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널 리 즘 수동적 시청자에서 문화적 소비자로 언 제부터인가 드라마 제목에 별도의 단어를 덧붙 여 부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듯 하 다. 단순히 네 멋대로 해라 대신 마니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가 불을 지폈고 다모 가아닌 다모폐 인 이 그러한 현상에 강도를 더했다. 이들이 젊은 연 령층의 시청자 집단이 집중적으로 형성한 팬덤 문화 의 사례라면 대장금 은 그러한 드라마 시청 문화의 폭을 양적으로 확장시켰다. 대장금의 열풍 과그관 련 상품들에 대한 후폭풍 이 결합하여 대대적인 대 장금 현상 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미디어 담론들을 자 주 접하게 된다. 이제 드라마 자체보다는 시청자들의 드라마 수용 양태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주목받 고 있는 것이다. 대장금 열풍에 관한 단상 - 김예란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드라마도 팬덤 등장 사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가정의 필수품이 된 이 후로 어느 사회, 어느 시기에나 최고 인기드라마란 것 이 존재해왔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얼핏 떠오르는 기억은 80, 90년대의 간난이 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들이 받았던 엄청난 인기다. 이들 드라마의 방 송시간엔 시내 거리가 텅 비었고 남의 집에 전화를 하 는 것도 삼갔다. 이것이 인터넷을 통한 다시보기 서비 스나 자리를 이동해가며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이 없 던 시기에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에 드라마를 보아야 했던 시청자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의 열성이 현재 네티즌들이 보이는 팬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오히려 미디어 발달 덕분에 다소 간의 기술적 장비와 관심만 가지면 방송의 시공간적 75
질서를 마음껏 조절하며, 반복적이고 유동적으로 드 라마를 볼 수 있는 현재의 시청 조건을 고려할 때, 텔 레비전이 물리적으로 지니는 지배력에 자발적으로 복 속했던 과거의 시청자들의 열정이 현재 시청자들의 그것보다 더 뜨거웠다고도 볼 수 있다. 달라진 점은 텔레비전 화면의 앞자리를 지키며 웃고 우는 집단이 과거 시청자의 전형이었다면, 지금의 시청자 집단은 지극히 개인화된 채널을 통해 드라마를 보고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 만나, 드라마의 이야기를 해체하고 덧 붙이고 늘이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방향까지도 제시하고 때로는 우기기까지 하는 사람들이다. 특정 드라마에 대한 일관된 애정을 가지고 절절한 심정으 로 이야기를 전달받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드라마를 텔레비전으로부터 끌어내어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다 양한 형태로 적용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 게 된다. 즉 의미적 시청자로부터 문화적 소비자로 드 라마를 수용하는 양태가 달라진 것이다. 드라마의 사회적 소비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장금 의 인기 요인에 대한 몇 가지 설명들이 제시 되어 왔다. 먼저 살펴볼 것은 드라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서사구조이다. 우선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을 둘 러싼 서사구조는 기존의 드라마, 혹은 고전소설이나 민담설화들에 나오는 서사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타 고난 재기와 착한 마음씨 때문에 비속한 사람들로부 터 시기와 질투를 받는 장금이의 운명은 콩쥐의 그것 과 유사하다.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가며 조금씩 보다 높은 위치로 나아가는 이야기 발전 구조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흡사하다. 장금이의 고아한 품성과 지혜는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읽었을 소공녀 동화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나아가 이렇게 권선징악적인 가치를 표 상하는 장금을 중심으로 하여 민담의 보편적인 서사 구조가 구성되어 있다. 조력인 역의 한 상궁, 경쟁자 역의 최 상궁과 금영, 애정 대상자로서의 민정호로 짜 여진 서사구조가 그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권선징악 적 이야기 구조는 다양한 수용자층을 편안히 포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은밀하게 뒤바뀐 권력관계에 호감 이러한 보편적 민담 구조와 더불어 현재 한국사회의 입맛에 잘 맞을 만한 대장금 만의 특성들도 지적되 었다.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03년도 최 고히트상품 목록에 대장금과 다모가 대표하는 퓨전사 극이 포함되었는데, 그 성공원인이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일반인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었다는 점에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대장금 을 응용한 식품 관련 문화 상품들이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요즘 미디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대장금 식 한의학 정 보나 궁중 음식 소개 기사들은 이 음식을 만들어 먹 으면서 임금님 놀이를 해보자. 라는 식의 어조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림 으로만 존재했던 세계의 떡 을 실제 해 먹으면서 그 환상의 세계를 대리적으로 살아 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현실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오히려 대장금 의 가상세계로 옮겨가 색다른 적극성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대장금 모바일 게임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 신문과방송 76
요즘 미디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대장금 식 한의학 정보나 궁중 음식 소개 기사들은 이 음식을 만 들어 먹으면서 임금님 놀이를 해보자. 라는 식의 어조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림 으로만 존재했던 세 계의 떡 을 실제 해 먹으면서 그 환상의 세계를 대리적으로 살아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은 장금의 능력치를 높여서 최고상궁으로 만드는 시 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한다. 하나의 가상세계로서, 대 장금 은 장금의 성공사례를 스스로 만들면서 현실세 계에서의 무기력함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사이버 시 민들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의 수용 경험을 현실로부터 소외된 욕망을 대리만족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이해하 는 도구론적인 해석은, 특정한 드라마의 사회적 수용 이 가지는 구체적인 문화적 함의를 밝히는 데에는 한 계가 있다. 모든 드라마가 도구적 허구성을 가진다고 한다면, 왜 하필 이 시기, 이 사회적 환경에서 그 특정 한 드라마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에 대한 이유는 적 절히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장 금 현상의 고유 특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대장금 이 이전의 사극들과 구별되는 특성들 이 있다. 정확히 말해 대장금 은 궁궐을 배경으로 했 다기보다는 궁궐과 민간세계의 경계 지점에서 전개된 다. 기존의 무거운 사극에서와 달리 대장금 에서 왕과 왕의 여인 들의 주된 업무는 상궁들이 만들어 준 음식들을 먹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인 신분상의 차 이는 뛰어넘을 수는 없지만 실질적인 기능면에서 주 도권을 쥐고 있는 편은 음식을 대접받는 왕족이 아니 라 그 음식제작의 노하우를 갖춘 상궁들이다. 육체와 음식이라는 본능적인 영역에서 은밀하게 뒤바뀐 권력 관계에 대중들은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성역할 의 변화도 대장금 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요소이 다. 사극 전통적인 여성상을 재현하기보다는 과학적, 사회적 지식을 배우고 발휘하는 중인 출신의 전문직 여성으로서 상궁이 그려지고 있다. 장금과 민정호 사 이의 연정 관계가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는 하지만, 이 성 간의 사랑보다는 자매애 또는 동성간의 우정이 지 배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모습이 여성CEO 담 론과 어울려서 새로운 여성 지도자상 을 재현하고 있다는 식의 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또한 장금의 요리 스승인 한 상궁과 장금의 관계를 멘토링 (mentoring) 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며 대화를 통한 주 체적인 깨달음의 기회를 부여해주는 교육법의 전형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여성 공간 효과적으로 재현 무엇보다도 대장금 이 뜨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여 성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 다. 멜로드라마의 여성적 공간에 대한 해석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앙(Ang)을 비롯한 여성 미 디어학자들의 해석을 따르자면, 멜로 장르에서 사회 공공의 영역 대신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 그 안에서도 침실과 부엌과 같이 내밀한 여성적 공간이 특히 강조 되며 이러한 공간에서 복잡다단한 세상사가 여성의 주관화된 언어로 재구성된다고 파악된다. 상징적으 로, 창문을 통해 외부 세계를 내다보는 여성이 멜로적 담화의 주체로 서 있었던 것이다. 멜로드라마적 공간 에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지극히 사소한 사건 들로 분해되어 중첩적으로 얽혀져서 현실화된다. 이러한 점에서 멜로드라마의 수용 과정에서 형성되 는 사실감은 경험주의적 사실주의(현실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가하는 문제)나, 이데올로기 77
적 기제로서의 사실주의(기성권력체제의 모순을 위장 하고 자연화하는 재현적 기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역 설적이게도 감정적 사실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 감 정적 사실주의는 완전히 현실도 아니고 전적으로 환 상도 아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맴도는 수용주체의 위치를 전제로 한다. 쉽게 말해 드라마를 보면서 마 치 나도 등장인물인 것처럼 느끼는 상태의 사실감이 라고 할 수 있다. 감정적 사실주의 시각에서는 시청자 들의 합리적인 이성작용이나 비판적 사회의식보다는 허구적인 이야기구조에 자신의 삶을 엮어 넣는 멜로 드라마적 상상력을 중시한다. 예컨대 가사노동에 시 달리고 있는 한 주부라면, 모함에 휘말려 음식 경합 대회에 홀로 나서게 된 장금의 상황을 보면서 자신과 아무런 실제적인 연관성이 없는 장금의 허구적 위치 와 자신의 현실적 위치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시는 반드시 논리적 일관성을 따르지 않는다. 또 한 인물의 중요도나 성별, 계급 등의 차이 구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인생에 절망 하고 있는 시청자라면, 완전한 인간인 장금보다 악하 고 결함투성이인 최 상궁에게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감정적 사실주의의 개념은 시청자의 의미적 차원에서 의 적극적 관여 방식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하다. 또한 감정적 사실감이 반드시 정치적, 도덕적인 옳음 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비판적인 사회의식이나 고상한 문화적 취향의 가치를 따르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대중문화적 취향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앞에서 언급했듯, 대장금이 전문 지식과 사회적 활 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여성문화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는 식의 페미니즘적 시각과는 달리, 의외로 대장 금 은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적 공간을 좀처럼 벗어나 지 않는다. 가끔 상궁들이 부엌, 혹은 그들의 가정과 같은 궁궐을 나가는 모험을 벌이지만, 장금의 희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여성의 공간인 부엌을 지 배하는 최고의 수라상궁이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것은 대장금의 주제가 기존의 가부장적 세계관으로부 터 그리 벗어나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환영 을 현실로 그렇다면 어떤 요소가 대장금을 새로운 무엇으로 받 아들이게끔 이끄는 것일까. 대장금 에서는 전통적 멜로드라마에서 정의된 여성적 공간이 스펙터클한 소 비 대상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난다. 대장금의 부엌은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다루어졌던 대로 사회적 갈등이 과잉되게 밀집한 위험스러운 공간일 뿐 아니라 그것 을 오락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장치들로 재정비되었 다. 그래서 감정적 폭발력을 지닌 내밀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현대 대중문화적인 소비와 유흥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요컨대 시청자들이 대장금의 부엌 공 간에서 억압적 신분, 성 질서에 대한 동일시의 경험과 함께 다소간의 해방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대장금의 부엌 공간이 현실의 노동 질서와 소비문화 적 욕구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삶의 조건과 상응하 기 때문일 것이다. 대장금 에서는 지극히 현대 소비문화적인 기의가 과거적인 기표를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신문과방송 78
시청자들이 대장금의 부엌 공간에서 억압적 신분, 성 질서에 대한 동일시의 경험과 함께 다소간의 해방감 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대장금의 부엌 공간이 현실의 노동 질서와 소비문화의 욕구가 모순적으 로 공존하는 삶의 조건과 상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그맛을즐길수있다. 또는, 그맛에취할수 도 있고, 마비될 위험도 있다. 만일 현대적 기표를 띠 고 나타났다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성들 간 의 질투와 기만적 행위, 그리고 상류계급이 누리는 그 화려한 물질성에 대해 시청자들은 보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불쾌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 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음으로써 대장금 은 그러한 혐의를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오제(Auge)가 말 한 것처럼 과거의 기념물로서 유형화된 역사는 이미 우리가 아닌 위치에서 현상을 보도록 하며, 그러한 시간적 비약이 낳은 역사적 상상물을 우리 의모습 으로 등치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시간적인 도착 상태에서 과거의 환영 을 현재 우리의 현실 로서 받 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을 역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극은 우리에게 힘겨운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 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과거로의 여행이 자유롭게 느껴질수록 우리가 그 과거의 환영-혹은 상상적 현 재-에 대해 고착적인 관계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상기 해야 할 것이다. 대장금 을 비롯한 퓨전사극이 유행하는 현실을 보 며, 과거를 향해 펼쳐진 화려한 시각적 기표와 현대 소비 사회적 삶의 욕구를 자극하는 사회적 의미 구조 사이에 모순적 접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지점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는 퓨전 드라마에 대한 감정적 사실감이 빚어지는 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자가 단순히 드라마의 의미적 해독자가 아니라, 그 드라마를 포함한 다층적인 문화 산업적 네트워크에 얽혀있는 소비자로 불리워지고 구 성되고 있다는 상황에서, 드라마가 구성하는 허구 세 계와 그것을 수용하는 현실적 경험 사이의 불일치 현 상이 더욱 복잡하고 실제적인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 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 50%가 대장금 을 본다고 할 때, 실제로 대장금 열풍 이 안내하는 음식문화를 소 비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중 얼마나 될까. 멘토링과 여 성CEO을 둘러싼 담론들도 요즘같이 험악한 사회관 계 속에서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시청자가 허구적 의미를 수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상상적 즐거움을 지극히 현실적인 (그래서 어쩌면 더 가상적인) 소비 의 채널로 살아가게끔 끊임없이 유혹당한다면 상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과 갈등의 깊이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소비문화 형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대장 금 열풍 현상은 드라마 수용이 지니는 다각적인 의미 적, 사회적 관계에 대한 논의는 거의 부재한 채, 오히 려 대장금 이라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생성되고 있는 또 하나의 소비문화의 형태로 유형화되고 있다는 느 낌을 지울 수 없다. 대장금과 같은 퓨전 사극이 역사 적일 수 있다면 이것은 과거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만 을 화려하게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적 중첩성으로 인해, 상상화된 과거에 몰입하 고 싶어 하는 우리의 현실적 삶의 조건과 욕망의 구조 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79