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작 <우리 결혼했어요>의 반쪽 찾기 고대권 0. 세상살이는 어떤 측면에서 심심함과의 싸움이다. 심심함은 단순히 할 일이 없는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어야 하고, 옷에서 냄새가 나면 빨래를 해야 한다. 저녁 무렵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셔야 하고, 왠지 정서가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엄습해올 때면 극장이라도 찾아가 잠시 어둠 속에 몸을 맡겨야 한다. 인간의 존재 라는 사건에 대해 많은 설명들이 있었지만, 가장 정확한 설명들 중 하나는 인간은 존재 되어진다 는 해석이 아닌가 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에 의해, 어김없 이 찾아오는 내일에 의해, 세상 속에 나의 위치를 각인시키는 갖가지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인간은 존재되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이 존재되어지는 한, 인간은 또 심심하고 무료하다. 역설적이게도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재미없는 일들을 먼저 처리해야 하고, 정작 재미있자고 시작한 일은 시간이 21
지나면 지루해진다. 재미를 포기하고 다만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 바빠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바빠서 심심할 새가 없다는 자기 위안은 화려한 솔로 라는 말만큼 객쩍다. 심심하고 무료한 사람들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바쁘다. 재미 있는 것, 기발한 것, 감동적인 것을 찾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예능 프로그램 의 지속적인 진화를 추동했고, 급기야 리얼 버라이어티 라는 새로운 장르 가 등장했다. 다소 무모해보였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도전은 이제는 방송계 의 대세 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본 글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중 가장 진화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가 내재하 고 있는 신선함을 언급하며, 또한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짚어볼 것이다. 1.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프로그램은 MBC의 <무한도전>이었다. 정교하게 가공된 대본보다는 특정한 상황 과 미션 을 주고, 출연진들이 각자의 캐릭터 속에서 해당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위적인 설정이나 눈속임을 배제하고 솔직함 을 우선시하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가 추구하는 덕목이 다. 장르가 이렇다 보니 가끔 막말이 나오기도 하고 출연진들 간의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장르의 속성 이라는 이유 하에 묵인된다. 오히려 출연자들의 솔직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어필하기도 하고, 시청자들은 솔직한 모습에 호흡을 맞춘다. <무한도전> 이후, 리얼 버라이어티는 예능 프로그램의 간판 장르가 되었다. KBS의 <1박2일>을 비롯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소재와 접근 방식 22
우수작 <우리 결혼했어요>의 반쪽 찾기 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 일단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지상파 방송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구성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힘든 여건 에 놓인 중 소 방송사들도 이 장르를 차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인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는 현재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최종적인 진화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성공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방송의 소비자인 시청자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호흡을 맞춘다. 이는 단순하게 방송 프로그램이 수준을 낮추었 다는 의미가 아니다. 결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결혼과 사랑에선 언제나 위기와 선택의 순간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갈등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드라마 자체의 속성 상, 드라마에서는 작가와 PD의 계산 하에 선택된 갈등이 예정된 방향으로 해결된다. 작가와 PD는 드라마에 있어서 시청자에 비해 그 개입도 측면에서 전능한 존재에 가까운데, 이것이 식상함을 불러온다. 작가와 PD는 전능한 존재에 가까운 권한을 가졌지만, 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은 전능 하다기보다는 전문적인 수준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 한 스토리 콘텐츠에 노출된 시청자들은 대개 이야기의 결말을 예상하고 있고, 심지어 그 진행방식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작가 와 PD들은 좀 더 복잡한 관계를 만들거나 기발한 상황을 찾거나 마음에 착착 감기는 대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즉, 이들의 노력은 다시 한 번 전통적인 전능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우리 결혼했어요>를 비롯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작가 나 PD, 그리고 출연진들이 전능자이기를 포기한다. 일반적인 사랑 드라마 처럼,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위기와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고 갈등도 23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은 주어진 대본이 아니라 출연자가 가지 고 있는 사랑관, 연애관, 성격, 재치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때로는 즉흥적으 로, 때로는 치밀한 계산 하에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된다. 즉, 커플 사이에서 의 문제는 순수하게 이 둘이 지니고 있는 역량에 의해 해결되고, 따라서 실제적인 사랑과 연애에 관한 설득력의 밀도는 당연히 더 높아지게 된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가 등장하거나 라이벌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특정한 성격을 대변하는 다양한 커플들이 등장해 서로의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자기 의견을 보태고 이는 곧 평균적으로 시청자의 입장과도 비슷한 농도를 유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선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가 가지고 있는 선악 의 대립이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도한 설정이 배제된다. 즉, 사랑의 진행을 지켜보는 것을 방해하는 정신적인 피로함의 요소들은 최소화되고, 이는 곧 두 번째 효과로 이어진다. 둘째, <우리 결혼했어요>는 방송의 테두리를 벗어나 중층의 맥락을 만들어낸다. 앞서 <우리 결혼했어요>를 리얼 버라이어티의 최종 진화형 으로 언급했던 것은 <우리 결혼했어요>의 스토리가 방송을 넘어 실제의 세계 속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시청자들은 <우리 결혼했어요>의 커플들이 실제의 세계에서도 연인이 되거나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 적지 않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커플이 실제로 사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혹은 특정 커플이 실제로 사귀었 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을 환상과 실제 사이에서 느끼게 되는 혼란 이라고 규정하려는 시도도 있다. 용어상의 문제가 있지만 일단 혼란이라는 단어를 차용한다면, 이러한 혼란이 가능한 것은 <우리 결혼했어요>가 특별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기 24
우수작 <우리 결혼했어요>의 반쪽 찾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녹화와 각 커플 간의 일상 녹화 사이에 위치한 인터뷰 는 인터뷰라는 특수한 형식의 효과를 빌려 이 커플들의 행동이 단순한 조작적 행위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일상 에 대한 녹화는 설정이라 하더라도 이들의 인터뷰, 즉 고백 은 설정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따라서 출연 커플들의 감정선은 방송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몇 번의 출연진 교체과정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알랙스- 신애, 크라운제이-서인영, 솔비-앤디 커플은 이러한 위태로운 균형을 극대 화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의 위태로움은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갈등 이 해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 어 이 세 커플에 대한 관심은 시청자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이 커플들은 <우리 결혼했어요>를 벗어난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우 리 결혼했어요>에서의 감정에 관한 질문을 받거나, 커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 결혼했어요>는 사랑이라는 주제 하에서 서로 다른 면에 존재하던 시청자의 현실과 방송 프로그램의 현실을 교묘하게 하나의 평면으로 옮겨놓은, 비유를 들자면 뫼비우스의 띠의 뒤틀 린 지점에 해당한다. 뫼비우스의 띠가 지니고 있는 특징은 한 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뒷면에 도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뫼비우스의 띠 내에서 운동을 할 경우에 한정되는 경험이며, 뫼비우스의 띠를 밖에서 관찰하게 되면, 우리는 그 띠의 전체를 알게 된다.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25
2. <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무리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균형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알렉스와 신애가 남산타워에서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는 순간, 시청자들은 바로 그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로 그런 느낌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는 두 대가 사용되었다. 이미 개략적인 수준에서 콘티가 결정되 고, 더불어 카메라의 위치도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비와 앤디가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은 마치 일상의 한순간인 것처럼 포착되지만, 놀이기구에는 이미 카메라가 고정 설치되어 있다. 또한 정해진 대본과 구조화된 진행이 없는 가운데, 진행상의 미숙을 보조하기 위해 등장하는 자막 편집과 달콤한 음악은 출연자들의 감정선을 극대화하 기도 하지만 때론 왜곡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삶에는 없는 것들이다. 우리의 삶에는 누군가 절망에 빠졌을 때 아쉬워하거나, 누군가 행운을 거머쥐었을 때 환호해주는 방청객의 함성소리가 없다. 한마디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방송은 방송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우리 결혼했어요> 속에서 운동하는 시청자들은 방송과 현실에 대해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의 운동을 경험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진짜와 아주 비슷한 가짜에 불과한 어떤 것을 경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용인하고 있을 뿐이며, 용인의 대가는 주말 저녁의 즐거움이다. 시청자들은 주말 저녁의 웃음을 통해 일주일 내내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다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여유와 용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26
우수작 <우리 결혼했어요>의 반쪽 찾기 즐거움 이나 흥미진진함 을 주지 못하는 삶의 내용들은 브라운관 너머에 서 방치된다.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들은 태생적으로 코미디 프로그램 에서 파생되었고, 따라서 즐거움, 웃김, 재미있음 과 같은 뉘앙스를 가지지 못하는 감정들은 경향적으로 배제된다. 한마디로 현재의 리얼 버라 이어티가 보여주는 리얼은 그 구성에 있어서나 효과에 있어서나 반쪽에 불과하다. 이는 막 사랑에 빠져 콩깍지를 쓴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유와 용기만 가지고 나서기엔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 즐거움과 웃음만을 통해 얻게 된 용기와 여유는 체질이 약해져서 때로 단순한 도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무료함과 존재되 어짐의 답답함을 벗어던지기 위한 노력으로부터의 도피, 사회적인 차원에 서 진행되는 실제적인 사건들로부터의 도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리얼 버라이어티의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와의 균형, 곧 안전한 거리 속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속성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실재하는 세계 로부터 언제나 적당히 멀어지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달리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사랑 이나 도전, 여행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공백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 에서 본다면, 우리의 실재하는 삶에서는 누구도 미션용지 를 주지 않는다. 우리에겐 오히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무료함과 지루함은 때로 삶 자체를 시시한 것으로 바꾸어내기도 한다.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약속해주는 것은 편성 시간대의 행복감에 불과하다. 생활의 맥락에서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시청자로 서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개인의 역할을 요구한다. 슬픔을 감내하고 외로 움을 이겨내는 것은 온전히 개인, 즉 시청자의 몫이 된다. 사회적인 차원에 27
서 본다면,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실재적인 세계는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텔레비전의 편성에서는 무척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지 고 있지만, 실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예능 프로그램보다는 교양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물론 예능은 예능이 고, 교양은 교양이다. 마치 현실은 현실이고 방송은 방송이듯이. 그러나 이 말은 예능과 교양이 다르다는 말일 뿐, 예능이 교양의 요소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표현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지금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모든 것이라면 리얼 버라이어티는 삶 못지않게 시시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3. 서두의 언급처럼, <우리 결혼했어요>는 현실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의 최종적인 진화형이라고 생각된다. 섣부른 감이 있지만 이를 다시 말하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고착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감정들에 충실한 웃음. 진지하지만 반쪽에 불과하다. 가상 결혼을 한 커플들이 등장하 든, 스타들의 친구들이 소개팅을 하든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남자들이 모여 도전을 하든 여행을 하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여전히 발전시킬 여지는 많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결혼했어 요>만 생각하더라도 형식적으로 토크 를 강화시킬 수도 있고, 스토리상 아기를 입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 결혼했어요>는 아직 신혼 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연령상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들의 모습도 볼 수 없고, 형식상 재혼부부의 모습도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알 28
우수작 <우리 결혼했어요>의 반쪽 찾기 수 있다. 오직 핑크빛인 <우리 결혼했어요>가 자신의 반쪽을 찾아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은 아마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다.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