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질서정연한 도시 1) 앙헬 라마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파괴했던 테노치티틀란을 재건할 때부터 2) 시작해서, 루시오 코스타와 오스카 니메이어가 기획하고 아메리카인에게 는 황홀한 꿈의 도시인 브라질리아가 등장하는 1960년까지 라틴아메리카 의 도시는 기본적으로 지성의 산물이었다. 즉, 라틴아메리카의 도시는, 도 시를 어떤 질서의 꿈으로 이해하고 이를 구현할 유일하고 적절한 장소를 신대륙에서 발견했던 세계 문화의 특정한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 다. 라틴아메리카 도시 건설의 당사자인 스페인 정복자들은 16세기를 거 치면서 자신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중세의 유기적인 도시(ciudad orgańica) 에서 벗어났다고 의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간 분배로 당시 이베리아 반 도의 생활방식과는 상이한 생활방식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복자들은 노 골적으로 합리적인 기획에 점진적으로 그리고 힘겹게 적응하게 되었다. 이 기획으로 거주자는 반복적인 도시 풍경 속에서 생활해야 했을 뿐만 아 니라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식민적 행정적 군사적 상업적 종교적 요구 에 부응하게끔 계획적으로 설계된 미래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다. 정복자의 대서양 횡단은 단순히 구대륙에서 막연한 신대륙으로 이동 1) 이 글은 앙헬 라마의 문인 도시 (La ciudad letrada) 제1장 가운데 일부를 번역한 것이 다. 2) 테노치티틀란은 현재의 멕시코시티이다.
[문헌번역] 질서정연한 도시 77 앙헬 라마(1926~1983) 출처: https://c1.staticflickr.com/3/2588/12967793863_64bb329efc_h.jpg
78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시간의 벽을 가로질러, 아직 중세적 포교 주의로 가득 차 있는 팽창적이고 전세계적인 자본주의로 진입하는 것이었 다. 16세기에 시작된 세계문화의 이러한 양식은 비록 르네상스 정신이 디 자인하고 준비한 것이기는 하나 유럽의 절대 왕정이라는 틀에서만 완벽해 질 수 있었다. 모든 권력은 궁정에 집중되었고, 교회는 절대왕정의 군사력 에 굴복했다. 이 궁정을 정점으로 사회는 위계적으로 조직되었다. 도시는 이러한 문화 형태를 현실에 구현할 가장 적절한 지점이었고, 바로크 도시 라는 장기간 지속된 도시 모델을 제시했다. 3) 주지하다시피, 관념론적 이상주의는 역사적 과거의 구체적인 축적물 앞에서 무력했고, 따라서 유럽에서는 도시를 변화시키려는 이러한 자극 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역사적 과거의 물질적 지속성으로 인해 상상력 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광활한 신대륙의 새로운 땅 이 유일한 기회의 장소였다. 신대륙을 백지상태(tabula rasa) 4) 라고 여겼기 때문에 인류학적인 관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고유한 가치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원주민의 다양한 문화는 비록 은밀한 방 식으로 이식된 문화에 스며들었을지라도 부정되었고, 도시의 건설은 무 ( 無 )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 도시를 이식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 제로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꿈의 실현이었다. 아메리카는 이러한 꿈의 첫 번째 물질적인 실현이었고, 자본주의 시대를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 행했다. 5) 3) J.H. Parry, The Cities of the Conquistadores (London: Hispanic and Luso-Brazilian Councils, 1961), Rodolfo Quintero, Antropología de las ciudades latinoamericanas (Caracas: Dirección de Cultura de la Universidad Central de Venezuela, 1964), James R. Scobic, Argentina: A City and a Nation (New York: Oxford Univesity Press, 1964), Jorge E. Hardoy, ed., Urbanization in Latin America: Approaches and Issues (Garden City: Anchor Books, 1975), Jorge E. Hardoy and Richard Schaedel, eds., Las ciudades de América Latina y sus áreas de influencia a través de la historia (Buenos Aires: SIAP, 1975), José Luis Romero, Latinoamérica: las ciudades y las ideas (Mexico city: Siglo xxi, 1976), Jorge E. Hardoy and Richard Schaedel, eds, Asentamientos urbanos y organización socioproductiva en la historia de América Latina (Buenos Aires: SIAP, 1977) 4) Robert Richard, La conquête espirituelle du Mexique (Paris: Institue d Ethnologie, 1933), Silvio Zavala, La filosofía política de la conquista de América (Mexico city: Fondo de Cultura Económica, 1947) 원래는 글씨를 써 넣을 수 있도록 매끄럽게 닦여 있거나 흠집이 전혀 나 있지 않은 명판( 銘 板 )이나 각판( 刻 板 )을 뜻하지만, 로크의 용법으로는 일체의 경 험 이전의 인간의 정신 상태를 나타낸다(역주). 5)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2 vols. (New York: Academic Press,
[문헌번역] 질서정연한 도시 79 정복지(누에바 에스파냐, 누에바 갈리시아, 누에바 그라나다)에 이름을 붙이면서 원래의 스페인 지명에 새로운 이라는 뜻의 누에바 를 덧붙였음 에도 불구하고 정복자들은 출신지 유럽의 도시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말이다. 6) 그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랜 경험을 여과시키는 장치(pantalla reductora)를 발견해나갔다. 이 과정은 식민화 경험 자체가 보여준 명확 화 이성화 체계화의 노력을 설명하기 위해 조지 포스터가 사용한 개념인 분해 과정 (stripping down process)이었다. 7) 이 식민화 과정은 구대륙에서 이미 알고 있고 경험한 기존의 현실적 모델이 아니라, 지성이 구상한 이 상적인 모델을 따랐다. 이 이상적인 모델은 방대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 인 식민 사업에 발맞춰 천편일률적으로 부과되었다. 플라톤의 국가 에 이미 나타났던 개념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의해 신플라톤주의로 되살아났고, 이베리아 반도의 자본주의를 추동한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이상적인 도시를 창안한 신화적인 인물인 그리스 철 학자 히포다무스의 개념, 특히 이성의 작용은 인간의 모든 행동에 척도와 질서를 부과할 수 있다는 믿음 도 되살아났다. 루이스 멈포드가 생각한 것 처럼, 히포다무스의 진정한 혁신은 도시 형태가 사회 질서의 형태라는 사 실을 깨달은 것 이었지만 말이다. 8) 우리가 바로크시대라고 부르는(프랑스 인은 고전주의시대라고 부른다) 16~17세기에 이러한 사유가 아메리카에 유입된 것은, 미셸 푸코가 통찰했듯이 서양문화의 결정적 시기와 일치한 다. 즉 말이 사물로부터 분리되고, 기호 질서의 독립성을 이론화한 포르 루아얄 논리학 의 이분법이 말과 사물의 결합을 대체하던 시기였다. 9) 이 시기에 기호는 세계의 형상이기를 거부하고, 유사성 혹은 친연성이라는 비밀스러우면서도 견고한 결합에 의해 연결되지 않고, 인식 체계 내부에 1974-80)을 보시오. 6) Jorge E. Hardo, El modelo clásico de la ciudad colonial hispanoamericana (Buenos Aires: Instituto Tocuato di Tella, 1968). 7) George M. Foster, Culture and Conquest : America s Spanish Heritage (New York: Wenner-Gren Foundation for Anthropological Research, 1960). 8) Lewis Mumford, The City in History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61), p. 172. 9)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Paris: Gallimard, 1966), 92-136.
80 서 의미화하기 시작하며, 이러한 인식 체계에서 자신의 안정성 혹은 가 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도시, 도시 안에 자리 잡은 사회, 그 리고 사회를 해석하는 문인(letrado)이 출현하고 발전하게 된다. 10) 이러한 앎(saber) 체계 안에서, 이러한 앎의 도움으로 광대한 아메리카 에 이상적인 도시가 출현했다. 그리고 이 도시를 지배한 것은 질서화 이 성으로, 이는 기하학적인 공간 배치 질서에 옮겨진 위계적인 사회 질서에 서 드러난다. 여기서 옮겨진 것은 사회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조직화된 형태이며, 도시 자체가 아니라 그 배치 형태이다. 이러한 아날로지적 사유 는 동일한 종류의 실체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사회와 도시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형태끼리 연결시킨다. 등 가적 형태로 지각함으로써 도시의 설계 도면에서 사회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기초한 사전 기획을 통해 다른 층위로 변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런 기획은 기호 질서에 가능치보다 더 큰 기능적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기호 질서를 확장하고 또한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이 기획을 구상하고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상하고 실행할 최대한의 권력 집중이 요구된다. 이러한 권력은 비록 아 직 교회의 절대 권력 뒤에서 정당화되고 은폐되었지만, 이미 명백히 세속 적이고 인간적인 것이다. 권력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데올 로기 기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종교적 가식이 부서지면 거대한 대안 이데올로기가 이를 대체하게 된다. 이처럼 권력이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 한 시도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는 최대의 근원이다. 이 모든 체계의 핵심어는 야누스 신처럼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서 남성관사(el)과 여성관사(la)에 따라 의미가 변하는 모호한 스페인어 단 어인 질서/명령 이다. 제도화된 3대 거대 권력구조(교회, 군대, 행정)가 적 극적으로 발전시킨 용어이며, 당시의 모든 분류체계(자연사, 건축사, 기하 학사)에서도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정의는 사물을 제자리에 배치 하기, 사물 사이의 조화롭고 보기 좋은 배치,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지켜 야할 규칙 또는 방식 이었다. 10) Op.cit., in Spanish translation (Mexico city: Siglo XXI, 1968), 64-65.
[문헌번역] 질서정연한 도시 81 산 후안 데 라 프론테라(San Juan de la Frontera. 현재의 아르헨티나 산 후안)의 도시계획도(1562년) 출처: http://www.geoinstitutos.org/geoinstitutos/ciudades_america/frontera.html
82 이 단어는 스페인 국왕(정부)이 1513년 신대륙 본토 정복에 나선 페드 라리아스 다빌라에게 내린 칙령에서도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다. 서인도제 도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이후에 진행된 아메리카 대륙 정복은 폭력적 이고 팽창적인 정복과 함께 식민화를 촉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굳이 강 조하자면, 칙령은 모든 식민지를 스페인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해안을 따라 위치한 항구 도시의 연결망을 구상하면서 말이다. 이런 항구 도시는 독립 국가가 태동하던 시기에 국가적 통합을 어렵게 만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칙령의 일곱 번째 항목은 신대륙에 건설할 도시가 지켜야할 지침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정착에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주민에게 모든 물자를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선정하게 되면, 주택 건축을 위한 부지를 분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지는 거주민의 신분에 따라 분배해야 하고, 처음부터 질서정연한 방식이어야 한다. 일단 주택을 건설하고 광장, 교회, 거리가 필요한 곳에 체계적으로 위치하면 마을이 질서 있게 보일 것이다. 왜냐 하면 애초에 질서를 부여하여 새롭게 만든 장소에서는 어떠한 노력이나 비용도 없이 질서정연한 결과를 양산하기 때문이며, 다른 공간에서는 질 서를 획득하기 어렵다. 11)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회 질서를 물리적 현실세계에 이전시키 는 것은 사전에 도시를 설계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 설계는 이성적 개념에 종속된 상징 언어를 통해서 진행된다. 그러나 이성 적 개념에는 도시 설계 외에도 미래에 대한 예측이 요구되었다. 칙령의 텍스트가 명확하게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로 도시 설계는 미래에 얻게 될 결과를 위해 진행되어야 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그리고 이성의 꿈 에 다름 아닌 미래가 이 기획을 가능하게 한 생성적인 관점인 것이다. 이 러한 사회 질서의 물리적 현실세계로의 이전은 당시 상징적 언어의 가장 추상적 체계인 수학의 획기적인 발전 덕분에 용이해졌다. 수학을 해석기 학학에 적용한 데카르트는 오직 수학적 방법론만을 유효하고 확고부동한 11) Colección de documentos inéditos relativos al descubrimiento, conquista y colonización (Madrid, 1864-1884), 34, 280.
[문헌번역] 질서정연한 도시 83 이성의 도구로 간주했다. 그 결과로 라틴아메리카에 나타난 것이 바둑판 형태의 도시 설계였다. 이 설계는 바로크 도시를 복제했고(가시적인 설계도는 있을 수도 있고, 없 을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기하학적 형태가 또 다른 결과였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사회 질서의 물질적 현실세계로의 이전을 지배하는 중심적인 규범이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비 트루비우스의 건축에서 기원하여 르네상스 사유에 빈번히 등장하는 도시 모델은 12) 원형 구도이며, 이 형태가 내포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위계적인 질서를 잘 드러냈다. 이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지아코모 바로치 다 비뇰라, 필라레테(Antonio di Pietro Averlino), 안드레아 팔라디오 등의 작품 에서 볼 수 있다. 즉, 권력을 중심에 위치시키고 그 주위에 동심원의 형태 로 다양한 사회 계층을 배치했던 것이다. 이 도시 모델은 통일성, 계획성 그리고 엄격한 질서이자 사회적 위계로 해석되는 바둑판의 규범적 원칙을 그대로 따랐다. 스페인 왕실이 정복자에게 하달한 칙령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어떤 형태의 모델이든 도시 배치를 똑바로 규칙에 따라 구상하 려는 질서화 이성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개념의 변주에 불과했다. 미셸 푸코가 관찰한 것처럼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 전체를 가 능하게 하는 것은 우선 질서의 인식에 대한 이해 방식이다. 13) 도시의 경 우에는 이러한 불가피한 인식이 도시 기획 (planning)의 원리를 도입했다. 계몽주의는 이성의 작용을 신뢰하는 시대인 만큼, 이러한 기획의 원리를 강화하고 당대에 엄격하게 제도화했다. 또한 도시 기획의 결과에 따른 많 은 불안을 공론화하여, 도시 기획의 과정과 배치, 특히 이러한 기획이 의 존하고 있는 철학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14) 이 과정 속에서, 많은 토론을 유발했던 바둑판 형식보다 상위 원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원리가 격자형 도시 형태의 배 후에서 기능하며, 도시공간의 분배가 사회적 형식을 보장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위에서 아래로, 스페인에서 아메리카로, 권력의 핵심에서 권력이 12) Giulio Argan, The Renaissance City (New York: George Braziller, 1969) 13) Foucault, Les mots, 78. 14) Mario Camhis, Planning Theory and Philosophy (London: Tavistock Publications, 1979)
84 부가하는 사회구조를 통해 도시의 물리적 형성으로 전달되는 체계를 보 장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칙령에 담겨 있는 원리이다. 이것 은 도시를 건설하기 전에 먼저 개념적으로 구상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미 수립된 규범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우발적인 요소를 피할 수 있다. 미래의 모든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하여, 도시가 존재하기 이전에 질 서가 먼저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 고 유지되면서, 사물의 가변성을 엄격한 틀 안에서 통제하는 기호의 특별 한 가치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도시 건설 절차가 확립되었고, 거대한 시공간을 넘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도시는 물리적 형태로 현실에 출현하기에 앞서, 오직 기호만이 명징하 게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재현 속에 존재해야 했다. 즉, 말은 도시 건 설의 의지를 규칙에 맞춰 옮기고, 나아가 도표는 이 의지를 설계도 위에 그려냈다. 이러한 설계도를 통해 도시 설립자들이 가지고 있던 머릿속의 이미지는 실제 지역 환경 및 전문적이지 못한 건설 과정에서 자주 수정되 어야 했다. 이러한 상징적인 도구가 이내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도시 구상 과 경쟁했다. 이 자율성으로 인해 상징적인 도구는 절대 권력이 요구하는 기능에 더욱더 부합하게 되었다. [이성훈 옮김] 이성훈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