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2008년 겨울호, pp.120~139 촛불시위의 동학*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 - 김용철** 10대들의 주도로 시작된 촛불시위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 장기간의 항의운동으로 발전되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요약 못했다. 운동론적 관점에서, 쇠고기 촛불시위는 (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이 매우 활발했다는 점에서, (ⅱ) 특정한 운동지도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운동과 차별화된다. 이 글은 촛불시위 사례연구를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가에 대해 분석하며, 촛불시위의 운동론적 한계와 정치적 의미를 살펴본다. 분석결과에 의하면, 온-오프의 상호작용은 운동의제의 형성 및 전파, 지지자의 동원, 운동유대감의 형성에 있어서, 그리고 지 도부의 모호성은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운동의 적응성에 긍정적 방향으로 작동하였다. 그러나 온-오프의 결합은 운동의 통일성 부재 현상을 낳았다. 이는 결국 두 가지 상반된 결과 - 동원의 성공 과 성과의 실패 - 로 이어졌다. 촛불시위의 정치적 시사 점은 정치지도자와 일반시민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의 필요성이다. 이를 위해, 일반시민과 공직자가 함께하는 온라인 공론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키워드: 촛불시위, 오프라인 사회운동, 온라인 사회운동, 온-오프 상호작용, 네트워크 The Dynamics of the 2008 Candlelight Protests - Interactions between Offline and Online - Yong Cheol Kim Nobody expected that the candlelight vigils initiated by teenagers rapidly evolved into monthslong massive protests. The protests are quite new in terms of frequent interactions between offline Abstract and online, as well as polycentric, and loosely networked leaderships. This paper analyzes the effects that on-offline interactions brought to the protests, and examines their political implications. According to the analysis, on-offline interactions had positive influence on the protest from formation of movement agenda to consolidation of collective identity, while polycentric and loosely networked leadership provided the movements with the ability to adapt easily to changing circumstances. Meanwhile, the on-offline interactions also produced negative effects. The on-offline interactions, leading ultimately to a lack of movement leadership, resulted in a failure of the protests in terms of achievement. A political lesson of the candlelight vigils is that open and smooth communications between political leaders and ordinary people are urgent for consolidating Korean democracy. Keywords: candlelight protests, offline movements, online movements, on-offline interactions, networks 2008년 8월 30일 접수, 2008년 9월 1일 심사, 2008년 10월 30일 심사완료 * 이 논문은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5-005-J11502). * *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kimyc@chonnam.ac.kr). 120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Ⅰ. 서론 10대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 시작된 청계광 장의 촛불문화제가 장기간의 대규모 항의시위로 발 전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촛불집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생, 인터넷 카페모임, 직장인, 가족동반 참여자 등 다양한 계층과 세대로 확장되었 고, 그 연대의식과 결집력 역시 한층 강화되는 모습 을 보였다. 또한 촛불시위는 쇠고기 문제의 재협상 에 국한되지 않고 대통령 퇴진운동, 대운하 반대운 동, 보수신문 불매운동, 건강의료보험 민영화 반대운 동 등으로 다기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정부의 전방위 적 촛불끄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는 마지막 까지 무정형적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였다. 촛불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 고 반촛불 사회단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촛불시위 의 배후설 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유모차를 끈 젊은 주부들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비군복 차림의 참 여자가 나타나고, 닭장차 에 자발적으로 탑승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연출되고,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 (street journalism)이 등장하고,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촛불시위의 배후는 특정 단체나 정치집단이 아닌 일 반시민과 네티즌들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2008년 촛불시위는 두 가지 점에서 새로운 실험 이었다. 첫째, 촛불시위는 기존의 특정 시민 사회단 체가 아닌 다종다양한 시민들에 의해 조직화되고 지 휘되었다는 점이다.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사 회단체도 지도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촛불시위에는 일사불란한 일체의 지휘체계나 명령체 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위참여자들은 서로가 서 로의 배후 임을 자처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촛불집 회를 주관하였던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 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 (이하 국민대책회의)의 간부들의 인터뷰와 일부 참여자들이 관찰적 평가에 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민대책회의 간사 안진걸은 일반시민과 네티즌들의 창발적 참여가 한 미자유무 역협정(FTA) 국면 때부터 쇠고기 문제를 줄곧 제기 해온 시민단체들을 주인공에서 관찰자로 전락 시켰 음을 토로하였다(경향신문, 08/06/09). 또한 국민대 책회의 상황실장 박원석에 의하면, 이번 촛불시위가 리더도 계획된 이동 경로도 없는 아메바 식 운동 양상을 띠었던 까닭에 국민대책회의의 위상은 어정 쩡한 것이었다고 고백하였다(경향신문, 08/06/10). 심지어 경찰관계자도 촛불집회 초기부터 국민대책 회의는 집회만 열뿐, 구체적 내용이나 진행방식은 그 때그때 (시위) 참가자들이 알아서 하는 식으로 이루 어졌다고 평하였다(한국일보, 08/06/30). 둘째, 촛불시위는 정보유통에서 여론형성 그리고 집회참여와 항의행동에 이르기까지 온라인과 오프라 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운동의 추진력과 지속성을 확 보하였다는 점이다. 촛불시위 참여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시위현장의 분노를 온라인에 전달하였고, 네티즌들은 오프라인의 분노를 전자적 활동과 물리적 활동으로 표출하였다. 노트북과 웹캠 으로 무장한 디지털 시위대 는 현장상황을 실시간 으로 중계하였고, 네티즌들은 순식간에 동영상을 사 이버공간에 유포하였다. 이러한 온라인 활동은 더 많 은 네티즌들을 시위에 이끌어 들였으며, 이들의 오프 라인 경험은 다시 온라인공간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 순환적 과정은 분산된 존재로서 이질적인 개인들 을 연결하고 동원하고 행동에 나서게 하는 선순환의 과정이었다. 정부와 일부 보수단체들의 촛불 끄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은 끊 임없이 지지자들을 동원해내고 재생산하였다. 일부 관찰자들이 표현하는 이성적 군중 혹은 다중지 성 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었 다. 이 점에서 촛불시위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가능성 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중앙지도부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온-오프의 상호작용을 통해 운동에 정보화정책 121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너지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2008년 촛불시위는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기존의 사회운동들이 위계적 지도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기획 동원 지휘되어 왔 다면, 쇠고기 촛불시위는 특정한 중앙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 느슨하게 연결된 개별적 개인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지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는 장기간에 거쳐 광범 위한 참여자를 동원해 내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운 동이었다. 무엇이 지도부 없는 촛불시위를 가능하게 하였 으며, 나아가 성공적 운동으로 이끌었던가? 본 논문 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 및 선순환에서 그 해답을 찾을 것이다. 즉 촛불시위의 등장 전개 소 멸이라는 사례연구를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상 호작용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가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이를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운동의제의 생성 및 공론화 과정, 촛불시위의 전개와 종결과정을 단계적으로 검 토할 예정이다. 그런 후, 2008년 촛불시위의 특징과 한계를 논의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촛불시위의 정치 적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Ⅱ. 인터넷과 사회운동의 진화 사회운동이란 지배적 사회질서 및 가치관에서 정 부정책에 이르기까지 기존 질서의 변화를 기대하며 수행되는 의도적이며 목적지향적인 집합행동이다. 따라서 사회운동가들에게 1 어떻게 운동이념과 목 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산 전파하며, 2 어떻게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과 효과적인 항의수단을 확보 하며, 그리고 3 어떻게 동조자 및 지지자를 효율적 으로 창출하고 이들을 상호 연계하여 캠페인 및 시위 에 동원해 내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은 몇 가지 차원에서 사회운동에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 다. 첫째, 인터넷은 지리적 제약을 초월하여 동시적 그리고 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특성은 사회운동가들의 잠재적 지지 자의 발굴 및 충원 그리고 동원능력을 제고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기존 국내외 운동집단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창출하는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 으로 사회운동을 둘러싼 정치적 기회구조를 우호적 인 방향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을 조성하 고 있다(Berman & Mulligan, 2003: 84). 둘째, 인터넷의 개방성 및 쌍방향성은 사회운동가 와 일반시민들 간의 상호교류(interaction)를 활성 화 시키고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산재해 있는 개인 들 간의 상호작용을 더욱 증가시켜, 운동에 대한 의 미의 구성 및 유대감의 형성을 용이하게 하며, 궁극 적으로 집단적 정체성 구축에 기여한다. 달리 표현하 면, 인터넷의 다방향적 상호교류 능력은 사회운동의 응집력과 유대감의 강화, 그리고 운동의 안정성과 지 속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김경미, 2005). 셋째, 인터넷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활동무대와 저 항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이 새로운 사회 운동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인터넷을 이용한 새 로운 운동전략 및 전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사이버행동주의(cyberactivism), 핵티비즘 (hacktivism), 사이버테러리즘(cyberterrorism) 등이 그 사례이다. 사이버행동주의는 운동의제 및 목 표를 실현하기 위해 정상적이고 비파괴적인 방식의 캠페인 활동이며, 핵티비즘은 사이버행동주의와 해 킹(hacking)이 결합한 형태의 온라인 시위활동이다. 그리고 사이버테러리즘은 사이버공간과 테러리즘이 결합된 형태의 저항활동을 의미한다(Denning, 2001: 241). 넷째,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은 운동조직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인터넷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신속 성, 정보수집능력, 네트워킹능력은 고도로 제도화되 고 구조화된 사회운동조직의 필요성을 감소시키고 122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있다. 또한 인터넷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개방적이며 사용자 통제적(user-controlled) 특성 을 지니며, 수직적이며 일방적 정보의 흐름보다는 수 평적이고 다방향적 정보흐름을 촉진한다. 이러한 특 성들은 일반시민들을 단순한 정보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정보생산자로서의 위상도 함께 지니게 한다. 따 라서 인터넷은 사회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보 다 많은 참여와 발언의 기회를 부여하여, 사회운동조 직들의 관료적 경직성과 위계적 권위구조를 부식시 킨다. 이로 인해, 운동과정에 보다 많은 유연성과 민 주성이 흡입되며, 운동조직의 경량화 및 분산화가 촉 진된다(Pickerill, 2001: 148). 인터넷의 등장과 대중화는 기존 오프라인 사회운 동과 확연히 구분되는 온라인 사회운동의 출현시켰 다. 온라인 사회운동은 운동주체, 행동양식, 그리고 운동 유대감의 형성 등의 측면에서 기존 오프라인 사 회운동과 확연히 구분되는 성격을 지닌다(민경배, 2006: 255-256; 김용철, 2008). 첫째, 운동주체 및 지도부의 측면에서 온라인 사회운동은 오프라인 사회운동과 매우 대조적인 특성을 보인다. 전통적으 로 사회운동은 공식적이며 위계적인 운동결사체에 기초하여 왔으며, 중앙지도부의 기획과 지휘 감독 하에서 일사불란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 에 비해, 온라인 사회운동은 느슨하게 연결된 그리고 지리적으로 산재한 개인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 해 운동의제가 채택되고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지휘 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오프라인 사회운동이 소수의 지도부에 의해 이끌어진다면, 온라인 사회운동은 분 산된 그리고 비정형화된 개인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이끌어 진다. 둘째, 운동의 행동양식이라는 측면에서 오프라인 사회운동이 대중매체 및 책자를 통한 홍보, 가두시 위, 농성, 압력운동과 같은 물리적 행위 가 중심이 되는 운동이라면, 온라인 사회운동은 온라인 담론활 동과 사이버행동주의와 같은 전자적 행위 가 중심 이 되는 운동이다. 즉 전자적 행위는 인터넷 게시판 에서 정보의 교환 및 토론 등의 담론활동을 비롯하 여, 메일폭탄, 해킹, 사이버 테러 등과 같은 전자적 항의활동을 포괄한다. 전자적 행위는, 물리적 행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과 빠른 속도에 기초하 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국가의 직접적 규제로 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운동의제의 전파 및 자발적 지지의 동원에 매우 효과적이다. 셋째, 운동유대감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물리적 행위는 운동참여자에 국한한 제한된 범위에서 높은 수준의 정서적 유대감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이에 비해, 전자적 행위는 일반시민이라는 좀 더 광 범한 행위자들을 대상으로 운동에 대한 인지 및 공감 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들 사이에 높은 수준의 운동유대감 창출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물리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현실공간에서의 인간적 접촉을 전제하지만, 전자적 행위는 사이버공간에서 의 가상적 접촉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리적 행위의 반복은 운동에 대한 진지성과 실재감을 극대 화하고 운동경험의 공유가 축적됨에 따라 운동참여 자들 간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 및 집단적 소속감으로 발전하기 쉽다. 하지만, 그 대상은 사회운동에의 직 접 참여자로 제한된다. 이에 비해, 전자적 행위는 가 상적 접촉에 기초하기 때문에, 물리적 행위와는 달 리, 운동참여자들의 정서적 유대감의 수준은 상대적 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전자적 행위가 갖는 비동시성 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동에 대 한 이성적 차원의 인지 및 감성적 차원의 판단을 촉 발시킨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 회운동의 과정적 동학에 그대로 투영된다. 오프라인 사회운동은 확실한 위계적 조직체와 중앙지도부에 의해 이끌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정서적 유대감이 상 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운동체계를 유지 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행동양식이 기 본적으로 물리적 행위에 기초하기 때문에 운동에 수 반되는 경제적 비용과 정치적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운동은 종종 무임승차자(free-riders)의 문제 정보화정책 123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에 직면하기 쉽다. 이에 비해, 온라인 사회운동은 분 산된 개인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해 이끌어지고, 가입과 탈퇴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운동의 통일성을 유지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행 동방식이 전자적 행위에 기초하는 까닭에 운동참여 비용이 저렴하며, 나아가 개인적 판단에 기초한 자발 적 참여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광범한 네트워킹을 통해 보다 많은 잠재적 지지자와 동조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인터넷의 출현이 오프라인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온라인 사회운동을 탄생시켰으나, 최근에는 오프라 인 운동조직과 온라인 운동네트워크가 결합하는 새 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을 낳고 있다(김용철, 2008). 즉 사회운동이 위계적 결사체와 온라인 네트워크라 는 상이한 조직체계의 상호작용 하에서 실천되고, 오 프라인의 물리적 행위와 온라인의 전자적 행위가 결 합되고, 운동연대감이 높은 제한된 범위의 운동참여 자들과 운동연대감이 상대적으로 낮으나 보다 광범 한 일반인들의 운동참여가 결합되는 현상이 발생하 고 있다. 그러면 순수한 의미의 오프라인 사회운동과 온라인 사회운동에 비추어 볼 때, 온라인 사회운동과 오프라인 사회운동의 결합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인가?(<그림-1> 참조) 오프라인 사회운동 위계적 결사체 물리적 행위 제한된 참여자/ 강한 운동유대감 오프라인 + 온라인 지도부의 모호성 물리적 전자적 행위의 상승작용 운동 안정성의 제고 온라인 사회운동 수평적 네트워크 전자적 행위 광범한 참여자/ 약한 운동유대감 <그림 1>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회운동의 상호작용 효과 첫째, 운동지도부의 상대적 모호성이다. 대부분의 오프라인 결사체는 특정한 이념 혹은 이해관계에 기 초하여 위계적 조직체로서 명확한 멤버십과 중앙지 도부를 지닌다. 이에 비해, 온라인 네트워크는 운동 이슈에 대한 공감 및 동의를 매개로 자발적으로 형성 된 다양한 개인들의 연결망인 까닭에, 명확한 지도부 와 멤버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직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오프라인 결사체와 온라인 네트워크 간의 연대가 통일된 중앙지도부의 형성으로 이어지 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 대항운동집 단들이 등장하거나 국가의 개입과 간섭이 심해질 경 우, 새로운 형태의 지도부가 탄생하게 된다. 즉 공동 의 반대세력(shared opposition)의 출현은 운동참 여자들에게 나름의 운동문화와 정체성을 공유하도록 촉진하며, 이는 임시적이고 묵시적인, 분절적이나 상 호 경쟁적인, 그러나 느슨하게 연결된 다양한 운동지 도부의 형성으로 이어지게 된다(Gerlach, 2001: 299). 분절적 (segmentary)이며, 다중심적 (polycentric)인, 그러나 느슨한 형태로 연결된 (loosely networked) 지도부에 의해 이끌어지는 사회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점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이질 적 집단 및 개인들을 포괄하기 때문에, 그 만큼 운동 의 사회적 침투력이 월등하며 광범위한 지지자 동원 에 매우 효과적이다. 나아가 운동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의 수렴과 집단적 분업이 가능하여, 운동의 상황적 대처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상호 경 쟁적이며 다중심적인 그러나 임시적인 지도부에 의 해 이끌어지기 때문에, 외부의 도전과 탄압으로부터 운동은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응능력을 보유한다. 그렇다고 온라인 네트워크와 오프라인 결 사체의 연대가 항상 장점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상 대적으로 자발성과 분산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중앙 집중적 지도부 및 지시체계의 산출이 매우 어렵고, 운동의 통일성과 조직적 정치력의 발휘가 쉽지 않으 124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며, 운동의 종결을 위한 협상과 타협이 쉽지 않는 경 향이 있다(Gerlach, 2001). 즉 외부세력의 반대가 심할 경우, 성과 없는 사회운동으로 그 운명을 마감 할수도있다. 둘째, 온라인의 전자적 행위와 오프라인의 물리적 행위의 유기적 상호작용이다. 먼저 사회운동에 있어 서 담론행위는 새로운 의미의 구성 및 재구성을 통해 지배적 사회질서에 대항하는 언술적 활동이다. 이는 운동의제의 공론화를 통한 운동의 정당성을 강화하 고 잠재적 동조자들을 확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Warf & Grimes, 1997). 이 점에서 온라인공간은 운동참여자나 일반시민들에게 효율적인 담론활동의 장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개 방성과 저렴성은 일반시민들의 담론활동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며, 인터넷의 익명성과 비대면성은 일반 시민들의 능동적인 자기표현과 활발한 숙의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활발한 온라인 담론활동이 운동의 정당성을 강화 하고 사이버행동주의를 촉발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 나, 모든 전자적 행위가 반드시 오프라인의 물리적 행동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프라인 의 물리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전자적 행위에 비해 고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 서 발생하는 물리적 접촉에 비해, 온라인 접촉은 정 서적 친밀감이나 강한 연대감을 창출하는 데에 한계 가 있기 때문이다(Kraut et al., 1998). 달리 표현하 면, 온라인 활동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면대면 연결 망(face-to-face networks)에 포섭된 개인들의 오 프라인 동원과 참여를 촉진할 수는 있으나, 면대면 연결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온라인 담론활동이 일반 시민들의 오프라인 동원과 참여를 유인해 내기란 쉽 지 않다(Pickerill, 2001: 147). 이 같은 온라인 활동의 취약점은 오프라인의 물리 적 활동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 즉 온라인 공동체에 서 나타나기 쉬운 약한 정서적 유대 및 빈약한 소속 의식은 오프라인에서의 물리적 접촉 및 집단적 경험 (예: 번개모임, 집회, 시위)을 통해 보완되고 향상될 수 있다. 온라인의 전자적 접촉이 오프라인의 물리적 대면과 결합될 경우, 실천적 행동의 공유를 통해 운 동참여자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유대감이 증대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운동참여자들 간의 전자적 접촉을 더욱 촉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London, 1997). 요 컨대, 온라인의 전자적 활동과 오프라인의 물리적 활 동의 상호작용은 운동참여자들의 증대시킴과 동시에 이들 간의 집단적 정체성을 증진시켜, 사회운동의 안 정성과 지속성에 기여한다. Ⅲ. 촛불시위의 전개와 동학 1. 운동의제의 형성 촛불시위의 운동의제가 등장하는 배경은 한 미간 의 쇠고기 협상이다. 즉 한 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 두고, 협상개시 8일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 건 개정을 위한 쇠고기협상이 4월 18일 타결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그 1단계 조치로 30개월령 미 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2 단계 조치로 미국이 동물성사료 금지조치방안을 공 표하면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쇠고기 연 령제한을 없애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게 될 것임을 발표하였다. 쇠고기협상 결과가 발표되자, 일부 시민단체와 농 민단체들은 이에 반발하며 협상무효 를 주장하고 나섰다. 4월 18일,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 체연합,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공동성명서를 통해 소뼈에 들어있는 골수가 광우병 전염 위험물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학적 논란이 분분한 와중에서 정부가 뼈 있는 쇠고기 까지 수입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국 민의 생명을 담보로 내건 것 이며, 검역주권을 우리 정부 스스로 포기한 것 이라고 반발하였다(문화일 보, 08/04/19). 또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한우 정보화정책 125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협회도 각각 성명서를 통해 미국의 쇠고기 수입조건 완화는 한우농가의 생산기반을 무너트리는 것이며, 국민 건강권을 담보로 조공 바치듯이 미국의 요구 를 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쇠고기협상 무효화 를 위한 한우인 총궐기대회 를 개최할 것임을 발표 하였다(서울신문, 08/04/19; 연합뉴스, 08/04/24). 국민건강권 및 검역주권 확보 및 쇠고기협상의 재협상 의 요구는 정치권에서도 등장하였다. 통합민 주당은 4월 20일 한미 FTA비준을 위한 징검다리 용 쇠고기협상 결과를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으 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를 조공협상, 퍼 주기 외교 로 비판하면서 협상철회를 요구하였다. 또한 자유선진당은 국민건강과 축산농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경향신문, 08/04/21; 한국일보, 08/04/21). 이들 야당의 원내대표들은 4월 23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 고, 쇠고기협상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 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4월 28일, 이들 은 한나라당과 협의를 통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 회 차원에서 쇠고기 청문회 를 5월 7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한겨레, 08/04/30). 같은 시기, 쇠고기협상과 관련한 운동의제가 온라 인에서도 제기되고 있었다. 먼저, 4월 19일부터 이명 박 대통령의 싸이월드 미니홈피(cyworld.nate. com.mbtious)에 방문자수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네티즌들은 수만 건에 달하는 게시글을 방명록에 남 겼으며, 그 가운데 약 80%가 쇠고기 전면개방에 항 의하는 글이었다. 네티즌의 문제제기는 시간이 갈수 록 증가하여, 26일엔 2만4천명이, 그리고 27일엔 9 만여명이 대통령의 미니홈피를 항의 방문하였다(한 겨레, 08/04/30). 그리고 항의 방문객들의 급증으 로, 4월 30일 대통령의 미니홈피는 방문객의 글쓰기 기능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4월 30일 오전 부터 청와대 홈페이지(cwd.go.kr) 자유게시판에 항 의글들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경향신문, 08/05/ 01). 네티즌들의 항의운동은 대통령의 미니홈피와 청와 대 홈페이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쇠고기협상 타결 이후, 다음(daum.net) 아고라, 디시인사이드 갤러리(gall.dcinside.com), 네이버(naver.com) 토 론방 등 인터넷 포탈사이트들을 중심으로 쇠고기협상 에 대한 의견이 표출되고, 광우병의 원인과 증상 그리 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교 환되고,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정책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4월 18일 5월 1일 기간 동안 다음 아고라의 청원방에 총 830여개의 청원글이 게시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54%가 학교급 식에 미국산 쇠고기 금지규정을 만듭시다, 미국산 쇠고기수입에 대해 위헌 심판을 해주세요, 대통령 각하, 한국국민과 대화를 부탁드립니다, 대통령탄 핵! 컴퓨터로 욕하지 말고 거리로 나갑시다 등의 미 국산 쇠고기수입과 관련된 글들이었다. 다음 아고라의 청원방에서 가장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던 글은 이명박 대통령 탄핵요구 서명운동 이었 다. 이 글은 쇠고기협상이 타결되기 훨씬 전인 4월 6 일, 네티즌 안단테 가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의제(대 운하 추진, 영어 몰입식 교육, 보험민영화, 총선 당시 선거중립 위반, 한미 FTA 체결 등)에 반대하여 올린 항의글이었다. 쇠고기협상 이전에는 하루 평균 천여 명의 네티즌이 방문하여 안단테의 온라인 청원글에 서명하였지만, 쇠고기협상 이후 서명자수가 급증하 는 추세를 보이면서 4월 25일엔 4만여명을, 그리고 4월 28일엔 8만여명을 넘어섰다. 특히 MBC의 생 방송 오늘아침 (4월 28일 방송)과 MBC PD수첩 의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4월 29일 방송)에 대해 네티즌 들이 함께보기 다시보기 운동 을 전개하면서, 1) 온 라인 탄핵운동 참여자는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 결 과, 온라인 서명참여자는 4월 29일에 12만여명, 5월 1) MBC TV 생방송 오늘아침 의 동영상은 4월 28일 유튜브(kr.youtube.com/watch?v=fZW2I8ZNN-w&feature =related)에, 그리고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동영상은 4월 29일 유튜브(kr.youtube.com/watch?v=Zt53nnKKeBU)에 올려졌다. 126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1일엔 40만여명, 그리고 2일엔 47만명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리플 수도 급속히 늘어 24만여개에 달하였 다(경향신문, 08/05/02; 내일신문, 08/05/02). 이처럼, 촛불시위의 의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서 동시에 제기되었고, 오프라인 매체의 문제제기는 그 즉시 온라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온 라인 공간에서의 쇠고기수입반대 라는 운동의제의 급속한 확산은 다시 오프라인 매체인 신문과 방송의 보도 대상이 되었다. 쇠고기협상을 둘러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은 운동의제의 형성과 확산을 더욱 증폭시켰고, 이는 오프라인 촛불시위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2. 촛불집회 : 온-오프 연합체의 형성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둘러싼 운동의제의 확산은 곧 바로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전통적으로, 길거리 시위나 항의집회는 위계적 결사체인 사회운동단체에 의해 조직되고 지도되어 왔다. 이 점에서 초기 쇠고 기 촛불집회는 매우 색다른 것이었다. 복수의 온라인 네트워크가 집회를 경쟁적으로 조직하고 주도했으 며, 뚜렷한 운동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 규모의 시위참여자를 동원해 냈던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 확대에 따른 광우병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촛불집회가 처음 개최된 것 은 5월 2일이었다. 이 집회는 포탈사이트 다음의 이 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cafe.daum. net/antimb)에 의해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되었 다. 5월 3일에도 청계광장에는 온라인 모임인 미친 소닷넷(minchincow.net)과 정책반대시민연대 (cafe.daum.net/ourkorea) 등 여러 단체가 독자 적으로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는데, 온라인 모임들의 경쟁적인 집회 개최로 쇠고기수입 반대캠페인의 분 위기는 참가자들 사이에 혼선이 빚어질 정도로 어수 선하였다(경향신문 08/05/06). 그리고 5월 6일 열 린 3차 촛불집회는 안티 이명박 카페의 주최로 여 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미친소닷넷 주최로 청계광 장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이들 온라인 모임들이 경쟁적으로 개최한 초기 촛 불집회들은 적어도 지지자들의 동원 이라는 측면에 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1차 촛불집회(5월 2일)에는 1 만여명이 참여하였으며, 2차 촛불집회(5월 3일)엔 1 만5천여명이 참석하였고, 그리고 3차 촛불집회(5월 6일)의 경우 여의도 집회엔 6천여명이, 청계광장 집 회엔 3천여명이 참가하였다(한겨레, 08/05/07). 초 기 촛불집회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온라인의 담론활 동을 통한 운동의제의 확산에 있었다. 쇠고기협상과 광우병을 둘러싼 온라인 담론활동은 네티즌들의 공 포 와 분노 를 자아냈고, 이는 국민건강권의 수호와 쇠고기 수입반대라는 운동의제를 온라인을 통해 빠 른 속도로 전파시켰다.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집단 은 10대들이었다. 이들은 초기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10대들의 오프라인 집회참여 동기는 광우병에 대 한 공포, 정부의 학교자율화 3단계 방안(0교시 부 활, 우열반 허용, 영리법인의 학교강의 허용)에 대한 불만, 자신들이 선호하는 연예인의 보호 등 다양하였 다. 2) 이들은 쇠고기 촛불집회가 개최되기 훨씬 전부 터 이미 자신들의 불만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표 출하고 있었다. 정부의 교육정책을 둘러싸고, 청소년 들은 싸이월드(cyworld), 블로그, 인터넷 카페, 휴대 전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였으 며, 4월 19일에는 학부모들과 함께 광화문 세종문화 회관 앞에서 정부의 학교자율화 3단계 조치'에 반대 하는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하승주, 2008). 10대들의 대거 참여는 이들의 활발한 온라인 활동 에 기인하였다. 초기 촛불집회를 개최한 인터넷 모임 2)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들은 동방신기의 팬클럽(카시오페아) 회원들로 동방신기를 미국산 쇠고기로 부터 지키기 위해 라고 대답하였고, 한 여중생은 인터넷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광우병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고 응답하였다(박수진, 2008). 정보화정책 127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들의 회원들 가운데 10대들이 차지하는 인적 구성비 가 상당히 높다는 점은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구체 적으로, 5월 2일 촛불집회를 주도한 안티 이명박 카 페 는 2007년 12월 19일 개설되어 2008년 5월 현 재 약 15만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모임 으로, 이 가운데 10대가 25%로 30 40대(50%)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회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 고 5월 3일 촛불집회를 주도한 정책반대시민연대 (2008년 4월 23일 결성)는 의료보험 민영화반대 인터넷모임 과 대운하반대모임 회원들, 연예가 소 식을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 쭉방 (cafe.daum.net/ 037556), 쌍코 (cafe.daum.net/19810114) 회원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온라인 네트워크로 서, 10대와 20대가 각각 40%로 주류를 이루고 있었 다. 또한 미친소닷넷은 한 미 쇠고기협상 타결 이후 결성된 인터넷 모임으로, 10대가 전체회원의 50%에 달하였다(한겨레, 08/05/13). 10대들에 의해 시작된 초기 촛불집회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연령집단으로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집회에 대해 다각적인 대 책마련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5월 2일 청와대는 인 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광우병 괴담 에 대한적 극적인 반론 제기 및 전방위적 홍보에 나설 것임을 언명하였고, 5월 3일 한나라당은 촛불집회를 정치 꾼의 국민선동 으로 규정하였다(한겨레, 08/05/05). 그리고 경찰은 5월 4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를 불법으로 규정해 형사처벌을 검토하겠다고 밝혔 으며, 일부 보수언론들은 광우병 위험을 괴담 으로 치부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에 의문을 제기하 는 여론을 반미 혹은 용공 으로 몰아가기 시작하 였다(경향신문, 08/05/05).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성명과 대책,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의 태도는 네티즌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 켰다. 각종 포탈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의 글들이 쏟아졌다. 특히 다음 아고라에서 는 5월 4일 촛불집회 불법규정 철회요구 서명운동 이 시작되었고, 하루만에 3만 5천여명의 네티즌들이 이에 서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찰청 홈페이지도 네티즌의 항의글이 쇄도하였다. 사이버경찰청 열린 게시판 에는 5월 4일 촛불집회를 둘러싼 경찰 발표 이후 5월 5일까지 약 5,600여개의 항의글이 게재되 었다(한겨레, 08/05/06). 정부의 억압적 태도는 온라인 모임과 오프라인 결 사체의 연합을 촉발하였다. 5월 6일, 전국 1500여개 달하는 시민 학생 학부모 단체 등 오프라인 조직 체들과, 미친소닷넷과 정책반대시위연대 등 온라인 모임의 대표들이 국민대책회의를 결성하였다. 그리 고 국민대책회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무 효화와 재협상, 농림부 장관과 한 미 쇠고기협상 대 표의 파면, 대통령의 공개사과, 광우병 예방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촉구하였다(한겨레, 08/05/07). 국민대책회의의 발족은 다양한 사회단체들의 촛불 시위 지지선언이라는 동시다발적 연쇄반응으로 이어 졌다. 5월 7일, 서울지역 18개 대학 총학생회와 동아 리연합회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저지를 위한 서울지 역 대학생 시국회의 출범식을 개최하고 검역주권 을 포기한 굴욕협상을 무효화하고 광우병위험 쇠고 기수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할 것 을 촉구하고 나섰다(경향신문, 08/05/08). 또한 전 국교수협의회 및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단체들도 미 쇠고기 수입반대 서명운동 을 전개하기 시작하 였다(한겨레, 08/05/09). 뿐만 아니라, 전국운수노 조는 미국산 쇠고기의 입항 하역 운송을 거부하기 로 결의했으며, 전국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조합원 이 근무하는 병원 학교 등의 급식에서 미국산 쇠고 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의 한인주 부들도 성명서를 내고 미국 내에서도 쇠고기에 대 한 불안감과 불신이 크다 며 쇠고기수입 전면재협 상 을 촉구하였다(경향신문, 08/05/10). 촛불집회를 저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 었다. 일부 정부부처들은 산하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들에게 촛불집회의 참여를 자제해 달라는 휴대전화 128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메시지를 보냈으며, 서울시교육청을 포함한 일부 시 도교육청 역시 일선 학교장들에게 학생들의 집 회참여를 막아 달라는 가정통신문의 발송을 종용하 였고, 촛불집회 현장에 장학사와 지도교사를 보내 현 장 감시에 나서기도 하였다(경향신문, 08/05/13). 정부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이미 촛불집회는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5월 9일 열린 촛불집회 는 이전 보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10대에서 직장인 주부 노인 등으로 훨씬 다양해졌으며, 촛불집회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주 요도시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수평적 연합체의 성 격을 지닌 국민대책회의는 애초부터 시위를 일사불 란하게 기획하고 지휘하는 중앙지도부를 결여하고 있었다. 촛불집회 현장은 평화적 집회 및 자발적 의 사표현 등의 수평적인 집회문화가 과거의 전투적이 며 위계적인 집회문화를 압도하고 있었다. 집회는 소 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자율적인 방식으로 진행되 었다. 국민대책회의의 역할은 집회참여자들에게 집 회 장소 및 일정을 홍보하고 행사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데 그쳤다. 지지자동원, 운동경비조달, 시위전략 등은 온전히 일반시민과 네티즌들의 몫이었다. 따라 서 촛불시위의 동력은 온라인 활동을 통해 얼마나 많 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동원해 내느냐, 즉 온라인의 전자적 활동과 오프라인의 물리적 행동을 얼마나 유 기적으로 연계해 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 였다. 우선, 촛불집회 경비는 네티즌들의 온라인 성금과 집회 참가자들의 현장 모금으로 충당하였다. 1만 여 개의 양초와 종이컵 등을 포함하여 촛불문화제 개최 시 소요되는 경비는 총 400 500만원에 달하였는 데, 이 경비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의 후원금, 일반 네티즌들의 온라인 송금, 집회현장의 모금을 통해 해 결하였다. 그리고 모금 규모 및 지출 내용은 국민대 책회의 홈페이지에 매일 공개되었다. 예컨대, 5월 17 일 촛불문화제 현장에서만 1,500만원이 걷혔으며, 5 월 26일까지 국민대책회의에 답지한 성금은 총 6,700만원에 달하였다(경향신문, 08/05/28).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 운동자원의 동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되는 가 운데, 5월 13일 경찰청이 광우병 괴담 유포자 및 촛 불집회 주모자 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밝히자, 네 티즌들은 경찰청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내가 주모 자 라며 대대적인 자수운동 을 전개하였다. 경찰청 웹사이트의 열린게시판은 순식간에 내가 바로 괴담 유포자이고 촛불집회의 참가자다. 나를 잡아가라 는 글로 도배되었고, 이로 인해 경찰청 홈페이지는 5월 14일 오후 한때 접속이 마비되기도 하였다. 또한 다 음 아고라 청원방에는 다같이 경찰청으로 자수하러 갑시다 라는 제안 글이 게시되었고, 토론게시판에는 경찰청에 손잡고 자수하러 가자 는 서명운동이 벌 어져 5월 14일 하루 동안 1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이에 서명하였다(경향신문, 08/05/15).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활동은 이에 그치지 않 았다. 오프라인에서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 대하는 현수막 내걸기 운동이 온라인을 통해 전국 으로 확산되었다. 5월 14일 경기도 과천지역 교육자 원봉사 모임인 맑은내 방과후 학교 회원들에 의해 시작된 미 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 걸기운동이 다 음 아고라를 통해 알려지자, 현수막을 보내달라는 네 티즌들의 요청이 쇄도하였다. 또한 일부 행정기관이 현수막 걸기운동을 저지하려 한다는 소식이 온라인 을 통해 전해지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해당 기관에 항의전화 걸기운동 에 동참하였다(경향신문, 08/05/17). 이후 네티즌들의 요청으로 현수막이 온 라인을 통해 자세히 소개되었고, 이에 따라 현수막 걸기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은 촛불집회 를 성공적인 행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5월 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청계광장의 촛불집회에 500 정보화정책 129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여명이 참여하였고, 9일엔 2 3만여명이, 10일엔 8 천여명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국민대책회의가 집중 의 날'로 선포한 14일과 17일엔 전국적으로 2 4만 여명이 참여하였다. 3)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촛 불집회는 학생들의 율동과 가수들의 노래, 그리고 시 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축제분위기 하에서 진행되었다. 촛불집회의 동원력은 정부를 크게 당황시켰다. 대 통령 취임 당시 약 50%에 달하던 이명박 대통령 지 지율이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5월 5일에는 36.4%로, 5월 10일에는 26%로, 그리고 5월 15일에는 23%로 추락하였다(한겨레, 08/05/16). 이에, 대통령은 5월 22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이란 대국민 담화문을 발 표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쇠고기 파문과 관련하 여 정부가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 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며 국민 여러분께 송 구스럽게 생각한다 고 발표하였다(국민일보, 08/05/ 23). 3. 촛불시위 : 온-오프 연계활동의 진화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는 네티즌과 일반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였다. 온라인 모임 및 사회단체들은 대통령이 광우병의 위험성과 쇠고기수입 재협상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민심을 무마시키는데 급급했다 고 비난하였고, 국민대책회의는 5월 22일 오후 7시 부터 청계광장에서 국민은 속지 않는다 라는 주제 로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한겨레, 08/05/23). 정부 의 재협상 불가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 강행 방침,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의 광우병 괴담 및 배후론 공세가 강화되면서, 촛불집회의 양상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즉 문화제 형식의 촛불집회가 가두시위로 발전하였으며, 가두시위의 현장 상황을 생중계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 들이 등장하였으며, 쇠고기 이슈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 의제가 등장하여 촛불시위가 다각화하는 모습을 보 이기 시작했다. 우선, 5월 24일과 25일 열린 촛불집회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내부적 격론이 발생하였다. 촛불집회의 방향을 둘러싸고, 집회 참여자들 간에 문화집회를 지속하자 는 주장과 거리시위에 나서자 는 의견이 대립하였다. 그러나 논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부 격론은 거리로 나갈 사람은 나가고, 싫은 사람은 기 존처럼 하자 는 것으로 마감되었다(경향신문, 08/05/27). 5월 24일부터 시작된 집회는 26일 새벽 까지 밤샘 가두시위 로 이어졌으며, 독재 타도 및 대통령 하야 의 구호가 등장하였다. 시위대의 밤샘 거리행진은 촛불집회가 끝날 무렵 지휘자 없이 자연 스럽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살수차가 동 원되었고, 일부 시위참여자들이 연행되었다. 재협상 과 고시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한 정부의 대응 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대응 수위가 높아가자, 다양한 온-오프 상 호작용이 더욱 활발해졌다. 첫째, 온라인과 오프라인 을 연결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 의 활동이다. 이들 은 노트북 및 캠코더 등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여 시 위현장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알렸다. 시위현장을 찍 은 영상들이 상황 설명과 함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 려지고, 이는 다시 네티즌을 통해 각종 카페와 블로 그로 퍼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 아프리 카 (afreeca.com)에는 5월 24일 밤부터 집회현장 을 생중계하는 방송이 40여개나 개설되었고(경향신 문, 08/05/27), 5월 25 27일 사이에 400 700개 에 달하는 인터넷 개인방송이 방영되었다(중앙일보, 08/05/29). 그리고 5월 25일 6월 1일 기간 동안 인터넷 생중계를 시청한 네티즌들은 400만 여명에 달하였다(한겨레, 08/06/03). 온라인 생중계는 거리 3) 집회참가자 수는 촛불집회 주최 측의 집계과 경찰 측의 집계가 서로 다르다. 위의 집계는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참가자수를 인용한 것이며, 이는 촛불집회 주최 측의 수치와 경찰의 추산 수치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130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의 분노 를 그대로 네티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온 라인에 머물고 있던 수많은 네티즌들을 오프라인 시 위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둘째, 온라인 촛불집회의 등장이다. 온라인 촛불집 회는 벤처사업을 위한 대학생 모임이 만든 인터넷 사 이트 실타래 (sealtale.com)의해 5월 26일 처음 시작되었다. 이는 오프라인 시위에 미처 참여하지 못 한 네티즌들을 위한 것으로, 실타래 홈페이지를 통해 촛불 모양의 아이콘을 내려받아 블로그, 미니홈피, 개인 홈페이지 등에 배너 형태로 달아 놓음으로써 온 라인상에서 촛불을 밝히는 전자적 항의활동이다. 온 라인 촛불집회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 되었고, 개설된 지 일주일 만에 43,000여명이 이에 동참하였다. 셋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 호응 활동이다. 경찰의 강경진압과 관련하여, 네티즌들은 다음 아고 라에 모여 시위에 대한 각종 의견을 제시하며 맹렬한 토론을 벌였다. 5월 28일 한 네티즌이 촛불문화제, 이젠 냉정해져야 할 때 란 글에서 도로점거를 통해 정부 쪽에서 촛불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간주할 근거 가 생겼으며 국민적 지지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릴 위 험이 있다 며 좀 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노선을 택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곧 이어 찬반의 댓글이 쏟아 지면서 한바탕 댓글전쟁 이 전개되었다. 찬반의견 들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비폭력 무저항 시위에는 대부분 동의하였다(한겨레, 08/05/29). 이러한 온라 인의 담론활동은 오프라인 시위에 곧 바로 반영되었 다. 5월 29일 장관 고시 강행 방침이 알려지자, 2만 여명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위에 들어갔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맞서, 시위참여자들은 비폭력 무저항 으로 대처하였다. 젊은 주부들의 유모차 부대 가 시 위의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경찰의 강제연행에 시민 들은 우리가 직접 버스에 타겠다 며 스스로 닭장 차 에 오르기도 하였다(경향신문, 08/05/30). 이와 는 달리, 오프라인의 요청이 즉각적으로 온라인 행동 으로 실천되기도 하였다. 100만 촛불대행진 이 열 린 6월 10일의 시위현장도 아프리카 (afreeca.com) 및 디지털 시위대 에 의해생중계 되고 있었다. 오후 8시 30분에 촛불대행진 사회자 가 집에서 보시는 분들은 청와대 누리집에 방문해 우리 힘을 보여주자 고 요청하자, 네티즌들은 바로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청 와대 홈페이지가 마비되었다(한겨레, 08/06/12). 한편, 촛불집회에 여러 세대와 계층이 참여함에 따 라, 다양한 운동의제들이 제시되었다. 집회 참가자들 은 쇠고기 수입반대 에서 공기업 민영화 저지,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영어 몰입교육 반대, 대 운하 반대 등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구호를 쏟아냈 다. 특히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은 촛불집회의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이는 일부 보수신문들의 말 바꾸 기 와 촛불집회의 배후론을 제기한 데에 따른 분노 의 표출이었다. 보수언론에 항의하여, 네티즌과 일반 시민들은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5월 30일, 집회현장에서 미디어행동 은 조 중 동 평 생구독거부 운동 을 펼쳐, 1만 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한겨레, 08/06/02). 같은 시기, 다음 아고라 토론방 에서는 조 중 동 불매 및 조 중 동 광고기업 불매 100만명 서명운동 이 시작되었다. 특히 조중동 폐간운동 카페(cafe.daum.net/stopcid)는 매일 오늘의 숙제 를 통해 조 중 동에 실린 기업광고 를 소개하고 해당 기업에 광고매체의 변경을 요청해 줄 것을 권유하였다. 이러한 조 중 동 광고게재 기업 제품 불매운동 은 네티즌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 결과, 해당 신문에 광고를 실었던 광고주 들은 고객 및 네티즌들의 항의전화 폭주와 제품 불매 운동에 놀라, 사과문 및 광고매체의 변경을 발표하기 도 하였다. 네티즌들의 조중동에 대한 항의운동은 바른 언론 후원운동 으로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온라 인 카페 모임들의 쇠고기 수입반대 항의광고 싣기 운동 이다. 최초의 항의광고는 20 30대 여성들의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인 소울드레서(cafe.daum. 정보화정책 131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net/souldresser)가 회원들의 성금을 모아 신문에 게재한 광고였다. 이 카페는 5월 17일자 한겨레에 국민의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정부가 책 임지고 재협상하십시요! 라는 광고를 실었고, 5월 19일자 경향신문에는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와 미국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다릅니다! 라는 광고를 게재하였다(아고라 폐인들, 2008: 86). 이후 항의 광고 싣기운동 은 네티즌들의 온라인 모임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예컨대, 야구 커뮤니티 엠엘비파 크(mlbpark.com)는 5월 26일자 경향신문에 우리 는 잘못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합니다 를, 여 성 사이트인 마이클럽(miclub.com)은 5월 29일자 한겨레와 6월 1일자 경향신문에 대한민국은 주식회 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를, 그리고 온라인 모임인 한류열풍사랑 (cafe.daum.net/ hanryulove)은 6월 12일자 한겨레에 결국은 국민 이 이깁니다! 를 게재하였다(아고라 폐인들, 2008: 86; 경향닷컴 촛불팀, 2008). 4. 촛불끄기의 어려움 촛불시위는 반촛불시위 를 동반하였다. 전국적으 로 50만명 이상이 참여한 6 10 촛불대행진 에 대 항하여, 같은 날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해병대전우회, 한미친선연합회, 조갑제닷컴, 과격촛 불집회반대시민연대, 국가연합기도모임 등 다양한 보수단체들이 법질서수호 자유무역협정비준 촉구 국민대회 를 개최하였다(한겨레, 08/06/11). 또한 이들은 6월 13일 서울역 광장에서 국정 흔들기 중 단 촉구 6 13 국민대행진 을, 6월 25일에는 구국 기도회 를 개최하기도 하였다(한겨레, 08/06/14; 경 향신문, 08/06/26). 이들의 반촛불 활동은 단순히 촛불시위를 반대 하는 활동을 넘어 공기업 민영화 및 일부 방송사의 언론보도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되었다. 6월 13 일과 18일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는 여의도 한국방 송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촛불시위와 반미감정을 부 추기는 한국방송을 규탄하기도 하였다(한겨레, 08/06/ 19). 또한 6월 20일 국민행동본부와 뉴라이 트전국연합도 문화방송의 광우병 위험성 보도에 항 의하였다(한겨레, 08/06/21). 촛불끄기 운동은 오프라인에만 그치지 않았다. 인터넷 카페 과격불법촛불시위반대 시민연대 (cafe.naver.com/nonodemo)는 폭력시위를 선동 하는 불법단체를 파악하여 시위참가자나 다른 시 민들에게 알리는 네티즌 모임으로 6월 2일에 개설 되었다. 이 모임은 촛불집회의 피해 사례들을 수집하 여 촛불시위의 부당함을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동시 에, 이들은 일부 생활카페 등이 주도하고 있는 보수 언론 광고업체 불매운동 에 대항하여, 촛불시위에 대한 편파적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판단되는 KBS와 MBC 뉴스의 광고주 연락처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이들에게 항의전화를 하도록 촉구하기도 하였다(한 겨레, 08/06/19). 그러나 반촛불 모임들의 촛불끄기 활동은 거대 한 촛불시위에 맞서기에는 매우 초라해 보였다. 6월 5 7일의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와 6 10 촛불 대행진 에 이어, 국민대책회의의 일정과는 관계없이 촛불집회가 연일 개최되었다. 적어도 6월 26일 정부 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관한 장관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기 전까지 촛불시위는 맹렬한 기세로 진행되었다. 촛불끄기 의 주인공은 정부였다. 정부와 여당이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키로 했다는 소식 이 알려지자, 6월 25일 국민대책회의는 고시 강행 저지 총력집중 촛불대행진 1박2일 투쟁 을 선언하였 고, 이에 따라 촛불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이미 강 경 기조로 돌아선 경찰은 무차별 연행 에 나섰고, 시위현장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하 였다. 25일 오후에 시작된 시위는 26일 새벽까지 계 속되었고, 이날 시위에서 시민 139명이 연행되고 15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경향신문, 08/06/27). 132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이어 주말인 28 29일 열린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강경한 진압과 시민의 격렬한 저항이 맞서면서 촛불 집회 시작 이후 최악의 충돌이 빚어졌다. 이날 시위 에서 경찰은 112명이 부상당하였고, 시민들은 300 여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되었다(경향신문, 08/06/ 29). 이 사건 직후 취해진 경찰의 광장 원천봉쇄로, 촛 불시위는 최대 위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종교 인들이 주도하는 릴레이 촛불 수호 가 꺼져가는 촛 불시위를 다시 집혔다. 촛불 지도부의 부재 혹은 모 호성이 종교인들의 촛불집회 주관을 용이하게 하였 던 것이다. 먼저, 6월 30일 오후 7시 천주교정의구 현사제단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열고, 이 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광 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사제단의 미사가 끝나자, 밤 9시쯤부터 숭례문을 거쳐 명동까지 1시간 동안 평화행진을 벌였다. 다음날에도 사제단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이틀째 시국미사를 이어갔다(경향신문, 08/07/02). 뒤이어 3일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사제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가 주최한 촛불문화제 구국기도회는 오후 7시에 시 작하여 오후 11시에 자진 해산하였다. 이어 4일에는 불교계가 가세하여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 를 개최하였고, 이 법회는 오후 11시 께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5일에는 6 10 촛 불대행진 이후 최대 인파가 모인 가운데 7 5 국 민승리선언 범국민 촛불대행진 이 비폭력 평화집회 로 마무리됐다(경향신문, 08/07/07). 7월 5일의 촛불대행진 이후, 촛불시위는 장기전으 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7월 7일, 국민 대책회의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향후 대형 집회는 국민대책회의가, 그리고 평일의 촛불집회는 시민 사회단체들이 주도하기로 역할분담을 하였다 (경향신문, 08/07/07). 이러한 역할분담 결정은 집 회를 둘러싼 상황적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 첫째, 2달여 동안의 집회와 시위로 국민들 사이에는 서서 히 운동 피로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7월 5일 리서치플러스 가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 면, 촛불집회의 지속여부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공감하며 계속되어야 한다 가 28.5%, 공감하지만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가 43.7%, 공감하지 않으 며 중단돼야 한다 가 22.0%로 나타났다. 즉 촛불집 회에 대한 공감대는 72.2%로 여전히 높지만, 촛불집 회의 중단을 원하는 목소리도 65.7%에 달하였다(한 겨레, 08/07/07). 이는 1개월 전(6월 3 4일) 리얼 미터 의 여론조사결과( 지속되어야 한다 는 의견 64.5%, 자제되어야 한다 는 의견 31.1%)와 비교할 때, 촛불집회의 자제여론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준 다(뉴스와이어, 08/06/05). 둘째, 정부의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대한 초강경 탄압정책이다. 6월 30일, 검찰은 전국 지방검찰청 공안 형사부장 연석회의를 개최해 촛불집회에 대 한 강력 대응을 선언하였고, 행정안전부 외교통상 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3개 부처는 공동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3,500여명의 전국 읍 면 동장을 소집해 국정현안 설명회 를 개최했다. 이는 촛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 한 30일 경찰이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 색을 실시하였고, 촛불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국민대 책회의 간부 8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같은 날, 노동부도 긴급 확대노동청장회의를 열고 민주노 총의 쇠고기 총파업 저지에 나섰다(경향신문, 08/ 07/01). 정부의 강경대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문 화방송 PD수첩 에 대해 특별수사팀을 꾸려 조사하 기 시작하였으며, 경찰은 촛불집회와 관련해 허위사 실 유포 혹은 명예훼손 혐의로 네티즌들을 구속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조 중 동 광고주 압박운동 을 주도한 혐의로 네티즌 20여명에게 출국 금지령을 내 리기도 하였다(경향신문, 08/07/06; 한겨레, 08/07/ 09).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검찰은 포 탈사이트 다음을 압박하여 촛불시위의 공론장이 되 정보화정책 133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어왔던 아고라의 파괴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4) 더불 어 경찰과 서울시는 국민대책회의의 활동을 와해시 킬 목적으로 벌금폭탄 을 가하였다. 5) 계속되는 정부의 전방위적 탄압으로, 촛불시위는 더 이상의 활동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촛불시위 의 동력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정부의 탄 압에 맞서, 다양한 지도세력들이 번갈아 가며 소규모 게릴라 형태의 촛불시위를 계속 이어갔다. 상황적 변 화에 따라 촛불시위가 새로운 형태로 적응한 것이다. 예컨대, 7월 8일에는 민주노총이 여의도 문화방송 앞에서 PD수첩 탄압중단 공영방송사수 촛불문화 제 를 주도했으며(한겨레, 08/07/09), 7월 9일엔 전 국농민회총연맹이 시 군별로 쇠고기협상 무효와 농 민생존권을 주장하는 전국농민대회를(한겨레, 08/ 07/10), 7월 10일엔 촛불을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모임 주최로 보신각 앞에서 촛불집회를(한겨레, 08/07/11), 주말인 7월 12일엔 국민대책회의가 집 중집회 를, 14일엔 문화연대 등 문화 예술단체 회 원과 시민들이 청계광장에서 힘내 힘내 힘내자 촛불문화제 를(한겨레, 08/07/16), 16일에는 청계광 장에서 민주노동당이 촛불집회를(한겨레, 08/07/17), 제헌절인 17일에는 국민대책회의가 청 계광장에서 국민주권 실천을 위한 촛불대행진 을 (경향신문, 08/07/18), 24일엔 여의도 KBS 방송국 앞에서 다음 아고라 및 안티이명박 카페회원들 이 촛불시위를 이어갔다(경향신문, 08/07/25). 이후에도 촛불시위는 다양한 집단들에 의해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7월 26일 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등 청소년단체 주최로 0교시 우열반 반대 집회를(경향신문, 08/07/ 27), 26일엔 국민대책회의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2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청계광장에서 4 15 공교 육 포기 정책반대 연석회의 를(한겨레, 08/07/28), 8월 2일엔 국민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 상 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한겨레, 07/08/04), 5일 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과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가 청계광장에서 부시 방한 반대 촛불집회 를(한겨 레, 08/08/06), 그리고 광복절인 8월 15일엔 국민대 책회의가 100번째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국 민대책회의는 8 15 100회 촛불대행진 국민선언 문 을 발표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거부와 불매, 유 통저지 를 위한 촛불운동은 지속될 것임을 선언하였 다(뷰스앤뉴스, 08/08/16). Ⅳ. 촛불시위의 운동론적 특징과 한계 10대들이 주도한 촛불집회가 모든 세대들이 참여 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고, 그것도 3개월 이상 장 기간의 저항운동으로 발전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특히 정부의 전방위적 탄압이 본격화 되었던 6월말 이후에도, 촛불시위는 1개월 이상 지속되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그림-2> 참조). 뿐만 아니라,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기존의 촛불집 회(2002년 효선 미선 촛불집회 및 2004년 탄핵반 대 촛불집회)들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주 었다. 첫째, 운동의제의 형성과 전파는 오프라인과 온라 인에서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온-오프라인의 상호작 용은 운동의제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확산을 촉진하 였다. 전통적으로, 운동의제의 형성과정은 위계적 결 사체의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예컨 대, 최근 2002년 및 2004년의 촛불집회의 경우, 부 분적으로 온라인의 활동이 존재하였지만, 오프라인 4)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광고주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네티즌들의 게시글을 불법으로 유권해석하고 아고라 를 운영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 다음 측에 게시글들을 삭제할 것을 통보하였으며, 검찰은 아고라 에 올라온 게시글을 수사해 해당 네티즌을 사법처리하겠다고 압박하였다(경향신문 08/07/08). 또한 7월 16일 방송통신 심의위는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PD수첩에 대해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렸다(경향신문 09/07/17). 5) 경찰은 촛불집회 진압 도중 파손된 장비 및 부상당한 경찰에 대한 보상비 위자료 등의 명목으로 국민대책회의에 수억 원대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서울시도 국민대책회의에게 서울광장 사용료 등으로 1200만원의 납부를 요구하였다(경향신문 08/07/18). 134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 출처: 위 그림은 한겨레 에 보도된 서울지역의 촛불시위 참가자수에 기초한 것임. <그림 2> 촛불시위 참가자수의 추이 : 5월 2일 8월 15일 시민단체들이 운동의제의 형성 및 전파를 주도하였 다. 이 점에서 2008년 촛불시위는 기존 사회운동과 대조된다. 즉 쇠고기수입 을 둘러싼 운동의제는 한 미 쇠고기협상 타결 직후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서 동시에 제기되었고, 오프라인 매체(문화방송의 PD수첩)와 온라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운동의제가 매우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 전파되었다. 둘째, 초기 촛불집회를 주도한 집단은 10대들이었 다. 그간 한국정치에서 10대가 선두에 서서 광장의 정치 를 주도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집 회에서 보여준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는 매우 이례적 인 현상이었다. 이들의 정치참여 동기는 교육정책 및 쇠고기 문제를 포함한 정부정책에 대한 총체적 불만 이었다(윤성이 장우영, 2008). 그러나 정치적 불만 그 자체가 항상 집단적 정치참여로 이어지는 것은 아 니다.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것은 온라인 네트워크 였다.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사이버공간에 익숙한 집 단이다. 이들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정부의 교육 정책 및 광우병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였고, 이를 바 탕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온라인에서 토로하였고, 온 라인 의견교환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그 최종 적 결과가 10대들의 집단적 정치참여였다. 셋째, 촛불시위의 동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 호작용이었다. 2002년 효선 미선 촛불집회, 그리 고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에서도 온라인 활동은 활발하였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는 매우 획기 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 작용이 본격적으로 실험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촛불 집회들과 차별화된다. 오프라인의 시위가 온라인 항 의를 촉진시키고, 전자적 활동이 물리적 활동을 증폭 시키는 온-오프의 선순환이 등장하였다. 특히, 온라 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 은 운동현장의 인간적 분노를 온라인에 그대로 전달하 였으며, 이는 온라인에 머물고 있는 많은 시민들을 오프라인에 끌어 들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동시에 온라인 항의활동은 단순히 의제형성 및 전파에 머물 지 않고 오프라인 행동으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였으 며, 이는 촛불시위의 집단적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요컨대, 온-오프의 상호작용은 운동자원을 확보하고, 우호적인 정치세력을 끌어 모으고, 운동정 체성을 확립 강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넷째, 이번 촛불시위는 지도부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끌어졌다. 비록 온라인 모임과 오프라인 결사체들 의 연합체인 국민대책회의가 존재하였지만, 운동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위계적 지도부는 존재하지 않았 다. 운동지도부의 모호성은 운동 적응성의 제고 와 정보화정책 135
정보화정책 제15권 제4호 운동 통일성의 결여 라는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초 래하였다. 운동의 적응성이라는 측면에서, 지도부의 모호성은 종종 실시간으로 조정되고 동원되는 협 동적 상호작용의 집단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피에르 레비, 2002: 38-41) 혹은 운 동의 분업화와 창발적이며 합리적인 집단적 상호작 용의 떼지성 (swarm intelligence)(안토니오 네그 리, 2008: 127)에 비견되는 현상을 낳았다. 다양한 집단들이 번갈아 집회를 주최하고, 시위참여자들은 운동현장을 둘러싼 상황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시위 의 방향과 전략을 논의하였다. 정부의 강경 탄압에 맞서 새로운 임시 지도부가 탄생하기를 반복하였고, 이는 정부의 촛불끄기 효과를 최소화하는데 기여하 였다. 그러나 이른바 집단지성 혹은 떼지성 이 촛 불시위를 일관되게 지휘한 것은 아니었다. 간간히 격 렬하고 과격한 운동에너지가 촛불시위를 지배하기도 했다. 즉 중앙지도부의 부재는 운동의 전략적 정치력 의 부재를 낳았다. 그 최종적 결과는 운동의 장기화 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의 부재로 나타났다. 촛불시위는 동원의 성공 과 성과의 실패 로 요 약된다. 많은 사회운동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사회 운동은 운동자원이 풍부할수록, 정치적 환경이 우호 적일수록, 운동집단의 응집성 및 유대감이 높을수록 안정성과 지속성을 지니게 된다. 이 점에서 2008년 촛불시위는 온라인의 장점과 오프라인의 강점을 조 화롭게 접합시킨 창조적 과정이었다. 반면 촛불시위 는 디지털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운동리더십의 창 출, 달리 표현하면 집단지성 의 창출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낳고 있다. 오프라인 운동이 중앙집중화 (centralized)된 위계적 결사체에, 그리고 온라인 운 동이 분산화 (decentralized)된 수평적 네트워크에 기초하고 있다면, 촛불시위는 온-오프의 결합을 통 해 분산된 네트워크의 조직화 (organization of decentralized networks)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 것은 위계적 중앙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 이질적 개 인들과 분산된 집단들을 하나로 묶어내어 항의행동 으로 전환시키는 조직화 과정이며, 새로운 형태의 운 동리더십을 만들어가는 창조적 과정이다. 이 점에서 촛불시위는 어떻게 운동에너지를 전략적으로 집약하 고 발휘할 것인가의 문제에 취약성을 보였다. 촛불시 위의 경험은 분산된 네트워크 의 유연한 조직화 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Ⅴ. 결론: 촛불시위의 함의 촛불시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끌어졌으며, 온-오프 간의 상호작용은 적어도 지 지자의 동원이라는 측면에서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 과(synergy effect)를 발휘하였다. 촛불시위의 엄청 난 동원력에 맞서, 정부의 촛불진압은 온-오프라인 을 포괄하는 전방위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만큼 촛 불끄기 작업은 높은 정치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온-오프의 상호작용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운동지도부의 모호성-운동지도부의 분산성 다중심 성 느슨한 연계성-이 정부의 촛불끄기 작업을 더욱 어렵게 하였던 것이다. 반면, 운동지도부의 모호성은 촛불시위의 전략성 결여라는 현상을 초래하였고, 이 는 결국 미미한 운동성과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촛불시위가 시사하는 정치적 의미는 매 우 크다. 첫째, 촛불시위는 비정치적 이슈의 정치적 쟁점화 현상을 표징하고 있다. 정치적 주제와는 거리 가 먼 먹거리 이슈가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는 점 에서, 이번 촛불시위는 이른바 생활정치 의 일상화 를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탈물질주의 (post-materialism)적 문화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 을 지닌다(조기숙 박혜윤, 2008). 탈물질주의란 경 제성장 및 안정, 사회질서의 유지, 국방력 증강 등과 같은 물질적 가치보다, 인권, 환경, 표현의 자유 등 과 같은 비물질적 가치가 더욱 중시되는 삶의 태도를 의미를 한다(Inglehart, 1977). 높은 경제적 성취를 달성한 한국사회의 경우, 앞으로 탈물질적 가치선호 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탈물질주의자 136 2008 겨울
촛불시위의 동학 들은 물질주의자에 비해 정치제도 및 사회제도에 대 한 신뢰도가 대단히 낮으며, 항의형 정치참여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어수영 2004). 이러한 연구결과는 정부의 정책환류 기능이 저조할 경우, 촛불시위와 같은 대규모 항의운 동이 또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둘째, 촛불시위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 되고 않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국민의 의사와 요 구를 무시하고 의회를 우회하면서, 오직 대통령의 명령만을 추종하는 정책결정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 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화가 권위주의체제로의 회귀 를 차단하는 민주주의의 소극적 공고화 는 성취하 였으나, 민주적 절차와 가치의 내면화를 의미하는 적극적 공고화 단계에는 여전히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독단과 정치사회의 무기력 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한 반응(responsiveness) 부재를 낳았고, 그 결과가 촛불시위였다(Kim & Kim, 2008). 이는 민주주의의 적극적 공고화 가 성취되지 않는 한, 촛불시위와 같은 국가와 시민사 회의 직접적 대결 현상은 앞으로도 재발할 수 있음 을 시사한다. 셋째, 촛불시위는 인터넷이 정치참여의 폭을 넓히 고, 정치참여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지던 10대들 이 촛불시위에 대거 참여하였고, 이들의 절반가량 (50.3%)이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과 촛불집회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사실(윤성이 장우영, 2008: 13)은 인터넷이 정치참여의 폭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 동하였음을 뜻한다. 동시에 촛불시위 기간 내내 일반 시민들은 온라인 공간에 모여 다양한 의견개진과 의 사소통을 활발히 전개하였다는 점은 인터넷이 정치 참여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조화 순, 2008). 이렇게 볼 때, 촛불시위가 한국정치에 시사하는 바 는 정치지도자와 국민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탈물질주의적 문화적 변이가 비정치적 이슈의 정치 적 쟁점화를 촉구하고 있다면, 인터넷의 대중적 활용 은 정치참여의 양적 확장과 질적 심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요컨대, 정부의 권위주의적 정책결정 혹은 정 책적 무반응은 쉽게 대중적 항의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촛 불시위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와 소통정치의 일상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민주 주의의 적극적 공고화 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일 반시민의 공론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온라인공간을 위축 혹은 폐쇄하기 보다는 이를 활성화하고 일상화 해야 한다. 그것의 출발점은 정치엘리트들의 인식과 태도의 전환이고, 그 종착점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을 통한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일 것이다. 참고문헌 강병한 유정인 (2008a). 배후는 없다, 지도부도 없다, 촛불만 있다. 경향신문. 5월 28일. 강병한 유정인 (2008b). 이번엔 쇠고기 현수막 단속. 경향신문. 5월 17일. 경향닷컴 촛불팀 (2008). 촛불, 그 65일의 기록. 서울: 경향신문사. 경향신문 (2008). 경찰,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시 엄벌. 7월 6일. 구본권 (2008). 온라인 풀뿌리, 세상을 바꾼다. 한겨 레. 6월 3일. 김경미 (2005). 인터넷이 집합행동 참여에 미치는 영향: 2002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학, 40(1): 183-211. 김다슬 (2008). 격화되는 촛불집회, 강경하게 평화롭게 팽팽. 경향신문. 5월 27일. 김다슬 오동근 박수정 (2008). 미쇠고기 졸속협상 후 폭풍. 경향신문. 5월 10일. 김동훈 송경화 (2008). 반정부 투쟁 번진 촛불, 조중동 구독거부에 광고주 압박까지. 한겨레. 6월 2일. 김성환 (2008). 촛불집회 주도 인터넷 모임들. 한겨 레. 5월 13일. 김성환 송경화 황춘화 (2008). 미국산 쇠고기, 성난 민심. 한겨레. 5월 7일. 정보화정책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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