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수 그 리 스 도 후 기 성 도 교 회 2 0 1 0 년 7 월 호 전 세계 곳곳에, 24쪽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복음을 나누기, 30쪽 성적 순결의 축복, 14, 42쪽 개종자인 나, 그러나 정말로 개종했는가? 50쪽
First International Art Competition 제공 벤보우 농장과 연못, 프랭크 말그레비 1840년 3월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윌포드 우드럽 장로는 영국 핸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드럽 장로는 최근 개종자인 윌리엄 벤보우와 앤 벤보우를 만났다. 우드럽 장로와 벤보우 형제는 헤리퍼드셔 지역으로 가서 윌리엄의 형인 존과 그의 가족들을 가르쳤다. 벤보우의 형제들은 이웃 주민들을 초대해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듣게 했다. 그 결과, 열세 명이 벤보우 농장 연못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들은 또한 이전에 다니던 교회 신도들에게 우드럽 장로를 소개했다. 600명이나 넘는 그 사람들은 연합 형제회란 교회를 직접 설립했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침례를 받았다. 그해 말에 그들은 개드필드 엘름 예배당을 교회 소유로 양도했다. 전 세계 곳곳에, 24쪽 참조.
리아호나, 2010년 7월호 24 메시지 4 제일회장단 메시지: 충실한 친구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 7 방문 교육 메시지: 가족과 가정을 강화하십시오 특집 기사 12 집처럼 포근한 복음 로젤레 하스웰 한센 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처음 그 집회소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마치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18 성전을 선택하십시오 리차드 엠 롬니 인도에 사는 후기 성도들이 성전 결혼에서 얻는 축복을 간증한다. 24 온 땅을 가득 채워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여기 나오는 사진과 미술품들은 그러한 성장을 증거한다. 30 자신 있게 복음을 나눕시다 엠 러셀 밸라드 장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수호하는지 알고, 자신 있게 행동해야 한다. 표지 앞: 러시아 헌납, 에민 줄푸가로프. 뒤: 성약을 맺을 준비로, 에릭 두알테. 교회 본부 기사 8 작고 단순한 일 10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는 그리스도 실비아 얼보라토 크리스텐슨 11 교회 봉사: 부름에서 봉사하며 받은 축복 주디스 카스틸로 마르텔로 14 우리의 믿음: 성적 순결은 우리 삶을 축복합니다 16 복음 고전: 개척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었는가? 스티븐 엘 리차즈 회장 38 후기 성도의 소리 74 교회 소식 79 가정의 밤 제언 80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싸워야 하는가, 도망가야 하는가, 아니면 잠자코 있어야 하는가? 알 발 존슨 2 0 1 0 년 7 월 호 1
청년 성인 청소년 어린이 46 70 이번 호 잡지에 숨겨진 리아호나를 찾아보세요. 42 42 사랑하는 프리에다에게 청년 성인들이 남자 친구와 동거하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에게 조언을 써서 보낸다. 46 해답을 찾아서 48 포스터: 완성하기까지 40년 49 우리들 공간 50 나는 어떻게 아는가: 지식이 자라 소니아 파딜라-로메로 52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것입니다 에릭 더블류 코우피쉬케 장로 나는 청소년 시기에 간증을 잘 유지했기 때문에 활동적으로 남을 수 있었다. 56 영원한 가족 조슈아 제이 퍼키 우안시는 가족을 잃었지만 자신의 가족이 영원히 인봉되었음을 알기에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는다. 52 58 안 돼! 하고 말했다 트루먼 이 벤슨 나는 내 친구가 내가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60 길을 찾아 가게 안네-메트 하울랜드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62 선지자의 약속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 몬슨 회장은 간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64 함께 나누는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수 있어요 산드라 태너 및 크리스티나 프랑코 66 개척자 양산 말리 워커 개척자 소녀인 크리스티나와 사라는 각자 양산을 들고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양산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두 소녀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68 우리들 이야기 70 어린 친구들을 위하여 2 리 아 호 나
2010년 7월호, 제47권, 제7호 리아호나 09287 320 리아호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한국어 판 공식 잡지임 제일회장단: 토마스 에스 몬슨, 헨리 비 아이어링,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십이사도 정원회: 보이드 케이 패커, 엘 톰 페리, 러셀 엠 넬슨, 댈린 에이치 옥스, 엠 러셀 밸라드, 리차드 지 스코트, 로버트 디 헤일즈, 제프리 알 홀런드,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쿠엔틴 엘 쿡,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닐 엘 앤더슨 편집인: 스펜서 제이 콘디 고문: 키스 케이 힐비그, 요시히꼬 기꾸찌, 폴 비 파이퍼 관리 책임자: 데이비드 엘 프리쉬네히트 편집 책임자: 빅터 디 케이브 선임 편집인: 래리 힐러 그래픽 책임자: 앨런 알 로이보그 관리 편집인: 알 발 존슨 관리 부편집인: 제니퍼 엘 그린우드, 아담 시 올슨 공동 편집인: 라이언 카 보조 편집인: 수잔 배렛 편집 스탭: 데이비드 에이 에드워즈, 매튜 디 플리튼 라렌 포터 곤트, 캐리 캐스틴, 제니퍼 매디, 멜리사 메릴, 마이클 알 모리스, 샐리 제이 오데커크, 애니 존스, 조슈아 제이 퍼키, 채드 이 패러스, 잰 핀보로우, 리차드 엠 롬니, 돈 엘 설, 재닛 토마스, 폴 벤덴버그, 줄리 워델 선임 비서: 로렐 튜셔 관리 미술 책임자: 엠 엠 가와사키 미술 책임자: 스코트 밴 캠펜 제작 부장: 제인 앤 피터스 디자인 및 제작 스탭: 캘리 알 아로요, 콜레트 네베커 오운, 하워드 지 브라운, 줄리 버뎃, 토마스 에스 차일드, 레지날드 제이 크리스턴슨, 킴 핀스터마커, 캐슬린 하워드, 에릭 피 존슨, 드니스 커비, 스코트 엠 무이, 지니 제이 닐슨 사전 인쇄: 제프 엘 마틴 인쇄 책임자: 크레이그 케이 세지위크 배부 책임자: 랜디 제이 벤슨 통 권: 제528호, 제47권, 제7호 등 록: 1967년 10월 4일, 라-3166 발행일: 2010년 7월 1일(월간지) 발행인: 정 동 환 편집인: 박 승 호 번역 책임자: 조 현 석 발행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7번지 인쇄인: 주식회사 보진재 김정선 리아호나 신청 및 문의 홈페이지: www.lds.or.kr에 접속하여 좌측 리아호나 메뉴를 클릭합니다. 이메일: koreadc@hanmail.net으로 신청서를 전송합니다. (신청서는 www.lds.or.kr 교회 출판물 및 잡지 신청 에서 다운로드 합니다.) 전화: 리아호나 담당자에게 연락해 주십시오.(전화 080-232-1441) 구독료 1년 구독료는 7,000원, 권당 가격은 1,000원입니다.(해외 구독은 개별 문의 바랍니다.) 아래 계좌로 입금해 주십시오. 예금주: (재)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한은행 100-001-389810, 우체국 010041-01-000240 원고와 문의 사항은 다음 주소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Liahona, Room 2420, 50 East North Temple Street, Salt Lake City, UT 84150-0024, USA; 또는 이메일: liahona@ldschurch.org 리아호나(나침반 혹은 지시기를 뜻하는 몰몬경 용어)는 한국어 외에 다음 언어로 출판됨.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노 르웨이어, 덴마크어, 독일어, 라트비아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리투아니아어, 마다가스카르어, 마샬어, 몽골어, 베트남어, 불가리아어, 비슬라마어, 사모아어, 세부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슬로베니아어, 신할라어, 아르메니아어, 아이슬랜드어, 알바니아어, 에스토니아어, 영어, 우르두어, 우크라이나어, 이탈리아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체코어, 캄보디아어, 크로아티아어, 키리바시어, 타갈로그어, 타밀어, 타이어, 타히티어, 텔루그어, 통가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프랑스어, 피지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힌디어 (발행 횟수는 언어에 따라 다름) 2010 by Intellectual Reserve, Inc. 판권 소유. Printed in Korea. 리아호나에 실린 기사 및 사진은 교회 및 가정에서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시로 복사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복사 제한 문구가 있는 경우 복사를 금합니다. 판권에 관한 문의 사항은 다음 주소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50 East North Temple Street, Salt Lake City, UT 84150, USA 이메일: cor-intellectualproperty@ldschurch.org. 리아호나는 인터넷 웹사이트 www.lds.org에서 여러 언어로 찾을 수 있습니다. 영어는 Gospel Librar y 를 클릭하십시오. 다른 언어는 world map 을 클릭하십시오. July 2010 Vol. 34 No. 7. LIAHONA(USPS 311-480) Korean (ISSN 1521-4974) is published monthly by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50 East North Temple, Salt Lake City, UT 84150. USA subscription price is $10.00 per year; Canada, $12.00 plus applicable taxes. Periodicals Postage Paid at Salt Lake City, Utah. Sixty days notice required for change of address. Include address label from a recent issue; old and new address must be included. Send USA and Canadian subscriptions and queries to Salt Lake Distribution Center at address below. Subscription help line: 1-800-537-5971.Credit card orders(visa, Master Card, American Express) may be taken by phone. (Canada Poste Information: Publication Agreement #40017431) POSTMASTER: Send address changes to Salt Lake Distribution Center, Church Magazines, PO Box 26368, Salt Lake City, UT 84126-0368 인터넷에 실린 추가 기사 Liahona.lds.org 성인 성전을 선택하십시오 (18쪽)는 성전에서 오는 축복을 누리는 인도 후기 성도들에 대한 기사이다. 이 이야기에 관한 사진을 더 보고 싶다면 www.liahona.lds.org를 방문한다. 청년 성인 사랑하는 프리에다에게 (42쪽)는 스칸디나비아 청년 성인들이 남자 친구와 동거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 젊은 여성에게 쓴 편지이다. 이 주제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www.gospeltopics.lds.org를 방문하여 Chastity 를 클릭한다. 청소년 해답을 찾아서 (46쪽) 기사가 좋았다면 www.newera.lds.org에서 더 많은 질의응답을 찾아본다.(영어) Got a Question? 을 클릭한다. 어린이 www.liahona.lds.org에서 개척자 색칠공부 책을 인쇄한다. 72쪽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 그림을 색칠한다. 그런 다음에 www.friend.lds.org에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영어)를 읽는다. 여러분의 언어 리아호나와 그 밖의 교회 자료를 www.languages.lds.org에서 여러 언어로 볼 수 있다. 2 0 1 0 년 7 월 호 3
제 일 회 장 단 메 시 지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 제일회장단 제1보좌 충실한 친구 구 주께서 우리에게 하실 수 있는 훌륭한 찬사 중 하나는 바로 우리를 친구 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주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를 완전하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봉사한 사람들을 특별히 이 호칭을 사용하여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교리와 성약 84편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너희를 친구라 부르리니, 너희 나의 친구들이여, 거듭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줌이 적절하니 곧 너희는 내가 나의 권능으로 복음을 전파하러 여행하며 그들과 함께 한 그 시절의 나의 친구들과 같이 되라. (교리와 성약 84:77) 주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친구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를 완전한 모범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행복이 곧 그분의 행복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죗값을 완전한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타인만을 생각하시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십니다. 주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친구가 됩니다. 치르셨고, 그들의 모든 연약함을 짊어지셨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을 겪으셨고, 그들의 모든 열망을 느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동기는 순수합니다. 주님께서는 인정받기를 구하지 않으시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십니다. 완전한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타인만을 생각하시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십니다. 침례 성약을 맺을 때 우리는 각자 그분께서 보이신 모범을 따라 서로의 짐을 짊어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모사이야서 18:8 참조) 앞으로 있을 단 며칠 사이에도 여러분은 주님의 친구가 될 기회를 여러 번 맞을 것입니다. 그 기회는 먼지 나는 길을 걷다가 올 수도 있고, 열차에 몸을 실을 때 올 수도 있습니다. 교회 모임에서 앉을 자리를 찾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잘 살펴보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그 짐은 슬픔이나 외로움, 또는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짐은 영이 함께하셔서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하고, 처진 손을 들어올리겠다고 약속할 때에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여러 해 동안 4 리 아 호 나
사진 삽화: 존 루크;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해리 앤더슨 보지 못한 옛 친구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속에 문득 그 친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떠오르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문제인 양 여겨질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저에게 옛 친구들이 손을 내밀어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짊어진 짐을 친구들에게 알려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셨습니다. 느낄 수 있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봉사할 때,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힘과 용기를 얻어 거듭 충실하게 손을 내밀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현세와 영원한 세상에서 주님의 충실한 친구로 환대 받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고 우리가 봉사하게 될 이들이 그런 축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교회에 들어오는 개종자들에게 충실한 친구가 되어 주고, 교회에서 떠나간 이 말씀으로 가르치기 교사, 가장 중요한 부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사람들을 구조하러 나가라고 경 만약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이 있다면, 전이나 선지자들의 말씀을 살펴볼 때 뭔가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러분은 복음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더 잘하게 찾아보라고 하면 가족들이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늘 구주를 기억한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도움을 주고 짐을 들어 올려 주려고 손을 내밀 때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그분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을 우리도 참여할 수 있다.(교사, 가장 중요한 부름[1999년], 55쪽 참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의 친구로 불릴 만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원리들을 찾아보도록 가족들에게 요청한다. 될 것이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구주를 알고 그를 따르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영감을 받게 될 것이다. (12쪽) 이 말씀에서 여러분이 가정 복음 교사로서 더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원리들을 찾아본다. 동반자와 함께 원리들을 토론하고 여러분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한 친구 가 되어 줄 방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 본다. 2 0 1 0 년 7 월 호 5
제일회장단 메시지 어 린 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바라십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 예수님도 행복해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완전한 친구 아이어링 회장님은 예수님이 우리의 완전한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우정을 보여 주신 몇 가지 예를 찾아볼까요? 우리가 슬퍼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 예수님도 슬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통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과 친구 되기 아이어링 회장님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면 그것은 곧 우리가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지 몇 가지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그림을 설명하는 문장을 찾아서 그림 속에 있는 글자를 공란에 적어 보세요. ㄱ ㄴ 청 소 년 새로 이사온 아이 매튜 오카베 슬퍼하는 사람을 도와줘요.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지요. 교회로 다시 오라고 얘기해 주어요. 언제나 예수님을 기억해요. 나는 적응하느라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최근에 정 반대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간 와드에는 청소년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새로 이사온 아이 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싫은 점은 낯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랑 같이 점심을 먹지? 우리 와드에 다니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들은 내가 그들 사이에 끼는 걸 싫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학 첫 날은 더디게만 갔다. 마침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천천히 구내식당으로 들어가면서 아는 사람을 찾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식당 맨 끝자리에 앉아서 점심을 ㄷ ㄹ 먹었다. 이후 수학시간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날 아침 세미나리에서 보았던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는 내 시간표를 물었다. 우리 둘 다 점심시간이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야, 너 오늘 어디서 점심 먹었냐? 데이비드가 물었다. 식당 맨 끝에 앉아서 먹었어. 내가 대답했다. 그랬구나. 내일은 나랑 같이 점심 먹자. 하고 데이비드가 말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정말 감사드린다. 기꺼이 우정 어린 손을 내민 친구에게도 고맙다. 같이 점심 먹자는 말처럼 단순한 것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왼쪽: 삽화, 필리스 루치, 로버트 티 배럿, 베스 엠 휘태커, 딜린 마쉬 6 리 아 호 나
가족과 가정을 강화하십시오 방 문 교 육 메 시 지 이 자료를 공부하고, 상황이 적절하다면 방문하는 자매들과 토론한다. 여기에 있는 질문들을 토대로 자매들을 강화하고 또한 상호부조회의 가르침을 여러분 생활에 적극적으로 적용한다. 성구: 창세기 18:19; 모사이야서 4:15; 교리와 성약 93:40; 모세서 6:55~58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강화하십시오 우리 각자의 가정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가족은 가정에 어머니와 아버지, 자녀들이 있습니다. 어떤 부부들은 자녀들이 모두 독립했습니다. 많은 교회 회원들이 독신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홀로 자녀를 키우는 편부 또는 편모입니다. 배우자를 잃고 혼자 지내는 회원들도 있습니다. 가족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 각자는 가족을 강화하고 다른 가정이 강화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한번은] 제 조카딸의 집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는 짧게 가정의 밤을 하고 경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리하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고, 리하이가 자녀들에게 주님의 말씀인 쇠막대를 굳게 잡아야 한다고 가르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쇠막대를 굳게 잡아 그들은 안전하게 되고 기쁨과 행복을 누렸습니다. 쇠막대를 놓아 버린다면 더러운 강물에 빠질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어머니가 아이들이 붙들어야 할 쇠막대 가 되었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안전과 행복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악마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좋아했고, 쇠막대를 굳게 잡아야 하는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경전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는 가족 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경전과 가정의 밤, 가족 기도는 가족을 강화합니다. 우리는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가족을 강화하고 올바른 길에 머물도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 1 바바라 톰슨,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 제2보좌 사진 삽화: 로버트 케이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 방문할 자매들에게 가족과 가정을 강화하도록 어떤 말을 하겠는가? 각 자매가 처한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 영감이 떠오를 것이다. 2. 여러분의 가족과 가정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이번 달에 우선순위를 어떻게 변경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면 www. reliefsociety.lds.org를 방문한다. 상호부조회 역사에서 상호부조회는 처음 조직되었을 때부터 가족과 가정을 강화하는 책임을 맡아 왔다. 선지자 조셉은 초기 상호부조회 모임에서 자매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집으로 가시거든 결코 남편에게 화내거나 불친절한 말을 하지 마시고, 이제부터 여러분이 하는 일들을 친절과 자애와 사랑으로 하십시오. 2 1914년에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은 상호부조회 자매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가족[에] 관하여 무지하거나 최소한의 이해가 부족한 곳에서도 이 조직은 그 자리 또는 가까이에 있어서, 이 조직에 당연히 부여되고 속해 있는 권한과 영감으로 그러한 중요한 의무들에 관해 가르침을 나눌 준비와 채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3 주 1. 바바라 톰슨, 주님은 항상 너를 지키시리,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84쪽. 2.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년), 482쪽. 3.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에프 스미스(1998년), 186쪽. 2 0 1 0 년 7 월 호 7
작고 단순한 일 작고 단순한 일로 큰 일이 이루어지며 (앨마서 37:6) 성 전 집 중 조 명 덴마크 코펜하겐 성전 덴마크 코펜하겐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붉은 벽돌 건물은 본래 1931년에 프라이오베 예배당으로 헌납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2004년 5월 23일에 성전으로 헌납되면서 교회의 118번째 성전이 되었다. 이 성전은 옛 모습을 간직한 새로운 성전 1 으로 묘사되었다. 목재 정문과 양 옆에 세워진 웅장한 기둥을 비롯한 건물 외관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복원되었다. 하지만 건물 내부는 대대적으로 재건축되었다. 성전 벽화와 그림에는 이 지역 풍경이 담겨 있다. 거기서 배어나는 덴마크와 스웨덴의 향취가 이 성전만의 특색을 잘 살려 준다. 공예 유리로 된 기다란 회원들이 손수 지은 이 집회소는 1931년에 헌납되었으며, 훗날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방공호로 쓰였다. 개조를 마친 후, 이 건물은 118번째 성전이 되었다.(아래) 창문 다섯 개는 건물 각 면을 둘러싸고, 동박(옮긴이: 동과 같은 색깔의 감으로 아주 얇은 종이처럼 만든 것)으로 된 돔 지붕이 특징이다. 성전 헌납식에서 힝클리 회장은 하나님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간구했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모든 사람이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모세서 1:39) 당신의 신성한 목적과 영광스러운 사업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하소서. 2 주 1. 2004: Year in Review, Church News, 2004년 12월 25일, 13면 참조. 2. Dedicatory Prayer, ldschurchtemples.com/ copenhagen 참조. 일요일 공과에서 더 많이 얻으려면 주중에 경전을 읽고 반원 학습 지도서나 교재를 살펴본다. 공과 끝에 나오는 질문을 살펴보고 그 내용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지 자문해 본다. 공과에 참석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영과 교사, 다른 반원에게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간구한다. 개인적으로 얻은 깨달음과 간증을 나눌 준비를 하고 공과에 참석한다. 왼쪽: 집회소 사진, 앨마 린드 피터슨; 덴마크 코펜하겐 성전 사진, 크레이그 다이먼드; 사진 삽화, 크레이그 다이먼드; 오른쪽: 인도에 온 첫 번째 선교사, 글렌 홉킨스, 복사 금지; 사진, 리차드 엠 롬니 8 리 아 호 나
세 계 교 회 역 사 탐 방 인도 18 49년, 몰몬 선원 두 명이 인도로 항해했다. 그들은 캘커타에서 비공식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선교 사업은 1851년 조셉 리차즈가 인도에 도착해서야 시작되었다. 조셉 리차즈는 인도에서 첫 번째 교회 회원들을 침례하고 지부를 조직했다. 1852년까지 교회 회원 수는 189명이었다. 그들은 곧 작은 집회소를 지었다. 이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 교회 건물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 100여 년 동안에는 선교 사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1978년에 부부 선교사가 교회 대표자로 봉사하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고 회원들도 강화되었다. 그 이후 몰몬경은 인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주요 언어 20개 중 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힌디어, 타밀어, 텔루구어, 우르두어로는 전문이, 그리고 벵골어로는 일부분만 번역되었다. 인도 방갈로르 선교부는 1993년에 조직되었다. 2007년에는 인도 북부 지역과 인접 국가 몇 곳을 관할하는 인도 뉴델리 선교부가 조직되었다. 교회는 다른 인도주의 단체 50곳과 함께 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인도 정부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인도의 교회 회원 8,200명 선교부 2개 지방부 6개 지부 30개 새로운 개종자인 헨리 맥큔(12세)이 1853년 인도 캘커타에 도착한 선교사 중 일부를 마중하고 있다. 아래: 방갈로르 제2지부의 기드온 프라브후다스와 한센 프라브후다스. 오른쪽: 하이데라배드 제4지부의 신권 소유자 모임. 2 0 1 0 년 7 월 호 9
그 리 스 도 에 대 하 여 이 야 기 하 며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는 그리스도 실비아 얼보라토 크리스텐슨 내가 받은 권고를 가슴속에 새기고 구주를 믿는 신앙을 지니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12월 16일, 그날은 결혼 8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날 아기를 돌보던 1991년 사람이 부주의해서 내 첫 아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났다. 아기가 태어난 지 겨우 두 달 반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날 이후, 내 삶에 슬픔과 노여움, 실망, 절망이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 누구의 말이나 행동도 나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 책이나 경전도 많이 읽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나는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봉사하시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장로님과 대화할 기회를 맞았다. 부모님이 파우스트 장로님과 친분이 있었던 덕분이었다.(파우스트 장로님은 브라질에서 선교 사업을 하실 때 우리 어머니 가족을 만나셨다.) 나는 파우스트 장로님이라면 내게 위안을 주실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나는 많은 질문을 던졌고, 장로님은 참을성 있게 들으셨다. 파우스트 장로님은 내 경험이 분명 고통스럽고 매우 힘든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몇 가지 구절을 나누시고는 슬픔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들과 재회하기 위해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실비아 자매님, 이제 문제의 본질은 자매님에게 있습니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제 자매님은 자신에 대해 걱정하고, 삶을 어떻게 재정립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마음속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장로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중요한 역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필요한 힘을 그분에게서 얻을 수 있도록 축복을 주셨다. 파우스트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를 떠나면서도 나는 여전히 낙담한 상태였다. 장로님의 권고는 간단해 보였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울 듯했다. 어머니도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 주지 못해 절망하셨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구주를 믿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렴.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낫기 마련이란다. 나는 기쁨을 되찾으려는 나만의 이 여정에서 내가 받은 권고를 가슴속에 새기고 구주를 믿는 신앙을 지니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곧바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고 해가 거듭 바뀌면서 점점 커지는 간증과 기도에 힘입어 구주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사도와 만날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구주를 알고 그분께 자신의 짐을 맡길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에 함께하시며, 그 어떤 고통도 덜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주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분은 우리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시며, 끝까지 참는 일에서 모범이 되신다. 그분은 정말로 모든 것을 참으셨다. 또한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그분은 아신다.(앨마서 7:11~12 참조) 이 삶에서 깨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원래대로 맞춰 다음 삶을 준비하는 기적은 주님께서 치르신 속죄 때문에 가능해졌다. 나는 언제나 파우스트 장로님과 어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에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도움을 받고 소망을 품을 수 있게 해 주는 원천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왼쪽: 그리스도와 젊은 부자 관리 그림의 부분 확대, 하인리히 호프만, C. Harrison Conroy Co. 제공 10 리 아 호 나
교 회 봉 사 부름에서 봉사하며 받은 축복 주디스 카스틸로 마르텔로 주 님께서 자매님을 초등회 회장으로 봉사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지부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월계반을 있는지도 알았다. 어머니가 화학치료를 받으셔야 했기 때문에 졸업한 지 겨우 1년이 지났고, 침례를 받은 지는 이듬해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2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한 달간 콜롬비아 바랑키야를 일이었다. 떠나 보고타에서 시간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인내심이 없어서 보냈다. 그곳에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해요. 나는 계속 기도했다. 나는 주님을 가까이에서 자매님은 부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느꼈다. 나는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주님께서 사실을 믿습니까? 지부 회장님께서 물으셨다. 내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데 온 삶을 바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름을 주실 때 그에 바라신다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학교로 적합한 자격도 주십니다. 1 회장님 말씀을 들으니 자신감이 불끈 돌아온 나는 특수교육학으로 전과하여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장할 기회 솟아올랐다. 주님께서 나를 초등회에 필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준비시키기 위해 모든 부름은 봉사하고 하신다는 사실을 순간 깨달았다. 이 새로운 부름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는 여전히 막연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몇 개월 후에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고, 나는 당시에 시스템 공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가정과 학교, 초등회에서 맡은 책임을 모두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초등회 부름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등회에서 봉사하면서 내 천직을 발견했으며, 복음대로 생활하고 봉사에 전념하면서 주님의 팔에 안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부 초등회 회장단에서 봉사하고, 훗날 스테이크 초등회 회장단에서 봉사하면서 얻은 간증은 교회 회원으로 생활하는 데 큰 버팀목이 성장할 기회를 줍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조직하신 것은 어떤 면에서는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봉사할 기회를 제공하여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끄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을 깨달았다. 점차 열정이 식어갔고, 결국 어느 일요일, 교회에서 모든 게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와 눈물을 쏟았다. 상황을 알게 된 한 와드 회원이 훌륭한 조언을 해 주었다. 주디스, 시련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복음 안에서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네 짐을 되었다. 사랑으로 가르치고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주님으로부터 인도와 영감을 구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지금 이 도시에서 2개 국어를 병용하는 학교에서 매일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그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과 노력, 축복을 떠올린다. 당시 초등회에 참석하던 여러분의 부름이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은 그 부름을 사람들을 강화하고 축복하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실 것을 가볍게 해 주시는 걸 느끼게 될 거야. 어린이들은 이제 십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권고합니다. 내게 힘을 준 그 권고를 따르면서 나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신앙도 강해졌고, 내 안에 주님께 봉사하겠다는 신념이 가득해졌다. 시련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부름에 전념했다. 매주 눈망울은 여전히 구주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사랑으로 빛난다. 주님께서는 부름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단련하시며, 또한 그분께서 예비하신 지도자들이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 제일회장단 제2보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들어올리십시오,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56쪽.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일요일이 기다려지기까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했다. 일요일마다 아이들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복음대로 생활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오른쪽 삽화: 다니엘 루이스 묻어나는 신앙을 보며 나는 뭔가를 배웠다. 수개월 후, 나는 주님께서 어떻게 내 성품을 단련하시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은사와 재능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주 1. Thomas S. Monson, My Duty Calls, Ensign, 1996년 5월호, 44쪽 참조. 2 0 1 0 년 7 월 호 11
집처럼 포근한 복음 로젤레 하스웰 한센 호주 퍼스에서 성장하면서 나는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지 않았다. 감리교에서 세례를 다니는 교회에 가자고 말했다. 케일라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과감하게 드러냈고 나는 그런 면에 매료되었다. 케일라가 돌아가면 반대는 더 심해지겠지? 나는 마태복음 19장 29절을 보고서 결정을 내릴 힘을 얻었다. 또 내 이름을 받고, 기독교 학교에 다녔으며, 이따금 구원의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에는 한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할머니와 함께 침례교 집회에 참석하기도 마디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었다. 마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일관성을 이전에 들어보기라도 한 듯이 그 모든 말이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가족보다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신앙을 함께 너무나 익숙하게 들렸다. 구주를 우선순위에 두겠는가? 대답은 나눠 주시고 성경을 읽도록 가르쳐 주신 앙굴렘 집회소에 처음 걸어 들어갔을 그렇게 하겠습니다. 였다. 드디어 1989년 할머니 덕분에 기도는 나에게 자연스러운 때, 마치 포근한 담요에 감싸이는 듯한 12월 16일, 나는 침례를 받고 예수 행위였다. 나는 그렇게 지속적으로 기분이 들었다. 집 에 온 것만 같았다.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으로 확인을 영향을 미치신 할머니에게 감사한데, 내가 그날 복음 원리 반에서 공과를 하던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에 머물던 나머지 세상적인 것을 추구했어도 할머니 덕분에 선교사는 첫번째 시현에 대한 강한 간증을 날 동안 이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직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전했다. 성신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방법을 평안과 기쁨을 느꼈다.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그가 설명할 때에는 내 심장에서 따뜻한 퍼스로 돌아오자 가족들은 두 팔 하나님 아버지께서 회복된 복음을 기운이 뿜어 나와 온 몸을 휘감았다. 벌려 나를 맞이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나를 준비시키셨음을 그 강렬한 증거는 지울 수 없을 만큼 나누려고만 하면 완강하게 반대했다. 깨닫는다. 내 영육에 깊이 각인되었고, 내 신앙을 심지어 가족들은 나를 교화 시켜 내가 그러한 준비 중 하나는 프랑스를 시험하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헤쳐나갈 수 선택한 길이 잘못 되었음을 알도록 도움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 사고를 겪으면서 있는 힘이 되었다. 줄 종교 전문가 까지 주선했다. 그 일은 내 일어났다.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는 느낌을 앙굴렘 집회소에 첫 발을 내디딘지 신앙을 시험하는 큰 시련이 되었다. 반몰몬 강하게 받은 직후, 자동차가 옆으로 한 달쯤 지난 후에 나는 침례를 받기로 선전으로 맹공격을 받자, 나는 내가 내린 미끄러져 6미터 언덕 아래로 추락했다. 결심했다. 그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기에 결정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때 경고하는 음성을 들은데다가, 나와 부모님 허락은 필요 없었지만, 호주에 있는 그러나 마음 한 편에서는 프랑스에서 비슷한 부상을 입은 다른 사람들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알렸다. 겪은 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발과 그런데 가족들은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계속 외쳤고 다리를 다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반응하며 침례를 받지 말라고 다그쳤다. 그래서 나는 강해지기 위해 주님의 영을 힘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성스러운 힘이 나는 충격을 받고 절망감에 휩싸였다. 구했다. 여러 주 동안 일요일마다 금식하고 작용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 일은 내 마음을 짓눌렀다. 너무나 기도하며 경전에 파묻혀 생활했다. 인도와 2년이 지난 후 나는 교환학생으로 다시 사랑하는 가족들의 바람을 무시하고 힘을 구하는 신권 축복도 받고, 매주 프랑스에 갔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온 학교 친구 케일라 바스가 담대하게 자신이 침례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호주로 돌아갈 때까지 침례를 미루겠는가? 호주로 교회에 참석하여 성도들과 어울렸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거나 알지 못하는 것을 삽화: 제프 와드 12 리 아 호 나
계속 생각하는 대신 내가 아는 것, 즉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조셉 스미스는 주님의 교회를 회복했고, 몰몬경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가족은 영원하다 등과 같은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시각이 자리잡자 간증이 다시 자라고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 해 내가 겪어야 했던 마지막 시련은 가족이 참석할 수 없는 성전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발표를 해야 했을 때였다. 나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한 청년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청년이 3주 동안 머물며 나를 만나려고 캘리포니아에서 찾아왔다. 우리는 서로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현세와 영원한 세상에서 인봉되도록 성전에서 결혼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장소에서 결혼을 할 것인가? 나는 스테이크 회장님의 권고에 따라 1991년 2월에 성전 결혼을 했다. 당시에 가족들은 큰 상처를 받았으나 우리 교회가 내 삶에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 자녀들이 복음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가족들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내용과, 그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고마워했다. 최근에 자녀 중 한 아이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가족을 주님 안에서 키우기로 했던 내 결정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 그 감사함에 묻어난 진지함에 뭉클해진 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복음에 따라 살기로 했던 결심이 내 삶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삶에도 축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를 이끌어준 지상의 천사들이 미친 영향력과 기적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감사드린다. 20년이 지난 후 그 모든 시련과 고통,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 모든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복음은 나에게 전부이다. 그것은 참되다. 그것은 나의 본향이다. 앙굴렘 집회소에 처음 걸어 들어갔을 때 마치 포근한 담요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 에 온 것만 같았다.
우 리 의 믿 음 성적 순결은 우리 삶을 축복합니다 순 결이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적 순결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1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을 데려오고 남자와 여자가 결혼생활 범위 안에서 사랑을 표현할 목적으로 성스러운 출산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한 결혼생활 밖에서 육체적 관계를 했을 때 발생하는 피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순결의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순결의 범위를 분명하게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혼하기 전에 어떠한 성 관계도 갖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에게 온전히 충실하라고 하셨습니다. 2 순결의 법을 어기는 것은 곧 고통스러운 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3 선지자 앨마는 성적인 죄가 살인이나 성신을 부인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죄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가르쳤습니다. 4 사탄은 남녀가 사랑한다면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이 용인된다고 믿도록 유혹함으로써 순결과 결혼의 성스러운 특성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라고 주신 능력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일 뿐입니다. 5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순결의 법에 따라 생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지킬 때 오는 축복과 어겼을 때 오는 결과는 각자의 충동적 성향과 욕구와 성적 유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성적인 죄를 범했지만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주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6 죄에서 비롯되는 절망은 용서를 통해 오는 감미로운 평안으로 대치될 수 있습니다. 7 우리가 성적 순결을 유지한다면 성신의 인도에 더욱 민감해지고 힘과 위안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8 1. 순결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고 지금 결심할 수 있다. 성적인 죄를 범하고 나중에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주님의 계명에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며, 회개와 의로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9 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너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19~20) 사진 삽화: 웰던 시 앤더슨; 라나 레이쉬먼; 로버트 케이시; 잔 프리스, Henrik Als; 매튜 라이어; 존 루크 14 리 아 호 나
2.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스러운 창조물임을 이해하는지는 단정한 복장과 외모로 나타난다. 단정함은 순결을 낳는다. 10 3. 외설물은 중독성이 있고 파괴적이다. 외설물에 탐닉하면 자존감과 자제력을 잃고 더욱 심각한 성적 죄까지 저지르게 된다. 11 4.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유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러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내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12 5. 성적인 죄를 범했다면 감독이나 지부 회장에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회개 절차를 밟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13 6. 강간이나 근친상간, 학대 또는 기타 성적 범죄를 당한 경우, 여러분에게는 죄가 없다. 감독이나 지부 회장이 정서적 치유와 7. 독신들은 데이트를 할 때 상대를 존중하고 건설적인 활동을 계획하며 성적인 충동을 유발하는 대화나 활동을 피한다. 관련하여 도움을 줄 수 있다. 14 8. 기혼자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배우자에게 충실한다. 15 다른 사람을 희롱하는 일은 합당하지 못하다. 유혹이 일어날 만한 상황을 멀리한다. 16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신 계명이 여전히 유효함을 선언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출산의 신성한 능력은 남편과 아내로서 합법적으로 결혼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명하셨음을 선언한다. 17 주 1. 야곱서 2:7. 2. 교리와 성약 42:22 참조. 3. 출애굽기 20:14; 데살로니가전서 4:3 참조. 4. 앨마서 39:5 참조. 5. 고린도전서 7:2~5 참조. 6. 이사야 1:18 참조. 7. 교리와 성약 58:42~43 참조. 8. 자세한 사항은 청소년의 힘을 위하여(2001년) 26~28쪽; 복음 원리(2009년), 225~232쪽; 신앙에 충실함(2004년), 순결, 92~96쪽을 참조한다. 9. 앨마서 42:30 참조. 10. 신앙에 충실함, 단정함, 53쪽 참조. 11. 앨마서 39:9; 제3니파이 12:28~30; 교리와 성약 42:23; 121:45 참조. 12. 고린도전서 10:13; 또한 창세기 39:1~12 참조. 13.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류 킴볼(2006년), 38, 41~42, 44쪽 참조; 모사이야서 26:29 참조. 14. 신앙에 충실함, 학대, 181쪽 참조. 15. 에베소서 5:28; 교리와 성약 42:22~23 참조. 16. 데살로니가전서 5:22 참조. 17.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2004년 10월호, 49쪽. 2 0 1 0 년 7 월 호 15
복 음 고 전 개척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었는가? 스티븐 엘 리차즈(1879~1959) 회장 제일회장단 제1보좌 개 척자를 이해하고 그들이 성취한 일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어떤 동기로 그렇게 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개척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와 평화를 찾아서 이곳에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안식할 집을 짓기 위해 왔고,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양심에 따라 종교 생활을 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 중 다른 개척자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 한 1879년 6월 18일에 유타 주 멘든에서 태어난 스티븐 엘 리차즈 회장은 1917년에 사도로, 1951년에 제일회장단 제1보좌로 부름 받았다. 다음 기사는 개척자들이 솔트레이크 밸리에 도착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던 1947년에 리차즈 회장이 4월 연차 대회에서 전한 말씀 중에서 발췌했다.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도망쳐 나온 그 도시로 돌아가서 박해자들에게 영감과 단합, 성공과 행복의 근원이 되는 삶과 행동 원리를 전하기 위해 확고한 신념으로 한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개척자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근면함을 보였습니다. 성공과 행복의 토대가 되는 일을 가르치고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예술과 아름다운 것들을 교육하고, 또 사랑했습니다. 차원이 높은 충실함을 보이고, 자신이 믿고 따르는 대업에 헌신하려는 결의가 굳건했습니다. 이제 개척자들이 지닌 특징 중 가장 위대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혜라고 규정하겠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통찰해내는 지혜 말입니다. 우선 인간의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개척자들은 우리 몸은 성스럽다는 새로운 개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몸을 말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의 영이 지상에서 거하는 집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독이나 해로운 물질을 취하여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몸을 더럽히거나 불결하게 하거나 오용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가르쳤습니다. 개척자들은 건강을 다스리는 율법을 실천했습니다. 둘째로 성품과 인성이 달랐습니다. [개척자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고결한 혈통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업에 동참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그 사업을 인생에서 이룩할 주요 목적으로 삼는다면 말입니다. 다음은 가족입니다. 개척자들은 가족과 관련하여 어떻게 지혜로웠을까요? 왜 그들은 삽화, 폴 맨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하고 고상한 속성들을 가족에게 부여했을까요? 개척자들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기본 단위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개척자들이 지닌 가장 위대한 특징은 지혜[입니다.] 있다는 희망도 바로 가족을 토대로 꿈꿀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천국은 우리 가정을 영원에 투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 원리들입니다. 개척자들이 모든 산 꼭대기 (이사야 2:2)에 주님의 집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삶에 대한 이 훌륭한 메시지와 진리를 절대적으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해의 생활 안에는 가정과 가족이라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를 세워 왕국 최고 단계인 승영에 이를 수 고상한 개념에 어울리지 않는 사막을 가정과 학교, 그 외 여러 크나큰 악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시설이 들어선 도시와 마을, 그리고 이혼과 결손 가정, 가족 소도시로 변화시킨 것은 위대한 생활의 붕괴로 방치되고 일입니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버릇 없어진 아이들, 왕국을 세워, 희망과 신앙과, 모든 그래서 꾸짖음보다는 인류에게 전하는 신성하면서도 동정이 필요한 아이들이 영원한 지혜라는 유익한 메시지를 생겼습니다. 겸손한 시온으로부터 세상으로 전파하는 개척자들에게 있었던 지혜가 것은 훨씬 더 훌륭한 일입니다. 온 세상 가족들에게 적용되기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고결한 한다면 인류는 얼마나 위로 받고 개척자들에게 있었으며, 또한 우리와 행복하며 발전하겠습니까. 친구들에게 그들이 남긴 진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는 유산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형제애가 있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은사입니다. 우리가 개척자들은 모든 민족과 그것을 소중히 하고 그에 따라 살며 족속과 방언과 사람들이 거대한 그 내용을 전파할 때 주님께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다는 함께하셔서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개념을 실제로 가르쳤습니다. 모든 곳에 평화가 깃들게 할 유일한 희망은 이 형제애라는 구두점, 철자, 대문자 수정. 교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 훌륭한 특징들과 그 외에 더 많은 것들이 바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회복된 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2 0 1 0 년 7 월 호 17
성전을 선택하십시오 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도 후기 성도들은 주님의 집에 갈 때 축복이 온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이 들려주는 권고에 귀 기울여 보자. 리차드 엠 롬니 교회 잡지 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성전에 대한 느낌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하고 물으면 환한 웃음이 번지게 하는 기쁨과 소망, 믿음과 낙천주의가 묻어난다. 인도의 후기 성도들은 성전 결혼을 하여, 이해가 깊어지고, 성취감을 맛보고, 영원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영원히 성약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한다. 가장 가까운 성전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홍콩에 있지만 주님의 집을 찾아가는 회원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기도와 신앙과 영으로 인도를 받은 이들은 성전 인봉을 선택한다.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어 보자. 힘을 얻어 방갈로르 제2지부 회원인 윌리엄 프라브후다스는 법원에서 일한다. 프라브후다스 형제는 부부가 헤어지는 모습을 보는 일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 고통인지를 잘 안다. 그런 까닭에 아내와 열심히 성전에 가고, 그곳에서 힘을 얻는다. 많은 부부들처럼 우리도 때때로 해결해야 할 작은 문제들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영원한 관점에서 문제를 볼 때 훨씬 쉽게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 냅니다. 프라브후다스 형제의 아내인 쉘라는 성전에 가는 일이 자신과 남편만이 아니라 딸인 셀레스타(13세)와 도리스(7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족 18 리 아 호 나
셀레스타 프라브후다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가족 인봉을 받았는데,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바깥 세상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고 천국에 있는 것만 같았죠. 지금도 늘 그 이야기를 한답니다. 인봉을 받았는데,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바깥 세상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고 천국에 있는 것만 같았죠. 지금도 늘 그 이야기를 한답니다. 프라브후다스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와 인봉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부부 인봉이 끝났을 때 새하얀 옷을 입은 딸들이 가족 인봉을 받으려고 들어 왔죠. 위: 프라브후다스 가족은 인봉을 받기 위해 중국 홍콩 성전(왼쪽)으로 여행했다. 이 성전은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성전이다. 순간이다. 셀레스타의 가족이 인봉 받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삼촌과 숙모, 사촌들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가족 인봉을 받은 후에 모두 함께 손을 잡았어요. 우리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영원에 대해 생각했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제가 우리 가족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어요. 훌륭한 모범에 따라 레니에 토마스와 아내 케르트히도 곧 인봉을 받을 것이다. 레지에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에 들어온 날부터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였고, 구원의 계획을 배우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진짜 목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서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딸들이 입은 옷을 보며 깨끗함을 두 쌍이 함께 지극히 바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삶과 우리 하이데라바드 제4지부 회원인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정 안에 있는 깨끗함 말입니다. 두 토마스 형제는 수년 간 서로에게 구주로 보내셔서 우리를 죄와 영원한 사진 촬영: 리차드 엠 롬니, 표시된 부분 제외; 중국 홍콩 성전 사진 촬영: 크레이 그 다이먼드 깨끗함과 성전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깨끗하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집에서 맺는 약속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셀레스타는 성전 여행을 하기 위해 가족이 2년 동안 일하고 계획하고 저축하던 추억을 떠올린다. 셀레스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부모님과 함께 성전에 있던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십대 시절에 형제는 동시에 교회 회원이 되었고, 함께 노력한 덕분에 결국 어머니도 교회에 들어왔다. 둘 다 인도 방갈로르 선교부에서 봉사했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함께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최근에 결혼했다. 레지에 토마스와 아내 메틸다는 성전에서 인봉되었고, 이들이 보인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저와 가족은 변했습니다. 그 점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기쁘고 감사드리는 일은 성전에 가는 것입니다. 레지에가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을 때 어려웠던 점 하나는 두 사람의 출신 지역과 사용하는 방언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 0 1 0 년 7 월 호 19
레지에 토마스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저와 가족은 성전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죠. 변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은 그 점을 기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쁘고 하고 레지에는 말한다. 레지에는 감사드리는 일은 성전에 인도의 미래가 젊은이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달렸다고 느낀다. 변화를 일으킬 사람은 우리입니다. 레지에는 아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그런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가정의 밤을 하고 가족 경전 읽기와 가족 기도를 위, 왼쪽부터: 레지에 토마스, 메틸다 토마스, 시기에 참석한 세미나리에서 미래에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다. 사실 세미나리 대신 크리켓 경기를 하고 하셨죠.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며 기다렸어요.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우리가 학업을 마치자마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계속 케르트히 토마스, 싶었어요. 그런데 세미나리 교사님이 형이 결혼을 한 거예요. 그리고 형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아내 메틸다도 같은 생각이다. 어떻게 그토록 큰 이해심과 사랑을 품을 수 있냐고 묻자 남편은 복음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레니에 토마스. 아래: 레니에와 케르트히는 매주 즐겁게 주일학교에 참석한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해요. 하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숫기가 없었지만 세미나리 수업에 들어가서 뒷줄에 앉았죠. 레니에는 그때 앞줄에 앉아 있던 케르트히를 보았다. 당시 케르트히는 결혼을 보신 장인께서 무척 감동을 받으셨어요. 형과 형수님이 보인 훌륭한 모범을 보신 장인께서 저희 결혼을 승낙하셨죠. 그런 식으로 저희는 부모님을 공경했고, 결혼 준비도 원활하게 해 나갔습니다. 대답했어요. 선교사일 때 선교부 교회 회원이 된 지 6개월밖에 레니에는 케르트히와 겪었던 회장님께서 사랑과 존중으로 되지 않았을 때였다. 두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살펴보면 교회 안에서 아내를 대하시는 모범을 보았대요. 친구가 되었지만 데이트를 시작한 결혼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더 성전에서도 그런 모범을 볼 수 있죠. 건 레니에가 선교 사업을 마치고 확산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귀환한 후였다. 마침내 말한다. 제가 처음 교회에 들어왔을 두 사람이 결혼을 때는 회원이 회원과 결혼하는 일은 결심했을 때, 양가 획기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부모님께 그 결정이 성전에서 결혼한다면 훨씬 더 화제가 옳다는 걸 납득시킨 되었죠.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교회 경위를 케르트히는 안에서 어떻게 결혼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떠올린다. 알아요. 성전에 갈 수 있도록 저희는 스스로를 준비해야 하죠. 성전이 세미나리에서 부모님을 바로 열쇠예요. 공경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 점을 모범을 보이는 회장 우리가 생활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기억했어요. 하이데라바드 제4지부 회원인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런 모범을 레니에는 이렇게 덧붙였다. 벤카트 둔나와 린다 둔나 부부가 보인다면, 그 영향력으로 인도에 부모님은 저희가 학업을 마쳐야 사는 아파트에 들어서면 갓 결혼한 있는 우리 교회는 강해질 거예요. 한다고 하셨어요. 특히 저에게는 이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극진하게 레니에는 교회를 알아보던 형이 먼저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20 리 아 호 나
곳곳에 보인다. 벽에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손수 만든 대형 생일 카드가 걸려 있고, 소파 옆 탁자에는 결혼 사진첩이 놓여 있다.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남편은 아내에게 팔을 둘렀고, 아내 얼굴에서는 웃음이 벤카트의 부모님은 그때 집을 짓고 있었는데 집을 완성할 때까지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셨다.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하신 게 아니었어요. 얼마 동안을 기다리길 바라셨죠. 한 일 년쯤 말입니다. 벤카트 둔나는 말한다. 우리는 계속 주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님께서 정말로 그렇게 해 주셨어요. 떠나지 않았다. 하고 벤카트는 회상한다. 위: 벤카트 두 사람이 결혼할 무렵에 때맞춰 이 부부는 교회가 후원한 활동에서 서로를 만난 과정을 들려주었다. 린다의 어머니는 교회에서 벤카트와 알고 지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약혼했을 때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벤카트에게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형이 있었다. 인도에는 아직도 동생보다 나이가 많은 형제 또는 자매가 먼저 결혼해야 한다는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를 도운 건 영이었어요. 벤카트는 말을 잇는다. 저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되도록 린다와 제가 노력하고 있지만, 가능한 한 빨리 결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성전에 가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라는 느낌을 받았죠. 우리는 계속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거야.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님께서 둔나와 린다 둔나는 일곱 사람이 함께 성전으로 갔던 일을 떠올린다. 그날 두 사람은 인봉되었고, 린다는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인봉되었다. 새 집회소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한 이 부부는 곧장 중국 홍콩 성전으로 가서 인봉을 받았다. 린다는 이렇게 회상한다. 일곱 사람이 함께 성전으로 갔어요. 그날 벤카트와 제가 인봉되고 나서, 어머니와 언니와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인봉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멋진 날이었어요. 현재 지부 회장으로 봉사하고 회원은 아니지만 교회에 우호적인 정말로 그렇게 해 주셨어요. 있는 벤카트는 인도에 성전이 2 0 1 0 년 7 월 호 21
바라트 포웰은 말한다. 저희는 가족과 친구뿐만 아니라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로 이어졌어요. 영이 늘 저희의 결혼생활을 인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세워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큰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정말 큰 오른쪽: 축복이 될 거예요. 성전은 우리가 바라트와 있는 곳에 시온을 건설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쉴라의 이야기는 바라트의 인도받은 결혼 첸나이 제2지부 회원인 바라트 포웰과 이쉴라 포웰 부부 이야기는 바라트의 부모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라트의 부모님인 사트히아드하스 포웰과 수리야 쿠마리는 1981년에 결혼했고, 1991년에 교회에 들어왔다. 1993년에 사트히아드하스는 지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고, 사트히아드하스 부모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쪽) 바라트의 아버지인 트히아드하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선교사를 만난 첫날부터 복음이 지원서를 승인했지만, 이쉴라는 그때 부부는 홍콩 성전이 헌납되기 전에 성전이 참되다는 사실을 알았고, 복음에 이런 변화를 겪었다. 갑자기 마음이 수년간 저축하고 준비하여 필리핀 마닐라 성전에서 인봉되었다.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치죠. 푹 빠졌어요. 그때 이쉴라는 현 지부 회장 가족인 이삭 가족과 바뀌더니 결혼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죠. 가족이 복음 안에서 성장하고 친해졌는데, 이삭 가족에게 교회를 귀환한 바라트는 이쉴라가 발전하면서 그들은 두 아들에게 소개한 이는 바로 포웰 가족이었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성전에 가는 것이 얼마나 이쉴라가 침례를 받을 당시에 몇몇 사람들 때문에 무척 놀랐다. 중요한지를 가르쳤다.(막내 아들은 바라트는 귀환을 4개월 남겨 둔 얼마 후 두 사람은 이삭 회장의 딸 현재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선교사였다. 이쉴라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식에서 잠깐 만났지만 그다지 큰아들 바라트가 약혼을 하자 이삭 가족은 바라트가 저에게 꼭 많은 말을 나누지는 못했다. 인도 곧 성전 결혼이 계획되었고, 포웰 맞는 사람이라고 계속 말했어요. 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가족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저는 결혼을 미루고 선교 알아가는 일에서 몹시 격식을 차려야 약혼녀인 이쉴라는 새로 개종한 사업을 나가고 싶었어요. 지부 한다. 그래서 바라트와 이쉴라는 회원이었다. 이쉴라는 이렇게 말한다. 회장과 선교부 회장이 그녀의 선교사 그에 맞게 행동하고 싶었다. 22 리 아 호 나
3주가 지나서 이쉴라는 기도를 하며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바라트도 마찬가지였다. 이쉴라는 이렇게 회상한다.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라트가 저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수줍음이 많았어요. 그래서 주님, 이것이 제가 갈 길이라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알려 주세요. 하고 기도했어요. 바라트는 이렇게 말한다. 몇몇 사람에게 이쉴라에 대해 이야기해 봤는데 모두 좋은 점만 이야기하더군요. 문득 당장 이쉴라와 이야기해 봐야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이삭 지부 회장님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어요. 이쉴라에게 제가 전화를 걸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죠. 그 뒷이야기는 이쉴라가 들려준다. 기도를 하고 있는데 지부 회장님의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와서 바라트가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 해. 네 전화번호를 알려 줘도 되니? 하고 말했어요. 30분 후, 두 사람은 이렇게 회상한다. 거리도 멀고 경비도 아주 많이 들어야 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들이 가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어요. 우리는 아이들이 떠나기 전에 치를 합법적인 예식에서 축하를 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인봉한 후에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했지요. 돌아오면 다시 축하를 해 주겠다고 하면서요.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성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치죠.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성전에 가라고 권고해요. 우리 아이들도 역시 성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라트는 그때 이런 가기를 바랐지요. 사트히아드하스는 바라트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수년 동안 서로를 이쉴라가 부모와 관습, 그리고 자신의 알아 온 것 같았어요. 선택의지를 존중하는 방식이 특히 마음에 이쉴라는 종교 교육원 교육과정을 통해 들었다고 말한다. 성전 결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성전 결혼이 인도 사람들은 중매결혼 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연애결혼 인지 묻지만 우린 둘 다에 해당돼요. 알았다. 바라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고 바라트가 말한다. 바라트와 이쉴라는 성전까지 여행할 경비를 모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을 인도 받은 결혼 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라트의 부모님을 포함하여 많은 바라트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가족과 가족과 친구들이 부족한 경비 때문에 성전에 친구뿐만 아니라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로 함께 가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이어졌어요. 영이 늘 저희의 결혼생활을 바라트의 아버지인 사트히아드하스는 인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역 문화와 복음 문화 복음의 목적은 평범한 인간을 해의 왕국의 백성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며, 거기에는 변화가 요구됩니다. 전통이나 문화, 혹은 생활 양식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꾸어야 할 일부 관행이 불가피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 모두에게는 특별한 복음 문화, 즉 가치관과 기대와 관행이 있습니다. 이 같은 복음 생활 방식은 구원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명, 살아 있는 선지자들의 가르침에서 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족을 부양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표현됩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회개와 변화,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37, 38, 39쪽.
아래: 1923년 8월 26일,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은 앨버타 카드스턴 성전을 헌납했다.(미국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헌납된 성전) 오른쪽: 1915년 데이비드 오 맥케이 장로가 성전 초석을 놓을 때 사용한 은 삽. 온 땅을 가득 채워 왼쪽: 미국에서 복음을 전파한 첫 번째 선교사 중 한 사람이자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동생인 새뮤얼 에이치 스미스. 위: 영국에서 봉사한 초기 선교사들은 스칸디나비아 및 유럽 국가에서 봉사한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후기 성도들에게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나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지역 이 개방되도록 계속 신앙을 행사하고 기도해 주도록 당부했다.(25쪽 오른편 참조) 몬슨 회장은 1974년에 열린 역사적인 모임에 참석했는데, 이 모임에서 스펜서 더블류 킴볼(1895~1985) 회장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선교사 프로그램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여러 나라에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그 나라들에서 잊혀진 열쇠를 찾기 위해 1 걸음의 폭을 넓히고 시야를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몬슨 회장은 우리가 계속 신앙을 행사하고 기도한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약속했다. 몬슨 회장은 경험을 통해 이것이 사실임을 안다. 킴볼 회장이 그러한 내용을 전한 후에 수년 동안 선교사와 침례 받는 개종자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2 킴볼 회장의 요청에 따라 후기 성도들은 전 세계 국가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문이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몬슨 회장은 실제로 수많은 지역에서 기도가 성취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는 독일 프라이베르크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 복음이 전해지도록 여러 국가에서 문이 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3 왼쪽: 새뮤얼 에이치 스미스 동상, 디 제이 바우덴; 오른쪽: 리버풀을 떠나는 성도들, 켄 백스터 24 리 아 호 나
사진 촬영: 데이비드 픽업 왼쪽과 위: 영국 멜버른 개드필드 엠 집회소. 이곳은 가장 오래된, 첫 번째 후기 성도 집회소이다. 1840년, 윌포드 우드럽 장로가 이곳에서 모임을 하던 연합 형제회 회원 600명을 개종시켰다. 개종자들은 그들 소유였던 이 집회소를 교회에 기증했고, 이곳은 지역 선교 사업을 수행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훗날 이들은 지역 회원들이 시온으로 모이는 비용 마련을 돕기 위해 집회소를 처분했다.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나 이 시대에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지역 사람들을 위해 여러분의 신앙과 기도가 계속 이어지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 대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6쪽. 1851년 2월 1일, 영국 리버풀에서 미국으로 출항할 준비를 하는 엘렌 마리아 호. 당시 영국 제도에는 5만 명이 넘는 후기 성도가 있었다. 가난한 후기 성도들은 나중에 돈을 갚아서 다른 사람들이 이주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조건으로 영구 이민 기금에서 융자를 받았기에 이주할 수 있었다. 수천 명에 이르는 개종자들이 미국 성도들과 합류하기 위해 낯선 땅으로 향했다. 2 0 1 0 년 7 월 호 25
몬슨 회장을 비롯하여 복음이 회복된 이래 후기에 보내진 모든 선지자들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1842년 3월에 기록한 다음 말이 참되다는 사실을 왼쪽: 1882년 집회소 사진: 교회 역사 박물관 제공; 위: 약속, 알 라운즈; 왼쪽 아래: 영원을 위해 오늘을 충실하게, 실비아 휴즈 드 서빌, 제4회 국제 미술 대회; 아래: 리하이의 꿈, 아라셀리 안드라데, 제7회 국제 미술 대회 19세기에 복음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역 중에는 많은 바다의 섬들 도 있었다. 맨 왼쪽: 1882년에 촬영된 이 하와이 집회소는 하와이 라이에 성전(왼쪽)으로 탈바꿈했다. 이 성전은 1919년에 완공되었다. 왼쪽 아래: 1854년 선교사들이 도착한 후, 뉴질랜드에는 복음이 만발했다. 아래: 이 작품은 멕시코 치아파스 이자파에 있는 80개 비석 중 하나인 5번 석판의 모형이다. 이 석판은 생명 나무 비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그 석판이 리하이의 꿈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니파이전서 8장 참조) 알았다. 진리의 표준은 세워졌습니다. 그 어떤 신성하지 않은 손도 이 사업이 전진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박해가 들끓고 폭도들이 연합하고 군대가 모이고 중상모략으로 명예가 훼손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대륙에 퍼지고 모든 지역에 뻗어나가고 모든 나라를 휩쓸며 모든 귀에 울릴 때까지 담대하고 고결하고 굳세게 전진할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사업이 26 리 아 호 나
오른쪽: 1960년대에 수많은 나이지리아 및 가나 사람들은 교회 서적을 읽고 간증을 얻었다. 1978년 선교사들이 도착할 당시, 아프리카 사람들 수백 명이 침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1년 만에 약 1,700명이 침례와 확인을 받았다. 저는 믿었습니다 1964년,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간증과 몰몬경을 읽었으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존슨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 메시지를 나누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천 명이 넘는 개종자를 10개 조직으로 나누어 모임을 이끌었다. 1978년 6월, 존슨은 영국 방송 협회 라디오 방송을 들으라는 강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님께서 세계 어느 지역에 있든 모든 합당한 남성은 신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어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죠. E. Dale LeBaron, Steadfast African Pioneer, Ensign, 1999년 12월호, 45쪽 참조. 맨 위: 1978년, 침례 받는 나이지리아 사람들 사진 촬영: 자네스 캐논; 위: 후기 성도들이 시에라리온에서 성임을 함, 에밀 윌슨; 오른쪽: 시에라리온에서 베푼 침례, 에밀 윌슨 2 0 1 0 년 7 월 호 27
왼쪽: 이 자수의 색상과 짜임새에는 지난 50년간 멕시코, 중미, 남미 교회가 이룬 비약적인 성장의 힘이 담겨 있다. 이 회원들은 몰몬경을 사랑하고 성전을 가까이한다. 작품에 묘사된 성전은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 성전이다. 아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영향을 입은 폴란드에는 현재 1,500명이 넘는 회원이 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모든 후기 성도와 마찬가지로 첫번째 시현(아래: 폴란드 화가가 조각함)과 같은 믿음에 간증의 뿌리를 둔다.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4 신앙과 기도로 단합하여 몬슨 회장이 준 과제를 받아들여서 오늘날 닫혀 있는 지역들이 열리고 기적이 일어나도록 힘을 쏟도록 하자. 주 1. 스펜서 더블류 킴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성도의 벗, 1974년 11월호, 3쪽. 2. Status Report on Missionary Work: A Conversation with Elder Thomas S. Monson, Chairman of the Missionary Committee of the Council of the Twelve, Ensign, 1977년 10월호, 8쪽 참조. 3. 제롤드 데이비스 및 노마 데이비스, 장막 뒤에서: 동독의 교회, 성도의 벗, 1992년 2월호, 12쪽 참조. 4. History of the Church, 4:540. 5. President Hinckley Visits Asian Saints, Dedicates Hong Kong Temple, Ensign, 1996년 8월호, 74쪽. 왼쪽 위: 사막에서 장미처럼 만발하는 레이맨인들, 마리아 글라디스 바리엔토스 드 몬테로소, 제3회 국제 미술 대회; 왼쪽: 조셉 스미스의 첫번째 시현, 자누자 모스틸, 교회 역사 박물관 제 공; 오른쪽 위: 힝클리 회장 사진 촬영: 게리 아반트; 가운데 위: 불멸의 선교사들, 주엘링 첸, 제4회 국제 미술 대회, 복사 금지; 맨 위 오른쪽: 일본의 선교사들 사진: 교회 역사 박물관 제 공; 오른쪽: 러시아 헌납, 에민 줄푸가로프 28 리 아 호 나
일본: 아시아 교회의 성장 19 9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노변의 모임에서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1901년 1월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히버 제이 그랜트 장로가 일본에 방문한 일을 언급했다. 그랜트 장로님과 선교사 세 명이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본을 헌납했습니다. 힝클리 회장은 일본 교회가 이룩한 성장을 언급하며(현재 회원이 12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말씀했다. 지금 이 자리에 그랜트 회장님이 계셨다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5 맨 위: 1996년, 고든 비 힝클리 회장과 아내인 마조리 힝클리 자매의 방문을 축하하는 아시아인들. 맨 위 가운데: 아시아 문화와 후기 성도 분위기가 동시에 풍기는 대만 회원들 모습에서 우리는 복음이 어느 문화에나 젖어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맨 위 오른쪽: 히버 제이 그랜트 장로(가운데)는 선교사들과 함께 1901년 9월 1일에 선교 사업을 위해 일본을 헌납했다. 위: 1903년 8월, 사도였던 프랜시스 엠 리만 장로와 그 밖의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러시아를 헌납하고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였다. 2 0 1 0 년 7 월 호 29
삽화: 그레그 토켈슨 30 리 아 호 나
엠 러셀 밸라드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자신 있게 복음을 나눕시다 하나님 아들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최선을 다해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 무엇도 방어하거나 합리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 리는 엄청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어려움은 항상 있었습니다. 선과 악은 늘 존재했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굳건히 진리를 수호하자는 의미에서 저는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에 저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아보는 몇 가지 조사 자료를 접했습니다. 이는 제가 오랫동안 관심 있게 지켜봐 온 주제입니다. 교회에서 저는 선교 사업과 긴히 관련된 임무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알면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교회 회원들은 때때로 비회원들에게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한 응답자는 몰몬들이 자신의 믿음을 설명할 때 비판을 각오한 투로 말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조사 내용을 들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점을 생각해 볼수록 저는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런 느낌을 쉽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820년 봄, 조셉 스미스가 성스러운 숲에서 나오던 그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심지어 적의에 찬 태도를 보였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가족이 아닌 사람과 자신이 본 시현을 처음으로 나누었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감리교 목사는 조셉 스미스에게 모두 악마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이제는 시현이나 계시 같은 것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조셉 스미스-역사 1:21) 조셉이 이 경험을 불쾌하게 여겼다면 그것은 2 0 1 0 년 7 월 호 31
대적의 가혹한 권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할수록 적대자들은 더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 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충실한 성도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계속 쫓겨났습니다. 조셉은 미주리 주 주지사가 몰몬 근절령을 내리고, 선지자와 그 일행이 리버티 감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을 때, 그보다 더한 일은 없으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물론 더 끔찍한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조셉과 하이럼은 그들이 이룬 업적과 간증과 신앙에 대한 대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일로 브리검 영이 이끄는 서부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황야를 건너 미국 로키산맥에 있는 피난처로 향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후기 성도가 겪은 역경과 희생 이야기는 이제 잊혀지지 않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개종자들은 비록 자신의 조상이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더라도 초기 교회 역사 속 인물들과 사건들을 자신의 유산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우리를 북돋우고 영감을 줍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안락하게 지내는 우리가 굳건하고 충실했던 초기 교회 후기 성도들을,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1830년이 아니며, 이제 우리는 여섯 명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감지하는 방어적인 태도는 우리가 아직도 서부로 쫓겨나던 소수의 혐오 대상자처럼 취급 받으리라 예상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과 어울릴 때마다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비판이나 반대를 걱정한다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방해되는 불건전한 자의식과 방어적인 태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는 교회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큰 무리로서 우리의 현 위치에 걸맞지 않습니다. 구주의 모범을 본받으십시오 모든 면에서 우리는 구주를 모범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역을 베푸실 때 초반부터 크나큰 반대에 부딪히셨습니다.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 처음으로 설교하실 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려 했습니다.(누가복음 4:28~29 참조) 그러나 주님은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숱한 오해를 받으리란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말로 거침없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말한 바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태복음 5:21~22) 예수님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잘 아셨으며 미안해하지 않고 전하셨습니다. 경전에 나온 바와 같이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29) 오늘날 우리 모습 그대로 존중 받고 싶다면 자신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수호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을 사과해야 한다는 32 리 아 호 나
듯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오만하거나 고압적인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 대한 기사를 실은 태도를 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타임(Time)지도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며 몇몇 견해를 존중하는 태도를 항상 기본 원칙으로 저명한 후기 성도들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1 삼아야 합니다. 그런 원칙은 신앙개조에도 나와 이러한 유명세만 보더라도 교회가 더 자주 있습니다.(신앙개조 제11조 참조) 그러나 우리가 거론되고, 후기 성도가 더 많은 복음 토론에 핍박 받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오해나 비판을 참여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정직하고 각오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개방적이며 솔직하고 호감을 주며 다른 사람의 감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할 것입니다. 견해를 존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을 특히 귀환 선교사 여러분께 주의를 드리고 방어하는 태도를 완전히 버려야겠습니다. 싶습니다. 여러분은 2년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동안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대화에 참여하는 방법 두 온갖 의심 어린 질문과 가지를 제언하겠습니다. 반대에 맞섰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습 그대로 존중 받고 싶다면 아직도 대화를 할 때마다 자신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1. 무의미한 사안들에 신경 누구이고 무엇을 수호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기 쓰느라 더 중요한 주제들을 있어야 합니다. 묻어 두지 마십시오.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회원들은 여러분이 믿음을 나눌 사람들이 대화 주제를 기회가 온다면 대화를 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회피하거나 비판을 각오한 듯 조심조심 발을 디딜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예가 복수 결혼입니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수 결혼은 1890년에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종결되었습니다. 지금은 2010년입니다. 왜 아직도 1:16) 우리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저는 복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합니까? 그것은 한때 이 놀라운 회복 메시지에 관해 간증을 나눌 모든 시행되었다가 종결되었습니다. 우리는 도약했습니다. 기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또한 아주 감사하는 사람들이 일부다처제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한때 시행되었고, 지금은 시행되지 않으며, 불쾌하게 만든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일부다처주의자들과 우리 교회를 혼동해서는 이 주제가 우리 시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안 된다고만 말하십시오.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유 중 한 가지는 지금 이 교회가 강성하고 있기 구약시대에 시행된 일부다처제를 정당화하거나 때문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우리는 네 번째로 큰 19세기에 잠깐 복수 결혼이 시행된 이유를 추측하는 교회입니다. 후기 성도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런 주제는 역사가와 북방에서 남방까지 모든 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학자들에게나 적절할 것입니다. 저는 복수 결혼을 숫자로 보면 서부에 치우쳐 있을지도 모르지만, 교회에 관한 기본적인 대화 주제로 삼을 때 이 나라에 있는 일반인들이 점차 후기 성도와 고정관념이 심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때때로 이러한 대화는 매체에서 떠도는 많은 교회 회원들이 사회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이야기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2 0 1 0 년 7 월 호 33
그런 이야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2009년, 일부다처주의자를 그린 한 케이블 방송국 연속물은 극 중에서 성스러운 성전 의식을 묘사했습니다. 교회 회원들 사이에서는 성전 의식을 묘사한 것에 대해 큰 우려가 일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 그 일로 모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와 같은 묘사에 대한 응답으로 교회 공보부가 교회 뉴스룸 웹 사이트에 실은 기사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 내용을 인용하는 동안 기사의 어조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기사에는 방어적인 태도가 전혀 것이다. 후기 성도들은 품위 있고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친히 보이신 모범을 따르는 일일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 회원들의 힘과 성숙도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비판론자와 반대세력들이 의도하는 대로 싸움에 말려들게 되면 교회는 결국 180년간 성공적으로 지속해 온 노력과 지향점에서 벗어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오히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성스러운 종교 의식 중 하나를 부적절하게 묘사한 것에 대해 응수합니다. 다른 대규모 종교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할리우드나 브로드웨이, 우리 종교와 간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초하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에 계속 힘쓸 것이다. 2 또 다른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2007년 한 독립영화사가 마운틴매도우 학살 사건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아주 나쁜 영화란 표현도 너그러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서적,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경우가 있다. 교회와 회원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할 때도 있지만 왜곡된 모습이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매우 혐오스러운 방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천주교인과 유대교인, 이슬람교인들이 수세기 동안 경험해 왔듯이 어떤 단체나 종교 집단의 규모나 지명도가 현저하게 높아지면 주변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계속해서 이 기사는 일부 교회 회원들 사이에서 해당 방송국이나 계열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조직적인 시청 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번져 나가는 상황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한 단체로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시청 거부 운동을 선동하는 데 반대한다. 그러한 정도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는 할리우드 비평가들도 혹평할 만큼 형편없습니다. 기획자들은 교회를 자극하여 큰 논란거리로 삼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대화 주제를 정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으며, 제작자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건설적이고 현명한 방법으로 마운틴매도우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희생자들의 후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서 Massacre at Mountain Meadows(마운틴매도우에서 벌어진 대학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여기에는 이 비극을 둘러싼 진상들이 담겨 있습니다. 운동은 매체들이 선호하는 논란만 양산할 뿐이며, 결국은 해당 방송물에 대한 시청률만 높일 34 리 아 호 나
2. 후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실천하며 그분을 따르고자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하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종교와 간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초하며, 우리가 그분과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흡족한 방법으로 생활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초이고 조셉 스미스의 기초였습니다. 조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종교의 기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간증, 즉 그분은 돌아가셨고, 매장되셨으며,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종교에 관한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그것에 부속되어 있을 뿐입니다. 3 교회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이 점이 중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과 생활의 근간이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개방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최선을 다해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 무엇도 방어하거나 정당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경전을 공부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교리는 극명합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를 따를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고,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며,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어디로 갈지 알게 됩니다. 구원의 계획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를 위해 마련하신 영원한 행복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계시를 받는 선지자가 아니고는 계명을 변경할 권세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묘사한 것처럼 주님의 가르침에서 점차 떨어져 나가 속세를 향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디모데후서 4:3~4). 지금이 바로 바울이 예견한 시대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구속의 계획, 속죄, 회개, 용서, 죽음 이후의 삶, 부활, 영생, 영원히 함께 인봉되는 영원한 가족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에서 오는 충만한 축복이 없는 삶은 얼마나 공허하겠습니까. 후기 성도로서 우리는 행복의 계획,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압니다. 우리는 그 교리에 따라 생활하고 또한 늘 그렇게 생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의 젊은 세대는 주님의 교리를 가르치고, 그분의 교회를 세울 방법을 배워야 하는 2 0 1 0 년 7 월 호 35
청 소 년 캐 시 를 구 하 라 다윈 리차드슨 1월, 사회 복지 사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1976년 우리 부부가 수양 자녀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당시에 우리는 어린 자녀 둘을 키우고 있었지만 열일곱 살 난 캐시를 맞아 주기로 했다. 캐시가 우리 집으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캐시는 함께 교회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물론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곧 캐시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캐시가 전에 다니던 다른 교회에서는 캐시가 후기 성도 교회에 참석한다는 걸 알고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캐시는 예전에 다니던 교회가 청소년 전도 모임으로 캐시를 구하라 라는 모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그 모임에 가서 우리 교회를 방어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러겠다고 했다. 캐시의 친구들과 서로 다른 교리를 놓고 논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캐시가 그 일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아직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 선교 사업에서 귀환한 리차드 존스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캐시를 구하라 모임이 열리는 날이 되자 우리는 모두 금식을 하고 기도했다. 나는 그 모임에 영이 임하여 분쟁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날 저녁에 그 교회에 도착했을 때, 다소 적대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청소년 담당 목사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청소년들에게 우리 교회와 믿음에 대해 말해 달라고 권했다. 리차드는 선교사 첫 번째 토론을 자연스럽게 전했고 회복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그곳에 앉아 있던 열다섯 명쯤 되는 청소년들은 주의 깊게 들었고, 청소년 담당 목사마저도 넋을 잃고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후 나머지 시간은 질문에 답하고 복음에 대해 멋지게 토론했다. 온화한 태도로 우리의 믿음을 책임을 받을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정당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과 친절을 담아 그 믿음을 설명하기만 하면 됩니다. 참된 교리를 가르칠 때, 진리는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여기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1. 우리는 이웃을 섬기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따릅니다. 우리는 교회 회원뿐 아니라 비회원에게도 봉사합니다. 전 세계에서 펼치는 인도주의적 봉사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사람들을 구제합니다. 우리는 교회 회원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돈이라는 자원을 나누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는 말씀을 믿습니다.(마태복음 25:40) 2. 우리는 지혜의 말씀대로 생활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따릅니다. 이 교리는 건강한 몸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확실한 길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약물 남용을 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영원한 영이 거할 처소이며, 강인한 영과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때 이생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순결의 법에 따라 생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며, 하나님은 이 계명을 폐하거나 바꾸신 적이 없습니다. 이 율법은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누구도 주님께서 정하신 범위 밖에서 성적인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동성애 행위나 이성간의 혼외 관계에도 해당됩니다. 순결의 법을 어기는 것은 죄입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을 의미합니다. 이 계명은 태초부터 있었습니다. 36 리 아 호 나
설명하자 처음에 느꼈던 적대심은 금세 눈 녹듯 사라지고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다. 우리가 간증을 전하고 질문에 답하는 동안 그곳에는 성신이 충만했다. 토론이 끝나자 목사는 우리에게 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곳을 나오려 할 때 한 소녀가 일어났다.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소녀는 우리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몰몬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자신보다 더 나은 기독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의 토론에 그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영이 임하도록 간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하지 않았더라면, 토론이 순조롭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성령이 임할 때에만 효과적으로 복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남녀간의 결혼은 그의 영원한 계획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4 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들과 그 외 회복된 모든 훌륭한 교리들을 가르칩니다. 그러한 원리와 교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은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누립니다. 복음을 나누는 일은 이토록 간단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들을 회복된 복음에 관한 대화에 참여시키면서 행복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9년 8월 13일 브리검 영 대학교 졸업식 말씀에서 발췌. 말씀 전문을 영어로 읽으려면 www.newsroom.lds.org를 방문한다.( News Releases & Stories 를 클릭한다.) 주 1. David Van Biema, The Church and Gay Marriage: Are Mormons Misunderstood? Time, 2009년 6월 22일, 49~53쪽 참조. 2. The Publicity Dilemma, newsroom.lds.org/ldsnewsroom/eng/ commentary/the-publicity-dilemma. 3.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년), 49쪽. 4.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2004년 10월호, 49쪽.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4)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창세기 1:28)라고 명하셨습니다. 현대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1995년에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을 발표하며 이 계명을 재천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산의 신성한 능력은 남편과 아내로서 합법적으로 결혼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명하셨[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것이다. 2 0 1 0 년 7 월 호 37
후 기 성 도 의 소 리 성전에 가려고 20 01년에 침례를 받은 이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남편은 영원히 인봉되기 우리가 지상에서 소유할 수 있는 위해 가족과 함께 성전에 가는 일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성전에 가기도 전에 남편이 간질환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큰 상실감에 빠졌다. 그 어떤 물건보다도 영원한 가족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알았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물건 중 유일하게 값나가는 물건을 팔기로 했다. 바로 죽은 남편이 남긴 오토바이였다. 많은 돈을 받고 그 오토바이를 팔면서, 머지않아 그러나 우리 가족이 영원히 성전에 가기 우리 가족은 사랑스러운 인봉되어야 한다는 소망은 위해 조금씩 아버지이자 내 남편인 그에게 돈을 저축했지만 남편이 죽은 이후에 더욱 인봉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집에 도둑을 맞은 후 커졌다. 하지만 남편을 잃고 너무나 기뻤다. 필요한 경비를 모을 홀로 네 자녀를 키우는 처지에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가족을 데리고 캄보디아에서 약 1,600킬로미터나 떨어진 중국 홍콩 성전까지 가는 경비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나와 자녀들은 가족으로서 영원히 인봉 받기 위해 성전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호텔에서 세탁 일을 계속하며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이런저런 일을 하며 거들었다. 그러나 여행 경비를 조금씩 모으던 나는 곧 그런 식으로는 필요한 돈을 모을 수 깨달았다. 잠시뿐이었다. 오토바이를 팔고 일주일이 지난 후, 집에 도둑이 들었다. 교회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를 팔고 받은 돈이 사라졌고, 슬픔이 한없이 밀려왔다. 도둑을 맞고 나서 몇 달 동안 우리 가족은 성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기도를 드렸다. 몇 개월이 지나자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응답되었다. 성전 참여자 일반 보조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그 소식을 듣고서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꿈에만 그리던 성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다른 후기 성도들이 보여 준 관대함 덕분에 우리는 이제 영원한 가족이 되었다. 크홈 코엠리, 캄보디아 * 성전 참여자 일반 보조금은 다른 방법으로는 성전에 참여할 여력이 없는 회원들에게 주는 보조금이다. 선풍기, 진공 청소기, 쿠키 한 접시 때는 여름이었다. 남편이 새로운 직장을 잡아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자동차로 3,200킬로미터를 횡단했다. 새로운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기대감에 들뜨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향과 가족과 익숙한 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새 집에 도착했을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새로 깐 양탄자에 얼룩이 묻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들고는 발 밑에 종이를 깔고 짐을 내렸다. 전에 폭우로 지하실에 물이 찬 경험이 있기에 짐을 모두 내리고 나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하실을 살폈다. Illustrations by Antonio Didonato 38 리 아 호 나
자정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린지 스웰 형제님이 서 계셨다. 그분은 와드에서 유일하게 아는 회원이었다. 좋겠다고 했다. 소방서에서 커다란 펌프를 가져왔고, 마침내 문제가 해결되었다. 다음날 아침, 스웰 자매님과 와드 회원들이 음식과 연장선, 진공 청소기를 가지고 방문했다. 회원들이 보여 준 선행으로 정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결국 짐을 모두 건져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어디로 가든 그곳에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우리 가족을 환영해 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돕는 형제자매들이 있다. 린디 호스 제이콥슨, 미국 유타 주 그날 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다. 세 아이들도 마침내 잠이 들었고, 그레그와 나도 서둘러 잠자리를 준비했다. 우리 둘 다 녹초가 된 터라 어서 빨리 침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그레그는 다른 상자에 있는 짐을 풀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보. 내가 말했다. 오늘은 그만 자요. 내일 아침에 해도 되잖아요. 남편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지하실로 내려갔다. 좀 있자 남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나는 지하실로 달려갔다. 물이 조금 차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었는데 차가운 물이 발목까지 불어났다. 곧바로 우리는 가파른 계단 위로 상자를 하나씩 끌며 위로 옮겼다. 나는 망연자실했고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바닥을 메운 빗물과 섞였다. 우리는 새로운 와드에서 유일하게 아는 회원인 린지 스웰 형제님에게 전화를 걸어 배수 펌프 사용법을 물었다. 스웰 형제님은 간단하게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조금이나마 물건을 더 건져보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자정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스웰 형제님이 선풍기와 습식 진공청소기, 그리고 초콜릿칩 쿠기 한 접시를 들고 서 계셨다.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스웰 형제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여기가 바로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웰 형제님은 밤새 우리와 함께 지하실에 찬 물을 빼내느라 애쓰셨다. 지하실 물 높이가 30센티미터 정도가 되자, 스웰 형제님은 소방서에 전화하는 게 봉사하기에는 너무 바쁘지 않은가 19 97년, 지부 회장님은 집회소 근처에서 지부 회원들이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셨다. 그때는 후기 성도 개척자들이 솔트레이크 밸리에 도착한 지 150주년 되는 해였고, 전 세계 교회 회원들이 펼치는 기념행사에 우리도 동참할 목적으로 봉사활동을 계획한 것이었다. 우리는 길거리를 청소하고 도로 웅덩이를 메우는 일 등을 계획했다. 지부 회장님은 우리 옷은 더러워지겠지만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사람들과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 0 1 0 년 7 월 호 39
후기 성도의 소리 그런데 나는 그 시간에 학교에서 보충 강의가 있었다. 그래서 봉사활동에 나는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나는 우연히 모든 발자취엔 신앙이라는 소책자를 보게 되었다. 성도들이 미국 서부로 이동하면서 겪은 온갖 고난에 대해 읽고 나는 가슴 깊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안락한 집을 버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막으로 떠난 사람들도 있고, 여행길에서 모든 가족을 여의었으면서도 힘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성도들도 있었다. 그들은 질병과 고통과 배고픔과 가난, 그 모든 환난 속에서도 서부로 이주하면 박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신앙이 있었다. 교회가 계속 전진하도록 초기 성도들이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고,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희생과 신앙 덕분에 나는 지금 복음 안에서 축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내가 하는 희생은 얼마나 작은 일인가. 겨우 두 시간을 내어 봉사하면서 몇몇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라는 것인데, 그마저도 하지 않을 구실을 나는 찾고 있었다. 결국 나는 보충 강의는 잊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몸은 더러워졌지만 찾아와서 교회에 대해 묻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활동에 참여해서 나는 참 행복했다. 그리고 강의에 몇 번 빠지기는 했지만 아무 탈 없이 대학교를 졸업했다. 엔고지 프랜시스카 오코로, 나이지리아 시칠리아에서 나를 잊고 봉사하던 시절 이름은 오마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우리는 십대 제 인테르도나토입니다. 이메일은 딸 두 명과 딸들의 친구 한 명도 만나게 그렇게 시작했다. 피오렐라 이탈리아의 아들이죠. 제 어머니의 침례를 아직도 기억하시면 좋겠네요. 30년 전 선교 사업을 할 때 나와 동반자는 시칠리아 섬으로 이동하여 지중해 연안 아름다운 도시 시라쿠사에서 봉사했다. 일요일이면 우리는 그 지역의 일부 후기 성도들과 오래된 저택에서 만나, 저택 거실에서 성찬식 모임을 했다. 선교 사업은 어려웠다. 침례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 도시에 전임 선교사가 열여섯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되었다. 그 자매님은 최근에 남편을 여의었고, 이제 혼자서 십대 자녀 네 명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인간의 행복 추구라는 슬라이드를 보여 주었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았다. 그 미망인과 장남, 십대 딸 두 명, 미망인의 어머니와 딸의 친구는 결국 침례를 받았다. 선교 사업을 마친 후에 나는 그 가족과는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는 소식을 듣지 못해 딸의 친구였던 피오렐라는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했었다. 도시 곳곳은 이미 여러 차례 계곡이 내려다 제 어머니는 평생 복음에 가가호호 방문을 받아 본 보이는 산마루 충실하셨고 1983년에는 메시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동반자와 도시 지도를 살피다가 우리 아파트에서 몇 끝에서 동반자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영혼을 지부의 훌륭한 교회 회원과 결혼을 하시고 성전에서 인봉을 받으셨습니다. 다해 간구했다. 그리고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외곽에 피오렐라의 아들이 보낸 가가호호를 시작했다.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들판을 지나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산마루 끝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간구했다. 그러고 나서 마을 주민 대다수가 사는 다세대 주택 단지에 들어가 가가호호를 했다. 마침내 우리는 검은 옷을 입은 한 40대 여성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검정색 옷을 입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 방법을 바꿔서 구원의 계획을 강조했다. 그 여성은 우리에게 40 리 아 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