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뜻풀이의 욕구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차례 반복되는 말이야 라임(있잖아 말이야/ 말씀드리자면 말이야/ 멋쟁이 말이야...)도 재미있지만 의미는 모른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만 깔아놓지 않았다. 영어도 쓰고 아임 마더 파더 젠틀맨 처럼 깜찍하게 여 길 대목도 집어넣었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잘 배 치, 배분해놓은 게 젠틀맨 의 돋보이는 장점이다. 싸이는 게다가 대동단결을 만들어내는 무궁한 댄스의 흡수력을 믿었 다. 뭔가 새로운 싸이의 신작을 기대한 우리의 음악관계자들 중 다수가 솔직히 처음에는 그게 그것인 클럽 튠이라서 그랬겠지만 조금은 건조하 고 지루하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자꾸 들으면 중독성이 생기고 영상과 묶이면 더욱 친근해지는 게 음악이다. - 8 -
설령 말춤보다 사람들이 이번에 시건방춤을 덜 추더라도, 유투브 조회 수의 폭발적 상승세가 꺾이더라도 이미 이 정도 반응이라면 대성공이다. 빌보드에 12위로 핫 샷 데뷔한 것이 말해준다. 강남스타일 이 나오기 전 의 시점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성적은 경천동지 급의 해외시장 대첩이다. 솔직히 강남스타일 의 빌보드 2위 7주 연속의 맛을 본 탓인지 기대치가 너무 높다. 음악관계자들 사이에선 신작이 20위권에만 들어도 연타석 홈 런이라고들 했다. 이미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다. 다시 한 번 케이팝의 리더 니 진정한 문화대사 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5. 싸이, B급 정서의 승리 싸이는 하지만 그런 수식에 깔려있는 국위 선양을 의식할 인물은 아니 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자신이 그사이 국가대표가 됐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어서 태극기를 들고 코리아 를 연호하지만 그의 뇌리에는 국가를 알리려는 생각보다 늘 그래왔듯 현실을 조롱하고 춤을 춰 날려버린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그는 비주얼을 중시하는 일그러진 풍토에 학벌과 돈에 찌든 세상이 싫다. 그부터가 새 라는 노래로 데뷔했을 때 괴상한 외모에 뚱뚱한 몸 때문에 엽기가수 로 불린 희생자였다. 누가 봐도 그는 일류가 아니라 이류 삼류이며, 주연 아닌 조연 혹은 엑스트라이고, 1등이 아니라 34등이며, 결코 귀빈일 수 없는 루저다. 그 런데도 예쁜 얼굴에 파워풀 댄스로 무장한 가지런한 우리의 케이팝 전사 들, 그 아이돌 댄스그룹들보다 더 큰 글로벌 센세이션을 야기했다. 그것 을 싸이는 B급 정서의 승리 라고 규정했다. 미국인들은 자신을 바보 같 은 캐릭터 오스틴 파워 로 여긴다는 것이다. 젠틀맨 에서도 광대의 파괴력은 여전하다. 그는 웃기는 동작을 통해 세상에 만연한 허세를 비아냥거리며 못난 자의 반항력을 웅변하고 있다. 싸이에게 지구촌 곳곳의 팬들이 박수를 치는 이유는 눌리고 외면 받고 - 9 -
있는 자의 씩씩한 용트림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B급 정서의 승리는 소외 된 사람들의 수면 위 부상, 그 솟구침을 가리킨다. 그런데 정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당분간 감히 그 폭발적 장세에 도전하지 못할 것 같은 싸이의 젠틀맨 을 내리고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 가 음원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싸이가 바깥에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면 조용필은 안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다. 음원과 음반을 관리하는 국 내 유니버설 뮤직은 잘돼도 이렇게 잘될지 몰랐다 며 입을 다물지 못하 고 있다. 바운스 를 다운로딩하거나 스트리밍한 사람들이 대부분 10대와 20대라는 점 또한 경이롭다. 누군가는 63세가 만들어낸 기적 이라고 했 다(조용필은 1950년생이다). 조용필의 YPC 프로덕션 관계자는 애초에 사람들이 조용필의 새 앨범 이 나왔다는 점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고 했다. 하지만 먼저 음원 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무 음악이 세련되고 영(young)해 올해의 앨범 감이라는 고평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젊은 뮤지션들 전체가 조용필 신보에 충격을 받을 것이며 미리부터 음악계가 떨고 있다는 얘기도 돌았 다. 실제로 조용필의 새 음반은 랩이 들어간 타이틀곡 헬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바운스, 전형적인 록 충전이 필요해 를 위시해 발라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필의 유전자인 록 기반의 젊은 음악으로 가득하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만큼 외국을 오가며 다듬은 사운드의 퀄리티는 빼 어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신곡들은 오래 전에 만들어놓았으나 양에 차 지 않아 갈아엎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했다고 한다. 새로 완성한 뒤에도 그는 더 좋은 소리로 다듬기 위해 재( 再 ) 마스터링 작업 차 영국 으로 떠났다. 나이가 들어가면 대체로 음악가는 자기 세대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구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조용필은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 10 -
패기의 사운드로 역공을 취했다. 4월23일 젊은 아티스트들의 홍보와 마 케팅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쇼 케이스 행사에 나선 행보도 지극히 젊 다. 그는 요즘 음악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늘 주의 깊게 관망한다. 카 라디오는 오로지 주파수 102.7 메가헤르쯔 즉 AFKN에 고정되어 있 다. 신보는 그러한 현재진행형에 대한 민감성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그는 왜 록과 같은 젊은 음악으로 승부를 걸었을까. 환갑이 넘은 나이 테를 애써 가리거나 푸르른 청춘으로 보이고 싶어서는 아니다. 록은 그 의 원초적 본능이다. 록은 기본적으로 현장음악이고 공연음악이다. 가수 가 가야할 곳은 공연장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신보의 음악도 콘서트를 의 식해 상당수를 공연용으로 꾸몄다. 그의 지향은 곧 공연장을 찾은 기성 세대 관객들에게 록과 같은 젊은 음악을 들려줘 우리는 아직도 젊다 는 자신감을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6. 조용필, 레전드의 힘찬 재림 내달 5월31일을 시작으로 숨 가쁘게 펼쳐질 신보 발표 기념 전국 순 회공연에 대다수를 이룰 어른 관객들은 록 음악에 뜨거운 호흡을 내뿜으 며 아우성을 칠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한 조용 필의 존재는 그 자체가 용기백배요, 사기충천이다. 그의 위상은 조용필이 기에 누릴 수 있는 그만의 특전일 수도 있지만 음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어른들의 상승욕구와 참여의지를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라는 의미로 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음악은 젊은 가수들 판이다. 나이 들어 인기차트 순위를 다툰 가 수는 김수희의 애모,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인순이의 거위의 꿈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실제로 젊은 층과 교감하는 아티스트도 드물었다. 전설에 대한 대우가 우리처럼 박약하고 냉혹한 나라도 없다. 가수가 전 성기가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인기현장에서 퇴각해 추억의 무대만 기웃 - 11 -
거리는 게 우리 가요계의 모습이었다. 조용필은 뒤로 밀려난 움츠린 과거의 영웅이기를 거부한다. 그 세대도 얼마든지 바운스해 위로 앞으로 튀어나올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젊은이들의 음악인 록을 들고 나왔고 쇼 케이스를 했으며 게다가 대담하 게 싸이의 젠틀맨 열풍이 한복판인 시점, 일반적이라면 꺼리는 시점에 신곡을 발표했다. 위험한 타이밍을 마다하지 않는 그러한 정면승부에 감 동했다는 사람이 많다. 싸이는 트위터에 어쩌다 제가 감히 가왕님과 공통점을 갖게 된 걸까 요. 영광입니다. 선배님 이라는 글을 올렸다. 최고의 아이돌 그룹 빅뱅 의 태양은 이렇게 좋을 수가...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돼~ 들킬까 겁나! 라고 썼다. 조용필의 바운스 가 나오자 SNS를 통한 후배가수들의 때 아닌 조용필 찬가가 이어졌다. 젊은 음악팬들이 아버지보다 더 위인 조용필의 음악에 주목한데는 이러한 후배들의 경배도 큰 몫을 했다. 싸이가 말하는 공통점은 아마 음원 차트 1위 자리, 같은 시점의 신곡 이라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둘의 공통점은 그 간 철저히 눌려 기를 펴지 못해온 계층과 집단의 거침없는 하이 킥이 아 닐까 한다. 싸이 쪽은 B급 사람들이요, 조용필은 노병들이다. 국제가수와 가왕은 각각 이들을 대리해 더 이상의 소외와 위축은 없다는 것을 가열 차게 선언한다. 비록 세대와 음악스타일은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두 영 웅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셈이다. 조용필의 바운스 가 1위로 상당수 음원차트를 올킬한 주에 한 음원차 트는 바운스 1위, 싸이 젠틀맨 3위, 소녀시대 티파니의 한걸음 이 4위 에 랭크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조용필, 싸이, 소녀시대가 같은 시점에 음원시장에서 각축을 벌인다는 사실은 수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 이었다. 조용필은 이 점에서 최근 부쩍 눈에 띄는 레전드의 소환 물결 을 예고한다. 틴에이저와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계통의 필요성을 느끼고 - 12 -
있는 듯 레전드를 찾아내 섬기려는 흐름이 뚜렷하게 형성되고 있다. 우 선순위가 가왕 조용필이었을 것이다. 간만에 음악계가 조용필 싸이 소녀 시대가 함께 호흡하면서 오랜 숙원인 다(多)세대의 공존을 실천하고 있 다. 국제와 국내의 거리감도 대폭 줄어들었다. 지금이 어쩌면 음악계가 실한 내외를 다지는 조정 국면인지도 모른다. -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