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2015 : 작곡가와 그들의 뮤즈 VI 쇼팽, 이방인과 수호천사들 Chopin, an Alien and His Guiding Angels 김현경 Hyun-Kyung Kim / 피아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외래교수 1 그림1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 (Frederic Chopin, 1810-1849) Eugène Delacroix, 1838년 作 피아노의 음유시인으로, 천재적 낭만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프레드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 그림1)은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뽐내며 연주와 작곡을 병행하던 쇼팽은 20세인 1830년에 유럽 순회음악회를 위해 폴란드를 떠났다. 그러나, 한 달 후 고국에서 일어난 혁명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정치적 문제로 귀국하지 못하고 이국땅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데뷔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쇼팽은 낭만주의 예술의 심장인 파 리에 정착했다. 공공연주회와 파리 살롱에서 각광받는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죽을 때까지 폴란 드에 돌아가지 못한 이방인 쇼팽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폴란드의 민요적 선율과 리듬이 담긴 피아노 작 품을 많이 남김으로써 향수를 달랬다. 낭만주의자로서 쇼팽은 과거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서정적이
100 그림 2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에 모인 문화예술계 인사들 (왼쪽부터 알렉상드르 뒤마, 베를리오즈, 조르주 상드, 니콜로 파가니니, 롯시니, 피아노 앞의 리스트, 다구 백작부인), Josef Danhauser, 1840년 作 고 시적이면서도 열정이 번뜩이는 피아노 작품을 주로 작곡하였다. 프렐류드(Prelude, 전주곡), 에튀 드(Etude, 연습곡), 녹턴(Nocturne, 야상곡), 임프롬튜(Impromptus, 즉흥곡), 발라드(Ballade), 스케 르쪼(Scherzo), 바카롤(Barcarolle, 뱃노래), 발스 (Valse, 왈츠) 등은 그의 낭만적 감흥을 담은 성격소 품(Character pieces)으로 각광받았다. 감상용 춤곡인 마주르카(Mazurkas), 폴로네이즈(Polonaise) 들은 각각 폴란드 농민과 귀족의 춤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적 정취를 담았으며 낭만주의 초기 민족주 의 음악의 발달을 엿볼 수 있는 쇼팽의 독보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소나타, 콘체르토와 같은 작품에서는 기존의 형식을 확장하고 위에 열거한 쇼팽 특유의 피아노 장르들의 특징이 혼합되어 대 규모 낭만적 작품들로 탄생되었다. 쇼팽의 천재성은 그의 피아노 작품들이 고전주의 피아노 작품과는 차원이 다른 화성, 선율, 피아노 주법, 페달 사용 등을 보여준다는데 있어 더욱 부각된다. 화성에 있어서, 쇼팽은 반음계적 매끄러운 진행을 통해 감상적이고 우수에 젖은 듯한 특유의 음향을 선사한다. 고전주의 음악에선 동기(motive) 라고 하는 작은 구성단위의 발전과 병합을 통해 8마디 정도의 선율을 만들어 내는데 비해 낭만주의 음 악의 선율들은 그 자체로 길고 완성되어 있으며 더욱 노래답다. 쇼팽의 선율들도 낭만적 성향을 띄며 작품의 곳곳에서 그대로의 모습으로 반복된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이분화 되어 있지 않았던 음악계 에서 쇼팽의 등장은 전문 연주자 라는 직업의 세분화를 가져오게 된다. 쇼팽은 훌륭한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파리의 음악계 및 사교계의 살롱을 강타했고, 많은 피아니스트들은 그의 연주 실력에 도전 하고 라이벌이 되고자 하는 로망을 품었다. 쇼팽은 유난히 긴 손가락을 가지고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 게 이어주는 레가토(legato)주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녹여낼 정도로 섬세하고 감상적인 선율을 연주했 으며, 댐퍼 페달 (damper pedal, 피아노의 댐퍼를 올려 음이 울리게 하는 페달) 사용을 적절히, 미묘 하게 조절하여 아름다운 음향과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쇼팽은 자신의 연주 기법이 더 잘 전달되는 작은 연주장소인 살롱(salon, 귀족이나 부르주와 계급의 저택에 마련된 사교의 장, 그 림 2)에서의 연주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파리 문화예술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쇼팽은 1836년 동료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의 연인 마리 다구(Marie d'agult)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조르쥬 상드(George Sand, 본명Amantine Aurore Lucile 2 The Magazine of the Kore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Dupin, 1804-1876, 그림 3)를 소개 받았다. 소설가인 조르쥬 상드는 폴란드 및 프랑스 왕족의 혈통을 이어 받았으며, 자유분방한 연애사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쇼팽은 남장을 하고 시가를 피우며 남자 들과 거침없는 논쟁을 하는 작은 체구의 조르쥬 상드를 처음엔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밀 약혼 을 했던 마리아 보진스카야의 어머니로부터 결혼을 거절당하고 방황할 때, 조르쥬 상드는 쇼팽을 모 성애로 감싸줬고 그의 창작 활동을 적극 후원하며,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어떻게 보 면 너무도 안 어울리는 커플이었지만, 상드는 쇼팽에 대해 이 연약한 창조물에 중독되었다. 고 전했 으며, 쇼팽 또한 개성강한 그녀의 독특함과 유명세에 이끌리며 그녀를 나의 천사 라고 불렀다고 한 다. 1838년 겨울, 쇼팽과 상드는 마요르카(Majorca, 스페인령 지중해의 섬)로 요양 겸 사랑의 도피를 101 그림 3 바느질하는 조르쥬 상드 (George Sand, 본명 오로르 뒤팽, 1804-1876), Eugène Delacroix, 1838년 作 그림 4 마요르카 발데모사의 수도원에 전시되어 있는 쇼팽의 피아노와 초상화 (Valldemossa, Majorca) 했는데, 악천후와 난방도 잘 안 되는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설상가상으로 쇼팽의 병약함을 키우게 되 었다. 이런 고생 속에서도 쇼팽은 파리에서부터 배달된 플레이엘 피아노(Pleyer, 그림 4)를 연주하며 즉흥적이면서도 시적 감흥이 넘치는 <전주곡 Op.28>, <녹턴 Op.37>, <발라드 2번, Op.38> 등을 작곡 하였다. 쇼팽과 상드가 함께한 나날들은 서로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어 넣었다. 하지만 점점 병약해지 는 쇼팽을 간호하며 지쳐가던 상드는 쇼팽이 자신의 딸 솔란쥬의 결혼과 재산 분할에 이견을 보이자 매우 맘이 상했고, 쇼팽 또한 상드의 아들 모리스의 견제로 불편해진 상황에서, 상드의 소설 루크레 3 치아 플로리아니 (Lucrezia Floriani, 1847) 에서 자신이 나약한 병자 로, 부유하고 나이 많은 주인공에게 사랑과 고통을 초래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1847년 이후 쇼팽은 더 이상 조르 주 상드의 영지를 방문하지 않았고, 10년(1837-1847)에 걸친 그들의 관계는 단호하게 끝나버렸다. 상드가 진짜 쇼팽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쇼팽은 10년 동안 창작한 작품 중에 단 한 작품도 상드에게 헌정하지 않았다. 상드가 남긴 격언 중 인생에 있어 4
102 단 하나의 행복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낭만 주의의 아이콘이었던 쇼팽과 상드, 사랑이 식은 두 남녀는 이렇게 각 자의 행복을 위해 각각의 남은 인생 여정을 걸어갔다. 건강 악화와 궁핍함, 그리고 1848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쇼팽 을 구해준 이는 스코틀랜드의 제인 스털링(Jane Stirling)이라는 제자 였다. 그녀는 영국으로 쇼팽을 초대하여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앞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게 주선하였고, 모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 았다. 제인은 쇼팽을 흠모하였다고 하는데, 쇼팽은 죽어가고 있는 자 신의 처지에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848년 11월 런던 길드 홀 에서 폴란드 유민을 위한 자선 콘서트가 열렸는데, 이것이 쇼팽이 마 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연주회가 되었으며, 마지막 애국심의 발로였 다. 프랑스로 돌아온 쇼팽의 마지막 거처, 임종, 장례식에 이르기 까 지 모든 경비를 제인 스털링이 부담하였으며, 그녀는 쇼팽의 미망인 으로 회자되기도 하였다. 한편, 쇼팽의 마지막 연인으로 또 한 사람 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는데, 스웨덴의 나이팅게일 이라고 불렸던 제니 린드(Jenny Lind, 1820-1887, 그림5)이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로 온 유럽을 휩쓸었던 제니 린드는 1847년 런던에서 처음 쇼팽을 만났 고, 쇼팽은 제니 린드의 오페라 상연을 보고 매우 감동하였으며, 둘은 곧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비밀리에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제니 린드는 미모와 우아함, 그리고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전해지는데 그녀의 매력에 빠진 동화 작가 한스 안데르센이나 작곡가 멘델스존 등은 그녀에게 구애하였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런 그녀가 1850년 미 5 국 데뷔를 앞두고 쇼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1849년 파리에 들렸었다는 일화는 호기심을 불러일으 키기 충분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1855년 영국으로 돌아온 린드는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쇼팽의 마주르카 Op. 24에 이탈리아어로 가사를 붙인 4곡의 노래를 소개했다. 그 중 한 곡(Mazurka No.16, 그림 5 제니 린드 (Jenny Lind, 1820-1887) Op.24, No.3)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담고 있었다. 나의 가엾은 심장, 고통을 잊어주오...결코 사라지질 않을 당신의 사랑, 달콤한 정절을 굳게 믿으며 남겠어요. 유럽 순회 공연을 앞둔 제니 린드가 쇼팽이 가장 사랑했던 장르인 마주르카에 사랑의 가사를 붙 인 노래를 불렀던 것은 우연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며,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속 속 진행 중이다. 쇼팽은 유언으로 매우 특이한 부탁을 남겼는데,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의 심장은 폴란드에 묻히길 바 랐다. 이에 쇼팽의 유해는 파리 근교 빼흐-라쉐스(Cimetière Père-Lachaise)에 묻히며 폴란드의 흙 한 줌이 뿌려졌으며 (그림 6), 그의 심장은 여동생이 운반하여 폴란드로 되돌아갔다. 이방인 쇼팽은 죽어 The Magazine of the Kore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103 7 서라도 귀향의 한을 풀고 싶었던 것이었고, 약간 괴기하기도 한 이런 장례 절 차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극한의 표현적 자유 (애국심의 표현)를 보여준 6 그림 6 쇼팽의 묘 (프랑스 유명인들의 묘지가 모여있는 빼흐-라쉐스, Cimetière Père-Lachaise 에 위치한다.) 그림 7 파리의 마들렌 성당 (L eglise de la Madeleine) 제스츄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유언, 자신의 장례식에서 모차르 트의 레퀴엠이 연주되길 바랐던 유언 때문에 장례식은 2주일이나 지체되었다. 그의 장례식은 파 리의 마들렌 성당 (그림 7)에서 열렸는데, 여자 성악가가 설 수 없었던 카톨릭 성당에서의 연주는 우여곡절 끝에 타협이 되었으며, 쇼팽의 장례식은 파리의 문화예술계 인사가 집결한 대행사가 되 었다. 3000여명이나 성당 밖에 운집할 정도로 거대하게 진행되었던 그의 장례식에 조르쥬 상드는 참석하지 않았다. 프랑스 낭만초기 피아노 음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쇼팽은 파리 시민권을 받았음에도 결코 프랑스인이 아니었다. 이번 초겨울에 방문한 파리에서 쇼팽의 흔적은 너무도 찾기 힘들었다. 폴란 드계 도서관의 작은 홀, 몽쏘 공원의 기념 조각, 그리고 쇼팽의 묘지 등이 남아있을 뿐이며, 파리 에서 인생의 반을 머물었지만 쇼팽을 기리는 작은 박물관 하나 없었다. 외롭고 병약했던 쇼팽에게 타국에서의 생활을 이끌어주고 지켜주며 영감을 불러일으킨 수호천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의 녹턴이나 발라드를 듣고 감상에 젖을 수 없을 것이다. 위대함이 빛을 밝힐 수 있게, 세상 곳곳 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수호천사들의 가호에 감사할 뿐이다. 관련 동영상 1. 프렐류드 No.15, '빗방울 (Prelude Op.28, No.15 in D-flat Major) http://www.youtube.com/watch?v=bczgdb9-ctq, Maurizio Pollini 연주 Maurizio Pollini, Chopin Preludes, Nocturnes, Mazurkas, and scherzo Deutsch Grammophon (2012, 9월) 2. 녹턴 Op.37, No.1 (Nocturne Op.37, No.1 in g minor) http://www.youtube.com/watch?v=dhp_wyudgc0, Arthur Rubinstein 연주 3. 마주르카 No. 16번 (Mazurka in A-flat Major, Op. 24, No. 3)http://www.youtube.com/watch?v=twsdAQ0NpDE&list=RDtwsdAQ0NpDE Arthur Rubinstein, The Chopin Collection, RCA Vctor Europe (1991, 10월) Writer Introduction 피아니스트 김현경은 미국 콜로라도-볼더 대학에서 음악연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 취득 후 이화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숭실대학교, 동국대학교 콘서바토리 외래교수로 재직중이며, 김현경의 '피아노로 엮어내는 음악이야기'의 해설과 연주를 통해 청중과 만나오고 있다. hkkim1015@gmail.com 기획 : 공정식 편집부위원장 jskong@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