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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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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제자로 부르시니 1.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에 무엇인가를 버려두고 즉시 순종하였다. 그들이 버린 것은 배와 그물이었는 데, 그것은 곧 생업을 포기한 것이다. 2.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전도나 선교를 의미한다. 1. 따르다 는 제자도의 핵심 동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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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은함께걸으신분-동행하신분 ( 신 1:33) 이러한사랑은하나님의인도하심을통하여우리에게보여준다. 특히 1:33에보면하나님은우리의삶의전과정을인도하시고 동행하신분 ( 홀렉, 분사형, 걸으신분 ) 으로묘사하고있다. 우리의모든역사를주장하시고우리의갈길, 할일, 그리고구름

성경개요 24 예레미야서개요 NYPPC 예레미야선지자는눈물의선지자이다. 그는예루살렘의멸망을예언하면서동족들로부터많은 핍박을받는다. 예레미야는하나님을향하여울고, 백성들을위하여운다. 하나님의말씀을 듣기를거부하는유다인의마음은오늘도많은사람들의태도에서깨닫게된다. I. 명칭본서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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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11 SPRG Vol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두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의 바라 이고 다른 것은 죄 를 용서하다 의 살라흐 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인데, 이것은 온 세상이 그의 말씀에 절대 따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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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이야기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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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광 (The Glory of the Lord) 에스겔서 강해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스겔 38:23) C, 나라들을 향한 예언들 (24-32장) Lesso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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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51역사지도서3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 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 초기, 256.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세대를 일컬어 겁이

Tran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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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1학기 구약성서배경사 교수님 : 장영일 교수님 제1장 잠언 9장 10절에 대한 소고 잠언 9장 10절을 고찰함으로써 성서는 어떤 의미에서 지혜의 책이며, 이 지혜의 책 안에 어떻게 그렇게도 주옥 같은 신학 사상이 농축된 형태로 집약되어 있으며, 이 놀라운 이스라엘의 지혜를 오늘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 및 언어와 풍습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요긴한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잠언 9장 10절은 생각하면 할수록 그 의미가 심오하고 가히 신/구약성경 전체를 포용할 만큼 넓은 폭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짧은 두 문장으로 구성된 이 구절의 문학적 형태는 우리로 하여금 탁월한 문장가들의 기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이 두 문장은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문장의 앞부분에서 질문을 하고 뒷부분에서 대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질문과 답변의 형식에 있어서도 보통 탁월한 문학적 수사학적 기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평행법을 가리켜 시문학적 관점에서 교차대구적 평행법 이라 부른다. 교차대구적 평행법 : 문학적 기교 가운데 하나인 이 평행법들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뒤에서 다시 한 번 비슷한 내용 또는 어휘로 평행/반복해 줌으로써 독자 또는 청자들의 감정과 이성에 탐미적 효과를 일으키는 기법이다. 이 구절을 평행법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ab : b a 이다. 즉 이 문장에서 지혜의 근본 (a)은 명철 (a )과 평행을 이루고, 야웨를 경외하는 것 (b)은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 (b )과 평행을 이룬다. 본래 평행법의 기본 형식은 ab : a b 이어야 하나, 이 구절에서는 그 순서의 변환을 통하여 ab : b a 가 되었으므로 교차대구적 평행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혜와 기지가 번뜩이는 질문과 답변이 이 두 문장에 들어 있다. 여기에서 고대 유대인 지혜학교의 교육방법을 엿볼 수 있고, 오늘날까지도 세계 최고의 교육방법을 자랑하는 유대인 학교와 가정의 교육적 면모를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유대인의 학교제도는 대체로 솔로몬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며, 이 솔로몬 당시의 학교는 일종의 (궁중) 지혜학교로서 왕손과 귀족의 자녀들에게 처세술과 통치의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였다고 구약 학자들은 생각한다. 잠언서와 전도서를 읽어 보면 그 내용이 주로 이와 같은 왕손과 귀족의 자녀들 곧 권세와 부귀를 이미 소유한 통치계급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이 잠언서가 솔로몬 당시부터 시작된 궁중 지혜학교의 교과서였음을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이 이러한 궁중의 지혜학교를 이스라엘에 처음 세울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시대를 이스라엘의 문예부흥 시대라 부를 만큼 그가 이스라엘의 그 어떤 왕보다도 문화(교육)의식이 높았고, 또 그의 탁월한 외교 수완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바, 애굽 황실과의 연혼관계를 통하여 이미 그곳 애굽에서 수천 년 동안 발전해 온, 그리고 당시 중동에서도 널리 알려진 애굽의 궁중 지혜학교 제도를 수입함으로써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잠언 9장 10절의 핵심적 질문은 무엇이 진정한 지혜이며, 어떤 사람이 진정한 지혜자인가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질문은 신론적 질문이요 동시에 인간론적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 명백하면서도 심오하고 포괄적이다. 참된 지혜는 곧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야웨(하나님) 를 거룩하신 분 과 동의어적으로 일치시킴으로써 야웨 하나님의 정체가 거룩하신 분 임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경외하는 것 (이르얕)을 아는 것 (다앝)에 동의어적으로 일치시킴으로서 야웨를 경외하는 신앙 행위가 어떤 것임을 점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지혜에 대한 추구 야웨를 경외함 거룩하신 분을 앎 명철(지혜의 도착점) 참된 지혜는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전12:14)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을 말한다. 신앙의 출발점은 이와 같은 하나님 이해에서 비롯되며, 이와 같은 하나님 이해는 어떤 의미에서 구약성서를 관통하는 사상이므로, 이 말은 곧 구약의 내용 전체를 요약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성서를 통해서, 곧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래 약 700여년 동안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끊임없이 묻고 터득한 야웨 하나님의 정체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두려운 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대의 역사는 범죄한 백성이 그 통치자이신 야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아래 끊임없이 매맺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성도가 깨닫는 하나님의 성품은 두 가지 : 1 공의, 2사랑 구약에서 부각되는 하나님의 모습 : 공의의 하나님 신약에서 부각되는 하나님의 모습 : 사랑의 하나님 사람이 우선적으로 공의의 하나님 곧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지식 곧 지혜의 근본이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바, 사람이 이 심판의 하나님을 모르기에 교만 방자하고 우상을 섬기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는 무익 하고 헛되고 악한 인생을 살게 되며, 이 공의의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온유 겸손하고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혜롭고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안다고 해서 지혜를 완전히 터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잠언 9장 10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조한다. 진정한 지혜는 거룩하신 하나님 곧 모든 신들과 구별되는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한 차원 더 높은 신지식, 곧 하나님을 아는 것 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야웨와의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될 때, 인간은 지혜의 완성 곧 명철에 도달한다. 그 지혜를 터득한 자야말로 인생의 참된 가치를 분별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바라보게 되고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며, 궁극적 행복의 절정에 도달하는 사람이 된다. 호세아 6장 6절에서 이스라엘은 야웨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과 요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듣게 되는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헤세드)에 이스라엘 백성도 헤세드 로서 응답할 것과 그 사랑의 응답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알고 깨닫는 것을 통하여 가능한 것임을 이 구절은 강조하고 있다. 예언자 호세아를 통하여 강조되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은 구약성서에서보다 신약성서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표현되는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사람이 이 세상 어느 종교 어떤 철학사상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가장 숭고하고 영원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크고 완전한 사랑인 것이다. 잠언 9장 10절에서 파악할 수 있는 지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종합하여 말한다면, 인간이 온전한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며, 이 양면을 다 구비할 때 참된 지혜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이 양면을 가운데 그 어느 한 가지라도 미비한 지혜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으로 대변되는바,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을 동시에 아는 지혜를 가르친다고 볼 때, 이 구절이야말로 신구약 성경의 양대 신학을 통합하여 하난의 엑기스로 표현한 요절 중 요절이요 지혜 중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언 9장 10절의 빛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지혜의 정상이요 최고봉이다. 우리는 성경(잠언)의 한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조차 성경의 문화적 배경, 즉 역사, 지리, 종교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요긴한지를 엿볼 수 있었다. 고대 중동의 궁중 지혜학교와 솔로몬 시대의 문예부흥 등에 대한 언급은 성경의 역사, 지리적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고대문학에 나타나는 시적 평행법에 대한 언급도 고대 중동의 우가릿 문헌이나 바벨론 문헌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즉 성경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다신론적 종교와 문화 속에서 변덕스럽고 참을성 없고 잔인하기까지 한, 수많은 남녀 신들을 숭배하며 살았던 주변의 이방 국가와는 달리,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요 심판주요 완전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으로서의 유일신(야웨 하나님) 사상을 고수했던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특하고도 특징적인 신앙전통 (전승)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장 지리적 문화적 배경과 구약신학 우리가 가나안의 지도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의 역사의 현장으로서 지구상의 모든 장소를 제처놓고 하필이면 그 척박하고 돌 많고 메마른 가나안 땅을 택하셨을까? 인류를 구원할 진리가 담긴 성경이 쓰이는 곳이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 왕 중의 왕 예수께서 태어나시고 사역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실 땅으로

가나안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 인간이 성인이 되기까지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지리적 조건이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 할 때,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아브라함을 이주하게 하시고 그 후손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시마고 약속하시고 심지어는 당시 세계적 곡창이자 풍요의 상징인 애굽에 정착하려던 야곱의 자손으로 하여금 기어코 애굽을 떠나 그 땅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셔서 마침내는 그 땅에서 이 백성이 약 천년(주전 1300~300년) 동안 지나면서 성경을 생산하도록 하신 데에는 하나님 쪽에서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1. 왜 가나안 땅인가?(긍정적 조건) 구약성경의 지리적 배경을 가리킬 때 통용되는 하나의 용어가 비옥한 초생달 지역 (Fertile Crescent)이라는 용어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제2성전, 즉 스룹바벨의 성전 시대까지, 다시 말하면 구약성경이 오늘의 형태로 완성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래했던 역사적 무대를 가리키는 말로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과 현재의 터키 일부와 가나안 전지역을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이 지역에 나일강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과 같은 큰 강이 흐르고 있어 비옥할 뿐만 아니라, 이 비옥한 인간의 거주 지역 즉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동쪽 연안, 애굽의 나일강 델타 지역을 잇는 그 땅의 모습이 초생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아브라함 이래로 구약성서가 완성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왕래하는 동안 쓰여졌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구약성경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역사적 무대라 할 수 있는 이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벗어난 적은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무대, 즉 구약성경의 지리적 배경이 이 비옥한 초생달 지역 에 국한된다는 사실은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거쳐 간 장소를 하나하나 확인해 볼 때 분명히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서북쪽 방향으로 유프라테스강 하란(몇 년 거주) 서남방의 가나안 땅 세겜과 벧엘 남방(네게브)에 기착 애굽(기근을 피해) 가나안(헤브론) 이삭은 주로 브엘세바, 헤브론, 그랄 등지에 거하면서 한 번도 가나안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를 속여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더니 형의 미움을 받아 멀리 외삼촌 댁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서 20년 넘게 살다가 역시 거부가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아브라함 때처럼 그도 가뭄과 기근을 당하여 그 아들 요셉이 총리대신으로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 200년 이상 그곳에 살면서 큰 민족으로 번창하다가 모세 때에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산을 거쳐 여호수아의 인솔하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사사 시대를 거쳐서 사울, 다윗,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를 지내다가 르호보암 왕 때에 남북으로 나라가 분열 되었고(922/1 B.C.), 여로보암이 건립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약 200여 년간 지속하다가 주전 722/1년에 앗수르에 망하여 그 백성이 중동 각지로 끌려감으로써 왕국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남왕국 유대는 홀로 남아 약 130여년 더 지속하다가 주전 587/6년에 바벨론에게 망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종살이하다가 페르샤(바사)의 초대 황제 고레스의 해방령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 성전을 재건하게 되고, 느헤미야 때에는 예루살렘 성벽까지 복원함으로써 왕국이 회복될 듯하더니 결국 주전 332년 희랍의 알렉산더 대제의 침략으로 유다마저도 메시야 왕국 재건의 꿈이 좌절된 채 그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 을 끝에서 끝까지 왕래하는 역사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이 지역을 이렇게 왕래하는 동안 구약성경은 태어나게 된 것이다. 1000년 이상의 길고도 긴 역사 속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 반경을 고려할 때 비옥한 초생달 지역 을 가리켜 구약성경의 지리적 배경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A. 지구의 중심으로서의 가나안 세계 지도를 펴놓고 가나안 땅의 위치를 바라볼 때 확인하게 되는 사실 하나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 의 중심이기에 앞서 지구의 중심이라는 사실이다. 가나안 땅은 역사의 출발점이요 동시에 종착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나안 땅이 지구의 중심 된 의미는,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성경 저자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데 있었을 것이다. 에스겔 : 가나안 땅을 가리켜 지구의 중심 또는 세상의 중앙(겔5:5; 38:12)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입장은 스가랴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미리 예정하신 땅이라는 관점에서 가나안 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겔20:6, 15; 슥7:14)고까지 이상화하였다. 신명기의 저자도 가나안 땅은 세초에서 세말까지 야웨까지 (돌보시고) 권고하시는 땅 (신11:12)이라 말하며, 레위기 저자도 가나안 땅이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레20:24; 출3:8; 렘11:5)이요, 야웨께서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유업 / 유산으로 물려준 땅(레20:24)이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이 가나안 땅을 선택하고 구별하여 자신의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장차 거처할 처소로 삼으셨고, 때가 되어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시어 (창12:1) 결국 이곳으로 이주케 하셨던 것이다. 이어서 이 땅에 오랫 동안 정착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소중한 약속을 받아 낳은 자손인 이삭이 장성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중앙에 위치한 산, 곧 미래의 솔로몬 성전이 세워질 자리가 될 모리아 산을 지시하시어 (창22:2; 대하3:1) 그곳에서 자기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도록 명령하심으로써 장차 인류 역사의 심장부로 예정되어 있었고, 이 땅에서 인류의 구세주요 왕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나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지구의 중심, 아니 세계 역사의 심장부로 선택하시사 그 땅의 중앙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역사의 총사령부로 삼으셨고,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으사 왕으로 즉위하실 우주적 으뜸 도시로 삼으셨다. 여기에서 전 인류를 구원할 진리의 말씀 곧 (구약)성경이 일차적으로 완성게 하시고, 여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게 하셨으며,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도록 계획하시사 종말로는 이곳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인류 역사가 끝나고 신천신치로서의 천국이 시작되도록 예비하셨던 것이다. B. 중보의 땅으로서의 가나안 가나안 땅이 3개 대륙의 중앙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세계 3대 문명권의 교차로(Intersection)에 위치함으로써 문명의 매개자 곧 중보자의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데 있다. 고대 중동에서 소위 3대 문명권 :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히타이트(헷) 문명 문화의 전달 통로의 중심에 가나안 땅이 자리잡고 있어서 불가피하게 가나안은 이들 3대 문명의 전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가나안 사람 (크나아니) : 호리족 언어로서 진홍색 염료 를 의미했는데, 차츰 그 의미가 (진홍색 염료로 물들인) 비단옷감 으로 발전했고, 마지막으로 (비단 옷감을 파는) 상고 / 장사꾼 으로 발전하였다. 가나안 땅은 상고/장사꾼의 땅이었고 이스라엘은 그런 의미에서 장사꾼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을 통과하는 이집트 문명의 극상품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극상품 그리고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언제나 상대편 수입국에 전달되기 전에 먼저 가나안 사람들이 (재빠르게) 입수하여 그 진기한 맛을 시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 3대 문명의 진수를 맛보는 자, 곧 문화의 시식자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는 혜택은 지혜와 창의, 그리고 자유와 희열과 행복이다. 문화의 극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지혜와 창의, 그리고 그 창의적 욕구의 달성에서 맛보는 자유와 희열과 행복은 문화의 생산자와 문화의 전달자(이스라엘)가 공통으로 누리는 혜택이다. 가나안 땅은 위의 3대 문명권에 비하여 문명 대국을 형성할 지정학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문명국이 되려면 그에 앞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데, 가나안은 우선 땅이 좁고, 그 땅마저도 좌우상하로 길이 막혀 답답한 지형이며, 그리하여 경제 대국의 형성 요소인 인구가 크게 번창할 잠재력도 없고, 무엇보다 경제 대국의 필수 요소인 큰 강은 물론 큰 평원도 없는,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광야와 골짜기와 산맥으로 이어져 있으므로(신11:11), 결과적으로 사람이 살기에는 대단히 힘든 땅이었다. 강대국이 될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하여 이웃 대국 애굽이든 앗시리아든 을 한번도 침략한 역사도 없고 이웃 강대국들에게 상처를 준 역사도 없이 언제나 약자로 머물러야 했으며, 그리하여 끊임없이 생존의 지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세계 만민 사이에서 구원의 중보자가 될 것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사장이 예배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 앞, 곧 제단에 나아가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인류를 대신하여 고통을 받음 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진리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해 주는 말씀으로서의 성경이 생산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 이집트 문명 이집트 문명( 나일 문명 )은 피라미드로 대변되는바, 피라미드의 문화사적 가치는 그것이 완성된 이래 4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화인이라면 그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을 정도로 유명하며 신기하고 희귀하고 오래된 문화유산 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피라미드는 평균 2.5톤 무게의 돌 200만 개(18톤 트럭으로 37만 대의 분량)를 쌓아 지은 높이 146m(480피트)의 건축물로서, 이 피라미드 하나를 건설하는 데 20여 년 동안 연인원 20여만 명이 동원되었고, 여기에 사용된 돌은 나일강 델타 지역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석회암으로서 대부분 기제에서 약 800km 떨어져 있는 나일강 상류의 테베 고대 상이집트 왕국의 수도, 현 룩소르 로부터 뗏목으로 운반해 온 것이다.

피라미드는 일종의 왕릉으로서 그 배경적 동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고대 이집트의 왕/바로/파라오( 큰 집, 페르 아아)는 만물의 생명의 근원으로 간주된 태양(신)의 화신으로 신격화되어 있었는데, 따라서 그의 육신은 죽어도 마치 서쪽 사막으로 진 해가 아침에 다시 부활하여 떠오르듯이 영원한 세계에서 부활/영생한다고 생각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피라미드는 파라오 신이 사후 세계에서 거주할 집/거처이자 신전으로 간주되었고, 이 신전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써 (무적의 괴물) 스핑크스를 세웠던 것이다. 이집트의 찬란한 건축 문명은 피라미드 하나로 다 설명될 수는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고 엄청난 것이다. 이집트의 신왕국 제18-19왕조 당시의 수도였던 테베(현 룩소르)에 가보면 관광객의 입들이 더 크게 벌어져 다물기가 힘들 정도다. 룩소르 신전 전면에 세운 두 개의 석주, 곧 태양 광선 모양으로서 파라오의 능력(생식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돌 한 켜를 잘라 세운 것으로 그 높이가 30m, 무게가 1,100톤이나 된다. 거대한 석조 건물들의 건설 과정은 현대인의 상식으로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여서, 고 대 이집트야말로 자유자재로 돌을 확대 또는 축소시킬 수 있는 마술을 구비한 박수 와 술사 (출7:11, 22; 8:7; 9:11)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추측케 한다. 이집트의 문명은 건축 문명에 그치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의술 또한 현대 의학적 상식을 능가할 정도의 탁월한 수준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투탕카문의 미라 : 아직도 미국(1986년)과 한국(1988년) 등을 거쳐 가며 전 세계를 한 바퀴 둘러 전시 중인바, 그의 두개골을 의학자들이 검사한 결과 3300년 전인 그 시기에 뇌수술을 받은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8세에 왕이 되어 약 8년간 통치하다가 사망했는데, 아마도 그의 죽음은 뇌암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의 문명이 이른 시기부터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나일강이 이집트에게 제공하는 풍요 때문이다. 비옥한 농지와 그 사이로 흐르는 나일강, 곧 무한대의 생수를 공급해 주는 젖줄이라 할 수 있는 이 나일강 때문에 애굽은 일찍부터 배부르고 등 따스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이러한 풍족한 삶을 기반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다. 서쪽에는 사하라 사막이, 동으로는 홍해가, 북으로는 지중해가 천연적인 벽이 되어줌으로써 외적의 침입으로부터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 지속적인 안정과 번영을 토대로 찬란하고 위대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탁월함을 다 설명하려면 한이 없다. 찬란한 문명은 서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이 가로막혀 있어 서진은 불가능하고 반드시 동쪽으로 전달되게 되었는데, 이 때 반드시 통과하게 되는 다리가 가나안 땅이었던 것이다. 가나안의 문화와 전통은 일찍부터 이집트의 영향하에 있었고, 이집트의 문화의 흔적은 성경 이곳저곳에 빈번하게 나타난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제도와 사상이 대부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대 중동의 보편적 문화사의 관점에서 볼 때 가나안은 그 일부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성경에 반영된 제도와 사상 가운데 이집트의 것과 유사한 것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집트에서 왕을 태양신의 화신으로 신격화하여 그가 인간인 동시에 신으로 간주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시편 또는 예언문학에서 메시야를 신적인 존재로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집트 제18왕조 당시 아켄아톤 왕 때 잠시나마 아톤 신을 중심한 종교개혁을 시도하고 이스라엘의 유일신관과 유사한 신관을 주장하였다는 것, 이집트의 제사장 가문은 특권층으로 구별되어 세습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것은 고대 중동의 보편적 전통이다), 특히 바로와 그 왕족 출신이 제사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는 점, 이집트의 장례법과 피라미드 제도에서 엿보이는 부활과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성경의 개념과 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점도 있다는 사실, 이집트의 지혜서와 구약성경의 지혜서에 문학적 사상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 등, 구약성경의 문화와 이집트 문화 사이에는 그 영향면에서 불연속성도 많지만 연속성도 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까지 적어도 천년 이상이나 가나안의 통치자는 이집트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 메소포타미아 / 바벨론 문명 이집트 문명이 주전 3,000년경에 시작되었음에 반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 특히 바벨론 문명은 주전 3,200년까지 소급된다. 그만큼 메소포타미아 문명 또한 오래된 문명으로서 세계 어느 문명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위대하고 찬란 하였다. 인류 문명의 뿌리로 일컬어지는바, 세계 최초의 글자(쐐기/설형 문자)가 고대 바벨론 왕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수메르에서 발명되는데, 그 연대를 대략 주전 3,200년경으로 잡는다. 이른 시기에 인류 문명의 뿌리가 이곳에서부터 발원하는 중요한 동기 역시 이집트의 경우와 비슷하다. 수메르도 큰 강 가까이에 위치한 도시로서, 이 도시 근처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만날 뿐만 아니라, 비옥한 땅과 풍성한 물 그리고 인간이 농사를 지으며 거주하기에 적당한 기후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정착하기 좋은 조건 때문에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도시가 형성되고,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말과 글을 개발하게 되고, 이러한 기본적 조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안정되고 부강한 국가를 이룩함으로써 마침내 여기에서 찬란한 문명의 꽃은 만발하게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신속하게 문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지역이 안고 있는 천혜적 조건으로서의) 물질의 풍요와 안정 때문이었다. 물질의 풍요는 무엇보다도 먼저 발전된 농경 기술의 개발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러한 농경기술의 개발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먼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도 수렵에 의존한 식량공급 방식을 따르고 있었음을 반하여, 이곳에서는 이들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생활 조건, 즉 두 개의 거대한 강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옥한 농토에서 살아야 하는 조건에 의하여 수렵을 포기하고 농경으로 급속히 전환할 수 있었다. 대체로 직접적이고 용이한 식량 조달을 추구하는 수렵생활에 비하여, 농경생활은 적어도 3개월 이상의 노력과 인내를 통한 간접적 식량 조달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 농경 문화에로의 진입이 용이치 않았던 것이다. 특히 물살이 빠른 강으로 유명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범람을 지혜롭게 통제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하여 여기에서 소위 관계농법이라는 것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게 된다. 수렵과 농경의 수확의 차이는 후자가 전자의 수십 배에 해당하고, 관개기술을 갖춘 농사와 관개시설을 갖추지 못한 농사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찍부터 수렵을 포기하고 농경을 선택하여 거기에다 관개기술까지 동원하여 농사를 지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식탁이 얼마나 풍성했을까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고대 바벨론 문명의 특징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중동의 다른 나라들보다도 훨씬 더 발전된 사회제도, 즉 법 제도를 갖고 있었다는데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함무라비 법전 이다. 함무라비(통치기간 : 대략 주전 1955~1913 또는 1728~1686년) 대왕은 제1바벨론 왕조의 여러 왕들 가운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위대한 왕으로서, 그는 우르에 있는 지구랏과 같은 형태의 에테멘안키를 바벨론(도시)에 세웠고, 특히 그가 선포한 법전은 당대의 것으로는 가장 발전된 형태와 내용으로 되어 있는, 그리고 여러 부분에서 구약성경의 법전들(출21~23; 레17~26; 신12~26)과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 함무라비는 샤마쉬 신(태양신)으로부터 법을 하사받으며 그 법은 돌비에 새겨지고, 이 법을 어길 경우 무서운 신의 저주가 있게 됨을 또한 선언하고 있다. 이집트 문명이 자연과학 계통(수학, 기하학, 미술, 의학, 물리학, 석조/건축학 등)에서 우수하다면 바벨론 문명의 우수성은 인문과학 쪽에서 두드러진다. 이집트 사람들이 주로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로 글을 쓰거나 석조 건물의 기둥 또는 벽에 글 또는 그림을 새겨 놓은 것에 반하여,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일찍부터 설형문자로 수십만 개의 점토판에 글을 남김으로써 4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현대의 수많은 고대어 전문가들로 하여금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풍습과 사회제도와 신앙생활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쐐기문자로 기록된 이들 수메르어 또는 아카드어 점토판 문서들은 대부분 같은 셈족 언어에 속하는 아람어와 히브리어와 관련됨으로써 구약성경의 여러 난해 구절들이 이들 아카드어 문서들의 조명을 받아 쉽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서들 가운데 특별히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었던 것들로서 에누마엘리쉬(창조 설화), 길가메쉬 서사시(홍수 설화), 함무라비 법전 등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문명도 이집트에 못지않게 현대인들이 놀라고도 남을 만큼 찬란하고 위대하였음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밝혀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계속된 제국들의 역사라 할 만큼 고대 바벨론 제국(함무라비 당시)과 앗시리아 제국과 신바벨론(느부갓네살 당시) 제국 그리고 페르샤 제국이 계속하여 고대 중동을 제패한 역사였기에 이 제국들이 그 제국의 막대한 노동력과 부를 동원하여 이루어 놓은 건축 사업은 현대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엄청난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세가지 : 니느웨 성과 바벨론 성, 그리고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느부갓네살왕의 공중(에 매어달린) 정원 니느웨 :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도시 가운데 하나, 산헤립이 신앗시리아 제국의 수도로 정한 후 약 100년간 세계 문화의 중심지, 니느웨 성 전체의 규모는 인근 도시까지 포함하여 그 길이가 약 30마일(48km) 폭이 10마일(16km) 정도 되었고 왕궁과 행정 건물이 몰려 있는 니느웨 성 자체만으로도 둘레가 약 12,5km(8마일), 성벽의 높이가 30m 정도이며, 성벽의 두께는 성벽 위로 네 대의 전차(마차)가 달 릴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웠고, 성벽 밖으로는 깊이 20m 넓이 50m의 해자가 둘러 있었다. 바벨론 성 : 두 겹의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바벨론 성은 정방형으로 바둑판처럼 설계되어 있었고, 각 변마다 15마일의 길이로 둘레는 77km나 되었으며, 성벽의 높이는 25m(50규빗), 성벽의 지하 깊이는 35피트(10m)로서 성벽의 두께는 9m(32피트)로서 성벽 꼭대기로 두 대의 4두 마차가 왕복으로 지나가고도 남는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 또 성벽을 쌓은 벽돌 날개의 크기는 30cm(입방)의 넓이에 두께는 3.5인치(8.89cm), 성벽 둘레에는 100개의 놋문과 250개의 망대(60규빗 높이)가 세워졌고, 성 중간으로 내리흐르는 유프라테스강 밑에는 두 지역을 잇는 폭 15피트 높이 12피트의 터널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 강 위로는 길이가 120m이고 폭이 9m나 되는 다리가 두 지역을 잇고 있 었으며, 성 주위에는 해자가 둘러 있었다. 바벨론 제국 스스로가 자랑하던 그 영화와 부귀는 이 바벨론 성벽 안의 유프라테스 강변에 세워진 마르둑 신전을 보아 짐작할 수 있다. 이 신전 안에 마르둑과 이쉬탈의 금신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신상 앞에 설치한 식탁도 금이었고, 두 마리의 사자도 금이었으며, 높이 18피트의 인간상도 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공중정원 :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서,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메대 출신 왕비의 간청에 의하여 바벨론 성 안에 지은 거대한 인공 정원 또는 테라스 정원으로서, 모양은 정방향이었고 그 한 변의 길이는 4플레트라(약 120m)였으며, 이 정원의 높이는 바벨론 성벽의 높이(25m)에 해당, 성내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눈에 공중에 매달린 지붕 위의 정원처럼 보였다. 정원은 수십 개의 석조 교각들에 의해 떠받쳐 있었고, 그 교각들 위에는 밑으로 물이 새지 않도록 석재와 목재로 된 특수 재료가 깔려 있었고, 이 정원 바로 밑은 또 다른 거대한 건물의 공간이 되어 바벨론 시민들의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수력을 이용한 펌프로 옥상 정원에 물을 대어 정원의 각종 식물과 화초와 나무들이 사시사철 무성하였다.

신관, 우주관, 인간론 등의 고대 관념들을 고려할 때 성경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의 사상적 연속성을 부인하기 힘들고,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 제도에 있어서도 그 영향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구약성경 시문학의 운율법, 평행법, 알파벳 시 형태는 메소포타미아의 시 형태와 긴밀한 영향 관계 속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3) 히타이트 문명 히타이트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 비교할 때 그 연대, 즉 그 문명의 전성기(1600~1300B.C)에 있어서나 그 문명의 수준에 있어서 훨씬 뒤지는 것이 사실이나 그 나름대로의 특징적이고 우수한 문명을 갖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히타이트 문명의 뿌리에 대하여는 여러 가설이 있으나 대체로 주전 2000년경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온 호리족의 문화를 전수받은 것으로 본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경우에서처럼 이 문화권도 하나의 큰 강, 즉 할리스 강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되었는데, 그 위치는 보통 아나톨리아 또는 소아시아로 불리는 현 터키의 동쪽 중안 고원지대를 가리킨다. 고대 문서에는 이 지역을 가리켜 하티라 불렀고, 구약성경에서는 이 지역 출신을 가리켜 헷 족속이라 불렀다. 하투실리스 1세가 주전 1630년에 쿠샤라에서 하투샤스로 천도함으로서 히타이트 문명은 그 전성기를 맞게 되고, 그 후 이 문명은 히타이트가 (1200년경에) 해양족에게 망하기까지 지속된다. 400여 년 동안 지속된 히타이트 문명의 특징 1 당시의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철기문화가 시작된다는 점 2 당대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를 개발했다는 점 고대 수메르인들이 개발한 마차는 당나귀가 끄는 2륜 또는 4륜의 느린 것이었음에 비하여, 히타이트가 개발한 전차는 2륜 전차로서 말 두 필이 끄튼 경쾌한 쌍두마차였고, 그 바퀴는 네 개의 바퀴살로 되어 있는 이집트가 전차에 비하여 여섯 개의 바퀴살이 달린 것으로 당대의 그 어떤 나라의 전차보다 빠르고 견고한 전차였다. 히타이트 군대의 전차는 아직도 놋과 구리 문화만을 알고 있었던 당대의 주변 국가에게 헷 사람의 말과 전차 소리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로 공포와 위협의 대상이었다. 히타이트 종족이 그 주축을 이루는 소위 힉소스 족 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약 200여 년간 이집트를 지배하다가 아모세 1세 때에 가나안 지역으로 추방당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주전 1595년 강력한 군대와 전차로 무장한 히타이트 왕 무실리스 1세의 군대에 의해 메소포타미아의 제1바벨론(함무라비) 왕조의 군대가 속수무책으로 멸망을 당한 얘기 또한 유명하다. 주전 1300년 오론테스 강 기슭 카데쉬에서 있었던 이집트 람세스 2세의 4개 군단과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스의 3,500대의 전차 부대와의 대결에서 람세스가 처참하게 패배한 사건은 이집트와 히타이트 양국에서 대서특필한 사건이다.

철제 무기의 독점자로서 그리고 전차 무기의 수출국으로서 히타이트가 차지한 문화 정치 군사적 기득권과 종주권의 효력은 막대한 것이었고, 이와 같은 기득권에 기초하여 히타이트 제국은 수많은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들고 그들 속국들과 맺은 주종계약은 고대 중동의 문화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유명하다.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세워진 히타이트 수도 하투샤스(현 보가즈코이)는 현재의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져 있는 도시로서, 하나의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채였음이 드러났다. 1900년에 유고 빙클러에 의하여 발굴된 이 정방형의 성채는 거대한 암반들이 기초를 이루는 지대 위에 건설되어 있었고 성 주위로 깊은 계곡이 둘러싸고 있는 천연적 요새였다. 왕궁 서고에서 발굴된 점토판만도 만 개가 넘고, 그 문서는 주로 히타이트어와 당시 국제어였던 아카드어로 되어 있는 외교문서로서 히타이트가 얼마나 큰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히타이트 문명이 구약성경에 끼친 많은 영향 가운데 주석가들이 무엇보다 먼저 언급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히타이트 조약 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57개의 고대 중동의 국제적 조약문서들 가운데 30개 이상(60%)이 히타이트와 그 속국 사이에 맺어진 것임을 감안할 때, 당시 이 히타이트 제국에서 계약이라는 양식이 창안/개발되고 이 제국의 문화권에서 주도적으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히타이트의 황제와 그 속국의 봉신 사이에 맺어진 이 국제적 조약을 가리켜 학자들은 종주/주종계약 또는 봉신 계약 이라 부르는데, 이 히타이트 조약의 양식은 성서에서뿐만 아니고 앗수르와 이집트와 바벨론의 문서 가운데 에서도 확인되고 있음을 볼 때 이 양식이 국제적 양식으로 규범화되어 통용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히타이트 주종계약의 양식이 구약성경의 계약 양식과 유사한 점 1 계약의 주체로서의 종주의 명칭과 속성에 대한 소개 2 계약의 주체와 봉신 사이의 역사적 관계 3 봉신이 준수해야 할 계약법/조항 4 계약 문서를 어떻게 보관하고 주기적으로 언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 사항 5 계약의 증인으로 언급되는 신들의 이름 6 계약을 준수했을 때와 어기었을 때에 초래하게 될 저주와 축복의 내용들 찬란한 문명들의 중심적 위치에 서 있었던 이스라엘이 이들 문명의 열매들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터득한 정신적 가치는 자유와 해방과 창의, 용기와 평안과 치유, 그리고 기쁨과 희열과 행복이었다. 찬란하고 위대한 3대 문명들이 한 곳에 집약적으로 농축된 바, 그 문명의 엑기스가 곧 성경이라 생각할 때, 성경이야말로 찬란한 고대 문명의 종합이자 통합으로서 가히 세계 문명의 최고봉이라 말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2. 왜 가나안 땅인가?(부정적 조건) A. 고난의 용광로 가나안 땅이 고난의 완충지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1 가나안 땅은 3대 강대국(제국)들의 접경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 3대 제국들은 앞에서 다룬 3대 문명권, 즉 이집트와 바벨론과 히타이트 제국들을 가르킨다. 이 제국들이 대결할 때 그 최후의 결전지로서 주로 이곳 가나안 땅, 그 가운데서도 이스르엘 평원(또는 므깃도 평원)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지정학적으로 가나안 땅 가운데서 유일한 평원지대로서 전쟁터가 되기에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였을 경우에 각자의 위치에서 원정을 출발하여 거의 동시적으로 도착할 수 있는 등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은 당시의 제국들에게 있어서 적국의 성문에 해당하는 셈이었는바, 이 성문을 먼저 깨뜨리는 자가 적국의 대문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였다. 3대 제국들이 가나안 땅에서 대결하게 되는 데는 가나안 땅 자체가 안고 있는 지형적 조건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이들 3대 제국들은 설령 그들이 전쟁에 패배하더라도 금방 제국으로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나라들이었음에 반하여, 가나안 땅은 그 지형적 조건의 독특성 즉 불모의 땅으로서 큰 강도 없고 비좁은 영토 때문에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국을 형성한 적이 없는, 말하자면 영원한 약소국으로 존재해야 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난의 땅 또는 가나안 땅 이라 불러 마땅한 땅이었다. 2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고통과 눈물과 비극의 극치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선 이들 강대국들 사이의 빈번한 전쟁 때문이었고 더욱이 이러한 고대 전쟁의 원시성과 잔인성과 무자비성 때문이었다. 고대의 전쟁은, 현대 21세기의 전쟁, 즉 기관총과 대포와 인공위성과 펜텀기와 화생방 등에 의한 전쟁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단지 활과 창과 칼과 돌멩이에 의한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원시적이었으므로 그만큼 무지막지하고 무자비한 전쟁이었다. 전쟁에 패배할 경우, 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장정들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여 그 시체가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되어도 매장할 사람이 없었으며, 여인들 특히 처녀들은 성폭행을 당하고, 아이 밴 여인들은 배가 갈리우고, 성벽과 성전과 왕궁과 개인의 집들이 파괴되거나 불태움을 당하고, 국가의 중요한 문화재가 약탈을 당하고, 식량은 물론 개인의 금은보석과 의복까지 모조리 승전국에 빼앗겨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가장 참혹하고도 비극적인 전쟁의 실상은 사마리아의 멸망(주전 722/1년)과 예루살렘의 멸망(587/6) 사건에서 가장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데, 특히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군대에게 1년 6개월 동안 포위당했다가 함락될 당시의 처참한 상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남긴 애가서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류 전쟁사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비극적 사건으로서,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그들의 수도 예루살렘 성이 적군에게 포위당한 절망적 상태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은 무참하게 함락당한 사건 이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모두 불태우고 그 거민을 모두 싹쓸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동기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차마 눈코 뜨고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시체 썩는 냄새가 가득 찬 이 도시와 함께 그 아비규환적 상황에서 이미 악해질 대로 악해진 인간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길이 그 길밖에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그래도 살아 남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이었는데, 구약성경의 법전에서 그 사회적 보호 대상 가운데 반드시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가 언급되는 것은 이와 같은 전쟁이 빈번했던 고대 사회의 상황을 반영한다. 전쟁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의 숫자도 많아졌던 고대의 상황에서 고대 중동에서 가장 전쟁이 많았던 가나안 땅이야말로 가난한 땅, 고아와 과부의 땅 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를 읽어보면 적어도 한 세대(25~30년)에 한 번 이상 가나안 땅에 이와 같은 참혹하고 잔인한 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한 인간이 가나안 땅에 태어났을 경우에 그는 그의 생애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이와 같은 참혹한 전쟁을 목격하거나 참여함으로써 인간 비극의 한계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 전쟁의 정치 사회학적 요인 고대 세계에서 전쟁이 보편적으로 자주 일어났던 이유는 우선 인간의 본능적 정복 욕구 및 탐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분석할 때, 고대 군주들이 자신들의 정권 유지 차원에서 전쟁을 하나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군주들은 정기적으로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군주로서의 지략과 용맹을 백성들 앞에 확증시키고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 전쟁을 통하여 통치자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불식시키고 국민적 관심을 전쟁에 몰두케 함으로써 통치권의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었으며, 때때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무사/ 군인들의 쿠데타 음모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 승리할 경우 군주는 막대한 전리품을 군인들에게 분배하여 군인들의 불만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출세욕구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런저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군주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성공만 한다면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석사조의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매력적인 사업이었으며, 이러한 고대 국가의 상황에서 욕심이 많은 군주일수록 전쟁을 자주 일으켰고, 그만큼 백성들의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전쟁과 텔 고대 가나안 땅에 전쟁이 빈번하였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증거가 텔이다. 텔은 폐허의 언덕, 또는 폐허로 남아 있는 무더기를 가리키는데, 반복된 전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약육강식의 야만적 전쟁이 빈번했던 이곳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할 우선적 전략이란 높은 지대에 성채를 건설하고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이었는데, 미약한 가나안 사람들의 힘으로 아무리 견고한 성채를 세워놓았다 할지라도 강력한 제국들의 군대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 자리에 또 다시 성채를 재건하여도 또 다른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다시 파괴되고, 이 일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텔은 그 높이를 더하면서 여러 겹의 층으로 된 텔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가나안 땅에 세워진 거의 모든 도시와 성채들이 텔 아닌 것이 없고 가나안 땅의 거의 모든 동네들이 산 위의 동네 (마5:14)가 아닌 것이 없다. 이들 가나안의 모든 텔들의 층수가 10층이 넘는다는 사실은 그만큼 가나안 땅에 전쟁이 빈번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나안의 거의 모든 텔들은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없이 파괴되고 재건된 자취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자취들이야말로 천 년 이상 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들이라 말할 수 있다. 고대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어느 민족보다도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편, 특히 탄원시를 통하여서도 알 수 있다. 150편의 시편 가운데 30% 이상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탄식 또는 탄원의 시편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순간에도 기쁨의 찬양보다는 고통 속의 부르짖음이 더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전쟁 과 이스라엘의 고난 고대 전쟁의 잔인선과 참혹성은 원시적인 무기의 사용과 미개한 전쟁 방법,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지막지하고 잔인한 전쟁술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고대 중동에서 특별히 성행했던 소위 거룩한 전쟁 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전쟁은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 곧 야웨의 전쟁 이었는데, 이러한 신의 전쟁 개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주변의 이방국가들, 아니 고대 중동의 모든 나라들에게도 보편적인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이 전쟁은 두 국가의 군인들이 싸우는 것이라기보다는 블레셋의 국가 수호신과 이스라엘의 국가 수호신( 만군의 야웨 )이 대결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그 총사령관이신 야웨를 상징하는바 법궤를 앞세워 나아갔으나 전쟁이 블레셋의 승리로 끝나게 되자

그 법궤는 블레셋 군대의 포로로 잡히게 된다. 블레셋 군대는 이 포로로 잡아온 이스라엘의 대장(법궤로 상징되는 야웨)을 자신들의 다곤 신전에 전리품으로 봉헌하였으나 결국은 블레셋의 신 다곤이 야웨의 법궤 앞에서 고꾸라져 팔다리가 부러질 뿐만 아니라 블레셋 백성에게 무서운 전염병이 발발하여 큰 환난을 경험한 뒤에야 법궤는 블레셋 방백들의 전송을 받으며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에게 패한 것이 다름아닌 그들의 죄, 곧 야웨를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긴 죄에 대한 야웨의 심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과 아울러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께서 블레셋의 다곤 신이 감히 대항할 수 없는 막강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갖고 계신 분임을 가르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건의 배경을 형성하는 고대의 전쟁 개념, 즉 거룩한 전쟁 이 고대 중동의 역사 가운데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과, 성서 해석에 있어서 이 개념에 대한 이해/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거룩한 전쟁 1 우선 전쟁 개시 여부 및 그 전쟁의 결말에 대하여 예언자 또는 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 국가 신(이스라엘의 경우에 야웨 하나님)의 뜻을 물어 결정해야 한다.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터로 진군할 때에는 제사장 또는 예언자가 군대와 동행하거나 군대의 앞장에 서야 했다. 2 거룩한 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인식되는 국가적 수호신이 군대와 함께 나아가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야웨의 임재 또는 야웨의 보좌를 상징하는 법궤가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행진하거나 이스라엘 군대 또는 진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던 이방국가의 경우 전쟁터에 신상을 앞세우거나 신상이 그려진 깃발을 앞세워 행진했을 가능성도 있다. 3 전쟁의 성패는 군인의 숫자나 무기의 강약과는 상관없었고 전적으로 그 전쟁의 대장으로 간주되는 국가 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 참여하는 백성이 자신의 능력보다 자신들의 하나님을 얼마나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성패가 좌우되었다. 이스라엘의 경우, 전쟁의 최고 사령관은 야웨이며, 여호수아나 기드온 같은 대장/장수의 역할은 그 최고 사령관인 야웨의 이름으로 야웨께서 그의 손에 붙여주신 바 적장과 적군을 치는 것에 불과했다. 기드온 장군이 미디안과 전쟁할 때 야웨의 명령에 따라 수만 명의 군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오합지졸에 불과한 소수 (300명)의 군사로, 그것도 볼품없는 무기 곧 질그릇(항아리)과 횃불을 사용하여 야웨의 칼이여,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승리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와 그 군대의 능력보다는 산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세의 자세에 따라 전쟁이 좌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다만 법궤를 군대 앞에 세우고 그 법궤 앞에는 일곱 양각 나팔을 부는 제사장이 앞장 서서 뒤따르는 군사들과 함께 하루에 한 번씩 7일 동안 여리고 성 주위를 돌다가 7일째에 같은 방식으로 성 주위를 일곱 바퀴 돌며 큰 소리( 야웨의 칼이여, 여호수아의 칼이여 )로 외쳤을 때 그 큰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을 대항하여 싸울 때에 성가대로 하여금 야웨를 찬양하며 군대 앞에서 행진하게 함으로써 브라카(송축) 골짜기에서 대승을 거둔 사건 등이 이와 같은 거룩한 전쟁 개념을 반영한다. 야웨의 명령을 어기고 야웨를 온전히 신뢰하지 아니함으로써 전쟁에 패한 경우는 아이 성을 공격할 때 발생한다.

4 거룩한 전쟁 또는 성전은 그 자체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전쟁이므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과 그 군인들이 머무르는 진지는 당연히 지고의 거룩과 청결을 유지해야 했다. 이 전쟁 기간 동안 군인들의 성 행위가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대의 주둔지 주위의 오물은 철저히 제거되어야 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이자 그의 부하 장수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예루살렘 으로 소환하여 밧세바와 동침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우리아가 이를 사양한 것은, 암몬과의 성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군대의 장수로서 거룩한 전쟁의 규범에 충실하려 했던 그의 철저하기 그지없는 군인 정신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5 거룩한 전쟁의 가장 특징적인 규례는 곧 헤렘으로서 전리품을 최고 사령관인 신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전리품은 신상이든 사람이든 신전의 기물이든 땅이든 간에 승리한 신의 소유로 돌려야 했으며, 이스라엘의 경우에 성전에 바쳐야 했다. 전리품의 분배에 있어서도 그 전리품이 땅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간에 군대의 총사령관인 신의 소관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경우 가나안 땅은 야웨께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하셨고, 사람은 성전의 노예로 봉헌되었으며, 금과 은과 철기는 불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성전 비품 또는 건축재료로 바쳐졌던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성막을 제조할 때 바친 금 은과 기타 재료들은 사실상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 애굽인들로부터 탈취한 저린품이었으며, 역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위하여 다윗이 비축했던 재료들도 다윗이 전쟁을 통하여 이방 민족에게서 탈취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헤렘의 관습에 일찍부터 적응되어 있었음을 암시 한다고 볼 수 있다. 6 헤렘 제도가 안고 있는 대단히 흥미있는 것 하나는, 마땅히 헤렘에 부쳐져야 할 전리품을 탐내어 그 전리품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손 댄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헤렘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끝까지 추적을 당하여 결국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유명한 아간의 죽음과 사울 왕의 비극적 최후는 이 관습의 대표적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전쟁의 풍습 가운데 가장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헤렘 제도는 고대 중동 사람들로 하여금 그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고난의 극치를 맛보게 했던, 가장 잔인한 요소 가운데 하였다. 헤렘 이라는 전문용어는 글자 그대로 멸망/진멸시켜 (신에게) 봉헌하는 것 즉 거룩한 전쟁에서 획득하는 전리품 또는 이 전리품을 신 또는 신전에 봉헌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이 전리품이 사람일 경우에 모두 죽이거나 불태워 신에게 바쳤다. 만약 어느 성읍을 향하여 거룩한 전쟁 을 선포하고 그 성을 함락시켰을 경우, 정복자는 그 성의 모든 거민을 무차별 살해하여 신에게 봉헌하였으니, 현대의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생각해 볼 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당시의 그 성의 거주자들이 겪은 비극적 상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내린 헤렘의 명령, 즉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는 명령은 이스라엘 군대만이 받들어 수행했던 명령이 아니었다. 고대 중동의 거의 모든 국가의 전쟁에서 군사들은 자기들의 신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명령을 받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는바, 이와 같이 헤렘의 관습이 고대 중동의 모든 나라들에서 보편적으로 수행되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윗 시대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전 역사 기간 동안 끊임없이 강대국들의 전쟁터 노릇을 했던 이스라엘의 고난과 비극이 얼마나 진하고 힘든 것이었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B. 지혜의 백성 (이스라엘) 전지전능하시고 유일하신 야웨 하나님 곧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인간의 모든 역사를 분명한 목표하에 운영하시는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천하의 만백성 가운데서 친히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마고 약속(언약)하시고 마침내 그 가나안 땅 곧 엄청난 지리적 악조건으로 가득 찬 이 고난의 땅으로 인도하시사 자기 백성,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고 훈련하시려 했던 그 목표는 무엇이며, 베푸시려 했던 그 은혜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한 마디로 지혜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나안 땅은 우리가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전쟁과 고난과 눈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임이 분명하나, 또 한편으로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야웨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요, 세초에서 세말까지 야웨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머물러 계신 땅으로서, 샬롬을 동경케 하는 땅이요, 죽음의 의미를 숙고하게 하는 땅이요,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 보게 하는 땅이요, 그래서 결국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온유하고 애통하게 만드는 땅이었던 것이다. 출애굽 사건과 가낭나 정복에서 시작하여 포로 이후 제2성전 시대 또는 헬라 제국시대(주전 3세기)까지 약 1000년 동안, 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과 가난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를 이어가면서 터득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존을 위한 삶의 지혜와 그 지혜의 최고 가치였던 것이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전쟁과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군대와 무기와 풍성한 물질이기에 앞서 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용기였던 것이다. 이 지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샬롬을 동경하며 누리는 방법을 배웠고, 눈물에 젖은 빵 을 먹으면서도 마음의 평화와 부유함을 지키는 길을 터득하였으며,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종말에 대한 소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비결을 숙고하였던 것이다. 결국 부정적인 지리적 여건, 곧 고난의 용광로를 통하여 지혜의 백성 이스라엘은 태어나고 연단 받고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고난의 용광로에서 생산된 것이기에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자부하며, 이 지혜야말로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에 있어서 세상의 그 어떤 사상과 철학도 따를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것이기에,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혜를 자신들의 자손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 전수하였고, 그 결과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지혜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은 생존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21세기의 발전된 과학시대를 살면서도 이 지혜가 집결된 토라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으로 간주하는 근거는 결국 이 지혜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의 어떤 역경과 고난도 능히 극복하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의 원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유다 왕국의 멸망 아래(주전 587/6년) 2500년 이상 세상의 떠돌이로 방황했으면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곧 이 지혜였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유했던 그 지혜의 위력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혹독한 전쟁과 고난의 풀무를 거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생산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보았던 고난의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용광로는 없었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사상과 지혜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성경(또는 토라) 보다 더 깊고 우수한 사상과 지혜는 세상의 그 어느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인류 문명의 최고 정상이요 모든 철학과 사상과 신학의 정상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지혜 곧 구약성경은, 그러기에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결코 소멸되지 않고 끝까지 생존할 사상과 진리로서의 신언이 된 것이다. 지혜의 백성 이스라엘이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터득한 지혜 곧 구약성경에 집약되어 있는 지혜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 신앙의 가치,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 인격과 사상과 정신의 가치, 개인의 죽음과 종말에 대한 이해, 메시야 사상과 유토피아적 이상주의 C. 궁극적 지혜 의 발견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 가운데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지혜 곧 영원하고 참된 궁극적인 지혜는 다름 아닌 신앙의 지혜 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지혜는 구약성서 안에 집결되어 있는바, 이 세상의 어떤 사상과 철학과 종교도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지혜 중의 지혜요, 세상의 그 어떤 보화나 재물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지혜인 것이다. 궁극적 지혜는 가장 강력한 원수들의 압제하에서 가장 강도 높은 고난을 체험했던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터득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효능을 갖고 있는 지혜인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 곧 궁극적 하나님께 대한 궁극적인 신앙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구원의 수단을 포기한 사람, 곧 사방으로 모든 구원의 길이 막혀 있어 오직 하늘을 향하여 전적으로 생명을 걸고 부르짖는 길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하고 연약해진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궁극적 지혜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궁극적 고난 속에서 생산된 이 궁극적 지혜는 궁극적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혜로서, 가장 큰 고난으로 인하여 가장 연약해진 존재가 가장 큰 능력을 소유한 궁극적 존재 곧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혜요, 이 하나님의 백성 또는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고 중생하게 하는 지혜요, 따라서 결국 인간의 궁극적 원수인 죽음 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지혜 곧 죽음과 부활과 영생의 궁극적 종말까지 바라보며 믿는 지혜라 할 수 있다. 궁극적 신앙의 지혜는 가장 연약하고 무지하고 죄된 인간이 아무 공로 없이 다만 영원히 살아 계시고 전능하시며 홀로 하나이신 창조주 하나님 야웨를 구원자로, 왕으로, 목자로, 그리고 최고 사령관으로 의지하고 믿고 고백하고 영접함으로써 그 야웨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신하가 되고 종이 되고 어린 양이 되고 군사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과 은혜와 구원을 누리는 지혜, 즉 모든 원수와 죄와 사망과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지혜인 것이다.

궁극적 신앙의 지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가난한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신 하나님, 곧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인이신 야웨 하나님의 아들 또는 달이 되어 그분과 그분의 모든 재산을 함께 유업으로 물려받는 지혜라 할 수 있다. 이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야웨를 소유하면 만물을 소유하는 것이요, 야웨 하나님을 상실하면 곧 모든 것을 상실한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이다. 무적의 장수 골리앗을 둘려워하지 않고 물맷돌 하나로 그 거인을 넘어뜨릴 수 있었던 나이 어린 목동 다윗의 용기와 능력이 다름 아닌 이 궁극적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며, 고대 중동의 모든 나라 위에 군림하고 호령했던 대앗시리아 제국의 황제 산헤립의 침공을 받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중과부적의 막강한 앗시리아 대군 앞에서 감히 굴복하지 않고 끝가지 맞서 저항함으로써 마침내 산헤립과 앗시리아 군대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 줄 수 있었던 비결이 이 신앙적 지혜에 기초한 것이었다. 또 6일 전쟁 당시 400대 1의 열세를 안고 싸우면서도 오히려 아랍 군대를 굴복시킨 모세 다얀 장군의 승리의 비결이 역시 이 궁극적 신앙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궁극적 신앙의 지혜 곧 하나님께 부르짖는 지혜 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선지자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처참하게 멸망당하는 장면 곧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고난의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장 많은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그야말로 탄신과 눈물의 예언자 이다. 궁극적 위기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지혜, 곧 궁극적 신앙의 지혜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혜 곧 신앙적 지혜가 가장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는 책을 들라 하면 우리는 이스라엘의 시편, 특히 탄식시(또는 탄원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중동의 그 어느 서정시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이스라엘 서정시의 독특성 가운데 하나는 탄원시의 구조이며, 특히 이 탄원시의 구조 가운데 나타나는 소위 분위기의 전환 은 세계 역사상 그 어느 나라의 서정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탄원시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 분위기의 전환 은 다름 아닌 시의 전반부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자신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대하여 울며 부르짖다가 후반부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전환하여, 전반부에서 언급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잊어버린 듯이, 오히려 야웨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을 기정 사실로 확신하고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사실이다. 분위기의 전환 에서 드러나는 이스라엘 시인의 탁월한 시 구성법과 기교는 시인의 고난과 역경의 상황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시인의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정도가 극적으로 상승한다. 이스라엘의 탄원시에서만 엿볼 수 있는 이러한 시적 구조는 이스라엘 시인의 탁월한 시적 창의력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이스라엘 시인의 창의성은 곧 이스라엘 시인의 궁극적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시인(또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신앙적 지혜 가운데서 자신의 고난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도 깊고 높아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부르짖음이 깊고 높아질수록 자신이 체험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기적도 더욱 깊고 높은 의미를 갖게 된다. 자신 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과 감사와 찬양도 커진다는 사실을 기정 사실로 시인하고 고백하고 있다. 모든 이스라엘의 탄원시의 전반부에서 시인은 가능한 한 가장 비참한 상황으로 자신의 처지를 낮추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고, 그 고난과 부르짖음의 크기에 비례하여 후반부에서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응답과 기적을 가능한 한 크고 놀라운 것으로 묘사하게 되는 것이다. 고난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것, 그리고 고난의 크기에 정비례하여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도 커진다는 것, 이것은 이스라엘의 시인만이 생각할 수 있는 (탄원)시의 구조요 이스라엘 백성만이 알고 있는 (신앙적) 지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난의 용광로를 통하여 생산되는 이스라엘의 신앙적 지혜를 말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부활 사상 또는 부활 신학이다. 부활 신학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고난과 역경이라는 토양에서 자라고 꽃피운 하나의 찬란한 신학적 클라이막스라 볼 수 있는바, 출애굽 사건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길고 짙게 시련과 고통을 맛 보았던 바벨론 포로기와 헬라 제국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탄생되는 신학이며, 따라서 포로 이후의 문학들, 특히 욥기와 시편과 묵시문학(이사야, 에스겔, 다니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부활과 심판과 영생 등의 주제는 보편적으로 자신들이 받는 혹독한 고난과 핍박이 하나님 나라와 진리를 위한 것임을 확신하는 의인들에 의하여 그리고 순교와 같은 신앙의 고차원적 경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선포되는 주제인 것이다. 부활신학과 아울러 메시야 사상 또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신앙이야말로 고난과 눈물의 역경 속에서 발전한 이스라엘 지혜의 최고봉이요 최후 종착역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혜에 대한 정의, 곧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 이라는 실천신학적 정의는 잠언서의 저자가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통해 받아 적은 시구 또는 경구라기보다는 적어도 천년 이상 가나안이라는 고난의 용광로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련과 연단을 거쳐 터득한 지혜요 진리요 신학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고난과 지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정해 주신 가나안 땅의 부정적 여건이야말로, 결과적으로 부정적 여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요 예정이요 은총이었다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가나안 땅은 가난과 고통의 땅이 아니라 궁극적 지혜와 구원의 말씀을 생산하는, 그야말로 신령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했던 가나안 땅의 부정적 여건이야말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참 이스라엘이 되게 했던 요소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나안 땅이 안고 있는 부정적 여건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바의 세계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 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악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이 가까이 만나도록 중보/매개하는 역할을 위하여 선택된 자였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우선적 임무는 인간의 죄값이라 할 수 있는 죽음과 고난을 자발적으로 대행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었다. 구약성경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상징적으로 제사장의 피 대신에 짐승에게 죄를 전가시켜 짐승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그리고 제사장은 그 짐승의 피를 몸에 지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대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세계 만국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전세계 만백성과 야웨 하나님 사이의 제사장적 중보자로 선택받았음을 의미하며, 결국 이 선택은 제사장적 중보자로서의 이스라엘이 필연적으로 전세계 만민의 죄를 대신해야 할 희생 제물로서 고난을 당해야 할 것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따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받은 그날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고난과 희생을 통하여 인류의 죄값을 치르도록 예정되었던 것이었고,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의 고난과 눈물로 얼룩진 천년의 역사를 지탱함으로써 이 중차대한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세계 백성의 죄를 대신 지는 역할이었기에 그만큼 이스라엘의 고난은 크고 힘들 수밖에 없었으며, 이 크나 큰 고난을 짊어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난이 극심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고난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서의) 영광스런 고난이었다고 볼 수 있고, 이들의 고난을 통하여 세계 만민이 구원을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만민에게 소개해 준 궁극적 구원의 길, 즉 궁극적 지혜란 다름 아닌 성경 안에 소개된 신앙의 지혜이며, 이 놀라운 신앙의 지혜를 성경 안에 기록해 놓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천년이 넘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고난의 땅에서 그토록 혹독한 고난을 당하고 그토록 쓰디쓴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부정적 여건 속에서 약자가 될 때 터특했던 궁극적 지혜와 영감, 곧 세상의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나 풍요 속에서도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이 놀라운 지혜와 영감을 현대인의 삶 속에서 나의 경험으로 동시대화하는 길은 다름 아닌 현대인 스스로가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고 고난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정의와 성결과 진리를 위해 일어날 때 교만한 권세자와 억압자는 의인을 핍박하게 되어 있고, 가난한 자에게 재산을 나누어 줄 때 필연적으로 가난과 궁핍은 경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리적 배경에 대한 결론적 소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지리적 배경에서 두 가지 눈물을 경험했다. 1 긍적적 여건, 즉 고대 중동의 찬란한 3대 문명권 사이에서 맛본 환희와 기쁨의 눈물

2 부정적 여건, 즉 3대 제국의 무력적 충돌의 틈바구니에서 겪어여 했던 고통과 한숨의 눈물 두 가지 눈물은 마치 천국과 지옥의 차이 만큼이나 극적인 대조를 보여 준다. 이 극과 극의 경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두 가지의 눈물을 엑기스 형태로 집약하여 담고 있는 책이 성경이며, 그런 의미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의 폭은 하늘보다 높고 음부보다 깊은 것이다. 제3장 역사적 배경과 구약신학 1. 역사적 배경의 개괄적 안내 A. 이스라엘 역사의 근간으로서의 엑소더스 이스라엘의 역사를 흔히 두 개의 강 유프라테스강과 나일강(홍해 또는 애굽강)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또는 두 개의 전환점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라고 (단순화시켜) 부른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그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이 두 강을 여러 차례 건너는 동안 이스라엘 역사가 형성되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가 홍해라는 강을 건넘으로써 태어나고, 유프라테스강을 건넘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도강 : 아브라함의 소명과 관련된 것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다가(창11:31)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창12:1-3) 하란을 경유하여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와 가나안 땅에 도착, 세겜을 경유하여 벧엘에 거주하다가 가나안 땅의 기근으로 애굽에 피난(창12:6-20), 그곳에 한동안 체류하던 중 그 아내 사래의 일로 위기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간섭으로 그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나일 강 또는 애굽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게 된다. 야곱도 그의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창28-33) 얼마 동안 지내던 중 그의 나이 130세 무렵에(창47:9) 또다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의 초청으로 나일강을 건너 애굽으로 이주, 그곳에서 임종을 맞는다. 모세의 인도 아래 홍해를 건너 시내산과 가데스 광야를 방황한지 40여 년 만에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후 사사 시대와 통일왕국 시대(사울, 다윗, 솔로몬)를 거쳐 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러보암(1세) 이후 약 200년간 왕국이 유지되다가 앗수르에게 망하여 세계 각처로 흩어져버렸고,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에도 남왕국 유다는 약 140년간 역사를 지탱하다가 당시 중동 세계의 종주국이었던 바벨론에게 망하게 된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유프라테스강 저편으로 끌려간 이들 유다인 또는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의 비교적 신사적인 포로 우대 정책하에 신앙과 혈통을 유지하며 약 50년 또는 70년의 유배 생활을 지낸 후,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샤(바사) 제국의 초대 황제 고레스로 돌아와 성전(소위 제2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고 구약성경을 완성하게 되며, 이로써 이스라엘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스라엘 또는 유다/유대의 역사는 두 강 사이를 오간 역사이며, 이 두 개의 강을 건널 때마다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함으로써 결국 두 개의 전환점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가 된 것이다. 구약학자들이 출바벨론 사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비록 첫 번 엑소더스인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하나의 노예이자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야곱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형태로 태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 그 엑소더스를 회고하고 그 사건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고 재해석하여 그 신학적 의미를 구약성경, 특히 오경에 투입하고 부각시키게 된 것은 두 번째의 엑소더스, 즉 출바벨론 사건을 경험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B. 엑소더스와 이스라엘의 정체성 출애굽 사건 제1 엑소더스 는 이 사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사상 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뿌리 경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거의 모든 구약신앙/신학의 모체가 된 사건이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구약신학의 다양한 사상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초로 삼으려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케 해주는 뿌리 경험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잊지 않고 지켜 온 유월절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지키는 유월절 축제를 통하여 조상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재현하고 확인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야웨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구속한 백성으로서의 감사와 긍지와 사명을 잊지 않았으며, 또다른 종살이와 억압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회복하기까지 끝까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구약성경의 자유/해방 정신은 신약성경에서 그대로 계승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가장 완벽하게 만발하게 되며, 이 자유사상을 청교도가 이어받아 지상에서 가장 자유가 존중되는 미국을 건설하게 되는 것을 본다. 2. 출애굽 사건(ExodusⅠ)과 구약신학 A. 출애굽 사건의 예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체류한 기간이 얼마인지 그리고 그들이 애굽인의 억압 속에서 종살이를 한 기간이 얼마인지는 성서에서조차 분명치 않으나,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즉 히브리인들의 대탈출 사건으로서의 출애굽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정사실로 예정되어 있었고(창15:13-16), 어쩌면 이 출애굽의 대서사시적 드라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하면서 완성해야만 했던 하나의 과제이자 사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중동 사회에서 히브리인 은 본래 사회 경제적으로 천민 계층 즉 사회 구조의 변두리에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호구지책을 위하여 국경을 넘나들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던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B. 출애굽의 실상과 의미 (1) 바로로부터의 탈출 출애굽 사건은 무엇보다도 애굽 왕 바로로부터의 탈출 사건이었다. 그러면, 이 바로가 누구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로부터의 탈출을 명령하시는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다름아닌 거짓 신, 자인한 폭군, 사탄의 화신이었다. 애굽은 헤로도투스의 표현대로 나일강의 선물 로서, 나일강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나라였다. 일년 내내 거의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사막에 불과한 애굽 땅에서 이 나일강은 사시사철 중단없이 무한대의 생수를 공급해 주는 거대한 물탱크로서 애굽인 전체를 먹여 살리는 생명의 젖줄이요 신비하기 그지없는 생명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나일강과 그 주기적인 범람이 있었기에 하나의 거대한 광야이자 사막에 불과한 애굽 땅은 기름진 옥토가 되어 애굽인에게 무한대의 생산력을 소유한 힘으로 간주된 나일강이 고대 애굽인들의 눈에 위대한 신으로 보인 것은 물신숭배가 만연했던 당대의 정황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나일강의 모습은 코브라를 닮았다. 적도 지역에서 출발하는 나일강의 상류는 뱀의 꼬리 모습이고, 하류에 속하는 지중해 쪽 델타 지역은 뱀의 머리처럼 보인다. 애굽인은 무한대의 생산력의 소유자로서 신비하기 그지없는 나일강과 역시 무한대의 힘을 소유한 자로 보이는 뱀을 동일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짐승 보다도 신비하고 지혜로운 동물로서 발도 없이 소리도 없이 은밀하게 배로 기어다니면서 땅과 바다를 동시에 지배하는,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짐승 가운데 그 생식력이 가장 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입에는 모든 생명을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독을 소유한, 말하자만 막강한 풍요의 힘과 지혜와 권세를 자랑하는 뱀/코브라를 나일강과 함께 신격화한 것도 당대의 상황에서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애굽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숭배한 신이었던 태양 곧 매일 아침 어김없이 떠올라 온 세상을 지배하다가 저녁이 되면 서쪽 죽은 자의 땅으로 내려갔다가 새벽이면 다시 부활하는 위대한 태양신, 그 태양신의 이름이 하 애굽에서는 라/레였고, 아마르나 지역에서는 아톤이었으며, 상애굽에서는 아몬/아문이다. 애굽의 바로들은 이 태양신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전수받은 신의 아들들이었고, 더 나아가 이 태양신이 인간의 옷을 입고 지상에 내려온 신의 화신이 곧 바로이기에 신으로 간주되어 숭배를 받았던 것이다. 애굽왕 바로에 대한 신격화는 고대 사회의 원시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또 한편으로 현대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나약한 백성 또는 민중을 영원히 수탈하고 억압하기 위한 통치계급의 계획적인 의식화 작업의 일환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무한대의 힘과 풍요/생식의 근원인 나일강 및 태양과 뱀을 바로와 동일시하고 함께 신격화함으로써 바로를 비롯한 통치계급은 무한대의 권력 소유를 정당화하고 백성들을 영구적으로 노예화하고 민중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숭배를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식화 작업으로 애굽 땅은 바로의 소유로 인식되었고, 백성들은 바로를 신으로 인식하여 그가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바로의 시체를 미라로 만들고 태양광선을 본 딴 거대한 피라미드 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만들고 그 안에 바로의 미라를 안치하고 바로의 무덤인 피라미드 앞에서 매년 주기적으로 경배하였던 것이다. 대부분 구약학자들은 출애굽 사건 당시의 바로를 람세스 2세(Ramses Ⅱ the Great, 1304-1237 B.C.)와 동일시 하는데, 이 람세스가 바로 출애굽 사건에 등장하는 그 바로였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출애굽 사건의 실제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람세스 2세, 그는 백전백승의 장수로서 야굽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가장 영토가 넓은 나라를 건설했던, 그리고 신도시 피-람세스와 비돔 그리고 기타의 여러 신천을 비롯한 애굽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토목사업을 가장 많이 추진했던, 그리고 수많은 애굽 왕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생식력을 가지고 가장 많은 자녀(108명)를 낳아 중왕국과 신왕국의 그 어느 왕보다도 장기간(66년) 통치했던, 애굽의 모든 바로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린, 따라서 애굽 백성들에 의하여 가장 신격화되고 가장 구체적인 신의 화신으로 숭배된 왕이었다. (2) 애굽문화(=우상문화)로부터의 탈출 헬라어로 아이구-프토스를 음역한 데서 유래한 애굽 이란 용어의 본래 의미는 프타의 영혼의 집 이다. 프타 는 한 때 애굽의 수도였던 멤피스에서 숭배한 또 다른 태양신이었으며, 특별히 그 생산과 풍요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황소 또는 암소로 상징되었다. 프타의 영혼의 집 이라는 이 말 자체가 애굽의 문화는 다른 신 의 문화이자 우상문화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애굽의 우상문화는 사기와 허무와 무가치의 문화였다.

유일신 사상을 견지하는 성서 저자의 시각으로 볼 때, 신격화된 바로를 비롯하여, 하애굽의 라신과 상애굽의 아문 /아몬신을 상징하는 태양, 세트 신을 상징하는 악어, 상애굽의 수호신으로서 호투스 신을 상징하는 매, 하토르 여신을 상징하는 암소, 헤카 신을 상징하는 개구리, 하애굽의 수호신으로서 우레우스 또는 왜젯 여신을 상징하는 코브라, 무트 신을 상징하는 독수리, 토트 신을 상징하는 원숭이 또는 따오기, 기타 태양과 바로의 풍요의 능력을 상징하는 풍뎅이, 피라미드를 비롯한 수많은 바로들의 무덤, 신전, 석상 등 애굽인들이 숭배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한낱 무가치한 우상들에 불과했다. 우상문화 특히 월신 진 숭배로 가득찬 우르로부터의 아르라함의 탈 우르가 필연적이었듯이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의 탈애굽 역시 필연적인 것이었다. (3) 종/노예 문화로부터의 탈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출애굽은 종살이 즉 노예 제도로부터의 탈출이었고, 또한 적어도 100년 이상의 긴 종살이 기간 동안 길들여진 종/노예 문화로부터의 탈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종살이를 오래 하다 보면 차츰 굴종과 무지와 천박함에 길들여지고, 그 성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과 불평, 불안과 두려움/공포, 자책감, 절망과 비판 등으로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노예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인간에게 부여하신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권위와 책임을 망각하게 되고, 또한 무지와 몽매 가운데 온갖 거짓 신과 우상에게 굴복하고 복종하는 신세로 전락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러한 비인간화된 현실을 당연시하고 그러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만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되어 왔다. 하나님의 형상 은 다름아닌 하나님과 (사랑과의 대화의)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자격과 성품을 가리킨다. 창조주 이시며 동시에 인격자이신 하나님과 (자주/자발적인 사랑의) 관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하나님의 형상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신적인 능력이요 품성이라 할 수 있는바,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만이 소유하시는 자유(또는 자주성)와 이 자유에서 기인하는 창의성 곧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제2의 창조자로서의 창조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애굽에서 신의 화신으로 신격화되어 애굽의 거의 모든 신전 입구마다 세워져 있는 바로의 거대한 석상 또는 동상이 하나님의 형상 이 아니고, 오히려 모든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이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이신 야웨께서도 사랑의 대화를 나눌 대상이 필요하셨고, 그 대상으로서 인간을 만드실 때 바로 하나님의 모습/형상을 닮도록 창조하셨던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서의 권위와 영광은 이 하나님의 형상, 즉 창조주 하나님과 자발적인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질과 성품을 회복하는데 있는 것이요, 창의성과 독립의지를 상실한 채 매일 같이 바로의 형상 /석상을 바라보면서 사는 굴종적 노예의 삶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본래부터 부여받은 자유의지의 본질은 창의성, 즉 만물의 영장이자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로서 창조 사역에 동창할 수 있는 창조 능력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노예문화는 인간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마비시킴으로서 창조질서를 방해하는 하나의 엄청난 카오스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노예/종의 문화 속에서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모방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 이기에,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발전시킬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노예문화 속에서 길들여지는 또 다른 폐단은 노예의 소극적인 품성 곧 주인에 대한 두려움과 명령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 당하게 될 꾸중과 책망에 대한 두려움, 공포심과 걱정과 불안이다. 출애굽 사건은 인간의 창의성을 고갈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비인간적 억압의 문화 곧 카오스적 노예 문화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성과 창의적 자유가 보장된 영광스런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 의 회복을 향한 탈출이었던 것이다. (4) 나일(Nile)문화로부터의 탈출 애굽은 야웨의 동산 에덴에 비교될 정도로(창13:10) 그리고 하나님의 동산 에덴의 모든 나무가 다 질투 할 만큼 (겔31:9)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었기에 고대로부터 중동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애굽이 누렸던 풍요의 배후에는 두말할 나위없이 나일강이 존재한다. 애굽은 나일강의 선물 (the gift of the Nile)이었고, 그 나일강은 애굽 사람을 먹여 살리는 무한대의 젖줄 이었다, 그만큼 나일강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

으로서 신성시 되었고, 광야를 통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프고 목마르고 정력이 쇠약할 때면 우선적으로 애굽의 고기 가마 와 애굽의 풍성한 야채(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를 연상했을 정도로 나일 강변의 논밭은 풍성한 식량의 보고였던 것이다. 물질의 풍요는 좋은 것이지만, 풍요의 맛에 길들이게 되면 풍요주의 / 쾌락주의에 빠져 풍요와 쾌락을 숭배하게 된다. 풍요주의에 빠지면 조상에게 약속된 땅 가나안을 잊어버리고 결국 물질만 풍성하면 종살이라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풍요는 좋은 것이고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서 이 풍요( 젖과 꿀 )를 주실 것을 약속하시지만, 그 풍요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보다 우선하고 우상화 될 때, 그것은 사탄의 지배하에서 종살이하면서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출애굽은 물과 양식이 풍요한 풍요주의/물질주의/향락주의로부터 광야에로의 탈출이었다. 광야에는 풍성한 떡과 고기가 없는 지역이나 거기엔 야웨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적 말씀이 있는 곳이었다. 출애굽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탈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위한,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의지하는 신앙의 땅으로 탈출이었다. C. 출애굽의 목적과 시내산 계약 출애굽은 목적과 목적기 있는 떠남이었다. 일차적으로는 시내산을 향한 것이었고 그 산에서 구원의 주 야웨와 계약 / 언약을 맺고 야웨의 백성이 되어 야웨를 경배하기 위함이었다. 이차적으로는 광야의 훈련을 거쳐 야웨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이방종교로 더렵혀진 그 땅을 청소하고 결국은 야웨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셨던 그 산 곧 예정된 또 하나님의 산 모리아 산까지 나아가 그곳에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영원토록 야웨를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출애굽 사건이 후속 사건인 시내산 계약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목적지 없이 떠난 출발과 같고 미완성 작품과도 같이 불완전한 것이며, 달리기 선수가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 그만둔 것처럼 공허한 것이다. 엑소더스 신학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 곧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 계약 사건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두 기둥 사이의 긴밀한 연속성 속에서 출애굽 사건을 바라볼 때 엑소더스 신학의 패러다임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더 나아가서 탈출과 언약/계약 이라는 구조/틀의 반복 속에서 전진하는 이스라엘 역사와 그 역사에 기초한 구약신학도 아울러 통전적으로 그리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내산 계약과 성막 설립의 의미 출애굽의 일차적 목적지는 하나님의 산 또는 성소 로 불린 호렙산이었다. 시내산으로 탈출의 목적은 그곳에서 구원자 야웨의 놀라우신 구원과 은혜와 사랑을 확인하고 찬양하고 그분을 왕으로 추대하고 그분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명실공히 야웨는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되고 구속함을 받은 야곱의 자손은 그분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곧 신정국가가 되어 그분과 함께 동거하는 것이었다. 고대 중동의 왕의 개념 1 신의 아들 : 야굽의 바로 2 신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 또는 대표 : 메소포타미아/바벨론의 왕들 3 백성의 구원자/장수 : 가나안의 도시국가의 군주들 중동의 여러 왕들 가운데에는 어느 한 가지 유형만으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왕들도 빈번히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성서 저자가 이스라엘 백성과 야웨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할 때 적용하는 개념은, 바다의 노래 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다분히 세 번째 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바로의 억압에서 구원하여 홍해에서 바로의 막강한 군대를 수장시킨 다음 시내산 성소까지 인도하신 야웨 하나님을 막강한 권세와 능력을 가진 무적의 용사/장군으로 고백하고, 그 야웨 하나님의 처소인 시내산 성소로 나아가 야웨를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하고 그분과 충성서약을 통한 계약을 맺고 그분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노예 출신이자 천민이었던 히브리인들은, 그리고 애굽에서 나올 때 순수한 이스라엘의 자손이 아닌 중다한 잡족 에 속한 이방인일지라도 야웨와의 계약에 참여함으로써, 명실공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국가)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신정체제는 출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내산 계약사건의 실상과 그 중심 내용 시내산 계약을 통하여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 쪽에서 야웨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식/고백하고 그분과 단독적인 계약을 맺고, 모든 다른 신들을 버리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충성을 바치기로 서약한다. 수많은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서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에 대한 성실성을 증명해 주신 야웨 하나님편에서는 자신에게 충성을 서약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로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임재로 처소로서 성막/회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신다. 야웨께서는 만약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이 주시는 계명에 성실히 순종하면 그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실 뿐만 그들을 열국 중에서 제사장 나라로 삼아 세계 열방 모든 민족들의 구원의 도구로 삼을 것을 약속하신다. 계약법의 핵심은 십계명이요, 그 십계명 가운데서도 제1-2계명, 즉 야웨 외에 다른 신들은 물론 그들의 우상까지도 절대로 섬기거나 만들지 말 것을 명령하는 법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야웨께서 풍요의 땅이요 우상의 나라인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떠나게 하여 물도 양식도 없는 메 마르고 거친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나도록 계획하신 것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른 신들을 버리고 광야에서 오직 야웨만 바라보며 야웨의 음성만을 기다리며 야웨만을 사모하고 사랑하도록 훈련하시기 위한 배려였음을 알 수 있다. 시내산 계약을 야웨와 이스라엘의 결혼 계약에 비유할 때, 시내 광야에 처음 건립된 성막은 한층 쉽게 이해된다. 결혼식을 거행한 두 부부가 동거에 들어가듯이 야웨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정 가운데에 설치된 천막인 성막에 임재하여 거하시게 된 것이다. 성막은 일명 회막이라고도 불렸는데, 이 성막은 야웨와 이스라엘이 만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성막제도는 어떤 의미에서 비례대표제의 효시라고도 볼 수 있다. 즉 12지파의 대표는 레위 지파이고, 레위 지파의 대표는 제사장 가문인 아론의 자손이며 아론 자손의 대표는 대제사장 아론인데, 아론이 지성소에서 야웨를 만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모두 성막에 나아가 야웨를 만나는 것을 의미했다. D.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의 발전과 구약신학의 형성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후 시내산에서 야웨와 언약/계약을 맺고 야웨의 백성이 되어 그분만을 섬기기로 서약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출애굽 과정에서 경험한 야웨의 정체에 대한 분명한 인식 이었다. 야웨는 어떤 하나님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을 왕으로 섬기며 충성하기로 서약 하였던가? 또한 <출애산 시내산 계약> 사건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오고오는 세대에서 태어날 그들의 자손들이 주기적으로 지킨 유월절과 초막절을 통하여 조상들의 <출애굽 시내산 계약> 경험을 동시대화하고 내면화하면서 고백한 야웨의 정체는 무엇이었던가? 결국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총괄할 때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야웨가 어떤 하나님인가를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신학의 뿌리를 경험케 한 사건이자 구약신학을 형성케 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웨 하나님의 정체와 이스라엘 자신의 정체를 이해하도록 자신을 보여 주신 계시적 사건 곧 신학적 사건이었다고 말하게 된다. 모든 종교의 보편적 3대 요소, 즉 신화와 의식과 정신/윤리 가운데서 두 번째 요소인 의식은 과거 조상들의 경험을 현재화하고 이 과거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승시켜 주는 역할을 갖고 있다. 야웨 종교의 중심적 의식이라 할 수 있는 유월절과 초막절 의식은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의 확립과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 두 절기가 있었기에 오늘의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은 중단되지 않고 부단히 옷을 갈아입으면서 각 시대마다 새롭게 그 의미가 재해석 되고 부연되었으며, 이런 전승의 발전 과정 속에서 구약신학의 내용과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을 중심으로한 전승은 형성되고, 이 전승의 발전과 아울러 야웨의 정체에 대한 조직화된 이론 곧 구약신학은 태동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에 대한 전승화 내지는 신학화 작업은 왕정기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을 것이고, 특히 제2의 엑소더스로 불리는 출바벨론 사건을 거치면서 체계화된 형태의 구약신학, 곧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하고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조직화한 바,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 하나만 보아도 야웨가 어떤 하나님인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신학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 두 절기와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의 발전 a. 초막절과 계약 신학(전승)의 형성 및 발전 고대 가나안의 농경 문화권에서 연말연시, 즉 새해 명절인 동시에 추수감사절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초막절의 경우를 고려할 때, 여호수아 때와 솔로몬 때 그리고 주전 8세기 예언자 호세아 당시와 요시야 왕과 포로귀환 이후 제2성전 시대에도 모세의 법을 따라서 이 초막절을 지켰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이 가나안 원주민의 (추수)감사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곧 이 절기가 가나안 원주민에게는 자연의 규칙적인 순환을 통한 풍요의 유지 및 획득이 그 주요 동기였다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조상들의 역사, 즉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과 결부된 계약갱신 축제였다는 사실이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과거의 조상들(즉 출애굽 1세대)이 시내산에서 야웨 하나님과 맺은 언약/계약을 재확인하고 새롭게 갱신함으로써 과거 조상들의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을 통하여 확인한 야웨 하나님과의 관계를 현재화하고 자신들의 삶에 내면화하였다는 사실이다. 계약갱신 축제의 유래는 모세 당시까지 소급하여 추적할 수 있다. 야웨와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이 처음 체결된 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야웨께서 주시는 성막에 대한 법을 받아가지고 내려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함으로써 야웨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에 문제가 발생하자, 모세는 다시 시내산으로 올라가 십계명을 포함한 또 다른 법을 수령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포한 사실은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이 갱신될 수 있음을 암시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내산에서 야웨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계약에 대하여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중재를 통하여 거행된 계약 갱신 축제였다. 모압 평지에서의 계약갱신 축제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사건을 앞에 두고 행해진 것이라는 데 그 의미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건, 애굽에서의 바로와 야웨 사이의 거룩한 전쟁 사건 직후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신들을 모두 포기하고 야웨 하나님께만 충성할 것을 서약 하는 계약의식이 거행된 것처럼, 이번에는 가나안에서의 야웨와 가나안의 신들 사이의 거룩한 전쟁 을 앞에 두고 야웨 하나님 이외의 모든 다른 신과 우상들을 포기하고 오직 야웨께만 충실하고 섬길 것을 다짐하는 계약 갱신 축제를 거행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모압 평지에서 거행된 제2차적 계약갱신 축제는 또다시 여호수아 시대에, 즉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의 끝낸 시점에서 세겜에서 거행된 제3차 계약갱신 축제(수8)를 통하여, 그리고 여호수아 임종 직전에 또 다시 세겜에서 거행된 제 4차 계약갱신 축제를 통하여 그 정신과 의미가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겜에서 거행된 이 제3, 4차 계약갱신 축제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과거 조상들의 경험을 회상하여 말하면서 충성을 서약하는 데서 그러치 않고, 가나안의 농경문화와의 접촉과정에서 동화되었던 가안안의 신들을 포기하고 배척하는 일종의 결단을 시행하였던 것이다. 시내산 계약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한 잡족들도 야웨와의 계약에 동참함으로써 야웨 종교로의 개종이 가능 했던 것처럼, 이 초막절의 계약갱신 축제에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와 상관이 없는 이방인과 거류민까지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과거의 그릇된 신앙을 포기하는 결단과 참 하나님 야웨께 대한 충성의 서약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이스라엘 조상들의 <출애굽 시내산 계약>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여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동시대화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야웨 종교로의 개종 내지는 이스라엘 총회로의 가입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구약성경에 언급된 바 이스라엘과 야웨 신앙에 충성을 바친 수많은 이방인들은 다름 아닌 이와 같은 계약갱신 축제에의 참여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영입된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삶과 계절의 중요한 전환점 : 초막절 국가적인 위기의 전환점에서, 이와 같은 계약갱신 축제를 거행하면서 과거 조상들이 경험한 야웨의 은혜를 회상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시적이나마 이방신에게 유혹되어 야웨를 배반했던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야웨께 대한 충성을 다짐했을 것이다. 계약갱신 축제의 의미는 곧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의 부단한 재해석과 이 재해석을 통한 전승의 발전 내지는 신학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나안에 정착한 신세대는 새로운 가나안의 농경문화에 적응 또는 갈등해야하는 상황에서 조상들의 역사(구원사)를 재현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이 그 폭과 깊이를 더하게 되었고, 그 전승의 내용과 신학적 의미도 더욱더 풍부해지고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신학화 과정 또는 전승/신학의 발전사 새로운 법의 추가적 선포를 가능하게 했던 자리가 곧 이 초막절의 계약갱신 축제였고, 이 자리에서 모세를 계승한 계약의식의 중보자(집례자)는 모세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학적 차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신명기적 역사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적 역사서(대상, 대하, 에스라, 느헤미야)에서이다. 계약갱신 축제 때에 계약의 중보자가 전통적인 모세의 법에 추가하여 새로운 법을 선포하는 것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제2성전 시대에 지켜진 초막절에서 에스라가 모세의 이름으로 율법을 낭독하고 선포하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출애굽 시내산 계약> 전승의 발전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실례는 곧 계약신학이다. 조건적 계약이라고도 불리는 시내산(모세) 계약의 특징은 계약 당사자의 어느 한 쪽이 계약조건을 어기었을 경우에 양자의 계약관계가 결렬된다는 데 있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뒤로부터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기 시작한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와 왕정기를 거치면서 계약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항인 제1계명( 야웨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는 명령)을 범하게 됨으로써 야웨와의 계약관계가 여러 번이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반복된 계약갱신 축제의 어느 시점에서 예언자 또는 영적 지도자들 사이에서 시내산/모세 계약의 유효성 문제가 제기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특히 주전 8세기에 이르러 아모스 같은 예언자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통하여 계약 파기로 인한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파국적 상황을 예고하기도 했다. 남유다왕국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윗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신학화된 것으로 보이는 무조건적 계약의 이념은 북이스라엘의 조건적 계약 개념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행동과 상관 없이 야웨의 약속과 사랑이 영원토록 다윗 가문과 함께 한다는 이 다윗 계약 사상은 지파 동맹 체제의 연속을 고수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중심으로 견지된 조건적 계약과 한동안 쌍벽을 이루면서 발전 하더니, 결국 북왕국의 멸망과 함께 후자는 전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따라서 조건적 계약 사상보다 무조건적 계약사상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유다의 멸망 직전의 상황에서 북이스라엘의 계약 개념의 노선을 견지하던 예언자 예레미야는 호세아를 계승하여 새계약/언약 이라는 사상을 제기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레미야의 새언약 사상은 구약신학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요 계약사상에 있어서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의 새 언약(계약) 개념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조건적 (모세)계약 개념과 남왕국 유다의 무조건적 (다윗)계약 개념의 병합 내지는 개선으로서, 조건적 계약에 다윗 계약을 접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세 계약의 최대 약점인 계약법 불이행과 계약에 대한 이스라엘의 망각의 폐단이 시정되는 새언약의 시대가 올 것이며, 이 새로운 시대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종살이가 끝나고 또다른 엑소더스 사건 이후에 거행되는 마지막 종말적 계약갱신 축제와 더불어 시작된다. 다윗 같은 왕/메시야 도래하게 되고 그의 영원한 통치 속에서 야웨의 신정통치는 실현되며, 백성들의 가슴마다 설치된 심비에 계약법이 기록되고 누구나 야웨의 계약법을 지키어 영원히 야웨를 섬기게 된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b. 유월절 전승의 발전과 구속신학의 형성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에서 파생된 구약신학의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면서 동시에 계약사상(계약신학) 보다 우선하는 또다른 중요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구속사상(구속신학) 이라 할 수 있다. 구속신학 또는 구원신학의 형성과 발전의 배후에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유월절이 존재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로 이 유월절을 가정적 행사로 또는 국가적 의식으로, 특히 국가적인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국가적 지도자의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주기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이 절기를 지켰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기원과 발전 과정 본래 가나안 사람들이 춘분에 지킨 봄철 축제/절기는 두 가지였는데, 그 하나는 목동/베두윈의 축제로서 이 베두윈 축제는 새로운 목초지로의 이동에 앞서서 양의 피를 천막에 칠함으로써 양떼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악귀 추방적 행사에 그 특징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농민의 절기로서 무교절이었는데, 이 무교절은 보리 추수기를 맞은 농민들이 새 곡식을 저장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고 무교병을 먹는데 그 특징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을 통하여 확립된 유월절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개별적 축제였던 이 두 절기를 하나로 병합하여 역사적 동기가 부여된 절기로 재해석하고 그 본래의 의미를 전환시켜 지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은 1월 14일 저녁에,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지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가나안 절기의 영입과 재해석이 용이했던 것은 특별히 목동이 양 피를 천막 문설주에 바르는 동기와 농민이 무교병을 먹는 동기가 이스라엘의 유월절의 동기, 즉 애굽에서의 열 번째 재앙시에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애굽을 떠나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그 밤에 무교병과 함께 양고기를 먹어야 했다는 동기와 일치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의 역사적 출애굽 경험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목동과 농민의 동기들보다 더욱 강조되고 우선하게 됨으로써 결국 가나안적 축제의 동기와 의미는 퇴색하게 되고 점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적 동기가 부각된 절기로 발전하였다. 무교절의 동기보다 유월절의 동기가 강조되면서 무교절은 유월절의 부속 절기로서 전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발전사를 사사시대부터 포로기를 거쳐 제2성전 시대까지의 4단계 1 1단계, 즉 가나안 원주민의 상황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별개의 축제였다. 2 2단계는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진입한 이스라엘에 의하여 두 개의 축제가 하나로 통합되어 지키게 되었고, 그 행사는 국가적이거나 순례적 행사가 아니라 가정적 행사였다. 3 3단계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병합된 형태로, 그리고 가정적 행사이면서 동시에 순례적 행사로 발전하며, 그 절기의 명칭은 무교절 또는 유월절로 상호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4 4단계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국가적 행사로, 즉 하나의 성회 로 발전하여 전국민이 한 장소로 소집되어 거행된다. 이 때의 절기의 명칭은 무교절이 유월절 안으로 흡수되어 유월절로 불리거나 아니면 유월절과 무교절이 연이어 사용되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묵상하게 된 주제 : 인간의 자유와 해방, 더 나아가서는 애굽의 열 번째 재앙에서 경험한 바 피의 효능, 즉 죽음의 사자를 물리치는 강력한 권세를 보여 준 어린 양의 피의 효능이었고, 이러한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숙고에서 필연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부활사상 이었다. 부활사상은 특히 제2의 엑소더스(출바벨론) 사건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종말론과 연결되면서 대대적으로 보완/발전되고 만발하게 된다. (2)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과 구약신학의 핵심 주제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을 절기화/의식화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절기 때마다 야웨께서 (참) 하나님 이심을 확인하고 고백하였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이러한 숙고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터득한 야웨의 정체에 대한 이해 또는 구약신학/신앙을 여섯 가지 항목으로 체계화하여 설명할 수 있다. a. 구원(자유/해방)의 하나님 야웨 <출애굽 시내산 계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시인하고 고백한 우선적 항목은 야웨는 구원자 요 해방자 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